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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 에 보여지는 정국 기상도

 
박大統領, 통합이란 말을 알기나 할까?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 에 보여지는 정국 기상도
 
임두만 | 2015-05-26 09:39:4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화해와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 말의 앞에 붙은 수사는 “사랑도 지혜도, 행복도 모두 내 안에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면서”다. 2015년 5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한 말이다.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서 여야 대표 등 정치인이 합장하고 있다. © 신문고뉴스 

앞서 우리사회는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있었다. 먼저는 광주의 5,18 35주년 기념식을 지나며 있었던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보훈처는 ‘광주정신’이 담긴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식 제창을 금지하므로 정부주관 기념식과 5.18 당사자 주관 기념식으로 이원화되어 열렸다.

이날 정부주관 기념식에서 성악가와 합창단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여야 대표, 국회의장, 그리고 많은 국회의원들은 따라서 불렀으니 유독 기념식을 주관한 정부대표인 최경환 총리대행과 박승춘 보훈처장은 입술을 앙다물고 버텼다.

 

 

‘우리 사회가 화해와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는 대통령 정부의 각료들이 정작 회해와 통합은 관심없고 본인들의 이념에 충실한 극명한 편가르기 현장이었다.

특히 박승춘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노래”라고 주장했다. 5.18이 국가 기념일이 되면서 전혀 문제가 없던 노래이며, 전국민적 추모가로 자리를 잡은 노래인데 자신들 잣대로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정부여당의 방침 때문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전야제 행사에 참석하려 했으나 불청객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통합과는 정 반대의 현상이다.

23일 김해 봉하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노무현 6주기 추모식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앞에 두고 “‘전직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면서 피를 토하듯 대화록을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면서 반어법을 쓰며 조롱하듯 비판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해하지 말라. 사과나 반성, 그런 것은 필요없다”며 화해와 통합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면서 “제발 나라 생각을 좀 하라”라고 질타했다.

이 두 가지 사안은 지금 나라가 온통 편가르기에 집중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 편가르기 현상은 좀처럼 치유될 수 없는 고질병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인터넷 어디를 보던 양측은 서로 자신들이 잘했으며 상대방이 나쁘다고 죽일 것처럼 대치하고 있다.

따라서 자비와 평화를 말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우리 사회가 화해와 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본인은 화해와 통합과는 거리가 먼 길로 가고 있다. 뼛속까지 공안검사라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그의 행위에서 화해와 통합이란 이미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유체이탈 사고의 대통령을 가진 것이 우리다.

황 후보자는 공직자로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강연을 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복해서 ‘김대중씨’라고 호칭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투신 사건’이라고 불렀다. 이런 언어구사력을 보면 그는 자신의 승진누락에 대해 원한이 깊어 공직에 있으면서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게 한다. 국가나 조직보다 개인과 종교가 우선인 사람이다. 그런 이를 국민통합을 이끌어야 할 총리로 지명했다.

지난 23일 미디어오늘은 황교안 장관이 이슬람권인 아프가니스탄을 ‘영적으로 죽은 나라’로 폄훼하고 샘물교회 신도들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치켜세웠다고 보도했다. 즉 황교안 후보자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기독교인은 7000명(전체 인구의 0.03%)에 불과하다, 영적으로도 죽은 나라”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당시 황교안 후보자는 아프가니스탄을 “주님의 복음이 절대로 필요한 나라”로 규정하고 “그들은(샘물교회 신도)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들을 정말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땅에 갔던 것”이라고 한 뒤 “최고의 선교는 언제나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선교에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선교 방식에 대해서도 옹호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대리하여 외교현장에도 수시로 나가야 하는 국가 지도자다. 지금 지구촌은 무슬림 인구를 15억 명으로 추정한다. 60억 인구의 1/4이다. 거의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와 우리는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오일머니를 쥐고 있는 중동의 무슬림 국가는 우리의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국무총리가 무슬림 국가를 영적으로 죽은 나라, 주님의 복음이 필요한 나라라고 규정, 종교적 신념에 의한 ‘악의 국가’ 정도로 보고 있다면 외교는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화해와 통합은 나라 안에서도 필요하지만 나라 밖에서 더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황 후보자의 지명에서 보듯 입으로는 화해와 통합을 말하고 행동으로는 ‘내맘대로’다.

그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지금 우리는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 재도약과 국가 혁신을 이뤄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한 뒤 “저는 불교계와 불자 여러분께서 함께 뜻을 모으고 노력해주실 때 우리 모두가 꿈꾸는 희망의 새 시대가 열릴 것으로 믿는다”면서 “부처님께서 주신 자비와 평화, 겸손과 화해의 가르침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밝은 미래로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원력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그 말을 듣는 불자들이 과연 이런 대통령의 말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을까? 또 지구촌의 무슬림 국가들은 이런 박 대통령의 말에 신뢰성을 부여했을까? 무슬림이 아니라 국내의 불교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황 후보자가 지명된 뒤 대한불교청년회(회장 전준호)와 바른불교재가모임(상임대표 우희종), 참여불교재가연대(상임대표 허태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등 불교계 단체들은 일제히 황 후보자에 대한 총리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지난 5월22일 바른불교재가연대는 “황교안 내정자는 과거 종교편향과 종교차별 발언과 행위에 대하여 사과하고 자진 사퇴하라”는 성명을 냈다.

특히 “독실한 보수 기독교 신앙을 가진 황 내정자의 종교편향성은 건강한 열린 신앙이 아니라 맹신 수준”이라며 “그가 배타적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국정철학을 펼쳐 갈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황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상임대표 퇴휴스님)도 22일 ‘국민통합에 역행하는 총리지명의 철회를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황교안 총리 지명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이를 철회할 것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한다”고 반발했다.

대한불교청년회(회장 전준호, 이하 대불청)도 22일 ‘국론분열의 중심에 선 황교안 총리후보자의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불교계는 화해와 국민통합을 말하는 대통령에게 “그러려면 황교안을 내쳐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화해와 통합을 말하고 행동으로는 ‘내맘대로’인 대통령을 둔 나라의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에 보는 정국 기상도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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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급 전략잠수함은 몇 척인가?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몇 척인가?
 
한호석의 개벽예감 <16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5/26 [09: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2014년 7월에 진행된 북극성-1호 지상시험발사
2. 수중시험발사 실제상황은 가상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3. 미해군 대잠작전기 긴급출동과 오산미공군기지 비상대책회의
4. 조선이 독자설계한 잠수함 4종이 작전배치되었다 
5. 조선이 건조한 신형 전략잠수함 3척

 

▲ <사진 1> 2015년 5월 8일 전략잠수함에서 발사된 북극성-1호가 자세각을 유지하며 정상적인 탄도비행을 하는 장면이다. 그것은 수중사출과 탄도비행을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한 최종결속시험이었다. 최종결속시험에서 성공한 조선은 수중시험발사를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다.   ©자주시보

 

 

1. 2014년 7월에 진행된 북극성-1호 지상시험발사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동해에서 2015년 5월 8일에 진행된 전략잠수함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 성공소식을 보도하면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풍랑을 헤치시고 륙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험발사장소에 도착하시여 새로 개발한 전략잠수함 탄도탄의 전술기술적 제원을 료해하시고 시험발사를 보아주시였다”고 전했다.


그런데 만일 수중시험발사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였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시험발사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배를 타고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까지 나간 김정은 제1위원장 앞에서 진행되는 수중시험발사가 실패하는 것은 큰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가 성공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시험발사장에 나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5년 5월 8일 수중시험발사 이전에 수중시험발사 성공이 확실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수중시험발사가 몇 차례 더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잠대지탄도미사일 수중시험발사는 세 단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첫째 단계는 잠대지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그 성능을 검증하는 탄도비행시험이고, 둘째 단계는 수중미사일발사관에서 잠대지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그 미사일의 출수시각에 맞춰 로켓엔진을 점화하는 수중사출시험이고, 마지막 단계는 수중사출과 탄도비행을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최종결속시험이다. <조선일보> 2015년 5월 9일 보도는 잠대지탄도미사일이 수상사출시험, 수중사출시험, 잠수함사출시험의 3단계를 거쳐 작전배치된다고 하였지만, 미사일을 발사관에서 쏘아올리는 사출은 수상에서 진행하거나 지상에서 진행하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으므로 구태여 수상사출시험이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다. 따라서 수상사출시험이라는 말은 탄도비행시험이라는 말로 바꿔 써야 뜻이 더 명확해진다.


탄도비행시험에서 성공해야 수중사출시험을 진행할 수 있고, 수중사출시험에서 성공해야 최종결속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데, 한국 국방부는 조선이 2015년 5월 8일에 진행한 수중시험발사를 수중사출시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그들의 주장대로 2015년 5월 8일에 수중사출만 진행되었다면 북극성-1호가 정상적인 탄도비행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해수면 위로 출수한 북극성-1호는 자세각을 유지하며 정상적인 탄도비행을 하였다. 북극성-1호가 약 100~150m를 날아갔을 것이라는 한국 언론의 추측보도는 엉터리다.


2015년 5월 8일 조선이 진행한 수중시험발사는 누가 봐도 수중사출과 탄도비행을 시차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한 최종결속시험이었다. 조선은 북극성-1호 최종결속시험에서 수중발사기술이 완성되었음을 검증하였으므로 앞으로 수중시험발사를 더 이상 진행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조선은 북극성-1호 시험발사의 첫 단계인 탄도비행시험을 언제 어떻게 진행했던 것일까? 조선이 북극성-1호 탄도비행시험을 진행한 경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조선은 2014년 2월부터 7월 사이에 8종의 미사일을 250여 발 발사했다. 조선이 각종 미사일을 그처럼 무더기로 발사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 가운데는 신형 미사일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도 있었고, 기존 미사일을 발사하여 가상표적에 명중시키는 화력타격연습도 있었다. 조선이 신형 미사일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2014년에 진행하였던 시험발사들 가운데는 북극성-1호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도 있었다. 북극성-1호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조건에 맞춰 진행되었다.


첫째, 2014년에는 북극성-1호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조선은 그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때 미국의 공중감시망을 따돌려야 하였다. 조선이 2014년에 진행한 북극성-1호 시험발사는 항행금지구역을 사전에 설정하지 않고 진행된 기습발사였고, 미국의 정찰위성이 예상하지 못하는 불의의 장소에서 진행된 불시발사였다.


둘째, 앞서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한 대로 북극성-1호 사거리는 1,500km로 추정되므로, 조선은 그 미사일의 사거리를 3분의 1로 줄여 쏘는 단축발사를 진행해야 하였다. 왜냐하면, 조선이 북극성-1호를 서부지역에서 발사하여 동해의 영해선 안쪽에 탄착시키려면 500km 이상 비행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항행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고, 미국의 정찰위성이 평소에 집중감시하는 지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역에서 불시에 기습적으로 발사한 미사일이 500여 km를 날아간 사례들이 유독 2014년 7월에만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2014년 7월 9일 황해북도 평산군에서 발사된 미사일 2발은 500여 km를 날아가 동해상에 탄착하였고, 7월 13일 개성 북쪽에서 발사된 미사일 2발도 500여 km를 날아가 동해상에 탄착하였고, 7월 26일 황해남도 장산곶에서 발사된 미사일 1발도 500여 km를 날아가 동해상에 탄착하였다.


조선이 작전배치한 단거리탄도미사일들 가운데 사거리가 500km인 미사일은 없다. 화성-5호 사거리를 500km라고 추정하는 일부 군사전문가들이 있지만, 그 미사일의 사거리가 300~700km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므로, 500km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2014년 7월 조선의 서부지역에서 며칠간격을 두고 연속 발사되어 동일하게 500여 km를 날아간 그 미사일의 정체가 북극성-1호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은 2014년 7월 중에 북극성-1호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하는 시험발사를 세 차례 진행하면서 그 미사일 5발을 발사하였던 것이다. 2014년 7월 북극성-1호 탄도비행시험에서 그 미사일의 탄도비행성능을 검증한 조선은 전략잠수함에 그 미사일을 싣고 동해로 나가 수중에서 시험발사하는 다음 단계에 들어설 수 있었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4년 인도가 인도양에서 잠대지탄도미사일 K-15 싸가리카를 시험발사할 때 사용한 잠함이다. 인도는 수중미사일발사관이 설치된 이 잠함을 30m 발사수심에 침하시킨 뒤 거기에서 K-15를 발사하였으나, 기술적으로 실패하였다.     © 자주시보


그런데 다른 나라의 잠대지탄도미사일 개발경험을 보면, 수중시험발사라고 해서 처음부터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예컨대, 조선이 북극성-1호를 시험발사한 2014년에 인도도 잠대지탄도미사일 K-15 싸가리카(Sagarika)를 시험발사하였는데, 인도의 수중시험발사는 조선의 수중시험발사와 달랐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인도는 수중미사일발사관이 설치된 잠함(潛函)을 30m 발사수심에 침하시킨 뒤 거기에서 K-15를 발사하는 식으로 수중시험발사를 두 차례 진행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런데 조선은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잠함에서 쏘아올리는 수중시험발사를 생략하고, 전략잠수함에 북극성-1호를 싣고 동해로 나가 수중에서 시험발사하였다. 이런 사정을 보면, 북극성-1호 개발사업 책임자들은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할 때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넘쳐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수중시험발사 실제상황은 가상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2015년 5월 8일 이전에 조선에서 진행된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한 소식을 국제사회에 알려준 사람은 미국의 언론인 빌 거츠(Bill Gertz)와 미국의 군사전문가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다. 미국 국방부와 정보기관 관리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인용한 빌 거츠의 기사는 2014년 8월부터 몇 차례 <워싱턴자유횃불(WFB)>에 실렸고,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촬영된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한 조셉 버뮤디즈의 기사는 2014년 10월부터 몇 차례 <38 노스(North)>에 실렸다. 미국 정부관리들에게서 얻은 빌 거츠의 정보가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한 조셉 버뮤디즈의 정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빌 거츠가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5월 5일판에 실은 기사를 읽어보면, 조선이 북극성-1호 시험발사를 2015년 5월 8일 이전에 세 차례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언급한 조선의 시험발사경과를 살펴보면, 2014년 10월 지상시험발사가 진행되었고, 2015년 1월 23일 수상시험발사가 진행되었고, 2015년 4월 22일 수중시험발사가 진행되었는데, 미국 정보기관들은 2015년 4월 22일 조선이 “사출시험(ejection test)”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음을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빌 거츠는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3월 19일판 기사에 이렇게 썼다. “조선은 2014년 11월 신포조선소 남쪽에 설치된 지상발사대에서 사출시험을 진행한 뒤 (2015년) 2월 KN-11 비행시험(북극성-1호 비행시험을 뜻함-옮긴이)을 진행하였”는데, “미국 정보기관들은 미국 국방부가 KN-11 잠대지탄도미사일이라 부르는 미사일의 첫 비행시험을 2015년 2월에도 탐지하였다.” 


