2017년 5월 10일 오전 8시 9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장 김용덕은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을 당선인으로 의결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바로 그 시각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1분 뒤인 8시 10분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공식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선서를 하기 전부터 문재인이 보인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아내(관례적 표현에 따르면 ‘영부인’)와 함께 서울 홍은동의 아파트를 나선 그는 대선 운동 기간 내내 그를 지켜준 청와대 경호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같은 아파트 주민들(전형적 서민들)을 끌어안았다. 지난 4년 남짓 동안 박근혜가 겉치레 말고는 평범한 사람들을 따듯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국민들에게는 참으로 낯선 광경이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한 뒤 청와대에 도착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분수대 앞에 모인 시민들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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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30분 동안 간략하게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재인이 가장 강조한 것은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룸으로써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 ‘낮은 자세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새 대통령 문재인의 첫날 행보는 역대 그 어떤 전임자보다 파격적이고 활력이 넘쳤다. 그는 취임식을 갖기 전부터 네 야당 지도부를 만나 ‘소통과 대화’ ‘협치와 타협’을 통해 ‘국정의 동반자’가 되자고 제안했다. 문재인은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첫 출근하는 길에 ‘촛불혁명’의 심장부이자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3년이 넘도록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광화문광장을 지나면서 승용차 선루프를 걷고 상반신을 드러내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취임사에서 “광화문 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과 가까운 곳에 있겠다”고 약속한 것을 처음으로 이행한 셈이었다.
문재인이 취임 첫째 날과 이튿날에 발표한 인사 내용은 지난 대선 기간에 그를 거칠게 공격하던 일부 매체들에서도 ‘신선하고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총리로 지명한 전남지사 이낙연, 국정원장 내정자 서훈, 비서실장 임종석을 기자들에게 직접 소개하면서 그들을 선택한 이유를 밝히는 모습은 국민들이 오랜 세월 보아오던 ‘제왕적 대통령들’과는 크게 달랐다.
특히 둘째 날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조국을 임명한 것은 나라 안팎의 언론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바로 전날 조국을 민정수석으로 내정했다는 뉴스를 보고 긴가민가하던 기자들과 정치권은 우병우가 차지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바로 그 직책을 그가 맡게 되자 검찰에서 일한 적이 없는 교수가 어떻게 그 일을 해낼 수 있는가 하는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조국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민정수석의 직무 범위와 권한을 아주 간명하게 정리했다. 기소와 수사를 독점하고 있는데다 영장청구권까지 갖고 있는 검찰의 막강한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새 대통령의 구상과 계획이라고 전제한 그는 “민정수석은 검찰의 수사를 지휘해서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은 대통령의 공약이며 자신의 소신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자신과 그의 보좌진으로 내정되거나 임명된 사람들이 약속한 내용이 실현된다면 박근혜와 최순실 일파의 농단 때문에 무너져버린 국정은 빠른 시일 안에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은 ‘촛불시민들’이 일구어낸 ‘평화혁명’에 힘입어 자유한국당 후보 홍준표를 무려 557만여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촛불광장에서 가장 크게 울려퍼진 구호는 ‘박근혜 탄핵’을 통한 민주체제 수립이었다. 연인원 1700만여명의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시종일관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그런 열기를 억누르려고 극우보수세력은 ‘북풍’으로 안보위기 의식을 조장하려 들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평화가 안보다”라는 단순한 논리로 거기 맞섰다.
목요일인 11일 현재까지 홍은동 아파트에 기거하고 있는 문재인의 앞길에는 청산해야 할 적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저질러진 부정과 비리의 태산이다. 게다가 재벌을 비롯한 극소수 기득권층이 지배하는 경제체제를 혁파하는 것도 문재인이 당면한 과제이다.
특히 그는 박근혜 정권이 무분별하게 어지럽혀 놓은 미국, 중국,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정상으로 회복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 사이에서 자주적인 자세로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내 두 나라를 설득하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지난한 일이다.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때문에 장기간 열리지 않고 있는 6자회담을 재개함으로써 북한에 대화와 협상의 길을 터주는 것도 문재인이 힘을 쏟아야 할 과업이다.
2017년은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쪼개진 지 62년째가 되는 해이다. 우리 겨레가 그 오랜 세월 동안 겪고 있는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 국토와 민족의 분단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하다. 그런데도 남과 북의 정권은 외세의 이해관계 때문에 자주적으로 분단을 극복할 수 없었다. 문재인은 취임 직후,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을 먼저 방문하고 필요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밝혔다. 남북관계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대책을 찾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물론이고 다른 후보에게 표를 준 사람들 가운데 다수도 그가 진정한 ‘민주ㆍ평화ㆍ자주대통령’이 되기를 바랄 것이라고 믿는다. 그가 적폐 청산을 넘어 국가 대개혁과 민족의 화합을 이루는 길로 국민과 함께 매진하기를 기원한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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