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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조국통일만세' 절로 나왔다"

네 차례 북한 관광 다녀온 재미동포 신은미 씨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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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3 22: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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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북한을 여행한 재미동포 신은미 씨가 지난달 30일 인터뷰를 통해 여행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백두산은 생각보다 훨씬 멋있었어요. 엄숙해지기까지 했어요. '조국통일 만세'가 절로 나왔답니다"

북한 방문기 책 『재미교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쓴 재미동포 음악가 신은미 씨(52). 분단선에 가로막혀 남쪽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북한 땅을 네 번째 방문한 신은미 씨가 백두산에 오른 소감이다.

신은미 씨는 자신의 책 제목처럼 재미동포 아줌마이다. 아줌마는 수다스럽다는 공식을 깨지 않는, 북한을 다녀온 소감을 한 보따리 풀어놓는 정말 수다스러운 아줌마다.

하지만 그의 수다스러움에는 조국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다. 얼핏 들으면 북한 여행담을 늘어놓는 그의 목소리는 카나리아 새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북한을 관광하고 '카나리아' 울음소리처럼 소감을 쏟아내는 신은미 씨 부부를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한 찻집에서 <통일뉴스>가 만났다.

신은미 씨 부부는 '조선국제여행사'를 통해 지난달 15일부터 열흘간 평양, 백두산, 칠보산, 함흥, 재령, 해주, 신천 등을 관광했다. 이번이 네 번째 방북이다. 특히 일반인이 비행기를 타고 '청진 어랑비행장'에서 '함흥 선덕비행장'에 도착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 비행장은 군사용 비행장을 최근 민간 비행장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은미 씨는 이번 북한 여행의 백미로 백두산 천지를 꼽았다.

 

   
▲ 백두산 천지. 신은미 씨 부부는 백두산 방문 두 번째 만에 천지에 오를 수 있었다. [사진제공-신은미]

 

"백두산, 신비롭고 엄숙해…. '조국통일만세' 절로 나와"

평양을 출발, 삼지연 공항에 도착한 신은미 씨 부부는 이깔나무가 무성한 백두산 밀영 지역을 거쳐 천지에 올랐다.

"백두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있었다. 북한주민들도 1년 중 30일밖에 천지의 맑은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우리는 행운"이라는 신 씨는 "웅장하고 크고 신비로와서 갑자기 엄숙해지기까지 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 "민족적 기상이 솟아나면서 남편과 제가 '조국통일 만세'가 절로 나왔다"며 "만세 소리에는 우리 남한 동포들이 우리 땅을 밟고 웅장한 우리 민족의 산에 올라와 천지를 봐야 하는 생각을 담았다. 남쪽 동포들 생각에 목이 멨다"고 말했다.

 

   
▲ 신 씨 부부는 천지에 올라 '조국통일만세'를 외쳤다. [사진제공-신은미]

 

백두산에 이어 칠보산에 오른 신은미 씨는 "백두산 못지않게 칠보산도 멋있고 웅장하더라"며 "기암절벽도 멋있고 웅장했다. 더 감동적인 것은 개심사를 간 것"이라고 말했다.

개심사는 함경북도 명천군 보촌리 칠보산 중 내칠보 기슭에 자리 잡은 고찰로, 826년 발해 선왕 때 대원화상이 창건했다. 1784년 조선 정조 때에 중건됐으며, 한국전쟁 이후 1963년 중수됐다.

개심사에 들른 신 씨는 "발해시대 건축물이라는 점이 아주 감동적이었다. 발해도 우리 역사인데 잊고 지냈는데, 당시 세워진 절을 방문하니 의미가 있고 감동적이었다"며 '감동'을 연발했다.

이 밖에도 신 씨 부부는 재령평야를 지나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산에 자리한 성불사를 방문했다.

성불사는 898년 신라 효공왕 당시 도선국사가 창건, 임진왜란 때 전소했으나 1751년 중건, 1955년 극락전이 복원됐다.

성불사에 들어선 신 씨는 성악가답게, 절로 친일작곡가로 알려진 홍난파의 <성불사의 밤>을 불렀다.

'성불사 깊은 밤에'로 시작되는 노래를 조용히 부르던 신 씨 곁에 다가온 성불사 스님과 함께 노래를 같이 불렀다며, 신 씨는 "홍난파는 친일파고 해서 여기서는 모르나 했다. 그런데 스님이 잘 안다고 같이 부르자고 해서 불렀는데 남북이 함께 이 노래를 부르다니 감개무량했다"고 감동을 전했다.

 

   
▲ 마전해수욕장을 방문한 신은미 씨(가운데)가 일행과 함께 조개탕을 만들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 [사진제공-신은미]

 

"수양딸 설경이의 집 방문은 제일 큰 사건…. 모란상점에는 북한상품 많아"

사실 북한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나 대북사업자들은 북측이 지정하는 장소만 둘러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일반 주민의 가정집을 방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신은미 씨는 지난 세 차례 방북 과정에서 수양딸로 삼은 '조선국제여행사' 안내원인 김설경 씨의 집을 방문하는 파격 대우를 받았다.

신 씨 부부에 따르면, 김설경 씨 가정방문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으나 이들의 '이산가족 상봉(?)' 요구를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해동) 측에서 받아들인 것. 신 씨 남편은 이를 두고 '제일 큰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직장동료와 결혼한 김설경 씨는 만삭으로 현재 안내원 직을 맡지 않고 있으며, 평양 모처에 약 17평짜리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신 씨의 표현으로는, 아파트 외관은 허름했지만, 내부는 방 두 칸, 화장실, 부엌을 갖춘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었다.

 

   
▲ '수양딸' 김설경 씨의 집을 방문했다. 일반인의 북한 주민 가정집 방문은 파격적이다. [사진제공-신은미]

 

 

   
▲김설경 씨의 집안 모습. [사진제공-신은미]

 

신 씨는 "신혼부부 냄새가 솔솔 났다. 아주 깔끔하게 잘 해놓은 게 보기 좋았다"며 "남쪽에서는 자기 집 하나 가지려면 평생을 쏟아야 하는데 (설경이는) 복도 많다. 물건도 다 새 것이었다"고 싱글벙글했다.

오랜만에 '수양딸'을 만난 신 씨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우리는 수양딸 만나는 것도 가슴 벅찬데 이산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에 한이 맺히겠느냐"며 "이번에 우리가 온다고 하니까 설경이 남편이 부리나케 대동강 맥주와 탈피(껍질 벗긴 명태)를 사 들고 왔다. 재미난 이야기도 나누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방북에서 수양조카로 삼은 방현수 씨는 만나지 못했다. 신 씨에 따르면, 방현수 씨는 현재 북한에서 진행 중인 강원도 세포등판 개간전투장에 동원됐기 때문이다.

세포등판은 강원도 세포군, 평강군, 이천군에 걸친 대지를 일컫는 말로, 현재 북한은 이곳을 축산기지화하기 위해 도시지역 노동력을 동원하고 있다. 이번에 신 씨를 안내한 '조선국제여행사' 안내원인 리설향(24) 씨도 지난 3월 보름간 70명분의 식사를 마련하는 일을 했다.

 

   
▲ 모란상점을 방문, 물품을 구매하는 신은미 씨. 신 씨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자국산 사용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진제공-신은미]

 

만삭인 '수양딸' 김설경 씨를 위해 평양 내 모란상점을 방문한 신은미 씨는 "미역, 고기, 과일을 샀다"며 "자국상품을 애용하더라. 북한 상품이 많이 보였다. 포장도 예전보다 좋아졌다"면서 북한 내 자국산 사용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신은미 씨 부부는 북한 내 유도영웅인 계순희 선수를 만났다.

계순희 선수는 신 씨 부부에게 "우리는 5천 년 역사를 함께해온 민족이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갖고 있다"며 "다시 합해져서 단일팀도 이뤄내고 조국통일을 위해 우리 위상을 널리 떨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계순희 선수를 만난 신은미 씨. [사진제공-신은미]

 

"북한여행 소개, 마음의 분단을 없애는 길 되길"

지난 세 차례 북한을 여행하고 소감을 엮은 신은미 씨의 책은 현재 우수도서로 선정되며 4쇄까지 발행하는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에서도 최근 1천여 부를 구매, 도서관과 교정시설에 배포하는 등 관심을 받고 있다.

네 번째 여행을 마친 신 씨는 자신의 소감이 마음의 분단을 없애는 길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통일하는데 잘 살고 못 살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가 마음의 분단이 생겨서 함께 살 수 없고 이질감의 골이 깊다면 통일도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며 "남북이 통일하는데 마음의 분단부터 없애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순희 선수의 말처럼, 수천 년 역사 속에서 60년 분단은 별거 아니다. 민족적 정서, 역사, 문화, 언어가 같다.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많은 남쪽 동포들이 통일에 관심 없던 나 같은 사람도 변했듯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기 바란다"고 말했다.

 

   
▲ 신은미 씨 부부. 이들은 오는 4일부터 열흘간 다섯 번째 북한을 여행한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신 씨 부부는 다섯 번째 여행을 곧 떠난다. 오는 4일부터 열흘간 평양을 방문한다. 북한 전역을 둘러본 그들은 이번에는 평양을 진솔하게 만나길 원한다. 그리고 '수양조카'인 방현수 씨도 만나 회포를 풀고 싶어한다.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들 부부의 여행은 어찌 보면 부러움의 대상이자 재미동포의 특권일 수 있다. 하지만 신은미 씨가 쏟아내는 북한 여행 소감은 그동안 잊고 지낸 우리의 다른 반쪽을 찾게 해준다.

다섯 번째 방북에서 돌아올 신은미 씨가 이번에는 또 어떤 즐거운 여행 보따리를 풀어놓을지 '카나리아'의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기대된다.

 

   
▲ 모란상점을 들른 신은미 씨 일행이 김설경 씨 집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속 평양 시가지가 변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잔디심기는 북녘 전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제공-신은미]

 

 

   
▲ 모란상점 앞에선 신은미 씨. [사진제공-신은미]

 

 

   
▲ 평양 '해당화관'의 식당 차림표. [사진제공-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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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아줌마의 세련된 민족수다

재미동포아줌마의 세련된 민족수다
 
서울을 ‘종북’에서 ‘해방’시켜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해버리다.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9/02 [10:26] 최종편집: ⓒ 자주민보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강연회. 청년미래교육원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의 공동주최로 8월 30일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 한성 기자

온 나라가 정신줄을 놓은 듯했다. 8월 28일부터였다. 국정원이 일으킨 ‘내란음모’ 소동 탓이었다. 뉴스도 SNS도 ‘내란음모’가 장악했다. ‘이석기’ 혹은 ‘내란음모’가 인터넷 검색어 1위 자리에서 오랫동안 내려올 줄을 몰랐다. 기회는 찬스(chance)라고 했던가. 예의 그 ‘종북몰이’ 또한 난리법석이었다. 물 만난 고기 같았다.
 
▲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 대오에 쏟아지는 물대포. 보수세력들에게 촛불대오는 '종북난동' 쯤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진 민중의 소리 펌

이민위천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고대 중국의 사가인 사마천이 느닷없이 ‘종북’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명료. 이민위천이라는 말이 북 김일성주석의 좌우명이어서이고 통합진보당 이석기의원의 집무실 벽에 표구로 걸려 있어서이다. 종북몰이는 프리미어리그 최고 클럽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게까지 미쳤다. 독일민요로서 영국에 널리 불리워져 맨유의 응원가로 되어있는 ‘적기가’를 진보당이 정세강연회에서 불렀다는 것을 이유로 삼았다.

온 사회의 모든 곳에 종북몰이가 휘도는 듯했지만 그러나 모든 게 그렇듯 예외는 있었다. 정치1번지라고 하는 서울의 종로일대가 그 예외 지대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기독교회관 2층과 그 근처의 몇몇 호프집이었다. 지난 8월 30일이었다. 정확한 시간은 밤 8시부터 최소 12시까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 신은미씨 © 한성 기자
그때, 그곳에 ‘종북몰이’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이 쉼 없이 웃었다. 박수도 그 폭소에 정비례했다. 한 아줌마의 수다 때문이었다. 신은미. 그녀는 ‘재미동포 아줌마 북에 가다’의 저자이다. 신은미씨는 최근 북을 방문했다. 네 번째 방북이라고했다.

북 여행을 마치고 곧바로 서울로 와서는 그녀는 이곳저곳에서 보따리를 풀고 다녔다. 대전을 훌쩍 넘어가기도했다. 그 보따리에는 따끈따근한 사진자료들이 한없이 나왔다. 사진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몇 년동안 확 달라진 평양풍경의 최신 사진자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귀엽고 이쁘다. 농익었다. 세련되었다. 소녀같기도하다. 신은미씨의 강연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평가한 내용이다. 신은미씨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신은미씨의 수다에 대한 평가였다.

북의 최신 모습과 신은미씨의 수다가 적절히 혹은 예술적으로 버무려져 기가 막히게 맛 있는 음식 같은 것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써서 그 즐거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이~ 요물!! 관객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랬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양딸 자랑질이며 또 수양조카의 이야기도 그랬다. 함께 여행한 남편 이야기를 섞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로 북의 사람들 사는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신은미씨의 화려한 수다는 사람들을 웃게만 한 것이 아니었다.

백두산 천지에 오르자마자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고 했다.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예상은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해하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서 치밀어 올랐으며 그것은 급기야 밖으로 튀쳐나가서는 우렁찬 목소리에 실렸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조국통일만세!
조국통일만세!
통일조국만세!

신은미씨는 남편과 함께 그렇게 목놓아 외쳤다고 했다. 피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은 맞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녀에게서 감동적으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강연회 마지막에는 사람들도 함께 외쳤다.

그렇게 웃게도 하고 가슴을 뜨겁게도 하더니 끝판에 가서 신은미씨는 기어이 사람들을 죄다 울려버리고 말았다.

생이란 무엇인가! 북의 대중가요를 그녀는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성악가다운 아름답고 세련된 목소리였다. 영어 가사로도 이어나갔다. 북의 공연에서도 불렀던 노래라고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뭉클했던 것은 성악가로서 반주 좋고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었다. 분단된 조국이 서러워서였고 분단된 조국을 기어이 통일시키고 말겠다는 결의를 세우느라 사람들은 가슴으로 그렇게 울었다. 뒷풀이에서 그렇게 사람들은 말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거대담론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 수 있었다. 세련된 수다쟁이 재미동포 아줌마의 가슴 속에 거대하게 또아리 틀고 있는 민족사랑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강연회 말미의 질문과 답변 과정에서 그녀의 민족사랑은 특히 선명하게 확인되었다.

북의 열병식 같은 그런 것을 보면서 전체주의적 인상은 받지 않았는가하는 것이 마지막 질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보면 반북적인 정서에 잇닿아 있는 듯한 질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긴장이 될 만도 했고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었다.

"네 저도 북을 관광하기 전에는 군인들의 열병식장면 같은 것들을 보면 무시무시하고 그랬어요. 로봇처럼 일사분란한 몸동작 등을 보았을 때 말예요"
그녀는 밝게 웃으면서 답변을 해나갔다.

열병식 등이 열리곤 하는 김일성광장의 주변에 대한 설명을 했다. 김일성 광장의 한 복판 혹은 가장 목이 좋은 자리에 사람들이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형도서관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롤러 브레이드도 타고 한가롭게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간단하게 마무리를 했다.
“공부하는 것 방해하지마라. 아이들 노는 것 방해하지마라. 그것을 방해하면 가만있지 않겠다. 그렇게 보였어요.”

재미동포 아줌마의 세련된 수다는 그랬다. 신은미씨의 허락과 상관없이 ‘민족수다’라는 말을 개념화시켜도 되어도 좋을 순간이었다.
그날 그 일대 몇몇 호프집은 이른바 그런 '해방구'였고 그 해방구의 밤은 새벽까지도 어두워질 줄을 몰랐다. 밤을 밝힌 그 환한 불빛은 ‘종북몰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인가하는 것을 속속들이 드러내주고 있었다.


 
강연하기 위해 강단을 들어서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강연회 사회자인 서울민권연대 정종성 공동대표로부터 소개받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사진자료에 몰두하는 관객들 © 한성 기자
 
▲사진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북의 대중가요 생이란 무엇인가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원로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강연회를 공동주최한 청년미래교육원 지철 원장으로부터 그림 선물을 받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 조국통일만세를 외치는 신은미씨 부부와 관객들 © 한성 기자
 
▲강연회끝에 이루어진 기념사진 © 한성 기자
 
▲강연회가 끝나고 난 뒤 뒷풀이 자리에서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신은미씨 © 한성 기자
 
▲신은미씨 강연회에는 중국 <코리안뉴스>의 대표이자 중국 칭와대 정기열 교수의 부인인 정정옥씨도 참석했다(사진왼쪽). 사진 오른쪽은 신은미씨의 남편인 정태일씨. 정태일씨는 강연회 끝부분에 그리고 뒷풀이에서 주로 조국통일만세를 연호하는 것으로 신은미씨의 부군인 것을 드러내곤해서 이날 강연회참석자들로부터 또 다른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 한성 기자

(위 사진의 대부분은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의 페이스북에 있는 사진 자료들로서 정태현씨가 찍은 것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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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4사 황당 목표 "2015년엔 SBS 수준 매출액 달성"

  • [재승인 앞둔 위기의 종편] 2010년 종편 심사는 총체적 부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03 오전 8:02:22

     

     

    종편 심사 과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 속속 나오고 있다. 종편 탄생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는 '특정 종편 밀어주기' 의혹을 받고 있고, <채널A> 등 일부 종편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승인 기준을 맞추려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고 있다. 시청률도 유의미한 수준이 아닌 상황에서 지나치게 '정치 평론'에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으며, 재방률이 매우 높은데다 '콘텐츠 투자'는 언급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관련기사 : '막말' 종편이 "고품격", "미디어 신화"?) 그러다보니 점점 선정적인 보도에 집착하는 모양새다.

