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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대책위, 국정원 앞에서 '내란음모 조작' 규탄

“그 티셔츠 저희 집에도 있습니다”

국정원대책위, 국정원 앞에서 '내란음모 조작' 규탄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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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31 18: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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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대책위는 31일 국가정보원 앞에서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국정원이 지하조직을 운영했다고 지목한 이석기 의원 보좌관의 집과 사무실을 사흘 꼬박 뒤져서 고작 티셔츠 한 장 압수해갔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내란음모의 증거입니까? 아니죠? 그 티셔츠 저희 집에도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원장 남재준, 이하 국정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의 딱딱한 분위기가 갑자기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국정원은 지난 28-29일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 당시 우위영 보좌관 사무공간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했지만 압수한 메모리카드와 핸드폰을 관리소홀로 분실해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증거물을 되돌려준데 이어 30일 우 보좌관의 자택을 압수수색 했지만 티셔츠 한 점만 압수해간 바 있다.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로 구성된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과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원회’(국정원 대책위)가 31일 오후 2시 국정원 앞에서 개최한 규탄대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국정원이 그래서 총 한 자루라도 찾아냈다는 것이냐”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로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해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데는 국정원이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5.12녹취록’ 외에 특별한 물적 증거를 제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5.12녹취록’은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해 이미 여론재판에서 정치적으로 유죄를 선고한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대표가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정희 대표는 “통합진보당은 공식적으로,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은 날조된 모략극임을 분명히 한다”며 “국정원이 위법하게 유출시킨 왜곡 편집된 녹취록에 따르더라도 이석기 의원이 총기소지나 파괴행위를 지시한 바가 전혀 없다. 모인 사람들이 파괴행위를 하기로 결정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국정원은 불법으로 허위 피의사실을 유포하면서 여론 재판하는 것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동영상 있으면 전부 편집 없이 공개하라”, “어떻게 입수했는지 말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우리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끓어오른 이 시점에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국정원의 반격을 우리 촛불의 힘으로, 국민의 힘으로 제대로 제어해야만 국민이 강력히 요구해온 남재준 해임과 국정원 해체를 이뤄낼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며 “마녀사냥을 중단시키고 진실을 밝힘으로써 무고한 피해자들의 인권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기로에 놓기있는 시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다”며 “우리는 통합진보당을 전적으로 지지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이것을 지향하는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권 명예회장은 “통합진보당에 권총 한 자루 없다. (내란의) 의지도 없고 현실성도 없다면 법원에 간다 하더라도 무죄”라고 말하고 “우리 모두가 당사자다... 우리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반드시 국정원의 이러한 불법적인 공안탄압 분쇄하고 국정원 해체 반드시 이뤄내자”고 말했다.

 

   
▲ 전국 각지에서 모인 3천여명의 참가자들은 손피켓과 깃발, 구호판 등을 흔들며 적극 호응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3천여명(주최측 추산)의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대책위는 이 사건이 단순히 통합진보당만을 압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다”며 “우리는 국정원의 내란음모조작을 규탄하며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위해 이 땅의 모든 민주시민들과 함께 ‘국정원해체’와 ‘박근혜 책임’을 관철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끌까지 싸워나갈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시대착오적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당장 중단하라, △국정원은 불법적 증거유출 중단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 △불법대선개입 정치공작 국정원 해체하라, △불법대선개입 정치공작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라 등을 요구했다.

장대현 국정원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규탄대회에는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최헌국 예수살기 목사, 박민정 통합진보당 전 청년위원장 등이 나와 규탄발언과 피해자 발언을 이어갔으며, 개사곡 공연 등도 선보였다.

이석기 의원은 규탄대회에 참석했지만 무대에 오르지 않았으며, 오병윤 의원 등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과 최고위원들도 대부분 참석했으며,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등 사회단체 대표들도 참석했다.

 

   
▲ 국정원 건물에 더 가까운 쪽에 먼저 자리잡은 보수단체들이 '맞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날 규탄대회가 열린 국정원 앞에서는 보수단체에서도 1천여명이 ‘맞불집회’를 열었으며, 경찰은 양측을 철저히 분리해 마찰을 예방했다.

 

한편, 이날 통합진보당은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명백한 허위사실을 정확한 출처 없이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 <TV조선>, <채널A>, <JTBC>, <문화일보> 등이 지면과 방송으로 계속하고 있는 진보당에 대한 허위날조 보도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결의문] 국정원 내란음모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

지난 대선에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하고 정치공작을 자행하며 초유의 국기문란 사태를 벌인 당사자인 국정원이 뻔뻔하게도 현직 국회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을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10명의 진보당 전·현직 간부들이 압수수색을 받았고, 3명의 당원에 대한 구속이 확정되었으며 현직 국회의원인 이석기 의원의 집무실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집행되었다. 공안당국은 구속된 3명의 진보인사를 즉각 석방하고 진보당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국정원이 발표한 내란예비음모사건이라는 것은 조직해체의 궁지에 몰린 국정원과 박근혜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이고 조작극이며, 이는 역대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사용해 왔던 구태한 습관이다. 게다가 ‘내란음모’라는 것은 유신독재시대에 대표적인 민주인사에 대한 탄압도구였고, 국제사회에서 사법살인으로 규정한 박정희 유신독재시대의 ‘인혁당 사건’, ‘서울대생 내란 예비음모 사건’,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자행한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은 오늘날 모두 무죄로 밝혀졌다.

국면전환을 위한 내란음모 사건발표에도 불구하고 국정원대선개입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책임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자, 국정원은 왜곡 편집한 녹취록을 불법적으로 언론에 공개하였으며 ‘밀입북설’ ‘북한자금설’ 등의 확인도 되지 않은 선정적인 기사거리를 언론에 흘리고 있다. 그리고 민감한 시기에 진행된 사건발표에 대해 의문이 끊이지 않자, 급기야 ‘내부조력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사건조사에 프락치를 활용했음을 자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NLL녹취록조차 조작하고 불법적으로 공개했던 국정원이 계속해서 불법을 자행하고 있지만, 녹취록에서 조차 이석기 의원이 ‘총기사용’ ‘국가기간시설 폭파’등의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우리 국민들은 국정원이 의도하는 바를 점점 더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있다.

이에 우리는 사건이 발표되고 하루 만에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국정원 내란음모조작과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를 구성하였으며, 날이 갈수록 각계 명망가와 단체들이 속속 대책위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국정원을 규탄하는 성명이 수도 없이 발표되고 있다.

이토록 시민사회가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참여하는 것은 국정원이 벌인 내란음모사건에 대해 국민들과 법조인조차 황당해 할 정도의 조작사건이 확실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고, 이번 사건이 국정원과 박근혜정부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대선개입’ ‘정치공작’ ‘NLL대화록 불법 조작공개’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불법적 행위로 국정조사까지 받은 국정원이 최근에 벌인 작태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정원을 해체하거나 해체수준의 개혁을 하라는 요구로 응수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은 이번 내란음모조작사건을 통해 또 다시 국민의 요구를 배신하고야 말았다.

대책위는 이 사건이 단순히 통합진보당만을 압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비판하는 모든 세력을 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여기 모인 우리는 국정원의 내란음모조작을 규탄하며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위해 이 땅의 모든 민주시민들과 함께 ‘국정원해체’와 ‘박근혜 책임’을 관철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끌까지 싸워나갈 것을 결의한다.

- 시대착오적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당장 중단하라!
- 촛불분열 획책하는 조작사건 당장 중단하라!
- 구시대적 조작사건,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 규탄한다!
- 국정원은 불법적 증거유출 중단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
- 불법대선개입 정치공작 국정원 해체하라!
- 불법대선개입 정치공작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라!

2013년 8월 31일
국정원 내란음모조작과 공안탄압규탄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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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이어진 촛불... "특별검사로 진실규명!"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9/01 12:54
  • 수정일
    2013/09/01 12: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서울역광장서 제10차 범국민대회... "국정원 '히든카드' 경계해야"

13.08.31 23:07l최종 업데이트 13.09.01 10: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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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광장 가득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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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너의 모습... 긴 머리 소녀야'

국정원 정치개입 규탄 10차 범국민대회가 '우중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31일 오후 7시, 촛불집회 시작 무렵 서울역 광장에는 많은 비가 쏟아졌다. 미처 우산과 비옷을 준비하지 못한 참가자들은 건물 아래로 자리를 피했다. 깔고 앉아있던 돗자리나, 손에 들고 있던 피켓을 비 막이로 쓰는 이들도 있었다. 우산도, 비옷도 없이 비를 맞는 참가자들도 보였다.

"이럴 때 별거 있습니까. 노래나 불러야지."

민중가수 손병휘씨가 무대 위에 올랐다. 손씨는 "이 비는 가뭄에 단비, 우리 마음에 내리는 단비"라면서 "매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노래들은 1970년대, 박 대통령 시절에 금지곡으로 지정됐지만 지금은 명곡인 곡들"이라고 덧붙였다. <행복의 나라><물 좀 주소><고래 사냥>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손씨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건 너, 그건 너, 정원아."

손씨의 재치있는 공연이 이어졌다.

"그건 너, 그건 너, 국정원. 바로 너, 너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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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우와 함께 시작된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대회 비를 피하던 한 어린이가 고개를 내밀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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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광장 가득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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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를 대표해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무대 위에 올랐다. 이 처장이 외쳤다.

더욱 높아진 구호 "국정원 해체하라"

"비가 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많은 비가 오고 있습니다. 억수같이 비가 오는데, 민주주의 찾는 것 포기하시겠습니까?"

시민들이 답했다.

"아니요."

"빗속에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모인 여러분,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세금을 받아서 국민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진상규명 됐습니까."
"아니요."

이어 이 처장은 시민들과 함께 "특별검사로 진상규명" "정치공작 책임자 처벌하라" "박근혜가 책임져라""국정원을 전면 개혁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소음과 함께 음향기기에 문제가 생겼다. 마이크가 나오지 않았다. 순간, 무대 앞에서부터 뒤로 시민들은 힘차게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구호가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쳤다. 참가자들은 우산을 접고 자리에 앉았다.

앰프가 고장 나면서 이날 집회에는 '소리통'이 등장하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대선 당시 사용했던 마이크를 쓰지 않는 소통 방식이다. 사회를 맡은 윤희숙 청년연대 대표가 외쳤다.

"민주시민 여러분, 지금 앰프가 고장 났습니다. 촛불은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촛불을 하늘 높이 들어주십시오."

참가자들은 윤 대표의 발언을 따라하며 뒤편으로 소리를 전달했다.

"다 같이 외치겠습니다. 촛불이 이긴다! 국민이 승리한다!"

지난 28일 새벽, 국정원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를 제기하며 압수수색에 들어가면서 많은 언론은 '이석기'로 도배됐다. 이어 일부 참석자의 '총기마련', '기간시설파괴' 등의 발언이 나오는 이른바 '5월 합정동 모임'의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과 선을 긋고 나서면서, 31일 범국민대회 참석자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만 명, 경찰추산 4000명이 참석했다. 오균희(49)씨는 "종편을 보니 하루 종일 이석기 이야기만 나오더라"며 "국정원 대선 개입 진실에 대한 관심이 내란음모 의혹에 묻힐까봐 걱정이 돼 나왔다"고 말했다.

변주연(38)씨는 "촛불 나올 정도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 "(내란음모 의혹에 대한) 조사는 조사대로 지켜보되,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은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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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광장 가득 "박근혜가 책임져라"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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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광장 가득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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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민(30)씨 역시 "별개로 보고 싶다"면서 "(진보당이) 잘못한 게 있으면 처벌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처벌받아야 할, 대선개입에 책임이 있는 국정원이, 그것도 이렇게 시기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이번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11살, 13살 두 아들과 함께 수원에서 왔다는 이지영(41)씨는 국정원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씨는 "국정원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히든카드'를 지금 꺼낸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묻힐까봐 걱정돼 나왔다"

앞서 국정원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진보당은 국정원에 대해 "촛불 분열 획책하는 조작사건 중단하라"며 "촛불과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촛불집회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앞자리에는 이정희 진보당 대표, 김선동·김재연 의원이 보였다. 이석기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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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개혁 촛불 높이 든 이정희 대표와 김재연 의원 국정원 대선개입 및 정치공작 규탄 제10차 범국민촛불대회가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 주최로 열렸다.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원들이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국정원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김재연 의원이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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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가 '시민자유발언대'로 진행되면서 진보당 의원들은 연단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당원들이 자유발언을 통해 '연대'를 호소했다. 진주에서 왔다는 한 진보당 당원은 "열불이 나서 진주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작년에 다 이겼던 그 수많은 선거, 왜 졌나. 갈갈이 찢어졌기 때문이다. 저들은 틈만 있으면 갈갈이 찢으려고 한다. 여러분, 진보당 버리면 여러분이 죽어요."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 자유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김지윤씨 역시 "하나로 뭉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시민'들은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꽉 채웠다. 인근에서는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시국회의 측은 오는 9월 13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범국민 행동의 날'을 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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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다 별이 많다는 것을 누가 알아채리오

하늘보다 별이 많다는 것을 누가 알아채리오

 
청전 스님 2013. 08. 29
조회수 4720추천수 1
 

 

청전 스님의 라닥 순례기 4편 - 하늘보다 별이 많다는 것을 누가 알아채리오

 

 

다음날 이른 아침을 때우고 점심도시락으로 감자를 으깨 넣어 구운 밀개떡 빠론따를 챙겨 받았다.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올 지점에 이르니 이미 전날 도착한 두 스님이 말 세 마리를 끌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도 젊은 스님 둘이 나왔다. 최소한의 개인 짐과 링세 곰빠와 주변 마을에서 쓸 약품의 짐 보따리가 상당하다. 처음 걷는 기세가 당당하지만 이 힘이 계속 될지는 의심이다. 모두 스틱과 등산구로 제법 그럴싸하고, 다행히도 뙤약볕이 아닌 구름이 낀 걷기 좋은 날씨다. 점심 먹을 장소로 물이 맑게 흐르는 바위벽 그늘에서 말꾼 두 스님이랑 꿀맛 나는 점심을 끼니로 이 때 만큼은 행복해 하며, “누가 인생을 고(苦)라 했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다음부터 오르는 힘든 고개(뿌르피 라:3950m)라니 첫 번째 고개를 자기 힘 따라 넘기로 했다. 나와 야크님은 늘 꽁지다. 마지막에 걸어야 대원들이 힘들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산행 경험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다.

 

<<첫 고개 쁘르피 라 고개 정상 마루에서, 두 신부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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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정상에서는 앞서간 모든 대원이 기다리며 쉬고 있다. 말꾼 두 스님은 이미 어느 지점에 기다리기로 하고 진즉 떠났다. 내려가는 길이 완전 지그재그로 무척 가파르다. 아니 무섭게 가파르다. 심 신부님은 무릎이 약하다며 제일 꽁지로 천천히 내려부친다. 평지에 닿으니 말을 초지에 풀어 두고 두 스님은 야크 똥 주워 모아 불을 지피며 소금차를 만들고 있다.

 

<<징첸에서 비박한 날, 아침으로 말 밥 축내고 다음 고개를 오르니 어제 넘은 고갯길이 환하게 보인다. 워메 징헌 놈의 비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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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를 스님들이 징첸이라고 부르는 비박 장소다. 얼마나 피곤한가. 각자 풀이 우거진 곳에 깔개를 삼으며 잠자리를 만든다. 레오 신부님과 빠리 스님은 유목민이 만들어 둔 흙집 바닥에서 자기로 하고 나머지 넷은 낭만을 즐길 요량으로 그냥 하늘을 지붕으로 삼는다. 라닥 지역은 거의 비가 내리지 않기에 비 걱정 없이 텐트 없이도 이런 잠자리를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누어서보는 밤하늘의 별무리는 그 얼마나 황홀한가. 인공 불빛이 없는 이 맑고 맑은 별무리를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늘 보다 별이 많다는 것을 누가 알아채리오. 이미 쟌스카 계곡에 들어와 밤마다에 밤하늘을 보고는 감탄과 찬탄을 얼마나 연발했었는지. 카르샤 곰빠에서 밤하늘에 뿌옇게 펼쳐진 은하수를 처음 보면서 지 교수님은 그게 구름이라고 빡빡 우겨대다가 매일 그와 똑같은 모습에 스스로 우기던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아참 자리에 눕기 전에 비상식량으로 챙겨 가져온 <비록 말린 야크 똥으로 끓였지만> 우리 라면의 맛이라니. 누구하나 그만이란 사양의 말을 안 하며 퍼주는 대로 받아먹는데, 배고플 때 먹는 이런 맛을 누가 바른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마부스님 둘에게 따로 라면 두 개를 주었는데, “뻬 심뽀둑, 뻬 심뽀둑”을 연발 하는데, 정말 맛있다는 티벳 말이다.

