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인스닷컴 화면갈무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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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013년 9월22일자 4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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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2013년 9월22일자 5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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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2013년 9월22일자 5면 | ||
| 2013년 9월20일 JTBC <뉴스9> 화면갈무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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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병두 민주당 의원 | |
| ⓒ 남소연 | |
"12월까지만 버티면, 저쪽에서 항복하고 나올 수밖에 없다."
민병두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다만, 그는 "내분이 없으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12월 예산법안을 두고 여권과 마지막 싸움을 벌일 때, 민주당 의원 127명 전원이 단식을 하든, 의원직 사퇴를 걸든, 모든 것을 내놓고 올인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돈(예산)이 필요한" 박근혜 대통령이 접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게 민병두 본부장의 판단이다.
다만 12월까지 긴 싸움을 해야 하는데, 내부에서 다시 강온파가 지지고 볶고 싸우면 질 수도 있는 싸움이라고 했다. 거창하게 전략이고 전술이고 따질 일이 아니라고 했다. 민 본부장은 거듭 "담력과 단결력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23일 전병헌 원내대표를 본부장으로 '24시간 비상국회 운영본부'를 설치하고, 김한길 대표가 서울시청 광장 노숙을 접는 대신 버스를 타고 전국 순회 투쟁에 나서는 것은 모두 이런 배경 때문이다. 민 본부장은 <문화일보> 정치부장 출신으로 열린우리당 17대 총선기획단장과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선거 전략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다음은 23일 오후 민 본부장과 진행한 인터뷰 요지이다.
"대통령과 3자회담, 득이 컸다"
-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3자 회담을 성과 없이 마쳤는데.
"김한길 대표는 3자 회담에서 득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1대1로 논쟁을 벌이는 게 쉽지 않은 거다. 누구 말이 더 설득력 있는가 분명하게 보여주자, 그렇게 실제로 임했다. 야당 대표가 대통령 앞에서 '당신이 사과해야 한다'고 1시간 동안 붙잡고 늘어지는 게 쉬웠겠나. 그러나 우리 얘기를 강하게 했고, 그 결과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았나. 국민의 60%가 국정원 개혁을 선호하고, 48% 패자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1대1로 붙으면 당연히 대통령이 손해를 보게 돼 있다.
만약 박 대통령이 3자 회담에서 '아버지를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싶다. 그런데 정말 국정원에 댓글을 달라고 지시한 적 없다. 국정원이 만약 그런 짓을 했다면 정말 나쁜 짓이고, 앞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앞으로 이런 짓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면, 상대적으로 우리가 많이 힘들어졌을 것이다."
- 추석 전 장외투쟁에 실렸던 힘이 이젠 원내투쟁으로 넘어오는 분위기인데, 그 배경은?
"3자 회담 성사와 상관없이 추석 끝나고 국정감사에 임한다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었다. 지난 8월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두 번이나 했던 얘기다. 이른바 우보 전술이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끝나고 나면 투쟁 동력이 떨어질 것으로 봤다. 그러면 김한길 대표가 투쟁의 수위를 한 단계 높이고, 추석 끝나면 국회에 들어간다는 플랜까지 세워져 있었다. 그 다음 4단계는 예산 법안과 우보 전술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 정세판단 기조 하에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이다."
- 원내외 병행투쟁을 강화한다고 해서 다른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속도전을 해야 한다는 일부 강경파를 제외하고 모든 의원들이 공감하는 것이 바로 연말에 승부를 내자는 우보 전술이다.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면 10·30 재보선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두 지역 밖에 안 치러진다. 그러니까 편하게 애초 기조대로 밀고 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일부 강경파들은 '국회의원 127명이 단식을 하자'고 한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단식을 했고, 그 싸움에서 이겼다. 그만큼 권력 의지가 강했던 것이다. 단식하고 15~17일까지는 본인만 힘 든다. 진짜 싸움은 18~19일 정도부터 시작된다. 20~21일 넘어가면 이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된다. 그 싸움을 지금 민주당 의원들이 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이 돌아가면서 릴레이 단식을 하자고 하는데, 국민들은 장난으로 본다. 또 일각에서는 의원직 사퇴를 자꾸 하자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정말 퇴로가 없어진다. 원내외 병행투쟁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의원직 사퇴는 의원으로서 가지고 있는 무기를 다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정론관(브리핑룸)도 이용하면 안 된다. 그러면 누가 우리들의 얘기를 들어주겠나."
- 그만큼의 강경한 의지를 보여 달라는 요구 아닐까?
"그래서 결국 12월에 가서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때 가면 단식도 할 수 있고, 의원직도 걸 수 있는 것이다. 모두 걸기를 할 시점에 해야지, 지금 단식을 해서 20일 싸움하고 꼬꾸라지면, 그 날로 이 싸움도 끝나는 것이다. 지금은 지구전이다. 지구전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를 쓰는 것이다. 김한길 노숙 투쟁으로 20여일 버텼다. 그게 한계가 있으니, 전국 순회투쟁을 하면서 국감 대비 24시간 국회 비상대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40여 일을 또 가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예산법안 투쟁이다. 그 때쯤이면 시민들의 촛불도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주 전 천막 접었으면 '회군' 소리 들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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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일 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의 국회사무실 외벽에 ‘24시간 국회 비상본부 1일차’라는 문구가 새겨진 플랜카드가 내걸렸다. 의원 집무실 안에는 이날 밤 민 의원이 덥고 잘 침낭이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윗에 “민주당은 금일(9/23)부터 24시간 비상국회 운영합니다. 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 국정원 개혁 등 7대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원내외 투쟁을 강화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 |
| ⓒ 민병두 | |
- 이후 투쟁에서 어떤 변수가 있을까?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나 긴급현안 질의 등에서 국민적 분노를 일으킬 수 있는, 여권을 꼼짝 못하게 할 새로운 것을 잡아내야 한다. 국회의원이 할 일이 바로 그거다. 국회의원 한 명이 촛불 들고 앉아 있으면 5만 명이 하는 것과 같다. 국회 안에서 5만 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그동안 국정감사를 많이 지켜봤지만, 야당이 그런 정도의 성과를 낸 적이 있었나.
"그래서 본래의 야당성에 불을 지펴야 한다. 24시간 비상국회를 하자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른바 24시간 열공 투쟁인 거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부를 포위하고 민주당이 수권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예전에 이해찬·노무현·이상수... 이런 사람들이 청문회 잘해서 야당이 여당보다 훨씬 실력이 있다고 인정받은 것 아닌가."
- 국회의원이 초등학생도 아니고, 의원회관에 붙잡아 놓는다고 공부하나? 그걸 누가 통제할 건가?
"그러니까 그런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면 되는 거다. 예전에 공천권을 가지고 있던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밤에 의원회관 지나다가 불 켜진 것 보고, '아니, 누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하고 봤는데, 바둑을 두고 있어서 그 두 명은 나중에... (공천 안 줬다.)"
- 그러니까 공천권도 없는 김한길 대표가 어떻게 소속 국회의원들을 장악할 수 있나?
"민주적 정당이 됐기 때문에 자기들의 생각과 체험으로 터득하게 해야지, 예전처럼 '당신, 이거 해' 할 수 없다. 어떤 의원들은 '당 지도부가 전략·전술도 없고, 의지도 없다'고 하는데, 그럼 본인들이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 와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의 지난 10년간 패턴이 그랬다. 강경파가 당권을 잡아서 뭐 하려고 하면 온건파가 안 된다고 하고, 온건파가 당권을 잡으면 또 그 반대였다. 그러니 지난 10년간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민주당 또 내분, 강경파·온건파에 휘둘려...' 정도다. 그래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간다. 비주류가 됐으면 주류가 하는 대로 놔둬야 한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정론관에 가서 언론 상대로 얘기하지 말고 조용히 당 지도부 회의에 와서 조언해주면 된다."
