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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하라' 선거벽보 허용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5/23 11:46
  • 수정일
    2014/05/23 11:4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선관위 '박근혜 퇴진하라' 선거벽보 허용
 
 
 
이계덕    기사입력  2014/05/23 [09:22]
▲     © 이계덕

 
[신문고뉴스] 이계덕 기자 = 서울 중구 선거관리위원회가 서울시의회 선거 중구 제1선거구 김수근 통합진보당 후보다 게시한 '박근혜 퇴진' 선거벽보를 허용했다고 23일 김재연 통합진보당 대변인이 밝혔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23일 "서울 중구 선거관리위원회가 해당 벽보를 승인했다는 소식에 우리도 놀랐다"며 "벽보는 중앙당에서 내린 지침이 아니라 후보자 개인이 직접 작성한 것이지만, 선거관리위원회가 벽보를 허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선관위가 승인한 벽보이니 만큼 선거가 끝날때까지 이를 훼손하거나 하면 법에 처벌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해당 벽보에는 박근혜 퇴진 구호 아래'단 한명도 구조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놈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
 
한편, 김 대변인에 따르면 김 후보는 사고 이후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촛불행사 자원봉사에 매일같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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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선 9시 뉴스 앵커 “취재하기 부끄럽다, 신뢰 찾겠다”


[인터뷰] 최영철·위재천·김원장·양영은 KBS 기자
김수정 기자  |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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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5.22  1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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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 KBS 기자들의 제작거부가 어느덧 나흘째를 맞고 있다. KBS 내부에서 ‘사사건건 보도에 개입’한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가장 먼저 촉구한 KBS기자협회(협회장 조일수) 소속 뉴스·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어제(21일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22일에는 박석호 기자, 김희용 기자, 최영철 기자, 위재천 기자, 김원장 기자, 양영은 기자, 김정환 기자, 이진성 기자, 이충헌 기자, 김양순 기자, 김영인 기자, 임주영 기자가 1인 시위 주자로 나섰다.

<미디어스>는 오후 1시, 오후 2시 조였던 최영철 <뉴스9> 앵커, 위재천 <황정민의 FM대행진> ‘간추린 모닝뉴스’ 진행자, 김원장 <뉴스토크>·<김원장의 성공예감> 앵커, 양영은 <아침뉴스타임> 앵커를 만나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다.

   
▲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 1인 시위에 나선 KBS 기자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영철 기자, 위재천 기자, 양영은 기자, 김원장 기자 (사진=미디어스)

인터뷰에 응한 기자들은 현재 KBS 상황의 엄중함을 강조하며, 방송인으로서 가장 부담스러운 일인 ‘방송 파행’을 무릅쓰며 제작거부에 나선 것은 잃어버린 ‘KBS의 신뢰’를 되찾기 위함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KBS 바로세우기의 가장 첫 단추는 KBS 보도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사장의 퇴진이라고 말했다.

최영철 기자 (<뉴스9> 앵커)

   
▲ 최영철 KBS 뉴스9 앵커 (사진=미디어스)

(최영철 기자와의 인터뷰는 다른 매체들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 KBS 기자들이 보직사퇴 및 제작거부를 진행하고 있다. 거리로 나오게 된 계기는?

방송이 파행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기자로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태가… 어떻게 보면 KBS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알려진 상황에서 막내기수부터 부장들까지 (보직을 사퇴하고 제작거부에) 나선 것은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이다. 부장들도 KBS가 새롭게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물러난 것 같다.

- 요즘 <뉴스9>가 ‘20분’ 방송되고 있다. 처음 앵커로서 방송에 안 나갔던 19일 방송을 보았나.

그날 저희 편집국 기자들과 같이 있었다. (그 방송을 어떻게 보셨나?) 말할 수가 없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정말 죄송스럽다, 사실. 그렇지만 저희가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그 진실을, 속내를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KBS를 신뢰할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현주 아나운서한테도 미안한 마음이다.

- 오늘(22일) 기자 총회에서 이번 사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누적된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했는데 왜 KBS가 이런 사태가 났다고 보는지?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국민들이 보시는 KBS와 국민들이 보시는 정부, 어떻게 보면 비슷하게 생각하실 수 있다. 이번 세월호 사태에 있어서 정부가 신뢰를 많이 잃어버리지 않았나. KBS도 마찬가지로 같이 신뢰를 잃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발언이 터지면서 이제는 저희 기자들이 취재하기에 부끄러워진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 런 시점인지라 모든 보도본부의 기자들이 (KBS 문제를) 인식한 것이 아닌가… 막내기자들부터 시작해서 부장들까지. 저희는 새롭게 신뢰를 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9시 뉴스 앵커로는 언제 복귀할까?

지금 만약 제가 제작거부를 안 한다 해도, 9시 뉴스가 파행되지 않는 건 아닐 거다. 지금 기자들이 뉴스 리포트를 안 만드는 상황에서 9시 뉴스 앵커만 있는 것은 뉴스가 제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기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9시 뉴스 앵커는 그 다음 문제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 이번 사태는 길환영 사장도 문제지만 청와대의 개입도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침묵 중이다. 청와대가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거기까진 글쎄…. 아무튼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저희가 뭔가 매듭을 짓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기자들이 다시 부끄럽지 않게 취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위재천 기자 (<황정민의 FM대행진> '간추린 모닝뉴스' 진행

   
▲ 위재천 KBS라디오 황정민의 FM대행진 '간추린 모닝뉴스' 진행자 (사진=미디어스)

- <황정민의 FM대행진> 뉴스브리핑 코너인 ‘간추린 모닝뉴스’ 진행도 현재 안 하고 있는 건가?

네, 맞다.

- KBS뉴스,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직을 내려놓거나 거리로 나서는 데에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을 것 같다.

기자들 생각은 거의 다 비슷하거나 똑같다. 사실 국민들에게 저희가 서비스하는 건 ‘신뢰’인데,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진 상황에서 저희가 어떠한 말을 하든 뉴스를 하든 의심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무너져 있는 신뢰를 다시 바로세우는 첫 단추가 지금 여러 가지 의혹에 휩싸여 있는 KBS 길환영 사장이 사퇴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단추는 사장이 퇴진하고 나면 차근차근 맞춰 나갈 것이다. 사장 퇴진과 동시에 저희들의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서 시청자나 청취자 여러분들께 신뢰할 수 있는 공영방송 KBS의 뉴스를 전해 드리고 싶다. 그 열망 하나로 다 이렇게 나와 있는 것이다. 마음은 다 똑같다.

- 막내기자들의 세월호 반성문이 이번 KBS 사태를 촉발시켰다는 시각이 많다. 선배기자로 어떻게 보았나.

후배기자들이 반성문을 올렸던 그날 아침이 정말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걸 본 선배들 전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굳은살이 많이 박힌다. 그런데 이제 막 갓 들어온 후배기자들은 굳은살이 없지 않나. 생살이다. (반성문을 보고) 그 생살로 시민들 을 직접 만났을 때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굳은살이 가장 많이 박혀 있다고 생각했던 부장, 팀장도 보직사퇴하면서 다 같이 나선 것이다. 후배기자들에게 가장 고맙고 미안하다. 그들에게는 정말 굳은살이 안 박혔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저희도 저희들한테 박혀 있는 이 굳은살, 깎아나가려고 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 길환영 사장은 담화를 통해 이번 상황을 ‘기자들의 이기주의가 발현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프레임을 가진 보도도 종종 나오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장은 직종 이기주의를 얘기했지만, 저희는 TO(기자 인원)를 늘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시간외수당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뉴스 시간을 더 확보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걸 ‘직종 이기주의’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건 너무 유치한 발상인 것 같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많은 분들은 어떤 것이 바로 가는 건지를 다들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다른 직종에서도 동참 의사 많이 밝히고 계시고. 희들이 알기로도 ‘공정방송’, ‘공영방송’이 저희 회사의 근로기준에 포함돼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판례에도 있고, 그래서 저희는 이번 싸움이 좋은 방향으로 (결과가) 곧 날 거라고 믿는다.

- 김재철 사장 이후 MBC도 내부에서 바꾸려는 노력을 했지만, 사측이 목소리를 냈던 노조원들을 해고하는 등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가 일어났다. KBS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그런 주변의 우려가 많은 것 알고 있다. 다만 MBC의 상황과는 또 다르다는 게 저희들의 생각이다. 지금은 기자들이 보직, 연차 구분 없이 모두 다 한마음이 돼 있고, PD라든가 다른 직군 선후배들도 동참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저희들의 진심이 전해지면 다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KBS로 거듭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길환영 사장 사퇴가 가장 중요하지만, 지금의 사장 선임 구조에서는 신임 사장이 더 나은 인물로 오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인데.

그래서 아까 길환영 사장 사퇴를 ‘첫 단추’라고 표현한 것이다. 사장 사퇴를 먼저 해 놓고 나면… 이건 사견이다. 사견이고요. 기자협회의 공식의견은 아니다. 이런 사람은 사장으로 오면 안 된다는 내용이 담긴 블랙리스트 같은 걸 만들어서 활용하자, 이렇게 건의를 하려고 한다. 일단 지금은 사장을 몰아내는 게 현실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제일 중요한 것 같아서 거기에 다 집중하고 있다.

김원장 기자 (<뉴스토크>·<성공예감 김원장입니다> 앵커)

   
▲ 김원장 KBS 뉴스토크, 성공예감 김원장입니다 앵커 (사진=미디어스)

- <뉴스토크>, <성공예감 김원장입니다> 등 프로그램 2개나 맡고 있는데 나오는 게 어렵지 않았나.

어려웠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특히 제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청취자는 손님이다. 그분들은 날 믿고 온 것이 아닌가, 거기에. (KBS를 정상화하려는) 공익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만 손님들 입장에선 황당할 수 있다. 어디 갔어? 하면서. 죄송스럽다.

- 진행하던 프로그램 상황은 어떤가.

라디오는 비교적 괜찮다. MC만 있으면 되니까. 패널은 그대로 있다. 지금 외부에서 대타를 구했는데 잘 진행하고 있다. <뉴스토크>는 조수빈 아나운서가 혼자 하고 있다. 아직 아나운서협회나 노조 차원에서 결정된 게 없고, (조 아나운서는) 기자가 아니라서…
 
- 2010년, 2012년에도 파업을 했지만 이렇게 뉴스가 멈춘 것은 처음이지 않나.

그렇다. 간부들이, 부장 팀장들이 나온 건, 그것도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나온 건 입사 이후로도 처음이다. 19년 만에 처음.

- 그렇다면 그때보다 현재의 상황이 훨씬 엄중하다고 느낀 것이 발현된 것으로 봐도 되나.

그럼요. 사장 때문에 9시 뉴스가 줄었다. 이건 35년 만에 처음이다. KBS 공사창립 35년 만에 처음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는 보도를 하는 게 직업인데, 다른 민간 언론사와 다르게 국민의 돈을 받는다. 물론 재정의 45%는 광고지만. 민간 기업이면, 예를 들면 삼성전자라면 그들이 보름 동안 TV를 팔든 안 팔든 그건 그들의 자유다. 그런데 우리(KBS)는 그러면 안 된다. 뉴스를 하는 것이 의무다. 그래서 여기 있는 모든 국민들한테 2500원을 받고 있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의무를 안 하고 있는 거다. 어떻게든 빨리 싸우고 이기고 들어가야 된다. 한시라도 빨리.

- 길환영 사장은 어제(21일) 특별 담화를 통해 ‘사퇴 거부’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강경하게 나오는데, 싸움이 더 길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끝은) 누구도 모른다. 길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대한 책무를 못하는 기간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그렇다. 국민들에게 1차적으로 굉장한 잘못을 하는 거고…

- 길환영 사장이 물러나더라도 더 심한 인물이 새 사장으로 들어오거나, 내부 구성원들을 징계하거나 하는 안 좋은 상황이 온다면?

마음속에 다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싸울 때 질까 생각하면서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 지금 기자들이 하는 싸움의 의미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엉터리 보도하면 (그 방송은) 망가져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을 제일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KBS는 다른 언론사와 다르다. 공영방송은 흔히 하는 말로 국민들의 것이라고 하지 않나. 망가지면 국민 한 명 한 명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공영방송을) 안 망가지게 하려고 한 달에 가구당 2500원씩 걷는 것이다. 자기가 내고 싶지도 않은데 전기세 포함해서 받아간다. 그러니 KBS가 망가지면 내 것이 망가지는 것이다. 국민들께 그걸 알리고 싶다. KBS는 정부 것도, 대통령 것도 아니고 우리 것이니. KBS가 망가지면 안 된다고.

양영은 기자 (<아침뉴스타임> 앵커)

   
▲ 양영은 KBS 아침뉴스타임 앵커 (사진=미디어스)

- 오늘 <아침뉴스타임>은 어떻게 됐나.

오늘 결방됐다. 어제, 그제도 결방됐다. 5월 20일부터 결방됐다. 오늘까지 사흘째 못 나가고 있다.

- 기자들의 제작거부나 앵커들의 사퇴로 방송이 결방된 적이 이전에도 있는지.

<아침뉴스타임>의 결방은 편성 상에서 예를 들면 국경일 등 나라의 중요한 기념일이거나 행사가 있다고 하면 안 나간 적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처음인 것 같다.

- 결방을 메우기 위해 편성이 급조되지 않았나.
 
급조된 건 아니고, 저희 프로그램 전에 하는 <굿모닝 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원래 6시부터 저희 뉴스 직전(오전 8시)까지 하는데, 6시 50분에 시작해서 저희 시간대까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편성이) 밀린 것이다. 그렇게 가고 있다.

