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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정부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추태” 비난

 

 

 

북, 개성공단 최종적, 결정적 조취 취할 것
 
“남한 정부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추태” 비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4/29 [09:48]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이 악화되고 있는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해 “괴뢰패당이 개성공업지구와 관련하여 우리와 한사코 대결하려 하면서 계속 사태악화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이미 경고한대로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로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은 29일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추태’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반공화국대결에 환장한 남조선괴뢰들의 무분별한 전쟁광기로 하여 북남관계의 파국 속에서 간신히 유지되어오던 개성공업지구가 완전폐쇄직전의 중대위기에 놓이게 되었다.”며 이같이 전했다.

로동신문은 이어 “그런데 응당 저들의 죄행에 대해 반성해야 할 괴뢰들이 도리어 우리의 정당한 조치를 걸고드는 당치 않은 망발들을 줴치고 있다.”며 “몇일전 괴뢰통일부 대변인이라는 자는 개성공업지구와 관련한 합의를 ‘북이 존중하고 이행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나발을 불어댔다. 지어 청와대안방주인까지 나서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남북 간에 합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가소로운 궤변을 내 뱉았다.”고 비난했다.

이신문 논평은 지난 26일 외교안보 장관 회의와 정부성명을 거론하고 “괴뢰들은 지금 ‘어려움’이니, ‘국민보호’니 하며 저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우리를 악랄하게 걸고들고 있다.”며 “이것은 개성공업지구사태의 본질을 완전히 뒤집는 뻔뻔스러운 망동으로서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 괴뢰들의 책동은 개성공업지구사태의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고 남조선 각계에서 날로 높아가는 항의규탄을 모면해보려는 비열하고 교활한 술책”이라고 지적했다.

신문 논평은 “명백히 하건대 개성공업지구는 6.15의 산아로서 그와 관련된 북남합의의 존재가치는 철두철미 민족공동의 리익과 평화번영에 이바지하는데 있다. 그것은 결코 대결광신자들의 책동을 정당화하는 방패막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논평은 “우리는 지금껏 북남합의에 기초하여 개성공업지구의 발전을 위해 성의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며 “우리가 군사적으로 예민한 지역을 뚝 떼여주고 남측기업들이 들어와 마음 놓고 활동하도록 온갖 조건을 보장해준 것은 개성공업지구가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의 기초로 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라고 개성공단의 의미를 되세겼다.

또한 “그러나 돌이켜보면 괴뢰들은 지금껏 우리와의 합의를 무시하고 개성공업지구활성화를 갖은 구실을 대며 방해해 왔다.”면서 “괴뢰패당은 마치 우리가 개성공업지구 때문에 큰 덕을 보는 듯이 여론을 오도하면서 이 지구사업을 우리에 대한 압력의 수단으로 써먹을 흉계도 여러 차례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상 개성공업지구가 근 10년이 되도록 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한 것은 그 무슨 퍼주기니 뭐니 하고 떠들며 불순한 속심을 품고 이 지구의 사업에 음으로 양으로 장애를 조성한 괴뢰패당의 반통일 책동 때문”이라며 개성공단 발전 계획이 이명박 정부에서 죄절 되었음을 시사했다.

아울러 정부와 보수언론들의 악담에 가까운 발언들을 소개하고 “지금 북남관계는 전시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엄혹한 조건에서도 우리는 개성공업지구에 명줄을 걸고 있는 남측기업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남측인원들에 대한 강제추방과 개성공업지구의 완전폐쇄와 같은 중대조치는 취하지 않았다.”면서 “괴뢰패당이 극히 도발적인 핵전쟁연습을 벌리면서 극우보수언론들을 내몰아 우리를 악의에 차서 헐뜯는 속에서도 개성공업지구가 최악의 사태에 빠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최대한의 자제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노력과 자제력을 발휘했음을 분명히 했다.

로동신문 논평은 “그런데도 괴뢰들은 뻔뻔스럽게 제 편에서 남북합의존중을 떠들고 나중에는 중대조치니 뭐니 하며 최후 통첩식으로 우리에게 참을 수 없이 도전하다 못해 개성공업지구에 남아있던 남측인원전원을 철수시키는 결정이라는 것까지 발표했다.”며 “하지만 괴뢰들은 그런 파렴치한 망동으로써는 개성공업지구를 완전폐쇄위기에 빠뜨린 저들의 범죄적 책임을 절대로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괴뢰패당의 추태는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결과밖에 가져 올 것이 없다.”고 자업자득의 결과를 초래하지 말 것을 피력했다.

논평은 “괴뢰패당이 개성공업지구와 관련하여 우리와 한사코 대결하려 하면서 계속 사태악화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이미 경고한대로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문 논평은 끝으로 “개성공업지구가 끝끝내 완전 폐쇄될 경우 현 괴뢰정권은 이명박 역적패당보다 더한 대결 ‘정권’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라고 밝혀 개성공단 회생을 위한 남북 간 노력이 남아 있음도 시사해 박근혜 정부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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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해, 페북·트위터... 새로운 놈들이 오고 있다고!

필요한 콘텐츠만 골라 보는 즐거움, 소셜 큐레이션

13.04.29 09:15l최종 업데이트 13.04.29 09:15l

 

 

[상황] 소개팅에 나온 상대방이 '고양이'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포털에서 '고양이'를 검색한다. 그러나 블로그·카페·누리집으로 분류된 수많은 정보 앞에서 상대방을 매료시킬 단 하나의 콘텐츠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필요 없다. 'Cats'를 검색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유머 가득한 고양이부터 당장에라도 주머니 속에 넣고 싶은 귀여운 고양이 이미지가 가득하다. 영화 <슈렉>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고양이 사진을 들이밀자 상대방에게서 호감의 신호가 보인다.

핀터레스트에서 'cats'를 검색하면 다양한 고양이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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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정보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 중 내게 꼭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흐름 가운데 정보의 바다에서 필요한 정보만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Social Curation Service)'가 그 주인공.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란 개인에게 필요하고 검증된 콘텐츠를 골라 볼 수 있도록 하는 네트워크 서비스를 말한다.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는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서비스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기존 SNS와 차별화된다. 그러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사용자를 '팔로잉'하는 등 기존 SNS의 속성은 유지하고 있다. SNS의 1세대 아이러브스쿨·싸이월드가 사람의 관계 중심으로 이뤄지고 2세대 페이스북·트위터가 이용자끼리 관심과 네트워크를 공유했다면 3세대인 소셜 큐레이션은 '관심사'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만약 내가 자동차에 관심이 있다면 '자동차 튜닝' '나만의 드림 카' 등 자동차 관련 게시물을 올리는 이용자와 관련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시각의 즐거움에서 탄생한 '소셜 큐레이션'

한국의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 '빙글(Vingle)'의 메인 웹 페이지.
ⓒ 빙글(Vi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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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큐레이션 서비스의 원조는 미국의 '핀터레스트'다. 핀터레스트는 '핀(pin)과 '흥미(interest)의 합성어로 주부들이 냉장고에 메모지를 붙여 놓는 것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지난 2010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한 핀터레스트에서 사용자는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한 이미지를 냉장고에 메모지를 꽂아놓는 것처럼 '핀(pin)'해 관심사와 관련한 콘텐츠를 간단히 수집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컴스코어에 따르면 핀터레스트의 방문자수는 2011년 11월 1942만 명이었으나 지난달에는 1억441만 명(중복 방문 포함)을 기록했다. 이로써 핀터레스트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SNS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국내에도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가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CJ E&M의 '인터레스트 미(Interest.me)'를 들 수 있다. 지난해 7월 서비스를 시작한 '인터레스트 미'는 4개월 만에 월간 순방문자 수 894만 명, 페이지뷰 7911만 명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터레스트 미에서는 특정 사용자를 '팔로잉'하면 팔로잉 사용자의 콘텐츠만 모아서 볼 수 있다. 한국인 벤처기업가 호창성·문지원 부부가 2011년 11월 세계 시장을 겨냥해 시작한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 '빙글(Vingle)'도 웹으로 접속하는 월 순 방문자수가 100만 명을 돌파하며 성장하고 있다. 빙글을 만든 호창성·문지원 부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누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빙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빙글에서는 관심사와 관련한 콘텐츠를 담은 카드를 만들거나 수집해 자신만의 스크랩북인 콜렉션을 만들 수 있다.

나만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

인터레스트.미(Interest.me)의 메인 웹 페이지
ⓒ 인터레스트.미(Interest.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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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큐레이션 서비스의 장점은 '나만을 위한 맞춤형 정보 습득'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국내 연예·스포츠·여행 등의 카테고리로 분류돼 글·그림·동영상 등이 게시되고 이용자는 관심 있는 정보만 선택해 받아 볼 수 있다.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불필요한 정보까지 모두 들여다봐야 했던 기존 SNS의 불편함을 해소한 것이다.

핀터레스트의 경우 자체적으로 선물·조경·역사 등 세분화된 카테고리 분류해 제공하며 빙글은 책 인테리어·치앙마이 통신·500일의 섬머 등 사용자들이 만든 콜렉션을 통해 더욱 세분화된 분류에 접근할 수 있다.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 빙글을 이용하는 대학생 김은총(28)씨는 "내 입맛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원하지 않는 정보는 걸러서 볼 수 있어 좋다"며 "다른 누리집에 이용시간이 늘었다"고 말했다.

빙글에서는 '콜렉션'을 통해 자신만의 스크랩북을 만들 수 있다.
ⓒ 빙글(Vi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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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네트워크 서비스와 달리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푸드·여성 패션·뷰티 등 각종 관심사를 세분화해 분류해 놓은 덕분에 특정 관심사와 관련한 깊이 있는 콘텐츠를 확보하기 쉽다. 사용자 대부분이 일반 사람들보다 자신만의 관심사에 관한 더 많은 지식을 있을 갖고 있어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박혜진(25)씨는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만 찾아 볼 수 있고 생생한 이미지나 기발한 것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좁아지는 시야·간과되는 저작권 아쉬워

그러나 특정 분야에 치우치기 때문에 관심이 적은 다른 정보에 관해 둔감해진다는 것은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의 약점이다. 포털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는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취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트위터·페이스북 등 기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다양한 사람의 관심사와 다양한 의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사용자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분야에 관한 정보에 자연스럽게 노출됐다.

하지만 소셜 큐레이팅 서비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만 집중하다 보니 새로운 분야의 정보에 노출되는 기회가 줄어든다. 직장인 박영신(25)씨는 "트위터는 넓은 범위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소셜 큐레이팅 서비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니까 시야가 좁아지고 배타적이 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핀터레스트의 'Art' 카테고리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이 있지만 저작권 침해의 위험이 있다.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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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콘텐츠 창작자의 저작권이 보호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일러스트나 예술 작품 등 강렬한 시각 자극을 유발하는 사진 업로드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업로드하기도 하지만 다수 사용자에 의해 이미지가 공유되면서 저작권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대학생 이고은(27)씨는 "콘텐츠를 쉽게 퍼가고 쉽게 리메이크 할 수 있기 때문에 콘텐츠를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저작권 보호에 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최근 핀터레스트는 지난 3월 23일 저작권 약관을 변경했다. '저작권 침해 사실을 알려오면 해당 게시물을 차단하고 이미지의 사업적 이용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원작자의 저작권 보호에 최적화된 구조로 설계됐다. 외부에 있는 자료를 빙글에 업로드하고 싶을 때 'Vingle it'이라는 기능을 사용하면 콘텐츠의 출처가 자동으로 표기돼 빙글에 업로드된다. 빙글 내에서는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나의 콜렉션에 추가하는 'Clip' 기능이나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재구성할 수 있는 'Remake' 기능을 통해 저작권 침해를 최소화 한다.

관심사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빙글에서 사용자들이 '냉면'에 관해 진지한 토론을 버리는 모습.
ⓒ 빙글(Vi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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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큐레이션 서비스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서비스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콘텐츠 업로드는 활발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한 소통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콘텐츠에 관한 호감도를 나타내는 '좋아요(Like)'를 누르거나 수집하는 행위는 활발하게 이뤄지지만 '코멘트'를 통한 의견교환은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

현재 핀터레스트 내 인기 있는 콘텐츠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Popular' 카테고리 대부분에는 코멘트가 없다. 매일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대학생 이상민(26)씨는 "페이스북은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관심사 기반은 사용자 대부분이 업로드 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습만 보인다"며 "소셜 큐레이션을 통해 이용자 간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박혜진씨는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는 대중성보다는 마니아적 측면이 강하다"며 "다(多)대 다(多)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소(小)대 소(小)로, 작은 그룹끼리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 한정적이지만 같은 관심사 내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빙글의 문지원·호창성 대표는 "구독자 입장에서는 내가 정말 관심 있는 이야기들만 받아볼 수 있는 것과, 콘텐츠 작성자는 눈치 안 보고 해당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다"며 "자연적으로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빙글 맛집 분야의 '서울 왕 평양 냉면 1. 평양면옥 (논현점)'이라는 카드에서는 평양냉면 팬들간의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는 진화하고 있다. 신문을 골라 볼 수 있는 네이버의 '뉴스스탠드'를 비롯해 동영상 콘텐츠를 모아 보여주는 '젤리캠', 예술작품의 상세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아트리스케이프' 등 보다 세분된 영역으로 영향력을 넓히는 추세다.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는' 편리함과 재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새로운 주류가 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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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당당하게 물리친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의용수비대가 새긴 ‘한국령’…그들 숭고한 조국애를 잊지 말아야
 
耽讀 | 등록:2013-04-29 09:18:00 | 최종:2013-04-29 09:34: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일본 극우총리 아베 신조가 침략을 부정하고, 전범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것에 우리 모두가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한 독도의용수비대원과 경찰 독도경비대원으로 활약하며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키려 평생 애써온 김영복씨가 25일 저녁 8시 지병으로 별세에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향년 84입니다. 김영복 영면으로 훈장을 받았던 독도 의용수비대원 33명 가운데 생존자는 9명으로 줄었습니다.


독도,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시민이 지켰다…

경북 울릉군청에 따르면, 독도의용수비대는 한국전쟁으로 대한민국 정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할 때 일본은 다시 독도에 불법 상륙하기 시작했습니다. 1953년에서 56년에 걸쳐 독도에서 일본의 불법 점령을 막아낸 것은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 아니라 울릉도 출신 민간인들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었습니다. 의용수비대원들은 1953년 4월 독도에 입도한 후, 1956년 12월 25일 경북경찰청 울릉경찰서에 독도수비 임무와 장비 일체를 인계하고 각자 생업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금과 무기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면서, 약 3년 8개월간 수차에 걸쳐 계속된 일본의 영토침범을 격퇴하였다. 1956년 12월 해산당시 독도의용수비대의 조직과 명단 33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

수비대장 홍순칠, 부대장 황영문, 제1전대장 서기종, 대원 김재두 · 최부업 · 조상달 · 김용근 · 하자진 · 김현수 · 이형우 · 김장호 · 양봉준, 제2전대장 정원도, 대원 김영복 · 김수봉 · 이상국 · 이규현 · 김경호 · 허신도 · 김영호, 후방지원대장 김병렬, 대원 정재덕 · 한상룡 · 박영희, 교육대장 유원식, 대원 오일환·고성달, 보급주임 김인갑, 보좌 구용복, 보급선장 정이권, 기관장 안학율, 갑판장 이필영·정현권.-경북 울릉군청 독도의용수비대 명단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가 동도 선착장부근에 세운 독도지명 표석이 전시되 있다.<뉴시스>


▲독도의용수비대는 지난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3년 8개월간 일본의 독도 침입을 막아냈다. 사진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독도 표식 제막후 기념촬영하는 모습<연합뉴스>

이번에 숨진 김영복씨는 울릉도에서 태어난나 1954년 3월 27일 전역한 뒤 1954년 5~12월 독도의용수비대원으로 활동하며 독도를 지켰다. 특히 김씨가 독도의용수비대에서 활동하던 1954년 11월21일 오전 7시쯤 독도로 향해오던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헤쿠라호와 오키호에 박격포 9발과 중기관총 500여발, 경기관총 500여발을 발사해 물리쳤습니다. 일본 순시선에서는 16명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불과 10년 전 일본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일본 경찰을 물리는 친 사건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또 독도의용수비대는 1956년 12월30일 경찰에 독도수비 업무를 넘길 때까지 모두 다섯 차례나 독도를 침범한 일본 순시선 따위를 물리치는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조국 해방 10년만에 일본을 당당하게 물리친…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의용수비대원 고 김영복씨

물론 독도의용수비대원의 정확한 수를 두고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1996년 독도의용수비대원 33명에게 훈장을 줬는데, 감사원은 2007년 4월 훈장을 받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공적이 불분명하다며 국가보훈처에 공적을 재심사하라고 요구했지만 국가보훈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1년 동안 조사를 한 뒤 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 활약상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미군은 독도를 폭격 훈련지로 삼았다가 1952년 2월 27일 제외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1950년 8월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독도에 상륙해,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島根縣隱岐郡竹島]라고 쓴 표목을 세웠습니다. 불법 점거를 시작한 것입니다. 일본 불법 점거가 시도되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특무상사로 전역한 울릉도 출신 홍순칠(洪淳七)씨는 1952년 가을부터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기로 하고 각종 무기를 구입합니다. 대장은 홍순칠이 맡았고, 편제는 각각 15명으로 이루어진 전투대 2조, 울릉도 보급 연락요원 3명, 예비대 5명, 보급선 선원 5명 등으로 짰고, 장비는 경기관총 2정, M2 3정, M1소총 10정, 권총 2정, 수류탄 50발, 0.5t 보트 1척 따위이며 이후 박격포까지 구입했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가 새긴 ‘한국령’… 우리는 그들 숭고한 조국애를 잊지 말아야

독도의용대는 1954년 8월 5일에는 동도(東島) 바위 벽에 ‘韓國領(한국령)’이라는 석 자를 새겨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천명했습니다. 또 옛 삭도 주변 바위와 동도 정상의 3인치 대포 주변 바위에도 ‘韓國(한국)’이란 글자와 동도 옆면 바위에는 ‘獨島 鬱陵郡 南面(독도 울릉군 남면)’이란 한자 암각이 있습니다. 이들 글자는 표지석과 위령비가 아니라 독도 바위 표면에 직접 새겨져 있어 상징이 큽니다.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가 활동할 당시 새긴 한국령은 독도의 대표적인 상징물의 하나이다.

