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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임자들 뒷짐만... 국민을 바보로 알고 있다"

 

 

"세월호 책임자들, 국민 바보로 알아" 
[인터뷰] 가수 이은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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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이은미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단식농성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과 함께 보내는 국민 한가위'에 참석해 유가족과 시민들을 응원하며 '녹턴'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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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은미씨가 8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과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이은미씨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 목걸이를 목에 걸었고, 노란 바람개비도 들었다. 이은미씨가 부른 위로의 노래에, 400여 명의 유가족과 시민들은 먹먹함을 느꼈다. 이은미씨는 공연 직후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가장 힘든 무대였다"고 토로했다. 

이은미씨는 무대에서 첫 노래를 부르기 전, "공연 요청이 왔을 때 망설였다"고 밝혔다. 그는 "어떤 얼굴로 어떤 얘기와 어떤 음악을 함께 나눠야 할지 걱정이 컸다"면서 "하지만 (유가족들이) 제 음악을 통해 잠시라도 평온과 위안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용기를 냈다, 고통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을 잠깐 내려놓아 달라"고 전했다. 

이은미씨는 이날 1시간 동안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녹턴>,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서른 즈음에>, <애인 있어요> 등 8곡을 불렀다. 노래와 노래 사이에 유가족들에게 "지치지 말고 포기 하지 말고, 끝까지 견뎌봅시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씨는 기자에게 "그 어떤 노래로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슬픔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라면서 "잠깐이나마, 1초라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노래했다, 제 노래에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착잡했다"고 전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는 뒷짐 지고 바라만 보고 있다, 또한 국민들을 바보로 알고 있다, 주입하면 (국민들이) 주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다, 멀쩡히 배가 뒤집히는데 왜 보고 있으면서 아무도 구해내지 못했느냐"고 지적했다. 

이씨는 "좀 더 행복한 나라, 살 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저도 열심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실종자 가족들을 향해서 "하루 빨리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담아 기도하겠다"면서 "여러분의 아픈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신 : 8일 오후 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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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하는 유민 아빠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단식농성장을 찾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함께 세월호 유가족을 응원하며 함께 동조단식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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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민 아빠 사랑해요"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단식농성장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을 응원하며 함께 동조단식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시민들이 김 씨를 향해 손으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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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농성장에 띄워진 진실의 배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단식농성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과 함께 보내는 국민 한가위'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진실의 배' 띄우기를 하고 있다. 이들 뒤로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이날 이들은 배 모양의 풍선에 각자의 소망과 노란 리본,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특별법은 모두를 위한 법입니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매달아 하늘로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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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8일 오후 다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섰다. 단식 40일째이던 지난달 22일 건강악화로 병원에 후송된 지 18일만이다. 

현재 경기도 안산시의 한 병원에서 지내는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련한 '국민 한가위 상 차리기' 행사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야 했지만, 김씨의 표정은 밝았다. 45일간 단식을 했기 때문에 평소의 몸으로 돌아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는 행사 전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을 비롯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김씨는 '국민 한가위 상 차리기' 행사를 위해 탁자 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올려놓은 차림상을 본 뒤, 울컥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이크를 잡은 김씨는 "오늘 유민이의 차례상을 처음 본다, 오늘 오전에는 병원에 있어서 분향소에 마련된 차례상을 보지 못했다"면서 "씁쓸하다, 우리 아이는 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손으로 유민이에게 밤과 곶감을 집어줬는데…"라면서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김씨는 그러면서도 "오늘 이 자리에서만 슬퍼하고, 내일부터 웃으면서 먹으면서 싸웁시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이날 잡채와 전이 담긴 400인분의 도시락을 손수 마련했고, 유가족과 시민들은 도시락을 나눠먹으면서 희생된 아이들을 기렸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이 행사를 위해 이날 하루 동조단식단을 모집하지 않았다. 

김영오씨 "일베 회원들에게 절대 화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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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민 아빠 손잡은 박영선 원내대표 "특별법제정 약속지킬것"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단식농성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과 함께 보내는 국민 한가위-상 차리기'에 참석하자,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김 씨를 찾아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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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완 소장과 인사 나누는 유민 아빠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단식농성장을 찾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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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오씨는 시민들에게 여러 차례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솔직히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 광화문(광장)에 불(열기)이 식어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와주실지…, 썰렁할까봐 겁이 났다"면서 "하지만 이렇게 많이 와주실지 몰랐다, 너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그는 "제가 병원에 갈 때 '이제 싸움이 시작이다'라고 했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기약 없는 싸움"이라면서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한 군데로 모아주셔서, 지금 광화문광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힘을 더 크게 외쳐주시면 된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강조했다. 

김씨는 지난 6일 유가족을 조롱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먹을거리 행사를 연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을 비판했다. 이날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광화문광장 앞에서 '국민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한다, 북한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저분들한테 절대 화내거나 시비 걸지 말라"면서 "팽목항에서 사복 경찰이 유가족 사이에 끼어들어 분란을 많이 일으켰다, 정부가 원하는 게 그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 여러분이 유가족들에게 힘을 주시면, 저는 일베 회원들에게 욕먹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도 상관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사고가 나면, 정부 실무자들만 처벌해왔다"면서 "저희 요구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되면 정부 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다,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저희가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최성호군의 아버지 최경덕씨가 쓴 편지를 대신 읽으면서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여당과 야당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 합의했다, 특별법 제정을 해야 한다면서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던 대통령은 이제 자신이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서 "(보수 세력은) 보상, 시체 장사, 의사자라는 단어로 자식 잃은 부모의 가슴을 후벼 파더니, 이젠 경제 살리기를 저희가 가로막고 있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정혜숙씨는 이어 "가족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에 조사권·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가족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법을 만들면 그 법에 의해 진행될 진상조사 역시 가족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을 게 뻔하지 않느냐"면서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진실이 밝혀지는 게 어려워지길 바라는 세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아직 진실을 알리는 언론이 있고, 진실을 밝히려는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면서 "당신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함께 외쳐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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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민 아빠' 안아주는 문규현 신부 문규현 신부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단식농성장에서 추석 명절을 유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농성장을 찾은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안아주며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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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8일 오전 11시 33분] 
아이들 영정사진 앞 피자와 햄버거 "작년 추석엔 같이 송편 빚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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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합동 기림상 차리는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생전에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상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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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으로 기림상 올리는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가족 합동 기림상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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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아이스크림, 배, 사과….

추석 아침, 엄마는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아들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하나씩 놓았다. 엄마의 눈시울은 금세 붉어졌다. 영정 사진 속 아들은 엄마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권순범군의 어머니 최지영(51)씨는 "사고 이후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만, 오늘따라 아들이 그립고, 가슴이 아프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최씨는 지난달 22일부터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6일 추석 연휴 첫날 아침을 맞이한 것도 길거리에서였다. 추석에는 아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7일 안산으로 내려와, 권순범군이 좋아했던 과자를 샀다.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과자를 내려놓았지만, 최씨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는 "아들에게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게 됐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추석이 이렇게 슬프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영미(47)씨는 아들 이재욱군의 영정 사진 앞에 갈비찜과 음료수를 놓았다. 홍씨는 "같이 송편을 빚고 이야기를 나누던 지난 추석이 생각난다, 우리 아들은 참 착한 아들이었다"고 흐느꼈다. 그는 "이번 추석은 이렇게 보내더라도, 다음 명절 때는 어떻게 보내게 될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작년 추석 생각하며 눈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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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나도 가슴 아픈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가족 합동 기림상을 올린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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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가족 합동 기림상을 차려놓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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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화하는 유가족들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가족 합동 기림상을 차려놓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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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 유가족 3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아이들을 기리기 위해 가족합동 기림상을 차렸다. 유가족들은 제단 앞에 아이들이 생전에 좋아했던 피자, 햄버거와 같은 음식을 가져다 놓았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지 146일째인 이날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한 어머니는 실신해 들것에 실려나기도 했다. 

김빛나라양의 동생 김하슬린양이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자, 분향소는 눈물바다가 됐다. 김양은 "언니 오빠들 없이 첫 추석을 맞이하게 된 우리 가족들은 좋아하는 음식을 가져와 분향소에 모였다"면서 "엄마 아빠들은 언니 오빠들과 함께한 작년 추석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고 전했다.

김양은 울먹이면서 "모두들 가족 친지와 정 나누며 지내야 하는 명절인데, 눈물만 흐르고 마음이 아프다, 명절이라 그런지 요즘따라 언니가 더 보고 싶다"면서 "우리 함께 자며 장난도 치고 서로 마음속 비밀 얘기도 하고 커서 같이 해보고 싶은 일도 얘기했는데 그게 꿈만 같다, 시간이 지나면 보고 싶은 마음이 덜할 줄 알았는데, 더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들은) 언니오빠들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146일을 보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저는 부모님께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더 마음이 무겁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잃을까 봐 무섭기도 하다, 이 세상에 혼자 남는 것은 더 무섭고 두렵다"고 말했다. "짧은 삶이었지만, 우리 가족이 돼 좋았고 행복했다, 언니 오빠들 보고 싶고 영원히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수빈 엄마' 박순미씨가 실종자 가족들에게 띄운 편지도 눈물샘을 자극했다. 박씨는 실종자들을 향해 "씩씩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서 제대로 된 이별을 하기를 원하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바다를 박차고 나오지 못합니까"라면서 "먼저 나온 희생자들이 기다린다, 비록 영혼이지만 아름다운 만남으로 함께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저희 안산 단원고 유가족은 여러분이 모두 돌아오면 해야 할 일이 많다, 생과 사의 이별식을 국민들과 함께 준비하고 눈물로, 그리움으로, 아픔과 희망으로 준비하려 한다"면서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밝히고 영원히 잊지 않도록 기억할 것이다, 저희에게 잠깐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명절이 끝나면 세월호 특별법 처리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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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이 슬픈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가족 합동 기림상을 올린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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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아이들아 잊지 않을께"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이 가족 합동 기림상을 올린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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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강조했다.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국회 농성 59일, 청운동 농성 18일, 분향소가 차려진 지 133일"이라면서 "정부와 국회가 왜 세월호 유가족을 슬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제발 명절이 끝나면 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을 처리해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행사 직후 아이들이 묻혀 있는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오후 4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다시 모여 '국민 한가위상 차리기' 행사를 연다. 이 자리에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참석한다. 한편, 남경필 경기도지사, 안산을 지역구로 둔 전해철·부좌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날 오전 분향소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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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날 오열로 쓰러진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가족 합동 기림상을 차려놓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던 중 한 유가족이 실신해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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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주저 앉아 오열하는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146일째이며 추석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가족 합동 기림상을 올린 뒤 세월호 관련 영상물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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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핵시대에 ‘인계철선’ 붙들고 있는 미국

제3핵시대에 ‘인계철선’ 붙들고 있는 미국
 
한호석의 개벽예감 <129>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9/08 [22:36]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지금 우리는 전술핵탄과 정밀타격수단이 상호결합한 제3핵시대에 살고 있다. 정밀타격미사일에 장착되는 전술핵탄은 실전에서 얼마든지 사용되는 무기다. 위의 사진은 미국군이 전술핵탄을 장착한 핵포탄을 시험발사하는 장면이다. 지난 60여 년 동안 미국은 그런 전술핵탄을 남측에 무더기로 배치해놓고 북을 끊임없이 위협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북이 그런 전술핵탄을 초정밀타격수단에 장착하고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북미핵대결에서 제3핵시대의 긴박성이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며,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은 제3핵시대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부에서 살아가고 있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북에게 뒤통수 얻어맞은 미국

 

오늘 우리는 제3핵시대(third nuclear age)에 살고 있다. 현 시대를 제2핵시대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런 견해는 핵강국들이 핵무기 개발기술을 발전시켜온 시대적 전환계기를 잘못 읽은 것이다. 


제1핵시대는 미국이 1945년의 핵독점체제를 유지했던 시대였다. 미국의 핵독점이 불과 4년 만에 무너지면서 도래한 제2핵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전략핵탄을 서로 겨누며 대치상태를 이어간 냉전기였다. 제2핵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대기권 핵실험을 경쟁적으로 실시하면서 전략핵탄을 증산, 배비하였고, 그런 증산과 배비가 몰고 온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에 대한 공포가 미국과 소련의 전략핵탄사용을 억제하였던, 그리하여 이른바 ‘핵공포의 균형’이 유지되었던 그런 시대였다.


그에 비하여 제3핵시대는 실전에서 사용하는, 폭발력 1킬로톤(폭약 1,000t) 안팎의 전술핵탄이 개발되고, 적의 특정시설을 선별적으로 타격할 정밀타격수단이 등장하고, 마침내 그 두 부류의 첨단무기들이 상호결합함으로써 핵교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현 시대다. <사진 1>

 

제3핵시대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 핵강국들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이외에 신흥핵강국과 핵보유국들이 세계무대에 연이어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흥핵강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핵보유국들은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이다.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는 날까지 제3핵시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3핵시대의 핵강국은 메가톤급 전략핵탄만이 아니라 1킬로톤 안팎의 소형화, 경량화된 전술핵탄까지 보유하고 단거리, 준중거리, 중거리, 장거리를 포괄하는 범위를 겨눈 정밀타격망을 구축한 나라들이다. 기존 5대 핵강국들과 신흥핵강국인 북이 바로 그런 나라들이다.


핵탄제조기술과 미사일제작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제3핵시대의 전쟁양상은 이전 시대의 전쟁양상과 아주 다르게 변모되었다. 전술핵탄을 장착한 정밀타격수단으로 적의 ‘급소’를 선별적, 선제적, 기습적으로 타격하여 전쟁을 급속히 종결짓는 단기속결전 양상으로 변모된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도발한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제3핵시대에 예상되는 전쟁양상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고전적인 전쟁양상으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그 두 전쟁에 각종 첨단무기를 동원하였노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미국이 보여준 전법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낡은 전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낡은 전법을 썼으니, 미국은 전쟁비용을 하루 평균 750만 달러씩 계속 퍼부었으면서도 그 두 전쟁의 수렁에 두 다리가 모두 빠져 허우적거렸던 것이다.


미국이 시험발사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미국 내 반대파들의 저항까지 받으면서도 미사일방어체계를 확장, 구축하려고 고집을 부리는 까닭은, 전술핵탄을 장착한 적의 정밀타격미사일을 막지 못하면 자기의 국가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심각한 위기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제3핵시대의 전쟁에 대처할만한 군사준비태세를 아직 갖추지 못하였다. 미국은 아마도 그런 군사준비태세를 영구히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지금 미국이 적의 전술핵탄공격을 막아내려는 유일한 대비책으로 구축 중인 미사일방어체계라는 것도 사실은 실전에서 검증되지 못한, 부실한 무력수단이기 때문이다. 설령 미국이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을 완료하더라도 그 무력수단이 과연 제3핵시대의 변모된 전쟁양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는 미국 자신도 모른다. 그들에게 미사일방어체계는 실전용 무력수단이라기보다는 한낱 심리적 위안수단일 뿐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 <사진 2> 이 사진은 2014년 6월 2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전략군 전술로케트발사훈련에서 정밀타격미사일이 화염을 뿜으며 외기권을 향해 솟구쳐오르는 장면이다. 전시에 이 정밀타격미사일에는 전술핵탄이 장착될 것이다. 북은 그 날 발사훈련을 통해 주체적인 로케트사격방법이 완성되게 되었다고 밝혔는데, 그것은 전술핵탄을 장착한 정밀타격미사일을 발사할 준비를 완료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제3핵시대의 진정한 군사강국은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전술핵탄을 가지고, 단거리-준중거리-중거리-장거리를 포괄하는 4중 정밀타격망을 구축한 나라인데, 북이 그런 능력을 두루 갖추었다. 이를테면, 북은 이미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핵탄을 가졌다고 공언한 바 있고, 기존 정밀미사일보다 한 급 높은 초정밀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전술핵탄을 발사하는 4중 초정밀타격망 구축에 성공하였음을 입증하였다. <사진 2>


북이 보유한 전술핵탄과 북이 구축한 4중 정밀타격망은 기존 핵강국들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가 세계 및 역내 군사정세를 경쟁적으로 주도하던 시대가 바야흐로 막을 내리고, 신흥핵강국으로 부상한 북이 미국을 향한 ‘최후의 핵타격’을 앞두고 있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새로운 군사정세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군사정세의 급격한 전환은 북이 세계전쟁사에서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거대한 아메리카제국을 굴복시키려는 ‘최후의 핵타격’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한다.


그래서 미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북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해보려고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며 애간장을 태웠지만, 북은 5대 핵강국들만 배타적으로 보유하였다는 전술핵탄과 4중 초정밀타격망을 마침내 손에 움켜쥠으로써 북의 핵무기 개발을 극력 저지하려던 미국의 뒤통수를 후려친 격이 되었다.

 

▲ <사진 3> 이 사진은 미국 육군이 운용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의 중요한 구성부분인 요격미사일 8발을 4축8륜 발사차량에 실어 이동배치하는 장면이다. 미국 육군은 미국 텍사스주, 하와이, 괌에 배치한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을 주한미국군기지에도 배치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미국 육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은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에 탑재된 요격미사일과 함께 북의 준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7호를 요격하려는 무력수단이다. 그러나 그런 요격시도는 북의 전법 앞에서 무의미해질 것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은 화성-7호 막지 못한다

 

북의 전술핵탄과 4중 초정밀타격망을 두려워하는 상대는 당연히 미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북의 전술핵탄과 4중 초정밀타격망이 겨냥한 ‘최후의 핵타격 대상’이 다름 아닌 미국군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기들이 그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면서 내색을 하지 않지만, 최근에 미국이 서두르는 긴급행동들에서 그들에게 파고든 두려움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북의 전술핵탄과 4중 초정밀타격망에 대한 미국의 은폐된 두려움은 두 가지 긴급행동에서 노출되었는데, 그것은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을 전진배치하려는 것과 한미연합사단을 창설하려는 것을 말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을 전진배치하려는 미국의 긴급행동부터 먼저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지금 미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eater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을 한반도에 전진배치하려고 서두르는 중이다. 원래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은 준중거리미사일(MRBM)을 외기권에서 직격, 파괴한다는 탄도미사일요격체계다. 미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을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포트 블리스(Fort Bliss) 육군기지에 가장 먼저 배치하였고, 곧이어 하와이와 괌에도 배치하였는데, 이제는 주한미국군기지에도 배치하려는 것이다. <사진 3>


지금 미국이 세계적 범위에서 구축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계는 4중 체계다. 미국은 북의 단거리미사일(SRBM)을 대기권 상층에서, 그리고 북의 준중거리미사일(MRBM), 중거리미사일(IR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각각 외기권에서 쏘아 맞춘다는 4중 미사일방어망 구축에 국력을 기울여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은 준중거리미사일을 쏘아 맞춘다는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을 주한미국군기지에 추가로 배치하려는 것이다.

 

원래 북이 발사한 준중거리미사일을 쏘아 맞추는 요격임무는 전시에 동해에 출동할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의 이지스구축함이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미국 육군도 거기에 가세하여 주한미국군기지에 배치하는 자기들의 고고도미사일방어망으로 북이 발사한 준중거리미사일을 쏘아 맞춰보겠다는 것이다.


준중거리미사일은 사거리가 1,000~3,000km에 이르는 미사일이다. 북에서 괌까지 탄도미사일의 비행거리는 3,400km이므로, 미국 육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은 괌에 있는 미국군기지들이 아니라 일본열도에 산재하는 미국군기지들을 향해 날아갈 북의 준중거리미사일을 요격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전시에 북이 주일미국군기지들을 향해 발사할, 5축10륜 자행발사대에 탑재된 준중거리미사일 화성-7호를 고고도미사일방어망으로 쏘아 맞추겠다는 것이다.


