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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숨기고 싶은 '불편한 진실'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드디어 전략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와 차별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던 인물입니다. 특히 올해 초만 해도 "현 정권과 인위적 차별은 없다"고 했는데, 선거를 불과 15여일 앞두고 갑자기 이명박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몰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도 양적 성장을 중시하는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며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박근혜 후보의 선거전략이 놀라운 이유는 그녀가 전혀 예상치 않은 "정권교체'라는 전략을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새누리당과 이명박,박근혜는 하나의 정권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박근혜는 아예 이명박 정권을 부정하고 나와버렸습니다. 이렇게 그녀가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서입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MB정권 심판과 정권교체'를 내걸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대응은 아예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권을 하나로 묶어 '실패한 정권'으로 만들어 놓고, 문재인 후보를 '실패한 정권의 계승자'로 규정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그녀의 방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단히 효과적입니다. 그 이유는 일부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 또한 정권교체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월3일자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 출처:한겨레 신문

 


한겨레 신문이 11월30일~12월1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답변이 53.5%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교체에서 박근혜 지지층의 14.0%도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들은 '박근혜 집권'도 정권교체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야권 성향의 지지자들로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대다수 언론이 새누리당을 한나라당과 동일시하지 않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을 아예 박근혜 후보와 대결구도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후보는 한 몸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 무서운 보수 세력의 결집'

이명박 대통령의 친이계와 박근혜 후보의 친박계는 2007년 대선 경선부터 경쟁 관계에 있던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늘 공천과 한나라당 주도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습니다. 특히 지난 4.11 총선에서 친이계는 친박계에 학살당했다고 할 정도로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진수희 의원과 안상수 전 대표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4.11 총선에서 이재오계인 진수희 의원이 친박계 김태기 단국대 교수에게 밀려 공천에 탈락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친이계 의원이 공천탈락하자, 일부에서는 '비박근혜 연대'를 구상해서 탈당하겠다고 나섰지만, 김무성 의원이 "보수분열의 씨앗이 될 수 없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하자, 탈당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여의도 연구소 부소장을 비롯해, 조전혁,이경재,박종근,정해걸,이동관,권오을,김해진 등 친이계 인사들도 무소속 출마와 탈당을 선언했다가 뜻을 접기도 했습니다.

 

 

▲김영삼,이재오와 만난 박근혜. 출처 뉴시스.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대권도전을 선언했던 박근혜 후보를 향해 "사자가 아니다, 그건 아주 칠푼이야, 사자가 못 돼"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11월30일 김무성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에게 전화해 '박근혜 후보를 적극 지지'하겠다고 했습니다.

친이계의 행동대장이었던 이재오 의원도 지난 12월2일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이처럼 그동안 박근혜 후보와 대립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수세력이 정권 연장을 위해서라면 적과도 동침할 수 있는 뻔뻔함을 보여주는 무서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권은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정부패로 망한다는 말처럼 보수세력은 절대로 분열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노림수는 정권 연장만 하면 당연히 그들에게 기득권 분배가 잘 이루어지리라는 믿음과 신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와 이명박은 자웅동체'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정권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새누리당이라는 하나의 정당 속에서 그들이 원했던 법과 정치를 함께 이루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둘 사이의 갈등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언제나 힘을 합쳤고, 그들만을 위한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경향신문 2009년 7월 23일자 6면.

 


지난 2009년 한나라당은 재투표, 대리투표 논란이 있었던 미디어법을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여야 간 합의처리'를 강조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하다가 돌연 한나라당의 최종미디어법 수정안이 ' 이정도면 국민들이 공감해주실 것이라고 본다'는 말로 미디어법 날치기 강행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갈등은 있었어도 법안 통과에 대해서는 박근혜 의원이 친박계 의원을 동원해 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2011년 11월 23일자 5면.

 


한미FTA 비준안에 대한 국민의 반발과 야당 의원의 반대가 있었던 2011년에도 FTA 비준안에 찬성 표결을 했습니다. 그녀는 찬성표에 대해 당 지도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었지만, 한나라당의 지도부가 박근혜 전 대표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말 한마디면 통과되지 못했던 법안도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 당심','당 지도부 결정'이라는 말로 교묘하게 자신의 책임론은 늘 피해 갔습니다.

 

 

 

▲친이계와 친박계가 협력하여 통과시킨 법안들. 출처:민중의 소리

 


친박계 의원들이 박근혜 전 대표의 말과 의중에 따라 표를 던지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그동안 이명박 정권의 수많은 법안이 어떻게 통과됐습니까? 박근혜 전 대표가 찬성했고, 동의했기 때문에 그 법안들이 통과된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실패한 정권이라고 연일 말하는 박근혜 후보가 거느린 친박계 의원들이 법인세법,소득세법,종부세법에 모두 찬성했습니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조세 관련 법안을 박근혜 후보가 통과시켰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지대한 협력을 한 것입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MB정부 임기 내내 함께 힘을 합쳐 실패한 정권을 유지했던 파트너였습니다.

' 정권 심판론 VS 정권 재창출'

정권 심판론을 가지고 현재의 박근혜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한 보수세력을 무너뜨리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보수 세력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성향의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들에게 박근혜와 이재오,정몽준,홍준표 등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 중 누가 됐든 새누리당처럼 보수 인물이 되기만 하면 그걸로 투표는 누구에게 할지 정해진 것입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웠던 경제대통령론과 '이명박근혜' 포스터.출처:뉴시스.선관위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사람이 오로지 친이계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따라 수많은 한나라당 의원들과 세력들이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했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의 주위 인물과 세력들은 대부분 공통적인 분모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한나라당과 박근혜 후보를 이상하게 따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이명박 정부를 새누리당 정권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있는 언론들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적은 새누리당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몰아서 공격하는 언론이 별로 없습니다. 18대 대선에서 언론들은 박근혜 후보만 강조하고 새누리당은 쏙 빼놓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심판' 프레임을 연일 언론이 때리고 그 효과는 아주 제대로 먹혀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정권 심판론'보다 새누리당을 장악한 박근혜 후보가 뒤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도와줬던 일들을 가지고 철저히 '새누리당'을 공격해야 합니다. 이명박을 심판하겠다고 나서봤자, 이명박과 박근혜를 다른 사람으로 보고 있는 유권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그런 전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2010년 8월23일 조선일보 1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경선에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결정되자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를 했습니다. 이 독대 전인 2010년 8월23일 조선일보는 당시 11개월만에 만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정권 재창출 위해 노력"하겠다고 보도했습니다.

현재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공보단장인 이정현 의원은 "앞으로 한나라당이 국민의 신임을 잘 얻어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대화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의 비공개 회동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박근혜 후보는 당시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두 사람 간의 합의 사항이 지금 시점에서 알려지기 싫어할 것입니다.


 



2007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나라당을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나라당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게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준비했던 많은 것을 실천하여 성공하겠습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던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기호 1번을 사용하는 새누리당은 '한나라당'이 대선을 앞둔 2012년 2월13일 당명만 바꾼 정당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 년도 안 된 일들을 모두 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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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주체강철이 자동차 산업 일으킨다

 

북의 주체강철이 자동차 산업 일으킨다
 
[한호석의 개벽예감](39) 금속, 기계공업 주체화, 과학화가 안받침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2/12/03 [02:06] 최종편집: ⓒ 자주민보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의 어제와 오늘

2012년 11월 28일 폴란드 외교부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이 전한 보도에 따르면, 평양에 주재하는 여러 유럽연합 회원국 대사관들 소속 외교관들이 북측 외무성 주선으로 남포에 있는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을 시찰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북측 외무성 관리가 현재 연간 10,000대 차량생산능력을 지닌 평화자동차종합공장 생산시설을 10배 확장하여 연간 100,000대를 생산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렇게 확장된 시설에서 생산하는 차량을 해외에 수출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고 한다. 평화자동차종합공장 시설을 그처럼 대폭 확장하려면, 자금을 3억 달러 정도 투입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원래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은 북측 기계공업성 산하 조선민흥총회사와 남측의 통일그룹이 2000년에 첫 남북합영회사로 설립하여 2002년부터 가동해 왔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는 승용차의 경우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가 만든 승용차를 면허생산하는 것이고, 소형 화물차와 승합차(SUV)의 경우에는 몇몇 중국 자동차 회사의 기술을 이전받아 면허생산하는 것이다.

평양 주재 유럽연합 회원국 외교관들의 평화자동차종합공장시찰에 관한 폴란드 외무부의 발표가 나오기 하루 전인, 2012년 11월 27일 <중앙일보>에 눈길을 끄는 보도기사 한 편이 실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통일그룹이 평화자동차종합공장에 관한 남북 경제협력사업자 승인을 취소해달라는 신청서를 2012년 10월 통일부에 제출하였는데, 평화자동차종합공장에 출자한 자금 2,000만 달러를 조선민흥총회사로부터 돌려받고 그 공장의 지분 70%와 공장부지를 조선민흥총회사에 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은 구매자로부터 주문을 받은 수량만큼만 생산하는 수주생산방식으로 가동되어 왔다. 2011년 평화자동차종합공장에서 수주생산방식으로 생산한 차량은 1,860대였다. 연간 생산능력이 10,000대인 공장을 가동해오면서도 2003년도 생산실적은 314대였고, 10년이 지난 2012년도 생산실적도 겨우 2,000대 수준에 이른 것을 보면, 통일그룹이 평화자동차종합공장에서 손을 떼려는 까닭을 알 수 있다.

폴란드 외무부 발표와 <중앙일보> 보도기사를 종합하면, 통일그룹이 합영을 포기한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을 대폭 확장하여 수출기업으로 육성하려는 북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개인이 승용차를 사적으로 소유한 경우가 극히 드문 사회주의사회에서 승용차 수요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북과 같은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산업현장에서 운송수단으로 쓰이는 화물차량이나 인민들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쓰이는 버스를 생산해야 장기적인 발전전망이 있는 것이며, 따라서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의 승용차 생산은 내수가 아니라 해외수출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0년 2월 3일 남포에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그 눈발을 맞으며 남포시 항구동에서 평화자동차종합공장 착공식이 진행되었다. <중앙일보> 기자가 현장취재한 2000년 4월 27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착공식에 참석한 북측의 김용순 당비서는 “15년 안에 세계에서 자동차 잘 만드는 나라 하면 공화국이란 말을 듣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자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는 김용순 당비서가 자신 있다고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공식행사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발언으로 여겼을 뿐이다. 김용순 당비서는 그로부터 3년 뒤 교통사고로 작고하였고, 그가 착공식에서 자신 있게 남긴 그 발언도 12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의 기억 저 편으로 차츰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북에서 지난 12년 세월은 결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흘러오지 않았다. 무지와 편견, 왜곡과 거짓이 뒤엉킨, 그래서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분간하기도 힘든 북측 외부의 때로 혼란스럽고 때로 모략적인 대북선전에서는 사실상 거론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북에서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경제흐름이 차츰 강한 힘을 더해 왔다. 북의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리기성 박사의 발언을 인용한 <조선신보> 2009년 7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요즈음 북의 공업생산은 해마다 9-10%씩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펴내는 북의 경제성장률에 관한 추정자료, 그리고 남측 국정원으로 넘겨받은 정보를 그대로 베껴내는 통계청의 북의 경제성장률 추정자료는 모조리 추정이 아니라 허구다.

북측의 자료에 따르면, 자본주의세계시장이 붕괴위기에 빠져 모든 나라들이 허우적대는 대공황기에 오직 자본주의세계시장과 단절하고 자립적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추진하는 북에서 고도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말 현재, 북의 공장과 기업소들 가운데 대중적 기술혁신운동을 힘있게 추진하여 연간 계획을 넘쳐 수행한 곳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는 북의 최근 보도기사만 읽어 보더라도, 북의 경제가 고도성장궤도를 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북의 자립적 사회주의계획경제가 보여주는 고도성장은, 놀랍게도 12년 전 평화자동차종합공장 착공식에서 김용순 당비서가 했던 바로 그 발언을 현실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북은 자동차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잘 만드는 자동차 강국으로 올라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이 자동차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잘 만드는 자동차 강국으로 될 것이라고 말하면, 북측 외부에서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이 아마 거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그런 근거 없는 불신감은 북에 대한 정보부족 또는 정보왜곡으로 생겨나는 심리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2년 동안 북이 자기의 자동차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얼마나 힘써왔으며,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발전전망이 어떠한지를 파악하면, 그런 불신감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이 주제를 논하기 위해, 우선 두 가지 문제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이 자동차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말은 다른 선진 자동차 강국에 의존하여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자력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다. 둘째, 북은 여러 산업부문들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자동차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사일이 국방부문에서 기계공업 발전수준을 말해준다면, 자동차는 민간부문에서 기계공업 발전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군사과학기술 기초를 쌓아올리고, 그 기초 위에서 상호연관된 각종 국방공업을 균형적으로 발전시켜야 미사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민간과학기술 기초를 쌓아올리고, 그 기초 위에서 상호연관된 각종 민간공업을 균형적으로 발전시켜야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국방공업의 총아가 미사일이라면, 민간공업의 총아는 자동차다. 세계적 수준의 미사일을 만들어내는 나라가 군사강국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처럼, 세계적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나라가 경제강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것처럼, 북은 각종 미사일을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내는 미사일 강국인데, 그런 북이 이제는 각종 자동차를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내는 자동차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것이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그토록 염원하였고, 그 실현을 위해 노고를 기울였던 경제강국 건설구상이 바야흐로 자동차 산업의 발전으로 현실화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2009년 3월 승리산 기슭에서 있었던 일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9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북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한 승용차와 15인승 이하 소형 승합차를 2006년부터 폐기하기 시작하여 현재 모두 폐기하였고, 적재량 4t급 이상의 일본산 대형 화물차도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있다고 한다. 북측 외부에서는 북에 자동차가 너무 부족하다고 알려졌는데, 그렇게 알려진 북에서 차량을 폐기하고 있다니, 얼핏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요즈음 북에서 발전추세를 타고 있는 자동차 산업 동향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되면, 이해하고도 남는다.

