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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총선, 시리자 압승 "처참한 긴축 끝났다"

그리스 총선, 시리자 압승 "처참한 긴축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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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RIZA

그리스가 25일(현지시간) 치른 총선에서 승리가 확실시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가 채권단과 긴축정책 철폐를 위한 구제금융 재협상을 공언했다.

치프라스 대표는 이날 밤 아테네대학 앞에서 총선 승리 수락연설을 통해 "그리스는 5년간 치욕과 고통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며 2010년부터 받은 구제금융 이행조건인 긴축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오늘 트로이카는 과거의 것이 됐다"며 전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으로 구성된 채권단과 합의한 이행조건을 파기하고 재협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채권단과 상호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협상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앞서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는 신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리스 국민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패배를 인정하고 "내 양심은 깨끗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했고 일부 실수도 했다"며 "그러나 재정적자가 없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회원국으로서 국가를 넘겨주게 됐다"고 밝혔다.

tsipras

시리자는 오후 11시(한국시간 26일 오전 6시) 현재 개표율 50% 기준으로 35.91%를 득표해 148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리스 총선에서 최다 득표한 정당은 추가로 50석을 확보하며 득표율 3% 미만의 정당은 원내 진출이 제한됨에 따라 전체 의석(300석)의 과반인 151석을 확보해 단독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최저 득표율은 37% 정도로 추정된다.

사마라스 총리가 당수인 신민당은 28.3%(78석) 득표에 그쳤고 극우정당인 황금새벽당이 6.36%(17석)로 3위에 올랐다.

이어 중도 성향의 신생정당인 포타미(5.82%, 16석), 공산당(5.41%, 15석), 사회당 (4.81%, 13석), 그리스독립당(4.69%, 13석) 등의 순이었다.

앞서 그리스 내무부가 개표 초반 상황을 토대로 발표한 1차 전망에서는 시리자가 득표율 36.5%로 150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정계에서는 시리자가 안정적인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하기는 어려워 3위 이하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할 것으로 예측했다.

황금새벽당은 당수와 의원들이 조직범죄 혐의로 구속 재판 중이며 네오나치 성향으로 시리자가 연정을 제안할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시리자는 중도 성향의 포타미와 중도 좌파인 사회당, 우파 성향이지만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그리스독립당 등과 연립정부 구성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의 당수가 총리를 맡으며 3일 안에 정부를 구성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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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한미일 정보공유약정 체결 전후

 
김종대 2015. 01. 26
조회수 24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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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일 군사협력을 보여주는 2014년 5월 7일자 MBC 뉴스의 일부

 

한미일 정보교류 약정은 ‘택배기사 약정’

 

  작년 12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한미일 정보공유약정 체결에 대한 절차적 투명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방부는 26일에만 하더라도 사흘 뒤인 “29일에 국방차관이 서명하여 발효된다”고 국회와 언론에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29일 열린 국방위에서는 “미국이 23일, 한국과 일본은 26일 이미 서명을 마치고 이미 약정이 발효되었다”고 국방부가 뒤늦게 밝히고 나서 여야 의원들이 일제히 “국민을 속인 밀실협정”이라고 비난을 쏟아 낸 것. 국회 심의도 필요 없고 국무회의도 통과할 필요가 없는 차관급 약정이라는 꼼수로 감시를 피한 것은 그렇다 치자. 애초 차관끼리 협정 서명문을 교환하기로 한 계획까지 파기하고 미 국방부의 하급관리가 일본과 한국을 번갈아가며 협정문에 서명을 받고 돌아간 ‘택배 기사 약정’으로 귀결된 것은 중차대한 국가 외교안보 사안을 다루는 모습 치고는 치졸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국방부가 국민에게 설명한 바와 달리 그렇게 궁색하게 약정 체결을 사흘이나 앞당겨 체결할 절박할 사정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민구 국방장관이 과연 이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고 통제했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곳곳에서 노출되었다. 국회에서 소동이 있은 직후에 열린 국방부 국․실장이 참여하는 간부회의에서 한 장관은 “군사외교에 관한 약정이라면 법과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관리했어야 하는데 이번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며 관련 간부들을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평소 한 장관의 온화한 스타일에 비추어 이날 질타는 매우 강한 톤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계속해서 그는 “26일 국회에 대한 약정체결계획 설명은 한 장관이 직접 여야 의원들에게 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한 장관의 허언이 되고 말았다”며 이에 한 장관이 “매우 섭섭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한 장관이 섭섭했다면 그 대상이 누구인가, 라는 의문이 또 꼬리를 문다. 관련 국․실장이 장관인 자신에게 사실관계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인가, 아니면 한 장관의 발언을 헛소리로 만든 더 강한 권력자에 대한 것인가. 더 나아가 한 장관이 “26일에 약정이 체결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주장도 국방부 안팎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국방장관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약정이 전광석화처럼 체결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청와대가 밀어붙여서……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국방부 관계자는 “애초 이 약정에 대해 국방부가 서둘러 연내(2014년) 체결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작년 김관진 전 장관이 재임했을 당시에 한미일 정보공유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한 데 대해 “한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정책참모들은 이를 올해(2015년) 1월경에 체결하면 무난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무슨 사정이 있는지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김관진 안보실장이 “연내 체결을 강력히 밀어붙이며 국방부를 압박했다”고 말한다. 그나마도 연내라는 시한에 쫓겨 가까스로 29일로 차관이 서명하고 예정되어 있던 것을 청와대가 개입하여 시점을 앞당기도록 국방부 실무진을 압박하는 동안 막상 한 장관은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방장관을 따돌리다시피 하면서 26일에 서명이 강행된 것은 김관진 안보실장이 장관 재임 시절에 미국에 연내 체결을 약속한 데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반드시 작년에 이 약정이 체결되어야만 했던 김 실장의 절박한 사정이 무엇인지도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 약정은 한미일 3국간에 공유하는 비밀정보가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약정에만 먼저 서명하고 교류내용은 추후에 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3국간의 정보교류의 공감대와 준비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정상적으로 약정 체결을 서둘렀음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게다가 한일 간에는 직접 정보를 교류하지 않고 미국을 경유한다는 점, 한미(1987년), 미일(2007년) 간에는 이미 체결된 정보보호협정에 따라 정보를 교류하기 때문에 구태여 기존에 이루어지던 정보교류와 무엇이 달라지는지도 분명치 않다는 점, 3국간에 정보교류를 위한 실무 워킹그룹의 가동도 완전치 않고 서로 필요로 하는 정보의 내용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등 서둘러 약정을 체결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한일 간에 정상외교를 비롯한 양국 우호관계가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국민여론이 우호적이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핵심 군사정부가 일본에 누설되는 길을 터 준 이번 협정이 우리 안보에 어떤 실익이 있는지, 법적인 구속력이 어느 정도인지, 국방부는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고 있지 못하다.


 서둘러 체결할 하등의 이유 없다

 

  군사적인 면만 보자면 작년 연내에 체결을 서둘러야만 될 구체적 이유가 발견되지 않지만 이 약정이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군사협력의 상징적인 계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대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방향에서 움직인다면 이 약정은 미국 주도의 동맹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다음 단계의 조치까지 앞당기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 우선 정보교류에서 시작하여 한미일 공동의 미사일방어 군사작전의 개념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3국간의 공동 군사작전과 공동 군사훈련도 강행하는 군사일체화의 길이 예정되어 있다. 미국은 단지 약정에 머무르지 않고 이러한 군사협력의 단계로 곧바로 나아가려는 것이기에 한국에 그 첫걸음에 해당되는 이 약정을 체결하라는 강한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손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런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청와대가 국방부에 앞서서 공명하면서 미국이 요구하는 이 약정에 서둘러 성의를 보였어야만 할 충분한 이유가 생겨난다. 우선 미국은 작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전시작전권 전환 무기 연기’ 요구에 전폭적으로 응해주면서까지 “한미동맹이 지역안정에 기여하는 역할”을 공동선언에서 부각시켰다. 여기서 한미동맹은 기존의 ‘한반도 방위동맹’에서 동북아 ‘지역안정 동맹’으로 질적 전환을 이루는 강한 모멘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고, 그 핵심 기제는 단연 한미일 미사일방어(MD)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 안보의 기본개념이 북한의 침공을 격퇴한다는 기존의 한반도에 갇힌 개념에서 동북아 지역에 미국 패권을 중심으로 안정적 질서를 형성하는 사법적 개념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또한 이는 한미라는 양자동맹 만이 아니라 한미일이라는 다자동맹, 즉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맞물려 작동해야 하는 새로운 동맹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동맹의 뼈대와 구조를 재설계하는 데 미국은 한일 관계의 개선, 그리고 정보교류 양해각서의 체결을 강력히 주장해 왔다. 이런 동맹운영의 전 과정에 김관진 실장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에 적극 공명하면서 국방부에 약정의 조속한 체결을 압박했으리라는 분석이다.  


  령(令)이 선 국방장관?

 

  이와 관련하여 정부 소식통은 “작년에 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 전 장관은 수시로 국방부 업무에 개입해 왔다”며 이로 인해 국방부 역시 상당한 고충이 있음을 털어놓는다.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미사일방어(MD)와 같은 대북 군사대비태세, 사드(THAAD) 미사일 한반도 배치 등 핵심적인 군사현안이 대부분 김관진 장관 시절에 방향이 설정된 것이어서 한 장관이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을 갖고 소신 있게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김 실장이라는 거대한 산성이 버티고 있어 만만치 않다는 것. 이번 정보공유 약정 역시 국방부 자체의 판단에 따라 추진하기에는 청와대의 영향력이 너무 강했다. 그런가하면 김 실장이 국방부 업무에 개입하지 않았어도 “당연히 개입했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에 “김 실장의 역할이 과도하게 포장되는 측면도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작년 9월에 윤 일병 사망 사건으로 육군본부 류성식 인사참모부장(육사 39기)가 경질되는 데 김 실장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세간에는 청와대가 경질 인사를 주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김 실장의 국방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주로 군사정책에 관련된 것이지 인사문제와 같은 장관의 고유 권한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최근 한 장관은 취임 초기의 어수선했던 국방부 상황을 정리하고 국방장관 위주로 일사분란하게 국방이 운영되도록 조직을 장악하는 데 상당부분 성공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작년 말의 군 정기인사에서 이재수 기무사령관 경질을 비롯한 주요 핵심 인사를 한 장관이 직접 주도하면서 상당부분 “령(令)이 섰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한민구 장관은 중요한 결정을 내림에 있어 사실상 후견인 역할을 하는 김관진 실장을 초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부처 장관들과 직접 대면하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문고리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참모에 장관이 더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권력구조라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다가 한 장관의 경우에는 더 특별한 사정도 있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지난해 6월 장관으로 부임하기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장관이 “5․16은 쿠데타”라고 시원하게 내지르는데 대해 당시 청와대는 장관 후보 교체까지 검토하는 심각한 분위기였다“고 설명한다. 청문회 이튿날 장관 임명장이 내려오지 않아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취임식이 진행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이 당시 김관진 실장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더라면 한 장관의 부임 여부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한 장관은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입지 때문에 청와대와 더욱 긴밀하게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정치논리에 안보가 망가져서야

 

  한편 합참의 일군의 장교들은 현재 국방부가 외부의 여론이나 정치권력에 의해 군사대비태세가 크게 악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눈치다. 정보본부나 작전본부의 장교들은 대부분 경제난, 에너지난에 처한 북한이 재래식 전면전을 지속할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북한의 제2경제권이라고 할 수 있는 군수산업이 와전 와해직전이라는 첩보도 수시로 들어오고 있다.  2013년 3월에 김정은이 북한군 서해 부대를 시찰하면서 “3일 만에 끝나는 통일대전”을 천명하고 대내외에 이를 선전하고 있지만, 그 개연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앙일보>가 북한의 ‘7일 전쟁계획’을 보도하는 등 여전히 단기전에 의한 재래식 전면전의 가능성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고 여기에 청와대가 적극 공명하고 있다고 본다. 그 결과 북한의 선전에 불과한 새로운 전쟁계획에 대한 우리의 대응책을 수립하느라고 과도하게 에너지를 집중할 경우 군사정책의 일관성이 파괴되어 오히려 군사대비태세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작년 3월말부터 출몰한 북한의 조잡한 무인기가 정치논리로 ‘심각한 위협’으로 돌변함에 따라 그 대비책을 수립하느라고 또 다른 예산소요가 발생한 것은 과도한 대응이었다는 지적이다. 그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나 국정원 국방비서관 등이 북한의 새로운 위협을 ‘심각한 위협’으로 과도하게 부풀린 결과 이제 언론에 북한의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기만 하면 국방정책을 또 수정해야 하는 비효율이 증대되었다는 것이다. 유달리 여론에 민감하고 정치논리에 끌려가는 군사대비태세가 거꾸로 국방부와 합참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즉 무엇이 진짜 우리에게 위협인지를 판단하는 분별력이 흐려진 것이 안보에 있어 새로운 우려사항이 되고 말았다.
  결국 한 장관에게는 국내정치에 민감한 정치권력과 북한의 위협을 부풀려 국방부를 압박하는 보수언론이 모두 짐이 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장관이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소동에서와 같이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경우 안보에 있어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김종대 디펜스 21+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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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이러면 곤란하지"


70대 보수 아버지마저 분노했다

[게릴라 칼럼] 아버지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실망한 이유

15.01.26 08:19l최종 업데이트 15.01.26 11:4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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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청와대 국민행복 업무보고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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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까지 떨어졌다. 국정원 사태에도 꿈쩍하지 않고, 세월호 참사에도 꿋꿋이 버텼던 지지율이 언제부터인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앞선 대통령들의 최저 지지율과 비교할 정도로 제법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콘크리트 지지율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청와대와 여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MB의 경우 광우병 파동 당시 워낙에 촛불에 크게 데었던지라 이후 지지율이 아무리 떨어져도 무감각하게 국정을 운행할 수 있었는 데 반해, 박 대통령의 경우는 지지율이 이렇게 떨어진 자체가 처음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만 하더라도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할 만큼 청와대의 자신감은 밑바닥이다.

