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은 한국 언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공영방송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급기야 KBS 노조는 길환영 사장 퇴진을 주장했고, 이사들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어 사장 해임 제청안을 7:4로 가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KBS 이사회의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을 받아들여 길 사장을 정식으로 해임했다.
기자가 '기레기'를 넘어 흡혈귀 취급받는 현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이상호 <GO발뉴스> 기자를 지난 8일 이한열기념관에서 만나 의견을 들었다.
길환영 KBS 사장 해임에 대해 이 기자는 "더 큰 싸움을 위한 작은 성취"라며 "곧 이어질 사장선임과 이에 대한 투쟁이라는 두 번째 싸움을 위한 최소한의 동력을 확보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 기자는 최근 호평을 받는 JTBC 뉴스보도에 대해 "상업주의 언론은 자유로운 이점도 있으나, 시장과 권력의 이해가 조율된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간교하게 시민사회의 이해를 짓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손석희 사장에 대해서도 "JTBC는 손 사장 한 명 쫓아내면 이내 '삼성방송'으로 회귀할 게 명백하다"며 "그러나 단기필마로 JTBC에 들어가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는 손 사장의 성취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언론계가 충분한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상호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길환영 사장이 해임됐는데요.
"더 큰 싸움을 위한 작은 성취라고 봅니다. 모처럼 손을 잡고 싸운 KBS 양대 노조는 향후 닥칠 두 번째 싸움을 치르기 위한 최소한의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두 번째 싸움이란 곧 이어질 사장 선임과 그 결과에 대한 투쟁을 말합니다. 박근혜 정권은 일방통행식 시스템을 바꾸지 않을 게 명백합니다. '국가개조'라는 명분으로 수구적 철권통치를 강화할 겁니다. 공영방송 KBS 사장을 포기할 이유가 만무하지요. 공정방송을 위한 적임자보다는 정권의 '위기'를 돌파해 낼 안정감 있는 인사를 선임할 겁니다."
- KBS가 파업을 시작할 땐 MBC 노조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됐지만, 결과는 달랐어요
"세월호 참사 후 일명 '기레기' 언론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어요. 박 정권도 이런 비판 여론을 무시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향후 세월호 국정조사 대상에 KBS 길환영 사장이 예정돼 있는데, 그걸 최대한 차단하고 싶었을 겁니다. 정권의 보도통제 매뉴얼과 길 사장의 정권 눈치 보기 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정조사의 칼끝이 결국 청와대로 향할 테니, 사전에 연결 고리를 끊어야지요. 이번 길 사장 해임은 편향보도, 청와대 옹호 보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청와대 '그분'에 대한 경호차원에서 이뤄진 미세조정에 불과합니다."
- 이제 관심은 차기 사장에게 쏠리는데요.
"국민TV 김용민 PD가 <미디어오늘> 민동기 편집장이랑 하는 팟캐스트가 있어요. 거기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를 사장으로, 최경영 기자를 보도본부장으로 임명하면 인정하겠다'는 말을 했더라고요. 그 정도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길환영보다 훨씬 애매한 인물을 내려보낼 겁니다."
- KBS 노조 파업 때 MBC 노조는 움직임이 적어 비판을 받았는데요.
"MBC는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해고와 징계가 일상화됐죠. 공정언론 추진 세력의 감행 의지가 크게 약화됐습니다. 무엇보다 MBC 내부의 공정보도 투쟁을 위한 인적구성이 망가졌습니다. 무려 50~60명에 달하는 '구사대' 기자들이 이미 보도국 주요 출입처와 보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파업의 효용성이 제거된 조직이 됐습니다."
"현장 기자생활 20년... 이번 참사에서 평정심 무너지더라"
- 세월호 참사 직후 현장에 바로 내려가셨잖아요.
"하루 반나절 동안 지켜보기만 했어요. 처음에는 '다 구조하겠지'라는 생각만 했다가 점점 '이거 아닌데...' 하며 패닉 상태에 빠졌어요. 현장 기자생활 20년을 하면서 웬만한 대형 사건, 사고를 겪어봤어요. 기자에게 제일 중요한 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무너지더라고요.
300명에 달하는 단원고 학생들이 시시각각 죽어가는데 아무런 대응을 못 하는 구조 당국을 보면서 제가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난 뒤, <고발뉴스> 전 스태프들에게 짐 싸라고 지시했습니다.
사실, 저는 작년 말에 머리 쪽에 문제가 생겨서 입원한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방송 현업에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실에 나가 후배들 기사를 봐주고, 취재 기획 등을 도와주고 있었어요. 다시 현장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나니,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본능적으로 내려갔어요. 그렇게 다시 현업에 복귀했죠."
- 과거와 이번 참사 보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번 사고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점이 과거와 다릅니다. 먼저, 비민주적 정권에 예속·유착된 언론이 정치적 성격의 대형 참사를 어떻게 보도하는지 보여줬어요. 언론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례가 될 겁니다."
- 또 다른 점은 뭔가요?
"아주 중요한 차이점인데요. 세월호 참사는 참혹한 '리얼 서바이벌' 상황이었습니다. 구조대가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생존자를 구해야 하는 미션이 떨어졌는데, 골든타임을 넘기도록 한 사람도 못 구했죠. 골든타임이 지나가는 장면이 생중계 돼 전 국민이 가해자가 된 듯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10년 전 이라크 파병 관련 김선일씨 사건 기억하시죠? 그때도 충격이 상당히 컸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테러'의 전 과정이 생중계됐고,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 300여명이었습니다.
해난사고라는 '대국민 테러'가 발생했는데 탑승자 전원이 시시각각 사망했죠. 사고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국민들은 가장 끔찍한 잔혹영화를 강제로 관람하고 나온 뒤의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문제는 영화관 밖으로 나와도 더 참혹한 현실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거지요.
지금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 시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말했던 것처럼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도리어 국민들을 상대로 '너희를 개조하겠다'고 합니다. 야당은 세월호 사태 50일이 넘도록 혹시 불똥이 자기들 쪽으로 튈까 두려워 찍소리도 못 냈죠. 이 정도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넘어 국가 부재 수준입니다."
- <연합뉴스> 기자를 욕하기도 했는데,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저는 약 20년 동안 공영방송에서 방송한 사람입니다. 욕을 했다는 건 중요한 방송 사고지요. 실수입니다. 제가 통제하지 못 한 거죠. 그건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당시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피해 가족들은 사실상 언론에 고립된 상태였습니다. 정부의 구조대책이 일방적으로 홍보됐고, 가족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못 했으니까요.
어머니들이 나서서 당시 현장의 이주영 안전행정부 장관과 대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저에게 사회를 봐달라고 요청하시는 거예요. 순간 당황했지만, 중재자로서 해야할 역할을 위해 잠시 (기자인) 저를 내려놨던 기억은 명확합니다.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 취재 도중 병원에 입원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별 거 아니었어요. 잠을 못 자서요. 제가 머리가 아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작년에 가벼운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거였나요?
"아니에요. 전조증상을 느꼈어요. 한 번 아파봤기 때문에 그게 다시 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말이 어눌해지고, 어지럽고, 집중력이 극도로 약해지는... 잠을 자야 하거든요. 스트레스도 아주 안 좋은데... 그런데 사고 이후 두세 시간 이상 잠을 못 잤어요. 종일 바닷바람 맞으며 분노와 울분이 넘쳐나는 기사를 만지다 보니, 다시 탈이 난 거죠. 팽목항을 떠날 수 없어 진도 한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 그런데 어떻게 다시 바지선을 타게 됐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로 세 번째로 사고 해역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당초 두 번 모두 해경 측의 비협조와 노골적인 협박으로, 바지선을 대지도 못하고 쫓겨나왔는데요. 언론은 죄다 '실패'라고 기사화했거든요. 이번에도 방해가 예상됐고 심지어 이종인 대표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첩보까지 입수했습니다. 진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달리 고민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대표가 '무섭다'며 함께 있어달라는 문자까지 보내는 바람에 그냥 달려갔죠."
- 지난해 인터뷰에서 손석희 앵커의 JTBC행을 강하게 비판하셨어요. 최근 세월호 보도로 JTBC 뉴스가 호평을 받았습니다.
"JTBC를 포함한 종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특혜, 삼성 일가의 미디어 장악 구상에 따른 JTBC의 전략적 역할론에 대한 비판은 유효합니다. JTBC는 삼성 등 자본과의 유리한 관계를 세월호 보도에서 십분 활용했다고 봅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언론들이, 시장에 의존해 일부나마 미국식 상업주의 자유언론을 표방한 적이 있었는데, (JTBC는) 그런 사례라고 봅니다. 상업주의 언론은 정치권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지만, 시장과 권력의 이해가 조율된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간교하게 시민사회의 이해를 짓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고문하는 고등계 형사보다, 회유하는 조선인 통역이 악질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장은 달콤한 말에 끌리겠지만, 결국 저들의 각본대로 독립운동 조직을 와해시키는 역할을 할 겁니다. 본질적으로 자본의 이해는 시민의 이해와 궤를 달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자본의 이익 추구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미디어를 앞세운 자본의 조작은 계속된다는 게 역사적 교훈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대중이 JTBC와 손석희라는 자유 언론인을 분리해서 평가하길 권합니다. 손 사장은 시장과 정치권력에게 장악당한 MBC에서 벗어나 JTBC를 선택해 자신의 자유언론에 대한 실현 의지를 지켰고, 지금까지 그의 실험은 성공적인 듯 보입니다.
지금은 엉망이 된 MBC가 보여주듯, 언론은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사람 비즈니스'를 하는 곳입니다. 잘 나가던 공영방송이 몇몇 언론인들이 축출된 뒤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처럼, JTBC는 손 사장 한 명이 쫓겨나면 이내 '삼성방송'으로 회귀할 게 명백합니다. 단기필마로 JTBC에 들어가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하는 손 사장의 성취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언론계가 충분한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안기부 2차장을 지내고 이회창을 거쳐 박근혜까지 권력 지근거리에 있었던 이병기 주일대사가 남재준 후임으로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정되었다. 이에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차떼기 불법자금 배달자’를 국정원장으로 내정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했다.
그러자 친박 홍문종은 ‘차떼기 배달자’는 좀 너무하지 않느냐?며 “야권에게 섭섭하다. 인사는 대통령께서 나라를 잘 하시기 위해 하는 것인데 긍정적 측면에서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랜다고 그동안 사사건건 안철수만 물고 늘어진 자신의 발언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박근혜라면 다 옳단다. 그래서 나는 이병기와 차떼기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서 포스팅을 한다. 야권이 너무한 것인지 박근혜가 너무한 것인지의 판단은 글을 읽는 사람 몫이다.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은 2003년 8월 말 검찰이 SK 비자금을 수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9개월 동안 진행된 사건 수사를 통해 한나라당 823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밝혀냈다. 이때 ‘차떼기’란 용어가 등장했다. 불법 정치자금 전달방식은 ‘사과상자’를 대신해서 ‘차떼기’, ‘책떼기’라는 신종 불법자금 수수방법이 사용되었던 것인데, 돈의 액수도 엄청나지만 그 수법도 가히 엽기적이었다.
SK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100억 원을 실은 승용차를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에게 넘겨주었고, (주)LG는 150억을 실은 트럭을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로 몰고 가서 이회창 후보의 법률고문이었던 서정우 변호사에게 차를 넘겨주었다. 삼성은 책처럼 포장한 112억 원어치의 무기명채권을 서정우 변호사에게 넘겨주었다.
2004년 5월 19일자 한겨레는 4대 재벌을 위시한 11개 주요 기업이 정치권에 준 불법대선자금과 이에 대한 검찰의 형사처벌 현황을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삼성 370억 원, 엘지 150억 원, 현대차 115억 원, SK 110억 원, 한화 50억 원, 대한항공 25억 원, 롯데 16억 원, 금호 18억 원, 대우건설 16억 원 부영 6억 원, 두산 2억 원 등의 불법 대선자금을 조성, 정치권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중에서 823억 원이 한나라당의 최돈웅, 김영일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 등에게 전달되었고. 한나라당은 이를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사건을 밝혔으면서도 당시 검찰은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한마디로 처벌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정치인들로는 한나라당의 서청원·신경식·김영일·최돈웅 의원 등이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주역으로서 구속되었으며 노무현 쪽에서는 정대철 이상수 안희정 등이 구속된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 외에 몇몇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기소되기도 했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회창도 불법대선자금 모금 개입 혐의에서 벗어났다. 다만 잔금 은닉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만 발표되었다. 검찰은 이회창 후보가 2003년 1월 대선자금 중 삼성채권 154억 원이 남았다는 보고를 받고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를 시켜 보관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서 변호사는 이 중 138억 원을 보관하다가 검찰 수사가 진행된 2003년 11월 삼성에 돌려줬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이도 기소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해 이회창은 2003년 12월 “기업에서 500억 원가량의 불법 대선자금을 썼다”며 “대선 후보이자 최종 책임자였던 제가 처벌받아야 하며, 제가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 가겠다”는 사과성명을 발표했으나 감옥에는 가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이회창 후보가 포괄적으로 범죄수익은닉 규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돈을 직접 받거나 보관하지 않아서 가벌성이 약한 점 등을 감안해 불입건 조치했다.
국정원장 후보자로 발표된 이병기는 이 사건 수사의 검찰발표에 등장한다. 당시 이회창 후보의 특보였던 이병기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 의원 쪽 김윤수 공보특보에게 “한나라당에 유리한 역할을 해달라”며 5억원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이병기를 단순 전달자로 판단해 기소하지 않았다. 이후 이병기는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했지만, 이런 전력 때문에 탈락한 바 있다. 당시 당을 책임진 사람이 박근혜이며 박근혜는 차떼기를 반성한다고 여의도에 천막을 치고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로 선거운동을 했다.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당의 공천심시위원장으로 하여 차떼기와 관련된 인사들의 공천은 모두 막았다. 이는 자신의 천막당사를 통한 반성 모드, ‘개헌 저지선만 막아주세요’라는 읍소 모드, ‘용서하시고 한번만 더 도와 주세요’라는 구걸 모드…이 3가지 모드로 선거를 치르는데 꼭 필요한 조치였다. 따라서 이병기는 공천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박근혜가 내친 것이다. 박근혜에게 내침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의 ‘속임수’ 작전이었다. 그렇기에 이병기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부터 ‘박근혜 이너서클’에 속한 멤버로 활동했다. 2007년 당내 경선 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았고, 지난해 대선 때도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고문으로 활용, 자신의 지근거리에서 보좌토록 했다. 그리고 당선된 뒤 잠시 주일대사로 피신시켰다. 권영세를 주중대사로 피신시킨 것과 똑 같은 조치였다. 국민들을 속일 때는 철저하게 숨기고 자신이 필요할 땐 극적으로 활용하는 기가 막힌 속임수다.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세월호 때문에서 지방선거에서 죽기 직전이었다. 그러자 다시 그 특유의 ‘속아주세요’ 모드가 나왔다. 이게 또 성공하여 극적으로 살아 난 박근혜가 다시 본격적 속임수 인재등용을 한 것이다. 속는 국민이 잘못이지만 어떻든 대단한 박근혜다.
따라서 여기서도 이제 야당의 실력을 가늠할 좋은 기회가 제공되었다. 이번 문창극 이병기 등용은 박근혜가 야당과 국민을 ‘무조건 속는 존재’정도로 판단함 때문이므로 속지 않고 걸러낼 실력이 과연 야당에게 있을 것인지를 가늠할 기회라는 말이다.
그래서다. 이번 총리 후보자와 국정원장 후보자는 박근혜와 그 패밀리의 정치생명만 걸린 것이 아니라 현 야당의 지도자인 김한길 안철수 박영선 등의 정치생명도 걸려있다.
이들을 걸러내면 야당 지도부가 살아날 것이고 박근혜 패밀리는 죽는 것이며, 반대로 이들이 용인되면 박근혜와 그 패밀리가 살아나고 야당 지도부는 죽게 될 것이다. 바야흐르 진검승부다. 거짓과 속임수에 대항하는 진검승부…이 진검승부의 결과는 7.30재보선에서 나타난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했던 동영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KBS뉴스에서 보도한 영상을 보면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며 조선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KBS뉴스를 봤던 사람이라면 그의 말 자체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KBS뉴스에 보도된 동영상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이엠피터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온누리교회에서 했던 1시간 4분짜리 동영상 원본을 모두 봤습니다. 1시간이 넘는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과연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 총리로 적합하냐는 물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유튜브에 올린 문창극 총리 후보자 특강 동영상은 1시간 4분짜리 동영상 중에서 주요 발언을 4분 25초로 편집한 영상입니다.
