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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가 벌이고 있는 국정원 정치의 역사적 의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9/13 09:04
  • 수정일
    2013/09/13 09:0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단체제의 마지막 몸부림인가?
 
<분석과전망>박근혜정부가 벌이고 있는 국정원 정치의 역사적 의미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9/12 [17:04]  최종편집: ⓒ 자주민보
 
 
▲대한민국의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    ©사진 인터넷에서 펌
▲ 서울민권연대가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정치활동을 문제삼아 정치적으로 사망을 선고하고 장례를 치르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한성 기자
▲서울민권연대의 국정원규탄 퍼포먼스. 저승사자에 끌려가고 있는 국정원     © 한성 기자

▲많은 사람들이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에 대해 믿기는 커녕 오히려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전례없는 일 아닌가?

“내란음모라구?” 

사람들은 그렇게 되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웃었다. 호탕하고 컸다. 참고 있었던 듯했다. 미리 준비된 웃음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나라가 아무리 개판이라고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냐? 21세기야! 라는 말이 욕처럼 튀어 나왔다. 21세기의 벌건 대명천지에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국정원이 8월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게 ‘내란음모’ 혐의를 씌우는 사건을 터뜨렸을 때 일부 사람들에게서 나온 반응은 그랬다. 

일종의 분통이었다. 그 분통이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했다. 국정원에 대한 분통이었다. 국정원이 지난 7월, 2007년 남북정상회담대화록을 공개하고 나섰을 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류의 분통을 터뜨렸다. 대선개입 혐의를 물타기 하기 위해 국정원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보여주는 전반적인 반응이었다. 

국정원에 대한 분통은 그 ‘내란음모’사건을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으로 이름을 달리해 부르게 하는 원인으로 되기도 했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사건 혹은 진보당에 대한 사건이 아니라 국정원에 대한 사건이라는 의미였다. 

국정원은 언론들에게 부탁을 하고 언론은 이를 수락하기로 한 것이었을까?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을 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수사의 전 과정을 언론은 낱낱이 생중계했다. 

사건이 그렇듯 세밀하게 생중계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혐의에 대한 것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어찌보면 그럴 만도 했다. 현직 국회의원이 주도하는 ‘내란음모’ 사건이라고 했으니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럴 만도 한 것이다. 

국정원에 대한 사람들의 분통은 어떤 성질인 것일까? 일반적인 분통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날카로운 그런 분통은 아니라고 했다. 국정원게이트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잘 알고 나서 갖게 되는 분통은 날선 분노라기보다는 약간은 여유로움을 동반하는 분통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였던 것일까? 대중들의 국정원에 대한 분통은 거의 대부분 세련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세 사람의 청년들이 8월 초에서 중순까지 국정원 정문 앞에서 벌인 농성투쟁이 대표적이었다. 국정원감시단이라는 이름의 대중투쟁이었다. 국정원을 감시하기 위해 보내는 여름휴가라고 했다. 국정원과 정면에서 전선을 치는 치열한 대중투쟁이면서도 심각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았다. 고정된 관념으로 혹은 교조적으로 보면 투쟁으로 보기에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대중들의 호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창의적이어서였다. 정세돌파력에서도 성과는 눈에 띌 정도였다. 국정원감시단 사업은 촛불을 확장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를 한 위력한 정치적 대중투쟁으로 평가를 받았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북미관계발전에 대한 두려움. 그것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닐까? 

“도대체 얼마나 급하길래 이런 무리수를 쓰는 것이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뇌었다. 마치 입을 사전에 맞추기라도 한 듯했다. 그리고 급했던 그 이면에 결정적으로 두려움이 작동했을 것이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댓글사건이라는 정치개입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라는 정치활동이 가져다주는 후과가 일찍이 자신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내란음모’사건을 급조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가 그러했듯이 ‘내란음모’사건 또한 자신의 범죄를 물타기 하기 위해 저지른 또 하나의 범죄행위로서의 정치활동이라는 설명이었다. 

사람들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고 했다. 북미관계발전 징후 및 남북관계발전의 흐름과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이 갖는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뉴스에 의하면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은 자신의 '소명성'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북과의 연계를 도모했다. 이른바 ‘RO'는 북과 연결되려 엄청 많은 애를 쓰는 것으로 보였다. “그 무슨 ‘RO'냐! 당원들의 정세토론회였다”라고 진보당이 설명을 했지만 이는 뉴스의 어디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밀입북설이 뉴스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는가 하면 그것이 사라지기 무섭게 수원의 공중전화박스에서 재미교포와 한 통화가 북의 공작원과 연계하기 위한 사전 공정이라는 뉴스가 그 뒤를 이었다. 국정원은 그렇게 수많은 정보를 흘렸다. 너무나도 흔하게 보아왔던, 아니면 말고 하는 그런 식이었다. 검찰이 놀랍다고 언론플레이를 할 정도였다. 

‘내란음모’사건을 끊임없이 북과 연계시키려는 국정원의 시도는 그러나 남북관계발전의 움직임과 정면에서 충돌한다는 점에서 치명성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극히 주목해야 될 지점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외면되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정세적 측면이며 남북대화가 시도되는 정세에서 이루어지는 ‘내란음모’사건을 그 정세와 독립시켜 별개로 보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국정원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까지도 덧붙혔다. 

재미교포인 장광선씨가 ‘박근혜의 지독한 몽니와 유신회귀’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주목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장광선씨는 글에서 현재의 남북관계개선이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정세요구에 따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개성공단을 폐쇄로 몰아가던 박 정권이 내외의 압박에 못 이겨 정상화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불어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재개협상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라는 대목에서 이는 확인된다. 

“남북협상이 잘 되고, 이어서 조미협상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하여 냉전사고에 찌들어있는 남측의 지배세력의 심기가 몹시 불편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어떻게 하든지 이런 화해평화의 분위기를 망쳐보려는 심사”

장광선씨의 글은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이 나오게 되는 정치적 배경 중에 하나를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예, “남북화해기운을 방해하려는 수작”으로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규정을 내리고 있기까지했다. 

장광선씨의 주장은 북미관계발전에 대한 친미보수세력들의 두려움이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이 터뜨려지는 데 한 이유로 작동했음을 보여주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국정원 정치는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비극으로서 분단체제의 마지막 발악일 것인가! 결코 바램만은 아닐 수도  

정세분석가들은 최근 들어, 우리의 분단체제가 그 운을 다해가고 있다는 입장을 자주 제출해놓고 있다. 분단체제가 하루라도 빨리 종식되어야한다는 열망의 반영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전반 세계정세와 동북아정세 그리고 특히 북미대결전의 추이를 잘 살펴보게되면 누구가 복잡하지 않게 도달할 수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정세분석가들은 우리나라의 군사주권을 미국이 쥐고 있다고 하는 것 그리고 아직도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시대발전의 요구성에 부합할 정도로 발전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 그리고 남북이 분단되어있다는 현실을 분단체제와 직접적으로 결부시켜 설명하곤 한다.

사실 한국전반의 상황은 87년 6월항쟁이라는 사회의 대격변기를 거쳤지만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각 영역에서 그 격변기에 걸 맞는 수준의 진전은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물론, 6월항쟁 이후 노태우 정부시절의 북방정책으로부터 나라의 자주성과 민족의 통일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가 취해진 것은 평가할 만하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한층 더 발전되는 가운데 통일에 대한 열린 기운이 활발해진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를 거쳐 현 정권에 이른 동안 자주와 통일의 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조차도 실현은 커녕 퇴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퇴보했는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가장 비근한 예로 국정원 정치라는 현상을 제일로 꼽는다. 국정원 정치라는 현상은 한 나라의 최고정보기관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정원 정치는 정세분석가들이 최근에 새롭게 만들어낸 개념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댓글작업을 통해 여론조작을 시도한 것에 대해서는 정치개입으로 그리고 그 댓글사건을 물타기 하기 위해 벌인 남북정상회담대화록 공개에 대해서는 정치활동으로 규정하며 이를 총칭해서 국정원 정치라고 개념화한 것이다. 국정원의 ‘내란음모’사건에 대해서도 정세분석가들은 국정원 정치의 연장으로 보고있다. 

국정원 정치는 우리나라의 정치 후진성을 최고정점에서 표현해주는 현상이다. 경찰국가니 정보기관국가니 하는 표현을 성립시켜도 좋을 만한 상황을 현 시기 국정원 정치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학적일 필요가 없었다. 복잡할 것은 더 없었다. 창피하다고 했다. 그 어떤 후진 나라가 정보기관에 의거하여 정치를 운영하느냐며 그런 나라가 아프리카 그 어디 어떤 오지에라도 있단 말인가? 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분단체제의 비극이자 분단체제를 죽탕쳐버려야하는 결정적 이유”
박근혜정부가 기획한 국정원 정치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정세분석가들은 그렇게 정리를 했다. 거칠기는 하지만 단순명료한 일갈이었다. 

모든 것이 분단체제가 불러온 비극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자주성과 우리사회의 민주성 그리고 우리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분단체제의 지속 말고 다른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세분석가들은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정보기관을 앞세운 정치가 횡행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는 것이 분단체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의 정치는 분단체제를 고수하려는 분단체제세력들의 마지막 발악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까지도 내놓고 있다. 

“촛불에서 우리가 찾아야할 것은 분단체제 종식에 대한 희망”
정세분석가들은 촛불은 역사적인 것이며 촛불이 향하는 곳은 나라와 사회 그리고 민족의 발전을 질곡하는 분단체제의 심장부라면서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국정원이 꺼트리려고 하는 촛불이 오히려 더 타오르는 현상에 접하면서 촛불에 참여하는 조직화된 대중들이 어떤 대중들이며 더 나아가 촛불을 지도하는 시국회의라는 조직이 어떤 조직체인지에 대해서 보다 진지하고 전략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것도 국정원 정치가 분단체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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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펑', 해운대 30분-부산시 90분이면 초토화

[정희준의 '어퍼컷'] 부산, 제2의 후쿠시마가 될 것인가?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12 오전 9:48:03

 

 

 

 

 

 

 

 

수도권에는 핵발전소가 없다. 왜일까. 간단하다.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공학자들이 아무리 "핵발전소는 안전해요~"를 외쳐도 그들의 말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그간 가동한 전 세계 500여 개의 핵발전소 중 이미 세 개가 터졌다. 그리고 그곳은 죽음의 땅이 됐다. 서울 근처엔 절대 안 지을 것이다.

최근 정부의 데이터를 총괄하는 제3정부통합전산센터 건립을 위한 입지 선정 작업이 한창이다. 기획재정부는 부산을 선호한다고 한다. 해외에서 해저로 케이블이 들어오는 송정에 데이터베이스 망 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한 입지 조건 중엔 이런 게 있다고 한다. 핵발전소에서 30킬로미터 이상 벗어나야 한다는 것. 송정은 고리 핵발전소 바로 옆 동네다. 이는 정부 역시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 되겠다.

통합전산센터는 중요한 시설이다.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국민은? 부산, 울산, 경상남도에 사는 국민은 안전한 곳에 살 권리가 없는가. 정부는 입지 조건으로 '30킬로미터 밖'을 제시했다는데 바로 그 30킬로미터 안에는 343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살고 있다. 정부는 그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는가. 그들의 목숨 값은 전산 데이터 값보다 못한가.

정부는 알고 있다

국토 면적당 핵발전소 밀집도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핵발전소라는 사실상의 폭탄을 껴안고 사는 지역이 바로 부산이다. 부산은 기장군 고리 지역에 이미 6기가 가동 중이고 여기에 또 4기가 추가 건설 중이다. 인구 350만 대도시가 핵발전소 10개를 끼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문제는 고리 핵발전소 1호기다. 1호기는 2007년 30년의 수명이 만료됐음에도 이명박 정부가 10년간 재가동을 승인해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고리 1호기는 '노후 핵발전소'도 아니고 사실상 '폐 핵발전소'인데 이걸 땜질해서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초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는 건설 당시 기술 부족으로 인해 세 조각을 붙여 만든 '용접 원자로'로 전체 핵발전소 사고 및 고장 건수 659건 가운데 129건을 기록한 '공포의 핵발전소'이다.

그런데 지난 4월 한국수력원자력은 연장 시한이 4년 밖에 남지 않은 고리 1호기에만 무려 2382억 원을 들여 부품 교체에 들어가기로 했고 또 곧 스트레스 테스트를 치를 것이라고 한다. 2차 수명 연장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든, 비행기든, 그 어떤 기계든 37년을 쓰면서도 그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있는가. 그럼에도 또 재연장을 해서 50년 쓰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 세계 핵발전소 평균 수명은 19.3년에 불과하다.
 

ⓒ프레시안


핵발전소 사고는 시간의 문제, 내가 아니길 바랄 뿐

그렇다면,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노심 용융 사고는 가능할까.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제1, 제2, 제3의 비상 발전기를 가지고 있고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이 쓰나미로 인한 발전기 침수였기 때문에 비상 전원 차량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4단계의 비상 대비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다 무용지물이었다. 고리 1호기는 이미 2012년 2월 정전 사고가 났고 또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를 담대하게 은폐했다가 들통이 났다. 원자로에 전력 공급이 끊기는 완전 정전(black out)이 12분간이나 지속됐는데도 이를 숨긴 것이다. 이게 2시간 정도 지속되면 연료봉이 녹기 시작하고 이는 곧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한국판이 되는 것이다. 당시 우리는 '대재앙 100분 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다시는 이런 사고는 없을 것인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지난 7월 고리 1호기의 비상 발전기 2대가 무려 18시간 동안 멈췄다. 이마저도 또 은폐하려 했던 것인지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알려졌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금도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국민들은 고리 1호기의 연이은 사고를 잘 모를까. 핵발전소에서 거리가 먼 중앙 언론사들이 이 문제를 해외 토픽 보듯 하기 때문이다.

