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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원세훈'부정선거' 어쩜 이리 똑같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저도에서의 1박2일 휴가를 마치고 청와대에 있다 복귀한 5일, 아주 끔찍한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서실장에는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정무수석에는 전 벨기에,EU대사를 임명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청와대 비서관 인사 교체카드로 정당과 청와대를 조율하는 정무수석을 정치 경험이 없는 박준우 전 벨기에,EU대사를 임명했습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민주당과의 협조가 아닌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정국을 밀고 나가겠다는 심사입니다.

대통령이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을 임명하는 것이 그녀의 고유 권한이라고 해도,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은 정말 아닙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초원복집'을 통해 부정선거를 획책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를 비서실장에 임명했다는 점은 국정원 사건에 대한 처벌 의지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김기춘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온몸을 바쳤던 '7인회'의 멤버입니다. 그는 이미 박정희 시절부터 철저히 '권력 지향적' 인물입니다.

1971년 법무부 법무실 검사 시절 유신헌법 기초작업에 참여했으며, 신직수 중앙정보부 부장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간첩 조작사건과 공안검사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까지 오르게 된 인물입니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 검사 중의 한 명이었던 김기춘은 법무부 장관을 지낸 후 대선 부정선거를 획책했으며, 이후 이 사건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총애를 입었던 인물입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에서 권력을 탐하던 인물을 박근혜 대통령이 비서실장에 임명한 가장 큰 이유는 국정원 부정선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원세훈과 김기춘을 비교하면 그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북풍'을 조장해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점입니다.

원세훈은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1개 심리전단팀을 2009년 4개팀을 확대 개편했는데, 이는 국내 종북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무슨 '종북'인지 의심이 들지만, 원세훈은 정부를 비판하는 모든 일이 '종북'이라고 확신했으며, 이를 국정원이 해결해야 한다면서 심리전단팀을 운영했습니다.

김기춘은 중앙정보부 수사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과 같은 간첩 조작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입니다. 일본을 방문하여 재일동포 친척을 만나는 일은 간첩 회합,통신죄가 되고, 친척끼리 주고받는 여비를 공작금으로 둔갑시켜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오로지 국내 정치적 위기 상황이나 학생 운동 등 반독재 운동이 있던 시기에 집중됐습니다.

원세훈과 김기춘은 국가정보기관을 이용해 국내 정치에 개입해 정치공작을 일삼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원세훈은 국정원장 지시,강조 말씀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국정원이 나서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던 인물입니다, 김기춘은 유신헌법과 공안검사,중정 수사국장,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정권을 탐했던 인물로 기득권 세력의 정권 유지를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인물입니다.

원세훈은 "종북좌파들이 북한과 연계해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는데, 확실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면서 정권을 지키려고 각종 편법을 동원했습니다.

김기춘은 1992년 12월 11일 부산 초원복집에서 있던 '부산 관계기관장 대책회의'에서 "잘못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들어 가야 할 판인데, 여당해야지 그럼 어떻게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원세훈과 김기춘은 정권이 바뀌면 그들의 불법적인 행동과 기득권 유지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정권에 대한 탐욕으로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했던 파렴치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원세훈은 국정원 직원들을 동원해 인터넷 여론과 SNS를 통해 선거에 개입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국가 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기춘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김영환 부산시장,정경식 부산지검장,김대균 부산지구 기무부대장,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박일룡 부산경찰청장,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강병중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우명수 부산시 교육청 교육감과 만나 부정선거를 위한 공작을 펼쳤습니다.

 

"거제도에 가보니까, YS 본고장이지,우리 거제도야,이웃동넨데 한면에 전부 현대야, 거제도가 본적인 놈들 전부 컴퓨터로 뽑아가지고 그놈들 전부휴가를 보내, 그런면 아줌마들한테 입당원서를 쓰고 운동을 할 수 있어,.... 그래 야단났다 싶어 촌노인들이 아무개집 아들이 국민당 한다네 하면 이놈의 자식 좀오라고 해가시고 네가 이섬에 살 작정이냐 아주 떠날 작정이냐..저인망식으로 그냥..위력이 대단합니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초원복집 녹취록)


김기춘은 김영삼의 고향인 거제도가 오히려 국민당 대선 후보이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텃밭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아예 아줌마들을 동원한 선거운동과 노인층을 대상으로 아들이 국민당을 지지하면 협박을 통해 저인망식으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3.15부정선거와 다를 바가 없는 부정 선거운동입니다.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라고 하면서 대선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김기춘의 선거공작은 우명수 교육감 등 민간인 차원에서 해야 효과적이라는 구체적인 지시사항까지 있었습니다.

원세훈이 국정원 직원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개인자격 운운하며 댓글 작업을 했던 일과 동일한 부정선거 방법이었다는 사실은 김기춘과 원세훈이 시대만 달랐지, 똑같은 수법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했다는 증거입니다.

 

 

 


김기춘은 1992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불구속 기소됐었고 이후 무혐의 처리됐습니다. 현재 원세훈 국정원장도 불구속 기소가 됐고,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당시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사실은 초원복집에 모였던 국가정부 기관장들의 대화에서 확연히 나옵니다.

 

○ 정경식 부산지검장: 검찰총장이 어제 그제 좌담회 와가지고,, 득표에 아주 도움이 됏답니다.
○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김기춘:골적으로 해도 괜찮지 뭐) 이거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 그런 사람(정주영) 대통령이 되면 안 됩니다.
○ 우명수 부산시교육감: 아니 장관님 아픈 데 탁 찌르네..(김기춘:이 중요한 시기에 20일 동안 직무유기하셨구만)


부산지역 검찰,경찰,교육감은 철저히 정주영 후보와 김대중 후보를 비난하고 김영상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검찰,경찰,안기부,교육감들은 조직적으로 선거를 움직였고, 이것만으로도 공직선거법 위반이 확실했지만, 모두 무혐의 처리됐습니다.

당시 상황은 원세훈의 국정원 부정선거가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질지 보여주는 데자뷔와 같습니다. 이처럼 김기춘의 비서실장 임명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대선개입을 마치 1992년 대선처럼 생각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앞으로 국정원장을 비롯한 부정선거 사범은 모두 무혐의 처리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아이엠피터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의 글에서 초원복집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 - '국정원 12,12사태'와 직무유기 '선관위'

초원복집 주범인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1992년과 2013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도청'과 '국정원 여직원 감금'이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는 결국 부정선거를 저지른 범죄자는 성공한 혁명처럼 당선만 되면 괜찮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은 정파를 떠나 그들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을 합칩니다. 김기춘과 원세훈 비록 시대는 달랐지만, 그들은 그들의 정권을 유지하고 부정선거를 위해 국정원과 국가기관을 동원하는 등의 동일 범죄수법으로 정권을 찬탈했습니다.

1992년 부정선거를 저지른 범죄자를 풀어줬더니 2013년 그 범죄자가 돌아와 대한민국 청와대의 비서실장이 됐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원세훈이 나중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갈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범죄를 불의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 범죄자를 등용한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는 한, 대한민국의 정의는 사라질 것이고, 우리 아이들도 성공을 위해서는 부정과 부패,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이엠피터'는 그런 불의한 나라가 싫습니다. 범죄 소굴에서도 민주주의 꽃은 피어날 것을 믿기에 그나마 참고 견디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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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올해에 조국통일 국면 반드시 열어야

북, 올해에 조국통일 국면 반드시 열어야
 
온겨레 조국통일 전환적 국면 절실히 요구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8/06 [05:28]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6.15남북공동선언의 기치를 들고 올해안에 반드시 조국통일의 국면을 반드시 열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해 나섰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6일 ‘북남공동선언들은 존중되여야 한다.’라는 기사를 통해 “지금 온 겨레는 북남관계를 하루빨리 개선하고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갈 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민족의 지향에 맞게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자면 이미 그 정당성과 생활력이 남김없이 확증된 북남공동선언들이 존중되고 이행되어야 한다.”며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새 세기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며 평화번영의 이정표인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려나가야 할 것”이라는 김정은 원수의 말을 실어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와 10.4선언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신문은 “북남공동선언들은 새 세기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며 평화번영의 이정표이다. 조국통일을 이룩하자면 북남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철저히 이행하여야 한다.”면서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의 고수이행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 애국애족의 길이다. 역사적인 평양상봉을 통하여 마련된 공동선언들은 북과 남의 어느 한 지역, 어느 한 당파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을 바라는 우리 민족모두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북남공동선언들은 북남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키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정확한 길을 밝혀주고 있다.”며 남북정상 공동선언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신문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려는 겨레의 지향을 집대성하고 있는 새 세기 민족공동의 통일대강, 평화번영의 이정표는 다름 아닌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들인 것”이라며 “여기에는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고 평화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인 문제들이 다 밝혀져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북남공동선언들은 실천을 통하여서도 그 거대한 생활력이 다 확증되었다. 6. 15시대의 경이적인 화폭들은 북남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이행해나간다면 얼마든지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었다.”고 역설했다.

특히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북남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그 이행을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림으로써 올해에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반드시 열어놓아야 할 것”이라고 거듭강조했다.

한편 조선은 최근 미군철수와 평화협정체결에 대한 요구와 함께 남북정상이 공동으로 합의한 6.15, 10.4 공동선언에 따른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입각한 조국통일을 강조하고 있어 한미 당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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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와 접촉 늘면서 젊은 세대의 의식변화 빠르게 진행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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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5 07: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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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아나운서가 태블릿PC를 들고 방송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지난 2008년 6월 24일 오후 12시 20분 중국 베이징국제공항. 평양행 고려항공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들로 1번 출입구 앞은 붐비고 있었다.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초상휘장을 단 북한의 노동자들이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중동에 3년 동안 건설노동자로 파견 나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면세점에서 물건을 살 때 보니 지갑에 달러가 두툼하다. 이 노동자들은 베이징공항에서 수속할 때 DVD플레이어, 벽걸이 칼라TV 등 여러 전자제품을 부쳤다.

 

전자제품 사 들고 귀국하는 해외파견 근로자


   
▲ 중국 베이징국제공항에서 해외파견을 나갔다가 돌아가는 북한의 근로자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나흘 후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고려항공 비행기 안. 건너편에 앉은 3명의 북한 사람들이 자료를 꺼내놓고 열심히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전시회를 열기 위해 가는 내각 교육성 소속의 정무원(공무원)이다. 앞좌석에 앉아 있는 북한 사람은 여성 승무원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있다. 쿠웨이트에 파견 나가는 노동자다. 베이징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으려고 기다리는데, 흰색저고리에 검정치마 교복을 입은 북한의 여대생 2명이 짐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2008년 당시 중국에 파견돼 일하는 북한 근로자수는 수백 명 수준이었다. 현재는 중국 동북지역에만 2만명 이상의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4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중국 국가여유국(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중국을 방문한 북한인 수는 2005년 이후 10만명 선을 꾸준히 유지하다 2010년 북중정상회담 이후 큰 폭으로 늘기 시작해 2011년 15만2천명, 2012년 18만명을 기록했다.

 

올해도 6월까지 9만 9천1백 명이 중국을 방문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 늘어났다. 그중 공장이나 식당 등에서 일하기 위해 중국을 찾은 북한 사람이 4만 7천9백 명으로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특히 2010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 때 문화, 교육, 체육 등의 영역에서 청소년 교류를 강화하기로 합의한 후 지난해 중국을 찾은 15~24세 북한 청소년 수는 2009년보다 3.2배 늘어난 1만8천900명에 달했다. 중국에 유학 가는 북한 학생들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상 북한 사람들이 국제사회와 단절돼 살고 있다고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의외로 해외를 오가는 공무원, 노동자, 유학생들이 많은 셈이다. 특히 해외파견 근로자들의 수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러시아에 2만명, 쿠웨이트 4천명을 비롯해 중동 및 동남아시아에 1만명, 몽골에 1천700명 정도가 파견돼 있고, 이외에도 아프리카, 동유럽 등에 수천명 규모로 나가있다. 2010년 6월 16일 남아공 월드컵 G조 예선 북-브라질 전에 아프리카에 파견된 근로자 100여명이 북측 응원단으로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외파견 노동자들은 주로 건설과 서비스업, 가공업 등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1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던 한 경제전문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는 북측 노동자가 1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들었다”며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건설사업의 50% 정도를 북측 노동자들이 담당한다”라고 말했다. 2006년에 3천명 내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3배정도 늘어난 셈이다.


   
▲ 북한과 중국과의 직항 노선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에는 중국 하얼빈-평양 노선에 이어 상하이와 평양을 오가는 직항 전세기가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을 위해 투입됐다. [자료사진 - 민족21]
북한의 해외파견 근로자는 북중경협이 활성화되면서 앞으로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은 용정시, 훈춘시 등에 국제협력통상구를 설치하고, 여기에 북한 근로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북한과 중국이 10만명 이상의 근로자파견에 합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월급은 지역과 업종에 따라 다르다. 통상 500~1000달러 내외로 알려져 있지만 중동 파견 노동자의 일부 직종과 중국 파견 IT인력의 경우 1만달러가 넘는 월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몽골 파견 건설노동자의 경우 600~700 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중국 내 북한 여성근로자의 경우 평균 월급은 1500위안 정도로, 한국 돈으로 26만여 원. 임금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개성공단 노동자가 받는 평균 월급(110달러)의 갑절이 넘는다. 참고로 현재 광복지구상업중심(슈퍼마켓)의 환율은 1달러에 북한돈 6천원 내외로, 이를 적용하면 120만원이 넘는 큰 돈이다.

중국의 한 무역업자는 “과거에는 북측 파견노동자가 받은 임금 중에서 충성자금, 세금, 보험료, 숙식비 명목으로 상당한 액수가 국가에 귀속됐지만 최근에는 월급의 25%정도만 국가에 내면 돼 파견노동자의 실질수입이 크게 늘었다”라고 전했다. 올해 1월 북한 근로자들이 파견돼 일하는 동북지역의 기업들을 취재한 일본의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기업관계자는 “월급은 식비와 숙소비 등의 관리비를 포함해도 1인당 2천위안(약 34만 원)이 안 되며, 중국인 근로자보다 몇백 위안은 싸다. 그래도 ‘일할 때의 태도가 성실하고 매일 즐거운 듯 지낸다’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북한 근로자가 월급의 30% 전후를 북한정부에 납부하고 있어 수령액은 매월 1천위안(약 17만 원) 정도라고 덧붙었다. 귀국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칼라TV 등 다수의 전자제품을 사 갈 수 있는 이유다. 북한 근로자들은 이러한 전자제품을 북한 내부 시장에 팔 경우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학생 수도 크게 늘어

 

   
▲ 중국 베이징국제공항에서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북한의 유학생. [자료사진 - 민족21]
중국, 유럽 등지에서 공부하는 북한 유학생들도 크게 늘고 있다. 중국 유학생의 경우 2011년 기준으로 2010년보다 2배 이상 늘어 동북 3성에만 2천여명이 유학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붕괴한 후 유럽으로 유학생을 파견하는 일이 뜸했으나 2009년 이후 유학생을 늘리기 시작해 2011년 30명 정도가 유럽국가에서 유학 중이었다. 지역별로는 러시아의 모스크바, 폴란드 바르샤바 등 구 사회주의권 국가를 비롯해 북한 대사관이나 대표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 스위스 제네바, 독일 베를린 등에 집중 파견돼 있다. 과학기술의 수준이 상당한 스웨덴도 북한 유학생의 선호지역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도 지난해 교수 2명과 학생 1명 등 3명의 북한 유학생이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과 캐나다 등 자본주의 국가에서 북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대학들이 늘어나면서 북한의 대학교수들도 자본주의 국가로 유학.연수를 다녀오고 있다. 2010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과 정준택인민경제대학의 거시 경제.조세.국제 통상.금융 통상 분야 교수 여섯 명이 캐나다의 명문 대학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기도 했다. 이들은 국제 경영, 국제 경제, 재정, 무역 등을 공부했다.

 

해외유학생들은 북한 내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지휘로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동공연을 한 은하수관현악단의 단원들이 대표적 사례다. 100여명으로 조직된 은하수관현악단의 가수와 연주자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와 프랑스, 중국 등에서 전문 예술을 전공한 연주자들로, 독창가수인 황은미는 이탈리아에 있는 산타 세실리아 국립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국제성악콩쿠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 성악가 리향숙과 백미영,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자 문경진 등도 모두 해외 유학과 국제대회 수상 경험을 갖고 있다.

주목되는 평양과기대 교육과정

 

   
▲ 평양과학기술대는 평양시 락랑구역 승리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00만㎡의 부지에 제1단계 건물로서 본관동과 학사동, 종합생활동 등 17개 동의 교육시설과 국제수준의 화상세미나실, 영상강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선진 과학기술을 습득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주목되는 것은 2010년 10월에 개교한 평양과학기술대학이다. 이 대학은 2001년 남측의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과 북 교육성의 합의로 평양시 낙랑구역 보성리 승리동의 100만㎡의 부지에 착공해 2009년 9월 완공됐다. 현재 평양과기대는 농업생명과학부와 전기콤퓨터공학부, 국제금융경영학부 등 3개 학과로 구성돼 있고, 미국과 영국, 독일, 중국, 네덜란드 국적의 교수 47명이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첫해에는 학부 100명과, 대학원 60명이 입학했고, 2011년에는 추가로 석사 과정의 신입생 100명이 입학했다. 이들은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에서 2~3학년에 재학하다 편입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최고 인기학과는 컴퓨터공학과. 평양과기대 관계자는 “북한에서 최근 서류 전산화 작업과 CNC(컴퓨터수치제어) 등 컴퓨터 관련 기술이 강조되면서 첫 입학생 가운데 60%가량이 전기 컴퓨터 공학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국제금융과 경영에는 관심이 매우 적었고 농업생명과학부에서는 벼 품종개발 등 농업 연구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모든 강의는 영어로 진행되며,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이 대학 박찬모 명예총장은 “평양과기대 재학생들은 이론적인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것을 많이 배워서 자기 지식을 산업화하고 상업화해서,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미국 국적의 교수도 “대학원 재학생들은 원래 김일성 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북한의 명문대 출신으로 모두 뛰어난 학생들이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에 재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도 작용해 매 강의마다 집중해서 듣고 학구열에 불타는 분위기”라고 소개했다.

평양과기대는 해외에 유학을 나가지 않고도 평양의 대학생들이 세계의 선진기술을 배울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인터넷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하며 외국문화를 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문화와 사고방식 변화 중

 

   
▲ 2010년 북에서 생산한 ‘휴대용 다매체 전람기’(PDA)의 첫 화면. [자료사진 - 민족21]
해외 파견, 교류, 유학 등을 통해 해외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북한의 문화와 사고방식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평양 거리 곳곳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여 놀랐다. 북한은 지난 12년보다 최근 1년 반 동안 더 많이 변했다. 앞으로 북한을 이끌어 갈 신세대는 대부분 해외 유학 경험이 있고, 컴퓨터 등 통신기기에 익숙하다.”
지난 1997년부터 의료봉사를 위해 23차례 평양을 방문했던 인요한(미국명 존 린튼) 연세대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2011년 1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2011년 5월 4박5일 동안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 역시 북한 내부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놀라움을 표시한 것이다.

 

최근에는 아이패드를 사 가지고 가는 북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비록 인터넷은 사용할 수 없지만. 2010년 말부터는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칼라 액정화면의 PDA가 평양의 컴퓨터 상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러시아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화면 위쪽에 ‘주체 99년’, ‘유희’, ‘비데오(비디오)’, ‘조선지도’라는 특유의 표현이 적혀 있어 한눈에 북한 단말기임을 알 수가 있다. 북한은 이 단말기를 ‘휴대용 다매체 전람기’라고 부른다. 이 단말기는 음악과 영화를 넣어 다니면서 즐길 수 있고, 북한지도에는 지역 이름과 철도, 도로 위치 등이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다. 또 전자사전은 영어와 중국어, 러시아어 등을 북한 말로 바꿔주는 번역 기능과 자체 북한 말 검색 기능을 함께 사용하게 돼 있다.

북한에서 자체 생산된 판형콤퓨터(태블릿PC)도 젊은층 사이에서 최근 인기상품으로 등장했다. 북한은 2~3년 전부터 태블릿PC 제작을 본격화해 현재 삼지연과 아리랑, ‘아침’ 등 3가지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태블릿PC는 주로 학생들의 학습과 일반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 TV는 “판형컴퓨터에는 6개 나라 다국어사전을 비롯하여 정보기술용어사전, 조선말사전, 그리고 중소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재와 참고서들이 들어 있어서 교과서를 따로 지참하지 않고 다녀도 가지고 다니면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최신 정보기술 제품입니다”라고 태블릿PC를 소개했다.

‘삼지연’의 경우 7인치 화면을 탑재했으며 해상도는 1024X768 픽셀이고, 운영체제(OS)는 안드로이드 4.0 아이스크림이며 8GB와 16GB 모델이 있다. 가격은 구글의 최신 버전 태블릿인 넥서스7보다 싼 200달러 정도. 물론 국제 인터넷망에 연결은 되지 않는다.