뉴스에 보도되지 않은 특강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특강 발언 내용>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것이 우리 민족의 DNA'
'(윤치호) 조선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다. 체질상'
'정부가 세금 걷고, 나는 어떻게 하든 놀자'
'돈 버는 사람은 우리 것을 착취했다. 저 사람 것을 뺏어 우리가 먹자'
'조선 사람의 피에는 오히려 공산주의가 맞다'
'이조 말기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 먹는 것이 몸이 박혀 있다'
'통일 한국을 주셨다면, 한국은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됐을 것이다'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공산화 됐을 밖에 없었다'
'너희들의 게으름,죄 아직 깨끗하게 안 됐어'
'분단이 됐으니 한국이 이 정도로 살게 됐다'
'한국전쟁은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경제발전)일본만 다 따라가면 된다'
'왜 요즘 자살이 많습니까? 대통령부터 다 죽습니까? 나라가 부패해지고 정신이 썩었기 때문'
'세계 문명 국다들이 사회 근본을 기독교로 선택, 기독교 때문에 일반 백성도 높은 도덕성을'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강연 내용을 보면 철저한 월남 보수 기독교인의 가치관을 담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개인의 신앙을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승만의 말을 인용해서 기독교가 세계 문명국가의 근본이 됐고, 그로 인해 일반 백성도 높은 도덕성을 가졌다는 그의 말은 2014년 한국 기독교의 타락을 목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가 않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동영상을 놓고 서로 다른 역사의 관점과 시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방송에 나오지 않은 동영상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판단하시고, 과연 그가 대한민국 총리로 적합한지 스스로 반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역사란 단순히 자기 자신과 자연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현재에 부피를 주고 인류의 지도자들에게 겸손을 주게 되는 지식입니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과거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미래에 대한 목표도, 우리를 붕괴시키려는 외세에 대한 방패도 없이 표류하게 됩니다.' (L.B 존슨)
한반도가 분단된 지 금년이 69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조국분단을 극복하고 7천 5백만 겨레가 염원하는 조국의 평화통일로 가는 길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발표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은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 간 화해ㆍ협력ㆍ평화시대를 개막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6.15선언 이후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 출범(2008.2) 이전 8년간 남북관계의 진전은 그 전 40년간의 남북관계 진전보다 더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변화에도 큰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첫 정상회담 이후 불거진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이전으로 복귀하였고 지난 7년 반 동안 남북관계는 적대적 대결구도를 유지해왔다.
현 남북관계는 새로운 냉전시대에 진입한 상태이고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새로운 남북관계를 기대했지만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태이다. 남과 북이 풀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남북관계의 개선과 함께 남과 북이 공동으로 합의해 통일방안을 함께 연구개발 해야 할 것이다.
6.15공동선언의 제2항에 대해 남북 당국의 통일의지 결여로 지난 14년 동안 그대로 방치되어 남북 간의 구체적인 논의가 전혀 없었으나 향후 남과 북이 6.15공동선언의 2항에 기초하여 통일방안에 관해 진지한 협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후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2년 반 동안 대미ㆍ대남 적대정책의 수위를 최고조로 높이고 있어 한반도 위기의 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남과 북이 6.15공동선언을 실천ㆍ이행하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작동되어 향후 한반도에서 다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남과 북이 합의에 의한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이 얼마나 형극의 길인가를 보여주었고 향후 남과 북이 합의 통일의 길이 순탄하지 못함을 예고한다. 그러므로 6.15공동선언 14주년을 맞이하여 이 글에서 한반도 통일로 가는 길에 남북 간 상이한 통일방안의 비교와 평가, 6.15공동선언 2항을 중심으로 향후 남과 북이 합의해야 하는 공동 통일방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6.15공동선언의 제2항에 대한 심층적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남북 통일방안의 평가
남과 북이 주장하는 통일방안을 요약하여 비교 평가하고자 한다. 남과 북이 주장하는 각자의 통일방안만을 고집한다면 통일은 어디까지나 구호에 불과하고 통일한반도의 새 국가건설을 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되므로 남과 북이 진정성을 갖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동통일방안에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 먼저 북한의 통일방안에 관해 간단하게 살펴본다.
1) 북한의 통일방안: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DFRK)
1980년 10월 10일 김일성 주석은 조선노동당 제6차 당 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Democratic Federal Republic of Koryo: DFRK)을 제시하였다. 김일성은 고려민주연방제를 자주적, 평화적 통일과 민족대화합의 3대 원칙 하에서 조선(한)반도의 통일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단기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고려민주연방제의 형태와 구성 및 기능, 그리고 연방정부가 수행해야 할 10대 시정방침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은 남북이 한 지붕(연방제) 밑에서 남북의 두 지역정부가 공존하자는 안으로 구체적으로 연방공화국의 통일정부 조직인 최고민족연방회의는 같은 수의 남북 대표와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 대표로 구성된다. 연방상설위원회는 최고민족연방회의에서 선출되어 남북의 지역정부를 지도하고 연방정부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한다.
최고민족연방회의와 연방상설위원회(최고민족연방회의의 상임기구)는 연방국가의 통일정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김일성은 1983년 9월 9일 북한 창설 35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최고민족연방회의와 연방상설위원회의 운영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연방국의 통일정부로서 최고민족연방회의와 연방상설위원회는 남북으로부터 각각 공동의장을 선출하여 윤번제로 통일정부를 운영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통일된 연방 국가는 비동맹, 중립국가의 외교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북한의 통일방안은 표면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방안같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면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북한의 고려연방제방안은 통일을 향한 과정이었던 과거의 연방제와는 다르다. 김일성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의 연방(영어 federation으로 표기해야 하지만 북한은 오랫동안 confederation으로 표기하다가 최근에 federation으로 표기함)을 통일로 가는 과정이 아닌 최종적인 완성 형태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궁극적이라기보다는 임시적이고 완성 형태로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상반된 정치, 경제, 사회 체제가 고려민주연합공화국과 같은 단일한 연방체제를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겠는가? 그리고 통일된 연방정부 내에서의 권력배분과 연방정부와 지역정부 간의 권력배분 등은 전연 언급이 없다.
셋째, 북한의 연방제 실시 이전에 5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현 한국정부의 퇴진, (2) 반공정책의 폐지, (3) 국가보안법의 폐지, (4) 주한미군의 철수 그리고 (5) 공산주의자를 포함한 정치범의 석방 등 전제조건을 제시하면서 이의 수락을 남한정부에 요구하였다. 이러한 전제조건 때문에 고려민주연방제가 남한을 적화통일 하고자 하는 북한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기에 한국정부는 이 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2) 남한의 통일 방안: 민족공동체 방안(KNC)
1989년 9월 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한민족공동체(Korean National Community) 방안은 남북이 자주, 평화, 민주의 3원칙을 바탕으로 남북연합단계의 중간과정을 거쳐 통일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는 방안이다. 김영삼 정부는 한민족공동체 방안을 종합 검토하고 전반적인 통일 환경을 고려하여 국민의 의견수렴을 거쳐 1994년 8월 15일 제49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민족공동체 통일방안으로 명칭변경)을 천명하였다. 현재 박근혜 정부도 공식적으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지지한다.
요약하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기본원칙은 자주, 평화, 자유민주주의 바탕 위에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통일의 과정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하고 남북이 ‘제1단계: 화해협력단계, 제2단계: 남북연합단계, 그리고 제3단계: 통일국가완성’의 3단계 과정을 거쳐 통일을 실현하도록 되어 있다.
남과 북이 주장하는 각자의 통일방안은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남북의 통일방안을 잘 살펴보면 통일 코리아(a unified Korea)의 조직 및 정체에 대해 차이가 있다. 한국정부는 민족주의, 민주주의, 자유, 개인의 복지 등을 이상으로 추구하는 단일국가, 통일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반면에, 북한은 통일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에 남북의 자주적인 1민족, 1국가, 2체제, 2지역정부를 주장한다. 그리고 북은 통일의 전제조건으로서 북한이 공감할 수 있는 남한에서의 민주정부 등장,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의 폐지, 주한미군의 철수 등을 주장한다. 이처럼 남북이 상반된 통일방안을 주장하기 때문에 6.15공동선언(2000) 이후에도 통일로 가는 길이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3. 6.15공동선언의 제2항 평가
통일방안에 관한 논의는 북한이 주장하는 ‘근본문제’로서 6.15공동선언의 2항에 의하면, 남북이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한 것은 기존의 대화방식의 관행을 타파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한의 ‘연합제’를 수렴하려는 노력은 과거 남북이 서로 다른 통일방안을 바탕으로 치렀던 지루한 이념논쟁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그러면 6.15공동선언에서 제시된 남북 간의 현 통일방안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무엇이 문제인가를 살펴보자.
1)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은『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이 중앙정부가 국방과 외교권을 행사하고 남과 북은 각각 별개의 지방정부로 편입되어 운영되는 완결된 형태의 연방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991년 이후 북한은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의 골격은 그대로 두되 남과 북의 지방정부에 국방과 외교권을 대폭 이양한 완화된 연방제로의 전술적 변화를 보였다.
김일성의 신년사(1991)에서 변화되기 시작한 북한의 연방제는 기존의 연방제 안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1990년대에 전술적 변화를 보인 북한의 연방제는 통일의 단계적 방안을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중앙정부는 단지 상징적인 중심 역할만 하고 지역정부가 경제ㆍ문화뿐만 아니라 군사ㆍ외교권까지 보유하게 되며, 이 같은 과도적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체제의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당시 김일성은 연방제에 의한 완전한 통일을 유보하고 냉전 말기에 있었던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북한의 체제위기 심화 속에서 현존하는 남북 두 체제의 잠정적인 공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6.15공동선언에 나타난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은 남북한 두 체제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1990년대 이후 그 동안 전술적으로 변화된 연방제 안을 대외에 공식화하였으며 전략적 변화의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따라서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은 단계론으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표방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연방국가가 두 지역정부를 조정하는 것이다. 또한 연방국가가 군사 및 외교적 권한을 대표하는 것이 원칙이나 1991년 이후 연방국가의 국방ㆍ외교권을 남북 지역정부에 대폭 이양을 주장하면서 사실상 낮은 단계에서는 2국가 성격이 강해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 서기국장(2000.10.6)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남과 북에 존재하는 두 개 지역정부가 정치ㆍ군사ㆍ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두는 방법으로 북남 관계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민족통일기구에 대한 구체적인 기능과 역할에 관한 언급은 없었지만 안 국장의 주장은 남북의 2정부 2체제를 유지하면서 통일기구를 모색하는 것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의 견해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과도기로 상정한 것으로 본다. 즉 북한은 남북협력단계→낮은 단계 연방제→고려민주연방공화국 건설을 궁극적 목표로 추진하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2) 남한의 연합제 안
6.15공동선언에서 제시한 남한의 연합제 안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둘째 단계인 ‘남북연합’ 단계를 지칭한다. 남한이 통일의 과도기적 단계로서 최초의 연합을 구체화ㆍ체계화한 것은 노태우 정부의『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며, 이후 김영삼 정부가『민족공동체통일방안』(1994.8.15)으로 명칭을 변경했지만 그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볼 때 6.15공동선언에 나타난 남한의 연합제 안은 첫 단계 화해ㆍ협력을 바탕으로 단일국가 건설을 위한 중간과정으로서, 민족공동체(특히 경제ㆍ사회공동체)를 형성하고 남북한 간 특수한 기능적 연합제를 구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한의 연합제 안은 1민족, 2국가, 2제도, 2정부를 상정하며, 남북한의 두 지역 국가가 국방ㆍ외교권까지 보유하는 것이다. 또한 두 지역 국가 간의 협력기구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남북연합정상회의, 남북연합회의(국회), 남북연합각료회의 등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서의 남북연합 안은 2국 2체제의 남북연합단계, 1국 2자치정부의 연방단계, 1국 1중앙정부의 완전통일단계의 과정을 상정하고 있다. 기존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남북연합 단계에 진입하기 위하여 화해ㆍ협력 단계를 거쳐야 하는 바, 화해ㆍ협력단계에서는 경제ㆍ사회의 교류ㆍ협력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의 남북연합은 정부의 통일방안에서 주장하는 화해협력과 제도적 남북연합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ㆍ사회의 교류ㆍ협력과 군사적 신뢰구축을 동시에 병행 추진하는 것으로 기존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남북연합에서 연방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완전통일국가 단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으나 김대중 3단계 통일론에서는 남북연합 이후 연방제라는 과도기적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3단계 통일론의 남북연합단계에서는 남과 북이 주권과 모든 권한을 보유한 채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남북연합정상회의와 정부기구인 남북연합각료회의, 대의기구인 남북연합회의를 통해 협력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당시 김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은 공식적인 한국정부의 통일 방안으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 두 방안의 공통점과 차이점
6.15공동선언에서 남한의 연합제 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먼저 두 안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첫째, 두 안은 모두 평화통일을 전제하고 있다. 사실상 남북 간의 체제공존을 설정하고 있다.
둘째, 두 안은 통일의 완성상태가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의 수정안이라기보다는 1990년대 이후 전술적으로 변화해 온 내용을 단계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셋째,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 외교권과 국방권까지도 남과 북의 각 지역정부에 맡기는 등 지역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중간 단계인 남북연합제 안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넷째, 지역정부가 동등한 자격으로 남북연방 혹은 남북연합에 참가한다. 이를 바탕으로 2개의 독립적 실체 사이에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표1>에서 남북의 통일방안을 비교하였다. 남북의 두 안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북한의『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이지만 남쪽의『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를 목표로 한다.
둘째,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완전통일로 가기 위한 교류 협력을 통한 기능주의적 접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북한의 연방제는 남한의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남북 간 교류ㆍ협력의 확대가 가져올지 모르는 남쪽에 의한 흡수통합의 위험에 대한 방어적 방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ㆍ협력 단계를 장기간 거치면서 이질감을 해소하는 파급효과를 가정하고 있으나, 북한의 연방제는 단지 정치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데 변함이 없다. 또한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는 미군철수, 보안법 철폐 등 전제조건을 달고 있으나, 남북연합에서는 전제조건이 없다.
넷째, 북한의 연방제 안에는 중앙정부가 구성되어 있으나, 남한의 연합제 안에는 중앙정부가 구성되어 있지 않다. 남북연합에서는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등 실천기구를 구성한다. 그러나 북한의 연방제에서는 통일된 연방정부기구인 최고민족연방회의와 연방상설위원회가 구성되어 두 지역정부를 관장하게 된다.
<표1> 남북한 통일방안 비교
명칭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기본이념
자유민주주의
주체사상
통일주체
민족구성원 모두
프롤레타리아 계급
통일원칙
자주, 평화, 민주주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통일과정
3단계: (1)화해.협력단계
(2)남북연합단계
(3)단일통일국가단계
연방국가로 점차적으로 완성. 낮은 단계 연방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과도기
단계
남북연합
낮은 단계 연방
통일국가
실현절차
통일헌법에 의한 민주적 남북한 총선거 실시
정치협상
통일국가
형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 통일국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연방국가
통일국가
미래상
자유, 복지, 인권이 보장되는 선진민주주의국가
비동맹, 중립국가
<출처: 필자 자료>
4. 맺음 말: 공동통일방안을 모색해야
6.15공동선언 2항의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는 인식의 공유는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 대해 일정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남측의 남북연합제 안은 무엇보다도 남북이 분단 반세기 동안 사회경제체제와 가치관에서 엄청난 괴리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반면 북측의 연방제 안은 남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통일국가를 단번에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북측은 기존의 연방제 안을 다소 완화시킨 ‘느슨한 연방제’를 제안하면서도 중앙정부를 바로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6.15공동선언 이후 남쪽에서는 연합제 안과 낮은 당계의 연방제 안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성을 발견해 내고 실현 가능한 연합제 안의 추진 방안을 제안하는 연구들이 제시되었으며, 연방제에 대한 이념적 거부감도 점차 완화되었다. 한편 북측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러 차례 북이 주장하는 고려민주연방제 안에 남과 북이 합의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2002년 5월 이후 공동선언의 2항에 대한 해석에서 좀 더 엄격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북은 2항의 해석에서 한반도의 평화 보장과 민족의 공존공영을 강조함으로써, 통일 방안이 점진적ㆍ단계적일 것이라는 점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통일 방안에 대한 ‘완전한 합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통성과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남과 북이 공동통일방안에 대해 공동연구를 추진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은 대박이라고 주창하고 있어 통일과정에 있어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 먼저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남과 북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끝>
곽태환 박사 (미 이스턴 켄터키 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 원장)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1969).
