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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종북놀음과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

갈피 못 잡는 민주당, 당신들은 무사할 것 같나?

[게릴라칼럼] 국정원의 종북놀음과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

13.03.21 17:52l최종 업데이트 13.03.21 17:52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하나의 유령이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종북좌파라는 유령이. 원세훈 국정원장은 '종북좌파 척결'의 선봉장을 자임했고, 최고의 정보요원들은 댓글 알바에 투입됐다. 온 나라를 순진무구한 자유진영과 이들을 위협하는 시뻘건 종북좌파로 양분시키는 모양새다. 오랜 식량난과 내외적인 위협에 고립되고 있는 북한은 하루아침에 우리 국민에게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도대체 지금이 1948년인지, 1953년지 알다가도 모를 멘탈을 보여주고 있는 이가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에 앉아 있다. 좌파세력 일각에서 만들어 낸 '종북'에 '좌파', 혹은 '좌빨'이라는 아이디어만 살짝 얹어 만들어낸 종북좌파 놀음은 멀쩡한 단체와 개인을 '내부의 적'이라는 무시무시한 용어로 재탄생시켰다.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공포심이 남다르다. 우리 현대사는 정권에 대한 비판세력을 국민에 대한 적으로 둔갑시켜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폭력은 물론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간 사례가 부지기수다. 지난 과거사일 뿐이라고? 언론에 흘러나온 원세훈 국정원장님의 '말씀'은 최고 정보기관의 최고 두뇌들이 정권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데 결연히 나설 것을 진지하게 주문하고 있다. 국민을 거침없이 '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이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 최상층에 아직도 존재한다.

민주당의 '이상한 선택'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17일 국회에서 양당 원내대표·수석부대표가 참석하는 '4인 회동'을 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회동이 끝난 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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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국정원만이 아니다. 민주통합당(민주당) 역시 이런 종북좌파 놀음에 거수기 노릇을 자임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새누리당과 정부조직법 개편과 국회운영에 합의하면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약속했다. 지난해 6월 국회 개원 협상과 8월 임시국회 정상화 방안 때 자격심사를 약속한 데 이어 세 번째다.

자격심사의 형식상 명분은 지난해 통합진보당 내부 경선의 부정 의혹이다. 비례대표 경선이 부정이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으로써의 자격을 자신들이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경선과정에서 부정의 당사자로 지목된 두 의원은 지난 6월부터 시작된 검찰의 대규모 수사에서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여러 시각이 존재할 수 있지만, 최소한 매우 엄격한 법률적 잣대를 적용하더라도 두 의원에게 부정선거를 조작하거나 지시한 위법적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굳이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새누리당 소속 이군현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은 19일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자격심사 건과 관련해 "사법부의 판단 여부가 국회 윤리특위 운영의 전제조건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면 정치적인 판단을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정치적 의도란 물어보나 마나 '종북세력 척결'이다. 국정원장이 국민의 일부를 '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에서 알 수 있듯이 종북으로 낙인찍은 정치적 반대파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대상이라도 정치적 우위를 이용해 공격하겠다는 의지. 민주당이 합의해 준 것이 바로 이 의지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미 지난해 합의된 사항이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애초 지난해의 합의가 이미 그런 의도에 손잡아 준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에 합의한 것이 더 가슴 아픈 이유는 한국 정치사에서 그들이 차지해온 위상이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세력과의 다양한 연대 속에서 무차별한 국가폭력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 역할을 수행했다. 이 때문에 많은 정치학자들은 민주당을 자유주의 세력, 혹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는 동일하게 '자유주의'를 내걸었지만 이 가치를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무기로만 사용한 뉴라이트 무리와는 결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집권 이후, 자칭·타칭 한국의 자유주의세력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유주의적 가치를 배신하는 행태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 와중에서도 자칭 자유주의세력들은 "설령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전체를 위해 희생하라"는 주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집단을 위해 잘못이 없는 개인이라도 희생하라는 주장은 자유주의 정신과 부합할 수 없다.

조작된 정치공작에 맞서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개인의 인권과 진실을 지키고자 했던 프랑스 '드레퓌스'사건에서 자유주의의 정신을 찾았던 이들은, 이제 진실보다는 정치공학을 즐긴다. 지난해 두 의원의 자격심사에 대한 정치적 합의 역시 대선을 앞두고 종북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민주당의 공학적 선택이 아니었는가?

새누리당의 주장과 유사하게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도 19일 KBS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자격심사가 "사법기관의 유죄 인정과 무관하게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자율권"이라며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윤리특별위원회 심사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때 자유주의세력을 자임했던 정당의 원내대표가 설령 사법적으로는 무죄이더라도 국회의원 자격은 박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식을 보여주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억울하면 소명하면 그뿐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우경화....결국 존재감 사라질 것
 

▲ 김재연, "자격심사로 사상 검증하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과 이석기 의원의 자격심사 상정은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의도이며 정치보복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자격심사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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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지지율이 바닥을 기던 민주당은 2008년 촛불시위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정국으로 인해 겨우 지지율을 회복했다. 여전히 지난 대선결과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대선에서 졌지만 민주당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표보다는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민주당 내부가 제대로 선거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오히려 우세하다.

대선 이후에 보여주는 모습이 더 실망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대선 패배 이후의 우경화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1992년 대선에서 진보운동세력의 결집체인 전국연합과 정책연대를 추진해 역시 실질적인 진보적 야권단일화를 이뤘던 당시 김대중 후보는 겨우 33.4%만을 득표할 수 있었다. 이후 민주당의 전략은 선거승리를 위해서는 보수연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는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의 기본 전략이었다. 민주당의 최근 상황은 다시 이런 식의 전략전환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7년, 2002년과 앞으로 5년은 조건이 다르다. 과거에는 민주당 이외의 특별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보수연합에도 불구하고 '미워도 다시한번' 민주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3월 4~7일 나흘간 전국 성인 12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안철수 신당 창당시 정당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안철수 신당은 23%의 지지율로, 37%를 얻은 새누리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겨우 11%였다. 물론 여기에는 새로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신생정당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의 허수가 끼어 있을 수 있다. 이른바 '신장개업 효과'다.

그러나 이런 지지율에는 안철수 후보나 안철수 신당의 실체와는 무관하게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과 새로움에 대한 다양한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이 자신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조건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하더라도 진보적 블록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과거 상황과는 현실이 많이 달라졌다. 가치와 정체성을 상실한 채 안일한 공학적 판단에만 의존한다면, 민주당의 앞날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상을 종북과 선량한 자유시민으로 구분하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시각에서 보자면 민주당 역시 종북세력이다. 민주당 내 많은 이들이 통합진보당과의 관계만 청산하면 종북 시비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믿는 듯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지난 대선에서도 종북공세는 통합진보당에서 멈추지 않았으며, 지금도 민주당 소속 임수경 의원의 상임위 교체(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대해 종북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사안이 단지 통합진보당에게만 국한될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거두어야 한다. '국회의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경선부정의 실체적 진실이나 사법적 판단과 무관하게 치러질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의 칼끝은 결국 민주당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물론 민주당이 새누리당에게 여전히 위협적인 정치적 경쟁대상으로 남아 있는 한에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안은 단지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의원직 유지 여부만이 아니라 민주당으로써도 큰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다수의 힘과 권력으로 누군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겠다는 발상에 동참한다면, 민주당의 껍데기는 살아 남을지 몰라도 민주당이 추구했던 정신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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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고위층 성접대' 이미 알고 있었다

 


한 여성사업가와 건설회사 대표 간의 성폭행 수사가 청와대와 검찰,경찰을 발칵 뒤집고 있습니다. 여성 사업가가 중천건설 윤중천 대표가 자신을 성폭행하고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 돈을 뜯어냈다며 시작된 수사는 윤 대표가 별장에 사회 고위층 인사를 모아놓고 성접대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중천산업개발 윤중천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주택건설과 부동산 개발 등으로 돈을 모은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업이 주춤해지자, 인맥을 동원한 건설 브로커로 활동하며 2010년 초부터 주말이나 휴일이면 고위층 인사들과 골프를 치고 이들을 자신의 강원도 별장에 데려가 술자리를 겸한 성접대를 수시로 했습니다.

윤 대표는 이런 술자리에 유흥업소 여종업원뿐만 아니라 주부,사업가,예술가 등 10여 명의 여성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노래와 술자리가 끝난 뒤 여성들은 윤 대표가 지목한 사회 고위층 인사와 별장에서 성관계를 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들은 윤 대표가 사전에 성폭행하고 그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빌미로 그의 말에 따라 다른 남성들과도 성관계를 했다고 합니다. 여성 사업가 A씨는 당시 윤 대표가 최음제를 먹인 뒤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했고, 동영상을 미끼로 수억원의 돈과 벤츠 승용차를 빌려 간 뒤에 돌려주지 않았고, 이에 윤 대표와 지인 B씨를 강간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에는 녹취록과 진술만 있었는데, 이번에는 사회 고위층 인사가 촬영된 동영상이 발견되면서 별장에 참석한 사회 고위층 인물이 누구냐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성접대 받은 고위층 인사 과연 누구?'

이번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윤 대표의 강원도 별장에서 술과 노래를 즐기는 파티에 참석해서 도박과 성접대를 받은 사람들이 고위층 인사라는 점입니다.

 

 

▲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강원도 별장, 현재는 소유자가 바뀌어졌다. 출처:연합뉴스

 


윤중천 대표가 고위층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했던 강원도 별장은 민가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별장으로 2000평의 대지 위에 총 6채의 건물과 수영장 2곳,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와 모형 풍차가 있는 이국적인 느낌의 별장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대리석 바닥으로 원목가구와 고급 소파,찜질방,당구장,가라오케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말마다 벤츠 등 고급 외제차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윤 대표는 주말에 골프를 치고 난 뒤 고위층 인사를 자신의 별장에 초대해 술자리와 성접대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윤 대표가 단순히 즐기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건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로비성 접대라는 증거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관련 고위층 인사들의 실명과 리스트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정확히 실명이 거론된 인물은 김학의 법무부 차관입니다. 현재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윤중천 대표와 함께 출국 금지자 명단에 오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런 언론 보도가 나오자 김학의 차관은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김 차관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지만 저의 이름과 관직이 불미스럽게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에게 부과된 막중한 책임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통감한다”며 “더 이상 새 정부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을 사임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차관은 “확인되지도 않은 언론 보도로 인해 개인의 인격과 가정의 평화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면서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윤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건설회사가 50억원대의 경찰청 교육원 골프장을 낙찰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과정에서 윤 대표가 경찰 수뇌부에 성접대를 하고 공사를 수주받은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이에 따라 경찰 고위 관계자들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는데, 대부분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트위터에 '만약 성접대 의혹이 사실이라면 할복자살 하겠다'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억대의 모 대학 병원 인테리어 공사를 윤씨가 대표로 있는 건설회사가 맡은 정황이 포착되면서 단순한 별장 파티가 아니라 이권을 둘러싼 고위 공직자, 지도층 인사,경찰 등을 대상으로 한 성접대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 김학의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의혹, 청와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시기는 이미 작년 12월이었습니다. 경찰은 여성 사업가와 지인이 윤 대표를 강간혐의로 고소하자, 윤 대표를 체포하고 별장을 압수 수색했지만, 증거가 나오지 않자 강간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성접대 동영상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법조계는 물론이고 고위관료까지 연루된 정황이 보인다. 출처:동아일보

 


당시 윤 대표가 무혐의 처분을 받자 여성 사업가는 대부업자에게 벤츠 승용차를 찾아 달라고 요청했고, 대부업자 P씨가 벤츠 승용차 트렁크에서 섹스 동영상이 담긴 CD 7개를 발견했고, 해당 동영상이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경찰은 처음 수사 때부터 관련 여성들의 진술이 일관된 점으로 미루어 별장에 고위층 인사들의 난교 파티가 있었음은 인지했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관련 고위층을 함부로 수사할 수 없다가, 대부업자와 여성 사업가, 윤 대표 조카 등이 서로 협박하며 얽혀 있는 과정에서 동영상의 존재를 인지하고 다시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성접대 의혹 중심에 있는 여성 사업가의 단독 인터뷰 내용. 출처:SBS

 


성접대의혹에 대해 SBS와 단독 인터뷰를 했던 여성 사업가는 윤중천 대표가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검찰총장이 되면 한번 크게 써먹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이미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임명되기 전에 성접대를 했던 여성들로부터 김 차관과 성접대 의혹과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를 일주일 전에 이미 청와대에 보고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차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로, 검찰총장 후보에서 제외되자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됐습니다.

한 국가의 법무부 차관을 임명하려면 최소한 그에 대한 검증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해야 했는데, 경찰은 이미 김 차관이 성접대 의혹과 연관성이 매우 밀접하다고 수사를 하고 있는데도 경찰 고위층의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해명과 김 차관 본인의 '전혀 근거 없다'는 주장만 믿고 차관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 내부뿐만 아니라 검찰 내부에서도 김학의 차관과 성접대 연루설이 나돌았는데, 청와대는 이를 단순히 루머로만 생각하고 사실 관계 검증이 아닌 단순한 의견 청취로 '법무부 차관 임명 문제 없음'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장에서 열린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 출처:TV조선

 


김학의 차관이 성접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차관 임명 전에 이미 그런 의혹이 있는 것을 청와대가 알고도 강행했다는 점입니다. 관련 수사 결과가 나온 것을 토대로 차관을 임명해도 충분했는 데 왜 굳이 서둘러 임명했느냐는 점입니다.

그리고 검찰 기수를 무시할 정도로 검찰개혁을 주장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토록 충격적인 범죄에 연루된 인물에 대해 철저한 검증도 하지 않고 내정했다는 부분입니다.

'고위층 성접대로 사라지는 사건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내용을 청와대가 알고 있으면서, 왜 갑자기 지금에서야 사회에 큰 파문을 줄 '고위층 성접대' 의혹이 나왔느냐는 부분입니다. 이번 사건이 박근혜 정부의 인사 시스템을 비난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새 정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도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별장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윤중천 대표. 출처:인터넷 카페

 


경찰은 현재 모든 수사의 초점을 윤중천 대표로 한정하고, 그를 구속하는 차원에서 끝낼 수 있습니다. 검찰에 넘겨져도 실명이 거론되거나 증거가 있는 관련자에게는 무혐의 처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몸통은 밝혀내지 못하고 단순한 개인 간의 문제로 끝낸다면 청와대는 오히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사건으로 정작 중요한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사라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며칠 전에 나온 국정원 원세훈 원장의 국내 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이미 신문 지면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 3월22일자 동아일보 1면

 


별장에서 술 마시고 여성들에게 성접대를 받았던 사람들의 얘기가 나라를 뒤흔듭니다. 성을 대가로 로비를 했다는 이유가 기가막힐 노름입니다.앞으로 주말까지 이 소식이 나가면 '국정원 정치개입'은 우리 눈에 사라질 것이고, 전산망 마비에 대한 수사 결과도 단순히 북한 소행이라는 결론이나 범인을 밝혀내기 어렵다는 식으로 우리의 눈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고위층 성접대 의혹을 밝혀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정원의 정치 개입 사안과 같은 엄청난 사건도 잊으면 안 됩니다.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이 지금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모든 사건을 주목하고 있는 국민이 많기에 모든 불법과 은폐된 진실은 나중에라도 꼭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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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2는 왜 평택 상공을 날아갔을까?

 

B-52는 왜 평택 상공을 날아갔을까?
 
[한호석의 개벽예감](55) 이성 마비시킨 ‘핵우산’사기극서 벗어나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3/03/22 [02:08] 최종편집: ⓒ 자주민보
 
 

전략핵폭격기 한반도 출격과 집단적 정신착란

2013년 3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종교지도자들을 만난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고 말했는데, 바로 그 시각, 정말로 전략핵폭격기가 사람들의 머리 위에 맴돌고 있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북의 핵무기를 두고 그렇게 말했지만, 청와대에서 오찬회동이 진행되던 시각에 B-52 전략핵폭격기 한 대가 강원도 영월군 태백산에 있는 ‘필승사격장’ 상공에서 폭격연습을 4시간 동안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폭격연습을 4시간 동안이나 벌였으니, 얼마나 많은 모의폭탄을 떨어뜨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면, 자기 머리 위에 날아다니는 미국의 전략핵폭격기 B-52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넘어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며 전율해야 정상이다. B-52가 폭격연습을 하던 ‘필승사격장’에서 청와대까지 직선거리는 불과 171km밖에 되지 않는다. 전략핵폭격기가 171km밖에서 폭격연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병적인 불감증이다.

그런데 그런 병적인 불감증이 아니라, 안도감을 느끼고 있으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미국의 전략핵폭격기가 자기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미국의 ‘핵우산’이 ‘북의 핵위협’으로부터 자기를 지켜주리라 믿으며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미국군의 핵타격 준비태세에 관한 심층정보를 접할 수 없고, 그래서 ‘핵우산’을 믿으라는 미국의 설교만 줄곧 들어온 사람들은, B-52의 한반도 출격이 ‘북의 핵위협’에 대응해 남측의 안보를 지켜주는 ‘핵우산’ 제공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민족사의 피어린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이 ‘북의 핵위협’을 막아주기 위해 ‘핵우산’을 제공한다고 설교한 것처럼, 80여 년 전 일제침략자들은 ‘미영귀축(美英鬼畜)의 위협’을 막아주기 위해 이 땅에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한다고 설교하였었다. 저들의 설교는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세상을 속이고 7천만 민족을 죽음에 몰아넣으려는 사기극이다.

미국의 핵타격 전략에 관한 최소한의 정보를 접하게 되면,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할 때 미국의 전략핵타격으로 한반도 전체 인구가 핵참화 속에서 타죽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미국의 ‘핵우산’을 믿는 것은 두뇌의 인식활동이 완전히 파열된 극도의 정신착란이 아닐 수 없다. B-52의 한반도 출격을 바라보며 안도감을 느끼는 이 땅의 사람들이 정신착란에서 벗어나는 길은, 미국의 ‘핵우산’ 사기극에 깊이 파묻힌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우선 아래의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B-52를 전략핵폭격기라고 부르는 까닭은, 수 십 킬로톤급 전술핵탄두가 아니라 수 백 킬로톤급 열핵탄(수소폭탄) 탄두를 탑재한 공대지 미사일을 공중에서 불시에 발사하는 선제핵타격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B-52의 미사일 발사장치에는 두 종류의 핵타격 미사일을 장착된다.

첫째, AGM-86 ALCM이라는 핵타격 미사일이다. ALCM이란 공중발사순항미사일(air-launched cruise missile)의 영어 머리글자인데, 200킬로톤급 폭발력을 지닌 열핵탄 탄두를 탑재하고 시속 890km의 순항속도로 2,500km를 날아간다. 인공위성에서 발신하는 정보에 따라 비행하는 이른바 위성항법장치(GPS)로 순항비행을 한다.

둘째, AGM-129 ACM이라는 핵타격 미사일이다. ACM이란 개량형 순항미사일(advanced cruise missile)의 영어 머리글자인데, 150킬로톤급 폭발력을 지닌 열핵탄 탄두를 탑재하고 시속 800km의 순항속도로 3,000km를 날아간다. 사전에 입력된 지형영상자료에 따라 비행하는 지형대조항법(TERCOM)으로 순항비행을 한다.

이번에 남측 언론들은 그 밖에 AGM-69 단거리공격미사일(SRAM)도 B-52에 싣는다고 보도하였지만, 이 미사일은 1993년까지 사용하였고 그 이후 1,048발을 해체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B-52의 선제핵타격에 사용되는 공대지 미사일은 위에 언급한 AGM-86과 AGM-129 두 종류다.

B-52에는 그 두 종류의 핵타격 미사일을 최대 20발까지 실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핵폭탄보다 폭발력이 훨씬 더 큰 수소폭탄 20발을 싣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만일 B-52가 그 모든 핵타격 미사일을 공중발사하는 경우, 한반도만이 아니라 동아시아대륙이 핵참화로 타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전략핵폭격기가 자기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며 폭격연습을 하고 있는데 안도감을 느낀다니, 그것이야말로 정신착란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들은 선제핵타격명령 내리면 4시간 30분 만에 그 명령을 수행한다

2013년 3월 19일 <한국일보>가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보도사진 한 장을 실었다. 사진기자가 그 날 오후 경기도 평택 상공을 날아가는 B-52를 지상에서 카메라로 촬영한 보도사진이다. 이 ‘희귀한’ 보도사진에서 아래와 같은 정보를 엿볼 수 있다.

서태평양의 미국 영토인 괌(Guam)에서 이륙한 B-52가 동중국해와 제주도 서쪽 해상을 거쳐 한반도 서해로 북상한 뒤에 경기도 남쪽 평택 상공에서 동쪽으로 기수를 돌려 강원도 영월군 태백산에 있는 폭격연습장으로 향하는 비행경로를 그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보도사진은 폭격연습장 상공을 돌아치면서 4시간 동안 폭격연습을 감행한 뒤에 괌으로 돌아가는 B-52가 평택 상공을 지날 때 촬영한 것인데, 괌에서 폭격연습장으로 날아갈 때도 같은 비행경로로 날아갔던 것이 분명하다. 평택과 폭격연습장은 각각 북위 37도선에 거의 근접한 위도에 있다.

B-52가 북위 37도선 상공까지 북상한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B-52가 폭격훈련을 하고 있었던 폭격훈련장에서 평양까지 직선거리는 344km다. 만일 B-52가 폭격훈련장 상공에서 AGM-86을 발사하면, 그 핵타격 미사일이 평양에 도달하는 시간은 23분이고, AGM-129를 발사하면, 그 핵타격 미사일이 평양에 도달하는 시간은 26분이다.

위에 언급한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나 직감할 수 있다. 평양을 10번 이상 파괴할 열핵탄 탄두가 탑재된 핵타격 미사일을 싣는 B-52가 순항미사일 비행속도로 평양에서 불과 20여 분밖에 떨어지지 않은 최근접 발사거리까지 바짝 접근하여 폭격훈련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B-52가 이륙한 출격기지는 괌에 있는 앤더슨 공군기지다. 거기서 이륙한 B-52가 한반도 중부지역 상공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비행시간은 약 4시간이다. 만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지도 위에서 아예 없애버리라는 선제핵타격 명령을 내리면, B-52는 4시간 30분 뒤에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키 리졸브-독수리’ 북침전쟁연습에 관해 보도하는 세상의 모든 언론들이 말하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가지만, 무고한 북녘 동포 수 백 만 명을 4시간 30분 만에 대량살육하려는 극악무도한 선제핵타격이 B-52의 한반도 출격의 실체인 것이다. 미국은 이번에만 해도 그런 B-52 선제핵타격연습을 3월 8일과 3월 19일 두 차례나 감행하였다. 이것은 북의 심장부에 칼을 들이대는 노골적인 적대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2013년 3월 20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B-52의 한반도 출격을 “참을 수 없는 도발”이라고 비난하였다.