 

독도의용수비대는 말이 아니라 기끼어 자신을 드림으로써 독도를 지켜냈습니다. 말로만 애국을 말하는 이들과 달랐습니다. 우리가 김영복씨 죽음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남은 9분들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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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은 박원순 때문?


 

 

 


2013년 1월,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이 국내 탈북자의 정보를 북한에 넘긴 사건이 발생합니다. '공무원 간첩','위장간첩','탈북자 간첩'등의 단어와 함께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사건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종북론' '북한 미사일 발사'등과 함께 안보의식이 증폭된 사건이었습니다.

1월에 국정원이 발표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탈북자 수백 명의 정보가 넘어간 중대한 사건인데 갑자기 조작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 하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과거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딩보다 못한 수준의 국정원 간첩 수사'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수사 초기부터 의혹과 문제가 많았던 사건입니다. 가장 먼저 탈북자 정보를 빼내 북한에 넘겼다는 유모씨는 탈북자가 아닌 중국 화교입니다. 왜 중국 화교가 탈북자로 위장했는지에 대한 배경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간첩'이라는 단어만 전면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이 수사한 내용을 보면 허술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국정원은 유모씨의 간첩혐의로 수차례 북한을 방문했다는 증거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유모씨는 2006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한 번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유씨가 북한을 수차례 방문했다는 검찰의 기소내용을 보도한 뉴스. 출처:MBC

 

 

국정원과 검찰은 '유모씨가 2012년 1월 22일 중국 연길시에서 동생과 저녁 식사를 한 뒤 국경으로 이동 1월23일 북한에 밀입북한 뒤 회령시 보위부사무실을 방문해 탈북자 신원정보를 수집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기소했지만, 사실 이 증거 때문에 오히려 국정원에 대한 의혹이 생겼습니다.

검찰이 기소한 내용에 나온 유씨가 북한 보위부 지령을 받은 1월 23일에 유씨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 연길에서 가족,지인 부부와 함께 노래방을 갔다는 주장과 증거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민중의 소리'가 취재한 결과 중국에 거주하는 유씨 아버지 집에는 1월22일 중국 연길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습니다.
또한 1월 23일 밤 11시에 노래방에서 촬영된 사진도 있었는데, 이 사진들을 보면 유씨가 1월23일 회령시 보위부를 방문했다는 검찰 기소내용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합니다.

 


유씨에게 쏟아진 간첩 혐의 대부분은 유씨의 여동생이 진술한 내용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유씨의 간첩 혐의가 없다고 부인했지만 유독 그런 진술은 모두 삭제되고, 유씨 여동생의 진술만 검찰의 기소내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여동생이 오빠를 간첩혐의로 어떻게 고발할 수 있느냐인데, (만약 간첩으로 구속된다면 앞으로의 삶이 어떨지 충분히 예상되는 여동생 입장에서) 민변이 조사한 결과, 이는 국정원의 고문과 회유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국정원은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온 유씨의 여동생을 4개월 이상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구금 상태로 외부와의 접촉이나 접견,면회 없이 조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유씨의 여동생에게 혐의 내용을 인정하면 유씨와 유씨의 여동생을 집행유예로 풀어주고, 한국에서 함께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민변과 유씨의 여동생이 국정원의 고문과 회유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 출처:연합뉴스.


유씨의 여동생은 요새 조선족과 중국 화교들이 사용하는 편법인 탈북자 사칭으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조선족과 화교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가장 쉬운 방법이 탈북자로 위장하는 수법인데, 이처럼 탈북자를 사칭하다 적발되면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북한 출생 내지는 북한 국적일 경우는 예외)

유씨 여동생은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오빠가 간첩인 것처럼 유도하며 머리를 때리고 발로 차는 폭행을 당하다가, 이를 부인하지 않으면 오빠 형량을 낮춰주고, 나중에 오빠와 함께 한국에서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회유에 결국,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단순히 중국 화교가 대한민국 법을 어기고 탈북자로 위장하여 한국에 들어온 사건이냐 탈북자 수백 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긴 중대한 안보 사건이냐로 다시 진실을 밝히는 논의가 필요한 사건이 됐습니다.

' 정치권력자의 충견이었던 정보기관'

'아이엠피터'는 국정원의 간첩 사건을 다시 규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과거 대한민국에서 무수히 많은 간첩 사건이 조작됐거나 고문과 같은 불법적인 수단이 동원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간첩 사건들은 늘 몇 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북풍을 유도하기 위해 벌이는 정치 공작이거나 정보기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벌이는 정보기관의 공작입니다.

 

 

 


1992년 10월 6일부 안기부는 거물급 간첩 이선실이 황인오를 포섭 서울,인천 등 24개 주요 도시의 46개 기업과 단체 등 400명이 포함된 '남한 조선노동당'을 결성했다는 발표를 합니다. 안기부는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 95명을 적발했고, 이 가운데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씨 등 62명을 구속했으며 300여명을 간첩 혐의로 추적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모든 언론은 안기부의 발표대로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 사건은 1992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평민당 김대중 후보의 비서와 연관됐다는 사실까지 나돌면서, 당시 여당이었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는 일에 아주 큰 공로(?)를 세운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이 사건에서 남한 조선노동당이 존재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고문을 통한 허위 자백 등으로 검찰 내부에서조차 안기부의 수사를 비난할 정도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간첩 사건을 의도적으로 증폭 과대 포장해 정권 유지에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선거 때마다 터져 나오는 간첩 사건과 북풍은 언제나 실체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기관은 예전에 적발했던 간첩을 선거 때 다시 발표하거나, 단순한 살인 사건을 여간첩 납북사건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이처럼 정보기관에서는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간첩 사건을 제대로 법과 절차에 따라 수사하면서 안보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정보전에 대처하기보다는 정치권력의 충견 역활에 더 매달렸습니다.

'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살아남는 방법'

1982년 9월10일 안기부는 '안기부 창설이래 최대 업적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을 발표합니다. 월북 남파 간첩 송창섭에게 포섭돼 일가친척 28명이 25년간 고정간첩으로 활약했다는 이 사건은 모든 언론이 간첩 사건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파고들고 있는지 알려주며 안보를 다시 재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안기부와 같은 정보기관의 역할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으로 결론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면서 몰락한 정보기관이 벌인 정보기관 위상 높이기용 공작이었습니다. 12.12사건이후 중정은 보안사의 밥이었습니다. 줄줄이 간부들이 소환됐고 심지어 보안사에 가서 고문까지 당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1981년 중앙정보부가 폐지되고 국가안전기획부가 신설되자 안기부는 추락한 정보기관의 위상을 높이려고 '송씨 일가 간첩단'사건을 조작했습니다.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이 사건을 '정보기관의 반인권적 간첩 조작 사건'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간첩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사위에 일했던 한홍구 교수에 따르면 7.4남북공동성명 이후 생포 또는 자수한 1000명의 간첩 중 북한이 직접 남파한 간첩의 수는 30~40명이라고 합니다.

아마 남파 간첩뿐만 아니라 그에 포섭된 간첩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 모든 정보를 국가 안보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이용하기 때문에 늘 문제입니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왜 1월에 발표했을까?'

지난 대선 기간에 국정원은 정치 개입 의혹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국정원 직원의 댓글이 사실로 드러나기도 하면서 국정원은 자신들이 그동안 주장했던 사실이 거짓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 국정원 직원으로 댓글을 조작했던 김모씨의 검찰 출두 모습. 출처:미디어오늘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은 대북 정보 수집 및 북한과의 정보전에서 싸우는 업무입니다. 그러나 국정원이 이런 업무보다는 대선 개입과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국정원의 위상은 물론이고, 그들의 존재 여부까지 흔들려졌습니다.

특히, 2012년 12월 12일 오전 북한 로켓 발사가 이루어졌지만, 국정원은 이와 반대되는 정보를 내놓기까지 했습니다. 발사 하루 전 12월 11일 국정원은 북한 로켓 추진체에 문제가 생겨 해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고, 이에 따라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북한 미사일 발사가 당장은 하기 어렵다는 보도까지 했습니다.

국정원이 스스로 해야 할 본연의 일은 못하고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고, 이에 따라 원세훈 원장의 책임론과 대대적인 국정원 개편이 예고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선택한 일은 지난 1982년 써먹었던 간첩단 조작과 같은 유사한 사건이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국정원은 탈북 위장 간첩이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국정원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확대 개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또한, 국정원 대선 개입에 따른 비판을 이런 간첩 사건으로 희석하는 물타기를 시도했습니다.

국정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통해 원세훈 원장에 대한 비판과 과거 MB정권 심판론, 더 나아가서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연관성에 대한 비판을 안보론으로 막아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색깔론을 위해 진짜 안보를 저버리는 대한민국'

이번 국정원 사건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가짜 안보를 위해 진짜 안보를 오히려 도외시하는 부분입니다.

탈북자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에 위장 간첩도 늘어났지만, 그 안에는 사상에 의한 간첩보다 더 무서운 돈에 팔린 간첩들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간첩 포섭을 사상에 초점을 두었지만, 지금은 '돈'에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조선족과 화교들이 탈북자로 위장하는 이유는 남한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돈을 벌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탈북자들이 돈에 따라 얼마든지 한국을 배신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인에게 북한은 화성만큼이나 먼 나라입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의외로 쉽습니다. 중국을 방문해 과거 북한의 연락책과 만나 한국의 정보를 얼마든지 돈과 바꿀 수가 있습니다.

 

 

▲탈북자가 한국에 입국하는 방식. 출처:동아일보.

 


대한민국에는 연간 수백 명씩의 탈북자가 입국합니다. 이들 중에는 정말 사상 때문에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온 선량한 탈북자도 있겠지만, 위장 간첩 내지는 언제든 남한을 떠나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잠재적인 인물도 많습니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안보에 대한 대책을 과연 국정원이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탈북자는 탈북자 정보가 언론과 일부 탈북자 단체에 돌아다녀 북에 남아 있는 가족에 위협이 된다고 수차례 진정을 하고 법적 소송을 벌이지만, 국정원은 무관하다는 주장만 펼칩니다.

군대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군사기밀은 북한도 다 안다' 이것은 그만큼 대한민국의 안보 정보가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수백 명의 탈북자 정보가 버젓이 인터넷과 관계 기관에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탈북자 신상정보가 인터넷과 탈북자 단체에 노출돼 진짜 가족을 걱정해야 하는 탈북자의 인권을 외면하고 오히려 조작된 간첩 사건에만 열을 올리는 국정원의 가장 큰 목표는'색깔론' 때문입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당시 보수 단체가 서울시 앞에서 벌인 시위. 출처:인터넷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발표되자 보수 우익단체들은 서울 시청 앞에서 갑자기 '박원순 서울시장 사퇴'를 외쳤습니다. 이들은 박원순 시장이 종북인물이고 그가 일부러 간첩을 서울시에 채용해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대선 전후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빨갱이라는 말보다 '종북세력'이라는 단어가 보수 우익에서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구태의연한 구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종북'이라는 말로 바꿔 진보 세력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정원은 박원순 시장이 폭로한 '국정원 민간사찰'에 대해 박 시장을 명예훼손을 고소했다가 패소했습니다. 보수우익 단체는 국정원이 국가보안법으로 박원순 시장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간첩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과 보수 우익 단체가 엉뚱하게 일 잘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과 같은 인물을 향해 '종북세력'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아직도 색깔론으로 진짜 안보는 무시하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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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총결산의 날을 기다려온 60년

 

그들이 총결산의 날을 기다려온 60년
<연재> 한호석의 진보담론 (258, 마지막회)
 
 
2013년 04월 29일 (월) 08:05:12 한호석 tongil@tongilnews.com
 

 

2008년 3월 10일 시작된 '한호석의 진보담론'이 258회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됩니다. 5년이 넘는 기간 빠짐없이 매주 월요일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한호석 재미 통일학연구소 소장의 연재는 새로운 시각과 정보로 가득했으며, 숱한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통일뉴스>는 봄철 사이트 개편을 맞아 외양은 물론 내용까지도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중입니다. 원고료도 없는 연재의 마감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지켜주신 필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월요일자 새 연재도 많이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51년 만에 드러난 비밀문서에 담긴 사연

2013년 3월 5일 북이 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였지만, 그 협정 제4조 제60항에는 정전협정을 체결한 뒤 3개월 안에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고위급 정치회담을 개최할 것을 교전국 쌍방에 건의한다고 명시되었다. 1953년 8월 28일 유엔총회 제7차 회의에서는 정전협정 제4조 제60항에 의거하여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고위급 정치회담이 개최되는 것을 지지하는 결의안 제711호가 채택되었다.

그 때로부터 60년이 지났다. 정전체제가 30년, 40년도 아니고 무려 60년 동안 지속된 것이다. 정전상태는 교전쌍방이 교전을 완전히 중지한 상태가 아니라, 언제든지 임의의 시각에 교전을 재개할 수 있는 첨예한 대치상태인 것이다. 그런 무력대치상태가 여러 차례 전쟁재발위기를 넘기며 60년 동안 지속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재발할 정전체제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세워놓기 전에는 이 땅에 사는 그 누구도 발을 뻗고 편한 잠을 잘 수 없다. 정전상태에서 성취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완성이며, 정전상태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현실을 도피한 행복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전종식은 한반도에 사는 모든 민족구성원들이 가장 시급하게, 희생을 무릅쓰고, 반드시 실현해야 할 당면과업이다.

그런데 왜 60년이 되도록 정전상태를 종식하지 못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공포, 불행과 고통이 더 심해지는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을 찾으려면, 아래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전 직후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어야 하지만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평화가 실현되기는커녕 전쟁재발위험이 격화된 까닭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부터 그 협정을 위반한 미국이 ‘한미동맹’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한반도에서 무력증강과 전쟁연습을 강행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입증하는 여러 자료들 가운데 하나는 아래와 같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5년 4월 28일에 기밀해제하여 51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비밀문서가 있다. 제목은 ‘NSC 170/1에 관한 진전보고, 코리아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와 행동방향(PROGRESS REPORT ON NSC 170/1, “U.S. OBJECTIVES AND COURSES OF ACTION IN KOREA”)’이다. 이 비밀문서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약 8개월이 되는 1954년 3월 26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직속 실무부서인 ‘작전조절부(Operations Coordinating Board)’가 작성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것이다. 표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제170호 결정을 실행한 현황을 보고한 것이다. 그 비밀문서에서 ‘미한관계의 주된 현안문제들(MAJOR PROBLEMS PENDING IN US-ROK RELATIONS)’이라는 소제목 아래 기록된 내용을 읽어보면, 당시 미국 합참본부는 한국군 지상군 사단을 35∼40개 사단으로 대폭 증강하고 거기에 맞춰 해군과 공군도 동시에 증강하게 해달라는 이승만 정부의 요청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비밀문서에는 별첨문서도 있는데, 별첨문서 표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추가 서신교환(Further Exchange of Letters Between President Eisenhower and President Rhee)’이며, 작성날짜는 1954년 3월 23일이다. 별첨문서에 따르면, 당시 이승만은 제네바 국제회의에 남측이 참가하는 조건으로 아이젠하워에게 간청하여 한국군 증강에 필요한 미국의 군사지원을 따냈다.

위의 비밀문서들은, 정전협정 제4조 제60항에 의거하여 한반도 평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4년 4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어렵사리 개최된 제네바 국제회의를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에, 미국이 한국군 무력증강의 길을 열어주었음을 말해준다. 그처럼 한국군 무력증강을 다그친 것은, 외국산 무기와 군사장비의 한반도 반입을 금지한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이며, 동시에 제네바 국제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그 회의를 사실상 파탄시킨 것이다.

미국이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한반도 평화회담의 길을 가로막은 때로부터 오늘까지 59년 동안 한반도에서 저지른 것은 지속적인 무력증강과 대북전쟁연습이다. 이 글을 집필하고 있는 시각에도 미국은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독수리 연습’이라는 이름의 대북전쟁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북미협상 20년, 미국의 흉계와 야망

정전상태를 종식시킬 방도가 없는 게 아니며, 교전쌍방이 그 방도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정전상태를 종식시킬 방도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그 방도를 철저히 외면하였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 그 까닭은, 정전상태를 유지하다가 자기들이 바라던 ‘결정적인 기회’가 오면 전쟁을 다시 일으켜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흉계와 야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기의 그런 흉계와 야망을 드러내지 않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국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아래의 인용문은 미국이 품고 있는 흉계와 야망이 어떤 것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앞으로 15년 뒤 북이 현재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이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정권은 생존하지 못할 것이며, 낙오하거나 또는 붕괴, 내파될 것이다. 그래서 여러 분석가들이 체제붕괴의 가능성을 지닌 정치적 자멸과정이 앞으로 3년 안에 북에서 시작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1996년 2월 22일 당시 미국 국방정보국(DIA) 국장이었던 패트릭 휴즈(Patrick M. Hughes)가 연방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꺼내놓은 발언이다. 그의 전망은 북에서 1999년 이전에 정치적 자멸과정이 시작되고, 2011년쯤에는 붕괴, 내파되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17년 전에 미국 국방정보국장이 언급한 이른바 ‘북의 붕괴내파설’ 뒤에 미국의 흉계와 야망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북의 붕괴내파설’ 뒤에 감춰진 흉계와 야망은 미국이 당시 ‘고난의 행군’으로 어려움을 겪던 북을 붕괴와 내파로 유도하여 급변사태에 빠뜨리고, 그런 사태가 일어나면 무력침공으로 북을 패망시켜 결국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것이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이 무력을 동원하여 북을 침공하려는 흉계와 야망이야말로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정면으로 짓밟는 범행의도인데, 미국의 그러한 범죄적 흉계와 야망을 점잖은 외교용어로 바꿔놓은 것이 바로 대북적대정책이다.