빌 거츠가 쓴 3월 19일판 기사와 5월 5일판 기사를 비교하면, 그가 시험발사시점을 헷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는 2014년 10월이라고 써야 하는데 11월이라고 잘못 썼고,  2015년 1월이라고 써야 하는데 2월이라고 잘못 썼다. 그런 착오가 발생한 까닭은, 빌 거츠가 <워싱턴자유횃불> 5월 5일판 기사에서 “그 미사일프로그램(북극성-1호 개발사업을 뜻함-옮긴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비공개로 남아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미국의 국방부와 정보기관들이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빌 거츠가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해 쓴 기사들 속에 그의 빗나간 추측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대한 빌 거츠의 빗나간 추측은 조선이 2014년 10월부터 2015년 4월 22일까지 지상발사시험→수상발사시험→수중발사시험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였다고 기록한 부분이다. 그가 조선의 수중발사시험에 앞서 지상발사시험과 수상발사시험이 각각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까닭은, 신포조선소 정박장을 촬영한 상업위성사진에서 지상발사대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물체와 수상발사대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물체를 찾아내고 그에 대해 장황하게 언급한 조셉 버뮤디즈의 빗나간 영상자료분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28일 <38 노스>에 실린 기사에서 조셉 버뮤디즈는 신포조선소 정박장 인근에 지상발사대처럼 생긴 물체가 서 있는 것이 보이는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하면서 그 물체를 북극성-1호 지상발사대라고 추정하였는데, 빌 거츠는 같은 날 <워싱턴자유횃불>에 실린 자신의 기사에서 버뮤디즈의 그런 추정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2014년 10월에 진행한 북극성-1호 시험발사의 실제상황은 조셉 버뮤디즈와 빌 거츠가 머릿속에서 그려본 가상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실제상황은 어떠하였을까? 

 

▲ <사진 3> 2014년 10월 28일 주일미해군항공기지를 이륙한 최신형 대잠작전기 포싸이든 P-8A 한 대가 동해 상공으로 날아갔다. 바로 그 시각 동해에서는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처음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미해군 대잠작전기는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현장을 촬영하고 오산미공군기지에 착륙하였는데, 그 기지에서는 미국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 자주시보

 

 

3. 미해군 대잠작전기 긴급출동과 오산미공군기지 비상대책회의

 
미국 해군은 바다속에 숨어있는 적국 잠수함을 공중에서 탐지, 공격하는 대잠작전에 최신형 무장장비를 동원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진 3>에서 보는 포싸이든(Poseidon) P-8A 대잠작전기다. 한국에서는 포세이돈이라고 읽는다. 다기능해양정찰레이더를 장착하고 시속 815km로 비행하는 이 대잠작전기가 바다속에 숨어있는 적국의 잠수함을 탐지하면, 폭탄창을 열고 경어뢰 마크(Mark) 54를 활공강하폭탄처럼 투하하여 잠수함을 공격한다. 미국은 주일미해군항공기지들에 전진배치해놓은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 4대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수시로 출동시켜 중국 잠수함들을 감시해왔다. 이를테면, 2014년 8월 19일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 1대가 중국의 싼야(三亞)잠수함기지가 있는 중국 남부 하이난섬 동쪽 해상에 나타났는데, 중국 요격기들이 긴급출격하여 근접비행으로 견제하자 항로를 바꿔 돌아갔다. 미국은 북침전쟁연습으로 알려진 ‘독수리연습’을 한반도 남부작전구역에서 감행할 때도,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를 동원하여 항공대잠작전을 연습한다. 


그런데 중국 잠수함에 대한 항공감시와 ‘독수리연습’의 항공대잠작전에 동원되는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2014년 10월 28일 주일미해군항공기지를 이륙하여 한반도 인근해상에 나타났다. ‘독수리연습’이 진행되는 일정에 따라 해마다 3월 중에 한반도 인근해상에 나타나곤 하던 그 대잠작전기가 예정도 없이 10월 말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심상치 않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그처럼 매우 이례적으로 한반도 인근해상에 출현한 사건은 2014년 11월 7일 <문화일보> 보도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는 동해에서 대잠정찰비행을 마친 뒤에 주일미해군항공기지로 귀대하지 않고 기수를 돌려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에 착륙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대잠작전기가 동해에서 대잠정찰비행을 하던 바로 그 시각 오산미공군기지에서는 미국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장성급 고위지휘관들이 집결하여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동해 상공에서 촬영해온 항공정찰자료를 놓고 비상대책을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대잠작전기가 출동하였고 고위급 비상대책회의까지 진행된 2014년 10월 28일은 조선의 북극성-1호 시험발사에 관한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기 다섯 달 전이었으므로,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왜 한반도 인근해상에 긴급출동하였는지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밝혀진 것은 조선이 바로 그 날 동해에서 북극성-1호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한미국군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이 용산기지에서 오산기지로 내려간 것만이 아니라 미국태평양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까지 하와이기지에서 오산기지로 날아가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한 것을 보면, 미국에게 매우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빌 거츠가 위에서 언급한 기사에서 추측한 대로, 만일 조선이 북극성-1호를 지상발사대에서 쏘는 단순하고 초보적인 시험발사를 2014년 10월 28일에 진행하였다면, 미국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오산미공군기지에 집결하여 비상대책회의까지 진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한 것은, 2014년 10월 28일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싣고 동해로 나가 제1차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하였음을 말해주는 뚜렷한 방증이다. 


둘째, 미국태평양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이 군용항공기를 타고 하와이기지를 이륙하여 오산기지까지 아무리 부리나케 날아가도 9시간은 족히 걸린다. 따라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싣고 수중시험발사장을 향해 신포조선소 정박장을 출항하였다는 보고가 미국태평양사령부에 전달되자마자 그 사령부의 장성급 지휘관들이 허겁지겁 오산기지로 날아갔다 해도,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가 진행되는 때에 맞춰 오산기지에 도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사정을 파악하면, 당시 미국군 지휘부는 이미 며칠 전부터 각종 항공정찰수단을 동원하여 신포조선소 정박장에서 움직이는 전략잠수함 동향을 면밀히 감시해오다가 그 전략잠수함이 10월 28일에 수중시험발사를 진행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파악하였고, 미국태평양사령부 장성급 지휘관들은 10월 28일 이전에 오산기지에 미리 도착하여 북극성-1호가 수중시험발사를 개시할 때를 대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빌 거츠는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5월 11일판 기사에서 미국 정부관리들의 말을 인용하여 “미국 정보기관들이 조선의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을 면밀히 감시해왔으며, 그 시험발사가 곧 진행되리라는 것을 지난 며칠 동안 예상하고 있었다”고 지적하였는데,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대한 미국의 항공감시는 이미 2014년 10월 28일 직전부터 시작되었다. 


셋째, 미국 해군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가 조선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 관한 영상정보와 신호정보를 수집하려면, ‘독수리연습’을 진행하던 때처럼 조선 영공에서 멀리 떨어진 남해 상공을 맴돌며 정찰비행을 해서는 안 되고, 수중시험발사현장에 되도록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동해 중부상공으로 북상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의 기억 속에는 그들이 지난날 겪었던 뼈저린 경험들이 지워지지 않고 지금도 악몽처럼 남아있다. 대북정찰비행을 감행하던 미국 정찰기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돌진해온 조선의 추격기들에게 격추되어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몰살경험도 있고, 신출귀몰하는 조선의 추격기들에게 붙잡힌 미국 정찰기가 하마터면 공중에서 나포되어 조선으로 끌려갈 뻔했던 공포경험도 있다. 이를테면, 1959년 6월 16일 조선의 추격기들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은 미국 정찰기 RB-45는 승무원이 기총사격으로 중상을 입자 황망히 달아났고, 1965년 4월 27일 조선의 추격기들로부터 기습적인 기총사격으로 기체가 만신창이가 된 미국 정찰기 EC-121은 간신히 추락을 면하고 일본 요꼬다공군기지로 돌아갔고, 1969년 4월 15일 조선의 추격기들로부터 공대공미사일 기습공격을 받고 격추된 미국 정찰기 EC-121에 탑승한 승무원 31명은 전원 몰살당했으며, 1981년 8월 26일 조선의 영공에 접근하던 미국 정찰기 SR-71은 조선이 발사한 지대공미사일에 피격될 위험을 간신히 넘겼으며, 2003년 3월 2일 미국 전략정찰기 RC-135S는 조선의 추격기들에게 공중에서 나포당하여 조선으로 끌려갈 뻔하였다.

 
이런 악몽 같은 경험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뼈아픈 ‘학습효과’를 얻은 미국군 지휘부는 2014년 10월 28일 포싸이든 P-8A 대잠작전기를 동해 중부상공으로 북상시킬 때 조선의 추격기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대잠작전기만 보낼 수 없었을 것이고, 대잠작전기를 호위하는 전투기 편대도 함께 보낸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28일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동해에서 진행한 제1차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를 항공정찰을 통해 파악한 미국은 조선이 잠대지탄도미사일을 수중에서 발사하는 전략잠수함을 보유하였음을 확인하였고, 그 잠수함에서 북극성-1호가 발사되는 장면을 영상자료를 통해 확인하였다.


바닷속에 설정된 50m 발사수심까지 침하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동해 상공으로 북극성-1호를 쏘아올리는 수중시험발사는 그처럼 2014년 10월 28일에 시작되어, 2015년 1월 23일, 4월 22일, 5월 8일로 이어졌다.


빌 거츠가 미국 정보기관이 흘려준 정보를 인용하여 쓴 <워싱턴자유횃불> 2015년 5월 5일판 기사에 따르면, 조선은 2015년 4월 22일 수중시험발사에서 성공하였다. 북극성-1호 개발사업 책임자들은 2015년 4월 22일 수중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만 보고서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그보다 앞서 2014년 10월 28일과 2015년 1월 23일에도 수중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을 보고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처럼 세 차례 진행된 수중시험발사에서 연속적으로 성공하였기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5년 5월 8일 최종적으로 진행된 수중시험발사를 현장에서 직접 참관한 것이고,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수중시험발사가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대서특필한 것이다. 이처럼 네 차례 진행된 수중시험발사에서 조선의 전략잠수함이 북극성-1호를 동해 상공으로 쏘아올리며 성공할 때마다, 미국은 자기들에게 엄습해오는 공포를 느끼며 전율했을 것이다.

 

▲ <사진 4>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로미오급 잠수함이다. 같은 로미오급 잠수함이라도 이 잠수함은 지난 시기 소련과 중국에서 운용하였던 로미오급 잠수함과 다르다. 이 사진에서 보는 조선의 로미오급 잠수함은 조선이 1980년대 기술로 개량한 것이므로 다른 나라들에서 운용한 로미오급 잠수함들보다 성능이 훨씬 더 우수하다.     © 자주시보

 

 

4. 조선이 독자설계한 잠수함 4종이 작전배치되었다


북극성-1호 개발사업은 그 미사일을 만드는 사업만이 아니라 그 미사일을 발사하는 수중미사일발사체계를 만드는 사업까지 포함한다. 이렇듯 북극성-1호와 수중미사일발사체계를 동시에 개발하는, 공학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방대한 사업을 몇 년 동안 완료하는 것은, 조선이 아무리 ‘조선속도’를 창조하고 있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략잠수함에서 북극성-1호를 수중발사하는 기술을 개발, 완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북극성-1호를 발사한 전략잠수함을 개발, 완성하는 것은 더 어렵다.


수중미사일발사관 2문이 함교에 설치된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언제 건조된 것일까? 그 건조시기를 파악하려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은 수중배수량이 1,830t인 로미오급 잠수함을 1976년부터 건조하기 시작하여 1995년까지 20년 동안 모두 22척 건조하였는데, 1995년 이후에는 로미오급 잠수함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는 원천기술은 오래 전에 소련에서 개발된 것인데, 중국은 소련의 기술지원으로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였고, 조선은 중국의 기술지원으로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였다. <사진 4>는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로미오급 잠수함을 촬영한 것인데, 그 잠수함은 조선에서 건조된 개량형 로미오급 잠수함이다. 지난 시기 소련과 중국에서 운용하던 로미오급 잠수함과 외형부터 상당히 다르다. 


둘째, 로미오급 잠수함 22척을 건조하면서 잠수함건조기술을 습득한 조선은 1980대 중반부터 독자설계한 조선식 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이 독자적인 설계기술로 건조한 조선식 잠수함은 그 동안 영상자료를 통해 알려진 것만 해도 네 종이다. 수중배수량이 적은 잠수함부터 차례로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사진 5>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수중배수량 390t급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소형 잠수함을 상어II/K-300이라는 자의적 명칭으로 부른다, 1996년 강릉 해안에 좌초된 잠수함의 개량형인데, 조선은 이 잠수함을 40척 이상 대량으로 작전배치하였으니, 엄청난 잠수함전력을 보유한 것이다.     © 자주시보


<사진 5>는 2015년 1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적해상목표에 대한 군종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이다. 미국은 2005년 정찰위성을 통해 이 잠수함의 존재를 확인하였고, 상어 II/K-300이라는 자의적 명칭을 붙였다. 수중배수량이 390t인 이 소형 잠수함은 1996년 강릉 해안에 좌초된 잠수함의 개량형이다. 2011년 3월 현재, 조선은 이 잠수함을 40척 이상 대량으로 작전배치하였으니, 엄청난 잠수함전력을 보유한 것이다. 

 

▲ <사진 6> 2012년 3월 13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자주시보


<사진 6>은 2012년 3월 13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에 참가한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사진 7> 2014년 5월 31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 나온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자주시보


<사진 7>은 2014년 5월 31일 조선중앙텔레비죤방송이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 나온 잠수함이다. 미국은 이 잠수함의 존재를 정찰위성을 통해 확인하지 못해서 자의적 명칭도 붙이지 못했다.