- 장외투쟁을 접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원내에 복귀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식의 '같기도' 대응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모호함을 주지 않을까?
"말을 풀어서 하면 이해가 되는데, 국민들이 볼 때 '아, 저거 하자는 거구나' 하는 게 없다. 그렇게 하려면 사실 천막을 딱 접어야 한다. 김한길 대표는 2주 전부터 천막 접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안 된다고 했다. 국민들에게 천막을 접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막은 상징처럼 놔둔 것이고, 그러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것처럼 됐다. 그런데 천막을 접고 갔다면 언론에서 바로 '회군'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 그러게 애초에 왜 천막을 치고 나갔나? 그냥 주말 촛불집회만 참여하면 되는 것 아니었나?
"강경파든 온건파든 공부를 시킨 것이다. 그렇게 안 하면 강경파가 무슨 난리라도 날 것처럼 야단이었다. 그러나 자기들도 이번에 장외투쟁을 해보고 나서 원내외 병행투쟁의 효용성을 느낀 것이다. 그 다음에 동력이 떨어졌을 때, 김한길 대표가 몸소 희생을 한 것이다. 페트병에 오줌 눠가면서, 밤에 비맞아가면서, 이빨 덜덜 떨어가면서, 23일간 버텨주고 나서 의원들에게 할 말이 생긴 것 아닌가. '자, 이제 원내에서 당신들이 그 다음 기폭제를 만들어 달라'고."
- 국정원 개혁 특위는 어떻게 되는 건가?
"어차피 정부 안이 국회로 올 것이다. 그럼 새누리당에서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논의하자고 할 테고, 우리는 절대 응할 수 없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정원 국정조사처럼 국정원 개혁 특위에서도 정치 공방만 할 거라면서 반대하고 있다. 어차피 12월에 가서 모두 걸기 하는 거다. 죽느냐 사느냐는 거기서 판가름 날 거다."
"12월까지 내분없이 버티면 이 싸움 이긴다"
-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조금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그건 이미지 때문이다. 남북관계 잘하고 있다거나, 외국 가서 패션쇼 잘한다, 뭐 그런 거다. 그런데 내용상 뜯어보면 경제민주화 잘하고 있나? 복지공약 잘 하고 있나? 그런 것에 대한 지지율은 바닥이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을 더 이상 지지할 이유가 없다. 누가 이미지만 보고 지지하겠나. 기초노령연금 발표까지 하게 되면 과연 국민들이 박수를 칠까?"
- 박 대통령이 민주당을 무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낮은 지지율 때문이 아닐까?
"우리 당의 업보다. 국민은 그 정당의 정책을 잘 이해 못한다. 이미지, 태도, 문화 등을 보고 판단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분열과 갈등의 이미지다. 결정하는 것도 없이 친노하고 비노하고 만날 싸우고... 그런 거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그걸 잘 봐야 한다. 민주당의 온건파든 강경파든, 자기가 그렇게 하면 민주당이 살고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걸 10년 동안 한 것이다. 그런데 지지율이 안 오른 것 아니냐. 그러면 가만히 두고 보든가, 도와줘야 한다. 할 얘기 있으면 의원총회장에서 얘기하지 말고 최고위원회의나 원내 지도부에게 와서 조언해주면 된다."
- 12월에 올인한다고 했는데, 박 대통령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나?
"일단 저쪽이 힘들 거라고 본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고 박 대통령이 겁을 냈나? 우리가 천막 친다고 박 대통령이 눈 하나 깜짝할까? 아니다. 북한이 왜 박 대통령에게 굴복했나. 결국 돈이 필요해서 아닌가. 박 대통령이 (공약 이행을 위해) 돈이 필요한 시점은 12월 말이다. 그래서 싸움을 단계별로 나눠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약점은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 가지고 있다. 이 싸움은 12월 말까지 간다. 돈이 필요한 것은 저쪽이다.
예전에는 여당이 욕 한번 먹더라도 날치기해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야당은 자중지란에 빠지고 원내대표 사퇴하고 1월에 전당대회 하냐 마냐 했다. 그런데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이 패턴이 사라진 것이다. 결국 저쪽은 준예산을 편성할 거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항복하고 원내대표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내가 의원들한테 '전략·전술 얘기하지 마라. 이건 담력과 단결력 싸움이다. 12월까지 굉장히 긴 싸움인데, 내부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면 진다. 누구 간땡이가 더 큰가 겨루는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언론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한 달만 맞아 죽을 생각해라. 그 대신 무조건 사보타지(태업)가 아니라 우리 것을 딱 내놓고 누구 것이 맞나 해보자는 거다. 그래서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고 한 달만 맞을 생각해라'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목소리를 하나로 내서 버티면, 12월까지 내분만 없으면, 저쪽에서 항복하고 나올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10월 재보궐 선거에 대한 공천 신청자 면접을 시작했습니다. 10,30 재보궐 선거는 화성갑과 경부 포항 남울릉 단 두 곳만 치러지게 되는데, 화성갑은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포함해 5명이, 포함 남울릉은 7명이 후보 등록을 마쳤습니다.
원래는 10월 재보궐 선거는 최대 10곳까지도 예상됐지만, 이상하게 대법원의 판결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현재는 단 2곳으로 초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모두 새누리당 강세지역이기 때문이고, 2개 지역이라 대중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화성갑에 후보 등록을 신청한 서청원 전 대표의 모습은 현재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정치 행동을 보여주는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 차떼기당, 공천 헌금의 70대 정치꾼이 다시 나오다니'
서청원 전 대표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1981년 민주한국당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 11,13,15.15.16.18대 국회의원을 한 6선 의원입니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연도가 1980년도이고 6선 의원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서청원은 한 마디로 구시대적인 정치인물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가 단순히 다선 의원이고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가장 정치적 악습이었던 정치 자금으로 정치를 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LG그룹이 상납한 현금 150억원이 실린 트럭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건네받아 대선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일명 '차떼기'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 되었고, 한나라당 당사를 팔고 천막당사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겨우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때 서청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당선 무효형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2008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서청원은 친박연대를 구성했고, 총선에서 양정례,김노식 등은 공천을 받기 위해 수십억 원의 돈을 서청원에게 당비 등의 명목으로 제공했습니다. 서청원은 이 사건으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어 다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됩니다.
차떼기당 사건에서 서청원은 단순히 당 대표였고, 친박연대에서는 정치 관행 때문이었다는 변명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런 정치 관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구시대적인 정치 악습입니다.
다선 의원이지만 정치적 악습을 진행했던 구시대의 정치인이 2013년에 다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 안철수가 결혼 시계를 못 차는 이유'
국민일보는 안철수 의원이 명품 손목시계 '까르디에'를 차지 못하는 이유가 '자칫 공격 댕상이 될 수 있다'는 측근들의 만류 때문이라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차고 다녔던 시계는 까르띠에 산토스 모델로 프랑스 대표 명품 시계 중의 하나이며 현재 매장 판매가는 600만원선으로 알려졌습니다.
안철수 의원의 시계는 그가 정치에 출마하면서 논란이 된 적도 있지만, 사실 1990년대 신혼부부들이 결혼 예물 시계로 가장 많이 구입했던 시계를 안철수 의원이 찼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도 이상할 따름입니다.
물론, 안철수 의원이 수백억 원의 자산가에도 불구하고 어떤 서민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유행이 지난 양복을 고수하거나 5만원짜리 구두를 신는 일은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그의 외형적인 모습은 예전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행위도 아니고 정치인이 되기 전에 샀던 결혼 예물 시계 차는 것조차 눈치를 보는 모습은 지금 대한민국 정치인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서청원 화성갑 출마는 외갓집 때문?'