    2011년 종편 승인 당시 방대한 내용의 심사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언론개혁시민연대 '종편.보도PP 승인 검증 태스크포스(TF)'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종편 검증 3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종편의 심사 항목 구성 및 평가 방식 등에서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황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방통위의 부실 심사가 현재의 '부실 종편'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

    출자 과정이나 주주 구성 과정 등에서 시민연대가 자체적으로 만든 산정식을 적용한 결과, 일부 종편과 보도채널의 경우에는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시민단체가 자체적으로 설정한 산정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할수는 없지만, 종편 선정 기준 자체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으로 이어질 수는 있는 문제다.

    ▲ 시민단체의 종편 심사 자료 분석이 3차에 이르면서 종편 심사 과정의 문제점들이 무더기로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8월 5일 종편 승인심사 검증 태스크포스 2차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무더기 선정 심사 기준…결국 '부실'로 이어진 듯

    시민연대가 이날 발표한 분석 자료는 종편 심사 기준의 두 축인 계량평가 부분과 비계량평가 부분이다. 쉽게 말하면 계량평가는 산정식에 대입만 하면 점수가 나오는 '객관적 평가'영역이고, 비계량평가 부분은 '주관적 평가' 부분이다.

    먼저 계량평가 부분과 관련해 시민연대는 "종편, 보도PP 승인 심사에서 계량평가 항목의 배점은 각각 1000점 만점 중에서 245점, 200점이었다"고 밝혔다. 계량평가 항목의 배점은 지난 2000년 위성방송사업 승인심사 비중보다 낮다. 이는 주관적 평가가 종편 심사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말이 된다.

    계량평가의 배점도 낮지만, 계량평가 자체의 변별력도 의심된다. 실제 총 44개의 세부심사항목 중에서 계량평가 항목은 9개(배점 : 종편 245점, 보도 200점)인데, 그 중 6개 항목(배점 : 종편 150점, 보도 105점)에서 40%의 기본 점수가 부여된다. 변별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시민연대의 주장이다.

    계량평가 항목 중에서도 가장 배점이 높은 '납입자본금 규모 (배점 : 종편 60점, 보도 60점)'의 경우 일정금액(종편 3000억 원, 보도 400억 원) 이하는 0점으로 처리되고 이는 곧 과락으로 탈락을 의미한다. 과락을 면할 정도의 납입자본금을 모은 신청사업자는 기본 점수 60%를 얻게 된다. 금액만 맞으면 60점을 따고 들어가는 것이다.

    시민연대는 다른 방식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납입자본금 규모' 항목을 과락 항목에서 제외하는 대신 사실상의 기본 점수를 60%가 아닌 30%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시민연대는 "이 경우 MBS(현재 <MBN>)의 해당 항목 점수는 47.40점에서 37.95점으로 9.44점이 낮아진다. MBS의 총 점수가 808.07점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9.44점이 하락한다면 총점이 800점 미만이 되어 탈락하는 결과가 발생했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 비계량평가 부분이다. 시민연대는 "총 배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계량평가 항목의 경우,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방식을 택함으로써, 원천으로 심사위원 개인의 주관적(내지 자의적) 판단에 좌우"된다고 지적하며 "방통위의 현 심사기준 체계 하에서는 '총점의 100분의 80 이상, 심사사항별 100분의 70 이상, 승인 최저점수 적용 심사항목별 100분의 60 이상'이라는 선정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자 수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연대가 비계량평가 부분과 관련해 자체 기준을 마련,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점수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현재 선정된 종편 이외에 다른 경쟁자들의 '스펙'이 워낙 낮아, 시민연대가 제시한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당락이 뒤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이같은 분석을 종합해보면, "당초 방통위가 메이저 신문을 소유하거나 방송 사업을 하고 있는 일정 정도 규모 이상의 몇몇 사업자를 염두해 두고 심사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스스로 부실한 기준을 세움으로써 방송 시장을 유지할수 있는 규모보다 더 많은 사업자가 선정되도록 해 현재의 '종편 포화 상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시민연대는 "정부는 종편 선정 당시 방송 산업 발전을 위한 최적의 사업자 수를 사전에 결정하지 않고 최저 기준 이상의 점수를 얻은 모든 신청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을 택했다"며, 결국 이로 인해 "특정 신청사업자들을 모두 선정하는 예정된 결과를 초래했다는 의혹, 또는 (신청사업자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많은 수의 사업자를 선정함으로써 과당경쟁에 따른 잠재적 부실 상태를 자초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당' 목표 세운 종편들…2015년에는 <SBS> 넘어선다?

    이번 분석 과정에서 알려지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종편이 심사 과정에서 향후 사업 목표치와 관련해 <SBS>를 비교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시민연대는 "각 신청사업자가 사업계획 목표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설정하였는가를 검토하기 위해 유사 사업자와 비교"했다며 "대부분의 종편 사업자의 경우에는 <SBS>를, 보도 사업자의 경우에는 <YTN>을 비교 대상 사업자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목표치'는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SBS의 경우 비교 대상 기준인 2004~2008년간 영업 이익률의 평균이 5.53%였다. 그런데 종편 신청사업자들은 2015년의 영업이익률 추정치로 SBS의 1~3배, 2020년의 영업이익률 추정치로 SBS의 2~4배에 이르는 수치를 제시했다. 매출액 역시 <SBS>와 맞먹는 규모를 달성할 것을 예상했다.

    <SBS>의 2008년 매출액 규모는 6072억 원인데, 2015년 목표 매출액으로 <JTBC>는 5839억 원을, <TV조선>은 6249억 원을, <채널A>는 5044억 원을, <MBN>은 6004억 원을 제시했다. 2020년에 <JTBC>는 7900억 원, <채널A>는 8537억 원, <MBN>은 7099억 원의 매출이 목표다. 목표대로라면 이미 2015년에는 2008년 기준 규모의 <SBS>와 같은 방송사가 네 개가 추가로 탄생하게 된다. 이는 방송 시장 현실 자체를 무시한 추산이다.

    시민연대는 "사업계획서 상의 수치가 의욕적인 목표치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영업이익률 전망치는 사실상 달성 불가능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12~2020년까지 매년 매출액이 약 20%씩 늘어나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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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심리전단장, 대선 다음날 김하영에 문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9/03 08:20
  • 수정일
    2013/09/03 08: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덕분에 선거결과 편히 지켜봐 얼마나 감사한지..."

[원세훈 공판] 변호인측, '김하영 핸드폰 압수'의 위법성 주장

13.09.02 22:04l최종 업데이트 13.09.02 22:04l
이병한(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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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가린 국정원 증인들 8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댓글사건 당사자인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와 다른 증인들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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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씨, 어제 보고 와서 위로 하려고 갔다가 오히려 위로 받고 왔습니다. 경찰 공식 발표도 났고 이제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니까, 마음 편히 갖기를 바랍니다. 마음 깊이 고맙고 미안합니다. 잘 지내세요." (2012년 12월 17일 오후 1시44분)

"선거도 끝나고 이제는 흔적만 남았네요. 김하영씨 덕분에 선거 결과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툭툭 털고 일어서기 쉽지 않겠지만 좋은 것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12월 20일 오후 2시)

2일 진행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2차 공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에서는 증인으로 나온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이 지난해 12월 17일과 20일 김하영 심리전단 직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2건이 공개돼 의혹을 증폭시켰다. 17일 문자는 지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공개된 바 있지만, 20일 문자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 김씨와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는 민 전 단장은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1시44분 김씨에게 첫 문자를 보냈는데, "이제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니까"라는 말이 있다. 이 때는 경찰이 16일 밤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문제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하고, 17일 오전 수서경찰서에서 브리핑을 실시한 직후다. 두 번째 문자를 보낸 12월 20일 오후 2시는 대선 바로 다음날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후였다. 이 문자에서 민 전 단장은 "김하영씨 덕분에 선거 결과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증인 신문에 나선 검사가 '이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덕분에 선거결과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의 의미를 묻자, 민 전 단장은 "단순 격려 취지"라고 답했다. 특히 20일 보낸 문자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 김하영씨 덕분에 선거결과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때까지 김하영이 계속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는데… 어쨌든 우리 활동이 노출이 되어서 문제가 됐었지만… 경찰 수사 결과 발표도 그렇고, 대선 과정 활동 문제도 큰 논란이 안되고, 당시 대선이 잘 끝나고 선거 결과도 볼 수 있었다는… 그러니까 너무 마음 졸이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그런 단순한 격려성 메시지였다."

단순 격려? 제2공작 정황?

이와 관련해 공판에서는 대선·정치 개입 댓글과 추천·반대 행위를 하던 김하영 직원이 노출되자 곧바로 제2공작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증인 신문이 오갔다. 검사는 소위 '오피스텔 대치'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11일 상황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 증인(민병주)은 민주당에서 신고해서 사건화 됐다는 사실을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알게 됐는가.
"그날 저녁에 알았다."

- 당시 김하영 직원은 국정원측에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고 요청했는가.
"출근도 해야 하고… 당시 감금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원론적인 부분만…"

옆에서 듣고 있던 윤석렬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팀장(여수지청장)이 나섰다.

- 당시 대선이 임박했고, 오피스텔 앞에 많은 언론사 기자, 선관위, 경찰, 당 사람들도 와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출근이 중요한가? 정상적인 정보국 직원이라면 현재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소속 기관에 알리고, 그 다음 국정원의 지침을 기다리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내가 출근해야 하는데, 꺼내주십쇼, 이게 아니라.
"아, 그렇다. 그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신문을 이어가던 박형철 공공형사부장이 다시 마이크를 받았다.

- 김하영이 못나오는 상황에서 국정원은 어떤 조치를 취했나.
"그때 제일 큰 문제는 컴퓨터 제출 문제였다. 당시 나는 제출을 반대했다."

- 증인은 계속 적법한 업무였다고 했는데, 문제될 게 없는데 왜 컴퓨터 제출이 문제가 되는가.
"다른 업무도 있으니까 보안 문제 때문이다."

다시 윤 팀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민 전 단장의 말이 맞다"면서 거꾸로 물었다.

- 좋다. 상식적으로 봐도, 합법 업무든 법에서 약간 일탈한 업무든, 정보부 직원이 업무용으로 쓰는 컴퓨터는 증인의 생각대로 제출 안하는 것이 맞다. 판사 영장이 있어서 뺏기는 한이 있어도 임의로 제출 안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

- 그런데 왜 임의제출하기로 결정이 됐나?
"위의 지시를 받았다."

- 상식적으로는 제출 안하는 것이 맞는데 왜?
"당시 제출을 안하면 시간이 갈수록 오해가 커지기 때문에 대선개입 활동이 없었으니, 위에서 내라고 해서 한거다."

김하영은 파일 187개 삭제 보고... 민병주는 "보고 못 받았다"

김씨의 노트북과 컴퓨터 임의제출이 심리전단 단장의 뜻이 아닌 윗선의 결정이었다는 증언을 끌어낸 검찰은 김씨가 오피스텔에서 했던 노트북 파일 187개 삭제를 파고들었다.

- 김하영이 오피스텔에 있는 동안 노트북에 있던 파일 187개를 삭제한 사실을 알죠?
"나중에 알았다."

- 김하영은 증인이 책임자로 있는 심리전단 소속 직원 아닌가. 이게 당시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면 증인은 어떤 방식으로 삭제를 하며, 어떤 파일을 삭제했는지, 삭제를 하고 제출을 하는지, 이런 상황을 단장으로서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이것을 심리전단장이 보고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건이 발생하자 국정원 내부에 별도의 TF팀이 즉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TF 가능성은 없다."

- 지금 (심리전단이) 3차장 산하인데, 혹시 12월 11일 사건이 발생했을 때 3차장이 이 사태를 장악한 것인가, 아니면 국내 문제를 관할하는 2차장이 장악하고 지시를 내렸는가.
"나는 2차장에게 보고 또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

- 그러면 파일을 삭제하고 제출하는 문제에 대해서 김하영은 국정원에 보고를 했다고 하는데, 증인에게 보고가 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하도 어수선해서… 구체적으로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

변호인측, '김하영 핸드폰 압수' 위법성 주장

한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변호인측은 김하영씨의 핸드폰 압수가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고 주장했다. 이동명 변호사(법무법인 처음)는 "지난 3월 업무용 휴대전화를 경찰에서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면서 "핸드폰 압수가 위법하므로 핸드폰을 계기로 해서 드러난 모든 증거가 증거능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영장에 의해 적법하게 이루어졌다"고 반박했다.

민 전 단장은 많은 부분에서 "단장으로 부임하기 전 일이다",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다"면서 구체적인 증언을 꺼렸지만, 검찰의 집요한 추궁에 트위터 등 심리전단의 사이버활동이 사실상 원 전 원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시인했고, 일부 직원들의 게시글 내용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했다. 다만 북한의 대남 공격적 심리전 공격에 대응한 방어적 활동이었음을 강조하면서 명시적인 선거개입 지시는 없었다고 말했다. 변호인측은 ▲ 국정원의 사이버심리전은 이전 정권부터 있어왔다는 점 ▲ 북한의 증가하는 대남 사이버활동에 대한 정당한 방어 활동이었다는 점 ▲ 정치성향이 다양한 국정원 직원들을 통한 편향적 정치 개입은 불가능하다는 점 ▲ 원 전 원장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었다는 점 등을 강조해서 신문했다.

이날 공판은 민 전 단장의 얼굴 노출을 막기 위해 8폭짜리 병풍형 가림막이 설치된 채 진행됐다. 변호인측은 완전 비공개를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공판은 오후 6시가 다돼서야 끝났다.

3차 공판은 오는 9일(월)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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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자 '십알단과 새누리당' 기억하자 '불법선거'

 


지난 대선에서 '십알단'이라고 불리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 불법 댓글 알바팀을 운영했던 윤정훈 목사에게 항소심에서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선관위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된 십알단 사건이 단순한 집행유예로 끝났다고 단신으로 처리했지만, 십알단 사건에는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의 쟁점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는 새누리당이 SNS와 댓글을 활용한 선거 전략을 미리 준비하고 불법으로 이를 자행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국정원과의 연계성입니다.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사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해봤습니다.

' 헌법의 가치를 훼손한 범죄행위,그러나 처벌은 솜방망이'

서울남부지법 제11형사부 (재판장 김기영 부장판사)는 구속 기소된 윤정훈 목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직선거법에서 설립을 금지하는 선거사무소와 유사한 조직 또는 시설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사무실에 'President War Room(PWR)[SNS선대본부]’라는 문구를 게시해 놓거나 매일 ‘D-6’ 등 대선일까지 남은 일자를 표기해 놓았던 점과 새누리당 관계자들만 얻을 수 있는 내부자료와 임명장이 다수 발견됐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SNS 교육기관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박근혜 후보 선거 운동을 '대선 사역'으로 지칭하고 <새누리당 산하 국민소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무실을 운영했다는 점은 '공직선거에서의 자유 및 공정 등 공직선거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것이어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십알단의 행위가 선거의 자유 및 공정을 해하는 별도의 위법행위를 했다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며, 선거운동을 위한 근로자임에도 이들에게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치] - 발각된 '새누리당 불법 SNS 선거 운동' 그마저도 감추다니

재판부는 공정선거에 대한 헌법정신을 훼손한 범죄행위라고 해놓고 이들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는데, 이는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 불법 선거 사무실 비용을 댄 국정원과의 관계는 왜 수사하지 않았나?'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선거 사무실 비용을 누가 댔느냐는 부분입니다.

사무실 비용이 새누리당에서 흘러나온 것은 맞지만, 이 자금을 국정원이 제공한 것으로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연계성을 알려주는 증언이 윤정훈 목사 본인의 입에서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십알단 윤정훈 목사는 자신의 입으로 " 여의도에 오피스텔을 얻었거든, 41평짜리, 내가 돈이 어디 있어, 나를 지원하는 분이 '국정원'이랑 연결이 돼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실을 여의도로 얻은 이유에 대해서도 "김무성씨와 박 후보님이 직접 방문할 수도 있다고 해서 사무실을 여의도로 옮겼다"는 말도 '나는 꼼수다'에서 공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불법으로 선거 사무실을 이용하고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면, 이에 대한 배후까지 캐야 마땅하지만, 검찰과 재판부는 그 자금의 출처는 물론이고, 국정원과 같은 국가 기관이 자금을 댄 엄청난 사건은 아예 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국정조사까지 열렸으며, 원세훈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실에 대한 재판에서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이 국정원 요원 김하영에게 "선거도 끝나고 이제는 흔적만 남았네요. 김하영씨 덕분에 선거 결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런 여타의 증거물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도 단순히 십알단 윤정훈 목사만 조사하고 집행유예로 풀어준 것은 아예 처음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할 의지가 없었고, 오히려 조직적인 연관성을 은폐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는가 의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 새누리당의 불법 선거운동, 다시 파헤쳐봐야 한다'

지난 대선이 시작되기 전에 새누리당은 유독 약했던 SNS와 인터넷 여론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었습니다. 중앙선대위, 대선기획단에서는 '뉴미디어를 담당할 본부의 확대 개편'을 추진했으며, 'SNS를 포함한 뉴미디어 총괄 컨트롤 타워' 등에 대한 논의도 계속 있었습니다.

