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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국주의는 파멸뿐이다”

 

북, 일본 무주고혼 신세 면치 못 할 것
 
“일본의 군국주의는 파멸뿐이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6/13 [08:38] 최종편집: ⓒ 자주민보
 
 

조선은 일본의 보수 우경화가 가속화 하고 있는 가운데 “조국땅을 어지럽히는 침략자들, 기지를 제공해주고 전쟁 물자를 보급하는 하수인들은 무주고혼의 신세를 면할 수 없다.”며 파멸을 예고했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논평을 통해 “일본이 세계여론의 말밥에 자주 오르고 있다.”며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군국주의적 망동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서 군국주의를 고취하는 움직임들이 어제오늘에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군국주의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이후 미국의 비호밑에 그 독초는 재생과 복수의 뿌리를 일본 땅에 내리기 시작하였다.”고 밝혔다.

로동신문은 “그러나 군국주의적 행위들이 지금과 같이 공개적으로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히스테리 발작증을 일으키며 광란적으로 감행된 적은 없었다.”면서 “최근에 자민당에 의해 군사개혁안이라는 것이 작성되었다. 여기에는 《적국》의 공격이 있기 전에 먼저 공격할 수 있도록 《자위대》의 선제공격능력을 높이는 문제,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부대창설, 미사일방위체계의 능력제고 등이 포함되어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위대》명칭을 바꾸고 집단적자위권행사를 용인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거”라고 지적했다.

이신문은 “이전에는 감히 입밖에 내지 못하던 선제 공격론을 공개적으로 제창하며 헌법 개정을 정당화하는 것을 보면 일본반동들이 얼마나 오만해지고 무분별해졌는가 하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다.”며 “선제공격으로 지난 세기 이루지 못한 아시아지배야망을 기어이 실현하려는 것은 일본반동들의 변함없는 기도이다. 패망 후 무장해제당한 일본의 모든 정책은 여기에 복종되어왔다.”고 경계했다.

신문은 “이른바 《자위》의 미명하에 얼마 안 되는 무력으로 창설된 《자위대》가 현 시기 병력수나 군사장비수준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정도로 된 사실이 그것을 입증해준다.”며 “미국신문 《로스엔젤스 타임스》는 《일본은 이미 대규모적이며 현대적인 무력의 구성요소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일본은 태평양지역에서 미국 다음가는 최대의 해상무력을 가지고 있으며 육상〈자위대〉의 병력수는 영국의 육군과 해병대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까밝혔다.”고 고발했다.

또한 “군사개혁안에서 일본《자위대》의 선제공격을 법(제)화할 목적 밑에 헌법 개정을 전제로 내세운 것만 보아도 그렇다.”며 “194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본의 현행헌법 제9조에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전쟁이나 무력행사를 포기하며 륙, 해, 공군 및 기타의 전투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밝혀져 있다. 사실상 일본반동정부는 지난 시기 《자위대》가 군대라는 인상을 풍기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의 이름을 붙이고 군사등급도 소위, 중위, 대위를 《3위》, 《2위》, 《1위》라는 식으로 불러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전쟁준비를 끝낸 지금에 와서 일본지배층의 사고관점은 달라졌다. 그들은 거치장 스러운 헌법의 고삐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면서 “ 《자위대》의 명칭변경, 집단적자위권합법화책동은 저들무력이 전쟁수행, 재침행위를 할 수 있는 법적권한을 가지게 하기위한 움직임이다. 일본반동들이 미국의 해병대와 같이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부대창설을 추구하는 것도 섬나라의 지리적 환경에 맞게 특수무력을 내오고 그 작전능력을 높여 다른 나라들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이라는 것은 초보적인 군사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고 유의했다.

아울러 “해외침략야망에 들뜬 현 집권세력은 《평화헌법》을 완전히 매장해버리고 전쟁헌법을 조작하여 일본을 전쟁국가로 만들어 다른 나라들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하려고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며 “일본지배층이 미국을 등에 업고 《자위대》의 기동타격력과 작전능력을 고도로 높이기 위한 무장장비의 현대화와 첨단화, 우주군사화에 이르기까지 각 방면에 걸쳐 군국화에 박차를 가하고있는 것은 그들의 선제 공격론이 이론상의 문제이거나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실증해주고 있다. 재침은 현 일본의 국시로 되었다.”고 폭로했다.

로동신문은 “더욱이 스쳐보낼 수 없는 것은 일본반동들이 저들의 군사적 망동에 대해 우리의 《핵 및 미사일개발》을 거들며 《위협》에 따르는 안전조치로 합리화하는 것”이라며 “지금껏 세계는 일본의 허구적인 《위협》타령을 한두번만 들어오지 않았다. 걸핏하면 주변나라들이 하는 정상적인 일들을 놓고 《위협》이라고 떠들어대는 일본반동들이다. 저들은 탄도미사일기술로 167개의 위성을 쏘아올리고도 우리의 위성발사를 《위협》이라고 우겨대는 일본반동들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라고 비난했다.

신문 논평은 “위협에 대하여 구태여 논한다면 우리나라(조선)를 비롯한 일본의 주변나라들이 해야 할 소리”라며 “20세기 전반기 아시아대륙에 스며있는 일제의 침략역사를 논할 필요는 없다. 패망 후 일본집권세력은 대미추종에 환장이 된 나머지 일본이라는 땅덩어리를 통째로 미국의 아시아침략의 핵전초기지, 전방기지로 내맡기고 재무장, 재침책동에 미쳐 날뛰었다. 지금 일본과 가까운 조선반도주변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남조선강점 미군과 남조선군, 주일미군이 참가하는 핵전쟁연습들에 일본《자위대》가 끼어들어 맞장구를 치고 있다. 이것은 이 지역에서 진짜위협의 근원이 어데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거듭 고발했다.

논평은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우리 공화국을 아시아재침에서 첫 번째 타격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허나 일본은 부질없는 망상을 하고 있다. 일본이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남의 땅을 강탈하고 지배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 지난 세기 50년대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가담하였던 일본반동들이 그때에는 살아 돌아 갈 수 있었고 황금의 소낙비를 맞을 수 있었다. 단언하건대 그런 요행은 다시는 없다. 두 번 다시 사랑하는 우리의 조국땅을 어지럽히는 침략자들, 기지를 제공해주고 전쟁 물자를 보급하는 하수인들은 무주고혼의 신세를 면할 수 없다.”며 “이것은 재침열기로 요동치는 섬나라, 과신에 빠진 군국주의일본의 운명”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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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들과 함께하는 출가학교

멘토들과 함께하는 출가학교

 
조현 2013. 06. 12
조회수 82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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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멘토들과 함께하는 조계종 청년 출가학교 

 

 

 조계종 교육원이 땅끝마을인 전남 해남 달마산 미황사에서 8박9일간 ‘청년 출가학교’를 연다. 6월30일부터 7월8일까지다.

 

 일주일간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삶과 세상을 통찰하거나 출가를 고려하는 20대가 대상이다. 청년출가학교는 처음 개설된 지난해 40명 모집에 270여명이 지원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조계종 교육부장 법인 스님을 비롯해 가섭·금강·원영 스님 등이 이끄는 이번 출가학교에선 청춘의 멘토들이 강사로 나선다. <에스비에스>(SBS) ‘힐링캠프’를 통해 최근 널리 알려진 방송인 비구니 정목 스님과 생명평화운동가 도법 스님, 철학자 조성택·강신주,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 등이다.

 

 참가자들은 참선과 산행, 예불, 발우공양, 108배, 간경, 염불을 직접 체험하면서 지도 스님과 상담을 할 수 있다. 참가비는 9만원이다. buddhism.or.kr, (02)2011-1803.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조계종 교육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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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표준', 실패한 MB 5년 답습하나

[정욱식 칼럼] 소모적인 '격(格)' 논란, 언제까지 할 것인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12 오전 11:13:40

 

 

오늘(12일)로 예정되었던 남북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격(格)'을 둘러싼 기싸움에 끝내 무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이로써 남북대화를 통해 개성공단 정상화와 이산가족 상봉 등 시급한 현안 해결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당분간 회담 무산을 둘러싼 남북한의 책임 공방이 난무하게 될 전망이다. 남북대화를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대결에서 대화로 반전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불확실성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11일 남측은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북측은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각각 수석대표로 하는 5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선정해 서로 통보했다. 그러나 북측은 남측 수석대표의 급을 문제 삼으면서 대표단의 서울 파견을 보류한다고 통보해왔다. 북한은 이러한 결정 배경에 대해 남한이 수석대표를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교체한 것은 "남북당국회담에 대한 우롱이고 실무접촉에 대한 왜곡으로서 엄중한 도발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남한에 전달했다.
 

▲ 남북 수석 대표의 격 차이로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 설치된 회담장이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단 남북대화에 대한 북한의 관성과 남한의 새 틀 짜기 시도 사이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관례적으로 남북장관급 회담의 북측 대표로 내각 참사를 내세웠었고, 이번에도 비슷한 급에 해당하는 조평통 서기국장을 수석대표로 통보해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통일부 장관의 북측 상대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정하고는 실무회담에서 북한을 설득하려고 했다. 북한이 관례에 맞지 않는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자, 박근혜 정부는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통보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대표단 파견 보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회담 개최를 하루 앞두고 보류 결정을 내린 북한의 경직되고도 일방적인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성급한 과욕과 비실용적 태도 역시 상황을 꼬이게 만들었다. 정부로서는 북측 대표의 격이 남측 장관과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북측에 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남측이 대표의 급을 낮춰 북한에 회담 무산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 품격 있는 태도가 아니다. 6월 6일 북한의 회담 제의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장관급 회담 제안으로 화답했던 태도와도 맞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내에서는 과거 남북 장관급 회담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강하다. 북한이 남한의 통일부 장관과는 격이 맞지 않은 인사들을 내보낸 것은 남한을 대등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격이 맞는 인사라고 판단하고 있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내각이 아니라 당 소속 인사다. 또한 대남 기구인 조평통의 위원장도 공석 상태이다. 근본적으로 남한은 선거에 의해 정기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장관도 수시로 바뀌지만 당 국가체제인 북한에서 주요 간부는 종신직에 가깝다.

이러한 체제의 차이를 간과한 채, 또한 지금까지의 남북회담의 관례마저 무시하고 하루아침에 남북대화에 '국제 표준'을 만들어보겠다는 시도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청와대 인사들은 '원칙', '국제 표준', '신뢰'라는 표현을 남발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썼던 표현이 현 정부 들어서도 재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도 MB의 실패한 5년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번 일이 과도기적 진통으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일단 당국간 접촉이 재개되더라도 '누구를 수석대표로 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무엇보다도 남북 양측에서 강경론이 부상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전격적으로 대화 제의에 나섰던 북한 내에서도 이번 일을 거치면서 또 다시 대화파의 입지가 줄고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표현 뒤에는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일방적이고 강경한 사고가 똬리를 틀고 있다. 대화와 협상의 법칙을 박근혜식 표준에 맞추겠다는 접근법을 고수하면서 과연 제대로 된 신뢰가 구축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는 군 장성 출신들이 통일외교안보정책의 실세로 군림하면서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박근혜 정부의 품격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고령의 이산가족과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그리고 강원도 고성 주민 등 남북 대결과 갈등의 최대 피해자들이 이번 남북대화에 품었을 절박한 기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었다면 북측 대표의 격에 이토록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라도 자의적 표준에 집착하지 말고 문제 해결 지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하루빨리 실무회담을 재개해 무산 위기에 처한 남북대화 프로세스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회담의 격을 총리로 높여 소모적인 '격'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실질적인 대화 틀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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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기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특질과 전망

 

종식으로 향하는 북미대결전
 
<분석과전망>현 시기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특질과 전망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6/11 [12:54] 최종편집: ⓒ 자주민보
 
 

현 시기 조성되고 있는 대화국면에 대해 정세분석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면밀한 분석작업에 돌입하고 있다. 특히 북에서 정식화해서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단계의 반미투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실감을 하고 있으면서이다. 아울러 북미대결전에서의 근본문제에 대한 사고력을 높여놓고 있다. 종국적으로 정세분석가들은 북미대결전의 종식에 대한 관점을 선명히 세우면서 정세분석 작업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인 정세분석가들은 머지않아 확신에 찬 정세전망을 내놓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세기 넘게 지속되어왔던 북미대결전이 마침내 종식을 향해 성큼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1.‘새로운 단계의 반미투쟁’이라는 개념을 실감해보는 것

지금 마련되고 있는 대화국면은 이때까지 있어왔던 대화국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기간 북미대결전에서 있곤 했던 북미 간 남북 간의 대화국면은 단순히 긴장과 대결국면에서 빠져나가려는 출구전략으로서 의미만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또 다른 대결과 긴장의 요소들을 만들고 축적해가는 대화이기도 했다.

대결과 대화가 반복되어왔던 북미대결전의 기간 양상은 힘의 관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상황을 반영하는 것 말고 말해주는 의미는 없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북미대결전에서 역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북은 올해 초 <새로운 단계의 반미투쟁>이라는 개념을 정식화해서 사용했다. 이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물적인 의미와 내용을 담는 개념으로 보였다.

북은 2012년 12월 인공위성 발사를 했다. 그리고 올해 2월에는 3차 핵실험을 했다. 이것은 북이 핵 보유국이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국이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준 것이었다. 북의 인공위성 발사와 3차핵실험이 북미대결전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전혀 복잡할 것이 못된다. 매우 간단하게도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북이 ICBM에 핵탄두를 장착해서는 미국 본토를 향해 날릴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다. 또 하나는 북이 핵무기나 미사일 등을 중동 국가 등에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북의 의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아울러 다른 나라들 또한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현실은 북의 의도가 미국에게 온전한 형태로 그대로 관철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대북대결정책이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이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중요하게 주창했던 ‘핵 없는 세계’라는 비확산정책 역시도 파산의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북이 ‘사실상 핵 보유국’이자 ICBM 보유국으로 되면서 북미대결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북이 이를 정식화한 것이 ‘새로운 단계의 반미투쟁’이라는 개념일 것으로 보인다.

북이 말하는 ‘새로운 단계의 반미투쟁’에서는 이전 북미대결전에서 수도 없이 경험해왔던 대결과 대화의 패턴이 반복되는 양상은 이제 더 이상 발디딜 틈을 찾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화든 대결이든 하나의 형태로 결정되어 보다 선명한 양상으로 북미간의 근본문제를 향해 줄달음치게 될 것인 것이다. 이는 ‘새로운 단계의 반미투쟁’이 북미대결전의 종식단계에서 벌어지는 투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된다.

2.북미간의 근본문제에 집중해보는 것

결국 현 시기 정세에서 마련되고 있는 대화국면은 돌이킬 수 없는 즉, 불가역적인 대화국면으로 될 것이다. 북미대결전을 종식시키는 방향을 명확히 타고 있는 대화국면인 것이다. 북미대결전의 종식국면에서 열리는 대화국면이 다루게 될 의제는 당연히 북미 간의 근본문제이다.

정세분석가들은 북미간의 근본적인 대화국면이 이미 2010년에도 마련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6월 10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하나는 이와 관련해 많은 흥미로움을 주고 있다. 기사는 동아일보의 황일도 기자가 쓴 것으로서 황 기자가 국방대 유동원 교수와 가진 좌담회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유 교수는 중국 베이징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정세전문가로서 현재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미·중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유 교수는 북미가 2010년 초에 북미대결전의 종식에 합의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물론 유 교수의 직접적인 견해는 아니었다. 중국의 정세분석가들이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핵능력을 현 수준에서 중단한다.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장거리 미사일은 폐기한다. ▴핵·미사일 기술을 중동 국가 등으로 이전하지 않는다. 이것은 북미대화에서 북이 해야할 것으로 정리된 세 가지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미국이 해야할 것은 관련국과 함께 북에 대한 대대적인 경제지원을 진행하고 궁극적으로 관계 정상화와 북·미수교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언제라도 실용을 가장 앞세우는 나라이다. 미국에게 북이 자국을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보유하고 있고 북이 핵확산을 하게 되어 특히 중동국가가 핵을 보유하게 되는 것만큼이나 위협적인 것은 없다. 그 위협은 미국의 생사를 결정하는 수준이다.

2010년 초에 이루어진 북미협상의 내용은 북미관계에서 북이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부각된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미국의 살길이라는 것을 미국 스스로가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는 미국이 그동안 북에 대해 근본적인 비핵화를 언급해왔다는 것이 사실에 있어서는 아무런 내용도 담고 있지 못하는 수사적인 언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정확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외교적으로 화려할 듯이 보이는 언사 뒤에 숨겨져 있는 핵심내용은 근본적인 비핵화보다 비확산 문제에 초점을 맞춘 타협이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치열한 북미대결전은 북미간의 근본문제가 무엇이라는 것을 수시로 상기시켜준다.

정세분석가들은 북미대결전의 종식과 관련하여 2012년 7월 말에서 8월 초 싱가포르에서 이루어진 북미접촉을 지금도 여전히 주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북은 미국에게 평화협정체결과 한미동맹해체 그리고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했던 것이다.
평화협정체결, 한미동맹해체, 주한미군철수는 북미대결전의 종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핵심내용으로서 정세분석가들은 이것들을 북미간의 근본문제로 보고 있다.

3.북미대결전의 종식에 대해 내다보는 것

북미대결전의 종식과 관련된 로드맵에 관심을 모아놓고 있는 정세분석가들에게 지난 4월 7일 영국 언론 <비비시(BBC)>가 보도한 뉴스는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 국방부가 대륙간탄도미사일인 미닛트맨3의 발사 실험을 연기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 뉴스에는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의 오해를 살 우려가 있어서 연기한 것이라는 미국 국방부 관리의 설명이 포함되어있었다. 미국은 북미군사대결전이 정점에 올랐던 4월을 피해 대결이 눅잦혀진 5월 23일에야 발사를 했다. 놀라움으로 탄식하지 않은 정세분석가들이 없었다.

북미대결전에서 전례가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미국이 항복했다는 말까지도 공공연하게 돌게 만들었던 뉴스였다.

과학적인 정세분석가들은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리고는 북미가 근본문제를 중심에 놓고 물밑 협상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들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정세분석가들은 당시를 전후로 해서 북미간에 벌어지는 사상 초유의 군사대결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분석의 날을 벼렸다. 이에 따르면 북의 치열한 군사적 움직임은 대화국면으로 가는데 있어서 혹은 실지 대화국면에 있어서 대화를 파괴하려는 그 어떤 행위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극단의 수위로까지 끌어 올려 보여주는 정치행위로 해석되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으로 보인다. 정세분석가들의 조심스러운 정세분석이다. 날카로운 사람들은 북미대결전이 종식으로 향하고 있는 징후를 지난 5월 14일 이지마 이사오 일본 내각관방 참여의 방북에서 이미 읽었을 것이었다.

