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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해양세력 충돌 속, 평화를 위한 한반도의 전략

미중 패권 ‘충돌’, 동북아의 화약고 한반도의 ‘운명’은?
[정상모의 흥망성쇠] 대륙·해양세력 충돌 속, 평화를 위한 한반도의 전략
 

입력 : 2013-12-02 09:46:21 노출 : 2013.12.02 09:46:21

 

 

동북아시아의 영토민족주의 분쟁이 전쟁 일보 직전인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도 본격화되는 형세다.

동북아의 동·남중국해 바다와 하늘에서는 미국과 중국, 일본의 최첨단 군함과 전투기들이 서로 무력시위를 벌이는 숨가쁜 판국이다. 군사적 충돌이 언제라도 곧 터질 것처럼 격화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중국이 지난 23일 한국 관할인 이어도,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고, 이 구역을 지나가는 모든 항공기는 사전 통보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군사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포했다. 이와 관련된 국가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저마다 중국의 선포를 무시한 군사적 대응에 나서는가 하면, 자국의 영유권 강화를 위한 방공식별구역 확장을 서두르는 모습들이다. 동북아의 영토민족주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추세다.

일본 자민당은 독도와 센카쿠열도, 북방영토 등의 영유권 홍보를 여론전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아베 신타로 일본 총리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종합조정회의’를 열어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일본은 건듯하면 전범들의 신사 참배와 과거 침략의 역사 왜곡 따위로 주변 국가들을 자극하거나 영토 분쟁을 촉발해 왔다. 일본은 영토민족주의 갈등을 계속 부채질하겠다는 것인가.
 

   
▲ 동중국해의 중국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이 지역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26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 항모기지를 출발해 첫 장거리 선단 훈련에 나섰다. ⓒ 신화통신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갈등이 격화된 것은 2012년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조치에서 비롯됐다. 중국은 일본이 현상을 변경시키려는 조치라며 영해 기선 선포 등으로 대응하고 나섰으며, 중국인들은 최대 규모의 반일 시위를 벌였다. 일본의 조치로 중화영토민족주의 정서가 폭발한 셈이다.

일본이 과거 침탈한 땅을 돌려줘야 한다는 '카이로 선언'의 취지대로라면 1905년 러·일 전쟁 때 강탈한 독도나 1894년 청·일 전쟁으로 빼앗은 센카쿠열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은 소멸됐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영유권 분쟁이 생기게 된 것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 때문이다.

미국은 1950년 한반도 전쟁과 중국의 전쟁 개입으로 일본을 패전국이 아닌 반공 동맹국으로 인식 전환을 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의 영유권 반환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애매하게 처리했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의 여지를 만들어 준 셈이다. 한반도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던 1951년 9월 미·일 상호안보조약 체결로 중국과 소련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일본 중시정책이 다시 등장한 결과다.

아시아 복귀와 함께 중국 포위와 견제의 끈을 바짝 조이고 나선 미국은 지난 10월 3일 일본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선언을 지지하고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2014년까지 개정하기로 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중심으로 한 미·일 동맹관계의 강화는 미군과 자위대가 중국에 군사적으로 공동 대응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미국은 중·일 간 영토 분쟁에서 센카쿠열도가 있는 동중국해가 “미·일 안보조약 5조의 대상”이라고 미국의 개입 입장을 전례없이 단호하게 밝혔다. 미국이 일본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고 나섰으니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이 탄력을 받지 않겠는가. 일본의 침략적 행태와 민족주의적 도발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최근 동중국해에서 중국에 대한 감시를 부쩍 강화해왔다고 한다. 지난 달 29일 일본 <니혼게자이신문>에 따르면, 미국은 전자정찰기와 무인정찰기를 중국 해안 근처까지 자주 깊숙이 침투시켜 중국 내륙의 군사시설과 동향의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일본과의 영유권 갈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미국의 대중국 근접 정찰활동을 막으려는 목적이 크다는 분석이다. 방공식별구역 설정으로 미국의 공해상 정찰활동에 대한 대응 근거를 마련하려는 게 중국의 또 다른 의도라는 얘기다.

주목되는 것은 서해에 설정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이 한-중 양국 사이의 중간 지점이 아니라 중국 산둥반도의 코앞까지 확장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방공구역은 한반도 전쟁 중인 1951년 3월 22일 중국 공군을 경계할 목적으로 미 5공군이 설정한 것이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은 1950년대 냉전기부터 그어진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포위망을 돌파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라는 뜻이다. 중국이 주변 해역의 핵심이익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 6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미국에게 ‘신형대국관계’를 주장하며 상호 핵심이익을 존중하고 이를 침해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은 중국의 핵심이익 수호를 위한 ‘근역균형전략’의 의사표시였다. 이는 중국의 전략이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된 것임을 뜻한다.
 

   
▲ 중국이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자 미국은 B52 폭격기 두 대를 출격시켜 무력시위에 나섰다. ⓒ 가디언 관련 기사 갈무리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현상 질서’를 바꾸려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미국의 핵심이익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미국과 중국의 핵심이익이 충돌하고 있는 꼴이다.

이제 미·중 패권경쟁은 외교적인 ‘연식균형(soft baiancing)’에서 군사적인 ‘경식균형(hard balancing)’ 단계로 악화된 셈이다. 동북아의 영토민족주의 분쟁과 함께 미·중 간 패권경쟁이 본격화됨에 따라 동북아의 갈등과 군사적 긴장이 더욱 첨예하게 고조될 전망이다.

12월 1-8일 한·중·일 3국을 순방하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일본과의 합의문 형식으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철회를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어떤 국가도 중국이 자기의 핵심이익과 정당한 권익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중국이 미·일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바이든 부통령이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 과정에서 합의된 평화적 해결원칙과 상황악화 조치 금지의 원칙 등의 지혜를 되살려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이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관련국들과의 잠정적 자제 합의라도 이루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동북아 사태가 더욱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중 및 동북아의 갈등관계 심화가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문제의 악화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주변의 안보 정세가 나빠지고 있는 판에 북한이 핵 전력을 포기할 리도 한반도 상황이 좋아질 턱도 없지 않겠는가.

한반도는 이미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지역이 돼 온 터다. 한반도는 두 세력 충돌의 화약고라는 얘기다.

핵전쟁의 위험성이 농후한 두 세력의 무력충돌이 다시 한반도에서 벌어진다면 한민족의 운명은 어찌 되겠는가. 두 세력의 어느 쪽 편을 들더라도 그 결과는 한민족의 희생 아니겠는가.

미국과 중국 어느 쪽과도 나쁜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균형정책’, ‘헷징전략(hedging strategy)’ 따위의 주장이 나오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분명하다. 미·중, 대륙·해양 세력 간의 갈등이 악화될수록 어느 쪽이든 선택의 강요가 심해질 것이며 한민족의 불행을 모면할 수도 없다.

과거 우리 한민족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지 않은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는 주체도 한국 이외에 어느 나라가 있겠는가.

1950년대 냉전시대의 산물로서 동북아의 영유권 분쟁과 갈등을 잉태한 정전협정 및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를 21세기형 동북아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게 동북아의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 정부가 한반도의 책임 있는 주체라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는 21세기형 동북아 평화체제의 실현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한 한국 정부의 선행 과제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평화체제의 실현이다. 동북아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높아지게 되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최대한 활용해 한국 정부의 협상력을 주도적으로 발휘할 평화의 전략과 노력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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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깃발 든 문재인, 安과 '대권 2차전' 선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2/02 12:05
  • 수정일
    2013/12/02 12:0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 안철수 신당 창당 의식? 野 주도권 경쟁 본격화

선명수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02 오전 11:04:45

 

 

지난해 대선 후보로 나섰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2017년 대권 재도전까지 거론하며 정치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황찬현 임명동의안 날치기' 후폭풍으로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야권의 불신 역시 깊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대선 패배 뒤 2선으로 물러나 있던 친노(親盧·친노무현) 세력 역시 정치 전면에 나서는 분위기다. 현재로선 뚜렷한 구심점이 없는 야권의 주도권 경쟁이 불 붙는 모양새지만, 안 의원과 문 의원이 저마다 세력화에 속도를 내면서 대선을 4년 남짓 앞두고 대권 레이스까지 조기 점화되는 분위기다.

다시 '깃발' 든 文, 대선 1년 맞아 거침없는 행보

문 의원은 지난달 29일 "2017년에 기회가 오면 회피하지 않겠다"며 대권 재도전 의사를 시사한데 이어, 1일엔 오는 9일 출간 예정인 책 <1219 끝이 시작이다>(바다출판사 펴냄)의 내용을 공개하며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29일에 이어 2일에도 한 차례 더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지는 등 언론 접촉면을 넓히고, 오는 14일엔 토크 콘서트를 시작으로 직접 시민들과 만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과 향후 전망을 담았다는 회고록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공안 정치를 이끄는 무서운 대통령"이라고 표현하는 등 결기를 드러냈다. (☞관련 기사 : 대권 재도전 문재인 "공안정치 박근혜, 무서운 대통령") 문 의원이 대선 패배 이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란을 제외하곤 정중동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 비춰 보면 연일 파격적인 행보다.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18대 대선이 끝난 지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19대 대선 재도전을 거론했다. 공교롭게도 대선 1년을 맞는 오는 19일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다룬 영화 <변호인>이 개봉한다. 개봉 전부터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이 영화의 '감성몰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친노 세력의 기대감도 감지된다.

안철수 창당 분위기 속 대선 재도전 피력…文-安 대권 경쟁 2차전?

공교롭게도 문 의원의 대권 재도전 발언은 안철수 의원이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 출범을 알리며 신당 창당 계획을 구체화한 지 정확히 하루 뒤에 나왔다. 문 의원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난해 대선 당시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두 인사가 차기 대선을 놓고 경쟁 2라운드에 접어든 셈이다.

문 의원이 대권 재도전을 선언하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미이관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한 것 역시 그동안 자신의 발목을 잡아온 정치적인 족쇄를 풀어버리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 지난해 대선 당시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던 문재인 의원(왼족)과 안철수 의원. 안 의원이 신당 창당에 속도를 내고 문 의원도 대권 재도전 의사를 내비치면서 두 인사의 '대권 경쟁 2라운드' 역시 조기 점화되는 분위기다. ⓒ프레시안(최형락)


곤혹스러운 민주당…김한길 지도부 '입지 축소' 우려도

야권 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민주당 일각에선 최근 비노(非盧) 중심 당 지도부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잇는 상황에서 문 의원의 거침없는 행보가 나온 데 대한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김한길 대표가 대표직까지 걸며 대여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당내 구심점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도부에 힘을 실어줘도 모자랄 판에 자칫 문 의원의 개인 행보에만 이목이 집중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비노 진영 일각에선 문 의원의 이 같은 행보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노 진영이 정치적 기반을 사전에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김한길 체제가 조직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에서, 친노 진영이 다시 당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견제 심리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가 1년 만에 차기 대선을 언급한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빠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노 쪽과 가까운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대선 패배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패배한 후보가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책을 내느나"면서 "시기적으로 너무 이르다"고 했다.

여기에 문 의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문제나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등 '과거 이슈'에만 지나치게 매몰된다면 대선 패배 후 1년 동안 계속되어온 야권의 지리멸렬을 답습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도 및 중간층 외연 확대에 나선 안철수 의원과의 차별화 전략을 위해 박 대통령과 확실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단순한 대립을 넘어 경제민주화나 복지 등 민생 관련 의제 설정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선명수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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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칼럼]종편에도 밀리는 공영방송, 어찌할 것인가

[고승우 칼럼]종편에도 밀리는 공영방송, 어찌할 것인가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입력 2013-12-01 14:25:04l수정 2013-12-01 17:41:40
기자 SNS



공영방송의 신뢰 추락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종편 채널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영방송의 추락은 종편 채널에게 관심도를 높여줄 수 있는 공간의 확보로 연결된다. 한 종편은 최근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등에 대한 날선 보도를 하면서 방송 심의기구의 공격 대상이 되고 그에 따라 전체 종편의 위상 강화에 기여하는 묘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대자본이 주주인 그 종편이 구조적으로 공익적 방송을 장기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란 어설픈 추정이 나오는 것은 심각한 착시현상의 하나다. 종편의 부상 속에 심화되는 공영방송의 신뢰 추락이 강행, 방치되는 것은 음모적 시각에서 볼 때, 권력 모처가 주도하는 종편 살리기 작전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여의도 KBS 본관 부근에서 거의 매일 시청료 거부 1인 시위가 벌어지면서 시민사회의 공영방송에 대한 우려와 질타가 가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해당 방송사 내부에서는 정상화를 위한 이렇다 할 몸부림이나 투쟁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론이 사회적 제4부의 책무를 다하는 것은 언론 조직 구성원에게 지워진 무한 책임이다. 공영방송이 처한 오늘의 사태는 정치적 상황이나 법적 제재 등이 큰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언론 당사자들이 시청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회적 공기의 담당자로서 무거운 책임 의식과 현상 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또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공영방송 사태의 원인이 방송 안팎에 있다 해도, 부적절한 보도 행위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언론이 면키 어렵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의 언론이 지닌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언론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이 생략되거나 외면당할 경우 언론은 물론 그 언론이 속해있는 사회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부정과 부패에 언론이 눈감을 경우 그 언론이 존재하는 전체 사회가 부패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정상적인 보도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언론이 정상적인 사회의 존속과 그 사회 구성원의 행복을 크게 하기 위해서 시장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책무와 직결되어 있다.