북의 자동차 산업이 발전궤도로 올라선 획기적인 계기는 2009년 3월 평안남도 덕천군에 있는 승리산 기슭에서 마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승리산 기슭 50만 평방미터 부지에 자리잡은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는 13개 계열공장이 거대한 단일기업소로 결합된 북측 최대 자동차 생산기지다. 전쟁피해가 아직 가시지 않았던 1958년 당시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의 전신인 덕천자동차공장에서는 적재량 2.5t급 화물차 ‘승리 58호’를 만들어내는 ‘기적’이 일어났다. 주한미국군이 폐기처분한 군용 승용차(Jeep)에서 엔진, 변속기, 차축을 뜯어내고, 망치로 두드려 만든 차체를 거기에 씌운 ‘시발’이라는 4인승 소형 승용차가 서울에서 열린 박람회에 등장한 때가 1957년 8월이었는데, 북측에서는 1958년에 적재량 2.5t급 화물차를 자력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니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덕천자동차공장은 1960년에 3.5t급 화물차 ‘투쟁호’와 6t급 화물차 ‘승리 1010호’를 만들어냈고, 1964년에 적재량 10t급 화물차 ‘자주호’를 만들어냈으며, 1979년에는 40t급 대형 화물차 ‘금수산호’를 만들어냈다. 남측의 현대자동차가 이탈리아 차체설계기술과 일본 미쓰비시 엔진을 들여와 ‘포니’라는 이름의 첫 소형 승용차를 조립생산하고 있었던 1975년에 덕천자동차공장은 대형 화물차를 자력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 시련기를 거치면서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의 종업원수는 최전성기에 비해 75%로 줄어들었고, 연간 생산량도 수 백 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09년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받은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는 연간 생산능력을 10,000대로 끌어올리려는 아름찬 발전계획을 세웠다. 10,000대 생산목표에 이르는 시기는 2009년으로부터 4년 뒤인 올해 2012년으로 정해졌다.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가 다시 일어서면, 북의 자동차 산업이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불과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 기업소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로동신문> 2009년 3월 18일 보도기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 현지지도 소식을 전하였는데, 이 보도기사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강성대국 건설에서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가 맡고 있는 임무와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강령적인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고 한다. 차량생산은 운수부문과 교통부문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북에서는 철도수송이 기본이지만, 철도를 놓을 수 없는 산간지방에서는 차량수송이 ‘생명선’이다. 산악지대가 발달한 북에서 차량수송의 중요성은 크다. 도시에서의 교통과 물류이동은 차량과 열차에 각각 의존하지만, 산간지방에서의 교통과 물류이동은 차량에만 의존한다. 북의 자동차 산업 발전은 지방의 교통과 물류이동을 끌어올려 도시와 지방 사이의 발전균형을 유지하는 데서 결정적인 의의를 가진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면서 그 기업소의 중요한 임무와 역할을 지적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가 “새로 만든 화물자동차들”을 살펴보고, “성능이 좋은 화물자동차를 창안제작한 데 대해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시였다”고 한다. 그 보도기사에는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네 종류의 신형 화물차가 기업소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장면을 촬영한 보도사진이 실렸다. 이 현장사진은 신형 화물차를 생산하는 기술을 이미 확보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당시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가 당면한 문제는 생산설비의 현대화를 자력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데 있었다.

셋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날로 늘어나는 수송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키는가 못하는가 하는 것은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지적하고, “기업소의 방대한 기술개건사업을 짧은 기간에 와닥닥 끝내자면 국가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걸린 문제들을 몸소 현지에서 풀어주시는 크나큰 은덕을 베풀어 주시였다”고 한다. <조선신보> 2009년 7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구성공작기계공장과 희천공작기계공장에서 생산된 최신형 전자식 공작기계들이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 생산현장에 도입되면서 모든 생산공정이 CNC체계(컴퓨터수치제어체계)로 개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한 <조선중앙통신> 2012년 11월 8일 보도에 따르면,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는 모든 생산공정을 CNC체계로 개조하는 현대화 사업을 완료하였고, 지금은 주조공정과 형단조공정을 현대화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받아 현대적 시설로 개조되고 생산능력을 대폭 확장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던 때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09년 9월 평양에서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알려주는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북의 수도려객운수지도총국이 49%를 출자하고, 중국 단둥에 있는 중조변경무역유한공사가 51%를 출자하여 합작 자동차 조립생산기업인 평운중성합영회사를 평양에 설립한 것이다. 평운중성합영회사는 2011년 9월부터 ‘금강산’이라고 부르는 탑승인원 19-50인급 각종 버스와 ‘천만리’라고 부르는 적재량 0.5-15t급 각종 화물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급증하는 교통부문과 운수부문의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북에서 “새 세기 산업혁명”이라 부르는 산업생산의 급속한 발전이 교통부문과 운수부문에서 차량수요를 급증시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예컨대,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가 2011년 9월에 발표한 ‘남북경협 확대와 북한의 상용차 수요전망’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남북경제협력이 본격적으로 실현되는 경우, 북에서는 앞으로 4-5년 뒤부터 연간 20,000-30,000대 규모의 화물차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견된다고 하면서, 연간 수요량을 적재량 2.5t급 이하 중소형 화물차가 10,000-20,000 대, 그보다 큰 대형 화물차가 5,000-10,000대 정도로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 보고서는 남북경제협력 발전이라는 각도에서 북의 차량수요를 전망하였지만,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으로 남북경제협력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는데도 오늘 북에서는 산업생산의 급속한 발전추세에 따라 교통 및 운수부문에서 차량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재 북의 운수부문에서 화물차량수요는 연간 20,000대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가 2012년까지 목표로 설정한 연간 차량생산량 10,000대로는 수요량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평운중성합영회사에서 생산하는 화물차를 합쳐도 연간 수요량 20,000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북의 현재 자동차 생산능력으로는 교통부문과 운수부분의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의 자동차 수입량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KITA)가 제공한 자료를 인용한 <자유아시아방송> 2012년 2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북이 중국으로부터 각종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을 수입한 금액은 2006년 2,000만 달러, 2007년 5,000만 달러, 2008년 6,700만 달러, 2009년 6,900만 달러, 2010년 1억5,900만 달러, 2011년 2억2,000만 달러로 가파른 급증세를 보여 왔다. 물론 수입차종 가운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화물차였다.

이런 정보만 살펴봐도, 북에서 교통부문과 운수부문의 수요가 얼마나 급격히 증대되었는지, 산업생산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북에서 말하는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은 그렇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 수입은 북이 추구하는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보완책에 지나지 않는다. 북이 추구하는 해결책은 자력으로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켜 오늘 급증하고 있는 자동차 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북에서는 종합자동차생산단지를 서둘러 건설하고 있다. 2012년 10월 22일 중국의 중조변경무역유한공사는 북과 공동으로 36만 평방미터 부지에, 건축 면적이 11,800 평방미터에 이르는 종합자동차생산단지를 평양에 건설하는 중이며, 2,500 평방미터에 이르는 매장과 대형 전시장을 갖춘 자동차 부품 도매상가를 평양에 건설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북중 합작으로 건설되는 자동차 부품 도매상가는 2013년 3월 18일 개장될 것이라고 한다.

점결탄 버리고 무연탄과 진흙을 택한 성공비결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위에 열거한 사실에서 입증되는 북의 자동차 산업 발전이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속공업 및 기계공업의 주체화와 과학화를 갖은 고생 끝에 기어이 실현한 북의 저력이 자동차 산업의 발전추세를 강력히 안받침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자립적 민족경제건설노선을 견지하는 북의 경우, 자국의 금속공업과 기계공업을 자력으로 발전시켰기에 자동차 산업도 그 기반 위에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첫째, 북의 기계공업은 자동차 산업 발전에 요구되는 각종 선진기술을 자체로 개발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필자가 초보적으로 조사한 북의 기계공업기술 개발 성공사례를 열거하면, 2003년 11월의 경질합금기술 개발, 2006년 1월의 플라즈마 열처리기술 개발, 같은 해 8월의 레이저 가공기술 개발, 같은 해 11월의 연신다이스 개발, 2008년 9월의 고정밀 초음파 유리칼 개발, 같은 해 6월의 금속표면처리기술 개발, 2010년의 9축 선삭가공중심반 개발, 2011년 2월의 CNC공구 자동생산체계 개발 등이다. 필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성공사례가 더 있을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이 모든 선진기술들이 자동차 생산을 포함하는 기계공업 전반에서 널리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북이 자체로 개발한 기계공업기술을 자동차 생산현장에 투입하는 경우, 자동차 생산력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북의 자동차 산업을 급속도로 발전시킬 기계공업기술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북이 자동차 산업을 급속도로 발전시키려면, 기계공업 발전만이 아니라 금속공업 발전도 필요한데, 지난 몇 해 사이에 북에서 이룩한 금속공업의 비약적 발전에는 눈부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이미 북측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북의 금속공업부문에서 일어난 획기적인 사변은, 함경북도 성강에 있는 성진제강련합기업소가 2009년에 주체철 생산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2009년 12월 18일 그 기업소를 현지지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에서 독자적으로 개발, 완성한 주체철 생산공정으로 만들어내어 야적장에 무드기 쌓여있는 묵직한 강괴들을 손으로 쓸어보면서 주체철 생산체계 완성은 3차 핵실험 성공보다 더 위대한 승리라고 격찬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이 놀라운 생산체계는 북녘 땅에 거의 무진장으로 묻혀있는 철광석, 무연탄, 진흙을 원료로 하는 제철공정과 제강공정을 하나의 일관공정으로 결합시킨 새로운 생산체계에서 순도 100%의 주체강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선중앙방송> 2008년 12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북의 철광석 생산량이 전년도에 비해 73%나 증가하는 것에 힘입어 북의 철강재 생산량도 전년도에 비해 29% 증가하였다고 하는데, 성진제강련합기업소에서 2009년 12월에 완성한 주체철 생산체계를 북측 각지의 철강생산기지들에 전면적으로 확대, 보급한 오늘에는 철강재 생산량이 더욱 비약적으로 늘어났을 것이 분명하다.

위의 정보를 종합하면, 북이 자동차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기술력과 조강생산능력을 이미 확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북에게 남아있는 과제는 자금확보다. 평화자동차종합공장 설비를 대폭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 3억 달러도 그러한 자금확보문제에 포함되는 것이다. 북측 외무성이 평양 주재 유럽연합 회원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들에게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을 시찰하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그들에게 그 공장의 설비확장과 해외수출에 관한 계획을 알려준 것을 보면, 설비확장자금을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출자로 조달하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측 구상대로 설비를 대폭 확장한 평화자동차종합공장에서 자동차를 연간 100,000대씩 생산하여 해외에 수출하려면, 자동차를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시장의 치열한 가격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 북은 자동차 생산부문에서 쌓아온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생산현장에 투입하면, 국제시장에서 호평을 받을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특히 요즈음처럼 세계적인 대공황기에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문제로 되는 것은 가격경쟁이다. 후발 자동차 수출국인 북으로서는, 품질이 좋고 값이 싼 자동차를 만들어야 거대한 신흥공업국들의 자동차 시장에 파고들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북의 자동차 생산이 국제가격경쟁에서 가장 유리한 요인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수입한 철강재가 아니라 자국산 철광석으로 생산한 주체강철을 가지고 자동차를 만들 수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 비싼 값을 주고 도입한 기술이 아니라 자체로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으며, 국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는 생산열의 높은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에서 생산되는 주체강철이 자동차 생산에 투입되는 경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강철 생산과 자동차 생산의 상호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2008년도 남측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남측은 그 해에 월평균 164만t의 점결탄(코크스)을 해외에서 수입하였다. 오르내리는 점결탄 국제시세가 중국과 인도의 조강생산증가에 따른 수요급증으로 지속적인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점결탄 1t당 가격을 150 달러로 산정하면, 남측은 매월 점결탄 수입에만 2억4,600만 달러를 지출하는 것이며, 점결탄 연간 수입비용은 29억5,200만 달러나 되는 것이다.