2011년쯤 북을 붕괴와 내파로 유도하여 멸망시킬 것이라고 일찌감치 예견했던 미국은,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경우 붕괴내파과정에서 자기들이 통제하지 못할 핵위기가 조성될 것이므로, 미리 북의 핵개발부터 막아보려고 하였다. 그래서 2003년부터 미국은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끌어오던 신포 경수로 공사마저 영구히 중단시켜 북미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리고, 비핵화 문제를 들고 나왔다.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은 그렇게 되어 2003년 8월 27일에 중국 베이징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은 1994년에 제네바에서 북미기본합의를 채택하였고, 2000년에 워싱턴에서 북미공동코뮈니케를 채택하였고, 2005년에 베이징에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지만, 그처럼 세계 각지를 돌며 채택한 일련의 대북합의들은 북을 붕괴와 내파로 유도하려는 흉계와 야망을 감추고 건성으로 협상하는 척하였던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흉계와 야망을 감추고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하는 미국을 향해 북은 북미협상이 결렬되는 고비마다 강공을 퍼부으면서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라고 강하게 압박하였지만, 북의 대미압박공세 효력은 오래 가지 않았다. 미국은 시기와 국면을 달리하여 양자회담, 4자회담, 6자회담 같은 여러 종류의 협상방안을 늘어놓으면서 북의 압박공세를 요리조리 피해 다녔고, 맨 나중에는 6자회담보다 더 복잡한 다자회담방안을 더 이상 조작해낼 수 없게 되자 ‘전략적 인내’라는 간판 뒤에서 북을 붕괴와 내파로 유도하려는 은밀한 책동에 집착하였다. 바로 이것이 1993년부터 2012년까지 20년 동안 ‘핵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끊어질 듯 이어져온 북미협상의 내막이다.

20년간 북미협상에서 얻어낸 결과는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것처럼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문서로 합의한 것이다.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란 북과 미국이 각각 상대방을 검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뜻인데, 자기가 검증할 수 없는 상대방의 핵문제에 대해서는 별도검증을 요구하지 않다는 뜻도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는 북이 녕변핵시설(남에서는 영변핵시설)을 폐쇄하고, 미국은 그에 상응한 동가적, 동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북의 녕변핵시설 폐쇄에 상응하여 미국이 취해야 할 동가적, 동시적 조치는 미국 본토에 있는 어느 핵시설 한 군데를 폐쇄하는 게 아니라,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것이다.

상응적 비핵화라고 하면서, 미국 본토에 있는 핵시설을 폐쇄하지 않고 왜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여야 하는 것일까? 그 까닭은,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가 핵시설을 상호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북미관계에 조성된 핵위협을 상호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의 녕변핵시설 가동은 미국에게 핵위협이고, 미국의 주한미국군 현상유지는 북에게 핵위협이다. 주한미국군은 ‘핵전쟁 돌격대’로 최전방에 배치된 무력이므로, 미국의 대북핵위협은 주한미국군이 존재하는 한 제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비핵화 실행여부는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미국이 북의 녕변핵시설 폐쇄를 검증하려면, 사찰단을 보내 현지조사를 실시하면 간단히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북이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군을 검증하기 위해 사찰단을 남측에 보내 현지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철군상황 현지조사를 실시하는 것 대신에 철군을 법적으로 보장하면 되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 철군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실제적인 조치가 바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다. 그래서 북은 녕변핵시설 폐쇄공정을 시작하는 것과 더불어 미국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평화회담을 시작하여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을 붕괴와 내파로 유도하려고 하는 미국의 막힌 귀에 평화협정이나 평화회담 같은 말은 들리지 않았다. 지난 20년 동안 북미협상이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미국이 북의 반대와 경고를 무릅쓰고 대북전쟁연습을 지속적으로 감행해온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북에게 반미결전은 역사의 필연이며 역사적 사명이다

북미협상 20년 경험이 말해주는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언젠가는 북침공격을 감행하여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흉계와 야망에 무던히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미국은 대북적대정책을 영영 포기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제의를 무조건 거부하고, 주한미국군을 영구히 주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그런 행태를 북에서 쓰이는 말로 표현하면, “미제의 침략적 본성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제의 본성 불변론’을 주장하는 북이 그런 미국을 상대로 20년 동안 협상을 벌인 까닭은 무엇일까? 북에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슨 시간이 필요했다는 말인가? 요점만 말하면, 미국을 무력으로 압도할 만큼 강력한 전쟁능력을 완비할 시간이 북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북이 미국을 무력으로 압도할 만큼 강력한 전쟁능력을 완비할 시간이 요구되었다고 말하면, 북의 대미전략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말을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친미언론에 떠도는 왜곡된 정보만 들어온 사람들은 북의 대미전략을 오해하지만, 북의 대미전략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반미결전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국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제국주의라는 말조차 쓰지 않는, 친미사상으로 뒤덮인 사회에서 반미결전전략에 대해 논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제국주의론을 길게 해설할 수 없지만, 고려와 몽골제국의 관계를 통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몽골초원에 흩어져 있던 부족국가들을 통합하여 1206년에 등장한 몽골은 중국을 점령하고 서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 전역을 침략하더니, 1231년에는 고려에 쳐들어갔다. 몽골의 침략을 받은 이후에도 고려는 여전히 존재하였으나, 고려의 자주권은 몽골제국에게 짓밟혔다.

먼 옛날 몽골은 유라시아 각국을 침략하고 지배하였지만, 오늘날 미국은 자기를 추종하지 않는 나라들을 침략하거나 압박하여 굴복시키고 전 세계를 지배한다. 고려는 92년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았는데, 오늘 이 땅은 68년 동안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

옛날 고려인들은 몽골의 침략에 맞서 격렬한 항쟁을 벌였는데,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은 반몽전쟁에서 패하였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였을 때 조선은 반일전쟁을 할 수 없을 만큼 허약했기 때문에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제국주의무력침략에 맞서 자주권을 지키는 길은 반제전쟁밖에 없다. 지난날 식민지조선에게 어떤 형태의 대일협상도 무의미했던 것처럼, 오늘날 북에게는 어떤 형태의 대미협상도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북은 미국의 대북전쟁전략에 맞선 반미결전전략을 견지하고 자기의 국가역량을 그 전략을 수행하는 데에 총집중하는 것이다. 지난날 일제식민통치를 받던 조선에게 반일전쟁이 역사의 필연이며 역사적 사명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북에게는 반미결전이 역사의 필연이며 역사적 사명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파악해야, 요즈음 북이 왜 미국과 핵전쟁을 벌일 각오를 하고 전면전 태세에 돌입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몽골제국이나 로마제국보다 훨씬 더 강대한 제국이다. 전성기의 몽골제국은 서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대륙을 지배하였고, 전성기의 로마제국은 유럽대륙, 북아프리카, 중동의 일부지역을 지배하였지만, 오늘 미국은 극소수 반미국가들과 남극대륙을 제외한 세계 전역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인구가 2,500만 명도 되지 않는 북이 그처럼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인다면, 무슨 수로 이길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미국과 남측에서는 북이 감히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못하면서, 전면전 태세에 돌입하였다는 식의 엄포만 놓고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것이다. 그런 소문의 배경에는 북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아직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만일 북이 상황을 오판하여 전면전을 벌이면 미국의 강력한 핵보복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이야말로 미국의 왜곡선전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북의 전쟁능력을 오판한 사람들이 퍼뜨린 헛소문이다. 미국의 왜곡선전과 대북선입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북의 전쟁능력에 관한 객관적인 사실들을 논해도 곧이듣지 않겠지만, 이 글에서 논하는 객관적 사실은 주관관념으로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과 전쟁을 붙으면 이길 수 있다는 북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돋보여서, 실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북이 자기의 전쟁능력을 너무 과신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북의 그런 태도는 과신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전쟁승리를 확신할 만큼 강력한 전쟁능력을 갖추어놓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의 전쟁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북의 전쟁능력은 언젠가는 미국과 전면전을 반드시 벌이고, 전면전에서 미국을 이기기 위해 정전 이후 60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가역량을 총집중하여 축적, 강화해온 것이다. 그런 의지와 집념을 불태우며 30년, 40년도 아니고 무려 60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국가역량을 기울여 힘써왔으니, 오늘 북이 전쟁능력을 어찌 세계적인 수준으로 갖추어놓지 못했겠는가.

그들은 두 갈래로 힘을 키우며 반미대전의 날을 기다려왔다

북이 전쟁능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북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여 이길 두 종류의 강력한 힘을 키워왔다는 뜻이다. 그 두 종류의 강력한 전쟁능력은, 북이 긍지를 가지고 내세우는 사상무장력과 핵무장력이다. 북은 사상무장력과 핵무장력을 완비해놓았으므로, 미국보다 더 강대한 제국과 싸워서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북의 집권당은 오랜 기간에 걸쳐 군대와 인민을 반미자주사상으로 무장시킴으로써 전사회적으로 강력한 사상무장력을 갖추었다. 남측 국민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친미사상에 접하지만, 북측 인민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친미사상에 접한다. 반미사상이라는 말 자체를 꺼리는 사회에서는 반미사상으로 다져진 사상무장력이 실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얼마나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사상무장력은 미국에게는 없고 북에게만 있는 가장 위력적이고 결정적인 전쟁능력이다.

반미결전태세에 돌입한 요즈음 북에서는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북을 아는 사람이 들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최후 결전에 자기 목숨을 바칠 비장한 각오가 되어 있는 결사대만이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라는 말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북에서 말하는 ‘최후의 승리’는, 지난 60년 동안 벼르고 별러온 반미결전을 반드시 벌이겠다는 각오, 미국과의 최후 결전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는 말이다.

만일 인민군 장병들에게 조국과 인민을 위해, 김정은 최고사령관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반미결전에 누가 결사대로 나서겠느냐고 묻는다면 그 물음을 받은 모든 장병들이 결사대에 자원할 것이다. 이런 예상은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만일 미국군 장병들에게 조국과 인민을 위해,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쳐야 하는 대북전쟁에 누가 결사대로 나서겠느냐고 묻는다면, 그 물음을 받은 장병들 가운데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할 것이다. 이런 예상도 역시 과장이 아니다.

물론 상상을 뛰어넘는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하는 전쟁에서 사상무장력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전상대가 세계 최강의 핵무장력을 갖춘 미국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북이 반미결전에서 이기려면, 강력한 사상무장력과 함께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핵무장력도 갖추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사상무장력을 갖출 수 없는 것처럼, 핵무장력도 그렇다. 어느 나라가 핵무장력을 갖추려는 경우, 고도의 군사과학기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매우 어렵고 방대한 과업이 나서게 된다. 국가역량을 집중하여 적어도 30년 이상 끊임없이 힘써야 핵과학기술을 자체로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핵탄두와 핵타격미사일을 자력으로 만들어야 핵무장력을 갖춘 것인데, 북은 미국의 정찰위성 탐지망을 벗어난 지하핵시설에서 핵무장력을 건설하였다. 북이 지하핵시설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중국의 지하핵시설에 관한 정보를 살펴보면서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2010년 4월 27일 중국의 영문일간지 <차이나 데일리>는 중국의 지하핵시설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보도하였다. 중국 충칭(重慶)시 인근에 있는 금자산 지하핵시설은 2002년 4월에 그 존재가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그 지하핵시설은 1967년에 착공되었고, 17년 공사기간을 거쳐 1985년에 완공되었는데, 대규모 지하공간 18개소, 지하도로, 수평갱, 수직갱 130여 개로 이루어진 21km의 방대한 시설이며, 강도 8.0 규모의 강진이나 핵공격에도 견딜 수 있다. 9층 건물높이에 이르는 79.6m의 지하공간에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원자로와 관련 핵시설들이 들어있다.

중국이 금자산 지하핵시설을 완공한 때가 1985년이고, 북이 평안북도 대관군에 있는 천마산 지하핵시설을 완공한 때는 1986년이다. 놀랍게도, 북과 중국은 거의 같은 시기에 무기급 핵물질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천마산 지하핵시설 규모에 관한 정보가 없어서 얼마나 큰 시설인지 알 수 없으나, 세계적으로 지하시설이 가장 발달한 북에서 건설된 지하핵시설이니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다. 남측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한 <중앙일보> 2005년 5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북이 각지에 건설한 각종 지하시설의 총길이는 417km에 이르는 경부고속도로보다 더 긴 547km라고 하는데, 그처럼 강력한 지하시설건설역량을 지닌 북이 천마산 지하핵시설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건설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북은 그런 지하핵시설들에서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였고, 핵무기를 다종화하였고, 핵무기를 소형화하여 미사일에 탑재할 핵탄두를 만들었다.

다른 한 편, 북은 핵타격미사일을 만들기 위한 과학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였다. 2012년 12월 12일에 첫 실용위성 광명성 3호 3호기를 싣고 우주로 떠난 위성운반로켓 은하 3의 성공적 발사는 핵타격미사일 제작에 전용되는 고도의 과학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였음을 물리적으로 입증한 사변이다.

“우리 전략로케트군은 괴뢰역적패당과 일본 반동 같은 것들은 셈에 넣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륙간탄도미싸일마다에는 백악관과 펜타곤, 하와이와 괌도를 비롯한 날강도 미제의 소굴들이 첫째가는 타격대상들로 입력되여 있으며, 지금 전략로케트군 장병들의 손은 발사단추 우에 놓여있습니다. (줄임) 세계 최강의 전략로케트무력으로 자라난 우리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무자비한 보복의 불벼락을, 정의의 핵불벼락을 퍼부어 항복서에 도장을 찍을 놈도 없게 모조리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기어이 성취하겠다는 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이 인용문은 2013년 4월 25일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창건 81돐 조선인민군 례식’에서 전략로케케트군 사령관 김략겸 중장이 연설한 것이다. 그는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세계 최강이라고 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불시에 선제타격할 막강한 공격력을 갖추었다고 긍지에 넘쳐 말했다. 미국 본토 타격력이 없는데도, 핵타격미사일 지휘관이 공식석상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인민군 전략로케트군 사령관의 결의발언은 엄포가 아니며, 미국이 퍼뜨린 북의 대미엄포설이 거짓말인 것이다.

북에서 말하는 반미결전은 인류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어날 핵전쟁이다. 미국은 핵전쟁에서 교전쌍방이 모두 공멸할 것이라고 겁을 주지만, 북은 자기의 핵전쟁에서 미국이 패망하고 북이 승리할 것으로 믿고 있다. 핵전쟁 승리에 대한 북의 확신은 오판이나 과신이 아니라, 정밀핵타격수단과 지하핵방호시설 같은 핵전쟁능력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북에서 말하는 핵전쟁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에 핵출력 20킬로톤급 핵탄두를 탑재하여 미국 본토로 발사하는 것이다. 발사 후 30분 만에 20킬로톤급 핵탄두가 미국 본토의 지상 500m 높이에서 폭발하면 핵폭풍이 일어나고 열핵선, 방사선, 전자기파가 방출된다. 핵폭풍은 반경 4km 안에 있는 모든 물체를 파괴하여 날려버리고, 열핵선은 100만도의 초고열로 반경 5km에 있는 모든 물체를 태우고 녹여버리며, 방사선은 반경 1.2km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전자기파는 반경 3km 안에 건설된 지하시설들에서 작동하는 모든 종류의 전기기기와 전자장비를 파괴한다.

북이 미국의 ‘급소’를 정조준하여 핵탄으로 직격하면, 미국의 국가기능이 전면 마비되므로 핵보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의 반미결전은 핵교전이 아니라 북의 정밀핵타격 한 방으로 끝나는 총결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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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 집단이주 미스터리, 부엉이 피해 도시로 이사왔나

저어새 집단이주 미스터리, 부엉이 피해 도시로 이사왔나

 
남종영 2013. 04. 28
조회수 85추천수 0
 

지구상 1848마리 희귀새…4년 전 남동유수지에 둥지, 120마리 탄생
유도 수리부엉이, 각시섬 곰쥐 피해…새 둥지선 재갈매기와 갯벌 매립 위협

 

강재훈-인천 남동유수지 저어새12.jpg » 2009년 봄 이후 인천 남동유수지는 저어새의 안정적인 번식지로 발전했지만, 먹이터가 되는 주변 갯벌의 매립 계획으로 번식지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올해에는 3월12일 저어새 두 마리가 발견된 이후 4월26일에는 저어새 123마리와 둥지 58개, 알을 품은 둥지 42개가 발견됐다.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저어새가 인천의 도심 한가운데 찾아온 것은 2009년 봄의 어느 날이었다. 부리(bill)가 스푼처럼 생겨서 영어 이름은 스푼빌(Black-faced Spoonbill)인데,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도도하게 생겼다. 지구에 1848마리밖에 남지 않은(2011년 국제동시조사) 희귀새다.
 

그날도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 등 시민단체와 시민들은 인천 주변의 갯벌과 호수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19일 저어새 보전·조사 모임인 ‘인천저어새네트워크’의 김보경씨가 그날을 떠올렸다.
 

“남동유수지 인공섬에 망원경을 대고 저어새를 관찰하는데, 누가 ‘어, 쟤가 지푸라기를 물고 가네’라고 중얼거리더군요. ‘저거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설마 여기서 번식할까 했죠. 며칠 뒤 강화갯벌 탐조를 마치고 들렀는데, 이런! 새가 둥지를 만들고 앉아 있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려 벌벌 떨면서 외쳤죠. 저어새가 알을 품었다고!”
 

03415308_P_0.jpg » 인천 남동유수지의 인공섬에 둥지를 튼 저어새. 이곳을 찾은 첫 해인 2009년 8월의 모습이다. 사진=이종찬 기자

 

저어새가 번식한 남동유수지는 송도새도시와 인천 도심 사이에 있는 인공호수다. 원래 갯벌이던 땅을 공단으로 만들었는데, 바닷물이 찼을 때 침수를 막기 위해 물을 모았다가 바다로 나가게끔 유수지를 만든 것이다.
 