중국 패션 평양에 상륙

 

   
▲ 북한에서 판매되고 있는 휴대전화 모델들. [자료사진 - 민족21]
휴대전화 보급대수가 200만대를 넘어서면서 이제 북한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음성 및 문자메시지(SMS) 이용이 일반화되고 있다.
“설날 아침이었어요. 신호음이 울리기에 전화를 들었더니 손전화 화면에 ‘선생님! 새해를 축하합니다. 희망찬 새해를 맞으며 선생님과 온 가정의 건강을 바랍니다. 새해에는 선생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제가 맡은 CNC화 연구과제를 꼭 성공하겠습니다. 철수 올림’이라는 글이 올라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북한의 주간 《통일신보》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김순영 교원이 한 말이다. 평양에서도 글쪽지(문자메시지) 문화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의 젊은 세대가 빠르게 디지털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평양에서 북중합작으로 ‘광복지구상업중심’(슈퍼마켓)가 들어서고, 중국의 각종 제품들이 평양의 시장과 상점에서 팔리면서 길거리의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이나 복장 등에서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을 찾는 중국여행객들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중국 훈춘시에서 라선시까지 자가용을 이용한 관광길이 열렸고, 라선시에서 금강산까지 관광하는 뱃길도 열렸다. 올해에는 중국 하얼빈~평양 노선에 이어 상하이와 평양을 오가는 직항 전세기가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을 위해 투입됐다. 2012년 북한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 수는 약 5만~6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90년대부터 시장경제 교육

 

   
▲ 평양에 등장한 패스트푸드점의 모습. 이용하는 북한 주민들이 많아 분점이 6개나 생겼다. [자료사진 - 민족21]
2000년대 들어 북한이 자본주의국가와 소통하면서 나타난 이같은 현상들은 다시 북한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쳐 대외교류에 더욱 적극 나서는 방향으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은 대체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0년대 중반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1997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원아래 경제관료 15명을 중국 상하이에 파견한 이후 200여명에 이르는 관료를 미국, 호주, 태국, 싱가포르, 헝가리 등지에 보내 시장경제에 관한 교육을 시켰다. 또 내각 무역성 산하에 자본주의제도연구원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본주의 생존방식과 대기업의 관리능력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조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10월 자강도 희천시의 압록강타이어공장을 시찰하면서 “모든 나라들이 자본주의 무역을 하고 있는 조건에 맞게 기업소 경영 관리를 사회주의원칙에 기초하고 무역은 자본주의 나라들과 상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은 2003년 10월에 환경, 유기농업, 에너지, IT 등 과학기술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도모하고 선진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평양국제새기술경제정보쎈터(PIINTEC)를 조직해 해외교류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은 ‘주체과학’을 내세우면서도 선진 과학기술 도입을 강조했다.

북한의 계간 학술지 《정치법률연구》(2008년 2호)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다른 나라에서 이미 연구한 과학기술을 자체로 다시 연구하느라 10년, 20년씩 어물거리다가 오히려 과학기술이 뒤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과학기술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라는 것은 과학기술 분야에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반대하라는 것이지 결코 다른 나라의 발전된 과학기술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과학기술 교류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최신 과학기술 분야에서 앞선 나라들과 합영, 합작도 널리 조직해야 한다”며 비교적 구체적으로 선진 과학기술 수용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에 김정은시대를 이끌 경제대표단 파견

 

   
▲ 2011년 3월 19일부터 미국을 방문한 북한 경제대표단 일행이 4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앞에서 세미나가 끝난 뒤 대학 내 대북 전문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제안보협력센터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맨 윗줄 왼쪽 끝),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첫째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등이 참석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이러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선은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더욱 구체화됐다. 2011년 3월 15박16일 동안 북한의 경제대표단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미국의 첨단 자본주의 시스템을 둘러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내각 무역성 무역지도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경제대표단은 미국 대학 교수들의 강의 수강과 산업 현장 답사를 병행했다. 북한 대표단은 강의보다 미국 산업 현장 답사에 더 비중을 둬 주제별로 다양한 산업 현장을 찾았다. 방문 초기 LA지역에선 주택관리용품을 판매하는 홈디포(Home Depot)와 생활 양판점 타깃 등 소매업체, 관광.오락산업을 대표해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둘러봤다. 이어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대표격인 구글과 퀄컴 본사를 방문해 비즈니스 혁신 모델에 대해 논의했다.

최근 인민경제 향상을 위해 경공업분야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을 반영하듯 북한 대표단은 식품산업 분야를 가장 많이 둘러봤다. 마운틴 미도 버섯농장, 카탈리나 시푸드, 클래밀 매뉴팩처링 코퍼레이션(식품가공회사), 캘리포니아 데이비스시 인근의 대형 쌀 농장 등이다. 이밖에도 LA 항구(무역 인프라), 셈프라 에너지(전력산업), 블룸버그통신(언론산업), 블루밍데일(백화점 소매업), 씨티그룹.유니언 뱅크(금융산업) 본사를 찾아 현장 강의를 들었다.

북한 경제대표단은 특히 “북과 미국이 현재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거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며 북미 간 무역의 확대, 미국 기업의 대북투자 등에 관심을 표명해 주목을 받았다. 김정은시대 경제정책을 이끌어갈 차세대 경제 당 간부와 관료가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를 들여다보고 미국과의 경제교류를 강조하며 북한이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전달한 셈이다.

예상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시대를 공식 출범시키면서 대외 교류확대를 언급했다. 그는 한달 뒤인 5월 8일 평양에서 열린 국토관리총동원운동열성자대회 참가자들에게 전달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하여>란 문헌에서도 대외교류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다른 나라들, 국제기구들과의 과학기술교류사업도 활발히 벌려야 합니다. 국토관리와 환경보호부문에도 세계적인 발전추세와 다른 나라들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기술들을 받아들일 것이 많습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지만 인터네트를 통하여 세계적인 추세자료들, 다른 나라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과학기술자료들을 많이 보게 하고 대표단을 다른 나라에 보내여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자료도 수집해오게 하여야 합니다.”

인터넷을 통한 선진 과학기술자료 입수를 언급한 대목이 눈에 띈다. 북한이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호를 열고 자본주의국가와 교류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이 ‘세계적 추세’와 ‘선진 과학기술’을 수용하기 위해서든, 해외 파견 근로자를 늘여 외화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든 북한 주민들의 해외접촉과 교류가 늘어날수록 북한의 사회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최근 북한과 교류를 넓혀가고 있는 몽골의 차히야 엘벡도르지 대통령도 2011년 6월 미국 의회에서 한 연설에서 “몽골은 북한과 대사관 개설을 포함해 정부간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라며 “교류를 위해 몽골에 오는 북한인들은 현재와 다른 생존 방식과 정부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 중국관광객들이 라진항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배를 타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근 북한을 찾는 중국관광객이 연 5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남북 간의 금강산관광은 중단된 지 오래다. [자료사진 - 민족21]
한가지 아쉬운 것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나오려고 하는데, 남북관계는 꽉 막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2002년 ‘경제고찰단’ 을 파견해 “눈이 두 개밖에 없어 더 많이 볼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라며 남측의 주요 시설과 공장 등을 꼼꼼히 시찰한 것에 비하면 막말만 오가는 현재 남북관계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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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60주년 행사 유감

<칼럼>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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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5 15: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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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정전 60주년 행사가 꽤 성대하게 마무리되었다. 남북 간에 혈맥이 끊어지는 상황에서 이제 기념해야 할 것은 화해와 협력이 아니라 전쟁인 것 같다. 올해는 박근혜 정부 초청으로 해외에서도 많은 손님이 오고 오바마 대통령까지 특별 포고문을 발표할 정도로 행사는 각별한 듯하다. 그러면 한국전쟁과 정전협정은 제대로 기념되었는가?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과연 적절했는가?

우리의 전쟁 및 정전 기념행사는 유럽과 다른 특징이 발견된다. 프랑스는 2차 대전을 기념하면서 반드시 “우리의 어떤 잘못이 독일의 침공을 초래했는가?”를 먼저 질문한다. 이 물음 때문에 베르사이유 조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시 프랑스 지도층의 무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층은 무능했으나 레지스탕스라는 다른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기에 프랑스인들은 이에 자부심을 갖다. 이건 아주 철저한 원칙이자 전통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전쟁 박물관에는 당시 프랑스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우리의 전쟁 기념행사는 반드시 이 질문은 생략된다. 그러하기에 한국전쟁 당시 국민들 몰래 지도층이 한강철교 폭파하고 도주한 것이라든지, 심지어 한국은행의 금괴도 반출하지도 않고 도망쳐 국부(國富)까지 내다버린 셈이 되었고, 일부 군 지도자는 계급장까지 떼버리고 도주하여 부대가 전멸한 일이라든지, 전쟁 중에도 부정부패로 국민방위군을 대규모로 죽게 만든 일이라든지, 잘못된 군사작전으로 양민을 학살하는 등 필설로 다 말할 수 없는 숱한 잘못을 저질렀다. 정작 우리가 반성해야 할 잘못은 일체 말하지 않고 그런 잘못까지도 미화하고 조작하는 것이 마치 전쟁기념 행사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한국전쟁을 북한의 기습 남침이라고 하는데, 전쟁 발발 전에 이미 교전이 수시로 있었는데 무슨 기습 남침인가? 설령 기습 남침이라고 해도 왜 대비하지 못했는가? 게다가 이 전쟁의 비극성은 그 어떤 이념과 명분으로도 설명될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 1차 대전 사망자는 4,000여만 명인데 그중 40%가 민간인이다. 2차 대전 사망자는 총 7,000여만 명인데 그중 69%가 민간인이다. 한국전쟁은 총 390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85%가 민간인이다. 도망갈 곳조차 없는 좁은 한반도에서 2차 대전 당시 사용한 폭탄의 2배인 69,000톤의 포탄이 투하되고 이 중 반 정도가 네이팜탄이었다. 전쟁의 발생은 두 가지 요인이다. 북한의 침략의도와 이에 무능했던 지도층, 이 둘 중 하나만 생략되어도 한국전쟁을 일어나지도 않았거니와, 일어났더라도 그처럼 비극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살펴보는 게 바로 전쟁기념이다. 그런데 우리의 전쟁기념과 정전협정 행사에는 한 가지만 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정전협정 기념행사가 전쟁에서 패주한 폐족들을 영웅시하는 잘못된 행사로 변질되게 한 요인이다. 식민지 일본군 출신들이 한국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는 것도 과장이다. 총검 들고 돌격하는 식의 일본군 식 전술과 문화는 유엔군의 현대적 전술이나 문화와 맞지 않았고, 오히려 불화를 조장하는 사례가 다반사였다.

성경이 위대한 역사책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의 치부를 낱낱이 다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다 보지 못하고 외눈박이로 한 면만 보라고 강요하는 것은 지적 폭력이자 기만이다. 그런 반쪽의 역사 때문일까? 무능했던 전쟁 지도부가 전쟁 이후에는 더 승승장구하여 지배층이 된 이런 역사는 유럽의 관점으로 볼 때 정의롭지 못하다.

여기에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식의 잘못된 설문으로 교육현장이 대혼란에 빠지고, 그걸 시정한다고 역사과목을 의무화하고 한자교육까지 강화한다는 데 교실은 거의 공포에 빠졌다.

묻고 싶다. 전쟁의 무엇을 기념하자는 것인가?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14~16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보좌관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방전문위원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전 국무총리실 산하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디펜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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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투쟁, ‘국정원 개혁’ 이라는 함정

대포로 파리 쏠텐가,승복과 불복 논할 때 아냐
 
정주식 | 2013-08-04 20:48:0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서울광장으로 나온 민주당 출처:오마이뉴스>

민주당이 거리로 나왔다. 원내투쟁과 장외투쟁 사이에서 고민하던 민주당이 결국 31일 서울광장에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하고 첫 '천막 의원총회'를 가졌다. 뜻밖이다. 김한길 대표 체제 아래서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거리정치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광장에 천막본부까지 설치한 것을 보면 꽤나 수위가 높다. 줄곧 국정조사 무용론을 제기해 온 필자와 같은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장외투쟁에 임하는 민주당의 태도가 그리 강경한 것은 아니다. 어제 국민운동본부 민병두 본부장은 "시민사회단체의 장외 촛불집회의 요구사항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국정원 개혁으로 압축된다"면서 그들의 뜻과 함께하는 것이 장외투쟁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한길 대표 역시 "민주당은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해 국민과 함께 나설 것"이라며 이번 투쟁의 목적을 밝혔다.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뜬구름 잡는 구호를 들어내고나면 민주당의 천막투쟁 목적은 국정원개혁만 남는다. 여러 언론에서는 벌써 '국정원개혁 운동본부'라고 줄여쓰고 있다. 거대야당이 거리로 나선 목표가 고작 국정원 개혁이라면 너무 초라하다. 대포로 파리를 쏘는 격이다.

물론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구호는 해석에 따라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 그안에는 국정원 개혁이나 국정원장 해임, 대통령의 사과와 같은 여러 가지 의미가 혼재돼 있다. 당내 강경파과 온건파의 입장을 적절하게 뭉뚱그려 놓은 정치적 구호로 보인다.아쉽다. 이왕 '대군'을 이끌고 거리에 나섰다면 민주당은 그 명분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국정원사건 진상규명'이라는 명료한 구호를 놔두고 굳이 저런 애매모호한 말로 초점을 흐려야 했는지 모르겠다.

대포로 파리 쏠텐가

'국정원 개혁'이라는 구호가 전면에 나서는 것 역시 좋은 일이 아니다. 국정원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자 당위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것이 이슈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몇 가지 측면에서 위험하다.

첫째, 순서의 문제다. 국정원 개혁은 사태의 본질을 비껴간 '재발방지대책'이다.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진상규명과 처벌보다 앞설 문제는 아니다. 정보기관의 조직적인 대선개입이라는, 이미 발생한 중대한 문제를 제껴둔 채 부차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

장장 6개월간 이루어진 검경의 수사과정에서는 온갖 외압과 은폐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진했던 국정조사는 새누리당의 발목잡기로 좌초됐다. 원세훈 원장에 대한 구속수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던 말도 안되는 수사가 끝났을 뿐이다.

국정원과 전정권, 현정권의 책임범위가 서로 어디까지인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발방지대책부터 논의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태도다. 국정원이 이번 사건의 몸통이었는지, 수족이었는지 아무것도 밝혀진바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국정원 개혁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고 이상하다. 국정원 개혁이나 대통령의 사과 같은 문제들(국정원장 해임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은 사건의 전말이 명확히 드러난 뒤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하게 논의되어야 할 '후순위'의 문제들이다.

둘째, 의도의 문제다. 올해초 국정원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자 지상파와 종편, 보수언론들은 약속이나 한듯 역대 정보기관장들의 흑역사에 대해 특집보도를 내보냈다. 김형욱, 이후락 같은 인물들의 비화가 이번 사건과 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청와대와 여당, 보수언론들이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의 초점을 국정원 개혁에 맞추는 것은 사건의 특수성을 은폐하고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이번 사건을 오래전부터 상존했던 정보기관의 문제의 연장선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국정원사건의 본질은 개혁되지 못한 정보기관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단히 위험한 접근이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에 개혁되지 못한 정보기관의 '구습'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대단히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파괴행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이 대선 등 각종 선거에 개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조직적으로 여론몰이에 나섰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초유의 일이다. 한국의 TV는 이런 사건을 늘 있었던 일처럼 담담하게 보도한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정보기관이 권력에 유착해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나,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민주주의의 목에 칼을 들이댔던 사건은 없었다. 이것이 ‘늘 있어왔던 문제’쯤으로 일반화된다면 사건의 본질은 희석되고 문제해결은 방향을 잃게 된다.

이시점에서의 '국정원 개혁' 구호가 위험한 세번째 이유는 이것이 새누리당의 출구전략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사건과 관련해 여야와 청와대의 입장이 대체로 일치하는 부분은 국정원 개혁이 유일하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새누리당이 크게 반대하지 않는 유일한 사안이다. 장기적으로 볼때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정국에 대한 새누리당의 출구전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진상규명 이전에 문제해결의 초점을 국정원 개혁에 맞추면 국정원을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예단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들 입장에서는 정권의 정통성문제를 건드리지 않고도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적정수준'의 해결책인 것이다. 국정원개혁이라는 부차적인 문제를 사태해결의 본질로 이해하는 순간 새누리당의 출구전략을 돕는 꼴이 된다.

이런 이유들로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오는 것은 우려스럽다. 이런 우려는 민주당 뿐 아니라 장외투쟁에 나선 모든 정당과 시민사회에도 공히 해당된다. 국정원을 개혁하든 해체하든 그런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끝난 뒤 이루어질 일이다.

<'국정원 개혁'은 잠시 뒤로 미루자>

승복과 불복 논할 때 아냐

야 3당이 모두 거리에 나서자 새누리당은 이를 '대선불복'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허나 이것은 대선불복 or 승복의 문제라기보다는 선거부정을 인정하는가 or 인정하지 않는가의 문제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구현된다. 과정의 문제를 규명하려는 노력을 '대선불복'같은 반민주적인 표현으로 매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검∙경의 수사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벌어진 국정원사태의 의문을 전혀 풀지 못했다. 이것을 해결하고자 추진했던 국정조사는 여당의 방해로 실패했다. 과정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못한 상태에서 승복∙불복을 논하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사태수습이 아닌,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다. 그 수단이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전면 거리투쟁이든 목표는 다르지 않아야 한다.

 

어떤 야권지지자들은 새누리당의 일사불란한 조직문화를 부러워한다. 물론 민주정당에게 일사불란함은 좋은 덕목이라 할 수 없지만, 이것은 장외정치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민주당같은 거대정당에게 장외정치란 둘도 없는 비상상황이다. 국회에서 우왕좌왕하며 새누리당에게 휘둘려왔던 민주당이 거리에서마저 좌고우면 한다면 정말 심각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지도부는 분명한 입장정리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민생이니 국정원 개혁이니 하는 어설픈 구호로 장외투쟁의 갈피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모처럼 야성을 드러낸 민주당이 작은 함정에 빠져 일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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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대운하 담합' 방조자인가, 공범인가"

[MB 대운하, 5년 비망록 ②] 국토부 공문 '굵은 글씨'의 비밀

신우석 전 김진애 의원실 보좌관, 4대강 사업 전문가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05 오전 7:26:18

 

 

4대강 사업이 사실상 대운하 사업의 '전단계'였다는 것이 최근 감사원 감사로 드러나게 됐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결과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22조 원이 투입된 거대 사업이라 이권이 걸려 있는 업계나 인사들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진행 과정에서 제기된 불법 논란들만 봐도 핵심 쟁점이 수십가지는 된다.

이명박 정부 내내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논란을 지켜본 인사가 있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현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진애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신우석 씨다. 그는 국회 내에서도 자타 공인하는 '4대강 전문가'다.


신우석 씨가 <프레시안>에 보내온 글은 감사원 감사를 통해 밝혀진 것이나,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밝혀진 것 등과는 또다른 '결'을 보여준다. 신우석 씨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민간 건설사 등의 각종 보고서에도 주목했다. 이와 함께, 현재까지 드러난 정부 측 보고서와 4대강 사업 관련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복잡한 '퍼즐'을 짜맞춰, 몇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의혹들을 짚어내고 있다. <편집자>

지난 글(☞ 관련기사 : "국민은 속았지만, 건설사는 '대운하' 알았다")에 이어 두 번째 의문에 대한 답변을 도출할 차례다. 과연 담합을 공모하거나 도와준 다른 세력은 없었는가. 이 질문을 풀면 '4대강 담합으로 얻은 이익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단서도 얻을 수 있다.

2008년 10월 국토부의 4대강 비밀 TF에서는 국가하천종합정비 계획을 만들고 있었고, 10월 국무회의에서는 국가하천정비를 100대 과제로 포함시켰다. 그리고 12월 국토부는 4대강정비계획을 발표하고 건설기술연구원에 마스터플랜 용역을 발주한다.

2008년 12월 발표된 4대강정비계획은 14조 원의 국가예산으로 진행되는 재정사업이었다. 더 이상 민간제안사업도, 민간투자사업도 아니었다. 그러나 2009년 4월 6일 이 사업에 참여한 한진의 문서를 보면 건설사들은 이를 '민간투자사업(당초 경부운하 건설사업)으로 부르고 있다. 경부운하 건설 사업은 대운하 사업이다. 이들이 보고서를 이렇게 꾸민 것은 왜일까? 나아가 대운하설계팀이나 대운하컨소시엄과 청와대, 국토부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을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운하컨소시엄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든, 정부의 계획과 사정을 이미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담합에 참여한 대형건설사들은 4대강사업의 사업 공구가 발표되기도 전에 설계용역사들에게 낙찰 예정공구에 대한 준비를 통지하기도 했다.