사고 나면 대피가 가능할까

그러면 실제 상황을 그려보자. 고리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터졌다고 말이다. 방사성 물질이 퍼지기 전에 대피가 가능할까. 그렇다면 방사성 물질은 얼마나 빨리 퍼질까.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직후 국방과학연구소의 화생방 시스템 모델에 기상청 자료 등을 입력한 시뮬레이션 결과 고리 핵발전소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규모의 사고가 날 경우 북동풍이 초속 4미터로 불면 기장군은 20분 만에, 50분이 지나면 서부산 경계 지점까지, 90분이면 부산 전역이 방사능으로 덮인다고 한다. 북동풍이 잘 부는 여름엔 더 빠르게 퍼진다고 한다. 결국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해운대 구민들에겐 30~40분, 부산 시민들에겐 90분 남짓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과연 그 시간 안에 대피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궁금함에 더해진다. 과연 이들 국민들은 사고 소식과 대피령을 얼마나 빨리 알게 될까. 사고 즉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고리 핵발전소에서 제때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보고할까? 그러면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안전위원회 또는 한국전력으로 곧바로 보고할까? 그럼 여기서 국토교통부로, 그리고 청와대로 얼마 만에 보고가 될까. 시간 꽤나 걸릴 것이다.

그러면 국토교통부와 청와대는 얼마 만에 이를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부산, 울산, 경남의 3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에게 대피하라는 결정, 그거 쉽게 할 수 있을까. 이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마 부들부들 떨 것이다.

한 전문가에 물어봤다. 사고 후 얼마 만에 부산 시민들이 알게 될 지에 대해서. 그는 회의적이었다. 보고 라인을 통해 상부 기관에 올라가고 각 기관마다 혼란 속에 논의도 거칠 텐데 어느 세월에 시민들이 알겠냐는 것이다. 작년 고리 1호기 정전 은폐 사건도 조직적 은폐 기도와 상부 보고 지체가 뒤섞여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핵발전소 사고가 터지면 대피할 시간도 없이 피폭되고 그것으로 모든 게 끝이라는 것이었다.

핵발전소 사고의 그날은 '지속 가능한 아비규환'의 시작

핵발전소는 사고를 배제할 수 없다. '언제냐'의 문제일 뿐 대형 사고는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핵발전소 1기에 밸브만 3만여 개, 용접 부위는 6만5000여 곳, 배관의 길이는 170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부품이 고작(?) 2만 개라는 자동차도 가다가 그냥 서버리기도 하는데 핵발전소는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고리 핵발전소는 사고발생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선 1호기는 폐원자로를 땜질해서 쓰고 있다. 사고 및 고장 건수 129회에 빛나는 공포의 핵발전소이다. 특히 한국은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전쟁 발발 시 적의 미사일이 최우선적으로 타격하는 곳은 통신기지와 원자로이다.

자연환경도 딱이다. 부산 인근 지역은 지난 10년간 핵발전소 4곳의 반경 50킬로미터 내에서 총 75차례의 지진이 발생한 곳이다. 바닷가에 있으니 당연히 쓰나미도 가능하다.

인적 환경은 어떠한가. 며칠 전 검찰은 핵발전소 부품의 품질 보증 서류 위조, 시험 성적서 위조, 인사 청탁 등의 핵발전소 비리로 총 43명을 기소하고 5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중엔 그 유명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한국전력 이종찬 부사장,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포함되어 있다. 핵발전소 집단은 사고 은폐 집단이자 사실상 비리 집단임이 증명된 것이다.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기에 이만큼 탁월한 조건을 가진 핵발전소가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나면 부산과 울산의 공장이 멈추고 세계 5위의 부산항이 폐쇄돼 경제적 손실이 600조 원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장기적 사망자가 30만, 80만 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정말 사고가 터지면 이러한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대재앙, 사회적 아수라장이 발생할 것이고 이는 지속 불가능한 아비규환으로 연결될 것이다.

일단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처럼 노심 용융 사고가 발생하면 '30킬로미터 내 343만 명'이라는 숫자는 사실상 주민 대피가 불가능한 숫자다. 후쿠시마는 30킬로미터 내 거주자가 고작 15만 명이었다.

이제는 아파트촌으로 변모하여 수시로 교통 정체에 시달리는 43만 해운대 구민들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울산은 또 어떻고.

이 위급한 마당에 전화는 분명 불통이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자식을 찾지 못해 공포감에 휩싸일 것이다. 또 일시에 그 많은 사람들이 차를 몰고 핵발전소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려 하겠지만 곧 길은 막히게 될 것이다. 아마도 차를 버리고 짐을 지고 걷게 되지 않을까.

다 잘 됐다 치자. 그러면 대피한 이 수십만 또는 수백만 명을 어디서 묶게 하겠는가. 이건 대피소 수준이 아니다. 수용소를 수백 개 만들어야 한다. 수용소 생활 10년이면 집에 가게 될까? 20년?

아니면 일본이 지금 이순간도 찾아 헤매는 방사능 오염 제거 방법을 터득하는 그날까지? 그래서 그린피스도 "세계 어디에도 이런 곳이 없다"면서 만약 고리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후쿠시마 사고를 훨씬 능가하는 세계적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요즘 유신 시대로 회귀했다고 걱정들이 많으신데 유신 시절이 아니라 아예 한국 전쟁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다.

'유신 시절' 정도가 아니라 '동란 시절'로 회귀할 수도

사실 이 문제는 부산과 인근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 일본은 후쿠시마에서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도쿄에서도 방사능 오염 지수가 평소의 100배 이상 측정되는 경우가 빈번해 일본인들에게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고가 나면 영남권 전체가 위험 지역이 된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해류를 따라 대전, 광주, 강원도, 서울까지도 방사능은 여행할 수 있다.

서울의 고급 백화점에 납품되던 기장 미역이 요즘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지금도 이러한데 사고가 터지면 일단 남쪽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해산물, 축산물의 교류가 끊기게 될 것이다. 다른 상품들도 거래가 끊길 것이다. 결국 부산, 울산 지역의 사람들은 인간관계도 타격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후쿠시마에서 온 사람들 만나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한다. 정서적, 사회적 격리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나중에 복구라도 하지만 핵발전소가 잘못되면 아예 사람이 접근도 못하는 '죽음의 땅'이 된다. 핵발전소에서 적어도 20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 재산이라는 게 집이 전부인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수백만 명의 재산이 연기가 되어 날아간다. 자식 교육은 또 어쩌고.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모여 일본처럼 '사회적 낙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핵은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물질'이라고 한다. 강원대학교 성원기 교수는 핵은 "굉장히 위험한 물질" 정도가 아니라 "인류와 공존이 불가능한 물질"이라고 했다. 후쿠시마 사고 수습을 직접 지휘했던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 2주기를 맞아 이렇게 말했다.

"핵발전소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핵발전 정책이다."

지금 밥상 위 생선구이가 어디서 왔느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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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PX 민영화, 대기업과 ‘공모’한 국방부
 
[분석] 장병들의 국방부인가, 대기업의 국방부인가?
 
육근성 | 2013-09-12 09:51:1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쥐꼬리만한 장병 월급이지만 그래도 요긴하게 쓰이는 곳이 군 매점(PX)이다. 이곳에서 장병들은 간식과 생활용품을 시중 가격보다 20~40% 싸게 구입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군 PX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영화를 경영혁신의 ‘바이블’로 맹신하는 '이명박근혜' 정권

박근혜 정부가 국방경영 효율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군 매점(PX)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영화를 공공부문 경영 혁신의 바이블이라고 맹신했던 이명박 정권을 그대로 이어 받은 ‘이명박근혜 정책’ 중 하나다.

국방부는 PX 민영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PX 관리병사 2700명을 일선 부대로 배치해 전력 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병사들에게 더 좋은 물품과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해 장병 복지 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미 군 PX 민영화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2010년 국군복지단은 대기업 편의점 업체인 GS리테일에 매년 40억원의 군 복지기금을 받는 조건으로 해군 매점 242곳의 운영권을 넘긴 상태다.

<군 매점(PX) 내부 모습 / 이미지 자료출처: 국방부 블로그 '동거동락'>

해군 PX 이미 민영화, GS가 들어선 후 결과는?

이에 따라 GS리테일 측은 해군 PX 214개 중 매출 1천500만원 이상인 ‘장사 잘 되는 PX’ 37곳에 직접 직원들을 투입해 운영하고 있다.

결과는 어떨까. 국방부의 주장대로 민영화가 장병 복지에 기여하고 있는 걸까. 정반대다. 민영화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가격이 급등해 몇 만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장병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SBS 등 언론의 취재결과 군이 직영하는 육군과 공군 PX보다 민영화된 해군 PX의 판매가격이 20~50% 정도 더 비싼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에는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거나 시중가격 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었다.

장병들이 간식으로 즐겨먹은 초코첵스의 경우 육공군 PX에서는 1400원에 팔리지만, GS리레일이 운영하는 해군 PX에서는 2.8배 비싼 3920원을 받는다. '민영화 PX'에서는 닭강정을 시중가보다 1200원 비싼 3360원에 팔고 있었다.

민영화 이후 많게는 두배, 평균 20~30% 가격 급등

민영화의 폐해는 가격 급등 뿐만 아니다. 군 PX에 납품하는 중소기업과 지역납품업체 수백 곳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PX에서 일하는 민간인 신분의 점장, 판매원, 운전기사 등이 일자리를 잃게 돼 고용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PX가 질 위주의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올해 중 PX 민영화 계획을 결론 낼 예정”이라며 육군과 공군 PX 민영화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강행하겠다고 말하면서 물품 가격 급등 등 민영화 폐해를 인정한다. 자기 모순에 빠진 셈이다. 국방부 내부 보고서인 ‘군마트(PX) 운영개선 TF’에 의하면 GS리테일의 물품가격이 육공군 PX에 비해 15~25% 비싼 것으로 나와 있다.

또 국방부는 해군과 동일 조건으로 육공군 PX 민영화를 추진할 경우 예상되는 위탁수익료는 858억원인 반면 가격인상으로 장병에게 돌아갈 부담금은 1164~1945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폐해 인정하면서도 민영화 강행, 왜?

폐해가 입증된 상태다. 게다가 국방부 스스로도 민영화가 장병복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영화를 강행하겠단다.

민간에 위탁해서 좋을 일이 있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군 PX 민영화는 후자에 해당된다. PX 민영화를 통해 국방부는 대기업으로부터 위탁수익료를 챙길 수 있지만, 장병들은 인상된 가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민영화에 참여하는 대기업에게는 이득이 될 수 있지만 PX 이용자인 장병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장병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겠다는 건가.

<민영화 당위성 주장하는 국방부 / 자료출처: 국방부 대표 블로그 '동거동락'>

황당한 주장 펴는 국방부

여전히 국방부는 ‘민영화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국방부 대표 블로그 ‘동거동락’에는 GS 등 민영화에 참여하는 대기업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홍보성 기사가 올라와 있다. 국방부 블로그이니 여기에 등장하는 주장은 국방부의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 군부대 매점 시설은 낙후돼 있다. 병사들의 먹거리에 대한 욕구와 요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만족시켜 주고 있지만, 생활용품 등 기타 물품에 대해서는 장병 개인의 취향에 맞는 물품들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지 않다.”

황당하다. 국방부가 진정 장병들을 위한다면 더욱 저렴한 가격과 양질의 서비스 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해야 마땅하다. 일부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이유로 장병들의 주된 먹거리의 가격 급등을 방조하겠다니 이건 어불성설이다.

<이미지 자료 출처: 국방부 블로그 '동거동락'>

장병들의 국방부인가, 대기업의 국방부인가?

국방부 블로그에는 현실과 아예 떨어진 주장도 등장한다. 민영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더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물품가격이) 시중에서 가장 저렴한 대형할인마트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궤변이다. 군 PX에 ‘규모의 경제’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억지다. 중소기업 물품이 아니라 대기업 물품이 납품되면 가격인하 효과가 발생할 거라는 얘기인데 이는 해군 PX 경우에서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게 이미 입증된 상태 아닌가.

또 민영화를 하게 되면 PX 물품 가격이 “대형할인마트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망발이다. 현재 육공군 PX의 물품가격은 대형마트의 90% 수준이다. 국방부의 장대로라면 현재 물품가격을 10% 정도 올리겠다는 것이 되고 만다.

<국방부를 항의 방문한 민주당 의원들 / 자료출처: 김현미 의원 트위터>

‘군 PX 민영화’ 철회돼야 한다

국방부가 대기업 편에 선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과 공모해 장병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고 부모들의 월급까지 축내려는 건가.

민주당의 ‘공공부분 민영화 저지 특위’ 소속 의원들이 11일 국방부를 방문해 김관진 장관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군 PX 민영화가 장병들의 복지 진작은커녕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항의하며 계획 자체를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가 민주당의 항의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군 PX에 대기업을 끌어들여 종잇장 보다 얇은 장병 호주머니를 털겠다는 발상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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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입?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정의'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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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3/09/12 12:19
  • 수정일
    2013/09/12 12:1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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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천주교 평신도 시국 기도회... 1만1350명 서명, 대한문까지 '묵주기도'

13.09.11 22:07l최종 업데이트 13.09.12 10:0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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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시국 기도회, "국정원이 개입 했기 때문에 원천무효" 1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에 문규현 신부와 신도, 수녀들이 참석해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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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 천주교 신자와 사제, 수녀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를 열어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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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에게 교회의 꽃으로 남으란 말은 인격체임을 무시하고 관상용으로 남으란 말입니다. 국정원은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데 큰 장애물일 뿐이란 말을 하려고 나왔습니다."

소희숙 수녀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인간이 '정치적 동물'인 것은 안다"며 성당을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가 1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렸다.

이날 기도회에 참석해 촛불을 든 200여 명의 천주교 사제와 신자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책임자 처벌 대통령 사과"와 "진상규명 특검실시"를 하라고 외쳤다.

이날 발언자로 나선 김정대 신부는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정치는 우리 삶에 바로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신앙과 정치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었던 (일인)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에 여기 오신 뜻있는 평신도들이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대한문까지 묵주기도 행진을 하며 기도회를 마무리했다.