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국제정치학 교수(1969-1999);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1995-1999); 통일연구원 원장(1999-2000).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 미국 이스턴 켄터키대 명예교수, 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한반도 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통일전략연구협의회 (Los Angeles)회장.
30권의 저서, 공저 및 편저; 200편 이상의 학술논문출판;
주요 저서: 국제정치 속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 (1999).
공저: 한반도평화체제의 모색 (1997)등; 영문책 Editor & Co-editor: North Korea and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shgate, 2014); Peace-Regime Building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n Security Cooperation (Ashgate, 2010) 등.
퇴임 후 외부매체와 일체 인터뷰를 하지 않고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6개월만인 2008년 8월 26일 <서프라이즈> 신상철 대표와 퇴임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가졌다. 이는 퇴임 6개월만의 일로 노 전 대통령 생애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편집자)
- 대통령께서 청와대 떠나시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놓고 연구소 설립, 출판사업, 환경개선사업 등을 하실 거라는 추측기사들이 나왔었습니다. 6개월이 지난 지금에서 보면 환경개선 사업, 시민주권 그리고 민주주의2.0 등으로 압축이 되고 있는데 그동안 계획하셨던 대로 잘 되고 있으신지요?
“네, 그중에서 제일 중점을 뒀던 게 민주주의 2.0인데 그게 계획보다 반년이나 지체되고 있죠. 다른 장애사유가 있는 건 아니고 해보니까 그게 복잡합디다. 구조나 시스템이 복잡하고 좀 더 잘해보자고 욕심을 내는 이유로 좀 지체되고 있지만 잘되고 있습니다.
봉하마을 사업은 환경운동이라는 수준.. 보다 압축해서 말하면 생태농업을 한번 도입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그것은 전체 봉화산과 그 일대의 생태계, 말하자면 보존과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써 하는 사업이죠. 재임 중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하려고 하고 있고, 그 외에는 뜻밖의 상황이 이런 모든 일을 좀 지체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손님이 많이 오는 것과 정부에서 좀 보자고 하는 것이 있는데.. ‘기록’(대통령기록물) 이야기라든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 때문에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 지금 하시는 생태농업은 '오리농법'으로 대변되고 있는데요, 유기농법은 소출이 적다고 하는데도 이번에는 소출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농업이 성공적이었다고 보이는데요, 요즘 네티즌들은 오리의 처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대통령님 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시 오리농법에 투입되었던 오리들을 농사가 끝난 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잡아먹자, 팔자, 계속 기르자 등등 다양한 견해가 있는 가운데 마을 수로를 돌아다니는 오리들이 어느새 봉하방문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오리의 운명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편집자주)
“저는 파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고, 또 처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보니까 농가마다 각기 다르게 처리를 한 것 같고, (김경수 비서관에게 '파는 사람도 있냐'며 구두로 확인).. 처분이 합리적인 것인데 다 처분하지는 않고, 마을에 수로가 있는데 수로에 오리들이 돌아다니고 하니까 약간의 뭐랄까.. 마을의 마스코트가 된 것이지요.”
- 또 한편으로 마을에서 추진하고 있는 여러 사업들.. 생가 복원, 건강휴식마당, 생태교실, 생태파크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추진하시면서 마을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인데, 마을의 협조는 잘 되는지요? 또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점들이 있습니까?
“참모들이 죽을 고생을 하는 거지요. (김경수 참모 웃음).. 지나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참모들이 그..(잠시 침묵) 굉장히 참모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어려움이 많지만 조금씩 조금씩 성과가 보이니까 사람들이 지치거나 낙담하지 않고 아직까지 의욕적으로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지난해 참평포럼 강연에서 대통령께서 ‘민주주의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시민민주주의' 화두를 던지셨습니다. 그 후 그것이 ‘민주주의2.0’으로 구체화되고 있는데 저희가 생각하기에 가장 긴급한 현안 중 하나가 민주개혁진영과 진보 간에 괴리된 간격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인데요, 이런 내용들이 민주주의2.0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구조가 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 민주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어떠한 해법이 있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지금까지 민주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을 구별해서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런 구별을 들어도 기준에 대해서 얼른 감이 오지 않고 그렇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쪽에 대해서 대체로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그렇기 때문에 구별을 하지도 않고 얼른 감을 못잡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나는 그 부분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번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진보주의라는 것은 민주주의에 내재한 가치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재한 가치다.. 민주주의가 가장 획기적인 진보의 역사이거든요. 그래서 민주주의의 역사가 가장 전형적인 진보의 역사이고 좁은 의미에서 진보의 이념 이런 것들도 실제 민주주의에 가치 안에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대통령께서는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의 구분을 포괄적으로 보신다고 하셨는데 사실 저희도 그러길 바라는데 대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은 민노당을 중심으로 해서 대선후보를 내고 구체적인 현안 특히 지난 참여정부 때에는 FTA 문제와 이라크 파병 두 가지 문제로 진보진영 또는 진보매체들이 굉장히 반대를 하는 등 대선 때마다 분열했단 말이죠. 저희들은 지난 2002년 대선 때 대통령님을 찍으면서도 당은 민노당을 찍어서 민노당이 제도권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하게 만들어 줬는데 그 분들은 우릴 위해서 도대체 뭘 했는가, 이번 같은 경우에 또 민노당마저 반으로 나뉘면서 제도권 진입도 실패해 버리는 이 현상을 두고 이제는 우리가 큰 틀에서 하나로 가져가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사실상 양쪽에서 다 나오고 있습니다.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여러가지 점에서 고심을 참 많이 했던 편입니다. 많이 했던 편인데.. 그 가운데 이제 세월이 한참 지나고 오늘의 현상을 보면서..'내버려 둬라'...그것은 우리가 논의를 통해서, 토론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통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정치에 있어서 정치적 자유의 장이 마련되면 진보적인 정치노선, 보수적인 정치노선이 있게 마련이고 그 논의 안에서도 항상 전진주의 내지 타협주의가 있고 또 급진 내지 타협주의가 항상 존재 하거든요. 그 세력이 좀 커지고 또 어느 세력이 더 커지냐 하는 것은 역사적인 조건, 말하자면 정치세력의 뿌리죠.
그리고 그 시기의 정치적 상황, 그 정치세력의 그 시기의 노선에 따라서 그 세(勢)가 결정이 되는데 그 세의 흐름을 결정하는 힘은 그들 사이에 있지 않고 국민들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복잡한 논의와 합의,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분열과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제반조건과 상황을 종합한 가운데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논의로써 풀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각자 갈 길을 가다 보면 협력도 있고 통합도 있고 분열도 있고 그런 것들이 정치의 자연스러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퇴임하시고 6개월이 지났는데 재임 때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전국 각지에서 참 많은 분들이 찾아 오고 계신데 시간이 지나면 좀 줄어들겠지 하는 시각도 없지 았았습니다만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뵐 때마다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너무 힘드실 것 같다고 우려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어떠십니까?
“예상하지 않았던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에 차질이 생기는게 사실이지요. 모든 일에.. (웃음) 차질이 생깁니다. 좀 쉬고 놀고 싶었는데 그것도 좀 차질이 생기고, 여기 뭐 또 농사일에도 좀 타이트하게 참여했으면 싶었는데.. 말하자면 노동도 좀 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그렇게 깊이 참여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민주주의2.0에 대해서도 초기에 제가 시스템 개발과정을 주도해 가다가 저는 지금은 좀 놓쳐버렸습니다. 그만큼 지장이 있는 셈인데 다행히 농사도 우리 비서들이 내가 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몫을 해주고 마을사람들도 협력을 잘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2.0도 제가 놓쳐버리고 못 따라가서 바라만 보고 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잘하고 있어요. 물론 보는 사람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또 모르는 사람은 평가를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의 개발과정에서 직접 하나하나 토론을 함께 하던 사람으로써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는 이해를 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는 기대이상으로 잘하고 있습니다. 시스템 개발팀이.. 참 다행이지요.. 다만 이제.. 사생활에 좀 여유가 없어진 거.. 그런거.. (웃음)
- 대통령이 되시고 나서 공약과는 관계없이 이것만은 꼭 고쳐놓고 싶은 것이 있으셨을 텐데 그 중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흡족하게 생각하시는 부분과 그렇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흡족한 게 뭐가 있을까? 지금 완결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은 정치적 관점에서 볼 수 있고 국정이나 정책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 가중 중요한 것은 정치적 관점에서의 정치풍토. 즉 국민이 판단한다, 국민이 선택한다고 내가 이야기를 했는데 국민의 선택을 교란하는 요인이 있거든요. 지역주의는 국민의 정책선택을 끝임 없이 교란하고 방해하는 요인인데 그것은 정치문화 아니겠습니까? 그런 지역주의를 완전히(고쳐놓지 못한) 그게 아쉽습니다.
- 대통령님에 대한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지난 5년동안 가장 큰 업적중 하나로 '권위주의타파'를 꼽고 있습니다. 임기 초에 ‘평검사와의 대화’가 인상깊게 남아 있는데 한편으로는 임기초에 평검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너무 검찰을 자유롭게 놓아 준 것이 아닌가, 지금 검찰이 권력에 밀착해 있는 현실과 비교해 본다면 속된 말로 ‘너무 풀어줘 버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검찰을 장악했던 정권은 없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이후, 5·6공 이후에 검찰을 장악했던 정권은 없습니다. YS정권 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검찰을 많이 활용 했겠죠. 그런데도 결국은 검찰권에 의해서 무너졌지 않습니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정권을 도와주는 검찰이 있었겠죠? 일부 검찰은 정권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검찰은 있지만 그 내부에서 정권을 끝임 없이 흔들었던 검찰은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이제 검찰이 하나라고 보면 안 됩니다. 손발처럼 YS를 도운 검찰도 있는가 하면은 말년에 와서 결국 YS를 때려잡은 검찰이 공존하고 있는 데가 바로 검찰 아닌가요? 그걸 인정해야 됩니다. 일사 분란하게 검찰을 장악하는 것은 이제는 불가능한 시대이거든요. 언론을 두드려 잡기 전에는 그건 불가능합니다.”
- 언론의 권력과 검찰 권력이 시너지를 높여서 권력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시는 거죠?
“긍정적인 의미에서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자꾸 옛날 생각하고 절더러 전.노나 YS만큼이라도 검찰을 왜 장악하지 않냐고 하는데 만약에 제가 그것을 실행하려고 했다면 일부 검찰과 결탁하는 결과를 낳았을 것입니다. 일부 정치검찰과 결탁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검찰을 다 장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몰라요.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정권이든 일부 정치적 성향이 강한 검찰과 결탁 할 수는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 검찰의 분위기를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모든 검찰을 장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전에 김영삼 대통령도 결국은 말년에는 검찰 손에 처분을 당했죠.
김대중 대통령 시절도 일부 충성스러운 검사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정치검찰이 정권의 편은 아니었다는 것, 제가 왔을 때는 더 상황이 나빠졌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황이 더 나빠졌기 때문에 일부 검찰과 결탁하고 마는 그런 검찰장악 같은 것은 안 하는 것이 좋지요. 장악이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장악하고 일부 검찰과 결탁했을 때 그것은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고 결국 정치에 진보도 이루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진보도 이루지 못하고 나도 뒷날 타살 당하는 것이죠.
나는 그렇게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별 뜻 없이 검찰 자기 갈길 내버려두고 검찰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도록 최대한 그렇게 관리를 한 것이죠. 당신들 할 일을 하라고 그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뒷받침해줬습니다. 검찰이 할 일이나 하라고.. 뭐 그러다 과한 일도 있고 내가 봐도 지나친 일도 있곤 했지만 기본은 다 그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은 원칙대로 원리대로..”
- 어떤 분들은 대통령께서 어떤 '대단한 직관력'을 갖고 계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검찰이 권력과 밀착한) 지금의 상황..
"법대로요.."
- 법대로 안가면요?
“뭐 내일 무슨 큰 정치적 이변은 없을 겁니다. 정치나 경제라던 지 이런 국민적 관심사의 본연의 문제 국정운영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어려운 부분은 있겠지만 정치적 상황을 관리하는 것은 점점 안정되어 갈 겁니다.
제가 대통령하고 있을 때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저만 찾아오면 한나라당 깨질 거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한번도 응수를 안했습니다. 한나라당 깨진다는 전제를 가지고 자기들 할 일은 게을리 하고 있었지요. 한나라당이 깨지기는 커녕 자기들(열린우리당)보다 훨씬 더 강고하고.. 그런 것이고.. 촛불 나왔을 때도 거기 뭐 국민들 눈에는 나중에 나오는 사람들 눈에는 저 사람들 얼마 전에 '노무현이 물러가라' 하던 사람 아니냐..(웃음).. 느낌이 그렇게 남게.. 그걸로, 쇠고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퇴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를 하거나 직업적으로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무책임한 생각을 하면 안되지요..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이 깨질거나, 몰락할거다..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요..”
- 지역구도해소 차원에서 대통령께서 여러가지 고심을 한 것 가운데 당시 대연정을 추진하셨는데 대통령께서는 후보시절부터 대연정 구상을 하셨던 걸로 알고 있고, 그 제안에 지지지들이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연정을 제안하셨던 속마음,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그것을 보셨을 때 어떻습니까?
“(웃음) 그것은 헛발질 한번 한 것이죠. 뭐 이론적으로나 전략적인 근거를 가지고는 있었습니다만 어쨌든 그 당시 적절한 정치적 행보는 아니었다고 봐야죠..”
- 어제 방문객 분들 앞에서 하신 말씀 중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10년은 진보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보수적인 정권이었다"라고 하셨는데요, 사실상 그런 부분들이 특히 민노당의 경우 정권내내 (참여정부에 대하여) 한나라당 짝퉁 정권이라는 비난까지 받았거든요.. 특히 대변적으로 '이라크파병'과 '한미FTA' 문제가 보수적이었다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절대 아니예요. 내가 이야기 했던 보수적인 정권은, 할 수 있는 일이 유럽의 보수당이 하는 수준에 비교하면 유럽의 보수당이 하는 만큼도 못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보수적 정권이 아니었느냐, 한거죠. 우리더러 진보, 진보하고 우리도 진보한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또 한나라당과 비교하면 명확한 차별성이 있지만, 그 점에 있어 명확한 차별성이 있습니다. 한나라당과 비교해서 명확한 차별성을 갖고 추진했습니다만, 성과에 있어서, 우리나라 정부의 성격에 있어서 유럽의 어떤 보수정권 하의 정부 또는 정책보다 더 보수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뜻으로 이야기 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말하자면 그만큼 우리나라가 보수에 기울어 있다, 진보가 너무 미미하다 그런 뜻이죠.
이라크 파병은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더러 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되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하는 일에는 기분 좋아서 하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로 한미 FTA는.. 그것은 결국 개방이냐쇄국이냐 이 논쟁은 의미없는 것이고 '개방의 속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개방의 속도에 있어서 적정한 수준이다, 개방에 반대하는 것이 진보라고 하면은 진보개념이 잘못된 겁니다.만일 진보가 개방을 반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진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진보라면)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고, 문제를 삼는 것은 개방의 속도 아니겠습니까?
반대론자들이 (개방의) 속도에 관한 비판으로 나는 생각하는데 나는 개방의 속도가 그만한 속도가 필요했다고 봤다는 것이죠. 나는 개방적 진보주의자다 이렇게 말을(웃음).. 나는 개방을 속도가 아니고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은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세계 대세, 좋든 그르든 세계 대세를 외면하자는 그런 얘긴데 (이는) 옳지 않고, 결국 논쟁은 속도 논쟁만 있을 수 있는데 속도논쟁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면 금방 결론이 납니다.”
- 지금 속도논쟁에 있어서 미국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한미 FTA를 재검토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가 협상을 잘 했다기보다는 적절한 시기를 택했다고 볼 수 있는 반증이 되겠습니까?
“나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는 과정에 있어 이거는 약간 도전적인 선택으로써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전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과 또 하나는 불가피한 선택의 측면이 있습니다. 불가피한 선택의 측면은 중국과 FTA를 한다고 한다면 언제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까? 이건 대단한 충격인 겁니다. 우리가 중국과 FTA를 언제쯤 적절할 것인가를 전제를 해두고 역산해서 거기에 필요한 만큼의 국내경제 구조조정을 해야 되거든요. 준비를 해야 되거든요. 그 준비는 경제의 구조조정이거든요. 사람 쫓아내는 게 구조조정이 아니고 경제 체질개선을 해야 되는 것이거든요.
