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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 촛불 (안산, 서울 대구, 부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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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적인 기초연금법 처리... 1조5천억 날렸다"

 
[인터뷰] 기초연금법 처리에 반발해 사직서 제출한 김용익 의원14.05.11 09:54l최종 업데이트 14.05.11 09:54이주연(ld84)
"여러분은 오늘 새정치민주연합이 복지·정치와 결별하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야당이 여당의 법안을 통과시켜 주기 위해 하루 동안에 보건복지위원회, 법사위, 그리고 본회의까지 통과를 시켜주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이 과정에 참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의총이 끝나면 의원직 사직서를 써서 제출하겠습니다."

지난 2일,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말을 남긴 후 의총장을 떠났다. 새정치연합이 앞장서 정부 여당의 기초연금법안 처리를 돕는 것에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원직 사퇴'라는 강경 카드에 혹시나 지도부가 마음을 바꿀까 기대했지만,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이날 기초연금법안은 보건복지위원회, 법사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직후, 김 의원은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9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 의원은 "기초연금법을 양보해주면서 국민에게 내놓을 거리를 얻었어야 했는데, 지도부는 얻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처리하는 과정은 매우 굴욕적이었다"라며 "새정치와 결별하려는 당의 모습에 분노했다"라고 토로했다.

"기초연금법과 '세 모녀 3법'과 장애인연금법을 묶어서 처리하자고 건의 했지만,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양보에도 방식이라는 게 있는 건데, 이번 건은 진짜 한심했다"라며 "참패했다"라고 일갈했다. 

사직서를 낸 후 일주일, 국회를 떠나겠다는 김 의원의 뜻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가을 이후 당이 한 일이 없다,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상실했다"는 실망감이 기초연금법 처리 과정에서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그는 "김한길 대표가 사직서 철회하라고 강권한 후 본인이 강창희 의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다시 찾아왔더라, 여야간 합의가 없으면 본회의도 안 열리고 사직서 수리도 안 되는 판국에 사직서가 어디있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라며 "차라리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될텐데 당에서 접수를 안 받을 거 같다, 사퇴하려고 해도 방도가 마땅치 않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제명'이다. 당에서 제명되면 김 의원은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김 의원은 "국회는 나가기도 어렵다, 사직 처리가 안 되는 상황이니 제명해주면 최선을 다해 무소속으로 일하겠다는 뜻을 담아 의원들에게 편지를 썼다"라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될 게 두렵다, 그래서 약속의 반만이라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동료 의원들에게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 시간 동안 김 의원은 연거푸 다섯 대의 담배를 물었다. 의원직을 사퇴하지도, 그렇다고 유지하지도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그를 짓누르는 듯 보였다. 김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는 미안하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내 거취를 두고 자꾸 당에 부담을 주는 거 같아 괴롭다, 착잡하다"라고 말했다. 

"복지와 결별하고 새정치와 결별하려는 당의 모습에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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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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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용익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 기초연금법안이 통과된 2일 밤, 의원 사직서를 제출했다.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기초연금에 대해 우리 당의 당론(국민연금과 연계없이 소득 하위 80% 노인들에게 20만 원씩 지급하는 안)을 지켜야 한다는 쪽이었다. 우리 당 안이 맞다는 확신이 있었다. 새누리당 안은 기본적으로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긴 사람은 국민연금 혜택을 받고 있으니 그만큼을 깎아서 줘야 한다는 안이다.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 그래도 현실세계에서는 전략적인 타협을 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 사각지대 발굴법' 등 세 모녀 3법과 장애인연금법을 기초연금법과 묶어서 처리하는 것을 출구전략으로 생각했다. 지도부에 이 안을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지도부는 기초연금부터 처리하고 나머지 법은 따로 처리하는 게 좋다며 반대했다. 

납득할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기초연금법이 처리된 후에 네 가지 법을 처리할 협상력이 우리에게 있나? 말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가난한 노인과 빈곤층에게 한 푼이라도 더 줄 수 있는 돈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얻어 보려고 혼자서 복지부와 교섭했다. 장관이 이와 관련 1조 원 정도의 계획서를 가져왔고 실무적인 논의를 통해 1조5000억 원까지 (지급 가능하게) 논의가 진행됐다. 당 지도부가 나서서 노력해주면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봤다. 그렇게 되면 기초연금을 양보하는 대신 지금 당장 기초생활보장, 장애인 연금, 긴급 구호 등에 대해 법을 고쳐 1조 5000억 원 가량의 재원을 확보했다고 국민에게 설명하면 이를 양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도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2일 하루 동안 복지위, 법사위, 본회의를 거쳐 일괄 처리할 기세였다. 그래서 그날 의총에서 '제발 새 원내대표가 맡아서 처리하게 하자'고 했지만… 도저히 될 상황이 아니어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 혹시라도 지도부가 마음을 돌려서 '조금만 천천히 가자'고 하길 기대했다. 물론 의원직을 사퇴하면 내 입장이 매우 곤란해질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감행했다. 결국 그 날 기초연금법이 통과됐다." 

- 이번에 통과된 기초연금법안, 무엇이 가장 문제라고 보나. 
"새누리당안이 통과되어도 그건 시한부안이다. 날이 갈수록 국민연금 20년 이상 가입자 비중이 늘어나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그만큼 나라에서 나가는 돈은 줄어들게 된다, 그게 여당의 의도다. 이렇게 되면 현재 안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다음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조차 기초연금 20만 원 일괄 지급 공약을 할 가능성이 높다. 

길게 봤을 때 이 제도의 수명은 길지 않을 거다. 내가 분노하는 건 기초연금법을 양보해주면서 국민에게 내놓을 거리를 찾아왔어야 했는데 얻지 못했고, 얻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걸 처리하는 과정이 너무나 굴욕적이었다는 데 대한 불쾌함과 부끄러움이다. 복지와 결별하고 새정치와 결별하려는 당의 모습에 분노했던 것이다." 

- 기초연금법이 통과되는 순간, 어떤 심정이었나. 
"굉장히 우울했다. 이해하기 힘든 과정이었다. 몇 달전부터 고민해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한 건 아니지만 그 자리에서 충동적으로 한 일도 아니었다.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8일 새 원내대표 선출 이후에 진행만 했어도 사퇴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새 사람이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운 전략으로 협상에 임할 수 있을 거고,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가 상시국회를 제안했고 18일까지는 국회가 열려있으니, 5월 내내 국회가 열려있을 가능성이 컸다. 2일에 급히 결정 안 해도 이후에 논의해서 지방선거 전에 결말을 낼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다."

- 원내 지도부 측은 '새누리당은 기초연금법 처리하지 말라, '배째라'는 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낼 게 없다'고 하더라. 새정치연합이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초연금법 처리가 안 된 상태에서 지방선거를 치렀어야 했다. 이미 세월호 때문에 모든 이슈가 그 쪽으로 흘러갔고 정세분석가들도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이외의 것들이 쟁점화되리라고 보지 않고 있었다. 기초연금법을 처리하지 않으면 경로당에 못 들어가 선거에 질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초연금 처리에서 새누리당이 배째라고 나오면, 통과가 안 됐을 시 그게 무조건 야당 탓이 되겠나. 야당만 일방적으로 욕 먹는 상황은 아니었다.

양보를 하더라도 양보의 방식이라는 게 있는 거다. 하루 동안 야당이 자발적으로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를 거쳐서 여당안을 처리하게 해준다는 거 자체에 납득이 안 갔다. 진짜 한심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내가 무슨 힘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겠나. 싸움을 걸면 일단 이겨야 하고 최소한 비겨야지. 그런데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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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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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 사퇴 의지, 변함없다"

- 당에 실망해온 것이 계속 됐나.
"지난 가을 이후 우리 당이 한 일이 없다.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그러니 실망감도 있다. 또 계파 청산이라든지 당 내부를 개혁해 당이 합리적이게 되길 바랐고 이를 위해 노력도 했는데 거의 진척된 게 없다. 당을 개혁해 야당으로서 역할을 다했어야 했는데 이를 못한 부분들이 바탕에 깔려있다.

물론 이런 일들만을 두고 의원직을 사퇴할 건 아니었다. 동료 의원들에게는 미안하다. 선거 앞두고 내 거취를 두고 자꾸 당에 부담을 주는 지점들이 괴롭다. 힘을 보태야 할 때 분열하는 모습을 비춘다고 볼 수도 있을테니… 착잡하다."

- 사직서 제출 후 지도부 측에서 연락온 게 있나. 
"2일 의총에서 사직서 제출 발언을 한 후 김한길 대표가 와서 '다시 생각하시라'고 하더라. 의총이 끝난 후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여러 의원들이 내 방에 와서 사직서 처리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만류하고 위로했다. 6일에 김한길 대표가 집까지 찾아온다고 해서 내가 의원회관으로 나와 김 대표와 만났다. 사직서를 철회하라고 강권하더라. 그러고는 본인이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찾아가 사직서를 찾아왔더라. 

여야간 합의가 안 되면 본회의에서 사직서 수리도 안 되는 판국에 사직서가 어디 있건 큰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탈당을 하면 내가 비례대표니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될텐데, 내가 탈당계를 내도 당에서 접수를 안 하고 가지고 있을 거 같더라. 사퇴하려 해도 방도가 마땅치않은 상황이다. 

사퇴하고 국회를 나가겠다는 내 의사는 확고한데, 국회는 들어오기도 어렵지만 나가기도 어렵더라. 그래서 7일에 의원들에게 서신을 쓴 거다. 이러나 저러나 사직 처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제명을 해주면 최선을 다해 무소속으로 일하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될 게 두려웠다. 이번에 약속을 안 지키면 두고두고 불명예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의원들에게 사퇴하겠다는 약속 반만이라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 거다. 심사가 착잡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내가 사퇴 의사를 꺾고 무소속을 유지하겠다고 말한 거처럼 썼던데 그건 오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 내 뜻을 전하는 경험이 부족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 보도를 보고 개인적으로는, 정치인들은 인간적인 아픔을 드러내도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 8일 원내대표 선거에 참여했던데, 아직 새정치연합에 희망이 있다고 보는 건가. 
"어제 원내대표 투표에 참여한 걸 두고도 언론에서 비판하더라. 사퇴하기 전까지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보따리 싸고 나가면 일 안하고 세비만 받는다고 뭐라 할 거 아닌가. 받은 세비를 반납하려고 해도 창구가 없다. 의원 신분이 유지되는 한 의정활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새 원내대표가 어떻게 하는지는 보려고 한다. 그러나 엄청난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내 의지는 변함 없을 거다. 

내가 그만두는 것보다는 우리 방 직원들이 훨씬 마음에 걸린다. 못할 짓이다. 의원 잘못 만나서 4년 일할 걸 2년 만에 실직하게 됐다."

- 129명 새정치연합 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다운 야당이 됐으면 좋겠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만든다는 당의 방향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새 원내대표가 잘해주시길 바란다. 시간이 가면서 이런 의지들이 희석된다면 야당이 해야 할 역사적 의무를 다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당내 여러 안 좋은 관행을 빨리 벗어버려야 야당다운 야당이 될 수 있다. 당내 개혁과 제대로 된 야당의 역할은 함께 가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총·대선에 임했으면 좋겠다. 당이 바뀌고 좋은 야당으로서 역할을 꿋꿋하게 해나가면 결국 국민이 인정할 거다. 선거에만 연연하지 말고 당당한 당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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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궁지몰린 박근혜, 세월호 참사 또 남의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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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만 촛불 "끝까지 밝혀낼 게"

세월호 2만 촛불 "끝까지 밝혀낼 게"희생자 추모와 진실 위한 촛불행동.. 범국민대책위·진상조사위 구성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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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1  01: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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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함께할게, 생명들을 살려내라, 잊지 않을게, 끝까지 밝혀낼게."

전국에서 모여든 2만 여 명의 촛불 시민들이 10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구 문화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 촛불행동'에 참가해 한 목소리로 애도와 분노의 심정을 담아 이같이 외쳤다.

앞서 이날 오후 3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서 '꼭 안아줄게-노란리본 잇기' 행사를 마친 3천 여 명의 참가자들은 도보로 단원고등학교를 거쳐 대회장인 안산 문화광장으로 속속 모여들어 대회시작 전 순식간에 광장을 가득 메웠다.

대회장은 '미안해, 잊지 않을게, 행동할게'라는 대형 현수막과 추모객들이 매달아 놓은 노란 리본띠, 안산시 고등학생들이 들고 입장한 만장, 그리고 엄마 손을 잡고 참가한 어린 아이들부터 머리 희끗한 노인들까지 한 마음으로 켜 놓은 촛불이 한데 어우려져 노란색 물결이 일렁였다.

대회는 조가와 함께 긴 묵상으로 시작했으며, 여기 저기서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애도의 한숨과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특히 이날 대회장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참가해 시종 숙연한 분위기였다.

최종 사망자로 확인된 단원고 학생의 유가족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낭독할 때에는 흐느낌이 더했다.

아버지는 진도 팽목항에 머물던 중 구조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으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보낸 편지라며 추모하러 오신 분들 앞에서 꼭 읽고 싶었다고 말했다.

생존 학생의 아버지는 무대에 올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살아서 힘들었다"고 말을 잇지 못해 참가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 아버지는 긴박했던 사고 당일 아침 딸과 통화하면서 "'객실내에 서 기다리라'는 세월호의 지시를 무시하고 '무조건 갑판으로 나오라'"고 말했다며, "살아 나온 아이들은 '구조'가 아니라 '탈출'해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문제해결을 위한 안산시민사회연대'는 이날 '5.10 공동행동 선언'을 발표해 △ (대통령에게) 실종자들에 대한 신속한 구조와 수색작업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 (국민들에게) 범국민대책위원회와 국민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며 △ (국회에) 피해자 가족과 생존자들을 지속적,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안 제정을 요구하고 △ (국민들에게)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촛불을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안산시민사회연대는 이를 위해 다음주 토요일인 17일 서울광장에서 10만 촛불을 켜 달라고 국민들에게 거듭 호소했다.

이에 앞서 세월호 침몰사고를 추모하고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 나선 엄마들의 모임 '엄마들의 노란손수건'은 "거대한 자연의 힘앞에 불가항력적으로 벌어진 재앙이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다"며, "이번 사고에는 왜 이렇게 의혹이 많은가"라고 되묻고는 세월호의 불안한 출발부터 방치된 침몰, 선원들만의 탈출과 잘못된 구조 등 초기 대응, 재난관리시스템의 총제적 부재, 민간 잠수부의 접근 통제 등 문제점과 의문점을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특히 '엄마들의 노란손수건'은 1천600억 원짜리 수상구조함 '통영함'이 사용되지 못한 것과 관련해 "정말 돈때문에 그런 것인지" 되묻고, 사고 발생 25일 지난 지금 추모집회에 나선 청소년들이 일당 6만원에 동원됐다거나 '종북세력' 운운하는 데 대해서는 "뭘 믿고 그런 악마 같은 소릴 하는가"라고 일갈했다.

또한 '노란손수건'은 "권한과 절차를 따지며 그 금쪽같은 3일간을 구조에 나서지 않았던 정부, 그 잔인한 현장을 앞에 두고 기념촬영과 좌파타령을 하는 정부여당의 고위 관료들이 끝까지 그런 식으로 한다면, 책임은 우리 국민이 지겠다"며 "꿈을 빼앗은 이 나라에 분노하고 행동하겠다. 반드시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어서 권영국 민변 세월호진상규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사고 당일 해경 수사관이 세월호 선장을 자신의 집에 재우는 등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문제가 제기돼 특위를 발족하게 됐다며, "대통령을 포함해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권영국 위원장은 전날 유족들의 상경과 청와대 방문을 통해 KBS 사장으로부터 보도본부장의 사표를 수리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는데, 하루가 지난 상황에서 보직변경에 그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며 "유족들의 가슴에 또 다시 대못을 박는 표리부동한 태도는 이제 그만두라고 간곡히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용산참사, 쌍용차 조합원들의 연이은 죽음이 줄을 이어 벌어졌지만 이에 눈길을 주지 않던 우리가 이제서야 우리 사회의 잔인한 모습을 제대로 보고 있다"며, "앞으로 월드컵이니 지방선거니 하는 정치놀음에 빠져서 세월호 참사도 또 잊어버리는 바보 같은 시민이 되겠느냐"고 물었고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박 소장은 "이제 가만히 있지 말자. 이제 행동하자. 잘못된 나라와 잘못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며 "추모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키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워나갈 것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같은 장소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던 안산지역 고등학생들은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등 여러 재난들이 쉽게 잊혀지는 것을 보아왔다며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만큼은 결코 잊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싶었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어른들에게 당부했다.