- <뉴스12>는 5분 방송하고, <뉴스9>도 20분 방송을 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사실상 KBS뉴스가 마비된 상태다. 항상 뉴스를 제작하고 보도해 왔던 기자로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다.

그럼요, 당연히. 마음이 아프죠. (잠시 침묵) 정말 마음이 안 좋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기자들의 뜻은 다들 비슷하다. (제작거부든, 보직사퇴든) 같이 하기로 결의한 상황이기 때문에. 성명서에 나온 내용이 모두 저희의 뜻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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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최대 의혹은 국정원 개입

朴,구속시켜야 하는 이유 몇가지, 누가 세월호 참사를 기획했단 말인가…
 
장유근 | 2014-05-22 09:09:3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朴,구속시켜야 하는 이유 몇가지
-세월호 참사 최대 의혹은 국정원 개입-

누가 세월호 참사를 기획했단 말인가…

세월호 참사가 35일째를 넘기고 있을 때까지 긴가민가하는 의혹들이 지속됐다. 사람들의 상상력이 미치는 데까지 부풀려진 의혹들. 참사의 여파로 멘붕을 겪던 사람들이 이성을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세월호 참사의 침몰원인은 점점 더 박근혜와 청와대를 옥죄고 있었다. 참사 이후부터 언론 등에 널린 의혹들이 하나 둘씩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길거리로 나서 촛불을 들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목소리는 ‘박근혜 사퇴’였다.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촛불시민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적지않은 사람들은 촛불시민들의 주장이 과격하거나 비약된 것이라 말하고 있었는 데 사실을 파악하고 나면 그들의 주장에 공감할 수 밖에 없음을 단박에 알게 된다. 박근혜의 사퇴 주장에 대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따라서 그 이유를 찾아봐야 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다 많은 자료를 챙겼으면 좋겠지만, 박근혜가 대국민담화 발표를 한 직후 사실상 물타기를 할 개연성이 짙어짐에 따라 그동안 드러난 의혹 몇 개 만으로도 박근혜는 사퇴가 아니라 귀국 즉시 체포해 구속수사를 해야 할 정도였다.<필자주>


1등 항해사 신정훈을 주목하면 박근혜가 보인다

그 시작은 이랬다. 국회 세월호 참사 긴급현안 질문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 선원이 국가정보원에 직접 전화로 보고를 했다”는 국무총리의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정홍원은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의 질의에 이 같은 내용의 답변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목숨을 다루는 긴박한 상황에서 세월호 선원은 왜 국정원으로 전화(휴대폰) 보고를 했을까. 또 전화를 한 선원은 누구일까… 이런 자료를 구체적으로 정리해 둔 곳은 포털 <다음>의 <아고라방>이었다. 아고리언들이 총출동해 분석해 둔 사고 당시의 자료 속에는 박근혜를 구속 수사해야 할 타당한 사유가 이렇게 적시돼 있었다.

“세월호침몰 하루전 4월15일 입사한 1등항해사 34살 신정훈 이 놈이 맡는 업무은 세월호의 화물 탑재와 운항을 관장하는 보직이였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입사 하루 밖에 안된 놈이 탈출한 뒤 배의 복원력이 원래 문제 있었다고 진술한다. 입사 하루만에 세월호 선체관련 문제를 한눈에 통찰한 천재이거나 기본 리포트를 읽고 입사한 놈으로 보여진다. 아님 사고 이후 쪽대본을 받았거나… 세월호에서 탈출한 승무원 모두 범죄혐의로 조사해야겠지만 그에 우선하여 신정훈 이 놈 동선에 레이블 붙이고 주목해 본다…”
<출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743014>

아고리언 박 모씨가 써 둔 글 속에서 1등항해사 신정훈에 대한 수상한 흔적이 감지된다. 적지않은 분들이 이 내용을 알고 있겠지만 국회 긴급현안 질문에서 드러난 세월호 선원과 국정원의 커넥션(?)을 통해 도드라진 한 사람. 그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하루 전에 입사한 1등항해사였다. 그런 그가 언론에 흘린 증언은 충돌음인지 폭발음인지 탑승객은 “쿵” 또는 “쾅” 소릴 들었고 배가 기울면서 침몰했다고 말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떠올릴 만한 진술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증언은 혼선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한 것으로 사전에 (기획)의도된 것일까.

신정훈이 사람들로부터 의혹의 대상이 된 건 신 씨가 소지한 자격증과 무관하지 않다. 7천톤에 가까운 세월호의 1등항해사가 되려면 1.2급 항해사 자격증(대학, 전문대 관련학과) 소지자라야 했다. 그러나 신 씨는 3급 항해사 자격증(고등학교 관련학과)을 소지한 자로 드러났다. 사람들의 의혹을 더욱 증폭시킨 건 사고 이후 검찰의 기소에서 신 씨 혼자만 살인죄 기소에서 빠진 것. 그래서 사람들은 신 씨가 국정원 요원 또는 관계가 있을 것이라 추정을 하는 것이다.


의혹의 주체(몸통)로 떠오른 박근혜

세월호 1등 항해사 신 씨의 이 같은 정황은 보통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일로, 세월호 참사에 대통령의 직속 기관인 국정원이 도마에 오르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이 같은 사실 등은 박근혜와 청와대가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향후 세월호 참사 사건을 조사할 때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 주지하다시피 세월호 참사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국정원장 남재준과 박근혜의 사과가 이루어진 다음 날 일어난 의혹의 사건이다.

또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당초 오하마나호를 타고 제주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출항 직전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세월호로 바뀐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의혹은 더 있다. 세월호는 이후 (항적을 알 수 있는)위성추적장치를 끈 것으로 나타났다. 누군가 일부러 끄지 않으면 절대로 꺼지지 않는 장치가 먹통이 된 것. 더 큰 문제가 다시 도드라지기도 했다.

해수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열흘 전(4월 7일), 박근혜가 주재한 회의에서 선장의 휴식 기간에는 1등 항해사 등이 조종 지휘할 수 있도록 선원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한 사실이 있고, 세월호 참사 하루 전날(15일) 공포한 게 드러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을 종합해 정리해 보면 대략 이러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하루 전날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 갈 여객선은 오하마나호에서 세월호로 바뀌었다. 그날 세월호에는 자격 미달의 한 1등 항해사가 승선한 날이다. 그는 신정환 씨로 소지한 ‘3급 항해사 자격증’은 세월호 1등 항해사 자격에 못 미치는 것. 신 씨는 구조. 수색이 긴박한 골든타임에 (선주와) 국정원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는 선장 등 선원들과 함께 배를 버리고 탈출 후 검찰로부터 기소된 후 ‘살인죄’에서 혼자만 빠지게 됐다. 신 씨에게 적용된 솜방망이 기소는 유기치사 혹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신정훈은 34살의 나이에 입사 즉시 1등 항해사가 됐다.

상식 밖의 일들이 버젓이 용납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서 박근혜와 국정원 등 관련자들이 자유롭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세월호에는 신정환 씨외 1등 항해사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강원식이다. 강 씨의 행적 또한 석연치 않다. 강 씨는 사고 직후 조타실까지 갔다가 휴대폰을 가지러 자신의 선실까지 다녀오는가 하면, 진도VTS나 제주VTS와 직접 교신한 당사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총사퇴와 박근혜 구속 혹은 격리

아직 이들의 얼굴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언급한 사실 등을 참조하면 검찰이 신속하게 이들을 격리(구속)시킨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언론의 접촉으로부터 떼 놓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청해진해운(유병언 회장)으로 쏠리게 해 놓는 것. 이 같은 정황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키워드 하나가 ‘조작질’이다. 마치 누군가 사전 기획을 통해 저지른 천인공노할 ‘살인극’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 관련 특별법을 만들거나 국정조사 등을 하게 되면, 맨 먼저 박근혜를 구속 또는 격리해 증거 인멸이나 수사 방해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으로 사료되는 것이다. 사정이 대략 이러하므로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새누리당 의원은 내각총사퇴를 주장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사건의 몸통을 보호하는 잔꾀에 불과한 것. 내각총사퇴에서 국정원장 남재준과 비서실장 김기춘을 유임시킨다면 그건 또 다른 대국민사기극에 불과한 것. 박근혜와 청와대 혹은 국정원까지 조사대상에 포함되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주장을 통해 박근혜 사퇴를 요구하는 촛불시민 113명을 사법처리<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40518144010910>하겠다는 건 이치에 맞지않는다. 권력이 댓글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애시당초 국민들로부터 나오지 않은 게 원죄가 되었다면, 박근혜는 스스로 사퇴하는 게 여러모로 나아보인다. 검찰 또한 위와 같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사실 등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딴청을 피우면 국민적 저항과 퇴출을 자초할 게 아닌가.

오늘(21일) 박근혜가 아랍에미레이트에서 귀국길에 오른다. 불과 이틀 전 발표한 대국민담화문 속에서 세월호 참사 침몰원인은 세월호 선장과 청해진해운이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국정원이 다시금 도마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박근혜는 다시 국민 앞에 설 기회(?)를 얻게 됐다. 국정원과 청와대(남재준과 김기춘)가 참사 초기부터 개입한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는 것. 따라서 박근혜는 국민적 의혹 전부를 밝히고 사퇴하는 것. 그 길만이 나라와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는 일 아니겠는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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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VS 노무현' UAE에서 만난 사람 비교하니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9일 세월호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오후에 UAE(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습니다. 국민들은 '해경 해체' 등의 엄청난 극약 처방에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는데, 대통령은 중요한 외교 순방처럼 전용기를 타고 UAE로 떠났던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돌아오자마자 모든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UAE 순방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 UAE 원전 운영권도 수주 접근, 20조 추가 수익 기대'(중앙일보)
' 박 대통령 UAE 원포인트 순방서 거둔 경제성과는'(뉴시스)
' 한국형 원자로 세계무대 데뷔'(동아일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 여파가 UAE 순방으로 조금씩 희석되고 있는 느낌이 들고 있을 정도로 수백 개의 기사가 올라왔고, 급기야는 'UAE 왕세제가 말레이 국왕에 한국형 원전 권유'라는 미담 기사도 보도됐습니다. 

언론과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UAE 순방에서 엄청난 경제 성과와 국격을 올릴 정도의 사람들과 만나고 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대통령이 아닌 장관을 만나고 온 박근혜의 UAE 방문' 

보통 한 나라의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면, 누구와 만났는지가 중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와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 이후 미국 대통령을 만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UAE를 방문한 한국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이었습니다. 2006년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UAE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만난 사람과 2014년 5월 20일~21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만난 사람을 비교해봤습니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을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영접한 알 카시미 UAE 국제협력개발부 장관이 '아랍지역 최초의 여성장관'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UAE방문 당시 알 카시미 장관은 경제부 장관으로 공항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했고, 공항 귀빈실에서 경제 협력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굳이 애를 써서 홍보할 필요가 없는 사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바라카 원전 1호기 원자로 설치식에 참석했는데, 당시 참석자는 '알 나흐얀 부총리겸 대통령실 장관'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삼성 두바이타워 건설 현장을 방문했고, UAE 부통령겸 총리는 UAE 두바이 통치자 궁에서 별도로 만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UAE 순방 중에 호텔에서 모하메드 아부다비 왕세제를 접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세이크 칼리파 빈 자에드 알 바흐얀 UAE 대통령'과 아부다비 영빈관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빈 라시드 막툼 부통령 겸 총리'와 '알 하밀리 에너지 장관', 디압 수전력청 회장','모하에므 옴란 에티살랏 회장'(UAE 최대 통신사업자)등은 물론이고 UAE 경제인들과도 만났습니다. 
 

 

 


청와대는 UAE 정부를 대표해서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부총리겸 대통령실 장관'을 만났다면서 그를 모하메드 왕세제의 친동생이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줬습니다. 

이런 자랑으로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UAE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부총리보다 높은 부통령겸 총리를 접견했습니다. 이런 논리로 만난 사람이 장관급이라고 자랑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과 총리를 만났으니 더 낫다고 봐야 하겠죠? 

노무현 대통령은 한-UAE 정상회담 등을 통한 정상적인 국빈 방문이었지만, 일정이나 만났던 사람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딱 '원자로 설치식'만을 위해 그 먼 곳까지 전용기를 타고 갔다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뻥튀기 숫자놀음으로 얼룩진 경제 성과' 

박근혜 대통령의 UAE 순방에 대한 성과를 청와대는 청와대 홈페이지와 청와대 블로그에 올려 주는 친절함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청와대는 <※ 한・UAE 양국은 원자로 설치식 현장에서 원전분야 고급인력 진출과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해 3건의 협력 MOU도 함께 체결>이라며 기호표시까지 하며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홍보할 만큼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청와대 블로그에 올라온 MOU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① 한수원・한전 KPS 인력파견 : ‘14년 하반기~ ’30년까지 순차적으로 약1,500여 명 운영・정비인력 파견 ( ’13년10월 MOU 旣 체결) 
② UAE 원자력공사 한국인력 직접 채용 : 국내 주요 공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매년 10여 명을 직접 채용 
③ 한-UAE 대학생 상호 인턴십 : 매년 각각 30여 명의 대학생을 UAE원자력공사(ENEC)와 한국 원전 관련 공기업에 상호 인턴으로 파견 

청와대가 밝힌 MOU에서 약 1,500명의 운영,정비 인력을 파견하는 MOU는 이미 2013년 10월 체결된 것이기 때문에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UAE 순방 성과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공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 채용 인원은 고작 10명에 불과합니다. 인턴십도 매년 30명으로 정부 차원에서 홍보하기는 너무 미흡합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매년 공대 졸업자 10명 취업이 50명으로 뻥튀기되기도 했는데, 받아쓰기를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10명과 50명은 많이 차이가 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UAE 순방으로 원전 운영을 한국이 맡게 되면 원전 1기당 50억 달러씩 모두 200억 달러 (20조 5천억)의 추가 수익이 나온다고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전기요금이 싸고, 공공요금을 함부로 올리지 못하는 UAE에서 어떻게 수익을 올릴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건설기간이 길어지고 추가 비용이 발생할 때, 그 비용을 한국에서 부담해야 하는지조차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UAE 경제성과를 그대로 받아 들이기는 참 이상한 숫자 놀음과 주장입니다. 


