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망 해킹 북한설, 왜 ‘국정원 사건’ 시기에 터졌나
(서프라이즈 / 두루객 / 2013-03-27)
지난 대선의 이미지 조작 중에 가장 유치하게 들렸던 것은 "휴전선은요?" 일화였다. 부친의 사망속에서도 20대 박근혜가 말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칼 테러' 당시의 "대전은요?" 이후의 이미지 조작으로 들렸다.
이 같은 이미지 조작 행태는 또한 많은 것을 암시했다. 위인전 일화 속의 박근혜로 묘사하려는 유치함과 더불어 군 경험 없는 여성이라는 핸디캡에 '확고한 안보관'으로 억지 보충하면서 그것만이 애국인 양 표현하는 천박함을 말해주기도 했다. 반공을 팔아 정권의 잘못들과 과오들을 희석한 박정희 스타일이 되풀이될 것도 암시했다.
▲ 조선일보는 3.20대란이 북한이 저지른 사이버테러라는 식으로 1면 기사에 보도했다. 출처:조선일보
아니나 다를까, 종편 등 친박근혜의 언론들은 연일 '북한보도'로 도배하고 있다. 보수진영들이 친북이라며 비난하던 진보진영들은 정작 아무런 반론도 없이 조용한데, 보수 언론들은 연일 북한에 대한 짝사랑으로 시끄럽다. 적대감을 가장한 정치적 목적의 안보장사가 아니라면 그들이야말로 북한과 가까운 공생 관계가 아니냐는 생각이 될 정도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 도발이 불러낸 현상이기도 하지만 당장에 전쟁이 터지기를 바라는 듯한 호들갑은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다. 어떻게 해서든 전쟁위기로 조성하려는 '응징' 및 '전투태세' 등 꺼리낌 없이 사용하는 그들의 언어들은 똘이장군의 총총한 눈빛들이 저리 가라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의 보수진영 애국주의자들은 왜 천안함 사건의 북한 소행설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지, 이 나라의 초계함이 북한 어뢰에 폭파되었다는 사실에 왜 부끄러움이 없는지, 천안함 의혹제기가 결과적으로 허술한 경계태세가 아님을 반증하는 것인데도 굳이 못마땅해하며 '종북 사냥'에만 여념이 없는지 이해가 안된다.
우리 군의 초계함이 북한으로부터 피격 받는 등의 허술한 경계태세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 수 많은 천안함 조작 의혹의 근거에도 불구 북한 소행설을 목놓아 주창하며 이 나라 정부의 무능을 확인하려는 모습들이 과연 보수적 애국주의자인지도 의심케 한다. 허술한 경계태세의 천안함 사건이었음에도 누구하나 책임을 지지 않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도 없다. 제 나라에 대한 자부심도, 책임을 묻는 행위도 없는 것이 어찌 애국자라 할 수 있나
급기야 박근혜 내각과 보수언론들은 북한의 해킹으로부터 속수무책인 대한민국임을 스스로 자랑하기도 했다. 전산망 해킹 사건이 터지자마자 북한으로부터 당했다고 대내외에 떠들고 다닌 것이다. 그러다가 아닌 것으로 판명된 해프닝도 이 나라의 외교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북한과 관련해 반대편의 주장들을 무시하고 툭하면 '북한발 안보장사'에 여념이 없던 새누리당 정권과 보수 언론들의 패턴에 의한 예견된 일은 아니었을까? 만에 하나 북한 도발에 대비하는 경각심의 북한탓으로 인정한다 해도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빈번할 때 돌아오는 '위기감 감소'는 도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묻고 싶다. A라는 사실에 ABC로 과장하는 호들갑식 태도로는 북한 문제를 풀수 없고 더욱 꼬이게만 할 뿐이다.
하지만 북한 탓으로 일관한 정부의 실수만으로 보기엔 어딘가 미심쩍기 그지 없다. 하필이면 원세훈 국정원장의 정치개입 지시 사실이 드러난 판국에 해킹 사건이 일어났는지, 우연의 일치도 이런 일치는 없다.
국정원 내부의 소행설로 번질까 봐 방통위가 사전에 '개인IP'의 소행으로 발 빠르게 정리 발표한 것이 아닌지 생각되기도 한다. 그만큼 새누리당 정권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음의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농협 해킹 등 디도스 사건이 북한 소행설로 단정 지을 때도 MB정부의 민간인 사찰 파문이 일어난 때였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드러난 지금 현재를 돌아볼 때 해킹사건의 주범이 국정원 내부의 소행이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언론이 파헤쳐야 할 몫이다.
하지만 종편과 조중동에서의 국정원 사건의 분량은 북한 보도와 비교해 세발의 피에 불과했다. 국가안보에 전념해야할 국정원이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정치개입 의혹으로 뒤범벅이 됐는데도 이 사건의 규명에 외면하는 것은 그들의 애국주의적 안보관의 북한보도가 스스로 거짓이었음을 말해준다.
5공실세 허화평이 박근혜의 '전두환 6억원'을 옹호하는 장면과 논문 복사로 물의를 일으킨 문대성 의원이 버젓이 출연하는 종편의 방송사 행태들을 보면 그들의 국가 정체성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을 정도다. 민주주의 규범을 유린한 반란 범죄자를 종편에 버젓이 출연하는 분위기의 박통 정권이 무슨 낯으로 북한의 독재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지, 그들의 국가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되려 되묻고 싶어진다.
허기야 이 나라의 수구보수세력 및 기득권층들은 겉으로야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지만 전쟁이 터지면 짐 싸들고 먼저 도망갈 사람들이다. 이러한 속설들은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새누리당에게 북한이란, 반공을 팔아 사회개혁 세력들의 발목을 잡으려는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성접대와 탈세, 부적절한 로비와 전관예우 등 온갖 부정부패의 장관 후보자들이 득세하는 박근혜 정부가 무슨 낯으로 북을 향해 "철두철미의 안보관과 나라 사랑'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따지게 될 요즈음 정국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이순신과 곽재우 등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장군들은 대부분 청빈했다. 적어도 어렸을 적 우리가 배웠던 위인전의 인물들은 그랬다. 그들은 당대의 부정부패와 위선에도 참지 못한 성품들이었다.
이 같은 위인전의 인물들이 당대 사람들의 존경과 평가에 의한 실체적 사실일 것으로 믿는 바이지만, 후세에 쓰고 남게 될 앞으로의 위인전에 객관성이 담보될 보다 철저한 검증의 시스템이 우선되는 작업이 없다면 역사 왜곡의 위인전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게 한다.
백선엽 박정희 이승만 등 옳고 그름에서 보나 역사적 기준에서 보나 보편적 기준에서 동 떨어진 이들 친일파 및 독재자들이 전쟁 영웅과 경제 부흥, 건국의 아버지로 칭송하려는 권력 세력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한, 더욱 그러하다
다양한 기준의 위인전이야 있을 수 있지만 왜곡성의 위인 전기가 교과서의 내용으로까지 채택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박정희 미화의 만화나 책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배포되고 있는 실정이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그 같은 거짓 구렁이가 통할 것인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여론 영향력이 크나큰 언론들의 거짓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로 막는 행태를 막을 수가 없다. 이명박 박근혜의 당선 과정에 진행된 사기성 주장들이 눈 앞에서 버젓이 검증되지 않고 통과되었던 혹세무민이 증명한다.
“이번에는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선인민을 대를 이어가며 괴롭히던 온갖 악의 세력들을 씨도 없이 모조리 박멸할 것이며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 아침을 불러 올 것이다.”
이 기사는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이 28일 ‘무자비하게 쓸어버리라’라는 정론에서 밝힌 첫 머리글이다.
로동신문 정론은 “온갖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적으로 살려는 인류의 지향과 염원은 더욱 강렬해지고 있으며 자주와 정의의 길로 나아가는 역사의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김정은 원수의 말을 중요하게 실었다.
이 신문 정론은 “말로 하던 때는 지났다. 사태의 엄중성과 심각성은 논의할 여지조차 없다. 신성한 우리 조국땅위에 기어코 핵 참화를 몰아오려는 날강도 미제와 상전을 등에 업고 허장성세하는 괴뢰들의 역스러운(역겨운) 발광은 위험계선을 넘어섰다.”며 조미, 남북간의 전쟁이 불가피 하다는 것에 유의했다.
신문 정론은 “우리는 이성이 한쪼박(한조각)이라도 남아있거나 현실에 대한 판단력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자들이라면 분별 있게 가려보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경고도 주었고 시간도 주었다. 그러나 사태는 역전시킬 수 없는 지경으로 번져 졌다.”고 말해 인내성이 한계에 다다랐음도 강조했다.
정론은 “단순한 위협공갈단계를 넘어 강도 높은 행동단계에 들어선 적들의 한마디 한마디 지껄임과 한초 한초의 추태는 그대로 조선반도정세를 극단에서 최극단으로 끝끝내 몰아왔다.”며 “우리가 예측하였으며 각오했던 바대로 힘과 힘의 대결, 핵과 핵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며 전쟁의 불가피성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가소롭다. 조선을 모르고 대세를 판별할 능력도 없으며 진짜 전쟁 맛도 보지 못한 어리석은 놈들이 제가 타죽을 불을 스스로 청하고야말았다.”며 “이 시각 미국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군작전전구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과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의 모든 적대상물들을 타격하게 된 전략로켓군부대들과 장거리 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 포병군 집단들이 1호전투 근무태세에 있다.”며 모든 공격 무기가 이미 미국 본토를 포함한 전략 기지를 겨누고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전장 아닌 전장에서 기고만장해진 미제침략군이나 불소나기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남조선의 풋내기전쟁사환군들이나 할 것 없이 이제 당장이라도 불을 내뿜게 될 정의의 포문 앞에 있다.”면서 “혀바닥도 제대로 건사할 줄 모르는 무지한자들의 푼수없는 떠벌임이 그들과 공존하는 모든 것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불벼락을 불러왔다.”며 “이른바 정밀타격을 논하던 자들이 미사일의 발사단추를 누르기도 전에 주검으로 되어버릴 판가리 성전의 시각은 왔다.”고 일전을 벼르고 있음도 확인했다.
아울러 “자비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최고존엄을 해치기 위한 악랄한 작전계획까지 뻐젓이 광고한 살인마들을 어찌 한 놈이라도 살려 둘 수 있으랴. 이제 진짜로 총포성이 울리면 그것은 정의와 불의, 진보와 반동, 애국과 매국간의 가장 격렬한 사상적 및 계급적 대결로,기어이 끝장을 보고야말 선과 악의 총결산으로 될 것이다. 누구의 사상이 옳고 누구의 정신이 강한가가 피와 불로써 판가름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선군조선을 너무도 모른다. 구보다 평화를 갈망하는 인민이여서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는 원수들에 대한 증오심도 남다르다. 이 증오의 불길은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이 세월에 한시바삐 영원한 종지부를 찍고야말 의지를 백배천배로 굳혀주고 있다.”고 말하고 “정의의 싸움이다. 이제 도래하게 될 백두산 혁명강군의 실제적인 군사적 행동은 우리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하는 정의로운 성전의 통쾌한 결속으로 될 것”이라고 정의의 전쟁임을 과시했다.
로동신문 정론은 “자주권과 존엄을 누구보다 귀중히 여기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숨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우리 인민이며, 망국민의 설음안고 천날 만날을 보내기보다, 노예로 백년천년을 살기보다 차라리 존엄을 지켜 사생결단의 전장에 웃으며 뛰어들 것”이라며 “항변이나 해보다가 물러서는 그런 나라가 아니며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고 승리를 자신했다.
이 신문 정론은 “설사 상대가 세계패권을 추구하는 미국이 아니라 그보다 열배 더 강한 적이라 해도 우리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일단 붙으면 지구를 통채로 결딴내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끝장을 보고야말 것”라며 “모든 준비가 완전무결하다. 핵전쟁이면 핵전쟁, 그보다 더한 전쟁도 각오하고 있고 대비하고 있다. 승리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은 천만군민의 심장에 만장약 되어 있다.”고 승리를 낙관했다.
정론은 “역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전설적 영장이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원수님께서 우리의 진두에 계신다. 단 한번의 싸움으로 적들을 괴멸시킬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승리의 작전도가 있다.”는 신심을 드러내고 “조국수호는 방어만으로는 될 수 없다. 우리의 신성한 영토와 영해, 영공이 바야흐로 핵구름 속에 잠길 위험에 처한 이 시각 기회만을 노리는 침략자들의 선제타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제공격 신호를 보냈다.
또한 “불을 불로 진압하고 핵을 핵으로 다스리며 불의적인 침략을 불의적인 공격으로 쳐 물리치기 위한 선제타격의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선제타격은 일시에 전면불바다, 일격에 완전소탕, 단숨에 최후승리에로 이어질 것”이며 “명령만 내리면 백두산총대는 첫 순간타격으로 적들이 다시는 솟아나지 못하게, 다시는 이 밝은 세상에서 잡소리를 치지 못하게 깨끗이 쓸어버릴 것”이라고 위협적 발언을 이어갔다.
이어 “그 무슨 원점타격과 지원세력, 지휘세력에 대한 응징의 기회라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망상하는 자들을 후회 할 새도 없이 연기로 만들어버릴 우리의 타격”이라며 “공세적인 대북정책이요, 제거우선순위목록이요 뭐요 하는 놈들을 잿가루로 만들어버릴 정의의 타격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의 선제타격은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기세를 올렸다.
아울러 “인디언의 시체더미에 나라를 세우고 《우리는 자기의 눈동자처럼 노예제도를 사랑한다.》라고 떠벌이던 살인마의 후예들, 설사 앞에 있는것이 어린이건 노인이건 손이 떨려서는 안 된다고 줴치며 이 땅을 피의 살육장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철천지 원수들이 그대들의 조준경안에 들어있다.”며 “쏘고 또 쏘라 복수를 위하여, 존엄과 승리를 위하여. 부모형제들이 모진 시련 속에서 허리띠를 조이며 만들어준 그 피절은 총포탄을 한발도 남김없이, 한발도 빗나감이 없이 명중 또 명중시키라.”고 고무했다.
특히 “조선을 분열시켰으며 조선 사람들 끼리 싸우게 하여 막대한 어부지리를 얻는 미국놈들이 주범이지만 조국이 유린당하고 있는 것은 살아 숨 쉴 한푼의 가치도 없는 특등 매국노들 때문이기도 하다.”며 “사대와 매국으로 더러운 목숨을 부지해가고 안락을 위해서라면 민족의 대참화 앞에서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는 추물들을 일찌감치 제거하였더라면 과연 미국놈들이 그처럼 오만하게 날뛸 수 있었으며 반만년민족사에 오늘과 같은 비장한 사태가 어찌 도래하였을 것인가.”라면서 “나라와 민족을 서슴없이 핵전쟁의 도가니 속에 밀어넣는 반민족적인 무리들이 권력의 탈을 쓰고 침략자들과 한배속이 되여 객기를 부리는 한 평화나 번영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타격목표는 남조선인민들이 아니라 공화국을 겨냥한 모든 미군핵 전초기지들과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침략군대들, 괴뢰반동 통치기관들과 악질적인 친미주구들”이라고 밝혀 사대매국 세력을 징벌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로동신문은 “우리는 삼천리 아름다운 내 나라 강토안에서 핵먼지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무고한 남조선인민들이 불바다에 잠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우리의 타격은 과녁마다 정확히 조준하여 격파시키는 초정밀타격이며 우리의 성전은 남조선인민들을 미제의 마수에서 구원할 정의의 조국해방전쟁,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전쟁의 성격을 전했다.
