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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 돈이란 건 70%는 갈라주고 30%는 자기가 쓰는 것”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09/20 09:53
  • 수정일
    2012/09/20 09: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치판 돈이란 건 70%는 갈라주고 30%는 자기가 쓰는 것”
(한겨레 / 조혜정 기자 / 2012-09-20)

 

▲ 2011년 2월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경제에 관한 대정부 질문에서 박근혜와 송영선 이야기. 김경호 기자

송영선 녹취록으로 본 불법 정치자금의 세계
“조직 수두룩한데 돈 써야지
그 사람들이 자원봉사 하겠나”
친박 인사에 2억 빌려준 ㄱ씨에게
“돌려받으려는 건 잘못된 생각
그 돈은 이미 공중분해 됐다”

사업가 ㄱ씨에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용’이라며 금품을 요구한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과 ㄱ씨의 대화 녹취록에는 ‘정치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송 전 의원의 자세한 설명이 들어 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송 전 의원과 ㄱ씨의 대화 녹취록에서 송 전 의원은 “정치판 돈이라는 건, 대금을 받으면 70(%)은 이리저리 다 갈라주고, 30(%)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곳에 쓴다. 조직이 수두룩하니까 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친박계 ㅎ씨에게 2억여원을 빌려줬다가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고 송 전 의원에게 말했다. 송 전 의원은 이 돈과 관련해 “(그 돈은) 이미 공중분해가 다 된 돈”이라며 “(ㄱ씨가) 돈을 돌려받으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사람은 돈 받아서 부정축재 하려는 게 아니고, 박근혜 후보한테 잘 보이려고 모든 걸 다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에서 돈(정치자금) 받으려는 사람이 그걸로 부정축재 하고 집 사는 사람은 없다. 그 돈을 받아서 정치 돈으로 안 쓰고, 커피샵을 냈거나 아파트를 빌렸으면 원금 받은 것의 몇십%라도 (돌려)주지만, 이건 이미 공중분해가 다 된 돈”이라고 말했다. 또 “정치바닥에서 ㅎ씨 같은 사람은 바람잡이”라며 “아무리 짜봐도 그 돈은 안 나온다. (정치자금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다 갈라줬다”고 상세히 설명했다.

ㄱ씨가 ‘돈을 어디에 나눠주냐’고 묻자, 송 전 의원은 “그 밑에 조직이 수두룩하니까 돈을 써야 한다. 박근혜 이름을 갖고 움직이는 조직이 한두개냐”고 답했다. “그 사람들이 다 무슨 자원봉사를 하겠냐. 자기 포켓에서 돈 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되는(없는) 데는 (ㅎ씨 같은 사람이) 돈을 보태줘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ㅎ씨가 그 돈을 (대선이 끝난) 12월에 돌려주겠다고 한다면, 그건 다른 데서 받아서 주겠다는 거니까 ‘사고’가 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주변 지인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조달하는 정치자금이 아니라 제3의 ‘자금줄’이나 이권개입 등을 통해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비교한 것이다.

ㅎ씨는 2006년 8월 박 후보의 외곽 지지조직인 ‘한강포럼’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 후보 비선조직으로 알려진 ‘마포팀’ 운영도 주도한 인물이다. 이명박 당시 경선후보의 위장전입 의혹을 캐려고 이 후보와 친인척의 주민등록초본을 부정 발급받은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ㅎ씨는 2007년 ㄱ씨가 아닌, 또다른 재력가에게 박 후보의 “경선자금을 빌려달라”고 요구해 돈을 받았다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4900만원을 선고받았다.

송영선 금품요구 녹취파일 공개 "박근혜 대통령 만들려면..."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2541.html

 


 

송영선 녹취록 보니 “6만표면 내가 국방장관…”
(한겨레 / 조혜정 기자 / 2012-09-19 )


18일 <한겨레>가 입수한 친박근혜계인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과 서울 강남의 사업가 ㄱ씨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에는 송 전 의원의 노골적인 금품 요구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송 전 의원의 주요 발언 일부를 공개한다.

 

 

“12월에 6만표만 나오면, 내가 박 후보를 대통령 만드는 데1등 공신이 되니까 내 자리가 확보되는 거죠…제일 급한 거는 변호사비 3천만원…여의도 오피스텔 하나는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월 300만원 정도 주셔야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용’ 금품 요구

12월 대선에서 (내 지역구인 경기도 남양주갑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표) 6만표를 하려면 1억5000(만원)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면 (나를 도와주면 ㄱ씨가) 투자할 수 있는 게 (경기) 남양주 그린벨트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그 정도를 얘기한 거예요.

지역구 관리라는 게 딴게 아니에요. (주민들한테) 대선 때 (박 후보를) 좀 찍어달라, 그러려면 그 돈이 한달에 1500만~1800만원이 들어갑니다. 투표 독려라는 게 뻔한 거야. ‘네가 기름칠을 안 하면 어떻게 지역구가 돌아가냐’는 게 지역구예요. 12월에 6만표만 나오면, 내가 박 후보를 대통령 만드는 데 1등 공신이 되니까 내 자리가 확보되는 거죠. 대통령이 되면 정부에 보낼 수 있는 차관급 이상 자리가 5000개입니다. 내가 원하는 건 국방부 장관, 안 되면 차관이라도 하고 싶고. 대구시장에 출마한다든지, 다른 자리를 갈 수도 있고. 그 사람(박 후보)이 내가 이뻐서가 아니라, 자기가 국정을 끌어가기 위해서 나한테 자리를 주게 돼 있습니다.

여의도 오피스텔 마련 요구

지금 제일 급한 거는 변호사비 3000만원 그겁니다. (그 돈을 주면) 그건 기부예요. 그런데 여의도에 거처가 필요합니다. 왜 필요하냐면, 현실정치에서 떨어지면 저는 끝나거든요. 오피스텔 하나 정도는 있어야 돼요. 1주일에 사흘은 오피스텔에 근무하면서…. 남양주 운영비까지 손을 벌리면 (금액이) 너무 크고, 여의도 오피스텔 하나는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보증금 1000만원에 나 혼자 있으면 관리비 해서 (월) 120만원 정도. 7평 기준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일 도와줄) 아가씨까지 있으려면 한달에 250만원, 관리비 하면 300만원 정도 주셔야죠. 그러면 (여의도의) 연락 사무실은 됩니다. 15평이 제일 좋은데, 밥도 끓여먹고 해야 되니까. 여의도에 15평 아파트도 있어요. 현실적으로 사무실 겸 집으로는 15평이 좋죠. (그런데) 그렇게까지 남한테 손 벌리는 게 정말 싫으니까. (당신은) 한 달에 200만~300만원 주는 그런 쩨쩨한 사람이 아니니까, 후원회장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4월 총선 ‘돈 공천’ 암시?

목표가 있을 때는 어떤 고통도 고통이 아니더라니까. 지금 내가 계속 괴로운 게 목표가 없어서 그래요. 그렇게 돈 몇 억원 때문에…. (내가 대구에서) 공천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ㄴ의원한테 3억만, (아니) 2억만 갖다줬어도 내가 공천을 받았을 텐데. ㄴ의원이 (박 후보의) 최측근이에요. 박 후보 사람 쓰는 거 실망이죠. 나는 돈을 안 줘서 공천을 못 받았어요.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5523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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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올케 서향희 씨 사돈의 '수상한' 재판

박근혜 올케 서향희 씨 사돈의 '수상한' 재판

[단독] "'박근혜 정권 잡으면 재기할 수 있다' 하더라" 소문도…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9-20 오전 10:16:10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올케 서향희 변호사의 사돈이 12억 원 대 사기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가 나온 배경을 두고 의혹이 일고 있다. 사기 정황이 상당한데, 검찰과 법원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향희 변호사는 박 후보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부인으로 삼화저축은행 고문 변호사를 맡는 등 의심을 살만한 행보를 보여, 새누리당 경선 당시 김문수 경기지사가 "만사올통"이라는 신조어로 비판을 하기도 했다.

지난 5월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9부(천대엽 부장)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장수홍 전 청구그룹 회장에게 1심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10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박윤해 부장)는 2006년 8월부터 미군부대가 들어설 경기도 평택시의 개발 규제가 풀릴 것으로 판단, '평택 테크노폴리스 개발사업'(면적 4.3㎢, 사업비 3조 7000억원) 추진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장남 장 모 씨의 친구 서 모 씨에게 개발 사업이 큰 이익을 낼 것처럼 속여 12억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장수홍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장 전 회장의 차남 장 모 씨는 박지만 회장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의 동생 서 모 씨와 지난해 8월 결혼했다. 즉, 장 전 회장과 서 변호사는 사돈 지간이다.

피해자 서 씨는 "장 전 회장이 엉터리로 사업을 진행시켜왔고, 여러가지 문제될만한 정황들이 있었는데, 1심 무죄가 나온 후 5~6차례 검찰에 증거가 될만한 자료들을 제출했다. 그런데 검사 측이 서둘러 변론을 중지시켜 버렸다. 그래서 같은 자료를 재판부에 내고 공판 재개를 신청했다. 검사 측은 명백한 정황 증거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 전 회장은 '박지만의 사돈'이라는 배경이 있는 인물"이라면서 "석연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민사 소송에서 장 전 회장은 피해자들에게 줄줄이 패소를 했으나 형사 재판에서 사기 혐의가 입증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장수홍은 누구?

 

▲ 박지만 씨와 서향희 씨 ⓒ뉴시스

장수홍 전 회장은 73년 청구종합개발을 세워 90년대 말 재계 순위 30위권의 청구그룹을 만들었다. 대구 출신이었던 장 전 회장은 승승장구할 당시 '대구 이건희'로 불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청구그룹이 97년 부도가 난 후 장 전 회장은 1472억 원의 횡령 배임 혐의로 98년 구속됐다. 2심에서 징역 5년이 확정돼 2003년 6월 만기 출소를 했다. 현재까지도 1000억 대 부채를 지고 있는 '신용불량자'다.

그런 장 전 회장은 이후 2006년 6월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을 계기로 새로운 사업을 벌인다. 이미 전과자인 그는 자신의 지인을 대표로 내세워 주식회사 에코지구(구 하이베어코프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상설 직원이 장 전 회장을 포함해 4명 정도에 불과한 회사였다. 장 전 회장은 정부가 평택시에 대해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줄 것으로 예상하고 2006년 6월 에코지구를 설립한 뒤 그해 8월부터 '평택테크노폴리스 개발사업'을 추진한다. 장 전 회장은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월까지 KB국민은행,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삼성물산 등으로부터 '참여의향서'를 발급받고, 2007년 2월 평택시와 "주식회사 에코는 투자회사 금융기관 건설사 등으로 이뤄진 특수목적법인(SPC)를 설립해 본 사업을 추진한다"는 조건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장 전 회장은 2007년 3월 10일, 자신의 장남 친구인 서 모 씨에게 차용증을 써 주고 "엄청난 이익이 예상되는 사업이며, KB국민은행 등으로부터 출자의향서를 받았다.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10억 원을 빌려주면 이자를 월 3부로 산정해 2년 내에 원리금을 상환하겠다"며 10억 원을 빌렸다. 같은 방식으로 2008년 5월 2억 원을 추가로 빌려 총 12억 원을 빌렸다.

그러나 금융기관, 건설사 등은 단 한 곳도 에코지구의 SPC 설립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2007년 10월 평택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게 됐음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자, 평택시는 2011년 업무협약을 해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평택시 측에서 에코지구의 업무협약 이행을 위해 노력했지만 에코지구가 끝내 SPC조차 설립하지 못하자 2011년 1월 업무 협약을 해지했다는 점이다. 당초 장 전 회장이 이 이 사업을 추진할 능력과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이 가는 지점이다.

서 씨는 "상환 만기일이 지난 후 빌려준 돈을 받으려 하자 장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5월 '한달만 기다려 달라'고 한 후 한 달 후인 6월에 다시 만나니 '야이 XX야 내가 너에게 돈 갚을 게 뭐 있냐'고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차용증이 존재함에도 장 전 회장은 "당신이 나에게 투자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후 서 씨는 장 전 회장을 민형사상으로 고소했고, 2011년 4월 민사 재판에서 승소를 했다. 장 전 회장이 피고에게 12억 원을 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재판을 통해 법원은 '에코지구'의 실질적 주인이 장 전 회장의 지인이 아니라 장 전 회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장 전 회장이 '평택시장이 이 땅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고 떠들어"

장 전 회장이 사업을 엉터리로 추진한 정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적극성을 보였던 평택시 측에서는 사업이 무산된 이후 서 씨에게 "조건이 충족 안 된 상태에서 (장수홍 전 회장이) '(평택)시장이 이 땅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래서 시장이 '내 입장에서는 당신에게 사업권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평택시 측은 서 씨에게 "저희는 그 사람들(장수홍 전 회장 측)이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냥 (사업을) 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지구 사업에 용역사로 참여해 놓고 한 푼도 받지 못한 A사의 사정도 기가 막히다. 에코지구는 A사에 용역을 발주하는 과정에서 5억 원을 차용했다. 그러나 에코지구 측에서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해 A사는 소송을 걸었다. 당시 에코지구 측은 공식 답변을 통해 "원고가 제출한 5억 원 짜리 차용증은 같은 날 피고회사 임시 직원으로 경리 직원인 박OO이 원고 측으로부터 세무 자료를 만들어 달라고 졸라 2개월 여를 시달리다가 견디다 못해 피고 회사 대표 몰래 만들어 준 위조 서류"라고 주장했다. 경리 직원이 빚 독촉을 받다 못해 대표 몰래 위조 차용증을 써 줬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결국 에코지구는 이 소송에서 패소해 A사에 돈을 갚아야 할 지경에 처했다.

에코지구 측의 답변서에는 "평택시와 MOU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피고 회사(에코지구)는 사업 내용대로 일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11억 원을 피고회사가 원고에게 용역비로 지급한 양 원고에게 송금하고 원고에게는 그 중 10억 원은 송금 받은 다음날 피고 회사에 입금케 하고 나머지 1억 원은 부가가치세로 세무서에 납부하게 했다"는 해명이 나온다. 이는 "평택시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업 추진을 하는 억지 모습을 보였다"는 취지로 해석 가능하다.

건설 대기업 초청해 떠들썩한 MOU…정작 해당 기업은 참여 안해

석연치 않은 정황은 또 있다. 2007년 2월 6일자 <조선일보>는 에코지구가 주관하는 이 사업과 관련해 "산업단지의 도시디자인은 미국의 도시개발회사인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사(De Stefano & Partners)가 담당한다"고 보도했다.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는 세계적인 건설 기업이다. 평택시와 MOU를 체결할 당시에는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측 VIP들이 참석했는데, 당시 장 전 회장이 요청을 하고 비용을 대 이들을 포토라인에 세웠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측에서는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에코지구 측을 100% 신뢰할 수 없어서 선금을 요구했으나, 사업비가 충분히 안 돼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측은 "(우리 측이) '사업비가 준비되면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장수홍 전 회장은 '나중에 다시 알려주겠다'고 나서 연락이 단 한번도 없어서 우리 측은 '이 프로젝트는 안 가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떠들썩한 MOU 조인식을 치러놓고, 후일 정작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측에 "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연락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장 전 회장이 끌어모은 대기업, 금융회사 등이 제출한 '참여 의향서' 역시 사실상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참여 의향서' 자체가 "사업비 등이 마련되고 사업 윤곽이 드러나면 투자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업 추진 초반 투자자를 모으는 데는 전시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와 같은 거대 기업의 경우 이같은 '종이 조각'을 보고 투자할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결국 삼성물산, 국민은행을 비롯한 대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같은 속사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정권 잡으면…" 소문에 장수홍 "터무니 없어"

결국 에코시티는 사업 성사를 위해 적극성을 보이던 평택시에 "일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허위로 의심될만한 행동을 보였다.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라는 거물 기업을 떠들썩하게 끌어들였음에도 이들과 계약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판부는 장 전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금원 수수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사업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없을 뿐 아니라(…)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경제 여건의 악화로 이 사건 사업 추진이 어렵게 돼 변제하지 못한 것이므로" 장 전 회장이 사기를 치려 한 고의가 없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평택시나, 스테파노 앤 파트너스 등이 "장 전 회장은 사업 추진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돈을 만들 능력이 없어 보였다"는 취지로 사업에서 발을 뺐는데, 재판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쩔 수 없이 사업 추진이 어려워졌다는 취지의 피고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서 씨가 "장 전 회장이 추진하는 이 사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금원 대여"가 이뤄졌다고 판결했다. 서 씨가 차용증을 받고 10억 원을 건넨 이후 에코시티 사무실에 1년간 출근했던 점, 건축 기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운 적이 있다는 점 등을 통해 사기였다면 피고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내용도 판결문에 포함됐다.

그러나 서 씨는 "건축 기사 자격증이 있으면 대형 개발 사업이 어떻게 추진되는지 다 아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장 전 회장은 사업을 추진할 의사가 없었다는 정황들이 많은데, 어떻게 무죄가 나올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단순 형사 사건 수사와 재판이 1년 가까이 진행됐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고 서 씨는 지적했다. 게다가 장 전 회장은 과거 재계 유명인사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서향희 씨 일가와 사돈을 맺였다. 장 전 회장의 법률 대리인은 최근까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변호사다. 또 "최근 장수홍 회장이 지인에게 '박지만이 부모를 잃고 나를 아버지처럼 여긴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박지만이) 재기하도록 도와줄 거니까, 내 사업이 잘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장 전 회장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전면 부인했다. 서 씨는 "수 차례에 걸쳐 추가 정황 자료를 검찰 측에 제출했지만 검찰 측에서 변론 종결을 해 황당했다"고 주장했다. 원고인 서 씨의 '공판 재개' 요청으로 장 전 회장의 사기 사건에 대한 공판은 21일 열릴 예정이다.

 

<프레시안>은 장수홍 전 회장의 입장을 들어 보았다. 장 전 회장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옛날 같으면 무고죄로 처벌받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장 전 회장과 인터뷰 전문.

사기로 불구속 기소 됐는데, 1심 무죄가 나왔다.

지금은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15년, 20년 전에 여러분들이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지 지금은 자연인이다.

아드님이 서향희 씨 동생 분과 결혼을 하셨다. 박지만 씨 부인 되시는 분과 사돈이 됐다. 그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야기를 그렇게 자꾸 만드시니까, 그런데 이거(재판)는 그거하고는 전혀 별개 문제다. 별개 문제고 그런 관심을 안 가지시면 좋겠다. 남의 사생활 가지고 너무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

고소한 측은 억울하다고 한다.

억울하니까 재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 아니냐. 그것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장 전 회장이 박지만 씨 사돈이라 모종의 압력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 그런 의혹도 제기된다.

그렇게 말하면 그 친구 걸립니다. 엉뚱한 소리를 그렇게 자꾸 하고, 사람이 피차간에 잘잘못이 다 있는 것 아니냐. 그것을 엉뚱한 쪽(외압 의혹)으로 풀고 나가면 안 된다. 경찰에서도 조사를 받았고, 검찰에서도 조사를 받았고, 1차 재판에서 조사를 받았고, 2차 재판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 법으로 판단해야지. 법 외적으로 해갖고 누구와 사돈이 되네 뭐 하네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장 전 회장이 사석에서 박지만 씨 등과 관계를 과장한다는 얘기들도 나온다.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본인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이다.

누가 그래요? OOO이는 (내가 사석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그런 것 모르는 사람이다. 어쨌든 간에 얘기가 나로서는 다 쓸데없는 얘기다. 내 15년 전, 20년 전에 상처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더이상 내가 (인터뷰에) 응할 수가 없다.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너무 현실하고 동떨어진 얘기다.

고소인은 '검찰에 증거 자료를 제출했는데 일방적으로 변론 종결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서 변론 종결을 하면 검찰에서 얘기를 해야지. 검찰은 검찰 나름대로 판단 기준이 있을 것 아닌가.

장 전 회장의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이고 최근에 법복을 벗었다. (전관 예우 관련) 이런 저런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지법 판사라고 하면, 자기도 변호사를 판사 출신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고소인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건가?

터무니없다. 그래서 상대방이 터무니 있고 없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재판 아닌가. 저 쪽에서 자꾸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불공정한가. 돈을 써도 자기가 썼고, 힘이 있어도 자기가 힘이 더 있는데 어떻게 불공정한 게 되나. 불공정하면 경찰에도 불공정하고 검찰 1차 조사도 불공정이고 검사 기소되서 판사가 1심에도 불공정이고 2심에도 불공정인가? 그런 법이 어디 있나.

민사에서는 장 전 회장이 패소를 했던데?

내가 차용증을 써 줬기 때문에 그게 의미가 돼서 패소가 된 것이다. 민사 소송에서 (져서) 언제까지 갚아라 하면 갚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민사 소송에서 이겨놓고 형사에서 사기로 걸면, 옛날 같으면 무고죄로...나도 역량이 있고 힘이 있는 거 같으면 무고죄로 나도 대응을 할 수 있는 그런 소지가 있다. 덮어놓고 남을 흔들면 되는 게 아니다. 그래놓고 쓸데없이 옆에 누구하고 어떻게 되니, 뭐가 어떻게 되니, 그거는, 법 외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한다고? 어리석은 친구다.

오는 21일에 공판이 재개된다. 과거 사업을 추진할 때 의도적으로 사기를 염두하지 않고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을 했고, 상황이 안 좋아져서 사업이 끝나면서 발생한 사안이기 때문에 '사기를 치지 않았다'는 입장인가?

그렇다. 나도 평택 프로젝트 때문에 일이 이렇게 엮여진 것이다. 나도 평택 프로젝트에 십 수억원을 집어 넣고 손해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려면 돈을 벌수도 있는 것이고 털어먹을 수도 있지 않나. 평택시에 대해서는 내가 피해자다.

평택시에 법적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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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에 담긴 충격적인 사실

 


안철수 원장이 어제 공식적인 대선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어제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그가 대선 출마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했지만, 안철수 원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저는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국민의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말함으로 대통령 출마에 관한 공식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 안철수 원장도 이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아닌 안철수 후보로 불리게 됐습니다. 그의 대선 출마는 예견됐던 일이지만, 아이엠피터는 어제 그의 대선 출마 선언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됐습니다.

그것은 그가 했던 기자회견의 내용과 출마 선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고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의 대선 출마 선언을 정치공학적인 접근으로 해석해서 앞으로 그의 행보를 예상할 것인가? 아니면 그가 했던 대선 출마 선언문을 말 그대로 분석하여 그의 생각을 바라보느냐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정치공학적인 접근 방법보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정치를 시작했는지를 알아봄으로 그의 대선 출마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 정권교체? NO 정치 교체'

어제 안철수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은 그의 대통령 출마 선언문에는 '정권교체'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분 힘들지 않은 분들이 없었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너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라는 말은 있었지만, 정권교체에 대한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안철수 원장이 그간 보여줬던 정권교체의 의지가 18대 대통령 선거에 반영될 것이라 믿으며,정권교체를 갈망했던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왜 그는 정권교체를 통해 저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고통받는 국민을 위한 정치의 해결법으로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현 정권의 문제보다 본질적인 '정치'의 문제점을 고민했고, 고통 받는 국민을 위해서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능사가 아님을 깨달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된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

이 말들은 모두 안철수 후보가 대선 출마를 위해 비공개로 많은 사람을 만났을 때 들었던 말입니다. 안철수라는 인물은 이런 말들 때문에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즉 안 후보는 현 정권이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바뀌어야 이런 문제가 풀어질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정권교체를 위해서가 아닌 '정치 교체'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 아이엠피터는 정치개혁보다 정치 교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이제 썩은 것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시대라는 의미로 '정치교체'가 더 낫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권 단일화, 어떻게 될 것인가?'