이지마 참여의 방북에 대해 국방대 유동원 교수는 “아베 내각이 다가오는 타협 정국에 대비해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주도권은 이미 북한으로 넘어갔으므로, 대규모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위협을 최소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지마 참여의 방북이 보여주는 그림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가 북의 당국회담 제안에 부응하는 것을 보고서야 정확한 정세인식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남북관계회복에는 일정한 곡절이 동반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북미대결전의 종식으로 향하는 대세는 쉽사리 꺾이지는 않을 것을 보인다. 일본의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가 최근, 미국이 근본문제에 대해 회피하거나 지연전술을 쓰는 것에 대해 북이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은 따라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정세분석가들은 최소한, 7.27 정전협정 60돐을 앞두고 종전선언과 관련된 움직임이 북미를 중심으로 관련국 사이에서 나올 수도 있음을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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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불구속기소 '성공한 선거범죄'라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국정원법과 선거법 위반혐의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직권남용 및 공무원법,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결국, 이 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대선에 개입했고, 그 책임자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구속수사가 아니라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선 기간에 국가 정보기관장과 치안총수가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검찰이 이런 중요한 사건의 피의자를 불구속 기소했다는 점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 검찰의 불구속 기소, 그 지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이번 검찰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불구속 기소는 검찰 수사팀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검찰청은 지난달 27일 법무부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법리 재검토'를 '지시'했습니다. 이후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검찰이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일에 법무부 장관은 단순히 보고와 사후 감독만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2001년에 이미 '차관급 이상 공무원,국회의원,정당의 대표자 및 대표위원을 구속하려면 사전에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법무부 예규가 폐지됐기 때문입니다.

'구속 승인제' 폐지로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단순히 보고했지만, 법무부는 '법리 재검토'를 지시했습니다. 법무부는 이를 '통상적인 의견 교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수사지휘'입니다.

검찰이 대선에 개입한 국기문란 사건의 중요한 피의자를 구속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아예 법무부가 막은 셈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있었습니다.

▶ 공직선거법 공소 시효 6월 19일
▶ 검찰 5월 25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영장 청구 보고
▶ 황교안 법리 재검토를 이유로 버티기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실직적으로는 수사지휘를 겉으로는 '통상적인 의견 교환'을 내세워 무려 2주 동안 검찰의 수사를 방해한 셈입니다. 결국,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권력을 동원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구속 기소를 막아낸 것입니다.

'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왜 원세훈을 감싸는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 수사반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이미 검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고, 그 증거만으로 공직선거법 적용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의 불구속 기소 사태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국기문란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과거 중앙정보부가 끊임없이 자행해오던 '선거개입'을 2013년에도 용인하겠다는 뜻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앙정보부 백태하가 김형욱 회유 지시를 받았다는 기사와, 김종필과 함께 찍은 사진. 출처:백태하,경향신문

 


중앙정보부 국장을 지낸 백태하씨는 '반역자의 고백'이라는 책에서 중앙정보부가 어떻게 선거에 개입했는지, 구체적인 선거개입 유형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중앙정보부 선거개입 유형>

선거 때마다 분석자료 제공
여권 승리를 위한 각종 지원사항 건의, 행정부 및 관계기관과의 협력체제 동원
정당 공약사항과 지원사항 작성 및 지원
여당에 유리한 충격적 사건 발표
야당 분열공작
친야세력 포섭공작
각종 선심공작
각종 단속 완화
기타 정부와 정당이 하지 못하는 각종 지원사업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등 정보기관은 북풍을 비롯한 여당표 분산을 막기 위한 정치 공작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선거에 개입했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인터넷 여론이 중요해진 지금 상황에서 국정원이 온라인에서 정치 공작을 벌인 사실은 방법만 다를 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선거개입이 분명합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구속 수사하지 못하게 했던 점은 대선 개입 관련자에 대한 신문 조사를 막은 것이고, 이는 처음부터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온 세상에 밝히지 않겠다는 목표를 뚜렷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 박근혜 정부 개국공신, 원세훈과 김용판'

국정원장 원세훈과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은 현재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당연히 직권남용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까지 있습니다. 이 말을 간단히 풀면 대선 기간 정보기관과 경찰이 모두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대선이 끝나고 나니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선거법 위반은 박근혜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대선 이틀전 연설 내용. 출처:뉴스Y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철저히 국정원과 경찰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했던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사실무근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선거에 이용했습니다. 그 결과 문재인 후보는 오히려 비열한 방법으로 선거에 이기기 위해 거짓을 만들어낸 사람으로 국민에게 인식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기간 내내 주장했던 선거법 위반 사실무근에 대해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런 국정원과 경찰이 벌인 정치공작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원세훈과 김용판이 '박근혜 정부' 탄생의 크나큰 공신이라는 뜻과 같습니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여 선거에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을 벌인다면 분명 이에 대한 보상이나 그들의 보스에 대한 충성이 남달라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같으면서도 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였던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내부에서는 치열한 정적이었지만, 동일한 기득권 세력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을 합쳤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명박근혜 정부'가 되는 것입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분명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뒤흔들 중요한 불법선거 논란을 막아내는 것이 자신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충성과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6월12일자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출처:경향신문

 


국민이 아닌 대통령을 향한 과잉충성은 박근혜 정부가 이미 불법선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대놓고 보여준 것입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에서 '성공한 선거범죄는 처벌할 수 없다'로 바뀐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진정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불법을 저질러도 정권만 잡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이 통하는 한, 제2,제3의 선거범죄를 통한 대통령 만들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드는 개국공신이 국민이 되는 세상은 언제쯤 되려는지, 분노가 치미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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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위기 엊그제인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분석] 심각한 위기 후 한가한 수석대표 자격 논란

13.06.12 10:10l최종 업데이트 13.06.12 10:10l

 

 

12일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당국 회담이 무산되었다. 남북 모두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기는 하지만 당국 회담 앞에 험한 산이 몇 개 더 들어서 버렸다. 회담이 무산된 이유는 수석대표의 급의 문제이다. 지난 6일 북한의 대화제기에 호응하여 정부는 북한에 장관급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다가 북한과 실무협의 과정에서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와야 한다는 차원에서 북한 노동당의 김양건 비서 겸 통일전선부(통전부) 부장을 회담의 상대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위기를 겪은 지 엊그제인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다양한 민간교류 등 현안 문제들이 묻혀버렸다. 회담의 수석대표가 누가될 것인지가 최대의 쟁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이 문제로 남북당국회담은 무산되었다. 지난 3월, 4월에 전쟁위기를 겪으면서 남북사이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수석대표의 급을 결정하지 못해서 결국 회담을 무산시켰으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구더기 무서워서 결국 장을 못 담그고 만 것이다.

남북 당국 회담 수석대표 논란을 겪으면서 유명해진 사람은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전부장과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이다. 정부는 김양건이 수석대표가 안될 것으로 간주하고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명단을 북에 전달했다. 북은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을 수석대표로 제시했다. 북은 강지영이 장관급인데 우리가 차관을 수석대표로 한 것을 빌미로 해서 회담을 무산시켰다.

북한은 일당독재 국가라서 노동당에 서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김양건의 서열도 부총리보다 더 먼저 발표된다. 다당제 국가인 우리와 비교하자면 새누리당하고 민주당하고 합쳐놓고 거기에 두 당의 원로들이 고위급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김정은 시대 세대교체로 부상한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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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민주당 안민석(가운데) 의원이 개성을 방문해 만난 강지영(왼쪽)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 북한은 12일로 예정됐던 남북당국회담의 북쪽 수석대표로 강 국장을 내세웠다.
ⓒ 안민석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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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치 때문에 북한에는 무슨 감투 쓴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게다가 우리처럼 5년마다 정권교체가 되는 것도 아니니 원로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조평통에 부위원장이 많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 수많은 부위원장보다 조평통 서기국장이 알짜배기이다. 강지영 이전 서기국장이던 안경호는 초강성 인물로서, 사실상 장관급 이상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장관급들이 그 앞에서 쩔쩔 맸으며, 2000년 10월에는 민족통일기구 건설이라는 북한의 통일방안에 대해 평양시 기념행사에서 발표하기도 하였다. 강지영은 나이가 그보다젊지만 조평통 서기국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으니 우리 장관급이라고 해도 큰 탈이 없다.

강지영은 북한에서 그동안 민간이나 종교 관련 대남사업을 하다가 조평통 서기국장이 되었다. 벼락출세한 것이다. 조평통 서기국장이 장관급이기는한데, 그가 당국간 회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당국회담 대표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류길재 장관도 당국회담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강지영은 북한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조평통 서기국장까지 오른 사람이기 때문에 남북장관급 회담 상대역으로 부족하지 않다. 경험이 없으면 과거의 경험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남북회담 문화를 만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를 상대하는 신선한 파트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이 지금까지 장관급 회담에 '내각 책임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다가 조평통 서기국장이 나온 것은 과거보다 오히려 급을 높여서 나온 측면이 있다. '내각 책임참사'가 비상설이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 있는 당국자 참석 요구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 말기부터 대남사업 담당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에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강지영은 이런 배경에서 김정은 시대의 대남업무를 담당하는 주역 중의 한 명으로 조평통 서기국장에 임명된 것이다.

북한이 '내각 책임참사'를 둔 이유

회담을 하면서 상대방이 수석대표가 누가 나올 것인지를 지목하는 것은 결례이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이 북한은 부총리급 남북대화를 제안하면서 사실상 한완상 통일부총리를 상대로 지명했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국 내부에서 한완상 부총리의 입지는 현저하게 약화되고, 부총리급 회담은 성사되지도 못했다.

다른 경우지만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회담 상대로 지목한 것은 회담 성사를 위해서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북한의 노동당 비서 겸 통전부장은 북한에서 당 소속이다. 행정부가 아니므로 남북대화에 직접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북한의 내각에서는 대남통일 정책담당 부서가 없다. 북한은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해서 내각의 책임자인 총리 밑에 '내각 책임참사'라는 자리를 두고 장관급회담의 임무를 맡겼다. 그래서 2000년부터 전금진, 김령성, 권호웅 등 대남일꾼들이 내각 책임참사 직책을 가지고 지금까지 21차례의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했다.

내각 책임참사의 직급이 우리의 장관급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2000년 당시에도 가벼운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전금진이 워낙 유명한 대남협상전문가였다. 그 후임이었던 김령성은 화려한 화술과 박식함, 친화력으로 남한 언론에도 많이 알려졌다. 그들의 내각 책임참사라는 직책은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2004년 14차 장관급 회담에서 권호웅이 내각책임참사가 되었을 때는 전금진이나 김령성 때보다 논란이 확산되었다. 권호응의 나이가 젊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아태평화위원회 참사 자격으로 1990년대부터 각종 남북접촉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를 장관급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북한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른바 남남갈등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가 우리의 정무장관이나 무임소 장관급에 해당하는 총리 직속의 내각책임참사라는 장관급이고, 남북대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장관급 회담은 그후 21차까지 진행되었다.

김양건은 장관급 회담의 상대로 적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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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국 회담 수석대표 논란을 겪으면서 유명해진 사람은 김양건 노동당 비서 겸 통전부장이다. 사진은 지난 2009년 8월 2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특사 조의방문단'으로 서울을 방문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왼쪽)이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면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사진제공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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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권호웅이 내각 책임참사로 장관급 회담에 임했을 때 발생했던 남남갈등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책임 있는 사람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로 김양건 노동당 대남당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을 지목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책임 있는 사람이 남북회담에 나서라고 북에 주문할 수는 있다. 그런데 김양건을 지목한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김양건의 직급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국정원의 대북과 해외담당 업무, 통일부장관 등을 포괄하는 통일부총리급이다. 뿐만 아니라 당과 행정부의 기능이 분화되어서 북한의 노동당은 직접 대외업무에 참여하지 않는다.

북한 노동당의 국제비서도 외교업무에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외교업무는 내각의 외상이 담당한다. 미국과 핵협상을 노동당이 하지 않고 내각의 외교부에서 하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외교부장관이 바로 외상이다. 북한 노동당의 통전부장한테 남북대화에 나서라고 하면 남한의 새누리당의 외교통일위원장한테 남북대화 하라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물론 북한은 노동당이 정부보다 우위에 있는 일당독재 국가이지만, 그래도 북한의 체계가 있다. 이런 체계를 무시하고 노동당 비서한테 남북회담에 나서라고 하는 것은 국제 스탠다드가 아니다.

중국 공산당에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있는데 이 직책이 당의 외교정책을 지휘하는 자리다. 그리고 외교는 내각의 외교부장이 한다. 국가간 외교이기 때문이다. 중국하고 외교하면서 중국정부의 왕이 외교부장보다 공산당의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책임과 권한이 더 크니 그가 협상에 나오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양건이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싱가포르에서 비밀접촉을 하기도 했다. 이때 김양건의 역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와 같은 것이었다.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신뢰프로세스가 치른 비싼 수업료

김양건을 대화에 끌어낼 생각이었다면 남북 실무회담에서 우리 측이 정상회담이나 그에 준하는 단위에서 해결할 의제를 던졌으면 가능했을 것이다. 장관급 회담을 제안하고 장관급 회담에 준하는 의제를 제기하면서 굳이 김양건을 나오라고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남북한의 제도와 권력구조의 차이가 남북당국회담을 무산시킨 셈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철두철미한 준비가 필요했다. 17시간의 실무회담에서 대표단과 의제를 확정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서둘러서 당국회담을 추진했다. 실무회담에서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채 당국회담을 서두른 것에 대한 책임은 북한 당국도 나눠가져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서둘렀기 때문에 디테일에 있는 악마의 방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국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북의 제도와 권력구조의 차이에 대한 이해, 충분한 실무회담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치른 비싼 수업료를 값싸게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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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땅이 그리운 붉은점모시나비, 영하 48도에도 견딘다

추운 땅이 그리운 붉은점모시나비, 영하 48도에도 견딘다

 
조홍섭 2013. 06. 10
조회수 1188추천수 0
 

대표적 한지성 멸종위기종, 한겨울 알에서 깨 5월말 나비로

홀로세생태연구소 밝혀, 10일 삼척 서식지에 30쌍 인공 방사

 

butterfly6.jpg » 기린초의 꿀을 빠는 붉은점모시나비. 추운 곳을 좋아하는 대표적 나비로 기후변화로 인한 첫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기후 온난화 때문에 추운 곳에 적응한 한지성 나비는 점점 더 살 곳을 잃어가고 있다. 더위에 민감한 대표적 한지성 나비가 국내 보호종이자 세계적 멸종위기종이기도 한 붉은점모시나비이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붉은점모시나비는 온난화로 인해 가장 먼저 사라져 갈 생물로 예측되고 있다. 좀 더 추운 지방으로 서식지가 이동하는 패턴을 보이다가 멸종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나비연구가 석주명이 1973년 작성한 조선산 나비 분포도를 보면, 이 나비가 중부와 남부에 걸쳐 폭넓게 서식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오면 멸종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드물어져, 남획과 서식지 파괴와 함께 기후변화가 이 나비를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map.jpg

 

지난 8년 동안 붉은점모시나비의 생활사와 행동, 대량 증식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이 나비가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이제껏 알았던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10일 밝혔다.
 

이 나비의 생활사는 여느 나비에 비해 매우 특이하다. 5월 하순에 나비가 되면 짝짓기를 하고 6월 초 알을 낳고 죽는 것은 다른 나비와 비슷하다. 배추흰나비라면 알-애벌레-번데기-나비의 단계를 거치는 번식을 한 해에 네댓 번 한다. 하지만 붉은점모시나비의 알은 반년 동안인 약 190일을 알 상태로 있다 한겨울이 시작되는 12월 초 부화한다. 3월 애벌레가 된 뒤 5번에 걸친 탈바꿈을 하며 자라 마침내 번데기가 되어 성충으로 날아오른다.
 

bremeri1.jpg » 기린초 위에서 짝짓기 중인 붉은점모시나비. 교미 후 암컷의 배 끝에는 일종의 마개인 수태낭이 생긴다.

 

bremeri2.jpg » 알은 황백색 만두 모양으로, 지표에 있는 먹이식물 주변의 마른 풀이나 가지에 낳는다. 이 알은 11월 말~12월 초순에 부화한다.

 

bremeri3.jpg » 애벌레는 네 차례의 탈바꿈을 하면서 자라는데, 애벌레의 성장 단계별 기간은 1령 78일, 2령 13일, 3령 12일, 4령 12일, 5령 19일이다. 한겨울이지만 애벌레는 양지밭 기린초에서 미세하게 나오는 싹을 먹는다. 사진은 마지막 단계인 5령 애벌레이다.

 

bremeri4.jpg » 먹이식물 주위의 잎에다 엉성한 고치 모양을 만들어 번데기가 되며, 색은 갈색이고 번데기 기간은 26일 전후이다.

 

bremeri5.jpg » 성충은 5월 하순에 발생하여 6월 상순에 애벌레의 먹이식물인 엉겅퀴나 쥐오줌풀 나뭇잎 등에 산란하고 죽는다. 수컷은 배 전체에 연한 노란빛의 긴 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비의 애벌레가 한겨울에 깨어난다는 사실은 이 연구소가 처음 밝혀냈다(■ 관련기사: 영하 27도에 애벌레 꼬물꼬물, 붉은점모시나비 생활사 밝혀져).
 

그런데 지난해 겨울 실험에서 그 전까지 영하 27도까지 견디는 것으로 알려진 애벌레가 영하 35도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게다가 알은 영하 48도로 냉각되더라도 애벌레로 깨어나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낮은 온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이 나비 애벌레의 몸속에 항 동결 물질이 있기 때문인데, 연구소는 그 성분으로 글리세롤, 소비탈, 트레할로스, 만니톨 등 4가지를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 서식지 외 보전기관이다.
 

이 소장은 “보통 극지방의 곤충들은 1~2가지 종류의 항 동결 물질에 의지해 겨울을 나는데 붉은점모시나비에서는 4가지가 나왔다. 항 동결 물질의 종류가 많으면 적은 것보다 아무래도 월동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조사 결과는 곧 논문으로 발표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bremeri6.jpg » 붉은점모시나비를 인공증식하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안 반자연 사육실 모습.  

 

한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이날 인공 증식한 붉은점모시나비 30쌍을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일원의 서식지에 방사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이곳에서 채집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가 인공 증식한 붉은점모시나비를 2011년 10쌍, 2012년 20쌍 방사한 바 있다.
 

삼척의 서식지에는 2004년 300개체 이상의 붉은점모시나비가 있었으나 2011년 인공 방사 직전 5개체만 발생하는 등 급속히 감소해 인공 증식 방침이 정해졌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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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한민국! 여전히 민주주의가 답이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6/11 09:20
  • 수정일
    2013/06/11 09: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민주정치의 상관관계
 
조시형 | 2013-06-10 14:40: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현재 우리사회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로 혼돈에 빠져있다.

10년 민주정부의 온갖 성과가 이명박 정권하에서 무위로 돌아가고 국가기관의 노골적 관권개입 여론조작 부정선거로 당첨된 박그네로 인해 민주공화정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으며 이에 맞서야 할 야당과 시민사회는 깊은 무기력에 빠져 상황을 타개할 투쟁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내외 독점자본의 지배력이 민주주의의 최후보루인 시민의 의사판단의 영역에 까지 그 문어발을 뻗고 있는데 이에 변변한 대항매체 마저도 부재한 지경이다.

그래도 좌절치 말고 힘을 내야하는 근거는 지금보다 더 어렵던 일제와 독재 시절에도 굴하지 않고 싸운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목표로 싸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글은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고민이다.- 필자 주

 

위기의 대한민국! 여전히 민주주의가 답이다.

이명박 정부는 비록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권력이지만 희대의 막가파 정부였다. BBK를 비롯하여 4대강 재앙, 용산참사와 쌍용차 살인 진압등 인권유린과 민주주의 파괴에 더불어 재정파탄으로 국고를 거덜내버렸다. 그래도 그 악몽같은 5년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물러났으니 임기제를 규정한 헌법에 감사하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많은 한계가 있음에도 당장은 대체 불가능한 인류문명의 발명품이다.