 

▲ <사진 8> 2015년 5월 8일 조선의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시험발사에 동원된 신포급 잠수함이다. 신포급 잠수함은 <사진 7>에서 보는 익명의 잠수함과 함체크기가 비슷하다. 그 익명의 잠수함을 이미 작전배치한 조선이 그와 함체크기가 비슷한 신포급 잠수함을 추가로 건조한 까닭은,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핵추진 전략잠수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자주시보


<사진 7>에서 보는 익명의 잠수함과 <사진 8>에서 보는 신포급 전략잠수함은 함체크기가 서로 비슷해 보인다. <사진 7>에서 보는 익명의 잠수함을 이미 작전배치한 조선이 그와 함체 크기가 비슷한 신포급 잠수함을 추가로 건조한 까닭은,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는 핵추진 전략잠수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사진 9> 이 사진은 이란의 소형 잠수함들이 페르시아만으로 집단출동하는 장면이다. 조선의 소형 잠수함들이 수중매복구역에서 불시에 나타나 사면팔방에서 집단적으로 기습공격을 퍼부으면 미국의 항모타격단은 살아남지 못한다.     © 자주시보

 


5. 조선이 건조한 신형 전략잠수함 3척


잠수함을 건조하는데서 조선이 견지해오는 원칙은 크기가 작은 잠수함을 많이 만드는 소형다함주의다. 조선이 잠수함을 건조할 때 소형다함주의를 견지하는 까닭은 적의 음파탐지망을 뚫고 은밀기동, 근접매복, 불시타격을 수행하는 수중유격전에 가장 적합한 것이 소형 잠수함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디젤전동식 소형 잠수함들은 최후결전에서 미국의 항모타격단을 격침하기 위한 잠수함들이다. <사진 9>는 이란의 소형 잠수함들이 페르시아만으로 집단출동하는 장면인데, 조선의 소형 잠수함들이 수중매복구역에서 불시에 나타나 사면팔방에서 집단적으로 기습공격을 퍼부으면 미국의 항모타격단은 살아남지 못한다.


<국방일보> 2014년 3월 31일판 기사에 따르면, 잠수함 함체크기는 능동식 음파탐지기가 탐지하는 거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모의실험결과는 잠수함의 함체크기가 작을수록 능동식 음파탐지기가 탐지하는 거리가 짧아져 탐지될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잠수함 함체크기가 작을수록 엔진소음도 적게 나기 때문에, 수동식 음파탐지기에 탐지될 확률이 낮아진다. 그래서 조선은 디젤전동식 잠수함만이 아니라 핵추진 잠수함도 작게 만들었다.
앞서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한 대로, 조선의 신포급 잠수함은 프랑스의 루비급 핵추진 잠수함처럼 소형 가압경수로 1기를 설치한 경량급 핵추진 전략잠수함이므로, 그 전략잠수함을 건조한 시기는 경수로제작기술을 개발한 시기와 밀접히 연관된다.


조선의 경수로개발사업은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조선이 소련으로부터 경수로 1기를 도입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경수로 4기를 조선에 건설하기 위한 협정을 체결한 때는 1985년 12월이었는데, 비록 소련의 경수로를 도입하지 못했고, 경수로건설협정도 이행되지 못하였으나, 그 무렵 조선은 소련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경수로제작기술을 이전받았다.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 조선은 경수로제작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힘썼고, 1995년경 우라늄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마침내 비밀시설에서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개발한 조선에게 경수로 개발은 공학기술적으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신보> 2009년 11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의 기계공업부문 관계자들은 우라늄농축기술이 확보되면 경수로설비를 제작하고 조립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였고, 경수로제작과 관련된 기술지표들에 대한 타산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경수로 국산화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은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소형 경수로를 1998년경 완공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이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착수한 때는 그보다 조금 앞선 1995년이다. 조선의 기록영화 ‘련속참관기-장군님과 동지,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 (9)’에는 1995년 4월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광진 조선인민군 차수로부터 신형 잠수함 축소모형에 관한 보고를 받는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나오는데, 그 사진은 조선의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 1995년에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1995년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착수한 조선의 개발속도를 아무리 늦춰 잡아도 개발착수시기로부터 약 10년 동안 설계, 경수로제작, 부품제작을 모두 끝내고 2005년부터는 지하잠수함기지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조립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조선은 2005년부터 오늘까지 신포급 핵추진 전략잠수함을 몇 척 건조하였을까? 핵추진 잠수함은 디젤전동식 잠수함과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잠수함건조능력이 막강하다는 나라도 핵추진 잠수함을 해마다 1척씩 건조하지 못한다.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과 함체크기가 엇비슷한 루비급 핵추진 잠수함을 4척 건조한 프랑스의 경험을 보면, 경량급 핵추진 잠수함은 3년에 1척씩 건조되었다. 조선의 2000년대 핵잠건조능력과 프랑스의 1980년대 핵잠건조능력이 엇비슷하다고 보면, 조선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 3척을 건조한 것이다.  


그런데 잠수함을 건조하고 나서 시험운전기간을 거쳐 작전배치하기까지 5년 걸린다. 5년이라는 기간을 생각하면, 2005년에 첫 번째로 건조된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 1척은 2010년에 작전배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연합뉴스> 2015년 5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찰위성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낸 신포급 잠수함을 처음 식별한 때는 2012년 5월이다. 


2010년에 두 번째로 건조된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 1척은 올해 2015년에 작전배치되고, 2015년에 세 번째로 건조된 신포급 핵추진 잠수함은 2020년에 작전배치될 것이다. 그러므로 2015년 현재 조선에서는 신포급 핵추진 전략잠수함 2척이 작전배치되었고, 나머지 1척은 시험운전을 시작하였다.

 

▲ <사진 10> 미국의 해군전문 웹싸이트 <커벗 쇼어즈(Covert Shores)>에 현시된 신포급 전략잠수함의 북극성-1호 수중발사장면 상상도다. 전략잠수함은 그것을 막을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강의 무장장비이며, 전쟁을 그것 한 방으로 단숨에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최상의 무장장비다. 조선은 조국해방 70주년, 당창건 70주년을 맞이한 전환적 시기에 전략잠수함 수중시험발사 성공으로 최후결전준비를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 자주시보


<사진 10>에서 보는 것처럼, 수중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여 지상목표를 타격하는 전략잠수함이야말로 조선 특유의 전법인 고속기동, 매복기습, 화력집중, 섬멸타격에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무장장비다. 전략잠수함은 그것을 막을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강의 무장장비이며, 전쟁을 그것 한 방으로 단숨에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최상의 무장장비다.


조선은 미국의 핵타격위협과 경제제재를 뚫고 나가느라고 남들과 달리 허리띠와 신들메를 단단히 졸라매고 간고분투해야 하였지만, 2015년 5월 8일 전략잠수함의 북극성-1호 수중시험발사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둠으로써 조선에서 조국해방 70주년, 당창건 70주년을 맞이한 전환적 시기에 최후결전준비를 마침내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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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찬양' 논란... "남북 모두 정치적 악용"

 

[단독] DMZ 평화행진 기획자 크리스틴 안 인터뷰... "한국은 심리전쟁 중"

15.05.26 08:04l최종 업데이트 15.05.26 08:0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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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 통일 기원합니다"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위민크로스DMZ 행사를 참가하기 위해 북한에서 육로로 방한한 세계여성운동가들과 시민들이 '평화통일 기원 조각보'를 함께들고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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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여성평화단체 '위민크로스DMZ(Women Cross DMZ, 아래 WCD)'의 기획자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은 25일 "(북한에서) 제가 (김일성을 찬양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이어 "북한 측에 정식으로 항의했으며, (북한이) 내 발언을 정치적 선전에 이용했다"면서 "한국 또한 정치적 이슈로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최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비무장지대를 걸어서 종단하는 행사를 벌였다. 행사 참가자들이 북한을 입국한 후 크리스틴 안씨가 김일성을 찬양했다는 <노동신문> 보도가 나오면서, 친북 발언 논란이 불거졌다. 크리스틴 안씨는 25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제여성평화 심포지엄'에 참석해, <오마이뉴스>와 만나 당시 상황과 심경을 처음으로 밝혔다.

크리스틴 안씨는 이번 논란을 두고 "남과 북이 '심리적 전쟁(psychological war)'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그래도 어떤 한쪽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대화로 풀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게 평화적인 것 아닌가"라고 그는 되물었다.   

WCD는 저명한 여성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82)과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리마 보위(74) 등 15개국 국제 여성활동가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통일을 촉구하며 북한에 입국, 비무장지대(DMZ)를 걸어서 건너 판문점에 도착하겠다고 했지만 통일부 권고로 결국 경의선 육로를 통해 지난 24일 한국에 들어섰다.(관련기사 : 위민크로스DMZ "우리는 친북 아니라 친평화 단체")

WCD 공동명예 위원장인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이번 논란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당시 함께 있던 AP통신 기자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오히려 이번 행사를 만들어낸 그녀(크리스틴 안)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탈북엄마회·엄마부대봉사단 등 북한 관련 시민단체는 25일에도 "반정부 친북모임 중단하라", "종북 위민크로스 규탄한다" 등의 주장을 하며 반대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다음은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 

"'김일성 항일투쟁 안다' 내용이 와전... 남북 모두 정치적 이슈로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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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여성평화걷기 행사를 주도한 크리스틴 안씨가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자신을 찾아온 딸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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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를 해달라. 
"내 이름은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이고 한국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안은희는 내 한국명이다. 그러나 국적은 미국 국적이다." 

- 앞서 '김일성 찬양 발언'을 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해 논란이 됐는데. 
"실상은 이렇다. 우리가 만경대(김일성 생가)에 갔을 때 <노동신문> 기자가 날 따로 부르더니 '김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저도 나름 똑똑한 사람이다. 사전에 이미 혹시 이런 질문이 나올까 우려했다. 그래서 그 기자에게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우리 어머니가 한국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했을 정도로 학력이 낮지만 김일성이 게릴라 항일투쟁을 했다는 건 알았다'고만 말했다."

- 본인은 김일성 찬양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건가. 
"앞선 말한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했다는 건 안다'는 게 제가 말한 전부고, 신문에 인용된 건 제가 말한 게 아니다(That's all I said. It was not my quote). 그때 제가 영어로 말했고 중간에서 통역사가 통역을 했다. 제 생각에, 첫 번째로는 통역이 잘못 됐을 수 있다. 통역사가 자신들의 시각이 담긴, 특정한 용어(their vocabulary)로 설명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동신문>은 북한의 기관지라서 북한 주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로 바꿨을 수 있다. 어쨌건 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건 문화적인 문제라고도 생각된다. 그들은 제 말을 악용했고(misapplied), 그걸 정치적 선전(political agenda)에 사용했다."

- 그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했나.
"그렇다. 그래서 크게 싸웠다(Yes, we got into a big fight). 항의하면서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던 게, 북한에도 우리를 초청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곧 미디어(<노동신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을 그냥 하나의 집단이라고 봤지만 거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노동신문>은 북한 주민들을 위한 미디어로서, (나에 대해) 잘못 특징 지었고 잘못 인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북한에 초청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번 행사에 함께한 북한 내 주최 측은 우리에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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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중앙일보>가 '단독'이라며 <노동신문>(사진)을 인용했다.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은 "제가 그런 말(김일성을 찬양하는)을 한 적이 없다"며 "북한 측에 정식으로 항의했다"고 말했다. 한편 <중앙일보>는 원 기사에는 없던 따옴표를 붙여, 이를 마치 당사자들이 직접 발언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
ⓒ 중앙일보 온라인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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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역시 이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발전시키려 해"

- 북한에서 직접 사과했다는 말인가? 
"북한 주최 측은 매우 미안하다고 했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North Korean Host, they said 'we are very sorry but we can not cotroll the media'). 당사자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누가 말했는지 그 이름까지 밝힐 수는 없다."  

- 한국 내 일부 언론은 이런 발언들을 이유로 WCD를 친북 성향 단체로 보도하기도 했다.
"나도 안다. 한국의 언론 역시 이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전쟁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게 해야 군수산업도 그렇고 특정 업계에 이득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이런 상황이, 우리가 군사 전쟁뿐 아니라 심리적 전쟁(psychological war)까지 겪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특정한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그런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거다." 

- 당신은 이번 행사의 주요 기획자다. 이런 논란에 대한 심경은. 
"양쪽 모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 당연히 괜찮을 리 없지 않나. 그러나 우리 또한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어떤 입장을 취하거나 한쪽 정부를 편들지 않고, 이해와 대화를 통해 풀어가려 한다. 그게 평화적인 방식 아닌가."

○ 편집ㅣ최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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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서거 6주기에 돌아본 대한민국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바보대통령이 전해준 작은 깨달음
 
장유근 | 2015-05-25 09:40: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노무현 서거 6주기에 돌아본 대한민국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

한 아이가 도로에 퍼질러 앉은 채 들고 있는 손피켓의 내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진은 지난 2009년 5월 29일 오후 1시 34분경, 서울광장의 한 풍경이다. 이날 광화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됐고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과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참여한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유사이래 처음 행해진 거대한 장례식이었다. 사람들은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5월 23일)하신 지 엿새 만에 치러진 장례식은 온갖 유언비어들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속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이명박과 조·중·동 등 이른바 ‘수꼴들의 음모에 의한 타살’이라는 것 등이었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은 몰상식이 상식을 지배하는 나라가 됐다고나 할까. 국정원과 조·중·동 등 친정부 찌라시들은 ‘노무현죽이기’에 안간힘을 다했다. 이날 표정은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지나쳤던 경부선 양재대로변에서부터 서울광장-서울역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영상(슬라이드쇼)로 담아봤다. 카메라를 쥔 손과 가슴이 떨리던 날이었다.

뒤돌아 본 바보대통령의 영결식

 
 
 
 
 
 

노무현 죽이기에 앞장 선 이명박정권의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언론들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대통령’으로 기억된 당신을 황칠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이 총동원됐다. 바보대통령, 인권대통령, 서민대통령 등 애국시민들로부터 최고의 수사가 동원된 찬사를 받았지만,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앞세운 이명박의 간교함은 극에 달했다. 아무런 대가성도 없고 특혜를 준 적도 없었던 권양숙 여사가 받은 10억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역대 가장 부정한 대통령으로 여론의 몰매를 맞으며 죽음으로 몰렸던 것이다. 인터넷과 언론에 유언비어로 도배한 건 국정원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이인규로부터 밝혀졌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4504> 인터넷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망신주기 수사’에 대해 이인규는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인규는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으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던 것이다. 유언비어의 산실이 국정원으로 드러나고 있었으며 국정원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전직 대통령 죽이기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을까.

이인규가 밝힌 국정원의 만행

조중동 등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가 박연차로부터 회갑선물로 1억 원짜리 수입 명품 시계 2개를 받았지만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가 나온 건, 지난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검찰소환 조사를 받은 다음날이었다. 같은 종류의 명품시계에 대해 사진과 자세한 기사를 싣는 등 많은 언론사들이 이를 대서특필했고, 이로부터 열흘 뒤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해 서거했던 것이다. 그날이 2009년 5월 23일이었다. 이인규의 증언으로 드러난 사실 등에 따르면 이명박정권의 검찰과 조·중·동 등이 대한민국을 ‘몰상식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든 장본인들이나 다름없었다.