무연탄과 진흙을 가지고 만든 주체강철과 값비싼 수입 점결탄을 가지고 만든 일반강철은 서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가격차이를 보일 것이고, 가격격차가 그렇게 큰 철강재로 만든 자동차의 가격차이 역시 매우 클 것이다. 바로 이것이 북의 자동차 산업에 성공의 가능성을 안겨주는 요인이다.

물론 북은 대외수출에 의존하는 나라가 아니라 자립적 민족경제로 발전하는 나라이므로, 평화자동차종합공장에서 해외수출용 자동차를 생산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한 보조적 의의를 가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가 자동차 산업 발전의 중심축이고,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은 보조축인 것이다.

2011년 1월 북측 내각이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을 추진할 ‘국가경제개발총국’을 설립하기로 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전략계획이 제시한 12가지 목표들 가운데서 자동차 산업에 직접 연관된 목표는 고속도로 3,000km 건설, 철강재 2,000만t 생산, 원유 2,000만t 가공 등이다. 북의 자동차 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것임을 예고해주는 놀라운 목표들이다. 핵보유국과 미사일 강국의 지위를 차지한 북은 인민생할향상을 위한 경제강국건설에서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큰 힘을 넣고 있으며, 그 발전전망은 매우 밝아 보인다.(2012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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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에 10㎝, 황제펭귄의 겨울나기

1분에 10㎝, 황제펭귄의 겨울나기

 
조홍섭 2012. 11. 30
조회수 7816추천수 0
 

남극 겨울 혹한 집단적 '체온 나누기'로 버텨…원동력은 각자의 이기주의 밝혀져

바람 등지고 기왓장처럼 밀착, 간헐적 이동이 파동처럼 무리 전체에 퍼져

 

호주 환경부1.jpg » 서로 체온을 나누며 혹한을 견디는 어린 황제펭귄. 사진=오스트레일리아 환경부

 

수족관의 물고기가 떼지어 헤엄치고 갯벌의 도요새가 무리지어 나는 모습은 놀랍다. 그 많은 개체가 서로 부딪히거나 우왕좌왕하지 않고 일제히 방향을 바꾸는 모습은 장관이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누군가 명령을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일사불란한 집단행동의 비결은 무리에 속한 각자의 행동이 합쳐진 것일 뿐이다. 무리 속의 각 개체는 아주 단순한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를테면 “옆 친구가 멀어지면 따라잡고, 너무 가까워지면 속도를 늦춰라”라는 규칙에 충실하기만 해도 무리 전체로는 멋진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고속도로에서 앞차와 간격을 유지하며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01236668_P_0.jpg » 금강 하구의 가창오리가 군무를 하는 모습. 사진=군산시

 

남극의 황제펭귄의 무리 행동은 물고기나 새와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이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이들도 다른 무리 동물처럼 간단한 규칙을 따르며, 그 결과로 ‘열 평등’이란 값진 결과를 얻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극한 환경이 펼쳐지는 남극의 겨울 동안 번식을 하는 황제펭귄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무리를 짓는다. 영하 45도에 이르는 혹한과 초속 50m의 강풍이 몰아치는 얼음판 위에서 수컷 황제펭귄은 발 위에 알을 올려놓은 채 새끼가 태어나고 암컷이 찾아올 때까지 넉 달 가까운 밤을 버텨야 한다.
 

펭귄이 얼어 죽지 않기 위한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몸을 밀착시켜 무리를 짓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쪽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기왓장처럼 몸을 붙이면 무리 안의 온도는 20도에 이르고 때론 37.5도까지 치솟는다.
 

호주 환경부_프레데리케 올리비에 - 복사본.jpg » 남극의 블리저드에 맞서 몸을 밀착해 추위를 이기는 황제펭귄 수컷들. 사진=오스트레일리아 환경부

 

문제는 무리의 가장자리, 특히 바람맞이 펭귄들이 찬 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혹한에서 넉 달을 버티는 수컷 황제펭귄이니만큼 “온기를 나누세. 바깥에서 고생했으니 이제 자리를 바꾸지” 하는 배려쯤은 어려울 것도 없겠다.
 

실제로 현장 연구를 보면, 펭귄들은 무리의 온기를 골고루 나눈다. 펭귄 무리는 미동도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30~60초마다 5~10㎝씩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은 파동처럼 무리 중심을 향해 초속 12㎝의 속도로 번져간다. 파동이 멎으면 무리의 움직임도 멎는다. 개별 펭귄은 주위 펭귄과 위치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억지로 파고들거나 밀려나는 개체도 없다. 아주 걸쭉한 유체처럼 무리는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하며, 그 과정에서 무리 가장자리와 안쪽 개체의 위치가 달라진다.
 

호주 환경부_글렌 브로우닝1.jpg » 바람에 등에 노출된 개체는 열 손실이 가장 많지만 차츰 무리 안쪽으로 이동한다. 사진=오스트레일리아 환경부

 

최근 미국의 한 수학자는 수학모델로 이런 황제펭귄의 움직임을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펭귄이 오로지 자신의 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인다고 가정했다. 그런데도 이 모델 속 펭귄 무리는 실제 펭귄 무리와 비슷한 형태와 움직임을 보였고, 놀랍게도 무리의 열을 공평하게 나눴다.
 

각자가 자기 이익을 좇아도 전체가 평등하다는 ‘펭귄 모델’은 구성원 모두가 어려움을 피하지 않아야만 이상적으로 작동한다. 벽과 같은 장애물이 있어 일부만 그것을 이용한다면 평등 시스템은 곧 깨지고 만다.
 

penguin - 복사본.jpg » 힘든 겨울나기가 끝나고 그 사이 태어난 수컷을 품고 있는 황제펭귄. 사진=영국 남극 조사대(BAS)

 

중·고등학교 때 추운 겨울날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던 생각이 난다. 만일 반별로 모이지 않도록 했다면 학생들은 황제펭귄처럼 무리를 짓고 슬금슬금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aters A, Blanchette F, Kim AD (2012) Modeling Huddling Penguins. PLoS ONE 7(11): e50277. doi:10.1371/journal.pone.0050277

Zitterbart DP, Wienecke B, Butler JP, Fabry B (2011) Coordinated Movements Prevent Jamming in an Emperor Penguin Huddle. PLoS ONE 6(6): e20260. doi:10.1371/journal.pone.002026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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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몇인데, 누구 밑에서 심부름 하나"

[인터뷰] 김종인 "'박정희 식 성장콤플렉스' 못 벗어나면 누가 돼도 실패"

성현석 기자,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2-02 오전 10:46:27

 

영국에선 오리 사냥을 할 때 연못 위에 나무로 만든 '가짜 오리'를 띄워놓아 오리들을 불러모은다고 한다. 이때의 '가짜 오리'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가 '디코이'(decoy)다. 언론인 출신인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이 단어를 썼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가리킨 말이다.

"새누리당에 들어간 김종인 박사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느냐, 결과적으로 'decoy' 같은 것이 되고 마느냐는 두고 볼 일이다. 아무래도 이용만 당하는 것 같기만 하다."

새누리당이 김종인 위원장을 앞세워 경제민주화를 할 것처럼 하면서 국민들을 불러모았지만 결국은 가짜인 것 같다는 얘기다. 남 전 장관과 김 위원장은 청년 시절부터 50여년 동안 두터운 교분을 쌓아왔던 사이다. 그런데 남 전 장관이 모처럼 쓴 소리를 했다. 김종인 위원장의 처지가 그만큼 불안해 보이는 탓일 게다.

실제로 그렇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해 말 김 위원장을 영입해 '경제민주화'를 당 정강에 명문화하는 등 추진 의지를 과시했지만, 지난달 16일 관련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 김 위원장은 없었다. 이날 발표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 역시 반쪽짜리였다.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제안한 대기업집단법 제정과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등 재벌개혁 방안이 대부분 빠진 것이다.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김 위원장은 이제 박 후보와 결별하는 걸까. 박 후보는 중도 성향 표심을 유인하기 위한 '디코이'로 김 위원장을 이용한 걸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서울 부암동에 있는 김 위원장의 개인 사무실을 찾은 건 그래서였다.

예상과 달리,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 보도와 달리, 김 위원장은 아직까지 박 후보의 경제 민주화 의지를 신뢰하고 있었다. 박 후보 곁을 떠나 야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다만, 박 후보가 경제 민주화 관련 공약의 세부 내용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또 박 후보 주변에 재벌 친화적인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고, 그들이 경제 민주화 공약 추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그가 야당의 경제 민주화 관련 공약을 불신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재벌을 개혁할 것처럼 말하더니 당선되자마자 재벌과 손을 잡았다는 게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 만났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은 그만큼 뿌리가 깊어 보였다. 이런 기억이 굵은 흉터처럼 남아 있는 한, 그가 야당과 손을 잡기란 어려워 보였다.

재벌 편드는 이들이 박 후보 주변에 득시글한데, 그리고 '경제 민주화'에 대한 박 후보의 이해 수준이 깊지 않은데, 그런데도 그가 굳이 박 후보의 '경제 민주화' 의지를 신뢰하는 이유를 재차 물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박 후보는 자기 말을 바꾸는 사람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쉽게 타협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새누리당 안에선 박 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박 후보에게 속고 있는 걸까. 야당은 그렇게 본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캠프 소속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김종인 위원장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고 말했다. 올해 안에 두 개 이상의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유다. 이 위원장은 이날 "현재까지 100개가 넘게 제출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중에서 단 하나도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없다"며 "유일하게 관련 상임위를 통과해서 올라온 법안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이 법사위에서 일방적으로 처리를 거부하면서,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보수 여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와 손잡으면서 여야 정치권 전체가 '경제 민주화'로 한발 더 다가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지난 25년 간 고시생들 외엔 별 관심이 없었던 헌법 속 경제민주화 조항을 대중의 상식으로 만든 점은 분명히 그의 공로다. 문제는 그 다음 행보인데, 김 위원장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의 깊은 속내까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가 얼마 전에 낸 책이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에서 그는 그가 만든 헌법 119조 2항 '경제 민주화' 조항이 "자본주의를 지키는 안전장치"라고 설명했다. '경제 민주화'는 이른바 '좌클릭'과도 관계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또 '경제 민주화'가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며, 경제 성장과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내용도 있다. '경제 민주화'와 경제 성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경제 민주화' 없이는 성장도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마디로, 한국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자라면 마땅히 '경제 민주화'를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이런 소신을 강하게 피력했다. 박인규 <프레시안> 발행인과 지난달 29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

▲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경제민주화 약속 지키리라 믿는다"

프레시안 : 박근혜 후보가 최근 10개 경제일간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종인 위원장의 역할이 끝났느냐"라는 질문에 "네" 라고 대답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종인 : <중앙일보>에 그런 기사가 났었다. 그런데 내가 알아보니, 실제로 그런 말은 없었다고 했다. 기자들과의 문답을 기록한 원문도 내가 봤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중앙일보> 기자 역시 내게 착오라고 이야기했다.

프레시안 : 기사가 '오보'였다는 말인데, 만약 '오보'가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건가. 국민행복추진위원장에서 물러나는 건가.

김종인 : 만약 (박근혜 후보의) "네"라는 발언이 사실이면, 당연히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지. 나로선 편하고 좋다. 자유로운 몸이 되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11월 16일, 박 후보가 경제 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 김 위원장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에선 "결별했다", "역할이 끝났다", "토사구팽 당했다" 등의 말이 나왔다.

▲ ⓒ프레시안(최형락)
김종인 : 내가 새누리당에 가서 정강정책에 '경제 민주화'를 집어넣었다. 박 후보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의원총회에서도 충분히 논의됐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의원총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면, '경제 민주화'는 정강정책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전국대의원대회 인준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론이 전혀 없었다. 그때가 4.11 총선을 앞둔 무렵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불안하니까, '경제 민주화'에 시비를 걸 수 없다고 봤을 수 있다. 어쨋건 '경제 민주화'는 박 후보를 포함해서 새누리당 전체가 동의한 사안이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마자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이번에 새로 당선된 사람들에게서였다. 사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내가 잘 안다. 그래서 별로 의미가 없는 반론이라고 본다.

새누리당의 생리라는 게 뻔하다. 경제 민주화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후보 주변에 모여드는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시선으로 본다는 것 역시 내가 잘 안다. 게다가 3/4분기 경제성장률 수치가 안 좋게 나오니까 '이때다' 싶었던 사람들도 있다. 이걸 핑계로 그쪽(경제 민주화를 거스르는 쪽)으로 선회하려 했던 거겠지. 하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경제 민주화가 필수적이다. 그들은 그걸 모른다.

