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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공천 배제가 새정치인가?

[복지국가SOCIETY] 새정치연합, 구태정치 반복하나?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07 10:58:34

 

 

 

 

 

 

오는 7월 30일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의 공천을 놓고 여야 정당들이 시끄럽고 분주하다. 전국 15곳에서 선거가 치러지니 가히 '미니 총선'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번 재보궐 선거의 공식 선거 운동은 7월 17일부터 개시된다. 이를 위해 7월 10일과 11일 양일 동안 후보자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런데 후보자 등록 4일 전인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후보자가 결정되지 않고 있다. 지금 여러 편의 구태정치 드라마가 여야 정당에서 펼쳐지고 있고, 이 때문에 후보자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구태 정치를 반복하는 잘못된 공천 과정
 
새정치연합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상황 전개인데, 이는 대다수의 전문가들과 상식을 갖춘 보통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광주 광산을 지역구에 공천 신청한 천정배 전 장관을 원천적으로 공천에서 배제하기로 한 결정이 그것이다. 천정배 전 장관이 자신의 전략 공천을 요구한 것도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민주적 절차에 따른 공정한 경선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천정배 전 장관을 경선에서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광주 광산을 지역구에서 천정배 전 장관과 경합하고 있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빼서 서울 동작을 지역구에 전략 공천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동작을 지역구에서 경선을 준비하고 있던 예비 후보들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다. 새정치연합은 그러면서 광주 광산을 지역구를 전략 공천 지역구로 결정해 버렸다. (☞ 관련 기사 : 천정배 "광주 전략공천 반대, 즉각 경선해야" 반발)
 
이는 전형적인 구태 정치다.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서 전략 공천을 받은 기동민 전 부시장은 아예 이곳에 예비 후보로 등록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는 광주 광산을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고 선거 운동을 위한 사무실 개소식까지 마친 상태였다. 광산을 지역구의 경우, 전략 공천 이야기는 처음부터 없었다. 당연히 경선할 것이란 전제 하에 천정배 전 장관과 기동민 전 부시장 등의 후보자들이 예비 후보로 활동을 개시했었다. 그리고 이들은 중앙당에 와서 공천 면접 심사까지 마쳤고, 이 장면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이번 공천 파동을 보면 새정치연합에는 아무런 원칙도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국가와 정당의 발전이라는 공익적 기준과 판단보다는 어떤 공학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기 사람을 심겠다는 정치적 욕심만 넘쳐난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당이라면 선거를 둘러싼 절차와 과정도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생략되고, 어느 날 갑자기 전략 공천을 결정하여 힘으로 내리누른다. 납득할 만한 이유도 설명도 없다. '선당후사'라고 강변할 뿐이다. 이러한 패권적 행태가 백주에 버젓이 자행되는 정당이 어떻게 민주적 수권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 7.30 광주 광산을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3일 비를 맞고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천정배 블로그

▲ 7.30 광주 광산을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3일 비를 맞고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천정배 블로그

 
천정배 공천 배제 결정은 잘못된 것이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천정배 전 장관을 광주 광산을 지역구 공천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이를 언론에 발표했다. 이로 인해 천정배 전 장관은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부당하다. 공천에서 누구를 배제하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후보자가 국가와 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든지, 당의 가치와 노선에 부합하지 않는다든지, 직간접적으로 범죄나 부패에 연루되었다든지, 무능하다든지, 이러한 종류의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는 게 마땅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당 지도부가 공천하고 싶은 새 인물이 탁월하게 우수하고 정치적으로도 필요한 인물이라는 설명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광산을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천정배 전 장관을 배제하는 일련의 정치적 과정은 이와는 전혀 무관했다. 천정배 전 장관은 호남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에 수석합격했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다. 졸업 후에도 인권 변호사로 사회 발전에 기여했으며, 4선의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흠집 없는 유능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또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법무부 장관도 지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가 사랑하고 지켜왔던 정당으로부터 원천적 공천 배제라는 부당한 모욕을 당하고 있다. 
 
천정배 전 장관에게 경선 참여 기회를 주는 게 옳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이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일부 당 지도부의 정치적 욕심이 개입된 그릇된 판단 때문에 경륜과 비전을 갖춘 한 유능한 정치인의 정치 생명에 심각하게 모욕과 타격을 가하는 파렴치한 구태정치이기 때문이다. 만약,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천정배 전 장관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면서까지 전략적으로 공천하고 싶은 유능하고 새로운 인물이 있다면 사전에 천정배 전 장관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런데 지난 과정에서 합당하게 이해될 만한 그 어떤 절차도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까지 광주 광산을 전략 공천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은 천정배 전 장관을 희생시켜야 할 만큼 그렇게 탁월해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지금이라도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광주 광산을 지역구에서 전략공천 방침을 철회하고 '민주적인 경선'을 실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 공천 후보자로 천정배 전 장관을 선택하든 배제하든, 이에 대한 결정은 광산을 지역구의 주민 또는 당원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만약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끝까지 민주적인 경선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천정배 전 장관은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는 원천적 배제 방침을 수용하든지, 새정치연합을 탈당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든지, 이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정배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꿈은?
 
지금도 새정치연합의 당헌에는 '복지국가'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박혀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대선 시기, 야권의 문재인 대선 후보는 '보편적 복지국가' 노선과 정책으로 대선을 치렀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정당 정치뿐만 아니라 제1야당에서도 사실상 '복지국가' 논의가 실종되어 버렸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구호였던 '한국형 복지국가'가 집권 이후 사실상 철회되면서 제1야당의 '복지국가' 노선도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사회의 기대와 열망으로 떠올랐던 복지국가 논의, 즉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양대 축으로 하는 보편주의 복지국가가 지난 대선 이후 서서히 정치 의제에서 사라진 데는 국민의 기대를 배반하고 복지국가 공약을 폐기한 박근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런데 야당에게도 상당한 정도의 책임이 있다. 김한길 지도부의 중도 우파 성향과 리더십 부족, 이에 더해 친노 세력의 연이은 정치 공학적 실책이 겹치면서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복지국가' 공약 철회와 <줄·푸·세> 노선의 부활을 공세적으로 막아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우리사회의 '복지국가'를 향한 꿈도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만 것이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연합뉴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연합뉴스

 
결국, 대선 이후 지금까지 시민사회의 줄기찬 공론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은 '복지국가' 논의를 정치의 전면으로 부상시켜 내지 못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새정치연합으로 바뀌면서 복지국가와 관련하여 상황은 더 나빠졌다. 새누리당의 노선에 근접한 중도우파 성향의 안철수 세력이 합류하면서 제1야당의 정치적 성향이 전반적으로 우 클릭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안철수 공동 대표가 복지 공약을 파기한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방안(기초연금 지급금액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연계하는 방안)을 그대로 수용했던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났다.
 
새정치연합이 내세운 '복지국가' 노선이 정치적으로 구현되길 바란다면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천정배 전 장관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 알다시피, 천정배 전 장관은 경기도 안산에서 내리 4선을 했다. 2012년 4월 총선 때는 '사지'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구를 수용하여 강남구에 출마한 정동영 전 장관과 함께 서울의 '강남 3구'에 해당하는 송파구에 출마했다. 기적에 가까운 높은 득표에도 불구하고 결국 낙선했다. 고심 끝에, 그는 광주로 내려갔다.
 
광주에 변호사 사무실을 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호남 출신이지만 호남에서 정치적 자산을 축적하지 못했고, 호남인들로부터 정치적 이방인 취급을 받는 상황을 돌파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제1야당의 '혁신과 변화' 바람을 호남에서부터 일으키길 희망했다. 그 바람이 향하는 곳은 바로 '복지국가'였다. 2010년 9월, 천정배 전 장관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합의제 민주주의, 민주적 시장경제, 보편적 복지, 한반도 평화, 그리고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위한 9개 개혁 과제까지 제시했다.
 
천정배 전 장관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건설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는 경기도 안산에서 4선 의원을 지냈음에도 호남에 대한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호남과 함께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기 위해 광주로 갔다. 결국 어떤 경우든, 새정치연합을 떠나는 일은 그에게는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그에게 <정의로운 복지국가>의 꿈에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게 옳다. 그가 광주에서부터 혁신의 바람을 일으켜 야권을 더 강하게 만들 기회를 주는 것이 덧셈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는 호남과 <정의로운 복지국가> 건설의 꿈을 위해 고독한 결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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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뒤에 다시 찾아온 ‘운명적인 7월’

 
한호석의 개벽예감 <12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7/07 [12:13]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이 사진은 1972년 5월 4일 0시 15분 김일성 주석이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접견하는 장면이다. 이후락은 박정희 대통령의 특사로 1972년 5월 2일 판문점을 지나 평양에 도착하여 3박4일 체류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락을 자신의 특사로 파견하면서 북측과의 회담에서 평화통일원칙에 대해서만 합의하라고 지시하였으나, 김일성 주석은 이후락 특사를 몸소 두 차례나 접견하면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제시하였고 그 원칙을 명시한 7.4 공동성명을 발표하도록 이끌었다.     © 자주민보


왜 2014년 7월을 ‘운명적인 7월’이라고 하였을까? 
   

북측 국방위원회는 지난 6월 30일 남측 정부에게 보내는 ‘특별제안’을 발표하였다. ‘특별제안’의 제목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틀어쥐고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자’라고 되어 있다. ‘특별제안’에서 북측 국방위원회는 남과 북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에 따라 민족공동이익에 맞게 남북관계개선을 추진하자고 남측 정부에게 제안하였다. 

그런데 남측 정부는 북측 국방위원회의 ‘특별제안’을 즉각 거부하였다. 요즈음 남측 정부가 대북적대감을 표출하며 북을 자극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이 북측 국방위원회의 ‘특별제안’을 “얼토당토(하지) 않은 주장과 진실성이 결여된 제안”이라고 받아치며 거부한 것은 뜻밖의 일로 보이지 않는다. 정작 뜻밖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남측 정부가 북측 국방위원회의 ‘특별제안’을 거부한 행동이 아니라 북측 국방위원회가 남측 정부에게 ‘특별제안’을 보낸 행동이다. 북측 국방위원회는 남측 정부가 거부할 것이 뻔한 ‘특별제안’을 왜 이 시점에 보낸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아래와 같은 사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특별제안’에 나오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은 1972년 7월 4일 남과 북이 분단 이후 최초로 합의, 발표한 7.4 공동성명에 명시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이다. 7.4 공동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던 42년 전 그 날, 이 민족의 통일열망은 그야말로 열화처럼 끓어올랐으며 국제사회로부터도 적극적인 지지와 찬동을 받았는데, 특히 유엔총회 정치위원회는 7.4 공동성명을 지지하는, ‘코리아문제에 관한 합의’라는 제목의 성명을 1973년 11월 21일에 채택한 바 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40여 년 전에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말 자체를 거부하였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진보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으며, 국민들에게 ‘멸공통일사상’을 주입하며 대북적대감을 고취하고 있었다. 그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었지만, <사진 1>이 말해주는 것처럼, 당시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반대할 수 없어 그 원칙을 인정하였고, 그에 따라 7.4 공동성명이 합의, 발표되었던 것이다. 

해마다 7월 4일이 오면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의하는 내용의 대남성명을 발표해왔는데, 특별히 올해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아니라 북의 국정최고기관인 국방위원회가 ‘특별제안’이라는 전례 없는 발표형식으로 남측 정부에게 그 3대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개선에 나서자고 제안한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북측 국방위원회가 이번에 발표한 ‘특별제안’은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대남성명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북의 최고영도자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사가 ‘특별제안’에 담겼음을 직감할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특별제안’의 마지막 문장이 “운명적인 7월이 남조선당국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는 점이다. 왜 2014년 7월을 ‘운명적인 7월’이라고 하였을까?

시간흐름을 꽤 거슬러 올라가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에 펼쳐졌던 복잡한 정세를 되짚어보면, 남과 북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합의하고 7.4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던 1972년 7월도 이 민족에게 ‘운명적인 7월’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72년 7월이 이 민족에게 ‘운명적인 7월’이었기에,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최초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한 7.4 공동성명을 발표한 역사적 사변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1972년 7월이 이 민족에게 ‘운명적인 7월’이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 <사진 2> 7.4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약 넉 달 전인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였다. 이 사진은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가 베이징에서 닉슨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1972년 2월 28일 상하이에서 역사적인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국제정세가 격동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음을 알려주는 놀라운 사변이었다.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중국은 북이 1971년 4월 12일에 발표한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명시하였다. 7.4 공동성명 발표는 '상하이 공동성명' 발표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가 급격히 변화되는 격동기에 남과 북이 공동으로, 주체적으로 대응한 역사적 사변이었다.     © 자주민보

 
‘상하이 공동성명’과 ‘파리평화합의’, 그리고 7,4 공동성명    

역사적인 7.4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약 넉 달 전에 또 다른 역사적인 공동성명이 발표되어 세상에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1972년 2월 28일 미국과 중국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당시 미국 대통령은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1972년 2월 21일부터 28일까지 중국을 방문하였고, 그의 중국 방문 중에 ‘상하이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도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미국과 중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개선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도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목하는 것은, ‘상하이 공동성명’이 미중관계개선에 대해서만 밝힌 것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는 점이다. 관련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71년 4월 12일에 발표한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을 확고히 지지하며,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철폐를 요구하는 조선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힌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이란, 허담 당시 북측 외무상이 1971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발표한 조국통일방침인데, 그 내용을 원문 그대로 축약,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키는 것”

둘째, “미제침략군이 물러간 다음 남북조선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아래로 줄이는 것”

셋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일조약>을 비롯하여 남조선 괴뢰정권이 민족의 리익에 배치되게 외국과 체결한 모든 매국적이며 예속적인 조약들과 협정들을 폐기하며 무효로 선포하는 것”

넷째,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적인 중앙정부를 세우는 것”

다섯째,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위하여 남조선 전지역에서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며, 남조선에서 체포, 투옥된 모든 정치범들과 애국자들을 무조건 석방하는 것”

여섯째, “현재와 같은 남북의 각이한 사회제도를 그냥 두고 과도적 조치로서 남북조선련방제를 실시하는 것”

일곱째, “남북 간의 통상과 경제적 협조, 과학, 문화, 예술, 체육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호상교류와 협조를 실현하며 남북 간의 편지거래와 인사래왕을 실현하는 것”

여덟째, “이상의 과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각 정당, 사회단체들과 인민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로서 남북조선정치협상회의를 진행하는 것”

미국은 위에 열거한 8개항을 거부하였다. 1971년 10월 22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당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담록을 읽어보면, 저우언라이 총리는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북이 발표한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 전문을 읽어주었는데, 키신저는 그 8개항이 발표된 것조차 알지 못하였으며, 8개항에 나오는 ‘남조선 괴뢰정권’이라는 용어를 지적하며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은 ‘조선의 평화적 통일에 관한 8개항’을 적극 지지하였고, 미국은 그것을 전면 거부하였으니, 그 두 나라가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어떤 합의도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상하이 공동성명’은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별도항목으로 병기한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밝힌 부분을 원문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미국은 대한민국에 대한 지지와 대한민국과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교류증대를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노력을 지지할 것이다.”

1971년 10월 22일에 진행된 저우언라이-키신저 회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가 지적한 것처럼, 당시 미국과 중국이 상호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3대 문제는 베트남 문제, 대만 문제, 한반도 문제였는데, 미국과 중국은 1972년 2월 28일에 발표한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베트남 문제와 대만 문제는 해결하였으나, 한반도 문제는 미해결로 남겨두었다. 
 