핵타격 작전시간으로 보면 평양에서 불과 20여 분밖에 떨어지지 않은 최근접 발사거리에서 선제핵타격연습을 감행하는 B-52의 잔인한 행동을 바라본 사람들은 이성과 양심으로 말해야 한다. 지난 60년 동안 그처럼 숨 막히는 미국의 선제핵타격 위협을 받으며 살아온 북이 B-52 핵공갈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핵타격력을 보유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또한 미국이 세대에 세대를 이어 저지르는 끊임없는 선제핵타격 위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 되는 북은 올해 ‘통일대전’으로 결판을 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B-52가 한반도 상공에서 비정상적인 비행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2013년 3월 1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상공을 날아가는 B-52를 지상에서 촬영한 <한국일보> 보도사진에서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정보가 있다. <한국일보> 사진기자가 지상에서 육안으로 B-52의 비행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었으므로, 그 전략핵폭격기가 아주 저고도로, 저속으로 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B-52의 비행고도는 15km이고, 비행속도는 시속 844km(마하 0.86)이다. 그런데 그런 전략폭격기가 왜 평택 상공에서 저고도로, 저속으로 비행하였을까?

원래 B-52는 기체가 매우 크고 육중한데다가, 기체 내부의 폭탄창에 폭탄을 잔뜩 싣고, 그것도 모자라 양 날개 밑에까지 미사일을 주렁주렁 매달고 출격하기 때문에 초음속 전투기에 비해 비행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만일 적진에서 출격한 날쌘 전투기 편대가 날아가서 B-52에 공대공 미사일을 쏘면, B-52는 그 걸로 끝장이다. 그래서 미국은 실제 전쟁을 개시할 때는 잠수함, 군함,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미사일 정밀타격으로 적의 방공망과 공군력을 먼저 공습한 뒤에 B-52 편대를 출격시키게 된다. 그리고 B-52 편대가 공습에 나설 때에도 호위 전투기 편대가 따라붙게 되는 것이다. 지난 시기 미국이 두 차례 일으킨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B-52는 그런 순차에 따라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여 이라크 국토를 무참히 파괴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그런 순차적 공습은 한반도에서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이 북침공격을 개시하는 순간, 아니 미국의 북침공격 징후가 나타난 순간, 북이 먼저 막강한 화력을 총동원한 선제공격으로 미국의 ‘급소’를 기습타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한반도에서 북침전쟁을 노리는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이번에 그러한 것처럼, 단독비행으로 폭격연습을 하는 것처럼 위장한 B-52 한 대가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 북에게 핵타격 미사일을 불시에 발사하는 선제기습타격도 가능한 일이다. 위장행동으로 적을 속이는 치명적인 선제기습타격으로 무력침공을 도발한 사례는 세계 전쟁사에 흔하다. 이런 경험에 비춰보면, 비록 한 대가 단독으로 비행한다 해도, B-52가 한반도 상공에서 정상적인 고도에서 정상적인 속도로 비행한다면, 그것은 폭격연습으로 위장한 선제핵타격을 노린 공습일 수 있다.

그러므로 폭격연습으로 위장한 B-52의 기습타격을 막아내야 하는 인민군 반항공군은 B-52가 한반도 상공에 정상비행으로 접근하면, 그런 정상비행을 선제핵타격을 위한 위장비행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요격미사일을 쏘게 되어 있다. 불시에 선제핵타격을 노리며 한반도 상공에 접근하는 B-52를 요격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북의 국가적 생사존망이 걸린 문제이므로, 인민군 반항공군은 그런 정황에서 무조건 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미국은, 폭격연습을 위해 B-52를 한반도에 출격시킬 때는 반드시 저고도로, 저속으로 비정상적인 비행을 하라고 명령한다. B-52가 그렇게 비정상적인 비행을 해야 선제핵타격을 노린 실전비행이 아니라 모의폭격을 위한 연습비행이라는 사실을 북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어 피격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일 이번에 B-52가 정상비행으로 한반도 상공에 접근하였다면, 인민군 반항공군이 쏜 요격미사일에 맞아 즉각 격추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심각한 물음이 제기된다. 북은 과연 B-52의 선제핵타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대답해야 할 문제이므로, 아래와 같은 정보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B-52 격추할 인민군 반항공군의 최신형 요격미사일

2013년 2월 20일 이란 언론들은 탐지거리가 3,000km에 이르는 장거리 방공레이더를 이란에서 자체로 생산하고 있다는 소식을 일제히 보도하였다. 이란도 북처럼 B-52의 선제핵타격 위협을 받으며 방공망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는 나라다. 그런 처지에 있는 이란이 B-52가 3,000km 밖에서 핵타격 순항미사일을 불시에 발사하는 선제핵타격 위험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려면 탐지거리가 매우 긴 장거리 방공레이더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핵타격 작전시간으로 20여 분 떨어진 최근접 발사거리까지 B-52를 바짝 접근시켜 선제핵타격 위협을 가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B-52를 이란 영공 부근에 출격시킨 적도 없다. 그런 이란이 3,000km 장거리 방공레이더를 자력으로 만들어 실전배치하였다면, 이란보다 더 오랫동안, 더 심하게 미국의 선제핵타격 위협을 받아오는 북도 당연히 장거리 방공레이더를 자력으로 만들어 이란보다 훨씬 먼저 실전배치하였을 것이다.

인민군 반항공군은 탐지거리가 3,000km 이상인 것으로 보이는 고성능 장거리 방공레이더를 실전배치해놓고 B-52의 한반도 출격을 24시간 쉴 틈 없이 감시하고 있다. B-52의 한반도 출격을 24시간 정밀감시하는 것은 북이 미국의 선제핵타격을 막아내는 첫 관문이다. 3,000km는 얼마나 먼 거리일까? 평양에서 필리핀 마닐라까지 직선거리가 2,760km다. 그러므로 괌에서 이륙한 B-52가 필리핀해 북쪽 상공에 이르렀을 때부터 인민군 반항공군은 B-52가 어느 쪽으로 날아가는지 감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자국의 영공을 방어하기 위해 영공 밖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설정해놓고 그 구역으로 접근하는 모든 비행물체를 감시한다. 북도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북은 방공식별구역을 어디쯤 설정해놓았는지 알 수 없지만, 만일 B-52가 필리핀해 북쪽 상공에서 한반도 쪽으로 방향을 틀어 북상하기 시작하면, 인민군 반항공군은 즉각 비상대기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이처럼 인민군 반항공군이 B-52의 비행을 사전에 먼 거리에서 장거리 방공레이더로 탐지하고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B-52가 방공식별구역을 넘어 북상할 때, 재빨리 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B-52를 격추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탐지만 하고 격추할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민군 반항공군이 B-52를 격추할 요격수단은 아주 먼 거리를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장거리 요격미사일이다. 단 한 발만 쏴도 평양을 10번 이상 파괴할 수 있는 핵타격 미사일을 20발이나 실은 B-52가 한반도 상공에 다가오기 전에 되도록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재빨리 요격할수록 북에게는 유리하다. 따라서 북은 B-52를 격추할 요격미사일의 사거리를 늘이고 비행속도를 초음속으로 높이는 아주 어렵고 힘든 기술개발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제핵타격을 노리고 맹수처럼 덤벼드는 B-52를 먼 거리에서 재빨리 격추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북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가 통일된 먼 훗날 세상에 알려지겠지만, 북의 미사일 부문에서 일해온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B-52를 먼 거리에서 격추할 강력한 요격미사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전쟁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다른 것을 뒤로 미루고서라도 그런 강력한 요격미사일 개발사업에 우선적으로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미사일 부문에서 러시아는 북보다 아주 멀리 앞서 먼저 출발하였지만, 북은 미국의 끊임없는 핵공갈로부터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미사일 기술개발을 다그쳤을 터이니, 그 개발속도가 다른 미사일 개발국들을 앞질러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빨랐다. 북이 미국에게 전력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북의 미사일 기술수준을 저평가하는 것은 그런 내부사정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지금 러시아군이 실전배치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최신형 요격미사일로 평가받는 S-400은 사거리 400km, 사고도 185km, 비행속도 마하 12다. 2012년을 기준으로, 러시아군은 S-400 72기를 실전배치해놓고, 미국의 잠재적 공습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그런데 B-52는 전투반경이 7,210km나 되어 매우 멀리까지 날아가지만, 비행고도는 15km, 비행속도는 시속 844km이어서 음속 이하의 속도로 날아간다. 위에서 언급한, B-52에 싣는 두 종류의 핵타격 미사일도 순항거리는 2,500∼3,000km나 되어 매우 멀리까지 날아가지만, 순항속도는 800∼890km이므로 미사일로서는 매우 느리다. 그러므로 음속보다 12배나 빨리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S-400을 쏘면, 시속 800∼890km로 날아오는 B-52는 물론이고, 거기서 공중발사한 핵타격 미사일도 400km 밖에서 격추할 수 있다.

그러면 인민군 반항공군은 러시아군의 S-400처럼 강력한 요격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을까? 인민군 반항공군이 S-400보다 한 급 낮은 S-300을 실전배치한 것은 이전에 실물로 확인된 바 있다. 201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인민군 열병식에 등장하여 군사전문가들을 놀라게 한 ‘주체식 요격미싸일종합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2012년 4월 14일 평양에서 성대하게 개관식을 진행한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에 ‘주체식 요격미싸일’을 싣고 이동하는 3축6륜 발사차량이 발사관과 함께 상설전시되었다. 어느 나라나 박물관에는 자국산 최신형 무기보다 한 급 낮은 무기를 전시하는 법이다. 북이 S-300급 ‘주체식 요격미싸일’ 발사차량을 무장장비관에 상설전시한 것을 보면, 인민군 반항공군이 그보다 한 급 높은 S-400 수준의 최신형 요격미사일을 실전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김정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를 시찰하는 사진이 2012년 5월 3일 북측 언론에 실렸는데, 그 지휘부를 김일성 주석이 459차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25차례나 현지지도하였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북에서 최고영도자의 현지지도가 어느 특정단위에 그처럼 집중된 것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B-52의 선제핵타격을 막아낼 요격미사일 개발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날 시찰 중에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군지휘관들과 함께 지휘부 마당에서 최신형 요격미사일을 살펴보았다. 북의 언론에서는 그 요격미사일 발사차량의 왼쪽 바퀴들이 보이는 부분만 살짝 촬영하여 실물공개를 차단하였는데, 이미 2010년 10월 10일에 세상에 공개하였고 2012년 4월에는 무장장비관에도 상설전시해놓은 S-300급 요격미사일이라면 그처럼 실물을 보여주지 않을 리 없다. 그러므로 그 날 시찰에서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살펴본 요격미사일은 S-400급 최신형 요격미사일인 것이 틀림없다.

군사과학기술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달한 중국도 S-400급 요격미사일을 자력으로 개발하지 못해, 2013년 현재 러시아의 기술을 들여가 합작으로 만드는 중인데, 북이 그런 최첨단 요격미사일을 2012년에 자력으로 생산하였으니 실로 경이적이다.

만일 인민군 반항공군이 황해남도 해주에서 남쪽을 향해 S-400급 최신형 요격미사일을 쏘면, 전라남도 진도 상공에서 비행하는 B-52 또는 핵타격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다. 인민군 반항공군이 실전배치한 S-300급 요격미사일은 6개의 비행물체를 동시에 격추할 수 있는데, S-400급 최신형 요격미사일은 그 보다 좀 더 향상된 동시타격능력을 지녔을 것이다.

한반도로 접근하는 B-52에 무엇이 실렸는지 북으로서는 알 수 없으므로, B-52가 전라남도 진도 상공에 이르면 인민군 반항공군은 즉각 최신형 요격미사일 발사태세를 갖추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아는 B-52는 동중국해를 지나 한반도 남해로 향할 때는 저 멀리 이어도 남쪽 상공에서부터 반드시 저고도로, 저속으로 비정상적인 비행을 하며 조심하는 것이다.

인민군 반항공군은 요격미사일을 쏘는 것만이 아니라, 강력한 방해전파도 쏜다. 그러므로 위성항법장치로 순항비행하는 핵타격 미사일 AGM-86은 인민군 반항공군이 쏘는 강력한 방해전파에 걸려 방향을 잃고 추락할 것이다.

B-52가 한반도 상공에 다시 출격한다면

베트남 전쟁 시기에 이른바 ‘융탄폭격’으로 베트남 인민을 무차별로 대량살육하고 베트남 국토를 파괴하던 B-52 한 대가 1972년 11월 22일 북베트남 빈(Vinh)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북베트남군이 쏜 지대공 미사일을 맞고 사상 처음으로 격추된 것이다.

1972년 12월 18일 옌 비엔(Yen Vien), 12월 19일 킨 노(Kinh No)와 하노이(Hanoi), 12월 20일 옌 비엔 주변 세 곳, 12월 21일 킨 호 주변 세 곳과 하노이, 12월 22일 박 마이(Bac Mai), 12월 26일 지압 니(Giap Nhi), 12월 27일 하노이, 박 마이, 트룽 콴(Trung Quan), 그리고 1973년 1월 4일 빈...이것은 1972년 12월 북베트남군이 지대공 미사일로 B-52를 격추한 기록이다. 북베트남은 1972년 12월에 B-52 34대를 격추하였다고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왜 1972년 12월에 그처럼 수많은 B-52가 격추되었을까? 미국은 1972년 12월 18일부터 29일까지 B-52 42대를 동원하여 ‘라인백커 작전(Operation Linebacker II)’이라는 작전명으로 북베트남에 대한 ‘융단폭격’을 감행하다가 지대공 미사일을 맞고 그처럼 우수수 떨어진 것이다. 자칭 ‘하늘의 요새’라고 떠들어대며 ‘융탄폭격’으로 베트남 전선에 대량살육의 불구름을 몰아오던 B-52의 ‘불패신화’는 그렇게 산산이 깨져버렸다.

B-52의 ‘불패신화’를 깨뜨린 북베트남군의 지대공 미사일은 소련이 만든, 길이가 10.6m인 2단형 고고도 요격미사일 S-75다. S-75는 사거리가 45km이고, 사고도는 25km이며, 200kg의 고폭탄두를 탑재하고 마하 3.5의 속도로 날아가며, 전파통제신호로 유도된다.

북은 B-52를 격추하기 위해 S-75보다 사거리가 8.8배나 더 길고, 사고도가 7.4배나 더 높고, 비행속도가 3.4배나 더 빠른 아주 강력한 요격미사일을 만들어냈다. 인민군 반항공군은 아직 그 모습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고, 그 이름도 세상에 알리지 않은 최신형 요격미사일을 400km 밖에서 날아가는 비행물체들에 겨누고 있다. 40년 전 북베트남군은 S-75를 쏘아 45km 밖에서 날아오는 B-52를 한 대씩 격추하였지만, 오늘 인민군 반항공군이 S-400급 최신형 요격미사일을 쏘면 400km 밖에서 날아오는 B-52와 장거리 핵타격 순항미사일을 한 번에 6대 이상씩 우수수 격추하게 될 것이다. 2013년 3월 20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지금 우리는 전략폭격기 <B-52>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으며 전략폭격기가 조선반도에 다시 출격한다면 적대세력들은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이튿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미국의 로골적인 핵공갈과 위협이 시작된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정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번에 서울에 나타난 미국 국방부 부장관은 B-52가 하루 뒤 한반도에 출격하여 폭격훈련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 발만 쏘아도 수 백 만 명이 핵참화 속에서 타죽게 되는 전략핵타격에 대해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지껄일 수 있을까.

그런데 선제핵타격을 노리다가 인민군 반항공군이 쏜 요격미사일에 맞아 격추되는 B-52, 그리고 인민군 반항공군이 쏜 방해전파에 걸려 방향을 잃고 추락하는 핵타격 미사일들은 한반도 남부 해안지대 어디에 떨어질 것이다. 단 한 발로 대도시를 10번 이상 파괴할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핵타격 미사일들이 그렇게 요격미사일에 맞아 공중폭발 또는 추락하거나 그런 미사일을 20발이나 실은 B-52가 요격미사일에 맞아 추락하여 지상에서 폭발하는 핵참화가 일어나면, 얼마나 많은 남측 동포들이 참혹하게 희생될지 상상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이제 최면상태에서 깨어나야 한다. 미국의 B-52가 펼쳐주는 ‘핵우산’이 ‘북의 핵위협’으로부터 자기들을 지켜준다는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최면상태에서 한시바삐 깨어나야 한다. 이성과 양심을 마비시킨 ‘핵우산’ 사기극의 집단적 최면상태에서 빨리 깨어나, 7천만 민족을 핵재앙으로 멸살하려고 날뛰는 미국의 선제핵타격 위협에 끝까지 맞서 싸우며 북침전쟁연습을 저지, 파탄시키는 대중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들 자신과 아이들을 생존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삼천리 금수강산을 짓누르는 미국의 60년 묵은 ‘핵공갈’을 영구히 소멸하기 위해...(2013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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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이촌동, '용산참사'보다 더 많이 죽을 수 있다"

[벼랑 끝 '용산' ①] '파산 위기' 용산 개발 사업이 남긴 상흔

박세열 기자,이대희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21 오전 7:48:02

 

'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힘차게 출발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출범 6년 만에 파산 위기에 놓였다. 31조 원 규모의 개발 사업이 59억 원의 이자 비용을 막지 못해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개발 사업의 중심인 코레일이 15일 서울시와 코레일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하는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서울시도 이에 적극 화답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넘어야 할 난관은 한둘이 아니다. 당장은 이번 개발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생활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서부이촌동은 개발 대상 포함 여부를 두고 6년 동안 지난한
갈등에 시달렸다. 이 난관을 넘어서더라도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개발이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급랭하는 부동산 경기로 인해 코레일이 당초 그린 장밋빛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 없으리라는 지적이 여러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프레시안>은 무능으로 점철된 이번 개발 계획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서부이촌동을 찾아보고, 이 사업의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되짚어본다. 이에 더해 전문가
진단을 통해, 용산 개발 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

"지금 너무 늦었어요. 너무, 너무…. 이 동네(서부이촌동) 작살난 다음에 책임질 사람이 없잖아요. 누가 책임을 져요. 누가 책임을 지냐고. 책임지는 데가 있어요? 서울시가 어떻게 책임져요. 사람들 생활이 다 파탄 났는데 그걸 뭘로 책임져요. 소송을 한다고 해도 2년, 3년 더 지나면 여기 사람들, 더 작살나요."

서부이촌동(이촌2동) 주민 이봉규 씨(가명)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번쩍번쩍하는 초고층 빌딩이 무려 19개, AAA등급 오피스, 6성급 호텔, 컨벤션 시설, 최고급 레스토랑. 이 모든 것이 들어서며 '꿈의 허브'의 일부로 편입된다던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드림허브)의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그 꿈이 신기루로 변하고 있다. 서울시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의 향방은 현재 '시계 제로' 상태다. 여기에 복잡한 개인 사정들이 얽히고설킨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반목과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 거대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휘말린 주민들은 부추겨진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하고 있다.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상도 ⓒ드림허브

 

▲ 개발이 예정된 서부이촌동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2007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코레일 부지 개발 사업에 서부이촌동을 편입시켜 통합 개발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은 시작됐다. 이주 대책 기준일인 2007년 8월 30일부로 자신의 집을 팔 수도 없게 됐다. 현재까지 이 사업에 이미 들어간 돈만 4조 원으로 추정되는데, 주민들은 그 돈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6년 동안 재산권이 묶인 주민들의 심성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이다. 서부이촌동 주민대책협의회에 따르면 이곳 2200여 가구 중 65%가 평균 3억5000만 원의 은행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와중에 사업 시행사의 부도 사태를 목격한 주민들은 또다시 '개발'과 '개발 반대'로 이합집산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이 만난 개발 찬성 주민들과 반대 주민들은 상대편을 향해 "투기꾼", "깡패"와 같은 격한 단어까지 써가며 비난했다. 수년 전까지도 한동네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적'과 다름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개발 취소되면 용산참사보다 더 큰 참사 날 수도"

용산역에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와 한강 방향으로 걸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아직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낡은 판자집들이 얽히고설킨 골목을 빠져나가자 병풍처럼 서 있는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띄었다. 한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아파트 단지들 아래 다닥다닥 붙은 낡은 상가 건물, '맨숀'이라고 적힌 연립 주택들이 보였다. 서부이촌동 풍경이다.

눈에 띄는 것은 서부이촌동을 개발에서 제외해달라는 내용의 커다란 '아파트 벽보'였다. 오세훈 전 시장을 비난하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이 씨가 입을 열었다.

"제가 봤을 때는 만약에 저거 되면(개발이 취소되면) 용산(참사 때 숨진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분이 자살을 하실 수도 있어요. 현재 장애인들 몇 분이 살고 계시는데, 장애연금도 안 나와요. 안 나오는 이유가 집값이 비싸져서, 재산이 많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부모랑 아이까지 장애인 집안인데, 돈을 벌 수가 없잖아요. 국가에서 나오는 돈으로 살다가 집값이 올라가서 해당 사안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떡해. 방법이 없잖아. 대출을 받아서 난리 난 집들 있죠? 그 집도 그래요. 어차피 개발 금방 된다고 해서 자녀들이 설득해 대출을 받도록 한 거죠. 그렇게 계속 오다 보니 점점 더 힘만 드는 거예요. 여기 사는 사람들, 이해관계가 다 달라요. 주민투표를 하면 결론 날까요? 안 나요. 개발이 되든 안 되든 그런 분들(장애인 가족)은 어차피 끝난 거예요. 애초에 이런 일이 없었으면 모르는데, 너무 늦었어요."

"동네 분위기를 알려달라"는 요청에 이런 답을 내놓은 이 씨는 "나도 이제 쫒겨난다. 갈 데가 있냐고? 없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그래도 난 정말 막다른 골목에 있는 사람보다는 나으니까"라고 말했다. 보상금만 바라보며 6년을 버틴 사람들의 일상은 처절했다.
 