분명한 건 경제 민주화 공약을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혼자 했다면, 내용이 그렇게 많을 필요도 없다.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있으면 된다. 새누리당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약을 만들었다. 그들이 말을 바꾸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건 후보의 생각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선 대통령의 신념이 결정적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경제 민주화'를 약속했고, 그는 자기가 한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다.

"경제민주화, 공약 가짓수 많다고 되는 것 아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하는 자리에는 왜 안 나왔나.

김종인 : 나는 원래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 나가본 적이 없다. 경제민주화뿐 아니라 다른 공약도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대기업 집단법, 국민참여재판 등 김 위원장이 주장했던 내용이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 공약에서 빠졌다. 새누리당 측은 이들 내용은 빠졌지만 경제 민주화에 관한 나머지 내용이 30가지 이상이 포함돼 있으므로 충분하다고 한다.

김종인 : '경제 민주화'라는 게 그렇게 공약 숫자만 많이 나열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프레시안 : 경제 민주화 공약을 김 위원장이 주도해서 만든 것 아닌가. 지금의 새누리당 경제 민주화 공약이 만족스럽나.

김종인 : 나는 감독만 했다. 경제 민주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모아서 의견을 수렴해서 대략 규합을 해가지고 넘겨준 거다.

이렇게 나온 공약에 대해서 경제 민주화를 위해 충분한 방안이라고 말하기는 좀 뭣하다. 사실 공약이야 후보가 그 정도면 되겠다 해서 정한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런가보다 한다. 그에 대해 선거기간에 토를 달 순 없다. 아무튼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누누이 밝혔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안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의 공약이 부실하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 건 그래서다. 게다가 새누리당 안에선 박 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해야겠다고 말한 유일한 사람이다.

"재벌과 타협한 참여정부…우리나라 진보는 대체 뭐하자는 진보인가"


프레시안 :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의지는 아무래도 야당이 낫지 않나. 문재인 후보의 경제 민주화 공약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김종인 : 공약을 잔뜩 나열 해놨는데, 과연 그걸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프레시안 : 야당의 실력을 못미더워하는 것 같다.

김종인 : 다른 걸 떠나서 노무현 정부 때 겪어 봤지 않나. 나는 노무현이 대통령 되기 전부터 알았었다. 당시 노무현은 한국경제를 개혁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가 되더니 달라졌다. 대통령이 되고 나선 아예 180도 바뀌어서 재벌위주가 됐다. 심지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자인하기까지 했다. 그럴 거면 대체 정부는 왜 있나. 그걸 보고 나니, 난 우리나라 진보가 대체 뭐하자는 진보인지 이해를 못하겠더라.

프레시안 : 문재인 후보는 참여정부의 과오를 인정했다. 그리고 그걸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종인 : 문재인 후보는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반면, 박근혜 후보는 5년간 겪어봐서 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라서 모든 게 결국 대통령의 자질과 자세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박 후보가 낫다.

물론, 박 후보가 경제 민주화의 세부적인 내용과 의미를 잘 이해 못하는 건 사실이다. 또 후보를 보좌하는 사람들 중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경제 민주화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박 후보가 탐욕이나 다른 계산 때문에 재계와 타협할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난 이 점을 높이 본다.

"박근혜, 집토끼만 잡으려해선 안 된다"


프레시안 : 경제 민주화도 결국 민주화 아닌가. 그러니까 다른 영역의 민주화와 동떨어진 건 아니라고 본다. 다른 부문에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데 경제만 민주화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박 후보는 다른 정치, 사회 영역에선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낮아 보인다. 예컨대 사립
학교법 문제를 보자. 이사장의 전횡을 막는 '사학 민주화'와 관계가 깊다. 하지만 박 후보는 사학 개혁에 몹시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박 후보는 사학 개혁을 '이념 투쟁'이라고 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사립학교 교사, 학생들에겐 삶의 문제다. 사학 민주화는 반대하면서 경제 민주화만 하자는 논리가 과연 성립할까. 사학 개혁 등 다른 문제에선 기득권층을 옹호하던 사람이 재벌 문제에서만 반대 입장을 취한다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말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김종인 :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어차피 대선 후보가 모든 분야를 샅샅이 알 수는 없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지도자의 덕목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역사책을 많이 읽어서 국가의 흥망성쇠를 꿰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라가 망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밝아야 한다는 것이다. 후보가 원칙을 갖고 사람을 잘 골라 쓰면 별 문제 없지 않을까 싶다.

프레시안 : 최근 <매일경제>와 짧은 인터뷰를 했다. 거기 보니, 김 위원장이 "박 후보의 선거전략을 보니까 보수층에만 집중한다. 집토끼만 잡아서는 위험하다"라고 했다고 돼 있다.

김종인 : 인터뷰라기보다, 잠깐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걸 기사로 썼나 보군.

프레시안 : 세간에선 그걸 박 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포기한 데 대한 경고로 해석한다.

김종인 : 박 후보가 보수층에만 집착하면 안 된다는 건 사실이다. 4월에 선거 해봐서 알지 않는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대략 46대 46이다. 그런데 46%만으론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내 나이가 몇인데, 누구 밑에서 심부름 하나"


프레시안 : 만약 민주당이 집권해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김 위원장을 모시겠다고 하면 어쩔 건가.

김종인 : 모신다는 말 자체가 웃긴 거다. 그건 새누리당 사람들도 착각하는 건데, 내가 무슨 자리가 탐나서 이 짓을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누구 밑에 가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려고 그러겠냐.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모신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몹시 불쾌하다.

프레시안 : 경제 민주화는 세부적인 정책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김종인 : 그렇다. 대통령이 되면, 그 순간 의식이 달라진다. 지금 나오는 공약의 세부적인 내용에 크게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도 그래서다. 게다가 내년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가 않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이 그렇다. 양극화가 너무 심해졌다. 정부 통계에서 '나는 하층민'이라고 답하는 비율이 45%다. 미래가 없다는 답변은 60% 가까이 된다. 이래선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차기 대통령에게 양극화 해소, 경제 민주화 외엔 다른 길이 없다. 이걸 얼마나 비타협적으로 추진하느냐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불평등이 경제 성장 걸림돌이다"

프레시안 : 하지만 새누리당에선 이른바 투트랙(Two Track, 두 개의 경로)론이 나온다. 한편으론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되, 다른 한편으론 전통적인 성장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경제 민주화를 접겠다는 말로 들린다.

김종인 : '투트랙'이라는 말 자체가 틀렸다. 예컨대 '물가냐, 고용이냐' 이런 걸 논할 때는 '투트랙'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경제 민주화와 경제성장은 그런 관계가 아니다. 경제 민주화는 일종의 질서를 잡는 작업이다. 틀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해도 좋다. 어쨋건 통상적인 경제정책과는 다른 차원이다. 경제 민주화가 이뤄진 기반 위에서 성장도 가능하다.

프레시안 : 말씀대로 경제 민주화란 경제 질서를 바로잡는 일인데, 새누리당에선 당장 경제상황이 급하니 질서는 나중에 잡자는 말이 나온다. 우선 성장부터 하자는 게다.

김종인 : 그걸 미루자면 영원히 못하는 거다. 박 후보가 지금 그런 목소리에 약간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후보가 냉정하게 생각하면 흔들릴 필요가 없다. 정부 정책이라는 건 시대가 요구하는 걸 하는 거다. 이거 했으니 저건 안 해도 된다는 식이면 경제정책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 같은 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가 없다. 완전히 재벌이 독식하는 구조다. 정치 민주화가 이뤄지는 동안, 과거 압축 성장 시기에 발생했던 경제사회적 모순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걸 보면,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불평등의 정도가 성장의 저해 요인이 되는 단계까지 왔다고 돼 있다. 여기서 일정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다. 그게 안 되면 정치 민주주의도, 경제도 제대로 될 수 없다. 그리고 이게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만 역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에선 경제 민주화가 선거용 구호처럼 쓰인다는 점이다. 이건 옳지 않다. 차기 정부가 초기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정권도 결국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갈 게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박 후보 주변에는 재계와 긴밀한 관계인 사람들이 워낙 많다. 기업인 출신도 많고. 박 후보가 집권할 경우 경제 민주화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종인 : 나 역시 그런 점에서 우려가 없었던 게 아니다. 과거 한나라당의 생리가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올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하지만 박 후보가 이익집단과 연결된 건 아니다. 그건 내가 분명히 확인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들어가지도 않았겠지.

프레시안 : 경제 민주화 공약 발표 이후 박 후보를 만난 적이 있나.

김종인 : 없다.

"역대 대통령 실패 원인, '박정희 식 성장콤플렉스' 빠진 탓"

프레시안 : 잠시 화제를 돌려보자. 올해 대선 정국에서 최대 화제를 낳은 인물은 결국 안철수 전 무소속 대통령 후보다. 그 역시 '삼성 동물원' 비판 발언으로 인기를 얻었다. 재벌 문제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던 셈인데, 그가 과거에 김 위원장과 만난 적이 있는 걸로 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

김종인 : 먼저 2002년 대선을 돌아보라.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한 계기가 뭐였나. 새 사람 같아 보이고 저 사람이 그래도 서민적 성향을 보이고, 그러니까 한국 경제 구조를 바꿔서 서민 생활을 낫게 하리라고 봐서 뽑은 것 아닌가. 그런데 그걸 못했다. 결국 종전과 똑같은 경제정책을 썼다. 그 결과,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집권 2년이 지나니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것 아니냐.

그래서 집권한 이명박 정권도 똑같다. 국민생활은 어려워지고 있는데, 경제대통령을 표방하고 엄청난 구호를 제시하며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이 보기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면 우리 생활이 상당히 나아질 수 있겠지 싶었다. 그래서 뽑았다. 하지만 5년 지나니 어떤가. 생활 나아진 사람 많지 않다. 그러니 역시 이 정권을 불신하게 됐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는 동안 경제적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됐다. 과거 압축 성장 과정에서 생긴 문제가 지난 25년 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기존 정치권은 여, 야 가릴 것 없이 이 문제를 풀지 못했으니, 정치권 밖에 있는 안철수에게 기대가 쏠렸다. '안철수 현상'은 그래서 생겼다고 본다.

다만 안철수 개인은 환상에 빠져 있던 게 아닌가 싶다. 정당정치를 하는 나라에서 정치적 기반 없이 어떻게 정치를 하나. 야권 단일화 협상을 보며 1960년대 윤보선-허정 단일화를 떠올렸다. 당시에도 허정이 여론 지지도에선 앞서 있었다. 그래서 꿋꿋이 나아갔는데, 결국 물러났다. 당 조직이 있는 윤보선을 이길 수 없었던 게다. 정당정치라는 걸 간단하게 보면 안 된다.

"독일·일본이 선진국 된 이유, '재벌 해체'"

프레시안 :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양한 정치세력이 집권했는데, 모두 재벌개혁에는 실패했다. 말씀대로 과거 압축 성장 과정에서 생긴 문제 역시 풀지 못했다. 그래서 정치권 바깥에서 지도자를 찾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이유가 뭐라고 보나.

김종인 : 박정희 대통령 이후 집권한 대통령은 모조리 '박정희식 성장 콤플렉스'에 빠졌다. 그래서 사회와 경제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문제는 성장 콤플렉스에 빠지면 실제로 성장이 이뤄지느냐다. 적어도 지금은 분명히 그렇지 않다. 독일, 일본이 왜 잘살게 됐는지 아나?

프레시안 : 2차 세계대전 뒤 재벌을 해체해서?

김종인 : 그렇다. 그들은 패전국이었으므로 승전국의 주문에 따라 재벌과 기존 경제 질서를 해체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 활동이 보장됐고, 독일에선 노동자의 경영 참여까지 보장됐다. 그런데 이런 조치가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선진국에선 어느 나라나 특정 단계에서 대기업의 탐욕을 견제하는 작업을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미국도 그랬다. 테오도어 루스벨트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미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미국에선 19세기 말에 독점기업의 횡포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결국 20세기 초에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나타나 40개의 독점기업을 해체했다. 그는 노동조합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는 법원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테오도어 루스벨트는 보수적인 공화당 소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시대가 요구한 과제를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이 20세기에 황금기를 누린 것은 그때그때 나름대로 필요한 인물이 나타나 나라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나라가 잘 되려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이 대목에서 참 안타까운 게 있다. 지난 25년 동안 민주주의를 이야기했지만 아직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소득 상위 1%에 속하는 집단이 전체 소득의 16.6%를 갖는다고 한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심각한 양극화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은 부유층의 소득 파악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이점까지 고려하면, 불평등 정도가 굉장히 심각한 셈이다. 이정도로 불평등하면 사회 정의가 바로 설 수 없다. 민주주의가 미완성인 건 그래서다. 그렇다면,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경제 민주화를 통해 미완의 민주주의를 완성하겠다고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후보가 없다.

"헌법 가치 받아들이는 게 왜 '좌클릭'인가?"

프레시안 : 최근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을 냈다.