공정위 자료에 의하면 이미 민자 대운하컨소시엄과 설계용역계약이 맺어져있으면서 마스터플랜용역에도 참여한 설계용역 회사들로부터 사업내용과 진행과정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그 정도가 아니었다.

감사원 자료에 의하면 2008년 12월 발표한 국토부의 4대강정비사업 계획은 청와대 대통령실에 의해 대운하설계팀이나 대운하컨소시엄의 계획으로, 급속도로 수정됐다.
 

▲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 4월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4대강 살리기' 합동보고대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4대강 종합정비방안이 균형위에 상정되기 전인 2008년 12월 2일 4대강 종합정비사업 균형위 안을 보고 받은 대통령은 직접 운하 수준의 수심 확보를 언급한다. "수심이 5~6m가 되도록 굴착할 것"(대통령 말씀사항 정리문건)이라고 지시하였으며 이에 국토부는 "수심 5~6m 확보 방안은 현재로서는 보고서 포함이 불합리하므로, 4대강 마스터플랜 수립 시 검토하는 방안을 대통령실과 협의하겠다"고 내부보고 한다.

사실상 2008년 12월 발표된 4대강 종합정비방안에서 대운하용 수심을 확보하는 계획은 빠져있었지만 이미 대통령의 지시까지 있었으며 추후 운하용으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2009년 1월 국토부는 4대강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면서 대운하컨소시엄으로부터 경부운하 자료를 제공받았으며, 이는 용역을 수행하던 건설기술연구원 책임자에게 제공되었다. 또한 2009년 2월 9일 대통령실과 협의한 결과 "대운하컨소시엄의 대운하설계팀 관계자와 합동으로 추진방안을 마련하여 대통령께 보고"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4월에는 대운하설계팀과 대운하 계획의 활용 및 반영여부를 협의하는 등 추후 운하추진에 지장이 없도록 검토하기로도 했다.

결국 낙동강의 경우 경부운하(6.1m)와 유사한 수심('하구~구미' 6.0m)이 확보되는 등 4대강사업의 준설ㆍ보 설치 규모가 확대 됐다. 국토부 기획단 측의 안(案)보다 대운하컨소시엄 측의 안(案)에 훨씬 가까운 계획으로 변경된 것이다. 사업비도 14조 원 정도에서 22조 원 규모로 급상승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의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추가된 8조 원은 수익성은 낮아도 건실했던 수자원공사에 떠넘겨졌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추측해보면, MB가 원하는 운하준비사업을 하기에 14조 원은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4조 원은 정부가 예산을 통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의 한계였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4대강사업 때문에 모든 다른 사업은 중단시킨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더 무리해서 예산을 확보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운하추진론자들은 1단계로 하천정비 명목의 운하준비사업을 마치고 난 후 2단계 실질적인 운하 연결사업까지 계획했는데, 1단계 사업을 추진하기에도 예산은 부족했고 어차피 2단계 운하사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민간투자사업자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했다. 다른 한편에는 정부 재정 14조 원으로 추진하는 국가하천정비사업 과정을 거쳐 갑문과 터미널 등에 대해 민간투자 사업으로 참여하는 이른바 '2단계 운하사업'까지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를 희망하는 대운하 컨소시엄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감사원 내부 해명글에서 엿보인 수상한 국토부의 행동

국토부는 대통령과 대운하컨소시엄 사이에서 대운하에 대한 어떤 입장을 가졌을까? 국토부에서는 운하추진론과 운하반대론 두 가지 움직임이 동시에 있었다. 현직 대통령의 핵심 관심사이지만 2007년 대선 당시부터 건설교통부는 대운하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히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도였을지 모른다.

국토부는 대운하포기선언 이후에도 국가하천정비사업을 준비한다며 공문도 예산도, 그 어떤 기록도 없는 '비밀태스크포스(TF)'를 2008년 10월에 만들었다. 그것도 준설, 보 설치는 정부가 하천정비사업으로 추진하고, 운하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시설인 갑문, 터미널 등만 민간 자본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대운하컨소시엄이 계획하고 있던 동일한 시점에 말이다.

<MBC> PD수첩 방송에 의하면 그 TF에는 국토부 출신으로 대통령인수위 한반도대운하 TF와 청와대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담당했던 청와대 행정관이 참여해 더 깊은 수심을 확보하는 운하준비용 사업으로 추진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보면, 대통령실과 운하추진론자들에 의해 국토부 계획이 대운하컨소시엄 계획에 밀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국토부와 대운하컨소시엄 사이에는 아직 확인해야 할 진실이 많다. 특히 4대강 담합에 대한 국토부는 어떤 대응을 했을까? 감사원은 입찰담합 정황을 인지하고도 담합 방지 노력을 소흘히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프레시안>이 단독 입수한 감사원 건설환경감사국 제3과가 감사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자료는 충격적이었다.(☞ 관련기사 : [단독] 감사원 실무 부서는 왜 직원들에게 별도 설명해야 했나)

"국토부의 담합 유도 여부를 조사하던 중 1차 턴키 평가위원 선정을 위해 국토부에서 2009. 8. 26 대한토목학회 등 16개 기관에 보낸 공문에 1차 턴키공사 입찰참여업체 중 들러리가 아닌 실제 경쟁업체는 진한 글씨체로 표시되어 있는 등 공정위가 조사한 담합구도 및 실제 낙찰자를 낙찰자가 선정(2009. 9.30) 되기도 전에 이미 파악한 것으로 보이는 자료를 확인하였는데 이 자료는 담합을 주도한 특정 건설회사가 작성한 자료와 유사하였습니다."

감사원의 내부통신망에 4대강감사를 담당했던 담당과가 올린 자료와 감사원의 공개문에 의하면 턴키 평가위원 선정을 위해 보낸 '추천 평가위원 기피대상 여부 및 설계 심의 참여 실적' 관련 공문에 담합으로 인한 낙찰 예정 기업이 진한 글씨체로 표시돼 있었다는 것이다. 감사원 발표문을 통해 확인한 이 문서는 공문에 첨부된 '4대강 건설공사 등록사 현황'인데 "OO공구 입찰에 A, B, C 컨소시엄이 등록했다"는 식의 내용이 담긴 문서다.

턴키 입찰에 참여한 회사들을 열거하면서 담합에 의한 실제 낙찰예정기업이나 경쟁업체는 진한 글씨로, 이른바 '들러리사'는 연한 글씨로 구분하여 표기하였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 공문을 국토부가 이미 담합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묵인한 근거로 보았으며 감사 공개문을 통해 국토부가 담합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근거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안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심사위원 선정을 위한 공문에 특정업체에 대한 별도의 표시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상 낙찰 받을 회사를 지정해 준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자체가 이미 경쟁 입찰이 의미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국토부가 담합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건설환경감사국은 이 설명 자료에 "국토부에서 이미 담합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이를 묵인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사실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적고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 자료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대운하 전단계' 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발견됐다.

특히 이 자료가 담합을 주도한 특정 건설회사가 작성한 자료와 유사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국토부가 담합 업체들과 함께 담합을 공모했거나, 국토부가 누군가로부터 '담합의 결과대로 입찰이 진행되도록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납득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국토부까지 개입한 담합의 진짜 몸통의 실체는 국정조사 등을 통해서 밝혀내야 할 핵심사안이다.

솜방망이 담합 과징금,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4대강 담합으로 얻은 이익은 어디로 갔을까? 담합의 공모자들 입장에서 4대강 담합은 대부분 성공한 담합이었다. 대운하컨소시엄의 운영위원사였던 BIG5 체제에는 뒤늦게 SK컨소시엄까지 참여해, 결국 6개 운영위원사 체제가 되었다. 이들의 담합, 그리고 그에 따른 이익을 보장해주는 장치는 정부에서 제시한 턴키 입찰 방식이었다. 턴키 입찰 방식의 문제점은 당시에도 야당과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지적했던 부분이다. 6개 사는 서로 중복되지 않게 1차 턴키사업 2개씩을 배분했고, 나머지 2개는 포스코건설과 현대산업개발에 배분했다. 다음 표를 보자.
 

ⓒ공정거래위원회


표에서 보듯이 1차 턴키담합에서 배분된 공구를 수주하지 못한 담합 실패사례는 오직 하나, 낙동강 32공구(낙단보) 뿐이었다. 담합에서의 배분지분율이 낮아 공구를 배정받지 못한 동부, 두산, 롯데가, 각각 불만을 가진 SK, 삼성, 현대를 상대로 경쟁에 뛰어들었고, 이 중에서 삼성이 담합을 통해 배정받은 낙동강 32공구를 두산에게 빼앗긴 모양새로 읽힌다.

4대강 1차 턴키발주는 담합을 통해 93.4%의 경이적인 낙찰률로 마감된다. 정부 발주 공사의 최저가낙찰제 평균낙찰률이 70% 수준인데 비해 20% 이상 높은 수치다. 역시 담합 의혹이 있는 2차 턴키 평균낙찰률인 73.5% 보다도 무려 20% 가량 높다. 같은 턴키 발주에서도 공사 발주 금액이 클수록 낙찰률이 낮아지는 통상의 낙찰 결과를 보더라도, 1차 턴키사업 담합으로 인해 막대한 부당이익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20% 가량에 해당하는 혈세가 낭비되었다고 가정해 이를 매출액으로 환산하면 1차 턴키 담합의 결과만으로도 그 추정 금액은 6000억 원이 넘어선다.

다음 표는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기 위한 산정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매출 대비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의 과징금 부과 기준인 7~10%에 비춰봤을 때, 최저 부과 기준율인 7%가 부과 기준이 됐다. 산정기준 자체가 가장 낮은 부과율로 적용됐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1차 조정에서 대우가 3년 3회 위반으로 10%가 가중됐는데, 이후 두 차례의 대폭 감경을 통해 과징금이 결정된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의 감경 사유를 보면 의아한 부분이 있다. "2008. 1월 민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구성되었던 것이 2008. 12월 재정사업으로 변경된 이후까지 계속 운영되면서 공구 배분으로 이어진 점, 민자에서 재정 사업으로 정부 시책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컨소시엄 지분율이 그대로 공동행위로 진행된 점 등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부당한 공동행위를 위하여 구성된 컨소시엄과는 동일하게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감안하여 모든 피심인에 대하여 20%씩을 감경하기로 한다"는 부분이다.

그냥 민자에서 재정사업으로 정부시책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담합이기 때문에 20%를 경감한다는 것이다. 희한하다. 공정위는 2007년 12월 28일 MB인수위와 '빅5 건설사'와의 만남에서 시작된 대운하컨소시엄이 추진했던 사업과, '대운하 포기' 이후 추진됐던 4대강 사업을 사실상 '동일 사업'으로 상정하고 결론을 내린 듯 하다. 그러나 대운하와 4대강사업이 전혀 다른 차원의 사업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의하면 이러 논리는 감경의 사유가 될수 없다. 감사원이 의심했던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최종 과징금은 다음 표에서 보듯, 지분율, 공동수급사와의 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컨소시엄 등을 통한 공동수급과 경기위축이라는 명목으로 30%가 감경된다.
 

ⓒ공정거래위원회


결국 7%라는 최저부과기준율을 적용한 2193억 원의 과징금은 1115억 원으로 감경 조정됐다. 최저부과기준도 안되는, 그 절반 수준으로까지 경감이 된 것이다. 이 수준은 적절한 것일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턴키 제도, 그리고 이어진 담합으로 인해 20%의 혈세가 낭비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추정된 6000억 원 이상의 혈세 낭비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시장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담합에서도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에 해당하는 8개 사의 담합에 대해 해당부처 주무장관은 1115억 원의 과징금도 너무 과도하다고 직접 공정위에 공문을 보내 선처를 호소했다고 하니, 일국의 장관으로서 혈세 낭비보다 건설사의 과징금 부담이 더 우려스러웠던 모양이다.

담합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결정됐다. 결국 담합에 의한 부당 이득을 과징금을 통해 환수하는 것은 불가능해진 것처럼 보인다.
 

▲ 4대강사업에 따른 현상으로 추정되는 녹조 현상이 낙동강 취수원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악취나는 비자금 의혹 실체를 밝혀야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담합으로 인한 이익은 어디로 간 것일까? 4대강 현장에서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던 현장 노동자들에게 더 큰 수입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22조 2000억 원이 마중물이 돼 앞으로 먹거리 산업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 이같은 담합의 이익이 결국 누군가의 비자금으로 흘러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의혹만 커갈 뿐이다.

건설노조 등에 주장에 따르면 비자금 조성 방식은 전형적인 수법으로 보인다. (☞ 관련기사 : "4대강에서 7000억 원이 또 증발했다") 하도급업체를 동원해 허위 세금 계산서를 발송하는 방식 등이다.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가 예산으로 지급되는 공사비를 하도급사에 통장으로 보내고 그 액수가 적힌 세금계산서를 받게 되는데, 그 중 일정 부분을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수법이라는 말이다. 이는 하도급사가 재도급을 하는 경우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10개사에 100억 원씩 하도급을 줬고 20%를 돌려받는 협정이 있었다고 하자. 그러면 공사비 10억이 갈 때마다 20%인 2억 씩을 현금 등으로 돌려받는다. 100억 원짜리 하도급이면 실제 지급되는 공사비는 80억 원이고 나머지 20억 원이 현금화 돼 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 검찰에서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진 A하청업체의 사례를 보자. 18억 원 정도 규모의 준설토 운반 하도급공사를 하면서 28억 원 정도 규모의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0억에 가까운 세금계산서 추가 발행분은 3%의 법인세를 제외하고 현금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다시 전달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식은 이미 국회를 통해 의혹이 제기된 바와 같이, 특정인과 연관된 기업에 공사를 몰아주거나 설계변경을 통해 계약보다 월등히 많은 공사비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이다. 특정 인맥 출신 회사에 대한 몰아주기 의혹과 특정 인맥 회사에 대한 과다 공사비 지급은 결국 그 인맥에 대한 비자금과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 비자금이 얼마나 조성되어 어디로 갔냐는 것이다. 사실 이런저런 제보와 소문은 무성하지만 필자 역시 정확한 사실 여부를 알지 못한다. 의혹이 있더라도 단언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턴키제도의 문제점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턴키 담합의 경우 상당한 영업비가 소요된다고 주장한다. 실제 4대강 총인처리시설 담합과 관련해 최근 공개된 모 업체의 내부자료를 보면 심사위원, 관계기관, 지역 공무원 뿐 아니라 공정위, 중앙부처에까지 로비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을 보더라도 대운하 컨소시엄에서는 여러 제안서를 준비하며 이미 수백 억을 썼다. 앞서 글에서 공개한 한진의 '4대강 유역 개발 민간 투자 사업 출자 지분 변경의 건' 문서를 보면, 담합 과정에서 각사가 차지하게 될 지분율에 따라 업체들이 최소 6억 원 이상의 분담금을 낸 것으로 보인다. 턴키심사는 설계점수와 가격점수를 기준으로 평가가 이뤄진다고 하지만, 이미 확인됐듯 담합에 의한 짬짜미 입찰에서 이러한 기준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오히려 이런 담합이 성공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주거나 담합을 묵인해줄 수 있는 로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업계의 상식이다.

그렇다면 비자금과 관련한 조사나 수사는 어떻게 가능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 비자금 조성을 인지했을 때 최대한 빨리 해당 기업이나 의심 가는 곳을 압수수색 해 장부 등 자료를 확보하고 서로 입을 맞출 시간을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처음 4대강 사업 관련 비자금 수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지 반 년이 넘은 상황에서 압수수색이 이뤄졌기 때문에, 비자금 관련 핵심자료 확보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미 오랜 시간 자료를 숨기고 입을 맞춰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금에 대한 조사나 수사의 기본은 쉽게 말해 '입구와 출구 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비자금이 조성되었는지 여부인 '입구' 확인은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서로 이중장부를 만들고 그에 맞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등 장부상으로 다 맞춰놓더라도 현장 노동자, 하청업체, 현장관계자, 감리 등 많은 관계자가 있기 때문이다. 부풀려진 공사비의 경우, 투입인원, 차량, 장비, 유류대 등 비용을 확인하고 대조해 대략적 비자금 조성 규모를 확인하고 수사를 하는 것 역시 한 방법일 것이다. 통상적으로 원도급, 하도급, 재도급의 공생관계가 강력하긴 하지만 어떤 이해관계를 계기로 틀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확히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비자금이 전달되었고 어떤 로비가 있었는지는 내부핵심관계자의 제보나 비밀장부가 드러나지 않는 한 밝혀내기 어렵다. 4대강 사업과 같은 경우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미 계좌추적으로는 추적하기 어렵도록 현금화하여 조성된 사례도 많을 것이며 입구인 비자금 조성과 달리 출구인 비자금 전달의 흐름은 극소수만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작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터져 나온 4대강 비자금 의혹에 대해 검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응수했지만 그 행보는 발 빠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권이 바뀌고 4대강사업에 대한 검증국면이 조성되자 검찰은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만약 검찰조사에서 의혹을 규명하는데 실패해 납득할만한 성과가 없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다. 4대강 비리 의혹과 비자금 의혹 등과 관련해 제보나 양심선언을 기대할 수 있는 국회의 국정조사다.

토건사업에 종사하거나 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은 "4대강사업 뿐 아니라 토건사업에서 이런 형식의 비리는 비일비재 하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며 오히려 반문해 본다. 그게 현실이라면 22조 2000억 원이 투입된 단군 이래 최대 토건사업이면서, 대통령부터 정부의 주무부처, 총리실까지 동원돼 추진 목적을 속인 대운하 준비사업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겠는가?

 
 
 

 

/신우석 전 김진애 의원실 보좌관, 4대강 사업 전문가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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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국조 비공개' 촛불 들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8월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보고 대회'를 기회로 한층 뜨거워졌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은 물론이고 민주당 지역조직도 대거 참석했습니다.

민주당은 오후 6시부터 보고대회를 했고, 이 보고대회가 끝나자마자 오후 7시에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당원들은 자연스럽게 시민들과 촛불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청계광장에는 휴가철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나와 촛불을 들고 '국정원 개혁'을 외쳤고 국정조사 기간을 연장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결국, 민주당 장외투쟁의 목적이었던 국정조사 기간 연장과 국정원 개혁, 공정한 국정조사 촉구가 시민들과 함께 한 목소리를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무시당한 민주당의 영수회담 제의'

이날은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국정원 사건 촛불집회가 잘 어울려지는 것 같았지만,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답답한 구석이 한둘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김한길 대표는 8월 3일 국민보고 대회에서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의하고 나섰습니다.

 

 

 


김한길 민주당 당대표는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및 국정원개혁촉구 국민보고대회' 인사말에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제1야당 민주당의 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합니다. 사전 조율도 의전도 필요 없습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대통령을 만나겠습니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이 엄중한 정국을 풀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발언했습니다.

김한길 대표의 영수회담 제의가 나쁜 제안 (무조건 강경 투쟁은 아니라는 이미지, 그러나 과연 그 결과는 미지수)은 아니지만, 장외투쟁을 하러 나가자마자 첫 번째 열린 집회에서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은 그리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8월 3일 김한길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의했지만, 청와대 반응은 무반응이었고, 오히려 언론은 촛불집회보다 영수회담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를 해버렸습니다.

 

 

 

이런 영수회담 제의는 최소한 민주당과 촛불집회가 처음으로 함께 이루어진 8월 3일이 지나고도 청와대의 반응이 없는 8월 7일쯤 제안했어야 합니다. 8월 7,8일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이 없다면 민주당은 오히려 그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이 없는 것은 그녀가 불법 사건에 대한 개혁의지가 없다는 사실과 연루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민주당은 이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8월 10일 대규모 강경투쟁을 했어야 합니다.

 

 

 



여야는 4일 오후 국정원 기관보고를 5일 실시하는 것으로 '3+3 회동'(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국조특위 간사)에서 결정했습니다. 국정원 국정조사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지만, 증인채택 시한을 고작 24시간 연장하는 것만 합의했지, 증인 채택 불합의와 국정원 기관보고 비공개는 동일합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까지 하면서 결국 얻은 것이 증인채택 시한 연장이고 영수회담 제의라면, 국민은 민주당이 과연 야성이 있는 야당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야성이라는 말은 정해진 정당 정치 구조를 벗어나 원칙과 상식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의미입니다. 거창하게 장외투쟁에 나섰지만, 여전히 정당 정치 구조의 틈바구니에 있는 모습은 결코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말의 프레임에 자꾸 밀리는 민주당'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자꾸 '대선 불복'이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대선에 패배한 자들의 억지 주장과 난장판으로 격하시키는 아주 교묘한 전략입니다.

이런 새누리당의 전략에 김한길 대표가 자꾸 말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대선 불복'이라는 말 자체를 아예 거론하지 말아야 하는데, 김 대표는 물론이고 민주당 의원들도 '대선 불복'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김한길 대표가 '대선 불복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대선 불복'이라는 단어가 시청자와 국민의 뇌리에 박힙니다. 이것을 바꾸어 만약 '부정선거이다'라는 말을 하면 18대 대선이 부정선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쉬운 예로 NLL 논란에서 '포기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면 이미 '포기'라는 말이 자꾸 반복되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NLL 지켰습니다'라고 말하면 '아 정말 NLL을 지켰지'라는 느낌이 듭니다.

