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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이 땅의 민주주의 기로에 서다

 
 
 
국정조사로 최소한의 정의 회복될 수 있을까?
 
육근성 | 2013-07-04 09:54: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가 실시되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문이 공개된다.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지만 사실상 하나다. 여권이 정권 연장을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자행한 불법행위인 것이다.

멈춰버린 민주주의 시계

국정원 대선개입과 대화록 불법 유출·공개는 민주국가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기본적 법도와 질서를 유린한 사건이다. 국정원은 대선에서 여당 후보가 유리할 수 있도록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을 했고, 새누리당은 국정원과 공모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선거전략에 활용했다. 대화록을 보관하고 있던 곳이 국정원이니 불법유출도 국정원의 작품인 게 확실하다.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것이다. 숱한 희생과 역경을 헤치며 힘겹게 여기까지 온 이 땅의 민주주의 시계가 저들에 의해 멈춰버렸다.

국정조사와 대화록 공개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운다면 멈춰진 시계가 다시 앞으로 움직일 수 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민주주의 시계는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국정조사로 최소한의 정의 회복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룩한 민주주의인가. 이승만 정권의 관권 부정선거,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전두환 정권의 정권찬탈 등에 맞서 투쟁하며 피 흘린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생각해야 한다. 이들의 피와 희생이 헛되지 않을 최소한의 정의라도 회복돼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부정적이다. 민주주의의 근간과 국기를 유린해 얻은 결과물로 정권을 거머쥔 이들이다. 그런 저들이 자신들의 범행과 치부가 드러나도록 손을 놓고 있겠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상을 덮고 여론을 호도하려 들 것이다.

국정원 사건은 야당의 정치공작에 불과하고, 대화록 공개는 역사적 진실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억지 주장으로 정의와 진실을 덮으려 할 게 분명하다.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작성한 2200쪽의 ‘국정원 범죄 일람표’에는 게시글 977건과 찬반 클릭 행위 1711건이 수록돼 있다. 새누리당은 이 가운데 직접 대선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댓글은 73건 뿐이라며, 대선 개입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우긴다.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낸 '6월 항쟁'/서울 시청앞. 1987년 >

여당의 억지와 괴설 더 심해질 텐데

상식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주장이다. 검찰이 작성한 ‘범죄 일람표’는 불과 서너명을 조사한 결과일 뿐이다. 다수의 국정원 직원과 얼마나 될지 가름도 할 수 없는 댓글 알바가 동원된 사건이다. 또 이들과 연계된 단체가 여럿이라는 의혹도 있다. 제대로 조사할 경우 대선에 관여한 댓글과 게시글의 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수 있다.

또 경찰의 축소수사와 검찰의 부실수사로 이어지는 동안 많은 중요한 증거들이 인멸됐다는 정황이 수두룩하다. ‘뉴스타파’ 등 일부 언론과 네티즌들이 증거인멸을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해도 이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증거인멸 혐의가 뚜렷한 국정원 직원들을 구속하지 않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검찰이다.

검찰의 ‘범죄 일람표’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이게 전부인 양 대선 관련 댓글은 수십개에 불과하다며 거꾸로 야당을 몰아세운다. 국정조사 과정에서 이런 유형의 억지는 더 집요하고 가증스러워질 것이다.

새누리당의 목표는 '결과 없는 국조' '소득 없는 대화록 공개'

대화록이 공개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존재하지 않은다는 게 확실해 졌다. 분쟁지역인 NLL을 평화지역으로 바꾸자며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만들자고 제안한 게 전부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서해공동어로구역’과 대등소이하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여전히 포기란다. “포기라는 직접적인 단어는 없지만 누가 봐도 NLL 포기를 뜻한다”며 자신들의 주장이 맞다고 우긴다.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면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가 아니라 NLL을 지키려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도 괴설을 늘어놓기 바쁘다.

국정조사 내내 새누리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정원 사건이 대선 개입이 아니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밀어붙일 게 분명하다. 대선개입 정황이 분명해지고 박 대통령까지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겠다고 판단할 경우, 온갖 트집을 잡아 시간을 끌고 자리를 뜨는 등의 방법으로 국정조사 기간인 45일을 버텨 ‘결과 없는 국정조사’로 만들려 할 것이다.

대화록 공개도 마찬가지다. 설령 원본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안 한다’ ‘NLL 지키겠다’는 명확한 표현이 나온다 해도 온갖 괴설을 다 동원해 ‘그래도 포기를 뜻한다’고 우길 것이 확실하다. 새누리당의 억지에 밀린다면 국가의 체면과 외교적 손실을 감수한 채 남북 정상회담 기록물을 공개한 게 헛것이 되고 만다.

7월, 이 땅의 민주주의가 기로에 서 있다

7월. 이 땅의 민주주의가 기로에 서있다. 다시 앞으로 나갈 수도 있고, 수십년 뒤로 물러날 수도 있다. 새누리당과 그 배후에 있는 권력의 힘을 이겨내야 방법 이외에는 민주주의의 퇴보를 막을 길이 없다. 민주당이 잘해내야 한다.

또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아는 국민들이 나서야 할 때다. 지금 이때 여당과 그 배후세력들의 만행을 규탄하고 잘못을 엄하게 꾸짖지 못한다면, ‘원세훈 게이트’나 ‘NLL 게이트’보다 더한 일이 권력에 의해 또 다시 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켜온 민주주의인가. 이렇게 유린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 게이트’와 ‘NLL 게이트’ 모두 최종적인 책임은 박 대통령이 져야 할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게 확실해지면 스스로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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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개성기업인들 방북 허용"... 판문점 연락 채널 재개

 

 

"공단관리위도 와서 협의하자"... 공식 채널로 통보

13.07.03 21:58l최종 업데이트 13.07.04 09:36l
안홍기(anongi)

 

 

기사 관련 사진
남북당국회담 결렬과 동시에 다시 끊어졌던 남북 판문점 대화 채널이 3일 오후 재개됐다. 이와 함께 북측은 이날 오후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공단 방문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개성공단에 머물고 있던 근로자들의 전원 철수가 예정된 지난 4월 29일 오후 북축의 실무적인 문제로 귀환이 지연되자,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취재기자들이 마지막 입경을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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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당국회담 결렬과 동시에 다시 끊어졌던 남북 판문점 대화 채널이 3일 오후 재개됐다. 북측은 이날 오후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공단 방문을 허용하겠다면서 남측과의 대화의지를 내비쳤다.

통일부는 이날 "오늘 오후 5시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북한 측으로부터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명의로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 앞 문건을 전달받았다"며 "문건에서 북한측은 장마철 공단 설비·자재 피해와 관련, 기업 관계자들의 긴급 대책 수립을 위한 공단 방문을 허용하겠다고 하면서 방문날짜를 알려주면 통행·통신 등 필요한 보장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북측은 이 문건에서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들도 함께 방문해도 되며 방문기간 중 필요한 협의들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정부는 밝혔다. 정부는 "해당 문건을 개성공단관리위와 입주기업협회에 전달하였으며 여러 가지 관련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대응책을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판문점 연락관 접촉에서 북측은 남측이 제기한 판문점 연락채널 정상화 요구를 받아들여 이날 오후 5시 30분 남북간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남북간 군사긴장 고조 국면이었던 지난 3월 8일 끊어졌다가 지난달 남북당국회담 실무접촉 과정에서 재개됐고, 회담이 무산되면서 다시 끊어졌던 판문점 연락채널이 복원된 것이다.

북측의 이번 제안은 남측과 대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개성공단 잠정 중단 이후 입주기업들 방북요구를 거듭할 때마다 북측은 남측 당국을 배제한 채 관영매체 등을 통해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혀 남측으로부터 '남남갈등을 유발한다'는 반발을 초래했다. 그러나 이번 제안은 당국간의 정식 연락채널인 판문점을 통해 방북허용 의사를 밝혔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북측이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관계자들도 함께 방문해도 되며 방문기간 중 필요한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대목도 주목된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가 남북 공동 구성의 행정기관이지만 위원장을 비롯한 남측 구성원들이 사실상 남측 당국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북측이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된 협의쟁점을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남측에 전달하려는 의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의 이번 제안에 대해 정부는 3일 밤 현재까진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측의 '기업인 방북 허용'에 대해 정부는 '방북을 위해선 남북 당국간 협의가 필수'라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 틀을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측이 판문점 연락채널을 먼저 열어둔 상태여서 정부가 당국간 대화를 제의한다면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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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혐의 배준호씨 노동교화 생활 생생히 보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7/04 09:53
  • 수정일
    2013/07/04 09: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의 특별교화소는 어떤 곳?
 
간첩혐의 배준호씨 노동교화 생활 생생히 보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7/04 [07:5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과 중국에서 1,500명의 조직원을 두고 간첩행위를 한 사건으로 15년의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은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씨의 생활이 구체적으로 소개 됐다.

재일동포 신문인 조선신보는 특파원 기자의 기획 취재를 통해 지난 5월 14일부터 《특별교화소》에서 교화생활을 시작한 미국공민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 1968년 8월 1일생)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하루일과와 대담까지 싣는 등 이례적 보도가 주목된다.

조선신보는 “《특별교화소》 교화인의 일과대로 배준호는 아침 6시에 기상하고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로동하고 있다. 그사이에 점심시간과 2번의 휴식시간이 있으며 하루 8시간로동제가 적용되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과를 보면 6시~7시 세면 및 청소, 7시~8시 아침식사, 8시~10시 로동, 10시~10시 30분 휴식, 10시 30분~12시 30분 로동, 12시 30분~13시 30분 점심식사, 13시 30분~15시 30분 로동, 15시 30분~16시 휴식, 16시~18시 로동, 18시~19시 휴식, 19시~20시 저녁식사, 20시~22시 문화시간, 22시 취침 일요일과 명절은 휴식일로 정해져 있다.”는 구체적 일과 계획표도 공개했다.

▲ 배준호씨가 보안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농사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
이 신문은 “지난해 11월 3일 라선시를 통해 입국하였던 배준호는 반공화국적대범죄를 감행한 것으로 하여 해당기관에 억류되고 수개월간의 예심 끝에 재판에 회부 되였으며 올해 4월 30일 최고재판소에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언도받았다.”며 “지난 시기 조선의 법을 위반하여 억류된 미국공민들은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평양에 와서 사죄, 재발방지약속을 한데 따라 조선측은 인도주의적견지에서 관용을 베풀어 놓아주었으나 이번에 미국공민이 《특별교화소》에서 교화생활을 하는것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 이날 본인의 동의밑에 이루어진 본사기자와의 면담에서 배준호는 자신의 죄행은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이지만 조선정부가 선처해주고 미국정부가 노력해주어 조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고 하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나서주기를 부탁 드린다“는 말을 보도해 배준호씨가 미국으로 돌아 걸 것을 희망하며 미국 정부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 된다.

또한 배준호씨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원래 당뇨병, 고지혈증, 지방간, 동맥경화증상이 있다. 또 10여년전에 허리를 다쳤는데 통증이 재발되였다.》고 하면서 《건강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인내성 있게 잘 견디여내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고 알렸다.

이어 ‘외국인범죄자수용시설’ 이라는 소제목에서 “보초병이 지켜서있는 《특별교화소》 출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어 커다란 중압감이 느껴졌다”며 “교화소 관계자에 의하면 《특별교화소》는 일반 범죄자가 아니라 반국가범죄를 저지른 외국인범죄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관계자의 안내로 배준호가 생활하고 있는 건물로 향하는 길에 잠시후 길옆의 콩밭에서 허리 굽혀 김매기를 하는 중년남자가 보였다. 밭 둘레에는 여러명의 보안원들이 서서 그를 날카롭게 감시하고 있었다.”며 “관계자는 그가 배준호라고 알려주었다. 배준호는 푸른색 교화복을 입고 같은 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왼쪽가슴에는 《103》이라는 번호가 달려있었다.”고 배준호씨의 교화소 노동모습을 소개했다.

조선신보는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특별교화소》에서의 기본노동은 농사일”이라는 말과 함께 “배준호는 5월 14일의 입소 이래 콩 씨를 뿌리고 지금은 두엄(거름)내기와 감자, 강냉이, 콩 등의 밭의 김매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업은 소농기구를 가지고 하는 손노동이다. 농사일을 처음 해본다고 하는 배준호는 《이곳에 있는 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너무 무리하게 일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다. 여기에 상주하고 있는 의사선생님도 계시고 정기적인 검진도 받고 있다.》”는 배준호씨의 발언도 실었다.

이신문은 배준호씨가 노동하는 동안 그가 갇혀있는 감방 안을 돌아볼 수 있었다며 “약 12㎡(약 3평)의 감방에는 침대, 책상, 텔레비젼 등이 구비되고 변소와 세면장이 있으며 창문에는 쇠살창이 설치되어있다.”고 개인의 교화시설의 규모까지 상세히 보도했다.

신문은 “감방 안에는 《교화인의 생활준칙》이 게시되어 있었다.”며 “《교화인의 생활준칙》에는 교화인은 교화소안에 제정된 일과질서 및 행동질서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교화인은 매일 노동과제를 무조건 수행하여야 하며 태공(태만) 할 때에는 해당한 처벌을 받는다, 교화소안의 보안원들에게 예의를 표시하고 그들의 정당한 요구와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여야 하며 불복종하거나 반항하였을 경우에는 해당한 처벌을 받는다고 지적되어있었다.”고 썼다.

또한 “배준호는 지난해 11월에 구속되고 《특별교화소》에 입소하기 전까지는 가족 등 외부사람과의 전화통화가 허용되었으나 《특별 교화소》에서는 전화통화는 규정상 불허 되고 있다.”며 “다만 가족, 친척, 친우들과 서신거래는 할 수 있으며 가족측이 보내오는 차입품을 검사한 기초위에서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관계자에 의하면 배준호가 《특별교화소》 입소 후 교화소 측에서는 배준호가 쓴 편지를 2차례 내보내주었으며 배준호 앞으로 보내온 편지를 5차례 접수하였다”고 한다는 사실도 전했다.