▲ 찬반 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제발 보상 받고 떠났으면" VS "멀쩡한 아파트를 왜 부숴"

현재 11개구역연합대책위원회로 대표되는 용산 개발 참가 찬성 주민들은 이른바 '동의자 모임'으로 불린다. 연립·다세대 주택 소유자들의 상당수는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다. 서부이촌동에는 대림아파트, 북한강성원아파트, 동원 베네스트, 중산 시범1차아파트, 시범아파트 등 5개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다. 이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단독·연립·다세대 주택 소유자들에 비해 개발 반대 의사가 강하다.

서부이촌동을 찾아보면, 단독 주택 세대민과 아파트 주거민의 견해가 이처럼 나뉘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철도청 부지와 다세대 주택지를 지나, 한강으로 가는 길에 고층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슈퍼마켓운영하는 유지민 씨(가명)는 개발에 찬성이다. 유 씨는 지난 6년을 되짚으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아파트 주민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기네는 있어도(계속 살아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얘기는 하는데, 다 보상을 받고 나가길 원한다. 워낙 건물이 썩고 해서…. 사실 (2007년) 통합 개발을 한다고 하기 전에 일부는 재건축하기로 인가가 다 났다. 통합 개발만 아니면 우리는 벌써 재건축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억울하다. 6년 동안 진짜 힘들었다. 이게 뭐냐. 돈도 못 벌고 붙들고 앉아서…."

노후한 단독 주택 소유주들은 상대적으로 개발 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서울시와 시행사는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고, '우리도 좋은 집에 살아보자'는 구호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린다. 그러나 기대감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6년 동안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지겹게 겪어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동네 장사'로 매출을 올리는 작은 상가들은 주민들이 하나둘 나가면서 수입원마저 잃었다. 장사는 장사대로 안되는데, 재건축까지 막혀 있고 보상도 불투명한 상황이 되니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발 보상을 받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반면 서부이촌동에서 상대적으로 고급 아파트인 대림아파트와 북한강성원아파트의 경우 반대 의사가 특히 강하다. 2011년 서울시에서 조사한 결과, 대림아파트와 성원아파트 주민 중 개발에 찬성한 가구 비율은 각각 39.6%, 32.4%에 불과했다. 지역 주민 전체 동의율이 56.4%에 달했던 것과 온도 차이가 뚜렷하다. 반대 기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더 강해지는 추세다. 지역 주민들은 현재 아파트 주거민의 70% 가까이가 서부이촌동 개발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대림·성원 등 대형 아파트는 한강 조망권을 확보하고 있다. 도시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돼 재산권 행사가 가능해지면 집의 가치는 다시금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더구나 시범아파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파트는 건축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거주민이 2000년대 들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파트를 부수고, 그 위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서울시의 요구를 거주민이 따를 이유가 없다.

2002년부터 성원아파트에 거주했다는 임영재 씨는 "들어온 지 3-4년밖에 안 된 멀쩡한 아파트를, 그것도 집주인의 반대 의견도 묵살하고 부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서울시가 주민 권리는 무시하고 마음대로 재산권 행사도 못하게 한다. 21세기에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 씨는 "회사로 깡패 같은 사람이 찾아와 재개발에 동의하라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우리 아파트에 많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사람들'의 이러한 주장에 개발 찬성 주민들은 "아파트 사는 사람들도 속내를 보면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50%는 넘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서로 "우리 편이 많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제는 주민들조차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는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서로 알지 못하는 상태까지 왔다. 이웃들과 복마전을 이루는 기막힌 상황이다.
 

▲ 대림아파트 벽에 쓰인 개발 반대 문구 ⓒ프레시안(최형락)
▲ 한 아파트에서 한강을 바라본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오세훈이 벌인 일"…박원순이 해결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 사업은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서부이촌동을 6개 권역으로 나눈 후, 감정평가를 시행해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주민 찬반 투표를 진행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2003년 집을 매입했다는 대림아파트 거주민 박희숙 씨는 "감정평가를 거친다는 게 결국 서부이촌동 개발을 위한 행정 절차를 밟겠다는 속셈 아니냐"며 "우선 주민 투표부터 실시하고, 그 후 개발에 찬성하는 지역에만 감정평가를 시행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반면 '동의자 모임'의 박종민 씨는 "서울시의 방안에 동의한다. 저 사람들(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헐값에 넘기게 될 것이라고 선동해 왔는데 진짜 헐값인지 감정평가를 제대로 받고, 그 다음에 주민 투표를 하자는 것이다. 만약 헐값으로 나오면 나부터 개발 반대로 돌아서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의견이 최우선"이라는 서울시의 방침 하나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생각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김상철 진보신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서울시가 무리하게 서부이촌동을 개발 대상에 포함시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서부이촌동은 개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또 "용산 개발이 좌초하면서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특히 상권이 무너진 이 지역 상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원안대로 코레일 부지만 용산 개발에 포함시키고, 서울시는 지역 상권 개발에 나서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좌절한 주민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 지 모른다.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다. 도시 계획 전문가인 김진애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어느 경우에나 주민들 피해가 더 이상 커지지 않게 해야 한다"며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라도 사업 구간이나 이런 부분을 조정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오세훈 전 시장이 벌인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오 전 시장이 벌인 일, 박원순 시장이 해결할 수 있을까?

 
 
 

 

/박세열 기자,이대희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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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3년 ‘재 시뮬레이션’ 주장 제기

[싱크탱크 광장] “수중폭발 재실험하면 ‘국론분열’ 벗어날 가능성”
(한겨레 / 김보근 / 2013-03-19)

 

▲천안함 사건 3주년(26일)을 일주일여 앞둔 18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를 찾은 육군 51사단 장병들이 파손된 채 보존중인 천안함을 둘러보고 있다. 평택/뉴시스

천안함 침몰 3년
‘재 시뮬레이션’ 주장 제기

 

 

 

오는 3월26일은 한국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천안함은 여전히 남북관계, 더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서 불안요소다. 왜냐하면 한국 정부가 주도한 민관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폭침’으로 규정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제적 합의는 물론, 국내적 합의 도출도 미흡한 상황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다툼이든 서로가 잘잘못에 대해 합의를 이뤄야 끝을 맺을 수 있다. 서로 옳다고 계속 주장하는 상황에서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더욱 크게 번질 수도 있다. 그런데 천안함과 관련해서는 남은 북의 소행이라고 규정하고 북은 남의 모략극이라고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남쪽 국민들의 시각도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에서 볼 때는 사과’인 묘안을 찾는 것은 어렵다.

이제는 정부는 물론이고 여러 논의 주체들이 서로의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합일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현곤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이 “합조단의 천안함 관련 모의폭발 시뮬레이션을 다시 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사안이다. 보수-진보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음으로써 우리 스스로 ‘천안함 출구’를 만들어나가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승헌 교수가 밝힌
‘합조단 데이터 조작설’ 논란 계속
“에너지분광 분석결과
선체·어뢰 흡착물질과
폭발실험 흡착물질 달라야”

국방부는 여전히 재실험 거부
“합조단 조작 없었다
3개 흡착물질은 동일성분…
표면 불규칙한 분말 경우
분광분석 원소비율 달라져”


‘진검승부.’

정현곤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은 천안함 관련 ‘수중폭발 시뮬레이션 재실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통일운동과 시민운동에 몸담아온 정 위원장은 이 재실험이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학 교수(물리학)가 제기하고 있는 ‘합조단 자료 조작설’의 진위를 가려줄 핵심 열쇠라고 판단하고 있다. 재실험을 하면 천안함 민관 합동조사단(합조단)과 이 교수 중 한쪽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결과는 지난 3년간 남한 사회를 가두어왔던 ‘천안함’이라는 긴 터널에서 벗어날 출구가 돼줄지도 모를 일이다.

2010년 3월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의혹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구성한 합조단은 2010년 5월20일 “북한의 130t급 연어급 잠수함이 무게 1.7t의 중어뢰인 CHT-02D를 발사해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발표에 대해 연어급 잠수함의 존재 여부, 높은 부식률을 보인 CHT-02D 어뢰의 진실성 여부, 폭발 뒤에도 남아 있는 어뢰추진체 ‘1번’ 글자 문제, 합조단이 밝힌 어뢰의 폭발력과 지진파의 불일치 등 많은 의혹이 제기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정 위원장은 하지만, “이 논쟁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진위를 가리기 어려운 추정에 근거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추정에 근거한 논쟁들이 지속되면서 ‘천안함 폭침’이라는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여전히 전체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그러나 이 교수가 주장하는 ‘합조단 자료 조작’설은 재실험을 통해 명확하게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중립적인 추진단을 구성해 재실험을 한 뒤 그 결과를 공개하면 합조단의 주장이 맞는지, 이 교수의 주장이 맞는지를 모든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합조단이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격침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천안함 사건 이후 자체적으로 실시한 ‘수중폭발 시뮬레이션 결과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합조단은 2010년 5월20일 조사결과 발표 때 수중폭발 실험 결과 생성된 흡착물질(이하 폭발실험 흡착물질C)이 천안함 선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하 선체 흡착물질A), 그리고 ‘결정적 증거물’인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하 어뢰 흡착물질B)과 동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런 조사결과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선체 흡착물질A와 어뢰 흡착물질B는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학과 교수와 정기영 안동대 교수가 각각 독립적으로 분석해 ‘알루미늄 황산수화물’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황산수화물은 폭발에 의해 생기는 물질이 아니며 10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생성되는 침전물질이다.

따라서 이 교수는 흡착물질A 및 B에 대한 에너지분광(EDS) 분석 결과는 합조단이 발표한 것처럼 알루미늄과 산소의 비율이 1:0.9인 것이 맞다고 본다. 하지만 합조단이 폭발실험 흡착물질C의 에너지분광 분석결과 알루미늄과 산소 비율이 흡착물질A 및 B와 비슷하게 나왔다고 발표한 것은 명백한 조작이라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폭발실험에서 나온 흡착물질은 알루미늄과 산소의 비율이 1:0.23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따라서 합조단이 알루미늄과 산소의 비율이 1:0.23인 실험 결과를 감춘 채, 흡착물질A 및 B와 비슷한 데이터를 거짓으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 19일 <한겨레>가 요청한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합조단의 실험 결과에는 어떤 조작도 없었으며, 세개의 흡착물질은 동일성분”이라며 “이는 명백한 어뢰폭발의 증거”라고 밝혔다. 또 국방부는 이 교수의 에너지분광 분석 결과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천안함 선체 및 어뢰추진체의 흡착물이 산화알루미늄이 아닌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로 구성되어 있고 동일한 물질일지라도 표면이 불규칙한 분말의 경우 에너지분광 분석상의 원소비율이 크게 달라진다”며 “이를 근거로 폭발의 진위를 따지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밝혔다.

지난 3년 동안 이어져온 이 교수와 합조단의 의견대립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다. 국방부로서는 재실험 요구 자체를 정부가 주도한 기존 실험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재실험 요청을 수용하면, 스스로 1차 실험에 대한 의혹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남한 사회 전체가 치르고 있는 국론분열에 따른 국력손실을 고려해본다면, 국방부가 대승적으로 재실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 위원장은 실제로 2011년의 경우 보수진영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해, 재실험을 포함한 의혹 해소 노력을 진보-보수단체가 공동으로 시도한 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진보적 싱크탱크인 세교연구소에 상임기획위원으로 몸담고 있던 정 위원장 등이 보수우파진영의 싱크탱크인 시대정신(대표 이재교) 관계자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과총) 관계자들과 함께 이승헌, 양판석 교수를 포함해 학술심포지엄을 여는 계획을 추진했다. 정 위원장은 “당시 시대정신 관계자가 ‘정부가 설마 데이터를 조작했겠느냐’며, ‘모든 것을 열어놓고 토론하면 의혹이 해소되고 합조단의 결과가 맞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학술심포지엄은 결국 이승헌 교수의 ‘재실험 요구’를 한국과총이 수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면서 추진 자체가 무산됐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국론분열의 심각성을 진보단체와 보수단체가 함께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결과와 상관없이 높이 살 만한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평화포럼의 또다른 공동운영위원장인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천안함 문제에 대해 국회가 좀더 능동적인 자세로 의혹과 갈등 해소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 사무처장은 “지난 18대 국회 때 천안함 특위가 구성됐지만, 보고서도 채택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며 “천안함 사건 조사 발표와 관련이 없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상황에서 국회 국방위 등이 나서서 의혹 검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2012년 3월 천안함 사건 2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9·11 테러 조사와 관련해서 미 상원에 설치됐던 9·11 위원회 같은 여야 공동 특위 구성”을 촉구한 바 있다.

정현곤 위원장도 “국회가 천안함 관련 의혹을 해소하는 데서 가장 중심적인 주체가 돼야 한다”며 “곧 시민단체들과 함께 국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 천안함 4주기 때는 정 위원장 등이 추진하는 ‘진검승부’의 결과가 국민 앞에 드러나 국민들이 ‘하나의 시각’으로 천안함 사건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보근 /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국방부나 정부 공격하자는 취지 아니다
남북관계 재개 걸림돌 제거하자는 의미”

재실험 주장 정현곤 위원장

 

▲정현곤 위원장

천안함 관련 ‘수중폭발 시뮬레이션 재실험’을 제안하고 있는 정현곤(사진)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은 재실험 추진이 국방부나 정부를 공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서 예상되는 큰 걸림돌을 제거하자는 의미가 크다고 밝힌다. 그가 말하는 ‘큰 걸림돌’은 국민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 위원장이 활동하고 있는 시민평화포럼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시민사회의 무관심을 극복하고 “일반시민과 단체도 자유롭게 참여하고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을 목표”로 2008년 10월 출범한 시민단체이다.

정 위원장은 이밖에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6·15 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세교연구소 상임기획위원 등 시민단체와 통일단체를 잇는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합조단이 모의 폭발 실험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이승헌 교수의 주장은 이 교수가 3년 동안 계속해온 주장이다.

“그렇다. 천안함 문제에 계속돼온 여러 의혹 제기 중의 하나다. 하지만 다른 의혹들은 검증이 쉽지 않은 추정에 근거한 것들이 많다. 이 교수의 주장은 재실험만 하면 진위가 드러난다. 이번 제안이 국방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이 문제를 과도하게 쟁점화시켜서 갈등을 유발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재실험 결과 데이터를 보고, 결과에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가장 유력한 길을 찾으면 된다.”

-재실험 결과에 따라 후속조처가 크게 달라질 것 같은데.

“만일 재실험을 해서 합조단의 주장이 진실로 밝혀지면, 정부의 천안함 발표에 대한 신뢰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재조사 등 천안함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을 정부가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재실험 결과는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남북관계를 푸는 데도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새 정부는 천안함 사건 관련 합조단 발표 등과 관련이 없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 재개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대화를 재개하자면 천안함 문제의 책임을 남북간에 확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 폭침이라면 명백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천안함 문제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천안함에 대한 북한의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또 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합의가 어느 정도인지가 새 정부가 남북관계를 푸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국방부가 재실험에 부정적 태도이므로, 우선 재실험을 할 수 있는 주체를 찾아야 할 것 같다. 폭발물 취급이 가능한 대학연구소 등이 좋을 것 같다. 재실험 주체를 찾는 것도 정부와 소통해가면서 진행할 계획이다.”

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5786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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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관을 보면 대한민국 '보수'의 실체를 안다

 


대한민국 4성 장군 출신의 한 인물 때문에 정국이 시끄럽습니다. 60만 대군의 수장으로 김병관이라는 사람을 임명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를 반대하는 야당의 모습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방을 책임지는 국방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논의되는 쟁점은 이상하게도 국방보다는 오히려 '거짓말'과 '도덕성' 때문입니다.

그를 둘러싼 의혹을 보면 대부분 국방 관련 정책을 묻기도 전에 기본적인 인사검증 시스템에서 거르지 못한 이유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은 그를 반대하는 것을 마치 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뉴데일리'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 후보를 “곧 떨어뜨리겠다”며 당당하게(?) 떠드는 세력들은 누굴까.
만약 청와대와 여당이 이런 것을 ‘국민 여론’이라며 김병관 후보를 낙마시킨다면, 다음과 같은 지적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방장관은 김정은이 검증하고 임명한다”

'조갑제닷컴'
김정은·從北이 ‘김병관’ 낙마시킬 이유 분명해졌다
보수(保守)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를 낙마시켜라(?)


뉴데일리나 조갑제닷컴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김병관을 사퇴시키려는 세력은 김정은의 사주를 받은 '종북'세력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입니다. 김병관 후보가 '전작권 이양과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를 하고 있으며, 지금 그를 둘러싼 의혹이 언론의 김병관 죽이기에서 비롯된 음모이기 때문입니다.

' 출입국 기록까지 조작한 범죄자, 그가 대한민국 국방장관?'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인물은 반공직자입니다. 아니 공직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내정된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조직은 적극 그에 대한 준비를 함께 해주고, 보고서만 채택이 되지 않을 뿐, 박근혜 대통령까지도 그를 데리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김병관 장관 후보자와 한미연합사를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 출처: 세계일보

 


대한민국 국방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미연합사를 방문하면서 박근혜 당선인은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대동했었습니다. 이것은 한미연합사의 모든 장성들에게 이제 앞으로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는 사람은 '김병관'이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랬던 사람이 인사청문회에 제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공문서 중의 하나인 서류를 위조하고 감췄습니다.

 

 

▲김병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자료. 출처:민주당

 


김병관 후보는 KMDC의 주식을 매입한 과정과 보유 사실을 숨긴 사실로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그저 지인을 통해 매수했고, 그와 관련해서 전혀 의혹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떳떳함에 비추어 관련 자료를 조작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김병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후보자 출입국 기록을 제출하면서 2011년 1월19일부터 1월23일까지의 행선국을 '미상'으로 기록한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이상한 점은 그냥 간단하게 공항에서 발급하는 출입국 기록을 갖다 제출하면 될 것을 굳이 자신이 표를 만들어 제출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지난 2011년 1월 자원개발 업체인 KMDC 관계자와 함께 미얀마를 방문해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출처:KMDC 홈페이지

 


이유는 KMDC 홈페이지에 있었습니다. 주식 보유 의혹을 사고 있는 KMCD 홈페이지에는 김병관 후보자가 미얀마를 방문해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버마 해상광구 탐사개발권' 설명을 듣고, MOU(양해각서)체결식에도 참석한 사진이 버젓이 있었습니다.

결국, 김병관 후보자는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 문제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아예 출입국 기록에서 미얀마 출국 사실을 숨긴 것입니다.

KMDC 이영수 대표와 함께 미얀마 행정수도 '네피도우'를 방문할 당시에는 새누리당 의원들도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개 회사의 사업 설명회와 MOU체결 기념식에 국회의원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명이 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이런 사진을 KMDC가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이것을 통해 자신들의 사업을 정치권에서도 인정했다는 홍보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법질서 준수'를 외쳤던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

 


주식 보유를 떠나 이런 사실을 고의적으로 은폐했다는 사실만으로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행위'로 1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 됩니다.

죄를 지은 자에게 죄를 묻는 것을 대한민국에서는 오히려 '종북' 세력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이 된 것입니다.

' 이런 자들이 국가안보를 운운할 자격이 있을까?'

대한민국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바로 '성우회'라는 곳입니다. 지난 3월 3일 성우회는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에 대한 사실상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그전에 성우회가 김병관 후보자를 반대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듯 성우회는 "위기 관리에 경험과 능력이 출중해 추천된 안보라인 핵심 직위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임명이 지연되고 장기간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우며, 특히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을 부풀리고 왜곡해 여론몰이를 함으로써 개인은 물론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단결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국방장관을 임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전직 예비역 장성들이 김병관 장관 후보자를 지지하니 그가 마치 국방장관의 적임자인 듯 보이지만, 사실 '성우회'라는 조직 자체가 문제가 많은 조직입니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발표하면서 독재 정권을 수호했던 서종철, 평화의 댐을 주도했던 '이기백', 린다김 로비사건의 주역 '이양호', 록히드마틴에 국가 기밀을 돈 받고 넘겼던 '김상태' 등이 모두 성우회 출신입니다.

우리가 흔히 군복 입고 '자유 수호' '종북 척결'을 외쳤던 반공단체의 시위를 주도했던 오자복의 가족 대부분은 미국 국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쟁이 나면 도망갈 것 같은 비리 인물들이 군 장성 원로라고 하는 행동은 마치 국가 안보를 무척이나 걱정하는 듯 보입니다.

 

 

▲ 예비역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가 전작권 이양을 재연기하라고 촉구했다는 보도. 출처:조선일보

 


이들의 주장은 매번 똑같습니다. 전작권을 한국이 가져오지 말고 그대로 미국이 유지하도록 하자는 소립니다. 전작권 이양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대체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장군들은 무엇을 하길래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작전권을 도대체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군인은 진급하기 원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작전 능력을 평가받고 진정한 자주 국방을 위한 명령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 원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들 대한민국 장군은 자신의 능력과 머리가 아닌 누군가에 붙어서 꼬리로 살고자 하는 생각 밖에 없습니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전작권 이양을 가장 반대했던 단체가 '성우회'였고, 당시 시위를 주도했던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은 2009~2010년까지 군사기밀을 넘긴 대가로 미국 록히드마틴사로부터 25억원의 수수료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 예비군 안보교육 위탁사업을 진행했던 성우회 산하 '성우안보전략연구원'

 


대한민국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 산하에는 '성우안보전략연구원'이 있습니다. 이들은 강사를 파견해서 예비군 훈련 교육을 맡아 하는데, 그 지긋지긋하게 재미없는 예비군 안보교육을 '성우회'가 맡아서 했던 것입니다.

장군으로 사병들의 복지 예산을 강탈해 골프 하며 군생활 하더니 나와서는 친목회 하나 만들어 놓고 이것을 빌미로 나라에서 주는 예산을 빼먹고 살았던 조직이 '성우회'입니다.

[국방] - 병사들 깔깔이는 없어도,장군위한 골프장은 무조건?
[국방] - 대한민국 군인이 무슨 잔반처리반입니까?

온갖 비리를 다 저지른 자들이 마치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충신처럼 전작권 이양을 반대하고 온갖 비리로 얼룩진 범죄자를 국방장관에 임명하라고 성명서를 냅니다. 보수언론은 옳다구나 하고 이들을 이용해 '종북 척결' 타령을 외칩니다.

 

 

 


어제 금융기관 전산망 장애로 집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지 못하는 이등병에게 시민들이 돈을 모아 버스비를 마련해줬다는 목격담이 트위터 미담으로 나왔습니다. 참으로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발생한 원인은 대한민국 '군인공제회' 때문입니다.