전시에 동해에 출동할 항모타격단의 이지스구축함에서 미국 해군의 요격미사일 SM-31A를 쏘는 것으로는 도저히 안심할 수 없게 된 미국은 주한미국군기지에 배치한 미국 육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망에서도 요격미사일을 추가로 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북은 미국의 그런 요격준비태세를 헛수고로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북은 전시에 우선 주한미국군기지들부터 불시기동-기습타격으로 파괴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고, 그와 동시에 동해로 접근하는 미국 해군 항모타격단부터 불시기동-기습타격으로 격침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이 배치될 주한미국군기지들이 빠짐없이 북의 선별-선제-집중타격대상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다. 북에서 말하는 선별-선제-집중타격전법은 군사분계선 전반에 걸친 총공격으로 적을 후퇴시켰던 6.25전쟁 시기의 고전적인 전법과는 전혀 다르게, 전후방에 있는 적의 ‘급소’를 먼저 선별적, 선제적 집중타격으로 강타하고, 적의 방어선을 순식간에 돌파한 주력부대가 ‘급소’를 맞고 비틀거리는 적을 포위망에 가두어 놓고 전후방에서 동시협공하여 짧은 시간에 섬멸한다는 새로운 전법이다. 이 새로운 전법에서는 전선에서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있을 리 없고, 오직 선별적, 선제적 집중타격과 돌파공격, 포위공격만 있을 뿐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과 특수군, 포병부대와 전차부대, 항공군부대와 해군전투함대와 잠수함대가 바로 그런 전법을 지속적으로 연마해온 것이다.


전시에 북이 동해에 접근할 항모타격단을 불시기동-기습타격방식으로 공격할 것으로 예상하는 근거는, 지난 7월 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륙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의 섬상륙전투훈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투브>에 실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인민군대사업을 현지에서 지도 주체103(2014) 7’이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보면, 지난 7월 4일에 진행된 섬상륙전투훈련의 중심내용은 집중타격목표로 정해진 어느 작은 무인도를 향해 육해공군 협동작전으로 강력한 화력타격을 가하는 것인데, 그 작전양상은 항모타격단을 입체적으로 공격하는 연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채 불시기동-기습타격을 개시하는 순간, 동해에 접근하는 항모타격단의 이지스구축함이나 주한미국군기지에 구축된 고고도미사일방어망은 요격미사일 한 발도 쏘지 못한 채 전술핵탄의 거대한 화염과 폭음 속에 사라질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그런 전술핵탄공격은 공상이 아니다. 미국신안보센터(CNAS)가 지난 3월 17일에 펴낸 ‘대북억제가 실패한다면: 한반도 분쟁 재검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남측은 북측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고, 미국의 확장억제가 북의 핵공격을 억제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북은 소규모 핵공격이라면 미국이 핵보복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계산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보고서에서 지적한 북의 소규모 핵공격은 전술핵탄 발사를 뜻한다. 또한 그 보고서에 지적한 대로, 미국이 북의 전술핵공격을 받고서도 핵보복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미국이 자국 본토에 대한 북의 전략핵공격과 그에 따른 미국의 멸망이 두려워 북에게 감히 핵보복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전술핵탄으로 항모타격단과 주한미국군기지를 공격할 것으로 보는 예견은 결코 섣부른 공상이 아니다.

 

▲ <사진 4> 이 사진은 기록영화 '백두산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 나오는 장면이다. 대구경방사포들이 일제히 사격한 방사포탄들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가고 있다. 최전방에 주둔하는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은 대구경방사포, 대구경장거리포, 로켓무기, 전술미사일 등 10,000여 발을 한꺼번에 쏠 일제사격준비를 갖추고 있다. 초탄 10,000여 발이 형성한 거대한 불폭풍 속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발사한 초정밀미사일들이 섞여 날아가게 된다. 미국군이 무슨 수로 그 거대한 불폭풍을 막을 수 있겠는가.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주목하는 것은, 전시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포병부대들과 함께 협동작전을 펼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조선인민군 포병부대들이 불시기동-기습타격방식으로 쏜 대구경방사포, 대구경장거리포, 로켓무기, 전술미사일 등 초탄 10,000여 발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는 불폭풍 속에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쏜, 전술핵탄을 장착한 초정밀미사일들도 섞여 있을 텐데, 미국군이 무슨 수로 그 거대한 불폭풍을 막을 수 있을까. <사진 4> 조선인민군 전략군과 포병부대들이 협동작전으로 펼칠 엄청난 화력타격의 불폭풍 앞에서 미국군의 미사일방어체계는 허망하게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 <사진 5> 이 사진은 2011년 6월 8일 서울 북방 45km 지점에 있는 파주 인근의 사격훈련장에서 대북공격연습을 실시하는 주한미국군 제2사단 기갑부대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M2A2 전투차량을 타고 돌격준비를 갖춘 미국군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 미국은 한국군 1개 기갑여단을 주한미국군 제2사단 휘하에 끌어들여 한미연합사단을 창설하려고 준비하는 중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궤멸위험 무릅쓰고 ‘인계철선’에 집착하는 미국 

 

미국 군부는 자기의 한반도 군사전략을 거론할 때 ‘인계철선’이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인계철선(tripwire)’이란 미국군을 남측에 무기한 배치해두었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이 자동적으로 한반도 전쟁에 개입하게 만드는 기능을 나타내는 비유어다.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주한미국군은 미국을 전면전으로 끌어당기는 유력한 ‘인계철선’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그 ‘인계철선’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 군부에 반환하는 것과 함께 한미연합사령부를 해체하겠노라고 공약하였으면서도, 그런 공약은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22년 전에 없어진 한미연합야전부대를 다시 창설하려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런 병적인 집착의 일면이다.


2014년 9월 4일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군은 주한미국군 제2사단과 한국군 1개 기갑여단을 단일지휘체계로 통합시킨 연합사단을 “2015년 초까지” 창설하기로 한국군과 합의하였다고 한다. 그 연합사단 지휘권은 미국군 육군 소장이 행사하게 된다. 평시에 한미연합사단은 미국군 소장이 사단장을 맡고 한국군 준장이 부사단장을 맡는 식으로 구성된 한미연합참모부로 운영되다가, 전시에는 한국군 기갑여단이 주한미국군 제2사단에 배속되게 된다. 이것은 주한미국군 제2사단이 한국군 기갑여단을 하위에 끌어들여 종속시키는 것이니, 동서고금 그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군사종속이다. <사진 5>


한국군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뉴스1> 2014년 9월 4일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에서 추진하기 아주 오래 전부터 미8군과 (한국) 육군 간(에) 연합사단 창설을 계속 논의해온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고, 특히 “이번 연합사단 편성은 미국측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보도기사는 한미연합사단이 미국의 한반도 군사전략에 따라 창설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원래 미국은 1971년부터 21년 동안 한미연합군단을 운영해오다가 1992년에 해체하였는데,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오늘 미국은 한미연합사단을 다시 창설하려는 것이다. 편성규모를 군단에서 사단으로 줄이기는 했지만, 양측의 핵심기갑전력을 통합하여 전투력을 더 증강시켰을 뿐 아니라, 22년 전에 사라진 한미연합야전군을 사실상 더욱 증강된 전투단위로 재창설하는 것이다. 미국의 그러한 행동이야말로 그들이 ‘인계철선’에 얼마나 병적으로 집착하는지를 말해주는 증좌다.


그러나 미국의 시각과 정반대인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미국이 남측에 설치해놓은 ‘인계철선’은 전시에 북의 전술핵탄공격을 받고 끊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으로 예견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 평택에 건설 중인 방대한 규모의 종합군사기지는 2016년에 완공될 예정이라는데, 요즈음 전술핵탄공격연습을 계속 실시하는 북의 이례적인 행동을 보면, 북은 평택기지가 완공되기도 전에 그것을 파괴하려고 벼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전시에 한미연합사단을 비롯한 주한미국군 전체부대들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전술핵탄공격으로 궤멸될 위험이 매우 높아 보이는데, 미국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주한미국군을 ‘인계철선’으로 언제까지나 남겨두려는 것이다.


미국은 그런 전술핵탄공격 위험을 아직 감지하지 못해서 ‘인계철선’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첨단성능을 지닌 각종 정찰수단을 동원하여 북을 집중감시한다는 미국이 북의 전술핵탄과 초정밀타격능력 보유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미국에게는 ‘인계철선’의 궤멸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그것에 어쩔 수 없이 집착하는 어떤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품고 있는 말 못할 사연은 아래와 같은 극비문서에서 엿볼 수 있다.

 

▲ <사진 6> 이 사진은 1949년 2월 28일 미국 중앙정보국이 펴낸 극비문서 '1949년 봄 주한미국군 철군의 결과'의 겉표지다. 이 극비문서에서 중앙정보국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근거들을 제시하였는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65년 전에 나온 그 극비문서에 제시된 철군불가근거들을 지금도 철석같이 믿고 있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1949년 2월 28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펴낸, ‘1949년 봄 주한미국군 철군의 결과(Consequences of US Troop Withdrawal from Korea in Spring, 1949)’라는 제목의 극비문서가 있다. <사진 6> 오래 전에 기밀해제된 이 극비문서는 미국 대통령실, 국가안보회의, 국가안보자원부, 국무부, 국방부, 육군부, 해군부, 공군부, 3군조정위원회, 합동참모본부, 원자력위원회, 조사개발부에 각각 제출된 것이다.


극비문서에서 중앙정보국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경우 “미국의 지원을 받는 대한민국이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대한민국의 붕괴는 “미국의 국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극동에서 미국의 안보이익에 불리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또한 극비문서에 따르면, 미국의 극동지역 안보이익에 불리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는 말은, 일본공산당의 역량강화, 소련 군사기지의 한반도 남하배치, 한반도-만주-연해주를 통합한 새로운 경제공동체 수립 등을 뜻하는 것이다.


극비문서는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경우 “미국이 동해, 서해, 보하이만을 지배하고, 소련의 해군력과 남만주를 지상공격으로 위협하고, 일본과 주변 해역을 공중과 공수 및 수륙양용공격으로 위협하고, 소련과 중국 영토 깊숙한 곳에 있는 목표들을 장거리공중공격으로 위협할 유리한 위치를 제공”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극비문서는 “미국에게 남코리아의 전략적 중요성은, 미국이 소련과 전쟁을 벌이는 경우 소련군이 일본과 류구열도에 있는 미국군기지들을 곧바로 위협하거나 무력화시키는 전진기지를 갖지 못하도록 사전에 예방하는데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런데 그 극비문서에 따르면, 당시 미국 육군 정보국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위와 같은 판단에 대해 반대견해를 꺼내놓았다고 한다. 미국 육군 정보국은 “주한미국군 철군이 대한민국 붕괴의 주된 요인으로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철군이 남코리아에 대한 소련의 즉각적인 지배를 허용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육군 정보국은 “북코리아 인민군의 남코리아 침공은 아마도 틀림없이 일어날 일이라기보다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중앙정보국의 판단과 육군 정보국의 판단이 서로 엇갈린 가운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육군 정보국의 판단을 인정하였다. 그에 따라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였는데, 그로부터 1년도 되지 않아 6.25전쟁이 일어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방대한 무력을 전선에 출동시켰으나 결국 정전협정을 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을 겪은 미국은 정전협정을 체결하자마자 주한미국군의 무기한 주둔을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협정’을 서둘러 체결하였던 것이다. 


지난 시기 미국이 겪은 위와 같은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보면, 지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65년 전에 미국 중앙정보국이 지녔던 정세인식에 여전히 잠겨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된 북미대결과정에서 미국이 북으로부터 온갖 압박과 위협을 받으면서도 북이 요구한 철군담판을 끝내 거부하며 버텼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맞춤형 억제전략’과 ‘절단형 억제전략’의 마지막 대결
    
군사부문에서 흔히 쓰이는 억제(deterrence)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적의 공격력을 제거하고 적의 지휘체계를 무너뜨리는 작전능력을 가졌을 때 비로소 억제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억제는 적과 힘을 겨루는 균형상태가 아니라, 적을 힘으로 압도하는 우위상태를 뜻한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정전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첨예하게 서로 대치하고 있는 북과 미국은 각자 상대를 압도하는 억제력을 가졌노라고 공언한다. 북은 미국에 대해서, 미국은 북에 대해서 각각 상대의 군사력을 압도하는 우위상태에 있다고 공언하는 것이다. 북과 미국이 각자 상대를 겨누고 있는 억제력을 군사전략개념으로 표현하면, 미국군은 북의 핵무기와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려는 ‘맞춤형 억제전략’을 가졌고, 조선인민군은 미국의 ‘인계철선’을 제거하려는 ‘절단형 억제전략’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맞춤형 억제전략’부터 먼저 논할 필요가 있다. ‘맞춤형 억제전략’은 2013년 10월 2일 서울에서 진행된 제4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Chuck Hagel) 미국 국방장관이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공식화된 미국의 대북전쟁전략이다. 그 전쟁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위기국면을 북의 핵위협단계, 핵사용임박단계, 핵사용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 맞춰 억제전략을 밀고 나가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맞춤형 억제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미국군과 한국군이 북의 핵사용임박단계에서 북의 공격징후를 포착하면 대북선제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반도 군사정세가 미국의 그런 요구대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은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선제공격을 개시할 것이므로 미국군과 한국군은 아무런 징후도 포착하지 못한 채 되레 선제공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견되는 것이다. 북에서 말하는 ‘조국통일대전’은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시작하는 초단기 속결전이므로, 조선인민군이 ‘조국통일대전’ 준비를 완료하였다는 말은, 공격징후가 드러나지 않는 공격준비를 완료하였다는 뜻이다. 또한 그것은 북이 미국의 ‘맞춤형 억제전략’을 물리적으로 압도할 ‘절단형 억제전략’을 완성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북에서는 ‘절단형 억제전략’이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그 동안 북에서 진행된 ‘조국통일대전’ 준비태세에 관한 언론보도내용을 종합, 분석하면 북의 전쟁전략을 ‘절단형 억제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절단형 억제전략’이란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미국의 ‘인계철선’을 순식간에 절단함으로써 미국의 핵보복과 증원군 전개를 억제하는 전쟁전략을 뜻한다. 조선인민군이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공격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인계철선’을 순식간에 절단함으로써 미국의 핵보복과 증원군 전개를 억제하는 길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절단형 억제전략’이 바로 그런 전쟁수행방식을 밝혀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북이 공격징후를 노출하거나 ‘인계철선’을 단숨에 절단하지 못하여 미국의 핵보복과 증원군 전개를 허용하게 되면, 다시 말해서 ‘절단형 억제전략’이 실패하게 되면, 한반도와 미국 본토는 각각 상상을 초월한 핵교전 피해를 입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전시에 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단형 억제전략’을 단숨에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 <사진 7> 이 사진은 2014년 7월 9일 새벽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전략군 서부전선타격부대들의 전술로케트 발사연습장면이다. 이 연습은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황해남도에서 자행발사대의 신속한 기동과 화력타격을 배합하여 진행되었는데, 주한미국군기지를 전술핵탄으로 타격하기 위한 '절단형 억제전략'을 연습한 것이다. 그들의 주한미국군기지 핵타격연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북에서 ‘전승절’을 하루 앞둔 지난 7월 26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 밑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력타격연습이 바로 그러한 ‘절단형 억제전략’을 연습한 것이었다. <사진 7> 당시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날 화력타격연습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략군부대는 “남조선주둔 미제침략군기지 타격임무를 맡고 있는” 부대였다고 한다. 이처럼 주한미국군기지 타격임무를 맡은 부대가 조선인민군 전략군에 배속되었다고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에 주한미국군기지 타격임무를 맡은 부대 이외에 주일미국군기지 타격임무를 맡은 부대도 있고, 괌, 알래스카, 하와이의 군사기지 타격임무를 맡은 부대도 있고, 미국 본토 타격임무를 맡은 부대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전시에 각종 핵탄을 탑재한 미사일을 쏘는 군사단위이므로,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서 언급된 “남조선주둔 미제침략군기지 타격임무”는 전술핵탄으로 주한미국군기지를 타격하는 임무라는 뜻이다.


당시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날 화력타격연습현장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남조선주둔 미제침략군기지들의 현 배치상태와 그를 타격소멸할 수 있게 가상하여 세운 발사계획을 보아주신 다음 로케트발사훈련을 지도”하면서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과 그 추종무리들을 하루빨리 이 땅에서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력사적 위업을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위와 같은 강력한 의지표명은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초정밀전술핵탄으로 소멸하려는 ‘절단형 억제전략’이 이미 준비되었음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지난 9월 6일에도 그들은 신형 전술미사일 세 발을 발사하였다. ‘절단형 억제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신형 전술미사일 발사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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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구멍’ 속 물고기, 기후변화와 생존투쟁

‘악마 구멍’ 속 물고기, 기후변화와 생존투쟁

조홍섭 2014. 09. 07
조회수 661 추천수 0
 

미국 네바다 데스밸리에 있는 수심 152m, 수온 33도 '악마의 구멍'에 서식

최근 감소 일로, 92마리 남아…기후변화로 사망률 증가해 멸종 위기

 

Olin Feuerbacher_2.jpg»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네바다 모하비 사막의 대수층 지하수 웅덩이에 서식하는 '악마 구멍 펍피시'. 사진=Olin Feuerbacher

 

미국 네바다주의 모하비 사막이 펼쳐진 데스밸리 국립공원 동쪽에는 매우 특이한 웅덩이가 있다. 표면은 가로 2m 세로 5m의 길쭉한 형태로, 물이 고여 있는 평범한 동굴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심은 무려 152m에 이르며 바닥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웅덩이에 ‘악마의 구멍’(데빌스 홀)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dh_location.jpg» 데빌스 홀의 위치. 미국 남서부 네바다주에서 데스밸리 국립공원과 라스베이거스 사이에 위치한다. 그림=데스밸리 국립공원국

 

약 50만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에 지열대수층의 물이 고여 웅덩이가 형성됐다. 데빌스 홀은 데스밸리의 방대한 대수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어서 지질학자의 큰 관심을 모았다. 
 

지하수 속에 만들어진 종유석 같은 동굴생성물을 통해 과거 기후변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간빙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등을 추정할 수도 있다. 미 지질조사국은 이곳에 고여있는 지하수의 나이를 2000살로 계산했다.
 

Ray Hoffman, USGS.jpg» 데빌스 홀 내부의 모습. 깊은 절벽에 동굴생성물이 보인다. 사진=미 지질조사국(USGS)

 

무엇보다 이 웅덩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길이 2㎝가량의 작은 민물고기이다. 이 웅덩이에만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물고기의 하나이다. ‘악마 구멍에 사는 물고기’(데빌스 홀 펍피시, 학명 Cyprinodon diabolis)란 이름의 이 사막 담수어는 이름과 달리 매우 온순하고 수컷의 푸른 혼인색이 아름답다. 또 아주 취약해 세계적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물고기가 사는 깊은 웅덩이는 사막 한가운데 있어 수온이 늘 33도나 되고 염도가 높고 산소도 희박하다. 다른 물고기에게는 거의 치명적인 이런 수질 조건 말고도 사방이 거의 수직 절벽인데다 수심이 깊어 먹이도 거의 없다.
 

Devils-Hole-shelf-2.jpg» 웅덩이 표면 가까운 곳에 튀어나온 선반 모양의 바위턱이 이 물고기에게 가장 중요한 터전이다. 그림=데스밸리 국립공원국

 

이 물고기가 찾아낸 생존전략은 웅덩이 표면에 선반처럼 튀어나온 2m X 4m 크기의 바위 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곳엔 햇빛이 비쳐 조류와 식물 플랑크톤인 규조류가 자라 물고기의 먹이가 된다. 알을 낳고 새끼가 자라는 곳도 여기다.
 