이어 “규정에 의하면 필요한 경우 조선주재 자국의 외교 및 영사일꾼들과 면회할 수 있다. 조선과 미국사이에 국교가 없는 조건에서 주조 스웨리예(스위스)대사관이 대신하여 배준호를 1차례 면회하였다”고 전하고 “배준호는 조선에 입국하여 구속된 이후 전화통화, 편지, 면회들을 통하여 거듭 자신이 풀려나올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게재했다.

아울러 “이번 면담에서 더 할 말이 있는가 하는 기자의 물음에 배준호는 7월 4일에 아버지가 칠갑을 맞는다며 외아들로서 꼭 찾아가 축하해드리고 싶다, 부모들이 많이 걱정하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심려를 덜어드리고 싶다”고 말한 소식을 강조했다.

조선신보가 미국공민 배준호와 대담요지 내용 전문을 게재한다.

반공화국적대범죄를 감행하여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언도받고 지난 5월 14일부터 《특별교화소》에 수용된 미국공민 배준호가 6월 26일 본사기자와의 면담에 응하여 현재의 교화생활과 심정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일문일답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 건강상태는?

▲ 원래 당뇨병, 고지혈증, 지방간, 동맥경화증상이 있다. 또 10여년 전에 허리를 다쳤는데 통증이 재발되었다.

-여기서 어떤 일과를 보내고 있는가.

▲ 주로 농사일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8시간 노동하고 있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고 점심시간도 있다. 농사일은 평생 처음으로 하는 일이다. 이곳에 있는 분들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너무 무리하게 일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다. 여기에 상주하고 있는 의사선생님도 계시고 정기적인 검진도 받고 있다.

-지난해 구속된 이후 스웨리예(스위스)대사관 성원과 여러 번 만났다고 하는데.

▲ 제가 공화국법을 위반하여 조사받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했고 조사받고 있는 내용의 골자를 이야기했다. 어떤 내용으로 기소가 될 것이며 결국 재판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재판(4월 30일)을 받게 되였고 여기에 들어와서 생활하게 된다는 것을 스웨리예(스웨덴)대사관 성원을 통하여 가족들에게 알렸다. 편지로도 여기에 있는 상황들을 알렸다.

제가 조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미국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야기도 하였다. 재판 후에는 사면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했는가.

▲ 2번 했다. 재판전에는 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렸다. 재판 후에는 사면을 위해서 노력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는 교화소로 입소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못했다.

▲ 조선신보 기자와 대담 중인 배준호씨는 "하루 속히 가족에게 돌아갈 수있도록 조선정부에 선처를 구하고 미국정부에는 석방 될 수 있도록 노략해달라고 요청했다. 배준호씨 왼쪽 옆에는 난방을 할 수있는 보일러 시설이 보인다. ©


-가족들에게 전하고싶은 말이 있는가.

▲ 비록 건강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여기서 인내성 있게 잘 견디여 내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면 좋겠다.

(가족들은) 조속히 좋은 조치가 공화국정부와 미국정부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력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 기도해주시고 사면요청을 공화국정부와 미국정부에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재판에서 변호인의 변호를 거절하였다고 하는데.

▲ 3개월에 걸친 예심이 있었다. 라선시에 입국해서 조사를 받으면서 제가 법을 위반한데 대한 진술서를 썼고 예심과정에서도 그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굳이 재판에서 따로 변호인을 선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 7월 4일이 저의 아버지의 70살 생일이다. 공화국정부에서 선처해주시고 미국정부도 더욱더 노력해주셔서 조속한 시간 내에 제가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다. 제가 외아들로서 꼭 (부모가 사는 미국 씨애틀에) 가서 아버지를 축하해드렸으면 한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배려와 보살핌 속에서 잘 지내고 있다.

제가 한 행위는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들이지만 원만히, 조속히 해결되어 가족들을 다시 만났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다.

부모님들이 많이 걱정하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위로해 드리고 싶고 제 걱정 때문에 어려워하실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염려, 심려를 덜어드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탁드리겠다. 좋은 결과가 있을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나서주시고 노력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한편 조선신보가 이례적으로 조선의 노동교화소를 방문 취재하며 배준호씨와 대담을 한 것은 조선이 반인권 국가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과 더불어 배준호씨가 미국정부에 자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의지를 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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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때 내 몸을 씻겨준 계엄군

 

 

5·18때 내 몸을 씻겨준 계엄군

 
최상용 2013. 07. 02
조회수 5319추천수 0
 

 

518 나경택 사진1-.jpg

5·18 광주민주항쟁 학생을 구타하는 계엄군. 사진 <한겨레> 자료

 

 

[나를 울린 이사람]·

 

5·18 광주민주항쟁 이후 교도소 안에 갇혀 있던 당시 투옥과 고문으로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교도소 밖에서 들려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굉음이 마치 돌아갈 수 없는 세계의 아우성 같았다.

 

 밤이면 장난처럼 자행되는 계엄군의 구타와 폭언은 스물한 살 청춘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공포와 충격 그 자체였다. 군인들이 내 뱉는 비속어와 은어 자체를 이해 못해 수없이 구타당하기도 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곳은 창문하나 없는 창고였다. 안쪽 한 귀퉁이에 임시로 설치한 소대변통에서 풍기는 악취때문에 더운 날엔 군인들도 들어오길 꺼렸다.

 

 그렇게 한 달 여를 세수는커녕 씻지도 못하고 지내다보니 피부병의 일종인 전염성 강한 ‘옴’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다른 수감자들과 격리되었고, 곧이어 다른 곳으로 이송되었다. 그곳 역시 여건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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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상용 소장. 사진 조현 기자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행운이 찾아들었다. 당시엔 폭군이나 다름없었던 계엄군 중에 천사와도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가 매일 아침과 저녁, 주저하는 나를 간이목욕탕으로 데려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말끔하게 씻어 주는 게 아닌가! 같은 처지의 동료들도 행여 옮길까봐 날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그것도 맨손으로! 온몸 구석구석 꼼꼼히, 마치 세례(洗禮)의식이라도 치르듯. 매번 겸연쩍어 내 스스로 씻는다고 하면 자애로운 형처럼 입가에 맑은 미소를 지으며 “그냥 있어, 괜찮아!”라고 위로했다.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얼마나 콩닥거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트라우마를 지우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변변한 약도 먹지 못했는데 채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말끔하게 나았다. 당시 그의 계급은 상병, 이름은 차재욱! 그립고 보고 싶다. 30년도 더 지났지만, 지옥 속에서 만난 그 천사는 아직도 내 가슴에서 훈훈한 자애로움과 사랑으로 자라나고 있다.

 

최상용(인문기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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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 폭로가 보여준 것: 언론의 타락과 미국의 몰락

 

 

[박인규의 지구촌 분석] "관제언론으로 추락한 美 언론"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03 오전 7:14:20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첫 조합원 대상 서비스로 6월 28일 뉴스 큐레이팅 서비스 <주간 프레시안 뷰> 준비호 1호를 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정치, 경제, 국제, 생태, 한반도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뽑은 뉴스다. 단편적인 정보가 아닌 '흐름으로서의 뉴스', '지식으로서의 뉴스'를 추구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발행되는 조합원에게 무료로 제공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유료인 콘텐츠다. <주간 프레시안 뷰>를 보고자 하는 독자는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된다. 7월 한달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8월부터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지난 28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에 실린 글의 일부를 게재한다. <편집자>


지난 6월 23일 홍콩을 떠난 '세기의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6월 28일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공항의 환승구역에 머무르면서 중남미 국가인 에콰도르로의 망명을 추진 중입니다. 그의 '배신행위'에 분노한 미 당국이 22일 그의 여권을 취소하는 바람에 언제 그가 모스크바 공항을 떠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지난 9일 그의 폭로가 몰고 온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입니다. (☞ 관련 기사 : "구글·페이스북도 NSA 감시망…美 최고 정보기밀 폭로")

이번 폭로로 유일 초강대국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큰 곤경에 처한 모습입니다. 한때 미국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오바마'란 오명을 뒤집어쓰며 지지율이 급락했다고 합니다. (☞ 관련 기사 : '스노든 폭로'에 지지율 급감…"조지 W. 오바마")

스노든의 폭로 직후인 지난 11~13일 <CNN>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달 전 53%에서 8% 포인트나 떨어진 45%로, 18개월 새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하는군요. 특히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의 지지율은 한 달 만에 17% 포인트나 떨어지면서 48%에 그쳤다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전통적 우방국인 독일마저도 미국에 등을 돌렸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9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베를린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경제 위기와 시리아·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앞서 미국의 첩보 활동 문제를 우선으로 다뤘다"면서 "안보를 위한 정보수집이라도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독일 <슈피겔>의 기사 제목은 "앵글로색슨에 포위된 독일 안보가 위태롭다"였습니다.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사찰에 대한 독일인들의 분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 관련 기사 : "앵글로색슨에 포위된 독일 안보가 위태롭다")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인터넷감시국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중국도 미국 비판에 나섰습니다. 관영 <인민일보>는 "미국은 인권의 모범국에서 프라이버시를 도청하고, 국제 인터넷망에 대해 집중된 권력으로 조작했고, 다른 나라들의 네트워크를 침범한 미치광이"라고 맹비난하는 동시에 스노든에 대해서는 "미국의 위선을 찢어발긴 대담함을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나아가 홍콩시립대 조지프 청 교수는 "미국이 중국을 해킹해왔다는 폭로로 서방권은 사이버 전쟁에서 도덕적 우위를 상실했다"면서 "중국은 향후 대미 협상에서 이번 폭로를 외교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관련 기사 : '세기의 고발자' 처리 놓고 미·중 관계 삐걱?)

스노든의 폭로로 세계의 지도국가를 자처해온 미국은 우방국들의 신뢰를 잃는 한편 미래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대한 도덕적 우위마저도 상실한 셈입니다.

앞으로 스노든 폭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다음 두 가지는 확실히 드러난 것 같습니다. 첫째, 패권국가 미국의 몰락을 더욱 재촉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 우방국 독일 등의 반발과 경쟁국 중국 등의 비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있어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렸던 에콰도르 등 중남미 국가들이 스노든에 망명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언론인 스티븐 킨처는 지난 25일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러한 상황은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놀랄 만한 변화라고 지적했습니다. (☞ 관련 기사 : Latin America is Ready to Defy the US Over Snowden and Other Issues)

킨처는 <뉴욕타임스> 특파원 출신의 언론인으로 미 CIA에 의한 과테말라 아르벤즈 정권 전복(1954년)을 고발한 <쓰디쓴 열매(Bitter Fruit)>의 공저자이며 19세기 말 하와이에서 2003년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의한 13개 외국 정권 전복 사례를 다룬 <전복(Overthrow)>(2006년)의 저자입니다.

그에 따르면 '반역 및 간첩죄'로 미 사법당국의 분노에 찬 추적을 받고 있는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으로부터 강력한 외교적 경제적 제재를 받을 것이 분명한데도 망명 수락 용의를 밝혔다는 것은 20세기의 중남미국가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1973년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에서부터 80년대 그레나다, 파나마 침공 등을 생각해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킨처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차베스와 같은 일부 떠버리 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다수 중남미 주민이 공유하는 열망이라고 지적합니다. 1990년대 미국의 요구에 따라 받아들인 신자유주의 체제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결국, 한때 중남미 국가들을 쥐고 흔들었던 미국의 영향력이 형편없이 추락했다는 얘기입니다.
 

▲ 대니얼 엘스버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폭로"라고 평가한 NSA 내부고발자가 <가디언>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신분까지 스스로 공개했다. 사진은 <가디언>이 제공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인터뷰 모습.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열렬한 사회주의자로 지난 2009년 워싱턴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 미군 기지를 폐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미움을 받고 있는 또 한 명의 고발자,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에게 망명지(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토록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 있었던 것은 자국민들의 지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 게 킨처의 분석입니다.

물론 에콰도르 정부도 스노든 망명 허용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리카르도 파티노 에콰도르 외무장관은 26일 "어산지의 망명 허용 결정에 두 달이 걸렸다. 이번 경우에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과연 에콰도르는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들일까요? 그 경우 미국의 대응은 어떤 것일까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관련 기사 : Edward Snowden 'not likely to gain asylum in Ecuador for months')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주류언론의 비판정신이 완전히 실종됐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MSNBC의 PD 출신으로 현재 미 이타카 대학의 저널리즘 교수로 있는 제프 코언은 이번 스노든 사건에 대한 미국 주류언론의 보도 태도가 관제언론과 다를 바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 관련 기사 : Snowden Coverage: If US Mass Media Were State-Controlled, Would They Look Any Different?)

스노든의 폭로를 공공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국정부를 비판하기보다는 그를 매국노로 단죄하는 데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뉴욕타임스> 기자이며 CNBC방송의 단골 토론자인 앤드류 로스 소르킨은 "젠장, 우리는 일을 완전히 망쳤어. 심지어 스노든이 러시아로 도피하도록 놔뒀잖아"라고 발언했다고 합니다. 코언 교수는 소르킨이 '우리'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언론인이 아니라 CIA나 FBI에 근무하는 정부관리로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주류언론은 스노든에 대한 옹호 발언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 토론의 경우 "스노든은 매국노니까 당연히 감옥에 쳐넣어야 해"(강경파)와 "그의 의도는 선했지만 그래도 잡아넣어야 한다"(온건파)로 갈려 논쟁하는 정도라는군요. <타임> 여론조사 결과 '스노든의 폭로가 좋은 일'이라는 반응이 미 국민의 53%, 특히 18~34세에서는 70%에 이르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여론은 주류언론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코언 교수는 스노든의 폭로를 <가디언>에 특종 보도한 글렌 그린왈드 기자가 블로거 출신임을 지적하면서 이제 미국에서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은 독립언론의 몫이 됐다고 말합니다. 그린왈드는 독립 블로거 출신으로 미국 인터넷언론 <살롱>을 거쳐 지금은 <가디언>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말한 소르킨은 그린왈드 기자를 구속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고 하는군요. 이른바 언론인이, 진실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다른 언론인을 구속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미국 주류언론의 실상입니다.