대의제에 근거하여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일정한 임기 동안 나라의 정책 결정권을 위임하는 현재의 선거제도는 인간과 사회의 진화 과정에서 축적한 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모두 반영한 역사적 산물이다. 즉 선거제도와 그로 인해 구성되는 권력기관의 운영원리인 견제와 균형- 책임과 기능의 분할과 통합-모두가 민주주의를 최고의 상위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 1조에 주권재민을 선포한 이유인 것이다.

민주주의 사상도 역사적으로 그 폭과 깊이를 더 넓고 더 깊게 확장해왔다. 민주주의에 대해 숱한 논의와 의견 대립이 있어왔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포괄적인 정의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나왔다는 그 유명한 언명이 아닐까? ‘민주주의는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정치’ 원리라는 것이다. 보통은 이 세 가지 원리를 각각 인민주권, 시민자치, 복지주의로 설명하곤 하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상세를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각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내 생각에 의미의 폭이 작은 순서대로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정치의 순으로-민주주의 개념에도 위계와 서열이 있다.)

1. 사람을 위한 정치(for the people)

유럽에서 중세암흑의 시대가 끝나고 문예부흥의 시기에 재발견한 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에서 드러나는 사람과 사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전환이다. 즉 기독교의 원죄설의 포로가 되어 사람의 비참함과 무기력을 운명으로 체념하고 신의 섭리와 대속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수동적 노예의식에서 해방된 것이다. 무질서와 만인의 투쟁이라는 카오스적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왕권신수설의 절대왕정 시대를 거쳐 온 이 인본주의 사상은 마침내 근대 유럽의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그 꽃을 피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날개옷으로 장식한 이 민주주의 꽃은 유럽 전역에 봉건왕조 체제를 대체하여 입헌 공화국의 수립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하여 유럽 역사상 ‘신과 그 대리자인 왕권’이 아닌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 정치가 시작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민(爲民)정치는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 그 중에서도 공맹의 도를 그 극한까지 추구한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가장 눈부시게 분출하였다. 특히 세종은 역성 혁명론의 실천가이자 권문세족의 토지몰수와 노비해방을 단행한 조선조 최고의 민본주의 정치가 정도전의 사상을 더욱 계승 발전시켜서 백성들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한 위력한 무기인 ‘한글’을 창제하였다. 정도전이 민본정치의 주체로 성리학에 정통한 사대부를 내세운 반면 세종은 이미 진정한 민주주의의 뿌리는 깨어있는 백성임을 자각한 것이다. 이는 실로 500년을 앞서 본 선견지명의 위대한 사상가 세종의 최대 업적이다. 기껏해야 부국강병의 수준에 머물던 서구의 다른 개혁군주에 비교해 보면 세종의 업적은 인류 문명사적 위업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선도국가로 인류문명을 주도해 나가면서 이를 입증하게 되리라.

그러나 이러한 사람을 위한 정치로서의 민주주의 단계는 여러 한계를 가진다. 즉 사람(백성, 인민, 대중)이 주체가 아니라 시혜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어 만일 위민정치의 주체인 왕이나 사대부, 또는 칭송을 받는 인민의 지도자가 죽거나 권좌에서 밀려나거나 변절하면 이를 극복할 수단이 없어 역사는 다시 너무도 쉽게 패도 정치의 폭군이나 부패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너무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친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면서 5현제의 시대는 끝나고 네로를 거쳐 망국으로 간 사례, 개혁군주 공민왕의 개혁 정책들이 그의 사후에 모조리 후퇴하여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의 극심한 대결로 고려가 절단 난 사례, 뛰어난 혁명가 레닌이 신경제정책을 추진하여 급진적 혁명의 수정을 시도했으나 급작스런 죽음이후 권력을 찬탈한 스탈린이 사회주의적 이상을 짓밟고 학정을 일삼던 사례, 그리고 노무현을 거쳐 쥐명박 집권 5년 동안 우리가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이 짐승의 나라...

또한 현대 정치에서는 그 어떤 정치세력도 자신들을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자로 포장하고 교묘하게 대중심리를 현혹하기에 이 수준의 민주주의만을 강조하는 자들은 사실상 사기꾼에 가깝다. (또다시 “부자 만들어 주겠다.”는 사탕발림에 속는 사람은 바보!)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선전한 유신헌법이야 말로 수출 100억$ 달성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도 파리 똥 취급할 수 있다는 위선적 위민정치의 전형인 것이다. 모든 전체주의 파시즘 독재국가도 마찬가지로 언제나 ‘국민을 위하여’를 구호처럼 달고 출현했다.

결론적으로 for the people 단계의 민주주의 수준으로는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2.사람에 의한 정치(by the people)

- 절차적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하다.

위민정치의 한계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강화로 상당히 보완되어 왔다. 이 단계에서 자유주의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 절대군주의 전제적 폭력에 맞서 시민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언론, 출판의 보장과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안전장치로 기능한다. 권력을 삼분하여 서로 견제케 하고 인간의 존엄한 인권을 가장 중요한 헌법가치로 규정하였다. 국가권력에 의한 신체적 위해도 금지하였고 이를 어기는 권력엔 폭력적 저항권 행사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이 단계(by the people)의 최고의 산물은 국민의 참여로 국가 권력을 구성하는 선거제도라 할 것이다. 국민의 자유로운 직접, 평등, 비밀 선거로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게 됨으로써 국민을 위한 민주정치는 비로소 온전히 자신을 역사 속에서 드러낼 수 있었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자유의 전사들이 피를 흘리며 싸웠다는 史實을 기억하자. (4.19와 유신독재항거,80년 광주와 학생운동가들, 6.10항쟁의 그 뜨거운 함성들) 또한 바로 이명박그네 정권의 집권연장 기도를 깨고 다시금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를 꿈꿀 수 있는 것도 바이더피플 수준의 민주주의를 우리가 쟁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에 의한’ 민주주의에도 한계가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근대혁명은 신흥 부르쥬아 계급의 지위를 제 3신분에서 일약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전변시켰고 구체제의 앙시앙레짐을 막기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교하게 체계화했다. 그러나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는 이 과정에서 개선되지 못하였다. 즉 실질적 민주화라 불린 경제민주주의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우리의 경우도 70년대 이후 정치적 자유투쟁의 과정에서 독재를 종식시키고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대표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회복을 달성했지만 그 과실은 사실상 새로운 기득권 동맹과 그 협조자들이 차지해 버렸다.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여전히 포더피플의 시대에 머물러 있고 정치적 지위는 때마다 돌아오는 선거 때만 주인대접 받는 처지이다.

즉 ‘사람에 의한’ 정치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단계에서도 여전히 대다수 사람의 지위는 정치의 주체가 아닌 시혜의 대상에 머물러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문제가 ‘of the people’ 바로 사람‘의’ 민주정치 구현인 것이다.


3.사람의 정치(of the people)

- 사람이 정치의 실질적 주인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단계.

그 궁극적 상(狀) 또는 최종적 형태가 무엇인지는 아직 미완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독점의 해소로 공동체의 이익을 강화하는 사회적 소유 시스템의 확립으로 실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치’의 실현도 권력구조의 창출과 운영 과정에 다수 대중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절차와 제도의 확립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1)정당 민주주의와 2)직접 민주주의의 강화가 필수이다.

1)정당의 민주주의 또는 민주적 정당이 필수적인 이유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민주적 정당이 돌파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의제로 대표되는 간접 민주주의는 국민의 실제 이익과 의사보다 기득권 세력 특히 독점자본의 금권정치에 취약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판명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권당은 물론 야당조차도 재벌의 이해가 걸린 법안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열린 우리당의 상당수 486 정치인들과 심지어 탄돌이 의원들마저 4대 개혁입법(그 자체로는 재벌의 소유구조와 무관하지만 기득권 동맹과의 싸움에 교두보가 되는 과거사 청산, 친일 재산정리, 국보법 폐지, 사립 학교법개정)의 통과에 몸을 사렸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이후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떠들고 친노의 패권을 규탄하고 지금은 민주당의 당 지도부 사퇴를 쇄신이라고 떠벌이고 있다.

정당의 쇄신은 곧 정당의 민주화이고 그것은 바로 국민의 의사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 당의 대표, 공직 선거의 후보가 될 수 있는 정당 시스템의 정비로 가능한 것이다. 그 어떤 재벌과 이권 세력의 로비도 통하지 않고 권력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의 조직’의 최고 형식이 바로 ‘진보적 민주정당’인 것이다. 정강과 정책에 동의하며 당비를 내고 참여하는 주권당원의 진성당원제도는 저비용 고효율 정당을 만들어 재벌의 금권정치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것이지 무슨 신성한 당원을 위한 당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당이야 말로 현대 정치의 진정한 대중정당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중정당이 직접민주주의의 요소의 확대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of the people 이라는 민주정치의 안정적 구조가 완성되어 가게 될 것이다.

2) 우리가 현재 취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 요소는 국민투표, 국민발의, 주민소환이 있다. 그런데 기성 정치권과 제도 언론은 그 무슨 파퓰리즘이니 사회적 혼란과 대중독재의 출현이니 하면서 이 기초적인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전면도입조차 한사코 꺼리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정치의식은 날로 고양되고 이를 정치 시스템에 반영할 기술의 진보가 구비되었다. 무엇이 두려우랴? 구더기가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된 장맛을 보기가 두려운 것인가? 민주당의 당대표 선출과 대통령 후보 선출과정에 도입된 모바일 투표를 보라! 여기에 무슨 혼란이 있고 민의의 왜곡이 있던가? 오히려 그렇게 나발 불던 세력이야 말로 민주정당의 민주적 결정과정을 왜곡하고 당을 혼란에 빠뜨린 것이 아닌가? 이제 앞으로 국민이 정당의 선출직 공무원의 후보 선정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러한 제도가 더욱 세련되게 정비되는 과정에서 소수 특권 세력의 준동은 그 힘을 잃어갈 것이다. 이러한 발전 과정이 축적되면 언젠가 진정한 ‘사람의 민주 정치’가 실현되리라 믿는다.


4.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민주정치의 상관관계

 

- 이 세 가지 민주주의 원리는 마치 삼각대의 트라이앵글처럼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보완관계다. 이 세 원리를 분리해서 그 한 가지 원리에 치중한다면 각각 그 고유의 가치도 소멸할 것이다.

- 역사적으로 보면 ‘사람을 위한’ 정치의 원리가 처음 발현되었다. 위민정치라는 한계가 있지만 인본주의 사상의 시작이었다. 근대 자유주의가 완성한 절차적 민주주의도 원칙과 상식이라는 진보자유주의 사상의 개화에 기여했다.

- 이런 ‘사람에 의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그러나 형식과 절차의 강조로 나아가 실질적 민주주의에 미흡했고 히틀러의 집권과정에 보듯이 민주주의의 적들의 공세와 독점 자본의 금권 정치에 취약한 구조를 가졌다.

- 그리하여 위민의 정치 원리와 절차적 민주주의는 국민의 직접참여를 강화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와 결합할 역사적 필요에 직면해있다.

- 광범위한 sns의 보급의 시대, 최고로 개화된 한글 문명의 수혜를 받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가장 첨단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5.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을 망설이는가?

 

싸이의 저 거침없는 도전을 보라. 민주주의가 그리스 로마의 것인가? 아니다. 이제 우리가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로 나아갈 역량이 되어있다.

위민정치의 전통은 우리가 최고다. 절차적 민주주의도 김대중 노무현이란 위인을 통해 최고 수준을 경험했다. 그 분들의 피의 대가로 이제 실질적 민주주의-사람이 주인 되는 사람 사는 세상- 은 이렇듯 역사의 창 너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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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미스코리아 대회를 포기 못 하는 이유


 

 

 


지난 6월 4일 한국일보 주최 '2013 미스코리아' 본선 대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습니다.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이 대회에 참가하는 동안 한국일보 기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의 사주를 구속하라는 시위를 했습니다.

자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왜 자사 기자들은 시위를 벌였을까요? 이유는 한국일보 사주인 장재구 회장 때문입니다. 장재구 회장은 한국일보 경영을 파탄내고 200억원 가치의 회사 자산을 개인 및 변제에 쓴 혐의로 지난 4월 29일 특정경제범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한국일보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고 있으며,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주범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참석했으니 분노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요새 지상파에서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중계 방송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다는 논란 때문입니다. 사실 미스코리아 대회는 매년 잡음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사위원과 참가자의 금품거래가 적발되기도 했으며, 참가자들은 고가의 시술이나 화장품 등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한국일보가 미스코리아 대회를 주최하면서 소요하는 비용은 12억원입니다. 지상파 방송 중계를 하지 않으니 별다른 수입도 없는데도 왜 한국일보는 계속해서 미스코리아 대회를 주최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주 장재구 회장이 아끼는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 축하행사에 참석한 미스코리아들과 장재구 한국일보미디어그룹 회장. 출처:http://goo.gl/GnN77(블로거 덕수궁 돌담길)

 


장재구 회장은 유독 미스코리아 대회를 아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대체 언론사 사주가 왜 미스코리아 대회에 관심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장재구 회장은 기자들이 별도로 미스코리아 대회 회사를 차려 행사를 진행하라 외쳐도 묵묵부답입니다.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이 한국의 미를 알리는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미스코리아 대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언론사 사주가 택할 입장은 아닙니다. 한국일보는 2008년 약 59억원, 2009년에는 약 100억원, 2010년에는 약 106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기자들의 야근비와 취재비, 출장비조차 밀려서 경영 개선방안이 시급했던 언론사입니다.

경영개선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다 수포로 들어간 회사의 사주가 또다시 12억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미스코리아 대회를 개최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 언론사 사주가 언론사 최대의 적'

언론을 망치는 가장 큰 주범은 누구일까요? 바로 언론사 사주입니다. 원래 저널리즘의 최우선 목표는 권력의 견제입니다. 그러나 언론사 대부분은 언론사 사주를 비판하지 못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사건을 취재하고 기사를 내보내는 일이 다반사로 열립니다.

정치권력조차 비판하는 기자들이 왜 언론사 사주를 비판하지 못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주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해직당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사의 편집국장은 대부분 사주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사람으로 임명되는 상황에서 기자가 사주를 비판한 기사는 절대로 데스크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언론사 사주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언론사의 주식이 대부분 언론사 사주 일가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소규모 주주가 합쳐서 언론사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 사주와 아들, 그 형제들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니, 대표이사로 임명되고, 기자들을 마구잡이로 해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주가 언론사를 좌지우지하고, 기자들의 목숨줄을 잡고 있으니 기자들은 알아서 사주를 위해 충성을 다합니다.

 

 

▲홍석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중앙일보 기자들의 과잉 충성이 빚어졌다. 출처:CBS 노컷뉴스.

 


언론사 사주가 비리로 수사를 받으러 가자, 기자들이 나서서 '회장님! 힘내세요'를 외치기도 하고, 다른 기자들이 사주를 촬영하자 '인간 바리케이트'로 변신하여 그들을 막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사주의 비리 관련 기사는 언제나 단신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아예 기사를 내보내지도 않았습니다.

권력 비판이 저널리즘의 목표이자 추구하는 방향이지만, 언론사 사주에게는 항상 예외인 모습을 보면 언론사 최대의 적은 언론사 사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받아쓰기는 늘어나도 정권 비판 프로그램은 사라져 가는 언론'

매번 느끼지만, 하나의 사안에 관한 언론사들의 기사는 비슷비슷합니다. 그 이유는 기자들이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도자료를 베끼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중앙 언론사들은 보도자료를 조금이나마 각색(?)하기도 하고 취재도 하지만, 지방 방송은 거의 보도자료에만 의존합니다.

 

 

 


김기현 KBS안동 기자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KBS안동과 안동MBC의 지역방송 TV뉴스 보도자료 의존율이 70%이상입니다. 보도된 메인뉴스 142건 중 102건이 보도자료를 인용하여 뉴스로 내보냈고, 102건 중 단순 인용 기사가 92건으로 비율로 보면 90%가 넘습니다.

지역방송은 지역의 민심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정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지만 그저 지역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보도자료를 인용하여 그들의 주장만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광고 때문입니다. 또한 취재 기자와 촬영기자 등이 부족한 인력난 때문이기도 합니다. KBS와 MBC가 이 정도면 다른 군소 지방 언론사는 더 심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즐겨보는 방송 중에 SBS의 '현장21'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시사 및 정치 관련 사건을 빠른 화면 구성과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취재로 다루고 있어 즐겨 봅니다. 그런데 '현장21'이라는 SBS 심층보도 프로그램을 이웅모 보도본부장이 폐지하려고 했다가 기자들의 반대로 한발 물러서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tvN이 지난달 29일 방송하려던 '최일구의 끝장토론'은 잠정 연기됐었고, 정치풍자로 인기를 끌었던 'SNL코리아'의 '글로벌 텔레토비'도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시사풍자로 인기 있는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는 김재철 MBC 사장의 사표제출을 풍자한 '사장이 나갔어요'를 선곡하고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내보냈습니다. 그러자 MBC는 라디오 PD에게 정직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립니다. 또한 '베란다쇼'에서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다룬 담당 PD에게 '근신 7일'을 명령했습니다.

진짜 중요한 언론사의 기능이 제멋대로라는 증거를 대려면 아마 열흘 내내 포스팅을 해도 모자를 지경입니다.
 

 

 


언론이 권력이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언론사 사주가 막강한 재벌,정치 권력과 혼맥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그들 편에서 언론이 기사를 쓰기 때문입니다. 권력 비판을 향한 저널리즘은 사라지고 오로지 권력과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언론이 도구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50년 전 독일은 '언론자유'를 말하면서 언론사 내부의 자유도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한국은 언론사 사장에게 해직당하는 기자, 좌천당하는 기자, 징계받는 기자가 수두룩합니다. 그들이 무슨 비리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정권과 재벌, 언론사 사주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YTN 해직기자들이 ‘해직 5년을 걷는다! 공정방송을 위한 전국 도보순례’에 나섰습니다. YTN정문을 시작으로 400km에 이르는 대장정을 떠납니다. 기자들이 취재하지 않고 전국 대장정을 떠나는 이유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

 

'언론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언론은 국민의 것이어야 합니다'를 외치던 기자들을 지켜줄 사람은 과연 누굴까요? 바로 진짜 언론의 소유주가 되어야 할 국민밖에는 없습니다.

국토 순례마저 경찰이 따라다니는 YTN 해직기자들에게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지켜주는 일이 바로 우리 언론, 그리고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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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에 대항 못하는 썩어빠진 진보 지식인들"

여전히 '현역'인 한국 현대사 연구의 상징 서중석 교수 '고별 강연'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10 오후 9:01:13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서중석 교수가 6.10항쟁 26주년인 10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6층 첨단강의실)에서 고별 강연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나는 달라진 게 없는데 고별 강연을 하라고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한다'고 하니까, 내가 떠나야 할 것 같고 슬퍼져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 것 같은데."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는 지금도 현역이고, 고별 강연이 끝나도 현역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서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의 상징적 존재다. 서 교수 본인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한가운데에 있었다. 서울대 국사학과 67학번인 서 교수는 1968년 6·8 부정 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 맞서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이던 그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휘말려 옥살이를 하는 등 모진 세월을 겪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 지리, 국어를 좋아했다. 유별나게 역사를 좋아해서 앞으로 역사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왜 현대사를 하게 됐느냐?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끝나고 대학 시험 면접을 보러갔을 때 읽은 책이 에드먼드 윌슨의 <근대 혁명 사상사>(원제는 To the Finland Station, <핀란드역으로>)였다. 거기에서 구체적인 힌트를 얻었다. 면접을 볼 때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고, 행동과 공부하는 것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할 때 (역사 연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 같다.