참석자 합동기도 "국민들 주인되는 민주주의 이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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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 천주교 신자와 사제, 수녀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를 열어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기도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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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성직자·평신도 거리행진 천주교 신자와 사제, 수녀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를 마친 뒤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묵주기도를 드리며 대한문까지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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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모인 참석자들은 '시국기도문'을 함께 낭독했다. 기도문에는 "이 땅에서 어두운 권력이 사라지게 하시고, 이 땅에서 오로지 당신의 정의만 흐르게 하소서, 당신의 법에 따라 죄인들이 참회하고 국민들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이루소서"라는 내용이 담겼다.

곽성근 가톨릭평화공동체 공동대표는 "대한민국의 천주교 평신도들은 지난 세월 군사독재의 서슬퍼런 탄압의 시절에도 민주주의를 지켜왔다"며 "그러나 지난해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력화시켰다"고 말했다.

이날 기도회에서는 마태복음의 한 구절이 인용되기도 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박문수 카톨릭문화원 부원장은 이 구절을 들어 9일 <조선일보>에 실린 보수성향 천주교 단체의 광고를 비판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이란 단체가 낸 <조선일보> 광고에는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길거리에서 선동시위나 벌이고 싶다면 차라리 북으로 가라"는 내용이 담겼다.

박 부원장은 "오늘 마태복음의 말을 잘 실천하는 방법은 아무 곳에나 종북딱지를 붙이지 않는 것이다"며 "평신도들의 전문 영역이 세상을 복음화하는 것이기에 이를 실천하자"고 말했다.

서기호 의원 "참석자들, 진정으로 대한민국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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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에 참석한 서기호 의원 전 전국가톨릭대학생협의회 준비위 의장을 지낸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 기도회'에 참석해 신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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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국가톨릭대학생협의회 준비위 의장을 지낸 서기호 정의당 의원도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의 <조선일보> 광고를 비판했다. 서 의원은 "단체 이름을 보면 대한민국을 수호한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땐 국정원을 수호하기 위한 모임인 것 같다"며 "오히려 여기 온 신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기도회에 참석한 한 천주교 신자는 "평소 국정원 문제에 관심이 있어 참석했다"며 "종교가 왜 정치에 개입하냐고 하는데 이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정의와 관련된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기도회 중간에 한 시민이 난입해 "천주교가 왜 나와서 난리냐"고 외치기도 했으나 기도회 진행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한편 이날 기도회에 앞서 오전 11시엔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추진위원회'가 서울 영등포구 새누리당사 앞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관련기사: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 "대통령 사과하라") 추진위는 천주교 신자 1만1350명(10일 오후 5시 기준)의 서명을 모아 ▲ 특검을 통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개혁 방안 제시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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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음악상 거부' 홍난파는 진짜 친일음악가였나?

 


한국의 작곡가가 국내 음악계 중 권위가 있다고 알려진 '난파음악상'을 거부하여 파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곡가 류재준씨는 홍난파를 기리는 '난파음악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친일파 음악인 이름으로 받기 싫다'라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서울대 음대 작곡가와 크라코프 음악원을 졸업한 류재준씨는 현대음악의 중요한 요소인 '불확실성'을 확립하여 작곡가로 서양음악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폴란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자신의 공식 후계자로 인정할 만큼 실력 있는 작곡가입니다.

난파음악상이라는 권위있는 국내 음악상을 거부한 이유가 홍난파가 친일파 음악인이라는 이유 때문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파문이 일어나고 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홍난파는 친일파 음악인이 맞는지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 수양동우회 사건과 조선문예회'

본명 홍영우, 그러나 홍난파로 더 유명한 홍난파는 한국 근대음악사 중에서 양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국 음악사에 공헌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하는 '친일조사보고서'명단에 오른 친일파 음악인입니다.

홍난파의 친일 행적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 '수양동우회' 사건입니다. 수양동우회는 안창호가 조직한 흥사단 계열의 단체로 이광수, 주요한,주요섭,김동원 등에 의해 결성된 단체입니다.

 

 

 


수양동우회 사건이 홍난파와 왜 중요하냐면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시점에 일제가 강압통치를 위해 동우회를 표적 수사해서 이 단체 관련자를 체포했는데, 여기에 홍난파가 연루됐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홍난파가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친일 행각을 본격적으로 했으며, 이는 어쩔 수 없는 강압에 의한 것이라 진짜 친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조선문예회>
1937년 5월 2일 본정통(명동) 경성호텔에서 발회식
참석자: 토나가 총독부 학무국장,김대우 사회교육과장 등 조선과 일본의 문예인 30명
음악가: 박경호,이종태,함화진,현제명, 홍영후
 

 

 



홍난파가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검거된 시점은 대략 1937년 6월입니다. '조선문예회'가 창립했던 시기는 5월입니다.

조선문예회는 총독부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상황에서 총후(전선에 대한 후방기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래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황민화 과정에서 설립된 관변단체입니다.


홍난파는 분명, 총독부 학무국의 지시로 만들어진 조선문예회의 목적인 '황민화'와 '사회교화'라는 사실을 알고 가입을 했으며, 이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친일로 돌아섰다는 주장과는 뭔가 맞지 않는 대목입니다.

'홍난파의 애국은 일본이었다'

홍난파의 친일 음악인으로서의 활동은 1937년 조선문예회와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는 동우회 사건에서 풀려나오자마자, 1937년 9월 15일 조선총독부와 조선문예회가 '시국인식을 철저히 하며 사기를 고취'하기 위한 '시국가요 발표회'를 이왕직 아악부에서 개최하자, 최남선 작사의 <정의의 개가(凱歌)>에 곡을 붙여 친일가요를 발표합니다.

 

 

 


1937년 9월 30일에는 조선문예회가 신작발표회로서 <황군위문조성-총후반도의 애국가요> 발표회 겸 <시국가요 피로의 밤>을 부민관 대강당에서 열었는데, 홍난파는<장성(長城)의 파수(把守)>(최남선 작사)와<공군의 노래>(空軍の歌:- - -彩本長夫 작사)라는 친일가요를 발표하였습니다.

1937년 10월 3일에는 경성 고등 음악학원이 주최하고 '경성 군사 후원연맹'이 후원하는, 부민관에서 열린 <음악보국대 연주회>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홍난파는 황군을 위문하거나 전선에 대한 후방기지라는 뜻을 가진 '총후'를 만들기 위한 음악적 활동을 아낌없이 펼쳤습니다.

 

 

 


홍난파는 경성방송 교향악단을 이끌면서 1938년 7월 9일 '동요와 합창'이라는 방송에서 <애국행진곡>을 지휘했습니다. <애국행진곡>은 일본인이 작곡한 일본 전통의 전형적인 2박자풍의 곡으로 일본의 제2국가로 불리는 노래입니다.

<애국행진곡>의 내용은 '천황폐하의 신민으로 일본정신을 발양하고 약진하자'는 내용으로, 그가 작곡하고 지휘했던 음악 대부분은 '애국' 즉, 일본 천황폐하와 일본을 찬양하며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치자는 군국주의 음악이었습니다.

홍난파가 말하는 애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조선의 아픔을 노래한 비운의 작곡가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홍난파의 대표적인 노래로 아직도 사랑받는 '봉선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곡은 1926년 홍난파가 '세계명작가곡선집'을 편찬하면서 수록한 노래입니다.

봉선화라는 노래는 사실 홍난파 때문이 아니라 성악가 '김천애' 때문에 유명해진 곡입니다.

 

 

 


1942년 무사시노 음악학교를 졸업한 성악가 김천애는 도쿄 히비야 공화당에서 개최한 '전일본 신인음악회'에 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출연하여 '봉선화'를 불렀고,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갈채를 받았습니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온 김천애는 봉선화를 계속해서 불렀으며, 1942년 경상남도 삼천포 공연에서도 '봉선화'를 부를 예정이었지만, 일제에 의해 '금지곡'으로 결정, 더는 봉선화를 부르지 못하게 됐습니다.

'봉선화'가 일본에 의해 금지곡이 되면서 작곡가였던 홍난파도 민족음악가로 알려지게 됐지만, 사실 홍난파는 민족음악가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홍난파는 일제강점기 무슨 조선의 아픔을 노래하거나 민족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서 고민한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서양음악의 보급에 앞장선 인물로, 그의 음악관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음악 대부분이 극히 지완(遲緩)하여(더디고 느려서) 해이하고 퇴영적인(뒤로 물러나서 움직이지 않는-인용자:노동은 목원대교수) 기분에 쌓여 있지마는 서양의 음악은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개 경쾌 장중하다"([동서양음악의 비교], 1936)

홍난파는 조선 음악이 서양음악보다 뒤떨어졌다는 인식에 사로잡혔던 인물로, 음악의 우열을 가리는 편중된 음악관을 가졌던 인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홍난파가 경성방송국을 통해 국내 최초의 직업 관현악단을 만들고,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세미클래식을 보급한 음악적인 실적은 분명 한국 음악사에 기록될 업적입니다. 그렇다고 친일 행적을 덮을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조선일보는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을 비난하면서 홍난파의 음악이 '나라 잃은 백성의 슬픔과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면서 '단지 일제의 강요에 의해 몇 편의 군가를 작곡했다'고 그를 옹호했습니다.

홍난파를 엄청난 죄인이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무슨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민족음악가라는 말은 말도 되지 않으며, '독립된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진짜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이 들으면 무덤에서 뛰쳐나올 망언입니다.

난파음악상을 거부한 류재준 작곡가의 수상거부는 개인의 자유이기에 뭐라 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서 홍난파라는 음악가의 실체를 다시 조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음악을 통해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논리라면 대한민국이 다시 일본에 침략을 받아도 그냥 황군을 위한 군가를 몇 편 작곡하고 천황폐하를 찬양하는 음악회를 지휘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민족음악가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엠피터는 폭풍 한설이 몰아치는 만주벌판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진짜 독립투사들이 불렀던 독립군가를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진짜 '애국'을 가르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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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성을 귀중히 여길 때”

북, 민족의 지향은 오직 하나 조국통일
 
“민족성을 귀중히 여길 때”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9/12 [09: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북이 남과 대화와 협력에 의한 통일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북에 살건 남에 살건 해외에 살건 온 겨레는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을 바라고 있다.”고 밝혀 남북대화의 성과와 함께 남북교류가 이전으로 돌아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 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우리민족의 분열이 근 70년에 가까이 온다는 안타까움을 표명한 뒤 “지속되는 민족분열의 비극 속에서 오늘 우리 겨레가 누구나 뼈저리게 새긴 것은 조선민족은 하나로 합쳐져야 살고 둘로 갈라지면 살수 없는 유기체와 같으며 서로의 뜻과 마음을 합쳐나가자면 자기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고 민족성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라며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성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민족성원들의 공통된 심리이며 그것은 온 민족을 단합시키고 결속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록을 실어 민족 단합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우리민족끼리는 “민족성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온 겨레의 공통된 심리이다. 높은 자주정신과 애국심, 근면성과 단결력, 슬기와 재능에 있어서 우리 민족은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지난 시기 역사의 온갖 시련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민족성을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굳건히 지켜왔다. 지난 식민지통치시기 일제의 악랄한 민족말살책동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민족의 얼과 넋을 고수해온 사실은 자기의 우수한 민족성에 대한 무한한 긍지, 그것을 고수하고 적극 살려나가려는 겨레의 애국심이 얼마나 강한가를 잘 보여준다. 만일 온 겨레의 가슴속에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없었더라면 자기의 고유한 핏줄과 언어를 고수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남달리 강한 우리민족의 민족성을 상기했다.

이 신문은 “민족성을 귀중히 여기고 더욱 높이 발휘해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의지는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더더욱 강렬해졌다.”며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가 그 대표적 실례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온 민족의 단합된 힘과 위력으로 평화통일과 민족번영을 이룩해나가려는 민족성의 발현으로써 겨레에게 커다란 고무적 기치로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흘러간 역사는 민족의 자주와 존엄을 귀중히 여기고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민족성을 적극 구현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자기의 민족성을 적극 내세우고 그것을 대단결의 기초로 삼는다면 얼마든지 민족적 단합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 외세에 의해 갈라져 사는 우리 겨레가 민족성을 적극 내세우고 살려나가지 않는다면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의 기초를 잃게 되고 나중에는 민족이 이질화되어 영원히 둘로 갈라질 수 있다. 민족성을 민족의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로 간직하고 더 적극 발양시켜나가는 여기에 평화통일과 민족번영의 담보가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북과 남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의 차이가 아무리 크다 해도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고 공고발전 된 우리 민족의 민족적공통성보다 더 클 수 없다.”면서 “우리 민족의 간절한 염원과 지향은 오직 하나 조국통일이다. 북에 살건, 남에 살건, 해외에 살건 조선사람 모두가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바라고 있다.”고 피력했다.

신문은 끝으로 “해내외의 온 민족은 반만년의 력사를 이어온 단일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조선민족의 우수한 민족성을 소중히 간직하고 민족단합에 구현해나가야 할 것”이라며 온 민족이 민족적 단합을 기초로 조국통일을 성취 해 날 것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남과 북은 상반기 전쟁 접경으로 가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가졌으나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회담으로 시작 된 대화를 시작으로 이산가족 상봉합의, 금강산 관광 재개 등도 논의해 남북관계 복원과 발전에 청신호가 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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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복병일랑 거대한 촛불로 뭉개버려야

얄팍한 복병일랑 거대한 촛불로 뭉개버려야

 

<칼럼>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승인 2013.09.12 10:24:39

강정구(전 동국대 교수)

 

너무나 당연하지만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정상회담 녹취록 관련 정치공작이 국민적 저항을 촉발하였다. 고등학생까지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촛불이 켜지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중과 시민의 저력이고 생명력이고 정당한 저항권의 발로이다.