사실 요즘 미국의 주류언론은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하고(<뉴욕타임스>)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킨(<워싱턴포스트>) 1970년대와는 매우 다릅니다. 코언 교수의 지적대로 관제언론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2003년 미 이라크 침공의 중요한 근거가 된 <뉴욕타임스>의 '이라크 핵무기 개발(우라늄 농축)' 보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이 신문의 주디스 밀러 기자는 특종이라는 정부 관리의 유혹에 넘어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이를 보도함으로써 이라크 침공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은 아프간 등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전쟁을(이른바 Long War) 계속함으로써 귀중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라크를 해방함으로써 대중동지역을 미국의 영향권 안에 두어 세계 패권을 영구화하겠다는 부시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미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입니다. 2001년 9.11 이후 미국이 군사적 일방주의에 나서게 된 데는 부시 정부의 전쟁 정책을 독립적으로 검증하고 비판하기보다는 무비판적으로 따른 주류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언론의 타락이 미국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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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공돈 취급하는 분담금도 혈세다

 
 
 
분담금 통제권한 없어 오용-전용 묵인해 줘
 
육근성 | 2013-07-03 09:53:3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6월 국회 마지막 날(2일) 국회 외교통일위가 한국정부가 부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이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해외미군 주둔비용 보고서’를 공개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취합한 자료를 민주당 박주선 의원이 공개한 것이다.

미 상원, “한국이 미군에 지급하는 분담금은 사실상 공돈”

이 보고서에서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군이 방위비분담금을 오용하거나 전용한 사실이 있다’며 “(주한미군이) 한국이 지급하는 분담금을 사실상 공돈(free money) 취급했다”고 꼬집은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기지 내 2개의 식당을 통합하고 리모델링할 경우 연간 운영비를 29만 달러 이상 절감할 수 있다며 140만 달러를 들여 공사를 했지만, 결과는 연간 운영비가 5만3000달러 더 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주한미군 재배치로 새로 건설 중인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에 한국정부가 지급한 분담금 중 1040만 달러(약 115억원)를 미2사단 박물관을 짓는 데 사용하기로 한 것도 문제다. 미 상원 보고서는 “분담금을 박물관 건축이 아니라 업무상 필수적인 곳에 사용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라고 비판했다.

분담금 산출·관리 방식 ‘엉망’, 굴욕스럽기까지

분담금이 이토록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분담금 산출과 관리방식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굴욕스럽기까지 하다. 한국정부가 부담해야 할 분담금은‘예산 소요기반’이 아니라 ‘총액’으로 책정된다. 한미 양국이 5년에 한차례씩 협상을 통해 분담금 총액을 결정한 뒤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계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돈을 줬으면 사용내역에 대한 관리와 사후 감사권 정도는 행사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정부에게 통제권한이 전혀 없다. 분담금이 지급되면 그것으로 사실상 끝이다.어떻게 사용되는 지 관리가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게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로 미군을 위한 박물관을 짓겠다고 하는 거다.

방위비분담금 협정은 1991년부터 시작됐다. 2009년 1월 체결된 제8차 협정이 가장 최근이다. 첫해 1073억원이었던 분담금 규모가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과 2006년을 제외하고 20년 동안 계속 늘어나 현재 8695억원(2013년)에 달한다. 주한미군 1인 2600만원을 지원하는 셈으로 2001년(1300만원)보다 2배나 많아졌다. 국방비 대비 방위비분담금 점유율도 그간 2배 늘어나 2.78%를 차지한다. 미국 측의 계속되는 인상요구로 내년에는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방위비분담금, SOFA 규정에 어긋나

군사건설비,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군수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지원되는 방위비분담금 자체가 논란거리다. 주둔군지위협정(SOFA)에는 한국 측이 이런 분담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 분담금의 근거는 1991년 체결된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pecial measures agreement/SMA)이다. SOFA 제5조(시설과 구역-경비와 유지)에 근거한 것이라지만 5조에는 건설비, 인건비, 군수비 등의 주둔비용을 미국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돼있다.

SOFA 조항과 SMA(방위비분담 특별협정)가 서로 상충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특별(special)’ 이라는 용어를 넣었나 보다. 주한미군에게 ‘아주 특별한 대우’를 해주는 협정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미국정부는 한국이 부담하는 분담금 규모가 적다고 말한다. 전체 주둔비용의 40% 정도만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며 적어도 5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게 미국 측의 주장이다. 계산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기지 무상임대, 저평가된 임대가치, 한국정부가 부담하는 미군 이전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70% 이상일 거라는 게 시민사회단체의 판단이다.

아주 특별한 특별협정, 'SMA'

제9차 SMA 체결을 위한 협상이 어제(2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됐다. 어느 때보다도 분담금 증액 요구가 거셀 것으로 보인다. 국방예산 대규모 삭감을 포함한 시퀘스터(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이 발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급한 분담금 미집행액을 전용할 수 있도록 양해해준 제8치 SMA협정/2009.1>

그간 한국정부가 준 분담금의 미집행액이 1조원을 넘는다. 그런데도 증액을 계속 요구하는 이유가 있다. 미집행분을 축적해 동두천 미2사단(켐프 케이시) 이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분담금을 이전비용으로 전용하려는 것이다.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한국정부가, 미2사단 이전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하도록 양국이 합의한 바 있다.

 

 

분담금 전용은 한국 실정법을 넘어서는 행위일 뿐 아니라 SOFA 규정에도 어긋난다. SOFA제7조에는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과 군속 등은... 대한민국 안에서 대한민국 법령을 존중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MB 분담금 미집행액 전용 양해, 오바마 당선·취임 ‘선물’

미국이 분담금 전용이라는 초헌법적인 특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 덕분이다. 일각에서는 2011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대사관 비밀전문(2007.4.2)을 들어 노 전 대통령이 분담금 전용을 결정해준 거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실이 아닌 게 분명하다.

비밀전문에 의하면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대사는 “(미군 기지 이전비용과 관련해) 한국정부의 부담분은 전체 비용의 93%로 추산된다”라는 내용을 본국에 보고한다. 이것은 당시 한국정부가 밝힌 50% 부담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버시바우는 그 이유로 ‘한국정부의 계산방식’을 꼽았다.

그는 “방위비분담금 미집행액 전용분과 민간투자(BTL: 한국의 민간업자가 건물을 지어준 뒤 일정기간 임대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 부분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비판여론을 의식해 우리 측 부담분을 축소해 말한 것이다.

분담금 전용 문제를 놓고 미국과 노무현 정부가 옥신각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버시바우가 “이같은 사실(한국정부가 실제 이전비용의 93% 부담한다는 내용)을 한국 국회와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우리 정부에 요구한 것이 그 증거다. 미국 측은 한국정부로부터 분담금 전용을 명문화하는 조치를 받아내려고 애쓴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게 주는 방위비분담금도 국민의 혈세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미국은 만사형통의 기쁨을 누린다. 오마바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2009년 1월 15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국 측에 통큰 선물을 제공한다. 미국측이 그토록 원했던 분담금 미집행액 전용 뿐 아니라 기지 이전에 따른 공사선택권까지 보장해 줬다. 미국 측에 설계·감리비까지 챙겨주기 위해 기지 이전 사업비의 12%을 현금으로 지원하기로 하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이런 내용을 담은 각서에 MB가 서명한 지 5일 후 오마바 대통령의 취임식이 거행됐다.

미국이 기지 이전 비용 확보를 위해 분담금 미집행분을 축적해온 건 불법행위다. 원칙대로라면 축적분 1조1000억원은 국고로 환수돼야 한다. 불법을 용인한 이명박 정부도 문제지만, 현재 SMA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또한 전 정권의 모습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2011년부터 현금 12%와 현물 88% 등 한국 정부의 100% 지원에 의해 미군기지 이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는 SOFA 규정에 어긋나고, 기지 이전 비용 지원에도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가. 미국에게 주는 방위비분담금도 국민의 혈세다.

(최상단 사진 출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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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장비관 견문록(1) ‘불새’를 쏘는 ‘무적의 첨단전차’

 

 

 
 
[한호석의 개벽예감](68) 중무기실에 전시된 북의 전차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7/02 [21:51] 최종편집: ⓒ 자주민보
 
 

나는 왜 거기에 갔는가?

초조한 느낌이 밀려왔다. 내가 평양을 방문한 목적이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참관인데, 내게 주어진 참관시간이 오전 9시 30분부터 정오까지 2시간 3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을 안내자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매우 방대한 규모의 무장장비관을 2시간 30분 동안 전부 돌아보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점심식사도 거르고 하루 종일 참관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방도를 궁리하고 있을 때, 나를 태운 승용차는 어느덧 만경대구역 청춘거리에 들어서고 있었다. 무장장비관은 그 거리 북쪽에 있었다. 무장장비관으로 통하는 길목은 청춘거리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다.

승용차가 무장장비관 경비소 앞에 이르자, 기관단총을 등에 멘 인민군 경비병이 다가와 신원을 확인한 뒤에 통과를 허락하여 구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깔끔하게 잘 꾸며진 정원은 아늑한 휴양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초조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승용차에서 내려서니 그곳은 무장장비관 주차장이다.

그런데 주차장 바닥 전체에 잔디밭을 펼쳐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잔디열풍은 거기서도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다. 참관자들을 태운 승용차나 버스가 수시로 드나드는 주차장 바닥에 잔디를 심으면 차바퀴에 짓밟혀 자랄 수 없으므로, 어른 주먹이 들어갈 만큼 큰 동그란 구멍을 가로세로 줄맞춰 수없이 뚫어놓은 넓은 판을 주차장 바닥 전체에 깔아 놓았는데, 그 수많은 구멍들에서 고개를 내민 잔디가 주차장을 온통 푸른 주단으로 덮어주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색적인 잔디주차장에서 걸음을 옮겨 정원에 나있는 길을 100m 정도 걸어가니, 사진에서 본 무장장비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50명쯤 되어 보이는 북측 근로자들이 나보다 한 발 앞서 무장장비관 현관에 도착하여 참관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나의 무장장비관 참관을 안내할 해설강사가 현관문을 열고 나와 내게 다가왔다. 해설강사는 뜻밖에도 여성군인이었다. 군복을 입고 총기어린 눈매로 내게 인사하는 그녀의 화장기 없는 순박한 얼굴이 고와보였다. 김윤희라고 적힌 그녀의 명찰에 내 눈길이 잠시 머물렀다. 무장장비관 해설강사는 모두 여성군인들이라고 한다.

북의 참관자들은 한 번에 50명씩 집체적으로 참관하는데, 해외동포 방문자인 나는 단독으로 참관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이지만, 해외동포사업국으로부터 사전연락을 받은 해설강사 김윤희 동무는 내가 참관 도중에 이것저것 질문할 것을 예상하여 답변준비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나에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해설강사의 말에 따르면, 외국인은 무장장비관을 참관할 수 없다고 하니, 인민군 군인들과 북측 근로자들, 그리고 해외동포들만 참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언젠가 방북할 남측 동포들에게도 참관기회가 열려있겠지만, 요즈음처럼 남북관계가 최악상태에 빠진 정세에서는 남북왕래라는 말도 꺼내기 힘들고, 긴장된 정세가 풀려 남측 동포가 평양에 간다 해도 남측 정부당국이 무장장비관 참관을 불허할 것이므로 남측 동포들의 참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내가 무장장비관을 참관한 목적에 대해 한 마디 하련다. 통일학을 연구하는 나의 시각으로 보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대북정보가 북측 외부세계에 넘쳐나고 있다. 그렇게 된 원인은, 내외 반통일세력이 왜곡된 대북정보를 유포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민중의 희망과 요구를 가로막으려는 데 있다. 대북정보의 왜곡과 유포는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내외 반통일세력은 각종 대북정보를 전방위적으로 왜곡하는데, 군사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북군사정보에 관한 저들의 왜곡이 가장 심하다. 특히 미국이 대북전쟁연습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밀어가고, 북이 그에 맞서 반미전면대결전을 선포하고 그에 따른 군사활동을 전개하는 오늘의 군사상황을 파악하려면 북의 군사문제에 관한 정보가 필수적인데 왜곡된 대북군사정보가 민중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민중의 시야를 가린 왜곡된 대북군사정보를 걷어내고 올바른 상황판단과 정세인식을 추구하려는 요구, 바로 그런 절실한 요구가 나를 무장장비관으로 떠밀었다. 내외 반통일세력이 왜곡한 대북군사정보를 비판하고 논박하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면 주관적 해석보다 객관적 사실이 필요한데, 나는 무장장비관 참관이야말로 그런 객관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믿었던 것이다.

놀라움 속에 참관한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

해설강사 김윤희 동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인민군 군인들이 불과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공기간 동안 총부지면적 22만 평방미터, 연건축면적 5만 평방미터의 무장장비관을 “불이 번쩍 나게” 지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처럼 방대한 전시장의 어느 한 귀퉁이밖에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섭섭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 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꼬박 3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전시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해설을 듣고, 때로 질문도 하고 수첩에 기록도 하였으나, 너무 아쉽게도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 두 곳밖에 참관하지 못하였다. 항공군무기를 전시한 전시실, 해군무기를 전시한 전시실, 특수군무기를 전시한 전시실, 전자도서관, 그리고 ‘적군무기’를 전시한 ‘세계의 병기관’에는 가보지도 못했고, 전시구역이 너무 넓어 관람용 소형열차를 타고 돌아보는 야외전시장도 가보지 못했다. 무장장비관에 있는 그 모든 전시장을 참관하려면, 꼬박 사흘이 걸릴 것이다.