 

<<가끔 이름 모를 고산 야생화, 어딘지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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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가 바쁘게 다들 자리에 눕는다. 필자에겐 이런 잠자리가 신기할 게 없다. 매 해 마다에 이런 경험을 하니까. 지금 이 길만 몇 번째인가 헤아려보니 여섯 번째이다. 반대로 거슬러 간 일이 두 번이었다. 첫 걸음은 1992년 철없이 호기심으로 넘었던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땐 트레킹이란 빌미로 그저 놀기 좋아 싸돌았었고, 그 인연으로 라닥의 실상을 알아차리게 되었으니 연장선상에서 매년 이런 의료 봉사의 길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이라도 저녁엔 쉽게 잠에 빠졌는데 이 밤은 생각이 깊어진다. 내일 들어가는 링세 곰빠의 체링 도르제 스님 때문이다.

 

작년 여름이니 꼭 일 년 전에 신장 결석이 탈이 되어 끝내 이승을 마쳤다. 칠십 전이라 더욱 애잔한 생각이다. 이 길을 다섯 번이나 함께 걸었었다. 만약 작년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마땅히 그 스님이 말을 끌고 나왔을 거다. 2007년에는 한국에도 함께 나드리도 했는데 바로 필자가 이 길을 오갈 때 함께 한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늘 언젠가는 함께 티벳을 가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아, 인생은 무상하지요 체링 스님, 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이른 새벽 누가 깨우지 않아도 부스럭대며 자기 침구를 정리한다. 처음 말을 띤 지 교수, 간밤에 하늘을 두 개로 완전 가르는 별똥이 기가 막혔다는 즐거운 비명의 말을 쏟아낸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촌놈의 호들갑을 충분히 이해한다. 1993년 카일라스 성산 순례 길에서 티벳 장탕 고원을 가로지르며 걸을 때 밤마다에 많이도 보아온 별똥의 유희라니. 티벳 사람들은 별똥을 “깐다”라고 부르는데 “별이 쏜 화살”이란 뜻으로 표현이 너무 예쁘다.

 

오늘 올라 부칠 고개가 험하며 최고 높은 고개로 둘이나 된다. 서둘러 가야 될 길이라지만 그래도 아침은 챙겨 먹어야 되는데, 특별히 준비된 먹꺼리가 없다. 이곳 스님들의 주식인 짬빠(보릿가루)를 먹기는 어설프다. 두 스님이 소금차를 끓이는데 한쪽에 처박아둔 지저분한 식기에 뭐가 잔뜩 담겨있다. 노란 카레를 넣어 해 논 인도식 밥이 가득하다. 두 스님이 먹을 밥인가 물으니 세 마리 말에게 먹일 것이란다. 그럼 당신네 아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으니 계면쩍게 웃으며 바로 이 밥에서 조금 덜어 먹을 거란다. 맙소사! 필자야 먹는 문제라면 어떤 험한 먹꺼리라도 문제 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우리 대원이 문제다. 일부러 지 교수한테 저 밥 먹을 수 있겠소 물으니 선뜻 손으로 집어먹는데 하는 말이라니, “스님, 이건 완전 기내식인대요!” 아무리 궁한 처지라도 말이 먹을 밥을 기내식이라 하다니. 결국은 모든 사람이 이 밥을 데워 함께 먹기로 했다. 챙겨온 밑반찬으로 장아찌가 조금 남아 있어 가능할 듯 했다. 우리가 먹은 밥이란 바로 우리 말 세 마리에게 먹일 아침 끼니를 우리가 축내는 꼴이 된 것이다. 지금도 그 때 누구 하나 군소리 없이 먹어준 우리 대원에 감사한다. 그런 밥을 어느 누가 먹을 수 있겠는가.

 

<<걷는 만큼 이익이다, 이 무슨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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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이렇게 때우고는 서둘러 길을 떠나게 했다. 해가 나기 전 그늘 속을 걸어 부쳐야 속력을 낼 수가 있다. 생각 보다는 수월하게 한 고개(네르쩨 라:3900m)를 넘으며, 어제 고갯길에서 내려부치는 가파른 길이 보인다. 누군가 저 길을 되돌아 갈 용사는? 하고 물으니 천만금을 준다한 들 온 길을 다시 되돌아 넘지는 못하겠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두른다. 이때 순발력을 발휘, “바로 그거요! 지금 우리는 얼마나 편한 산행 길인지 알아야 해요. 이 두 스님은 말을 몰고 우리를 위해 어제 저 길을 넘었으니 우리의 두 배가 넘게 힘이 들었다는 것을!” 하는 필자의 말에 누구 하나 토를 못 붙인다. 이 말을 듣고는 쉬었다가자는 말도 없이 걸어 부치기만 한다.

 

<<퇴약볕 아래 점심이라니, 모두 지쳤는지 먹꺼리에 무관심인 듯. 모두 퍼진 듯 널부러져 앉아만 있다.

두 시님이 소금차를 원시적 방법으로 끓인다. 짬빠와 마른 야크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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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만 라 고개 정상에서 북쪽의 끝없는 바위 산의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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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부님과 함께, 이 인연 영원하게 --- 생사를 같이한 전우니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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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스님과 야크님이랑 키념 촬영을 꼭대기 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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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하나 마다에 기를 쓰고 넘으면 으레 오른 만큼 내려 부친다는 게 사실 맥 빠지는 일이다.

이제 넘을 다음 고개가 제일 힘든 고개(하누만 라 :4950m)로 악명이 나 있는 사람 잡는 고개다. 어찌 고갯길이 그리 지루하고 힘들게 되어 있다. 한 시경 물이 흐르는 데서 점심이라고, 그것도 뙤약볕 아래서 라니. 짬빠로 때우는 방법 외에 어떤 먹꺼리가 없다. 마른 야크 고기를 씹으며 끼니라고 때우고는 쉴 참 없이 오르도록 했다. 늘 말씀 없이 오르던 레오 신부님도 좀 짜증스런 말투로 이놈의 길은 끝이 나올 때도 되었는데 아무리 걸어도 그 자리가 그 자리라고 불평을 처음으로 하신다. 예상 보다 시간이 걸려 고갯마루 정상에 두시가 훨씬 넘어서야 올랐다. 저쪽 아래 절벽 산을 버티고 자리한 링세 곰빠가 아스라이 보인다. 또 레 쪽으로 협곡 끝이 뻗어 있는데 이 풍광은 참으로 대단한 볼거리다. 미국에서 유학중에 많이도 가봤다는 그랜드 캐년, 그보다 수십 배나 장엄하고 아름답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지 교수도 이쪽저쪽 사진 담기에 열심이다. 모두 기념사진이라고 많이도 찍어댄다. 이제 하산길이라지만 너무 가파른 내리막길이라서 오히려 위험이 따른다. 많이도 한참을 내려 부쳐야 마을의 파란 보리밭의 평탄한 길을 걸을 수가 있다. 필자는 일부러 제일 늦게 꽁지에 남아 길을 걸어 부쳤다.

 

평지에 다다를 즈음에 하얀 천막에 쉬어갈 간이 가게가 있다. 말꾼 두 스님이며 대원이 나를 기다린다. 가야할 대원들의 모습이 완전 녹초가 된 듯, 모두 주저앉은 모습이 패잔병 꼴이다. 애원어린 말투로 여기서 절까지는 아직도 다섯 시간을 더 가야 하니 하루 여기서 묵자는 제안이다. 나중에 알아냈지만 너무너무 피곤하고 지쳐 더 걸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필자가 오기 전에 서로 입을 맞춘 말이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온 길도 일반 여행객들 기준으로는 사흘 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내 고집으로 세 시간이면 들어갈 수 있다며 말꾼 두 스님부터 떠나도록 하니, 모다 억지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인데 정말 걷기 힘든 걸음 거리를 본다. 이제 조금 후에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모르는 채 말이다.

 

<<양떼를 만났는데 군기가 들어 있는지 순서대로 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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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둔덕을 넘는데 이제 내가 꽁지에 선다면 더욱 늦어질 것 같아 앞장서서 밤이 되기 전까지 곰빠에 다다르려 속도를 내어 걷기로 했다. 이건 잘못된 판단인 것을 후에 알게 된다. 지쳤을 때의 한걸음은 왜 그리도 힘이 드는지, 세 시간이면 닿을 줄 알았던 절이 늘 멀리만 보인다. 거의 마을 보리밭이 닿을 무렵 거대한 양떼를 만난다. 목동에게 물으니 700여 마리라고. 자기들끼리 질서 정연히 게울 다리도 건네며 보기에 참 평화롭다. 마침 마을에 들어서니 곳곳에 주민들이 나와 있는데 신통한 모습을 봤다. 열 집 정도의 주인인 듯 양들이 자기 주인을 쪼르르 찾아 또 다른 단체를 만들며 걸어가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현상에 신통한 양떼라며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 저쪽에 곰빠가 보이며 스님들이 죽 나와 하얀 카타를 들고 우리를 맞이한다.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노스님까지 모든 스님들이 다 나와 우리를 반기는 것이다. 그런데 빠리 스님이 올라오지 않는데 무려 컴컴한 밤이 되어서야 야크님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방에 들어와 누워버린다. 길가에서 토하면서 늦어졌단다. 나의 강행군 결정이 너무 무리한 것이다. 원래 이런 산행도 처음이라며 내색은 안 해도 힘들게 고개를 오르고 내렸다. 빠리에서도 학교 공부에만 치중하다 보니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진데 나의 섣부른 시간 단축 강행군이 탈을 만든 것이다. 아홉 시가 넘어서야 우리식 수제비 텐툭이 끓여 나왔다. 빠리스님은 수저도 못 든다. 완전 지쳐서 탈진 상태로까지 빠져버린 것이다. 쉬면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고소 증세를 적응해낼 수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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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도 전쟁 중이다!" 그 상대는…

[기억, 그 힘든 싸움] 역사학자 김기협이 사회학자 김동춘에게 묻다

안은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30 오후 7:17:02

 

 

"나는 빨갱이 아니다. 잠자는데 인민군이 들이닥쳐 밥 해달라고 해서 밥 해준 것밖에 없다." 울부짖음은 총성 속에 묻혔다. 1950년 8월 초, 칠곡 신동고개 근처에는 매일 같이 농민, 더러는 학생 차림을 한 사람까지 포함한 수십 명을 실은 트럭이 두세 번씩 드나들었다. 헌병들은 쌍소리와 욕설을 섞어 가며 굴비처럼 엮인 사람들을 총살했다. 학살은 6일 동안 계속되었고, 마지막 날엔 삽으로 시체를 묻었다. 갈치 구운 냄새 비슷한 시체 썩는 냄새가 한여름 코를 찔렀다. 대부분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개, 돼지'처럼 죽었다.

한국전쟁 초기 민병대에 들어갔다가 헌병의 민간인 학살에 가담하고 만 어느 가해자가 2001년에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 앞에서 털어놓았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가족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명령과 트라우마 때문에 그는 평생 침묵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입회했던 끔찍한 현장은 한국전쟁기 무수히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일부 중 일부였다. 그 학살 가운데서도 국군과 경찰에 의한 학살은, 전쟁 이후 반공을 외치는 사회 속에서 완전히 어둠에 묻힌 터부였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기 좌익 관련 민간인 피학살자들이 역사 속에서 세 번 죽었다고 말한다. "학살 자체가 첫 번째이고, 1960년 당시 진상규명 요구를 탄압하고 그 일에 앞장선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진상규명 요구를 폭력으로 틀어막은 것이 두 번째이며, 그 후 유가족과 자식들을 모두 '빨갱이'로 취급하여 1980년대까지 연좌제로 묶어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세 번째다." 그는 평생을 고통 속에 침묵해야 했던 이들 편에 서서 한국 정부와 미국의, 사회와 여론의 부인·망각·무지와의 싸움을 벌여 왔다.

 

▲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펴냄). ⓒ사계절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펴냄)는 원래 노동사회학을 연구했던 김동춘 교수가 "한국전쟁기 학살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와 정치·사회의 일부가 되어 있으며 부드러운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연구자로, 운동가로, 정부 조직의 일원으로('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활동해 온 지난 10여 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은 단순한 회고나 고발을 넘어 '기억과의 싸움' 자체와 그 싸움의 핵심 쟁점들을 좇는다. 세상의 무지에 맞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국가와 싸워 본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할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 책은 2013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왜 한국전쟁기 학살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준다. 그는 한국 정부가 한국전쟁기에 학살을 자행하고도 그것을 은폐해온 과정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와 사회의 야만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가 폭력의 메커니즘을 다룬 2000년의 <전쟁과 사회>(돌베개 펴냄)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은 전쟁을 체감하지 못하지만, 고문 등 가시적인 국가 폭력이 사라졌다 믿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부드러운 방식'의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김기협은 이 책의 서문을 읽자마자 시민으로서, 운동가로서, 연구자로서 한 사안에 대해 넓고 깊게 천착해 온 그의 경험과 역사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1945년 8월부터 1948년 8월까지 3년간 펼쳐진 해방 공간의 매일을 세심히 기록한 '해방 일기' 연재를 막 끝낸 참이었다. (☞'해방일기' 그간의 연재 바로 가기) 그는 여전히 이 시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 방식을 묻고자 했다. '프레시안 books'는 두 학자와 함께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를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그 기억, 국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왼쪽), 김기협 <해방일기>(너머북스 펴냄) 저자(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한(恨)과 정의 사이에서

김기협 : 일단 고생이 많으셨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한국전쟁기의 학살이라는 사안을 놓고 시민으로서, 연구자로서, 운동가로서, 또 몇 년간은 정부 기구의 관리로서 고민하고 실천해 오셨으니까요. 이 중 한 가지 입장에 머물러 있다 해도 괴로움이 많은 일인데, 여러 가지 입장을 겪다보니 그것들이 상충되는 측면도 있었을 거고요. 이 사안을 오랫동안 파고들 수 있었던 동력은 역시 그 기억으로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었겠지요.

김동춘 : 그렇습니다. 그 분들이 먼저 제게 호소를 하고, 절실하게 대변해 주길 바랐습니다. 전 거기에 응답을 하게 된 거지요. 당사자들에 비해서야 제가 한 고생은 많지 않습니다.

김기협 : 한국전쟁기 학살이라는 문제에 대한 관점을 처음으로 뚜렷이 밝힌 게 13년 전 펴낸 <전쟁과 사회>일 텐데요. 그때는 기본적으로 연구자의 관점이었죠. 그렇지만 거기서도 완전히 연구자 위치에만 머무른 건 아니었죠?
 

▲ <전쟁과 사회>(김동춘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김동춘 :

맞습니다. <전쟁과 사회>도 100퍼센트 아카데믹한 책은 아닙니다. 학술적 입장이 80퍼센트쯤, 나머지 20퍼센트엔 운동적인 관점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기협 : 어쨌든 저는 이 문제에 임하는 선생의 입장부터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운동가로서 '유족 주도인가, 시민사회 주도인가'라는 운동 방향의 문제로 고민하신 대목도 눈에 띄는데요. 유족 개개인의 억울한 입장을 풀어주는 역할,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근본적인 처리 방법이나 전략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살펴서 주장해야 하는 역할 간의 대립이라고 할까요.

김동춘 : 네. 그 두 가지가 충돌하는 측면이 있지요. 바깥에서도 그렇고, 제 내부에도 있고요. 피해자의 대변자로서 말할 때는 당사자들의 감정이나 인권이라는 층위가 강하게 작용한다면, 후자의 경우엔 피해자의 개인적인 억울함을 넘어서는, 사회의 어두운 점을 폭로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을 바꾸고 반공주의를 허물고 정치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짐을 지게 되는 것이지요. 두 부분은 분명 충돌을 했기에, 필요에 따라서 적절하게 다른 수사를 구사해야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발언할 때와 유족들에게 직접 이야기할 때 사이에 표현의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지요.

김기협 : <전쟁과 사회>를 쓰게 된 문제의식 중 하나는 '한국 역사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정리가 전제되지 않고는 어떤 새로운 사회과학 이론이나 주장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썼습니다. 한국전쟁이 그 후의 남북관계나 한미관계, 남북한 정치사회의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산악"임을 확인했던 것이, 노동 문제를 연구했던 선생이 이 문제에 천착하게 된 이유인 셈이지요.

<전쟁과 사회>에서 문제의 초점처럼 제기한 것이 국가주의였죠. 그런데 저는 좀 의문이 듭니다. 과연 그게 지나친 국가주의 때문에 일어난 문제였을까, 그 당시의 국가가 과연 국가다운 국가였는가, 오히려 국가주의의 취약성 때문에 일어난 일로 볼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의문입니다.

 

▲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동춘 : 제가 어디선가 '국가의 과도함은 국가의 부재를 표현한다' 비슷한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일단 거시적으로 보면 근대국가의 수립 과정에서 전쟁 등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때 국가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있고 국민들의 동의를 얻고 있었다면 구태여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근대국가로의 이행이 가능할 텐데, 그게 미비했기 때문에 폭력이 전면에 등장했다면, 선생 말대로 국가주의보다는 국가의 부재에서 오는 사설 폭력과 내전 상태였다고 볼 수 있겠죠.