물론 대통령이 그까짓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대통령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의 추이를 볼 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금방 회복될 수도 있다. 2012년 대선 때도 그랬지만 박 대통령의 많은 지지자들은 항상 대통령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언제든지 그를 믿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럼에도 청와대는 이번 지지율 하락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콘크리트 지지율의 균열은 이미 현 정권에 대해 기대를 접은 20~40대가 아니라 50대 이상들의 이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던 이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이 시점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것일까? 난 그 해답을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하던 아버지,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 이상에서 흔들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그 세대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 즉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가장 크게 지배했던 집단적 기억은 한국전쟁이었지만, 65년이 지난 현재에는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이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겪은 세대 보다는 그 처절함을 글로 보고 이야기로 들은 이들이 더 많은 것이다. 대신 지금의 50대 이상은 소위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했던 그 시대를 자신의 시대로 각인하고 살았을 것인데 그때 사회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절대 죽을 것 같지 않은 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혹자들은 덕분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앞당겨졌다고도 평가하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서 평가하느냐 마느냐는 국민들에게 부차적인 문제였다. 중요한 것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여 북한이 이를 계기로 쳐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김재규와 차지철 간의 권력투쟁은 국민들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겨졌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의 죽음을 종종 민주주의와 경제와 관련시켜 구조적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당시 국민들에게 박정희의 죽음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존재가 밑의 권력투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죽은 하나의 비극이다.

그런데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는 정확하게 박정희 대통령의 말년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아버지만큼 독재자는 아니지만, 현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동일시한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36년 전의 권력투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박지만과 정윤회, 비서실장과 십상시 등 그 모든 것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2년 동안 한 일이 없다고 해도, 경제는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해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믿음을 거둬들이지 않던 70대 아버지가 '대통령이 그러면 안 되지'라고 말씀하신 건 결국 이번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였다. 아버지에게 이번 사건은 한낱 '찌라시'의 소문이 아니라 구중궁궐에서 흘러나오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서막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 끝이 비극으로 점철되리라는 것을.

70대 아버지의 쌈짓돈 털어간 정부에 대한 배신감

아버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해 터뜨린 또 하나의 불만은 역시나 이번 연말정산 사태 등에서 느꼈던 배신감이었다. 절대 증세는 없다고 했다가 몇 푼 되지도 않는 70대 아버지의 월급마저 위협하는 정부.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전 공약을 깨고 노인연금을 줄인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렇게 심하게 노하지 않으셨다. 나라의 경제 사정이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TV에 나와 부탁하겠느냐며 오히려 박 대통령을 두둔하셨다. 

그러나 올해 연말정산을 통해 아버지가 지난해에 뱉어내셔야 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고 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노인연금이야 원래 없던 거 받으시면 더 좋았던 것 뿐이니 참을 수 있지만, 당장 연말정산을 통해 걷어가는 세금은 당신의 수중에 있던 쌈짓돈을 가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올해 많은 이들의 금연을 이끌고 있는 담뱃값 인상 역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에는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50대 이상 학벌이 낮고 살림살이가 팍팍할수록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데, 이번 담뱃값 인상은 바로 그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5천 원 한 장을 내고 담배 한 갑에 소주 2병은 샀는데, 이제는 5천 원을 내고 담배 한 갑에 500원 거스름돈을 받으니 어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대통령이 이러면 곤란하다고.' 있는 사람의 세금은 걷지 않으면서 서민들의 등골만 빼먹으면 어찌 하냐는 아버지의 말씀. 박근혜 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크게 바꾸지 않는 이상 지지율의 반등이 어렵게 보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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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인사하기 위해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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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재작년 국정원 사태와 지난해 세월호 사태를 지켜보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크게 질책하지 않으셨다. 국정원 사태야 그 전 정부가 모두 했었던 일일 뿐이고, 세월호 침몰은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정부의 대응이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탓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의 마음 한 켠은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아버지 주위분들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믿음은 변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식들을 비롯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져 가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따라서 아버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신년기자회견을 기다렸다고 한다. 소위 십상시나 문고리 3인방에 대해, 증세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시원하게 해결하고 가기를 바랐다고 한다. 아버지나 그 친구분들은 박 대통령을 지지할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을 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의혹을 부인했고, 모든 국민들이 의심하고 있는 밑의 사람들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비록 총리는 바꾼다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요지부동이요, 그 옆의 행정관이나 비서관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안타까운 만큼 절망하셨다. 이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면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설 것인데, 박 대통령에게서 그럴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젊은이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준엄하게 훈계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그럴 만한 건덕지를 주지 않는다. 피곤할 수밖에.  

아버지 세대들에게도 대통령의 소통능력은 중요하다. 비록 그들이 좋아하는 박정희 대통령 역시 소통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이후 민주화시기를 거치면서 대통령의 소통 능력은 당연한 덕목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하지만 50대 이상 어른들에게도 민주주의는 기본 전제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대다수 국민들의 이야기를, 심지어 그를 지지하는 자기들의 바람 역시 듣지 않는다니 이는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요소는 모두 박근혜 대통령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부디 이 모든 걸 해결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는 아직까지 우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지지율은 반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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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해외국채만 95만주, 엄청난 재산 배경은?

 
 
 
박근혜 정권 집권 3년 차 ‘우병우 민정수석 기용은 김기춘의 작품’
 
임병도 | 2015-01-26 08:29: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은 1월 23일 청와대 조직개편을 통해 민정수석에 우병우 민정비서관을 내정했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 내정자는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검찰에 출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단순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일보다 우병우 민정수정은 박근혜 정권 집권 3년 차에 청와대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인사입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가진 배경과 어떻게 민정수석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의미를 알아봤습니다.


‘부자 검사, 그 원천은 처가 덕분이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 중 가장 부자입니다. 2014년 8월 14일 관보에 공고된 재산만 무려 423억3230만 원입니다. 1

원래 우병우 민정수석은 검사 시절부터 부자검사로 불리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사시에 합격한 수재였던 우병우 민정수석이 400억이 넘는 부를 갖게 된 배경은 처가 덕분입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부인은 (주) 정강중기, 정강건설 이상달 회장의 딸입니다. 2008년 이상달 회장이 사망하면서 재산은 더 늘어났습니다. 2

우병우 민정수석의 부인은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의 주식 2200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는 기흥CC를 운영하는 (주)삼남기업의 모회사입니다.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는 자본금 5천5백만원에 불과한 상시 종업원 5명 미만의 회사이지만, 1967억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주)삼남기업의 모회사입니다.

관보에는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 주식을 주당 5천원씩으로 신고했지만, 실제 자산가치를 따지면 수백억 원이 넘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부인 명의 재산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우병우 민정수석도 본인예금만 4억9천5백만 원이 넘고, 해외 국채만 99만5천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보통 공직자 재산공개를 보면 국채나 공채,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많지만, 특이하게도 우병우 민정수석은 무려 백만 주에 가까운 해외 국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본인과 배우자 명의의 예금만 183억 2077만 원에 남에게 빌려준 채권만 165억8051만 원을 가진 우병우 민정수석 부부의 재산만 보면, 공직자라고 보기보다는 ‘준재벌’이라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3

 

이상한 것은 재산이 423억이 넘으면서도 우병우 민정수석 본인이나, 부인 명의의 자동차가 한 대도 없다고 신고했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하고도 사표 내지 않았던 인물’

우병우 민정수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수사했다는 이력입니다. 대검 중수1과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검찰에 출두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사람이 우병우 주임검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고 23일 만에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검찰 수뇌부는 무리한 전직 대통령 수사의 책임을 안고 사표를 내기도 했습니다.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중수부장도 사표를 냈는데, 유독 우병우 중수1과장은 사표를 내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우병우 중수1과장은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과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거쳐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지청장’이 됩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검찰 내부의 판단에 따라 두 차례에 걸친 검사장 승진에서 모두 탈락, 2013년 5월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나게 됩니다.

권력에서 떠났던 우병우 민정수석은 불과 1년 뒤인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화려하게 권력 내부로 다시 들어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 기용은 김기춘의 작품’

우병우라는 인물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됐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닙니다. 가장 먼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왔던 시기를 살펴봐야 합니다.

2014년 5월 12일 우병우가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임명되자 법조계와 야당에서는 ‘몰지각한 인사’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5주년을 불과 10여 일 앞두고 벌인 5월 12일 우병우 카드는 그 누가 봐도 노골적인 세월호 타개 카드였습니다.

실제로 세월호 정국에서 잠시 우병우 카드는 정치권의 이슈가 됐고, 이 카드는 세월호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절대 흔들리지 않는 통치를 지속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우병우가 단순히 세월호 돌파 카드가 아니라는 사실은 정윤회 문건이 터지면서 밝혀졌습니다.

정윤회 문건으로 사망한 최모 경위의 유서에서 ‘너무 힘들어 하지 마라, 나는 너를 이해한다.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라는 문장 때문입니다.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우병우, 즉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정윤회 문건’ 사건의 청와대 해결사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직접 보고할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9일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퇴했습니다. 이유는 여야가 합의한 국회운영위 출석 요구 때문입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 출석을 지시했는데도 왜 김영한 민정수석은 사퇴까지 했을까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김영한 민정수석의 부하입니다. 그런데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공직기강비서관실 업무인 공직자 감찰업무를 김영한 민정수석이 아닌 우병우 민정비서관에게 주면서 청와대 감찰업무를 맡겼습니다.

한 마디로 김영한 민정수석은 부하였던 우병우 민정비서관에게 밀리고,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소외당한 것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자신의 심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우병우를 민정수석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 내정자는 사시 19기로 김진태 (사시 24회) 검찰총장이나 황교안 (사시23회)법무부 장관보다 후배입니다. 그런데도 김기춘은 우병우 민정비서관을 민정수석으로 승진시켰습니다. 4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청와대 문고리 비서관 3인방으로 불리던 권력은 대거 수면 아래로 잠겼습니다. 안봉근 제2비서관이 있던 제2부속실은 폐지됐으며,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인사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제 청와대 권력은 오로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집중된 셈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우병우라는 권력의 칼을 함부로 휘둘렀던 심복이 더 큰 칼을 차고 올라왔습니다.

우병우라는 인물이 앞으로 김기춘 비서실장이 쥐고 있는 청와대 문고리를 지켜주기 위해, 어떤 일을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 그가 향하는 최종목표가 권력의 중심부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 무섭습니다.

1. 관보 제18328호. 2014년 8월 14일
2. 우병우 비서관과 부인과 자녀들은 (주)정강,(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주)도시비젼의 주식도 상속 받았다. 
3. 재벌순위에서 자산 300억 이상을 준재벌이라고 부른다.
4. 사시 기수가 밀리는 우병우를 위해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민정특보로 임명됐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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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보낸 '전체 민족에 보내는 호소문'

 
[친절한 통일씨] 북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1948년 연석회의부터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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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26  01: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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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의 올해 육성 신년사 이후 북측은 지난 20일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를 진행, '전체 민족에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했다.