새누리당은 화성과 포항 공천 신청자에 대한 면접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후보당 10분 정도 하는 면접심사에서 유독 서청원은 30분이나 면접을 진행됐습니다.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인 홍문종 당 사무총장은 서청원이 오자 직접 엘리베이터 근처까지 나와 영접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객관성 있는 공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엠피터의 주장이 문제이고, 이것은 단순히 나이 많은 다선 의원이기 때문에 이루어진 행동이고, 관행이라고 봐야 할까요?
홍문종 공심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청원 전 대표와 같은 전국적인 스코프를 가지신 분이 화성에 와서 지역구를 키웠으면 좋겠다'면서 서청원의 외갓집이 화성이기 때문에 전혀 연고가 없다고 그를 두둔한 바 있습니다.
공천심사위원장이 이렇게 서청원을 감싸는 이유는 그가 친박연대를 이끌었던 수장인 동시에 친박계 원로이기 때문입니다. 즉 새누리당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입김 때문에 정치적 시스템이 퇴보되고 있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청원과 안철수 의원의 시계라는 이 글을 통해서 아이엠피터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짜 새로운 정치는 정당의 공천을 통해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결혼 예물 시계이지만 명품시계라는 이유만으로 시계를 차지 못하는 모습에는 관심이 많지만, 박근혜의 측근이자 새누리당 당적이면, 구시대적인 인물이라도 그냥 표를 찍어주는 국민이 존재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정치 수준은 국민이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심조차 없는 재보궐 선거이지만, 또다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 한 장으로 서청원과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모습은 제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염 “우리의 시국미사를 웃어넘기지 마시오”
23일,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기도회’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발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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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4 14: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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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의 고안' 신화 깨져, 알멸구 두 다리 동시 박차기 위한 얼개
볼트와 너트 구조 지닌 바구미도…이제 회전축 지닌 동물도 나올라
» 곤충 다리에 이런 톱니바퀴 기어 구조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톱니 하나의 크기는 0.02㎜이다. 알멸구의 뒷다리 고관절에 이런 구조가 있음이 밝혀졌다. 사진=버로우스, <사이언스>
단풍나무의 씨앗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 빙글빙글 돌면서 서서히, 그리고 바람을 타고 어미 나무에서 먼 곳에 떨어진다. 단풍나무 씨앗의 멋진 활공능력을 눈치챈 항공공학자들이 날개가 하나인 새로운 헬리콥터를 고안하느라 한창이다.
자연은 공학자의 스승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발명품을 자연은 그보다 수만 년 먼저 설계한 사례가 적지않다. 그러나 자연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안이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어나, 볼트와 너트가 꽉 조이는 구조를 자연이 만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맬컴 버로우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동물학자 등은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통해 다리에 톱니바퀴 기어를 갖춘 곤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 주인공은 알멸구의 일종으로 풀잎에 있다가 위협을 느끼면 순식간에 톡 튀어 달아나는 곤충이다.
» 뒷다리에 기어 구조가 있는 알멸구 유충. 성충이 되면 이 구조가 사라진다. 사진=버로우스, <사이언스>
몸길이가 2㎜밖에 안 되는 이 곤충은 1m 높이로 뛰어오르는 점프력을 지녔는데, 만일 두 다리가 바닥을 박차는 시간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으면 몸이 공중에서 돌아 내동댕이쳐질 것이란 데 연구진은 주목했다.
연구진이 주사형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놀랍게도 이 곤충의 뒷다리는 뛰어오를 때 완벽한 동시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교한 톱니바퀴로 맞물리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톱니 하나의 크기는 0.02㎜였으며, 사람이 사용하는 톱니바퀴와 달리 한쪽 방향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톱니도 한쪽으로 기운 형태였다.


» 알멸구 뒷다리 기어 구조의 주사 전자현미경 사진. 위에서부터 차츰 기어구조를 확대한 모습이다.사진=버로우스, <사이언스>
어린 알멸구가 점프를 위해 뒷다리를 박차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만분의 3초였는데, 이는 신경세포가 자극을 전달하는 시간인 1000분의 1초보다 훨씬 짧다. 다시 말해 신경세포에 기대지 않는 다른 구조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톱니바퀴 기어였던 것이다.
특이하게도 뒷다리의 톱니 기어는 어린 시절에만 나타났고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면 사라졌다. 연구진은 그 이유를 수시로 허물을 벗는 유충 시절에는 톱니를 수선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성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거나, 성충은 기어보다 고관절의 마찰력을 이용하는 편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 기어를 이용한 알멸구의 정확한 점프를 고속 촬영한 모습.사진=버로우스, <사이언스>
사람만의 고안이라고 여기기 쉬운 볼트와 너트를 이용해 다리 관절을 고정하는 곤충도 있다. 독일 연구자들은 2011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바구미 뒷다리의 고관절이, 크기는 0.5㎜에 지나지 않지만 형태는 분명한 암나사와 수나사를 조이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파푸아뉴기니에 서식하는 이 바구미는 식물조직을 먹고사는데, 이런 나사 구조가 머리를 처박고 먹이를 먹을 때 뒷다리로 몸을 안정적으로 떠받치는데 유리하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바구미는 이런 얼개를 1억 년 전부터 사용해 왔다.
» 바구미 다리에서 발견된 볼트와 너트 구조. 그림=토마스 반 데 캄프 외, <사이언스>
아마도 자연계에 없는 인간만의 고안은 바퀴일지 모른다. 동물의 몸이 회전축에 바퀴를 달아 굴러가는 얼개를 흉내 내기엔 중추신경이 꼬이는 등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멋진 바퀴 구조를 이용하고 있는 생물이 있을지 누가 아는가.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lcolm Burrows, Gregory Sutton, Interacting Gears Synchronize Propulsive Leg Movements in a Jumping Insect, Science 13 September 2013: Vol. 341 no. 6151 pp. 1254-1256, DOI: 10.1126/science.1240284
Thomas van de Kamp, Patrik Vagovic, Tilo Baumbach, and Alexander Riedel, A Biological Screw in a Beetle’s Leg, Science 1 July 2011: 52. , DOI:10.1126/science.1204245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국정원 해체하고 민주주의 회복하라"
천주교 사제단, 5년 만에 대규모 시국미사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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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3 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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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등 대선 공약 줄줄이 백지화... 박 대통령 국정 리더십 타격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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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 청와대 |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7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경제민주화·복지·권력기관 독립 등 여러 대선 공약이 새 정부 출범 1년도 채 안돼 폐기될 운명을 맞으면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인 원칙과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후퇴가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복지다. 복지는 경제민주화와 함께 박 대통령의 중도층 끌어안기를 상징하는 핵심 공약이었다. 그 중에서도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20만 원의 기초연금 지급,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등과 같은 복지 확대 공약은 고령층과 중산층의 환심을 샀다.
대선 때는 "반드시 공약 지키겠다"고 했지만...
대선 당시에도 재원 마련 등 실현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박 대통령은 "공약은 반드시 지킨다"며 진화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야권에서 복지 공약 베끼기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할 때마다 "실현 가능한 것만을 공약으로 제시했다"고 반박해 왔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 공약의 후퇴 논란이 일었을 때 박 대통령은 "제가 한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니까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쌓인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청와대의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참모진들은 공약 수정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강하게 부인해 왔다. .