뒤를 이어 지난해 7월 18일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 파도에 휩쓸려 사망한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의 유가족들도 무대에 올라 "특검을 요구하는 희생자 가족들과 동참해 달라"며, 동병상련의 애도를 표했다.

이날 대회에는 경기굿위원회와 평화의 나무합창단, 노래패 '우리나라' 등이 추모 공연을 준비했으며, 가수의 꿈을 키우던 단원고 학생의 언니가 포함된 시민합창단이 '거위의 꿈'을 불러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일대에서 열린 '꼭 안아줄게-노란리본 잇기'행사 참가자들이 추모의 마음을 모아 노란풍선을 날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행사 참가자들은 단원고등학교 앞을 지나 촛불행동 대회장인 안산시 문화광장을 향해 행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행사 참가자들은 단원고등학교 앞에서 안산문화광장까지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이 그려진 대형 걸개와 함께 행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대회장인 안산문화광장에 마련된 '청와대에 띄우는 편지-행동하는 노란엽서'보내기 접수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안산문화광장에 설치된 노란리본 조형물에도 애도의 노란띠가 많이 걸려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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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 세월호촛불시위 민심은 아픔과 분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5/11 11:03
  • 수정일
    2014/05/11 11: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청계광장 세월호촛불시위 민심은 아픔과 분노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05/11 [09:5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2014.05.10 원탁회의 주최 청계광장 세월호 추모 국민촛불 집회     © 자주민보
 
▲ 한국청년연대 정종성 대표가 국민촛불집회에서 세월호 참사관련 박근혜 정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자주민보





5월 10일 저녘 청계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시민촛불 원탁회의-이하 원탁회의] 주최로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이란 제목의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6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시민들은 점점 불어나 7시경에는 청계광장에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찼다.

그날 시민들의 관심만 보았을 때는 아무리 넓은 광장이라도 다 채울 기세였다.

  

특히 지나가는 시민들 누구나가 주최 측에서 스크린으로 상영한 세월호 희생된 아이들 관련 동영상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이가 없었고 다들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여성 참석자들은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고 사회자도 울먹이고 취재하던 기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다못해 가지 날리는 갈로수마저 흐느끼는 것 같았다.

  

손병휘 가수는 세월호 학생들을 추모하는 새로운 노래를 연단에서 불러 주위를 숙연케 했다. 

  

연단에 연사로 나온 정종성 청년연대 대표는 “애초 처음부터 조작으로 출발한 정부다. 살다 살다 별놈의 조작을 다봤다. 선거조작, 간첩조작도 모자라서 이제는 조문 조작질까지 한다”며 해경에서 물에서 건져 올린 아이들의 휴대전화 메모리칩을 꺼내 몰래보고 돌려주고 있는데 학부모들 속에서 16일부터 특정기간까지 통화기록이 삭제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아이들을 제대로 구하지도 않았으면서 죽음마저 정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하려는 것 아니냐고 분노를 터트렸다.

  

 

참가한 시민들은 이어 "책임자를 처벌하라", "아이들을 살려내라",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선두 방송차의 구호를 따라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였다.

  

특히 촛불집회에 참여한 5대 종단 종교인 중 한 사람은 방송차 마이크를 잡고 5대 종단 종교인들이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을 끝장내야 한다는 소명으로 거리에 나섰다면서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한다”며 “박 대통령은 불법 부정선거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그는 야당과 국회의원들에게도 네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가족의 뜻을 받아들여 참사 관련 특검과 청문회를 즉각 실시해서 진상 규명을 하고 관련 책임자를 처벌하라"

  

"둘째 불법 부정선거 기획자이며 세월호 참사 유발자인 이명박과 관련자들을 구속수사하고 관련자들은 즉각 구속수사 하라”고 외쳤다.

  

셋째,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퇴진 투쟁에 적극 나서라”

  

넷째, “이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국회의원직을 총사퇴하라. 당신들은 국민들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차도의 측면을 따라 5열종대로 늘어서서 가던 시위대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주변에서 동참한 시민들에 의해 10열 이상으로 넓어졌으며 인도에서마저 시위대와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도있었다.

  

청계천 다리를 막 건너갈 때 2층 찻집에서 지켜보던 대여섯명의 젊은 여성들은 일제히 전화기와 카메라들 들어 지나가는 시위대를 촬영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을 살려내라’, ‘박근혜는 책임져라’, ‘책임자를 처벌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는 시위대 행진과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는 20대 젊은 여성 2명에게 이런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 아닐까요!”라고 짧게 대답하고 지나갔다.

  

지위대가 지나가는 모습을 서서 한량없이 지켜보고 있는 60대 아주머니는 “저 사람들 마음이 내 마음”이라고 했다.




등산을 갔다와 뒷풀이로 막걸리를 마셨다며 얼굴이 불콰한 산악회 회원들도 촛불집회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물어보니 "국민 누구나가 저 사람들과 같은 맘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지켜보는 뒷모습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도 해주었다.

  

종각과 종로3가 사이에서 악세사리를 파는 60대 아저씨도 “저렇게라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이다, 나도 저 마음이다.”고 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여성은 “세월호 구조에 정말 문제가 많다. 시위는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박근혜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것은 좀 그렇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좋겠냐”라고 말했다.

  

한편 200여명의 노인 등 시민들이 청계광장 옆에 따로 모여 세월호 참사 책임은 유병언이 져야 하지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질 아니라며 집회를 한 후 해산하였다. 

이들은 시위대가 행진할 때 욕설을 퍼붓는 등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가 분노한 시민들이 막 달려나가자 투덜거리며 을지로쪽으로 가 버렸다.

  

원탁회의에서는 다음 주에도 촛불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 세월호 추모 국민촛불 거리행진     © 자주민보




 
▲ 2층 찻집에서 10여명의 여성들이 세월호 국민촛불 시위행진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 자주민보
 
▲ 종각 인근 거리에서 모 산악회 회원들 중 연인 회원 한 쌍이 촛불시위행진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들도 시위대와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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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은 그렇게 암매장꾼으로 몰렸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의 유가족인 윤근(67·왼쪽부터), 전재영(53), 황명애(57)씨가 지난 1일 오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찾았다. 세 사람이 서 있는 곳이 유골이 안장된 부지 근처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세월호 수습 책임자 중 한명인 강병규 장관
대구지하철 참사 수습 책임자일 때 생긴 일

대구지하철 참사의 유가족들은 유골을 암매장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2년 넘게 재판을 받았다.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어쩌다 그런 의혹까지 받게 됐을까. 유족들은 공교롭게도 재난 컨트롤타워인 안전행정부의 수장 강병규 장관이 대구시 행정부시장 재직 당시(2005년 3월~2006년 8월)를 문제삼는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겨레>가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대구지하철참사의 사후 처리 과정은 우리 사회에 여러 숙제를 던져준다. 우리는 재난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재난 이후에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 대구지하철이 세월호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래픽은 대구시 동구 시민안전테마파크에 전시된 2003년 2월 불탄 전동차 1079호를 배경으로 강 장관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취재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사진 연합뉴스·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 세월호 침몰 참사를 겪으며 많은 이들이 “추모하겠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말로 그렇게 해왔을까요.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재난을 우리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피해자들이 지난 11년간 살아온 이야기는 어찌 보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대구의 명산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는 매년 2월18일만 되면 격앙된 목소리들이 뒤엉킨다. 2010년부터 5년째 이 공원으로 참배를 하러 온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의 유가족들과 인근 상인들이 대치했다. 올해 2월18일도 다르지 않았다. 양쪽 사이에선 고성이 오가며 몸싸움이 벌어졌고, 한편에는 가져온 꽃을 땅에 떨구며 흐느끼는 유가족도 있었다. 상인들은 왜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참배를 막아섰던 걸까.

 

이곳 상인들은 유가족들이 공원에 유골을 ‘암매장’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근 식당을 운영하는 지윤환씨는 지난 1일 저녁 <한겨레>와 만나 “유가족들의 애통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유골을 암매장한 것까지 받아들일 순 없다. 대구시는 애초 공원이 조성될 때 유골과 위령탑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지하철 참사였다. 무려 192명이 숨지고, 146명이 다쳤다. 화재는 한 방화범에게서 시작됐지만, 피해가 커진 이유는 누적된 안전불감증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피해가 발생한 1080호 전동차는 1079호 전동차가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중앙로역에 들어섰다. 승객들은 옆에 정차한 전동차가 불타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승객 여러분, 곧 출발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을 믿고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결국 차는 출발하지 않았고, 안내방송을 한 기관사는 지하철의 출입문을 조작할 수 있는 마스컨키(Master Control Key)를 뽑은 채 도망쳤다. 사망자 대부분이 전동차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화염 속에서 숨졌다. 이 어처구니없는 대참사로 인해 11년 전 대한민국에선 최근 세월호 침몰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192명의 희생자 중 32명의 유골이 작은 상자에 담겨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안전 상징 조형물 인근에 묻혔다. 불과 가로 1m, 세로 1m의 구덩이 2곳에 32명의 유골이 담겼다. 2009년 10월27일 새벽 3시의 일이다. 하지만 이 공원엔 피해자들의 영령이 안치됐다는 안내문이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참사 희생자들의 유골은 왜 그 공원에 묻혔을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왜 ‘남몰래’ 공원에 유골을 묻었고, 어쩌다 ‘암매장’을 했다는 비판마저 받게 됐을까. 이 의문들을 풀기 위해 유가족들과 대구시가 지난 11년간 주고받은 서류와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분석했다.

 

 

희생자 192명 중 32명 유골 묻힌 
팔공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영령 안치됐다는 안내문은 없다 
유족들은 왜 남몰래 묻었을까 
어쩌다 ‘암매장’ 논란이 생겼나 

2005년 11월 강병규 행정부시장과 
서명한 합의문이 논란 불씨 돼 
희생자 대책위 쪽은 대구시 쪽이 
‘수목장’ 이면합의 요구했다 주장 
대구시는 그런 사실 없다고 부인 

 

 

유가족과 대구시 사이 대화 녹취록 입수

 

11년 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딸을 잃은 황명애(57)씨는 유골을 대구시 동구의 시민안전테마파크에 묻었던 2010년 10월27일의 새벽을 또렷이 기억했다. 황씨를 지난 1일 오전 대구시 중구의 희생자 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32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다 모이다 보니 사람 수가 꽤 많았어요. 42인승 버스를 하나 빌렸고, 자가용을 끌고 오는 사람들도 많았죠. 그 인원이 남들 자는 새벽 3시에 모여 가족들 유골을 옮기는 모습이 기이했죠. 우리가 무슨 죄를 지은 사람들도 아닌데 말이죠.”

 

유골 이장은 마치 군사작전처럼 은밀하고 신속하게 진행됐다. 유족들은 ‘대구시립 추모의 집’이나 영남불교대학에 안치됐던 유골 골분을 꺼내 새벽에 시민안전테마파크로 옮겼고,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넣은 뒤 흙으로 덮었다. 하지만 1년 뒤인 2010년 10월 대구시청의 기자실에 출처를 알 수 없는 한 투서가 나돌았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유가족들이 유골을 암매장했다’는 내용이었다. 암매장 논란이 불거지자 대구시는 ‘암매장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대구지검에 수사 의뢰했다. 사건을 수사한 대구지검은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대책위의 윤석기 위원장과 황순오 전 사무국장을 ‘유골 암매장’ 혐의로 기소했다. 처음에 검찰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했으나, 재판이 진행되면서 ‘자연공원법’ 위반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윤 위원장과 황 전 사무국장은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으나, 2심과 대법원 최종 판결에선 무죄를 받았다. 2년이 넘는 법적 공방 끝에 윤 위원장이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황 전 사무국장은 올해 1월에 최종 법률적 판단을 받았다. 법원은 “자연장지 조성행위는 자연공원의 외관에 실질적 변경을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법원의 판단은 또다른 오해를 낳았다. 이른바 ‘나쁜 짓을 한 것은 맞는데 처벌할 법규가 없어서 못 했다’는 것이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이는 법적으로 확정된 결론이 아니다.

 

당시 1심 재판에 불복한 피고(희생자 대책위) 쪽이 항소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무죄판결을 받은 사유인 ‘사실오인’으로 자연장 조성이 공원시설을 실질적으로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사유는 ‘법리오해’로 피고인은 대구시와의 이면합의에 따라 자연장 조성을 추진했으므로 형법 20조의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의 사실오인 주장은 이유 있으므로, 피고인의 법리오해 주장에 관하여 판단할 필요 없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즉, 유족들이 남의 땅인 시유지에 무단으로 암매장을 했는지, 아니면 대구시와 이면합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법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셈이다. <한겨레>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법원이 살펴보지 않은 ‘이면합의의 존재 여부’다.

 

대형 참사의 유가족들이 ‘암매장’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이로 인해 재판까지 받게 된 상황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유골을 시민안전테마파크에 묻은 유가족들은 한목소리로 2005년 11월22일 대구시와 희생자 대책위가 작성한 합의문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한겨레>는 2일 대구시를 찾아 해당 합의문의 사본을 입수했다. 이 합의문엔 ‘추모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추모관(유골)은 사업에서 제외하고, 위령탑 대신 안전과 추모를 상징할 수 있는 조형물을 설치한다’고 적혀 있다. 합의문에 서명한 사람은 당시 대구시 행정부시장이던 강병규 현 안전행정부 장관과 윤석기 희생자 대책위 위원장이다. 공교롭게도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라고 지목한 안전행정부의 장관이 2005년 당시 대구지하철 참사의 수습을 맡았다. 강 장관은 세월호 사고 수습 초기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았다가 구조자 수와 구조·수색 작업에 대한 잘못된 브리핑으로 실종자 가족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윤석기 위원장은 “당시 행정부시장이었던 강병규 장관과 실무를 맡은 공무원들이 줄기차게 이면합의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즉, ‘외부엔 추모관, 묘역, 위령탑 등이 없이 추모사업을 한다고 발표하도록 종용했지만 실제론 유족들의 요구대로 추모묘역 조성, 위령탑 건립 등을 해주겠다’고 대구시가 제안했다는 것이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있는 탑이다. 대구시는 ‘안전 상징 조형물’로, 유가족은 ‘위령탑’으로 부른다. 대구시 공무원의 표현으로는 ‘위령탑이지만, 이름은 위령탑이 아닌 탑’이다.

이면합의 제안, 유족 설득에 애먹어

 

지난 1일 오후 대구시 중구의 한 찻집에서 만난 황순오 전 희생자 대책위 사무국장은 2005년 당시의 논의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추모공원 조성사업이 2년째 지지부진한 상태였어요. 처음 부지로 결정된 대구시 중구의 수창공원은 인근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사업을 접었고, 그 이후로 후보지로 선정된 수성구의 천주교묘역, 달성군 화원유원지 등에서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죠. 추모시설은 혐오시설이라는 거예요. 특히 해당 지역의 시의원, 구의원들이 사람들을 모아 조직적으로 반대했어요. 대구시 공무원은 중앙정부에서 추모사업을 지원하는 국비 100억원이 2005년이 지나면 반납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업을 더 늦출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유가족들도 마음이 급했습니다.”