대한민국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거짓을 합리화 하기 위한 거짓이 횡행하며 멀쩡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거나 ‘날조된 사실’을 진실처럼 말하는 게 일상이 된 건 국정원이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새누리당)은 22조 원의 천문학적인 국민세금을 4대강사업에 쏟아부었고, 31조 원이 사라진 자원외교 관련 비리는 어물쩡 덮어버리려고 하고 있다. 이들이 노 전 대통령과 애국시민들에게 행한 만행을 참조하면 천 번만 번 죽어 마땅할 정도랄까.

노무현 서거 6주기에 돌아본 대한민국

이틀 전 봉하마을에서 거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기념식에서 사실상 권력 1인자인 김무성이 봉하마을에 나타났다. 김무성은 무엇이 두려웠는 지. 이날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6주기 추모식에 참가하면서 경찰병력 450명 10개중대를 이끌고 갔단다. 광주에서 물세례를 받은 김무성은 봉하마을에서 조차 물세례를 피하지 못했다는 후문은 어떤 징조를 품은 것인 지.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로부터 사실상 권력을 승계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김무성과 새누리당이 돌리고 있는 폭탄의 폭발잠재력은 만만찮게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지난 6년 동안 이들이 저질러온 만행은 명명백백하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이듬해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46명의 승조원이 목숨을 잃는 참변을 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자국민 300여 명이 수장되는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다. 아울러 크고 작은 참사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새누리당과 수꼴들의 숨길 수 없는 만행들

참 희한한 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당일 한 아이의 손에 들린 작은 피켓 내용이 시사하는 바 컸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죽임’임을 말하고 있었던 지, 노 전 대통령이 떠나신 지 6년 만에 대한민국은 만신창이로 변한 것이다. 자국민 300여 명이 몰살을 당하는 순간 박근혜는 7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했고, 비서실장 김기춘 조차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박근혜는 이때부터 사실상 권력의 쭉정이로 변했다. 그녀는 부정선거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해외여행만 전전할 뿐이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가 국정원이라는 보도와 함께 박근혜가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과 민간구난업체 언딘에 창조경제 자금 100억 원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파다했다. 유병언이 죽었거나 실종(?)된 이유가 그 때문이었을까. 진도 앞 바다에는 자국민 9명이 여전히 구조를 기다리는 데 딴청을 피우는 박근혜와 김무성 그리고 새누리당과 수꼴들… 왜 그랬을까. 미얀마의 민주화 지도자 아웅산 수 치(Aung San Suu Kyi) 여사는 권력의 속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패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을 타락시킨다.” 
- ‘공포로부터의 자유’ 연설 중에서-

바보대통령이 전해준 작은 깨달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낸지 6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대한민국은 아웅산 수 치 여사의 연설문 속으로 심각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다. 더 이상 타락할 곳도 부패할 곳도 없는 위정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는 걸 확인해 준 시간들이 지난 6년이었을까. 이제 노 전 대통령을 벼랑끝으로 몰아간 인면수심의 세력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극히 제한적인 것 같다. 다시금 국정원 등의 힘을 빌어 부정선거를 꿈꾸거나 더 많은 재물을 동원해 국민들을 속이는 일이 이들 앞에 놓인 마지막 술수랄까.

대한민국에서 천수를 누리거나 생존하려면 억울한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현명한 일이다. 부패한 권력이 함부로 휘두르는 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천수를 누리려거든 절대로...절대로 위정자들과 가까이 하지 마시기 바란다. 특히 바보대통령을 앗아간 집단들을 방치하는 일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못하면, 우리는 6년의 세월이 아니라 다시금 60년의 세월을 친일, 친미 수꼴들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아울러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부르는 바보들이 널린 대한민국이 절망을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마음속의 대통령님, 편히 잘 지내시지요…?”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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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육로 통해 입경... "북한과 인권 얘기할 가능성 열려"

위민크로스DMZ "우리는 친북 아니라 친평화 단체"

[현장] 경의선 육로 통해 입경... "북한과 인권 얘기할 가능성 열려"15.05.24 19:33l최종 업데이트 15.05.24 19:33l이희훈(leeheehoon)유성애(find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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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로로 한국땅 밟는 여성운동가들 세계 각국의 여성운동가들이 24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북에서 부터 육로를 통해 입국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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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 연 여성운동가들 세계 각국의 여성운동가들이 24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북에서 부터 육로를 통해 입국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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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에서 남으로 건너오는 여성운동가 태운 버스 24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세계여성평화운동가 일행이 탑승한 버스가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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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비무장지대(DMZ)를 걸어서 건너는 행사를 기획한 국제여성평화단체 '위민크로스DMZ(Women Cross DMZ, 아래 WCD)'가 24일 경기 파주 도라산 출입사무소를 통해 한국에 들어섰다.  

지난 19일부터 북한에서 국제평화토론회, 국제여성대행진 등 행사를 연 국제 여성활동가 30여 명은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45인용 관광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모두 흰 옷을 입고, 어깨에는 남북 간 평화와 통일을 상징하는 오색빛깔 조각보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이들은 애초 "비무장지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무장화된 지역이자 위험한 갈등지역"이라며 DMZ를 걸어서 판문점을 통해 한국에 입경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버스를 타고 경의선 육로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이들을 맞이한 WCD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대표단이 DMZ에서 내려 '걷게 해달라'고 협상했지만 잘 안 됐다, 결국 버스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끈 국제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82)은 앞선 북한 행사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권에 대해서는 북한과 대화가 불가능할 거라고 했지만 해보니 가능했다"며 "북한은 '인권'을 명시한 평화선언문을 받아들였다.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거대한 가능성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맥과이어(72)도 이어 "북한 사람들도 인류애와 인간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우리는 친북이 아니라 '친평화'"라고 강조했다. 

WCD "인권에 가장 중요한 건 평화와 안정"... 환영단과 함께 민통선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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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책선 넘어 임진각 향하는 행진단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 일대에서 위민크로스DMZ 여성운동가들과 시민환영단이 함께 민통선 철책옆 길을 걸어 임진각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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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통선 지나 임진각으로...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 일대에서 위민크로스DMZ 여성운동가들과 시민환영단이 함께 민통선 철책옆 길을 걸어 임진각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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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평화, 여성의 힘으로!'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에서 위민크로스DMZ 행사를 참가하기 위해 북한에서 육로로 방한한 세계여성운동가들과 시민들이 '평화통일 기원 조각보'를 함께들고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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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책을 넘어 평화 통일'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남단 일대에서 위민크로스DMZ 여성운동가들과 시민환영단이 함께 민통선 철책옆 길을 걸어 임진각을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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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국에서 함께 한 WCD 대표단 30명은 이날 오후 2시 20분께 통일대교 북단에서 남측 환영단 약 200명을 만난 뒤, 행사장인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까지 민간인 통제구역(민통선) 약2.5km를 함께 도보로 이동했다. 이어 WCD 한국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2015 국제여성평화걷기'에 참가했다.  

앞서 일부 북한 관련 단체는 WCD가 '인권 문제는 외면한다'고 비판했으나, WCD는 자신들이 만든 평화선언문에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명했다. 이날도 탈북엄마회·엄마부대봉사단 등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 20여 명이 행사장 근처에서 "북한 인권에는 침묵하면서 평화활동이 웬말이냐" "반정부 친북모임 중단하라" 등 피켓을 들었다.

그러나 WCD 평화선언문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 ▲이산가족 재결합 촉구 ▲한반도 군사긴장 완화 ▲여성·소녀에 대한 전시 폭력 금지 등 내용과 함께 "인권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평화와 안정"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다.

또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던, '참가자인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이 김일성 찬양을 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했다. 그는 "당시 함께 있었던 AP통신 기자도 확인해줄 수 있다"며 "크리스틴은 이번 행사의 헤로인(heroine)이다. 우리는 오히려 그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이진옥 WCD 한국위원회 실행위원도 이번 행사는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의 공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크리스틴의 국적은 미국인이다, 8년 전에 그녀가 이런 행사를 열고 싶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며 "이번에 만든 평화선언문도 단어마다 남한·북한 정부 간 협의를 거쳐 완성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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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평화상 수상자 레이마 그보위 201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레이마 그보위 (Leymah Gbowee, 맨 오른쪽))씨가 세계 각국의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24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북에서 부터 육로를 통해 입국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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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서 선언문을 읽은 라이베리아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리마 보위(74)는 "WCD는국제관계에 의해 분단된 남북관계를 화해와 용서를 통해 평화적으로 만들려 노력했다"며 "우리는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적인 통일이 완전히 이뤄질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딸 한나(5)의 손을 잡고 참가한 프랑스인 로롱(42)씨는 남북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 가족들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고통받았지만, 결국 지금은 화해한 상태"라며 "지금은 남한과 북한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심각하지만 자꾸 교류가 늘어나면 좋아질 거라 본다"고 설명했다.  

WCD 대표단은 오는 25일 서울에서 국제여성평화 심포지엄을 연 뒤 26일 오전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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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여성평화걷기 행사 한 참가자가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무대 위에 설치된 조각보 앞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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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공연하는 평화합창단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평화누리공원에서 육로를 통해 입국한 위민크로스DMZ 여성운동가들을 위한 환영식에 시민들이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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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각 가득 매운 환영단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평화누리공원에서 육로를 통해 입국한 위민크로스DMZ 여성운동가들을 위한 환영식에 시민들이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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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관람하는 참가자들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 평화누리공원에서 육로를 통해 입국한 위민크로스DMZ 여성운동가들을 위한 환영식에서 참가자들이 공연을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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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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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권>은 당장 5.24조치를 해제하고 6.15민족공동행사 허용해야

  • [사설] 박근혜〈정권〉은 당장 5.24조치를 해제하고 6.15민족공동행사 허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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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70돌·6.15공동선언발표15돌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지난 5월5일~7일, 중국 심양에서 진행된 남북해외대표자회의에서 6.15공동선언발표 15주년과 8.15광복70주년을 기념하는 남북공동행사를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승환남측준비위대변인은 <남북의 민간단체는 6월14일~16일 서울에서 6.15공동선언기념행사를 개최하고, 8.15광복70주년 기념행사의 장소와 일정은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북측에 7월 광주하계U대회에 응원단파견을 제안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남북민간단체들의 합의는 5.24조치라는 분단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남북관계는 지난 2010년 3월26일 천안함사태이후 남북교류 대부분을 금지하는 내용의 5.24조치가 시행된 이후 5년동안 거의 단절돼왔다. 당시 현인택통일부장관은 용산전쟁기념관에서 결의에 찬 표정으로 개성공단·금강산제외방북불허, 북선박남해역운항불허, 남북교역중단, 대북지원사업보류 등의 골자로 한 5.24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과 맞지않는 5.24조치는 그 이듬해인 2011년부터 부분적인 수정인 <유연화조치>를 통해 조금씩 허물어져 왔지만 여전히 남북교류협력을 가로막는 보이지않는 장벽으로 존재해왔다. 
     
    그동안 박근혜<정권>는 천안함사태의 <북소행설>이라는 그릇된 전제에 기초해 북의 인정·사과를 조건으로 걸고 지난 남북관계의 성과들을 휴지조각으로 구겨버렸다. 박<정권>는 이명박정권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처럼 약속했으나 오히려 더 강경한 대북태도를 견지해왔고 결국 남북관계는 파탄직전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3일 <정부>와 새누리당이 당정협의를 갖고 현 상황에서 5.24조치해제는 불가하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는 박<정권>이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인 <정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내외에 천명하며 우리민족 전체에 도전하는 망동이자 폭거라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권>은 당장 5.24조치를 해제하고 민간단체들이 합의한 6.15민족공동행사를 즉각 허용해야 한다. 이는 광복70돌이자 분단70돌을 맞는 우리민족에게 가장 절박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과제를 실현하는데서 현재 관건적으로 중요한 조치로 된다. 만약 박<정권>이 이런 민족사적 요구와 시대적 흐름을 거역한다면 전민족적인 단죄규탄속에 파멸적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박<정권>이 그간 저지른 헤아릴 수 없는 범죄적 악행속에서도 가장 커다란 죄악이 바로 민족의 절절한 통일염원을 짓밟고 겨레의 가슴에 칼질을 하는 것임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시간은 하염없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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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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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5/25 09:45
  • 수정일
    2015/05/25 09:4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 "미제. 괴뢰패당 비참한 파멸 경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5/24 [11: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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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괴뢰패당이 우리를 악랄하게 걸고들수록 불구대천의 원쑤인 미제 침략자들과 함께 가장 비참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등 국내 주요언론들은 24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전략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수중시험발사 성공 등 핵 무장력이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의 자위적 핵무장력이야말로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수단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남조선 괴뢰패당은 매일 같이 '심각한 위협'이니, '도발행위중단'이니 뭐니 하고 고아대고 있는가 하면 유엔 안전보장리사회에 그 무슨 '서한'을 보내는 추태까지 부리고 있다"면서 “박근혜까지 나서 '예측불가능성 대비'니, '유엔 결의 위반'이니 하면서 반공화국 대결 소동을 앞장에서 충동질하고 있으며 괴뢰군부 깡패들은 '초토화'니,'제압'이니 하는 악담질로 긴장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변인 성명은 "우리의 핵 억제력이 없었더라면 지구상에서 제일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전 조선반도를 병탄하기 위해 끊임없는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 있는 미국에 의해 우리 민족은 돌이킬 수 없는 참화를 입었을 것"이라면서 “'겨레의 안녕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공화국이다.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고 정세를 격화시키고 있는 진범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할 자들은 다름 아닌 미국과 남조선 괴뢰패당”이라고 찍어 말했다. 
 
성명은 “괴뢰패당이 우리를 악랄하게 걸고들수록 추악한 매국 배족적 정체만을 만천하에 더욱 드러내게 될 것이며 불구대천의 원수인 미제 침략자들과 함께 가장 비참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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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원하는 진짜 부처의 모습은

 
조현 2015. 05. 24
조회수 143 추천수 0
 

 

 

중생은 내 곁에 함께하는 부처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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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인님 오신 날을 맞아 광화문에 불밝힌 연등*사진 출처: 연등회보존위원회

 

 

 

25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불교계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전례없는 규모의 대법회를 열었다.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원대회’란 대회명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이 법회의 핵심은 간화선이라는 한국 불교의 수행법을 세계에 알린다는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였다. 지난해 8월 가톨릭 시복식에 이어 불교마저 종단 내적인 행사를 광화문으로 끌고 나온 것이다. 오는 8월엔 개신교도 광화문에서 더 큰 인원을 동원한 행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광화문이 주요 종교의 세 과시장이 된 셈이다.