지난달 초 정부가 마련한 세제개편안이 촉발한 복지공약 축소 논란 국면에서도 청와대는 공약 수정은 없다고 공언했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대선 때 제시한 공약은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실현 가능성까지 꼼꼼하게 챙긴 것이다", "대선 공약 중 인수위에서 추린 140개 국정과제는 매우 세밀하고 재원 마련을 위한 공약가계부까지 마련했다", "임기 첫해부터 공약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신뢰 강조하다, 취임 7개월만에 백기 든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가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덜 주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왜곡해서 해석하기보다는 다같이 힘을 모아 끝까지 노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증세도, 복지 축소도 없다'는 점을 재확인 했다.
하지만 신뢰·약속을 강조하던 박 대통령은 임기 첫 해, 박근혜 정부의 철학과 국정운영 기조가 반영되는 첫 예산안 마련 과정에서 백기를 들었다.
오는 26일 발표할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는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 공약이 대폭 축소돼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연금은 소득하위 70~80% 계층에게만 차등지급하고,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도 축소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지방자치단체와 재정 투입을 놓고 갈등하고 있는 무상보육, 반값등록금도 후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후퇴는 복지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검찰 등 권력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 약속도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임기가 보장된 경찰청장, 감사원장은 이미 낙마했고 채동욱 검찰총장은 청와대의 찍어내기 논란 속에 이미 사의를 밝혔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던 대선 공약도 국민적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연기하기로 했다.
약속 지키겠다며 신뢰 위기 키운 박 대통령... 정치적 자산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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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7일 추석을 앞두고 경기도 용인 중앙시장으로 민생현장 탐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환호하는 상인들에게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
| ⓒ 청와대 | |
사실 신뢰의 위기를 키운 것은 박 대통령이다. 복지 공약만 해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고차원 방정식에는 애초에 해법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풀어낼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같은 대국민 선전에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도 동원됐다.
하지만 '공약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가장 많이 지지했던 노년층과 중산층이 직접 혜택을 보게 되는 핵심 복지공약이 흔들리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신뢰의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월급쟁이 증세로 반발을 샀던 세제개편안 보다 더 큰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이번 사안이 정권 전반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원칙과 신뢰라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상처를 입을 경우 국정운영의 동력과 리더십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직면한 위기의 진원지는 정권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대선에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는 정권의 기본 역량과 관련된 문제다. 또 복지는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왔던 민생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야당의 장외투쟁 탓이라는 바람막이 속에 숨을 수도 없다.
정면돌파 선택한 박 대통령, 시험대 올랐다
박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설득 작업에 나서기로 한 것도 사안의 심각성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오는 26일 내년도 예산안이 상정 심의 되는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등 복지공약 후퇴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23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주 목요일에 내년도 예산안이 국무회의에 상정되는데 박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하게 된다"면서 "이 자리에서 기초연금 문제 및 4대 중증질환의 국고지원(확대 공약)에 대한 박 대통령의 말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무회의는 당초 국무총리가 주재하기로 돼 있었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하기로 바꿨다. 복지 축소에 따른 반발을 정면돌파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이미 "공약 먹튀", "대국민 사기극" 등의 수사를 동원해 총공세에 나섰다. 시민사회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이 이날 대국민 호소를 통해 야권의 반발을 잠재우고 국민들을 설득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정이 부족해 복지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하든,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하든, 진보·보수 어느 한쪽의 공약 파기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퇴로 없는 시험대에 올랐다.
| 북, 수치로 보는 과거와 현재? | |||||||||||||||
| 해방직후와 2013년 어떻게 달라졌나. | |||||||||||||||
| 기사입력: 2013/09/24 [06:2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
일제로부터 해방 된지 6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착취와 수탈 억압 속에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민족은 해발과 함께 민족분단을 겪고 건국과 건설에 힘써야 할 시기 6.25라는 전쟁을 맞아 남북 모두 엄청난 인적피해와 함께 물적 피해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와 전통 다른 민족에 비해 남다른 총명함과 지혜로움을 가진 우리민족은 남과북 모두 기적을 창조하며 전후 복구 사업에 힘을 기울여 세계 속에 한민족의 기상을 떨치고 있다. 수치가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남측은 외국의 원조 속에 성장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2위국이 되었으며 올림픽 등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6.25전쟁 당시 미군폭격기 조종사가 평양을 공습한 후 향후 100년 동안 사람이 살지 못할 것이라던 북측은 어떨까? 조선의 언론이 숫자로 보는 어제와 오늘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24일 “수자를 통해 우리나라(조선)의 자랑찬 발전역사를 돌이켜 본다.”며 “해방전 우리나라(조선)에는 단 한 개의 대학도 없었다. 지금은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비롯하여 300여개의 대학과 근 500개의 전문학교가 건설되어 국가자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모든 대학생들과 전문학교 학생들이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무료로 공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날 가난했던 우리 인민들은 대다수 돈이 없어 학교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였지만 오늘 우리 공화국의 모든 어린이들은 전반적12년제 의무교육의 혜택아래 돈 한푼 안 들이고 무료교육으로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펼치고 있다.”교육의 발전상을 전했다. 우리민족끼리는 “해방 전에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문맹자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지식인도 얼마 안 되었던 우리 민족이다. 허나 오늘 우리 공화국에는 해방후 부터 실시하여 온 문맹퇴치사업과 공장대학과 야간대학을 비롯하여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시책으로 문맹자가 단 한명도 없는 나라, 근 300만명의 지식인부대를 가진 나라, 인재가 많은 나라가 되었다.”고 긍지 높게 자랑했다.
이신문은 이어 의료부문을 소개했다. “해방전 우리나라(조선)에는 병원이 몇 개 밖에 안되었으며 그나마도 돈이 없어 병이 나도 약 한첩 써보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우리 인민:이었다며 ”오늘 공화국에는 도시는 물론 산간지대에까지 2,000여개의 병원과 6 ,000여개의 진료소가 마련되어 전반적 무상치료제가 실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양과 여러 도, 군들 사이에 첨단과학기술에 의한 먼거리 의료 봉사가 실현되어 여러 도, 군 인민병원들에서 환자를 후송하지 않고도 중앙병원에서와 꼭 같은 수준의 전문과적진단과 치료를 원만하게 과학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 우리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적극 이바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계속해 “우리 인민들의 문화생활에서도 극적인 전변이 이룩 되었다.”며 “60여년 전에는 극장, 영화관이 얼마 안 되었지만 오늘은 4,000여개의 극장, 영화관, 문화회관을 가진 나라, 김일성상 계관작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비롯한 21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걸작들을 창조하는 예술의 나라로 되였다. 또한 개선청년공원과 릉라인민유원지, 류경원과 인민야외빙상장, 롤러스케이트장과 현대적인 공원들이 평양뿐 아니라 전국도처에 건설되어 우리 인민들의 문명증진에 적극 이바지하고 있다.”고 문화공간과 휴식터가 마련되었음을 강조했다. 이 매체는 “해방전에는 제 나라가 없어 제 금메달도 없었던 우리나라(조선)였다.”며 “그러나 오늘은 올림픽경기대회, 종목별 세계 및 아시아선수권대회, 아시아경기들에서 수많은 금, 은, 동메달을 쟁취하고 세계에 태권도열풍을 안아온 태권도모국으로, 체육의 대중화가 빛나게 실현된 나라로 이름떨치고 있다. 지난해 진행된 제30차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우리의 안금애, 김은국, 엄윤철, 림정심선수들은 주체적인 경기전법으로 맞다드는 상대선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유술, 력기경기에서 련이어 금메달을 쟁취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조선열풍을 세차게 일으키고 조선사람의 불굴의 기상과 정신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는가 하면 제52차 세계탁구(개별종목)선수권대회 혼성복식경기에서의 우승, 2013년 동아시아컵 여자축구경기대회와 세계유술(유도)선수권대회에서의 우승을 비롯하여 우리의 체육인들은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100돐을 성대히 경축한 주체101(2012)년부터 올해의 뜻 깊은 전승 60돐까지의 기간에만도 국제체육경기들에서 금, 은, 동메달을 무려 230여개를 쟁취하였다. 특히 금메달 획득 수는 지난해의 같은 기간에 비하여 2.7배로 장성하였다.”고 비약적인 성장을 설명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끝으로 “수자가 보여주는 공화국의 경이적인 현실, 이것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현명한 영도에 의해 이룩된 고귀한 결실“이라며 북 지도자들을 칭송했다. 한편 이 기사가 시사하는 것은 남과북이 하루빨리 교류와 협력을 통해 통일에 이른다면 세계 최강으로 부상 할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는 것으로 남북관계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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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을 분노로 들끓게 만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검정 취소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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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학사에서 발행한 한국사 교과서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판 한국사 교과서 | |