2009년 저어새가 번식을 시작한 이래 남동유수지의 지름 28미터의 볼품없는 인공섬은 ‘저어새의 산부인과’가 되었다. 큰 나무 한 그루도 없이 땅을 돋운 하나의 포인트에 지나지 않지만, 2009년 6마리, 2010년 53마리, 2011년 80마리, 2012년 120마리의 저어새가 이곳에서 출생신고를 했다.

 

이종찬_03415543_P_0.jpg » 갯벌 매립공사가 한창인 중장비 사이로 날아가는 저어새. 사진=이종찬 기자

 

이종찬_03415544_P_0.jpg » 인천 남동유수지에 저어새가 둥지를 틀 수 있었던 것은 부근에 좋은 먹이터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진=이종찬 기자

 

세계적인 희귀새인 저어새가 왜 시끄러운 대도시로 찾아와 알을 낳았을까? 미스터리다. 다만 이와 연관된 사건이 있다. 같은 해 한강 하구의 무인도인 유도에서 번식하던 저어새가 갑자기 사라진 ‘실종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물새네트워크의 이기섭 박사가 말했다.

 

원래 한강 유도에 저어새 100쌍 정도가 내려와 번식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겁니다.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만, 수리부엉이 짓인 것 같아요. 수리부엉이가 새끼를 잡아먹는 걸 알고서, 저어새들이 일제히 집단이주를 해 버린 거죠.”


경기도 김포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유도에는 남동유수지와 달리 숲이 있다. 숲이 있다는 건 육식성 조류인 수리부엉이가 살 수 있다는 뜻이고, 나무 위에 앉은 수리부엉이가 땅으로 돌진해 저어새의 새끼를 낚아챌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저어새는 둥지 안에서 새끼를 보호하려 하지만, 거침없는 수리부엉이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이 박사가 말을 이었다.

 

가마우지도 유도에서 번식하지만 나무 위에 살기 때문에 수리부엉이가 낚아채기 쉽지 않아요. 저어새처럼 땅에서 둥지를 품고 번식하는 새들이 위험합니다.”
 

석도_김진수.jpg » 번식기를 맞은 저어새들이 서해 무인도 석도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김진수 기자

 

서해의 저어새 번식지는 유도, 요도, 석도, 비도, 남동유수지 등 10여곳이다. 매년 무리별로 일정한 장소에서 머물면서 알을 낳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저어새는 ‘집단 이사’를 다닌다.

 

안전하게 번식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이런 행동을 한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유도의 저어새는 2006년 104마리까지 번식했지만, 2009년에는 번식 장면이 포착되지 않았다. 유도의 저어새들이 남동유수지로 집단 이사를 간 것은 아닐까?
 

최근 강화도 남쪽의 각시섬에서 흥미로운 사례가 관찰됐다. 이곳 또한 저어새가 번식하는 바위섬이다. 3월 말 둥지 재료를 넣어주기 위해 모니터링 요원들이 각시섬에 들어갔을 때 곰쥐를 발견했다. 곰쥐는 헤엄쳐서 각시섬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이 때문이었을까? 저어새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4월14일에는 갑자기 뭔가에 놀라 섬을 뜨는 저어새 4마리의 모습이 관찰됐다. 이기섭 박사는 “4월 중순부터 쥐가 없어졌는데, 그때야 저어새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혹시 몰라 쥐덫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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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남동유수지 인공섬에서 저어새의 천적은 재갈매기다. 김보경씨가 말했다.

 

가끔 새끼가 둥지에서 미끄러져요. 몇 미터 떨어지는 건데, 인공섬 경사가 가파르니까 못 올라가요. 어미는 절대 올려주지 않아요. 그때 재갈매기가 새끼를 공격하죠. 새끼를 잡아먹는 건 아니고, 자기 둥지 주변에서 얼쩡거리니까 부리로 물어서 던져버리는 거예요.”


2010년에는 저어새 새끼 한 마리가 여러 차례 재갈매기의 공격을 받고서도 5시간 만에 둥지로 엉금엉금 기어올라갔다. 시민들은 이 새끼의 이름을 ‘구사일생’으로 붙였다.

 

남동유수지의 저어새는 도시 속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의 관계 맺기를 보여준다. ‘야생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전통적 지침에도 어긋나 있다. 인천저어새네트워크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50명 안팎의 모니터링 요원들은 △둥지 재료 모아주기 △다친 저어새 구조하기 등 저어새를 살리기 위해 야생에 개입한다.
 

남동유수지 저어새의 최대 위협요인은 인천 앞바다의 갯벌 매립이다. 갯벌이 줄어든다는 것은 저어새의 먹이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저어새가 먹이활동을 하는 고잔갯벌은 2015년까지 매립될 예정이다. 일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남겨두었지만 매립지에 둘러싸여 갯벌 기능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 남동유수지의 저어새는 도시를 떠나는 건 아닐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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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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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박근혜 정부’

 

 
 
[집중 분석] 북한 입장에서 한반도 긴장 조성 사태 풀어 보기
 
김원식 | 2013-04-27 15:04:3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양 국가 간의 대화는 서로 간의 체제 인정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상대방을 인정하는 기본이 깔려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 상호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남북한 간의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역설적으로 과거 박정희 독재 정권은 일반 국민이 선술집에서 술에 취해 북한에 대해 약간 좋게 표현하는 말실수만 하더라도 여차 없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했다. 그러나 그 당시 간첩 잡는 조직인 중앙정보부의 수장은 박정희의 특명을 받고 북한으로 들어가 당시 김일성 주석에게 예의를 갖춘 웃지 못할 과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이러한 예의 갖춤으로 7.4 남북공동성명이라는 것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과거를 떠올리며 지금 한국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에 관한 태도를 지켜보면서, 과연 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대해서 기본적인 이해라도 하고 있는지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단적인 예가 한반도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더욱 강하게 나오자 한국 정부는 대화 제의 문제를 놓고도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성공단 문제에 관해서도 북한에 대해 시한을 명시하면서까지 실무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중대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자, 개성공단 체류 인원에 대해 철수를 시작한다는 조치로 맞서고 있다. 이에 북한은 오히려 자기들이 중대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왜,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남북문제에 관해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한반도 긴장 사태에 관해 북한의 입장에서 서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것은 일부 보수론자들이 이야기하는 이른바 ‘종북 태도’를 취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은 최근의 한반도 긴장 사태와 관련하여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통한 대북 압박과 자신들의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 문제를 주요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지구 상에서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북한은 이제 자신들을 보호해 줄 유일한 무기가 핵무기라는 것을 절감했다며,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도 맞짱을 뜨겠다며 전면전 불사를 외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한반도 긴장의 본질이다. 하지만 국제 정치는 현실이다. 이는 역으로 북한이 그만큼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일 미군까지 동원된 한·미 군사연합훈련, 그러나 실무회담에 나오라고?

다시 한번 북한 입장에 서보자. 한국이 실무 회담을 제의하고 북한의 반응을 보겠다고 기다린 26일에도 외신들은 한국 포항에서 실시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일환인 ‘독수리훈련’이 진행되었다고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연합뉴스>를 포함한 한국의 언론은 “이번 훈련이 한미연합사 주도로 해군, 해병대 전력들이 상륙작전 수행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한국 해군·해병대·육군·공군 등과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미 해병대·해군 등 두 나라 병력 3천500여 명이 참가했다”고만 단순히 보도했다.

하지만 <교도통신>은 더욱 심층적인 보도를 내어 놓았다. 통신은 “이번 훈련에는 일본 미군 기지에서 이륙한 수직이착륙 수송기인 MV22, 오스프리 3기가 훈련에 참가했다”며 “상륙 훈련은 한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정례 야외 기동 훈련인 ‘독수리 연습’의 일환으로 오스프리가 참가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어 “미·한군이 (이번 훈련을) 공개한 것은 북한이 도발할 경우,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도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나타내 북조선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또한, “북조선이 3월 상순부터 위협을 가해 온 것에 대해 미·한은 3월 말까지 B2 전략폭력기를 독수리 연습에 투입한 것을 공개하는 등 군사적인 압력을 가해 왔으나, 긴장감이 격화되면서 4월 상순부터는 훈련 공개를 잇달아 중지한 바 있다. 그러나 22일부터 다시 훈련을 공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자면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26일도 한국 정부는 실무회담이라도 개최하자고 했지만, 북한은 3, 4월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이러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어차피 이달 말까지 예정되어 있는 한·미 군사 합동훈련인 독수리 훈련을 전개하고 있으면서도 하루라는 시한을 정해 실무회담에 나오라는 한국 정부의 제안을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더욱 상호 간의 불신을 초래하고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남한 정부의 신뢰성이 없다"라는 말이 왜 나오고 있는 것인지 곰곰이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절대 폐쇄 못 할 것” 큰소리친 종편들, 폐쇄하자 또 북한 비난에만 몰두…

이른바 북한의 최고존엄 모독 문제를 둘러싸고 현실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개성공단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태도도 확실한 주관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더욱 이러한 정부의 좌충우돌을 부추기는 일부 보수 언론과 종합 편성(종편) 방송의 ‘막가파’식 언론 보도 행위는 한반도 긴장을 해결점이 없는 극한으로 몰아가고 있다.

 

ⓒ TV조선 캡쳐

 

개성공단이 북한의 ‘외화벌이 창구’이기 때문에 북한은 절대 폐쇄 조치를 못 할 것이라고 북한을 자극한 종편들은 막상 북한이 실제로 잠정 폐쇄 조치를 강행하자,이제는 눈 덩어리처럼 불어나는 한국 기업의 피해 상황과 북한에 남은 주재원의 안전을 지적하며 북한은 인도주의적 처신도 하지 않는다고 다시 북한을 비판하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북한은 미우나 고우나 우리와는 체제가 다른 나라이다. 북한은 나름대로 김일성-김정일 유일사상을 무기로 반세기를 넘게 버티고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자신들의 최고존엄인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를 자신들의 목숨과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나라이다. 우리가 볼 때는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드리기도 어려운 사실이지만, 엄연히 북한 땅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러한 최고존엄에 대해 자꾸 건드리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는 태도들이 과연 넓게 봐서 북한 체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의 체제 강화에 명분을 주고 있지나 않을까? 이러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막가파식’ 선정적인 보도에만 충실하고 있는 한국의 종편을 비롯한 일부 보수 언론들이야말로 북한 정권의 체제 강화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위기가 가중되는 한반도 정세에 있어서 거의 한 달 넘게 북한이 과연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에 외신들마저도 온통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등, 어떻게 보면 북한이 의도를 했던 안 했던 북한 관련 뉴스가 연일 외신에 보도됨으로써 북한은 한반도 문제를 전 세계인들에게 이슈화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이 과정에서 잊혀 갔다.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 훈련 등이 자신들에 대한 억압과 침략 전쟁 의도가 있다며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면전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어느새 한반도 긴장의 현실은 이 점에 맞추어지지 않고 북한이 과연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 실험할 것인지로 바뀌고 말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장거리 미사일을 실험 발사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 데,세상의 관심은 오직 미사일의 실험 발사에만 몰리고 말았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체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온통 세계 언론의 관심이 쏠리는 웃지 못할 현상을 초래했다.

이는 또한, 북한이 인민군 창건일(25일)이 지나는 시간까지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하지 않자, 한반도의 긴장 조성이 완화되었다며 곧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하고 있는 현재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남들이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오히려 한·미연합 독수리 훈련이 끝나고 훈련에 참가한 미군들이 다 물러난 다음인 5월 초가 되어서야 그나마 한반도 상황 변화에 대한 새로운 입장 정리가 가능할지도 모르나, 한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다시 실무회담에 나오라고 북한을 압박하고 개성공단의 남은 인원을 철수하겠다고 통보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북한 지도부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최대 위기는 바로 최고의 기회이다. 박근혜 정부, ‘통 큰 정치’ 펼쳐라.

이렇듯, 최근 한반도 상황은 북한이 의도했던, 한·미가 의도했던,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역설적으로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보다 ‘통 큰 정치’를 펼쳐야 한다. 남북한의 긴장을 해소하고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되려면 얼마든지 북한에 명분을 주어야 한다. 북한은 개성 공단 문제로 자존심을 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 발언도 아니니 얼마든지 ‘외화벌이 창구’ 등의 언론 보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 된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개성공단 인질 사태 대비 군사작전 운운도 국회의원의 질문에 따른 답변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본질이 아니라고 유감을 표시하면 된다.

이것이 남북한 긴장 관계 해소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일부 보수 세력과 종편 언론들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들은 상황에 따라서는 혹은 미국 등 강자 앞에서는 무조건 약해지는, 다시 말해 국가 이익 우선이라는 기본적인 개념도 없는 세력이다. 어찌 보면 이들은 무조건적인 ‘종북 세력’보다도 더 가치가 없는 철저한 ‘종강 세력(강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세력)’일 뿐이다.

북한은 남북 대화가 단절된 이명박 정권 이후 이제는 한국을 상대하지 않고 미국과 맞짱을 뜨겠다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축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에 명분을 주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상호 간에 신뢰프로세스 구축의 첫 출발점이 될 수도 있으며, 더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 한국의 대북 정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는 북한에 대해, 북한 체제에 대해 다시 깨닫고 현실을 인정하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북한은 좋든 밉든 유일사상으로 뭉쳐 있다는 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체제이며 현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더 작게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에게 공약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첫 삽을 뜨기 위해서라도 그들(북한)에게 명분을 주어야 한다.

이미 11년 전인 2002년 5월에 북한을 방문하여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단독 면담한 바 있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어떤 사회인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돌아왔을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그들의 입장에 서 본다면 북한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가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축, 이것이 공허한 말의 공약이 아니라면,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북한을 대화의 장에 나오게 할 수 있다. 한반도 상황의 위기 고조는 북한 김정은 제1비서에게도, 한국의 박근혜 정부에도 똑같은 형태로 다가오고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축을 위해 모든 명분을 양보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통 큰 정치’를 펼친다면, 남북문제의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날이 오기를 다시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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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은 매일 작은 통일이 이뤄지던 곳..."

[스팟인터뷰]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

13.04.27 20:33l최종 업데이트 13.04.27 20:33l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존폐기로에 섰다.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철수' 조치에 따라 27일 오후부터 남아있던 남측 근로자들이 순차적으로 귀환했다. 철수 거부 입장을 밝히는 기업들도 있지만 공단 폐쇄라는 최악의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개성공단은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산물이다. 회담직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북쪽의 제안을 받아들여 황해북도 개성시 봉동리 일대 2천만 평 부지에 공단을 조성하기로 결정했고, 그해 8월 현대아산과 북 아태평화위원회는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공단 착공에 들어간 것이 2003년 6월의 일이니 꼭 10년 만에 개성공단은 설립 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

개성공단은 2008년 금강산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망 사건,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된 가운데서도 정상 가동되며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질 경우 남북 양측이 치러야 할 대가는 만만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난 2008~2011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을 지냈던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정치학 박사)는 그동안 공단이 유지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적 가치를 놓고 보면 개성공단의 폐쇄가 가져올 여파는 실로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소장은 특히 안보적 관점에서 개성공단의 폐쇄는 남북간 무력충돌의 완충지대가 없어지는 아주 위험스런 상황을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소장은 또 "북측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북측의 속내는 불안했던 남북 관계를 완전히 해소하고 개성공단 문제를 정상화시키면서 당국 관계를 새롭게 복원하는 것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26일 오후 김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요약한 것이다. 인터뷰는 충무로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북측 입장에선 개성공단이 안보의 아킬레스건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이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이 발표된 2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은 남북의 긴장국면을 줄일 수 있는 곳"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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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도 큰 문제없이 돌아갔던 개성공단이 왜 이 시점에 폐쇄가능성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인가.
"3년 반 동안 개성공단에 있으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하는 것이 협상이었다. 협상을 하려면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쟤가 왜 저러지, 쟤가 왜 저런 말을 했을까?'하고 말이다. 어떨 때는 아주 기만적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북측의 성명을 그대로 읽어 줄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 봐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북측에서 가장 큰 우려는 안보 문제다. 그런데 위성을 발사했다고 고강도의 제재를 받는 상황 아닌가. 북한 입장에선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거다. 그 뒤 3차 핵실험으로 이어졌는데, 이 모든 것은 북미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북한 나름의 고강도 전략이다.

북측은 이번 기회에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는 정전협정 폐기, 평화협정 체결 등 근본문제를 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남측 정부와 언론이 개성공단을 통해 자신들의 존엄을 건드리면서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판단, 개성공단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 입장에선 개성공단이 그들 안보의 아킬레스건이다. 내가 개성공단에 있을 때 김영철 정찰총국장, 당시에는 국방위원회 정책국장이었는데, 이 사람이 1박2일씩 세 차례나 개성공단에 내려왔다.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북측 근로자들에게 일관되게 이야기했던 것이 '개성공단이 자본주의 황색바람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북측은 체제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은 용납하지 않는다. 60년간 미국하고 전쟁을 하고 있는 체제 아닌가.

우리는 상상을 못하지만 북한은 키리졸브 훈련할 때마다 한 달씩 산에 들어간다. B-2 폭격기가 날아오고, 핵잠수함이 오고 이지스함이 오는데 왜 안 그렇겠나. 아무리 인민경제 건설이 중요하다고 해도 안보 다음의 문제다. 그러면서도 북측은 그동안 인민경제 건설이라는 관점 속에서 남북경협도 하고, 이것을 통해 남북간 정상적 관계도 만들면서 그 속에서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의 이명박 정부 아래서 개성공단이 완전히 좌초하다시피 숨통만 간신히 유지해온 상태였다. 그래서 북측은 '뭐 좀 제대로 해보자' 이렇게 치고 나온 거다."