 

공영방송 바로세우기 위해 구성원이 직접 나서야

21세기 언론의 위상에 대해 어느 학자는 큰 틀에서 정치권력, 자본 권력과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지만 정치와 자본의 선전, 홍보 공세에 휘둘리는 경향이 강해지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과거 독재 시절의 언론이 정치권력의 총칼에 휘둘리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공영방송을 포함한 오늘 한국의 언론 현실의 타개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찾아진다.

박정희, 전두환의 총칼에 의한 언론 탄압과 통제는 사라졌지만 21세기 민주공간에 아직 남아있는 구체제의 제도와 악행, 악습이 정상적인 언론의 목을 조르고 있다. 언론 내부에서 경영권과 인사권을 장악한 정치 지향적 언론 권력이 청와대와 국정원의 하수인 역할을 하면서 언론 영역을 파괴하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을 주장하던 양심적 언론인들이 부당한 처우 속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부당하게 해직 당한 언론인 수십 명, 부당 징계를 당한 수백 명의 언론인이 아직 원상회복을 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은 정치권의 언론에 대한 책무는 외면하면서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태의 위기를 언론 보도를 통해 물타기 하려 시도하고 있다. 공영방송에 대해 방송심의기구는 21세기 정보사회와 전혀 걸맞지 않는 공정성, 기계적 균형 기준 등을 앞세워 공익보도, 진실 보도를 저지할 보도지침을 만들어내면서 방송 구성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공영방송이 대내외적으로 처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이런 참혹한 현실 속에서 생산되는 공영방송의 부적절한 보도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등이 방송사 밖에서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갖는 영향력은 결정적이지 못하다. 법원조차 부적절한 보도를 지원하는 광고에 대한 불매운동을 불법이라고 판결한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언론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매우 제한적이다.

국회에서 법으로 방송을 정상화시키라고 요구하는 것도 먹히지 않는다. 꽉 막힌 이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방송의 구성원, 양심적 구성원들이 일어서야 한다. 방송인 자신을 위해서, 또한 방송이라는 사회적 조직의 책무를 다 하기 위해서 할 말을 하고 할 행동을 해야 한다. 우선 심리전과 선전, 홍보 차원의 정보를 기사화하기 전에 그 진위를 검색하고 그리고 사회적 중대 사안에 대해 언론의 자율적 기능인 탐사보도 등을 통해 진실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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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자들의 월급이 100배 인상됐다는데...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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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02 09: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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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새로 개건(改建)된 평양기초식품공장을 현지지도했다. 평양기초식품공장은 원료투입에서 포장에 이르는 모든 공정들이 자동화된 현대적인 ‘기초식품생산기지’로 된장, 간장을 비롯한 갖가지 기초식품들을 생산해 평양 시민들에게 공급하는 공장이다. 이 공장은 노동자들을 위한 목욕탕, 수영장, 미용실, 이발실, 음악감상실 등의 편의 후생시설도 갖추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 공장을 찾은 것은 올해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관리 개선을 위한 ‘시범단위’의 하나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평양기초식품공장을 경제관리 개선을 위한 시범단위로 지정

 

   
▲ 2005년 평양의 중구역의 한 식량배급(판매)소에서 주민들이 식량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입구에는 쌀, 옥수수, 보리 등의 곡물판매가격이 공시돼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평양기초식품공장은 2002년 사회주의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가 단행될 때도 ‘모범 공장’으로 거론됐던 곳이다. 당시 이 공장의 홍영길 지배인은 “지금까지는 공장에서 평균주의를 하다나니까 지배인과 일부 일군들이 분발하여 얻은 이득이 행처없이 사라지고 말았지요. 일하지 않고 분배만 받는 건달꾼들이 부려먹었던 것인데 앞으로는 허용될 수 없습니다”라며 근로자들이 그 전보다 2배, 3배의 일감을 맡도록 하는 한편 보일러 조종사처럼 공장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근로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노임을 주는 등 경영의 합리화에 앞장섰다. 평균주의적 분배의 폐해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약 10년이 지난 뒤 평양기초식품공장은 다시 제도개선을 위한 ‘시범공장’으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초점이 맞춰졌다.

첫째는 공장운영의 ‘상대적 독자성’(자율성)을 확대하고, 원가에 맞게 생산제품의 가격을 조정하는 조치다. 이 조치의 시행으로 ‘원가보상의 원칙’에 따라 국가계획을 벗어나 자체 원료로 생산한 제품은 국가와 토의해 마음대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게 됐다.

둘째는 근로자들의 생활비(임금) 지급에 차등을 두던 것을 더욱 확대하는 조치다. ‘일한 것만큼, 번 것만큼 분배’한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 기업 수익에 따라 임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개별 근로자들의 임금 지급에서도 차등의 폭을 더 확대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근로자들의 생활비가 인상됐다.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그에 합당한 노동보수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제도개선의 결과에 대해 지난 11월 평양기초식품공장 손현철 기사장은 “이제는 종업원들이 하루에 자기가 일한 몫의 가격이 얼마인가를 안다”며 “자기 생활비를 높이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된다는 생산 열의가 높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 2000년대 중반이후 꾸준히 생활비 인상

이러한 조치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7.1조치이후 생산이 정상화된 공장.기업소, 자체 수익이 많은 식당, 상점, 호텔 등에서는 시장 물가에 맞춰 생활비를 지급해왔기 때문이다.

평양326전선공장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2002년 7.1조치 때 이 공장 근로자들의 임금은 평균 18배 인상돼 최하 1,140원, 최고 4,780원 정도로 책정됐다. 당시 식량판매소에서 공급하는 쌀 가격은 1kg에 44원이었다. 그러나 국가의 식량공급이 수요량의 반 정도밖에 충족되지 못하자 일반 근로자들은 부족한 식량을 시장에서 사야했고, 시장의 쌀 가격은 얼마 지나지 않아 1kg당 120원 내외로 급등했다.

평양326전선공장의 경우 전반적인 물가상승에 맞춰 2005년의 경우 평균 2만원대로 생활비를 올려서 지급했다. 국가계획을 초과 달성해 늘어난 수익을 근로자들의 생활비로 추가 분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시장의 쌀가격은 1kg당 500원 내외. 올해 들어 평양326전선공장은 생활비를 20~30배 인상했다고 한다. 현재 북한 시장의 쌀가격은 1kg당 5000원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 평양326전선공장의 2005년 ‘재정공시’ 현황. 2005년도 공장의 총수입, 노동자 1인당 평균 생활비 내역 등을 알 수 있다. 이 공장의 ‘공장재정공시’는 정보 노출을 피하기 위해 지워져 있었지만 사진 판독을 통해 내용을 복원할 수 있었다. 공란은 판독불가. [자료사진 - 민족21]
평양326전선공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수익을 낸 기업들은 물가상승에 따라 근로자들의 임금을 현실화하는 조치를 꾸준히 취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관리 개선을 위한 ‘시범단위’로 평양기초식품공장을 지정한 것은 일부 공장.기업소에서 이뤄지고 있던 경제개선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노력일에 의한 평가방법’에 따라 생활비를 지급했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계획의 수행 여부에 관계없이 공장.기업소에서는 책정된 생활비를 평균적으로 지급했다. 모자란 부분은 국가재정으로 충당됐다. 어느 공장이 계획을 달성 못했다 해도 근로자들의 생활비는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7.1조치이후 계획 달성 여부에 따라 근로자들의 생활비 지급에 차등을 두기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생활비를 공장.기업소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변화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들어 여건이 좋은 공장.기업소들에서는 당국이 정해준 기본생활비는 유지하면서 수당을 기본급의 최고 100배까지 지급하는 방식으로 근로자의 전체 생활비(임금)를 시장물가에 맞춰 현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에서는 ‘임금’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로동보수’, ‘생활비’라는 표현을 쓰고, 생활비는 ‘기본급+수당’의 형태로 이뤄져 있다. 수당에는 상금, 장려금, 가급금 등이 있다. 기본급 또는 기본생활비는 북한 당국이 직업군 별로 상한선을 정해주며 수당은 기관.단위별로 자율적으로 지급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수당이 기본급의 100%를 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한다.

 

최근 실질적으로 20~30배 생활비 인상

하지만 최근 북한의 일부 공장.기업소에서는 당국이 정해준 기본급을 유지하면서 수당을 기본급의 최고 100배까지 지급하는 방식으로 근로자의 전체 생활비를 시장물가에 맞춰 현실화하고 있다. 무산광산, 김책제철소, 성진제강소 등 주요 제철.제강.광산 기업소 근로자들과 평양 지역 방직.피복 관련 기업소 근로자들에게 30만 원 정도의 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공장에서는 물가상승을 우려해 현금으로 10만원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20만원 상당의 현물을 지급했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공장.기업소들은 평양326전선공장처럼 지속적으로 생활비를 인상해왔기 때문에 단기간에 임금을 100배로 올린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는 “현재 북한에서 안정적으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30~50만원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하며, 이에 준하는 수준으로 임금 인상이 이뤄졌다고 들었다”는 최근 방북인사의 전언과도 일치한다. 이 정도의 수입이면 식량배급 이외에 부족한 식량을 시장에서 구입해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정도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물가 상승을 잡을 수 있느냐가 중요 변수다. 지난 10년의 경험처럼 임금이 인상돼도 물가가 더 오르면 실질 임금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에서 물가의 기준이 되는 식량가격은 2002년 1kg당 50원에서 현재는 100배 이상 올랐다. 무엇보다도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서는 물가 안정이 급선무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식량생산량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가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11일까지 북한에서 실시한 올해 수확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도정하기 전을 기준으로 598만톤으로, 지난해에 비해 5%가 늘었다. 도정한 알곡 기준으로는 503만톤이다. 북한의 수확량은 지난 2011년 8.5%와 2012년 6%에 이어 올해로 3년 연속 늘었다. 특히 쌀 수확량은 지난해에 비해 8% 늘어 290만 1천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1인 당 1년 곡물 소비량을 174kg으로 잡고, 사료용 수요와 도정 후 손실 등을 감안할 때 내년 식량 수요는 도정 후 기준으로 537만톤이라고 추산했다. 34만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북한 농업성이 유엔에 2014회계연도 중 30만톤의 식량을 수입할 예정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족 분은 4만톤에 불과하다. 더구나 북한은 자체적으로 식량생산량이 600만톤을 넘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북한이 주민들에게 평균적으로 배급할 양의 식량을 확보한 셈이다.

‘일한 것만큼, 번 것만큼 분배’ 원칙 일반화

그럼에도 일부 지역과 일부 계층에 식량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북한의 식량배급 및 분배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일본 테이쿄(帝國)대학 이찬우 교수가 정리한 북한 식량공급과 배분구조 도표. 이 교수는 2012년 북의 식량생산량을 500만톤으로 보고, 공업용으로 사용되는 100만톤 정도를 제외하고, 국가배급대상은 약 600만명(군인 포함)으로 약 110만톤이 소요되고, 농민 800만이 약 150만톤을 현물로 분배받고, 기타 도시 노동자 1,000만명이 140만톤 정도 소비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첫째, 북한은 군대 및 정무원(공무원) 등 고정월급자들(약 600만명으로 추산)에게는 과거와 같이 국가가 식량을 배급하고 있지만, 대다수 공장.기업소들은 자체의 수익으로 식량을 구입해 근로자(1천만명으로 추산)들에게 배급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정상 가동이 안 되는 공장.기업소, 계획을 초과해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공장.기업소의 근로자들은 기본생활비 외에 추가 상금도 받지 못하고 식량배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러한 공장.기업소의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생활형편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둘째, 자체적으로 연말에 식량을 결산분배하는 협동농장의 경우에도 지역별로 생산량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많은 농장들이 성과급 제도를 시행하면서 생산량을 초과 달성한 협동농장은 최대 3개월치 식량을 추가로 지급 받아 1인당 65kg을 더 받은 반면 계획된 생산량에 미달한 협동농장은 4개월치 식량을 못 받게 된다고 한다.

즉, ‘일한 것만큼, 번 것만큼 분배’한다는 원칙이 전국적으로 적용되면서 공장.기업소별로, 협동농장별로 소득격차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계획과제를 초과 달성해 더 많은 수익을 거둔 공장.기업소들은 그에 상응한 분배를 받게 되고, 그 공장.기업소 근로자들의 임금도 늘어난다.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일을 하고 많이 번 사람에게는 많이 분배되고 적게 일하고 적게 번 사람에게는 적게 분배되는 셈이다.