| ⓒ 이정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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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파문 교학사 입장발표 교학사 한국사교과서가 '친일·독재 미화'로 파문을 일으키는 가운데,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교학사에서 양진오 대표이사를 비롯한 회사 간부들이 입장을 밝힌 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 |
| ⓒ 권우성 | |
아침브리핑2013/09/23 09:04
1. 북, 이산가족상봉 연기
북한은 2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성의로 대화가 재개됐음에도 박근혜 정부가 <원칙있는 대북정책>으로 북한을 견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호도한 점 ▲금강산관광에 대해 <돈줄> 운운한 점 ▲국제대회 운영에 대해 <변화> 운운한 점 ▲흡수통일을 주장하며 전쟁연습과 무력증강에 광분한 점 ▲<내란음모사건>을 북한과 연결시켜 남북화해와 통일을 주장하는 진보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북한은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 연기 ▲반북전쟁책동에 단호하고 결정적 대응조치 취할 것 ▲<내란음모사건>에 북한을 연결시키고 통일애국인사들을 탄압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 등의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발표에 대해 김관진 국방장관이 15일 국방정책설명회에서 <북한이 국내의 종북세력과 연계해 사이버전, 미디어전, 테러 등으로 사회혼란을 조성하는 4세대 전쟁을 획책할 것>이라는 발언이 발단이 됐다는 지적이 있다. 김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기부터 종종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해 북한의 반발을 불러온 인물로, 개성공단 사태도 김 장관의 <개성공단 인질 구출작전> 발언이 발단이 되었다.
한편 21일 언론들이 일제히 북한 최고지도부를 모욕하는 기사를 싣고 이에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남북관계는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2. 박근혜 대통령 핵심 복지 공약 축소
박근혜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준비 과정에서 기초노령연금, 4대 중증 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반값 등록금 등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복지 공약을 대폭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진영 보건복지부장관이 사의 표명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방 사회간접자본 관련 공약들도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을 위해 국민을 우롱한 것으로 됐다.
3. 미육군 항공정찰부대 순환 배치
18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는 평택 주한미군기지에 무장정찰헬기 <OH-58D 카이오와 워리어> 30대와 병력 380명으로 구성된 육군 항공정찰부대를 9개월 동안 순환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작년 초 <아시아태평양 중시정책> 발표 후 지상군을 순환배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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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손에 칼을 쥔 자들과 악수할 수 있는가? |
| “겨레 기만하는 대결의 칼 숨겨져 있다”비난 |
| 기사입력: 2013/09/23 [10:3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이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며 극도로 자제헤 오던 남측에 대한 강경 발언들을 또 다시 쏟아내고 있어 남북관계 개선까지는 남측의 진정성이 있는 자세가 필요 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대표적 언론 기관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1일 논평을 통해 “보수패당이 북남사이의 화해와 신뢰조성에 대하여 제창하는 것은 국제사회와 겨레를 기만하는 빈말뿐이며 속통에는 대결의 칼이 숨겨져 있다.”고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 논평은 “조선반도정세가 완화의 길에 들어서고 북남관계가 화해, 협력에로 나아가려 하는 초입에서 이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다.”며 “최근 남조선집권자를 비롯한 요직 정치인들이 줄줄이 나서서 공화국의 성의 있는 대화제안과 적극적인 노력에 의하여 모처럼 마련된 화해분위기를 저들이 《견인》하고 있으며 그 무슨 《원칙 있는 대북정책》의 결실이라고 떠들었다. 금강산관광이 그 누구의 《돈줄》이라고 중상하면서 지어는 우리가 관례와 규정에 따라 진행한 국제경기까지 거들며 해괴한 《변화》나발을 불어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신문 논평은 “이것은 겨레가 소원하는 것이라면 만사를 불구하고 그 실현을 위해 모든 아량과 성의를 다해온 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우롱이며 도발이 아닐 수 없다.”면서 “극단으로 치닫던 조선반도사태는 어떻게 완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는가. 완전폐쇄의 벼랑 끝에 내몰렸던 개성공업지구를 정상가동의 주로에 들어서게 하고 민족분열의 비극적산물인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과 중단되었던 금강산관광재개와 같은 문제들을 대범하게 풀어나가기 위하여 성의 있는 노력을 다해온 것은 과연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논평은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민족의 화해와 북남관계발전을 위하여 보통의 상식으로써는 참을 수 없는 보수패당의 대결망동까지도 묵인하여왔었다.”며 “그런데 괴뢰들은 날로 우리의 선의와 아량을 악용하면서 체제와 제도를 전면부정하는 극단적인 대결소동까지 매일같이 벌리면서 대화상대방을 자극하고 있다. 대화의 막 뒤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의한 통일》을 떠벌이고 미국상전과 야합하여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타격》이요 뭐요 하며 노골적인 북침전쟁소동과 무력증강에 광분하고 있다.”며 변하지 않은 남측의 반북대결정책을 고발했다. 또한 “그 무슨 《내란음모사건》이라는 것을 우리와 억지로 연결시켜 북남사이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주장하는 모든 민주인사들을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는 일대 《마녀 사냥극》을 벌리고 있다.”며 “이러한 속에서도 북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진행되어온 것은 철두철미 우리의 인내성 있는 노력의 결과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남관계의 진전을 저들의 《원칙론》의 결과로 광고하고 계속 대화상대방을 자극하며 비양거리는 것 자체가 대결본색의 발로이고 초보적인 인륜법도도 지키지 못하는 불망나니들의 처신”이라며 “보수패당이 북남사이의 화해와 신뢰조성에 대하여 제창하는 것은 국제사회와 겨레를 기만하는 빈말뿐이며 속통에는 대결의 칼이 숨겨져 있다.”고 단죄했다. 아울러 “겉으로는 대화의 손을 내밀고 그에 배치되는 위험천만한 각본을 직접 꾸며내고 연출하고있는 것이 바로 보수패당”이라면서 “대화상대방을 향해 공개적으로 칼을 빼든 자들과 과연 정상적인 대화와 북남관계발전을 논할 수 있는가. 보수패당이 지금처럼 북남관계를 적대관계로 삼고 모든 대화와 협상을 대결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조건에서는 그 어떤 문제도 올바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명명백백하다.”며 대결적 관계에서 대화를 지속 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 조선중앙통신 논평은 특히 “만약 《대화 있는 대결》이 보수패당의 원칙이라면 북남관계의 초보적인 발전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조성된 사태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남조선보수패당에 있다.”고 전해 이번 이산가족상봉행사 무기한 연기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 무산 등의 책임이 남측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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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3 08: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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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난 뒤 ‘추석민심’에 대한 언론들의 분석과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공통적인’ 건,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추석 연휴 이전보다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는 지난 20일 기준으로 60.9%를 기록했다. 지난 11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박 대통령은 69.5%의 지지율을 보이면서 취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불과 열흘도 안 돼 8.6% 포인트나 지지율이 하락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선·휴대전화 임의걸기(RDD) 자동응답조사로 진행됐다. 표준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중앙일보(온라인판)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이석기 의원 사태와 G20 정상회의로 상승세를 거듭해 11일엔 지지율 70% 돌파를 눈앞에 뒀지만 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사퇴하며 하락세로 반전됐고 16일 3자회담 결렬 뒤 낙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중앙일보는 “박 대통령이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외교·경제에 집중할 땐 지지율이 높아졌지만 여야 정쟁의 중심에 뛰어들면서 지지율 하락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지난 11일과 비교해 8.6% 하락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도 6.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
MBC가 지난 20일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 집전화와 휴대전화 임의번호걸기 방식·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도 눈여겨볼 만하다.