그러면서 학생운동에도 깊이 관여하게 되는데, 유홍준(전 문화재청장)을 대학교 3학년 올라오면서 끌어들였다고 생각을 하고, 유인태(현 민주당 국회의원)도 그때 친해지기 시작했다. (…) 그때도 나는 나중에 교수 해먹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웃음) 유홍준도 (시위) 주동자 중 한 명인데, 유홍준은 당하지 않고 내가 당했다.(웃음) (…) 군대 말년에 유격 훈련을 했는데, 거기에서 유신헌법 전문을 보게 됐다. 유격 훈련 안 받고, 병장이니까 도망갔는데, 숨어서 하루 종일 읽고 또 읽었다. '정변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났구나' 했다. 제대하고 복학했다. (유신 반대 운동을) 유인태와 작당했다. 그게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하더라."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고문을 받고 수감됐다. 학교 역시 수차례 제적됐다 복교하기를 반복했다. 30대 중반이던 1984년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또한 1979년부터 9년간 <신동아> 기자로 수많은 르포르타주를 썼다. 학문을 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금기이던 시대, 서 교수의 지행합일 정신은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현대사 연구를 개척한 인물로 학계에 우뚝 서 있다. 진보적 역사 전문 계간지인 <역사비평> 초대 주간을 맡았다(관련 기사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수많은 책을 써 냈다. 그는 "역사를 대중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것이 숙제"라고 젊은 역사학자들에게 당부했다.

지난 2010년, 서 교수는 뜨거웠던 1987년을 다룬 <6월항쟁>을 펴냈다. 환갑을 넘긴 그가 젊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 그것은 사회의 주류가 된 이른바 '486 세대'에게 아직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6월항쟁이었던 셈이다. 6월항쟁의 주역과 그 목격자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는데, 왜 지금 역사 왜곡이 넘쳐나는가. 노(老)교수는 고별 강연을 통해 맹렬히 질문을 던졌다. 민주항쟁 26주년을 맞은 날, 67학번 서 교수는 말 그대로 여전히 "현역"이었다.
 

▲ 서중석 교수(자료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노교수의 질타 "진보 세력, 왜 역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 못하나"

서 교수는 "요새 참 험난한 세상을 살고 있구나,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세상을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최근 있었던 <동아일보> 자회사 <채널 A>, <조선일보> 자회사 <TV조선> 등이 보도한 5.18 역사 왜곡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서 교수는 "방송이라는 것은 책임 있는 곳 아닌가. 그런데 600명의 북에서 온 특공대가 광주 전남도청을 점령했다? 참 신기하다. 달나라를 점령했다는 것보다 더 신기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한국현대사학회 인사들이 참여한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 심의를 통과한 데 대해서도 "뉴라이트 관련자들의 (교과서 관련) 학술 대회지원신문사가 '남로당식 사관을 중학생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지금 중학생 역사 교과서가 남로당식 사관으로 쓰여 있다'고 하더라. 기존 교과서 집필자 90%가 좌파라니, 이것을 인간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데 대해 놀랐다. 이런 시기까지 내가 사는구나 했다"고 성토했다.

서 교수는 이 같은 일이 2004년 뉴라이트의 탄생을 전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4년 전에 친일파 옹호론자들은 '일제 시기에 밥은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한 것'이라고 '애소(哀訴)조'로 얘기를 하거나 '당시 나뿐 아니라 다 협력하고 그랬잖나'라며 3000만을 친일파로 만들었다면, 2004년의 (뉴라이트) 논리는 다르다. 대놓고 '친일파가 우리 사회를 만든 주인공'이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인간의 의식을 180도 뒤바꾸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 건국절 논란도 충격적이었다. 정말 역사 교사들 힘겹게 살더라. 그러더니 또 한 정부가 들어서니까 바로 이런 일(교과서 왜곡 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를 이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이른바 "진보 진영의 무능"을 비판했다.

"내가 분노하고 비통한 것은 (냉전 세력의 역사 왜곡)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진보 세력 때문에 그랬다. 진보 세력이라는 자들이 이런 (뉴라이트 등의) 논리에 대응 한 번 제대로 했느냐. 1995년, 세 개의 (보수) 신문이 일제히 이승만 재평가를 연재할 때 <역사비평>에서는 네 차례 굵직하게 그 문제를 다뤘으나…(별일 아닌 듯 넘어갔다.) 2003년, 2004년 소위 (뉴라이트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나왔을 때 수구 언론은 요란한데 거기에 대해 (진보 진영은) 과연 어떤 태도를 보였나?

2008년 건국절 논란 때에는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자유와 혁명의 역사, 이상과 희망의 역사를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나쁘게 쓰고 친일파를 살리기 위해 광복을 건국절로 포장을 한 것인데, (진보 진영은) 대항 한 번 못했다. 이런 썩어빠진 지식인들이 진보적 지식인들인가. 노인네들이 훈장 반납하고 그렇게 싸우지 않았다면 정말 (8.15가) 건국절이 될 뻔했다. (…) 나는 (…) 진실과 사실이 교육되고 밝혀지면 한국 사회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이상한 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노(老)교수의 고민은 계속됐다. 그는 "6월항쟁, 광채 나는 투쟁을 겪으면서 우리가 자유를 쟁취하고, 민주주의의 큰 대로를 열어놓았다. 그런 대로에서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신군부 정권에 붙어먹던 사람도 많은 반성을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 수구 냉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거 안 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어 "진보 세력이 1980년대 수구 냉전 세력을 몰아붙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논리는 도식적으로 적당히 배운 것이었을 뿐이고, (젊은 사람들이) 그 이상 공부를 안 하더라. 그러니 수구 냉전 세력이 그렇게 나와도 대응을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정말 현대사가 중요한 때가 됐다. 나도 쉬고 싶다. 고별 강연이라고, 강연 제목을 줬으니 사라져야 할 것"이라며 "후배분들, 좀 잘 싸우자. 좋은 논문 쓰자.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근현대사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크고 많다"고 당부했다.

이날 고별 강연에는 많은 청중이 모여들었다. 강의실에 빈자리가 없었고, 자리를 얻지 못한 50여 명은 선 채로 서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서 교수의 '동지'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유인태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의원, 학계 후배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도 참석했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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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항쟁 기념일에 펼쳐진 공권력의 야만성... 왜?

 

[주장] 6·10 기념일, '야만의 승냥이'를 봤다... 즉각 복구하라

13.06.10 21:28l최종 업데이트 13.06.10 21:28l
이창근(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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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들 대한문앞 '알박기' 쌍용차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합동분향소 임시천막을 10일 오전 서울 중구청(구청장 최창식) 직원 50여명이 강제철거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정우 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등 6명이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합동분향소 철거 직후 경찰병력이 시위에 대비해 대한문앞을 광장을 차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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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할 수도 있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보니 그저 6월 10일이었을 뿐. '어떤 계획도 없었다'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경찰과 각 구청은 작정이라도 한 듯 6·10항쟁 기념일인 오늘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와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 그리고 양재동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농성장을 동시에 철거했다. 우연치곤 발에 밟힐 정도로 갓끈이 길다. 이들은 왜 6·10항쟁 기념일인 오늘 농성장을 철거했을까.

오늘 오전 9시 20께 중구청과 남대문 경찰서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 대한 강제철거를 시작했다. 압도적 병력과 중구청 직원을 앞세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작전을 폈다. 대한문 분향소는 쌍용차 회계조작으로 발생한 정리해고로 숨진 24명의 노동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쌍용차 국정조사와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해 4월 5일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숱한 철거와 탄압에도 끝끝내 비닐 천막 하나로 버텨왔던 공간이다. 쌍용차 정리해고 과정에서 경찰이 보여준 공권력의 야만성을 우리는 오늘 또다시 '살 떨리게' 경험했다.

중구청은 계고장 제시도 없이 막무가내로 모든 집기를 쓰레기차에 실어갔고, 경찰은 저항하는 노동자와 연대 시민들을 폭력과 겁박으로 짓눌렀다. 결국 오전 10시께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외 5명이 연행됐다. 경찰이 공무집행을 한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인 언행과 강압적으로 밀어부쳤다. 남녀노소는 물론 시민과 노동자 성직자와 신자의 구분은 경찰에게는 없었다.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주변은 지난 5월 남대문 경찰서장이 '옥외집회금지구역'으로 통보한 바 있다. 금지구역 통보가 비록 집시법에 근거한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같은 이유로 집회 금지를 이미 한 바가 있다. 당시 우리는 집회금지 자체가 경찰의 지나친 월권이며 집회 및 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위협한다는 취지로 집회금지 취소 가처분 신청으로 맞섰다.

서울 중구청·경찰, 법원 판단은 신경 안 쓰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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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프 반입 결사 저지하는 경찰들 쌍용차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합동분향소 임시천막을 10일 오전 서울 중구청(구청장 최창식) 직원 50여명이 강제철거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정우 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등 6명이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합동분향소 철거 직후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앰프를 가져오자 경찰들이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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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울행정법원은 우리들 손을 들어줬다. 경찰이 주장하는 통행권과 소음 등의 문제를 들어 집회 자체를 불허할 수 없다는 요지의 판결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올바르게 해석한 판결'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미 한 차례 법원의 판결이 있는 사안에 대해 다시 경찰은 지난 오월 '옥외집회금지구역'으로 통보하며 우리들의 집회 및 시위 자체를 옭아매려 들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집회금지구역 통보 취소 가처분 신청을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중구청과 경찰은 현재 법원이 판결을 앞둔 사안에 대해 앞질러 공권력과 행정력을 발동한 것이다.

이는 법원의 판단이 어떻게 나든 상관 하지 않겠다는, 그야말로 안하무인격 공권력 집행이 아닐 수 없다. 중구청과 경찰이 서둘러 분향소 강제철거를 한 배경엔 법원 판결을 앞둔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강제 철거 후 경찰의 대응은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대한문 일대에 바둑알 박 듯 경찰을 세워 '알 박기'를 했다. 이런 경찰의 행태는 그동안 우리를 향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던 시민의 통행권을 스스로 침해한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의 자의적 판단과 결정으로 대한문 일대는 경찰들로 가득 찬 상황이 전개됐다. 우리는 강제철거를 규탄하고 이후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오전 11시에 열기로 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기자들은 오전 11시에 맞춰 취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경찰이 기자회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아니, 어느 법률에 기자회견이 경찰의 허가 사항이란 말인가. 특히 경찰은 자신들이 지정한 장소로 이동해 기자회견을 할 것을 주장했으나 이 또한 명백한 오지랖이며 위법이다. 기자회견 장소를 경찰 임의대로 특정할 수 없는 것은 경찰도 알고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기자회견을 가로막았다. 기자회견 참석차 자리에 함께한 팔순이 넘은 백기완 선생은 유월의 따가운 땡볕 아래서 1시간 넘게 있었다. 백 선생은 치욕 아닌 치욕을 경찰로부터 입은 셈이다.

기자회견과 같은 표현의 자유는 '명확성의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사안이다. 임의로 현장에서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늘 대한문에서의 경찰의 이 같은 불법 무법으로 기자회견은 1시간을 넘긴 이후에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문만 철거당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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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차 합동분향소 또 강제 철거 쌍용차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합동분향소 임시천막을 10일 오전 서울 중구청(구청장 최창식) 직원 50여명이 강제철거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정우 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등 6명이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철거 직후 한 쌍용차 노동자가 대한문앞에 배치된 경찰들을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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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무슨 근거와 조항으로 기자회견을 막았는가. 또한 법원에서 '옥외집회금지구역' 문제로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과 구청은 뭐가 그리 조급해서 강제철거라는 무리수를 뒀는가.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만 오늘 철거당한 게 아니다. 시청 맞은편에서 내일(11일)이면 2000일을 맞는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 또한 깨끗하게 쓸려나갔다. 또한 양재동에서 은박지 한 장 깔고 대법원 판결 이행 촉구를 외치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농성장도 동시에 쓸려 나갔다. 우연치고는 이상하지 않은가. 굳이 한 날 한 시에 농성장에 대한 철거, 그것도 오늘이 6·10항쟁 기념일임에도 말이다. 혹시 정권 입장에서 6·10항쟁 기념일을 지우고 싶은 역사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심각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우리는 이번 분향소와 농성장에 강제 철거 사태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 6·10항쟁 26주년인 오늘 대한민국에선 기자회견과 농성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천박한 민주주의의 발가벗은 모습을 경찰이 여실히 보여줬다. 오늘 경찰과 구청이 보여준 태도는 그야말로 벌거벗은 야만의 승냥이의 모습 그 자체였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 재능교육 환구단 농성장, 현대차 양재동 농성장에 대해 즉각 복구할 것을 촉구한다. 농성장을 쓸어 버린다고 해 노동자 투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지 않는가.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고 다시 분향소와 농성장의 깃발을 움켜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창근씨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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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을 아직 ‘혁명’으로 부를 수 없는 이유

 

6월항쟁을 아직 ‘혁명’으로 부를 수 없는 이유
 
耽讀 | 등록:2013-06-10 09:27:20 | 최종:2013-06-10 09:30: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오늘은 6월항쟁이 일어난지 2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87년 6월 10일 대한민국 민주헌정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항쟁입니다.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박종철씨(서울대)가 고문으로 죽습니다. 당시 치안본부장은 박종철이 죽은 까닭을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군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표를 합니다.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4월 13일 독재자 전두환은 호헌조치를 내립니다.


박종철 죽인, 전두환 '호헌'주장으로 6월 항쟁 타올라

독재자 전두환 정권은 박종철씨를 고문해 죽였다.

시민들을 불길처럼 일어났습니다. 각계와 각 지역을 대표한 2200여 명의 발기인이 참가하여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박종철살인고문'을 규탄하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국민대회를 6월 10일 대규모로 벌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날로 잡은 이유는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제시한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후 6시 국기 하강식을 기하여 전 국민은 있는 자리에서 애국가를 제창한다. 애국가가 끝난 후 자동차는 경적을 울린다. 전국 사찰, 성당, 교회는 타종을 한다. 국민들은 형편에 따라 만세 삼창(민주헌법 쟁취 만세, 민주주의 만세, 대한민국 만세)을 하거나 제자리에서 1분간 묵념을 하며 민주주의 쟁취의 결의를 다진다▲경찰이 폭력으로 대회 진행을 막는 경우 전국민은 비폭력으로 이에 저항한다. 연행을 거부한다. 연행되면 일체의 묵비권을 행사한다.▲전국민은 오후 9시부터 10분간 소등을 하고 KBS, MBC 뉴스 시청을 거부함으로써 국민적 합의를 깬 민정당의 6.10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 항의한다.▲6.10 국민대회는 철저하게 평화적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며 폭력을 사용하거나 기물 파손 등을 자행하는 사람은 국민대회를 오도하려는 외부세력으로 규정한다 따위였습니다.

6.10국민대회는 서울 부산 대구 공주 인천 대전 등 대도시를 비롯하여 전국 22개 지역에서 24만 여명이 참여했습니다. 경찰은 강경진압했고, 시위는 격화되었습니다. 시청 한 곳, 파출소 열 다섯 곳, 민정당 지구당사 두 곳 등이 파손되었습니다. 전국에서 3831명을 연행됐습니다. 저녁 명동성당에서는 8백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농성 투쟁을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격려 편지가 이어졌습니다.

"민주발전을 위해 써 주십시오. 고등학생이라 아무 것도 드릴게 없어요. 지갑을 털어 작은 정성을 보냅니다."

6월 10일 학생과 시민 800여명은 명동성당에서 농성투쟁에 들어갔습니다.

● 민주발전을 위해 써 주십시오. 고등학생이라 아무 것도 드릴게 없어요. 지갑을 털어 작은 정성을 보냅니다.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함께 하는 데서 항상 여러분에게 못 미쳤던 평범한 샐러리맨 69명과 식당 주인 아저씨로부터
●나의 형제 자매들에게. 몸은 함께 하지 못하나 마음만은 당신들과 함께 합니다. 당신과 같이 피를 흘리지 못하나 눈물만은 함께 흘립니다.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당신들은 진정 우리의 '희망'이라고.
●장한 일 하십니다. 힘과 용기를 가지십시오. 시민 일동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학생들의 애국적인 투쟁에 따른 희생을 모르는 척 하고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몹시 부끄럽고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괴로움이 자꾸 치밀어 올라와 어느 모퉁이에서 간절히 동참하고 있는 마음 약한 40대 중반의 못난 선배를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부탁이 있소. 폭력은 금물이오. 국민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오. 또 법의 가면을 쓴 폭력이 정당화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오. 정부당국의 발표를 보면 80년 5.17때의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하오. 이번만은 절대로 그러한 우를 범해서 반역자들에게 빌미를 주지 맙시다. 말없이 지켜보는 많은 국민은 애국적인 학생들을 지지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부디 건강을 비오.

6월 항쟁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이한열 열사 죽음입니다. 이한열 열사는 9일 다음날 열릴 예정인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후의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숨졌습니다. 22살때입니다. 전경이 시위진압 도중 시위대를 겨냥해서 최루탄 SY44를 총처럼 수평으로 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머리에 맞은 사건입니다.

이한열 열사가 87년 6월 시위도중 최루탄을 맞아 쓰러지던 모습

그리고 또 다른 사진 한 장입니다.

부산 87.6.26평화대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문현로타리에 집결한 시민, 학생들로 이루어진 시위대에게 경찰이 다탄두 최루탄을 발사하며 대회 참가를 저지하자 한 시민이 웃통을 벗어 젖힌채 “최루탄을 쏘지마라”며 경찰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1987.6.26

이들 때문 오늘 우리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6·10 민주항쟁을 '혁명'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구세력이 5.18민중항쟁을 '폭동', '북한군개입설'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6·10 항쟁 26주년을 맞아 7일 평화방송 라디오 <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 > 에 출연해 5·18 왜곡 문제에 대해 "저는 그 문제를 보면서 이것은 인간들이 하는 짓이 아니고, 매국적인 행동이 아닌가 이런 걸 느꼈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또 6·10 항쟁의 의의 뿐 아니라 기억조차 희미해져가는 데 대해 "아쉽기도 하고, 26년쯤 되니까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며 "살다보면 남의 일 다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참 옛날인 것 같지만 전 엊그제 같다"며 6월항쟁이 잊혀져 가는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노무현 "수구세력, 개혁 끊임없이 반대"…민주시민 6월항쟁 되새겨야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6월항쟁 기념식때 한 말이 생각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6월 10일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에서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들은 수구언론과 결탁하여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면서 "심지어는 국민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은 민주정부를 친북 좌파정권으로 매도하고,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음으로써 지난날의 안보독재와 부패세력의 본색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며 수구세력을 비판했습니다. 6년전 그 예언이 정확했음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2007년 6월항쟁 20주년 기념사하는 노무현 대통령

87년의 패배, 90년 3당 합당은 우리 민주세력에게 참으로 뼈아픈 상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주의와 기회주의 때문에 우리는 정권교체의 기회를 놓쳐버렸고, 수구세력이 다시 일어날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상실은 군사독재와 결탁했던 수구언론이 오늘 그들 세력을 대변하는 막강한 권력으로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한 것입니다. 분열과 기회주의가 6월항쟁의 승리를 절반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민주시민들은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더 멈출 없습니다. 저항해야 합니다. 6월항쟁을 기억하고, 되살려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 싸워야 합니다. 6월항쟁이 아직 '혁명'이 아닌 이유는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종결이 없습니다. 우리가 끝없이 싸우고 투쟁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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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떨어져 가는데 쌀을 나눠달라고 하면...