개성공단 바라보는 시각, 남북간 큰 차이

- 김 소장께서는 개성공단을 바라보는 남북의 시각에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본질적인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인식이 다르다. 우리가 북측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결과론적으로 개성공단도 안 보이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성공단을 통해, 우리식 표현이지만 개혁개방으로 가려고 했다. 김 위원장에겐 '북미 관계만 정상화되면 중국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발전할 수 있어, 남측의 자본과 기술이 있으니 우린 중국의 도움을 안 받을 거야'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하더라도 '개성공단 같은 거 10개, 20개 만들자' 이런 입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정말 개성공단 모델이 성공하기를 바랐다.

개성공단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이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8년 12월 북한 군부에서 개성공단 실사를 나왔다. 당시에도 김영철이 왔는데, 당시 그가 한 얘기가 '장군님께서는 MB정부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려운 조건 속에서 기업을 하겠다는 남측의 기업가들은 어떻게든 지켜줘야 한다'는 거였다. 이것은 유업이고 지도자의 지침이다. 그래서 입주기업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한다는 기조가 있었던 거다. 하지만 지난 5년간 개성공단은 그야말로 명맥만 유지했다.

2008년 2월부터 2011년 7월까지 기업지원부장을 하면서 이명박 정부 아래 개성공단이 오그라드는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모든 협상을 내가 다 했기 때문에 그 자괴감이란 정말 말로 하기 어렵다. 어떨 때는 이런 것 다 시키나 싶을 정도로 참담했다."

"MB정부 5년간 북측은 늘 '정말 개성공단 하려는 건가' 물었다"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이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이 발표된 2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은 남북의 긴장국면을 줄일 수 있는 곳"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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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으로 그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
"우리는 박왕자씨 피격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순서로 갔다고 생각하는데, 최초의 어그러짐은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을 이야기 했을 때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2007년 12월 27일 남북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숙원사항인 북측 근로자들을 원활히 수급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의 숙소를 짓자는 합의를 했다. 남측에서 자재를 가지고 오고 북측이 부지와 노동력을 제공해서 근로자 숙소를 짓는다는 합의였다. 그런데 이 합의가 두 달만에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부정된다.

신정부가 들어와서 '무슨 소리냐'고 한 거다. 이 대통령이 현대그룹 이야기하면서 근로자들을 모아 놓으면 파업한다고 그랬던 것 아닌가. 북측에는 파업의 개념조차 없는데, 그때부터 북측은 우리를 아주 한심하게 봤다. 2008년 3월에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비핵개방 3000'을 이야기하면서 공식적으로 '핵문제 해결 없이는 개성공단은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말을 했다.

북측이 나를 찾아와서 어떻게 통일부 장관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따지는데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정책도 바뀔 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북측은 분단 60년 체제 속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바라보고 개성공단을 김정일 위원장의 가장 확실한 유업으로 본다. 그것이 부정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부정이 되어버린 거다. 그때부터 개성공단은 계속 삐걱 거렸다.

'개성공단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 번 해 볼까요' 하면 정부에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해', '나서지 말고 납작 엎으려 있어'라고 했다. 당초 남북이 합의했던 개성공단 사업은 최종 3단계까지 2000만평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1단계가 100만평을 개발하는 거였는데, 지금도 40%밖에 활용이 안 되고 있다. 최초 계획에는 2010년이 되면 1단계 100만평은 완벽하게 풀가동이 되고 450개 기업에 15만 명 정도가 가동이 되는 프로세스지만, 2008년부터 모든 것이 올스톱이 되버렸다.

북측 입장에선 '뭐야 이거, 이럴 수 있어?', '정상화 시켜야 될 거 아냐, 왜 안해?' 그러는 와중에 이것도 터지고 저것도 터지고 했던 거다. 그 와중에 북측은 늘 일관되게 물었다. '정말 개성공단 하겠다는 것이냐'고. 난 '좀 더 기다려보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맡은 일이 내용적으로는 대북협상이었지만, 실상 했던 것은 위기관리 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문고리 잠그고 나오는 역할이었다. 위기관리가 1단계, 2단계, 3단계를 거쳐 최종단계에 이르면 소개(疏開)계획을 실행하고 맨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지금 개성공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빤하게 보인다. 그것만 했으니까."

-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은 북한의 돈줄이기 때문에 북측이 쉽게 포기하지 못 할 것이란 인식도 존재한다.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다. 이게 우리가 북측을 너무 모르고, 개성공단을 너무 모르면서 잘못된 추정을 일반화해서 전략을 짜니까 이런 지경까지 온 것이다. 북측은 이런 말을 들으면서 정말 모욕감을 느낄 거다. 사실 북측은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들이 얼마를 버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수십 배를 더 번다. 회계자료가 말해준다.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그렇게 벌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니 기업들은 한 명이라도 더 북측 근로자들을 쓰려고 한다. 고용만 하면 한 명이 매달 최소한 100만 원 이상 벌어주니까. 한 달 월급 13만 원을 받는 근로자들이 말이다. 정말 많이 버는 기업은 북측 근로자 한 명이 임금의 20~30배 창출해 준다."

"완충지대 역할한 개성공단, 경제적 가치만 있는 게 아냐"

김진향 한반도평화경제연구소장이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이 발표된 2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은 남북의 긴장국면을 줄일 수 있는 곳"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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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의 가정이지만 이제는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상황까지 예상해야 한다. 그럴 경우 남북한 각자의 손해 규모는 어떻게 예상하는가.
"개성공단의 순기능이 어떤 게 있는가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 먼저 경제적 가치를 한 번 따져보자. 통계를 보면 개성공단에서 1년에 5억 달러를 생산한다. 그런데 이 5억 달러가 임가공 단가다. 단순 봉제비만 그렇다는 거다. 개성공단 123개 업체 중에 70%가 봉제기업인데, 이렇게 생산된 제품이 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로 들어간다. 납품 단가로 하면 5~10배다. 대략 중간쯤인 7배라고 치면 35억 달러다. 내 개인적으로는 최소 10배 이상은 된다고 본다. 우리가 북측 근로자들에게 주는 임금은 한해 900억 원이다. 몇 배가 차이 나겠나?

둘째는 간접적인 경제적 가치다. 개성공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해외 투자자들이 어떻게 판단할까? 셋째는 평화적 가치다. 내가 맡았던 역할 중 하나가 기업의 새로운 주재원이 들어오면 북측의 사회와 문화, 가치체계, 관습 이런 것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된다고 늘 이야기를 했다. 이 사람들이 매일 북측 사람들과 만나 상호작용을 한다. 처음엔 열도 받고 오해도 많고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진다. 하지만 결국 오해는 다 풀리게 되어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의 이질적 가치들이 정말 용광로 안에서처럼 서로를 배워가는, 매일 매일 작은 통일들이 발현되는 사회문화적 교류의 장이다.

마지막으로 안보적 가치를 생각해 보자.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뒤로 물러났던 북한군이 공단이 문을 닫으면 다시 전진배치 될 것 아닌가(기자 주 : 공단 착공 전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군 6사단은 평양 쪽 후방으로 10여 Km 물러났다). 개성-파주-문산 축선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주요 공격로 2곳 중 하나였다. 개성공단은 그동안 남북 간에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완충지대 역할을 해오지 않았나. 이게 없어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과연 이런 가치들을 경제적으로만 따질 수 있는 건가? 우리 기업인들은 이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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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개성공단 폐쇄되면 남측 책임”

 

北 “개성공단 폐쇄되면 남측 책임”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개성공단 운명 경각에 이르렀다”
 
 
2013년 04월 27일 (토) 23:49:00 이계환 기자 khlee@tongilnews.com
 

“개성공업지구가 완전히 폐쇄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괴뢰패당이 지게 될 것이다.”

<조선중앙통신> 27일발에 따르면, 북한의 개성공단 담당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의 대변인은 27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에서 우리 정부의 개성 인원 철수와 관련 “개성공업지구 운명은 지금 경각에 이르렀다”면서 이같이 위협했다.

나아가, 대변인은 “극악무도한 선행 보수정권 때에도 살아남은 공업지구가 이제 와서 끝끝내 깨지게 되면 현 정권은 이명박 역적패당보다 더한 대결정권으로 낙인되어 역사와 민족 앞에 두고두고 저주와 규탄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에게 경고했다.

그러면서 대변인은 “청와대 안주인이 대결광신자들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 민족공동의 협력사업으로 유일하게 남은 개성공업지구마저 대결정책의 제물로 만들 심산이 아닌지 우리는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대변인은 “북남관계 역사에 수많은 대화제안들이 오고갔지만 현 괴뢰보수패당처럼 시한부를 정하고 ‘중대 조치’니 뭐니 하며 오만무례하게 대화제의를 한 적은 일찍이 없으며 동서고금의 국제외교사에서도 그러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면서 “이 모든 것은 괴뢰들의 대화제의놀음과 인원철수 결정이라는 것이 개성공업지구를 파산에로 몰아가기 위해 미리 계획된 각본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며 남측의 ‘시한부 대화 제의’와 ‘중대 조치’를 각본설로 평했다.

특히, 대변인은 “그러면서 괴뢰패당은 이번 조치가 마치도 공업지구에 남아있는 인원들의 식자재까지 떨어져 할 수 없이 취한 불가피한 결정인 듯이 묘사하면서 ‘재산보호’니, ‘범정부적 지원’이니 하며 너스레를 떨어댔다”면서 “괴뢰패당이 인원철수 조치가 공업지구에서 식자재가 바닥이 난 것 때문에 취해진 것처럼 떠들고 있으나 공업지구에는 현실적으로 먹을 것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며 사실을 바로 잡고자 했다.

이에 대변인은 “우리는 6.15의 옥동자로 태어난 개성공업지구를 소중히 여기지만 덕도 모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에게 은총을 계속 베풀어줄 생각이 없다”면서 “개성공업지구가 폐쇄되면 막대한 손해와 피해를 볼 것은 남측이며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태연해했다.

오히려 대변인은 “우리는 그동안 내주었던 개성공업지구의 넓은 지역을 군사지역으로 다시 차지하고 서울을 더 바투 겨눌 수 있게 되며 남진의 진격로가 활짝 열려 조국통일대전에 더 유리하게 될 것”이라며 역공을 취했다.

대변인은 “괴뢰보수패당의 악랄한 책동으로 근 10년 동안 겨레의 축복과 온 세계의 관심 속에 잘 돌아가던 개성공업지구가 마침내 동음을 멈추었으며 이제 완전 폐쇄는 시간문제로 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는 “괴뢰패당이 도발에 매달릴수록 개성공업지구는 더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한편, 북측은 25일 우리 통일부가 시한부 대화 제의를 하자 26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로 응답했으며, 이어 26일 통일부장관이 정부 성명 형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외교안보장관회의 결과인 ‘개성공단 인원 전원 철수’ 중대조치를 발표하자 27일 개성공단 담당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의 대변인의 답변으로 응답하는 차이를 보였다.

 

개성공업지구가 완전히 페쇄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괴뢰패당이 지게 될것이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 대답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괴뢰패당이 개성공업지구에 남아있는 남측인원들을 전원철수시키는 그 무슨 《결정》이라는것을 발표한것과 관련하여 27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26일 남조선괴뢰보수패당은 청와대에서 집권자의 참가밑에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하고 개성공업지구문제를 장시간 모의하던 끝에 통일부 장관을 내세워 《정부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였다.

성명에서는 개성공업지구사태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면서 《어려움》이니, 《국민보호》니 뭐니 하는 구실을 붙여 공업지구의 남측《잔류인원》전원을 귀환시키기로 《결정》하였다는것을 공표하였다.

그러면서 괴뢰패당은 이번 조치가 마치도 공업지구에 남아있는 인원들의 식자재까지 떨어져 할수없이 취한 불가피한 결정인듯이 묘사하면서 《재산보호》니, 《범정부적지원》이니 하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청와대안주인은 자못 침통한 표정까지 지으면서 《개성공단정상화》를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북이 정식대화제의마저 거부했다느니, 《인도적차원》의 요청도 들어주지 않았다느니,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희생이 너무 크다느니 하며 구차한 변명을 하였다.

어용보수언론들은 《더이상 북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강경대응카드》라느니, 《새 정부의 단호한 의지》라느니, 《북의 전술이 더는 통하지 않을것》이라느니 뭐니 하고 악청을 돋구고있다.

참으로 대결광신자들의 추악한 궤변이고 극악무도한 도발망동이다.

괴뢰보수패당이 6. 15의 산아인 개성공업지구를 없애보려고 어떻게 집요하게 책동해왔는가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개성공업지구파괴책동은 현 《정권》에 들어와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였다.

괴뢰패당은 복잡하고 첨예한 정세속에서도 공업지구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대해 《돈줄》이니, 《밥줄》이니 뭐니 하며 참을수 없이 모독하였을뿐아니라 범죄적인 유엔《제재》책동에 매달리면서 공업지구를 《제재》도마우에 올려놓으려 획책하였으며 미국과 함께 최신핵전쟁장비들을 총동원하여 북침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려놓고 정세를 최극단으로 치닫게 하였다.

특히 괴뢰국방부 장관 김관진깡패는 《인질》이요, 《억류》요 뭐요 하면서 공업지구에 미군특공대를 끌어들여 군사작전을 감행하려는 위험천만한 불장난기도까지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공업지구에 남측인원들이 들어오는것을 차단하고 이미 들어와있는 인원들은 그들의 의사에 따라 나가도록 하였다.

그러자 괴뢰패당은 그것을 걸고들며 시비하던끝에 마음에도 없는 기만적인 대화제의놀음을 벌리면서 우리를 우롱하였는가 하면 나중에는 당국실무회담이라는것을 제기하면서 다음날 오전까지 회신해주며 그것을 거부하는 경우 《중대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해나서는데까지 이르렀다.

북남관계력사에 수많은 대화제안들이 오고갔지만 현 괴뢰보수패당처럼 시한부를 정하고 《중대조치》니 뭐니 하며 오만무례하게 대화제의를 한적은 일찌기 없으며 동서고금의 국제외교사에서도 그러한 전례를 찾아볼수 없다.

력사에 전무후무한 이런 해괴한 놀음이 결코 진실로 대화를 하자는것이 아니라 판을 완전히 깨기 위한것이라는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하다.

괴뢰패당은 저들의 무례무도한 대화제의놀음에 대해 우리가 단호한 립장을 취하자 그렇게 나오기를 기다렸다는듯이 즉시 긴급모의를 벌리고 공업지구를 깨기 위한 다음번 순차로 넘어간것이다.

이 모든것은 괴뢰들의 대화제의놀음과 인원철수결정이라는것이 개성공업지구를 파산에로 몰아가기 위해 미리 계획된 각본에 따른것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청와대 관계자가 저들의 《중대조치》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양한 대북대응씨나리오를 만들어놓고있으며 면밀한 검토아래 이를 실행하고있다.》고 제입으로 실토한것은 그에 대한 명명백백한 반증이다.

괴뢰패당이 인원철수조치가 공업지구에서 식자재가 바닥이 난것때문에 취해진것처럼 떠들고있으나 공업지구에는 현실적으로 먹을것이 떨어진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자재니 뭐니 하며 인도적문제에 걸어 도발을 해온것은 그들이 공업지구를 깨버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미국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대재난을 들씌우는 북침핵전쟁책동에 미쳐날뛰며 개성공업지구를 위기에 몰아넣은 괴뢰패당이 공업지구에 남아있는 일부 인원들에 대해 크게 생각하는척 하는것이야말로 요사와 위선의 극치이다.

지금 괴뢰패당은 저들의 범죄적결정에 대한 내외의 비난이 높아가자 공업지구정상화에 관심이라도 있는듯이 《재산보호》요, 《범정부적지원》이요 하지만 그것은 여론의 규탄을 모면하고 중소기업가들을 비롯한 민심의 불만을 무마하며 위기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교활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괴뢰보수패당의 악랄한 책동으로 근 10년동안 겨레의 축복과 온 세계의 관심속에 잘 돌아가던 개성공업지구가 마침내 동음을 멈추었으며 이제 완전페쇄는 시간문제로 되고있다.

우리는 6. 15의 옥동자로 태여난 개성공업지구를 소중히 여기지만 덕도 모르고 은혜를 원쑤로 갚는자들에게 은총을 계속 베풀어줄 생각이 없다.

개성공업지구가 페쇄되면 막대한 손해와 피해를 볼것은 남측이며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동안 내주었던 개성공업지구의 넓은 지역을 군사지역으로 다시 차지하고 서울을 더 바투 겨눌수 있게 되며 남진의 진격로가 활짝 열려 조국통일대전에 더 유리하게 될것이다.

우리는 괴뢰패당이 인원철수요 뭐요 하는데 대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개성공업지구에 남측인원들을 붙들어둔적이 없으며 나갈 사람들은 다 나갈수 있게 하였다.

괴뢰패당이 그따위 《중대조치》나 가지고 우리를 놀래워보려 하는것이야말로 가소롭기 그지없다.

현 괴뢰정권이 외교안보우두머리들을 새로 꾸리고 청와대와 통일부를 비롯한 《대북관계》부서들을 대폭 교체하였다고 하나 놀아대는 꼬락서니를 보면 너무도 우리를 모르고있으며 그들의 유치하고 서툰 사고방식에 환멸을 금할수 없다.

선행《정권》에서 멋없이 날치다가 내외의 비난대상으로 된 김관진과 같은 주먹깡패까지 다시 써먹으면서 화를 스스로 초래하고있는것은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그처럼 아둔하고 분별없는 대결광신자들이 앞으로 북남관계를 어떤 파국에로 몰아갈지 실로 걱정이 되지 않을수 없다.

특히 현 집권자는 최근 《핵포기》니, 《옳바른 선택》이니, 《변화》니 하며 점차 우리에 대해 대결적본색을 더욱더 드러내고있다.

청와대 안주인이 대결광신자들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 민족공동의 협력사업으로 유일하게 남은 개성공업지구마저 대결정책의 제물로 만들 심산이 아닌지 우리는 예리하게 지켜보고있다.

개성공업지구 운명은 지금 경각에 이르렀다.

괴뢰패당이 도발에 매달릴수록 개성공업지구는 더 위태롭게 될것이다.

우리는 괴뢰패당의 무분별한 대결적망동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것이며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고야말것이다.