경제체질을 중국과의 FTA에 맞추어서 지금부터 체질을 준비해 나가야 되는 것인데, 그 준비를.. 아무 충격 없이 준비가 되냐..충격이 없으면 준비를 안해요. 가만히 있다가 중국과 FTA를 했을 때 벌어지는 사태가 훨씬 더 바람직하겠느냐.. 그 앞에 그보다 충격이 적은 FTA를 배치해서 국내 구조조정을 강요해 나가는 것이죠. 강요해 나가면서 중국과의 FTA에 사전에 대비를 해 면역력을 준비시켜 나가는 것이 적절하냐. 그런 점에서 중국과의 FTA를 생각하면 (한미 FTA는) 불가피한 것이었고, 그 다음 우리 경제의 역량과 수준으로 봐서는 다소 도전적인 선택으로써 적절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일부 반대론자들의 '중국.일본과 먼저 (FTA 체결을) 한 다음에 미국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은 미국을 그만큼 두렵게 봤다는 것인데 (대통령께서는) 실은 중국이 더 큰 문제라고 보신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현실적인 조건을 전혀 도외시하는 이야기입니다. 품목 하나하나 갖고 생각해 보면 아는 일이지요. FTA라는 것은 경제의 분야와 품목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따져서 예측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그동안에 개방이 있었는데 개방 반대론자들이 걱정했던 사건은 여러 군데 개방에서 다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지 않았고.. 한 가지 IMF 사태와 금융개방과는 상관관계가 있죠.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예견해서 반대하거나 그런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상관관계라면 그것 한 가지인데 거기에 대해서 국내에서 그 점을 이야기했던(지적했던)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칠레 FTA까지 하여튼 뭐 그렇게 떠들었던 사태는 다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 참여정부 초기 당내에서 발목을 잡았던 개혁과 실용 논란이 지금 민주당에서 또다시 그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개혁이냐, 실용이냐를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개혁·실용’ 그 논의 자체가 문제인 것인지,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참여정부 때) 너무 일찍 당정분리를 추진했던 건 아닌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혁과 실용의 차이를 아직 모릅니다. 현실적인 조건을 존중한다는 것이 실용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개혁주의자가 현실에 맞지 않는 개혁을 하겠습니까? 어떤 개혁주의자도 현실을 무시하는 개혁을 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개혁과 실용을 구분하고 논쟁하는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고 개혁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그것에 실용의 이름을 갖다 붙이고 그러면 안되지요.
‘당정분리’는 내가 한 게 아니고 이미 다 돼 있었어요. (웃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 시절 당정분리가 거의 국민적 합의 수준까지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당헌·당규에 당정분리가 돼 있었고요. 물론 나도 공약했고, 그것을 존중해야죠. 당정분리를 안 하면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 구체적으로 뭐가 있었겠어요? 공천권 행사 하겠다? 당직을 내가 임명 하겠다? 당헌에 위배되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어요. 당정분리를 안하면 대통령이 당직 임명권을 행사해야 되거든, 공천권 그거도 당헌상 불가능해요.
그 다음에 정무수석 가지고 자꾸 그러는데 그건 총재가 당을 지휘할 때 ‘승지’처럼 있는 사람이 정무수석입니다. 정무수석이 전 분야에 관해서 당정 협의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정협의는 장관들이 분야별로 하게 돼 있고 정무수석은 옛날 승지처럼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러 다니는 사림이죠. 대통령의 생각이 이거요 하고 침놓고 다니는 사람이죠. 세상이 바뀌었는데 생각이 안 바뀌니까 자꾸만 정무수석 부활하라고 하는데 정무수석 부활하면... 당정관계 본질의 문제가 따로 있는데 어떻게 부활을 시킵니까?”
- 재임 5년간 가장 의미 있었던 일 중 하나가 남북정상회담인 듯싶습니다. 곧 10월4일 되면 1주년이 됩니다만, 최근에 북한의 '통미봉남'이나 금강산 피격사건, 아시안 지역포럼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경색되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는 ‘핵 불능화 중단선언’이 나왔습니다. 남과 북이 공존공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남북관계 본질에 충실하게 대응해야 됩니다. 본질에 맞게 대응해야죠. 남북은 분단국가지 않습니까? 분단국가라는 것이.. 통합이 지상명제이나 현실권력은 통합을 위해서 자기 권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양보할 생각이 없는 (실정입니다). 항상 통합을 지상명제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통합의 대의는 권력과 정쟁의 수단이거든요. 이 모순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정치적 결단과 국민적 역량이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 모순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런데) 정치의 속성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손해 가는 것은 안 합니다. 그것을 하라는 것이 국민적 압력이죠. 그것은 역사적 결단이고. 이런 모순관계라는 것을 이해하고 한다면 통합이라는 것을 제발 정치인들이 가지고 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하자면 정직한, 항상 국민과 역사 앞에 항상 정직한 자세로 서야 한다. 국민의 성격은 대화의 국면인데 대결적 사고를 가지고 남북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거 그건 본질에 관한 문제거든요. 대결적 국면으로 가선 안 되고 동맹관계와 남북관계를 놓고 무슨 선택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사고 그런 것들이 실질적인 장애요소라고 생각한다면 그 다음에는 어쨌든 간에 이런 요소 이외에는 외교적 속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대화·협상이라는 것은 외교적인 행위에 일반원칙을 다 존중해야 되는 것이거든요. 지금 남북관계에서 통합의 명분을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놓고, 본질적 접근에 의지가 없습니다. 국민들에게는 대화국면을 말하면서도 늘 대결발언들과 행동들만 해왔고, 무슨 동맹과 남북관계가 마치 선택적인 것처럼 계속 그렇게 해왔습니다. 적대관계를 가지고 있으니까 계속 경쟁관계, 적대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외교의 일반원칙 조차도 지키지 않는다.. 쌍방 다 그렇지만..그게 문제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본(본질)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우리 국민들의 피로도가 상상을 넘고 있고 민주주의의 큰 틀마저 위협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세간에는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 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2008년 우리사회가 요동치고 있는 원인 중에는 어떤 구조적인 문제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합니다. 문제를 가진 정치세력에 관한 문제, 어떤 한 사람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말이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국민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 국민의 수준이 2002년에는 높았는데 갑자기 낮아졌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의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감사원장이 사표를 내버리지 않았습니까? 지켜줘야 될 자리를 안 지켜주고 사표를 내버리니까 감사원에서 정연주 씨 (표적감사) 같은 엉뚱한 문제가 나오는 것이고 KBS 이사회 이사장이란 자리가 보통자립니까? (그런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사표 내고 나와 버리니까 KBS이사회가 그렇게 굴러가는 거 아니에요? 민주주의라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직분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일괄사표 내라니까 줄줄이 일괄사표 내버리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민의 수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자유를 지킬 수가 없는 것이죠. 내가 국민이라면 일반국민이 아니고 권력기관에 있는 공무원 하나하나가 다 국민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두려움에 눈치보고 두려움에 떨고 꼬리 내리고 그게 행동 양식이지 않습니까? 중요한 직책에 있다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이 그렇게 변화해 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은 지배하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쉽게 무릎을 꿇으니까 지배당하는 것이죠.”
- 대통령님께서 퇴임 후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잠정적으로 기한을 정하시지는 않으셨지만, 퇴임하시고 1년 동안은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드릴 수 있는데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돌아가는 상황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시게 만들고 있고 실제로 지난 번 ‘이명박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이라든지 어느 정도는 말씀을 하시고 계신데 이제 본격적으로 언론매체와도 이야기를 하실 시점이 됐다고 보시지는 않으십니까?
“정치행위를 할 일이 없어요. 정치라는 것은 제가 직업정치인으로서 편을 갈라서 정치의 장에 뛰어들어야 정치지 (요즘의 발언은) 그냥 당사자로서 내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죠. 내 얘기에 대해 말한 것이죠. 그리고 요즘 시민으로서 진보가 뭐냐 보수가 뭐냐 이런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시민으로서 국민들한테 진보의 정책이 무엇이고 보수의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필요할 때 그런 해설거리를 두고 가끔 하는 이야기죠. 엊그제 했던 게 그런 것이지요.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말한 일이 없습니다. 정치적 공방에 가담한 적도 없습니다. 시민적 권리죠.”
- 어제 한 시간 동안 (방문객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쭉 들으면서, 가끔 봉하마을에 화서 대통령께서 방문객을 접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상황상황마다 다 다르게 대하시고, 어떤 때는 사진만 찍으시고 어떤 때는 종합적으로 폭넓게 말씀을 하시기도 하거든요. 저는 저 모습이 폴리틱(Politic)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가 합쳐진 폴리테인먼트(Politainment)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린애부터 나이 드신 분까지, 불특정 다수이고 또 성향도 다양한데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접촉문화가 어떤 ‘민주주의 2.0’이라는 시스템을 넘어선 어떤 ‘토론3.0’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매번 다른 상황인데도 발언 주제를 어떻게 잡으시는지요?
“나도 어렵고 헷갈리는 문제입니다. (웃음) 정말 정리안되는 것인데.. 그렇거든요. 아무튼 현안 문제에 대해서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니편 내편 가르는 것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해서 근본적인 사고의 프레임을 제대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현실정치에 관한 얘기는 전혀 없고 사고의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고의 프레임을 제대로 잡아 나가야만 민주주의를 수행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을 갖출 수 있거든요. 그러나 사고의 프레임이라는 것은 추상적이고 원론적이고 딱딱하거든요. 그것을 구체적인 사례들을 가지고 설명해나가는 것이 정치하는 사람이 해야 되는 일이죠. 저는 저 스스로를 그런 점에서 교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사였으면 좋겠는데.. 암튼 강사 노릇을 해야 합니다.”
- 대통령님께서 '시민주권' 그리고 '시민민주주의'를 말씀하십니다. 그와 함께 '진보의 미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들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우리글 반만년 역사 한국에서 반만년 역사... 기록이 있는 역사 그 기간 동안에 인지와 기술이 엄청나게 팽창됐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발전이라고 생각하죠.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사람을 지배하는 기술이 똑같이 발전 되어 와서 그래서 지배가 강화된 시기입니다. 우리역사 5000년 중에 4700년은 지배를 강화해온 시간입니다. 나는 그걸 역사의 퇴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역사의 진보는 이제 한 300년 밖에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아직도 긴 세 월 동안 결국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적 노력이 계속 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우리가 회사에서 한 해 한 해 결산을 하는데 그래서 회사 사장들도 전임자가 좋은 아이템을 개발해놓고 물러나면 후임자가 와서 수익 좋아지면 손익계산서만 가지고 스톡옵션도 받고 결국 결산하는데 매번 주주총회하고 결산하고 사장 뽑고, 그게 회사발전에 주주총회가 획기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전체적으로 그 회사의 경영혁신 기술혁신 이런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승부가 나는 것이죠. 우리가 4년 마다하는 한 번씩 하는 중간결산 거기에 전체를 다 쏟아 부을 이유가 없다.
중간결산 이번에 중간결산 할 사람은 중간결산을 하고 10년을 내다보고 기술개발을 할 사람은 기술개발을 하는 것이죠. 우리는 시민 조직을 해나가는 것이고 그런 것이죠. 그 역사의 완결이 어떤 역사에 얼마나 완결이 있겠어요. 김대중, 노무현 다 소수파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니까 다수파가 된 줄 아는데 천만에 말씀입니다. 이인제 덕분에 소수파... 이런 얘기 많이 했죠?”
- 대통령님, 가끔 저희 <서프라이즈> 보십니까?
“가끔 들어가는데 요즘 즐겨 찾기에... 지난 번 뭣좀 손질하더니 빠져버렸더라고...”
- 없어졌습니까? (웃음)
“도로 만들었는데..”
- 대통령님, 민주주의 2.0 토론방식도 참 좋은데 또 한편으로는 대통령님께서 지금 사람들 계속 만나는 부분을 온라인으로 실시간 방송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영상으로 만들고 편집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어제 같은 경우 방문객이 "덕담 한마디 해주십시오" 라는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말씀을 주셨는데 그것만큼 좋은 강의 자료도 없거든요. 어제 녹음도 다했습니다만 강의록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프라이즈 굉장히 참 노력을 많이 해요. 많이 하는데 나는 오히려 얼핏 듣고 주간지 때문에 역량이 좀 소모되면 어쩌나 이런 걱정을 했었죠..”
▲ (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불법임명거부 국민대책위원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가 주최한 6월민주항쟁 27주년 기념 국민대회가 10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본당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6월민주항쟁 27주년 기념 국민대회가 10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본당에서 열렸다.
(사)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불법임명거부 국민대책위원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이날 서울시청에서 열린 정부 기념식에 불참으로 맞서며 국민대회 형식으로 개최됐다.
이날 국민대회에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새정치민주연합·통합진보당·정의당 등 정당 관계자, 6.4지방선거 당선자를 비롯한 500여 명의 인사들이 본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
함세웅 신부는 "국가개조에 앞서 민족개조를 제일 먼저 주창한 이는 친일파 이광수였다"고 지적하고, "6월항쟁의 정신은 이처럼 본질을 가리는 간교한 언술에 현혹되지 않고 사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 신부는 또한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은폐하려 했던 불의의 공권력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감추려는 현재의 공권력이 너무도 닮은 꼴"이라며, "이를 슬퍼한다"고 묵상했다.
이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책위원회 상임대표인 이해동 목사는 "국민이 곧 국가이고, 국민이 없으면 국가란 없다"며, "국가개조라는 구호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적폐척결이라는 표현 또한 번지수가 틀렸다고 말했다.
이해동 목사도 역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반민주, 반서민, 반민족이 뒤섞인 부패와 무능의 연쇄적 사슬이라고 단정하고 이들은 자신들이 국정구호로 외치는 적폐척결의 주체이기는 커녕 대상일 뿐 이라고 비판했다.
이 목사는 "27년이면 거의 한 세대를 지난 것이지만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듯 절박한 상황을 맞고 있다"며 "민족 평화와 자주, 민생을 위해 다시 일어서자"고 강조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기념사에서 "지난 대선의 불법 관권선거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이번에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없이 지나가면 6월 민주항쟁의 성과는 고사될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라며, "6월항쟁 27주년을 맞은 오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실종된 아이들, 실종된 민주주의, 실종된 민중생존권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승환 시만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27년전 6월항쟁은 구체제를 해체하지 못하고 타협한 제한성을 갖고 있지만 야당과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은 대표적인 수혜자이기도 하다"며, "불의에 항거하는 민주적 감수성을 높이는데 시민사회운동이 먼저 성찰하고 나서겠다는 각오를 밝힌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오병윤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천호선 정의당 대표의 기념사가 이어졌고 정각 6시에는 27년전 이곳에서 시작된 타종 퍼포먼스가 있었다.
손학규 전 대표는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된 이날 6월항쟁의 주역들이 별도의 국민대회를 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민주주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으며, 오병윤 원내대표는 "6월항쟁의 산물로 태어난 진보정당이 희망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시민, 선배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도 인사말을 통해 "제도와 법령보다는 시민의 삶속에서 뿌리내리는 6월항쟁의 정신"을 강조하고 "6월항쟁의 정신이 세월호 참사를 만나 교육혁명에 대한 열망으로 표현됐다. 교육민주화 실현을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별도의 국민대회로 6월항쟁 27주년을 기념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서울시청에서 열린 정부 기념식에서 민주주의는 특정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궤변성 연설을 했고, 기념사업회 직원들은 국민대회가 열린 성공회대성당에서 "불의한 권력의 횡포에 대항해 가만히 있지 않았던 대한민국 민주화운도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자리를 지켰다.
대회장 바깥에서는 청와대 앞 6.10 만인대회를 주장하는 '1987년의 발걸음을 잇고자 하는 성공회대학생들'이 이날 국민대회를 '스스로를 가두는 길들여진 저항'이라고 규정하며, "우리는 6.10민중항쟁을 기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6.10의 정신을 잇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내정자가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소견을 밝히고 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총리에 문창극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를 내정했다ⓒ민중의소리
그야말로 '장고 끝에 악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차기 총리에 '극우 인사'로 평가되는 언론인 출신의 문창극 서울대 초빙교수를 내정했다. 또 신임 국정원장에 이병기 주일대사를 임명했다.