북측은 다음날인 21일 오후 판문점 채널을 통해 청와대, 국회의장,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대한적십자사 등 5개 기관에 연합회 명의의 호소문을 전달했다. 호소문에는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과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지 촉구, 그리고 대화와 교류의 추진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호소문은 통일부를 통해 5개 기관에 전달됐으며, 이와 별도로 북측 민화협 창구 등을 통해 남측 사회단체와 언론기관 등에도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에서 신년사 이후 정부·정당·단체 연합(합동)회의가 열리고 입장을 채택해 남측에 보낸 것은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 이후 4년만의 일이다. 앞서 북측은 2007년까지 신년공동사설의 '조국통일부문 과업'을 중심으로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를 열어 그 결과를 남측에 보내왔다.

북측은 지난 2011년 1월 5일 신년공동사설에 이어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을 발표해 "실권과 책임을 가진 당국사이의 회담을 무조건 조속히 개최할 것을 주장한다"면서 남측 당국과의 무조건적 대화를 중대제안 형식으로 제시한 바 있다.

북측은 그 당시 연합성명에서 "당면하여 우리는 북남관계개선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서로의 비방중상을 중지하며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제기한다"고 제안했으나, 당시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연합성명은 2007년까지 연례적으로 나오던 것"이라고 낮게 평가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 제의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의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는 지난 1948년 4월 처음으로 열린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모태로 하며, 1999년부터 정부가 참여하는 형식으로 바뀐 것으로 파악된다. 연석회의 첫날 김일성 당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장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아무튼 북측의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는 주로 연초에 열리긴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통상 1년에 1~2차례 열리는 이 회의는 연합회의, 합동회의, 연석회의 등의 명칭으로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회의는 주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매 시기별 과제를 제시하고 남과 북, 해외에 지침을 공유, 확산하기 위해 열렸으며, 대개 남북 당국의 역할과 함께 민간급 대화를 특별히 강조하는 특징을 보여왔다.

회의에는 정부, 정당, 단체의 책임일꾼들이 참가하는데, 올해 연합회의에는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 김용진 내각부총리를 비롯해 근로단체, 사회단체 책임일꾼들과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북측본부 관계자 등 북측 정부·정당·단체 대표들이 참가했다.

회의의 모체는 지난 48년 4월 열린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이며, 지난 1998년까지는 정당·단체 연합회의로 개최해 왔으나 1999년부터 정부가 참여하는 형식으로 바뀐 것으로 파악된다.

북측에서 그동안 연합회의를 열어 채택한 주요 제의로는 △전민족회의(1979.1) △남북 연석회의 소집(1988.1) ▲△민족통일협상회의(1989.9) △대민족회의(1995.1)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1999.1) 등이 있다.

또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에는 그해 8월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북측 정부·정당·단체 연합대회'를 열어 공동결의문을 채택, 공동선언의 일부 조항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과제를 제시했다.

이어서 △여야 불문 정치인 왕래·접촉(2001.1) △당국·민간급 대화·접촉(2002.1) △6.15 3주년 평양 민족통일대축전 개최(2003.3) △민족명절과 남북공동 기념일에 민족적 회합(2004.1) 등이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의 결정으로 채택되거나 제안됐다.

북측은 올해 회의에 대해서는 "조국해방 일흔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거족적인 운동을 힘있게 벌여나가기 위하여 공화국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를 가지게 된다"고 밝혔다.

연합회의의 호소문이 연례적이라고 해서 무게가 가벼운 것은 아니며, 더욱이 4년만에 보내온 제안이니만큼 분단 70년을 극복하는데서 남과 북이 서로 있는 힘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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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군부대현지지도를 비반동포로 택한 까닭

새해 첫 군부대현지지도를 비반동포로 택한 까닭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1/26 [03:16]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김정은 위원장의 새해 첫 현지지도로 평양 애육원을 찾은 모습     © 통일뉴스 펌

 

▲ 김정은 위원장이 새해 첫 군부대 현지지도를 위해 비반동포 사격훈련장을 찾았다.     © 자주민보

 

▲ 김정은 위원장이 새해 첫 군부대 현지지도를 위해 비반동포 사격훈련장을 찾아 사격 후 찍은 기념사진     © 자주민보

 

북 지도자의 새해 첫 현지지도는 한 해의 방향을 암시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새해 첫 공개적인 현지지도는 지난해 새로 지은 육아원·애육원이었다. 
지체장애를 가진 고아들을 주로 맡아 키우고 공부시키는 곳이기에 북에서도 가장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곳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사회복지를 얼마나 잘 실현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한 척도로도 삼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이 이곳을 새로 건설하기 전에는 관련 장애아들의 상태가 사실 보도 영상으로만 봐도 매우 좋지 않았다. 북이 고난의행군의 그늘을 많이 가셔냈다고 하지만 아직 이런 곳까지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런 실태를 직접 목격하고 그렇게 가슴아파하면서 모든 원아들을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와 건강회복을 지시함과 동시에 인민군대를 전격 투입하여 단 4개월만에 평양애육원을 새로 건설하였다고 북 언론들은 지난해 내내 여러차례 보도한 바 있다.


따라서 새해 첫 현지지도를 이곳에서 진행했다는 것은 좁게 보면 좋은 집을 지어주는데 만족하지 않고 원아들이 실질적으로 나라의 혜택을 보며 장애도 잘 치료하고 공부도 잘 시켜 무럭무럭 잘 자라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며 넓게 보면 사회전반적으로 고난의행군 그늘을 깨끗하게 가셔내고 그간 꿈꾸었던 이상사회를 건설을 위해 북 주민들의 생활의 질을 한층 높여내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세계 어떤 나라 사람들이 와서 봐도 이상사회라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을 건설해가는데 있어 새로운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한해를 보내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해 평양과 북의 주요 장소를 방문하고 온 많은 해외 동포들은 하나 같이 평양, 원산 등의 도시들이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도 발전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지방의 경우 낙후된 곳이 많다. 지난해 연합뉴스 등에서 보도한 압록강변 북측 지역 마을만 봐도 필자가 방문했던 2011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북 농촌지역의 살림집들이 아직 낡은 것들이 많고 도로도 비포장이 많았다. 석유화학공업이 부족하고 시멘트도 넉넉하게 생산하지 못한 탓인지는 몰라도 농촌과 산촌의 도로 포장률이 여전히 부족해 보였다. 
남측의 경우 농로를 물론이고 산골마을까지 거의 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것과 대조적이다. 신은미 씨도 북녘 지방으로 들어가면 살림살이 수준이 안타까울 정도로 여전히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그럼에도 종북으로 몰려 추방되었다니 참...)

그런 농촌지역의 육아원이나 애육원의 상황도 썩 좋을 것 같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애육원을 통해 전형을 창출하고 그것을 전국으로 일반화하는 일들을 올해 본격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북의 뉴스를 보면 나무 모종을 키우는 일에 큰 힘을 넣고 있음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고난의행군 시절 땔감으로 베어 써버려 큰 나무가 거의 없는 북녘 농촌의 야산에 대대적인 조림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지방까지 이상사회의 면모를 갖추어가려는 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을 원활하게 추진하는데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풀리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 거론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한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과 조국통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완수해야할 민족사적 과제라고 북은 일관되게 주장해왔기에 북의 경제건설의 조건 마련을 위해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된 전향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분단 70주년이 되는 올해 통일의 큰 전환적 국면을 반드시 열겠다는 의지 피력은 익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도 언급함으로써 예상을 뛰어넘는 가장 강력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하였다.


다만, 남북관계 개선이 이런 민족사적 과제를 푸는 것과 함께 북이 추진하는 이상사회 건설에도 필요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평화가 정착되어야 인민군대를 건설에 더 많이 투입할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도 이상사회 건설 쪽으로 더 많이 투여할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 한국전 당시 중공군이 비반동포로 미군 탱크를 파괴하는 모습, 이런 근접무기가 요즘 현대전에서 얼마나 이용될지 알 수 없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무기를 다루는 부대를 새해 첫 현지지도 장소로 택했다.     © 자주민보

 


비반동포 훈련장 방문의 심각성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새해 첫 군부대 현지지도를 비반동포 사격훈련장으로 정했다. 비반동포는 우리의 무반동포(총)와 같은 것으로 2km 내외의 탱크나 장갑차, 동굴진지, 사격진지 등을 파괴하는 휴대용 직사포이다.


최근 전차들은 복합장갑과 반응장갑 등으로 튼튼히 무장되어 있어 기관총은 물론 어지간한 휴대용 로켓포에도 끄떡없다. 무반동포는 RPG 로켓보다 구경도 훨씬 크고 더 강력하며 특히 정확도도 높기 때문에 여전히 전차에게는 위력적인 무기이다. 다만 사거리가 짧아 치열한 근접전에서 거의 목숨을 걸고 사용하는 무기이다. 장약폭발식 직사포이다보니 후폭풍이 강력하게 발생하는데 이 화염 때문에 발사하자마자 위치가 바로 노출되고 급히 피하지 않으면 적 전차의 공격을 쉽게 받을 수밖에 없는 무기이다.

 

의외다.
다련장로켓포부대도 아니고 큰 직사포, 곡사포부대도 아닌 가장 작은 휴대용 비반동포 사격훈련장을 왜 찾은 것일까?


오랜 동안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김정은 위원장이 싸움준비를 최종적 단계까지 완성해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급작스럽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 떠나게 되어 북 전반에 대한 영도권을 틀어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간 해온 일 중에 가장 신경을 쓴 분야가 군사분야이다.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면까지 공개했으니 전략무기에 대한 점검은 거의 다 끝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난해 말 마지막 현지지도가 여성 방사포(단련장로켓포)부대 사격훈련장이었다. 자행포도 아닌 손으로 밀어서 움직이는 소형 견인 방사포부대였다. 이어 새해 첫 군대 현지지도가 비반동포였다.

아주 작은 군부대, 현대전에서 거의 동원 가능성이 높지 않은 부대까지 싸움준비태세를 갖추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북의 언론들은 잊을만하면 2013년 전쟁위기 당시에 내린 “최고사령관의 전투명령이 이미 하달된 상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경고를 내보내곤 한다. 올해 우리 정보당국에서도 북의 전쟁도발이 매우 우려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8998


이런 맥락에서 비반동포 사격장을 찾은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는 매우 심각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새해 첫 현지지도를 포함한 연초의 행보를 종합해보면 지방까지 하루빨리 경제건설을 다그쳐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동시에 무서운 의지로 싸움준비 또한 완벽하게 다져가겠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도발의지가 위험계선을 넘어서고 있어서 그런다고 주장하고 있고 우리 정보당국은 북이 세운 통일전쟁 계획에 의해 그렇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주장이 맞건 한반도 전쟁위기가 심각한 국면에 들어서 있다는 점만은 공히 인정하고 있는 주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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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현장은 사건현장.. 선체 온전히 인양해야”

 
‘적반하장’ 촛불문화제.. “4대강은 22조, 진상규명 241억이 세금도둑?”
문장원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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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25  09:31:51
수정 2015.01.25  09: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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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발뉴스 (문장원)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참사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가 24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촛불문화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는 지난 16일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세월호 특위 확대 구성과 관련해 “여성가족부보다 더 큰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며 “세금도둑”이라 발언한 것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서울 도봉구에서 왔다는 직장인 김현성 씨는 “적반하장을 제대로 설명하겠다”며 무대에 올랐다. 김 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에 쓴 돈이 22조다. 304명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데 241억을 쓴다고 세금도둑이라 하는 것이 오히려 적반하장”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국민 모두를 위한 세월호 진상위원회”라며 “국민 세금이나 제대로 써라. 세금으로 국민 죽이지 말고 국민의 권리를 뺏어가지 말아라”고 지적했다.

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도 김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가 특별조사위원회 설립과 향후 활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청와대 가이드라인을 가장 먼저 언론에 발표한 사람이자, 특별법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또 최근 세월호 조사위 설립준비단 해체를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황전원 특별조사위 비상임 조사위원에 대서는 “예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된 사람”이라며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있어 위원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차기환 조사위 비상임위원의 태도에 대해서도 박 위원장은 “일베 회원들의 유가족 비하 발언을 인터넷에 퍼날랐던 사람”이라며 “(진상규명을 방해하려는)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여권의 ‘발목잡기식’ 공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조사위가 진행되면 이 사람들이 계속 이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조사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산으로 가지 않도록 우리가 다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했다.

   
▲ ⓒ go발뉴스 (문장원)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은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19박 20일 일정으로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기 위해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행진을 벌인다.

