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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맨발 시국선언..국정원 때문에 민주주의가 죽었다

 

 

 
 
빗속에 맨발로 외치는 교고생들의 외침, 불꽃이 되어라
 
이호두 기자
기사입력: 2013/07/15 [00:35] 최종편집: ⓒ 자주민보
 
 

14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앞에서 고교생들의 '맨발 시국선언'이 있었다.
전남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 고교생 40여명은 '국정원 부정선거 개입으로 민주주의가 죽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 무주 푸른꿈 고교생 광화문 맨발 시국선언 현장 © 이호두 기자


























이 날 푸른꿈 고등학교 김태영 양(19)은 시국선언문 낭독을 통해 저먼 무주에서 서울까지 상경하여 맨발로 시국선언을 하게된 이유 세가지를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밝혔다.
 
▲ 여고생 김태영, '언론은 침묵하지 말고 국정원 선거부정 사태를 밝혀주십시요' © 이호두 기자


























첫째, 국정원 대선개입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깨끗해야 할 선거가 국가기관에 의해 혼탁되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며 국민의 절반은 ‘종북좌파’, ‘빨갱이’가 되도록 하며 여론몰이를 주도하였다.

둘째, 주요 언론의 침묵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은 국민들에게 진실을 바로 전하지 않으며 국민들의 관심사를 돌리려고 하는 해괴한 사태를 벌여 놓았다.

셋째, 경찰 측의 은폐 축소수사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은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수사에서 경찰로써 모순적이며 황당한 행각을 벌여 놓았다.
 
▲ 민주주의를 되찾자고 외치는 고교생들 © 이호두 기자












































또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 사태를 해결 하기 위해 ■ 수사 은폐 및 축소한 경찰 측 관계자 문책 및 처벌 ■ 존재 의의를 상실한 현 국정원 전면 개혁 실시 ■ 전 국정원장 원세훈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하여 구속기소 ■ 사실을 묵인한 언론들 진상규명 ■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 사건에 대한 진실과 수사현황을 국민에게 밝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 할 것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했다.

시국선언서 발표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 질의 응답을 통해 '고등학생이라 하여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수용할 수 없다. 고등학생 또한 국민이기에 맨발로 뛰쳐나왔다'며 고교생들도 미래에 대한민국을 짊어질 국민이 되고,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참지못하고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고교생들은 원하는 친구들만 자비로 교통편을 이용하여 왔다고 밝혔다.
 
▲ 푸른꿈 고교 학생회장을 격려하는 서울의소리 백은종 편집인 © 이호두 기자


























푸른꿈 고등학교 학생연대는 이 기자회견 직전 서울의소리 www.amn.kr 백은종 편집인에서 취재협조 요청을 보내왔다. 이에 현장에 참석하여 학생들의 시국선언을 듣고 인터뷰를 진행한 백 편집인은 "어린 학생들이 보여준 뜨거운 열의와 용기를 언론인들이 배웠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최근 국정원 규탄 촛불 현장에 JTBC 등 방송사 기자들이 취재를 해가고도 막상 어떤 이유에서인가 실제 방송을 타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이에 대해 백은종 편집인은 "언론이라면 진실과 사실을 보도할 수 있는 양심과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많은 것을 두려워 한다"고 일갈하며 10대 고등학생들도 불의에 참지못하고 맨발로 나오는데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 현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밀던 JTBC 기자 © 이호두 기자


























이 날 고교생 시국선언에는 서울의소리를 비롯 종편 JTBC, 연합뉴스, 머니투데이 등 다수의 매체가 찾아와 우중에서도 그들의 외침과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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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노대통령이 제안한 공동어로구역 지도 공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7/15 09:34
  • 수정일
    2013/07/15 09: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윤호중 의원 "박대통령 사과하고 국정원장 즉각 해임하라"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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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5 08: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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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윤호중 의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한 <남북한경제공동체 구상> 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지도와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우리측이 제기한 지도, 남북 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측이 제기한 지도를 14일 공개했다.

윤호중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NLL(북방한계선)을 기준으로 남북이 등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남북정상회담에 뒤이어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과 장성급군사회담에서도 이러한 방침을 일관해서 지키고 있다”면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열린 국방장관회담과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도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제안한 이 지도의 남북공동어로구역을 북한에 관철시키려다 결국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지도. [자료제공 - 윤호중 의원실]
 
   
▲ 2007년 11월 제2차 국방장관회담 당시 우리 측이 제시한 지도. [자료제공 - 윤호중 의원실]
윤 의원이 제시한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지도에는 NLL을 기준을 남북 수역이 맞물리는 직사각형의 공동어로 수역이 네 군데 표시돼 있으며, 전체 남북측 면적이 같은 등면적의 원칙이 적용돼 있다.

 

2007년 11월 2차 국방장관회담 당시 우리 측이 제시한 지도 역시 NLL을 가운데 두고 4군데의 공동어로 수역이 등면적으로 제시돼 있다.

 

   
▲ 2007년 12월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북측이 제시한 지도. [자료제공 - 윤호중 의원실]
 
   
▲ 남측과 북측이 제안한 공동어로구역 비교도. [자료제공 - 윤호중 의원실]
이에 비해 북측이 같은 해 12월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제출한 지도에는 NLL을 기준선으로 남쪽으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12해리 기점 사이의 수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제시하고 있다.

 

윤호중 의원은 “이러한 지도들을 보면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 등과 국정원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다”며 “이제 NLL과 관련한 정쟁을 끝내고,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등 헌정질서 문란행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발표하며,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을 것,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 부처의 국기문란과 국민기만에 대해 사과하고, 국정원장을 즉각 해임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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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태’논란, 가장 불편할 사람은 누구일까?

 
 
 
 
대통령의 수치심과 맞바꾼 정국주도권
 
정주식 | 2013-07-14 07:56: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민주당 홍익표 의원>

'귀태(鬼胎)'라, 기막힌 인용이다. 저자의 촌철살인에 박수를 보낸다. 어제 하루 때아닌 귀태논란으로 정국이 들썩였다. 11일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을 언급하며 "책에 '귀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후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최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행보가 남달리 유사한 면이 있다.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구시대로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고, 박 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며 대통령을 향한 신랄한 비난을 쏟아냈다.

야당의 원내 대변인이 국회에서 저런 원색적인 비난을 한 것이 옳은 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저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느꼈을 감정은 분노가 아닌 부끄러움이었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은 달랐다.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민주당을 향한 격노를 쏟아냈다. 어제 청와대 이정현 대변인은 홍 의원의 '귀태'발언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규정했다. '귀태'와 그런 것들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청와대가 발끈한 까닭은 '귀태'라는 말을 '귀신의 자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같은 뜻으로 직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인용된 표현의 적절성에 대해 판단하려면 사전적 의미가 아닌, 원저자가 표현한 비유의 맥락을 읽어야 한다. 어제 홍 의원이 언급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서 '귀태'가 사용된 맥락을 보면 이 말이 조롱이나 비하라기보다는 매우 날카로운 촌철살인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시 노부스케(왼쪽)와 박정희. 출처 한겨레>

<대일본 만주제국의 유산>이라는 원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은 '귀태들(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을 낳은 모성(母性)이 만주국에 있다고 말한다. 만주국의 기형적인 유산을 물려받아 한일 양국의 정치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로서의 박정희가 아닌, 만주국의 유산을 물려받은 정치인 박정희를 말한다.

 

흔히 만주국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따라붙는 수식어가 괴뢰국(傀儡國)이란 표현이다. 만주국은 20세기 세계사에 등장했던 국가중 가장 괴상한 형태를 가진 국가였다. 날조된 만주 철도 폭파 사건을 계기로 탄생된 만주국은 2차대전 패망전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침략 전초기지이자 병영국가의 실험실로 '활용'되었다.

"계획경제, 수출 주도, 농촌진흥, 중화학공업 육성 등 전후 일본과 한국의 압축적 정치·관료 주도 성장전략과 한국의 새마을운동,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조회, 군사교육, 충효교육, 국민교육 헌장, 퇴폐풍조 단속, 반상회, 고도 국방 체제를 위한 총력안보 체제 따위의 통제장치들이 모두 만주국 실험을 거친 것들이었다." 한겨레 인용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만주국의 유산을 이용해 정치적 영달을 이뤘다. 저자의 '귀태'라는 표현은 이것이 한일 양국에 가져왔던 부정적 영향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나는 근대사에서 사라졌어야 할 만주국의 기형(畸形)을 이용해 정치적 영달을 이룬 만주국의 후예들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 관련글 - 아베의 야스쿠니와 박근혜의 5.16

<양국의 우경화를 이끌고 있는 두 정치인>

어찌됐든 청와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말을 인용한 사람을 탓하기 전에 저자를 고발하는게 먼저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관계, 유사성에 관해 언급한 책은 수십수백권에 이른다. 청와대는 줄소송을 준비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럴 수 없다. 홍익표 의원의 입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군 장교로 복무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책과 논문, 기사와 구전 모두를 없애는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문제가 지나치게 '예의'나 연좌제의 문제로 함몰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다. 대통령이 '귀태'발언을 불편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불편함이 금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만약 이완용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매국노’라 부르는 사람들을 모두 고발한다면 어떨까? 이완용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매국노라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녀들의 불편함’ 때문에 이완용을 매국노라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같은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이 느낄 수치심이나 불편함 때문에 국민들이 다까끼마사오에 대해 쉬쉬할 이유는 없다. 이완용의 매국행적과 다까끼마사오의 만주군행적이 갖는 공통점은 단죄하지 못한 과거라는 점이다. 이것이 금기가 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연좌제는 분명 철폐되어야 할 구습이다. 그러나 연좌제라는 비판이 성립하는 경우는 선대의 부덕이 후대에 와서 사라진 경우다. 아비의 부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이 아비에 대한 비난에 대해 "연좌제다"라고 항변한다면 그걸 누가 인정하겠는가. 어제 홍 의원이 '귀태'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지적하고자 했던 부분 역시 이것이었다.

대통령의 수치심과 맞바꾼 정국주도권

새누리당은 귀태발언에 맹공을 취함으로써 수세에 몰렸던 상황을 일시적으로나마 역전시키고 정국주도권을 빼앗아 왔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찾아온 '귀태정국'이 가장 불편한 사람이 누구일까? 어제 하루 어떤 식으로든 미디어를 접했던 사람들은 모두 귀태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즉, 다까끼마사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홍익표 의원이 다까끼마사오의 무덤에 살짝 ‘노크’를 했다면, 귀태정국을 주도한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그의 관뚜껑을 열어 재낀 것이나 다름없다.

'귀태'란 말이 가장 불편했던 사람은 역설적으로 귀태정국에서 가장 큰 정치적 이득을 본 박근혜 대통령일 것이다. 논란이 된 '귀태'라는 말의 본질은 '귀신의 자식'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아닌, 그가 독립군을 때려잡던 만주국장교였다는 사실에 있다. 아버지의 과거행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귀태’논쟁이 달가울 리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에게 아버지의 치부 다까끼마사오의 과거가 들춰지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귀태'발언에 맹공을 퍼부으며 '귀태정국'을 조장했다. 대통령 개인의 불편함과 수치심을 정국주도권과 맞바꾼 것이다. 홍 의원의 '귀태'발언이 나온 뒤 청와대 대변인의 입장이 발표되기까지의 22시간은 아마도 이것에 대한 대통령의 고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청와대가 '귀태'를 정략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국정원정국에서 느끼고 있는 위기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귀태'논쟁에서 발견되는 대통령의 한계가 있다. 그가 MB와의 선긋기는 가능할지 몰라도, 아버지와의 선긋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불행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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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의 싸움이 시작된 순간, 모두가 내 적이 됐다"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37>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14 오후 12:53:17

 

 

누가 고고한 안동의 선비를 이토록 분노하게 했나. 어떻게 해서 그는 기득권이 건드리지 않으려는 재벌의 문제, 그것도 삼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게 됐나. 그것도 정부기관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금융연구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나는 한 번도 내가 진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개혁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다만, 내가 그동안 정통 경제학을 하면서 배운 것이 우리 경제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내가 배운 바대로 경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놈이라며 색칠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시장경제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시장경제가 재벌 때문에 제대로 안 돌아가는 데에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학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이 정당하지 않게 잘 먹고 잘 산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좋은 경제이다. 대한민국 5퍼센트에 속하는 정통 경제학을 한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시장경제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의 독식은 죄악이다.

"학자가 글을 쓸 때는 이상적인 수준까지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 문제를 다 고려해서 여기까지만 하자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학자는 해야 할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는 거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할 것인지는 현장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진보적인 학자들이 우(友)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보다 훨씬 세게 좌(左)로 이야기를 해줘야 중간에라도 타협을 하고 좌 쪽으로 조금이라도 올 수 있다."

학자란, 자신이 학문하는 분야의 진보 보수의 양 끝 사이에서 진보와 보수의 중간 언저리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상(理想)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맞다. 그것들 사이에서 최종 타협을 하는 것은 정치와 행정의 몫이기 때문이다.

"계속할 거다. 여론을 환기시키고 사회가 바뀌도록 노력할 거다. 그것이 현실에 참여한 학자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큰 바위 얼굴이 나와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제는 나도 곧 은퇴할 날이 다가오는데, 남은 기간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충성하고 도와줄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내게 남은 모든 것을 바쳐서 불사를 수 있는 인물을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이 정부가 끝나기까지 아니, 그의 모든 것을 바쳐서 충성하게 될 백마 탄 초인이 나온 이후에도 이동걸 교수의 쓴 소리는 계속될 것 같다. <편집자>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표 경제민주화가 허구인 이유", "박근혜, 잘못된 경제인식도 문제다", "'박근혜 불가론'의 11번째 이유" 등의 제목으로 <한겨레>에 칼럼을 썼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후에도 "위기의 근혜노믹스", "박근혜식 창조경제, 성공할까?" 등 박근혜 정부에 계속 쓴 소리를 하고 있다. 권력이 이미 넘어간 상황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계속 내는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불안하지 않나.

내가 그 사람들한테 잘 보일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잘 보인다고 뭐 얻어먹을 게 있는 것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거나 불안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민주당이 잘할 거냐 못할 거냐는 것을 떠나서 새누리당과 '박근혜'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박근혜를 반대했던 이유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우리나라가 많이 망가졌는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앞으로 이 나라가 더 퇴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대한민국 50년 발전사에서 분명 '박정희'가 기여한 바는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가 다시 박정희를 불러낼 만큼 후진국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박정희가 대통령이었는데, 내 딸이 대학을 다니는 요즘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온 건 정치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여권은 야당의 아젠다를 훔쳐 쓰면서 이겼고, 야당은 모든 것을 도둑맞고 바보처럼 졌다.
 

▲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도 칼럼을 쓰면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못 써서 "박근혜가" "박 대통령이"라고 썼더니 신문사에서 자꾸 "박근혜 대통령"으로 바꾸더라. 아직까지 이게 내 심정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고 5년간 그 자리에 있을 텐데, 이 기간에 우리나라가 더 퇴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라도 너희가 약속한 걸 제대로 지키라는 차원에서 '누군가는 계속 쓴 소리를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경험한 것이 있다. 그동안 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됐고, 상당히 성숙해졌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한 사람의 생활을 악의적으로 좌지우지하지는 않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생활을 중단할 만큼 개인의 사생활에 개입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적어도 그런 식으로 치졸하게 국민들을 괴롭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밥통 공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의 생계에 위협을 주며 협박했다. 금융연구원장직을 임기 중에 그만두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학교로 갈걸, 그러면 적어도 65세까지는 안전할 텐데...'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불안한 것은 아니다. 수입이 상당히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못 벌어먹는 것도 아니고, 또 박정희 시절처럼 사람을 잡아다 죽이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핍박과 감시는 있고 직장에서 밀어내는 생존의 문제는 심각하다. 나야 어디 가든 밥벌이는 할 수 있지만, 일반 국민에게 이런 생계의 위협은 정말 큰 것이다.

국가 권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에서 경험했지만, 박근혜 정권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개인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이 힘들진 않나.

더 이상 쫓겨날 데가 없다. 지금 있는 학교의 계약기간이 다 되어서 여기에 더 있을지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지 모르겠지만, 어디든 가서 강의하고 글 쓰면서 살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예순이니 몇 년 만 더 일하면 된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생활을 위해서 최소한의 돈은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하든 생계는 유지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연구원장을 하면서 돈에 관해서는 굉장히 신경 썼다. 단 한 푼도 연구원 돈은 건드리지 않았고, 세금도 다 찾아서 내려고 했다. 분명히 상대편에서 뒷조사해서 허물이 있으면 협박을 할 것이고, 여기에 조ㆍ중ㆍ동이 달려들어 죽이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을 느끼기도 했다. 직원들이 아프면 금일봉을 주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고, 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영수증 처리를 할 수 있는 꽃이나 과일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도 병원 생활을 해봤고 우리 아버지·어머니가 병원 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병원 생활은 정말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내 월급에서 50만 원, 100만 원을 빼서 금일봉을 주는 식으로 직원들 신경을 많이 썼다. 이렇게 신경을 썼다는 것 외에는 별것이 없다.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과 금융연구원장 시절 비판했던 '투자유가증권평가이익', '금산분리완화정책' 등은 삼성을 비롯한 재벌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이 내 적이 됐다"라고 말했듯이 삼성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반드시 짚어야 할 핵심 문제는 무엇이었나.

2004년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 내가 삼성과 부딪혔던 것은 투자유가증권평가이익이라는 것이었다. 재벌들은 항상 돈에 목말라 있기 때문에 은행을 갖고 싶어 하는데, 재벌의 은행소유는 은행법으로 금하고 있다.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후 제일 먼저 한 것이 삼성에서 은행을 뺏고 재벌의 은행소유를 금지한 것이었다. 그 당시 한일은행인가를 삼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은행 다음으로 돈이 많은 곳이 생명보험사인데, 재벌이 은행을 못 갖게 했더니 삼성이 생명보험에 눈독을 들였다. 삼성은 삼성생명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방생명을 인수해 지금까지 키웠다. 그리고 그 생명보험사의 돈으로 계열사를 늘리면서 성장했다. 그중에 가장 성공한 게 삼성전자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갖고 삼성그룹의 홀딩 컴퍼니 역할을 한다는 것은 모두 삼성생명 돈으로 투자를 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삼성생명 돈은 이건희 회장의 돈이 아니라 계약자의 돈인데, 계약자의 돈으로 투자를 한 것이다. 삼성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지분을 계약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회계를 조작해 주주와 회사의 몫으로 전부 돌리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당겨간 돈이 4조 원 가량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엔 2조 원 정도인 줄 알고 터뜨렸는데, 조사하다 보니 4조 원 정도로 늘었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삼성에 전달한 메시지는 "이 건을 가지고 너희를 분리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계약자의 돈을 탈취해 간 것만큼은 계약자의 이익보호 차원에서 계약자 몫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일은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침해한 문제이기 때문에 계약자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1차적 목적이었다. 물론 재벌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더 커지는 건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재벌 개혁'과는 별건이다. 그런데 삼성에선 그것을 재벌 개혁으로 본 것이다.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됐고, 그 순간 모두가 내 적이 됐다.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밖으로 터뜨릴 때 마음이 어땠나?

우연히 사건의 전말을 알게 돼 검토하다 보니까 삼성이 회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처음에는 감독원 보험팀을 데리고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사보타주(sabotage, 고의적인 사유재산 파괴나 태업 등을 통한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검토해서 가져오라고 하면 그 다음에 똑같은 것을 가져오고, 왜 일이 진행이 안 됐냐고 하면 준비 중이라고만 하고, 일주일 뒤에는 또 같은 것을 가져왔다. 내가 위원장이었으면(당시는 감독원장 겸임이었다) 그놈들을 파면시키든지 좌천시켜버리고, 새로 팀을 구성하면 되지만 내게 인사권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거기서 접고 혼자 한 3~4개월을 고민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 일을 터뜨리면 삼성이 죽자사자 달려들었을 텐데…. 여기서 내 주장이 조금이라도 틀렸으면, 나는 그날로 생매장되는 거였다. 감독원은 등을 돌렸지, 나 혼자서 싸워야 할 싸움인데 삼성의 힘이 얼마나 센지는 알고 있지, 사실 겁도 많이 났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관련 전문가들에게 이 일이 삼성 건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런 건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으면, 열이면 열 "그것은 이동걸 박사 말이 맞다"며 내 의견에 동조했다. 그렇게 확인 작업을 거치고 난 후에 터뜨린 것이다.

좀 변칙적으로 기자들과 밥을 먹으면서 이 사실을 터뜨렸는데, 신문에 보도된 이후부터는 많은 학자들이 거기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걸 꺼렸다.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10명 중에 8~9명이고, 나머지 1~2명은 내가 틀렸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내 욕을 하기 시작했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로 뒤에서는 내가 틀렸다고 수군대고 다녔다. 그래서 일일이 그들을 다 만났다. 일부 보수 학자들은 나더러 "이동걸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로 분란을 일으킨다"라고 말해서 조목조목 반박해줬다. 어느 교수는 생명보험학회까지 동원해서 내 욕을 해서 직접 가서 정면으로 싸우려고 했다.