' UAE와의 경제 협력, 그 시작은 노무현이었다' 

MB 정권도 그렇고 박근혜 대통령도 그렇고 UAE에 대한 경제 성과를 포장하기 바쁩니다. 그러나 실제 UAE와의 경제 성과가 이루어진 배경은 바로 참여정부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이 UAE와 수교한 것은 1980년 6월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한국 대통령은 중동 방문을 쉽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오일 시장에 대한 미국 견제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석유 자원이 없는 한국의 현실을 파악하고 각 나라를 돌며 원유 개발이나 원유 비축 등의 자원외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MB정권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한국-UAE 간의 '원유비축 계약'도 원래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먼저 시작했던 외교 중의 하나였습니다. (물론 MB정권은 이마저도 불리하고 이상한 방식으로 바꾸어 버렸지만,,,,)

지금 한국과 UAE 간에 벌어지는 경제 성과나 협력의 시작은 2006년 5월 UAE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한-UAE 공동위원회'입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UAE와 합의해 만든 '한-UAE 공동위원회'는 '현재까지도, 무역,투자,에너지,건설 등 10개 분야에 대한 협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MB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와서 만든 경제 협력의 성과가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참여정부가 했던 일은 하나도 없고, 이 모든 성과를 MB와 박근혜 대통령의 업적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UAE의 실세인 모하메드 왕세제가 한국을 방문하게 된 시작도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

 

 

 


아이엠피터는 개인적으로 원전 수출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외교 정책 일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원전 수출 프로젝트는 분명 잘못됐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반대는 하지만 MB정권과 박근혜정권이 그토록 자랑하는 '원전 수출'도 원래 시작은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당시 중동이라는 시장을 잡기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에너지 구상은 이전과 달랐고, 중동 국가와의 경제 교류가 새롭게 시작되는 계기가 됐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UAE를 방문했을 때 UAE에 파병된 '아크부대' 장병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머나먼 이국에서 근무하는 자국 장병을 만난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아크부대 장병들과 만나는 사진을 보니 너무 썰렁했습니다. 

주스 한 잔, 물 한 잔이 전부였습니다. 격려(?) 받는 장병들의 경직된 모습을 보니, 선물로 대통령 시계를 받았으니 망정이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해외에 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많은 의미와 미래에 대한 초석이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로 아픈 국민을 놔두고 UAE를 방문한 성과와 만남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이해할만한 수준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봐도 그녀와 그는 만나는 사람이나 방법이 많이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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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상 北함정 향해 군사도발'...'경고없이 타격' 통보

 
'서해상 北함정 향해 군사도발'...'경고없이 타격' 통보 (전문)北 서남전선군 사령부, 21일 공개보도...해군 제2함대 사령부 반박 입장 발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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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22  11: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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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1일 서해 수역에서 우리 군이 북한 해군 함정과 중국 어선을 향해 총포사격을 가하는 등 군사적 도발을 했다며 이후 재발시 경고없이 타격하겠다고 통보했다.

북한 인민군 서남전선군 사령부는 21일 '박근혜 군사 불한당들을 이 땅에서 씨도 없이 깡그리 쓸어버리자는 것이 우리의 단호한 결심이다'라는 제목으로 공개보도를 발표해 "지금 이 시각부터 첨예한 서남전선 열점 수역에 나와 제멋대로 돌아치는 크고 작은 괴뢰 해군함정들은 예외없이 우리 서남전선군 사령부관하 모든 타격수단들의 직접적인 조준타격 대상으로 될 것"이라고 공개 통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서남전선군 사령부는 해군 함정에 대한 타격 경고와 함께 "아군(북한군) 해상경비계선과 서해 5개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도발도 포착되는 즉시 경고없는 군사적 타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으며, "괴뢰군 불망종들이 우리와 한사코 맞서볼 작정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맞붙어 단연 결판을 내보자는 것을 서슴없이 세상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사령부는 "5월 20일에만도 남조선 괴뢰 해군깡패들은 우리측 서남해상 수역에서 정상적인 경계근무를 수행하던 아군 함선들과 평화적인 중국 어선들에 무작정 총포사격을 가하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며, "항시적인 군사적 긴장으로 폭발전야의 첨예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는 서해 해상에서 감행된 괴뢰 군사깡패들의 의도적인 선 불질은 추호도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령부는 "특히 이번 사건은 괴뢰 불한당들이 예민한 수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국 민간어선들의 불법 어로조업을 저지시키기 위해 아군 해군함정들이 기동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총포사격을 가한 고의적인 중대도발"이라며 "이번 도발사건의 엄중성은 최근 괴뢰 불한당들이 우리측 수역에 대한 군사적 침범을 계단식으로 확대 강화하면서 백령도, 연평도, 대청도 등지에서 광란적인 총포실탄사격을 매일같이 감행하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사령부는 "예민한 수역에서 군사적 도발을 일으키는 것으로 벼랑끝에 내몰린 위기국면을 수습하고 박두한 지방선거에서의 대참패를 모면해보려는 것이 박근혜 군사깡패들이 추구하고 있는 음흉한 기도"라고 규정하고 "지금처럼 구차하고 비열하게 뒷골목에서 도발의 총포소리나 내지 말고 정식 맞붙어 군사적 결판을 보자는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대해 우리 해군은 "최근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불법 침범 등 도발적 행동을 지속하면서, 우리의 정상적인 해상경계 활동을 '군사적 도발'이라고 위협하고, 우리 측에 어처구니 없는 협박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는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북한은 서해 해상에서의 무모하고 교활한 북방한계선(NLL)의 무실화 책동과 군사적 도발위협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며 경고하고 "우리 군은 북한의 어떠한 형태의 도발행동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응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군사불한당들을 이 땅에서 씨도 없이 깡그리 쓸어버리자는것이 우리의 단호한 결심이다
--조선인민군 서남전선군사령부 공개보도-- (전문)


박근혜군사불한당들의 도발광기가 극단의 지경에 이르렀다.
5월 20일에만도 남조선괴뢰해군깡패들은 우리측 서남해상수역에서 정상적인 경계근무를 수행하던 아군함선들과 평화적인 중국어선들에 무작정 총포사격을 가하는 엄중한 군사적도발을 감행하였다.
특히 이번 사건은 괴뢰불한당들이 예민한 수역에서 진행되고있는 중국민간어선들의 불법어로조업을 저지시키기 위해 아군해군함정들이 기동하고있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총포사격을 가한 고의적인 중대도발이다.
항시적인 군사적긴장으로 폭발전야의 첨예한 정세가 조성되고있는 서해해상에서 감행된 괴뢰군사깡패들의 의도적인 선불질은 추호도 묵과할수 없다.
이번 도발사건의 엄중성은 최근 괴뢰불한당들이 우리측 수역에 대한 군사적침범을 계단식으로 확대강화하면서 백령도, 연평도, 대청도 등지에서 광란적인 총포실탄사격을 매일같이 감행하고있는것과 때를 같이하고있다는데 있다.
방대한 살인무장장비들을 집결증강해놓은 상태에서 계획적으로 벌리고있는 이러한 군사적도발은 박근혜일당이 처한 심각한 위기상황과 무관치 않다.
지금 남조선전역에서는 분노한 민심이 《박근혜탄핵》의 초불시위로 타번지고있는가 하면 괴뢰군부는 꼬리를 무는 군기강해이와 변소문짝까지 《북무인기》라며 벌리는 해괴한 반공화국소동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있다.
여기에 우리를 감히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천벌을 면치 못할 악담까지 줴쳐댄것으로 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전면보복전을 유발시키고있다.
예민한 수역에서 군사적도발을 일으키는것으로 벼랑끝에 내몰린 위기국면을 수습하고 박두한 지방선거에서의 대참패를 모면해보려는것이 박근혜군사깡패들이 추구하고있는 음흉한 기도이다.
조선인민군 서남전선군사령부는 박근혜군사불한당들에게 다음과 같이 공개통고한다.
1. 지금 이 시각부터 첨예한 서남전선 열점수역에 나와 제멋대로 돌아치는 크고작은 괴뢰해군함정들은 례외없이 우리 서남전선군사령부관하 모든 타격수단들의 직접적인 조준타격대상으로 될것이다.
군불망종들의 직접적인 사촉밑에 제멋대로 돌아치는 괴뢰해군함정들이야말로 열점수역의 정세를 인위적으로 격화시키는 군사적도발의 근원이며 따라서 반드시 소멸해버려야 할 물리적타격대상이다.
2. 아군해상경비계선과 서해 5개섬주변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도발도 포착되는 즉시 경고없는 군사적타격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동족대결의 극치인 무모한 선불질을 사전에 제압하는것은 나라의 평화와 민족의 안전을 확고히 담보하기 위해 나서는 최대급선무이다.
3. 괴뢰군불망종들이 우리와 한사코 맞서볼 작정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맞붙어 단연 결판을 내보자는것을 서슴없이 세상에 공개한다.
지금처럼 구차하고 비렬하게 뒤골목에서 도발의 총포소리나 내지 말고 정식 맞붙어 군사적결판을 보자는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립장은 불구대천의 동족대결광신자들을 이 땅에서 깡그리 쓸어버리려는 단호한 결심에 기초하고있다.
사람들은 이 땅, 이 바다에서 누가 없어지고 누가 솟구치는가를 우리 서남전선군의 과감한 군사적행동을 통하여 말이 아닌 현실로 똑똑히 보게 될것이다.
주체103(2014)년 5월 21일
조선인민군 서남전선군사령부

<출처-조선중앙통신 201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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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 휩쓴 '아줌마' 반정부 시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5/22 11:32
  • 수정일
    2014/05/22 11: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라” 추궁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5/22 [08:4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미주동포 어머니들의 박근혜 퇴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미 전역으로     © 자주민보



 

▲ 미국 교포 어머니들의 박근혜 퇴진 시위     © 자주민보


 

▲ 미국 전역에 들불처럼 번지는 박근혜 퇴진 시위     © 자주민보

 

▲ 미국 교포들의 박근혜 퇴진시위     © 자주민보



뉴욕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에 세월호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비판 광고에 실린데 이어 뉴욕과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50개주 전역과 38개 도시들에서 대정부 항의집회가 열렸다고 동포신문들이 전했다.

언론들에 따르면 미국의 대도시들과 미전국 50개주의 38개 크고 작은 도시들에서 미주동포들이 한굮 정치비판 집회를 열었으며 특기할 만한 것은 아줌마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매체들은 이번 집회가 미 전역에서 동시적으로 정치집회가 열린 것도 재미동포 민주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사건으로 평가했다.

지난 16일부터 18일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책임 추궁을 하며 정치집회가 열린 도시들은 뉴욕을 포함하여 로스엔젤레스, 오렌지 카운티 어빙, 샌디에고, 산호세, 시애틀, 워싱턴 디시(DC), 시카고, 뉴저지,·필라델피아(펜실베니아주), 메디슨(위스콘신), 유타, 미시간과 피츠버그, 보스톤(매사추세츠주) , 애틀란타(조지아주). 콜럼버스(오하이오주). 트윈시티 (미네소타주). 아리조나. 매릴랜드, 미주리 등으로 밝혀졌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 정부의 미흡한 대처로 구조될 수 있었던 생명이 목숨 잃은 것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바다를 넘어 해외까지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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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타워 실세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 유력?

박필립의 퍼즐게임-2 

GoodMorningLonDon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표로 세월호침몰에 따른 정부측 입장이 1차로 정리된 상황이다. 세월호 침몰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관련 상황을 복기해 본다.
 
사고 시각이 왜 중요한가
정부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08시 58분으로 공식 발표했다. 만약 정부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언론을 통해 발표 됐던 사고 및 구조 상황을 이미 언론에서는 2시간 전에 미래의 사고를 예측한 추측기사를 내보낸 것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사고 시각을 08시 58분으로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 사고가 일어나기  2시간 이전에 침몰 뉴스를 내보냈다면 그 사고가 일어날 것을 누군가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결국 세월호 침몰을 계획 실행한 범인이거나 범행 예정 사실을 알고 있는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해경과 언딘
 
해경은 말단 행동대원일 뿐이다. 사고 당일 07시 쯤이면 제1차(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고에 따른 구조작업에 들어갈 정도로 세월호 침몰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으나 두 시간 이상 침몰하지 않고 버틴 것이 그들의 작전에 변경을 가져왔다 할 것이다.(구조된 승무원 가운데 한 명은 어리론가 정신없이 전화질을 해댄다. 총리가 국회에서 답변한 대로 그가 국정원에 사고보고를 해오고 있던 끄나풀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이미 입력해 놓았던 프로그램에 따라 뉴스특보가 07시 02분에 언론사 뉴스특보로 나간 뒤였다. 
 