정론은 “남조선인민들이여, 반세기이상이나 그대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그대들의 딸들을 처참하게 능욕한 미국놈들에게 아부하는 역적들에게 최후의 심판을 내릴 때는 왔다.”며 “그대들의 목숨을 핵전쟁의 제물로 바치고 그대들의 자식들을 불바다 속에 밀어 던지는 친미 호전광들을 단호히 징벌하라.”고 호소했다.
이신문은 “인류역사상 가장 심각한 싸움이 곧 벌어질 것이며 세계정치지도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정의의 새로운 승리, 진보의 위대한 승리가 기록 될 것이다. 전쟁의 악마는 영원히 사라질 것”라고 조선이 계획하는 전쟁이 세계의 변혁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천만군민이 최고사령관동지께 심장으로 맹세한다. 항일의 피바다, 눈보라 만리를 헤쳐 온 혁명 선열들이,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한 1950년대의 영웅 전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의 최후성전에서 기어이 승리하고 전승의 열병광장에 최고사령관동지를 높이 모실 것”이라며 “이번에는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선인민을 대를 이어가며 괴롭히던 온갖 악의 세력들을 씨도 없이 모조리 박멸할 것이며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 아침을 불러 올 것”이라고 말해 조미대결전에서의 승리를 거듭 확신했다.
로동신문 정론은 “희세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해와 달이 다하도록 받들어 모시고 이 땅위에 세세년년 융성번영만을 안아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신문은 끝으로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정의의 불길이여, 더욱 거세차게 타오르라,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라”라며 정론을 마감했다.
한편 조선은 한미양국은 몰론 동맹국에 대해서도 연일 강도를 높이며 전쟁의 불가피 성을 천명하고 있어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재철 MBC 사장이 26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의해 전격 해임됐다. 만시지탄이지만 사필귀정이다. 그가 공영방송사 수장 자리에 앉아 있었던 3년은 길고도 혹독한 세월이었다. 누구보다 MBC 구성원들에겐 지나온 3년이 가장 고통스런 신산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복기해 보면, 그가 2010년 3월 MBC 사장에 취임한 이후 공정방송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구성원들이 공정방송 회복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와 최장 기한인 170일 동안 파업을 벌였지만, 김 사장은 구성원 200여 명에게 해직과 징계 등의 칼날을 휘둘렀다. 온갖 권세를 동원해 맘껏 휘둘렀다. 그 결과 그의 MBC 사장 재임시절 '최장 파업', '최고 소송', '최고 해고'란 진기록을 남겼다.
100명 이상의 MBC 노조원들이 방송사에서 쫓겨난 것은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로 남는다. 국내 언론시장의 황폐화와 민주주주의 퇴보는 물론 방송사 공정성 파괴로 이어진 것은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끈질긴 방송장악 때문이다.
"MB를 위한 방송 'MB씨'" 3년... 신뢰도 '곤두박질'
낙하산 사장으로 취임한 방송사 사장들이 저지른 죄과는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그 중 MBC는 신뢰도와 시청률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면서 공영방송사 이미지가 만신창이가 됐다. 오죽했으면 MB를 위한 방송 'MB씨'라는 오명을 들었을까. 정권에 대해 불리한 사안은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하는 행태로 불공정보도를 수미일관되게 했다.
지난 대선기간에는 최악의 편파보도로 따가운 눈총을 샀다. MBC의 대선보도가 트위터리안과 누리꾼들이 7차례 선정한 '최악의 대선보도'에서 무려 5차례나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런 와중에 김 사장은 무용가 출신의 한 여성 사업가에게 일감을 몰아주거나 업무와 무관한 특급호텔·명품가게 등에서 법인카드 사용을 남발한 것이 내부에서 제기돼 경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또 감사원의 카드 사용내역 제출과 국회 출석요구를 거부해 고발당했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귀금속·상품권 구입·호텔 이용 등 노동조합이 제기한 의혹 해소에 필요한 법인카드 사용 내역 제출을 거부한 김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설립 이래 MBC 사장이 임기를 1년여 앞두고 해임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껏 버텨온 게 신통할 정도다. 그의 해임으로 그동안 쌓여온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MBC 지분의 70%를 보유한 방문진과 나머지 30%를 보유한 정수장학회를 들여다보면 얼마든지 제2 또는 제3의 김재철의 등장을 예견할 수 있다. 우선 방문진 구조를 들여다보자.
MBC 사장 임명하는 방문진 이사진, 방통위원장이 임명
▲ 방문진 도착하는 이진숙 MBC본부장 이진숙 MBC기획조정본부장이 26일 오전 김재철 MBC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결정되는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방문진은 MBC의 대주주로써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MBC 사장의 임명권, 해임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방문진 이사들의 임명권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갖고 있지만 방통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데 문제가 크다.
대통령은 방문진에 얼마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방송사 사장에 낙하산을 언제든지 내려 보낼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 아직도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 독립성과 방송의 공정성 확보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난 5년 이명박 정부는 이를 권력유지에 십분 활용해 왔다.
방문진을 보라. 전체 이사 9명 중 여당 추천 이사 6명, 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구성돼 친여성향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뿐만 아니라 KBS 사장 선임과 직결된 KBS 이사회 구성도 문제다.
11명의 이사로 구성되는 KBS 이사회도 방통위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KBS 이사회 역시 정부·여당 측 7명, 야당 측 4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어 친정부·여당 편향적 인사가 사장에 임명될 공산이 크다. 이 역시 공영방송 정상화와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 3년간 MBC 김 사장의 해임안이 세 차례나 상정됐지만 모두 부결된 것도, KBS가 낙하산 사장 때문에 홍역을 치른 것도 바로 이런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MBC 경영을 감시 감독해야 할 방문진이 김 사장의 비리를 싸고돌며 사태를 키운 주역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방문진이 달라지기 위해선 가장 먼저 정치적 독립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최고 권력층의 입김이 스며들지 않도록 이사진 구성은 물론 운영체제 등을 대대적으로 수선해야만 한다. 대통령의 눈치나 보면서 거수기 노릇을 하도록 방치한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도 제2의 김재철 사장과 같은 인물이 낙하산으로 투하돼 끔찍한 사태가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의 언론정책이 초기부터 심상치 않다.
방통위원장 또 대통령 측근 기용...'최시중' 악몽 떠올려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박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 내용을 얼핏 보면 원칙과 소신이 담겨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은 방통위원장에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이자 <동아일보> 출신인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을 내정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방통위원장에 대통령의 측근을 앉히려는 것에서부터 방송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MB정부 5년 동안 보아왔던 '방통대군 최시중'의 악몽이 절로 떠오르게 한다.
게다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의 방송통신 융합 등 ICT(정보통신기술) 정책을 전담할 2차관에 KT 부사장 출신을 임명한 것도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는 말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통령이 취임하던 지난달 25일 사퇴 의사를 전격 밝혔던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그 후 한 달이 넘도록 이사장 자리를 유지하면서 월급까지 받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자진사퇴 의사를 언론에 밝힌 뒤 최근까지 정수장학회 사무실로 출근한 배경이 수상쩍다. 정수장학회는 지난 대선기간 내내 수많은 의구심을 증폭시키면서 당시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로 작용했다.
결국, 방문진 이사진 구성과 정수장학회가 이럴진대 MBC 김 사장 퇴진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락으로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고 파괴된 공정성을 복구하기 위해서 MBC가 당장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독립을 위한 법적인 장치 마련이 가장 시급하다. 지금 현재로썬 제2, 제3의 김재철, 또는 더 지독한 낙하산 사장의 등장을 막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강원도 철원군 군탄리에는 '군탄 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은 1963년 박정희 대장의 전역식이 열린 곳으로 1969년 육군 5군단이 기념비를 세웠고, 이어 박정희가 대통령이던 1976년 강원도가 기념비 주변에 무려 6910평의 공원을 조성해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이라고 명명했었습니다.
박정희 사망 후,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은 '군탄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철원군은 지난 26일 '군탄공원'을 다시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으로 최종 확정하였습니다.
전역기념비까지는 이해를 하겠지만 (이마저도 어이없지만) 그 일대에 수십억 원의 돈을 들여 7천평에 가까운 공원을 만들고, 공원이름을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이라고 부르며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대한민국이 제대로 역사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 불행한 군인?이라는 전역사에 담긴 진실'
박정희는 1963년 8월 30일 육군 7사단 연병장에서 전역식을 치릅니다. 이때 박정희의 나이 만 46세, 지금으로 보면 대령을 달 나이에 박정희는 육군 대장으로 전역식을 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박정희와 함께 5.16쿠데타를 주도한 김종필은 1962년 3월 '정치활동정화법'을 만들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을 막습니다. 그리고 구 정치인 가운데 쿠데타를 지지하는 인물과 쿠데타 세력을 합쳐 '재건동지회'를 창설 '민주공화당'을 창당합니다. 그리고 1963년 5월 27일 박정희 대장을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습니다.
▲ 박정희 대장의 전역식을 1면에 보도한 신문들. 출처:경향신문
박정희가 전역식에서 말했던 "다시는 이 나라에서 본인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라는 문구는 당시 유행어처럼 번지며, 박정희 이미지 홍보에 도움이 됐습니다. 이 연설문을 박정희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이 연설문은 박정희의 비서관이었던 동훈이라는 사람이 작성한 것입니다.
동훈 비서관이 썼던 문구는 '본인과 같은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였습니다. 동훈 비서관은 '군대가 탱크를 몰고 나오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썼지만, 쿠데타 세력에게는 부득이한 쿠데타였다는 의미가 됐습니다.
나중에 이후락 공보실장이 추가가 '불운한'이라는 뜻은 군인이 목표로 삼는 전투에서 전사하지 못하고, 참모총장이 되지 못하고 전역하는 뜻으로도 해석됐다고 동훈 비서관은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전역식 도중에 눈물을 흘리는 박정희. 출처:동아일보
'불운한'이라는 것은 운명이 불행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본인 스스로 참다운 군인의 길을 가지 않고 정치군인이 됐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전역을 하는 사람인데 무엇이 그리 불행했겠습니까? 그저 비서관이 쓴 글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쿠데타를 일으킨 불쌍한 군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탱크를 몰고 대한민국을 장악해 법을 뜯어고치고 정치인을 탄압한 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만 46세의 나이로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는 쿠데타 군인의 전역식을 기념하는 공원의 역사를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에 오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알까요? 그저 박근혜 대통령 아버지 박정희가 참군인이었다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 술 취한 군인이 벌인 쿠데타'
지금은 문래공원으로 바뀐 6관구 사령부 자리에는 박정희의 흉상이 있습니다. 문래공원에 있는 박정희 흉상은 1966년 7월 7일 6관구 사령부 내에 세워졌고, 부대가 이전하면서 일반인에 공개됐습니다.
▲문래공원 내에 있는 박정희 흉상. 출처:오마이뉴스 ⓒ 이규정
이 흉상은 5.16쿠데타를 모의했던 장소였던 6관구 사령부 지하벙커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김재춘,김형욱 등은 6관구 사령부에 모여 쿠데타를 지휘했는데, 6관구 사령부는 수방사의 전신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임무를 띈 부대였습니다.
쿠데타 전날 박정희는 원래 밤 10시까지 6관구 사령부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쿠데타 모의 계획이 조금씩 누설되면서 헌병대가 6관구 사령부에 있고, 신당동 박정희 집에도 방첩대가 감시하자, 한웅진(육사 2기 동기생)이 자고 있던 청진동 여관으로 피신합니다.
여관에 있던 박정희는 술이나 마시자며 청진동 대폿집으로 향했고,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시다 취한 상태로 6관구 사령부 지하벙커에 와서는 술 냄새를 풍기며 쿠데타군을 지휘(?)했습니다. 장도영은 이날 박정희와의 전화 통화에서 '도대체 저렇게 술에 취한 상태에서 무슨 혁명을'이라는 마음에 "글쎄,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쿠데타를 구국의 일념 어쩌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박정희 미화에 불과합니다. 박정희의 5.16이 성공한 쿠데타는 맞지만, 그 이면에는 오로지 자신의 출세를 위한 군부 파벌주의에서 비롯된 쿠데타일 뿐입니다.
이승만이 군을 동원한 정권 유지를 자행했고, 이런 상황에서 군부의 부패와 진급에 대한 불만이 넘쳐났습니다. 특히 젊은 장교들 사이에서는 진급에 대한 기회가 점점 없어졌고, 박정희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1961년 육군본부는 군 장성에 대한 인사 평가 작업을 벌이는데, 그중에 사상이 의심스러운 전력이나 근무평가가 나쁜 장성 수십 명이 예편 대상자로 정해지는데, 박정희도 포함, 그해 5월말이면 강제 예편될 예정이었습니다. 결국 박정희로서는 5월말 예편을 하기 않기 위해서는 쿠데타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박정희가 이전부터 나라를 위해 쿠데타를 생각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짜 군인이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하는 가를 보여준 사례가 있습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산 정치 파동(임시 수도 부산에서 헌병대를 동원 국회의원을 연행하고 구속한 사건)을 일으켰는데 당시 군대를 동원하기 위해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종찬 장군은 이승만의 명령에 불복하고 결국 해임됩니다.
일본군 출신이지만 아버지의 친일 자작을 받지 않았던 이종찬은 일본군 출신들이 많이 따랐는데, 박정희도 그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박정희는 이종찬을 찾아가 쿠데타를 제의합니다.
"각하, 군이 나서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안 됩니다. 군사혁명으로 나라를 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군이 정치에 개입하면 일본 군국주의처럼 나라를 망치는 거 몰라 그래? 대통령의 군 동원 명령에도 내 직을 걸고 반대한 건 그래서야."
이종찬 장군은 일본군이었지만 일본 군국주의가 얼마나 나라를 망치는지 알았고, 그런 이유로 박정희의 쿠데타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이후 박정희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숨어 있다가 진급이 동기보다 늦은 이용문을 찾아 쿠데타 모의를 했고, 이용문은 자신의 진급에 불만을 품고 박정희의 쿠데타 제의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만약 이용문이 그후 비행기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5.16 쿠데타의 주역은 박정희가 아니라 이용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박정희의 5.16 쿠데타의 본질과 배경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5.16 쿠데타는 자신의 진급과 군부 내 문제를 술에 취해 해결하려고 저질렀다는 사실을..
' 일본군으로 천황에 충성하겠다는 꿈을 가졌던 청운각'
경북 문경시는 박정희가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있었던 하숙집 청운각과 그 주변정비사업을 벌였습니다. 청운각을 정비하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혀 죽을 지경입니다.
▲ 중앙일보 인터넷판에 올라온 청운각 관련 기사. 출처:중앙일보
중앙일보는 뉴시스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청운각을 '박정희 전 대통령 꿈의 산실'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런데 문경초등학교 시절 그가 생각했던 꿈은 과연 무엇일까요?