▲ <사진1> 무장장비관 정면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예상했던 대로, 무장장비관 안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었다. 나의 단독참관을 위해 애쓴 해설강사 김윤희 동무와 함께 건물 밖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싶었건만, 옥외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되었다는 말을 듣고 생각을 접었다. 무장장비관 현장사진을 한 장도 싣지 못한 견문록을 쓰려니 독자들에게 좀 미안해서, 나는 뉴욕에 돌아와 인터넷 사진자료를 뒤진 끝에 관련사진 몇 장을 찾아냈다. 이 글에 실린 무장장비관 사진들 가운데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사진이 있지만, 그 모든 사진들은 <조선중앙통신(KCNA)>에 보도된 사진 또는 <조선중앙텔레비죤(KCTV)> 방영화면을 잡은 사진들이다.
▲ <사진2> 무장장비관 전자도서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사진1>은 정원에서 무장장비관 정면을 촬영한 것이고, <사진2>는 무장장비관 전자도서실을 촬영한 것이다. 나는 참관시간이 너무 부족하여 전자도서관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 사진을 보면 전자도서관이 고급 내장재로 꾸며졌고, 최상급 설비를 갖추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무장장비관의 여러 전시실들 가운데 가장 넓고 큰 전시실은 중무기실이다. 크고 무거운 각종 중무기를 통째로 들여놓아야 하였으므로 중무기실을 그처럼 넓고 크게 꾸려야 했을 것이다. 중무기실에 들어선 나는 방대한 전시규모와 다종다양한 중무기들을 보고 놀랐다. 중무기실에서 내가 살펴본 무기들은 여러 종류의 자행포(자주포)와 방사포(다련장로켓포), 여러 종류의 땅크(전차)와 경땅크, 여러 종류의 장갑차, 여러 종류의 반땅크로케트(대전차미사일)와 지상대공중로케트(지대공미사일) 등이다.

주목하는 것은, 위에 열거한 모든 중무기들이 북이 자체로 생산하여 실전배치한 자국산 무기들이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외국산 무기는 한 점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중무기실에 전시된 각종 무기들을 돌아보면, 북의 중무기 발전추세를 알 수 있다.
▲ <사진3> 무장장비관 중무기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사진3>은 무장장비관 중무기실로 들어가는 입실방향에서 촬영한 것이고, <사진4>는 중무기실에서 나가는 퇴실방향에서 뒤를 돌아보며 촬영한 것이다. <사진3>에서 보이는 것처럼, 중무기실 중앙통로를 중심축선으로 하여 왼쪽에 육중한 전차와 장갑차들이 전시되었고, 오른쪽에 포신을 치켜든 자행포와 방사포들이 전시되었다. 하지만 사진촬영각이 제한되어서, <사진3>에는 그 많은 무기들 가운데 중앙통로 부근에 전시된 일부만 보인다. <사진3>에서 보이지 않지만, 중앙통로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에 각종 지상대공중로케트들이 전시되었다.

무장장비관 전시무기들 앞에는 해설판이 하나씩 놓여있는데, 해설판마다 해당무기의 공식명칭이 적혀 있다. 이번에 무장장비관을 참관하면서 나는 북이 보유한 각종 무기의 공식명칭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해설판마다 무기의 제원이 적혀 있는데, 군사기밀에 속하는 성능지표에 대해서는 “비공개”라고 적어 놓았다.

그런데 한 군데 예외가 있었다. 북에서 ‘주체식 미싸일 및 요격미사일종합체’라고 부르는 지상대공중로케트 발사체계에 속한 자행발사대(발사차량) 앞에 놓인 해설판은 다른 해설판보다 조금 큰데, 거기에 비교적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무장장비관의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을 3시간 동안 돌아본 참관과정은 내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참관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조선인민군이 북측 외부세계의 섣부른 추측을 뒤집어엎는 강력한 무기들을 보유하였으므로 북은 재래식 무기만 가지고서도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북이 그처럼 강력한 재래식 무장에 더하여 핵무장까지 갖춘 것을 생각하면,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미국군과 격돌할 반미전면대결전에서 인민군이 능히 이긴다고 자신만만하게 공언하는 것도 빈말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무장장비관의 중무기실과 전략로케트관에 전시된 각종 무기들에 관한 나의 서술은 무장장비관 전시실 해설판에 적힌 내용, 그리고 해설강사의 해설과 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그 이외에도 북의 보도기사내용, 그리고 북측 외부세계에 알려진 정보를 첨가한 것이다. 무장장비관에 가서 직접 파악하고 쓴 이 견문록은 이제껏 북측 외부세계에 알려진 인민군 무장력에 관한 정보들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북과 미국의 대결구도를 중심으로 조성된 군사정세를 바라보는 전문가들과 관심 있는 독자들의 대북군사정보 인식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

세계 4대 전차강국 위상을 실물로 입증한 중무기실의 전차들

무장장비관 참관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 뉴욕에 돌아온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보도기사를 보았다. 그것은 2013년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몇몇 남측 언론매체들이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해 보도한 기사들이다. 그 기사들을 읽어 내려가던 내 기억 속에는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서 흥분 속에 바라보았던 전차들의 육중한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한 남측 언론의 산만한 보도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년 동안 신형 전차들인 ‘선군호’와 ‘천마5호’ 900여 대를 생산하여 전방에 실전배치하였는데, 이것은 같은 기간 한국군의 전차생산량보다 두 배가 넘는 규모다.

둘째, 보도에 따르면, 북의 신형 전차 ‘천마5호’는 1990년대에 개발된 ‘천마4호’를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고, “최근에 식별된” 북의 신형 전차 ‘선군호’는 기존 주력전차인 ‘폭풍호’보다 주포 사거리가 늘어났고, 최대속력도 시속 7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어 기동력이 뛰어나다.

셋째, 보도에 따르면, ‘선군호’는 신형 사격통제장치와 포탑을 갖춰 이동중 사격능력이나 야간사격능력이 우수한 3세대 전차다.

넷째, 보도에 따르면, ‘선군호’ 포탑 위에는 러시아군 지대공미사일 ‘이글라’를 개조한 지대공미사일이 장착되었고, 2010년 중국에서 수입한 러시아산 대전차미사일도 장착되었다.

이처럼 네 갈래로 정리한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한 남측 언론보도내용은 내가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서 직접 확인한 북의 신형 전차에 관한 정보와 크게 어긋나는 엉터리 정보를 말해주고 있다. 북의 신형 전차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제멋대로 왜곡하여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 <사진5>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 전시된 북의 전차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사진5>를 보면, 중앙통로 바로 왼쪽에 전차 다섯 대가 전시되고, 그보다 바깥쪽에 포탑이 둥근 전차 두 대가 전시된 것이 보인다. 사진촬영각이 제한되어 그 사진에서는 일곱 대밖에 보이지 않지만, 중무기실에는 북에서 생산한 10종의 전차 열 대가 한 줄에 다섯 대씩 두 줄로 전시되었다. 중앙통로 바로 왼쪽 안줄에 전시된 전차 다섯 대는 북이 2000년대 이후에 생산한 5종의 전차들이고, 바깥줄에 전시된 전차 다섯 대는 북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생산한 5종의 전차들이다.

무장장비관 중무기실에 전시된 10종의 전차들 가운데서 북이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생산한 5종의 전차를 생산연도순으로 열거하면, 1967년식 수륙땅크, 1968년식 중땅크, 1976년식 중땅크 ‘천마’, 1981년식 경땅크 ‘신흥’,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다.

중무기실을 참관하던 나는 1981년식 경땅크 ‘신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경땅크 ‘신흥’은 미국 군부가 ‘PT-85’라고 제멋대로 부르는 수륙양용경전차다. 중전차에 비해 무게가 절반밖에 되지 않는 20t이어서 경전차라 부른다. 1981년식 경땅크 ‘신흥’에는 85mm 주포, 사거리가 3km인 대전차미사일, 7.62mm 기관총, 14.5mm 기관총이 장착되었다. 속력은 지상에서 시속 60km, 물에서 시속 10km로 달리며, 주행거리는 500km다. 1981년식 경땅크 ‘신흥’은 강과 하천이 많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안선 굴곡이 심한 한반도의 작전환경에 적합하게 만든 전차다.

2010년 1월 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로 실시된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 기동사격훈련 중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몸소 조종하였던 951호 전차가 바로 1981년식 경땅크 ‘신흥’이다. 그 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조종한 951호 전차는 ‘중앙고속도로 춘천-부산 374km’라고 쓰인 커다란 이정표가 서 있는 전차기동훈련장 남진예상주로를 질주하면서 전차포를 연발 사격하였다.

놀라운 것은, 북이 자국산 전차를 처음 생산한 때가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인 1967년이라는 사실이다. 남측의 신진자동차가 일본산 ‘크라운’ 승용차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생산을 시작하였던 1967년에 북의 류경수전차공장과 구성전차공장은 자국산 전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오늘, 북의 전차생산과 남의 자동차생산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북은 러시아, 중국, 미국에 이어 제4위의 전차보유량을 기록하였고, 남은 중국,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제5위의 자동차생산량을 기록하였다.

북이 최신형 전차를 생산한 때가 2009년이므로, 북은 1967년부터 2009년까지 근 50년 동안 10종의 전차를 개발하고 개량하고 생산해온 것이다. 북이 지난 50년 동안 10종의 전차를 자체 기술로 개발하고 개량하고 자력으로 대량생산하였으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차개발기술과 전차개발경험을 가졌다는 미국, 러시아, 독일 같은 전차개발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룰 고도의 제작기술과 풍부한 개발경험을 축적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북이 노후한 소련산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식의 남측 언론보도는 허위보도라는 점이 자명해지며, 오늘날 북이 6,000대가 넘는 전차를 실전배치한 세계 4대 전차강국이라는 사실도 자명해진다.

인민군에 배치된 6,000대 이상의 전차는 100%가 각지에 건설한 수많은 갱도진지들에 들어가 있다. 자국군 전차를 100% 갱도진지에 넣어두고, 평시에 적국의 위성정찰을 차단하고 전시에 적국의 공중공격을 막아내는 군사강국은 세계 4대 전차강국 가운데서도 북밖에 없다. <사진6>은 갱도진지에서 전차를 몰고 훈련장으로 나온 인민군 전차병들을 촬영한 것이다. 그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 인민군 전차병들은 출전을 결의하며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최후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6> 갱도진지에서 전차를 몰고 나온 인민군 전차병들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거듭 개량되어온‘천마’ 계열 전차들, 그리고 실존하지 않는‘폭풍호’ 전차

놀라움 속에서 중무기실을 참관하던 내 발길은 2000년대 이후에 생산된 5종의 전차들 앞에서 멈췄다. <사진5>에 나타난, 중앙통로 바로 왼쪽에 전시된 5종의 전차를 생산연도순으로 열거하면, 사진에서 맨 앞에 보이는 것이 2000년에 생산된 주체89년식 중땅크 ‘천마-98’이고, 그 다음으로 2001년에 생산된 주체90년식 중땅크 ‘천마-214’, 2003년에 생산된 주체92년식 중땅크 ‘천마-215’, 2004년에 생산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며, 사진에서 맨 끝에 보이는 것이 2009년에 생산된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다.

놀라운 것은, 북이 ‘천마’ 계열 중전차를 처음 생산한 때가 1976년이라는 사실이다. 북이 자국산 중전차를 처음 생산하였던 때가 1968년이었는데, 그로부터 약 10년 뒤에 당시로서는 매우 우수한 성능을 지닌 ‘천마’ 중전차를 처음 생산한 것이다. 북이 이라크와 전쟁 중이던 이란에게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전차 150대를 수출하였는데, 그 전차가 1976년식 중땅크 ‘천마’다.

또한 북은 1992년에 생산한 중땅크 ‘천마-92’의 성능개량에 힘을 집중하여 2000년, 2001년, 2003년, 2004년에 ‘천마’ 계열 전차들을 연속 생산하였다. 이것만 봐도, 북의 전차개발능력이 2000년대에 절정에 이르러 전차생산의 전성기를 펼쳤음을 알 수 있다. 전차생산 전성기에 성능향상을 거듭한 ‘천마’ 계열 전차들의 성능은 어떻게 향상되었을까? 구체적인 내용은 군사기밀이어서 알 수 없지만,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내용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적의 공격으로부터 전차를 방어하는 장갑방호력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북은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에 덧장갑을 씌워 적의 열압력탄 공격에 대한 장갑방호력을 강화한 바 있었는데, 2000년 이후에 생산된 ‘천마’ 계열 전차들은 복합장갑으로 만들어 장갑방호력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덧장갑이란 남측에서 폭발반응장갑(explosive reactive armour)이라 부르는 것인데, 500mm 두께의 강철판과 같은 방호력을 지닌다. 전차 포탑과 정면에 더덕더덕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덧장갑이다. 덧장갑보다 더 우월한 복합장갑(composite armour)은 강철보다 네 배나 더 견고한 성질을 지니고 무게는 강철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900mm 두께의 강철판과 같은 방호력을 지닌다.

러시아군이 자국산 전차에 세계 최초로 덧장갑을 부착한 때는 1985년이고, 그 뒤를 이어 미국군이 자국산 전차에 덧장갑을 부착한 때는 1988년이고, 인민군이 자국산 전차에 덧장갑을 부착한 때는 1992년이다. 이런 추세를 보면, 북이 전차개발기술에서 앞선 러시아와 미국을 이미 1990년대 초에 바짝 뒤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1992년식 중땅크 ‘천마-92’, 주체98년식 중땅크 ‘천마-98’, 주체90년식 중땅크 ‘천마-214’의 중량은 각각 38t씩인데, 주체92년식 중땅크 ‘천마-215’,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의 중량은 각각 39t씩이다. 전차성능 개량과정에 전차중량이 1t 더 무거워진 것은 그만큼 더 강력한 신형 무장장비를 갖추었음을 뜻한다.