제 1차 사고 (어떤 네티즌들은 세월호 파공 상태를 들어 경어뢰로 주장하고 있다.) 의 위력 정도면 07시 정도에 해경에서 구조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어야 함에도 그 때만 해도 세월호는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결국 그들의 프로그램에 짜맞추기 위해서는 침몰하지 않고 버티고있는 세월호에 제 2차 사고(잠수함 추돌추정)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차 사고를 일으켜서라도 세월호를 침몰 시켜야만 1차사고의 흔적을 바다 속에 수장시킬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언딘은 금양 98호 이후 해경과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그러나 금양98호의 비밀만으로 언제까지 갑질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 실세중의 실세가 뒤를 봐주지 않았다면 구조에 나선 미군이나 SSU 및UDT를 막을 정도까지는 되지 못한다. 군보다 상위의 콘트롤타워가 있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세월호를 중심으로 한 달 넘게 벌어지고 있었다.
 
콘트롤타워의 실세는 누구인가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의 통영함을 구조 현장에 투입하라는  두 차례의 명령이 해군 본부와 방사청으로부터 제출한 자료에 드러났다. 그러나 군 당국은 통영함을 구조 현장에 투입하지 않았고 그 이유를 사고 당시 구조에 투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군 당국의 해명은 언딘의 바지선 ‘리베로’가 최종 안전점검도 받지 안은 채 진수된지 6일 만에 현장에 투입된 사실에 비추어 명령 불복종의 변명치고는 함량이 한참 미달한다. 
 
진수 일주일도 안된 바지선이 현장에 투입되는 마당에 진수된 지 1년 8개월이 넘는, 지난 2012년 9월에 진수 되었던, 1600억짜리 통영함을 묶어둔 가장 큰 이유는 언딘의 갑질을 보장해주는 콘트롤타워의 입김 없이는 불가능 했다고 봐야한다. 그러한  명령 불복종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콘트롤타워가 해군참모총장의 윗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김선동 의원이 밝힌대로 해군참모총장의 명령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군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복 입은 군인 가운데 최고 계급인 합창의장 밖에 없다. 합창의장의 경우 세월호 침몰에 따른 직권을 해군참모총장에게 맡긴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결국 컨트롤타워 가능성은 청와대만 남게된다. 
 
청와대의 실권자는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을 들수 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작년 4월 자신이 국회에서증언한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를 관장하고 있다고 했으나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자 국가안보실은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바 있다. 자연스럽게 컨트롤타워의 마지막 용의선상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만 남게 된다.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사고 당일 오후 5시까지 학생들이300명 넘게 침몰한 세월호 속에 갖혀 있다는 정보를 보고 받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볼 때 김기춘 비서실장의 수렴청정은 상상 이상으로 봐야한다.
 
김기춘과 언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에 들어가기전 2009년 8월 한국에너지재단 제 2대 이사장에 취임하고 2012년8월에도 제 3대 이사장으로 재선임된다. 해양전문 인양업체라는 언딘이 신생에너지 사업을 추가한 때가 김기춘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 시절인 2010년이다.  2004년 설립되어 별볼일 없던 언딘이 급격히 성장하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된 것이었다.
 
▲  2004년 설립한 언딘, 2010년 이 후 급격한 발전을 하게 된다.   ⓒGoodMorningLonDon
 
김기춘과 남재준 그리고 이명박
 
선출직 임기제인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것은 표면일 뿐이다. 대통령직 또한 다르지 않다. 권력의 속성은 지속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힘이 무엇보다 강하다. 
한국의 전임 대통령들의 퇴임후 말로가 일개 범부보다 형편없어 지는 것을 뼈저리게 보아온 이명박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과 정부 기관들을 동원하여 불법 선거를 선두지휘한다. 버진 박의 당선은 이명박이 건네준 불법선거라는 독이 든 잔을 마신 것과 진배없다. 이명박의 퇴임 후를 보장해주는 독배를 마신 댓가가 세월호 참사를 낳게 한 것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불법선거의 증거를 드리대며 버진 박을 위협하고 있는 남재준과 떨고 있는 공주의 호위무사인 양 지키고 서 있는 김기춘은 잘 어울리는 동업자 관계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원파들이 김기춘과 맞짱을 뜨겠다는 현수막까지 걸고 버티는 것에도 까닭이 없겠는가. 세계 최고의 민간사찰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검찰과 국정원에서 70넘은 노인네 한 명을 못잡고 놓친 것은 못 잡은 게 아니고 안 잡은 것이라 하겠다. 세월호 참사 사건을 영원히 밀봉하고자 하는 냄새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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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연행'과‘시신 탈취’에 깔린 통치 전략의 변동

'87년 체제'의 부정과 '91년 회귀' 사이의 박근혜 시대[분석] '시민 연행'과‘시신 탈취’에 깔린 통치 전략의 변동
한윤형 기자  |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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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5.21  07: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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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저녁 경찰은 전날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염호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의 삼성동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에 침탈하여 시신을 강제인도했다. 그는 ‘삼성서비스지회 여러분께’라는 유서에서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해 달라”고 당부했고, 부모에게 남긴 유서에서도 “제가 속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 때 장례를 치러 달라”고 밝혔다. 일부 유족은 장례절차를 노조에 위임한 상황이었으나, 경찰이 시신을 탈취한 이후 다른 유족은 화장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20일 경찰 병력을 동원한 가운데 화장이 실행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련의 사건의 배후에 삼성전자가 있음을 의심하였고, 경찰이 삼성전자에 공모하였다고 느꼈다. 

비슷한 시각 경찰은 광화문에서 침묵시위를 진행 중이던 “가만히 있으라” 침묵시위단 95명을 연행했다. 침묵시위의 특성상 경찰이 연행 명분으로 내세운 경찰관 폭행과 도로불법 점거 혐의를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지난 주말인 17일과 18일 이틀간에 걸쳐 서울 도심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 중 200여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연행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잠시 주춤하던 박근혜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강해졌다는 느낌이다. 시위대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넘어 확산될 것 같은 시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차단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 이전에 비해서도 중도파와 반대파를 확실하게 분리하여 관리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시신 탈취’라는 초유의 사건에서 어떤 이들은 ‘1991년 5월 투쟁’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1991년 4월 학원자율화 투쟁 중 백골단에게 맞아 죽은 강경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당시의 투쟁은 5월 한진중공업 박창수 위원장이 안양 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정권으로부터 시신을 탈취당하면서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연대투쟁으로 폭발했었다.  
 
   
▲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촛불 집회를 마치고 청와대로 향하던 한 참석자가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앞 도로를 점거하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시대, ‘1990년대로의 퇴행’일까?
 
박근혜 정부의 통치방식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이 말하듯 그것은 ‘1990년대로의 퇴행’을 말해야 하는 지경인가? 이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은 엇갈렸다.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확실히 1991년의 상황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고 진단했다. 장석준 부대표는 “어쩌면 당시 노태우 정부와 지금 박근혜 정부의 상황이 권력분포의 측면에서 볼 때 흡사하다”라고 설명했다. 장 부대표는 “당시 노태우 정부의 경우 전두환 정부를 계승했단 지점도 있었지만 거스르기 힘든 시민들의 개혁에 대한 열망을 북방정책이나 부동산정책 등으로 끌어안는 지점이 있었다”라고 진단했다. 장 부대표는 “박근혜 정부 역시 비슷하게, 이명박 정부를 계승했지만 시민들의 개혁적 요구를 경제민주화 등으로 선거 당시 반영했던 지점이 있다”라면서 “물론 노태우 정부는 정책을 어느 정도 실행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팽개쳤다. 그 점에선 박근혜 정부가 노태우 정부만도 못하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시선에서 보자면 2014년 5월은 1991년의 5월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된다.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노태우 정부도 1991년 5월의 대응에서 자본편향적인 민낯을 드러냈다. 박창수 열사의 시신탈취가 그 정점이었다”라면서 “박근혜 정부가 현재 보여주는 모습도 이와 비슷한 상황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의 경우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것은 1990년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1987년 체제의 부정일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박진 활동가는 “물론 18일에 있었던 시신탈취는 1991년 박창수 열사의 시신탈취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정황상 정부와 삼성의 공모가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라면서도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것은 87년 체제의 부정, 그리고 유신체제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유신헌법을 기초한 김기춘과 같은 이가 대두되는 상황이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박진 활동가 역시 “계속해서 그런 욕망이 부였지만,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17일부터의 대응이 더욱 적극적으로 바뀐 것은 맞는 것 같다”라고 진단했다. 
 
반면 저술가 엄기호의 경우 “회귀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는다”라면서 “핵심은 보수정부가 지금의 조건에서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를 판단했다는 것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 19일 오후 서울 용산전자랜드의 한 가전매장에서 시민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의 통치’를 만드는 공안당국의 공포정치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의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대통령의 담화문을 보면 이른바 ‘2/3의 통치’를 하겠다는 것을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장석준 부대표는 “지금 정국에서 유권자의 1/3은 어차피 박근혜 대통령의 열혈지지자들이다. 또 1/3은 어차피 박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그 가운데에 있는 1/3만 끌어들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월호 사건만 넘어가면 2/3의 통치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이른바 1/3을 포위하기 위한 분리전략인 셈이다.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의 분석도 접근은 달랐지만 비슷한 결이었다. 박진 활동가는 “박근혜 정부의 통치방식은 기본적으로 국정원을 정점으로 한 공안당국의 공포정치”라고 분석하면서 “기본적으로 그 방향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국정원 댓글 대선개입,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세월호 참사 등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는 상황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박진 활동가는 “박근혜 정부는 공포정치를 통해 사람들을 함부로 말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지지자와 관망파와 적대자들을 분리해낸다”라고 설명했다.  
 
저술가 엄기호는 박근혜 정부의 통치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무력을 지적했다. 엄기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보수정권이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이 얼마나 허깨비인지를 촛불시위에서 알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야당이 형편없다는 것도 현 정부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라면서 “그래서 ‘막가파’로 개기다가 이번처럼 통치의 위기가 오면 담화문의 눈물처럼 ‘어음주고 현금받는’ 식으로 전략을 전환한다”라고 설명했다.  
 
엄기호는 “이번 담화의 핵심은 '모든 것을 바꿈으로써 아무 것도 바꾸지 않겠다'는 전략이고 그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 본다”면서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바꾸라’고 말한 쪽이 말리게 되고 박근혜 정부의 추상적 약속을 수용하고 구체적 정책 수행에 대해선 양보해야 하는 ‘어음받고 현금주는’ 거래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야권의 약화의 문제에 대해선 노동장 장석준 부대표도 공감했다. 장석준 부대표는 “1991년에는 여당 내부에도 김영삼 분파가 존재했고 야당의 경우 김대중이 시민사회 진영 목소리를 어느 정도 대변했다”라고 설명했다. 장석준 부대표는 “그래서 비록 굴절된 방식으로이긴 했지만 1991년 5월의 투쟁이 여당 내 김영삼 분파가 신군부 세력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식으로 반영이 된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장 부대표는 “지금의 제도권 정당에선 김영삼의 역할도 김대중의 역할도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장석준 부대표는 “진보정당의 경우도, 1991년 당시엔 원내 의석이 없고 비합법 단체로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진보정당에 비해 오히려 역동성이 있었다고 생각된다”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와의 차이?
 
박근혜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는 비슷한 시기의 보수정권이었던 전임 이명박 정부와도 차별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정권의 차이는 성향으로 설명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상이한 맥락적 조건에서 나온 것일까?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3월 27일 대전 현충원 천안함 46용사 참배를 마치고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두 가지를 다 보았다. 장석준 부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경우 김대중 노무현 두 민주정부 10년의 흐름 뒤에 등장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와는 상황이 달랐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도 달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장석준 부대표는 “비록 뉴라이트라는 방식으로 표출되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운동과의 접점을 찾으려고 했고 그 상징이 과거 노동운동을 했으며 여당 내부에서 박근혜계와 불화한 이재오와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장 두 대표는 “반면 박근혜 정부는 김기춘으로 대표되는 관료출신 인사를 통해 시민사회를 고려하지 않는 국가기구의 통치를 관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상황의 차이가 전략의 차이를 낳았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통치술의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 역시 “이명박은 상인이고 박근혜는 국가주의자라는 식의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의 근본을 구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 “이명박이 5년 동안 만들어놓은 것들을 활용해서 지금 박근혜가 보수세력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을 실행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석준 부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권력분포의 측면에서 볼 때 1991년의 상황과 현 시점을 포개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장 부대표는 “2003년 참여정부 시절 열사 정국에서도 1991년과 비교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양적인 접근이었을 뿐 정세적 유사성은 크게 없었다고 판단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석준 부대표는 정세적 유사성이 1990년대와 지금의 차이를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장 부대표는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시민사회의 역량은 크게 향상되었다고 봐야 한다”라면서 “비록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퇴조했다고는 하나 어떤 이슈가 생겨났을 때 주류 언론이 다 넘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이 정도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1990년대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분리통치에 대한 대응은 섬세해야 
 
종합해보자면 민주화 이후 20여년을 통과하면서 생겨난 시민의식의 성숙이라는 호조건과, 그 세월동안 사회경제적 문제가 형성된 방식으로 인한 시민들의 탈조직화라는 악조건 속에서, 보수정부의 분리통치는 진보진영에게 대응하기 까다로운 것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2/3’의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1/3’의 고립 속에서, 저쪽 ‘1/3’을 고립시키기 위한 자구책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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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만큼 위대한 사람들은

조현 2014. 05. 20
조회수 2703 추천수 0
 

 

본회퍼만큼 위대한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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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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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치는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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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가 수감됐던 테겔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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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히틀러

 

  고난을 당하고도 깨닫지 못하면 더 큰 고난이 온다는 것이 함석헌의 경고였다. 한민족이 36년 동안 일제 아래서 그토록 고통을 받고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6·25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300만 동포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각자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을 개과천선과 새출발의 에너지로 삼은 나라론 20세기 들어 독일만한 나라가 없다. 독일은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였지만 스스로 통일을 했고, 경제적 번영을 이뤄 유럽의 맹주가 되었다. 같은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주변국 침략과 악행에 대해 후안무치로 일관하는 데 반해 독일은 나치 전범들을 최후의 1인까지 쫓아 처벌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는 17개 원전 전체를 2020년까지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불과 70~80년 전 히틀러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낸 집단 광기의 나라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독일 양심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백교회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이 이 시대에 새로운 구세주를 보내주셨다”며 “하일 히틀러!”를 외칠 때, 이에 저항했다. 그 가운데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가 있었다. 그는 나치가 모든 언론마저 통제하고 유대인을 학살하고 전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자 대법관인 매부 도나니 등과 함께 1942년 나치 전복 음모를 꾀했다. 이 계획이 발각돼 1943년 4월5일에 잡혔고, 1945년 4월9일 새벽에 교수대에서 세상을 마쳤다. 히틀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3주 전이었다.