정권교체를 갈망했던 국민이 바라볼 때에 안철수 후보는 어제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장에서 명확하게 야권 단일화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①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필요
② 국민들이 동의해야 한다는 원칙

안 후보는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고 이것이 충족됐다는 국민의 동의가 있다면 야권단일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참 애매모호합니다. 그런데 이런 그의 발언을 앞서 말한 '정권교체'라는 전제를 대입시키면 불분명하지만, '정치교체'를 대입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는 야권단일화를 통해 정권이 교체돼도,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대선이 분열과 증오의 정치로 된다면, 선거에 이겨도 국민의 절반 밖에 마음을 얻지 못하며, 이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과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정치를 바뀌고, 이것이 대선 이후에 통합과 덧셈의 정치로 이루어져, 그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이런 그의 구상에 대해 아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의 삼자 회동(?)을 제의했습니다. 대선 주자 세 사람이 만나서 아예 이런 논의를 함께하자는 것입니다.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주장은 적과 만나자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나 그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닌, 각 계층의 세력으로 봤고, 이 세력들이 가진 문제점을 각자가 해결하면서, 18대 대통령이 누가 되든 위기를 극복하는데 협력해야 한다고 제시한 것입니다.

그의 말이 쉽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야권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는 어려워졌을까요? 아이엠피터는 아니라고 봅니다. 앞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벽으로 저 또한 민주당의 개혁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모르겠지만,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을 개혁하고, 안철수 후보와 18대 대통령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여 그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떤 부분에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합께 논의한다면, 그 과정에서 야권단일화 내지는 공동정부의 구성까지 나아가갈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안철수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의 키는 안철수가 아닌 문재인과 민주당, 그리고 야권지지세력이 가진 셈입니다.

' 정치인 안철수,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안철수 원장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면서, 안랩 이사직과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선에 패배하더라도 정치인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답변에 "제가 지금까지 몇 번 직업을 바꿨다. 그런데 도중에 그만둔 적 없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정치인으로 거듭나기로 한 이상, 열심히 이 분야에서 일해서 조금이라도 우리나라 긍정적 발전을 이루는 사람이 되겠다'며 앞으로 안철수 원장이 아닌 정치인 안철수로 살아가겠다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이제 안철수 원장은 '정치인 안철수'로 변했습니다. 그의 변화에 대해 그가 가려고 하는 정치의 방법에 관한 의문과 검증,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가 왜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 그가 무엇을 목표로 정치하려고 하는지만 봐도 충분합니다.



 


아이엠피터가 볼 때에 정치인 안철수는 하나의 시민 세력을 구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시민세력은 기존 정치의 틀을 깨고, 국민이 생각하는 가장 상식적인 정치를 실현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을 기성 정치세력이 보면 우숩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등장은 새로운 정치 개혁의 한 세력으로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 봅니다.

 

 

안철수 후보의 이런 주장을 왜 아이엠피터는 높이 평가할까요? 그것은 정치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며 썼던 기존의 생각과 그의 정치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나 야당이 정권교체를 한다고 대한민국이 100% 잘 살거나 올바르게 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올바른 인물이라고 해도, 그들 주위에 있는 정치세력들이 변하지 않으면, 암적인 세력들이 정치세력과 손잡고 그들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엠피터는 그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양당 정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세력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를 통해서 정치가 바뀔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해주는 역할로, 그동안 얘기했던 동반자적인 존재로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좋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힘을 보태 그 정책을 통과시킬 수 있고, 잘못된 정책을 통과시키려는 세력을 막거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문제점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로 서로 상호 보완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특정 정치 세력의 준동을 정치 개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철수 후보가 등장하니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불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그를 통해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더욱 변하고, 정치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안철수,문재인 두 사람만이 대한민국의 구원자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문재인 후보도 안철수 후보도 기성 정치인과 똑같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안철수의 대선 출마를 대선 주자의 등장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 개혁 세력의 등장으로 보고, 정치가 바뀌는 하나의 사건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이제는 기성 정치세력이 권력쟁취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데 골조 하나만으로 안됩니다. 그 골조 사이에 어떤 단열재를 넣느냐에 따라 집이 보기에는 번듯해도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울 수가 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문재인이라는 골조에 안철수라는 단열재를 넣고 싶고, 어떤 사람은 안철수라는 골조에 문재인이라는 단열재를 넣으려고 할 것입니다. 골조 하나만으로 집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골조와 단열재 그 둘, 모두를 함께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 어떤 자재를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남은 대선 기간에 그 두 사람이 보여줄 정책과 비전에 따라 차이가 날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은 선택의 기쁨을 집권세력은 폐자재로 전락하는 위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2012년 12월 여러분은 어떤 집을 짓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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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장준하 타살의혹 밝히자”

 

누가? 왜?… “장준하 타살의혹 밝히자”
 
19일 국민대책위 선포식, 무기한 100만인 서명운동 나선다
 
정운현 기자 | 등록:2012-09-19 14:05:55 | 최종:2012-09-19 14:38: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암살 의혹규명 100만인 서명운동 선포식'이 열렸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맞서 싸우다 1975년 8월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실족사’로 생을 마감한 고 장준하 선생의 타살의혹 규명을 위한 국민대책위가 발족했다.

 

 

‘고 장준하 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준비위)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암살 의혹 규명 100만인 서명운동’ 선포식을 갖고 장 선생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국가가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날 선포식에서 준비위측은 “1975년 사망 당시 실족사라는 당국의 발표를 유족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며 “이장 과정에서 드러난 장 선생의 유골은 암살을 웅변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준비위는 “암살 의혹 규명을 유일한 목표로 오로지 국민의 힘에 의존해 활동하겠다”며 “특정 정파나 정략적 이용은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준비위원으로는 장 선생의 장남 호권 씨, 유광언 장준하 기념사업회장 등이 참여했다.

준비위 이준영 상임위원은 “10월 초 대책위 정식 발족식을 겸한 문화제 성격의 국민대회를 열 것”이라며 “100만인 서명운동과 별도로 정부에 장 선생의 유골에 대한 민관 합동감식을 요구할 계획이며, 정부가 이를 거부할 경우 민간 차원에서라도 법의학팀을 꾸려 유골 정밀감식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올 대선을 앞둔 시점인 만큼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상임위원은 “정밀감식은 통상 3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대선을 노린 정쟁이 아니다”고 밝히고는 “일부의 주장처럼 대선에 영향을 미칠 생각이었다면 8월부터 감식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지로 이번 장 선생의 타살의혹 논쟁은 지난 8월 파주 ‘장준하 기념공원’ 개장을 맞아 선생의 유해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장남 호권씨가 “유골을 감식한 결과 두개골에 난 5~6cm 크기의 구멍이 ‘인위적 상처’라는 소견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재점화됐다.
 

 

한편, 준비위측은 이날 서명운동 시작과 함께 준비위 공식 홈페이지(www.who-how.or.kr)도 문을 열 예정이다. 홈페이지 주소인 ‘who(누가)-how(어떻게)’는 누가, 어떻게 장 선생을 암살했는지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준비위는 트위터 계정(@whohow1)을 통해 서명운동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소설가 이외수 씨, 문성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파워 트위터리안의 소개로 개설 이틀만에 6000명 이상이 준비위 계정을 팔로우했다.

서명운동은 전국 각지의 오프라인 서명운동에 이어 진실규명 활동을 함께할 국민대책위원도 모집할 계획이다. 준비위는 서대문구 한국기독장로회 총회교육원 내 생명의집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이날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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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세상에 불 지르러 온 ‘길 위의 예수’

혼탁한 세상에 불 지르러 온 ‘길 위의 예수’

 
2012. 09. 19
조회수 1821추천수 0
 

문정현 신부와의 대화
 
문정현 / 길 위의 신부로 알려져 있을 만큼 칠십 평생을 낮은 곳을 지키기 위해 투쟁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 지금은 평화로운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정마을로 이사해 ‘강정상단’ 대행수로 일하고 있다.
 
김덕진 /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인권 지킴을 위해 노력하는 젊은 활동가이다.

 

20120919_1.JPG » 문정현 신부“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가복음 12장 49절
 
생명이 위태로운 곳에, 평화가 깨어지는 곳에, 억울하게 쫓겨나고, 빼앗긴 이웃들이 눈물 흘리는 곳이면 흰 수염의 노 사제를 만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을 ‘길 위의 신부’라는 칭하며 편안한 성전을 떠나 세상 한가운데 교회를 세우며 살아 온 문정현 신부. 지긋지긋했던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1987년 서울의 봄이 지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 동안에도 그는 경찰의 방패에 밀려 나뒹굴었고 검찰의 조사를 받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연히 이명박 정권 4년 내내 그는 길 위에 있었다.
험하고 먼 길을 돌아 제주 강정마을의 주민이 된 문정현 신부를 만났다. 뜨거운 햇살과 바닷바람으로 검게 그을린 노 사제는 제주 강정이 자신의 마지막 싸움터가 될 것이라며 태풍이 휩쓸고 간 구럼비해변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태풍 무이파가 제주를 포위하여 모든 항공편과 배편이 결항되어 아무도 제주 밖으로 나가지 못한 날,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구럼비해변과 서귀포시의 한 식당에서 문정현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덕진(이하 김): 신부님, 이제 강정 내려오신지 얼마나 되셨죠?
문정현(이하 문): 7월 6일에 완전히 이사 왔으니까 한 달이 훨씬 넘었네.
 
김: 신부님께서 강정에서 사시겠다는 말씀하셨잖아요. 지금 사시는 집이 무척 좋던데요. 어떻게 구하셨어요?
문: 이사 오기 일주일 전에 평화바람 식구들 오두희, 딸기 등과 같이 강정에 왔었어. 5박 6일 동안 오동나무집이라는 민박집에 공짜로 머물면서 주민들을 만나고, 매일 구럼비해변을 나갔어. 그때 결심했지. 여기 와야겠구나, 강정이 내가 살 곳이구나 하고 말이야.
 
김: 이른바 “오동나무집 구상”이군요.
문: 그 집에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평화상단도 생각한 거야. 그래서 마을회장님한테 부탁을 했지. 강정에 와서 살려고 하니 집 좀 구해달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강동균 회장이 강정에서 제일 좋은 집을 구해주셨어. 1층에는 주인이 살고 우리가 2층에서 살아. 그런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집세도 안 받으시고 너무 잘해주셔. 직장일과 아픈 식구가 있어서 열심히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시다면서 말이야. 나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집을 내어 주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어. 우리가 월세 비슷하게 봉투를 드렸더니 질색을 하시면서 일절 안 받으시겠다는 거야, 하하. 어디에서나 난 늘 좋은 사람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아, 참 감사한 일이야.
 
김: 평화상단 시작하시기 전에 제주 갈치랑 고등어랑 파시기도 하셨잖아요. 그때가 재작년인가요?
문: 2008년은 평화바람 식구들과 평화유랑을 다닐 때인데, 그때 제주에 왔었고 제주 해군기지백지화대책위 사람들을 만났지. 제주 해군기지가 화순에서 위미, 위미에서 강정으로 왔잖아. 그때 갈치랑 고등어 장사를 시작했지. 많이 팔았어. 천삼백 만원인가 벌어서 대책위에 드렸지.
 
김: 와! 대단하시네요. 이번 평화상단의 젓갈, 멸치 장사 목표는 얼마세요?
문: 돈이 있어야 싸움을 하지. 주민들이 투쟁하다가 벌금선고도 받고 손해배상 소송도 걸려 있어. 각종 법률 대응하는데도 돈이 들고, 버티고 지키는 데도 돈은 필요해. 그래서 한 오천 만원은 벌어서 전달해야지 싶은데 벌써 천만 원은 전달했어. 이번 평화상단은 반응이 좋아. 주문량이 많아서 물량대기에 바빠. 또 우리가 가끔 실수도 해서 ‘소라젓갈’ 주문한 집에 ‘참조기젓갈’이 배달되기도 하고, 여름에 포장이 터지기도 했는데 소비자들이 웃으시면서 다 양해를 해주셔. 이건 이 사업이 된다는 뜻이거든. 게다가 광주대교구 옥현진 주교님도 지난주에 구럼비해변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시면서 평화상단을 적극지지 하시겠다고 하셨으니 이제 별로 걱정 안 해.
 
김: 갈치 장사하시던 2008년하고 평화상단을 꾸리신 지금하고 강정마을 분위기는 어때요? 그때랑 많이 다른가요? 아니면 비슷한가요?
문: 오랫동안 싸움을 하면 당연히 지치게 되어 있어. 그리고 제주도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이 문제가 전국적인 사안으로 부상하지 못했던 것도 분명히 있어. 그런데 주민들이 대단해.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아서 상처도 아픔도 있었는데 흔들림 없이 버텨 온 거지. 물론 도법 스님이 이끄시던 생명평화탁발순례, 개척자들, 또 평화활동가들이 주민들과 함께 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봐. 거기에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이나, 평화활동가 송강호 박사, 주민대책위 고원일 위원장 등이 구속되고 단식하면서 투쟁이 불이 붙었어. 특히 지금 구속되어 있는 최성희라는 여성이 대단한 활동을 했어. 나도 놀랬고, 주민들도 많이 자극을 받은 것 같아.
 
김: 저도 인터넷 언론 등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대단했는지는 잘 몰랐어요. 그분들이 신부님의 강정 행을 재촉했나 봐요.
문: 진작 강정에 오려고 했었어. 2008년에 평화유랑이 끝나면 강정에 오려고 했지. 그런데 2009년 초에 용산참사가 터졌잖아. 공권력 때문에 철거민 5명, 경찰 1명, 여섯 명이나 죽은 처참한 사건인데, 용산에서 장례 치를 때 까지 매일 미사하면서 유족들과 철거민들과 1년을 살았어. 그래서 강정에 오는 게 늦어 진거지. 그런데 2010년에는 또 4대강 공사 저지 운동이 확대되면서 명동성당에서 사제들이 단식기도를 했잖아. 그런데 그 단식기도 중에 명동성당이 우리 사제들을 박해했잖아. 그래서 명동성당에서 6개월이 넘게 나 혼자 기도를 시작했어. 그래서 또 강정에 오는 게 늦어졌지. 용산과 명동에서 기도 안 했으면 진작 강정에 왔을 거야.
 
김: 용산이나 명동에 계실 때도 강정이야기 종종 하셨잖아요. 연락도 계속 하셨고요.
문: 그럼, 양윤모 선생은 명동까지 직접 오시기도 했고, 고유기 집행위원장, 고권일 주민대책위원장 등하고는 연결이 되어 있었지. 연락이 오고 가고 했어.
 
김: 강정에 이사 오시면서 편지를 쓰셔서 전국에 보내셨다면서요?
문: 응, 신문이랑 인터넷언론에도 실린 글인데 그 글이 사실 호소문이고 편지거든. 그래서 전국 성당들, 사제단 신부님들에게 다 보냈어. 그때 한 자매가 내가 명동성당에서 사순절기도회를 하면서 했던 강론을 모아서 소책자로 만들어왔어. ‘참사람 되어’라는 책자를 혼자 발행하시는 분인데 원래 조용히 숨어서 일하시는 분이야. 독자들에게 읽게 하고 싶어서 만드셨다고 하시더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자비로 천 권을 만들어 오신거야. 그래서 그 강론집과 편지를 같이 보냈지. 곧 응답들이 있으실 거라고 믿어. 그 편지 보내고 여기 들어왔는데 주민들이 “신부님이 오셔서 든든해요”라고 하니까 나도 책임감이 생기고 그래.
 
김 : 신부님이 강정에 오고 나서 큰 싸움이 한 번 있었지요?
문 : 그렇지. 7월 24일 날. 7월 21일에 조현오 경찰청장이 제주를 순시했어. 헬기를 타고 강정마을을 돌아보고는 불법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갔어. 그때부터 여긴 비상이었어. 24일은 일요일이어서 주일미사도 함께 드리고 음식도 마련해서 주민들하고 나누어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오후에 강정마을에서 구럼비해변으로 진입하는 도로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으로 삼성과 해군이 보낸 용역들하고, 경찰 수백 명이 몰려온 거야. 주민들이 막아서니까 막 욕을 하고 폭행하고 난리가 났지. 주민들하고 활동가들이 온몸으로 싸워서 쫓아냈어. 그날부터 밤새서 지키고 그런다니까.
 
김: 마을회장님이 잡혀가신 날이 그날이신가요?
문: 아니, 그날은 15일이야. 마을회장님이 집에 있는데 경찰 수십 명이 와서 다짜고짜 연행해갔어. 출석요구서도 한 번 밖에 안 보냈고 나중에 출두하겠다고 경찰에 연락도 했다는데 말이야. 조현오 경찰청장이 왔다가 가고 나니 제주 경찰들이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 연락받고 마을회장님 집에 간 고권일 주민대책위원장과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까지 연행해 갔어. 마을에 난리가 났지.
 
김: 그래서 그날 어떻게 되었어요?
문: 당장 서귀포 경찰서로 쫓아갔지. 그런데 서귀포 경찰서가 아주 빡빡하더라고. 면회도 안 시켜주더니 세 사람을 제주 동부 경찰서로 빼돌렸어.
 
김: 저런, 웃기는 경찰들이네요. 뭐가 무섭다고 빼돌려요?
문: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동부경찰서로 바로 쫓아갔지. 그랬더니 여기서는 또 우습지도 않게 경찰서장이 나와서는 서장실로 안내를 하는 거야. 서귀포경찰서는 문부터 걸어 잠그더니만 면회도 순순히 시켜주는 거야.
 
김: 왜 그랬죠? 동부경찰서장이 혹시 천주교 신자 아니에요?
문: 아니야. 그건 아닌데 굳이 심하게 할 이유가 없었겠지. 자기 관할서도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있는데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마을회장님을 면회 온 거야. 난 얼굴도 모르니까 몰랐는데 사람들이 도지사라고 하더라고, 마을회장이 경찰서에 체포되어서 왔다고 도지사가 면회를 온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도지사의 면회를 마을회장님이 거부해서 도지사가 못 만나고 돌아갔어. 강동균 회장, 대단한 사람이야.
 
김: 그분이 이장도 겸하고 계시다면요. 체포영장에 의해 경찰이 연행해 간 마을이장을 도지사가 면회 오고, 그 도지사의 면회를 마을이장이 거부한다니 아무리 제주도가 작다고 하고, 도지사가 무소속이라도는 하지만 제주도가 좀 특별한 고장이긴 한 것 같네요.
 
김: 신부님은 천주교 사제로 따지면 전주교구 신부님이시잖아요. 그런데 다른 지역에 많이 이주해 다니셨어요. 신부님의 이주 역사가 남한사회 투쟁의 역사인 것 같습니다.
문: 응, 그렇게 이주하면서 살게 되었네.
 
김: 은퇴하시고 평화바람 식구들과 자리 잡은 신 곳이 군산이시죠? 군산이 고향이신가요?
문: 익산이야 내 고향은 익산이지.
 
김: 맞아요. 익산이시죠. 익산이 고향이시고 전주에서 오랫동안 사목을 하셨고, 평택 대추리에 사셨고, 용산 4구역에 가서 사셨죠?
문: 매향리에도 가서 살았었지.
 
김: 익산, 전주, 화성 매향리, 평택 대추리, 군산, 서울 용산, 명동, 이제 제주시네요. 섬에 사시는 것은 처음이시지요?
문: 그러네, 섬은 처음이네.
 
김: 섬이라서 조금 다른 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뭍하고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
문: 많이 다른 것 같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서도 다른 것 같고, 시민단체들도 좀 다른 것 같아. 아직 내가 평택 대추리 살 때처럼 마을 주민들과 한 덩어리가 못 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그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
 
김: 신부님께서는 현지 주민들과 금방 한 식구 되시잖아요. 이번에도 대추리나 용산처럼 싸움이 끝날 때까지 강정을 안 떠나실 것이지요?
문: 응, 그렇지. 비행기 값도 비싸서 왔다 갔다 할 수도 없어.
 
김: 제가 지난 10년 동안 신부님 투쟁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곁에서 지켜보며 살았는데, 이번 제주도 싸움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여중생 사망사건 때나, 매향리, 대추리, 용산참사 때도 항상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신부님들은 함께 하셨지만, 주교님들이나 천주교회의 주류에서 신부님을 지지하거나 응원하신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이번에 강정에 오셔서는 제주교구의 환대를 받으셨어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으신데요. 제주교구장이신 강우일 주교님께서 스쿠터도 선물로 주셨다면서요. 강 주교님은 또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시기도 하시잖아요.
문: 그래, 처음 있는 일이지. 돌아가신 전주교구장 김재덕 주교는 이해해주셨지만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시거나 하시진 않았지. 현장에서 생활하는데 그 지역의 교구장과 뜻을 같이 하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지.
 
김: 지금까지 강우일 주교와 광주대교구 옥현진 주교께서 구럼비에 오셔서 미사를 하셨고, 앞으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와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께서도 구럼비에 오신다니 사실 신기해요. 저도 이런데 신부님께는 더 특별하시겠어요.
문: 4대강 공사 저지에도 주교님들이 나서주셨고, 이제 강정 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해서도 주교님들이 마음을 모아 주시니 여러 생각이 들어. 왜 주교님들이 그동안 사제단과 거리를 두었는가? 왜 사제단 신부들과 사목적 대화를 하지 않고 애써 모른척하고 외면해 왔던가 말이야, 참 알 수가 없어.
 
김: 언론이나 세상에서 주교님들 이야기는 다루지 않아도 사제단 신부님들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으니까요.
문: 사제단 소속의 사제들은 불이익을 많이 당했어. 강제로 안식년을 주고, 정기인사에서 제외하고, 본인의 뜻은 묻지도 않고 해외선교로 쫓아 보내고 말이야. 단지 사제단이라는 이유 로 말이야. 그래서 내가 어디에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할 때에 항상 대화하자, 토론하자 했지. 토론을 해서 우리 사제단이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납득된다면 무조건 주교님들을 따를 것이라고까지 했어. 그런데 한 번도 그럴 기회가 없었지.
 
김: 신부님이나 사제단 신부님들이나 모두 교구장 주교님들을 따르셔야하는 순명이 있으시지 않아요? 사제서품 때 그런 약속을 하시잖아요?
문: 물론이지, 내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45년이야. 평생을 싸우면서 살아왔지만 교구의 한 사제로서 주교님을 모시는 일과 교회의 위계를 거부하면서 살지 않았어. 내가 하는 일이 사목적으로 위배된다면 언제든지 순종할거야. 이런 우리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배척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지. 대화도 해보지 않고 사제단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교구 사제들에게 말하는 주교가 있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가지. 나도 그런 대화 한 번 못하고 내 갈 길을 지금껏 살아온 거야.
 