예비역 장성과 영관급들이 주도하는 '군인공제회'는 군인들의 모든 급여와 경제 활동으로 이용되는 '나라사랑카드' 사업을 신한은행과 독점 체결했습니다. 이들 군인공제회는 신한은행과 10년 독점 장기계약으로 카드 1장당 2천원의 수수료를 받고 있으며 이 수입만 연 6억원에 달합니다.

다른 은행과 함께 사업을 운영하지 않고 독점으로 나라사랑 카드를 운영한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지만, 아직도 이런 문제는 시정되지 않았고, 결국 어제처럼 신한은행의 전산망이 마비되면 군인들은 버스 하나 타기 어렵게 됩니다.

 

 

 


대한민국 보수는 법에도 없는 이상한 논리로 '종북' 타령을 운운합니다. 그러나 진짜 대한민국 보수에 필요한 것은 우선 자신들의 불법을 법에 의해 준엄하게 심판받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법을 지키자고 외치는 사람이 '종북'이 되고, 범죄자가 '애국 시민'이 되는 이상한 나라에서는 결코 국가 안보를 스스로 지키려는 진정한 군인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진짜 군인은 안보를 팔아 자신의 일신 영달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며 국가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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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B-52 상상밖 타격으로 초토화 시킬 것”

 

 

 

북, 미국 모든 무기 가지고 덤벼봐
 
조선, “B-52 상상밖 타격으로 초토화 시킬 것”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3/21 [06:2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은 미국을 향해 모든 전쟁 무기를 동원해 덤벼도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는다며 도발하면 무자비하게 초토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정섭 기자

조선은 B-52핵전략폭격기의 한미합동훈련 참가를 비난하며 미국이 모든 전쟁무기를 꺼내들고 덤벼도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도발 근거지를 초토해 버릴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핵 몽둥이를 휘두르며 세계를 좌지우지해보려던 야망도 끝장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그런데도 아직까지 미국은 변화된 시대를 판별하지 못하고 강권과 오만으로 그 무엇인가를 달성해보려고 어리석게 놀아대고 있다.”며 “그 대표적인 실례의 하나가 지난 8일에 이어 19일 감행된 《B-52》전략폭격기의 조선반도출격”이라고 강력 비난했다.

이 신문은 “물론 비행훈련에 앞서 괴뢰군부나 언론들을 내세워 《B-52》전략폭격기의 전술적 제원과 성능을 요란스럽게 선전하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길이와 너비, 무게요 하는 것은 물론 최대 항속거리며 최대상승고도가 얼마라느니, 수소폭탄을 몇발 실을 수 있다느니, 폭발력이 얼마라는니 등등 …”이라며 B-52 출격 공개를 성토했다.

신문은 “미국이 지난 1945년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한 핵폭탄의 폭발력과 대비할 때 어마어마한 제원과 성능을 가진 전략폭격기인, 그래서 《하늘의 요새》라고도 한다는 《B-52》전략폭격기를 북침전쟁연습에 동원하고 그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또 하나의 엄중한 핵공격위협이며 우리의 초강경대응조치에 질겁한 남조선괴뢰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북침핵전쟁소동의 돌격대로 계속 써먹자는 기도의 발로”라고 평가절하 했다.

또한 “이것은 조선반도정세가 전쟁접경에로 치닫고 있는 때에 전략적 핵타격 수단을 조선반도에 끌어들이는 엄중한 군사적도발로서 미국은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우리의 초강경의지를 떠보려고 무모하게 시도하고 있다.”고 미국의 의사가 무엇지를 강조했다.

이어 “내외여론들은 《B-52》전략폭격기의 조선반도비행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하면서 전쟁위기의 극한에 선 조선반도에서 전쟁발발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조성된 사태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고 돗붙였다.

아울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은 전략폭격기 《B-52》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으며 전략폭격기가 조선반도에 다시 출격한다면 적대세력들은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이 《B-52》폭격기를 가지고 무슨 《하늘의 요새》니 뭐니 하며 《선제타격》이라는 문구를 외워대고 있지만 그것으로써는 결코 우리를 놀랠 수 없다.”며 “ 《B-52》 한대가 아니라 미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전쟁장비들을 모조리 꺼내들고 위협하여도 우리 군대와 인민은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원수들이 끝끝내 도발해온다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정밀 핵 타격수단을 포함한 모든 화력타격수단들을 동원하여 일찍이 있어 본 적이 없는 상상밖의 타격으로 도발의 근원들을 송두리 채 초토화 시켜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민족끼리는 “그 타격에는 조선반도에 다시 날아든 《B-52》폭격기도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조선은 B-52가 한반도 비행을 마친 하룻만에 김정은 원수의 지도로 진행 된 정밀자행 로켓 타격 훈련을 전격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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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3만7천여명..정원 8천명 이상 초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3/21 09:01
  • 수정일
    2013/03/21 09: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주한미군 3만7천여명..정원 8천명 이상 초과
미 국방부 '2012년 기지구조보고서' 발표
 
 
2013년 03월 21일 (목) 08:09:41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수가 한.미 당국 사이에 합의된 2만 8,500명보다 훨씬 많은 3만 7,000여 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된 주한미군 범죄와의 관련성 여부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발표된 미국 국방부 연례보고서인 '기지 구조보고서'(Base Structure Report Fiscal Year 2012 Baseline)에 따르면, 주한미군 병력수는 2011년 9월 말 기준으로 3만 7,35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9년 9월 말 기준 2만 6,305명에서 2010년 3만 1,839명으로 꾸준히 증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미 양국이 줄곧 주한미군을 2만 8,500명으로 동결하기로 합의해온 것과 달리 8천 854명이 많은 숫자이다.

'기지 구조보고서'는 2007년 9월말 기준 2만 8,356명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에는 2만 7,968명, 2009년에는 2만 6,305명으로 집계, 2,051명이 감소해 주한미군 병력 2만 8,500명 유지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기지 구조보고서'에는 주한미군의 숫자가 월등히 증가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 지난해 발표된 미국 국방부 연례보고서인 '기지 구조보고서'(Base Structure Report Fiscal Year 2012 Baseline) 표지. 2011년 9월 말 기준으로 주한미군의 숫자가 3만 7354명으로 집계됐다. [캡쳐-기지구조보고서]

 

'기지 구조보고서'에 따르면, 주한미군 3만 7,354명 중 지상군 3만 82명, 해군 104명, 공군 7천168명이며, 특히 평택 캠프험프리 주둔 병력은 1만 977명으로 2009년 3천 536명에 비해 7천여명이 늘어났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사령부 관계자와 국방부 관계자는 "공식적인 숫자는 2만 8,500명"이라며 "기지구조보고서 내용은 현재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병력증강이 맞다고 봐야한다. 아프간, 이라크 전쟁 이후의 여파"라고 분석했다.

김종대 편집장은 "사실상 한.미간에 합의된 결과이다. 아프간과 이라크의 잉여전력이 나와서 중간 기착지로 한국을 택한 것"이라며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국제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이는 한반도 정세에 비춰 우리의 안보중시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유영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미군문제팀장도 "미국의 필요요구에 따라서 주한미군 숫자가 들락날락한다. 이는 아프간, 이라크의 병력이 한국과 일본, 독일 등지로 분산배치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영재 팀장은 "2004년부터 변동수치를 보면 주한미군의 숫자가 연차적으로 줄어들어 2008년까지 2만 5천명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지만 2010년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라며 이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결과라는 설명이다.

 

   
'기지구조보고서'에는 주한미군의 숫자를 2011년 9월 말 기준으로 3만 7,354명으로 보고하고있다. [캡쳐-기지구조보고서]

 

특히, 이는 평택미군기지 주둔병력의 숫자 변동에서 엳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지 구조보고서'에 따르면, 평택 캠프험프리 주둔병력은 2009년 3천 536명, 2010년 4천 880명에서 2011년 1만 977명으로 2년 사이에 7천 441명이 늘어났다. 이는 아프간, 이라크 전쟁 참전군인 철수에 따른 잉여인원의 재배치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주일미군도 2009년 4만 1512명에서 2011년 8만 7182명으로 급증했으며, 주독미군의 숫자도 2009년 5만 3,106명에서 2011년 6만 477명으로 증가해 이를 뒷받침해준다.

 

   
지난 3년간의 주한미군 변동숫자를 확인해보면, 2009년 2만 6305명에서 2010년 3만 1839명, 2011년 3만 7354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지상군의 숫자가 점차적으로 늘어났다. [그래픽-통일뉴스]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주둔 미군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지난해 1월에 발표된 미국의 '신 국방전략 지침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신국방전략 지침'은 △크기는 작지만 기민하고 효율적인 군, △신속한 투사 및 배치가 가능한 유연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군, △첨단무기와 장비를 갖춘 다기능적 군 건설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주요핵심의 토대는 미국의 눈이 유럽에서 아.태 지역으로의 전략적 우선순위 조정이다. 이는 한국, 일본 등 주둔미군전력을 강화해 대북 억지력을 높이고 나아가 대 중국 관계를 관리한데 있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프간.이라크 전쟁에서 철수된 병력이 대거 한국과 일본으로 이동, 병력수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급격히 증가한 주한미군의 숫자는 지상군 감축 계획을 담은 '신국방전략 지침'에 따라 줄어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종대 편집장은 "한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하지만, 미국이 지상군 병력을 감축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러한 주한미군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주한미군 병력의 증가는 최근 빈번히 발생하는 미군 범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영재 평통사 팀장은 "인원이 늘어나면 범죄비율이 당연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관리하기 힘든 숫자에 통제하기 어려운 자원들이 주한미군 병력에 포함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정경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주한미군의 숫자는 공식적으로 2만8천여 명으로 봐야한다. 군사훈련이 있으면 늘거나 줄기 때문"이라며 병력숫자 증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는 "미군은 오랫동안 전쟁을 해왔다. 그래서 현재도 부대 내 불미스런 일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이 도심으로 진출해 범죄를 저지르고 이러한 것들이 보도되면서 과거에 알려지지 않은 범죄들이 소개되는 것"이라면서 병력수와 범죄율이 무관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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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외국인이 바라보는 주체사상, 무엇인가?

[단독] 외국인이 바라보는 주체사상, 무엇인가?

[Exclusive] Juche Ideology by Foreign Eyes, What is it?

 

 

Korean Translation and Journal by Joon H. Park

English Translation by Intira. P

Interview and Video Editing by Chin. B

Photos and Video by Media Thai Post

 

 

Prologue: 오늘 글을 이미 지난 주 목요일(단기 4344년 12월 29일)에 진행했던 태국 주체사상 연구회 회장이신 송짙 박사(Dr. Songjit)와의 인터뷰 입니다.


박사님과의 인터뷰 기사는 이미 정식으로 기사화 되었으며 세 개의 동영상 인터뷰 역시 발행이 된 상황이나 한글로 인터뷰 전문을 옮기는 과정이 태국어에서 영어로 그리고 다시 영어에서 한글로 옮겨야 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시간 적인 간극이 있었습니다.


인터뷰가 종결된 후 바로 인터뷰의 의 후기를 올리고자 하였으나 그 전에 독자 분의 의뢰로 군산 미 공군기지에서의 대단위 F-16C 전투기의 동시 출격 훈련에 관한 분석을 의뢰 하시는 바람에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오늘의 영어 번역 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발행 하기로 수정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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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태국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북조선의 주체사상은 과연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인터뷰 전문을 일단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들어가겠습니다.


01. 북조선의 인간본위 주체사상, 외국인은 어떻게 보고 있나? [Human Dignity Centered Juche Ideology of the DPRK, What is Foreigners Perception on it?]


기자: 교수님의 간단한 자기소개와 최근의 연구 과제를 말씀해 주시지요.


교수: 제 이름은 송짙 푼랖 박사(Dr.Songjit Poonlarp) 이고요, 저의 최근 약력은 지난 시절 학생들을 가르치던 있는 뱅콕 소재 라자팥 프라나콘 대학교의 인류학과 교수(professor of Humanity) 이었으나 사실, 제 전공은 수학 이고요 지난 시절 약 10여 년 이상을 수학을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은퇴 후 현재의 라자팥 프라나콘 대학의 여러 분교에서 지역공동체를 주제로 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전공이 수학 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 가셑샅 대학(Kasetsart University)에서 제가 평소 지니고 있던 관심사이던 지역사회 와 관련된 연구, 특히 지역공동체(Community Development)를 연구 과제로 석사 학위를 취득 했어요.


1983년 당시, 저는 라자팥 프라나콘 대학의 인문학 학과에서 지역공동체 개발에 관한 주제로 강의를 했습니다.

 

현재는 은퇴한 교수 신분 입니다.


기자: 자, 그럼 이제부터 무엇이 교수님을 북조선의 사회주의 연구에 몰입하게 만들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소개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교수: 사실은, 제 자신 북조선 이외에도 지구 상의 모든 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북조선의 주체사상이 제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불과 지난 10년 이었습니다. 주체사상 이전에는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마르크스 레닌(Marks Lenin) , 중국의 모택동(Mao Tse Tung) 그리고 중남미의 체게바라(Che Guevara)와 연관된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 중이었지요.

 

즉, 이들 모든 사회주의 사상의 이론적인 배경이 제 주된 관심사 이었던 시절 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지난 서기 1984년 에는 남한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던 새마을 운동에서 지니고 있을 법한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주의적인 개년 역시 과심을 갖고 연구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실이지 새마을 운동과 관련된 사회주의적인 개념을 공부 하기 보다는 북조선의 주체사상을 더욱 심도 있게 연구하던 시절 이었고요, 마침내 일단의 가셑샅 대학(Kasetsart University) 의 교수들과 함께 북조선을 방문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었요.


기자: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태국 내에 주체사상 연구회를 구성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교수: 제가 처음으로 북조선을 방문하고 느낀 것인데, 이 주체사상 이라는 것이 단순히 한번 북조선을 방문하고 그 모든 심오함을 터득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 하자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처음 그 나라를 방문하고 그들 인민들이 무척 평안하고 쾌적하게 살아가고 있는 생활 상을 목격하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을 설명 하기 위해서 본인은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단순화 해서 말을 해주곤 합니다.


“숲 속에 자리잡고 있고 전혀 인공적이지 않으며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로 여러분을 명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하나의 사찰이 북조선 이라면, 도심 한 복판에 화려하게 지어진 인공적인 사찰은 남한 이라고 비유를 하곤 합니다.


남한의 그것이 인공적으로 지어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면 북조선의 그것은 이미 자연의 조화로 빚어진 완벽한 자연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북조선을 방문했을 그 당시, 주체사상을 영어 번역본을 가능한 모두 구입 하려고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첫 방문을 한 다음 해 역시 북조선을 방문했고 방문할 때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주체사상에 대한 갈증이 더욱 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체사상은 단순한 ‘지식체계’ 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주체사상은 이미 존재하던 마오이스트(Maoist), 레닌(Lenin) 또는 막시즘(Marxism) 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는 표현이 정확할 겁니다. 그 순간부터 제가 북조선으로 주체사상 세미나를 위해서 방문 하는 것이 제가 그 전까지 행하던 모든 사회주의 사상 중에서 단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동서양의 사회주위 사상을 총 망라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김일성 광장을 실제 가보시면 그곳에 마르크와 레닌의 초상화가 여전히 전시되고 있습니다. 북조선의 정부와 인민들이 지금껏 이 두 사람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 예요.


김일성, 북조선의 위대한 영도자이신 그 분은 주체사상의 완성을 위해서 동서양을 총 망라한 일체의 사회주의 사상 예를 들면, “마오이스트, 호치민, 불교, 공자 및 원숭이 나라의 신토를 심도 있게 공부” 하였다고 합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 이고요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저로써는 그저 궁금할 뿐 입니다. 이러한 이유가 있었기에 이제 개인적으로는 주체사상이 실질적으로 각 인민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를 들여다 보고자 한 것이에요. 주관적으로 사안으로 들여다보고 매우 정밀한 실체를 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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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북조선은 외부로부터 차단 되어있는 나라 라고 인식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곳으로의 방문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교수: 그건 북조선 이라는 나라가 외부로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일단의 조직 또는 국가들이 비난 하는 것일 뿐 이예요. 일단, 북조선의 실체를 알게 된다면 북조선의 반대편에 있는 언론사들, 예를 들면, CNN, 로이터(Reuter) 또는 미국과 연결고리를 두고 있는 언론사 들에 의해서 어떻게 사람들이 그런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게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들 언론 들은 그간 북조선이 외부로부터 철저히 폐쇄된 나라 라는 인식을 하게끔 만드는 일단의 사건을 지속적으로 조작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매년, 수 백 국가에서 북조선이 개최하는 주체사상 연구 세미나에 참석 하거든요. 제 경우에는, 독립적인 사안으로 북조선에서 개최되는 세미나에 참석할라치면 제 국적인 태국 말고 최소한 40-50개 국가에서 석학들이 참석을 요청 합니다. 이러한 석학들뿐만 아니라 수 많은 학생들이 약 130 여 객 국에서 참석을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들이 모두 북조선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 것이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간 후 발행하는 학술 논문 이라든지 언론기사를 보면 꽤 많은 수가 북조선에 상당히 왜곡되고 부정적인 정보를 외부 세계에 전달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자: 그게 그렇다면, 교수님과 교수님의 일행은 북조선으로부터 환영 받고 있다고 보아도 되는 겁니까?


교수: 정확합니다.


기자: 현재, 태국과 북조선 사이에 주체사상 연구를 위해서 결성되어있는 단체 또는 조직이 몇 개나 되는지 알고 싶은데요.


교수: 주체사상을 위한 학술 단체를 위해서는 태국 내에서 본인이 회장으로 있고요, 우리 단체가 있기 전에 일종의 우호단체가 존재 했었다는 것을 제외 한다면 우리 단체는 8년 전에 결성이 되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겁니다. 그 전의 우호단체는 이미 작고하신 타이랕 신문 사(Thai Rath News Paper)의 프리차 선생님(Khun Preecha)이 이끌던 단체 이었습니다. 지난 시절에, 타이랕 신문 사가 북조선의 평양 공중곡예단을 매년 태국으로 초대해서 공연을 할 수 있게끔 했었어요. 타이랕 신문 사의 사주이신 캄폰 선생이 작고 하신 후, 매년 열리던 북조선의 평양 공중곡예단의 공연이 점차 뒤안길로 잊혀져 간 것이에요.


개인적인 제 믿음으로는, 북조선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솥(JISOT, Juche Idea Study of Thailand)으로 약칭되는 태국 내 주체사상 학술 연구회를 조직 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태국 내의 중앙지방, 북동 및 북부 그리고 남부의 대학에서 몸담고 있던 많은 학술 지인들을 해당 학술 회에 초창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들, 초청에 응하고 연구 활동을 벌이던 수 백 명의 학자들이 그간 지난 10년 동안 북조선의 초청을 받아 들고 북조선을 방문한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 분들이 북조선을 방문할 당시 나 역시 그들과 같이 북조선을 방문한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 입니다.

 

이들 모두는 대학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그러한 연구 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는 교수들 이며 이들은 이러한 기회로 인해서 서로 다른 국가 간의 서로 다른 시각차이를 좁힐 수 있게 하는 매우 귀중한 기회라고 말들을 합니다.


현재, 태국-북조선 우호협회 회장인 차나이 박사(Dr. Chanai Lok-ngoen)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본 대학의 교수님 이시고, 사시나(Khun Sasina) 또는 크라테(Kratae)로 지칭되는 선생님이 부회장을 맞고 계십니다.


그리고, 최근 가장 많은 학자들을 북조선에 파견해서 연구활동을 돕고 있는 라자팥 프라나콘 대학(Rajabhat Pranakorn University)이 세 번째 학술 단체를 결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북조선을 몇 번이나 방문 하셨는지요?


교수: 14년 동안 11번 방북 했습니다.


기자: 매번 방분 하실 때마다 몇 명의 학술단원들이 동행했으며 당시의 방분 목적은 무엇이었는지요?


교수: 매번 방문 전에 개인적으로 북조선의 관리들께 최대한 많은 학술 단을 꾸릴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요청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수의 방문단은 북조선 측에서 우리들에게 더욱 많은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기자: 북조선 측에서 모든 경비를 부담한 건가요?


교수: 예, 그 쪽에서 모든 경비를 부담 했어요. 경비라 하면, 방문 일정에 따른 항공료와 모든 음식과 숙박 그리고 일정 상 움직일 상황에서 필요하게 될 자동차와 안내원 등 전부를 그 쪽에서 부담을 한 거죠.


처음에는, 우리 방문단이 불과 5-6명 정도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무려 12명까지 허용을 받았습니다.

 

당시, 다른 국가들의 방문단을 평양에서 만나 보았으나 우리같이 대단위 방문단을 허용 받은 국가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을 보면 가장 많은 방문단 수가 고작 3명 이었습니다. 한 때 많은 수의 방문단 가능했던 우리 측으로써는 짧은 시간에 많은 수가 방북을 하고 주체사상에 관한 연구를 다른 국가들 보다 더 많이 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대중에게 빨리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작용을 한 거죠.


기자: 교수님이 북조선을 방문하고 받으신 인상 중에 기억이 되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교수: 앞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제가 북조선과 남한을 비교할 때에 북조선은 마치 아름답고 평화로운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사찰 이고, 남한은 도심 한 복판에 건축된 사찰” 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아름답다고 한다면 둘 다 아름답죠. 다만, 남한의 그 아름다움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자연미가 없는 인공미 라는 것 만이 다를 뿐 입니다.


그러나, 북조선의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우러나오는,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연스러움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저를 감동 시킨 것입니다.


첫째로, 북조선에는 직장이 없는 무직자가 없습니다. 전 인민이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둘째로, 거리에서 거지를 볼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빈민가를 볼 수 없었습니다.


넷째로, 남녀가 다른 남녀의 몸을 돈으로 사고 팔면서 쾌락을 취하거나 수입을 내는 장소, 즉, 사창가가 존재 하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로, 범죄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여섯 번째로, 사람이 숨을 쉬기 위해 필요한 공기와 식수로 사용할 강물에서 오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일곱 번째로, 도로에서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상황을 눈 씻고 보아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항목 중에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항목만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태국에서 현실화 된다고 하면 본인은 개인적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거든요.

 

모두가 알듯이, 태국 역시 서방 식 자본주의를 국가 운영 체계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나라 이고요 다른 여타 자본주의 나라들과 동일하게 매일같이 격어야 하는 교통체증이 매우 심각한 수준 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인터뷰가 진행 되는 대학을 오기 위해서 제가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이곳까지 단 20분 이면 가능 할 것을 교통체증으로 인해서 장장 1시간 하고도 30분을 더 소비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 이라는 뜻이에요.