당연히 군인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이었고, 그 당시 군인은 오직 천황폐하에 충성하는 일본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생각했던 꿈은 '일본 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본 군인'이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기념하는 사업을 세금을 들여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청운각에 있는 안내문과 문경보통학교 시절 박정희(좌측)
일본이 역사왜곡 한다고 하지만 한국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청운각에 소개된 박정희를 보면 천직으로 알았던 교직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만주군관학교에 갔다고 하지만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시험을 학교에는 알리지 않고 몰래 치렀습니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시험을 본 시기는 1939년 10월 3일인데, 이때는 학기 중이라 박정희는 시험을 치르자마자 바로 다음 날 문경을 향해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교사로 재직하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떠난 것이 아니라 학기 중에 몰래 만주군관학교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자 교사 생활을 때려 치웠습니다.
청운각 안내문에는 '총칼을 차고 와서 (일본을)이겨주마'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이 말은 전혀 다릅니다.
"각하, 왜 만주로 가셨습니까? (김종신 청와대 비서관 ) "긴 칼 차고 싶어서 갔지" (박정희 대통령)
언론인으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었던 김종신씨에 의하면 박정희의 만주행 이유는 '긴 칼 차고 싶어서'였습니다. 무슨 일본에 대적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교사로 재직하면서 받았던 신분 상승의 욕망이 박정희를 만주군관학교에 혈서를 쓰고 가도록 만든 것입니다.
즉 박정희는 긴 칼을 차고 일본을 무찌르기보다는 군인이 되어 문경 시내에서 자신을 무시했던 자들 앞에서 뽐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 문래공원에 있는 박정희 흉상, 5.16혁명 발상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출처:한겨레
술울 먹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박정희는 결국 술 마시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박정희 흉상을 보는 저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사람을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일본군이 되어 긴 칼 차고 성공의 아이콘으로 살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살았던 하숙집을 세금으로 고쳐주고, 자신이 강제 예편될까 두려워 술 마시고 술 냄새 풍기며 쿠데타를 모의했던 곳에 흉상을 세우고, 총칼을 앞세워 대통령이 되려고 46세의 나이로 대장 예편을 했던 정치군인의 전역을 기념하는 공원을 세운 나라가 여러분이 사는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이엠피터'는 차마 우리 아이들에게 꺼내기조차 두렵습니다.
우리 사회에 ‘바보 프레임’이 한창이던 때가 있었지요. 노무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겪은 김수환 추기경님은 후덕한 얼굴에다 웃는 모습이 어린이처럼 천진스러워서 추기경을 대하는 이들에게 평온함을 주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못생겼고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글씨나 그림 소질도 전혀 없는 분인데 바자회에 자화상 한 점을 내어 놓을 때 제목을 ‘바보야!’라고 붙였던 것이 ‘바보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리더십이 훌륭한 지도자로서 전공이었던 사회학적 시각으로 시대를 볼 줄 알았고 교회 내외의 문제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알았고 동시에 교회의 한계도 볼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주어진 권한을 행사할 줄 알고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분명히 아는 분이었지요. 만년에는 총기가 흐려지는 인간적인 면도 분명 있었지요.
그렇더라도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교회를 현명하게 이끈 훌륭한 사목자였으며, 완성도 높은 인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김수환 추기경
또 하나의 바보 노무현은 안정성이 보장된 서울을 버리고 부산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면서 조족지혈의 민주당 간판으로 국회의원과 시장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고수했던 행동에서 ‘바보 노무현’이란 애칭을 얻었고 그의 진정성이 인정되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대인(大人)은 바보같은 신념의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출처 :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확실한 바보는 요셉에게 붙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존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자존감이 있기 때문에 어떤 관계에서건 바보가 되기를 싫어합니다. 싫어하기 보다 절대 용납을 못하지요. 그래서 힘이 없지 않은 이상 무시당하지도 이용당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아버지 성 요셉을 바보라고 부르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바보를 도구로 삼아 구원 섭리를 관철하셨습니다. 인간 세계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을 바보로 여긴 총명한 지식과 욕망으로 인해 타락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당신의 소명에 바보처럼 순명하는 인간들을 통해 건설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도, 요셉도, 즈카리아와 요한, 이 바보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대한 순명이란 진실에 대한 믿음이고 전폭적인 따름입니다. 사실과 진실은 어떻게 다른가요? 사실이란 사물(사건+물질)의 형상이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 다릅니다. 서로가 옳다고 우기는데 어떤 것이 진실인가 말이예요. 증인? 거짓 증언도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사실 판단을 하는 법과 재판에는 억울한 일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진실이란 오직 하나뿐 입니다. 하나뿐이기 때문에 너무 커서 안 보이는 경우가 많지요. 꽃이 피었다는 사실은 봄이 왔다는 진실 안에 있어요. 진실은 하나이고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 또한 그러하기에 불변하기에 진실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게 됩니다.
신앙인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입니다. 인생관도 세계관도 공동체도 교회도 국가도 심지어 종교도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도구의 삶일 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추구하기에 돈을 들여 공부하고 수행을 하고 종단을 이룹니까?
그러나 은총지위에 있는 자, 그렇게 공부하고 수행하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바보의 경지로서 이미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깨어있는 바보의 삶이 곧 은총의 지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배운 것이 없는 바보는 그냥 ‘예!' 한마디 순명으로 되는 것을 지식인들은 사실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회의하고 결정하고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치려고 애쓰지 않아요? 그러고도 나쁜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기로부터, 또는 이기심으로부터 나온 판단이니까 그렇지요.
요셉의 마음으로 하느님을 대하는 것이 순명이고 인간과 자연을 대하는 것이 자비심이고 가족을 대하는 것이 배려입니다. 사랑의 예수, 순명의 마리아, 자비심의 요셉! 우리 마을의 세 가지 성덕입니다. 성덕의 생활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미 공동체는 지상의 천국입니다. 바보들의 천국이 공동체입니다.
오늘 오전 간종소리가 3분이나 늦게 들려온다. 어떤 이들은 타이머 장치를 하면 정확할 것이라고 말한다. 간종을 치는 이유는 깨어있음을 위해서고 종소리도 깨어있음에서 나오는 건데... (2013. 3. 19) *
199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1998년 ‘소비주의 시대의 그리스도 따르기’를 위해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들어 실천적 예수운동을 전개했다. 소비주의 시대에 주체적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배동교육 실시했고, 5년 전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 마을에서 일반 신자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대선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자 다급해진 새누리당은 경찰청장을 만난다. 그 자리에서 ‘댓글을 달았다면 그 문구가 파일로 저장돼 있을 테니 여직원의 컴퓨터만 조사해도 될 것’이라며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국정원 정치개입, 그 깊이와 넓이는?
12월 16일 경찰이 나섰다. “여직원의 컴퓨터에서 대선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방한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부실 수사에다 선거개입 행위까지 서슴치 않았다. 경찰의 발표를 근거로 박근혜 후보 측은 역공을 펴기 시작했다. 대선 결과가 ‘박근혜 당선’으로 끝났기 때문일까. 이후 경찰 수사는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한다.
진보성향의 언론이 경찰 역할을 대신했다. <한겨레>는 국정원 여직원 ID를 분석해 다수의 인원이 다량의 ID로 특정 정당과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될 수 있는 글과 댓글을 인터넷 공간에 조직적으로 유포해 왔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국정원 직원들의 여론조작 개입 행위가 원 전 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정황이 담긴 문건을 공개한다.
이런 직후 터진 게 ‘원세훈 전 원장의 도피성 출국 기도 의혹’이다. 이로써 원 전 원장과 국정원을 둘러싼 의혹은 더욱 증폭된 상태다. 원 전 원장이 퇴임하자마자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 했던 이유가 뭘까? ‘국정원 정치개입’의 깊이와 넓이는 어느 정도일까?
원세훈 도피성 출국 기도, 사실일까?
도피 기도가 사실인 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맞다면 제기되 있는 의혹들 태반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원 전 원장이 출국을 시도 했다는 주장이 사실인 것으로 판단된다. 몇 가지 정황들이 그렇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정황 1: 의도를 숨겼다
지난해 12월 13일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국회 정보위원회에 원 전 원장이 출석한다. 여기서 한 야당의원이 “퇴임 뒤에 미국 스탠포드대에 갈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고, 원 전 원장은 “그럴 계획이 전혀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출국설’이 다시 흘러나온 건 퇴임 직후. <오마이뉴스>는 지난 22일 “원세훈 전 원장이 21일 오후 늦게 퇴임식을 열었고, 이후 미국으로 출국해 스탠포드대에 머물 계획”이라고 보도한다. 그 다음날 <한겨레>는 더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한다. “원 전 원장이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공권을 예약했다”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정보수장이 퇴임 직후 해외로 떠난 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신변 안전과 정보보호라는 이유에서라도 한동안 외부 활동을 삼가 온 게 관례다. 황급하게 비행기를 타야만 했던 사정이 있다는 얘기다.
▲정황 2: 한밤중 퇴임식
‘퇴임 후 출국설’이 모락모락 피어날 무렵 국정원에서 원 전 원장의 퇴임식이 있었다. 퇴임식 또한 매우 이례적이었다. 통상 전 직원을 상대로 낮시간에 이뤄지는 게 관례지만 이 날 퇴임식은 간부직원만 불러서 늦은 저녁시간에 치러졌다.
최장수 국정원장이라는 위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퇴임식을 치러야만 했던 속사정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은밀한 퇴임식’은 24일 감행하기로 했던 도피성 출국을 준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정황 3: 이삿짐과 관련된 이웃의 증언
‘출국설’일 불거지자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등 다수의 언론들이 원 전 원장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된다. 원 전 원장이 이삿짐을 꾸리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이웃 주민의 증언이 나온 것이다. 퇴임 한 달 전부터 미국행을 준비해 온 것으로 짐작된다.
출국 기도 이후 의혹 더욱 증폭...‘원세훈 게이트’
원 전 원장의 도피성 출국 기도와 검찰의 출국 금지 조치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원세훈 게이트’로 확대된 양상이다. 의혹의 깊이와 범위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경찰을 향한 의혹들
대선 전과 후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대선 전에는 수사 시작 5일 만에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등 엄청난 속도를 내는가 싶더니, 선거가 끝난 뒤 수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시간을 끌려고 한 걸까. 새 정부가 출범하고 원 전 국정원장이 해외로 도피할 때까지 미적거리려고 한 건가. 초기 수사가 진행될 때 갑자기 수사담당자가 교체됐다. 누가 수사를 막고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에게 역공의 빌미를 제공해준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지시한 ‘윗선’은 대체 누구인가?
□ 새누리당을 향한 의혹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불거진 직후 새누리당은 목에 핏발을 세우며 문재인 후보를 몰아세웠다.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행태를 비호한 파렴치한이라고 비난했다. 그랬던 그들이 선거가 끝난 뒤에는 ‘국정원’이라는 말 자체를 ‘금칙어’로 정한 듯 한 마디도 뻥끗하지 않는다.
왜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금기시하는 걸까? 수혜자이기 때문인가? 국정원 정치개입 문건이 폭로돼 여론이 들끓어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왜 일까? 원 전 원장의 ‘도피설’로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는데도 노코멘트로 일관해야 하는 그 속사정이 궁금하다.
□ 검찰을 향한 의혹들
수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5건의 고소고발이 접수돼 이미 수사가 시작된 상태다. 국가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은 국기를 뿌리째 뒤흔드는 중차대한 사건이다. 왜 이런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에 대해 출국금지 요청을 하지 않으려 한 걸까? 여론이 빗발치자 23일 저녁에야 법무부에 출국금지 요청을 했다. 그러고도 24일까지 사실 확인을 안 해준 이유는 또 뭔가?
왜 ‘원세훈 개인 비리 수사’ 관련 얘기를 언론에 흘렸을까? 이번 사건의 본질과 원 전 원장의 도피 기도 사실을 희석시키기고 물타기 하기 위함인가?
□ 청와대를 향한 의혹들
경찰의 황당한 중간수사발표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박 대통령이다. “성폭행범이나 하는 수법을 동원해 2박 3일 동안 밥도 물도 못 먹게 감금했다”며 야당 후보를 거세게 몰아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강력하게 비호한 거나 다름없다.
‘박근혜 사찰’의 배후로 지목된 게 원 전 원장이었다. 또 친이·친박간 갈등과 관련해 국정원 심리전단이 인터넷 댓글을 통해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국정원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관대한 태도다. 대선 때 모종의 기여를 했기 때문인가?
<오마이뉴스>는 전직 국정원 직원의 말을 빌어 “지난 대선 때 현직 직원이 ‘이것을 막지 못하면 민주당은 선거에 질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며 그 당시 “인터넷 댓글 공작보다 더 큰 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보도했다. “더 큰 건”이란 게 대체 뭘까? 그게 대선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국정원의 조직적인 정치개입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원 전 원장뿐만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과, 국정원 댓글 사건을 적극 비호한 박 대통령까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길고 긴 3년이었다. 2010년 출범했던 '김재철 MBC 사장 체제'가 3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26일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김문환, 이하 방문진)는 이사회를 열고 김재철 MBC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가결했다. 방문진에서 그의 해임안을 놓고 표결을 벌인 것은 이번이 네 번째. 지난 22일 방문진과의 사전 협의 없이 기습적으로 계열사와 자회사 인선안을 공지한 것이 이유가 됐다. 그동안 야당 추천 이사들만이 그의 해임안 처리를 강력히 요구했던 반면, 이번에는 여당 추천 이사들도 해임안 발의에 참여해 해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았다.
'김재철 라이징', 3년간의 '칼바람'이 시작되다
기자 출신인 김재철은 보도제작국장을 거쳐 2005년 울산 MBC 사장으로 선임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8년 최문순 당시 사장이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며 물러나자, 김재철은 사장 자리에 응모했다.
그러나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 노조)는 '정치권에 줄 댄 사장후보는 절대 안 된다'는 성명을 통해 김재철의 사장 후보 퇴진을 촉구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그의 오랜 친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대학 동문인 이 전 대통령과 김재철은 1996년 각각 초선 의원과 국회 출입 기자 신분으로 만나 급격히 가까워졌다.
"복수의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K씨(김재철)가 MBC 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가 사장이 된다면 MBC는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던 부끄러운 과거로 되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시 MBC 노조 성명 중)
그 결과 방문진 이사회는 엄기영 전 <뉴스데스크> 앵커를 사장으로 선임했다. 김재철은 울산 MBC 사장에서 청주 MBC 사장으로 전보됐다. 그러나 2010년 2월 엄기영 당시 사장이 MBC 이사 선임 과정을 둘러싸고 방문진과 갈등을 빚은 끝에 사장직을 내려놓는다. 김재철이 다시 사장직에 응모한 것은 이때다. 방문진 역시 그를 최종 후보 3인에 올리고, 바로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때부터 MBC 노조와 김재철의 악연은 시작됐다. '낙하산 인사'라는 것을 이유로 MBC 노조는 출근 저지 투쟁을 벌였다. 같은 해 3월 김우룡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선안을 놓고 "'큰집'이 (김재철을)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라 밝힌 것도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
뒤이어 간판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 PD수첩 >에 대한 계속되는 탄압, 지역 MBC 통폐합 문제로 MBC 노조는 2010년 4월부터 39일간의 총파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근행 당시 MBC 노조위원장은 해고됐고, 그를 포함한 40여 명이 중징계를 받았다. 같은 해 8월에도 4대강 사업을 다룬 < PD수첩 >이 불방되면서 대내외적으로 잡음을 빚었다.