김: 그런데 제주교구 오셔서는 교구장 주교님께 스쿠터 선물도 받으시고, 나란히 미사도 집전하시고…
문: 처음 있는 일이지. 선물이 얼마냐의 문제가 아니야. 주교님들이 그렇게 하셨을 때, 우리 사제들이 얼마나 떳떳해지고 용기를 가지게 되겠어.
 
김: 용산참사 때도 늦기는 했지만 당시 서울대교구 김운회 주교님과 주교회의 정평위원장 최기산 주교님께서 용산에 오셨었지요?
문 오셨지. 하지만 힘들고 어렵게 오셨지. 조심스럽게 말이야, 조건도 많았고.
 
김: 사제단 신부님들도 용산참사 때, 참 대단하셨지요. 계절이 네 번이나 바뀌는 동안 많은 신부님들이 다녀가셨어요.
문: 용산참사 현장에서 이어간 생명평화미사는 우리 사제단의 꽃이었다고 봐야지. 우리 사제단 신부들도 누가 너의 이웃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은 거지. 남일당이 사제들의 훈련소였어.
 
김: 저도 용산에서 신부님들 진짜 많이 만났어요. 특히 사제단활동을 하지 않으시던 신부님들도 미사에 많이 오셨어요. 수녀님들도, 신자들도 그렇고. 용산참사 기도는 정말 천주교의 힘이 참으로 대단함을 보여주었지요.
문: 다들 사제로서 당연한 걸음들을 하셨던 거지. 억울하고 아픈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제도 교회 안에서 냉대를 받았지. 하지만 누구도 비난하지 못했어.
 
김: 이번 제주의 평화를 지키는 싸움이 천주교 내의 새로운 바람이 될까요?
문: 내가 사제단 신부님들한테 “평생에 천주교의 교구장이 나와 뜻을 함께해서 자리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다. 이런 교구장의 뜻이 좌절 될까 걱정된다. 교구장의 뜻이 승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어. 사제단이든 사제단이 아니든 교회의 구성원들이 여기에 의기투합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바른 길인가를 좀 뚜렷하게 보여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번 일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범 교구 차원에서 사제단과 제도 교회가 함께해서 해낸 일이 되는 거야. 나는 이걸 중요하게 보고 있는데, 모르겠어. 우리 사제단 신부님들도 여기까지 생각하시는지는…  
 
김: 지금 이 구럼비해변에서 함께 미사하시는 제주교구 신부님들도 사제단이신 분들과 아니신 분들이 계실 것 아니에요?
문: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지. 내가 타 교구 신부지만 같은 사제니까, 그리고 다들 생각과 기준이 뚜렷하니까. 우리 다 중덕사에서 어울리며 잘 살고 있잖아. 여러 가지로 좋은 사례야.
 
김 작년에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논란이 있었잖아요. 보수적인 신자들이 단체도 만들면서 신부님들이나 종교가 사회문제에 왜 개입 하느냐 공격하기도 하고 강우일 주교께서 경향잡지에서 일갈해버리셨잖아요. 주교회의 의장 명의로요. 신부님 생각은 어떠셔요? 사회문제에 교회가 참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문: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고 사회적인 일이잖아. 그것을 딱 갈라놓고 이야기 할 이유가 없는 거야. 전통적으로, 성서적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너무 간단한 일이야. 누가 억압받는 사람이고, 누가 가난한 사람이야? 누가 빼앗기는 사람이고, 누가 탄압받는 사람이야? 그런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사회참여야? 사회문제에 개입하는 거야? 그렇게 표현할 필요가 없지. 누구든, 어떤 민족이든, 어떤 지역이든 거기에 빼앗기고 쫓겨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있겠다, 이게 복음적인거야. 이 복음적인 삶에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는 것은 그냥 하기 싫다는 말하고 똑같은 거야. “나는 하기 싫은 일인데 너는 왜 하느냐? 네가 가면 나도 안 갈 수 없지 않느냐?, 나는 가기 싫다” 이런 명확한 말을 돌려서 다르게 표현하는 것뿐이야. 용산참사를 봐. ‘6명이 불에 타 죽었다. 공권력이 무리하게 진압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잖아. 그렇게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에 무슨 조건이 필요해. 예수님께서 즉시 물으시잖아. “누가 너의 이웃이냐?”고 말이야.
 
김: 그러네요. 사회 참여니, 개입이니 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억지군요. 너무나 당연한 일을 가지고 말이지요.
문: 그렇지. 배고픈 사람에게 쌀을 주는 것이 죄야? 북한 동포들 상황이 이리도 힘든데 남아도는 쌀 보내주자는 것도 좌익이래. 공안당국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제들이, 신자들이 그런 소리를 해. 이런 모습들이 교회를 망치는 일이지, 교회의 원래 소임을 저버리는 일이란 말이야. 이런 이야기 가슴 터놓고 말 할 수 있어야 해.
 
김: 신부님 말씀 들으니까 정리가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 또는 종교가 세상일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하는 사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이시죠?
문: 그것이 복음적으로 사는 것이야.
 
김: 그렇죠. 우리가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여기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복음적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 1975년 인혁당 사건, 그 억울한 여덟 명의 사형집행 앞에서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나섰어. 그랬더니 정치활동이라는 거야. 억울하게 남편 죽고, 아버지 빼앗기고, 고통당하고, 고문당하고, 가족들까지 끌려가고 고문 받았잖아. 내가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되면서까지 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정치적인 색깔을 덧씌워서 나보고 그 사람들 곁에 가지 못하게 했어. 그건 악마나 하는 짓이잖아.
 
김: 신부님 말씀대로라면 그런 일을 하실 때 위축될 이유가 없으시겠어요. 신부님의 명동성당 기도도 그런 맥락에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0년 명동에서 사제단 신부님들이 4대강사업 반대 생명평화기도회를 하실 때, 명동성당 사목회 일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신부님들의 기도를 방해하고 행패를 부렸던 일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명동기도를 시작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보수화되고, 권력화 되어 가는 우리 교회의 반성과 회개를 바라신 기도였잖아요. 그 기도로 신부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하셨고요. 신부님의 삶을 천주교 안에만 국한지어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신부님은 기본적으로 종교인, 신앙인이시잖아요. 또 원래 가톨릭 집안이셨죠?
문: 신앙심은 아버지, 어머니께서 내게 심어주신 거지, 아주 독실하셨어. 나도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만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당연히 하느님을 찾게 되고, 사제가 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지.
 
김: 그런데 인혁당사건 때부터 오늘까지 억울하게 당하고 말도 못하게 처참하고 참혹한 현실들을 마주하면서 사셨잖아요. 그런 순간에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이렇게 무심하셔도 되는가?’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으세요. 신앙인으로서의 갈등 같은 것들이 있으시지는 않으셨나요?
문: 왜 없었겠어? 젊은 시절에는 고민 많이 했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나가는데 세상은 무관심 한 거야. 혼자 눈물 흘리며 호소하는데 다 못들은 척하고, 심지어는 동료 사제들까지도 말이야. 선배 신부님들이 묻혀있는 성직자 묘지에 가서 술 마시고 혼자 펑펑 울기도 많이 했어.
 
김: 언제요? 신부님 젊으셨을 때요?
문: 응. 젊었을 때는 갈등도 많았어. 뭘 하려고 하면 혼자 걸어가고 있는 거야. 그런데 그것을 여럿이 함께 가려 하지 않고 너무 혼자 앞서간다고 비판하는 거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지 말자는 것과 같은 말이야. 무슨 성명서 한 장을 발표하려고 해도 단어가 어떻고, 표현이 어떻고. 무슨 기념비적인 글을 남기겠다고 말이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나 문장력 없는 사람들은 성명서도 못 쓰는 거야? 그런 꼴을 보면 속이 상해서 확 뒤집어 버리곤 했지. 그러면 나는 또 혼자가 되고 말이야. 지금 당장 시급한 일들이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뒤로만 물러서는 사람들을 볼 때면 하느님이 안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 따지고 보면 뭐 내가 하느님을 만나보기를 했어, 음성을 직접 들어보기를 했어. 어떤 때는 ‘아 이것이 그 분의 뜻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가도, 어떤 때는 ‘하느님은 지금 저 위에서 뭐 하시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 사실 내가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들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뭐 가보면 알겠지.
 
김: 어딜 가보면 알아요?
문: 죽어봐야 안다고. 죽어보면 알겠지.
 
김: 그래도 사제로서 삼위일체나 예수님의 부활 같은 기본적인 교리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계신 것이지요?
문: 그건 몸에 배어있는 거야. 하나의 씨앗이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부활 신앙이야.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죽으면 다 똑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김: 신부님께서는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는데요?
문: 아니, 요즘에는보다 더 적극적으로, 더 세게 살지 못한 것이 후회 돼.
 
김: 지금까지 하신 일이 모자라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에요?
문: 그렇지.
 
김: 고상하게 말해서 ‘길 위의 신부’지, ‘깡패 신부’, ‘좌파 신부’란 이야기를 들으시며 사셨는데도 모자라다고 생각하셔요?
문: 우리 사제들은 미사하다 죽으면 순직이라고 하잖아. 그렇게 죽는 순간까지 하고자 하는 일을 한다는 건데, 아마 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모자라다고 생각되는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후회 없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떤 때는 주저하기도 하고, 힘을 아끼려고 할 때도 있었지. 그러고 나면 꼭 후유증이 생겨. 끝까지 다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이 들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야.
 
김: 그러면 지금까지 활동하시면서 가장 아쉬운 일,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머뭇거렸다거나 부족했다고 생각하시는 일이 하나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문: 대추리…
 
김: 역시 그러셨군요. 신부님께는 정말 대추리 싸움이 크게 남으셨나 봐요.
문 대추리 행정대집행 때, ‘여명의 황새울 작전’ 말이야. 그것이 집행이 되고 나서 내가 대추분교 지붕위에서 내 발로 걸어 내려온 것이 가장 아쉬워. 그때 어찌어찌해서 내려가자는 분위기에 밀려 내려왔는데. 내려오면서도 ‘이거 아닌데, 이거 아닌데’ 했어. 행정대집행이 끝난 다음에 주민들이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거든. 그 이후로 주민대표들이 몇 번씩이나 우리집에 왔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는 거야.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오두희한테 주민대표들을 불러서 마을 밖으로 가자고 해서 대추리 지나서 있는 둔포 시내로 나갔어. 그날 술 정말 많이 마셨어. 주민대표들도 울고, 나도 울고. 마을주민들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다면서 말이야. 그렇게 대추리를 떠나고 마음이 계속 편치 않았어.
 
김: 다 끝난 후에 돌아오는 그런 상념들은 모두 온전히 신부님의 몫이잖아요. 누가 덜어주거나 대신 해 줄 수 없는 신부님 몫이요. 많이 힘 드셨겠어요?
문: 그러게 대추리 떠나고 나서는 참 힘들었어.
 
김: 지난 40여 년 동안 참 많은 일을 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잖아요. 피해자들, 유족들, 가난한 사람들, 또 동지들까지요. 그 분들 중 누가 가장 소중한 인연이세요?
문: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문규현 신부지. 문규현 신부가 없었으면 이렇게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몰라.
 
김: 용산참사 때 단식기도하시다가 문규현 신부님 쓰러지셨을 때 정말 깜짝 놀라셨겠어요?
문: 단식기도를 하면서도 문규현 신부가 지방으로 강연을 다니고, 무리하게 일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막 화를 냈었거든. 한 가지만 하라고 말이야. 그러다가 일이 생긴 거지. 새벽에 전종훈 신부에게 전화가 왔는데 말을 이어가질 못하더라고. ‘아 내 동생이 죽는구나’ 했어, 그때.
 
김: 서울로 올라오시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드셨겠어요.
문: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 통곡을 하면서 올라갔지. ‘내가 문규현 신부 장례를 치러야하는 건가?’하면서 말이야. 병원에 가서 의사들을 보니 표정이 심상치가 않은 거야. 중환자실에 들어갔어. 그때는 깨어나더라도 어딘가 크게 고장이 나겠구나 싶었어. 며칠 지나서 문규현 신분가 눈을 처음 뜰 때, 내가 옆에 있었거든. 그때 정말 기뻤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어. 문규현 신부가 날 보고는 깜짝 놀라더라고.
 
김: 그때는 저도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 제가 용산참사 관련해서 어디 기고를 했는데 ‘문규현 신부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걸고 이명박에게 복수할 것이다’라고 썼더라고요. 저도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두 분이 나이차이가 좀 나시잖아요. 유년 시절에도 그렇게 가까우셨어요?
문: 어렸을 때는 오히려 가깝게 있었던 적이 얼마 없지. 나는 일찌감치 소신학교에 들어갔고 문규현 신부는 신학교에 조금 늦게 들어왔어. 그러니까 같이 학교생활을 해 본 적이 없잖아. 그래서 문규현 신부의 성장 과정은 솔직히 잘 모르지. 내가 그 친구 사제서품날에도 못 갔어. 감옥에 있었잖아.
 
김: 아! 문규현 신부님 사제 서품식을 못 보셨어요?
문: 서품식을 못 봤어. 문규현 신부가 5월에 신부가 되었고 내 여동생은 6월말에 수도회에서 종신서원을 했어. 그런데 두 곳에 다 못 갔어. 성직자로서, 형으로서, 오빠로서 동생의 사제서품식에 못 간다는 것, 누이의 종신 서원식에 못 간다는 것이 그때는 너무 서럽고 힘들었어. 내가 감옥에 가고 아무도 면회를 못하게 했었는데 문규현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고 바로 다음날 날 찾아 면회를 왔어. 첫 가족면회였지. 사제로서의 첫 강복을 내게 주려고 왔지. 정말 감격이었어. 이제 동지구나, 신앙의 동지.
 
김: 그런데 두 분이 동지신건 확실한데, 두 분이 또 많이 다르시죠?
문: 어, 많이 다르지.
 
김: 두 분 다 아는 사람들은 너무너무 서로 아끼시고 그러는 거 알지만, 예를 들면 운동하시는 방식이나 성격도 다르신 것 같고, 물론 똑같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두 분 모두 욱하시면 비슷하시잖아요.
문: 닮은 점이 더 많아. 목소리도 많이 닮았고. 문규현 신부 집에서 내가 전화 받으면 100% 문규현 신부인 줄 알아.
 
김: 하하, 앞으로도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걸어가시길 바라시죠?
문: 이제 문규현 신부도 원로사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있는데. 그 친구가 끝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이 없지. 그 사람이랑 나는 말없이 통 하는 일이 많아. 이신전심이지.
 
김: 그럼 평화바람과 오두희씨는 신부님께 어떤 존재에요?
문: 난 평화바람 식구들이 모일 때 참석을 잘 안 해. 식구들이 회의하고 토론한 결과를 듣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이 좋아. 여기 오는 것도 내가 결정한 것이 아냐. 내가 밥상에 앉아서 강정이야기 하면서, 혼자 ‘끙끙’대고 그러니까. 오두희가 “신부님 한 번 다녀오세요.” 그러는 거야. 바로 강정에 다녀왔지. 다녀와서 또 내가 ‘궁시렁궁시렁’ 하니까 “신부님, 강정에 들어가 사실래요?”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가고 싶다고 했어. 당장 들어가서 살고 싶다고. 그렇게 강정에 오게 된 거야. 식구들끼리 많이 싸우기도 하고 내가 화를 낼 때도 있지만 서로 믿음이 있으니까 괜찮아. 평화바람 대표를 문정현으로 알고들 있겠지만 사실은 오두희가 내 배후야. 허허허
 
김: 오두희씨와 평화바람을 신뢰하세요?
문: 그럼. 신뢰하지. 물론 잘못될 수도 있겠지만, 신뢰하니까. 이제는 내가 앞서서 일을 저지르고 치고 나가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오두희와 평화바람 식구들이 하자고 하는 일, 만들어 주는 일에 충실하고 싶어. 평화바람 식구들이 하고 싶은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김:1974년에 사제단이 만들어지고 35년이 넘었잖아요. 그동안 사제단이 천주교 사회운동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셨는데요. 그만큼 우리 사회 안에서 사제단은 존중과 신뢰를 받고 있죠. 그런데 사제단의 운동 방향이나 신부님들의 활동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잖아요.
문: 사제단은 사제들의 모임이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사제들의 생각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사제단도 상처가 많아. 사제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인 척하고 사제단을 이용한 사람들도 많았고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변절하는 것을 목격한 적도 많고 말이야. 박정희 때부터 이름한번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독자적으로 한 길만 걸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사제단이 독보적이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 예를 들면 용산에서 내가 처음 미사를 시작한 게 3월 28일인데 처음에 시작할 때 허허벌판이었고 아무도 없었어. 그때 달려와 준 사람들은 오랫동안 함께했던 천주교 사회단체 사람들이었지. 신부님들은 그 후에 왔지. 그 신자들이 할 수 있게 해 준거야. 나야 그 사람들하고 다 통하고 마음을 아니까 존중하고 감사하지. 그런 걸 아직 모르는 사제들도 있을 수 있잖아, 사제들이라고 다 똑같을 수만은 없으니까 부족한 점이 있을 수도 있을 거야.
 
김: 다시 강정 얘기인데요, 신부님은 여기, 강정을 지키셔야하고, 이기셔야 하잖아요. 싸움이 계속 되는 한, 신부님 스스로 강정을 떠나시진 않으실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 싸움이 또 짧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문: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 이 강정싸움과 비슷한 경험들이 있지 않아?
 
김: 대추리랑 비슷하죠? 다른 점도 있겠지만…
문: 그렇지. 사람들도 다르고. 또 육지하고 섬이라는 것도 다르고. 그런데 여기서는 이긴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대추리에서 살 때의 마음가짐이면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주민들을 보면 그런 확신이 들어.
 
김: 저희 모두 마음 아픈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부안 핵 폐기장 막아낼 때, 두 문 신부님을 필두로 주민들과 시민사회가 열심히 힘을 합쳐서 이겨냈잖아요. 어렵게 이겨본 경험이라 참 기억에 남는 싸움인데요. 결국은 핵 폐기장이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고 핵 폐기장 자체가 백지화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쉬움이 분명히 있죠. 부안에는 핵 폐기장이 건립하면 안 되고 경주는 괜찮고 그런 건 절대 아니잖아요. 지금 제주에서도 화순, 위미를 거쳐서 강정에 해군기지가 왔어요. 우리가 열심히 싸워서 강정에 해군기지 들어서는 것을 막았다고 쳐요. 그런데 제주도 반대편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하면 어쩌죠? 제주가 아니라 다른 해변에 건설하겠다고 할 때는 어쩌고요? 강정에서 막는다고 해군기지 자체를 백지화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문: 해군기지 사업도 새만금처럼 국책사업이라잖아. 해군기지가 백지화 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일거야. 그러니까 더욱 여기를 막아야 해. 일단 강정을 막고, 그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지. 부안에서 경주 가는 꼴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이놈의 전쟁기지 만드는 일은 막아야지. 이거는 어디에 만들어도 문제가 되는 거니까. 군사기지를 거부하는 것은 아까 말한 것처럼 성서적인 이유, 복음적인 이유니까.
 
김: 신부님 마지막으로요. 많은 분들이 강정에 올 마음은 있는데, 시간과 용기가 없어서 못 오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하루하루 사느라고 여유가 없는 분들은 강정싸움에 어떻게 마음을 보탤 수 있을까요?
문: 아 그런 분들을 위해서 평화상단을 꾸렸잖아. 투쟁 기금을 버는 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하면 내가 주말에라도 뭍에 있는 본당에 가서 강론이라도 하면서 강정마을을 돕기 위해 이런 것들을 팝니다. 그러면 좀 팔리지 않겠어?
 
김: 그럼, 젓갈 열심히 사서 먹고 선물하고 그러면 되는 거죠?
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잣대로 잴 수 있겠어. 다 자기 나름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 다만 여유가 되면 강정마을 구럼비 해변에 한 번씩만 다녀가면 좋겠어. 여길 다녀가면 왜 해군기지는 안 되는지, 여기를 왜 지켜야하는지 알게 될 테니까.
 
김: 참, 이번에 ‘길위의 신부 문정현-다시 길을 떠나다’라는 책은 직접 쓰신 책이에요?
문: 아니,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란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김중미라고 있어. 그 이가 작년에 한겨레에 내 구술을 받아서 ‘길 위의 신부’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했었는데, 그걸 토대로 책을 다시 써서 출간했어. 오래된 일들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오두희가 구술하는 걸 많이 도와줬지. 딸기가 녹취도 풀어주고.
 
김: 공동선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 주세요.
문: 사회의 시선과 관심은 항상 가장 아픈 곳에 쏠려야 된다고 생각해. 우리 몸도 그렇잖아. 나도 지금 발가락 하나가 많이 아파, 그러니까 가만히 있을 때는 온 신경이 여기로 몰리거든. 참여와 연대. 이렇게 아픈 곳에 함께 하는 것, 아픈 곳이 치유 되었을 때 또 함께 기뻐하는 것이 정말 필요해.
 
김: 알겠습니다. 희망상단 젓갈 좀 맛있게 잘 만들어주십시오.
문: 서울 가거든 평화비행기랑 구럼비 축제 준비 좀 잘 해줘. 제주에서도 한판 크게 벌여봐.
 
문정현 신부와 대담을 마친 일주일 후인, 해방 66주년 광복절에 서울과 경기에서 500여명의 경찰병력과 물대포, 방송차, 진압장비 등이 배를 타고 제주항에 입도했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강정마을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고 국회와 도의회 등에서 반발하자, 일단은 큰 물리적 충돌 없이 공권력 투입은 잠정 미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경찰과 용역들이 달려들지 모르는 상황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올레길 7코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강정마을 구럼비 해변에서는 9월 3일(토) 올레길 7코스 걷기 행사와 평화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함께 하기 위해 서울에서는 평화의 비행기가 뜬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정마을 구럼비 해변으로 향하는 순례행렬은 점점 길어지고, 혼탁한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온 ‘길 위의 예수’ 문정현 신부의 얼굴은 점점 검게 그을리고 있다.
 
공동선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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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의료원 파업은 한국 의료의 미래다

'여성을 위한' 이화의료원, 그곳에 무슨 일이?