▲ <사진 3> 1973년 1월 23일 레 둑 토 당시 베트남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회의센터에서 진행된 회담에서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협상하고 회담장을 떠나면서 주위에 모여든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과 격렬하게 맞붙은 20년 전쟁에서 북베트남이 승리하였다는 자주적 베트남민족의 신심을 그의 당당한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국주의 미국의 패전과 자주적 베트남민족의 승리를 알린 파리평화합의는 긴 협상 끝에 1973년 1월 27일에 발표되었다. 그리하여 미국군은 1973년 3월 29일까지 남베트남에서 철군하였고, 그로부터 2년 뒤 남베트남 친미예속정권은 북베트남에게 항복하였고, 베트남전쟁의 종식과 베트남의 통일이 실현되었다.     © 자주민보


당시 미국과 중국이 상호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문제와 대만 문제를 각각 해결한 방식은 종전과 철군이었다. 그에 따라, 미국과 북베트남은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전쟁 종식과 베트남에서의 평화회복에 관한 합의’(파리평화합의)를 발표함으로써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 동안 지속된 베트남전쟁을 끝냈고, 미국은 대만에 주둔시켜온 미국군을 1973년 8월 26일부터 철군하기 시작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1972년 2월 28일 ‘상하이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합의’가 발표되고, 1973년 8월 26일 대만 주둔 미국군 철군이 시작된 대격동기에 7.4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7.4 공동성명 발표는 당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미중관계개선, 베트남전쟁 종식, 대만 주둔 미국군 철군으로 이어진 동아시아의 격동적인 정세변화에 남과 북이 공동으로, 주체적으로 대응한 역사적 사변인 것이다. 동아시아의 격동적인 정세변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던 1972년에 만일 남과 북이 공동으로, 주체적으로 대응한 7.4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못한 채 맥을 놓고 방관하였더라면, 이 민족은 동아시아 정세변화의 구석으로 밀려나 자괴감과 열패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남과 북이 공동으로, 주체적으로 동아시아의 격동적인 정세변화에 대응하여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합의하고 역사적인 7.4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으니, 1972년 7월을 어찌 ‘운명적인 7월’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국과 중국이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한 격동적인 사변은 미중관계개선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 격동적인 사변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의 결과였으며, 동시에 동아시아 정세에 미증유의 위험이 임박하였음을 예고한 것이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가 한반도 정세에 충격을 안겨주는 것은 불가피하였으며, 거기에 더하여 동아시아에 임박한 미증유의 위험이 한반도에 파급되리라는 것도 명백하였다. 이처럼 한반도 정세가 거대한 변화와 임박한 미증유의 위험으로부터 각각 충격과 동요를 받고 있었다는 점에서, 1972년의 7월은 이 민족에게 그야말로 ‘운명적인 7월’이었다. 그리하여 당시 남과 북은 한반도 정세변화를 민족공동이익에 맞게 추동하기 위한 공동지침을 시급히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것이 바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이었으며, 남과 북이 그 3대 원칙을 공동으로 천명한 역사적인 합의가 바로 7.4 공동성명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중국봉쇄전략 파탄과 일본의 무력증강책동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절정에 올랐던 미국의 대중관계개선 움직임은 이미 1970년 하반기부터 조용히 준비되고 있었다. 이를테면, 1970년 11월 10일 야히아 칸(Yaya Khan)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이 닉슨의 친서를 들고 중국을 방문하였고, 1970년 12월 18일 마오쩌뚱(毛澤東)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일찍이 중국혁명을 서방에 알린 저명한 미국인 문필가 에드가 스노우(Edgar P. Snow)와 회견하는 자리에서 닉슨의 중국방문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었다. 그에 화답하여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71년 4월 14일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중국과의 인사교류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새로운 중국정책을 발표하였고, 이틀 뒤인 4월 16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과의 국교수립이 미국의 목표라고 언급하면서 중국을 방문하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1970년에 자기의 중국정책을 급전환하여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거기에는 아래와 같은 사연이 있었다. 

1971년 6월 13일 <뉴욕 타임스>는 ‘베트남 기록문서: 30년 동안의 미국의 개입을 추적한 펜타곤의 연구(Vietnam Archive: Pentagon Study Traces Three Decades of Growing US Involvement)’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미국 현대사에 ‘펜타곤 문서(Pentagon Paper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충격적인 문서는 존슨 행정부 시기에 로벗 맥나마라(Robert McNamara) 당시 국방장관의 특별지시로 1967년 6월 17일 미국 국방부에 설치된 실무진이 작성한 비밀문서다. 그 비밀문서가 언론에 유출, 공개됨으로써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도발한 목적이 중국을 봉쇄하려는 데 있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미국 언론에 유출, 공개된 ‘펜타곤 문서’를 일고 커다란 충격을 받은 미국의 각계각층은 베트남전쟁을 즉각 중지하고 미국군을 철군하라는 반전여론으로 더욱 들끓게 되었다.
 
▲ <사진 4> 1975년 4월 30일 오전 덩 반 민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은 라디오특별방송을 통해 남베트남임시혁명정부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항복선언을 발표하였다. 그 항복선언이 발표된 직후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북베트남군 전차가 남베트남 대통령궁 정문을 부수고 진입하여 북베트남 국기를 게양하였다. 미국은 20년 동안 지속된 베트남전쟁에서 50,000명이 넘는 병력을 잃고 패하였다.     © 자주민보

 
‘펜타곤 문서’에 따르면, 미국의 중국봉쇄전략은 일본-한국 전선, 인도-파키스탄 전선, 동남아시아 전선을 반원형으로 구축하여 중국 포위망을 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 중국과 격돌하고 있었던 소련까지 대중포위망에 끌어들여 중국을 세계적 범위에서 봉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포위망을 치려던 미국의 봉쇄전략은 결국 완전히 파탄되고 말았다.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1955년부터 1975년까지 장장 20년 동안이나 지속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패하여 퇴각함으로써 미국이 구축해오던 중국봉쇄포위망이 찢어지고 말았다. 더욱이 중국을 포위하려던 미국의 중국봉쇄전략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여 결정적으로 파탄시킨 놀라운 사변은, 1971년 9월 중국이 사거리가 15,000km에 이르는 첫 자국산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東風)-5호를 시험발사한 것이었다. 이미 1970년 4월 24일 첫 자국산 인공위성(東方紅-1호)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고, 1971년 3월 3일 두 번째 자국산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던 중국은 1971년 9월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시험발사함으로써 마침내 핵강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는 그 나라의 국제적 지위를 단번에 격상시켰으니, 1971년 10월 25일 유엔총회 제26차 본회의에서는 대만을 유엔에서 추방하고 중국을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영입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핵강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중국이 대만을 밀어내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영입된 1971년에 미국은 결국 자기의 중국정책을 급전환하여 중국봉쇄를 포기하고 중국과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길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사변들이 당시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였던 것이다. 

그러면 1972년의 동아시아에 임박하였던 미증유의 위험은 무엇인가? ‘상하이 공동성명’에는 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중국은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과 대외팽창을 강하게 반대하며,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롭고 중립적인 일본을 건설하려는 일본 인민들의 열망을 확고히 지지한다.” 여기에 인용한 ‘상하이 공동성명’의 관련문장에 따르면,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과 대외팽창이 1972년 동아시아에 임박하였던 미증유의 위험이었던 것이다. 

1971년 7월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저우언라이-키신저 회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 일본 군국주의는 현재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은 미국과 일본이 1969년에 발표한 공동성명에 의해 촉진되고, 뒷받침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가 언급한, 1969년에 발표된 미일공동성명은 1969년 11월 21일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과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일본 총리가 워싱턴 디씨에서 진행한 미일정상회담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을 뜻한다. 

주목하는 것은, 그 공동성명에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은 극동국가들이 지역의 안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기대하면서, 미국이 극동에서 자기의 방위공약의무를 존중함으로써 극동의 평화와 안전을 계속 유지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였다.” 이 문장에 따르면, 미국은 앞으로 동아시아의 안전문제를 일본에게 맡기고 자기는 미일상호방위조약의 의무를 이행(implement)하는 게 아니라 존중(honor)하겠다는 것이다. 1969년에 발표된 미일공동성명을 읽어보면,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력이 이전보다 약화되면서 재기한 일본 군국주의세력이 동아시아를 위협하게 될 가능성이야말로 당시 중국이 우려한, 동아시아에 임박한 미증유의 위험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그러한 우려는, 저우언라이-키신저 회담에 키신저의 특별보좌관으로 배석한 윈스턴 로드(Winston Lord)가 작성하여 키신저에게 제출한, 저우언라이-키신저 1971년 7월 29일 회담록에서 더 뚜렷이 나타났는데, 그 회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일본의 국력이 강화된 판국에 미국이 극동에서 철군하는 것은, 미국의 목적이 일본을 강화시켜 다른 아시아 나라들을 지배하는 데서 일본을 미국의 전위대(vanguard)로 내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당시 중국이 심히 우려하였던 것은, 미국군이 동아시아에서 철군하는 경우 무력증강을 다그치고 있는 일본 자위대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등장하게 되리라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은 특히 한반도와 대만에 대해 우려하였는데, 1971년 10월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저우언라이-키신저 회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한반도 문제는 “오늘날 새로운 위기를 발생시키는 문제”라고 하면서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조선과 대만을 자기들의 대외팽창을 위한 도약대로 삼았는데, 이것은 세상에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중국은 미국이 대만 주둔 미국군을 일본 자위대로 대체하는 것을 반대하고, 남조선 주둔 미국군을 일본 자위대로 대체하는 것도 반대한다. 만일 미국이 남조선의 군사력을 전례 없이 증강시켜놓고 철군한다면, 미국군이 철군한 이후 더욱 심각한 무력충돌이 일어날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극동에서 긴장완화를 크게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 인용한 각종 역사자료들은 1970년대 초 베트남전쟁에서 패하여 퇴각을 앞둔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력이 이전보다 상당히 약화되었고, 그 틈을 노린 일본이 무력증강을 다그쳐 미국의 돌격대로 변신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복잡하고 위험한 정세에 처해 있었던 남과 북이 민족공동이익에 맞게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할 긴급한 상황이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1972년 7월은 ‘운명적인 7월’이었다. 
   
▲ <사진 5> 일본 자위대가 발족한지 60주년이 된 2014년 7월 1일 일본 육상자위대가 사상 처음으로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여 상륙전연습을 벌이고 있었던 시각 상륙전연습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미국 국방부 산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서 미국, 일본, 한국의 합참의장들이 3자 군사회담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같은 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극우내각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조치를 결정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일본이 재한일본인 보호라는 구실을 내걸고 미국의 지휘에 따라 일본 자위대를 이 땅에 출병시켜 미국의 대북전쟁 돌격대로 나서겠다는 한반도 재침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 자주민보


지금‘운명적인 7월’에 얼마나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가?     

베트남전쟁에서 패하여 퇴각을 앞둔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력이 이전보다 상당히 약화되었고, 그 틈을 노린 일본은 무력증강을 다그쳐 미국의 돌격대로 변신하고 있었던 1972년의 ‘운명적인 7월’로부터 어느덧 42년 세월이 흘러 2014년 7월이 되었다. 그 7월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30일 북측 국방위원회는 남측 정부에게 보낸 ‘특별제안’에서 “운명적인 7월이 남조선당국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특별제안’에서 2014년 7월을 ‘운명적인 7월’이라고 한 까닭은, 42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 또 다시 ‘운명적인 7월’을 맞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펼쳐지고 있는 정세변화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북측 국방위원회가 ‘특별제안’을 발표하기 나흘 전인 지난 6월 26일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이 하와이 인근해역에서 시작되었다. 수상전함 47척, 잠수함 6척, 각종 작전기 200여 대, 병력 25,000명이 참가한 세계 최대 규모의 해군훈련이다. 미국은 항공모함 1척, 순양함 4척, 구축함 4척, 호위함 2척, 공격잠수함 3척, 수륙양용공격함 1척, 상륙함 1척, 연안전투함 1척, 긴급전투지원함 1척, 보급함 2척, 구난함 1척, 예인선 1척, 병원선 1척, 연안경비함 1척으로 편성된 대규모 해군무력을 참가시켰다. 

그런데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 지난 7월 1일 미국과 일본은 매우 이례적으로 몇 가지 움직임을 한꺼번에 연출하여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하와이 카네오헤만(Kaneohe Bay)에 있는 미국 해병대기지에서 일본 육상자위대 서부방면연대 소속부대가 상륙전연습을 실시한 것이다. 일본 자위대 중에서 육상자위대가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일본 육상자위대가 사상 처음으로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여 상륙전연습을 벌이고 있었던 시각, 그 상륙전연습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미국 국방부 산하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소(APCSS)에서는 미국, 일본, 한국의 합참의장들이 3자 군사회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진 5>에서 보는 것처럼, 최윤희 한국군 합참의장, 마틴 뎀프시(Martin E. Dempsey) 미국군 합참의장, 이와사키 시게루(岩崎茂)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장이 한 자리에 모인 3자 합참의장 군사회담은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열렸다. 

하와이에서 일본 육상자위대가 상륙전연습을 실시하고, 미국, 일본, 한국의 합참의장들이 3자 군사회담을 진행하였던 지난 7월 1일은 일본 자위대가 발족한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일본 도쿄에서는 바로 그 날 아베 신조(安培晋三)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조치를 결정하였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조치는 아베 내각이 단독으로 추진한 게 아니다. 집단자위권 행사로 동아시아 침략전쟁의 길을 터놓은 일본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미 50년 전에도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기를 바랐던 ‘전과’가 있다. 2013년 11월 30일 기밀해제된 일본 외교문서에 따르면, 1964년 6월 30일 로벗 맥나마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워싱턴 디씨를 방문한 후쿠다 도쿠야스(福田篤泰) 당시 일본 방위청 장관과 회담하면서 “일본에서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은 이 움직임이 일본의 경제력에 비해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후쿠다 방위청 장관은 “헌법 9조는 일본을 약체로 만들려는 점령정책의 유산이다. 경찰예비대, 보안대, 자위대 등의 단계를 거치며 실질적으로는 (헌법 9조를) 변경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을 찬성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꼭 50년이 지난 2014년 7월 1일 일본 자위대는 재한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한반도에 출병하여 미국군사령관의 지휘를 받으며 한국군과 대북합동작전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7월 1일 하와이와 도쿄에서 일어난, 마치 치밀하게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인 것 같이 보이는 일련의 맞물린 사건들을 살펴보면, 북측 국방위원회가 6월 30일에 발표한 ‘특별제안’에서 2014년 7월을 왜 ‘운명적인 7월’이라고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1972년의 ‘운명적인 7월’에 그러했던 것처럼, 2014년의 ‘운명적인 7월’에도 미국은 일본을 돌격대로 앞세워 동아시아에서 차츰 쇠퇴하는 자기의 지배력을 유지해보려고 획책하는 중이고, 그 틈을 노린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틀어쥐고 무력증강을 다그치면서 한반도 출병기회를 노리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정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무력증강책동이 중일전쟁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판이다. 미국군이 본진으로 출전하고, 일본 자위대가 돌격대로 앞장서고, 한국군이 선견대로 동원되는 ‘미일한 3자 군사동맹’의 1차적인 공격대상은 중국이 아니라 북이다. 미국과 일본에게 중국은 공격대상이 아니라 견제대상이다. 댜오위다오 주변해역에서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이 국지적 무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중일전쟁의 가능성은 없다. 