그럼에도 김재철은 2011년 2월 임기가 끝나자 방문진으로부터 사장으로 재선임됐다. 이후 '칼바람'은 그 기세를 더해갔다. < PD수첩 > 제작진은 업무와는 상관없는 곳으로 전보조치됐고, 지역 MBC의 강제 통폐합은 착착 진행됐다. 2011년 5월에는 MBC 라디오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개그맨 김미화가 "김재철로부터 압박을 받았다"며 물러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로도 갈등은 계속됐지만, 크게 불거진 것은 2012년 1월의 일이다. MBC 기자회의 제작거부 투쟁을 시작으로, MBC 노조 총파업이 시작된 것. 김재철의 법인카드 사용 논란 등이 불거진 것도 이때다. 하지만 170일 간의 투쟁 끝에, 눈 내리는 1월 시작됐던 총파업은 한여름에 일단락됐다.
'상흔'은 깊이 패였다. 알려진 대로 파업에 참여한 이들을 향한 '보복성 징계'가 줄을 이었다. MBC 사측이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195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기록도 세웠다. 김재철 체제 하의 3년 동안 MBC에서 해고된 이는 10여 명에 이르며, 정직을 비롯한 징계를 당한 사람들은 200명을 훌쩍 넘는다. 이 과정에서 최일구 전 <뉴스데스크> 앵커와 오상진 아나운서는 스스로 사표를 내고 MBC를 떠났다.
한편 이 같은 징계로 시청자에게 익숙한 많은 얼굴들이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희망의 불씨'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3월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재판장 장재윤)는 MBC 노조 소속 김완태·박경추·최율미·허일후 아나운서, 김수진·박준우·연보흠·왕종명·이용주 기자 등 65명이 MBC를 상대로 낸 '전보발령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며 이들의 업무 복귀에 청신호를 올렸다.
▲ 고 장준하 선생 유골을 정밀 감정한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감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안경호 국민대책위 조사연구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머리가 먼저 가격을 받고 그 다음에 추락을 했고, 적어도 약사골에서, 그 낭떠리지에서 지면에 붙어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을 정밀 감정한 이정빈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26일 감정결과 발표를 통해 아령이나 돌멩이 같은 둥글고 큰 물체로 머리를 강타당한 것이 사인이라고 밝혀 사실상 타살임을 밝혔다.
이정빈 명예교수는 ‘장준하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이날 오전 10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장준하선생 유해 정밀감식 국민보고대회’에서 감정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7cm 가량 함몰된 이유로 “7cm 되는 망치가 흔치 않다”며 “아령도 좋고, 큰 돌도 좋고, 면이 둥그런 돌”의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다.
▲ 이정빈 명예교수는 두개골과 유해에 나타난 상흔 등을 근거로 정밀 감식 결과를 설명했다. 사진은 사건 직후 촬영된 고인의 모습. 골짜기에서 추락한 흔적이나 혈흔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 근거로 추락으로 인해 두개골이 손상될 경우 “꼭 거미줄 모양으로 깨진다”는 점과 충격을 받은 반대편에 손상의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점, 7cm 정도 큰 함몰이 생겼지만 외상은 2cm에 불과한 점 등을 들었다.
또한 단단한 엉덩이뼈(관골)가 6조각으로 깨지고 두개골이 함몰됐는데도 불구하고 어깨뼈 손상이 없다는 점과 약사골 낭떠러지 지형에서 미끄러지거나 추락할 경우 찰과상이 많이 나야하지만 시신이 깨끗한 점 등을 들어 그동안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약사봉 실족설’이 틀렸음을 입증했다.
그는 사체에서 출혈이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 “전체적으로 출혈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머리가 먼저 가격을 받고 그 다음에 추락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법의학자의 한 길을 걸어온 그는 “정치적으로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며 “누구 이야기 들은 바도 없고 압력 받은 것도 없다”고 밝히고 “하는 일이 그 일이고 해야 될 일이다. 제가 하는 일이 그 일인데 안한다고 하면 그게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가 부친의 유해가 등장하는 정밀 감식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안경호 ‘장준하 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 조사연구위원장은 “선생이 착용하였던 안경, 시계, 휴대했던 보온병 역시 깨끗한 상태로 시신 옆에 있었다”며 “결국 장준한 선생은 약사봉 장소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이 아니다”고 재확인했다.
또한 “장준하 선생이 이 장소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것이 아닌 것으로 나오는 이번 감정결과에 의하면 김용환의 그동안의 진술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더 이상 김용환은 이 사건의 단순 목격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의 시신을 처음 발견했다는 김용환 씨가 사실상 타살의 공범자라는 것이다.
안경호 위원장은 “장준하 선생께서 돌아가신 지 38년만에 장준하 선생이 타살되었음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며 “이제 국가가 실체적 진실에 대해 대답해야 할 차례”라고 주장하고 “국민 여러분들과 함께 장준하 선생님의 사인규명과 진실규명을 위한 길에 나서고자 한다”고 밝혔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는 “저희 아버님의 명예회복과 이 나라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리고 피해 입은 모든 희생자를 위해서 꼭 밝혀야겠다고 해서 이번에 검증한 것”이라며 “다시는 이 나라에서 이러한 피해 겪는 백성이 나오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서, 비록 내 아버님이시지만 장준하 선생의 관을 두 번 여는 큰 죄를 지으면서도 꼭 이번 일은 해야겠다고 해서 진행했다”고 유골 정밀 감식을 의뢰한 배경을 설명했다.
장호권 씨는 “이제 과학적이고 의학적으로 검시가 끝났고 타살이라는, 죽였다는, 살인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알게 됐다”며 “남은 것은 비록 박정희와 연결돼 있기는 하지만 박근혜가 해결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대국민보고대회에는 관계자들은 물론 많은 취재기자들이 몰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날 대국민보고대회에서는 이부영 민주통합당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인사말을, 유기홍 민주통합당 의원이 경과보고를 했으며,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준영 국민대책위 정책위원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앞으로 진상규명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대통령에게 청원하고 애걸하는 운동을 해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유기홍 의원은 “국가 차원에서는 새로운 진상조사 기구를 만들어서 하는 것이 순리이고 국회 요구 이전에 정부가 앞장서서 진상조사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만약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특별법을 만들어서 진상조사 기구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신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광복군 출신의 장준하 선생은 2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시 약사봉 인근에서 시신이 발견됐지만 박정희 정권은 실족 추락사로 결론지었고, 1999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진실규명 불능' 결정이 난 바 있다.
그러나 2011년 8월 초순 집중적인 폭우로 경기도 파주시 광탄에 소재한 장준하 선생 묘역의 옹벽이 무너져 '장준하 공원' 건립을 추진하기로 하고 2012년 8월 1일 선생의 유해를 수습하여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의 함몰을 발견해 타살 의혹이 증폭됐고, 지난 해 12월 5일 선생의 묘를 다시 열어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정밀 감정을 하게 됐다.
▲ 이정빈 명예교수는 약사봉 골짜기 현장 사진을 근거로 찰과상 등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추락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추락시 엉덩이뼈부터 부서지고 머리뼈가 손상된 경우에도 어깨뼈가 멀쩡한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머리부터 추락하거나 머리와 엉덩이가 동시에 추락한 경우에도 역시 어깨뼈 손상이 동반될 수 밖에 없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외부 가격에 의한 두개골 함몰과 추락으로 인한 두개골 함몰은 충격파 전달이 다르다. 추락시에는 반대편에 충격흔이 발견되어야 정상이지만 장준하 선생의 경우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장준하 선생 유골 정밀 감식 사진.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정밀 감식 발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38년만에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결정적 물증이 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조선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최고 존엄을 건드린자들의 사죄따위는 필요 없이 오직 불벼락으로 반드시 징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26일 성명을 통해 “괴뢰 《조선일보》 3월 25일부에 의하면 괴뢰군부깡패들이 평양을 비롯한 공화국의 대도시들에 정중히 모신 우리의 최고 존엄의 상징인 수령영생, 수령칭송의 기념비들을 미사일로 정밀타격 할 계획을 짜놓았다고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조평통 대변인 성명은 “악독한 괴뢰군부깡패들은 이러한 파괴계획이 북 주민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줴치면서 위성사진 등을 통해 정밀분석한데 따라 이른바 《제거우선순위목록》까지 작성해놓았다고 한다.”며 “이에 대해 괴뢰정부관계자도 괴뢰군이 《동상을 공대지, 지대지미사일로 타격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실토했다”고 성토했다.
대변인 성명은 “이 얼마나 천벌을 받을 악귀들의 천인공노할 흉계인가.”라면서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우리의 최고 존엄을 감히 해치려는 괴뢰역적패당의 극악무도한 범죄책동에 분노의 치를 떨며 복수의 피를 끓이고 있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성명은 “역대 괴뢰역적들치고 동족대결에 환장하지 않은 자가 없었지만 현 괴뢰군부깡패들처럼 무지막지한 대결광신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하고 “도발에 미친 김관진놈을 비롯한 친미군부깡패들이 청와대에 몰려들어 때를 만난 듯이 반공화국대결에 광분하며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아보려고 피눈이 되어 날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천벌을 맞을 괴뢰군부깡패들의 극악한 대결망동은 청와대안방에서 풍겨내는 독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청와대를 겨냥하고 “드러난 모든 진상은 남조선의 새 《정권》이 이명박역적 패당과 다름없이 동족대결의 길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화살을 겨눴다.
이어 “지금 괴뢰역적무리들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고 있다.”며 “우리 민족이 수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어 버 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은 조국의 해방과 민족의 번영,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의 위인이시며 민족의 영원한 태양이시다.”라고 선대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높은가를 주지했다.
아울러 “우리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동상을 가장 정중히 모시고 우러르며 영원한 태양의 모습에서 무한대한 힘과 용기를 받아 안고 있다.”면서 “세계 수많은 나라 사람들과 남조선각계층은 물론 적대국가의 인사들도 평양을 방문하면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동상부터 찾아 숭고한 경의를 삼가 드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천만군민의 열화 같은 흠모와 순결한 충정의 결정체인 선군조선의 국보를 감히 어째보려는 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 세계 진보적 인류의 심장에 칼질을 해대는 능지처참할 반인륜적대역죄”라고 단죄했다.
대변인 성명은 “우리는 이미 우리의 최고 존엄을 해치려던 《동까모사건》이 들통 났을 때 괴뢰역적패당을 반드시 징벌할 것이라는 것을 선포하였다.”며 “북침핵전쟁도발소동으로도 모자라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해치려는 친미보수역적패당을 모조리 불도가니에 쓸어 넣으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멸적의 기상은 용암처럼 끓어 번지고 있다.”고 적개심을 드러냈다.
성명은 “우리는 천하 무도한 괴뢰역적들에게서 사죄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며 “오직 복수의 불벼락으로 죄악의 무리들을 쓸어버림으로써 사죄문에 도장을 찍을 놈도 없게 만들 것”이라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외 도피가 무산 된 가운데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서 에서 드러난 40개의 아이디에 이어 국정원과 연계해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이 6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발뉴스>는 25일 지난 22일 업로드 된 <뉴스타파>보도에 따르면, 트위터 아이디 ‘신사의 품격(@tae****)’은 국정원 여직원이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올린 MB의 48번째 해외순방 칭찬 글을 같은 날, 같은문구로 트위터에 올렸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상당수가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여당 후보를 치켜세운 것으로 드러나 이들의 활동이 대선기간 트위터상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고발뉴스>는 전했습니다.
▲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서 드러난 40개의 아이디에 이어 국정원과 연계해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이 6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뉴스타파
이 글은 무려 637번이나 리트윗 됐고, 이 가운데 국정원 연계 계정이 몇 개나 되는지 체크해 본 결과 무려 461개가 국정원 연계 그룹 아이디였다고 <뉴스타파>는 전했습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또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사항에 나온 문장을 그대로 트위터에 올렸던
아이디 ‘신사의품격' 사용자의 트윗글을 분석한 결과, 이 사용자는 지난해 9월 초부터 지난해 12월 초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대선 후보 관련 글을 직접 작성했으며, 모두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신사의품격' 아이디 사용자처럼 취재진이 파악한 국정원 연계 추정 트위터 계정은 610여 개정를 넘어섰다고 <뉴스타파>는 전했습니다.
또 6백여 계정들은 지난해 12월 11일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터진 뒤 모두 삭제 또는 폐쇄됐고,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공개한 ‘국정원장 지시사항’ 내용처럼 천편일률적으로 종북세력을 비난하고 MB의 정책을 홍보하는 트윗을 작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엇 이들은 대장격 계정이 생산한 트윗글을 각각의 팔로워 수천 명에게 재전송하거나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일반 트윗을 골라 재전송하는 방식으로 대선 때 사이버상의 여론에 개입한 의혹을 사고 있다"고 <뉴스타파>는 밝혔습니다.
특히 "'문재인이 대통령이 안 되는 이유'란 제목이 붙은 트읫글의 경우 66명이 리트윗했는데 이 가운데 40여 명이 ‘신사의품격'을 포함한 국정원 연계 추정 그룹으로 파악됐다"면서 "<뉴스타파>의 분석 결과 아이디 ‘신사의품격' 사용자가 작성하거나 재전송한 글은 3개월 동안 총 487만 명의 트위터 이용자에게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습니다
<뉴스타파>는 "그동안 국정원 여직원 김 모씨가 인터넷사이트 ‘오늘의유머’ 게시판에 대선후보 관련 글을 몇 건 작성한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국정원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그룹이 트위터 상에서 노골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대선국면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문건과 트위터 글이 겹치는 것과 관련, 국정원 대변인은 <뉴스타파>에 "특별히 입장을 발표한 건 없다"면서 '부인하는 건 아니냐'는 질문에 "굳이 해명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습니다.
<뉴스타파>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민주통합당 허영일 부대변인은 25일 논평을 통해 "만약 @tae**** 계정의 주인이 국정원 직원으로 밝혀지고, 트위터의 글들이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에 의한 ‘공무’였다면, 이는 대통령 선거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안"이라며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전에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면서 "현직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부정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이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라며 정권 차원에서 개입했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 민변 이재화 변호사는 <go발뉴스>와 인터뷰에서 "원 전 원장이 선거개입을 지시했다는 것은 당시 MB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만약 이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특정 개인의 국정원법 위반이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할 것이 아니라, 대선 전체에 대해 당선 무효 여부도 검토해야 될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문제가 심각한 한국병(病)이라는 사실은 1996년 출간된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서울대의 나라>(개마고원 펴냄)를 통해 본격적으로 환기됐다. 이후 다른 국가들의 교육제도를 다룬 서적들이 꾸준히 소개되고, '학벌없는 사회'라는 시민단체까지 설립되었다. 그간 필자도 학벌문제를 "문제"로서 인식하고 있었지만, 과연 '학벌없는 사회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다수의 독자들처럼 한국사회 안에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독일에서의 유학생활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학벌의식이 없는 이상한 나라 독일"과 "독일을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한국"이라는 강렬하게 대비되는 경험을 갖게 했다.