이 문제가 바로 대안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국가다운 국가를 지향하는가, 혹은 국가 시스템 자체를 넘어서야 하는가, 라는 문제이지요. 제 경우 연구자로서는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나 국가주의의 문제를 강조했다면, 운동이나 실천의 면에서는 국가의 '제대로 된' 완성과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국가를 지향하는 입장이 제 안에 착종되어 있습니다. 또 글에서는 국가 자체를 문제 삼는 데 비중이 가 있다면, 제도권에서 활동할 때는 국가다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웠고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국가가 제대로 책임을 지는 국가가 된다 하더라도, 가시적인 폭력은 사라져도 보이지 않는 다른 형태의 폭력은 지속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소실점


김기협 : 이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반응·조처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시점은 연구자로서의 이론적인 지향과 일치할까요, 아니면 보다 현실적인 눈에 가까울까요.

김동춘 :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의 접근 방식은 후자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그런데 책에서도 스치듯 언급했지만 이 문제를 미군 범죄로 봐야 한다며 반미로 접근하는 NL(민족해방) 계열 사람들하고 논쟁이 많았어요. 여전히 '크게 봐서는 미군 범죄의 문제이고 그래서 반미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맞다'라는 시각을 가진 세력이 있고, 일부 유족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해서 입법 투쟁으로 끌고 가는 게 힘들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현실론을 택했습니다. 미군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우선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지요. 그래야 작전 수행 과정에서 한국군의 위치와 한계, 그리고 전쟁에서의 미국 책임 문제도 드러날 수 있겠지요.

김기협 : 그런데 이런 건 어떨까요. 피해자 유족에 대한 배상 주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그렇고, 이전까지의 한미관계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그것을 전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밝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동춘 : 필요합니다. 그 점에서 이데올로기로서의 반미주의보다는 당시의 실질적인 책임의 주체가 누구였는지로 문제를 좁혀 가야 합니다. 4.3사건 같은 경우 정부 수립 이전인데, 그럼 과연 그때 주권이나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을까요. 나아가 1948년 정부 수립과 미군이 철수하기까지 1년간의 지휘권의 문제도 따져봐야 할 거고요. 1950년 7월 대전협정(당시 임시수도 대전에서 주한미군의 지위 및 재판 관할권에 관해 체결된 한미 간 서한교환형식의 협정-편집자)에서 작전지휘권이 맥아더에게 넘어간 이후 한국군의 작전지휘에 있어서의 미군의 책임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구태여 반미라는 이데올로기로 갈 필요도 없이, 국민의 입장에서 법적으로 문제제기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1950년에 미국도 나중에 발생할지 모르는 책임 문제를 다 대비해 놓기도 했습니다. 물론 법정에서 한국 정부나 피해자들이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로 이라크 등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 문제를 세계적 차원에서 부각시키는 계기라고 볼 수 있죠.


김기협 : 그러고 보니 <전쟁과 사회>와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사이에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창비 펴냄, 2004)이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제목대로 '전쟁과 시장'이란 엔진으로 돌아가는 미국의 국가 성격을 다뤘는데,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사의 굴절에 큰 배경이 되기도 했을 테고요. 미국의 특이한 국가 성격은 통상적인 국가론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현상이라고 보십니까?
 

▲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김동춘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김동춘 : 네. 전 미국이 통상의 국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국인데요. 전통적 제국주의라고 부르기도 적절치 않습니다. (보통의 국가의 외교부에 해당할) '국무성'이라는 명칭이 보여주는 대로, 전 세계가 미국 안에 있고 전 세계의 문제가 미국 문제인 나라 아닙니까. 폭력보다는 주로 이데올로기의 지배, 특히 문명론적인 측면이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해 훨씬 더 강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다수의 '너희'에게 물질적 행복을 주고 있고, 그게 문명이다, 미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이 명제를 스스로 의심하지 않죠. 저는 확신범이라고 봅니다. 그것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반대 세력도 있지만 취약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특이한 제국이고 국가론에서 이야기되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미국이 아닌 나라들은 주권국가가 아닌 것이죠.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정 정도의 주권이 미국에 양도되어 있는 상태이니까요. SOFA 내용의 각 나라 별 차이가 있다고 할까요. 그런 특이한 상태이기 때문에 전통적 제국주의론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제국을 용인하자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김기협 : 미국 존재에 대해 그렇게 규정한다고 하면, 거기 연계되어서 한국의 국가 성격도 현실적으로 규정되는 측면이 있겠죠.

김동춘 : 그렇죠. 그렇게 보면 한국이 주권을 100퍼센트 확보한 국가라고 하기에 현실적으로 안 맞는 측면이 있지요.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가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옹호하는 게 지배 엘리트들의 역할일 테지만, 거기서도 한국과 미국의 국가 위상이 아예 다르다는 현실의 레이어가 있음을 받아들여야겠지요.

국가는 힘이 세다

 

▲ 김기협 역사학자·<해방일기> 저자. ⓒ프레시안(최형락)

김기협 : 2000년 <전쟁과 사회>, 올해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를 내기까지 여러 곡절을 겪었던 시기의 정치적 배경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입니다. 공화당에서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권력을 운용하는 주류 세력이 있었고, 거기에 반대하거나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생각했던 세력이 정권을 잡고 10년간 국가 운영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모처럼 권력을 넘겨받고서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비판들이 있지요.

그러한 한국 현대사의 고충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당 혹은 세력이 정권을 잡느냐와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존재 양식 자체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김동춘 : 거기에도 근본주의적인 접근과 현실주의적 접근 사이에 긴장이 있습니다. 1948년 이후로 대한민국의 권력은 줄곧 변함이 없었다는 극단적인 반미민족주의의 입장이 있고, 1987년 민주화 이후로 생겨난 정치적 공간이 있는데 이것의 역할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운동 진영에서 나타나는 입장의 차이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제가 4년간 제도권에 있으면서 절감했던 게 있다면, 역시 국가와 정권-정당의 기반이라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정치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으레 정당 정치를 떠올리지요. 그런데 제가 후배들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했던 게 있습니다. "정치, 정당이 하는 거 아니야. 검찰이랑 경찰이 하는 거야." 만약 박정희 정권 때라면 그 자리에 중앙정보부가 들어갔겠지요.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었을 때도 원하는 대로 입법도 못 했고, 그 법이 통과되었다 하더라도 법을 적용할 때 정당을 넘어서는 힘 앞에 멈출 때가 많았습니다. 행정자치부의 힘은 막강합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예산권을 가진 쪽과 물리적 강제 수단을 가진 쪽이고요. 입법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실천 과정에서 계속 부딪치는데, 거기에서 힘을 가진 기구들이 협조 안 하면 그만인 거죠. 그런 기구마다 또 오랜 역사와 나름의 조직 문화가 존재하고요.

진실화해위에서의 4년간은 정당을 넘어서는 국가의 힘을 피부로 느끼고 제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건 심지어 대통령조차 함부로 못 할 정도의 힘이지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좌초, 심지어 정권이 끝난 뒤에도 자살로 몰리게 할 정도의 비극이 우리 사회의 엄혹한 역관계를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기협 : 현대국가의 형식적인 요건이라고 하면 헌법에 의거해 법을 존중하는 정치일 텐데요. 그런데 요즘 헌정이 유지되고 있는 건가 의심스러운 사태가 수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루신 문제 역시 전부 헌정 파괴라는 혐의를 갖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그럴 때 가해자를 국가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국가를 끼고 있는 어떤 집단이나 권력자라고 봐야 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동춘 : 가해자 개개인은 국가 권력의 대행자들일 테고, 그 사람들이 초법적이고 위헌적인 행동을 반복해도 그걸 옹호·정당화하거나 혹은 처벌하지 않고 놔두는 힘이 근본적인 가해 주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법전에 나와 있는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나 직접적인 물리력으로 존재하는 것일 테고요. 이는 평범하다 생각될 정도로 우리가 매일 매일 확인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전두환 추징금 환수 작업은 왜 그동안 안 하거나 못 했을까, 청문회에서 위증을 해도 왜 처벌을 받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해 보면 알 수 있어요.

법 지배의 원칙은 가해자 개인을 색출해 단죄하고 처벌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현실 속에서는 그 가해자들의 행동을 끊임없이 뒷받침해주는 이데올로기를 어느 정도 균열 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헌법(정신)이란 게 다수의 생각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대중의 인식의 지평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겠지요. 그 지형을 약간만이라도 변화시키는 것이 역사의 발전일 테고요.

이 점에서 사회학자인 저는 아무래도 법학자들과는 다른 관점입니다. 법학자들은 법적으로 잘 따지면 법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전 사회를 보고 '안 될 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법으로 단죄하자고 해도 그게 다 사회가 움직여주는 만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관여한 문제에 대해서도 애초부터 '이 정도까지라도 가면 아주 잘 간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피해자 유족 분들이 들으면 약간 섭섭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요.

 

ⓒ프레시안(최형락)


해방은 진정한 해방이었는가

김기협 : 지난 3년간 <프레시안>에 연재했던 '해방일기'를 얼마 전 마무리했습니다만, 그동안 깨우친 사실 중 하나가 '해방은 진정한 해방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하면 1945년 8월 이전에도 국가란 것이 존재하기는 했다는 사실일 텐데요. 이 연재는 45년 8월부터 48년 8월까지의 미군정 시기를 다루는데, 그 3년을 세밀히 뜯어보니까 당시 사람들에게 식민지 시절이 그리웠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적어도 남조선에 있는 사람들은 말이지요. 민생의 조건부터 시작해서 폭력과 보복의 연속 등 많은 면에서 일제의 식민 통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고요.
 

▲ <해방일기>(1권, 김기협 지음, 너머북스 펴냄). ⓒ너머북스

그게 제국주의 국가의 총독지배였기에 문제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현실 차원에서는 (미군정기보다) 오히려 국가답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48년 정부 수립 이후는 아직 세밀히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이때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즉 분단이라는 명목상의 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이때의 국가도 우리 민족의 국가라고 이야기할 만한 실질적인 조건을 얼마나 갖추고 있었을까 회의적으로 봅니다.

제 작업은 48년 8월에서 끝났기에 이런 것까지 확신할 수 없지만, 선생은 그 이후의 일들을 많이 살펴보셨지요. 제가 식민지 시대와 미군정 시대의 상태를 국가로서의 실질적 의미로 비교하는 관점에 비추어, 미군정 이후의 상황은 어땠다고 보십니까.

김동춘 : 말씀하신 대로 일제 강점기가 물론 고통스러운 세월이긴 했으나, 해방 이후에 펼쳐진 것과 같은 엄청난 폭력과 빈곤의 만연은 비교적 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태가 계속될 수는 없는 체제였지요. 탈피는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만일 미·소 양 강대국이 분할 점령을 하지 않았더라고 해도 정치 폭력을 비롯한 광범위한 진통이 발생했을 겁니다. 탈식민지 공간의 폭력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했으니까요. 그 진통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제국주의는 늘 떠날 때 분열의 씨앗을 뿌리고 떠나 다시 개입할 명분을 만듭니다.

어쨌든 크게 본다면 양 강대국의 개입이 가장 결정적인 변수였음에는 틀림이 없고, 이 변수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45년 말~46년 초에 송진우나 장덕수 같은 분들이 암살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한민당도 친일 혹은 지주세력을 중심으로 재편되기보다는 건강한 민족주의 세력, 우익 중에서도 반 이승만 우익 세력들의 설 자리가 있는 정당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48년까지의 미군정이라는 압도적 변수가 남한 내의 정치 지형을 완전히 뒤집었고, 그 과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좌익들의 공세와 극도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던 우익들의 공격성이 결합해서 걷잡을 수 없는 정치 폭력에 다다랐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쪽에서 김일성이 내려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남한 내에서 준 내전 정도의 정치 폭력이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방 이전의 한반도 상황과 해방 이후 분단을 겪을 것을 가정하고 '어느 국가가 더 나았느냐'라고 물을 수야 없겠지만, 민(民)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방 이후의 공간이 일제 강점기보다 혹독했던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자료를 토대로 통계를 내 보면 1948년부터 53년까지의 기간에 일제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고문, 학살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김기협 : 1950~53년은 전쟁 중이라 비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는데, 48년부터 50년까지도 그랬습니까?

김동춘 : 1948, 49년 그리고 50년 전쟁 이전까지 전국의 모든 경찰서에서 고문이 이뤄진 정도였습니다. 아주 작은 파출소에도 고문 도구가 있었거든요. 게다가 1948년 말에 국가보안법이 공포되고 1년 만에 10만 명이 체포되었는데, 이들 모두 크고 작은 고문을 당했기 때문에 그 규모나 양, 강도를 봤을 때 일제 강점기 때보다 심했을 거라고 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현실을 느끼면 역사가 보인다

김기협 : 책에도 묻어나지만 아쉬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게 또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동춘 : 제 본연의 연구자로서의 입장을 앞세운다면, 저는 전부터 한국전쟁의 진실 가운데 보통 한국인들이 경험했던 진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거기엔 피학살자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월북자, 실종자, 혹은 군에 징집되었던 보통 한국인 남성들이 있지요. 군사적·외교적·정사적 진실에 비해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총 2만 5000여 명이 징집되었으리라 추산되고 그 중 상당수가 실종, 사망했는데 이를 국가가 전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나오지만 길거리에서 그냥 잡아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또한 당시 국제법상 17세 미만은 징집 불가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고요. 더 비참한 것은 전장에 나갔다가 거의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 온 청년들이 있었는데, 징집 기록이 없어서 두 번 입대한 경우도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에 있을 때 꽤 많은 숫자가 접수되었어요. 군대 두 번 가는 거, 한국 남자들에게 제일 큰 지옥이지요.(웃음)

돈 많은 이들은 징집에서 빠지고 돈 없는 이들은 전장에서 죽음을 맞고…. 이런 보통 한국 남자들의 경험이 한국전쟁의 진정한 진실일 텐데, 그것이 충분히 밝혀져야만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을 텐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연구자 입장에선 굉장히 괴로운 일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일방적 정보만 전달받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은 거의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영역에 가 있습니다. 저 용산의 끔찍한 전쟁기념관에 박제된 채로요. 정부 기구에 들어가서 일하면서도 우리가 수집한 기록, 사료들을 평화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담아내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었어요.

김기협 : <전쟁과 사회>의 중요한 테마가 이 전쟁이 우리들에게 내면화되어서 계속되고 있다는 건데요. 그런데 80년대까지 그건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 뒤로는 약화된 셈이고요. 그런데 이 추세를 낙관적으로 보십니까? 전쟁 국가로서의 성격을 벗어나는 길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김동춘 : 기억은 정치라고 봅니다. 어떤 건 과도하게 기록하려 하고 어떤 건 완전히 망각하는 게 곧 정치이지 않습니까. 지금 한국도 전쟁은 아니지만 다른 형태의 국가 폭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건 단지 용역 폭력에 대한 경찰의 묵인처럼 물리적 차원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합리적인 게임의 룰이 지켜지지 않는 정당 간 경쟁이라든지, 내부 고발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보복, 위험하다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사찰까지, 지금은 말하자면 목숨이 아니라 일자리를 끊는 방식으로 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과장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전히 동일한 종류의 국가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국가 기관이 일개 시민한테 명예훼손 소송을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요. 국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일반인이 쟁송에 휘말린다는 것은 돈과 시간, 정신적인 파괴를 의미합니다. 과거는 물리력이었다면, 지금은 법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내부의 반대자들을 완전히 파탄시키고,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검열하게 만드는 교육적인 효과까지 거두고 있습니다.

김기협 : 우리가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생각이 대대적으로 드러난 것은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에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굉장히 놀란 사람들이 많았어요. 전시라는 마인드에 대해 면밀하게 살펴온 선생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주변 사람들보다 그런 일들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나요.

김동춘 : 저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굉장히 취약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심하게 말해 하루아침에 깨질 수 있는 유리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회의적인 글을 많이 썼습니다. '민주화 된 한국'은 기업 사회라고, 거기서 관철되는 방식은 과거의 전체주의적인 방식 거의 그대로라고요.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정치적 반대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고문당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까지는 진전했지만, 사회적으로 폐기될 수 있는 위협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에서 적시한 대로 청산되지 않은 한국전쟁과 얽혀 있고요.