'대선 개입 사건'이라는 말보다 '불법 대선개입'을 강조하면 국정원의 정치 공작이 '불법'이라는 인식이 생겨지게 됩니다.

언론이 새누리당의 입으로 전락한 시점에서는 이처럼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예 말을 하지 않으면 몰라도 이왕할 바에는 어떤 단어가 효과적인 전략인지 반드시 생각하고 말해야 하며,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런 단어 선택을 지침처럼 내려줘야 합니다.

'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요새 새누리당은 지독히도 박원순 시장을 비난하고, 그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는 직접적인 민주당 공격과 함께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민주당의 지원군인 박원순 시장을 잘라 버림으로 민주당을 고립시키겠다는 전략도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이런 전략은 8월 2일 잘 드러났습니다. 8월 2일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한창이던 서울시청 광장에 갑자기 새누리당 의원들이 등장합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서울시에 발생한 잇단 사고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시청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냥 항의 서한만 전하고 오면 될 것인데, 이들은 굳이 현장에 나간 박원순 시장을 부르는 등의 괜한 트집을 부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청 청원경찰의 멱살을 잡고 밀치는 등의 폭행이 있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신들은 폭행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강조하는 뻔뻔함을 보였습니다.
 

 

▲청원 경찰의 피해 정도 등에 대한 민주당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의 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마치 다리에서 밀어 놓고 나는 죽이지 않았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분명 멱살을 잡고 출입구쪽으로 밀어서 손이 다쳤는데 자신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말하면 도대체 청원경찰은 스스로 출입구에 손을 넣은 것입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대해 민주당은 그저 부대변인의 논평 하나로 그쳤습니다. 더 강력하게 요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런 새누리당의 행위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민주당 의원들이 이런 폭행을 했다면 아마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한 몇일동안은 하이에나처럼 민주당을 잡아 먹었을 것입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누굽니까?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박원순 시장을 사사건건 괴롭히는 인물입니다. 서울시장 간담회가 끝나고 여학생들의 사진촬영 요청에 박원순 시장이 응하자, 그를 마치 성희롱범처럼 묘사했습니다.

그런 그의 기준에 보면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과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아예 극악무도한 중범죄자입니다.(물론 이미 그렇지만). 성누리당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의 성범죄에는 관대합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성희롱 문제는 마치 패륜아처럼 공격합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 저격수를 만들어 새누리당의 이런 후안무치한 행동과 말에 대해 증거 자료를 들이대면서 공격해야 합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인데 민주당은 아예 기본적인 방어도 공격적인 방어도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 민주당 의원은 당장 KBS,MBC 보도국으로 뛰어가라'

민주당은 국민보고 대회 마지막에 앵커출신의 신경민 의원과 박영선 의원을 등장시켜 뉴스 앵커의 마지막 멘트를 패러디한 발언을 했습니다. 재밌었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패러디는 시민단체에서 해야 할 퍼포먼스이지, 민주당 차원의 수준은 아닙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철저히 언론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대선 기간에 박근혜 후보에게 밀리는 것처럼 왜곡된 언론의 유세 현장 화면과 사진으로 많은 손해를 봤습니다.

이런 언론의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고, 오로지 종편에 출연하지 않아 실패했다는 식의 언론 분석은 지금까지도 민주당이 언론에 대한 최소한의 대책조차 없는 무능함을 보여주는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KBS 기자의 촬영을 시민들이 거부했기 때문에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제 큰 화면은 주위 빌딩에서 충분히 촬영 가능했다.

 


똑같은 촛불집회 화면입니다. KBS 9시 뉴스를 보면 그다지 많은 시민이 참석한 집회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촬영한 사진을 보면 얼마나 많은 시민이 '국정원 개혁'과 '부정 선거 진상규명'을 외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언론과 방송에 나온 화면과 사진은 왜곡되기 일쑤이고, 그런 사실을 아는 국민은 별로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민주당이 가진 조직력과 인맥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KBS와 MBC에 가서 1인 시위를 하고, 보도국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면 아마 100% 왜곡이 70% 왜곡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8월 2일 대학생과 시민 250여명은 여의도 KBS방송국 앞에서 '국정원 규탄 촛불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이들이 서울광장이 아닌 KBS에 모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학생과 시민은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보도하지 않는 공영방송에 항의하기 위해 모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이번 촛불집회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언론이 개혁되지 않으면 이 싸움이 힘들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민주당은 지금보다 더 많은 촛불집회 보도가 나올 수 있도록 언론 출신 의원들이 방송국 앞에서 진을 치고 나서야 합니다. 왜 그들이 할 일을 시민들이 해야 합니까?

 

 

 


새누리당은 계속해서'대선 불복'이라는 프레임과 '촛불집회 = 박근혜 정권 흔들기'로 본질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정,불법을 단죄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시민의 입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의 하야를 외치며 노무현 때문에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던 이들이 지금은 '박근혜 하야'라는 말만 나와도 벌벌 떨면서 국가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흔드는 나쁜 짓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민주주의는 그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박근혜 하야','부정선거'를 외치면 '나쁜 놈'이 됩니까? 내가 생각하는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당에 전략가가 있다면 제발 이런 문제들을 앞에서 이끌어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민주당이 야당답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정당한 비판조차 전략적으로 할 수 없다면 민주당이 무엇으로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겠습니까?

일개 정치블로거의 어설픈 전략보다 백배 정도는 나은 쌈빡한 전략. 이제 민주당에서 나올 때가 됐다고 봅니다. 힘없다고 투덜대지 말고, 정국을 바꿀 전략으로 경쟁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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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 법무장관 “북 인권침해 없다”

미, 전 법무장관 “북 인권침해 없다”
 
“미국은 조선과 평화협정 체결해야” 강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8/05 [08:1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서방에서 떠드는 조선의 인권 침해는 없다고 확신한 클라크 전 미국 법무장관 © 이정섭 기자
미국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램지 클라크가 일본에서 진행 된 국제토론회에서 “서방나라가 떠드는 인권침해가 조선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정전협정체결 60년이 된 것과 관련하여 1일 도쿄에서 국제토론회가 진행되었으며 보고자로 나 온 램지 클라크 미국 전 사법장관은 보고에서 조선인민의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에 즈음하여 조선을 방문하여 인민들의 투쟁모습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서방나라가 떠드는 《인권침해》가 조선에는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였다고 말하였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클라크 전 법무장관이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조선반도에서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등 지역정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이 제재조치로 조선을 압박하고 있는데 미국은 조선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걷어치우고 평화협정체결에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 미국의 전 법무장관 램지 클라크가 조선의 인권침해는 없다며 미국은 대조선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평화협정을 체결 할 것을 주장한 도쿄의 국제회의 © 이정섭 기자

조선중앙통신은 정전협정체결 60돐 국제토론회에서 미쎌 쵸스도브스키 카나다 오타와종합대학 명예교수는 보고에서 “미국이 조선반도에 전쟁의 위험을 몰아오고 있으며 조선을 겨냥한 핵무기를 남조선에 반세기이상 배비하고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다”며 “미국의 군사적침략의 피해자인 조선은 자위적인 방위력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어진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은 “미국정부가 오늘까지 조선반도의 유사시를 가상한 군사연습을 연이어 벌리며 조선에 대한 도발행위를 계속 감행하고 있는데 대해 언급하고 이것은 조선반도의 평화를 엄중히 침해하는 행위”라고 단죄하였다면서 “전쟁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정부의 정책이며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은 이를 절대로 용서치 말아야 한다”고 언명했다고 게재했다.

또한 “그들은 미국이 조선에 대한 제재조치를 해제하고 존중과 평등에 기초한 대외정책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며 토론회에 앞서 진행 된 기자회견에서 발언자들은 “조선반도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고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반드시 실현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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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원폭투하 없이도 일본은 항복했다

<번역> 히로시마 신화 : 숨겨진 전쟁범죄와 거짓의 미군역사

필자: 게리 G. 콜스/번역: 정성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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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3 13: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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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게리 G. 콜스 박사
번역 :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출처 : <글로벌리서치> 2013년 7월 31일자


오는 2013년 8월 6일 화요일은 히로시마 원폭 68주년이다. 그런데 전쟁에 지친 미국인들이 10일이 지나 1945년 8월 15일 대일전승 기념일을 축하한 이후 모든 진실이 검열되고 신화화되어 왔다.

나의 지루하고 감동없는 역사 선생이 가르쳐준 한심한 수업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군대가 한 모든 것은 존경스럽고 자기희생적이었으며 그들의 적이 한 모든 것은 야만적으로 묘사한 애국적이고 검열된 교과서를 사용했다. 나의 졸업동기생 26명 모두는 전후 선전내용을 담은 역사교과서를 외웠다. 대일 전쟁의 영광스런 승리를 배웠던 것이다.

물론,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을 시작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조작된 거짓정보가 주입되고 과도한 애국주의 역사로 짜맞추어졌음을 지금은 알고 있다. 맥아더가 원폭투하지점에서 일어난 진실을 왜곡하는 총검열권을 갖고 있었다. 일본총독으로서 권한을 인계받은 이후 첫 번째 작업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를 담은 모든 사진 증거를 압수하고 인멸하는 것이었다.

맥아더, 원폭피해 증거 인멸

1995년 스미소니언 연구소는 원폭을 다루는 정직하고 정확한 전시회를 추진하면서 50년 가짜 애국신화를 수집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우익 재향군인들과 기타 애국 그룹(연구소에 대한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뉴트 깅그리치의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 의회를 포함하여)으로부터 격렬한, 짜맞춘, 반동적 항의로 이야기의 중요 맥락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반갑지 않게 검열당했다.

그래서 지도층에 대한 평균적인 미국사람들의 신뢰를 흔드는 ‘비애국적’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실제 역사를 대폭 변경하는 정치그룹의 또 다른 사례를 우리는 다시 갖게 되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수천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무고한 아프간인들을 대상으로 전쟁의 개를 풀어놓도록 만든(www.ae911truth.org 참조), 2001년 9월 11일 3개 세계무역센터의 파괴장면을 검열하는 것이다.


   
▲ 폐허로 변한 나가사키. 맥아더 장군이 일본총독으로서 권한을 인계받은 이후 첫 번째 작업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를 담은 모든 사진 증거를 압수하고 인멸하는 것이었다. [사진제공 - 소통과혁신연구소]
물론 스미소니언의 역사학자들이 자승자박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기업 지배 주요 언론과 이를 접하는 대중들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배우지 못했다. 그 것은 다름 아니라 전쟁이 1945년 여름의 원폭투하 없이도 이미 봄에 끝날 수 있었고 그리하여 미 해병과 육군 수천명의 오키나와 대살육전이 없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후 선전캠페인의 기초가 되고 무방비의 시민들에 대한 원폭 사용을 정당화했으며 국제전범이요 인류에 대한 범죄로 규정한, 미국의 동남아 식민지 땅에 대한 일본의 침공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트루먼 행정부를 깊이 연구해보면, 히로시마를 불태우는 운명적인 결정을 내리기 수개월 전에 미국 정보기관은 일본이 명예롭게 항복하는 길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1980년대 발표된 정보 테이타는 미국의 대규모 침공 비상계획이 불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1945년 4월쯤 모스크바 대사를 통해 평화협상을 추진하고 있었다. 미국이 수년전에 비밀코드를 차단하고 일본의 군사적 외교적 메시지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트루먼은 이런 사태 진전을 잘 알고 있었다. 1945년 7월 13일 외무장관 토고는 “무조건적인 항복(주권을 포기하고 특히 천황을 폐위하는)이 평화의 유일한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트루먼과 그의 고문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일본의 신으로 여겨졌던 히로히토 천황을 전후 일본의 상징적 중심으로 양보하는 외교적 방식을 통해 전쟁이 끝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합리적 조정안이, 루즈벨트와 처칠의 1943년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처음 제기되고 트루먼 처칠 스탈린의 1945년 포츠담 회담에서 재확인된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본은 협상을 통한 명예로운 전쟁종식을 계속 찾았다.

전쟁기간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스팀슨조차 이렇게 말했다. “진실된 물음은, 원폭 사용 없이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아니라, 더 빨리 항복시킬 수 있는 다른 외교적 군사적 방안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이다. 일본 내각의 다수도 1945년 봄에 이미 마지막 합의와 같은 조건을 실질적으로 수용하려고 준비했다.” 다시말해 스팀슨 장관도 미국이 전쟁을 불필요하게 끌고간다고 느꼈던 것이다.

미국, 왜 일본 항복 받지 않고 핵폭탄 사용했나

일본이 항복한 이후 맥아더는 정신적 우두머리로서 천황을 그 자리에 남겨두었다. 굴욕적인 ‘무조건 항복’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 지도층을 설득하기 위한 적당한 방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막 뒤에 무엇이 벌어졌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2개의 본질적 질문에 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1) 왜 미국은 천황을 유임시키는 일본의 항복 조건을 거부했는가? 2) 왜 원폭이 태평양전쟁 승리가 이미 확정적이었을 때 사용되었는가?

2차 세계대전 직후 군사전문가인 핸슨 볼드윈은 이렇게 썼다. “일본은 군사적 측면에서 1945년 7월 26일(일본의 무조건적 항복을 주장한)포츠담 선언에 의해 절망적인 전략상황에 놓여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의 군사수석보좌관, 윌리엄 리히 제독은 전쟁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의 야만적인 무기 사용은 우리의 대일 전쟁에서 물질적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게 나의 견해다. 효과적인 해상봉쇄와 기존무기를 통한 성공적인 폭격으로 일본은 벌써 패배했고 항복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무기를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암흑시대의 야만인들에게 일반적인 윤리기준을 적용했었다는 게 나의 느낌이다.”

그리고 아이젠하워 장군은 원폭 투하 수주 전에 트루먼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방문하고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아이젠하워는 1963년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협상조차 해보려고 하지 않고 원폭을 사용하는... 민간인들을 죽이고 공포에 떨게하는 그런 끔찍한 일은 이중 범죄이다”라고 말했다.

트루먼의 원폭 사용 결정에 기여한 몇 가지 요인이 있다.

1) 미국은 3개의 원자폭탄을 생산하는데 시간과 정신과 돈(1940년 기준으로 20억 달러)을 엄청나게 투자해왔으며 그 가속도를 중단할 용기와 성향이 없었다.

2) 미국 군부, 정계 지도층은 - 많은 일반 미국인들도 그랬지만 - 진주만 공습으로 엄청난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미군이나 전쟁에 지친 대중들 속에 자비는 없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임무는 의문의 여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국가안보를 위해 살균하는 버전의 이벤트로 받아들여졌다.

3) 히로시마 폭탄의 핵분열 물질은 우라늄이었고 나가사키의 폭탄은 플루토늄이었다. 과학적 호기심이 핵폭탄의 완성으로 떠미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맨하탄 프로젝트 과학자들(과 그 프로젝트 미군 담당, 레슬리 그로브 장군)은 1개의 유라늄탄과 1개의 플루토늄탄을 사용했을 때 도시전체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다.

2가지 원폭 사용은 1945년 8월 이전에 결정되었다. 일본의 항복을 받아들이는 것은 과학실험을 진전시키는 게 아니었다. 물론 히로시마 원폭이 일본의 즉각적인 항복을 강요하도록 설계되었지만, 2가지 원폭 투하의 3일 간격은 비정하게 짧았다. 일본의 통신 교통 능력이 난장판이어서 누구도, 미군조차도, 일본 지휘부도 극소수 이외에는 히로시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맨하튼 프로젝트는 태평양 전체 전쟁터의 총사령관, 맥아더조차 히로시마 원폭투하 5일전까지 몰랐을 정도로 매우 극비사항이었다)

4) 러시아는 유럽 전승일, 5월 8일 이후 90일만에 대일전쟁에 들어갈 것임을 선언했으며, 히로시마 원폭투하 2일후에 실제 참전했다. 러시아는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나가사키가 불에 탈 때 만주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이 러시아에게 항복하거나 전리품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러시아는 곧 유일한 또 다른 초강대국-미래의 적국-이 되어 냉전의 첫 번째 핵위협 ‘메시지’를 보냈다. 러시아는 기대했던 것 보다 실제 훨씬 적은 전리품을 받았다. 그러나 두 초강대국은 감당하지 못할 핵무기 경쟁과 그래서 인류 멸종 가능성을 초래하는 냉전 교착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 결과는 상호 두 나라의 도덕적 재정적 파산이었으며 그 군사광기는 그 후 몇 세대에 걸쳐 이어졌다.

약 8만명의 민간인들과 2만명의 비무장 청년 징집병들이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즉사했으며, 수십만명 이상이 화상, 방사선병, 백혈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남은 여생을 불치의 감염으로 고통받았다. 생존자의 자손 세대도 질병, 암, 조기 사망을 유발하는 무서운 방사선에 시달렸으며 아직도 계속 고통받고 있다. 은폐되어온 또 다른 부끄러운 현실은, 미군사령부가 알려준 존재들인데, 12명의 미 해군 조종사들이 운명의 날 히로시마 감옥에서 소각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태평양전쟁 종식에 대한 전쟁부서의 공식적 승인 버전은 긴 목록의 신화들 속의 새로운 신화 배치였다. 그 수많은 신화들은 기업 군대 정치 언론의 지도층에 의해 끊임없이 공급되고 전쟁의 비참함이 과정상의 영광으로 탈바꿈했다.

북한, 이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레바논, 그라나다, 파나마, 필리핀, 칠레, 엘살바도르, 니콰라과, 과테말라, 온두라스, 아이티, 콜롬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아프간 등 미군의 침공과 점령에서 실제 일어났는데 숨겨진 다른 검열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목록이, 미군기지가 있는 150개국(뇌물 제공이나 제재 위협으로 허가를 얻는다)에서 자행되는 펜타곤과 CIA의 무수한 비밀작전과 암살 음모를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들 대부분은 아직도 옳든 나쁘든 내 조국에 대한 불안한 애국심에 사로잡혀 있다. 전쟁으로 폭리를 취하는 기업 엘리트들(그들의 정치인들, 군부 지도자들, 그들을 헤드라인으로 다루는 언론을 포함하여)이 평화, 정의, 평등, 자유를 위해 일하고 약탈자본주의로부터 세계 안전을 도모한다는 교활하게 조작된 신화를 필사적으로 믿으려 한다.

미군이 죽고 다치는 필요한 희생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폭군을 가끔 만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군 철수를 확신하는 “경건 공산주의자들”, 반미 “폭도들”, “자유전사들”의 그 것과 미국의 전쟁 합리화는 똑같지 않다.

부수적 피해 또는 오발사고라고 왜곡하여 표현하지만, 불가피하게 인간 대량 학살을 가져오는 전면전의 정치적 평가와 역사적 은폐에 있어 1945년 8월 6일과 9일은 깜짝 놀랄만한 2개의 뇌 세척 사례이다.

미국의 전쟁범죄에 침묵하지 말라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인도주의-평화만들기 미국으로 개조되고 소생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미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납치하는 기업을 효과적으로 자제시키기에도 너무 늦었다. 우리의 세계를 멸망의 길로 이끄는 오만하고 탐욕적인 지배엘리트를 성공적으로 쓰러뜨리기에도 너무 늦었을지 모른다. 내가 '친절한 미국파시즘'이라 부르는 쿠데타 아닌 쿠데타가 벌써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전쟁상인들이 펜타곤과 무기업체, 의회 앞잡이의 도움으로 세계 도처에서 일으키는 전쟁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양심있는 사람들이 역사의 모든 진실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의 무수한 전쟁범죄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거리로 나아가 대중적 항의를 전개하고 미국을 범죄불량국가로 전락시키는 사람들과의 협력을 용기있게 거절해야 한다. 그 범죄불량국가는 결국 독일 나찌와 일본 파시스트가 그랬듯이 우리 국경 밖 수십억명의 고통스런 희생자들에 의해 붕괴될 것이다.

우리의 특권, 과소비, 지속가능하지 않는 미국인의 삶 보다는, 전 인류를 위한, 변화를 위한 올바른 실천이 정말 영광, 진짜 애국, 진정 평화로 가는 중요한 출발이다.

(수정,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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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 ‘클로징 멘트’ 인용해 박 대통령 침묵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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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 등록일
    2013/08/04 10:33
  • 수정일
    2013/08/04 10:33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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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민 ‘클로징 멘트’ 인용해 박 대통령 침묵 비판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3일 민주당 장외집회에 나온 신경민 최고위원(60)은 앵커 시절 전매특허인 ‘클로징 멘트’를 인용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정부의 침묵을 비판했다.

신 최고위원은 이날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 및 국정원 개혁촉구 국민보고대회’에서 “대통령은 침묵할 권리가 없다. 침묵할 의무도 없다. 더이상 침묵해서도 안된다. 자기 목소리진실과 진심을 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보고대회 대미를 장식한 ‘민주 뉴스데스크’는 MBC 기자 출신인 신 최고위원과 박영선 의원 사회로 진행됐다.
 