애초 6.4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새 총리가 지명될 것으로 관측됐으나, 예상과 달리 이번 인사는 상당히 지연됐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와대에는 지명 후 6일만에 낙마한 안대희 전 대법관의 사례가 있어 도덕성 문제에 초점을 두고 검증 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새 총리 인선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유는 '박근혜 정부 2기'의 국정운영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가늠자였기 때문이다. 문창극 후보자의 내정을 두고 정치권에선 '의외의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전직 대통령을 향한 '막말'이나 햇볕 정책, 무상급식 등에 적대감을 나타낸 그의 극우 성향이 담긴 글들이 회자되면서 '국민통합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안대희 전 대법관 못지 않게 문 후보자 역시 인사청문회 과정 등에서 상당한 논란이 야기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창극 기용, 국정운영 기조 변함없다는 신호
청와대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한국신문방송편집인 협회장과 관훈클럽 총무 등을 역임한 소신있고 강직한 언론인 출신"이라며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 위해 조력해온 분"이라고 강조했다. 또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국정과제를 제대로 추진해나갈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청와대의 발표 이후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낮은 자세'로 소감을 밝혔다. 문 후보자는 "저는 능력도 부족하고, 지혜도 모자라고 국정경험도 없는 정말 부족한 사람"이라며 "그러나 나라를 위해 애쓰신 박근혜 대통령을 봐서 안전한 대한민국, 또 행복한 대한민국, 나라의 기본을 다시 만드는 그런 일을 제가 미력이나마 저의 마지막 여생을 모아 나라를 위해 한번 바쳐볼까 한다"고 밝혔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내정자가 10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소견을 밝히고 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총리에 문창극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를 내정했다ⓒ민중의소리
박 대통령이 새 국무총리에 '극우 성향'의 기자 출신인 문창극 후보자를 기용키로 한 것은 세월호참사의 여파나 지방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기존의 국정운영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방선거 결과를 '세월호 심판론'에 따른 민심 이반(離叛)으로 해석하지 않고,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과거부터 쌓여온 적폐를 제대로 바로잡아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매진해 달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野 "51%만을 추구하는 朴 정권 위한 인사" 철저 검증 예고
박 대통령이 장고 끝에 차기 총리에 문창극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인사청문회를 쉽사리 통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단 중앙일보 근무 당시 썼던 칼럼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통령 방미 일정 중의 성추행으로 낙마한 윤창중 전 대변인이 떠오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문 내정자는 지난 2009년 5월 26일자 '중앙일보'의 '공인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데 대해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대의 자살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 나라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까지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그 영향이 어떻겠는가"라며 "자연인으로서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공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 2009년 8월 4일자 칼럼 '마지막 남은 일'에서는 당시 사경을 헤매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비자금 의혹을 들며 "나라의 명예를 위해서도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은 없어야 한다"면서 "그렇다고 이런 제기된 의혹들을 그대로 덮어 두기로 할 것인가. 바로 이 점이 안타까운 것"이라고 공격했다.
문 내정자는 무상급식과 관련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는 것과, 식량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북한 주민이 그 내용 면에서는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문 내정자의 짙은 극우성향에 야권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철저 검증을 예고했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은 "총리 후보에 문창극 전 주필? 국정원장 후보는 이병기 전 대사? 극우 꼴통 세상이 열립니다"라며 "(문 전 주필은) 전직 대통령께 막말을 일삼던 실패한 언론인이다. 낙마를 위해 총력 경주하겠다"고 경고했다.
같은 당 한정애 대변인은 "복지확대 반대, 햇볕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 등 그간의 언론 활동을 반추해보면 극단적 보수성향으로 국민화합,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국민을 위한 인사가 아닌, 51%만을 추구하는 박근혜 정권을 위한 인사"라고 질타했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은 "(문창극 후보자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두고도 "역사의 신이 대한민국의 수호천사 역할을 했다"는 낯뜨거운 박비어천가를 읊어댔다"며 "문창극 내정자 지명은 또다른 인사참사다. 오직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 하나만 보고 선택한 이번 총리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인사에서 총리 지명과 함께 공석이었던 국정원장 자리에 이병기 주일대사를 임명했다. 이 대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무장관 시절 인연을 맺어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을 거쳐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보와 2차장을 역임한 바 있다. 대선개입 사건이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 이어 세월호 참사에 따른 대응 논란이 제기된 국정원을 둘러싼 개혁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측근 임명은 또 다시 구설수에 오를 수 밖에 없어보인다.
새정치연합 한정애 대변인은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해 "대통령 측근 인사를 국정원장에 임명함으로써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국정원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국정원의 개혁은 앞으로도 없다’라는 뜻을 그대로 보여준 인사"라며 철저 검증을 약속했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도 "5,6공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했던 관료이자 과거 안기부의 대표적인 정치공작이었던 총풍, 북풍공작의 주역이었다"며 "국가정보원이 존폐까지 거론되며 총체적인 개혁 요구에 직면한 지금, 완전히 정반대의 인사를 강행했다"고 비난했다.
▲ 밀양시와 경찰이 11일 오전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에 있는 129번 철탑 현장의 움막농성장을 강제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단행한 뒤, 할머니 6명이 구덩이에 들어가 저항하고 있었고 그 중에 2명이 팬티만 남긴 채 거의 알몸 상태로 있었는데 남성 경찰관이 들어가 끌어내고 있다.
▲ 11일 오전 밀양 송전탑 건설 공사를 위한 행정대집행이 시작된 가운데 위양마을(127번 송전탑) 농성장에도 경찰과 밀양시 공무원, 한전 직원이 들이닥쳐 움막을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60대 여성과 수녀가 실신했지만 구급차가 준비되지 않으면서 한동안 이들은 바닥에 누워있어야 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움막농성장 5곳을 강제 철거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밀양시와 경찰은 11일 오전 11시까지 행정대집행을 통해 밀양시 부북면 쪽에 있는 움막 5곳을 철거했다.
공무원과 경찰은 이날 오전 6시부터 행정대집행에 나섰다. 이날 오전까지 철거된 움막은 밀양 부북면 장동마을 입구 움막, 평밭마을 입구 임도 쪽 움막, 129번 철탑 현장의 움막, 부북면 위양마을 쪽에 있는 127번 철탑 현장의 움막과 그 아래에 있는 움막이다.
이어 공무원과 경찰들은 차량으로 이동해 밀양 상동면 고답마을 과수원에 있는 115번 철탑 현장의 움막 현장에 도착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경 밀양시청 공무원은 행정대집행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뒤, 아직 움막 철거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밀양시와 경찰은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산에 있는 101번 철탑 현장의 움막에 대해서는 이날 오후 행정대집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산 정상 부근에 있어 차량으로 이동할 수 없고 1시간 가량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는 주민과 연대단체 회원들이 움막을 지키고 있다.
이날 오전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주민들은 극렬하게 저항했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에 따르면, 이날 오전 주민 6명과 천주교 수녀 5명 등 총 11명이 병원에 후송되었다. 부상자들은 주로 골절과 허리통증 등을 호소하고 있다. 장동마을 입구 움막 현장에서 1명, 129번 움막 현장에서 6명, 127번 움막현장에서 4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갔다.
11일 오전 8시 50분께 움막 앞에 집결한 밀양시 공무원들은 행정대집행을 고지했고, 곧바로 한전 직원이 공사 시작을 알렸다. 이에 주민을 비롯한 농성자들은 저항했다.
경찰이 엉겨붙어 농성자들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현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경찰은 쇠사슬로 몸을 결박하고 있던 농성자의 쇠사슬을 커터기로 끊었다. 20여 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은 농성 참가자들을 모두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취재를 하고 있던 현장 기자들과 경찰들 사이에 실랑이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을 에워싸고 연행하거나 손으로 카메라를 가리는 등 취재를 방해했다.
움막의 가장 안쪽에서 버티던 김재연, 김제남 의원과 여성 주민, 수녀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는 특히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60대 여성이 경찰에 엎혀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경찰과 밀양시는 구급차 조차 대기시켜 놓지 않고 막무가내 행정대집행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실신한 여성이 발생했지만 들것 조차 준비하지 않은 경찰은 모포를 들고 우와좌왕했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 약 10분 동안 이 상황은 반복됐다. 충돌이 예상됐음에도 기본적인 준비 조차 하지 못한 셈이다.
현장에서 활동을 벌이던 국가인권위원회 측도 준비되지 않은 행정대집행을 비판했다. 이광영 국가인권위 부산사무소장은 "고령인 농성 주민들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부상 가능성을 대비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철거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 11일 새벽 행정대집행이 시작된 가운데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129번 철탑 현장에 있는 움막농성장을 경찰이 부수고 있다. 주민들은 이를 온몸으로 저지하고 있다.
[6신 보강 : 11일 오전 8시 10분] 129번 움막, 주민들 다 쫓겨나... 부상자·연행자 속출
11일 새벽, 경남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129번 철탑현장 움막농성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했다.
밀양시와 경찰은 11일 오전 6시경 행정대집행을 단행했다. 이에 주민들은 움막 안과 움막 앞에 있는 구덩이에 들어가 극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구덩이 안에 있던 할머니 2명은 속옷만 입고 저항하다 경찰에 끌려 나왔고, 곳곳에서 주민들이 울부짖었다.
경찰은 경찰관 폭행 혐의로 평밭마을 주민 배아무개씨를 김해 중부경찰서로 연행해 조사하기로 했다.
부상자도 나왔다. 천주교 에반젤 수녀가 부상을 입어 병원에 후송되었고, 할머니 한 명이 허리 통증 등을 호소하며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후송된 부상자는 수녀 4명, 주민 2명 등 총 6명이다.
오전 8시경, 129번 움막에서 주민들은 거의 다 쫓겨난 상황이다. 공무원과 경찰들은 129번 움막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부북면 위양마을 127번 철탑 현장 움막 철거를 위해 이동했다.
[5신 보강 : 11일 오전 7시 20분] 행정대집행 진행...움막 철거 시작
11일 오전 6시를 기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시 평밭마을 등 6곳에 있는 주민들의 움막을 철거하기 위해 행정대집행이 시작됐다. 경찰과 공무원이 대거 투입돼 움막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 ·
이날 오전 6시 30분 경찰은 밀양시 평밭마을 입구에 위치한 움막을 에워싸고 공사 반대를 외치던 주민들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오물을 투척하는 등 경찰의 진입을 저지했지만 200여명의 경찰병력은 방패로 이들을 저지하고 연행했다.
통로가 마련되자 민간 여행사의 미니버스 10여대를 나눠탄 경찰관들은 산으로 난 도로를 따라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평밭마을 129번 움막을 경찰이 철거하려 하자 수녀들이 온몸으로 누워 저항했으며,쇠사슬을 묶어 저항하던 주민들도 결사적으로 맞섰다.
'129번 힘내세요'
129번 송전탑 건설 현장을 시작으로 행정대집행이 시작되자 인근의 127번 현장에서도 비명소리가 산을 타고 넘어왔다. 127번 현장은 7시 20분 현재 경찰이 들이닥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현장을 지키고 선 주민들은 귀를 세우고 잠시뒤 밀려올 경찰과 공무원, 한전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은 이따금 이들은 129번 송전탑 방향을 바라보고 "129번 힘내라", "밀양할매 지켜내자" 등의 응원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들려오는 절규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가인권위와 인권단체, 법률단체, 김재연·김제남 국회의원도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현장에서는 129번 현장을 정리한 경찰병력이 127번 현장으로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신 보강 : 11일 오전 6시] 경찰병력, 새벽 행정대집행 위해 움막 입구에 집결
11일 새벽, 행정대집행을 예고한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 앞 움막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밀양 부북면 위양마을 쪽에 있는 127번 철탑현장의 움막과 평밭마을 쪽에 있는 129번 철탑현장 움막사이에 있는 임도 곳곳에 경찰대원들이 오전 4시 30분경부터 올라와 있다. 경찰은 행정대집행 대상인 움막 6곳 입구에 집결하고 있다.
움막농성장을 지키는 주민들은 결사항전하겠다는 입장이다.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129번 철탑 현장에 있는 움막농성장에 주민 6명이 구덩이 안에 들어가 목에 쇠사슬을 묶고 앉아 있다. 구덩이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한옥순(66), 양무진 (64), 박후복(74), 박경숙(67), 이금자(82), 김사례(86)씨다. 김미희, 김재연, 김제남 국회의원은 10일 밤 이 움막을 찾아와 밤새 주민들과 함께 지냈다.
한편 종교인들과 연대단체 회원들은 움막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노래를 부르면서 "경찰은 물러가라"고 외치고 있다.
오전 5시10분 현재, 평밭마을에서는 경찰이 올라왔다고 알리며 경고 방송을 하고 있다. 오전 6시께는 129번과 127번 철탑 현장의 움막 농성장 입구 쪽인 밀양 부북면 장동마을에의 움막을 철거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이정일 서국화 나유신 최재홍 정상규 이종희 김자연 박훈 신훈민 박다혜 변호사가 밀양법률지원단으로 나서 현장에서 지원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이광영 부산사무소장 등 14명이 평밭마을 움막 등에 인권 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
[3신 : 10일 오후 10시 50분] 움막에 연대단체 회원들 속속 모여들어
▲ 밀양시의 행정대집행에 대비해 밀양시 부북면 위양마을 주민들이 10일 저녁 127번 철탑 현장의 움막에 농성하고 있는 속에, 주민들이 모여 들고 있다. 사진은 한 할머니가 올라오자 손희경(83) 할머니가 맞이하고 있는 모습.
밀양 송전탑 반대 움막농성장의 강제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앞둔 10일 저녁 움막마다 주민과 연대단체 회원들이 모여 긴장 속에 대비하고 있다. 주민들은 움막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날 저녁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주민들의 밥을 차량에 실어 농성장까지 배달하는 과정에서 한때 경찰이 막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출입 통제하는 과정에서 차량이 파손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저녁 8시경 밀양시 부북면 장동마을 입구에서 자흥 스님(불교)이 트럭을 몰고 움막으로 올라오려다가 경찰이 막아섰다. 자흥 스님은 트럭 창문을 깨고 항의하기도 했고, 이러는 과정에서 차량이 파손을 입기도 했다.
움막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은 밤새 잠을 자지 않고 감시 활동 등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날 저녁 정의당 김제남 국회의원이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과 위양마을의 움막농성장을 찾기도 했다.
[2신 : 10일 오후 6시 38분]
밀양 송전탑 움막농성장에 긴장감이 높아가고 있다. 밀양시와 경찰이 11일 새벽 움막농성장 강제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경찰이 하루 전날부터 곳곳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경찰은 10일 오후 밀양 부북면 장동마을 입구를 비롯해 곳곳에 기동대 대원들을 배치해 놓았다. 전국의 경찰서에서 차출된 사복경찰들도 승합차량을 타고 속속 도착하고 있다. 경찰은 20개 중대 2000여 명의 대원들을 동원했다.
경찰은 움막농성장에 연대단체 회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천주교 수녀들이 이날 오후 장동마을 입구에 승합차량을 타고 왔다가 한참 동안 올라가지 못하기도 했다.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129번 철탑), 위양마을(127번), 상동면 고답마을(115번), 단장면 용회마을(101번)에 있는 움막농성장에는 주민과 연대단체 회원들이 모여 있다. 각 움막농성장마다 30~50명 안팎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밤새 밀양지역에 비가 내릴 예보가 있는 가운데, 움막농성장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이 불편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광영 부산사무소장 등 인권위원을 10일 오후부터 현장에 파견했다.
밀양시는 11일 오전 6시경 움막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1신 : 10일 오후 1시 47분] 행정대집행 하루 앞두고 곳곳에 경찰 배치
▲ 밀양시와 경찰이 11일 새벽 송전탑 반대 움막농성장을 강제철거하는 행정대집행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10일 오후 밀양시 부북면 장동마을 입구 움막에 주민들이 밧줄과 의자로 바리게이트를 설치해놓고 걱정하며 앉아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고, 국가인권위는 15명의 인권현장 지킴이를 파견하기로 했다. 또 인권감시단체 활동가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책위는 움막 철거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10일 대책위는 "101번, 115번, 127번, 129번 송전탑 부지는 주민들이 사수해 농성중인 우리의 마지막 보루다"며 "끊임없는 경찰과 한전의 강제철거 협박이 있어왔으며, 지난 4월부터는 밀양시청도 이에 가세하였다, 밀양시청은 6월 2일까지 농성장을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계고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송전탑 공사 강행의 가장 큰 명분이었던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의 완공이 현재 각종 비리로 인해 늦춰진 상황"이라며 "저들은 절차대로 할 뿐이라 하겠지만, 지금 공사 강행의 명분을 잃은 상황에서 밀양시청이 행정대집행을 강행한다면 그건 일방적으로 한전 편에 서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또 대책위는 "불법시설물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이 법적으로 문제 없는 행위라고 말하지만, 4곳 농성장은 주민들이 삶을 걸고 수 개월간 지켜내 온 곳이며, 사람이 머물고 사는 곳을 함부로 철거하고 강제로 쫓아내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밝혔다.
▲ 밀양시와 경찰이 11일 새벽 밀양 송전탑 공사장에 있는 움막농성장을 강제철거하기 위한 행정대집행에 들어갈 예정인 가운데 주민들이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화악산 임도쪽에 경찰에 항의하는 표시를 해놓았다.