쌀이 떨어져 가는데 쌀을 나눠달라고 하면...

 
서영남 2013. 06. 09
조회수 148추천수 0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받아 먹어라.
이것이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CNBLUE 월드투어 서울공연에서 받은 쌀화환을 "저스트 정용화님"이 900Kg이나 민들레국수집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이 쌀로 밥을 해서 먹고 힘을 내어 살아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축소민들레쌀.jpg
 
2003년 만우절에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쌀 살 돈이 없어서 국수를 삶았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국수를 두세 그릇이나 드시고도 '밥 없어요?' 물어봅니다.
 
그래서 밥을 했습니다. 쌀이 떨어지는 것이 너무 아슬아슬해서 쌀독을 도자기로 바꿨습니다. 뚜껑을 열기 전에는 쌀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좋았습니다.
 
멀리서 쌀 한 포대 어깨에 메고 오시는 분이 제일 반가웠습니다.
 
2005년에 KBS TV "인간극장"에 민들레국수집 이야기가 방영되면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토록 간을 쫄게 했던 귀한 쌀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택배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드시고도 남아서 어떻게 하면 좋은 분들이 보내주신 귀한 쌀을 잘 나눠먹을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과 나눴습니다.
 
쌀이 있으면 바라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부르다는 분들과 참 많이도 나눴습니다. 얼마 전에 얼마나 나눴는지 대강 셈을 해 봤습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손님들이 충분히 밥을 드시고도 여유가 되는 쌀을 20킬로로 5,800 포 정도 나눴습니다. 고맙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나 먹고도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보통 3월에서 5월 사이에 민들레국수집은 쌀이 아슬아슬합니다. 할머니들께서 국수집에 쌀을 가지러 오시면 가슴을 졸이며 갈등을 하다가 할머니께 쌀을 드리곤 합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이층에서 쌀을 내려온 봉사자께서 쌀이 일곱 포 남았다고 알려줬습니다. 일곱 포면 하루 정도 버틸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런데 쌀이 떨어졌다면서 옥점할머니가 오셨습니다. 망설이다가 쌀을 한 포 나눠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CNBLUE 정용화님의 팬이라는 분입니다. 혹시 민들레국수집에서 쌀도 받아주는지 물어봅니다. 세상에! 얼마나 반가운 전화인지요! 20킬로 포장으로 45포가 국수집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일을 자주 겪으면서도 쌀이 아슬아슬 할 때 쌀을 나눠달라는 분이 오면 갈등을 하는 제가 한심스럽습니다. 그러면서 고맙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복 많이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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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만세운동,6.10항쟁을 막은 자들의 공통점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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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3/06/10 09:35
  • 수정일
    2013/06/10 09:3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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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이면 나오는 사진이 있습니다. 바로 연세대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모습입니다. 이한열은 1987년 6월 10일 열릴 '고문살인 은폐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후의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사망했습니다.

이한열의 죽음은 6.10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나아가 6.29 선언을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매년 6월이 되면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사진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6,10 항쟁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1926년 6,10 만세운동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2013년 6월 10일에 1926년과 1987년의 6월 10일 그날의 사건을 재조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6.10 만세운동을 조선총독부처럼 규정했던 역대 정권들'

1926년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전국적인 항일운동이 전개됩니다. 순종의 상여가 통과하는 종로를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고, 격문을 살포해, 순종의 인산에 참여한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6.10 만세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3.1 운동 이후에 침체했던 항일 투쟁의 불길이 다시 오르게 됐던 계기가 됐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을 의식해 이날 일본은 경찰은 물론이고 7천명의 육해군을 총동원해 6.10 만세운동을 막았고, 시위 참가자 5천명을 연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160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일본 경찰이 만세 시위를 벌이려는 군중을 진압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강력한 진압을 통해 6.10 만세운동이 일제강점기에 얼마나 중요한 대규모 항일투쟁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역사에서 6.10 만세운동은 그리 크게 주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6.10 만세운동에 조선 공산당이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1926년 조선공산당은 노동자의 날에 맞추어 대규모 투쟁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4월 25일 순종이 사망합니다. 조선공산당은 순종의 장례식인 6월 10일에 많은 군중이 모일 것을 예상, 이날 전국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려고 계획을 수정합니다. 조선공산당은 '6.10운동 투쟁지도특별위원회'(총책임자 권오설)를 조직하여 5만장의 격문을 인쇄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됩니다.

조선공산당 지도부의 대규모 검거에도 천도교와 학생들의 참여로 산발적이지만 인천,순창,병영,통영,원산,개성,홍성,전주,신천,평양,마산,공주,하동,당진,강경,구례 등에서 시위가 벌어졌으며, 전국적으로 일제에 대한 투쟁의 불길이 다시 오르게 된 사건이 6.10 만세운동입니다.

 

 

▲ 순종의 상여를 들고 가는 군중을 일본 경찰이 지키고 서 있는 모습.

 


이처럼 6.10 만세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대규모 항일 투쟁 중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였지만, 당시 지도부가 조선공산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반공을 주장하던 역대 정권에서 폄하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6.10 만세운동이 천도교와 같은 민족세력, 조선학생과학연구회와 같은 학생 조직이 어울려 비록 각자가 가진 사상은 달랐지만, 힘을 합쳐 반일민족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부분입니다.

 

<6.10 만세운동 격문에 나온 구호들>

대한독립운동자여 단결하라!
일체 납세를 거부하자!
일본물자를 배척하자!
조선인 관리는 일체 퇴직하라!
일본인 공장의 직공은 총파업하라!
일본인 지주에게 소작료를 바치지 말라!
일본인 교원에게 배우지 말자!
일본인 상인과의 관계를 단절하자!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군대와 헌병을 철거하라!
재옥 혁명수를 석방하라!
보통교육은 의무교육으로!
교육용어는 조선어로!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철폐하라!
일본 이민제를 철폐하라!



6.10 만세운동 당시 격문이나 구호를 보면 노동,교육,민족,자유 등 다양한 주장이 전개됐습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6.10 만세운동을 가리켜 '학생들이 잘못된 사상에 물들어 감정적으로 나온 불미스런 사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여기에 역대 정권은 그날 사전에 발각돼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조선공산당을 아예 배제하고, 학생운동만을 강조했습니다.

6.10 만세운동은 조선공산당뿐만 아니라, 임시정부, 병인의용대,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연결하여 목적의식을 갖고 추진했던 항일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사회주의,민족주의 세력이 결합하여 신간회가 조직돼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와 청소년,여성의 평등 등의 다양한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사건을 과거 군사,독재 정권은 공산당이 개입됐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히 학생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는 식으로 평가 절하했습니다. 3.1운동처럼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지 못했지만, 이는 일본의 조직적인 탄압과 회유정책에 있었다는 점을 쏙 뺐다는 사실은 조선총독부처럼 항일투쟁을 어떻게 하든 숨기려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 6.10 항쟁보다 전두환의 영광을 내세우는 나라'

매년 6월 10일이면 언론들은 기념식이나 보여주고, 그날 참여했던 인물들이 정치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만 조명합니다. 그러나 6.10 항쟁의 가장 큰 의의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연인원 500만 명 이상이 참여해 20일 동안 전개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었던 6.10항쟁은 군사정권에서 문민정권으로 독재에서 민주로 나아가는 한국 현대사와 정치사의 큰 분수령 중의 하나였습니다.

 

 

▲1987년 6월 10일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1987년 6월 10일 전국적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계획됐습니다. 이날은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 날이기도 합니다. 6.10 항쟁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세력들은 전두환이 주장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를 옹호하기도 합니다.

"집권여당이 대통령 재임 중에 전당대회에서 다음 대통령 후보를 뽑았다는 사실 자체가 40년 헌정사에 처음 있는 일로서 새로운 민주전통을 세우는 굳건한 초석이 되는 것" (전두환)

집권여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다음 대통령 후보를 뽑았다는 사실 자체가 민주전통이라고 주장했던 전두환의 말이 과연 사실일까요?

전두환이 주장했던 40년 헌정사에 처음 있는 민정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투표지에는 '1 노태우'라고만 적혀 있었고, 투표용지에 붓두껍으로 찬반을 표시하는 '기표식 투표'방식이었습니다. 후보 한 명만이 나와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사실이 도대체 얼마나 민주적인 일인지 아이엠피터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 민주당과 민추협이 공동주최한 '영구집권음모규탄대회'가 열린 민추협사무실 주변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면, 출처:동아일보.

 


4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예능 PD와 가수, 개그맨이 동원된 민정당 대통령 후보 전당대회는 전두환을 칭송하는 자리였지, 민주적인 정당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노태우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신의 정책은 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짧은 시간에 빛나는 열매를 맺게 해 우리나라와 민정당의 오늘이 있게 만드신 전두환 총재 각하에게 다 함께 영광의 박수를 보내자고"고 제의하기도 했습니다.

 

 

▲6월 항쟁 당시의 모습과 진압하는 경찰.

 


6.29 선언이 마치 국민의 민심을 받아들인 전두환의 결단처럼 방송과 언론에 나오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동참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투쟁한 결과에 불과합니다.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운운했던 전두환은 전날 젊은 청년의 머리에 최루탄을 발사했던 인물이었고, 체육관 선거를 마치 민주적인 국민의 절차와 권리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독재와 군사정권을 막아내려는 시민과 학생들의 열망은 폭력과 불법, 빨갱이의 선동으로 바꿔놓고서는 오로지 전두환의 영광만 잠실 체육관에 울려 퍼졌던 1987년 6월 10일이었습니다.

' 6월 10일을 막었던 자들'

광화문에서는 6월 10일 민주항쟁을 기념하며 제22회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추모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날 시민단체의 행사장 건너편에는 보수대연합의 시위도 있었습니다.

 

 

▲광화문에서 열린 어버이연합 등 보수대연합의 시위.출처:민중의 소리.

 


어버이연합 등 보수 세력들은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 추모제를 '남파간첩 빨치산 추모제'라고 주장하며 행사를 방해하고 참여했던 시민을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6,10 항쟁은 대한민국 정치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전두환은 남파간첩 빨치산들이 일으킨 간첩 활동에 떠밀려 6.29선언을 한 꼴이 됩니다. 앞뒤가 맞지 않은 억지 주장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수 세력이 지지하는 대통령과 꼭 닮았습니다.

 

 

 


6.10민주항쟁 기념식은 정부 공식행사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부터 2012년 임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직접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6월 항쟁은 반쪽의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6월 항쟁의 중심이었던 시민이 사라지고 제대로된 정권교체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사회,문화,노동의 관점에서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가 뿌리내리는 결과를 만든 것이 6.10민주항쟁이었습니다.

6.10항쟁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외면하는 세력들에게는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하는 모습이 꼴보기 싫습니다. 그것은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일에 거추장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늘 '반공'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여전히 탄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6.10민주항쟁을 정부공식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6.10의 승리는 축적된 역사의 결실입니다. 우리 국민은 오랜 동안 많은 항쟁의 역사를 축적하여 왔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전제왕권의 학정에 맞섰던 민생.민권 투쟁,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던 수많은 민족독립 투쟁, 그리고 군사독재에 맞선 꾸준한 민주주의 투쟁들이 그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6월 10일 만세운동과 6.10 민주항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부패한 정권, 일본 제국주의, 독재 정권을 국민의 손으로 몰아내려는 의지와 희생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연합 등 보수 극우 단체 회원이 범국민추모대회에 참가한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 출처:민중의 소리.

 


6.10 만세시위의 주동인물로 검거됐던 박하균은 불온문서의 내용을 묻는 동기와 목적을 묻는 일제 재판관에게 '그것이 조선독립문서(朝鮮獨立文書)이지 어디 불온문서인가, 독립문서를 불온문서(不穩文書)라 하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1926년 6월에 일어난 6.10만세운동을 막았던 세력이 누굽니까?
바로 일본 제국주의 경찰과 군인들이었습니다.

1987년 6월에 일어난 6.10항쟁을 막았던 세력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었습니다.

수십 년전 6월 10일에 자유와 독립, 민주주의를 외쳤던 함성과 열망은 여전히 '불온 문서'와 '남파간첩 빨갱이'로 남아 있습니다. 국민이 목터져라 외쳤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는 세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6월 10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오늘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을 지키겠다고 외쳤던 날입니다. 이날을 꼭 지켜고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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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항쟁 토론회] 공정 국가인가, 복지 국가인가?

6·10+26,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6·10 항쟁 토론회] 공정 국가인가, 복지 국가인가?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10 오전 7:18:39

 

 

(사)'6월 민주 항쟁 계승 사업회'는 6·10 항쟁 26주년을 맞아 '민주화 운동의 성찰과 복지 국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민주화 운동의 반성과 과제(1부),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주의(2부)로 나뉘어 열리는 이날 토론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프레시안>이 후원하는 행사입니다. 주최 측의 동의를 얻어 이날 토론회 발제문 두 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1. 이제 가치관과 세계관을 논하자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가?

대통령 선거의 패배와 야당에 대한 전반적 실망, 그리고 제반 진보 정당 및 민주노총의 몰락으로 나타나듯이 한국의 진보 세력 내지 민주화 세력은 현재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이 위기는 매우 근본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향했던 정신적 지향성과 가치관, 세계관, 즉 한마디로 신념 체계 그 자체가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가치란 가장 소중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세력이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가치는 독재에 대한 저항 즉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과연 민주주의가 그 자체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 2007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가장 많이 이야기된 화두가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라는 말이었다. 이것처럼 두고두고 우리가 곰씹어야할 말이 없다. 이 말은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하고 높은 가치이자 더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들의 밥 즉 생계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것이며 민주주의는 그러한 가치·목표에 복무하는 수단 또는 도구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를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민주주의와 함께 금과옥조처럼 소중히 여겨져 온 또 다른 가치인 자주와 통일 역시 비슷하다. 민족 자주, 민족 통일은 식민지 경험과 남북 분단의 역사 속에서 고통받아온 우리 민족 전체에게 매우 소중한 과제였고 따라서 자주와 통일은 매우 소중한 가치, 목표이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의문은 곧바로 "자주가 밥 먹여주냐?", "통일이 밥 먹여주냐?"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실제 남북 대화, 남북 통일에 열심이었던 김대중 정부 치하에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서민들의 생계는 악화되었으며 청년들의 '3포(취업, 결혼, 출산 포기)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민족 자주 차원에서 전시 작전권 환수가 결정된 노무현 정부 치하에서도 서민들의 밥 먹고 사는 문제는 더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놓고 당시 진보적 식자들은 "밥 먹고 사니즘"이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인권 등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비아냥거렸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등의 주체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다. 즉 민족 또는 민주 공화국으로 결집된 집단으로서의 국민이다. 이에 반해 "밥 먹고 살기 힘들어" 허우적거리는 이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생활인들, 즉 서민들 개인과 그 가족들이다. 그런데 집단으로서의 민족 또는 국민 전체에서 개인과 개성, 인격 그리고 밥 먹고 사는 생활 문제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확연하게 나타나는 사실이 있다. 즉 개인들 간의 생활 수준 격차가 매우 심하고 더구나 민주화 이후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더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과거의 386 또는 7080 세대에 비하여 요즘의 20대와 30대는 매우 개인주의적이다. 그들은 집단보다 개성을 중시하며, 정치보다는 문화에, 민주주의보다는 스펙(specification) 쌓기에 더욱 관심이 많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의 인생 가치관에는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등은 별로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그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각자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라는 개인적 관심사들로 가득 차있다.

민주주의와 자주, 평등, 통일 같은 집단주의적 가치를 소중히 여겨온 전통적인 민주화 세력 또는 진보 세력의 관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요즘 청년 세대의 개인 중시, 개성 중시는 이기주의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과연 개인의 개성과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와 입장을 이기주의로, 개인주의로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족과 민주 공화국은 그 자체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만약 민족과 민주 공화국의 이름으로 대다수 개인의 자유와 개성, 행복이 유린된다면, 그런 민족, 그런 민주 공화국은 거부되어야 한다. 만약 민족 자주와 통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대다수 개인들이 가난과 궁핍으로 떨어진다면 그런 민족 자주, 그런 민주주의는 거부되어 마땅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보다 더 소중한 가치, 더 궁극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개인과 개성 그리고 자유주의

그런데 자유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궁극적인 가치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세계관이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는 1987년 6·10 항쟁과 함께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9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보수, 진보 양 진영 모두의 사고방식 속에 맹렬하게 침투하였다. 더구나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세계관은 20~30대 청년들의 생활방식, 사고방식에도 잘 부합한 까닭에, 민주화 이후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담론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과 개성 그리고 자유주의 화두의 등장과 담론 지배에 대한 한국의 민주화 세력의 대응은 참으로 무기력하고 소극적이었다. 어느새 개혁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단어가 한국의 진보적 담론과 사상적 토론 지형을 지배하게 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그 정당들은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개혁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들은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등의 가치를 개혁적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보다 상위의 가치 체계 내에 포함되는 일종의 하위 가치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듯 자유주의적 세계관과 그 담론이 민주 또는 진보 세력 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그것에 대립해온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등 여타의 세계관들은 뒤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1990년대 중후반 이래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유주의의 현대판 버전인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자유주의는 부동의 우월적 지위를 지난 20년간 누렸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자유주의의 세계관에는 개인과 개성은 있되 사회와 국가, 민족 등은 없다. 아니면 한참 뒷전으로 밀려난다. 극단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화신인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이 말했듯이, "사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언까지 나온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기성과 이기적인 행동마저 윤리적으로 권장한다. 왜냐하면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강력한 자동 기계 메커니즘이 자유 시장(free market)에는 탑재되어 있는 까닭에, 이기적 행동의 총화가 자동적으로 이타적 사회성으로 승화된다고 자유주의자들은 믿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이자 시장주의다. 자유주의의 힘이 셀수록 이기주의와 시장주의의 역할은 최대화되고, 국가와 사회, 민족 공동체와 민주 공화국의 역할은 최소화된다. 그것은 보수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이건, 아니면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이건 마찬가지이다.