 
 
 

 


그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은 억지를 억지, 꼼수를 꼼수, 불법을 불법 국기문란을 국기문란으로 막아왔다”며 “국기문란 시리즈에 국정원, 검찰, 경찰 모두 망가졌다. 언론은 이를 뒤틀고 아예 눈감았다”고 말했다.

박영선 의원은 “청계광장에는 주최측 추산 2만명, 경찰 추산 1만명, 조중동 추산 500명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 국민보고대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일부 보수언론이 당의 장외투쟁을 축소·왜곡보도하고 있는 데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다.

박 의원은 신 최고위원이 클로징 멘트를 낭독하기에 앞서 “이자리에 모인 국민 여러분은 ‘대통령 사과하라’ ‘국정원 개혁하자’ 이 두가지 목적을 위해 모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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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륀지' 광풍의 희생양들…"국가가 사기 쳤다"

정부 믿고 일하다 뒤통수 맞은 영어 회화 전문 강사 6100명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02 오후 5:48:45

 

 

"내가 미국에서 '오렌지'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더라. '어륀지'라고 하니까 알아듣더라."

2008년 1월 30일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말이 전국을 강타했을 때, 유미경(가명·46) 씨는 자신이 5년 뒤 해고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 씨는 중학교에서 '영어 회화 전문 강사'로 4년째 일하고 있다.

유 씨가 중학교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야심작인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 방안'을 내놨다. 2013년까지 1조7000억 원을 들여 원어민 수준의 고급 인력 2만3000명을 '영어 전용 교사'로 채용해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10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 영어 프로그램장에 들른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고급 인력 6100명, 정권의 희생양 됐다"

이명박 정부가 한창 장밋빛 영어 교육 비전을 홍보했던 2009년 5월, 전국의 시·도 교육청은 영어 회화 전문 강사 채용 공고를 냈다. 1년마다 계약하는 비정규직이었지만, 정년은 교육공무원법 제47조를 준용해 62세라고 했다.

선발 과정도 까다로웠다. 시·도 교육청은 응시 자격으로 교원 자격증, 테솔(TESOL) 등 석사 학위, 국내 대학의 영어학과 학사 학위, 영어 모국어 국가 대학의 학사 학위 등을 내걸었다.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전국의 고급 인력들이 모여들었다. 유미경 씨도 그중 하나였다.

무역 회사와 대기업 임원 영어 강의, 외국 유학 사교육 시장 등을 거쳤던 유 씨는 '학교'에 안착하고 싶었다. 교육청은 2009년 2학기에 유 씨를 수도권의 한 중학교로 발령했다.

"영어 토론 수업, 영어 글쓰기 수업, 영어 자기 소개 훈련까지…아이들한테 수업 재밌었다는 말을 듣는 보람으로 정말 열심히 했어요."

4년여가 지나면서 '영어 몰입 교육' 열풍은 시들해졌다. 2009년 7월에 채용된 제1기 영어 회화 전문 강사 526명이 지난 7월 먼저 집단 해고됐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채용된 영어 회화 전문 강사는 6100명이다. 이들도 4년 계약 기간이 끝나면 순차적으로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유 씨는 "돌이켜 보니 똑똑한 동기들은 우리가 기만당하고 정권의 희생양이 됐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깨닫고 하나둘씩 그만뒀고, 나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며 "국가로부터 사기를 당한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우리가 처음 뽑혀서 교육청에 연수 갔을 때, 장학사가 그랬거든요. '대기업도 함부로 해고를 못하는데, 하물며 교육청이 직접 뽑고 국가가 직접 하는 사업 아니냐. 걱정하지 말라'고요."

유 씨가 해고된 교육 현장에는 '창조 경제, 이공계 인재 양성'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는 교사도 아니고 회계직도 아니래요"

이들이 적정한 처우를 받지 못할 조짐은 이전부터 있었다. 전북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 회화 전문 강사로 일했던 이혜연(가명·43) 씨도 '정년 62세'라는 교육청 채용 공고를 믿고, 2009년 5월 교육청에 지원서를 넣어 합격했다.

교육청이 설명한 '장밋빛 전망'과 실제 학교 현장은 너무 달랐다. 이 씨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교사 일을 똑같이 하고 부담임까지 맡았지만, 1년을 일하든 4년을 일하든 임금은 그대로였다. 성과급도, 명절 상여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정규직 교사들이 쉬는 방학 때는 영어 회화 교육이 아니라 학교 회계직원과 같은 일을 했다. 정부가 설명한 '고급 인력 투입'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학교 눈칫밥 먹으면서 학교 현장이 이 정도일지 몰랐다고 실망하고 그만둔 사람들도 많았어요. 교사 일을 하는데도 우리는 교사도 아니고, 회계직도 아니래요. 기간제법, 노동법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독소 조항들을 다 모아서 법 사각지대에 넣은 거예요."

교육부, 전원 해고 뒤 신규 채용 시 '경력 불인정'

교육부는 지난 6월, 같은 학교에서 4년 일한 영어 회화 전문 강사는 해고하고 신규 채용 공고를 내라는 방침을 세웠다. 그 결과 526명이 전원 해고됐다.

이번 조치는 2009년 8월 교육부가 '한 학교에서 기간제로 4년 이상 일할 수 없다'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 데 따른 것이다.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토록 한 기간제법의 예외 조항을 두고, 최대 4년까지 계약하게끔 했다.
 

▲ 영어 회화 전문 강사들은 지난 4월 22일부터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

'정년이 62세'라는 말을 믿고 지원한 영어 회화 전문 강사들은 뒤늦게 분노했다. 이 씨는 "정년을 속여서 뽑아 놓은 뒤에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혼인 빙자 간음'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현장의 반발이 예상되자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강사들의 고용 기간을 4년에서 8년으로 늘리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지만, 지난 1월 법제처의 반대로 철회했다. 법제처는 이 시행령이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화하는 기간제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8년간 고용하는 지속적인 사업이라면, 무기계약직을 채용해야 옳다는 것이다.

법제처 해석에 대한 교육부의 선택은 집단 해고와 신규 채용이었다. 교육부는 4년 이상 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할 것을 우려해 '해고'를 선택한 것이다.

영어 회화 전문 강사들은 고용 안정을 위해 "신규 채용 시 기존 강사들의 4년 경력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이마저도 "다른 신규 지원자와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며 거부하고 있다. 유 씨가 울분을 토했다.

"1년씩 재계약하다가 4년 뒤 다른 데로 가라고 해요. 그러면서 다시 경력 0년차로 시작해야 한대요. 경력 인정이 안 되니 다시 입사 시험 보고 들어오래요. 모든 기업이 이런 제도를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제도를 교사들한테 적용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특히 전북교육청은 기존 영어 회화 전문 강사 36명을 해고하고, 26명을 새로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36명 가운데 최소 10명은 해고장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씨는 지난달 30일부터 동료들과 함께 전북교육감실 앞을 점거하고 있다.

교육부 "영어 회화 전문 강사제, 언제까지 갈 제도인지 알 수 없다"

정년 62세를 명시한 데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몇 살까지 일할 수 있는지를 표시한 것"이라며 "예를 들어 58세에 임용됐다면 최대 62세까지 일할 수 있다는 의미였지, (젊은 나이에) 한 번 임용된다고 해서 그때까지 정년이 보장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무기계약직 전환 요구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한쪽만 (무기계약직 전환을) 해드리면 기간제 교원이나 스포츠 강사 등 다른 직종들도 해드려야 한다"며 "재정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무기계약직이 늘면 임용 고사를 준비하는 사범대 학생을 배제하는 결과가 나와 다른 교사나 직종과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상시·지속적 업무에는 무기계약직 채용이 원칙'이라는 고용노동부 방침에 대해서 교육부 관계자는 "15시간 이상 일하니 상시 지속적인 업무라고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이 제도가 한시적 제도인지, 언제까지 갈 제도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회화 전문 강사에게 지원되는 교육부 연간 예산 1100억 원도 언제까지 보장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신규 채용 과정에서 경력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새로 임용을 원하는 분도 있는데, 기존에 계신 분이라고 해서 다른 경력보다 더 (인센티브를) 쳐주면 불평등하다"며 거절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 교육을 중시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공계 인재 양성'을 중시하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 대전 카이스트에서 간담회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창조 경제' 위해 과학 전문 강사 투입?…"다음 정부가 버릴 것"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과학 전문 강사 채용? 미친 거죠."

초·중·고교에 '과학 전문 강사'를 배치하겠다는 법안이 발의되자 이혜연 씨는 "박근혜 정부가 과학 교사들을 만들어 놓고 다음 정부가 버릴 것"이라고 냉소했다.

논란이 된 법안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6월 12일 대표 발의한 '과학교육 진흥법 일부 개정법률안'이다.

이 법안은 '창조 경제'의 핵심 과제로 내년부터 5년간 전국의 초·중·고교에 '융합과학 전문 강사(이하 과전강)' 1만1360명을 6899억 원을 들여 투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7월 해고 통보를 받은 '영어 회화 전문 강사'들은 이 법안에 대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또다시 정책의 희생양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유미경 씨는 "과학 강사도 결국 우리와 똑같은 식으로 일용직 쓰듯이 4년 동안 헐값으로 일 시키고 버릴 것"이라며 "또 농락당하고 끝날 건데 (학교에 과학 강사를 투입한다는 법안을) 비웃고 싶다"고 말했다.

유 씨는 "처음부터 정부가 '이건 파트타임 직종이다, 책임감 같은 건 필요 없고 대충 시간 때우고 대충 가르쳐라'라고 말해줬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준형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본부 조직국장은 "지금 있는 비정규직도 관리 못하고, 대안도 못 만들면서 무작정 해고되는 조건을 만들어선 안 된다"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다면 있는 비정규직 고용 안전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또한 지난달 17일 성명을 내고 "창조 경제, 일자리 창출 정부 시책에 학교를 실험하지 말라"며 "학교 파행을 불러오는 비정규직 양산 정책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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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민생’ 협박에 밀리면 아주 죽는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8/04 09:52
  • 수정일
    2013/08/04 09:5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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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면이 어려울수록 야당은 협상으로 얻어낼 것은 없다
 
임두만 | 등록:2013-08-02 19:52:14 | 최종:2013-08-03 10:12:3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민주당이 결국 장외로 나왔다. 재도권 정당, 거기다 원내 127석을 가진 거대 제2당…명실공히 한국정치의 주류…이런 정당이 국회밖으로 나오기는 사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결국 김한길의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선택했다. 나부터 늦었다고 질타했으나 일단 나온 것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출처:민중의소리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시작되자 바로 새누리당은 호떡집에 불 난 꼴을 보였다. 그리고 그동안 20,000명이 넘는 촛불인파의 항의집회에 보도카메라 한 번 비추지 않던 KBS, MBC 등 '관제공영방송'의 메인뉴스에 스타트 톱뉴스로 서울시청 광장의 천막이 나오는 등 같이 호들갑이다.

그런데 여당이나 관제방송이 야당의 장외투쟁에 저 같은 호들갑을 떠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거대 여당으로서 뭐든 자기들 원하는대로 다 하지만 그래도 협상이든 싸움이든 깽판이든 야당이라는 상대가 국회 안에 있어야 자기들이 가진 힘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두환도 제도권 야당을 1당 2당까지 만든 것이다.

즉 반대파가 귀찮고 때로는 걸리적 거리고, 때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야당이 국회에서 맞장구를 쳐줘야 자신들의 나쁜 짓도 면죄부를 받는다. 일단 '법'에 의해 '국회'라는 민의의 과정을 통과했다는 기록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이 바람막이를 해 줄 야당이 장외로 나가 투쟁하면 당장 원내1당이고 과반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떤 법률안, 어떤 결의안도 통과시키면 1당독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된다. 그러니 여당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실상 여당의 이 약점을 제일 많이 또 적절하게 이용,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얻은 치들이 바로 현재 새누리당이라는 집단이다. 이 집단이 야당일 때였다.

특히 이회창 한나라당 당시 이부영 이재오 김홍신 등은 당시 한나라당을 투쟁적 야당으로 만든 혁혁한 공로자들이었다. 졸지에 야당이 된 만년 여당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패닉에 빠져 대여투쟁을 어찌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 때 투쟁이라면 이골이 난 이부영 이재오 김문수 김홍신 이미경 제정구 등이 한나라당의 대여투쟁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이들의 선도에 이사철 안상수 홍준표 등 검사출신들이 재빠르게 배웠다.

1998년 당시 국민회의와 자민련, 공동여당은 합해도 130석이 안 되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딴지로 국무총리 인준에만 6개월이 걸렸다. 그 때 권력을 따라 자진해서 한나라당을 탈당한 유용태 등이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김대중도 여대야소가 필요하다고 인정, 이들을 받아들인 다음 무리한 영입작전도 폈다. 지금 친박 핵심이라며 새누리당 사무총장으로 뻘소리의 일인자를 자임하는 홍문종도 당시 신한국당을 탕당하고 국민회의로 온 국민회의 입당파다.

이게 빌미가 되었다. 그 전 빌미인 '김종필 총리불가'는 실상 국민들에게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한나라당 탈당파의 국민회의 입당은 '철새정치'논란과 함께 국민적 반감이 상당했다. 그걸 잘 아는 당시 한나라당 내 재야파들이 야당인 한나라당을 장외로 이끌었다. 구호는 '야당파괴 중단하라'였다.

그 와중에 정형근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이부영 등은 정형근의 집에서 검찰 수사관 진입도 막으며 정형근을 보호하는 투쟁도 불사했다. 정형근 체포도 '야당파괴'로 몰아버린 것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투쟁적 활동은 갈수록 더했다. 새정부 출범 초 총리 인준을 6개월이나 거부하더니 나중엔 아예 총리인준을 두 번씩이나 거부해버렸다. 장상 장대환...이들의 흠(?)은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내놓은 공직후보자들에 비하면 흠도 아니었으나 당시 야당 한나라당은 인준을 거부했다. 이처럼 장내 투쟁이든 장외투쟁이든 이들의 대여투쟁은 현란했다. 거의 싸움을 할 줄 아는 이재오 이부영의 공이었다.

2002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다시 야당이 되었다. 검찰 수사로 차떼기도 들통났다. 회심의 일격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는데 엄청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선거는 해 볼 것도 없이 망할 것이라고 자타가 인정했다. 그런데 그들에겐 박근혜가 있었다. 박근혜는 그들에겐 박다르크였다. 손등이 퉁퉁 부어도 악수공세만 했다. 쫄딱 망할 것으로 봤는데 원내 120여 석...망외의 성과를 올렸다.

그걸 가지고 이들이 한 일은 그러나 자기들이 좋아하는 '민생'이 아니었다. 출발부터 천막당사라는 '장외'에서 시작하더니 정기국회도 거의 보이콧하고…어거지로 끝낸 정기국회 후 무려 6개월을 장외에서 보냈다.

그때 그들이 한 짓…

서울에선 사람이 모이지 않으니까 늘 대구와 부산만 가서 집회를 했다. 명분은 사학법 반대인데 사학이 더 많은 서울보다 자기들 안방이라는 대구와 부산집회만 고집했다. 뻑 하면 대구와 부산으로 달려가서 집회형식을 빌려 유권자들에게 일러바쳤다. 지역패권주의에 매몰 된 그곳 주민들은 '밖에서 얻어터진 내새끼' 품에 안듯이 품어주면서 노무현과 앰헌 호남에게 종주먹질을 했다.

결국 노무현이 먼저 항복을 했다. 자신의 정치이념이라던 사학개혁을 포기했다. 재개정이란 이름으로 그나마 시민감시가 가능하도록 했던 법안을 사학재단이 맘대로 할 수 있도록 후퇴했다. 이후 박근혜는 승승장구였다. 무려 44:0, 노무현 임기 후반과 박근혜의 한나라당 대표임기 2년의 보궐선거 성적이었다.

민생…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장외집회나 국회포기를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도 '민생'이란 이름으로 압박했다. 솔직히 당시 KBS,MBC가 노무현 권력쪽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정연주와 최문순…그들이 생리적으로 한나라당 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니까…오죽하면 이명박이 집권 즉시 갖은 술수를 부려 KBS 정연주부터 짤랐을까? 따라서 당시 공영방송도 한나라당의 장외집회를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줄창 '민생' '경제살리기'만 얘기했다. 그랬음에도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승리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지금 김한길의 민주당…안철수 세력으로 회자되는 잠복한 야권세력…이들에게 여당이나 언론의 '민생'타령에 현혹되지 말라는 충고, 바로 이거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민생'이 좋았던 때는 없었다. 경제가 좋다고 했던 때도 없었다. 언론이건 소문이건 중론이건 언제나 민생은 어렵고 경제는 죽어가는데 정치인들은 민생 나몰라라 하고 경제 나몰라라하고 정치투쟁만 한다고 지탄했다.
그랬음에도 시간이 지나면 '그 때가 좋았어'을 회상했다. 돌아보면 '좋았다'던 때 민생타령, 경제타령 더 많이 했다. 오죽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지도 않은 경제를 무슨 수로 살린다는 거야?"라는 말을 했을까?

이로 말한다. 야당은 현혹되지 말라. 협박에도 굴하지 말라. '민생'이란 무기를 가지고 다양한 공격이 나올 것이며 숨쉴 수 없도록 다방면에서 치고 들어 올 것이다.

민주당 김한길이 그것을 예견하지 못하고 장외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여당의 '민생' 공격은 야당을 다시 장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다. 야당이 이 미끼를 물면 여당이 이긴다. 반대로 야당은 미끼를 물지 않으면 이긴다. 넓은 바다가 다 자기들 땅이다. 장담하건데 10월 보궐선거 때까지 야당이 장외에 있으면 보궐선거 승리한다. 국회 내 견제세력 호소…그거 먹힌다.

그것을 여당의 노회한 정치꾼들은 더 잘 안다. 민주당 장외 나간다니까 바로 최경환 귀경하여 회의 주재하는 것 보라. 바로 민생 타령하면서 '하우스푸어' 대책 운운하는 것 보라. '하우스푸어 대책' 박근혜가 수없이 내놨고 국토부 재경부 다 현안인데 불가불 '하우스푸어 대책'세운다고 현장방문 운운하는 것, 그게 바로 정치쇼다. 야당의 장외투쟁 물타기…그리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라는 미끼…

그러나 민심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권 우호적 언론이 어떤 호들갑을 떨어도 겉으로 보이지 않는 민심…저들은 알 수 없다. 그러니 더 급한 것이다.

다시 말한다. 국면이 어려울수록 야당은 협상으로 얻어낼 것은 없다. 국면이 어려울수록 투쟁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언론도 조명을 주고 국민들도 관심을 갖는다.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야 선거도 할 수 있다. 국민은 욕하면서도 견제세력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장외투쟁하는 야당 욕하는 국민들 물론 많다. 욕의 대부분은 "먹고살기 힘든데 정치인 새끼들은 싸움질만 한다"이다. 그런데 선거때가 되면 싸움질 박터지게 한 야당, 견제세력 필요성있다며 찍는다. 그게 선거다. 그게 정치다.

 

 

김한길의 민주당, 여당과 언론의 '민생' 협박에 국민 운운하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면 그때야 아주 죽는다. 오늘 벌써 출구전략 어쩌고 나오는 보도들에서 야당이 어찌 죽는지를 예고하고 있다. 나는 김한길의 민주당이나 야권이라고 하는 정치권 사람들이…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장외로 나왔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 판단을 배반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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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으로 여름휴가 온 3만 촛불, "다음 주는 10만"

오후 5시 30분 국민보고대회... 오후 7시 5차 범국민대회

13.08.03 12:03l최종 업데이트 13.08.03 23:10l
이정희(lovegod)남소연(newmoon) 홍현진(hong698) 봉주영(oppadalryu) 강민수(cominsoo) 황혜린(yorine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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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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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신 : 3일 10시 20분]
3만 촛불 켜졌다... 한 달 반 만에 '40배' 들불로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휴가철, 국정원 사태 규탄을 위해 3일 청계광장에 모인 연인원 3만 명(경찰 추산 4000명)의 시민들이 힘차게 <고래사냥>을 불렀다. 일부 시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촛불을 흔들었다. 청계광장 소라탑에서 시작된 촛불은 모전교에 설치된 차벽을 넘어 춤췄다.

"지금 휴가 중"이라는 이재수(42)씨도 가족들과 함께 <고래사냥>을 따라 불렀다. 이씨의 4살짜리 아들은 휴대폰으로 열심히 애니매이션을 감상했다. 이씨는 "아이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왔다"면서 "지난주도 나오고 이번 주도 나왔는데 시민들과 함께하니까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피서 시즌인데 이 정도 참여...열기 점점 타오르고 있다"

지역 등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왔다는 박승수(47)씨는 "SNS에서 보니까 사태가 심각한 것 같아서 계속 참여했는데 참여열기가 점점 타오르고 있다"면서 "피서 시즌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참여했다는 것이 다들 가볍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씨는 "시민들의 한 표 한 표에 의한 투표가 유린되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인데 의미가 없어졌다"면서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정성껏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곡동 국정원 앞으로 여름휴가를 떠난 이들도 있었다. '국정원 감시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효준(32)씨는 "국회의원들은 휴가 간다고 국정조사도 안 하고,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는 공영방송은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스러워서 나라도 뭔가 해야겠다 싶었다"면서 농성을 시작한 이유를 말했다.