결국 금감위원장까지 나서 "부위원장님이 거기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려서 못 갔지만, 몇몇 학회장들과 교수들에게는 직접 만나자고 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나를 만나는 자리에 '내가 자기 욕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만큼…'이라면서 신문 기사를 가지고 나왔다. 증인을 세운다며 내 고등학교 선·후배와 교수들 몇 명까지 데리고 나왔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욕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그 신문 기사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런데 끝까지 보여주지 않더라.

내가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 내가 뭐가 틀렸냐?"라고 물어보니, 한 시간 동안 내가 틀렸다는 얘기는 못하고 주변적인 이야기만 했다. 끝까지 들었더니, '이 친구가 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못하는구나. 자신이 없는 게로구나'하는 감을 잡았다. 그래서 "그러십니까. 말씀 다 하셨습니까?"라며 "그럼, 이제 내가 말하겠습니다"하고는 20분쯤 나는 이런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것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딴소리하면, 그때부터 당신과 내가 공개적으로 한판 붙을 각오를 해라"고 했다. 그랬더니 "뭐, 싸우자는 게 아니고..."라면서 말끝을 흐리더라.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얘기를 안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이론적으로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제압하고 났더니, 그 다음에는 "이동걸은 일을 시끄럽게 처리한다"라며 나를 욕하더라. 한번은 청와대 고위 공무원에게 불려 가서 "일 좀 조용히 처리하라"는 말을 들었다. 경찰이 강도질을 한 놈을 잡아 쇠고랑을 채워 가는데, 그놈이 조용히 안 가고 반항하면서 시끄럽게 한 것을 경찰 탓하는 셈이다. 그것은 경찰이 잘못한 게 아니다. 박정희식으로 하면 시끄럽게 못 하게 입에 재갈 물리고 쥐어박아서 데려가는 것인데, 민주적으로 하려다 보니까 발악하고 난동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범법자가 조용히 해야지 어떻게 경찰이 조용히 하느냐?"라고 했다. '금감위 부위원장'이라는 공권력이 정당한 이유와 절차를 따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할 때는 그것을 위배한 자가 마땅히 따라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성의 반응은 어땠나?

내가 금감위 부위원장으로 있었을 때 재벌계열 금융기관들의 법규위반사항을 여러 건 적발해서 시정도 하고 처벌도 했다. 그 때 경험에 의하면, 보통 다른 재벌들은 법을 어긴 게 적발되면 순순히 정부의 시정명령에 따른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따르는 척이라도 했다. 그런데 삼성은 달랐다. 정부를 이기려고 하더라. 아니면 다른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나를 잡으려고 그랬던 건지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이 건으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삼성생명 계약자들인데, 어림잡아도 수백 만 명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삼성생명이 편법으로 가져간 4조 원을 나눠 가져봐야 각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크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덜하고 실제로 이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삼성만 직격탄으로 손해를 보는 일이기 때문에 죽자사자 달려들었다.

삼성이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기업으로 크면서 공을 세운 것도 물론 많지만, 그만큼 힘이 세지면서 여러 과도 저질렀다. 그것을 고쳐야지만, 우리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 재벌이 잘한 면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재벌의 부정적 측면을 바꾸자는 것이다. 많은 재벌들이 다른 중소기업들이 기여한 부분을 뺏어가면서 자기네들이 제일 많이 기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주체들이 경제 행위를 못하게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경제 잠재력을 죽이는 것이다.

환율이 오를 때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대재벌들은 떼돈을 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들에게는 환율이 오른 만큼 원자재의 부품 값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만큼을 더 뺏어간다. 국민들은 높은 물가만큼 그것을 지불하면서 재벌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보조해 준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고 힘이 없는 중소기업들이다. 나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왜 재벌을 편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 말처럼 정상적으로 시장경제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경제 주체들이 각자 기여한 만큼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 이상으로 가져가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힘이 엄청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돌아가는 이익 집중을 막을 주체가 없는 상황이다. 재벌의 집중화된 힘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러 해 전부터 계속 '기업생태계' 이야기를 해 왔다. 자연적이고 건전한 기업생태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힘센 공룡들이 너무 설치고 다녀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기업을 키워야 하고 대기업의 포악함을 제어해야 한다. 실제로 중소기업이 우리의 생명력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건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 2000년대 들어 10년간 중소기업에서 300만 개의 일자리가 나왔고, 대기업에서는 50만 개의 일자리가 줄었다. 기업의 흐름을 보면, 벤처에서 시작한 기업이 큰 기업으로 커 나갈 때는 일자리가 많이 생기지만 일단 그 기업이 성숙하면 더는 일자리가 안 생긴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이제는 성숙한 기업이 되어 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새로 내놓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여론이 형성된다. 심지어 이제는 박근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계속 우리나라는 30대 재벌이 아닌 300대, 3000대 기업 체제로 가야 한다고 하는 거다. 우리가 만약 재벌이 우리를 먹여 살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들을 옹호한다면 절대로 재벌개혁을 못 한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는다. 실제로 재벌이 없는 영역에서 새로운 대기업이 나왔지 않나. 미래에셋과 웅진 등의 기업이 그랬고, 게임 산업에서도 큰 기업들이 많이 나왔다. 다행히 재벌 따님들이 게임을 안 해서 그 산업이 컸다(웃음). '햇반'을 만든 것을 보면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창조적인지 알 수 있다. 재벌이 생각하지 못한 영역에서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희망적이다.

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그만둘 때도 그랬고, 2009년 금융연구원 원장을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다가 결국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나.

함부로 자리를 던지고 나온 적은 없다. 내가 여기서 조금만 굽히고 더 할 것인가, 아니면 그만두더라도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인지 마지막까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결정한다.

부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삼성 건을 시작할 때 기자들에게 "지금 내가 삼성을 건드리면 이 자리에서 3개월을 못 버틴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이것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내 양심에 의해 이 일을 그냥 덮고 갈 수는 없었다. 내가 그냥 한 번 눈 감으면 그걸로 영원히 덮고 가야 하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정재 금융위원장이 나가고 윤증현이라는 사람을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나를 승진시키지 않았을 때 '아, 노 대통령의 금융개혁·재벌개혁은 여기서 끝났다. 나보고 더 이상 일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구나' 싶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금융연구원장으로 반년 정도 머문 후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었는데, 그때부터 사퇴 압박을 많았다. 버티려면 몇 달은 더 버틸 수 있었겠지만, 당시 이명박 정부 내부에서도 티격태격하면서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많았다. 그것들을 잘 해주지도 않으니 나중에는 "청와대랑 한 판 붙으려는 거냐?"는 소리도 듣고 협박도 받았다. 내가 부위원장을 할 때 은행에서 전무, 상무 하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자 은행장이 되어 정부의 사주를 받고 나더러 그만두라고 공격해왔다. 그래도 임기가 3년인데 절반은 넘겨야지 하는 생각으로, 2007년 7월 14일에 취임해 딱 1년 반인 2009년 1월 15일을 넘기고 보름을 더하고 사임했다. 버틸 만큼 버티고 나온 것이다.

나는 어떤 문제 앞에서 여러 고민을 하는데, 기왕 문제를 해결할 때는 최대한 미는 데까지 밀어 보자는 주의다. 예를 들어 학자가 글을 쓸 때는 이상적인 수준까지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 문제를 다 고려해서 여기까지만 하자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학자는 해야 할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는 거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할 것인지는 현장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이상적인 수준을 두고 현재의 상태에서 최대한 이상적인 상태로 밀어 보자는 게 우리 쪽이고 반대로 최대한 현 상태를 지속하자고 하는 쪽이 보수다. 여기서 바로 행정의 중간타협이 필요한 것이다.

금감위에 있을 때 친한 선후배 동료였던 김상조, 전성인, 윤석헌 교수 등이 "밖에서 우리들이 너무 세게 얘기하면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기에 "당신네들이 약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더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진보적인 학자들이 우(友)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보다 훨씬 세게 좌(左)로 이야기해줘야 중간에라도 타협하고, 좌 쪽으로 조금이라도 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내 입장을 고려한다고 해서 적당히 이야기한다면, 우 쪽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내 욕도 하면서 세게 말해야 나도 저쪽으로 가서 "나도 욕먹어 가면서 당신네들과 타협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바로 행정의 묘미이다.

행정을 그만두고 학자로 나왔을 때는 직접 왼쪽의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싶어서 나온 건가?

일단 나왔으니 내 위치로 돌아가서 원래 주장하려던 바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야 이쪽으로 조금이라도 끌고 올 수 있다. 어차피 좌가 집권하든 우가 집권하든 간에 양쪽이 하고 싶은 대로는 다 못한다. 중간에서 조금 더 좌로 가느냐, 우로 가느냐 정도의 차이다. 양쪽에서 싸우다가 결국 중간 어디쯤에서는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계속 떠들어 줘야 한다.

언론이나 학자들 사이에서 삼성 문제나 재벌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에도 일종의 '호기' 같은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삼성의 문제나 재벌 개혁의 이야기가 뜸하다.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가?

우리 사회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에게 애증(愛憎)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애(愛)라는 건 그래도 저만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서 우리 경제를 끌어왔다는 것이고, 증(憎)은 저들이 갑 노릇을 하면서 을에 대한 착취를 해왔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애가 더 득세하고 어떨 땐 증이 득세한다. 바로 증오가 득세할 때가 재벌개혁을 할 호기다.

1997년 경제위기를 맞고 몇 년간은 재벌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국민들 사이에서 확실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개혁적 조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재벌들이 반격하기 시작했다. 모든 상권을 다 집어 먹는데, 이제는 먹다 먹다 먹을 게 없어서 동네 라면집, 떡볶이집을 먹으면서 골목 상권을 장악했다. 이것을 피부로 느낀 서민들이 이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고 2011년경부터는 다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때쯤 고민을 하다가 이제 타이밍이 됐다고 여겨 "만약 삼성그룹이 없어진다면"이라는 글을 썼다. 지금이 바로 재벌 개혁의 모멘텀을 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 때는 사람들이 재벌의 폐해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던 때라 재벌 개혁 쪽으로 확 쏠렸다. 심지어는 새누리당 박근혜도 경제민주화 하겠다고 사기를 쳤다. 우리 쪽의 아젠다가 저쪽으로도 넘어가 결국 새누리당, 민주당 전부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한 2년 가까이하면 사람들이 식상해 한다. 그러면서 "새누리당도 한다고 하는데 왜 자꾸 시끄럽게 또 이야기하느냐?"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멘텀이 중요한 거다. 이것을 놓치고 정권을 못 잡는다면 그다음엔 그냥 손 놓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 너희들도 한다고 했으니까 약속한 만큼이라도 해봐라"하고 쓴 소리를 계속하면서 다음 모멘텀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수구 기득권층과의 싸움에서는 돈의 힘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우리 쪽이 불리하다. 저쪽은 워낙 돈이 많아서 사람도 기계도, 심지어는 군대도 살 수 있다. 요즘 들어오는 메일 중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전경련, 한경련 등에서 보내는 메일이 가장 많다. 전경련에서 일반 학자들을 동원해서 "경제민주화하면 나라 잡는다", "경제가 어려운데 재벌을 왜 속박하느냐?", "일자리를 늘려야지 경제민주화가 웬 말이냐?", "서민들의 시기심과 증오로 국민갈등이 생겼다" 등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글들을 수도 없이 발행한다. 그 밑에는 몇 십 명의 박사들을 가진 한국경제연구원이라는 수구 싱크탱크도 있다.

또 삼성, 현대 등 재벌마다 경제연구소를 두어 수없이 많은 자료를 쏟아내면서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 아젠다를 끌고 가고 있다. 여론몰이를 하는 거다. 국민들도 자꾸 그 말을 듣다 보면 세뇌되기에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더 세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역할을 소수긴 하지만 김상조, 전성인, 유종일, 최태욱 등의 학자들이 열심히 해주고 있다. 그런데 중과부적(衆寡不敵)이다.

결국 국민들의 불만이 돈의 힘을 능가할 만큼 증가하면서 동시에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원론적인 측면에서 국민들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본다. 그런데 그다음 개혁의 효과를 보여 줘야하는 민주당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지면서 국민의 열망에 대해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이만큼 만들어 줬는데 기회를 놓치다니 당으로서 허접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12년 총선 당시 유종일, 이해영, 이상이, 홍종학 교수(현 홍종학 의원), 우석훈, 선대인 씨 등으로 꾸려진 '9988 유세단(99% 국민을 위해 88 뛰는 후보들을 응원한다)'과 함께 송파 을에서는 천정배 후보를, 강남 을에서는 정동영 후보를 지지했다. 평소 선비라고 불리는 이동걸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유세 현장에 있는 모습이 약간은 생경했다.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함께했나.

그만큼 절박했다. 사실 피켓만 들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마이크 잡고 얘기하라고 해서 당황했다. 돌이켜 보면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자기 밥그릇을 챙기다 보니 일이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 차원에 공천을 할 때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동시에 당의 쇄신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해야 하는데 "그 자리는 누구 자리였으니까 그 자리 지키기 위해선 누구를 줘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내가 칼럼에서 "지역구가 명동 좌판이냐?"라고 했다. 국회의원 공천을 사고파는 식으로 하니, 하도 화가 나서 경제학자나 정치학자가 해야 할 얘기를 했다. 그런 절박함으로, 밖에 뛰쳐나가서 소리도 지르고 한 것인데 별로 도움은 안 됐을 것이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고 나서 민주당 일각에서 중구난방으로 "이번에 진보 쪽의 득표율을 모두 모아보면 우리가 이긴 거다"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더라.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니까 '대선에서도 지겠구나' 싶었다. 화가 나서 욕도 좀 했다.

결국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정치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한다는데, 정부가 재벌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옛날에 우리나라가 자본이 부족했을 때는 박정희 스타일로 정부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 뒤 자본 공급이 이루어졌다. 그 혜택을 받은 것이 바로 재벌이다. 옛날에는 부족한 자본을 모아준다는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돈이 너무 많은 상황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게 돈이다. 대한민국의 금융자산 총액이 자그마치 1경을 넘는다. 1경은 1조의 만 배다. 요즘 제일 많이 받는 문자가 "오빠 심심해?"랑 "돈 쓰세요"다(웃음). "전화를 거시면 4000만 원 즉시 입금" 등과 같은 메시지가 허다하다. 금융기관에 돈은 너부러져 있는 것이다. 이 돈을 가지고 옛날처럼 관치금융을 통해 재벌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중소기업을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본래 금융의 기능은 자본이 필요한 부분에 자본을 적절히 제공해주면서 수익도 얻고 옥석도 가리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시작했던 금융개혁의 목표도 바로 금융의 본래 기능을 회복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168조 원이라는 거액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어 붕괴된 금융산업을 복원시키고 또 수많은 제도개혁을 했던 건데, 오히려 이것이 재벌과 관료의 힘만 키웠다. 그래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재벌과 관료들이 눈치라도 봤는데,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너무 많이 퇴보했다. 60년대, 70년대로 돌아간 기분이다.

박근혜가 '창조경제'를 하겠다고 했으니, 앞으로 할 일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든 금융이든 이것들이 시장 안에 골고루 퍼지도록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이 억눌린 사람에게나 혹은 지금은 시장 경쟁에서 쳐져 있지만, 앞으로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경제는 아직까지 큰 놈이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모든 권력을 행세하는 후진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 시장경제가 극도로 왜곡돼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 개혁이란 재벌들이 유망한 중소기업을 돈의 힘으로 무자비하게 죽이는 생태계, 창조력을 질식시키는 오염된 생태계를 깨자는 것이다. 분명 바뀌리라 기대하고 싶지만, 실상은 쉽지 않다. 재벌뿐 아니라 관료의 힘도 세졌기 때문이다. 이 둘이 연합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경제민주화란 비정상적인 경제 기득권을 깨는 작업이고 거기에 우리 생사가 달려 있다고 본다. 박근혜가 잘해야 하는데, '박근혜의 창조경제'에는 내용이 없다.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김대중 정부 행정부에서, 또 금융감독위원회와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일하면서 가장 재밌게 일했던 것은 언제였나?

김대중 정부에서 1년 동안 청와대에서 일했던 때와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위원회에서 1년 반 동안 부위원장을 할 때가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이 있었다. '정말 쓰러져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도 많이 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그 일을 하는 동안 '아, 이런 게 공권력의 힘이구나'를 여러 번 느꼈다.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발휘되는 공권력을 당해낼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당시 너무 바빠서 일기를 못 써 자꾸 기억에서 사라지는데 돌이켜 보면 정말 재밌는 일이 많았다. 김대중 정부 때 대우를 포함해서 부실재벌들을 구조조정 시키면서 국민 세금부담을 30~40조 원 이상 줄였다고 자부한다. 그 정도면 대한민국 모든 대학생의 몇 년 치 등록금은 될 것이다. 만약 구조조정을 계속 미뤘다면 그 빚이 점점 커졌을 텐데, 싸우면서까지 구조조정을 시켜 비용을 줄이고 또 비용이 덜 드는 방법을 찾기도 했다. 생명보험회사를 통한 재벌의 이익 편취 문제를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생보사들까지 못하도록 법을 바꾼 것도 의미가 있었다.

정무직 공무원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가끔 '나는 이 자리가 이렇게 힘든데 공무원들은 어떻게 저 자리에서 저렇게 잘 버틸까' 하고 고민을 했다. 이유는 딱 한 가지였는데 공무원들은 시키는 만큼만 하고 또는 하는 척하고 그 자리를 즐기면 된다. 공무원들이 과장급 이상이 되면 입맛은 재벌급 정도가 된다. 앞으로 장관까지 생각하는 공무원들은 커리어를 생각해서 돈은 조심하는 것 같더라. 제대로 안 된 공무원들이 돈까지 받는 거다. 어떤 공무원들과 식당에 한 번 가면 정말 최고급으로 시킨다. 자기들 돈이 아니니까 맨날 비싼 와인 시켜먹으면서 고급스러운 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물러날 때쯤 되면 나가서 갈 자리를 만든다. 내가 금감위를 그만두고 쉬면서 다시 연구원으로 복귀하는데 주변에 친한 기자들과 공무원들이 나더러 "왜 나갈 자리를 안 만들어 놓으셨어요"라고 하더라. 그게 다반사이다.

내가 일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중에는 이상한 로비를 한다거나 하는 위험한 사람도 있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거의 다 피했다. 그런 사람들은 나를 대접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는 열 명을 만난다고 하면 세 명은 내부 직원들이나 동료들 밥을 사주고, 다섯 명쯤은 학자들이나 외부 사람들 만나서 의견을 듣고 설득하고, 나머지 한두 명 정도 옛날부터 알고 지냈던 금융기관의 사람들을 가볍게 만나 금융시장 돌아가는 사정을 듣는 정도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 끼니가 일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 일 자체가 힘들고 지겨워 죽겠는데 다른 공무원들은 잘도 버티더라.

이제는 그 자리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다만 좋은 후배들이 공직에 많이 들어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좋은 사람들을 키우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베이스를 만들어 놓으면, 다음에 진보적인 정권이 됐을 때 그 사람들이 들어가 일하기 시작하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개혁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하면서 그런 단초를 볼 때마다 보람을 느꼈다. 쑥스럽지만 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는데, 내가 그만두고 나서 도루묵이 된 것이 많아 아쉽다. 그렇지만 '어차피 나는 어떤 흘러가는 흐름에서 그 순간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고, 안 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 부분은 누군가가 또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차피 수십 년 쌓인 병폐가 하루아침에 한두 사람의 힘으로 고쳐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꾸준히 해나가야지.

'경기고등학교-서울대-예일대'라는 한국사회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형편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고 충분히 엘리트이면서, 어떻게 고급스러운 공무원의 입맛보다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었나?

나도 입맛이 높다(웃음). 가끔 고급 와인도 마신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위에서) 1년 반을 하고 나왔을 때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보좌관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당시 몸도 많이 아팠고 다시 (관료직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증권거래소에서 오라고 하는 것도 거기 가서 내가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한국은행의 금통위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도 그냥 안 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월급을 한 수억 원씩 준다고 하던데 '아, 갈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웃음).
 

ⓒ프레시안(최형락)

내 복귀를 위해 애쓴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면에 재경부는 나를 많이 반대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저 친구는 동창들과도 교류를 많이 안 한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거였다. 어이가 없었다. 물론 동창회에 나가긴 하지만, 주로 친한 멤버들이나 보고 대부분 상갓집이나 결혼식 같은 데서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하는 정도이지 친구들하고 긴밀하게 만나진 않는다. 그러니 공무원들이 그렇게 욕을 하더라. 이렇게까지 치졸하다. 내가 친구들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단계에서는 바쁘고 서로가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못 만나게 되는 것이고,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만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저질스러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거 아닌데? 이것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게 아니야?"라고 몇 번 글을 쓰고 나면 저쪽에서는 나에게 자꾸 빨간 칠을 한다. 내가 A라는 주장을 하고 다른 사람이 B라고 주장을 하면 이 두 주장이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건설적인 논쟁의 대표적인 예로 넉시(R.Nurkse)와 허쉬만(A. O. Hirshman)이라는 두 명의 학자가 있는데, 넉시는 균형 성장론을 주장한 분이고 허쉬만은 불균형 성장론을 주장한 사람이다.