촛불은 정당한 저항권의 발로
위험수위가 다가오자 지배세력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개혁일랑 외면한 채, 언제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는 이북관련 이석기 사건을 터뜨려 광풍을 몰고 왔다. 물론 이석기 일은 언젠가는 충격파로 등장시키기로 예비 되어 있는 그들의 숨겨둔 복병이었다. 그들에게는 이 시점이야말로 이 얄팍한 복병이 절실히 필요하고 효과적인 시기였고 또 확실한 처방이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대선개입과 NLL 공작이야말로 내란실행이 아닌가?
이로써 적반하장의 형국을 만들어 현 정권에 위협을 가하는 정국을 역전시키고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새판을 짜겠다고 기고만장한다. 그런데 1만명이 넘는 인원과 천문학적 예산을 가진 국가기관인 국정원의 선거개입이나 정치공작이야말로 이 나라의 근본을 허물어뜨리는 국기문란이고 진짜의 ‘내란음모’요 ‘내란실행’이 아닌가? 이런 엄청난 일을 겨우 130여명에 불과한 얄팍한 이석기군단의 일로, 그것도 ‘내란음모’가 힘드니까 이미 사문화한 여적(與敵)죄라는 꼼수까지 동원하면서 잠재울 수 있단 말인가?
국정원이란 공권력에 의한 선거개입과 정치공작은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된다. 정통성은 권력뿌리의 정당성, 권력창출의 정당성,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각기 갖춰야만 제대로 확립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의 권력뿌리 정당성 여부는 이 글의 핵심이 아니고 별개 문제다.

대선개입은 권력창출 정당성 침해
국정원 선거개입은 박근혜정권이 그 출생에서 대표성을 갖느냐 하는, 곧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정당성을 가져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선거절차와 선거과정에 의해 창출되었는가의 문제이다. 선거개입 정도가 오죽했으면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 온 검찰이 선거법 위반으로 전임 국정원장을 기소했을까?

옛 정권은 법과 역사의 단죄를, 현 정권은 민의와 정의의 심판을
지금 드러난 일부의 증거만으로도 이미 박근혜 정권의 권력창출 정당성은 심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곧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정권이라고 말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관권선거의 일이 어찌 130명 군단의 얄팍한 이석기 일로 희석되고 잠재워질 수 있단 말인가? 응당 이를 주도한 과거의 이명박 정권은 법과 역사의 단죄를 받아야 하며, 이에 의거 출생한 현재의 박근혜 정권은 민의와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NLL공작은 권력행사 정당성 훼손
또 북방한계선(NLL) 관련 정상회담 녹취록의 자의적 공개와 이에 대한 국정원의 ‘유권해석’은 공작정치의 전형으로 박근혜 정권이라는 현재 권력에 의해 기획되고 집행되었다. 또한 이는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훼손한 엄청난 범법행위다. 과거 관권선거를 주도한 잘못을 뇌우치고 자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잠재우기 위한 또 하나의 공작을 국정원이 자행하도록 한 일이다. 정상회담 녹취록 공개는 세계 역사상 희귀한 일로 국제정치 교과서에 실릴 일이다. 이렇듯 일파만파한 일을 연달아 저질러 놓으니 촛불이 전국으로 더욱더 타오르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한낱 얄팍한 이석기 사건으로 촛불을 잠재우려고?
바로 이 시점에서 그들이 복병으로 등장시킨 것이 얄팍한 이석기 사건이다. 물론 이석기군단은 미국패권의 발악으로 신음하고 있는 엄중한 한반도 현실일랑 아예 외면한 채 지난날의 꿈, 아니 이제는 그들만의 꿈으로 매몰된 외눈박이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진보의 세상을 이곳 남쪽 또는 한반도 전역에서 일구기 위해서는 벌써 넘어섰어야 할 조그만 산에 불과하다.

얄팍한 복병일랑 위대한 촛불로 뭉개버려야
역사는 저절로 이성의 실현으로 나아가지 않고 새 생명을 탄생하는 산통의 과정을 요구한다. 우리는 조그만 사설군단의 얄팍한 그들의 복병에 머뭇거리지 말고 문제의 본질이고 핵심인 국정원이란 공권력의 공작정치에 의연히 맞서 제대로 된 민주적 권력창출과 권력행사의 새로운 판을 기필코 일구어내야 할 것이다. 한낱 얄팍한 그들의 복병일랑은 거대하고 위대한 우리들의 촛불로 뭉개버려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노동과세계 542호>에 게재된 것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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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부처냐

당신만 부처냐

 
조현 2013. 09. 10
조회수 729추천수 0
 

 

이시우 박사1-.jpg

이시우 서울대 명예교수

 

 

이시우 명예교수가 본 불교적 깨달음

 

 “세상 모든 것은 주고 받음의 관계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의 신비를 캐다가 불교 진리를 탐구한 이시우(76) 서울대 천체학과 명예교수는 “불교적 진리의 핵심은 연기(緣起)이며, 연기란 ‘주고 받음의 관계’다”고 간명하게 설명했다.

 

 그는 불교 조사들의 선어록의 정수를 고려말 백운 스님이 정리한 <직지심경>을 풀이한 <직지, 길을 가리키다>(민족사 펴냄)를 썼다. 선(禪)은 스스로 직접 마음을 보도록 이끈다. 따라서 논리나 지식이나 해설을 경계한다. 직접 마음을 보면 곧바로 그 자체로 부처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교수의 논리적 해설서는 전통적 선불교엔 반역이다. 오직 주위 세계와의 관계를 외면한 채 오직 내면의 마음만을 보게 해 독불장군식 깨달음만을 지향하는 선승의 풍토에 대한 정면 돌파다.

 

 누구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선승들에 대한 그의 일침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성단(별의 집단)의 생멸을 연구하다가 불교에 심취해 정년을 5년 앞두고 불교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서울대 교수직을 조기퇴직하고 출가를 결행하려 했다. 그러나 조계종이 정한 출가 정년 연한이 넘어 출가하지 못하자 1999년 현 종정 진제 스님이 조실인 부산의 해운정사에서 안거(3개월간의 참선)에 참여했다. 그가 본 조실은 한자로 아무도 못알아들을 소리를 혼자 했다. 또 조실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모든 대중들이 왕처럼 큰절을 올려야했다. 그런 풍토는 젊은 선승들에게까지 이어져 20여명의 선승중 연장자인 그가 절을 할 때 답례를 한 이는 한명 뿐이었다. 불교가 사람 됨됨이로부터 시작된다는 보았는데 됨됨이와는 거꾸로가는 무례의 일상화에 실망해 두달만에 절을 나왔다.

 

 그는 선승의 독선과 아집과 무례를 불교를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됐다고 보았다. 독립적인 존재란 없기에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고, 모든 것은 서로 주고 받는 연기적 관계로 얽혀 있는데도 이를 오해해 자기중심적인 절대적 주체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름께나 알려진 스님들 법문을 들어보면 자기 자랑에 집착심을 부추기는 내용이 많다. 오래 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게 불교인가. 그게 아니다.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이 동전에 양면처럼 따로 있지않다는 것을 알아 어느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하는 것이 불교다.”

 

 유아독존적으로 자기만이 부처임을 내세우는 일부 선승들의 주장을 가차없이 내치며 그는 ‘나만이 아니라 주위의 하찮아 보이는 사람과 생명은 물론 불행과 죽음까지도 부처라는 것’을 일깨웠다. 

 

그는“수행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삶이 바로 수행”이라고 답했다. 삶과 유리된 채 수행만을 위한 수행을 경계하면서 “보시는 받으면서 하는 수행과 처자식과 함께 살아가면서 하는 수행 가운데 어떤 쪽이 제대로 공부가 되겠느냐”고 물었다. 삶이 없는 수행은 가짜라는 것이다.

 

그는 또 선승들이 절대나 순수, 완전 등에 매몰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런 것은 환상 속에만 존재할 뿐 실재에는 없다는 것이다.

 

“자연은 조작하지않기 때문에 완전한 동그라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지만, 계곡 속에 물결에 휩쓸리고 쓸리다보면 완전한 동그라미가 아니더라도 저마다 둥글둥글해진다. 나만이 주체고 나머지는 모두 객체가 아니라, 그 완전하지 않은 그 본연의 자연물들이 모두 부처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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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그리고 기자라는 ‘아이’들에게 고한다

확인될 때까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자윤리
 
임두만 | 등록:2013-09-10 11:32:57 | 최종:2013-09-10 12:45: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나는 며칠 전 매카시즘에 관련된 포스팅을 하면서 미국에서 약 4년 간 광풍을 일으켰던 이 사건의 물길을 돌린 사람이 당시 CBS의 에드워드 머로우 기자라고 했다. <매카시즘 광풍과 종북놀이 광풍>

당시 미국의 여당이던 민주당도, 매카시가 이끄는 ‘비미활동위원회(非美活動委員會,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가 무서워 반공만 부르짖었고, 매카시 소속당인 공화당은 이 광풍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오랜 민주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의 가장 확실한 도우미는 언론이었다. 그 수많은 미국 언론들, 매카시의 한마디 한마디를 보도하면서 살을 붙이고 퍼뜨리는 나팔수 역할만 하므로 억울한 희생자의 인권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를 깨부순 이가 에드워드 머로우다. 1954년 3월 9일, 머로우는 자신이 진행하는 <See It Now>라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매카시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지며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논박했다.

2013년 대한민국, 이석기 사건과 관련‘보도’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거의 모든 기사들은 국정원, 검찰, 새누리당, 정부, 공안당국이라는 이름표 아래 보도소스는 익명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익명의 우산아래 ‘카더라’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아무도 어느누구도 현재의 ‘종북몰이’광풍이 비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릇 모든 사안은 음이 있고 양이 있는데 음은 익명으로 확산되고 양은 감춰진다.

오늘 아침 네이버 스마트폰 탑을 차지한 서울신문의 <RO핵심 ‘공중전화’로 北인사 우회 접촉했다“는 기사, 그리고 이어진 관련기사들… <국정원, 수원 공중전화 1년여 감청… ‘RO·北 커넥션’ 전모 파악> <고유번호 파악후 회선통해 통화내용 빼내> <RO 핵심근거지 ‘수원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까지, 전 기사를 모두 읽어보았다. 그러나 전체 기사가 전하는 내용이라고는 모두 ‘공안당국’ 또는 ‘국정원’의 소스를 이용한 받아쓰기에다 이석기와 RO는 빨갱이 집단이라고 말하는 추정기사였다.

또 국민일보의 <공안당국이 전하는 ‘이석기 영장심사’… “감청·압수수색 증거로도 충분”>이나 <국정원, '압수수색 방해' 통합진보당 당원 수사 의뢰> SBS TV, <"RO의 수장 맞죠?" 국정원, 이석기 자백받기에 초점>노컷뉴스까지 위에 언급한 서울신문 기사와 똑같은 논조였다. 즉 국정원이 내놓는 소스 외에 통합진보당의 해명을 끼워넣는 짜깁기의 전형이었다.

그리고 압권은 연합뉴스가 오늘 오후 2시 30분 경에 보도한 <이석기 나흘째 진술거부…국정원 "수사진행 문제없다">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국정원의 수사에 피의자 이석기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함으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팩트를 전하며 <판사출신 한 변호사는 “피의자가 묵비권을 고수할 경우 결국 재판에서는 자백없이 증거만으로 공방을 벌이게 된다”며 “이 경우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가 명확하다면 피고인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비춰져 중하게 처벌되고, 증거가 명확치 않더라도 스스로 해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결국 스스로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피의자의 진술거부권, 이는 법이 정한 피의자의 권리다. 모든 사법경찰리는 범죄의 혐의자를 체포할 때 그 혐의를 받은 이에게 피의자의 권리를 고지할 의무가 있다. 이를 미란다 원칙이라고 한다. “당신은 이러이러한 범죄혐의가 있어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고지다. 즉 피의자의 권리 중 진술거부권(묵비권)은 피의자가 자신의 진술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당연한 권한이다.

현재 이석기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이석기 스스로 자신이 가진 고유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이다. 따라서 그 진술거부권이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그것은 이석기 스스로 책임질 일이다. 그러함에도 이석기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는 자신을 소추하려는 소추기관이 가진 증거와 자신이 가진 증거를 놓고 재판정의 판사 앞에서 따지겠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위 변호사의 말대로 피의자의 진술이 없더라도 검찰이 소추시 제기하는 증거가 완벽하다면 피의자는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 점’이란 괘씸죄까지 더해진 가중처벌도 따른다. 특히 이석기는 지금 20여 명의 변호사가 변호인단을 구성한 메머드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고 있다. 이 변호인단이라고 저 판사출신 변호사가 말하는 내용을 숙지하지 않을 리 없다. 때문에 이석기는 이런 다각도의 조력과 판단에 의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기사를 쓰려면 위의 판사출신 변호사가 말한 내용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변호사의 리딩도 덧붙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이는 간단하게 해석해서 “이석기는 이런 불리함에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는 진술이 자신에게 더 불리하기 때문”이라는 단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그래봐야 너만 더 다쳐”식의 검찰 국정원을 대변한 기사라는 얘기다.

며칠 전 KBS 추적 60분에서 방영된 중국동포 남매 간첩사건… 이 사건을 조작한 국정원은 탈북한 여동생에게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하면 김현희처럼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리고 어제 한겨레는 이석기 변호인단을 소스로 민혁당 사건의 예를 들면서 이석기에게 ‘공소보류’를 무기로 회유하고 있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이거다. 현재 국정원 등 소추기관은 전방위로 이석기 등을 압박하고 있다. 그 압박의 수단이 회유와 협박, 그 방법은 직접 당사자를 놓고 하는 방법과 언론을 통해 하는 간접적 방법… 위에 적시한 기사 내용을 접한 가족 친지 등이 겁을 먹고 피의자의 가중처벌을 우려 대신 설득해 주기를 바라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KBS추적 60분은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한국언론, 그리고 기자라는 ‘아이’들, 당신들에게 에드워드 머로우 같은 기개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함에도 역사의 현장에서 기록자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 기록자로서 최소한의 중립성은 요구 한다. 우리는 불과 5년 전 당신들의 패악질에 대통령을 지낸 인물의 자살도 목격했고, 50년 전 전직 대통령 후보가 사형수로서 형장에 이슬로 사라진 역사도 갖고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이 일어났던 공안사건들… 그 공안사건으로 희생되었으나 나중 재심에서 무죄로 복권된 사람들… 인혁당, 민청학련, 김대중내란음모 등의 사건들… 당신들의 선배가 당시 써제꼈던 기사들을 보면서 그 패악질이 무고한 생명들에게 어떤 고통을 안겼는지 살피기 바란다. 이것은 이석기 일당이 ‘여적죄’로 처벌될 반역의 무리라고 확인될지라도 마찬가지다. 확인될 때까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자윤리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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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이런 것도 틀리다니"…'뉴라이트 교과서' 천태만상

[교과서 전쟁] 왜곡·오류·실수 투성이…어떻게 검정 통과했나

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10 오후 7:17:49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400페이지에 불과한 한국사 교과서에서 시작된 논쟁이 '역사 전쟁'으로까지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역사를 바로잡을 방안을 잘 모색해 좌파와의 역사 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 한다"(새누리당 김무성 의원)는 말만으로도, 교과서 한 권에 얽힌 첨예한 갈등을 엿볼 수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식민지근대화론 등 '뉴라이트' 학자들의 역사관이 교학사 교과서에 그대로 담겼다고 평가한다. 학계에서나 일반 대중들에게서나 외면받던 뉴라이트 학자들이 정치권의 힘을 받아 교육계로 진출했다는 것. 교학사 교과서가 다른 7종의 교과서와 눈에 띄게 다른 점이 많다는 지적은 수긍할만하다.