장면 1.
필자가 살고 있는 바이로이트(Bayreuth)는 독일 바이에른(Bayern) 주의 북부에 위치한 인구 약 7만 5000명의 소도시다. 이 도시는 세계적인 작곡가 중 하나인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매년 8월이면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발'이 개최되어 전 세계 관광객들이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와 연주회를 보고 들으러 방문한다.
독일에 막 도착했던 지난해 9월, 필자가 참여하는 프로젝트 덕분에 짧은 시간에 독일 친구들과 만날 계기가 많았고, 곧 서로의 학문궤적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학문궤적을 물을 때 한국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한국에서 이러한 질문을 하면, 한국인의 뛰어난 두뇌는 삽시간에 각 동료들의 "학사 어디? → 석사 어디? → 박사 어디? → 심지어 박사 후 어디?"로 이어지는 '학벌 사다리'를 만들고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평가를 단 몇 초 만에 끝내버리지 않은가?
그런데 이러한 한국인의 사다리 통념으로부터 독일 친구들은 한창 벗어나 있었다. 한 친구를 예로 들어보자. 이 친구는 베를린훔볼트 대학에서 학사를 취득하고, 박사 학위를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받았고, 박사 후 과정도 바이로이트에서 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걸 한국식으로 의역하면, 서울대 학부를 마치고서, 박사는 지방 대학에서 받은 것이다. 그걸로 모자라 박사 후 과정도 같은 대학에서 하길 원하고 있다. 이 친구 왈, "바이로이트의 연구환경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곳이 좋단다. 물론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 서울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서, 박사는 지도교수를 보고서 지방대로 간 것이다. 여기서 두 나라의 차이점은 독일에서는 이러한 일이 흔한 일이고, 한국에서의 그 사람은 굉장히 진귀한 사례로 손꼽힌다. 한국에서 순수하게 지도교수나 혹은 연구환경을 따져서 지방으로 가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역(逆)은 많다. 교수나 연구환경보다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라는 이름 때문에 학부 편입을 하거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들이다. 물론, 독일친구들은 이러한 한국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필자가 독일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장면 2.
독일로 유학 오는 한국인 중에는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알려진 도시인 베를린이나 본(Bonn)에 위치한 대학을 가고 싶어한다. 정작 독일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독일 대학 서열이 한국인들의 머릿속에서 구축되어, 한국인들만의 잣대로 순위를 매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독일대학서열이라는 지리적 심상은 순수한 심상,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물질적 이해관계와 견고히 결합되어 있다. 한 국내 명문대 교수는 자신의 제자에게 독일 유학을 제안하면서 학문적 내실을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소도시의 덜 알려진 대학보다 한국에 더 알려진 대도시의 대학으로 가는 것이 나중에 일자리를 잡을 때보다 유리할 것이라고 권유하였다. 그 제자도 보다 알려진 도시의 대학을 가는 것을 학교의 내실보다 보다 더 내실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특히, 국내에서 자신의 학부가 명문대라는 사실을 호명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가상의 "독일 명문 대학"을 만들어내는 것은 흥미로운 심리체계이다. 한국사회에서 만들어진 학벌사회와 그 구성원이 어떻게 자신들의 인식을 특정공간에 투영하는지를 확인한 장면이었다.
장면 3.
필자의 창피한 경험도 털어놓아야 할 거 같다. 지난해 12월, 바이로이트 대학과 파사우(Passau) 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 국경에 인접한 소도시 파사우를 갔었다. 우리 일행을 맞이해준 파사우 대학의 교수는 "바이로이트처럼 큰 도시에서 이렇게 작은 대학까지 친히 방문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로 우리를 반겼는데,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의 의도는 정말 순수하게 물리적 크기의 차이를 말한 것일 뿐, 질적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 농담이었다. 창피한 경험이지만, 그때까지도 한국인의 잠재의식이 유감없이 작동한 필자는 바이로이트 대학이 파사우 대학보다 물리적 크기가 컸던 사실에 으쓱했었다! 정작 독일인들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증거가 아래 사진이다.
▲ 독일 파사우 대학 안내판, 도나우 강줄기를 따라 학교가 위치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황진태
이 사진은 필자가 도나우 강줄기를 끼고서 배치된 홀쭉한 파사우 대학의 형태가 흥미로워서 찍었지만, 파사우를 다녀온 후 내 의식을 곰곰이 좇아가다 보니 "이렇게 작은 대학이 있었네"라는 생각의 조각을 발견하고서 당황했다. 얼마나 촌스러운가? 한국인의 학벌의식은 크기에 열광하는 남근주의에 기반한 소위 명문대의 휘황찬란한 학교 건물과 규모에 대한 매료와도 얽혀 있다. 한국에서 그러한 건물들은 그 학교가 명문임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활용되고, 그걸 짓기 위한 돈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된다는 악순환은 망각하고 말이다.
대학 평준화의 긍정적 효과와 오해
이 글을 쓴 목적은 독자들도 "이상한 나라 독일의 한국인 엘리스"를 경험하라는 것은 아니다. 독일이 "이상한 나라"가 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대학 평준화 때문이다. 독일은 '68혁명'의 성과로 대학 평준화가 이루어졌고, 모든 고등학생들은 한국의 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아비투어(Abitur)를 치르면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교육분야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개인의 특정 경험이 일반화의 오류를 낳을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에서 기존 대학평준화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보면서 대학 평준화를 피력한 이러한 글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보다 확고해졌다.
홍찬식 <동아일보> 수석 논설위원은 "'서울대의 나라들'은 꼼수다"는 제목의 <동아일보> 2012년 8월 1일 자 칼럼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제안한 지방국립대 집중 육성과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통해서 서울대 수준의 대학들을 만들자는 제안에 대하여 효율성의 논리와 노벨상 수상자 배출수를 근거로 비판하면서 대학 평준화가 안된 해외 대학들의 우수성과 대학 평준화로 인해 뒤처진 대학들을 언급했다. 그는 평준화가 실패한 나라로는 프랑스와 독일을 손꼽았다.
노벨상 배출자 수는 차치하더라도-이는 홍찬식 위원에게도 자충수다. 이러한 잣대를 한국 대학들에 적용하면, 지금 한국에 서울대를 포함해서 단 하나의 대학이라도 남아 있을 필요가 있는가? 차라리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외국의 대학 하나를 통째로 유치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보다 더 효율적이다.- 효율성의 논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그 효율성이 설사 시장주의적으로 교육을 접근하는 SCI급 논문편수를 따르더라도 그의 판단과 달리 필자가 목격한 독일 대학의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의 연구능력을 봤을 때 그들의 연구역량을 싸잡아 폄하하는 것은 과도하다. 결정적으로 홍찬식 위원이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의 서울대를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왜냐면 서울대는 모든 전공에서 다른 대학보다 최고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대 인력이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놓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모든 분야를 서울대가 최고여야만 하는 게 반드시 효율적인 것인가?
▲ 2004년 11월 30일 자 <조선일보> 기사 "평준화됐다더니…독일대학 '등급' 있었네"에서 인용한 도표. ⓒ조선일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가 쓴 2004년 11월 30일 자 기사에서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보도기사를 인용하면서 독일 내 학과별 1위 대학들을 소개했다. 여기서 이 기사를 언급하는 것은 앞서 제기한 질문들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지점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의도는 대학 평준화를 시행하는 독일에서 최근에 순위조사를 했다는 사실과 여기서 소위 독일의 명문대로 알려진 대학들이 하향권으로 추락했음을 강조하면서 대학 평준화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역설하고자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자의 의도와는 달리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대학 평준화 시행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첫째, 끊임없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명문대라고 하더라도 도태될 수 있다는 사실. 현재 학벌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서울대가 이 사다리를 걷어차고, 똑같은 출발선에서 다른 대학들과 경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홍 위원이 강조하는 효율성의 논리를 구현하는 것이다. 둘째, 다른 대학들도 서울대보다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서울대는 "서울대"이기 때문에 모든 전공에서 최고여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해왔었다. 실제 교수들의 학문업적과 실력이 학교 명성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에도 서울대 레테르 덕분에 그들은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이는 다시 재정지원 및 연구 프로젝트 유치 과정에서도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명문대와 비교하여 훌륭한 교수진이 있더라도 지방대의 경우 유치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의 지방 소도시 대학과 다름없는 바이로이트 대학은 앞서 이한우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적어도 생물학에서는 "서울대" 수준이다. 또한 필자의 전공과 관련해서 바이로이트 아프리카 연구 국제대학원(BIGSAS)은 독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명성이 높다. 바이로이트 대학보다 더 작은 파사우 대학은 동남아시아 연구로 유명하다. 독자들은 한국의 한 작은 지방대가 아시아 연구로 유명하여,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러한 연구중심의 대학체제는 정부의 지원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교수진들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렇게 대학이 연구중심으로 바뀌는 것은 학부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생각하듯이 학교이름을 보고서 학교를 선택하지 않고, 또한 선택권을 남보다 더 확보하기 위한 사교육의 희생양이 될 필요도 없이 원하는 대학을 갈 수가 있다. 필자는 지난 겨울학기에 연구중심의 학풍이 학부생들의 학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격했다. 가령, 필자와 함께 대학원 세미나를 참가했던 한 독일 학부 친구들은 아프리카 대학원에서 개설된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를 경험하고, 그 나라를 사례로 한국에 잘 쓰여진 석사논문에 견줄만한 학부졸업논문을 썼다. 그 결과, 그들은 한국의 지역연구전문가들 못지않은 전문지식을 겸비하게 되었다.
지역균형발전의 측면에서도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에 밀집된 대학으로의 쏠림 현상을 해결하는 단초로서 대학 평준화를 계기로 각 지방대학들의 연구가 특성화된다면, 그 지역출신 학생들이 굳이 수도권을 가지 않더라도 그 지역에서 대학을 나와서 그 지역에서 취직을 할 수도 있고, 또는 다른 지역 혹은 다른 국가로부터 학생들이 와서 공부를 함으로써 침체된 지역경제와 지역사회에 사람이 순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물론, 독일을 하나의 정답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정책과 관련해서는 독일이 한국보다 합리적이고, 인간적이고 또한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를 가기 위해서 초등학교 시기부터 시작된 과도한 경쟁에 뛰어든 아이들과 이들을 고등학교까지 각종 사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등골이 휘는 부모들의 분투의 결과, 그 아이들의 인성은 친구를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의 동반자기보다는, 경쟁자로 간주하며, 설사 명문대를 가더라도 사회부적응 등을 이유로 매년 자살 사고가 발생하는 비극적 결말이 일상화되었다. 현재의 학벌사회를 지탱하는 이러한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비효율성"의 항목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국사회의 공교육과 사교육을 몸으로 체득했던 10여 년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볼 때 나는 솔직히 독일의 교육 시스템을 누리는 독일학생들로부터 부러움을 느꼈다. 이곳의 학생들은 한국에서처럼 친구보다 학벌 사다리의 위에 올라가서 느끼는 알량한 자만심보다는 스스로의 필요로 공부하고, 동료와 대화하고, 교류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가꿀 줄 아는 자존감을 갖고 있다. 그야말로, 학생이 학생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한국 사회야말로 독일인들의 눈에는 이상한 나라 그 자체다.
지금까지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명문대 졸업장을 갖고 있는 평범한 졸업생부터 관료, 학계, 기업 등 한국사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엘리트들까지 그들만의 부드러운 혹은 단단한 학벌네트워크에 기반한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얻게 되는 편익이 대학 평준화 이후보다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현재로서 대학 평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부모의 경제력에 비례하는 상관관계가 보다 뚜렷해지고, 설사 서울대가 아니더라도 명문사립대에 입학시킬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가능한 계층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반칙을 허용한 현재의 게임의 법칙을 굳이 바꾸길 원치 않는다.
이처럼 사회적 총 혜택을 고려하지 않은 비효율적인 학벌사회는 실로 지배계층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불평등 사다리라는 음모론적 해석을 하더라도 전혀 허무맹랑한 소리로 안 들릴 지경에 이르렀다. 학벌의식이 없는 독일을 정상적이고,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국가로 생각할 수 있는 한국사회를 기다리는 것은 요원할까? 독일의 경험처럼 68혁명과 같은 거대한 변혁적 움직임만이 대학 평준화를 가능하게 할까? 대학 평준화. 참으로 까다로운 화두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이 화두를 붙잡고,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전 KBS 기자 출신으로 <뉴스타파> 시즌 3을 시작하며 새 대표를 맡은 김용진 대표는 현재의 언론 상황을 "이명박 정부에서 정직이나 해고된 언론인이 수백명인데 이 같은 탄압은 군사정부를 제외하곤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큰 비극"이라고 씁쓸해 했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에 새로 마련한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난 김용진 대표는 "각자 사정에 맞게 역할 분담한 것일 뿐 대표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면서도 "대선 이후 시민들이 <뉴스타파>에 거는 기대가 커서 대표로서 부담이 있다"말한 뒤 "<뉴스타파>를 10년 안에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신뢰받는 언론기관으로 만들어 볼 계획"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시즌 3를 시작하기 전 자신이 27년 몸 담아왔던 KBS에 사표를 제출했다. 심정이 어땠을까? 이에 "회한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곳에서 정년을 맞지 못했다고 아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애써 태연해 했지만 "KBS의 후배들과 함께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나 혼자 떠나는 것이 제일 가슴 아팠다"고 후배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진짜 뉴스가 하고 싶어서 KBS를 나왔다는 김 대표는 "사람들이 진정한 주권자, 자유인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도움이 되는 정보가 진짜 뉴스"라면서 "기성언론이 뉴스라는 이름을 달아서 배포하고 있는 뉴스의 대부분은 뉴스라는 외피를 덮어쓰고 있긴 하지만 뉴스라기보다는 홍보물이나 선전물"이라고 기존 언론의 뉴스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김 대표는 지난 1년의 <뉴스타파> 평가를 "주요 언론상도 휩쓸어 너무 과분하다 싶을 정도의 칭찬과 격려와 성원을 받았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저희들이 잘했다기보다는 기성 언론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저희가 그런 성원을 받은 것 같다"면서 "여러 한계가 있었지만 지상파 뉴스에 못지않은 동영상 패키지 뉴스를 제작 배포한 것은 매우 선구적인 시도였다"고 자평했다.
사실상 2기에 접어든 <뉴스타파>는 "보다 분명하게 탐사보도를 중심으로 한 언론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해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의미와 패턴들을 밝혀내는 데이터저널리즘을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탐사보도를 도입해 국민들의 알권리를 확충하는데 기여해 보려고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울러 "주 1회 콘텐츠를 업로드해 오던 것을 이번 시즌3부터는 주당 2회 정도 업로드해 정통뉴스 포맷이외에 보다 젊고 새로운 형식의 뉴스타파 매거진을 신설했다. 이밖에 저희 홈페이지도 대폭 보강해서 일종의 탐사저널리즘 허브로 키워볼 생각이다"면서 "질 높고 건강한 콘텐츠로 보답하겠다"며 <뉴스타파>에 관심을 기울여주길 당부했다
다음은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나눈 1문 1답.