중국와 달리, 북은 미국과 일본에게 있어서 견제대상이 아니라 공격대상이다. 2004년 12월 12일 <아사히신붕>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에 대처하는 ‘작전계획 5055’를 2002년에 공동으로 작성하였고, 일본이 2004년 12월 10일 채택한 ‘신방위계획대강’은 ‘작전계획 5055’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대북전쟁계획을 세워놓았고, 전시에 한반도에 출병할 미국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고 일본 자위대의 무력증강을 추진하면서, 2자로 변형된 ‘미일한 3자 합동전쟁연습’을 끊임없이 벌여오더니 이번에 결국 일본이 집단자위권이라는 위장명칭을 달아놓은 대외침략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대중군사준비태세는 중국과 전면전으로 맞붙지 않고 견제하는 데서 멈추기 때문에 중국 유사시에 대처할 작전계획이 필요하지 않으나, 북을 전면적으로 침공할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유사시에 대처할 ‘작전계획 5055’를 이미 12년 전에 만들어놓고 그 동안 무력증강과 전쟁연습을 계속해오면서 집단자위권을 틀어쥘 기회를 이제껏 기다려온 것이다. 지난날 한반도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청산을 거부한 일본의 극우정권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그들이 재한일본인 보호라는 구실을 내걸고 미국의 지휘에 따라 일본 자위대를 이 땅에 출병시켜 미국의 대북전쟁 돌격대로 나서겠다는 한반도 재침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지금 일본의 극우정권이 주장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것은 1880년대에 ‘미개한 조선을 정벌하자’고 떠들어댄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망령을 무덤에서 불러낸 것이며, 1960년대에 ‘평화헌법 개정, 군국주의 부활, 핵무기 개발’을 노렸던 1급 전범 출신 일본 총리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침략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에 집단자위권 행사를 결정한 아베 신조의 사상적 원류는 후쿠자와 유키치에게서 시작되었고, 그의 정치적 스승은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다. 

2014년 7월에 들어오면서 전개되기 시작한 위와 같은 심각한 사태는,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넘어 침략만행을 노리는 흉악한 전범국가로 회귀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일본의 재침위험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운명적인 7월’에 벌어진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지난 7월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먼저 방문하였던 외교관행을 변경하여 황급히 서울에 가서 박근혜 정부에게 중국과 한국의 대일공조를 제안하였겠는가. 

그러나 “운명적인 7월이 남조선당국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북측 국방위원회의 충고도 청와대의 ‘불통 대통령’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북측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특별제안’을 즉각 거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중한대일공조’ 제안도 거부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자기에게 모처럼 찾아온 정책적 방향전환의 기회를 모두 내던지고 ‘운명적인 7월’에 성큼 들어선 것이다. 미국이 장악, 주도하는 ‘미일한 3자 전쟁체제’에 깊숙이 끌려들어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편입되려는 박근혜 정부가 그 ‘전쟁체제의 늪지대’에서 자기 몸을 빼내 남북관계개선과 ‘중한대일공조’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42년 뒤에 다시 찾아온 ‘운명적인 7월’에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언행은 일본이 미국의 계략에 따라 한반도를 향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게 된 사태의 위험성을 간과한 채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파는 자멸행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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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 호소 "아이들 죽음 전 국민이 목격자인데"

 
안산문화광장 세월호 가족대책위 집회 정치권 불신 드러내고 특별법 동참 호소
 
입력 : 2014-07-05  22:18:14   노출 : 2014.07.06  10:10:56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우리 아이들은 자기들이 왜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저희 부모들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저희들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TV를 통해서 생중계로 모두가 목격하셨다. 대한민국 전 국민이 세월호 사건의 목격자들이다."(故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씨)
 
5일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 2000여명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일 약속, 천만의 행동'을 개최했다.

세월호 참사 81일째, 국회에서 특별위원회가 꾸려져 활동을 하고 있지만 불성실한 태도와 유족에 대한 막말로 무리를 일으키는 등 진상규명의 길이 요원한 상황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는 자리이다.

故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여러분들이 국정조사를 보고 알고 계실 것이다. 석달이 다 되어가도록 무엇 하나 밝혀진게 없다. 조사를 하라 그러면 사건의 진상을 자료로 제공해야 하는 정부 기관들이 자료를 내지 않고 있다"며 "저희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것만은 밝히고 싶다. 여러분 전 국민이 목격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함게 해주시고 모두 함께 행동해달라. 국조 끝나고 청문회 열리고 특별법 제정돼서 사건 진상 밝혀질 때까지 여러분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목격자 역할을 제대로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세월호 가족들이 전국민 서명을 받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은 진상규명을 하고 있는 정치권을 믿을 수 없다는 배경에서 시작됐다.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국회를 압박해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성역없이 조사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가족들의 주장이다.

현재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은 310만명을 넘어섰고, 오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까지 1000만명이 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세월호 가족과 시민 2000여명이 5일 안산문화광장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성역없는 조사, 그 조사에는 분명히 들어가야 할 게 대통령까지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러면 독립적 조사기관이 있어야 한다"며 "단순 진상규명이 돼서는 안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근본적 대책까지 만들 수 있는 특별기구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법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집회에서는 6. 4 지방선거 이후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어느 때보다 높음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무대에 선 남성은 세월호 참사를 소회하는 형식의 상징의식을 통해 "희생자 300명쯤이야 별거 아니다. 보상금 받으려고 저런다. 그렇게 막말하는 자들 일면수심의 자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들, 그런 그들이 어느 날 비오는 거리에 나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을 구해달라고요. 그래서 자기한테 표를 달라고요. 단 한명도 구하지 않은 그 자들이 세월호 특별법 서명에 제이름 석자 올릴 줄 모르는 그 작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그 한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을 난 다 보았다"고 말했다.

매주 세월호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정재훈씨(32. 서울 대흥동)는 미디어오늘과 만나 "4월 16일 이후 80일 동안 6. 4 지방선거, 월드컵을 지나면서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낮아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도 6. 4 지방선거 전에 모든 걸 바꿔주겠다고 눈물을 흘리고 대국민담화까지 했는데 선거 끝나고 나니까 뒤집었다. 대통령부터 그러니 국회의원들도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진상규명에 소극적"이라며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 국정조사도 유족들이 만들어낸 게 아니냐. 의원들을 믿고 갈 수 없다. 특검을 도입해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집회 참가자
 
 
   
▲ 세월호 집회에 참석한 한 가족의 모습.
   
▲ 세월호 집회 참가자가 진상규명을 밝혀야 내용을 담은 전단지를 보고 있다.
 
   
故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가 특별법 제정 동참을 호소했다.
 
 

故 박성호군의 누나인 박보나씨는 "유가족들에게 세월호가 로또냐, 시체장사한다 이런 욕을 하기도 한다. 친구 버리고 살아나서 좋나 이런 말들을 생존자 학생들에게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말 듣고 보고 너무나 상처받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면서 "사실 이런 욕보다는 이제 그만해라, 지겹다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이냐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로 죽었는데 왜 이렇게 유난떠나라는 말이 더 힘들고 아프다"고 울먹였다.

박씨는 이어 "너희들이 이 세상에 빛을 내고 갔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제발 이 세상이 우리 아이들을 수학여행 갔다가 불쌍하게 죽은 아이들이 아닌, 이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고 움직이게 한 아이들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며 "살려달라 외쳤던 그 아이들 절대 잊지 말아주시고 이 땅에, 이 나라에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여러분 모두가 함께 해주셨음 좋겠다"고 말했다.

   
▲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세월호 집회에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교복을 빨고 너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향해 '돌아와 달라'는 호소와 함께 '슬픈 제삿상'을 차려 추모하는 상징의식도 진행됐다.

"내 눈 앞에 돌아와라. 말 안듣는 아들, 심술 많은 딸로 그냥 돌아와라, 어제처럼 웃으며 돌아와라."

"2학년 1반 조은화, 2학년 2반 허다윤, 2학년 3반 한지연, 2학년 6반 남현철, 박영인, 아이들과 함께 계신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이영숙, 권재근, 권혁구님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아오세요. 꼭 돌아오세요."

제삿상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탄산음료와 피자, 라면, 바나나가 차려졌고 병풍 대신 아이들이 입었던 교복이 걸렸다.

상징의식을 본 지켜본 장지선(80, 안산 본오2동)는 "아직까지도 아이들이 못나와서 애탄다. 정말로 아이고...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마음은 똑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버스를 타고 돌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는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오는 12일 청계광장에 모여 다시 한번 서명운동 동참을 호소할 예정이다. 이어 대책위는 23일 팽목항에 모여 세월호 실종자 기원제를 진행하고 세월호 참사 100일째인 24일 서울에서 집회를 개최한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집회 참가자가 "미안하다 잊지 않을께, 진실을 밝힐께"라는 문구 아래 희생된 안산단원고 학생들의 증명사진을 보고 있다.
 
   
▲ 세월호 집회가 열린 안산문화광장의 노란리본을 형성화한 설치물에서 아이가 노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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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당한 뒤 매일 밤 울면서 미군을 받았다”

 

등록 : 2014.07.04 20:55수정 : 2014.07.0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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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기지촌에는 인신매매되어 오게 된 미성년 여성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이런 상황에 눈을 감았다. ‘미군에게 접대 잘해달라’는 교육만 진행했다. 교육에 나선 공무원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산업역군’이라 치켜세웠다. 1970년대 동두천의 기지촌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커버스토리
기지촌 여성 김정자의 증언

▶ ‘우리가 괜히 나섰다가 일본 우익들만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닐까?’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할 때 가장 큰 고민이 이거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가 미군을 위한 위안시설과 여성들을 관리했다고 폭로하고 나섰습니다.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진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군 기지촌의 불편한 비밀들. 김정자씨의 증언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김정자(가명)입니다. 올해 예순넷입니다. 큰 지병은 없지만 요즘 무릎관절이 좀 아픕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오늘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이렇게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저는 미군 위안부였습니다.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되어 평생을 미군한테 당하면서 억울하게 살아왔지만 아무도 저와 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일한 거 아니냐는 색안경만 끼었어요.

 

우리가 미군한테서 벌어들인 달러로 나라를 이렇게 일으켜 세웠는데, 그때는 우리더러 ‘애국자’라 그러더니 국가는 우리의 존재를 모른 척하고 있어요. 우리는 늙고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언니들(기지촌 동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더는 못 보겠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왜 국가에 이런 싸움을 시작하는지 저의 인생을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송에 참여한 여성 122명이 다 김정자씨와 같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피해의 구조가 비슷한 여성들이 상당하다. 김정자씨의 증언을 대표적으로 살펴보되, 기지촌에서의 경험은 여성마다 다르다는 점을 밝힌다.

 

미군 기지촌에서 미군과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 특수업태부, 양공주 등으로 불려왔다. 정부는 위안부와 특수업태부를 혼용해 사용해왔다. 1957년 제정된 ‘전염병 예방법 시행령’ 제4조에서 규정한 ‘위안부’는 1969년의 개정 법률에서 그대로 사용되다가 1977년 개정 시 삭제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시·군 공무원들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한국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윤락여성과 구분해 위안부라고 불렀다.(<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39쪽)

 

 

1950년대 전쟁통에 아버지 잃고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 꾐에 
열여섯에 집을 나와 찾아간 
그곳에서 지옥은 시작되었다 

“그 시절에도 성매매는 불법 
미군 기지촌만 합법이었어요 
공무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미군한테 서비스 잘하라’며 
애국자라 치켜세워줬어요”

 

 

스무살로 위장시키는 포주…하루 서너명씩 받아

 

“저는 1950년 1월에 태어났습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어렸을 때 천안에서 살았어요. 친아버지는 군인이었는데 전쟁통에 저를 보러 왔다가 탈영병이 되어서 헌병한테 잡혀갔어요. 그냥 맞아서 죽었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재혼했어요.

 

제가 열두살 때쯤부터인가 제 의붓아버지는 어머니만 없으면 저를 겁탈했어요. 의붓오빠들도 저를 건드렸어요. 그걸 어머니께 말도 못 하고 꾹 참다가 열여섯살 때(1965년께) 집을 나와버렸어요. 제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어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예요. 방직공장이라고 했어요. 걔를 따라 서울역까지 기차 타고 왔어요.

 

서울역에서 친구 따라 또 어딘가로 갔는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방직공장은 안 보이고 미군들만 길에서 ‘쌀라쌀라’ 거리면서 돌아다니더라고요. 어떤 집으로 들어갔는데 집에 ‘남바’가 붙어 있었어요. 1호실, 2호실, 3호실 이렇게. 저는 여관인 줄 알고 잤어요. 제 친구는 다음날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하더니 안 왔어요.

 

(50대로 보이는)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어요. 나보고 따라오래요. 공장에 데려다 주려나 보다 싶어 따라갔어요. 그런데 저더러 하는 얘기가 ‘네 친구가 빚을 안 갚고 도망갔으니 네가 갚아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인지는 얘기도 안 해주고, 친구 대신 돈을 갚아야 제가 나갈 수 있다고 했어요. 어떻게 돈을 버냐고 물었어요. 밤에 언니들 따라가 보면 안다고 했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가 간 곳은 파주 용주골(연풍리)이라는 데였어요. 미군기지 주변에서 여자들이 몸 파는 곳이었어요. 제 친구가 빚을 갚지 못해 저를 팔아넘긴 거였어요.”

 

김정자씨는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기에는 김정자씨의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다. 친구의 행동이 원망스러웠지만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친구의 빚을 갚기로 결심했다.

 

“아줌마(포주)는 저더러 클럽 나가서 손님(미군) 데려오라고 했어요. 저는 3일인가 있다가 그 포주집에서 도망갔어요. 근데 골목에서 잡혀버렸어요. ‘뒤지게’ 맞았어요. 한번만 더 도망가면 섬으로 끌고 가서 죽여버린다고 했어요.

 

(포주가) 파스 갖다 붙여주고 세코날(진정제)을 줬어요. 기분 좋게 해주는 거라면서 줬어요. 하나 먹으면 (중독되어서) 두개 먹어야 하고, 세개 먹으면 네개 먹게 돼요. 손님 데리고 오라고 내보내면 제가 무서워서 말을 못 붙였어요. 맨정신으로는 창피해서 손님 못 끌어요. 저는 그 약이 뭔지도 모르고 계속 먹었어요.”

 

김씨는 나중에 이것이 마약인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약을 먹어야만 히파리(호객행위)를 하러 나갈 수 있었다. 김씨가 미군을 데리고 올 때까지 집(숙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한두달 일하면 빚을 갚을 줄 알고 김씨는 그냥 눈을 질끈 감고 기지촌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거기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빚은 계속 늘었어요. 방값이랑 화장품·미장원비랑 세코날비랑 내야 하는데 아무리 일해도 못 갚는 거예요. 이자는 계속 붙었어요.”

 

보통 기지촌에는 위안부 여성들의 자치조직이 있다. 자매회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기지촌에서 일을 하려면 이곳의 회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자매회에서는 뻔히 미성년자인 것을 알면서 회원증을 주고 검진증(성병에 걸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증)을 발급해 주었다는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이 많다. 보통 포주들은 십대 아이들에게 스무살이라고 말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김정자씨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다. 보통 기지촌 여성들은 하룻밤에 미군을 서너명씩 받아야 하는 경우가 예사였다.

 

“그러면 거기(음부)가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긴밤·짧은밤(성매매 시간 단위) 아무리 해도 끝이 없었어요. 긴밤은 제 방에서 밤새 자고 아침에 일찍 가는 거고 10달러 받아요. 짧은밤은 제 방에서 30분에서 1시간 있다 가는 거예요. 돈은 모두 아줌마가 가져가 버려요. 제가 직접 못 받아요. 아줌마는 한달 계산해 준다면서 다 뺏었어요. 1~2개월이면 빚 다 갚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돼요.”

 

기지촌의 10대 아이들은 셈법에 밝지 못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포주는 공포의 대상이라, 장부에 무엇이 어떻게 기록되는지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여성들은, 아니 10대의 아이들은, 밤새 울고 밤새 미군의 노리개가 되어 고통의 몸부림을 쳤다.

 

“도망을 갈 수가 없었어요. 일하러 갈 때 늘 남자(포주집에서 일하는 건달)들을 붙여 감시해요. 목욕을 가면 자기네(포주집)에서 제일 오래 있는 년, 주인한테 아부하는 년이랑 같이 목욕을 보내요.