극악무도한 선행보수《정권》때에도 살아남은 공업지구가 이제와서 끝끝내 깨지게 되면 현 《정권》은 리명박역적패당보다 더한 대결《정권》으로 락인되여 력사와 민족앞에 두고두고 저주와 규탄을 받게 될것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개성공업지구가 완전히 페쇄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괴뢰패당이 지게 될것이다.

(출처-조선중앙통신 201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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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쟁은 민족공멸로 끝나지 않는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4/28 11:42
  • 수정일
    2013/04/28 11: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3일 전쟁은 민족공멸로 끝나지 않는다
 
[한호석의 개벽예감](60) 국내전문가 지적, “한국군 여섯가지 취약”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4/27 [20:20] 최종편집: ⓒ 자주민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3일 전쟁 시나리오

2013년 4월 22일 서울 시내 가판대들에 나온 <주간조선> 제2253호에서 흥미로운 기사 한 편이 눈길을 끈다. 그 주간지 취재기자가 2013년 4월 15일 충청남도 계룡대 육군본부에 가서 육군본부 전력부장인 황종수 소장과 이야기를 나눈 대담기사다. 전력부장이라는 군직은 전투력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참모급 군지휘관이라고 하니, 그의 대담발언을 무심히 지나치기 힘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지면 (교전쌍방의) 200만 병력이 충돌, 개전 사흘 안에 수백만 이상의 인구가 희생되는 아비규환이 벌어지게 된다. 남북 양쪽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면전은 무조건 막아야 하는 당위적 이유가 여기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 사흘 안에 남측과 북측에서 수백만 명 이상 사망하는 민족공멸상태에 빠질 것이므로 전쟁을 무조건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군본부 전력부장의 그런 예상과 달리, 2013년 3월 16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3일 만에 끝날 단기속결전’(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2190)에서 나는 개전 사흘 만에 전쟁이 북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예상한 시나리오를 서술한 바 있다. 내가 서술한 3일 전쟁 시나리오는 소설적 상상으로 그려낸 허황한 상상도가 아니라, 전면전에서 교전쌍방이 처하게 될 작전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작성한 것이다. 그런데 육군본부 전력부장은 민족공멸로 끝나는 3일 전쟁 시나리오를 언급하였다.

북의 승리로 끝날 3일 전쟁 시나리오가 현실에 더 가까운 것일까, 아니면 민족공멸로 끝날 3일 전쟁 시나리오가 현실에 더 가까운 것일까? 한반도 군사상황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민족공멸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흔히 떠올리지만, 그런 예상은 정보부족에서 오는 착오다. 아래에서 자세히 논하겠거니와, 실제로 전면전이 일어난다고 해도 민족공멸로 전쟁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 군사상황에 관한 정보를 잘 아는 육군본부 전력부장이 민족공멸로 끝날 3일 전쟁 시나리오를 언급한 것은, 한국군이 이길 수 없는 전면전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발언한 것으로 이해된다.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대로, 그가 “전면전을 무조건 막아야 하는 당위적 이유”에 대해 역설한 것이 그런 판단을 뒷받침해준다.

한반도에서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오늘, 한반도 군사상황과 관련하여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정보를 짚어보면서 3일 전쟁 시나리오를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3일 전쟁 시나리오를 분석할 때,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논할 문제는 어느 쪽이 공격자이고 어느 쪽이 방어자인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전투종심이 매우 짧은데다가, 중무장한 방대한 병력이 밀집대형으로 대치한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 공격자가 승리하고 방어자가 패배할 가능성은 100%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인민군은 공격자의 입장에서 선제기습타격을 개시할 것이고,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글에서는 미한연합군이라 부른다)은 방어자의 입장에서 인민군의 선제기습타격에 대응할 것이다. 이러한 공격-방어구도는 소설적 상상이 아니라 객관적인 군사상황이다. 인민군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임의의 시각에 최후공격명령을 내리면 즉각 전면전에 돌입할 공격대형으로 전방에 대거 포진하였고, 미한연합군은 인민군의 전면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249km에 걸쳐 횡렬방어선을 구축해놓았다.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249km 전선에서 불시에 전면적으로 밀어붙일 상상을 초월한 인민군의 선제기습타격을 미한연합군이 막아내고 반격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민군의 전면적 선제기습타격을 막아낼 방어력이 미한연합군에게 없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인민군이 전면적 선제기습타격을 위한 전투력을 정전 이후 줄곧 강화시켜왔고, 6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는 미한연합군을 압도할 만큼 막강한 수준으로 장성되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대담기사에서 육군본부 전력부장도 인민군의 선제기습타격력이 위력적이라고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한 지상군은 102만 명으로 전체 병력의 86%를 차지한다. 북한은 이 중 70%를 평양-원산 이남지역에 배치해 상시 기습공격을 감행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102만 명의 70%라고 하면 714,000명인데, 전방에 전진배치된 인민군 병력 714,000명은 잘 훈련된 정예병력이므로 당연히 선제기습타격을 위한 강력한 무장력을 갖추었다. 인민군 정예병력 714,000명의 무장력은 어떠할까? 이와 관련하여 육군본부 전력부장은 두 가지 사실만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갔다.

첫째, 육군본부 전력부장의 말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북한 전차는 약 4,200대(우리는 2,400대)”라는 것이다. 2013년 3월 16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3일 만에 끝날 단기속결전’에서 나는 최전방에 배치된, 인민군 최강부대로 알려진 4개 기계화 군단에 전차 4,600대와 장갑차 3,000대가 배치되었다고 서술하였다.

인민군 4개 기계화군단에 배치된 주력전차 4,600대는 어떤 전차일까?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경축 인민군 열병식에 네 종류의 주력전차들이 등장하였다. 그 전차들을 살펴보면, 전차바퀴가 다섯 개 달리고 둥근 포탑을 탑재한 천마 1호, 전차바퀴가 다섯 개 달리고 모난 포탑을 탑재한 천마 2호, 전차바퀴가 여섯 개 달리고 모난 포탑을 탑재한 2002년형 폭풍 1호, 전차바퀴가 여섯 개 달리고 둥근 포탑을 탑재한 2010년형 폭풍 2호다.

<조선일보> 2002년 6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인민군 전차 2002년형 폭풍 1호는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러시아군 전차 T-90과 성능이 비슷하다고 한다. 2002년형 폭풍 1호 전차가 그처럼 뛰어난 성능을 지녔으니, 2010년형 폭풍 2호 전차는 T-90의 성능을 능가하는 최첨단 전차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인민군 전방부대에 세계 최강 전차가 배치된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인민군 전차와 장갑차가 100% 갱도에 들어가 대기 중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인민군 대대별로 구축된 전차갱도와 장갑차갱도는 입구가 한 군데이고, 입구 반대쪽에 출구는 두 군데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이 일제히 발사하는 단거리 지대지미사일이 미한연합군의 공군기지와 레이더기지를 파괴한 직후, 미한연합군 전차들을 공습파괴할 인민군 공중무력을 앞세우고, 인민군 전차 4,600대와 장갑차 3,000대가 전방지역 각지에 구축된 전차갱도들과 장갑차갱도들에서 밀물처럼 쏟아져 나와 남진총공세를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 육군본부 전력부장의 말에 따르면, “전방지역에 야포 8,600문(우리는 5,300문)과 방사포 4,800문(우리는 200문)을 집중배치해 우리 수도권을 기습적으로 포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2013년 3월 16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3일 만에 끝날 단기속결전’에서 나는 인민군 전방부대의 중장거리포가 8,000문(한국군은 5,200문)이고, 인민군 전방부대의 240mm 방사포는 3,400문(한국군 다련장로켓포는 200문)이라고 서술하였고, 개전 직후 30분 동안 240mm 방사포 3,400문이 102,000발을 쏘고, 중장거리포 8,000문이 24,000발을 쏠 것으로 예견하였다.

육군본부 전력부장은 인민군 전방부대의 선제기습타격을 논하면서 전차, 방사포, 중장거리포만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인민군 전방부대의 선제기습타격은 전차, 방사포, 중장거리포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무장력을 입체적으로 동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입체적 무장력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 사실은, 인민군 전방부대의 선제기습타격력이 그처럼 압도적인데 비해 미한연합군 전방부대의 방어력이 너무 취약하다는 점이다. 한반도 군사상황에 관한 심층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한연합군 전방부대의 방어력이 너무 취약하다고 말하면, 그 말을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인민군이 낡은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였고, 유류공급도 턱없이 부족해서 평시에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심지어 잘 먹지도 못해 배고픈 탈영병들이 속출한다는 헛소문만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미한연합군 전방부대의 방어력이 너무 취약하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인민군 전방부대의 선제기습타격력이 압도적이고, 미한연합군 전방부대의 방어력이 너무 취약하다는 것은 자료로 입증되는 엄연한 현실이다. 전쟁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오늘, 한반도 군사상황에 관한 헛소문이 빚어낸 허상을 버리고, 실상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군 무장력의 여섯 가지 취약성

2012년 2월 20일 <아시아경제>에 실린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김종하 교수의 글 ‘보병사단의 6가지 취약점’은 한국군 무장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려주었다. 그 글에서 지적한 한국군 무장력의 취약성은 아래와 같다.

첫째, 김종하 교수의 글에 따르면, 동서구간 249km에 걸친 횡렬방어선을 구축한 한국군 전방부대들은 “병사들의 맨 눈에 의존해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야시장비 조준경을 보유한 북한군이 지금 당장 야간기습공격을 감행할 경우, 전방 한국군 보병부대는 많은 피해(병력손실)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민군이 야간기습전을 개시하는 경우, 한국군 방어선이 무너질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공격자인 인민군 전방부대는 야시장비 조준경을 부착한 각종 무기로 무장하였는데 비해, 방어자인 한국군 전방부대는 ‘야맹증 환자’ 같은 신세이니, 야간전투에서 어느 쪽이 이기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국군이 특히 야간전에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아는 인민군은 실전 분위기 속에서 야간기습전을 연습하고 있다.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은 2013년 2월 21일 “인민군 제526대련합부대 관하 구분대의 실탄사격을 배합한 공격전술연습”을 지도하였는데, 그것은 야간기습전 연습이었다. 전쟁전야처럼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에 최고사령관이 야간기습전 연습을 직접 지도한 것은,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을 앞두고 인민군의 야간기습전 능력을 최종 검열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김종하 교수의 글에 따르면, 한국군 대대급 이하 부대들에는 영상정보 통신기반체계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북한이 기습공격을 감행할 경우, 한국군 보병부대는 눈과 귀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에서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한국군 전방부대들이 야간전투에만 취약한 것이 아니라, 주간전투에서도 “눈과 귀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에 빠져버린다면, 한국군 방어선은 인민군 전방부대들이 불시에 개시할 전면적 선제기습타격으로 무너지게 될 것이다.

셋째, 김종하 교수의 글에 따르면, 인민군 전방부대의 선제기습타격을 “육안감시→무선통신전파→구형 견인포 사격”으로 대응해야 하는 한국군 전방부대의 “포병 사거리는 20km인데 감시능력은 병사들의 맨눈(2km)에 의존해 감시, 타격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쌍안경을 사용하는, 탐지거리가 2km밖에 되지 않는 육안감시에 의존하는 한국군 전방부대가 인민군 전방부대의 선제기습타격 조짐을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한국군 전방부대가 무선통신전파로 교신하는 것은 인민군의 전파방해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므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 한국군은 교신두절로 지휘체계가 마비될 것이다. 또한 신속한 기동력, 장갑방호장비, 갱도진지가 없이 낡은 견인포만 끌고 다니는 한국군 전방부대들은 인민군의 불시타격, 연속타격, 밀집타격, 섬멸타격에 맞서지 못한다.

방사포 3,400문을 보유한 인민군 전방부대 방사포병들이 240mm 대구경 방사포탄 102,000발을 불소나기처럼 퍼붓고, 중장거리포 8,000문을 보유한 인민군 전방부대 곡사포병들이 불시에 대구경 포탄 24,000발을 불소나기처럼 퍼부으면, 낡은 견인포를 보유한 한국군 전방부대들은 전멸할 것으로 보인다. 인민군 전방부대들이 30분 동안 방사포와 중장거리포 126,000발을 발사하면, 세계 전쟁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그러한 불시타격, 연속타격, 밀집타격, 섬멸타격의 화력밀도 속에서 살아남을 군대는 세상에 없다.

넷째, 김종하 교수의 글에 따르면, 한국군은 “작전지역을 신속하게 기동할 수 있는 지상 및 공중수송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북한군 보병사단은 차량화된 기동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하 교수는 인민군이 병력수송차량만 기동수단으로 보유한 것처럼 말했지만, 그것은 인민군의 기동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인민군 보병부대가 병력수송차량을 타고 남진하기에 앞서, 3차원 남진공격이 선행될 것이다. 3차원 남진공격은 지상, 공중, 해상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입체적 공격이다. 지상에서는 인민군 최강부대로 알려진 4개 기계화 군단이 전차 4,600대, 장갑차 3,000대를 몰고 남진할 것이며, 공중에서는 인민군 최강부대로 알려진 항공륙전대가 대형수송기, 병력수송헬기, 병력수송쌍엽기를 타고 고속으로 남하할 것이며, 해상에서는 인민군 최강부대로 알려진 해상륙전대가 공기부양정, 잠수정, 고속상륙함을 타고 고속으로 남하할 것이다.

그런데 변변한 기동수단도 없이 두 다리만으로 뛰어다니는 한국군 전방부대는 그처럼 고속기동화된 인민군 정예부대들의 3차원 남진총공세를 막아내지 못한다.

고속기동화된 인민군 정예부대들의 3차원 남진총공세를 막아낼 유일한 방어력은 미한연합군의 전투기와 공격헬기밖에 없는데, 후방에 배치된 그 전투기와 공격헬기는 이미 개전시각에 인민군 미사일부대들이 퍼붓는 지대지 단거리미사일 1,000발의 밀집타격과 무인타격기 수 백 대의 정밀타격으로 무참히 파괴될 것이며, 미한연합군의 공군기지와 레이더기지는 남진갱도와 잠수정을 타고 남측 각지에 사전침투한 인민군 특수전 병력에 의해 점령될 것이므로, 미한연합군 전투기와 공격헬기는 고속기동화된 인민군 정예부대의 3차원 남진총공세를 막지 못한다.

다섯째, 김종하 교수의 글에 따르면, “(한국군 전방부대는) 적 항공기 공격에 대한 방공능력이 전무하다. 발칸(벌컨포를 뜻함-옮긴이)은 사거리가 짧고, 육안관측 및 수동식 추적으로 (쏘는 무기이므로) 적 항공기의 요격이 거의 불가능하다. 소총으로 적 항공기를 요격해야 되는 한 편의 만화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민군 정예부대들의 남진총공세가 개시되기 직전, 전방지역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미한연합군의 전차와 장갑차를 공대지미사일과 유도폭탄으로 파괴하는 인민군 항공군의 대지공격기(SU-25), 폭격기(IL-28), 공격헬기(MI-24)들을 한국군 전방부대가 소총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종하 교수가 개탄한 것처럼, 한국군 전방부대가 인민군의 대지공격기와 폭격기와 공격헬기를 향해 소총을 쏘는 것은 차마 웃을 수도 없는 전쟁만화로 보인다.

여섯째, 김종하 교수의 글에 따르면, “(한국군은) 감시, 기동, 화력, 방호 등의 제 전장기능이 불균형 상태에 있어 통합전투력 발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애초부터 제 전장기능을 통합하는 전력증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나타난 결과인 것”이라고 하였다. 김종하 교수는 한국군의 감시력, 기동력, 화력, 방호력이 불균형 상태에 있다고 지적하였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불균형 상태가 아니라 매우 열악한 상태라고 해야 하며, 정전 이후 60년 동안 인민군은 선제기습타격능력을 끊임없이 강화해왔지만, 미한연합군은 한반도 작전환경에 적합하지도 않은 미국산 최신무기 몇 종에만 의존하면서 방어능력을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일어난 치명적인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전면 대치한 쌍방의 무장력이 비등하다면,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 위에서 언급한 육군본부 전력부장의 말처럼 민족이 공멸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것처럼, 쌍방의 무장력에서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 민족이 공멸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이다. 3일 전쟁은 결코 민족공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십자 깃발 달고 한반도로 출항할 미국 해군 수송선단

김종하 교수는 위에 인용한 자기의 글에서 “이런 6가지 대비태세 상의 취약점은 현재 전방 한국군 보병사단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는데, 그처럼 패전을 예고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미한연합군이 벗어날 방도가 있을까? 미한연합군 지휘부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방도를 예상하고 있다.

미한연합군 지휘부가 예상하는 첫째 방도는 한국군 전방부대가 궤멸당할 경우 그 전투력을 긴급히 복원하는 것이다. 한국군 전방부대가 인민군의 강력한 선제기습타격을 받아 전투력을 상실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한국군은 전투력복원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3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중부전선 철원군 최전방에 주둔하는 한국군 3사단이 “적의 기습적인 화학탄 공격을 받아 병력의 상당수가 전투력을 상실하게 됐으며 전차와 화기도 대량파괴되는 긴급상황이 발생”한 것을 상정하여 전투력복원훈련을 사상 처음으로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전투력복원훈련은 “경상도 지역의 예비사단 소속 동원병력들이 즉각 기차와 버스에 몸을 싣고” 한국군 3사단 주둔지에 도착하고, “후방에 평소 비축해두었던 M48 전차와 화포 등 각종 무기들도 기차와 수송차량에 실려 전투현장으로 속속 투입”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예비군이 현지에 도착하면 “현역군인들로부터 병기조작법 등을 익힌 뒤에 전투에 투입”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군사정보를 아는 사람의 시야에는 위에 서술한 전투력복원훈련이 현실과 동떨어진 전쟁만화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군 전방부대가 궤멸되는 경우, 후방에 침투한 인민군 특수부대와 격전을 벌여야 하는 예비군을 기차와 버스에 태워 전방으로 보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기 때문이고, 인민군의 공격으로 철도와 도로가 파괴되고 피난민 행렬과 차량으로 교통로마저 막혀버릴 텐데 한국군이 후방에 비축해둔 중화기들을 기차와 수송차량에 실어 전방으로 보낸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기 때문이고, 더욱이 전방에 도착한 예비군이 불소나기 쏟아지는 격전장 한 구석에 몰려가서 병기조작법 등을 배운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1948년도에 미국에서 생산된 M48 전차는 6.25전쟁 중인 1950년 10월에 미국군이 한국군에게 넘겨준 것인데, 지금은 박물관 전시물이지 실전무기는 아니다. <한국일보> 2009년 10월 4일 보도에 따르면, 강원도 양구에 있는 최전방 사단에 배치된 M48 전차는 너무 고물이어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만 되면 그나마 다행”이며, “보통 표준속도(시속 30km)보다 느린 시속 15∼20km 정도로 운행한다”는 것이다.