그동안 드러난 정황 증거들과 검찰이 이미 혐의를 인정한 부분만 놓고 봐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하고 공개한 것은 누가 봐도 대화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국가기밀을 누설시킨 행위가 분명하다.
‘유병언 사건’‘월드컵’ 이때 노려 수사결과 발표
팩트는 상식이고, 상식적 판단을 부정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픽션의 세계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이 자유롭게 다뤄질 수 있지만, 법을 해석하고 수사하는 일은 그게 아니다. 최고의 사정기관인 검찰이 팩트를 왜곡시켰다면 그건 수사가 아니다. 소설을 쓴 거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사건과 관련해 1년 8개월 만에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전원 무혐의로 결론을 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 ‘무혐의’라를 주제로 한 소설을 발표할 경우 야당의 반발과 국민여론이 악화될까 우려돼 시기를 저울질하다가 세월호 사건이 ‘유병언 사건’이 되고, ‘기다려라 사건’이 ‘구원파 사건’으로 치환된 직후 그것도 월드컵을 코앞에 둔 시점에 맞춰 후다닥 발표한 것이다.
야당이 고발한 10명 중 9명 무혐의 처분.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고 김무성, 권영세, 서상기, 조명철, 조원진, 윤재옥 의원과 남재준 국정원장과 한기범 국정원 1차장, 국정원 대변인 등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벌금 500만원’으로 ‘국정원-NLL’ 모두 덮겠다?
수사 축소 지시 의혹과 허위수사결과 발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서울청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을 감안한다면, 온 나라를 후끈 달궜던 국정원 댓글과 대화록 유출사건은 ‘1명 벌금 500만원 약식기소’로 끝이 난 셈이다. 황당할 뿐이다.
<검찰로부터 '무혐의'로 꿰맞춰 만든 '면죄부 목걸이' 선사 받은 여당 의원들>
반면 새누리당이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는 여당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거반의 야당인사 혐의를 인정했다.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댓글 사건’의 시발이 됐던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 사건’의 경우 강기정 의원 등 민주당 의원 8명 중 5명에 대해 ‘감금 혐의’가 인정된다며 벌금 200~500만원으로 약식기소했다. 적반하장 격이다.
또 백종천 노무현 정부 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안보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면서도 김무성, 권영세, 서상기, 남재준 등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 수사를 한 게 아니라 권력의 입맛에 맞는 ‘소설’ 한권을 쓴 셈이다. 최악의 편들기 수사다.
수사 아니라 ‘맞춤형 소설’ 쓴 검찰
수사를 한 게 아니라 ‘맞춤형 소설’을 쓴 것에 불과하다는 정황은 수두룩하다. 검찰의 주장을 대락 살펴봐도 사실관계를 억지로 꿰맞추기 위해 스스로 논리를 깨고 모순을 범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정문헌 약식기소? 형법 적용 안 하고 봐 주려는 고심의 산물
청와대 재직 당시 취득한 ‘NNL 대화록’이라는 ‘직무상 비밀’을 대선을 겨냥해 여당 의원에게 누설했다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인정돼 형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이보다 형량이 훨씬 가벼운 공공기록물관리법 상 비밀누설 금지 조항. 금고 이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제외) 형을 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므로 ‘벌금형 약식기소’가 가능한 법을 적용한 것이다.
웃기는 일이다. 2007년 최재전 민주당 의원 비서관이 한미FTA와 관련된 대외비 문서를 외부에 유출한 혐의에 대해서는 형법을 적용해 기소했고, 대법원에서 징역 9개월 형이 확정된 바 있다. 납북회담대화록은 2급 비밀이지만 한미FTA 문건은 대외비에 불과하다. 2급 비밀을 빼돌려 ‘박근혜 당선 운동’에 활용한 건 벌금 500만원에 불과한데 대외비를 유출시킨 혐의에 대해서는 실형 9개월이라니.
▲대화록의 두 잣대, 야당에겐 ‘대통령기록물’ 여당에겐 ‘공공기록물’
백종천, 조명균 등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들이 삭제한 건 대화록 초본에 불과하다. 하지만 검찰은 녹취 음원까지 첨부된 완성본이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대통령기록물 삭제 행위’로 보고 기소했다. 완성본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연습 종이를 ‘대통령기록물’로 본 것이다.
그러면서 검찰은 정문헌, 서상기, 권영세, 남재준에 대한 대화록 유출 혐의에 대해서는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 이 보다 형량이 훨씬 낮은 공공기록물에 해당한다는 ‘잣대’를 적용했다. 완성본인 국정원 보관본은 공공기록물인데, 완성본을 만들기 위해 습작한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란다. 세상에 이럴 수가.
▲김무성 변명해주기 바빴던 검찰
대선 직전 ‘박근혜 지원 유세’에서 대화록 원본과 토씨까지 일치하는 쪽지를 읽어 내려갔던 김무성 의원. 검찰에서 “찌라시에서 본 것과 정문헌 의원에게 들은 내용을 종합해 말한 것(지원 연설을 말함)”이라고 주장했다. “찌라시에서 봤다”는 거짓말에 대해 검찰은 김 의원을 대신해 차근차근 변명을 했다.
‘찌라시’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지 않을 경우 여당 선대총괄본부장이 고작 증권가 휴지조각을 대선에 활용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는지 검찰은 “증권가 찌라시가 아니라 당 내외부 선거관련 동향 문건을 지칭하다가 그런 용어를 선택하게 됐다고 한다”며 김 의원 편을 들었다. 수사를 해야 할 검찰이 피고발인을 변호한 셈이다. 검찰이 논리와 상식을 완전히 무시한 채 여당 실세 편을 들기 위해 안달복달 야단을 떤 것이다.
비상식의 검찰에게 상식적인 질문 하나 던지겠다. 김 의원이 읽은 NLL 관련 내용은 공개된 대화록과744자나 일치한다. 당 내외부 동향문건이 대화록과 토씨 하나까지 일치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로또 당첨확률 보다 낮을까 높을까. 대답해 보시라.
▲합리적 의심조차 하지 않은 수사였다
혐의가 없단다. 수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게 밝혀져 혐의점이 해소됐다는 등 최소한의 설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김무성 쪽지’의 출처와 누가 이를 대선캠프에 전해 주었는지 핵심적인 의문은 애당초 풀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합리적인 의심조차 규명하려 들지 않았다. ‘증거를 찾지 못했다’ ‘밝혀내지 못했다’ ‘특정하기 어렵다’ ‘그런지 알 수 없다’는 표현만 난무한다. 김무성 의원이 당내 공개석상에서 “대화록 입수해 읽어봤다”고 고백한 것에 대해서도 “원문을 줬다는 부분은 추측해볼 수 있지만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피해갔고, 대화록을 대선에 활용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박근혜 캠프에서) 이용했는지 알 수 없다”고 둘러댔다.
<기소된 야당 의원들과 참여정부 비서진. 사실상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돼 버렸다>
검찰에게 아주 상식적인 질문 하나 더 해야겠다. 토씨까지 일치하는 장문의 쪽지를 읽었다. 읽은 장소는 ‘박근혜 유세 차량’이었고 때는 대선 불과 며칠 전. 불특정 유권자들 향해 마이크를 들고 열변을 토하며 읽어 내려갔다. 이래도 선거에 이용한 것 아니란 말인가?
▲‘무혐의’ 구슬 궤맞춰 만든 면죄부 목걸이
‘노무현 NLL 포기’가 사실이라고 강변했던 이들의 변명에 대해서도 알뜰살뜰 귀를 기울였다. 국정원이 가져온 대화록 발췌본을 보고 언론에 공개한 서상기 의원의 경우 “서 의원을 발언은 대화록에 대한 평가나 소회이기 때문에 대화록 내용 누설이 아니”며 “언론에 이 내용을 알려준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지 못했다”며 빠져나갔다. 검찰은 또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성명서 내용은 의견 표명이지 허위사실 아니”라고 주장했다.
수사할 의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여당 실세도 ‘노무현 NLL 포기’는 허위사실이라고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은 NLL 포기라는 말씀 한 번도 쓰지 않았다”며 “NLL을 뛰어넘어 남북경제협력사업이라는 큰 꿈을 가졌던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말한 이가 있다. 바로 박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나라고 부른다는 윤상현 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고백이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 ‘국정원녀’ 수사
국정원 여직권 오피스텔에서 불법대선개입 행위가 있었던 건 사실다. 범행 현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민주당 의원들이 현장을 보전하기 위해 복도에 진을 쳤다. 여직원이 당황해서 문을 잠그고 대치한 것이지만 검찰은 새누리당 주장 그대로 받아들여 감금 혐의를 인정했다.
“불법 선거행위가 의심되는 현장에 대한 감시활동은 선거법이 보장하는 합법 행위”라는 민주당의 주장을 묵살하고 “경찰과 선관위가 다 와있던 상황이다. 때문에 감금이 정당화 될 수 없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공감금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다소 무리하게 행동한 부분이 있다 치자. 어쨌든 국정원 불법대선개입이 사실로 밝혀진 이상 민주당과 민주당 후보자는 피해자다. 자신이 당할 피해 사실을 뻔히 보면서도 손발 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가. 정상을 참작했어야 하건만 검찰이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든 꼴이다. 여야 모두의 검찰이 아니라 여당의 검찰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셈이다.
국가기밀을 불법으로 입수해 이것을 선거에 활용하고 들통 나자 아니라고 거짓말했는데도 무혐의란다. 국가기밀을 선거에 활용해도 무방할뿐더러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비밀기록을 누설해도 약식기소로 끝난다는 기막힌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6월 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6월 민주화 민중항쟁은 사회운동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불렀습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민행동에 참여해 익숙해진 노란 리본과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읽을 때마다 27년 전 6월 민주화 민중항쟁에 대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서울 종로에 함께 있었습니다. 시민들과 학생들이 백골단과 전경들에게 밀려 어디론가 흩어지는 가운데 저와 제 친구들은 인파에 휩쓸려 어느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가게 주인은 백골단과 전경을 피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의 가게로 들어오게 했고, 가게 셔터를 내렸습니다. 가게 안의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어느 백발의 어른 한 분이 저희를 보며 이야기하셨습니다.
"허허, 너희는 어려 보이는데…. 중학생 정도 되려나? 우리 어른들이 너희에게 이런 시대를 겪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어른들이 더 열심히 싸워서, 너희가 어른이 되면 우리가 겪은 이 시대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해야 할 텐데…."
그러고는 그 자리에 있는 시민·대학생들과 여러 주제로 토론을 하시더군요.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가게 주인은 밖을 살펴보고 가게 문을 열어줬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무사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와 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몇 번 이야기하시면서 마음 아파했던 백발의 어르신은 백기완 선생님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얘들아, 미안하다..."
▲ 시민분향소에 놓인 단원고 학생 영정 세월호 참사 25일째였던 지난 5월 10일 오후 경기도 안산문화광장에서 희생자 추모와 진실규명을 위한 '국민촛불 켜기' 행사가 열렸다. 시민분향소에 학생 희생자들의 캐리커쳐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2014년. 저는 43세의 어른이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단원고 학생들의 영정사진을 마주한 저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27년 전 친구들과 제게 "미안하다"라고 이야기하셨던 백기완 선생님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이어 여전히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미안하다, 얘들아, 미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우리는 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박근혜 대통령과 그 행정부에 물어야 할까요? 왜 우리는 청와대로 그 책임을 물으러 향해야 할까요? 아직도 12명의 실종자가 저 바닷속에 있는데, 서둘러 해경을 해체한다고 발표하는 게 정상일까요? '정말 죄송하다'고 국민들에게 사과는 하기는커녕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선거운동을 하는 박근혜 정권·정부 여당이 정상일까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이 어떤지 알려면, 자기에게 저항할 힘이 없는 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된다"라는 덤블도어의 대사 말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어떤 정권인지, 해경은 어떤 집단인지, 공무원 집단은 어떤 집단인지, 경찰은 어떤 집단인지 알려면 저들이 세월호 안에 있던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일반인들을 과연 살리려 했는지, 팽목항에서 자식과 가족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희생자 부모와 가족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진도와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추모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월호'는 국민 모두의 일이 됐습니다"라는 말
▲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 천만의 약속'이 열렸다.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과 생존자 가족대표 장동원씨가 시민들이 직접 서명을 받아 전달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 용지를 받아 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고 유예은 학생의 아버지이자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지난 5월 22일 이렇게 슬픔을 털어놨습니다.
"가족들의 요청은 '그저 빨리 꺼내 달라'는 것이었는데…. (중략) 아이들을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을 빨리 내서 꺼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결국 4~5일 만에 해경 스스로 실토했습니다. 구조 책임을 맡은 지휘 장교가 '사실 우리 해경은 능력이 없습니다, 방법을 모릅니다, 장비도 없습니다'라고 저에게 직접 말했습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을)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그 아이가 마지막 순간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과정과 고통을 겪으며 세상을 떠났는지, 보지 않았지만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관련기사 : "4층 복도서 죽은 내딸... 중요한 단서, 세월호 참사 잊지 않겠다 말해주세요")
유경근 대변인은 우리 모두를 향해 호소합니다.
"과연 우리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저는 공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상황이고 마음인지 내 것으로 알고 공감할 때 진정한 처방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공감한다고 말하고 눈물도 흘려줬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담화가 발표되는 그 시간, 진도에 있는 가족들은 목을 놓아 통곡했습니다. 그래도 대통령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버려졌구나, 우리는 다 잊혀졌구나….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세월호 참사는 이제 저희의 일이 아닙니다. 희생된 300여 명과 그 가족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이제 모든 국민의 일이 되었습니다."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을 제안했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6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단체의 농성장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금의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생명과 안전보다 돈과 이윤을 우선시하는 각종 정책의 담당자였고 주도자였다"라면서 "박 대통령이 적폐의 일부였고, 정치적 책임은 당연하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이날 함께 자리에 있었던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역시 "1차적 책임은 직접적 당사자인 선장과 해양수산부, 해경이 사법적 절차를 거치면 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적 책임이 없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관련기사 :조국 "청와대 교신기록, 세월호 참사의 '판도라 상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참사를 자신들의 정치적 행보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정부·새누리당, 세월호 참사 당시 미흡한 대처로 고귀한 생명을 잃게 했다는 비판을 받는 해경 그리고 유가족을 보호하기는커녕 미행하며 감시했던 경찰들.
이제 국민들은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자 오는 10일 청와대를 향해 행진합니다. 저들이 정치적 눈속임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잊게 만들려는 시도를 할 수는 있어도, 국민들은 결코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6월 10일,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시길 부탁합니다.
2014년 6월 9일 현재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사망자는 292명, 실종자는 12명입니다.
Posted: June 9, 2014 at 8:35 pm
Updated: June 9, 2014 at 8:52 pm
외신, 한울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 가동중단 보도
-세월호 다음은 핵발전소? 제어봉 고장 이유
-조작된 가짜 안전 증명서, 원전 수명 연장 등 여전히 국민 안전 외면
외신이 한국의 한울 원전 1호기 가동중단사실을 보도하고 나섰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관피아들의 부정과 한국 정부와 관리들의 안전불감증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원정가동 중단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RT는 9일 ‘Nuclear reactor shut down in S. Korea after rod malfunction-제어봉 고장 후 한국 핵원자로 작동중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울원전 1호기의 가동 중단 사실을 전하면서 이로서 한국의 원전 23개 중 5개가 가동을 중단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는 정확하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원자로 중단의 원인은 제어봉이 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들어 원전이 계획 예방정비 목적 이외에 고장 등으로 가동을 멈춘 것은 1월29일 경북 울진군 한울 5호기, 2월28일 전남 영광군 한빛 2호기, 3월15일 경북 경주시 월성 3호기에 이어 네 번째다. 현재 가동중단 중인 5개의 원전 중 이번에 중단된 한울 1호기 외에 다른 3개는 정기 보수를 위해,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원전은 설계 30년을 앞두고 면허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이 외신은 보도했다.