김종인 : 1987년 헌법에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집어넣은 지 올해로 25년째다. 하지만 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지에 대해선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헌법 속 경제민주화 조항에 대한 해설서 한 권 나온 게 없다. 그래서 내가 화두를 제시한 입장에서 책을 썼다. '당시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은 계기가 뭐다' 정도를 설명하려 했다.

마침, 지난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여, 야 정당 역시 대대적인 변신을 하게 됐다. 야당은 통합의 길을 갔고, 여당은 근본적인 수술을 받는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은 사실 반(反)서민적인 면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시대가 바뀌고 국민 여론이 바뀌었으니, 헌법 속 경제민주화 조항을 정강정책에 반영했다. 이걸 놓고 누구는 '좌클릭'이라고 하는데, 납득할 수 없다. 헌법 속 가치를 받아들이는 게 왜 '좌클릭'인가. 이 정도 변화를 뭔가 대단한 것인양 여기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보수'란 무턱대고 현재를 고집한다는 뜻이 아니다. 국민의식의 변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는 게 옳다. 정당이 그걸 하지 않는다면 존재의의가 없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경제민주화, 대선 후보들은 왜 외면하나"

프레시안 : 남재희 전 장관이 최근 <프레시안> 기고에서 김 위원장을 '디코이(decoy)'에 비유했다. 영국에서 사냥꾼이 사냥감을 유인하기 위해 쓰는 '가짜 새'를 '디코이'라고 하는데, 김 위원장이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이 박 후보와 손 잡으면서 '경제 민주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긴 했는데, 실질적인 역할은 못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김종인 : 남 전 장관은 표현을 너무 과도하게 한 것이다. 세상 문제가 어디 한꺼번에 풀리겠나. 나는 단초만 만들어도 다행이라고 본다.

어느 여론조사를 보니 국민이 원하는 첫 번째 의제가 경제민주화였다. 41%가 나왔다. 두 번째가 복지였는데 25%였고, 그 다음이 일자리 창출인데 17%였다. 그런데 이게 다 연결돼 있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 70% 이상이 경제민주화를 원하는 셈이다. 반면, 외교 안보 이슈는 별 관심이 없다. 대선 후보들이 이걸 알아야 하는데,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영 답답하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새누리당과 관계가 없으면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못하겠다.

프레시안 : 박근혜 후보가 대선에서 이길 거라고 보나.

김종인 : 큰 실수만 없으면 박 후보가 1.5%p차이로 이긴다는 게 내 계산이다.

 

 
 
 

 

/성현석 기자,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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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실패하면 다가올 끔찍한 재앙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12/02 10:00
  • 수정일
    2012/12/02 10:0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권교체 실패하면 다가올 끔찍한 재앙
혁명의 대명사, 체 게바라의 딸 한국에 왜 왔을까

(서프라이즈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2-12-01)


 

정권교체 실패하면 다가올 끔찍한 재앙

-혁명의 대명사, 체 게바라의 딸 한국에 왜 왔을까-
 

 

 



로맨티스트와 리얼리스트, 누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분좋은 그림 한 장을 설명하고 넘어가야 겠다. '서울 폭설'이라고 써 둔 사진 한 장은 2년 전 서울에 내린 폭설을 담아둔 모습이다. 폭설 때문에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폭설은 아파트단지 주변의 약간은 우중충하고 지저분했던 장면 모두를 한순간에 지워버렸다. 마치 잘 그려 나가던 그림을 한 순간에 다 지워버린 백지 상태의 모습이다. 글쓴이는 겨울이 다가오면 늘 이런 꿈을 꾸게 된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고 또 함박눈이라도 펑펑 쏟아져야 제 맛이다.

열대지방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이런 낭만적인 풍경 때문에 겨울이면 눈으로 덮힌 설국을 찾아 나선다. 한 해를 보내면서 평소와 다른 풍경 속에서 연인들 끼리 또는 가족들이 이런 풍경 속에서 지낸다는 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자 추억이 될 것이다. 그래서 카리브에 살고있던 한 연인은 신혼여행을 캐나다로 떠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경험담이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이 그리 길지않은 것 처럼 서울에 내린 폭설은 곧 녹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동차 매연 등이 남긴 거무죽죽한 본래의 모습에 눈이 녹아 흐른 물이 겹쳐 오히려 엉망진창으로 변하게 된다는 거 다 안다. 달콤했던 신혼의 꿈이 사라지듯 설국은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겨울만 되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꿈을 꾸게 된다. 요즘 차기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꼭 닮았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독재자의 딸의 연설 속에 포함된 달콤한 말이 로맨틱한 폭설을 닮았는 지. 대한민국은 금방이라도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어 놓을 듯 하다. 해방 이후 67년동안 단 10년 동안 만 민주주의를 맛 봤던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행운이 폭설처럼 쏟아져 내릴 것 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물론 독재자의 딸 박근혜 후보가 내 놓는 공약은 금방 녹아버리는 폭설처럼 헛된 꿈이라는 말일까.

12월이다. 좋으나 싫으나 한 사람의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그냥 뽑는 게 아니라 잘 뽑아야 한다. 최선이든 차선이든 차악이든 '최악' 만을 피해 잘 뽑아야 한다. 외신에서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나선 한 후보를 언급하며 '독재자의 딸'이라는 수식어를 언급하고 있다. 독재자의 딸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독재' 내지 '독재가 남긴 과거사'에 대해 잘 알려고 하지않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외신이 우려하는 이유는 그곳에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이자 선진국가로 나아가는 줄 알았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을 우려하며 빈정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사자들인 우리나라 사람들 일부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 지 잘 알려고 하지않는다. 다만, 독재자의 딸과 그 주변 사람들이 내놓는 사탕발림에 귀가 솔깃해 있는 것이다. 여전히 독재프레임에 갇혀살며 백성들을 사육하는 거나 별 다름없는 하사품(?)에 침을 흘리고 있는 것과 별로 다를바 없다는 말이다. 그들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내뱉는 거짓말에 대해 전혀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언론들이 앞장서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로 막으며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곧 행복의 폭설이 대한민국을 덮게 될 것이라는, 전혀 엉뚱한 환상을 심어주는 못 된 짓이다.

예컨데 사람들은 다 똑같은 데 정당 이름과 색깔만 바꾸고도 '처절한 반성'을 했다고 말한다. 처절이란 뜻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처절이란, 몸서리칠 정도로 몹시 끔찍하다는 말이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만 바꾸거나 포장지만 바꾸는 데 처절할 이유가 있나.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옷만 갈아입는 데 몸서리 칠 정도로 끔찍한 일인가. 불과 얼마 전까지 이들은 대한민국을 통째로 말아먹은 이명박 정권의 한 패거리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런 조치나 대책도 없이 '이명박 정부의 민생실패'를 외치는 희한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과 다른 '차별화'를 말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운명을 함께해야 마땅한 사람들이 무늬만 바꾼 채 차별화를 말하며 온갖 달콤한 유혹을 일삼는 모습이다.

이런 '유혹의 폭설'이 11월과 12월에 걸쳐 대한민국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며, 그 유혹들은 금새 녹아 다시금 대한민국을 불과 수 개월 전의 만신창이가 된 대한민국 본래의 모습으로 가두게 될 것이다. 이런 프레임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애비 박정희가 5.16군사쿠데타 이후 김재규로부터 총살을 당할 때까지 이어졌고, 그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며 대한민국을 어둡게 만드는 암울한 그림자의 실체였다. 비록 해외에서 '삼숭(Samsung)'이 판매하는 모바일 제품 등이 우리를 먹여살리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외국 사람들이 삼숭은 알아도 '코리아'를 모른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사람들 뿐이다. 한국 사람들이 K-POP은 세계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동안, 세계인들이 한국을 아는 건 최근 들어서 겨우 '싸이의 강남스타일' 정도다. 믿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주로 우물 안에 갇힌 개구락지 처럼 우물 바깥의 세상에 대해 아는 듯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해외 언론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독재자의 딸'은 한국의 현대사를 잘 아는 사람들이 입에 올리는 키워드인데, 정작 일부의 사람들은 달콤한 사탕발림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다행인 지 11월과 12월에 걸쳐 쏟어지고 있는 언어유희(말장난)의 폭설에 맞서(?), 혁명의 대명사인 '체 게바라('체'라고 부른다)'의 딸 '알레이다 게바라 마치'가 한국에 왔다. 그녀는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가 주최한 강연에서 화재의 말을 남겼다.

"아버지는 타인을 존중할 줄 알아야만 협력을 이룰 수 있고, 그렇게 힘을 합쳐야만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가진 가장 큰 자질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진정한 혁명가라면 '로맨티스트'여야 한다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어떤 꿈을 꾼다면 그 꿈을 이루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꿈을 이뤄주길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었습니다.혁명가란 그런 사람들이며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삶의 존엄성을 직접 보여줬다. 그런 아버지를 열렬히 사랑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체의 딸이 눈길을 끈 건 그녀가 남긴 몇 마디의 말 때문이다. 체의 평전을 통해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체의 딸은 아빠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그녀가 4살 무렵 체는 반군활동 지원을 위해 아프리카의 콩고로 떠난 이후 영영 만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성장한 이후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체와 별로 다를바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마치 곁에서 들은 것 처럼 말하고 있다. 그녀의 발언 중에 주의해야 할 한 단어와 명문이 포함되어 있었던 게 눈에 띈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혁명가라면 '로맨티스트'여야 한다' 고 말한 것으로 전하고 있지만 그 표현은 잘 못된 표현으로 판단된다. 독재자들이나 추종자들이 국민들을 기망하기 위해 흔히 써 먹을 수 있는 표현 방법이다. 예컨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애비 박정희를 <박정희는 로멘티스트였다-정태륭 에세이집, 발간 2012.3>라고 미화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재자를 로맨티스트로 포장을 했기 때문에 체의 딸은 본의 아니게(아니면 번역 실수) '진정한 혁명가는 독재자'로 부르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로맨티스트는 독재자는 물론 누구나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오류(?)는 이어지는 말 속에서 저절로 수정되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꿈을 꾼다면 그 꿈을 이루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꿈을 이뤄주길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된다" 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가 대한민국의 명운을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체의 어록'에 나타난 명언이다. 체의 어록에 따르면 "리얼리스트되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가지라!(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신혼의 단꿈 처럼 낭만적으로 대통령 선거에 임하면 함박눈이나 폭설같은 신기루에 빠지는 로맨티스트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 꿈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리얼리스트가 되는 일이다. 체가 쿠바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자 동력원이, 현실을 직시하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리얼리스트가 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어렵고 힘든 일인가.

우리가 '새정치'를 위한 정치혁명, 정권교체를 이루어 세계속에 우뚝 솟은 선진 대한민국을 꿈꾸자 한다면 리얼리스트가 되는 일이다. 그게 체의 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자 '진정한 혁명가 모습'이다. 현대의 혁명가는 근대의 혁명가 처럼 힘들고 어렵지 않다. 체가 남긴 업적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5년에 '딱 한 번' 오는 기회이자, 우리가 최소한 57년 동안 독재의 프레임 속에 갇혀 허덕거리며 자유를 구속당한 이유이자 권리를 찾지못한, '투표'를 확실하고 정확하게 행사하는 일이 리얼리스트의 길이다. 선량한 국민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이자 참정권인 투표 한 번으로 혁명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근대의 체는 목숨을 걸고 혁명에 뛰어들었지만, 현대의 우리는 목숨까지 걸 이유 없이 투표 한 번이면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시대로 바뀌게 된 것이다. 독재자의 딸이 매일 마음에도 없는 아양을 떨며 거짓말에 열중하는 것도 이런 '민중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기를 바라는 것이자, 5.16군사쿠데타를 혁명처럼 미화하기 위해 목숨걸고 있는 가증스러운 짓이라 할 수 있다. 리얼리스트가 되라는 말은 곧 투표를 하라는 말과 다름없고 그 투표가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른다는 것.


따라서 12월은 대한민국의 '운명의 지도'를 바꾸는 날이자 우리가 그토록 갈망한 정권교체의 절호의 찬스다. 그 찬스를 놓치게 되면 외신이 우려하는 것 처럼 우리는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 재앙에 직면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함박눈이 만든 폭설이 아니며 독재자의 딸이 함부로 내뱉은 말장난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투표를 하는 일이며 혁명적 리얼리스트가 되는 길 뿐이다. 새정치의 벽과 정권교체의 벽이 너무높아 불가능해 보일 지 모르겠지만, 투표 한 번이면 '불가능이 현실'로 바뀌게 된다. 우리 모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투표날이 설레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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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별도캠프 꾸려 광폭행보 나서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12/02 09:52
  • 수정일
    2012/12/02 09:5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안철수 별도캠프 꾸려 광폭행보 나서나

[진단] 대선 D-18일 최후의 캐스팅보트 쥔 안철수의 선택은?

12.12.01 21:11l최종 업데이트 12.12.01 21:11l
장윤선(sunnijang)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11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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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승리를 예측한다."