전국민의 상징적 장소가 교통마저 통제된 채 공공 행사가 아닌 종단 행사의 독차지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의 욕심과 종교를 이용하려는 정권의 입맛이 맞아떨어져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번 가톨릭 시복식에 8억원을 지원한 데 이어 이번 법회에도 9억을 지원했다. 불교계는 광화문 행사를 위해 32억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비용은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방장으로 있는 대구 동화사 말사들에 전가됐다. 이 법회를 추진한 진제 스님의 원맨쇼 같은 행사에 수십만의 인력이 동원됐지만, 국민적 공감을 불러올 메시지도, 간화선의 장점도 전하지 못했다.


2012년 승려 도박 파문 뒤 조계종이 펼쳐온 자성과 쇄신운동 취지에도 어긋나는 행사가 아닐 수 없다. 전통에만 얽매여 근대화·현대화하지 못한 종단을 개혁하려던 종단이 다시 구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조계종은 지난해 법인법을 제정해 딴살림을 하던 대각회 등의 종단 등록을 이끌어내는 등 개혁을 시작했다. 법인법 제정은 사찰의 소유권을 종단으로 이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함부로 매각하지 못하게 하는 등 필요한 조처였다. 조계종이 ‘100인 대중공사’를 통해 의견을 모아 예산 30억원 이상 사찰에 대한 재정공개를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도 종단 신뢰성 회복을 위해 잘한 일이다. 종단 차원에서 세월호 유족과 노동자 등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도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종립대학인 동국대 총장에 논문표절 의혹을 산 보광 스님을 앉히면서 자승 총무원장이 다시 자성과 쇄신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국민의 아픔을 안아주지 못하는 정권과 불통정치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어머니 같은 불교의 역할이 절실하다. 따라서 법상에 앉아 군림하는 부처보다 내 곁에 내려와 눈물을 닦아주는 부처가 그리운 시대다. 이런 동체대비심이 실천되어야 2559년(불기) 전이 아닌 바로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 되는 것이다.

 

조현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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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만에 버려질 기사와 10년 뒤에도 읽힐 기사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기획] (19) 디지털 혁신 핵심은 에버그린 콘텐츠 개발…기사 구조화, 맥락 저널리즘의 재발견
 
입력 : 2015-05-20  10:50:31   노출 : 2015.05.24  07:33:47
정철운·강성원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한겨레21 ‘노동OTL’ 기사는 7년이 지난 지금도 읽힌다. 기자들이 한 달 간 기자란 직업을 숨기고 가전제품 공장, 감자탕집, 가구공장, 대형마트에서 임금노동자로 겪고 느낀 시간들이 숨 막히게 담겼다. 5개월 간 연재된 기사는 통계가 아닌 땀과 노동으로 채워졌고, 비정규 노동현장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며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일할수록 가난한 ‘워킹푸어’의 현실이 르포르타주의 형식으로 구현됐던 이 시리즈는 <4천원 인생>이란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은 13쇄가 나갔다. 

2005년 시사저널 830‧831합본호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언론계에 회자되고 있다. 잡지 한 권이 모두 삼성 관련기사로 채워졌던, ‘삼성전면 특집호’라는 유일무이한 도전이었다. 이건희 리더십에 대한 비평부터 삼성 구조본과 세리(삼성경제연구소)에 대한 해설, 무노조 경영의 비밀과 삼성 임원 1639명 분석에 삼성가혼맥까지 정리했다. 흩어져있던 삼성에 대한 정보를 한 권에 모아 삼성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맥락저널리즘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디지털미디어시대가 도래한 이래로 우리는 휘발성 기사가 넘쳐나는 온라인저널리즘 속에 살고 있다. 흩어진 정보의 양만큼, 정보가 전환되는 속도만큼, 우리는 시공간을 벗어난 정보의 타임라인, 늘 가치 있는 에버그린(Evergreen)콘텐츠를 갈망하고 있다. 

   
▲ 2009년 한겨레21의 기획기사 '노동OTL' 시리즈.
 

에버그린 콘텐츠는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 등장하며 언론계에 회자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에버그린 콘텐츠는 수많은 휘발성 기사들의 모음이다. 기존의 텍스트에 콘텍스트를 입힌 콘텐츠다. 마가렛 대처가 사망했을 때, 가디언은 수작업을 통해 과거 대처와 관련한 기사를 정리, 대처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박사는 “에버그린의 핵심은 언론사의 누적된 지적자산을 재활용하기 쉽게 만들자는 것에 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언론은 방대한 정보를 누적하고 있다. 이미 정리된 ‘정보의 도서관’이 있다면 필요한 기사만 쉽게 끄집어내 재가공하면 사건의 타임라인을 구현할 수 있다. 강정수 박사는 “독일 슈피겔의 경우 1960년대부터 취재내용을 정리해왔지만 한국은 자료정리에 역량을 투여하지 않고 보관만 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강 박사는 “자료정리 시스템이 아날로그에 머무르면 자료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게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디지털 자산관리다.

에버그린 콘텐츠는 기존의 취재문법과 다르다. 보도 자료와 스트레이트 기사형식으로 당일 이슈를 쫓아가고, 전문가와 관련자의 코멘트를 받는 기존 문법과 달리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기사형식도 자유롭다. 에버그린 콘텐츠의 핵심은 맥락저널리즘, 다른 말로 구조화된 저널리즘이다. 구조화된 저널리즘은 개별 뉴스정보가 생성될 때 태그(tag)를 추가해 저장하고 이를 기초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강정수, 2014)을 의미한다.

뉴욕타임스는 혁신보고서에서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의 풍부한 기사 아카이브가 다른 경쟁자들에게 없는 분명한 장점”이라고 강조하며 “1851년부터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기사는 1472만개”라고 자랑했다. 뉴욕타임스가 자랑하는 이 데이터를 구조화해 맥락을 묶어내면 누구도 쓸 수 없는 기사가 나온다. 수십 년 전, 수백 년 전 기사가 타임라인을 타고 사건의 맥락과 사회변화의 흐름을 짚어내게 된다. 

1920년대 대공황 당시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의 상황을 기사로 비교할 수도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쿠바 정책을 타임라인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오늘날 디지털미디어환경이 가져온 선물이다. 독자는 과거 국면과 현재 국면을 비교하며 시공간을 넘어 입체적으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에버그린 콘텐츠 구현에 최적화된 콘텐츠관리시스템(CMS:Content Management System)의 혁신이 관건이다. CMS만 제대로 구성된다면 기자들은 거인 위의 난장이처럼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게 강정수 박사의 설명이다.

   
▲ 2013년 아시아경제의 기획기사 '그 섬, 파고다'.
 

일회성 실험 넘어 상시적으로 생명력 강한 콘텐츠 필요 

한국도 에버그린 바람이 불고 있다. 에버그린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언론사는 경남도민일보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해 7월부터 2000년 이후 작성한 46만7000여건의 기사와 6600여 명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경남 지역의 중요한 이슈를 재정리하는 ‘지난기사 새로쓰기’ 기획을 선보였다. 첫 아이템이었던 ‘남해안 적조’ 기사는 한반도에서 최초로 적조가 일어난 시기가 삼국사기에 기록된 서기 161년이며, 경남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적조가 1995년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끌어냈다. 

경남도민일보는 ‘4대강 사업 찬성·반대 인사 및 단체 총 정리’ 기획을 통해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4대강 사업을 옹호한 인사(김태호 전 경남지사,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 등)와 지자체(창녕군) 등을 분석해 독자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임종금 기자는 “팩트를 모아보면 하나의 흐름이나 경향이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과거 기사들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임종금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 기획은 약간의 노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임 기자는 “수백 개의 기사를 다 본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수 있겠지만, 막상 해 보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루에 2시간, 3~4일만 하면 1000개의 기사를 훑어볼 수 있다”며 “언론사 홈페이지는 데이터의 보고다. 우리는 이걸 그대로 묵혀 두기만 했을 뿐이다. 혁신은 새로 거창하게 만들 필요 없이 있는 것부터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버그린 콘텐츠 실험을 제안한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출판미디어국장은 “지금까지 뉴스라고 하면 그날그날 발생하는 현안과 사건 보도 위주로 생각하는 관념이 많았다. 하지만 시의성과 관계없는 역사·문화·인물·자연환경 등 원래 갖고 있던 자원에 대해서도 스토리텔링으로 콘텐츠화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마이뉴스의 인터랙티브 뉴스도 속보나 진행 중인 사건을 지속적으로 접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기사 속 사건의 문맥과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독자의 뉴스 접근성과 이해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월호 생존자들의 참사 당시 증언을 발굴하고 세월호 침몰과정을 인터넷과 모바일에 입체적으로 구현한 ‘4월16일 세월호, 죽은 자의 기록 산 자의 증언’ 기획기사가 한 예다. 

서울에서 전·월세를 구하는 1~2인 가구가 필요한 정보를 담은 스페셜 페이지 ‘실전! 셋방 찾기’도 화제였다. 상근기자 1명과 시민기자 7명,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각각 2명씩 투입돼 서울 시내 공인중개사들이 지난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포털 사이트 ‘네이버 부동산’에 올린 5~18평대 매물들을 모두 수집해 분석했다. 구별로 나뉘어 그 지역의 특징을 소개하는 현장 기사도 실어야 했다. 당장 거창한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언론사의 전문성과 신뢰도가 쌓이게 된다.

   
▲ 2014년 오마이뉴스 '세월호, 죽은자의 기록 산자의 증언' 인포그래픽.
 

에버그린 기사 제작에 참여한 김동환 오마이뉴스 기자는 “에버그린 콘텐츠라고 해서 무언가 대단한 인상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는 “우리가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뉴스의 본질은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므로 각종 인터랙티브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독자의 이해를 돕는 부분을 가장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세월호 기획도 우리가 어떻게 하면 기억하기 편한 방식으로 구현할 것인지를 고민하다 인터넷·모바일 뉴스 소비자의 성향에 맞춰서 기자들이 9주 동안 일일이 설계도에 점을 찍어가며 작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마이뉴스의 에버그린 기획은 독자들이 언제든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기 쉬운 뉴스를 만들려다 보니 산재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샘플링 해 새롭게 재가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했다. 

누구나 파편화된 데이터를 모아 재가공해 에버그린 콘텐츠를 구현해낼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수입이 되고 주목을 끄는 것은 중앙일보의 ‘김종필 회고록’과 같은 기사들이다. 2013년 ‘그 섬, 파고다’ 기획을 시작으로 ‘위안부 보고서55’ 등 ‘스페셜 뷰’ 섹션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를 제공하고 디지털 뉴스룸을 신설해 새로운 에버그린 콘텐츠를 기획 중인 아시아경제의 고민도 일회성 콘텐츠를 생명력이 강한 새로운 콘텐츠로 만들며 수익을 내는 방안이다. 

백재현 아시아경제 뉴미디어본부장은 ‘그 섬, 파고다’ 등 일련의 기획에 대해 “콘텐츠를 통한 독자 유입도 그리 높지 않고, 독자 입장에선 과거 뉴스보다 쉽게 소비할 순 있지만 100% 그들의 니즈(needs)를 충족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한 뒤 “인포그래픽 뉴스가 지금껏 휘발성이 강한 기사를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면 이제 하루하루 오프라인에 쏟아낸 많은 기사에 어떻게 에버그린 콘텐츠의 성격을 부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관건은 구조화된 데이터다. 뉴욕타임스는 혁신보고서에서 “에버그린 콘텐츠를 새롭게 다듬는 방법, 우리 기사를 좀 더 이용하기 좋은 방법으로 정리하고 포장하는 방법, 그리고 독자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법을 더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정수 박사는 “구조화된 데이터 확보는 기자의 개인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시스템적으로 아날로그적 전통을 디지털로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사내에서도 에버그린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 100여년 간 축적한 기사를 전부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계속 이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현재는 부분적으로만 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조선닷컴에서 1945년 11월23일자부터 지면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향신문‧한겨레‧동아일보‧매일경제는 네이버 라이브러리에서 지면보기 서비스 중이다. 

미디어오늘은 스페셜페이지를 통해 맥락저널리즘을 시도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란 주제의 타임라인을 선보였다. 2009년부터 추적하고 있는 천안함 사건 관련 기사를 정리해 ‘천안함의 비밀’ 코너도 마련했다. 이명박정부 이후 MBC를 입체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오욕과 굴종의 MBC 7년’ 기획도 타임라인으로 정리했다. 

한겨레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비문탐구’란 제목의 카드뉴스를 선보였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 등에서 나왔던 발언을 묶어 타임라인으로 보여줬다. 이처럼 에버그린 콘텐츠는 단순히 시간 순으로 텍스트를 묶어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시대의 흐름 감지, 현장에 밀착하되 사안의 본질 꿰뚫어야 

에버그린 콘텐츠의 조건은 무엇일까. 노동OTL 기획 당시 한겨레21 사회팀장이었던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은 “에버그린 콘텐츠의 공통점은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수찬 편집장은 “노동OTL은 비정규 불안정 노동이라는 화두를 틀어쥐었다. 생생한 불안정 노동 현장을 보여주며 역사를 표상하는 르포가 됐다. 100년이 지났어도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와 같은 르포르타주가 읽히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조성문의 실리콘밸리(sungmooncho.com)의 운영자 조성문씨는 2010월 3월 자신의 사이트에 ‘한국 인터넷에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 그 이름은 네이버’란 글을 썼다. 운영자는 “최근에도 많은 분들이 공감하며 회자되고 있어 2015년 4월 기준으로 누적 조회 수가 200만을 넘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네이버의 검색 품질에 대해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고 사람들의 관심사를 적확하게 짚어낸 결과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찾는 콘텐츠로 거듭났다.

안수찬 편집장은 “인포그래픽은 단기적으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지만 이것이 곧 에버그린 콘텐츠가 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하며 에버그린의 조건으로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사회과학적 능력과 생생한 현장에 밀착하고 복합적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인문학적 사고력, 그리고 이를 생생히 전달하는 문학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당장 더 많은 독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점점 더 늘어나는 독자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간 지도의 탄생> 저자인 역사학자 대니얼 로젠버그는 “시간 차트(연표)가 추구해온 가장 중요한 목표는 더 많은 자료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뚜렷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에버그린 콘텐츠의 목적도 연표와 마찬가지다. 대니얼 로젠버그는 “타임라인이 오늘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어느 곳에서나 등장한 시기는 이제껏 없었다”며 “타임라인은 현재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성 체계”라고 강조했다. 휘발성 기사가 범람하는 시대, 이제 언론은 시대를 꿰뚫는 콘텍스트를 타임라인으로 구현해낼 의무가 생겼다. 