 

경찰한테 신고할 수도 없어요. 주인집에 경찰이 낮에 놀러 와요. 주인아줌마한테 누나라 그러면서 들어와요. 그러면 아줌마는 담배도 싸서 주고 그래요. 처음에 저는 아줌마 남동생인 줄 알았는데 옆의 언니들이 형사라고 귓속말해주는 거예요. 주인이 다 돈 먹이는 거라고. ‘경찰에 신고해도 내가 못 나가는구나’ 그걸 알게 되는 거죠. 내가 죽어서야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한국전쟁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도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 122명은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을 하기로 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건물 4층에서 열린 소송 기자회견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왜 그토록 미군과 결혼하려고 했는가

 

“한번은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도망갔어요. 용주골에 인신매매되고 몇개월 뒤였어요. 파출소로 들어갔어요. 40대쯤 되어 보이는 경찰이 ‘왜 남의 빚 져놓고 도망가냐. 안 갚으면 영창 간다’고 하는 거예요. 포주들이 경찰서에 다 돈을 집어주던 시대였어요. 하는 수 없이 다시 포주집으로 돌아갔지요. 골방에 갇혀 또 뒤지게 맞았어요.”

 

김정자씨는 죽어서 절대 산에 묻히고 싶지 않다. 그가 산에서 겪은 고통스런 경험 때문이다.

 

“산에 가서 미군을 받아야 할 때가 제일 무서웠어요. 부대에서 훈련을 나가면 저희도 따라가야 했어요. 밤에 컴컴해지면 담요 하나 들고 아줌마 따라서 가요. 아줌마가 보초 서는 미군이랑 솰라솰라 말해요. 그럼 훈련 장소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총 들고 서 있던 놈들이 막사에 가서 여자들하고 잘 사람 나오라고 말해요. 이식스, 세븐(E-6는 하사, E-7은 중사)들도 다 했어요. 장교들은 특별히 막사 안에서 해요. 일반 병사들은 훈련장 안에 나무 있는 데에 담요 깔아놓고 하거나 구덩이를 파놓고 해요. 미군들이 파놓은 구덩이지요.”

 

기지촌 여성들은 그렇게 훈련장에까지 불려 가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담요로 삼고’ 미군을 받았다. 제대로 씻을 시간도 없었다. 돈을 벌어서 내려가야만 포주가 혼을 내지 않는다. 어떤 미군은 돈 대신 자신들이 먹는 말라붙은 밥을 던져주어 여성들을 애타게 했다. 여성들은 한번 훈련장에 가면 그곳에서 새벽까지 보내다 돌아왔다고 한다.

 

안전한 성관계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보장되기 어려웠다. “어떤 미군은 콘돔을 안 끼고 해요. 우리는 거절을 못 해요. 그래서 낙태도 참 많이 했어요. 뗀 애만 열일곱이에요.”

 

보건소는 포주들이 끌고 갔다. 강제로 낙태시키는 것이다. 창자까지 다 빠져나오는 고통을 견디며 여성들은 낙태 수술을 견뎠다. 낙태 이후에는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도 또 일하러 가야 했다. 포주들은 낙태 수술로 상한 몸을 보살필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약과 찬물 한컵 정도 들이켜고 다시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루 그냥 쉬면 빚이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었다.

 

“이러고 살아야 하니 죽고 싶은 생각만 들지요. 기지촌에서는 한달이면 두세번은 장례를 치러야 했어요. 철길로도 뛰어들고 연탄불 피워놓고 그 가스도 먹고. 저도 세번 죽으려고 시도했어요. 그런데 무슨 놈의 팔자인지 다 깨어났어요.”

 

김정자씨는 죽으려 해도 죽지 못했다. 공동묘지에서 자살을 기도하면 묘지 관리인이 발견하고, 집에서 동맥을 끊으면 자신을 보러 온 미군이 발견하곤 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왜 죽으려 하느냐’고 묻곤 했다. 김씨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왜 우리들이 미군하고 그렇게 기를 쓰고 결혼하려 했는지 알아요? 그게 아니면 여기를 탈출할 방법이 없었어요. 빚을 갚을 방법이 없어요. 도망가려 해도 경찰 누구도 안 도와주고. 우리에겐 국가가 없었어요.”

 

아니, 국가는 있었다. 미군한테 성접대 잘하라고 교육하는 국가는 있었다. 자매회 회의가 한달에 한번씩 열리면 여성들은 참석해서 교육받아야 했다. 안 그러면 영업을 못 했다. 회의에 가면 헌병, 시아이디(C.I.D. 미군부대 범죄수사과), 보건소 직원, 경찰서장, 군청 공무원들이 모두 와 있있다. 미군은 슬라이드(필름)를 이용해 성병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할 일이라고 이해할 법하다.

 

 

파주 용주골에 팔려간 뒤 
동두천·군산·평택 전전 
40대 중반에 기지촌 빠져나와 
도망가고 싶어도 붙잡힐까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군부대에서 훈련 나가면 
저희도 산에 따라가야 했어요 
그때가 가장 무서웠어요 
산에서 안한다고 반항하다가 
죽은 아가씨들도 있어요”

 

 

‘토벌’당한 성병 의심자들, 언덕 위 하얀 집으로

 

하지만 공무원들은 이상한 교육을 더 했다.

 

“나와서 늘 하는 말이 이거예요. ‘아가씨들이 서비스 좀 많이 해주십시오. 미군한테 절대 욕하지 마십시오. 바이 미 드링크(Buy me drink. 술 사주세요) 하세요. 그래야 동두천에 미군들이 많이 옵니다. 우리나라도 부자로 한번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수는 저희더러 달러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어요. 그러면 저희는 그래야 되나 보다 하는 거예요.”

 

일종의 정신교육 같은 것이었다. 여성들은 왜 이런 교육을 받아야 되는가 싶었지만 국가가 노후를 책임져준다고 하니까 그런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턱걸이(동두천시 광암동 일대)에다가 공장을 짓고 아래층에는 가발공장, 위에는 기숙사로 만든다고 공무원들이 설명했어요. 나이 먹으면 여기에 우리가 살 수 있다고 군수가 그랬어요. 땅을 다 사뒀다고. 그러니 열심히 달러 벌라고. 우리는 늙어도 갈 데가 있구나 하고 그렇게 믿었어요.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진 건 하나도 없지요. 포주들은 저희가 벌어온 돈으로 집도 사고 땅도 샀는데. 어떤 악명 높은 포주는 나중에 경기도의원이 되더군요.”

 

경찰은 인신매매되어 팔려온 아이들을 구출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성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가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 잡아가는 것도 비인간적이었다.

 

“성병 걸린 미군이 찾아와 칸택(contact·미군 성병환자에게 성병을 감염시켰을 것으로 의심되는 여성을 찍는 것)을 하면 그냥 끌려가요. 찍히면 가는 거예요. 그 미군이 어디서 성병 옮아갖고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걸 토벌당한다고 불렀어요.”

 

‘토벌당해’ 파출소에 끌려가면 유치장에서 머문 뒤 곧바로 낙검자 수용소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성병이 있거나 없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병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환자일 뿐인데 죄인처럼 다루어졌다.

 

“하얀 집(동두천시 소요산 아래 낙검자 수용소를 기지촌 여성들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불렀다.) 가면 운동장이 크게 있는데 토벌당한 여자들 실려 오면 (건물 문을) 철커덕 잠그고 꼭 교도소 같았어요. 나갈 수 없어요. 화장실만 갈 수 있게 했어요. 유치장 같은 데서 다섯명씩 자야 해요. 바깥 창문은 쇠창살이 설치돼 있고 면회 와도 쇠창살 사이로 얼굴 보면서 얘기해야 했어요. 아니, 우리가 죄인이에요? 환자를 왜 죄인 취급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성병에 걸린 미군에게 무슨 조처를 했는지는 여성들에게 통보되지 않는다. 오로지 국가는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의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비쳤다.

 

“우리는 페니실린을 맞았어요. 그거 맞고 쇼크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어요. 맞으면 걸음을 못 걸어요. 엉덩이 근육이 뭉치고 다리가 끊어져 나가는 거 같아요. 그걸 이틀에 한번 맞아요. 괴로운 언니들은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거나 반병신 되고 그랬어요. 저는 하얀 집에 (1982년께) 2주 동안 붙잡혀 있다 나왔어요.”

 

김정자씨는 (1965년께) 파주 용주골에 팔려 간 뒤 동두천, 용산, 군산, 평택과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40대 중반(1990년대 중반)에야 기지촌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스물다섯 때(1974년께) 기지촌에서 한번 도망 나왔지만 다시 동두천 기지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어디를 도망가더라도 깡패를 보내 저를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어디 공장에 취직하려면 제 신분증을 제출해야 하는데 제가 동사무소 가서 주민등록증 발급받으면 포주집에 진 빚 때문에 경찰이 저를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씨는 ‘스스로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성들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니네들이 좋아서 (기지촌 생활) 했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그런 질문을 참 많이 들어요. 한국 정부가 미국 안 끌어들였으면 우리가 이렇게 되었겠어요? 알고 봤더니 그 시절에도 성매매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었더라고요. 미군 기지촌만 성매매가 합법이었어요. 박정희 정부가 왜 그런 법을 만든 걸까요. 저는 잘 모르지만 미군 붙잡아 두려고 그렇게 한 거 아니겠어요? 우리더러 달러 벌게 하려고.”

 

미군 기지촌의 형성 과정에 국가의 어떤 정책이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옳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무살도 안 된 소녀들이 기지촌에 팔려 오고,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국가가 계속 방치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 없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믿는다.

 

 

‘식모 자리’ 알아봐준다고 따라가면 기지촌

 

“억울해 죽겠어요. 저같이 거기 인신매매되어 간 사람이 너무 많아요. 직업소개소에서 식모 자리 알아봐준다고 해 따라가고, 밥 준다고 따라가고 해서 가 보니 기지촌인 경우들이 너무 많았어요. 미군 위안부로 살 줄 알았다면 누가 거기 따라갔겠어요.

 

일본군 위안부도 인신매매되어 간 사람이 많다고 들었어요.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자로 인정하는데 왜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국가가 눈감고 있는 건가요. 당한 사람은 있는데 왜 책임지는 사람이 없냐고요. 당신 딸들이 붙잡혀 간 거라면 가만히 있겠어요? 언니들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어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다가 벌써 세분이나 돌아가셨어요. 저는 사과를 원해요. 늙고 병든 우리 몸뚱어리를 국가에서 책임져주기를 바라요. 그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어요.

 

하늘에 있는 우리 (기지촌) 언니들을 위해서 제가 이렇게 나섰어요. 누군가는 증언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용기를 냈어요.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잘 좀 보도해 주세요.”

 

김정자씨는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난달 20일 약 4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할 때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30분 증언하다 10분 울고, 30분 증언하다 다시 10분 우는 것이 반복됐다. 낙검자 수용소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고백할 때는 구토를 하기도 했다.

 

인생 전체가 국가가 간섭한 성폭력으로 얼룩져 있던 그에게 이번 인터뷰는 그렇게 힘든 과정이었다. 따라서 인터뷰 때 자세한 내용을 묻지 않고 최소한의 질문만 하려고 노력했다. 대신 김씨와 진행한 인터뷰와 그의 증언록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2013)의 내용을 종합해 이 글을 썼다.

 

김정자씨는 인터뷰 뒤 바닷가로 가 새움터(기지촌 여성 지원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다음날까지 통곡했다고 한다. 힘든 인터뷰를 결심해준 김씨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김정자씨는 현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를 번다. 그를 부양하는 가족은 없다. 대신 새움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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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차기 전투기 F-35, 문제없나?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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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7/06 11:49
  • 수정일
    2014/07/06 11: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게시됨: 업데이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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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

F-35 한국 공군 차기 전투기는 문제없나?

7월 5일 KBS 뉴스는 "한국 공군의 차기 전투기 후보로 단독 선정된 F-35가 또 논쟁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F-35는 지난 6월 23일 플로리다에 위치한 에글린 공군기지에서 이륙 도중 꼬리날개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조종사는 부상 없이 탈출했지만 기체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현재 미국방부는 F-35 비행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사고의 원인은?

KBS가 인용보도한 7월 2일자 로이터의 뉴스에 따르면 "F-35의 엔진은, 전투기 주변 활주로에서 발견돼 수거된 6피트 길이(180cm)의 파편과 함께 팜비치에 있는 P&W(프랫앤휘트니)공장으로 이송됐고 자세한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180cm의 파편은 대체 어떻게 떨어져 나온 걸까. KBS는 이것이 엔진의 문제라고 보도했다.

국내 항공전문가인 A씨는 "항공기 동체에서 1미터 이상 길이가 되는 부품이 몇 개 안되는데, 대체로 엔진 관련 부품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말했다. A씨는 "미국 내 전투기 엔지니어들의 말을 종합해본 결과, 이번 사고는 과열된 엔진을 강제 냉각시키는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켜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분석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A씨는 "기존 전투기의 단발엔진 출력이 보통 3만 파운드 정도인데 비해, F-35는 스텔스 기능을 살리려다 보니 무려 4만 파운드 출력에 이른다. 스텔스 기능을 고려하다보니 폭탄이나 미사일을 내부 무장창에 넣어야 되고 그러다보니 덩치가 커지게 되고, 엔진 출력이 높아지고 연료도 많이 든다. 그렇게 되면 기체의 빈공간에 연료를 많이 탑재하게 되는데, 결국 화재 위험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미국내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도, 당장 엔진 쪽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는 우려를 하고 있었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라면서 "다행히 실전 배치되기 전에 사고가 터졌으니 고치면 된다.라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7월 5일 K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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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 마틴사가 제조한 F-35는 미국의 5세대 전투기로, F-15를 대체하는 F-22 랩터와는 달리 좀 더 저렴하게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전투 겸 공격기다.

하지만 F-35는 끊임없이 설계 결함 논쟁에 시달려 온 기종이기도 하다. MBC 뉴스에 따르면 올해 6월 13일에도 "미국방부는 해병대가 보유한 F35B 전투기 엔진에서 기름이 새는 사고가 일어나자 전수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F-35가 기체 결함으로 기종 전체 운용이 정지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3월 전기 시스템 오작동으로 비행이 금지된 이래, 소프트웨어 이상과 조종적 전력공급 장치 이상, 비상탈출용 낙하산 이상, 엔진결함 등으로 F-35는 무려 8번이나 결함으로 비행기 금지된 바 있다.

7월 4일 한겨레신문은 "미군은 내년부터 해병대를 시작으로 F-35의 실전 배치에 나선다는 구상 아래 100여 대를 시험 비행하고 있지만, 시험 비행 과정에서 불거진 기술적 문제에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실전 배치는 더욱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미국도 F-35의 실전 배치에 아직 자신감이 없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F-35를 구매할 예정인 한국 정부의 실전 배치 계획도 늦춰지게 된다.

F-35는 한국 공군의 '3차 FX 사업'을 통해 차기 전투기 단독후보로 선정됐으며, 2018년부터 총 40대를 도입한다. 원래 한국 공군의 목표는 F-35 60대 구매였으나 가격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40대를 먼저 구매하게 됐다.

아직 기술결함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F-35를 40대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은, 총 7조 4천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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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국정조사에서 밝혀야할 세월호 열가지 의혹

 
 
조준규 PD 
기사입력: 2014/07/05 [21:3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세월호 사고 당시 레이더 영상이 공개 되면서, 세월호 궤적 부근에 보이는 괴물체의 정체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는 신상철 서프라이즈대표와 함께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과 침몰원인에 대한 새로운 추론, 그리고 괴물체의 정체, 또한 국조특위에서 꼭 밝혀야할 10가지 의혹에 관해서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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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 끌려가 손발 묶여 뺨 맞고... 무서운 병원

 
최근 장성요양병원 화재참사로 요양병원의 안전과 더불어 요양시설에서의 강제구금, 폭행, 성폭행, 환자길들이기, 국가재정의 횡령 등의 총체적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요양병원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다시는 이같은 사건으로 또다른 피해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요양병원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 기자말

홈리스행동 등 '요양병원 대응 및 홈리스(노숙인) 의료지원체계 개선팀'은 최근 인천 소재 ㅂ요양병원의 불법·반인권적 행위를 포착하고 이에 대한 복지부의 현지조사 등 철저한 실상 파악과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노숙인을 상대로 한 요양병원들의 '영업' 행위가 임계점에 달했고, ㅂ병원이 해당 행위를 가장 노골적으로 진행해왔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ㅂ병원 입원자의 42%(188명)가 노숙인인 것으로 드러났다(전체 입원환자(건강보험+의료급여) 447명). 더 놀라운 것은 해당 병원의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액의 81.5%가 노숙인 치료 명목이었다는 사실이다. 