디지털정당위원장이었던 전하진 의원도 "페이스북은 가슴을 담다 빠른 대응으로 지지자를 확보하고, 트위터에선 반복적으로 집단으로 대응해 네거티브를 저지한다"는 대응지침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이런 SNS 전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2012년 9월 17일 ROTC 정무포럼 정례 세미나에 박근혜 후보가 참석한 부분입니다.

새누리당 성향의 ROTC 모임에서는 'SNS 현황과 전략'이라는 주제를 통해 "정무포럼은 영향력 큰 일반 논객들과 '새마음포럼'을 공동으로 조직하여 이미 30여명의 논객이 활동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2012년 12월 13일 서울시 선관위가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증거물에는 '새마음 포럼' 파일 자료가 있었습니다. 이는 새누리당이 SNS와 인터넷상에서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서 자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직적으로 움직여지고, 이것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이 투입됐다면, 이것은 명백한 불법 선거운동에 해당하며, 대개 이런 불법 선거운동이 적발되면 국회의원은 대부분 의원직을 잃게 됩니다.

[정치] - '십알단','박사모 사이버 전사'를 아시나요?


 



지금 청와대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불법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는 말과 '수사 중'이라는 말로 넘어가고,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에 대해서는 국정원 특수요원을 '여성인권'을 내세우며 발끈했던 바 있습니다.

헌법 정신을 훼손한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당시에 수사 중인 사건이라 말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국민 앞에 해야 합니다.

 

 

 


조직적인 정부기관의 선거 개입과 관변 단체와 새누리당 불법 선거사무실의 불법 선거운동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관권선거,부정선거가 자행됐던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역사가 다시 재연됐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이제는 흔적만 남았습니다"
그 흔적을 법으로는 절대 파헤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번에 자행됐던 불법 선거의 증거를 모으고, 다시 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앞으로 치러야 할 모든 선거를 공정하게 치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이는 선거를 '편히 지켜볼 수 있었다'고 자신의 부하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었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애간장이 녹고,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습니다.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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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국의 포위 전략 군사적으로 맞대응

러시아 인접 국가들과 항공 우주방어군 합동 훈련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9/02 [19:04] 최종편집: ⓒ 자주민보
 
 

러시아가 미국의 대 러시아 포위 전략에 맞서 강력한 국방력으로 맞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2일 정세론해설을 통해 “러시아가 국방력강화에 힘을 넣고 있다.”고 일갈하고 “위력한 군사력의 담보가 없이는 강력한 국가건설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러시아의 일관한 입장이다. 소련이 붕괴된 후 러시아의 전략적공간은 부단히 사방에서 압축되었다. 미국주도의 나토무력은 이미 러시아의 서부국경가까이에 접근하였다. 미국이 내놓은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은 이 지역에서 힘으로 지배권을 유지확대하며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아시아주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의 주요목표로 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고 미국의 러시아 군사정책을 지적했다.

로동신문은 “사실들은 미국이 러시아를 서쪽과 동쪽에서 동시에 압축하고 있다는 것을 실증해준다.”며 “이것을 러시아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날로 노골화되고 있는 미국의 대 러시아 포위환 형성책동에 대처하여 러시아는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을 전략적 노선으로 내세우고 그 길로 변함없이 나아가고 있다.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이 나라들을 망라한 반항공 방어훈련이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전투적우의-2013’이라고 명명된 이번 훈련은 모스크바 주에 전개된 항공우주방어군 반 항공부대들과 구 분대들을 최고의 전투준비태세에 진입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서 “훈련에는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의 20여개 부대들이 참가하였다. 러시아에서는 500여명의 군인들과 대공미사일종합체 《С-400》과 미사일-포종합체 《빤찌리-С》를 포함한 항공우주 방어군의 100여대의 전투 및 특수기술기재들이 동원되었다. 첫 단계는 훈련에 참가하는 나라들의 인원 및 전투기술기재들을 러시아의 아슐루크 사격장에 재배치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며 이 사격장에서 훈련의 적극적인 단계가 진행된다고 한다.”고 훈련 일정을 공개했다.

신문은 “훈련에는 벨라루씨와 카자흐스탄, 따쥐끼스탄, 키르키즈스탄의 반 항공부대들도 참가하였다. 기타 여러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은 옵서버로 참가하였다.”고 훈련 참가 국가들을 소개했다.

또한 “러시아는 냉전시기 강국이었던 이전 소련의 계승국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는 데서도 국방력강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중국과의 군사적 협력 강화에도 힘을 넣고 있다. 얼마전 러시아는 중국과 두차례의 합동군사연습을 진행하는 등 군사적 접촉과 내왕, 군사협력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두 나라 군대사이의 관계를 밀접히 하고 있다. 두 나라 군부측은 지난 7월 5일부터 12일까지 해상합동군사연습 《해상합동-2013》과 7월 27일부터 8월 15일까지 합동반테러군사연습 ‘평화사명-2013’을 각각 진행하였다.”고 중러 군사협력을 강조했다.

이어 “군사관계강화와 해상에서의 공동작전수행능력 제고 등을 목적으로 진행한 이번 합동군사연습에서는 납치 된 선박구출, 조난선박 탐색 및 구조, 함선호송, 예비물자보충, 반항공 및 반함선, 반잠수함 훈련, 해상 및 공중목표타격훈련들이 진행되었다.”며 “러시아와 중국은 이번 합동군사연습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연습에 앞서 러.중 무력 총참모장들은 두 나라 무력사이의 전략적동반자관계를 확인하였으며 러중 군사협조를 심화시키고 호상관계를 계속 발전시킬 데 대한 중요한 합의들을 이룩하였다. 이번에 두 나라가 진행한 합동군사연습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군사적세력권 확장과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포위환 형성을 견제하고 테러위협을 막으며 지역의 전략적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공동조치로 된다고 여론들은 전하고 있다.”며 중러의 긴밀한 군사협조가 대미 전략임을 시사했다.

아울러 “얼마 전 러시아대통령 푸틴은 최근 집단안전조약기구 성원국들이 첫째도 둘째도 중요한 것은 기구성원국들과 인민들의 안전을 무조건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고 게재했다.

특히 “나라의 국방력을 강화하고 지역의 안전보장을 위해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혀 러시아가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에 맞서는 전략적 노선을 채택했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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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간토조선인 학살사건 공식 사죄해야"

유기홍 의원 등, 90돌 맞아 '진상규명특별법.결의안' 추진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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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2 1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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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수경 의원 등이 2일 간토조선인 학살 90돌을 맞아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를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일본 아베 총리는 1923년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해 공식 사죄하라."

 

유기홍.임수경 의원과 '1923 한일재일시민연대' 등은 2일 오전 11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만 3천명의 조선인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에 무참하게 학살됐고, 일본 군대와 경찰, 민간자경단이 학살을 자행했지만 9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며 이같이 촉구했다.

임수경 의원이 낭독한 회견문을 통해, 이들은 또한 일본 정부에 지금까지 은폐해온 '간토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한 모든 공식적인 자료 공개와 함께 역사교과서 왜곡 중단을 촉구했다. 한.일 양국 정부를 향해서는 이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도 요구했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모임' 대표인 유기홍 의원은 "90년전 어제가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날이었고 그 다음날인 2일에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방화한다는 헛소문을 퍼트렸다"며 "우리가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 유기홍 의원이 일본 정부가 간토조선인 학살에 직접 관여했음을 뒷받침하는 공문서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유 의원은 1923년 9월 3일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이 각 지방장관에 보낸 공문서를 들어보이며, 일본 내무성이 '조선인들이 각지에 불을 지르고 폭탄을 소지한 자들이 있다'며 '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의원은 이번 정기국회에 '간토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과 '간토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촉구결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의 증언을 듣는 자리도 추후 따로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김경호 목사는 김종수 목사를 일본에 보내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왔으며, 이를 통해 확보한 희생자 명부를 바탕으로 각 교회조직을 통해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찾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10월 31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기간에 '간토재일코리안 제노사이드 사진전'도 열 계획이다.

이해학 '1923 한일재일시민연대' 대표는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며 "이 문제를 늦게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다시 같은 역사가, 다시 같은 비극이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군국주의 침략역사를 미화하며, 우경화.재무장으로 치닫는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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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명장면】나루터는 어디인가

"저는 다만 세상의 변화를 나 몰라라 하는 고루한 선비가 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이인우 2013. 09. 02
조회수 897추천수 0

 

問津
 문진
 
 나루터는 어디인가? -‘미자’편 6장① 


 1. 갈림길에서 
 
 서기전 489년경, 부함을 떠난 공자 일행은 남방의 평원을 가로질러 서북 쪽으로 회수(淮水)가 바라다보이는 언덕배기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강변으로 내려가 나루터에서 배를 타면 채나라 도읍 신채(新蔡)로 가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런데 전란 때문에 군대와 유민들이 어지럽게 오가서인지 나루터로 이어지는 원래 길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강 상류 쪽으로 난 길도 있고 하류 쪽을 향해 난 길도 있었다.
 
 이쯤에서 나루터 가는 길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방향이 혼란스럽자 일행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먼 길을 온 피로를 풀면서 다른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듯 했다.
 나는 내려놓은 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생각할수록 실의의 여정이었다.
 공자께서 노나라를 떠난 지 7년 여, 이미 이순(耳順)을 훌쩍 넘기셨건만 역정(歷程)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모처럼 기대를 가지고 찾았던 부함에서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자로’편 16장)의 순리를 설파했으나, 섭공(葉公) 심제량은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의 덕목으로 삼기보다는 교양과 치술(治術)의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부함은 공자 일행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자로는 섭공을 생각할 때마다 화가 치미는지 옆구리에 찬 칼자루를 쓰다듬었다.
 일행은 하루빨리 채나라로 돌아가 잠시라도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었다. 제자들은 스승 앞에서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저마다 애를 썼다. 숲속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도 그런 자신들을 조롱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과연 선생님은 불가능한 일에 덤벼드는 무모한 사람인가?
 혹시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안연 곁으로 가 앉았다. 왠지 안연은 해답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안연님. 나루터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나루터? 비유인가?…음, 그렇군….”
 “오늘따라 이 강을 건너는 것이 예사롭게만 여겨지지 않는군요.”
 “자네도 그런가? 나도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기분일세 그려.”
 

편집나루터공자5.jpg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 중에서

 


 2. 나루터를 찾는 사람들
 
 ‘다른 세계로 가는 배’라는 안연의 말에 나는 문득 도연명(陶淵明. 365~427. 중국 동진시대의 시인)을 떠올렸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고사(故事)를 남긴 일사(逸士). 공자 사거 800여 년 뒤의 사람으로 자신을 종종 안연과 비교하며 공자의 이 유랑길을 흠모했던 은둔자. 내가 살아서 그 시인이 그리워 했던 안연을 마주하고 있을 줄이야…. 나는 잠시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찾은 어부같은 기분에 휩싸여 안연에게 바싹 다가앉았다.
 “안연님, 제가 조선에서 이상한 나루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무릉(武陵)이란 지방에 한 어부가 살았습니다.
 어느날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물길을 잃고 복숭아꽃이 만발한 이상한 숲속을 헤매다 숲 끝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산이 하나 있고 작은 동굴이 나 있었습니다.
 배를 대고 걸어서 동굴을 통과해 가니 넓은 들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모습이 여느 세상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부를 보자 놀라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며 술과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저마다 바깥 세상 소식을 물었다지요.
 그들은 중국의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온 뒤 다시 나간 적이 없어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조차 모르고 있더랍니다.  
 그 곳은 사람들이 철따라 곡식을 거두고 누에 실을 뽑아도 세금이 없고,
 사계절이 순행하여 꾀를 부리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며 한평생 즐겁고 화목하게 산다 합니다.
 어부가 며칠을 더 묵은 뒤 돌아가려 하자,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부는 동굴을 나와 배를 찾아 온 길을 되짚어 가면서 곳곳에 물길을 표시해 두었답니다.
 자기가 살던 마을로 돌아온 어부는 군수에게 그동안 겪은 일을 고했습니다.
 군수는 곧 사람을 시켜 어부의 표시를 따라 가보도록 했으나 끝내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후 어느 고상한 선비가 이 이야기를 듣고 그 곳이야말로 진실된 선비가 살아갈 이상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평생 그 복사꽃 피는 숲을 찾아 헤매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그 후론 아무도 그리로 가는 나루터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병시>②)
 
 안연이 멀리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으로 신비로운 이야기일세. 나루터를 더 이상 찾지 못했다니 왠지 나도 아쉽군.”
 “어부가 갔다는 그 마을은 인의(仁義)조차 필요없는 무위무욕의 세계이겠지요? 그런데 과연 그런 세상이 있을까요?”
 “그 피안(彼岸)의 마을이란 데도 사실 선생님이 이루고자 하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걸세. 다만 그런 삶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도달할 수 있고, 보통사람들은 이룰 수 없는 희망이라면 그것은 선생님이 바라는 바가 아닐걸세. 선생님을 비웃는 은자들이야 노상 입에 달고 다니는 세상이겠지만…. 은자들은 이 혼탁한 세상에서 진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세상을 피해 자연과 벗하며 일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것이 지혜라고 한다면, 이 땅의 눈물겨운 백성들은 누가 돌볼까? 그냥 내버려두는 게 과연 현자의 지혜라는 것일까?”
 
 3. 은사(隱士)와 일민(逸民)
 
 생각해 보면 공자의 여정에서 우리의 마음을 진짜로 아프게 한 것은 어리석은 군주도, 노회한 권신도 아니었다. 같은 이상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려는 공자를 비웃고 비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반짝이고 있다가 공자가 이상의 실천을 말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수같은 조롱으로 공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들은 ‘현세에서 구원을 찾는 일이 부질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공자가 허명과 권세라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대중들을 속이고 있다’고 매도했다.
 
 자로가 제나라 석문에서 읍재의 자문역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자로가 관청으로 가기 위해 성문을 통과하는데 문지기가 제지하며 물었다.
 “누구요?”
 “자문역 자로입니다.”
 그때 문지기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공씨에게서 왔다는 사람이요?”
 “그렇소만.”
 문지기가 옳다구나 싶은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
 “흥, 그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겠다고 나대는 그 자 말이지?”(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헌문’편 41장③)

이런 일도 있었다. 위나라에 있을 때 선생님이 심란하여 경(磬)을 연주하고 있는데 삼태기를 진 사람이 지나가다 말하였다.
 “음악 속에 욕심이 담겨 있군.”
 한참을 더 듣더니 또 말했다.
 “비루하구나, 저 소리!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물이 깊으면 바지를 벗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바지를 걷고 건너면 그만인데”
 하고는 가버렸다. (‘헌문’편 42장④)
 이 또한 공자를 속으로는 권세를 탐하고 벼슬에 집착하는 소인으로 치부하고 비난한 말이었다.
 
 은자로 존경받는 미생무가 하루는 공자를 찾아왔다. 그가 공자와 대작하다가 취기를 빌어 공자에게 말했다.
 “이보시게, 구. 이제 그만 하시는 게 어떤가? 그만큼 수모를 당했으면 됐지, 왜 여전히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러고 다니는 건 말재주만 믿고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닌가?”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미생무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선배님, 아직도 저를 모르십니까? 저는 다만 세상의 변화를 나 몰라라 하는 고루한 선비가 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孔子曰 非敢爲영(아첨할 영)也 疾固也. ‘헌문’편 34장⑤)
 
 그러고나서 공자는 미생무의 빈 술잔을 채워주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선배, 내가 사람들의 조롱과 배척 속에서도 열국을 돌아다니며 군자의 치도(治道)를 말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일념 때문입니다. 인류의 진보를 믿지 않은 채 사람들을 무지와 핍박의 압제 속에 가둬놓고 있는 이 화석같은 세상을 말입니다. 