인민군 전방부대는 러시아군이 1995년부터 생산한 3세대 전차 T-90을 능가하는 세계 최강의 2010년형 폭풍 2호 전차를 몰고 나올 판인데, 그에 맞선 한국군 전방부대는 미국에서 1948년에 생산되어 6.25전쟁 중에 사용되었다가 전쟁박물관에 들어간지 너무 오랜 M48 전차로 막으려 한다니, 전쟁만화라고 하기에는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한국군은 M48 전차를 880대나 운용하고 있다. 물론 한국군은 1987년에 개발하고 2001년에 성능을 향상시킨 K1 전차를 1,500대 운용하고 있지만, 엔진 고장으로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포신이 파열되거나 변속기 결함으로 생산이 중단되기도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한연합군 지휘부가 예상하는 둘째 방도는 미국의 증원군 급파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개전 1일 만에 궤멸상태에 빠진 주한미국군과 한국군 전방부대를 구원하기 위해 미국이 강력한 항모강습단과 대규모 증원병력을 한반도 전선으로 보낼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런 심리적 반응은 예상이라기보다 맹신에 가깝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지 이틀 안에 미국이 항모강습단을 한반도 전선에 급파하려면, 일본 요코스카와 사세보에 전진배치한 7함대 항모강습단 함선들을 긴급출동시켜야 하고, 또한 이틀 안에 증원병력을 한반도 전선에 급파하려면, 일본 오키나와에 전진배치한 제3해병원정군 병력 17,000명과 상륙함선들을 긴급출동시켜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7함대 항모강습단과 제3해병원정군을 한반도 전선에 보내고 싶어도 보내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미국의 항모강습단과 해병원정군이 한반도 전선에 출동할 조짐이 나타나면, 인민군 전략로케트군이 일제히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 하와이, 괌의 군사전략거점들을 초토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7함대 항모강습단과 제3해병원정군의 한반도 전선 급파가 미국 본토, 하와이, 괌의 군사전략거점들을 초토화시킬 멸망의 최후 선택이 되리라는 점을 알 것이므로, 자기들끼리 설왕설래,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포기결정을 내릴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이 신경을 써야 할 문제는 자국인 생존자를 송환하는 것이다. 주한미국군 병력 28,500명 가운데 인민군의 불시타격, 연속타격, 밀집타격, 섬멸타격을 받고서도 운 좋게 살아남은 패잔병 포로 몇 명, 그리고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 고립되었다가 인민군 특수부대에게 생포당한 미국인 체류자 150,000명을 미국으로 송환할 미국 해군 수송선단이 국제적십자 깃발을 달고 3일 전쟁이 끝난 한반도를 향해 출항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3일 만에 끝났다고 해서 미국군 패잔병 포로들과 생포된 미국인 체류자들을 미국 마음대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침전쟁연습과 대북적대정책에 집착하다가 어이없게 참패를 당한 미국은 북이 내미는 항복문서에 조인한 뒤에 비로소 송환절차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 본토, 하와이, 괌의 군사전략거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에 ‘한미동맹’을 포기할 것인데, 그런 ‘한미동맹’을 맹신하는 것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꼴이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이 마지막 순간에 내던질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맹신할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지키자고 약속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믿어야 할 것인데,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의 뿌리가 너무 깊고,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커서 그렇게 전향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전쟁전야는 날로 더 깊어가고 있는지 모른다.(2013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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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로 걸었을까, 실러캔스 7천만년의 비밀

지느러미로 걸었을까, 실러캔스 7천만년의 비밀

 
조홍섭 2013. 04. 26
조회수 10095추천수 1
 

실러캔스 게놈 첫 해독…'살아있는 화석'은 아냐

심해 동굴 서식해 진화 매우 느려…육상동물 조상은 폐어에 더 가까워

 

Alberto Fernandez Fernandez_비엔나자연사박물관_640px-Latimeria_Chalumnae_-_Coelacanth_-_NHMW.jpg » 오스트리아 비엔나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아프리카 실러캔스 표본. 사진=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1938년 12월22일 남아프리카 찰룸나강 하구에서 한 어선의 저인망에 괴상하게 생긴 커다란 물고기가 걸렸다. 드물게 나오는 못 먹는 물고기였다.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이던 이 물고기는 한때 박물관에서 일한 적이 있는 마저리 코트니래티머라는 여성의 눈에 띄면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물고기가 됐다.
 

그는 스케치북에 마치 다리처럼 살집이 있는 8개의 지느러미에 크고 푸른 눈을 지닌 1.5m 크기의 이 물고기를 그려 전문가에게 보냈다. 곧 4억년 전에 나타나 중생대 말에 멸종한 물고기와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7000만년 만에 되살아난 이 고대 물고기가 바로 실러캔스이다.
 

실러캔스는 바다를 떠나 처음으로 땅을 네 발로 딛고 공기를 호흡한 첫 육상동물의 조상으로 여겨졌고, ‘살아있는 화석’이란 별명이 붙었다.
 

Latimeria chalumnae model in the Oxford University Museum of Natural History.jpg » 영국 옥스퍼드대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아프리카 실러캔스 모델.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은행, 폐어, 투구새우, 투구게 등 가까운 친척이 없거나 화석에나 나오는 오랜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생물을 흔히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말을 쓰기를 꺼린다. 진화가 멈춘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정작 이 말은 처음 만든 이는 찰스 다윈이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담수에는… 철갑상어를 비롯해 오리너구리와 폐어 같은 특이한 생물도 산다. … 이런 특이한 형태를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이들은 한정된 공간에 서식해 경쟁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다.”라고 썼다.
 

최근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이 이 수수께끼의 물고기 실러캔스의 게놈(유전체)을 해독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과연 이 물고기는 다른 동물보다 아주 천천히 진화해 왔음이 분명해졌다.
 

Indonesian coelacanth_opencage_768px-Latimeria_menadoensis.jpg »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실러캔스. 아프리카 것과 비슷하지만 종은 다르다. 사진=오픈케이지

 

아프리카 실러캔스와 종은 다르지만 형태는 매우 비슷한 또다른 실러캔스가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됐다. 두 종은 사람과 침팬지의 조상이 진화 계통에서 갈라진 것과 비슷한 시기인 약 600만년 전에 다른 진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실러캔스의 혹스 유전자 차이를 분석했더니 사람과 침팬지 차이보다 11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처럼 실러캔스의 유전자 변화가 적은 이유를 변화가 필요 없는 서식환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물고기는 낮에는 수심 170m의 어두운 바다 밑 동굴 속에 쉬다가 밤에 해저 절벽을 따라 표면에 나와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심해 동굴에서 사는데다 경쟁자가 거의 없어 변화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변화가 느렸을 뿐 진화가 멈췄던 적은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실러캔스는 고대의 원시적 물고기가 아니라 현대적인 물고기란 얘기다.
 

긴꼬리투구새우_국립생물자원관.jpg »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긴꼬리투구새우. 원시적 형태를 그대로 갖췄지만 내부는 크게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림=국립생물자원관

 

화석의 골격을 근거로 말하는 ‘살아있는 화석’이란 규정이 골격 내부 생물체 조직의 진화를 가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국 과학자들은 최근 공룡시대부터 비슷한 형태를 유지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투구새우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알려진 것보다 훨씬 커다란 유전적 변화를 겪었음을 밝혔다.

 

유럽의 한 투구새우는 2억 5000만년 전에 존재했던 종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연구에서 2500만년 이전에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투는 그대로이지만 내용물이 달랐던 것이다.
 

사실 이번 <네이처> 연구의 주요 성과는 다른 데 있다. 실러캔스와 폐어 가운데 누가 육상동물로 진화한 직계인가는 진화학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는데, 이번에 폐어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람을 포함해 네 다리로 땅을 딛는 동물의 조상의 폐어의 조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G.H.Ford_640px-LepidosirenFord.jpg » 지느러미를 발처럼 이용하는 폐어의 모습. 그림=G. H. 포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nature12027-f1_2.jpg » 어류와 네발 육상동물의 계통도. 폐어가 실러캔스보다 육상동물 기원에 가깝다. 그림=<네이처>

 

하지만 폐어의 유전자는 너무나 복잡하고 수가 많아 당분간 실러캔스는 육상동물 진화를 연구하는 주역의 자리를 내놓지 않을 전망이다. 실러캔스는 혈액 공급이 잘되는 커다란 알을 뱃속에서 부화시키는 난태생이다. 이런 형질은 나중에 태반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지금은 심해 동굴에만 살아남았지만 4억년 전 실러캔스의 다른 종은 얕은 웅덩이에서 지느러미를 이용해 걸어다녔을 것이다. 고대의 기억을 오롯이 간직한 이 특이한 물고기는 7000만년을 버텼지만 현재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he African coelacanth genome provides insights into tetrapod evolution
Chris T. Amemiya et.al. Nature Volume: 496, Pages: 311~316
DOI: doi:10.1038/nature12027

Mathers et al. (2013) Multiple global radiations in tadpole shrimps challenge the concept of ‘living fossils’. PeerJ 1:e62 http://dx.doi.org/10.7717/peerj.6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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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위해 나선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100명 넘게 죽었는데 1~2억 벌금? 말이 안 된다"

[인터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위해 나선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13.04.27 10:43l최종 업데이트 13.04.27 10:43l

 

 

"전쟁 내지는 국가 간 분쟁, 교통사고나 비행기가 떨어지는 것 말고 무차별적으로 다수가 피해를 본 사건 중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사례가 있나요? 국내에서 환경사건 또는 일반 사회사건에서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예가 없어요. 그런데도 사건 발생 만 2년이 돼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사건들과 비교를 해야만 얘기가 되는 사건인데도 정부나 사회의 관심은 의외일 정도로 없다는 겁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은 그 어떤 사건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마트에서 생활용품인 가습기살균제를 사서 쓰다가 폐질환에 걸린 피해자들이 386명이나 된다. 그중 120명은 세상을 떠났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세상에 알려진 지 만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 부처들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는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조사도, 대책 마련도 서로 떠밀고 있다. 가해 기업들은 일말의 사과 한 마디 없다.

정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시민단체만이 있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확인된 지난 2011년 여름부터 피해자들과 함께 정부와 가해기업에 피해자 대책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이 센터를 이끌고 있는 최 소장은 전국의 피해자들 집을 일일이 방문해 피해 실태를 조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몸소 깨닫게 됐다.

뒤늦게라도 국회가 가습기살균제 사건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면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국민들의 관심이 되살아나려고 하고 있는 현재,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많은 최 소장을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산모도 죽고, 아이도 죽고... "100명 넘게 사망한 초유의 사건"

1980년대 후반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처럼 피해자가 많이 발생한 환경사건은 처음봤다고 말했다. 석면문제, 페놀사건 등도 굵직굵직한 사건이 있긴 했지만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최 소장의 설명이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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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처음 접한 날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모들의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2011년 4월 임산부들이 갑작스레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사망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침투 등 다양한 추측을 내놨지만, 중환자실에 입원한 산모들은 원인도 치료방법도 찾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이들 사건을 두고 원인 미상의 중증폐질환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정부조사 내용을 봤더니 어떤 가습기살균제 제품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황당했지요. 계속 가습기살균제를 쓰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추가적인 피해자들을 막기 위해 그 다음날 제품명을 공개하라는 성명서를 내보낸 게 센터에서의 첫 활동이었습니다."

성명서가 나간 뒤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로 피해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산모뿐 아니라 영유아들의 피해가 많다는 제보들이 잇따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살균제 제품 20종을 발표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가습기당번, 롯데마트의 와이즐렉, 애경의 가습기메이트, 홈플러스의 가습기청정제 등 알만한 기업 제품이 수두룩했다.

50년 전 독일보다 후진적인 대한민국의 현실

1980년대 후반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한 최 소장도 "이처럼 피해자를 많이 낸 사건은 처음봤다"고 말했다. 그는 "석면문제·페놀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있긴 했지만 정작 피해자가 확인되고 100명 넘게 사망한 사례는 하나도 없다"며 "그나마 1960년 독일에서 불거진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 후반 독일에서 진정제로 만들어진 약으로 임산부의 입덧방지제로 널리 사용됐다. 동물실험 결과 부작용이 없어 안전하다고 판명돼 독일을 비롯한 50여 개 국가에서 많은 임산부들이 이 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이 약으로 인해 1만 여명의 아이들이 사망하거나 손·다리가 짧은 기형아로 태어났다.

최 소장은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계기로 임신 중 특히 초기 3개월은 약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 됐다, 그렇다면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피해대책 부분에 있어선 50여 년 전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만 2년 전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별로 다르지 않다, 2년이 지났는데 조사도 진행 안하는 걸 보면 50여 년 전보다 더 후진적"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사례는 현재(4월 24일 기준) 사망 120건 등 386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보건시민센터로 접수된 359건(사망 112건)에서 최근 추가 피해신고사례까지 포함된 수치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문의하고 신고하는 연락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피해조사는 기약 없이 멈춘 상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발생하고 1년이 지난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진상규명을 위한 폐손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가습기살균제 피해 의심사례로 접수된 사례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폐 CT 검사·폐기능검사 등의 후속 조사를 벌이겠다는 조사위원들의 뜻을 복지부가 거부하고, 조사위원들이 일괄 사퇴하면서 조사 진행이 중단된 것.

'조사위원들이 주장하고 있는 피해자 후속 조사가 없다면 애당초 조사는 무의미하다'는 게 최 소장의 견해다.

"이미 사망하거나 폐이식할 정도의 중증 피해사례에 대한 조사는 어느 정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중증환자의 경우예요. 피해접수 사례의 절반 이상이 경증환자일 텐데 그에 대한 조사가 없습니다. 만약 중증환자의 판단기준으로 경증환자를 판단한다면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릴 우려가 크지 않을까요. 그래서 중증환자들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전체를 조사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단 문제제기가 나왔고, 폐CT검사뿐 아니라 폐기능까지 놓고 전반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피해조사를 담당했던 복지부를 비롯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관련이 있는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 등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하루 빨리 마련되고 지원돼야 할 피해대책이 정부 부처들의 '권한 밖'이라는 한마디에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최 소장은 "정부는 부처 간의 영역과 권한, 이런 얘기를 하는데 솔직히 일반 시민이나 피해자들이 보기에는 웃기는 얘기"라며 "어차피 정부는 하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각 부처마다 고유 영역이 다른데 (부처별로) 걸쳐있는 범부처적인 성격이 한두 가지인가, 그러니까 총리실에서 조정해주고 대통령이 국무회의 때 지시해주는 것 아닌가"라며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이 사건에 있어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부처 간의 소통 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무총리·대통령이 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죽고, 가정이 완전히 망가졌다"

2011년 2월 가습기살균제를 이용하다 발병한 간질성 폐렴으로 목숨을 잃은 3살 아이의 유골함. 이 아이의 부모는 유골함을 납골당으로 보내지 못하고 아직도 집에 보관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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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한 기업은 보상은 고사하고 사과 한 마디로 하지 않고 있다. 최예용 소장이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 한쪽 벽에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가습기살균제 기업 명단이 담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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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대책도, 사과도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피해가족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 소장은 지난해 초 3개월 간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람들과 전국을 누비며 피해자들을 만나왔다. 전화로 피해접수를 받았을 때와 달리 직접 본 피해자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는 "죽은 아이의 유골함을 납골당에 놓지 못하고 집안에 두고 있는 피해가족들을 보면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엄청난 일이구나'를 느꼈다"며 "그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했던 게 이 운동을 끌고 가게 되는 동력이 됐다"고 털어놨다.

피해자들의 울분을 알기에 모두가 무관심했던 시간동안에도 기자회견·1인 시위·피해자 사진전 등을 진행하며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끌고 왔고, 피해자들을 대신해 정부 관계자에게 강경한 태도로 문제 해결을 촉구해올 수 있었다.

"사람이 죽고 가정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제발 조사 좀 해 달라, 잘 좀 부탁한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피해자들의 울분과 한을 불과 10%밖에 대변하지 못했어요. 나머지는 이 속에 그대로 쌓여 있을 뿐입니다."

지금의 현실이 답답한 듯 허탈한 웃음을 짓는 최 소장. 그도, 그와 함께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이끌어 가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 2명의 직원들도 아무런 진전이나 해결이 없는 상황에선 막막하기만 하다. 언론이나 사회의 관심이 없었던 지난해에도 그들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국민들에게 잊혀 지지 않도록 피해자들과 함께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최 소장은 "문제점을 지적하다가도 우리들의 한계를 느낀다. 시민사회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그런 자괴감도 들었다"며 "원래 석면 문제를 집중해서 해왔기에 (석면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돌아가야 하는데,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심정을 전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다른 환경단체, 보건의료 단체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힘을 실어서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의 어려운 상황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말하는 건 한계가 있고, 피해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대책은 마련되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을 피해자들이 다시 한 번 알고 피해 대책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평법?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못 막는다

제2, 제3의 가습기살균제를 막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최 소장은 "수많은 국민들이 쓰는 생활용품 속에 든 화학물질에 의한 대형사고이니 만큼 이번 기회를 계기로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고, 그럼에도 발생한 피해를 위한 구제와 보상·피해대책을 제도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환경부는 '화평법'(화학물질 평가 및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신규화학물질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으로 컨트롤하고, 기존 써왔던 몇만 개의 화학물질을 관리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데이터·유해정보 이런 걸 파악하는 수준일 것입니다.