<편집자주>

미 디어오늘이 오는 5월 창간 20주년에 맞춰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20회 연속 기획 시리즈를 내보냅니다. 미디어 산업의 전통적인 수익 기반이 붕괴되고 콘텐츠 플랫폼이 다변화하면서 주류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약화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면서 급기야 저널리즘의 근간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획 시리즈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진단하고 퇴행적인 일련의 변화를 비판하고 혁신과 대안을 모색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창간 20주년, 미디어오늘은 언론 보도의 이면과 팩트 너머의 진실을 파고드는 정직한 감시자,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연재 순서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기사로 연결됩니다)

(01) 뉴스, 가격 없는 상품의 딜레마.
(02) 온라인 저널리즘이 불러온 재앙.
(03) 붕괴하는 광고 시장, 추락하는 저널리즘.
(04) 현장에 기자들이 없다.
(05) 퇴행적인 취재 시스템.
(06) 별성 없는 콘텐츠.
(07) 신문시장의 구조적 위기.
(08) 방송의 통신 종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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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발등에 떨어진 북한 SLBM

오바마 발등에 떨어진 북한 SLBM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5/05/23 [13:00]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한이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의 발사시험에 성공하자 한-미가 떠들썩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대해 미사일 방어체제 (MD)로 대응해왔습니다. 국토가 크지 않은 북한이 미 본토로 발사할 미사일의 궤적이 일본-알래스카-캐나다를 잇는 좁은 회랑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판단에서 그 부분의 MD 체제를 강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SLBM 개발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이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북한 핵미사일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한 것입니다. 상황은 한-미에게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1. 핵과 ICBM, 핵증산에서 SLBM까지

 

북한의 SLBM 발사성공은 북-미 군사대결에서 전략무기의 기술수준이 대등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의 이른바 “대량살상무기” 개발일지를 한번 살펴봅시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98년 8월 31일, 북한은 백두산 1호 로켓을 통해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발사 성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이를 대포동 1호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북한의 우주공간 진입 로켓기술이 1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2005년 2월 10일에는 핵보유선언을 한 데 이어 2006년 10월 9일에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제1차 지하핵시험을 단행하였습니다. 한국지질자원 연구원은 리히터 규모 3.58의 인공지진파를 감지하였습니다.

 

2006년 7월,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하였습니다. 미사일은 발사 후 40초 만에 레이더에서 사라져 한-미는 바다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외교적 분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당초 그 지점까지만 비행할 계획으로 발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번 SLBM 시험처럼 말이죠. 미국은 이를 대포동 2호 미사일이라고 불렀습니다.

 

2009년 4월 5일, 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성공리에 발사해 궤도 경사각은 40.6°. 지구로부터 제일 가까운 거리는 490km, 제일 먼 거리는 1426km인 타원궤도로, 주기는 104분 12초로 지구를 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한-미는 부정하였지만요.

 

미국은 광명성 2호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라고 북한을 압박하였습니다.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제2차 핵시험으로 맞섰습니다. 한국 기상청은 리히터 규모 4.5의 인공지진이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1차 핵시험에 비해 약 10배 가량 지진규모가 커진 것입니다.

 

이후 북한은 2012년 4월 13일에는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인공위성 광명성 3호를 발사하였으나 실패하고 2012년 12월 12일에 재차 발사해 우주궤도 진입에 성공하였습니다. 당시 광명성 3호 2호기는 미국도 발사 성공을 인정하였습니다. 2012년 4월 15일, 북한은 차량이동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전격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서 대북제재를 강화했습니다. 북한은 2013년 2월 12일, 제3차 지하핵시험으로 맞섰습니다. 기상청은 처음에는 규모 5.1의 인공지진이 감지됐다고 밝혔다가 오후에 4.9로 조정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진도 5.2, 미국은 진도 5.1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당시 정승조 합참의장은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두고 완전한 수준의 수소폭탄에 이르기 전 단계의 위력이 증강된 증폭핵분열탄(boosted fission weapon)을 시험할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이 입장은 3차 핵시험 후 정정되었습니다만, 우리 군도 북한의 수소폭탄 개발을 우려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북한의 제3차 핵시험 이후 북-미는 사실상 핵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극단적 군사대결을 벌입니다. 하지만 2013년 4월 5일,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지도부의 오판을 우려해 대북무력시위계획인 플레이북을 중단하였습니다. 정말 전쟁이 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때는 이미 3월 31일, 북한이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뒤였습니다. 이는 사실상의 핵증산 선언으로 북한은 그때부터 <병진노선>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병진노선>이 2년을 지난 2015년 5월 8일,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에 성공하였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살펴보면 북한은 미국의 압박이 있을 때마다 전략무기를 계단식으로 강화했습니다. 핵개발에서 장거리미사일로, 다시 핵증산으로, 여기서 SLBM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핵과 우주발사체 능력이 나아질 때마다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였고 이는 다시 북한 전략무기 개발의 빌미가 되어왔습니다. 이 공식은 20년째 그대로입니다. 정말로 “멍청한 제재”입니다. 

 

 

결국 2015년 5월에 이르러 북한은 핵탄두와 그 타격수단에 있어 미국과 거의 대등해지는 상황에 도달하였습니다. 2015년 5월 20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우리의 핵타격수단은 본격적인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선지 오래다. 중, 단거리로케트는 물론 장거리로케트의 정밀화, 지능화도 최상의 명중확률을 담보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숨기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차량이동형 ICBM에 SLBM 개발이 막바지에 왔으며 핵시험만 3번을 단행해 핵탄두의 소형화, 다종화를 주장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향후 북한의 대미공세가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SLBM 쏘는 데 웬 인권?

 

북한이 SLBM이라는 카드를 제시하자, 한-미는 갑자기 바빠지고 있습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5월 18일, 서울을 찾아 북한의 SLBM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고 “이제 우리는 더욱 더 압력을 가하고 제재 조치라든지 다른 수단을 통해, 그가 지금 미사일시스템과 핵무기 프로그램이라는 매우 위험한 경로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 20년을 헤아립니다. 케리 장관은 이를 “매우 위험한 경로”라고 했지만 북한은 이를 “매우 안전한 경로”라고 인식하는 듯합니다. 

 

 

실제 케리 장관은 SLBM이라는 군사적 사안에 대해 난데없이 북한인권에 대한 추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국제법을 무시하면서 자국민들의 자유와 인권보호를 거부하므로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유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SLBM 개발이 “매우 위험한 경로”라면, 이라크 사담후세인을 “사막의 폭풍작전”으로 유린했듯이, 지금 당장 평양을 폭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SLBM을 쏘고 있는데 인권을 이야기하는 케리 장관의 발언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2일에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국방부, 통일부, 외교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함께 한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SLBM을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의 안정을 저해하는 심각한 도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SLBM을 MD로 막을 방법을 찾으라며, 동시에 외교적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MD 체제는 미국을 빼고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는 곧 한미동맹을 북한 SLBM의 유력한 대응책으로 제시한 셈입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도 “미국 등 우방과의 협의를 기초로 국제사회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에는 일본도 포함됩니다. 국방부는 오는 5월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제14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양자 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연합뉴스>보도에 따르면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 등 국지도발 위협 등에 대해서도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정부는 SLBM을 막을 수 있다며 미국을 바라보지만, 미국은 SLBM에 대해 북한인권을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일본을 끌어들여 한일 국방장관회담까지 열리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SLBM 개발에 미국이 제재와 인권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는 미국이 군사적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런 식으로 별 것 아닌 듯 대응하다가 북한의 핵시험과 ICBM, 핵증산을 허용했고 이젠 SLBM까지 내주었습니다.

 

미국과 군사대결에 맞서 전략무기를 개발해 온 북한의 대응방식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향후 6.15/8.15 민족공동행사와 8월말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앞두고 북한이 군사적 대응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3. 전쟁, 제재, 테러의 비현실성 

 

북한 SLBM에 대한 한미동맹의 대응책은 무엇인가요?

첫째, 북한정권을 응징하기 위한 대북전쟁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북한 SLBM을 실전배치되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미는 이미 2013년 2월에 이미 치열한 군사대결을 벌였습니다. 당시 북한 지도부는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모든 군사 통신선을 단절시켰습니다. 북한 전략로켓군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키며 한반도가 핵전쟁 상태에 돌입한다고 유엔에 통보하고 미 본토와 해외 미군기지를 공격하는 핵전쟁을 경고했습니다. 결국 먼저 발을 뺀 것은 플레이북을 중단시킨 미국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이 북한을 핵으로 선제공격한다면 해외주둔미군기지와 미 본토가 북한의 핵보복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칫 핵미사일 1발 쏘다가 한-미-일 3각 동맹이 모두 방사능 벨트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본토가 핵공격을 받는 것이 두려운 미국은 남북간 충돌에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동안 우리 국방부는 북한에게 “도발하면 뼈저린 후회”를 장담했는데,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NLL에 교전이 일어나면 어찌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전쟁이 힘들다면 둘째, 대북제재를 강화해 경제적으로 북한을 고립압살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실제 케리 장관의 “압박 강화” 발언을 보면 미국은 북한고립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지난 20년간 미국이 북한에게 지속적으로 써 온 수법입니다. 이미 최고조에 달한 대북제재는 강도를 더 높일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북한에게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습니다. 미국이 흔들릴수록 북미대결을 최대한 활용에 국익을 도모하고자 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있는 이상 경제제재로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셋째,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방법이지만 미국이 맛을 들인 “요인암살”이 있습니다. CIA 등 정보기관을 동원한 요인암살입니다. 5월 21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미 포린폴리시는 미 CIA가 테러범 검거 및 살해까지 담당하는 살인조직으로 변질되었다고 했습니다. CIA는 대통령 직접보고 권한과 워싱턴 인맥을 활용해 자기 과오를 숨기는 “거대 괴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 역시 “휴민트”라 불리는 북한정보원을 매수하고 있습니다. CIA와 국정원이 출동해 북한요인 암살과 테러를 가하면 북한정권은 붕괴될까요?

 

국정원이 심혈을 기울인다는 “휴민트”는 북한내부의 정보를 돈 받고 파는 일종의 “거래자”이지, 무슨 요인을 암살할 특수부대원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1950년 6.25 전쟁 이후 65년 가까이 북한지도부 암살을 노렸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북한 내부적으로도 지난 2013년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유일지도체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2012년 7월 20일에는 북한국경 인근에 북한지도자의 동상을 파괴하러 들어간 탈북자가 북한당국에 체포되어 미국과 국정원이 배후였음을 인정한 이른바 “동까모”사건도 있었습니다. 암살은커녕 동상도 파괴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북한을 테러로 섣부르게 건드렸다가는 2012년처럼 실패하고, 북한의 대미강경대응만 초래할 수 있습니다.

 

넷째, 보수진영의 주장대로 최근 북한 평양의 경제발전을 향유하는 평양 엘리트 시민들을 이른바 “시민혁명”에 동원할 수 있을까요? 미국은 이를 위해 열심히 대북전단을 날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미 일정한 경제적 소비를 하고 있는 평양시민들이 목숨걸고 북한정권 붕괴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원래 혁명은 가장 억압받고 착취받는 자들이 선두에 섭니다. 북한사회에서 기반이 튼튼한 평양시민들이 개별적으로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 남측에서 날아오는 “전단”만 보고 혁명에 목숨 걸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어처구니없습니다.

 

결국 현재로써는 핵능력을 확장해나가는 북한정권을 쓰러트릴 방법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면 북한경제가 괴멸된다며 백두산 화산을 연구하겠습니까.

 

 

4. 유일한 출로는 북미관계 정상화

 

결국 방법은 관계개선입니다. 북-미 관계개선은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약속하였던 “핵없는 세계”를 이행할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북미관계 개선은 미국독점자본에게도 출로가 없는 세계경제에서 미 독점자본이 태평양-시베리아 경제권을 출구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박근혜 정부에게도 6.15 공동선언 이행을 통한 통일경제 구축은 우리민족이 부강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출로입니다. 

 

 

너무나 명백한 북미관계개선의 이익 앞에서도, 미국은 구체적 방법도 없이 “북한인권규탄”과 “대북제재강화”라는 공허한 메아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동북아 군사패권을 내놓기가 너무나 아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지난 20년간 반복되어온 “멍청한 제재”의 연속일 뿐입니다. 어떤 정책이든지 실패할 경우의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대책없는 “멍청한 제재”는 북한의 자위적 무장력을 한 단계 더 높이는 빌미만 제공해왔을 뿐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외교정책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전쟁패배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한 것을 보고 미국이 중국에게 패배했다는 주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관계개선은 정책의 변화일 뿐입니다. 북한의 전략무기가 갈수록 증강되는 현실 속에서, 미국은 대결이 아니라 대북관계개선을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로 방향을 바꿔야만 합니다.

 

벌써 20년째입니다. 미국은 북한과 관계개선을 외면하다가 핵시험에 장거리 타격수단은 물론이고 핵증산에 SLBM까지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시간은 금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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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조치 해제? 차라리 ‘제2의 7.7선언’을 하라

<통일시론> 5.24조치 해제? 차라리 ‘제2의 7.7선언’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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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4  03: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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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태에서 5.24조치 발표 5주년을 맞는다. 알다시피 5.24조치란 이명박 정부가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그해 5월 24일 발표한 대북 제재 조치이다. 그런데 5.24조치로 남북 경제교류가 전면 중단된 이후 남측의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가 북측보다 더 크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북측을 압박하려고 한 조치가 오히려 남측에 피해를 주고 있다니,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이러니 이제와선 5.24조치가 남과 북의 공적(公敵)으로 치부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당연히 그간 북측은 5.24조치에 반발해 왔다. 남측이 5.24조치를 해제할 기미가 없자 북측은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전가의 보도인 이산가족 상봉과 결부해 왔다. 북측은 박 대통령의 이산가족 상봉 요구에 대해 그 조건으로 5.24조치의 해제를 내걸었다. 즉,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북측 때문이 아니라 5.24조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측에서도 예외 없이 5.24조치 해제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남북 경협 당사자나 대북 지원단체들은 물론 시민사회계, 종교단체, 경제계, 그리고 정치권에서 여당 의원들조차 5.24조치 해제를 요구할 정도이다. 남북이 이러니 박 정부에게 5.24조치는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말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끝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시기가 올 것으로 기대됐다. 특히, 6.15공동선언 15주년과 8.15광복 70주년이라는 남북 대화의 ‘골든타임’(golden time)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더 나빠졌고 기대는 어긋났다. 개성공단 최저임금 문제가 미봉책으로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남북 갈등의 소지가 있으며, 6.15공동선언 15주년을 코앞에 두고도 민족공동행사 개최에 합의하지 못해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을 잃고 있다. 게다가 북측의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발사와 남측의 ‘현영철 숙청’ 발표 및 ‘공포정치’ 부각 등으로 남북관계가 더 꽁꽁 얼어붙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는 금언은 언제고 긴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이제 그 소기의 목적이 불분명해지고 오히려 남측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5.24조치를 아무 조건 없이 해제하면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너무 내뱉은 말이 많기에 주워 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캐릭터 상 북측에 지기 싫어하고 또 이명박 정부의 유산을 자신이 설거지 한다는 게 영 마뜩치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그건 5.24조치를 건드리지 않고 그것도 우회가 아닌 뛰어넘는 것이다. 즉 5.24조치 해제 문제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라 더 크게 보자는 것이다. 역사에 그 답이 있다.