 

편집나루터공자중화티비5.jpg

*중화TV <공자> 중에서



 4.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지 않으시니
 
 “하지만 선생님도 좌절하고 절망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닙니까? 언젠가 당신의 한계를 한탄하시며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차라리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다’(‘공야장’편 6장⑥)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때 자공과 함께 나타난 염유가 말했다.
 “도가 행해진다면 그곳이 다 이상향이 아니겠는가?”
 “선생님이 그 기담(奇談) 속의 고상한 선비였다면 아마도 커다란 배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하하. 그 배에 가득 사람들을 싣고 함께 이상 세계를 건설하려 하셨을 것만 같네.” 
 “선생님은 동쪽의 주나라(東周), 즉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싶으셨다.”(子曰 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양화’편 5장서 차용⑦)
 자공이 제자들과 짐꾼들을 둘러보며 말을 계속한다.
 “우리가 선생님을 모시고 북방의 황하도, 남방의 평원도 건너지 못하고 이렇게 온 길을 되돌아가게 되니 끈 떨어진 연마냥 자못 처량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이미 나루터가 어디인지 알고 계시네.”
 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선생님의 나루터는 어디인가요?”
 “나, 자공이 생각건대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셨다.
 
  ‘사람은 쉼없이 자기를 수양하여 인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군자가 된다. 인을 추구하는 군자는 자신을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고(忠), 남을 위해 진실로 애쓰는 마음을 닦는다(恕). 이처럼 인을 추구하는 군자들이 세상에 많아져서 그들이 예(禮)로서 협동(協同)하고, 의(義)로서 협덕(協德)하고, 인(仁)으로 협치(協治)한다면, 우리가 사는 바로 이 땅에서 대동(大同) 세상을 실현할 수 있다.’
 
 선생님은 이러한 생각에 더 이상 의혹이 없게 되자, 당신과 제자들이 먼저 협력하여 군주와 대부들을 설득해 당신이 세운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셨다. 선생님께서 분연히 일어나 현실정치로 나아가신 뜻이 여기에 계시다. 선생님께서 분연히 일어나 천하열국을 주유하시는 뜻이 여기에 계시다. 한 사람의 선비로서 쉼없이 자신을 닦고, 군자로서 인의의 도를 추구하는 것, 선생님은 이 사명을 당신의 천명(天命)으로 세우셨다.”

 안연이 화답하듯 말한다.
 “사람들은 선생님의 높은 이상을 오해하여 비웃고 심지어는 해치려 하지만, 어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저 높은 뜻을 어떤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을 위해 세상을 호도하는 위장이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혼탁한 세상을 한탄하고 저주하며 세상 밖으로 나가 자기만의 구도(求道)에 안주합니다. 이들은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며 무위무욕한 삶을 지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선생님은 그들과 다릅니다. 구도의 길을 가되 그것을 위해 세상을 피하지 않습니다. 탁류 속에서 고군분투하시는 이입니다. 정치는 탁류를 정화하는 유력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정치는 도의 수단이 되는 순간 도로부터 멀어집니다. 바로 여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무릇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고뇌, 위선과 위악, 영광과 비극, 나아가 죽음까지도 이 딜레마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과연 이런 이치를 모르고 길을 떠나셨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기에 그것을 경계하고 삼가는 은자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비판을 존중하며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당신의 길을 당당히 가십니다. 가함도, 불가함도 없이(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미자편 8장⑧) 일월사계(日月四季)의 운행처럼 나아가는 자,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자 하는 사람(不可而爲之者), 그것이 선생님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문도들에게 읍하며 가르침을 주신 데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한 뒤 큰 소리로 선생님의 말씀을 흉내냈다. 
 
 하늘이 이 문명을 없애지 않으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 선생님을 해치겠는가!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자한’편 5장⑨서 차용)


 어디서 나타났는지, 팔짱을 낀 채 우리들 뒤에 서 있던 자로가 수염을 쓸며 의(儀)땅에서 있었던 일화를 전해준다.  

  위나라와 진나라 사이 국경도시에서 그곳 지방관이 선생님 뵙기를 청했지.
  지금 저 수레에 계신 분이 공구이십니까?
  그렇소이다만.
  아, 저 분이 그 유명한 공자이시군요. 공자와 같은 분이 저희 마을을 찾아주시니 너무나 영광입니다.
  그 관리가 자기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선생님을 배웅한 뒤 뒤따르는 우리들에게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지.
  제가 살펴보니 공자께서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제자들이 낙담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제가 공자를 뵙고 그 말씀을 들어보니 아닙니다.
  천하에 도가 사라진 지 오래이니, 머지않아 하늘이 선생님을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팔일’편 24장⑩)

편집나루터공자중화티비1.jpg

*중화TV <공자> 중에서


 

4. 용과 이무기

 공자께서 돌아가신 후 나는 세상에 떠도는 한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공자가 주나라 낙양에 갔을 때 노자를 만났다는 전설이다. 그 이야기만으로는 노자가 이담(李聃)인지, 초나라 현인 노래자(老萊子)인지, 혹은 제3의 은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후대에 그렇게 전해진 것인데, 이야기는 이러했다.
 
 공자께서 노자에게 예를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말하려는 성현들은 이미 뼈가 다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군자는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아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며 떠도는 다북쑥같은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오.
 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만 이것뿐이오.

 공자가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가 잘 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물고기가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잘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떨어뜨린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비로소 용과 같은 존재를 보았다. (<사기> ‘노자·한비열전’⑪)
 
 나는 이 이야기가 공자가 직접 한 말이라고 믿지 않는다. 만약 이러한 말이 공자 생전에 알려졌다면, 회수가의 그 언덕에서 내가 문도들에게 꼭 물어보았을 것이다. 노장의 무리들이 그들의 종주를 높이기 위해 선생님의 명성을 빌린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 속 공자의 말만큼은 선생님의 진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자께서 어찌 노자의 힐문의 본의를 헤아리지 못했겠는가. 그런 허무의 처세를 초월했기에 선생님은 불가능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전설의 이면에 숨어 있는 공자의 고뇌를 꿰뚫어 본 후대의 어떤 이가 “공구의 겸양한 독백”이라며 남긴 우화가 있다. 나, 이생은 그 우화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외람되지만 여기에 다시 기록한다.
 
 용은 맑은 물에서 먹으며 맑은 물에서 놀고
 이무기는 맑은 물에서 먹고 흐린 물에서 놀고
 물고기는 흐린 물에서 먹고 흐린 물에서 논다
 지금 나 구(丘)는 위로는 용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물고기와 같지 않으니
 아무래도 나는 이무기인가 보다. (<여씨춘추> 제19권 팔일편⑫) 
   
 汲汲魯中수(늙은이 수) 彌縫使其淳
 鳳鳥雖不至 禮樂暫得新
 洙泗輟微響 漂流逮狂秦
 終日馳車走 不見所問津
 
 노나라 노인 바쁘게 애써
 세상을 바로잡아 순박하게 만들려 했네
 봉황새 비록 오지 않았으나
 예악은 잠시 새로워졌다네
 수사 땅에서 심오한 말씀 끊어지고
 세월은 흘러 미친 시대에 이르렀건만
 하루종일 수레를 몰고 돌아다녀도
 나루터를 묻는 사람 보이질 않네
 (도연명, <술을 마시다 20> 중에서⑬)
 
 편집나루터공자-1.jpg

*공자

 

 

<원문 보기>

 

 

*<논어명장면>은 소설 형식을 취하다 보니 글쓴 이의 상상력이 불가피하게 개입되었다. 역사적 상상력을 통해 논어를 새롭게 해석해보자는 글쓴 이의 취지를 살리면서 동시에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을 돕기 위해 원문을 글 말미에 소개한다. 소설 이상의 깊이 있는 논어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논어> 원문의 한글 번역은 <논어집주>(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편)와 <안티쿠스 클래식6-논어>(한필훈 옮김)를 나란히 싣는다. 각각 신구 번역문의 좋은 사례로 생각되어서이다. 표기는 집(논어집주)과 한(한필훈 논어)으로 한다. 이와 다른 해석을 실을 때는 별도로 출처를 밝힐 것이다.
    ***<논어>는 편명만 표시하고, 그 외의 문헌은 책명을 밝혔다.
 
① 問津
 <논어> 미자편 6장 ‘長沮桀溺우(밭갈 우)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에서 두 자를 꺼내 썼다. 공자가 길을 가다 자로를 시켜 은자들인 장저와 걸닉에게 나루터가 어디인지를 물었다는 내용으로, 이후 ‘나루터를 묻는다’는 표현은 진리, 이상을 추구하는 구도(求道)를 은유하게 되었다. 미자편 6장의 일화는 다음 편에 다룰 예정인데, 이 편은 그 전편격이다. 인용 이외의 내용은 필자의 상상에 의한 허구이다.
 
 ② 桃花源記倂詩
 동진의 시인 도연명이 쓴 글과 시로, 사람들이 전란이나 관리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는 일 없이 평화롭고 즐겁게 사는 이상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이치수 역주 <도연명 전집>) 무릉도원이라는 이상향은 이 작품에서 유래하였다. 무릉은 지금의 중국 호남성 상덕현 서쪽에 위치한 지명이다. 여기서는 이야기 전개상 조선에 있는 지방처럼 묘사하였다.
 
 ③ 헌문편 41장
 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집-자로가 석문에서 유숙하였었는데, 신문(문지기)이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하자, 자로가 “공씨에게서 왔소”라고 대답하니, 그는 “바로 불가능한 줄을 알면서도 하는 자 말인가.”하였다.
 한-어느날 자로가 성문 근처에서 묵게 되었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요?” “공씨 댁에서 오는 길입니다.” “아, 안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하는 사람 말이로군!”
 
④ 헌문편 42장
 子擊磬於衛 有荷궤(삼태기 궤)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 擊磬乎. 旣而曰 鄙哉 경(돌소리경)경(")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려(옷벗고건널 려)淺則揭 子曰 果哉 未之難矣.
 집-공자께서 위나라에서 경쇠를 두들기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씨의 문앞을 지나가는 자가 듣고서 말하였다. “마음이 천하에 있구나. 경쇠를 두들김이여!”조금있다가 말하였다. “비루하다, 너무도 단단하구나! 나(자신)를 알아주지 못하면 그만두어야 할 것이니,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과감하구나! 어려울 것이 없겠구나!”
 한-공자가 위나라에 머물 때였다. 어느 날 숙소에서 경이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삼태기를 지고 대문 앞을 지나던 사람이 말하였다. “흠, 음악 속에 큰 포부가 담겨 있구나.” 발길을 멈추고 한동안 공자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던 그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천박하구나, 저 고집쟁이.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않으면 그만둘 것이지. ‘물이깊으면 바지를 벗고 건너고, 얕으면 바지를 걷고 건넌다’는 말도 모른단 말인가?“ 공자가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저 사람은 세상을 미련 없이 단념했구나.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어려울 게 없겠지.”
 *‘물이 깊으면 바지를 벗고 건너고…’운운은 <시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때에 맞춰 유연하게 처신한다’는 뜻이다.
 
 ⑤ 헌문편 34장
微生畝謂孔子曰 丘何爲是栖栖者與 無乃爲영(아첨할 영)호. 孔子曰 非敢爲영也 疾固也.
 집-미생무가 공자께 말하였다. “구는 어찌하여 이리도 연연해 하는가. 말재주를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감히말재주를 구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집불통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한-혼탁한 세상을 피해 숨어사는 은자 미생무가 공자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왜 그렇게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가? 혹시 말재주를 부려 남의 환심을 사 보려는 것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고집불통을 미워할 뿐입니다.”
 
 ⑥ 공야장편 6장
 子曰 道不行 乘부(뗏목 부)浮于海(…)
 집-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내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
 한-공자가 말하였다. “이 세상에서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차라리 뗏목을 타고 저 바다로 나가고 싶구나.(…)
 * 이 말씀에 뒤이어 자로에게 한, ‘나를 따라나설 사람은 중유뿐이다’라는 말이 이어진다.
 
 ⑦ 양화편 5장
 公山弗擾以費畔召子欲往 子路不說曰 未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子曰 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집-공산불요가 비읍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부르니, 공자께서 가려고 하셨다. 자로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이지, 하필이면 공산씨에게 가시려 하십니까?”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하릴 없이 하겠느냐? 나를 써 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동쪽 주나라를 만들 것이다.”
 한-계씨의 가신인 공산불요가 반란을 일으킨 뒤 공자를 초빙하였다. 공자가 가려고 하자 자로가 못마땅해 했다. “정 가실 곳이 없으면 포기할 일이지, 하필이면 그에게 가려고 하십니까?”“부질 없이 나를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나라를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겠다.”



 ⑧ 미자편 8장
 逸民 伯夷叔齊虞仲夷逸朱張柳下惠少連.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叔齊與. 謂柳下惠少連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謂虞仲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집-일민은 백이와 숙제와 우중과 이일과 주장과 류하혜와 소련이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자는 백이와 숙제이다.” 류하혜와 소련을 평하시기를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말이 윤리에 맞으며 행살이 사려에 맞았으니, 이런 점일 뿐이다.”하셨다. 우중과 이일을 평하시기를 “숨어 살면서 말을 함부로 하였으나 몸은 깨끗함에 맞았고, 폐함(벼슬하지 않음)은 권도에 맞았다. 나는 이와 달라서 가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하셨다.
 한-학문과 덕행을 지니고도 세상을 피해 숨어 산 사람으로는 백이, 숙제, 우중, 이일, 주장, 류하혜, 소련이 있다. 공자가 이들에 대해 말하였다. “뜻을 굽히지 않고 몸을 더럽히지도 않은 사람은 백이와 숙제이다. 류하혜와 소련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지만, 말이 도리에 맞고 행동에 분별이 있었으니, 그들은 그 정도 수준이었다. 우중과 이일은 숨어 살면서 말을 마음대로 하였지만, 행실이 깨끗했고 세상을 등진 것도 시기와 방법이 적절했다. 그러나 나는 이들과 달라서,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다.”
 
 ⑨ 자한편 5장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집-공자께서 광땅에서 경계심을 품고 계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왕이 이미 별세하였으니, 문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장차 이 문을 없애려 하셨다면 뒤에 죽는 사람(내 자신)이 이 문에 참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셨으니, 광땅 사람들이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한-공자 일행이 광 지방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를 양호로 오인한 그곳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몰려와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 이때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공자가 말하였다. “문왕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그가 세운 문화를 계승할 책임이 내게 있지 않느냐. 하늘이 그 문화를 없애 버리려 한다면 내가 거기에 참여할 여지도 없겠지만, 하늘의 뜻이 그렇지 않다면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⑩ 팔일편 24장
 儀封人 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집-의땅의 봉인이 뵙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군자가 이곳에 이르면 내 일찌기 만나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하였다. 종자(공자의 수행원)가 뵙게 해주자, (그가 뵙고)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찌 <공자께서) 벼슬을 잃음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천하에 도가 없은 지 오래되었다.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
 한-공자 일행이 위나라 국경지방을 지나는데, 그 지방의 한 관리가 공자에게 만나기를 청하며 말하였다. “현인 군자가 이 지방에 오시면 제가꼭 만나뵈었습니다.” 제자들이 공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공자를 만나고 나온 그 관리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왜 선생님이 벼슬 자리를 잃었다고 해서 낙심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혼란스러운 지가 오래 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님을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으로 삼을 것입니다.”
 
 ⑪ <사기> 노자·한비열전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가 주나라 낙양에서 노자를 만난 장면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대다수 문헌·고증 학자들은 도교의 창시자로서 <도덕경>을 지었다는 노자는 공자보다 후대의 사람이거나, 실존인물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⑫ <여씨춘추>(정영호 해역) 제19권 팔일편
 龍食乎淸而游乎靑 이(이무기 이)食乎淸而游乎濁 魚食乎濁而游乎濁 今丘上不及龍 下不若魚 丘其이邪. 
 
 ⑬ 飮酒 連作(이치수 역주)
 도연명의 오언시 <음주>연작 20편 중 맨 마지막 시 10행 중에서 4행을 차용했다. 원시는 다음과 같다.
 羲農去我久 擧世少復眞
 汲汲魯中수(늙은이 수) 彌縫使其淳
 鳳鳥雖不至 禮樂暫得新
 洙泗輟微響 漂流逮狂秦
 詩書復何罪 一朝成灰塵
 區區諸老翁 爲事誠殷勤
 如何絶世下 六籍無一視
 終日馳車走 不見所問津
 若復不快飮 空負頭上巾
 但恨多謬誤 君當恕醉人.
 
 복희와 신농 시절 오래되어
 온 세상 참됨 되찾는 사람 적구나.
 노나라 노인 바쁘게 애써
 세상을 바로잡아 순박하게 만들려 했네.
 봉황새 비록 오직 않았으나
 예악은 잠시 새로워졌다네.
 수사(노나라 곡부를 가리킴)지방에서 심오한 말씀 끊어지고
 세월은 흘러 미친 진나라에 이르렀네.
 <시경>과 <서경>은 또 무슨 죄가 있기에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던가.
 부지런한 여러 노인들은
 참으로 정성스레 경전을 전수했다네.
 이찌하여 세상이 쇠망하여
 육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 하나도 없는가.
 하루종일 수레를 몰아 달리지만
 나루터를 묻는 사람 보이질 않는다.
 만약에 다시 통쾌하게 마시지 않으면
 머리 위의 두건을 헛되게 하는 것이리라.
 단지 잘못한 말 많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대는 마땅히 이 술 취한 사람을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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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한쪽에 유리한 기사만, 불리하면 모르는 척

이석기 사건, 언론이 함구하는 한 가지
 
[분석] 한쪽에 유리한 기사만, 불리하면 모르는 척
 
육근성 | 2013-09-02 09:55: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사건과 국정원 촛불집회 관련 언론 보도가 자취를 감췄다. ‘이석기 사건’이 터지자마자 국정원 불법선거 의혹과 서울광장 촛불집회, 민주당의 장외투쟁 등에 대한 보도가 언론에서 사라졌다.