독립운동을 설명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을 40번이나 언급하고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서술하며 '발전' 등의 긍정적인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부분에서 독립운동가 안창호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등, 교학사 교과서는 기존 상식에 비춰봤을 때 당혹스러운 역사관과 서술방식을 보인다.

그러나 이미 교학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심의를 통과해 공교육 체계에 편입할 자격을 갖췄다. 이대로 괜찮을까. 4개 역사단체(한국역사연구회·역사문제연구소·민족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는 교학사 교과서 전문을 종합적으로 검증해 봤다. 그 결과 A4 200장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사실 왜곡·오류 등이 발견됐다. 일부는 연도, 날짜를 비롯해 아주 기초적인 사실 관계조차 틀린 내용이 서술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그중 명백하거나 노골적인 오류, 왜곡이 의심되는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정대협과 전교조 등 464개 단체가 참여한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등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친일, 독재를 미화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한국판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라며 검정 합격을 즉각 취소할 것을 교육부에 촉구하고 있다. 2013.9.5 ⓒ연합뉴스


친일파 미화

①"1920년대 일제 강점기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명서네와 경선네라는 두 농가의 몰락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중략) 유치진은 일제의 탄압에 의하여 극예술 연구회가 해산된 후, 1941년에는 총독부의 압력으로 극단 '현대 극장'을 조직하였다."(268쪽)

☞극작가 유치진은 2005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을 발표할 당시 이름을 올렸다. 결국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친일반민족행위조사보서를 보면, 유치진은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한 인물이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을 창립해 일제 만주침략을 정당하거나(<흑룡강>), 일진회를 미화하는 극본(<북진대>)을 집필했다. 연극의 전시체제 협력을 역설하고 일제 만주침략을 정당화하는 기행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②"일제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굴종과 전쟁에 대한 협력을 요구하였고, 강요를 이기지 못한 이들은 이에 따랐다."(288쪽)

☞친일을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행위로 옹호하고 있다. 이는 친일파가 가장 자주 내놓는 변명거리기도 하다. 역사학계에서는 친일파로 규정된 인물들이 어느 정도의 자발성과 적극성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③"최남선은 공과 과가 모두 있는데, 공과 과를 함께 논한다면 어느 쪽이 클까? 주요 공적에 대해서 현재 우리나라의 '상훈법'에 비추어 포상을 한다면 어떤 상을 수여하면 적절할까? 또한, 친일 활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벌을 내리는 것이 적절할 것인지 '반민족 행위 처벌법'에 근거하여 판단해 보자."(297쪽. 수행평가)

☞최남선은 기미독립선언문을 쓰는 등 친일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지만 훗날 친일파로 변했다. 어떤 상을 줄 것인지를 묻는 질문 자체가, 친일파를 '상 받을만한 인물'로 포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 미화

①"(1930년대 명동 거리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도시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명동 거리의 생활 모습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278쪽. 주제열기)

☞일제의 잔혹함이 극에 달한 1930년대 명동의 모습이 현재와 별다르지 않다고 서술하고 있다. 1930년대에 이미 한국의 도시가 크게 발전했다는 주장으로, 식민지근대화론과 일맥상통한다. 학생들에게 "당시 우리나라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라고 물으며 긍정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점이 눈에 띈다.

②"이야기한국사 : 전북 김제에서 지주제의 발달"(279쪽)

☞일본 지주제를 '발달'로 묘사하고 있다.

③"총독부가 종전의 소작 제도 개선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1932년부터 소작농 1가구당 5단보의 농지를 구입하도록 저리의 정책 자금을 대출하여 자작농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이었다."(279쪽)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자작농을 육성하고자 노력했다는 식의 서술을 하고 있다.

④"인구증가, 식민도시의 발달, 신분제의 해체와 변화, 복식의 변화"(280쪽)

☞이 부분에서 17줄의 문장 중에 성장, 발전, 증가라는 표현이 6회나 나온다. 일제 강점기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⑤"일제의 통치로 인구가 증가"(280쪽)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인구가 증가했다는 것은 뉴라이트 학자들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주요 근거였다. 그러나 학자들은 통계 오류라고 일축한다. 서울대학교 황상익 교수는 <프레시안>에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 이 점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조선총독부가 전염병 환자 수를 파악하면서 일본인 환자가 조선인 환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고 분석한 이유는, "조선인 환자가 실제로 적었던 것이 아니라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관련기사 : 일제 강점기 조선인 생활수준의 진실은? ) 같은 맥락에서 1910년의 남녀 비율에서 남자가 훨씬 많은 것은, 여성들이 통계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⑥"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가(…)1930년대 이후 만주로의 농업 이민과 일본으로의 노동 이민이 급격히 증가한 것도 한국 농촌 사회의 인구 과잉과 열악해지는 농촌 경제가 한 원이이었다."(280쪽)

☞1930년대 도시나 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일제의 수탈로 인해 더는 고향에서 살 수 없었다는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⑦"자본주의의 진전은 더욱 정확한 시간관념을 요구하였다.(…)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지속될수록 근대적 시간관념은 한국인에게 점차 수용되어 갔다."(282쪽)

☞'근대적 시간관념'이란 모호한 개념으로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고 있다.

⑧"이에 일제는 곤궁해진 농민을 무마하기 위해 자작농 육성을 목표로 하는 농촌진흥운동을 전개하였다."(270쪽)

☞농촌진흥운동은 춘궁퇴치, 부채 근절 등을 목표로 한 운동으로, 자작농 육성과는 관계가 없다.

⑨일제 강점기 모습 사진

☞일제 강점기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일본 자본과 기술에 의해 세워진 건물, 시설을 주로 실었다. '1930년대 명동 거리'·'충남질소비료공장'(278쪽), '일본 오사카 재벌 아베의 동진농업주식회사가 만들어 간척사업을 벌이는 모습'·'1925년 동진수리조합 상황도'(279쪽), '경성남촌'(280쪽), '수풍 수력발전소의 발전용 튜브 시공'(283쪽), '경성방송국'(284쪽), '조선식산은행'·'미츠코시백화점'(285쪽) 등 주로 일본 자본과 기술에 의해 세워진 건물, 시설을 보여주고 있다.

기초적인 수준의 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단순 오류

①"박헌영 사진" 설명(261쪽)

☞ '1948년 9월 북한의 내각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라고 서술된 부분이 틀렸다. '내각 부수상 겸 외무상'이 바르다.

②"레닌의 피압박 민족의 독립과 해방에 대한 지원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러시아 공산당이 동아시아 지역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하여 지도력을 발휘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서유럽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러시아 공산당이 아니라 코민테른이 지도했다.

③"혁명적 노동 조합 및 농민 조합 운동을 전개하였다", "혁명적 노동·농민 조합을 조직하여"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실수다. 한 문단 안에서 같은 조합을 서술하면서 '노동 조합 및 농민 조합'과 '노동·농민 조합'이라는 다른 표기법을 썼다.

④"이윤재와 최현배 등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조선어연구회(1921)"(266쪽)

☞조선어연구회가 창립될 때 이윤재, 최현배는 회원이 아니었다. 당시 이윤재는 베이징에 있었고 최현배는 직후 교토로 유학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조선어연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실제로 조선어연구회 창립 회원 명단에 두 사람은 들어 있지 않다.

⑤"1920년대 일본군은 북간도의 한인 촌락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전개하여 한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가옥, 교회, 학교 등을 불태우는 간도 참변을 저질렀다."(271쪽)

☞간도 참변은 '1920년대'가 아니라 1920년에 벌어진 사건이다.

⑥"1919년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2·8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1923년 관동 대지진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는 참사를 당하였다. 당시 도쿄,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의 하천 부지 등에 한국인 집단 거주지가 생겼다."(271쪽)

☞2·8 독립운동이라는 말은 없으므로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고 해야 한다.

⑦"1941년 여름에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는 일본내막기를 출간하였고, 그해 실제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였다."(276쪽)

☞277쪽에서는 이 책의 발간이 1941년 초로 되어 있어 학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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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납부' 밝힌 전재국 "해외재산은 없다"

[현장] 서울중앙지검 앞 전두환 장남 기자회견... 취재진 100여 명 몰려

 

13.09.10 14:25l최종 업데이트 13.09.10 18:44l 남소연(newmoon) 유성호(hoyah35) 소중한(extremes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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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국민 사과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에 대한 자진납부 계획을 발표한 뒤 고개숙여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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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 숙여 사과하는 전재국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전재국 전 전두환 대통령 장남이 '전두환 전 대통령 미납추징금 1672억원'에 대한 자진 납부 계획 및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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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징금 이행각서 제출하고 나서는 전재국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미납 추징금에 대한 자진납부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이행각서를 검찰에 제출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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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신: 10일 오후 6시 38분]
전재국, 서울중앙지검 떠나며 "해외 재산은 없다"

"해외 재산은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전 전 대통령 일가 미납 추징금 자진 납부계획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뒤 10일 오후 5시 15분께 청사를 나섰다. 오후 3시 기자회견 후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선 지 약 2시간 만이다. 전씨는 승용차에 오르며 "자진 납부 계획에 해외 재산이 포함돼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여기서 말하는 '해외 재산'은 지난 6월 <뉴스타파>가 보도한 전씨의 '페이퍼 컴퍼니'와 관련된 것이다. <뉴스타파>는 전씨가 2004년 7월 28일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 "(전씨가) 최소한 6년 이상 이 회사를 보유했으며 이와 연결된 해외은행 계좌로 자금을 움직한 정황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뉴스타파>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전씨에게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다만 이날 전씨가 한 "해외 재산은 없다"는 대답이 말 그대로 '해외 재산, 즉 비자금 자체가 없다'는 것인지 '비자금이 아닌 해외 재산은 있지만 추징금 자진 납부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씨는 "해외 재산은 없다"는 말을 한 후 곧바로 승용차 문을 닫았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팀장 김형준 부장검사)은 전씨의 페이퍼 컴퍼니와 관련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전씨는 앞서 기자회견과 같이 "죄송하다", "송구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떠났다.

[2신보강: 10일 오후 5시 35분]
장남 "부친은 당국에 협조하라 했는데 저의 부족함 탓에..."

"제네시스 들어온다!"

한 기자의 외침과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10일 오후 3시께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아래 서울중앙지검) 출입구 앞에 들어섰다. 검은 정장과 구두, 남색 넥타이를 조여 맨 상태였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주름진 미간이 보였다.

약 10초간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은 전씨는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가족 모두를 대표해 사죄드립니다"라며 허리를 숙였다. 이어 전씨는 "부친(전 전 대통령)은 진작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당국의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라는 말을 했다"며 "저의 부족함과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해결이 늦어진 것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씨는 기자들 앞에서 "저희 가족이 그동안 논의 끝에 마련한 주요 납부 재산목록은 다음과 같다"며 추징금 납부 계획을 발표했다. 그가 발표한 내역은 다음과 같다.

▲ 전재국 명의의 서울 서초동 소재 부동산 일체와 연천군 소재 허브빌리지 부동산 일체, 소장 미술품 ▲ 전효선 명의의 경기 안양시 관양동 소재 부동산 일체 ▲ 전재용 명의의 서울 서초동 소재 부동산과 경기 오산시 소재 토지 일체 ▲ 전재만 명의의 서울 한남동 소재 부동산 일체 ▲ 경남 합천군 소재 선산

이밖에도 전씨는 현재 전 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연희동 자택도 환수에 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자녀들은 부모님께서 반평생 거주했던 자택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전씨를 향해 기자들이 "이렇게 되실 것을 그동안 왜 안 냈나", "검찰에서 기자회견을 시켰나"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전씨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서울중앙지검 안으로 들어갔다.

검찰, 전두환 일가 재산 1703억원 확보

전씨 일가가 추징금을 자진납부하기로 함에 따라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팀장 김형준 부장검사)이 이날까지 확보한 전씨 일가의 재산은 부동산과 동산, 금융자산 등을 포함해 모두 1천703억원 상당이다. 이는 부동산에 설정된 근저당채무를 제한 금액이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자회견에서 "검찰은 지난 3개월 동안 특별환수팀을 구성·운영해 전 전 대통령 측의 미납 추징금 집행을 위한 책임재산을 추적했다"며 "그 결과 약 9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압류했고, 오늘 전 전 대통령 측에서 미납 추징금을 자진 납부하기로 함에 따라 총 1703억 원 상당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김형준 특별환수팀장은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의 경우에는 경호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른 주요 자산에 대해 먼저 공매 등을 하는 방법으로 환수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특별환수팀이 발표한 전 전 대통령 미납추징금 1703억원의 확보 내역이다. 이날 전재국씨가 발표한 약 800억원의 재산과 검찰이 그동안 압류한 약 900억원의 재산을 합한 것이다.