'노숙인'이라는 것은 복지부 노숙인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이를 일컫는다. 여기에는 노숙인 지원기관 이용자 중 상담을 거친 이만 포함되므로 ㅂ병원의 실제 노숙인 환자 입원 및 진료비 청구액은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B병원에는 2014년 현재 124명의 노숙인 입원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숙인은 말 그대로 일정한 거처가 없는 이들이다. 환자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노인성 질환자가 있어야 할 요양병원에 들어앉아 있을까.

요양병원의 노숙인 모시기,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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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광장의 야외 노숙인들의 모습. 그들끼리 의지하며 술로 외로움을 달랜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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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서울역 등 주요 노숙 장소에 요양병원 차량이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하나같이 저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차량들로 그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이유는 환자 모시기다.

주지하듯, 요양병원은 환자의 숫자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일당정액제'라는 수가체계를 적용받는다. 그러나 작은 지역사회에서 그만한 환자를 다 채우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먼 원정길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돈 한 푼 없는 노숙인을 데려간다고 수익이 날까?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기금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을까? 노숙인 모시기를 포함해 일반적으로 자행되는 아래 몇 가지 경우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우선, 건강보험미가입자나 6개월 이상 장기체납자인 경우다. 그렇다하더라도 공단은 보험급여를 병원 측에 지급하고 가입자에게 이후 구상권을 청구하게 된다. 따라서 병원은 전체 진료비의 80%에 달하는 건강보험 공단부담금을 받아낼 수 있다. 

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본인 부담금을 낸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80%만 받더라도 수익이 충분하므로 환자의 본인부담금과 보험료 한 달분을 면제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의료법(27조 3항) 위반행위다. 드물지만 건강보험이 살아있는 경우는 보험료 대납 절차도 필요없이 바로 수익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둘째, 의료급여수급자일 경우다. 해당 환자의 경우 전액 정부 지원이므로 역시나 병원 측에서 따로 신경 쓸 일이 없다. 한편, 일부 병원은 병원 주소지로 수급권을 신청하기도 한다. 입원된 환자 사례를 볼 때 (소득인정액기준이나 부양의무자기준 상) 수급자로 지정될 수 없는 경우임에도 수급자로 선정된 부정수급 사례가 목격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정부가 부정수급자에 대한 조사를 벌여온 결과, 개인이 아닌 기관 측의 부정이 대부분이었다. 병원과 지역사회의 유착 관계가 부정수급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요양병원 입장에서는 누구든 가릴 필요가 없다. 건강보험 미가입자든, 연체자든, 수급자든 할 것 없이 정부로부터 진료비를 충분히 받아낼 수 있기 때문에 환자로 대환영인 것이다.

요양병원을 도피처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노숙인들

하루가 멀다하고 주요 노숙 밀집 지역에는 요양병원의 차량이 항시 대기 중이다. 다만 얼마 전 시사프로그램에서 요양병원의 환자 유인행위가 보도되자 잠시 주춤할 뿐이다. 환자를 모셔가는 행위가 문제 있나? 그렇다.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다. 

의료법 27조 3항은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 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벌칙도 정하고 있다. 

병원은 비영리 기구이기에 상업시설과 같이 호객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부 요양병원들은 이를 간단히 무시하고 노숙인을 대상으로 꾸준히 호객행위를 해 왔다. 그만큼 호객에 따른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거리 노숙인들이 요양병원 차에 오르고, 입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병원을 선택했을까?

노숙인에게 제공되는 일자리인 특별자활근로는 고작 500명에 불과하다. 이 또한 월 평균 규모일 뿐 여름철에는 그 수가 대폭 감소한다. 또한 노숙인에게 월세를 지원하는 임시주거지원 역시 연간 350명 규모에 불과하다. 노숙인 복지를 통해 거리를 벗어나기에는 제공되는 자원이 너무도 부족하다. 이렇듯 복지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노숙인들의 욕구를 요양병원들이 파고들어 이윤추구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사회적 입원'이라 부른다. 의료적 필요도가 낮음에도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입원하는 현상 말이다. 복지로 풀어야 할 일을 의료 민간시설에 전가하는 행위, 현재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상당 부분 요양병원에 넘어가 있다. 얼마나 많은 노숙인들이 요양병원을 도피처로 삼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그 범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래도 노숙인들이 거리를 벗어나 있으니 다행 아닌가?'라는 물음도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요양병원 생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 안에서의 생활은 안정을 취하고 육체, 정신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것보다 건강을 해치는 데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노숙인 보호? 질병을 만드는 요양병원

지난 4월, 앞서 언급한 반인권적 ㅂ요양병원에 대한 복지부의 현지 조사 요구 등의 이유로 환자 진술작업을 하던 중 만난 이아무개씨의 사례를 보자.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역 광장에서 동료들과 있던 중 평소 면식이 있던 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이씨에게 소주를 1~2병 사 주면서 병원에 가자고 설득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곧 진단서를 제출해야 했던 이씨는 퇴원 후 진단서를 발부받을 요량으로 병원 차에 올랐다. 그가 사준 소주는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마셨다.

병원에 환자를 유인하는 이를 '픽업자'라 불린다. 이들은 알코올 의존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술을 사줘 판단력을 흐리게 하거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게 해 준다고 현혹하여 실적을 올린다. 질병이 있는 이는 병을 중하게 만들고, 건강한 이들은 없는 병을 지어내어 입원을 시키는 것이다.

병원 생활에서도 믿기 힘든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 병원에 있던 다른 진술자 김아무개씨에 따르면, 입원 중 다른 여성과 말다룸을 했다는 이유로 보호사 두 명이 김씨를 독방으로 끌고 가 뺨을 여러 차례 때리며 양 손과 발을 묶었다고 한다. 앞서 말한 이씨 역시 입원 중에 새로 온 입원환자가 독방으로 끌려가 10분에 한 번 꼴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형법으로 금지된 폭행이 병원 안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것. 또한 생명유지 장치 제거 등과 같은 위험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신체 억제대'를 환자 길들이기를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일은 요양병원에서 관행화 돼 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 말, '요양병원용 신체 억제대 사용감소를 위한 지침'을 마련하였다. 이 지침에 따르면, 신체 억제대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야 하며, 사용 시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게 돼 있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않은 병원은 많고, 복수의 진술에 따르면 ㅂ병원도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구멍 뚫린 복지... 열쇠는 보건복지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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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한 쪽방촌.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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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병원의 이같은 불법·반인권적 행위는 철저히 조사되고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유사 행위를 하고 있는 병원들에 대한 일제조사 역시 반드시 이뤄져 노숙인을 상대로 한 영리행위를 금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요양병원들의 생존 조건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처벌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허울뿐인 '인증제'와 같은 면피용 대책이 아니라 요양병원에 대한 구조적 수술을 단행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요양병원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만으로 노숙인을 이용한 약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노숙인 복지가 여전히 잔여적 지원에만 머물러 있다면 비록 사회적 입원 문제는 해결될지라도 또 다른 형태의 노숙인의 사회적 도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복지가 책임질 부분을 확실히 책임지는 것이 노숙인을 이윤추구 집단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장성병원, ㅂ병원 문제 등 최근 발생한 요양병원 문제에 대한 대책은 요양병원에 대한 철저한 개혁과 더불어 사회적 입원 계층에 대한 복지 개혁이라는 두 축으로 이뤄져야 한다. 보건과 복지 두 축 말이다. 열쇠가 보건복지부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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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 강한 동작을에서 야권은 왜 계속 졌을까?

[인터뷰]노동당 동작을 후보 김종철 '생활정치의 삼세번 도전'

한윤형 기자  |  a_hriman@hotmail.com
 
 
 

 

 

편집자 주: 2014년 재보선에서도 동작을 선거는 ‘별들의 전쟁’으로 치러질 것인가. 여야는 공모절차와 별도로 거물급들의 전략공천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새누리당에선 김문수 경기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이 동작을 전략공천 카드로 거론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손학규, 정동영 상임고문과 이계안 전 의원이 전략공천 대상으로 거명되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3일 그간 논란이 돼왔던 서울 동작구 을 재보궐선거에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공천하기로 전격 결정하면서 야권 내부는 또 한 번의 격랑을 맞이하는 중이다. 
 
한편 진보진영에서도 노원병에서 의원직을 상실한 정의당의 노회찬 전 의원이 동작을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노회찬 전 의원이 출마할 경우 새정치민주연합 측과의 야권연대를 강하게 희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총선, 2012년 총선에 이어 ‘동작을 삼수’에 도전하고 나선 이가 있다. 노동당의 김종철 후보다. 두 번의 총선을 진보신당의 이름으로 치렀고, 그 당은 현재 노동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종철 후보가 이 선거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디어스가 그를 만나 보았다. 
 
 
 
미디어스(이하 ‘미’): 제가 미디어스 입사 이후 두 번째로 인터뷰해 보는 사람은 김종철 후보가 최초가 아닐까 한다. 2012년 총선 당시 인터뷰를 했다. 당시 기사 제목이 <위기의 남자, ‘뉴타운 저격수’ 김종철을 만나다 - 동작을 진보신당 김종철 후보에게 들은 그 사람의 사정>이었다(링크) 그때는 뉴타운이 큰 이슈였다. 지금의 동작을에서 뉴타운 이슈는 어떤가
 
노동당 김종철 후보(이하 ‘김’): 지금은 이슈가 아니다. 동작을은 이미 뉴타운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보시면 된다.
 
: 언제부터 안 되는 상황이었나.
 
동작을, 당락과 상관없이 정치인이 떠나는 지역
 
: 사실 2008년 총선 때에도 이미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사람들이 그걸 몰랐고, 정몽준 후보가 뉴타운 공약을 내걸어 당선되었다. 그런데 2009년에서 2010년에 이르기까지 흑석동과 사당동에서 반발이 일어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사당동의 경우 재개발 이후 집 이외에 추가부담금이 3억에서 5억까지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도 뉴타운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아 버렸다. 2012년 총선 때는 정몽준 후보도 뉴타운 공약을 안 걸었다. 
 
: 그렇다면 자립형사립고는 이슈로서 어떤가.
 
: 동작을 지역의 경문고등학교가 자사고가 된지 3년 정도 되는 상황이다. 주민들이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여론이 어떨지는 좀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 장승배기역 근처 노동당 동작당원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철 후보의 모습 ⓒ미디어스
 
: 그럼 현재 동작을에서 이슈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 정치세력마다 다른 것 같다. 새누리당은 ‘정권을 지키자’나 ‘우리가 지역개발의 적임자다’라는 걸 들고 나오는 것 같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새누리당 심판’ 같은 걸 들고 나오는 것 같다. 내 경우는 대체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정치’를 들고 나온다. 2008년에 이사와서 이제 6년이 되는데, 알아봐 주시는 분들은 많다. ‘당만 바꾸면 될 것 같은데’ 같은 소리도 많이 듣는다. 지역주민들에게 동작을은 당락에 상관없이 떠나는 지역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계안이 갔고, 정동영이 갔고, 당선된 정몽준도 가버리지 않았나. 
 
: 6년 동안 동작을에서 꾸준히 활동했는가.
 
: 주로 그랬다. 다만 잠깐 중앙당의 요청으로, 2010년에 서울시장 후보 대변인을 했던 적은 있다. 그때 진보신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노회찬 전 의원이었다. 그후 노회찬 전 의원과 심상정 의원 등은 2011년에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 진보신당 탈당파들이 합류하는 통합진보당으로 흘러 들어갔다. 내가 보기엔 좀 당황스러운 정당이었다.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정의당을 만드신 상황이지만 나는 계속 여기 남아 있었다.  
 
: 후보들이 자꾸 떠나는 이유가 뭘까. 이번에도 지역위원장 허동준이 아닌 전 서울시정무부시장이었던 기동민의 전략공천으로 허동준 측이 반발하는 등 이슈가 되고 있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가 있는 걸까.
 
: 후보를 정하는 방식의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새누리당을 보자. 새누리당은 전형적인 엘리트정치다. 어디선가 다른 영역에서 성공한 엘리트들을 지역정치에 결합시켜 후보로 내보낸다. 그렇기에 후보들 개인경쟁력이 좋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 방식을 흉내낸다. 엘리트는 엘리트인데, 약간 생각이 다른 엘리트를 데려오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새누리당의 아류다. 지역에 뿌리를 내린 사람을 후보로 내지 않는다. 동작을 상황을 살펴보면 2004년 열린우리당 시절 이계안을 전략공천했다. 이계안은 2007년에 탈당을 했다. 2008년에 정동영을 전략공천했고 2012년엔 이계안과 허동준이 경선을 했다. (동작을에선 2000년 총선에도 유용태 전 의원을 전략공천했다.)
 
: 지역주민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나.
 
: 당연히 불만이 많다. 옆에서 보면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후보로 나오지 않고, 언론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사람, 유명세가 있는 사람이 후보가 된다. 6년 동안 지역구의원이었던  정몽준에 대한 평가도 썩 좋지 않다. 동작을은 원래 야성이 강한 동네인데 2008년엔 정몽준을 많이 찍었다. 득표율이 56%쯤 나왔다. 그런데 2012년엔 이계안 후보와 내가 나와 표를 갈랐음에도 51%를 채 득표하지 못했다.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원에 비해 지역에 헌신한 것이 없다. 지역주민들도 그걸 안다. 지역에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이런 걸 예측만 잘 하는데, 저번 총선 끝나고 두 가지를 예측했다. 첫째, 정몽준 후보가 다음 총선에도 동작을에도 출마한다면 패배할 것이다. 둘째, 그렇기에 정몽준 후보는 도중에 다른 곳으로 뜰 것이다. 둘다 맞추지 않았나. 그저 맞추기만 해서 문제지만(웃음). 
 
: 페이스북을 보니 “서울시장 후보 출신들끼리 붙을 수도 있겠네”라고 농을 하셨더라. 
 
노회찬 출마, 노회찬을 위해서도 바라지 않아
 
: 만약에 새누리당 공천을 오세훈 전 시장이 받고, 정의당에서 노회찬 전 의원이 출마할 경우 그렇다는 얘기였다. 
 
: 그러고보니 김종철 후보가 2006년 민주노동당의 서울시장 후보였고, 노회찬 전 의원이 2010년 진보신당의 서울시장 후보였다. 노회찬 전 의원의 출마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당연히, 갑갑하다. 진보정치인은 지역에서 활동해야 하고, 지역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노회찬이나 심상정과 같은 이들은 전국구 스타다. 그런 사람들은 전략공천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였다가 지역을 정하는 것과, 지역구에서 다른 지역구로 옮기는 일은 전혀 다르다. 조직이 사라진 상태에서 선거를 해야 한다. 
 
: 노회찬 전 의원의 경우도 노원에서 마들연구소 같은 것들을 조직하기도 했었는데.
 
: 그렇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새로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진보정당 후보들끼리의 도의라는 것도 있다. 나는 2008년에 지역구를 용산에서 동작으로 옮겼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했는데, 2008년 당시 용산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있었다. 같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봐서 동작으로 옮겨왔다. 동작으로 옮길 때 나는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계속해서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내가 이사를 하니 아이에게 친구가 다 사라졌다. 그때 ‘다시는 아이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 노회찬 전 의원과는 연락이 되었나. 
 