 

국정원 불법선거, 촛불집회 언론에서 사라졌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 진보성향 언론들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이석기 사건을 균형있게 다룰 뿐이다. KBS, MBC, 조중동 등은 내란음모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물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있다. TV조선, 채널A 등 종편들은 내란음모가 확실하다고 스스로 단정하고 온종일 특집편성을 통해 국정원의 ‘입’ 역할을 하느라 바쁘다.

 

시민 2만여 명이 서울역 광장에 모인 촛불집회, 김용판 전 서울청장 공판 소식 등은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이석기 사건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기사화한다. 촛불집회가 열렸던 지난 31일 MBC 뉴스데스크는 ‘내란음모 통진당 3명 구속’ ‘통진당 국정원 앞 집회’ ‘방통위 이석기, 국방자료는 왜?’ ‘내란음모 녹취록 확보 경로는?’ 등 네 꼭지를 할애했다.

 

 

9일 1일 방영된 KBS의 <뉴스9>은 다섯 꼭지를 쏟아내며 이석기 사건에 집중했다. ‘내란음모죄 관련자 줄 소환’ ‘10여 차례 감청영장 전격압수수색 지시’ ‘진보당 국정원 협조자 매수...국정원 터무니 없어’ ‘이석기 체포동의안 이번 주 국회 처리될 듯’ ‘장남감 총도 개조하면 위험천만’ 등의 보도를 통해 충실하게 국정원 입장을 대변했다.

 

 

국정원 ‘입’ 역할에 충실한 대형 언론들

 

조선일보는 연일 ‘이석기 사건’을 메인으로 다루며 하루 10건 정도의 관련기사를 올린다. ‘이석기 사건’을 위험천만한 내란음모인 것인 양 포장하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충실하게 국정원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촛불집회와 관련해서는 제 입맛에 맞는 부분만 발췌해 보도한다. 1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도전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결연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 민주당이 “종북세력과 맞설 것임”을 천명한 것이라고 반기며 “촛불집회의 동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조선과 비슷한 행태다. ‘내란음모 사건’ 관련 기사가 넘쳐난다. 2일자에는 ‘촛불집회 고교생에 다가간 쌤들, 이석기 키즈 키운다’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청소년 시국선언에 참역하고 권은희 수사과장을 위로 방문해 빵을 전달했던 고교생들 단체에 통합진보당 관계자가 접근해 통진당 청년연합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있어 왔다며 통진당원에게 포섭돼 청년연합에서 활동하다 핵심 당원이 된 사례를 나열하기도 했다.

 

 

 

 

 

 

편파·정파 방송의 진수? 궁금하면 지금 종편을 보라

 

TV조선과 채널A 등 종편들은 이것이 바로 ‘편파·정파적 방송의 진수’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기로 작심한 듯하다. 뉴스, 대담, 토론 프로그램 거반을 할애해 온종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

 

TV조선은 ‘국정원 당원 매수해 사찰, 통진당의 물타기’ ‘여, 통진당 사실상 녹취록 진위 자백한 셈’ 등의 보도를 통해 통진당 전체를 내란음모집단으로 단정하는 등 ‘자가발전’에 열을 올렸다. 국정원이 통진당 당원을 거액을 주고 매수했다는 통진당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통진당이 물타기하려는 것”이라는 국정원 입장을 열정적으로 대변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채널A는 이석기 의원이 RO를 조직한 사람이고, RO아래 말단조직이 존재한다며 RO가 체제전복을 목적으로 한 조직화된 지하조직이라고 단정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조직화된 반국가 지하조직이라는 게 입증돼야 내란음모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을 의식한 기사다.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을 종편이 나서서 열심히 길을 닦아 주고 있다.

 

 

이들이 절대 기사화하지 않으려는 한 가지

 

KBS, MBC, 조중동, 종편 등 편파적인 매체들이 절대 언급하지 않고 기사화를 꺼려하는 한 가지가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데도 이들 매체들은 눈 감고 귀 막고 모르는 척이다. 왜 하필이면 국정원 개혁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직전에 3년간 내사해 온 내란음모 사건을 터뜨렸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다.

 

국정원의 파워부서인 국내파트와 수사파트의 대폭축소 혹은 해체 요구가 빗발 치고 있는 때다.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사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또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불법대선개입과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촛불이 점차 커지는 시점이다.

 

왜 이때를 노린 걸까. 국가와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내란을 모의한 위험천만한 사건이라면서 대체 무슨 이유로 시간을 끈 걸까. 위험 수위가 높은 상황이라면 서둘러 진압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이 RO와 이 의원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직무유기를 했다거나, 통진당 움직임에서 내란의 위험성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다.

 

 

기사 쓰지 않고 정치 하느라 바쁜 언론들

 

국민은 두 가지 의혹을 갖고 있다. ▲이 의원과 통진당 간부들이 정말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등을 타격하고 총기로 무장해 내란을 일으키려 모의한 게 사실인지 여부와 ▲국정원이 위기국면을 모면하기 위해 사건을 부풀려 정략적으로 이용한 게 아닌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전자에만 모든 기사를 집중시키고 후자에는 시선 한 번 주지 않는다. 한쪽에 유리한 부분만 부각시키고 불리할 수 있는 부분은 블라인드 처리한다면 어찌 언론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 일부매체만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보도했을 뿐이다. 한겨레는 “내란음모 수사 탓에 국정원 개혁 물건너갈까 걱정”이라는 시민의 목소리를 기사화했고, 오마이뉴스는 ‘빗속 촛불집회’ 광경과 제10차 범국민대회를 상세히 다루며 특검 실시를 주장하는 촛불의 외침을 담았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공정한 보도를 하는 언론이 없다. 한쪽만 보고 들으라고 강요하는 매체들만 수두룩하다.

 

언론은 없는데 언론사 간판은 넘쳐나고, 기사는 없는데 기사처럼 각색된 거짓말만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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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21> 간첩사건 피해자의 호소

당신도 '이석기'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북한 체제 선전 활동 혐의 <민족21> 간첩사건 피해자의 호소

13.09.01 20:17l최종 업데이트 13.09.02 09:48l

 

 

기사 관련 사진
▲ 신체 압수수색 받은 이석기 의원 지난 8월 29일 오후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의원실을 나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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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내란음모다. 총기 탈취, 기간시설 파괴, 인명 살상이란 말까지 나온다. 무시무시하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덧씌워진 혐의다. 가히 충격 그 자체다. 정국을 한순간에 마비시키고,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된 국민적 규탄 분위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진보적인 인사들조차도 섣불리 입을 못 열고 있다.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며 몸을 사린다. 벌써 민주당은 촛불 정국에서 한 발 빼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설마'라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번지고 있다. 그런데 웃긴다. '명색이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내란'이라는 어마어마한 짓을 음모했을까'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설마'가 아니다. '아무렴 국가기관이 근거도 없이 그런 주장을 할까'라는 점에서의 '설마'다. 여기에다 다시 덧붙는다. '그 사람, 종북이라는데', '걔네들, 주사파라는데', '진짜 그랬던 거 아냐…….'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2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아니, 지금도 재판이라는 형식으로 계속되는, 내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갉아먹고 있는 악몽이다.

2년 전 악몽의 데자뷰

2년 전인 2011년 7월의 어느 날, 신문지상을 뒤덮었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민족21> 간첩사건이다. "<민족21>의 편집주간과 편집국장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민족21>을 통해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활동을 했다"는 것이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건의 요지다.

그때도 이렇게 시작했다. 아침 일찍부터 들이닥친 국정원 수사관들이 우리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유는 '간첩 혐의'였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변명과 반박 한 번 하지 못하고 '간첩'이 되었다.

보수언론에서는 국정원에서 흘려주는 혐의 내용을 사실인양 보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민족21>은 간첩의 소굴로 변모했다. <조선일보>는 <민족21> 사무실 사진을 싣고, 친절한 도표까지 동원해 <민족21>을 '선군정치'의 홍보부대로 돌변시켰다.

그런데 그보다 더 황당하고 착잡했던 것은 주위의 반응이었다. 진보적인 사람들조차 '설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묘했다. '설마 <민족21>이 간첩 활동을 했겠어?'가 아니라 '설마 국정원이 근거도 없이 그러겠어?'가 주였다.

처음에는 225국의 지령을 받았다고 했다. 225국은 주로 간첩 남파, 요인 암살을 전담하는 북한 노동당 대외연락부의 핵심조직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그러다 다시 왕재산 조직의 지도를 받았다고도 했다. 왕재산 조직의 체계도 아래 <민족21>도 버젓이 올라가 있었다. 급기야는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았다는 말도 나왔다. 정찰총국은 북한의 국방위원회 직할 조직으로 천안함을 폭침한 곳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덧붙었다. 도대체 나의 상부조직이 어디인지 내가 다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런 보도들이 반복되는 와중에 발행인인 명진스님이 나를 급히 찾았다. 스님의 첫 마디가 이랬다. "진짜 아니야?" 발행인조차 의심할 수밖에 없을 만큼 국정원과 언론의 보도는 집요했다.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강변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스님은 그제야 "그럼 결사적으로 싸워야지" 하셨다. 그리고는 바로 국정원의 주장을 요목조목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셨다.
 

기사 관련 사진
2011년 8월 4일 <민족21> 발행인인 명진 스님이 서울 장충동 만해NGO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 수사를 비판했다.
ⓒ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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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아내조차 내게 "진짜 아닌 거 맞지?"라고 물었을 정도니 다른 이들은 말해서 무엇하랴. 당시 시민사회운동의 한 간부는 "이참에 털건 털고 가는 게 어떠냐"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안영민 편집주간의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고, <민족21>은 대대적인 혁신선언으로 살아남아야 하지 않냐는 충고였다.

국정원과 보수언론의 양공작전은 <민족21>에 엄청난 후과를 남겼다. 당장 <민족21>의 독자들부터 구독을 중단했다. 취재원들도 우리와의 만남을 꺼렸다. 인터뷰를 하려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피했다. 얼마 안 되는 광고수입도 종쳤다. 그 덕분에 <민족21>은 창간 이래 최악의 경영위기에 직면해야 했다. 결국 경영난 속에 기자들과 직원들을 하나둘씩 정리했다. 나 역시 취재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민족21>은 현재까지도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 초기의 대대적인 마녀사냥 내용과 달리 국정원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 어디에서도 정찰총국 혹은 225국의 지령은 나오지 않았다. 내 휴대폰과 집 전화, 사무실 전화와 전자우편, 우편물 등 2007년부터 감청해온 모든 통신내용과 컴퓨터, USB 등 저장파일 어디에서도 지령과 보고의 흔적은 없었다.

국정원에 10차례 이상 출두했지만 그들의 시빗거리는 내가 쓴 책과 강연자료를 비롯한 몇몇 문서, 일본의 총련 간부와 사업협의를 위해 주고받은 전자우편에 불과했다. 결국 국정원과 검찰은 애초의 혐의가 대폭 축소된 내용으로 나를 기소했을 뿐이다.

더 웃긴 것은 <민족21> 편집국장이다. 나와 함께 간첩 혐의를 받았던 편집국장은 3~4차례 국정원 출두 후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민족21>을 세상과 단절시킨 정찰총국의 지령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 몸과 마음뿐이다.

다시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 되는가

그래서다. 나는 이석기 의원 사건 또한 이러한 경로를 밟을 게 뻔하다고 본다. 녹취록이다 뭐다 하지만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 태산을 울려 흔들게 한 것은 쥐 한 마리뿐이란 뜻)의 결과가 눈에 선하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내란음모혐의는 증거부족으로 은근 슬쩍 빠지고 결국 남는 것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 鼻懸鈴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의 한역)의 국가보안법 위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태산명동'이라는 것을. 몇 달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이참에 국정원 댓글 사건도, 대선 부정의혹도 다 덮고, 나아가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도 짓눌러버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그런데 '태산명동'에 현혹된 세상은 훗날의 '서일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용머리만 보던 시선이 뱀꼬리까지는 닿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오직 용머리만 남겨둔다. 그러면서 똑같은 일이 터지면 다시 말한다. '설마'라고.

이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민족21>과 나를 두고 '설마'라고 했던 사람들은 오늘,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두고 다시 '설마'라고 의심한다. 어느 순간 국정원이 흘리고 보수언론이 받아 적는 외눈박이 '팩트'에 더 관심을 가진다. 정작 국정원이 대대적인 '마녀사냥'으로 자신들의 생존권 지키기에 나섰다는 진짜 팩트에는 눈을 돌린다. 이 정권이 대선 부정의혹 규탄 촛불시위를 불끄기 위해 총공세에 나섰다는 진짜 실체는 뒤로 제쳐둔다.

<민족21> 사건 때, 나는 기자들로부터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은 사실이 없냐는 질문공세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가. 혐의를 덧씌운 자들이 근거를 밝혀야 할 문제 아닌가."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수사기관에서는 이웃의 한 사람을 용의자라 붙들고는 "네가 살인을 안 했다는 것을 증명해봐"라고 다그친다. 이게 옳은 처사인가. 살인했다는 증거부터 먼저 명백히 밝히는 게 우선 아닌가.

이런 몰상식이 유독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만 적용된다. 내란음모라. 최소한 총기라도 몇 개 꺼내놓고, 그럴듯하게 만든 계획서라도 펼쳐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진보진영 내에서도 꽤 있다. 그 사람들의 생각을 탓할 마음은 없다. 또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편들 생각도 없다. 다만 충고하고 싶은 것은 감정이 앞서면 이성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이성이 흔들리는 순간 주객이 전도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이다. 우리의 이성은 오직 추악한 댓글로 여론을 호도하고, 그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대대적인 역공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역사 이래 최대의 비이성적 집단을 향한 강력한 저항으로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는 당신도 '이석기'가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안영민 기자는 <민족21> 편집주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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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충돌 사고, 정말 '인재'인가?

[서리풀 논평] 시스템형 사고가 너무 많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02 오전 9:15:46

 

 

시스템형 사고가 너무 많다

지난 주말, 대구역에서 열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여행 계획을 짰던 많은 사람이 큰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도 별 인명 사고가 나지 않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라지만, 대체로 또 다른 인재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쪽 기차를 움직이게 한 여객 전무와 기관사가 무엇인가 크게 잘못한 것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잘못' '착각' '과실'과 같은 익숙한 말이 쏟아지고 있다.

인재라는 말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결국은 사람이 저지른 일이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리라. 그러나 사람이 개입되었으니 '인재'다? 그러고 말기는 못내 찜찜하다.

코레일 노동조합이 밝힌 사정에 눈길이 더 가는 이유이다. 논란이 있다고 하니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재의 한 당사자인 여객 전무가 오랜 동안 현업을 떠나 있었다는 것은 노사가 모두 인정했다고 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 그리고 그 경험과 전문성을 가볍게 여긴 것이 한 가지 중요한 사고 원인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이런 사고가 생겼을 리가 없다.

나아가 효율성만 따지는 노동의 조직 방식이 주범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동안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몰아붙인 노동의 원리를 생각하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재라기보다는 아마도 시스템으로 인한 재해, 즉 '시스템재(災)'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연합뉴스


최근 들어 효율성만 추구하는 노동의 동원과 조직 방식이 만든 재해는 더 잦아졌다(그런 의미에서 이야말로 진정한 '인재'다). 7월 26일 울산의 삼성정밀화학 공장에서 생긴 물탱크 사고도 그런 예다. 빈번한 사고 속에 벌써 헷갈리지만, 이 사고로 노동자 세 사람이 생명을 잃고 열두 사람이 다쳤다.

사고를 조사한 정부가 밝힌 직접적인 이유는 불량 너트를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최종 원인이지만 피상적 이유일 뿐이다. 심장과 폐가 멎었으니 사망에 이르렀다는 진단과 다를 바 없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근본적 이유를 따져야 옳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사고의 배경에는 원청-하청이라는 구조가 얽혀 있다. 실제 이 사고로 죽거나 다친 사람 대부분은 20대와 60~70대 건설 하청 업체 직원이었다. 공사비와 공사 기간을 두고 원청과 하청에 어떤 동기가 작용할지는 불을 보듯 환하다.

사고의 원인이라면 당연히 이 구조에 책임을 돌려야 한다. 나아가 이를 가능하게 하고 또 강요하는 더 심층에 있는 구조–극대화된 이윤 추구의 구조–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스템 재해로 짐작되는 사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3월에는 여수 대림산업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열일곱 명이 죽거나 다쳤다. 하청 업체가 공사를 맡았던 것은 울산의 사고와 꼭 같다.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한 작업을 하거나 안전 보건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도 판박이처럼 닮았다.

또 5월에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질식 사고로 노동자 다섯 사람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협력 업체 직원이 공사 기한을 맞추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던 중 밀폐된 용광로 내부에서 질식해 숨진 것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패턴이 되풀이된다.