도보행진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부산에서 온 시민 김성훈 씨는 “세월호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 때문에 발생한 국가에 의한 살인”이라며 “때문에 더더욱 온전한 선체 인양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자원봉사자 김건우 씨도 “세월호는 사건현장”이라며 “모든 범죄의 사건현장은 보존돼야 한다. 정부는 (세월호를) 절단한다고 하는데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세월호는 온전히 인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원고 희생자 故 이민우군의 아버지 이종철씨도 “가족들의 도보행진에 많은 참가를 부탁드리고, 썰렁해진 광화문 광장에 많이 들러주시기 바란다”고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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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 시] 조선족과 한글 동북공정

 
 
 
 
 
오영수 시인 | 2015-01-23 19:35: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선족과 한글 동북공정

                                      오영수
 

일본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 사는 
재외 한국인들은 빼더라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 
또 러시아에도 우리말을 쓰는 
고려인이라 불리는 동포들도 있다네

지금에 이르러 남한에선 
중국 조선족을 동포로 보지 않으려 하고 
짱깨라 비하하며 이민족으로 구분 하려고 들지  
그들의 여권에도 국적란 표시에는 조선족으로 되어있다고 하네
 
중국은 
그들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고 있기에 
조선족도 소수민족으로 분류하는 것이야

남한에서조차 
조선족을 타 민족시 하기에 
그들은 결코 조선족을 한국인이라고 분류하지 않겠지

왜 우리 동포가 소수민족이어야 하고 
그들이 그런 대우를 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한번 깊이 생각들은 해 보았는지

조선족이 쓰는 한글표준어를 마련하는 것은 
그들도 한글 자판을 사용하기 때문이야
이것을 계기로 기회를 포착한 중국이 
한글 자판 동북공정에 들어간 것이지
 
남한 사람들은  
되놈이 한글까지 뺏으려고 한다면서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나는데 진작부터 조선족을 
우리의 동포로 인정하고 대비책을 세웠더라면 
오늘날 이런 꼴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지

앞으로 200년만 더 지나 봐 
조선족들 중국인으로 동화되어 있을 테니까

러시아의 고려인들도 타민족으로 진화되어 
모국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되겠지

개들도 주인이 버리면 성격이 바뀌는 것처럼 
자기들을 버린 모국에 
칼 들이대지 말라는 법 없겠어

잘사는 미국동포만 동포고 
못 사는 중국이나 러시아 연방 계통의 동포는 
동포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들도 모국을 잊어 버릴걸

한글 동북공정 중국이 시작한 거 아니야 
우리가 빌미를 준 것이지 
만약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히 반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거야

일개 시인도 아는 이런 일들을 
이 땅의 지도자들은 왜 모르는 걸까

땅파기만 급급해 까마득히 잊은 건지 
아니면 애당초 염두에도 없는 건지
이것도 아니라면 조선족 문제는 건드려봐야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인지 
나로서는 어림도 해볼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그들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집 떠나 개고생 한 선지자의 후손들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중국과 수교 후 
남한땅에서 간 사람만 
한국 동포로 여긴다면 
우린 너무나 많은 걸 잃게 될 텐데
 
그 뒤엔 아무리 땅을 치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을걸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5&table=c_minjokhon&uid=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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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이하 산업전기, 사회가 덤터기 쓴다

 
이수경 2015. 01. 23
조회수 2468 추천수 0
 

OECD 최저 수준…일본은 우리의 1.7배, 중국도 1.5배

대기업이 혜택 누리고 환경·안전·형평성 부담은 사회에 전가

 

05223880_R_0.jpg» 12일 부산시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 안 한국거래소에서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탄소의 배출권이 주식처럼 거래되는‘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개장식이 열렸다. 부산/ 연합뉴스                                     

 

올해부터 탄소배출권 거래가 시작되었다. 이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되는 기업은 2011~2013년 동안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이 12만5000톤1) 이상인 업체이거나, 개별 사업장이 2만5000t을 넘는 곳이다. 모두 525개 업체가 대상이며 이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우리나라 배출량의 66%를 차지한다.

 

시행을 늦춰야 한다는 재계의 반발과 제도의 후퇴를 우려하는 환경단체의 논란 속에서도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가 시행된 만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그러나 원가보다 싸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인해 전력사용이 가뜩이나 많은 대기업이 탄소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전력사용을 더 늘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늘어나는 전력수요는 결국 환경성, 안전성, 경제성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은 원자력발전소나 석탄발전소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도 걱정이지만 안전이 우려되는 원전을 계속 확대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걱정거리이다.  탄소배출권거래 제도 시행으로 상대적으로 이점이 커진 산업용 전기를 지금처럼 마구 써도 괜찮을까?

 

전력가격, 우리나라가 가장 싸다

 

03390717_R_0.jpg» 전기로 제철공장에서 쇳물을 끓이기 위해 전극봉으로 불꽃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동부제철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단순히 가격만 비교하면 가정용과 산업용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싼 편이다. 물가나 국민 총생산을 고려해도 우리나라의 전력가격은 턱 없이 싸다. 

 

산업용 전력가격의 경우, 2013년 OECD 국가의 평균 전력가격은 우리나라의 150%, 수출 경쟁국인 일본은 170%, 중국은 150%이다.  우리나라와 국민 총생산이 비슷한 스페인은 180%, 일인당 국민총생산이 비슷한 그리스는 172%, 포르투갈은 184%였다(표 1의 파란 글씨, GDP, GDP/인 참고).

 

물론 전력 가격은 어느 나라 건 시장에서 정하지 않는다. 정책적으로 여러 요소를 반영해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단순히 가격이 싸다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력가격을 결정하는데 물가안정, 수출경쟁력 강화 등과 같은 산업계의 입장은 과도하게 반영하고 환경비용이나 위험비용, 에너지 복지와 같은 사회적 비용은 반영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결국, 산업용 전력을 싸게 공급해서 산업경쟁력이 높아지는 이익은 대기업과 같은 소수에게 돌아가고 에너지 낭비와 환경비용, 안전비용은 국민 모두가 짊어져야 하니 싼 전기는 경제적으로도 손해고 사회적으로도 정당하지 않다.

 

전기가 석유나 천연가스보다 싸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전력가격이 턱 없이 싼 것도 문제지만 다른 에너지에 비해 전력가격이 싼 게 진짜 문제다. 전기는 원자력, 석탄, 천연가스, 석유를 태워 만든 2차 에너지다.  따라서 전기는 만드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전기는 전기를 만들기 위해 투입된 에너지 보다 적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투입된 에너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투입된 에너지의 3분의 1도 전기에너지로 만들기 힘들다.  전기에너지는 사용하기는 편하고 깨끗한 것 같지만 전기를 만드는 과정을 고려한다면 다른 에너지에 비해 값도 비싸고 오염물질도 많이 만드는 에너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전기가 석유보다도 싼 이상한 에너지 가격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표 1. 각국의 전력가격과 에너지 가격 비교(2013)

en0.jpg

자료 : Energy Prices and Taxes, 2nd Quarter 2014(OECD/IEA), 통계청, 외교부홈페이지(2013년 기준)

* 한국 산업용 전력가격은 2012년 가격, 일본 도시가스 가격은 2012년 가격


산업용 전력 가격을 100%라고 할 때 OECD 평균은 석유 가격이 55%이고 천연가스는 26%이다. 일본은 석유가 58%, 천연가스는 61%로 전력보다 훨씬 싸다. 우리나라와 경제수준이 비슷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어느 나라도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모두 전력 가격의 50% 정도에 불과하다(표 1의 빨간 글씨 참고).

 

그런데 우리나라만 유독 천연가스는 전력가격 대비 106%, 석유는 102%로 전력 가격이 다른 에너지에 비해 오히려 싸거나, 석유나 천연가스의 상대적인 가격이 이상하게 비싸다. 그러나 가스나 석유 가격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특별히 비싸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국 기형적으로 싼 전력 가격이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력 가격이 다른 에너지에 비해 싸서 에너지 중 전기 사용량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전력 가격이 싸고 특히 산업용 요금, 그 중에서도 대기업이 많이 사용하는 경부하 전력요금2)이 싸다 보니 기저부하3)의 필요가 나날이 늘어 안전하지도 환경오염과 같은 사회적 비용이 제대로 평가되지도 않은 석탄이나 원자력 발전의 수요가 급속히 늘고 있다. 

 

이렇게 원가 이하로 대기업에 제공되는 경부하 전력요금으로 인한 손실은 결국 가계나 중소기업 혹은 세금으로 메워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해부터 시행되는 탄소배출권거래 제도로 인해 석유나 가스에 비해 전력이 가격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면서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대기업의 전력사용이 늘 가능성이 커졌다.

 

싼 전력가격이 에너지 비용을 키운다

 

전력 가격이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싸다 보니 최종 에너지소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늘수록 전기사용량이 는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이 안정기에 이른 2000년 이후에도 최종에너지에서 전력 비중을 크게 늘고 있는 것은 문제다(표2, 그림1 참고).

 

표 2. 최종에너지소비 현황 및 계획 (천TOE)

 

en-2.jpg» 자료=2013 자주 찾는 에너지통계, 에너지경제연구원

 

그림1. 최종 에너지 소비 추이

 

en03.jpg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전력에너지의 소비는 꾸준히 늘어 1990년 최종 에너지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였던 전력은 2010년 19%로 늘었고 2030년에는 25%로 늘어날 전망이다(표2, 그림 1 참고). 이렇게 전력소비가 늘어난 것은 전력가격이 다른 에너지보다 싸기 때문인데, 싸게 공급하는 전력 가격 때문에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은 나빠지고 있다. 

 

예를 들면, 물건 1개를 만드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석유로 환산해 1톤(1TOE4))이라면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1차 에너지를 사용할 때는 1TOE만 필요하지만, 다른 에너지를 태워 만든 2차 에너지인 전기 1TOE를 사용할 때에는 다른 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효율에 따라 2 내지 3TOE의 석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전기를 대체할 수 있는 1차 에너지 대신 2차 에너지인 전기를 사용하면 국가 전체로는 같은 물건을 생산하는 데 불필요하게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것이다.  

 

산업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니 산업용 전력가격을 올리면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산업계의 주장이 일리 있는 것처럼 들리기는 한다.  그러나 전력가격이 오르면 에너지를 다른 것으로 바꾸게 되고 이렇게 전력가격을 제 값대로 받을 때 에너지 전환에 드는 비용을 제하고도 사회 전체가 얻는 이득이 한 해에만 산업부문은 1349억원, 가정·상업용은 1169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5) 
 

따라서 산업계의 물가 인상을 적절히 규제하고 에너지 전환에 드는 비용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면 물가는 오르지 않으면서도 장기적으로 더 합리적으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다.

 

정부의 개입이 지나치지 않느냐는 우려는 접어둘 필요가 있다. 그동안 원자력발전에 필요한 환경, 안전 비용 등을 국민에게 떠넘겨 싼 값에 공급하여 낭비를 부추긴 것도 정부의 개입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기처럼 시장에서 가격을 정할 수 없는 상품의 가격에 정부가 개입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개입하지 못해 온 게 문제인 것이다.  

 

산업용과 달리 가정용 전기는 사용량이 OECD 다른 나라에 비해 오히려 적다. OECD 34개 국가 중 GDP 대비 산업용 전력소비량은 4위, 주택용 전력소비량은 26위로 우리나라 가정의 전력소비량은 상대적으로 적다.6) 따라서 가정용 에너지의 경우, 전력가격을 높일 게 아니라 가정용 석유나 도시가스 가격을 낮추어 상대적인 에너지 가격을 정상화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나라 가정이 전기를 아껴 쓰는 편이기는 하지만 겨울철 난방용으로 비싼 전기를 점점 더 많이 쓰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특히 저소득층은 주거환경이 나빠 난방을 위해 전기나 연탄을 사용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03550808_R_0.JPG» 서울 구로구 오류동 무허가건물에서 난방을 위해 숯과 전기장판을 사용하고 있다. 두 할머니는 집에 기름보일러를 사용할 수 있지만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연탄보일러로 교체를 했다. 모든 생활을 전기로 하기 때문에 한달에 전기세만 6만여원 정도 나온다. 사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저소득층 주택은 낡아서 단열이 잘 안 되는데, 주택을 고칠 필요 없이 사용하기가 간편한 것이 전기와 연탄이다. 또 여기에 정부가 보조를 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와 연탄은 에너지 효율도 낮고 치러야 할 환경과 안전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다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도록 지원방법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연탄과 전기를 도시가스와 같은 다른 에너지로 바꾸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설 뿐아니라 노후불량주택의 단열개선과 같은 주거복지에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우리나라 전체의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깨끗한 전기가 환경과 안전을 위협한다?

 

유독 우리나라의 전력가격만 다른 나라에 비해 싸고, 다른 에너지에 비해 싼 것은 우리나라가 전력을 생산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력가격에 포함되어야 할 비용을 사회 전체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원가에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사고위험 대응비용, 폐로 처리비용 등이 포함되어야 하고, 석탄발전은 탄소 처리비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깨끗한 에너지로 알려진 전기는 사용하는 과정에서는 깨끗하지만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무연탄과 비슷하게 먼지와 황산화물을 배출하고 질소산화물은 어떤 에너지보다 많이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대기오염원이기 때문에 대기오염 비용도 전기요금에 반영하여야 한다(표 3, 참고).