균형 성장론은 경제가 균형 잡히게 발전하지 않으면 결국 무언가 뒤틀리고 브레이크가 걸리기 때문에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불균형 성장론은 가장 효과가 높은 산업 쪽으로 지원을 몰아주면서 그 산업을 키우면서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산업도 키우자는 주장이다. 넉시는 그렇게 되면 경제 불균형이 심해져서 결국 을·병·정은 죽고 갑만 크게 된다며, 서로 치열하게 논쟁했다. 누가 맞고 틀렸다기보다는 둘 다 맞고, 둘 다 틀린 거다. 상호보완적인 거다. 그러다가 넉시 교수가 먼저 타계했는데, 허쉬만이 넉시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다음부터는 자신도 논문을 못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식으로 논쟁은 서로가 상생할 수 있도록 생산적이어야 되는데, 우리는 논쟁을 시작하면 색칠부터 한다.

정통 경제학을 한 학자가 어쩌다 진보적인 학자로 분류된 건가.

나는 한 번도 내가 '진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개혁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다만, 지금껏 미국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유럽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자본주의 정통 경제학밖에 모른다. 정통 경제학을 하면서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배운 바대로 이것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놈이라며 색칠한다. 하지만 나는 시장경제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시장경제가 재벌 때문에 제대로 안 돌아가는 것이지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정태인 소장이 한 말이 '정통 경제학을 한 사람 중에 자기하고 얘기가 될 수 있고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장하성, 이동걸, 김상조밖에 못 봤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정통경제학이 온통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굉장히 우경화돼 있는 게 사실이다. 언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럽을 두고 한참 오른쪽으로 와야 미국이 있고 거기에서 한참을 더 오른쪽으로 와야 한국이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 표현이 정확히 맞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진보는 미국 기준으로는 중도 개혁이나 온건한 민주당 수준밖에 안되고, 유럽 기준으로 보면 보수나 마찬가지다. 나라는 사람이 진보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고 개혁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은 반대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우경화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 내가 진보로 분류되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색칠하고 구분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진보를 선택했건 하지 않았건, 그럼에도 지금의 위치에서 '진보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가.

주변에 나보다 훨씬 더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내 친구들은, 특히 고등학교 동창들은 대부분 나보다 훨씬 더 잘 산다. 하지만 나도 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들보다는 꽤 잘 벌고 잘 산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함께 돈을 벌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외식도 하고 휴가여행도 가고 뮤지컬도 보고 할 정도는 된다. 골프는 안 치면 된다. 외제 차도 안 몰면 된다. 현대차도 성능이 좋다. 집도 있고. 대한민국 5퍼센트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면 된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교수 중에서 더 잘 먹겠다고 저쪽에 붙는 놈들은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우리나라에서 교수의 월급 수준은 재벌 기업의 회장님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지금 월급에 앞으로 연금까지 더하면 굉장히 높다. 그런데 이런 교수들이 돈에 욕심을 부려서 재벌들의 어용 노릇을 하는 것을 보면 좀 메스껍다. '그 정도면 됐지 얼마를 먹으려고 저렇게 아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다.

'내가 옳다고 생각이 되면 그것을 추진한다'고 했다.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나?

학술적인 면과 논리적인 면이 있다. 우선 학술적, 논리적으로 틀리면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은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것은 학술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A부터 D까지의 논리 중에 목표에 따라 자기가 선택을 하는 거다. 이 단계에서 자신이 사회를 보는 눈, 즉 '무엇이 정의인가, 어떤 것이 공정한 것인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등이 개인적 판단의 기준이 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학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다. 다만 어떤 사람이 정당하지 않게 잘 먹고 잘 산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제학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동서고금을 통해 그래왔다. 그것을 바로잡자는 거다. 경제학은 가진 자를 위한 학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학문이다. 내 판단의 근거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라는 책이 나왔을 때 속으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이 나오는 것은 아닌데...' 싶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대학의 시간강사를 하는 분으로 기억하는데, 마침 그분이 "왜 아픈지나 아냐?"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더라. 그가 거기서 "도대체 네가 청년이 왜 아픈지는 알기나 하느냐? 그 아픈 마음을 팔아서 너는 돈을 벌고 앉아있냐"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

나는 매 학기 강의를 하면서 마지막에 학생들에게 졸업생들이 취직을 못하는 것에 대해 내 스스로 '미안하다'고 한다. 우리 때는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취직 걱정을 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일자리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많은 청년들이 취직이 잘 안 되는 것이 그들이 모두 다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의 일자리는 만들어 주지 않고 "너희들 열심히 해서 희망을 잃지 말고 더 갈고 닦아라"라고 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선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아프지 않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지금 청년들은 취직을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고 있다. 아무도 스펙을 쌓지 않았을 때는 누가 증권관리사 자격증 같은 것 하나만 있어도 "어 이놈 봐라" 하면서 뽑아줬다. 그러나 요즘은 모든 친구들이 그런 자격증 정도는 몇 개씩 갖고 있어서 큰 의미가 없어졌다. 스크리닝에서 잘리지 않을 정도밖에는 의미가 없다. 이것은 절대로 학생의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다. 증권관리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그 친구에게 증권에 대해서 물어보면 정작 잘 모른다.

나는 국가가 청년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데 돈과 시간을 버리지 말고, 차라리 기초학문을 열심히 공부하게 하고 또 열심히 놀게 만들어서 미래의 잠재적인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꾸 경쟁만 시키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다. 노량진에 가면 수십만 명이 고시 공부한다고 죽치고 앉아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큰 낭비인가. 대학 졸업생들의 취직이 계속 어려워지니 정부에서 예산지원이 좀 나왔는지, 학과별로 교수들에게 학생들 취업지도를 하라는 명분으로 한 명당 얼마씩 겨우 국밥 한 그릇 먹을 정도의 돈이 나오더라. 학생 상담해주라는 모양이었는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이게 어떤 특정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면 그 효과가 조금은 있을지 모르지만 전국 대학에서 모두 다 그렇게 한다고 하면, 이것은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밖에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 졸업반 애들이 모두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끝나는 거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하는 짓이 딱 그 정도밖에 안 된다. 그렇게 취업지도를 해준다고 해서 직장이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정작 일자리는 만들어 주지 않으면서 너희더러 자기계발을 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 웃기는 소리다. 청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은?

한국에서 재벌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앞으로 그 폐해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1890년대부터 대공황이 있기 전 1920년대 말까지 미국이 얼마나 광란의 시기를 보냈는지 보게 되면 지금 재벌이 판치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결국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파국을 맞았다. 그 시기에 미국에는 록펠러, 카네기, 맬런, 제이피 모건 등 더러운 자본주의를 통해 막대한 부를 획득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미국으로서는 다행이었던 것이 나중에 가서 그들 전부 거기서 손을 떼고 좋은 일을 하려고 했다. 보수적인 색채가 있기는 하지만 록펠러 재단, 카네기재단 등을 만들어 지난날 기업체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좋은 식으로 마무리했다. 뉴딜 등 대대적인 개혁도 했다.

우리에게도 그런 전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사업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좋은 일에 쓰겠다고 하는 일이 많아져야 한다. 재벌들이 지금처럼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돈을 버는 일에만 급급하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본다. 1997년 IMF 때 한 번 망하지 않았나. 그때는 그래도 운이 좋아 다행히 우리 경제가 회생했지만, 다음번에 망할 때는 정말 망한다. 그래서 "망하기 전에 고쳐야 한다. 개혁이 돈이다. 개혁이 밥이다. 개혁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계속할 거다. 여론을 환기시키고 사회가 바뀌도록 노력할 거다. 그것이 현실에 참여한 학자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지침이 되는 사람이 있나?

주변에 훌륭한 분들이 많다. 어떤 한 분이 내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다만 어떤 사람을 보면 '나는 절대로 저런 사람처럼 돼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는 있다. 막판까지 잘 해오다가 끝에 잘못해서 얼굴에 먹칠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계속 일관성 있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큰 바위 얼굴이 나와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제는 나도 은퇴할 날이 곧 다가오는데, 남은 기간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충성하고 도와줄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내게 남은 모든 것을 바쳐서 불사(不死)할 수 있는 인물을 기다리고 있다.

이동걸에게 '사랑'이란?

젊었을 때 연애할 때의 사랑은 논외로 하고(웃음)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말하라면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손해 봤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서로 조금씩만 손해 보면서 살면 우리나라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동걸이 생각하는 '자유'란?

'자유'라는 게 여러 가지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심오한 뜻이 있다. 그런데 나는 세속적인 경제학이란 학문을 해서 그런지, 그런 고상한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경제학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의 자유가 제일 근본적인 것 아닌가 생각한다. 옛날 전근대적 사회에서 인간은 곡괭이 하나를 쥐고 야산에 가면 하다못해 초근목피(草根木皮)라도 먹을 것도 구하고 마실 물도 구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없으면,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는 자본주의 사회가 됐다.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오면서 생계가 더 절실해진 것이다.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이나 재산이 없을 때는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다. 그게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것이다.

'고상한 자유'는 이 기본적인 요건 다음에 있는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는 생존의 위협으로부터의 자유, 최저한의 인간다운 생활(minimum descent living)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인 것이다. 이런 자유를 가지지 못했을 때 인간은 나락으로 떨어져 정말 인간 이하가 되는 것이다. 개개인의 인간은 최저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 소신껏 행동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 그 기본 생계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럴 때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고 국민의 행복권과 자유권이 보장된다.

'사회계약론'에 의하면 무정부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인간은 무제한적인 자유를 갖고 있었다. 자기 생존을 위해 남의 것을 뺏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고, 남이 나를 해칠 때 나를 지키기 위해 남을 죽일 수도 있는 자유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이다. 그런데 그런 무제한적 자유를 내려놓기로 우리가 사회계약을 할 때는 "내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국가가 막아 달라, 그러면 나도 협조하겠다"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이런 인간의 기본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않고 자식을 조카를 굶겨 죽이지 않으려고 빵을 훔치는 사람을 19년 동안 감옥에 가두는 짓을 한다면, 그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빵을 훔친 사람을 19년 동안 가둬 둘 것이 아니라, 다시는 빵을 훔치지 않도록 최저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이 사회가 '레미제라블'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정부의 가장 본질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것부터 이야기하고,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게 내 주장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고 떠들지 마라.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 3만 달러' 하지 마라. 아직 우리나라에 결식아동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쪽방에서 폐지를 주워 먹고 사는 노인들이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인터뷰 및 정리: 정치경영연구소 손어진, 조경일, 정인선)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상호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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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추악한 작태, 국민은 알고 있다"

 

점점 커지는 '촛불'... 서울광장에 1만명 모여

[현장]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촛불대회

13.07.13 20:08l최종 업데이트 13.07.14 01:4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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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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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 촛불 가득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20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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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규탄집회,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박근혜는 선거쿠데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서 시민들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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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13일 오후 11시 20분]

국정원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과 국내 정치개입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은 이전보다 더욱 크게 타올랐다.

13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촛불대회'에는 1만여 명(주최 측 추산 2만 명, 경찰 추산 5500명)이 참가했다.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광장을 찾은 가족 단위 참가자도 많았다. 앞서 열린 'KTX 철도 민영화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대회에 가세하면서 6000여 명이 참여했던 지난주 2차 촛불대회보다 규모가 컸다. 대회 참가자들은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하라, 국정조사 철저히 실시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범국민촛불대회를 주최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 측은 "비가 오고 궂은 날씨지만 대회를 진행하면 할수록 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고 있다"며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사태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계속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진상을 밝히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시민의 열망은 식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국회의는 209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기구로 지금까지 두 차례 시국선언을 하며 매주 국민촛불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이날 대회에는 민주당 정청래, 박영선, 이미경, 이학영 의원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김미희, 이상규, 김재연 의원이 참석했다. 진보정의당에서는 노회찬 대표와 박원석, 김재남 의원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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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은 왜 법을 어겨요?" 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서 한 어린이가 '국정원은 왜 법을 어겨요?'가 적힌 손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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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금 국정원의 행태는 국민들을 겁주고 정당들을 겁박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에게 용기와 결단을 촉구하고 싶다, 왜 거리로 나와 시민과 손잡고 싸우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저들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국민과 손잡고 맞서야 한다"며 정치권의 보다 많은 참여를 촉구했다. "단순히 국정조사만 할 게 아니라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발언에 나선 각 정당의 인사들은 국정원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며 철저한 국정조사 실시를 약속했다.
 

▲ 정청래 민주당 의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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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정조사 야당간사를 맡은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2012년 12월 14일, 1% 이내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대선 마지막 여론조사가 발표됐고, 김용판 전 서울청장이 오피스텔에서 댓글을 단 국정원 직원의 수사 증거 삭제를 지시했다"며 "그리고 김무성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이 부산 유세에서 정상회담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6일 문재인 후보의 성공적인 대선 마지막 토론이 있은 직후 경찰이 국정원 댓글이 없다고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국정조사에서 당시 14일 부터 16일까지 벌어진 일을 낱낱이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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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노골적으로 국정원에 대한 수사와 국정조사를 방해하는 이유는 정권의 정통성이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라며 "국내 정치개입이 금지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국정원은 다시 유신시대의 안기부로 되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어 "공안사건에 대한 수사권과 비밀관리업무를 박탈해야만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뿌리 뽑을 수 있다"며 "국정원 국정조사는 8월 15일에 끝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지 않는 이상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흩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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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는 "검찰의 수사로 국정원의 불법이 밝혀졌다, 국정원이 대통령직속기관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면 누가 사과하느냐"며 "설령 국정원이 문재인 후보를 위해 활동했다고 해도 사과해야 하는 건 지금의 박 대통령"이라고 목소를 높였다.

이어 노 대표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역시 불법"이라며 "대통령 지시 없이 마음대로 공개한 것이면 즉시 해임시켜야 하고, 그게 아니라 대통령이 지시를 했다면 박 대통령이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표는 "사과는 하지 않고 계속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만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님 많이 당황하셨어요?"라고 개그 프로그램 유행어에 빚대 박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해 참가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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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규탄집회 "남재준 해임하라" 민주당 박영선, 정청래, 이학영, 이미경 의원 등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과 철저한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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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선거개입 제대로 된 국정조사 실시하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김재연 의원 등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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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사회, 아래 세대에게 전하고 싶지 않다"

이날 대회에서는 국정원 사태와 관련한 언론보도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난 주말 같은 장소에 60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대회를 열었지만 이를 주요하게 보도한 언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02일 된 아기를 안고 무대에 오른 한 젋은 부부는 "국민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제대로 보도 안 하는 언론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며 "우리는 지금 잘못된 사회를 우리 아래 세대에게, 우리의 아기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다, 언론이 진실을 알려 국정원을 바로 세우는데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국민 대다수가 국정원의 추악한 작태를 이미 다 알고 있다"며 "국정원은 그것을 스스로 고칠 자정 능력이 없다, 국민들의 힘을 모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에 참가한 이후 해고된 이용마 MBC 기자는 "답답하고 한심하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개입 문제를 어느 언론에서 속시원히 다루고 있느냐"며 "이 자리도 언론에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다, 참으로 비참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MBC 노조의 170일 파업 기간 동안 축소, 왜곡 보도를 일삼던 자들이 보도국장, 정치부장, 경제부장으로 승진해 있다"며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도 지킬 수 없다, 올바른 언론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도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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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집회, "불법부정 선거 국정원은 해체하라"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불법선거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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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규탄 집회 "박근혜 책임져"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과 철저한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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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울산 현대차 희망버스도 함께 가자"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희망버스 함께 가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고공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오는 20일 희망버스에 함께 가자고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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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집회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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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대회에는 국정원 사태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되는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주장과 각종 노동현안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며 20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호소하며 희망버스를 제안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주목을 받았다.

2011년 한진중공업 부산영도 조선소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김 지도위원은 "지난 대선이 끝나고 이틀 만에 34살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가 '박근혜 정권 견딜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없었으면 최강서 열사가 스스로 목을 맸을까"라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다르지 않다, 쌍용차 국정조사는 깡그리 무시했고, 정규직 채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현대차도 가만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고공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들을 구하기 위해 7월 20일 희망버스가 울산으로 간다"며 "나를 살아서 내려오게 해 준 여러분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모아 함께 울산으로 가자"고 호소했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재향경우회, 대한민국지킴이 등 보수단체들도 서울광장 인근 국가인권위원회 앞 도로에서 'NLL 포기발언 규탄, 민주당 해체 촉구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촛불좀비 물러가라, 종북세력 척결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오후 9시께까지 맞불집회를 이어갔다.

경찰은 69개 중대 1700여 명을 동원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지만 촛불문화제는 별다른 충돌없이 오후 10시 20분께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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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7.27 맞아 유엔해체 미군철수 압박

 

 
 
유엔주재 조선 대표 "유엔 모자 벗고 깃발 내려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7/14 [08:52] 최종편집: ⓒ 자주민보

 

유엔주재 조선 대표가 세계 각국의 언론인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은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 유엔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위를 중지하여야 할 것이며 유엔군의 모자를 벗고 그 깃발을 내리야 할 것”이라며 사실상 미군 철수를 강력히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의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사는 지난 13일 제네바유엔사무국 및 기타 국제기구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임대표가 10일 조선상설대표부에서 기자들과 회견하였다며 회견 소식을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기자회견에는 중국,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 통신, 방송, 신문기자들과 보도관계자들이 참가하였으며, 기자회견에서는 먼저 조선상임대표가 발언하였다.”며 “그는 불법적이고 유령 같은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는 것이 조선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정세를 완화시키고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데서 선차적인 요구로 나서고 있다는데 대한 우리의 명백한 입장을 천명하였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유엔군사령부 해체문제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며 우리가 오래전부터 일관하게 주장해온 문제”라며 “그럼 왜 지금에 와서 우리가 이 문제를 새삼스럽게 강조하는가?”라며 조목조목 해설했다.

유엔주재 조선대표는 첫째로, 조선반도의 전쟁위험이 조성되는 근저에 《유엔군사령부》라는 구조적원인이 깔려있기 때문으로 세계가 다 같이 체험하였지만 지난 3월과 4월 조선반도정세는 전쟁접경에 도달한 것은 ‘유엔군사령부’가 전쟁위험을 조성하는 근저에 놓여있다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지적했다.

조선대표는 “오는 8월 미국이 또다시 합동군사연습을 벌려놓게 되면 조선반도는 또다시 예측할 수 없는 파국상태에 빠질 것”이라며 “이 연습에도 《유엔군사령부》 성원국들이 참가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유엔군사령부》가 정세완화가 아니라 정세격화를 야기 시키며 그러한 행위들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미 전에 해체 되었어야 할 《유엔군사령부》가 아직 존재하는 것으로 하여 전쟁위험만 증대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세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버리는 기본 대책중의 하나가 《유엔군사령부》해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우리는 정전협정체결 60돐이 되는 7월 27일을 맞으며 그 해체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유엔주재 조선대표는 둘째로, 유엔군사령부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대국들 사이의 군사적 대결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우리가 엄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유엔군사령부》의 이름으로 조선반도에 무력을 증강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새 아시아태평양전략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유엔군사령부의 주력인 남조선주둔 미군에는 이미 다른 지역위기에도 개입할 수 있는 전략적유연성이 부여되어있으며 미국은 유엔군사령부를 작전기능을 가진 다국적연합기구로 변신시켜 전시작전지휘권 반환 후에도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계속 틀어쥐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대표는 셋째로, 유엔군사령부해체가 미국이 늘 말하는 우리에 대한 적대의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하나의 행동조치로 되기 때문“이라며 ”그 해체는 미국만 결심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피력했다.

그는 “이에 대해서는 이전 유엔사무총장들인 부트루스 부트루스 갈리와 코피 아난도 모두 인정하였다.”며 “평화를 바라는 유엔성원국들 중 이와 같은 비법적인 기구의 해체를 반대할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우선 미국은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 유엔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위를 중지하여야 할 것이며 《유엔군》의 모자를 벗고 그 깃발을 내리워야 할 것”이라고 사실상 미군 철수를 강력 촉구했다.

또한 “정전협정의 체약일방인 중국은 유엔안보리사회 상임이사국이며 《유엔군사령부》 성원국들중 미국, 프랑스 2개 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모두 우리와 관계를 정상화하였다.”면서 “특히 우리나라(조선)는 1991년 유엔에 가입하여 당당한 유엔성원국이 되었다. 따라서 유엔과는 아무런 종속관계도 없이 그 이름과 기발만 도용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어야 하는 것은 더욱더 명백하다. 미국이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용단을 내린다면 우리도 그에 화답하여 조미사이의 신뢰를 조성해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오늘 우리 군대와 인민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며 “우리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평화적환경이다. 우리 공화국은 지난 3월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노선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계속되는 대조선 압살책동에 대처한 것으로서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제재압박을 강화할수록 우리는 자위적 핵 무장력을 더욱더 보강해나갈 것”이라고 밝혀 미국이 적대적 관계를 유지 할 경우 군사적 핵 무력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유엔주재 조선대표는 특히 “우리는 미국의 금후행동을 주시할 것”이라면서 “그리고 평화보장이 아니라 정세를 격화시키는데 악용되는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유엔성원국들이 조선반도의 평화를 진실로 바라고 유엔의 권위와 공정성을 지키려 한다면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응당 지지를 표시하여야 할 것“이라고 유엔 성원국들의 지지를 요구했다.