소규모 인명 사고는 제대로 헤아리기도 어렵다. 8월만 하더라도 창원의 주물공장, 군산의 주조공장, 영주의 OCI 머티리얼즈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자세한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으니, 인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시스템 오류는 짐작만 할 뿐이다.

공공 기관이 관리하는 공사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지난 7월 일어난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가 그렇다. 그 며칠 후 일어난 방화대교 공사장 붕괴도 서울시가 관리하던 공사였다. 예의 원청-하청이라는 건설 생산 체계가 같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인재 아닌 인재는 공장과 작업장에 한정되지 않는다.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로 고등학생 다섯 명이 숨진 것을 벌써 잊을 수는 없다. 전형적인 인재지만, 그 원인은 효율성을 최고로 치는 또 다른 시스템 탓으로 돌려야 정직하다.

학교는 돈을 아끼느라 허가받지 않은 사설 캠프 업체에 교육을 위탁했다. 이럴 때 업체는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아주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임시직을 고용하고 제대로 훈련조차 시키지 않은 채 학생 교육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사이 참 많은 사고를 경험했다. 구체적인 원인은 다양하고 때로 복잡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공공연한 사고 분석(또는 '태도'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은 일관성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원인이다! 앞서 말한 대구역 기차 사고의 원인 분석도 그랬지만, 아주 예외적인 것을 빼고는 대부분 사고가 인재 때문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이 짝을 이루는 것도 늘 비슷하다. 그러니, 해결 방법과 대책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재라고 하는 것은 잘해야 동어반복이다. 불가항력을 빼고야 사람이 원인이 아닌 것이 무엇이 있을까. 기껏해야 "잘못한 것이 없어야 잘못되는 것이 없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원인을 인재로 정리하는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명확하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렇다. 이른바 '인재론'은 뚜렷한 목적을 가진 원인 찾기인 것이다.

무엇보다, 인재라는 말은 비난 받을 대상자를 분명하게 가리킨다. 여객 전무든 현장 근로자든 관리 책임자든, 초점을 맞춘 비난은 관심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원인을 잊게 만든다. '하이라이트 효과'라고 해도 좋다.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든 비난은 학교 당국자와 무허가 업체에 쏟아졌다. 이런 비난은 흔히 법적 처벌까지 이어진다. 물론 잘못한 것이 맞고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다른 원인은 자연스럽게 관심을 벗어나기 쉽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구조적 원인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효과다. 울산의 삼성정밀화학 탱크 폭발 사건을 보자. 당장 삼성에게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사고가 난 며칠 후 공사를 맡은 원청업체인 삼성엔지니어링의 사장이 경질되었다(책임을 진 게 아니라 '잘렸다').

그리고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건희 회장이 '진노'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사장이 책임을 진 모양이 되었고, 최고 책임자는 사소한 사고에도 책임을 묻는 윤리 경영의 상징이 되었다. 아마도 사고의 원인이 되었을 (효율성과 이윤을 최고로 치는) 구조는 금방 묻히고 잊혔다.

 

사고의 구조를 숨기는 것은 결국 문제 해결의 개인화로 연결된다. 안전 불감증이란 말이 이를 대변한다. 조심하고 교육하고 개인 수칙을 지키는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개인의 행동 지침이 필요하지 않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인재와 불감증만 탓해서는 사고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 보호 장비와 장치는 부분적인 해결책을 넘기 어렵다. 또한, 상대적으로 불리한 사람에게 사고가 집중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시스템과 구조를 주목하고 이를 교정해야 할 이유이다.

그렇다고 구조의 구조, 즉 가장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구조만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건설 산업이라면 원청-하청을 둘러싼 '중간' 수준의 구조도 당연히 개혁 대상이다. 근본인가 중간인가가 아니라, 구조와 시스템을 고려하고 또한 거기에 개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 가지 더. 앞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의료 분야에서도 점점 더 사고가 늘어난다. 건설이나 교통, 제조업처럼 대규모 사고보다는 개인 사고가 많다. 하지만 인재가 아니라 시스템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다.

개인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만으로, 그리고 윤리 의식과 주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적은 인력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면 사고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의료에서의 안전과 사고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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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음모'가 몰고 온 광풍의 나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9/02 10:26
  • 수정일
    2013/09/02 10: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정원이 터트린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석기 의원의 행위와 발언,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행태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것을 이용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 사건의 법리 적용 여부를 떠나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에는 상식보다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더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내란음모'라는 사건이 벌어졌으니, 이석기 의원 등이 속한 통합진보당과의 결별을 주문하는데, 그들을 만난 적도 그들의 사상조차 제대로 모르는 아이엠피터가 무슨 결별씩이나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지금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인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적이 아니면 동지'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논리에서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국을 보면 광풍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나옵니다. 지금 한국에 불어닥친 '광풍'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왜 '내란음모' 일까?'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 등을 내란음모죄를 적용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33년 동안 전혀 나오지 않았던 내란음모죄라는 형법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석기 의원 등이 참석한 RO라는 지난 5월 모임의 녹취록이나 그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살펴봐도 국가보안법 이상의 법리 적용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국정원은 '내란음모죄'를 들고 나왔을까요?

 

 

 


진보,좌파 세력이라고 불리는 집단 속에는 무수히 많은 사상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흔히 참여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부르지만, 그 속에서 각기 다른 집단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다양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나 국정원의 내란음모 적용으로 진보,좌파 세력은 이제 모두가 종북세력이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국정원이 발표한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진보,좌파는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는 세력이 됐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촛불집회,국정원 개혁조차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종북세력의 움직임으로 바뀌었습니다.

국정원의 '내란음모죄' 적용은 단순히 어떤 법리적용이 아니라, 그동안 각기 나뉘어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사건에만 모였던 진보 세력을 똑같은 색깔로 덧칠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보수 아니면 진보에서 보수 아니면 모두가 종북세력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 일타 오피, 모든 것은 종북때문이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적용 사건이 터지자, 보수 언론은 아주 신이 났습니다. 조중동의 모든 신문들이 1면과 특집면을 통해 이석기 의원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여기에 살과 뼈를 붙여 판타지 무협 소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이석기 의원이 '민혁당' 사건으로 형기를 절반도 안 살고 특사로 나왔으며,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이렇습니다. 이석기 의원은 2002년 민혁당 사건으로 징역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항소심을 통해 징역 2년6월로 감형됐습니다. 2003년 이석기 의원은 특별,사면 대상자로 신청을 했으나 수형기간이 3분1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제외됐습니다. 이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이석기 의원은 가석방됩니다. 당시 이석기 의원의 총 구속기간은 1년 3개월이었습니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도피 기간의 절반밖에 안 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2년 6개월 선고와 비교하면 큰 문제도 없었고, 참여정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이석기라는 사람을 특별 사면 대상자로 언급했던 기억이 없다고 할 만큼, 참여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아닙니다.

보수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현재 대한민국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석기 의원과 참여정부의 연관성을 억지로 만들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민주당 또한 이런 간첩들과 연계하여 동조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권은희 과장에게 장미꽃을 준 청소년들에게 이석기 의원 세력이 접근했었고, 이는 '이석기 키즈'를 만들기 위한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정치적인 색깔을 가진 집단이 청소년들에게 접근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정치색이 싫어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무슨 간첩의 활동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동아일보가 노린 것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고교생들을 간첩에 노출된 아이로 만들어 촛불집회 참석 그 자체가 간첩이 득실대는 위험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의도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아마 학교의 교장선생이 간첩이 오는 촛불집회 참석하면 정학,퇴학을 내리겠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거 간첩단 사건에서 나오는 수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묵비권'은 강제적인 고문에 의한 자백의 강요를 방지하고 피고자,피고인의 인권을 옹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간첩들의 수법이고, 이 때문에 그들이 간첩이라고 볼 수 있다는 소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과거 조작했던 사건들은 대부분,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고, 이런 자백은 모두들 법정에서 채택돼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을 살게 만든 요인이었습니다.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법적인 제재를 받거나 불리한 추정, 선고의 불이익을 받은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사가 그런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간첩이라고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 진보를 버려야 살 수 있는 나라'

아이엠피터가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을 보면서 땅을 치고 분노하는 이유는 모든 싸움에서 승자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정국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시작된 촛불집회는 벌써부터 힘을 잃고 있습니다. 국정원 개혁은 이제 물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부정선거는 말도 못 나올 지경입니다.

국정원이 터트린 '내란음모' 사건 한 방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쳐도 공안정국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모든 언론은 '내란음모' 사건만 다루고 있으며, 이는 지방선거까지 계속될 분위기입니다.

공안정국으로 변했지만, 민주당은 그것을 헤쳐나갈 힘이 없습니다. 오로지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지 않도록 죽창을 피해 '나는 아니다'만 외치고 있습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은 박정희가 유신정권을 영구히 하기 위해 반유신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자행한 공작이었습니다. 국민투표를 이용해 유신정권의 명분을 찾은 박정희는 1975년 2월 15일 핵심인사를 제외한 일부 관련자들을 석방했습니다.

박정희는 1975년 2월 21일 문화공보부를 연두순시한 자리에서 최근 석방된 자들은 긴급조치가 아니더라도 국가보안법으로 극형에 처할 수 있는 자들인데도“이들이 형무소를 나올 때 마치 개선장군처럼 만세를 부르고” 나왔다면서“민청학련 사건은 이들(인혁당)이 뒤에서 조종한 것이 명백한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이를 부인하고 오히려 이들을 동지니 애국인사라고 하는데 이렇게 해도 법에 안걸리는가, 법무부와 중앙정보부는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냐”며 매우 격앙된 어조로 관계자들을 질책했습니다. (아마 비슷한 얘기를 박근혜 대통령이 앞으로 할 것입니다.)

아이엠피터는 어떤 간첩사건이든 그 내면에는 단순한 접촉이나 찬양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사형이나 내란음모,변란으로 법의 처벌을 받을 정도인가를 묻는다면 악법이 아닌 이상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이석기 의원 등이 수사를 받아야 할 사안은 맞지만, 그 처벌 수위가 과연 정상일까?)
 

 

 

 


“유신체제 반대하면 붉은 마수 밀려온다"라는 식으로 이분법된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한국전쟁 당시, 좌익이라면 무조건 죽창에 찔려 죽어도 괜찮다는 광란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으며, 이런 비정상적인 모습을 경계하며, 두려워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광풍(狂風)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 광풍 속에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인권이라는 말은 꺼낼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종북세력이냐 아니냐만 따질 뿐입니다. 아이엠피터가 원한 것은 이런 민주주의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그 광풍 속에서 참담한 칼바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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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집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집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우리 2013. 09. 01
조회수 166추천수 0
 

2009 유해동물 지정 뒤 먹이주기 금지로 개쳇수 관리, 실태조사 안해 증감 몰라

체감으로 감소 느낄 뿐…행사 때 방사와 높은 번식률이 폭발적 증가 불러

 

pi.jpg » 지난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든 비둘기 떼의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까치랑 참새는 가까이 와서 (떨어진 음식을) 먹던데 비둘기는 거의 못 봤어요.”

 

2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낙산공원의 낙산매점 주인 이아무개(54)씨가 가게 밖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가게에선 비둘기 모이를 팔지 않는다.

 

같은 날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매점에서도 비둘기 모이를 팔지 않았다. 청계천변 조류상가는 비둘기 모이를 팔고 있었지만 마술용 흰 비둘기를 키우는 마술사들이 주 소비자다.

 

거리의 비둘기에게 줄 모이를 사고파는 사람도, 심지어 비둘기도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떼지어 다니던 비둘기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몸길이 31~34㎝. 몸에 비해 머리가 작고 목은 가늘다. 부리는 굵으면서 짧고 부드럽다. 짧은 다리엔 총 4개의 붉은 발가락이 있다. 3개는 앞으로, 1개는 뒤로 나 있다. 발톱은 짧고 튼튼해 나무나 땅 위에서 생활하기에 알맞다. 깃은 부드러우나 빠지기 쉽고 깃의 빛깔은 기본적으로 어두운 회색 바탕이다. 날개에 두 줄의 검은 띠가 있으나 검은색, 회색, 갈색, 흰색 등 깃털 색의 변이가 심하다. 목 부분은 초록색과 보라색 광택이 나며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인다.
 

비둘기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고 ‘닭둘기’라고 비하하는 이 새의 정식 이름은 집비둘기(Columba livia, 일명 ‘납빛 비둘기’). 조류도감에서 소개하듯 적고 나니 흔히 보던 비둘기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640px-Rock_pigeons_on_cliffs.jpg » 비둘기의 야생종은 절벽에 살았다. 도시로 왔다가 다시 야생화한 비둘기들이 절벽에 자리 잡았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비둘기는 인간의 요청으로 인간 옆에 살기 시작했다. 1만년 전 유럽에서 비둘기의 조상 격인 바위비둘기를 사육했다. 이 비둘기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면서 지금처럼 도시에 사는 야생 비둘기가 됐다.

 

평화와 희망의 상징인 비둘기는 국내에서 1960년대 이후 크고 작은 행사에 동원됐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각각 3000마리 방사했고 한강에 비둘기집을 지어주고 살게 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대통령배 고교야구 개막식, 한민족 체전 등 비둘기를 날려주는 행사가 모두 90차례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전시행정의 결과 비둘기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도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둘기의 생태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 과다 증식한 결과였다. 집비둘기는 다른 비둘기종에 비해 수컷의 정소가 크기 때문에 1회 사정당 더 많은 수의 정자를 배출해 번식성공률이 높다.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포식자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못한 비둘기는 짝을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유전적 다양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비둘기의 생김도 다양하다.

평균 2개의 알을 낳는 비둘기의 포란 기간은 20일 정도다. 포란 17일이 지나면 암수 모두 젖(crop milk)이 나와 새끼에게 먹이는데 젖이 새끼의 면역력을 높여준다.

 

한달이면 둥지를 떠나는 새끼는 생후 7주면 다른 성체와 어울릴 만큼 다 자란다. 선천적으로 비둘기는 뛰어난 번식력과 적응력을 타고났다.

비둘기는 한 둥지에서 오래 머물기를 즐긴다. 동굴이나 동굴처럼 어두운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건물 창문 틈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깔고 둥지를 만든다.

 

창문과 에어컨 실외기 사이, 다락의 바닥을 좋아한다. 비둘기의 일상은 먹이를 먹고 건물의 난간같이 공기가 잘 통하고 너른 공간에서 쉬는 것이다.
 

04424500_P_0.jpg » 비둘기가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가시 철망을 설치한 모습.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사람에 대한 높은 친밀감과 서식지가 인간과 겹친다는 점이 비둘기에게는 불운의 시작이다. 정부는 비둘기를 2009년 6월1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고시했다. 배설물이 건물을 부식시키고 곡물을 훔쳐 먹는 등 도시경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관리지침이 지자체에 내려졌고 전국 공원에 있던 비둘기집이 하나둘씩 철거됐다. 퇴치제 이용, 그물 설치, 둥지와 알 제거, 포획과 살상 등이 가능해졌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쉴 곳과 먹이가 없어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의 생태를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다고 비판했다.
 

조류퇴치제 제조 및 판매 회사인 ㈜이지플렉스 황창영(45) 관리이사는 건물 옥상이나 주택가, 공공시설같이 사람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조류퇴치 제품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고 말했다. 황 이사에 따르면, 요즘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은 냄새에 둔감해져 과수용 조류퇴치제인 스프레이(메틸안트라닐레이트: 포도에서 추출한 식물성 물질)만으로 퇴치하기 어렵다.

 

껌의 기초원료를 첨가해 만든 젤형 퇴치제를 주로 쓰는데, 친환경적이기는 하나 끈적이는 성분 때문에 조류 깃털에 달라붙어 새에게 불쾌감을 주고 비행 능력을 떨어뜨린다. 이밖에도 비둘기가 앉지 못하게 건물 벽에 그물을 치거나 버드스파이크(뾰족한 침), 초음파 및 음향 퇴치기 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종로 사거리의 한 건물 턱에 비둘기들이 모여 아래에 있는 건물 출입문이나 주변 노점상들에게 배설물을 떨어뜨린다 해서 건물 턱 바닥에 제품을 설치해준 적이 있어요. 서울역 대합실에서도 요청이 들어와요. 그런데 그렇게 사람 다니는 바닥까지 끈적끈적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비둘기가 그렇게 싫으면 그냥 문 닫고 사는 수밖에….”
 


강재훈-효창공원 비둘기s.jpg » 먹이 주기 규제의 효과일까, 대도시의 비둘기가 현저히 줄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비둘기 떼.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그 후 4년, 비둘기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환경부와 지자체에서는 수가 줄었을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실태조사는 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2010년부터 각 지자체에 매년 1월31일까지 개체수 조사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들어온 것은 2009년 서울시 자료가 유일하다.
 

환경부 자연보전국 자원생태과 담당자가 말했다. “안 들어오더라고요. 새니까 밀도조사를 해야 하는데 조사인원이 없는지 조사를 따로 안 하나봐요. 사실 시·군·구 단위에는 비둘기가 많이 없어요. 개량종이라 대도시에서만 사는데 2009년 이후 딱히 조사를 한 적이 없죠.”
 