 

결국 “공식적인 합의문에 사인하고, 같이 언론에 나와 발표하며 사진을 찍으면 이면으로 합의한 수목장과 위령탑 건립을 들어주겠다는 대구시의 말을 믿었다”는 것이 협상을 진행한 황 전 국장의 전언이다. 윤 위원장은 “강병규 장관의 전임이던 조기현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도 추모묘역이나 위령탑 등이 실제론 들어가지만 합의문에는 빼야 추모사업이 수월해진다고 여러 차례 권유했다”고 밝혔다.

 

실제 강병규 장관은 유족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윤 위원장의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2005년 10월26일 강 장관과 희생자 대책위 간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강 장관은 “내부적으로 법 절차는 우리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군다나 실무자가 좀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하겠다) … 지역 주민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돼서 뭐 괜찮겠다 하면은 그다음부터 구체적인 절차 밟아서 나가는 거니까 그거는 별로 어려움이 없을 거고, 내부적인 어려움은 아까 말씀드린 공원법 문제라든지…”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 ‘공원법’ 문제에 대해 지난 8일 “공원법 문제는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위령탑과 납골당 등이 공원에 들어가는 문제였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혀왔다. 보다 구체적인 정황은 실무자들의 입에서 나온다. 황 전 국장은 강병규 장관을 가리켜 “우리와 했던 이면합의를 지키지 않아 유족들은 큰 상처를 받았다. 무책임한 공무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 전 국장은 시청의 이면합의 제안이 추모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불가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족들을 설득하는 데는 애를 먹었다. 당시 상황은 2005년 11월3일 대책위 사무실에서 이뤄진 대화 녹취록에 자세히 나온다. 황 전 국장이 “이거는 대외로 나가는 합의문이고요. 그래서 실질적인 게 아니죠. 실질적인 건 수림장과 플러스”라고 유가족들에게 설명한다. 이 설명에 유가족들은 거세게 항의한다. 윤 위원장은 “차후에 대구시나 소방본부가 ‘유골 그거 빼기로 했지 않느냐’고 하지 않겠느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문제제기하고, 황명애씨는 “그러면 밤중에 살짜기 몰래 가가 거기 (유골을) 갖다놓을 꺼 아닙니까 … 그때는 그 주민들이 가만있겠느냐. 진짜로 난리 치지”라며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기도 했다. 다른 유가족은 “눈 감고 아웅 하는 거고, 하다못해 주민들 만나가지고 직접 발표하고 설득하는 게 맞는 부분이지, 이건 아니지”라고 말했다. 이에 황 전 국장은 “저는 이렇게 해야지만이 우리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제 나름대로 생각이 됐습니다”라고 밝혔다.

 

결국 유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대구시에서 추모사업의 실무를 맡았던 정아무개 대구시 소방본부 계장이 2005년 11월14일 대책위 사무실로 찾아온다. 이 당시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한 유가족이 “황순오(사무국장)씨가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지만도, 대책위원들이 다소 수긍은 하지만도 그동안에 대구시하고 (일을) 하면서 많이 속고 이래놨더니, 마음이 탁 와닿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운을 뗀다. 이 말에 정씨는 자신도 조직 내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토로한다. 그는 “그래 저도 사실상 (소방본부) 국장님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이 많이 됐는데 (대구)시에는 이때까지 시장님이나 (건설방재국) 국장님하고 확 와닿게는 못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가지고 저희는 다 해소가 됐습니다. 부시장님까지는 제가 직접 가가지고 보고를 다 드렸고요. 부시장님도 ‘아 이 정도면 시의 도리로 맞다. 됐다’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부시장이던 강병규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고 승낙을 받았다는 의미다.

 

강 장관도 2005년 10월26일 대화에서 ‘실무를 맡은 소방본부에서 수시로 보고를 받고 있다’고 밝혔고, 대구시 소방본부가 정리한 문건을 보면 강 장관은 2005년 11월14일 “소방본부의 입장이 부시장인 나의 입장이다. 앞으로 시민안전테마파크와 관련해 유가족들의 의견이나 요청 사항이 있으면 소방본부와 협의해 나가면 된다”고 밝혔다.

 

 

“제가 볼 땐 이거 사기거든요 
이거야말로 이율배반적인 거고 
시민 데리고 장난치는 거고” 
이면합의에 대한 유가족 우려에 
대구시에선 책임지겠다고 약속 

결국 대구시-대책위 논의 속에 
수목장 실행했다고 대책위 주장 
부지 지역 원로들의 묵인 얻고 
공원에선 CCTV 각도까지 돌려줘 
대구시는 계속 책임 없다고 주장 

 

 

권영세 부시장 “나는 모르는 걸로 해라”

 

이후 정씨는 유족들의 우려를 충분히 듣고 설명한다. 한 유족이 “우리가 대다수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뭐냐 카면은, 우리가 굳이 잘못도 아니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비공개를 하고 속이면서 이렇게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라고 따졌다. 이에 정씨는 “그래밖에 할 수가 없는 게 또 저희 입장입니다”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그는 위령탑 건립과 수목장 조성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윤 위원장은 “대구시가 지금까지 불성실이건 아니면 의도적인 태만이든 간에 약속 이행을 잘 안 해왔는데, 과연 지금 대외적인 표현 따로 하고, 실제로 어떤 진행하는 부분 따로 하는 게, 제가 볼 땐 (이거) 사기거든요. 이거야말로 이율배반적인 거고 시민 데리고 장난치는 거지 … 내용을 담보해낼 수 있는 방법이 뭐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때 정씨의 대답이 참사 유가족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증언이다. 정씨는 당시 “시가 예전에 그리했지 않느냐? 이카면 저희는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 소방본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 뭐 담보를 해줄 수 있느냐? 거기에 대해서는 저희가 확답을 할 순 없지만, 저희는 불을 끌 때 목숨을 걸고 끕니다”라고 답했다. 목숨을 걸고서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였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8년 12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가 개장되고서도 위령탑 건립, 수목장 조성 등은 지지부진했다. 희생자 대책위 관계자들은 2009년 7월1일 대구시 행정부시장실을 찾았다. 이때 부시장은 권영세 현 안동시장이다. 2005년 당시 실무자였던 소방본부의 정 과장도 이날 동석했다. 이날 유가족들이 이전의 합의 내용에 대해 따져 묻자, 정씨는 “그때 그렇게 합의된 겁니다. 192구 식재를 하고 거기에 수목장 형태로 원하시는 분들이 하는 걸로”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가족이 “부시장님은 어떻게 알고 계시죠?”라고 묻자, 권 당시 부시장은 “희생자 수가 그래 192그루고, 난 그런 의미로 받아서 전부 다 했는 걸로 보고 나중에 추후에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수목장은 여러 가지 법률상 저촉이 되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거로 해라 그 이야기 했지예”라고 말했다. 즉, 새로 온 권 부시장도 수목장에 대해 알고 있지만 법률 위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모르는 것’으로 했다는 의미다.

 

추모사업을 둘러싼 유족들과 대구시의 대립은 2009년 7월17일 극적으로 해소된다. 권영세 당시 행정부시장이 “내 앞에 부시장 하던 강병규 차관(당시 행정안전부 차관)한테 확인을 해보니, 본인이 저거는 이야기하더라. 유족사무실 해주기로 했다고… 우리가 유족 측의 주장을 다 묵살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 것인지 한번 절충을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이때부터 대구시와 대책위가 긴밀하게 논의를 진행해 수목장을 실행했다는 것이 대책위 쪽의 주장이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황 전 사무국장은 “시청의 국장들과 부시장, 테마파크의 관장 등과 긴밀히 논의했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했다. 특히 지역의 원로들이 ‘공개적으로 유골을 들고 온다면 찬성할 사람은 없지만 몰래 묻고 가는 것은 괜찮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이에 맞춰 수목장을 실시할 계획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장은 “테마파크의 관장조차 유골을 안치하던 새벽 시간에 공원 시시티브이(CCTV)의 각도를 돌려 수목장을 하는 것을 찍지 않겠다며 우리 계획에 협조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수목장은 유족들이 임의로 진행한 것으로 시청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면합의가 언급된 대화 내용에 대해서도 대구시는 “당시 부시장 주재하에 희생자 대책위와 소방안전본부의 대화 과정에서 녹취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면합의를 인정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세월호 수습 전념한다며 답변 피한 강 장관

 

강병규 장관은 8일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사업에 대해 “이면합의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2그루 수목장과 위령탑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한겨레>에 알려 왔다. 대구시에서 실무를 맡았던 정아무개 소방본부 담당계장 역시 지난 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추모사업 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이들의 회피 속에 대구지하철 참사의 유가족들은 가족의 유골을 암매장한 ‘이상한 사람들’이 돼버렸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피해자들은 지난 11년간 지속적인 2차, 3차 피해에 노출돼왔다. 참사 초기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현장에 군 병력까지 동원해 물청소를 하는 대구시의 행태에 분노했다. 전재영 희생자 대책위 사무국장은 “나는 원래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초기엔 대책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골과 유품을 잘 정리한 뒤 청소했다는 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쓰레기 더미에서 시신과 유품 등을 찾았을 때 ‘정부를 믿으면 안 되겠다’라고 처음 생각했다. 그 이후론 계속 믿을 수 없는 모습들뿐”이라고 말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지하철 참사 피해자들이 주최하는 추모식에 매년 불참해왔다. 대구시 쪽의 입장은 “피해자들의 단체가 서너개로 분열돼 어느 곳에 참여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김 시장과는 달리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식에 종종 참석해왔다. 2009년 6주기 추모식에 참석했을 때, 희생자 대책위원들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게 추모사업의 추진에 신경을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전재영 사무국장은 “그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추모사업의 어려움을 얘기하니까, 옆에 있는 서상기 의원을 소개하며 ‘이 사람에게 얘기하라. 그러면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의 대구시당위원장이던 서 의원의 사무실에 관련 자료를 보내며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런 회신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11년 동안 지치지 않았을까. 황명애씨의 감정은 복잡했다.

 

“요즘은 그냥 편안하게 아이를 애도하고 싶단 생각도 들어요. 사실 우리 대부분은 공동묘역에 안장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유가족들 상당수가 선산이 있고, 친지들 모신 가족묘역도 있어요. 그럼에도 희생자 공동묘역에 안장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싶어서였어요. 내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죠.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우리가 가족의 유골을 암매장하는 이상한 사람이 돼버렸어요. 딸이 살아 있었으면 지금쯤 대학 졸업하고 시집 가서 아이를 낳았을 거예요. 그동안 날 지켜봤을 딸을 생각해서라도 이 싸움을 멈출 수가 없어요.”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구호가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였다. 많은 이들이 황망하게 잃은 생명을 애도했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했던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한 관심은 금세 가라앉았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그 어떤 위령탑도, 그 어떤 추모시설도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만 범위를 넓혀보면 다른 대형 참사도 마찬가지다. 삼풍백화점 터엔 과거 이곳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리는 그 어떤 시설물도 없이 반짝이는 주상복합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다.

 

강병규 장관에게 “희생자에 대한 추모, 재난 대응에 대한 반성 등이 유가족들의 요구가 있어야만 하는 일인지 궁금하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의 사후 대처, 추모 계획 등에 대해 정해진 것이 있는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도록 할 것인지”를 물었다. 답변은 “현재 세월호 사고 수습에 전념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추후 기회가 된다면 말하겠다”였다.

 

우리는 과연 사회가 낳은 큰 재난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11년 전 중앙로역에서 멈춘 대구지하철이 세월호에게 묻고 있다.

 

대구/글·사진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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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숨겨진 진실 "아이들이 위험하다"

 

14.05.09 22:36l최종 업데이트 14.05.09 22:40l 김시연(staright)
 
▲ 무릎 꿇고 애원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던 중 한 실종자 가족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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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모두가 달리고 있다.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 뒤처진다.(중략) 모두가 달리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슬픔과 분노'가 사회적 화두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진 가운데 불신도 커지고 있다. 침몰 순간까지 승객들에게 "그 자리에 가만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내보내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모습에 정부와 언론이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호의 침몰 조짐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진보 싱크탱크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원장 정태인, 아래 새사연)에서 펴낸 <분노의 숫자>(동녘)는 그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비정규직-사교육 많은 나라, 침몰은 이미 시작됐다

세월호 선장조차 임시직을 쓸 정도로 한국은 '비정규직 천국'이다. 2011년 현재 한국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23.76%로 OECD 평균(11.93%)의 2배에 이른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OECD 평균보다 매년 두 달(325시간) 더 일하지만,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208만 명에 이른다.

'부의 집중'이 부른 양극화도 심각하다. 중소기업 노동자 평균 월급은 130만 원으로, 대기업 노동자 357만 원의 1/3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임원들은 노동자보다 137배나 많은 평균 52억 원을 연봉으로 가져간다.

10대 대기업 현금성 자산은 2006년 27조 원에서 2012년 123조 원으로 3.5배나 늘었지만, 기업 순이익이 2008년 171조 원에서 2012년 213조 원으로 25% 증가하는 사이, 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37조에서 40조로 8%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기업 최고세율 인하 등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부자 감세' 덕분이다. 순이익 2억 원이 넘는 중소기업이나 40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가 똑같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아이들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결과가 곧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로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부모도 적지 않았다. 2010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1.2명으로, OECD 평균인 1.7명에도 크게 못 미친다. 비싼 자녀 양육비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 세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과 소득재분배 순편익.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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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출생에서 대학 졸업까지 자녀 1인당 양육비가 평균 3억 1천만 원에 이르지만, GDP 대비 아동가족복지 지출 수준은 0.8%로 OECD 평균(2.2%) 절반에도 못 미친다. OECD 1위 수준인 민간 교육비 상당수는 사교육비다. 새사연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이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내 자녀는 사교육을 시켜야 하고, 다른 이들 모두 사교육을 시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시켜야 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이런 학구열 덕에 우리나라 교육열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할 정도지만, 정작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연세대·방정환재단과 유니세프 조사 비교, 2013년)는 학업 성취 등을 따지는 교육 영역에선 122.99점(OECD 평균 100점 기준)으로 가장 높았지만, 학교생활 만족도 등을 따지는 주관적인 행복지수는 72.54점으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행동하지 않으면 '분노의 숫자'는 '절망의 숫자'
 
새사연이 쓴 '국가가 숨기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 <분노의 숫자>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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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맞먹는 청소년들이 매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통계도 충격을 준다. 지난 2010년 청소년(15~19세) 사망자 905명 가운데 자살 사망자는 289명으로 31.9%에 이른다(통계청 사망원인통계).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조사해 봤더니 자살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학업성적이 35.1%로 가장 높았고 가정불화 22.1%, 친구와의 갈등 13.5% 순이었다.

불안한 10대를 잘 넘긴 청소년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대학 등록금이다. '반값 등록금' 논란으로 드러났듯, 2013년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은 735만6천만원(대학알리미)으로 도시 노동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444만7000만원)을 뛰어넘는다. 빚더미를 안고 대학을 간신히 졸업하더라도 20대 청년 고용률은 55.8%(통계청 2013년)로 계속 감소 추세다.

이 책은 새사연 연구원들이 박근혜 정부 2년에 걸쳐 발표한 글과 인포그래픽을 하나로 모은 것이다. 그 노력 가운데 일부는 지난해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한국 사회 분노의 숫자' 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분노의 숫자'가 주문하는 건 '행동'이다. 정태인 새사연 원장은 "한국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분노의 숫자'는 '절망의 숫자'로 바뀔지도 모른다"면서 "이 책 역시 이런 현실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밝혔다.