식량생산량이 늘면서 1990년대 주민들이 겪었던 ‘고난의 행군’시절과 같은 최악의 식량난은 기본적으로 사라졌다. 식량을 배급받지 못하거나 부족하더라도 시장에서 ‘장사’를 통해 추가 수익을 얻거나, 다른 일을 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비공식적으로 형성된 ‘인력시장’에서 막노동자의 일당은 개인이 가진 기술에 따라, 또 지역마다 차이가 나지만 평균 북한돈 1만~2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공장이 제대로 가동이 되지 않아 임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건설현장에 나가거나 일용 잡일 등을 통해 월 수십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실질적으로 생활이 가능한 임금’ 보장

북한이 ‘실질적으로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임금을 대폭 인상하도록 공장.기업소에 자율성을 준 것은 이러한 비공식 부문의 경제활동을 축소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물가 상승으로 직장에서 주는 생활비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조건에서 북한 주민들은 다른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직장에는 결근자가 많아지고 기업소들의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임금의 대폭 인상은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해 근로자들이 직장에 열심히 다닐 수 있는 유인이 될 것이고, 기업소의 생산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올해 단행된 임금의 대폭 인상은 국가가 임금을 인상시켜줄 재정 능력이 부족한 조건에서 수익이 나는 기업들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조치가 전국의 공장.기업소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북한경제의 전반적인 성장과 공장.기업소들의 해외자금 유치를 통한 운영 정상화, 경영혁신을 통한 수익증대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지난 3월 노동당 중앙전체회의에서 대외무역의 다원화와 다양화를 실현하고 도(道)마다 현지 실정에 맞는 경제개발구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7월 경제개발구법을 발표해 13개 시.도와 220개 시.군.구에 지역 실정에 맞는 ‘맞춤형 경제개발구’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공장과 기업소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해 생산과 판매, 경영과 고용은 물론이고 해외 수출까지도 모두 기업소 및 공장의 책임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정책을 내놓는데 그치지 않고 현실성 있는 제도적 정비가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임금 인상으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평양에 전문상점과 슈퍼마켓이 각 구역마다 들어서고, 각 지역의 시장에도 중국을 통해 상품공급이 충분히 되고 있어 공급이 부족해 물가가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한 북한당국은 휴대폰 보급 등 임금 인상으로 시중에 풀린 돈을 재정으로 흡수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인플레이션을 효율적으로 억제하고, 경제관리개선 조치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더라도 대다수 공장.기업소의 임금이 실제 생활수준까지 도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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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지 생긴 문재인, 청와대와 정면승부 시동

과거 정리, 차기 행보 나선 문재인... '대선 2라운드' 본격 개막

13.12.02 09:10l최종 업데이트 13.12.02 09:10l
이승훈(young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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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차기 대권 플랜을 염두에 둔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면서 청와대와 정면충돌 양상을 빚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 주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원미사' 참석 당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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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1주년을 앞두고 차기 대권 플랜을 가동한 '문재인식 정치 행보'가 본격화하면서 청와대와 정면 충돌 양상을 빚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의 단일후보로 출마했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월 29일 민주당 출입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선 재도전 의지를 밝힌 후, 이틀 만에 출간 예정인 대선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등 정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신당 창당을 위해 '새정치추진위'를 출범한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 맞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민주당 내 '친노'의 전략과 맞물려 야권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청와대가 문 의원의 행보를 사실상 '대선 불복'으로 규정해 맹비난하면서 대여 관계에 있어서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리, 차기 행보 나선 문재인... 박근혜 정권과 허니문 종료 선언

지난 11월 29일 문 의원의 기자간담회는 대선 패배 후 1년 여의 정치적 동안거에 마침표를 찍고 차기 행보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기자간담회 날짜도 지난해 18대 대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날인 데다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신당 창당을 공식화한 바로 다음 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았다. 문 의원은 대선 후 주요 고비마다 자신과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미이관 사태에 대해서도 매조지하려는 듯 공식 사과했다.

문 의원의 대변인 역할을 맡기로 한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이날 간담회에 대해 "새로운 여정의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도 9일 출간될 대선 회고록 <1219 끝은 시작이다>를 쓴 이유에 대해 "작년 대선에 대한 마침표를 찍어야 또다른 시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문 의원은 이날 간담회에서 차기 대선 도전 의지를 밝히면서 박근혜 정부와의 허니문이 끝났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

문 의원은 "NLL(서해북방한계선) 문제나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부득이하게 나서게 됐지만, 대선 후 1년은 공개적인 발언에 나서는 게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해 정치적 현안에 대한 언급이나 새 정부에 대한 비판은 되도록 피하려 했다"며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초기에 털었어야 할 문제를 오히려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빨리 미래로 나아가야지 언제까지 지난 대선 문제로 헤맬 것이냐"며 "아직도 소모적인 정쟁에서 못 벗어나는 박근혜 정권의 행태가 아쉽고 불만스럽다, 자꾸 야당과 국민 탓을하는 게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막힘 없었던 대선 재도전 발언... 권력의지 생긴 문재인

차기 대선 출마 뜻을 밝히는 과정도 막힘이 없었다. 문 의원은 '2017년 대선 나서라는 민심의 요구가 있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2017년에는 반드시 정권교체가 돼야하고 저도 기여할 생각이다, 어떤 역할을 할 지는 국민들이 결정해 줄 문제"라고 답했다. 자리를 함께한 기자들이 다시 한번 '2012년과 같은 기회가 온다면 마다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제가 꼭 (대선 후보를) 해야 한다고 집착하지는 않지만 회피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권 재도전 발언이 나왔지만 질문을 예상해 준비한 듯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국민의 뜻에 맡기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기자들도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지난해 대선 전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문 의원이 <1219 끝은 시작이다>에서 밝힌 대로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열정이나 절박함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게 그 열정과 절박함이 넘쳐나야 민주당에도 전염이 되는 법인데 그러지 못했다"고 자성한 결과로 해석된다.

대선 재도전 의지를 밝힌 후 문 의원의 정치 행보는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일 박근혜 정부에 대한 거침 없는 비판이 담겨 있는 <1219 끝이 시작이다> 내용을 일부 발췌해 공개했다. 문 의원은 이 책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공안정치를 이끄는 무서운 대통령이 됐다"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강조했던 국민통합과 상생도 오히려 더 멀어지고 편가르기와 정치보복이 횡행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행태에서 때 이른 권력의 폭주를 느낀다"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발끈한 청와대가 문 의원을 겨냥해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것이 품격인지 모르겠다"(이정현 홍보수석)고 비난하면서 대선 1년여 만에 야권의 대선 후보였던 문 의원과 청와대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 됐다. 문 의원은 지난 11월 28일 민주당 천주교신도회 의원들이 개최한 시국미사에 참석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종북몰이에 분노를 느낀다"며 여권과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대선 1년여 만에 문재인-박근혜 정면 충돌... 대선 2라운드 본격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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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2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후보단일화를 위한 TV토론 이후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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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흐름을 보면 문 의원이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대여 투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치적 보폭을 넓힘으로써, 정권과 싸우는 야권의 구심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동안 야권에서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과 싸우지 않는 안철수'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대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나서 48%가량을 득표했던 문 의원이 박 대통령과 선명한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지지 기반을 다지고 안철수 신당과도 자연스럽게 차별화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 의원은 지난 11월 29일 간담회에서 "안철수 의원은 우호적 경쟁관계"라며 자신의 역할은 "민주당을 지지받는 정당으로 만든 뒤, 안철수 의원이 만드는 신당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안 의원의 신당이 궁극적으로 2017년 대선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지난 대선에서 단일화 후보 경쟁을 벌였던 두 사람이 '대선 2라운드'에 돌입하게 되는 셈이다. 대권 경쟁이 조기 점화되는 것은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질 야권의 재편 결과, 또 지방선거 성적표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문재인과 안철수, 차기 대선 주자들의 경쟁이 조기에 점화됨에 따라 손학규 상임고문·안희정 충남지사 등 나머지 대선 후보군들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문 의원의 정치 재개가 이르다는 비판도 있지만 사실 6월 지방선거까지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며 "야권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유력 차기 대권 주자들이 움직이면서 경쟁할 경우 여론의 관심도 커지고 야권이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선 후보군의 조기 가시화는 나쁘지 않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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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첫 권고 ‘복음의 기쁨’ 발표‘

프란치스코 교황, 첫 권고 ‘복음의 기쁨’ 발표

사람 죽이는 경제’ 비판…“건전한 분권화” 등 교회개혁 방향도 제시해

한상봉 기자 | isu@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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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30 00: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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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6일 첫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발표하면서, 교회개혁 의지를 밝히고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강력히 비판했다.

5개장, 288항으로 구성된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가 지금보다 더 선교적이 되고, 좀 더 자비로우며, 변화 앞에 담대해져야 한다는 자신의 비전을 드러내면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와 같이 교황으로서 자신의 ‘꿈’을 먼저 전했다.

교황은 “나는 선교적 선택, 즉 선교적 열정을 꿈꾸고 있다”면서 “교회가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관습과, 관행과, 스케줄과, 용어들과 구조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히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평화를 위해 특별한 열정을 지녀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문 밖에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예수께선 끊임없이 ‘어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라’고 가르치셨다”면서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무는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교회개혁으로 인해 “길을 잃을까봐” 걱정하는 것보다 “잘못된 안정감을 주는 구조 안에, 냉혹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규율 안에, 편안한 느낌을 주는 습관 안에 우리를 가두어 두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 출처 / 바티칸 홈페이지 갈무리

 

<복음의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실상 첫 문헌
“교회는 통행료 받는 곳 아닌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지난 6월에 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을 발표한 바 있지만, 그 내용은 주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초안을 마련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에 발표한 <복음의 기쁨>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저술한 첫 문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존 알렌은 “이번 문헌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특유의 친숙하고 소박한 언어가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자질을 이야기하면서 명랑한 어조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절대로 장례식에서 방금 돌아온 사람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교회는 통행료 받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으로서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 곳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고해소가 고문실 같아서는 안 되고, 우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시는 주님의 자비와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도 교황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교황은 비록 이 문헌에서 교회개혁을 위한 포괄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암시에 그치지 않고 거칠게나마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교황 권력의 분산…지역 주교의 권한 확대되어야
“성체는 약한 자를 위한 치료제… 마녀사냥 세력이 문제”

교황은 먼저 “교황직 수행에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최근 몇 년 동안 교황권의 집중 현상이 거의 완화되지 않았다고 솔직히 밝히며, 이제 교황의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건전한 분권화”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말했다. 또한 지역교회의 주교회의에 “참된 교의적 권한을 포함하여 …… 법리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동안 지역교회의 주교회의는 이러한 권한을 지니지 못했으며,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결정했던 것처럼 이러한 권한은 교황 및 교황에게 협력하는 개별 주교들만이 지니고 있었다.

한편 교황은 성체가 “완전한 자들을 위해 내리시는 상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위해 주시는 강력한 치료제요 영양제”라면서 “성사를 향해 나아가는 문은 어떤 경우에도 닫혀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교황의 이 말은 이혼하거나 재혼한 신자들뿐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 가운데 일부를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일반인들에 대한 성체성사 거부를 재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어 교황은 “진짜 마녀사냥을 갈망하는 이들의 세력이 아직도 교회 안에 존재한다”면서 “만약 우리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과연 누구를 복음화시킬 수 있을까” 반문했다. 또한 복음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 시대의 요구를 무시한 채 전례와 교리에만 “과시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경계했다.

한편, 몇 가지 측면에서 교황은 단호하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교황은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성사제 서품이나 낙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반대했다. “모든 이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의 생명도 교회는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과 신성화된 경제권력 비판
“하느님은 모든 형태의 노예적 삶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신다”

<복음의 기쁨>은 사회문제와 관련해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한 구성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배제와 불평등의 사회를 비판하며 “오늘날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으며, 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을 착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은 “더 이상 사회의 밑바닥이나 변방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도 아니며, 버려진 잉여가 되었다”고 고발했다.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이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규범이었듯이, 우리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경제는 사람을 죽인다. 늙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은 뉴스가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교황은 자유시장체제로 경제가 성장하면 세상에 더 큰 정의와 통합을 가져온다는 ‘낙수이론’을 비판하며, “이 가설은 확인된 적이 없으며, 다만 경제적 지배권력의 선의와 지배적인 경제체제의 신성화 작업에 대한 순진한 믿음”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금융자본주의를 “새로운 우상”이라고 지목하며, 국가도 통제할 수 없는 경제권력을 “눈에 보이지 않은 채, 가상의 존재로 군림하는 경제적 폭정”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돈과 권력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태도 뒤에는 “하느님에 대한 거부”가 도사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시장이 절대화되면 “시장이 통제할 수 없는 하느님은 심지어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면서 “하느님은 모든 형태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되길 원하신다”고 말했다.

* 참고 기사 번역 제공 / 배우휘 편집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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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복몰이’ 전념하는 박근혜 정부, 닉슨 정권 말로와 너무나 닮은꼴

‘국가안보’ 꺼내 들다 사임 자초한 닉슨, 박근혜 정부는?
 
‘종복몰이’ 전념하는 박근혜 정부, 닉슨 정권 말로와 너무나 닮은꼴
 
김원식 | 2013-12-01 08:14:1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닉슨 미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발표한 성명

 

"이러한 조사 행위는 워터게이트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활동에 심각한 몰이해를 불려 올 수 있으며 그것은 더 나아가 민감한 국가 안보 관련 정보를 손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책임을 단념하지 않을 것이며 당선된 사람으로서 이 직분(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것이다" (1973년 5월 22일 닉슨의 대국민 성명 일부)

리처드 닉슨. 그는 1972년 미국 대통령에 재선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그럴싸한 부인(plausible denial)'으로 위기를 넘기면서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재선 이후에도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의혹은 거칠 줄 모르고 더욱 거세게 타올랐습니다. 1973년 5월 22일, 점점 궁지에 몰린 닉슨은 드디어 권력자의 전가의 보도(?)인 '국가안보'를 들먹이며 이렇게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장문의 성명을 통해 특히 미 중앙정보국(CIA)이 국가안보를 위해 여러 가지 정보 활동을 해왔음을 거론하며 "이러한 활동이 국가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는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러한 정보 활동의 행위와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일부에서 마치 이를 정보기관이 저지른 행위처럼 몰아가고 있는 것은 국가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에서 이른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터졌을 때, 국정원 댓글은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행해졌으며 일부의 선거 개입은 대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개인적 일탈이라며 국정원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 행위를 문제 삼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핑계와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닉슨의 말이 사실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궁지에 몰린 닉슨이 자신에게 닥쳐오는 책임을 모면하고자 전가의 보도인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반전을 꾀했으나, 그의 대국민 성명은 두어 달도 지나지 않아 거짓말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같은 해 6월 3일, 워터게이트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고 있던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덮기 위해 닉슨 대통령이 참여한 가운데 적어도 35분 동안 회의가 열렸다"고 폭로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닉슨 대통령과 해리 홀드먼 대통령 수석보좌관 등은 미 연방수사국(FBI)과 특별검사의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CIA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닉슨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CIA에게 FBI 등의 조사를 방해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백악관에 설치된 녹음기에 녹음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뒤로하고 닉슨은 국민의 애국심을 이용하기 위해 국가안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정권안보를 위해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고드는 행위는 마치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대국민 설득전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마치 한국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이 터지자 발 빠르게 국정원장이 나서서 이른바 'NLL 회의록' 공개를 감행하며 국가안보 사수를 핑계로 '종북몰이'를 시작한 것과 너무도 닮은꼴입니다.