간단히 정리를 한다면, 북조선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사회적인 문제 라든지 문화적인 문제 또는 환경문제 라든지 경제문제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의미 입니다.


그렇다면, 외부의 다른 세계인들은 왜 그들이 식량의 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고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외부인들이 증언하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북조선의 모든 인민들은 그저 전혀 복잡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용하는 식단을 들여다보면 밥과 김치가 전부일 때가 흔한 일이고요, 그들은 그러한 간출한 식단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합동농장 또는 공기업들은 그 지역에서 필요로 할 모든 채소와 쌀을 생산하고 동등하게 배분 한다는 것이에요.


(이 부분에서 단군 박공이 의도적으로 번역을 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 나오듯이 북조선의 합동농장과 공기업의 공동생산 및 공동분배를 시연 하고자 태국 내 북동쪽에 조그마한 공동지역 체를 실험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는 증언을 교수님께서 하신 부분이 있는데요, 단군 박공의 믿음으로는 작금의 꼴통과 같은 태국의 정치 경제 및 사회 전반적인 체제를 돌아본다면 전혀, 전혀 실현 가능 성이 없을 것이라 굳이 짜증나게 이곳에 번역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지역 공동체의 명칭이 타이 청산리, Thai Chung San Li, 라고 하는 것만 알고 계시다면 족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태국에서 올해로 14년 차 입니다. 교수님은 14년 간 11번을 방북을 하셨으나 단군 박공은 태국에서 현지인들과 같이 14년째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단군 박공의 판단을 믿으셔도 무방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동남아 상황은 손금 보듯이 보고 있습니다.)


북조선의 인민들은 그저 식생활이 우리들과 비교해서 매우 단출 하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식생활 문화를 우리들 몸에 익숙하게 베어버린 서방 식 잣대로 들이대서 바라본다면 아마도 저들이 식량 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요.


더불어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진 태국의 북동부 출신인 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일용하는 식단을 서양인들이 그들의 잣대를 들이밀고 들여다본다면 아마도 그들이 북조선의 인민들을 평가할 때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들, 북동부 출신 또는 그곳 인민들의 식단이 북조선의 인민들의 식단과 매우 유사하게 “밥과 고추 정도” 이거든요. 우리들도 그저 매우 단순한 식생활 문화를 지니고 있을 뿐 이에요. 사실, 태국의 북동부 지역이 남들 알다시피 황폐한 땅이 아니거든요, 기름진 땅입니다. 단지, 우리네의 식생활이 뱅콕의 그들과 비교해서 훨씬 간단한 것 뿐 입니다. 북동부 지역의 인민들 역시 사용하고 남을 정도의 식량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걸 서방 식 잣대를 사용해서 측정을 하려다 보니 착시 현상이 발생하고 사실이 왜곡되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면 이런 겁니다. 서양 에서는 년간 개인이 섭취해야 할 단백질(Protien)을 못을 박아서 규정 하고 그 규정에 미치지 못하면 영양실조 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이렇게 자신들만의 잣대를 다른 국가, 다른 식생활 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사회에 적용을 하니 올바른 측정이 나올 수 없는 거죠. 태국의 북동부 지방의 인민들을 이싼(Issan) 사람들 이라고 호칭 하는데요, 그 지방 사람들은 밥에 고추와 다른 몇 가지 양념을 버무려서 만든 고추양념(Chilli Paste)에 식사 하는 것을 선호 합니다. 북조선 인민들이 밥에 여러 가지 양념이 조화롭게 첨가된 김치로 식사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 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식생활 문화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 이싼(Issan) 사람들이 죄다 기아에 허덕인다고 보아야 할까요?


문제는, 서양은 항상 단백질 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에서 출발 합니다. 아닌가요?


기자: 북조선을 겨냥한 세계 언론들에 의하면 외부인들이 북조선을 향한 시각이 매우 부정적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교수: 그건, 단순한 일방적인 방향으로 치우쳐 있는 언론사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만행 입니다. 그들 모두가 서방 식 자본주의에 그 뿌리를 박고 있는 언론사들 이라는 의미 에요. 굳이 상대방을 깍아 내리고자 하는 말이 아니고요,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북조선이 자신들과는 상충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들도 그렇게 밖에는 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통상적인 현상 이에요. 단지, 제 자신은 이 둘을 모두 보았고 경험했기에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사실적으로 알 수 있기에 정의와 부정의 사이를 분간 할 수 있다는 것뿐 이고 그래서 제 자신은 진실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 나 자신의 판단으로는 북조선 측에게는 매우 공평치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단기 4343년, 서기 2010) 10월, 북조선을 방문한 우리 일행 중에 대학에서 언론 분야(Media field)를 강의하시는 한 교수가 동행을 했습니다. 그 교수분과 동행했던 구성원들은 3부작 도큐멘터리 시리즈 물인 일명, “취파존 롴(Cheepajorn Lok)” 또는 영어로는 “박동치는 세계(the World Pulse)” 라는 방송 물을 제작 했습니다. 태국의 방송 가에서는 꽤나 지명도가 높은 네이션 미디아 그룹의 방송 앵커(a anchor of Nation Media Group, 단군 박공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언론 사 입니다. 수꼴 중의 한 축 이라서 그렇습니다.)인 수티차이 윤(Sutichai Yoon)이 주임 앵커로 해서 지상파를 타고 나간 것입니다.


그 도큐멘터리가 태국에 방송된 이후 다른 언론사들이 북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는 종이 뉴스매체들 일 테니 중립적인 성격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정밀하지 않은 표현 입니다만 크게 딴지 걸지 않고 넘어 가고자 합니다. 태국은 대한민국 보다 더 썩은 나라 입니다. 그러니, 한 두 번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본 북조선 관련 방송 물을 보고 그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화 될 것인가 하는 점에서 많은 의혹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까지도 단군 박공의 태국인 지인들이 북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에서 확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북조선 측에서 모든 경비를 부담했으니 이들 방송사에서 파견된 글쟁이들 그리고 앵커들은 자신들이 지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서는 전혀 의혹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후원 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다는 사실, 이들 썩어 문드러진 기자 나부랭이들은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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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들 통상적으로 북조선에 관한 기사들에 대해서 왜곡된 것을 알고도 내보내던 또는 고의적으로 왜곡 방송 또는 기사화 하던 여타 언론들은 이 일이 있은 후 다소 중립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방송에서 내보낸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그저 우리가 북조선을 방문해서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가감 없이 도큐멘터리 화 해서 방송한 것뿐입니다.


개인적으로 말 할 수 있습니다, 저들 자본주의에 뿌리를 박고 있는 언론사들이 북조선의 정황적인 현 사실들을 왜곡해왔다는 것을 말이지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은 중립적인 방식으로 북조선을 묘사해 왔으나 대다수는 철저하게 왜곡 시켜왔어요.


제 사견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 북조선 측에서 보았을 때에 공평치 않다는 것이에요. 만일, 북조선이 지옥과 같은 비난 받을 상황 이라면 내 자신 스스로 그 나라를 지난 14년간 걸쳐서 11번을 방문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은 계속 북조선을 방문 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불자들께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만일 당신이 부처님의 땅을 보고 싶다면 북조선을 가보라” 고 말입니다. 평화가 넘치는 땅 이라는 의미 입니다.

 

지금 현재의 북조선은 50년 또는 심지어는 100년 전의 태국과 비슷한 모습 입니다.

 



북조선의 거주지 역시 여타 다른 국가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다른 국가들이 흔히 보여주듯이 20-30층의 고층 건물들이 타락을 유도하는 제반 상가 건물로 사용 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거주를 위한 용도로 건설 되고 있음을 주목 해야 합니다.


건축되는 건물들은 그곳에 영원히 존재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우리가 묵었던 45층짜리 호텔은 30년 전에 건설된 호텔건물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텔로 사용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45번째 층은 전체가 서서히 회전하는 식당이었어요. 놀랄 일 아닌가요? 북측에 의하면 조만간 100여 층을 넘기는 고층 호텔을 하나 더 건설할 것이라고 합니다만 아직은 공사를 진행 시키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요지는, 북조선 이라는 나라는 전적으로 인민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 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주체사상(Juche Ideology) 이라는 말 자체가 그 중심에 사람 이라는 인본주의를 최종 목표로 하기 때문인 것이 마치 작금의 태국이 그들의 국민들을 위해서 국가 경제와 사회를 개발 하고자 하는 양상과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이 부분은 그냥 이 분이 자신의 국가를 위해서 내뱉는 일종의 맆 서비스 라고 봐주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본 글과 같이 붙인 동영상이 있으니 차 후 혹시라도 있을 수 있을 정부 측으로부터의 정신적 및 물질적인 압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 이라고 너그러이 양해를 해드리것이 좋을 듯싶다는 생각 입니다. 올해 연세가 이제 70을 넘기시는 분이니만큼 주위에 말 한번 잘못해서 민폐를 끼치게 되는 입장으로 전락해서는 아니 될 것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지요.)


기자: 그렇다면 말입니다, 통상적으로 말하기를 북조선이 “전쟁 광(Thirst for War)” 이라고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교수: (이 부분에서 교수님의 손짓과 몸짓이 매우 거칠어 집니다. 또한, 입가에 상대방을 비웃는 듯한 웃음을 흘리시기를 반복 하십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 전쟁 광 이라는 표현은 북조선이 아닌“미국(America)”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는데, 내가 이건 확정적으로 말을 할 수 있고 또한 보장 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민감한 글을 또는 영상을 내보내기가 부담되면 차 후 영상을 편집해도 자신은 섭섭하게 생각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ㅋㅋㅋ…뭐, 이 정도 가지고.)심지어는 그들 미국은 한국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에 그들의 군대를 지금까지도 주둔 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조선의 친구와 이야기 도중 “미국과 같은 거대 국가들이 핵 무장력을 갖추고 싶은 만큼 우리 같은 조그마한 나라 역시 핵 무장력을 갖추고 싶어한다” 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이렇게 조그마한 나라인 북조선의 일개 인민도 미국 이라는 거대 군사 강국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 하는 것에서 저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조선의 인민들은 존엄성(Dignity)이 있었고 또한 독립적(Independence) 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거대한 국가들은 핵 무장력을 갖출 수 있고 조그마한 나라들은 동일한 핵 무장력을 갖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형평 성에 비추어 보아도 납득이 될 수 없을 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는? 이들 나라들은 모두 핵 무장력을 갖춘 나라들 입니다. 만의 하나, “북조선이 현재 핵 무장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이미 오래 전에 지도 상에서 지워지는 일이 발생” 했을 거에요.


현재의 북조선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자주적인 체계(Self Reliant)를 지니고 있는 나라 입니다(이 부분에서 조금 헷갈리더군요. 이 양반이 태국인 인지 아니면 주 태국 북조선 대사관을 대신하는 공보관인지 말입니다...^^;) 비록,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조선이 인근 나라들인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하는 관계가 있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작년 10월을 경유 하면서 북조선 내에서 모든 군사적 무장력에 필요한 장비 수급에 관한 전량 “자체 해결능력(Self-Reliant)”이 완결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제가 북조선을 좋아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 입니다, “자주적 해결(Self-Reliant).”

 



기자: 교수님께서 생각하실 때에, 태국 역시 자주적 해결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계시는지요?


교수: 그게요, 현재의 태국의 상황은 지난 30년, 20년 그리고 1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북조선이 했듯이 그렇게 단시간에 자주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태국의 정치적인 구조(Political Mechanism) 자체가 북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구조 라는 것이 이유 입니다.


태국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이 스스로 제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완성품을 만들어 내기 보다는 완성된 제품을 돈을 주고 구입 하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민족 이잖아요. 이런 과정들이 반복 되다 보니 태국 내에서 자생 할 수 있는 기술적인 토양이 구축되지 않았던 것이고요 그 결과 태국은 기술적인 산업 분야가 전혀 개발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태국 내에는 불법 총기 제조가 오늘날까지 많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 입니다만 정부 에서는 이들 총기 제조업자들을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후원 및 육성 하고자 하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말의 속뜻은 정부차원에서 기술자 육성을 하지 않을 뿐더러 이미 완제품을 그저 취득 하는 데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태국도 자체 기술로 제조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뭐, 어쨌든 지난 시절 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 빠르게 성장 하는 부분이 있기는 있습니다. 섹스 산업과 부동산 산업 입니다. 허벌나게 빠르지만 배울 필요가 거의 없는 것이라 그저 거시기 할 뿐 입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북조선과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교수님께서 남한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실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교수: 작금의 대한민국 정부에 한마디 하고 싶어요.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며, 제 3계의 입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는다면 오로지 하나의 민족으로 합쳐야 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대한민국의 정권에서는 북조선과의 통일 문제를 두고 진지한 의견을 교환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민족의 자주권과 조국통일이 우선이다


그러나, 그러한 해빙 무드가 작금의 남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고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금의 대한민국의 대통령(쥐새끼)은 북조선을 매우 적대시 하고 있다고 알고 있으며 심지어는 미국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것이 마치도 지난 시절의 태국과 유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태국이 지난 시절 작금의 대한민국과도 같은 행보를 보였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는 당시 태국 이라는 나라가 미국의 52번째 주 라고도 할 정도 이었으니 말입니다.



만일, 작금의 대한민국이 미국에 예속되어있다면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독립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가 경제 역시 미국에 예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 하기에 대한민국이 북조선과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을 예속 시키고 있는 제3세력들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합니다. 국가가 미국을 포함한 그 어느 외세로부터 압력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 입니다.


기자: 만일, 이 글을 본 누군가가 이 시점에서 북조선에 관한 좀더 심층적인 공부를 하고 한다면 교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교수: 그런 분들은 이미 전에 언급한대로 네이션 미디아 그룹(Nation Media Group)에서 제작 방송한 “박동치는 세계(the World Pulse, Cheepajorn Lok)”를 시청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후, 북조선의 주체사상과 그들의 생활 상을 더욱 심층 있게 공부 하고자 한다면 라자팥 프라나콘 대학 내의 주체사상 연구 학회를 방문 하기를 권장 합니다. 그 순간부터 그 분들이 우리들과 함께 더욱 진보적인 관련 정보 취득을 위해서 함께 노력할 수 있을 겁니다.


02.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북조선과 주체사상, 올바른가? [The DPRK and Juche Ideology seen by Foreign Eyes, Truthful?]


정답은 50대 50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중입니다.


그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위의 교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부분 입니다만(매우 민감한 부분이라 단군 박공이 공식 인터뷰를 종결한 후 비공식적으로 질문을 드리는 시간에서 포착을 한 부분 이라서 인터뷰 에는 포함 시키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 주체사상 연구 단체들은 단순히 주체사상적인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사안에 관한 심층적인 이해와 통찰력이 자생하기 위해서는 사상적인 배경 만을 근거로 사상을 100% 소화 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이들 외국인들이 주체사상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와중에 발생하는 아이러니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방어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단군 박공이 교수님께 아래의 두 개의 질문을 했습니다.


 

01. 작년 3월에 있었던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발생했던 대한민국의 천안함 침몰에 관한 단상


02. 작년 10월경에 발생한 대한민국과 북조선 간에 주고받은 연평도의 포격전에 관한 단상


교수님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본인은 주체사상을 공부하고 연구해서 태국 사회에 적용 시키고자 하는 학자이니 정치적인 사안에 관한 분석은 무리가 있다.”


본질을 피해서 안전한 방향으로 흘러가겠다고 하는 매우 안일한 행동양식 입니다.


물론, 단군 박공이 그 말을 들은 후, 더 이상 파고들지는 않았습니다. 시간 낭비 일 테니까 말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들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북조선 및 그 뿌리 사상인 주체사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매우 한정적 이지 않나 하는 분석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과 단군 박공이 공통분모 적으로 느끼는 전체 줄거리에는 이견이 없다는 것을 보면 그간 11번에 걸쳐서 북조선을 방문하고 보고 느끼고 배운 점이 없지는 않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문제는, 이들이 진정으로 북조선의 “주체사상(Ju Che Ideology)과 선군사상(Military First Idea)”을 납득하려면 단순히 그러한 사상적인 배경만을 중점으로 연구해서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고요, 북조선을 둘러싼 악의 축들(3 Axis of Evils)인 미국(the USA) 그리고 쟈이오니스트 조직(Zionist Regime)인 이스라엘(Israel) 그리고 전세계의 돈줄을 쥐고 있는 일루미나티(Illuminati) 세력의 검은 자본을 해체하는 자세로 연구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않고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들이 왜 코딱지 만한 조그마한 나라인 북조선을 상대로 저렇게 집단으로 들러붙어 근 66년간 다굴을 놓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 드리지만 “큰 틀” 즉, “북조선이 세계평화의 축(The DPRK is the Axis of World Peace) 이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군사 강국, 자본 강국들이 악의 축(The USA and the Western Financial Power House is the Axis of All Evils) 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매우 좋은 만남은 확실한 듯이 보였다는 것이지요.


인터뷰 중간에 그리고 인터뷰가 종결된 후 간간이 교수님께서 단군 박공에게 그러시더군요.


“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대한민국 사람과는 무척 다른 아주 유닠한 사람이에요.”


무슨 말씀 이시냐고 다시 물으니, “그간 만나본 대한민국 출신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북조선을 주적으로 여기고 매우 적대시 하는데 당신에게서는 전혀 그런 부정적인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하십니다.


이 부분에서 그저 쓴 웃음만이 나오더군요.


그러면서, 또 한마디 물어오십니다.


“자네, 북조선 대사관 사람들과 남한 대사관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레서, 단군 박공이 받아쳤습니다.


“북조선 대사관 직원들과는 이미 지난 주에 조문 겸 스치듯이 만났으며 앞으로도 만날 기회가 된다면 전혀 스스럼없이 만날 준비가 되어있는데, 대한민국의 대사관 직원들을 굳이 만날 이유도 없을 뿐더러 그들 모두 수구꼴통들 이라서 만나고 싶은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그 분 입가에 '씨익' 하고 미소가 스쳐지나 가더군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걸작 입니다.


“그 놈들 죄다 꼴통 들이여, 허구헌날 나한테 와서 북조선 자료 요구하고 말이지. 바로, 2틀 전에도 주 태국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 중 대사 비서관인 미스터 리(Secretary to the Ambassador, Mr. Lee)가 날 찾아와서 무슨 정보 좀 없느냐고 조르잖아요.”


그 말씀을 들으니 또 기억이 나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해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서거 일이 19일 오전이 아닌 그 이틀 전인 17일 오전 8시30분인 것을 미국을 비롯한 현세에 내놓으라 하는 첩보기관 등에서는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을 그 당시 이미 이 분은 18일 오전에 한 다리 걸러서 김정일 최고사령관님의 서거 소식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그 거대한 미국과 서방의 첩보 능력이 일개 초로의 학자보다도 못하다는 것일까를 생각해보니 머리에서 쥐가 다 납니다.


그런데, 이 분의 북조선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을 간출한 저녁을 대접 받으면서 알았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교수님이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식탁에서 들려주시더군요. 그 음조는 매우 간단하나 가사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매우 의미심장 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요 단어만 짚어서 옮긴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 북조선

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쳤네

미국과 서방의 거인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선군사상으로 뭉친 민족 핵폭탄 만들어내니

미국의 자본주의 사상은 잔말 말고 안녕일세


그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태국인 만이 지니고 있을 만한 그 독특한 해학이 우러나온다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글로는 위와 같이 기록이 되겠으나 실제로 그 분이 음률에 맞춰서 가사를 읊조리는 것을 듣고 있다보니 웃음이 나와서 한참을 옆의 부장과 킥킥거렸습니다.


Epilogue: 짧지 않은 그렇다고 그다지 길지도 않은 약 2시간에 걸쳐서 진행이 되었던 개인적으로는 매우 소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인터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 입니다.


그간, 많은 현장 인터뷰를 진행해 보아 왔습니다만 이렇게 우리 민족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주체적인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은 사실 금번이 최초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가 태국 내 북조선의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학술단체인 태국 주체사상 연구회(JISOT, Juche Idea Study of Thailand)의 회장이신 송짙 푼랖 박사(Dr.Songjit Poonlarp) 님과의 인터뷰 기사 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본 주체사상 학술단체의 학자들과 기획되어있는 그룹 인터뷰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각 인터뷰마다 요지를 뽑아서 기사화 할 것이니 관심 기울여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고 고생 하시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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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주역 12人, 누구도 '참회'하지 않았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3/20 08:53
  • 수정일
    2013/03/20 08:5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10년 지난 오늘도 "21세기에 발생한 가장 훌륭한 일"

이재호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20 오전 7:21:34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20일로 10년을 맞았다. 2001년 9.11테러로 촉발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좋은 구실이 됐다. 미국은 전쟁 발발 20여 일이 지난 4월 9일 바그다드를 함락시켰고 5월 1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임무 완수를 선언했다. 이로써 이라크 전쟁은 손쉽게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이라크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이라크 통치세력에 대한 반발과 수니파-시아파로 대표되는 내부 세력의
갈등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11년 12월 미국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했지만 오랜 전쟁으로 이라크의 국가시스템은 붕괴됐고 정치적 불안은 각종 테러와 폭력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역시 이라크 전쟁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1조 7000억 달러(한화 1892조 9500억)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고 4488명의 미국인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미국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은 14일(현지시간) 이라크 전쟁 10년을 맞아 CFR이 특집으로 준비한 인터뷰에서 "미국인의 피와 재산을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전쟁에 엄청나게 쏟아부었다"고 개탄했다.

재정악화 및 미국인들의 희생과 더불어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자존심이 큰
상처를 남겼다. 부시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감추고 있고 이것을 테러 집단들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혐의를 씌워 침공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이 연계되어 있다는 증거 역시 나오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성이 잇따라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방송 MSNBC는 이라크 전쟁을 기획했던 주요 인물들을 추적했다.(☞바로가기) 방송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백악관은 중동자유를 가져올 것이라 호언장담했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 상황은 그들이 말한 것처럼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은 당시 이라크 전쟁을 기획했던 몇몇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이 엄청난
전략적 실수로 판명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을 전쟁으로 이끄는 정책의 확고한 신봉자들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들 중 10년 전 이라크에 군대를 보낸 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방송이 소개한 주요 인사들이다.<편집자>
 

▲ 2001년 3월 20일, 미국은 이라크 공습을 감행했다. 바그다드가 공습을 받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알자지라 캡쳐


■ 존 볼튼

존 볼튼은 1998년부터 이라크 침공을 지지해왔다. 그는 신보주의자들(네오콘)이 주요 구성원인 PNAC(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에 소속되어 있다. 그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에게 사담 후세인을 공격하라고 독촉했다.