- <뉴스타파> 시작부터 뒤에서 자문 하시다가 대표가 되셨는데.
"<뉴스타파> 시작 단계에서부터 논의에 참가해 왔기 때문에 대표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뉴스타파>를 창립한 구성원들끼리 각자의 사정에 맞게 서로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시즌3부터 제가 대표를 맡게 됐을 뿐입니다. KBS에 소속돼 있었을 때는 사실 공개적으로 <뉴스타파> 활동을 하기는 힘들었지요. 하지만 KBS를 그만두는 것과 <뉴스타파> 대표를 맡는 것, 이 두 가지 결정을 지난 2월에 동시에 하게 됐고, 시즌3를 시작한 지금은 굉장히 홀가분하게 <뉴스타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뉴스타파>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 성원이 무척 커졌기 때문에 대표로서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이 모델을 확장시키고 발전시켜보겠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이 척박한 언론 현실에서 조금씩 새로운 희망의 싹을 심어가고 있기 때문에 저 스스로 저널리스트로서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되찾고 있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뉴스타파>를 책임진 이상 이 조직을 10년 안에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신뢰받는 언론기관으로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KBS 나와 홀가분...후배들에겐 약속 못 지켜 미안"
- <뉴스타파>가 예전엔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더부살이를 하다 사무실을 얻어 나왔잖아요.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떠세요?
"지난 1년 동안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지원과 협조로 프레스센터의 언론노조 회의실을 제작, 편집, 녹화 공간으로 썼습니다. 또 언론노조로부터 작업 공간뿐 아니라 재정 도움도 받았죠. 사실 언론노조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뉴스타파>는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뉴스타파>가 이 정도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정 부담과 공간적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이 새로운 언론 모델의 실험을 적극 지지한 언론노조 지도부와 사무처, 그리고 전국의 조합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뉴스타파>가 나름대로 탄탄한 시청자 층을 확보하는 독립 언론으로 자랄 수 있었고, 저희들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폭발적인 후원의 물결 속에서 언론노조로부터 재정 자립도 이룰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제 후원자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사무실도 얻었고, 저기 보시다시피 작은 스튜디오도 마련했습니다. 거대 방송사에 비해선 아직 장난감 같은 수준이지만 뉴스 등의 녹화는 별 무리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다 좋은 콘텐츠를 제작해,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드리는 것이 후원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보낸 1년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뉴스타파>에게 그 시절은 바로 초심을 의미하는 것이죠."
- <뉴스타파> 시즌 3 시작 전에 KBS에 사표를 제출하셨잖아요. 김 대표에게 KBS는 친정 같은 곳일텐데 사표낼 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대학 4학년 때 KBS기자로 입사해 햇수로 27년을 일했습니다. 말 그대로 청춘을 바쳤죠. 회한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정년을 맞지 못하게 된 데에 대해선 큰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도 있었고요. 이명박 정권 내내 내 어깨를 짓눌렀던 굴레를 벗어던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KBS 후배들과 함께 했던 약속, 즉 KBS를 꼭 국민들의 품으로 되돌려 놓자고 한 그런 다짐들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나 혼자 떠나는 것이 제일 가슴 아팠습니다."
- 사표 낸 이유가 뉴스를 하고 싶어서였다고 하셨는데 김 대표에게 뉴스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제대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정보가 진짜 뉴스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진정한 주권자, 자유인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도움이 되는 정보가 진짜 뉴스라는 거죠. 하지만 기성언론이 뉴스라는 이름을 달아서 배포하고 있는 뉴스의 대부분은 뉴스라는 외피를 덮어쓰고 있긴 하지만 사실 뉴스라기보다는 홍보물이나 선전물이죠. 권력이나 자본의 프레임을 그대로 유포하고, 그들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런 것을 뉴스라고 할 수는 없겠죠. 대부분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드는, 심하게 말하면 '노예화'하는 유해 콘텐츠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진정한 뉴스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주권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앞서 KBS 얘기도 했지만 KBS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뉴스를 하는 게 앞으로도 상당기간 힘들 것으로 판단됐고, 그렇기에 진정한 뉴스를 할 수 있는 보다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했어요."
- 현재 <뉴스타파>는 6개월을 간격으로 시즌제로 하고 있어요. 신선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연속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는데 시즌제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시즌 1, 2는 6개월 간격으로 했는데, 대선이후 2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뉴스타파>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시즌3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전처럼 6개월 단위의 시즌제로 갈 생각은 아닙니다. 이제 독립적인 작업공간도 마련했고, 9명의 신입 인력도 충원해 이전보다는 안정적인 취재 및 제작 인프라가 구축됐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이전의 짧은 시즌제보다는 지속적으로 현재 시스템들을 유지해 나가는 방향으로 <뉴스타파>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탐사보도 중심으로 언론활동 전개해 나갈 계획"
- 김 대표는 탐사전문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보다는 현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굴뚝같죠. 제가 오랫동안 사건기자를 했고, 지난 10여 년 동안은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해왔기 때문에 현장에 대한 그리움은 당연히 있죠. 그래서 직접 현장에서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시즌3부터 합류한 최승호 앵커의 경우 얼마 전 '4대강 수심 6M의 비밀2'를 직접 제작해서 방송했죠. 그리고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이근행 PD도 거의 매주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고 있습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지만 대표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직접 취재를 통해 <뉴스타파>에 기여할 방법도 찾아보려 합니다."
- 구상중인 아이템을 물어봐도 될까요?
"구체화된 것이 없기 때문에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제가 이전에 KBS에서 <미디어포커스>라는 프로그램의 CP를 했던 경험 등을 살려 미디어와 권력, 여론조작의 문제를 다루는 다큐 등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은 이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 시즌 3이지만 사실상 2기인듯 합니다. 김 대표께서는 <뉴스타파> 어디에 주안점을 두실 생각이신가요?
"2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도 있죠. 지난 1기 때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고, 참여한 제작진도 자원봉사 또는 재능기부 형태로 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2기 체제는 언론기관으로서의 기본 틀을 갖추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언론사는 아닙니다만 비영리민간단체 형태의 조직적 틀을 갖추고, 단체 명칭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로 정했습니다.
<뉴스타파>는 탐사저널리즘센터의 주요 활동이나 업무가 되는 거죠. 저희 단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희들은 분명하게 탐사보도를 중심으로 한 언론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기존의 정통탐사보도뿐 아니라 데이터저널리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탐사보도를 도입해 국민의 알권리를 확충하는데 기여해 보려고 합니다. 데이터저널리즘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해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의미와 패턴들을 밝혀내는 기법입니다.
서구의 유력 언론사들은 이미 데이터저널리즘을 언론의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보고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데이터저널리즘과 결부된 부분이기도 한데 저희들은 예산, 재정 분야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예산, 재정만큼 국민 생활과 직결된 중요한 부문도 없는데 한국 언론에선 매우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죠. 이 때문에 저희들은 국민들이 낸 세금이 어떻게 예산으로 편성되고 집행되는가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검토, 관찰, 감시해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 <뉴스타파>가 탄생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1년을 평가하신다면?
"저희가 보기에도 너무 과분하다 싶을 정도의 칭찬과 격려와 성원을 받았어요. 송건호 언론상, 안종필 언론상 등 주요 언론상도 휩쓸었죠.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저희들이 잘했다기보다는 기성 언론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저희가 그런 성원을 받은 것 같아요. 제한된 인력과 재원 때문에 여러 한계가 있었지만 유튜브, 팟캐스트 등을 플랫폼으로 삼아 지상파 뉴스에 못지않은 동영상 패키지 뉴스를 제작 배포한 것은 매우 선구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류매체가 외면한 주제들을 과감하게 다룬 것도 의미있었죠. 지난 1년 동안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살려가면서 더욱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것이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 지난해 <뉴스파타>가 시작된 이후 언론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인터넷방송이라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안 하는 노년층에 다가가기 어려운데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희의 기본 딜레마죠. <뉴스타파>가 자체적인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뉴스임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진 배경에는 디지털 기술과 소셜미디어의 발전이 있었죠.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통해 자체 플랫폼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람들에게 저희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도록 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입소문이 났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이나 소셜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은 장, 노년층에게는 다른 세계일뿐이었죠.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시민방송RTV에 저희 콘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성방송인 TM카이라이프 531번과 일부 케이블 채널에 RTV가 서비스 되는데 지난 3월 18일부터 <뉴스타파> 컨텐츠를 매일 오전 11시와 저녁 8시 밤 11시에 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시청층 확대, 특히 장년, 노년층으로의 확대에 적잖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박근혜정부도 이명박정부와 다르지 않을 듯한 불길한 예감"
- 이명박정부 이후 현재까지 언론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언론 상황에 대해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 언론의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고요, 단적으로 수많은 언론인들이 해고나 정직 등의 징계를 받았는데 그 수가 수백 명에 이르잖아요. 이 같은 탄압은 군사독재 시절을 제외하곤 없었어요. 민주화 이후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큰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새 정권이 이명박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아주길 바라고 있지만 아직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정권도 이전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하지만 권력은 언론의 감시와 견제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죠. 건강한 비판이 있을 때 그 권력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의 견제를 달게 받아들이지 못한 권력은 늘 말로가 비참했습니다. 이명박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죠. 박근혜 정권은 그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수많은 시민들의 후원 덕분에 <뉴스타파>의 인력이나 예산 문제에 다소 숨통의 트였습니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지난해에는 주 1회 콘텐츠를 업로드해 오던 것을 이번 시즌3부터는 주당 2회 정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정통뉴스 포맷이외에 보다 젊고 새로운 형식의 뉴스타파 매거진을 신설했지요. 또 부정기적으로 깊이 있는 탐사다큐를 선보일 뉴스타파 스페셜도 만들었습니다. 이미 최승호 앵커가 이 코너를 통해 4대강사업 문제를 다뤘죠. 이밖에 저희 홈페이지도 대폭 보강해서 일종의 탐사저널리즘 허브로 키워볼 생각입니다.
저희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산하에 데이터저널리즘 연구소를 두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도 기획 중입니다. 이미 영상 뉴스와는 별도로 홈페이지를 기반으로 해서 '한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탐사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요, 우선 박근혜 내각의 면면들을 누리꾼들이 직접 클릭해 파악할 수 있고, 분류도 해볼 수 있도록 쌍방향 그래픽을 구현한 프로젝트를 홈페이지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에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대안 언론의 시발점이 된 매체고 지금도 한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언론이죠. 특히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델은 굉장히 획기적이었죠. 미국에서 연수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국보다 외국에서 <오마이뉴스> 모델을 더 높게 평가하는 걸 보고 저도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결국 어떤 매체이건 그걸 발전시키는 건 독자나 시청자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독자나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그 매체를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라는 거죠.
<오마이뉴스>는 한국 언론의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해 왔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들이 더욱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지금처럼 여론의 균형이 매우 기울어진 상황에서 <오마이뉴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죠. <오마이뉴스>와 <뉴스타파>는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올바른 언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상호 보완재로서의 역할을 절묘하게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 <오마이뉴스>도 계속 성원하시고 <뉴스타파>에도 관심 기울여주시면 질 높고 건강한 콘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고 오후 6시 50분경 각 언론사에는 부산일보를 통해 팩스가 전송됐습니다. 내용은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의 사임 소식을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은 "그동안 이사장직을 지키고 있던 것은 자칫 저의 행보가 정치권에 말려들어 본의 아니게 정치권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면서 대선 기간 제기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정수장학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제 이사장으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만큼 모두 용서해주시고 이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사임을 밝힌 최필립 이사장의 팩스로 향후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중립적인 인물이 될 것인지, 사회 환원 내지는 진정한 공익재단으로 바뀔지가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뻥이었다'
최필립 이사장은 언론사에 공식적으로 사임을 알리는 팩스까지 발송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최필립 이사장은 사임을 밝혔지만, 아직도 사표도 제출하지 않고 매일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이사장 교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에 보고하고 이사회를 소집해야 하지만 서울시교육청 보고는 물론이고, 사임하겠다는 팩스를 발송한 뒤에 한 번도 이사회를 열지 않았다고 정수장학회는 밝히고 있습니다.
사퇴하겠다고 해놓고 서울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로 출근했던 최 이사장은 3월 급여로 592만5900원을 지급 받은 것으로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이 정수장학회에서 받은 '최필립 이사장 3월 보수 내역'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울시교육청과 정수장학회 모두 언제 사표를 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한 달이 넘도록 사표조차 제출하지 않은 그를 보면, 그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사임하겠다며 언론사에 팩스로 보냈던 말이 거짓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 최필립의 비밀회동은 무혐의, 한겨레 기자는 재판'
지난 대선 기간 정수장학회와 박근혜 후보와의 관계가 문제가 되자, 박 후보는 자신과 정수장학회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 10월 최필립 이사장과 MBC의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을 논의하는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박근혜 후보는 최 이사장의 자진사퇴 필요성을 제기했고, 최 이사장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최필립 이사장은 정수장학회가 정치권에 휘둘리는 일 때문에 임기를 끝까지 유지하겠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한겨레 기자가 확보한 대화 내용을 보면 그의 말이 얼마나 비겁한 변명인지 알 수 있습니다.
최필립과 이진숙의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대화록
최필립(정수장학회 이사장):엠비씨 주식 30% 지분 가지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는 거거든. 동네북이 돼서 여기저기 얻어맞기나 딱 알맞고 말이야. 무슨 경영권에도 근처에도 못 가는데 가지고 있어봐야 소용없거든. 그래 가지고 이익배당한다고 해서 자산 재평가가 안 된 상황이기 때문에 1년에 1억도 안 된다 말이야. 겨우 장학금 기부금인가 해서 20억인가 받는 것도 노조에서 또 뭐라고 지랄 나오는 것 같아.(*정수장학회는 문화방송으로부터 매년 3천만원의 배당금과 별도로 1992~2004년까지 모두 111억6700만원, 2005년부터 매년 20억원을 기부금 명목으로 받아왔다. 기부금은 지난해부터 오르기 시작해 2011년에는 21억5천만원, 올해에는 27억5천만원을 받았다.)
이진숙(MBC 본부장):이사장님께 설명했지만 매각을 하게 되면 매각 대금만 6천억원, (여기서) 연간 200억원에 가까운 이자가 발생하니까….
최필립: 아, 우리야 좋지. 하여간 신문·언론하고는 멀리 갈수록 좋아. 이 빌딩에서도 나가고 싶어. 나가게 되면 땅값, 임대료 안 줄 거 같아서 나가지도 못하고 말이야. 언론인 앞에서 죄송합니다. 똥하고 언론하고는 피해야 해.(*정수장학회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부지의 소유권도 갖고 있음.) 부산에서 제일 센 사람들. 지역 기업 총수들이 자기네가 혼자 사는 게 아니에요.
이진숙: 그럼 컨소시엄(consortium, 규모가 큰 사업이나 투자 따위를 할 때, 여러 업체 및 금융 기관이 연합하여 참여하는 것)으로?