: 최근에 만난 적이 있다. 노회찬 전 의원이 동작을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설’이 흘러나올 무렵이었다. 사실이냐고 물어봤는데 고민 중이라고만 했다.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내가 생각하는 진보정당 재편의 방향에 관한 얘기를 하였다.  
 
   
▲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노회찬 전 의원이 지난 6월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통합진보당이 2014년 지방선거에 심하게 몰입했다면 정의당은 이번 재보선에 후보를 많이 내는 등 역량을 투입하는 상황인 것 같다. 
 
: 정의당의 내부사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 후 진보정당 재편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라면 이래서는 곤란하다. 미래에 정당을 같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지나치게 무모한 도전이다. 천호선 대표도 수원에 출마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8명을 내보낸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들이 모두 완주하지는 않을 것이고, 사실상 나머지 사람들을 지렛대로 삼아 노회찬 전 의원이 야권연대 단일후보가 되어 동작을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일 것 같다. 그런데 당 대표를 지렛대로 삼는 정당이 어디 있나. 
 
또 노회찬이나 천호선 정도 되는 이들, 한쪽은 그 지역구에서 당선된 경험이 있고, 한쪽은 은평에서 당선권에 올라 이재오에게 아슬아슬하게 패한 이가 함부로 지역구를 옮기는 것은 얼마나 경솔한 일인가. 야권연대를 하면 될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반드시 해준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지역에는 ‘낙하산은 싫다’라는 정서도 있다. 이를 어찌 돌파하려고 하는가. 잘못하면 부초처럼 떠다니는 정치인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동작을을 떠난 사람들, 정동영이나 이계안을 보면서 교훈을 얻어 볼 수 있다. 내 생각에 둘 다 동작을에 주욱 도전했으면 이곳에서 의원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앞서 얘기했듯 정몽준의 인기는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자리를 옮겨 잘 되었는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김종철은 동작을에서 어떤 ‘생활정치’를 했나
 
: 그에 비하면 지역에서 오래 활동하셨다. 명함을 보면 “삶을 바꿔가는 생활정치”, “동작구에는 생활정치인 김종철이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생활정치의 구체적인 활동이 궁금하다. 
 
: 이를테면 철거민 노점삼 지원 투쟁이나, 중앙대 청소노동자 투쟁 지원 같은 것들은 기존의 진보정당에서 평소에 하던 것들이다. 그 외에 생활인으로서 한 것들이 있다. 먼저 맥커리가 9호선 요금 인상을 하려고 할 때 반대운동을 했다. 하루 2000명 서명을 받은 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4000명 이상의 서명을 서울시에 전달했다. 주민여론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또 몇 년 동안 동작구 의회 의정 감시단 활동을 했다. 친환경 급식 조례 활동을 했고 학교와 유치원에 공급되는 급식을 위한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 활동을 했다. 그리고 어린이 도서관 활동을 했다. 얼마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말로 풀어보니 많은 것 같다.  
 
: 안 그래도, 명함에 쓰여진 직함 목록을 보니 현 직함은 “사당동 어린이도서관 추진모임 회원” 밖에 없더라. 너무 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웃음)
 
: ‘노동당 동작위원장’도 적어넣을 걸 그랬나 보다. (웃음)  
 
: ‘어린이도서관 추진모임’이란 것은 무엇인가.
 
: 동작을은 서민지역이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그래서 동별로 하나 정도씩,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만들자는 사업이다. 이미 몇 군데는 개관을 하고 있다.
 
   
▲ 김종철 후보의 명함 앞면 (김종철 후보 제공)
 
 
   
▲ 김종철 후보의 명함 뒷면 (김종철 후보 제공)
 
: 앞서 노회찬 전 의원 앞에서 진보정당 재편에 관한 얘기를 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진보정당 재편안이 무엇인지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 
 
: 큰 목표를 가지고, 진보정당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무작정 합칠 게 아니라 다시 깨지지 않을 정도의 결합력을 가지고 합쳐야 한다. 상호 간에 가지고 있는 큰 틀에서의 이견을 좁혀 나가고, 이견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것을 확인 후에 합쳐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를 해야 한다. 노동당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에게 요구할 것이 있고, 다른 정당들이 노동당에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에 관한 요구를 하면 이 역시 수용할 수 있다.   
 
진보정당 재편을 위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에게 요구한다
 
: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 통합진보당에겐 물론 북한 문제다. 북한을 이해하는 것은 좋은데, 비판할 것에 대해선 비판할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예를 들어 삼대세습 문제에 관해선 비판해야 한다. 다만 이 비판이 ‘북한은 삼대세습을 했기에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수준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다. 그리고 북핵 문제를 볼 때엔, 물론 미국의 압박이 심한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북핵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걸 상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다. 
 
정의당에 대해선, 정의당은 노동당에 비해 온건진보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온건진보 노선을 가진 이들과 당을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다만 정의당은 진보정당을 독자적으로 오래하겠다는 다짐을 해줘야 한다. 최소한 오년 십년은 진보정당의 독자노선을 밟겠다고 얘기해야 받아들일 수 있다. 노동당 입장으로는 두 정당이 이 정도만 해주면 큰 이견이 해소되고 민주노총과 함께 3당을 합당하는 진보정당 재편을 추구할 수 있다.
 
녹색당과 관련해선, 상황이 조금 다르다. 녹색당 구성원들과 얘기해보면 일단은 녹색당이 독자적으로 존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계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녹색당에 대해서까지 통합을 하자고 요구하는 것도 결례일 수 있다. 당분간은 별도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정의당 일각에서는 민주당과 통합 이전의 안철수 세력과 함께 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 이해하기 어렵다. 안철수가 민주당에서 좌파에 해당한다면 몰라도… 안철수는 기존 민주당보다도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제3정치세력을 고민하다고 해서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건… 정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 뿌리에 가치와 노선이 있는 행위 아닌가. 나치와 공산당이 머리를 빡빡 밀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이유로 함께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해할 수 없었던 발상이다.
 
: 통합진보당이 말씀하신 그런 요구를 수용할 생각이 있을까. 
 
: 통합진보당 사람들과 만나 보면 그들에게도 좌절감이 있다. 어떤 구성원이 “차라리 해산됐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욕을 많이 먹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차라리 헌재가 해산하는 쪽이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생각이 과연 북한 문제에 관한 견해를 약간 틀면 된다는 정도일까. 가령 ‘이석기 사건’ 녹취록을 보면, 이게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도저히 당을 같이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 이석기 의원의 발언은 엄청난 흥분상태에서 나온 오류라고 본다. 그들의 기본적인 인식은, 여기엔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세력은 미국 밖에 없다는 거다. 그리고 당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거라 생각했던 거고, 자신들의 입장에선 그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봤던 거다. 그런 기본적인 인식의 틀 위에서 엄청난 일탈, 돌출행위를 한 것이 이석기 발언이었다고 본다.
 
: 하지만 사람들이 볼 때에, 그들은 단지 미국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북한과 남한이 전쟁을 할 경우 북한 편을 드는 집단으로 인지된 것이 아닌가. 녹취록 내용만 본다면 그 판단은 틀리지도 않다고 봐야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 그래서 엄청난 오류라고 평가한 거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전쟁을 막겠다고 무기를 들자고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우리 국군과 싸워야 한다. 우리 국군과 서로 총부리를 겨누자고 선동하는 건데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현재의 NL운동권들이 현재의 북한 체제에 대해 여전히 환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설령 1940년대 실정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정통성이 있다고 본다고 해도, 그 후로 70년이란 세월이 흐르지 않았나. 그러면 1940년대의 북한 체제는 긍정하되 지금의 북한 체제는 긍정하지는 않지만 다만 통일의 대상이므로 관용해야 한다는 정도의 입장을 표명하면 된다. 그 정도 입장은 우리 사회나 진보진영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이제 정의당 쪽은 아직 내부에 인천연합이라는 NL정파가 남아 있음에도 북한의 행동에 대해서도 제대로 비판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 있는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의 동지들도 그 정도만 할 수 있으면 된다. 
 
   
▲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피고인들이 지난 4월 29일 오후 서초동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렇게 설명한다면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입을 닫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북한과 남한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편들 집단’으로 평가하거나 의심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석기와 같은 생각이 그들의 주류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대중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 그건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세력으로 남겠다면서 이 문제에 관해 묵비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본다.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우리 사상이 뭔지 묻지 말라, 는 얘기는 인권의 차원에서는 합당하다. 하지만 유권자에게 지지를 요구하는 정치세력의 입장에서 도의가 아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의심하는 부분이 있다면 풀어줘야 한다. 통합진보당이 인권을 내세우며 입장 표명을 거부한다면 유권자가 그 이유 때문에 지지를 할 수 없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다. 이 부분에 관해서 입장을 표명해줘야 이석기의 발언을 돌출 내지 일탈로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고, 진보정당 재편의 틀 안에 들어올 수 있다. 반면 발언을 할 수 없다면 (노동당 등과) 함께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 비록 녹취록에 오탈자는 있을지라도 내용 자체는 큰 틀에서 사실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진보진영 일각에서 ‘국정원을 어찌 믿느냐, 조작이다’라고 주장하고, 이런 주장을 정부에 대해 쉽게 음모론의 잣대를 들이미는 10%~20% 정도만 믿어주는 현재 상황이 안타깝다. 녹취록이 조작이라고 대응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
 
: 100% 단정할 수는 없는 얘기지만, 경험적으로 판단해 보건대 사실일 거라고 본다. 아마 내가 그 녹취록 내용이 기본적으로 사실이라고 보는 사람 중에서 가장 그들의 입장을 선의적으로 판단해주는 사람일 것이다.  
 
: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레드콤플렉스’는 어떤가. 예전에 어딘가에서 지역의 노인들이 북한 문제만 나오면 대동단결한다고 설명하신 적이 있었다. 
 
아주 다른 것은 없다… 기존 방식으로도 잘 못해왔단 게 핵심 
 
: 그렇다. 노인정에 가서 우리 정책 설명드리면 노인들끼리 의견이 다르다. 세금 더 내서 노인 부양하게 하면 좋지 않냐는 분도 있고, 세금을 어떻게 더 내냐는 분들도 있고, 자기들끼리 논쟁을 한다. 그런데 북한 문제만 나오면 대동단결을 한다. 우리가 뚫고 들어갈 여지가 사라진다. 사실 북한에 대한 막중한 경계의식은 현실적으로는 90년대를 기점으로 사라졌어야 하는 낡은 의식이다. 그 시기부터 북한은 국지적 도발은 가능할지 몰라도 엄청난 경제력 격차 때문에 남한을 붕괴시키거나 점령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 시기부터 핵개발 문제가 나오면서 지체된 의식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대중에게 설명하고 넘어서야 하는 부분이다. 
 
: 정치인이 자신이 갈고 닦은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은 기본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재보선은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선거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출마하게 된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 세 가지 정도가 있었다. 하나는 지역적이고 개인적인 것인데, 이 지역에서 진보정치인으로서 활동한 것에 대해 지지나 인정을 구하고 싶은 목적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동작을이 언론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노동당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진보의 지반을 닦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동작을이 언론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른다는 건 유명인들이 나오려고 해서 그렇다는 얘기이니, 최종적으로 누가 출마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얘기이기는 하다. 마지막으로, 진보정당 재편에 기여하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이를테면 평택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득중 후보를 중심으로 가고, 동작을에선 김종철을 중심으로 간다는 식의 판을 만들어내면 선거 이후 진보정당 재편의 흐름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동작을에 출마한다면 세 번째 목표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시민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본다. 진보정당 운동도 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할 때 지금까지 활동과 다른 전략·전술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는데, 생각해본 것이 있을지. 
 
: 기존의 방식으로도 잘 못해왔던 것이 핵심이다. 아주 다른 것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들었던 것 중 우리가 안 해봤는데 의미가 있다고 느낀 건 김윤철 박사가 (<한겨레> 시론에서) 말한 기성 정당 정치인과의 네트워크 구성 정도였다. 그런데 이것도 현실적으로 잘 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가 노력한다 하더라도, 기성 정당 정치인들이 우리와 네트워킹해서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외의 대안들은 우리도 한 번씩 해봤거나 적어도 고민은 했던 것들이다.
 
   
▲ 6월 13일자 한겨레 31면 김윤철 교수의 칼럼
 
무상교육과 같은 태제를 던지고, 기초노령연금 얘기하고, 더 나아가 노인기본소득을 말해보고, 공공부문 민영화 및 규제완화 반대하고, 파격적 증세를 말하고, 지역정치하면서 신진 육성하는 기본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앞서 말했던 진보정당 재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 여러 번 선거에 나오셨는데, 이번 선거를 위해 준비할 슬로건이 있을지.
 
: 고민하는 중이다. “진보의 미래”, “진보의 대표주자” 같은 말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뭐 ‘진보’란 말이 워낙 하한가를 쳐서 이젠 저런 말을 쓰면 ‘4부리그 주장’ 티내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라… 좀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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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부글부글 "조원진·심재철 사과해야"

 

국조 보이콧 경고·모니터링단 제한 조치에 폭발... "새누리당 국조 무력화 시도 경고"

14.07.04 17:56l최종 업데이트 14.07.04 20:26l최지용(endof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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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의하는 유가족 모니터링 요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 모니터링요원 이하나씨가 4일 오후 국회에서 세월호 국조 특위 심재철 위원장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이씨는 세월호 국조 특위 기관보고 모니터링을 위해 2명이 방청을 신청했으나 1명이 거부되자 항의를 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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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4일 오후 7시 9분] 
유가족 대변인 "끊임없는 국정조사 무력화 시도 엄중 경고"

"이성적으로 하는 마지막 요청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새누리당이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특위 사퇴를 요구하며 다음 주 예정된 기관보고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한데 이어, 가족들의 요청으로 구성한 국정조사 모니터링단 입장도 제한했기 때문이다. 

유경근 세월호 유가족대책위 대변인은 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끊임없는 국정조사 무력화 시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라며 이를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우선 여당 간사인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의 '막말 보도' 정정요구부터 지적했다. 앞서 조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2일 해양경찰청 기관보고 당시) 유가족에게 삿대질이나 반말하지 않았다"라며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또 "방청석에서 고함을 치는 분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기에 저는 방청석을 향해 '당신 뭡니까'라고 했고"라며 자신은 당시 '유가족의 항의'임을 몰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 대변인은 "'비겁한 변명입니다'란 대사가 떠오른다, 그 방청석은 유가족의 방청석이다"라며 "저희가 들어가면 (국회) 경위가 그 섹터로만 안내해주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앉아 있어도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워 안내해주는 자리"라고 지적했다. 

또 "'싸우지 말고 나가라' 하는 말을 우리 유가족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얼굴을 몰라서 '당신 누구야' 했다는데 조원진 간사가 몇몇 임원진 외 유가족들과 만나본 적 없으면서 얼굴을 몰라서 그랬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이는 조 간사가 사과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악마 같은 이준석 선장도 변호인과 있는데... 심재철 사과하라" 

특히 새누리당이 지난 2일 해경 기관보고 당시 'VIP발언'을 한 김광진 의원의 특위 사퇴를 요구하며 다음 주 국정조사 일정 차질을 경고하고 나선 것에 대해서는 "이유가 무엇이든 국정조사를 볼모로 삼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유 대변인은 "이는 다음 주 예정된 청와대의 기관보고를 무산시키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라며 "우리를 바보 취급하지 마라"라고 질타했다. 