그는 끝으로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이 남조선에 있는 《유엔군사령부》의 비법성과 그 해체의 필요성에 대해 옳은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조선은 정전협정 60주년을 맞는 올해를 평화협정의 해로 맞이하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지니고 자체의 노력은 물론 주변국들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어 그 결과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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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정부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겠다"

 

"더 이상 정부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겠다"

 

남북경협비대위, 전체모임 갖고 결의문 발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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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3 19: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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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경협비대위는 12일 코엑스에서 전체모임을 갖고 결의문을 발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남북경협은 60년 동안 적대 관계로 살았던 남과 북이 함께 살기 위한 실험의 공간입니다. 정치 논리를 앞세워 어렵게 일궈 가는 옥동자를 죽여서는 안됩니다.”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이하 남북경협비대위)는 12일 오후 4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 203호에서 전체모임을 갖고 남북관계 정상화와 지원 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유동호 위원장은 경과보고에 나서 지난 5월 6일 남북경협비대위가 발족한 배경과 이후의 활동을 설명하고 “왜 우리가 이자를 물고 정부로부터 대출을 받아야 하느냐”며 “이제는 더 이상 기존의 관행대로 정부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 유동호 남북경협비대위 위원장이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80여 명의 남북경협비대위 소속 기업인들은 이날 동방영만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 회장이 낭독한 결의문을 통해 “하소연 할 곳도, 우리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곳도 많지 않았다”며 “마지막 남은 힘을 모으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이들은 먼저 남북 당국을 향해 “남북관계를 정상화 하고 남북경협을 재개하기 위한 다양한 대화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으며, “성심을 다해 피해 보상을 비롯한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아울러 통일부에게 “법적 제도적 보완책 마련을 위해 남북경협기업인들과 함께 공동 TFT(태스크포스팀)를 꾸릴 것을 제안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남북경협기업인들 전체의 힘을 모아 반드시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것”을 다짐하면서 △피해 보상을 비롯한 적절한 지원대책 마련 △남북경협 재개를 위한 다양한 실천 활동 전개 △법.제도 개정 활동 전개 등을 결의했다.

 

   
▲ 이날 전체모임에는 남북경협 기업인 8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제공 - 민족21]
이날 남북경협비대위 전체모임에는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 축사를, 정청래 민주당 의원과 천낙붕 민변 통일위원장이 격려사를 했으며, 남북경협 기업인들의 발언 기회도 주어졌다. 또한 안철수 의원과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가수 김태원 씨 등이 영상으로 응원메시지를 전했다.

 

안철수 의원은 “어렵고 힘든 시기 묵묵히 버텨주고 계신다는 것 잘 알고 있다”며 “정부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남북경협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여러분 절박한 심정, 힘든 상황 풀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수 김태원 씨는 “항로를 이용하지 않고 육로를 이용해 서울에서 평양까지, 평양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영국을 넘어가는 음악을 수출하는, 문학을 수출하는, 경제를 수출하는 꿈을 꾸고 있다”며 남북경협기업인들과 함께 이 꿈을 이루자고 인사했다.

 

   
▲ 안철수 의원이 영상을 통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날 전체모임에 대해 남북경협비대위 관계자는 “그간 협회나 협회장 중심으로 모임을 가져왔지만 경협기업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금강산관광 중단 5년, 5.24조치 3년이 지나 생계 위협으로 이런 자리를 갖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북경협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금강산기업인협의회와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 남북임가공기업협의회 등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제외한 남북경협기업인들이 폭넓게 참여하고 있으며, 개성공단에 비해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피해를 입고 있는 남북경협기업인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지난 5월 발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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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있는 풍경, 관곡지의 여름

 

연꽃이 있는 풍경, 관곡지의 여름

 

 

윤순영 2013. 07. 12
조회수 1118추천수 0
 

시흥 관곡지, 장맛비 사이로 청초한 연꽃 활짝…담홍색 꽃 특징

왕잠자리, 금개구리, 고추잠자리…연밭은 수많은 생명으로 꿈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7월 시흥시 관곡지의 연꽃이 여름이 무르익었음을 알리는 꽃을 피워 올렸다. 관곡지의 연꽃은 다른 연꽃과는 달리 색은 희고, 꽃잎은 뾰족하며 담홍색을 띠는 특징이 있다.

 

lot1.jpg » 관곡지의 연꽃

 

관곡지는 가로 23m, 세로 18.5m의 연못으로, 조선 전기 농학자인 강희맹이 세조 9년 명나라에 다녀와 중국 남경에 있는 전당지에서 연꽃 씨를 채취해 와 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관곡에 있는 연못에서 재배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엔 현재 13㏊의 연꽃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lot2.jpg » 관곡지 전경

 

이곳은 구릉지형의 낮은 곳에 물이 고여 연꽃을 비롯한 수생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다.첫눈에 청아함과 고결한 모습으로 연꽃의 자태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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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4.jpg » 연꽃 향기에 취해 벌이 날아든다.

 

연꽃이 피는 장소는 진흙과 흙탕물이다. 그러면서도 물에 젖지 않고 흙에 더렵혀지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는 것이 연꽃의 미덕이다.

 

lot5.jpg » 해맑은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백련.

 

해가 떠서 빛을 비추면 만물이 생명력을 얻어 살아 움직이고, 그 빛을 거두면 어둠 속에서 생명이 잠들 듯 연꽃은 밤에는 꽃잎을 오므렸다가 아침마다 새롭게 피어난다. 쇠물닭이 수련 밭에서 우렁이를 잡아 먹고 참새는 연잎 사이로 오간다.

 

lot6.jpg » 수련. 오후가 되면 일찌감치 꽃을 오므리고 잠에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름의 '수'는 물 수(水)가 아니라 잠 수(睡)이다.

 

lot7.jpg » 어리연

 

lot8.jpg » 연밭의 참새는 무슨 일로 바쁠까.


고추잠자리, 큰밀잠자리, 왕잠자리가 짝을 찾고 짝짓기를 하며 연꽃 밭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늑대거미, 참개구리, 금개구리 등 다양한 생물들도 보인다. 개구리밥과 물수세미가 연꽃 아래 수면을 덮고 있다.

 

lot9.jpg » 큰밀잠자리

 

lot10.jpg »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왕잠자리가 짝짓기를 하며 알을 낳고 있다.

 

lot11.jpg » 고추잠자리가 수련꽃 봉오리에 앉아 있다.

 

수면을 덮고 있는 개구리밥과 물수세미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곳에도 많은 생명들의 숨 쉬고 있다.

 

lot12.jpg » 연잎 위에서 휴식을 하는 금개구리. 한국 고유종으로 등에 난 두 줄의 금줄이 특징이다.

 

lot13.jpg » 한때 가장 흔했지만 농약 사용과 함께 급격히 줄어든 참개구리.

 

lot14.jpg » 쇠물닭


일찍 서둘러 핀 연꽃 잎은 떨어져 수면 위를 차지한다. 지는 꽃이 있어 다음 꽃이 피는 법이다. 새 연꽃이 만개하면 그곳은 또다른 생명력으로 꿈틀댈 것이다.

 

lot15.jpg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이사장


http://윤순영자연의벗.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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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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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던' 한국은 끝났다…월세방-대출 지옥에서 '청춘'은?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박해천의 '아파트 키드의 생애'

안은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12 오후 7:00:33

 

지난 7월 2일 저녁 정독도서관 시청각실, 한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처음으로 나온 질문은 "'막내'라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담스럽지는 않은가"였다. 여기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이 강연은 지난 4월 출간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한윤형 지음, 어크로스 펴냄)의 내용을 토대로 기획된 세 번의 대담 형식의 강연 중 마지막 시간이었고, 저자 한윤형(<미디어스> 기자)과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펴냄) 저자)이 대담자로 나섰다.
 

▲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한윤형 지음, 어크로스 펴냄). ⓒ어크로스

'83년생, 01학번'인 한윤형은 안티조선 운동의 전사로 활약한 10대 시절부터 다양한 매체에서 '20대 논객' 중 한 명으로 호명된 2008년 전후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자신이 속한 세계의 '막내'였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후배의 실종'이라는 글에서 그는 "대학에 들어왔을 때 대학의 운동권 조직, 소위 학정조(학생정치조직)는 완만하지만 뚜렷이 붕괴하고 있었"으며 그가 선택한 인터넷 기반 단체나 진보정당에서도 오랜 기간 후배를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현재 글을 쓰는 정치평론의 장(場)에서도 대체로 그러하며, 이번 3번의 강연회에서도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 90년대 학번 선배 세대였다. (1회 <88만원 세대>(레디앙 펴냄)·<소수의견>(자음과모음 펴냄) 저자 박권일, 2회 경제평론가 이원재)

청년층의 정치적 관심이 소멸해 간 2000년대가 고스란히 읽히는 '후배의 실종'에서는 그가 속한 세대의 '앞으로'에 대한 고민도 드러난다. "어디로 가야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청년 좌파의 우울증을 목격하며 그는 "드디어 '영원한 막내'를 벗어나 '선배' 역할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청년 담론이 유행하던 시기, 청년 세대 입장에 입각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그이지만 그 결과물을 엮은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회 어디쯤의 나'를 고민하기 시작한 후배들에 대한 사려 깊은 편지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석하면 이 책의 주요 수신자가 될 이들-200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냈거나 입학해서 현재 보내고 있는 저자의 또래 혹은 후배-에게,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녹록치 않다. 고도 성장기나 고도 성장기의 '관성'이 유지되었던 시점까지 찾아왔던 기회, 가질 수 있었던 꿈, 걸 수 있었던 기대, 실현 가능했던 삶의 모습이 거의 다 사라질 거라 보아도 무방하다는 게 강연 파트너를 맡은 박해천의 조언이다. 이른바 '청년 문제'라 불렸던 실업, 등록금, 주거 문제는 그들이 일으켰기 때문에 '청년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켜켜이 쌓인 모순이 그들 앞에 무성의하게 '던져져' 있기 때문에 진정한 '청년 문제'가 된다. '세대론'의 쓰임새가 재발견된다면 아마 그 복잡한 매듭 앞에서일 것이다.

"청년 세대의 문제는 그들이 가장 힘든 세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의 사회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表層)이기에 문제가 된다. 등록금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 부모 세대의 고난이다. 또한 청년 세대는 자신의 미래가 위에 언급한 노년 세대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7쪽)

그렇다면 그들은 왜 실제로도 힘들며, 한국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표층이 되고 만 걸까? 그들을 둘러싼 시대, 그들을 만든 역사는 무엇인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다른 세대의 손길은 도움이 될 만할까, 아니면 뭔가 어긋나 있을까? '아파트 키드의 생애'라 이름 붙은 한윤형과 박해천의 강연은 이 물음들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준다. '프레시안 books'는 저자 한윤형이 속한 세대의 현실을 날실로,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이 천착해 온 한국 중산계급의 주거문화 역사를 씨실로 엮어 전개된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내려가는 사회'
 

▲ 한윤형(<미디어스> 기자). ⓒ프레시안(최형락)

한윤형 : 이번 책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저나 제 밑 세대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요. 3회로 기획된 강연에서는 모두 386 세대보다는 어리고 저보다는 선배인 90년대 (초중반) 학번이신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런 상황도 한국 사회의 담론 지형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요. 사실 90년대 학번 선배들은 공부를 참 많이 했어요.

지금은 대학원 진학이 마치 취직에 실패한 다음의 선택지로 여겨지는 감이 있지만, 10년 전인 90년대 학번 세대만 해도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를 계속해도 되는 상황, 공부해도 나중에 먹고 살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어쨌든 저는 한국사회를 해석하기 위한 이론들을 다방면으로 공부한 세대가 90년대 학번들이라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론 이들이 정치평론 등에 분야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감도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청년 세대와 부동산 문제입니다. 박해천 선생은 아파트를 둘러싼 가상의 인물과 사물의 시선을 통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명저를 쓰셨고, 한겨레에서 출간하는 월간지 <나-들>에 '아파트 키드의 생애'라는 꼭지를 기획했습니다. 이 꼭지에서는 제 또래들이 아파트 흥망사를 수기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그래서 박해천 선생을 만나면 저희 아버지 부동산 투기 성패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 것만 같아요.
(웃음) 어쨌든 청년 세대와 부동산 문제를 엮어서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박해천 :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한윤형 씨야 워낙 글을 술술 읽히게끔 잘 쓰는 분이니까요.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1부였습니다. 1부의 글들엔 동세대들이 갖고 있는 감수성의 정곡을 살짝살짝 만져주는 부분들이 있어요. 특히 대구 사람인 자신의 아버지를 <대부>의 시실리 마피아 패밀리에 비유한 꼭지('그 남자와 그 가족')의 경우엔, 이것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겠다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 글이 이 책의 지렛대 역할을 해 준 게 아닌가 싶고, 개인적으로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대구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한편 이제 갓 서른을 넘겼는데 자기 개인사를 너무 드러낸 것 아닌가, 득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위험한 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치 록스타처럼 30대 이른 나이에 베스트앨범 내고 자신의 생을 반추하며 회고록을 낸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웃음)

한윤형 : 블로그에 썼던 글을 대폭 손봐서 쓴 게 1부입니다. 30대 초반에 인생을 반추해도 되느냐는 지적에, 반박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응답하라 1997> 같은 드라마의 성공을 보면, (이 추억을 향유하는 세대가) 불과 30대의 나이에 자신들의 10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저는 이들이 굉장히 이른 시기에 자신의 전성기 지나버렸음을 직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거든요.

"부모 세대는 폐허와 공허를 물려받고 죽음에 직면할 정도의 고생은 했어도 '이 시대도 내 삶도 올라가는 느낌' 속에서 살아왔다. 반면 우리는 상승한 부모와 삼촌 세대의 축적된 부를 통해 소비 취향과 자의식을 물려받고 집중적으로 교육 투자를 받았지만 '이 시대도 내 삶도 내려가는 느낌' 속에서 살아왔으며, 살아가야 한다." (8쪽)

제가 책에서 쓴 '내려가는 사회'라는 표현이 이런 자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박해천 선생이 천착하시는 아파트, 부동산 문제와도 포개지는 부분이 있을 것 같고요. 사회학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이 '내려가는 사회'라는 수사가,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설명할 때 가지는 함의도 있지 않을까요?

박해천 : '내려가는 사회'라는 표현에 동의합니다. 부동산뿐만이 아니라 경제 전반이 그래요. 돌이켜 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1971년생인 제가 20대였던 90년대~2000년대 초반이 마지막 불꽃같은 시기였던 것 같아요.

한국은 1967년부터 고도성장을 해 왔는데 그 '올라가던' 그래프가 내리막에 이르는 첫 번째 지점이 1997년의 IMF 외환위기 사태였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약 30년간 오르막을 올라왔기 때문에 1997년 이후부터 2007년까지 대략 10년간은 고도성장의 관성력이 작용해서 그 힘으로 버텼었던 것 같아요. 이후로 지금까지는 끈 떨어진 채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굴러 떨어지려고 있는데 뭔가 어거지로,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2007년 대선 이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시기부터 고도성장기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절이 펼쳐진 것 같고, 2012년 대선 이후, 그러니까 이제 막 펼쳐진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체험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내려감'을 특히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아파트인 거고요. 그래서 하우스 푸어라든가 20대 주거 같은 문제들이 지면 위로 하나둘 드러났었죠.


"부모님 세대는 사회 내에서 자신의 계층이 상승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 자체가 상승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었다. 사회는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단 사실에 의문을 품은 바도 없지만,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의 삶이 나보다 더 나을 거란 것도 그들에겐 명약관화한 진실이었다. (…) 하지만 이 세대가 세계에 대해 가지는 '느낌'은 그와는 정반대다. (…) 친구 하나는 그랬다. "내가 불행한 것도 문제지만, 아이를 이런 세상에 낳기는 싫다"고. 옳든 그르든 지금 세대가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이렇다." (133~134쪽)

'아파트 키드' 제2세대

한윤형 : 20~30대 필자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주거사를 이야기하는 '아파트 키드의 생애'라는 제목의 연재물이 월간지 <나-들>에 연재되고 있죠. 이 기획의 원안자로 알고 있어요. '아파트 키드'가 정확하게 어떤 세대를 지칭하는지,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해천 :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열쇠소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고 아파트에 살아서, 목에다 열쇠를 걸고 등교해서 하교하면 제 손으로 열쇠를 따고 들어가는 애들을 가리켰죠. '아파트 키드'란 개념은 이런 소년들의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어요.
 

▲ 박해천(디자인 연구자, 홍익대학교 강사). ⓒ프레시안(최형락)

40년대생 부모들(상당수가 지방의 명문 고교를 나와 서울에서 대학 교육을 받고 경제 성장과 더불어 회사에서 승진을 계속하다가 강남에서 집을 마련하게 되는)이 70년대 중반~80년대 초·중반에 강남에 입성해 신 중산층이라 불리는 계층으로 성장하면서, 그 자녀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성격의 문화적 경험을 시작하게 됩니다. 몇 가지를 들자면 일단 18~32평형의 아파트, 4인 핵가족이라는 새로운 형태 속에서 자라나고, 조부모의 영향을 이전에 비해 확연히 적게 받습니다. 또한 부모가 한국에서 미국식 교육을 받은 첫 세대이고 신 중산층이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투자를 굉장히 많이 해요. 따라서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같은 소년 잡지, RC카 같은 완구 등 '어린이 시장'이 굉장한 속도로 팽창합니다.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건 인구학적으로도 1968년~74년이 제2차 베이비붐 시대이기도 했거든요. 그 중에 1970년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출생 인구수를 보인 해이기도 했구요.

이 과정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과외 금지령입니다. 이때 자라난 세대는 그 혜택도 많이 받았어요. 사교육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이들의 부모, 즉 40년대생 세대는 중산층 이상의 경우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조건이 그 이후의 50년대생들보다 더 나았다고 할 수 있지요. 말하자면 자녀를 90년대에 대학 보내신 분들과 2000년대에 보내신 분들의 사교육의 비중이나 부담 규모가 다른 거죠.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키드'라 할 수 있는 첫 세대, 즉 그들의 자녀 세대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대중문화를 흡수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지리적 기반은 강남이었다고 볼 수 있지요. 서울의, 아니 전국의 다른 지역들보다도 빨리 일본이나 미국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플랫폼 역할을 강남이 맡은 거죠. 이를테면 해외여행 자율화 이전이었기 때문에 외국에서 뭐가 들어와 확산되는 통로가, 거의 대기업에 다니는 그들 아버지의 해외출장에 집중되었어요. 그들의 가방 속 물건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형성되고 강남 내로 확산되고, 그것이 누적되다가 시차를 두고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문화라는 건 한 번 원형이 자리 잡으면 그것이 특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성격을 갖는데요. 그래서 어떤 지역에서 어떤 문화가 형성되는지가 중요하고, 그 문화가 이후에 다른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가 없는가, 즉 '워너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역시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7,80년대 고도성장이 만든 강남이란 공간과 문화 이후, 그것과 유사한 형태가 80~90년대에 걸쳐 형성되어 나갑니다. 강남 아파트 키드 1세대의 문화가 이후에 목동, 과천, 상계·하계, 수도권 신도시에까지 모방과 복제를 통해 확산된 거죠.

<나-들>에 '아파트 키드의 생애' 연재를 기획할 때 제가 궁금했던 건 제가 속한 제 2차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아니라 바로 그들 이후의 세대, 7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들로서 가족과 함께 90년대에 아파트에 진입하거나 거기에서 태어난 청년들이었어요. 수도권 신도시의 경우는 기존 강남이나 목동의 주거·생활 문화와는 성격이 또 굉장히 다르거든요. 저는 아파트로만 만들어진 도시에서 성장한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성장했을까, 어떤 문화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까, 나아가 그들 자신이나 부모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지금' 그들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을까를 보고 싶었어요. 또한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의도도 있었구요.

여러분들 중에 지방에서 올라온 분이 있다면,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 내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곳은 2013년 현재를 살고 있는 듯하지만, 어떤 곳은 80년대 후반을 보는 것 같잖아요. 제가 대학에 다니던 90년대 초반에도 그런 격차가 잔존했었고요. 젊은이들이 따라하는 것, 주류가 되는 성향이나 트렌드가 번지기까지 서울과 지방 광역도시 사이에 약 5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데, 요즘은 인터넷 덕분에 그 시차가 상대적으로 줄고 있기는 하지요.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1부에서도 그런 시차가 느껴져서 재미있었어요. 그 글 자체가 시차를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인지에 대한 글이었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어쨌든 <나-들>의 기획은 저런 관점에서 출발은 했는데 지금 정확히 그렇게 굴러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80년대생들이 아파트에 살았건 안 살았건, 지금 서울이란 공간에서 어떤 주거 형태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풀려나가고 있지요.