[기고] 이화의료원 파업은 한국 의료의 미래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9-19 오전 11:59:01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지부(지부장 임미경, 조합원 1100명)가 파업 중이다. 6년 만의 파업이자 올해 대학병원에서 최초 파업이다. 9월 19일로 파업 돌입 15일차를 맞고 있지만 언론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최근 노동계에 워낙 큰 사건과 투쟁이 많다보니 다소 평범한(?) 정규직 노조의 파업으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 파업의 쟁점과 진행양상을 들여다보면 한국 의료와 노사관계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가 한눈에 들어온다. 왜 그럴까?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이화의료원 파업은 몇 가지 특징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126년 역사의 명문여성사학이라는 이화재단 소속 여성대학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조 무력화 논란이다. 최근 SJM 용역폭력, 유성기업 노조 무력화와 관련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창조 노무법인(창조컨설팅) 심종두 노무사와 버젓이 자문계약을 맺고 노조 무력화라는 반사회적이고 전근대적인 범죄행위를 다른 곳도 아닌 이화재단 산하 대학병원에서 벌이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두 번째는 지난 2010년 21일간 진행된 고대의료원 파업 때 던진 화두였던, 환자 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해 '외형적 성장과 병상 증축, 장비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에게 투자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급변하는 의료 환경 속에 대학병원 경영철학과 미래 발전전략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세 번째, 노사관계 측면에서는 기업별 교섭체제에서 산별 교섭체제로 어떻게 합리적으로 이행할 것인지, 쟁의권과 공익의 조화를 내걸고 2008년 시행된 필수유지업무제도가 과연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면서 운영되고 있는지 아니면 일방적으로 사용자 편을 들고 있는지 등이 쟁점으로 드러나면서 이화의료원 파업 양상은 한국 의료와 노사관계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 과제가 한꺼번에 응축되어 나타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파업 2주…외형적 성장인가 사람을 위한 투자인가

쟁점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학생을 교육하고 의학을 연구하는 교육연구기관이자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에서 불거지고 있는 노조 무력화 논란이다. 더군다나 이화의료원은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여성사학의 최고 명문인 이화학당 소속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최근 사측은 심 노무사를 끌어들여 중간관리자 교육을 시키고, 소위 심종두 노조 파괴 매뉴얼을 근거로 파업 장기화 유도 및 노동조합 무력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배경으로 마곡에 새로 개원하는 1200병상의 제2병원 건립 이전에 노조를 손봐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사측 불성실 교섭으로 노조 자극 → 파업 유도 → 파업 돌입 후 노노 갈등 유발, 파업 장기화 유도 → 단체협약 일방해지 → 징계, 고소고발, 손해배상, 가압류 → 노조 무력화 → 복수노조 출현 또는 무노조경영 실현' 등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이화의료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합법파업임에도 불구하고 중간관리자들은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해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25년 노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파업에 참가하려는 조합원들에게 협박과 회유 심지어 감금마저 서슴지 않는 심각한 부당노동행위가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노조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의료원은 조합원들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전화문자메시지를 통해 파업대오 이탈과 현장 근무 복귀를 종용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농성장으로 들어와 조합원을 끌고 가는가 하면, 매일 새벽 일찍 관리자들이 출근하여 조합원들이 파업 농성장에 합류하지 않고 곧바로 부서로 들어가도록 압박 종용하고, 파업 참가 후 귀가한 조합원에게 강제 근로를 시키고, 조기 출근 및 연장 근로 등을 명하고, 파업농성장 근처조차 가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부 병동에서는 근무시간 중 식당 출입을 금지한 채 도시락으로 식사를 대신하게 하는 등 조합원들이 노조 간부의 접촉 자체를 막으면서 파업 참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심각한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최근 사측의 이런 심각한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무력화 의도에 대해 노조가 강력히 항의하자, 사측은 심 노무사가 이미 2005년부터 병원과 자문계약을 맺고 있으며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는 것이라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투로 답변했다고 한다. 이런 사측의 안이한 태도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화의료원은 노조 무력화 의도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스스로 창조컨설팅과 자문 계약을 파기하고 개입을 중단시키고, 노사 간 교섭에 성실히 임해 파업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사측의 노조 무력화 기도가 지속된다면 노조의 강력한 저항과 연대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사측은 몇 배의 엄청난 교섭비용을 물으면서 사회적 지탄과 도덕적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노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현숙 의료원장의 잘못된 판단이 계속 강행된다면 결국 이화의료원의 실질적 책임자인 장명수 재단 이사장이 직접 나서는 것 말고는 해답이 없다.

거듭되는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무력화 시도

두 번째, 한국의 대학병원이 환자 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해 어디다 우선 투자순위를 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번 파업 노사 쟁점을 보면 한국 의료의 빛과 그림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화의료원은 2008년 동대문병원과 목동병원 통합 이후 최근까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왔다. 목동병원을 최첨단 시설로 리모델링하고 첨단 의료기기를 도입하면서 여성암 전문 특화병원으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국제적인 의료기관평가제도인 JCI 인증도 획득했다. 그리고 서울시 서남병원을 위탁 경영하고, 2016년 마곡지구 제2병원 1200병상 건립 계약을 확정함으로써 의료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국제 수준의 여성 중심 병원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런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은 대학병원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실 이화의료원이 화려하게 성장 발전하는 동안 노동자는 계속된 고통을 감내하며 묵묵히 일해왔다. 2008년 경영 악화로 동대문병원과 목동병원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이화의료원 직원들은 100% 고용보장 조건으로 구조조정, 임금 20% 삭감 및 이후 수년간 임금동결 등의 희생을 감내했다. 한국 의료기관평가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JCI 인증을 받기 위해 아무런 보상도 없이 3개월 이상 전 직원이 밤낮없이 준비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화의료원의 경영이 정상화되고 재단 적립금을 300억가량 보유하면서 재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의료원 측은 시설 및 장비, 리모델링에만 집중 투자하면서 직원들의 임금 인상 및 인력 충원, 노동조건 개선 요구는 비용 문제로 치부하면서 미루거나 외면으로 일관했다. 그리하여 이화의료원 노동자들은 전국 사립대병원 중 최하위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고 비정규직 비율도 100% 이상 증가하였다.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여성을 가장 잘 아는 병원, 여성을 위한 병원을 표방하는 이화의료원이 법적으로 명시된 직장보육시설을 아직 설치하지 않고 있으며 10년 전 노사가 합의한 보육수당 지급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재단 정원 문제를 핑계 삼아 130여 간호사들의 사학연금 발령을 미루고, 부족한 인력마저 충원하지 않고 있으며, 상시적 업무에도 비정규직을 고용해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폐해를 불러왔다.

이화의료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요구가 직원 식사 질 개선 요구이다. 오죽하면 대학병원 직원들이 단체협약 핵심 요구로 식사 질 개선을 요구할까? 직원 식사 질 개선 등 직원들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도 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외형적 고속성장에 비해 갈수록 떨어지는 현장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이화의료원 지부는 6년 만에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원인은 외형적 성장에 가려진 대학병원 꼴찌 수준의 임금과 노동조건이다. 여성 전문 병원을 표방하면서도 모성 보호 제도는 가장 취약하다. 증축과 시설투자 이전에 사람에게 먼저 투자하라는 것이 이화의료원 파업 노동자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어느 대선 후보의 슬로건이야말로 이화의료원 노동자들에게 꼭 맞는 요구이다.

요즘 병원계에서는 병상 증축과 시설 고급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경쟁에서 밀리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저마다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붓고 있다. 사실 대학병원들은 빅4 병원 따라가기 식 '묻지 마 외형적 성장전략'(환자에 대한 과잉 검사와 과잉 진료, 노동자 쥐어짜기와 인건비 줄이기)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산업 공공적 정책 개입을 통해 의료 환경 개선, 환자 안전을 위한 적정 진료, 노사협력을 통한 사람 중심의 동반성장 전략'을 택할 것인가 하는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화의료원 또한 마찬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많은 병원들이 손쉽게 보이는 전자의 길을 택하고 있다. 이렇듯 영리병원 논쟁은 이미 기존 병원에서 시작됐다. 이화의료원 파업은 병원들이 돈벌이 영리병원으로 가는 것을 막는 투쟁이다.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 파업은 돈벌이 영리병원으로 가는 것을 막는 투쟁

세 번째는 노사관계 측면이다. 양대 노총 소속 노조의 50% 이상이 초기업노조 형태를 띠고 있지만 교섭형태는 여전히 절대 다수가 기업별 교섭체제이다. 이런 조건에서 국제기준의 교섭구조인 산별 교섭체제로 합리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것은 이화의료원은 물론 보건의료 노사 간에 뜨거운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1998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건설된 보건의료노조는 수년간의 투쟁 끝에 2004년부터 산별교섭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2009년 사용자협의회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로 산별교섭이 중단된 이후 2010∼2011년 산별교섭이 파행적으로 진행되었고, 다시 산별중앙교섭을 정상화하기 위해 올해를 '산별교섭 정상화투쟁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 결과 보건의료노조는 소속 5개 특성 병원 중 3개 특성(특수목적 공공병원, 지방의료원, 민간종합병원) 51개 사용자대표와 총 6개 항의 산별협약과 특성별 부속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하반기 노사공동포럼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산업별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병원 내부의 세부적인 문제는 현장교섭으로, 병원 외부의 제도적 문제는 산별교섭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노동조합의 기본요구임에도 불구하고 이화의료원은 산별교섭 불참도 모자라 현장교섭에서 '산별요구안을 포기하지 않으면 임금 및 단체협약안을 제시할 수 없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면서 파업 장기화를 유도하고 있다. 더구나 이화의료원 단체협약에는 '노조가 요청하는 산별교섭에 참가한다'라는 노사 합의 사항이 있고, 9월 4일 중앙노동위원회가 산별교섭 불참 사업장에 대해 '단체교섭 방식에 대해 노사가 조속히 논의를 하라'고 권고한 것마저 무시하는 태도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도 파업 직전 조정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노사가 단체교섭 태스크포스를 구성해서 논의를 시작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교섭을 원만히 타결하기 위해 산별교섭 관련 요구를 최대한 유연하게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산별 포기선언을 하지 않으면 교섭을 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는 마치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과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양심수에게 사상전향서를 강요하는 것처럼 노조에 일방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측은 교육기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이런 비이성적인 태도를 버리고 기존의 단체협약과 노동위원회 권고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노사관계 측면에서 숨겨진 또 하나의 쟁점은 필수유지업무제도이다. 쟁의권과 공익의 조화를 내걸고 2008년 1월 시행된 필수유지업무제도가 과연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면서 운영되고 있는지 이화의료원 파업을 통해 현장 사례를 연구하고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구시대적 노동악법이었던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된 이후 병원 등 공공 사업장에는 필수유지업무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번 이화의료원 파업에도 이 법이 적용되고 있고, 노조는 합법 파업을 위해 필수유지업무 부서에 이 법이 정한 인력을 투입하면서 파업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필수유지업무제도는 필수인력 배치와 함께 50%의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파업 중임에도 거의 100%에 가까운 병원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실제 파업의 위력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사측이 버틸 근거만 제공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구나 숙련도가 떨어지는 대체인력 투입이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은 2009년 보훈병원 파업, 2010년 고대의료원 파업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과 공익의 공존과 조화를 내걸고 시작한 필수유지업무제도는 공존과 조화가 아니라 공익을 앞세운 사측의 이익에 일방적으로 복무하는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보건의료 노동자와 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단체행동권 보장과 공익의 진정한 조화를 위해 지금의 필수유지업무제도를 개선할 방안이 시급하다.

 

ⓒ보건의료노조


노조 없는 좋은 병원, 노조 없는 경제민주화가 가능한가?

대선을 100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각 당 후보가 속속 선출되고 있다. 후보들은 저마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의료 공공성 강화, 노사관계 민주화, 선진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나의 사업장 파업이지만 파업 14일차인 이화의료원 파업투쟁은 각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이런 공약들에 포함된 문제가 함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장이다.

그런 현장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노조 없이 좋은 병원, 좋은 경영이 가능한가? 노조 없는 복지국가가 가능한가? 노조 없는 경제민주화가 가능한가? 이화의료원 파업과 사측의 대응 양상은 우리 사회에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조가 사라진 이후에는 노사관계도 없지만 좋은 경영과 분배정의, 경제민주화, 사회민주화도 없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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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박근혜, 아버지에 대한 입장 밝혀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09/19 14:43
  • 수정일
    2012/09/19 14: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안철수 "박근혜, 아버지에 대한 입장 밝혀야"

[현장 중계] 안 원장, 대선 출마 선언...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겠다"

12.09.19 12:04l최종 업데이트 12.09.19 16:07l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일 오후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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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신 : 19일 오후 3시 55분]
"대통령 되면, 안랩 남은 지분 사회환원", "박근혜, 아버지에 대한 입장 밝혀야"

안철수 원장은 20일 "대통령이 된다면 제가 가진 나머지 안랩 지분 절반도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지난 2월 자신이 소유한 안랩 지분 절반을 기부해 공익재단인 '안철수 재단'을 만들었다.

안 원장은 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인간적인 고뇌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는 본인이 가진 정확한 생각을 밝히시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서울대 대학원장직과 안랩 이사회 의장직은 사임하나?
"지금 이 시간 부로, 서울대 대학원장직, 안랩 이사회 의장직도 사임할 생각이다. 그게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또 추가로 덧붙이면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제가 가진 나머지 안랩 지분 절반도 사회환원할 생각이다."

- 박근혜, 문재인 후보에 대해 평가해달라. 신당 창당과 민주당 입당 가능성은?
"박근혜 후보 역사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힘든 인간적인 고뇌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는 본인이 가진 정확한 생각을 밝히시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 출마 선언 이후 행보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12월 19일까지 어떤 일정 가지고 대통령 후보로서 임할 것인가? 계속 단일화에 대해 정확한 말을 안 하고 있다. 시점이나 방법, 생각한 게 있는지 궁금하다. 대통령 후보로 결심하기까지 오랜 고민했다. 고민 끝낸 가장 큰 기점 있나?
"지난 두 달 동안 비공개 일정을 소화했다. 그 이유가 우선 첫 번째로는 양대 정당에서 경선이 진행되는 가운데, 제가 바깥에서 그렇게 떠들썩 공개 행보를 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대통령직을 노리고 정말로 홍보 효과를 누리려고 했다면 모든 일정을 공개했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저를 이해해줬으면 한다.

두 번째로는 농촌, 실직자 가장 찾아다닐 때 공개행보해서 수십 명, 수백 명 기자들 둘러싼 가운데 대화했다면, 그분들 주눅들어 말씀 못 한다."

[7신 : 19일 오후 3시 43분]
안철수 "민간인 사찰, 발본색원해서 뿌리 뽑아야"

안철수 원장은 민간인 사찰과 관련 "상식적으로 민주주의에 반하는 공권력 남용의 최악의 형태"라며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서 발본색원,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참여정부 평가해 달라.
"가장 큰 공이라고 하면, 위에서 아래로의 일종의 권위주의 타파, 우리 사회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사회 영향 크다. 과라고 한다면, 많은 분들이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벌의 경제집중, 빈부격차 심화, 그것은 큰 과라고 생각한다."

- 네거티브 공세에 어떻게 대응? 민간인 사찰 의혹 어떤 입장?
"저는 정당한 논쟁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답할 생각이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네거티브, 악의적인 흑색선전에 대해서 저는 정치권 최악의 부패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히 최근 몇몇 루머들이 있다. 그런 루머들이 사실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대통령 후보들에게 만약 그런 흠이 있다면, 모든 공직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결격사유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만약 그런 의혹을 제기한 분들이 있다면, 국민들을 위해서 공개적으로 입증해달라고 청원드리고 싶다.

민간인 사찰 부분은 상식적으로 민주주의에 반하는 공권력 남용의 최악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국회 국정조사 통해서 발본색원,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6신 : 19일 오후 3시 35분]
"선거 결과 관계 없이 정치 계속한다"... 정당 창당 여부는 유보

안철수 원장은 "지금까지 몇번 직업을 바꿨지만 도중에 그만둔 적은 없었다"며 "이번에도 선거 결과와 관련없이 이 분야에서 일해서 조금이라도 우리나라가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대선 이후에도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정당을 창당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한 채, "양 정당이 제대로된 개혁, 민의를 받드는 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현 집권 세력의 집권을 반대한다는 입장은 아직도 그대로인가? 단일화 부적절하다고 했는데, 독자노선 유지하겠다는 것인가?
"이제는 더 이상 한 정당, 한 정권이 풀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결국 모든 대선 후보들이 강조하고 있지만, 정말 통합과 화합이 필요하다. 정권을 잡은 이후 통합 불가능하다. 선거 과정에서 공정하게 경쟁하자고 제안했다. 제안한 이유는 국민에게 희망드리자는 것이다. 만나는 시기는 빠르면 좋겠다. 내일이라도 만나자고 하면 만나겠다. 답을 기다리겠다."

- 대통령이 된 이후, 정당 새로 창당할 것인가? 대선 패배 이후에는 어떻게?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 정치의 중요성은 책에서 언급했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제게 보낸 기대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말했던 두 가지 원칙. 첫 번째는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고, 두 번째는 국민들이 동의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열심히 선거활동을 하면, 양 정당도 제대로된 그런 개혁, 민의 받드는 정당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

제가 지금까지 몇번 직업 바꿨다. 도중에 그만둔 적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선거 결과와 마찬가지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로 한 이상, 결과와 관련없이 이 분야에서 일해서, 조금이라도 우리나라 긍정적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겠다."

안철수 원장은 대선 출마 선언 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현재의 여러 가지 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융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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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신 : 19일 오후 3시 25분]
안철수 "융합적인 사고, 디지털 마인드 필요"

안철수 원장은 대선 출마 선언 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현재의 여러 가지 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융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평적 리더십, 디지털 마인드 등을 강조했다.

- 국정운영 경험이 없기 때문에 위기 관리 리더십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지금 현재 여러 가지 위기라든지, 국내에서 풀리지 않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 문제 공통점 살펴보면, 한 분야의 전문가, 또는 한 정부의 부처 내지는 한 사람의 결정으로 풀 수 없다. 대부분 복합적인 문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융합적인 사고다. 융합적인 사고라는 말은 자기의 전문성을 가지고 세상 문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문제를 먼저 중심에 두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어떤 전문가와 방법론, 정부부처 사람들이 필요한가 모으는 접근 방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수평적 리더십, 디지털 마인드다. 21세기 디지털 트렌드를 이해해야 한다. 전문가들을 수평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제가 해왔던 일들이 그쪽 방면의 일이었다."

[4신 : 19일 오후 3시 20분]
안철수 "지금 시점에 후보단일화 논의 부적절"

20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 안철수 원장은 "지금 시점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많은 국민 정치경험이 없어서, 국정수행능력 의구심 품는 사람 많다. 원장님이 국정운영 보여주기 위해서 함께할 수 있는 분들 필요할 것 같다. 언제 공개할 것이고, 어떤 분들인가?
"정치경험이 없는 것 맞다. 그렇지만 과연 정치 경험 많은 게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현재 많은 분들의 지금이 현재 열망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들, 정치개혁, 새로운 혁신, 혁신경제, 디지털마인드와 수평적 리더십만이 우리가 처해 있는 많은 문제 풀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록 제가 직접적인 정치경험 부족하지만 대신에 다양한 분야 현장에서, 아이티(IT), 의학, 경영, 교육 분야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들이 정치하는데 플러스가 되지,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할 분들은 이 자리에 참석했다. 앞으로 기회를 봐서 예를 갖춰서 적절한 시기에 소개해드리겠다."

- 야권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필요하다면 어떤 시기 방법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나?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정치권에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국민이 그것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단일화 논의하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3신 : 19일 오후 3시 7분]
안철수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겠다"

안철수 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안철수 원장은 19일 오후 3시 기자회견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한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먼저 정치개혁은 선거과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저는 저부터 선거과정에서의 쇄신을 약속드린다, 저는 선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있더라도 흑색선전과 같은 낡은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또한 박근혜, 문재인 후보에게 선의의 정책 경쟁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안 원장의 기자회견에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이원재 전 한겨레경제연구소장, 김민전 경희대 교수, 하승창 전 희망과대안 운영위원장,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 작가 조정래씨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안철수 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 전문이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다"
페이스북 Ahnspeaker에 올라온 대선 출마 선언문
안녕하십니까
안철수입니다.

저는 지난 7월말에 말씀 드린 대로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동안 저는 재미있는 별명도 얻었고.
또 최근에는 저를 소재로 한 유머도 유행하더군요.

그동안 제 답을 기다려오신 여러 분들의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그 또한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기업인과 교수의 삶을 살아온 저로서는,
국가경영의 막중한 책임을 지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춘천에서 만난 어르신, 명예퇴직을 앞둔 중년의 가장,
30대의 쌍둥이 엄마와 같은 많은 이웃들을 만나 뵈었고,
각 분야에서 경륜과 전문성을 가진 분들도 만났습니다.
가능하면 조용하게 경청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느 한분 힘들지 않은 분들이 없었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너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삶의 과정에서도
그분들은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나 자신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희망을 드린 것이 아니라 제가 오히려 그분들께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제게는 스승입니다.
그 분들이 저를 한걸음 더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 분들이 제게 한결 같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 하셨습니다.

또 한 번도 정치에 발 딛지 않은 제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많은 분들이 왜 제게 지지를 보내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제 좀 정치를 다르게 해보자, 새롭게 출발해보자"는 뜻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제 역량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국가의 리더라는 자리는 절대 한 개인이 영광으로 탐할 자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당선여부보다는 잘 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통해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답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

저는 먼저 정치개혁은 선거과정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입니다.
선거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계속하면,
서로를 증오하고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며, 나아가서는 국민을 분열시킵니다.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에서 이겨도 국민의 절반 밖에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다음 5년도
분열과 증오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과 사회문제 해결은 요원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부터 선거과정에서의 쇄신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선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있더라도
흑색선전과 같은 낡은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저를 지지하는 분들이 그 결과를 존중하고 같이 축하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께 제안합니다.

모두 한자리에 모여,
국민들을 증인으로 선의의 정책 경쟁을 할 것을 약속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선거후에도 승리한 사람은 다른 후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패배한 사람은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여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협력할 것도 같이 약속하면 어떨까요?

그래야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당선 되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서로 도울 수 있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통합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정책 대결 속에서 제가 만약 당선된다면
다른 후보들의 더 나은 정책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또 경청할 겁니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원하는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정치 경험도 없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정치라는 험한 곳에 들어가 괜히 만신창이가 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는 정치경험뿐 아니라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습니다.

정치경험 대신 국민들께 들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가지고 가겠습니다.
조직과 세력 대신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빚진 게 없는 대신, 공직을 전리품으로 배분하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5년 만에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현명한 국민들과 많은 전문가들이
요소요소에서 각자가 역할을 하는 커다란 시스템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속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체제와 미래가치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제 낡은 물줄기를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바꿔야 합니다.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
계층 간의 이동이 차단된 사회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
지식산업시대에 역행하는 옛날 방식의 의사결정구조,
이와 같은 것들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은 이제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앞으로 5년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매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입니다.
국내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세계적인 장기불황까지 겹쳐 한꺼번에
위기적 상황이 닥쳐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제가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하고 실수도 하고 결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명한 국민들과 전문가들 속에서 답을 구하고, 지혜를 모으면
그래도 최소한 물줄기는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힘을 합쳐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가 들어서야 민생경제 중심 경제가 들어섭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합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혁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평화체제는 역시 안보와 균형을 맞출 때 실현가능합니다.
제 정책비전과 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선거과정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 과정부터
국민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는 첫걸음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의 정치를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은 두렵지 않습니다. 극복하겠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싸울 것입니다.

사람의 선의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여러분과 함께 증명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리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여러분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
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변화의 열쇠는 바로 국민 여러분께 있습니다.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하나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신 : 19일 오후 3시]
안철수 대선 출마 선언... "안철수 보러 휴가까지 냈어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일 오후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안 원장의 기자회견이 예정된 구세군 아트홀은 이날 오전부터 취재진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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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원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의지를 보일지 직접 보고 싶어서 왔어요."