그런데 이 원인을 분단 문제로만 환원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권력과 계급 차원의 문제가 저간에 깔려 있습니다. 어떤 권력이든지 자신들에게 정치적 위협이 된다면 법과 폭력을 사용해 누군가를 억압할 수 있는 준비하고 있으며, 민주적인 시민들이 제재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이쪽의 견제하는 힘이 약해지는 순간, 폭력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아르헨티나의 과거 군부정권 아래에서 '더러운 일'을 했던 군인들은 지금 월마트에 고용되어 노조 파괴 작업에 종사하고 있다. 월마트의 노동자 감시 체제는 과거 군부 정권이 유지하던 국가적 감시 체제의 연장이다. 그 작업에 과거 학살과 고문의 가해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것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청와대 주도의 민간인 불법 사찰, 용산 참사, 쌍용차 문제 등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을 목격했는데, 나는 이것이 한국 정치의 저류에 흐르던 국가폭력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보았다." (6~7쪽)

김기협 : 문제들은 역으로 기억이 흐려짐으로써 극복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것과 관련해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생각나는데, 9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통일 시대의 역사학에 관한 학술대회 토론 중에 어느 교수가 독일 사례를 언급하면서 '독일 통일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조건 중 하나는 민족사 교육의 부재였다'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서독에서는 서독 식의 독일사, 동독에서는 동독 식의 독일사를 가르쳤다면 통일이 오히려 더 어렵지 않았을까, 이런 취지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앞으로 전쟁에 대한 기억, 혹은 기억과의 전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특히 한국전쟁에 대한 감각이 더욱 희미해지는 시대에 젊은이들에 대한 바람과 당부를 듣고 싶습니다.

김동춘 : 역사 교육이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지요. 그러나 제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그때부터 역사가 다시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민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노력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문제들을 얼마나 자기 피부로 느끼고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야만 역사와 현실 사이를 오갈 수 있고요.

2000년 무렵 참여연대에서 활동할 때, 롯데호텔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호텔에서 일하던 아가씨들이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어 보고 처음으로 파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파업 중 어느 날 경찰이 와서 "손 뒤로 하고 엎드려"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가씨들이 '광주(5.18 민주화운동)는 옛날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제 뭐였는지 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폭력이 자행되는 현실이 자기 피부로 와 닿았을 때,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고 있음을, 현재 속에 과거가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죠. 한국전쟁의 문제들 역시,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도 알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공부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기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느냐, 과거에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폭력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기협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직장을 빼앗는 것이 덜 가혹하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과거엔 거친 수단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훨씬 더 정교한 방법으로 탄압과 억압이 이뤄지고 있기도 하고요. 바로 목숨을 끊는 게 아니라 숨을 못 쉬도록 하여 서서히 목을 죄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김동춘 : 네. 그러니까 우리는 현실로부터 전쟁을 추체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선생의 부친이신 김성칠 선생님의 일기(<역사 앞에서>(김성칠 지음, 정병준 해제, 창비 펴냄))를 읽고 너무나도 강렬한 리얼리티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끊임없이 전선이 바뀜에 따라 하루는 대한민국이, 하루는 인민공화국이 되는 혼란 속에서 이 비극을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 절실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그건 제가 운동 세대로서 답을 요구받은 질문들과 비슷했기 때문에 훨씬 더 가깝게 육박해 왔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이라고 그 고리가 없을까요. 있죠. 회사에 노조가 있다고 칩시다. 거기 들어가면 힘들지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는 거지요.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똑같은 문제에 직면합니다.

자기 문제를 고민하면서 역사를 보면 정말로 역사가 보일 겁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하잖아요. 문제는 반복입니다. 역사를 모른다고 질책하기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절실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과거를 함께 고민하면 훨씬 더 정확한 이해해 이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기협 :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의 다음 작업도 기대하겠습니다.

 
 
 

 

/안은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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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김용판 공판] 지난해 대선일 이광석 발언... 권은희가 증언하는 '잃어버린 5일'

13.08.30 23:58l최종 업데이트 13.08.30 23:58l
이병한(han) 박소희(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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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30일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직권남용 등에 대한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에 첫 번째 증인으로 출석헀다. 사진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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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5일이었습니다."

30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직권남용 등에 대한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에 첫 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지난해 12월 14일부터 19일까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14일은 서울청 사이버 분석관들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의 노트북에서 <오늘의 유머>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 결정적인 단서가 담겨 있는 텍스트 파일을 찾아낸 날이고, 19일은 대선 당일로 뒤늦게야 그 증거물이 수서경찰서로 넘겨진 날이다.

검사가 권 과장에게 물었다.

- 만약 김하영 노트북에서 발견된 메모장 파일이 14일에 전달됐다면, 대선 이전에도 국정원의 인터넷 활동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는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 서울청이 무려 5일이나 지난 19일, 대선 당일에 넘겨줘서 수사가 그만큼 지체됐던 것인가.
"그렇다."

- 수사팀이 2013년 1월경 김하영의 휴대폰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당시 (서울)중앙지검 담당검사는 법원 기준이 휴대폰 압수수색은 더 엄격하니 좀 더 보완해서 청구하자고 했다.
"그렇다. 사실 저희 수사팀은 잃어버린 5일이었다. 증거분석 의뢰 후 바로 반환받아 수사해야 했는데 못한 것을 12월 말에야 했다."

김용판, 권 과장뿐 아니라 이광석 수서서장에도 전화해 영장 청구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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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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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과장은 김용판 전 청장의 '압력 전화'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권 과장의 증언에 의하면, 오피스텔 대치 중이던 지난해 12월 12일 현장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막는 김 전 청장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권 과장뿐 아니라 이광석 수서경찰서장도 받았다.

그날 오후 2시 9분 김하영씨의 컴퓨터와 휴대폰 등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권 과장에게 김 전 청장이 전화해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증언에 의하면, 마침 함께 있던 이광석 수서서장은 전화를 끊은 권 과장에게 "(김 전 청장과) 같은 내용의 통화를 오전에도 하고, 방금 전에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전에는 (영장 신청을 하겠다고) 설득했더니 '수사방침대로 하라'고 했는데 오후에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설득이 안된다, 막 화를 낸다"고 말했다.

권 과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2005년 경찰에 입문한 후 7년 동안 수사과장 업무를 수행하며 지방청장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 신청 내지는 구체적 사건 관련해 지시받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증언했다.

"과장님 깡통입니다"... "서울청에서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디지털 증거물 반환 거부·지연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혔다. 문제의 이례적인 한밤 중간수사결과 발표가 있던 지난해 12월 16일이 지난 후에도 수서서 수사팀은 디지털 증거물을 전달받지 못했고, 수차례 항의를 거쳐 18일 오후 7시 35분경에야 하드디스트 등 일부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증언에 의하면, '깡통'이었다.

권 과장은 "당시 수서서 사이버수사팀장이 증거물이 담긴 저장장치를 보고 내용이 없다고 판단, 제게 '과장님 깡통입니다'라고 보고했다"며 "19일 0시 가까운 시각에 사이버팀장 등이 서울청에 직접 쫓아가서 거세게 항의하고 ID와 별명 40개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곧바로 수사팀은 ID를 근거로 인터넷에 남아있을 흔적을 찾아 나섰다.

"수사팀은 갑자기 매우 심각해졌다. (자료를 바탕으로) 인터넷에서 구글링 해봤더니 '토탈리콜'이라는 닉네임으로 특정 후보자, 특정 정책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과 관련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팀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수서)서장과 나, 팀장과 직원들도 누구 하나 퇴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서장실에 나와 팀장, 지능팀장이 같이 들어가서 두 가지 사항(증거분석 결과에는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 인터넷 검색하니 증거가 줄줄이 나오는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보고를 받자마자 서장이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서울청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권 과장은 수서서장의 이 말을 듣고 "(은폐 상황을) 서장도 몰랐구나, 그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변호인 측, 진술 엇갈리는 부분 집중 공략... 유도심문에 판사 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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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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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김용판 전 청장의 변호인들은 권 과장 진술의 모순점을 지적하며 신빙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권 과장에게 "키워드 분석 과정을 구체적으로 아느냐", "수서서에 인케이스(디지털 자료 분석 프로그램) 전문가가 있냐", "증인이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사건 중에서 이렇게 많은 키워드를 검색한 적이 있냐" 등을 질문한 뒤 "아니다"란 답변을 얻어냈다. 키워드 숫자를 줄이는 일은 전문가인 분석팀이 분석 작업의 효율성 등을 위해 판단한 것이며, '검색 키워드 100개 선정'은 보기 드문 수사방식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권 과장은 "하지만 이 사건은 범죄 사실이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 관련 사실을 위한 방법으로 키워드(100개)를 제시했다"며 "증거분석팀은 이대로 진행하는 게 맞지만, 그게 부당하다면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당시 증거분석팀의 근거는 타당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보통 수사팀에는 증거물 분석결과를 담은 보고서만 전할 뿐, 증거물 등은 돌려주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그건 증거 분석 과정에서 나온 수사단서들이 이미 수사팀에 충분히 건네졌기 때문"이라며 "증거분석팀이 이 과정에서 수사팀을 이렇게 철저히 배제하고 어떠한 단서도 알려주지 않은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이 이 답변을 "다른 사건은 보고서만 보내는데 이 사건이 중요하고 특이해서 증거물 반환이 필요했다고 받아들이면 되냐"고 해석하자, 판사가 나서서 "아니다, 보통과 달리 분석과정에서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 것인데 앞뒤 (맥락을) 다 떼면 안 된다"고 제지하기도 했다.

변호인 측 신문 후반부에 서울청 사이버 분석팀이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ID와 별명을 수서서 수사팀에 전달한 시점 등을 두고 수사팀 직원 2명의 진술과 권 과장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제기돼 주목을 받았다.

꼬박 12시간 증인 진술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10시가 가까워져서야 끝났다. 휴식 및 식사 시간이 있었지만, 꼬박 12시간을 권 과장은 검찰과 변호인 측의 수많은 질문을 받아냈다. 검찰이 준비한 질문의 숫자만 500개 이상이었다. 권 과장은 법원에 들어서기 전 응원 나온 시민들로부터 장미꽃을 여러 송이 받은 채 법정에 들어섰다.

김 전 청장에 대한 3차 공판은 다음주 금요일(9월 6일) 계속된다. 당시 수서서 수사팀 지능팀장과 수사팀장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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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의원 "국정원의 날조와 모략에 대해 끝까지 싸울 것"

(3신) '5.12녹취록' 해명 회견, "사법적 절차 당당히 임할 것"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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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30 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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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의원 "국정원의 날조와 모략에 대해 끝까지 싸울 것"
(3신) '5.12녹취록' 해명 기자회견, "사법적 절차 당당히 임할 것"


   
▲ 이석기 의원이 30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의원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12녹취록'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제공 -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내란음모니 반국가단체 동조니 하는 국정원의 날조와 모략에 대해서는 한 치의 타협 없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내란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30일 오후 7시 30분 국회 의원회관 본인의 의원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이같은 진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당당히 임하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석기 의원은 “당시 저는 한반도 전쟁위기가 현실화되었다고 판단했다”며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예고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5.12 녹취록’에 나오는 강연 내용에 대해 해명했다.

또한 “60년간의 정전체제를 끝낼 기회로 바꿔내는,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항구적 평화를 실현할 기회로 바꿔내자고 한 것”이라며 “이것이 내란 음모죄라는 어마어마한 혐의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래서 날조와 모략이라고 규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석기 의원은 자신이 "뼛속까지 평화주의다"라고 말했다. [사진제공 -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이 의원은 “저는 전쟁에 반대한다. 뼛속까지 평화주의자이다”고 밝히고 “저는 60년 동안의 분단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시키자, 그러한 대전환기로 상황을 주동적으로 바꾸자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언론에 흘린 ‘5.12녹취록’에 대해 이날 오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관계자들이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이석기 의원이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녹취록 자체가 ‘날조와 모략’이 아니라 내란 음모죄 혐의가 날조와 모략이라는 논지를 펴 주목된다.


<이석기 의원 기자회견(전문)>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지난 5월, 경기도당위원장 요청을 받아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당시 저는 한반도 전쟁위기가 현실화되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오는 전쟁을 맞받아치자”고 했습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민족의 공멸을 맞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평화를 실현하자는 뜻입니다. 이 말이 과연 어느 한 편에 서서 전쟁을 함께 치르겠다는 말로 들리십니까.

강연에 모인 사람들은 전쟁에서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진보당 열성 당원들이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보도연맹 사건을 보십시오. 무려 20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의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입니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예고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측의 군사행동이 본격화되면 앉아서 구경만 할 것인가? 물어본 것입니다. 60년간의 정전체제를 끝낼 기회로 바꿔내는,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항구적 평화를 실현할 기회로 바꿔내자고 한 것입니다.

이같은 저의 정세인식이 다르다고하여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내란 음모죄라는 어마어마한 혐의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날조와 모략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확실히 해두겠습니다.

저는 전쟁에 반대합니다. 뼛속까지 평화주의자입니다. 저는 60년 동안의 분단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시키자, 그러한 대전환기로 상황을 주동적으로 바꾸자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서 지난 4월에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서는 총리에게 4자 회담을 통한 종전선언을 해법으로 제시한바 있습니다.

사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이같은 진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당당히 임하겠습니다. 결코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내란음모니 반국가단체 동조니 하는 국정원의 날조와 모략에 대해서는 한 치의 타협 없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2013년 8월 30일
통합진보당 대변인실

 

"총기마련, 시설파괴 등 모의한 일 없다"
(2신) '5.12녹취록' 당사자 회견, "적기가 부른 사실 없다"


국정원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5.12 녹취록’에 대해 당사자인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김홍열 위원장과 김근래 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총기마련, 시설파괴 등을 모의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김홍래 위원장(가운데)과 김래근 부위원장(왼쪽)이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오른쪽은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 [사진제공 -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김홍래 위원장은 30일 오후 3시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경기도당 위원장인 제가 도당 임원들과 협의하여 소집한 당원 모임이었다”며 “경기도 전현직 간부들과 반전평화실현에 뜻을 같이하는 경기도당 당원들 약 100여명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교육이었다”고 모임 성격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경기도당이 정세강의를 이석기 의원에게 요청하였고 이석기 의원은 강사자격으로 참여하였다”며 “적기가를 부른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한반도에는 전쟁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올라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위해 정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며 “정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총기마련, 시설파괴 등을 모의한 일이 없다”고 언론보도를 부인했다.

김근래 부위원장은 이석기 의원의 강연 후 7개 분반으로 나누어 분반토론이 진행됐다며 “강연에 기초해서 현 정세에 대해 그 당시 전쟁 갈등이 고조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소감을 나누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분반토론 시간은 적게는 30분, 많아도 1시간이 넘지 않는 시간 안에 이뤄졌다”며 “돌아가면서 개인적 소감을 피력하는 수준에서 분반토론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고 말했다.

분반토론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으로 정국이 흘러가면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그동안 쌓아왔던 사회적 재부, 개인의 생명, 가족과 이웃의 안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는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반전 평화운동, 국면전환을 위한 노력, 나아갈 길, 서로의 마음에 대해 대다수가 동의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어떤 결정을 하거나 특정 주문사항에 기초하여 무엇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었고 소감이나 각자의 의견, 서로의 시국에 대한 생각을 확인하고 들어보고 나누는 자리였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 공식 기자회견 직후 김근래 부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 -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김근래 부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분명한 것은 행사 개최한 취지, 토론한 취지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마치 총을 준비하라고 했다든가, 국가기관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도모했다든가 왜곡됐다는 것이다. 행사 취지, 토론 내용은 그것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또한 “제 발언의 취지는 전쟁이 일어나면 서로 상대방의 기관시설을 다 파괴하게 되고 그것이 수많은 인명피해와 살상으로 이어져 우리도 피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히 현대전에서 전기, 통신이 도심에 위치하다 보니까 그 인근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 따라서 목숨을 걸고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각오와 결심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석기 의원)강연내용이나 발췌록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제가 듣기로 강의의 요지는 전쟁위협이 높아지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게 초점이었다”고 요약하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RO(혁명조직) 성원이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다. 녹취록을 백 분 인정한다 해도 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진보당 "녹취록, 날조 수준으로 심각하게 왜곡돼"
(1신) 국정원, 언론에 '녹취록' 유출..진보당 "입수경위 밝혀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국정원의 내란음모 혐의 수사가 국정원이 흘린 ‘녹취록’의 진위공방으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통합진보당이 30일 오전 11시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국내 언론들이 보도한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흘린 것으로 보이는 ‘녹취록’에 나오는 5월 12일 모임은 이석기 의원이 강연하고 경기지역 성원들이 각 권역별 토론을 진행해 전체에 발표한 뒤 이석기 의원이 마무리 발언을 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특히 발언 내용 중 이석기 의원이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시작된 전쟁은 끝장을 내자. 어떻게? 빈손으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하면 물질 기술적 준비 체계를 반드시 구책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돼 있다.

권역별 토론에서는 이모 씨가 총기와 폭탄, 평택 유조창, 혜화동.분당 통신국 등을 언급하는 내용도 녹취록에 포함돼 있다.

 

   
▲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이 30일 국정원이 유출한 '녹취록'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 -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이에 대해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국회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 맞은편 오병윤 의원실 앞에서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이 RO성원을 소집하여 내란을 모의하였다고 발표하고 그 증거로 녹취록을 제시하였으나 김홍렬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이 도당 임원들과 협의하여 소집한 당원모임에서 이석기 의원을 강사로 초빙하여 정세강연을 듣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홍 대변인은 “이석기 의원의 어떤 발언에도 내란음모에 준하는 발언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에 대한 증거를 단 한 개도 제시하지 못하고 일부 참가자들의 발언에 대해 문제 삼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위하여 정세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며 “녹취록은 일부 참가자들의 발언의 취지가 날조 수준으로 심각하게 왜곡되었다”고 말해 귀추가 주목된다.