"어제부터 농성을 시작했는데 아주 가관입니다. 경찰들은 텐트 좀 치려고 하는데 '안 된다', 비 오니까 비닐 좀 치자니까 '안 된다', 1인시위 좀 하자니까 '안 된다', 다 안 된답니다. '왜 안 되나?' 국정원이 하지 말라고 해서 그렇답니다."

김씨는 "국정원 근처에는 그 흔한 상가도 없고 화장실도 사용할 곳이 없다"면서 "이틀 지냈는데 <정글의 법칙> 찍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가 "작은 촛불집회도 열고 삼겹살도 굽고 있다"고 말하자 시민들은 환호를 보냈다.

"남재준 해임하고 국정원 해체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시작이다. 국민들, 8월 10일 10만 명 모이고 100만 명 모이면 이 문제는 어쩔 수 없이 해결된다. 국정원 지금 쫄아서 장난 아니다."

집회참가인원 4000명 추산한 경찰, 2160명 병력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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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5차 범국민대회에 수많은 촛불을 든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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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찰은 36개 중대 2160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경찰이 추산한 집회 참가 인원 4000명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경찰이 모전교 인근에 차벽을 세우자, 경찰과 폴리스라인 인근에 있던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집회를 방해하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150여 명의 시민들이 차벽 뒤쪽에 서서 촛불을 들자, 경찰은 "집회 허가 장소를 넘어 불법점거 중"이라고 경고했다. 경찰이 모전교에 배치한 9대의 차량으로 인해 모전교 차량통행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오후 5시 30분 열린 민주당 주최 '민주주의 회복 및 국정원 개혁촉구 국민보고대회',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 5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일부 언론들을 향해 강한 불신과 분노를 나타냈다. 시민들은 일부 언론사 취재진들을 둘러싸고 고성을 지르고 삿대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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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민주당 국민보고대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KBS, MBC, YTN, 종편, 조중동의 취재를 거부한다"며 피켓으로 카메라 앞을 막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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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관제방송이야?"
"정보제공하려고 그러는 거야!"
"시청료는 청와대에서 다 내라!"

집회 현장을 지나가던 김아무개(62)씨는 기자에게 "기자들이 다들 월급쟁이가 되어버렸는데 무슨 힘이 있겠냐"면서 "KBS 좋아했는데 몇 년 사이 참… 언제부터 날씨가 그렇게 중요해졌나"라며 촛불집회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을 비판했다. 또 다른 시민은 방송사 카메라 앞에 서서 "KBS, MBC, YTN, 종편, 조중동 나가달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5차 범국민대회는 오후 9시께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사회를 맡은 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이 "다음 주(8월 10일)에는 전국 10만 가능하겠죠? 서울광장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하자, 참가자들은 "네"라고 외치며 촛불을 높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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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최한 제5차 국민촛불대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는 피켓을 펼쳐 들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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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3일 오후 9시 30분]
"풍문으로 들었소, 박근혜 당선이 이상하단 그 말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문재인 후보가 아닙니다.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진다는 믿음으로 투표장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던 사람들, 문재인 후보를 찍었던 국민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맞습니까?"

사회를 맡은 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이 "맞습니까"라고 묻자 3만여 명의 인파(경찰 추산 4000여 명)가 "맞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어 장 위원장이 "오늘의 촛불은 진보의 촛불, 대선 불복의 촛불, 민주당의 촛불이 아니다"며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평범한 국민 모두의 촛불, 민주주의를 되찾는 국민의 촛불"이라고 외치자 사람들은 함성으로 환호했다.

한 달 보름 만에 촛불집회 참가자가 연인원 3만여 명으로 늘었다. 지난 6월 21일 700여 개로 시작한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이 그 사이 40여 배 들불로 퍼진 것이다.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등 20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주최한 '5차 국민촛불집회'가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3일 오후 7시 20분부터 시작됐다.

청계광장 입구부터 촛불은 청계천 첫번째 다리인 모전교까지 200여 미터를 가득 채웠다. 반대편 청계천로에도 촛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0대 고등학생부터 삼베 옷을 입은 머리 희끗한 노인까지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연인은 물론 가족 단위의 촛불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고, 국정조사 살려내라", "원세훈, 김용판, 김무성, 권영세 증인채택하라",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고 국정원 전면 개혁하라", "국정조사 방해하라 새누리 특위위원 전원 교체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박 대통령, 휴가 코스프레 말고 국정원 개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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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최한 제5차 국민촛불대회에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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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는 국회의 국정원 국정조사 파행을 규탄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신경민 민주당 국정조사 위원은 이 자리에서 "민주당이 하루라도 국정조사 더 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딱 이틀 했다"며 "그것도 입에 지퍼 단 오만방자한 증인들 앞세운 국정조사였다"고 한탄했다.

이어 "새누리당의 휴가는 전략적 휴가, 꼼수 휴가, 악마의 휴가"라며 "증인을 못 나오게 하고, 나오면 입을 막으려고 그렇게 애타게 새누리당이 노력했다"고 말했다.

국정조사에서 '경찰의 은폐 의혹'을 밝혀낸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대통령이 떳떳하다면 새누리당은 비협조로 나올 이유가 없다"며 "새누리당은 국정조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의원은 "130시간 넘는 경찰 CCTV 동영상을 보면 경찰은 실시간으로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국정원과 박근혜 대선 캠프의 지시가 아니면 경찰의 무마가 가능했겠나,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과거 봉건시대의 군주들은 정쟁과 거리를 두고 고고하게 선정을 베푸는 것이 미덕으로 여겼다"며 "현재 민주주의 권력자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과 소통하는 것 아니냐, 박 대통령은 궁중 궁궐의 이상한 나라의 여왕"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의원은 "휴가에서 '해변의 여인' 코스프레하거나 아버지 흉내내지 말고 국민 앞에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하라"고 박 대통령을 향해 외쳤다.

집회는 '강백수 밴드'와 '류앤탁'의 공연으로 열기가 더해졌다. 강백수 밴드는 <나는 리얼러브를 꿈꾼다> <가사분담>을 불렀다. 강백수씨는 "주말에 술먹는 게 낙인데, 이상한 놈들 때문에 술도 못 먹고 짜증난다"며 "촛불 안 들고 술 먹을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류앤탁은 가수 <10센치>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개사해 <국정원 풍문으로 들었소>와 <국정원 X깔래>를 열창했다.

"우우~풍문으로 들었소. 박근혜 당선이 이상하단 그 말을. 국정원이 대선 개입했단 그 말을. 우우~풍문으로 들었소. 김용판이 경찰 수사 왜곡했단 그 말을."

[1신 대체: 3일 오후 3시]
지난주엔 2만5천... 오늘은 얼마나 모일까

국가정보원의 정치공작 대선 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촛불 참석자가 장마와 휴가철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6월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처음 켜진 약 600개의 촛불은 한 달여가 흐른 지난 7월 27일 밤 2만 5000개(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 7500명)로 40배 이상 늘었다. 국정원 사태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다.

장정욱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시민들이 국정조사가 파행되는 걸 보고 분노를 크게 느끼는 것 같다"며 "'우리가 (광장에) 나가야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고 생각해서 비가 오는데도 참석자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3일 오후 7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 주최로 다섯 번째 범국민대회가 열린다. 특히 행사 직전에 장외투쟁 사흘째를 맞고 있는 민주당이 '촛불'을 먼저 치켜들 예정이다. 이날 범국민대회가 최대 인파가 모인 지난달 27일 집회 이후, 제1야당이 적극 결합해 진행되는 첫 집회라는 점에서 촛불이 얼마나 모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일부터 서울광장에 천막당사를 치고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에 돌입했다. 국정조사가 청문회 증인채택 등의 문제로 난항을 겪자,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7월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체제 돌입'을 선언했다.

김 대표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사건의 진실규명과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마당에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었다"면서 "수천, 수만의 진실의 촛불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믿음을 나타낸 촛불과 민주당이 3일 오후 만나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1일과 2일, 서울광장에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최고위원회와 의원총회를 여는가 하면, 거리에서 홍보 전단을 배포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민주당은 '남해박사'(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박근혜 대통령 사과), '원판김세'(원세훈 전 국정원장·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동행명령 확약,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권영세 주중대사의 청문회 증인 채택)를 주요 요구 사항으로 내걸었다.

이에 새누리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김용판 전 서울지방청장 청문회 출석 담보에 대해서는 수용 가능성을 밝히면서도, 김무성 의원·권영세 주중대사 청문회 증인 채택 요구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장외투쟁 이틀째인 2일 민주당은 여름휴가를 떠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헌정파괴 행위에 대해 대선 기간 동안 '아무 도움도 안 받았다'면서 일축하고 외면했다"면서 "대통령의 결단이 임박했다, 민주당은 진실규명과 국정원 개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일 민주당은 낮 12시 서울광장에서 김한길 대표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상근 목사등 원로인사들과 만남을 갖고, 오후 5시 30분에는 청계광장에서 민주주의 회복 및 국정원 개혁 촉구 국민보고대회를 열 예정이다. 정청래 국정조사 특위 민주당 간사는 2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정조사 특위 활동시한이 오는 15일인 것을 고려했을 때, 협상 마지노선은 5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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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알벌 물속 동승, 실잠자리 알 속에 알

1.1㎜ 알벌 물속 동승, 실잠자리 알 속에 알

 
조홍섭 2013. 08. 02
조회수 1933추천수 0
 

실잠자리 배에서 기다리다 물속에 배 넣고 산란할 때 '입수'

대만서 신종 알벌 발견, 물속 호흡 어떻게 등은 수수께끼

 

al1.jpg » 실잠자리의 '거대한' 몸체 위에 올라앉은 신종 기생 알벌이 산란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쉬 외, <플로스 원>

 

몸이 실처럼 가늘다는 실잠자리가 헬리콥터처럼 보일 만큼 작은 기생 알벌이 대만에서 새로 발견됐다. 무엇보다 이 알벌은 실잠자리의 배 위에 올라타 기다리다 이 잠자리가 물속에 배를 넣어 알을 낳는 동안 배 끝까지 따라 내려가 알 속에 자신의 알을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에 800종이 알려져 있는 알벌은 생물방제용 천적으로 많이 쓰이며, 날개를 가진 곤충 가운데 가장 작은 0.17㎜ 크기의 알벌이 최근 발견되는 등 작기로 유명한 벌이다.(■ 관련기사: 아메바보다 작은 미니 벌, 뇌세포 줄이고도 할 건 다 한다)
 

al2.jpg » 신종 알벌 히드로필리타 엠포로스의 현미경 사진. 사진=쉬 외, <플로스 원>

 

대만대 곤충학자 등은 대만 북부에 많은 물잠자리과의 실잠자리에 초소형 알벌이 종종 ‘무임승차’한다는 것을 보고 연구에 들어갔다. 암컷의 길이가 1.1~1.2㎜인 이 알벌(히드로필리타 엠포로스)은 실잠자리의 배 가장 윗쪽에 머물었다.
 

이 실잠자리는 물속에 잠겨있는 식물의 잎 속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는데, 산란을 위해 기다란 배를 물속에 잠그는 동안 알벌은 배를 따라 끄트머리로 이동한다. 이어 방금 낳은 무방비 상태의 실잠자리 알에 자신의 산란관을 박아 알을 낳는다. 실잠자리의 알은 알벌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al3.jpg » 대만 북부에 흔한 물잠자리과의 실잠자리 배끝에 신종 알벌이 올라타 있다. 사진=쉬 외, <플로스 원>

 

al4.jpg » 위 사진을 확대한 모습. 사진=쉬 외, <플로스 원>

 

al5.jpg » 더 확대하자 신종 알벌이 뚜렷이 보인다. 길이는 1.1㎜ 정도이다. 사진=쉬 외, <플로스 원>

 

 

 

 

연구진은 이 알벌이 워낙 몸이 작아 물 표면을 뚫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실잠자리의 배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알벌이 실잠자리 없이 홀로 물속으로 들어가려 애쓰는 모습도 관찰됐다.
 

물속에서 깨어난 알벌의 새끼는 헤엄쳐 표면으로 나왔는데, 일부는 평생 물속에서 머무는 것처럼 보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 알벌 암컷도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집게발을 지니고 있어 물속에서 걸어다니기 쉽게 적응한 모습이었다.

al6.jpg » 물속에 있는 물벼룩(1), 식물 잎 속의 실잠자리 알(2), 그 속에 알을 낳는 알 벌(3). 사진=쉬 외, <플로스 원>

 

al7.jpg » 실잠자리 알 속에서 깨어나오는 신종 알벌 새끼들. 사진=쉬 외, <플로스 원> 

 

특이하게 이 알벌은 수컷이 매우 드물어, 암컷 125 마리 당 수컷 한 마리꼴이었는데, 수컷은 생애 대부분을 물속에서 지내는 것 같다고 논문은 추정했다.
 

이밖에도 이 알벌에 관해서는 밝혀져야 할 것들이 많다. 실잠자리에는 언제 어떻게 올라타는지, 또 물속에 알을 낳는 실잠자리 암컷을 어떻게 가려내 편승하는지, 그리고 24시간 가까이 물속에 머무는 동안 호흡은 어떻게 하는지 등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연구는 온라인 공개 학술지 <플로스 원> 7월24일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hih YT, Ko CC, Pan KT, Lin SC, Polaszek A (2013) Hydrophylita (Lutzimicron) emporos Shih & Polaszek (Hymenoptera: Trichogrammatidae) from Taiwan, Parasitising Eggs, and Phoretic on Adults, of the Damselfly Psolodesmus mandarinus mandarinus (Zygoptera: Calopterygidae). PLoS ONE 8(7): e69331. doi:10.1371/journal.pone.006933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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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없는 여름] 한국의 미래, 독일 VS 프랑스?

천만 영화의 거대한 착각! 쓰나미 덮치면 '해운대'는 사실…

[핵발전소 없는 여름] 한국의 미래, 독일 VS 프랑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8-02 오후 6:59:33

 

2013년 6월에 큰 일이 있었습니다. 에너지정의행동이 한국전력 등의 자료를 분석해 보니,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에서 핵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5년 이후 28년 만에 25퍼센트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연간 핵 발전 비중이 각각 29.9퍼센트와 28.3퍼센트로 역시 1985년 이후 최초로 3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럴 만했습니다. 6월 한 달 내내 가동한 핵발전소는 전체 23기 중에서 단 13기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불량 부품 스캔들, 월성 1호기 수명 만료 등을 이유로 핵발전소 10기가 가동을 중단했죠.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초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심각한 전력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심각한 전력난" 따위는 없었죠.

어렸을 때부터 핵에너지로 움직이는 로봇 '아톰'에 열광하며 "원자력 에너지는 미래 에너지"와 같은 메시지를 주입 받다 보니, 우리는 어느 새 핵발전소 없는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핵발전소 수출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당장 대한민국이 멈추기라도 할 것처럼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지만 핵발전소 10기가 멈춰서도 큰일은 없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30년까지 핵 발전 비중을 59퍼센트로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핵 마피아'라 불리는 이들의 자충수 탓에 오히려 핵 발전 비중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25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죠.

자,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대한민국은 지금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핵 발전의 비중을 더 줄인다면 우리는 독일의 길을 좇아 핵발전소와 작별할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계획을 좇는다면 우리는 전력의 75퍼센트를 핵발전소에 의존하는 프랑스의 길을 뒤따를 것입니다.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와 함께하는 '과학 수다'는 이번에 핵발전소의 이모저모를 살핍니다. 여러분의 선택을 돕고자 핵폭탄과 핵 발전의 기본 원리부터 시작해서 핵 발전의 문제점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고려대학교 윤태웅 교수(전기공학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이종필 박사(물리학과), 천문학자 이명현 기획위원, 강양구 기자가 핵에너지에 대한 애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수다에 참여했습니다. 강 기자가 특별히 선택해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은 핵발전소 없는 여름을 나기 위한 필독서입니다.

자, 독일입니까, 프랑스입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 선택의 주인공입니다.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이종필 박사. ⓒ프레시안(손문상)


원자력 에너지 vs. 핵에너지

강양구 : 8월의 '과학 수다' 주제는 핵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수다를 시작하기 전에 배경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애초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던 3월이 아닌 8월의 주제로 핵에너지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묵시록적 사건에서 좀 거리를 두고서 핵에너지를 살펴보자는 의도예요.

이명현 : 그런데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죠. 최근에 핵발전소 불량 부품 스캔들이 일어나서 난리법석이니까요. 반핵 운동 진영에서나 통용되던 '핵 마피아'를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정부 인사도 사용하는 상황이니 격세지감입니다. (웃음) 아무튼 오늘은 애초 기획 의도대로 조금은 깐깐하게 핵에너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겠습니다.

강양구 : 우선 <프레시안>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혹은 '원자력 에너지'보다는 '핵발전소' 또 '핵에너지'와 같은 용어를 선호합니다. 저부터 웬만하면 '핵발전소' 또는 '핵에너지'라고 사용하죠. 왜냐하면, '원자력 발전소' 또는 '원자력 에너지'라는 표현이 부정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이종필 : 핵에너지나 원자력 에너지, 핵 발전이나 원자력 발전, 핵폭탄이나 원자 폭탄…. 모두 한 가지 실체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 뿌리는 모두 핵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일단 가장 기본적인 것, 그러니까 원자부터 다시 한 번 살펴보죠. 19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원자'로 여겼었어요.

그러다 1897년에 영국의 조지프 존 톰슨(1856~1940년)이 전자를 발견하면서, 원자 안에 더 작은 물질로 이뤄진 구조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최근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까지 그 구조를 해명하고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했죠. (☞관련 기사 : 힉스 입자가 뭐냐고? 강남에서 '말춤' 추는 싸이!)

톰슨에 이어서 1911년 어니스트 러더퍼드(1871~1937년)가 원자핵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 전기'를 띤 원자핵 주위에 '- 전기'를 띤 전자가 분포하는 원자의 기본 구조가 확립되죠. 사실 원자핵의 본질은 '+ 전기'를 띤 입자들이 결합력으로 뭉쳐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핵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이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들 사이의 결합력입니다.

강양구 : 그 결합력이 바로 '핵력'이죠. 그리고 그 핵력이 깨질 때 방출되는 에너지가 바로 핵발전소나 핵폭탄의 원천인 핵에너지고요.

이종필 : 맞아요. 핵발전소의 연료인 우라늄은 원자 번호가 92번이잖아요. 이 원자 번호는 바로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의 숫자거든요. 그러니까 우라늄은 '+ 전기'를 가진 양성자가 92개 뭉쳐 있는 거예요. 거기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자 약 140개가 붙어 있죠.

이렇게 원자핵을 구성하며 뭉쳐 있는 양성자, 중성자를 '핵자(nucleon)'라고 부르죠. 240개가 넘는 핵자가 뭉쳐 있는 우라늄 원자핵이 쪼개질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게 바로 핵에너지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흔히 쓰는 '원자력 에너지'가 아니라 '핵에너지'가 맞아요.

이명현 : 핵에너지, 핵폭탄이 정확한 표현이군요.

이종필 :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원자력'은 '원자력 에너지'나 '원자력 발전소'처럼 긍정적인 이미지로 쓰이고, '핵'은 '핵무기'나 '핵폭탄'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이죠. (웃음)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원자력 에너지'나 '원자력 발전소'를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정확한 용어가 '핵에너지'나 '핵발전소'라는 사실은 알아야죠.

윤태웅 :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떻습니까?

이종필 : 물리학자들도 '원자력 에너지', '핵에너지'를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구분을 해야 할 경우에는 '핵에너지'를 사용하죠.
 

▲ 윤태웅 고려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핵배낭' 테러가 가능한 까닭은?

이명현 : 그럼, 이제 어떻게 핵에너지가 만들어지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죠.

이종필 : 원자 번호가 92인 우라늄의 예를 들어보죠. 아까도 얘기했듯이 원자 번호는 양성자의 숫자와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라늄의 원자핵 속에는 양성자가 92개 들어 있죠. 이 양성자의 숫자와 원자핵을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인 중성자의 숫자를 합친 것을 '질량수'라고 부릅니다(질량수=양성자+중성자).

강양구 : 언론에서 "우라늄 235", "우라늄 238" 이렇게 쓸 때, 우라늄 뒤에 붙는 숫자가 바로 질량수죠?