특별히 유해하다고 판단될 경우 조사하거나 등록을 강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건 거꾸로 된 겁니다. 화학물질이 유해하다고 확인이 되면 그때 가서 확인하겠다고 하는데, 겉으로는 화학물질을 등록하고 관리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지만 실제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부정적이에요."

화평법은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여부를 분석·평가해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등록하도록 강제하는 법으로 한국판 '리치'로 불리고 있다. '리치'는 유럽연합(EU)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다. 만일 기업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위해물질로 판정이 날 경우 기업은 해당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 없으며, 대체물질 사용 등과 같은 대체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화평법은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진 만큼 화평법을 보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과 없는 가해기업에 징벌적 제도 필요"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대통령이 직접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부처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면서 피해자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책임이 바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는 게 최 소장의 지적이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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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인 가해기업에 대한 징벌적 제도도 필요하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회사의 상당수가 영국·일본의 외국기업, 덴마크·아일랜드의 수입기업을 비롯해 PB상품을 판 홈플러스·이마트·GS리테일 등 국내 재벌기업인 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하면서 사과 표명 한 번 안하고 전부 법정 뒤로 숨는 모습을 보면 우리사회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 정말 있기나 한 건지 궁금하다"며 "미국 같은 경우는 사람이 죽지 않아도 커피마시다 화상을 입었다면 몇천만 불을 징벌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비슷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엄하게 책임을 묻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여 놓고 많아야 1~2억의 벌금이요? 말이 안 됩니다. 기업들에 징벌적인 처벌을 할 수 있는 근거조항과 법령이 동시에 확보돼야만 아주 엄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요. 잘못하면 몇천억 벌금에 몇십 년 구속될 수 있도록 해야 기업들이 책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피해자 만나야 한다"

지난 25일 보건복지부 진영 장관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피해가족을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하고 국무총리실 등의 협조를 통해 피해자 조사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피해조사를 다시 실시한다는 등의 확실한 정부 입장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국회도 피해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은 보였지만, 사건 발생 만 2년 동안 피해자 구제 법안은 고작 한 건에 불과하다. 아직도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와 함께 하는 시민단체들이 가야할 길은 첩첩산중이다.

마지막으로 최 소장은 "지난 정부에서 환경부는 작년 환경보건위원회에서 가습기살균제를 환경성질환이 아니라고 했다"며 "새 정부가 들어온 만큼 환경부 장관과의 면담도 진행해서 입장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도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고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해줘야 한다"며 "일정 시간이 지나도 분명한 대책이 안 나온다면 차라리 국민모금을 통해서라도 비용을 만들고 양심적인 학자·전문가들의 민간 차원의 조사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육아전문지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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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개성공단 정상화, 북미대화에 달렸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4/27 13:49
  • 수정일
    2013/04/27 13: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미대화 계기에 남북도 다시 만나야…정부, 성급한 대응"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4-26 오후 8:44:34

 

 

북한이 한국 정부의 개성공단 관련 실무접촉을 거부하면서 한국 정부도 개성공단 잔류 인원 전원 귀환이라는 강경한 대응을 내놨다. 이에 대해 제29, 30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26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본다"며 문제 해결의 열쇠는 조만간 재개될 북미 간 대화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그나마 사람이 있어야 공단 재가동의 모멘텀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데, (전원 철수하면) 오래 간다고 봐야 한다"며 "결국 그렇게 되면 북미관계가 어떻게 풀리느냐를 보고 나서 뒤따라가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북미 간 대화 전망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방중 후 우다웨이(武大偉)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미국을 방문하는 등 최근의 숨가쁜 동아시아 정세를 언급하면서, "우 대표가 미국과의 협의 결과를 들고 북한에 가서 미국의 어프로치(문제 접근 방식)에 대해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정세현 정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하지만 이는 핵 문제 해결을 위주로 한 다자 차원의 접근인 만큼,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정부가 별도의 노력을 해야 함도 정 전 장관은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북미 대화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남북미중) 4자 대화까지 가야 하는데, 개성공단 문제가 꽉 막힌 상황에서 북핵만을 위한 4자 대화를 할 경우 김영삼 정부 당시 북한이 한국을 완전히 무시했던 상황처럼 모양새가 전혀 안 날 것"이라며 "북미 간 움직임이 있으면 우리가 정부의 평화협력 구상, '서울 프로세스' 등을 위해 남북이 다시 만나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정 전 장관은 "북미 간 대화가 돌아가면서 (한국이)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문제를 묶어서 얘기하자고 하면 북한도 거절은 안 할 것"이라며 "김관진 국방장관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는 등의 요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한국의 애를 좀 태우고 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하는 것이다. 물밑 접촉을 통해 잘 달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25일 통일부의 대화 제의나 전원 귀환 조치 등에 대해서는 "성급하다"며 "국정경험이 있는 쪽에서 보면 북한의 퇴로도 막고, 우리의 퇴로도 막으면서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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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 만든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2004년 '5.18민주화운동' 24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광주 국립5.18묘지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군악대와 합창단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소리 높여 불렀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는 보수 우익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참석한 일부 관료들은 못마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 자체가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금지곡을 떠나 노래를 불렀다는 자체만으로 체포될 수 있었던 곡이었기 때문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처음 만들어진 1982년 이후 대학가와 노동,농민 운동, 6.10항쟁 등 대한민국 민주주의 운동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불리던 노래였습니다. 어쩌면 이 노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대변하는 곡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행사장에서 공식 추모곡으로 불린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끝나고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본 행사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으며, 2010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서는 방아타령을 연주하기로 했다가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공식 추모곡 제작에 나선다고 합니다. 이는 앞으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하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을 안다면 절대 그런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과연 이 노래가 퇴출당해야 마땅한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부끄러워 만든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은 소설가 황석영이 개사했고, 소니비엠지뮤직의 김종률씨가 작곡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은 한 마디로 '부끄럽고 죄송해서'였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이 망월동 묘역에 안치되는 장면, 박기순(좌)윤상원(우)

 


1982년 2월 20일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결혼식을 하듯 축의금까지 받는 영혼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신랑은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작전으로 도청에서 사망한 윤상원이고, 신부는 학생신분을 속이고 공장에 취업하며 노동운동가로 활약하며 1978년 광천동 들불야학을 주도했던 박기순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이 열렸던 1982년 광주는 수백 명의 5월 항쟁 관련자들이 여전히 감옥에 수감되고 입 밖으로 항쟁을 얘기도 할 수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1982년 3월 운암동 황석영씨 집에 황석영,김종률,전용호씨가 모였습니다. 이들은 5월 항쟁에도 참여하지 못했고, 영혼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마음을 두 사람의 영혼을 기리는 창작노래극으로나마 달래자는 황석영씨의 제안에 따라 전체 구상과 노랫말은 황석영씨가 작곡은 대학가요제 수상 경력을 가진 김종률씨가,전영호씨는 노래부를 사람을 물색하고 연락하는 일을 맡기로 했습니다.

황석영씨는 당시 출판됐던 백기완씨의 시집에서 시를 골라 노랫말을 만들었는데, 그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창작노래극 넋풀이>

9. 임을 위한 행진곡 (대사 - 윤상원· 박기순 함께)
우리가 죽음을 이기고 합쳐지듯이
남녘땅 북녘땅이 합쳐지소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끝없는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묏 비나리> 시:백기완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띠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중략)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노래 소리 한번 드높지만
다시 폭풍은 몰아쳐 오라를 뿌리치면 다시 엉치를 짓모고
그걸로도 안되면 다시 손톱을 빼고 그걸로도 안되면
그곳까지 언 무를 쑤셔넣고 아.........

(중략)


노래극으로 만들었지만, 공연은 운암동 황석영씨 자택 2층이었고, 장비는 기타와 장구,북,꽹과리,징, 빌려온 녹음기가 전부였습니다. 소수의 사람만 황석영씨 집에 와서 담요로 거실 유치창을 모두 막고 공연 관람과 녹음을 했고, 그렇게 공연겸 녹음이 함께 이루어진 '넋풀이' 창작노래극 테이프가 완성됐습니다.

이후 윤상원,박기순 두 사람을 위한 넋풀이에 들어있던 '임을 위한 행진곡' 테이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몰래 전해졌고, 이들은 숨죽이며 그 노래를 불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애창곡이 됐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떤 투쟁을 위해 시작된 노래가 아닙니다. 가사처럼 동지는 간데없고 산 자가 그것을 추모하며 그 뜻을 이어가겠다는 의도였기에,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에게는 '오월의 노래'로 이보다 적합한 것이 없어 매년 5월이 되면 그들을 기억하며 울면서 불렀습니다.

부끄럽고 그들을 기억하고자 만든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 불꽃처럼 대한민국을 지켰던 사람들'

윤상원,박기순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까요? 빨갱이,5.18광주 사태를 저지른 북한 간첩? 그러나 그들의 삶을 보면 결코 그들은 빨갱이나 간첩이 아닙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박기순은 명문고로 불렸던 전남여고를 졸업 전남대학교 국사학과에 다니다가 1978년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이 '민주교육지표선언'을 하다가 체포되자, 이들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다 무기정학을 당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대학생 신분을 숨기고 광천동 '동신강건사'에 취직하여 공장에 다니면서 들불야학을 주도했습니다.

 

 

▲윤상원,박기순이 합장된 묘지.

 


1978년 12월 26일 야학 학생들과 교실의 난방용 땔감을 구하러 야산을 헤매다 밤 11시에 오빠 집으로 와서 잤던 박기순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습니다.

광주 출신 윤상원은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주택은행에 근무했습니다. 그는 입사한지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광주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하며 노동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때 박기순이 들불야학을 맡아달라 했고, 수차례 거절에도 박기순이 끈질긴 설득을 하자, 결국 들불야학의 교사로 참여하였습니다.

 

▲1980년 들불야학 졸업식


들불야학은 광주 광천동의 빈곤 지역에서 시작됐는데, 박기순과 윤상원은 들불야학을 통해 '사랑이 밑받침된 진정한 인간 교육의 실현'을 추구했습니다.

당시 교육방법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강학과 학생의 대화를 통한 문제 제기형 교육이었습니다. 교육 과정은 중학과정에 중심을 두었으며, 이들의 수업 방법과 운영 방식은 민주주의적이면서 굉장히 선진화된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야학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왜 지식인들이 야학을 주도했느냐면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부흥하고 일본에서 독립되려면 문맹을 타파하고 그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고, 이를 위해서 야학운동이 점차 늘어난 것입니다.

 

 

▲마산노동야학을 주도했던 명도석의 생가터,마산노동야학의 자금처였던 옥기환(우)과 그의 사업체였던 원동무역주식회사(좌)

 


대한민국 야학의 시작은 1906년 함흥의 농촌계몽운동 일환으로 설립된 농민야학 '보성야학'과 1907년 경남 마산에서 설립된 '마산노동야학'이 있습니다. '마산노동야학'은 마산 유지였던 옥기환,구성전이 돈을 내고 명도석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한 야학입니다.

마산노동야학의 학생은 노동자,농민,빈민의 자제로 가장 중요한 수업이 바로 조선어였습니다. 또한, 수업료도 받지 않고 이들을 가르쳤고, 이후 마산 경남 지역의 3.1운동을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의 배경이 됐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의 주인공이었던 윤상원,박기순이 무엇을 하려고 했던 인물입니까?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인물로 키우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과거 올바른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재산과 능력을 아낌없이 내놓고 우리 민족을 살리고자 애썼고,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1978년 12월 27일 박기순이 죽자 윤상원은 일기장에 ‘영원한 노동자의 벗 기순이가 죽던 날’이라고 기록하며 슬퍼했습니다.

불꽃처럼 살다간 누이야
왜 말없이 눈을 감았는가?…훨
훨 타는 그 불꽃 속에
기순의 넋은 한 송이 꽃이 되어
우리의 가슴 속에서 피어난다


'죽은 자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노래를 돌려달라'

임을 위한 행진곡이 공식 행사에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기득권 세력으로 독재 권력과 영합하여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일신의 영달을 꾀했던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독재권력을 비판하며 불렸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목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약간은 창피하기도 할 것입니다. 많은 국민이 피 흘리는 자리마다 그들은 없었고 민족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에 비해 그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삶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던 김종률씨는 "저는 총을 들고 나서서 싸우는 용감한 투사가 되지 못했어요. 여느 사람들처럼 데모하고 저녁에는 무서워 숨어다니는 대학생일 뿐이었죠. 하지만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본 저로서는 아픔이 무척 컸습니다'면서1980년 5월을 기억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야학을 주도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교사와 학생들은 안 무서웠겠습니까? 일제에 체포 투옥되던 그들도 인간이기에 무서웠고 두려웠습니다. 전두환이 정권을 무력으로 쟁취하고 국민을 억압하던 시점, 민주주의를 외쳤던 자들도 모두 무섭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무엇이든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작은 노력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5.18묘역에서 파안대소를 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추모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바로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과 그 유족, 그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자신들의 입맛대로 곡을 바꾸려고 합니다.

아직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보수는 5.18민주화운동을 반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들은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의 정권이 민주주의에 위배된다면 어느때라도 국민이 일어서 반대할 수 있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4.19혁명'
'부마항쟁'
'5월항쟁'
'6월항쟁'

이 모든 사건은 국민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3.15부정선거'
'5.16군사 쿠데타'
'12.12사태'

이 모든 사건은 개인이 나라를 독차지하기 위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결코 대통령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국민이 피 흘리며, 아파하며,두려워하며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들이 앞선 자를 따를 수 있는 기억만큼은 돌려줘야 합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압니다. 부끄러운 역사를 우리가 기억할 때만이 대한민국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권력자들이 무고한 국민을 죽였던 역사를 숨기기 위해 노래까지 바꾸려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합니까? 비록 두렵고 힘들어도 언젠가는 새날이 오리라 믿고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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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류는 미국 멸망 운명 똑똑히 볼 것”

 

북, “인류는 미국 멸망 운명 똑똑히 볼 것”
 
“핵무기는 가장 위력한 전쟁억제력” 강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4/27 [11:2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북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은 핵공격으로 북을 멸망 시키려 전략으로 판단하고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좌절 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
조선이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어떻게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믿음직하게 수호 하는가를,반공화국침략전쟁을 꾀하는 미국과 그 하수인들이 어떻게 멸망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단언해 나섰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핵무기 출현과 2차 재전후 세계 전쟁사를 언급하고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전쟁이 100여차례 있었지만 핵무기보유국들은 대국이든 중소국가이든 아직까지 군사적 침략을 당한 적이 없었다.”며 핵이 전쟁억제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냉전 시기 구소련과 미국, 중국과의 핵에 의한 대결의 역학 구도를 소개하고 “제국국주의자들의 침략의 희생물이 된 발칸반도나 중동지역 나라들의 비극은 지난 시기 대국을 믿고 국방력강화에 힘을 넣지 않았거나 미국의 압력과 회유에 못 이겨 이미 있던 전쟁억제력마저 포기한 나라들”이라며 핵보유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이신문은 “현실은 핵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침략세력과는 오직 핵으로 맞서 싸워야만 자기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지구상에 핵무기가 출현하여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핵 대 핵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핵전쟁의 커다란 파괴력, 살상력과 떼여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신문은 미국의 핵전쟁을 무고한 시민들까지 희생시킨 특대형 범죄라면서 “미국대통령 루즈벨트의 보좌관이었던 윌리암 레기까지도 ‘원자탄을 처음으로 사용한 우리는 중세기 야만인들의 도덕수준에 이르렀다.’고 실토했다. 미제의 야만적인 원자탄투하의 후과는 아직도 남아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지금 미국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떨군 핵탄에 비할 바 없이 폭발력이 강한 핵무기들을 수천개나 가지고 있다.”며 “만약 미국에 의해 핵전쟁이 현실화된다고 생각해보라. 아마도 이 행성이 통째로 제2의 히로시마로 되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의 초보적인 예측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유럽을 원래대로 복구하는데 30~50년이 필요했다면 세번째 대전이나 세계열핵전쟁이 폭발하는 경우에는 세계가 100년 아니면 200년간의 원시상태를 겪고서야 회복에로의 궤도를 타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결코 과장된 분석이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미국은 핵무기로 인류를 위협하여 세계를 한손아귀에 틀어쥐려는 야심을 언제 한번 버려본 적이 없었다.”며 “특히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면서 더욱더 핵개발의 길로 줄달음치는 한편 비핵국가들에 대한 핵선제 공격론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제가 핵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고있는 조건에서 외교적방법이나 호소로써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 사회주의제도를 고수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우리의 핵무기는 철두철미 자위적인 전쟁억제력”이라고 밝혀 조선의 핵무기 보유가 전쟁 억지력을 가지는 방어용임을 거듭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우리 공화국의 핵보유는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 속에서 자기의 최고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선택이며 자위권행사”라며 “미제의 핵 공갈에는 무자비한 핵공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전면 전쟁으로! 바로 이것이 우리의 단호한 대답이며 억척불변의 입장”이라고 피력했다..

신문은 “핵무기위력이 강할수록 침략을 억제하는 힘은 크다. 지금 미국이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우리의 핵 억제력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은 우연하지 않다.”며 “우리 공화국은 이미 당당한 핵보유국으로 솟아올랐으며 미국이 우리를 원자탄으로 위협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고 자신했다.

특히 “이제 인류는 우리의 자위적인 핵 억제력이 조선반도에서 어떻게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믿음직하게 수호하는가를, 반공화국 침략전쟁을 꾀하는 미국과 그 하수인들이 어떻게 멸망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조선은 한미 당국의 대화제의를 교활한 술책이라며 대화를 위한 조건으로 핵무기 철수와 핵무력 사용중지를 세계에 약속하라고 역 제의한 상태로 조미대결전이 어떤 결말을 낼지 궁금하지 않을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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