표 3. 에너지원별 대기오염물질 배출계수

 

en-4.jpg» 자료=박광수, 에너지 가격체계 현안 및 개선방향 , 에너지경제연구원, 2011, p 44 

 

또한 발전소뿐 아니라 밀양으로 대표되는 송·변전 시설과 관련된 갈등해소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전기요금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의 에너지 관련 세제는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에너지 가격에 포함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원칙과 일관성 없이 에너지원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 세금이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유도하기는커녕 에너지의 낭비를 부추기고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사용하는데 필요한 환경과 안전 대책을 수립하고 밀양과 같이 전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겪는 피해자에 대해 적절히 보상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든다. 그만큼 전기는 원래 아주 비싼 에너지이다. 

 

05231815_R_0.jpg»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2일 오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입주해있는 서울 광화문 케이티 앞에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중단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펼치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사회적 비용은 전력 가격에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사진=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그동안 우리가 전기를 싸게 사용한 것은 전기가 싸서가 아니라 우리가 세금으로 전기요금을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싼 전기는 우리나라 전체의 에너지 비용만 늘려 놓았다. 따라서 전기가 물어야 마땅한 사회적 비용을 세금으로 걷어 전력가격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대규모 사업장에 원가 이하로 제공되는 경부하 요금을 제값 대로 받아서 기저부하의 수요를 줄이면 위험한 원자력발전에 대한 수요를 낮출 수 있다. 또 상대적으로 가스나 석유와 같은 다른 에너지 가격을 조절하고 중소기업의 에너지 전환에 드는 비용을 지원하면 산업계가 전력 가격 인상으로 받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위험이나 환경오염,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포함시켜서 전력가격을 정상화시켜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오히려 사회 전체의 에너지 비용은 줄일 수 있다.  이상하게 싸게 파는 물건은 잘 살펴보아야 덤터기를 쓰지 않는 법이다.

 

이수경/ 환경운동가

1) 이산화탄소상당량톤(tCO₂-eq) : 이산화탄소 1톤 또는 기타 온실가스의 지구 온난화 영향이 이산화탄소 1톤에 상당하는 양을 말한다. 

2) 경부하 요금이란 저장하기 어려운 전력의 특성 때문에 기저 부하량 이하로 전력을 사용하는 시간에 전력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전기요금을 깍아 주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경부하 시간대에서도 기저부하 이상으로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기저부하용 석탄, 원자력발전의 증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3) 최저 수요 또는 기본 수요를 말하며 발전에서는 석탄, 원자력발전과 같이 한 번 발전하기 시작하면 일정기간 동안 생산되는 발전량을 말한다. 첨두부하란 이와 반대로 최대 발전수요를 말하며 가스화력발전과 같이 생산을 조절하기 쉬운 발전이 기저부하에 더해 첨두부하용으로 쓰인다. 

4)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로 석유환산톤(tonnage of oil equivalent)이라고 하며 원유(석유) 1톤을 연소하였을 때 발생하는 열량으로 1TOE는 10,000,000㎉에 해당한다. 

5) 박광수, 에너지 가격체계 현안 및 개선방향, 에너지 경제연구원, 2011, p52 

6) 전수연, 전력가격체게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국회예산정책처, 2013,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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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환경과 공해 연구회 환경운동가
전 환경과 공해연구회 회장. 1980년대부터 환경운동을 했으며 시민운동과 에너지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
이메일 : eprgsoo@gmail.com      
블로그 : http://ecoi.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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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자감세와 서민증세가 만들어낸 연말정산 논란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장
 

‘13월의 세금폭탄’이라 회자되며 2014년 소득귀속분에 대한 연말정산(이하 연말정산)에 근로소득자들의 불만이 들끓자 지난 20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연말정산’에 대해서 직접 브리핑 했다. 주요 내용은 간이세액표 변경과 세액공제 전환이 함께 맞물려 환급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고 차후 공제수준・항목을 손질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내년 연말정산에야 적용되는 내용들로서 현재 제기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 연말정산 문제는 과거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와 박근혜 정부의 서민증세가 만들어낸 필연적 산물이다. 특히 연말정산에 대한 근로소득자들의 불만 표출은 박근혜 정부의 조세형평성에 역행하는 조세정책에 그 원인이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 국민 모두가 세법 개정문제가 자신의 문제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3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른쪽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3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른쪽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뉴시스

부자감세 서민에게 떠넘기다 분노 초래

먼저, 이번 연말정산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과거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복지재원의 충당을 서민증세라는 형태로 서민층에게 전가하는데서 근본적으로 비롯되었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투자와 소비 진작을 위해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자감세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투자,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고소득층에게는 과도한 세금혜택과 대기업들에게는 수백조원에 이르는 현금유보액 누적이라는 결과만을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증세없는 복지’라는 고집스러운 원칙을 견지하면서 복지재원의 충당을 기존의 실효성 없는 부자감세의 정상화가 아닌 담뱃값 및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등 서민증세로 대체했다. 연말정산에서 드러난 근로소득자들에 대한 과도한 세부담 역시도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둘째, 이번 연말정산의 공제내역 곳곳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서민층에 대한 세부담 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2014년 하반기 체크카드‧현금영수증 본인 사용액이 2013년 연간 총사용액의 50%보다 증가할 경우, 체크카드 등의 소득공제율을 종전 30%에서 40%를 적용하기로 2014년 세법 개정안에 반영했다. 그러나 문제는 우선 근로소득자 본인의 2014년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현금영수증 발급금액 등을 모두 더한 금액이 2013년 합계금액보다 증가한 경우에만 개정 세법에 따른 신용카드 소득공제 증가효과가 발생한다. 모두 더한 금액이 전년대비 줄었다면 개정 세법 적용대상이 안되어 절세효과가 전혀 없다.

또한 지난해 연말정산에서는 첫 자녀를 낳은 가정의 세금을 평균 71만원 가량 깎아줬으나, 올해는 혜택이 줄어들었다. 지난해부터 폐지된 6세 이하 자녀 공제는 1명당 100만원, 출생·입양 공제는 1명당 200만원의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었다. 재작년에 첫 아이를 낳았다면 두 가지 공제에 모두 해당돼 작년 연말정산에서 30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았다. 전체 구간 평균으로 보면 재작년 출산에는 70만8천원의 세 혜택을 준 것이다. 그러나 작년에 이런 자녀 관련 소득공제가 사라지고 자녀 세액공제로 통합되면서 올해 연말정산부터는 세금 감면액수가 줄었다. 결국 서민층에 대한 세제혜택이 줄어들면서 세부담을 이들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 이번 연말정산 논란에 대한 책임과 관련해서 여야 모두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연말정산에 대한 근로소득자들의 불만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으나 여당이 이를 주도하고 야당이 묵인한 행태로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연말정산 관련 세법개정안은 지난 2014년 1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소득세법 개정안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에서 연말정산과 관련 세법개정에 대해 중산층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진 못했다. 야당은 월급쟁이 증세, 서민 세부담 가중이라고 비판했지만 세법 개정안은 12월 31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고 2014년 1월 1일 본회의에서 286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45명, 반대 6명, 기권 35명으로 가결됐다. 결국 이번 연말정산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하고 법인 통과에 나섰던 여야 모두에게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말정산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한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왼쪽부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완구 원내대표,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손을 맞잡고 있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말정산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한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왼쪽부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완구 원내대표,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손을 맞잡고 있다.ⓒ민중의소리

'우회증세‘ ’서민증세‘ 버리고 소득세·법인세 높여야

조세형평성에 역행하고 근로소득자들을 분노케 한 이번 연말정산 문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첫째, 이번 연말정산과 관련한 근로소득자들에 대한 과중한 세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여야는 즉각적인 소급 입법조치에 나서야 한다.

현행과 같은 연말정산 방식은 국민들에게 조세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하시키게 된다. 따라서 여야는 지금이라도 즉각적인 소급 입법조치를 통해 서민층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축소된 부양가족 공제, 자녀 의료비·교육비 공제를 높일 수 있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이번 연말정산 논란과 같이‘우회 증세’또는‘서민 증세’방식을 버리고, 차제에 소득세 및 법인세 인상 등 실질적인 증세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이번 연말정산 방식을 개선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세정책 자체를 조세형평성을 제고시킬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는 과거 이명박 정부가 실시했으나 오히려 대기업들과 고소득층에게 혜택만을 주었던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에 대한 정상화 등 실질적인 증세 방안부터 제시해야 한다. 현재 연말정산의 논의는 연말정산 제도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근로소득자에 대한 적정한 세부담, 종전의 세제개편에 대한 논란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여러 우려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데, 증세의 필요와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고소득자에게 세부담을 높이는 것도 고려되는 것이지만, 법인세의 인상도 이제는 함께 고민할 부분이다. 연말정산의 논의가 근로소득자에게만 세부담을 늘렸다는 오해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세법개정시 논란이 연말정산시 근로소득자가 직접 체감하면서 세부담 증가에 대해 반발하는 것이다. 실제 근로소득자중 누구에게 세부담이 실제 세법개정으로 늘어나고 줄어들었는지 빠른 시기에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발표할 필요가 있다. 세법개정의 효과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그 효과에 대해서 정치적 책임을 받을 각오로 조세정책에 임해야 한다.

셋째, 올해부터 얼마씩 떼어내는 간이세액표 자체의 변경도 반드시 필요하다.

작년 바뀐 세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점에서 현재 연말정산의 결과를 그대로 내년 연말정산에 바로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올해 연말정산의 결과를 토대로 적어도 중산층이하의 연말정산이후 추가납부를 하지 않도록 검토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현재방식의 간이세액표 계산방식과 납세자의 전년도 소득세 납부세액의 1/12를 계산하는 방식을 납세자가 선택하게 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정부는 간이세액표 자체를 실제 소득예측치에 가깝게 만드는 작업을 유지하면서 납세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도 함께 고려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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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자복직 범국민대회...

"동료 관 뚜껑 위에서 6년... 이제는 우리의 시간 되찾자"

[현장] 쌍용자동차 해고자복직 범국민대회... "해고자 즉각 복직돼야"

15.01.24 21:07l최종 업데이트 15.01.24 21:0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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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차해고자복직 범국민대회 24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쌍용차해고자복직 범국민대회. 이곳에 모인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은 쌍용차 해고자들의 즉각 복직을 요구했다.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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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왔구나."
"이따 같이 밥 먹고 가, 꼭."

24일 오후 쌍용차해고자복직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서울시청 앞 광장. 2천여 인파 속에서 65개월 만에 노사 협상을 열기로 한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깃발 아래에는 반가운 해후가 이어졌다. '공장으로 돌아가자'라고 쓴 남색 조끼를 똑같이 나눠 입은 두 사내는 서로의 손을 꼭 맞잡았다.

이날 쌍용차지부 깃발 밑에는 130여 명의 해고노동자가 모였다. 누군가의 조끼는 낡았고, 누군가의 조끼는 새 것이었다. 지난 2009년 정리해고된 이후 지금까지 평택 앞 공장을 지킨 30명뿐만 아니라 생계 때문에 하나둘 떠났던 조합원까지 찾아와 옷을 새로 맞춰 입고 함께한 날이었다. 

생계 찾아 떠난 해고자도 시청 앞 광장에... "갈 길 멀지만, 기쁘다"

당시 쌍용자동차 서울구로정비사업소에서 해고된 최현(48)씨도 그 중 하나다. 수원에서 학원차를 운전한다는 그는 농성장을 떠나온 뒤로 미안한 마음에 동료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최씨는 최근 노사가 교섭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힘내라 굴뚝'이라고 쓴 노란색 삼각형 깃발을 든 그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공장으로 돌아갈 길이 열려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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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쌍용차해고자 복직 범국민대회에서 무대에 오른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
ⓒ 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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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중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의 목소리는 이날 유독 힘이 넘쳤다. 대열 맨 앞에 앉아있다가 무대에 오른 그는 "회사가 65개월 만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를 교섭 상대로 인정해 줬다"며 "여기 계신 분들의 힘으로 이룬 성과"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김 지부장은 "노사 교섭은 난투극에 가까운,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쌍용자동차 지부의 입장은 단호하다"면서 "해고자 187명의 전원복직과 26명 쌍용차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 대책, 손배가압류 철회는 꼭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당시 지부장이었던 한상균 현 민주노총 위원장도 "눈물을 흘리며 거리에서 보낸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분들의 응원 덕분이었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이어 한 위원장은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를 바꾸지 않고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무대 아래에서 여러 명이 "투쟁"이라고 화답했다. 