▲ 전두환 전 대통령 : 연희동 사저 정원(압류), 이대원 화백 그림(압류) ▲ 이순자 전 전 대통령 부인 : 연희동 사저 본채, 연금보험(압류) ▲ 장남 전재국씨 : 연천 허브빌리지 48필지 전체 및 지상건물(33필지 압류), 서초동 시공사 사옥 2필지, 압수 미술품 554점(압류 예정), 전재국 소장 미술품, 유엔빌리지 매매대금(압류), 북플러스 주식 20만 4천주, 합천군 소재 선산 21만평 ▲ 차남 전재용씨 : 오산 양산동 땅 5필지(압류), 서초동 시공사 사옥 1필지, 이태원동 준아트빌(압류) ▲ 딸 전효선씨 : 안양시 관양도 부지 ▲ 3남 전재만씨 : 한남동 신원플라자 빌딩, 연희동 사저 별채 ▲ 사돈 이희상씨 : 금융자산

특별환수팀은 한국자산관리공사 등과 혐의해 TF팀을 구성, 추징금 집행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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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자진 납부 계획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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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국씨 발언 전문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 드린 데 대해 저희 가족 모두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저희 부친은 진작 저희들이 할 수 있는 한 당국의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라는 말씀을 하셨고, 저희도 그 뜻이 부응하고자 했으나 저의 부족함과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해결이 늦어진 것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이 그동안 논의 끝에 마련한 주요 납부 재산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재국 명의의 서울 서초동 소재 부동산 일체와 연천군 소재 허브빌리지 부동산 일체, 소장 미술품, 전효선 명의의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소재 부동산 일체, 전재용 명의의 서울 서초동 소재 부동산과, 경기도 오산시 소재 토지 일체, 전재만 명의 서울시 한남동 소재 부동산 일체, 경남 합천군 소재 선산 등입니다.

부모님이 현재 살고 계신 연희동 자택도 환수에 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저희 자녀들은 부모님께서 반평생 거주하셨던 자택에서 남은 여생 보내실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 가족 모두는 추징금 완납 시까지 당국의 환수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 되도록 최대한 협력할 것이며 추가 조사에도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가족 모두 대신해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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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훔친 돈..." 질문에 정색하는 전재국 발표 직후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왜 기자회견을 하시죠? 훔친 돈이니 그냥 돌려주시면 안 되나요? 검찰에서 기자회견하라고 하던가요?"라는 질문을 하자 전재국씨가 질문한 기자를 찾으려는 듯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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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추징금' 이행각서 제출하는 전재국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에 대한 자진납부 계획을 발표한 뒤 이행각서를 검찰에 제출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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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10일 오후 2시 25분]
아버지의 빚 1672억, 16년만에 자식들이 갚나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의 자진 납부 계획을 밝히기로 한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아래 서울중앙지검) 앞엔 가는 빗줄기가 떨어졌다.

기자회견 시간은 오후 3시지만 취재진과 중계진은 오전부터 서울중앙지검에 모여들었다. 비가 떨어지자 취재진은 서울중앙지검 출입구 앞 천장 아래로 모여들었고, 방송 중계진도 사전에 차려놓은 천막 아래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취재진, 중계진 모두 합해 100여 명에 이르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씨가 이날 오후 3시께 가족 대표로 추징급 자진 납부 계획과 함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당사자인 전 전 대통령은 건강과 경호 문제로 현장에 참석하지 않는다.

발표 시간은 정해졌지만 장소는 막판까지 '애매'했다. 언론은 이날 기자회견 장소를 '서울중앙지검 앞' 혹은 '서울중앙지검 인근'이라고만 보도했고 정확히 재국씨가 설 위치는 알려지지지 않았다. 실제로 장소는 기자회견 시작 1시간 30분 전인, 오후 1시 30분께가 돼서야 '서울중앙지검 출입구 앞'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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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 취재진 '북적' 전두환 전 대통령측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완납 계획 발표를 앞둔 10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은 현장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으로 북적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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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 도착한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전두환 전 대통령측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완납 계획 발표를 앞둔 10일 오후 서울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 앞은 일부 경호 관계자들만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적막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추석 선물로 보이는 택배가 전 전 대통령의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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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추징금 완납' 발표 기다리는 수많은 취재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미납 추징금 1672억원에 대한 자진납부 계획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수많은 취재기자들이 이를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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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기자회견에서 전씨는 간단한 발언을 한 후 곧장 서울중앙지검에 들어가 구체적인 추징금 납부 계획을 밝힐 계획이다. 이때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검찰 측이 3시 30분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관련 설명을 할 예정이다.

전씨의 서울중앙지검 안에서의 일정은 2~3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씨는 서울중앙지검을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한 답변을 할 계획이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을 판결 받은 전 전 대통령은 현재까지 532억원만 납부해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여론과 함께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에 '전두환 추징금 집행전담팀'이 꾸려지고, 6월 국회에서 '전두환 추징법(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이 처리되면서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는 급물살을 탔다.

7월 16일엔 전 전 대통령 자택에 압류 처분이 내려지고 일가 소유의 회사와 주거지가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검찰의 전 전 대통령 압박이 본격화 됐고, 지난 3일 차남 전재용씨가 소환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검찰의 압박에 전 전 대통령 일가는 9일 변호인을 통해 추징금 공식 납부 의사를 밝혔고 10일 전재국씨가 기자들 앞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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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개성공단 재가동 조건 이견

개성공단 공동위원장단 2차회의, 12시간 넘게 회의 결론 못내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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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10 2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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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개성공단 재가동 조건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남북은 10일 오전 10시부터 12시간 넘게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 14층 회의실에서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단 2차 회의를 열고 있다.

남북은 이번 회의에서 개성공단 재가동 제도적 장치 마련이라는 재가동 조건을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남측은 지난 2일 1차 회의와 4일, 5일 각 산하 분과위원회 회의에서 서해 군 통신선 복구, 개성공단 내 기반시설 완비라는 1차 조건을 내걸었고, 이에 북측이 호응해 기본적인 사안은 해결됐다.

하지만 피해보상, 상사분쟁중재위원회 구성. 출입.체류 보장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이라는 남측의 또다른 개성공단 재가동 전제조건을 놓고 난항을 벌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남북은 개성공단 가동중단에 따른 피해보상에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남북의 이견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측은 개성공단 피해보상으로 남측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게 지금까지 내린 보상에 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 개성공단 전원 철수 당시 북측이 요구한 체불 임금과 세금 등 약 140억원에 대한 미수금 처리 요구에 남측이 응했던 만큼 북측도 상응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남측은 피해보상 방법으로 금전 또는 상응하는 세금 면제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북측은 구체적 답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남북은 상사분쟁중재위원회 구성과 관련, 위원회 구성, 역할 등에 대해서도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일단 남북은 지난 2003년 합의한 '남북상사중재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토대로 내용 추가, 수정 등을 협의하고 있지만 상호 체제와 제도적 차이로 구체적 합의에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웅 남측 공동위원장은 이날 오전회의 모두발언에서 "같은 방향으로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일부 약간의 체제상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런 부분 때문에 소통하는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남북은 출입.체류 부분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남북은 이날 오후 늦게 출입.체류 분과위원회를 열고 논의를 진행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8월 14일 합의할 때 우리 인원에 대한 신변안전을 보장한다고 했지만 포괄적인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 사안이 있다. 우리도 관련부서와 협의가 필요하지만 북한도 그렇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은 이날 2차 회의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조건을 타결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남북은 이날 오전회의와 두 차례 공동위원장 회의, 출입.체류 분과위원회 회의 등을 열었다.

12시간 넘게 마라톤 회의를 열어가는 데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의 안에 대해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다"며 "회의를 깨겠다는 것보다는 뭔가 좋은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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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 전환국면에로 끌려가는 미국

북미관계 전환국면에로 끌려가는 미국
 
한호석의 개벽예감 <78> 현 북미대결전 추이와 향후 전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9/10 [01:07] 최종편집: ⓒ 자주민보
 
 


케리-아베 밀담과 미국의 굴욕적 패배

2013년 4월 15일 오전 11시 30분 일본 도쿄 니가타초(永田町)에 있는 총리관저회의실에서 존 케리(John F. Kerry) 미국 국무장관과 아베 신조(安培晋三) 일본 총리가 회담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존 루스(John V. Roos) 주일미국대사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이 배석하였다. 회담시간이 어느덧 50분을 넘길 무렵, 아베 총리는 자신과 케리 국무장관이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서 배석자들에게 회의실에서 잠시 나가달라고 요청하였다. 느닷없는 퇴실요청을 받은 주일미국대사와 일본 외상이 회의실 밖으로 나간 뒤에 케리-아베 밀담은 7분 동안 이어졌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매우 중요한 문제를 대외비로 논의할 때 밀담이라는 이례적인 회담형식을 취하게 된다. 언론에 알리지 않으려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 외상과 주일미국대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극비의 밀담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케리 국무장관과 아베 총리가 통역을 통해 나눈 밀담시간은 7분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어떤 중요한 의제를 놓고 설왕설래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낼 만한 시간은 아니다.

케리-아베 밀담을 밖에서 지켜본 일본 언론매체들은 케리 국무장관이 미국의 대북협상재개 의사를 전했고, 아베 총리는 미국의 그런 정책전환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을 것이라는 추측보도를 내놓았다. 하지만, 케리 국무장관이 취재진 앞에서 미국의 대북협상재개의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뒤에 두 사람의 밀담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케리 국무장관은 밀담에서 미국의 대북협상재개의사가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기밀사항을 언급하였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다. 케리-아베 밀담에서 케리 국무장관이 언급한 기밀사항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즉답은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아래에 열거한 일련의 정보를 정밀분석하면 밀담내용의 윤곽이 드러난다.

우선 지적하는 것은, 케리 국무장관과 아베 총리가 밀담을 나누기 약 일주일 전인 2013년 4월 초 어느 날 백악관국가안보회의에서 대북협상재개방침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2013년 4월 초 북미관계는 어떤 상황에 있었던가? 북과 미국의 무력충돌위기는 2013년 3월 중순부터 더욱 격화되었고, 4월 초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미증유의 대폭발로 치닫고 있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과 미국의 대북전쟁을 피할 수 없는 전쟁재발상황에 바짝 근접하였던 것이다.

 
▲ 미주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 ©자주민보
당시 폭발 일보 직전의 전쟁재발상황을 시간대별로 정리하면, 2013년 3월 28일 국가급 군사훈련 중이던 인민군은 동해와 서해 최남단수역까지 남진하여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해상기동훈련과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하였고, 3월 29일 0시 30분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긴급 소집한 전략로케트군 작전회의에서 “미제와 총결산할 때가 도래하였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고 인정”하고, “전략로케트군의 화력타격계획을 검토하시고 최종 비준”하였으며, 3월 30일 오전 북측 정부, 정당, 단체가 합동으로 발표한 특별성명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판가리결전의 최후시각은 왔다”고 지적하고 “이 시각부터 북남관계는 전시상황에 들어”간다고 천명함으로써 전시상황선포를 단행하였고, 4월 3일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화성-10 중거리핵타격미사일 2기와 대함미사일 7기를 동해안으로 이동시켜 즉각 발사할 사격태세를 갖추었고, 4월 4일 오전 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담화를 통해 “우리 혁명무력의 무자비한 작전이 최종적으로 검토, 비준된 상태에 있음을 정식으로 백악관과 펜타곤에 통고한다”고 하면서 미국에게 최후통첩을 보냈으며, 4월 5일 북측 외무성은 평양 주재 외국공관들에게 미사일 발사가 4월 10일에 예정되었으므로 긴급대피를 준비하라고 요구하였으며, 4월 9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대변인담화를 통해 남측에 체류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소개 및 대피를 하라고 통보하였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2013년 4월 초 인민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작전지시에 따라 ‘조국통일반미대전’ 총공격준비를 완료하고 대기 중이었고, 실제로 6축 12륜 자행발사대에 탑재한 화성-10 중거리핵타격미사일 2기와 대함미사일 7기를 각각 타격목표들을 향해 조준하고 발사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작전계획대로 화성-10 중거리핵타격미사일 2기를 발사하였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던 미국군은 그 2기의 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해 동해에 전진배치한 이지스구축함 2척에서 요격미사일을 마구 쏘았을 것이며,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은 미국군이 요격미사일을 쏜 이지스구축함 2척을 강력한 대함미사일 7기로 기습타격하여 격침시켰을 것이다. 이러한 미사일교전은 북미전쟁의 대폭발을 의미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북의 표현을 빌리면, 2013년 4월 10일은 ‘조국통일반미대전’이 시작되는 ‘최후결전의 첫째 날’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백악관국가안보회의는 2013년 4월 10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동안 전쟁이냐 협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벼랑끝으로 시시각각 떠밀리며 극도의 긴장과 공포에 빠져 들어갔다. 2013년 4월 15일에 있었던 케리-아베 밀담은 전쟁이냐 협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몰린 백악관국가안보회의가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이 두려워 황급히 대북협상의 길을 택하였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례다. 전쟁이냐 협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몰린 백악관국가안보회의가 대북협상의 길을 택한 것은, 미국이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 결전태세 앞에서 굴욕적으로 패했음을 의미한다. 왜 굴욕적으로 패했다는 표현을 쓰게 되는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미국군 군사훈련을 중지한 미국군 수뇌부의 다급한 후퇴행동, 그리고 당시 대북협상재개방침으로 전환한 백악관국가안보회의의 다급한 후퇴행동에서 패배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미국의 패배를 말해주는 위의 두 가지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굴욕적인 패배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2013년 4월 12일 케리 국무장관은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외교장관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몇 개의 군사훈련을 취소해 긴장완화에 기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건국한 이래 237년 역사에서 다른 나라와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맞서는 긴박한 대결상황에서 자국군 군사훈련 몇 개를 한꺼번에 중지하고 황망히 후퇴한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이변 중의 이변이다. 미국이 그처럼 상상하기 힘든 사상 초유의 후퇴를 2013년 4월 초에 실제로 행동에 옮겼으니, 어찌 미국의 굴욕적 패배라 아니할 수 있으랴!