"분노를 느꼈다면 자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무슨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고, "고 김대중 대통령의 이야기대로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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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안산 지역 고등학생들 침묵행진 이어 촛불문화제 개최

“우리 친구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안산 문화광장에 울려퍼진 수천 고등학생의 외침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발행시간 2014-05-09 22:41:49 최종수정 2014-05-10 10:55:31

안산 밝히는 고등학생들의 촛불
9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구 문화광장에서 안산시 학생회의 소속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등학생들을 추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우리는 모두가 모인 이 자리에서 가슴 한 켠에 감춰뒀던 울분을 터뜨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 단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더이상 침묵하지 마세요. 감정을 표출하세요. 그리고 우리 친구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9일 저녁 8시 C.O.A(안산 고등학교 학생회 회장단) 4기 의장 최선우군의 목소리가 안산 지역 고등학생 2,000여명(경찰 추산 1,500명)이 모인 안산 문화광장에 울려퍼졌다. 다른 학생들도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외쳤다.

최군은 "세월호 피해자들은 모두 우리의 친구이고, 동생이고, 형이자 누나다. 가슴아픈 사람들은 바로 지금 우리 주위에 있는 학생 친구들이다. 이런 우리에게 어떤 분들은 '이 사건에 동요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 거다'라고 말한다"라며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마음의 상처라는 건 가만히 방치할 수록, 가슴 속에 묵히면 묵혀둘 수록 마음이 썩어문드러진다"고 심정을 밝혔다.

최군은 "이번 문화제는 세월호 피해자들을 애도하며, 그들을 우리 기억속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자리를 준비했다"고 문화제 취지를 설명했다.

문화제에 앞서 저녁 6시30분 안산 합동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에서 출발한 고등학생 500여명은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문화공원까지 1시간 가량 침묵행진을 진행했다. 이들은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앞세우고, 피켓을 든 채 경건한 분위기 속에 천천히 걸어나갔다. 학생들은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심정을 담아 왼쪽 손목에 노란색 리본을 달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행진했다.

안산 학생회의, 세월호 친구들 위한 침묵행진
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안산시 학생회의 소속 고등학생들이 '잊지말아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등학생들을 추모하며 행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추모 침묵 행진하는 학생들
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안산시 학생회의 소속 고등학생들이 '잊지말아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등학생들을 추모하며 행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문화공원에 도착하자 촛불 문화제 소식을 접한 학생 1,000여명이 이미 자리에 앉아 행진 대오를 맞이하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학생들도 속속 착석했고, 지나가던 시민들도 촛불과 리본을 받아들고 함께 했다.

문화제 시작과 동시에 학생회장단이 먼저 세상을 떠난 단원고 친구들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UCC 영상이 흘러나왔다.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킨 학생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지키지 못한 당신들을 
미래의 대한민국은 잊지 않고 기억하며 바꿔나가겠다"

학생회장단 의장의 외침대로 학생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가슴 속의 울분을 한명 한명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저 간 친구들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참가자들에게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경안고 3학년 김혜성군은 "지난 한달간 우리는 모두 슬픔과 분노 속에 있었다. 모두 함께 경악했고 희생자들을 위해 슬퍼했고 무기력한 사회의 모습에 분노했다"며 "우리는 친구들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를 잊지 않겠다. 슬픔을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닌 영원히 가슴 속에 초석으로 새기고 살겠다. 잊혀지지 않는 교훈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김군은 "친구들을 구조해준 사람이 있었나. 그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유가족들을 빨갱이로 몰고,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만 바쁘지 않았나. 더이상 정부를, 언론을, 사회를 믿을 수 없다"며 "지금의 대한민국이 지키지 못한 당신들을 미래의 대한민국은 잊지 않고 기억하며 바꿔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일부 보수 인사와 보수언론을 향해 "유가족을 헐뜯고 그들의 슬픔을 모욕하고 정치색을 입히는 행위를 그만해달라.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추모 촛불 밝힌 세월호 희생자 친구들
9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구 문화광장에서 안산시 학생회의 소속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등학생들을 추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학생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촛불을 든 학생들의 어깨는 흐느낌으로 들썩였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어른들도 고개를 숙였다.

동산고 19회 학생회장 배창현군은 "우리는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 모인 것도, 어떤 정치적 성향에 의해 모인 것도 아니"라며 "단지 우리의 친구였고 가족이었던 사람들, 정성과 노력으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사랑하셨던 선생님들을 앞으로도 잊지 말자는 취지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군은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애도보다는 성적을 강요받는 우리의 감정을 생각해봤는가. 책임을 전가하려는 어른들을 보며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믿고 앞을 헤쳐나가야 하냐"며 "잊혀짐이 쉽게 인식되는 사회이기에 단순 이슈로만 이 사건이 지나갈까봐 두렵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세월호 사고가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는 분위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단원고 7회 졸업생이자 학생회장을 했던 임보성 학생도 후배들과 함께 자리했다. 그는 "사고가 난 4월16일 1교시 수업을 마치고 무심코 본 카카오톡에는 단원고 동생들을 걱정하는 연락으로 가득했다. 허겁지겁 자취방으로 돌아가 뉴스를 봤다"며 "한시간쯤 지나니 전원구조가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보였다. 기자들의 급급한 경쟁심리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보도된 것이다. 이후부터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질타했다.

그는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해 뭐라도 해보고자 진도로 내려가 배를 타고 현장에도 가봤다"며 "실제로 본 세월호는 거의 침몰 상태였고 아이들이 걱정됐다. 하지만 해군 백여명이 구조작업에 투입됐다는 보도와 달리 해군들은 20명도 안 되어 보였고, 잠수복은 입었는데 산소통도 안 메고 있었다"고 당시 느낀 참담한 상황을 전했다.

임군은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건 국민으로서, 미래의 부모로서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훌륭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자유발언이 끝난 뒤 학생들은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흰색, 노란색 도화지를 든 채 카드 섹션을 진행했다. 카드를 든 채 이들은 "잊지 말아주세요"를 세차례 외쳤다. 사회자는 "저희들의 진심이 하늘에 있는 친구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세월호 추모 노란리본 만든 학생들
9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구 문화광장에서 안산시 학생회의 소속 고등학생들이 카드섹션으로 노란리본을 만들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추모하고 그들을 잊지 말아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희생자 추모하는 안산 고등학생들
9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구 문화광장에서 안산시 학생회의 소속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등학생들을 추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말아주세요
9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구 문화광장에서 안산시 학생회의 소속 고등학생들이 카드섹션으로 노란리본을 만들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추모하고 그들을 잊지 말아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학생들
9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구 문화광장에서 안산시 학생회의 소속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등학생들을 추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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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영정들고 청와대 앞에 앉아 있는 유족들 사진 3장 보도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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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05/10 14:54
  • 수정일
    2014/05/10 14:5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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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제를 세월호 탓으로 돌리는 나쁜 대통령

 
 

 

 


세월호 유가족들이 김시곤 KBS보도국장의 발언 사과와 박근혜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KBS와 청와대 앞에서 밤샘 시위를 했습니다.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던 유가족이 경찰에 둘러싸여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긴급민생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민생대책회의'의 요지는 '세월호 때문에 소비심리 위축 조짐이 있으니 경제를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대로 식당이나 마트, 여행업, 숙박업 등의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꼭 세월호 때문에 무조건 나빠진 것은 아닙니다. 

' 박근혜정부의 민생지수는 갈수록 최악'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한 달 전인 3월 22일, 국가미래연구원은 역대 정권과 비교한 박근혜정부의 2013년 4분기 '민생지수'를 발표합니다. 
 

 

 


국가미래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4/4분기의 민생지수는 98.7(기준치 100)로 3/4분기 99.1에 비해 소폭 하락했습니다. 

4/4분기 민생지수가 하락한 이유는 '비소비지출'이 늘어나고, 식료품비,주거비 등의 지출이 늘어나고, 전세값도 상승하여 전체적으로 민생지수가 악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한 달 전인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2013년 10월 0.9%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계속 1,0%를 유지하다가 2014년 3월 1,3%로 상승하면서 4월은 1,5%로 올랐습니다. 

단순한 경제지표만 봐도 세월호 참사 때문에 무조건 경제가 나빠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세월호 때문에 소비심리 위축됐다고?'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때문에 소비심리가 위축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엠피터는 꼭 세월호 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통해 더욱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2014년 4월 소비자물가를 보면 농산물 가격만 2013년 4월보다 12.8% 하락했습니다. 농산물의 경우 작황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에 반해 공업제품은 2.0% 올랐습니다.

농산물을 제외하고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비자물가 대부분이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우리가 공과금이라고 부르는 전기·수도·가스는 4.2% <도시가스(6.5%), 지역난방비(5.0%), 전기료(2.7%)>가 올랐습니다. 하다못해 하수도요금도 무려 12.0%가 올랐습니다. 

집세가 3.1% (전세) 오르면서  공동주택관리비도 3.1% 올랐고, 택시요금(8.6%), 학원비(고등학생(3.2%)까지도 올랐습니다. 

내야 할 돈이 많아지는데, 어떻게 식당에 가서 외식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볼 수 있겠습니까? 

소비와 직결된 영세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의 문제는 이미 세월호 참사 이전에 소비자가 소비할 수 있는 돈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던 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년간의 침체국면을 지나서 이제 조금 형편이 나아질 만한데 여기서 우리가 다시 주저앉게 된다면, 서민들의 고통을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4월 기업경기실사지수를 보면 제조업은 전월대비 1p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수에서 대기업은 5p 상승했지만, 중소기업과 내수기업은 2p 하락하거나 동일했습니다. 

규제 완화 등으로 대기업의 상황은 계속 나아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리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의 경영애로사항을 보면, 내수부진과 '불확실한 경제상황'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높습니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와는 상관없이 한국 경제가 애초에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그 자체도 부동산 문제와 엄청난 가계부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어서, 앞으로도 경제가 그리 좋을 수는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이전에 어려워진 경제 문제를 세월호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경제 실책을 감추려고 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소비를 강요하는 대통령'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심리가 위축됐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받아적은 언론들은 일제히 관련 내용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상인들 매출이 30~50% 줄었다고 했지만, 사실 앞서 말한 소비자물가 상승의 요인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역축제가 취소됐던 곳도 있지만, 연기된 곳도 있기 때문에 단기 소비 심리 위축으로 점차 나아진다는 예측은 하지 않고 무조건 나쁘다고만 보도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행이 취소되고 있어 관광업계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실제로 왜 사람들이 여행을 취소하고 있는지 그 대책은 없습니다. 
 

 

 


제주에 사는 아이엠피터는 더는 배를 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객선 관련 고장이나 회항이 또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엠피터가 사는 제주에는 수학여행이나 단체 관광객의 관광버스가 많이 다닙니다. 그런데 좁은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과속하거나 중앙선을 넘어다니는 버스를 보면 '사고 나면 대형사고'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여행은 안전하게 다녀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여행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여행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식당이 힘드니 정부와 기업이 회식을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식만 늘리기보다 '출입구 하나뿐인 지하식당에서 회식을 하지 않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도 적극 알려야 합니다. 

요새 사람들은 어디를 가도 비상구 위치를 확인하거나 탈출로 등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언제 어떻게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심리가 안정돼야 비로소 경제가 살아날 수가 있다'고 하면서 불안한 국민의 심리를 만족하게 할 안전은 확보하지 않고, 무조건 소비를 활성화하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비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2분기 재정집행규모를 7조 8천억 원 늘린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없습니다. 

실제로 재정집행규모 대부분은 은행에서 빌려주는 대출입니다. 그런데 마치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 식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미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고, 무조건 은행 돈만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부채를 더 늘려 악순환을 만들 여지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시키는 일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또 그 고통은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 위기는 박근혜정권의 경제정책 실패의 원인이 큽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쏙 빼놓고 무조건 세월호 탓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 대통령이, 이제는 국민의 경제문제까지 또다시 침몰시키려고 합니다. 

경제를 망치는 주범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이 아닌 경제민주화를 포기한 대통령 스스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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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제재에도 높은 성장 이뤄


[번역] 파멸이냐 번영이냐, '북한붕괴' 신화
필자:헨리 페론/역자:정성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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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09  15: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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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헨리 페론 중국 칭화대 국제법 박사과정
역자 :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출처 : <The 4th Media> 2014년 5월 5일자


들어가며

북한은 경제학자들의 악몽이란다. 기껏해야 추론으로 분석할 뿐, 활용할 수 있는 믿을 만한 통계자료가 거의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용 가능한 몇 가지 자료조차도 북 붕괴조짐을 바라는 서구 언론의 호기심어린 주장을 반영한 것뿐이다. 식량생산과 무역수치로 볼 때, 북한은 1990년대의 경제난에서 크게 회복되어왔다.

북한의 공식적 예산 규모가 남한의 비관적인 정치추측보다 진실에 가까운 듯하다. 분명한 것은 경제제재가 손해를 끼치지만 북한을 붕괴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대외개방에 착수하고 잠재적 광물자원 활용을 준비하는 징후들이 있다. 북한이 아시아의 다음 차례 ‘경제호랑이’로 부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북 경제침체론, 서구 언론의 근거 없는 왜곡

세계에서 북한경제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정부통계를 공식화하지 않는다. 생산수치가 유용할지라도 북한의 계획경제에서 국내통화의 불태환과 상품가격의 왜곡으로 GDP규모나 GDP성장률과 같은 기초적인 통계를 계산하기 어렵다.

이런 공식적이거나 유용한 기초자료 부재로 인해 외부 분석은 전반적으로 실제보다 추론적 정치적 결론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추론을 거듭할수록 왜곡과 오보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서구 언론의 지배적 담론은 북한이 붕괴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할 자료가 부족한 해설자들은 자주 고안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경제는 1990년대 불어 닥친 경제위기, 금융위기, 에너지위기라는 복합위기에서 회복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소련붕괴로 인한 북한의 손실을 계량하기 어렵지만, 갑자기 중요한 수출시장을 잃고 연료, 가스 수입이 격감하는 처지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북한경제를 매우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아마도 재난의 가장 극적인 모습은 식량생산의 붕괴였을 것이다. 연료와 비료와 기계의 갑작스런 부족은, 1995~1997년의 몇 차례 연속적인 자연재해와 함께, 1980년대 식량이 남아돌던 북한을 1990년대 식량위기로 곤두박질치게 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조사팀에게 제공된 아래의 통계자료를 통해 식량규모를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1985년~1990년 평균 600만 톤에서 1995년 350만 톤, 1996~7년 300만 톤으로 격감했음을 우선 밝힌다. 약 2천3백만 북한인구의 식량수요는 5백만 톤이었는데 말이다.

거듭되는 재해로 인해 북한은 1995년 8월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기는 더욱 가중되어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까지 별세하고 인민들은 슬픔에 젖었다. 이 나라는 3년 상을 치르고 1997년 김정일 위원장을 공식적으로 지도자로 세웠다.

북한, 1990년대 식량, 경제, 에너지 복합위기

집중적인 경제제재 역시 북한의 국제무역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하여 이 나라가 발을 뻗기 어렵게 만들었다. 냉전 초기부터 계속되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일면적 제재 이외에도 2006년의 1718호, 2009년의 1874호, 2013년의 2087호라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기초한 일련의 다면적 제재를 받고 있다. 이 제재에는 정부 인사들의 여행금지는 물론, 금융과 무역의 제재까지 포함되어 있다.

금융제재는 집단이나 개인의 대북 거래를 금지함으로써 국제금융기구에의 접근을 차단한다. 북한과의 특별거래를 막고, 특히 북 핵무기 프로그램이나 돈세탁 관련 거래를 봉쇄하는 것이 표면적 의도이다. 하지만, 사실 거짓 경보만 요란할 뿐인데도 은행들은 가장 해롭지 않은 대북제재조차 꺼린다.

방코델타아시아 사건을 예로 들면, 마카오은행이 북한의 위조달러를 세탁해주었다는 미 재무부의 의심은 지역 당국이 적절한 조사를 하기도 전에 은행의 신용을 파괴하고 대규모 도산을 야기한다. 마카오정부가 임명한 독립적 회계법인, ‘Ernst & Young’이 어떤 불법행위도 없이 깨끗하다고 확인했는데도 미국은 2007년 방코델타아시아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의혹을 제기해 은행에 어떻게 손해를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경우가 어떠하든,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방코델타아시아는 미국 달러를 거래하거나 미국 기업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중국, 일본, 몽고, 베트남, 싱가포르의 기관을 포함한 24개 은행이 비슷한 운명이 두려워 북한과의 거래를 끊었다.