사회와 민족, 국가란 없다-자본과 시장이 있을 뿐

그런데 과연 인간의 자유가, 즉 개개인의 개성과 인격의 발전이, 과연 사회 및 국가와 무관하게, 따라서 민주주의와 민족(자주, 통일의 가치를 포함한)의 발전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더구나 자유주의가 말하듯 인간의 자유, 개성의 발전이 사회 공동체와 국가(민족)와 같은 집단성의 역할을 축소해야만 가능할까? 따라서, 민주주의와 자주, 통일 같은 기존의 진보적 가치(집단성의 가치)의 역할을 축소해야만 개성과 자유, 자아 실현과 같은 새로운 가치(개인성의 가치)의 발전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개인의 개성과 자유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자유주의가 말하듯이-개인과 사회 간의 대립, 개성과 집단성의 대립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개인과 개성의 발전을 억누르는 그런 사회성, 그런 집단성이 실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개인과 타자 간의 사회적 관계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관계, '자본'의 관계이다. 시장(market)이 사회(society)를 대체한다. 그리고 그 시장은 그냥 시장이 아닌 자본주의적 시장이고, 따라서 자본(capital)이 사회(society)를 대체한다. 마르크스는 개인은 총체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간파했는데, 그렇지만 동시에 그 총체적 사회적 관계의 정점에는 자본과 시장이, 즉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군림하고 있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골방에 처박힌 개인주의적 고립성을 떨치고 나와 '알바'를 뛰어야 하고, 어렵게 취직하더라도 야근과 특근을 밥 먹듯이 해야 겨우 먹고 사는 현실에 허덕이는 것이 오늘날 주변에서 보는 대다수 개인들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민족), 개인과 집단 간의 대립을 중시하면서 사회-국가-민족-집단성보다는 개인성과 개성을, 이타성보다는 이기성을 소중하게 여긴다. 물론 보수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가 무자비한 이기성, 무자비한 시장조차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반하여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는 '합리적 이기성'과 '합리적 (자유) 시장'을 중시하는 차이는 있다. 그리고 그 합리적 시장의 내용과 실체는 '공정한 시장 질서'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추상적인 일반론적 사회-국가-민족-집단성이란 픽션일 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으로는 자본주의적 국가-민족-집단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국가(민주주의를 포함한)와 민족(민족 자주와 민족 통일을 포함한) 그리고 그 집단성 역시 그 내용과 실체에 있어 자본주의에 의해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은 아예 민족-국가-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식민지 지배를 찬양하면서 민족과 민족 경제, 민족 국가라는 관점 자체를 폐기해 버렸다. 그런데 진보적 자유주의 (그리고 그것과 잘 부합하는 사상인 포스트모던 아나키즘 역시 비슷한데) 역시 민족과 국가 따라서 민족 국가와 민족 경제라는 개념을 폐기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등을 소중한 가치로 여겨온 기존의 진보적 전통과는 획을 긋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자유주의자들은 정작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대다수 개개인의 개성 있고 자유로운 삶을 매일 매순간 억누르는 현실의 집단적(사회 시스템적) 실체인 자본과 시장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다. 물론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는 재벌과 대자본을 비판한다. 그렇지만 마치 재벌이 해체 또는 축소되고 중소기업-영세 자영업이 융성하여 공정한 시장 질서가 확립되는 공정 시장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의 개성과 자유가 꽃피울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공정 시장 자본주의가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자유와 개성을 억누르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경제적 실체이며, 그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우리는-자본주의가 아닌–자유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 경제 시스템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해온,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달리 말해서 이것은, 5000만 국민들 중 대다수 개인들의 삶을 압도적 힘으로 짓누르면서 그들의 실질적 자유와 개성을 억누르는 현실적 실체로서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대해,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서의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등의 중요성을(따라서 그 가치를) 말하는 것은 대다수 개인의 힘든 생계의 관점에 볼 때 공허하게 들린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고액 등록금에 허덕이면서 최저 임금 알바 찾기와 스펙 쌓기, 취업 준비, 월세 자취방/하숙집 구하기에 끙끙 매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인하와 최저 임금 인상, 공립 기숙사 대량 신축과 같은 복지 국가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채, 5·18 정신과 6·10 항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그런 민주 항쟁 기념식은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민주화+진보 세력 전체가 처한 정신적 위기의 본질은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평등 등의 기존 가치들을 껍데기로 만들어 형해화(形骸化)시키며 국민 개개인들의 생활과 생계를 힘들게 하는 압도적인 현실적 파워로서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해온 다양한 형태의 자유주의 사상에 대해 침묵하거나 비판하지 않은 데 있다.

개성과 자유–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넘어서

앞서 말했듯이, 나는 민주주의와 자주/통일보다 더욱 소중하고 궁극적인 가치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 인간의 자유, 개성과 자아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진보 세력의 가치관에서 그 동안 완전히 배제되어온 '자유'를 이제는 진보의 궁극적 가치로,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생활인의 관점과 같다. 이제는 민주주의와 자주/통일을 넘어, 대다수 국민들을 (단지 밥 먹고 사는 수준을 넘어) 잘먹고 잘사는 그런 세상, 자신의 개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free society)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가치, 목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가 내건 시장의 자유 즉 자유 시장(free market)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 즉 자유 사회(free society)가 우리의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와 개성, 인격이 만발하는 잘먹고 잘사는 세상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정치적·법률적, 형식적·절차적일 뿐이다. 생활인들이 직면하는 생활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란 사유 재산권 및 시장 영업 활동의 자유를 의미하며, 그 평등이란 오직 재산이 있는 자들의 사유 재산권 행사와 경쟁적 시장 참여 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활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립되어 나타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낳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자유롭고 부유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를 나누며, 그 결과 '평등 없는 자유'를 낳기 때문이다. 대다수 생활인들이 직면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평등 없는 자유, 대다수 개인에 있어 실질적 부자유와 실질적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형식적, 절차적 자유·평등을 넘어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여야 한다.

실질적 자유란 개개의 생활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인간적 잠재력을 그 어떤 경제 사회적 이유로 제한받지 않고 구현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한 실질적 평등이란 형식적인 기회 균등을 넘어 삶을 향유함에 있어 실질적인 경제 사회적 평등을 뜻한다. 예컨대 모든 개개인이 적절한 주택과 함께 좋은 교육 기회를 가지며, 병에 걸렸을 때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고, 또한 노후에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생활 유지가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안전한 노동 환경에서 적절한 시간 동안 노동할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때의 자유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러한 실질적 자유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개개인의 삶의 자유, 실질적 자유의 구현을 가로막는다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경제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 어떤 가치관, 어떤 세계관의 경제 민주화인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다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 5월 10일 한국사회학회에서 발표한 '경제 민주화에 대한 소고-그동안 논의되지 않는 것들을 중심으로'라는 글에서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정당 간 경쟁과 갈등은 민주-반민주 같은 대립 구도에서 나타나듯이 관념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이념 내지 가치를 중심으로 한 진영 간 대립의 형태를 띠었다"면서 "그렇지만 서구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좌우 구분의 일반적 기준이 되는 것은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 그것을 표현하는 이념이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경제 민주화가 총선·대선의 중심이슈로 떠올랐다는 것은 한국 정치에서 큰 의미를 갖는 전환적 사건이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3년 5월 9일자)

그는 또한 "민주주의의 본질적 관심사는 얼마나 많은 경제적·사회적 평등을 창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 민주화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무엇을 성취했는가를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거울이자 정치 민주화의 핵심 요소다"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 체제의 기반으로서 경제 체제를 끊임없이 민주화하려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도 지적했다.

그의 이러한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제 문제는 민주냐 반민주냐가 아니라, 자본주의냐 경제 민주주의냐이다. 그런데 모두가 다 알 듯이, 경제 민주주의가 도대체 무엇이냐 라고 묻게 되면, 백인백색의 답변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최장집 교수는 연이어 말하기를,

"지금 경제 민주화의 정의는 광범위하게 열려 있다. 여당과 야당, 보수파와 진보파 누구도 아직 분명히 정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선거가 거듭되고, 정당 간 경쟁이 거세지고, 사회로부터 경제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될 때 '무엇이 경제 민주화냐' 하는 것에 대해 정치인들이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장집 교수는 "경제 민주화 이슈가 판도라의 상자처럼 현대의 중요한 이념과 이론적, 철학적 이슈들을 불러내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제적, 사회적 평등의 창출과 관련하여 판도라의 상장에서 튀어나올 현대의 중요한 이념과 그리고 이론적, 철학적 이슈들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떠오르는 강력한 이념은 공산주의·사회주의일 것이다. 그런데 최장집 교수는 같은 글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 정당 정치인들이 고민하게 될 문제의 초점은 '경제 민주화가 사회민주주의를 포괄하느냐 아니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경제 민주화가 유럽으로 대표되는 사회민주주의적 복지 국가 체제에 접맥하고 그것을 지향하느냐, 아니면 자유주의적 시장 경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도모하느냐 하는 질문이다."

1980년대 말 소련 및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적 대안 체제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렇지만 영미 자본주의(Anglo-American capitalism)로 대표되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free market capitalism) 역시 2008년 말 발발한 세계 금융 위기와 극심한 빈부 격차로 그것의 윤리적 정당성과 경제적 효율성, 역사적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렇다면 남는 유일한 대안적 경제 이념은 공산주의·사회주의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신자유주의)라는 양 극단의 중간에 위치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다.

그런데 다양한 중간적 이념 스펙트럼의 맨 왼쪽에 사회민주주의가 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안에서도 다시, 맨 오른쪽에는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하는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영국의 앤서니 기든스와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로 대표되는)가 있고, 그 중간에 스웨덴과 핀란드의 사회민주당과 그리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당내 좌파 등이 있다. 그리고 맨 왼쪽에는 독일 좌파당(Die Linke), 스웨덴 좌파당 등으로 표현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영미의 사회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가 있고, 이것이 한국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라 불린다. 또 '반성한 자유주의 또는 건전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ordo-liberalism) 또는 미국의 리버럴(liberal) 주류가 있고 이것은 한국에서 개혁적 자유주의로 불린다.

독일의 현재 집권당인 기독교민주당의 정치경제 사상이 질서 자유주의이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사회적 시장 경제론(social market economy)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사회적 시장(social market)이란, 자유로운 시장(free market) 즉 자유 시장에 반대되는 말이다. 즉 질서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는 다르며, 말하자면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질서 자유주의 역시 신자유주의(그리고 구자유주의)와 공통적으로 사유 재산제와 시장 원리 그리고 개인 책임 및 자조(self-help) 등의 가치/원칙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단, 질서 자유주의는–신자유주의와 달리–독과점을 규제하여 완전 경쟁·공정 경쟁 시장 질서를 창출하고자 하고, 동시에 일정 정도의 사회 복지와 함께 노동 시장을 규제하여 노자 관계의 대립과 긴장을 일정하게 완화시키고자 한다.

독일 기독교민주당의 이러한 입장은 (이것은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기독교민주당들 역시 비슷한데), 미국 민주당의 리버럴(liberal)과 매우 흡사하다. 따라서 미국의 리버럴 민주당을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동격으로 놓는 것은 큰 착각이다. 물론 유럽의 사회민주당 중에서도 제3의 길을 채택한 경우 미국 리버럴과 매우 흡사해졌는데, 동시에, 사회민주당과 기독교민주당간의 정책 지향성의 차이가 거의 사라져 버리면서 양측 모두에서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지향성이 강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혁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민주당 주류, 안철수 신당 주류의 중도주의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민주당 내 진보파 그리고 안철수 신당 흐름 내의 진보파들(최장집 교수처럼 노동 중심 진보 정당을 말하는)은 대체로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개혁적 의원들이 "독일 경제, 독일 기업에서 배우자"는 국회의원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그 지향성은 대체로 독일의 사회적 시장 경제론(질서 자유주의론)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남경필, 원희룡, 이헌재 의원 등이 독일 경제 모델을 공부하고 있으며, 민주당의 전순옥 의원 등도 마찬가지이다.

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두관 전 경상남도지사처럼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당내 경선에 나섰던 이들이 현재 독일에 체류하면서 독일의 경제 모델과 사회적 시장 경제론, 복지 국가를 현장 학습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여권 내 경제 민주화론자로서 존경받는 보수 원로인 김종인 박사가 말하는 경제 민주화론 역시 그가 공부한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 또는 사회적 시장 경제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렇듯, 공산주의·사회주의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신자유주의)라는 양극단을 배제한다 하더라도, 경제 민주화론에는 사회민주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질서 자유주의(건전 자유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그리고 최장집 교수가 지적했듯이, 경제 민주화 담론이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전면에 떠오르면서 이제 판도라의 상자로부터 다양한 현대 이념들이 유령처럼 뛰쳐나오고 있다.

시장 주도형 경제 민주화냐 국가 주도형 경제 민주화냐

그런데 왜 민주 세력의 기존 가치관이 그렇게 (신)자유주의에 푹 물들어 있었을까? 1990년대 초반 이래 민주 세력 내에서는 정부 주도형 경제보다는 시장 주도형 경제가 바람직하며 특히 투명한 시장, 공정한 시장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담론이 지배해 왔다. '시장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은 관치 경제고 박정희식 경제의 유산이다'는 생각에서 박정희식 개발 독재를 해체하자고 했고, 그러려면 '더 많은 시장 논리', '더 강한 시장 규율'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개혁 진보 경제학자들의 시각이었다.

이런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 관점에서, 한국 경제를 시장 주도 경제로, 특히 선진국 중 가장 시장 논리의 힘이 강한 미국식 자본주의로 바꾸어 놓겠다고 한 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였고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2008년 말에 시작된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민주 정부가 추구했던 '글로벌 스탠더드' 즉 미국식 자본주의를 향한 이른바 '시장 개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더구나 똑같이 시장 논리, 시장 규율 강화의 시각을 가진 것이 보수적 자유주의, 즉 시장 만능주의였고 이명박 정부는 그 생각을 극한까지 추구했다. 민주 세력은 그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속에서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계속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민주 세력 내에서 처음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는 박정희 식이 아닌 다른 방식, 다른 형태의 국가 개입주의였다.

몇 년 전부터 민주 세력 내부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다른 국가 개입론이 등장했다. 하나는 복지 국가론이고, 또 하나는 공정 국가론이다. 복지 국가론이란 나처럼 스웨덴식 복지 국가를 만들자는 입장이며 특히 보편적 복지와 노동 민주주의(이것이 경제 민주화의 본질이라고)를 강조한다.

그에 반해 공정 국가론이란 반칙·특권 세력인 재벌을 (그리고 모피아를) 정부가 규제해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입장에 선 사람들은 복지 국가보다 공정한 시장 질서(이것이 경제 민주화의 본질이라고)를 앞에 내세운다.

작년 말의 선거 운동 기간 내내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 비하여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을 더 강하게 이야기했다. 순환 출자 규제와 지주 회사 규제, 금융-산업 분리 같은 재벌 규제를 놓고 박근혜 후보와 차별화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와 진보 진영의 전략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물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 모두 선거판에서 핵심 쟁점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문재인-안철수 후보만이 아니라 박근혜 후보까지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는 통에, 미래 비전이나 정책을 가지고는 후보 간 차별화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문재인 후보는 정책 대결, 미래 대결이 아닌 인물 대결, 과거 논쟁(박정희-장준하 논쟁)으로 선거판을 끌고 갔는데, 결국 그것이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원인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문재인 캠프의 근원적 한계였다. 물론 유세의 마지막 단계, 특히 2차 및 3차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는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복지 정책에서 박근혜 후보를 압도했다. 그렇지만 선거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제시된 차별화된 복지 정책으로는 국민들에게 어필할 시간이 없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장기적 국가 비전의 결여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도 그렇고 현재의 민주당도 그렇고, 그들이 과연 어떤 유형, 어떤 지향성의 복지 국가를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 만들어내고자 하는지 장기적인 국가 비전이 분명치 않다. 당시 문재인 후보 쪽은 박근혜 후보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즉 적어도 독일 기독교민주당이 만들어낸 독일 수준의 복지 국가를 20년 뒤 한국의 모습으로 제시하면서 차별화했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향후 5년 뒤만이 아니라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건지, 어떻게 대다수 서민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대다수의 개개인들의 생활 속에서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건지에 관한 장기적 국가 비전의 결여는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여러 진보 정당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정당들 역시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재벌 개혁(재벌 해체)-경제 민주화를 복지 국가에 비해 더 시급하고 우선적인 과제라고 제시하였다.

그런데 과연 생활하는 서민들의 관점에서 볼 때, 순환 출자 규제, 지주 회사 규제, 금융-산업 분리와 같은 재벌 개혁(재벌 해체)-경제 민주화가 기초연금 20만 원, 반값 등록금, 4대 중증 무료 진료와 같은 복지 국가 이슈에 비해 그렇게 시급하고 우선적인 것으로 다가왔을까?

게다가 민주당과 진보 정당들이 제시했던 (지금도 제시하고 있는) 재벌 개혁의 방법과 지향성은 1999년대 말의 김대중 정부가 제시한 재벌 개혁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과연 서민들이 체험한 과거 민주 정부 시절의 개인적 삶이 행복하고 자유로웠던가? 많은 이들에게 그 시기는 절망의 시절이었다.

많은 이들이 민주 정부가 처음 시행한 이른바 '시장 개혁(구조 개혁)'과 함께 새로 등장한 명예 퇴직, 희망 퇴직, 정리 해고의 희생자들이었다. 회사가 통째로 다른 회사에 매각되고 임금이 삭감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밀려난 이들의 상당수가 퇴직금으로 통닭집, 피자집, 음식점을 차렸고, 그 중 다수가 파산하여 빈곤층이 되었다. 지금 은행 대출신용카드 대출을 못 막아 전전긍긍하는 신용 불량자 중에도 그런 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가난한 신용 불량자들을 짓누르는 부채 탕감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기를 두려워했다. 신용 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 즉 '모럴 해저드(개인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이 개념은 시장주의-자유주의 이론의 맥락에서 나왔는데)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주당은 신용 불량자 개개인의 윤리적-도덕적 결함을 시급하고 우선적인 문제로 보았을 뿐, 왜 그들이 구조적으로 신용 불량자로 전락했는지, 그 구조(시장 주도형 경제)를 만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책임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 이에 반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가난한 신용 불량자 부채 탕감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고 지금 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민주당과 여러 진보 정당들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신용 불량자 부채 탕감 정책이 없다.

우리 사회가 1990년대 말부터 상시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대규모 명예 퇴직, 희망 퇴직, 정리 해고 등이 재벌 개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문재인과 안철수, 이정희와 심상정 후보 등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복지 공약 및 노동 공약에 비해서도) 가장 우선적이고 시급한 과제라고 국민들에게 제시한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 또 재벌 해체의 슬로건이 그들을 감동시켰을까?

정의란 무엇인가?

앞에서 나는 민주주의와 자주/통일 등이 삶에 찌든 대다수 생활인들,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선뜻 다가오지 않는 가치라고 말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새로이 떠오른 화두가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정의는 매우 근본적인 가치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오늘날 자유와 함께 (평등 대신에) 정의 그리고 연대를 궁극적 가치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정의란 무엇인가?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복지보다 더 우선적이며 소중한 가치는 특권과 특혜의 철폐이며, 따라서 정의와 공정·공평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씨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 6월 지방 선거에서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시종일관 무상 급식 이슈의 정치적 중요성을 간과하였다.

그런데 2010년 6월의 지방 선거에서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전국적으로 무상 급식 이슈(복지 이슈)가 휩쓸었고, 그 덕택에 야권 후보들이 약진하였다. 그에 반해 서울에서 별다른 선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한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그리고 한명숙은 2012년 4월의 총선을 진두지휘할 때 반복적으로 '복지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특권과 특혜의 철폐이며, 정의와 공정·공평의 회복'이라고 발언하였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안철수 진영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지난 선거 기간 내내 말로는 복지를 입에 올렸지만, 내심 복지 국가는 그 자체 정의와 공정 구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정의와 공정·공평의 내용과 실체는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공산주의 등 서로 다른 세계관과 정치경제 사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실질적 평등(실질적 공평·공정)보다는 형식적, 절차적 평등(절차상의 공정·공평)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자들은 (여기에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 안철수도 포함되는데) 흔히 '복지보다 더 소중한 것은 공정·공평'이며, '복지 국가보다 더 소중하며 우선적인 것은 특권과 특혜의 철폐'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안철수 신당도 마찬가지) 재벌로 상징되는 특권 세력 해체를 늘 가장 우선시되는 과제로 제시한다.