아울러 “국정원은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 입수경위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홍 대변인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에 대해서 국정원은 물론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개별 언론에 대해서도 별도의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며, “거명된 사람들 또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강력하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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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혁명무력 침략전쟁 연습 조준경 안에

조선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8/30 [08:29] 최종편집: ⓒ 자주민보
 
 

남북대화와 협력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에 의한 민족통일을 주장하며 한미합동 군사훈련에 대한 극도의 비난을 자제해 오던 북이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담화를 통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강도 높게 비난해 주목된다.

조선의 주요 언론들은 “백승의 타격수단을 갖춘 우리 혁명무력은 침략전쟁연습의 전 과정은 물론 핵전략폭격비행대의 일거일동을 민족의 지향과 요구를 헤아린 조준경안에 넣고 각성 있게 주시하여왔다.”는 결론에 이르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보도했다.

조선의 주요언론들에 따르면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최근 조선반도에서는 우리의 주동적인 조치에 따라 지속되어온 긴장과 대결국면이 완화되고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는 방향에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마련되어 가고 있다.”며 “완전폐쇄의 벼랑 끝에 내몰렸던 개성공업지구를 정상가동의 주로에 들어서게 하고 민족분열의 비극적상징인 흩어진 가족상봉과 중단되었던 금강산관광재개와 같은 문제들을 대범하게 풀어나가려는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이 그 대표적인 실례”라고 북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대화 노력을 강조했다.

조선의 국방위원 대변인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가 요구하고 겨레가 소원하는 것이라면 백사만사를 불구하고 기어이 실현하자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드팀없는 입장이고 의지”라며 “우리의 이러한 입장과 의지는 김정일 장군님의 헌신과 로고의 고귀한 결정체이며 통일애국의 유산인 역사적인 6. 15공동선언과 그 실천 강령인 10. 4선언을 완벽하게 계승하여 조국통일과 평화번영의 활로를 열어나가려는 확고부동한 정책적 결심에 기초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그러나 불미스럽게도 힘겹게 조성되고 있는 화해분위기는 의연히 낡은 대결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과 남조선당국의 온당치 못한 처사로 하여 처음부터 엄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미국과 남조선의 현 집권자들이 겉으로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에 대하여, 북남사이의 화해와 신뢰조성에 대하여 청을 돋구고 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그에 배치되는 위험천만한 전쟁소동과 대결각본을 직접 꾸며내고 연출해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대변인 담화는 “지난 19일부터는 연례적이라는 간판 밑에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반대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 전쟁연습을 강행하고 있으며 8월 중순부터는 인간쓰레기들을 동원하여 반공화국삐라살포작전에 뻐젓이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이 그 모든 것을 실증해주고 있다.”며 “대화상대방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아량 있는 평화적인 조치에 전쟁연습과 불순한 심리 모략 전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미국식 ‘관계개선’이고 남조선식 ‘신뢰조성’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한미당국에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담화는 “그 누구보다 우리의 ‘핵포기’에 대하여 요란하게 떠들어댄 것이 미국과 남조선의 당국자들이라는데 대하여서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며 “바로 그들이 이번 전쟁연습기간에도 야밤삼경과 저녁, 대낮을 가리지 않고 오늘은 괌도에 있는 ‘B-52H’핵전략폭격기편대를, 내일은 미국본토에 있는 ‘B-52H’핵전략폭격기무리들을 조선반도에 연속 끌어 들여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핵 공갈에 매달리고 있다.”고 성토했다.

또한 “진정으로 조선반도비핵화를 바란다면 미국자신부터 우리에 대한 핵 공갈을 중지해야 하며 남조선의 현 집권자들도 외세의 핵은 용인하고 민족의 핵은 부인하는 이중적 행태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북남관계가 지난 5년간의 쓰디쓴 전철을 또다시 밟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남조선당국이 자극적인 언행을 중지하고 반목과 질시, 불신과 적대로 차있는 속내부터 깨끗이 씻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전쟁과 군사에 대하여 깊은 파악도 없는 남조선의 현 집권자들처럼 분별을 모르고 그 무슨 전시지휘소와 야전지휘소까지 연속 싸다니며 대결을 고취하고 긴장을 격화시키는데 앞장선다면 대세의 흐름에서 저도 모르게 밀려나 스스로 수치스러운 단명을 받아 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성 발언을 이어갔다.

아울러 “더구나 고심 끝에 마련한 자그마한 합의를 놓고 그 무슨 ‘원칙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하는 경망스러운 행동도, ‘상식과 국제적 규범’이라는 제 나름의 일방적 자대를 가지고 여론을 우롱하는 처사도 모처럼 마련된 화해분위기에 그늘만을 던지게 할뿐”이라며 남한 정부 당국의 대북발언을 비판했다.

조선국방위원인 담화는 “우리 군대와 인민은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민족이 강성하고 부흥하는 길에서 절대로 주저앉지도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그래서 백승의 타격수단을 갖춘 우리 혁명무력은 침략전쟁연습의 전 과정은 물론 핵전략폭격비행대의 일거일동을 민족의 지향과 요구를 헤아린 조준경안에 넣고 각성 있게 주시하여왔다.”고 대화가 무너지면 극한 대결로 이어 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방위원회 담화는 “우리는 조선반도(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긴장완화를 위해 지금 이 시각도 최대한의 인내성을 발휘하면서 여러 가지 건설적이고 과감한 평화적 조치들을 구상하고 실천해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담화는 “이제는 냉전시대의 유물인 적대관념과 동족대결정책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고 강조하고 “지금이야말로 대화상대를 겨냥한 시대착오적인 행동이 아니라 대화분위기와 평화적 환경 마련에 유익한 정책적 결단만이 허용될 때”라며 전쟁연습 등 상호 적대에 의한 대결 정책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담화는 끝으로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대세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심사숙고하여야 한다."며 "

우리의 아량과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는것을 명심하여야 한다."고 천명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국과 남조선의 현 집권자들의 움직임을 높은 각성을 가지고 예리하게 지켜볼것이다.
한편 남과북은 최근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폐쇄 일보직전까지 갔던 개성공단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고 추석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했을 뿐 아니라 5년여 동안 중단 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열기로 하는 등 모처럼 화해 협력 분위기가 조성 돼 온 겨레의 지지와성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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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의 '네이버 때리기' 결국 돈이었던가

 


 

 

요새 조중동을 중심으로 언론들이 네이버 때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1면에 연속해서 네이버 관련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네이버의 문제점,기업운영 행태, 네이버 관련 규제안 등 여러 가지 네이버 관련 비판 기사를 내보내고 있지만, 별로 감흥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

조중동의 네이버 때리기에 감흥이 없는 이유는 네이버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아이엠피터는 무엇보다 네이버를 싫어합니다. 우리 집에서만큼은 네이버를 검색사이트로 사용하지 말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도 아이엠피터는 꾸준히 네이버 관련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소셜컬쳐/Web 2.0] - '박근혜 콘돔'은 가능해도 '박00 성폭행'은 안된다.
[언론] - 매일 보는 '뉴스'가 당신을 속이고 있다면
[소셜컬쳐/Web 2.0] - '다음 VS 네이버'전혀 다른 '대선 특집페이지'
[소셜컬쳐/Web 2.0] - 네이버 검색조작,블로거들이 뿔났다
[정치] - 전하진 '스마트 협박금'과 네이버와의 관계
[시사] - MB멘토의 '네이버 길들이기' 진짜 목적은?
[시사] - 김여진 체포와 네이버 조작,그녀를 투사로 만드는 나라
[시사] - 이상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이명박 탄핵'
[시사] - 검색조작 네이버가 바뀐다고? 절대 못 믿어.
[정치] - 청와대가 네이버도? 여론조작의 실체 폭로.

아이엠피터는 이렇게 수많은 글을 통해 네이버를 비판해놓고 왜 이제 와서 조중동의 네이버 때리기에 편승하지 않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중동의 네이버 때리기는 올바른 대한민국 포털 사이트 미래와 인터넷 환경을 생각한 언론의 건전한 비판 기능을 가동한 움직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는 조중동의 작품

네이버 뉴스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많은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네이버 뉴스 때문에 '낚시 기사'에 낚였다는 말이 생길 정도입니다.

 


네이버 뉴스는 이런 지적에 '뉴스 스탠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뉴스를 만들었습니다. 제목이 사라지고 오로지 언론사의 아이콘을 나열해놓고, 독자들이 자신들 마음에 드는 언론사로 들어가서 기사를 보도록 하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네이버의 뉴스 형태가 바뀌자 난리가 난 것은 언론사들이었습니다.
 

 

 


평소에 네이버를 통해 들어오던 유입률이 반 토막난 언론사들이 속출했고, 대부분 10~30%까지 유입률이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언론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뉴스스탠드가 왜 생겨났을까요?

네이버는 낚시성 기사 비판 때문에 뉴스스탠드를 시행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조중동의 작품이라는 것이 업계의 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조중동은 네이버의 뉴스 형태를 뉴스스탠드로 바꾸었을까요?

착각과 자만이었습니다. 조중동은 일반 인터넷 언론사들과 자기들은 무엇인가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뉴스스탠드를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직접 올 것이며, 이는 나중에 자신들이 만들 시스템(유료화)에 효과적이리라 봤습니다.

 

 

▲언론사들은 자신들을 MY뉴스 로 설정해달라는 배너 광고를 계속 하고 있다. 출처:조선일보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중소규모 인터넷 언론사보다 더 적극적으로 'MY뉴스 설정'을 해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론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뉴스스탠드 상단에 위치한 연합뉴스 기사를 클릭하기 시작했습니다.

○ 연합뉴스를 공격하는 조중동의 노림수

우리가 보는 언론사의 기사들 중 국내뉴스 속보는 30%, 외신은 많게는 90%가 연합뉴스의 기사를 인용합니다. 그런데 외신의 경우 연합뉴스는 AP,로이터 등 외신을 또 베낍니다. 그러고도 이들은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천억 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지원받습니다. (10년간 2,934억원, 2013년 354억원)

조선일보는 이런 점을 내세워 연합뉴스를 비판하며, 연합뉴스와의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뉴스스탠드가 시작되면 자신들이 훨씬 유리하리라 생각했는데 독자들이 연합뉴스만 찾으니 조선일보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아예 연합뉴스와의 계약을 해지해버린 것입니다. 조선뿐만 아니라 중앙,동아일보도 연합뉴스와의 전재 계약을 중단했습니다.

단순히 조선일보는 연합뉴스가 자신들보다 더 많은 유입이 생겨서 계약을 해지했을까요? 아닙니다. 조선일보의 노림수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조중동이 힘을 합쳐 통신사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조중동이 새롭게 통신사를 만들어 국민 세금으로 통신사를 운영하겠다는 속내입니다.

둘째는 조선일보의 유료화에 걸림돌이 되는 연합뉴스를 따돌리겠다는 의도입니다. 조선일보는 앞으로 유료화 계획을 갖고 있는데, 비슷한 기사가 수백 개씩 나오고 복사가 가능한 온라인 세상에서, 돈을 주고 조선일보를 볼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 위기의 조중동, 저널리즘보다 정치를 택하다.

세계는 지금 언론의 위기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는 종이 신문을 읽지 않고 있으며, 쟁쟁하던 세계 언론사들도 매각되고 있습니다.

 

 

 


일간신문의 발행부수 1위는 조선일보였으며, 2위 중앙일보,3위가 동아일보였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발행부수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단순히 발행,유가부수 1위는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온라인으로 신문을 보는 구독자를 잡아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수익을 내려면 광고와 유료화 이외는 대안이 없습니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광고판 신문을 구독자들은 싫어하기 때문에 유료화만이 살 길입니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돈을 주고 읽으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만큼 언론의 유료화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선일보가 택한 방식은 다시 네이버 때리기입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들이 네이버 경영진을 비롯한 네이버의 문제를 비판하자, 새누리당은 네이버규제법을 9월 상정하기로 했습니다. 네이버는 9월부터 신문사들의 유료화 시스템을 위한 결제 모듈을 개발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 이제 조중동이 원하는 유료화 시스템은 갖춰졌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방법일까요? 아니면 언론권력이라는 무기를 통한 정치적인 방법일까요?

'문제는 바로 너야'

아이엠피터는 주위에서 언론사를 만들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어떤 시스템이나 수익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콘텐츠입니다.

지금은 후원금으로 살아가지만, 정식 언론사가 된다면 유료화를 통한 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단돈 백원이라도 과연 돈을 내고 읽을 수 있는 콘텐츠인가를 스스로 반문해보면 자신이 없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다양성이 있어야 독자들은 돈을 내고 글을 읽습니다. 다른 곳에는 없는 글이고 내용이어야, 기꺼이 돈을 지불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정환닷컴을 운영하는 이정환 기자의 분석을 따르면 삼성경제연구소의 보도자료가 나오면 인용기사가 무려 251건이 나온다고 합니다. 각자 서로 다른 분석 기사일까요? 아닙니다. 비슷비슷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어떤 기사는 그냥 보도자료를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베낀 경우도 허다합니다.

언론이 언론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만의 콘텐츠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유료화를 한다고 하지만 단순한 칼럼 정도는 부족합니다.

프리미엄 콘텐츠를 만들 능력도 없으면서 유료화를 한다고 나서는 것은, 그냥 강매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심사에 불과합니다.


 

 

 


지금 네이버를 비판하는 조중동과 같은 언론이나 네이버를 옹호하는 인터넷 OO 단체나 협회를 보면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과거 블로거를 비롯한 전문 기자, 학자,전문가들이 그렇게 네이버의 문제를 지적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자신들의 생존이 걸리니 막무가내로 네이버를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네이버를 규제하면 국내 인터넷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옹호론조차 웃깁니다. 네이버는 이미 국내 인터넷 생태계를 파괴한 주범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네이버와 연관된 사업을 전개하는 무슨 협회와 단체가 힘을 합쳐 네이버의 흑기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무슨 벤처기업 상생 어쩌고 하면서 네이버가 이제 바뀐다고 기자들 잔뜩 모아놓고 보도자료를 뿌립니다. 사회적 활동을 하겠다며 정치권의 눈치보기에 바짝 엎드려 있습니다.

네이버는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운영하면 됩니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 네이버만 살겠다고 검색을 규제하고 검색어를 조작하고, 광고판만 안 만들어도 충분합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과 권력이 소통하는 역할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 안에는 어떤 정치력보다 기사의 질과 제대로 된 저널리즘의 품성을 지녀야 합니다.

권력을 좇아가고, 정치를 통해 언론의 살길을 모색하는 행위는 언론사가 아니라 정치권력 집단에 불과합니다. 언론사가 돈과 결합하는 순간, 그것은 언론사라고 부를 수 없고 그냥 '기업'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미 대한민국 언론은 언론권력이 되었지만,,,)

많은 대안 언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 길은 좋은 콘텐츠와 저널리즘에 입각한 제대로 된 기사뿐입니다. 단순히 후원만을 통해 살고자 한다면 그들의 미래또한 그리 밝지 않습니다.

기자라면, 언론사라면, 언론이 가진 무게감에 늘 고민하고 책임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아이엠피터 또한 그런 중압감에 늘 시달리며, 과연 내가 1인 미디어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 늘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언론의 무서움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기사를 읽는 여러분도 느껴야 하며, 언론 개혁은 그런 상식 있는 독자들이 많아질 때 가능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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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죄 수사…지방선거 겨냥한 김기춘 작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8/30 09:25
  • 수정일
    2013/08/30 09:2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의 역할은…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30 오전 6:52:36

 

 

최근 국가정보원은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몰았었다. 그러나 법원은 '무죄' 판결을 냈다. 또 지난 2011년에 국정원이 수사한 이른바 '왕재산 사건'의 경우 재판 결과, 반국가단체 구성 부분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대형 간첩 사건에서 연이어 수사 실패를 맛본 국정원이 이번에는 현역 국회의원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내란 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다.

국정원과 함께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계자 14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고, 국정원은 30일부터 관련자 소환 조사에 돌입한다. 특히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석기 의원에 대해서 국정원은 29일 밤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치권에서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등과 비교하기에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흔히 얘기하는 내란 음모죄 적용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은 왜 하필 지금 시점에 야당 국회의원을 겨냥하고 나섰을까? 이 사건의 파장은 어디까지 갈까? 2013년, 박근혜 새누리당 정부 집권 6개월이 넘은 현재, 대선 개입·사초 공개 등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얼룩져 있는 국정원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말 그대로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국정원,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석기 이슈' 끌고가면…"

당초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내란 음모' 사건이 터진 후 국정원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는지 관심을 모았다. 국정원의 '불법 도청' 가능성, '이른바 RO 조직원(Revolutionary Organization, 즉 혁명조직의 영어 약자로,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 등의 주도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조직) 내부 제보' 가능성 등이 제기됐다. 29일 <KBS> '뉴스9'의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검찰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감청영장을 받아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결정적 증거로 내세우고 있는 지난 5월 130여 명의 '회합' 당시 3시간 짜리 대화 내용 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합법적 방식의 수사가 이뤄졌다는 보도다.