미 재무부의 숨겨진 위협은 또한 2013년 중국은행이 북한 대외무역은행의 12개 계좌를 폐쇄한 배후인 듯하며, 또 다른 주요 중국은행들이 기업의 성격에 상관없이 북한과의 모든 현금거래를 중단시키는데 간접적 영향을 미쳤다.

대북 제재의 악영향

우리가 보듯이, 금융제재는 북한이 돈의 세계에 손을 대고 합법적 국제무역이나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를 유치해 외화를 벌어들이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외화 부족이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사활적이고 매우 긴요한 연료, 식량, 기계 등의 수입을 제약해 경제와 인민 모두 발육부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무역제재도 그들의 표현이 의미하는 것보다 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표면상 제재는 핵, 미사일, 무기 관련 제품과 기술의 수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는 민수용이 잠재적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이중용도’로 분류되는 모든 부문 제품과 기술의 수입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래서 이중용도 목록으로 인해 실제 현대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장비, 기계, 자재의 수입이 금지되어 화학, IT분야는 물론이고 우주항공, 통신 등 광범위한 산업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다.

스위스 기업인, 펠릭스 아프가 '북한의 자본주의'라는 저서에서 예를 들어 설명했다. 평양의 상수도 공급과 배수로 시스템을 갖추는 2천만 달러의 프로젝트가 좌절되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쿠웨이트 투자자가 그 프로젝트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수입이 미국의 대북 이중용도 제재에 걸릴 수 있다고 꺼렸기 때문이다.

UN의 대북 제재는 그의 제약회사가 북한 시골지방의 보건의료 프로젝트에 필요한 화학물질의 수입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기억했다. 국제적 압력은 경제개발에 가공할 장애를 조성함으로써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국가라는 결론을 도출해온 것이다. 그래놓고 북한의 고통은 체계적인 오류의 결과이며 자유개혁을 시행하지 않는 한 계속 더 악화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60년 제재를 통해 반복되는 이 같은 주장은 튼튼한 자료에 의해 뒷받침 되지 못하고 있으며, 믿을만하고 쓸모 있는 증거가 거의 없다.

‘블랙홀’

북한경제의 통계는 거의 모든 서구 언론에 언급되지만, 북한정부의 1차 정보가 아니라 2차 추정 정보를 인용한다. 그런 추정치의 가장 흔한 출처가 한국은행과 미 CIA이다. 그러나 실제 이 숫자들은 위의 3가지 주장을 뒷받침 하는 증거로서 거의 쓸모없는 이유들이 많다,

한국은행, 미CIA의 북한경제 통계 조작

첫째, 이 수치들은 모호하다. 미 CIA의 수치는 자본주의식 1인당 GDP 산출 개념으로 북한을 상당히 빈곤한 나라로 묘사한다. 2011년 1인당 GDP가 1,800달러라며 세계 229개국 가운데 197번째로 못사는 국가로, 아프리카 빈국 수준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CIA의 북한 국민총생산 수치는 400억 달러로서 229개국 중 106번째를 차지해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라는 주장은 진실이 아님을 스스로 드러낸다.

더구나 한국은행이나 CIA의 통계는 북한경제가 점점 악화되고 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 "CIA의 PPP자료는 지난 10년간 북한 국민총생산이 400억 달러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행의 추정치는 북한의 GDP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평균 약 1% 성장한 것으로 나온다.

이런 추정들은 경기침체를 입증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높은 물가상승률의 근거를 갖다 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행동보다 말이 쉬운데, 이는 다시 연간 및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같은 것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6.3

-1.1

6.2

1.3 (0.4)

3.7 (3.8)

1.2

1.8

2.2 (2.1)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3.8

-1.1 (-1.0)

-2.3 (-1.2)

3.7 (3.1)

-0.9

-0.5

0.8

1.3

<그림1> 한국은행의 북한 GDP 성장률 추청치(1997-2012)

둘째, 이런 수치들은 방법론적 이유로 다른 나라와 거의 비교하기 어렵다. 한국은행과 CIA 모두 이를 인정하고 있으나, 많은 해설자들은 자기가 인용하는 수치의 시기를 무시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의 북한 GDP 추정치는 남한을 제외하고 어떤 나라와도 국제적 비교에서 유용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남한의 물가, 환율, 가중치 근거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CIA 통계수치는 그 방법론이 시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역사적 비교에도 유용하지 않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2003년 GDP 22억3천 달러가 2004년 40억 달러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증가한 점이다.

셋째, 이런 통계수치들은 실제로 난폭한 억측에 다름 아니다. 두 기관 모두 자신들이 신뢰할만한 추정을 제공하는 데 자료가 너무 부족함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행 직원은 부족하고 신뢰할 수 없는 북한 가격 및 환율 자료가 GDP 추정치를 대단히 주관적이고 임의적이며 오류투성이로 만들고 있음을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CIA는 북한 GDP 추정치를 100억 달러에 가장 근접하도록 반올림하면서 자료를 통해 확신을 갖고 주장하고 있다. 

넷째, 이런 통계수치는 시장경제와 사회주의경제의 근본 차이를 정확히 밝힐 수 없다. CIA와 한국은행의 1인당 GDP 추정치도 주거, 보건, 교육은 물론이고 세금 없이 식량을 분배하는 나라 인민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 얼마나 의미 있고 유용할까? 북한체제에서 가격이나 소득은 실제로 무엇을 뜻할까? GDP규모 사용은 국민복지나 경제발전을 평가하는데 소문난 논쟁지점이며, 사회주의경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그 수치들이 정치적으로 조작되었다고 여길만한 좋은 이유들이 있다. 마커스 놀랜드에 따르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서 부통령과 중역들이 아래와 같이 토론했다.

한국은행의 북한 GDP 추정과정은 대단히 투명하지 않고 정치화에 취약하다. 2000년 한국은행은 남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 때까지 GDP 추정치 발표를 1주 연기한 바도 있다. 그 후 북한 경제성장률이 거의 7%로 비약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 같은 남한의 북한통계 추정은 전무후무했다. 보수적인 이명박 정권에서 한국은행의 추정치는 북한경제가 거의 성장하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CIA의 통계수치는 북한 GDP규모를 약100억 달러로 체계적으로 묶어둠으로써 경제침체를 완전히 가공하고 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듯이, 2차 정보 추정의 현실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단히 중대한 근거들이 있다. 이것이 놀랜드가 북한경제를 '블랙홀'이라 칭하며 북한경제에 대한 어떤 십진법 추정도 믿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유이다.

경제학자이며 비엔나대학의 동아시아연구소 대표인 뤼디거 프랭크는 다음과 같이 동의하고 있다. 너무 빈번하게 남한의 한국은행이 제작하거나 CIA가 출판하는 이런 통계수치는 시장 매커니즘의 신기한 상품 같다. 수요가 어디인가에 따라 공급이 이뤄진다. 당신이 통계수치를 요구하면 그들은 생산할 것이다.

그러나 발전되고 투명한 서구식 경제에서조차 믿을만한 통계수치를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통화가 불태환이고 아주 작은 정보조차 국가기밀로 다루는 나라경제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이 정확한 자료를 어떻게 수집할지 나로서는 난감하다. 분명한 것은 이런 조작으로 인해 우리는 북한경제 상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믿을만한 정보소식들을 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식량과 무역

보기 드문 유용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온갖 추측과 예상을 넘어 이제 바닥을 치고 새로운 높이에 도달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식량생산은 자급자족 수준으로 거의 회복하여 노동생산성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 일환으로 무역의 붐이 일어나고 수입품과 외화를 쉽게 접하고 있다.

북한 식량자급 95% 육박

식량생산은 유용한 공식 통계를 가진 몇몇 부문의 하나이다. 북한이 처음으로 1990년대 식량지원을 요청했을 때, 기부단체를 위한 연례보고서, '작물과 식량안전 평가보고서'(CFSAR) 작성에 필요한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프로그램(WFP)의 조사단에 협력하는데 동의했다. 이런 협력을 통해 보고서는 북한 식량생산의 합리적이고 신뢰받는 측정을 가능케 했다. 아시아의 농촌과 농업 개발 상담역인 랜달 아이레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의 모든 보고서처럼, '작물과 식량안전 평가보고서'(CFSAR)도 완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1990년대부터 오랫동안 조사해 애초의 난폭한 억측 이후 꾸준히 정확해졌다. 추정치에 확실히 오류가 있지만, 그 보고서는 오랜 기간 일관된 방법론을 활용하고 북한당국의 협조도 개선되었다.

더구나 2011년 이후 평가팀은 북한말을 할 수 있는 국제적 인사들을 포함시켰으며, 2013년부터는 그들이 선택된 논에서 작물샘플을 수집했으며, 협동농장의 보고서와 비교해 교차점검을 할 수 있었다. 이 팀은 정부가 제공한 공식자료를 이용했으나 지상관찰과 위성정보에 기초한 자료를 결합시켜 수정 보완했다.

   
▲ <그림2> 북한 곡물생산 1981-2011(단위 1천톤). 자료: 세계식량농업기구(FAO)

가장 최근 '작물과 식량안전 평가보고서'(CFSAR)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의 2012년~2013년 식량생산량은 곡물기준으로 507만 톤이다. 이는 그 기간 북한의 곡물 수요 추정치의 95%에 해당한다. 이 자료는 영양결핍이 근절되었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특히 취약그룹은 더욱 그렇다. 이 수치는 1인당 하루 평균 1640 칼로리(곡물 기준으로 174kg)밖에 안 된다. 비곡물 음식으로 들어가는 1인당 하루 평균 400칼로리와 단백질 등 기타 영양분을 제외하고 말이다.

물론 이 수치는 분배문제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분배문제가 중요한 절차이지만, 자급자족에 육박한 모습, 특히 1990년대 300만 톤에 비해 현재 507만 톤은 낙관주의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적절한 개혁이 취해지고 효과적으로 시행된다면, 북한이 1980년대 후반에 기록한 600만 톤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제재로 북 무역증대 못 막아

무역은 비교적 믿을만한 통계자료가 존재하는 또 다른 부문이다. 북한이 무역자료를 발행하진 않지만, 정보자료는 북한의 무역상대국의 통계를 통해 거꾸로 얻을 수 있다. 북한무역 총액의 신빙성은 그 자료를 수집하는 나라에 의존한다. 불행하게도 큰 오류가 가끔 발생하는데, 예를 들면 북한무역과 남한무역을 혼동하는 것이다.

자료의 신뢰성은 또 데이터베이스 편집자의 판단에 일정하게 좌우된다. 특히 많은 통계가 다른 정보들로부터 와서 쉽게 반영되는 것 같다. 결국 제재가 상당한 무역량을 은연중에 줄이고 국가권한 밖에서 적지 않은 밀수가 이뤄져 공식적 무역규모는 기업과 개인의 실제 무역량 보다 매우 저평가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카 마루모토 개발상담역이 북한경제 통계를 광범위하게 재검토한 데 따르면, 무역자료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데이터베이스는 IMF의 무역추이, UN의 콤트레이드, 남한의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의 것인데, 그들의 북한자료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2006년 전체 무역규모가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 29억 달러, IMF 43억 달러, UN 44억 달러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 불일치는 주로 대상으로 삼는 국가 숫자의 차이, 자료를 얼마나 보수적으로 평가하느냐의 차이로 설명된다. 1997년~2007년,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는 단지 50~60개 국가와의 무역을 조사했는데, IMF와 UN은 111~136개 국가를 대상으로 했다. 그리고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는 IMF와 UN보다 국세청 보고 자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오류를 시정하기는커녕 아예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는 전체 남미대륙과의 무역을 무시해버린다. 이 모든 한계와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역자료는 대강의 규모를 알려주는 데 유익하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방법론적 문제는 남북교역을 국제무역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단된 나라의 복합적인 정치문제로 인해 남도 북도 다른 나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남북교역을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는 내부거래 범주로 분류한다.

IMF, UN 같은 국제기구들의 통계는 이러한 미묘한 사항을 반영할 줄 몰라 민족 내부거래를 2005년 3600만 달러 등 아주 낮게 반영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계산한다. 2007년 남북교역량이 약18억 달러를 차지하는 등 사실 남한이 중국 다음으로 북한의 두 번째 무역대상국인데도 말이다.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가 남북 내부 거래를 포함하지 않고 IMF와 UN의 대북 무역상대국 숫자가 쓸모없기 때문에 MOU(대한민국의 남북 통일 및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을 수립·총괄하고, 남북대화, 통일교육·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대한민국의 중앙 행정 기관)의 별도 자료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MOU 자료의 '무역'에는 실제 비영리거래, 즉 사회문화협력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인도적 지원 관련 물품도 포함되어 있다. 더구나 그 무역규모는 남북교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개성공단 상품거래도 들어가 매우 과장되어 있다.

남한의 개성공단 투입을 수출로, 북한의 개성공단 산출을 수입으로 잡아서 MOU 자료는 실제 표준계정에서 벗어나 있다. 수입으로 잡는 한, 개성공단 가동으로 가치는 추가되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으로 MOU 수치가 과대평가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 자료를 사용하는 선택 이외 다른 방법이 없다.

   
▲ <그림3> KOTRA와 IMF의 북중무역/북한 전체무역 자료(1990-2010), 스테판 허가드와 마커스 놀랜드 제작.

 
단순화하여 국제무역 규모에 대한 매시기 다량의 정보소스를 인용하기보다 국제무역 통계는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 수치와 함께 MOU 자료를 사용할 것이다. 북한자원정보시스템(i-RENK) 같은 남한 조사 데이터베이스는 일반적으로 이 자료에 기초해 종합되어 있다. KOTRA와 MOU는 남한정부의 산하기관이다.

북한자원정보시스템(i-RENK)에 따르면, 북한무역의 대부분은 한국(2012년 19억7천만 달러)과 중국(2012년 59억3천만 달러) 관련이다. 다른 나라와의 무역은 2012년 약427만 달러로 저조한데, 그 가운데 EU와의 무역이 약100만 달러를 차지한다.

CIA 팩트북에는 북한 수입은 석유, 코크스, 기계, 기기, 직물, 곡물이며 북한수출은 광물, 야금제품, 공산품(군수품 포함), 직물, 농어업 상품이다. 흥미롭게도 남한 자료조차 낮은 수준에서 이제 시작 단계에 지나지 않지만 북한이 기대 이상의 무역증대를 이루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KOTRA와 MOU 통계에 따르면, 1999년 18억 달러에서 2012년 88억 달러로 거의 5배나 늘었다. 이는 북한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이명박 이후 “남한은 북한을 중국에 빼앗겼다”

더 살펴보면, 남한이 확실히 믿는 것보다 북한은 외화벌이의 원천으로 남북교역에 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KOTRA 방법론이 북한을 대상으로 통계를 가장 체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이 같은 거짓 영상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것 같다.

2008년 남한에 강경보수파가 집권했을 때, 남북교역을 북한을 관리하는 먹이로 이용해 압박하기로 했다. 이 전략은 무식한 오산임이 판명되었다. 북한은 중국으로 돌았으며 곧 대중무역이 대남무역을 압도적으로 추월했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영향력을 증가시키기보다 대립과 대결 움직임으로 대폭 감소했으며, 남한의 비둘기파가 쌓아온 지난 10년의 신뢰를 소진해버렸다.

북중무역과 남북교역의 비중 변화는 북한 정책의 우선순위와 가능성을 이동시키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99년으로 돌아가면, 남북교역 333만 달러, 북중무역 351만 달러로서 비슷했다. 남한 비둘기파의 노력으로 그 후 8년간 정확히 똑같은 속도로 발전해 2007년 남북교역 18억 달러, 북중무역 20억 달러에 도달했다.