미국의 굴욕적 패배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2013년 4월 11일 버락 오바마(Bar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난 뒤에 “누구도 한반도에서 분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는 이런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북미관계의 심층정보를 알지 못한 언론매체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그 발언을 건성으로 듣고 넘겼지만, 그 짤막한 발언은 그 동안 어떤 형태의 대북협상도 극력 거부해오며 북을 자극해온 백악관국가안보회의가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 결전태세 앞에서 기가 꺾여 대북협상을 재개하겠다고 하면서 정책방향을 180도로 전환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니, 어찌 미국의 굴욕적 패배라 아니할 수 있으랴!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의 4월 18일 성명과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의 2014년도 전략목표

미국은 자국군 군사훈련 몇 개를 중지하면서 대북협상을 재개하기로 하였다는 사실을 2013년 4월 10일 이전에 북에게 시급히 알려야 하였다. 그렇게 하여야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화성-10 중거리핵타격미사일 2기를 발사하려는 것을 중지시킬 수 있으리라고 타산하였던 것이다. 백악관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이 대북정책을 전환하였다는 사실을 어느 경로로 북에 알렸을까? 2013년 3월 20일 미국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한반도정세가 최악의 긴장상태에 빠진 당시에도 미국은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조선대표부를 통해 “미국의 입장을 북한에 직접 전달하고 있다”고 취재기자들에게 말했는데, 백악관국가안보회의는 바로 그 ‘뉴욕통로’를 통해 자기들의 대북정책을 전환하였다는 사실을 북에 알린 것으로 보인다.

‘뉴욕통로’를 통해 백악관국가안보회의의 대북정책 전환에 관해 알게 된 북측 국방위원회는 2013년 4월 18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에서 “사태의 심각성에 급해맞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지난 4월 11일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그 무슨 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적인 사태수습의사를 밝혔다고 한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이)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바란다면 다음과 같은 실천적인 조치를 취하는 용단부터 내려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북측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성명을 통해 미국에게 요구한 세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열거하면, 대북도발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북에게 사죄할 것, 핵전쟁연습을 영구히 중단하겠다는 것을 세계 앞에 정식으로 담보할 것, 남측과 그 주변지역에 전진배치한 핵전쟁수단을 전면 철수하고 재투입시도를 단념할 결단을 내릴 것 등이다.

누가 보더라도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조치는 세계의 면전에서 북에게 무릎을 꿇으라는 항복요구이므로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북의 ‘조국통일반미대전’ 결전태세를 보고 질겁한 미국이 대북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전향적 의사를 북에게 전하는 굴욕을 겪었지만, 북측 국방위원회가 요구한 대로 무릎을 꿇고 항복할 만큼 치명적으로 패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은 북의 항복요구를 듣고서도 반론 한 마디 꺼내놓지 못한 채 듣지 못한 척하고 넘어갔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미국에게 보낸 항복요구는, 북이 반미대결전에서 ‘최후 승리’를 이룩하는 날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항복문서에 들어갈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북은 반미대결전에서 달성하려는 최종 목표를 미국에게 미리 공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반미대결전에서 이길 것이라는 확신에 찬 승리자의 모습을 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백악관국가안보회의는 대북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전향적 의사를 북에게 알려주면서 위기상황에서 간신히 벗어나기는 했지만, 막상 대북협상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동아일보> 2013년 8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 4월 29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한반도전문가 5명을 백악관에 불러 1시간 20분 동안 담화하면서 미국의 대북협상재개에 관해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3년 4월 초 북미대결전의 승리와 패배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조언 같은 것을 들어보려고 시도한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이 전해준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3년 5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가 2013년 5월 중순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미국 및 국제질서에 대한 위협 차단’이라는 제목의 제1전략목표가 명시되었는데, “북의 국제적 지위개선과 관련해 북과 논의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항목이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의 전략목표로 설정되었다고 한다. 이 전략목표는 국무부가 2014회계년도에 해당하는 2013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년 기간에 달성하려는 목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무부가 위의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할 무렵인 2013년 5월 15일에 대니얼 러셀(Daniel R. Russel) 백악관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로 전보발령하였다. 미국 국무부가 동아시아태평양국의 2014년도 전략목표에 대북협상추진을 명시한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한 것과 거의 동시에 미국 대통령이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를 임명한 것은 미국이 2013년 10월부터 대북협상에 나서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아사히신붕> 2013년 6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과 고위급회담을 시작할 예정이며, 글린 데비이스(Glyn T. Davies)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제3국에서 만나는 회담방식이 유력하게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2013년 9월 5일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는 취임 후 처음으로 시작한 동아시아 순방일정에 따라 먼저 서울을 방문하였다. 그는 9월 14일까지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을 방문하게 되는데,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동아시아태평양국의 2014년도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전준비행동으로 보인다.


북의 대중특사파견과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 제안

2013년 5월 22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자신의 특사로 중국 베이징에 파견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특사를 파견한 목적은 북이 구상한 대미협상방도를 중국에게 알려주고, 더 나아가서 북의 새로운 협상방도를 중국을 통해 미국에게도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북이 구상한 대미협상방도는 무엇이며, 그 방도를 전달받은 중국은 미국에게 어떤 경로로 그것을 전달하였을까? 이 중요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아래에 서술한 여러 정보들을 정밀분석할 필요가 있다.

<중국통신사> 2013년 5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최룡해 특사는 중국방문 둘째날인 5월 23일 인민대회당에서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회담하면서 “중국이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조선반도 문제를 대화와 협상의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크게 노력하는 것에 감사한다”고 하면서 “조선은 중국의 그런 노력을 받아들여 각국이 대화의 길을 열어놓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신화통신> 2013년 5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최룡해 특사는 5월 24일 오전 판창룽(范長龍)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만나 회담하면서 “관련국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견해를 피력”하였고, 같은 날 오후 최룡해 특사는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하고 “관련국들과 공동으로 노력하여 6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최룡해 특사가 중국 수뇌부와 연속적으로 회담하면서 남긴 발언내용이다. 그는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 판창룽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각각 회담하면서 6자회담이라는 말을 전혀 꺼내지 않고, 대화와 협상이라는 말만 하였다. <신화통신>은 최룡해 특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6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하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서술하였지만, 그런 식의 서술은 6자회담 재개를 바라는 중국 수뇌부의 의사에 부합되게 윤색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최룡해-시진핑 회담에서 최룡해 특사는 6자회담이라는 특정단어를 꺼내지 않은 채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말하였을 뿐인데, 6자회담 재개를 바라는 중국 언론매체가 “6자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이라는 표현으로 윤색하여 서술한 것이다. 반면에, 북측 언론매체들은 최룡해 특사의 방중활동을 신속히 보도하면서도 6자회담이라는 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북은 6자회담이 영구히 끝났다고 오래 전에 선언하였고, 올해에 들어와서는 핵건설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하여 법제화까지 완료하였으므로, 북이 6자회담 재개를 이제 와서 언급할 아무런 이유도 필요도 없다.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것이 아니라면, 북이 구상한 대미협상은 어떤 것일까? 이 난해한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최룡해-시진핑 회담 이후 23일 지난 2013년 6월 16일 남측 언론보도에서 발견되었다. 2013년 6월 초순 중국을 방문한 남측 전문가들과 군부인사들이 중국의 “권위 있는” 군부인사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최룡해-시진핑 회담에서 최룡해 특사는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북이 중국에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였다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그 보도기사는 명백한 오보다. 민족적 자존심과 국가적 자주성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북은 다른 나라에게 자기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청원하는 저자세외교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북에게 있어서 핵보유국 지위는 다른 나라에게서 인정받는 게 아니라 북이 제3차 핵실험을 통해 자기의 핵능력을 시위한 것으로 획득한 것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최룡해 특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청원한 것이 아니라, 북의 핵보유국 지위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에 관해 언급한 것으로 해석해야 이치에 맞는다.

북의 핵보유국 지위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최룡해 특사가 중국을 방문하기 한 달 전인 2013년 4월 20일 <로동신문>이 “앞으로 우리와 미국 사이에 군축을 위한 회담은 있어도 비핵화와 관련된 회담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서술한 문장에 들어있는 군축회담이다. 다시 말해서, 최룡해 특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고위급 군축회담에 관해 언급한 것이다.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서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룡해 특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달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에도 고위급 군축회담에 관한 의사가 표명된 것으로 보인다.

북이 구상한 고위급 군축회담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려면, 2013년 6월 16일 북측 국방위윈회가 발표한 대변인 중대담화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중대담화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다음과 같은 중대립장을 내외에 밝힌다”고 하면서,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와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여야 할 정책적 과제”로 설정하고, “조미당국 사이에 고위급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중대담화는 “조미당국 사이의 고위급회담에서는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 없는 세계 건설>문제를 포함하여 쌍방이 원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폭넓고 진지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은 북이 한반도 군축,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한반도 비핵화는 물론이고 세계의 비핵화까지 포괄하는 의제를 논의할 고위급 군축회담을 미국에게 공식 제안한 것이다.

북은 이처럼 고위급 군축회담을 미국에게 제안하는 한편, 고위급 군축회담 문제를 놓고 중국과 의견을 조율한 뒤에 그것을 중국을 통해 미국에게 제안하였다. <중국신문사전> 2013년 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2013년 8월 19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창완취안(常万全) 중국 국방부장을 수행한 중국 국방부 외사변실주임이 밝힌 것처럼, 창완취안 국방부장은 미국 고위관리들을 만난 자리에서 “조선의 지도자가 관계국과의 대화의향을 밝히고 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와 창구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측에게 “걸림돌과 조건 없이 대화에 응하라”고 촉구하였다. <중국신문망> 2013년 8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8월 19일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창완취안 국방부장은 수전 라이스(Susan E. Rice)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과 회담하면서 “3자회담 또는 4자회담을 조건 없이 진행하기를 바란다는 조선의 지도자의 뜻을 미국에 전달하였다”.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을 앞두고 나타난 몇 가지 움직임

위의 서술내용을 읽어보면, 북은 6.16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담화를 통해 북과 미국의 양자회담을 미국에게 제안하는 한편, 8.19 중국 국방부장의 방미활동을 통해 3자회담 또는 4자회담도 미국에게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두 종류의 제안이 나온 것은, 북과 중국이 2013년 6월 16일부터 8월 19일까지 두 달 동안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방안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였음을 말해준다. 언론에 보도된 북과 중국의 의견조율과정은 아래와 같다.

2013년 6월 19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단장으로 한 북측 정부대표단은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고 장예쑤이(張業遂) 중국외교부 상무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중국 측 정부대표단과 전략대화를 진행하였다. 북중관계에서 ‘전략대화’라는 공식명칭으로 진행하는 회담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북과 중국의 의견조율은 전략대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2013년 8월 26일부터 8월 30일까지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하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회담하였다. 김계관-우다웨이 회담에서 무엇을 논의하였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형식의 대미협상방안을 놓고 북과 중국이 의견을 조율하며 실무준비를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실무준비에는 새로운 형식의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대화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당연히 포함된다.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현재, 대화분위기 조성은 두 갈래로 추진되고 있다.

첫째, 이전에 대화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북과 미국은 북을 관광하는 외국인을 안내하는 관광여행업에 종사하던 중에 미국 국가정보기관에 포섭되어 불법첩보활동을 벌이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중형을 받은 미국 국적의 범법자를 사면하여 미국에게 송환하는 조치를 추진하게 되었다.

2013년 8월 30일은 로벗 킹(Robert R. King) 미국 국무부 대북인권특사가 위에서 말한 범법자를 송환하기 위해 방북하려고 하였던 날이었고, 동시에 미국군이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2013년 8월 20일부터 실시한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런데 로벗 킹 국무부 대북인권특사가 방북하기 직전, 북은 그의 방북초청을 철회하였다. 2013년 8월 31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B-52H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켜 폭격훈련을 연속적으로 실시하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였기 때문에 그의 방북초청을 철회하였다고 밝혔다.

미국이 B-52H 전략폭격기를 언제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켰는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지만, 2013년 8월 29일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가 대변인담화에서 B-52H 전략폭격기 출몰사건을 폭로한 바 있다. 2013년 8월 15일 괌(Guam)의 앤더슨공군기지(Anderson AFB)에서 이륙한 B-52H 전략폭격기 2대가 밤중에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에 있는 직도폭격장 상공에 출몰하여 야간폭격훈련을 실시하였고, ‘을지프리덤가디언’을 시작한 다음날인 8월 21일에는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52H 전략폭격기 2대가 대낮에 또 다시 직도폭격장 상공에 출몰하여 폭격훈련을 실시하였고, 8월 27일에는 미국 본토 마이너트공군기지(Minot AFB)에서 이륙한 B-52H 전략폭격기 2대가 대륙간 장거리비행 끝에 직도폭격장 상공에 출몰하여 폭격훈련을 실시하고 괌으로 돌아갔다.

직도폭격장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서남쪽으로 63km 떨어진 수역에 있는 무인도다. 미국 본토에 있는 전략폭격기발진기지 두 곳 중의 한 곳인 마이너트공군기지는 미국 본토 노스대코다(North Dakoda)주에 있는데, 미국 공군 지구타격사령부(Global Strike Command) 예하 제5폭격비행단의 제23폭격비행대대와 제69폭격비행대대가 그 기지에서 B-52H 전략폭격기를 운용하고 있다. 괌에 있는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직도폭격장까지 직선거리는 3,100km이고, 노스대코다주의 마이너트공군기지에서 직도폭격장까지 직선거리는 9,540km다.

미국에게 고위급 군축회담을 공식 제안한 북은 미국이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감행한 것까지는 참았지만, 전략폭격기를 연속적으로 동원하여 북을 겨냥한 장거리공중핵타격연습을 감행한 것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었으므로,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의 방북초청을 전격 철회한 것이다.

<미국의 소리> 2013년 9월 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를 다시 초청해주면 좋겠다고 북에게 요청하였다. 북은 미국의 그러한 요청을 머지않아 받아줌으로써 대화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예견된다.

둘째, <자유아시아방송>과 <CBS노컷뉴스> 2013년 9월 5일 보도를 종합하면, 중국은 6자회담 수석대표들과 관련국 전문가들이 함께 참석하는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를 6자회담 개최 10주년과 9.19 공동성명 발표 8주년에 즈음하여 9월 18일 베이징에서 중국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주최로 개최하자고 제안하였다. 이것은 대화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중국이 북과 의견을 조율하여 추진하는 사전조치다.