이종필 : 맞습니다. 그러니까 우라늄 235는 양성자 92개와 중성자 143개로 구성된 원자핵을 가지고 있는 거죠(235=92+143). 우라늄 238은 양성자 92개와 중성자 146개로 구성된 원자핵을 가지고 있는 거고요(238=92+146).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중성자야 전기를 띠고 있지 않지만, 양성자는 한 개 한 개가 다 '+ 전기'를 띠고 있어요.

'+ 전기'를 띠는 양성자가 92개나 뭉쳐 있으니 마치 자석이 같은 극끼리 밀어내듯이 자기끼리의 반발력이 크겠죠. 그런데 그런 전기적 반발력을 압도하는 어떤 힘이 그것을 모조리 묶어서 원자핵을 만들어내거든요. 이 힘이 바로 양성자, 중성자를 강력하게 묶어주는 '강한 핵력(Strong Interaction)'입니다.

일본의 유가와 히데키(1907~1981년)가 바로 이 '강한 핵력'과 그것의 작동 방식을 최초로 제안해, 1949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강한 핵력은 (+ 전기를 띤 양성자끼리의 반발력 같은) 전자기력보다 100배 정도 셉니다. 우라늄의 양성자가 거의 100개에 가까운 92개잖아요.

강양구 : 양성자 92개가 서로 밀어내니 아무리 강한 핵력이 있더라도 약간 불안정하겠죠.

이종필 : 맞습니다. 이런 우라늄을 외부에서 충격을 주면 강한 핵력이 더 이상 양성자나 중성자를 잡아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원자핵이 깨지는 겁니다. 바로 이렇게 우라늄의 원자핵이 깨질 수 있는 현상을 1938년 발견한 과학자가 바로 독일의 오토 한(1879~1968년)입니다. 이런 현상 자체도 경이로운 일이죠.

이명현 : 원자핵을 쪼개서 새로운 종류의 원자가 만들어지는 현상이잖아요.

이종필 : 네, 이게 바로 연금술이거든요! 그리고 곧 과학자들은 이 때 방출되는 에너지로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가진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대표적인 과학자가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핵폭탄의 위험을 경고한 레오 실라드(1898~1964년)입니다.

반복하지만 이 에너지가 바로 핵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우라늄처럼 덩치가 큰 원자에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자로 외부 자극을 주면, 우라늄의 원자핵이 쪼개져 다른 원소로 바뀌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됩니다. 그 에너지를 바로 핵폭탄 혹은 핵발전소에서 쓰고 있는 것이죠.

강양구 : 여러 원자 중에서 특히 우라늄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비교적 쉽게 깨지기 때문이죠?

이종필 : 맞아요. 그렇게 원자핵이 쪼개지는 현상을 바로 '핵분열(fission)'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중성자를 포격해서 원자핵이 쉽게 쪼개지는 성질을 가진 원자를 '핵분열성 원자(fissionable atom)'라고 부르죠. 그런데 이런 핵분열성 원자 중에서 '피사일(fissile)'한 성질을 가진 게 있어요.

중성자를 포격하면 원자핵이 쪼개지죠. 그런데 핵이 쪼개지면서 쏟아져 나오는 중성자가 또 다른 우라늄 원자핵을 쪼개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중성자가 또 다른 우라늄 원자핵을 쪼개고. 이런 연쇄 반응이 바로 '피사일'한 성질입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천연 우라늄의 경우에는 우라늄 238이 99.3퍼센트입니다. 이 우라늄 238보다 중성자가 3개가 모자란 우라늄 235가 0.7퍼센트예요. 우라늄 238 역시 방사성 물질이긴 합니다만, 원자핵을 쪼개려면 고에너지 중성자로 때려야 할 뿐만 아니라 쪼개지고 나서도 거기서 나오는 중성자의 양이 많지 않아요.

강양구 : 피사일하지 않군요.

이종필 : 맞아요. 그런데 우라늄 235는 위험한 물질입니다. 저에너지 중성자로 때려도 원자핵이 쉽게 쪼개질 뿐만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중성자 개수가 많습니다. 이 중성자가 다시 옆에 있는 우라늄 원자핵을 때리고, 또 거기서 나오는 중성자가 다시 우라늄 원자핵을 때리고….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우라늄 235는 불을 한 번 붙이면 끝없이 타오르는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죠.

이명현 :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크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가 나오는 건가요?

이종필 : 여기서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E(에너지)=m(질량)×c(빛의 속도)2' 공식이 나오죠. 그러니까 우라늄 원자가 가지고 있었던 질량과 원자핵이 쪼개지고 나서 생긴 원자의 질량의 차이(m)에 빛의 속도(c=2.99792458×108m/s)를 곱한 만큼의 에너지(E)가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질량의 차이잖아요. 아주 거칠게 계산을 해보면, 우라늄 235 같은 경우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235개 있어요. 양성자 한 개의 질량이 10의 -27승 킬로그램입니다. 그게 한 100개 있으면 10의 -25승 킬로그램인데, 그램으로 환산하면 10의 -23승 그램입니다. 그럼, 우라늄 1그램 안에는 대략 10의 23승 개의 원자핵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원자핵 하나가 분열할 때는 미미한 에너지가 나오더라도, 우라늄 1그램만 하더라도 10이 23승 개만큼의 에너지를 얻는 거니까, 그 양이 엄청난 거예요. 바로 그렇게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시킬 때 나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이 바로 핵폭탄의 실체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강양구 : 듣고 보니, 우라늄 핵폭탄 만들기가 아주 쉬울 것 같군요. (웃음)

이종필 : 실제로 그래요. (웃음) 우라늄 235로 폭탄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쉬워요. 순수한 우라늄 235를 특정한 질량(임계 질량) 이상으로 모아서 뭉쳐 놓으면 자기들끼리 연쇄 핵분열을 일으키면서 폭발합니다. 그런데 그 임계 질량이 고작 52킬로그램이에요. 그러니까 순수한 우라늄 235 약 50킬로그램만 있으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거죠.

이 우라늄 235는 순식간에, 즉 한 100만분의 1초 동안 80세대까지 내려갑니다. 한 번 핵분열을 할 때 중성자가 2개가 나온다고 가정하면, 순식간에 2의 80승 개의 중성자가 생기는 거예요. 2의 80승 개의 중성자가 원자핵을 무차별 포격하며 에너지를 만드는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그 짧은 시간에 갑자기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니 폭탄이 되는 거죠.

강양구 :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이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우라늄 235 폭탄이었죠?

이종필 : 맞아요. 실제로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우라늄 핵폭탄은 사전 폭발 실험도 안 했어요. 우라늄 235를 30킬로그램, 40킬로그램 이렇게 따로 분리해 놓은 다음에, 나중에 투하할 때 재래식 폭탄을 터뜨려서 둘을 임계 질량 이상으로 합치는 거예요. 그럼, 그 순간부터 핵분열이 일어나서 '펑' 터진 거죠.

강양구 : 흔히 언론에서 "우라늄 농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천연 우라늄에서 우라늄 235만 추출하는 과정이죠?

이종필 : 맞습니다. 바로 그 우라늄 농축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우라늄 핵폭탄 만드는 일은 정말 쉽죠. 그런데 우라늄 농축은 굉장히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죠.

강양구 : 맨해튼 프로젝트 때도 그 우라늄 농축에 굉장히 많은 인력과 시설이 필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명현 : 그럼, 핵분열의 원인이 되는 중성자가 많아지거나 혹은 임계 질량 자체가 작아진다면 폭탄 크기를 작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이종필 : 맞아요. 일정 수준 이상의 임계 질량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중성자 때문입니다. 질량이 늘어나면 부피가 커지겠죠. 그럼, 자연스럽게 원자핵이 쪼개질 때 나오는 중성자가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게 아니라 다른 원자핵을 포격할 확률도 커지죠. 그런데 이렇게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중성자를 다시 안으로 돌려보낼 수만 있다면 임계 질량을 줄일 수 있겠죠?

그래서 중성자 반사재를 씁니다. 베릴륨 같은 원소는 중성자를 반사하는 성질이 있어요. 이런 베릴륨을 집어넣으면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나온 중성자를 베릴륨이 반사해서 계속해서 안에서 원자핵을 포격하도록 만듭니다. 이런 반사재를 이용해서 임계 질량을 4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 우라늄 235 폭탄은 15킬로그램 정도면 충분합니다.

강양구 : 그러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핵배낭은 이런 반사재를 넣어 임계 질량을 낮춘 거군요.

이종필 : 그런 핵배낭은 대부분 플루토늄 폭탄입니다. 플루토늄은 핵 분열할 때 중성자가 세 개 나와요. 그러니까 임계 질량이 우라늄 235보다 적습니다. 반사재까지 사용하면 임계 질량이 6킬로그램 정도예요. 플루토늄은 밀도가 높기 때문에 6킬로그램이 350밀리리터 생수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플루토늄 폭탄은 우라늄 폭탄보다 만들기가 힘들죠.
 

▲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천문학자). ⓒ프레시안(손문상)


핵발전소도 '펑' 하고 폭발할까?

강양구 : 핵발전소도 핵폭탄과 다를 게 없죠? 다만 우라늄 235의 농도만 낮춘 것뿐이죠?

이종필 : 그렇습니다. 핵발전소 핵 연료봉 안에 들어 있는 우라늄 235는 2~5퍼센트 정도예요.

강양구 : 흔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 핵폭탄이 터지듯이 폭발하는 상황을 연상하는데, 절대로 핵발전소가 '펑' 하고 폭발하는 일은 없죠?

이종필 : 핵폭탄처럼 폭발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라늄 235의 농도가 굉장히 낮기 때문이죠. 맨 처음 원자로를 만든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으로 파시즘을 피해서 미국으로 망명한 엔리코 페르미(1901~1954년)입니다. 그런데 페르미는 아예 전혀 농축하지 않은 천연 우라늄을 그 연료로 사용했어요. 천연 우라늄 속에는 우라늄 235가 약 0.7퍼센트 들어 있죠.

핵폭탄과 핵발전소는 알코올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순도가 높은 알코올은 램프가 되잖아요. 불을 붙일 수 있죠. 그게 바로 핵폭탄입니다. 알코올 농도가 4도 정도 되면 음료수처럼 마실 수 있는 맥주가 되잖아요. 그게 바로 핵발전소죠. 맥주에다 아무리 불을 붙이려고 해도 불이 붙지 않잖아요.

강양구 : 우라늄 235의 양이 적을 뿐만 아니라 감속재도 넣잖아요? "경수로" 할 때 그 경수가 바로 감속재죠.

이종필 : 경수는 그냥 보통 물(H2O)입니다. 경수로의 경우에는 이 경수가 감속재, 그러니까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합니다. 제어봉도 중요하죠. 제어봉은 중성자를 흡수하는 카드뮴, 붕소 등으로 만듭니다. 이 제어봉으로 원자로 안에 있는 중성자의 숫자를 조절해서 연쇄 반응이 과하지 않도록 조절하죠.

우라늄 235는 한 번 불을 붙이면 꺼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정말로 효과적인 무기죠. 순간적으로 '쾅' 터뜨리면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는 건 시간문제니까요. 적절히 제어만 할 수 있다면 에너지원으로서도 훌륭하죠. 연료 공급이 용이하지 않은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항공모함, 핵잠수함의 동력으로 핵에너지가 각광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명현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핵에너지를 이용한 우주 탐사선도 선호되죠.
 

ⓒ프레시안(손문상)


강양구 : 하지만 1956년 영국에서 최초로 상업 발전을 시작한 이후에 핵에너지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죠. 반세기가 넘었지만 핵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는 31개뿐입니다. 핵발전소 숫자도 434기에 불과합니다. 1979년 스리마일 섬,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등 사고도 끊이지 않았죠. 우리는 핵에너지를 정말로 통제하고 있는 걸까요?

윤태웅 : 제어 공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례를 하나 소개할게요. 한 공학자가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어 장치를 설계했어요. 그리고 그 제어 장치의 변수를 동료 공학자에게 이메일로 전했습니다. 이 변수를 전달받은 공학자는 확인 삼아 똑같은 조건에서 다시 모의실험을 해보기로 했죠.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제어 장치가 불안정한 거예요. 알고 보니, 이메일로 변수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를테면, 소수점 다섯 자리 이하 숫자를 생략해서 얘기해 준 게 원인이었어요. 아주 작은 양적 차이가 심각한 질적 차이로 나타난 겁니다. 불확실성에 최대한 둔감하게 제어 시스템을 설계해 놓았는데, 그 의도하지 않았던 사소한 변화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거죠.

핵발전소는 굉장히 복잡한 인공물입니다. 사고를 예방하고자 수많은 안전장치들이 상호 작용하죠. 방금 언급한 몇 번의 사고를 거치면서 핵발전소의 안전망은 더욱더 보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보강된 안전망은 핵발전소를 더욱더 복잡한 인공물로 만들었죠.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소 간의 상호 작용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예측 불가능성이 더 커질 수도 있거든요. 체르노빌 사고나 후쿠시마 사고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사고가 핵발전소에서 발생할 가능성이죠.

미션 임파서블, 10만 년의 봉인

이명현 : 이제 화제를 좀 바꿔보죠. 핵발전소의 문제점 중 딱 한 가지만 들라면 방사성 폐기물이죠.

윤태웅 : 맞습니다. 핵발전소 자체는 심각한 사고의 위험은 항상 있지만, 어찌됐든 제어가 가능한 인공물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은 정말로 제어가 불가능하죠.

강양구 :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한 달에 한두 차례씩 시민들과 핵발전소를 놓고서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다들 방사성 폐기물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서 얘기를 해주면 정말로 놀라시죠. 거의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 경악을 하세요. (웃음) 일단 왜 방사성 폐기물이 골칫거리인지부터 알아보죠.

이종필 : 우라늄을 태우면 찌꺼기가 남아요. 그런데 이 찌꺼기가 몸에 굉장히 안 좋은 것들이에요. (웃음)

강양구 : 몸에 안 좋은 수준이 아니죠. (웃음)

이종필 : 네, 찌꺼기 중에는 플루토늄과 같은 방사성 물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플루토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플루토늄 239 같은 경우는 반감기가 약 2만4000년이에요. 반감기는 플루토늄 안에 들어있는 방사능의 절반이 소진되는 기간을 확률로 계산을 해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2만4000년이 지나도 플루토늄은 여전히 위험하죠.

강양구 :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장종훈 옮김, 살림 펴냄)으로 유명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는 대략 반감기가 서른 번 정도는 지나야 외부 환경에 해를 가하지 않는 수준으로 방사능이 떨어진다고 공언했더군요. 그러니까 플루토늄의 경우에는 거의 60만 년 동안 외부와 격리를 시켜야 한다는 얘기죠.

지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해서 건설 단계까지 간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핀란드가 유일합니다. 핀란드는 이곳에 2020년부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영구 저장할 계획입니다. 핀란드는 이곳에서 약 10만 년 정도 플루토늄과 같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외부와 격리되어 있기를 희망하죠.

그런데 10만 년이 감이 오십니까? 10만 년 전에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이명현 : 10만 년 전이면…. (웃음)

강양구 : 우리의 조상인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유럽에서 조우했던 때가 바로 10만 년 전 즈음이라고 합니다. 네안데르탈인이요! (웃음) 그러니까 도대체 10만 년 동안 관리해야 할 위험한 쓰레기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핵발전소를 우리가 용인해야 하는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죠.

핵폐기물 처리에 관심을 갖고서 이것저것 찾아보면 머리가 더 복잡해집니다. 예를 들어, 지질학적으로 100퍼센트 안정된 곳을 찾아서 땅속 깊숙이 방사성 폐기물을 묻었다 칩시다. 그러면 이제 이런 고민이 생기는 거예요. '이곳에는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 묻혀 있으니 접근 금지!' 이런 경고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경고를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17~18세기에 쓰인 한글 작품을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해독할 수 없었잖아요. 언어는 200~300년만 지나면 해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한 곳을 수천 년, 수만 년 후에 지나갈 누군가에게 현대 언어로 경고를 하는 건 정말로 소용없는 짓이에요.

이명현 : 소용없는 짓이죠. (웃음)
 

ⓒ프레시안(손문상)


강양구 : 몇 번 소개하긴 했습니다만, 움베르토 에코는 장클로드 카리에르와의 대담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았죠.

"그냥 나 혼자만 해본 생각입니다. 핵폐기물을 묻되, 매우 희석된 상태, 즉 방사능이 아주 약한 상태의 폐기물을 맨 위층에 두고, 점차로 방사능이 강한 층들을 깔아 나가는 겁니다. 만일 외계인(혹은 미래 세대-인용자)의 실수로 그 폐기물이 손이나 혹은 손처럼 사용하는 다른 기관이 닿는다 하더라도, 그는 단지 손가락 한 마디를 잃게 될 뿐입니다.

만일 더 해본다면 손가락 하나를 잃게 되겠죠. 하지만 그가 더 이상 파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책의 미래>(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 198~199쪽)


오죽하면 에코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았겠어요. 솔직히 저는 회의적입니다. 유일한 방법은 그 지역에 외부인이 접근하는 걸 아예 차단하고, 대를 이어서 그곳의 접근을 막는 집단을 만드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자력 족(族)' 정도의 이름이 적당하겠군요. (웃음) 처음에야 접근 금지를 하는 이유를 알겠지만, 나중에는 '금기'만 남겠죠.

윤태웅 : 저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사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가 해온 일이 그런 거잖아요. 신화, 종교 같은 것도 사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대의 지혜를 전달하는 방법이고요. 방사성 폐기물을 놓고도 그런 방법이 거의 유일한 해법 같아요. 그런데, 과연 수천 년 이상 그런 전승이 가능할까요?

이명현 : 1977년에 발사한 우주 탐사선 보이저 호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보이저 호는 지금 태양계 바깥쪽 어딘가를 외롭게 항해하고 있지요. 이 보이저 호에는 항해 도중에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외계 지적 생명체에게 지구인의 존재를 알리고자 인간 그림, 수학 공식 또 한국어를 포함한 세계 59개 언어의 인사말, 지구 사진 등이 실린 골든 레코드가 실렸습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이 골든 레코드 제작 과정의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우주 공간의 혹독한 상황에서도 골든 레코드가 견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이 골든 레코드는 몇 억 년을 견디도록 만들어졌거든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의 정보를 담은 골든 레코드는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아예 인공 혜성 같은 걸 쏘면 어떨까요? (웃음) 주기적으로 지구를 방문해서 세계 곳곳에 묻혀 있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는 거죠.

강양구 : 상당히 진지한 제안인거죠? (웃음)

이명현 : 그럼요. (웃음)

이종필 : 과거 10만 년과 앞으로 10만 년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어쨌든 우리는 문자도 없었고 지금과 같은 과학기술 문명도 없었죠.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지의 문제는 아까도 언급했듯이 결국 문명의 전승을 안정적으로 어떻게 할지와 연결됩니다. 옛날보다는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강양구 :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놓고서 걱정을 늘어놓으니까, 한 분이 항의조로 이렇게 물으시더라고요. '공무원이 있는데 무슨 소리야!' (웃음) 제발 공무원이 천년만년 방사성 폐기물을 잘 관리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윤태웅 : 지금 이런 얘기 자체가 굉장히 행복한 상황을 전제한 것이죠. 방사성 폐기물 처분 방법을 찾고서, 일단 묻어 놓은 다음의 일을 걱정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과연 앞으로 100년, 200년 동안 핵발전소 또 핵발전소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배출한 방사성 폐기물을 우리가 과연 안전하게 관리하며 생존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면 아득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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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왜 '재처리'에 목매는가?

강양구 : 막상 얘깃거리를 늘어놓고 보니 할 얘기가 산더미 같군요. 방사성 폐기물을 걱정하면 곧바로 "재처리" 운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재처리를 통해서 방사성 폐기물의 부피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세대 원자로의 연료로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의 핵심도 이 재처리를 하자는 것이에요.

이명현 : 미국이 쉽게 용인하지 않을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문제인가요?

이종필 :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때문입니다. 현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 후 핵연료)로 재처리를 하는 나라는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의 6개국뿐입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이른바 '습식 재처리'를 하고 있어요. 이 방법으로는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순도 높은 플루토늄을 쉽게 얻을 수 있죠.

강양구 : 애초 미국 등도 재처리를 했었는데 플루토늄 같은 물질이 테러 집단에게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안 해요. 물론 미국은 이미 충분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더 많은 플루토늄을 축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우리나라에서 하겠다는 건 습식 재처리가 아니잖아요?

이종필 : 네, 우리나라는 미국을 설득하고자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이라는 '건식 재처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재처리를 하면 플루토늄에 다른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어서 핵폭탄의 원료로 곧바로 활용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순물이 많이 섞인 플루토늄을 왜 만들지, 이런 의문이 곧바로 생기고요.

강양구 : 파이로-프로세싱 공장도 약 1개월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설비를 개조하면 플루토늄 단독 추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재처리한 플루토늄 혼합물을 다시 한 번 습식 재처리를 하면 핵폭탄 급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죠. 그러니까 재처리는 사실상 핵폭탄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거예요.