 

 본회퍼는 전사도 투사도 아니었다. 궁정목사의 딸인 어머니와 정신과 의사였던 아버지가 꾸린 다복한 가정에서 팔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피아노 치는 것을 즐겼다. 21살엔 베를린대 신학부에서 카를 바르트로부터 “신학적 기적”이란 칭송을 받으며 박사학위를 받고, 24살에 교수가 된 천재 신학자였다. 그가 신학적 고뇌를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만일 미친 사람이 큰길로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목사로서 나는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이나 치러주고 그 가족을 위로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핸들을 빼앗았어야 옳지 않았겠는가?”

 

 그가 3년간 참혹한 나치의 감옥 속에 있으면서 남긴 <옥중서간>에 이런 글이 있다.

 “내가 고통을 당하는 것, 내가 매 맞는 것, 내가 죽는 것, 이것이 그리 심한 고통은 아니다. 나를 참으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동안 ‘밖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세월호 아이들을 바다에 수장시켜 죽인 한국 사회는 조용하지 않다. 그러나 6월엔 지방선거와 월드컵이 있고, 8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온다. 정치권력은 또 어떤 이슈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다. 분노하기는 쉽다. 눈물 흘리기도 쉽다. 그럴듯한 계획을 공언하기도 쉽다. 그러나 고난을 잊어버리기는 더 쉽다. 함석헌의 말대로 고난은 망각의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다. 본회퍼 못지않게 위대한 것은 독일 정치인과 국민들이다. 그들은 고난을 70년 동안이나 잊지 않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을 멈추지 않고 전진하고 있다.

 

 조현 논설위원 겸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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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심판하자"던 박근혜의 호소, 너무 당연하다

 

[게릴라칼럼]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해야할 일

14.05.20 20:59l최종 업데이트 14.05.21 10:28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기사 관련 사진
▲  지난 2006년 5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수도권 발전 비전발표 및 합의문 체결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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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권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정권이 잘못된 길로 갈 때 이를 바로잡을 유일한 기회가 선거입니다. 지금 이 정권이 자신들의 무능과 부패에는 눈을 감고 지방정부를 심판하자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정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여러분께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확히 평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거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시절인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를 보름여 앞둔 5월 15일 방송에 나와 '정권 심판론'을 역설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당시 열린우리당이 주장한 '지방정부 심판'에 대해 선거용 구호에 불과하다며 반성하고 자숙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남의 탓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일을 못하는 중앙정부를 심판해야만 나라의 희망이 생길 것이라며 유권자들이 그 희망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8년 전 이야기지만, 백번 지당한 말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민의가 제대로 발현될 때 올바로 작동한다. 지방선거라고 다를 바 없다. 정당 추천이 엄연히 존재하고, 선거 기간 동안 모든 정당이 만사를 제쳐놓고 선거 운동에 뛰어 드는 게 현실이다. '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은 행사일 뿐'이라는 주장은 8년 전 박근혜 대표의 말처럼 선거용 구호에 불과하다. 무능과 거짓으로 침몰을 대참사로 만든 정부, 심판 받아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 

지난 15~16, 후보 등록이 마감되면서 6·4 지방선거 대진표가 완성됐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참사 이후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여야 할 것 없이 조용한 선거를 다짐하고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도 하고, 선량을 뽑는 축제라고도 하지만, 3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된 참사 앞에서 예년처럼 웃음으로 표를 호소하고, 후보를 연호하며 거리를 누빌 수는 없는 일이다.

대통령과 거리를 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조용한 선거'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자거나, 지방선거에서 정권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해야 할 일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올바른 심판이다.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권리가 정권과 자본의 이익보다 더 높이 존재함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조용한 선거를 이야기하며 또 한쪽에서 '정권 심판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필요한 것이고, 지방선거는 지방자치 행정을 이끌어갈 사람을 뽑는 선거여야 한다'는 여당 일각의 주장은 다분히 음모적이다.

물론, 여당의 위기의식 발로일 수도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의 지지율은 꺾일 줄 몰랐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4월 16일, 참사가 발생한 그날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거짓은 백일하에 드러났고 여당과 박 대통령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율마저 폭락을 거듭하는 실정이니, 그 위기감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비난받는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당보다 인물을 내세우는 것도 여당 후보들에겐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능·거짓의 정부와 그 정부를 잉태한 여당의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 힘들다. 

특히 새누리당 후보 경선 때는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가, 후보가 되자 "대통령의 사과가 미흡했다"며 돌연 태도를 바꾼 남경필 새누리당 경기도지사 후보의 오락가락은 얄팍한 선거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남경필 후보는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이자 "책임을 묻는 것과 심판하는 것은 다르다, 대통령이 흔들리면 이런 위기는 극복하기 어렵다"라고 옹색한 변명을 내놨다.

유권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표로 심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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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전 서울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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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참사 앞에서 기성세대는 모두 죄인이다. 이번 참사가 자본의 탐욕과 정권의 무능·거짓에서 비롯되었다면 탐욕을 방조하고 정권의 무능·거짓에 눈감아온 기성세대, 유권자의 잘못은 명백하다. 기성세대를 비롯해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한 정치인들 모두가 죄인인데도, '정권 심판은 안 된다'는 일부 후보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책임과 여당의 책임, 야당과 유권자의 책임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이 다르면 참회의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6·4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보여줄 수 있는 건, 표로 정권의 잘못을 심판해 준엄한 민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야당은 '수영교육 의무'를 법제화할 것이 아니라 유족과 국민의 뜻을 대변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제해야 한다. 여당은 자본과 정권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 정권은 국정난맥의 패러다임 모두를 바꾸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은 두 번이나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을 만나 사과했다. 그러나 통렬한 반성이나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이뤄진 유가족들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이날 가족대책위는 특별법 제정 및 진상조사기구 구성 등을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구제척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명분을 쌓기 위해 만남을 추진했다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회자되는 이 명언은 미국 칼럼니스트 프랭클린 애덤스가 남긴 말이다. 6·4 지방선거는 단순히 누구를 뽑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세월호 대참사 발생에 결코 적지 않은 책임을 가진 사람들을 제대로 가려내 뽑지 않는 과정이어야 한다. 무능·거짓된 정권, 그 정권을 떠받쳐온 사람들이 있다면 유권자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대통령의 오랜 호소에 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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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돌려 달라" 지난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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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권의 잘못 때문에 국민들이 땀 흘려 일한만큼 보답 받지 못하고, 노력한 결과가 꺾이고 좌절당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정권은 바꿔야 합니다. 모든 권력을 다 갖고도, 국민들 먹고 사는 문제를 등한시하고, 국민들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정권은 결코 용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지방선거가 그 시작입니다. (중략)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자녀를 지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이번 선거에 반드시 참여해 주십시오. 지난 3년간의 잘못된 국정운영을 준엄하게 심판해 주시고, 나라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주십시오."

8년 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그리고 8년 뒤, 박근혜 대표는 대통령이 되었고 한나라당은 이름을 바꿔 막강한 여당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단지 슬퍼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제 국민들은, 유권자는, 자녀를 지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대통령의 오래된 호소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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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뉴스특보, 컨트롤타워에서 직접 통제 가능성 높아

세월호 침몰 비밀 열쇠 풀리나
 
GoodMorningLonDon 
 
 
 
세월호 뉴스 속보 관련 시각이 사고 당일인 4월 16일 07시 전후로 압축되는 가운데 과연 누가 그 기사를 입력했는가 하는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 관련부처를 통해 보도자료를 받아 해당 언론사가 뉴스특보 형식으로 발표하는 일상의 범주 이상의 징후가 발견된 것이다.
보도자료 발송처인 정부 관련 부처가 해당 언론사를 거치지 않고 뉴스 특보를 직접 언론사들 매인 화면에 띠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민방위 중앙본부가 전파로 송신 되는 방송 주파수를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있듯이 한국의 컨트롤타워에서 직접 관련 뉴스 특보를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증거로 KBS와 MBC 화면에 노출된 뉴스특보 시각이 07시 02분 동시간대로 확인 됐으며 뉴스시와 문화일보 등 언론사의 경우 07시 32분 동 시각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 KBS 07:02 최초 작성 시각    ⓒGoodMorningLonDon
 
▲ MBC 뉴스특보 최초 작성 시각 07:02분     ⓒGoodMorningLonDon
 
▲    문화일보 기사입력 07:32 시각  ⓒGoodMorningLonDon
 
▲   뉴스시 기사입력 시각 07: 32    ⓒGoodMorningLonDon
 

정부측이 주장하는 08시 58분시각으로 세월호 침몰 기사가 수정이 되었으나 최초 입력 시각은 변경이 불가능한 것 또한 컨트롤타워가 뉴스 특보를 직접 송출했을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 기사 수정은 컨트롤타워에서 가능했으나 최초 입력시각은 해당 언론사 관리자 아니면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정된 기사 내용이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고 수정된 것으로 봐서 한 군데에서 직접 기사를 수정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라디오 채널을 교통 뉴스센터에서 직접 통제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CD나 다른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중에도 그 작동을 중지시킨 채 교통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심지어 차를 운전중에 꺼두었던 라디오가  교통뉴스센터의 통제를 통해 강제적으로 켜져서 교통 뉴스를 청취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뉴스특보 관련을 직접 통제하고 있는 정부기관의 존재 여부가 세월호 침몰 비밀을 밝히는 중요 열쇠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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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박근혜 퇴진' 교사선언을 했는가?

[기고] "안전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함께 살자'는 외침이다"

이철호 5.13 교사선언 참가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5.21 10:27:26

 

 

 

 

 

 

그 날, 5월 10일
 
2014년 5월 10일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5월의 햇볕은 따뜻함을 넘어 작열하고 있었다. 한낮의 화랑유원지에는 묶여서 날아가지 못하는 노란 나비들과 검은색의 제복들만이 펄럭일 뿐, 녹색은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감정마저 매듭지어서 모두들 침묵한 채 아주 느리게 걸음을 옮기고, 더 나직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검은 제복은 행렬과 조문 절차를 통제하고 감정의 표현 방법과 시간을 통제했다. 나는 그 통제에 따라 딱 그 시간만큼 영정들을 마주하고 분향소에서 나왔다. 엇갈리기는 하지만 마주치거나 만나지지 않는 통제선을 따라, 분노도 없이. 
 
그 날 저녁 해가 지면서 안산 문화광장에는 분노가 소용돌이쳤다.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울분에 가득 찬 함성들은 분향소에서 눌렸던 침묵을 넘어 터져 나왔다. "진실을 알고 싶다", "대통령은 책임지라"고 몇 시간을 바닥에 앉아서 소리쳤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쏟아내 버린 감정들로 서 있기가 버거웠다. 그런데 이렇게라도 무엇인가 실천했다는 위안은 전혀 찾아지지 않았다. 허망함이, 여전히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고만 있다는 허망함이 밀려왔다. 나는 분향소에서, 광장에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실종자의 귀환을 기다리고, 통치권자의 대답을 기다리고, 절망을 넘어서는 길을 누군가 제시해 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다. 
 
더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 선박 사고가 처참한 참사로 변해가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보면서 이 정부와 그 통치권자에게 이 이후까지 책임지라고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겠다. 그래서 대통령 퇴진 선언을 하게 되었다. 퇴진 선언은 대통령에게 책임지라고 호소하거나 애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퇴진하라는 교사 선언은 우리가 이제는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을 우리 스스로 찾아 나가겠다는 몸부림이다. 
 
▲ 지난 17일 전교조 교사 7000여 명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집회를 마친 뒤, 청계광장으로 이동했다. ⓒ프레시안(이명선)

▲ 지난 17일 전교조 교사 7000여 명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집회를 마친 뒤, 청계광장으로 이동했다. ⓒ프레시안(이명선)

왜 대통령인가?
 
눈앞에 중계되고 있는 구조현장에서 정부와 경찰은 무능한 듯이 보였다. 공무원들은 생명 구조보다는 상부 지시나 눈치를 보면서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심지어 청와대는 언론 통제를 통한 이미지 관리에 열중하거나 진도에서 탈출하기에 급급했다. 이번 사고의 대처 방식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스스로 의지로 상황을 변화시켜 낼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대통령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한다고 취임 시에 선서했다. 그러나 그 선서가  지켜지지 않았다. 해운업 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그 책임을 회피하고, 기업은 이윤을 위해 승객과 노동자의 생명을 희생시킨 것이 사고의 진상이다. 게다가 구조의 과정에서 정부는 그 직무조차 게을리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에게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유가족들은 진실을 밝혀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 진실을 밝혀줄 책임은 정부와 그 대표인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최고 권위이며 모든 정보의 집결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규방송의 뉴스보다 인터넷상의 사진 한 장이 더 실체인 것으로 보인다. 불신의 유령이 그늘을 걷지 않고 있다. 이런 의심의 끝에는 결정권자가 있다. 진실은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황을 결정하는 자가 밝혀야 한다.
 