이후 부시 대통령 첫 번째 임기 때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을 맡았다. 그는 후세인이 아프리카에서 핵무기의 원료로 쓰이는 우라늄을 찾았다는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볼튼은 이를 내세워 유엔의 합의 없이 미국의 단독 행동으로 진행된 이라크 전쟁을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옹호했다.

현재 볼튼은 공화당의 대외정책에서 여전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있다. 미국 공화당 계열의 정책 연구 기관인 미국 기업 연구소(AEI)의 선임 연구원으로서 그는 지난해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였던 밋 롬니의 외교자문 역할을 담당했다.

■ 폴 브레머

'제리' 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폴 브레머는 이라크 침공 이후 수년 간 이라크 최고 행정관을 맡았다. 그는 이라크 군대를 해산시켰고, 새로운 정부에 기존 집권당인 바트당이 진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러한 조치는 이라크 내 긴장을 더욱 증폭시켰고 미국에 반대하는 반란군이 세력을 확장하는 빌미가 됐다.

그는 MSNBC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왜냐하면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전히 난 전쟁을 지지한다. 이라크 사람들이 그들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은 훨씬 잘 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에 대해서 브레머는 "(미군 철수는) 우리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스티븐 캠본

이라크 침공이 발발하기 몇 주 전, 스티브 캠본은 국방부 정보담당 차관이 됐다. 그는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를 찾아내기 위해 국방부와 CIA로 구성된 이라크 조사단의 활동을 조정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이 조사는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판명 났다. 그리고 그는 미군의 이라크 수감자 학대로 악명 높았던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수용소 문제에 연루되었다.

펜타곤을 떠난 이후 캠본은 방위산업체의 고위 간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지금은 빌라노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여름에 열린 아스펜 안보포럼에서 이라크 침공을 두고 "21세기 전반기에 했던 일들 중 가장 훌륭한 전략적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 엘리엇 코헨

코헨은 크리스톨이 세운 PNAC의 창립 멤버다.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9.11 공격에 대해 날을 세웠던 대표적인 선동가다. 2001년 11월 한 논평에서 그는 테러와의 전쟁은 곧 "세계 4차 대전"이라고 주장했다.

코헨은 미국이 이라크를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라크가 "알 카에다를 도와줬고",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뒤이어 그는 9.11에서 여객기를 납치한 무함마드 아타와 사담 후세인이 관계가 있다고 과장 선전했다. 2002년 의회 청문회에서 코헨은 "미국에게는 사담 후세인에게 대량 살상무기를 획득하도록 허락하거나 혹은 그를 전복시킬 조치를 취하거나"하는 선택지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코헨은 현재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2005년 당시 이라크의 안정화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코헨은 "5년 혹은 심지어 10년 후에도 여전히 이라크 침공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더그 페이스

페이스는 국방부의 최종 정책 결정 부서에서 근무했다. 그는 리처드 펄, 폴 월포위츠와 함께 대표적 네오콘으로 꼽힌다. 이들은 전쟁을 위한 새로운 정보부서를 만들었다. 2007년 국방부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페이스는 직속 부서원들에게 "이라크와 알카에다 간 의미 있는 관계를 찾아내도록" 종용했는데 그들은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라크 사령관이었던 토미 프랭크스 장군은 "페이스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라며 맹비난했다.

2005년 공직을 떠난 후 그는 하버드, 조지타운 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페이스는 허드슨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다. 지난해 10월 그는 오바마의 "미국의 혐오가 테러를 낳고 있다"는 주장을 비난했다.

■ 루이스 "스쿠터" 리비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 겸 안보보좌관이었던 리비는 '리크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2002년 2월 CIA는 조세프 윌슨 전 이라크 대사를 니제르에 파견해 이라크 정부가 니제르로부터 우라늄을 구입하려했다는 정보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윌슨은 조사 결과 이 정보가 허위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라크 침공 명분을 찾던 부시 행정부는 윌슨의 보고를 무시했다.

그러자 윌슨은 2003년 7월, 이 내용을 <뉴욕타임스>에 투고했고 바로 일주일 뒤 친 공화당의 칼럼니스트였던 로버트 노박은 <워싱턴포스트>에 윌슨이 CIA의 비밀요원인 부인 플레임 덕에 니제르 임무를 맡을 수 있었다고 폭로했다. 윌슨의 니제르 조사는 단순한 관비여행이었으며 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칼럼은 CIA요원의 신분을 누설했다는 비난을 받게 됐고 미 법무부는 특별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과정에서 신원 유출에 가담한 자가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백악관의 칼 로브와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인 것으로 밝혀졌다. 리비는 2007년 워싱턴 지방법원에서 위증 및 사법 방해 혐의로 2년6개월 징역형과 벌금 25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후 리비의 형을 감면시켜줬지만 체니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면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딕 체니는 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지 이틀 후에 "리비는 심각한 오판의 희생자다. 나는 그가 대통령의 사면을 받을만하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리비는 현재 워싱턴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의 수석 부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요즘 중동 정책에 대한 강의를 자주 하고 있다. 그는 유죄판결로 인해 변호사로 일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버지니아 주지사인 밥 맥도웰(공화당)은 리비의 선거권을 복원시켰다.
 

▲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정파와 민족간 갈등으로 이라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19일(현지시간) 바그다드에서는 시아파를 노린 차량 폭탄테러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AP=연합뉴스


■ 메간 오설리번

오설리번은 2003년 4월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그는 당시 이라크 현지 총 책임자인 제이 가너를 보좌했다. 이후 이라크를 관할하는 미국 주도의 연합국 임시 행정처(CPA)의 폴 브레머 최고행정관을 보좌했고 이라크의 과도국가 헌법을 세우기 위한 작업에서 이라크 사람들과 CPA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했다. 오설리번은 이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의 문제를 다루는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역임했다. 당시 그는 조기에 이라크를 "수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설리번은 지난해 밋 롬니의 대선 캠프에서 외교 정책 자문역을 맡았다. 그는 현재 하버드의 케네디 스쿨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블룸버그>에 외교 정책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 리처드 펄

리처드 펄은 부시 재임기간 동안 미국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이라크 침공 후에 "우리는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해에 그는 미국 공영방송인 PBS에 출연해 "사담 후세인과 그의 군대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화약냄새가 나자마자 붕괴할 것"이라며 "24시간 내에 이라크가 붕괴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한 달이 넘게 걸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가 데이비드 프룸과 함께 2004년 집필한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에서 그는 "미국인에게 중도란 없다. 승리 또는 홀로코스트(전멸)만 있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2006년 펄은 이라크 전쟁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만일 내가 이 시점에서 이라크 문제를 봤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가 이라크로 가야하나?' 라고 물었다면 나는 '아니야. 사담 후세인이 테러 집단들에게 대량 살상무기를 건네주고 있다는 염려를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생각해보자'라고 말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펄은 MSNBC에 그때의 발언이 맥락을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가 언급한 '실수'란 부시의 임무 완수 선언 이후 미군이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이라크를 점령하려고 계속 머무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펄은 침공을 결정했던 것은 적절했다고 밝혔다.

■ 랜디 슈너먼

랜디 슈너먼은 1998년 미 의회가 통과시킨 이라크 자유법의 초안 작성과 법안 통과에 힘을 쓴 상원의원이다. 이 법안은 이라크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를 미국의 공식 정책으로 만들었다. 2002년 말 슈너먼은 부시 정부의 승인을 받아 '이라크해방위원회'(CLI)를 설립했다. 슈너먼은 이라크 침공 한달 전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한 치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2008년 매케인 대선 캠프에 몸담았다. 당시 그는 매케인과 미하일 샤카슈빌리(Mikheil Saakashili) 그루지야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하는 데 다리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은 슈너먼이 2007년 1월부터 매케인 후보 캠프에서 외교 정책 자문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루지야 정부의 로비스트 역할을 겸한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슈너먼은 이라크 문제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MSNBC에 보낸 메일에서 "후세인은 주변 국가들이나 이라크 국민들에게 다시는 화학 무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겼고 그는 졌다. 세계는 사담 후세인이 없어진 이후 훨씬 더 좋아졌다"고 주장했다.

■ 댄 세너

댄 세너는 CPA의 미디어 및 홍보 담당으로서 이라크 전쟁의 낙관적인 전망을 알리는 TV 브리핑에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이라크의 상황은 그가 브리핑하는 내용과 달랐다.

지난해 세너는 롬니 후보의 주요 자문인사로 참여했다. 롬니가 이겼다면 세너는 백악관 수석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2010년 그는 9·11테러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였던 '그라운드제로' 인근에 이슬람 센터가 자리 잡은 것과 관련, 이 센터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너는 공화당 뉴욕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 짐 윌킨슨

짐 윌킨슨은 홍보 전문가로 칼 로브, 루이스 리비 등과 함께 백악관에서 국민들에게 이라크 침공에 대한 홍보를 벌인 인물이다. 그는 이후 도하에 있는 미군 중부사령부의 수석 대변인을 역임했다. 그는 NSC 대변인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대변인, 그리고 2008년 재정위기 당시 재무부에서 근무했다. 윌킨슨은 현재 펩시콜라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네오콘 인사였던 월포위츠는 부시정권에서 가장 강력하게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인물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은 월포위츠가 9.11테러 이후 처음으로 이라크 침공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침공 전 월포위츠는 이라크를 안정시키는 데 10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에릭 신세키 전 육군참모총장은 2003년 2월 미 상원 청문회에서 "이라크 전쟁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수십만 명의 미군 병력이 필요하다"고 증언했다. 이후 이라크 내 미군 사령관은 신세키의 예측이 맞았다고 증언했다.

2005년 월포위츠는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했다. 그러나 2년 뒤 <파이낸셜타임스>에 같은 세계은행에 몸담고 있는 여자친구 샤하리자에게 승진과 보수에 특혜를 제공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퇴했다. 그는 현재 미국 기업연구소에 몸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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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분석] 원세훈 원장 지시와 국정원 개입 논란 사건들

원장님이 '말씀'하면 현장은 요동쳤다

 

13.03.20 08:05l최종 업데이트 13.03.20 08:05l

 

2009년 5월 15일 국가정보원 내부 전자게시판 중 하나인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게시판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확대부서장 회의에서 강조한 내용을 국정원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공간이다.

"불법집회나 불법노조를 등한시한 부분이 있는데, 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정상화해야 하며 특히 일부 언론의 편향된 정부비판·좌파옹호에는 적극 대처해나가야 함."

약 2개월 후, 양천구청 공무원 출신인 양성윤 당시 통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후보는 구청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서울에서 열린 공무원 시국대회에 참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양천구청은 서울시에 양 후보의 중징계를 요청했다. 양 후보는 "국정원 등 각종 기관에서 압력이 들어와 (구청이) 중징계를 요청하게 됐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양천구청 관계자도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원에서도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2009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부터 게시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중 일부 내용은 같은 기간 일어난 국정원 개입 사건들과 상당한 연관성을 보인다. 특히 ▲종북좌파단체 대응 및 공격 ▲여론조작 시도 ▲국내 정치 현안 개입 관련 발언이 개시된 전후로 지시 내용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듯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국정원 개입으로 논란이 된 사건들이 원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진행됐을 가능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종교단체 정치개입 바로잡아야" 지시 후 종교행사 중단·사찰 주지 교체
 

2009~2012년 원세훈 지시(발언) 전후 '국정원 개입 논란 사건' 비교 분석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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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첫 지시에 이어 원 원장은 같은 해 6월 19일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종북좌파 단체들이 시민단체·종교단체 등의 허울 뒤에 숨어 활발히 움직이므로, 국가의 중심에 서서 일한다는 각오로 더욱 분발해주기 바람"이란 지시사항을 게시했다. 이는 전날 전교조 소속 1만 7천여 명의 교사들이 정부의 공권력 남용과 특권층 위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국선언을 발표하자,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의 정부비판을 사전에 견제하기 위한 대응으로 보인다.

닷새 뒤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 등은 국정원의 방해로 환경영화제 예산이 줄어들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2004년부터 매년 환경영화제에 2억여 원씩 보냈던 환경부와 서울시는 2009년 갑자기 지원금을 보류했다. 당시 이 사무총장은 "국정원 조정관이 서울시 담당 본부장에게 전화해 지원금을 보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무총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원 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이 시민단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위의 원장 지시 전후로 '아름다운재단 후원 대학·기업 압박' '범민련 사건' '한국진보연대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국정원이 시민사회단체를 과도하게 수사하거나 활동을 방해한다는 의혹이 일었다.

2010~2011년 불거진 국정원 종교단체 활동 개입 의혹도 원 원장의 지시 내용과 연관성이 높은 대목이다. 2010년 2월에는 국정원 직원이 조계사에 전화해 정부 비판 행사를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2011년 3월에는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 자리에서 퇴출되는 과정에 원 원장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2010년 3월 9일 게시된 "일부 종교단체가 정치활동에 치중하는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원 원장 지시 내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종북·좌파단체 대응 지시는 2011년 2월 "종북좌파 관련 내·수사 매듭을 서두르라"는 지시로 확대됐다. 그러자 같은 해 5월부터 청학연대 사건, 왕재산 사건, 전교조 사건, 평통사 사건 등 국정원이 반국가단체로 의심하는 곳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진성준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발간한 정책자료집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제안서'(2012.2)는 "(국정원의) 대대적인 수사, 광범위한 압수수색으로 종북 논란이 확대 생산돼 인권이 유린당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부터 논란이 된 국정원 댓글 사건 역시 원 원장 지시 내용을 실행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원 원장이 2011년 11월 18일 트위터·인터넷과 관련해 "국정원이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지시하자, 곧이어 국정원 산하의 '심리전단'이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됐다. 2012년 12월에 드러난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도 이러한 원 원장 지시 내용에 부합한다.

세종시 등 현안 지시도 사실상 실행... "국정원, 정권 전위부대"
 

▲ 진선미 의원, "원세훈 원장, 불법적으로 여론조작 시도" 문건 공개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재임기간 중 불법적으로 여론조작에 개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국정원 내부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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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국정원이 원 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내 정치 현안에 개입했다고 의심되는 사건이 있다. 다음은 2010년 1월 22일 원 원장의 지시 내용이다.

"세종시 등 국정 현안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좌파단체들이 많은데, 보다 정공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음.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 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

당시 정치권에서는 '세종시 원안 고수'와 '원안 수정'을 놓고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해 1월 1일 연기군의회 임창철 자유선진당 의원은 "국정원 직원이 세종시 원안 수정을 받아들이라고 지역 주민들을 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관계자도 당시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연기군 관계자들과 접촉한 사실을 시인했다. 사실상 국정원 세종시 주민 회유 사건과 세종시 관련 원 원장 지시의 맥락이 연결되는 것이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원 원장 지시 내용들은 어떻게든 현장에서 실행됐을 것이라고 본다"며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국정원 개입 사건이 의혹이나 논란에 휩싸인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어 진 의원은 "이번 지시 내용 공개로 국정원이 사실상 정권의 전위부대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정원은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의 존재를 사실상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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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 수개표]는 백성과 민족의 생존전략

[투표소 수개표]는 백성과 민족의 생존전략
(서프라이즈 / 명태 / 2013-03-19)


어제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18대 대선에서 수개표만 정확하게 했더라면, 정권을 도둑맞지 않고, “국립대학통합”, “대학입시지옥철폐”가 이뤄졌으리라고 말했다.

나라가 바로 서려면 교육과 언론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수개표를 하지 않아 정권을 도둑맞음으로 인해서 온 국민의 그 비원은 물거품이 되고 있다.

어디 교육과 언론뿐이랴. 비정규직문제와 정리해고문제도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도 물 건너가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가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있다. 한반도가 전쟁의 참화를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춘몽님도 바로 백성과 민족의 사활과 운명을 걱정하고 계신다. 그러기에 먼저, 18대 대선에서 수개표를 하지 않고 콤퓨터로 개표결과를 제멋대로 조작한 불법부정선거를 바로잡자고, 그와 동시에, “투표소 수개표”로 선거법을 개정 입법하자고 목숨 걸고 투쟁하고 계신다.

문재인+안철수+야당 국회의원들+명망가들+기자들+지식인들+일반 국민들은 수개표 하지 않은 불법부정선거를 바로 잡으려 할 경우 나라가 혼란스러워질까 우려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바로 수개표를 하지 않은 불법부정선거를 바로 잡고 투표소 수개표로 개정 입법하는 길만이 백성과 민족의 살길, 생존전략임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야당들과 야권 국민들은 앞으로도 모든 선거에서 지는 것은 물론 차기 대선에서도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야당국민들이 무슨 신명이 나서 문재인+안철수+박원순+야당국회의원들을 믿고 다시 표를 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춘몽님처럼은 못할망정, 수개표를 하지 않은 문제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고, 투표소 수개표로 개정 입법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야당국민들께서 또다시 힘을 내서 그들을 지지해주시지 않겠는가?

 

명태

 

 

‘제주 해군기지 반대’ 양윤모 49일째 옥중단식
(민중의소리 / 정혜규 기자 / 2013-03-18)

 


▲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다 1년 6개월 실형을 받고 수감된 영화평론가 양윤모(57)씨가 19일로 단식 49일째에 접어들었다 사진은 양씨가 첫번째 단식을 이어가던 2011년 모습.ⓒ제주의소리 제공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다 1년 6개월 실형을 받고 수감된 영화평론가 양윤모(57)씨가 19일로 단식 49일째에 접어들었다. 문정현 신부 등이 양씨를 면회한 자리에서 단식 중단을 호소하고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가 양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등 그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3년간 160일 넘도록 단식

양씨는 지난 2월 1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된 이후 이튿날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양씨가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이다 단식에 들어간 것은 2011년 74일간 단식을 한 이후 세번째로 그가 지금까지 해군기지 사안으로 단식을 벌인 날을 모두 합치면 160일이 넘는다.

양씨가 세 번째 단식에 들어가자 동료 활동가와 강정마을 주민들은 모두 만류했다고 한다. 양씨가 장기간 단식으로 이미 몸이 악화된 데다 몸을 회복하지 못한채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이미 2년 동안 단식을 해온 상황에서 또다시 단식에 들어갈 경우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양씨는 주위에서 만류를 할 때마다 “잘못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당당하게 항의해왔는데 국가가 법을 통해 형을 살게 하는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양씨는 강정마을에 거주하는 활동가들 속에서도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꼽힌다. 그는 강정마을에 내려오기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강우석필름아카데미 초대교장을 역임하는 등 30여년간 충무로에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왔다.

그러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요양을 하던 중, 정부가 강정마을 주민들의 반대속에도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저지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후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중덕사라는 비닐하우스를 짓고 거주하면서 반대운동에 앞장서왔는데,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거나 크레인 밑으로 들어가 공사를 막는 것은 늘 그의 몫이었다고 한다. 양씨는 이 싸움을 하다 2010년 이후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모두 4번 수감되기도 했는데 주민, 평화활동가 등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인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수치이기도 하다. 그가 구속이 되거나 단식을 벌일 때마다 사그라들었던 강정마을 이슈는 다시 전국적인 사안으로 떠올랐다.

문정현 신부 등 단식 중단 목소리 높아져

양씨의 단식이 또다시 길어지면서 단식 중단과 석방을 요청하는 국내외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명예교수는 18일 연대 메시지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다 구속돼 단식을 투쟁을 벌이고 있는 양씨를 즉각 석방하고,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정의롭고 용기있는 저항을 자유롭게 지속할 수 있게 되기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도 지난 12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양씨에게 단식을 중단할 것을 호소했다. 15일에는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 문 신부, 문규현 신부,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이 양씨를 면회한 자리에서 단식을 철회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우리는 70일 검증기간 평가와 향후 활동계획을 확정하면서 양씨에게 단식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며 “지난 2011년부터 이어진 양씨의 단식은 해군기지 강행의 문제점을 전국적인 사안으로 확장하는데 큰 영향을 줬다. 이제는 그가 단식을 중단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http://www.vop.co.kr/A00000611150.html

 

 


<한미FTA 효과, 통계로도 보이지 않는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30318101411&section=02


<[뉴스타파 호외 영상] '국정원장 정치개입 지시' 의혹 문건 공개>

http://cafe468.daum.net/_c21_/bbs_read?grpid=1RcF1&fldid=Il2P&contentval=00065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377&regdt=20130318230532


<긴급)민주노총법률원이 부정선거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http://cafe468.daum.net/_c21_/bbs_read?grpid=1RcF1&fldid=Il2P&contentval=00061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373&regdt=20130318200954


<한반도 긴장고조와 평화의 길>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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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룸살롱'취업 후 접대 못한다고 '보도방' 넘겨

 


제주 경찰은 보도방을 운영한 업주와 조직 폭력배를 검거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보도방 업주 24명은 2009년 9월부터 제주시 신제주지역을 중심으로 보도방을 차려 유흥업소에 소개하고 약 13억의 부당이익을 챙겼다고 합니다.

보도방 업주 김모씨 등 업주와 조직폭력배 27명은 유흥업소에서 여성 접대부를 원하면 이들을 보도방 전용 승합차에 태워 유흥업소에 투입한 후 시간당 2만5천원 또는 매월 40만원씩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보도방 업주 김모씨는 중학생 A양 등 10대 청소년을 고용해 유흥업소에 100차례 이상 소개하고 소개비 명목으로 1일 2만5천원씩 165만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주의 소리' 에 따르면 여중생 등 10대 청소년 2명은 처음에는 룰살롱에 취업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들 여중생 등 10대 청소년 2명은 겨울방학이던 지난해 12월 룸살롱에 취업해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며 접대를 했다가 어린 나이에 룸살롱 접대를 잘하지 못하자, 해당 업소 사장은 "손님 접대를 잘 못하니 보도방에 가서 일 좀 배우라고" 말하며 보도방으로 넘겼다고 합니다.

경찰은 보도방 업주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다 지난해 2월13일 제주시 연동소재 모 노래텔에 이들은 내려준 김씨를 현장에서 검거했고, 10대 청소년 2명은 가족에게 인계했습니다.

' 보도방 연합회에 변호사 선임 비용 지원까지, 조직화된 범죄집단'

이번에 검거된 보도방 업주들은 2009년부터 '제주지역 보도방 연합회'를 구성해 18개 업체 회원사가 매월 5만원씩 받으며 회칙까지 구성해 조직적으로 보도방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제주경찰이 보도방과 유흥업소에서 압수한 통장과 차량,현금, 성인용품. 출처:제주의 소리

 


보도방 업주 김모씨를 중심으로 조직된 '제주지역 보도방 연합회' 회칙에 따르면 이들은 신규 보도방 업주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도 했고, 회원 보도방 업주가 경찰에 구속될 경우 변호사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무전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여종업원 공급 현황을 수시로 공유하는 것을 회칙에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보도방 업주는 물론이고,'키스방'.'풀살롱' 등 여성 접대부를 공급하는 범죄 집단이 벌이는 행태는 교묘하면서 법망을 이리저리 피하기도 합니다.