19일 오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의 기자회견이 예정된 서울 충정로 구세군 아트홀 앞, 연령대가 높은 '안철수 산악회' 소속 회원 200여 명 사이에서 고은영(33)씨가 유독 눈에 띄었다. 고씨를 비롯해 산악회 회원들은 기자회견 시작 4시간 전인 이날 오전 11시께부터 일찌감치 기자회견장 앞을 지켰다.

산악회 회원들 사이에 홀로 서서 기자회견을 기다리던 30대의 고씨는 회사에 휴가원까지 내고 왔다고 했다. 고씨는 "5년 전 대선 치를 때 무관심했던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됐다"며 "이번 대선에서는 관심을 갖고 후보들의 정책을 지켜본 후 지지할 사람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입장할 수 있는 회견장 2층에는 '철수산악회'와 '대한민국 안사모(안철수를 사람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아, 오후 1시 이후에 온 지지자들은 회견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철수산악회 회원들은 각각 태극기를 손에 들고 안 원장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광주전남 정책개발 연구원'이라고 소속을 밝힌 한 사람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해 "오빠는 IT스타일"이라고 쓴 손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지금 올라가면 회견장에 들어가실 수 없다"며 안내를 했지만, 지지자들은 여전히 그 앞에 서 있는 상황이다.

유아무개씨(42) 역시 1시간 째 기다리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유씨는 "변화의 시작을 함께하고 싶어서 회견장에 왔다"며 "'상식'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안 원장은 신뢰할 수 있다, 안 원장은 루키지만 정치의 틀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발이 성성한 김은미(76)씨도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 자리를 깔았다. 뉴스를 통해 안 원장의 출마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는 김씨는 "새누리당은 주변이 다 비리 정치인이라서 안 된다"며 "안 원장은 깨끗한 정치를 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회견장에는 30~4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 20~30대 젊은 층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도와줄 게 있을까 해서 현장에 직접 왔다"고 말했다.

한편 오후 2시 50분 현재, 기자회견장 안에는 안철수 원장의 '대선 슬로건'이 내걸렸다. 안철수 원장이 기자회견을 할 연단 뒤로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펼쳐졌다.

[1신 : 19일 낮 12시 5분]
안철수, 오후 3시 입장 발표... 대선 출마 선언할 듯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일 오후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안 원장의 기자회견이 예정된 구세군 아트홀은 이날 오전부터 취재진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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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91일 앞둔 19일, 선수들이 모두 출발선에 선다. 곧 총성이 울리고, 대선 레이스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이날 오후 3시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다수 전문가들과 정치권 인사들은 안 원장이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 원장이 출마할 경우, '1차 선거전'은 양대 정당의 박근혜(새누리당)·문재인(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 원장 간의 3자 구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분열하면 필패한다는 경험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16일 대선 후보 선출 직후 기자회견에서 단일화는 물론, 공동정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안 원장 역시 단일화 요구를 거절하지 않을 것으로 보임에 따라, 문 후보와 안 원장의 단일화가 다른 대선 이슈를 삼킬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문재인 후보가 '컨벤션 효과'로 상승세를 탄 상황에서, 안 원장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7~18일에 조사해 18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안 원장은 야권후보 적합도에서 32.3%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는 44.9%를 얻은 문 후보보다 12.6%포인트 뒤쳐지는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일 오후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안 원장의 기자회견이 예정된 구세군 아트홀은 이날 오전부터 취재진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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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안철수 원장의 기자회견이 열리는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 주변은 현재 방송사 중계차량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 원장의 출마 여부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를 감안해 보도전문채널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사도 안 원장의 기자회견을 생중계할 예정이다.

안 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단에 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당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것으로 보도됐지만, 오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안 원장은 10~20분간 준비한 원고를 읽고 취재진의 질의응답을 받는다. 기자회견은 1시간을 넘지 않는다.

또한 이날 회견에는 이미 알려진 안철수 캠프 관계자 외에 정치권 인사들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게 안철수 캠프의 설명이다. 안철수 원장 쪽 유민영 대변인은 "주요 참석자를 소개하거나, 이들을 안 원장 뒤에 세워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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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자들 소탕해 버릴 것" 발언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2/09/19 [07:3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인민군은 김정은 원수의 최후 돌격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훈련을 다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에 전쟁이 아닌 평화가 깃들기 바란다. © 이정섭 기자

조선 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이 19일자 신문에 전쟁에 관한 경고 기사를 무려 5개를 보도해 주목되고 있다.


로동신문은 ‘억척같이 다져온 군사적 위력을 총폭발시켜 도발자들을 소탕해 버릴 것“이라는 종합제목 아래 전쟁을 언급하는 기사를 다량 게재했다.


이 신문은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장애는 제거 되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주통일, 평화번영은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지향이며 요구”라며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고 부강 번영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려는 우리 민족의 투쟁에 커다란 활력을 부어주었다.”고 일갈했다.


기사는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는 외세에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팔아먹으면서 반통일 대결책동에 미쳐 날뛰는 이명박 역적패당을 쓸어버리기 위한 거족적 성전에 한결 같이 떨쳐나서야 한다.”며 “자주통일, 평화번영은 이명박 역적 패당을 무자비하게 징벌하는 우리 겨레의 성스러운 애국투쟁에 있다.”고 밝혔다.


로동신문은 ‘선제공격에는 무자비한 조국통일성전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최근 내.외호전광들이 악랄하게 감행한 《을지 프리덤 가디언》합동군사연습의 침략적 성격을 입증해주는 자료들이 드러나 내외의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을 비난했다.


기사는 “남조선괴뢰들의 북침전략이 선제공격으로 공공연히 이행되고 있는 것은 실로 위험천만한 사태”라며 “이명박 패당은 지금 최악의 통치위기에 처해있다.《대북정책》의 총파산과 높아가는 민심의 반《정부》기운으로 파멸의 위기에 처한 이명박 패당이 그로부터의 출로를 전쟁도발에서 찾으면서 군사적 모험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명박패당이 북침선제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실행을 본격적으로 다그치고 있는 위험천만한 현실은 해내외의 온 민족에게 전쟁광신자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정의의 애국성전의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동신문은 ‘제2의 조선전쟁도발을 노린 광대극’이라는 보도에서 “남조선에서 지난 전쟁시기를 방불케 하는 요란한 반공화국광대극들이 펼쳐지고 있다.”며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괴뢰들은 월미도앞바다에서 1,500여명의 무력과 각종 함선, 상륙돌격 장갑차 등을 동원하고 숱한 참관자들까지 끌어들여 미제가 지난 조선전쟁시기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을 재연하는 불장난소동을 펼쳤다”고 비난했다.


신문은 낙동강 전투 재현도 예정 되어있다고 말하고 이는 엄중한 군사도발이라고 반발했다.


기사는 “이명박 패당이 지난 조선전쟁에서의 수치스러운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기념》이니 뭐니 하며 북침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어리석기 그지없다.”며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국과 이명박 역적 패당의 무분별한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만단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최후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미제와 괴뢰들이 감히 도발을 걸어온다면 우리 천만군민은 절대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억척같이 다져온 군사적 위력을 총 폭발시켜 전쟁광신자들을 모조리 격멸소탕하고 조국통일위업의 최후승리를 이룩하고야 말 것”이라고 호언했다.


로동신문은 ‘핵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는 미제와 남조선 괴뢰 호전광들’ 제하의 기사에서 “최근 미제와 남조선 괴뢰 호전광들의 북침전쟁도발책동이 더욱 무모한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경계하고


“괴뢰 호전광들의 무모한 북침전쟁연습책동은 철저히 미국상전의 조종하에 그리고 《유엔군사령부》의 간판을 도용한 미제침략군의 지원 밑에 감행되었다.”며 “끊임없는 북침전쟁연습소동으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엄중히 위협하고 파괴하는 미제와 미국의 침략적인 전쟁정책집행의 하수인이 되여 미쳐 날뛰는 괴뢰 호전광들은 저들이 지른 불속에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동신문은 마지막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 깔린 폭압소동’에서 “남조선에서 우리 공화국을 동경하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자주통일을 주장하고 보수《정권》을 반대하는 각계 진보적 인사들과 단체들에 대한 이명박 역적 패당의 파쇼적 폭압책동이 계속 악랄하게 감행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의 남용을 지적했다.


이 매체는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고 있는 울산대학교 교수와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로수희 부의장 등을 직접 거론하며 이들은 “전쟁위험을 막고 평화와 남북관계개선, 조국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정의로운 활동을 벌려온 활동을 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그에게 정신육체적 박해를 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또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주장하는 각계 인사들에게 폭압의 마수를 뻗치고 있다.”며 “노수희 부의장이나 이창기 대표는 죄로 될 만 한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의 활동은 그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결심과 선택, 남조선인민들의 의사와 요구로부터 출발한 것”라고 강조했다.


이어 “괴뢰패당이 감행하는 폭압소동의 불순한 목적을 똑똑히 꿰뚫어보고 있는 남조선의 진보세력들과 각계층 인민들은 보수당국의 망동을 《〈정권안보〉를 위한 MB의 마지막몸부림》”이라며 “보수패당의 무분별한 폭압망동은 저들자신의 파멸만을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로동신문의 이날 전쟁기사는 최근에 들어서도 이례적인 일이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의 한 통일운동가는 “이명박 정부는 취임초부터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비핵개방 3000 등을 통해 남북관계를 경색 시키고 5.24 조치로 남북교류가 전면 중단 됨으로써 한반도에는 전쟁이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고 우려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뼈속까지 친일 친미라는 발언은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의원의 입에서 폭로되었다. 동족을 주적으로 몰아세우고 외세에 대해 사대주의적 행보로는 분단을 극복할 수 없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6.15와 10.4 선언을 이행해야 가능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의 전향적 자세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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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 "민주당, 안철수 들어올 정도로 혁신해야"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은 무조건 실패한다"

[인터뷰] 조국 교수 "민주당, 안철수 들어올 정도로 혁신해야"

여정민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9-18 오전 10:41:43

 

이제 정말 시작이다. 민주통합당의 대선 후보로 지난 16일 문재인 후보가 확정됐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오는 19일 출마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다. 야권의 경선은 사실상 이제 시작되는 셈이다.

아직까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출마 관련 생각을 밝히지 않은 안 원장의 속내를 확언하긴 어렵지만, 야권에서 문 후보 본인을 포함해 두 사람의 단일화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떻게'가 관건일 뿐이다.

17일
만난 조국 서울대 교수는 단일화의 방법보다 그 과정을 강조했다. 앞서 '아름다운 단일화', 이른바 '담판'을 얘기한 바 있는 조 교수지만, 그는 "앞으로 한두 달 동안 각자 행보를 '따로 또 같이'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자장이 확 넓어지는 때가 온다"고 말했다. 지금 굳이 '방법론 논쟁'을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그는 그러면서도 "무소속 대통령은 무조건 실패한다는 것을 안 원장도 알 것이고 모른다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은 가능할지 몰라도 국정운영은 무소속으로는 못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조 교수는 당장 민주당 입당은 어렵지만 "민주당이 안 원장이 들어올 수 있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도 "민주진보진영의 외연이 확장돼 가는 과정으로 정당정치의 이탈이 아니라 정당정치의 성숙과 진화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안 원장 등 당 밖 인사들이 대중의 마음을 얻는 것은, "이미 완결된 보수대연합"과 달리 아직 완결되지 못한 민주대연합이 이행돼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얘기다.

다음은 이날 서울시 관악구 서울
대학교 연구실에서 진행된 조국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이 인터뷰는 전홍기혜 정치팀장이 진행했다.

 

▲ 조국 서울대 교수.ⓒ프레시안(최형락)


"모바일 투표 공정성 논란, 총선 때의 구원에서 비롯된 것"

프레시안 : 민주당 후보가 결선투표 없이 확정됐다.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국 : 예정된 결과였다. 광주전남의 결과를 보고 결선투표는 없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었다. 광주전남의 결과로 추정해 보면, 민주당 당원이든 지지자든 결선투표를 한 번 더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한 것 같다. 문재인으로 민주당 후보를 확정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는 판단이다.

프레시안 : 문재인 후보 개인에 대한 평가 이전에 경선 과정에서 비문 후보들을 중심으로 모바일 투표의 불공정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등 적잖은 내홍이 불거졌다. 2002년이나 2007년과 비교해 보면 크게 시끄러웠던 건 아닐지 몰라도, 잘 수습될 수 있을까?

조국 : 수습된다. 어렵지 않은 것이다. 경선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각 후보들이 충분히 전략적으로 할 만한 얘기였다. 비문 후보들은 결선투표로 가야하니까, 자기 지지층을 굳히고 문재인 후보와의 차별성을 확보하려면 강경한 전략을 쓰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다만 모바일 투표는 2007년 손학규 대표 시절에 도입한 것이다. 그 뒤로도 강화하는 흐름이었고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니다. 기술적 조작이 있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국민참여경선 자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학문적으로는 민주당의 당원이 아닌 사람이 왜 (정당 문제에) 관여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 정당 구조의 문제다. 100% 당비 내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진성당원제는 진보정당의 특수성이고, 한국 현대사에서 지배적 대중정당은 지지자 정당이었다. 당원은 소수다.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진보든, 보수든 대개 정당에 잘 가입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지자 중심으로 정당이 움직여 온 것이다. 당원만 가지고 다 할 수가 없다. 모바일 투표도 결국 젊은층이 유선전화는 잘 안 받으니까 도입한 것 아닌가.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 지지자 정당으로 당연히 했어야 할 조치다.

모바일 투표 관련 이 논쟁이 근본적으로는 지난 총선 때의 구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지난 총선에서 소외된 사람, 낙천한 사람 등이 결집되면서 지난 총선 과정에서의 책임을 문재인 후보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 문제들이 연결된 상황에서 터진 문제였다. 발언들을 보면 손학규 후보가 다른 후보에 비해 속이 많이 상한 것 같지만, 손 전 대표는 대인이다. (문 후보에게) 힘을 합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울 것이다. 김두관, 정세균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과 안철수, '따로 또 같이' 계속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비문 후보들의 반발에 대한 우려는 당 밖에 있는 안철수 원장과 단일화 문제와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거기서 문재인 후보의 정치력이 어느 정도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이는데?

조국 : 단일화는 될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사적으로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 개인적 신뢰가 있다. 또 두 사람 모두 '정치 초년병'이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동할 것이다. 전에 '맑은 눈'이라고 표현했는데, 야욕과는 관계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다. 둘째 이유는 단일화가 이뤄져야만 민주진보진영이 집권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정치 지형이 그렇다. 김대중도 김종필과 연합해서 이겼고, 노무현도 정몽준과 단일화를 통해 이겼다.

그때는 어찌 보면 완전히 반대 세력과도 힘을 합쳤다. 그러나 안철수와 문재인은 그 정도 떨어져 있지 않다. 더욱이 합치지 않으면 무조건 지는데 그 정치적 비난과 후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본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구조도 단일화에
유리한 조건이다.

프레시안 : 문제는 방법 아닌가? 조 교수는 '박원순 모델'을 단일화의 한 방편으로 제시했는데, 서울시장과 대통령 선거의 무게가 다르다는 점에서 소위 '아름다운 단일화'가 가능하냐는 걱정이 작지 않다.

조국 : 내가 말한 '담판'은 내일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양쪽 모두 한두 달 정도는 지지층을 확보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안철수 원장도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활동했지만 공식 데뷔하면 자신의 판을 가지는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한두 달 동안 각자 행보를 하면 지금은 알 수 없는 판세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판세는 의미가 없다. 10월 중순 이후의 판세가 중요하다. 담판은 시간 순서로 맨 뒤다. 그 전까지 각자가 각자의 자장을 최대한 넓히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자장이 확 넓어지는 때가 온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두 후보가 '따로 또 같이'를 계속해야 한다. 양 측에 그런
메시지를 이미 전하기도 했는데, 각자의 지지층을 확산하고 공고히 하면서 또 사람들이 '저 두 사람이 같이 가겠구나'라고 느끼도록 보여줘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공개적인 티타임을 갖든, 함께 시장을 방문하든, 전국을 돌며 두 사람이 공동 토크쇼를 하는 것도 괜찮다. 차 한 잔 함께 마시는 것이 별 것 아니지만 정치적이고 상징적 의미가 있다.

"후보 등록은 한 명만 해야…무소속 대통령은 무조건 실패한다"


프레시안 : 그런 과정까지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 둘을 묶는 중재자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중재자로 조 교수를 지목한다.

조국 : 나는 개인이다. 내 개인의 말을 들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대권은 엄청난 자리라 중재자의 발언권이 많지 않다. 나 뿐 아니라 이른바 '재야 원로'들의 발언도 먹혀들 여지가 거의 없다. 각 후보 본인, 그리고 직접적 대리인들끼리 담판을 지어야 한다. 솔직히 다 까놓고 얘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지금은 물론 아니다. 선거 하루 전날 하면 당연히 안 된다. 솔직히 말하면 후보 등록은 한 사람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하지만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이번 대선까지 후보를 못 내면 주요 선거 세 번을 모두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된다. 불임정당이라는 비난이 나올 것이 뻔하다.

조국 : 박원순 서울시장은 입당하지 않았나. 두 가지 측면을 얘기하고 싶다. 일단, 안 원장이 지금 바로 입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바로 입당하는 것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민주당은 우선 안철수 원장이 들어올 수 있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당내 혁신의 문제다. 또 안철수 원장에게는 '무소속 대통령은 무조건 실패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예수님이 온다 해도 무소속 대통령은 정국을 이끌어갈 수 없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집권은 가능할지 몰라도 국정운영은 못 한다. 우리로 얘기하면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로부터 견제를 받으니, 집권 1년 반 혹은 2년 내에 좌초된다.

안 원장도 그것을 알 것이다. 모른다면 알아야 한다. 안 원장 지지자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쪽을 모두 포괄하는 거국내각을 만든다? 그것은 환상이다. 우리 정당정치 구조 내에서 안 원장이 민주당과 손 잡아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안철수 현상'이 만들어졌다 해도, 집권을 하고 국정을 운영하려면 정당정치에 기반해야 한다. 그것이 안철수의 남은 과제다. 민주당에서는 안 원장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줘야 한다. 내부를 혁신하면서 소통의 틀을 만들어주면 가능하다.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지만 서로가 절박하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원순, 안철수의 등장은 민주진보진영 진화 과정이다"

프레시안 :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와 같은 방식만으로는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고,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데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공동정부론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조국 : 공동정부론은 <한겨레>에서 내가 하는 인터뷰 코너에 문재인 후보가 나와 처음 한 말이다. 그 당시에는 내용이나 시기 등을 놓고 난타를 당했다. 그러나 현재는 민주당에서 안철수 원장 및 그 지지자와 연합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동정부든, 연합정부든 단어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연합정부의 실험은 계속돼 왔다. 김영삼은 '3당 합당'이라는 연합 정치를 통해 집권했다. 그 뒤에는 'DJP 연합'이 있었다. 그때마다 일부에서는 야합이라고 비판했지만 외국에는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이 연합정부를 만드는 일이 실제 있다. 민주진보진영만의 독자적이고 순순한 정부를 세울 수 있다면 하면 되지만, 그게 아니면 최대한 힘을 키워야하는 것 아닌가. 더욱이 과거에는 '합리적 중도' 정도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고 모호해 보였던 안철수 원장이 <안철수의 생각>을 내면서 민주진보진영과 같이 하겠다는 것을 좀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았나. 함께하는 것은 당위다.

프레시안 : 안철수 원장은 사실상 '개인'이라는 점에서 과연 공동정부라고 할 수 있냐는 비판도 나온다. 총선 이후 통합진보정당의 사실상 와해로 그 이전 시점에 얘기했던 '야권연대'와 상당히 결이 다른 선거 연대 전략이 됐다.

조국 : 당연하다. 안철수 원장은 당이 없고 당을 만들 생각도 없을 것 같고 능력도 없을 수 있다. 안 원장 주위의 사람들도 당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현재 진행형으로 봐야 한다. 정당이 있고 그 밖의 모든 사람을 개인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박원순도 개인일 뿐인데 왜 단일화를 했나? 우리 정당정치가 미약하다는 증거이긴 하지만 진화하는 정당 정치의 면에서 본다면, 박원순이나 안철수는 민주진보진영의 외연이 확장돼 가는 과정이다.

보수 쪽은 3당 합당을 통해 보수대연합이 어느 정도 완결됐다. 비록 선진당 등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의미가 없고 뿌리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 이쪽은, 미안한 얘기지만 진보정당은 적어도 2012년까지는 의미 없는 존재가 됐고, 민주당을 포함한 쪽도 보수대연합만큼의 외연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존 호남에, 노무현 당선을 기점으로 합류한 친노, 그리고 박원순 시장이 중심이 되는 시민사회운동이 최근에 결합했고, 여기에 '합리적 전문가 집단'을 대표하는 안철수 원장까지 합쳐지면 비로소 민주대연합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현재는 거기로 가는 여정에 있다. 정당정치의 이탈이 아니다. 정당정치의 성숙과 진화의 과정이다. 그러니 당연히 안철수 원장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정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맞다. 지금 당장 입당하라는 얘기는 현실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그런 점에서 '문-안 공동정부'는 'DJP 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다. 박원순 식 승리의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나. 대권후보가 된 문재인의 몫이 크겠지만, 민주당은 현재의 민주당에 사람을 붙이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 후보가 당의 혁신을 공약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세력들을 다 묶어내는 모습으로 당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수권정당이다. 후보간 단일화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충분조건은 수권세력의 형성이고, 수권세력의 형성은 민주대연합 정당이 완성될 때 가능하다. 그런 것이 후보등록인 11월 28일 전에 등장하기를 원하고 희망한다.

"이정희 출마? 아무런 변수 안 돼…민주정부 3기, 해선 안 되는 일은 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총선 전에는 야권의 한 축으로 진보정당이 있었지만 지금은 통합진보당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정희 전 대표는 선거에 나온다고 하는데 대선 정국에 변수가 될까?

조국 : 변수는 안 된다. <진보집권플랜>이 총선 전까지는 거의 다 들어맞았는데, 총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어그러졌다. 민주당이 공천을 잘 했다면 1당이 됐을 것이고, 통합진보당도 원내 교섭단체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두 당의 정책연합을 통한 연합정부가 가능했다면, 안철수 원장이 안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됐다.

그 상태에서 통합진보당은 알다시피 연속적 자해를 계속하고 있다. 이정희 전 대표가 대선에 나와서 1~2%의 득표를 얻는다고 의미는 없다. 민주당이든 안철수든 누구도 같이 하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도 반드시 진보정당과 함께 했던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서는 역할이 극히 줄었다.

이렇게 된 것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닌, 본인들의 탓이다. 정치적 과오에는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이정희 전 대표에게 직접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선배들에게 '백의종군'하는 것이 맞다고 얘기했다. 대권에 나왔다가 (정권교체를 위해 희생하면서) 물러가겠다? 그 자체가 우스운 얘기로 들릴 것이다. 전략적 이득도 잘 모르겠다. 정치인 개인을 위해서도, 진보정당을 위해서도 여러 분란에 대해 책임 지고 백의종군하는 것이 깔끔하다. 내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프레시안 : 올해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한다면 '민주정부 3기'라 할 수 있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보면 공과 모두를 찾을 수 있다. 민주정부 3기의 중요한 과제를 꼽아본다면 어떤 게 있을까?