또한, "심재철 위원장과 조원진 간사는 2일 파행 중(오후 5시경) 해경청장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실로 따로 불러내 만난 이유와 대화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라며 "적절한 해명과 사과가 없으면 여당과 피감 기관이 짜고 치는 국정조사로 규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 대변인은 "특히 해경청장을 불러낸 사람이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라며 "청와대와의 관련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심 위원장의 '모니터링단 제한 조치'에 대해서도 "유가족의 방청을 제한하려는 시도"라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유 대변인은 "(모니터링단이) 이완영 위원(새누리당 소속)이 조는 모습을 공개하고 나서 생각보다 파장이 컸다, 다음날 (모니터링단) 방청을 제한하더라"라며 "그러더니 오늘은 모니터링단은 물론이고 변호인들도 방청허가 할 수 없다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악마 같은 이준석 선장도 변호인과 재판을 받는데, 유가족의 공식적인 법적대리인인 변호인들의 방청을 제한한다고요"라며 "국정감사는 물론, 상임위에서도 시민단체가 모니터링을 하면 테이블에 의자를 내주면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참사의 직접적 피해자들이 모니터링 하는 것을 막는다구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심 위원장은 당장 사과 하십시오. 가족대책위의 방청과 모니터링 활동을 보장하십시오"라고 요구했다. 

심재철 "모니터링은 모니터 통해 하는 게 가장 정확해" 

한편, 심 위원장은 야당 위원들의 모니터링 제한 해제 요구에 대해 "모니터링은 모니터를 통해 하는 것"이라는 궤변을 폈다. 

심 위원장은 "방송사에서 수많은 전문인력 있는데도 방송현장에 직접 가지 않고 모니터를 통해 모니터링을 한다"라며 "시청자의 입장에서 저게 어떻게 전달될까 최종 수용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가장 정확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국정조사도 국회방송을 통해 나간다면,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보일 것인가는 하는 관점에서 보는 게 올바르다"라며 "그래서 제가 모니터링에 대한 원칙을 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저한테 (모니터링단 인원을)2명 해달라고 해서 다 자르진 않고 1명으로 줄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1신 보강: 4일 오후 6시 18분]
심재철, 질서유지 이유로 국정조사 모니터링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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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전체회의에 참관을 위해 입장을 하려고 하자 방호원들이 막아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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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유가족대책위원회의 모니터링을 제한해 논란이 예상된다. 새누리당 소속의 심 위원장은 지난달 30일과 지난 1일 진행된 국정감사 기관보고 관련 유가족대책위 모니터링단의 보고서 내용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모니터링단의 국정조사장 방청권을 1장으로 제한했다. 

심 위원장은 4일 국회에서 진행된 세월호 국정조사 보건복지부·교육부·고용노동부·경기도교육청 등의 기관보고 도중 유가족대책위가 작성한 첫 번째 모니터링 보고서와 관련해 "심재철 위원장이 무책임하고, 당시 조사기관들이 책임 회피하듯 심재철 위원장도 책임회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라며 "아울러 이 보고서는 일부 기관과 의원이 짜고 하는 게 아니냐 하는데, 국회 모독하는 표현 같다"라고 비난했다.

이어 "모니터링은 시민단체·교수·변호사 등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고 해서 전문가들의 중립적 내용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라며 "일반 국민들은 가족들 하는 얘기가 맞는 얘기겠지 추측하기 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사실이 전파되면 안 된다"라며 "그래서 1명만 하라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주시하겠다"라고 말했다. 보고서 내용이 잘못 돼 인원을 제한한다는 말이다.

이에 세월호 유가족 모니터링단과 야당은 부당한 조치라며 항의했다. 보고서를 지적한 심 위원장의 발언이 왜곡됐고, 1명으로 제한한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모니터링단은 "첫 보고서가 나가고 셋째날 해경 업무보고 때(특별위원회 행정실에서) 방청권을 주지 않았다. 아예 모니터링단은 안된다고 했다"라며 "오전에는 왜 안 되는지 설명을 못 들었고 나중에는 질서유지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심재철 위원장 지적은 왜곡"이라며 "'기관과 짜고 치는 것으로 의심이 될 만큼 무성의하다'는 거였지, 언제 '짜고친다는 의심이 든다'고 했나"라고 지적했다. 

국조특위 야당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이렇게 중대한 사건을 숫자까지 제한하는 것은 그렇지 않나"라며 "국회 운영을 투명하게 해야 하고 온 국민이 봐야한다. 최소한 두 명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원식 의원 역시 "모니터링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이 하는 것인데, 모니터링 당하는 심 위원장이 잘 됐다, 잘못됐다고 평가할 게 아니다"라며 "기업 감사도 두 사람 이상이 해야 객관성이 담보된다, 한 사람만 하라는 건 화장실도 가지 말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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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바닥 10미터 긁힌 흔적…좌초 가능성, 진상규명 180도

 
경미한 좌초로 시작돼 복원력 상실로 이어졌을 가능성...선체 상태 하루빨리 조사해야
 
입력 : 2014-07-05  10:46:13   노출 : 2014.07.05  11:00:52
 

세월호 밑바닥에 긁힌 자국으로 보이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침몰 원인에 대해 재조명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변침에 의한 침몰이 아닌 '좌초'에 의한 침몰로 밝혀질 경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의 방향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뉴스타파가 4일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부좌현 위원이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영상 파일 6개를 분석한 결과 지난 4월16일 오전 10시 16분 16초부터 17분 13초까지 찍은 영상 중 선미 쪽 4분의 1 지점에 길이 10여미터 폭 5미터 가량의 긁힌 자국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뉴스타파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배의 밑바닥은 파란색인데 해당 지점은 햐얀색으로 드러나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영상은 세월호 침몰 현장을 해양경찰청 헬기와 경비정이 찍은 것이 전부였는데 이번 영상은 인천해양경찰청 항공단 소속 CN-235 해상초계기가 찍어 처음 공개된 것이다.

영상을 본 신상철 민주실현시민운동본부 대표는 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영상) 중간을 보면 명확하게는 보이지 않는다. 완벽하게 파공이 된 것은 만져봐야 하지만 이 정도 모습이면 바위로 올라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좌초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밝혔다.

신 대표는 4월 15일 밤 10시부터 11시 사이 “사고 전날 세월호가 변산반도와 군산 앞바다를 지나던 중 갑자기 15도 가량 기울었다가 바로 선 일이 있었다”는 생존자 서희근씨의 증언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해병대 출신인 서씨는 “세월호가 변산반도와 군산 앞바다 사이를 지나던 중 갑자기 배가 좌측으로 15도 각도로 확 넘어갔다가 바로 섰다”며 “의자에 누워 있으니까 사람이 15도로 확 틀리면서 쓰레기통과 캔, 커피 이런 통들이 ‘우당탕’하고 나뒹굴어졌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서씨는 “‘쾅’하고 잠깐 기울었다 원위치로 왔기 때문에 감각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겠지만, 나는 큰 배가 이렇게 충격을 받아 움직이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신 대표는 “세월호가 2시간 늦게 출항했고 지름길로 가다보니 권고 항로를 이탈해 가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경미한 좌초(Bottom Touch)를 당했을 것”이라며 “군산 앞바다에서 기울어진 증언과 구체적인 정황이 이번 영상을 통해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Bottom Touch’는 포괄적으로는 좌초의 의미로 통하지만 당장 운항을 정지시킬만한 큰 손상을 야기시키는 경우가 아니거나 접촉 사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를 말한다.

신 대표는 “군산 앞바다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면 선원 관계자들이 인지를 했는데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다. 기관실 쪽에서 조사를 해서 스물스물 물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 대표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제주 인근에 와서 가능성이 힘들 것이라고 봐서 본사(청해진 해운)와 해경에 통보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하지만 본사에서 엄청난 운항 손실을 생각해 제주까지 못 가겠냐고 다그치고 해경에서 조치를 기다려달라고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뉴스타파가 세월호 바닥이 긁힌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사진은 영상 속 캡쳐사진이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신 대표는 “평소에도 엔진품 바닥은 쓸데없는 물이 계속 돌아다니는데 물이 계속 들어오니 비질 펌프를 이용해 퍼냈고 그래도 물이 계속 들어오니까 평행수를 뺄 수도 있다”며 “컵에 액체가 반쯤 차 있으면 유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선체 움직임과 내부 유체의 움직임이 같을 때 롤링을 가속화시키고 그렇잖아도 복원력이 없어 안전성이 저해돼 있었는데 세월호가 급속하게 전복되는데 기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결국 어떤 물체와의 접촉으로 배 바닥이 긁힌 후 이를 통해 해수가 들어오면서 선체를 흔들었고 복원력을 상실해 배가 기운 후 화물창과 선실 출입구로 해수가 급속히 들어오면서 침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해당 영상 속 긁힘이 좌초에 의한 사고로 인한 손상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어 원인 규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4일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좌초에 의한 손상이라는 의견을 밝혔던 부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백점기 교수는 5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배의 바닥 구조에 손상을 입는 사고를 통틀어 좌초 사고라고 부르는데 멀리서 봤을 때는 구멍을 포함한 긁힌 손상으로 보여 좌초 사고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했다”면서 “하지만 자세히 영상을 살펴본 결과 좌초에 의한 파공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파공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긁긴 자국으로 추정되는 부위는 ‘씨체스트(sea chest)’라는 부위라는 의견을 남겼다. 씨체스트는 여객선이 항해를 할 때 식수와 연료를 쓰게 되면 평행수가 부족해지면서 해수를 펌핑해서 채워야 하는데 배안으로 해수를 끌어들이는 통로와 같은 구조를 말한다. 백 교수는 “배 바닥에 파공이 좌초에 의해 생기려면 광범위하게 긁힘이 생겨야 하면 영상 속에는 국부적으로 반듯해 보인다. 파공이 아니라 씨체스트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좌초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사고 원인 규명에 대한 전면 재조사도 불가피해 보인다.

신상철 대표는 “침몰돼 있어도 물속에서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인양할 필요 없이 다이버들이 들어가서 손상 부위를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외압을 받지 않고 기술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인만큼 신중해야 하는데 정치권이 선체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다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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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어쩌나..박근혜 '한중 FTA연내 타결' 공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7/05 13:44
  • 수정일
    2014/07/05 13: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중국, 고강도 쌀 농수산물 개방 요구
 
이호두 기자 
기사입력: 2014/07/05 [11:57]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중국 시진핑 방한     © 청와대 홈페이지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는 시진핑(習近平, Xi Jinping)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논의와 더불어 그간 중국이 한국에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연내에 타결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은 인구 13억명,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인 동시에 세계 최대 시장이며 한국의 제1교역국이다. 
※ 양국간 교역액은 ‘92년 64억불에서 ’13년 2,288억불로 36배 증대(중국은 우리의 제1위 교역대상국, 우리는 중국의 제3위 교역대상국) 
  
양국의 FTA 타결로 대(對)중국 수출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막대할 전망이다. 하지만 농업 분야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관세가 붙어도 국내산 농산물 가격의 3분의 1가량에 불과한 중국산 농산물이 한중 FTA 타결로 무관세 수입될 경우 국내 농가에 큰 위협이 될 전망이다. 
  
또한 중국이 한중 FTA와 연계해 중국산 쌀에 대해 미국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쌀개방, 농민의 생존권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요구된다.

 
  
  
그러나 정부의 농가보호 대책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대책발표 대신 지난 주말 광화문 집회에서 '쌀개방 반대' 를 외치는 농민과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발사하고 22명을 연행한바 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배추값이 무너지고 양파값이 무너지고 감자와 마늘이 무너지고 있다"며 "이제 농민들 뿐 아니라 국민들이 함께 모여서 우리의 먹을거리와 식량주권을 지킬 때가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장은 "이를 모르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함께 알리고 함께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23%에 불과한데도 쌀을 전면개방하려 하고 있다"며 "쌀을 전면개방하면서 농민들이나 국민들과 소통 한번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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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협조자 유우성 측에 옥중 '사과 편지'

[전문] "우성 군에게 진심으로 사과… 고통 헛되지 않을 것"

서어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04 23:16:21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 중인 피의자 국가정보원 협조자 김모 씨가 피해자 유우성 씨에게 '사과 편지'를 보냈다.

김 씨는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4급 직원 김모 과장과 함께 유 씨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 관련 문서를 위조, 모해증거위조, 모해위조증거사용 등 혐의를 받아 구속기소된 인물이다. 검찰 조사에서 3건의 위조 문서 중 중국 싼허변방검사참의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를 위조했다고 진술한 바 있으며, 현재 구치소에 수감돼있는 상태다.

김 씨는 편지를 구치소에서 지난달 25일 작성했으며, 이 편지는 김 씨 변호인이 유 씨의 변호인 측에게 4일 전달했다.

"유우성 군에게 사과드립니다"로 시작하는 김 씨의 편지에는 국정원이 김 씨에게 문서 위조를 부탁한 내용이 소상히 드러나 있다. 아울러 김 씨는 편지를 통해 유 씨에 대한 사죄와 뼈저린 반성의 마음을 여러 번 밝혔다.

김 씨는 "국정원에서 저에게 '답변서'를 부탁할 때 그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주저했었다"며 "그러나 국정원은 '한국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입수할 수 없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 중국에 확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국정원은 '유가강 출입경기록'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상당히 긴장하였으며 완전히 곤경에 빠진 것 같았다"며 "'세는 이미 기울어졌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다'며 그 요구가 간절하였다"고 했다.

그는 국정원과 검찰을 믿었다고 변명했다. 그는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였고, 국정원과 검찰도 한국의 국가기관이니 믿었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당시 이 '답변서'가 우성 군에게 어떤 피해를 주거나 모해하려는 의도는 생각도 못 했다"며 "어리석은 생각뿐이었다. 저의 무지하고 부덕한 처신이었다"고 했다.

그는 국정원에 의해 간첩 누명을 썼던 유 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그는 "우성 군은 이번 사건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겠지만 그 고통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수구 권위주의 이데올로기를 청산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고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렸다"고까지 했다.

그는 두 장에 걸친 편지를 "우성 군의 앞날에 대성을 기원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국정원의 부탁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점, 거듭 반성한다고 한 점 등을 미뤄보아 김 씨의 '돌출 행동'은 재판부의 선처를 구하고 형량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 씨는 지난 17일 열린 첫 공판에서 변호사를 통해 "국정원으로부터 유우성이 간첩이라는 것을 전해 듣고 국익과 국가를 위해 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국정원 협조자 김 씨가 유우성 씨 측에 보낸 편지 전문.
 
유우성 군에게 사과드립니다.
 
저의 잘못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우성군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우성군은 이번 사건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겠지만 그 고통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수구 권위주의 이데올로기를 청산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고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잘못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어리석게 국정원 일방의 주장을 믿었던 것입니다. 국정원에서 저에게 '답변서'를 부탁할 때 그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주저했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한국에서는 문제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입수할 수 없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 중국에 확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 그 말을 믿었습니다. 당시 국정원은 '유가강 출입경기록'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상당히 긴장하였으며 완전히 곤경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대세는 이미 기울어졌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다"며 그 요구가 간절하였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였고 평소에 대한민국을 숭배하는 마음이 깊었으며 국정원과 검찰도 한국의 국가기관이니 믿었습니다. 또한 국정원과 검찰이 이렇게 곤경에 처하여 도와주면 앞으로 국적문제 뿐 아니라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당시 이 '답변서'가 우성군에게 어떤 피해를 주거나 모해하려는 의도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단순히 곤경에 빠진 국정원과 검찰을 …준다는 어리석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저의 무지하고 부덕한 처신이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사실 2013. 9. 경 국정원은 "유가강의 출입경기록 등 해달라는 부탁을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때 모두 입수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국정원에서 '답변서'를 의뢰할 때 거절하지 못한 참말로 안타깝습니다. 국정원의 요구가 그처럼 절박하였습니다.
 
나는 잘못을 절실히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억울한 점도 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하겠습니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드리며 우성 군의 넓은 양해와 용서를 빕니다.
 
우성 군의 앞날에 대성을 기원합니다.
 
2014. 6. 25
 
김 하 씀.
 