90년대 : 싼 아파트-수많은 대학생-IMF
 

▲ <콘크리트 유토피아>(박해천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한윤형 :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가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실현해 나가면서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이 되어버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기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원래 사람들은 자신들의 질서를 먼저 만들어 내고 그걸 신의 속성에 투영합니다. 가령 종교학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도시와 관료 사회를 만들기 전까지는, 즉 왕을 가져보기 전까지는 만신을 주관하는 '최고신'이란 개념이 없었다고 하죠. 그런데 한국 사회는 (발전 단계에서) 후발주자이다 보니,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고 물신에 그 속성을 투여한 게 아니라) 서구에서 이미 실현된 아파트라는 모델을 이미지로 가져오는 형태가 되어버렸어요. 거기서 예측하지 못한 부수적 효과들이 나타났고 그게 지금의 여러 상황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앞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기의 과외 금지 정책에 대해 언급하셨는데요. 사교육, 대학 등록금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어 자산 축적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처럼 한국 사회의 계층 재생산에 있어 교육 문제는 부동산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학 진학률도 세대를 보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가 시기별 대학 진학률 통계 자료를 살펴보았는데, 70년대에는 20퍼센트쯤 됐고, 1980년이 되면 한 27퍼센트쯤 됩니다. 1990년이 되어도 33퍼센트 정도였어요. 보통 80년대부터 대학생이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죠. 그러다 90년대에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2000년에 오면 66퍼센트로 치솟습니다.


박해천 : 김영삼 정권 시기부터 대학생 수가 급증하고, 노무현 정권 시기에는 등록금이 가파르게 인상되죠.

한윤형 : 그런데 이 대학생이 늘어난 90년대 초반에, 집값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박해천 : 그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예요. 노태우 대통령이 90년대 전반에 걸쳐 시행한 주택 200만 호 건설이 만든 효과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기의 중요 관료인 김종인 씨가 이후에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스탠스를 취해도 크게 반발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분이 청와대 수석이었을 때 재벌의 부동산 투기를 막고 집값 상승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주택 200만 호 건설, 수도권 5개 신도시에 주택 30만 호 건설 등이었습니다.

사실 1987~88년까지만 해도 주택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군부 출신 정권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도권 신도시를 건설하게 됩니다. 이 효과가 90년대 내내 지속되고, 한윤형 씨가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집값이 내려가면 사람값이 올라가고 집값이 오르면 사람값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나타나죠.

87년 민주화와 88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임금이 상승하고 이 경향이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집니다. 그 상승의 근본 원동력 중 하나가 88년과 95년, 7년 사이에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의 경제 규모입니다. 89년에 1인당 개인소득이 5000달러를 넘어섰는데, 95년이 되면 약 1만 달러에 다가서니까요. 흥미로운 건 경제 규모가 그만큼 커지면 아파트 가격도 그만큼 올라야 하는데, 수도권 신도시 건설이 완충 장치가 되어 그 인플레이션이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거죠. 물론 이미 87, 88년에 많이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아무튼 노태우 정권 당시 평당 분양가상한제 조정을 받아 분당, 평촌에 아파트가 비교적 싼 가격, 그러니까 평당 180~200만원에 분양되었지요. 그 결과 베이비붐 세대 일부, 386 세대 일부가 그 수혜를 보았고요. 나름대로 중산층의 자의식은 있지만 그때까지 '내 집 마련'을 못 했던 사람의 상당수가 88년에서 94년에 걸쳐 분당, 평촌, 일산, 중동, 산본에서 매 분기별로 이뤄졌던 아파트 분양에 참여하게 된 거죠. 수도권 신도시의 아파트 수용 인구만 놓고 보면 100만 명이 넘었어요.

국가 경제 규모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부동산 열풍이 있었죠. 77년의 열풍 당시엔 굉장히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과 함께 그 인플레이션 상당 부분을 부동산, 그리고 아파트가 다 흡수했습니다. 87~88년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에 의해 누린 호황)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90년대 초반은 정부의 아파트 중심 주택 보급 정책과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가장 안정적이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시만 해도 당시 명문대를 졸업해 잘나가는 대기업에 취직하면 초봉 수준이 1800~2000만 원 초반대였어요. 졸업과 동시에 취직하면 3~4년 안에 25평 이상 아파트를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가 있었어요.


한윤형 : 90년대를 정리하자면 이렇게 아파트와 대학생이 급격히 늘어나다가 IMF 사태를 맞게 되었다는 거죠. (웃음) 아까 87년 이후 임금 상승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실제로 97년 이전까지는 대공장 노조가 파업을 해도 받아들이는 양상이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 시기엔 파업을 하건 안 하건 어쨌든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기업이 임금을 올리면, 거기에 준하는 비율로 다른 업체들이 임금을 올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만약 현대차가 파업을 해서 임금을 올리면 납품 단가에 그 부담을 전가하기 때문에 하청업체나 거기 속해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이 손해를 본다고 해요.

어쨌든 임금이 그래도 상승하고 집값도 안정적이었던 90년대가 진행되다가 IMF 사태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는데, 혹시 우리가 IMF 사태를 겪지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그 충격을 흡수했더라면 한국 사회의 여러 변동들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박해천 : 그건 불가능하죠. 돌이켜 놓고 보니 90년대는 아주 예외적인 시기였지 그 자체가 정상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심하게 말하면 한국 사회가 제게 안겨준 제일 큰 행운은 90년대에 20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할 정도로요. 또 다른 행운도 세대적인 건데, 과외 금지 시기에 10대를 보냈다는 거죠. 학교 마치면 놀 수 있었고 놀다보면 심심해서 소위 '뻘 생각'이라는 것도 할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그 자유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부모님은 사교육에 거의 지출을 하지 않으실 수 있었지요.

72년생인 소설가 정이현 씨는 "노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으리라 믿었으므로 당연히,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세대였다고 쓴 적이 있어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느낌으로 살았던 거죠.
(웃음) 4년제 대학을 다닌다면 취업 걱정을 안 해도 되었고, 덕분에 세상이 만만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한국이 정말로 유럽 선진국 어딘가에 가 있다는 건데요….

배는 오지 않는다


한윤형 : 마지막 불꽃 같은 시기였던 90년대에 제 또래는 10대 시절을 보냈고, 스무 살이 넘으니까 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종류의 체험을 하게 된 거죠.

박해천 : 조금 더 구분하자면 같은 70년대생 사이에서도 체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방금 말씀드린 예외적인 상황을 겪은 건 1968년~74년생까지고, 76년생 이후 출생자만 봐도 또 많이 다르거든요.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 대학 가면 놀아야지' 했던 순간 IMF 사태를 겪었으니까요. IMF 사태라는 사건이 주는 사회적 변화가 한두 살 차이에도 미세하게 구별되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윤형 : 한두 살 차이도 그랬지만 순간의 선택에 따라서도 엄청난 '복불복'이 펼쳐지곤 했어요. 제가 아는 한 90학번 선배는, 대학 졸업하고 할일이 없어 벚꽃 구경하려고 여의도 근처를 서성이다가 KBS가 보여서 그길로 원서를 쓰고 PD로 취업을 했어요. 들어가자마자 IMF 사태가 터졌으니 정말 운이 좋다고 할 밖에요. 그분과 같은 학번이었던 다른 선배는 그분 취업 시기에 공부를 하겠다고 대학원에 갔는데, 나중에 KBS에 들어가긴 했지만 10년 후였던 거예요.

박해천 : 이명박 전 대통령은 30대 중반에 현대건설 사장이 됐고, 마포아파트 건설을 지휘한 장동운 중령이 대한주택공사 초기 총재로 부임한 게 30대 초반 정도였다고 해요. 사회의 여러 영역은 시차를 두고 새로운 세대가 유입되면서 발전을 겪게 되는데, 해당 영역이나 조직이 그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맞물려서 어느 순간 진입 장벽이 급격히 높아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상황이 사회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게 IMF 외환위기 이후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서는 2002년부터 아파트 분양가가 빠른 속도로 오르기 시작하지요. 내 집 마련의 장벽이 급격히 높아지는 거죠.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강남으로 떠나는 '노아의 방주'가 있었어요. 누군가는 타고 갔겠죠. 그분들은 이상한 모험을 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안정적인 중산층의 생활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파트 가격이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때문에 근로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부동산을 통해 얻게 되죠. 그리고 근로소득의 상당 부분은 고스란히 사교육, 여가 등 중산층의 소비활동으로 연결되었고 내수 시장의 규모를 키웠지요.

80년대 중반 이후, 또 하나의 방주가 떴어요. 이번에는 목동, 상계, 과천으로 가는 배였습니다. 40년대생 가운데 강남 진입을 못 했던 사람, 50년대생 중 일부가 그걸 타고 떠나죠. 87,88년 부동산 폭등기에 집값이 또 올랐고 '나도 드디어 중산층이 되었구나'라는 자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방주가 수도권 다섯 개 신도시로 떠나는 배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문제'라 하는 것들은 이 방주를 타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고 있어요. 동시에 예전에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청년 세대들에게도 방주 탑승권이 주어졌지만, 2002년 이후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아무도 올라타지 못합니다. 대출을 받지 않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부모님으로부터 증여받는 것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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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가 이름을 갖는 방식

한윤형 : 요약해드리면 "이제 더 이상 배가 안 온다"는 얘기였고요. (웃음) 지금 우리의 90년대를 죽 이야기해 주신 셈인데, 돌이켜보면 90년대는 그 시대 청년들에게 처음으로 (외부에서) 이름을 붙여준 시기이기도 해요. 그들을 말하는 '엑스세대'는 386 세대보다도 먼저 자기 이름을 가졌었어요. 그러니까 80년대에 '운동'을 열심히 했던 세대와 구별되는 문화·소비 세대로서 엑스세대가 먼저 탄생했었던 거죠.

80년대 학번 운동권들은 청년 시절이 아니라 이들이 여러 영역에서 대세를 이루면서 사후에 '386 세대'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죠. 그래서 386이라는 이름도 한 세대를 아우르기에는 폭력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명문대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인데, 그 시기에 그런 사람들이 몇 퍼센트나 있었냐는 거죠. 운동권을 바라보는 시선의 격차는 있겠지만 그 숫자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적다고 들었거든요.

박해천 : 제가 기억하기로는 1998년인가 <조선일보>에서 처음으로 '386 세대'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아요. '광주 세대'에서 '386 세대'로 바꿔 부르게 된 변환의 지점이 '세대론의 쓰임새'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그 호명이 변환된 시점은 386이라 지칭되는 이들이 스스로 중산층이 되었다는 자의식을 가지게 된 시기와 거의 일치해요. 집값은 많이 오르지 않았지만 IMF 이후 '바이 코리아' 열풍에 힘입어 주식이 많이 올랐거든요. 딱 그 시점인 98~99년, <조선일보>의 영리한 면모가 발휘된 거죠.

이런 사례를 보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세대론이라는 게 해당 세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거나 조직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끌고 오는 게 아니라, 10년 주기의 경제 호황, 정치적 격변, 아파트 건설을 통한 주택 보급 등의 사건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통과한 이후, 그래도 '내가 그래도 청춘이라는 시절을 보냈구나'라는 사실을 집단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판타지로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한윤형 씨한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요. 한윤형 씨가 속해 있는 세대는 '삼포세대' '88만원 세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호명되잖아요. 그 호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윤형 : 전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제 생각보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말씀해드리곤 하는데요. 사실 부르기 나름이란 거죠. 386 세대도 과대 대표된 호명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호명된 이유와 맥락이 있는 것처럼요. 제가 속한 세대가 정말 많은 이름으로 불렸는데, 10대 시절 붙은 'N세대'가 그 최초였어요. (웃음) 학교 컴퓨터실에서 음란물을 검색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인터넷 보급과 확산이 빠르게 이루어졌던 시기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나마 '88만원 세대'가 와 닿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이 이름도 약 10년 단위의 문화적 분절을 포괄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가령 9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제 또래는 입시에 억눌려 있다가도 대학에 가면 원 없이 자유를 누릴 줄 알았고 부모들도 그 환상을 제공했지만, 200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저보다 어린 세대는 대학에 가도 힘든 상황의 연속이란 걸 이미 알고 있거든요. 감상만 이야기하고 말았는데 어쨌든 이름을 정하는 건 제 몫은 아닌 것 같아요.

박해천 : 제가 보기에 세대론을 통해 뭔가를 이루고자 했을 때 그 유형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내가 놓인 세대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문화적 경험, 상징자본을 가지고 있다든지 차별화되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사회의 기존 가치관으론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담론의 장에서 자신이 대변인으로 직접 나서면서 자신이 속한 세대를 호명하는 방식이에요. 기성세대들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방식으로서의 세대론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4.19 세대'가 그랬어요. 그 전의 '일본어 세대'와는 다른 교육을 받았다는 거죠. '광주 세대'도 이후에 '386 세대'란 다른 이름으로 '호명 당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불리든 그 무리 자체는 조직화된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은 지금까지도 여의도 현실 정치 속에서 인맥이나 정책 등 여러 갈래로 실제 작동하고 있지요.

반면, 호명 당하는 세대가 있어요. 이를테면 엑스세대가 전형적이지요. 90년대 초반부터 학생 운동권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거기에 이제 막 신입생으로 입학한 중산층 출신의 제2 베이비부머들은 10대 시절부터 대중문화의 단맛을 본 상태였지요. 90년대 대학가는 80년대식 민중문화와 90년대식의 대중문화가 기이하게 동거하면서 때에 따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딱 이 시점에서 모 광고기획사가 엑스세대란 말을 끄집어냅니다. '이들은 기존의 젊은 세대하고는 확실히 다르며, 이런저런 사회적 조건들이 맞물려 새로운 소비의 주체로 부상할 것이다'라는 예측과 함께요. 그 호명과 함께 92~93년에 걸쳐 압구정동과 홍대 앞이 젊은이들의 메카로 부상하고, 여기서 젊은이들이 즐기는 문화가 언론에 노출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죠.

결국 그들 스스로는 자기들을 조직화하거나 세대로 묶어 집단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는데, 외부에서 마케팅 등 경제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 세대를 주목의 대상으로 불러낸 거죠. 그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 젊은이들은 모조리 개인주인자인데 '너는 엑스세대의 일원'이라 불리는 걸 좋아하겠어요? 사실 그 호명 안에 이미 모순이 들어있는 셈이죠. 물론 엑스세대라 불리는 집단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했을 겁니다. 윗세대 중 일부는 그걸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나이로는 386 세대에 속하지만 386의 주류였던 '운동권 청춘 모델'에는 동의할 수 없었던, 오히려 미국 대중문화에 친숙했던 사람들이죠. 일례로 어떤 60년대생 소설가들은 자기 세대가 아닌 신세대를 주인공, 독자로 한 소설을 쓰곤 했어요. 소설가는 60년대 초반생인데 소설 주인공은 70년대 초반생인 식이지요. (웃음)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제가 '88만원 세대'에 갖는 혐의도 비슷합니다. 엑스세대가 소비 차원에서 동원되었던 것과 유사하게, '88만원 세대'도 정치적으로 동원되기 위해 쓰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물론 이 개념 자체를 만들어낸 우석훈 선생이나 박권일 선생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지요. 2000년대 이후의 세계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 작동의 방식을 '세대론'이라는 형식으로 포착해내려고 했던 걸 텐데요. 그런데 이후 이 세대론의 '쓰임새'가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어요. 특히 선거 국면에서 더욱 더 그랬지요. 이런 흐름을 보면 이 세대가 자기 스스로를 호명하지 못했다는 것, 호명할 수 있는 힘이나 집단적 의지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20대 혹은 청년 세대 담론이 흥미로운 것은, 청년들을 규정해보려는 윗세대들의 필사적인 노력에 대한 20대들의 철저한 무관심 혹은 소외 현상에 있다. 20대는 본인들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한편 윗세대들 역시 청년 세대를 규정하는 데 20대의 견해를 참고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누구의 견해를 참고해야 하는지를 정하지 못한다." (169쪽)

"(촛불 시위가 무력해진 이후) 나를 포함한 몇 명의 20대를 (…) 한 세트로 묶어서 담론 시장에 소개하는 문법이 나타났다. (…) 그것은 나로서도 황당한 경험이었다. 십 년 동안 인터넷에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연한 계기로 전혀 다른 글을 쓰던 사람들과 한 묶음이 되어 담론 시장에 진열된 것이다. 어째서 20대를 배척하는 10대들의 세대론과 20대 논객을 갈구하는 세대론이 공존하게 되었는가? 그보다는, 어째서 그런 식의 세대론의 삐걱거림이 있었는데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이 세대론의 본질이 어떤 논리적인 범주가 아니라 '386 이후'를 기약한다는 심정적 갈망에 있기 때문이다." (197~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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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멸종의 시대

한윤형 : 지금 하신 지적에 대체로 동의하고,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약간 돌려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해 보니 제 책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하나는 당연히 문자 그대로의 의미, 청년 세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좀 더 들어가 보면 이제 더 이상 기성세대들이 바라는 '청춘'의 모델-진취적이고 겁이 없으며 세상에 맞서 싸울 자세가 되어 있는-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도 됩니다. 말하자면 '청춘 예찬' 할 수 있는 종류의 청춘이 없다는 겁니다.

가령 명문대 학생들이 공무원을 꿈꾼다고 하면 보수 언론에서는 개탄의 어조로 '꿈 없음'을 비판하죠. 그들의 시선으로 보면 명문대생들은 진취적으로 행동하고 누군가를 먹어 살릴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경쟁에 지친 이들이 경쟁이 덜 한 직종을 선호하게 되면서 룰 자체가 바뀌어가는 상황인 거죠. 이런 과정을 보면 '청춘 담론'에 나오는 청춘은 더 이상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명할 힘이 없다'라는 차원과는 좀 다르죠.

박해천 : 저는 평소에 글감을 찾기 위해 소설을 즐겨 읽는데요. 한국 현대소설을 보면 젊은 세대를 주 독자층으로 삼는 일군의 저자들이 청춘이나 성장이라는 테마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4.19 세대라고 볼 수 있어요. 김승옥으로 대변되는 40년대생들의 성장 소설과 청춘 담론이 있었지요. 50, 60년대생들도 각각의 청춘 소설이 있었고요. 그런데 70년대생 소설가들에겐 그게 없어요. 왜냐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으면 됐으니까요. 달리 말하면, 그 때 이미 한국의 젊은 독자들은 한국에서 청춘이 성장하는 과정에 대한 글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거기서 살아남은 게 김영하(68년생) 씨와 정이현 씨 정도입니다. 이들이 최근에서야 성장 소설을 쓰고 있는데, 이것 자체와 이전과는 다르죠. 이전 세대가 자기의 청춘을 실시간으로 썼다면, 이들은 아랫세대인 80년대생들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고 있거든요. 이건 하루키가 취한 전략이기도 해요. 그는 자기보다 열 살 혹은 그 이상 어린 젊은이들의 성장 소설을 썼으니까요.

이렇게 놓고 보면, 청춘이란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낭만주의적 색채, 자유연애에 대한 판타지, 가족으로부터의 탈출이란 해방감, 자아의 발견 같은 그 속성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리고 이런 속성들은 지금은 청춘이 아니라 '중2병'이라 불리죠. '얘가 뭔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구나'가 아니라 '얘 중2병 걸렸구나'가 되는 거죠. (웃음)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청춘'이란 호명 자체의 설 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전 같으면 직장인이 되어서야 경험하기 시작했던 삶의 하중이 계속 밑으로, 밑으로 내려오면서 이제는 중학교나 초등학교 고학년을 다니면서부터 그 하중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이런 상황 속에서 청춘이라는 표현은 시대착오적인 언어유희, 실재하지는 않으나 마음속에만 남은 로망, '언젠가 가닿을 수 있을 거야'라는 환상 속의 신기루가 되어버린 겁니다. 실제로 청춘을 누리지 못함으로써 이미 청춘을 누린 이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져 가고요.

사람이 사회에 진출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서 한 숨 돌릴 때쯤 되면, 젊은 날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때가 좋았지"라면서 사후적으로 자신의 '청춘'이라는 걸 재구성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요. '난 지금도 청춘이야'라고 말할 때의 청춘도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청춘은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반복강박처럼 불러들이는 어떤 기억의 핵심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럴 만한 기억의 핵심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기 어려워진 상황 같습니다.

한윤형 : '지금 굶지 않고 있어야 굶었던 시절도 낭만이 될 수 있다'는 얘기군요.