조국 : 1기와 2기의 경험이 있어서 3기는 그 이전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해야 할 과제는 당연히 두 가지다. 경제민주화와 정치사회개혁이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과 노동인권 강화다. 이 두 가지가 없는 경제민주화는 사기다. 박근혜 후보와의 결정적 차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는 정권 초반 1년 내에 결판을 봐야한다.

그와
동시에, 다소 추상적이지만 정의와 공정의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부정의하고 불공정하다는 느낌을 받는 법과 제도와 관행이 있다. 정치인으로 놓고 보면 뇌물, 정치개혁, 정당개혁의 문제가 있고, 검찰의 기소권 남용이 문제라면 사법개혁이 필요한 등이다. 재벌 문제 외에도 정치든 사법이든, 심지어 자기 생활에서의 문제에도 불공정의 문제는 있다. 이런 문제는 늦어도 집권 2년 내에 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 측면에서 걱정은 내년에는 더 경제가 안 좋을 거라고 한다.

조국 : 국내적으로는 가계부채가 있고, 국외로 보더라도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까지 터지면 바로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들 하더라. 김대중 정권이 외환위기 터지고 집권해서 설거지하다 끝났는데, 그런 일이 또 터진다면 3기 민주정부는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건 할 수 있지만 이건 못 한다고 밝혀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해야될 것이다.

"박근혜, 본능적 정치인…유신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생각 매우 위험"


프레시안 : 대선 후보 개개인의 장점과 단점을 꼽아 본다면? 우선 박근혜 후보부터?

조국 : 이 분은 대중, 정확히 말하자면 '우중(愚衆)'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본능적 정치인이고 훈련된 정치인이다. 어릴 때부터 정치인을 했고, 궁정정치와 실물정치의 속살을 만지고 경험했고 지켜봤으니 그런 장점이 있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렇다. 구조를 따지기 전에 특정 순간에 어떤 말로 돌파해야 이긴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2012년 OECD 수준에 이른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은 없다고 본다. 이 분은 자기 신념의 강자다. 신념의 포로다. 그 신념은
아버지와 유신 체제에 대한 신앙에 가깝다. 버리지 못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아버지, 정치적으로는 유신이다. 그것을 단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럽발 경제위기가 와서 다시 외환위기로 간다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것 아닌가. 경제위기를 이유로 준유신을 가동할 수도 있다고 본다. 왜 부정하지 못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민주주의 사회에 맞는 최고 지도자로서의 멘탈리티가 약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별로 뽑고 싶지 않다.

프레시안 : 그러나 사실 젊은층은 유신의 기억이 없다.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와닿지도 않는다.

조국 : 유신이 태어나기 전 얘기니까 그렇다. 거의 3.1운동처럼 들린다. 인혁당 사건도 유관순 누나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었다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대가 재연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개헌을 요구하면 감옥 가고, 머리 길면 강제로 잘리고, 여학생이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유치장에 간다. 경제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일이지만, 과연 그런 전략만이 경제성장이 가능한가에는 여러 가지 논쟁의 지점이 있다. 심지어 보수 진영 내에서도 다수는 5.16 군사쿠데타는 인정하지만, 유신은 너무 나갔다고 한다. 유신체제는 거의 히틀러의 그것과 똑같았으니까.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는 유신까지도 끝까지 옹호한다.

"야생마 같은 노무현 vs 절도와 절제 있는 문재인"


프레시안 : 문재인 후보의 장단점은?

조국 : 노무현 정부 때는 오히려 사람들이 문재인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본인이 대중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기도 했다. 그런데 '노통' 장례식 때 모습, 백원우 의원소리를 지르니 (문 후보가) 백 의원을 앉히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노통'의 비서실장으로 누구보다 원통할텐데 그 와중에 공식적인 격식을 유지한 것이다. 그 모습에서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은 한풀이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노통'의 서거 발표하고 장례식까지의 모습에서 인간 문재인이 어떤 사람인지 대중에게 각인됐고, 그 이미지를 문재인이 가지고 있다.

실제로 과거에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 당시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로 활동할 때도 '노통'과 상반된 이미지였다. 두 사람 모두 대표적인 노동인권변호사였지만, 법정에서 '노통'을 거북해하는 사람은 상당수였지만 문재인은 대부분이 좋아했다. 문재인과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그랬다. 둘이 스타일이 다르다. '노통'은 야생마 같지만 문재인은 절도와 절제가 있다. 지금도 몸에 배어 있다. 그것이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

권력을 잘 모른다는 얘기도 있지만 사실은 그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치인으로 정말 안 나가려고 애를 쓴 것이다. 1987년 민주항쟁 때부터 넓은 의미에서 정치에 관여해 왔고, '노통'을 보내고 난 뒤 자신 외의 여러 사람이 다 정치를 했다. 어떻게하든 정치를 안 하려 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대형 정치인이 돼 버렸다.

 

ⓒ프레시안(최형락)


단점은 말? 원래 좋았는데 치아 10개를 임플란트 시술한 뒤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또 변호사는 비록 서면으로 말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변호사 때는 말을 잘 했다. 법률가의 언어는 잘 하는데, 정치인의 말은 아직 부족하다. 법률가의 특성은 한 단계씩 밟아가 결론에 도달한다. 정치인은 점핑한다. 비약하고 생략한다. 정치인 언어의 화룡정점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아닌가. 한 방에 모든 것을 다 끝내는 언어, 통쾌하다. 아직 문재인 후보에게는 최고 지도자가 가져야 할 생략과 비약이 잘 모이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의 진화가 여전히 필요하다.

"안철수, 신중하고 사려 깊지만 아직 정치인의 모습 보여주지 않았다"

프레시안 : 안철수 원장은 어떤가?

조국 : 정치인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직 정치인으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안 하셨으니. 현재까지는 책으로 정치를 했다. (출마선언으로) 본격 시험대에 올랐으니 이제는 담판을 하건, 야권단일화를 위해 TV토론을 하건, 말을 해야할 것이다. 그 말은 책과는 다르다. 어떨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장점은 신중하고 사고가 깊고 스스로 다지는 스타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보다 더 다지고 다진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정도로, 돌다리도 짚어가는 사람인 것 같다. 또 우리 사회에 그 정도 지위에 오른 사람 중에, 그 정도로 깔끔하게 산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깔끔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세상의 바람직한 변화에 대해 그 정도 고민한 사람이 있을까?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매우 소중하다. 정치인으로 어떻게 할지는 아직 모른다. 자신의 육성으로, 언동으로 보여주지 못했고 늘 타인을 통해 얘기했다. 대중민주주의사회에서 그런 건 없다. 그걸 하셔야 할 때가 됐다. 이제 대변인이 아니라 자신의 말로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야권의 승리를 위해 기여를 하겠다고 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얘기해준다면?

조국 : 빗자루 들고 마당 쓸라고 하면 그래야죠. 사실 나는 정권교체 되면 1년 간 연구년 받아 나가 있을 생각이다. 지난해와 올해 세상 일에 관여를 너무 많이 해 와서 제가 해야 할 저술 작업이 조금씩 미뤄졌다. 사적으로 (정권교체가) 매우 필요하다(웃음). 그 점에서 연말까지 빗자루까지 쓸 생각이 있다.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는 고민이다. 단일화가 되면 단일 후보를 위해 뛰어야하는 것이 너무 분명하지만, 어떤 일이든 직책이든 도와달라면 도와드려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두 분이 경쟁과 협력을 계속해 나갈 때 제가 어떤 일을 해야할지 고민이다. 고민 중에 있다고만 말씀드린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여정민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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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업이 평양으로 몰린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09/18 10:40
  • 수정일
    2012/09/18 10:4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세계기업이 평양으로 몰린다
 
북 제8차 평양가을철 국제상품 전람회 개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2/09/18 [07:44] 최종편집: ⓒ 자주민보
 
 


▲ 평양국ㅈ상품전람회는 해를 거듭할 수록 그 규모와 경제적 효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봄철상품전람회에 조선의 평화자동차가 내놓은 자동차. © 이정섭 기자


조선에서 국제 상품 전람회가 열리게 된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제8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가 오는 24일부터 27일까지 3대혁명전시관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

중앙통신은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에 조선을 비롯해 중국,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말레이시아, 스위스, 영국, 오스트리일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중국 대북 등의 국가 210여개 회사들이 참가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신문은 조선에서는 컴퓨터 수치제어 기술이 도입된 최첨단 CNC공작기계를 비롯하여 금속, 기계, 전력, 농업, 경공업, 보건, 식료일용 등 여러 부문의 1.390여종의 제품들이 출품 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또한 전람회는 무역, 경제, 과학기술분야에서 나라와 지역들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상품전람회는 조선무역성 국제무역전람사 주관으로 봄철과 가을철로 나뉘어 개최되며,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는 남북 경협을 위해 한국국제전시장(KINTEX), 김대중전시컨벤션센터, 한국무역협회 등 전시기관, 남북경협관련 단체·협회, 통일부 관계자 등이 조선을 방문 참관하기도 했으나 이명박 정부들어 교류와 참관이 전면 차단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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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민주당 대북 실무접촉 불허

 

통일부, 민주당 대북 실무접촉 불허
통일부 "정치적 목적 정당교류 허용할 수 없다"
 
 
2012년 09월 18일 (화) 09:49:29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추석을 전후하여 민주당 대표단을 북측에 파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통일부는 민주당이 대북 실무접촉을 제의하는 팩스를 보내는 것을 17일 불허했다. 민주당은 추석을 전후해 대표단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김종수 통일전문위원은 1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해찬 당 대표께서 밝힌 추석 전후 민주당 방북단 파견 관련 대북 실무접촉을 제의하는 팩스를 보내려 했으나 통일부의 거부로 무산 위기에 처해 있다”며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남북 평화, 공존의 분위기를 만들려는 우리당의 노력을 무시하고 가로막는 통일부를 강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추석 전후 ‘민주당 대표단’을 북측에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민주당은 이에 따라 북측과 실무접촉을 제안키로 한 것.

민주당은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신고서를 제출하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팩스 발송을 대행하는 공문을 발송했지만 통일부는 17일 불허를 통보해왔다.

민주당은 북에 보낼 실무접촉 제안서에 “최고인민회의 관계자들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제반 현안의 폭넓은 논의를 위해 추석을 전후하여 평양을 방문하고자”하며, “이를 위한 실무적 협의를 위해 추석 전에 귀측이 편리한 장소에서 접촉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과 논의할 남북관계 발전 제반 현안 은 당국간 협의해야 할 사항”이며, “순수한 사회문화교류만 허용하고 있는 방침상 정치적 목적의 정당 교류는 허용할 수 없다”는 수리 거부 입장을 전화로 통보했다.

김종수 전문위원은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해 수해지원 등 남북간의 인도적인 문제도 풀어내지 못하는 정부가 제1야당의 남북관계 개선의 노력마저도 가로막는 것에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며 “남북관계 발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야당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한 “통일부가 우리당의 북한주민접촉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초법적인 권한 남용으로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통일부는 우리 민주당이 북측 관계자를 만나 남북관계 발전을 논의하는 것이 ‘남북교류협력법’ 신고 거부의 해당 사항에 해당하는 지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2(남북한 주민 접촉) 제1항은 남한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통일부장관에게 미리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제3항은 “접촉에 관한 신고를 받은 때에는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신고의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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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 추석 전후 민주당 대표단 방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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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용역' 컨택터스 SJM폭력 행사 당시 경찰 신고 7건 녹취록 전문 입수

"경찰이죠? 사람들, 용역한테 맞고 있는데..."
"누가 맞아요? 세콤은 뭐하고 있는 거예요?"

[단독] '폭력용역' 컨택터스 SJM폭력 행사 당시 경찰 신고 7건 녹취록 전문 입수

12.09.17 17:28l최종 업데이트 12.09.17 17:28l
 
 
지난 7월 27일 직장폐쇄로 용역업체가 들어간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자동차 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 컨택터스라는 용역업체가 고용한 인력들이 공장 후문을 막고 서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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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자 : 아무런 조치를 못하고 있고요. 경찰이 그 용역업체를 전경이라고 하는데요.
경찰 : 그 내용도 해가지고 보냈고요.
신고자 : 어이없지 않습니까?
경찰 : 여기다 따지시면 안 되고.
신고자 : 그럼 어디에다가 따지죠? 몇 번이죠. 몇 번이죠?
경찰 : 기다려 보세요. 거기 목래동이라고 했죠?
신고자 : 어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이가
경찰 : 어이가 없는 건 거기가 어이가 없는 거지 여기가 어이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신고자 : 그쪽 사람들(조합원들)은 그 사람들(용역)한테 맞고 있는데
경찰 : 누가 맞고 있어요?
신고자 : (용역들이) 행패부리고 차 파손시키고 기물 파손하고 사람 때리고 그러는데 (경찰은) 아무것도 못하지 않습니까?
경찰 : 그럼 세콤은 뭐하고 있는 거예요?
신고자 : 네?
경찰 : 세콤은 뭐하고 있어요?
신고자 : 공권력은 뭐 있죠? 공권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도와 달라는 거잖아요. 예?

경찰은 없었다. 검정 옷에 용역들이 곤봉과 방패를 들고 자신들을 흉내 내며 사람을 패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용역 전투화에 짓밟히는 노동자들의 절규를 듣고만 있었다. 심지어 그 용역을 '전투경찰'이라고 칭하며 공권력의 폭력을 당연시했다. 지난 7월 27일 새벽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자동차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에서 발생한 일이다.

<오마이뉴스>는 17일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을 통해, 112종합상황실에 접수된 SJM 관련 신고 녹취록을 입수했다. 당시 경찰신고 정황이 일부 알려지기는 했지만 신고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전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건은 민간군사기업을 표방한 용역업체 '컨택터스'가 에스제이엠의 직장폐쇄 과정에서 조합원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러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현재 컨택터스 업체 관계자 4명과 SJM 임원 1명이 구속돼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전 4시 55분부터 5시 27분까지 32분 동안 노조 조합원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사설경비업체(세콤)의 신고가 7번 있었다. 녹취록에서는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지만 "아무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수차례 반복됐다. 용역업체의 폭력행위가 눈앞에서 벌어져도 '경찰이 꼼짝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또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사설경비업체의 항의에 용역들을 "전경(전투경찰)"이라고 둘러댄 사실도 확인됐다. 폭력을 방관하는 모습에 항의하자 용역들의 폭력을 공권력으로 포장한 것이다.

"빨리 와주세요, 지금 죽겠어요, 사람 죽게 생겼어요"

지난 7월 27일 직장폐쇄로 용역업체가 들어간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자동차 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 30일 오후 용역업체 컨택터스의 인력들이 공장 후문을 막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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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27일 오전 4시 55분. 조합원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신고자는 "여기 지금 깡패들이 와가지고, 지금 전 경력인 줄 알았어요. 전경인 줄 알았어요, 전경같이 복장을 하고 한 삼백여 명이 지금 와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곧 충돌이 있을 거 같으니까, 안에 지금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을 지금 밀어내려고 하니까 빨리 출동 좀 해주세요"라고 전달했다.

오전 5시 1분에 접수된 두 번째 신고는 SJM 공장의 사설 경비업체 측에서 이뤄졌다. 현장 소식을 보고받은 경비업체 근무자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신고를 한 전화다. 그는 "저희 직원이 아직 도착한 것은 아니고요, 저기 관리자 경비 아저씨 있죠"라며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있답니다"라고 신고했다.

4분 뒤 세 번째 신고가 현장에서 걸려온다. 역시 조합원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신고자는 "사람들 맞고 지금 피흘리고 싸우고 있는데 지금 빨리 안 오냐고요, 빨리 좀 와주세요 지금 죽겠어요, 지금 사람 죽게 생겼어요"라고 급박한 상황을 전달했다. 이에 경찰은 "지금 순찰차 거의 도착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답했다.

오전 5시 23분, 두 번째 신고를 했던 사설경비업체가 현장에 도착해 다시 신고를 한다. 현장에 출동한 경비업체 직원은 "경찰이 대응을 못하고 있어서요"라며 "저기 경찰이 용역업체랑 전경이랑 구분을 못해 가지고요, 자기네들이 불렀다고 하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는 "분명히 전경이 아닌데요, 용역업체가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용역업체 직원을 전경이라고 지금 얘기하고 있거든요"라고 반복해서 설명했다.

이에 112종합상황실 경찰은 "그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확인해야 되요, 여기서는 그냥 경찰관을 파출소 직원을 보내드리는 거거든요"라고 말했다. 신고자가 "다시 그 쪽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문의하자 경찰은 "여기는 확인하는 데가 아니에요, 접수받아 그냥 보내기만 하는 데에요"라고 말했다.

오전 5시 26분에 걸려온 다섯 번째 신고자는 "(용역이) 현장 내에 지금 들어 와가지고 지금 흉기를 막 집어 던지고 있어요, 지금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거든요"라며 "제품이 엄청 날카로운데 그 제품들 지금 집어던지면서 막 그래서 지금 단원병원에 후송되고 그랬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는 "빠른 조치 좀 부탁 바랄게요"라고 덧붙였다.

공권력 포기한 경찰... "세콤은 뭐하고 있어요?"

지난 7월 27일 새벽 SJM 측이 공장에서 부분 파업 농성 중인 노조 조합원들을 강제로 내쫓기 위해 300여 명의 용역들을 투입한 가운데 한 여성 조합원이 용역들이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아 붕대 등으로 응급치료를 한 모습.
ⓒ 금속노조 경기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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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27분, 현장에서 경찰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자 사설경비업체가 다시 신고를 했다. 경비업체 직원은 "용역업체를 경찰이 전경이라고 하는데요, 어이없지 않습니까?"라는 항의를 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경찰은 "왜 이렇게 성질을 부립니까"라며 "세콤은 뭐하고 있어요?"고 반문한다. 이에 신고자는 "공권력은 뭐 있죠? 공권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도와 달라는 거잖아요, 예?"라고 되물었다.

같은 시각, 마지막 신고 전화를 건 조합원으로 보이는 신고자의 말에는 현장의 공포가 그대로 전달됐다. 신고자는 "지금 사람들 맞고 지금 피 흘리고 싸우고 있는데 지금 빨리 안 오냐고요", "여기 깡패들이 쇠 덩어리 살인 무기를 막 던져가지고 사람들이 생명이 위협한데 빨리 와주세요"라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의 사태 방관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용역 직원들을 "전경"이라고 말하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경찰의 소극적인 자세 지적을 넘어 용역업체와 경찰이 협력관계에 있다는 의심까지 제기될 수 있다.

진선미 의원실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현장에서 경찰이 용역을 전경이라고 한 게 명확하게 드러났다"며 "이것은 책임자를 징계하거나 사표를 쓰게 할 게 아니라 경찰과 SJM, 용역업체 컨택터스의 유착관계를 수사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사건이 있은 직후 신고 녹취록을 경찰에 요구했지만 경찰은 각 신고에 대해 한 줄로 요약해 보내왔다"며 "수차례 급박한 상황이 신고 됐음에도 경기경찰청의 지휘라인은 손을 놓고만 있었다, 신고녹취록을 감추려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은 현재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우문순 안산단원경찰서장의 징계를 진행하고 있다. 우 전 서장은 행정안전부에 사표를 제출한 상황이다. 징계나 유착관계에 대한 수사 없이 우 전 서장의 사표 수리로 마무리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24일 용역업체 컨택터스의 폭력과 관련해 '산업현장 폭력 용역 청문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SJM의 김용호 회장 등 사측 관계자와 박종태 컨택터스 대표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SJM은 폭력 사태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아직까지 직장폐쇄를 계속하고 있다.

아래는 진선미 의원실에서 공개한 112신고 녹취록 전문이다.

[전문] 112신고 녹취록
SJM 112신고 녹취록1
접수번호 : 1747
접수시간 : 2012. 7. 27.(금) 04:55:50~(1분 13초)
신고번호 : 010-9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사 김○○

경 찰 : 경찰입니다.
신고자 : 여보세요
경 찰 : 네, 신고내용 말씀하세요
신고자 : 아. 경찰이죠?
경 찰 : 네
신고자 : 네, 여기 반월공단 안에 에스제이엠 밀런데요
경 찰 : 반월공단
신고자 : 네네, 목내동
경 찰 : 안산 목내동이요
신고자 : 네네
경 찰 : 안산 목내동 반월공단 내에 어디라구요?
신고자 : 네, 반월구 목내동 여기가 주소는 모르겠고, 402-3번지
경 찰 : 목내동 402-3번지라는거에요?
신고자 : 네네 그 앞에 에스제이엔라는 회사인데요
경 찰 : 에스젠
신고자 : 에스제이에이
경 찰 : 에스제이엔
신고자 : 네
경 찰 : 네네
신고자 : 여기 지금 깡패들이 와가지고, 지금 전 경력인줄 알았어요. 전경인줄 알았어요 전경같이 복장을 하고 한 삼백여명이 지금 와 있거든요
경 찰 : 삼백여명이 와있어요?
신고자 : 네 여기 충돌, 지금 굉장히 충돌될거 같으니까 곧 충돌이 있을거 같으니까 안에 지금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을 지금 밀어낼려고 하니까 빨리 출동 좀 해주세요
경 찰 : 아. 일하는 사람들을
신고자 : 아니 그러니까 예측이 되는데 지금 깡패들이 지금 중무장을 하고 지금 와 있기 때문에 빨리 와주세요
접수자 : 그래요 알았습니다.

SJM 112신고 녹취록2
접수번호 : 1763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01:10~(1분 19초)
신고번호 : 02-1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사 김○○

경 찰 : 예, 경찰입니다.
신고자 : 죄송합니다. 확인 신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세콤 사무실의 이○○입니다.
경 찰 : 예, 말씀하세요.
신고자 :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이고요.
경 찰 : 목
신고자 : 목내동
경 찰 :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신고자 : 401-5번지
경 찰 : 401-5번지
신고자 : 반월공단 6블럭 20호입니다.
경 찰 : 반월공단
신고자 : 6블럭 20호
경 찰 : 6블럭 20호하면 다 아나요
신고자 : 회사명은 에스제이엠입니다.
경 찰 : 에스
신고자 : 제이엠
경 찰 : 제이엠
신고자 : 회사로 용역업체에서 지금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답니다.
경 찰 : 용역업체에서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데요?
신고자 : 네네
경 찰 : 몇 명이나요
신고자 : 급하셔 가지고 그거 까지는 파악 못하였습니다.
경 찰 : 출동자 전화번호요
신고자 : 010입니다. 9XXX 3XXX번입니다.
경 찰 : 3XXX번이요, 혹시 무전으로 안 되나요?
신고자 : 네.
경 찰 : 무전으로 확인해 볼 수 없어요?.
신고자 : 저희 직원이 아직 도착한 것은 아니고요, 저기 관리자 경비 아저씨 있죠. 에스제이엠
경 찰 : 뭐라고 전화 왔던가요. 용역원들이 들어왔다고....
신고자 : 네,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있답니다.
경 찰 : 네, 몇 명인지는 말하지 않고요.
신고자 : 네, 급하셔 가지고 끊으셨습니다. 위급하신 것 같습니다.
경 찰 : 용역원들이 들어와서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요.
신고자 : 네. 네.
경 찰 : 여보세요.
신고자 : 제가 전화를 한 것입니다.
경 찰 : 알았습니다.
신고자 : 네.
경 찰 : 감사합니다.