해고자들, '그 무참했던 여름' 회상하며 눈물 훔치기도

지난 2010~2011년 309일 동안 홀로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지도위원이 무대에 올랐을 때는 들뜬 분위기가 잠시 무거워졌다. 그가 A4 용지에 직접 써온 연설문에는 쌍용자동차 지부의 지난한 농성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2009년 8월, 마실 물이 없는데도 땀은 하수구처럼 흐르고, 사람의 몸뚱어리가 오물덩어리가 되었던 그 무참했던 여름. 20년 넘게 일했던 노동자도 처음 올라갔던 공장 지붕. 여름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 하늘에서 소낙비처럼 최루액이 퍼붓고, 헬기에서 미사일처럼 떨어진 특공대들은 우리에 갇혔다 탈출한 며칠 굶은 맹수들처럼 피맛을 즐겼습니다. 

77일의 단전·단수된 공장에 갇혀 시원한 물 한컵 마시고, 샤워하고, 깨끗한 이불에서 잠 한번 자보는 게 소원이었던 노동자들은 유치장으로 끌려가고, 정신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26명의 죽음......"

김 지도위원의 연설을 듣던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은 하나 둘 고개를 떨구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검은색 외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연신 눈가를 매만졌다. 무대에 선 김 지도위원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꼭 승리한 뒤 너른 공장에서 막걸리 한잔 합시다"

이날 범국민대회에서는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안 70m 굴뚝 위에서 43일째 고공농성 중인 두 해고노동자와 영상 통화를 연결하기도 했다. 무대 위 스크린에 이창근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의 얼굴이 뜨자 무대 아래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일부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은 두 손을 흔들며 반겼다. 

이 정책실장은 "지난 6년여 동안 26명의 동료를 떠나보낸 뒤 기쁘나 슬프나 관 뚜껑 위에서, 울음을 삼키고 살았던 것 같다"라며 "이제는 빼앗겼던 우리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43일째 굴뚝에 올라 있지만, 여기에 와 있는 시간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라며 "꼭 승리해서 이 너른 공장에 들어가 함께 막걸리나 한잔 하자"고 전했다. 동시에 스크린에는 이 정책실장의 얼굴이 사라지고 굴뚝에서 내려다 본 평택공장의 전경이 비춰졌다. 무대 아래 동료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응답했다. 

이날 행사를 마무리하며 참가자들은 쌍용자동차에 성실히 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에서 "만약 쌍용차가 이번 교섭을 문제해결이 아니라 여론을 압박을 피해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며 "교섭에서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불매운동으로 응징하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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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일본인 인질 1명 살해” 메시지 영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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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림
  • 등록일
    2015/01/25 09:38
  • 수정일
    2015/01/25 09:3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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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5 07:54수정 : 2015.01.2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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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 유카와 사진 든 고토 모습 담아…IS 대원 석방 요구
아베 “용납할 수 없는 폭거”…일본 정부, 사실관계 확인중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지난 20일 공개한 동영상. 이들은 몸값 2억 달러를 72시간 안에 주지 않으면 일본인 인질 2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2015.1.20 / 도쿄=연합뉴스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억류된 것으로 보이는 일본인 인질 가운데 1명이 살해됐다는 설명을 담은 영상이 공개됐다.

 

24일 오후 11시를 넘겨 인질 중의 한 명인 고토 겐지(47)씨로 보이는 인물이 다른 인질 유카와 하루나(42)씨로 추정되는 인물의 ‘피살’ 사진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유튜브로 공개됐다고 NHK가 보도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고토씨가 들고 있는 사진은 다소 흐릿하며 여기에는 주황색 옷을 입은 인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장면과 주황색 옷 위로 사람의 머리 부위가 보이는 장면이 각각 담겨 있다. 유튜브에는 이같은 장면을 담은 동일한 영상을 갈무리·녹화한 것으로 보이는 게시물이 여러 이용자에 의해 올려졌다.

 

이 영상에는 “나는 고토 겐지다”, “당신들은 나와 함께 생활하던 유카와 하루나씨가 살해된 사진을 봤다”는 영어로 된 음성 메시지가 덧붙여 있다. 이 음성은 아베 총리가 납치 세력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72시간 안에 몸값을 내지 않아 유카와씨가 살해됐다고 주장한다. 또 “그들이 더 이상 돈을 원하지 않으니 테러리스트에게 돈을 주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요르단 정부에 의해 구속된 그들의 동료 ‘사지다 알 리샤위’를 석방하면 내가 풀려날 것이다”고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NHK는 사지다 알 리샤위가 2005년 요르단 테러 사건에 연루돼 붙잡혀 있는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슬람국가(IS)가 인질로 붙잡고 살해 위협을 하고 있는 일본 독립언론인 고토 겐지의 어머니인 이시도 준코가 23일 도쿄의 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이 음성 메시지는 “나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강조하고 싶다”며 고토씨의 부인을 향해 “이것이 당신이 듣는 나의 마지막 발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메시지는 발언자가 고토씨라는 전제로 하는 내용이지만 이를 실제로 누가 녹음했는지 명확하지 않아 보인다.

 

NHK는 문제의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이 고토씨와 유카와씨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서, 일본 정부가 이 영상의 신빙성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언어도단이다. 용납하기 어려운 폭거다. 즉시 석방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말했으며 긴급 관계 각료 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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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내부 문건 “청와대 맞설 핵폭탄 7~8개 더 있다”

등록 : 2015.01.23 13:54수정 : 2015.01.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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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 내용을 첫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월 5일 오후 서울 신문로2가 세계일보사 사옥 정문 셔터가 내려진 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국세청, 통일교 관계사 세무조사…‘정윤회 문건’ 보복?
통일교 내부 문건 “청와대 맞설 핵폭탄 7~8개 더 있다”
세계일보 간부 “특급 정보는 근거 없이 하는 얘기” 부인

 

[김의겸의 우충좌돌] 

 

청와대의 보복이 시작된 것인가?

 

국세청이 최근 통일교 관련 회사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통일교 재단은 지난해 11월 ‘정윤회 문건 의혹’을 처음 보도한 <세계일보>의 주인이다.

 

통일교에 대한 세무조사는 애초 2013년 10월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초 경기를 살리기 위해 세무조사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 정해지면서 세무조사는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최근 갑자기 다시 세무조사가 시작됐으니 ‘표적 조사’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 11월28일 온 나라를 뒤흔든 세계일보 보도의 제목은 간략했다.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 세계일보가 6개월 전 이미 청와대 문서를 입수하고도 뒤늦게 보도한 것을 두고는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통일교 쪽과 사전교감 없이 나온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통일교 내부 문건의 한 대목이 이를 입증한다. “우리 종단과 재단이 사주한 사건도 아니고 우리로서는 잠을 자다가 아닌 밤중에 벼락을 맞은 격이지만 세계일보의 자체적인 판단으로 일은 벌어졌고 우리 통일교가 청와대의 눈 밖에 나서 피해를 입을까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한학자 총재, 사태의 심각성 알고 손대오 회장 급파

 

그 두려움 때문일까? 통일교와 통일그룹의 창시자인 고 문선명 총재의 부인인 한학자 총재는 느닷없이 손대오 선문대 부총장을 세계일보 회장에 임명한다. 정윤회 보도로 인해 빚어진 정권과의 긴장 관계가 혹시나 교회로 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대오 회장에게 대정부 관계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손 회장은 이리저리 방법을 찾던 중 세계일보의 조민호 당시 심의인권위원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조민호 위원이 1월20일 세계일보 사원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은 이렇다.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 내용을 첫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월 5일 오후 서울 신문로2가 세계일보사 사옥 정문 셔터가 내려진 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손 회장과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유력한 채널을 가동해 통일교 관련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분석하는 것이 나의 1차 임무였습니다. 공개하긴 좀 그렇지만 통일교는 내부에 상당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학자 총재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손 회장을 급파한 배경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정치 권력이 바보가 아닌 한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언론 탄압이나 종교 탄압을 할 리 만무합니다. 다름 아닌 형법으로 다스릴 폭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편지의 문맥을 살펴보면 조 위원이 현 정부의 유력 인사와 접촉해 기류를 탐지해본 결과 세계일보에 대한 보복이 임박했고, 그 수단으로는 ‘형법으로 다스릴 폭탄’까지 있다는 내용이다. 조 위원은 경북 청송 출신으로 정치부 기자 등을 거치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유력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감을 느낀 손 회장은 12월26일 저녁 급하게 미국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곳에 머물고 있던 한학자 총재를 찾아가 사장을 조한규에서 조민호로 교체하겠다고 건의하고 수락을 받는다. 그리고 “29일 오전 6시쯤 귀국한 손 회장이 급히 나를 찾았고 그날 휴가를 낸 탓에 겨우 연락이 된 나에게 ‘한 총재님이 조민호씨를 신임 사장으로 명하셨다’고 1차 통보를 했습니다.”(조민호 편지) 한학자 총재의 대리인 격이었던 손 회장이 조민호 위원을 사장으로 임명해 난국을 돌파하려고 한 것이다. 통일교 안에서 ‘주화파’가 우세했던 국면이다.

 

통일교 신도대책위, ‘일전 불사론’ 내세워

 

그러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해 첫날인 1월1일 한학자 총재의 비서실장이 미국에서 급거 귀국해 모든 인사를 보류시킨 것이다. 이날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는 통일교 주요 간부들이 모여 손대호 회장의 정보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등을 놓고 집중 토의를 벌였고, 그 결과 기류가 완전히 뒤집혔다고 한다.

 

같은 시각 조민호 사장 내정자는 자신이 사장직에 취임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통신사를 포함한 일부 언론사에 배포했다. 하지만 세계일보 기자들이 이를 ‘경영권 탈취 시도 및 허위사실 유포’라고 규정하고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더 결정적으로는 통일교의 정부 대응 전략이 바뀌면서 조민호 사장 체제는 ‘1일 천하’도 누려보지 못하고 유산되고 말았다. 더 나아가 1월19일에는 손대오 회장이 50여일 만에 전격 교체돼 버린다. 김민하 평화대사협의회중앙회 명예회장이 신임 회장으로 들어왔다. 결국 정윤회 문건을 보도했던 조한규 사장 체제가 지속된 것이다.

 

이런 번복 과정의 구체적인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일교 내부 ‘주전파’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게 통일교 신도대책위원회의 ‘일전 불사론’이다. 통일교 내부 관계자들에게 배포된 이 대책위원회의 문건을 살펴보면 그 기류를 엿볼 수 있다.

 

“청와대가 감동해 우리를 살려준다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일”

 

“세계일보가 아직도 공개하지 않은 7~8개의 청와대 특급 정보가 공개된다면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을 청와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번 사건으로 정권 말기 때 나타나는 현상이 벌써 벌어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2015년을 지나고 나서 집권 4년 차가 되어 사실상 집권 말기 현상으로 청와대가 통일교를 상대로 보복할 여유가 없습니다. 설령 보복을 하겠다고 대든다고 하여도 국민 여론과 야당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청와대의 압박에 밀려 세계일보 사장과 기자들을 해임한다면 청와대와 맞설 핵무기 7~8개는 무용지물이 되고 청와대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버립니다.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권력 속성과 현실에서 우리 스스로 발가벗는 격이 됩니다. 인사 조치 한다고 해서 청와대가 감동하여 우리를 살려준다고 믿는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 여겨집니다.”

 

세계일보가 처음 보도한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 감찰보고서. 세계일보 제공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까지 거론하며 최후까지 싸워보자는 강경한 태도이다. 더 나아가 신도대책위는 이 시점에서 이미 정부의 세무조사까지 미리 내다보고 있다.

 

“2015년 신년도에 계열사가 한곳이라도 특별 세무조사를 받게 된다면 보복성 조사라 하여 온 나라가 시끄럽고 청와대는 곤경에 처할 것인데 청와대는 매우 현명한 판단을 할 겁니다.”

 

그러면서 그 싸움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청와대가 노골적으로 우리 통일교를 치면 오히려 우리 통일교를 국민의 종교로 만들어 주는 격이 되어버립니다. 진실을 바로 잡으려던 세계일보의 대주주를 핍박한다면 국민적인 여론은 우리편이 됩니다. 사건 이후 대주주 우리 통일교에 대한 비난은 전혀 없고 오히려 국민 여론이 매우 좋을 것 확실합니다. 재물을 잃어버려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다면 이보다 남는 장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세계일보 한 간부는 “신도대책위가 거론한 핵무기나 특급 정보란 근거도 없이 하는 얘기로서 의미를 둘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흐름으로만 보면 세계일보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하지만 통일교 안에서 그 자체로 법으로 통하는 한학자 총재의 태도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애초에는 정부와 관계 개선을 위해 손 회장을 세계일보에 보내고 조한규 사장까지 교체하려고 하다가 내부 반발이 일자 흐름을 일거에 뒤집어엎고 전투 태세를 갖춘 것이다.