MBC는 21일 <뉴스데스크> ‘추석민심은 … 긴급 여론조사’ 리포트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는 66%로 지난 8월23일 취임 6개월 때 65.8%와 비슷했다”고 보도했다. MBC의 보도를 보면 박 대통령 지지율 격차는 추석 전이나 후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리서치앤리서치가 추석 전인 지난 11일 조사한 결과와 비교해 보면 하락 폭이 다소 커 보인다. 동아일보는 22일자 <“추석 민심 따끔”… 與도 野도 대치정국 풀 카드없어 고심>(5면)에서 MBC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면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66.0%로 11일 조사 때에 비해 6.7% 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MBC가 취임 6개월 때 조사결과를 근거로 삼으면서 박 대통령 지지율 격차가 거의 없다고 보도한 반면 동아일보는 추석 전 민심을 기준으로 삼았다.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도 MBC와 동아일보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심을 모으는 건, 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대한 언론의 전망과 분석이다. 22일 신문을 발행한 전국단위종합일간지(경향 동아 조선 한겨레) 가운데 지지율 하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실은 곳은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한겨레 3곳이었다.
동아일보도 우려한 ‘꼬인 정국’ … “국정 공백, 결국 정부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향은 22일자 4면 <‘국민 저항’ 누구에게… 박 대통령 ‘판정패’>에서 “야당의 장외투쟁을 지적하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불통을 문제 삼는 여론이 눈에 띄게 더 많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향은 “견제와 비판이 야당의 의무다. 야당이 지나치더라도 국정을 이끄는 것은 여당이므로 여당의 불통이 더 국민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여론이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이나 외교 문제는 일관된 원칙을 갖고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여의도 정치에 대해선 그런 통 큰 모습이 잘 안 보여 아쉽다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대통령이 통 큰 결단을 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것”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의 내부 비판 목소리에 비중을 실었다.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을 좀 더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한겨레는 22일자 <“전략적 판단이라기보다는…” 박대통령 제 스타일 고수탓>(5면)에서 △70%에 육박하는 국정운영 지지도에 따른 착시 현상 탓 △대북 정책의 성공 경험을 국내정치 분야에도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오류에 빠져 있을 가능성 △대통령 주변에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참모가 없다는 점 등을 ‘불통정치’의 원인으로 꼽았다.
한겨레는 “이런 불통 정치는 결국 박근혜 정부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라고 전했다.
이례적인(?) 건 동아일보의 분석과 전망이다. 동아는 22일자 <“추석 민심 따끔”… 與도 野도 대치정국 풀 카드없어 고심>(5면)에서 추석민심이 여야 정치권 모두에 부정적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청와대 책임론에 좀 더 무게를 싣는 보도태도를 보여 주목을 받았다.
동아는 “청와대도 내심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라면서 “자칫 박 대통령이 ‘일방주의 정치’ ‘불통’ ‘정치력 실종’의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치권 안팎에선 모든 국정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박 대통령이 대화와 협상, 양보의 정치를 좀 더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특히 정기국회 파행이 민생법안 표류로 이어질 경우 ‘경제 살리기’라는 박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가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점이 부담”이라면서 “경제 활성화가 가시화되지 않고 공공기관장 공백의 장기화 등으로 국정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결국 정부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국정 운영에 대통령의 말과 생각만 보이는 동맥경화증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이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정국을 꼬이게 만드는 원인으로 부각이 되면서 벌써 대통령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경우 MBC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긴 했지만 채동욱 검찰총장과 관련한 부분만 발췌해 보도했다.
JTBC “시험대 오른 청와대 정무라인 … 추석 이후 여야 전면전 벌일 것”
문제는 새누리당 내부와 보수언론 등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견제할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여야가 극단적인 대치상황에 놓여 있을 때 청와대 정무기능이라도 제대로 역할을 하면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JTBC는 지난 20일 <뉴스9> ‘시험대 오른 청와대 정무라인’에서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의 한계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JTBC는 “박준우 정무수석이 부임한 이후 여의도를 자주 찾아가고 실제 민주당 지도부와 식사도 자주하는 등 노력을 했다”고 강조한 뒤 “문제는 박준우 수석의 재량권이 크지 않다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JTBC는 “과거 MB 정부에서는 이재오 전 장관, 주호영 전 특임장관과 김효재 정무수석 등 실세들이 정무라인을 담당했는데 이와 비교하면 외교관 출신에, (박준우 수석이) 또 친 박근혜계 실세 인사도 아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갖고 물밑 협상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면서 “추석 이후 여권과 민주당은 다시 한 번 ‘전면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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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9-22 오전 12:51:19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주제는 친일파다. <편집자>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한국전쟁, 첫 번째 마당] "공산군 물리친 이승만의 공? 잘한 게 없다" [한국전쟁, 두 번째 마당] "북한, 전면전은 못할 것…한국전쟁 공포 때문" [한국전쟁, 세 번째 마당] 박정희 살린 6.25? "전쟁 덕 톡톡히 봤다" |
프레시안 :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오래됐는데도 친일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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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학사 교과서. ⓒ교학사 |
서중석 : 해방 후 68년이 지났다. 그 이전의 행위를 지금도 문제 삼으며 단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대표적인 경우는 나치 협력자나 친일파다.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다. 친일파가 계속 문제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현재의 문제로 부각되기 때문 아니겠나. 뉴라이트나 수구 언론에서 친일파를 계속 옹호하는 걸 보더라도, 그만큼 그 사람들에겐 중요한 문제, 현재의 문제란 생각이 든다. 이번 (교학사) 교과서 파동에서도 그런 면이 다분히 보인다. 이렇게 계속 살아 있는 문제가 되는 건 친일파 문제가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란 생각이 많이 든다.
반민족 행위를 해방 후 속죄하고 반성하면서 자기 분야에서 양심껏 살아가려는 노력을 했다면 (지금 같은) 친일파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파(와 그 후예)가 수십 년간 권력을 장악하지 않았나. 그 후 한국이 개방적인 사회로 가면서, (저들이) 권력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면서 (저들이) '이 권력을 어떻게든 놓아서는 안 된다' 하게 됐고, 그런 것이 친일파 문제가 계속 생기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승만 정권, 유신 체제 때도 잘 드러난 건데, 친일파의 중요한 특징은 권력을 맹신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계속 움켜쥐려면 상대방을 '종북' 같은 걸로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의 뿌리와 연관된 것을 미화할 수밖에 없다. 그게 결국 친일파 옹호로 나타나고, 이번 교과서 문제로도 드러난 것 아닌가 한다.
프레시안 : 친일파라는 용어가 적절한가 하는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다. 엄밀한 개념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표현 아니냐는 의문이다.