그렇지만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민주주의, 즉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가장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보편적 복지와 노동 민주주의야말로 정의와 공정·공평이라는 가치/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며, 더구나 재벌의 특권과 특혜를 철폐(완전 경쟁 시장 창출을 위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특권과 특혜를 실질적으로 철폐하여 사회 평등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직 민주당과 자유주의만이 정의(正義)와 공정(公定)을 대변한다고 하는 것은 억지다. 정말로 중요한 화두는 그 정의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아마도 내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통의 서민들, 생활하는 개개인들의 직관적 느낌 역시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어떻게 복지 국가의 도움 없이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건가? 그들이 제시하는 최고의 정의·공정성 회복 방안은 '공정한 시장 질서' 원칙의 구현이다. 그리고 공정한 시장 질서 창출을 위해 최우선시 된 과제가 바로 각종 재벌 규제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일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경제 민주화의 실체로 이해한다. 그런데 과연 '공정한 시장 질서'가 정의가 보장되는 경제 체제를 창출할 수 있을까?

'공정한 시장 질서'란 시장 경쟁 절차의 공정성(즉 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다. 즉 공정한 시장 질서 그 자체는 소득 분배의 공정성(즉 결과의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시장이 더 공정해질수록, 즉 더 완전 경쟁 시장 모델에 가까울수록, 성과주의의 확산에 따른 불평등한 소득 분배와 승자와 패자의 빈부 격차 심화는 불가피하다. 공정한 시장 질서는 필연적으로 불평등한 사회, 불공정한 사회를 낳는다.

아무리 공정한 '경쟁적 시장 질서'가 관철되더라도 그 경제는 자본주의적 착취도, 노자 대립 심화도 막을 수 없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1998년 이래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이 진행되면서 동시에 도입·확산된 것이 기업에서의 미국식 성과주의 및 개인주의 문화였다. 그것은 기업들에서 살벌한 비인간적 경쟁을 낳았다.

미국식 성과주의와 능력주의는 모두 사람들이 이기적이며 경쟁과 금전적 보수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주된 동인이 된다는 전제 아래 경제적 생산성을 최대한 높이는데 주안점을 주는 원칙이다. 성과주의와 능력주의에 가장 부합하는 경제 이론이 바로 미국에서 발전한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 생산성 원리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의 이름으로 시행된 1998년 이래의 경제 민주화 또는 시장 주도형 경제로의 개혁(시장 개혁) 과정에서 한국 경제에서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투입 노동 대비 낮은 한계 생산성을 보이는 중하층 노동자들에게는 과거보다 낮은 임금을, 높은 한계 생산성을 보이는 고급 관리자와 경영자들, 특히 금융권 직원들과 펀드 매니저들에게는 높은 봉급을 주는 것이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저소득 노동자(워킹 푸어)와 고소득 임직원 간의 소득 격차는 과거 박정희 체제에 비해 크게 벌어졌다.

공정한 시장 질서와 자본주의 시장 질서

반칙과 특권이 없으며 누구나가 평등·공평하게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는 공정한 경제, 정의로운 사회를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반칙과 특권의 내용과 실체가 뭐냐는 것이다. 그게 명확해야만 공정·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의 실체와 내용이 분명해진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부인하지 않는다. 존 로크나 애덤 스미스, 볼테르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축을 이루는 사유 재산권과 시장 경제를 자연스런 상태(자연법)로 보면서 긍정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공병호와 복거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장자크 루소나 카를 마르크스 같은 이들은 사유 재산권의 존재 그 자체가 반칙과 특권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장 경제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작동하려면 완전 경쟁이 되어야 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요-공급이 완전 경쟁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완전 경쟁 상태가 되어야만 공정·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공평은 주로 경쟁적 시장 질서에 관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 모든 인간관계가 경쟁은 아니고, 더구나 경쟁에 시장 경쟁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보다 협력하여야 할 사안들이 많고, 더구나 경쟁이라 하더라도 수익을 위한 시장 경쟁이 아니라 시장 밖에서의 비영리 목적을 위한 선의의 경쟁도 많다.

달리 말해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공평한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테제는 매우 올바르고 정당하지만, 그 자체만으론 내용과 실체가 없는 공허한 말이다. 그런 말은 자유주의 개혁가도 할 수 있고, 공산주의 혁명가도 할 수 있다. 또 사회민주주의 복지 국가론자도 할 수 있다. 마치 복지 국가는 정의 및 공평·공정과 무관한 양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유주의의 관점을 보여준다.

공정 시장, 공정 경쟁 원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들 수없이 많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삶을 찌들게 하는 핵심에는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유린하는 냉혹한 현실인 시장 자본주의가 있다. 자유주의는 결과의 평등(소득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평등(기회 균등)을 더 강조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데, 과연 모든 사람이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부모로부터 사유 재산권(부와 재산)을 물려받은 이들은 출발점부터 특권을 가지며 따라서 출발점부터 공평하지 않은 반칙 세력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그 자체 공정·공평한 체제가 아니다.

정의로운 경제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처럼 빈부 격차가 심하고 자살률과 비정규직도 세계 최고, 행복도 세계 최하위의 나라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라고 볼 수는 없다. 또 재벌이 빵집과 순대 사업에 진출하여 영세 자영업자를 몰락시키는 재벌 공화국을 정의로운 경제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에는 여러 종류의 상벌 체계가 존재한다. 법과 관습은 대표적인 상벌 체계인데, 법이 철저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곧 법으로 표현된 '정의'가 관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벌 범죄의 경우, 재벌 총수들 역시 '법 앞에서의 평등' 원칙에 따라 다른 범죄자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처벌하여 구속시키는 것이 당연히 정의로운 나라이다.

그런데 자유 시장도 상벌 체계의 일종이다. 정상적인 자유 시장에서는 좋은 상품을 값싸게 생산하는 기업이 돈을 벌게 되는 반면, 저질 상품을 비싸게 생산하는 기업은 망한다.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자유 시장이 상을 내린다는 뜻이고, 망한다는 것은 자유 시장이 처벌한다는 뜻이다.

자유 시장 즉 완전 경쟁 시장은 명백한 책임 추궁을 바탕으로 하는 '공정한 보상·처벌 시스템'이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자유 시장 그 자체가 훌륭한 상벌 체제라고 말하는 복거일과 공병호, 하이에크와 프리드먼과 같은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매우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본다.

그런데 스스로를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자임하는 공정 시장론자들은 공정한 (즉 완전한) 경쟁적 시장을 회복하는 것이 공정과 정의를 회복하는 핵심적인 방법이며, 따라서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이 복지 국가보다 논리적, 시간적으로 우선시 되는 과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경쟁적 시장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는 재벌 그룹처럼 기업 간 경쟁을 왜곡하는 특권·특혜 세력을 약화 또는 해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며 가장 중요하다.

물론 공정한 시장 질서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를 놓고도 그들 안에서 견해가 엇갈린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같은 인사들은 공정한 완전 경쟁 시장 창출을 위해서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필요하며 더구나 (정규직) 노동 운동의 약화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입장은 송영길, 안희정 같은 민주당 386 정치인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문재인 대선 캠프의 핵심을 이루던 386 참모들 역시 동일한 견해를 수없이 표명하였다. 게다가 이런 관점은 노무현 정부 시기의 정책 노선으로 일관되게 관찰되었다.

이 경우, 자유 시장론과 공정 시장론이 갈라지는 유일한 분기점은 독점과 경제력 집중 즉 재벌에 대한 태도에서 뿐이다. 즉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신자유주의자들)이 독점과 경제력 집중(즉 재벌 그룹의 계열사 확대)이 자유 시장 경쟁의 자연스런 결과이므로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공정 시장 우선론자들은 재벌 그룹을 자유로운 완전 경쟁 시장의 작동을 저해하는 '왜곡 요인'으로 보면서 그것을 제거 또는 축소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재벌 그룹 축소 또는 해체를 통해서만 '합리적인 완전 경쟁 시장' 즉 '공정한 시장'을 만들 수 있고, 그래야만 정의와 공정·공평이 넘치는 공정 사회 또는 공정 국가가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 구현 즉 재벌 개혁과 (그리고 그것과 긴밀하게 결합된)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이 복지 국가보다 더 우선적이고 더 중요한 과제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주요 인물로는 정운찬(전 동반성장위원장)과 그리고 김광수(김광수경제연구소장), 그리고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등을 들 수 있다. 장하성 교수 역시 마찬가지로 공정한 시장 질서면 충분하다고 말하는데, 그는 안철수 대선 캠프의 정책총괄이었고 현재 안철수 의원 중심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소장이다. 그리고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이 바로 최장집 교수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미-안철수 의원 및 장하성 교수와 함께–자신의 이념인 (진보적) 자유주의를 축으로 하는 정당의 건설에 착수했다.

그에 반해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와 유종일, 김상조, 정태인 같은 이들은 복지 국가와 '동시에' (즉 병렬적으로) 공정한 시장 질서(이것을 경제 민주화라고 그들은 부르는데)가 이룩되어야 한다고 요즘 말한다. 하지만 이들 인사 대부분이 1년 전까지만 해도 복지 국가에 비해 논리적, 시간적으로 더욱 우선적이고 중요한 과제는 경제 민주화(공정한 시장 질서)라고 말했었다. 단지 작년 중반 이후 나 같은 복지 국가론자들과의 논쟁 속에서 입장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들은 여전히, 장기적으로는 복지 국가와 공정한 시장 질서가 동시에 구축되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이 더욱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그들은 "선제적 복지로서의 재벌 개혁-경제 민주화"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서, 2차적 소득 분배 즉 복지 국가적인 '국가 개입주의' 정책(세금 징수와 사회 복지 재정 지출을 통한 소득의 재분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1차적 소득 분배 즉 '합리적 시장' 경제 속에서의 원천적 소득 분배이며,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하청 단가 삭감과 대리점 수탈(남양유업 사태에서 드러난)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실은 최장집 교수 역시 이와 인식을 함께 한다. 그는 앞서의 발표문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운영과 재벌 중심의 성장이 한편으로 한국을 경제 선진국으로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던 동안, 다른 한편으로 사회 양극화와 사회 해체 효과들, 노동 배제, 최고율의 (하급) 자영업 비율, 노동 인구 절반의 비정규직과 그들에 대한 차별 같은 부정적 결과도 만들어냈다. (…) 한국 민주주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체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고, 그것이 경제 민주화의 내용이 된다"고 말하면서, "국가의 일방적인 재벌 지원에 대한 특혜를 실체적으로 제한하고, 재벌에 대한 법의 지배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공정 시장은 시장 소득 분배를 얼마나 개선하는가?

공정 시장 우선론자들은 2차 분배 즉 정부의 조세 수입 및 복지 예산 지출을 통해 달성되는 공정한 소득 재분배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1차 분배 즉 공정한 시장 질서 수립을 통해 달성되는 원천적 시장 소득 분배의 개선이라고 말한다. 정운찬과 김광수, 김대호 같은 이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며, 정태인과 이병천, 유철규, 유종일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들도 동일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과 여타 진보 정당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1차 분배를 앞으로 얼마나 개선하여야 할까? 이는 총부가가치 즉 국내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노동 소득의 몫 즉 노동 소득 분배율을 척도로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 소득 분배율은 1970년 41퍼센트였지만 1980년 51퍼센트, 1990년 59퍼센트로 급격히 개선되었다.

자본 측으로의 소득 분배가 상대적으로 줄고 그 대신 노동하는 서민들에게 더 많은 소득이 분배되었다. 경제 민주화는커녕 정치 민주화조차 달성되지 않은 개발 독재 시절이었는데도 노동 소득 분배율이 빠른 속도로 개선된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당시에 직업 생활을 한 오늘날의 많은 장년층, 노년층이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 주된 이유는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기업 투자 비율이 4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로 기업들이 왕성하게 신규 투자를 늘린 덕택에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지속되었고 그 결과 종업원 실질 임금이 30년간 계속 올라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0년대 말부터는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1990년대 초·중반에 노동 소득 분배율이 사상 최고인 63퍼센트까지 상승하였다. 노동 소득 분배율은 그렇지만 1990년대 말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래 오히려 악화된다. 그것은 1998년 직후 58퍼센트 수준으로 곤두박질 쳤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60퍼센트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선진국의 노동 소득 분배율은 평균 70퍼센트 수준으로 알려져 있고 그만큼 1차 소득 분배(즉 시장 소득 분배)에서 우리보다 더 평등하다. 따라서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의 1차 분배를 달성하려면 노동 소득 분배율을 60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10퍼센트 올려야 하는 과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GDP를 2013년 1300조 원으로 볼 때, 2013년 기준 130조 원의 몫이 종업원 등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더 분배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장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먼저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를 말하는 이들은 출자 총액 제한제 강화와 금융-산업 분리 강화 등 재벌 개혁을 통해 재벌의 소유 지배 구조를 개혁하고, 동시에 원청-하청 규제와 징벌적 손해 배상제 등을 통해 대·중소기업 간 공정 거래 질서를 만들어 내면 돈 많이 버는 수출 대기업들로부터 그 아래 관련 기업들로의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이 원활하게 작동하여 궁극적으로 종업원 등 서민들을 위한 1차 분배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다. 일리가 있으며 일정한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효과도 예상된다. 왜냐하면 지난 민주 정부들이 주주 자본주의를 재벌 체제의 대안으로 제시하여 그것을 정착시킨 이래 주식 투자 재테크가 만연하고 있다. 그런 조건에서의 출자 총액 제한제 강화, 금융-산업 분리 강화 등은 주식 투자자들의 힘을 더 크게 하여 오히려 총자본(재벌 가족과 주식 투자자들을 핵심으로 하는)에는 유리하고 총노동에는 불리한 방향으로 1차 분배를 악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실제 1990년대 말 이래 10년간 민주 정부 하에서 일어난 일이다. 빈부 격차가 그 시기에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

둘째, 대·중소기업 간 공정 거래 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지만, 그 효과를 너무 과장하면 안 된다. 재벌 기업을 포함한 대기업 전체의 연간 순이익 총액이 50~100조 원인 상황에서 제아무리 재벌 개혁과 대·중소 기업 동반 성장 정책을 잘한다 해도 이를 통해 중소기업에 트리클 다운되는 액수는 연 10~20조 원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더구나 중소기업, 영세 기업에 만연한 노동권 부재, 노동조합 부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액수가 다 종업원과 직장인의 몫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겨우 이 액수로 130조 원의 격차를 메우겠다고?

자유주의자들은 대·중소기업 간 원청-하청 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규제하면 중소·영세 기업에 유리한 방향의 시장 소득 분배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이들 기업에서 저임금 착취가 원천적으로 사라질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치명적 착각이다. 아무리 원청-하청 거래가 공정 거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저임금 착취와 장시간 노동을 민주 공화국이 금지하지 않는 한,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는 신생 하청 기업은 계속 나타날 것이며, 그런 기업이 공개 입찰 하청 계약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공정 시장 질서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중소·영세 기업에 만연한 저임금 노동 착취를 원천 금지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저 임금을 높이고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를 포함한 전국적 산업별 노동조합을 구축하며, 전국적 단일 단체 교섭이 법률적으로 유효하도록 민주 공화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총자본과 총노동 간의 원천적 시장 소득 분배(즉 1차 소득 분배)에서 총노동에 유리한 방향의 변화가 달성될 수 있다.

복지 국가 전략 : 생산적 투자와 노동 민주주의, 소득 재분배

2013년 기준 130조 원가량의 1차 소득 분배 개선을 달성하는 방법은 노동 운동이 활성화되고 동시에 생산적 투자가 매우 활발했던 1980년대 말 우리나라의 경험으로부터도 유추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과 노동권을 대폭 강화시켜 노동조합의 임금 교섭력을 높임과 동시에 기업들의 신규 투자를 왕성하게 만들어 노동 시장에서 실질 임금이 높아지도록 하는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비정규직 및 파견 노동의 엄격한 규제와 함께 노동 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이를 통한 수백만 명의 신규 일자리 창출, 최저 임금 인상 등의 복지 국가적 국가 개입 조치가 필수적이다. 동시에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노동자를 모두 포함하는 산업별 노동조합을 의무화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며 산업별 단체 교섭의 효력이 모든 사업장과 모든 종업원에 적용되도록 의무화시켜야 한다. 동시에 금융 자본 및 주주 자본주의를 강하게 규제하여 대·중소기업 전체에 있어 왕성한 신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견인해내야 한다.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권의 대폭 향상(이것을 노동 민주주의라고 부르자)과 함께 기업의 왕성한 생산적 투자(이를 위한 주주 자본주의 억압)를 견인하는 전략은 1950년대 이래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추진한 전략이기도 하였다. 130조 원의 시장 소득(원천 소득)을 종업원 등 서민의 몫으로 새로이 분배하는 1차 분배 개선을 위해 오늘날 우리나라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전반적 기획이다.

또한 동시에 OECD 평균에 비해 10퍼센트 즉 130조 원이 부족한 2차 분배(즉 국가적 복지 재정)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제 역시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130조 원의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겨우 오늘날 이탈리아, 스페인 수준의 사회 복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듯 2013년 기준 총 1300조 원의 GDP에서 그 20퍼센트인 도합 260조 원의 막대한 소득을 자본으로부터 노동(서민)에게 이전시키는 소득 분배 혁명을 일거에-수년 내에-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국민들 다수의 정치적 동의로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이며, 복지 국가 5개년 계획의 수립을 통해 향후 10년,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OECD 평균의 비교적 평등한 소득 분배에 도달할 수 있다.

게다가 OECD 평균을 넘는 스웨덴 수준 복지 국가로 가려면 다시 그것의 두 배, 즉 2013년 기준 500조 원 가량의 1차 및 2차 소득 분배 개선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30년에 걸친 단계적 이행이 필요하다.

어떤 가치관, 어떤 세계관의 경제 민주주의인가?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경제 민주화 화두의 부상은 현대의 다양한 이념적 유령들을 판도라의 상자로부터 뛰쳐나오게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역시 일종의 경제 민주화론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근간인 사유 재산권이 존재하는 한 경제를 민주주의 즉 '피플'의 지배 하에 놓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 역시 일종의 경제 민주화론이다. 자본과 사유 재산권, 시장 경제를 인정하지만 그것들을 민주 공화국으로 결집된 피플이 적절하게 통제하는 복지 국가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민주주의가 자본·시장 권력에 의해 유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경제 민주주의보다 산업 민주주의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산업 민주주의 핵심은 바로 노사 관계의 민주화 즉 노동 민주주의이다. 회사 안에서는 기업주 즉 자본에 대항하는 종업원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드높이고, 동시에 회사 밖에서는 복지 국가를 만들어 없는 사람들도 부자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정지한다'는 말이 있다. 참된 경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회사 안에서도 관철되는 것이다. 종업원의 대표자가 회사 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할 권리를 법적으로 확보한 독일과 스웨덴의 경우 경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경제 민주주의를 이렇듯 산업 민주주의, 노동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이다.

종업원을 대표하는 이사들이 주주(사유 재산권)를 대표하는 이사들과 동등한 숫자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이사회에 참여하여 사장 등 경영진을 선출할 권리를 갖는 것을 '종업원 공동 결정제'라고 부른다. 공동 결정제를 경제 민주화의 본질로 보는 세계관이 사회민주주의이다.

그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경제 민주화론에는 이런 이야기가 아예 없거나, 또는 간혹 있더라도 본론이 아닌 부록에 등장할 뿐이다. 그것은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에 집중하는 자유주의적 경제 민주화이다. 예컨대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에 시달리는 24시간 편의점 제과점 식당 주인의 처지와 입장에는 주목해도, 편의점 식당 제과점 등에서 근무하면서 저임금과 임금 체불, 성희롱 등에 고생하는 알바 대학생 등 종업원의 처지와 입장은 부차적으로 다룬다.