이 바위 턱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이 지역에 사는 올빼미이다. 올빼미는 소화되고 남은 뼈와 털 같은 찌꺼기 덩어리인 펠릿을 이 웅덩이에 떨어뜨린다.
 

Olin Feuerbacher_s.jpg» 바위턱에서 먹이를 찾는 데빌스 홀 펍피시. 사진=Olin Feuerbacher

 

약 1만~2만년 전에 홍수로 이곳에 떠밀려와 독특한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 이 ‘악마 구멍 고기’의 개체수는 겨울엔 100~200마리, 여름엔 300~500마리로 한 해 동안에도 변한다. 그 이유는 물고기가 1년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해라도 이상이 생겨 번식에 실패하면 무리 전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웅덩이 표면의 바위 턱도 중요하다. 먹이 터이자 산란장인 이 바위 턱이 사라지거나 환경이 달라지면 이 물고기는 속절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바위 턱을 노리는 먼 위협은 지진이다. 깊은 지하의 대수층과 연결돼 있어 일본이나 칠레에서 지진이 나면 그 충이 지하수층을 타고 전달돼 물이 출렁이면서 바위 턱을 쓸어가기도 한다.
 

Ken Lund_View_of_Ash_Meadows_Wildlife_Refuge_from_Devils_Hole_(5628775853).jpg» 웅덩이 주변의 애쉬 초원. 이곳 개발이 웅덩이를 위협하자 정부가 사유지를 사들여 보호구역을 설정했다. 사진=킨 룬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깝지만 더 심각한 위협은 인근 애쉬 초원의 개발이다. 이 사막 물고기는 1967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는데 이듬해부터 이곳에서 대규모 농사가 시작돼 관개용수를 퍼내면서 지하수위가 내려갔다. 
 

시민들이 보호운동에 나섰다. 이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76년 연방 대법원은 시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1984년엔 농사에 이어 택지 개발을 하려는 애쉬 초원의 사유지를 연방정부가 모두 사들여 국립야생보호구역을 만들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보호당국은 웅덩이 안에 인공 선반을 설치했지만 물고기의 외면을 받았고, 사막의 다른 웅덩이에 피난처를 만들어 물고기 일부를 옮겨놓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Olin Feuerbacher2_s.jpg» 데빌스 홀 펍피시의 치어. 기후변화로 새끼가 자랄 시간이 줄고 있다. 사진=Olin Feuerbacher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이 모든 노력을 비웃듯 물고기의 개체수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부화율이 감소했고 어린 고기의 사망률은 늘어났다.
 

2013년 초 개체수는 역사상 가장 적은 35마리까지 떨어졌다. 현재 이 물고기는 모두 92마리가 살아 있다. 이 물고기가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개체수가 200마리는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Scott Tyler, University of Nevada, Reno_s.jpg» 웅덩이 속 물고기를 연구하기 위해 잠수해 조사하는 연구자들. 사진=Scott Tyler, University of Nevada

 

최근 이런 감소 추세의 원인이 기후변화에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마크 하우스너 네바다주 사막연구소 수문학자 등은 과학저널 <수자원연구>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유체역학 모델링과 생태분석을 통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 기후변화로 수온이 상승하면서 웅덩이의 바위 턱에서 이 물고기가 번식할 수 있는 기간이 과거보다 1주일 줄어들었고 앞으로 2050년이 되면 감축 기간은 2주일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하우스너는 “기후변화가 데빌 홀 펍피시의 생존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 최근의 감소추세를 설명하는 가장 그럴 듯한 이유는 기후변화임이 드러났다.”라고 네바다 대학의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의 공저자인 스코트 타일러 네바다대 교수는 “이 물고기는 어항에서 사는 셈이다. 그 어항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험하며 어항을 움직일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종은 지난 1만년 이상의 진화 기간 동안 엄청난 유전적 병목을 헤쳐 살아남았지만 이제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더 나은 환경으로 떠날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rk B. Hausner et. al., Life in a fishbowl: Prospects for the endangered Devils Hole pupfish (Cyprinodon diabolis) in a changing climate, Water Resources Research, Article first published online: 27 AUG 2014 | DOI: 10.1002/2014WR01551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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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운동의 근거지, 지역과 공동체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9/08 12:42
  • 수정일
    2014/09/08 12:4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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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 인민 정치혁명·⑤] 직접 민주주의 담은 새 헌법 만들어야

 

박승옥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 2014.09.07 17:07:14

 

그동안 한국의 사회운동은 계급과 민족 문제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계급과 민족 문제의 해결을 위한 활동 전략을 실천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계급과 민족에 기반을 둔 20세기 사회주의 혁명 운동 전략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한 사회의 주요 모순이 계급 모순이냐 민족 모순이냐를 놓고 이른바 민족해방파와 계급해방파가 나뉘었던 한국의 학생운동과 진보운동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이런 엔엘(NL·national liberation)이니 피디(PD·people democracy)니 하는 용어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지난날의 치열했던 사회운동 전략이 여전히 여진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이 같은 계급과 민족을 기반으로 한 사회운동 전략은 이제는 낡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조직화를 통한 사회주의 혁명이란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로 백일몽이었음이 이미 입증되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혁명을 선두에 서서 반대한 것은 이미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노동자였다. 생산력이 극대화되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이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잘못임이 드러났다. 21세기는 경제성장 자체가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로 노동자 전체의 목을 조르는 시대이다. 서구 근대화 산업화가 전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지금 단지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철폐하고 사회화하기만 하면 파괴된 지구 생태계가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자는 생면부지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같은 직장의 동료 노동자에게조차 같은 계급으로서 형제애를 갖기보다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경쟁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동자계급 내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무직과 생산직, 여성과 남성, 하청과 재하청 재재하청 등등 분단되고 분열된 수많은 층으로 사분오열 나뉘어 있다. 단지 잘못된 인식과 허위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대한민국 노동자가 고액 연봉을 중심으로 기득권화된 정규직 노동자층과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층으로 확연히 분열돼 있는 것은 현실의 문제이다. 노동자가 계급을 중심으로 뭉치면 우선 당장 임금 노예로서 자신의 더 많은 임금과 더 좋은 노동조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계급의 문제나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는 관심 밖의 사항으로 뒷전에 내버려 둘 수밖에 없게 된다. 요컨대 노동자 계급운동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사회운동으로서는 기대할 바가 많지 않다. 1968년의 6.8혁명 이후 서구에서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신사회운동이 등장한 것은 이 같은 서구 노동자 계급의 기득권화와 계급 이기주의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계급 문제와 민족 문제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요한 해결 과제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계급과 민족은 성장하는 자본주의와 국가 차원의 범주일 뿐이다. 이런 계급과 민족의 모순 구조만으로는 오늘날 초국적 자본의 공동체와 생태계 파괴, 화석연료를 비롯한 모든 천연자원의 고갈과 석유문명의 붕괴 위기를 설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도출해 낼 수 없다. 더구나 국가 단위에서 계급과 민족의 강조는 결국은 극단의 계급과 민족 지상주의, 폭력과 전쟁의 악순환을 낳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의 해결이 개인과 가족, 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전체주의 체제로 귀결된 사실은 지난 시기 사회운동 전략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 1948년 유진오 작성 제헌헌법 초안. 1948년 헌법학자 고(故) 현민 유진오가 육필로 작성한 것으로 현재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연합뉴스

▲ 1948년 유진오 작성 제헌헌법 초안. 1948년 헌법학자 고(故) 현민 유진오가 육필로 작성한 것으로 현재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연합뉴스

지금은 계급과 민족으로 뭉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는 시대이다. 계급과 계급이, 민족과 민족이 전쟁을 일으켜 인민의 인간다운 삶이 쟁취되는 시대가 전혀 아니다.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인종 청소 전쟁은 지배계급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적대적 공존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적대적 공존의 전쟁과 투쟁은 21세기 사회운동 전략의 수단이 될 수가 없다. 지금은 1% 특권 지배계급을 제외한 전 인민이 힘과 지혜를 모아 비상 탈출구를 찾아야 할 위기의 시대이다. 계급과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도 협소한 계급과 민족운동만이 아니라 평화와 연대의 새로운 사회운동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대이다.
 
그런 새로운 사회운동 전략 단위가 다름 아닌 공동체와 지역이다. 우리는 지금 공동체와 지역이라는 새로운 차원과 범주에서 인민의 힘을 모아 앙시엥 레짐을 타파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계급과 민족, 자본주의와 국가를 포괄하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서서 인민 개개인의 삶을 바꾸고 자유인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이 공동체와 지역이다. 인민주권의 탈환과 직접 민주주의 혁명은 이 같은 지역공동체의 재생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세 꼬뮨과 동학농민전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유산은 이런 자립 자치의 지역 공동체 재생운동이다.
 
풀뿌리 지역공동체 재생의 정치는 처음부터 한 지역에 고립된 운동으로 시작해서는 막강한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워 성공하기가 어렵다. 지역과 지역이 강하게 연대 연합해 강력한 정치운동, 경제운동, 사회운동, 문화운동으로 전국에 걸쳐 풀뿌리 인민의 에너지를 결집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자립자치의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연방주의 정치야말로 인민주권 실천의 민주주의 정치이다.
 
직접 민주주의 체제는 법과 헌법의 개정을 필요로 한다. 물론 우리는 밑에서부터 법과 헌법을 개정하는 운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그러나 1987년에 10번째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헌법 개정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헌법 제128조는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될 수 있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국민투표에 부친다고 명시되어 있다. 주권자인 인민이 헌법을 발의하고 개정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는 명백히 주권자의 주권을 제한하는 조항이다. 기득권자인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자신들의 권력을 내놓아야만 하는 직접 민주주의 정치 체제로의 법과 헌법 개정을 추진할 리는 만무하다. 사실 지금까지 헌법 개정 논의는 정치인 중심으로 이원집정부제니 내각제니 하는 차원에만 머물러 있었다. 노랑과 파랑의 얼룩무늬 늑대를 그릴까 노랑과 빨강의 얼룩무늬 늑대를 그릴까 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맴돌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인민주권의 헌법 개정 또는 제정을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 늑대가 아니라 사람을, 자유인을, 주권자를 복원시키는 새로운 헌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1948년 체제 자체를 근본에서부터 바꾸고 대한민국을 인민이 통치하는 직접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는 헌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인민이 헌법 개정을 할 수 없다면 주권자인 인민이 직접 나서서 헌법을 제정하면 된다. 오직 주권자인 인민만이 헌법을 제정하고 개정할 권리가 있다.
 
인민이 새 헌법을 제정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민주주의 혁명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글은 협동사회독립언론 '두레뉴스'에도 게재됩니다. 편집자

 

박승옥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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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언니 더 보고 싶어요”

안산합동분향소에 차려진 추석맞이 ‘희생자 합동기림상’.. “4.16, 잊지 말아달라”
강주희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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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8  10:31:54
수정 2014.09.08  10: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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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주희

“모두들 가족, 친지들과 정 나누는 추석인데 눈물 나고 마음이 아픕니다. 명절이라 그런지 언니가 더 보고싶고요. 언니가 살아있을 때 자면서 장난도 치고, 커서 뭐할지 이야기도 나눴는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줄 알았는데 언니가 더 보고싶어요.”
 
세월호참사 146일째인 8일 오전 9시 세윌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석 합동기림상이 경기도 안산합동분향소에 차려졌다. 유가족들은 이날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시작으로 희생자들을 기리는 편지를 낭독했다.

세월호 희생자 고 단원고 2학년 3반 김빛나라의 동생 하슬린양은 “국회와 광화문, 청와대 앞에서 끝까지 언니오빠를 위해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하겠다”며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김양의 모습에 유가족들은 울음을 터트리며 오열을 했다.

편지낭독 후 세월호 참사 직후 146일의 시간을 담은 10분짜리 영상이 공개됐다. 탑승객 전원구조 오보 영상이 나오자 가족들은 또 한 번 오열했다. 한 유가족은 깊은 슬픔에 실신해 구급차에 이송됐다.

   
▲ ⓒ 강주희
   
▲ ⓒ 강주희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 위원장은 “4월 16일은 유가족과 국민여러분이 평생 잊지 않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국회와 정부가 우리 유가족들 눈에  피눈물 나게 한 것을 역사에 남기겠다. 대대손손 남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아직 진도 앞 바다에서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께 저희 유가족들은 죄송스런 마음”이라면서 “그분들을 위해 저희 유가족들은 오늘도 광화문광장으로 향합니다. 국민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시는 그 곳에서 우리 아이들과 일반인 희생자분들을 위해 끝까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해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촉구 활동에 나선다.

 

진실  
박원순시장의 말처럼
"잘못했다. "
"이 모든 책임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나에게있다"
"희생자가족들과 국민들이 원하는 특별법 다 만들겠다"
그 한마디면 다 끝난다

87년 군사독재정권의 장기집권 야욕과 음모에 항거하며 
대통령직선제개헌 쟁취를 위해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권수립을 위한 분노의 함성이 전국을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굴 때를 한번 상기해보라

당시 차기 대권유력주자였던 노태우의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하겠다는 6.29 선언 발표가 있자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박종철, 이한열등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였고
매캐한 최루탄연기가 전국을 뒤덮었지만 
6.29 선언이 있은 바로 그날 저녁부터 
불과 몇시간 차이였지만 대통령직선제 개헌 수용방침발표
긴급뉴스를 타던 그 시점을 기준으로
갑자기 최루탄과 시위가 사라져 버리고 
전국이 조용해지며 평온을 되찾았다

VIP의 한마디면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지금까지의 어지러웠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되며 유가족들도 단식과 
서명운동을 중단하고 즉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부여당은
언제까지 갈기갈기 찢어지고 사분오열되는 국민들을
지켜보기만하고 즐기려할 것인가

왜 무엇이 두려워서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역사는 늘 
힘있는 강자의 편, 승자의 편에서는 것만은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손바닥뒤에 숨어서
더이상
손가락 사이로 세상을 바라보려해서는 안된다

(2014-09-08 11: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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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공화국 창건 역사 살펴보기

[친절한 통일씨] '9.9절'로 본 북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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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7  17: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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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일은 북한의 주요 기념일 중 하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 66주년이 되는 날이다. 흔히 1948년 9월 9일에 창건했다고 해서 '9.9절'이라고 하고 줄여서 '공화국 창건일'이라고도 한다.

북한의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날인 9.9절이 되면 북한은 매년 행사를 치른다. 올해는 66주년인 만큼 5년, 10년단위 정주년 기념과는 달리 차분하게 보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제대로 알려면 일단 북한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9.9절'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본적인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각 단어에는 역사적 의미와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선'은 '고조선'이래 한민족의 유서깊은 나라 명칭으로 '아침의 햇빛이 아름답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김일성 주석이 1945년 10월 3일 평양노농정치학교 강의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에서 현실적인 특징을 제기한 이래 줄곧 지향한 사회발전의 방향을 담고 있다.

'인민'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포함시켰고, '공화국'은 국가권력을 대의제기관에 집중시킨 국가형태를 규정한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조선민주주의민공화국'은 '아침의 햇살이 아름다운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이 주인인 대의제국가'로 풀이된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을 바라보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지만, 일단 그런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있다.

북한, 공화국 창건의 과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로 시작된 항일혁명과 남북분단의 과정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기에 생략하고 북한의 정권 수립 과정에 대해서만 다루기로 한다.

1945년 해방이후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은 국가건설을 최대 목표로 삼았다. 여운형과 조만식을 중심으로 건국준비위원회가 공식 조직되고, 8월 말까지 남북한 전역에 145개 지부가 결성.설치됐다. 그리고 9월 6일 정부수립을 위한 '전국인민대표자회의'가 개최됐다.

19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 그해 11월 도.시.군 지방선거를 통해 1947년 2월 임시가 아닌 공식적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탄생했다. 이는 한반도 통일독립국가 건설의 한 단계로 통일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임시적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에는 김일성, 부위원장에는 김책과 홍명희가 각각 선출됐으며, 내각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과 소련은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한반도를 관리했고, 1947년 10월 마지막으로 열린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남북 통합을 위해 남북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은 남한 나름대로,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정부를 수립하는 단계를 밟았다. 1947년 11월 북조선인민회의 3차회의는 '조선임시헌법제정위원회'를 조직, '조선임시헌법초안'을 마련했다.

   
▲ 김일성 수상이 1948년 9월 10일 북한 정권 수립 선포 이후 정부 정강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1948년 4월 북조선인민회의 특별회의에서 통과된 '헌법초안'은 총 10항으로 △근본원칙, △공민의 기본적 권리 및 의무, △최고주권기관, △국가중앙집행기관, △지방주권기관, △재판소 및 검찰소, △국가예산, △민족보위, △국장 국기 및 수부, △헌법수정의 절차 등을 담았다.

여기서 1장에는 '우리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 '주권의 대표기관은 리인민위원회로부터 최고인민회의에 이르기까지 인민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선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또한 통일독립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 중 하나로 평가된다. 남한에서도 1946년 입법의원 선거를 통해 1947년 '남조선과도정부'가 수립됐다. 여기서 '임시헌법'도 발표됐는데, 7장 58조로 구성된 '임시헌법'에는 '조선은 민주공화정체이다', '조선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속한다'라고 명시됐다.

즉, 남북은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각자 임시 정부조직과 임시헌법을 만들고 이를 통합하려 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가 열렸지만 통일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 단독선거가 치러졌다. 국회가 구성되고 헌법을 심의.제정하고 정부수립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북한도 같은 해 7월 인민회의를 소집 헌법 실시문제에 대해 심의했다.

그리고 남한 만의 단독선거의 영향으로 최고인민회의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8월 25일에 실시, 572명 중 528명의 대의원이 참여한 가운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가 9월 2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열렸다. 당시는 이미 남한에서 대한민국이 정식 선포된 이후였다.

당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북쪽은 물론 남쪽에서 '지하선거' 형식으로 치러졌다. 그래서 북한은 자신들이 남북을 대표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북한은 뒤이어 발표될 내각 구성 비율로 남북 각각 10명씩 균형을 맞춰, 남북 좌우 계층을 대표하는 통일전선에 입각한 정권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5일 헌법 초안을 약간 수정한 뒤 전문을 통과시켰고,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공식 선포했다. 같은 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선거를 통해 위원장 김두봉과 부위원장 홍남표, 홍기주 등을 선출했다.

이어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으로 부터 '정권이양에 관한 성명' 진술이 있은 뒤, 이양 접수에 관한 결정서를 채택했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구성에 관한 의제를 상정하고 내각 수상으로 김일성이 선임됐다.

결국, 김일성 수상을 중심으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절차를 거쳐 9일 공식 선포됐다.

북한, 공화국 창건 후속조치와 당시 반응

국가 선포와 함께 김일성 수상은 내각을 구성했다. 초대 내각은 수상 김일성, 부수상 박헌영, 홍명희, 김책,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정준택, 민족보위상 최용건, 국가검열상 김원봉, 내무상 박일우 등 22명이다.

이어 김일성 수상은 1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정강'을 발표했다. 정강에는 "통일된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를 급속히 건설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할 것이며, 국토의 완정과 민족의 통일을 보장하는 가장 절박한 조건으로 되는 양군 동시철거에 대한 소련정부의 제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담겼다.

또한 "우리 민족이 전 세계 자유애호민족들의 대열에서 동등한 성원으로 되며, 또한 우리 민족의 평등적 지위와 자유를 존중하는 여러 자유애호민주국가와 민족들과의 결실한 친선을 맺도록 도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정권이 수립되자, 12일 평양에서 경축대회가 열렸고, 지방에서도 군중대회가 개최됐다. 평양 경축대회에는 약 38만 5천여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하던 당시 남한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당시 남한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9일 정당조직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지만, 북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국회에서도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 반대 삐라사건과 국가와 국기 제정문제만 논의됐을 뿐이다.