▲ <사진7> 2001년 생산된 북의 '중땅크' '천마-214'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2012년 4월 15일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천마’ 계열 전차들 가운데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낸 현장사진은 두 장인데, <사진7>에 나오는 전차가 2001년에 생산된 주체90년식 중땅크 ‘천마-214’, <사진8>에 나오는 전차가 2004년에 생산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다. ‘천마’ 계열 전차들 가운데 최신형은 2004년에 생산된 주체93년식 중땅크 ‘천마-216’이다. 남측과 미국에서는 ‘천마-216’을 ‘천마5호’ 전차라고 제멋대로 부른다.

▲ <사진8> 2004년 생산된 북의 '중땅크' '천마-216'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위의 정보를 살펴보면,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이 북의 최신형 전차라고 알고 있는 ‘폭풍호’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군부는 북이 러시아군 전차 T-72를 개량하여 2002년에 ‘폭풍호’ 전차를 생산하였다고 하면서, 그 전차를 ‘M2002 전차’라 부르지만, 그것은 엉터리 정보다. 누가 ‘폭풍호’라는 가상명칭을 조작해냈는지 알 수 없으나, ‘폭풍호’는 실존하지 않는다.

‘선군-915’는 세계 정상급 첨단전차

북이 실전배치한 최신형 전차는 2009년에 생산된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다. 북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연속적으로 성능을 개량하여 생산한 4종의 전차들은 모두 ‘천마’라는 공통명칭을 지녔는데, 북이 2009년에 생산한 최신형 전차는 ‘선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전차이름이 ‘천마’에서 ‘선군’으로 바뀐 것은 전차성능이 질적으로 향상되었음을 뜻한다.

해설강사에게 물어보았더니, 북에서는 맨 앞에 달린 작은 전차바퀴를 향도바퀴라 부르고, 맨 뒤에 달린 작은 전차바퀴를 추동바퀴라 부르고, 향도바퀴와 추동바퀴 사이에 늘어선 여러 개 바퀴들을 지탱바퀴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중무기실에 전시된 ‘선군-915’의 지탱바퀴들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강철바퀴가 아니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특수재질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전에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전차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전차 정면 아래쪽과 측면 지탱바퀴 위쪽에 달린 커다란 철판 같은 것이 보인다. 중무기실에서 전차를 살펴보던 내가 그 철판 같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집초방어판이라는 것이다. 손으로 집초방어판을 만져보았더니 철판이 아니라 딱딱한 고무판 같은 감촉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집초방어판은 집초탄(대전차고폭탄)을 막아주는 특수재질의 방호판이라고 한다.

놀라운 것은, 복합장갑으로 만든 ‘선군-915’의 전면에 복합장갑까지 부착하여 장갑방호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500mm 방호력을 지닌 덧장갑과 900mm 방호력을 지닌 복합장갑이 이중으로 방호하고 있으므로 1,400mm 장갑방호력을 지닌 셈이다. 이것은 전 세계에 현존하는 그 어떤 대전차무기도 ‘선군-915’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선군-915’는 난공의 전차다.

<사진4>에서 맨 앞쪽에 보이는 전차가 바로 북의 최신형 전차 ‘선군-915’다. <사진5>에 나타난 ‘천마’ 계열 전차들과 외형을 비교해보면, 그 줄 맨 끝에 있는 ‘선군-915’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2012년 4월 15일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한 전차대오를 촬영한 <사진10>에 2009년에 생산된 주체98년식 중땅크 ‘선군-915’의 모습이 담겼다.

▲ 2009년 생산된 북의 '중땅크' '선군-915'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그런데 <사진10>만 보고서는 ‘선군-915’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중무기실에 실물로 전시된 ‘선군-915’는 <사진10>에 나온 군사행진 중의 ‘선군-915’와 전혀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선군-915’는 군사행진에 나오기 전에 ‘조절조치’를 받고 세상에 공개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 포탑 전면에 부착된 덧장갑도 보이지 않고, 원래 포탑 상부 오른쪽에 장착된 대구경 기관총이 왼쪽으로 옮겨졌고, 원래는 없는 견착식 대공미사일 ‘화승총’ 1기가 대구경 기관총이 있던 자리에 장착되었고, 고사로케트(저고도대공미사일)와 반땅크로케트(대전차미사일)가 보이지 않는다.

중무기실에 전시된 ‘선군-915’ 앞에 해설판이 놓였는데, 거기에는 “중량 44t, 너비 3.502m, 높이 2.416m, 호극복능력 2.8m, 여울극복능력 1.2m, 수중도하 5m”라고 적혀 있다. 이런 제원을 지닌 ‘선군-915’가 얼마나 강력한 전차인지 알려면, 러시아군과 미국군이 실전배치한 세계 최강급 전차들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중국에 수출한 전차 T-80 최신형의 제원을 열거하면, 중량 42.5t, 너비 3.4m, 높이 2.202m, 호극복능력 1.8m, 여울극복능력 미상, 수중도하 5m다. 또한 미국군 전차 M1 에이브럼스(Abrams) 최신형의 제원을 열거하면, 중량 69.5t, 너비 3.6m, 높이 2.8m, 호극복능력 1m, 여울극복능력 미상, 수중도하 불능이다.

또한 중량 대 마력의 비율을 비교하면, 미국군 전차 M1 에이브럼스 최신형은 t당 21.6마력밖에 되지 않고, 러시아군 전차 T-80 최신형은 t당 29.4마력인데, ‘선군-915’는 t당 27.3마력이다. 최대속력을 비교하면, M1 에이브럼스 최신형은 시속 68km인데, T-80 최신형은 시속 70km이고 ‘선군-915’는 시속 70km를 넘는다. 또한 ‘선군-915’는 적외선야시장비, 적외선방해전파발신기, 레이저거리측정기, 컴퓨터사격통제장치, 화생방방호체계를 두루 갖추었다. 이러한 우수한 내부장비들은 ‘선군-915’가 세계 최강 전차들과 동급의 첨단전차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무적의 첨단전차’는 ‘불새’를 쏜다

여러 가지 전차성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화력이다. 화력이 강해야 우수한 전차라고 할 수 있다.

미국군 전차나 러시아군 전차와 마찬가지로, ‘선군-915’도 사거리가 5km인 125mm 무강선포(활강포) 1문을 포탑에 장착하였고, 사거리가 4km인 14.5mm 대구경 기관총 1정을 포탑 상부 오른쪽에 장착하였다. 강선포에 비해 포탄을 더 멀리 날려 보내는 무강선포는 고폭탄(HE), 고폭파편탄(HE-FRAG), 대전차고폭탄, 날개분리안정탄 등을 쏠 수 있다. 이처럼 ‘선군-915’는 포신이 긴 무강선포를 하늘에 치켜들고 대구경 기관총을 포탑에 장착한 모습으로 2012년 4월 15일 인민군 군사행진에 등장하였지만, 중무기실에 전시된 ‘선군-915’는 군사행진 때의 그 모습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 <사진9> 북의 '중땅크' '선군-915'를 확대한 모습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사진4>에 나오는 ‘선군-915’를 확대해놓은 모습이 <사진9>에 나오는데, 확대사진에는 러시아군 최신형 전차나 미국군 최신형 전차가 갖지 못한 2종의 강력한 무기가 ‘선군-915’ 포탑 위에서 놀라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를테면, <사진9>에서 1번 동그라미 안에 있는 무기는 전차의 정면 중앙부 포신 바로 위 포탑에 장착된 반땅크로케트 ‘불새’ 2기이며, 2번 동그라미 안에 있는 것은 전차포탑 상부 왼쪽에 장착된 고사로케트 2기다.

‘선군-915’에 장착된 반땅크로케트 ‘불새’는 사거리가 5.5km인 러시아군 대전차미사일 9M133 코르넷(Kornet)과 동급 성능을 지녔다. 이것은 ‘선군-915’가 강력한 대전차미사일 ‘불새’를 쏘아 5.5km밖에 있는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시속 70km로 고속기동하며 5.5km밖에서 ‘불새’를 쏘는 ‘선군-915’를 피해 한미연합군 전차들이 재빨리 달아나지 못하면 ‘불새의 밥’이 될 것이다.

중무기실에는 북이 생산한 반땅크로케트 2종이 전시되었는데, 1968년식 반땅크로케트 ‘불새-1’, 1973년식 반땅크로케트 ‘불새-2’가 있다. 북이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에 반땅크로케트 ‘불새’를 자체로 생산하였으니 놀라운 일이다. ‘선군-915’에 장착된 반땅크로케트는 전차무장장비로 개량한 최신형 반땅크로케트 ‘불새-3’이다.

▲ <사진11> 무장장비관에 전시된 북의 '중땅크' '선군-915' [자료사진= 인터넷검색, 한호석]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펴낸 2005년도 연감에 따르면, 북이 1976년부터 2004년까지 소련-러시아에 수출한 반땅크로케트 ‘불새’는 모두 23,250기나 된다. 북이 반땅크로케트 ‘불새’를 1968년부터 일찌감치 생산하였으니, 인민군을 ‘불새’로 무장시키고 남아도는 것을 소련-러시아에 28년 동안 계속 수출하였던 것이다. 반땅크로케트 부문에서 선진국인 소련-러시아가 북이 생산한 반땅크로케트를 장기간 동안 대량수입한 것은 자기들이 만든 반땅크로케트보다 북이 만든 반땅크로케트가 더 우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음을 생각할 때, ‘불새’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땅크로케트임을 알 수 있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선군-915’에 장착된 고사로케트 2기는 견착식 대공미사일 ‘화승총’보다 훨씬 더 우수한 저고도대공미사일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인민군 전차의 고속남진을 저지하려고 최전방에 급히 출동한 한미연합군 공격헬기들이 대전차미사일을 쏘게 되는데, 기동력과 화력이 강한 공격헬기가 대전차미사일을 공중에서 쏘면, 지상의 전차는 피격당하는 수밖에 없으므로, 공격헬기는 전차의 ‘천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선군-915’는 전차의 ‘천적’으로 알려진 공격헬기를 잡는 강력한 대공미사일을 장착하여 상황을 뒤집어버렸다. ‘선군-915’에 2기가 장착된 고사로케트는 사거리가 5km이고 사고도가 3.5km인 러시아군 저고도대공미사일 9K35 스트렐라(Strela)-10과 동급의 강력한 대공무기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미연합군 공격헬기는 ‘선군-915’가 고속기동하며 5km밖에서 발사하는 고사로케트에 맞아 추락할 것이다.

해설강사의 말에 따르면, ‘선군-915’를 조종하는 전차병들은 달리는 전차 안에서 신형 탐지장비와 사격통제장치를 가동하여 125mm 무강선포, 14.5mm 대구경 기관총, 반땅크로케트 ‘불새-3’, 고사로케트를 각각 발사한다니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화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남측 언론매체들은 ‘선군-915’가 한국군 주력전차 K1A1보다 방호력과 화력이 떨어진다고 하면서 한미연합군이 공격헬기와 다련장로켓포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선군-915’에 대해 알지 못하는 소리다. 위에 열거한 성능지표 비교에 따르면, ‘선군-915’는 기동력, 방호력, 화력, 탐지력에서 전 세계에 현존하는 그 어떤 전차보다 강한 ‘무적의 첨단전차’다.

바로 그 ‘무적의 첨단전차’가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에 집중배치되었다. 공식명칭은 땅크사단이지만 실제로는 군단급 전차부대인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은 2009년부터 지난 4년 동안 ‘무적의 첨단전차’로 무장함으로써 한미연합군 방어선을 격파할 강력한 화력을 보유한 최강의 전차군단으로 자기의 전투력을 비상히 강화하였다. 2010년 12월 3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에 따라 실시된 근위서울류경수 제105 땅크사단 전차부대의 기동훈련장면을 촬영한 화면이 남측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그 전차군단에 배치된 ‘선군-915’는 지금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조국통일대전’ 진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 1월 1일 새해를 맞은 첫 시각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승용차로 새벽길을 달려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에 가서 최고사령관으로서 첫 공식활동을 시작한 까닭을 알 수 있다.(2013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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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건, 왜 시민들은 분노하지 않을까?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가 지난 6월 21일부터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대를 중심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촛불집회가 10여 일을 넘어서고 있지만, 촛불집회에 참석한 인원은 생각외로 많지는 않습니다. 보통 4~5백 명이었고, 주말에야 3천 명가량(경찰추산 1,500여명) 되었습니다.

현재 국정원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2008년 촛불시위처럼 대규모로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연일 수백~수십만 명이 참여)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이 본다면, 현저히 적은 참여율입니다.

국정원 사태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떨어진 이유와 배경, 그리고 앞으로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살펴 보겠습니다.

' 검찰수사, 국정조사, 해봐야 뭐 바뀌겠나?'

국정원 사건의 핵심은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와 선거에 개입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와 권력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민들의 분노와 관심이 높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시민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정치적 해결 방법이 없다고 미리 결론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 수사나,특검 등을 통한 수사 결과는 언제나 시민들의 의혹을 해소해주지 못했고, 시민들은 여야가 합의해서 시작한 국정조사도 결국 파행 내지는 아무런 성과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역대 국정조사 결과를 놓고 봐도, 시민들의 예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987년부터 총 21건의 국정조사가 시행됐지만, 이중 겨우 8건만 결과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5.18광주민주화 운동 진상조사,12.12 군사쿠데타도 신통치 않았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협상, 직불금,저축은행 국정조사도 파행을 맞기도 했었습니다.

국정원 사건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다기보다는 국정원 사건이 실제로 해결될 방법이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참여 또한 저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글을 올리고 난 후 많은 분들이 국정원 사건에 시민들의 반응이 적은 이유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일부 내용은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어, 올립니다.