박해천 : 그렇죠. '그때 내가 그렇게 방황했기 때문에/방황했지만 지금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시기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게 바로 청춘인 거죠. (웃음)

'세대 간 불평등'은 실재하는가

한윤형 :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은 2010년 엄기호 선생이 낸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와 대구를 이루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윗세대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양식의 청춘이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제목을 쓰신 것 같은데요. 엄기호 선생도 91학번이라 박해천 선생과 비슷한 세대입니다. 이 책에도 지금 대담 내용과 관련지을 수 있는 재미있는 대목이 많은데요. 저자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대부분이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는데, 20년쯤 뒤 본인이 직접 지방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보니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와요. 독립할 생각이 없고, 오히려 집에서 자기를 쫓아내지 않는 게 고마운 겁니다. 이런 식의 감각 전환들이 일어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어떤 세대에 속한 사람들)가 우리 세대를 어떤 식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된 여러 난점들 중에는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불평등, 혹은 불평등 자체가 더 중요하다'라는 사회학자들의 비판도 있습니다. 맞는 말이죠. 그래서 더더욱 세대론을 통해 누군가를 호출해내기가 어렵습니다.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서로 굉장히 분절화, 파편화 되어있거든요.

가령 제가 이 책을 낸 뒤 여러 곳에서 강연을 했는데, 한 번은 어느 지방 대학교에서 훨씬 어린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청년 세대 문제를 이야기하면 분절화나 파편화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면 학벌 사회 이야기가 나오죠. 그런데 학벌 피라미드 맨 위에 있는 학교에 다닌 제가 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럽더라고요. 게다가 그 학생들은 제 책을 읽지도 않았고, 절 궁금해 한 강사나 교수가 강연을 들으면 출석을 인정해주겠다고 해서 억지로 듣는 상황이거든요. 말하자면 세대 간 분절 외에도 세대 내부의 분절 역시 존재하기에, 이야기를 풀어나감에 있어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박해천 : 저는 굉장히 다양한 분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데, 방금 말씀하신 그런 어려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누군가'하는 문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예요. 그리고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거론하는 세대의 호명 대상은 기본적으로 대졸자, 어느 정도의 중산층 혹은 중산층 워너비라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또 저는 사회학자가 아닌 디자인 연구자이기 때문에 계급적 접근보다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빚어지는 세대 간 차이에 주목했던 거고요.

그래도 조금 흥미로운 건 박원순 씨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후 약간의 결집이 보인다는 거예요. 20대 후반~30대 초반 가운데 예전에는 정치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이 SNS 등을 통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리버럴한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요. 물론 그것도 소수이고,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 무관심이) 더 심해질 것 같지만요.

한윤형 : 정치적인 결집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청년 세대의 정치적 의식은 과거와는 다르게 발생하는 측면이 있어요. 가령 '20대 개새끼론'처럼 대학생들에게 정치의식이 없다고 핀잔했던 경우를 보면, 80~90년대 학번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대학 시절이 가장 진보적인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 대학생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본화된 대학에서 정치의식을 가질 만한 탈출 공간이 없다보니 대학생일 때 오히려 더 자본 논리에 입각해서 살다가, 대학을 벗어나 취업 준비나 입사를 하면서 자신이 '을'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제 책 리뷰 중에서도 '대학교 다닐 땐 정치에 아무 생각 없거나 운동권들을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회사 7, 8년 다녀보니까 그게 아니더라'라는 또래 분들이 있었어요. 대학생으로서 노동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제 세대는 오히려 자신이 직접 노동 현장에 나가서 그 문제들을 대변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숫자는 많지 않죠. 어쨌든 공통의 지반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식의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제겐 고민입니다.

박해천 : 집 없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어때요? (웃음) 아쉬운 부분들이 그런 거예요. 아파트 단지를 들여다보면, 주거자들이 여러 가지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이 굉장히 잘 체계화 되어있어요. 부녀회나 관리실 등, 최소의 형태이긴 하지만 꽤나 효과적으로 작동하거든요. 차등적인 대우를 받는다든지, 뭔가 불평등을 인지했을 때 아줌마들이 모여서 행동하는 방식이 상당한 정치적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세대가 올라탈) 방주 자체가 떠나버린 상황도 있지만, 공통의 문제를 스스로 공론화하거나 해결하려는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대 간 불평등'이란 표현도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요. 이 세대가 '우리는 이러이러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불평해도 윗세대 상당수는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을 보이고 끝이에요. 즉 '내가 어려우니 나를 도와달라'는 호소 방식으로는 사실상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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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50대, 꼬리를 무는 부자(父子)

박해천 : 여러 지표를 봤을 때, 여러분들 가운데 지금 독립해서 원룸이나 자취방에 살고 있는 분들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그 '방'에서 탈출해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사실상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지금 서울이나 수도권 주요 도시의 아파트 가격이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은 그렇습니다. 물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2005년 전후, 그 이후에 떠나신 분들 상당수는 지금 하우스 푸어일 겁니다.

더 큰 문제도 있어요. 여러분들 부모님의 상당수가 50대 이상인데, 50대 자가 소유 비율이 60퍼센트 약간 넘습니다. 이 베이비붐 세대가 노후 생활을 영위해가는 데 필요한 최소 자산의 규모는 가구당 3억 6000만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그 세대 전체의 24퍼센트밖에 안 돼요. 그리고 지금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이라고 이야기되는데, 그 가운데 50대 이상이 진 빚이 그 절반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50대 이상 분들의 대부분이 제도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사이에 경제 활동이 끝납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 부모님 세대의 상황입니다.

월세방에 거주하는 여러분들 중 일부는 여전히 '조금 더 기다리면 부동산 폭락이 올 거고, 그때 집을 구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폭락한 집의 집주인이 확률적으로 바로 여러분의 부모님, 친구의 부모님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베이비붐 세대의 자가 소유 비율(60퍼센트)과 가계부채 규모(400조 이상)가 이렇게 맞물려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경제 위기가 닥치면 가계대출이 몰려 있는 자가 소유자들에게 첫 번째로 피해가 가고, 그러면 갖고 있던 집들이 헐값으로 나오는 겁니다.

이 불행의 핵심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여러분들에게 좋은 게 여러분 부모들한테 좋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란 겁니다. 가령 최근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처럼 정년을 연장하면 부모님 세대는 수혜를 입고, 여러분들의 취업은 불리해집니다. 사회적 비용 면에서도 사람을 새로이 뽑아 훈련시키는 것보다 이미 훈련되어 있는 사람을 몇 년 더 노동시키는 게 나을 수 있으니까요. 이명박 정권 때 일자리 나누기를 한다면서 대졸 초임 임금을 삭감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많은 기성세대가 반색을 표한 게, 자기들 연봉이 깎일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어요.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경제가 어려우니까 윗세대가 좀처럼 퇴장을 하지 않고, 따라서 젊은 세대가 사회로 진출하거나 자산을 증여 받아 소비를 하는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이는 또한 저출산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요. 지금 수도권에서는 순번표 받고 대기했다가 들어가는 어린이집도 있고 산부인과 간판들도 거리에서 눈에 많이 띄지만,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특히 한국의 저출산 1세대(98~2002년 출생)가 대학에 진학하는 시점(2018~2012년)이 되면 수많은 지방 대학이 구조조정에 직면해야 할 겁니다. 90년대 내내 6,70만명이던 출생인구가 98년을 기점으로 꺾어졌다가 2002년을 기점으로 40만명대로 내려앉았지요.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쯤이면, 대학 정원이 학령인구보다 훨씬 많은 상황이 벌어지지요. 지금 어느 대학은 회화과를 없앤다, 어느 대학은 철학과를 없앤다 하는 뉴스가 나오는데, 저출산 시대에 대비하는 대학의 구조조정이라는 맥락에서 보실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 입장에서 보자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하게 될 무렵이면, 그만큼 20대 소비자들의 내수 시장은 축소될 것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구요.

어떻게 이 세대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해요. 그런데 지난해 대선 국면을 돌아보면, 문제의 세대가 직접 나선 게 아니라 15살쯤 많은 윗세대가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신해서 대변해 준 상황이 펼쳐졌어요. 만일 계속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 세대는 영원히 무간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부동산 문제만 놓고 봤을 때 제가 속한 90학번-70년대생들은 '세대'로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직접 이야기할 필요를 못 느껴요. 이들 중에는 (IMF 사태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격동의 시기를 짜임새 있게 보낸 '중간층'이라 한다면) 어떻게든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케이스가 있습니다만, 상당수, 특히 70년대 중후반생은 하우스 푸어이거나 세입자로 계층이 갈리고 그래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세대 상황은 이보다 더 좋지 않지요. 아예 다른 상황일 수도 있구요.

지난해 대선과 맞물려 반값 등록금이 이슈가 되었을 때 제 친구가 '이제 386 세대 자녀들이 대학 갈 때 되니까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구나'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 여러분의 부모인 50년대생들은 자녀의 대학 등록금이 마구 오를 때 별 불만 없이 그걸 지불했어요. 99년부터 2007년쯤까지 아파트 값이 올랐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고 경제 성장률도 2~3퍼센트 대에 정체되었기 때문에 이전의 체제, 이전의 기회, 이전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고요. 그리고 이 모든 모순들이 가장 강렬하게 맞물려 있는 시점이 바로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여러분들이 3,40대의 나이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지요.

이런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거기다 우리가 원했던 정치적 승리의 기억은 기껏해야 한 줌일 때, 어느 위치에 서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돌파할 것인지는 여러분 세대들 스스로 판단해야 해요. 저는 저의 이해관계가 있고, 여러분의 이해관계와는 달라요. 대안은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거죠.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

한윤형 : 말씀을 듣다보니 장내 분위기가 안 좋아졌어요. (웃음) 사실 정치적 전망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었는데 살짝 언질은 주신 것 같고요. 세대론의 정치적 쓰임새에 대해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로는 청춘 담론이 가진 특성 때문에 '어떤' 세대론은 여전히 남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서 한 작업은 거기에 개입하면서 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저에게도 대안이나 행동지침을 묻는 경우가 있는데, 정치평론가의 책은 애초에 좀 허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많은 책에서 서둘러 대안이라고 나오는 게 대체로 '약 파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저는 성격상 약을 팔지 못해요. (웃음) 구체적인 정책을 나열하면 그걸 누가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 즉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의 딜레마가 펼쳐지고요. 그래서 정치적 행동지침에 대해서는 일부러 피한 감도 있습니다.

박해천 선생이 '스스로 삶의 문제를 지각하고 요구를 던져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셨는데, 그러한 요구 투입을 위해서는 일단 자기 삶의 문제가 사회적 변화의 문맥에서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조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구와 힘을 합쳐서 요구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고요. 제가 이 책의 1부에 사적인 얘기를 많이 쓴 것도, 개인의 경험을 풀어놓는 것이 그 시대 속에서 자기 삶의 문제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행동지침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합의해야 할 문제이지, 몇몇 사람이 던져줄 수 있는 종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조망할 시선의 획득과 동년배에게 말 걸기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해천 : 여러분들은 지금 삶이 힘들고 우울하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더 우울하고 더 힘들 가능성이 높아요. 한윤형 씨가 '내려가는 사회'라고 표현한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맥락을 이해하면서, 그 안에서 개인으로서 누릴 행복을 고민하고 그걸 누리기 위한 정치적, 조직적인 의사 표현의 방법들을 직접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정권 교체 같이 커다란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 고령화-보수화가 맞물린 인구 분포상, 앞으로 여러분들 상당수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미시적인 부분들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박근혜 정부가 싫다고 해도 지금 정부나 집권 여당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뭔가가 있어요. 그걸 선택적으로, 최대한으로 취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행복주택 같은 거죠. 노무현 정권 때 추진했으면 아마 난리가 났겠지만, 새누리당이 하니까 저항이 덜해요. 행복주택 건설에 대한 요구는 여러분들이 거기 들어가서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들어갈 확률은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과 비슷해요. 다만 행복주택이 해당 지역 전월세의 표준 시가와 같은 역할을 해주면서 가격을 하향 안정화해줄 가능성이 있어요. 그게 지어짐으로써 그 지역 아파트를 싸게 임대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각 구마다 부동산의 요충지라 불리는 곳에 행복주택을 더 지어달라고 요구해야 해요. 오늘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최저임금 인상도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야 하는 일이고요.

경제 자체가 '내려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거기에 걸맞게 여러분 자신의 욕망을 구조조정하고 새로운 일상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전환에 이미 '노아의 방주'를 타고 떠난 분들은 관심이 없죠. 여기서 무슨 선택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해보셔야 할 거예요.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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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통성 시비'가 아킬레스건?

 

[장윤선의 톡톡! 정치카페] 홍익표의 귀태발언, 왜 청와대를 자극했나

13.07.12 19:38l최종 업데이트 13.07.12 21:05l
장윤선(sunni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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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12일 오후 '귀태'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것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변인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뒤 국회를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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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막말을 하는 것도 부족해 이제 국회의원이 대통령에게 그런 식의 막말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망치고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 국민이 한 대선을 불복하고 부정하는 발언이 민주당 공식 행사에서 연이어 나왔다. 우리는 이를 단순한 정치권의 막말 수준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을 공존과 타협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타도와 소멸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에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12일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습니다. 새누리당은 이날 예정된 모든 국회일정을 전면 중단했고, 당초 예정돼 있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을 위한 예비열람 일정도 취소했습니다. 새누리당은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국가원수를 모독한 죄 엄히 다스리겠다는 태도로 임했습니다. 문제의 발언을 쏟아낸 홍 대변인에 대해서는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습니다.

강은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대선 불복성 발언에 대한 민주당의 책임 있는 조치가 없다면 국회의 모든 상임위와 관련한 활동을 전면 중단할 수도 있다"며 "이후 최고위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정현 수석은 화가 많이 난 것 같습니다. 현직 대통령을 향해 '귀신에게서 태어난 아이' 또는 '불구의 태아'를 뜻하는 말을 했으니, 대통령을 보좌하는 수석으로서 마땅히 대응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책에 나온 구절을 인용했다 해도 이건 홍 대변인의 잘못된 말실수같습니다. 물론 홍 원대대변인은 문제가 확산되자 지난 11일 오후 7시쯤 구두브리핑을 통해 "귀태 표현과 관련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확대 해석되어 대통령에 대한 인식공격으로 비춰졌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박근혜 정부, 대선 불복성 발언 그냥 안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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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21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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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공세의 고삐를 쥐고 달려듭니다. 왜 그럴까요? 홍 원내대변인의 '귀태'라는 말 자체도 불쾌하겠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뜻이 어쩌면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을 더욱 자극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정치권 일각에서는 홍 원내대변인의 발언이 청와대의 감정선을 자극한 이유로 제일 먼저 '정통성 시비'를 걸었다고 분석합니다. 이 수석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불복과 부정, 국민의 선택 부정 등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은 줄곧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사전유출 의혹을 쟁점화했습니다. 이같은 민주당의 공격이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에 상처를 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고, 이것을 방치할 경우 자칫 더 큰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날 이 수석의 회견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관측도 나돕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과 NLL의혹을 넘어 이른바 '귀태'까지 민주당의 발언 수위가 점차 높아지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을 참모들에게 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 대응이 이날 오전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된 것이라는 분석인 것이지요.

무엇보다 이번 귀태발언파문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의중은 야권의 '대선불복' 주장이 확산되는 것을 더는 참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박근혜정치'의 선명성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봐야 할까요?

검찰은 지난 10일 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개인비리로 구속했습니다. 국정원장의 지시로 국가정보기관 정보원들이 무더기로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동원돼 댓글을 다는 등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불구속 수사했던 검찰입니다. 그런데 검찰의 불구속 수사에도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시국선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원 전 원장을 개인비리로 구속한 것이지요.

논란의 중심이 된 원 전 원장을 구속함으로써 약간의 소강국면이나 진정국면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요?

동시에 감사원은 11일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인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사실상 한반도 대운하의 재추진을 염두에 두고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것이라고 밝혔지요. 감사원은 이명박정부 내내 관련된 사실을 감추고 있다가 이제 와서 감사결과를 밝히다니 역시 비겁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박근혜정부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베일을 벗겨낸 셈입니다. 무엇보다 이 같은 감사원 감사결과에 대해 청와대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왜 그럴까요?

차별화지요.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에서 벌어진 잘못된 일들과 확실히 거리두기를 하고 '전략적 차별화'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이명박정부는 뇌물을 받고 뒤를 봐주며 건설업자와 결탁해 납품비리 저지르는 아주 부도덕한 집단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는 연일 이명박 정부의 추잡한 부도덕성을 꺼내고 들춰내고 있지만, 반대로 박근혜 정부의 탄생의 비밀과 연관된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 정상회담 대화록 사전유출과 관련해서는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는 상황입니다. 정치 개입이 금지된 국정원이 한국 정치의 전면에 나섰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자중하라'는 메시지도 없습니다.

국정원이 아주 이례적으로 대변인 성명까지 발표해 NLL논쟁에 가담해, 여야 정치권은 물론 심지어 보수언론까지도 "국정원 제정신이냐" "기밀보안업무를 다루는 국정원이 연일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음지에서 일하는 정부부처가 맞느냐"고 질타하고 있습니다.<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헐거워진 국정원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라"는 주문을 내놓기도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말이 없습니다.

국방부도 NLL 논쟁에 가세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갖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포기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가 하룻만에 말을 바꿔 "2007년 정상회담 후속으로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우리의 주요 전략은 NLL을 기준으로 같은 면적, 즉 등면적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하자는 것이었다"며 "이는 NLL을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논의하자는 취지였는데 북측이 이를 거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방부 안의 자중지란에 대해서도 언급조차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국정원 '제정신이냐' 비판 이어져도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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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를 돈과 결탁한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 결국 박근혜 대통령과 그 집단을 돗보이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걸까. 사진은 지난 2007년 8월 17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서울합동연설회 당시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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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정상회담 대화록 사전유출 문제가 결국은 정권의 정통성 시비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지난 9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최경환 원내대표·김기현 정책위의장, 정홍원 국무총리·현오석 경제부총리·김동연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허태열 비서실장·이정현 홍보수석·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참여한 이른바 '국정 콘트롤타워 9인방'이 모였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정치 현안부터 ▲ 실물 경기 악화와 경제팀의 대응 ▲ 6월 임시국회 평가 등 국정 전반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자리에서는 "민주당이 최근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선거무효투쟁' 등을 거론하고 문재인 의원이 '작년 대선이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며 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한 일도 거론됐다고 합니다. 한 참석자는 "야당의 공세 수위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도 전했다고 합니다.

일명 '국정 콘트롤타워 9인방'의 9일 회동 직후, 10일 국정원 대변인의 이례적 성명, 11일 국방부 대변인의 브리핑이 이어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국정원 국정조사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꾸 NLL논쟁을 촉발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돌았습니다.

전선의 다각화죠.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키워서 본질의 문제를 가리려는 전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NLL논쟁도, 4대강에 대한 감사원 감사도, 그리고 국정원과 국방부의 국내정치 개입도, 사실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그 진실의 문턱을 높이는 장치로 활용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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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들 새누리당사 앞 시국선언

서울대생들 새누리당사 앞 시국선언
 
국정원 선거개입, 헌정파괴..박근혜 책임질 것 요구
 
이호두 기자
기사입력: 2013/07/13 [02:13] 최종편집: ⓒ 자주민보
 
 

청년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서울대 총학생회가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앞에서 성명을 통해 '국정원 선거개입 및 국기문란. 박근혜 대통령 사과'를 요구했다.

 
▲ 서울대생, 국정원 국기문란 규탄 시국선언 ©이호두 기자


























서울대 총학생회 학생들은 지난 12일 비가 오는 가운데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과 민주주의 말살에 대해 "이 책임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커넥션에 있다"며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있는 대응을 촉구하였다.


 
▲ 국정원의 정국돌리기와 새누리당의 개입을 비난하는 서울대생들 © 이호두 기자



























이 날 모인 서울대생들은 재학생 1080명, 대학원생 127명, 졸업생 123명 등 총 1330여명의 목소리를 담은 시국선언서를 낭독하며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규탄하였다.

특히 자유발언을 통해 한 서울대생은 "댓글알바라고 하였는데 알고보니 국정원 정규직원이 댓글을 양산하며 선거개입을 하여 국기를 문란케 하였다"며 "이는 국정원이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한 행위"라고 강력 성토하였다.

서울대생들을 비롯한 사회각계 각층의 국정원 국기문란 규탄 및 시국선언은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으로 최근 여야는 이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에 대해 국정조사에 합의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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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표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7/13 10:18
  • 수정일
    2013/07/13 10: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문)청와대 "대통령 정통성 부인"..새누리당 원내일정 잠정 중단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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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12 14: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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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전날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발언을 문제삼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 등 12일 원내 일정을 잠정 중단하고 대야공세에 나서 여야 간 대치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정말 전.현직 국가원수에 대해 모욕을 넘어 저주하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며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모욕적인, 그런 느낌을 갖는 충격적인 논평이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우리 당으로서 이것은 절대 그냥 묵고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오늘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해주면 따르겠지만, 1차적으로 오늘 예정된 원내일정은 일단 잠정 중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홍 대변인의 발언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해 대선과정에서부터 NLL 공방의 전면에 나섰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24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11일 오전 현안브리핑에서 “작년에 나온 책 중에 하나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의 표현 중에 하나가 귀태(鬼胎)라는 표현이 있다”며 “그 뜻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 당시 만주국의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에 세운 괴뢰국에,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아베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잘 아시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이다”고 적시했다.