   
▲ 2013년 9월 '9.9절' 65주년 노농적위군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대회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하지만 <독립신보>(1948년 9월 12일자)는 당시 북한 정권 수립에 대한 시민여론의 반향을 상세히 보도했다.

여기서 정지용 시인은 "순간에 밀려오는 무슨 압력을 육체적으로 느꼈다. 이것을 역사와 세기의 중력이라고 할지. 우리같은 사람도 이렇거늘 이것이 남조선 전 지역에서 느끼는 진감이 아니겠습니까"라며 "북조선에서 보기 좋게 해낸 일이 조국과 민족과 다시 세계에 향하여 무슨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짓이 됩니까"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로당, 민주독립당, 인민공화국당, 근로인민당, 사회민주당, 근로대중당 등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남로당은 '인공 수립 지지 경축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남로당은 12일 새벽 일제히 전국적으로 북한 국기(인공기)를 게양하는 '인공기게양투쟁'을 11월 말까지 펼쳐, 독립문과 중앙청에도 인공기가 게양됐다. 8개 시.군 304개 기업소 약 5만명이 참가하는 '2시간 총파업'도 전개, 특히 서울에는 낮 1시를 기해 전차 111대가 2시간 정차하고 시내 일부 전신전화가 두절되기도 했다.

北 '9.9절',남북분단 극복의 의미 강조..1988년 김일성, 남북정상회담 제의

1948년은 남북 어느 한쪽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각기 다른 정부를 수립해 분단이 고착되는 길을 선택한 시초라 할 수있다.

그런 의미에서 광복절의 의미와 함께 대한민국이 수립된 8월 15일이 되면 남측에서는 통일의 필요성을 되새긴다. 북쪽에서도 '9.9절'이 되면 남북분단 극복을 강조한다.

북한에서는 5년, 10년단위 정주년이 되면 성대하게 행사를 치른다. '9.9절'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경우에는 중앙보고대회, 사진전람회, 강연회 등 간략한 행사를 펼친다.

   
▲ 2013년 '9.9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료사진-통일뉴스]

대표적인 '9.9절' 행사는 1988년이다. '9.9절' 40주년이던 당시 김일성 주석은 '연방제 통일 논의'를 전제로 한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다.

이는 앞서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의 '남북한 당국최고책임자 상호방문', 평화통일자문회의의 '남북한 최고책임자회담' 제의 등에 대한 최초의 긍정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불러왔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 사이에 대화와 협상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진정한 의사를 가지고 우리를 만나러 평양에 찾아오는 데 대해서는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노태우 대통령을 지목하지 않았지만, '북남 최고위급회담'이라고 언급, 남북정상회담 제의로 받아들여졌다.

이밖에도 '9.9절'이 되면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측의 입장이 발표된 바 있다.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업적을 칭송하기도 하는데 지난 1997년 '9.9절'부터 모든 문서, 출판, 보도물 등에서 '주체'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9절' 65주년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노농적위군 열병식과 함께 지역 군중대회, 음악회 등 행사가 열린 바 있다.

그리고 중앙보고대회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조국통일 3대헌장을 비롯한 강령적 지침과 6.15통일시대가 개척되어 조국통일의 앞길에 밝은 전망이 펼쳐지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9.9절'행사를 연다. 북한은 각종 매체를 통해 '9.9절'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2차 남북 고위급접촉 제안에 묵묵부답인 북한이 이번 '9.9절'에서 어떤 대남 메시지를 보낼 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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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발가벗겨진 서구문명의 제국주의와 미국의 식민정책
 
[연재152] 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유태영 목사 
기사입력: 2014/09/08 [00:06]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광주항쟁, 천안함사건, 세월호사건 등 현대사의 수많은 의문의 사건의 배후로 늘 미국이 지목되어 왔지만 한국정부는 그런 주장자체를 원천봉쇄해왔다. 미국 개입과 배후조종을 밝히려다가 수없이 많이 감옥에 끌려갔고 미제침략사를 교지에 보도했다가 체포된 이철규 대학생의 경우 고문으로 죽기까지 했다. 지금도 세월호사건과 미군잠수함 충돌설을 거론만 해도 종북으로 매도당하거나 검거되기 십상이다. 왜 미국의 본질을 파헤치려고만 하면 한국정부는 이렇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까.     © 자주민보

 

식민지의 원어는 로마어로 콜로니아(colonia)이다. 이 말의 뚯은 외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토지를 경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주하여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동거하는 관계가 된다. 이와 같은 평화로운 식민지의 원형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서구문명의 제국주의적 식민지는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식민지의 원형과는 완전히 다르다. 서구문명권 하에서의 제국주의적 식민주의는 다음의 네 가지 형태로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첫째, 서구문명권 하에서의 식민주의는 자본의 축적을 위하여 귀금속을 착취하고 노예사냥 등을 통하여 미개한 외국에서 자본주의적 거점을 확보했다.

둘째, 서구문명권의 식민주의는 산업자본주의를 육성하여 부족한 자원을 회득하고 또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후진국들을 마구 침략했다. 뿐만 아니라 미개한 피식민지 나라들은 종주국들이 공업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된다. 그리하여 피식민지 나라들은 자주적이며 정상적인 발전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했다.

셋째, 2차세계대전후 서구 제국주의는 새로운 방법으로 후진국들을 식민지로 삼고 지배했다. 이것을 신식민주 (neo-colonialism)라고 부른다. 이 신식민주의 정책에 의하면 제국주의가 침략한 나라들에 대하여 형식적으로는 독립국가라고 하는 명칭을 허용한다. 하지만 내용으로는 경제적으로 다국적 기업을 통하여 착취하고 군사적으로 강압적인 통치력을 장악하고 지배한다. 이러한 신식민주의는 논리적으로 <경제협력>과 <안보>라는 말로서 제국주의적 침략행태를 은폐하고 있다.
 
네째, 서구문명의 신식민주의는 동화주의를 주장하면서 가옥한 민족말살정책을 기본적 정책으로 삼고 있다. 신식민지 종주국은 피식민지국의 고유한 풍습과 사회적 제도를 말살하거나 아니면 재편성하여 종주국의 것으로 대체한다.

이와 같은 신식민주의 원조는 물론 영국의 식민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스페인의 식민주의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주의가 서구문명권에서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식민지 종주국들이 되고 있었다.

한국 식민지의 시작은 미국과 일본이 결탁한 가쓰라-테프트 조약으로 시작됐다.

이 가쓰라-테프트 조약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식민지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미국은 미국의 식민지정책을 한국 사회에 설득시키기 위하여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주장했다.

미국 선교사들은 가장된 민주주의를 설득하여 한국인들이 독립을 원하는데 대하 여 미국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었다. <예수 믿고 천당에 가는 것이 인생의 최고 가치추구의 길이다>라고 한국인들을 설득시킴으로서 일본의 침략에 대하여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도록 선교를 했다.

그런데 일본의 36년간의 가혹한 식민통치는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함으로서 끝났다. 하지만 전승국 미극은 한국에서 친일세력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계속하여 이번에는 미국이 직접 주도하는 신민지 정책을 오히려 국제적으로 확대하고 공고히 하여 70년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시대에 있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식민지 종주국들은 제국주의적 신식민지 통치이념을 종교적으로 미화하여 유신론-무신론의 대결을 정당화하는 이원론적 정치적 대립을 수단과 무기로 삼고 있었다.

이러한 이원론적 정치적 대립은 한국에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진짜로 무신론적 정치적 수단과 방법은 오히려 오늘 미국의 신식민지 정책에서 밝히 나타나 있다.

서구 문명권이 어떻게 오늘의 역사 속에서 신식민지 이념을 진행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역할이 무엇 이었는가를 냉철히 분석하여 강대국의 역사적 외곡과 신식민지 종주국들의 침략의 벽을 완전히 허물어야 하겠다.

1. 식민지로 세계를 지배한 서구의 패권의 논리

서구 문명의 역사는 사실 식민주의 패권의 역사이다. 서구 문명사회가 형성된 이후부터 끊임없이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중동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태평양을 넘어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 까지 정복과 통치로 서구 식민지를 환대하고 확립했다.

서구의 식민주의를 통해서 비 백인 나라들의 민족문화는 말살되기도 하고 서로 융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서구 문화의 식민지 통치에 대항하여 배척하고 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투쟁하면서 현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식민지 패권은 육체적 고통에만 국한된 것뿐만 아니었다. 프랑츠 파농은 정신과 의사로서 그의 유명한 <검은 피부, 하얀가면>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유럽인들의 식민통치의 죄악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고 있다.

흑인들과 유색인들은 자신들의 피부가 유색인데 대하여 부끄러워하면서 심지어는 저주함으로 스스로 인간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폭로했다. 프랑츠 파농은 진짜 부끄러워해야할 것은 피식민지 흑인들과 유색인들이 아니라 서구 문명권의 백인들의 종교적 제국주의라고 폭로했다.

서구 제국주의적 식민지 팽창에 있어서 백인들의 기독교가 제국주의적 정권에 편승하여 정치적 침략의 테두리에 밀착되어 있었다. 정치적으로 식민지 침략자들은 종교적인 명분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침략 행위를 정당화했다.

서구 기독교 문명국들은 식민지의 확보를 바로 종교적 선교의 최선의 기회로 삼고 있었다. 구약 성경의 <출애굽 사건>을 이용하여 서구 문명국들의 식민지 통치의 망령을 정당화 하고 있었던 것이다. 
1492년에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에 로마 교황 알렉산더 6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게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 이유는 이슬람세력을 약화시키고 라틴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식민지를 확대함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동쪽은 주로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됐고 서쪽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됐다. 나중에야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가 남미에서 뒤를 따라 식민지를 획득했다.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에서 식민지 건설의 권한을 허락한 로마 가톨릭 교황 알렉산더 6세는 도대체 어떤 교황이었나? 그는 스페인에서 대주교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사생아로서 그의 이름은 <로드리고>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의 대주교로서 성물매매로 이룩한 막대한 재산을 사생아인 <로드리고> 에게 유산으로 넘겨주었다.

<로드리고>는 교황에 출마하었는데 그를 반대한 한명의 수도사에게 5,000 크라운의 돈과 자기 딸을 그 수도사와 결혼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매수하여 드디어 그는 교황이되어 이노센트 8세 교황의 후임으로 알렉산더 6세 교황(1492-1503)이 되여 11년간 로마 가톨릭 교회를 통치했다.

알렉산더 6세교황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들은 지면상 제한으로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으나 그는 돈과 절세미인 귤리아와의 불륜의 관계로 인하여 부패한 교황으로 대표적인 사례를 남겨 놓았다.

어쨌든 이렇게 됨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서구 유럽의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미국 등 백인 국가들의 전무후무한 황당한 식민지 쟁탈전이 시작되어 수 세기 동안 계속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1497년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경쟁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로마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식민지 개척권한을 승인함으로서 서구 기독교 문명국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식민지 건설하는데 있어서 합법화가 되었던 것은 역사적인 사실임으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유럽의 제국주의 역사 속에는 부끄러워해야할 것은 피식민지 나라들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라틴 아메리카 식민주의 정치적 세속 세력과 함께 결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또 어떠했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처음부터 주로 영국이 선두로 하여 유럽의 개신교 기독교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북아메리카에서 식민지 탈취를 시작했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북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적 식민지 팽창세력에 편승하여 식민주의와 결합한 선교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치적인 세력이 교회를 이용하기까지 했다.

영국은 븍미 대륙에서 제국주의적 식민지 건설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1792년에 이른바 <William Carey의 이교도 개종을 위한 기독교의 방법론>을 발표했다.

영국이 역사적으로 침략한 식민지 국가들의 목록은 광대하다.

아프리카에서 이집트를 비롯해 22개 국가들이 영국의 식민지가 됐으며 아시아에서는 인도 식민지를 비롯해 21개의 국가들이 수 세기 동안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태평양 오세아니아와 중남미에서 20여개의 지역을 식민지화하여 지배했다. 사실에 있어서 미국과 캐나다도 본래는 역시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겠다.

이와 같은 영국의 식민주의적 망령은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현대 21세기에 있어서 제3세계 침략으로 변형된 신식민주의는 영국을 중심한 EU 조직은 가장 잔인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오늘도 아프리카와 중동의 팔레스타인, 시리아와 이란과 이락 등지에서 그리고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을 처음 제공한 나라가 바로 영국이었다. 미국이 EU의 조직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에 있어서 미국은 영국의 관여와 동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2. 미국의 사악한 식민주의

세계 식민지 역사에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주도>가 <미국의 주도>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그리고 라티 아메리카에서 식민지 통치의 연장이 미국의 관여 없이 진행된 곳은 전혀 없다.

프랑스가 식민지화했던 베트남도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빠졌으며 쿠바와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스페인의 식민지이었지만 이제는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다. 중동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역시 이락 전쟁과 시리아와 이란 문제 등에 있어서 일련의 세계적인 식민지 통치들이 미국의 주도하에서 자행되고 있다.

미국의 신식민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오늘에 있어서 아프리카 출신의 소설가 쿳시(J. Coetzee)가 200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When a Woman Grow Older>에서 미국의 식민주의 지배의 사악한 모습들을 밝히 볼 수 있다.

쿳시는 미국유학생활, 영주권자, 교수생활 그리고 베트남 반전운동참가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미국에 대한 담론을 미국의 식민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쿳시는 아프리카의 역사가 비극적인 침략으로 얼룩진 사실에만 한정지우지 않고 미국의 세계적인 식민지 야망에 대하여 미국을 <사탄의 계곡>이라고 혹평을 했다.

미국의 식민주의는 자기들의 야망에 맞지 않으면 세계를 <침몰시키려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비극적인 역사로 얼룩진 미국의 아프라카에 대한 사악한 식민지 통치를 감안한다면 쿳시의 소설에 나타난 분노를 감히 이해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냉전시대에서 소련은 미국과 경쟁을 이기는 방법으로서 오히려 식민지 해방과 독립한 신생국들을 옹호했다. 하지만 미국은 독립한 신생국들에 대하여 민족 분열을 부추기고 종족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미국식 식민주의를 새로 형성했다. 미극은 옛 신민지 세대에서 기득권을 소유했던 지주들과 관리들 그리고 군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여 민주주의 정착을 방해했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엄습한 외채위기를 더욱 더 심화시키고 세계은행과 IMF 같은 기구들을 앞세워 시장개방과 금융개방을 강요함으로서 이들 나라들의 주권을 제한하고 경제적 예속을 강요했다.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뿐만 아니라 제3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바로 미국 제국주의 하에서 식민주의는 아직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현실이다. 한국의 제도권 언론들과 TV화면을 장식하는 화려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 신식민주의에 예속된 허상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신식민주의 실체를 똑 바로 보아야 하겠다.

미국의 사악한 식민주의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세계적 식민지 강국들에 비하여 미국은 오직 북아메리카를 점령한 것 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할 힘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이 제국주의 침략국으로 변모한 것은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서 스페인 소유의 식민지들을 미국이 소유하게 됨으로부터 시작됐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강대국들이 몰락하면서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냉전시대 이후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친미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혈안이 되여 제3세계 국가들의 분쟁에 개입하여 확대하여 미국제국주의를 화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UN을 이용하여 마치 <평화의 사도>처럼 행동하면 종교적 위선으로 식민주의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오늘 미국은 지구상에 130개의 국가들에 759개 이상의 미군 군사기지를 설치해놓고 제국주의 식민통치를 유지하면서 정당화하고 있다. 미국의 전 CIA 테러대책 담당자였던 마이클 쇼위가 2004년에 출판한 책 <제국의 오만>에서 이러한 미국 제국주의적 식민정책의 허상을 밝히 폭로했다.

냉전시대의 종말이 곧 미국 제국주의가 세계를 독점한 것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근년에 중국의 부상과 소련의 재기가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조선의 미국에 대한 <핵선제공격정책>이 세계적으로 공인되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세계 단독지배 시대는 무너졌다.


 3. 미국 식민지하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의 미래

미국이 한국에서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적 방법으로 한국의 식민주의를 고착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종식 후 미국은 한국전쟁을 이용하여 소련 공산주의를 방어한다는 맥락에서 보다 높은 방어선으로 38선을 고정시켰다.

미국은 일본이 필리핀을 넘겨보지 못하도록 가쓰라-테프트조약을 체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을 이용하여 한국을 통제하는데 활용했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야당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응진한다는 공약으로 1977년에 집권했다. 하지만 그의 공약은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의 반공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뿐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독재보다 공산주의가 더 나쁘다>라고 주장하면서 전두환 정권을 용인했다. 전두환이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했을 때 레이건 정권의 외교정책팀은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시켜 가택연금으로 바꿨으며 결국은 석방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미국의 마음대로 못할 것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제2차세계대전 후 혼란기를 통하여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을 통하여 미국의 국가이익을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식민지 통치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의 식민지를 정착시킨 것은 아시아 전체에서 모법적인 선례가 되고 있었다.

서구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대부분의 나라들에게 식민통치의 여파가 오랜 동안 남고 있음으로 유령처럼 서구문명의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웬일인가? 한국의 우익 보수주의 학자들은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정책을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시킨 좋은 계기가 됐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36년과 미국 식민지 70년이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시킨 좋은 결과가 됐다고 미화하는 기막힌 주장이다. 이러한 정신 나간 이른바 보수주의 학자들의 대표적인 사람은 <한국 식민지 근대화>를 주장하는 안병직과 같은 어용학자들이다. 이러한 친미적인 어용학자들은 식민주의 반대와 민족주의를 주장하면 <종북>이라고 매도하여 어처구니없는 노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주장도 역시 마찬가지다. <잘 살기만 하면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이러한 천박한 사고방식과 망국적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미국의 식민지 정책을 한국의 통치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한국에서 외세의 식민주의가 작용하는 것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그것은 현재 한국에서 현 정권 하에서 지속되고 있는 우리 민족 오늘의 악몽이다. 미국의 식민정책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한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 <되는 일 안 되는 일 없다>는 것이다. 민족통일을 주장하면 절대로 안 되고 외세를 의존하는 행동은 그 무엇이든지 가능한 것은 한국의 국가적 재앙이다.

역사의식에 민감한 5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이 결사적으로 이명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면서 반미와 반정부 시위를 하며 그리고 세월호 침몰사건의 <진짜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침몰의 <진짜 원인>을 감추는 이유는 식민지 군사연습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이 다음 아고라 등에 끊이지 않고 있다.

<전두환 광주사태> <김현희 kAL기 푝파> <천안함침몰> 음모사건을 비롯한 수 없이 많은 의혹투성이 현대사 사건들 배후엔 항상 미국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치욕의 역사가 7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국가안보>는 말뿐이고 사실은 <식민지안보>를 위하여 봉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통탄이 절로 나오는 현실이다.

그럼으로 이번 세월호 침몰도 한국의 민중들이 제아무리 <새월호 수상한 의혹>들에 대하여 물증을 제시하면서 수백 가지 의혹에 대한 증언과 추궁을 할지라도 한국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은 매사에 있어서 동문서답의 애매한 태도만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과 관계된 사건이어서 그러는 것 아니겠라는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서 이런 광경을 찾아 볼 수 있겠는가? 
<허겁지겁 빠져 도망간 선장의 숨겨진 행각> < 정체불명의 항해사와 선원들의 뺑소니행각> < 근거 없는 내부폭발설> <세월호 침몰에 대한 보고 시점과 보고의 내용과 보고대상자에 대한 의혹> <무슨 이유로 승객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나> 너무나 당연히 해결되어야 할 이런 초보적 질문에 대해 왜 정부는 해명은 하지 않고 위협과 협박으로 공포정치만 자행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제3세계, 포스트-식민국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일국의 대통령을 마음대로 세우고 주무르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슴지 않고 살해도 해왔다. 박근혜는 그와 같은 사건을 목격한 경험자라는 증언들이 많았다.