▲국정원 협조자 김모 씨가 유우성 씨 측에 보낸 편지. ⓒ유우성 제공

▲국정원 협조자 김모 씨가 유우성 씨 측에 보낸 편지. ⓒ유우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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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 남자 이준석, 그는 지금 다리 위에 섰다

 

등록 : 2014.07.03 18:24수정 : 2014.07.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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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왼쪽에서 네번째)과 위원들이 1일 오후 국회 대표실에서 첫 회의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

다리 안 끊은 남자 ‘김종인’ 다리 불사른 남자 ‘이상돈’
대통령 겨누면서 선 넘지 않는 ‘이준석’, 그의 행보는…

[아침 햇발]

 

 

김종인과 이상돈, 이준석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함께 일했다. 그나마 입바른 소리라도 했던 인물들이다. ‘비대위 3인방’으로 불리며 기대도 받고 욕도 먹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4개월이 지난 지금, 3인방의 엇갈린 행로는 많은 걸 보여준다.

 

김종인은 얼마 전 오랜 지인으로부터 ‘다리를 아주 끊어버리진 않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혹시 청와대가 불러줄 날이 올 수도 있으니 대통령과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는 상황은 피하라는 뜻이었다. 아무튼 김종인은 경제민주화 공약 실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박 대통령을 매몰차게 몰아세우진 않는다.

 

이상돈은 아예 청와대로 향하는 다리를 불살라버린 것 같다. 에두르지 않고 박 대통령을 직접 겨눈다. “박근혜 지지자들도 조용히 환멸을 느끼고 있다”며 “이 정권, 이미 레임덕에 빠졌다”고 외친다. 자신과 청와대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준석은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돌아왔다. 29살의 청년에게 위원장을 맡긴 건 일단 눈길을 붙잡는다. 이준석은 “(박 대통령이) 내가 같이 일했던 사람이 맞나 싶다”며 까칠하게 말하지만 대통령에 대해선 선을 넘지 않는다. 김종인이 노회하다면 이준석은 영악하다고나 할까. 이준석이 ‘멘토’로 삼고 존경하는 인물이 김종인이라고 하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혁신을 하겠다면 우선 뭘 바꾸겠다는 건지 대상이 뚜렷해야 한다. 위기의 핵심은 청와대다. 민심 이반은 거듭된 인사 실패 등 박 대통령의 실정에서 비롯했다. 혁신의 수술칼이 시급한 곳은 여당이 아니라 청와대다. 혁신위가 새누리당을 혁신 대상으로 한정하면 청와대의 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덮고, 위기의 원인을 숨기는 역할을 하게 된다. 머리에 종양이 생겼는데 다리를 수술하겠다고 나서는 꼴이다. 혁신위는 대통령과 청와대와 친박의 심장부를 정면으로 겨냥할 때 비로소 혁신을 말할 자격을 얻게 된다.

 

혁신위가 난데없이 ‘정치인 인사검증’을 들고나온 것부터 수상쩍다. 인사검증은 청와대가 실패했는데 책임은 당에 묻겠다는 모양새다. ‘청문위원 검증론’을 맨 처음 주창한 인물은 다름 아닌 새누리당 사무총장 윤상현이었다. 인사청문회에 가장 불만이 큰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일 것이다. 박 대통령의 홍위병’을 자처해온 윤상현이 대통령의 뜻을 헤아려 ‘청문위원 검증론’을 펴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이준석이 윤상현의 조종을 받는 로봇이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가 아니라 ‘청와대의 민원을 해결하는 위원회’란 오명을 뒤집어쓸 위험이 있다.

 

명민한 이준석이 혁신위를 훌륭히 이끌어 여당을 새롭게 바꿔내길 기대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똑똑하게 보여주는 본보기가 김종인과 이상돈, 이준석의 비대위다. 비대위가 내놓은 무수한 약속은 파기된 지 오래다. 그들은 박 대통령의 본질을 위장하는 방향제 구실을 하며 이 정권 출범에 기여했지만 세상을 바꾸지도, 한자리 차지하지도 못했다. 3인방은 실패했다.

 

임석규 논설위원
김종인과 박 대통령을 잇는 다리는 오래전에 청와대가 끊어버렸다. 그 사실을 김종인만 모르고 있다. 이상돈은 스스로 다리를 불태웠고 이번에 혁신위 참여 제안도 거절함으로써 냉철한 현실인식의 소유자임을 보여줬다. 이준석의 여당 혁신위원장 복귀는 다리 위를 서성거리는 행보로 비친다. 앞길이 구만리같이 창창한 이준석이 무망한 꿈을 붙잡고 김종인과 이상돈처럼 열정과 재능을 마모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노유진 “‘인사 참극’ 청와대, 홈페이지에 구인·구직 게시판 열어야” [한겨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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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해경-청와대 녹취록 살펴보니 기가 막혀

 
 
[세월호 국정조사]세월호 항적에서 사라진 3분 36초의 비밀
 
장유근 | 2014-07-04 09:57: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녹취록 살펴보니 기가 막혀 
-세월호 항적에서 사라진 3분 36초의 비밀-

“오전 9시 42분,
(아직)구조단계 아니고
지켜보고 있다.”

해경은 청와대 안보실 담당자와 이렇게 말했다. 이틀 전(2일)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드러난 녹취록 내용이다. 오전 9시 42분이라면 세월호의 항적(진도 VTS의 레이더영상에 찍힌)을 참조할 때 세월호의 엔진동력이 상실한 지 50분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세월호는 점점 기울어 침몰에 이르고 있는데 해경은 “(아직)구조단계가 아니며 지켜보고 있다”며 청와대와 교신을 하고 있었던 것. 제 정신이 아니거나 미쳤거나 누군가 학살극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기막힌 일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게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TV를 통해 국정조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자니, 관련 당사자 전부를 즉각 참수형에 청해도 분이 안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부의 존재는 일찌감치 사라졌고 나라가 통째로 실종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이를 지켜보고 있는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것’ 같은 생각이 번뜩 드는 것.

국정조사장은 파행으로 얼룩지고 유가족들은 다시금 울분하며 새누리당 소속 의원을 죽이고 싶도록 어처구니 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국정조사 자료 조차 기일이 다 된 직후 제출해 검토해 볼 수 없도록 만들었고, 교신내용 중에 나타난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야당의 질의를 꼬투리 잡아 국정조사로부터 회피하고 있는 게 드러나고 있었다. 박근혜가 소속된 새누리당의 이같은 모습 때문에 세월호 참사의 침몰원인은 점점 더 ‘학살극 의혹’으로 치닫고 있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당시 상황을 (자료를 통해)재연해 보니 누군가 학살극을 계획하지 않으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이랬다.

*참고로 진도 VTS 레이더 영상과 AIS(선박 자동 식별 장치 [船舶自動識別裝置,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항적에 표시된 연두빛은 선박이 이동하면서 나타낸 파형이며 주황색빛은 선박이 정지되거나 조류에 떠밀린 흔적이다.(그림은 JTBC켑쳐 영상을 재구성)

맨 처음 진도 VTS 레이더 영상을 ‘세월호 항적과 속도 비교’로 그려둔 표와 그후에 벌어진 상황(9시 53분, 목포 선박자동식별장치)을 비교해 보면 해경과 청와대의 교신 내용은 악마의 목소리와 다름없을 정도로 소름이 돋는다. 불과 10분 전(9시 42분)까지 해경은 “구조단계가 아니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골든타임 전부를 소비하며 단원고 학생들과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놓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세월호 엔진은 왜 멈추었을까

그러나 국정조사 초기에 나타난 이 같은 모습은 겨우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해경과 청와대의 황당한 교신내용으로 드러난 어처구니 없는 짓만으로는 세월호 침몰원인에 다가설 수 없는 법. 세월호 침몰원인을 정확히 분석해 내려면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항할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시작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이어서, 세월호가 급변침 한 것으로 전해진 사고직전의 모습 등을 자료를 통해 접근해 보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세월호 참사 직후 일반에 널리 퍼진 의혹들 중 세월호 추돌설과 급변침이 어떤 관계가 있는 지 엿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세월호는 침몰에 이르기 직전 ‘갑판(선교)당직자(3항사)’가 반대편의 괴물체를 발견하고 조타수에게 변침(5도)을 지시한 적이 있다. 또 선장 문예식 씨에 따르면 “오전 8시 45분쯤 세월호를 레이더로 보고 있었다. 배가 우회로 오는데 난 (왼쪽으로) 가야 하니 충돌 위험이 생기니까 주시를 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는 괴물체에 대해 ‘배’라고 표현했지만 지금까지(위와 같이) 공개된 AIS 항적 등을 볼 때 세월호에 인접해 있던 둘라에이스호(號)가 아닌 ‘제3의 선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다. 그러므로 제3선박=잠수함(괴물체)로 여기는 것도 일반적인 시각인 것이다. 그렇다면 괴물체의 역할을 무엇일까. 맨 처음 본 그림 한 장을 다시 살펴보면 이러하다.

위 그림은 세월호의 침몰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로 세월호의 항적도에 나타난 속도 변화를 비교해 본 것이다. 정부가 복원한 사고 당일의 세월호 항적도는 4가지 버전이 있고, 해양수산부가 세월호의 최종 항적도를 복원하는데 10일이 걸렸으며, 해수부는 항적도를 복원하면서, 2차 복원(4월21일) 때까지는 사고 지점을 관제하던 진도VTS가 보관하던 항적기록을 입수하지도 않았다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기도 했다.


세월호 항적에서 사라진 3분 36초의 비밀

해수부가 네 번에 걸쳐 항적도를 복원하게 된 이유는 4월16일 오전 3시부터 9시30분까지 선박위치정보 저장장치가 고장났기 때문이며, 해수부는 선박위치정보 저장장치의 고장 사실 조차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발견했다.(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아무튼 최종 복원된 항적도에 따르면 사고 직전 세월호는 29초간 10도를 변침한 것으로 나옴에 따라 ‘급속한 변침’은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급속한 변침은 사고 이후에서나 나타나 급속한 변침에 따른 ‘화물쏠림’이라는 사고 원인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따라서 세월호 항적도 복원에 나타난 의혹을 재구성해 본 게 위의 세월호 항적과 속도 변화 비교 그림인 것.

그림을 살펴보면 세월호 항적을 따라 ‘급변침(괴물체 추돌 추정)위치’쯤부터 세월호는 20-17-14노트로 이어지던 속도가 한 순간에 멈추는 일이 발생한다. 세월호 항적도가 복원된 이후 오전 8시48분 37초에서 8시52분13초까지 약 3분36초 동안 위치가 누락됐던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던 것이다.

세월호는 이때부터 대략 3분 36초동안 걸쳐 6노트의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혹은 '이동되는') 게 진도 VTS 레이더 영상에 잡힌 것이다. 영상을 살펴보니 그 동안 세월호는 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세월호는 어떤 이유로 동력을 상실한 것일까. 세월호 항적에서 사라진 3분 36초의 비밀을 관련 포스트를 통해 계속 추적해 본다.

<세월호 침몰원인 관련 포스트>

*[긴급제보]세월호 프로펠러는 왜 휘어졌을까 
*[세월호]숨죽여 살핀 레이더 속 괴물체 분석했더니 경악! 
*[세월호 국정조사]괴물체 정체와 동력상실 이유 뭘까 
*김광진,녹취록 꼬투리 잡고 늘어진 새누리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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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대북압박 골몰 소중한 외교 기회 놓쳐

 한.중 공동성명 벗어난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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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04  09: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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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겨에서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은 한국식 용어들을 쏟아냈다. [사진출처 - 청와대]


박근혜 정부는 중요한 외교적 기회인 한.중 정상회담을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보다는 대북 압박의 장으로 이용하는데 골몰함으로써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스스로 저버렸다.

더구나 한.중 양 정상간 합의를 공식적으로 정리한 ‘한.중 공동성명’에는 담지 못한 대북 강경입장을 박 대통령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공동기자회견에서 쏟아내는 씁쓸한 진풍경이 빚어졌는가 하면, 일본을 향한 양국의 공조는 단 한마디도 명기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주석과 3일 오후 청와대에서 단독정상회담과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현안과 북핵문제,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해 논의했고, 양 정상간 합의 결과는 ‘한.중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됐다.

양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점과 “양측은 6자회담 참가국들이 공동인식을 모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 하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는 입장’을 한.중 정상 간에 최초로 명기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해 6월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서 “유관 핵무기 개발이... 심각한 위협”이라고 표현했던 데에 비해 훨씬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표현에는 만족하지 못했던 듯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오늘 회담에서 우리 두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고 핵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는데 뜻을 같이 하였다”며 “무엇보다 북한이 핵과 경제개발 병진노선을 고집하면서 최근 또다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고, 핵실험 위협을 거두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방한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분명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9.19공동성명은 물론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서 조차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식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한국식 표현’을 사용하는가 하면, ‘핵실험 반대’를 명기하고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병진노선’을 적시해 반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공동’기자회견 취지가 무색하게 한국식 어법과 논리를 총동원해 공동성명의 톤과는 다르게 북핵문제에 대한 압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은 이유가 정상회담 시간이 길어진 탓만은 아닐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진행된 한.중 확대정상회담 모습. [사진출처 - 청와대]

이에 비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고 “6자회담 수석대표간에 다양한 방식의 의미있는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유화적 대목은 공동성명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읽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조건 없는 6자회담 대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중국과 함께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는데 합의하고,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상 간의 공동인식을 표현했다”고 해석해 한국측 입장이 주요하게 관철됐음을 시사했다. 중국은 그간 조건 없는 즉각적인 6자회담 재개라는 북측 입장에 더 가까운 태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공동기자회견에서 “나는 드레스덴 구상이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의 공동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고 지난 3월 핵안보정상회담 계기 독일방문 시 내놓은 ‘드레스덴 구상’을 언급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에는 ‘드레스덴 구상’이 담기지 않았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드레스텐 구상에 대해서 반대하는 상황”때문에 중국측과 합의하에 ‘드레스덴 구상’을 명시할 수 없었다고 밝혔으며, “드레스덴이라는 단어는 공동성명에 없지만 핵심 내용에 대해서 중국측으로부터 문서로 최초로 지지를 확보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해명했다.

공동성명에 “한국측은... 남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의 공동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고 명기한 것을 두고 한 말이지만 이것도 “한국측은”이 주어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중국의 지지를 받았다고 할 수는 없어 그나마 아전인수식 해석인 셈이다.

결국 한국 정부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기회를 남북관계 개선이나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선용하기 보다는 중국을 끌어들여 한국의 대북 압박책을 홍보하는 장으로 악용했고, 그 결과 북핵문제 해결이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구체적 방안은 전혀 제시되지 못했다.

특히 최근 북측이 7월 4일을 기해 상호 비방.중상을 중단하고 8월 UFG(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를 중단하자고 중대제안을 내놓은데 대해 어떠한 호응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철저히 북한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최근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한국 이니셔티브’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압박책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무능을 스스로 드러냈을 뿐 소중한 역사적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단독정상회담 모습. 이 자리에서 어떤 논의가 오고갔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

남재준 국가정보원 원장이 물러나면서 북한 불안정론에 기초한 사실상의 흡수통일을 지칭하는 ‘북한대박론’의 기세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항간의 추측과는 달리 박 대통령이 여전히 대북압박을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은 결국 ‘전략적 인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보조를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한.중FTA 연대 타결, 위안화 청산체제 구축, 2015년 해양경계획정 협상 등 한.중 경제협력을 심화시키는데 동의하면서도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등 정치.군사 문제는 미국과의 동맹에 기대는 이원적 기본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중 정상이 일본의 역사왜곡과 영토분쟁에 공동대응하지 못한 것도 '외교적 관례' 문제 뿐만 아니라 아베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와 같은 심각한 도전을 미국의 구상에 따라 사실상 수용한 한국 정부가 스스로의 입지를 좁혀놓은 결과라는 평가도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구상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양해각서 체결이나 한국의 MD(미사일 방어)체제 편입 등은 간과하기 어렵고, 한국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단독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일본에 대한 공동대응을 주문하는 한편, 한.미 합동 군사훈련 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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