그 해운회사만 문제인가?
 
세월호가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 것은 눈앞에서 생명들이 꺼져 가는데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다는 데에 있다. 도대체 왜 저러겠느냐는 의구심은 커지지만 이해할만한 해명은 없다. 그러나 해운업의 실태와 선박의 상태, 특히 승무원들의 노동조건을 확인하면서 나의 무지와 아둔함에 대해 반성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세월호 수명 연장을 위한 규제 완화, 이윤 추구만을 위한 과적 화물의 일상화, 해운 업체와 관료와 정치권의 뒷거래, 외주 용역화에 따른 안전 인력 감축과 비정규직 노동 등으로 집약된다. 
 
세월호에는 지난 몇십 년간 진행되어온 시장화·사유화라고 말할 수 있는 외주화 된 시스템에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신자유주의체제가 함께 승선해 있었다. 사람들의 생명보다는 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허물어뜨린 결과가, 대통령이 앞장서서 기업 하기 좋은 나라와 규제 완화를 외쳐댄 결과가 참사로 나타난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미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세계화·시장화를 진행해 왔기에 이는 청해진에 한정된 문제가 결코 아니며 사회 전반에 깔린 문제이다. 세월호 참사와 철도 민영화는 결코 다른 사건이 아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노동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 가족만 안전할 수 있는가?
 
슬픔마저 통제하는 사회는 오로지 이 죽음에 대해서만 애도하게 하고 동시대의 다른 죽음을 떠올리는 것을 불온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불온하게도 또 다른 죽음들이 기억 났다. 누구도 더 이상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죽음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남은 돈 70만 원을 월세로 남기고 간 '세 모녀'. '함께 살자'라고 외쳤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벌써 스물다섯 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소리쳤지만 끝내 용산을 철거되었고, 아무도 살지 않는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대다수의 삶은 불안하고 흔들리고 뿌리가 뽑혀가고 있으며,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이들이 공감도 얻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위기, 그리고 불안은 존재를 부정하며, 영혼을 갉아먹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 가파르게 상승하는 청소년의 자살률,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비정규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 같은 암울한 상황은 지속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세계화는 인류와 자연의 관계에서 기후재앙으로 확연히 드러나고 있듯이 생태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기상이변과 이에 따른 자연재해는 생존가능성을 묻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가 여전히 진행 중인데도 한국 사회는 핵에 대해 돌아보고 있지 않다. 
 
대통령은 새로운 행정기구 신설을 말하고 있으나 세월호는 진정으로 안전한 삶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안전은 국가 기구의 통제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며, 강력한 법 집행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수학여행이 문제이니 안 하는 것으로 지켜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안전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타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나만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며, 내 가족만이 안전한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안전은 공동체적이며 공유하는 것이다.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함께 살자'는 외침이다. 내가 교사 선언에 참여한 이유다. 
 
다시, 5월 19일
 
5월 19일 대통령은 참사 후 34일 만에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흘렸다. 해경 해체와 해수부 기능 조절, 특검, 대통령의 최종책임을 그 내용으로 담았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또다시 기다리라는 지시만을 내리고 소용돌이 속에 좌초해 가고 있는 국가로부터 탈출했다. 
 
그 날 오후에 교사선언 여부와 참가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시교육청에서 장학사와 감사관실의 주무관이 학교를 방문했다. 기성세대인 그리고 어른인 나는 이 참사의 원인과 과정과 그 결과 모두에 무관하지 않다. 한국 사회가 그런 체제로 만들어지는 것을 방관해 왔거나 동조해 왔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나는 교육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발달을 가로막는 교육, 입시경쟁의 승리를 위한 서열경쟁 교육에 매달려 왔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며, 진실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역할을 해 왔다. 나의 잘못에 대해 반성한다. 나는 자발적인 의지로 선언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징계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바로는 그 날 학생들과 교사들과 남은 승무원들은 이미 기울어진 배 안에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서로를 지켜주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기만 살아남으려고 다투지 않았으며,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누구와 경쟁하거나 밀쳐내지 않은 듯하다. 나는 여기서 절망을 넘어설 가능성을 발견한다. 인간의 본성이 경쟁이라고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이 본질이라고 주장한 주류 경제학이 진실이 아니며, 인간은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의 이윤에 인간의 생명과 자연을 내맡기는 체제이지 인간 그 자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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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호 5.13 교사선언 참가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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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북의 항공군강화사업

 

한호석의 개벽예감 <113>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5/19 [10:40]  최종편집: ⓒ 자주민보      

[위 동영상은 이 글과 관련된 동영상으로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합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사회자의 찬양 발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무관하며 북을 연구하는데 꼭 필요한 자료라고 판단되어 소개합니다. 특히 동영상 안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김여정 여동생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 등 북의 공군무력 연구 외에도 여러 정보를 담고 있어 관련 전문가들이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자료라고 판단됩니다.-편집자]

 

▲ <사진 1> 이 사진은 2014년 5월 9일에 성대히 진행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 개막식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는 주석단 중앙부 전면에 청회색이 칠해진 가림막 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것은 가림막이 아니라 그 대회에 참가한 항공작전기들의 전투비행술과 공습타격술을 시행하는 장면을 근접촬영하여 실시간으로 주석단에 중계하는 여러 대의 대형 현시대(monitor)를 일렬횡대로 배열한 것이다. 비행복을 입고 주석단 앞에 도열한 대회참가자들은 30대, 40대의 전투비행사들이 아니라 60세 이상의 장령급(장성급) 항공군지휘관들이다.     © 자주민보



전투비행술경기대회로 박차를 가한 북의 항공군강화사업     

요즈음 몇 해 동안 북의 군사부문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2014년 5월 9일에 진행된 전투비행술경기대회도 특별한 일들 가운데 하나다. 

전투비행술경기대회는 지난 4월 15일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와 연관된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비행사대회와 전투비행술경기대회를 서로 연관시켜 진행한 것은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특히 항공군강화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 동안 군사부문에 관해 서술한 북측 언론보도내용을 종합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1월부터 전략군강화사업, 특수군강화사업, 포무력강화사업, 기갑무력강화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해오는 가운데 이번에는 항공군강화사업을 집중적으로 지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측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나,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핵무력강화사업도 정력적으로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머지않아 해군강화사업을 지도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번에 열린 전투비행술경기대회의 정식명칭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다. 그런 명칭은 이번에 처음 사용되었다.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명칭을 새로 정한 것만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든다. 전투비행술경기대회라는 명칭은 전투비행술을 연마하는 훈련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전투비행술을 겨루는 경기라는 뜻인가? <조선중앙통신> 2014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 리병철 항공군 대장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 개막사에서 그 대회가 “주체의 항공군건설사에 특기할 력사적 사변”으로 된다고 언급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인 발기에 따라 건군력사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뜻깊은 훈련경기”라고 지적하였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전투비행술경기대회는 전투비행술을 훈련하고 겨루는 훈련경기인 것이다. 이것은 전투비행술을 훈련하고 겨루는 새로운 분야가 창시되었음을 말해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투비행술경기대회 명칭을 몸소 제정하였고, 대회준비과정을 여러 차례 지도하였으며, 대회준비과정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들을 풀어주었다고 밝힌 리병철 항공군 사령관의 개막사 발언을 들으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에 의해 전투비행술경기대회가 성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 투브(You Tube)>에 게시된 상영시간 19분 13초 길이의 기록영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2014⟫를 지도하시였다 주체103(2014). 5. 9.’를 시청하면,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그 대회가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성대하게 진행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 2014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부인과 함께 탑승한 비행기가 5월 9일 오전 9시 서부지구 작전비행장에 착륙하였다. 군악대가 환영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부인과 함께 비행기 승강대에서 내려 항공군 사령관의 영접보고를 받았고, 애국가 주악의례를 마친 다음 항공군 명예위병대(남측에서는 공군 의장대)를 사열하였다. 곧이어 시작된 전투비행술경기대회는 항공군 사령관의 개막사, 최고사령관의 출격명령하달, 오전 훈련경기, 야전식사 및 군협주단과 군악단 약식공연, 오후 훈련경기, 시상식, 폐막선언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부인과 함께 항공편으로 이동하고, 붉은 주단이 깔린 환영식장에서 명예위병대를 사열한 특별한 의전절차는 북의 건국 이래 처음 시행된 것이다. 북의 최고영도자가 이처럼 특별한 의전절차를 갖춘 성대한 행사에 참석한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해 중점적으로 지도하는 항공군강화사업이 전투비행술경기대회를 계기로 더욱 박진감 있게 추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사진 2>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탑승한 전용기는 지난 시기 소련에서 생산된 IL-62M 특별기다. 이 기종은 소련-러시아를 비롯한 14개 나라에서 국가수반 전용기나 정부 전용기 또는 공중작전통제기로 사용되었고, 현재 러시아의 로씨야항공이 러시아정부 전용기로 6대를 운항하고 있는 우수기종이다. 최고영도자의 신변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에서 안전운항이 보장되는 우수기종이 아니라면 절대로 전용기로 사용하지 않는다.  ©자주민보


  
자태를 처음 드러낸 최고영도자 전용기 IL-62M     

지난 5월 12일 통일부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용한 비행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안전성 문제로 관련 국제기구가 해외운항을 금지시킨 모델(여기서는 기종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외래어-옮긴이)”이라고 주장하였다. 북이 행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나쁜 짓’이 아니면 ‘한심한 짓’이라고 헐뜯는 통일부의 습관적 대북험담이 이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용하는 비행기에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된 꼴이다. 험담의 껍데기를 걷어내고 진실의 알맹이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이 그 날 탑승한 비행기는 지난 시기 소련에서 생산되어 1974년부터 운항된 IL-62M이라는 기종이다. 소련은 1967년 이후 IL-62 기본형 94대를 생산하였고, 그 이후에는 IL-62M 개량형 193대를 생산하였다.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은 칠레의 극우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가 쌀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대통령이 이끈 진보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유혈참극의 군사반란을 일으키기 불과 몇 시간 전인 1973년 9월 10일 밤, 사태의 위험성을 감지한 소련이 칠레 주재 쿠바대사관 소속 외교관과 직원 147명을 쿠바로 긴급대피시킬 때 칠레 수도의 산티아고 국제공항에 비상착륙시킨 항공기가 바로 IL-62다. 

IL-62의 개량형 후속기종인 IL-62M은 소련-러시아를 비롯한 14개 나라에서 국가수반 전용기나 정부 전용기 또는 공중작전통제기로 사용되었다. 현재 러시아의 로씨야항공(Rossiya Airlines)은 IL-62M 6대를 러시아정부 전용기로 운항하는 중이다. 북의 고려항공과 러시아 최대 민간항공사 에어로플롯(Aeroflot)을 비롯한 전 세계 43개 민간항공사들이 그 기종을 운항하였거나 운항하는 중이다. 지난 시기 미국의 델타에어(Delta Air), 프랑스의 에어프랑스(Air France), 일본의 니혼고쿠(JAL), 네덜란드의 로열더취에얼라인스(KLM) 같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민간항공사들도 그 기종을 운항하였는데, 델타에어는 2013년까지 그 기종을 운항하였다. IL-62M이 세계 각국에서 그처럼 널리 운항된 까닭은, 비행 중 난기류를 만나도 비행안정성을 유지할 뿐 아니라 비행 중에 소음과 흔들림이 적은 우수기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민간항공기 운항이 감소되는 바람에 2006년에 88대가 운항되던 IL-62M은 세계금융위기를 겪은 직후인 2009년에는 38대로 급감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 IL-62M의 운항이 급감된 또 다른 원인은 그 기종의 원생산국인 러시아가 1995년부터 그 기종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러시아정부가 오늘도 여전히 IL-62M 6대를 전용기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기종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 

민간항공기 생산에서 쌍벽을 이루는 두 나라 미국과 러시아가 대통령 전용기를 운항해온 경험을 보면, 미국이 ‘공군 1호기(Air Force one)’라 부르며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하는 미국 보잉(Boeing)사의 B747-200은 1971년에 생산된 기종이고, 러시아가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하는 러시아 카포(KAPO)사의 IL-96PU는 1992년에 생산된 기종이다. 그리고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탑승한 전용기 IL-62M은 1974년에 생산된 기종이다. 이런 사정을 비교하면, 생산년도가 오래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고물 항공기’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고, 오래된 기종의 성능을 개량하고 깔끔하게 수리-정비하는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IL-62M에 관한 위와 같은 진실을 알게 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5월 9일에 탑승한 전용기가 무슨 안전문제가 생겨 국제기구에 의해 운항금지를 당한 ‘고물 항공기’라는 통일부의 주장이야말로 사실을 왜곡한 대북험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북은 1982년에 IL-62M 4대를 소련에서 수입하였는데, 현재 북의 고려항공은 그 기종을 국제선 여객기로 운항하고 있다. IL-62M 생산국인 러시아가 그 기종의 생산을 1995년에 중단하였는데도 북이 그 기종을 여전히 국제선 여객기로 계속 운항해오는 것만 아니라 이번에 최고영도자 전용기로 운항한 것은, 북이 항공기 부품을 자체로 생산하는 기술, 항공기 성능을 개량하는 기술, 항공기를 수리-정비하는 기술을 종합적으로 보유하였음을 말해준다. 항공기 한 대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은 약 10만 개나 되는데, 북이 항공기 부품을 자체로 생산하여 자급자족하는 것은 기계공업부문과 항공정비부문에서 자력갱생의 공학기술체계와 생산설비를 가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시기 북이 소련에서 수입한 IL-62M 4대 가운데 2대는 여객기로 제작된 것이고, 나머지 2대는 국가수반이나 정부대표단이 사용하는 특별기로 제작된 것이다. 북은 특별기로 제작된 IL-62M 2대 가운데 1대를 최고영도자 전용기로 개조하여 이번에 운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북측 언론의 보도사진에 자태를 드러낸 IL-62M의 흰색 기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와 북의 국기가 새겨졌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수반이 이용하는 전용기에는 국호와 국기를 새겨 넣는 법이다. 또한 파란색과 붉은색 이중원 안에 붉은 별을 넣고, 이중원 주위에 파란색 날개형상을 두른 커다란 휘장을 IL-62M 꼬리날개에 새겨 넣은 것은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그 전용기 운항을 책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IL-62M 전용기 외부를 새로 도장하였을 뿐 아니라, 내부도 최고영도자 전용기답게 개조하였으며, 특히 안전운항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첨단기재를 설치하여 비행안정성을 결정적으로 보강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영도자의 신변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에서 안전운항이 보장되지 않는 노후한 전용기는 절대로 운용하지 않는다. 