국내 한 재벌그룹이 최근에 작성한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올 대선 최후의 승리 월계관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쓰는 것으로 예측된다. 이 재벌그룹뿐 아니라 국내 굴지의 기업들도 올 대선 D-18일을 앞둔 상황에서 아주 특이한 변수가 없는 한 박근혜 후보의 승리는 예정된 수순으로 분석하는 분위기다.

정치와 선거에 가장 민감한 기업들이 보름 남짓한 대선을 앞두고 외부에 이 같은 정보를 흘리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형성됐다고 판단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간의 경쟁은 초박빙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같이 분석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투표율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에게 우호적인 20~30대 젊은 층은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고, 박근혜 후보에게 우호적인 50~60대는 투표율이 높다. 이른바 적극 투표층을 놓고 따져보면 박근혜 후보 지지 점유율이 문재인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게다.

무엇보다 올 대선 최대의 흥행카드였던 안철수 후보마저 스스로 링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대선 흥행요소는 찾기 힘들다고 보는 탓도 있다. 이대로 18일을 보낸다면 대선승리는 박근혜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민주통합당 전략관계자들이 지난 60여일간 진행된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시간은 문재인의 편'이라고 했었는데, 지금 대선 레이스를 보자면 '시간은 박근혜의 편'이 돼버린 것일까.

"아름다운 단일화는 못했지만 박근혜정권은 막아야"

여기서 반론을 펴는 것은 역시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이다. 안철수 후보의 지원이 곧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의 지원이 이뤄진다면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급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민주통합당의 전략관계자들은 안철수 자신의 정치행보를 위해서라도 그는 문재인 후보를 돕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번 대선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철수표 다음 정치행보'는 불가능하다는 계산 때문이다. 대선승리의 노둣돌을 놓아야 자신의 정치에도 힘이 붙는다는 얘기다.

실제 안 전 후보는 지난 23일 사퇴회견문을 통해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라며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 저를 꾸짖어 주시고 문재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안 전 후보는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며 "제가 부족한 탓에 국민 여러분의 변화의 열망을 활짝 꽃피우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나지만 제게 주어진 시대와 역사의 소명, 결코 잊지 않겠다,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몸을 던져 계속 그 길 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문재인 후보와 함께 작성한 새정치 공동선언문에서도 "개인적인 유불리를 뛰어넘어 대승적으로 대선승리를 위해 후보단일화를 이뤄내겠다"며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합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는 "우리는 상호 존중과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위한 국민연대를 이루어, 양 측의 지지자뿐만 아니라 더 많은 국민들의 힘을 결집해내고 12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대선 승리 이후에도 신뢰의 원칙하에 연대의 책임을 다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성공적으로 열어나가기 위해 변함없이 협력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물론 이 선언문은 안 전 후보의 사퇴 이전에 작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 뜻이 바랬다고 볼만한 그 어떤 근거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안 전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새정치공동선언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액션플랜으로 문재인 지원활동에 적극 나설 것인가는 여전히 의문부호다.

안철수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1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아름다운 단일화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박근혜정권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라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철수캠프 내부에는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안철수캠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새 정치를 염원하는 안철수 후보를 결국 벼랑 끝까지 몰고 가서 끝내 밀어버린 민주당이 책임을 져야지 지지율 반등이 안 된다고 안철수 후보를 다시 불러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안철수 후보가 나선들 이 구도를 깰 수는 없을 것"이라고 비관했다.

이 같은 양 갈래의 의견들을 안 전 후보가 어떻게 종합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민주당 일각에서는 안 전 후보가 문재인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을 지휘해 '바람'을 일으켜주기를 희망하는 분위기다. 반대로 민주당 내부에서 공식적인 직함을 맡지 말고 별도의 캠프를 꾸려 '안철수 새정치'를 주장하면서 선거운동에 결합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것이 안철수도 살고 민주통합당도 사는 길이라는 게다.

안철수 독자캠프로 다시 선거 전선에 서나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11월 23일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며 대선후보직을 사퇴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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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안철수캠프에는 '독자캠프' 노선이 상당한 힘을 얻는 분위기다. 민주당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소수인원이라도 별도의 캠프를 꾸리고 적극적으로 선거지원 활동에 나서는 게 낫다는 것이다.

안철수캠프 핵심 관계자는 "소수정예로 하더라도 별도의 캠프를 꾸리고 선거지원을 하는 게 낫지 지금 대선이 며칠이나 남았다고 민주당 안으로 들어가서 직함을 맡고 활동을 하겠냐"라며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안철수캠프는 안철수캠프대로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캠프 내부에는 이 같은 견해가 다수라는 말도 덧붙였다.

안철수 캠프와 문재인 캠프 간의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별도로 캠프를 꾸려서 "안철수 정치는 살아 있다"는 점을 과시함과 동시에 젊은 층과 PK지역을 대상으로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실제 이처럼 작동되기 시작한다면 지지율 하락 혹은 정체를 나타내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조금이라도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1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현재 전화면접조사로 보면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3~4%p 뒤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안 전 후보가 어느 수위로 도울지는 알 수 없지만 안 전 후보를 지지했던 신부동층이 그의 메시지에 따라 문 후보쪽으로 이동하게 되면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에 도움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윤 실장은 "안 전 후보의 메시지가 상당히 중요할 것 같다"며 "안 전 후보를 지지했던 신부동층은 과거 제3후보에 대한 관심이나 호감과 달리 확고한 지지층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안 전 후보가 진심을 담아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원의사를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면 신부동층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서 정권교체에 나설 것이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신부동층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소극적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투표참여율이 저조해지면 문재인 후보의 낙선과 박근혜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 역사의 갈림길에서 안철수 전 후보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의 최종 캐스팅보트는 안철수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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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인디언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박근혜, 인디언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뉴스와 분석] 박 캠프 “200만표 승리, 인수위 구성”... 샴페인 준비?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2-02 03:02:59 | 최종:2012-12-02 04:29:1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올 대선 본선의 초반 판세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조금 앞서 있다고 한다. 여론조사 수치로는 대략 3% 정도. 무시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유의미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권투경기로 치자면 10라운드 게임에서 1라운드는 박근혜가 이긴 셈인데 문제는 남은 9라운드 경기를 누가 잘 마무리 하느냐 하는 점이다. 지혜로운 체력 안배와 무엇보다도 ‘한 방’의 결정타도 꼭 필요하다. 전략 가운데는 티 안나게 재주껏 하는 ‘반칙’도 전략이라면 전략이랄 수 있다.

비록 1라운드이긴 하나 자기편 후보가 이기고 있으니 박 캠프로선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 박 캠프에서는 벌써부터 판정승도 아닌 ‘KO승’을 장담하며 경기 후 시상식과 그 때 쓸 샴페인을 준비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가 들린다. 기뻐서 들뜬 나머지 성급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 왜 없을까 마는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지 않은가 싶다. 기껏 1라운드에서 가벼운 훅 몇 방 날렸다고 벌써부터 챔피언 벨트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니 말이다.
 

지난달 30일 부산지역 유세에서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박근혜 후보

지난달 30일자 <경향신문> 보도(29일 밤부터 인터넷판 게재)에 따르면, 새누리당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29일 “문재인은 안철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프레임도 이상하게 잡고 있다”면서 “어떤 식으로 표 계산을 해도 우리가 이긴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15% 이상 지지 않는 이상 지역별로 표 계산을 해보면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를 하고 있다”며 “최소한 200만표 이상으로는 이길 것 같다”고도 했다고 한다.

 

이어 또 다른 선대위 관계자는 “마지막 변수는 안철수의 지원 강도다. 안철수가 적극 지원하면 3~4%포인트는 올라갈 수 있다”면서도 “투표율이 야당이 원하는 만큼 높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표율이 80% 정도 나오지 않으면 우리가 질 수 없는 선거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최대변수였던 야권 후보단일화가 ‘감동’을 주지 못한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가 앞서고 있으니 이같은 희망 섞인 판단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보도가 나가자 트위터 등 SNS에서는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반드시 뒤집자”는 등 야권 결속을 주장하는 야당 지지자들의 글이 잇따랐다. 급기야 새누리당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은 이날 밤 의원들에게 긴급 문자메시지를 보내 ‘입조심’을 시키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는 “벌써부터 선거분위기를 해치는 당내 인사의 언론 인터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인터뷰는 절대 해선 안된다”며 함구령을 내렸다. 일종의 ‘표정관리’인 셈이다.

1일자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국내 모 재벌그룹에서 작성한 내부 보고서에는 박근혜가 이기는 걸로 나와 있다고 한다. 선거에 민감한 집단 가운데 하나는 재벌이다. 결과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들이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 같이 경제민주화, 즉 재벌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있어 더욱더 민감할 것이다. 어떤 그룹에서는 자체적으로 여론조사를 하기도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모르긴 해도 앞에서 언급한 ‘모 재벌그룹’은 국내 1위의 삼성그룹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 역시 선거에 관심이 있으니 선이 닿는 대로 안테나를 풀로 가동해 정보를 모으고 또 분석을 할 것임이 분명하다. 국내 재벌그룹의 경우 계열사 가운데 보험회사를 갖고 있는 곳이 많은데 이곳이 주요 정보수집 창구로 알려져 있다. 실핏줄 같은 전국의 지점망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날 것’으로 수집하고 있는데 이는 전국조직인 경찰 정보와 버금갈 정도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25일 오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

따라서 새누리당 자체 분석이나 모 재벌그룹의 내부 보고서는 현 시점에서는 나름으로는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이미 ‘박근혜 대세론’이 엎치락뒤치락 한 적도 있고, 여론조사 역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런저런 변수로 인해 ‘지속성’이 담보될 수 없다면 그런 정보는 일시적으로 유용할 뿐이다. 따라서 본선 초반에 박근혜가 승기를 잡은 것은 흔히 화투판에서 하는 말로 ‘초장 끗발’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새누리당이 대선 승리의 관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안철수의 지원 여부와 그 강도, 그리고 다른 하나는 ‘투표율’이다. 우선 안철수의 문재인 지지 여부와 그 방식, 강도 등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치 않다. 3일(월) 안 캠프 해단식 때 참석해 이와 관련해 무슨 입장표명을 할 것이라고 하니 미리부터 왈가왈부할 것은 없다. 그 때 들어보면 안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문재인을 돕지 않겠느냐는 것이 중론이다.

다음은 투표율. 이건 문재인에게 불리한 편이다. 문재인에게 우호적인 20~30대 젊은층은 박근혜에게 우호적인 50~60대보다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다. 이번 선거에서 이런 ‘경험칙’이 깨질 것이라는 기대는 갖기 어렵다. 게다가 안철수와의 후보 단일화 역시 매끄럽게 마무리되지 않아 안철수 지지자 가운데 예상보다 ‘이탈자’가 많을거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여럿 있었다. 결국 객관적으로 볼 때 이변이 없는 한 문재인이 불리한 형국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위의 둘만이 대선의 변수는 아니다. 변수는 얼마든지 있다. 우선 상상해볼 수 있는 것으로 투표일에 임박해서 터질 수도 있는 ‘돌발사건’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대형 금전비리사건이나 사생활 관련인데 이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자칫 한순간에 선거 판도를 뒤엎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점은 여야 유력후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박근혜, 문재인 두 사람 모두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준비해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4일 '과거사'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허리숙여 인사하는 박근혜 후보

다음 변수로는 박근혜의 지지율(혹은 지지기반)이다. 혹자는 박근혜는 40% 안팎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정수장학회, 5.16쿠데다, 유신 등 잇따른 과거사 논란은 물론 측근들의 잦은 ‘말썽’에도 불구하고 끄떡없는 걸 보면 이는 ‘객관적 사실’로 인정할 만하다. 혹자는 박근혜가 설사 사생아 열을 낳았다고 해도 이 ‘콘크리트 지지율’은 깨지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박근혜가 이 ‘콘크리트 지지율’ 안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박근혜 지지율은 ‘취약점’이 적지 않다. 우선 전국적인 판세로 한번 따져보자면, 제일 덩치가 큰 서울/수도권은 여전히 야권 강세다.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 대선에서도 별다른 변화는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경북은 여전히 ‘텃밭’ 그대로다. 반면, 또 하나의 텃밭이었던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 여전히 우세이긴 하나 지금은 ‘공동농장’ 비슷하게 돼버렸다. 참고로 문재인과 안철수가 부산 출신이다.

호남(광주/전남북)은 여전히 민주당의 ‘문전옥답’이다. 다만 밭고랑에 ‘금’이 좀 갔다. 밭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이다. 강원도는 현재로선 새누리당이 절대 우세지역이다. 다만 문재인이 대북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있어 보인다. 대전/충청은 현재로선 ‘무주공산(無主空山)’에 가깝다. 옛 주인(자민련, 자유선진당 등)이 주인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누가 잘하느냐에 따라 아무나 새 주인이 될 수 있다.