이종필 : 하나 더 있죠. 많은 이들은 파이로-프로세싱이 고속 증식로 개발의 전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고속 증식로는 플루토늄을 원료로 하는 또 다른 방식의 원자로입니다. 한국, 일본, 프랑스 등에서 활발히 개발 중이고요. 일본에서는 몬주 고속 증식로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죠.

윤태웅 : 몬주 고속 증식로는 실패한 프로젝트죠. 국내의 연구자들이 고속 증식로 같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려는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만….

이종필 : 국내에서는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나트륨 고속 증식로를 개발 중입니다. 그런데 나트륨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에요. 만약에 나트륨이 고속 증식로에서 폭발이라도 하면 정말 그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겠죠. 몬주의 예에서 보듯이 고속 증식로는 기술적으로도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죠. 거기다 심각한 안전 문제까지 제기됩니다.

강양구 : 최근에는 우라늄 대신 토륨을 원료로 사용하는 핵발전소 얘기도 나오더군요. 사실 애초 핵 발전을 시작할 때도 우라늄 대신 토륨을 원료로 쓰자는 얘기가 있었죠? 그런데 왜 토륨 핵발전소는 좌초된 건가요?

이종필 : 핵폭탄을 만들 수 없으니까요. (웃음) 위험한 물질은 대개 질량수가 홀수인 거예요. 우라늄 235, 플루토늄 239…. 토륨은 우라늄 238처럼 한 번 불이 붙는다고 계속해서 타는 위험한 물질이 아닙니다. 그러니 발전을 하려면 중성자로 계속해서 때려줘야 합니다. 그러니 초기에는 매력이 없었죠.

우라늄 235는 한 번 불이 붙으면 계속해서 타는 데다, 플루토늄 같은 핵폭탄 원료도 부산물로 얻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최근에 핵발전소의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토륨이 부상하고 있죠. 특히 인도는 토륨 매장량이 많대요. 그래서 인도에서 토륨 핵발전소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명현 : 토륨 핵발전소의 특별한 장점이 있나요?

이종필 : 198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탈리아의 입자 물리학자 카를로 루비아가 있어요. 이 루비아가 최근에 새로운 에너지로 토륨 핵발전소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어요. 루비아의 아이디어는 중성자 가속기로 만든 중성자를 대량으로 토륨에게 쏴주면 상업적인 핵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륨은 우라늄 235와는 달리 계속해서 핵분열 연쇄 반응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 상대적으로 안전하죠. 방사성 폐기물의 문제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알고 있어요.

윤태웅 : 현재의 핵발전소가 문제가 많긴 하지만 재생 가능 에너지로 핵에너지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보는 이들에게는 토륨 핵발전소가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겠군요.

이종필 : 네,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강양구 :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재처리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핵무장 가능성을 높이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거든요.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재처리를 주장하는 분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도 언젠가는 핵폭탄을 가져야 해!' 이런 게 분명히 똬리를 틀고 있고요. 그런 흐름에 비하면 토륨 핵발전소를 대안으로 궁리하는 흐름은 훨씬 더 건강해 보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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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가 포착 못한 불편한 진실

이명현 : 이제 좀 얘기를 정리해야 할 때인 것 같은데요. 우선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현재의 우라늄 235를 원료로 사용하는 핵발전소에 회의적이죠?

이종필 : 핵발전소가 주는 장점과 비교하면 그 단점이 너무 큰 것 같아요. 저는 부산이 고향입니다. 그런데 부산 기장군에 핵발전소 단지가 있잖아요. 만약 이곳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부산 인구만 350만 명이에요. 울산, 포항, 경주도 근처에 있습니다. 정말로 대난리가 날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보수적인 어머니도 막연한 불안감을 느낍니다.

강양구 : 그럴 만해요. 예를 들어, 영화 <해운대>가 2009년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지진해일(쓰나미)이 지나고 나서 뭔가 안도하면서 끝나죠. 그 장면을 보면서 실소했었죠. 지진해일이 해운대를 덮치면 고작 20킬로미터 떨어진 핵발전소 단지는 무사하겠어요? 대재앙이죠. 실제로 2011년 후쿠시마에서 그런 재앙이 일어났잖아요.

윤태웅 : 다른 건 몰라도 방사성 폐기물만 놓고 봐도 핵 발전이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생 가능 에너지가 과연 핵 발전의 대안인지도 의문이에요. 지금부터 투자하고 연구해서 바람, 햇빛 등으로 최대한 효율적인 재생 가능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과연 핵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거예요.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의 일관성 문제도 짚고 싶어요.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이들의 가장 큰 오류는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는 맹신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분명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거든요. 방사성 폐기물은 그 대표적인 예죠. 그런데 이런 모습을 비판하는 핵발전소 반대자는 어떤가요?

혹시 그들도 재생 가능 에너지를 놓고는 똑같은 맹신을 하는 건 아닐까요? 재생 가능 에너지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을 텐데, 모든 걸 낙관적으로만 보려는 역편향이 있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알 수 없는지 또 할 수 없는지를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본자세가 그런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강양구 : 중요한 지적입니다. 기왕에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 문제가 나왔으니까, 저는 좀 다른 얘기를 덧붙여볼게요. 언젠가 서울대학교의 최무영 선생님께서 상기시켜 준 내용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핵발전소를 최신의 하이테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창조"를 외치면서 핵발전소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겠죠.

그런데 사실 핵발전소의 기본 원리는 우라늄을 태울 때 나오는 열로 물을 끓여서 증기를 발생시키는 데서 시작하거든요. 그 증기로 발전기의 터빈을 돌리는 겁니다.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익숙하죠? 맞습니다. 증기 기관이죠. 우라늄을 태우는지 화석 연료를 태우는지만 다를 뿐 물을 끓일 때 나오는 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기본 원리는 화력 발전소와 다를 게 없어요.

그러니 핵발전소는 올드테크입니다. 올드테크가 꼭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이런 올드테크에 집착하는 것이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는 측면은 분명히 있어요. 만약에 지난 수십 년간 핵발전소 개발에 쏟는 노력을 재생 가능 에너지를 비롯한 더 깨끗하고 더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찾는 데에 들였다면 지금 세상은 분명히 달라졌으리라 확신합니다.

독일은 좋은 예죠. 독일은 2022년까지 핵발전소를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단을 내렸죠. 애초 세계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는 나라긴 했지만, 이런 결단 이후에 재생 가능 에너지의 혁신이 눈부셔요. 바람, 햇빛 에너지의 단점을 차근차근 극복하면서 50퍼센트 이상을 재생 가능 에너지에서 얻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어요.

독일이냐? 프랑스냐? 선택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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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 : 그럼, 여기서 우리만의 탈핵 시나리오를 한 번 그려볼까요? 환경 단체나 녹색당에서 주장하듯이 2030년까지 핵발전소를 폐기하면 좋겠지만 현실의 역관계를 고려하면 현실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이 고리를 풀어야 할까요? 혹시 아이디어가 있으세요?

윤태웅 : 찬핵, 탄핵 이렇게 나누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아요. 전력 문제를 고민하는 분들 중에서도 분명히 더 이상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에게 찬핵이냐, 탈핵이냐 입장을 강요하는 게 과연 효과적인 전략일지 의문인 거죠.

더구나 지적 호기심 때문에 핵에너지를 연구하는 이들도 있지 않겠어요? 이들에게 갑자기 '핵 마피아' 딱지를 붙이면 오히려 반감만 더 사겠죠. 핵에너지의 문제점에 대해서 가능한 한 최소한의 합의를 할 수 있는 이들이 연대해서 같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을 찾아보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종필 : 그러니까, 이런 질문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한국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핵발전소의 최대치는 몇 개일까? 지금은 23기가 가동 중이잖아요.

강양구 : 지금도 한국은 국토 단위 면적당 핵발전소 시설 용량을 따져보면 단연 세계 1위에요. 한국은 명실상부한 핵 발전 대국이에요. 미국(100기), 프랑스(58기), 일본(50기), 러시아(33기) 다음이 한국입니다. 인도가 20기로 한국 뒤를 바짝 좇고 있지요. 중국도 18기로 가동 중인 핵발전소가 일곱 번째로 많은 나라죠. 한국은 또 5기를 추가 건설 중이고요.

윤태웅 : 그러니까 이미 핵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상태에서 핵발전소를 더 짓는 건 곤란하니 이제는 대안을 찾아보자, 이런 합의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자는 거예요.

이종필 : 그런 합의가 불가능하다면, 한 발 더 양보해서 건설 중인 5기까지 포함해서 28기까지를 최대치로 하자는 식으로도 안 될까요?

강양구 : 일단 28기 중에는 노후화한 핵발전소가 포함되어 있어요. 이제 그런 핵발전소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럼, 그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핵 발전 비중을 줄일거냐 아니면 그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대신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핵발전소를 이어서 지을 거냐의 문제가 또 제기됩니다. 당연히 핵발전소 옹호론자들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지으려 하겠죠.

바로 이 지점에서 핵발전소를 걱정하는 이들의 마음이 급해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설 용량 기준으로 보면 전체 전력의 35퍼센트 정도를 핵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어요. 지금 수준이라면 핵발전소 외에 다른 대안을 찾는 일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비중이 더 높아져서 50퍼센트까지 육박하면 어떨까요?

프랑스가 좋은 예죠. 프랑스는 현재 전체 전력의 75퍼센트를 핵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프랑스는 '핵발전소 없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좌우 정치가 또렷하게 나뉘는 프랑스의 정치 지형 속에서 좌든 우든 유독 핵발전소를 놓고는 한목소리예요. 강한 프랑스를 위해서는 핵발전소가 꼭 필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한국은 딱 갈림길에 서 있어요. 독일로 가느냐 아니면 프랑스로 가느냐. 물론 현실만 놓고 보면, 프랑스로 갈 가능성이 크죠. 더 늦기 전에 정말로 사회적 대토론이 필요한 시점인데요. 정작 핵발전소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려는 분들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할 따름이죠.

이종필 : 그러니까 지금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로라도 타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거죠. 50퍼센트가 넘지 않는 선에서 유지할 수 있도록.

강양구 : 그런 타협이 안 될 것 같아서 자꾸 딴죽을 걸게 되는데요. (웃음)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짚고 갈게요. 개인적으로 제일 고민하는 핵 사고는 산둥 반도에 지어지는 핵발전소들이예요. 중국은 현재 18기를 가동 중이고 28기를 건설 중인데, 그 중 상당수가 산둥 반도에 모여 있어요.

만약 산둥 반도를 비롯한 중국 동해안의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어떨까요? 편서풍을 타고서 그 방사성 물질이 그대로 수도권을 덮치는 거예요. '황사'가 아니라 '핵사'가 한반도를 덮쳤을 때, 한국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요? 사실 일본의 환경 단체가 한국 동해안의 핵발전소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는 것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죠.

윤태웅 : 그 문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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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 : 그래서 핵에너지의 문제는 한국, 중국, 일본이 공동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죠. 한국이 탈핵의 길로 나아가면 중국, 일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지금 현실이 그렇듯이 그 반대로 서로 치킨 게임을 할 수도 있지만요. 그러다 큰일이 날 테고요.

이종필 :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핵무기까지 넓혀서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사실 중국은 핵무기 보유국이고, 주변 국가들이 보기에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는 한국과 일본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에요. 거기다 북한도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죠. 사실 북한 핵무기는 큰 문제에요. 한반도가 항상 핵전쟁의 공포 속에서 떨어야 하니까요.

거기다 한-중-일 3국이 핵발전소 경쟁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라늄 매장량이 풍부한 북한도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가세하겠죠. 이런 상황에서 핵폭탄이나 핵발전소에 대한 시민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의 인식이 너무 안이한 것 같아요. 일부 진보 진영 역시 마찬가지고요. 탈핵은 핵발전소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거부하는 것까지 포함하거든요.

강양구 : 오늘 얘기를 나눠보니 핵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과학 등 전 분야에 걸쳐서 한국 사회의 수준을 재는 척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얘기 말고도 재생 가능 에너지의 한계, 전기 요금의 문제점 등 할 얘기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일단은 이 정도로 정리하죠. 오늘 주제넘게 말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웃음)

이명현 : 현장에서 10년 넘게 고민하고 있으니, 그 정도는 참아줄게요. (웃음)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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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과 핵발전소는 '동전의 양면'!

'내가 거부했더라도 누군가는 언젠가 핵폭탄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 거야.' 핵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늘 이런 식의 자기변호가 등장한다. 인간이 핵에너지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핵폭탄의 등장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가정 속에 슬그머니 핵폭탄을 만드는데 참여한 자신의 행동은 불가피한 어떤 것이 되고 만다.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이들은 여기에 한 가지 주장을 덧붙인다. '핵에너지는 양날의 칼이야!' 이런 주장 속에는 핵에너지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핵폭탄으로 쓰이면 인류에게 해가 되지만 다른 용도 예를 들어 핵발전소로 활용하면 인류에게 득이 되리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이런 주장 속에서 핵발전소는 인류에게 긍정적인 어떤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원자폭탄 만들기>
 
▲ <원자폭탄 만들기>(리처드 로즈 지음, 문신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리처드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문신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이런 가정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 보여준다. 이 책은 20세기의 물리학 혁명 그러니까 핵물리학,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의 역사부터 시작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거쳐서 히로시마의 지옥까지 말 그대로 원자폭탄이 만드는 전 과정을 샅샅이 훑는다.

특히 이 책의 백미는 과학자의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핵폭탄이 전쟁의 광기 속에서 점점 더 실체를 갖는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는 결코 어쩔 수 없는 소극적 동조자가 아니었다. 그 중 몇몇은 정치인에게 핵폭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건의했고(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누구는 핵폭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로버트 오펜하이머).

이뿐만이 아니다. 전쟁이 끝나기 바로 직전에 이들 중 대다수는 강하게 핵폭탄의 실전 사용을 바랐거나 적어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레오 실라드나 제임스 프랑크 같은 과학자는 폭탄을 일본에 떨어뜨리는 대신 제3국의 참관 하에 무인도에서 실험해 일본의 항복을 유도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에 힘을 실어준 과학자는 극소수였다.

결국, 일본과 물밑에서 종전 협상이 진행 중이던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그 해에만 다수의 조선인을 포함한 20만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 핵폭탄의 고통은 지금까지도 대를 잇고 있다. 그 고통을 확인하고 싶다면, 원폭 2세 김형률의 삶을 그린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전진성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를 읽어보자.

로즈는 이 방대한 책에서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뜻언뜻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대목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유럽에서 전운이 감돌던 1938~39년 과학자들이 조금만 더 세상 돌아가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그 때 과학자들이 핵폭탄의 아이디어로 연결되는 '핵분열'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조금만 늦췄더라면? 그래도 핵폭탄을 만드는 일이 가능했을까? 로즈는 이 질문에 침묵한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과거를 회고하는 우리는 그 질문에 잠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적어도 핵폭탄이 전쟁 중에 등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전쟁 중에 핵폭탄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 후에도 오랫동안 핵폭탄은 가능성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반쯤 미친 전쟁 상태가 아니고서는 맨해튼 프로젝트와 같은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자원을 쏟아 붓는 일은 전쟁 중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한 번 생각해보자.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3000여 명의 과학자가 모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건설 회사와 화학 회사가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해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235'를 농축하고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거대한 공장을 단기간 내에 짓고 가동했다. 과연 이런 일이 평시에도 가능했을까?

로즈는 1986년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고 나서, 핵무기에 초점을 맞춘 세 권을 더 펴냈다. 수소폭탄 개발 과정을 다룬 <Dark Sun>(1995년), 미소 군비 경쟁을 다룬 <Arsenals of Folly>(2007년), 핵무기 폐기를 다룬 <The Twilight of the Bombs>(2010년)가 그 책들이다. (<Dark Sun>은 사이언스북스에서 조만간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원자폭탄 만들기>는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때로는 과학자 혹은 역사학자가 하지 못하는 일을 어떻게 동시에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탄생 과정을 어떤 과학자보다도 유려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과학과 사회가 어떻게 역사로 엮이는지를 어떤 역사학자보다도 더 훌륭하게 보여준다.

<야누스의 과학>
 
▲ <야누스의 과학>(김명진 지음, 사계절 펴냄). ⓒ사계절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를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질문은 이어진다. 만약에 핵폭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195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경쟁하듯이 핵발전소가 지어졌을까? 김명진의 <야누스의 과학>(사계절 펴냄)의 제3장은 바로 이 질문에 짧지만 명쾌한 답을 준다.

김명진은 <야누스의 과학>에서 상업용 핵발전소의 등장을 부추긴 것이 미군 해군의 핵잠수함 개발 노력과 1949년 소련의 핵폭탄 개발 성공으로 인한 미국과 소련의 역관계 변화였음을 보여준다. 핵발전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따위는 애초 공허한 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 해군은 비로소 육군이 독점하던 핵에너지 개발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해군은 핵에너지를 이용한 핵잠수함 개발에 착수해 웨스팅하우스(!)를 끌어들여 잠수함에 부착할 가압경수로를 만든다. 핵분열 반응을 하는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서 물을 끓여 발전기의 터빈을 돌리는 핵발전소의 기본 원리가 핵잠수함에서 구현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이 등장한다. 소련은 1949년 핵폭탄을 개발한 데 이어서, 핵에너지를 이용한 핵발전소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은 소련의 원조로 핵발전소를 도입한 제3세계 국가들이 소련으로 넘어가 이른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사이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는 상황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3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했던 '평화를 위한 원자(Atoms for Peace)' 선언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미국이 보유한 핵에너지 기술을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이 선언은 사실 소련을 의식한 냉전의 무기였던 것이다.

1957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미국 최초의 핵발전소를 둘러싼 사정은 더 적나라하다. 세계 각국에 시급히 미국산 핵발전소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미국은 핵잠수함에서 사용하던 원자로를 그대로 가져다 이 최초의 핵발전소를 만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 원자로의 70퍼센트 이상이 미국의 핵잠수함에서 사용하던 가압경수로인 것이 바로 이런 사정 탓이라니!

흥미롭게도 이미 이때부터 핵발전소의 경제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 1950년대에 이미 상당수 과학자는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놓고서 골머리를 앓았다. 방사성 폐기물은 이미 핵발전소가 시작하던 그 때부터 골칫거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핵발전소를 둘러싼 모든 걱정거리는 뒷전으로 미뤄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핵폭탄의 엄청난 위력을 본 세계 각국이 핵발전소를 핵무기의 원료인 우라늄 농축 기술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장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핵발전소에 그렇게 집착한 이유가 핵무기 확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핵폭탄과 핵발전소는 핵에너지의 명암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동전의 양면이다. 만약 전쟁 중에 핵폭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핵발전소가 세상에 등장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의 선택에 따라서 지금 우리는 핵발전소가 아닌 전혀 다른 에너지원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찰스 페로 지음, 김태훈 옮김, RHK 펴냄). ⓒRHK
그렇다면, 우리 옆에 있는 핵무기나 핵발전소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안전하게 관리만 잘하면 되는 걸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같은 불운이 닥치지 않기를 빌면서?

많은 이들이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일을 '예외 상태'로 생각한다. 하지만 1984년에 초판이 나온 찰스 페로의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최근에 국내에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김태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로 번역 출간됐다)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사고를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을 준다.

특히 이 책은 1장에서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살피며, 이것이 과연 예외 상태였는지 묻는다. 왜냐하면, 스리마일 섬 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 역시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실수에 불운이 다섯 가지 이상 겹치면서 발생한 '정상 상태'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씩 일어났으면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을 일들이 '우연히' 여러 개가 겹치면서 예상치 못한 상호 작용을 통해서 거대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일상생활에서도 많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은 어떤가? 어느 날 정오까지 보내야할 중요한 글이 있었다. 그런데 ①문서를 집 컴퓨터에 저장만 해두고 가져오지 않았다. ②오전에는 대개 집에 있던 동생도 그날은 일찍 학교로 나갔다. ③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는데 길이 막혀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④얼른 집에 달려갔더니 주머니에 열쇠가 없었다. 아침에 열쇠를 챙기지 않고 나온 것이다. ⑤집을 잠그고 나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수업 중인지 휴대전화를 꺼놓았다. 결국 강제로 문을 따고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1시였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도 서너 개의 불운이 겹쳐서 때로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인공물 중 하나인 핵발전소에서 스리마일 섬 사고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페로는 바로 이런 정상 사고의 예를 스리마일 섬 사고를 비롯한 여러 예를 들면서 보여준다.

찰스 페로는 <정상 사고>에서 위험을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 대단치 않은 조치만으로도 감소시킬 수 있는 위험, 둘째 대응하는 데 중대한 노력을 요구하는 위험, 셋째 어떤 편익도 훨씬 능가하는 위험이 그것이다. 일단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인공물을 놓고서 이것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따져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그래서 첫 번째, 두 번째의 경우에는 실패로부터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위험을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위험의 경우에는 그것을 폐기하고, 대신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를 가진 시민들 사이의 논쟁은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핵폭탄과 핵무기로 상징되는 핵에너지와 그 위험을 놓고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제, 우리 세대가 답할 차례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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