서중석 : 사실 그 문제는 학계에서 수십 년간 얘기됐다. (친일파란 말이) 감정적이고 비학문적인 용어 아니냐, 다른 용어를 쓰는 게 적절하지 않냐는 얘기였다. 그런데 친일파 대신 다른 말을 쓸 경우 부적절하다란 생각이 더 든다. 다른 말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한말부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친일파의 행위를 포괄할 수 있는 용어인가 할 때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친일파란 단어 속엔 근현대사가 녹아 있다고 할까, 한국인의 역사의식 같은 것들을 잘 보여주는 면이 있다. 한마디로 친일파(란 말)처럼 그들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용어는 없지 않나 (하는 거다). (정리하면) 친일파라는 단어에 문제를 느낄 수는 있지만 친일파를 일반적으로 분석하고 얘기할 때는 적절한 것 같다.
'용서받지 못할 자' 비호하는 뉴라이트와 수구 언론
프레시안 : 해방 직후엔 어땠나.
서중석 : 해방 직후에도 친일파란 말을 썼다. 일제 때도 많이 썼고. 다만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친일파 처단법을 만들 때 '부일(附日) 협력자'란 말을 썼다. 부일 협력자란 표현도 어느 정도 사용됐다.
왜 이 친일파란 단어가 그렇게 한국인한테 주는 의미가 분명하냐. 예컨대 유럽의 경우 프랑스에 친독파, 독일에 친영파가 있을 수 있다. 그 말엔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이나 죄의식 같은 게 들어 있지 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 지배를 겪은 인도에서 친영파, 필리핀에서 친미파란 딱지를 붙여 영국 혹은 미국과 관계가 있었던 자국인을 매도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다른 동남아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에서 친일파라고 할 때는 인도차이나의 친불파, 인도의 친영파, 필리핀의 친미파와 그 뜻이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친일파 하면 우선 대한제국 말기 매국노가 연상된다. 을사오적이 제일 많이 알려져 있지 않나.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섰던 이완용, 송병준 같은 악질 친일파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독립 운동이 활발해지자 그걸 탄압하는 데 앞장서고 민중을 감시한 자들을 친일파로 많이 본다.
1930년대 이후 특히 전시 체제로 갈수록, 한국인들은 친일파에 대한 반발심을 더 강하게 갖게 된다. 억압의 강도도 월등히 심해질 뿐만 아니라 공출이나 강제 동원 같은 것들에 앞장선 자들이 한국인 가운데 많았기 때문이다. 군국주의 침략 전쟁에 나가라며 학병과 징병에 응하도록 권하거나 전쟁을 찬양하는 글을 쓰는 등의 방식으로 전쟁 협력 행위를 한 자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일제 말에 민족의식을 완전히 말살하고 일본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황국 신민화 운동도 벌어지지 않았나.
친일파 하면 (사람들에게) 이런 것들이 연상된다. 그러니까 한국인에게 친일파는 용서받지 못할 자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친일파는 유럽의 나치 협력자와 거의 같은 뜻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일제 치하에서 일본에 협력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서중석 : 그런 주장은 친일파가 해방된 그날부터 참 줄기차게 펼친 거다. (예컨대) 한국인 중 (일제에) 세금 안 낸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식의 주장이다). 세금 중엔 농사짓는 데 꼭 필요한 수리세 같은 게 있다. 또 담배를 피우면 연초세를 물어야 한다. (일제 치하라고) 담배 안 피울 수 있나. 수리세 내고 연초세 냈다고 해서 일제에 협력한 건가? 그리고 강제 동원돼서 끌려가고 강제 공출된 것, 이런 것도 일제에 협력한 건가? 그 당시 한국인 중 어느 누구도 이런 걸 일제에 협력한 거라고는 안 봤다. 당시엔 왜정 치하라고 했는데, 왜정 치하에서 악독하게 당한 거라고 봤다. 해방된 그날부터 문제 삼은 건 처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악질 친일파다.
독일의 경우를 봐도,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 지시로 전쟁에 나간 군인이나 공무원들을 다 협력자라고 몰아세우지도, 재판에 붙이지도 않았다. 모두 반성해야 하는 행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중 문제가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전부 단죄 대상으로까지 얘기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많았다.
프레시안 : '그땐 다 협력했다'는 식의 공범론은 부적절하다는 뜻인가.
서중석 : 그렇다. 그런 식으로 (친일파가)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수렁에 같이 빠져 같이 죽자는 참 파렴치한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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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
해방 후 반성은 없고 원성만 키운 악질 친일파
프레시안 : 해방 직후 사람들은 친일파 문제를 어떻게 봤나.
서중석 : 대다수의 한국인은 해방을 정말 감격스럽게, 꿈같이 맞이했다. 그와 달리 공포 속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으로 맞이한 사람들도 있었다. 악질 친일파다. 해방 직후 친일파 중 악질들은 다 도망쳤다. 당시 기록을 보면, 경찰의 경우 80% 넘게 뺑소니쳤다. 미군이 들어와서 '현직에 복무하라'고 지시할 때까지 무서워하며 도망 다니는 데 바빴다. 해방 직후 대중이 악질 친일파에 대해 얼마만큼 분노에 떨고 있었는가 하는 걸 단적으로 얘기해준다.
대부분의 정치 세력도 이구동성으로 친일파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국민주당(한민당)이 '친일파 문제는 차차 (처리)해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래서 한민당은 친일파 옹호파란 얘기도 많이 들었다. 또 이승만이 한국으로 돌아와 독립촉성중앙협의회(독촉중협)를 조직하는데, 여기서도 '친일파 처단을 지금 꼭 해야 하느냐'는 식의 얘기가 나왔다. 한민당도 그렇지만 독촉중협에도 친일파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안재홍 같은 중도 우파는 해방 직후 친일파 처단에 적극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해방 직후 우익이 좌익보다 약했던 분위기 등을 반영해 친일파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미소공위)가 휴회한 1946년 5월 이후 좌우합작 운동에 참여하면서 안재홍 등 중도 우파가 친일파 처단 주장을 상당히 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렇게 된 건 해방 후 친일파가 한 짓이 (이들에게) '이거 큰일 났다. (친일파가) 우리 사회를 망치는 존재 아니냐'는 위기의식을 갖게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해방 후 부정부패가 무지하게 심했는데, 이걸 척결하려면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거다.
사실 일제 때 친일파가 부정부패를 정말 잘했느냐고 하면 그렇진 않다. 조선총독부가 그런 것에 상당히 엄격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친일파가) 부분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긴 했지만 노골적인 부정부패 행위를 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해방 직후엔 친일파가 어디서나 부정부패와 관련돼 나타난다.
또 한국이 민주주의 사회로 가야 한다는 게 해방 후 대세였다. 그런데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 있어 친일파가 암적 존재라는 생각을 많이 갖게 했다. 안재홍 같은 사람도 그걸 우려했다. '미소공위가 휴회하면서 분단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는데, 친일파가 그야말로 분단 세력 아닌가. 분단만이 살길이라며 단정 운동에 앞장서지 않았나. 새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 친일파처럼 심각한 문제가 없다.' 이런 생각을 많이 갖게 했다.
프레시안 : 그렇잖아도 어려웠던 해방 직후 상황에서 부정부패는 경제에 치명타였을 것 같다.
서중석 : 해방 직후 '친일파를 빨리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온 건 민중을 억압하고 고문한 악질 친일 경찰 때문이다. 친일 경찰은 (1946년) 10월항쟁, (1948년) 4.3사건과 여순사건이 일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사실 해방 직후 서민들이 친일파에 대해 악감정을 많이 품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친일파가 모리배 짓을 많이 해서다. 이게 신문 자료에 참 많이 나온다. 일제 말에도 생활이 굉장히 어려웠지만, 해방되고 또 얼마나 어려웠나. 모두 허리띠 졸라매고 같이 고통을 참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경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친일파는 오히려 때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미군정 등 권력과 결탁해 쌀 같은 걸 매점매석했다.