홍 대변인은 한.일 양국의 두 지도자가 먼저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며 “아베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박정희 시절의 인권탄압과 중앙정보부의 정보기관이 자행했던 정치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또한 “두 분이 미래로 나가지 않고 구시대로 가려하는 것 같다”며 “이제 노골적으로 아베총리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고, 최근 행태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홍 대변인은 또한 “요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보통 국정원은 양지를 지향하고 비공개활동을 하는데, 대통령께서 음지를 지향하고, 국정원장이 양지를 지향하는 것 같다”며 “자칫 남재준 대통령, 박근혜 국정원장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최근의 국정원장의 활약이 아주 눈부시다”고 꼬집었다.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데 이어 대변인 성명을 통해 NLL 포기발언을 기정사실화하려는 행태를 겨냥한 것.

홍 대변인은 “어제 국정원이 공개한 자료는 터무니없는 자료였고, 말도 안되는 내용을 발표했다. 사실상 국정원이 우리 대통령의 말씀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만 따르는 친북, 종북기관인 것 같다”고 비판하고 “저는 분명히 다른 지도를 가지고 있다”면서 “국정원이 당시 국방부장관, 지금 안보실장에게 확인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사실 관계가 아니라면 빨리 그 내용을 철회하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특히 “사실상 남재준 씨는 제2의 김재규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시해는 권총만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시해도 있다”며 “사실상 지금은 대통령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국정원장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남재준 국정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홍 대변인은 이 같은 발언을 새누리당이 문제삼고 나서자 “귀태 표현과 관련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확대 해석되어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비춰졌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했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12일 오전 현안 브리핑에서 “어제 홍 의원은 자신의 문제된 발언에 대해서, 지도부와 협의 후에 유감 표명을 하였다”며 “이 같은 신속한 유감 표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국회의 파행을 핑계 삼기 위한 꼬투리잡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새누리당이 홍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아서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겠다는 것은 여당으로서 무책임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오늘 중으로 예정됐던 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가기록원이 법정기한인 15일까지 국회가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기가 어려워지게 된다”며 “새누리당은 보다 성숙하고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익표 원내대변인, 오전 현안 브리핑> (전문)

□ 일시: 2013년 7월 11일 오전 10시 20분
□ 장소: 국회 정론관

■ 남재준 국정원장의 터무니없는 허위사실 유포, 끝까지 책임 묻겠다

오늘 41차 고위정책회의의 비공개 내용을 말씀드리겠다.

요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보통 국정원은 양지를 지향하고 비공개활동을 하는데, 대통령께서 음지를 지향하고, 국정원장이 양지를 지향하는 것 같다.

자칫 남재준 대통령, 박근혜 국정원장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최근의 국정원장의 활약이 아주 눈부시다.

먼저 역사 얘기를 하나 드리겠다.

작년에 나온 책 중에 하나가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책의 표현 중에 하나가 귀태(鬼胎)라는 표현이 있다. 귀신 귀(鬼)자에다, 태아 태(胎)자를 써서, 그 뜻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 당시 만주국의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에 세운 괴뢰국에,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다. 아베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잘 아시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이다.

최근의 이 두 분의 행보가 남달리 유사한 면이 있다. 첫째,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고, 박정희 시절의 인권탄압과 중앙정보부의 정보기관이 자행했던 정치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이 두 분이 미래로 나가지 않고 구시대로 가려하는 것 같다. 이제 노골적으로 아베총리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고, 최근 행태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아니라, 청와대와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아니라, 완벽하게 정보기관이 국회의 중심이 된 것 같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국기문란을 어떻게 했는지 반성하고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남재준 씨는 제2의 김재규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시해는 권총만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시해도 있다.

사실상 지금은 대통령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국정원장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어제 국정원이 공개한 자료는 터무니없는 자료였고, 말도 안되는 내용을 발표했다. 사실상 국정원이 우리 대통령의 말씀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말만 따르는 친북, 종북기관인 것 같다.

어제 지도는 말도 안되는 지도를 공개했다. 다시 한 번 경고한다. 오늘 중으로 자신들이 공개한 어제 내용과 지도를 허위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빨리 취소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허위사실을 물어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

저는 분명히 다른 지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 공동어로구역을 어떻게 제시했는지, 당시 장관급회담과 장성급 국방장관 회담과 장성급 회담에서 우리가 북측에게 제시했던, 북측이 우리에게 제시했던 정확한 내용을 제가 가지고 했기 때문에 국정원이 당시 국방부장관, 지금 안보실장에게 확인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사실 관계가 아니라면 빨리 그 내용을 철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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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긴 환도상어, 하이킥으로 정어리 사냥 밝혀져

 

꼬리 긴 환도상어, 하이킥으로 정어리 사냥 밝혀져

 
조홍섭 2013. 07. 11
조회수 5044추천수 0
 

고기떼 돌진, 꼬리 180도 휘둘러 7마리까지 기절시켜, 오랜 추정 확인

필리핀 세부서 수중 촬영 성공, 환도상어는 남획으로 취약종

 

thresh.jpg » 환도상어가 꼬리를 후려쳐 정어리를 사냥하는 모습. 사진=사이먼 올리브 외, <플로스 원> 동영상 캡쳐

 

자기 몸길이의 절반에 이르는 서양 낫처럼 생긴 꼬리를 지닌 환도상어는 그 긴 꼬리를 이용해 물고기를 사냥할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추정돼 왔다. 하지만 야행성이고 수줍기로 유명한 이 상어의 꼬리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필리핀 세부의 페스카도르 섬에서 환도상어 보전을 위한 연구를 하던 사이먼 올리브 환도상어 연구 및 보존 프로젝트 수석 연구자에게 2010년께 다이버들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환도상어가 정어리떼를 꼬리로 사냥한다는 것이었다.
 

올리브 등 연구자들은 이후 61차례에 걸친 수중 비디오카메라 촬영 결과 환도상어가 꼬리로 사냥하는 전략과 행동을 상세히 밝혀 그 결과가 온라인 공개학술지 <플로스 원> 11일치에 실렸다.
 

1_13368_1400px_Figure-3_PLOSs.jpg » 환도상어가 꼬리를 휘둘러 물고기를 잡는 동작. 그림=사이먼 올리브 외, <플로스 원>

 

이 논문을 보면, 환도상어는 여러 단계의 행동으로 공처럼 뭉쳐있는 정어리떼를 사냥한다. 먼저, 준비 단계로 물고기떼 속에 돌진해 꼬리를 90도 휜다. 이어 몸의 근육과 지느러미를 총동원해 3분의 1초 사이에 긴 꼬리를 180도 후려친다.
 

이어 꼬리에 직접 맞은 물고기는 물론이고 꼬리를 휘두를 때 형성되는 충격파로 기절한 물고기를 서서히 헤엄치며 주워 먹는다. 연구자들은 한 번 꼬리를 휘둘러 최고 7마리까지 정어리를 사냥하는 것으로 보아 이런 사냥 전략이 상당히 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꼬리치기는 워낙 강력해 녹아있던 공기가 확산해 나와 물기둥에 공기방울이 형성되기도 했다.
 

journal.pone.0067380.g004-s.jpg » 환도상어의 꼬리를 이용한 사냥 단계별 모습. 사진= 사이먼 올리브 외, <플로스 원>

 

바다에서 꼬리를 이용해 사냥하거나 소통하는 행동은 주로 지능이 높은 고래에서 발견돼 왔지만 물고기에서 관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상어의 지능이 알려진 것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범고래는 물고기떼를 만나면 꼬리로 커다란 소리와 충격파를 일으키는데, 한번에 33마리까지 생선을 사냥할 만큼 강력하다. 또 돌고래도 물고기떼를 모으기 위해 꼬리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혹등고래와 향고래는 장거리 통신을 위해 꼬리로 바다표면 치기 행동을 한다.
 

환도상어_국립수산과학원.jpg » 환도상어. 꼬리가 몸길이의 절반을 차지한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

 

환도고래는 365㎝까지 자라며 인도~태평양의 열대와 온대 바다에 서식하는데, 우리나라 남해안에서도 볼 수 있다. 주로 바다 표면에서 물고기나 오징어 등을 잡아먹기 때문에 다랑어 조업이나 연승어업에 부수어획으로 잡히기도 한다. 고기와 지느러미를 상업용으로 이용한다.
 

성장이 느리고 번식력이 약한 환도상어는 남획에 취약해 현재 세계자연보존연맹이 지정한 적색목록에 취약종으로 등록돼 있다.

 

환도상어의 꼬리를 이용한 사냥 모습 유튜브 동영상(출처=사이먼 올리브 외, <플로스 원>)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Oliver SP, Turner JR, Gann K, Silvosa M, D‘Urban Jackson T (2013) Thresher Sharks Use Tail-Slaps as a Hunting Strategy. PLoS ONE 8(7): e67380. doi:10.1371/journal.pone.0067380
 

조홍섭 환경전문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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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출신 남재준, 군과 국정원 차이 몰라"

 

[이철희의 이쑤시개]<26> '국가정보학' 대가 연세대 문정인 교수

이명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7-11 오후 5:21:21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고, 보물을 넣으면 보물이 나온다."

'국가정보학'이라는 학문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국가정보원을 두고 한 말이다. 문정인 교수는 지난 9일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출연해 "국정원은 '중립적인 컴퓨터' 같아서 쓰기 나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국정원은 그동안 정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독재 군사 정권의 안위를 위해 조직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 당시 국정원은 본연의 임무인 각종 정보 수집에 역점을 뒀다.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과 독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서 상황은 뒤집어졌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 수사 중 개인 비리 혐의로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보면, 차이를 확연히 실감할 수 있다. 정권이 국정원을 정치화·사유화한 결과, 국정원은 국내 동향 감시와 심리적 공작에 매달렸다. 국정원 고유 기능이 변질된 것이다. 이에 대해 문정인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 문제를 지적했다.

"2008년 촛불 당시 '배후'로 하나는 종북 세력, 다른 하나는 친노 세력으로 규정됐다. 이들 세력을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 즉 정권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라고 하는 헌정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인식한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도 '국정원의 정치화'에서 비롯됐다. 문정인 교수는 "국정원은 대통령의 보좌 기관"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국정원은 자체의 독자적 성격과 판단을 가질 수 없다. 이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대화록 공개 결정이 '위법'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정원 개혁'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

문정인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목했다. 대통령 직속 기관에 대한 개혁이 초당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특히 국정원이 "법에 정해놓은 국내 보안 직무보다 오히려 정해지지 않은 직무, 즉 '국정 모니터링'"에 치중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주문했다.

"국정원 개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궁극적 소비자가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정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감시하느냐가 중요하다."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 듣기
 

▲ 문정인 교수는 참여 정부에서 국정원개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과거 국정원장으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는 문 교수는 "저는 기본적으로 학자"라며 "행정가나 큰 부서를 맡을만한 능력은 없다고 생각해 고사했다"고 말했다. 그가 국정원장을 했었다면, 오늘날 국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프레시안(이명선)



MB 국정원, 촛불 시위 때문에 종북·친노 세력 감시로 고유 기능 잃어…

이철희 :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간섭, 역대 정부에서 줄곧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된 이후, 이른바 김대중-노무현 민주화 정부 10년 동안 (과거 관행을) 근절하려고 노력했다.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는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의) 독대 보고도 안 받는 등 상당히 많이 노력했고,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통령 한 명 바뀌었다고 정보기관이 과거로 회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정인 : 이명박 정부의 특수 사항 때문이라고 본다. 국정원 자체는 또 정치적으로 개입했을 때 거기에서 오는 불이익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국정원 요원들도 기본적으로는 자기 조직이 비정치화되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중에 일부 정치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국정원이 워낙 인사정체가 심하다 보니까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그런 식으로 정치적 줄 대기를 하고 그것을 통해서 기회를 잡으려 하는 사람도 없다고는 얘기 못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특수한 경우다. 2008년 2월에 취임해서 5월에 촛불 시위가 나왔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경찰청과 국정원에게 '배후가 누구냐, 그것도 못 찾아내느냐'라며 질책을 많이 했다. 그래서 당시 김성호 국정원장이 경질되고, 원세훈 국정원장이 임명됐다.

국정원은 (촛불의) 배후를 찾는데 모든 정치적 노력을 쏟았다. 그 당시 '배후'로 하나는 종북 세력, 다른 하나는 친노 세력으로 규정됐다. 이들 세력을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 즉 정권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라고 하는 헌정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인식한 것 같다.

대정부 전복을 막는 것이 국정원법에 보장된 국정원의 임무인데, (국정원이) 결국에 '체제 전복 세력을 추적한다'라는 식의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다. 이것은 정보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을 이렇게 운영하다 보니, 대북 정보에서도 결국에 미진한 점이 많이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 정보에도 역점을 못 두게 됐다. 국내 보안정보 중에서도 체제 전복 세력에 대한 동향 감시와 이들에 대한 심리적 공작을 주로 하다 보니, 국정원의 고유 기능에서 많이 벗어나면서 (국정원이) 변질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국정원의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 문제와 관련되면서 국정원이 상당히 정치화됐다.

"원세훈, 특정 정권 옹호했다"

이철희 : 촛불 배후에 있는 세력이 체제 전복 세력이라고 보는 견해는 과거 정권의 경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그렇게 보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본 것 아닌가.

문정인 : 그렇다. 보통 국가정보기관이 하는 것은 첫째는 국가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둘째, 체제 안보라는 게 있다. 이것은 상당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체제'는 헌정 질서를 의미한다. 헌정 질서는 결국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통치를 위한 일련의 규범·원칙·규칙·절차를 전부 집대성한 것이 헌법이다. 우리 국민이 선택한 헌법을 지키는 게 체제 수호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체제'를 정권과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다. '전두환 정권, 박정희 정권' 하듯이 정권을 체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국가 안보를 수호하고 헌정 질서라고 하는 체제를 수호하는 게 국정원의 역할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국정원은 통합형 국가정보기관으로서 대북 정보, 해외 정보, 국내 보안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체제 안보와 정권 안보를 좀 혼동한 것 아닌가 싶다. 특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문제점은 자기가 한 일(국내 정치 개입)이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체제 수호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원 전 국정원장의 행동은) 정권을 수호하고 특정 정권을 옹호하는 게 됐다.

국정원 자체는 법에 의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로 되어 있는데, 특정 정권을 옹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특정 정치적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체제 안보라고 하는 큰 틀에서 진짜 헌정 질서를 수호하는 것과 특정 정권을 수호하는 그 사이에 차이점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국정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국정원이 정권을 도와주는 것이 나쁠 게 뭐가 있느냐. 국정의 흐름을 잘 모니터링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이 정책을 잘 운영해서 국민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말이다. 흔히 이것을 '국정 모니터링'이라고 한다.
 

▲ 국정원 정치 개입에 항의하는 촛불 집회가 매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6일에는 1만 여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뉴시스


국정원의 '국정 모니터링' = '악화가 양화 구축'

이철희 : 지금 국정원법에 의하면 '국정 모니터링'이 가능한가.

문정인 : 국정원법에 '국정 모니터링'이란 말이 없다. 국정원법 3조 1항을 보면, 국정원 직무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 정보이다. 국내 보안 정보에는 대공, 대정부 전복(반체제), 방첩, 대테러 및 국제 범죄 조직이라고 되어 있다. 이 외에는 (모니터링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 국내 보안의 상당 부분은 국정을 모니터링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국정 모니터링'은 국정원 요원들이 특정 기관에 출입하고 동향 감시를 하는 부분이다. 법에 정해놓은 국내 보안 직무보다 오히려 정해지지 않은 직무, 즉 '국정 모니터링'이라고 하는 데 더 많은 강조점이 가 있다. 이것이 이번 국정원 개혁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철희 :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에 있으면서 국정원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참 잘 쓴다. 현안이 있으면 문제점과 대책까지 깔끔하게 보고서를 썼다. 이런 것이 모니터링에 대한 결과로 나온 것인가.

문정인 : 그렇다. 이것이 바로 애매모호한 영역인데, 지도자 입장에서 보면 국정원 보고가 그렇게 잘 나오면 의존하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중앙정보부 5국에 판단기획국이 있었다. 판단기획국은 서울지부를 포함해서 전국에 있는 지부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노동 등 모든 분야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를 보고서로 작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때 판단기획국 국장이 김영광 씨(1960년~78년까지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활동했다. 1979년 10대 총선에서 유정회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해 11대(한국국민당)·14대(민자당) 의원을 지냈다. 2010년 3월 별세)였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영광 보고서를 상당히 신뢰했다고 한다. 그만큼 중정 판단기획국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의 국내 정보 보고에 상당히 의존했다. 그런데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는 국정원 고유 업무에 (국내 정보 보고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타성이 됐다. 비공식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국정원 직원은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공헌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국정 모니터링'이 제일 문제라고 보고 있다. 여기저기 출입해서 시민을 감시하는 것 같고…. 그런 것들 때문에 국정원 고유의 기능, 즉 대북 첩보 수집·해외 첩보 수집·대공 수사·외사방첩·산업 보안·대 테러·국제 조직범죄·마약 밀매 등에 대한 고유 기능까지도 완전히 매도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그레셤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국내 모니터링'이라는 악화(惡貨)가 국정원 고유의 양화(良貨), 좋은 화폐까지도 구축(驅逐)하는 형국이 됐다.

이철희 :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에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틀린 것 아닌가. 정보기관으로 이른바 양지를 지향한다는 것은 틀린 말 아닌가.

문정인 : 그것은 해석의 차이이다. 국정원은 비밀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겉으로 노출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음지'이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더 잘 살고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음지에서 열심히 희생하면서 양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되길 원한다고 해석하면 된다.

이철희 : 그렇게 해석하면 좋은 말인데, 그렇게 해석되기보다는 국정원이 자꾸 양지에 나오려고 양지에 개입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문정인 : 국정원은 정의상, 비밀 정보 조직이다. 비밀 정보 조직은 (양지로) 나올 수가 없다. 지금도 국정원은 국정원법 자체에 의해서 자기 신분을 노출할 수 없다. 국정원 직원은 자녀 결혼식 때도 '○○문화사'라는 다른 직명을 쓴다. 국정원 직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전 국정원 직원·전 국정원장'과 같은 표현을 쓰지만, 전통적으로는 다른 대외 직명을 썼다.

"국정원 = 중립적인 컴퓨터"

이철희 : 박근혜 정부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본인의 권한으로 문서 등급을 낮춰 공개했다. 국정원장이 대통령의 허락 없이 (국가 비밀문서를) 공개할 수 있나?

문정인 : 대통령의 허락이 있어도 국정원장은 자기 스스로가 (국가 비밀문서를 공개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국정원장이 청와대에 보고를 하면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하든지, 안보실장이 발표하는 게 수순이다. 정무직 자리라고 하지만, 국정원장은 나설 수가 없다.

국정원의 임무는 대외 정보·대북 정보·국내 보안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이것을 정보 보고서로 생산해 배포하는 작업으로 끝이다. 정치적 판단, 또는 정책의 결정·집행·홍보는 대통령에게만 있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보좌 기관이다. 국정원 자체의 독자적 성격을 가질 수가 없다. 엄격한 의미에서 국정원은 '중립적인 컴퓨터'와 같다.

대통령이 똑똑하지 못해서 국정원을 잘못 활용하면 쓰레기가 된다. 대통령이 현명하게 정보 소요제기를 잘하면서 국정원 감시도 잘하면, 국정원은 좋은 정보를 생산해 국가 안보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선진국의 정보기관은 대표적인 '중립적인 컴퓨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철희 : 국가 정보기관을 중립화해야 한다는 말인가.

문정인 : 개념상, 국가정보기관은 독자적인 정치적 색채를 가질 수가 없다. 국가 정보기관은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을 하는 곳도 아니고,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곳도 아니다. 국가 정보기관이 하는 것은 대·내외적인 정보를 수집·분석해 믿을 수 있는 정보로 만들어 대통령 앞에 보고하고, 그러면 대통령이 그것을 참조해서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국정원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거 중앙정보부의 나쁜 유산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국가 정보기관이라고 하면 권력기관으로 인식한다. 원래 권력기관 아니다. 권력기관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권력기관 화(化) 되어 버렸고, 사람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또 그것을 갖고 국정원 자신이 자꾸 아젠다를 만들려고 하는데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철희 : '국가 정보기관을 민주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타당한 말인가.

문정인 : 국가 정보기관은 기본적으로 정치화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민주화'라는 표현을 쓸 필요도 없다. 정치 체제 자체가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면, 대통령과 국회·언론·NGO가 국정원에 대한 감시·감독을 잘해서 국정원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해야 한다. 국정원은 고유의 목적인 국가 안보와 헌정 질서 지키는 역할만 잘하면 된다.