 

‘정윤회 문건 파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한 총재는 지난해 12월1일 열린 훈독회에서 ‘주화파’인 손 회장을 지명하면서도 현 정부와의 정면 대결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인다. 손대오 회장과 조한규 사장도 참석했고, 500명 가량의 목회자가 함께한 것으로 알려진 이 훈독회에서 한 총재는 “(세계일보가) 이 정부를 교육하는 신문이 되는 것이 맞아”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나 외적인 기관들은 공적(公的)이 아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 총재는 “우리는 두려울 것 없어” “세계일보도 마찬가지야, 두려울 게 없어” “우리의 진실을 밝히면 돼”라고 독려했다. 그러면서 한 총재는 “통일교회의 신문? 괜찮아. 무지에는 완성이 없다고 했어. 알아야 현명한 판단을 하는 거야. 이 백성이, 이 정치인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려면 배워야 해. 우리밖에는 배워줄 사람이 없어. 사실 아닌가? 그러니까 한방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알겠습니까?”라고 말한다.(<신동아> 2월호 참조) 한 총재가 말하는 ‘한방’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신도대책위원회가 언급한 ‘핵무기’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비롯된 청와대와 세계일보의 긴장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양쪽 모두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탐색전을 펼치고 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한 청심그룹은 통일교의 중심은 아니고 방계회사쯤 되는 곳이라고 한다. 통일교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핵심은 아직 건드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통일교 쪽도 애써 세무조사의 의미를 축소하며 청와대의 기류를 살피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 세무조사가 어디까지 확대되느냐에 따라 통일교 쪽의 대응 수위는 달라질 것이다. 또 지난 1월5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지만 세계일보 기자들의 명예훼손 혐의는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의 수사 강도에 따라 세계일보의 대응도 정해질 것이다. 잠복돼 있는 뇌관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정윤회 문건 파동’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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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 공군 항공촬영사 4인방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1/24 11:40
  • 수정일
    2015/01/24 11:4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5. 01. 23
조회수 1045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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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항공촬영사 4인방. 왼쪽부터 고미숙 중사, 권형, 김경률, 편보현 상사. 체감온도 영하10도를 오르내리는 활주로에서 이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 한 이호준 상사(부사관164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4년 12월 5일 공군 청주 비행장에서 ‘항공촬영사’란 특이한 직책을 가진 공군 부사관 네 명을 만났다. 김경률(부사관 155기, 공군본부 공보과), 편보현(부사관168기, 공군53특수비행전대), 권형(부사관179기, 공군본부 공보과) 상사와 고미숙(부사관198기, 공군본부 홍보과) 중사. 이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항공기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항공기에 탑승하여’ 다른 항공기를 촬영하는 것이다. 탑승하는 항공기의 종류도 헬리콥터, 수송기, 훈련기는 물론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비행시간도 웬만한 조종사 부럽지 않다. 흔치 않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 4인의 일과 삶에 대해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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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호준 상사 (17전투비행단 정훈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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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저의 일이 즐겁습니다. 저의 임무를 즐기죠.”

  항공촬영사라는 자신의 임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김경률 상사가 한 말이다. 공군에는 현재 김 상사를 포함하여 네 명의 항공촬영사가 공군본부 공보과(2명), 홍보과(1명), 53특수비행전대(블랙이글. 1명)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공군의 홍보와 기록을 목적으로 한 사진 촬영 및 영상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전투기에 탑승해 전투기를 찍다

 

  이들의 임무가 특이한 것은 이들 네 명이 단순히 항공기를 피사체로 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항공기에 직접 탑승하여 옆에 날아가는 항공기를 찍는다는 점이다. 탑승하는 항공기도 헬기나 수송기, 훈련기는 물론 전투기도 포함된다. 전투기 후방석에 앉아 중력가속도(G-force)를 직접 받으며 편대 비행하는 전투기를 촬영하는 것이다. 

공군이 체계적으로 사진촬영사를 양성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4월 정훈부사관 64명을 선발하면서부터다. 그전에도 물론 사진촬영을 하여 왔다. 하지만 ‘사진을 잘 찍는’ 부사관이나 병사들이 단순히 행사 사진촬영을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무장이나 정비 특기였기 때문이 사진촬영이 끝나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고, 따라서 사진촬영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체계적 관리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홍보 및 기록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나자 공군은 사진 촬영 및 영상 제작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정훈부사관 특기를 신설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정훈부사관들은 공군본부는 물론 각 사령부, 비행단 등에 배치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2년여의 시간이 지난 2013년 8월 드디어 항공촬영사라는 보직이 정식으로 생긴 것이다.

항공촬영사가 된 계기를 묻자 김 상사는 순전히 운이 좋았음을 강조하고 자신의 실력과 노력은 애써 숨겼다.

  “운이 좋았던거죠! 공군이 군내 사진촬영사를 전투기에 태우기 시작한 것이 4, 5년 전이었습니다. 항공촬영에 대한 수요가 늘었던거죠. 중요 항공사진 촬영은 공군본부에서 담당했는데, 그때 마침 저와 편보현 상사가 공군본부 공보과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몇 번 전투기 후방석에 앉아 항공사진을 찍다보니 나름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더군요. 공군의 입장에서도 항공촬영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항공촬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하지만 공군 내 항공촬영사라는 보직이 김 상사 말처럼 운 좋게 쉽게 생긴 것은 아니었다. 김 상사 같은 실무자들의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다. 권형 상사는 이런 과정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았다.

  “항공촬영사 자리를 만드는데 2년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김 상사나 편 상사 같은 실무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작전부서나 인사부서를 찾아다니며 설득을 했습니다. KT-1, T-50 같은 국산 항공기가 계속 생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군에 공중촬영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결국 지휘부의 결심을 얻어냈습니다.”

항공촬영사 보직이 생기기 전에도 정훈부사관들이 전투기에 탑승하여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공중근무자 자격이 없었기에 전투기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한 번 전투기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항공우주의료원에서 항공생리 적성검사를 받아야 했고, 소장급 이상 지휘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또한 항공촬영을 위한 예산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 항공기는 우리가 찍자
   
  하지만 이런 절차상 까다로움이나 예산 문제 외에 이들이 항공촬영사 보직 신설에 노력한 것은 애국심도 크게 작용하였다. 편 상사의 이야기다.

“우리 정훈부사관들이 항공사진을 찍기 전에도 물론 공군에서는 항공사진을 찍어왔습니다. 그때 사진을 보면 멋진 사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시 공군 내에는 항공사진 전문촬영사가 없었으므로 외부에 의뢰하여 찍었던거죠. 일본의 유명한 항공사진작가의 사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편 상사는 우리 항공기 사진촬영을 외국인에게 맡긴다는 점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T-50 초음속 훈련기 개발이 큰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하고 수출까지 하는 우리나라에서 항공사진을 외국인에게 찍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 우리 자체적으로 한번 해보자, 지금 당장은 좀 어설프더라도 계속하다 보면 체계도 잡히고 노하우도 쌓일 것 아니냐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일이 잘 풀려나간 것은 아니었다. 전투기 후방석에 전투기 탑승 경험이 거의 없는 사진사들을 태우는 것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높았다. 안전문제가 대두된 것이었다. 전투기는 급기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후방석 탑승자일지라도 조종사에 준하는 훈련이 필요한데, 정훈부사관의 경우 아직 그런 훈련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임이 곧 밝혀졌다. 김 상사는 사진촬영을 위해 첫 비행 전 정말 철저하게 준비하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후방석 탑승자를 위한 교육을 철저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행을 하기 오래 전부터 체력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술은 아예 마시지 않고 몸에 좋은 음식만 먹었죠. 혹시 실수라도 할까 무서워 비행 전날부터는 커피는 물론 물이 많은 음식도 자제했습니다.”     

커피와 물이 많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생리현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김 상사는 첫 비행 때나 지금이나 비행이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라고 한다.

“한 번 촬영을 위해 전투기가 이륙을 하면 두세 시간 비행을 합니다. 그리고 이륙 50분전에 전투기에 탑승합니다. 따라서 비행을 하게 되면 서너 시간은 화장실에 갈 수 없는거죠. 이뇨작용을 하는 음식은 정말 피합니다.”

  하지만 김 상사에게 이러한 생리작용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진촬영 실수라고 한다.

  “사진 좀 찍는다고 하늘에 올려놓았는데, 제대로 된 사진 한장 찍지 못하고 내려올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심합니다. 그건 첫 비행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남들은 저 정도 항공사진을 찍었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전투기에 올라 셔터 몇 번 누르고 내려오면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항공촬영의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하늘에서 전투기를 타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더 느낍니다.”

  고속으로 기동하는 전투기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상사의 설명이다. 항공 촬영사들은 비행 며칠 전 촬영브리핑을 조종사들과 갖는다. 이 브리핑에서 항공 촬영사들은 조종사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진을 원하는지를 설명하고 이를 위해서는 전투기들이 어떤 대형을 유지하고 어떻게 기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을 보다 구체화, 시각화하기 위해 항공 촬영사들은 기동장면 하나하나, 편대 대형 하나하나를 종이에 그려 조종사들에게 이미지화 시켜준다. 그리고 다시 비행브리핑에 참석해 조종사들이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항공촬영을 위해서는 준비가 철저해야죠. 항공사진촬영의 80%는 지상에서 하는 준비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고속으로 기동하는 전투기에서 한 순간을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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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일은 어디에

 

  이렇게 말한 편 상사는 첫 비행을 회상했다. 편 상사가 찍은 첫 항공사진은 A-50 항공기의 공대공 미사일 실무장 사격 장면이었다. 우리가 개발한 항공기에서의 첫 공대공 미사일 실무장 사격이었으므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편 상사는 안전추적기 역할을 하는 KF-16에 앉아 사진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행 경험이 없었던 편 상사에게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수많은 교신음성은 무슨 외계인들의 언어 같았고, 첫 비행이라 잔뜩 긴장한 편 상사를 더욱 위축시켰다.

  “조종사들 간 통신, 관제탑과의 통신, 미사일 발사 통제관련 통신 등 정말 알아들을 수 없는 수많은 교신음 속에서 미사일 발사 순간을 알아내기란 정말 힘들었습니다. 미사일 발사 순간 얼떨결에 셔터를 눌렀고 몇 장을 찍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편 상사가 더욱 당황한 것은 카메라 액정화면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사진을 넘겨봐도 미사일이 걸린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지상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기다리고 있고, 미사일은 이미 발사되어 보이지 않는데, 다시 미사일을 발사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다행히 뒤에 미사일 발사 장면이 찍힌 사진을 몇 장 발견하였다. 이 때 느낀 안도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조종사들 정말 대단합니다. 비행절차는 정말 복잡하거든요. 이를 훈련과 노력으로 몸에 익혀야 합니다. 자신의 항공기와 한 몸이 되어야 하죠. 그뿐 아니라 전투기 조종사들은 9G를 견디는 훈련을 합니다. 한 번 기동훈련을 하고 나면 실핏줄이 터져 온 몸에 피멍이 듭니다.”

공군 항공촬영사의 최선임 김 상사의 말이다. 김 상사는 최선임답게 다양한 항공기와 많은 조종사들을 만났다. 많은 항공기 중에서도 특히 지난 가을 탑승한 F-5 전투기는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날 좀 더웠습니다. F-5는 이륙 직전까지 캐노피를 닫지 않더군요. 착륙 후에는 바로 열고요.”

  김 상사는 F-5 탑승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 조종사들의 어려움을 에둘러 이야기했다. 공군 전투기 중 노후기종인 F-4와 F-5는 조종석에 에어컨이 없어 더운 날이면 이륙 직전에서야 캐노피를 닫고 착륙하면 바로 연다. 너무 더운 날이면 조종사들은 마스크도 벗고 이륙을 준비한다.