한국이 2020년까지 두기의 원자로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보도한 이 기사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대참사에 이후, 그리고 조작된 서류와 함께 공급된 장비를 두고 벌어졌던 국가원자력안전 스캔들 후에 한국은 원래의 계획인 2030년까지 총 전력의 41% 의존도에서 2035년까지 총공급의 29%로 원자력 의존도를 감소시키는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RT는 그러나 한국의 원자력 감시단체는 가짜 안전 증명서가 더 있는지 찾아내기 위해, 2008년 이후 공인되었거나 외국 회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원자로 부품에 대해 정밀 검사를 확대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설계수명 3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이의 연장을 위해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원전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한국에서는 고리 1호기가 수명연장 30년을 넘어 37년째 가동되고 있으며 잦은 고장과 중단으로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지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 때도 폭발한 1,2,3,4호기는 모두 수명 30년을 넘긴 노후화된 원전이어서 불안감은 더욱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후쿠시마에는 총 10기의 원전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 네개의 원전만 폭발한 것은 원전의 노후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설계수명이 30년이 넘지 않은 원전들은 폭발하지 않았지만, 30년 이상이 된 네개의 원전만 폭발한 데서 알 수 있다.(후쿠시마원전1호기: 40년 2호기: 37년 3호기: 35년 4호기: 33년)
현재 한국에는 설계수명이 완료된 원전은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두기로 두 원전모두 수명이 30년으로 설계되었으며. 고리 1호기의 경우 이미 2008년도에 수명 연장하여 계속운전하고 있고 월성1호기는 2012년 수명 완료되어 현재 수명연장을 위한 스트레스테스트 등의 계속운전심사수순을 밟고 있다. 반핵 단체 및 원자력 감시단체 그리고 시민단체 등은 구 원전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한전 측은 전력수급을 이유로 가동을 강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월호 참사로 3백여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을 학살한 이 정권이 이제는 수백만, 아니 온 민족의 생명이 걸린 원전문제 마저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전에 러시아 투데이 (Russia Today)란 이름으로 알려진 RT는 2005년 러시아에 설립되었으며 케이블과 위성으로 전세계로 방송되고 있는 TV 네트워크이다. RT 네트워크는 아랍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로 방송되고 있으며 워싱턴 DC의 RT America를 비롯하여, 전 세계 19개국에 22개의 지국을 두고 있다. RT 네트워크는 100개국 이상에서 약 6억4천만명이 시청하고 있다.
Nuclear reactor shut down in S. Korea after rod malfunction
제어봉 고장 후 한국 핵원자로 작동중지
Published time: June 09, 2014 14:14
The Kori nuclear power plant in Busan, southeast of Seoul (Reuters/Kori Nuclear Power Plant)
서울 남동쪽 부산에 위치한 고리 원자력발전소
The world’s fifth-ranked in nuclear power generation shut down a reactor due to a control rod malfunction. This brings the number of offline reactors in South Korea to five.
원자력 발전량 세계 5위인 이 발전소는 제어봉 고장을 이유로 원자로를 작동중지했다. 이로써 작동하지 않는 한국의 원자로의 수가 5개가 됐다.
“We are looking into the exact cause of the shutdown,” the state-run nuclear utility Korea Hydro and Nuclear Power Co Ltd (KHNP) said.
“작동정지의 정확한 원인을 찾고 있다”고 국영 원자력 공사인 한국수력원자력공사(KHNP)는 말했다.
The spokesman said it was not known when the 950-megawatt Reactor No.1 at the Hanul Nuclear Power Plant, the Gyeongsangbuk-do province on the country’s eastern coast, would be restarted. The plant’s other five reactors remain operational so far.
대변인은 한국 동해안 쪽 경상북도에 위치한 한울 원자력발전소의 950 메가와트급 1호기의 원자로가 언제 재가동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발전소 내의 다른 5개의 원자로는 아직까지 작동 중이다.
The number of South Korean reactors offline now stands at five out of a total 23, which cover around one-third of the country’s electricity needs.
현재 작동이 정지된 원자로는 총 23개 중 5개로서, 이것은 전국 전기 수요의 약 1/3에 해당한다.
Three reactors are closed for scheduled maintenance and one is awaiting license approval after it passed its 30-year mark in November 2012, according to the nuclear operator, which is owned by state-run Korea Electric Power Corp (KEPCO).
국영 한국전력(KEPCO) 소유, 원자력 운영사에 따르면, 3개의 원자로는 정기보수를 위해서 정지됐고, 하나는 2012년 11월에 30년 기한을 넘기며, 면허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South Korea in January approved a $7 billion project to construct two nuclear reactors by 2020. The construction of Shin Kori Reactor Unit 5 and Shin Kori Reactor Unit 6 is scheduled for completion by December 2020.
한국은 지난 1월 2020년까지 두 기의 원자로를 건설하게 될 70억 달러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신고리 원자로 5호기와 신고리 원자로 6호기 건설은 2020년 12월까지 완공될 계획이다.
Following Japan’s Fukushima catastrophe in March 2011, and the country’s nuclear energy safety scandal over equipment supplied with forged documents, South Korea planned to decrease its reliance on nuclear power to 29 percent of total supply by 2035, down from an original plan of 41 percent by 2030.
2011년 3월 후쿠시마 대참사에 이후, 그리고 조작된 서류와 함께 납품된 장비를 두고 벌어졌던 국가원자력안전 스캔들 후에 한국은 원래의 계획인 2030년까지 총 전력의 41% 의존도에서 2035년까지 총공급의 29%로 원자력 의존도를 감소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The country’s nuclear watchdog also wants to expand its probe of reactor parts certified or made by foreign companies since 2008 to pin down other possible fake safety certificates.
한국의 원자력 감시단체는 가짜 안전 증명서가 더 있는지 찾아내기 위해, 2008년 이후 공인되었거나 외국 회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원자로 부품에 대해 정밀 검사를 확대하기를 원한다.
[번역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군사적으로 사활을 걸고 있다시피 한 것이 이른바 '미사일 방어체제(MD)' 구축이다. 한반도에 있어서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이는 넓게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된다.
하지만 북한은 물론 중국마저도 미국의 이러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에 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이 만약 한국이 이 MD 체제에 참가할 경우, 한중 관계의 악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남한 땅에 미국의 MD 시스템을 구축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국방부는 이러한 미국의 MD 체계에 참여할 의사나 계획이 없다는 점을 나름대로 초지일관하게 밝혀왔다. 국방부가 9일, 기자에게 보내온 이메일 공식 답변을 통해 이러한 논란에 관해 "우리는 미국 MD체계의 계획, 준비, 개발과정에 참여는 물론, 협의를 한 바도 없다"고 기존 국방부의 입장을 다시 강조한 것은 이를 잘 반증한다.
특히, 국방부는 이번 답변에서 "미국이 구상하는 MD체계는 미 본토 및 지역방어를 위해 상승-중간-종말단계로 구성된 다층방어체계"라며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는 한반도 짧은 종심을 고려된 것으로, 발사된 북한의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요격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종말 단계 하층 방어 위주의 미사일 방어체계"라고 서로 방어 차원이 다른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다시 말해 북한의 미사일 공격 등에 대한 대응은 미국이 추진하는 MD 참여가 아니라 자체적인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제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3일, "요격 고도가 40km 이상 되는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에 관해서도 해외 구매가 아니라 자체 국내 기술로 개발해 실전 배치하겠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힌 바 있다.
우리 국방부의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미국의 MD 체제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는 전혀 도입의 필요성이나 검토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즉, 한반도 특히, 남한 상공 방어는 고도 30~40㎞ 이하에서 KAMD의 핵심 요격수단이라 할 수 있는 패트리엇(PAC-3) 미사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보완할 L-SAM도 시간을 가지고 자체 개발로 실전 배치하면 된다는 것이다.
국방부, "미국 MD 편입,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정례브리핑에서도 "북한이나 또 다른 나라에서 미국 쪽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대한민국 상공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북쪽, 그러니까 사할린 위쪽으로, 알래스카 쪽으로 북극에 가까이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것을 우리 대한민국 인근에서 요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는 전 세계에 없다"며 우리가 미국의 MD에 편입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이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미국 정부, 특히 MD 체제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 국방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선 총대는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멨다.
그는 지날 3일 오전,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포럼 조찬 강연에서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측에서 (한국 배치를) 추진을 하는 부분이고 제가 또 개인적으로 (미국 군 당국에) 사드의 (한국) 전개에 대한 요청을 한 바 있다"고 발언했다.
한국 국방부가 필요도 없고 추진하지도 않겠다는 미국 MD 체계의 핵심인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국 전개를 한반도 군사 방위의 책임과 함께 실권을 쥐고 있는 한미연합사령관이 미 국방부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우리 국방부의 기존 입장이 머쓱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커티스 한미연합사령관이 다분히 한국 여론을 의식해 총대를 메기 전인 지난달 29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미 국방부가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고자 아시아에서 협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압박에 나섰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어 "한국에 향상된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전개하는 계획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밝혀 이미 커티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압박 의도를 예고했었다.
이 매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은 이미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기 위해 부지 조사도 실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은 사드를 일시적으로 주한미군에 배치한 뒤 한국이 이를 구입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한국이 이를 곧바로 구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미 국방부의 강력한 언론 플레이... 당황하는 우리 국방부
상황이 이렇게 되니 한국 국방부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특히,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3일) 정례브리핑에서 커티스 한미연합사령관의 언급과 관련하여 "(사드의 한국 전개에 대해) 아직 협조 요청이 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어 "주한 미군이 자체 방어용 무기를 가져온다는 것으로,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이 오면 정부 차원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이러한 발언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사드 불가라는 국방부의 기존 입장이 변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이에 미 국방부는 사드 한국 전개를 위한 압박을 더욱 본격화하였다. 이번에는 아예 미국 MD 정책의 실무 책임자인 페피노 드비아소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 정책국장이 5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 매체는 페피노 국장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박근혜 정부는 사드의 성능과 가격을 알기 위해 정보를 요청했으며, 록히드 마틴사의 패트리엇-3(Pac-3)와 함께 사드로 알려진 고고도 미사일방어 시스템에 관한 정보도 받았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MD 체계는 물론 이의 핵심인 사드는 전혀 검토 대상도 아니라는 한국 국방부의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내용을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 정책국장이 언론을 통해 밝힌 것이다. 한마디로 언론플레이를 이용해 압박의 직격탄을 우리 국방부로 날린 셈이다.
그런데 이에 관해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5일 오전 브리핑에서는 "(미국이) 그러한 것을 요청받은 바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오후에 입장 자료를 통해 "방위사업청이 지난해 5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의 핵심 체계인 패트리엇 PAC-3와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 개발을 위해 유사 무기 체계인 사드는 물론 이스라엘 '애로우'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바 있다"고 번복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와 더불어 "PAC-3 자료는 받았지만, 사드 자료는 받지 못했다"고 밝히며 국방부는 이것은 무기 개발을 위한 일반적인 자료 수집이지 사드 도입을 전제로 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방부의 이러한 입장 번복은 다소 볼썽사나운 꼴이 되고 말았다.
<한겨레>는 5일 자 보도에서 "'사드 협의한 바 없다'던 국방부 '이중플레이'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마저 6일 자 보도에서 '국방부, 부인했다가 뒤늦게 말 바꿔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국방부의 어정쩡한 태도를 비판했다.
미국방부, "보도내용은 미국방부 입장"... 우리 국방부의 다음 대응은?
미 국방부는 이러한 <블룸버그통신>의 보도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의에 지난 6일,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한 정확도에 관해 블룸버그통신 기자의 보도에 관해 어떠한 의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이메일로 공식 답변했다.
이에 기자가 "이 보도가 (미 국방부의 입장을 반영한) 정확하다고 보아도 되는가"라고 재차 질의하자 "그렇다"며 "그 기자는 국방부를 수년 동안 취재하고 있으며 괜찮은(good) 사람"이라고 답변하면서 기사의 정확도를 다시 강조했다. 즉, 미국 국방부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기사이고 국방부의 미사일 정책국장이 직접 나서서 인터뷰를 한 정확한 기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방부는 앞서 언급했듯이 9일, 기자에게 보내온 공식 답변을 통해 이러한 논란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미국의 한반도 내 THAAD 포대 배치 검토 여부는 공식적으로 알려온 바 없으며, 한 미간 협의한 바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우리는 미국 MD체계의 계획, 준비, 개발과정에 참여는 물론, 협의를 한 바도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논란 과정을 종합해 본다면, 혈맹이라고까지 불리는 한미 양국 국방부 사이에 상당한 엇박자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 참여는 그 실효성 여부를 떠나서라도 북한은 고사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강한 반발을 불려 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이른바 사드 체계를 갖춘 1개 포대 배치에만 2조 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가는 등 미국 MD 참여에 따른 국민 혈세 부담에 관한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은 미사일 방어체제(MD)에 한국을 편입시키기 위해 그 핵심이 되는 이른바 '사드'라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전개를 위해 더욱 거센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미 국방부의 강력한 압력 속에서 과연 우리 국방부가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으로 일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한미 간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이 '사드' 문제는 어쩌면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를 포함해 한국 국방부의 자주 국방력 강화와 이행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방부의 다음 대응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1987년에 6월 10일 9시에 방송됐던 'MBC 뉴스데스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1987년 6월 10일 MBC 뉴스데스크는 아홉시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전두환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오늘 열린 제 4차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대표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라는 앵커의 설명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땡전 뉴스'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유래됐습니다. 아홉시라는 시간을 알려주는 땡 소리와 함께 항상 전두환의 근황을 먼저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1987년 6월 10일 MBC 뉴스데스크의 주요 뉴스는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 대표가 선출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노태우가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1987년 6월10일, 대한민국 국민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1987년 6월 10일 열릴 예정이었던 '6.10대회' 행사장 입장을 막기 위해 160개 중대 2만 2,000명의 경찰이 행사장 주변과 거리에 배치됐습니다.
행사장 입장이 가로막힌 시민들은 오후 1시부터 거리로 나왔고, 서울 시내를 비롯한 전국 18개 도시에 시민 24만여 명은 가두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날 학생과 시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민주'라는 노래를 부르며 '호헌철폐,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쳤고, 서울,부산을 비롯하여 마산과 대구, 포항과 울산, 안동, 경주, 광주, 전주, 대전, 청주와 천안, 춘천과 목포, 군산, 인천 등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재임 중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 날, 수십만 명의 시민들은 왜 거리로 나와 시위를 했을까요?
1987년 1월 13일 자정에 서울대생 박종철이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연행됩니다. 이들이 박종철을 연행한 이유는 수배 중이던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밤새 고문을 받던 박종철은 14일 오전 11시 45분 물고문 도중 남영분실 509호실에서 사망합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는 14일 오전 6시 40분 연행, 오전 11시 45분 사망으로 발표됨)
박종철이 사망하자,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초등학생도 믿지 못할 내용을 사건 브리핑이라고 내놓았습니다.
물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민당과 재야단체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미사에서 '치안감 박처원,경정 유정방,박원택' 등 대공 간부들이 사건을 축소 조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재야단체와 시민들은 5월23일 '박종철군 국민추도'를 '박종철군 고문살인은폐조작'으로 바꾸고 6월 10일에 규탄대회를 열기로 했고, 이날 전국 22개 도시마다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6월 10일 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호헌 철폐'를 외친 이유가 있습니다. 박종철을 고문 살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두환 군부독재가 만들어 놓은 대통령 간접선출이라는 헌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위해 만들어 놓은 대통령 간접선거는 말 그대로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아닌 대리인들이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박정희 유신헌법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방식이라면 전두환 신군부 헌법은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해 대통령을 뽑습니다. 문제는 총선거인단 5,277명 중에 민정당 소속이 3,675명이었고 무소속 1,123명도 대부분 전두환을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1981년 12대 대통령 선거 기준)
전두환이 밝힌 '4.13 호헌조치'는 말 그대로 기존 헌법에 따라 체육관 선거를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럴 경우, 당연히 민정당 노태우 대표가 당선될 확률이 90% 이상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면 당선될 후보라서 그런지, 1987년 6월 10일 MBC 뉴스데스크는 노태우 후보에 대한 영상을 대통령 당선인급으로 보도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어떤 사람인가] ● 나레이션: 국민은 신뢰를 먹고 삽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국민의 신뢰 속에 살아야 합니다. 안정은 기초며 바탕입니다. 이 바탕위에서 목적을 추구해야 합니다. 안정은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갈등은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대화하는 자, 타협하는 자는 비겁자가 아닙니다.
[노태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은사 및 동창들의 이야기] ● 앵커: 부드러움과 결단력을 갖춘 사람, 참을성이 많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 사람 또는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 이런 얘기들을 지금 많이 합니다만 노 후보와 오랜 시절을 함께 보낸 은사, 동창 등 주변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서 한 번 보죠.
[대구시 신용동, 노태우 후보의 생가] ● 기자: 대구시 동구 신용동 596번지, 이 집이 바로 민정당 노태우 차기 대통령 후보가 태어난 생가입니다. 통일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의 수도장으로 알려진 팔공산 기슭에 자리 잡은 노 대표의 생가인 신용동 마을은 여느 산촌과 마찬가지로 집 앞에는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녹음이 우거져 있습니다.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인물을 가리켜 '신뢰'를 말합니다. 상관을 총칼로 위협했던 자를 '부드러움'을 갖춘 사람이라고 합니다.