'정권안보' 위해 '국가안보'를 팔아먹은 닉슨 행정부의 광기 어린 발악

사실 닉슨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핑계 대며 이른바 '정권안보'에 급급해 광기 어린 발악을 시작한 것은 이미 워터게이트 사건 이전이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그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닉슨 행정부는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통해 베트남 전쟁을 촉발한 '통킹만 사건'의 조작 가능성과 실체를 보도해 여론이 정권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정보 요원들을 총동원하다시피 하며 이른바 '진실 물타기'에 나섭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 당시 이 문서의 작성자이며 <뉴욕타임스>에 국가 기밀을 건네준 국방부의 대니엘 엘스버그를 정신병자로 몰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정보기관을 동원해 엘스버그가 다녔던 병원의 기록물까지 훔쳐내려고 워터게이트 사건과 똑같이 병원 건물에 침투해 무단으로 병원 캐비닛을 열었던 것입니다.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역사박물관에는 정권의 이러한 불법행위를 영원히 국민에게 알리려고 당시 캐비닛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파괴된 케비닛의 모습

 

이렇게 닉슨은 이러한 조작된 정신병력 등의 허위사실 유포와 CIA와 FBI 등을 동원한 제보자의 신상털기는 물론 언론 기사의 조작 등을 통해 대선 직전 불거진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지 맥거번 당시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대선에서 손쉽게 재선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지난 대선 전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이 발생하자 '선거 개입 댓글은 없다' '일부 요원의 개인적 일탈이다' 등의 거짓말을 해가며 불이 나게 경찰청에 수사 발표를 지시해 선거일 전에 조작된 내용을 기사화하게 만든 사례와도 너무나 닮은꼴입니다. 더구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불법을 동원해 가며 신상털기에 나선 행위는 41년 전 닉슨이 행했던 불법적 신상털기와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닉슨 행정부의 이러한 불법적 행위로 인해 오히려 대니엘 엘스버그에 대한 당시 정권의 기소는 기각되었습니다. 법원은 불법적인 자료 취득을 위해 침입한 사람들이 닉슨의 측근들과 관계가 있고 정권이 부정행위를 했다며 기소 자체를 기각시켰던 것입니다.

'지난 역사에 나타난 교훈들' 그러나 강경으로 치닫는 박근혜 정부... 결과는?

이렇게 재선에 성공한 닉슨이었지만, 갈수록 진실이 폭로되고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들이 날아들자 앞서 언급한 데로 1972년 5월 22일, 정권안보를 위한 전가의 보도인 줄 알았던 '국가안보' 카드를 꺼내 들면서 애국심을 핑계로 계속 이 사건을 파고들면 국가안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대국민 협박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최근 '국정원 대선 개입'의 실체를 밝힐 것을 요구하는 한국 국민들의 요구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사퇴를 촉구하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의 미사 강연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두둔했다'는 내용으로 살짝 바꾸어 '국론(국가안보)을 분열시키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국의 상황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집권자의 이 발언에 검찰이 즉각 수사에 착수하는 한국의 현실은 당시의 상황과도 너무나 닮은꼴이라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필자를 더 소스라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닮은꼴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정권안보 유지를 위해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국가안보를 내세웠던 닉슨은 국민들이 더 이상 속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들이 불꽃같이 타오르자 더욱 광기 어린 집권자로 돌변하면서 자신의 사임을 재촉하고 맙니다.

그는 끝내 이른바 '스모킹 건(smoking gun, 결정적 증거)'으로 불리는 녹음 자료를 내어 놓으라는 특별 검사의 요구를 거부하며 오히려 그를 해임하려 했고, 이에 반발한 법무부 장관이 사퇴하자 차관을 시켜 해임을 강행하려 했습니다. 이에 법무부 차관마저 이를 거부하고 사퇴하자 장관대리를 시켜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해 가면서 자신의 무덤을 점점 파고들어 갔던 것입니다.

필자는 이미 지난 3월 박근혜 정부 등장 이후 이른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더욱 의혹을 불러오던 초기에 '진실의길'에 실린 글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잠시 국민을 속이려는 유혹으로 더 큰 화를 불려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당시 "박근혜 정부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더 이상 은폐를 계속해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낙마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희망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필자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국민을 계속 속이면서 닉슨 하야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국민들의 정보기관 대선 개입에 대한 의혹이 더욱 불타오르자 40년 전 미국 닉슨 행정부가 행했던 것과 똑같은 물타기와 '나는 모른다'는 꼬리 자르기, 이른바 '종북몰이'와 더불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정권안보용 대국민 협박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국민들과는 멀어져 가며 식물 정부가 되어가는 박근혜 정부에게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라는 충고는 어쩌면 이제는 사치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닉슨 행정부가 최후에 발악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가 '종북몰이'와 '국가안보'를 핑계 삼아 '정권안보'를 위한 마지막 발악의 '공포정치'가 눈앞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2년 6월 17일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그럴싸한 부인'으로 잠시 동안의 은폐에 성공해 재선한 닉슨이 이 과정에서 얼마든지 국민을 향해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길이 있었으나 끝내 정권안보를 위해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줄 알았던 국가안보마저도 팔아먹었습니다. 이렇게 국민을 잠시 속였으나 사건 발생 2년여 만인 1974년 8월 9일, 끝내 닉슨은 '임기 중 최초로 사임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오명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사실을 박근혜 정부는 꼭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거듭 이러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한 줌의 권력을 위해 '정권안보'에만 연연하며 잠시 국민을 속이고 '공포정치'로 국민의 입을 막았다가는 끝내 영원히 국민으로부터 버림받고 쓸쓸히 사라져 가는 '독재자의 딸'을 다시 한국 역사에서 보아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눈앞에서 그려질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1&table=newyork&uid=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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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인의 절규 "일제에 놋그릇 뺏길 때보다 더 억울!"

[밀양 희망 버스 동승기] "희망 버스 욕하면 속 뒤집어져"

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01 오전 9:36:54

 

"엄청 많다. 아빠. 우리가 질 것 같아."

10살 호성이가 마을 골목마다 늘어선 경찰을 보고 아버지 이모(40) 씨에게 소리쳤다. 주변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11월 30일 오후 4시께, 전라북도 전주에 사는 호성이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여수 마을을 찾았다. 이날 오전 10시께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밀양 희망 버스'를 타고서다. 희망 버스 50대에 나눠 탑승한 참가자 총 2000여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300여 명)은 단장면 동화전 마을, 상동면 도곡·여수 마을 등 3곳으로 나눠 향했다.

경찰은 충돌이 우려된다며 공사 현장 주변 곳곳에 50개 중대 4000여 명을 투입했다. 참가자 1명당 경찰 2명꼴이다.

이 씨는 "아무래도 아이들은 숫자로 우세를 판단하니까 경찰에 위압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여수 마을 입구에 있는 체육공원에서부터 경찰 버스 20여 대가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 버스 참가자들은 그저 '송전탑 공사 중지'라고 쓰인 조그만 깃발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경찰력 4000명이 무색했다.

"없는 지역 탄압하는 것처럼 보여"

희망 버스에는 전국 각지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탑승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 대학생, 환경 단체 회원,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민주당 장하나 의원,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 등이었다.

이들이 참가한 이유는 소박하고 단순했다. 고령의 노인들이 정부 정책에 희생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그 '정책'이, 대도시로 송전하기 위해 작은 마을에 765킬로볼트 송전탑을 짓는 정책이라면 더더욱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 한마음으로 송전탑 반대를 외쳤다. 근본적으로 핵발전소 없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편과 함께 희망 버스에 참가한 서울 시민 이명희(60) 씨는 "있는 자들의 편의를 위해 없는 지역 주민을 탄압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작은 자들의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고 편의만을 위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은 불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권력이 아무 때나 사용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서울시 중랑구 주민 정경희(여·43) 씨는 9살, 6살인 아이 둘을 데리고 왔다. 그는 "서울에서 전기를 쓰면서 한 번도 전기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더라. 밀양 사태를 보면서, 아이 얼굴을 봐서라도 이런 방식으로 전기를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밀양은 국가가 국민을 배반한 사례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11월 30일 오후 6시께, 상동면 도곡 마을 앞에 희망 버스 참가자들이 모였다. 여수 마을 주민을 포함한 밀양 주민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일제 강점기 겪은 노인의 울분…"일제 놋그릇 공출보다 억울"

여수 마을 주민은 생전 처음 보는 이 참가자들을 온몸으로 환영했다. 인생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고 나서 국가를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뀐 밀양 노인들이다. 이들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외지인'인 기자에게 술술 말했다.

마을 노인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묵(남·75) 씨는 "정말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등 한국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모두 지나온 이 씨다.

그는 "내가 아주 어릴 때, 일본놈 앞잡이였던 군청 직원들이 우리 집에 와서 놋그릇을 다 가져갔다. 그놈들이 집안 어른들의 멱살을 잡아서 아주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며 "그러나 그때도 이 정도로 억울하진 않았다. 여든 가까이 살면서 별 고통을 다 겪었지만 이렇게 억울한 일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이장 박상용(남·61) 씨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집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123·124번 철탑이 들어선다. 새누리당 당원까지 할 정도로 골수 새누리당 지지자였던 그다. 그러나 송전탑 주민을 '지역 이기주의', '외부 세력에 세뇌됐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보며 크게 실망했다. 2년 전쯤 당원도 탈퇴해버렸다.

그는 "만약에 싸우다가 져도 손들고 나와 버리지, 한국전력이 주는 합의금은 필요 없다"며 "돈 받으면 다시 우리 같은 사람이 생겼을 때 항의도 못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어차피 받아봤자 껌 값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보상으로 가구당 4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평생 지지해온 당까지 버릴 정도로 국가와 정부에 실망한 그에게, 희망 버스는 큰 힘이 된다. 그는 "'절망 버스'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뒤집어지고 울분이 터진다"며 "희망 버스 타고 자주 와주시면 정말 고맙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희망 버스 참가자들은 96번(동화전 마을), 110번(도곡 마을), 122번(여수 마을) 등 공사 현장 3곳에 진입할 수 있었다.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고 현장 입구에서 참가자들과 경찰이 어깨를 부딪치는 정도의 상황이 발생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7시에 열리는 밀양 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6시께 마을을 떠났다. 주민들은 손을 흔들며 몇 번이고 '또 오세요'라고 소리쳤다.

출발하기도 전부터 몇몇 언론이 '갈등 버스'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밀양 희망 버스의 첫날은 그렇게 끝났다.
 

밀양 송전탑은…


 


밀양 주민들은 근 10년간 765킬로볼트 송전탑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765킬로볼트(76만5000볼트) 송전탑은 높이가 140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송전탑이다. 초고압이자 초대형인 셈이다.


 


정부는 신고리 3·4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를 경상남도 북경남 변전소로 보내, 영남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밀양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송전탑 161개의 건설이 결정됐다. 이 중 69개가 밀양시에 집중돼 있어 송전탑 사업자인 한국전력과 주민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계속됐다. 급기야 지난해 1월, 故 이치우(당시 74세) 씨가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분신자살했다.


 


현재 신고리 3·4호기에서 불량 부품이 발견되면서 완공이 기약 없이 늦어진 상태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의 명분이 없어졌으니 정부와 반대 주민이 일단 대화로 타협점을 모색해보자고 주장해왔다. 또 지중화(송전 선로를 땅에 묻는 방식)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전력은 지중화는 시간, 비용상의 문제로 불가능하다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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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가 '퇴진' 외치고 있다... 따라가야 하지 않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12/01 12:12
  • 수정일
    2013/12/01 12:1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청계광장에서 22차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범국민 촛불집회 열려

13.11.30 22:02l최종 업데이트 13.12.01 09:06l
권우성(kws21) 강민수(comi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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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피켓 대부분이 "박근혜 하야" 3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 22차 촛불대회에서 참석자들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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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등 종교계가 잇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촛불집회에서도 하야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검찰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 발표 직후 열린 촛불집회에서 일부 대학생 단체들이 외친 하야 요구가 국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 기관의 총체적인 대선 개입 의혹으로 확대되면서 5개월 만에 거세지는 모양새다.