결국 박근혜가 공략할 포인트는 두 지점으로 판단된다. 우선 과거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다가 지금은 ‘공동농장’으로 변해버린 ‘부울경’이다. 그래서 요즘 박근혜의 부산/경남 방문이 부쩍 잦다. 일단은 ‘집토끼’부터 챙기는 게 상책이다. (반대로 문재인은 요즘 광주/전남행이 잦다) 그다음은 ‘무주공산’을 상대로 ‘땅따먹기’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가 27일 공식 선거유세 첫날 대전과 충남 공주를 찾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식 선거유세 첫날인 지난달 27일 대전역 유세에서 이회창 전 대표와 만나는 박근혜 후보

 

이 두 지역 공략을 위해 박근혜 캠프는 이곳에 정치적 기반을 둔 외부인사를 잇달아 영입했다. 호남 공략 차원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인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와 한화갑 전 의원을, 충청 공략을 위해서는 이인제 전 선진통일당 대표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를 잇달아 영입했다. 다만 이들이 호남-충청 지역에서 얼마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 그래서 표를 얼마나 모아올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표 계산을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는 취약지역인 광주/전남북을 공략하고 있으나 텃밭인 ‘부울경’에서는 문재인에게 제법 잠식당했다. 그런데 ‘부울경’은 전체 유권자의 15.8%(부산-7.2, 울산-2.2, 경남-6.4%)를 차지하는 데 비해 광주/전남북의 유권자는 10.3%(광주-2.8, 전남-3.8, 전북-3.7%)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부울경’의 10%와 광주/전남북의 10%는 비율은 같지만 표차는 5.5%(대략 200만표)나 된다. 박근혜로서는 득보다 실이 커 보인다.

게다가 ‘아성’으로 믿고 있던 ‘TK’도 흔들리고 있다. 8대 지역 언론사들이 지난 11월 27~28일 리얼미터에 의뢰해 19세 이상 TK지역 주민 194명을 대상으로 한 4차 여론조사에서(유선전화 80%·휴대전화 20% 자동응답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7%포인트)에서 문재인이 25.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17대 대선 때 정동영이 얻은 득표율 6%와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이 조사에서 문재인은 20대에서 50.8%의 지지율로 박근혜(29.3%)보다 21.5% 포인트 앞선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라고 하겠다.

박근혜는 1일 김무성 총괄본부장 등 당 핵심인사들을 대거 대동하고서 부산 범어사를 찾았다. 두 가지 목적에서다. 하나는 ‘집토끼’ 단속 차원, 또 하나는 불심(佛心) 잡기. 전통적으로 부산/경남은 전국에서 불심이 가장 깊은 곳이다. 이날 범어사 부(副)주지인 범산스님은 김 본부장 등에게 ‘아픈 얘기’를 했다. 범산 스님은 “지금 가장 새누리당에서 문제가 되는 게 네거티브”라며 작심한 듯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또 소통 문제도 지적했다고 한다.

본선 초반에 여야 할 것 없이 ‘네거티브’에 매몰된 형국이다.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며 여야 후보 진영 모두 경계해야할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네거티브 전략이 누구에게 불리할까 하는 점인데, 문재인보다는 박근혜에게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문재인보다는 박근혜의 지난 삶이 더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이미 나올 만큼 나왔다고 해도 ‘과거사’는 털면 또 나오는 법이다. 또 포장하기 나름으로 ‘얘기’가 되기도 한다. 요즘, 마치 인디언 인형처럼 웃고 있는 박근혜는 과연 막판까지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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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

 
법인 스님 201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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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산양-.jpg

산양, 보름달 산책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파파고 공원에서 16일 밤,

보름달을 배경으로 산양들이 언덕을 오르고 있다 2011년 5월 -AP통신

 

 

 

35전년에 출가한 나는 지금 산승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처님을 등지고 환속한 것은 아니다. 3년 전, 내가 늘 깃들어 살고 있는 땅끝마을 두륜산을 떠나왔으니 산승이라고 이름 붙일 수는 없겠고, 조계사가 자리한 서울에 살고 있으니 수도승이라 함이 마땅하겠다. 산승과 수도승은 출가수행자를 분류하는 우리들 세계의 객쩍은 은어다.

 

산중에 사는 스님들에게 “스님들은 피나게 정진해도 수행의 소득이 없을 수 있으나 우리들 수도승은 굳이 참선하고 경을 읽지 않아도 저절로 도가 높아진다.”고 놀려 먹으며 힘든 도시생활을 스스로 위로한다.

 

출가수행자가 산사를 떠나 도심에서 살아가는 일은, 새가 숲을 떠나 낯선 세상에서 날개짓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온갖 시비와 복잡이 얽혀있는 도심 한복판에서 출가할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삶의 변화와 성숙을 일구어내야 하는 수도승 생활은 여간 조심에 조심을 더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수도승의 옷을 입은 지도 어느덧 3년을 넘었다. 돌이켜보면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수행은 다름 아닌 바로 지금 여기서 삶의 진행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무엇보다도 유약하고 모호한 태도를 극복하며 보다 단단해진 것 같다. 일을 통해서 세속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까지 보듬게 되었다. 사람과 일을 통해서 새로운 눈으로 경전을 보는 힘도 얻었다.

 

 

달을 안고-.jpg

‘엠시어리’(M-Theory)의 ‘문 프로젝트’ - 프랑스 천체사진가 노르베르 뤼미아노와

말레이시아의 천체사진가 친웨이룬이 찍은 실제 보름달 천체사진으로 제작된 달 모양 러그,

쿠션(사진), 침대, 카우치.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평범한 일상에 환상과 상상을 선물한다. 텐바이텐 제공

 

 

그러나 잃은 것도 많다. 내면의 빛이 바랜 경향도 더러 있는 것 같다. 나를 아끼는 이웃들의 말을 빌자면 감성의 물기가 많이 빠지고 여유의 멋도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때로는 사무적이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고 한다.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다 맞는 말이다. 매우 죄송한 일이다. 힘이 잔뜩 들어간 나의 말과 표정에 상처를 입은 분들께 진심으로 참회의 마음을 전한다.

 

그래서 퇴색한 감성과 여유를 찾기 위해서 서울에서도 나름 안간힘을 쓴다. 그 중에 하나가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 산책하는 일이다. 한밤중, 새벽녘, 저물 무렵을 가리지 않고 산책을 즐긴다. 사람에 걸리지 않는 독신과 독거가 이래서 더없이 좋다.

 

오늘도 새벽녘에 북촌을 거쳐 삼청공원을 지나 경복궁 돌담길까지 걸었다. 조금은 싸늘한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 비록 겉으로는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달빛을 밟고 걸어간다. 지상에 내린 달빛에 눈길 주고 마음을 얹으니 나는 분명 하늘의 달빛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길을 가면서도 수시로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본다. 그러자니 모든 게 새삼스럽다. 어! 서울에도 하늘이 있네. 달이 있네, 나무가 있네, 꽃이 있네. 아하! 정녕 마음을 열고 보니 눈이 열리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니 하늘의 달과 지상의 꽃이 보이네. 홀연 가슴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한다. 더불어 내 곁에 함께 있는 모든 것들이 더없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마음 열고 눈을 주면 세상 만물은 그대로가 나와 함께하는 한 생명 한 호흡이라는 오묘한 이치를 가슴으로 깨닫는다. 달빛을 밟고 가려니 달빛에게 고맙기도 하려니와 미안해지려 하기도 한다. 달 아래서는 잡념과 시비와 번뇌가 절로 사라진다. 달은 그 존재만으로도 힐링이다.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오늘 새벽 덕스러운 만월보살滿月菩薩님께 시를 공양하였다.

 

한빛 황토(黃土)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萬)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빛에 비쳐주리라

가다가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내 사랑은, 박재삼

 

달을 생각하면, 달 아래 서면, 나는 제일 먼저 이 시가 생각난다. 시골 농촌마을에서 유년을 보냈던 나는 유달리 달을 참 좋아했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도 초가지붕 위에 달을 많이 그렸다. 가난한 한 가족이 마당에 평상을 펼쳐 놓고 옥수수를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 것도 보름달 아래서였다. 그런 날, 모기를 쫓고자 야생 잡초에 불을 지피면 그 매운 연기 사이로 보름달을 보며 나는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달곤 했다.

 

양재천 달-박재동-.jpg

그림 박재동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이후에도 나는 달만은 버리지 못하고 늘 함께 살았다. 새벽 예불을 위해 산사의 경내를 돌며 목탁을 치면서 염불하다가 산 위에 걸린 달빛에 취하여 그만 염불을 놓치기도 하였다. 언젠가는 늘 하는 독경이 싫증나서 불경 대신 위의 시 ‘내 사랑은’을 목탁에 맞추어 낭송(?)하기도 했다. 까닭없이 마음이 많이도 아팠던 20대 시절에 나는,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이라는 구절이 가슴에 꽂혀,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주문처럼 읊고 또 읊어댔다. 그래서 언젠가는 달빛 젖은 조약돌 하나를 건져 내 볼에 대어 보기도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달이 그토록 뜨거운 줄을 알았다.

 

하지만 달은 뜨거운 것만 아니었다. 태양처럼 눈부셔 바라보기 힘든 게 아니라 마음 내키는 데서 마음내킴으로 바라볼 수 있는 편안한 대상이다. 그래서 달빛으로 세상 읽기가 가능하다. 하얀 달빛은 온 누리를 맑고 은은하게 정화해준다. 손님처럼 찾아온 번뇌가 묻은 마음바탕을 깨끗하게 헹궈준다. 굳이 특별한 세탁소를 가지 않아도 무겁고 축 늘어진 번뇌의 옷을 깔깔하게 말려준다. 이렇게 보자면 달은 우리 삶과 의식의 심층구조이자 랑그*이자 시니피에**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절집에서는 달을 소중하게 생각해왔다. 경전에서도 선시에서도 달의 대목을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호탕무애한 도심道心의 세계를 달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대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竹影掃階塵不動

달빛이 물 밑을 뚫어도 물결 하나 일지 않네月穿潭底水無痕 -야보 도천

 

여기에서는 세상에 어떤 일에도 마음 기울지 않고 마음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 경지를 달을 빌어 노래하고 있다. 이웃을 위해 연민과 자애의 마음을 나누더라도 그 마음은 늘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물결 하나 일어나지 않는’ 그런 무심과 무욕의 바탕에 서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 비리고 비운다는 건 바로 텅 빈 충만이다. 이 텅 빈 충만이 물결 하나 일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요즘은 산중에도 사람들의 방문이 많아졌다. 번잡한 일상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고자 산사에 머문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오니 달을 보게 되네요.”

 

나는 그들의 말과 표정에서 애틋한 감회와 씁쓸함을 읽는다. 아니, 서울에는 달이 안 뜨나?

그런 것 같네. 달은 어디에도 있는데, 달은 보는 사람에게만 뜨는 것이었네. 정말 그렇네.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달은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이었네. 정말이지 그런 것 같다. 무엇이 있어도 있는 경우가 있고, 무엇이 있어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어떤 신비한 현상이 아닐 것이다. 마음을 열고 눈을 열고 귀를 열면 바로 그 앞에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눈앞에 있어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삭막한 서울일지라도 조금만 눈을 주면 길가의 가로수를 볼 수 있고 골목길의 담쟁이넝쿨을 볼 수 있다. 집 앞에 화분으로 가꾼 배추와 고추도 볼 수 있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에도 그것들에 눈을 주고 말을 건넨다. 그러면 그것들은 이미 내 마음에 들어와 있다. 유정무정의 모든 생명은 이렇게 눈으로 연결되어 한 호흡으로 숨 쉬고 있다.

 

* 랑그(langue) :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추상적인 언어의 모습으로, 그 사회에서 공인된 상태로의 언어를 의미한다. 곧 언어능력에 해당하고 음악 연주에서 악보에 비유된다.

 

** 시니피에(signifié, 記意): 기호에서 어떠한 것의 본래 성질(개념)로, 예를 들어 ‘나무’라고 했을 때 그 의미 ‘木’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무’라는 말(청각영상)은 시니피앙(signifiant, 記標)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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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안철수’가 나아가야 하는 길

정치인 ‘안철수’가 나아가야 하는 길
(서프라이즈 /뉴요코리안 / 2012-11-30)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란 분배 정의를 말한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극보수 세력의 프레임을 알아야 한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이 55-60%라는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선은 참 기이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바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여론(?) 주도 프레임이 이를 왜곡하고 있으며 몇 안 되는 진보 언론마저도 이를 깨지 못하고 오히려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화, 혹은 이른바 아름다운 단일화를 목마르게 기다린 순진한 국민들이나 안철수 개인이 아닌 안철수 현상을 지지했던 국민들은 적잖게 실망하였을 것이고 이에 따라 이 신화를 창출한 극보수 언론들의 승리의 함성 소리가 필자가 있는 미국에까지 들려오고 있다.