국정원은 매우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석기 의원의 신발장 속에서 현금 1억 4000만 원을 발견했다"고 밝히는 등, '언론 플레이'를 구사하고 있다. 압수수색 물품 내역 등에 대한 보도가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부 언론은 30일자 보도를 통해 이석기 의원 등의 발언 전문을 인터넷에 상세히 공개하기도 했다. 밀입북 정황을 포착했다는 보도도 있다. 보도 내용대로 지난 5월 '회합' 당시 참석자들이 쏟아낸 방대한 분량의 발언 등을 국정원이 '합법적으로' 확보한게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정치적 관점에서 얘기가 달라진다. 이는 국정원이 이번 수사와 관련된 '여론 통제력'을 전적으로 확보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내란음모죄 적용 여론도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

'공당의 국회의원이 설마 그런 일을 했겠느냐'는 반론은 힘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뒤집어 말하면 "평당원이나 비주류 조직의 장(長) 정도의 수준이 아닌, 공당의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더욱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반대급부 여론이 생길수 있다.
 

▲ 최근 국정원은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몰았다. 그러나 법원의 '무죄' 판결을 냈다. 지난 2011년에 국정원이 수사한 이른바 '왕재산 사건'의 경우 재판 결과 반국가단체 구성 부분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대형 간첩 사건에서 연이어 수사 실패를 맛본 국정원이 이번에는 현역 국회의원을 향해 칼날을 빼들었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내란 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다. ⓒ프레시안


이번 사건의 파장과 여론의 흐름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왜 국정원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형법을 전면에 내세웠을까. "33년만에 내란음모죄를 부활시켰다"는 부담감을 감수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국가보안법만 적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국보법 페지 여론' 등, 발생 가능한 사회적 논란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간 진보 진영에서는 국가보안법 논란이 일 때마다 "형법상 내란죄 등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왔다. 때문에 내란음모죄를 내세웠을 경우 반론의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둘째, 왜 국정원은 왜 하필 이 시점에 공개수사로 전환했을까. 답은 명확해보인다. 9월 정기국회에서는 국정원 개혁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예정이었다. 핵심은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 국내파트 해체 등이었다. 만약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수사를 통해 국정원이 내란죄를 입증해내면 이 논의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촛불 여론'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심을 강화시킬 수 있다.

셋째, 만약 국정원이 내란음모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진짜 역풍을 맞게 될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물론 야권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국내 정치와 여론에 개입해온 전례가 있다.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여론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안보 이슈는, 더군다나 '종북의 상징'으로 여론화된 이석기 의원이 연루된 이슈는 불만 붙이면 타오를 수 있는 '화약고'나 다름없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 음모죄가 성립되느냐 여부를 떠나, 이번 국정원의 수사가 박근혜 정부 차원의 '고도의 정치 행위'로 읽히는 이유들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에 포진한 정무 기획의 핵심 '브레인'들이 모두 공안통이라는 점은 이같은 분석에 신빙성을 보탠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의 압수수색 시점 등을 미리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미리 인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야권에서는 이번 '작품'의 총괄 기획자로 이른바 '유신 검사' 출신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음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강성 보수인 군인 출신 남재준 국정원장, 공안검사 출신 황교안 법무부장관 등이 정부 요직에 포진한 것도 그냥 지나치기 힘든 부분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이석기 사태'는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일단 국정원 개혁, 4대강 사업, 경제민주화 등 9월 정기국회의 쟁점이 흐려질 가능성이 높다. 9월 국회에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제출될 가능성이 높고 그 경우 민주당은 거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은 이번 이슈를 빨리 끝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이슈가 간헐적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야권은 앞으로 선거에서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지난해 대선 당시 'NLL 대화록 공개' 등 안보와 민감한 이슈를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 함께 공모했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또 '남재준 국정원'은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의 대선 개입으로 전직 국정원장이 기소당하는 등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안보' 이슈는 정부여당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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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꿰인 국정원, 제대로 한 번 싸워보자"

[현장] '칼' 들고 덤빈 국정원에 '무장해제'로 맞선 진보당

 

13.08.29 09:27l최종 업데이트 13.08.29 21:36l

 

최경준(235jun) 권우성(kws21) 유성호(hoyah35) 박소희(s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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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체 압수수색 받은 이석기 의원 29일 오후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의원실을 나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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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신-최종 : 29일 오후 9시 35분]
"코 꿰인 국정원, 제대로 한 번 싸워보자"... '무장해제'로 맞선 진보당

"내란음모 선동 및 반국가단체 고무찬양에 관련된 문서, 금전거래 자료, 컴퓨터 자료 등"

29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국회 사무실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압수수색 영장 내용이다. 국정원은 전날(28일) 오전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혐의 입증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10여 곳에 대해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진보당 당원들의 저항으로 하루 반나절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날 현역 국회의원인 이 의원의 신체검색과 집무실 압수수색까지 진행하며 진보당의 턱 밑에 칼끝을 들이댔다.

반면 이상규 진보당 의원은 기자에게 영장 내용을 설명해주면서 "우리가 보기에는 국정원이 코가 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정원은 (압수수색을 통해) 명백하게 혐의를 입증하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지 못한다면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내란음모 혐의로는 압수수색을 받지 않겠다고 버티던 이석기 의원이 이날 자진해서 사무실로 향한 이유도 "국정원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한 것이었다. 무장해제를 통해 결백을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혐의 입증 확신하는 국정원... 녹취록 외에 더 있나?

인터넷 상에서는 국정원이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을 것이라는 추측과 과연 내란음모죄를 입증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형법상 최고 범죄인 내란음모죄를 직접 적용해 기소한 사례는 김대중 전 대통령(1980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1997년) 등 총 3건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신군부 계엄치하의 군법회의에서 이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결국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과거 국정원이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며 "그래서 국정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대법원이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자신하고 있는 '결정적 증거'는 무엇일까?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 등 사건 관련자 130여 명이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가진 비밀회합 녹취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알려진 녹취록 내용은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 '국가 기반시설을 타격하라' 등 비현실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3년 전부터 내사를 진행했는데, 지난 5월에 있었던 회합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1980년대 대학가 주체사상의 대부로 통했던 김영환씨도 "그쪽 계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보다 더 낮은 수위의 얘기도 3∼4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하지 않는다"며 "운동권 상식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이상규 의원은 "녹취록의 증거능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정원에서 나온 유일한 증거는 녹취록 하나"라며 "그런 녹취록은 법원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가 드물다. 국정원이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는 점에서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 녹취록에 다른 내용이 있거나, 녹취록 외에 범행 대상지도나 실행계획서와 같은 다른 증거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면전환용'이라는 비난을 무릅쓸 정도로 국정원이 혐의 입증을 자신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진보당 전면전 선포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국정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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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기 의원실 들어가는 국정원 수사관들 내란 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신체와 집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 집무실에서 실시된 가운데 국정원 수사관들이 의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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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전방위 압박에 맞서 진보당도 하루 만에 반격에 나섰다. 전날 '도피설'에 휩싸였던 이석기 의원은 이날 보란 듯이 국회에 모습을 나타내서 "저에 대한 혐의내용은 모두 날조"라고 정면 반박했다. 진보당은 당 체제를 투쟁본부로 전환, 전면전에 돌입하기 위한 총력 태세를 갖추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이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의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 "국기문란 사건의 주범인 국정원이 진보와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있다", "유사 이래 있어본 적이 없는 엄청난 탄압책동"이라고 국정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홍성규 대변인도 "혐의에 대한 입증 책임은 국정원에 있는 것"이라며 이 의원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상규 의원도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이번엔 제대로 한 번 싸워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당은 연석회의 직후 밝힌 '긴급 입장 발표문'을 통해 "총기준비 등 국정원의 주장은 그야말로 허위날조이자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며 "이제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벌어졌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이 의원과 진보당의 맞불에 향후 국정원의 대응과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 지 주목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등 일체의 정치 현안들은 이미 '이석기 블랙홀'로 흡수됐고, 상당한 후폭풍도 예상된다. 일단 전날 체포된 홍순석 진보당 경기도당부위원장 등 3명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국정원 수사 초반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4신 대체: 29일 오후 6시 5분]
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 길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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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 교대 직원 투입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5시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지원 나온 직원들과 근무교대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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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15분쯤,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관계자들은 오병윤 의원실에 늦은 점심식사로 먹을 김밥을 전달했다. 곧이어 한 관계자가 500ml 생수병 20개를 챙겨 오 의원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4시 40분쯤에는 간이침대가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29일 오후 2시 40분쯤 이석기 의원실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국정원이 압수수색을 시작한 지 약 20분이 흐른 오후 3시 10분쯤, 이석기 의원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맞은 편에 위치한 같은 당 오병윤 의원실로 이동했다. 홍성규 대변인은 "신체 관련 압수수색까지 마쳤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으며 그 대상에 이 의원의 신체까지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진보당과 국정원은 압수수색 범위를 두고 오전 내내 의견이 엇갈렸다. 오후 1시 반쯤, 양쪽은 이석기 의원의 신체와 집무실, 관련 물품, 우위영 보좌관의 책상 등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데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또 참여하는 국정원 직원 수만큼 진보당 관계자들이 입회하기로 했다.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은 "양쪽이 20명씩 있기로 했다"며 "압수수색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 의원실로 전해진 물 등은 압수수색이 길어지는 데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4시간 협상 끝에 압수수색 시작... 국정원 "강제수사할 수 있지만 양보"

한편 국정원 관계자는 압수수색 범위를 정한 것이 "합의가 아니라 양해"라고 말했다. 압수수색을 시작하기 직전, 이 관계자는 "저희가 강제수사를 할 수 있는데 양보했다"며 "어제 압수수색이 진보당의 방해로 중단됐는데, 다시 재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 압수수색에 몇 명이나 들어가나?
"직접 보면 알 거다."

- 진보당에서 사전에 합의했다고 하던데?
"합의가 아니라 양해다. 저희가 강제수사할 수 있는데, 양보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제 압수수색이 진보당의 방해로 중단이 됐는데, 다시 재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 약 20명 정도?
"대략 전후다."

- 왜 그렇게 많이 들어가나?
"집무실 밖에서 대기하면서 순차적으로 자기 역할에 따라 들어가게 된다."

- 들어가면 뭘 보게 되나?
"답변 드리기 곤란하다."

-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압수수색 내용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면 안에서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것 아닌가?
"안에 국정원 직원들이 들어가 있다."

국정원 직원과 변호인 등 20명이 이석기 의원실 안으로 들어간 뒤, 다른 국정원 직원 5~6명은 의원실 문 앞을 지키며 출입을 통제했다. 한 국정원 직원은 "지금은 법에 의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 중이라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얘기했다. 오후 5시 40분 현재 압수수색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3신 수정: 29일 오후 2시]
압수수색, 2시 30분부터 실시... 범위 놓고 한때 대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사무실에 대한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수색 범위 등을 놓고 논란을 벌이면서 한동안 지연됐다.

진보당은 국정원이 전날(28일) 이석기 의원의 집무실과 우위영 보좌관의 책상을 압수수색 대상으로 삼겠다고 한 것과 달리 의원실 전체를 압수수색하겠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이 부분을 협의하지 못하면 압수수색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오전 내내 논란을 벌인 끝에 당초 계획대로 이석기 의원 신체와 집무실, 우 보좌관의 책상에 국한해서 오후 2시 30분부터 압수수색을 집행하는 것으로 양측이 결론지었다.

압수수색 범위-참관 인원 등 이견... 사무실서 고성 오가기도

이날 오전 10시 45분쯤 이석기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도착한 직후, 국정원과 진보당은 압수수색 범위 등을 두고 논의를 시작했다. 양쪽은 이후 두 시간 가까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고 중간중간 이석기 의원실 안에선 "나가세요!"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큰소리가 나기도 했다. 한때 의원실 안에는 진보당 관계자 30여 명과 국정원 직원 10여 명이 대치하기도 했다.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은 낮12시 반쯤 의원실 밖으로 나와 "협의가 종료되진 않았으나 국정원이 어제 제시한 것과 달리 부당한 요구를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 쟁점은 압수수색 범위다. 홍 대변인은 "어제 국정원은 의원 집무실과 우위영 보좌관의 책상을 압수수색하겠다고 했는데 오늘은 '전체 사무실'을 하려 하고, 이 의원실 보좌관 외 다른 당직자들은 나가라고 요구했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정원 쪽 4명, 진보당 쪽 4명이 협의를 진행 중이며, 협의가 끝나야 (영장) 고지부터 시작해 압수수색을 진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협의 과정 때에는 서로 자극하지 않기로 했는데, 국정원이 30~40분 간격으로 (진보당 쪽을) 자극하고 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홍 대변인에 따르면, 국정원은 2시간 전쯤부터 이석기 의원 집무실에 함께 있었던 보좌관을 갑자기 문제삼고, '집무실에 들어갔던 사람들의 몸수색을 해야 한다'며 진보당 쪽 변호사의 관련서류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했다. 국정원 내 소속과 이름이 쓰인 표찰을 공개한 직원도 없었다. 그는 "공무집행을 한다는 국정원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며 "(당 관계자들이 국정원 쪽에) '왜 이렇게 고압적이고 안하무인격으로 하냐'고 항의할 때마다 고성이 나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2신 : 29일 오전 11시 30분]
이석기 "모든 혐의는 국정원이 날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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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국정원의 날조 조작사건" 목소리 높이는 이석기 의원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회의실을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한마디로 황당하다. 이건 국정원의 날조 조작사건이라고 본다"며 총기 준비, 통신 철도 유류저장고 등 파괴 계획 등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 "철저한 모략극이고 날조극이다"라고 주장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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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음모 혐의 적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한마디로 황당하다. 이건 국정원의 날조 조작사건이라고 본다."

- 총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더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일이다. 사실이 아니다."

- 통신, 철도, 유류저장고 등 국가 기간시설 파괴를 계획한 혐의에 대해서는.
"그건 상상속의 소설... 국정원의 상상력에 의해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 국정원이 확보했다는 녹취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

- 어떤 근거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인가?
"아니, 뭐 사살, 실탄 지시 뭐 총기 뭐 그런 말이 언론에 나오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철저한 모략극이고 날조극이다."

- 어제는 뭘 했나?
"아니, 어젠데 어디서 뭘 하나?"

- 내란음모 혐의로는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가 오늘 받기로 한 이유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당당하게, 빨리 정리를 해야 국정원의 못된 버릇을 고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왔다."

이석기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진보당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 직후, 국정원의 압수수색에 응하기 위해 의원회관 사무실로 떠나면서 기자들과 나눈 대화다. 국정원이 제기한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전면 부인한 것이다.

국정원의 의원실 압수수색을 수용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임해서) 국정원의 못된 버릇을 고치겠다"고 강조했다. 진보당은 전날(28일) 이 의원의 보좌관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을 허용했으나, 의원실 안에 있는 이 의원의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거부했다.

앞서 국정원과 수원지방검찰청은 28일 내란예비 음모 혐의로 이석기 의원 등 관계자 10명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의원이 지난 5월 당원 100명과 함께 비밀회합을 하고 국가기간시설 타격을 모의, 유사시 총기를 준비하라는 내용의 녹취록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국정원의 주장이다.