그러나 남한의 매파가 등장해 남북교역을 저당 잡아 교역량이 4년간 평균 18억 달러에 멈추었고 2013년에는 2005년 이후 가장 최저 수준인 11억4천만 달러로 추락하기까지 했다. 남한이 남북교역을 정치화하면서 당연히 북한을 중국 쪽으로 기울게 했으며, 2013년 북중무역이 남북교역의 6배, 65억4천만 달러로 치솟게 만들었다.

어느 해설자가 기탄없이 결론짓듯이 "남한은 북한을 중국에 빼앗겼다". 일본도 비슷하게 처음에 북한 수입품을 금지하고 그 다음에 2006년과 2009년 핵실험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모든 수출을 차단함으로써 대북 영향력을 잃었다. 북한은 잃을 것이 남아있지 않았고 지금 일본의 이빨 빠진 항의시위에도 2013년 핵실험을 거듭했다.

   
▲ <그림4> 남북교역과 북중교역 비교(1993-2011), 스코트 A. 신더 제작.

예산문제

북한이 식량자급에 근접하고 무역을 증대하고 있음을 입증하면서 우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의 연례 예산 보고서 같은 북한 기초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북한경제와 관련한 유용한 공식 정부통계이다. 최근 예산자료를 통해 북한이 2배의 경제성장을 달성했거나 거의 달성해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정확하다고 증명된다면, 1990년대를 이어 지금도 미국주도의 제재가 계속되는 악조건에서 그러한 변화는 놀라운 것이다.

북 경제성장, 1990년대의 2배 달성

그러나 어떤 결론을 도출하기 전에 다른 자료도 그렇게 하듯이 그 예산수치의 신뢰성을 검증해야 한다. 비판자들은 그 예산보고사가 공허하며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 수치를 나타낼 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그 성과는 검증될 수 없고 그 계획은 당의 선전에 다름 아니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냉전종식 이전에 동독과 소련에서 산 적이 있는 뤼디거 프랭크에 따르면, 이 예산자료를 "선전용이 아니며 더도 덜도 아닌 국가경제의 실적에 대한 추측 게임에 공헌하는 것"으로 볼만한 좋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프랭크는 표면가치로 그 예산자료를 보지 말라고 주의를 환기시키지만, 계획과 실적, 두 가지 면에서 국가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가치총액을 착실히 포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최소한 정부당국이 경제에 거는 낙관과 확신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00년대 초부터 매년 변화추이를 추적한 그의 분석은, 이상적인 곡선이라기보다 같은 시기 주요 사건에 대한 신뢰할만한 응답 패턴을 보여준다.

에를 들어 이라크 전쟁이나 2006년 1차 핵실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의미심장한 하강과 상승이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은행의 북한 GDP 성장 추정에 비해 최고인민회의 예산자료의 계수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프랭크는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양쪽 자료가 경제성장에서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전반적 경향에 대한 몇 가지 강력한 일치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 <그림5> 한국은행의 GDP 추정치와 최고인민회의 예결산보고서의 수입과 지출로 본 북한 경제성장률 비교. 뤼디거 프랭크 제작.

국가예산 총수입의 매년 성장은 우리의 목적 밖이다. 총수입은 GDP성장 규모에 느리게 반영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5년 총수입 성장 +16%가 2006년 +4%로 급격히 떨어진다. 아마 1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 때문일 것이다.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추정하지 않는 한, 최고인민회의와 한국은행의 자료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한국은행의 수치가 2005년 +3.8%에서 2006년 -1.0%로 떨어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그 후 두개의 곡선은 갈라지게 되는데, 한국은행 자료는 2008년 +3.1%에서 2009년 -0.9%로 떨어졌다가 2012년 +1.3%까지 미미하게 회복되는 것을, 그러나 최고인민회의 자료는 2008년 +6%에서 해마다 급상승해 2013년 +10.1%로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자료가 강력한 성장을 드러낼 때 왜 한국은행 자료는 그렇게 허약하고 괴상한 성장을 보여줄까?

경제침체에 대한 남한의 담론과 2배 성장에 대한 북한의 비전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로 보인다. 한 측면에선 난폭한 억측에 다름 아니고 다른 측면에선 증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물론 우리는 너무 상세한 수치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양쪽 자료의 신뢰성 분석을 통해 북한의 실제 경제성장률에 대한 유용한 단서를 얻는다.

2009년 불가사의

한국은행이 +3.1%에서 -0.9%로 급격히 떨어졌다고 하고, 최고인민회의는 +6.0%에서 +7%로 견고한 상승을 보여주는 2009년을 살펴보자. 이런 추리가 그럴듯하게 나오게 된 많은 주요 사건들이 있었다.

추가 제재에도 경제성장 지속

무엇보다도 첫째,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시장에서 석유와 곡물 가격이 현저하게 하락했다. 브렌트 원유 가격이 2008년 배럴당 약140 달러에서 2009년 약40~80 달러로 떨어졌다. 그리고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곡가지수도 2008년 201.4 포인트에서 160.3 포인트로 떨어져 북한의 수입에 돈이 더 적게 지출되었다.

   
▲ <그림6> 석유가격 비교(2002-2011)

둘째, 대북 무역, 금융 제재가 새로운 북 핵실험에 대한 응답으로 2009년 6월 12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통해 조여졌다. 그러나 금융제재와 여행금지 대상인 8개 기업과 5명의 관리뿐만 아니라 금지무기, 사치품, 이중용도 품목의 리스트를 연장하는 것 이외에 2006년 이후의 제재 그 이상이 아니었다.

셋째, 기후관측소가 2009년 8~9월 '유별나게 강력한 태풍'이 '유별나게 맹렬하고 오래 지속'되어 그 해 나라의 농업에 악영향을 주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2009년 작물과 식량안전평가(CFSAR) 연례 보고서에 이를 반영하지 않아 우리는 2010년 보고서의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넷째, 2009년 11월 화폐개혁이 단행되어 시민들이 구화폐 50만원으로 모자 하나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구화폐와 신화폐를 100:1로 바꾸는 시기를 보냈다. 남은 구화폐는 국가은행에 예치되었으나 1백만 원 이상에 대해 합법적 소득원을 증명해야 되었다. 

신화폐로 임금을 주어 공공분배시스템의 가격을 통제하고 일반주민들의 소비력을 배가하는 한편, 음성경제에 포함되어 있고 밀수업자, 부패관료 등 합법적 소득원을 증명하지 못하는 부유층을 없애려는 조치였다.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국가가 통화(물가 억제, 화폐교환)와 경제(수입품 억제, 국산품 애용, 투자 위한 은행자본 마련)를 관리하기 위해 엄격히 명령한다. 그러나 외부관찰자들은 개인저축과 음성경제에 대한 통제는 주요 경제를 침해하고 식량 소비를 사적 시장에 맡길 정도로 파괴적인 식량위기를 초래한다고 우려한다.

마지막으로, 2009년 한국은행의 북한 GDP 성장 추정자료 발행은 한국 매파가 모든 남북교역과 경제특구인 개성공단 외부투자 중단을 요구한 지 1개월 후에 있었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한국은행의 추정치는 그 시기에 조성되는 국내정치 드라마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 그런 이벤트에 근거한 북한 경제성장 부정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2009년의 침체는 냉해로 인해 감소한 농업생산, 원자재와 전기 부족으로 인한 저조한 공산품 생산 때문이다. 그래서 농수임업과 제조업 분야가 2008년과 비교해 각각 -1%와 -3%로 떨어졌다고 한다.

한국은행은 위성사진을 근거로 곡물생산이 2008년 평균 430만 톤에서 2009년 410만 톤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원자재와 전기의 부족은 제재로 인한 안전적 수입의 곤란, 화폐개혁의 충격으로 인한 북한 돈 가치 저하로 설명될 수 있다. 화폐개혁도 서구와 남한에서는 북한경제에 참혹한 피해를 갖다 주었다고 보도되었다. 밀수업자, 개인무역업자 단속은 상품 공급을 줄였고 물가급등을 유발했다는 소문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관적 분석에 반대되는 합리적 근거들이 있다는 것이다. 농업부문에 관해 위성사진에 근거한 추정은 정확도에서 한계가 있고 국제원유시장의 가격 폭락은 반대로 연료, 비료 제공능력 향상으로 농업생산을 증대시켰음을 말해준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나쁜 기후 보고서를 확인해주고 한국은행의 분석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2009년 보고서에 누락시킨 사실은 그 해 북한을 방문조사하지 않았고 그것이 한국은행의 추정치에 반영되었음을 암시한다. 더 나아가 한국은행의 추정치는 증명할 수 없는 자료이다.

수입품 제한과 관련, 2009년 제재가 북한경제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북한은 이때까지 제재를 극복하는 일련의 방안들을 찾았고 2006년에 비해 더 많은 제재가 가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제시장의 식량, 석유 가격폭락은 다른 필요 수입품을 보류하고 북한의 가장 중요한 2개의 수입품을 적당한 가격으로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북한 돈 평가절상에 관해 본다면, 이견이 있지만, 이 놀라운 화폐개혁 발표가 2009년 북한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 2009년 11월 30일 화폐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북한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듯이 화폐개혁은 시행과정에서 약간의 문제로 고통을 수반했다. 그러나 혼란과 불안(강탈이 자행되고 책임자가 처형되는 등)이었다는 서구의 주장은 제2, 제3의 손이 조작한 유례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보고서에 근거한 것이다.

   
▲ 통일거리 시장 : 평양의 국가공인 시장(2003), 출처 : The 4th Media

또한 위에 언급된 ‘물가폭등’ 보고서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아니라 암시장의 몇몇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예상 물가인상률에 기초한 것이다. 서구사람들은 음성시장 타격이 주요 경제를 악화시킬 만큼 규모가 큰 줄 알고 있지만, 짧은 과도기 이후에는 물가와 환율이 안정되었다고 한다.

화폐개혁은 부분적으로 자본을 확충하고 국내생산을 촉진하려는 것임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주요 경제에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화폐개혁 전후의 전체 부문, 전국적 생산규모를 비교해봐야 한다. 우리는 이런 자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화폐개혁의 정당성 판결이 진정으로 합격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화폐개혁 이후 물가 환율 안정

화폐개혁 이후 13개월에 대해 글을 쓴 중국 길림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소 조사담당 교수, 진 마이화에 따르면, 중국 위안화와의 환율, 분배 쌀값과 공개시장 쌀값이 모두 2009년~2010년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환율은 1500원에서 1200원으로, 분배 쌀값은 1Kg에 46원에서 24원으로, 공개시장 쌀값은 2000원에서 900원으로 낮아졌다.

이러한 자료는 화폐개혁에 수반되는 고통의 시기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쌀과 중국 수입품에 대한 소비자 구매력을 배가할 정도로 물가와 환율이 곧 안정되었음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화폐개혁이 북한 GDP를 떨어뜨린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되기 곤란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역규모 분석이 한국은행의 북한 경제성장율 감소요인 네 가지가 최고인민회의의 증가요인 한 가지보다 더 정확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북교역과 관련, MOU는 2008년~2009년 7.8% 줄어들어 16억7천9백만 달러라고 보고했다. 

북중무역에 대해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이 4%, 26억8천만 달러로 줄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감소현상은 한국은행의 북한경제 침체 주장을 정당화하기에 너무 적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국제시장의 곡가와 유가가 폭락했기 때문에 북중무역의 감소는 북한으로 유입되는 상품의 감소를 반드시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6월 제재도 보고되지 않는 회색지대에서 일부 북중무역을 차단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중국세관이 8월~11월 북중무역 자료 발행을 중단해 2009년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넌 상품의 양을 검증할 길이 없다. 위에 언급된 26억8천만 달러가 전체 스토리를 얘기하는 게 아닌 듯하다.

더구나 북한이 5월 실시한 핵실험의 반발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 6월 제재가 불어 닥치기 오래 전에 필수 수입품을 미리 사들여놓았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북한경제 침체 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무역자료를 사용하는 것은 이후 몇 년 간의 GDP 성장을 토론할 때 역효과를 낳는다.

만일 북중무역 27억9천만 달러의 26억8천만 달러 감소가 북한 GDP 성장률 4%로 감소할 수 있었다면, 2010년이나 2011년에는 어디에 그런 게 있는가? 각각 34억7천만 달러와 56억3천만 달러로 급상승할 때가 아닌가? 이는 확실히 북한 GDP 성장이 이 당시 견실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한국은행 자료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2010년 -0.5%, 2011년 +0.8% 성장이라고 부정적으로 계속 평가했다.

최고인민회의 예산보고서의 2010년과 2011년 총수입 증가는 각각 7.7%와 8.6%로서 보다 현실적이지 않은가? 이런 입장에서 보면 북한경제에 대한 한국은행의 비관적 평가는 실제 울퉁불퉁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과 남한, 북한통계의 정치화로 정책오판

이 모든 것으로 볼 때, 한국은행의 판단이 얼마나 남한의 정치적 기후에 영향을 받는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은행이 그런 의혹의 대상으로 된 것은 한 번이 아닐 것이다. 2009년 한국은행 통계자료는 남북관계가 냉전 이후 최악이었던 2010년 6월 발행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남북관계는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이후 악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남한이 실제 남북관계를 차단한 때는 2010년 5월이었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과 투자를 모두 중단시켰다. 5.24조치의 직접적 구실은 서해안에 침몰한 천안함 사건이었는데, 남한의 매파는 북한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 논쟁적 결론의 조사보고 요약은 5월 20일 보도되었으며, 보고서 전체는 9월 중순에 가서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불행하게도 남한의 규탄은 국제적 행동통일을 이끌 만큼 확신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남한의 매파는, 북한의 신뢰를 훼손하기 위한 거짓 깃발 조작일지 모른다는 비둘기파 속의 조용히 커져가는 다른 의견과 의혹을 윽박지르고 있다. 2010년 6.2 지방선거 캠페인이 시작되는 바로 그 때, 천안함 사건 조사보고 요약만을 발표했을까?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국민담론을 통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것 같았다. 국가안보를 외치며 그 조사 보고에 대한 대중의 비판을 명예훼손이나 '종북'으로 몰아 탄압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은행이 북한경제 악화를 추정하는 것은 매파에게 너무 쉬운 것이다. 그런데도 1개월도 지나지 않은 지방선거에서 비둘기파가 남북교역 중단을 반대하는 여론을 환기해 놀라운 승리를 기록했다.

요약하면, 2009년 수수께끼를 확실히 푸는데 유용한 자료는 너무 적다. 다만 우리는 북한경제가 그 해에도 계속 성장했고 그 추이는 한국은행의 평가보다는 최고인민회의 예산보고가 더 부합한다는 합리적 근거를 가진다. 농업은 나쁜 기후로 손해를 봤지만, 낮은 유가로 이익을 얻었다. 화폐개혁은 늦게 발표되어 2009년 경제를 추락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당시 횡행했던 북한 최후 심판의 날 보고서는 대부분 허풍임이 판명된다.

제재의 새로운 파고는 미리 예측되었고 계속되는 압박에 조금 추가되었을 뿐이다. 비공식 무역은 물론 공식 무역도 예상 보다 둔하고 느리게 증가했으나 낮은 곡가와 유가로 상쇄되었다. 아무튼 느림보 무역이 실제 북한을 침체에 빠뜨렸다면 왜 한국은행이 무역 급상승을 기록한 2010년과 2011년에도 계속 침체와 답보를 보고했는지 알기 어렵다.

북 경제성장, 세계에서 가장 빠를지도

그러므로 한국은행의 비관론을 보증하는 확실하고 경험적인 증거는 없는 것 같다. 더 나쁜 것은, 당시 남한의 분위기로 한국은행의 추정을 더욱 왜곡했으며 국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조작되었다는 점이다. 최고인민회의의 통계자료가 정화하고 2010년, 2011년의 추이에 반영되었다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그 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에 속할 것이다.

결론 : 새 시대?