@dingu***:어떻게 보면 대다수의 시민이 이번 사건의 공범자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탈법 불법 세금포탈 등 조금씩 저지르며 평생을 살아온 대부분의 시민들 시위에 참여했다가 국정원의 조사대상 되어 폐가망신할까봐 걱정되겠죠?

@shallwev**:2008촛불은 먹기싫은 광우병소라는 쉬운 문제로 시작해서, 복잡한 사안을 거리에서 추가학습하며 커진 측면도 있어보인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사안은 그 때에 비해 복잡한편이며, 민생문제가 아닌 정치문제로 인식되어지는 측면이 많아 관심도는 더욱 떨어질 수 있다라는 생각이네요

@wjo**:학습효과? 1.지배층은 다수의 눈 가리고 귀 막기 달인 2.두 정당은 다수들을 정치에서 소외시켜 정치무능력자 양산

耽讀:2008년과 2013년 촛불집회 차이를 나름대로 분석하면 2008년 먹을거리 문제라 피부에 확 와닿았습니다. 하지만 2013년은 민주주의입니다. 이는 관념이지요. 자기와 직결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제 촛불은 식상한 집회 방식입니다. 촛불이 등장한 것인 2002년 12월 효순미선이 사건이지요. 이제 새로운 저항 방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TV에는 나오지 않는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언론 때문입니다. 2008년 촛불집회 때는 왜곡이 있을망정, 대부분의 TV와 언론이 촛불집회를 다뤘습니다. 그러나 2013년에 벌어지는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관련 보도는 TV와 신문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6월 22일~7월1일까지의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 및 촛불집회 관련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를 보면 아예 촛불집회를 보도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입니다.

KBS와 MBC는 계속 촛불집회가 열렸음에도, 겨우 단신 1건만 보도했습니다. SBS도 일반 1건, 단신 보도 1건에 불과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조사 기간 단 한 건도 촛불집회 보도를 하지 않았고, 조선일보만 2건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왜곡된 보도로 '촛불집회'를 왜곡하기 바빴습니다.

TV에서 촛불집회 소식이 아예 나오지 않으니, 시민들은 지금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가 열리는지도 모르고 있으며, 겨우 그나마 SNS와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한 시민만 참여하고 있습니다.

' 2008년보다 더 심상치 않은 국정원 사건'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한 상황이지만, 2013년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는 오히려 박근혜 정부를 더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촛불집회 참가자는 적지만, 일찌감치 사회 각 계층에서 '시국선언'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6월 5일 시민단체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6월 20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21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부터 7월 1일 한신대학교 교수들의 시국선언까지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당시와 비교해보면 전국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현저히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현재 국정원 사건을 대한민국 정치와 법을 뒤흔드는 중대 사건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 출처:트위터

 


비록 규모는 적지만 꾸준히 전국 각지에서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처음 5명으로 시작된 촛불집회 참석인원이 60명에서 600명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소규모로 열리고 있는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가 어떤 계기만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예상을 충분히 해볼 수 있습니다.

' 박근혜 정부의 선택은 무대응,그에 대한 시민의 반격은?'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사건과 관련하여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가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서한에 그저 '국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문제 소지가 될 수 있는 사안은 '침묵이 금이다'를 실천하는 행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언론도 그녀의 입장에 맞춰 아예 국정원 규탄보다는 NLL 대화록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것이 현재까지는 더 잘 이루어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국정원 국정조사가 시작되면서 관련된 범죄 증거가 언론에 속속 공개되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무대응으로 일관한다면 오히려 시민들의 반감과 의혹은 더 가중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강조하며 국정원의 정치 공작은 없었으며, 이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흑색선전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이 부분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없는 무대응에 점점 높아질 것이며, 18대 대선 부정선거는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유까지 발생할 소지가 있습니다.

 

 

▲동아일보의 7월2일자 사회면. 출처:동아일보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요구가 있기 전에 대한민국 언론은 철저히 제2의 촛불집회가 되지 않도록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를 폄훼하는 요지의 기사를 내보낼 것입니다.

7월2일자 동아일보는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때문에 시민은 열불이 난다고 했습니다. 마치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청계천 상인들이 '촛불 시위 때문에 장사가 안돼 죽겠다'는 기사를 내보낸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동아일보의 기사처럼 대부분의 시민들은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를 무심히 지나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묘한 타오름이 있어, 불이 붙기는 어려워도 한번 불이 붙으면 꺼질 줄 모르는 활화산 같은 뜨거움이 있음을 박근혜 정부와 조중동과 언론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정원 사건은 진보와 보수, 새누리당과 민주당만의 정치,사상의 대결구도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와 법을 위반한 불법적인 사건에 불과합니다. 불법은 법에 따라 관계자를 체포, 구속하고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뿐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은 2012년 대명천지에 불법으로 선거에 당선된 대통령이 하야하는 엄청난 사건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국가가 무너지는 것은 대통령이 물러나서가 아니라 범법자가 여전히 최고 권력자로 남아 있을 때입니다. 국민이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국정원 사태에 '명판관 포청천의 작두'가 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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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 탄압은 박근혜 정부의 동족대결정책에 의한 탄압이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등 ‘범민련 탄압, 인권침해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 개최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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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02 2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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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후 1시 경찰청 앞에서 ‘범민련 탄압, 인권침해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사진 제공-범민련 남측본부]

 

“범민련 탄압은 박근혜 정부의 동족대결정책에 의한 탄압이다.”

2일 오후 1시 경찰청 앞에서 진행된 ‘범민련 탄압, 인권침해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에서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최근 공안당국의 범민련 남측본부 탄압에 대해 이같이 규정했다.

 

   
▲ “범민련 탄압은 박근혜 정부의 동족대결정책에 의한 탄압”이라고 규정한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사진 제공-범민련 남측본부]
권 명예의장은 “이번 탄압에 국정원과 경찰청이 함께 관여한 것은 단순한 공안탄압이 아니고 6.15공동선언을 부정하는 박근혜 정부의 동족대결정책에 의한 탄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권 명예의장은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해 통일운동 하는 범민련은 통일애국단체”라면서 “이런 단체를 탄압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범민련 탄압에 대해 현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이어, 윤지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사무국장도 국가보안법에 의한 공안탄압을 강력히 규탄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분노했다.

윤 사무국장은 “이번 탄압에 대해 국민은 ‘정치적 탄압’으로 보고 있다”면서 “통일을 위해 앞장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강력 항의했다.

이날 범민련 남측본부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가 함께 진행한 기자회견은 지난달 26일 국정원과 경찰 수사관들이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간부들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항의하고 규탄하기 위해 열렸다.

지난달 26일 아침, 범민련 사무실에 들이닥친 수십 명의 국정원 직원들과 경찰관들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김성일 사무차장과 이창호 대외협력국장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압수수색영장과 체포영장을 읽어볼 틈도 없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어 공안당국은 사무실에서 수갑을 채운 뒤, 두 간부의 주거지로 이동해 압수수색을 했으며, 다시 사무실로 이동하고, 홍제동 대공분실로 연행하기까지 종일 수갑을 채우는 등 인권침해를 저질렀다.

이튿날 김성일 차장의 아내가 지인과 함께 면회를 갔을 때도 경찰들은 김 차장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채 가족 면회를 하게 했으며 5분 만에 면회를 강제로 끝내게 했다. 이에 가족과 지인이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이날 가족면회에 함께 간 지인에게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소환장을 발부하겠다고 연락을 해 왔다.

이에 범민련 남측본부는 구속자들의 인권침해 부분에 대해 변호인단과 검토하여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다.

 

   
▲ 이날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범민련 탄압 중단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사진 제공-범민련 남측본부]

 

이날 참가자들은 김명운 추모연대 의장의 낭독한 기자회견문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극심한 저항이나 도주와 자해의 우려가 없을 경우 수갑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도록 권고 하고 있다”면서 “특히 가족 면회 시 수갑을 채운 것은 김성일 차장 본인과 가족들에 대한 심각한 인격권 침해로서 명백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이 시각에도 벌어지고 있는 진보진영과 통일애국운동세력에 대한 탄압과 인권유린을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범민련 탄압 중단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는 통일광장, 양심수후원회, 민자통, 민가협, 평통사,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추모연대, 유가협, 코리아연대, 서울통일연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사월혁명회, 범민련 남측본부가 참여했다.

 

[기자회견문] 통일운동 말살, 인권탄압 자행하는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

지난 26일 국정원과 경찰은 범민련 남측본부 간부 9명의 집과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사무차장과 대외협력국장을 체포하는 파쇼적 탄압을 감행하였다. 이어 정권의 하수인 사법당국은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26일 아침, 범민련 사무실에 들이닥친 수십 명의 국정원 직원들과 경찰관들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사무차장과 대외협력국장에게 야수처럼 달려들어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압수수색영장과 체포영장을 보여주지도 않은 채 무자비하게 체포와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이다. 명백한 불법이자 인권침해다. 무려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수갑을 채운 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온갖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강요하고 대공분실로 강제 연행해갔다. 압수수색 과정에 전례가 없는 천인공노할 일이다. 이들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홍제동 대공분실로 찾아간 김성일 차장의 아내는 또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수사관들이 수갑을 채운 채 김성일 차장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이를 항의하는 가족에게 온갖 협박을 가하고 불과 5분여 만에 강제로 면회를 끝냈다. 실제로 이들은 다음 날 함께 간 다른 가족에게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소환장을 발부하겠다고 연락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극심한 저항이나 도주와 자해의 우려가 없을 경우 수갑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도록 권고 하고 있다. 특히 가족 면회 시 수갑을 채운 것은 김성일 차장 본인과 가족들에 대한 심각한 인격권 침해로서 명백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또한 김성일 차장의 노모는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해매고 있다. 병원 측에서는 이번 달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견을 밝힌바 있다. 이번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김성일 차장과 가족들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하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소한의 양심과 인륜도덕 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으로 존립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분노한 국민들은 ‘관련자 전원처벌’과 ‘당선무효’,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각지에서 촛불을 들고 일어나고 있다.

심각한 통치위기에 몰린 박근혜 정부는 민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정치공작과 공안탄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폭력과 탄압으로 2008년 광우병 촛불을 무마시켰던 이명박 정권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범민련 탄압이 진보진영과 통일애국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신독재정권 박정희도 5.16쿠데타와 10월 유신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인권을 탄압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그의 아버지와 같이 정권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유신독재의 망령을 부활시키려 한다면 반드시 전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이 시각에도 벌어지고 있는 진보진영과 통일애국운동세력에 대한 탄압과 인권유린을 즉시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범민련 인사들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당장 풀고 가족의 품으로 돌려줄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

정권위기 모면용 정치공작, 공안탄압 중단하라!
범민련 탄압 중단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
민주주의 말살, 인권유린 폭압기구 해체하라!
정권유지법, 분단고착법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2013년 7월 2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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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빙하기 너구리의 세계적 피난처였다

 

 

한반도는 빙하기 너구리의 세계적 피난처였다

 
조홍섭 2013. 07. 01
조회수 4059추천수 1
 

2만년 전 빙하기 절정일 때 한반도에 작은 집단 살아남아 이후 유라시아 확산

한반도와 일본 연결됐지만 너구리 이동은 없어…소련 방사로 유럽은 `외래종 너구리' 골치

 

강재훈.jpg »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한국산 너구리. 빙하기의 유산임이 드러났다. 사진=강재훈 기자

 

신생대 홍적세의 마지막 빙하기가 맹위를 떨치던 2만~1만 8000년 전, 북아메리카와 북유럽, 러시아 등 북반구 육지의 30%가 두꺼운 얼음에 덮여 있었다. 춥고 건조해진 기후에 맞서 동물들의 선택은 두 가지, 따뜻한 곳으로 대피하거나 사멸하는 것뿐이었다.
 

한반도가 빙하기 너구리의 중요한 피난처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너구리는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몇 곳에서 근근이 살아남은 뒤 빙하기가 끝나자 급속히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나갔음이 계통생물지리학 연구로 드러났다.
 

민미숙 서울대 수의대 박사 등 한국과 일본, 베트남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동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동아시아의 너구리가 빙하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고립되어 분화하고 다시 확산해 나갔는지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러시아, 중국, 베트남, 일본 등에서 너구리 147개체의 표본을 대상으로 유전자를 확보해 조사했다. 세계의 너구리에는 모두 6가지 아종이 있다. 온대 숲 속에 사는 이 동물의 분포지가 빙하기 동안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map1.jpg » 빙하기 너구리 피난처의 네가지 가설. 일본과 유라시아 아종의 유전적 차이로 가설 a와 c는 맞지 않고, 유라시아 너구리 유전자에 연속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가설 d가 가장 그럴듯하다고 논문은 결론 내렸다. 그림=민미숙 외, <동물학 저널>

 

빙하기가 오면서 한반도는 얼음에 뒤덮이지는 않았지만 환경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아지면서 황해와 동중국해는 사막이 펼쳐진 육지로 변해 한반도와 일본은 연결됐다.
 

당시의 꽃가루를 분석해 보면, 현재 백두산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잣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 한대성 수종이 강원도 속초에까지 분포했다. 또 장마전선은 일본에 머물러 한반도 주변은 매머드가 떼지어 다니는 건조한 초원지대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너구리의 이동에 관해 연구진이 세운 가설은 네 가지이다. 한반도와 중국 동부, 그리고 일본이 하나의 커다란 피난처를 형성했거나 두 개 이상의 작은 피난처가 있었을 가능성, 또 이들이 각각 일본과 연결되거나 연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따져 보았다.
 

640px-Tanuki01_960.jpg » 일본 아종 너구리. 대륙 아종과 오래 격리돼 별개의 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몸집이 작고 치아 모양이 다르며 염색체 수도 유라시아 아종과 차이가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먼저, 한반도와 일본 너구리 아종의 유전적 차이는 2.4%로 한국-러시아 0.4%, 한국-중국 0.6%, 한국-베트남 0.6%보다 컸다. 한국 이외의 다른 유라시아 아종과 일본 아종의 차이도 러시아-일본 2.4%, 중국-일본 2.5%, 베트남-일본 2.3% 등으로 컸다.
 