SJM 112신고 녹취록3
접수번호 : 1775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05:06~(27초)
신고번호 : 010-9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사 김○○

경 찰 : 네, 경찰입니다.
신고자 : 여보세요 여보세요
경 찰 : 네 네
신고자 : 여기 왜 경찰안와요?
경 찰 : 아. 지금 순찰차 거의 도착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가지고
신고자 : 지금 다 들어가라고 사람들 맞고 지금 피흘리고 싸우고 있는데 지금 빨리 안오냐고요
경 찰 :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신고자 : 빨리좀 와주세요 지금 죽겠어요 지금 사람죽게 생겼어요
경 찰 : 네, 알겠습니다.

SJM 112신고 녹취록4
접수번호 : 1835
신고시간 : 2012. 7. 27.(금) 05:23:08~(1분 19초)
신고번호 : 02-1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위 노○○

경 찰 : 예, 경찰입니다.
신고자 : 예, 감사합니다. 에스엠 세콤입니다.
경 찰 : 예, 불러보세요.
신고자 : 저희 지금,, 경찰이 지금 도착했는데요. 아무런 대응을 못해 가지고요,
경 찰 : 예.
신고자 : 예, 다시 지금 연락을 드린겁니다.
경 찰 : 대응을 못한다니요, 무슨 얘기에요?
신고자 : 혹시 집회 신고 들어온 것 있습니까? 반월
경 찰 : 여기는 확인이 안되요. 관할 경찰서로 하시면 됩니다.
신고자 : 예, 관할 경찰서요.
경 찰 : 예.
신고자 : 저기 용역업체랑 경찰이 전경이랑 구분을 못해 가지고요, 자기네들이 불렀다고 하는데요.
경 찰 : 예.
신고자 : 전경 차량에 시크리트라고 써 있을리 없거든요. 50명이 지금 용역업체가 들어왔다고 하는데요. 이거 다시 한번..
경 찰 : 거기 경찰관 출동했다면서요?
신고자 : 출동을 했는데....
경 찰 : 예.
신고자 : 분명히 전경이 아닌데요. 용역업체가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용역업체 직원을 전경이라고 지금 얘기하고 있거든요.
경 찰 : 예.
경 찰 : 그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확인해야 되요.
경 찰 : 여기서는 그냥 경찰관을 파출소 직원을 보내드리는 거거든요.
신고자 : 그 쪽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면 안되겠습니까.
경 찰 : 여기는 확인하는데가 아니에요, 접수받아 그냥 보내기만하는데에요
신고자 : 이거 저희가 한번 확인해 가지고, 만약에 알겠습니다 우선
지령실 : 거기 관할이 어떻게...

SJM 112신고 녹취록5
접수번호 : 1841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26:48~(1분 7초)
신고번호 : 010-5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위 김○○

경 찰 : 여보세요 경찰입니다. 말씀하세요
신고자 : 예, 경찰서죠?
경 찰 : 예 예 예, 경찰서가 아니고 112신고센터에요
신고자 : 예, 여기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401-5번지 인데요
경 찰 : 잠깐만요 잠깐만 선생님 목내동 401-5번지
신고자 : 예, 에스제이엠 사업장 내 거든요
경 찰 : 자 401-5번지 에스..에스 머요
신고자 : 에스제이엠요
경 찰 : 에스제이엠
신고자 : 네
경 찰 : 예, 예
신고자 : 네 지금 용역들이 들어 와가지고
경 찰 : 아, 용역들이 들어와서
신고자 : 네, 현장 내에 지금 들어 와가지고 지금 흉기를 막 집어 던지고 있어요 지금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거든요
경 찰 : 아 용역들이 들어 와서 흉기를 집어 던지고 있다
신고자 : 네 제품이 엄청 날카로운데 그 제품들 지금 집어던지면서 막 그래서 지금 단원병원에 후송되고 그랬거든요
경 찰 : 알겠습니다.
신고자 : 빠른 조치 좀 부합... 바랄게요
경 찰 : 예 알겠습니다. (이거 이거죠 예 맞아요 에스..에스엠)

SJM 112신고 녹취록6
접수번호 : 1846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27:47~(2분 8초)
신고번호 : 02-1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위 노○○

경 찰 : 경찰입니다
신고자 : 감사합니다. 에스원 세콤입니다
경 찰 : 네 불러보세요
신고자 : 목래동 이구요
경 찰 : 목래동 이요?
신고자 : 안산시 단원구 목래동
경 찰 : 잠깐만요 안산시 단원구 목래동 목래동이요
신고자 : 401-5번지입니다.
경 찰 : 401-5
신고자 : 용역업체가 50명이 들어와서
경 찰 : 그거 보냈잖아요
신고자 : 보냈는데, 아무런 조치를 못하고 있고요
경 찰 : 그 내용 해가지고 보냈어요
신고자 : 그리고 경찰이 그 용역업체를 전경이라고 하는데요
경 찰 : 그 내용도 해가지고 보냈고요
신고자 : 어이 없지 않습니까?
경 찰 : 여기다 따지시면 안되고
신고자 : 그럼 어디에다가 따지죠? 몇 번이죠. 몇 번이죠?
경 찰 : 기다려 보세요 거기 목래동이라고 했죠?
신고자 : 네
경 찰 : 안산 단원경찰서요
신고자 : 몇 번 입니까?
경 찰 : 여기서 가만 있어보자
신고자 : 그것도 파악 안되나요?
경 찰 : 왜 이렇게 성질을 부려요, 여기다
신고자 : 네?
경 찰 : 여기다 이렇게 성질을..
신고자 : 어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이가
경 찰 : 어이가 없는건 거기가 어이가 없는거지 여기가 어이가 없는건 아니잖아요
신고자 : 그쪽 사람들은 그 사람들한테 맞고 있는데
경 찰 : 누가 맞고 있어요
신고자 : 행패부리고 차 파손시키고 기물 파손하고 사람 때리고그러는데 아무런 못하지 않습니까 그사람들은 우리들 한테는...
경 찰 : 그럼 세콤은 뭐하고 있는거예요?
신고자 : 네?
경 찰 : 세콤은 뭐하고 있어요?
신고자 : 공권력은 뭐 있죠? 공권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도와달라는거 잖아요. 예?
경 찰 : 여기 단원 경찰서 전화 해보세요, 8040에
신고자 : 이름이 어떻게 되죠?
경 찰 : 0329에요
신고자 : 8040
경 찰 : 8040에 0329요
신고자 : 0329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경 찰 : 노○○ 경위에요
신고자 : 노 동자
경 찰 : 노○○ 경위라고요
신고자 : 노 순자, 여보세요
경 찰 : 아, 노○○ 경위라고요 여기 녹음 다 되어 있어요
신고자 : 음, 알겠습니다.

SJM 112신고 녹취록7
접수번호 : 1847
접수시간 : 2012. 7. 27.(금) 05:27:53~(1분 3초)
신고번호 : 010-8XXX-XXXX
접 수 자 : 112종합상황실 경사 이○○

경 찰 : 예, 경찰관입니다 여보세요
신고자 : 여보세요
경 찰 : 예, 예 경찰관입니다
신고자 : 여기 에스엠이라는 회사인데요
경 찰 : 에스엠요?
신고자 : 에스제이엠이요
경 찰 : 예예 무슨 일인가요
신고자 : 네 여기 깡패들이 들어 와가지고 쇠 덩어리 살인 무기를 막 던져가지고 사람들이 생명이 위협한데 빨리 와주세요
경 찰 : 거기가 그 반월동인가요?
신고자 : 예, 여기 목래동 451-5
경 찰 : 잠깐만요
신고자 : 지금..
경 찰 : 우리 경찰관이 안나가 있나요 그 반월공단 6블럭 말씀 제일
신고자 : 예 지금 거 하나 나와 있는 거 같은데 지금 경찰 병력이 안나와 가지고 지금 깡패들이 살인 무기를 던지고 있다고요 쇠 덩어리를
경 찰 : 아, 예
신고자 : 빨리 나와 보시라고요
경 찰 : 예, 알겠습니다.
신고자 : 지금 전화 받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경 찰 : 이○○ 경사입니다.
신고자 :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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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핵강국의 조용한 등장 알려주는 사진

 

 

 

제4핵강국의 조용한 등장 알려주는 사진
 
[한호석의 개벽예감](30) 2006년 “세계최대 잠수함대 북에 있다”던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버웰 벨의 발언의 의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2/09/17 [11:06] 최종편집: ⓒ 자주민보
 
 

버월 벨의 청문회 발언은 사실이었나?

2006년 3월 9일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버월 벨(Burwell B. Bell)이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였다. 청문회에서 한반도 군사상황을 거론하던 그는 인민군 전력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the world's largest submarine fleet)”가 북에 있다고 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인민군과 첨예하게 맞선 무력대치상태에서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는 버월 벨은 가장 많은 대북군사정보를 알고 있는 야전사령관인데, 그런 그가 미국 연방하원 청문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가 북에 있다고 언급한 것은 그냥 스쳐갈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영어 표현으로는 잠수함 보유척수가 가장 많은 것(the largest in number)도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뜻이고, 잠수함대의 총배수량이 가장 큰 것(the largest in total displacement)도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뜻이므로, 버월 벨의 그 발언은 좀 모호하게 들린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은, 버월 벨의 그 발언을 인민군 잠수함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잠수함을 보유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해왔다. 그런 식의 해석이 일반화된 까닭은,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가 펴내는 연례보고서 ‘군사균형(The Military Balance)’에 나온 인민군 잠수함대에 관한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 사이에 유포된, ‘군사균형’을 비롯한 몇몇 군사정보들은 인민군 잠수함대에 관한 이런 정보를 전해준다.

첫째, 인민군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소련으로부터 위스키급(Whiskey class) 잠수함 4척을 도입하였다. 1950년대에 소련에서 건조되었고, 1980년대에 퇴역한 위스키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350t급인 디젤-전기 잠수함이다. 북이 도입한 위스키급 잠수함은 4척 뿐이다. 도입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북의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은 너무 낡아서 고철로 해체되었거나 초년병 훈련용 또는 기만전술용으로 쓰일 것이다. 따라서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은 인민군 잠수함대 보유량에서 제외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은 인민군이 아직도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을 운용하고 있다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둘째, 인민군은 1960년대 후반에 소련으로부터 로미오급(Romeo class) 잠수함 3척을 도입하였다. 로미오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830t급인 디젤-전기 잠수함이다. 소련은 중국에게 로미오급 잠수함 설계기술을 지원하여, 중국도 로미오급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였는데, 1970년대 초에 북은 중국이 건조한 로미오급 잠수함 4척을 도입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소련은 북에게도 로미오급 잠수함 설계기술을 지원하여, 북도 중국처럼 로미오급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였다. 이미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로미오급 잠수함 7척을 도입한 북은 1980년대에 동급 잠수함 5척을 자체로 건조하여 총 12척을 보유하였고, 1990년대에는 동급 잠수함 10척을 더 건조하여 2000년 현재 총 22척의 로미오급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었다.

셋째, 인민군은 수중배수량이 370t인 상어급(Sang-o class) 잠수함 40척, 수중배수량이 130t인 연어급(Yono class) 잠수정 10척을 현재 운용하고 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인민군 잠수함대에는 로미오급 잠수함 22척, 상어급 잠수함 40척, 연어급 잠수정 10척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인민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잠수함 62척과 잠수정 10척의 수중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56,360t이다. 그런데 미국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로스앤젤레스급(Los Angeles class) 잠수함 42척의 수중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290,934t이고, 러시아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타이푼급(Typhoon class) 잠수함 3척의 수중배수량을 모두 합하면 144,000t이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인민군 잠수함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버월 벨의 말은 수중배수량이 아니라 보유척수가 가장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버월 벨의 그런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군 잠수함대에 배치된 핵추진 잠수함도 72척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민군 잠수함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잠수함대라는 버월 벨의 말은 북의 군사적 위협을 부풀리려는 과장발언이었을까?

지금 세계 각국 군사전문가들이 알고 있는 인민군 잠수함대에 관한 정보 가운데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북이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로미오급 잠수함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북이 건조한 잠수함은 상어급 잠수함을 개량한 소형 잠수함과 연어급 잠수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은 왜 20년이 넘도록 로미오급 잠수함을 건조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평양에 있는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된 한 장의 오래된 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보존사진이 말해주는 놀라운 사연

2012년 7월 14일 세계 최대의 동영상 누리집 <유투브(You Tube)>에 ‘련속참관기 - 장군님과 동지,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 (9)’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방영 동영상이 실렸다.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령도사적’에 관해 해설해주는 그 동영상은, 인민군 무력강화사업에 충실하였던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광진 차수의 실화를 담은 동영상자료다. 김광진 차수는 1984년 12월에 인민무력부 부부장에 임명되었고, 1992년 4월에 차수 칭호를 받았고, 1997년 불치의 병에 걸려 7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동영상에 나오는 해설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광진 차수에게 “(인민군 무장장비를) 우리나라의 지형조건에 맞게 현대화할 과업을 주시였다”고 하며, 김광진 차수는 그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여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동영상에 나오는 조선혁명박물관 보존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잠수함 모형 앞에서 김광진 차수로부터 보고를 받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동영상에 나오는 해설강사의 말에 따르면, 그 사진은 1995년 4월 25일에 촬영된 것인데, 4월 25일은 인민군 창건 기념일이다.

무력강화사업을 책임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이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 잠수함 모형을 앞에 놓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잠수함에 관해 보고하는 그 사진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1995년 4월 당시 북은 이미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 중이었던 것이다. 그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광진 차수로부터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에 관한 보고를 받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그 사진이 말해주는 것처럼, 1995년 4월 당시 북이 신형 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으므로, 아무리 늦어도 2000년대 초에는 건조사업을 마쳤을 것이고,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까지 북은 1990년대에 개발한 신형 잠수함을 계속 생산하여 실전배치하였을 것이다. 북이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로미오급 잠수함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은 까닭은, 신형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의 신형 잠수함은 어떤 잠수함일까? 그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신형 잠수함 모형을 앞에 놓고 김광진 차수로부터 보고를 받았으므로, 북이 건조한 신형 잠수함은 바로 그 모형과 똑같이 생긴 잠수함이 분명한데, 신형 잠수함 모형은 함체도색과 함체구조가 인민군이 운용해오던 기존 잠수함과 크게 다르다.

첫째, 신형 잠수함 모형은 함체 위에 상층부를 한 층 더 얹어놓은 것 같이 생긴 2층 구조다. 이러한 2층 구조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잠수함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외부형태다. 함체 위에 상층부를 한 층 더 얹어놓은 것 같이 보이는 그 부분이 바로 탄도미사일 수직발사대가 설치된 공간이다. 길이가 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잠수함 안에 수직으로 세워놓아야 하므로 위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같은 잠수함 강국이 운용하는 전략잠수함들 가운데 그렇게 생긴 잠수함이 흔하다.

사진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은 특히 러시아군의 델타(Delta) 4급 잠수함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양자 사이의 차이점은, 인민군 신형 잠수함 모형의 경우 탄도미사일 수직발사대 공간이 전망탑(sail) 앞에 있는 데 비해, 러시아군 델타 4급 잠수함은 탄도미사일 수직발사대 공간이 전망탑 뒤에 있는 것이다. 미국군이 지난 시기 운용하였고 지금은 퇴역한 벤자민 프랭클린급(Benjamin Franklin class) 잠수함도 델타 4급 잠수함처럼 탄도미사일 발사대 공간이 전망탑 뒤에 있다.

인민군 신형 잠수함 모형은 실물 축소판이므로, 실물 잠수함의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잠수함 전망탑 길이와 잠수함 함체 길이의 비율을 계산하면 전체 길이를 추산할 수 있다. 사진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의 함체 길이는 전망탑 길이의 약 8배다.

어느 나라에서나 잠수함 전망탑을 터무니 없이 길게 만들지 않기 때문에, 다른 나라 잠수함 전망탑 길이와 잠수함 함체 길이의 비율을 계산하여 그것을 인민군 신형 잠수함의 동종 비율과 비교하면 인민군 신형 잠수함 길이를 추산할 수 있다. 외형이 인민군 신형 잠수함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러시아군의 델타 4급 잠수함이 비교대상으로 적합하다. 러시아군의 델타 4급 잠수함은 1985년 12월에 취역하였는데, 그 동안 모두 7척을 건조하였고, 지금도 운용 중이다. 델타 4급 잠수함 함체 길이는 전망탑 길이의 약 10배다. 이런 비교결과를 보면, 인민군 신형 잠수함 길이가 러시아군 델타 4급 잠수함보다 조금 짧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델타 4급 잠수함 함체 길이는 167m이므로, 그보다 길이가 조금 짧은 인민군 함체 길이는 약 140m일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사진에 나타난 신형 잠수함 모형은 전부 진록색으로 칠해졌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김광진 차수로부터 신형 잠수함 모형을 놓고 보고를 받았던 때로부터 17년이 지난 2012년 3월 14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도로 진행된 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타격훈련에 진록색 잠수함 1척이 등장하였다. 북이 공개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륙해공군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하시였다’라는 제목의 기록영화에 나온, 진록색 잠수함은 전망탑만 수면 위로 내놓고 기동하면서 어뢰 1발로 표적함선을 날려버린다. 그런데 전망탑만 수면 위로 내놓았기 때문에, 그 진록색 잠수함이 17년 전 보고현장에 모형으로 전시되었던 진록색 잠수함과 같은 급의 잠수함인지 확인하기는 힘들다.

러시아군이 운용하고 있는 델타 4급 잠수함은 수중배수량이 18,200t이고, 수심 400m까지 내려갈 수 있으며, 승조원 130명을 태우고 80일 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계속 잠항할 수 있다. 또한 그 잠수함은 90메가와트급 가압경수로 2기가 공급하는 20,000마력의 추진력으로 수중에서 시속 40~44km로 잠항한다. 이런 정보를 살펴보면, 인민군이 운용하고 있는 신형 잠수함의 수중배수량은 10,000t 정도로 추정되며, 승조원을 100명쯤 태우고 2개월 이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계속 잠항하는 잠수함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민군이 운용하고 있는 신형 잠수함은 북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소형 가압경수로가 설치된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사실이다. 북이 경수로 기술을 이제껏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개발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 재론하지 않는다.

나는 2012년 2월 23일 <자주민보>에 기고한 글 ‘종적을 감춘 핵잠수함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북이 러시아군 태평양함대의 11,500t급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 ‘양키 놋취(Yangkee Notch)’ 2척을 1993년에 도입하여 개조하고, 이를 실전배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2012년 7월 북에서 공개된 위의 사진 한 장으로 나의 그런 추정은 5개월만에 전면 수정될 수밖에 없다. 다만 북이 러시아로부터 1993년에 도입했던 핵추진 잠수함 2척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핵추진 잠수함 설계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기술을 가지고 1995년에 자체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북은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을 자체로 건조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잠수함 강국인 것이다.


김광진 차수가 1990년에 남긴 말

1997년 10월 21일 미국 연방상원 정무위원회 산하 국제안보, 확산 및 연방업무 소위원회가 개최한 북의 미사일 확산문제에 관한 청문회에 불려간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통역자 출신 탈북자가 청문회에서 털어놓은 대북군사정보가 워싱턴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당시 직책)을 수행한 중국 방문길에서 그는 북이 사거리 4,0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이미 끝내고 현재 생산 중이라는 김광진 부부장의 말을 직접 들었다고 털어놓았던 것이다.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인민군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한 때는 1990년 10월이다. 이것은 북이 이미 1990년 10월에 사거리 4,0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놀라운 정보다.

무력강화사업의 책임을 맡은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해외방문 중에 자기 수행원에게 사실이 아닌 것을 말했을 리는 없으므로, 위의 정보에 따르면 북은 이미 1990년에 사거리가 4,000km가 넘는 중거리 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진 북의 중거리 미사일 생산시기보다 무려 10년 이상 앞선 이른 시기에 북이 중거리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정보에 따르면, 인민군의 미사일 전력에 관한 국제사회의 기존 관념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사거리가 4,000km로 추산되는 인민군 중거리 미사일이 미국 정찰위성에 처음 포착된 때는 2003년 9월이다. 그런데 김광진 차수가 1990년 10월에 언급한 사거리 4,000km 이상의 미사일과 미국 정찰위성이 2003년 9월에 포착한, 사거리 4,000km로 추산되는 미사일은 같은 종류의 중거리 미사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두 미사일에 관한 정보가 각각 알려진 시점 사이에 무려 13년이라는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차를 감안하면, 북은 김광진 차수가 1990년 10월에 언급한 사거리 4,000km 이상의 1세대 중거리 미사일을 미국 정찰위성이 2003년 9월에 포착한 사거리 4,000km의 2세대 중거리 미사일로 개량한 것이 분명하다.

북이 개량한 2세대 중거리 미사일이 바로 화성 10호 미사일이다. 화성 10호 미사일은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경축 인민군 열병식에서 6축12륜 발사차량에 실려 웅장한 자태를 드러냄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북의 2세대 중거리 미사일인 화성 10호 미사일은 다른 미사일과 달리 탄두부가 뾰족하지 않고 뭉툭한 우유병 꼭지처럼 생겼다. 뭉툭한 탄두부에 핵탄두가 여러 발 들어있는 다탄두 미사일인 것이다. 또한 화성 10호 미사일은 다른 미사일과 달리 미사일 동체에 꼬리날개가 달리지 않았다. 이것은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다탄두 핵미사일임을 말해준다.

핵추진 잠수함을 지상 열병식에 등장시킬 수 없었던 북은 핵추진 잠수함 수직발사대에 있는 사거리 4,000km의 타탄두 미사일 화성 10호를 지대지 중거리 미사일을 싣는 6축12륜 발사차량에 임시로 실어 열병식에 등장시킴으로써 인민군이 강력한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화성 10호 미사일의 등장은, 북이 1990년 10월 김광진 차수가 생산 중이라고 언급하였던 1세대 지대지 중거리 미사일을 최첨단 기술로 대폭 개량하여 2세대 중거리 미사일인 잠수함 발사 다탄두 미사일을 만들어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1995년 4월 25일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 김광진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설명한 그 진록색 잠수함 모형은 장차 화성 10호를 탑재할 핵추진 잠수함 모형이었던 것이며, 지금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그 사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사업에 관한 보고를 받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러시아군의 델타급 핵추진 잠수함에는 미사일 16발이 들어가는 수직발사대가 설치되었고, 533mm 어뢰 4발이 들어가는 어뢰발사관도 설치되었다. 다른 핵강국들이 보유한 핵추진 잠수함도 미사일 16발짜리 수직발사대와 533mm 어뢰 4발짜리 어뢰발사관을 공통적으로 설치하였으므로, 인민군이 보유한 신형 잠수함도 당연히 그런 수준의 강력한 무장을 갖추었을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 2010년 10월 13일 보도기사에서 미국의 군사전문가 브루스 벡톨(Bruce Bechtol)은 북이 2010년 10월 10일에 공개한 6축12륜 발사차량에 실린 중거리 미사일을 약 200기 실전배치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벡톨의 추정에 따르면, 북은 핵추진 잠수함에 실을 약 200기의 화성 10호 중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두 가지 일정만 남았다

북의 핵추진 잠수함은 바다로 통하는 해안동굴식 잠수함 건조기지에서 건조되고, 평소에도 해안동굴식 잠수함 기지에서 물 속으로 드나들며, 해안동굴식 잠수함 정비소에서 정비를 받기 때문에, 미국 정찰위성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미국 정찰위성에 노출된 일반 해군기지에 정박하였다가 이따금 어디론가 사라지는 인민군 잠수함들은 모두 로미오급 또는 상어급 잠수함들이다.