자유주의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노동권 신장(그리고 노동권과 긴밀하게 결합된 사회 복지권 강화)이 아니라 경쟁적 시장 질서의 구축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 경제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훌륭하며 앞으로 더 발전시킬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도 경제 민주주의가 곧 재벌 개혁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비아냥거림은 곧 "경제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비아냥거림으로 전환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가장 많이 듣던 말이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이었는데,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 대다수 서민들, 가난한 이들의 삶이 더 피폐해졌다.

대다수 국민 개개인의 삶의 현실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일을 해결해주는 경제 민주화, 밥 먹여주는 경제 민주주의만이 국민들의 열렬한 동의와 지지를 받을 것이다. 순환 출자 규제와 금융-산업 분리처럼 직장인·서민들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고용 안정과 봉급 인상, 비정규직 차별 해소로 직결되는 경제 민주화, 오후 6시에 칼퇴근하고 주말 이틀 쉴 수 있으며, 1년에 한 달의 유급 휴가를 쓸 수 있게끔 하는 경제 민주화, 비정규직으로 또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더라도 임금이나 여타 처우에서 별다른 차별을 못 느끼고 살 수 있는 경제 민주화, 이런 것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중요한 일상적 삶의 개선 과제들, 즉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위한 과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민주화는 단지 불공정한 시장 질서를 시정하는 차원을 넘어,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 그 자체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정신을 가질 때만이 가능하다.

3. 어떤 가치관, 어떤 세계관의 복지 국가인가?

복지 국가–프레임의 전쟁이 시작되다


경제 민주화 담론만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 아니다. 복지 국가 담론 역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이제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까지도 복지 국가를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반값 등록금과 노인 연금 확대, 의료 보험 확대 등을 말하고 있다.

2010년 6월의 지방 선거에서 떠오른 무상 급식 이슈 덕택에 우리나라 진보의 정신 세계 속에 새로운 담론 즉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그리고 2012년이 되자 다시 또 다른 차원의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가 등장했다. 즉 경제 민주화 담론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그리하여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모두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라는 화두를 내걸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당과 야당은 누가 진짜 경제 민주화, 진짜 복지 국가를 할 것이냐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물론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가 그 자체 가장 소중한 궁극적인 가치 또는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여 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만약 경제 민주화 또는 복지 국가 말고도 다른 수단,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의 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많은 국민들은 그 길을 택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이며, 따라서 경제 성장이 최고의 복지"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에 진짜, 가짜는 없다. 지난 100년간의 세계 역사는 복지 국가에 여러 가지 유형, 여러 가지 이념적 지향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학자들은 유럽의 복지 국가에 보수주의 유형(독일), 사회민주주의 유형(스웨덴) 그리고 자유주의 유형(영국)이 있다고 말한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같은 앵글로색슨 국가는 영국의 자유주의 유형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같이 사회민주당이 전후 오랜 기간 집권한 북유럽 나라들은 사회민주주의 유형이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건전 보수 정당(기독교민주당)이 오랜 기간 집권한 독일은 전형적인 보수주의(조합주의) 복지 국가로 분류된다.

최초로 사회 복지 정책을 도입한 100여 년 전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그렸던 세상을 보수주의 복지 국가라고 한다면, 그의 정신을 일정 정도 계승하여 1950년대 라인강의 기적 시기에 독일의 집권 기독교민주당이 그렸던 질서 자유주의(사회적 시장 경제론)의 세상은-요즘 우리말로 옮긴다면–건전 보수 지향성의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상당수 의원 그리고 민주당의 상당수 의원이 포함된 건전 보수주의 세력의 지향성을 '건전 보수' 가치관의 경제 민주화, 복지 국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기존의 시장 만능주의 입장을 버리고 건전 보수의 입장으로 차츰 선회한다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안철수 신당도 마찬가지) 사이의 이념적, 정책적 차이는 점차 희석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회 경제 정책에 국한해서일 뿐이며, 남북 문제와 외교 안보의 경우에는 사안이 다르다.)

경제 사상적으로 볼 때 한국의 보수 세력은 분명 스스로를 갱신하고 있다. 시장 만능주의(신자유주의)를 버리고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 정도의 건전 보수(또는 중도 우파) 정도로 전환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보수 언론인 조·중·동 중 <중앙일보>의 최근 방향 선회는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손석희 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를 JTBC의 보도 담당 사장으로 영입한 것에서 이 점이 보인다.

그런데 이 경우 문제되는 것은 한국의 민주 세력이다. 더 왼쪽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면 건전 보수주의와의 차이가 더욱 불분명해질 것이고, 따라서 생활인의 관점에서는 굳이 민주 세력을 선택할 이유가 더욱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2012년 10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복지 국가 5개년 계획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문재인 캠프에서 나온 복지 공약과 재원 조달 방안을 보면, 2011년 말 민주당이 발표한 것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당시 민주당은 연평균 33조 원의 추가 복지 예산을 마련하여 사회 복지를 늘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더라도 집권 말기인 2017년에 우리의 복지 수준은 지금의 미국(선진국 최악의 복지를 하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 속도라면 미국 수준에 도달하는데 10년이 걸릴 것이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르랴'며, 10년 뒤 미국, 20년 뒤 OECD 평균의 복지에 도달하면 되지 않겠냐고 조급증을 달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당에는 언젠가 스웨덴 수준의 복지 국가를 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있는가? 나는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민주당에는 그럴 의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의 복지 국가를 만든 것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었다. 사회민주주의의 세계관과 정치경제학으로 무장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수십 년간 집요하게 노력하여 만들어낸 성과가 북유럽 복지 국가이다. 그에 반해 민주당에 (그리고 안철수 신당에) 모인 정치인들과 관료들, 지식인들의 거의 모두가 자유주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자유주의의 프레임 안에서 복지 국가를 만든다? 가능하다. 그게 바로 미국 민주당 리버럴이 생각하는 복지 국가이고 그게 바로 클린턴-오바마 수준의 복지 국가이다. 선진국 최하위의 복지 국가 말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신당은 나은가? 지난 2012년 11월의 안철수 캠프의 발표를 보면 복지 구상도 그렇고 그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구상도 마찬가지고, 문재인 캠프보다도 못했다. 특히 충격적인 점은 그 발표 내용들이 2012년 7월 말 발간된 책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펴냄)과 달랐다는 것이다. 그 책에서 안철수는 보편적 복지 구상을 제시했고 또한 부자 증세만 아니라 보편적 증세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후 결성된 안철수 캠프는 그 책과 전혀 다른 공약을 제시하였다. 장하성 교수를 필두로 하는 개혁 자유주의 학자들이 복지-노동 공약 마련에 참여하면서 문재인 캠프보다 더 보수적인 복지-노동 공약이 발표되었다. 복지-노동 공약만 보면 오히려 박근혜 캠프와 더 가까웠다. 당연히 스웨덴 복지 국가 같은 것은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았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연평균 27조 원의 추가 복지 예산으로 더 나은 복지를 하려 있다. (안철수 캠프 역시 이런 수준의 추가 복지 예산을 상정했다). 이런 속도라면 향후 13년 뒤에 오늘날 미국 수준 복지에 도달할 것이고, 25년 뒤에야 OECD 평균의 복지에 도달할 것이다. 따라서 복지 정책 하나만 볼 경우, 민주당이 집권하나 (그 경우 20년 소요), 새누리당이 집권하나(그 경우 25년), 큰 차이가 없다.

노인 연금 개혁–어떻게 할 것인가?

박근혜 정부-새누리당이 집권하나, 민주당(또는 안철수 신당)이 집권하나 큰 차이가 없는 대표적인 분야가 노인 연금 정책이다. 박근혜-새누리당은 모든 노인에게 1인당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 캠프(민주당)와 안철수 캠프는 모두 모든 노인에게 1인당 18만 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했었다. 선거 공약만 보면 박근혜-새누리당이 더 진보적이었다.

왜 민주당과 안철수 캠프는 노인 기초연금의 확대를 꺼려했을까? 결정적인 걸림돌은 재원 조달이었고, 자칫 재원 조달을 위해 큰 규모의 증세를 해야 하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현재 보편적 복지 원칙이 아닌 선별적 복지 원칙으로(소득 하위 70퍼센트 노인들에게만 지급) 당시 최고 9만2000원 지급했던 기초노령연금은 2012년 4조 원의 중앙정부 예산이 소요되었다. (현재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으로 지급 기준 이내의 소득 즉 월 소득이 단독 노인인 경우 83만 원 이하, 부부 노인인 경우 월 132만8000원 이하인 경우에 한하여, 소득 인정액에 따라 1인당 최저 2만 원에서 최고 9만6800원을 매월 지급한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노인 연금 재원 조달 문제 때문에 공약을 수정하여, (1) 소득 하위 70퍼센트의 노인들 중 국민연금 미가입자에게는 원래대로 월 20만 원을 지급하지만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는 월 14~20만 원을(가입 기간에 따라) 차등하여 지급하고, (2) 소득 상위 30퍼센트의 노인들에게는 그 중 국민연금 미가입자에게는 월 4만 원만을 지급하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는 월 4~10만 원을(가입 기간에 따라) 지급하는 안을 새로 제시하였다.

나는 연금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노인연금 개혁안의 구체적인 전문적 내용에 대해 왈가불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은, 조세(세금)에 의해 그 재원이 조달되는 기초(노령)연금에 관한 한, 보편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유한 고소득자에게서는 세금만 걷고 그들에게 동등한 복지 혜택을 주지 않는 선별적 복지의 원칙으로는, 당장은 한정된 재원을 서민 계층에게 집중 투하하여 그들의 복지 혜택을 늘릴 수 있을지라도, 세금은 부담하면서 별다른 복지 혜택은 누리지 못하는 고소득 부유층의 조세 저항에 심해지는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복지 정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자산 및 소득 조사를 통해 선별된 소수의 가난한 자들에게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을 선별주의 복지라고 한다면, 그런 조사를 다 생략한 채 모든 대상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을 보편주의 복지라고 할 수 있다. 부자건 가난한 자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무상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보편주의이며, 그렇지 않고 소득 순위 50퍼센트 또는 70퍼센트까지만 무상 급식을 제공하고 그보다 부유한 중·상위 50퍼센트 또는 상위 50퍼센트에게는 급식비를 받는 것(유상 급식)은 선별주의라고 한다. 초·중등 공교육 강화도 보편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모든 학령기 어린이와 청소년이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공교육은 부자와 빈자를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교육의 권리와 의무를 주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복지 정책을 보편주의 원리에 따라 설계할 수는 없다. 원리상 모든 대상자에게 혜택을 제공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 예컨대 주택 분야의 경우가 그러한데, 고급 호화 주택에 거주하는 고소득자와 초라한 공공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저소득자에게 동일한 액수의 주거보조 수당을 지급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복지 선진국의 경우에도 주거 수당은 소득 및 자산 조사를 통해 일정 수준 이하인 주민들에게만 그 혜택을 제공한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은 마치 선별주의 복지는 보수의 전유물이고, 보편주의 복지는 진보 의 전유물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 많은 경우 오히려 진보가 선별주의 복지를 더 지지한다. 왜냐하면 한정된 복지 예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여하여 복지혜택을 주는 것이 더 정의롭고 공정·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노동당과 노동조합은 1950~60년대에 그 세력이 매우 강했는데도 북유럽 같은 복지 국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자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보편주의 복지 국가보다는 가난한 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혜택을 주는 선별적 복지 국가를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경우 2000년대 초·중반 민주노동당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가끔)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선별적 복지 국가에 대한 지향성이었다.

그렇지만 선별주의 원리에 따라 운용되는 복지 국가는 궁극적으로 '최소주의' 또는 '잔여주의' 복지 국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 점은 복지 국가를 혜택(복지)의 차원만이 아니라 기여(복지 재정 즉 조세 및 보험료)의 차원에서도 살펴볼 때 분명해진다.

선별주의 복지의 경우 선별된 가난한 이들만이 복지 혜택을 받는다. 그렇지만 가난한 이들은 대부분 별다른 납세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이다. 따라서 그 복지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것은 중간 소득층과 상위 소득층이다. 이 경우 복지 혜택은 거의 받지 못하면서 그 비용 부담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중간 및 상위 소득층의 반발(조세 저항)이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어느 사회건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중간 및 상위 소득층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강하다. 따라서 선별주의 복지를 하는 나라의 정치인들은 절로 복지 예산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하게 된다.

이에 반해 보편주의 복지의 경우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모두 동등한 복지 혜택을 받을 사회적 권리를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보편주의 복지에서 모든 이들은 '평등'하다. 모든 시민 또는 주민은 '필요'에 따라 복지 혜택을 분배받을 권리를 지닌다.

보편주의 복지 국가에서는 저소득층은 적은대로, 중간 및 상위 소득층은 많은대로, 자신의 소득 대비 누진성의 원칙에 따라 더 많은 세금 즉 복지 비용을 분담한다. 즉 보편적 증세(보편 증세)의 원리를 지킨다. 보편주의 복지 국가에서는 모든 시민 또는 주민들이 각자의 세금 지불 능력(즉 소득 및 자산)에 따라 그 비용을 분담한다.

간단히 말해, 보편주의 복지 국가의 기본적인 운용 원리는 "각자는 필요에 따라 분배받고, 각자는 능력에 따라 기여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일찍이 루이 드 생시몽 등 초기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우애적 협동조합의 원리로서 정초한 것인데, 보편주의 복지 국가는 우애와 협동의 원리를 개별적 협동조합을 넘어 한 나라 전체(우리 5000만 국민 전체)가 하나의 국가 공동체, 사회 공동체로서 작동하는 것으로 확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 국가를 향한 '상상력의 정치'-잠정적 유토피아

보편적 복지 국가 운동은 이제 겨우 출발점에 있다. 무상 급식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서 시작되어 이제 앞으로는 보편적 아동 수당과 기초노령연금 그리고 보편주의 원칙의 주거 복지 및 도시 계획, 그리고 문화­예술-과학의 발전을 위한 공공 인프라의 구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리가 OECD 중간 수준의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 OECD 중간 정도의 조세 부담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 2013년 기준 130조 원의 추가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 말하더라도, 그것은 학술적 논의에 불과하다. 대다수 국민들이 그 주장에 동의하며 폭넓은 복지 국가 지지자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정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반값 등록금은 하나의 상상력이다. 완전 무상 등록금은 더 큰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이건희 회장을 포함하여 모든 65세 이상 노인에게 동등하게 향후 4년 뒤 1인당 월 50만 원, 10년 뒤 월 10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여 노인들의 삶이 즐거워지는 것을 꿈꾸는 것이, 그 꿈을 국민들이 함께 꾸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복지 국가를 향한 상상력의 정치이다. (실제 스웨덴의 모든 노인들은 2013년 기준 1인당 우리 기준으로 120만 원가량의 기초(노령)연금을–국민 연금 같은 소득 비례 연금을 제외하고라도-동등하게 지급받고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스웨덴처럼 모든 노인들에게 온갖 의료·레저 설비가 완비된 저렴한 공립 실버 타운을 제공하고 그리하여 노년 생활이 행복과 자유가 넘치는 모습으로 국민들이 상상하고 꿈꾸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복지 국가 정치의 역할이다.

설령 4년 뒤 월 50만 원, 10년 뒤 10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에 필요한 추가적 복지 예산이 30조 원(50만 원의 경우)이고, 70조 원(100만 원의 경우)의 추가 예산이 소요될 지라도, 만약 국민들 개개인이 이런 꿈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 비용을 십시일반으로 감수할 것이다. 그 복지에 필요한 막대한 복지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단지 부자들만이 아니라 중산층 그리고 저소득층도 자기 소득에 (누진적으로) 비례하여 십시일반으로, 보편적으로, 세금을 납부한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누진적 조세 부담이란 예를 들어 연간 소득 10억 원이 넘는 이건희 회장 일가 등 최고 소득 가구는 소득의 75퍼센트를 세금(소득세, 자산세 등)으로 납부하는데 반하여 연간 소득 2000만 원이 안 되는 저소득 가구는 소득의 1퍼센트 미만만을 세금으로 내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연소득 1000억 원이 넘는 재벌 가문은 700~800억 원을 세금으로 납부하고, 반면에 연소득 2000만 원가량의 비정규직 청년은 20만 원가량을 세금으로 납부한다. 그렇지만 이건희 회장도, 그리고 비정규직 청년의 노인 부모도 동등하게 월 50만 원(연 600만 원), 월 100만 원(연 1200만 원)의 동등한 기초노령연금 혜택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증세와 함께 가야 한다

이런 멋진 보편적 복지 국가를 만들기 위해 '부자 증세'부터 먼저 할 건지, 아니면 '보편적 증세'부터 먼저 할 것인지는 방법의 문제, 즉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의 문제이다. 물론 여전히 우리 국민들은 부유한 특권층의 탈세와 온갖 조세 감면 혜택에 신물이 난 상태이다. 따라서 향후 몇 년간은 부유층에 대한 과세와 중세에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소득층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복지를 위한 재원 조달에 적극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그들이 먼저 상당한 복지 혜택을 체험적으로 누린 이후에라도, 즉 노인연금 20~50만 원과 반값 등록금, 무상 보육과 초·중고 무상 교육 등을 체험한 끝에, "이렇게 좋은 복지 혜택을 지금보다 훨씬 더 늘려서 그 좋은 혜택을 모두가 누리겠다는 건데, 나도 미약하나마 조금 세금을 더 납부하겠습니다" 하는 의견이 절로 그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을 때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꿈과 이상(理想)을 갖자

스웨덴식 복지 국가를 이야기하면 흔히 너무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1950년대 당시 미국 정부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내부 보고서에서 "밑 빠진 독"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제 개발에 실패한 완전한 무능력자로 알려져 있었다. 1961년 경제 개발에 착수할 당시에는 1인당 소득이 연간 82달러로, 당시 아프리카 가나의 17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우리의 2012년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2만4000달러에 달한다.

우리가 제시하는 스웨덴 수준의 복지 국가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은 우리의 복지 수준이 OECD 최하위로 멕시코와 비슷하지만, 우리가 전 국민의 뜻을 모아 복지 개발-인간 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를 바라보면서 줄기차게 나아간다면, 10년 후 이탈리아 수준, 30년 후 스웨덴 수준의 복지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복지 국가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의 사회 경제 시스템 역시 평탄한 역사 속에서 구현된 것이 아니다.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홍기빈 지음, 책세상 펴냄)에 나오듯이 그것은 193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거의 반세기 가까운 기간에 온갖 정치경제적 논쟁과 대립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구축된 것이다.

스웨덴 역시 우리와 비슷하게 재벌 문제와 노동 문제, 복지 등 다양한 경제사회적 문제들에 직면했었으며, 그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공산주의는 모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이런 여러 가치관·세계관들은 스웨덴 복지 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때론 대립하고 때론 협조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 스웨덴은 그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꿈과 이상(理想), 미래 비전의 집약체가 이념이다.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이념의 빈곤이 오늘날 민주 진보 세력의 위기를 낳는다. 민주당의 패배와 여러 진보 정당들의 혼란은 한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386 세대의 등장과 함께 출현했던 NL(민족 해방)과 PD(민중 민주) 그리고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미국 자본주의의 융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융성한 각종 자유주우의 사조의 종말이요, 그것을 중심으로 하던 정치의 종말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정신과 세계관, 새로운 목표와 가치의 설정은 아직 뚜렷한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까닭에 혼란은 무기력은 계속된다. 이제는 새로운 꿈과 이상(理想)에 대해, 새로운 가치와 목표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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