2009년 3~4월에 걸쳐 조사요원들이 눈으로 확인해 정리한 서울시의 ‘집비둘기 서식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에 서식하는 비둘기는 총 3만5575마리, 자치구당 평균 1423마리였다. 예상보다 수가 적었다. 밀도조사 결과 1㎢당 98마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공원(35), 교각(19), 주택·단지(16), 상가·빌딩(15), 하천(6), 학교(6), 사찰(1) 순서였다. 조사 결과 총평에는 개체수 조절보다 집단 서식지 관리가 중요하다고 적혀 있다.

 

pi2.jpg » <한겨레> 2013년 8월31일치 15면

“동네 사람들이 똥 싸놓는다고 싫어하는데, 다리 하나 없는 비둘기가 불쌍해서. 난 동물 애호가야.”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아무개(74)씨가 집 앞 골목길에서 도정하지 않은 밀 한 주먹을 바닥에 뿌리며 말했다. 옆 집 지붕 위에 앉아 있던 비둘기 3마리가 날아들자 밀은 금세 사라졌다. 한씨 부부는 하루에 한두번씩 3마리의 비둘기 먹이를 1년째 챙기고 있다.
 

인간이 비둘기와 도시에서 공존하며 비둘기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먹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먹이를 주는 것은 지역 내에서 개체수를 늘리기 때문에 나중에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죽는 비둘기 수만 늘린다. 결국 비둘기를 학대하는 행동이다.

 

스위스 바젤의 먹이조절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먹이주지 말기 캠페인 결과 굶주린 비둘기 사이에 먹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번식성공률이 감소했다. 1988~1992년에 걸쳐 바젤시 전체 비둘기 수는 2만마리에서 1만마리로 줄었다. 비둘기 피해가 줄자 조류퇴치 비용도 감소했다.

환경부는 유해야생동물 지정 5년째인 2014년에 전국의 비둘기 개체수를 확인하는 용역조사를 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비둘기와의 공존에 성공했을까.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한데, 혹시 공원, 광장, 거리에서 비둘기 먹이 주는 것을 금지하자 먹을 것이 없어진 비둘기들이 주택가와 상가로 몰려와 더욱 사람에게 의존적으로 변한 건 아닐까?

 

조류를 전공하는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최유성 박사후 연구원에게 비둘기가 예전만큼 안 보인다고 이유를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어느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생명이 유지되려면 번식을 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안전한 장소와 먹이가 필요하잖아요. 어쩌면 먹이가 많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고, 아예 개체수가 줄었을 수도 있겠네요.” 비둘기는 정말 줄었을까?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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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박정희, 그는 ‘원조종북’ 이였다

 
 
박정희, 민주주의와 양심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이유
 
耽讀 | 등록:2013-09-01 08:49:25 | 최종:2013-09-01 09:11: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다.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합격시킨 8개 교과서 중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5·16 군사반란에 대한 서술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오마이뉴스> '한일협정·쿠데타 미화… 한국사 교과서 논란'기사 참조.

보수우익들과 딸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에서 구원해준 위대한 구국의 아버지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 '5.16군사쿠데타'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당시 나라가 혼란스런 상황이었고 남북 간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었다"며 '구국의 혁명'이라고 했다. 그때는 단순히 박 대통령이 혼자 생각이었지만, 이제 버젓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박정희 미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박정희는 공산주의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5.16군사반란은 구국의 혁명일까? 그 당시로 돌아가면 그렇지 않다. 역사교과서를 기술하려면 진실을 기록해야 한다. 박정희는 해방정국에서 대한민국 전복 '반란기도죄'로 1심서 무기징역, 2심서 징역 15년에 형집행정지를 받은 '빨갱이'였다.

박 대통령 새누리당 비대위원 시절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바로 그 국회의원들이 30년만에 부활된 '내란예비음모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다. <조중동>은 이미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죄'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빨갱이였던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도 두 번의 '쿠데타'로.

그럼 박정희가 왜 빨갱이였는지 보자. 이는 단순한 비난과 박근혜 대통령을 모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부가 판결한 것이다. 빨갱이가 아닌데도 사법부가 박정희를 빨갱이로 만들었다면, 제2인혁당과 김대중 내란음모처럼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을 받아내면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그 가족들이 박정희 무죄판결을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는 소식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1948년 11월 11일 박정희는 체포된다. 당시 그는 육군 소령, 보직은 육사 1중대장이었다. 당시 군은 한 달 전 10월 14일 발생한 '여순사건' 이후 좌익분자를 색출했는데 박정희가 연루된 것이다. 남로당 군 총책인 이재복을 수사하다가 박정희가 남로당 당원임을 알았다. 이재복은 박정희 형인 상희씨 친구였다. 박정희는 이재복에게 포섭됐다.-2012.06.14 <진실의 길> '좌익' 박정희 군사재판 '판결문' 보셨나요? 참조

<진실의 길> 해당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숙군(肅軍) 당시 실무책임자로 조사과정에서 박정희가 쓴 '자술서'를 직접 읽어본 김안일 특무과장은 "박정희는 '대구 10.1사건'으로 형 박상희가 우익에 피살되자 그에 대한 복수심과 형 친구 이재복의 권유로 남로당에 가입한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춘천 8연대 시절 박정희의 직속상사였던 김점곤 장군(평화연구원장)도 "박정희가 체포된 후 그의 자술서를 봤더니 이재복을 통해 입당했다고 돼 있었다"고 97년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다.

박정희는 1946년 '춘천8연대'에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경비중대장을 지냈고,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김점곤 평화연구원장은 정운현씨와 인터뷰에서 박정희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춘천 시절 남로당 군사부 총책 이재복이 춘천까지 찾아와서 박정희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 때 박정희는 나에게 이재복을 '숙부'라고 소개했습니다. 박정희가 체포된 후 그의 자술서를 봤더니 이재복을 통해 입당했다고 돼 있더군요."-2004.08.11 <오마이뉴스> "형님 친구 꾐에 빠져 남로당 가입"

<오마이뉴스>는 김 원장은 "남로당에서 박정희에게 군 총책을 맡길 때 이미 그는 당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정희는 빈농 출신에다 형의 죽음 때문에 원한이 있었고, 특히 사범학교 때 조선공산당사건을 접했으며, 또 군관학교 수석 졸업 등 이른바 '최고의 성분'을 가지고 있어 남로당 측에서 탐낼만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박정희는 자신이 남로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박정희와 관계했던 사람들 증언은 그가 남로당원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박정희는 1949년 1심에서 국방경비법 제18조, 제33조 위반으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심에서는 징역 10년으로 감형받았다, 더구나 형집행정지까지 받았다. 당시 정국에서 육사 중대장이 남로당에 연루됐는 데도 2심에서 형집행정지라는 '특별대우'를 받은 이유는, <진실의 길>은 해당 기사에서 "당시 재판에 관계했던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가 수사과정에서 적극 '협조'한 공로를 군 지휘부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보도했다. 그가 적극 협조한 것은 무엇일까? 동료들을 판 것이다.

하지만 '빨갱이'란 주홍글씨가 박정희에게도 두고두고 따라 붙었는데 1961년 군사반란으로 최고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남로당 전력은 미국과 한국내 보수세력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안겨주었다. 박정희와 육사 동기생인 정강 장군은 1960년대 후반 청와대 사회·언론 담당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김종신씨에게 "5.16 쿠데타가 일어난 아침 주동자가 박정희 소장이라는 말을 듣고 나라가 뒤엎어질 줄만 알았다. 나는 그와 동기생이기 때문에 그의 전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위험한 인물로 봐 왔다"고 말했다(위 <오마이뉴스>기사 참조)

그리고 "평생 전 같은 군인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며 군복을 벗고 나선 제5대 대통령 선거( 1963년 10월 15일)를 이틀 앞둔 '민정당'(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이 아님)윤보선 후보측은 박정희 사상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동아일보>는 13일 호외까지 발행한다.

<동아일보> 호외에는 '민정당 여·순사건 자료를 공개', '당시의 두 신문 보도 제시라는 통단 제목에 '49년 2월13일 군법회의서 박정희씨에게 무기 언도 심판관은 김완용 중령 등 7명'라는 제목 설명이 실렸다.

"민정당은 13일 상오 박정희 후보가 '여순반란사건 이래 진행된 숙군 당시 1949년 2월 13일 군법회의에서 김학림, 조병건, 배명종 등과 같이 무기징역형을 언도받았다'는 요지의 1949년 2월 17일 경향신문기사와 '서울고등군법회의에서 재판관 김완룡 중령 이하 6명, 검찰관 이지형 중령 이하 1명이 참석한 가운데 심리한 결과 박정희씨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요지의 1949년 2월 18일 자 서울신문 기사를 증거물로 발표했다."

박정희는 누구인가? 일제식민지때는 '황군장교'였고, 1948년 여순반란 사건처럼 좌익이 한국사회를 지배하자 남로당에 가입했지만, 숙군 대상에 올라 처형 당할 처지가 되자 동료들을 밀고했다. 당연히 그는 자기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1961년 5월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18년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1972년에는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긴급조치를 난발해 말하는 자유를 빼앗았다. 그는 지독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지향한 사람이다.

우리가 박정희를 지지할 수 있고, 노무현을 지지할 수 있다. 김대중을 지지할 수 있고, 이명박을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박정희든,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국을 팔고, 사상을 팔고, 동료를 판다면 비판해야 한다. 이런 것은 감추고, 잘한 것만 들추어내 미화한다면 민주주의와 정의에 위배된다.

박정희는 분명 황군장교로 조국을 팔았고, 남로당원으로서 동료를 팔았다. 또 권력을 잡기 위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가 아무리 우리 먹을거리를 해결해주었다고 할지라도, 민주주의와 양심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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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건조한 인공지능전투함

북이 건조한 인공지능전투함
 
한호석의 개벽예감 <77>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9/01 [09:43]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지도하면서 군지휘관들과 수행간부들에게 지침을 주었다. 뒤쪽에 신형전투함 선체 일부가 보이고, 오른쪽에 천막조립대가 보인다. © 한호석 소장 제공


신형전투함의 특이한 이층포탑

북이 개발하는 세계 정상급 성능의 각종 첨단무기를 볼 때마다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이 놀라고 있다. 이것은 과장어법이 아니다. 2012년 4월 15일 인민군군사행진으로부터 2013년 7월 27일 인민군군사행진에 이르기까지 1년 3개월 동안 서방세계 군사전문가들은 북의 각종 첨단무기들과 첨단군사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놀랐다. 이를테면, 지구관측위성 광명성-3호와 함께 지구궤도 위에 올라선 북의 군사정찰위성이 그러하였고, 전 세계에서 오직 세 나라만 실전배치한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이 그러하였고, 세계 정상급 첨단전차 선군-915가 그러하였고, 초정밀타격능력을 시위한 무인타격기가 그러하였고, ‘불벼락’의 대명사로 알려진 300mm 신형방사포가 그러하였고, S-400급 최첨단요격미사일체계가 그러하였고, 핵배낭으로 무장한 세계 유일의 특전병대오가 그러하였다.

그런데 북이 아직 세상에 보여주지 않은 것은 공군력과 해군력이다. 인민군 항공군과 해군이 지상에서 펼쳐지는 군사행진에 첨단무기를 참가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측면은 공군력과 해군력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미국과 정면으로 대치한 북은 자기의 공군력과 해군력을 공개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자체 기술로 제작한 것을 보면 스텔스전투기나 전략잠수함도 능히 자체 기술로 개발하여 실전배치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하늘과 바다를 누비는 그런 첨단무기들은 세상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2013년 8월 25일 <로동신문>에 실린 보도기사와 현장사진이 북의 군사과학기술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또 다시 입증해주었다. 현대군사과학기술정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보도기사와 현장사진이 평범한 것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전혀 그런 게 아니다.

주목할 점은, 북의 군대와 인민들에게 8월 25일이 매우 중요한 날이라는 사실이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북에서는 8월 25일을 선군절로 지킨다. 1960년 8월 25일 근위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의 표현을 빌리면, “선군혁명령도의 첫 자욱을 새긴” 날이 바로 선군절의 기원이다. 특히 올해는 선군절 63주년을 맞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하여 “중대한 군사문제”를 토의결정하였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담화 ‘김정일 동지의 위대한 선군혁명사상과 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자’가 발표되었다. 북이 선군절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북에서 그처럼 중시하는 선군절에 북의 언론매체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군사부문 현지지도를 일제히 보도하였으니, 그 보도야말로 선군절에 즈음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특별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부에 실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새로 건조한 전투함선의 기동훈련을 지도하시였다’는 제목의 기사와 보도사진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직접 지도하는 현장을 촬영한 <사진 1>이다. 그 사진의 오른쪽을 보면, 알루미늄파이프조립대가 세워져 있고, 철사 여러 가닥이 그 조립대를 지탱해주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누가 봐도 그것은 천막조립대인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지도하는 현장에 천막이 설치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긴 시간 동안 현장에 머물면서 각별히 지도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천막이라면 당연히 햇빛을 가리는 비닐 또는 천이 조립대 상부에 펼쳐져 있어야 하는데, 사진에는 천막조립대만 보인다. 천막을 걷어놓고 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왜 천막을 걷어놓고 사진을 촬영하였을까?

그 까닭은 천막을 원상대로 설치해놓고 사진을 촬영하면 계류장에 정박된 신형전투함이 천막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천막을 걷어놓고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천막 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촬영하면, 신형전투함의 전모가 사진에 담기게 되므로 선체 일부만 공개하려는 의도에서 그처럼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선체 일부만 보이는 그 신형전투함은 어떤 전투함일까? 보도사진에서는 신형전투함 갑판에 설치된 포탑만 보인다. 일반적으로 전투함 갑판에 설치된 그런 종류의 무기체계를 근접방어무기체계(close-in defense weapon system)라 부르는데, 그것의 작전임무는 외부방공망을 뚫고 들어와 낮은 고도로 접근하는 전투기, 공격헬기, 순항미사일, 유도폭탄 등을 마지막 단계에서 근접 요격하는 것이다. 항공모함을 비롯한 거의 모든 수상전투함들에 근접방어무기체계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북의 신형전투함에 설치된 근접방어무기체계는 2문의 자동고사포를 위아래에 각각 1문씩 장착한 이층포탑이다. 보도사진을 보면, 이층포탑 위아래에 각각 장착된 2문의 자동고사포는 포신길이가 서로 다른데, 위쪽 자동고사포의 포신은 조금 짧고, 아래쪽 자동고사포의 포신은 조금 더 길다.

이층포탑 아래쪽에 장착된 자동고사포는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에 전시된 1991년식 30mm 6렬(six-barreled) 자동고사포다. 2013년 6월 초 내가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을 참관할 때 직접 목격한 그 자동고사포의 해설판에는 속사능력이 분당 5,000발이고, 사거리는 4km라고 쓰여 있었다. 이층포탑 위쪽에 장착된 또 다른 자동고사포는 1991년식 30mm 자동고사포의 성능을 향상시킨 개량형 30mm 자동고사포로 보이는데, 외형이 러시아 해군 전투함에 설치된 자동고사포 AK-630과 거의 똑같이 생겼다. AK-630의 분당 속사능력은 10,000발이고, 사거리는 5km이므로, 북의 신형전투함에 설치된 개량형 30mm 자동고사포의 성능도 그와 같을 것이다.

자동고사포 2문이 위아래로 있는 특이한 이층포탑을 설치한 전투함은 전 세계에서 북이 이번에 새로 건조한 신형전투함뿐이다. 전투함에 자동고사포 2문을 설치하는 경우, 다른 나라 전투함에서 그러한 것처럼 횡렬 또는 종렬로 나란히 2문을 설치한 일층포탑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북은 왜 설계와 제작이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이층포탑을 만들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부 보도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이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각종 대상물들에 대한 타격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층포탑에 장착된 2문의 자동고사포가 180도 다른 방향으로 포신을 서로 돌려 사격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래쪽 고사포는 동쪽으로 사격하고 위쪽 고사포는 서쪽으로 사격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전투함에 설치된 포탑에는 방탄철갑을 씌워놓은 것이 일반적인데, 특이하게도 북의 신형전투함에 설치된 이층포탑에는 중간부분에 불투명한 판유리처럼 보이는 몇 개의 평면판이 둘러쳐져 있다. 왜 그런 불투명한 평면판을 포탑측면에 죽 둘러놓았을까? 그것은 평면배열안테나(flat panel array antenna)다. 포탑측면에 평면배열안테나를 배열한 목적은 타격목표를 찾아내는 식별장치와 고사포를 쏘는 사격통제장치를 자동적으로 연동시키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된다.