이석기 의원은 국정원의 압수수색에는 응하지만, 그 외 수사에 대해서는 일체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이 요구하는 모든 수사 절차에 응하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아니다. (압수수색 외에) 국정원 수사에는 응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내사설' 김재연 "사실 아니야... 법적대응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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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김재연 의원(오른쪽)과 함께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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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실 들어가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29일 국정원 압수수색이 진행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이 의원은 이날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서 "저에 대한 혐의내용 전체가 날조"라며 "국기문란 사건의 주범인 국정원이 유사 이래 있어본 적이 없는 엄청난 탄압책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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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진보당 대변인도 "내란죄란 이름 아래 진행되는 국정원 모든 행위는 헌법 유린 행위"라며 "적법 절차에 따라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수사 자체를 용인하거나 협조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또 홍 대변인은 일부 언론의 '이석기 의원 변장 도주' 보도와 관련해 "어제도 얘기했지만 도주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 그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석기 의원이) 오늘 아침 최고위원회에 나올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도 도피설에 대한 질문에 "오늘 (회의에) 나온 사람한테 무슨 도피설이냐"며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 45분경 변호인·당직자들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도착한 이석기 의원은 "국정원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이어 오전 11시경 국정원 직원들이 이 의원 사무실로 들어갔고, 이 의원 측과 압수수색 절차 등에 대해 협의 중이다

한편 같은 혐의로 국정원으로부터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재연 진보당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저에 대한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황당하고 근거없이 기사를 쓰는 언론에 대해서는 명예훼손 등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1신 대체: 29일 오전 1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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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습 드러낸 이석기 의원 "국기문란 국정원이 민주세력 탄압"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해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수사에 대해 입장을 밝힌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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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의원이 29일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국가정보원이 그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과 자택 등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일 당시 행방이 묘연했던 이 의원이 하루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의원은 국정원이 제기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국정원이 진보와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7시 55분쯤 국회에 나타난 이 의원은 취재진을 피해 곧바로 진보당 원내대표실로 들어가 약 30분 동안 열린 비공개회의에 참석했다. 이후 공개회의에서 카메라 앞에 선 그의 얼굴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의원은 거듭 목소리에 힘을 주며 "국정원이 유사 이래 있은 적 없는 엄청난 탄압책동을 강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탄압이 거세면 거셀수록 민주주의의 불길은 더욱 더 커진다"며 "저와 통합진보당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을 믿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자신이 지하조직을 만들어 통신시설 파괴, 총기 소지 등을 모의하는 등 내란을 꾀했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공개회의에서도 현 상황을 두고 "진보와 민주세력 탄압"이라는 원론적인 말만 했을 뿐,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답변을 요구하는 기자와 당 관계자들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석기, 개인 입장 밝히지 않아... 통합진보당 "모든 혐의 전면 부인"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은 공개회의 뒤 기자들에게 추가로 상황을 설명하며 이석기 의원 개인의 입장 표명은 없음을 다시 알렸다. 그는 "어제도 몇 차례 (모든 혐의는 사실 무근이며 해명할 필요도 없다고) 말씀드렸고, 국민들이 궁금해하기에 (이 의원이) 예정에 없던 발언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이 제기한 혐의는) 전면 부인한다, 입증 책임은 모두 국정원에 있다"며 이석기 의원이 조직원들에게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국정원 녹취록 역시 "(당 차원에선) 아는 바가 없고,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홍 대변인은 또 "어제 언론에 '국정원에 따르면, 검찰에 따르면' 식으로 나온 내용은 불법"이라며 "(검찰과 국정원이) 피의사실을 하나씩 흘리는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오늘 있을 의원실 압수수색을 거부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홍 대변인은 "이석기 의원 본인이 나온 이상 어제와 같이 고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국정원과 협의 후 정확한 압수수색 시간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의원실 보좌관 압수수색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며 "이 압수수색이 종료되는 대로 의원실 자체 압수수색을 적법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진보당은 28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인권침해와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정희 진보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투쟁수위를 높여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오늘 이 시간부터 전 당 조직을 투쟁본부로 전환, 전당적인 총력체계로 바꾸겠다"며 "당 대표로서 제가 직접 본부장을 맡는다"고 말했다. 또 "당력을 총동원해 촛불을 더 키워나가겠다"며 "8월 31일 당원들을 국정원 앞으로 결집시키고, 촛불시민과 어깨를 걸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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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습 드러낸 이석기 의원 "국기문란 국정원이 민주세력 탄압"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해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수사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김 의원은 검찰과 국정원의 수사에 대해 "국가문란사건의 주범인 국가정보원이 진보와 민주세력에 대해 유사 이래 있어본 적 없는 엄청난 탄압책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탄압이 거세면 거셀수록 민주주의 불길이 더 커질 것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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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내란음모 조작과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 발족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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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3/08/30 09:09
  • 수정일
    2013/08/30 09: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내란예비음모' 對 '의사. 능력 없다'...'진실.공정보도' 중요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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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9 15: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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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이 참가한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과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원회가 29일 발족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금까지 내란음모죄가 적용된 인혁당사건, 서울대생 내란 예비음모사건,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중 유일하게 유죄로 인정된 것은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자행한 학살사건 뿐입니다.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전현직 당직자 10여명에게 총이 있습니까, 탱크가 있습니까,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의사도, 능력도 전혀 없습니다."

통합진보당과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은 29일 오전 10시, 전날 오후에 구성 결의를 한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과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원회' 발족 대표자회의와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 사건을 "촛불민심 물타기, 국정원 전면개혁 거부를 위한 국면전환용 정치공작일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새로운 유신독재의 철창에 가두겠다는 명백한 독재선포"라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고 정권 유지를 위해 희대의 조작극을 꾸민 것이며, 유신을 부활시켜 민주주의를 철저히 파괴하려는 정치공작"이며 "수구 집권세력의 정권유지에 가장 위협적인 진보세력과 민주세력에 대한 표적탄압"이라고 규탄했다.

모두발언에 나선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 사건은 진보당을 해산하려는 정치모략이며 촛불을 꺼트리려는 공안탄압"이라고 규정하고 "진보당 당원들이 통신 유류시설을 파괴하고 무기저장소 습격, 총기준비와 인명살상계획 등을 수립해 내란을 음모했다는 국정원의 주장은 국민들로 하여금 진보당에 대한 허무감을 갖게 할 목적으로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희 대표는 "통합진보당의 당원들도 보통의 상식을 가진 생활인이며, 부모이고 아들.딸이라는 걸 확인시켜야 하는 비이성적 매카시즘이 개탄스럽다"며 "통합진보당이 얻고자 노력하는 것은 국민의 지지이며, 총 몇 자루가 아니다"라고 되풀이 말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혹시나 사실 아니냐고 의문을 가질 여지조차 없는 일"이라고 단정하고 "국정원이 원하는 바는 바로 의심의 눈초리와 동요, 분열"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국가정보원은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까지 조작한 조작전문 기관"이라고 맹비난하고 특히 "언론이 이들 수구집권세력이 짜놓은 덫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면 역사적 범죄의 공범이 된다"며, 사실 관계 확인을 뒷전으로 한 채 공안기관이 불러주는대로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이 대표는 작심한 듯 '경향신문'을 찍어서 진보언론을 자처하면서 매카시즘 열풍에 동조하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국정원은 조작전문 기관'이니 이들이 불러주는대로 내용을 받아쓰면 역사적 범죄의 공범이 된다고 일갈하고 언론에 사실ㆍ공정보도를 주문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격려사에서 "국정원을 앞세워서 하는 짓을 보면 통합진보당을 과녁 삼아 이 땅의 민주 진보세력을 말살하려는 시도"라며, "여기서 알 수 있는 일은 집권자들이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싸움의 결과는 뻔하다고 강조했다.

백기완 소장은 언론인들에게 각별히 당부한다며, "통합진보당에 대한 날조음모를 폭로하고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은 "과거 '내란음모'에 연루된 바 있는 김대중 대통령도 30년간 난도질을 당한 끝에 대통령이 되고 그 이후에야 무죄 확정을 받았다"며 "유.무죄의 문제를 떠나서 공안기관은 한번 옭아맨 후엔 집요하게 해코지를 하고 핍박한다"고 말했다.

오종렬 의장은 "주춤거리거나 불똥이 튈까를 두려워해서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함께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대선개입 정치공작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국기, 국헌을 문란케 함으로써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이 위기를 탈출하고 국면을 전환할 목적으로 벌이는 정치공작"이자 "전면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국정원이 이를 무산시키기 위해 강력한 저항력인 촛불을 분열시키려는 이간책"이라고 설명하고 "재판의 결과는 무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들은 그걸 알면서도 강행한다"고 말했다.

박석운 대표는 "이것은 국민을 우롱하고 농락하는 행위"이며, 그런 점에서 "언론이 국정원의 시도에 공조하게 되면 그들의 국면전환 공작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하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을 무분별하게 보도하지 말아 줄 것을 언론에 당부했다.

예수살기 상임대표인 조헌정 목사는 "사건의 본질은 독재 국가권력이 국민에 대해 가하는 집단테러 사건이자 나치 파시스트 정권의 새로운 시작"라며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이런 행위는 스스로 묘혈을 파는 행위"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조 목사는 국정원의 국기문란사건과 관련 이미 1천명의 개신교 목사들이 시국선언에 나섰고 천주교 14개 교구중 11개 교구에서 지속적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으며, 천주교 100년사에 일체의 정치행동을 하지 않던 대구, 경북지역에서 최근 시국활동이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 박근혜 정부의 위기의식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목사는 '부전자전'이라고 표현하며 '70년대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유신독재를 유지하려던 박정희 독재정권의 재판'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나치 히틀러에 저항했던 마틴 니묄러 목사가 '나치가 공산주의자와 노동조합원, 유태인들을 덮쳤을 때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노동조합원도 아니며 유태인도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했던 나에게 그들이 들이닥쳤을 때 아무도 나를 위해 말해주지 않았고 남아있지 않았다"는 경구를 인용해 종교계와 함께 언론이 진실을 말해 줄 것을 호소했다.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장은 이번 사건은 "정치개입이나 인권유린을 넘어서 민주주의 자체를 압살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허가없이 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단정했다.

총기준비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이 총동원해 장단을 맞추지만 '사건의 가능성과 개연성이 없다'고 일축하고 "21세기 우리 국민은 더이상 속지 않을 것"이며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우리가 결국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새벽에 철거하고 대통령 면담을 요구한 김정우 지부장을 구속할 때부터 이 정부의 본질을 알아봤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굉장히 당황한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리고 민주노총은 이번의 만행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장은 '가는 몽둥이에 오는 홍두깨'라는 속담에 빗대서 "시민의 정의가 촛불로 표현되는 이 시기에 도둑질한 당사자가 몽둥이를 설치고 있다면 그 앞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하나, 홍두깨를 들고 맞받아 싸워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 김홍렬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피해 당사자인 김홍렬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은 "국가의 불의한 폭력이 한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짓밟는지 하루 종일 실감하고 있다"며, 전날 새벽의 압수수색에 이어 하루종일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마구잡이로 보도되고 있는 혐의내용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홍렬 위원장은 앞으로 스스로 믿는 대로 민주와 정의, 양심에 입각해 행동하겠다며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했다.

각계 발언과 피해당사자의 입장 발표 이후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와 최헌국 목사가 대표로 이날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이날 대책위에는 한국진보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예수살기, 기독사회연석회의,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추모연대, 민권연대, 사월혁명회, 노동자연대 다함께, 한국전쟁전후피학살전국유족회,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민주노동자전국회의, 통일광장, 코리아연대, 한국청년연대, 정의당,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더불어사는세상을위한시민회의, 통합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등이 참가했다.

한편, 이날 대책위 발족을 위한 긴급대표자회의가 열리던 10시 40분경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옆 식당에서는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기자회견이 별도로 열렸다.

이들은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혐의' 국민 앞에 철저히 밝힐 것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하고 10여분만에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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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내란음모’

‘촛불’과 ‘내란음모’
 
<분석과전망>청와대로 향하고 있는 촛불에 ‘내란음모’는 무엇일까?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8/29 [13:07] 최종편집: ⓒ 자주민보
 
 

▲통합진보당이 ‘내란음모’를 기획했다구? 설마!

‘내란음모’

8월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당직자 그리고 사회단체의 주요간부 등 10여명이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고 그 중 3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이 접하게 된 단어였다.

국회의원이 내란음모라니? 더구나 대통령 후보까지 배출한 야당이? 국가기관을 전복하려 했다구? 설마!

사람들은 충격스러워 하기 보다는 그렇듯 황당스러워했다. 물론 자칫 잘못되면 ‘진보당내란음모사건’ 정도로 불리워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란음모는 형법이다. 법적인 절차 없이 법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거나 강압적인 방법을 이용해 국가기관을 전복시키는 행위 등을 모의한 것에 대해 적용된다.

사람들은 지난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적용되었던 것이 내란음모였다. 지금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불리우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받으면서 시작된 사건이었다. 문익환 목사 등 24여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2년 7개월 간 옥살이를 해야했다. 이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야하는 고통까지도 감내해야했다.

역사에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말고도 또 하나의 내란음모사건이 기록되어있다. 1975년 인혁당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가 지목을 받았다. ‘인혁당 재건위’의 도예종 등 23명에게 붙혀진 혐의가 내란 예비와 음모 등이었다. 도예종 등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8시간 후, 사형 집행이 되었다. 사법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1975년 4월 9일이었다. 국제법학자회는 이날을 '사법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조작된 것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에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3년 10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2004년 2월이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조작 주체는 19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세력이었다. 5.18광주민중항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것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은 2002년 9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였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재심청구를 했다. 사법부는 2007년 1월 23일 사형당한 8명에 대해 그리고 200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무죄를 결정했다.

인혁당 사건의 내란음모 조작은 유신시대를 본격화하는데 필요한 공안통치의 시작으로 평가받았다.

▲국정원이 ‘내란음모’를 기획한 것 아냐? 글쎄?

‘내란음모’와 관련된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사람들은 이번 이석기의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사건의 정치적 배경과 관련해 많은 사색을 진행했다. 그리고는 여러 분석들을 신속하게 내놓았다.

국정원의 ‘내란음모’가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대한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한 공작이라는 것이 그 하나이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에서의 '댓글작업‘에 대해 대북심리전 차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이 주장에 따르면 ’종북세력‘들의 활동을 차단하는 것은 정당한 대북심리전 활동으로 된다. 이 주장에는 심지어 국정원법에 금지되어있는 국내정치개입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논리까지도 내재되어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폭로.확인된 내용이었다. 국정원은 수세에 내몰려야했다. 결국 국정원의 ‘내란음모’는 그동안 국정원이 비축해두었던 진보당 관련 정보들을 종합하여 사건으로 터뜨림으로써 기간 정치개입활동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에 대한 개혁요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공작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혐의 그리고 이를 물타기 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받는 정상회담녹취록 공개 등으로부터 국정원은 강도 높은 개혁을 강제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셀프개혁을 주문함으로써 그 강도는 조금 눅잦혀진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야당의 요구는 국정원 입장에서는 심상치가 않다. 국내정치파트 폐지가 그 핵심이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요구이다. 진보당은 국정원을 폐지할 수 있는 선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국내정치파트는 국정원이 그간 영향력을 크게 가질 수 있게 하는 결정적 보루였다. 여기에서 수집한 광범위한 정보들은 국내정치사안에 개입할 수 있게 하는 즉, 공작정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국정원의 ‘내란음모’는 구체적으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인 국내정치파트 폐지를 막기 위한 공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 ‘내란음모’는 ‘대통령 살리기’인가?

국정원의 ‘내란음모’에서 가장 무게 중심이 실려 있는 것은 정국전환용 혹은 ‘대통령 살리기’라는 분석이다.

촛불정세와의 관련성 문제가 그 핵심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진상규명을 기본으로 이에 대한 책임자 처벌 그리고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촛불이다. 그러나 국정원선거개입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했던 국정조사는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일부 야당에서 특검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촛불은 지금 명백히 청와대로 향해가고 있다.

촛불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현 정국에서 단순한 것이 결코 아니다. 국정원은 촛불을 책임져야하는 몫을 갖고 있다. 국정원 때문에 밝혀진 촛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촛불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국정원이 촛불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국정원의 임무와 역할 그리고 그 존립과 관련된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현 시기 촛불이 공식적으로 제시한 최고의 목표는 박근혜대통령의 사과이다. 이는 박대통령의 사과라는 것이 국정조사 혹은 특검 등 합법적인 경로와 과정이 도달시킬 수 있는 최고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촛불이 청와대로 직접 향하게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합법적인 경로나 과정을 생략하는 보다 공격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의미이다. 촛불 대중은 서울 시청광장에 모였다 사라지고 말지만 세종로를 걸어가면 곧바로 청와대에 도달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촛불이 청와대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 갖게 되는 또 하나의 의미는 사뭍 심각하다. 지난 대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담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부정선거, 대선무효, 대통령 하야라는 구호가 촛불현장에서 적지 않게 나오고 있는 정치적 배경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국정원을 비롯하여 새누리당 등 일체의 보수세력들은 촛불에 대해 종북논리로 공세를 취해왔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청와대로 향하는 촛불을 그냥 보고만 있을거니? 그리 한가해?

“청와대로 향하는 촛불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촛불을 반대하는 세력들 중에 핵심이 갖는 현실적인 문제의식일 것이라며 한 정세분석가는 그렇게 말했다. 문제는 촛불이라고 했다. 국정조사에서의 새누리당의 힘으로도 전반 보수세력들의 종북공세로도 막아내지 못한 촛불을 국정원이 직접 나서서 막아내려는 공작으로 기획한 것이 국정원의 ‘내란음모’라는 것이었다.