 

 

▲ 업주와 종업원이 구속됐지만 여전히 영업중인 풀살롱. 출처:SBS뉴스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고 모텔과 연계해 성매매까지 제공하는 이른바 '풀살롱'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강남주변에 많이 있는데, 선릉역 주변 한 풀살롱 업소를 지난 2월 14일 경찰이 기습 단속해 업주와 종업원 등 12명을 입건했습니다. 그러나 3주 뒤에 그곳을 찾았지만,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업소는 두 차례나 단속됐지만, 영업을 계속했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간판과 사장의 명의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실소유주를 파악해 구청에 통보해 영업정지를 내리려면 경찰 단속 후 보통 한 달 이상이 걸리는 점을 업주들이 악용해 버젓이 영업하는 것입니다.

' 범죄와의 전쟁, 그 실효성은?'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지난해 7월2일 '성매매특별단속 TF팀'을 구에 조직해 호텔과 룸살롱 등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왔다고 합니다. 강남구는 강남경찰서,수서경찰서,민간 단속반까지 편성해 성매매 유인 홍보물 배포와 성매매 현장 오피스텔 등에 대해 집중적인 점검에 들어갔습니다.

강남구가 성매매특별단소 TF팀을 구성해 단속에 들어가 R호텔과 다른 L,S 호텔 등에 영업정지 1~2개월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시도를 했지만, 강남구에 있는 '키스방','풀살롱','안마'등의 불법 영업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 강남구 일대에 뿌려지는 성매매 업소 관련 전단지.

 


성매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대한 법률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창녀촌','윤락가','사창가' 등에 대한 집창촌은 붕괴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교묘하게 이루어진 '휴게텔', '풀살롱', '침대방', '안마시술소', '키스방', '인형방', '페티쉬 클럽', 'XX방' 등의 변태적인 성매매 업소는 늘어만 갔습니다.

강남구청장이 아무리 특별단속반을 만들었어도 강남은 신종 성매매 1번지로 계속 자리 잡고 있으며, 특급호텔 객실 수십 개를 장기 입차해 성매매를 알선하는 등의 조직적이고 대규모 불법 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 단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의 엄중한 집행'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 동안 성폭력,성매매 등의 성범죄를 예방하고 단속하기 위해 수십 차례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왔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늘 단속을 강화했고,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성폭력 등을 근절하겠다고 나섰습니다.
 

 

▲ 경찰대 졸업식에서 성폭력 범죄 근절 등 4대 사회악을 근절하겠다고 밝힌 박근혜 대통령. 출처:청와대

 


지난 3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경찰대 졸업 임용식에서 4대 사회악인 '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강조하면서 '4대 사회악 근절 추진본부'와 '성폭력 특별수사대'등을 발족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선 경찰서는 앞다퉈 성폭력 등에 관한 TF팀을 너도나도 조직하고 나섰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 4대악 근절과 연관된 캠페인과 TF팀을 조직한 경찰

 


경찰청은 성폭력 사범 검거 100일 작전을 펼치고, 지역 경찰서와 무슨 본부와 같은 조직에서는 '4대악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일선 경찰서는 형사들을 중심으로 TF팀을 다시 구성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런 일들은 모두 일시적입니다.

경찰이 성범죄, 성폭력 단속 어쩌고 하면 나오는 것이 과거 성범죄자들을 방문해서 확인하는 일인데, 이런 일을 견디다 못해 성범죄자들은 오히려 주소 이전을 하지 않고 다른 곳에 몰래 거주하는 등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성범죄와 성매매와 같은 범죄를 근절시키는 방법은 이처럼 캠페인을 벌이고, TF팀을 조직하는 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사례1)
대전고법은 청소년 3명을 고용해 성관계까지 강요했던 A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사례2)
부산지법은 미성년자 등 여종업원을 고용해 속칭 '키스방'을 운영한 혐의로 B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사례3)
청주지법은 성매매 알선 업소를 운영해 수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형의로 기소된 C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억여원을 선고.


사례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에서 미성년자를 고용해 성매매 알선을 했다고 무거운 형량을 받지는 않습니다. 아동,청소년 성매매를 알선한 업자에게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처벌하는 현행법이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2년 이내에서 형량이 구형되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들은 어떤 형량을 받을까요?
 

 

▲ 미국 조지아주 연방법원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스티브 레머리.


미국 조지아주 연방법원은 미성년자 약취와 성매매 알선혐의로 기소된 스티븐 레머리에게 징역 80년을 선고했습니다. 여기에 90세 이후에나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도록 가석방 불허기간을 50년으로 정했습니다. 결국, 스티븐 래머리는 90세가 넘어서야 겨우 사회에 나올 수 있으며, 그와 함께 청소년 성매매 알선에 가담했던 친구도 30년형을 받았습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성폭력,성매매,아동 청소년 성매매 등에 관한 형량이 50년 이상이 된다면 아마 지금보다 성범죄가 줄어들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 번이라도 범죄를 저지르면 사회와 영원히 격리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조직적인 성매매 업자들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속을 아무리 하고, 검거해도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범죄에 대한 근절 효과는 그리 높지 않음을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인권 침해 소지도 일부 있을 수 있는 조항도 있겠지만, 미성년자를 고용해 보도방을 운영하며 청소년들이 일을 그만두려고 하면 '얼굴에 염산을 뿌리겠다'며 폭행과 협박을 강요했던 악질 성매매 업자와 같은 자들에게는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도록 무거운 처벌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10대 아이들은 그들의 삶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과 판단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순간의 실수로 성매매에 뛰어든 아이나,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아이들은 보호해야 합니다. 또한, 인륜을 저버린 성범죄 청소년을 단순히 미성년자라고 그저 용서하는 일도 잘못됐습니다.

단순하게 일회성 대국민 범죄와의 전쟁은 이제 지긋지긋하고 효과도 없습니다. 딸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대한민국은 결코 안전한 사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4대악 근절 운운하는 소리가 별로 믿음직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지키는 힘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범죄를 응징하고 재범을 막을 수 있는 체계적인 법률과 지속적이면서 효과적인 경찰의 단속 시스템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에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성범죄를 저지르면 90세 이전에는 절대 사회에 돌아갈 수 없는 강력한 잣대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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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 함세웅

 

명사가 걸어온 길 6. 민주화의 사제 함세웅
등록일: 2013.03.18 [18:07] | 조회: 80 스크랩 0회
 

 

맑은 얼굴 맑은 눈/ 비 온 뒤라면 무지개 걸려/ 그러나 독재나 어떤 잔재 따위에는/ 진흙탕 싸움을 사양할 수 없다/ 그 아들은 한국 천주교회의 앞에서/ 지(知)와 신앙으로 집을 지었다/ 그는 도시의 신부다(고은 시인의 ‘만인보’ 중 ‘함세웅’ 편의 일부) ‘민주화의 사제’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1970~1980년대 불끈 쥔 주먹으로 독재에 맞서면서도 늘 기품을 잃지 않았던 그를 고은은 ‘도시의 신부’라고 불렀다.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 정국 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1974년)을 만들어 박종철군 고문 사망(1987년), 삼성 비자금 조성(2007년) 등 묻혀 있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며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친 그였지만 이름 앞에 ‘명사’(名士)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영 어색하다고 했다. 겸허함을 지켜야 할 사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거북하다고도 했다. 나이 일흔이 넘도록 흔한 회고록 한 권 내지 않은 이유다. 함 신부는 지난해 8월 사제 생활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인권의학연구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국미사에 참석하는 등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함 신부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인권의학연구소에서 만났다.

▲ 함세웅(왼쪽) 신부가 지난달 2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생명평화미사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함 신부는 매주 월요일 시국미사에 참석하는 등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계속 활동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함 신부는 광복을 3년 앞둔 1942년 6월 서울의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났다. 유교적 가풍 때문에 가족 중에 가톨릭 신자는 없었지만 집 근처에 천주학당(현 성심여고)이 있어 가톨릭과 서양 문화를 자연스레 접했다.

여덟 살 되던 1950년 6·25가 터졌다. 소년 함세웅은 전쟁의 참상을 바라보며 어렴풋하게나마 신앙에 눈을 떴다.


“어느날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쾅 하는 굉음이 나는 거예요. 한낮인데 하늘이 시커매. 나중에 들었는데 B29 폭격기들이 한강 임시다리를 폭파하는 소리였대요. 너무 놀라 친구들과 어디로 우르르 몰려갔는데 거기가 성모병원이었어요.”

병원은 아비규환이었다. 피 칠갑을 한 환자들이 신음하고 있었고 수녀들이 그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인간의 탐욕이 빚은 전쟁, 그 속에서 생사의 경계에 섰던 사람들을 지켜본 경험은 그의 첫 종교적 체험이었다. 그때부터 가톨릭 신자가 됐다.

“평범한 신자였던 제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성당에서 복사(천주교 미사 때 신부를 돕는 신자)로 활동했는데 그해 11월 2일 위령의 날 신부님과 함께 서울 잠원동, 논현동 일대의 공동묘지를 찾게 됐지요. 너른 터에 빼곡히 들어선 묘지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 누구나 다 이렇게 묘소에서 끝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6·25와 공동묘지의 체험이 겹쳐 결국 사제가 돼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셈이지요.”

‘천국에 온 것 같았다’는 회고처럼 신학교 생활은 그에게 더없이 잘 맞았다. 4·19 혁명이 전국을 휩쓴 1960년 가톨릭대에 입학한 그는 2학년을 마치고 육군 일반병으로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헌병으로 차출됐어요. 이야, 이제부터 폼나게 군대생활 좀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가 배치된 곳이 부산과 광주(경기)의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였어요. 그곳에서 군생활을 꼬박 2년간 했지요.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체험한 첫번째 모순의 사회였어요. 불합리한 일상을 겪으면서도 낙오하지 않으려면 숨죽인 채 순종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박정희 독재를 겪으며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군에서 모순의 사회를 배우고 길들여졌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아팠지요.”

▲ 1979년 구속 100일만에 풀려나 기뻐하는 모습.



신학 교수의 꿈을 품은 함 신부는 1965년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는 4년 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취임해 독재와 탄압을 본격화하던 때였다. 햇수로 9년을 로마에 머무는 동안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나라 밖에 있다 보니 3선 개헌, 유신체제 선포, 학생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투옥과 고문 등 뉴스를 외려 국내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접할 수 있었어요. 마음 아프고 부끄러웠어요.”

1973년 귀국해 마주친 조국의 첫인상은 낯설었다. 마포대교 등에는 헌병이 총을 들고 서 있었고 서울역에서는 중·고등학생을 동원한 반공 궐기대회가 수시로 열렸다. 그야말로 병영사회였다.

서울 연희동 성당에서 보좌사제로 있던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결정적 사건이 1973년과 1974년 잇달아 터졌다. 김대중(1924~2009) 납치사건과 지학순(1921~1993) 주교의 구속이었다. 특히 1974년 7월 지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과 ‘유신헌법 무효’ 양심선언으로 15년형을 받자 성난 사제들이 성당 밖으로 뛰쳐나왔다. 함 신부는 이 과정에서 젊은 신부들을 중심으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했다. 당시 사제단에 참여했던 문정현(73) 신부는 함 신부에 대해 “타고난 조율가이자 소통가”라고 평가했다. 문 신부는 “대표가 없는데도 사제단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박학하고 판단이 빠른 함 신부 덕이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지 주교의 구속에 대해 “돌이켜보니 은총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제들이 사회 참여를 시작하면서 유신체제의 모순에 대해 눈 떴다는 얘기다.

▲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에서.



유신독재 타파를 외치며 정권에 맞서던 그는 1976년 3·1 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구속됐다. 첫 투옥은 시련이자 기회였다. 서대문 구치소 등에서 1년여 옥고를 치른 그는 “제2의 신학교 생활 같았다”고 했다. 차디찬 감옥에서 자신의 인간 본성을 엿본 웃지 못할 촌극도 있었다.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밤늦게 구치소에 갔는데 교도관이 제 방이라며 안내했어요. 근데 완전히 쓰레기통이야. 그래도 내가 살 방이니 의지를 갖고 아침에 청소를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근데 다 치워놓으니까 교도관이 ‘방 배치를 다시 해야 하니 나오라’는 거예요. 좀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싫다. 살 준비 다했으니 내 방이다’라고 하니까 교도관이 ‘교도소에 내방 네 방이 어디 있느냐’고 해요. 근데 옮겨 보니 새 방이 너무 깨끗한 거예요. 청소 좀 했다고 교도소 방 옮기기 싫어한 제 모습이 참…. 덧없는 소유욕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웃었어요.”

▲ 1974년 사상가이자 민권운동가였던 고함석헌(오른쪽)선생과 함께.



함 신부는 교도소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과 함께 꼬박 1년간 재판을 받으며 기도와 독서로 마음을 달랬다.

함 신부가 그 지긋지긋하고 끔찍했던 유신독재의 종말을 목격한 곳도 교도소였다. 1979년 미사를 집전하면서 농민 오원춘이 정보기관에 납치·감금당한 일에 대해 강론하다가 경찰에 연행돼 영등포 교도소로 끌려갔다. 두번째 옥살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암살됐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박정희 피살 소식을 접하며 성경에 나오는 이집트 노예 해방의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김재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신독재의 핵심을 제거한 일은 높이 평가해야 해요. 그는 1979년 부마항쟁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수습할 정책을 써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경호실장 차지철과 나눈 대화에서 ‘그까짓것 100만~200만명쯤 죽여도 문제 없어. 3·15 부정선거 때 경무대 경호책임자인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린 죄로 처형당했는데 내가 발포 명령을 한다면 나를 어떻게 할 거야’라고 했다지요. 김재규는 이 말을 듣고 10·26 의거를 결행했다고 재판에서 진술했죠.”

그는 1970~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기적과도 같은 민초들의 힘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제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 받을 때 피로를 못이겨 눈 감고 있었더니 혼자서 저를 감시하고 있던 중정 요원이 ‘신부님, 정신 차리세요. 소신껏 답변하셔야 해요’라며 응원하더군요. 힘이 불끈 솟았지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때 옥중에 있던 이부영 전 의원의 쪽지를 전달한 사람도 이름 없는 양심적인 교도관이었어요. 사도행전을 보면 감옥에서 천사들이 감옥 문을 열어 사도들을 내보내 줬다는 구절이 있잖아요. 그런 기적을 현실에서 체험한 거죠.”

▲ 1965년 우르바노대 신학원 유학시절.



1970년대 함 신부와 함께 군부독재 권력과 싸웠던 이들 중 지금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다. 이를테면 김지하 시인이나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시기별로 구별해서 봐야 해요. 인간은 원래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예컨대 김지하 시인도 1970년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던 청년 김지하와 1990년대 이후 현실과 야합한 장년 김지하로 나눠 볼 수 있겠죠. 윤리신학적으로 봐도 사실 선과 악, 천사성과 악마성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거든요. 어느 쪽이 마음속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죠. 일제시대 때 최남선, 이광수 같은 분도 일면으로는 얼마나 훌륭했나요. 변절한 것은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한 그들의 한계죠.”

함 신부는 잘못된 사회·정치 제도를 바로잡는 데 교회(종교)가 앞장서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왜 하필 교회일까. 그는 “불의 없는 사회를 만들어 사람들이 양심껏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종교적 인간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에 종교가 사회 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꽤 오래 전의 일화 하나를 끄집어냈다.

“1970년대 어느 부활절 때였어요. 자정 가까운 시간인데 국영기업에 다닌다는 한 40대 신도가 성당에 왔어요. 술에 취했는데 고해성사를 보겠대요. 그러면서 ‘신부님, 어차피 오늘 반성해도 내일 저는 똑같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그냥 저와 술 한잔 하시고 용서해주세요’하는 거예요. 또 ‘신부님은 세상을 모릅니다. 부정과 타협 안 하면 살 수가 없어요. 집에 노모까지 5명이 사는데 회사 월급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뇌물받아 아래, 위와 나눠 가져야 해요’라고 하더군요. 양심적으로 살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그러면 당장 식구들이 굶어 죽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함 신부는 당시 30대의 젊은 사제였다. 그 신자에게 ‘그래도 천주교 신자로서 양심껏 사세요’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도 그 사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자들이 양심껏 살도록 도우려면 결국 옳지 못한 사회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교(政敎) 분리는 사실 폭압자들의 논리예요. 종교의 이름으로 불의에 항거하면 ‘예배당, 불당에 가서 기도나 하세요’하는 식이죠. 성경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잖아요. 그러려면 세상 한복판에서 세상을 껴안아야 해요.”

▲ 함세웅 신부는 지난해 사제직에서 공식 은퇴했지만 우리 사회를 위해 자신이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말할 때에는 들뜬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호정 기자 hojeong@seoul.co.kr

 

우리 나이로 일흔둘. 오랜 삶의 길을 걸어온 함세웅 신부지만 지난 일보다 지금의 일에 대해 더 들려주고 싶어 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많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숨 고를 틈조차 없이 활동하는 이유다. 함 신부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핍박받는 이들이 널려 있다는 증거다. 그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박종철군 고문 사망 사건(1987년)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 정치 민주화를 이끈 지 올해로 26년이 됐지만, 경제민주화, 남북 화해·통일, 역사 바로 세우기 등 그가 나서야 할 일들은 수북이 쌓여 있다. 이 때문에 노(老) 신부의 마음은 바빠 보였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인권의학연구소에서 함 신부를 다시 만나 민주화 이후의 삶에 대해 인터뷰를 이어 갔다.

민주화 이후 함 신부와 사제단에 전국민적 시선이 다시 쏠린 건 2007년 10월 김용철(55)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때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정치 민주화의 물꼬가 터진 지 꼬박 20년째 되던 해다. 삼성그룹 구조본부 법무팀장 출신인 김 변호사가 “내 이름의 계좌에 삼성 비자금 50억원이 관리되고 있다”고 말문을 열며 시작된 사건은 17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한국 사회에 큰 소용돌이를 몰고 온다. 10월 29일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열린 기자회견 때 사제단은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계기로 경제정의민주화 운동을 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사제단의 고문인 함 신부도 회견 자리를 지켰다. 그는 김 변호사를 처음 만난 그해 10월 18일 당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김 변호사가 가까운 친구 등과 저를 찾아왔어요. 그는 자신이 삼성 탓에 당했던 고통을 쏟아냈어요. 예컨대 삼성에서 나온 뒤 검사 출신 선배와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했는데 삼성이 압력을 가한 까닭에 사건을 못 맡고 있다는 등의 얘기였습니다. 그러면서 비자금 조성 등 삼성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털어놨어요. 얘기를 다 듣고는 저와 동료 사제들이 김 변호사를 나무랐어요. ‘삼성에서 간부를 지낸 당신도 결국 공범자인데 이런 문제를 가지고 왜 왔느냐’고 했죠. 그랬더니 ‘저도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해요. 삼성을 위해 일하면서 잘못한 일은 인정하지만 삼성이라는 기업과 그 책임자가 저지른 범죄가 워낙 크니까 자기고백을 통해 삼성의 범죄도 고발하고 싶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모두 알아채고 정화시켰으면 좋겠다는 취지였어요. 김 변호사는 당시 삼성이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제가 물었죠. ‘김 변호사, 당신 감옥 갈 각오 돼 있소?’라고요. 그랬더니 ‘돼 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럼 같이 하자’고 했죠.”

 

▲ 함세웅(왼쪽 세 번째) 신부가 지난해 8월 26일 서울 중구 신당6동 청구성당에서 사제 은퇴를 앞둔 마지막 미사를 집전한 뒤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 함세웅 신부가 지난해 10월 22일 서울광장에서 ‘유신 40주년에 대한민국을 다시 생각한다’를 주제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국시국기도회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왼쪽 두 번째) 신부가 북한 조선종교인연합회 장재언(가운데) 위원장 등 남북 대표단 일행과 2010년 3월 중국 다롄 뤼순 옛 일본군 감옥 ‘안중근 의사 추모실’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이후 사제단은 김 변호사를 보호하며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사회 전방위로 진행된 불법 로비의 수법, 검찰·언론계·관계와의 유착 의혹 등 파괴력 있는 폭로를 이어 갔다. 함 신부와 사제단은 이 사건이 단순히 거대 재벌의 비리를 폭로하는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경제민주화의 신호탄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우군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검찰과 언론은 물론 믿었던 노무현 정부까지도 사건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삼성 돈의 힘이 컸어요. 부끄럽게도 노무현 정부는 삼성에 이미 예속돼 있었어요. 노 대통령은 물론 그 아래 참모진도 몇 명 빼고는 모두 삼성 편에 서 있었습니다. 어렵게 특검까지 끌고 갔지만 특별검사가 삼성에 종속된 사람이었어요. 특검은 의혹 대부분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일부 조세포탈 및 배임 등의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했어요. 결국 우리가 폭로한 삼성의 불법 행위는 대부분 무죄 판결이 나고 삼성 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에 대해서 이건희 회장의 배임 혐의를 인정해 유죄판결을 내리는 등 법의 심판이 일부 있었지만 이마저도 넉달 만에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해 줬습니다. 삼성이 우리 사회 전반을 다 돈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체감했어요. 그때가 기업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할 절호의 시기였는데…. 몇몇 기자들이 비아냥대며 ‘신부님이 이건희 회장 비자금을 오히려 찾아준 셈이에요. 이건희씨에게 감사받아야 해요’라고도 했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계나 법조계, 언론계와 달리 자본권력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천주교단은 사제단에 큰 힘이 돼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함 신부의 설명은 달랐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자 가운데 삼성에 다니는 간부들이 많고 대기업으로부터 사회복지 후원금을 많이 받으니까 기업의 불법성을 고발하지 못해요. 어찌 보면 교회는 기업이 흘리는 떡 부스러기를 집어먹고 사는 거죠.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이었을 당시 김 변호사를 도왔던 전종훈(57) 신부에게 안식년을 명분으로 3년이나 성당을 맡기지 않았어요. 권한을 남용한 것이고 부끄러운 일이죠. 신부들이 삼성비리 폭로에 앞장서니까 거북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함 신부와 사제단은 정계 등의 인사들로부터 ‘왜 삼성 같은 기업을 몰아세우느냐’는 원성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함 신부는 “우리도 국제적 기업인 삼성이 잘되길 바랐다. 다만 건강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희망한 것이다. 불의한 오너 일가가 적은 자본으로 기업을 사유화하면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 결과는 사제단의 애초 계획과는 엇나갔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자신의 회고록에 “열병같은 진실을 끌어안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만나면 나는 말한다. ‘사제단이 있다’고…”라고 적을 만큼 함 신부와 동료 사제들에 게 깊은 경의와 신뢰를 표했다.