둘째, 북이 소련에서 특별기로 제작된 Il-62M 2대를 1982년에 도입한 뒤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그 특별기를 사용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국내 장거리 시찰 또는 외국방문에 나설 때 거의 전용열차만 이용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용기를 이용하였다. 

만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이 북측 공역에서 비행안전을 철저하게 보장하지 못한다면, 한미연합군의 지대공미사일들과 요격기들이 24시간 북측 항공기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며 대기하는 긴장된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IL-62M에 탑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최고영도자의 신변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에서 비행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최고영도자 전용기 운항은 생각할 수 없다.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탑승한 전용기가 군사분계선 남측 최전방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70km 정도 떨어진 지역의 상공을 비행한 것은, 북측 공역의 비행안전이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에 의해 철저하게 보장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탑승한 전용기는 평양 북쪽에 있는 순안국제공항을 이륙하여 평안남도 온천군 서해안에 가까운 온천비행장에 착륙하였다고 한다. 북측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탑승한 비행기가 착륙한 곳이 서부지구 작전비행장이라고 보도하였는데, 남측 언론매체들은 군소식통이 전해준 정보를 인용하여 그 비행장을 온천비행장이라고 특정하였다. 조선인민군 항공군 가운데 최정예비행대로 평가받는 제1항공사단 제57비행련대가 바로 그 온천비행장에 주둔한다. 순안국제공항에서 온천비행장까지 직선거리는 약 54km인데, 제트항공기로 이동하기에는 좀 짧은 거리로 보인다. 전용기는 평안남도 상공을 몇 차례 선회한 뒤 온천비행장에 착륙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측 시각에서 바라보면, “력사적인 사변”으로 되는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전용기를 타고 참석한 것은 그 ‘역사적인 대회’에 더 큰 의의를 안겨준 사변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용기를 타고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석한 것은, 평양에서 멀리 떨러진 지역을 시찰할 때 전용기를 사용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앞으로 중국이나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도 전용기를 사용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사진 3> 이 사진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참모장인 오금철 항공군 상장(중장)이 MiG-21 전투기 제703호를 직접 조종하기 위해 조종석에 탑승한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올해 67세인 그는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의 지휘 밑에 보천보전투를 비롯한 항일전쟁에 참전하였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과 로농적위대 사령관을 맡아보았던 오백룡 항일투사의 장남인데, 1995년부터 13년 동안 항공군사령관으로 복무하였다. 항공군 고위지휘관이 전투기를 직접 몰고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것은 다른 나라 군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군풍이 조선인민군에 정착되었음을 말해준다.  ©자주민보


   
각종 항공작전기들이 전투비행술과 공습타격술을 겨룬 경기대회     

<조선중앙통신> 2014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각종 항공작전기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출격명령을 받은 즉시 연속하여 하늘로 날아올라 평소에 연마한 전투비행술과 공습타격술을 서로 겨루었는데, 그 항공작전기들을 조종한 비행사들은 전투비행사들이 아니라 항공군 연합부대장들과 군부대장들이었다. 그래서 그 대회의 명칭이 전투비행사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가 아니라 ‘비행지휘성원들의 전투비행술경기대회’로 정해진 것이다. 

비행지휘성원이란 항공군 연합부대장 또는 군부대장에 해당한 고위군직을 맡은 항공군지휘관을 뜻하는데, 별 두 개를 어깨에 단 60세 이상의 중장급(남측에서는 소장급)이 그들이다. 특히 이번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서는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참모장인 오금철 항공군 상장(남측에서는 공군 중장)이 MiG-21 전투기 제703호를 직접 몰고 전투비행술경기에 참가하였다. 올해 67세인 오금철 상장은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의 지휘 밑에 보천보전투를 비롯한 항일전쟁에 참전하였고 나중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과 로농적위대 사령관을 맡아보았던 오백룡 항일투사의 장남인데, 1995년부터 13년 동안 항공군 사령관으로 복무하였다. 

다른 나라에서 고령의 공군 소장이나 공군 중장이 전투기를 직접 몰고 전투비행술을 겨루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오직 북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러한 놀라운 정황은 군사지휘관들이 “나를 따라 앞으로!”라는 돌격구호를 외치며 전투행동에서 언제나 맨 앞장에 서는 특유의 군풍이 조선인민군에 정착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전투비행술경기대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북측의 언론보도기사와 기록영화에서는 펼쳐진 장면들은 아래와 같다. 

첫째,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서 펼쳐진 장면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 각종 항공작전기들이 평소에 연마한 전투비행술을 발휘하며 겨루는 모습이다. 전투비행술을 겨룬 각종 항공작전기들은 자국산 무장헬기(MD-500E 개량형), MiG-29 전투기 제553호, MiG-21 전투기, MiG-29 전투기, SU-25UBK 전폭기 등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록영화에는 위의 네 기종만 모습을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기종이 참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 <사진 4> 이 사진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사적비행기'들 가운데 하나인 MiG-29 전투기 제553호 동체에 새겨진 사적표시판을 촬영한 것이다. 다른 기종의 전투기들에도 사적비행기가 있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사적비행기를 평소에 잘 관리하면서 비행훈련에서 맨 앞장에 세우고 있으며, 언제나 출격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 자주민보



특히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MiG-29 전투기 제553호는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지난 시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시찰한 ‘사적비행기’다. 지난 4월 15일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 주석단 왼쪽에 전시된 MiG-21 전투기 제415호도 ‘사적비행기’이고, 이튿날 비행사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모란봉악단의 축하공연무대 위에 전시된 MiG-19 전투기 제339호도 ‘사적비행기’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5월 13일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를 시찰하는 중에 그 부대의 ‘사적비행기’를 돌아보면서 “사적비행기관리를 잘하고 만단의 출격태세를 갖추어 놓음으로써 언제나 비행훈련의 맨 앞장에 세우고 있는데 대하여 치하하시였다”고 한다. 항공군 지휘관들이 전투행동에서 맨 앞장에 서는 것처럼, ‘사적비행기’들이 실전에서 맨 앞장에 서게 되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회에 참가한 항공작전기들은 “급상승 반전, 전투선회비행, 정지비행, 18,000m 상승한도비행, 30m 초저공비행, 공중기교비행” 등의 전투비행술을 겨루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들이 펼쳐 보인 전투비행술은 고도의 숙련도와 담력이 없으면 흉내를 낼 수 없는, 묘기비행에 가까운 것들이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전투비행술이 어느 경지에 올랐는지를 말해주는 경험적 사례는 2003년 3월 2일에 있었다. 그 날 오전 10시 경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賀須納) 주일미국공군기지에서 이륙한 미국 공군 소속 전략전자정찰기 RC-135S와 일본의 어느 해상항공작전기지에서 이륙한 해상자위대 소속 전자전첩보기 EP3이 동해 상공을 비행하고 있을 때, 조선인민군 항공군 소속 MiG-29 전투기 2대와 MiG-23ML 전투기 2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당시에 언론매체들은 미국 공군 RC-135S의 동해 상공 출현에 대해서만 보도했으나, 일본 해상자위대 EP3도 RC-135S의 뒤를 따라 동해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처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MiG-29와 MiG-23ML은 RC-135S를 공중나포하여 북으로 끌어가려고 20여 분 동안 15m 초근접거리에서 부딪치기(thumping) 비행술로 위협비행을 하였고, EP3을 공대공미사일로 격추하려고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준하며 위협비행을 하였다. 만일 그 때 격추명령이 내려졌다면, 미국 전략전자정찰기와 일본 전자전첩보기는 모두 격추되어 동해에 쳐박혔을 것이다. 

둘째,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서 펼쳐진 장면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 각종 항공작전기들이 로켓포나 폭탄으로 지상표적을 맞추는 공습타격술을 겨루는 모습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국산 무장헬기(Mi-2 개량형), MiG-21 전투기, MiG-19 전투기, MiG-23ML 전투기, SU-25UBK 전폭기가 차례로 하늘에 날아올라 지상표적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는 공습타격술을 겨루었고, IL-28 경폭격기가 초저공으로 비행하며 지상표적에 폭탄을 투하하는 공습타격술을 펼쳐 보였다. MiG-29 전투기의 공습타격술 장면은 기록영화에 방영되지 않았다. 
 

▲ <사진 5> 이 사진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MiG-23ML 전투기가 로켓포 공중타격술을 시행한 뒤 활주로에 착륙하는 장면이다. 북이 MiG-23ML 전투기 비행모습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주민보

 

▲ <사진 6> 이 사진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SU-25UBK 전폭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장면이다. 이 기종은 한미연합군 기갑부대와 공격헬기를 격파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지녔다     © 자주민보

 

▲ <사진 7> 이 사진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저공침투기 AN-2 복엽기가 지상표적을 향해 로켓포를 연속 발사하는 장면이다. 이제껏 그 복엽기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이 항공륙전병 공수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그 기종을 로켓포 공습에 사용한다는 것이 이번에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 자주민보



<사진 5>는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로켓포 공습타격술을 시행한 뒤 활주로에 착륙하는 장면이고, <사진 6>은 대회에 참가한 SU-25UBK 전폭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장면이다. 

또한 이번 대회에서는 저공침투기들인 AN-2 복엽기와 PT-6 단엽기가 지상표적을 향해 로켓포를 각각 발사하며 공습타격술을 겨루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 7>에서 보는 것처럼 AN-2 저공침투기가 지상표적을 향해 로켓포를 연속발사하는 장면이다. 이제껏 그 복엽기는 조선인민군 특수군이 항공륙전병 공수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그 기종을 로켓포 공습에 사용한다는 것이 이번에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위에 열거한 여러 기종을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한반도 작전환경에 적합한 각종 항공작전기들을 적재적소에 맞춤형으로 배치하여 동반상승효과(synergy effect)를 극대화하는 특유의 항공전략을 채택하였음을 말해준다. 

주목하는 것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항공작전기들 가운데 원생산국에서 오래 전에 단종되어 부품을 구할 수 없는 기종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다. 부품을 구할 수 없는 기종을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MiG-21 전투기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북은 원생산국에서 단종된 각종 항공작전기 부품을 자체로 생산하여 자급자족하면서 수리-정비를 계속해왔고, 게다가 성능개량까지 거듭하여 원래 전투기보다 더 우수한 전투기로 개조하였다. 그러므로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MiG-21 전투기는 부품부족으로 고장이 생길 위험을 안고 있는 노후기종이 아니라 성능개량을 거듭하며 다시 태어난 우수기종인 것이다. 

둘째,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다른 나라에서 사온 수입기종을 운용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게 개량한 자국산 항공작전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하여 운용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조선인민군 항공군이 운용하는 무장헬기 MD-500E와 무장헬기 Mi-2의 경우가 그것이다. 원래 MD-500E는 미국산 수입기종이고 Mi-2는 러시아산 수입기종이다. 그런데 미국의 군사전문 웹사이트 <글로벌 씨큐리티(Global Security)>에 게시된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MD-500 보유량은 2005년까지 27대를 계속 유지하였다가 2010년에 80대로 급증하였다. 또한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Mi-2 보유량은 1990년까지 100대를 계속 유지하였다가 1995년에 140대로 급증하였다. 이러한 급증현상은 북이 그 두 종의 헬기를 각각 추가로 수입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춰 성능을 개량한 자국산 무장헬기 두 종을 자체로 생산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이 무장헬기만 국산화한 게 아니라, 전투기도 국산화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연합뉴스> 1995년 7월 8일 보도와 <동아일보> 1997년 1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1994년부터 러시아에서 기술도입형식으로 최신예 전투기 MiG-29를 연간 15대씩 자체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고, 1995년 현재 MiG-29 전투기 40여 대를 보유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남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평안북도 구성시 인근에 있는 방현로동자구에 자리 잡은 ‘4월4일공장’에서 MiG-29 전투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 <사진 8>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를 마친 직후인 지난 5월 13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를 시찰하고 현지 군사지휘관들과 담화하였다. 이 군부대는 공화국영웅 1명과 육탄용사 13명을 한꺼번에 배출한 항공군부대다.     © 자주민보



공화국영웅 1명과 육탄용사 13명을 한꺼번에 배출한 항공군부대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투비행술경기대회에 참가한 각종 항공작전기들의 전투비행술과 공습타격술에 대해 “첨단감시기재로 평가한 점수가 종합되고 등수가 결정되였”고 성적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승자들의 목에 직접 메달을 걸어주며 시상하였고,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국가수반이 공군대회 준비과정을 직접 지도하고 참석한 것만이 아니라 대회에서 입상한 공군지휘관들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매우 특별한 군풍은 북 이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인민군의 그러한 군풍은 장병들의 사기를 최고조로 높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최고사령관과 장병들의 사상정신적 일체감을 형성시켜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러한 군풍 또는 사회적 기풍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영도자의 정치사업을 북에서는 ‘령도예술’이라 한다. 