북은 중국이 제안한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참석할 것이라고 즉각 응답하였지만, 미국은 응답하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다. 미국이 참석응답을 주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으므로, 미국을 추종하는 남측과 일본도 덩달아 미적거릴 수밖에 없다. 북이 로벗 킹 대북인권특사의 방북을 허락하면, 미국도 반관반민 형식의 토론회에 참석하겠다고 응답할 것으로 예견된다. 2013년 9월 6일 벤 로즈(Ben Rhodes) 백악관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협상재개문제에 관한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런 예상은 없다”고 시치미를 뗐지만, 최근 북미관계의 변화상황을 바라보면 전환국면에로 끌려가는 미국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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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프로젝트>, 진실 알고 나니 화가 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9/10 19:10
  • 수정일
    2013/09/10 19: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게릴라칼럼] 75분 다큐멘터리가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

13.09.09 15:01l최종 업데이트 13.09.09 17:22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감독 백승우)는 다큐멘터리다. 분량도 75분이라 극장보다는 TV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방송되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이는 그런 작품이다. 이런 시사적인 다큐멘터리를 공중파 TV가 아니라 영화관에서, 그것도 극히 일부의 제한된 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 우리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척 씁쓸하다.

천안함 사건은 21세기 들어서 대한민국이 겪은 가장 충격적인 비극 가운데 하나임에도 그 진상을 둘러싼 논란이 첨예하게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합동조사단(합조단)은 북한의 버블제트 어뢰가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관련기사: "천안함, '선거용 친위쿠데타' 아니라면 답하라"
"가시지 않는 천안함 궁금증...이건 정말 이상하다"

합조단 결과 발표, 왜 신뢰받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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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 아우라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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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혹은 사실 전방위적이어서 합조단이 발표한 공식 결과 가운데 천안함이 2010년 3월26일에 침몰했다는 사실 말고는 거의 모든 대목에 걸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공식 조사단의 결과가 이렇게 신뢰받지 못하는 일도 매우 드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그러한 의혹들을 요약정리한 다큐멘터리다. '요약정리'이기 떄문에 제기된 모든 의혹을 다루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 모든 의혹을 다 다루었다면 상영시간은 두 시간을 훌쩍 넘겼을 것이다. 예를 들면 숨진 장병들의 시신 상태, 생존자들의 외상 정도, 물기둥, 어뢰파편, 물고기 사체 등과 관련된 의혹들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주로 다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뢰 폭발이 아닌 좌초나 잠수함과의 충돌에 의해서도 천안함의 침몰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천안함 함정과 사고 해역에 남겨진 사고의 흔적들, 사건 초기 이른바 '제3의 부표' 및 TOD(열영상관측장비) 영상을 토대로 재구성한 결과이다.

달군 쇠몽둥이를 바닷물에 넣고 TOD로 촬영한 실험도 흥미로웠다. 이에 따르면 300여 도씨 정도로 가열한 쇠몽둥이를 바닷물에 넣고 TOD로 촬영했더니 그 주변의 바닷물 온도가 조금 올라간 것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문제는 두 동강난 직후의 천안함을 찍은 TOD 영상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천안함이 어뢰폭발로 침몰했다면 왜 TOD 영상에 그 열흔이 보이지 않느냐는 주장은 사건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된 의혹이었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다른 한 축은 현재 진행 중인 천안함 관련 재판 내용이다. 초기 천안함 진상조사 합동조사위원이기도 했던 신상철은 군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려면 그와 관련된 내용의 진실성을 우선 따져야 하기 때문에, 이 사건이 천안함 침몰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사법부의 일차적인 판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프로젝트>에서는 이 재판 과정의 일부를 재연 형식으로 보여준다.

일부 재연이기 때문에 실제 재판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감독의 편집에 의한 왜곡은 없는지 등을 판단할 길은 없다. (아마 그런 대목이 있다면 이후 군 당국 등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보여 준 재판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천안함의 함수가 사건 다음날인 2010년 3월27일 오후까지 완전 침몰하지 않고 수면 위로 조금이긴 하지만 계속 떠 있었음에도 군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군은 해당 위치의 좌표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육안으로도 그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함수를 수색하거나 인양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었는지를 증언대에 선 군 관계자들로부터 전혀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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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몰 전의 천안함 함수 천안함의 함수는 사고 다음날인 3월27일 오후 1시30여 분까지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 옹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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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재연방식이긴 했지만, 나는 그 재판과정을 보면서 왜 군 당국이 사전에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지 이해할 만했다. 아마도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라면, 대한민국 군대가 정말 저런 식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국방비에 들어가는 돈은 연간 30조원이 넘는다. 그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군대에서 눈에 빤히 보이는 함수 하나 제대로 건지지도 못하고 법정에서도 책임회피에만 급급하는 모습이라니, 46명의 장병 목숨을 잃은 사고 책임자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아주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함미 탐색과 인양에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틀)이 걸렸는가 하는 점도 천안함 사건에 무척 중요하다. 함미에는 숨진 46명의 장병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함미의 위치를 처음 확인한 것은 사고 이틀 뒤인 3월28일 오후였고 그나마도 그것을 발견한 주인공은 수색에 협조한 어선의 250만 원짜리 어군탐지기였다. 조그만 어선이 불과 세 시간 정도의 수색으로 찾을 수 있었던 군함의 반쪽을 대한민국 해군이 근 이틀 동안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게다가 당시 천안함 함미의 위치파악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였다. 이 대목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야 할 사안이다.

사상검증의 리트머스로 악용된 천안함 사건

천안함 사건은 이 사건 자체의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그 뒤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천안함 사건은 한국에서 사실상 사상검증의 리트머스로 악용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또는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 십중팔구는 "너 종북이지?" 하는 붉은 딱지가 발급된다.

천안함과 전혀 상관없는 토론을 하다가도 불쑥 "당신은 천안함이 북한 소행임을 인정합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리트머스는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토론을 무력화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 '나는 단지 합조단의 결과발표를 신뢰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름의 상당한 이유가 있다'라는 식의 주장은 사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흔하게 접할 수 있고 또 받아들여지지만 천안함 사건에서만큼은 예외이다.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합조단의 주장은 거의 모두가 의심스럽다. 이것이 잘못된 것인가? 내가 의식적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의혹, 그것이 사실일 리가 없잖아 하는 인간 본원의 의혹과 호기심이 그렇게 큰 죄란 말인가?

이런 항변이 국가에 무슨 큰 죄를 짓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정신적인 테러행위에 다름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야당이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를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낙마시켰고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개봉관에서 상영중지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야기했다. 천안함에 대해 이렇게까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혹시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거기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춰 억지로 강요하려 드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생긴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경우 앞서 그 내용을 소개했던 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왜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내용도 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개탄하는 마음이 앞선다. 오히려 천안함 관련 재판에서 새로 나오는 내용들은 크게 보도되지도 않았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하면 참 이상하지 않은가?

'일부단체'의 협박 때문에 영화를 내렸다는 메가박스의 변명도 구차해 보인다. 관람객의 안전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정도의 협박을 받았다면, 경찰에 신고해서 그 협박범을 잡는 것이 상식 아닌가?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치안과 질서가 엉망이 되어 버렸나? 혹시 천안함에 대해 의혹을 가진 국민은 '일부 단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메가박스 상영중단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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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프로젝트>를 보기 위해 7일 광화문 인디스페이스를 찾은 관객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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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이미 시작되었다."

메가박스의 상영중단 소식이 전해지던 날 어느 누리꾼은 이렇게 말했다.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심이 종북으로 몰리고,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신변의 위협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이라면, 그래, 파시즘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천안함의 진실이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큐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보면 된다. 이왕이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 더 좋겠다. 다만, 천안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이 75분짜리 필름 속에 있지 않다. 사고 원인도 사건처리 과정도 뭐 하나 속 시원하게 새로이 드러난 것이 없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군 당국 때문이고, 여타의 합리적인 문제제기조차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마녀사냥에 여념이 없는 정권과 언론 때문이다.

대신 <천안함 프로젝트>는 또 다른 진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천안함 사건에서 "진실이 빠져 있다는 진실"과 "진실을 갈구하는 것이 죄가 되는 진실"을 고발한다. 이 또 다른 진실은 필름 속에 있기도 하지만 필름밖에서도 볼 수가 있다. 갑자기 줄어든 상영관 때문에 예매에 곤란을 겪는 순간부터 혹시나 '일부단체'가 해코지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엄습하는 순간, 천안함의 또 다른 진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영화를 본 뒤 그 취지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거나 글을 남길 때,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의 경우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멈칫거리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에도 천안함의 숨겨진 진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약간의 수고로움과 약간의 용기를 발휘하지 않는다면 '이미 시작된 파시즘'은 머지않아 수많은 목숨을 내걸어도 막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 불행했던 경험이 우리에겐 이미 있지 않은가. 다행히 아직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는 듯하다. 75분짜리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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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3차 공판에서 드러난 국정원의 시대착오적 인식

국정원 댓글 활동 피해, "전시 민간인 사살" 비유 논란

[국정원 개혁] 원세훈 3차 공판에서 드러난 국정원의 시대착오적 인식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09 오후 5:33:22

 

 

"군으로 치면 군에서 적을 제압하라고 하면서 민간인을 사살하지 말라고 해도 군인이 현장에 가보면 적군과 민간인 구분이 곤란한 상황이 있고, 적군과 민간인을 구분하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민간인 피해가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개별적 이슈에 대해서 정치적 오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이 넓은 의미에서 종북좌파 척결에 대한 지시에 따라 직원들이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면 된다."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같이 진술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국정원 조직을 활용해 대선 및 정치 개입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푸른 수의를 입고 피고인 석에 앉아 있었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합참 민군심리전부장을 역임한 군인 출신 이 전 차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증인대에 섰다. 그는 검찰에 의해 기소 유예 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이날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원 전 원장과 국정원의 정치 및 대선 개입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의견을 수차례 제시했다.

특히 이 전 차장이 '종북 세력'을 겨냥한 심리전 차원에서 생긴 피해자를 전시에 적과 구분 못해 사살할 수밖에 없는 민간인에 비유한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는 '민간인을 적시해서 사살하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원 전 원장의 수많은 정치 및 대선 개입성 발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개입하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모순투성이 논리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종북과 야당 구분하는 가이드라인 없어"…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

이날 공판은 지금 '국정원 개혁'이 얼마나 절실한지 보여주고 있다. 이 전 차장의 증언 내용을 종합해보면, 국정원은 종북 세력에 대한 규정 없이 무차별적으로 '댓글' 작업을 해왔다. 검사 측이 "북한의 입장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야당의 입장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 전 차장은 "없다"고 답했다.

"종북세력에 대응한다 해도 예민한 이슈에 접근하려면 내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고, 명확한 업무수행을 위해서라도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검사 측 심문이 이어졌지만 이 전 차장은 "그런 것(가이드라인)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저희들의 활동이 그런 것을 (정치인이나 정당 비판 등을) 특정하거나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검사 측은 "국정원의 댓글 활동은 일종의 공권력 행사인데,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는 것이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같은 공방은 몇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한다. 특히 국정원이 정부 정책에 비판하는 목소리에 별다른 근거 없이 '종북' 딱지를 붙여왔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이 전 차장이 내놓은 '전시 민간인 사살'의 비유와도 맞아 떨어지는 논리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정부 비판 세력을 종북 세력으로 상정한 근거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 전 차장은 "(원세훈 전) 원장이 (북한의) 선전 선동 실체를 보고받으셨고 저 또한 그런 보고를 받다보니 일반인이 생각하는 부분과 다른, 그런 부분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그런 것으로부터 (댓글 활동의 목표 등이) 기인했다고 생각하지, 지나치게 정치권과 관련된 대응 활동을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이 모종의 보고를 받았으니, 정부 정책 비판 세력과 종북 세력의 '교집합'을 인지했고, 이에 대해 국정원 직원들이 '심리전' 활동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모종의 보고'와 관련해 이 전 차장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도 못했다. 그저 '나보다 원 전 원장이 보고를 더 많이 받지 않겠느냐'는 식의 추정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전 차장의 비유에 따르면 '민간인 사살'의 피해는 일부 정치인들도 봤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전 대선후보를 적시해 그들의 정책을 비판하는 댓글 등을 단 국정원 직원의 행위와 관련해 이 전 차장은 "특정한 정치인을 (직원들이 댓글 활동을 통해) 거명한 것은 안타깝다"거나 "예를 드는 과정에서 한 말"이라고 일부 문제점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정치 개입'이나 '선거 개입'은 아니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검찰 측은 원 전 원장의 '정부 정책 홍보' 지시 등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이 4대강 사업을 옹호하고, 4대강 사업 비판 세력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게 된 것을 언급하며 "4대강 사업은 민주당 등 야당과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에서 계속 반대하고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고 특히 (국정원 직원의) 글의 게시 시기가 19대 총선 직전으로 4대강 사업이 총선 이슈로 떠오른 상황이었는데 북한 지령에 따라 종북세력이 폄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리는게 아니라 4대강 사업 성과를 홍보하는 글을 게시하란 지시가 내려왔다면 결국 4대강 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야당을 비판하라는 지시가 아니냐"고 거듭 심문했다.

이 전 차장은 "그런 활동의 근거가 된 것이 사회단체라든가 야당의 언행이 있어서 활동했다고 추정하긴 어렵다. 그것과 별개로 북한의 대남 선전 선동에 대응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차장은 "그런 것에 대해 (종북과 야당을) 식별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받아들이지만 후자(의도적으로 야당을 비판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식)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현령비현령(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공판이었다. '이명박 국정원'의 핵심 요직에 있던 인사가 이같은 인식을 토대로 '심리전단'을 운영해왔다면 그 자체로 큰 문제다. 이는 국정원 국내 정치 파트 해체가 얼마나 필요한지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이 전 차장은 상당 부분에서 "정치 개입은 아니다"라고 답했고, 불리한 질문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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