민 박사는 “이런 결과는 빙하기 때 한반도와 일본이 육지로 연결되었어도 너구리 집단의 이동과 교류는 없었음을 보여준다. 매머드와 사슴 등 큰 동물은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행동반경이 좁은 너구리는 불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너구리의 일본 아종은 염색체 수가 38개로 한국과 유라시아 아종의 54개와 차이가 있고 치아 등 외형적인 차이도 두드러져 오랫동안 고립돼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Chermundy_Raccoon_Dog_area.png » 세계의 너구리 분포지역. 파란색은 자생지, 붉은색은 유입지를 가리킨다. 그림=체르문디,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번 연구에서 한반도의 너구리 아종은 유전 다양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민 박사는 “빙하기 때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집단이 유전다양성에서 일종의 병목현상을 일으켰다. 유라시아의 너구리 피난처는 한반도 말고도 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 연구로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논문은 이런 요인 말고도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남획도 유전다양성 감소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았다.
 

반도는 지형상의 이점 덕분에 빙하기 때 생물들의 피난처 구실을 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이탈리아와 이베리아 반도는 그런 예이고,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한반도와 중국 동부도 그런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참개구리, 꼬리치레도롱뇽, 흰넓적다리붉은쥐 등은 한반도와 중국 동부, 러시아 극동 지방이 빙하기의 피난처 구실을 해 살아남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빙하기가 지나자 너구리는 피난처를 벗어나 급속히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간빙기의 온화한 기후보다 이런 확산을 더욱 부추긴 것은 인위적 방사였다.
 

640px-Nyctereutes_procyonoides_4_(Piotr_Kuczynski).jpg » 러시아 아종 너구리. 몸이 크고 털이 길다. 소련이 모피용으로 대량 이식한 아종이다. 사진=피오트르 쿠친스키, 위키미디어 코먼스

 

Raccoon_dog_12.jpg » 모피용으로 기르고 있는 너구리.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소련은 1928년부터 1950년 사이 모피를 얻기 위해 시베리아와 아르메니아 등 영토 안 76개 지역에 러시아 아종 너구리 1만마리를 풀어놓았다. 이 가운데 유럽 쪽에서 인공이식이 성공을 거두었고, 이들이 현재 북유럽까지 퍼져나가고 있다.
 

너구리는 현재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다수 서식하고 있고 세르비아, 프랑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에서도 서식이 알려져 있다. 핀란드에서만 2010년 16만여 마리를 사냥하는 등 너구리는 이들 나라에서 퇴치해야 할 침입종 양상을 띠고 있다.
 

너구리는 어떤 동물인가

 

racoon.jpg » 시민의 곁으로 다가온 양재천 너구리. 그림=박재동
 

너구리는 개과의 원시적 형태를 간직한 동물로 동아시아 원산이다. 북미산 너구리와는 전혀 다른 동물이다. 개과 동물 가운데 나무를 타는 드문 종이기도 하다.
 

몸이 길고 다리와 꼬리가 짧으며 귀도 작다. 무엇이든 먹는 잡식성이어서 창자 길이도 개보다 2배 가까이 길다. 두꺼비도 다량의 침으로 독을 희석시켜 먹는다. 일정한 장소를 정해 배설하는 똥자리가 있다.
 

겨울 모피는 속털이 빽빽하고 겉털이 길어 영하 25도에도 견딘다. 개과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몹시 춥거나 눈이 많은 곳에서는 겨울잠을 잔다.
 

일부일처제이고 새끼를 6~7마리 낳는데, 수컷이 새끼 기르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새끼는 8~10달 자라면 성숙한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천적의 공격을 받으면 죽은 척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천적은 늑대이며 여우와 오소리가 경쟁자이다. 러시아 아종이 광견병을 옮기는 것으로 드러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hylogeography of Korean raccoon dogs: implications of peripheral isolation of a forest mammal in East Asia
S.-I. Kim, S.-K. Park, H. Lee, T. Oshida, J. Kimura, Y.-J. Kim, S. T. Nguyen, M. Sashika &
M.-S. Min
Journal of Zoology
doi:10.1111/jzo.1203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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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건'과 시민 불복종운동, 어떻게 볼 것인가?

 

 

박근혜 정부, '한국판 아로요 정부' 되지 않으려면…

[시민정치시평] '국정원 사건'과 시민 불복종운동, 어떻게 볼 것인가?

박은홍 성공회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01 오전 10:58:53

 

2004년 5월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아로요 대통령이 자신의 경쟁자인 페르난도 포 후보를 110여만 표의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듬 해 2005년 6월, 대선 당시 아로요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자신이 적어도 100만 표 이상의 차이로 당선되도록 득표 조작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들리는 통화내역이 공개되면서 아로요 퇴진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그때로부터 6년 후인 2011년 11월 경찰은 입원 중이던 아로요 전 대통령을 선거조작 지시, 국가기금 유용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필리핀에서는 아로요 집권 내내 불안한 정국이 계속됐다. 시민운동가, 노조 지도자, 언론인들에 대한 국가권력과 연계된 세력들의 테러가 반복되고, 아로요를 포함해 측근들의 비리가 잇달아 불거지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의 반정부운동이 계속되었다. 여기에 선거개입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아로요는 궁지로 몰렸다.
 

▲ 2005년 7월 25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위대가 아로요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의회로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첫 여성 부통령을 지내고 대통령직에 오른 아로요는 유력 가문 출신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필리핀 9대 대통령을 지낸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이다. 2001년 집권 초기 그녀는 부패문제로 권좌에서 내려온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과는 대조적으로 재능과 청렴성을 갖춘 지도자로 비춰졌다. 그러나 이후 그녀의 정치행태는 정치가문(political dynasty)을 배경으로 권력을 얻은 뒤 온갖 비리를 일삼는 구태정치인, 일명 '뜨라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식민지와 독재체제를 경험한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먼저 민주화를 경험한 필리핀이 민주화 이후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놓인 시기가 바로 아로요 집권시기였다.

한국은 필리핀에 이어 민주화를 경험하였지만 더 빠른 속도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해나갔다. 선거제도를 비롯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해 여러 요소가 비교적 순조롭게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톤은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한국을 민주주의에 성공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사례로 소개했다. 이때 그가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의 유무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란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는 세력 간의 갈등을 공정한 선거 경쟁을 통해 줄여나가는 과정인 바, 이러한 '갈등의 제도화'는 공정한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선거가 불공정하게 치러졌을 경우 선거에 패배한 세력은 불복종운동을 시작한다. 불공정한 경쟁으로부터 탄생한 권력의 정통성을 승인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출범한 지 얼마 안 되는 박근혜 정부가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문제로 필리핀 아로요 정부와 유사한 상황에 봉착했다. 이른바 '국정원 사건'은 국제인권기구로부터 표현의 자유 위축 등의 문제로 경고를 받은 바 있는 이명박 정부의 '포복형 권위주의'(creeping authoritarianism) 측면과 연관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아로요 정권은 '포복형 권위주의'가 보다 악화된 예이다.
 

▲ 28일 국정원 규탄을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연 거리 강연회에서 촛불 집회 참석자들이 사회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국정원 사건'은 아로요 전(前) 대통령이 직면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문제와 연관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시민사회 진영의 '국정원 규탄론', '박근혜 대통령 책임론'도 아로요 정부의 정통성을 승인하지 않던 필리핀 시민사회진영의 불복종운동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선거개입 사안과 관련해 아로요 전 대통령이 불법행위의 당사자였던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의도하지 않게' 그 수혜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으나, 이 사건이 권력 재생산을 꾀한 여권세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맥락 속에 있다.

이번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몇 가지 대목을 강조하고 싶다. 우선 '국정원 사건'이 비운동권 대학생들에 의해 먼저 사회적 의제로 띄워지면서 폭넓은 시민운동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민주주의의 최소 원칙이 정치적 중립을 준수해야 할 국가기관에 의해 유린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번 기회를 계기로 보수건 진보건 공정 선거가 민주주의의 최소 요건임을 편의적으로 수용하는 세력은 주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진보 성향의 지식인 일각에서는 정당 영역 밖에서의 정치적 행위를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촛불집회도 비판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 사건'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시민들의 역할이 컸지 정당들은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정당정치 제일주의는 교정돼야 한다. 물론 갈등의 제도화 차원에서 정당의 역할이 중차대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정치 역시 사회적 의제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나아가 정당의 게으름을 감시하고 정당의 자기 혁신을 압박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로서의 시민정치와 대의민주주의로서의 정당정치라는 두 다리를 사용해 진보한다는, 요컨대 상식에 가까운 민주주의 이론이 한국과 같이 민주화 이후 국면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서 여전히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번 '국정원 사건'의 희생자라고 주장한다면, 다시 말해 '시키지 않은 짓' 때문에 억울하게 정통성 위기(legitimacy crisis) 국면으로 몰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등은 물론이고, 불공정한 경쟁의 결과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진지한 노력이 경주돼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추진 등과 같은 사안 때문에 진보진영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대북 화해정책을 반미-좌경으로 몰고 가면서 '국정원 사건' 정국을 모면하려는 일부 여권 인사들의 태도는 당당하지 못하다.

지난 2012년 4월 1일, 버마에서는 50년 군사독재체제로부터의 이행을 상징하는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국제사회와 국내 민주인사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거가 비교적 공정하게 치러지자 테인 세인 신정부는 국내외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민주주의의 기본 규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시간으로 보나 경제성장의 키로 보나 버마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박근혜 정부가 '한국판 아로요 정부'가 아닌 민주정부로서 원칙 있는 해법과 실행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박근혜 정부는 아로요 정부처럼 시민사회의 불복종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공권력에 더욱 더 의존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버마의 신정부보다 못한 최악의 민선정부로 기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은홍 성공회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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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SA, 유럽연합 도청·해킹... 파문 확산

 

 

 

독일 <슈피겔>, 스노든으로부터 비밀문서 입수해 보도... EU 반발

13.07.01 08:21l최종 업데이트 13.07.01 08:21l
윤현(yoony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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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가안보국의 유럽연합 도청과 사이버 공격을 보도하는 독일 <슈피켈> 온라인판 기사
ⓒ 슈피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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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기관 국가안보국(NSA)이 유럽연합(EU) 본부를 도청하고 사이버 공격을 가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독일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30일 전직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입수한 NSA의 비밀문건에 따르면 미국이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본부와 미국 내 EU 사무실을 도청하고 전산망에 침투해 정보를 캐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0년 작성되어 '일급기밀'로 분류된 이 문서에 따르면 NSA는 뉴욕 유엔 본부의 EU 대표부와 워싱턴 D.C의 EU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전산망에 침투해 전화, 회의내용, 이메일 등의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5년 전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 건물인 주스투스 립시우스 빌딩의 원격 관리 시스템에 침투하기 위한 시도 역시 인근에 비밀 사무실이 있던 NSA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홍콩을 떠나 모스크바 국제공항의 환승 구역에 체류 중인 스노든은 미국의 정보수집 활동을 연달아 폭로하고 있다. 스노든은 에콰도르에 망명을 신청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EU 국가들 강한 반발... 미국 '곤혹'

EU는 곧바로 반발하고 나섰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에 <슈피겔> 보도와 관련한 명확한 해명을 요구했다"며 "미국은 관련 내용을 확인한 뒤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미국은 모든 것을 해명해야 할 것"이라며 "만약 <슈피겔>의 보도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유럽과 미국의 관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심각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EU를 이끌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정부도 발끈하고 나섰다. 자비네 로이토이서-슈나렌베르거 독일 법무장관은 "우방국인 미국이 유럽을 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라며 "만약 사실일 경우 냉전 시대를 연상케 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도 "미국에 <슈피겔> 보도에 관한 해명을 요구했다"며 "만약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러한 간첩활동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정보활동 폭로에 대해서는 언급할 것이 없다"며 사실상 미국 정부의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그러나 "EU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국가들"이라며 "EU는 미국과 매우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으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혀 이번 사건으로 인한 EU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했다.

한편 스노든의 폭로를 처음으로 보도한 영국 <가디언>의 글렌 그린월드 기자는 10억 건에 달하는 통화 내역을 저장하고 이용할 수 있는 NSA의 최신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스노든으로부터 받아 곧 추가로 보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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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국선언 철저히 외면했던 언론들…

 
<뉴스데스크> 낯뜨거운 ‘박비어천가’
 
 
 
耽讀 | 등록:2013-07-01 15:04:50 | 최종:2013-07-01 15:38: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도난당해 여기에 이렇게 모였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타인이 빼앗아 가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되찾으려고 합니다. 누군가 나의 물건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져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열심히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도난당했습니다. 이번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온 국민을 상대로 한 엄청난 도난사건입니다.

지난달 29일 충남 금산 간디학교와 인천 강화 산마을고등학교, 충북 제천 간디학교,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회가 지난 29일 발표한 시국선언문 일부입니다.

시국선언을 주도했던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회 서정한(19) 부회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참말로 언론이 바로 서지 못했다는 것을 실감했다"면서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낯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날 MBC<뉴스데스크>는 중국을 국빈방문 중이 박근혜 대통령 일정을 보도했습니다. <朴대통령, 칭화대서 중국어 연설…"새로운 20년 열자">기사와 <中언론, 특별방송 편성…朴대통령 인간적 면모 소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朴대통령 '패션 외교' 화제…색·디자인에 담긴 의미들> 기사는 낯뜨거서워 볼 수 없는 '박비어천가'였습니다.