그럼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일본과 중국에 대하여 이랬다 저랬다하는 발언과 행태들은 자기 자신의 결단이 절대로 아니라 그것은 미국의 암시와 지시에 따라서 좌우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특별히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있어서 맥락이 혼돈되는 강온발언을 연속하고 있는 것은 그 이유가 100% 전적으로 미국의 지시와 암시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떠들썩한 로마 교황의 한국 방문은 세계 유일한 분단국 한국을 방문한다고 선전해대던 말과는 아무 보람 없이 4박5일의 방한은 끝나고 말았다. 교황의 여러 번 미사발언 중에 남북화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으며 남과 북을 위한 공정한 축복의 말도 없었다. 로마 교황도 역시 식민지 종주국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을 열열히 환영하면서 세월호 참사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은 진상규명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희생자 가족들의 교황에 대한 요구와 바람은 두 가지이다. 첫째, 세월호는 어째서 왜 어떻게 침몰했는가? 둘째, 박근혜 대통령은 그 날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으며 도대체 어떤 보고를 받았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이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희생자 가족들은 교황으로 부터 풍성한 위로와 축복의 말만 계속하여 들을 수 있었을 뿐이고 교황에게서 문제의 해결를 위한 답변의 실마리를 전여 찾을 수 없었다.

로마 가톨릭 교황이 재3세계 나라들을 방문하는 것은 제3세계 나라 민중들의 심정 속에 잊혀져가고 있는 과거의 사대주의적 관습을 또 다시 순간적 군중심리를 일으키는 방문의 효과를 보는 듯 했다. 미국은 이러한 효과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이번 프란체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역시 미국의 고차원적 식민지 외교수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교황이 한국방문 기간 중 대전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들로부터 받은 <노란색 리본>을 내내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교황은 보수주의 쓰레기 기자의 왜 노란색 리본을 착용했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에 대하여 교황은 <인간적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자신이 아르헨티나에서 추기경이었던 시절에 탄압을 받는 민중을 위하여 반제국주의 성향의 활동을 직접 하고 있었던 것을 상징적로 표현한 발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로마 가톨릭 교황의 한국 방문을 통하여 나타난 한국 제도권 언론들이 보도하는 행태들은 갈수록 극우 보수주의 형태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었다. 파산으로 치닫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반북반통일적 심각한 상황을 조중동을 비롯한 제도권 언론과 TV 방송들은 프란체스코 교황의 한국방문을 이용하여 최고의 기회로 삼고 민중의 보수주의 물결을 선동하느라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8월 18일 서울 명동 성당에서 4박5일 방한의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예수님의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교황이 말하는 화해가 <분단된 한국의 남과북의 화해>에 대하여 구체적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이 그저 성서의 문구들을 인용하는 것으로서 강론을 끝냈다.

세게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을 방문한다고 언론들이 요란스럽게 선전한 기대와 분위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떠들석한 흥행적 행사위주의 방문이 되고 말았다.

이 글을 끝 맺으며...

프란체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으로 인하여 한국이 떠들썩하고 있을 때 조선 여자 20세미만 월드컵축구에서 4강 진출을 위한 대결이 캐나다에서 조선-미국사이에 벌어지고 있었다.  2014년 8월 16일 오후 5시에 진행된 조선-미국 대전에서 1:1 열전과 30분 연장전에서도 역시 1:1 무승부로 끝났다.

할 수 없이 패널티킥으로 승패를 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조선 여자팀은 패널티킥으로 강적 미국을 3;1로 당당히 격파하고 4강 진출권을 쟁취했다.

체격이 미국 선수들보다 훨씬 작은 조선 여자선수들이 아니 미국을 격파 했다니? 참으로 놀랍고 감격스러운 승리의 순간이었다. 그 누가 조선이 미국을 3;1로 격파하여 미국을 참패하게 할 줄을 예측이나 했겠는가?

조선이 미국을 격파했다는 뉴스에 전 세계 축구계가 이구동성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어찌 축구계에서 뿐이겠는가? 국력이 약하면 자연이 강대국에게 승리를 빼앗기고 수모를 당하는 것이 오늘의 냉철한 국제정세이다.

2012년 8월 25일에 조선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석하여 선군절 축하연회를 개최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미국이 우리를 군사적으로 압살하려고 핵전쟁연습을 하면 우리도 미국에 대처하기 위하여 핵으로 년례화와 정례화하여 앞으로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보다 높은 단계를 취하여 미국을 참패하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

작은 조선의 여자축구선수들이 강적 미국을 격파한 것을 보니 북의 당당한 선포가 그저 빈말로만 보이지 않는다. 
 (유태영, 8/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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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미스터리, 뒷면 보기까지 35억년 걸렸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9/07 12:13
  • 수정일
    2014/09/07 12: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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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됨: 업데이트됨: 

거의 매일, 고개만 들면 하늘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는 달. 달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실은 그 이상으로 신비한 존재다. 그래서 이 개성 강한 천체는 많은 신화와 스토리의 원천이 되었고, 고대로부터 인류의 문화와 예술,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우리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는 많은 위성이 있다. 소행성대 너머 멀리 자리한 거대한 가스행성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각각 수십 개에 달하는 위성을 거느리고 있고, 이들의 위성은 지금도 계속 발견되는 중이다. 지구 지름의 절반 정도인 화성에조차 두 개의 위성이 돌고 있다. 하지만 이들 속에서도 우리 지구의 달은 유별난 존재다. 왜 그럴까.

위성치고는 엄청난 크기

일단 달은 아주 크다. 물론 태양계에는 가니메데, 타이탄, 칼리스토, 이오 등 달보다 덩치가 큰 위성이 여럿 있지만 이들은 목성과 토성 등 자신들의 모행성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작다. 그런데 달은 지름이 자그마치 지구의 4분의 1이나 될 정도로 상대적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만약 목성에 이런 위성이 있었다면 해왕성보다도 많이 작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태양의 중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목성 안쪽의 행성들 중 그럴듯한 위성을 가진 것은 우리 지구뿐이다. 수성과 금성은 위성이 아예 없고, 화성은 지름이 몇㎞에 불과한 두 개의 바윗덩이를 거느리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달은 지름이 약 3500㎞나 돼서 화성 위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몇해 전까지도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었고, 지금은 왜소행성이 된 명왕성보다 더 크다. 그런데 지구의 무게와 중력을 고려했을 때 우리 달의 크기는 고작 지름 수십㎞ 정도가 적당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왜 지구는 이렇게 이상하리만치 거대한 달을 갖게 된 걸까. 그 비밀은 달이 생겨나게 된 과정에 숨어 있다. 약 46억년 전, 태양계는 생성의 파괴적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많은 성간물질들이 뭉쳤다가 흩어지면서 덩어리를 형성하고, 때로는 궤도가 겹치면서 충돌해 또 새로운 덩어리로 만들어지던 당시의 태양계는 지금의 안정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불타는 세상이었다.

그러던 중 화성만한 크기였던 초기 행성 '티아'가 그만 지구에 너무 가깝게 접근했고, 결국은 파국적 충돌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 엄청난 충격으로 티아와 지구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면서 물질들이 합쳐지고 또 우주 속으로 뜯겨 나가게 된다. 그렇게 흩어진 잔해들은 지구의 중력에 다시 묶여 돌게 됐는데, 이 잔해들이 오랜 세월 지구를 공전하면서 다시 뭉쳐 천체를 형성해간 것이 바로 우리의 달이다. 이런 특별한 탄생의 드라마가 있었기에 다른 위성들과 비교해 월등한 몸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달은 실은 지구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나 다름없다.

달의 크기와 관련해서 더 신비한 점은 기묘한 우주적 우연으로 지구상에서 달의 크기가 태양과 거의 같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물론 태양의 지름은 달에 비해 400배나 커서, 달이 손톱만한 크기라면 태양은 지름 4m의 거대한 공에 해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태양은 달에 비해 거의 정확히 400배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이유로 지구에서 보는 크기, 즉 시지름은 달과 태양이 약 31분으로 거의 일치하게 되는데,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개기일식이 지구상에서만 관측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태양계 내 160개가 넘는 위성들 중 모행성과 이런 관계에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고, 우리가 속한 은하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동일한 겉보기크기 덕에 우리 인간의 심리 속에서 달은 태양과 동등한 상징적 무게를 지닌 채 어둠과 밤을 주재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고, 이집트나 그리스 등의 신화는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적 세계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음과 양을 서로 균형을 이루는 힘으로 인식하고 그 조화를 통해 우주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해석하는 독특한 철학은 우리가 바윗덩어리만한 위성 둘을 거느린 화성에 살았다면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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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6호가 1972년 촬영한 달의 뒷면. 달은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아 우리는 달의 앞면만을 볼 수 있다.

매년 4㎝씩 멀어지는 달

이런 달도 언제나 지금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티아와의 충돌로 만들어진 이래 달은 조금씩 지구에서 멀어졌고 지금 이 순간도 매년 4㎝씩 지구로부터 떠나가고 있다. 인류 문명이 유지된 기간 동안 알아볼 정도의 차이는 아니지만, 공룡이 보던 달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한가위 보름달은 휘황할 정도로 환하지만, 달은 해와는 달리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돌덩어리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은색 달빛은 모두 반사된 햇빛인데, 해와 달이 서로 정반대에 있고 지구가 그 가운데에 일직선상에 있을 때 한가위 달 같은 보름달이 만들어진다. 반면 지구와 90도를 이루면 반달이 되고, 달이 태양 쪽으로 있어 반사된 면이 아예 보이지 않으면 그믐달이 되어 사라진다. 이 사이클이 대략 29.5일에 한 번씩 반복된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달에는 우리가 절대 볼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뒷면이다. 달은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기 때문에 지구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따라서 우리는 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이 새겨진 한 면만을 늘 본다. 그래서 인류가 달의 뒷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은 1959년 소련의 무인탐사선 루나 3호가 달의 궤도를 돌며 첫 사진을 보냈을 때에 이르러서였다. 까마득한 옛날 지구에 박테리아가 처음 나타난 이래로, 지구에 사는 생명체가 달의 뒷면을 한 번 보는 데 장장 35억년이나 걸린 셈이다.

달의 뒷면이 가진 이런 신비함과 은밀함 때문에 자칭 유에프오(UFO) 접촉자인 조지 아담스키는 달의 뒷면에 풀이 자라고 외계인이 거주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고, 1970년대 영국의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는 앨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을 통해 인간 심리와 사회의 그늘진 면을 달의 뒷면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듭된 유무인 탐사선의 조사로 달의 앞면과 뒷면 모두 정확한 지도가 작성돼 있고, '구글 문' 서비스를 통해 일반인도 접근이 가능하다.

달의 뒷면 모습이 밝혀진 이래, 주로 평평하고 낮은 앞면과 평균 고도가 높고 험한 산이 있는 뒷면의 지형이 왜 그리 다른지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현재 유력시되는 학설 중 하나는 티아와 지구의 충돌로 인해 지금 달 지름의 3분의 1쯤 되는 작은 달이 하나 더 만들어졌고, 이 두 달이 비슷한 궤도를 돌며 긴 세월 동안 천천히 합쳐졌다는 것이다. 마치 치즈 두 장을 문질러 하나로 만들듯 앞면 쪽에서 크고 작은 두 달이 눌러져 하나가 됐기 때문에 앞면은 평평한 상태가 됐다는 말이다. 이 학설은 아직 더 구체적인 증거 수집과 연구가 필요하지만, 지구와 다른 행성의 충돌로 만들어진 두 개의 달, 그리고 그 두 개의 달이 다시 뭉쳐지는 과정이 연상시키는 스케일과 드라마는 가히 환상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달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하나 있다. 바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회자되는 달 착륙 음모론이 그것이다. 미국의 메이저 케이블 방송사인 <폭스 티브이>를 비롯해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들,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인류가 실은 달에 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다.

중요하게 지적되는 '음모'의 증거 몇 가지를 반박해보자. 공기가 없는 달에서 성조기가 나부끼는 듯 보이는 이유는 그렇게 보이도록 위쪽으로 금속 바를 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진을 조금만 자세히 보면 한눈에 드러난다. 또 달에서 찍은 사진들의 배경에 별이 없는 이유는 사람과 사물을 제대로 찍기 위해 카메라의 노출을 줄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도 밤에 인물사진을 찍으면 배경으로 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 많은 이들이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광원이 태양 하나뿐이어야 하는 달에 여러 방향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문제도 지형적인 높낮이와 굴곡을 통해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하다. 소위 음모의 증거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반박될 수 있는데도 의심이 끊이지 않는 점은 신기할 정도다.

특히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사실은, 인류가 달에 간 것이 아폴로 11호 한 번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총 7번의 시도가 있었고 고장으로 착륙하지 못한 13호 외에 6번의 달 착륙이 실제로 행해졌으며, 그 결과 12명의 우주인이 달 표면을 밟았다. 만약 아폴로호 달 착륙의 실체가 음모론자들의 주장처럼 네바다주 세트장에서의 촬영이었다면, 그런 조작을 굳이 예닐곱번이나 반복할 아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달 착륙 음모론에도 나름의 논리적, 심리적 배경이 없지는 않다. 1961년 5월25일 당시 미국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가 미 의회에서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선언을 한 이후, 달 착륙은 미국의 위신이 걸린 전 세계와의 약속이 되고 말았다. 당시 미국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최초의 우주여행 생물, 최초의 우주인 등 우주 경쟁의 모든 면에서 소련에 뒤처져 있었고 잦은 실패로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태였다. 인간의 달 착륙을 지상목표로 삼은 아폴로 계획은 그런 상황을 일거에 역전시킬 수 있는 빅카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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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1호의 파일럿인 버즈 올드린이 달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닐 암스트롱이 찍었다.

'달 착륙 음모론' 근거 없다

이렇게 냉전체제 아래서 자존심 경쟁의 의미가 있었던 만큼 당시 아폴로 계획을 수행하던 미 항공우주국의 예산은 미국 내 총생산의 4%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고, 수많은 고급인력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잦은 사고는 물론 인명의 희생도 감수하는 전쟁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만약 정해진 기간 안에 달 착륙이 불가능할 경우 조작을 통해서라도 승리를 선언하는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그리고 지름 60㎝도 되지 않는 금속 공일 뿐이던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 궤도를 비행한 지 불과 12년밖에 지나지 않은 1969년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사람 3명을 달에 보내고 귀환시킨다는 일이 과연 가능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그리 부당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주선에서 쓸 만한 컴퓨터조차 없던 45년 전 옛날에 어떻게 그런 일이 실현됐을까. 그 비밀은 달이 생각보다도 우리에게 아주 가깝게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달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인간에게는 태양이나 직녀성, 안드로메다은하와 마찬가지로 신비한 천상의 존재지만, 실은 지구 둘레의 10배 정도 거리만 여행하면 도달할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렇게, 생성 때부터 달은 우주의 심연 저편보다는 도리어 지구에 더 속해 있는 존재다.

그래서, 오래전 지구 반대편을 찾아 떠났던 마젤란이나 콜럼버스처럼 인류가 달에 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첨단의 과학기술보다 과감함과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비록 상상 속의 토끼는 사라졌더라도, 그 도전 덕분에 우리는 그보다 더 깊은 경이감과 명징한 과학적 진실의 빛 속에서 인간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한가위의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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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일째 대답 없는 실종자들…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143일째 대답 없는 실종자들…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현장] 14번째 기다림의 버스, 팽목항으로 떠나던 날
김수정 기자  |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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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9.06  08: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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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돌아와요!”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어서 돌아오세요…”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삼켜버린 바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잔하고 적막했다. 세월호 참사 143일째였던 5일 자정,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팽목항에 다다른 시민들은 실종자들의 이름을 외쳤다. 50일째 아무 소식도 없는 야속한 바다에 대고, 여전히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열 명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다.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리겠다고.

   
▲ 5일 자정에 맞춰,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이 세월호 참사 실종자 10명의 귀환을 바라며 '꼭 돌아오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5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맞은편 대한문 앞에서 14번째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했다. ‘차끝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먼, 진도 팽목항으로 떠나는 길이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6월 첫째 주부터 시작한 기다림의 버스는 묵묵히 진도로 향하고 있다. 초기만 해도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조심스러워 시민들끼리 팽목항에만 갔지만, 최근부터 꼭 진도 체육관에 들른다.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며 풍등을 날리는 행사도 가족들과 함께 하게 됐다. 이제 가족들도 ‘기다림의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도 모르게 세월호를 잊고 있는 것 같다’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문 씨는 세월호 사고와 무관하고 시민단체에 소속돼 있지도 않은 시민이라며 자기소개를 짤막하게 한 후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메인 목소리로 겨우 꺼낸 말은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였다.

김영문 씨는 “(세월호 참사가) 너무나 쉽게, 많이 잊혀지려고 하는 것 같다. 아직도 팽목항에 계신 분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죄송스럽게도 저는 이 정도의 큰 슬픔을 당해 본 적이 없어서…”라며 “여기 오기 전 광화문에서 단식을 했는데, 와 보니 오히려 제가 위로받게 되고 깨닫는 것이 많아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아픔이 아닌 걸로 받아들이는 순간 아무 상관이 없어지더라. 이런 일을 국가가 방치하는 걸 떠나 (문제 해결을) 막고 있는 게 너무 화가 난다”며 “지치지 않고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어가 같이 싸우고 행동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LA에 거주하는 차옥자 씨는 20일째 한국에 머무르는 중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들이 세월호 관련 정보와 의견을 나누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그는, 짧은 일정상 팽목항은 못 가게 될 줄 알았으나, 기회가 닿아 기다림의 버스를 탔다.

차옥자 씨는 “원래 밥만 하는 아줌마들이었다. 연예인 얘기만 하고. 그런데 이제 앵그리 맘이 됐다. 사이트를 만들어 세월호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올린다. 다들 잠도 안 자는 것 같다. 언론 보도 등 기록을 속속들이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다 보니 밖에서 볼 때 세월호 문제는 오히려 클리어하다. 그런데 한국에 전화를 하면 엉뚱한 소리만 하는 거다”라며 “언론에 광고도 내고 그러다 보니 언론 보도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 진도 실내체육관 내 붙어 있는 포스트잇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서명용지도 보인다. (사진=미디어스)

오정화 씨는 “시간이 많아서 여기저기 나가며 몸으로 때우고 있다. 용산참사 미사도 가고 강정마을 관련해서 뭐가 있을 때도 나갔었다. 그때 만났던 분들이 오늘 기다림의 버스에서도 몇몇 보이더라”라며 “그걸 보니 우리가 참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단원고가 위치한 안산에 살고 있는 김낙현 씨는 “사고 전에는 버스에서 단원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꽤 많이 봤는데 사고 이후에는 그 수가 확 줄어들었다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계속 고민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적어도 팽목항이나 광화문에 직접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 보지도 않고 들은 걸 그저 전달하는 건 잘못이라고 봤기 때문”이라며 “제도가 개선돼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시민들의 ‘성숙’이 있고 나서야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어서 돌아오세요! 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팽목항에 울려퍼진 기다림의 약속

오전 11시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진도에 닿았다. 진도 실내체육관은 조용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추석 명절은 가족들과 보내야 한다며 만류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끝끝내 집에 보냈다. ‘기다리는 팽목항 기다림의 버스’라는 검은 티를 맞춰 입은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을 실종자 가족들은 밝은 얼굴로 맞았다. 이미 안면이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자주 보네”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먼저 와 있던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과 김밥을 먹고 있던 가족들은 떡이며 과일이며 체육관으로 온 선물을 아낌없이 건넸고 ‘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7시 50분께, 광주에서 출발한 기다림의 버스 2호도 도착했다. 다 같이 둘러앉은 참가자들은 팽목항에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에 보낼 ‘귀환 편지’를 썼다. 팽목항에 들르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샛노랗던 리본이 검게 변해 버렸다는 말에, 새로 달 리본에 실종자 귀환을 염원하는 문구를 써 내려갔다.