북한붕괴론은 호기심을 갖고 끈질기게 놓지 않는 신화에 불과하다. 추측 그 이상에 기초하지 않으며 가끔 오보, 역정보, 희망사항에 의해 악화되고 있다. 서구와 남한의 언론에서 떠드는, 의심을 갖게 하고 과소평가하는 통계는 대개 북한 사회주의경제가 서서히 해체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한다. 반대로 식량과 무역에 관한 비교적 믿을만한 표식은 북한경제가 회복되고 상승하고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1990년대부터 직면하고 있는 극단적으로 비우호적 조건에서도 말이다.

   
▲ 북한의 나선 경제특구 항구모습, 출처 : The 4th Media

북한이 제시하는 고성장 자료가 남한이 발산하는 비관적 추정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증거들이 확인해준다. 몇 가지 변화는 위성사진이 확인할 정도로 눈에 띈다. 북한의 평양과 다른 주요 도시에서 급속히 번지는 신축 살림집, 보건의료, 오락시설, 기반시설을 보여주는 최근의 건설 열기가 그러하다. 몇 가지 다른 변화는 더욱 신기한데, 뤼디거 프랭크와 같은 최근 방문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북한 방문자, 경제성장 눈에 보인다고 

자동차 수가 늘었는데, 수도에 교통신호등을 설치해 '평양의 꽃'이라는 유명한 교통정리 여성들이 거리에서 없어질 정도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도 이제 일반적 광경이 되었다. 음식점과 상품가게도 어디든 있는데, 인민들이 20년 전 잘 나갈 때보다도 더 잘 입고 더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또 적어도 평양에서는 그 때보다 분명히 더 잘 먹는다고 한다. 냉난방장치들도 많은 주거시설과 사무실의 벽에 설치되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태블릿 컴퓨터까지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지방에서도 태양열, TV안테나, 농가 앞의 자동차, 상품가게, 음식점 등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사실 정보사회에서 요즘 질문은 북한이 발전하고 있느냐에 있지 않고 이 발전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겠느냐에 있다. 북한경제가 아직 흥청대는 소비를 뒷받침할 만큼 튼튼하지 않으며 자신의 고향인 동독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고 프랭크는 걱정했다.

그러나 북한은 동독의 운명을 답습하지 않을 카드를 쥐고 있는데, 광대하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광물자원이 바로 그 것이다. 그야말로 나라가 '금광'으로 불리는데, 실제 금이 아니라 북한의 산에 엄청난 값어치의 지하자원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다.

서울의 북한자원연구소 소장 최경수에 따르면, 북한의 광물자원은 전 국토의 약80%를 차지하는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북한은 200개 이상의 광물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세계에서 10위 이내의 광물은 마그네사이트, 텅스텐, 흑연, 금, 몰리브덴(크롬족에 속하는 전이 원소의 하나)이다. 마그네사이트는 세계에서 두 번째, 텅스텐은 여섯 번째로 많다.

비장의 무기, 세계 최대의 ‘희토류’

남한의 보고서는 북한 광물의 가치 총액을 7조~10조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추정치는 북한 북부 정주에서 수조 달러의 가치를 지닌 세계 최대의 이른바 ‘희토류’가 발견되기 전이다.

확실히 몽고, 나이지리아, 러시아 같은 나라의 경험으로 볼 때, 광물자원이 있는 게 아니라 이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최경수는 북한의 광산시설이 자본의 결여, 낡은 기반시설, 에너지 부족으로 30% 이하 밖에 가동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광산업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기업에 관심을 표명해도 외국기업들이 국가가 제공하는 법적 보증과 투자환경에 신경을 쓴다.

   
▲ <그림7> 북한의 주요 광물과 석탄 추정치(단위, 1천톤), 출처 : The 4th Media

이는 북한정부가 이런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북한과 남한이 대규모 삼각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것이다. 러시아 극동과 한반도를 철도, 가스관, 전기선으로 연결하는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를 실현해야 한다.

'철의 실크로드' 실현해야

한번 건설하면, 철도는 아시아와 유럽을 횡단하여 물류 이동 시간을 대폭 단축시킨다. 지금의 배 45일에서 철도 14일로 단축할 수 있어 무역을 크게 촉진시킬 수 있다. 러시아 에너지에 더 많이 더 저렴하게 접근하는 것도 북한경제에 큰 혜택이 될 것이다.

북한정부도 경제특구를 개설해 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조치를 취했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을 살펴볼 때, 경제특구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호의적인 법적 재정적 체계를 갖는 차별화된 지역이다. 나선 특구를 모델로 전국적으로 새로운 경제특구 계획을 발표했다.

북중 국경에 있는 황금평과 위화도의 특구 이외에도 강령군의 '녹색개발구역', 음정의 '과학기술개발구역'은 물론이고 14개의 새로운 지방 경제특구를 적극적으로 개설했다. 그 밖에 특구계획을 더 확대할 것이며 특구법도 공개되어 국제투자자들에게 적절한 체계와 담보가 제공되고 있다.

북한정부도 특구 이상의 경제협력사업에 기업의 참여를 촉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좋은 사례가 이집트 텔레콤 공급자인 오라스콤(75%)과 한국우편통신회사(25%)의 합작투자인데, 2008년 북한 최초의 3G 서비스를 시작하여 2012년 2월 1백만 명, 2013년 5월 200만 명의 이용자에 도달했다.

제재와 고립, 효과 없어
안전보장, 무역관계로 국제사회로의 통합, 세계평화 실현

이 글에서 밝힌 증거는 물론이고 향후 잠재력을 볼 때 북한이 경제적 붕괴로 향하고 있다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북한 붕괴 위험이 있다면 그 것은 20년 전이지 지금은 아니다. 제재와 고립을 통해 북한인민을 계속 질식시키는 것도 무의미한 것 같다. 제재와 고립의 실질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체제전환도 핵 비확산도 이루지 못했으며 북한경제가 성장하는 한 앞으로도 그 목표는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거듭되는 제재와 강압적 고립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의미 있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소외가 그 나라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과격하게 만든다. 북한을 고립시킬수록 북한의 자위력은 더 커지고 핵무기와 미사일로 이웃나라들의 격앙을 막을 수 없음은 명백하다. 국제사회로의 더 좋은 통합을 위해 정치적 우선순위를 이동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북한은 국제 언론이 왜곡 조작하는 미친 도발자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의 국가안전과 경제번영을 중시하는 국가이다. 북한은 자주권을 주장하고 국제권력의 면전에서 붕괴 없이 자결권을 지키는 길을 분명히 찾았다. 그러므로 무의미한 차별대우를 멈추고 국제사회로의 통합을 도와야 한다. 합리적인 안전보장을 해주고 상호 유익한 무역관계를 개설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치료에 필요한 예방약이며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정책의 선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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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원내대표] 박근혜 머리끄덩이 잡을 적임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싸움에도 법칙이 필요할까…
 
장유근 | 2014-05-09 13:36: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박영선, 박근혜 머리끄덩이 잡을 적임자-

싸움에도 법칙이 필요할까…

대한민국은 있으되 정부는 없었다. 대통령을 폼만 잡고 하는 거라면 개나 소나 닭대가리나 다 할 수 있을 것. 정부도 그렇고 공무원도 같은 이유다. 이들의 존재 전부는 개인의 부와 명예를 위해 존재하는 직책이 아이란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이들은 국민들이 피와 땀을 흘려 번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들에게 주어진 권력이란 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잠시 위탁된 것일 뿐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따라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잘 지키지 못하거나 관리 부실 등의 이유로 손해를 끼쳤다면 응당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같은 상식은 사라졌다. 그대신 그 자리에 몰상식이 자리잡고 뻔뻔스러움이 더해졌는가 하면, 아예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우습게 여기며 핍박하는 희한한 일이 생겼다. 세월호 참사를 놓고 벌어지는 상식 이하의 추태를 보이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러하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만 더하면 세월호가 침몰된 지 한 달이 다 되었건만, 정부와 여당 등 사고를 수습해야 할 당사자들이 사망.실종자 유가족 혹은 국민들의 바람과 달리 한 발짝 물러선 모습이다. 구조.수색작업을 하던 언딘은 “구조업체 아니다”라며 손을 떼겠다는 어이없는 소식.

이에 앞서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고 여자앵커들에게 검은옷을 입지말라한 김시곤 KBS보도국장의 발언 논란 등은, 우리 사회가 안전불감증과 도덕불감증 등 인간이 가져야 할 양심의 부재를 보여준 인간말종의 모습이랄까. 특히 KBS의 막말 보도는 청와대 대변인 민병욱의 조문연출(분향쇼)을 떠올리게 만드는 최악의 언론참사로 볼 수 있다. 이미 우리사회에서 보기 힘들게 된 정론직필은 고사하고 권력의 나팔수를 자청하며 호시탐탐 권력을 넘나보는 짝퉁 언론인 또는 기자들이 국민들에게 행하는 언어폭행은 이미 도를 넘은 수준인 것.

특히 KBS출신 앵커 혹은 친정부 언론사 기자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내세우는 청와대는 스스로 국민을 무시하고 폭언한 것과 다름없는 것. 따라서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언론의 이 같은 행태도 박근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겉으로는 형식적인 사과를 표명하고 있지만, 방송을 통해 내보낸 이 같은 언어폭행의 1차적 책임은 정부와 청와대에 있는 것. 국민들의 정서와 무관하게 대국민 기망극을 벌이며 대국민 언어폭행을 일삼는다면 그에 상응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예컨데 싸움판에는 법칙이 없어서 머리끄덩이 잡아채며 싸우는 게 정석이다. 싸움을 논리적으로 도적적으로 점잖은 척 하는 건 장난질이지 싸움이라 할 수 없는 것. 이 같은 법칙은 일찌감치 정부와 국민 간에 적용돼야 할 것이지만, 짝퉁 권력이 공권력을 남용하며 머리끄덩이를 붙잡을 기회를 주지 않자 야당 조차 무력해 졌는지, 새정치연합의 원내 대표에 박영선 의원이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주지하다시피 박영선 의원은 MBC앵커 출신으로 보도국 경제부장 재직 중에 정계에 진출했는 데 그동안 박 의원이 의정활동 중에 보여준 모습은 <끝장취재>를 나선 기자의 정신으로, 새누리당(한나라당)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사건 등을 물고 늘어지는 도드라지는 활동을 보이기도 했다. 나라가 국난 이상의 국론분열을 겪고 있는 이때, 새정치연합이 박 의원을 선택한 이유 속에는 칠레의 여성지도자 바첼레뜨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흐리멍텅하고 우유부단한 리더십 대신 대한민국의 아줌마 파워를 보여줄 때가 된 것 같다는 느낌.

따라서 처녀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고 할머니는 더더욱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 박근혜의 확실한 대항마가 박 의원이 아닌가 싶은 것. 오프라인에서 머리끄덩이를 붙들고 싸울 일은 아니지만, 시간만 질질 끌며 도망칠 노림수만 노리고 있는 정부와 새누리당을 적극 견제할 적임자의 출현으로 세월호 참사 정국이 풀릴 전망이다. 유명한 격언에 “똑 같은 물이라도 배암이 핥으면 독이되고 양이 마시면 젖이 된다”는 말이 있다.

언론은 고삐풀린 권력을 견제하는 브레이크 같은 것. 같은 앵커출신이라도 그동안 박영선 의원이 보여준 모습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싸움에는 룰이 필요없다. 특히 대국민 기망극을 펼치며 국민을 우롱하는 권력에 대해 점잖을 떠는 것 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그 몫 전부는 국민들에게 피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야권은 물론 지식인 등이 보여준 게 주로 이러한 모습들. 그게 대한민국의 국격을 미개국 수준으로 떨어뜨린 근본적 이유가 아닌지 살필 때다.

똥을 치울 땐 코르 찌르는 악취를 피하지 못하는 것처럼, 다 썩어자빠진 권력을 정신차리게 만들거나 내쫓고자 할 땐 머리끄덩이를 붙잡아 내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 싸움에는 법칙이 없다. 박 의원에게 그런 험한 모습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야당이 야당다운 모습을 통해 국민의 아픈 가슴과 원통함을 풀어주기 바라는 것. 새정치의 시작이 박영선 사령탑으로부터 시작되길 바라는 건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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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잊으라 하는 자, 누구인가

[정책쟁점 일문일답] '기레기'보다 더 해로운 '저질 논객'

기사입력 2014.05.09 11:37:14

 

 

 

 

 

 

 

 

 

1.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세월호 참사로 민간소비가 둔화되는 등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 지난해 여름에도 현 장관이 일감몰아주기 과세에 딴지를 걸며 경제민주화 형해화(形骸化)에 앞장섰는데요. 이번에도 세월호 잊기 운동의 선두에 서려 하고 있습니다.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 장관이 재벌의 방패 역할만큼은 재빠르게 해내고 있는데요. 씁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일부 보수언론들은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면 서민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사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 요즘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인데요. ‘기자 쓰레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최근 기레기가 많아진 것은 인터넷 언론사의 범람과 과잉경쟁 때문인 것으로 풀이 되는데요. 1990년대 금융규제완화 이후 저질 금융기관이 범람했던 것처럼 최근 정체 불명의 인터넷 언론사들이 범람하면서 기자들의 평균 수준이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레기보다도 ‘칼레기’가 더 문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칼레기는 칼럼이나 사설을 쓰는 쓰레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기레기의 범람이 언론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인 반면, 칼레기의 범람은 해바라기처럼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저질 논객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3.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를 전후한 시기에 경제지표는 어떠했나요?
⇒ 삼풍백화점 참사는 1995년 6월 29일 일어났는데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그 해 2분기 경제성장률은 9.4%(전년 같은 분기 대비 성장률, 이하 동일)였고, 3분기 성장률은 10%였습니다. 가계소비 부문을 보면 2분기 성장률은 10.6%였고, 3분기 성장률은 11.1%였습니다. 이 지표들은 삼풍백화점 참사를 전후하여 소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이번의 경우에는 그 때와 다른 점이 있기는 합니다. 1995년은 호경기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또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가 그 때에 비해서 훨씬 더 크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소비위축 운운하는 정부 관료들과 보수언론의 태도는 지나치게 졸렬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이 자주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서민경제를 팔아서 자신들의 사익을 최대화하려 하고 있는데요. 현 장관과 보수언론들이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걱정했다면,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안을 제시하며 그런 주장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4.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걱정한다면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안을 고민했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추천할만한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MB정부가 수퍼 추경 과정에서 추진했던 서민경제 지원책이 하나 있었는데요.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꽤 쓸모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유효기간이 3개월인 재래시장 상품권을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는 것인데요. 이와 같은 서민경제 지원 방식은 대공황 때 케인스가 제안했던 유효수요 창출방법 중에서도 가장 나은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현 장관과 일부 보수언론들이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걱정한다면,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된다며 툴툴거리기보다는 이와 같은 서민경제 지원책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5.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양수산부의 낙하산 문제가 불거지면서 관료마피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일각에서는 행정고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요.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다양한 임용방식으로 고위직 공무원들을 충원하자는 주장인데요. 적절한 대안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소박한 구상은 현행 대학입시제와 같이 황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지난 십수 년간 정부는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한다며 입시제도를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었는데요. 오히려 교육양극화만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복잡한 임용방식을 도입하면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실제로 특채가 많은 외교부의 경우 고위직 공무원 대물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6. 관료마피아 문제, 언론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나 요란하게 떠들지만 제대로 된 개혁안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 여러 가지 정책을 동시에 융단폭격식으로 추진해야 관료마피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첫째, 고위 관료 임용과정에서부터 직렬을 더 세분화하고, 이공계 직렬을 확대해서 비이공계의 전횡을 막아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직렬별로 고위직 공무원을 선발할 때 비이공계 출신과 이공계 출신을 절반씩 채용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80% 이상을 비이공계로만 채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형적인 고위직 공무원 선발방식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7. 고위 관료들의 취업제한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2008년 일본 정치인들은 관료개혁을 통해 퇴직관료들의 공기업과 사기업 재취업을 1회만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은 직위 및 업무 관련성이 큰 기업에 대한 공직자 재취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도 고위 관료에 대해 각각 퇴직 후 3년, 5년의 재취업 제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영국은 까다로운 공직자 재취업 사전 승인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고위 관료들의 취업제한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할 것입니다. 
 