촛불 초기 국면 때 국정원 선거개입을 물타기 하기 위해서 남북정상회담대화록을 공개했던 것과 같은 성격인 셈이었다. 물론 목표는 다르다. 국정원 살리기에 국한되지 않는 원대한 또 하나의 목표가 있는 것이 그 다른 점이다. 청와대를 향해 진격하고 있는 촛불을 꺼뜨림으로써 정국전환을 도모하고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최고권력자를 살려야한다는 목표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선이 치열해지고 있는 셈이다. 전선의 쌍방 간에 판가리 성격의 긴장이 걸린 것으로 보이기도한다. 촛불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해 나아갈 태세를 굳혀가고 있다는 것에 누구든 주목할 수밖에 없다.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을 뿐 진격하려는 징후를 곳곳에 잠재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촛불은 국정원이 또 다시 나서서 직접 던져놓고 있는 ‘내란음모’ 앞에서 어떤 전선을 그어주게 될 것인가? 사람들은 청와대 앞에서 조우한 ‘촛불’과 국정원의 ‘내란음모’의 쟁투를 숨죽여 지켜보게 될 것이다. 특히 이번 토요일에 하게 될 제10차 범국민대회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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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드러낸 이석기 "국기문란 주범이 진보세력 탄압"

"모든 혐의 전면 부인"... 통합진보당, 당 조직 투쟁본부로 전환

13.08.29 09:27l최종 업데이트 13.08.29 10:34l
유성호(hoyah35) 박소희(sost)

 

 

[기사 대체: 29일 오전 1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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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습 드러낸 이석기 의원 "국기문란 국정원이 민주세력 탄압"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해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수사에 대해 입장을 밝힌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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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의원이 29일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국가정보원이 그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과 자택 등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일 당시 행방이 묘연했던 이 의원이 하루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의원은 국정원이 제기한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국정원이 진보와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7시 55분쯤 국회에 나타난 이 의원은 취재진을 피해 곧바로 진보당 원내대표실로 들어가 약 30분 동안 열린 비공개회의에 참석했다. 이후 공개회의에서 카메라 앞에 선 그의 얼굴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의원은 거듭 목소리에 힘을 주며 "국정원이 유사 이래 있은 적 없는 엄청난 탄압책동을 강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탄압이 거세면 거셀수록 민주주의의 불길은 더욱 더 커진다"며 "저와 통합진보당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을 믿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자신이 지하조직을 만들어 통신시설 파괴, 총기 소지 등을 모의하는 등 내란을 꾀했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공개회의에서도 현 상황을 두고 "진보와 민주세력 탄압"이라는 원론적인 말만 했을 뿐,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답변을 요구하는 기자와 당 관계자들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석기, 개인 입장 밝히지 않아... 통합진보당 "모든 혐의 전면 부인"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은 공개회의 뒤 기자들에게 추가로 상황을 설명하며 이석기 의원 개인의 입장 표명은 없음을 다시 알렸다. 그는 "어제도 몇 차례 (모든 혐의는 사실 무근이며 해명할 필요도 없다고) 말씀드렸고, 국민들이 궁금해하기에 (이 의원이) 예정에 없던 발언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이 제기한 혐의는) 전면 부인한다, 입증 책임은 모두 국정원에 있다"며 이석기 의원이 조직원들에게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국정원 녹취록 역시 "(당 차원에선) 아는 바가 없고,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홍 대변인은 또 "어제 언론에 '국정원에 따르면, 검찰에 따르면' 식으로 나온 내용은 불법"이라며 "(검찰과 국정원이) 피의사실을 하나씩 흘리는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오늘 있을 의원실 압수수색을 거부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홍 대변인은 "이석기 의원 본인이 나온 이상 어제와 같이 고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국정원과 협의 후 정확한 압수수색 시간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의원실 보좌관 압수수색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며 "이 압수수색이 종료되는 대로 의원실 자체 압수수색을 적법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진보당은 28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인권침해와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정희 진보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투쟁수위를 높여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오늘 이 시간부터 전 당 조직을 투쟁본부로 전환, 전당적인 총력체계로 바꾸겠다"며 "당 대표로서 제가 직접 본부장을 맡는다"고 말했다. 또 "당력을 총동원해 촛불을 더 키워나가겠다"며 "8월 31일 당원들을 국정원 앞으로 결집시키고, 촛불시민과 어깨를 걸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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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침묵은 금이 아니라 죄입니다

耽讀 | 등록:2013-08-29 09:35:49 | 최종:2013-08-29 09:40: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정부와 여당에게 묻겠습니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1971.12.24 성탄자정 미사

"7·4 남북공동성명이 평화 위장의 전쟁 준비 수단이나 권력정치의 기만전술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민족과 더불어 엄숙히 경고한다."-1972.08 광복절 담화

김수환 추기경 "10월 유신같은 초헌법 철권통치는 박정희에게 불행"

▲ 김수환 추기경이 1972년 8월9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7·4 남북 공동 성명과 8·3 긴급 조치에 대한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서슬퍼런 '독재자' 박정희에게 이런 일갈을 한 이는 고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특히 1971년 성탄자정 미사는 전국에 생중계 중이었습니다. 분노한 박정희는 방송을 중단시켰고, 책임자 옷을 벗겼습니다. 김 추기경은 1972년 10월 독재자 박정희가 '10월유신쿠데타'를 자행하자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며 "정권욕에 눈이 먼 박 대통령 자신도 결국 불행하게 끝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은 1979년 10월 26일 성취되었습니다.

또 다른 독재자 전두환이 '12·12군사반란'을 성공시킨 후 추기경을 찾았을 때 덕담이 아니라 면전에 대고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 같은 결기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개신교 목사가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와 "여호수아 장군 같이 되라"고 기도한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기도회는 KBS와 MBC가 생중계했습니다. 1971년 성탄절 자정미사 생중계와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전두환)에게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나를 먼저 밟고 가라"

김수환 추기경은 이에 머물지 않고 1987년 '박종철타살사건'때 시국미사에서 다음과 같이 분노합니다. 이는 온 나라에 기름을 붓는 계기가 됩니다.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라고 묻고 싶습니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 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전두환 정권을 향해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고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추기경의 호소는 시민들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른다고 하는 것은 카인이라는 지적에 시민들은 일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처럼 권력이 독재를 하고, 인간존엄성을 해할 때는 한치도 머뭇거리지 않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 대성당에 들어온 시위대를 연행하기 위해 치안본부장과 안기부 차장에게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라는 말은 전두환도 명동성당을 짓밟지 못하게 했고, 학생들을 지켜냈습니다. 그가 지난 2009년 2월 선종했을 때 40만명이 추모한 이유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린 이유는 국정원 부정선거 개입 의혹을 두고 고등학생, 대학생, 교수, 시민단체, 시민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시국선언때문입니다. 종교인들 시국선언에는 천주교 신부들과 수도자와 수녀들도 함께 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대교구 사제 262명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포기하면서까지 국가안보와 국익의 토대인 민주의 가치를 허물어뜨렸다"는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지난 26일 천주교 수도자 4502명은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 성당에서 신약 루카복음 19장 40절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는 말씀을 제목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선거가 필수적"이라며 "이것을 침해하고 위협하는 그 어떠힌 행위도 자유 민주주의의 정신과 실천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의 선은 소수 권력자들의 특권과 지배와 불법을 용인하는 순간 아주 쉽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그 어떤 공동의 가치도 기꺼이 나누려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들은 권력의 그 어떤 불법과 특권에도 결단코 반대하며, 민주사회에서의 건강한 삶이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김수환 "카인이 되지 말라"고 했것만… 정진석 추기경 침묵

하지만, 정진석 추기경이 국정원 부정선거에 관련해 입장을 표명한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사제들과 수도사들이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해 성직자와 신앙인으로 양심으로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이 분노하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독재권력이 민주주의를 배반하고, 시민을 탄압할 때 앞장 섰습니다. 이는 이념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문제입니다.

사실 정 추기경은 이명박 정권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오히려 정권 정책에 대해 옹호하는 듯한 반응까지 보여 천주교 내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0년 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그건 자연과학자들이 다루는 문제다"면서 "토목 공사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다룰 문제지 종교인들의 영역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발언이 알려지자 천주교 원로사제들은 "정 추기경의 말씀에 부끄럽고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용퇴"를 촉구하는 성명까지 발표했습니다.

명동성당은 1980년대 '민주성지'였습니다. 독재자 전두환도 결코 짓밟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학생과 노동자들은 공권력에 내몰리면 명동성동에 들어갔습니다. 구약시대 '도피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권력에 저항하다가 피해다니는 이들은 명동성당이 아니라 '철탑', '크레인', '송전탑' 위에 올라갑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권력을 비판하지 않는 정진석 추기경 행보도 한몫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뻔뻔할 정도로 책임회피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 추기경이 나서야 합니다. 사제와 수도사 수 천명 시국선언보다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국정원 부정선거는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유린 당한 일입니다. 이것을 침묵한다면, 성직자로 자기 책임을 방기하는 일입니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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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신한국 최초의 날"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2> 대동단결선언 정신으로 되짚은 8.29

강응천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29 오전 6:11:52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는 8.15처럼 한국인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들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필자는 1990년대부터 <한국생활사박물관>, <라이벌 세계사>, <지하철 史호선> 등 다양한 역사책을 기획하고 써 왔으며, 현재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을 맡고 있다. <편집자>
 

역사 오디세이
<1> 분단에 대한 배상…세 번째 8.15가 필요하다


8.29가 사라졌다. 인터넷 검색창에 '8.29'를 쳐도, '8월 29일'을 쳐도 이날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진 날인지 알려주는 정보는 뜨지 않는다. 오히려 2010년의 8.29부동산대책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오늘날 한국인이 맞닥뜨린 심각한 문제가 하우스푸어, 렌트푸어로 인한 가계 부채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니 그것도 매우 중요한 항목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그보다 100년 전에 있었던 1910년의 8.29가 이토록 철저하게 잊히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다.

8.29만이 아니다. 2주일 전인 8.15도 "바닷물도 춤을 춘다"던 흥분과 감동을 잊은 지 오래다. 충격과 분노, 회오와 다짐 속에 태극기 물결로 뒤덮이는 게 당연할 터인 8월이 그저 무덥고 짜증나고 집 걱정해야 하는 8월로 바뀌고 있다. '뜨거운 8월'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심심할 때마다 한 방씩 터뜨려주는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다.

 

▲ 야스쿠니 신사. ⓒ강응천


역사의식 없는 일본 우익? 천만의 말씀

그들이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라든가 "나치에게 개헌 수법을 배우자"(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라면서 한국인을 도발하고 위협할 때마다 한국인은 불같이 일어나 8월의 그날들을 상기한다. 그리고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것인가, 일본 각료 가운데 몇 명이나 야스쿠니로 갈 것인가 등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다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해 사죄드린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약 올리기에 한 번 발끈하는 것을 정점으로 한국인의 8월은 여느 연례행사가 그렇듯 서서히 사그라진다.

한국인에게 8.29와 8.15가 과거사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현실이라는 자각을 안겨 주는 '고마운' 일본 우익! 그들에 대해 한국 언론이 가하는 연례행사급 비판이 있다. "역사의식이 없다"라든가 "역사를 잊고 있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정말 일본 우익은 역사의식이 없을까? 역사를 잊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 오히려 현대 세계에서 일본 우익처럼 철저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정치·사회 집단도 찾기 힘들다. 그들은 먼 옛날 임신한 몸으로 군사를 이끌고 한반도를 정벌했다는 전설의 여전사 진구황후에게 자신들의 역사적 생명을 가탁해 두고 있다. 8.29 직후 초대 조선총독으로 취임해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이던)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가 살아 있다면 오늘밤 이 달을 어떻게 보았을까?"라고 읊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그들의 역사적 멘토이다.

몇 년 전 8월 도쿄를 방문했다가 야스쿠니 신사에 들렀다. 숙소가 우연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 사건이 일어났던 그랜드팔레스호텔이었는데, 야스쿠니는 바로 그 근처에 있었다. 신사 앞에는 확성기를 달고 '북조선 분쇄', '북방 도서 탈환' 등의 구호를 적은 시위 차량이 도열해 있고, 신사의 지킴이를 자처한 것처럼 보이는 청년들이 시시때때로 모여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8월의 일본은 자숙하는 분위기일 거라는 지레짐작은 서점가를 방문했을 때 이미 깨져 있었다. 일본인에게 8월은 "반성하자, 8월"이 아니라 "아깝다, 8월!"이었다. 이길 수도 있었던 전쟁에 대한 회한을 가득 담고 복수를 다짐하는 듯한 책들이 서점의 판매대를 점령하고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그런 분위기의 정점을 이루는 곳이었다.

그때 신사 내부와 '유슈칸'이라는 전쟁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는 이곳에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약 베를린 한복판에 히틀러와 괴링, 아이히만 등 나치스의 핵심 인사들을 추모하는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면 영국, 프랑스 등이 어떤 태도를 취할까? 그 교회가 민간 시설이든 아니든, 독일 총리가 그곳을 참배하든 말든, 당장 철폐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던지고 여차하면 선전포고까지 불사하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일본이 독일에 비해 뻔뻔하다는 생각보다는 한국과 중국이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참 관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곳, 야스쿠니 신사를 거점으로 일본 우익은 역사의식을 불태우며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그들은 정치적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신들이 믿는 역사적 소명을 완수하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 역사를 잊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일본 우익에게 역사를 잊었다고 비난할 때 그 '역사'는 사실은 '도덕'이다. 나쁜 짓을 하면 벌 받는다는 기초 도덕이다. 그러나 역사는 나쁜 놈이든 좋은 분이든 길만 있으면 끝까지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도덕적인 훈계로 그런 경향을 막을 수는 없다. 내 길이 옳다면 역사 속에서 힘으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인은 그것을 입증하기도 전에 역사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다.
 

▲ 야스쿠니 신사 지킴이를 자처하는 듯한 사람들. ⓒ강응천
▲ 야스쿠니 신사 앞, 일본 우익의 시위 차량. ⓒ강응천


역사 잊은 한국인…항일 투쟁은 사회 개조 투쟁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원인에 대한 구구한 설명을 차치하고 보면 1995년의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가 그 거대한 기억 상실의 기폭제이자 상징적 사건이었다. 치욕과 분노의 기억을 말끔히 날려 버린 그 폭거를 전후해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기괴한 이론이 백주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이론을 주창한 뉴라이트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지 정책으로 말미암아 한국은 근대화의 길로 들어섰다. 일제의 식민 침략을 미화했다는 비판에 대해 그들은 변명한다. 일제가 식민지 수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수탈을 하려다 보니 한국 사회를 근대적으로 개조하게 되었다고. 그리하여 일제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한국에 근대적 제도가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이것이 한국인의 잠재력을 일깨워 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가져왔다고 한다.

듣고 보니 소름이 끼친다. 뉴라이트가 현대 한국을 이끌어 온 엘리트들의 사고방식을 대변한다면, 현대 한국의 자본주의가 왜 이렇게 외설적이고 엽기적이고 자기 파괴적이 되었는지에 관한 답이 그들의 고백 속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뉴라이트를 포함한 보수 세력이 문제가 아니다. 진보를 자임하거나 진보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도 8.15, 8.29 하면 싫증부터 내는 이가 적지 않다. 2000년을 전후해 '제국주의 대 민족'이라는 '이분법적' 대결 구도로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전통적 시각에 피로감을 나타내는 '진보학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식민지 시절에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있었고 싫든 좋든 우리 근대의 단초들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데 주목하고, 열심히 모던보이, 모던걸로 대표되는 일제강점기의 다양한 근대적 양상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그 결과, 일본 우익의 대변지로 꼽히는 <산케이신문>으로부터 일본 통치 시대를 수탈, 억압, 저항뿐인 '암흑사관'으로 보지 않고 근대화에 의한 다양한 변화를 발굴해 재평가하려 한다는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8.29에서 8.15에 이르는 선조들의 험난한 역정을 '민족주의'의 좁은 틀에 가두고 보려는 외골수 시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얘기만 꺼내도 민족주의자나 주사파로 몰아가며 외면하는 '진보 세력' 일각의 풍조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일제와 맞서 싸운 선조들이 다 진보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진보 세력은 모두 다 일제와 싸웠다. 그들이 단지 이민족의 지배에 맞서 한민족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만 그랬겠는가? 그들에게 일제는 조선 봉건 왕조와 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적이었다. 항일 투쟁이 곧 사회 개조를 위한 투쟁이었다는 말이다. 현대 한국의 일부 진보 세력은 그 역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가끔 그들이 어디에 역사적 기반을 두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들은 어디에서 온 진보인가? 스웨덴에서 왔는가, 프랑스에서 왔는가, 일본에서 왔는가?

8.29는 국치일일 뿐이다? 대동단결선언을 보라

우울한 8.29를 앞두고 경기도 의회가 '국기게양일 지정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국치일인 이날 조기를 게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반가운 일이다.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경기도민인 나는 조기를 게양하지 않기로 했다. 1917년 신채호, 박은식, 신규식, 조소앙 등 14명이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발기했다는 '대동단결선언'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융희 황제가 삼보(토지, 인민, 정치)를 포기한 8월 29일은 바로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저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한 때이요, 구한국 최후의 날은 곧 신한국 최초의 날이다."

이런 의미에서 8.29는 암울한 국치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대 한국인이 자기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대장정을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8.15부터 8.29까지의 2주간이 현대 한국인의 해방 주간이 되어 흥분과 다짐 속에 역사를 기억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강응천 인문기획집단 문사철 주간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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