   
▲ 서울, 광주에서 출발한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이 팽목항에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에 보낼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팽목항은 한적했다. 실종자들이 돌아오길 바라며 켜 둔 연등과 리본, 현수막들이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을 맞았다. 생전에 쓰던 가방이 걸려 있기도 했고, 김과 포도, 과자 등 좋아하는 음식으로 꾸민 조촐한 상차림도 눈에 띄었다.

이날 하늘나라 우체통에는 대통령의 응답을 기다리며 청와대 앞에서 거리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의 편지도 도착했다. 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이 대신 읽은 이 편지는 단원고 2학년 4반 고 최성호 학생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었다.

고 최성호 학생 아버지는 “감히, ‘가족’이라고 말씀드려 본다. 아이들이 맺어준 가족이 분명하니까…”라며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 하지만 진도 팽목항에, 체육관에 계신 분들과 마음은 같다. 저희보다 더 아픈 여러분들이기에 차마 위로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어 죄송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힘을 내셔야 한다”며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분노하고 뛰쳐나가야 한다”며 실종자 가족들을 독려했다.

   
▲ 광주에서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온 문정은 씨가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광주에서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온 문정은 씨는 “올해 29살인 대한민국의 보통 청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자성과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과거 수많은 대형 참사 이후 과연 대한민국은 한 발짝이라도 나아갔는지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서해 페리호 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 씨랜드 참사,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 제가 기억하는 것도 이럴진대 도대체 그 사고 이후에 우리는 어떤 반성과 대안을 모색했는지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짐해 봅니다. 140여일이 지난 세월호 참사를 이제는 잊어버리자고 삶을 챙기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사가 하루라도 빨리 잊혀지길 바라는 그 모든 사람들과 그 모든 것들과 싸우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고 누가 잘못해서 어떤 처벌과 책임을 다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세월호에 탑승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진실과 진상을 밝히는 첫 단추인 수사와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을 잘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겠습니다. 해년마다 4월 16일을 기념일로 지정해 놓고 무엇이 변했는지 꼬박꼬박 기록하고 점검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분까지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기다림에 함께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마지막 한 사람까지 돌아올 수 있게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돈보다 생명을, 돈보다 안전을, 그리고 저희 욕망과 욕심을 다스리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2014년 9월 5일 팽목항에서”

이후에는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하는 풍등 날리기 행사가 있었다. 다행히 이날은 드물게 날씨가 좋았다. 비도 내리지 않았고 바람도 적당했다. 실종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꼭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들이 적힌 풍등은 하늘 높이 날아갔다. 실종자 가족들은 어느 때보다 풍등이 환했고 멀리 날아갔다며 안도했다. “추석 전에 돌아올 거 같다”며 기대를 비친 가족도 있었다.

   
▲ 실종자 가족들이 풍등을 날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이날의 행사는 10명의 실종자들에게 “꼭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은 단원고등학교 학생 2학년 1반 조은화, 2학년 2반 허다윤, 2학년 3반 황지현, 2학년 6반 남현철, 2학년 6반 박영인, 단원고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일반인 승객 권재근 씨, 권혁규 씨, 이영숙 씨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5일은 조류 흐름이 가장 느려지는 ‘소조기’의 마지막날이었다. 소조기에 수색 성과가 있어 한 사람이라도 더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안고, ‘잊지 않고 같이 기다리겠다’는 다짐을 되새긴 채 참가자들은 팽목항을 떠났다.

   
▲ 5일은 축구 국가대표 친선전이 열렸던 날이었다. 그러나 KBC에 맞춰져 있던 채널은 NEWS 9이 시작하는 9시께 JTBC로 바뀌었다.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JTBC NEWS 9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 진도 팽목항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사진=미디어스)

 

   
▲ 팽목항을 밝히고 있는 연등 (사진=미디어스)
   
▲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현수막이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 쪽에 걸려 있다. (사진=미디어스)
   
▲ 팽목항에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 팽목항을 다녀간 사람들이 보낸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한 편지가 수백 통 쌓였다. (사진=미디어스)

 

   
▲ 세월호 참사 실종자들의 귀환을 빌며 날렸던 풍등은 어느 때보다 하늘 높이 올라갔다. (사진=미디어스)
   
▲ 실종자 가족들이 실종자들의 귀환을 기원하며 준비한 음식들 (사진=미디어스)
   
▲ 한 실종자 가족이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며 띄운 풍등이 날아간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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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그 이상

 


대공황 그 이상
(WWW.SURPRISE.OR.KR / 정태인 / 2014-09-07)

 

“대공황 그 이상(The Greater Depression)”. 버클리대학의 들롱 교수가 쓴 며칠 전 칼럼의 제목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붕괴에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는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라고 불린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1929년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에게 ‘D자 공포’를 심어줬기 때문에 애써 공황이라는 말을 피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발생한 미국의 실업은 5년이 지나서야 해소됐다. 전후의 어떤 경제위기와 비교해도 2배 이상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시간제 저임금 일자리가 대폭 늘어났다. 6년째인 금년 초, 국제기구들은 이제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서리라 장담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채권을 무제한 사들이는 “양적완화”의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하지만 금년 상반기의 경제 실적은 온통 잿빛이다. 미국의 경우 1분기 마이너스 2.1%를 경험한 후 2분기에는 4% 가까이 반등했지만 상반기 전체로 보면 겨우 1%에 불과할 뿐이다. 아베노믹스에 환호하며 1분기에 6.1% 성장했던 일본 경제는 소비세 인상의 여파로 2분기에 6.8%나 후퇴해서 평균 0.3% 성장에 그쳤다. 유로존의 위기는 독일과 이탈리아로 확산돼 두 나라는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프랑스는 제로 성장에 머물렀다.

들롱 교수는 적어도 2011년경에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 “좀 나은 대공황(The Lesser Great Depression)”이라고 불러야 했으며 이제라도 제대로 명명을 해야 할 때가 된 게 아닌지 묻고 있다. 공자도 그러지 않았는가? 정명(올바로 이름 붙이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

전후의 여느 위기와 달리, 왜 이렇게 경제는 회복되지 않는 것일까? 경제학자들은 “대차대조표 위기”라는 표현을 쓴다. 쉽게 얘기하면 빚이 너무 많아서 웬만해선 투자나 소비를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득이 조금 늘어나도 빚을 갚으려 할 테니 돈은 도로 금융기관으로 돌아가고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테니 말이다. 지난 30년 동안 금융완화 속에서 “부채주도성장”을 한 결과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30년 동안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극도로 심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 5~6년 동안 돈을 퍼부어 거둔 성장의 과실은 전부 상층에 돌아갔기 때문에 빈부격차는 더욱 악화됐다. 정치와 경제정책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불평등과 저성장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상황이 이러니만큼 나는 확대정책에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최경환 부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가계소득의 증대”에 의해 새로운 방향의 성장을 꾀하겠다고 했을 때, 실제로 “소득주도성장”을 정책기조로 삼는다면 그의 팬이 되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최 부총리는 “부채주도성장”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상층으로 돈을 몰아줘서 이들이 부동산 경기의 불씨를 살리면 중산층이 빚내서라도 이를 뒤따라 올 것이라는 얘기다. 장기적으로는 서비스산업의 모든 규제를 풀어서 대기업들에 투자 기회를 주겠다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재확인했다. 

 
“소득주도성장”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래로 돈이 내려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 그리고 사회적 경제가 바로 그런 정책들이다. 하지만 대통령, 부총리, 총리가 돌아가면서 담화를 발표하면서까지 이 정부는 정반대의 길로 국민을 몰아가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펜스 교수는 최근에 이렇게 얘기했다.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정책결정자들이 위험한 길로 들어서도록 유혹한다.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부채를 늘리는 정책을 쓰는데 이 정책은 때로 자산버블과 결합되어 있다.” 

어쩌겠는가?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아무리 집값이 들썩거린다 해도 절대로 빚내서 투기 대열에 동참하지 마시라.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그 거품은 앞으로 1~2년 내에 꺼질 수밖에 없다. 그때는 지금도 잔뜩 끼어 있는 거품까지 한꺼번에 걷힐 가능성이 높다.
 

정태인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9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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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계 다각화·적극적 외교 행보 뚜렷

외교관계 다각화·적극적 외교 행보 뚜렷[주간북한동향]8월 31일~9월 6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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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7  01: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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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동향>

□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3일 리설주 부인과 함께 만수대예술극장에서 모란봉악단의 신작음악회를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리설주 부인과 함께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관람한 것은 지난 5월 19일 이후 석달 보름만이며, 가장 최근에 함께 모습을 보인 공개행사는 지난 6월 5일(보도일자) 대동강과수종합농장과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 시찰때 였다.

이날 공연 관람에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기남·최룡해·김양건 노동당 비서, 김 제1위원장의 친여동생인 김여정, 리재일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함께 했다.

김여정은 지난 5월 19일 모란봉악단의 축하공연과 7월 7일 김 제1위원장의 송동원국제소년단야영소 현지지도에도 동행했으며, 현재 당 조직지도부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은 "온몸에 새 힘이 솟게 하는 음악회,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음악회, 고상하고 아름다운 정서로 일관된 음악회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어 젊음으로 약동하고 비약하는 우리 조국의 현실을 그대로 생동하게 보여 주었다"고 공연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여성독창과 방창으로 진행된 '철령아래 사과바다'는 "우리 인민의 지향과 감정정서, 민족의 흥치가 넘쳐나고 들을수록 매력있는 시대의 명작"이라고 부각시켰다.

이날 공연은 군대와 사회의 예술부문 일꾼들과 창작가, 예술인들, 문화성, 문예총중앙위원회, 작가동맹중앙위원회 일꾼들과 작가들, 예술교육부문의 교원, 연구사들이 음악회를 함께 보았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한 산업시설의 본보기, 표준으로 평가되는 10월8일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 공장은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공장을 찾아와 이름도 직접 지어주었으며, 그로부터 10월8일공장은 불과 10개월 사이에 완공됐다.

통신은 김 제1위원장이 "10월8일공장을 우리나라 산업시설을 당당히 대표할 수 있는 공장, 지식경제시대와 사회주의문명국의 체모에 어울리는 공장,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공장으로 전변시키자고 하였는데 건설자들이 당중앙의 구상을 빛나게 관철했다"며 만족해 했다고 전했다.

이날 김 제1위원장의 10월8일공장 현지지도에는 "황병서 동지, 한광상 동지, 홍영칠 동지, 김정관 동지가 동행하였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남북, 대미관계>

□ 미군의 남한 주둔 69주년을 맞아 북한은 미군이 유엔 관할하의 무력도 아니고 유엔결의에 따라 분쟁지역에 파견된 평화유지군도 아니면서 존재 자체가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역의 정세 불안정을 몰아오는 화근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 외무성 군축 및 평화연구소는 5일 '남조선 강점 미군은 조선반도 평화의 암적존재'라는 제목의 대변인 담화에서 "남조선 강점 미군의 활동에서 가장 엄중한 것은 조선반도 정세격화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합동군사연습"이라며, "합동군사연습과 그 주역인 미군에 대해 주변나라들은 물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계가 응당한 주목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대변인은 "오늘 남조선 강점 미군이 남조선 괴뢰들과 야합하여 남의 집 코앞에서 벌이고 있는 각종 명목의 합동군사연습은 해마다 40차 이상에 달하고 있으며 여기에 참가하는 인원은 50만명을 넘고있다. 전략 핵폭격기와 항공모함, 핵잠수함들을 동원하여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노린 '맞춤형억제전략'을 적용하면서 '평양점령'연습까지 공공연히 벌여놓고 있다"고 폭로했다.

더우기 "조선반도의 적대 쌍방사이에 정상적인 관계는 고사하고 미국에 의해 정전협정이 백지화되고 의사소통 통로마저 취약한 상태에서 핵으로 무장한 쌍방사이의 대치는 일방의 오판을 쉽게 촉발시켜 핵참화를 초래하게 되어있다"고 역설했다.

대변인은 지난 1953년 정전협정의 규정대로 미국은 3개월내에 미군을 철수시켰어야 하며, 1975년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 미군을 철수시킬 데 대한 유엔총회 제30차회의 결의도 즉시 이행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 북한은 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 문제에 관한 상설 전시관을 설립하고 인권 관련 기록물을 수집해 전시하기로 한 데 대해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대결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이날 발표한 서기국 보도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 기록전시관'설립 계획을 거론하고 "이것은 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용납 못할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며 북남관계를 더욱더 파국에로 몰아가는 대결망동"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평통은 "우리 공화국에서 '인권문제'는 제도의 본성으로 보나 인민사랑, 인민정치의 현실로 보나 절대로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인권문제가 심각한 곳은 남조선"이라고 주장했다.

조평통은 "괴뢰패당의 '북 인권기록전시관' 설립책동은 체제대결의 또 하나의 극악한 발로로서 그들이 떠드는 '대화'니, '신뢰'니 하는 것이 다 가짜이며 속에는 우리와 끝까지 엇서 북남관계를 파국에 몰아넣으려는 흉심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날로 우심해지는 괴뢰패당의 인권모략 광란을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단호히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 선발대가 오는 11일 오후 7시10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통일부와 인천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에 따르면, 북측은 1차 선발대로 선수단 94명과 항공기 승무원 12명 등 총 106명에 대한 방문을 신청했으며, 5일 정부가 이를 승인,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서한을 전달했다.

이번 선발대는 장수명 북한 올림픽위원회 대표를 포함, 임원, 심판진, 의료진, 기자단, 축구, 조정선수 및 감독 등이 포함됐으며, 11일 오후 6시 평양을 출발, 고려항공편(TU-204)으로 오후 7시 10분경 인천에 도착할 예정이다.

또한, 선수단을 운송할 평양-인천 6회, 인천-평양 6회 등 총 12개 부정기 노선에 대해서도 정부가 승인했다.

북측은 11일 94명, 16일 87명, 19일 33명, 22일 41명, 28일 7명을 서해직항을 통해 보내며, 재일조선인총연합회 소속 선수.기자 등 10명은 일본에서 인천으로, 스위스에서 활약 중인 박광룡 축구선수는 스위스에서 직접 인천으로 올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통일부와 조직위는 이날 오후 판문점을 통해 북한 대표.선수단 273명의 AD카드 및 수송장비운항승인서를 북측에 전달했다.

□ 북한 조선적십자회는 5일 제3국을 통해 불법입국한 남한 주민을 오는 11일 판문점을 통해 인도하겠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대한적십자앞으로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에 거주하는 김상근은 남한에서 살기가 너무나 어려워 정처없이 떠나 제3국에 나왔다가 무작정 북에 들어온 후 북측 해당기관에 단속됐다.

김상근은 불법입국한 범죄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남의 처자를 데려다 북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요청했지만 북의 해당기관에서는 그를 설득해 처자가 있는 남측 지역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통신은 더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오후 북측이 제의한 대로 11일 오전 11시에 판문점을 통해 김OO(남, 52세)의 신병을 인수하겠다고 북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 북한은 지금 남북관계 개선의 시금석은 '금강산관광'이라며,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기도 하지만 가장 시급한 현안인 금강산관광 재개를 통해 남측 당국이 책임있고 성실한 행동으로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5일 개인필명의 글 '북남관계 개선의 시금석은 무엇인가'에서 "겨레의 뜻과 마음을 하나로 합쳐주고 통일열기를 북돋아주는 것으로 하여 온 겨레가 절절하게 바라고있는 금강산관광이 재개된다면 그 자체만으로서도 북남관계 개선의 지름길이 열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이미 갖추어놓은 기반시설도 건재하고 뱃길, 육로도 있으니 일단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재개할 수 있는 사업인데, 이렇듯 쉬운일은 뒷전에 미뤄놓고 다른 문제들을 들이밀면서 대화와 협력을 운운하면 그 진정성에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사이트는 지적했다.

또한 "금강산관광이 재개되면 그것을 시작으로 북과 남이 신뢰와 화합의 문을 열어나갈 수 있고 관계개선의 좋은 분위기를 마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리 대화탁에 마주 앉아도 소기의 결실과 성과를 바랄 수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이트는 "이미 하던 사업부터 다시 시작할 때 호상(상호) 신뢰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 새로운 사업들도 벌여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이것이 "악화된 남북관계를 푸는 선결조건"이라고 말했다.

□ 북한은 최근 미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인 하와이호(USS Hawaii)가 한·미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합동군사연습 기간 중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미 해군기지에 기항했다며, 이를 미국이 북에 대한 불의의 선제공격으로 새 조선전쟁을 도발하려는 의도로 간주하고 경계심을 표시했다.

<노동신문>은 3일 개인필명의 논설에서 "핵잠수함 '하와이'호의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 기항은 명백히 우리 공화국을 목표로 한 것"이며, "핵선제 공격을 기본임무로 하는 '하와이'호가 남조선에서 우리를 겨냥한 'UFG' 핵전쟁 연습소동이 벌어지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 기어든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의 가장 큰 해상기동타격 무력이 7함대이며, 이 7함대사령부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는 함선들이 빠른 시간내에 한반도에 도달할 수 있고 또 미 본토에서 병력과 전쟁장비를 한반도에 전개하는데 유리한 중계기지이기 때문에 "미국이 대조선 침략정책 실현에서 매우 중시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은 미국이 북을 선제타격하기 위한 방법을 숙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앞으로의 조선전쟁을 타산하여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비롯한 순양함, 구축함 등 각종 전투함선들을 요코스카에 항시적으로 배비(배치)해놓고 있으며 남조선에서 우리를 겨냥한 전쟁연습소동을 벌릴 때마다 들이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를 북을 반대하는 정탐모략기지로 이용하고 있는데, 지난 1968년 북 영해에 침입해 정탐활동을 벌이다가 나포된 푸에블로호의 모항도 바로 이곳이었다고 신문은 폭로했다.

신문은 "불의의 선제공격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하는 것은 미국의 상투적인 수법"이며, "반도정세가 전쟁접경으로 치닫고있던 때에 핵선제 공격을 목적으로 하는 핵잠수함 '하와이'호가" '공화국에 대한 침략의 전초기지'인 요코스카 기지에 기항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 북한은 3일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측 응원단이 나가지 못하게 된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 당국에 있다며, 이에 대한 사죄를 촉구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및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은 3일 개인필명의 논평 '너절한 오그랑수가 어디에 통하겠는가'에서 "괴뢰패당은 사태의 진상을 왜곡하고 신성한 체육문화 교류마저 차단한 저들의 추악한 동족대결 책동을 합리화하며 우리 응원단이 나갈 수 없게 된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려고 오그랑수(속임수)를 쓰고있다"며, "괴뢰패당은 우리 응원단이 나가지 못하게 가로막은 범죄행위에 대해 민족앞에 성근(誠勤)히 사죄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우리(북) 응원단이 나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공동응원을 계획하고 준비해온 인천시민들을 비롯한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속에서는 민족이 화해하고 단합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차버린 괴뢰패당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가고 있다"며, "괴뢰패당은 저들이 '응원단 참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한 점은 사실과 다르다'느니 뭐니 하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신문은 지난달 20일 북측 대표단이 응원단 불참 통보를 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자 남측 당국이 "'구두언급'이니, '비공식적 이야기'니 하고 깎아내리기도 하고 저들이 그것을 깔아뭉갠 것도 '북의 공식입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발뺌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민들의 반발이 두려워 우리 응원단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숨겨오던 괴뢰패당은 우리가 그것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바람에 더는 빠질 구멍이 없게 되자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오그랑수를 쓰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신문은 북측이 인천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한 것은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였으며, 실제로 북이 응원단 파견을 발표하자 남측 민간에서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히고 공동응원 계획과 준비를 계속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응원단 파견을 주도적으로 제기한 북이 계획을 철회한 이유는 "괴뢰패당이 이처럼 응원단파견을 달가와하지 않고 왼새끼를 꼬는 조건에서 응원단이 나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거듭 주장했다.