최필립: 아니 대표로 누구 한 사람이 나오는데 나머지는 컨소시엄이 나서도 되는 건데, 돈 투자해라 이거야. 그래서 일단 부산에서 몇명, 울산에서 몇명, 또 마산에서 몇명, 이렇게 해서 소액이야. 그래서 부산의 왕초 하나가 제일 많은 지분 내고, 대표도 경영도 그쪽에서 맡는 것. 부산 사람들은 뭐냐면 부산일보가 이때껏 부산 여론을 이끌어가는 리더였는데, 노조가 차고 앉아서 자기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질적으로 굉장히 많다는 거야. 부산일보가 여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산일보만 (기사를) 실어주면 자기네 의향이 반영된다 이거야. 나한테 연락이 들어와서 팔아라 이건데, 자기네들은 그걸 가지고 기업의 일종의 그 뭐라 그럴까, 쉽게 말하면 빽이지. 기업의 빽으로 부산일보를 쓴다는 거라. 지금 노조 때문에 민주당 기관지인지 진보당 기관지로 돼 있으니 이 사람들이 안 되겠다 말이야. 이 사람들이 사가지고 우리도 보호하고 부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부산일보가 필요하다 이거라. 자기들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인수하고 싶다기에, 나는 그냥이라도 주고 싶었다고 그냥 가져가라고 했지.
최필립 이사장과 MBC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회동은 기본적으로 정수장학회의 재산을 팔아 대선 기간 박근혜 후보를 위한 선심성 복지사업을 벌이고, 부산 지역의 기업에 부산일보를 매각해 특정 기업의 빽으로 언론사를 운영하겠다는 방안을 논의했던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익재단이라고 주장했던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은 밀실에서 자기 멋대로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위해 공익재산을 매각하려고 했고, 이는 분명히 법의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그런 사실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 MBC 지분매각 대화록이 도청에 의해 나왔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던 2012년 10월 13일 MBC 뉴스데스크.
100% 도청이라고 주장하며 한겨레 최성진 기자를 '파렴치한 기자'로 몰고 갔던 MBC의 주장은 전혀 터무니없는 물타기에 불과했습니다. 단순히 최필립 이사장이 본인 실수로 최 기자와 통화 중에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 세상에 알리게 된 MBC 지분 매각은 당연히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개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MBC를 비롯한 각 언론사들은 오히려 한겨레 최성진 기자를 비난했고,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그를 기소해서 재판까지 진행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MBC 관계자에게는 전원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 최필립은 왜 사퇴하지 않고 있는가?'
최필립과 MBC 이진숙 본부장의 무혐의 처리는 사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대선 기간 공영 방송의 주식 매각과 선심성 복지 사업을 통한 특정 후보에 대한 선거 운동 계획 자체가 불법 선거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MBC 본부장의 대화내용. 이진숙 본부장은 채널A에 출연해 전혀 문제가 없는 통상적인 업무협의였다고 주장했다. 출처:채널A
'박근혜에게 뭐 도움을...' 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혐의는 무혐의 처리된 반면에 한겨레 최성진 기자는 현재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2번째 공판까지 진행된 상황입니다.
최성진 기자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증인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MBC 이진숙 기획본부장,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입니다. 대화내용을 도청 또는 전화 통화로 얻었느냐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은 이 3명의 증인신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19일 열린 최성진 기자의 두 번째 공판에서 아예 최필립 이사장,MBC 이진숙 기획본부장,이상옥 전략기회부장을 증인으로 소환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어떻게 외부에 알려지게 됐는지를 밝혀내려면 검찰은 증인을 반드시 소환해야 하지만 단순히 검찰에서 진술한 조서내용만 재판의 증거로 사용하겠다고 나왔는데, 이는 3명이 재판에서 하는 말이 외부로 공개될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012년 10월 26일 정수장학회 MBC 지분 매각 대화록을 보도한 한겨레 기자를 MBC가 고발하자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정수장학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다. 출처:경향신문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이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사임할 경우, 이사진도 사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공익법인으로 관선 이사 파견 내지는 정수장학회 보유 언론사 지분 등의 처리 등을 통해 그간 정수장학회의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최필립 이사장의 사퇴로 끝나지 않고 이후에 발생할 문제가 불거질 경우 정치권에 새로운 핵심 사안으로 등장한다면 박근혜 정부에도 큰 타격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선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사임하겠다고 언론사에 팩스까지 발송했지만, 최 이사장은 계속 출근하면서 앞으로 발생할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이창원 정수장학회 사무처장이 MBC 지분매각 보도이후 박근혜 측근과 통화했던 목록. 출처:형향신문
이창원 정수장학회 사무처장은 정수장학회 MBC 지분매각 대화 보도가 나간 뒤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최측근인 최외출 영남대 교수와 박근혜 캠프 정무 담당 정호성 보좌관과 통화를 했습니다. 단순한 업무협의라고 하기에는 이들의 통화가 심상치 않았지만, 오히려 이 통화목록을 공개한 부산일보 출신의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의 '도촬' 물타기로 진실은 또다시 미궁에 빠졌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 보도 이후 최필립 이사장의 자진사퇴를 권고함으로 대외적으로 자신은 정수장학회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서 대선의 가장 큰 이슈였던 언론사 지분매각과 정수장학회의 문제를 교묘히 피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최필립은 박근혜 새정부에 힘을 실어주며 박근혜 대통령 주위에는 권력을 탐하지 않는 사람만 있는 이미지를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은 물타기로 사라지고 오히려 최필립 이사장은 사후 뒤처리를 위해 아직도 정수장학회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습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1971년 대선을 앞두고 MBC 지방국 매각대금이 대선에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었습니다. 2012년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 대화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면 아마 똑같은 일이 재연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움을 파헤친 기자는 재판을 받느라 육체와 정신이 고통받고 있지만, 오히려 당사자인 최필립 이사장은 약 6백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기사가 운전해주는 승용차를 타고 계속해서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불의와 부조리로 뒤덮인 나라에서 여전히 살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몰래 진실을 은폐하는 범죄를 국민에게 알려주는 진실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조미(북.미)대결전의 가장 관건적인 시각에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기로 한 것은 날이 갈수록 가증되는 미국의 대조선 압살책동에 대처한 정의의 자위적 대응이며 조국통일과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추동하는 역사적인 대결단으로 된다.”
<조선중앙통신> 25일발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사는 24일 ‘정전협정백지화는 조선반도의 전쟁상태를 끝장내기 위한 정의의 대결단’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이같이 정전협정 백지화 결단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보도는 “장장 60년 정전협정을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공간으로 악용하여온 미국의 범죄행위로 하여 오늘날 조선반도는 세계 최대의 열점지역으로, 일촉즉발의 전쟁터로 화하였다”면서 “조선반도에 조성된 유례없이 첨예하고 엄중한 정치군사적 비상사태는 우리 공화국으로 하여금 이 땅에서 세기를 이어온 전쟁도 평화도 아닌 지정학적 참사를 하루빨리 끝장내고 민족적 자주권과 지역의 안정을 담보하기 위한 중대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였다”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그 정당성을 주장했다.
첫째, 보도는 “정전협정 백지화 결단은 미국에 의해 유명무실해진 협정에 우리가 더 이상 구애될 필요가 없게 된 현실로부터 불가피하게 취한 자위적 대응조치”라고 주장했다.
보도는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 모든 관심과 기대는 정전협정 제60항에 집중되었는데, 그러나 “미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잉크도 마르기전인 1953년 8월 8일 이미 짜놓은 각본에 따라 남조선과 ‘호상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의 남조선주둔을 합법화함으로써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킬 데 대한 제60항을 무효화하였다”고 비난했다.
즉, “제60항을 이행하는 것은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수시키고 전쟁의 화근을 제거하며 조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고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게 될 관건적인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어 보도는 “미국은 지금까지 정전협정을 준수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협정에 이름만 걸어놓고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추구하여왔다”면서 “교전 일방이 헌신짝처럼 내던진 이런 형식적인 문건에 우리만이 구애된다는 것은 국가의 최고이익의 견지에서 추호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도는 “전쟁은 예고 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경계를 표하고는 “정전협정에 전혀 구속되지 않은 미국의 침략위협이 날로 포악무도해지는데 대처하여 나라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고 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하는 실제적인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고 정전협정 백지화 결단의 정당성을 알렸다.
둘째, 보도는 “정전협정 백지화 결단은 전면대결전으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책동을 끝장내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정의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보도는 “조선반도에서 지속된 정전은 선전포고 없이 치러진 사실상의 전쟁이었다”면서 “판문점과 연평도를 비롯한 조선서해상에서의 빈번한 군사적 충돌 등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일으킨 사건들 모두가 단순한 우발적 사건인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정전체계에 의해 초래된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기에 “미국이 정전협정의 제한성을 악용하여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 고수’에로 남조선괴뢰들을 부추김으로써 조선서해 5개 섬 일대에는 어느 하루도 평온이 깃들지 못하고 불과 불이 횡행하는 초긴장 상태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보도는 “최근 우리 공화국의 위성발사와 지하 핵시험을 걸고 광란적으로 벌어지는 제재압박책동, 침략전쟁행위 등은 우리나라가 통일강국으로 부흥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저들의 세계제패전략 실현에 불안을 느낀 세력들의 지배주의정책의 연장”이라면서 “정전상태를 그대로 두고서는 강성국가건설은 물론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과 민족의 부흥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세기와 세기를 이어지는 전쟁위협 속에서 우리가 얻게 된 결론”이라고 거듭 정당성을 알렸다.
아울러, 보도는 “남조선괴뢰 호전광들이 미국과 결탁하여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북침핵전쟁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조건에서 상대방에 대한 무력불사용, 우발적 군사적 충돌방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불가침경계선문제 등 북남불가침합의들의 전면무효화를 선언한 것도 정전협정 백지화에 따르는 논리적인 병행조치들”이라고 덧붙였다.
셋째, 보도는 “정전협정 백지화 결단은 냉전의 유물을 청산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룩함으로써 인류의 평화위업에 이바지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보도는 “조선전쟁 후 미국은 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규정한 정전협정에 어긋나게 지역에서의 패권을 위해 조선반도의 통일을 방해하였으며 북과 남 사이의 대립과 대결을 조장시켜왔다”면서 “(미국이) 냉전 후에도 정전협정에 의한 전쟁상태 지속을 빗대고 냉전시기의 군사동맹관계를 확대 강화하고 있”기에 “유독 우리만이 쁠럭(동맹) 밖에서 순수 자기의 힘으로 제국주의연합세력과 맞서고 있다”며서, 그 결과 “결국 조선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는 심각한 군사역학적 불균형이 조성되어있다”고 현 상태를 분석했다.
보도는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한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으며 조선반도의 지속적인 불안정과 긴장상태를 완화시킬 주변대국들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난 60년간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다”면서 “허울만 남은 조선정전협정을 더 이상 존속시켰댔자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보장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며 열강들을 포함한 지역나라들의 관계에 악순환만 조성되고 발전이 제약 당한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는 진리”라고 확신했다.
끝으로, 보도는 “우리 군대와 인민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대한 숭고한 책임감과 반미대결전의 최후승리에 대한 확신을 안고 조국통일과 인류의 평화위업을 위한 판가리 결사전에 돌입하였다”면서 “말로 할 때는 이미 지났다”고 선언했다.
정전협정백지화는 조선반도의 전쟁상태를 끝장내기 위한 정의의 대결단
--조선중앙통신사 보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조미대결전의 가장 관건적인 시각에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기로 한것은 날이 갈수록 가증되는 미국의 대조선압살책동에 대처한 정의의 자위적대응이며 조국통일과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추동하는 력사적인 대결단으로 된다.
장장 60년 정전협정을 대조선적대시정책의 공간으로 악용하여온 미국의 범죄행위로 하여 오늘날 조선반도는 세계최대의 열점지역으로,일촉즉발의 전쟁터로 화하였다.
미국은 어중이떠중이 적대세력들과 공모결탁하여 력사상 가장 집요하고 악랄한 군사적공갈과 경제적봉쇄책동으로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을 엄중히 위협하고있다.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은 핵탄을 적재한 전략폭격기 《B-52》와 핵동력잠수함을 비롯한 핵타격수단들까지 투입된 실동핵전쟁연습이다.
이것은 조선정전협정과 모든 북남합의에 대한 후안무치한 유린,파기행위이며 공화국의 자주권과 최고리익에 대한 참을수 없는 도발이고 침해행위이다.
조선반도에 조성된 류례없이 첨예하고 엄중한 정치군사적비상사태는 우리 공화국으로 하여금 이 땅에서 세기를 이어온 전쟁도 평화도 아닌 지정학적참사를 하루빨리 끝장내고 민족적자주권과 지역의 안정을 담보하기 위한 중대결단을 내릴것을 촉구하였다.
1
정전협정백지화결단은 미국에 의해 유명무실해진 협정에 우리가 더이상 구애될 필요가 없게 된 현실로부터 불가피하게 취한 자위적대응조치이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이 우리의 초강경대응조치에 대하여 《정전협정은 호상 합의하여 이루어진것만큼 일방적으로 무효화할수 없다.》고 하면서 그 무슨 《위반》으로 여론을 몰아가고있는것은 언어도단이다.
정전협정은 쌍방이 합의하여 파기하는것이 아니며 어느 일방이 협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백지화되게 되여있다.
조선정전협정은 지난 60년동안 미국의 체계적인 파괴행위와 그를 비호두둔한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부당한 처사로 하여 이미 백지화되고도 남은 상태였다.
1953년 7월 27일 500여일간의 격렬한 담판끝에 조선정전협정이 체결되였을 때 전체 조선인민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정전협정 제60항에 집중되였다.
제60항을 리행하는것은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수시키고 전쟁의 화근을 제거하며 조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고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게 될 관건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잉크도 마르기전인 1953년 8월 8일 이미 짜놓은 각본에 따라 남조선과 《호상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의 남조선주둔을 합법화함으로써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킬데 대한 제60항을 무효화하였다.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은 《조선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장갑차량,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것을 정지한다.》고 규정하고있다.
1957년 6월 21일 미국은 정전협정 제13항 ㄹ목의 페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방대한 현대적무장장비들과 함께 1 000개가 넘는 각종 핵무기들을 남조선에 체계적으로 끌어들여 전개함으로써 남조선을 극동최대의 핵전초기지,핵화약고로 전변시켰다.
미국은 조선에서 새로운 전쟁준비에 장애가 되는 정전협정조항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유린하는것과 함께 그의 리행감독기구들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미국의 란폭한 파기행위로 하여 정전협정 제2조 19항으로부터 35항에 이르는 군사정전위원회 관련조항들과 36항으로부터 50항에 이르는 중립국감독위원회 관련조항들은 모두 사멸되고말았다.
미국은 아무런 법률적,제도적제약이나 구속도 받음이 없이 반공화국군사적도발을 끊임없이 감행하였다.
미국의 정전협정위반행위는 수십만건,그로 하여 소집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만도 수백회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있다.
지금까지 정전이 명목상으로나마 유지되여올수 있은것은 오로지 우리가 최대한의 자제력과 인내성을 발휘하였기때문이다.