30일 오후 6시부터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스물두 번째 촛불집회. 이 자리에서는 특검 수용을 요구하는 손피켓보다 대통령 하야 손피켓이 눈에 띄게 많았다. 그 외에도 시민들이 만든 '대통령 선거 다시하라',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박근혜는 선거 쿠데타'라는 내용의 피켓도 눈에 띄었다.

집회 시작 전 주최 측인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아래 국정원 시국회의)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특검 즉각 수용하라'라는 피켓을, '불법당선 대통령 하야 추진회'는 '불법 당선 박근혜 하야', '박근혜 하야하라'라는 피켓을 참가자들에게 뿌렸다.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800여 명, 주최 측 추산 1000여 명의 시민이 집결했다.

"박근혜가 책임져라" 구호 외쳤지만... 자유발언에선 '퇴진·하야'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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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시국회의 주최 22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불법당선 박근혜 하야"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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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다시하라"는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든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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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시국회의에는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진보적 시민단체 280여 개의 단체가 결합돼 있다. 그동안 시국회의는 박 대통령의 사퇴 혹은 하야를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도 대통령 하야는 외치지 않고 "박근혜가 책임져라", "특검 즉각 수용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무대에 오른 자유 발언자들 대부분은 대통령 하야를 강조했다. 하야 피켓을 든 김미연씨는 "여기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여러분들과 함께했고 겨울에도 촛불 들고 나왔다"며 "그 이유가 뭔가, 대통령 사과 듣자고 나온 게 아니다"고 말해 청중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이어 김씨는 "사과 따위 듣자고 5개월 버텨온 게 아니다"며 "우리나라 종교계가 먼저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같이 따라가야 되지 않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민주당 당원이라고 밝힌 김갑중씨는 "침묵하는 다수는 세상을 움직일 수 없고 소리쳐 외치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며 "추워질수록 집회 참가자들이 적어지지만 그런 심정으로 추위를 버티자, 버티는 자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 김씨는 "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박근혜 하야인데, 그걸 외치지 않아서 민심을 못 얻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소속 조돈문 교수는 특검 수용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국정원, 사이버 사령부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며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이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특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광화문과 서울광장에 대통령 사퇴 요구의 흐름이 물결 칠 수 있다"며 "다시 한번 외친다, 들을 귀 있으면 들어라, 특검 실시하라"고 말했다.

시국회의 측 "하야, 퇴진, 박근혜씨, 박근혜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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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수용"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든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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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시국회의를 대표해 무대에 오른 윤희숙 한국청년연대 대표는 시국회의 입장을 정리했다. 그는 "박근혜가 좋아서, 박근혜가 잘해서 집회에 나온 사람이 있냐"며 "우리의 최종 목표가 무엇일지 고민하는 자리가 바로 촛불집회"라고 말했다.

또 윤 대표는 "발언할 때 '박근혜씨',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등 모든 호칭을 자유롭게 하기로 시국회의에서 결정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해서 존중하고 따르겠다는 의미가 아닌 거 알지 않냐"고 말했다. 이어 "이 자리에서 우리는 지난 부정 선거의 책임이 박근혜에게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며 "마지막으로 초와 피켓을 들자, 그리고 구호 외치자"고 말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시국회의는 다음 달 7일, 서울광장에서 23차 촛불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 대선 1주년을 맞는 다음 달 19일에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1주년 집회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광장을 메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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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바라본 한반도의 오늘 3회

이란 핵, F-35전투기 그리고 집단적자위권
 
미국에서 바라본 한반도의 오늘 3회
 
서지연 기자
기사입력: 2013/12/01 [08:3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재미언론인 김원식 선생님과 함께 하는 화상대담 방송 미국에서 바라본 한반도의 오늘 3회입니다.

본 방송에서는 이란 핵문제 타결 소식을 분석하고 이란 핵문제 타결이 향후 6자회담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지 전망했습니다.



■ 지금 미국은?

-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 청소년들의 묻지마 폭력 'knockout game'
-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 50주기와 끊이지 않은 암살음모설


■ 집중 분석

- 이란 핵문제 타결 소식
- 이란 핵문제 타결은 향후 6자회담에 영향을 줄 것인가?


■ 한반도 브리핑

- 22일 회의 결정사항을 15일 로이터 통신에서 구체적으로 보도?
국방부 차기 전투기사업 록히드 마틴사 F-35 40대 구매 결정
- 데니스 로드맨 방북, 그 속에 포함된 상업적 계산
- 동북아의 불씨,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
- 북중 정상회담 관련 소식


■ 해외동포가 보는 국내 정치

- 대통령 부정선거와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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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청와대 앞에서 새로운 투쟁 선포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11/30 11:26
  • 수정일
    2013/11/30 11:2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진보당, 청와대 앞에서 새로운 투쟁 선포
 
 
 
박경철 백운종 기자
기사입력: 2013/11/30 [09:19] 최종편집: ⓒ 자주민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단식을 중단한 오병윤 원내대표·김선동 의원, 민병렬·최형권 최고위원이 29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정권에 맞서 정당해산 저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새로운 투쟁에 나설 뜻을 선포했다.
 
 
이정희 대표는 “13년 동안 이땅 노동자, 농민, 서민과 함께 울고 웃었던 진보당을 하루아침에 해산돼야할 정당이라고 주장하는 청와대에 우리의 분노를 전한다”며 “24일 동안 이어진 의원단의 삭발 단식농성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선 절박한 심정을 알릴 수 없다는 박근혜 정부의 참혹한 민주파괴 현실을 일깨워줬다. 우리 의원단의 단식투쟁은 마감했지만 새로운 싸움을 이곳 청와대 앞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이 대표는 “민주와 독재는 양립할 수 없다”며 “독재가 기승을 부리면 민주는 피를 흘린다. 민주가 살아나려면 독재를 이기고 일어설 수밖에 없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주화를 위한 싸움이 시작됐음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비록 오늘 우리 의원단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든 몸이지만 분연히 일어선 민중과 함께할 것”이라며 “다가오는 12월7일 청와대를 향한 민중의 분노를 결집시켜 새롭게 싸워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병윤 원내대표는 “정당해산을 청구하며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보당의 강령이 국민주권을 부정한다고 한다. 또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을 추종한다고 한다”며 “10만 당원 주장은 이땅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 뼈 빠지게 일하는 농민의 권리를 위한 정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양심·사상·결사·학문·집회·표현의 자유가 보장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남과 북, 분단 60년을 끝내고 화해와 협력, 통일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이상 뭐가 더 있나.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종북이라고 한다.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 미치고 팔짝뛸 일”이라고 지탄했다.
 
오 원내대표는 “민본(民本)이라 했다. 이조봉건에서 제왕들도, 전제군주도 민을 본으로 여기면서 정치했다”며 “박 대통령은 도대체 뭔가. 진보당도 종북, 민주당도 종북, 카톨릭 사제도 종북. 박근혜 대통령을 따르지 않으면 전부 종북인가”라고 호통쳤다.
 
오 원내대표는 이어 “민주를 억압하고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민생을 파탄시키는 독재정권 박 정권에 맞서 한 치의 흔들림 없고 추호의 용서도 없이 맞서 싸우겠다”며 “국민이 함께 싸워주실 것을 믿는다”고 호소했다.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는 “24일차 되는 단식 투쟁을 멈추려고 하니 만감이 교차한다”며 “국민 여러분, 박 대통령에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부당한 진보당에 대한 해산 청구를 철회하던지 아니면 나의 목숨을 걷어가라고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단식투쟁을 계속하고 싶은 게 제 솔직한 심정”이라며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결사의 마음으로 다시 국민과 함께 더 넓고 더 크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민, 영세상인 포함한 중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개인적 아쉬움을 접고 국민들 곁으로 더 낮고 더 성실하고 더 충실한 자세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진보당 지도부는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8개월만에 4.19 혁명과 5.18 광주민중항쟁, 87년 6월항쟁으로 우리 국민이 피로 일구어온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며 “유신독재 회귀, 매카시즘의 폭거는 진보당에 대한 탄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현역 국회의원 최초로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비판했다.
 
지도부는 “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심판청구 신청을 했지만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기 위한 종북몰이일 뿐”이라며 “박창신 신부는 종교인의 양심으로 현재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종북몰이는 지난 대선의 부정선거진상을 감추기 위한 것이란 강론으로 종북몰이에 경종을 울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종북몰이, 매카시즘 광풍을 중단하고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심판청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지도부는 또 “유신독재의 길을 다시 걸으며 국민들을 탄압할 때 그 결과는 과거처럼 국민의 저항 말고는 다른 것은 없다”고 경고했다.
 
 

 

 
 

 
글= 진보정치 박경철 기자
사진= 진보정치 백운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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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 수컷의 치명적 사랑, 토종보다 외래 암컷

사마귀 수컷의 치명적 사랑, 토종보다 외래 암컷

 
조홍섭 2013. 11. 29
조회수 5751추천수 0
 

뉴질랜드 토종 사마귀 수컷, 안전한 동종보다 치명적 외래종 암컷 선호

외래종 성호르몬이 생태계 교란 사례, 세계 다른 곳에서도 벌어질 가능성

 

murray fea_sn-mantis.jpg » 뉴질랜드 토종 사마귀 수컷(왼쪽)이 잡아먹힐지도 모르고 남아프리카 외래종 암컷에게 짝짓기를 하려고 접근하고 있다. 사진=머레이 피, <바이올로지 레터스>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매력적인 여성을 일컫는 ‘팜 파탈’을 곤충에 적용하면, 곤충계의 ‘팜 파탈’은 사마귀와 거미 가운데 적지않다. 사마귀 암컷은 짝짓기를 마친 뒤 수컷을 맛있게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랑을 나눈 뒤 잡아먹는 습성이 없는 사마귀와 동종포식을 일삼는 사마귀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오랜 세월 고립돼 고유종이 많은 뉴질랜드에선 흥밋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뉴질랜드에는 세계에서 이 나라에만 있는 사마귀가 있는데, 이들은 동종포식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1978년 남아프리카로부터 그런 습성이 있는 사마귀가 유입됐다. 이 외래종은 갈수록 퍼져나갔고 토종 사마귀는 점점 보기 힘들어졌다.
 

Bryce McQuillan_Female_New_Zealand_Mantis_(Orthodera_novaezealandiae)_from_side.jpg » 세계에서 뉴질랜드에만 서식하는 사마귀 암컷. 동종포식을 하지 않는다. 사진=브라이스 맥퀼리언, 위키미디어 코먼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연구자들은 실험실에서 두 종의 사마귀를 기르면서 실험한 결과 토종 사마귀가 사라지는 유력한 이유를
찾아냈다. 바로 ‘팜 파탈’ 탓이었던 것이다.
 

사마귀 암컷은 성호르몬인 페로몬을 공중에 발산해 수컷을 유혹한다. 그런데 다른 종이면서도 페로몬의 화학조성이 비슷한 경우가 있다. 뉴질랜드 사마귀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Tony_640px-Miomantis_caffra_eating_a_New_Zealand_cicada.jpg » 뉴질랜드에 유입된 남아프리카 사마귀. 동종포식을 하며 페로몬이 토종의 것과 비슷하다. 사진=토니,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진은 우선 토종 사마귀 수컷에게 외래종 암컷 사마귀의 페로몬과 그냥 공기를 보내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 실험했다. 수컷 16마리 가운데 12마리가 외래종 암컷의 냄새 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동족 암컷의 페로몬과 외래종 암컷의 페로몬 가운데 선택하도록 했더니, 13마리 가운데 11마리가 치명적인 외래종 암컷의 성호르몬이 풍기는 곳으로 갔다.
 

남아프리카에서 온 사마귀 수컷도 암컷에게 잡아먹히지만 그 비율은 39.1%에 그쳤다. 그러나 뉴질랜드 토종 사마귀 16마리 가운데 11마리(68.8%)가 외래종 암컷의 밥이 됐다. 토종의 사망률이 훨씬 높은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외래종이 먹이사슬뿐 아니라 성호르몬을 통해서도 생태계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음이 확인됐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사실 뉴질랜드 토종 사마귀는 이중의 타격을 입는다. 수컷의 사망률이 높아 토종 암컷의 번식이 지장을 받을뿐더러, 설사 잡아먹히지 않더라도 암컷 사마귀의 페로몬은 공중에 널리 퍼지기 때문에 외래종 암컷 주변에 토종 수컷이 몰려들어 토종 암컷은 짝을 찾는 것 자체가 힘들 수 있다.
 

Oliver Koemmerling_640px-Praying_Mantis_Sexual_Cannibalism_European-37.jpg » 짝짓기를 마친 뒤 성공적인 산란을 위해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 암컷. 사진=올리버 쾨멀링,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마귀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것은 그 영양분을 섭취해 더 충실한 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런 포식성이 강한 암컷일수록 번식률이 높아 자손을 많이 남긴다. 그런 형질이 강화되는 것이다.
 

반대로 수컷은 암컷의 이런 행동을 회피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안타깝게도 뉴질랜드 사마귀 수컷은 잡아먹힌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런 회피행동을 진화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선 사마귀를 잘 먹이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보다 암컷의 식욕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실제 자연에서 토종 사마귀가 외래종 암컷에 잡아먹힐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또 외래종에 의한 성호르몬 교란 현상이 뉴질랜드 이외의 세계 다른 지역 생태계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수컷 사마귀가 치명적 암컷에게 더 끌리는 건 뉴질랜드 종의 사례여서 이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 27일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urray P. Fea, Margaret C. Stanley and Gregory I. Holwell Fatal attraction: sexually cannibalistic invaders attract naive native mantids Biol. Lett. 2013 9, 20130746, published 27 November 201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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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 TV조선은 안 보시나 봐요?