<사진 8>에서 보는 것처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5월 13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를 시찰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투비행술경기대회 직전인 지난 4월 21일 항공 및 반항공군 제188군부대를 지도하였고, 5월 9일 전투비행술경기대회를 지도하였고, 그로부터 나흘 뒤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를 시찰한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항공군을 얼마나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제188군부대와 제447군부대는 ‘오중흡7련대 칭호’를 수여받은 정예부대들이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 날 시찰한 제447군부대를 가리켜 “선군조선의 영용한 붉은 매들의 영웅정신, 희생정신, 자폭정신이 탄생한 고향부대”라고 평가하였다. 그 부대가 그러한 최상의 평가를 받은 것은 그 부대에서 14명의 육탄용사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북에서는 조국을 수호하는 전투 중에 또는 전투임무수행 중에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장병이나 목숨 걸고 결사전을 벌인 용감한 장병을 육탄용사라 부른다. 그런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에서는 그런 육탄용사가 한꺼번에 14명이나 배출되었다. 북측 언론매체들이 배출사연을 보도하지 않아서 육탄용사 14명이 언제 어디서 결사전을 벌였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4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 중 휴식시간에 “어려운 비행전투임무를 수행한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군부대의 육탄용사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위훈을 다시금 높이 평가”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영웅칭호를 “전투임무수행 중에 희생된 정철주 비행사”를 대신하여 그의 아내에게 수여하였고, 13명에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시계표창을 수여하였다고 한다. 

북에서 ‘공화국영웅칭호’는 사고로 희생된 장병에게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결사전에서 위훈을 세우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장병에게 수여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제447군부대의 육탄용사 14명이 “어려운 비행전투임무를 수행”하는 결사전을 벌이던 도중 정철주 비행사가 장렬하게 희생되었고, 다른 육탄용사 13명은 생사계선을 넘나드는 위험한 상황을 뚫고 기적적으로 생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447군부대에서 공화국영웅 1명과 육탄용사 13명이 한꺼번에 배출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전체 전투비행사들은 스스로를 육탄정신으로 무장하는 사상정신훈련에 힘쓰고 있다. 그들의 육탄정신이 실전에서 강인한 전투력을 발휘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례는 2009년 7월 27일 <조선중앙방송> 록음실황에 출연한 어느 한 군사지휘관의 회고담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9년 9월 10일 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용된 회고담에 따르면, 2009년 4월 5일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하기 직전 미국과 일본이 ‘요격설’을 언론에 흘리며 긴장을 고조시켰을 때,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비행사들은 “최고사령관 동지께 올리는 맹세문을 가슴에 품고 결사전에로” 나갔는데, 그들이 “한자 한자 서약”한 맹세문은 “성스러운 이 길에서 비록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조국이 준 임무를 기어이 수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처럼 육탄정신으로 무장한 조선인민군 항공군은 스스로를 ‘김정은붉은비행대’라 부른다. 자기 부대를 자기들의 최고사령관 이름과 결부시킨 고유명칭으로 부르며 전투적 운명공동체를 건설해온 ‘하늘의 육탄결사대’가 지금 북에서 출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공군, 한국 공군, 일본 항공자위대가 자기들의 공중우세신화만 믿고 ‘김정은붉은비행대’를 얕보면 실전에서 대패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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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세월호 참사 청문회에 반드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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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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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 신설' 계획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국가재난안전관리의 컨트롤 타워를 청와대가 아닌 총리실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세월호 침몰사고의 컨트롤 타워 논란이 일었을 때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 신설'은 대통령에 쏟아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6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CSO(최고국가안전책임자)는 대통령이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CSO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라고 일갈했다.

특히 정동영 전 장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박 연령 제한을 풀어주고 NSC를 없애면서 결국 세월호 침몰사고가 생겼다"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세월호 침몰사고 국회 청문회에 반드시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여야는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에 합의하고, 오는 5월 27일 국정조사 계획서를 국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세월호 사고 한달 동안 '정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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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우리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야 한다"라며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나는 대한민국 CSO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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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전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고 선서한다"라며 "그런 점에서 대통령은 CEO(최고국가경영자)일 뿐만 아니라 CSO(최고국가안전책임자)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청와대가 '우리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야 한다"라며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나는 대한민국 CSO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보스턴 마라톤 참사 등이 일어났을 때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고 말했는데 우리 국민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했다"라며 "그런데 '청와대가 재난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이나 책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정 전 장관은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을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써야 하는데 국가재난을 책임지는 것에서 청와대를 분리하려고 한다"라며 "청와대에서 국가재난을 직접 총괄하면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인데, 그렇게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을 부담지지 않으려고 하면 대통령 책임제 하에서 국민들은 불행해진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 신설'을 세월호 침몰사고의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목적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대한민국 총리에게 무슨 권한이 있나?"라며 "대형사고에는 보통 10개 부처가 관련돼 있는데 이것을 통합 지휘할 수 있는 곳은 청와대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대형재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동대처다"라며 "그때 온갖 권력이 집중된 청와대는 팔짱을 끼고 총리실에서 지휘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그는 "재난관리에서 '대통령은 빠지고 총리가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 무책임제를 뜻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9·11 테러가 났을 때 부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3번 발표하고, 3일간 11번의 백악관 기자회견을 열었고, 관련 장관들도 1주일간 50번의 기자회견을 열었다"라며 "이것이 정부인데 세월호 사고 한달 동안 대한민국에는 정부가 없었다"라고 꼬집었다.

정 전 장관은 "역사상 이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는 없었다"라며 "이것은 대통령이 '내가 대한민국 CSO가 아니다'라고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의 줄푸세 철학이 세월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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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하고 강화했던 NSC와 위기관리센터가 가동되고 있었다면 세월호 사고는 위기관리센터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것이다. 지금처럼 3보까지 '인명피해 없음'으로 대통령에게 보고되거나 안행부 장관 비서실장이 TV 속보를 보고 세월호 침몰사고를 장관에게 보고하는 식의 재난관리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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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동영 전 장관은 세월호 침몰사고의 'MB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령으로 선박 연령 제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늘렸고, NSC와 위기관리 매뉴얼을 없애고, 위기관리센터의 기능을 정지시켰다"라며 "이 두 가지가 결합돼 세월호 침몰사고가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하고 강화했던 NSC와 위기관리센터가 가동되고 있었다면 세월호 사고는 위기관리센터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것이다"라며 "지금처럼 3보까지 '인명피해 없음'으로 대통령에게 보고되거나 안행부 장관 비서실장이 TV 속보를 보고 세월호 침몰사고를 장관에게 보고하는 식의 재난관리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에는 24시간 모니터링하고, 그것을 CSO인 대통령에게 신속하게 보고하고, 재난관리시스템을 격발하는 등의 세 가지 기능이 있었다"라며 "특히 격발하기 위해서는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에서는 그 당기는 기능을 청와대에 부여했다"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 있었던 세 가지 기능을 없애버려 실시간 모니터링도 안되고, 보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방아쇠도 당길 수 없었다"라며 "그 기능을 없애버린 사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를 반드시 세월호 사고 청문회에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정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는 경제를 살리겠다며 규제를 완화하고 철도와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런 '줄푸세'의 철학이 세월호(사고의)뿌리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세월호 사고의 심판자로서 역할을 해왔는데 사고 책임자로 자신의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정 전 장관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대한민국이 달라지려면 가치관과 국정운영 방향을 경제성장에서 국민의 안전과 행복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사람 살기 좋은 나라로 바꾸어야 한다"라며 "세월호 사고의 진정한 해법은 공공성의 회복과 확대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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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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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기시험 전날 '해경 해체' 날벼락 맞은 323명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5/20 11:50
  • 수정일
    2014/05/20 11: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해경의 잘못과 책임을 물어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습니다. 

해경의 조직 개편은 불가피했습니다. 그러나 '해경 해체'라는 극약 처방이 나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해경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해경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해경이 홈페이지를 폐쇄했다고 했지만, 사실 해경 홈페이지가 다운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바로 해양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이 갑자기 해경 홈페이지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 5월 20일 실기시험, 5월 19일 해경 해체 대국민담화 발표' 

해경은 해양경찰공무원 채용 일정에 따라 2월 19일부터 3월 5일까지 원서를 접수 받았습니다. 당시 해경 채용에는  2686명이 지원, 경쟁률이 8.5대 1에 달했고, 일반직에도 449명이 지원, 22.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3월 22일 전국 5개 지역에서 필기시험이 치러졌고, 323명의 1차 필기시험 합격자가 발표됐습니다. 

이들 합격자는 2차 실기시험과 면접, 적성검사 등만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해경 1차 필기시험 합격자 중에서 함정운용과 함정전탐 분야의 합격자들은 5월 20일, 5월 21일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에서 실기시험을 치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에 나온 '해경 해체'에 따라 실기시험이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5월 20일 실기시험을 앞두고 여수에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던 수험생들을 날벼락을 맞은 것입니다. 

' 합격 통지를 받고 이미 입교한 비운의 사람들'
 
해경은 2014년 제1회 해양경찰 필기시험 합격자 323명을 발표했습니다. 해경은 분야가 다양해서, 간부후보, 해기사 항해, 전경 항해, 회적인 정비사, 비행기 정비사, 응급구조, 일반환경,화공,선박기관 등의 합격자가 있었습니다. 
 

 

 

 

 

해경은 특히 해양대학 출신들이 가장 선호하고 진출할 수 있는 분야라서 많은 해양대생이 이번 해양경찰 공무원 간부와 항해 분야 등의 채용에 응시했습니다. 

해양대생뿐만 아니라 해양 관련 학과 학생 중에는 해경에 지원한 사람이 다수 있었고,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수험생 중에는 이미 경찰교육원에 입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해경 간부후보생들은 이미 4월 19일 경찰교육원에 입교해서 현재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간부후보생들은 1년간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이후에 임용됩니다. 

문제는 '해경 해체'라는 처방이 내렸기 때문에 이들에게 귀가, 퇴교 조치 등이 이루어질지 해경도 아직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퇴교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도, '대통령의 '해경 해체' 결정이 내려진 이상,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이들이 우여곡절 끝에 간부로 임용된다고 해도, 비운의 기수가 될 듯합니다.  

' 그럼 우린 어떻게 되나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운명이 바뀐 수만 명의 국민' 

'해경 해체' 발표가 나자, 그동안 해경 시험을 준비하고, 해경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던 수험생들은 정말 '멘붕'에 빠졌습니다. 

이들은 서둘러 해경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해경에 전화를 걸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문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해경에 문의를 해봤자, 해경에서도 정확히 이들에게 어떻게 답변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이들조차 해경이 정확히 어떻게 개편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경찰공무원에 응시하는 사람들은 적게는 1년 이상, 많게는 3~4년 동안 준비를 합니다. 그래서 나름 학원에도 다니며, 고시원에 가서 시험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해양경찰공무원 채용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이 작성한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등의 글을 보면 이들의 허탈감과 분노, 실망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경이 해체될 수 있고, 조직이 개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국민 한 사람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이것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해양경찰이 되고 싶은 사람 중에는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을 원해서 시험을 보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진짜 바다를 사랑하고,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준비했던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바다를 지키는 해군은 군인입니다. 그래서 해양경찰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다시 예전으로 회귀합니다. 

대충 60년 이전으로,,, 
그리고 대충 18년전 경찰청 조직으로.. 

바다 중요합니다. 
해양수산분야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된 조직을 한번도 가만히 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말 탄탄하게 키워놓고, 교육시켜놓고 끌고 갈 의지가 있었나 싶습니다. 해
수부 해체에서 다시 만들고..., 
이제는 해경청 만들고 자리잡으려는 시기에 해체하고.... 

이런 것들이 과거정권의 흔적 지우기는 아닐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합의와 그동안 해온 것 처럼 절차와 과정, 논의에 의해서 해양경찰을 해체를 하더라도 하고,
그런 조직과 기능의 제자리 찾기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그것이 꼭 "해양경찰"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세월호로 300명이 넘는 분들이 고인이 되셨지만, 
잘못은 처벌받아야 하고 지탄받아야 마땅합니다. 

이제는 
해양경찰 해체로 수험생 수천 명의 꿈과 
수만명의 해양경찰 가족을 침몰시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꿈을 없애는 것이 그렇게 쉬운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수만명의 직원들과 그에 딸린 가족들 터전과 꿈도 그렇게 짧은 순간에 없앨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출처:해양경찰을 꿈꾸는 사람들 다음카페 청해진님 글 중에서

아이엠피터는 해경의 문제점을 여러 번 지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경 해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차후 중국 해감총대와 어정국이 '해경국'으로 조직이 개편되고, '일본 해상보안청'이 왜 무기와 함정을 증가하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유가족과 국민은 슬픔과 분노를 통해 국가조직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제대로 된 해경 조직의 개편과 올바른 운영'이었지, '해경 해체'라는 대국민담화문용 단순 처방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수만 명의 해경 가족과 해경공무원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정말 젊은이들의 꿈을 없애는 것이 이토록 쉬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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