미국은 북이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을까? 미국은 북의 핵추진 잠수함을 본 적은 없으나, 여러 정보를 분석하여 북이 핵추진 잠수함 보유국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중요한 군사기밀은 알아도 안다고 밝히지 않는 법이다.

북은 파키스탄에서 1998년 5월에 한 차례, 그리고 함경북도 길주군 핵실험장에서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에 각각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나 지하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하였을 뿐 아니라, 경수로 기술을 실물로 입증하였고, 2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 13호 6기를 2012년 4월 15일 열병식에 등장시켜 자국이 핵보유국임을 당당히 선포하였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4년 동안 자기의 핵억지력을 순차적으로 세상에 공개해온 북은 녕변핵시설 단지에 건설 중인 소형 경수로를 완공하고, 핵추진 잠수함을 세상에 공개하는 마지막 두 가지 일정만 남겨두고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이 독점해온 전략무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을 모두 갖춰야 진정한 핵강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금 그 두 가지 전략무기를 모두 갖춘 핵강국은 전 세계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세 나라밖에 없다. 영국과 프랑스는 핵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으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보유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추진 잠수함을 모두 보유한 제4핵강국이 조용히 부상하였다. 동방의 사회주의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바로 그 제4핵강국이다. 제4핵강국의 등장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군사대결을 북미대결관계로 집약시킨 대사변이다.

북이 핵억지력 부문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앞지르면서 미국, 러시아, 중국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제4핵강국으로 부상하였으므로, 세계 핵전력 균형은 사실상 깨지고 말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제4핵강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세상에 공개되는 대충격의 날이 오면, 세계 안보지형과 국제정치관계는 뒤집히게 될 것이다. 지금 태평양과 대서양 어느 바다속을 소리 없이 누비며 대양순찰활동을 벌이고 있을 제4핵강국의 공격형 핵잠수함들은 미국의 선제핵공격위험을 강력히 짓누르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조국통일대전 명령’을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미국과 일본은 북을 자극하는 경거망동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2012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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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중위가 정신질환자? 국방부 해도 너무 한다

김훈 중위가 정신질환자? 국방부 해도 너무 한다

'화약흔 검출' 실험결과 꼼수로 부정... 비열한 진실왜곡 중단해야

12.09.17 14:21l최종 업데이트 12.09.17 14:21l
고상만(rights11)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이 '뇌관 화약 잔사 확인 시험'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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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으로부터 밤 늦은 시각에 전화가 왔습니다. 1998년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활동가로 일할 당시 아들의 의문사를 호소하고자 찾아온 아버지와 처음 만났으니 어느덧 14년째 이어져온 인연입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까맣게 타버린 아버지의 절박한 심경이 전화를 통해 울려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14년간 김훈 중위에 대해 국방부가 내린 3차례의 자살 결론에 대해 지난 8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순직 처리'하도록 요구한 후 한결 아버지의 시름이 덜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묻는 말끝에 그 아버지가 전해준 사실은 다시 한번 저를 충격에 빠지게 합니다.

국방부, 김훈 중위 또 다시 자살 결론? 원인은...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권익위의 '순직 처리' 권고와 달리 국방부가 또다시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며 4번째 결론을 내리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나아가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처리하려 하고 다만 권익위의 권고에 따라 그 결과는 '업무 연관성을 인정하여 순직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국방부의 '비열한 거짓말'이며 '참을 수 없는 꼼수'입니다.

권익위가 국방부에 김훈 중위를 '순직 처리'하라고 권고하게 된 배경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2011년 9월 권익위가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조사를 착수하게 된 것은 유족의 진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없이 국방부는 그동안 모두 세차례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국방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김훈 중위 유족은 최후 수단으로 권익위에 민원을 제출합니다. '사건 재조사후 순직인정을 받게 해달라'는 취지였습니다.

한편, 이같은 진정을 받은 권익위는 사전 조사를 통해 김훈 중위 사건이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1998년 2월 24일 낮 12시경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김훈 중위에 대해 국방부가 '자살'로 결론을 내린 시각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김훈 중위가 판문점에서 자살했다"며 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 시간은 당일 오후 2시경이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국방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하던 그 시점은 아직 군 수사관이 사건 현장에 도착도 하지 못한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수사가 시작도 안 된 그 때 이미 국방부는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국방부의 자살 예단은 이후 그 어떤 객관적 타살 의혹에도 불구하고 '김훈 중위 자살'이라는 국방부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이후 '국회 국방위 김훈 중위 사망 소위'와 '대법원', 그리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3개의 국가기관이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자살로 볼 수 없다며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국방부는 모두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권익위는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추가 조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따라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화약흔 없는 '김훈 오른손의 진실'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좌측 상단 청바지 차림의 미군 수사관 다리가 보이고 김 중위의 양손에는 화약 잔재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가 끼워져 있다. (유족의 양해를 얻어 김 중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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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권익위가 김훈 중위 사건에서 발견된 많은 의혹 중 가장 핵심적인 의혹으로 주목한 것이 바로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 얽힌 논란이었습니다. 바로 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여 자살했다는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검출되지 않은 '화약흔'을 둘러싼 공방이었습니다. 만약 국방부의 주장대로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쏴 자살했다면 응당 그의 오른손에는 '안티몬과 바륨' 등 화약흔 성분이 검출되었어야 합니다.

실제로 권총에 의한 사망사건이 빈번한 미국의 경우 두 명의 사람이 사망한 채 발견된다면 수사기관이 가장 먼저 하는 조치는 이들 사망자들의 손을 면봉으로 닦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화약흔 검사를 실시하여 누구의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느냐에 따라 결론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즉, 화약흔이 검출된 사람이 가해자인 것으로 특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논리가 맞으려면 문제의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검출된 화약흔이 전혀 없다는 것이 지난 14년간 끊임없이 제기된 의혹이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논란이 가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실 앞에서 궁색해진 국방부는 황당한 주장을 시작합니다. "화약흔이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어 김훈 중위의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국방부의 주장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그는 '작은 권총'과 탄창이 돌아가는 '피스톨 권총'의 경우 화약량이 적어 국방부의 말처럼 그럴 가능성이 있으나 김훈 중위가 사용한 '베레타-9' 권총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총으로서 격발시 반드시 화약흔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권총과 큰 권총을 구분하지 않고 말하는 국방부의 주장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김훈 중위가 스스로 총을 격발하여 사망하지 않은 명백한 증거라고 그의 타살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권익위는 이 논란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 논란만 제대로 규명한다면 김훈 중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진실은 알아내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김훈 중위가 사망시 사용했다는 문제의 권총으로 직접 발사 실험을 하고 정말 화약흔이 나오나 그렇지 않은가를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국방부의 주장처럼 발사자의 손에서 화약흔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김훈 중위가 자살한 것이 맞다'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발사자의 손에서 모두 화약흔이 검출된다면 이는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발사했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권익위는 즉각 국방부에 이같은 권총 발사에 따른 화약흔 실험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실험 과정에 대한 주도권 역시 국방부에게 전부 위임했습니다. 즉, 국방부가 원하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권익위의 깊은 고심이 깔려 있는 조치였습니다. 만약 차후 이 실험 결과가 국방부가 원하는 바와 다르게 나오더라도 자신들이 주도한 이 결과는 부정하지 못하겠지 싶은 마음으로 초강수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받아들인 국방부의 조건은 너무나 특이했습니다. 처음 그들의 요구를 전해들은 저는 그야말로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실험에 참여하기로 한 권총 발사자 10명 중 5명은 정상적인 격발 자세인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나머지 5명은 기상천외하게도 첫 번째 손가락인 '엄지'로 방아쇠를 당기게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뜻인가 했습니다. 육사를 제대한 장교가 엄지 손가락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게 하자는 국방부의 발상이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확인해보니 국내 저명한 모 법의학자가 이같은 제안을 국방부에 제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에 동조해 온 사람이었는데 그의 주장에 의하면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 화약흔이 없는 이유가 '엄지 손가락을 이용한 격발 때문'일 수 있다며 국방부에 제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훈 중위 아버지는 이처럼 말도 안되는 국방부의 요구에 대해 저에게 어찌해야 할지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만약 권익위가 국방부 요구를 수용한다면 우리 역시 이를 따르자고 했습니다.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손가락으로 당기든 터진 화약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모 법의학자의 '이상한' 주장이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저 역시 몹시 궁금했습니다.

2012년 3월, 드디어 지난 14년간 이어져 온 이 사건 '김훈 중위 자, 타살 논쟁'의 분수령이 될 역사적인 실험이 이뤄진 곳은 모 특전여단 사격장이었습니다. 이날 국방부의 주도 아래 14년 전 사고 현장이었던 판문점 241GP 3번 벙커를 그대로 재현한 상태에서 실험에 참여한 사수 10명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피가 마를 정도로 긴장된 그때였습니다.

밝혀진 화약흔의 진실, 국방부 '실험 결과 부정'

그리고 마침내 지난 6월. 석달여를 기다려온 화약흔 실험 결과가 밝혀졌습니다. 밝혀진 진실은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족이 옳았습니다. 국방부의 주장이 틀린 것입니다. 당연한 상식의 승리였습니다.

국방부가 주장한 '엄지를 이용한 격발'이든 아니면 '정상적인 두 번째 손가락을 이용한 격발'이든 상관없이 이날 실험에 참여한 사수 10명 모두의 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된 것입니다. 즉, 어떤 방식의 권총 격발이든 상관없이 권총 방아쇠를 당긴 사람의 손에서는 '화약흔이 검출된다'는 상식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마침내 길고 힘든 14년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예비역 장군은 저에게 전화하여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겼어. 마침내 우리가 이겼어. 그동안 주장해온 것이 모두 사실이었던 거야. 국방부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이제 명백히 드러난 거라고. 고상만씨. 정말 수고했어.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지난 14년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을 기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해 저 역시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오랜 14년간에 걸친 국방부와 얽힌 그 끔직한 고뇌의 시간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니 그 묘한 감정은 그야말로 무엇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설마하며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은 이같은 우리의 자축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습니다. 우려해왔던 국방부의 실험 결과 부정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막은 이랬습니다. 이미 확인한 것처럼 총기 발사자 10명의 양쪽 손바닥과 손등에서는 모두 '화약흔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단 1명의 우측 손등에서 "화약흔은 검출되었으나 그 양이 적어 이른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방부는 '이를 화약흔 검출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보다 정확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며 따라서 기존의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본질에는 변한 것이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만약을 위해 모든 것을 다 국방부가 주관하도록 해주고 또한 그들의 요구에 따라 말도 안되는 엄지 손가락 발사까지 다 수용했음에도 그들의 주장은 참으로 뻔뻔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국방부는 10명의 사수 중 단 한 명에게서 확인된 한쪽 손등의 '특이 상황'을 이유로 실험 결과 자체를 '별 의미 없는 것'이라며 격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같은 국방부의 주장은 참으로 뻔뻔한 논리입니다. 발사자 10명의 좌우 손바닥과 손등을 합치면 모두 20개입니다. 그런데 그중 19개에서 다량의 화약흔이 검출되고 다만 1개에서 검출 기준보다 미달하는 화약흔이 나왔다 하여 이 모두가 의미 없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그야말로 너무나 야비한 주장입니다.

정말 궁금한 것은 만약 국방부가 제안했던 문제의 엄지 손가락 발사 결과에서 자신들이 주장한 것처럼 화약흔이 과반수 이상 검출되지 않은 결론을 얻었다 해도 이처럼 실험 결과를 부정했을까요.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같은 국방부의 행태가 얼마나 치사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명백한 '진실 왜곡'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문제 삼는 발사자 1명의 우측 손등에서 검출된 화약흔은 정확히 말해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미 검출'이 아니라 검출은 되었으나 그 기준에 미달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김훈 중위는 이와 '완전히 다른 사례'입니다. 즉, 기준 미달이니 뭐니가 아니라 김훈 중위의 오른손은 화약흔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그야말로 '깨끗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준 미달이든 뭐든 상관없이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지 않았다는 진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권익위는 이같은 권총 화약흔 실험 결과와 국방부의 초동수사 잘못을 확인한 후 다음과 같이 육군 참모총장을 상대로 권고한 것입니다.

"피신청인에게(육군 참모총장에게) 군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과실 등으로 인해 사망 원인이 불분명하게 된 신청인의 子, 故 김훈의 순직 여부에 대해 재심의하여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시정 권고한다."

국방부, 권익위 권고 따라 김훈 중위 사건 처리해야

그는 아버지를 잇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장교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그를 '파파보이' 의지가 나약한 한심한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동기생은 말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육사 출신 장교였다고 말이다.
ⓒ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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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같은 권익위의 권고를 받은 국방부가 이미 언급한 것처럼 또다시 김훈 중위를 상대로 진실을 왜곡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 세 번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며 진실을 왜곡해 온 국방부가 이제 또 다시 네 번째 그를 자살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국방부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을 그 유족에게 안겨줘야 그들의 성에 찬다는 것입니까? 14년 전 처음 만날 때 50대 후반의 신사였던 그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은 어느덧 70대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제 앞의 밥공기가 다 비워졌는데도 정작 아버지는 사건 설명을 한다며 제대로 식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14년간 듣고 또 들은, 어쩌면 젊은 제가 더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그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은 혹여 제가 이 사건에 관심을 버릴까 걱정되는지 멈출지를 모릅니다. 그런 아버지가 권익위의 '진상규명 불능에 따른 순직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재차 진실을 조작하려 하자 다시 새까맣게 타버린 얼굴로 절규합니다. 차마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그 아버지의 절규는 제 가슴을 다시 먹먹한 슬픔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너무 야비해. 정말 너무해. 도대체 이럴 수 있는거야. 이게 내가 청춘을 다 바쳐 충성해온 국방부라니 정말 너무나 슬프고 비참해. 정말 이렇게까지 야비하고 치사할 줄 몰랐어."

그러면서 아버지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방부가 김훈 중위에 대해 또다시 자살로 결론 내린다면, 그것도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결론 내리면서 '순직 처리'로 하겠다면 그 결과를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반드시 권익위의 권고와 같이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되어야 것입니다. 그래야만 언제든 다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재조사할 수 있는 길이 있기에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아버지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지난 14년간 처절하게 싸우며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필요하다면 또 14년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버지와 저 역시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끝내 이 결과를 보지 못하고 먼저 돌아가신다면 살아남은 저라도 반드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싸울 것입니다. 김훈 중위 한 명을 위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해 100여 명씩 자살로 처리되는 이 나라의 현실에서 김훈 중위처럼 또 다른 제2, 제3의 억울한 군 의문사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김훈 중위 사건은 반드시 진상 규명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살한 것은 '김훈 중위'가 아니라 '국방부의 양심'입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이같은 행위는 결코 양심이 있는 집단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지난 14년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도 없는 난데없는 '정신질환자' 주장이 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국가 권력의 폭력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저는 '자살해버린 국방부의 양심'에 애도를 표합니다. 그리고 간곡히 호소합니다. 더 이상 김훈 중위의 유족에게 이와 같은 '참담한 고통'을 줘서는 안됩니다. 지난 14년간 준 고통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칩니다. 죽고 싶어도 차마 죽지 못하고 살아온 그들의 지난 세월입니다. 숨쉬고 있다고 해서 살아온 지난 14년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14년 전 억울한 사인 끝에 죽어간 김훈을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저 국방부를 뭐라고 규탄해야 할지 마땅한 말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37년간 국가와 군을 위해 살아온 늙은 노병에게 주는 국방부의 선물이라면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하겠습니까.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방부만 빼고 모든 국가기관이 다 확인해 준 '사인 진상규명 불능' 결정과 권고에 따라 처리하라는 이 당연한 요구를 왜 끝끝내 외면한단 말입니까.

정말이지 국방부는 김훈 중위에 대한 '비열한 진실 왜곡'을 중단해야 합니다. 권익위가 권고하고 사실상 내부적으로 합의한 것처럼 '육군 전, 사망 심의위원회'를 통해 김훈 중위의 명예를 조속히 회복시키는 '순직 처리'를 조건없이 추진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나마 지난 14년간 국방부가 해온 잘못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이며 당연한 도리임을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강력히 촉구합니다.

25살에 죽어 이제 살았다면 39살이 되었을 김훈 중위. 그의 안타까운 넋에 또다시 흰 추모의 국화꽃을 올리며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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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이 씨는 왜 스스로 목을 매야 했나?

현대차 비정규직 이 씨는 왜 스스로 목을 매야 했나?

[현장편지] 불법파견 문제에 현대차·정치권·정규직노조 나서줬다면…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09-17 오후 1:26:54

 

9월 15일 새벽,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을 매달았습니다.

9월 14일 과거사 논란에 휩싸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월급이 원청하고 차이가 나면 안 되는데"라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새벽, 현대자동차에서 원청의 절반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11년 동안 자동차를 만들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을 매 숨졌습니다.

새누리당 조윤선 대변인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환경미화원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와 업종에 걸친 현장을 찾아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박근혜 후보는커녕 새누리당 당직자 한 명 만나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불법파견을 은폐하고 사내하청을 합법화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몽구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사내하도급 보호법'을 올해 꼭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음 날, 정규직 전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 현대차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병든 아버지와 어린 누이를 남겨두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14일 열린 TV 토론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8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점차 정규직화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2004년부터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난 올해까지 8년 동안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노동자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 지난 5월 새누리당이 민생법안 1호로 불법파견을 합법화하는 '사내하도급법'을 내놓자 노동시민단체는 반발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박근혜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난 다음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이재환 조합원(32)이 스스로 목을 맸다는 소식이 전해진 토요일, 그를 잘 아는 노동자들이 경주의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왜 병환 중이신 아버지와 어린 여동생,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10년을 넘게 일했던 현대자동차에서 정규직화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목을 맬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주고받았던 문자나 통화 기록도 없었습니다. 그가 속한 시아테크라는 업체에서 전체 조합원에게 일괄 발송한 문자조차 지워져 있었습니다. 그의 핸드폰에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최근 대화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자살 소식에 당황하던 현대차와 하청업체는 유서가 없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겁니다. 하청업체에서 "특근을 신청하는 등 최근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문자를 노동자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두 번의 대법원 판결과 노사교섭으로 어느 때보다도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왜 그에게는 살아야 할 희망이 없어진 것일까요?

현대자동차에서 11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했던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은 병든 아버님과 어린 동생, 그리고 빚을 독촉하는 카드명세서 뿐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를 11년 만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남긴 것

그는 2002년 울산 2공장에 들어와 11년 동안 비스토, 투싼, 산타페, 아반떼, I(아이)40를 만들었습니다. 자동차 운전석 정면에 있는 '크래쉬패드'를 조립하는 일을 했던 그는 2004년 겨울 노동부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1만 명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이 나오고 2005년 비정규직노조가 정규직화 투쟁을 벌이자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거나 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차별과 멸시에 시달렸던 그에게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첫 번째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의 구속과 해고만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노동자의 친구라던 노무현 정부는 이들의 가슴에 분노와 절망을 아로새겼습니다.

5년의 시간이 흘렀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생산되는 제조업 생산 공정은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며 '합법도급'이라는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두 번째 희망이 생겨난 것입니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5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공장 점거농성을 벌였고, 그가 속한 2~3공장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파업을 벌였습니다. 비정규직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처절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의 손을 거부했고, 싸움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노조 간부들에게는 구속과 해고, 손해배상이라는 형벌이, 그에게는 정직이라는 고통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정규직노조의 배신이라는 각인이 새겨졌습니다.

정규직화에 대한 세 번의 기회

1년 6월의 시간이 흘러 올해 2월 23일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오고,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싸우겠다고 약속했을 때 세 번째 희망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을 배신했던 집행부를 이긴 '민주집행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습니다.

다리를 크게 다쳐 3개월의 병가를 보내고 공장으로 돌아온 그에게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파업에 참가했고, 집회와 농성을 벌였으며, 용역경비의 폭력 앞에서 당당하게 만장을 들고 싸웠습니다. 2005년과 2010년 패배의 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내놓은 것은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3천명 신규채용안이었습니다.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신규채용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고, 흔들린 일부 조합원들이 파업 현장을 떠나갔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000명 신규채용안을 '쓰레기안'이라며 거부하자,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안만을 남기고 임금협상을 타결했습니다. 2700만원이 넘는 성과급 돈 잔치 앞에서 '비정규직 연대'라는 가치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그의 세 번째 희망, 마지막 희망은 이렇게 사그라지고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마지막 희망

"알려드립니다. 현재 진행 중인 불법파업, 불법행위를 중단바라며 이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통보드립니다.(시아테크 대표)"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에 참여했던 그와 조합원들에게 하청 사장이 보낸 문자입니다. 정규직 임금 협상이 끝나자 하청 사장은 그의 동료들 4명을 해고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는 해고는 말도 안 된다며 다시 파업을 하자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오랜 노동조합 경험으로 그는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을 매달기 전날 점심시간에 공장 식당에서 그의 친구에게 기록되지 않은 '유서'를 남겼습니다.

"요즘 우리 조합도 많이 힘들제? 이번에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가 높았는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친구는 그에게 그런 농담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 현대자동차가 불법 파견 인정 대신 사내하청 일부 신규 채용안을 내놓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3000명 신규채용안과 사라진 마지막 희망

현대자동차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 10년 간 불법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에 대해 노사교섭에서 전향적인 태도로 나왔다면 그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노동부와 검찰이 명백한 불법노동에 대해 정몽구 회장사용자들의 책임을 묻고 현장조사와 특별근로감독을 비롯한 조치를 취했다면 이 젊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파견법과 비정규직법을 만들어 900만 비정규직의 고통과 절망을 양산했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를 비롯한 대권주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망과 고통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였다면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까요?

회사와 정부와 정치권이 나섰다면

3000명 신규채용안에 대해 회사는 "특히 불법파견 논란을 마무리하고 동시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현행 근로자파견법을 피해 아무 때나 쓰고 버릴 수 있는 노동자들로 사용하겠다는 뜻입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 때 현대차에서 1천명이 넘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해고했던 것처럼, 앞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되거나 판매가 부진할 경우 언제든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낼 수 있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현대차지부 문용문 지부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3000명 신규채용안을 수용하라며 조합원이 절대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계속될 것이며, 설령 3천명 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이후에도 계속 채용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업체 인원을 우대할 것이고, 해고자 문제도 전향적으로 풀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환이가 이번에는 정규직노조에 기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3000명 신규채용안이 나오고, 정규직노조 태도를 보면서 기대가 사라지게 된 겁니다. 우리처럼 초기에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분위기를 보면 알잖아요. 재환이가 정규직이 되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는데…."

고 이재환 조합원의 친구가 전한 얘기입니다.

어쩌면 이재환 조합원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버티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정말 무엇일까요?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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