 
 
여당 심의위원 “JTBC 뉴스 공정성 인식 못해”
 
耽讀 | 등록:2013-11-29 17:07:40 | 최종:2013-11-30 09:00:0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 지난 5일 자 JTBC<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 JTBC<뉴스9>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라는) 팩트에 대해서 JTBC는 반론만을 보장해준 것이다, 다시 말해 뉴스를 해설한 사람(김 교수)이 그쪽(해산 반대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균형을 심하게 잃었다. JTBC가 뉴스 공정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아래 방심위) 산하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엄광석 심의위원이 한 말이다. 권혁부 소위원장은 "JTBC는 45분의 뉴스 중 진보당 관련 보도가 18분 12초였고, 이날 뉴스의 핵심은 정부가 정당해산을 청구한 이유인데도 관련 내용은 1분도 채 안 됐다"며 "양적 균형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고 <오마이뉴스>는 보도했다. 권혁부 소위원장과 엄광석 심의위원은 여당 측 추천 위원들이다.

여당 심의위원 "JTBC 뉴스 공정성 인식 못해"

쉽게 말해 JTBC 손석희의 <뉴스9>가 공정성을 잃었다는 말이다. 이들이 문제 삼은 보도는 지난 5일 <김재연 "유신독재로 회귀…'진보적 민주주의' 강령 없다">다. <뉴스9>는 이날 김재연 통합진보당 대변인을 직접 스튜디오에 출연시켜 약 8분 20초 동안 인터뷰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의 해산 심판 청구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로 유신독재, 긴급조치의 부활"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법무부가 통진당이 반민주주의를 추구"했다는 주장에 대해 "국민들이 통진당의 활동에 대해서 판단할 수있는 것이지, 일방적 근거로 국무회의에서 제소할 문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 지난 5일 <TV조선> '시사토크 판' ⓒ TV조선

그럼 <뉴스9>만 공정성을 잃었을까? <TV조선>은 5일 '시사토크 판'에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를 출연시켰다. 조 전 대표는 "통진당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한국 헌정사상 획기적 사건"이라며 법무부위 해산심판 청구를 높이 샀다.

이어 "오늘 11월 5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주인공인 날이다. 헌법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국가기관에 명령해 이뤄지는 일이다. 극우라고 욕을 먹어가면서 경고하고, 파수꾼 역할을 했던 애국자들의 땀 덕분"이라며 "집 안에 항상 문단속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 그 집의 가장들이다. 아버지의 모습에 딸들은 신경도 날카롭고 쓸데없는 행동이라 비판하겠지만, 쓸데없는 짓을 했기 때문에 아들딸들이 안전하게 살고 있는 거다"고 강조했다.

물론 조갑제 전 대표는 정당인이 아니다. 때문에 김재연 대변인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진보당 해산이 정당하다는 것만 강조할 뿐 부당성에 대한 반박은 없었다. 공정성을 잃은 것이다.

<조선> "진보당, 북한노동당 '위장정당'"

보수신문들도 진보당은 해산되어야 할 정당으로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6일 자 <통진당 해산 심판 통해 '헌법 보호 정당' 기준 분명히 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통진당은 이런 북한을 추종하며 대한민국을 무력 폭동으로 쓰러뜨리고 북한식 체제를 만들려 하고 있다"며 "통진당은 '진보 정당'임을 내세워 왔지만 사실은 북한 노동당의 대남 적화(赤化) 전략의 하수인 노릇을 해온 위장(僞裝) 정당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헌법재판소는 이번 통진당 위헌 심판을 통해 어떤 정당이나 정치 세력도 대한민국 헌법 질서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통진당 해산 심판 맡은 헌재의 역사적 책무 무겁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석기 의원의 RO(혁명 조직)는 일당(一黨) 일인(一人) 독재국가인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여기에 가담해 우리나라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짰다"며 "이 정도면 통진당을 헌법의 테두리 안에 놓아둘지, 축출할지를 심판해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본다"고 했다.

"TV조선과 KBS, MBC 뉴스는 예전에 없어졌어야"

JTBC <뉴스9> 징계 논의가 알려지자 전문가들과 누리꾼들은 분노하고 있다. 민변 이재화 변호사(@jhohmylaw)는 "그나마 공정보도를 하는 JTBC가 불공정하여 징계대상이라면 KBS, MBC, 종편은 폐간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DrPyo) 역시 "이 사람들 논리대로라면 TV조선과 KBS, MBC 뉴스는 예전에 없어졌어야 할 듯"이라며 "친정부 편향이 언론자유 말살한 더 큰 문제인 걸 모르나? 도대체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라고 질타했다.

@mett******는 "방송심의소위의 정부여당 추천위원들이 손석희 앵커의 JTBC <뉴스9>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보도를 하면서 정부에 불리한 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법정제재를 추진, 유신2.0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분노했다. @wsp***는 "일부 위원이들이 통진당 해산청구 관련 심층보도와 인터뷰가 편파방송이라며 중징계를 주장한 모양인데 참으로 저열하고 한심하기 짝이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112&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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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박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선언

 

사회개벽교무단 교무 600여명 참여

13.11.30 10:03l최종 업데이트 13.11.30 10:03l
연합뉴스(yonh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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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불교도 "박근혜 대통령 사퇴"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 교무들이 29일 오후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 앞에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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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신부들의 시국미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원불교가 지난 대선의 국가기관 개입 진상 규명과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 소속 교무 30여명은 29일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교무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지난 대선에서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일련의 사건은 우리나라가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법질서를 훼손시킨 엄청난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거짓이 판을 치고 진리와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종교인의 양심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기에 다시 한 번 우리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권에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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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불교도 "박근혜 대통령 사퇴"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 교무들이 29일 오후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 앞에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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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들은 "악은 숨겨둘수록 그 뿌리가 깊어진다"는 소태산 대종사의 발언을 인용하며 특별검사제 도입과 관련자 전원의 사법처리를 요구했다.

이들은 아울러 ▲국가기관 대선 개입의 철저한 조사와 진실 규명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종교인에 대한 폄훼 사과 ▲박 대통령 사퇴를 촉구했다.

사회개벽교무단에는 원불교 전체 교무 1천600여명 중 6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교무 200여명은 기자회견 직후 비공개로 시국토론회를 열었으며 앞으로 다른 종교와 연대를 추진할 방침이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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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경제대국 VS 경제성장률 0%, 한국의 선택은?

[대담] <10년 후 통일> 펴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1-29 오전 11:37:30

 

 

2013년 한 해를 관통하는 단어는 '종북'이었다. 지난 대선 때부터 2013년이 저무는 현재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위기의 순간마다 종북 카드를 꺼내 들며 물타기를 시도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정권 안보에 기여했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세습이 초래한 혐북 정서 역시 종북을 우리 사회에 확산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밑바탕이 됐다.

반북정서와 종북몰이는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통일 담론조차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남북 화해와 관계 개선을 바라는 것이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지탄받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통일이 우리의 밥줄이라며 사실상의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최근 <10년 후 통일>이라는 책을 통해 앞으로 10년 이내에 사실상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다.

<프레시안>은 통일을 이념이나 정치적 영역이 아닌 경제적 영역에서 접근한 정동영 전 장관과 만나 정 전 장관이 생각하는 10년 후 한반도의 미래상을 들어봤다. 정 전 장관은 10년 내에 남북이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뤄 사실상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며, 통일로 가는 두 바퀴로 개성공단과 2005년 6자회담의 결실인 9.19 공동성명을 꼽았다.

정 전 장관은 2040년 한국경제가 독일과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골드만삭스, 반면 2031년이 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OECD 등 두 개의 상반된 경제 전망을 제시하며, "전자는 한국 경제가 평화적, 점진적으로 북한 경제와 결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고 후자는 남북 경협 없이 남한이 단독으로 경제를 운용하게 되는 경우를 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정 전 장관은 골드만삭스가 예측한 장밋빛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북 경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개성공단이 바로 한국형 통일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을 확장·발전시키고 이와 비슷한 남북 경제협력을 추구하면 사실상의 통일이 도래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도 한층 더 나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정치적·군사적으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정 전 장관은 9.19공동성명에 그 해답이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북핵 문제 20년 역사상 언제 해결 모델을 만들어봤나. 9.19밖에 없다"면서 이 합의를 기반으로 북핵과 한반도 안보 상황을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지난 25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한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책 제목이 <10년 후 통일>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10년 후에는 통일할 수 있다, 통일하자"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여기서 말하는 통일이 남북 단일체제로의 통일은 아닌 것 같다. 어떤 통일을 뜻하는 것인가?

정동영 : '사실상의 통일' 이라는 의미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상의 통일이 되어야 법적·정치적 통일이 그다음에 오는 것이다. 사실상의 통일 없이 완전한 통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현재 중국 본토와 대만과의 관계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자는 것이다. 자유롭게 왕래하고 투자하면서 사실상 경제 공동체 단계까지 가자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중국-대만과는 달리 정전체제를 바꿔야 하는 군사적 문제도 병행되어야 하지만 이는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인프라를 깔았다고 본다. 그래서 10년 내에 남북한은 충분히 중국 본토와 대만의 상태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사실상의 통일을 말씀하셨는데, 사실 10년 전에는 남북관계가 중국-대만보다 훨씬 더 가깝지 않았나? 통일 단계에서도 훨씬 앞서 있었고.

정동영 : 그렇다. 당시에는 대만이 미국에서 무기 사들여오는 것 때문에 양안이 계속 긴장 상태였다. 역사적으로 봐도 국공내전도 있었고, 50년대 후반에는 중국이 진먼다오(금문도)에다 하루에 3만 발의 포탄을 쏘기도 하지 않았나. 이후 20년간 서로 포격이 이어졌고. 중국과 대만 사이에도 전쟁의 증오와 상처가 있다. 여러모로 우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0년 전과 달리 지금은 남북보다 중국-대만이 훨씬 더 가까워졌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뤄진 눈부신 결과다.

대만과 중국 간 1주일에 평균 800편의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대만에서 연간 500만 명, 중국에서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상대 지역을 방문한다. 전화, 편지, 송금, 투자, 여행, 관광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게다가 대만 인구의 10분의 1인 200만 명이 중국 영주권을 받았다. 이 정도면 거의 서로 간에 고통이 없는 사실상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의 이러한 변화는 마잉주(馬英九) 총통 체제하에 있었던 지난 5년 동안 일어났다. 이 변화는 세 가지의 원칙 아래에서 진행됐는데 대만과 중국 간 통일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무력사용 얘기하지 말자, 정치와 경제 분리하자는 것이었다.

한중관계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92년에만 해도 우리 여권으로 중국도 못 들어갔는데 그런 한중관계가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봤을 때 적국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위의 두 사례를 보면서 남북은 왜 그렇게 가까워지지 못할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북이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향해 가면 그 안에서 역동성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군사적인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통일로 가기 어렵지만, 사실상의 통일을 향해 가면 평화체제 문제, 핵문제 등을 병행해서 풀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북한에 대해 여전히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이들에게 남북통일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인 것 같다.

정동영 :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담론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가 고단하고, 젊은 사람들은 앞길이 막막하다고 하지 않나? 이런 상황 속에서 통일 문제를 당위적인 측면이나 정치적 설득으로 접근하면 다 고개를 돌리고 말 것이다.

또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관점은 실용적이기도 하고 가장 현실주의적인 접근법이다. 이념적으로 종북, 친북, 반북이니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밥이 있고 일자리가 있고 꿈이 있다"고 접근하면 외면했던 고개가 좀 돌려지지 않을까? 일단 돌려세우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설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책에서 10년 후 통일로 가는 두 바퀴로 하나는 개성공단, 하나는 9.19 공동성명을 언급했다. 우선 개성공단을 살펴보면 올해 개성공단은 사실상 죽다가 살아났다. 개성공단이 한국형 통일모델이라고 했는데 왜 중요한 것인가?

정동영 : 지난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되면서 오히려 개성공단의 값어치가 도드라진 것 같다. 개성공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가 된 것이다. 사실 개성공단의 존재 자체를 대다수 국민이 잊었거나 모르고 있었는데 공단이 닫히면서 뉴스에도 등장하고, 그러면서 국민들이 개성공단의 실체를 알게 됐다. 또 5달 동안이나 닫혀있었는데 죽지 않고 살았다. 역설적으로 힘을 받은 측면이 있다.

개성공단이 왜 통일 모델인가 하면 현존하는 통일 모델을 우리가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모델로 독일과 베트남 모델이 있는데, 둘 다 한반도 상황에서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이다. 독일은 동독 의회가 흡수 합병을 결의했다. 북측 인민대표자회의가 남측의 흡수 합병을 결의할 수 있을까? 베트남 모델은 무력을 사용한 것이다. 이 모델은 선택지에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 개성공단 전경 ⓒ개성공동취재단


그럼 대체 한국이 지향해야 할 통일 모델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우리가 분단 68년 속에서 발견하고 실천했던 모델 중에 개성공단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2006년 독일 통일의 설계사로 알려진 에곤 바르 박사를 만나서 개성공단에 대해 설명했을 때 "이것이 한국형 통일 모델"이라고 하더라.