“이륙 직전에 전방석 조종사가 저에게 후방석 캐노피를 직접 닫으라고 하더군요. 좀 당황했죠. 옆에 보니 캐노피를 닫는 손잡이가 있었습니다. 너무 낡아 보여 ‘이거 부러지지 않습니까?’라고 조종사에게 물으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너무 세게 당기면 부러지죠. 조심하세요’였습니다. 농담이었지만 공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저며 왔습니다. 하루 빨리 한국형 전투기가 개발돼 일선 대대에 배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고 조종사가 최고 항공촬영사 만든다

 

  항공촬영사 4인의 조종사 칭찬은 모두 하나같다. 민간항공사로 이직하면 보다 높은 봉급과 좋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음에도 굳이 어려운 공군 조종사로 남는 이유는 애국심과 공군 조종사라는 강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편 상사는 우리 조종사들의 이러한 강한 자부심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 진다고 강조한다.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우리 공군 조종사들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블랙이글 전담 사진사인 편 상사는 실제 우리 조종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직접 목격하였다. 2012년 영국 에어쇼에서 우리 에어쇼 전문팀인 블랙이글이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우리 조종사들의 수준이 세계 정상급임이 증명된 것이다. 편 상사는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영국에서는 에어쇼 항공기의 후방석 탑승을 금지합니다. 안전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 블랙이글에게는 예외로 했습니다. 에어쇼 전 사전 심사에서 심사관들이 우리 블랙이글의 세계 정상급 고난도 기동을 본 후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T-50B 후방석에 앉아 영국 하늘을 마음껏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항공촬영사로서 우리 공군 최초의 해외 에어쇼 참가 순간을 기록하는 영광을 얻은 것이죠.”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는 영광

 

  편 상사의 말처럼 항공 촬영사들에게는 공군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는 영광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영광은 공군 항공촬영사라는 자긍심으로 이어진다. 작년 ‘레드 플래그 알라스카(Red Flag Alaska)'에 참가했던 권 상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3년에 우리 공군 F-15K가 ‘레드 플래그 알라스카'에 참가했습니다. 공군 최초로 우리 조종사들이 우리 전투기를 직접 조종해 태평양을 횡단했던 것이죠. 공중급유를 받으면서요. 그리고 그 훈련의 순간순간을 제가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었고 항공촬영사로서 자긍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러한 영광과 자긍심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 항공 촬영사들의 끊임없는 준비와 노력이 없었다면 이들은 결코 이런 영광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2013년에 항공촬영을 시작한 고미숙 중사는 선배 항공 촬영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본인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라 강조한다.

  “첫 여군 항공촬영사라는 이유로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첫 비행 전 정말 부담스럽고 걱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의 가르침과 격려 덕분에 무사히 비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실력 있는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거죠. 정말 선배들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고 중사의 평가와 달리 선배 항공 촬영사들은 자신들의 실력이 아직 부족하여 갈 길이 멀기만 하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김 상사는 앞으로 들어오는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되도록 적게 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이야기 한다.

“공군 항공 촬영사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입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죠. 우선 개개인의 실력을 늘려야 합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항공촬영이라는 영역을 보다 체계화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경험에 바탕하여 항공촬영 교범을 만들 생각입니다. 세밀한 교범일수록 좋겠죠. 그래야 후배들이 우리가 한 실수를 하지 않고 보다 빠른 시간에 훌륭한 항공촬영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범을 가지고 항공촬영사 양성과정을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공군은 2015년 올해 1월 1일부터 항공 촬영사들에 대한 공중 근무수당 및 비행용 장비 지급 등과 관련된 예산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공군과 국민을 잇는 항공 촬영사들의 보다 활발한 역할이 기대된다.

원승종 디펜스21+ 기자  wonseungjo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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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박노자 <비굴의 시대>

'야만적 민주 정부'가 아니라 '김진숙'이 희망이다

 

강응천 문사철 주간 2015.01.23 17:58:54
 
"거짓말부터 밝히자면 우리(한국 - 필자)는 민주화를 이룬 적이 없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단지 국가 운영 메커니즘을 부분적으로 바꾸는 데 그쳤을 뿐이다."
"나는 남한과 북한의 지배자에 대해 공히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 북한이 국가로서의 체제를 유지하여 미국, 일본, 남한 같은 포식자로부터 독립을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미국이 체제 반대파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와 무관하다는 점부터 간파해야 한다. 미국은 비민주적인 자본 독재의 사회다."
 
대한민국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자기 검열 없이 할 수 있는 지식인이 얼마나 있을까? 이 인용문들은 엄연한 한국인인 박노자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한겨레 블로그에 연재한 글들이다. 그는 최근 이 글들을 묶어 <비굴의 시대>(한겨레출판, 2014년 12월 펴냄)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통쾌한 공감을 자아내고 어떤 이들에게는 격렬한 분노를 자아내는 글들이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인이라면 아무나 쓸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가 러시아에서 귀화한 '반쪽'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이전투구 할 필요 없이 오슬로대학에서 잘 먹고 잘사는 편한 처지라서 그런다는 '뒷담화'도 들린다. 그러나 그의 글을 정독해 보면 한국 역사에 대한 천착과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 만약 조금은 특별한 이력과 조건 때문에 그런 내공을 거침없이 표출할 수 있는 거라면, 나는 한국 사회에는 그런 이력과 조건을 갖춘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념적으로 대단히 편중된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그러나 경청할 만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층, 김대중·노무현 정권, 왕년의 진보 투사 거침없이 비판…성역은 없다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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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용문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박노자는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1990년대 초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를 할 때 수많은 '윤창중'을 거의 매일 보았던 경험을 토로하며, 보수 정권과 기득권 세력에 대한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 비판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르러 격렬하게 폭발한다. 
 
"인질범을 개혁할 수는 없다. 인질범을 아무리 교체해도 대다수를 인질로 잡는 체제가 그대로 있는 한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우리를 관리하는 이들이 국가라는 그럴싸한 간판을 건 범죄 집단임을 여실히 느꼈다.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죽고 싶지 않다면 인질범과 정면으로 맞장 뜨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보수 정권뿐이랴. 민주화마저 부정하는 논객답게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신자유주의에 굴종한 자유주의 보수 정권으로 폄하하는 것을 마다지 않는다. "김대중 정권은 2001년 2월에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 파업 현장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등 노동자에 대한 각종 야만적인 행각을 주저 없이 저질렀다"라는 표현은 흡사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배포되는 가두 신문을 보는 듯하다. 
 
민주화에 몸을 던졌던 왕년의 진보 투사들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1980년대의 지도자급 인물은 그 고귀한 몸뚱이를 주요 정당에 비싸게 팔았다. 위치가 그리 높지 않았던 이념가는 교직으로 진출했고, 재벌 사회의 지식 관리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두뇌의 소출을 대중 교양서 시장에 내놓아야 했다." 이렇게 일갈하는 그 앞에서 한번쯤 움찔하지 않을 명망가가 과연 있을까 싶다.
 
이재오, 김문수 등 주류 정계에 합류해 저항을 마감한 인사들은 물론 노회찬, 심상정처럼 전향을 거부한 진보 정치인마저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돌아서 의회주의의 길을 걸었다고 비판한다. 사민주의 노선을 밟는다는 것이 비판일 수 있느냐고, 그것도 좌파이고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진보 노선 아니냐고 의문을 품을 독자도 있을 수 있다. 
 
그에 대해 박노자는 대답한다. "예전에는 볼셰비키가 사민주의자를 개량주의자라고 비판했지만, 오늘날 유럽의 사민주의는 그 어떤 개량과도 무관한 신자유주의의 첨병 세력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좌파는 사민주의보다 더 왼쪽에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되었다는 것이다. 그도 한때는 사민주의 우등생 노르웨이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고백하지만, 지금은 그곳에서도 '일종의 전체주의적인 실체'를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좌파가 사민당과 연합하는 것은 '사민주의의 자장 안으로 포획되는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며 사민주의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고 있다. 
 
최근 해산 선고를 받은 통합진보당 등 '좌파 민족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그 반제국주의적 열정은 평가한다. 하지만 오늘날 민족주의는 노동 계급의 단결을 저해하는 역할을 할 뿐, '혁명가에게 애국은 없다'고 매몰차게 돌아선다. 박노자가 볼 때 "좌파 민족주의라는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묘약은 노동운동의 급진화와 계급정당의 성장"뿐이다. 
 
"사회주의적 정치 없이 사회 재건은 불가능하다"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한국의 주요 정치 세력에 대해 십자포화를 쏘아 대는 논객 박노자는 누구인가?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민주주의도 아닌 사회주의는 천연기념물에 가깝다. 그 역시도 "사회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대안이라고 말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반응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라며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어느새 우리에게 진보의 의미는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이로 국한된 것 같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거의 이단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신념을 토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선전 선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고국 러시아를 향해 외친다. 다시 사회주의 혁명을 거치는 것만이 민중의 살길이라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위기를 겪고 있지만 두 나라의 노동자가 "그들의 유일한 조국은 바로 미래의 소비에트공화국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라고 거침없이 일갈한다. 
 
1990년대 이래 조롱과 저주의 대상이 되어 버린 소련과 동유럽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그는 단서를 단다. "현실 사회주의는 분명 유토피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인간이 나름대로 존엄과 긍지를 지키면서 비교적 평등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음은 틀림없다"라고. 나아가 "우리가 정말 다원주의적으로 민주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면 그만큼 스탈린주의자 마녀사냥을 그만두어야 한다"라는 발언을 보라. 요즘 세상에서는 웬만한 소신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사회 재건은 진보적인 정치, 즉 사회주의적 정치 없이는 불가능하다"라며 흔들림 없는 소신을 과시한다. 그러나 이처럼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는 그의 마음은 사실 우울하다. '사회주의적 정치'라는 것은 의식화된 민중,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눈앞에는 '노동자의 정치력이 어느 건설업 업주 조합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펼쳐져 있다. 
 
그는 절규한다. "도대체 저항적 역사의 곡선은 왜 갈수록 아래로 처질까? 정권은 오히려 악랄해지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얌전해진 것일까?" 그리고 스스로 원인을 분석한다. "대한민국 인구의 90퍼센트는 중하급 월급쟁이이거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영세한 업자들이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각자 그 생존을 도모하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한다." 이런 각자도생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한국인의 다수는 서서히 몸이 망가져가는 비정규직의 절망적인 외침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보수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연대 의식은 점차 말라간다." 
 
 
희망의 근거, 김진숙이 상징하는 불굴의 노동자 '동지'들 
 
그래도 그는 연대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민중이 되지 못한 민초'들을 설득한다. "이 세상에 '남'이라는 것은 없다. (…) 일부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군중 동물이다.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으며, 타자와 소통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도 없다." 
 
그리고 다짐한다. "우리가 보수화된 사회에서 산다고 해서 꼭 낙담해야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낙토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 그러나 우리는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마음껏 외치고 힘껏 연대하면 된다. 사회는 보수화하더라도 진리는 그대로 진리다. (…) 나는 그냥 저들이 내 입을 힘으로 막을 때까지 그 진리를 크게 이야기할 생각이다." 
 
이 같은 박노자의 다짐은 약간은 맥이 빠져 보인다. 대중이 움직이지 않는데 일개 좌파 지식인이 무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은 종교인의 외로운 신앙 고백처럼 들릴 때가 많다. "초기 기독교인은 자신을 스스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라고 보았다. 좌파 역시 애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이 세상에 이식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다"라는 고백을 보라. 아무래도 이 목마른 지식인에게는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흥건히 젖고 싶은 민중의 바다가 절실해 보인다. 그것이 멀리서 윤곽이라도 보여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지식인 박노자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투쟁을 승리로 이끈 김진숙이 있고, 그녀가 상징하는 불굴의 노동자 '동지'들이 있다. 이 책에서 그가 김진숙에게 쏟아 붓는 찬사는 역사 속의 그 어떤 혁명가에게 바치는 헌사보다도 더 뜨겁다.
 
"사람이 죽어도 지워지지 않고 수만 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것은 김진숙이 보여준 것과 같은 동류 사랑, 이웃 사랑이다. (…) 노동운동판에서 김진숙이 보여준 실천은 그 어떤 종교인의 실천보다도 더 고귀해 보인다."
 
김진숙은 이 책의 제목이 <비굴의 시대>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갸웃거리게 만드는 존재이고, 박노자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실질적인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의 편집에 조금 의문이 있다. 내가 편집을 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순수한 독자로서 볼 때 글들의 배치가 조금은 달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박노자는 김진숙에 대해 '올드 레프트의 화려한 귀환'이라거나 이 정글 같은 나라에서 진정한 사람이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보여 주었다거나 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식인들에게 그녀를 통해 인간 해방을 위한 지식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권고하기도 한다. 그리고 김진숙의 투쟁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옷깃을 여민다. 사실상 이 책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비굴의 시대>는 이 내용을 책의 중간 부분에서 '물질적 욕망의 질주, 사라진 노동의 꿈' 등의 제목 아래 다소 심드렁하게 배치했다. 아쉽다. 그냥 지나치기 쉽고, 희망의 메시지로 부각되기보다는 비탄의 메시지 속에 묻히기 쉬워 보인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배치할 내용이 아니라 저자가 신념과 의지를 다지는 마지막 부분에서 대미를 장식하도록 했어야 할 것 같다. 그랬을 때 꺼져 버리기 쉬운 지식인의 '신앙 고백'은 노동 현장의 생명력을 수혈 받아 희망의 메시지로 더 큰 울림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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