날아오는 대함미사일의 적외선유도장치를 교란하기 위해 발사하는 섬광탄(flare) 3기가 이층포탑 아래쪽에 장착된 것이 보인다. 그 섬광탄을 쏘면, 대함미사일이 열을 추적하며 날아오다가 섬광탄이 뿜어내는 강한 열에 의해 교란되면서 방향을 잃는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의 무장력은 사진에 나타난 30mm 자동고사포 2문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신형전투함선을 건조할 때 30mm 고사포 2문만 설치하는 나라는 세상에 없다. 비록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신형전투함에 대함미사일도 설치된 것이 확실하다. 다시 말해서, 신형전투함 앞쪽에는 30mm 고사포 이층포탑이 설치되었고, 뒤쪽에는 대함미사일 발사대가 설치된 것이다. 사진에 실물이 나타나 있지 않아서, 그 대함미사일의 성능을 정확하게 지적하기 힘들지만, 그 신형전투함과 같은 급의 전투함에 탑재하는 대함미사일은 사거리가 100∼120km에 이르는 대함미사일이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에는 그런 대함미사일 2기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각각 사격할 수 있는 30mm 6렬 자동고사포 2문과 대함미사일 2기로 무장한 전투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현장에서 지도하면서 “함선의 높은 기동력과 타격력을 보시고 대만족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신형전투함은 위에서 언급한 2종의 무장장비를 갖춘 것만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항해하는 고속기동력도 지닌 것이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항해할 수 있을까? 그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북의 보도기사에 나오지 않아서 정확하게 지적하기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신형전투함의 경우 시속 60km 이상으로 항해하여야 고속기동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사실을 종합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시속 60km 이상 매우 빠른 속도로 항해하는 신형전투함이 공중과 해상에 출현한 여러 개의 타격목표를 동시에 추적, 식별하고, 대함미사일과 30mm 자동고사포를 동시에 발사하여 격파하는 실탄사격기동훈련에 대해 큰 만족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북은 왜 소형전투함을 건조하였을까?

이층포탑 아래쪽에 일부만 보이는 선체는 높이가 낮고, 길이도 짧아 보이는데, 이것은 신형전투함이 소형함선임을 말해준다. 그처럼 크기가 작은 소형함선을 왜 만들었을까?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부 보도기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보도기사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인민군대와 해당부문에서 최첨단군사과학기술성과들이 도입된 전투함선을 자체의 힘과 기술로 훌륭히 건조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고 서술되었는데, 첨단수준이 아니라 최첨단수준이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첨단군사과학기술로 건조한 소형함선은 사람이 전혀 타지 않는 무인선밖에 없다.

사람이 전혀 타지 않는 소형비행기를 무인기(unmanned aerial vehicle/UAV)라 부르고, 사람이 전혀 타지 않는 소형선박을 무인선(unmanned surface vehicle/USV)이라 부른다.

오늘날 무인선을 건조하는 최첨단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 이스라엘, 스웨덴, 이탈리아인데, 그 가운데서도 미국이 무인선건조부문에서 단연 앞서간다. 미국이 무인선건조부문에서 앞서간다는 말은 미국이 다른 무인선건조국들보다 한 발 앞서서 무장력을 갖춘 무인선 곧 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는 뜻이다. 미국 이외에 다른 무인선건조국들은 무인선을 해양연구선박이나 해양기후관측선박 등으로 건조하지만, 아직 무인전투함을 건조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다만 이스라엘이 그 분야에서 미국과 어깨를 겨루며 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를 살펴보면, 북은 최첨단군사과학기술을 집대성하여 이번에 전투함의 무인화를 실현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북이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에게는 이미 2011년 초에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선행경험이 있다. 2011년 8월 22일 남측 언론매체들은 북이 무인어뢰정을 2011년 초에 개발하였고, 같은 해 8월부터 동해와 서해의 해군함대에 실전배치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남포조선소의 927연락소기지와 원산조선소의 313연락소기지에서 올해(2011년을 뜻함-옮긴이) 12월 말까지 총80대의 무인조정어뢰정이 생산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 어뢰정은 다른 어뢰정과 달리 1발의 어뢰를 장착하고 무인자동조종기술을 이용한 GPS장치를 이용하여 해상목표물을 타격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북이 그처럼 이미 2년 전에 무인어뢰정을 건조하여 실전배치하였으므로, 만일 이번에 그 무인어뢰정과 성능이 비슷한 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군절을 맞아 기동훈련을 직접 지도하면서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 보도기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기존 무인어뢰정을 능가하는) 새로운 전투함선을 건조할 데 대한 임무를 인민군대와 해당부문에 주”었고, 최고사령관명령을 받은 “인민군대와 해당부문에서는 창조적인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 우리 식의 현대적인 전투함선을 건조하였다”고 서술하였다.

여기서 다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5개월 전에 나온 보도기사와 보도사진이다. <조선중앙통신> 2013년 3월 24일부 보도기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1501부대를 시찰한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서술하였다. “군부대에서 자체로 연구제작한 첨단전투기술기재들을 보아주”신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부대지휘관으로부터 장비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고, “장비들을 오래도록 쓸어보시며 멋쟁이라고, 연구를 많이 했다고, 정말 잘 만들었다고 환하게 웃으시”며, “첨단장비들이 싸움에 편리하게 제작되었고 당장이라도 결전장으로 튀여나갈 것만 같이 보기에도 좋다고, 적진을 향해 명중탄을 날리며 맹렬히 돌진하는 모습이 선히 보이는 것만 같다고 말씀하시”고, “군부대에서 개발한 첨단전투기술기재들이 전투환경에서 기동이 대단히 빠르게 제작되고 지능화, 경량화된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시였다.” <사진 2>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날 인민군 제1501부대를 시찰하면서, 그 부대가 제작한 첨단군사장비를 살펴보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 <사진2> 2013년 3월 2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 제1501부대가 제작한 첨단군사장비를 살펴보았다. 북은 이 첨단군사장비를 제작한 때로부터 꼭 5개월만에 인공지능전투함을 건조하였다. © 한호석 소장 제공

위의 보도기사가 나온 때로부터 5개월이 지난 2013년 8월 25일에 나온 보도기사는 신형전투함에 대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높은 평가를 이렇게 서술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능화가 높은 수준에서 보장된 함선은 항해와 사격조종을 비롯한 모든 전투행동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으며 각종 대상물들에 대한 타격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21세기의 전투함선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에 인용한, 5개월 시차를 두고 나온 두 가지 보도기사를 종합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인민군 제1501부대에 무인전투함을 건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에 따라 제1501부대가 지난 3월 하순 무인전투함에 설치될 첨단설비를 개발하였으며, 그 첨단설비를 갖춘 신형무인전투함을 그로부터 5개월 만에 건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위에 인용한 두 보도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지능화(intelligentize)라는 개념이다. 지능화는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의 최첨단성능을 단적으로 표시해주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지능화는 무인화(unmanned)보다 한 급 더 높은 수준의 자동화기술로 개발하는 최첨단설비체계를 일컫는 것이므로, 북은 전투함을 무인화하는 단계를 지나 전투함을 지능화하는 최고단계에 올라선 것이다.

여기서 전투함의 무인화와 전투함의 지능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투함의 무인화를 실현하였다는 말은 조종사의 원격조종을 받으며 작전하는 첨단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는 뜻이고, 전투함의 지능화를 실현하였다는 말은 조종사의 원격조종조차 필요 없이 무인전투함이 작전상황을 스스로 판단식별하고 스스로 작전하는 최첨단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는 뜻이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의 성능을 묘사한 위의 인용보도기사에서 “지능화가 높은 수준에서 보장된 함선은 항해와 사격조종을 비롯한 모든 전투행동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다”고 서술한 문장에서 인공지능전투함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북이 2년 전에 건조한 무인어뢰정은 원격조종식 무인전투함이고,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원격조종이 필요하지 않는 인공지능화된 무인전투함인 것이다. 땅위에서 걸어 다니는 로봇(robot)이 스스로 판단식별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것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인공지능전투함도 스스로 판단식별하고 스스로 작전한다. 북이 이번에 건조한 신형전투함은 고도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으로 움직이는 초현대식 전투함인 것이다.
 
▲ <사진 3> 2013년 3월 2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살펴본 첨단군사장비는 인공지능전투함에 장착하는 전자광학조준장치(EOTS)였다. © 자주민보

<사진 3>은 2013년 3월 24일 인민군 제1501부대를 시찰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부대가 제작한 첨단군사장비를 살펴보는 장면을 촬영한 것인데, 그 보도사진에 나타난 군사장비가 무엇인지 당시에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5개월 뒤 신형전투함을 건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 다시 살펴보니, 그것은 인공지능전투함에 내장되는, 타격목표를 스스로 추적, 식별하는 전자광학조준장치(electro-optical targeting system)였다.

북의 인공지능전투함이 북의 초정밀무인타격기와 함께 해상공중작전을 전개하는 경우, 미국해군 항모타격단과 미국해병대 원정강습단에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 <사진 4> 이스라엘이 2006년 8월 세계 최초로 건조한 원격조종식 초소형무인전투함 '보호자' © 한호석 소장 제공


무인전투함 개발에 뛰어든 선진국들

세계 최초로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이 건조한 무인전투함의 공식명칭은 ‘보호자(Protector)’다. <사진 4>에 나타난 것처럼, 이스라엘 무인전투함 ‘보호자’는 고속기동력을 지닌 초소형함선이다. 그런데 무장력을 견줘보면, 이스라엘해군 무인전투함 ‘보호자’의 무장력은 북이 이번에 건조한 인공지능전투함의 무장력에 대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하다. 그래서 이스라엘해군은 무장력이 매우 약한 무인전투함 ‘보호자’를 해상전투에는 투입하지 못하고, 해상정찰용이나 해적퇴치용으로나 운용한다.

그런데 양자 사이에는 그런 무장력 격차보다 더 중요한 기술적 격차가 있다. 이스라엘해군이 지중해 연안에 배치한 무인전투함은 지상기지에서 조종하는 원격조종식 무인전투함이다. <디펜스 업데이트(Defense Update)> 2006년 제2호의 자료에 따르면, 원격조종식 무인전투함 ‘보호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첨단무기생산업체들인 라파엘(RAFAEL)이 주도하고 BAE시스템스(Systems)과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이 개발과정에 참가하여 건조된 것이다. 2006년 8월 이스라엘은 세계 최초의 무인전투함 ‘보호자’를 미국에 보내 미국 해군기지, 연안경비대기지, 특수전부대, 수도 워싱턴 등지를 순회시키면서 시범기동훈련을 통해 그 성능을 시위하였다.

이스라엘이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것을 보고 자극 받은 미국은 그에 뒤질세라 무인전투함 건조에 달라붙었다. 그리하여 2008년 5월 2일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인전투함을 건조하였다. <우주전쟁(Space War)> 2008년 5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11MUC0601’이라는 공식명칭으로 불리는 미국산 무인전투함은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계열사 로봇시스템스(Robot Systems), AAI 코퍼레이션(Corporation), 마리타임 어플라이드 피직스(Maritime Applied Physic)가 3자 합작으로 건조하였다.

미국산 무인전투함은 해상정찰만이 아니라 해상전투에도 참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장력이 약한 이스라엘산 무인전투함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산 무인전투함은 적국 잠수함을 추적, 공격하는 대잠무인전투함이다. 미국해군이 잠수함공포증에 걸려 있기 때문에, 그들은 무인전투함을 건조해도 대잠작전에 참가하는 무인전투함부터 서둘러 건조하였는지 모른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각각 무인전투함을 건조한 것을 보고 자극 받은 영국도 무인전투함 개발계획을 2012년 8월에 발표하였고, 캐나다도 무인전투함 개발계획을 2012년 6월에 발표하였다. 군사과학기술이 발달한 선진국들이 무인전투함 개발경쟁에 속속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미국산 무인전투함이 전자동식 인공지능전투함이 아니라 반자동식 무인전투함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산 무인전투함은 독자적으로 해상작전을 전개하지 못하고,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능력과 적국 잠수함을 구축하는 구잠능력을 갖추고 연안전투함(Littoral Combat Ship)의 해상작전을 지원해주는 작전만 전개할 수 있다. 실상이 그러한데도 미국해군은 자기의 무인전투함을 함대급(fleet-class) 무인전투함이라는 과장명칭으로 부른다.
 
▲ <사진 5> 미국이 2008년 5월에 건조하여 2013년 8월 현재 시험운용 중인 함대급 무인전투함 '11MUC0601' © 자주민보

<사진 5>에 보이는 미국해군의 함대급 무인전투함 ‘11MUC0601’의 배수량은 7.7t이고, 선체길이는 12m이고, 선체높이는 3.4m이며, 적재중량은 2,300kg이며, 항해속도는 시속 65km이며, 작전시간은 48시간이다. 2013년 8월 현재 미국해군은 함대급 무인전투함 4척을 시험운용 중인데, 2015년에 가서야 시험운용을 마치고 실전배치할 수 있다. <웨이니 닷컴(wany.com)> 2011년 7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해군은 ‘트라이던트 워리어(Trident Warrior)’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개최하는 해군력실험에 무인전투함 시제품을 참가시키고 있다.
▲ <사진 6> 미국에서 2010년 8월에 건조된 항만급 무인전투함 시제품 ©한호석 소장 제공

<사진 6>에 보이는 무인전투함은 원래 무인기를 만드는 미국 무기생산기업인 AAI가 건조한 항만급(harbor-class) 무인전투함 시제품이다. <지구비행(Flight Global)> 2010년 8월 24일 보도에 따르면, 그 시제품의 선체길이는 11.9m, 선체높이는 3.1m, 항해속도는 시속 52km, 항속거리는 2,200km, 적재중량은 1,950kg이다. 2.5m 높이의 파도를 헤치며 항해할 수 있고, 6m 높이의 파고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항만급 무인전투함은 연안에서 정보수집, 감시, 정찰을 할 수 있고, 다른 전투함들을 위한 병참보급활동에도 동원될 수 있고, 적진에 침투하는 특전병을 수송하는 해상침투작전에도 동원될 수 있다.

<네이벌 테크놀로지 닷컴(naval-technology.com)> 2012년 11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해군은 함대급 무인전투함의 무장력을 강화한 본격적인 무인전투함 ‘펨(PEM)’을 2012년에 개발하였다. 선체길이가 11m인 무인전투함 ‘펨’은 사거리 2.5km의 스파이크(Spike) 미사일 6기와 사거리 6.8km의 M2 기관총 1정으로 무장하였다. 현재 미국해군이 시험운용하고 있는 무인전투함 ‘펨’은 2012년에 실시한 실탄사격시험에서 스파이크 미사일을 쏘아 해상표적을 격파하였고, M2 기관총으로 공중이동표적도 격파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해군이 시험운용하고 있는, 무장력을 갖춘 무인전투함 ‘펨’도 함대급 무인전투함, 항만급 무인전투함과 마찬가지로 지상기지에서 조종하는 원격조종식 무인전투함이다. 전 세계에서 군사과학기술이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미국도 인공지능전투함을 아직 건조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무인전투함 앞지른 북의 인공지능전투함

무인전투함은 현대군사과학기술의 최고 결정체이므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무기생산기업이라 하더라도 단독으로는 개발하기 힘들고,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건조경험에서 보는 것처럼,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첨단기술을 가진 무기생산기업들이 상호 협력하여 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인전투함들보다 월등히 우수한 인공지능전투함을 북이 독자적으로 건조하였으니 북의 군사과학기술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명백하게도, 북은 전투함을 인공지능화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으며, 그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수준을 앞지르기 시작하였다. 해군력이 강하다는 선진국들이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전투함을 건조한 북의 실력을 보고 그만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인민군에게는 성능이 뒤떨어진 노후무기밖에 없다는 식의 거짓말만 들어오며 주입된 북의 군사과학기술에 대한 무지와 편견과 오해에서 한시바삐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로동신문> 2013년 8월 25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형전투함 기동훈련을 지도하는 자리에서 “다용도화된 전투함선들을 많이 건조하고 장비시켜 해군의 해상작전전투능력을 부단히 높여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해군무력을 21세기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더욱 강화발전시키는 데서 나서는 강령적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고 한다. 다용도화된 전투함선이란 이번에 건조한 인공지능전투함만이 아니라 적국 항모강습단과 원정강습단을 공격할 인공지능전투함, 적국 잠수함대를 공격할 인공지능전투함 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위와 같은 각종 인공지능전투함들을 “많이 건조하고 장비시키라”고 지시한 것이다.

2011년 8월 22일 남측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2011년 초에 무인어뢰정을 건조한 북은 같은 해 12월 말까지 총80척의 무인어뢰정을 건조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무인어뢰정을 연간 80척씩 건조한다면 대량건조능력을 갖춘 것이다. 북의 무인어뢰정 건조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 북이 그런 수준의 무인어뢰정 건조능력을 가졌으므로, 인공지능전투함 건조에 박차를 가하면 앞으로 1년 동안 40척 정도 건조할 것으로 예견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3년 8월 25일 선군절에 즈음하여 발표한 담화 ‘김정일 동지의 위대한 선군혁명사상과 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자’에서 “국방공업부문에서는 우리나라를 천하무적의 군사강국으로 빛내이기 위한 투쟁에서 보다 큰 전진을 이룩하도록 하는데 힘을 집중하여 정밀화, 경량화, 무인화, 지능화된 우리 식의 무장장비들을 더 많이 더 질적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고 지적하였다. 2013년 8월 25일 선군절을 맞아 인민무력부가 마련한 경축연회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차수는 연설을 통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정력적인 선군령도가 있어 군건설의 최전성기가 펼쳐지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번에 북이 미국을 앞질러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전투함을 건조하였으니 군건설의 최전성기가 펼쳐지고 있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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