다름 아닌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이다.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으로 발표된 7.7선언은 ‘남북동포간 상호교류 적극 추진 및 해외동포들의 자유로운 남북 왕래 문호 개방’, ‘이산가족들 간의 생사, 주소확인, 서신왕래, 상호방문 적극 주선’, ‘남북 교역 문호 개방’,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남북이 국제무대에서 자유롭게 만나 민족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서로 협력’, ‘북한과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협조’ 등 모두 6개항으로 되어 있다. 지금 봐도 놀랍지 않은가?

7.7선언 발표로부터 27년이 흘렀다. 27년이 흐른 만큼 ‘노태우 7.7선언’의 내용보다 더 풍부하고 파격적인 대북 제안을 담는 이른바 ‘박근혜 7.7선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5.24 대북 제재 조치의 내용을 뛰어넘는 새로운 남북 교류 협력의 내용이 담긴 선언 말이다. 그렇다면 전임 대통령이 남긴 5.24조치라는 ‘부(負)의 유산’(Negative heritage)을 제 손으로 치울 필요도 없고 또 북측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결국 5년간 끌어온 계륵 같던 5.24조치는 자연사(自然死)할 것이고 박 대통령은 ‘제2의 7.7선언’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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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덕분에 조선이 독립했다? 황당한 자화자찬

 

[일본 교과서 톺아보기④] 청일·러일전쟁을 '근대화' 전쟁으로

15.05.23 20:28l최종 업데이트 15.05.23 20:28l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아시아역사연대)는 국내외 교과서의 역사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지난 4월 6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5년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아시아역사연대는 검정을 통과한 사회과(역사, 공민, 지리) 교과서 18종의 자료를 입수해 역사연구자들과 함께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아시아역사연대의 분석 결과를 몇 회에 걸쳐 전합니다. - 기자 말

전후 70년이다.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린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은 끝이 났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나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전쟁을 기념한다.

패전국인 일본은 항복 선언을 한 8월 15일을 '종전기념일',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9월 2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한국은 일제 통치로부터 벗어난 것을 기념해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고 명명했다.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은 때로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청일전쟁 후 조선은 처음으로 중국으로부터 독립국 인정"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지금의 동아시아를 만든 두 전쟁이 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다. 이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으로, 두 전쟁 모두 일본제국의 승리로 끝이 난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러일전쟁의 결과로 한반도의 지배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2015년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동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 두 전쟁을 어떻게 기술하는지 살펴보았다. 교과서 분석 결과, 전반적으로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서술과 일본의 국제적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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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에 실린 청일전쟁 직전의 동아시아(조선-일본-청-러시아)의 국제관계를 그린 풍자화
ⓒ 이쿠호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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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시모노세키 강화회의가 열려 일본은 청과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에는 조선이 청의 속국이 아닌 독립국임을 나타냈다. 이리하여 조선은 처음으로 중국으로부터 독립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이쿠호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는 인도와 베트남 등 구미열강의 식민지였던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자극을 주어 민족운동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일본은 새로운 제국주의국으로서 아시아 민족을 접하게 되었다.(도쿄서적)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한 기술이다. 청일전쟁은 청나라가 조선을 속국화하려는 것에 대항하여 조선의 독립을 보장한 전쟁으로 묘사되어 있다. 러일전쟁은 만주를 침략하는 러시아에 대한 조국 방위전쟁으로 설명하며, 전쟁을 단순한 방어전쟁이 아니라 아시아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을 촉진시킨 것임을 강조했다.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유색인종의 승리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갖게 했다고 기술했다. 이러한 경향을 나타낸 교과서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을미사변' 없애고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전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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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유일한 ‘을미사변’ 기술.
ⓒ 마나비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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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청일전쟁 강화회담 이후 삼국간섭에 의해 조선을 보호국화 하려는 정책이 좌절되자 이를 전환하기 위해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을 일으켰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역사교과서 8종 중 마나비샤 교과서 1종을 제외하고 모두 을미사변에 대한 기술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조선왕비살해사건 – 1895년 일본공사들은 러시아에 기대려는 정책을 추진하는 조선왕비를 살해하였다. 일본에 대한 비난과 반발은 강해지고, 일본의 영향력은 약해졌다.(마나비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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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을 입은 이토 히로부미의 사진
ⓒ 이쿠호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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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의 기술 삭제와는 달리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은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기술하고 있다. 위와 같은 서술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로 한국병합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처럼 이해될 소지가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 헌법의 기초자이며, 근대국가로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일본에는 알려져 있다. 총 8종의 역사교과서 중에서 마나비샤만을 제외한 모든 교과서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기술했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에서 한국인 안중근에게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10년 정부는 한국병합을 단행하고 통치를 위해 조선총독부를 두었다. 구미열강에서도 조선반도의 문제로 일본을 간섭할 의도는 없었다.(이쿠호샤)

"36년 조선 통치로 인구 2배 되고 경작지 크게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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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와 한글을 병용한 교과서 사진. 조선총독부는 교육 보급에 노력했음을 설명하며, 공립학교에서 일본어와 한글을 함께 가르쳤다는 설명을 덧붙임.
ⓒ 지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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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후에 설치된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의 철도∙관개시설을 만드는 등의 개발을 행하고, 토지조사를 실시했다. 주) 이러한 근대화에 의해 경작지에서 쫓겨난 농민도 있었다. 그 외에도 조선의 전통을 무시한 여러 동화정책을 추진해 조선사람들은 일본에 반감이 강했다. 그러나 36년의 조선 통치로 인구는 2배가 되었고, 경작지도 크게 증가했다.(지유샤)

강한 권한을 가진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무력으로 민중의 저항을 누르며 식민지지배를 추진했다. 주) 토지제도의 근대화를 명목으로 토지조사를 실시해 많은 조선 농민들이 토지를 상실했다.(도쿄서적)

조선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대한 소개와 비판을 하는 내용이다. 다수 농민의 소작인화, 해외 이주 증가를 설명하고 있지만, 토지조사사업이 근대화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기술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드러내고 있다. 개항기 일본인 지주들의 불법적인 토지침탈과 토지조사사업 이후 일본인 토지소유가 합법화된 사실은 배제되어 있다.

2005년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 왜곡 시정 요구를 교묘하게 회피하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교과서에 담아내고 있다. 그것도 세련되고 서술의 정밀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검정 통과된 교과서에서는 더욱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전체적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공과에 대한 비판의식을 겸하면서도 일본의 침략사실을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내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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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호, 김무성에 “전직 대통령 죽음으로 몰아” 직격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5/24 08:15
  • 수정일
    2015/05/24 08:1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15-05-23 16:20수정 :2015-05-23 17:32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건호씨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건호씨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 봉하 묘역서 엄수
아들 건호씨 김 대표에 “제발 나라 생각 좀 하라” 쓴소리
추도식에 앞서 추모객들 “김무성 물러가라” 소리치기도
“사과도 반성도 필요없습니다. 제발 나라 생각 좀 하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노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작심한 듯 강하게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 대통령 묘역에서 ‘시민의 힘!’을 주제로 열렸다.

 

3000여명의 추모객들이 묘역 옆 추도식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앞줄에 나란히 앉아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두 여야 대표는 자리에 앉을 때 인사를 나눈 것 외에는 추도식 내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족을 대표해 노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무대에 올라 “이 자리에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오셨습니다. 전직 대통령이 엔엘엘(NLL) 포기했다며 내리는 비 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에 이기려고 국가 기밀문서를 뜯어서 읊어대고, 국정원을 동원해 댓글 달아 종북몰이 해대다가, 아무 말 없이 언론에 흘리고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습니다”라며 앞줄에 앉은 김무성 대표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가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가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 있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건호씨는 또 “혹시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 좀 안하시려나 기대가 생기기도 하지만, 뭐가 뭐를 끊겠나 싶기도 하고, 본인도 그간의 사건들에 대해 처벌받은 일도 없고 반성한 일도 없으시니, 그저 헛꿈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과? 반성?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 제발 나라 생각 좀 하십시오”라고 쏘아 붙였다. 그는 또 “국가의 최고 기밀인 정상회의록까지 선거용으로 뜯어 뿌리고, 국가 권력자원을 총동원해 소수파를 말살시키고, 사회를 끊임없이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세우면서, 권력만 움켜쥐고 사익만 채우려 하면, 이 엄중한 시기에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힘있고 돈 있는 집이야 갑질하기에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나중에 힘 없고 약한 백성들이 흘릴 피눈물을 어떻게 하시려고 국가의 기본질서를 흔드십니까.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추도식 30분 전 주요참석자 가운데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가장 먼저 입장하자, 여러 추모객들이 “김무성은 물러가라”고 외치기도 했다. 뒤이어 입장한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차리리 탈당하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문재인 대표는 추도식 시작 직전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 건호씨 등과 함께 입장했다. 노 대통령 사저 앞에 둘러서있던 추모객 수백명은 문 대표와 유족들이 나오자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박수를 쳤다.

 

김은경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은 국민의례와 애국가·<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시작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는 참석자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힘차게 흔들었다. 추모공연에선 가수 조관우씨가 노 대통령을 추모하며 만든 노래 <그가 그립다> 등을 불렀다. 또 바리톤 손현상씨는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다.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은 “6주기를 맞은 이제부터는 추모를 넘어 역사를 반전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올해 추도식 주제를 ‘시민의 힘’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맞은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추도식이 엄수됐다. 사진은 권양숙 여사, 아들 노건호씨가 입장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맞은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추도식이 엄수됐다. 사진은 권양숙 여사, 아들 노건호씨가 입장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추모동영상은 노 대통령이 연설하던 모습을 편집해 마치 지금 국민 앞에서 연설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동영상은 ‘누가 미래를 준비했습니까?’ ‘누가 평화를 지향했습니까?’ ‘누가 안보를 실천했습니까?’ ‘누가 통합을 열망했습니까?’ ‘누가 분열에 저항했습니까?’라며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의 치적을 소개했다. 또 동영상 속에서 노 대통령은 ‘진보의 역사를 이끌어갈 주체는 누구입니까?’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자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제 우리 시민들이 나서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완성합시다”라고 말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추도사에서 “이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자문해야 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남기신 미완의 과제와 유산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대범한 정치적 자세를 배우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이 남기신 역사적이며 근본적인 가치를 현실화하는 미완의 숙제를 해내야 합니다. 그러한 가치를 현실정치에서 보다 더 구체화하고 끝끝내 관철해내야만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추도사를 한 노무현장학생 정선호(21·성공회대 1년)씨는 “저는 감히 맹세합니다. 당신의 길을 걷겠습니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말할 수 있고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모두가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왼쪽 둘째)가 추도식장에 들어서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눈인사를 하고 있다. 아들 건호씨(왼쪽)는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왼쪽 둘째)가 추도식장에 들어서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눈인사를 하고 있다. 아들 건호씨(왼쪽)는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 김해/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건호씨는 “이미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전국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추도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상 깊은 수많은 추모행사를 전국에서 자발적 움직임으로 준비해 주신 데 감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라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힘이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참석자들에게 인사했다.

 

참석자들은 노 대통령 묘역에 줄지어 걸어가서 헌화하는 것으로 추도식을 마쳤다. 김무성 대표는 헌화를 마친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봉하마을을 떠났다.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새정치민주연합 경남도당위원장은 “김무성 대표가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건호씨가 고민 끝에 유족 인사말을 작성한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 다른 사람과 의논은 없었다. 새누리당 대표가 처음으로 노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엔엘엘 발언을 당사자인 그가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그저 왔다 가는 것은 노 대통령 추도식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김무성 대표는 추도식에 왔다가 돌아갈 때까지 건호씨 등 유족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해/최상원 기자 csw@hani.co.kr

 

 






 
 
[화보-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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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국정원 '불법 공화국'에서 주권을 실현할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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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5/23 12:18
  • 수정일
    2015/05/23 12:1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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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국정원 '불법 공화국'에서 주권을 실현할 '무기'
[프레시안 books] 국순옥 <민주주의 헌법론>
 
 

어느새 우스개로 다가오지만,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내내 부르댄 정치인이 있다.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농민과 노동자가 '법질서'를 지키는 공권력에 맞아죽은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당시 이른바 '야당' 대표였던 그 정치인은 되레 자신이 집권하면 '흔들리는 법질서부터 바로 세우겠다'고 호언했다. 마침내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하지만 당선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불법 선거 자금 혐의까지 불거졌다. 그럼에도 당사자인 박근혜는 물론, 법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데 용춤을 추어온 독과점 언론사들도 언죽번죽 시치미를 떼고 있다.

생게망게한 나라꼴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촛불을 들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주권이 실현되는 것은 아님을 사무치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적잖은 이들이 실망을 넘어 좌절하고 있는 까닭이다.

절망이 감도는 '진지'를 재구축하고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우리에게 '무기'가 될 책이 나온 것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신간 <민주주의 헌법론>(아카넷, 2015년 4월 펴냄)은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부르대는 정치인들, 그들 앞에 헌법 제1조를 외친 주권자들이 두루 정독해야 할 책이다. 전자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주고, 후자에게는 주권 실현의 무기가 될 이 책의 저자는 '명망'을 좇는 사람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법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그것을 사회에 구현하는 데 앞장서온 학자들에겐 명성 높은 스승이다.

인하대학에서 헌법학을 강의하며 대학원 안팎에서 숱한 법학자를 길러낸 국순옥 명예교수(이하 저자)는 '민주법학의 스승'이자, 그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올곧게 '법학운동'을 펴나가는 길에 변함없는 나침반이다. 법학자들 사이에 저자의 논문들은 "언제나 치열하게 벼려낸 논리를 꼼꼼히 다듬은 문장으로 빚어낸 명문"으로 회자된다. 바로 그 명문들을 제자들이 모아 <민주주의 헌법론>에 담았다.