함 신부가 지난해 8월 사제 생활에서 공식 은퇴한 뒤 가장 공을 들이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김근태 기념 치유 센터’ 건립이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인권의학연구소가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사업인데 고문 등 잘못된 공권력 탓에 정신적 상흔을 껴안고 사는 이들을 위한 치유 시설을 만들려는 계획이다. 함 신부와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의 노력 속에 건립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고문 피해자이자 ‘민주화의 대부’인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의 이름을 내걸었다. 함 신부가 고문 피해자 문제에 다시 관심을 가진 것도 김 전 의원 때문이다. “1970~1980년대에는 정부기관으로부터 고문당한 분들 이야기를 듣고 마음 아파 밤잠을 설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수십년을 들으니까 저도 고문 피해의 무서움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거예요. 김 전 의원한테도 마찬가지였어요. 김 전 의원과는 1980년대 만나 30년을 가깝게 지냈거든요. 우리들은 그에게 ‘민주화 선봉가로 앞장서라, 더 뛰어라’, ‘왜 그렇게 행동에 신중하냐’라고 채근하고 등을 떠밀었어요. 그런데 2011년 12월 30일 김 전 의원이 돌아가신 뒤 그가 서울 남영동의 경찰 대공분실에서 전기 고문 등을 받아 평생 후유증을 앓은 사실이 재조명됐잖아요. 그제서야 ‘아, 우리가 김 전 의원이 고문당한 사실을 잊고 지냈구나. 사선을 넘나든 분께 위로와 치유를 주기보다는 너무 가혹하고 모진 주문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문을 견뎌 냈던 김 전 의원같은 분들 덕에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열매를 맛보고 있잖아요.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김 전 의원 같은 분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공권력 피해자와 그 자녀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센터 건립을 위해 힘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또 지난 1월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역사 바로세우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함 신부는 진보정치 진영의 원로다. 지난해 18대 대선 때도 재야원로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측에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 결과는 그가 바랐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대통합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대(大)자가 들어가면 항상 거짓이 있어요. 통합은 진실과 정의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해요.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구원론을 통합원리와 해체원리로 설명하거든요. 통합원리는 사랑, 용서, 자비, 은혜, 상생 같은 것이고 해체원리는 회개, 갈등, 뉘우침, 고발 같은 것이에요. 둘 다 예수님의 가르침이지요. 큰 집을 지으려면 잘못 지어진 집을 허물고 땅을 파야 해요. 이것이 해체 기능이에요. 그런데 아무런 기초작업 없이 큰 집만 짓겠다는 것은 거짓이죠. 다시 말해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된 과거를 뉘우치고 청산해야 화합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거예요. 구호는 구호일 뿐 정치가 될 수는 없어요.”

함 신부는 야권에도 애정 어린, 그러나 따끔한 질책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열린우리당 의원의 절반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과 똑갚습니다’라고요. 성향과 관계없이 정치꾼인 거예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야권 내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정신 못 차리는 것이 가슴 아프죠. 정치인 본연의 소명대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야당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정권교체는 저절로 이뤄지겠죠. 한 시민으로서 저도 야당 의원들을 달래고 채찍질하며 끌어가야겠죠.”

함 신부에게 “세간의 평가처럼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진보, 보수로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모순된 답변인 듯 들려 재차 물었다. “보수와 진보를 지금처럼 나누는 언론의 인식이 잘못됐어요. 원래 보수라는 단어는 뜻이 좋아요. 한자로 ‘보전하고 지킨다’는 것이니까요. 즉 그리스도인으로서는 하느님의 진리를 지키고 보전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 가치를 지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돼 있어요. 결국 참된 진리를 지키고 보전하면 진보주의자가 되는 거죠. 언론이 말하는 보수는 수구라고 생각해요. 역사를 왜곡하고 친일·반민족 행위를 칭송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겠어요.”

사회 약자의 편에 서서 한평생을 산 함 신부에게 “희망을 잃고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행복해질 수 있는 비책이 없느냐”고 물었다.

“우선 ‘어려움아, 놀자’라고 생각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요즘 신학에서는 하느님을 근엄하고 초월적인 존재로만 인식하지 않고 인간과 함께 뛰어 노시는 하느님,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 신으로 인식하거든요. 두 번째로는 우리보다 어렵고 억울한 사람을 생각해 보는 거예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면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가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이 사회에 주신 메시지는 아마 ‘그래, 나 억울한 사형수다. 네가 힘들고 억울해도 나보다 억울하냐. 난 죽었잖아. 넌 그래도 살아 있잖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청년들 가운데 피자를 10분 빨리 배달하려다 사고로 숨진 이도 있고 제철소에서 일하다가 용광로에 빠져 세상을 떠난 이도 있잖아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찾아나서야 할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친 뒤 젊은 기자는 “종교·사회의 원로에게 살아가면서 힘이 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곧바로 함 신부의 답이 돌아왔다. “원로? 나 원로 아녜요. 아직 청춘이지(웃음).”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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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눈감은 그림자 엄마와 추억 지우는 남자

[황유미, 그리고 6년 ⑤] 한혜경 씨 모녀와 정희수 씨의 하루

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19 오전 7:51:18

 

'삼성 백혈병'으로 상징되는 산업 재해 피해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끝내 산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등진 희생자의 유가족은 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이들의 일상을 따라가기로 한 것은 이 문제가
지금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를 기록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이 매듭을 풀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이 다르지 않은 고통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경고음을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8년째 투병 중인 한혜경 씨와 그의 어머니 김시녀 씨, 작년 5월 세상을 떠난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를 만났다. 이들의 평범한 하루를 기록했다. <편집자>

혜경 씨와 그림자 엄마

엄마는 그림자 같았다. 하루 종일 혜경 씨 옆을 떠나지 않았다. 보행기를 잡고 걷는 딸의 뒤를 엄마는 왼발 오른발 맞춰가며 따라 걸었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함께였다. 그렇게 8년. 엄마는 딸의 삶을 따라 살고 있었다.

 

 

▲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학교 병원에서 만난 한혜경 씨와 어머니 김시녀 씨 ⓒ프레시안(최형락)


혜경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1995년 10월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수백 개의 칩이 꽂힌 회로기판솔더크림을 바르고 챔버(가열기)에 넣었다 뺀 뒤 까맣게 타버린 불량을 체크하는 일을 했다. 솔더크림의 주성분은 납. 안전에 관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 채 2001년까지 6년을 일했다.

2005년 소뇌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크기로 봐서 7~8년은 된 종양이었다. 머리를 열고 종양을 제거했다. 예전 같으면 수술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지만 수술은 감행됐다. 종양은 다 제거되지 않았다. 목숨은 살릴 수 있었지만 후유증은 컸다. 지체장애, 시력장애, 언어장애 1급. 제대로 걷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산재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 연관성이 없는 개인 질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심까지 불승인되자 2011년 4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걸었다. 2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다. 오는 4월 12일 예정된 것까지 공판만 여덟번 째다.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사물이 여러 개로 보이는 복시 때문에 안경알 한쪽을 뿌옇게 만들어 놓았다. 왼 눈은 쓰지 않는다. 두 다리는 중심 잡기와 힘 조절이 되지 않는다. 1년 전부터는 보행기를 잡고 걷게 됐지만 아직 혼자 걸을 수는 없다. 듣고 생각하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말은 느리고 어눌하다. 한 자 한 자 힘주어 내는 음절을 조합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다.

 

밤에는 두세 차례 꿈을 꾼다. '학교 가야지'라고 잠꼬대를 하면서 신발을 신으려고 내려오다 넘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서울대 분당병원에 입원했을 때 기절이 잦아 먹기 시작한 약 때문에 생긴 증상이다. 아침에 9알, 낮에 2알, 저녁에 9알의 약을 먹고도 자기 전에 꿈 안 꾸게 하는 약 4알을 먹어야 한다.
 

 

▲ 강원도 춘천의 강원대 병원에 입원한 혜경 씨. 이 병동에는 뇌질환 환자가 많다. ⓒ프레시안(최형락)

 


어머니 김시녀 씨는 딸 간병 생활이 8년째다. 이젠 병원 생활에 이골이 나서 집에는 1~2주에 한 번밖에 들르지 않는다. 병원이 더 편하다고 말한다. 힘든 때는 아플 때다. 딸을 돌봐야 하니 아파도 가지 않던 병원에 조금만 몸이 이상해도 달려가곤 한다. 딸 때문에 아플 수도 없다. 때론 아프지도 못하는 게 서럽기도 하다.

엄마의 하루는 혜경 씨와 정확히 일치한다.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혜경 씨를 목욕시키고 7시 반이면 아침을 먹는다. 9시 반에 재활 치료, 11시 반에 작업 치료를 다녀온다. 점심을 먹고 걷는 연습을 하고 3시 15분에는 자전거 운동 기구를 태운다. 30분이던 것이 이용자가 많아 그마저 25분으로 줄었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 간이 침대에서 잠이 든다.

행복한 가정 이루는 꿈, 그러나…

엄마는 혼자 식당을 해서 남매를 키웠다. 고생하는 엄마를 본 딸은 착하고 속 깊게 컸다. 하루 500원을 주면 아끼고 모아 한 달에 2000원을 쓰고 1만3000원을 돌려주는 딸이었다. 삼성에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삼성은 일의 강도가 셌지만 성과급이 많아 일을 많이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6년을 다녔다. 김시녀 씨는 삼성에는 똘똘하지만 가난한 아이들이 많이 다녔다고 기억한다.


혜경 씨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좋은 남편을 만나 아이들과 행복가정을 꾸리는 것. 그녀는 평범하게 살았고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물론, 이 소박한 꿈을 꾸게 된 데는 불우했던 유년의 기억도 한몫했다. 혜경 씨는 홀로 남매를 키운 엄마에 대한 애착만큼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도 강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혜경 씨의 꿈은 병이 생기면서 산산조각 났다. 고생하며 마련하고 지킨 아파트병원비로 고스란히 날아갔다. 모아 놓은 돈도 거의 다 써버렸고 지금은 월세집을 얻어 산다.

"뭐 생각해?"

"또 늦어진 거."

"몇 년을 기다렸는데 또 못 기다리겠냐."

"엄마 미안해."

"뭐가?"

"엄마 인생이 없어졌으니까."

"넌 엄마가 이러면 버릴 거니?"

"아니 그건 아니고…."

"혜경이 네가 나야."

혜경 씨는 밤마다 간이 침대에 누우며 편하다고 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 병실의 밤은 편할 수 없다. 심전도혈압 체크, 채혈 등으로 늘 어수선한 병실에서 8년째 잠드는 엄마를 보는 것은 그래서 미안하고 불편하다.

"엄마한테 잘해야 해요.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엄마는 내가 엄마라는데 저한테는 엄마가 저예요. 정말 미안해요. 그런데 언제까지 미안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착한 딸이 아니에요. 속만 썩이는…."


 
ⓒ프레시안(최형락)
 
 
 

 

"삼성,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다"
 
 

 

혜경 씨가 그림자 엄마를 멀리하는 순간이 있다. 삼성 얘기를 할 때다. 엄마가 속상해 하는 것이 싫어 다른 데 가 있으라고 한다. 엄마가 가지 않으면 입을 잘 열지 않는다. 그녀가 서투른 말투로 말을 시작한다. 느리지만 얼굴과 목소리에는 독기가 서렸다.

"내 삶이 엉망이 됐어요. 이건 너무하지 않아요? 이게 다 삼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열받아요. 마음앓이 많이 했어요.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어요. 돌릴 수만 있으면 돌리고 싶어요. 하! 내 인생 돌려내."

삼성은 3년 전 합의를 종용했다. 엄마는 너무 힘이 들어 합의에 응할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딸이 반대했다. 딸만큼이나 제정신일 수 없었던 엄마는 딸의 뺨을 네 대나 때렸다. 엄마가 이렇게 힘든데 언제까지 승산 없는 싸움을 하자는 것이냐고 엄마는 울분을 토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삼성의 합의 제안은 산재 신청 기한을 넘기게 하려는 꼼수였다. 제대로 보상할 계획도 없었다. 그걸 알고 항의하자 그쪽에서도 시인한 일이다.
 
 

 

엄마와 딸, 꿈이 남아 있을까?
 
 

 

8년간의 투병은 모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다. 아직도 투병은 끝나지 않았고 더디게 진행 중인 소송에서 무엇을 더 빼앗길지 알 수 없다. 어떤 희망도 꿈도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모녀는 삶의 계획을 세우고 작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엄마의 바람은 분명했다. 어떻게든 작은 집이라도 마련해 딸이 혼자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보행기를 잡고 혼자 걷고 밥을 떠먹을 수 있으면 더는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2년쯤 뒤엔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있다.

의외였지만 혜경 씨도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엄마 발을 주무르고 있으면 엄마가 시원하대요. 안마사 하고 싶어요. 아픈 사람 시원하게 해 주고 싶어요. 풍 걸린 사람도 고쳐주고…. 그런데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혜경 씨도 스스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하면 되지. 왜 못해"라는 말로 딸의 희망을 홀로 긍정했다.


모녀의 하루가 저물었다. 춘천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밤 기차 안에서 창 밖은 암흑뿐이었다. 하지만 창밖에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기차는 새벽이 오고 해가 떠오르면 서서히 밝아지는 아침을 달릴 것이었다.

 
▲ 엄마가 혜경 씨의 손을 잡고 있다. 혜경 씨는 수술 이후 시력이 악화되고 몸의 균형을 제대로 못 잡아 넘어지고 부딪혀 상처가 많다. ⓒ프레시안(최형락)

 
▲ 엄마는 마치 그림자 같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작업 치료. 핑크색을 좋아하는 혜경 씨가 오늘은 파스텔톤 파란색을 마음에 들어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작업 치료 중 색칠하기를 하고 있는 혜경 씨. 힘 조절이 안 돼 큰 필기구를 두 손으로 잡아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재활 치료 중 혜경 씨가 선생님들과 같이 만들었다는 모형물을 들고 어머니가 자랑을 한다. 재활에 열심인 혜경 씨는 더디지만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딸과 엄마는 8년 동안 병원 생활을 함께했다. 둘 다 상대방이 자기라고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산재 불승인 이후 2011년 행정소송을 걸었지만 2년이 되도록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고 있다. 오는 4월 12일 8차 공판이 열린다. ⓒ프레시안(최형락)

 
▲ 오후 3시가 넘으면 자전거를 탄다. 혜경 씨는 다리에 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힘 조절이 잘 안된다. ⓒ프레시안(최형락)

 
▲ 혼자 움직이는 딸을 엄마가 급히 뒤쫓는다. 혜경 씨는 1년 전부터 보행기를 잡고 걷기 시작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의 한 정육점. 정희수 씨가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큼지막한 화면에 가족 사진을 띄웠는데 넘겨도 넘겨도 사진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눈앞의 가족은 너무 멀리 있었다. 아내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은 부산에 내려보냈다. 혼자 사는 가장에게 사진은 큰 재산이었다. 사진을 넘기며 그가 살아온 얘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아내와 첫 만남, 그리고 이별

희수 씨가 아내를 만난 것은 2002년 크리스마스였다. 부산에서 막 서울에 올라온 그는 차를 몰고 천안까지 내려가 윤정 씨를 만났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윤정 씨는 4촌 누나의 회사 동료였다. 셋째 딸이라서 그런지 착해 보였다. 1년 반의 연애 끝에 2004년 5월 대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변변한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상가 2층에 작은 방을 마련해 살았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조금씩 집을 늘려가면서 행복도 커졌다. 아들딸 하나씩을 뒀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2010년 5월 5일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급히 응급실로 옮겼다. 머리 사진을 찍자마자 중환자실로 옮겨야 했다. 교모세포종, 뇌암이었다. 병원은 시한부 삶을 선고했다.

병세가 깊어졌다. 말수가 적어지고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간병을 하면서 가게에는 신경 쓸 수 없었다. 처남이 도와줬지만 고기 장사는 단골 장사라서 주인이 자리 비우면 매출은 줄게 마련이었다.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다. 보험금이 실비보다 적게 나왔다. 결국 벌어 놓은 돈을 까먹기 시작했다.

희수 씨는 좋다는 것은 모두 해 먹였다. 주위에서 가망이 없다며 말렸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병을 알고부터 2012년 5월 7일 세상을 떠나기까지 아내는 딱 2년을 살았다.
 
▲ 정희수 씨와 이윤정 씨. 부부는 많은 곳을 놀러 다녔다. 즐거운 한때는 사진으로만 남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삼성과 맺은 악연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쓰던 유독물질 때문이었다. 이윤정 씨는 1997년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6년을 일했다. 반도체 칩이 꽂힌 기판을 챔버에 넣고 빼며 불량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상상이나 했을까. 2003년 퇴사하고 7년이나 지났는데 뇌암이 발병했다. 2010년 7월 산재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2011년 4월 행정소송을 걸었다. 재판은 지지부진했다. 올해 2월 22일 7차 공판이 열렸지만 공판만 거듭될 뿐 아직 1심 판결도 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그 사이 윤정 씨는 세상을 등졌다.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아내를 잃은 남자의 삶은 온전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부산 큰누님 집으로 보냈다. 가게에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데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카들이 커서 그나마 가능했다. 그는 혼자가 됐다. 억울한 마음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 시위에 100번도 넘게 갔다. 갈 때마다 경호원들이 막았다. 울분이 치밀어 싸웠다. 그는 투쟁이니 민주화니 노동운동이니 그런 건 모르고 살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파탄 난 가정의 가장'이어서 그곳에 갔다고 했다.

황유미 씨가 죽은 지 6년 되던 날 희수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갔다. 공장을 나오는 꽃다운 얼굴들이 보였다. 나오는 얼굴마다 밝지 않았다. 불쌍하고 마음이 안 좋았다. 살아서 윤정 씨의 표정이 그랬으리라.

ⓒ프레시안(최형락)

혼자 남겨진 남자

희수 씨는 부천에서 10년을 살았다. 서울에 올라온 뒤 방학동에 잠깐 살다 이곳에 이사와 정착했다. 장사를 시작한 것도, 결혼해 아내와 집을 늘려가며 자리를 잡은 것도 이곳이었다. 아이들도 여기서 키웠다. 그런데 여기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고향에 내려갈까 생각도 많이 했지만 떠나기는 또 쉽지 않았다.

오늘은 옆집 과일가게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마음 넓은 주인 아주머니가 불고기와 미역국을 끓였다. 혼자 지내다보면 끼니를 잘 챙겨먹지 않는다. 아침은 거를 때가 많고 점심은 사먹거나 가게에서 라면으로 대충 때운다. 그래서 이웃이 신경 써줄 때가 더없이 고맙다.

과일 가게에 들어섰다. 강아지 사랑이가 뜨끈한 앉을 자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옆에 앉아 희수 씨는 전화를 건다. 부산에 있는 아이들이다. 뭘 잘못했는지 일곱 살 딸이 고모한테 혼나고 울고 있다.

"아빠~~~."

"고모한테 혼났어? 괜찮아."

"아빠 보고 싶어."

"아빠도 보고 싶어."

"아빠 언제 와?"

"4월에 갈게."

"4월 언제? 6일?"

"글쎄 15일쯤? 그때 상황 봐서 갈게. 비행기 타고 숑 갈게 기다려."

"아빠 빨리 와~~~. 보고 싶어~~~."

아이가 서럽게 운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고개 숙인 희수 씨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는데......(한숨) 아이들 울고, 아빠 보고 싶다 하는데 그런 마음 누가 알겠어요. 애들은 무슨 죄라고…."
희수 씨는 사별 후 상당한 우울감을 겪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지금도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낀다. 부산에는 두 달에 한 번 갈까 말까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가족 사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죠.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 않나요?"
 
▲ 화상통화. 아이들은 부산에 내려보냈다. 가게 때문에 돌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귀가.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엔 휑한 집에 잘 들어가지 못했다. 집에 들어섰다. 아이들 사진은 있는데 윤정 씨의 사진이 없다.

"처음엔 그냥 뒀는데 보면 자꾸 마음이 아파서…. 그래서 지금은 뗐어요"

그는 혼자 있을 때 아내 사진을 보기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추억을 조금씩 지워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희수 씨는 이 집에 살기 어려워 4월에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희수 씨가 방 안에 들어가 아내의 유품 상자를 꺼낸다. 상자 안에 공부했던 노트가 몇 권 보였다.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대신 공장으로 가서 언니 뒷바라지를 해야 했던 착한 아내는 늘 언젠가는 대학에 가겠다고 말하곤 했다. 아내의 유언도 자식들 공부시켜서 대학에 꼭 보내라는 것이었다. 공부 못해 대학 안 가고 공장 가면 싫다고. 윤정 씨는 결국 대학 가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는 그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뿐이다. 아픔을 지우기 위해 추억을 지워간다던 남자. 그는 그것을 지울 수 있을까? 돌리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홀로 남겨진 남자는 천천히 유품 상자를 덮었다.
 
 
▲ 부천시 송내동에 위치한 정희수 씨의 정육점. ⓒ프레시안(최형락)

 
▲ 고기는 단골 장사라서 주인이 꼭 자리를 지켜야 한다.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희수 씨. ⓒ프레시안(최형락)

 
▲ 희수 씨는 틈틈이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정육점 지하 창고에서 앨범을 들춰보는 희수 씨. ⓒ프레시안(최형락)
 
 
▲ 과일가게. 혼자인 희수 씨에게 신경 써 주는 이웃이다. 가끔 밥을 얻어 먹기도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퇴근 후 옆집에 들렀다. 강아지 사랑이(11)가 주인 아줌마의 품에 안긴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나마 화상통화 덕에 아이들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귀가 ⓒ프레시안(최형락)

 
▲ 아무도 없는 휑한 집에 혼자 들어서는 희수 씨. 사별 후 처음엔 집에 잘 안 들어오려고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윤정 씨의 유품을 열어본다. 대학에 가고 싶어 하던 아내의 노트. 주고받은 편지, 선물,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가족으로 북적이던 아파트에 혼자 사는 희수 씨는 4월 작은 곳으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는 그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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