앞서 '국정원 보고서 참 잘 썼더라'라며 '대안까지 냈다'라는 말을 했는데, 대안을 내는 것은 국정원이 하는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기 때문에 대안으로 1·2·3·4를 고려할 수 있다'는 옵션을 제공할 수는 있다. 하나만 제시하는 것은 국정원 보고가 아니다.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도록 여러 선택 사항을 제시하는 것이 국정원의 역할이다.
 

ⓒ프레시안(이명선)


국정원 개혁 ① '국정 모니터링' 없애야…

이철희 : 검찰 개혁을 한다고 하면, 검찰 인사위원회를 꾸려 시민이나 민간인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국정원 개혁에 이런 시민 참여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문정인 : 가능하다. 먼저 법과 제도가 제일 중요하니까 '국정원이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국정원에 대한 감시·통제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국정원장에 진짜 정보 전문가를 임명해 정치적 판단의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네 번째로, 국정원 자체도 내부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 국정원은 군 조직보다도 더 위계질서가 강한 곳이다. 대통령 빼놓고는 국정원장이 하늘 같은 존재이다. 국정원장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국정원장이 한마디 하면, 다 따른다. '원장님, 그것 잘못됐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 문화를 고쳐야 한다.

더 나가서는 내부 고발자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위계질서가 강해도 국정원장의 불법적 행동을 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국정원장이 정보 판단을 할 때 '정치적 개입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해 조심스러워할 것이다.

그런 것이 국정원 개혁 방향이 되어야 한다. 핵심은 국정원이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법으로 만들어서 더 이상 애매모호한 부분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철희 : 지금 법으로는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어 어렵다는 말인가.

문정인 : 그렇다. 국정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지금 국정원법에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특정기관을 상대로 국정원 직원이 알게 모르게 계속 동향을 감시하는 것은 국회나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이것을 합법화하던지, 아니면 국정원 내 '국정 모니터링'을 없애고 다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긴 것이다.

대공 수사에 대한 것도 국가보안법을 없애기 전에 사실상 대공 수사 기능을 없애기 쉽지 않다. 국가보안법과 대공 수사 기능을 없애는 것은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국정원이 대공 수사 권한을 가질 수 있다.

대정부 전복에 대한 수사도 국정원이 할 수 있다. 외부의 사주를 받아서 우리 헌정 질서, 자유민주주의 질서, 시장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세력이 있다면 (국정원이) 감시, 수사할 수 있다.

헨리 키신저가 '우호적인 국가의 정보기관은 있을지언정 우호적인 정보기관은 없다'는 재밌는 말을 했다. 모든 나라는 자기의 국가 이익이 있고, 정보기관은 국가 이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감청할 수 있고 도청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스노든 현상'은 그런 점이 드러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이 대북 정보 수집을 망쳤다고?

이철희 : 국정원 개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참여 정부 초기, 국정원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는데,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를 분리하자는 노 전 대통령을 어떻게 설득했나.

문정인 : 첫 번째는 국내와 해외 파트 사이를 칼로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둘째, 양자 사이 연계가 상당히 긴밀해졌기 때문에 그 둘을 한꺼번에 넣는 것이 조직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세 번째는 국내와 해외로 나누면, 지금 국정원만큼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정보기관으로 비밀을 다루다 보면 정당화 과정을 거쳐 조직이 커지게 되면, 두 개의 공룡 조직이 생긴다. 그래서 '그보다는 하나만 잘 관리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을 지적했다. '북한'이라는 문제가 국내와 해외의 구분을 더 어렵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철희 : 최근 한 칼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옳았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여전히 그 폐해는 예상되지만 또 다른 큰 잘못을 막기 위해서는 분리형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인가.

문정인 :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라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 그런 것들 때문에 국정원의 정통성과 국민적 지지를 약화시키고 그러면서 국정원의 존재 이유를 없게 만드니까 그럴 바에는 분리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북 정보와 해외 정보, 외사 방첩, 과학 기술 정보 수집을 잘하게 하는 게 오히려 국정원도 살리고 우리 국민도 더 많은 덕을 보는 것 아닌가 하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

이철희 : 그때 국정원에서 국내 정보 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됐나.

문정인 : 50대 50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국정원은 국내 부서가 강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안기부 1차장이 국내 보안 담당이었다. 그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꾸면서 해외·대북 담당을 1차장으로 하고, 국내 보안을 2차장으로 했다. DJ는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1차장은 대외 정보, 2차장은 국내 보안, 3차장은 대북을 담당하도록 했다. 상당히 좋은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오면서 '대북 관련으로 재미 많이 봤다, 해외도 재미 많이 봤다, 국내가 그동안 너무 어렵게 지냈다'라며 국내 부서를 엄청 키웠다. 심지어 대외 업무까지도 과거 국내부서에 있던 사람들이 맡았다고 한다. MB 정부에서 국내 부서가 커지고, 대북과 해외 부서가 약화됐다는 평가다.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보수가 진보 10년 동안 대북 정보 수집 기능을 완전히 망쳤다고 하는데 그것은 동의할 수 없다. 완전히 허위이고 왜곡이다.

이철희 : 남재준 국정원장도 'MB 정부 5년 동안 대북 정보가 다 죽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 원장은 대북 정보를 키워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국내 정보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나.

문정인 : 남재준 원장이 분명히 해외 정보·대북 정보 강화하겠다고 얘기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 정보·대북 정보·과학 기술 정보·사이버 정보 강화시키면, 국내 부서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남재준, '명예 회복' 위해 대화록 공개?

이철희 :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국정원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고 했다. 검찰 수사에 의해서 정치와 선거에 개입한 것이 드러나 명예가 실추됐다는 것인데, 난데없이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명예 회복'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된다.

문정인 :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국정원은 성공한 비밀공작이라고 해도 절대 노출되면 안 된다. 수집 공작을 하든, 와해 공작을 하든 그 성공사례를 드러내면 국정원은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 상대방이 그것을 파악하게 되면 더 이상 그런 공작을 하지 못 한다. 그래서 성공하더라도 공개를 못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의 운명은 영원히 음지 속에 있으면서 명예를 찾지 않는 것이다. 국정원이 명예를 찾으려 할 때 국정원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잘못된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본다. 국정원이 다른 기관, 소위 군 조직처럼 명예가 있고 밖에 나와서 떳떳하게 할 얘긴 하고 살아야 한다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입이 열 개여도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게 국정원이다.
 

ⓒ프레시안(이명선)


국정원, '2008년 1월' 대화록… MB 인수위 위해 작성?

이철희 : 국정원 대화록 문건을 보면 2008년 1월에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상회담은 2007년 10월에 있었다. 참여정부에서 당시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지금 국정원 설명이 많이 다르다.

참여정부에 있었던 사람들은 원본은 국가기록원에 보내고 사본 하나를 국정원에 보냈다고 하는데, 국정원은 사본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정보를 취합해서 만든 문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 1월이면 김만복 전 국장원장이 재임했던 시절이다. 이게 잘 설명이 안 된다.

문정인 : 2008년 1월에 생산된 것은 비밀 등급 분류도 안 된 문서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수수께끼이다. 정상회담이 끝나면 바로 작성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 기록물인데, 2008년 1월은 대통령 인수위 쪽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정상회담과 관련된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료를 잘 추슬러서 다음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잘 사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는 하지만, 대화록을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는 대통령기록관에 하나는 국정원에 보관하라는 지시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자료를 취합해서 그렇게 하나 (만들라고 한 것인데), 2008년 1월 생산한 것을 보면 대화록 녹취 그 자체이다. 그것은 이해가 좀 안 된다. 국정원이 만약 (자기네 보고서 형식으로) 한다면 2007년 10월 정상회담에 대한 것을 탐문도 하고, 정보도 수집해서 자기네들이 소화를 시켜서 정보 보고 형태로 갖고 있다면 문제가 안 된다. 그것은 정보 보고가 되니까. 그런데 녹취록을 그냥 갖다 놓고 국정원이 생산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대화록을 바탕으로 분석해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지금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라고 만들었다면 국정원의 정보 분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녹취록 그 자체를 국정원 것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철희 : 그런데 국정원장 모르게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문정인 :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당시 대화록을 1급 비밀로 분류해 영구 보존토록 했다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2008년 1월 판이 생산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비밀 분류를 해놨는지, 그리고 언제 어떻게 2급 비밀로 재분류했다가 남재준 현 국정원장이 그것을 공공기록물로 비밀 해제했는지 국정조사에서 다뤄야 한다.

국정원 개혁 ② 박근혜, 국정원 개혁위 만들어야…

이철희 : 지금 문제는 국정원 개혁 방안이다. 지금 이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나. 개혁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묵묵부답인 것 같다. 이것 때문에 실랑이를 하다 보면 결국 중요한 국정원 개혁이 후퇴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또 '국정원 스스로 개혁안을 만들어 봐라'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도 의문이다.

문정인 : 대통령이 '국정원이 알아서 개혁하라'라고 말했지만, 그런 국정원 개혁안은 국회도, 국민도, 여론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비판적이 돼 시간 끌기가 되면서 국정원 입지만 더 좁아진다. 대통령이 중심이 된 국정원 개혁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6개월이나 1년이 걸리더라도 국정원 개혁에 대해서 안을 내 봐라'라며 국회 의견까지 수렴하는 대승적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 미국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리차드 닉슨의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과 1973년 CIA가 피노체트 군사정권을 탄생시킨 칠레의 쿠데타 음모와 여론조작과 암살 등에 깊숙이 개입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CIA에 엄청난 문제가 지적됐다. 그래서 1975년 미 의회에서는 CIA의 불법 활동 여부에 대한 상원특별조사위원회, 프랭크 처치를 위원장으로 하는 '처치 커미티(committee)'를 만들고 이 위원회는 4권에 달하는 보고서를 생산했다.

청문회를 2년 가까이했다. 미 정보기관을 완전히 투명하게 만들고,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미 중앙정보부가 전반적인 제도 개편을 했다. 그때부터 CIA는 비밀공작 중 암살이나 인명을 살상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CIA가 비밀조직이고 불법적 활동을 하는 조직이지만 그것에 대해 의회의 통제를 제도화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처치 위원회'였다.

차제에 박근혜 대통령이 진짜 공헌을 하고 싶다면, 대통령 직속의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초당적으로 대승적으로 안을 만들고 그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여기에서는 정파적 이익 따지지 말고 '진짜 국정원의 현실 문제가 무엇인가'라고 해서 현실 진단하고, 이것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것을 선택하고 안 하고는 대통령 몫이지만, 그렇게 했을 때 여와 야에 대한 설득도 강해질 수 있다.

이철희 : 초당적으로 양쪽이 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나 그런 관점에서 개혁안이 만들어지면 거부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안 할 것 같다.

문정인 : 지금 (내가)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면 대통령에게 권하겠다.

국회가 개혁의 주체가 되긴 힘들다. 너무나 싸움을 많이 하고 너무 정파적인 계산을 많이 한다. 여야 다 문제가 있다. 단임제 대통령인데, 그것 하나라도 잘해서 국가정보원의 미래에 대한 기틀을 잘 잡아 놓으면 국민들도 거기에 설득이 되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엄청난 성공 사례가 될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 국정원 개혁을 통해 '이명박근혜는 다르다'는 점을 피력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


국정원 궁극적 소비자는 '대통령'

이철희 : 그 외 국정원 개혁의 방안을 잡는다면?

문정인 : PNIO, 국가정보수집의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서 국가 정보 수집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지 못하는가를 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것을 정해야 어떤 부서들은 계속 유지·강화시키고 어떤 부서는 아예 폐지한다는 게 나온다.

이철희 : 그것은 법령으로 하는 거죠?

문정인 : 그렇다. 국정원 법에 대한 개정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은 '국정원장을 임기제로 한다' 등을 정하면 된다.

이철희 : 임기제로 한다는 것이 중요한가.

문정인 : 임기가 보장되면 대통령에 대한 해바라기 원장이 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철희 : '국정원장 추천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안 되나?

문정인 :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대통령이 정해야 한다.

이철희 : 검찰총장은 그렇게 하지 않나.

문정인 : 검찰총장과 (국정원은) 다르다. 국정원은 비밀정보기관이다. 결국 정보기관의 장은 간단하다. 대외·대북 정보 잘 수집해서 대통령이 정책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통령의 심증 잘 헤아리면서 결국 정치 개입의 선을 넘지 않고 아주 유연성 있으면서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게 필요하다. 국정원이 권력기관이라는 인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철희 : 더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국정원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지 않나?

문정인 : 국정원은 '중립적인 컴퓨터' 같은 것이어서 쓰기 나름이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고, 보물을 넣으면 보물이 나온다. 대통령이 정보 소요 제기를 잘하고 국정원이 가져온 정보보고에 대해서 문제점 지적을 잘하면, 국정원 스스로 잘 작동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궁극적 소비자가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정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감시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철희 : 만약에 악용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제도를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을 나쁘게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의지는 있어 보이나?

문정인 : 청와대 관계자가 지난달 23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독대 보고 같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정원장과 독대하지 않는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둘이 된 셈이다. 국정원장의 힘은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나온다.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독대하지 않았다고 하면, 남재준 국정원장은 독자적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결정은 독대해서 대통령의 허가를 직접 받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국정원장이 안보실장의 허가를 받아 할 일도 아니고, 그렇다면 대통령의 사전 승인 없이 독단적 행동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이철희 : 정보원장 정도면, 대통령과 핫라인 있지 않나? 수시로 전화할 수 있는….

문정인 : 원래는 그렇다. 대외정보를 담당하는 CIA 수장도 매일 아침 정보보고를 한다. 그런데 결국은 CIA 수장과 대통령이 얼마나 가까운가에 달려 있다. 가깝긴 가까운데 그 가까움이 전문성에 기초를 둔 가까움이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가까워서 대통령의 정치적 이득을 보좌하고 지키는 가까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철희 : 독대를 안 하니까 남재준 원장이 독자적 판단으로 공개했을 수 있다는 말에, 핫라인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문정인 : 물론 대통령 산하에 있는 모든 조직은 다 그럴 수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전화로 중요한 정책 결정을 그렇게 쉽게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전화로 해서 할 가능성이 있을까.

국정원 사태, 야당은 어떻게…

이철희 : 야당이 이 문제를 어떻게 잘 풀어야 국정원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문정인 : 상식과 순리대로 하면 된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현해서는 검찰의 조사 과정 지켜보고,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 문제는 국정조사에서 철저히 다뤄야 한다. 단, 너무 쟁점화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국정원 개혁안을 아주 신중히 만들어야 한다. 그 대안이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야당이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나.

이철희 :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개선하고 낮게 만드는 것은 목소리만 커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전문가의 힘이라는 게 느껴졌다. 전문가의 권위가 많이 느껴져서 국정원 개혁을 계도해주셨으면 한다.

문정인 : 세상사는 상식과 순리대로 가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대단하다. 국민들이 상식과 순리의 원천이다. 그것을 따라가면 된다.
 

▲ 문정인 교수와 이철희 소장. ⓒ프레시안(이명선)


*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장성 출신 남재준, 군과 국정원 차이 몰라"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가기 클릭! http://pressian.iblug.com/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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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가는 정권의 횡포

 
NLL에 4대강까지 ‘국정원 물타기’ 쌍포 가동?
 
4대강도 NLL과 함께 ‘물타기‘ 주연으로 캐스팅
 
육근성 | 2013-07-12 08:48: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를 물타기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공개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정원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스스로 자가당착적인 행동을 보인다.

국정원은 NLL 논란 재점화, 청와대는 갑자기 4대강 거론

6월 말 대화록 공개가 크게 논란이 되자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명예와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해명이 있은 뒤 보름 후인 지난 10일 국정원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대화록 공개는 국가 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국가 안보 수호의 의지였다”고 말을 바꿨다.

대화록 공개 이유가 ‘국정원 명예와 직원 사기 진작’에서 ‘국가안보 수호의 의지’로 진화한 바로 그날, 청와대는 4대강 사업에 대해 그간의 새누리당의 주장과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평가를 내놓았다. 의외의 행동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감사원의 4대강 감사결과를 근거 삼았다며 “(감사원 감사결과가)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국가에 엄청난 손해을 입힌 큰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전모를 확실히 밝히고 진상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며 “국민에게 잘못된 부분은 잘못된 대로 사실대로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4대강은 사기극? 새누리당은 사기 공범

4대강 관련 부분을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못지않은 대형 이슈로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통속이 돼 4대강 사업 전반을 비판하던 국민을 핍박해온 이들이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MB의 편에서서 4대강에 찬동하다가 갑자기 국민의 편으로 돌변한 이유가 궁금하다.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하던 때는 언제고, 왜 하필 이때 ‘4대강은 사기극’이라고 바꿔 말하는 걸까.

4대강 예산과 관련해 날치기에 두 번이나 앞장섰던 저들이다. 2011년에는 4대강 주변의 난개발을 허용하는 ‘친수구역특별법’을 저들 단독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 2009년도 예산안(대운하, 형님예산 등), 예산부수법안 날치기 찬성의원

한나라당 164명, 자유선진당 12명, 친박연대 5명, 무소속 3명. 총 184명

 

○ 2010년도 예산안(4대강 예산 포함) 찬성의원

한나라당 165명, 친박연대 7명, 무소속 2명. 총 174명

 

○ 2011년도 예산안 및 4대강 관련법안 날치기 찬성의원

한나라당 161명, 미래희망연대 4명. 총 165명

 

 

청와대 4대강 거론, 국정원 NLL과 국회 국정조사와 맞물린 노림수?

물 불 안 가리고 4대강 날치기에 앞장섰던 저들이 ‘4대강 사업’을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한 이유에 대해 다수의 언론들은 ‘MB정부와의 선긋기가 시작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유가 그 뿐 만일까. 아니라는 정황이 여럿이다. 순수한 동기에서 4대강 사업을 문제 삼은 게 아니라, 난감한 국면을 타개하려는 정치적 노림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청와대의 ‘4대강 발언’은 국정원의 NLL 성명과 국회의 국정조사와 맞물린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청와대가 ‘4대강은 사기극’이라고 말하던 바로 그 때 국정원은 성명을 내고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대화록 내용이 영해를 포기하는 사태를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발 더 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는 판단’이 국정원의 입장이라고 못박아 말했다.

우연치고는 너무 정교한 타이밍

국정원이 자신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며 ‘노무현 NLL 포기’를 다시 이슈화시키던 그 순간, 국회에서는 국정원 국정감사 실기계획서 채택을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10일은 국정조사 일정상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국정조사 일정과 증인채택 등 가장 중요한 부분이 최종 조율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NLL 포기 논란을 재차 이슈화 했고, 4대강 날치기 예산에 찬성표를 던졌던 청와대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 사기극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국정원 국정조사의 시동이 걸리는 바로 그 날 있었던 일들이다.

<4대강 예산안 날치기에 항의하는 민주당 의원들/2009.12.31>

우연치고는 너무 정교하다. 하나를 위해 짜맞춘 듯하다. 어차피 대화록 공개 목적이 국정조사 물타기였던 만큼 국정조사 본격 실시 시점에 맞춰 다시 한 번 논란의 전면에 등장시키면서, 동시에 NLL 못지않은 파괴력을 가진 4대강을 이슈로 띄워 쌍포를 가동한다면 국정조사 물타기가 훨씬 수월해질 거라는 계산에서 입을 맞춘 행동이 아닐까 싶다.

NLL 이상으로 흡인력과 폭발력 지닌 ‘4대강 의혹’

4대강은 NLL 이상으로 여론의 흡인력과 폭발력을 지닌 이슈다. 4대강을 ‘사기극’으로 규정할 경우 청와대가 얻을 수확물은 클 수 있다. 4대강을 반대해온 국민 70%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 국면전환에 유리할 뿐더러, 입찰 담합 등 각종 비리가 수두룩해 국민에게 볼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또 4대강 진상규명과 비리 수사 등을 통해 MB 정권의 핵심을 강타하게 되면, MB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이들과 박근혜 정권이 한배를 타고 있다는 분위기 형성도 가능하게 된다. MB정권에 비판적인 이들의 태반은 박근혜 정권에게도 비판적이다. MB정권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어 박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을 중화시키겠다는 노림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MB정권을 비난함으로써 국정원 국정조사 과정에서 불거질 ‘박 정권 책임론’의 화살을 MB정권 쪽으로 돌리려는 게 목적일 것이다.

대화록 공개로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이 어느 정도 주춤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물타기’에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노무현 발언이 NLL 포기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한 경우가 60%에 달한다.

NLL-4대강 ‘쌍포’ 가동, 술책에 휘말리면 안 된다

NLL 공개로 큰 재미를 못 본데다가 그마저 약발이 처음과 같지 않으니 특단의 뭔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끄집어낸 카드가 ‘4대강 사기극’ 아닐까.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의 본격적인 실시를 앞두고 여권이 ‘쌍포’를 가동한 셈이다.

NLL과 4대강이라는 ‘쌍포’가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국민의 판단과 시선에 혼잡함과 혼란을 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여론을 약화시키려는 저들의 술책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국민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때다. 저들의 술책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냉정하고 이성적인 시각으로 사태를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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