□ 북한이 1일 케네스 배(46, 배준호)를 비롯한 '억류 미국인' 3명과 국제 프로레슬링 대회 취재차 방북 중인 <CNN>과의 인터뷰를 허용했다.

1일자 CNN 기사와 동영상에 따르면, 배 씨 등은 이날 평양 시내 한 호텔에서 CNN 기자와 만나 지난 2009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두 명의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했을 때와 같은 특사의 파견을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2012년 11월 나선경제특구 방문 중 '반공화국 적대범죄행위'로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은 배씨는 북한 내 노동교화소와 병원을 오가며 매주 6일, 하루 8시간 노동하고 있다. 그는 한달 반 전부터 건강이 악화됐다며 친구.가족들에게 기도와 석발 노력을 요청했다. '인도적 처우를 받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 4월 방북 중 여행 비자를 찢고 망명을 요청했다가 억류 중인 매튜 밀러(24) 씨는 "내 상황이 매우 다급하다. 곧 재판에 넘겨질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빨리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4월 말 청진의 한 나이트클럽 화장실에 의도적으로 영·한 성경을 두고 나왔다가 체포된 제프리 파울(56) 씨는 한 달 내에 재판에 넘겨질 것이라며 "나의 절망적인 상황을 전해달라"고 CNN 측에 요청했다.

CNN은 이날 인터뷰가 '깜짝 이벤트'처럼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북한 측에서 윌 리플리 기자에게 '평양 외곽에서 2시간 가량 고위 당국자와의 만남'이 있다고 급하게 통보했는데, 가보니 미국인 3명과의 인터뷰가 준비돼 있었다는 것.

CNN은 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참의원이 주최하는 국제 프로레슬링 대회 취재차 방북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1일 케네스 배, 제프리 파울, 매튜 밀러 등 억류 미국인 3명과 관련한 보도를 봤다며, 북한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파울 씨와 밀러 씨를 석방해 귀환시키고, 배 씨를 특별사면해 조속히 가족과 재회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촉구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2일 보도했다.

사키 대변인은 2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는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을 데려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쓸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 보다 고위인사의 방북을 원한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그 질문에는 이미 답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한 일이라면 모든 수단을 다 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사키 대변인은 '지난달 16일 한미 UFG연합군사연습 개시 이틀 전에 미 당국자들이 비밀리에 군용기를 타고 방북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말해줄 게 없다"는 반응을 되풀이했다.

□ 북한은 한·미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합동군사연습이 끝났다고 해서 남북간 대화가 아무 문제없이 재개될 수는 없다며, "문제해결의 근본방도는 남조선 당국이 외세와 함께 감행하는 합동군사연습을 무조건 중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1일 개인필명의 논평 '북침 불장난 소동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에서 남측 당국이 최근 끝난 UFG 훈련과 관련해 남북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괴상한 여론'을 흘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연습이 끝났다고 하여 그것이 고조시킨 전쟁발발의 위험과 불신, 대결기운까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언급했다.

신문은 "상대방을 심히 위협공갈하는 대규모의 전쟁연습을 하고도 아무 일도 없은 듯이 대화를 입에 올리는 것은 핵전쟁 도발소동을 반대하는 내외여론에 대한 우롱이고 모독이며 모험적인 불장난 소동으로 북남관계를 최악의 파국에로 몰아넣은 범죄적 책임을 회피하고 저들의 호전적 정체를 가려보려는 서툰 잔꾀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신문은 다시 명백히 하겠다며, "남조선에서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이 계속되는 한 북남관계에서 해결될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활짝 열어 나가자면 남조선에서 북침을 가상한 도발적인 합동군사연습들이 끝장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북) 응원단의 경기대회 참가를 그토록 달가와하지 않으며 왼새끼를 꼰 자들이 이제 와서 무슨 낯짝에 허튼 수작질인가."

지난달 28일 손광호 조선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통해 인천아시안게임에 응원단을 파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북한이 연일 남측 당국의 '진상왜곡'을 문제삼아 '반통일망동'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1일 개인필명의 논평 '반통일분자들의 구차스러운 변명'에서 지난달 29일 오전에 있었던 통일부 대변인 브리핑을 거론하며, "우리 응원단의 경기대회 참가를 가로막은 괴뢰당국의 망동에 대한 단죄규탄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데 "당황한 괴뢰들은 통일부 대변인을 내세워 '유감'이니 '왜곡주장'이니 뭐니하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고 보도했다.

통일부 대변인은 당시 브리핑에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응원단 불참을 발표하고 그 이유를 우리측이 북한의 응원단 참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한 점은 사실과 다르다"며 "이제 와서 우리가 북한 응원단 참여를 시비한다고 왜곡 주장하며, 응원단 불참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같은 날 오후 조선올핌릭위원회는 통일부 대변인 브리핑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대변인 담화를 발표해, 지난달 20일 아시안게임 조추첨식과 국제학술토론회에 참가한 북측 NOC 대표단이 공식석상에서 북 응원단이 참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식통지했으며, 남측 당국자들이 북의 입장을 신중히 듣고 다시 확인까지 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신문은 "우리는 이미 응원단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경기대회조직위원회와 괴뢰 당국 관계자들에게 공식 통지했었다. 그런데 괴뢰들은 그에 대해서는 덮어두고 있다가 이제 와서야 '구두언급'이니 뭐니 하면서 발뺌을 하고있다"고 주장했다.

남측의 이같은 언행은 "우리 응원단이 나갈 수 없게 된 이번 사태의 진상을 왜곡하고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 씌우려는 유치한 놀음"이라며, "괴뢰들은 '유감'이니, '왜곡주장'이니 하며 여론을 오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신문은 말했다.

신문은 "우리 응원단이 경기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괴뢰들의 부당한 처사때문"이며, "그에 대해 남조선 괴뢰들은 입이 열백개라도 변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이번 사태로 하여 악화된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6.15의 열기를 다시금 일으켜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사라지게 됐다. 이것은 그야말로 통탄할 일이다"라고 밝혔다.

□ "우리는 그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의 자주권 수호와 평화보장을 위해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노동신문>은 1일 '논평원' 명의로 발표한 '세계대전의 역사적 교훈과 조선반도 평화보장 문제'라는 제목의 글에서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다시피 핵무기가 세상에 출현한 이후 근 70년간 세계적 규모의 냉정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여러 지역들에서 크고작은 전쟁들이 많이 있었지만 핵보유국들 사이에는 한번도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문은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북의 핵보유로 인해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북)의 전략적 선택이 천만번 정당한 것이라는 것을 실증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우리가 핵을 틀어쥠으로써 핵공갈에 기초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은 표류하는 난파선의 운명에 처했"으며, "오바마정권의 '전략적인내'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정하고 "우리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의 대조선 압살정책에 굽어들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큰 전략적 실책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신문은 특히 최근 진행된 '을지 프리덤 가디언(UFG)'합동군사연습을 "북에 대한 가장 노골적인 핵위협 공갈이며, 조선반도의 평화보장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며, "조선반도에서 미국의 핵전쟁소동을 종식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는 길일 뿐아니라 아시아태평양지역, 나아가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선반도의 평화를 보장하자면 유령같은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 남조선강점 미군을 철수시켜야"하며, 평화적 환경 마련을 위해서는 세계 평화와 안전 유지에 책임을 지고 있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그만두고 "조선반도에서의 평화보장 문제를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문은 "우리가 강력한 전쟁억제력을 보유하지 못했다면 조선반도에서는 미제에 의해 핵전쟁의 불길이 열번도 더 일어났을 것"이라며,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믿을 것은 오직 자기 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외관계>

□ 허종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재일 총련) 의장이 5일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처음으로 방북길에 나섰다.

<교도통신>은 허종만 재일 총련 의장이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 5일 하네다(羽田)공항을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재일 총련 의장의 방북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처음이며, 허종만 의장은 지난 2006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참석 이래 8년만이다.

허 의장은 9일 북 창건기념일 관련 행사에 참가하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면담할 가능성이 있다고 교도는 전했다.

이번 허 의장의 방북은 지난 7월 4일 양국 합의에 따라 일본인 납치피해문제 등을 조사할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한 후 일본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취해왔던 재일총련 간부의 도항시 일본 재입국 금지 조치를 해제한 데 따른 것이다.

허 의장은 지난달 21일 일본 법무성 입국관리국에 방북 후 재입국 허가를 신청해 9월 5일부터 20일까지의 일정으로 허가를 받았다.

이번 방북에는 남승우 재일총련 부의장과 장병태 재일 조선대학교 학장 등이 동행하며, 허의장 일행은 6일 평양에 도착할 예정이다.

□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2일 지난달 31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차기 상임의장으로 선출된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에게 축전을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김영남 위원장은 축전에서 "북한과 유럽동맹(EU)사이의 친선협조 관계가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더욱 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그의 앞으로의 사업에서 성과가 있을 것을 축원한다"고 말했다.

또 리수용 외무상은 2일 EU정상회의에서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로 선출된 페데리카 모게리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에게 축전을 보냈다.

이밖에 박봉주 내각총리와 리수용 외무상은 지난달 31일 재임된 와엘 나데르 알할키 시리아 내각총리와 왈리드 알 무알림 내각 부총리 겸 외무 및 이주민 장관에게 각각 축전을 보내 "온갖 적대세력들의 책동을 짓부시고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수호하며 인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그와 수리아정부의 사업에서 보다 큰성과가 있을것을 축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한편, 북한은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가 6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유럽순방에 나서고 리수용 외무상이 이달 말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행보를 보이고 있다.

□ 북한은 최근 일본 정부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유엔회의에서 일본내 조선학교들이 정부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대북 적대의식에 기초한 총련말살정책의 발로이자 북의 존엄과 이익을 침해하는 엄중한 도발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총련말살책동의 후과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조선학교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차별조치는 인도주의적 원칙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고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이익을 침해하는 엄중한 정치적 도발행위"라고 비난했다.

또 북·일 우호관계 개선을 위한 신뢰조성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에 "일본은 시대의 흐름을 똑바로 보고 조선민족에게 또 다시 죄되는 일을 감행하는 경우 초래될 후과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 정부 대표는 "조선학교들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다"며, 조선학교들이 북한과 관련이 있는 조직 재일 총련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보조금 지급 중단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아 여러나라 대표들로부터 명백한 인종차별에 해당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통신은 "조선학교는 과거 일제가 조선에서 감행한 강제연행 범죄로 피해를 입은 조선사람들의 후대들이 공부하는 곳이며 정부의 승인밑에 총련이 운영하는 합법적인 민족교육기관"이라고 설명했다.

또 "민족적 자각과 현대사회의 요구에 맞는 자질을 키우고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육성을 교육목표로 하여 모든 재일동포 자녀들을 받아들여 왔으며 일본의 다른 외국인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교육내용과 운영에 있어서 관계법규를 철저히 준수해 왔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반성의 의미에서도 마땅히 조선학교의 교육조건과 환경을 충분히 보장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일 조선인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들씌워 심리적 압박감을 조성하는 것과 함께 세계관 형성단계에 있는 재일 조선인 학생들속에서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감을 거세하려 하고 있다고 통신은 말했다.

"총련은 절대로 일본 반동들의 탄압의 대상으로 될 수 없으며 재일조선인 학생들에게는 일본학생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공부할 권리가 있다"고 통신은 강조했다.

□ 북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2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알렉산드르 토르쉰 러시아연방평의회 1부의장 일행을 만나 담화를 나눴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짧게 보도했다.

방북 목적과 일정, 담화내용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양국간 러시아가 북한산 수산물 수입을 확대하는 등의 경제협력 확대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달 8.15에 즈음해 김정은 제1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친선과 협조의 전통을 강조하고 관계 발전과 평화, 안전보장에 대한 기대를 담은 축전을 서로 주고 받는 등 최근 더욱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 "블럭불가담운동 성원국들이 반제 자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나가야 한다."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 NAM) 정상회의 53주년을 맞아 <노동신문>은 1일 개인필명의 글에서 세월이 흐르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블럭불가담운동(비동맹운동) 회원국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 군사책동에 단합된 힘으로 맞서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신문은 "반제 자주는 블럭불가담운동이 내세우고 있는 근본이념"이며, "반제 자주를 위한 투쟁에서 기본은 미국과 서방세력의 강권과 전횡, 내정간섭과 무력사용을 저지파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단결과 협조를 강화하는 것은 블럭불가담운동의 불패의 힘의 원천이며, 반제 공동위업의 승리를 위한 결정적 담보"라며, "블럭불가담나라들이 굳게 단결하여 투쟁한다면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할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에도 신문은 개인필명의 논설에서 "(북은) 이 운동의 근본이념인 반제 자주, 반전 평화의 기치를 변함없이 추켜들고 블럭불가담나라, 발전도상나라들의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위업을 적극 추동했다"고 자평하고 "오늘의 조성된 정세는 우리 나라(북)를 비롯한 블럭불가담운동 성원국들이 자기의 근본이념과 사명에 충실할 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현 시기 국제무대에서는 진보적 인류의 지향과 염원에 배치되는 비정상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최근의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등의 분쟁사례를 들어 "제국주의자들은 국경문제, 종족문제, 교파문제 등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블럭불가담 나라들에 대한 내정간섭과 무력침공을 감행하면서 힘으로 합법적인 정권들을 전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러한 현실로부터 오늘 블럭불가담운동 앞에는 온 세계의 자주화, 핵전쟁의 방지와 식민주의, 인종주의의 청산, 민족해방위업의 완성, 남남협조와 경제적자립, 새로운 국제질서의 수립을 위해 힘찬 투쟁을 벌려야 할 영예롭고도 숭고한 과업이 나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 북한 국방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영국의 상업방송인 <채널4>가 북한 핵문제를 다룬 TV드라마를 제작하려는 것과 관련해, 이를 '현실을 오도하는 모략적인 광대극'이라고 비난하고 영국 당국에 제작중단과 관련자 엄벌을 요구했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날 정책국 대변인 담화에서 "영국당국은 지금 계획하고 있거나 제작되고 있는 반동영화들을 지체없이 오물통에 처넣고 주범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그것이 영국의 체면손상을 막고 힘겹게 마련된 조영(북·영)수교관계를 유지하는데도 부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같은 날 보도했다.

대변인이 양국 수교문제까지 언급하며 제작중단을 요구한 이 드라마는 영국인 핵과학자가 비밀임무 수행을 위해 북에 잠입했다가 억류돼 북의 핵무기 개발에 강제로 참여하게 되고, 이 상황에서 정치 성향이 다른 영국 총리와 미국 대통령이 협력하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는 설정에 따라 내용이 전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변인은 "우리의 자위적인 핵보검이 마치 영국의 핵기술을 '비법탈취'하여 마련된 것처럼 보이도록 황당무계한 내용을 줄거리로 하고있는 이 영화야말로 현실을 오도하는 모략적인 광대극"이라고 비난했다.

대변인은 "사태의 심각성은 이 추악한 어릿광대 놀음이 우리와 국교관계에 있는 영국의 '다우닝거리 10번지'(영국 총리관저가 있는 곳)의 묵인과 그 비호조장밑에 꾸며지고 있다는 데 있다"며, "원래 영국으로 말하면 미국식 외교를 무작정 본따기 좋아하는 유전적 기질을 타고난 나라"라고 거칠게 따졌다.

<채널4>가 제작하려는 이 드라마는 정치스릴러 장르의 60분짜리 10부작으로, 제목은 상대방을 뜻하는 '오퍼짓 넘버'(Opposite Number). 현재 공동제작할 해외 제작사를 모집하고 있으며, 완성된 연속극은 해외에 판매할 계획이다.

□ 북한과 일본 스포츠 관계자가 공동개최하는 프로레슬링대회 이틀째 경기가 지난달 31일 평양에서 진행됐으며, 이 대회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 '니코니코 도가'에서 생중계됐다고 <교도통신>이 이날 평양발로 보도했다.

교도에 따르면, 대회 첫날 째인 30일에 이어 이날도 1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류경정주영체육관'은 만원이었으며, 관심을 모았던 김정은 제1위원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교도는 "전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 참의원 의원과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실행위원장을 맡아 대회가 일·북 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에 주목이 집중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틀간에 걸친 이번 평양 프로레슬링 대회에는 일본에서 50명 이상의 관객들이 참가했으며, 미·일 등 해외 언론기자 30명 이상도 취재를 위해 방북했다


<북한내부>

□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5일 진행된 제13차 전국교육일꾼대회에서 '새 세기 교육혁명'을 일으켜 "우리 나라를 21세기 사회주의교육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노동신문>이 6일 보도했다.

이날 대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13차 전국교육일꾼대회 개최를 앞두고 지난달 30일 노동당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새 세기 교육혁명을 일으켜 우리나라를 교육의 나라, 인재강국으로 빛내이자'를 최태복 노동당 비서가 참가자들에게 전달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 제1위원장은 이날 전달된 노작에서 "교육사업은 나라와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한 만년대계의 애국사업"이며, "후대들을 어떻게 교육 교양하는가에 따라 나라의 국력과 혁명의 전도가 좌우된다"고 강조하고 '새 세기 교육혁명'을 주창했다.

김 제1위원장은 "새 세기 교육혁명의 목표는 우리의 모든 청소년 학생들을 강성국가 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키우며, 전민 과학기술인재화를 실현하여 우리 나라를 21세기 사회주의 교육강국으로 되게 하는 것"이며, "새 세기 교육혁명 수행에서 기본고리는 중등일반교육을 결정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새 세기 교육혁명의 원대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의 주체적인 교육사상과 방침을 확고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구현해나가야 한다"며, "교육부문에서는 수령님(김일성 주석)과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혀준 사회주의 교육사상과 방침을 현실에 맞게 철저히 구현해 나가며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와 원칙에서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새 세기 교육혁명 수행에서 나서는 중요한 과업은 시대가 요구하는 새 형의 인재들을 원만히 키워낼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완비하고 교육사업에 대한 지도관리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김 제1위원장은 가정교육과 사회교육, 학교교육을 밀접히 결합하여 학생들을 어려서부터 대바르고 건전하게 키워야 하며, 특히 "지식경제시대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기존 지식을 전수하기 위한 것으로가 아니라 학생들이 새롭고 쓸모있는 지식을 더 빨리 알고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교육내용을 실용화, 종합화, 현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모든 부문들에서 교육사업을 자기 사업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며 교육부문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책임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며 "다른 사업에서는 좀 지장을 받더라도 교육사업에 요구되는 자금은 무조건 보장하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회에는 최태복·최룡해 노동당 비서와 김용진·리무영 내각부총리 등이 참가했다.

□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2차 회의가 오는 25일 소집된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결정과 대의원들에게 알리는 소집 공시가 4일 발표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4일자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2차회의를 2014년 9월 25일 평양에서 소집한다"는 결정과 함께 "대의원 등록은 2014년 9월 23일과 24일에 한다"는 내용의 소집 공시를 발표했다.