바르 박사는 개성공단에 대해 대단한 상상력이라면서, 독일이 동방 정책을 설계할 때 동독 지역에 서독 공단을 만들었더라면 통일 비용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고, 이후 동·서독 통합 과정도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통일로 가려면 개성공단을 계속 확대하라고 조언하더라. 개성공단을 확장하면 중간에 경제 통일이 올 것이고 결국에는 한반도의 통일로 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통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첫 번째 걱정거리가 통일 비용이다.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제협력을 확대하면 통일비용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또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협은 남쪽의 좋은 일자리를 늘려줄 수 있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는 데에 핵심은 중소기업의 이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역대 정부 중에 중소기업 살리겠다고 말하지 않은 정권이 없었다. 하지만 잘 된 경우는 별로 없다. 승자독식의 경제 체제 속에서 중소기업 출구를 찾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개성에 갔더니 남쪽에서 힘들어하던 기업들이 팔팔하게 살아나더라. 중소기업이 살 수 있는 모델이 나온 것이다. 작게는 개성공단이지만 크게 보면 남쪽의 자본과 북쪽의 노동력·토지·광물이 결합하니까 성공한다는 실증 모델인 셈이다.

이게 확산되면 남쪽에서 북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30% 사람들의 마음도 녹일 수 있다고 본다. 나한테 이익이 되는데, 내 자식의 취직자리가 생기는데 왜 반대하겠나. 이렇게 되면 우선 남남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남북 통합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내부적 동의가 확산될 것이고, 그럼 훨씬 힘있게 통일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들도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삼성전자 이후에는 무엇이냐'를 고민하고 있지 않나? 전자, 반도체, 조선, 철강, 화학 이런 부분들에서 중국이 추격해오는데 거기서 한발 짝 펄쩍 뛰어서 달아날 수 있는 기반이 남북통합경제라는 것을 개성공단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야기하는 창조경제도 북방 정책, 남북경협에 그 해답이 있다고 본다. 서울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와 있는 토마스 사전트가 창조경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헛소리 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그 대안으로 "북방경제해라, 개성공단 정상화해라, 여기서부터 시작해라"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보기에도 한국의 창조경제는 그 길에 있다고 본 것이다. 외국 학자들의 견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안에서 보나 밖에서 보나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데 개성공단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있지 않나? 이번 잠정적 폐쇄 상황처럼 투자 리스크가 있으니 실적도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개성이 북쪽 지역 이다보니 신변에 대해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정동영 : 일단 개성공단에 들어온 기업은 거의 다 흑자를 보고 있다. 물론 3년 동안은 감가상각한다. 회계법상 투자비를 3년 동안 감가상각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장부상은 적자로 되어 있지만, 지금 대부분 기업들이 3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123개 기업들이 다 흑자다. 판로가 있는 기업은 만드는 대로 팔리는 셈이다. 제조단가에 경쟁력이 있지 않나.

공단 입주 기업들이 적게는 1000~2000 평, 많게는 4000 평 정도를 쓰고 있다. 토지 비용이 평당 14만9000원에 불과해서 공장 부지를 넓게 쓰는 것이다. 남쪽 땅값에 비교해보면 거의 제로에 가깝게 수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건비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양질의 노동력을 쓰는 데 한 명당 13만 원 수준이다. 남쪽에서 1명을 고용하는 비용으로 북쪽에서 15~20명 정도를 고용할 수 있는 셈이다. 사실 중소기업의 원가비용 핵심이 땅값, 임대료다. 인건비도 있고. 이런 부분 때문에 동남아나 중국으로 가는 건데 개성이 동남아나 중국에 비해 여러 이점이 있다.

개성공단이 존폐의 기로에 놓였던 지난 4월, 박근혜 정부가 우리 국민의 신변 위협을 이야기했는데 이것도 터무니없는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개성공단에서 단 한 번도 신변 위협은 없었다. 정부의 철수 조치에도 왜 끝까지 기업인들이 나오지 않으려 했겠나?

개성에 물자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북한이 통제하면서 개성에 주재하고 있는 인원들이 식량난에 처해있다는 것도 와전된 이야기다. 특히 우리 국민이 쑥을 뜯어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창고에 5만3000명이 먹을 점심, 야간 간식을 위한 식량과 부식이 가득했는데 식량이 부족했을 리가 없다. 쑥을 캤다는 이야기는 먹을 것이 없어서 쑥으로 연명했다기 보다는 개성공단 근처에 해마다 3, 4월이면 쑥이 많이 나오고, 공장을 돌릴 수 없어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주재원들이 쑥을 뜯은 것이다.

개성공단이 전체가 다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지금 돌아가고 있는 공단 면적은 개성공단 전체 면적대비 64분의 1이다. 물론 공단은 2천만 평 중에 8백만 평이 공단이다. 공장 사이즈만 보면 25분의 1 정도가 돌아가는 것이다. 3단계까지 계획대로 완성되면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생산가액의 비중이, 덩치가 북한경제 GDP를 몇 배 넘는다.

한국은행 통계로는 북한 GDP를 300억 불로 보는데 맹점이 좀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1200불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국민총생산을 100억 불 정도로 추산한다. 개성공단이 원래 계획대로 3단계까지 완공되면 연간 생산품의 가치가 500억 불 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경제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인 것이다.

프레시안 : 향후 한국 경제에 대해 골드만삭스와 OECD가 엇갈리는 전망을 내놨다. 책에서 이런 대조적인 전망은 남북 경협이 활성화되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것인가?
 

▲ 정동영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동영 :

세계적 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는 2040년 한국경제가 독일과 일본을 추월하고 205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측 보고서를 발표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1년이 되면 0%대로 떨어진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성장 엔진이 꺼진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경제가 평화적, 점진적으로 북한 경제와 결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협이 계속 확장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전망한 것이다. 반면 OECD의 전망은 남북 경협 없이 남한이 단독으로 경제를 운용하게 되는 경우를 산정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골드만삭스는 우리 경제가 독일과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핵심은 북한의 노동력을 우리 경제에 이식하라는 것이었다.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 광물 자원이 투입되면 남한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예측이다. 2030년대에는 1인당 국민 소득이 8만 6000불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남한만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남북 간 투자, 송금, 왕래가 자유로운 사실상의 통일 상태로 가게 되면 20년 후에는 북한이 남한 경제의 절반 수준까지 따라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통일 비용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OECD는 2031년 잠재성장률을 0%로 전망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처럼 분단경제체제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우리 경제에 희망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 중에 청년실업 문제가 있는데,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 성장은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OECD가 예측한 2031년의 잠재성장률 0%가 현실화되면 젊은이들은 어떻게 되겠나? 이것은 국가적 재난이다.

이미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대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성장률 끌어올리려고 4대강도 파헤치고 안간힘을 썼지만 5년 평균 2.9%에 불과했다. 이것이 지속되면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나올 때는 국가 경제의 성장이 멈추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자명하지 않나?

2007년 10.4 정상선언이 골드만삭스가 예측한 모델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당시 정상회담을 찬찬히 살펴보면 사업 프로젝트 합의나 다름없다. 총 48개 중 24개 항이 경제 사업 합의다. 문산에서 개성, 개성에서 신의주까지 철도 연결하고 고속도로 놓고 그 철로와 도로로 컨테이너 실어 나르고.

예를 들어 북한 안변에 조선공업단지를 만드는 계획이 있는데 이 계획이 실현됐다면 지금쯤 중국의 추격에서 멀리 달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안변에 조선 단지를 건설했다면 안변, 울산, 거제로 잇는 조선 클러스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조선산업의 일관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변에서 화물선, 여객선, 컨테이너 선박 같은 저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고 LNG선이나 해양 플랜트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은 남쪽에서 지으면 서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조선 산업 1등 자리를 100년은 더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이미 수주 총액으로는 중국이 우리를 넘어선 현실에서는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다. 물론 북한 경제를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평화·경제 공동체를 이루기도 쉬웠을 것이라는 점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꼭 조선 산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다른 제조업들도 북한과 협력을 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국내 생산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 만드는 것이 300만대 이상이고 국내 생산이 300만대 이하로 내려갔다. 자동차 생산 공장을 남포든 원산이든 함흥이든 만들어서 생산 조립라인을 북쪽에 놓고 생산하면 플랜트 자제가 해외로 옮겨지는 것과는 다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과 협력 없이 자력으로 세계 5위까지 갔는데, 만약 이런 효과를 업을 수 있다면 세계 1위도 노려볼만하지 않겠나? 이런 전망들을 살펴보면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이야기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나 통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는 이 부분밖에 없는 것 같다.

MB정부 출범 이후 위기의 남북 경협, 5.24조치 해제로 돌파구 마련해야


프레시안 :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교류가 늘어가다 보면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러다 보면 경제교류가 더 늘어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전망인데, 문제는 MB정부 이후 사실상 남북 경협이 멈춰버렸다는 데 있다. 5.24조치 이후에는 거의 단절되지 않았나. 또 북핵 문제도 있고. 이러한 정황을 살펴봤을 때 북핵 문제 해결이나 5.24조치 해제 없이 개성공단 확대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 <10년 후 통일> (정동영·지승호 지음, 살림터 펴냄) ⓒ살림터

정동영 : 5.24조치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더 이상 효력이 없다. 북한은 5.24조치에다 유엔 제재 4개를 중첩해서 받고 있다. 그런데 그걸로 인해 북한이 좀 괴로울 수는 있어도 붕괴되거나 와해되지는 않는다. 북의 경제가 폐쇄·고립 경제이기 때문에 체제붕괴로는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실효성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조치인데, 박근혜 정부가 왜 여전히 매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 이후 나진-하산 철도 연결 사업과 관련해 러시아의 일부 지분을 코레일과 포스코, 현대상선과 같은 대기업이 매입하겠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건 5.24조치와 충돌되는 것이다. 이 철도 연결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곧 중국 동북부지역의 무연탄, 북한의 철광석 등을 나진항에서 포항으로 실어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나진-포항 항로를 이용하는 것인데, 5.24조치 이후 나진항을 거친 어떤 화물도 국내 항에 선적을 못하도록 막았다. 이런 부분이 5.24조치와 모순되는 것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대기업은 투자하면서 5.24조치를 현 상태로 유지하면 왜 대기업은 되고 중소기업은 안 되냐는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안 그래도 남포 공단을 비롯해 금강산 관광 관련 서비스업 종사자들, 물류 업체 등등 1000개가 넘는 기업들이 5.24조치 때문에 묶여있는 상황이다.

안동 대마 방직이라고 삼베 만드는 회사가 있다. 북에서 삼베 밭, 즉 토지를 대고 인력을 제공하고 남쪽에서 기계와 자본을 들여서 2008년 말에 북한에 공장이 완공됐다. 그런데 공장을 돌리려던 그 순간 북한에 못 가게 해서 결국 도산했다. 이게 이명박 정부가 말한 친기업 정책인가? 명백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됐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이를 과감하게 해제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데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남북관계가 더 나빠졌고 올 초에는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엄습했다. 이러면서 국민들 사이에 반북 정서가 많이 퍼진 것이 사실이다. 남북 간 군사적 신뢰나 화해 없이 경제협력을 풀어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동영 : 큰 그림부터 그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북핵 위기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1993년 1차 핵 위기는 북한이 5메가와트 영변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 양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했는데 그 신고한 양과 IAEA가 추정한 양의 차이에서 시작됐다. 몇 그램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IAEA가 특별 사찰을 해야겠다고 나서면서 핵 문제가 폭발한 것이다.

이후 20년이 지난 2013년, 결국 북한의 3차 핵실험까지 이어졌다. 20년 전에 비하면 북핵 위기가 몇 배 더 커진 것이다. 20년 전에는 투발수단도 없었고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는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것들이 갖춰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또 20년 전 북한의 핵 보유 의지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0년 사이에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좀 더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6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우리는 왜 한 발짝도 못 움직였을까? 일단 외부적인 문제에서 보면 지난 60년 동안 미국의 군사주의가 한반도에 어떻게 투영됐는가를 봐야 한다. 핵 위기 20년 동안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군사주의가 한반도에 투영됐는데 이것이 외곽에 있는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에서는 분단을 이용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이 있지 않았나. 이런 사건이 비단 지난해에만 나왔던 것은 아니다. 선거 때마다 매번 있지 않았나. 분단에 기생해서 정권을 유지하고 창출해 온 세력의 반(反)역사성도 주요 원인이다.


프레시안 : 그 부분과 관련해서 1992년 이동복의 훈령 조작사건도 있다.

정동영 : 결정적인 사건이다. 나중에 통일 이후에 단죄되어야 할 아주 주요한 사건 중에 하나다. 당시 사건을 좀 살펴보면, 1992년 9월 평양에서 남북총리 회담이 열렸다. 당시 남측 대표단은 북이 요구하는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측에 송환하는 조건으로 이산가족 상봉과 판문점 면회소 설치 운영을 보장받으려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이 두 가지 외에 동진호 납북 선원 송환이라는 조건을 북이 들어주지 않으면 협상을 깨라는 전문이 날아왔다. 대표단은 이를 바탕으로 협상을 진행했는데 결국 이 협상을 불발되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전문은 조작된 것이었다. 이동복 당시 안기부장 특보가 주축이 되어 훈령을 조작한 것이다. 남북관계를 파탄시켜 안보 불안과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 정권 창출에 유리하다는 생각에서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6자회담과 북핵문제 해결하려면 남북관계 획기적인 개선 있어야


프레시안 : 통일로 가는 또 다른 바퀴인 9.19공동성명의 의미와 현재 상황을 짚어보자. 얼마 전까지 6자회담 재개 움직임이 굉장히 활발했다. 미·중 간 협의도 진행했는데 우리 정부는 미국과 입장을 같이 하면서 대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이었다.