해방된 해 남쪽은 풍년이고 북쪽은 흉년이었는데, 나중에 남쪽에서 품귀해서 쌀 소동이 일어난다. 10월항쟁이 일어난 것도 쌀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일제 말에 고무신을 비롯한 생필품을 배급했고, 해방 후에도 그중 일부는 배급했다. 그런 생필품을 마구잡이로 사재기했다가 값이 뛰면 팔고 그러니까 모리배에 대한 원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친일파가) 우리 생활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흉 아니냐. 따지고 보면 모리배가 다 일제 때 악질 친일 행위를 한 자들이다. 경제가 잘 풀리기 위해서라도 친일파를 빨리 처단해야 한다'는 논리가 많이 나타난다.
|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
친일파 되살린 미군정과 이승만
프레시안 : 그런 친일파가 살아나는 과정에서 미군정과 이승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서중석 : 잘못 유포된 주장 가운데 하나가 해방을 무조건 혼란기로 보려는 견해다. 해방 직후엔 그렇게까지 심한 혼란은 없었다. 살상 행위라든가 치안을 크게 어지럽히는 행위 같은 건 없었다.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미군정이 설치되면서 오히려 혼란이 많이 일어났다. 미군이 친일파를 적극 등용하면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친일파 처단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는 한국인들의 정의감, 해방 직후에 특히 느낄 수 있던 강한 정의감이 많이 작용했다. 그런데 당시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던 이승만 같은 사람은 친일파를 옹호했다. 친일파 문제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 수준이 아니다. '친일파를 옹호하는 가장 주된 세력이 아니냐', '친일파가 발호하는 온상이다',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았다. 이승만은 주요 지도자 가운데 '친일파를 지금 처단해선 안 된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한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분은 상당히 교묘하다고 할까, 그런 면이 있었다. 뭐냐 하면 '독립 국가를 수립한 다음에, 우리 정부를 가진 다음에 우리 손으로 처단해야지, 어떻게 남의 손에 처단되길 바라느냐. 외세에 의존해서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런 아주 재미난 논리랄까 특이한 논리를 폈다. 이승만은 권력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친일) 경찰 간부들을 감싸거나 치하하는 일들을 많이 했다. 그런 식으로 경찰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적극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이미 여러 경찰서나 지서에선 '이승만이 우리 최고 지도자'라며 그 사진을 걸어둔 데도 있었다고 얘기한다.
프레시안 : 이승만 등이 친일파를 비호하는 속에서도 친일파 청산 노력은 계속됐다. 대표적인 것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다.
서중석 : 1947년, 미군정 산하 기관이라고 볼 수 있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한 법을 만들었다. 한민당, 독립촉성국민회(독촉중협의 후신) 등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력의 반대를 딛고 통과됐다. 그런데 미군정은 친일파 청산에 워낙 소극적이어서 이 법을 공포하지 않았다. 김규식은 '그렇다면 입법의원 의장을 사임하겠다'고 강경하게 배수진을 쳤다. (미군정은) 처음엔 김규식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끝내 이 법을 공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계기를 만나면서, 친일파 처단 문제는 급물살을 탄다. 헌법을 (1948년) 7월 17일 공포하는데, 제101조에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정부 수립 전인 8월 5일엔 제헌 국회에서 '친일파 처단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 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긴급동의안을 냈다. 그래서 그 날짜로 특별법기초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정부 수립 공포 다음 날(8월 16일),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이 바로 국회에 상정된다.
이건 뭘 얘기하느냐면, 제헌 국회가 헌법 다음으로 중요시한 게 친일파 처단이었다는 거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좋은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다. 그렇게 활동하게 된 건 무엇보다 친일파 처단이 긴급하고 절대적인 과제이자 우리 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라는 총체적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헌 국회 의원들이 그걸 따라가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친일파는 미군정 시기에 이미 클 대로 컸고 이승만 주위에 집결해 있었다. 이들은 제헌 국회에 아주 강하게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시내에서는 물론이고 국회 안에서까지 삐라를 뿌리면서 그런 활동을 했다. "대통령은 민족의 신성이다. 절대 순응하라", "민족 처단을 주장하는 놈은 공산당의 주구이다" 등이 적힌 삐라였다. 지금 여기저기 '종북' 딱지를 막 붙이듯이, 그때도 친일파가 자기들을 욕하는 사람들을 공산당 내지 그 주구로 몰아붙였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반민법을 공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민법을 공포하지 않으면 양곡 관리 법안 같은 걸 국회가 통과시키지 않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양곡 관리 법안은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는 것에 관한 법이었는데, 당시 긴급한 문제였다. 그래서 9월 22일, 할 수 없이 공포한 거다. 공포 다음 날(9월 23일), 친일파는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반공구국궐기대회를 대대적으로 열었다. 이승만 정부는 이걸 눈에 띄게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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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제헌절에 남산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이승만 동상 너머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승만 동상은 본래 1956년 남산에 세워졌으나, 1960년 4월혁명 때 시민들의 손에 철거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자유총연맹은 2011년 남산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연합뉴스 |
힘으로 반민특위 짓밟은 이승만과 친일 경찰
프레시안 :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반민특위는 당시 큰 기대를 모았다.
서중석 : 반민특위는 1948년 10월 23일 구성돼 이듬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1949년 1월 8일 친일파 거두로 원성이 높던 박흥식, 김연수, 최린, 최남선, 이종형, 이광수 등을 구속했다. 이번 (교학사) 교과서에서 옹호하려는 사람들이 여기 많이 포함돼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대통령이 아주 강하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반민특위가) 그해 1월 24일, 이 사람들 못지않게 악명이 높던 친일 경찰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자 (이 대통령은) "치안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친일 경찰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국회는 그것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반민특위를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면서 (반민특위를 약화시키는 내용의) 반민법 개정안을 냈다. 그런데 국회는 그 개정안이 국회로 오자마자 표결에 붙여 부결시키고 정부로 그대로 이송한다. 그야말로 속사포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어째서 국회가 이렇게까지 나오느냐. 제헌 국회 의원들은 (1948년) 5.10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이고 그중 상당수는 이승만 지지 세력, 한민당 계열, 단정 세력으로 볼 수 있다. 그 세력들이 동조하지 않았으면 이런 국회가 성립될 수 없었던 것 아니냐고 얘기할 수 있다. 이건 당시 (친일파 처단에 대한) 국민의 뜻이 얼마나 강렬했느냐를 단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승만 정부는 결국 힘으로 친일 청산 노력을 짓밟지 않나.
서중석 : 이 대통령은 반민법을 무력화하려 한다. 그러면서 유명한 6.6 반민특위 습격 사건(1949년 6월 6일)이 일어난다. 이걸 단순히 반민특위 습격 하나로만 보면 안 된다. 그 시기에 일어난 다른 사건들, 그러니까 국회 프락치 사건, 6.26 김구 암살 사건과 함께 봐야 한다. 이게 학계 일부에서 얘기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6월 공세다. (이승만의 행위를 학계에서) 역사를 과거로 퇴행시키려는 노력으로 보는 거다.
제헌 국회에서 반민법을 시행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걸려드는 노일환 의원을 비롯한 소장파다. 또 국회 밖에서 김구, 김규식 같은 독립 운동 세력이 강하게 버텨주니까 국회가 그런 활동을 했던 건데, 버팀목이던 김구가 암살되면서 친일파 처단은 결국 유야무야되고 만다.
친일파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하는 건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날 때까지 친일파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못한 데서 잘 드러난다.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 동안 그랬다. 극단적인 극우 반공 체제를 유지하던 시기엔 얘기조차 꺼내기 어려운 문제였다. 친일파 문제는 6월항쟁 이후 한국 사회에 민주화가 자리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한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다섯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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