통신은 이번 회의의 의제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 3월 9일 김정은 체제 들어 처음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해 제13기 대의원 687명을 선출했으며,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를 열어 김정은 제1위원장을 재추대하고 국방위원회와 내각 등 국가기구 주요 인선을 마무리했다.

5년 임기의 최고인민회의는 정기회의와 임시회의를 하는데, 정기회의는 1년에 1~2차, 임시회의는 최고인민회의는 상임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또는 대의원 전체 1/3의 요청이 있을 때 열린다.

□ <노동신문>은 3일 사설 '우리 식 경제관리의 우월성과 위력을 높이 발양시키자'에서 북한 경제가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선 가운데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경제에 대한 지도와 관리를 개선시켜 "주체적인 사회주의 자립경제의 우월성과 위력을 힘있게 과시하고 강성국가 건설의 최후승리를 이룩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신문은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확립하는 사업'은 본질에 있어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힌 경제관리의 원리와 방법을 오늘의 현실적 요구에 맞게 구현하고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사업"이라고 신문은 강조했다.

또한 "경제관리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사회주의 사회의 본성에 맞게 풀어 나가야"하며, "경제에 대한 지도와 관리를 객관적 경제법칙과 과학적 이치에 맞게 하여 최대한의 경제적 실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신문은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인민들의 복리증진과 전 사회적 이익, 혁명과 건설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게 경제관리 방법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경제지도와 관리, 생산과 경영활동에서 인민경제의 계획적 균형적 발전 법칙과 노동에 의한 분배법칙, 가치법칙과 같은 경제법칙들과 그와 관련한 경제적 공간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서 "경제지도와 기업관리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선차적인 힘을 넣고 생산과 기업관리의 모든 공정과 요소들을 과학화해야 한다"며, "인민경제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에서 새 기술의 연구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과학기술과 생산의 일체화를 실현하여 우리 경제를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일신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아직 전력, 식량문제를 비롯해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기초적인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라의 인적, 물적자원을 최대한 아끼고 하나라도 쪼개 쓰며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경제관리 개선에서 경제지도기관들과 일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경제의 발전은 과학적인 경제발전 전략을 세우고 나라의 자원과 모든 잠재력을 최대한 동원 이용하며 생산의 끊임없는 장성과 경제의 전반적 균형을 보장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성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만큼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경제관리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혁신적 안목에서, 발전적 견지에서 보고 풀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더불어 "내각은 나라의 경제사령부"라며,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강화하여 모든 경제부문들과 전반적 경제사업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이 주관하여 대책을 세워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이밖에 모든 경제지도 일꾼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깊이 자각하고 경제관리개선을 위해 늘 머리를 쓰고 이악하게 실천해 나갈 것을 요구하고 각급 당조직에서는 경제지도 일꾼들의 당생활지도를 빈틈없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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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명'한 새누리당, 박근혜 레임덕 시작?

  번호 9317  글쓴이 화씨911  조회 761  누리 10 (15,5, 1:2:2)  등록일 2014-9-5 11:45 대문 0
 
 
 
 


'항명'한 새누리당, 박근혜 레임덕 시작?
(WWW.SURPRISE.OR.KR / 화씨911 / 2014-09-05)

 

새누리당 국회의원 송광호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다. 국회의원 220여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체포에 찬성한 의원이 73명이란다. 딱 1/3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언론은 “최소한 야당의원의 20여 명은 반대표를 던졌으므로 야당도 할 말은 없다”식의 여론몰이를 한다. 즉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 동의안이 부결되었는데 그 책임을 야당과 나누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자, 새누리당의 대장인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관피아를 척결하겠다고 공언하고 이를 통해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당에서 말을 안 들은 사람이 다수다? 이거 보통일은 아니다. 어쩌면 취임 2년도 안 된 대통령의 레임덕이 여당 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체포동의안 표결은 총 223명이 참여했다. 이중 반대 118표, 찬성 73표, 기권 8표, 무효 24표다. 이날 투표에 참여한 새누리당 의원은 122명 새정치연합은 96명 정의당이 5명이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의 령이 섰으면 여당인 새누리당 122명이 10명 이내만 이탈했어도 223명의 과반을 넘어 체포 동의안은 가결될 수 있었다.

가결 정족수는 223명의 과반인 112명, 특히 정의당이 당론으로 찬성을 의결했으니 새누리당 의원 107명만 찬성표를 던졌어도 가결되었다. 야당인 새정치연합이 “박근혜 명령인데 우리가 왜?”라는 심리에다 “송광호 가결되면 나중에 야당 의원 체포동의안 상정될 때 무조건 가결될 것이므로 우리보호를 위해서라도 체포동의안 부결시켜야 돼”라는 심리까지 포함되어 전부 부결표를 던졌어도 송광호 체포동의안은 가결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이치가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철피아든 해피아든 법피아든 모든 관피아가 나라를 좀먹는 최고 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척결하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않는다는 엄명을 내렸다. 그래서 나온 말이 국가개조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이 말에 이구동성으로 “옳소”를 외쳤다.

그랬는데 정작 국회에서 대통령의 말을 허언으로 만드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런데 찬성표는 73표다. 정의당 5명을 빼면 68표...따라서 내가 보기엔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 절반은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했다. 이거 보통의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국민들에게 강하게 보이려고 해도 여당 안에서 이미 레이덕이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다.

송광호는 철도비리에 연루되어 검찰 수사를 받았다. 앞서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은 조현룡은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되었다. 때문에 언론은 송광호 관련 기사를 쓰면서 계속 ‘철피아’를 되뇌었다. 그런데 여당의 국회의원 절반 정도가 이런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고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관피아 해체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안에서 언론은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당연히 대통령의 엄명도 먹히지 않은 여당이란 제목으로 그에 대한 여당 질타의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정작 기사들은 “최소한 야당에서도 20여 명이 반대표를 던졌으니 야당도 책임이 있다”식이다.

야당? 물론 반대표 던진 의원 있다. 나도 이번 송광호 체포동의안에 부표를 던진 야당 의원들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합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비리가 확인되어 검찰이 체포하여 수사하겠다는 의원을 체포하지 말라고 한 것은 잘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분명한 것은 이번 송광호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자신들의 대장인 박근혜 대통령의 엄명을 거부한 의원이 소속의원의 절반 이상 존재하는 새누리당 책임이다. 이 책임을 벗으려고 새누리당에서 “야당 니들도 반대하지 않았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지탄의 대상이다. 이런 볼멘소리는 혹여 자신들의 대장인 박근혜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반란표 찾아”라고 할까봐서 미리 선수를 친 것 밖에 안 된다.

예를 하나 들겠다.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그러니까 정확히 1971년 10월 2일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가 대통령일 때 내무부 장관 오치성 해임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한국 정치, 아니 여당인 공화당의 인맥 줄기를 바꾸는 사건이 된다.

이 사건의 발단은 공화당의 3선 개헌안 변칙처리이다. 앞서 1969년 9월 14일 국회 제3별관에서는 공화당이 단독으로 3선 개헌안을 변칙 처리한다.

그러나 당시 공화당 안에는 양순직, 예춘호, 정태성, 박종태, 김달수 의원 등 3선 개헌안 반대세력이 있었다. 이들이 야당과 합세해 그해 4월 8일 권오병 문교부 장관 해임안을 가결시키는 소위 4·8 항명파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4·8 항명파동은 3선 개헌에 반대하던 여당 내 의원들이 권오병 장관의 해임안을 가결시킴으로써 박정희 대통령에게 3선 개헌안도 이처럼 부결시킬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들을 제명하므로 당을 정비하고 야당인 신민당을 흔들며 결국 3선 개헌 안 변칙처리에 성공한다. 이 사태로 공화당은 정구영 김종필 등 창당 실세들이 퇴조하고 김성곤, 백남억, 김진만, 길재호 등 이른 바 ‘공화당 4인 체제’로 바뀐다.

이들 4인 체제는 박정희 권부인 청와대와 중앙정보부의 지원으로 당권을 쥐고 공천권 등을 행사하면서 주도권을 장악해 명실상부한 주류세력이 된다. 하지만 공화당 안에 이들 4인체제가 강고해지면서 박정희 권력은 누수현상을 보인다.

당 내의 암묵적 여론이 대통령 3선 후 권력체제로 2원집정제 안이 나돈 것이다. 이는 4인방들의 권력 공고화에 대한 차선책이었다. 세간에서는 여당 내 권력 암투라고 했다.이처럼 권력 내부의 암투가 보일듯말듯 치열하게 전개되는 1971년 9월 30일 야당인 신민당은 물가폭등과 실미도 사건, 광주대단지 소요 사태 등을 이유로 김학렬 경제기획원, 신직수 법무, 오치성 내무장관의 해임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공화당 총재인 박정희 대통령은 아주 당연하게 당에 해임안을 부결시킬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이 지시가 먹히지 않았다. 그해 10월 2일 처리된 국회 투표에서 상당수 여당 의원들이 오치성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짐으로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이 가결된다. 공화당을 이끌던 ‘4인 체제’가 이름하여 ‘10·2 항명파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치성 장관 해임안이 가결되었을까. 이는 오치성 본인에게 있었다. 오치성은 기본적으로 김종필계로서 ‘반(反)4인체제’ 인사였다. 그는 내무 장관으로 취임 직후 4인 체제와 줄이 닿아 있던 전국의 시장, 군수, 경찰서장 등을 대거 해임시키거나 인사 이동시켜 4인체제의 밑바탕을 흔들었다. 즉 오치성이 4인체제에 밉보인 것이다.

이는 당시 투표결과를 보면 확연하다. 당일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 표결에서 가장 먼저 상정된 김학렬 경제기획원 장관의 해임안은 총 201표 중 가 91표, 부 109표, 무효 1표로 부결되었다. 이어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이 상정되었다. 투표결과 오치성 장관의 해임안은 총 203표 중 가 107표, 부 90표, 무표 6표로 가결되었다.

그런데 이어서 행해진 신직수 법무부 장관의 해임안은 총 202표 중 가 91표, 부 109표, 무효 2표로 다시 부결되었다.

결국 오치성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이 여당 소속으로 약 20여 표란 계산이 나온다. 여당 내에 오치성을 보내버리자고 암묵적으로 합의한 세력이 최소한 20여 명… 그래서 이를 ‘항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항명의 결과는 혹독했다. 박정희는 이들 20여 명을 색출한 것을 정보부에 지시했다. 색출된 항명 주동자들은 남산에 있는 중정 지하실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까지 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특히 당시 당시 카이저 수염으로 유명했던 김성곤 의원은 그 트레이드 마크인 수염까지 뽑히는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4인체제는 해체되었으며 당은 박정희 1인 지배체제로 다시 회귀했다.

나는 공화제 정부에서 여당이 대통령의 수족이 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예를 드는 것이 아니다. 이번 송광호 체포동의안은 앞서 거론한 ‘항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당시의 항명은 권력투쟁이었고 이번의 반란은 국민에 대한 반란이다.

현재 대통령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관피아에 대한 국민여론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송광호는 어떻든 철도비리의 본산인 철피아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체포동의안이 제출되었다. 제출한 주체는 검찰이지만 법무부 장관 결재와 대통령의 결재를 거친 사안이다. 따라서 이런 국민적 지탄을 받는 사건 연루자로 체포동의안에 제출된 안건 임에도 여당이 비토했다.

언론이라면 최소한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여당을 매우 질타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야당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양비론 기사를 남발, 여당의 잘못도 야당에게 덮어 씌우는 더티한 글쓰기를 한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들은 이런 더티한 언론들의 글쓰기에 농락당하며 야당까지 싸잡아 죽일 놈들이라고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여당의 책임을 벗겨주는 것이다. 이런 국민성을 익히 알기에 언론이 그런 더티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김무성이나 이완구는 지금쯤 마음이 급하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자신의 령이 무참하게 깨진 지금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인데 이를 어떻게 수습하려나? 더티한 언론들의 더티한 플레이에 엄배덤배 얹혀서 야당 공동책임 어쩌고로 넘어갈 수 있나? 하지만 그냥 넘어간다면 취임 2년도 안 된 박근혜의 레임덕은 여당 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봐도 되는데 이 또한 구경거리로는 쏠쏠한 재미를 줄 것 같다.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9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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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외면 대통령의 두 얼굴, 정권 추락할 것

사과-외면 대통령의 두 얼굴, 정권 추락할 것
 
박근혜 ‘적폐’에 책임 전가, 시라크는 50년 100년전 ‘적폐’도 사과
 
육근성 | 2014-09-05 14:51: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유족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강변한다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하는 것은 특별검사 업무와 권한이 중복될 뿐 아니라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기소하는 것이 돼 자력구제와 사인소추를 금하고 있는 형사법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진상 은폐하며 유족 요구 이런저런 핑계로 묵살

이런저런 핑계로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한다왜 유족들이 목숨 건 단식을 하면서까지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는 지에 대한 성찰은 조금도 없다대통령은 유족들을 철저히 외면하고새누리당 의원들은 마치 순번을 짠 듯 돌아가며 유족들을 모욕하고 폄하한다.

침몰 원인도 오리무중이다골든타임 2시간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허비한 이유에 대해서도 밝혀진 게 없다왜 선장과 승무원을 먼저 구조했는지무슨 연유로 급변침을 한 것인지성능 좋은 스피커를 장착하고 있으면서도 해경이 왜 밖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안했는지정전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CCTVDVD PD가 일제히 꺼졌는지, ‘국정원 지시사항이라는 문건이 왜 청해진직원 컴퓨터에서 나왔는지 모든 게 미스터리다.

사고 당일 대통령의 행적도 유족의 분노를 자아낸다수백 명 국민이 배에 갇혀 죽어가는 데 대통령은 한가하게 서면과 유선으로 보고 받았다비서실장까지 당일 대통령 동선에 대해서 아는 바 없다고 말한다사고 발생 8시간 만에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나타난 박 대통령은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고 말해 유족들을 크게 실망시켰다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얘기를 한 것이다.

박근혜 사과는 33일 만에레이건과 사르코지 등은 즉시

시간 끌기로 인해 진상이 은폐되고 있다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유족들 앞에 무릎 꿇어야 할 이들이 외려 큰소리 치고 있다이러니 유족들이 청와대와 정부여당을 믿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의 첫 사과는 사고 13일이 지나서 나왔다그것도 유족들과 국민에게 직접 한 사과가 아니라 청와대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라고 둘러 말한 게 고작이다사고 33일 만에 나온눈물 사과에도 진정성이 없다는 게 확인됐다. “내가 최종책임자” “언제든지 찾아오라라고 말해놓고도 정작 유족들이 면담을 요청하자 경찰 병력을 풀어 바리케이드를 친다. ‘유민 아빠가 46일간 단식을 해도 무반응이었다죽어도 좋다는 식이었다.

외국 지도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2009년 5월 228명을 태운 에어프랑스 AF447편이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 공항을 이륙한지 3시간 30분만에 속도 감지 장치 고장으로 대서양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사고 소식을 접한 지 하루 반 만에 사르코지 대통령이 직접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사과하고 생존자를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3일 뒤에는 전현직 대통령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트르담 성당에서 승객와 승무원을 추도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자국 여객기가 추락해 228명이 실종된 하루 반 만에 유족에게 사과하고 상황을 직접 브리핑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사진은 사고 3일 뒤 열린 추념행사에 참석하는 장면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1986년 1월 첼린저호가 공중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나자 보고를 받은 레이건 대통령은 연두 국정연설 등 중요 일정을 모두 제쳐 놓고 TV에 나가 사과와 유감을 표명하는 연설을 했다사고가 난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박근혜 '적폐'에 책임 전가, 시라크는 50년 100년전 '적폐'도 사과

프랑스와 미국 국민들은 신속하고 진솔한 사과와 함께 국민 앞에서 직접 상황 설명을 하자 참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게 더 큰 신뢰와 지지를 보냈다사고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청와대와 사실대로 말하기를 꺼려하는 박 대통령과는 영 딴판이다비정상의 정상화가 가장 필요한 곳이 청와대다.

그러면서 사고의 책임을 적폐와 관행’ ‘선장과 선주회사에 돌렸다. ‘적폐’ 때문에 일어난 참사란다이 말은 곧 사고 책임이 현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정부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명백한 책임회피다.설령 적폐가 사고를 키웠다 해도 자신의 임기 내에 발생한 사고라면 모두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게 정상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2차 대전 당시 비시정권 치하의 프랑스 정부가 독일의 유대인 강제검거에 협력한 행위를 두고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거나 다름없다며 프랑스의 책임과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유대인 강제 검거령이 내려진 날을 추념하는 행사에서 프랑스는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학살자들에게 인계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또 그는 간첩으로 몰려 종신형을 선고 받은 드레퓌스와 그의 무죄를 주장한 에밀 졸라에게 사건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나 프랑스 정부 명의의 공식 사과서한을 전달했다오래 전 정권이 저지른 불행한 일에 대해 적폐’ 운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서 사과한 것이다박 대통령과는 천양지차다.

은폐-회피 정권포드사처럼 추락할 것

진실을 알고 싶어하며 책임 질 줄 아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기 원하는 국민과 유족이 있다그런데도 진상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이러면 화만 더 키우게 될 것이다좋은 예가 있다.

2001년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는 소비자들의 신고를 토대로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사의 일부 타이어 제품에서 운행 중 접지면 파열사고가 잦아 174명이 사망하고 7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고 발표한다브리지스톤은 해당 제품을 리콜한 뒤 입을 닫았다언론의 취재 요청까지 거절한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박 대통령처럼 말이다.

그러자 브리지스톤의 주가가 50% 이상 하락했다뿐만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인 포드사에 불똥이 튄다포드사는 당시 출시된 SUV 차량에서 불거진 안전성 문제가 브리지스톤 타이어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사고가 빈번이 발생하는 차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며 판매량이 급감했다포드사는 이때 받은 타격으로 인해 추락을 거듭했고 현재 시장점유율이 현대·기아차에도 못미친다.

세월호 진상을 덮으면 청와대와 정부는 일시 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독이 될 것이다브리지스톤 타이어에서 기인한 부정적 이미지가 포드사를 강타해 추락시킨 것처럼세월호 진상은폐와 책임회피에서 비롯된 부정적 이미지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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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오씨 "추석에 광화문 다시 찾아갈 겁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2주간의 서울에서의 진료를 마치고 안산에 있는 한도병원으로 옮깁니다. 그동안 돌봐줬던 간호사들의 당부사항을 듣던 중 김영오씨가 웃음을 짓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추석인 8일에는 광화문으로 다시 찾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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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포토] 안산으로 돌아가는 유민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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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정리하는 김영오씨 건강을 많이 회복한 김영오씨, 자신이 2주동안 누워 있었던 침대를 직접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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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오씨가 서울에서 안산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 가기 위해 셋째 형이 찾아 왔습니다. 형제가 오랜만에 함께 만나 반가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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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오씨의 핸드폰 화면에는 유민이와 유나의 어릴적 사진이 설정 되있습니다. 두 딸과 함께 있으고 싶은 아빠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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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간의 서울시립동부병원의 생활을 마무리하며 담당의사의 대화를 듣고 있는 김영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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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에 잠긴 유민아빠 안산으로 갈 준비를 마친 김영오씨는 침대 위에 앉아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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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민아빠 '이제 충분히 걸을 수 있습니다' 단식으로 나빠진 건강이 많이 회복 된 유민 아빠 김영오씨, 충분히 걸어 다닐 정도로 회복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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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오씨, 2주동안 함께한 간호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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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분들고 병실 나서는 유민아빠 자신을 응원하며 찾아왔던 손님이 선물하고 간 화분을 꼭 챙겨가야 한다는 김영오씨는 두 손에 화분을 들고 병실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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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흔들어 인사하는 유민아빠 서울시립병원을 떠나 안산으로 가는 차에 올라탄 김영오씨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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