정동영 : 이 정부는 스스로를 6자회담의 '객(客)'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스로를 6개국 중에 하나의 참가국인 6분의 1로 생각하는 것이다. 6분의 1이 아니라 6자회담을 우리의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서는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 등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나. 북핵 문제는 우리 문제니까. 나름대로의 해법을 내고 중재를 하고 조정하고 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자회담이라는 틀이 길게 보면 동북아의 평화 안보를 논의할 수 있는 집단안보체제 구상의 틀인데. 여기서 북핵문제에 대해 주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미래의 발언권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5년 만에 다시 6자 이야기를 하는 근거는 9.19 공동성명 때문이다. 북핵문제는 북미문제이면서 동시에 남북문제다. 북핵문제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으려면 남북 간 획기적인 관계개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상회담을 의미한다. 6자회담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남북 정상회담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하지만 2005년 9.19공동성명이 나왔을 때는 북한의 핵실험이 없었다. 지금은 3차례의 핵실험이 있었고. 상황이 다른 것 같은데?

정동영 : 그러니까 정상회담이 더 필요하고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실무 외교 라인에서 접근할 수가 없는 상황 아닌가. 미국이나 중국은 북핵을 안고 갈 생각도 한다. 자신들의 국익에 그리 나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보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안고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우리한테는 근본문제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 20년 역사상 언제 해결 모델을 만들어봤나. 9.19밖에 없다. 비록 미국 내 강경파의 방해 공작 때문에 뒤집히기는 했어도 9.19 합의는 앞으로 적어도 10년 동안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표준 문서가 될 것이다. 9.19의 핵심은 세 가지다. 북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과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수교하며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 합의를 만드는 데 한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 입장에서는 2개의 합의가 중요하다. 하나가 2000년 10월 13일에 있었던 조미공동코뮤니케. 당시 미·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국면이 도래한 이유는 4개월 전 6.15 정상회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담이 조미공동코뮤니케를 추동한 것이다. 또 하나는 9.19 공동성명이다. 이는 3개월 전인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과 남쪽 특사의 회동으로 제2의 6.15 국면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9.19 성명을 추동했다고 북한이 평가했다.

그럼 그다음 국면, 즉 북한의 세 차례 핵실험 이후 다시 6자회담을 통한 대화와 협상이라는 국면으로 가려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전환이 있어야 가능하다. 남북이 냉랭한 상태에서 6자가 돌아가 봐야 헛바퀴 도는 것이다.

획기적인 개선은 정상회담과 관련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향해서 가야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은 모든 정책 결정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북의 최고 지도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이다.

2010년 9월 19일 자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보면 "평양에서 북남 수뇌 회담이 열린 지 4개월 후 워싱턴에서 조미 공동코뮤니케가 발표되었다"며 자신들의 최고 지도자와의 소통과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를 푸는 열쇠였다고 강조했다. 또 "2005년 6월 남측의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총비서와 만나 '제2의 6.15'라고 하는 새 국면이 열렸으며,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것은 그 3개월 후"라며 최고 지도자와의 소통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국면을 크게 전환시키려면 김정은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프레시안 :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한가? 이번에 이란 핵 협상을 보니 9월에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됐는데 미국과 이란은 이미 3월부터 5번을 만났다고 하던데, 북핵 문제에서 미국이 그렇게 나올 수 있을까?
 

▲ 정동영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동영 : 어렵다고 본다. 미국의 여론과 남한 정부의 입장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일단 미국 내에서 현재 북한 정권이 김정일 위원장 때보다 더 희화화되어 있다. 오바마 입장에서 북한과 이란을 둘 다 방치하면 노벨 평화상 반납하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인데, 북한 문제는 화급성도 떨어지고 여론도 안 좋다.

또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 정책의 핵심은 중국이다. 괌, 오키나와, 한반도로 이어지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축선을 구축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의 긴장 지속이 나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동맹국인 남한 정부도 적극적이지 않다. 여기서 오바마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이유가 뭐가 있나.


프레시안 : 결국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북핵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말인데?

정동영 : 박 대통령에게 달려있다. 남북관계를 이런 식으로 관리해서는 6자회담에서 무슨 발언권이 있겠나. "핵 포기해라" 라는 원론적인 이야기 말고 역할을 할 수 있는게 없지 않나. 또 한국 정부의 입장이 뻔한데 누가 한국의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겠나. 지금 상태로는 6자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아무 영향력이 없는 것이다.

2005년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서 5시간 동안의 담판을 통해 6자회담 복귀와 핵 포기를 설득했다. 대신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 공급을 거부할 경우 남측이 전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느낀 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우리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6자회담 할 때 일본이 우리한테 회담에서 납치문제도 이야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찾아왔다. 미국도 진짜 북쪽의 의향이 무엇이며 남한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알아보려 우리를 찾아왔다. 중국도 우리와 대등한 위치에서 이야기했고.

북핵문제, 한반도 문제, 분단 문제가 누구의 문제인가. 이게 미국의 문제인가 중국의 문제인가? 내 문제다. 우리의 문제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게 빠져있다. 미국이 결정하면 우리는 따라간다는 식은 냉전적인 관행이다. 오랫동안 여기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문제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앞날을 개척하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없어지면서 자기들끼리 집단 사고만 하고 있다. 특히나 현 정부는 국정원, 국방부, 청와대 외교안보를 모두 군인이 장악한 상태에서 사고만 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외교를 잘해야 살아남는 민족이라는 그 말이 들어맞는 시기다. 동아시아 정세가 지각변동하고 있지 않나. 여기서 우리가 발언권과 영향력을 가지려면 남북관계 해소 없이 힘들다. 남북이 개별로 어떻게 중국과 같은 강대국을 상대할 수 있겠나.


프레시안 : 2000년 6.15와 조미코뮤니케, 그리고 2005년 6.17 특사와 9.19 공동성명에서 보듯이 남북관계의 획기적 관계 개선이 없는 한 6자회담과 북핵 해결은 어렵다는 전망인 것 같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을 위해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논리인데, 지금이라도 특사 등의 방식을 통해 우리 쪽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면 성사될 가능성이 있을까?

정동영 : 길은 여러 가지 있다.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 재개하자고 생각하면 이산가족 상봉 금방 된다. 또 개성공단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도 풀릴 수 있다. 당장 불거져 있는 남북 간 현안들을 풀면서 접근하면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지금 상태에서 특사는 좀 공허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남북 관계 개선하는 것은 진보보다 보수 정부가 훨씬 쉽다. 국내 반발이 적기 때문이다. 1970년대 보수 반공주의자인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 수교한다고 할 때 누가 뭐라고 했나. 그래서 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박 대통령에게 한국의 닉슨이 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닉슨이 중국을 열었듯이 박 대통령도 북한을 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박 대통령이 아주 좋은 조건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철학이다. 박 대통령이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할 수도 있다는 하나의 근거는 그래도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북쪽의 최고 지도자와 소통한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다. 이러한 기억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동아시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지금, 박근혜 정부가 실패하면 민족사가 실패하는 것이다.

남북 화해를 원하는 세력, 제대로 된 비전은 보여줬나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실패하면 민족사가 실패한다는 말이 인상 깊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만의 책임으로 현 상황을 돌리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국내에서 남북화해를 원하는 세력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물어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안철수 등 야권 대선 후보가 남북관계에 대해 보다 더 강하게 나갈 수는 없었는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두 후보는 남북관계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했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국민적 정서가 강해진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남북관계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문제 및 민생과 직결된 문제이고 사활적인 문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국민 정서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지 않았을까?


정동영 : 안보가 보수로 가서는 경제가 진보로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한의 정치·경제·사회의 제반체제를 규율하는 것은 분단이다. 분단 구조 속에서 분단 기득권 세력이 승자독식 경제체제 속에서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 양극화 구조고 사회적 불평등이다. 그래서 제가 제시하는 것이 남북화해가, 통일이 밥 먹여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 정동영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남북대결을 화해로 돌려야만 종북 공세가 풀린다. 말하자면 1992년 남쪽의 보수 세력이 기본합의서를 찢은 이유는 남북 긴장과 안보 불안이 조성돼야만 보수 후보가 유리하다는 뜻이다. 작년 대선에 흠결과 하자가 있는 당선자가 그걸 덮기 위해 선택한 것이 종북 공세이고 공안 통치인데, 이것이 힘을 가지려면 남북 긴장과 안보 불안이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또 하나 아쉬운 것이 2007년 정상회담이 너무 늦었다는 의견도 있다. 2005년 9.19공동성명이 나온 여세를 몰아서 그 해 안에 정상회담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던데, 2007년으로 미뤄진 이유는 무엇인가?

정동영 : 아쉽지만 2003년 당시 진행됐던 대북송금 특검이 결정적이었다. 1차 남북 정상 회담을 특별검사를 통해 수사한 것인데 그것이 정치적 패착이었다고 본다. 2007년 10월 4일이 아니라 2003년 10월 4일에 정상회담을 했다면 한반도의 역사가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대북 송금 특검의 여파로 2003, 2004년 남북관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다.

물론 북한의 입장 때문에 늦어진 측면도 있다. 역지사지해보면 북은 남쪽도 의심하고 미국도 의심한다. 그런데 북이 통 큰 조치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남에 대한 의심은 풀었다. 그런데 미국이, 부시 정권이 보통 정권이 아니지 않나. 이라크를 공격한 네오콘 정권이기 때문에 북은 '남쪽 말을 믿고 그냥 쭉 가도 되나' 하는 의심이 있었다. 그래서 북한은 9.19를 보고 정상회담을 하자는 것이었다.

제가 2005년 6월 17일 평양에 특사로 가서 북에 이야기한 것은 9.19로 가는 과정 속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6자회담 합의 이전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견해 차이가 좀 있었다. 특사로 갔을 당시에는 김정일 위원장한테 3개월 내에 하자고 했다. 그리고 6자회담 돌리자고도 요구했다. 그래서 일단 6자회담 돌아갔다. 우리는 9월 중순 전에 해야 그 추동력이 핵문제 타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이 꾸물꾸물하다가 시기를 놓친 것이다. 정상회담이 그 전에 이뤄졌다면 9.19가 네오콘에 의해서 그렇게 쉽게 파기되지 못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당시에는 김정일 위원장을 두고 '광폭정치다. 통 큰 정치다'라는 평가가 주류였는데, 2007년 정상회담을 분석한 유시민 전 장관은 굉장히 소심한 사람인 것 같다는 평가를 하더라.

정동영 : 그 부분도 맞다. 두 번의 실기가 안타깝다. 하나는 방금 설명드린 2005년 남북 정상회담이고 또 하나는 2000년에 있었던 조미공동코뮤니케다. 이것이 한두 달 만 빨랐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2000년 5월에 김정일-장쩌민(江澤民)의 북경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리고 6월에 남북 정상회담 있었고. 7월에 북-러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후 8월이나 9월에 조명록 차수가 미국에 건너가서 북-미 대화와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면 한반도 냉전 해체의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북한이 좀 꾸물거렸다. 이런 것들을 보면 김 위원장이 너무 신중했다고도 볼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소심했다고도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민주당이 남북관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좀 수세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치라는 것이 국민 여론을 타고 가는 측면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돌파하겠다는 추진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민주당 지도부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안된다면 야당에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동영 : 해보니까 되더라는 확신은 있다. 박 대통령이 2005년 미국에 가서 북핵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더라. "북핵 문제는 밥상론으로 해결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음식 먹을 때 스프, 메인요리, 후식 등이 단계적으로 나오지만 한국은 밥상에 밥, 국, 찌개, 반찬 등을 한꺼번에 올려놓고 다 먹는다. 북핵 문제도 한국인들에게는 한 상에 해법을 모두 올려놓고 포괄적으로 타결하는 방법이 익숙하다. 북핵 문제를 그렇게 해결한다면 북한도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것은 결국 북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포괄적 해법의 대표적인 것이 9.19 공동성명 합의다. 밥상론은 결국 뒤집어보면 민주정부의 북핵 문제 해법과 궤도가 같은 것이다.

민주당은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에 어떤 면에서는 발목이 잡힌 셈이다. 남북문제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어진 점도 있다. 또 자신감도 좀 모자란 것 같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평화 잘 관리했다, 북핵문제도 해결하려고 주도력을 발휘했다는 유산을 갖고 자신감 있게 대안도 더 제시하고, 특히 종북 공세에 대해 맞설 것은 맞서고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과감함이 없는 것 같다.

프레시안 : 현 집권세력이 지난 대선부터 지금까지 정국을 종북몰이로 끌어온 것인데, 그럼 박근혜 정부 내에서 남북관계가 풀기는 힘들다고 봐야 하나?

정동영 : 지방선거까지는 힘들다고 본다. 지방선거까지는 이석기 의원 재판,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청구 등등을 이용하면서 계속 종북, 공안 몰이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박 대통령도 업적에 대한 욕심이 있지 않겠나? 일단 경제민주화는 포기했고. 남은 것은 대외정책뿐이다. 외교·안보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는데 그것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이 국면을 타개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5년이 북핵 문제를 최고로 악화시켰고 남북관계를 증오시대로 되돌린 시간이었다면, 이를 풀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시점은 지방선거 이후라고 본다.

 
 
 

 

/이재호 기자(정리)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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