우리는 조미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할데 대한 제안(1970년대),조미회담에 남조선도 참가하는 3자회담소집제안(1980년대),새로운 평화보장체계수립제안(1990년대),정전협정유관국들이 모여 전쟁종결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할데 대한 제안(2007년 10월 4일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조선전쟁발발 60년이 되는 해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데 대한 제안(2010년 1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성명) 등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끝장내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보장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수많은 제안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제안들을 모조리 외면하고 거부해나섰다.
미국은 지금까지 정전협정을 준수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협정에 이름만 걸어놓고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추구하여왔다.
교전일방이 헌신짝처럼 내던진 이런 형식적인 문건에 우리만이 구애된다는것은 국가의 최고리익의 견지에서 추호도 용납될수 없는것이다.
전쟁은 예고없이 일어나는것이다. 정전협정에 전혀 구속되지 않은 미국의 침략위협이 날로 포악무도해지는데 대처하여 나라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고 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하는 실제적인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2
정전협정백지화결단은 전면대결전으로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책동을 끝장내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정의의 선택이다.
미국의 대조선정책은 사회주의조선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기 위한 제도전복정책이며 정전협정은 그 실현을 위한 주되는 공간이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조선반도에서 항시적인 대결과 전쟁상태를 유지하며 우리를 힘으로 압살하기 위한 반공화국전략실현에 악용하여왔다.
세계는 미국이 강요한 전쟁상태때문에 조선인민이 장장 반세기이상 극심한 불안속에서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는가를 다는 모를것이다.
조선반도에서 지속된 정전은 선전포고없이 치르어진 사실상의 전쟁이였다.
미국은 반세기이상 우리의 사회주의건설과 인민생활에 걸음걸음 장애를 조성하여왔다.
반제자주의 전초선에 서있는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으려고 조선반도에서 끊임없이 정세를 긴장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복무하여야 할 막대한 인적,물적재부가 군력강화에 돌려졌으며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여야 하는 엄혹한 사태가 지속되게 되였다. 우리가 입은 인적,물적피해액은 2005년까지 집계된것만 해도 무려 64조 9 598억 5 400만US$이상에 달하였다.
사회주의건설의 단계들마다 악랄하게 감행되여온 전쟁도발책동과 침략위협 등에 의한 우리 인민의 정신적압박감과 정치도덕적,문화적피해는 돈으로 다 헤아릴수 없다.
장기간 존속되여온 조선반도불안정과 그로 인한 후과의 법률적리유는 다름아닌 정전상태에 있다.
판문점과 연평도를 비롯한 조선서해상에서의 빈번한 군사적충돌 등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일으킨 사건들모두가 단순한 우발적사건인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정전체계에 의해 초래된것들이다.
미국이 정전협정의 제한성을 악용하여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고수》에로 남조선괴뢰들을 부추김으로써 조선서해 5개 섬일대에는 어느 하루도 평온이 깃들지 못하고 불과 불이 횡행하는 초긴장상태가 조성되고있다.
이 일대야말로 정전협정의 위험성과 그로 인한 새 조선전쟁발발의 현실적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축도이다.
정전협정이 조선반도에서의 새 전쟁발발을 막을수 없다는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로 되였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은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책동이 각 방면에서 더는 참을수 없는 상태로 날로 심화되고있는 속에서도 정전협정에 계속 구속된다면 지나온 반세기이상의 온갖 장애와 불행,비극을 또다시 겪어야 할것이다.
지금까지 그 어느 렬강도 우리 겨레가 하나로 단합되고 강성해지는것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최근 우리 공화국의 위성발사와 지하핵시험을 걸고 광란적으로 벌어지는 제재압박책동,침략전쟁행위 등은 우리 나라가 통일강국으로 부흥하는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저들의 세계제패전략실현에 불안을 느낀 세력들의 지배주의정책의 연장이다.
정전상태를 그대로 두고서는 강성국가건설은 물론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과 민족의 부흥을 실현할수 없다는것이 세기와 세기를 이어지는 전쟁위협속에서 우리가 얻게 된 결론이다.
지금 미국에 대한 우리 인민의 원한은 뼈에 사무쳤으며 우리의 참을성과 자제력은 더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였다.
이로부터 우리 공화국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평화번영을 위해 그를 가로막는 화근을 들어낼 중대결단을 내리고 정밀핵선제타격권리행사를 포함한 단호한 군사적대응의지를 표명하였다.
남조선괴뢰호전광들이 미국과 결탁하여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북침핵전쟁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조건에서 상대방에 대한 무력불사용,우발적군사적충돌방지,분쟁의 평화적해결,불가침경계선문제 등 북남불가침합의들의 전면무효화를 선언한것도 정전협정백지화에 따르는 론리적인 병행조치들이다.
우리에게는 반공화국적대세력의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그들이 운명의 가장 비참한 시각을 체험하게 할수 있는 잠재적인 초강경대응조치들이 얼마든지 준비되여있다.
3
정전협정백지화결단은 랭전의 유물을 청산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룩함으로써 인류의 평화위업에 이바지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이다.
동서간의 대결이 종식된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 정전협정과 적대세력들의 전쟁동맹은 지구상에 남아있는 랭전의 마지막유물이다.
조선전쟁후 미국은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규정한 정전협정에 어긋나게 지역에서의 패권을 위해 조선반도의 통일을 방해하였으며 북과 남사이의 대립과 대결을 조장시켜왔다.
랭전후에도 정전협정에 의한 전쟁상태지속을 빗대고 랭전시기의 군사동맹관계를 확대강화하고있다.
미국남조선,미국일본의 쌍무동맹관계를 삼각군사동맹으로,오스트랄리아 등을 포괄하는 다국적군사동맹으로 만들고 최근에는 유엔안보리사회의 《제재결의》를 주도하여 새로운 조선전쟁시 지난 50년대의 전쟁때보다 더 많은 추종국가들을 끌어들이려 하고있다.
랭전후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그 어느 나라나 지역을 막론하고 이러저러한 명목밑에 군사동맹을 포괄한 쁠럭에 가담하고있다.
반면에 우리는 그 어떤 군사쁠럭에도 가입하지 않았으며 《핵우산》제공과 같은 군사적보호담보를 받은것이 없다.
유독 우리만이 쁠럭밖에서 순수 자기의 힘으로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맞서고있다.
결국 조선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는 심각한 군사력학적불균형이 조성되여있다.
주권국가의 합법적권리인 인공지구위성발사까지 그 무슨 《도발》로 매도하면서 유엔거수기를 동원하여 횡포한 제재압박책동을 강행하는것과 같이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날로 확대하고있는 반공화국압살책동은 초보적인 공정성과 원칙은 고사하고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판을 치는 현실을 적라라하게 반영한것이다.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한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할수 없으며 조선반도의 지속적인 불안정과 긴장상태를 완화시킬 주변대국들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것이 지난 60년간의 력사를 통해 충분히 증명되였다.
세계 그 어디에도 조선반도처럼 방대한 핵전략무력이 집중전개되여있고 매일과 같이 합동전쟁연습을 비롯한 화약내풍기는 군사행동들이 벌어지는 전쟁지대는 없다.
조선반도평화는 세계평화의 한 부분이다.
조선전쟁은 곧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주요국가들과 지역이 말려드는 지역전쟁,세계전쟁이며 조선반도평화보장을 떠난 세계평화보장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허울만 남은 조선정전협정을 더이상 존속시켰댔자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보장에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으며 렬강들을 포함한 지역나라들의 관계에 악순환만 조성되고 발전이 제약당한다는것은 력사가 말해주는 진리이다.
평화와 발전을 주제로 하는 21세기 세계적인 정치,경제,군사활동의 최대중요거점인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일촉즉발의 항시적인 전쟁요인이 존재하는것은 현시대발전의 기본흐름에 부합되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도 리롭지 못하다.
시대의 흐름으로 보나 조성된 정세의 요구로 보나 조선반도정전상태는 더이상 지속될수 없다.
정전협정의 백지화는 조선반도평화보장을 자주권수호를 위한 중요과제로 내세우고 그를 위해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고있는 공화국의 철의 의지를 다시금 보여주고있다.
공화국의 자주권과 존엄을 침해하기 위한 온갖 적대세력들의 준동이 위험한 상태로 번져지고있는 오늘 우리의 선택도 명백해졌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대한 숭고한 책임감과 반미대결전의 최후승리에 대한 확신을 안고 조국통일과 인류의 평화위업을 위한 판가리결사전에 돌입하였다.
원쑤들이 칼을 빼들면 장검으로,총을 내대면 대포로,핵으로 위협하면 그보다 더 위력한 정밀핵타격수단으로 맞선다는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변의 립장이며 백두산식대응방식이다.
말로 할 때는 이미 지났다.
적대세력들이 우리의 확고부동한 초강경대응의지를 오판하고 감히 움쩍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무자비한 복수의 불벼락에 의해 지리멸렬되고말것이다.
우리의 천만군민은 다지고다져온 무진막강한 선군의 위력으로 조국과 민족의 자주권을 완전히 실현하고 제국주의련합세력을 타승한 위대한 조선의 새 력사를 청사에 아로새길것이다.
유난히 추운 겨울을 거쳐 이제 어느덧 봄의 길목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강둑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날 것입니다. 또 화려하고 소담한 꽃들이 이 산천을 수려하게 장엄하겠지요. 지난 3월 15일 황악산 직지사 도량에서 102명의 새내기 스님들이 탄생했습니다. 행자님들은 지난 6개월의 힘든 기초수행과정을 마치고 어엿한 사미, 사미니가 되었으니 출가수행자로서 우리 교단의 새싹이며 꽃이 되었습니다. 먼저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봄볕 가득한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어서 오라, 그대들이여! 아주 잘 왔다.”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발심한 출가자에게 주신 환대의 인사입니다. 오늘, 석가모니 부처님과 이 땅의 불교대중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청정·자애·헌신의 길을 서원한 보현행자들을 환영합니다.
“102명의 사자들이여! 아주 잘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가슴 벅찬 환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가고 있는 ‘옛 길이요, 오늘의 길이요, 미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미계를 받는 행자들. 조계종 총무원 제공
초발심한 행자님!
그렇습니다. 출가는 곧 길이고 길을 가는 여정입니다. 행복과 안락을 성취할 수 있는 길, 그러기에 마땅히 선택해야 할 길입니다. 진실한 마음과 올곧은 실천으로 삶의 혁명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길, 그래서 마땅히 가야 할 길입니다. 나와 이웃 사람 그리고 산하대지의 초목과도 더불어 환희로 어울리는 길, 그러므로 마땅히 동행해야 할 길입니다.
조선시대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서 출가의 큰 의미와 결의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가하여 승이 되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안하고 한가함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요, 따뜻한 옷과 잠자리와 배불리 먹기 위함이 아니다. 명예와 이익을 구함도 아니다. 생사를 벗어나기 위함이요, 번뇌를 끊기 위함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잇기 위함이요,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당당하고 빛나는 길을 걷는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행자님과 우리 모두는 세세생생 진리를 추구하는 순례길의 벗이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초발심 행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불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나는 ‘초발심’과 ‘행자’라는 어감이 참 정겹기 때문입니다. 초발심! 가만히 불러보면 풋풋하고 순결한 풀 향기가 날 듯합니다. 초발심! 또렷하게 발음하면 첫 새벽의 설렘과 결기가 다가옵니다. 또 초발심과 행자를 붙여 ‘초발심 행자’라고 부르면 어떤가요? 순정무구하면서 강건한 장부의 기상이 용솟음치지 않습니까?
덕숭총림 수덕사의 설정 큰스님은 방장에 오르실 때` “나는 대중과 수행하는 ‘방장행자’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생각하는 지금, 나의 뇌리에 설정 큰스님의 단아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큰스님의 신실한 마음이 큰 감동과 고요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큰스님께서 “나는 방장 행자”라고 선언하신 깊은 속내를 저는 알 듯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부처님의 제자로서 세세생생 ‘하심’ ‘초심’ ‘항심’을 지키면서 수행하겠다는 원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수행자는, 무엇보다도 초발심 행자에게 하심(下心 )은 원력의 큰 집을 지을 수 있는 단단한 터 닦기가 되겠지요.
하심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를 낮추는 일입니다. 그러면 낮추는 일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하심이 단순히 몸을 숙이는 겸손이 아니라면, 나의 교만심을 내려놓고 이웃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가짐이고 마음의 몸짓이겠지요. 그래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하심을 말했습니다. “진리를 수행하는 자는 가장 낮은 사람의 발밑에 존재해야 한다.” 행자님이 평생 이렇게 하심으로 공부한다면 나에게도 이롭고 이웃에게도 이로운 아름다운 출가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초발심 행자가 지켜야 할 초심(初心)은 무엇인가요? ‘초심’이란 글자 그 의미대로 평생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처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초심이란, 최초의 발상이라는 단순한 의미는 아니겠지요.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길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정직하게 직면하면서 고뇌하고, 묻고, 그리고 결론을 맺고 결단한 마음이 바로 초심입니다. 그래서 초심은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심심으로 욕락을 버리고 일찍 발심한 젊은 출가자들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똑똑히 분간하면서, 걸어가야 할 길만을 고고하게 찾아서 가라.” 위에서 언급한 서산대사의 <선가귀감>과 함께 한 직지사 수계교육장에 있는 우바리 존자의 말씀입니다. 생생하게 기억하지요? 가장 핵심적이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길의 선택, 그리고 그것을 이루겠다는 마음이 바로 초심입니다. 초심은 집의 주춧돌입니다. 주춧돌 없이 깨달음과 혁명적 삶의 역사의 집은 완성될 수 없습니다.
행자님!
초심과 함께 늘 쉬지 않고 꾸준하게 정진하는 마음이 바로 항심(恒心)입니다. 하심이 하심을 잃지 않고, 초심이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한결같은 정진을 해야 합니다. 도중에 그만두거나, 혹은 하는 공부가 시들해지고 빛이 바랜다면 이미 출가한 수행자가 아니고 다시 범속한 일상의 집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선대의 선지식께서는 항심을 때때로 거듭거듭 강조하셨습니다. “한 방울의 물이 비록 적지만 차고 차고 마침내 항아리를 채운다.” 행자시절 읽었던 법구경의 말씀이 생각날 겁니다. 또 대웅전 처마 밑의 돌을 유심히 본 적이 있습니까? 낙숫물이 한 곳에 거듭거듭 쉬지 않고 떨어져 마침내 구멍이 생긴 흔적을 보았을 겁니다. 게으르지 않는 부지런한 정진, 곧 항심은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놓으며 집을 짓는 일입니다.
이제 사미, 사미니계를 받고 102명의 초발심 행자님들은 첫 공부길에 들어섰습니다. 풋풋하고 설레던 초심이 어느덧 느슨해지고 일상화되었는지 점검하고 순간순간 다잡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그대들은 그대 자신의 ‘온전한 삶’으로 말하길 원합니다. 진실한 마음씀으로 말하고, 지극히 낮은 몸으로 말하고, 비움과 나눔으로 말하고, 세상의 아픔에 그대 가슴이 온전히 아픈 몸짓으로 말하길 원합니다. 그리하면 그대의 모든 삶 하나하나가 그대로 수행이고 부처의 길이 될 것입니다.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을 지냈으며, 현재 조계종 교육부장으로 승가 교육 진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