▲ 지난 달 29일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 뉴스데스크

흰색 재킷에 검정 바지 차림의 박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리며 중국에 첫 인사를 건넵니다. 흰색은 백의민족인 우리를, 옷깃과 단추 여밈 등의 디자인은 중국 인민복과 비슷해 양국의 조화와 협력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공식 자리에서는 노란색이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공식환영식에 이은 정상회담 때 박 대통령의 재킷은 황제와 권위를 상징하는 노란색이었고, 중국 관례로 공개되지 않았던 국빈만찬 때 한복도 황금빛 노란색이었습니다.

방중 기간 한중 경제인들을 만날 때는 부와 기쁨을 상징하는 빨간색을, 펑리위안 여사를 만났을 때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분홍색, 그리고 오늘 칭화대 연설에서는 역시 중국 황실의 존귀함을 상징하는 보라색 재킷이 준비됐습니다.

<뉴스데스크>는 방문 첫날인 27일에도 <"오랜친구가 왔다" 中 드문 찬사…朴대통령 팬클럽까지> 기사에서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고향인 시안 방문을 앞두고 현지에선 인공 비를 뿌려서 깨끗한 공기를 선사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환영 분위기가 높다"면서 "중국 매체들은 박 대통령을 '중국을 사로잡을 준비가 돼 있는 대통령'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자국의 언어는 물론 문화를 이해하려는 한국 대통령에게 중국인들이 마음을 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 27일 <뉴스데스크>는 박 대통령 시안을 방문하면 "인공비 뿌려 맑은 공기 선물하자"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시안 방문때 실제 인공비를 뿌렸다는 보도는 없다. ⓒ 뉴스데스크

하지만 시안 방문 때 박 대통령을 위해 인공비를 내렸다는 보도는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中, 박대통령 극진한 국빈예우…상무 부부장 '공항영접'> 기사에서 "공군 1호기에서 내려오는 박근혜 대통령을 중국 장예쑤이 외교부 상무 부부장이 맞이했다"면서 "부부장 중에 가장 서열이 높은 장관급 인사가 이례적으로 영접해 의전의 격을 높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격이 높아진 것인 사실이지만 지난 2004년 4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영접한 인사는 중국 공산당 서열 6위인 황쥐 부총리(정치국 상무위원)였습니다. -2004.05.03 <주간경향> "1급 비상령" 조기 가동 참고

이뿐 아닙니다. 지난 2009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공항에서 그를 영접하는 사람은 바로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었습니다. 당서 서열이 6위였습니다. 우리 언론들도 이를 이례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권력서열 6위이자 차기 지도자가 유력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공항까지 나가 영접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중국이 미국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2009.11.17 <노컷뉴스> "오바마, 베이징 도착…시진핑 국가부주석 직접 영접

한 마디로 박 대통령을 영접한 중국측 '격'은 이례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외방문을 했을 때 집중 보도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한 외교 사안입니다. 상대국 정상과 회담을 통해 어떤 성과를 얻었고, 얻지 못했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 이번 중국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은 '북핵'문제입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북핵 비핵화를 위해 얼마나 중국을 설득했는지에 대한 세밀한 분석 없이, 대통령이 입은 옷 색깔과 인공비를 내린다거나, 다른 나라 정상들은 부총리와 부주석이 영접을 한 경우도 있는 데 박 대통령은 장관급이 영접했다고 극진한 예우를 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 보도에 충실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29일 고등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넘어갈 수 없는 기사입니다. 하지만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국정원 부정선거에 얼마나 분노했으면 시국성명을 발표했겠습니까? "언론이 바로 서지 못했다"는 고등학생 분노가 가슴을 찔렀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은 충남 금산 간디학교와 인천 강화 산마을고등학교, 충북 제천 간디학교,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회가 지난 29일 발표한 시국선언문 전문입니다.

 

시국선언문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도난당해 여기에 이렇게 모였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타인이 빼앗아 가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되찾으려고 합니다. 누군가 나의 물건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져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열심히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도난당했습니다. 이번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온 국민을 상대로 한 엄청난 도난사건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리고 선거는 민주주의 꽃입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이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그리고 교과서에서 이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객관적인 사실과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더 했고, 공부하면 할수록 국가의 주인이자 주체로서 우리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쉽게 모인 것은 아닙니다. 학생회의 이름을 걸고 행하는 일인 만큼 가벼이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학생총회 등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직접 참여를 하지 않는 학생들과도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려가 된다는 친구들의 말에 이번 선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제3자의 입장에서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습니다.

사회와 국민을 위해 움직여야할 국가권력이, 선거에 개입해서는 안 될 국가기관이 특정 대선 후보의 지지와 다른 대선 후보를 깎아내리는 데 마구잡이로 동원되었습니다. 국정원 정치개입의혹이 대선 전부터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후보 측에서는 오리발만 내밀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의혹이 불거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왜곡하여 이슈화시키며 국정원 정치 개입 사태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일을 하루 앞두고서야 수사에 착수했고 경찰은 신속한 수사라는 명분하에 수사 규모를 축소했습니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하는 일, 더욱이 의도적으로 국민의 시야를 흐려 그 일을 은폐하려 드는 일은 민주공화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를 비롯한 집권 여당은 그런 만행을 버젓이 저질러 왔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을 완벽히 무시하는 행위이며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입니다.

예로부터 나라의 근간은 백성이었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국민의 아픔을 치료하고 보듬어주는 의사여야 합니다. 국가를 위한다는 핑계로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알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연행하는 행위가 과연 국가를,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시국선언 준비를 하는 도중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습니다. 고등학생이 시위 중 최루액에 맞았다는 내옹의 기사였습니다. 순간 4·19 혁명의 불씨가 된 김주열 열사가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1960년대 수준으로 퇴보하려는 것일까요?

대학생, 교수, 퇴직 경찰, 시민 단체 등이 연이어 시국선언을 하였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여당은 국회에서 그제야 국정조사 실시를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여태껏 공공연히 행해져 왔던 국정원 정치 개입을 이제는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요구합니다.

- 국정원 사건 관련자들을 지연, 학연, 기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수사하여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합니다.
- 국정원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대통령 차원의 예방책을 마련하고 국정원을 개혁할 것을 요구합니다.
- 국정원장과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빼앗긴 것은 민주주의입니다. 국가와 국민은 민주주의라는 꽃을 함께 키우고 피워 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가 권력이 민주주의라는 꽃을 짓밟아 시들게 하고 있습니다. 여론을 조작하고 사건을 은폐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권력의 등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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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청와대로까지 번져갈 것인가?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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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3/07/02 06:51
  • 수정일
    2013/07/02 06:5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촛불, 청와대로까지 번져갈 것인가?
 
<분석과전망>국정원게이트, ‘국정원의 국정원구하기’로 끝나지않을 듯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7/01 [11:3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지금은 누가 뭐래도 국정원 정국이다. 국정원에서 비롯된 정치사안 두 개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이며 또 하나는 국정원이 지난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대화록에 대해 비밀해제조치를 취해 전격적으로 공개한 사건이다.

국가의 최고 정보를 취급하는 정보기관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 두 개가 동시에 정국의 중심으로 부상한 예는 흔치않다. 그렇지만 더욱 흔하지 않는 것은 그 두 사안이 서로 사이에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문제이다.

일부 사람들은 1970년대 초반 닉슨을 하야시켰던 미국의 워터게이트를 떠올리기도 했다. 국정원게이트라고 불러도 될 법했다. 국정원게이트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있는 셈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국정원의 선거개입혐의에 대해 국정원이 특정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을 갖고 있었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혐의는 국정원을 최고의 위기로 끌고갔다. 살자고 했던 일이 죽자고 하는 일로 된 격이라고도 할만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혐의는 경우에 따라서는, 지난 대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까지도 가능케 하는 사안이다. 이는 지난 대선이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불러올 정도로 박빙의 승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그 박빙이 국가정보기관을 선거에 개입시킬 정도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는 것을 또한 보여준다. 오죽 불안했으면 한 나라의 정보기관이 선거에 대놓고 나섰겠는가? 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위기에 내몰린 국정원에게 선거개입사건을 물타기 할 수 있는 사건 하나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절박했을 것이었다. 결과를 놓고 추론해보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정도의 절박감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른바, 연예인사건 같은 것 쯤으로 덮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꽤 높은 수준의 물타기여야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국정원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국정원이 가졌을 법한 불안감의 정도를 많은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계량해냈다. 정보의 수집, 관리 그리고 전개에서 최고의 기관인 국정원이 나서지 않는다면 상황반전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나왔다.

더구나 곳곳에서 시국선언이 나왔다. 정치현실에 눈을 닫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아왔던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은 신선함을 선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더구나 청계천 소라광장에 촛불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촛불의 추억, 촛불은 여권에게는 언제라도 치명적이었다.
 

결국 국정원이 전면에 나섰다. 24일이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그렇게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정보기관이 최고급 정보를 스스로 까다니? 외국언론의 눈이 집중되는 것도 당연했다.

“국정원의 국정원 구하기”
사람들은 국정원의 선거개입사건과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사건이 갖는 함수 관계를 그런 식으로 이해했다. 선거개입사건으로 위기에 내몰린 국정원이 회의록 공개로 탈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국정원게이트는 그러나 그것으로 멎지 않았다. 국면확전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26일 뉴스 하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권영세 실장이 대선 과정에서 지인들과 오찬을 하며 나눈 얘기가 담긴 녹취록을 폭로한 것이 그것이었다.

박의원이 폭로한 내용에는 ‘NLL 대화록 공개 방안을 비상상태에 대비한 시나리오로 검토했고, 집권하면 대화록을 공개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있었다. “(NLL 회의록을 공개하면) 그거는 역풍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라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이라는 언급도 있었다.
 

사람들은 바로 충격에 빠졌다. 특히 회의록 공개와 관련된 모든 것을 비상계획으로 규정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공개시기까지도 특정해놓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 충격은 더 컸다.

‘권영세 녹취록’은 선거기간 중에 새누리당이 공식적으로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역풍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회의록 공개와 관련해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당 회의에서 한 이른바, ‘김무성의원 고백’도 충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회의록) 원문을 보고 내부에서 회의도 해봤지만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 좋고 해서 원세훈에게 공개하라고 했는데 협조를 안 해서 공개를 못했다”고 김무성 의원은 말을 한 것이다. 김무성 의원은 당시 박근혜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선거전반을 총괄했었다.
 

회의록을 당에서는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한 새누리당의 방침은 그러나 회의록을 선거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무성 선대본부장이 선거전에서 회의록을 선거전의 재료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2월14일 부산 유세에서였다. “지금 이 시간 새누리당 중앙당사에서 정문헌 의원이 이 내용을 가지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다”며 최근 알려진 NLL 회의록 내용과 일치하는 노 전 대통령 발언 일부를 공개한 것이다.

정상회담 대화록과 관련된 ‘권영세 녹취록’ 그리고 ‘김무성 의원의 고백’ 등 이 모든 것은 국정원게이트가 국정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새누리당은 물론 청와대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불길을 안고 있는 것이 국정원게이트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정원게이트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정상회담 대화록에서 나온 NLL에만 집중하고 있다. 청와대 역시 다를 것이 없다. 국정원에 국한 된 일이라고 선을 그어놓고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가장 민감하고 큰 힘으로 움직인 것이 촛불이었다. 죽어가는 민주주의의 위에 피어나고 있다고 촛불은 스스로를 말했다.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살리게 될 촛불이라고도 했다. 그래서였던 것일까? 촛불의 힘은 미약하지 않았다.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를 가능케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아울러 박근혜정부에 맞서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해왔던 민주당을 장외로 끌어내고 있다.

청계광장에서 작게 시작되었던 촛불은 최근 광화문으로 번졌다. 이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청와대가 맞 바라다 보이는 광화문에서 타오르고 있는 촛불이 국정원 정국에서 어떤 일을 수행하게 될지 주목해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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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들의 '죽음의 노래'

 

 

 

승려들의 '죽음의 노래'

 
조현 2013. 07. 01
조회수 476추천수 0
 

 

법정 스님의 다비식-박종식--.JPG

법정 스님의 다비식. 사진 박종식 기자

 

 

한암스님--.JPG

조계종 초대 종정 한암 스님의 좌탈입망(앉은 채로 열반) 모습.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박노자·에를링 키텔센 풀어 엮음/책과함께·1만5000원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나 <거꾸로 보는 고대사>의 저자인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가 흥미 있는 책을 내놨다.

 

한·중·일 승려들의 임종게 모음이다. 임종게란 승려들이 열반의 순간 읊는 시다. 그래서 그의 총체적 수행력의 결정체로 꼽힌다. 이에 대해 박 교수가 노르웨이 시인 에를링 키델센과 대화했다.

 

 박 교수는 ‘불교학도’로 등장한다. 귀화 한국인으로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심성과 예절을 지니고 근현대불교사를 연구하고 <붓다를 죽인 부처>를 쓰기도 한 그는 불교학도가 맞다. 그러나 그는 기복이나 맹신적 불자와는 거리가 멀다. 전후좌우를 오가는 유대인 특유의 질문과 모든 권위를 깨려는 아나키스트적 사고를 담은 예리한 공세는 고승이라고 예외로 치지않는다. 오히려 금칠이 되고 신비화하고 높아졌기에 그는 더욱 구미가 당겼을 것이다.

 

그는 고려의 고승 나옹 혜근이 “태어남이란 한 줄기 맑은 바람 일어나는 것이고,/죽음이란 달그림자가 맑은 못에 잠기는 것이다.” 고 읊은데 대해 ‘고관대작을 다 거치면서, 지고한 경지를 그대로 보유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욕망을 초탈한 진정한 은자를 보지 못했다’고 한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실체적 탐구를 바탕으로 신비를 깨부순다.

 

 그에 반해 오히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신화를 들며 이국의 고승들의 시를 감상하는 키텔센이 이심전심으로 다가선다.

 

둘은‘죽음의 시’ 를 논하지만, 역시 돌아오는 자리는 현재이자 삶이다. 그리고 혼자만의 지고한 평화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누리는 평화와 행복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박노자--.JPG

저자 박노자 교수. 사진 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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