찬양과 칭찬을 하다가 이제 통일신라 시대 김유신 장군을 끌어다가 위인전에 나오는 영웅으로 둔갑시킵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은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후에 열린 시위 도중 직격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사경을 헤맵니다.
젊은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MBC 정병수 해설위원은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의 대통령 후보 선출이 '평화적 정부이양의 전통의 수립'이라 칭찬하며, 이는 '민주주의 발전의 요체라고 하는 전두환 대통령의 신념과 의지가 실천된 것이다'라며 군부독재자 전두환을 찬양했습니다.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갈 이 땅의 젊은이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죽음으로 몰고 갔는데도 전두환과 노태우는 샴페인을 마시며 손뼉을 치고 축하를 하고 있었습니다.
1987년 6월 10일 수십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우리의 소원은 민주'라는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더는 대한민국의 아까운 젊은이들이 물고문과 최루탄에 맞아 죽지 않게 만들겠다며 그들은 잔인한 경찰의 진압봉과 최루탄에 맞섰습니다.
6.10을 민주항쟁이라 부릅니다. 4.19혁명처럼 혁명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를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6월 항쟁을 혁명이라 부르지 못하고, 절반의 승리가 된 까닭이 분열과 기회주의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국민의 잘못이 아니라 지도자의 잘못이라고 합니다.
군사독재와 결탁했던 수구언론이 그들 세력을 대변하는 막강한 권력으로 다시 등장하도록 허용했습니다.
무능과 부정부패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군사독재의 잔재들이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는데도 민주세력은 패배주의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6.10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 전문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던 6.10민주항쟁 기념사를 2014년에 들어도 시대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여전히 6월 항쟁이 절반의 승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나머지 절반의 승리를 완수해야 할 역사의 부채가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앞서 대한민국이 똥통도 아닌데 왜 더럽고 위험하고 게다가 비싼 핵발전소를 자꾸 짓느냐 했다(관련기사 : 세월호 침몰사고 악몽 위태위태... 경주가 무섭다). 돋보기를 들이대면 그 똥통의 중심은 원전이 건설되는 지역이다.
핵발전소의 둥근 원자로 지붕이 보이는 곳은 아예 부동산 거래가 되지 않는다. 땅값도 바닥이다. 원자로가 보이지 않더라도 반경 5㎞ 이내는 거의 다 그렇다고 한다. 땅이고 집이고 살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핵발전소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그래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주민들이 한국수력원자력에 집단이주를 요구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경주 월성 인근주민도, 부산 고리 인근주민도 모두 오랜 세월 집단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부산시청에서 겨우 25㎞ 거리에 고리원전이 있다. 고리 1~4호기, 신고리 1~4호기가 있고, 신고리 5, 6호기가 추후 지어질 예정이다. 한 곳에 10기의 원자로를 배치하는 경우는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다.
고리원전은 행정구역상 부산시 장안읍과 울산시 울주군의 경계지역에 있다. 두 지역의 경계에 있는 까닭도 원전이 혐오시설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목소리를 지역별로 분산시킬 수 있는 장소, 비교적 약자들이 모여 사는 장소를 찾는 것이다. 또 인구가 많고 나름의 여론파워도 있는 도시민들에게는 멀리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하므로 지역의 경계에 자리한다.
그럼 그런 핵발전소나 방폐장을 왜 해당 지역민들이 수용한 것일까? 그냥 수용한 것이 아니다. 전국의 많은 지역주민들이 1987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오랜 세월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쳐왔다. 덕분에 전국적으로 핵폐기장이나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 선정은 10년 이상 계속해서 표류했다. 그러자 정부와 핵산업계는 2000년대 들어 추진전략을 바꾼다. 기존의 부지에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하는 방식을 취했고, 더불어 특별법을 제정, 지원금을 준다는 명목으로 지역 간 경쟁을 유도했다. 한마디로 돈을 풀어 찬성을 유도했다는 뜻이다.
핵발전소·방폐장 수용으로 받는 돈, 주민과는 멀어
경주 방사능폐기물처리장의 부지선정은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핵발전소나 방폐장의 본질은 사라지고 지원금 규모만 도드라져 지역 간 경쟁이 촉발됐고, 결국 경주 시민들의 찬성 속에 유치가 성사됐다. 경주시민들은 어차피 원전 안고 사는 마당에 방폐장 곁들이는 셈 친 것이다. 그리하여 방폐장 수용을 통해 경주시민들이 얻어낸 것은 특별지원금 3천억원과 한수원 본사 경주 이전이다. 그것으로 경주가 부자가 됐을까? 그리고 앞으로 부자가 될까? 현지 주민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지원금의 대부분은 사실상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대부분이 사회간접자본투자, SOC사업에 쓰이기 때문이다. 도로 놓고, 다리 놓고 하는 일에 쓰이니 시민들은 3000억 원이라는 돈의 효용을 직접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돈이 쓰이는 곳도 어차피 다 도시계획상에 있는 사업이다. 다시 말해 지원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국가예산으로 추진될 사업이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방폐장 수용의 대가나 핵발전소 수용의 대가가 '맛도 없는 음식을 다른 지역사람보다 조금 일찍 먹는 것'뿐인 셈이다. 지원금의 혜택을 느끼지 못하는 시민들의 심리를 우려하여 경주시는 도로 건설현장에 '방폐장 특별지원금이 이렇게 쓰입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2010년 하기로 했지만 기한을 넘겨 2015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본사 이전은 경주시민이 수혜를 누리기도 전에 지역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 시내권과 방폐장이 입지지역 사이에 이전 장소를 두고 심각한 갈등이 야기된 것이다. 이는 지역의 정치가들이 부추긴 측면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지역공동체는 해체되고 주민들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이 깊은 상처를 입었다.
본사 이전으로 경주에는 1000명 정도의 인구가 유입된다. 1000명의 인구유입이 방폐장 수용이 가져다줄 폐해를 상회할 만한 대가를 가져다 줄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온 지자체가 대기업 유치를 무슨 로또처럼 떠들지만 사실상 그것으로 서민들이 대단한 수혜를 누렸다는 소리는 일찍이 들어본 바가 없다.
돈 갖고 작업하는 한국수력원자력
▲ 고리원전 인근에 살고 있는 서용화 씨 서용화 씨는 어쩔 수 없이 살고 있지만 자식들은 절대로 들어와 살지 못하도록 당부한다. 그는 원전은 짓지 않는 게 답이라고 했다.
이는 고리원전 주변도 마찬가지다. 발전량에 따른 기금(1kw당 0.25원)을 적립해 매년 200억 원 가량이 지원되지만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고리원전이 보이는 월내리에서 횟집을 하고 있는 서용화씨는 고리원전으로 주민혜택이 많겠다고 묻자 이렇게 반문했다.
"지원금으로 회관이니, 복지관이니 짓고 방파제 만들고 하지만 우린 달갑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도 예산 써서 해주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다 쪼개져서 쓰이니 어디에 돈이 쓰이는지 느낌이 없습니다. 차라리 그 돈 모아서 주민들 통장에 직접 꽂아주면 모를까."
지원금이 주민의 소득증대나 복지와는 거리가 먼 곳에 주로 쓰인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원전지원금 중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직접 집행하는 사업자지원금이 있다. 사업자지원금은 사용처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문제가 되곤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한수원이 집행한 원전지원금 중 250억 원이 주변지역의 유령업체에게 부당하게 지급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니 눈 먼 돈들이 많은 셈이다. 서용화씨는 사정이 이러니 지역의 단체들이 행사가 있을 때면 일삼아 원전에 가서 손을 내미는 상황이라고 했다.
"부녀회, 노인회, 어버이날, 운동회, 때마다 행사 있으면 단체들이 (한수원에)가서 지원을 요청해요. 그러면 경품이나 교통편 지원을 해주죠. 하지만 이런 건 타 지역의 큰 기업들도 다 하는 거죠. 그렇게 돈 주고받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한수원은 자잘한 돈을 일삼아 풀고, 주민들은 그 돈을 수시로 타서 쓴다. 그렇게 돈을 받으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우리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눈 먼 돈이라 주민들 사이 이런저런 횡령과 유용도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엔 원전지원금을 가로챈 전 마을이장 등이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돈 때문에 지역이 무척이나 지저분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결국 법에 근거한 원전지원금이라지만 이는 핵발전소 추진세력의 참으로 값싸고도 손쉬운 전략인 것이다. 고리원전과 가장 가까운 길천리에 사는 박갑용씨도 이렇게 전했다.
"한수원에서 돈 갖고 작업하는 겁니다. 그런 게 지역정서를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당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삼척, 영덕 주민들에게... "다 속는 겁니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혜택 대신, 인근주민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실로 많다. 아니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삶의 근본이 뽑혀나간다. 사람이 떠나가고 생계가 곤란해지고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이다. 경주 월성원전 인근의 유재호(가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바다지만 원전이 들어서면서 어업에 종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주민들은 바다에 대해 폐업보상을 받은 이후로는 어떤 어업행위도 하지 못합니다. 그럼 농업은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죠. 원전부지가 확대되면서 논밭도 다 잠식됐습니다. 게다가 혐오시설물 근처에서 생산된 농산물이라고 잘 팔리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월성이나 고리나 공통되는 점이다. 앞서 서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 어업과 농업으로 먹고 살았는데 원전 들어오면서는 그렇게 살지를 못합니다. 대신 자영업자가 늘었죠. 하지만 그것도 '반짝'입니다. 원전 건설기간에는 대출받아서 가게 열고 했는데, 건설이 끝나면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죠. 그래서 빈집, 빈 상가가 속수무책으로 늘어납니다. 그래도 원전 근로자들 회식에 기대 근근이 지내오기도 했는데, 원전비리가 터지면서는 그마저도 확 줄었습니다. 이곳 경기는 앞으로도 계속 침체되는 일만 남았어요."
아닌 게 아니라, 인근 가게들을 봐도 손님이랄 게 없었다. 관광지도 아니고, 유동인구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을 터였다. 서씨의 횟집에도 3시간 내내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인근에 집을 짓기 위한 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나면서 감히 집 지을 생각을 못하고 있다. 원전사고의 공포도 공포지만, 집을 지어놔도 재산으로 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들에게도 이곳에 들어와 살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한단다.
서씨는 시간이 좀 지나 가계가 안정되면 월내리를 아예 떠날 생각이다. 그의 집안은 350년째 고리와 길천리에 살았다. 하지만 그는 보상도 상관없이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이 보이니 늘 평소에는 잊고 살죠.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섬뜩섬뜩합니다. 지금껏 살아온 건 뭐고 앞으로도 여기서 살아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무너져 내려요. 다른 말 다 필요 없습니다. 원전은 안 짓는 게 최고입니다."
원래 살던 대로 살 수도 없고, 새롭게 먹고 살 길을 찾을 수도 없는 지경, 그것이 원전 인근주민들이 처한 삶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늘 핵폭탄보다도 수백, 수천 배 더한 위험시설물을 머리맡에 두고 잠든다. 그런 불안한 일상이 그들의 몫이다. 서씨에게 새로이 원전이 들어설 삼척과 영덕 주민들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 물었다.
"그게 다 속는 겁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혜택을 준다고 해도 잃는 게 훨씬 크고 많습니다. 생활기반을 다 잃어버리는데요. 게다가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살 곳이 못 돼" 집단이주 요구하는 주민들
▲ 고리원전 인근 지역에 걸린 현수막 월성원전이든, 고리원전이든 원전 인근지역 주민들은 오랜 세월 집단이주를 요구해오고 있다.
고리원전 1~4호기가 보이는 부산 장안읍 길천리는 핵발전소와 바로 붙어 있다. 세계적으로 마을과 이렇게 인접해 있는 핵발전소는 유례가 없다고 한다. 길천리 900여 세대는 지금 20년 넘게 한수원에 집단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전 이장이자, 고리민간환경감시기구 위원인 박갑용씨가 대뜸 전하는 이야기가 2010년 한수원 본부장이 집단이주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주를 약속하는 각서를 쓰고, 이후 합리적인 이주방안 도출을 위한 용역도 실시했지만 한수원의 말이 자꾸 바뀐다고 했다.
"용역 결과가 애매모호했지요. 해석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여지는 결과였어요. 결국 하나마나한 용역이었습니다. 용역을 실시했던 연구진이 용역비도 안 받고 우린 모른다며 도망갔을 정도예요."
길천리에는 집단이주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거리마다 펄럭인다. 그런 마당에 내 고장이라고 마음 붙이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민들의 마음이 떠난 곳, 그리하여 월성이든, 고리든 원전 인근지역은 황폐하다는 느낌을 준다. 투자가 없으니 건물은 낡았고 상가도 손님이 별로 없어 썰렁하기만 하다. 돈 주고 음식을 사먹으면서도 이게 괜찮을까 찝찝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새로 짓는 신고리 3, 4호기 원전은 원자로 높이만 70m에 달하고, 원전 주위로는 거대한 송전탑이 수백 개 늘어서 있는 상태다. 과연 을씨년스런 풍경으로 최고라 할 만하다. 원전은 자꾸 팽창하면서 주변을 잠식해가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원전에 밀리고 짓눌린 채로 살아간다. 고리원전이 처음 들어설 때 그곳에 살다가 이주한 사람 중 일부는 이번 신고리 추가건설로 또다시 이주를 해야 하는 기막힌 사례도 있다.
▲ 고리원전 인근의 송전탑 고리원전 인근은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최고라 할 만하다. 수없이 늘어선 송전탑과 전선이 말문을 막히게 한다.
고리1호기는 현재 설계수명 30년을 완료하고 수명연장이 이뤄져 36년째 가동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이어서 고장이 잦다. 부산 반핵시민대책위원회의 정수희 씨는 핵발전소 사고의 절반은 부산 고리에 있는 원전에서 일어나며, 그 중 또 반은 고리1호기에서 발생한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고리1호기는 2012년 2월, 전력공급이 중단되면서 냉각기능이 12분간 상실되는 심각한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사고는 한 달간 조직적으로 은폐되다가 원전 작업자들이 음식점에서 대화하는 것을 한 시의원이 우연히 들으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사고에서부터 은폐까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스토리다.
이런 와중에도 한수원은 고리1호기의 재연장까지 고려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산시장 후보로 나섰던 이들이 수위는 다르지만 모두 고리1호기의 폐로를 주장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서병수 당선인은 연장수명이 완료되는 2017년 폐로를, 야권 단일 후보였던 무소속 오거돈 후보는 안전진단 후 문제시 즉각 폐로를 말했다. 오거돈 후보는 신고리 5,6호기 건설계획의 전면철회도 주장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광역단체장조차 원전 폐로나 건설에 관해 어떠한 권한도 없다. 결국 우리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통로는 전혀 보장돼 있지 않은 것이다.
앞서 박갑용씨도 고리1호기 가동에 의문을 표했다.
"고리1호기가 대한민국 전력의 1%를 생산합니다. 그런데 압력용기 점검결과 다른 발전소보다 상당히 안 좋다고 나와요. 그런데 그걸 왜 계속 가동하려고 하는지 발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안전할 때 폐로하라는 겁니다."
불안감, 박탈감, 불신감에 고향 버리는 사람들
▲ 고리원전 인근 길천리에 사는 박갑용씨 길천리 주민은 20년 넘게 집단이주를 요구해오고 있다. 박갑용씨의 모친은 원전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박씨는 원전인근 주민으로 사는 것에 대해 세 가지를 말했다. 불안감, 박탈감, 불신감이 그것이다. 고리에 살다 길천리로 이주해 와 사는 그의 모친도 '후쿠시마 보고나니 고향도 싫고 다 싫다'고 했다. 모친은 멀리 원전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게 마지막 소원이다. 나이든 어르신께 고향 싫다는 말을 듣기는 처음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우리의 고향과 산하를 저렇게 감당 못할 위험에 빠뜨릴 것인지 묻는다. 내 고향과 가까운 울진에도 원전이 들어선다. 나는 내 고향을 그렇게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한 산과 또랑, 개구리와 뽕나무, 그리고 온갖 추억이 있는 그곳을 똥통에 빠뜨리고는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월성원전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이 말한다.
"우리에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 세대만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자식들에게도 물려줄 수가 없습니다. 위험하고 살 길도 없는데 그나마 있는 집 때문에 자식들도 이곳에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왜 우리가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질문이 손톱 밑 가시처럼 아프다. 이제 그가 던지는 질문에 우리 모두가 대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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