8. 일본도 과거에 관료마피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요. 폐해가 심했지요?
⇒ 일본의 경우를 보면 관료마피아들이 ‘잃어버린 20년’의 주범이었습니다. 이들은 1980년대에는 금융규제완화로 부동산 거품을 키웠고, 1990년대에는 부자감세로 국가재정을 빚더미로 몰아넣었으며, 역시 1990년대에는 거품 붕괴와 복합 불황 속에서도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기피하여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결국 일본 정치권은 2000년을 전후하여 ‘잃어버린 10년’의 주범인 대장성을 해체하고, 수상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부개혁에 나서게 되었는데요. 당시 정부 개혁은 정치인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했습니다. 
 
9. ‘잃어버린 10년’의 주범이 대장성이라 했는데요. 1990년대 대장성 관료들은 어떤 행태를 보였나요?
⇒ 1990년대까지 일본 대장성 관료들 사이에는 매우 전근대적인 조직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장성 후배 관료들이 퇴직한 선배들을 평생 충성으로 챙기는 독특한 문화였는데요. 이런 전근대적인 조직문화는 선배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간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장기간 지연시켜 일본경제를 파탄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결국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2001년 정치인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한 정부 개혁 과정에서 대장성이 해체된 이후에야 금융청에 의해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10. ‘늘공’과 ‘어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늘공은 '늘 공무원'인 사람을 말하고,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을 말하는데요. 역대 정권 하에서 어공은 늘공의 상대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대다수 고위직 늘공들 행태를 보면 정치적 수완이 드라마 ‘정도전’의 ‘이인임급’입니다. 책임 회피와 조직 수호의 달인들인데요. 어공들이 이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어공들 중에서도 일부가 제법 적응을 하기도 하는데요. 대개 늘공에 잘 영합하는 사람들입니다. 늘공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책임 회피와 조직 수호에 도움이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11. 늘공들은 어떤 방식으로 책임 회피와 조직 수호를 하고 있나요?
⇒ 자신의 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함구로 일관하고 최대한 정보를 은폐합니다. 반면, 자신의 승진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 앞에서는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다 동원하고, 달달한 언사로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포장합니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개혁할 것이냐인데요. 가장 실효성 있는 관료 개혁은 노무현식 ‘정보 공개 개혁’과 ‘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입니다.
 
12. ‘정보 공개 개혁’이 중요한 이유가 뭡니까?
⇒ 개혁파가 개혁에 성공하려면 악마에게도 배워야 합니다. 1961년 박정희가 군사쿠데타에 성공한 것은 그의 조카사위였던 김종필이 제공하는 정보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종필은 당시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기획과장이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의 군사쿠데타도 그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력은 자금 동원 능력과 함께 가장 ‘강한 권력의 기반’입니다. 노무현식 ‘정보 공개 개혁’은 관료들에게 집중된 정보의 일부를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한 것인데요. 이것은 정보력이라는 중요한 권력의 일부를 국민들에게 이전한 것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매우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13. 노무현 정부 후반기 때는 각 부처로 하여금 국정감사 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는데요. 지금은 유야무야 된 것 같습니다.
⇒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 비해서 기득권층의 입지가 강화된 정부인데요. 기득권층들은 원래 투명성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기득권층들이 국가경제와 서민경제를 축내는 것은 쥐들이 창고의 식량을 축내는 것과 유사한데요. 쥐들이 밝은 곳을 싫어하듯이 기득권층들도 밝은 곳을 싫어합니다. 
 
14. 실효성 있는 관료 개혁을 하려면 ‘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요?  
⇒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관료개혁은 정치인들과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개혁위원회가 추진해야 합니다. 단, 이 때 개혁위원회 위원은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또 평상시에도 분야별로 다양한  전문가참여 위원회와 시민참여 위원회를 구성하여 관료들을 견제해야 합니다. 이 때도 위원들은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전문가참여형· 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성공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던 ‘국민이 중심인 나라’가 좀더 빠른 시일 내에 도래할 것입니다.  
 
15.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전문가참여 위원회와 시민참여 위원회를 확대한다면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 국민들에게 정보가 많이 공개되어 이전될 것이고, 관료들도 과거보다는 정권의 눈치를 덜 보게 될 것이며, 지금보다 여론을 더 많이 살필 것입니다. 또 정당의 역할이 커지면 정당이 강화될 것이고, 시민단체의 역할이 커지면 시민단체도 강화될 것입니다. 
 
16. 야당들은 왜 이 좋은 대안을 추진하지 않는 겁니까?
⇒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관료개혁에 있어서 정보 공개 개혁과 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관료개혁과 공기업개혁, 낙하산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경우 자신들의 집권했을 때 측근들에게 나눠줄 낙하산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초선 의원들은 전자에 해당할 것이고, 중진 의원들은 아마도 후자에 해당할 것입니다. 
 
17. 관료마피아 문제를 다루다 보면 낙하산 문제를 빼놓을 수 없고 공기업 개혁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공기업(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 포함, 이하 동일) 개혁에 진전이 없는 이유는 관료마피아 개혁에 진전이 없는 이유와 정확하게 동일합니다. 공기업 개혁을 하기 위해서도 정보 공개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관료들과 공기업들은 정보 공개를 하는 흉내만 낼 뿐, 기본적인 정보도 최대한 은폐하려 합니다. 현재 295개 공공 기관 대부분은 예산서, 결산서, 사업계획서 등을 요약본 형태로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약본 형태의 경영 공시는 공공 기관의 내부 실정을 파악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황당한 것은 국회의원들도 공공 기관으로부터 요약본 형태 이상의 자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국회는 법령을 개정하여 295개 공공 기관이 지난 10년 이상의 예산서, 결산서, 사업계획서 원본이나 사본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회의원들, 언론사들, 그리고 국민들이 공공 기관의 내부 실정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18. 공기업 개혁에서도 ‘전문가참여형·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매우 중요한데요. 민간 전문가 출신으로 구성된다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이하 공운위)도 허수아비 위원회로 전락한지 오래되었지요?
⇒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공운위는 정부 관료들이 일회용 컵처럼 이용하는 허수아비 위원회에 불과합니다. 공운위가 얼마나 황당한 들러리 위원회인지는 위원들 위촉 과정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 위원회가 거의 유일한 공공 기관 외부 통제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위촉 과정에서 '국민 대표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 대표성이라는 것은 노·사·정 위원회처럼 국민 각계로부터 대표를 파견하게 하여 어떤 위원회가 일부 기득권층의 들러리가 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할 때 확보되는 것인데요. 우리나라 공운위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민간위원을 임의로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하되, 기획재정부 장관 소속 위원회로 운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19. 공운위가 제 기능을 하게 하려면 이것을 어떻게 바꾸어야 합니까?
⇒ 첫째, 전체 위원 중 민간위원 비율을 현재의 1/2에서 2/3 이상으로 높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위원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해서 국민 대표성이 확보될 수 없습니다. 둘째, 국회가 정당별 의석 비율에 따라 민간위원을 추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공운위를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격상시켜야 합니다. 지금처럼 이 위원회를 기획재정부 장관 소속으로 방치하는 한 제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20. 마지막 주문입니다. 지금 이 시기 실효성 있게 서민경제를 살리는 방안과 실효성 있게 관료개혁을 하는 방안에 대해 요약해서 말씀해 주시죠.
⇒ 앞에서도 말했듯이 경제관료들과 보수언론들이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걱정한다면,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된다며 툴툴거리기보다는 실효성 있는 서민경제 지원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재래시장 상품권 지원정책을 대폭 확대하는 것입니다. 또 실효성 있는 관료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개 개혁’과 ‘전문가참여형·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필수적입니다. 단, 이 개혁이 성공하려면 관료개혁위원회 위원과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전문가와 시민들이 모두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매우 안타까운 것은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대폭 강화하면서 동시에 관료개혁과 공기업개혁도 할 수 있는 이 좋은 대안들에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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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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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 미 50개주 전역에서 박근혜정부 비판 시위

[단독]재미 한인들 미 50개주 전역에서 박근혜정부 비판 시위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입력 : 2014-05-09 11:18:00수정 : 2014-05-09 12:03:31

 

재미(在美) 한인들이 미국 50개주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위를 동시다발로 연다. 

32만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미주 최대 한인 기혼여성네트워크 사이트인 ‘미시USA’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뉴욕타임스 광고 캠페인을 주도한 미주 한인들이 미국 50개 주 전국 시위를 벌인다”고 9일 밝혔다. 이들은 오는 17일(현지시간)까지 주별로 집회를 여는데 이어 18일 50개주 전국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위는 미 동부에서 시작해 중부, 서부로 이어진다. 미주에서 가장 많은 한인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지역에서는 5월10일과 18일 집회를 연다. 

미국 50개 주에서 시위가 열릴 때마다 참가자들은 검정색 옷과 마스크 차림에 노란 리본을 묶은 국화를 들고 시위에 나서며 가두행진도 벌일 예정이다. 시위 장소로 현재까지 알려진 곳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오랜지카운티의 채플힐 유니버시티홀몰, 뉴저지주 펠팍 경찰서와 럿거스대학, 뉴욕주 뉴욕타임스 앞,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의 하버드스퀘어,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리버티파크, 일리노이주 NBC 인근 한국영사관,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앞 등이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로렌스 플라자 갤러리아마트와 샌디에이고 시온마켓, 어바인의 스펙트럼 몰 극장 앞,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아트뮤지엄 등도 집회 장소로 예정돼 있다. 
 

5월18일 미주 한인들은 미국 50개 주에서 전국 집회를 연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은 5월10일과 18일 양일 간에 걸쳐 집회를 개최한다. ㅣ미시USA 제공

‘미시USA’ 회원들이 자발적인 모금으로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게재할 예정인 ‘세월호 참사’ 관련 포스터. ㅣ 미시USA 제공.



‘미시USA’가 주도하는 ‘뉴욕타임스’ 전면 광고는 오는 11일과 18일 사이에 게재될 것으로 보인다. ‘미시USA’는 이 광고를 통해 “세월호 참사 후 단 한명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한 한국정부와 박 대통령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 광고는 지난달 23일 이 사이트의 ‘세월호 참사 정보/애도 게시판’에 “뉴욕타임스에 한국 정부의 무능과 언론통제를 고발하는 광고를 내자”는 글이 올라오면서 촉발됐다. 같은 달 29일 미국의 캠페인 모금사이트인 인디고고(INDIEGOGO)를 통해 광고모금운동이 시작됐고, 8일 현재까지 3168명이 참여해 13만8394달러(약 1억4152만원)가 모금됐다. 목표액의 230%를 넘는 금액이다. 
 

‘미시USA’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오로지 IP 주소로만 소통했던 사람들이 과연 5만달러가 넘는 뉴욕타임스의 전면 광고비를 모을 수 있을까 하여 처음엔 모두 반신반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에게 소리쳐 책임을 묻고, 그 외침이 보수 언론의 눈가림에 진실을 보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외신과 해외 언론을 통해서라도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부들이 생활비를 아껴가며 자발적으로 주머니에서 꺼낸 4달러, 10달러, 20달러들을 모아 전면광고를 실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광고는 ‘Sewol Ferry has sunk, So has the Park Administration(세월호와 함께 박근혜 정부도 침몰했다)’는 제목과 함께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침몰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배 바깥에는 침몰 후 구조한 숫자를 뜻하는 0과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평균 나이(16), 총 탑승객 수(476) 등의 숫자들이 적혀있고, “누가 이 숫자들을 책임질 것인가? 박근혜 정부다!”라는 글귀도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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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T동지회는 왜 해경에 격분했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5/09 12:58
  • 수정일
    2014/05/09 12: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05/09 [11:35]  최종편집: ⓒ 자주민보
 
 
 

김명기 UDT동지회 잠수가 세월호 사고 발생 후 며칠 뒤 뉴스k와 나눈 대담을 보면 해경과 언딘은 학생을 구조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명백히 증명된다.

선박전문가인 신상철 진실의길 대표는 세월호 사고 초기 세월호는 순식간에 뒤집어졌기에 공기주머니(에어포켓)이 잘 형성되었을 것이라며 배의 머리가 물 위에 오랜 동안 떠 있는 것도 바로 그 안의 공기 주머니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어서 신속하게 구조활동을 펴야 한다고 온갖 매체를 통해 애타게 주장했었다.
특히 배가 아예 가라앉게 되면 무조건 배는 옆으로 눕게 된다며 그럴 경우 공기가 다 빠져나가게 되어 배 안의 아이들이 매우 위험해진다고 그렇게 신속한 구조를 강조했었다.

이런 이치는 사실 아주 상식적인 이치이다. 해경에서도 이를 모를 리가 없고 해수부와 해경 등 정부 기관이 밀고 있는 언딘이라는 구난 업체에서도 모를 수가 없는 이치이다. 모른다면 모두 다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그런데 위 동영상의 김명기 잠수사의 고발을 들어보면 사고 초기 해경도 언딘도 전혀 살아있는 학생들을 구조할 생각을 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10분밖에 작업할 수 없는 산소통방식의 잠수가 아니라 공기줄로 산소를 공급받는 머구리방식으로 해야 물속에서 장시간 작업이 가능해 실질적으로 배 안의 아이들을 구조할 있다며 그런 장비를 UDT 동지회에서 다 구해 왔으니 바로 구조에 투입시켜 달라고 했을 때도 이를 거부하고 언딘과 해경은 산소통방식만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3일을 다 보낸 다음에야 배의 머리까지 물에 잠기고 거의 옆으로 기울어 배안의 공기주머니가 다 흐트러진 다음에야 머구리방식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며 언딘에서도 이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 아이들 수백명을 해경에서 집단학살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분노한 세월호의 학부모들과 국민들의 주장이 결코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님을 김명기 잠수사의 고발만 봐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언딘과 해경의 유착관계에 대한 모든 언론사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 해경을 계속 감싸고만 돌고 있고 이런 해경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유언비어 유포자라며 체포 구속시키는 일까지 자행하고 있다.

침몰한 배의 내부를 촬영하고 희생된 박수현 군의 동영상을 보면 "엄마 아빠 사랑해"를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귀를 맴돈다.
한 여학생이 촬영한 침몰 세월호 내부 동영상에서 들려왔던 한 여학생의 "엄마 아빠 미안해, 사랑해"라는 흐느낌이 지금도 심장을 쥐어뜯고 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잘 알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사춘기 감정으로 마음 아프게했었던 죄송함을 엄마 아빠에게 직접 고백도 못해보고 그렇게 물에 잠겨 숨이 막혀 눈을 감으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겠는가.

그런 아이의 음성을 동영상으로 들은 부모님의 가슴은 얼마니 찢어지겠는가.

부모님과 영영해야할 이별의 시각 그 이별의 인사할 기회마저도 주지 않고 무참히 차디찬 맹공수도 바다속에 우리 학생을 수장시켜 버린 세월호 선원들과 해경 그리고 정부에 대해 반드시 죄값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 죄값을 물지 않는다면 이들은 또 다시 이런 만행을 저지르지 않겠는가.

벌써 몇 번째인가.
꽃다운 대학생 수백명히 다치고 희생된 체육관 참사가 난지 몇달이 지났다고 또 이런 비극을 초래했는가.

왜 머구리 방식으로 바로 들어가서 구조하면 구조할 수 있다는 경력많고 실력이 좋은 민간잠수사들을 바로 투입하지 않고 이 꽃다운 아이들을 이렇게 무참히 죽게 했는가.

이런 정부를 과연 언제까지 두고 보고 계속 이런 비극을 겪어야 하는가.
도대체 언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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