'민주법학의 스승'이 주권자들에게 건네는 '무기' 
 

ⓒ아카넷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저자의 글은 '민주주의와 헌법 실천' 들머리에 확연하게 드러난다.

"우리 헌법은 자본주의헌법의 계보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 헌법은 근대자본주의헌법의 자유주의적 기본틀은 물론 현대자본주의헌법의 개량주의적 성과들도 아울러 담고 있다."

두 문장이지만, 헌법에 대한 우리의 접근 수준을 단숨에 높여준다. 대한민국 헌법이 '자본주의 헌법의 계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환기시켜줄뿐더러 '자유주의적 기본 틀'은 근대 자본주의 헌법이고, 현대 자본주의 헌법은 그것을 넘어서려는 '개량주의적 성과들'을 담고 있다는 진실을 깨우쳐준다. 이어 개량주의적 성과들 또한 "투쟁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근대자본주의헌법과 현대자본주의헌법은 형식과 내용을 달리하는 이질적 범주가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성립한 자본주의헌법의 역사적 현상형태들에 불과하다. 근대자본주의헌법이 신흥부르주아계급의 주도 아래 전개된 반봉건투쟁의 산물이라면 현대자본주의헌법은 노동자계급이 선봉에 선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다." 

그 맥락에서 대한민국 헌법은 "자본주의헌법의 담지자인 부르주아계급이 미처 성장하기도 전에 몇몇 강단 출신 지식인이나 관료 출신 지식인이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헌법을 밑그림 삼아 이리저리 엮어놓은" 것으로 "1948년의 우리 헌법은 우리 현실과 거리가 먼 일종의 초현실주의 추상화나 다름없었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왜 제1조부터 철저히 무시당해 왔는가를 직시할 수 있다.

물론, 저자는 긍정적 의미를 평가하는 데 인색하진 않다. '강단 헌법학 비판'에서 "좌우 이데올로기의 격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폐허의 반쪽 해방 공간에서 적지 않은 산고 끝에 태어난 1948년 헌법이 진보주의 이념을 담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고 분석한다. "진보주의 이념을 떠받쳐주는 사회변혁적 해방 잠재력이 아직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 "민주주의적 계몽 기획으로 우뚝 서야 할 1948년 헌법이 걸어간 길"은 아쉽게도 진보주의 이념을 하나씩 털어내는 "고난의 행진"이었다.

저자는 단순한 법학 교양을 넘어 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새 지평을 열어준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 가운데 무엇보다 먼저 손꼽을 것"으로 저자는 "자본주의 발전의 내발적 추동력인 부르주아계급의 원초적 결락 현상"을 든다. 

혹 '부르주아계급'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기 검열이나 '경계'에 들어갈 독자를 위해 서평자가 '각주'를 달고 싶다. 부르주아는 서구의 시민혁명을 일으킨 계급으로 말뜻 그대로는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토지에 기반을 둔 중세 시대에 상인과 공인들은 성 안에 살았다. 그들 "근대자본주의헌법의 담지자인 서구의 신흥부르주아계급은 그 뿌리가 봉건사회 해체기의 독립 자영 소생산자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봉건사회의 신분적 질곡으로부터 해방된 이들 독립 자영 소생산자층은 반봉건투쟁에서 몸과 마음을 다진 자유의 전사로서 평등 그리고 독립의 인격주체로 홀로서기를 열망한 자유주의 이념의 고전적 화신들이었다. 그들은 신흥부르주아계급으로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근대자연법이론의 세례를 통하여 이념적 자기 정립과 윤리적 자기 도야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밑으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부르주아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빈 공간을 채운 것은 "국가 주도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 전략의 그늘 아래에서 양적 성장을 거듭한 천민부르주아계층"이다. 

서구 부르주아계급과 달리 한국의 천민 부르주아층은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미래를 주체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의지나 능력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정치적 상상력이나 윤리적 지평조차" 기대할 수 없다. 그 차이는 지금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어떤 성명을 내놓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 스스로 신분제도에 맞선 혁명의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한국의 상공인계급은 "근대자본주의헌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헌법의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대 냉소주의적 무관심을 보이거나 국외자의 입장에서 시종 방관자적 자세를 보였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유리한 군부독재에 대해 그들의 태도는 '방관자'를 넘어선 '부역자'였다. 비단 과거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오래 역임한 박용성이 대학 이사장이 되어 강행한 '기업식 학사 개편'에 교수들이 반대하고 나서자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치겠다"고 으름장 놓은 것은 저들이 얼마나 천민적인가를 2015년 오늘에도 생생하게 입증해준다.

근대 자본주의 헌법의 고갱이에 대해서도 무지한 한국 상공인들이 현대 자본주의 헌법의 개량주의적 성과인 사회권적 기본권을 어떻게 여길지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 "천민부르주아계급의 자본 축적 활동과 모순관계에 있는 노동 관련 기본권에 대한 적대적 반응"이 그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이 노동 관련 기본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삼성의 경영을 '위헌'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천민 부르주아층의 인식이 이미 한국 사회에 폭넓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체 부재의 헌법"으로 출범한 헌법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무릇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일차적 관건이다. 이 책은 우리의 헌법 현실과 헌법 실천을 날카롭고 깊이 있게 제기한다. "자본주의헌법의 계보에 속하면서도 자본주의헌법의 담지자인 부르주아계급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주체 부재의 헌법으로 출범"한 "헌법 현실에서 헌법 실천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사회적 실체를 탐색하는 것은 이 책의 실천적 미덕이다. 

그 "헌법 실천의 주체"에게는 이중의 과제가 놓여 있다. "우리 헌법이 담고 있는 현대자본주의헌법의 개량주의적 성과들을 사회 발전의 디딤돌로 지켜나가는 것"과 "천민부르주아층을 대신하여 우리 헌법의 자유주의적 기본틀을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더욱 다져나가는 것"이 그것이다. 저자는 개념적 인식이 사고의 지평을 얼마나 확대해주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대안 헌법 이론'에서 "1987년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헌법 실천 주체들의 등장"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 뒤 전개된 현실에 저자의 분석은 냉철하다.

노동자계급이 헌법 현실에 발 딛고 스스로 헌법 실천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찾은 저자는 "헌법 실천 주체의 외연이 생산활동 영역의 노동자에서 생산활동 영역 밖의 노동자로 확대된"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이제까지 단결권의 행사가 금기시되어온 사회 각 생활영역, 예컨대 교육현장 언론매체 의료사업장 등에서 노동자들의 자주조직 열기가 한껏 고조"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의 뒤를 이은 김영삼 정권은 이른바 문민정부의 탈을 쓰고 억압적인 노동정책을 폈고, 1997년 끝 무렵 밀어닥친 "금융환란의 무거운 짐을 노동자계급이 고스란히 떠안음으로써 모처럼 물오르기 시작한 노동자계급의 헌법 실천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았다고 분석한다.

헌법 실천의 또 다른 주체로 제시한 학생운동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냉엄하다. "대학생 활동가 집단들의 관념적 급진주의"가 "우리 헌법 현실은 묶음표에 가두어놓고 추상적 관념의 세계에서 유리알놀음을 즐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는 비판은 사뭇 서슬 푸르다. 저자는 "우리 헌법 현실의 뒷전에서 이념 과잉의 공상헌법 수필만 엮어내는 데 골몰"하기보다 "우리 헌법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분석의 결과를 헌법 실천적 대안으로 구체화"해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시민운동이 헌법 실천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스스로를 무계급 또는 초계급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민운동 특유의 허위의식"을 지적한다. 그 결과로 "시민운동 단체들의 헌법 실천적 개입에서 부르주아적 생활세계의 중심 무대인 소비생활 영역의 기본권이 주로 호명의 대상이 되고 생산활동 영역과 관련된 기본권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분석한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시민사회적 기본권 민주주의는 근대화 기획의 첫걸음" 

헌법 실천의 주체로 노동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을 짚은 저자는 "민주주의를 기본권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기본권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시민사회적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중심이 되는 기본권은 기본권 일반이 아니라 기본권 담지자 시민들의 사회적 교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의사소통의 자유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사소통의 자유는 지배적 기본권 담론에서도 역시 대문자 주제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표현의 자유를 가리킨다. 거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포함된다. 이처럼 시민사회적 민주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고리로 시민사회적 기본권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전진을 계속할 때, 우리는 마침내 근대화 과정의 문턱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민사회적 기본권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아직도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는 근대화 기획의 첫걸음으로 자리매김하여도 좋을 것이다."

다만, 기본권 중심의 민주주의 사고가 지나친 나머지 탈민주주의적 "기본권 물신주의"로 빠져들지 않도록 "자기 한정"이 필요하다는 경계도 잊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헌법 실천', '강단 헌법학 비판', '대안 헌법 이론' 중심으로 짚어보았지만, 풀어쓰면 각각 책 한 권이 될 수 있는 주제와 내용을 압축적으로 서술한 논문들이 가득하기에 갖춰두고 틈틈이 정독하기 좋을 책이다. 예컨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비판하며 "민주주의의 수직적 심화"와 "수평적 확장"을 제시하는 저자의 차분한 제안은 '헌법 실천'에 나설 때 유념할 개념이다. '사법권력'과 '사회국가'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우리 의식을 고양시켜준다. 민주 시민은 물론 언론인과 법조인들이 탐독해야 할 이유다. 로스쿨과 법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에게도 훌륭한 학습 교재다. 강단 헌법학을 비판하고, 대안 헌법 이론을 제시한 저자의 책에는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헤겔, 칼 슈미트, 위르겐 하버마스의 사상을 깊이 있게 분석한 논문들이 실려 있다. 

내용과 문체가 두루 빼어난 저자의 명문들을 책으로 펴내는 데는 민주법학 후학들의 힘이 컸다. 실무를 맡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김종서 편집위원장은 책 들머리에서 "몇 년 전 연구소로의 전환 시도가 뜻하지 않은 난관으로 좌절된 이후 상당히 정체되었다고 할 수 있는 민주법연"에 이 책의 출간이 "어떤 신선한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법학이 '좌절된 뜻'을 이참에 구현한다면, 그것은 법학자들만의 진지는 아닐 성싶다. '법대로'를 외마디로 질러대는 이 '불법 공화국'에서 희망을 만드는 참호 아닐까.

 


*2010년 7월 31일 첫 호를 내고서 5년간 이어온 '프레시안 books'가 새 단장을 위해서 한두 달의 휴식 기간을 가집니다. 그간 '프레시안 books'는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좋은 책을 공들여 쓴 서평으로 독자에게 소개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프레시안 books'는 더 적극적으로 책을 매개로 한 소통에 나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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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의 진실, 어디에서 건질 것인가

 
역사는 당신들 셋보다 신상철을 기록할 것
 
천안함의 진실, 어디에서 건질 것인가
 
김갑수 | 2015-05-23 08:50: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역사는 당신들 셋보다 신상철을 기록할 것
- [다시 역사를 논한다] - ⑥

천안함의 진실, 어디에서 건질 것인가

117년 전인 1898년 2월 15일,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군 순양함 메인호의 폭발 원인은 아직도 미궁 속에 있다. 밝혀진 사실은 모두 사고 후의 것들인데, 미군 266명이 사망했다는 사실, 미국은 이것을 스페인의 기뢰 공격으로 인한 폭발로 몰아붙였다는 사실, 스페인은 이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부정한다는 사실, 사고 당시 기뢰 폭발이었으면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물기둥이 없었다는 사실.

하지만 당시의 미국 정치인과 언론과 시민 대다수는 스페인의 공격 때문이라고 믿었거나 주장했다는 사실, 미국 사회에 “메인 호를 리멤버하라”는 구호가 유행했다는 사실, 이를 기화로 미국은 대 스페인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 결과 미국은 스페인의 식민지 필리핀을 먹었다는 사실, 이어서 미국은 일본에 조선을 먹으라고 부추기며 대폭적인 지원을 했다는 사실 등이다.

이로부터 66년이 지난 1964년 8월 4일 미국 존슨 행정부는 북베트남에서 미군 구축함 매덕스와 터너조이가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두 구축함은 북베트남 연안 12해리 이내로 들어와서 활동하고 있었다. 아주 궂은 날씨에, 주위에는 북베트남 함정이 한 척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것을 건수 잡아 북베트남을 상대로 전면전을 개시했다.

다시 이로부터 54년이 지난 2010년 3월 26일, 한국의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했다. 천안함 역시 메인 호처럼 아직도 사고 원인이 미궁 속에 있다.

역시 밝혀진 것은 모두 사후의 사실들, 대한민국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 6명이 실종되었다는 사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사고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단정했다는 사실, 북한은 이것을 부정해 오고 있다는 사실, 어뢰 폭발이면 당연히 있었어야 할 물기둥이 목격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이다.

지금 미국인에게 117년 전 메인 호의 폭발 원인이 뭐냐고 물으면, 태반이 메인 호가 뭐냐고 되묻는다고 한다. 그들은 메인 호 자체를 ‘리멤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지식인은 다르다. 일부는 미국의 자작극이라 하기도 하고, 일부는 사고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반면 스페인의 기뢰 공격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수라는 점이 아니라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여지없이 얼간이 또는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래 한국인들은 훗날 어떤 소리를 듣게 될까?

 “천안함 폭침 때 북한 잠수정이 감쪽같이 몰래 들어와서 천안함 공격 후 북한으로 도주했다.”(문재인, 2015. 3.25)

“나는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박원순, 2011. 10.10.)

 “북한의 폭침 만행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로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것”(이재명, 2014. 3.26)

이명박, 박근혜, 김무성 등의 천안함 발언은 더 이상 진실의 영역을 축소하지는 못한다. 어차피 그들만의 ‘반공 언어’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박원순, 이재명 등의 발언은 이 땅에서 진실의 영역을 대폭 축소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역사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아마도 이들의 발언은 동족에게 범죄자의 누명을 씌운 민족 배신 행위로 기록되지는 않을는지. 확신하건대 역사는 이들 셋보다 신상철의 이름을 명예롭게 거명할 날이 필경 오고야 말 것이다.

지난 2013년 상영된 <천안함프로젝트>에 출연한 신상철 진실의길 대표. 사진=아우라픽처스

지금 미국인에게 통킹만 사건을 물으면 십중팔구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대답한다. 주요 관련 인사들의 폭로와 비밀문서의 공개 때문이다. 미국이 베트남에 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 내에서 격렬하게 일어난 반전운동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베트남과 관련된 미국의 음험한 진실들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베트남의 진실들을 하나하나씩 알아차렸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1945년 8.15 이후 주한미군정의 문서들을 통해서였다. 그들은 한국의 사례에 유추하여 베트남의 사례를 읽은 것이다.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도 이 과정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는 천안함의 진실을 어디에 유추하여 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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