부족한 필자는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로서가 아닌 그 잔재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박근혜의 집권을 막아보고자 여러 글들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보다도 역사를 길게 보고 말하지 않으려 했던 안철수 현상에 대한 필자의 소견을 다시 올리고자 한다.

이는 더욱 민주화를 진행시키고 극보수 언론들이 집권욕에 가득 차서 대국민 우민화를 위한 아편 투척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고 또 깨어나는 국민이 늘어나게 하기 위함임을 밝히고자 한다.

아직도 안철수 현상의 근본을 모르고 있는 국민들...

필자가 이러한 글을 올리는 데에는 나름대로 안철수, 혹은 안철수 현상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 끝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외 거주하는 일개 국민에 불과한 필자의 판단이 대선이나 향후 한국의 정세 흐름에 무엇이 중요하랴마는 그래도 깨어나길 희망하는 국민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안철수는 이제 정치인이다. 그가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고 고백해서가 아니고 그는 이번 정치 입문 과정에서 더 뼈저리게 정치인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문 후보를 지원해 주기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법륜 스님의 조언(?)을 듣고 손학규를 만나 향후 방향을 떠볼 만큼 그는 정치인이 이제는 다 되었다.

필자는 수차례 안철수 신드롬에 대한 문제점을 글과 댓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정치인은 특히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은 그 기반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익히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 정확한 의미의 진보 정치인(국회의원)은 없다. 혹자는 통합진보당을 운운할 줄 모르나 걸음마도 떼지 못한 정치 공학을 모르는 소리는 하지 마시기 바란다.

김영삼은 극보수 기득권 세력의 줄기에서 군사 기반 세력과 각을 세운 것이 특징이며 김대중은 거기에서 한 걸은 나아가 보수 진영과도 일정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던 것이며(김종필과의 부분적 연대가 이 한계를 잘 말해준다.) 노무현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탈기득권, 친서민적인 정책을 펴려고 노력하다가 극보수 기득권 세력의 반동으로 실패하고 만 것이 작금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다.

역사의 흐름에 서지 않으면 정치인 안철수도 보수 세력의 대표일 뿐이다.

필자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안철수가 말하는 안철수의 생각(정책)이나 새정치라는 것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가 정의나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이제 말을 바로 하자면 그는 당연히 극보수 기득권층 내의 다소 하부를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러한 것을 기반으로 이른바 새정치라는, 국민이라는 전부를 안고 가려고 하는 이상적이고 소설적인 정치 타령을 했으니, 단일화 여부를 떠나도 그는 당연히 실패한 것이고 이 실패를 거울 삼아서 이제 정당을 만들고 극보수 하부 진영부터 연계하여 또 다른 보수정당(본인들은 죽어도 아니라 하겠지만, 즉 새정치를 희망하는 국민정당이라 포장하겠지만)을 곧 만들어 나갈 것임은 이미 두 눈에 훤히 보이고 있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안철수 그는 이미 대선 이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더 바른 소리를 하자면, 필자로서는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라 안 박사 자신이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된 정치 상황을 타개하는 데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게 일단은 그래도 다소 진보적인 현 야권으로의 정권 교체를 진행한 다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를 바랐으나, 이는 필자가 그의 기반도 인정할 수 없었고 그의 과도한 욕심도 한몫을 하였기에 당초에 버렸어야 할 희망 사항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호불호를 아무리 논해도 이제는 보수 정치인이 다된 안철수 박사는 정치인의 길을 갈 것이기 때문에, 다만 조금의 조언을 하고자 한다. 필자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안 박사가 사퇴 전 의논을 한 법륜 스님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 인터뷰에서 법륜스님은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 "국민의 열망을 받아서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역부족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국민은 더 변화, 더 참신함을 요구했는데, 나쁘게는 안 했지만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해야 한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렇게 변화시키겠다' 하는 것이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고 평가했다.

너무도 정확한 평가가 아닌가?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함이 바로 저러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안철수 개인과 안철수 현상의 본질적인 한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본질적인 한계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란 분배 정의를 말한다.

필자도 여러 번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는 아주 선문답 같은 소리만 거듭한 바 있어 이제 쉽게 말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분배의 정의를 추구하고 확립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부동하다는 자신들을 보수층으로 알고 있는 30-40%는 분배의 정의가 확립되어 부동한 것이 아니고 분배를 독점하는 1-2%층의 극보수 기득권 세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기에 자기들에게 일함에 따른 분배는 어느 정도 되는 줄로 착각하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을 굳이 진보화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분배의 정의를 확립해서 이들이 진정한 보수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한국 사회에서 분배의 정의가 확립되어 가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쌍용차 사태에서부터 길게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까지 그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자면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집권 극보수 소수 엘리트 세력은 이러한 근본 문제를 국민이 느끼지 못하게끔 즉 국민이 깨닫지 못하게끔 자신들이 장악한 언론을 이용하여 집요하게 아편의 이념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한국의 국민들이 깨어나 있었다면, 안철수의 등장과 안철수 신드롬에 환호성을 질렸을 것이 아니라, 당신은 그러면 기반이 무엇이며 향후 정책의 방향은 무엇이며, 민주화에 가장 기본이 되는 분배 정의는 어떻게 실현하겠느냐고 물었을 것이고 어쩌면 안철수 거품은 피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선 결과보다도 중요한 한국의 정치 경제적 현실

한국은 정치 경제적 정세의 본질을 말한다면 바로 이러한 분배 정의를 추구하는 싸움의 시작일뿐이다. 박근혜가 되더라도 더욱 소수 1-2%의 극보수 가진 자들의 이익만 추구해 나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싸움은 그칠 수도 없는 역사의 흐름이며 분배 정의라는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통합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재벌 개혁, 행정 수도의 이전 공고화를 통한 분배 정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지만, 현실 정치, 경제 개혁의 미진함과 노무현 시절에 보아 왔듯이 극보수 기득권층의 반발로 쉽지 않은 행로를 보일 것이다.

이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나름대로 보수와 민주의 선이 다소 분명해져 있다는 차이뿐이다. 점증하는 분배 정의의 요구로 오바마는 경합주에서도 승리하는 등 중산층 이하 세력들의 승리를 가져왔으며 공화당도 이제는 조금씩 가진 자들의 돈을 내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고 선거의 결과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보수 언론이 김을 빼려고 시도하는 단일화가 문제가 아니며 더더욱 대선의 일시적 결과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분배 정의 왜곡의 근본에 있는 군사독재 잔재 세력의 청산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깨어나야 하고 더 깨어나는 국민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더욱 분배 정의를 위한 목소리들이 높아져 갈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가 일부 극보수 언론의 치장으로 새정치라는 신화를 가진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집중되었더라도 그것은 본질이 아닌 것이다. 이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분배 정의의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는 것과 동일한 이유이다.

안철수, 그리고 문재인 후보! 역사의 바른 입장에 서면 답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 역사적 사실과 사명을 바르게 인식한다면, 인식하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을 핑계 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대선의 기간 동안에 가장 하여야 하는 일차적인 일은 바로 정권 교체일 것이다. 정권을 교체하고 이명박 정권의 부정을 올바르게 심판하고 그리고 분배 정의의 문제를 확립하고 추구하여야 역사의 올바른 길에 서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그리고 정치인 안철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한 것이다. 이제 그가(그들이) 어떠한 길로 나아갈지는 국민과 역사가 지켜보게 될 것이다.

정치는 가장 기본인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즉 분배 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장밋빛 정책이나 공약의 남발은 일시적으로 국민을 속일 수는 있으나 곧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이 세계의 정치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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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한국언론의 ‘민낯’ 고발하다

 

아이엠피터, 추악한 한국언론의 ‘민낯’ 고발하다
 
[집중분석] 기울어진 대선 경기장 만든 사람, 누군가 봤더니…
 
임병도 기자 | 등록:2012-11-30 13:32:38 | 최종:2012-11-30 13:43: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제 <한겨레> 신문에 '수사자료 훔친 <중앙일보> 기자 징역 8월 선고'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중앙일보> 검찰 출입기자가 서울중앙지검에 수차례 침입해 수사자료를 훔쳐 기사를 냈고, 이에 법원은 절도로 불구속 기소됐던 <중앙일보> 기자를 법정구속했다는 기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핵심 단어를 알 수 있습니다. '출입기자',' 검찰 조사실 침입'.'특종 보도'라는 단어입니다. 이런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단행했다가 실패했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 일명 '기자실 통폐합' 사건입니다.

참여정부는 각 부처마다 있는 기자실을 3~4군데로 통폐합, 전자브리핑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동영상 브리핑, 기자들의 공무원 업무공간 출입 제한을 골자로 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합니다. 이 발표가 있자, 보수우익 언론은 물론이고 진보성향 언론까지 모두 개떼같이 들고 일어서 '언론탄압'이라고 외쳐댔습니다.
 

 

▲ 기자실 통폐합에 반대했던 기자단과 정부 기관들

 

정부 부처 출입기자단은 '기자실 통폐합'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일부 부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침에 정면으로 반대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실 통폐합'을 하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출입처 기자단이 얼마나 엉터리로 기사를 쓰면서 정부 부처를 헤집고 다니면 권력을 누렸는지, 언론의 폐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언론 기자는 누구나 출입처가 있습니다.(소규모 언론사와 인터넷 언론사는 제외하고) 출입처에는 자신들의 데스크가 별도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사무실을 하나 주는 것입니다.

▲ 대한민국 정부 기관에는 어디나 기자실이 있으며, 기자들은 자신만의 데스트에서 기사를 쓰고 송고하기도 하고, 팩스와 전화를 무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세금으로 각종 혜택을 기자들에게 주는 일 자체도 문제거니와, 기자들이 끼리끼리 출입기자단이라고 만들어 놓고 벌이는 행태 또한 가관입니다. 만약 정치블로거로 살아가는 '아이엠피터'가 인천공항 기자실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브리핑에 참석도 못하고 쫓겨 납니다. 설마 그럴리가라고 생각하시나요?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가란 말야" [현장중계]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쫓겨난 뉴스게릴라 (오마이뉴스)

실제로 2001년 오마이뉴스 기자는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쫓겨났습니다. 왜냐구요? 출입기자로 등록되지 않았고, 출입기자들로 구성된 '출입기자단' 소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입기자라는 명목으로 자신들끼리 친목회처럼 만들어 놓은 단체에 가입하지 않으면 브리핑실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출입기자들은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재한답시고 함부로 정부 부처 사무실을 마음대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관행을 없애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취재를 위해서는 사전에 취재 요청을 하고 부처에 출입하는 방안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습니다.

 


▲기자실통폐합을 언론탄압 대못질로 규정하며 비난했던 언론,정치인들. 출처: 뉴시스

 

기자실 통폐합을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했던 언론인들과 달리 당시 미국대사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7년 주한 미대사관발 전문에서 언론제약이 결코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국 언론은 현재 정부 각 부처와 당국자들에 대한 놀라운 수준의 접근권을 누리고 있다.대사관 직원들은 (한국 정부) 부처 로비에서뿐 아니라 복도에서 돌아다니는 기자들을 자주 만난다.고위 당국자들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이 쉽다는 점은 명백하며,정부의 내밀한 정보가 신속하게 유출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따라서 정부 부처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권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 한국이 풍부하게 누리는 언론 자유를 짓밟는 것이 아니라 미국 등 외국에서는 흔한 `경계'(boundaries)를 치려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주한 미국대사 버시바우)

대한민국 기자들을 보면 외국기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정부 부처에 취재 약속을 하지도 않고 수시로 정부빌딩을 드나드는 한국 기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이런 권력을 가진 기자들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정부 부처를 다니면서 쓰는 기사들 대부분은 브리핑실에서 나눠준 보도자료 베끼기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입니다.

'이런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한다고?'

참여정부 '기자실 통폐합'을 반대했던 언론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는다'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보도하고 나서 그런 말을 했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냄비 저널리즘, 선동 저널리즘, 특종 욕심에 휩싸인 오보를 당당하게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을 아는 사람은 그들의 말을 절대 수긍할 수 없습니다.

 

▲2007년 5월23일자 조선일보 기사.

2007년 조선일보는 '노란점퍼 15만장 주문해놓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냅니다. 열린우리당에서 봉사단체 회장이면서 의류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노란점퍼 15만 장을 주문해놓고는 찾아가지 않아 노인 무료금식까지 중단될 위기에 있다는 조선일보의 기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노란 점퍼를 주문한 사람은 열린우리당도 아니었고, 조선일보가 오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끝내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누가 주문했느냐가 아주 중요한 팩트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 기자는 그런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무조건 기사를 내보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비난했습니다.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 사진을 1면에 게재했던 조선일보.출처: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 사건에서 '범인 고종석의 얼굴'이라며 한 장의 사진을 1면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은 범인이 아닌 개그맨 지망생이었고, 오보에 항의하기 위해 조선일보를 찾았던 억울한 시민은 전혀 대수롭지 않은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났으며,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 연평도 포격 당시 신문기사들. 출처:http://photohistory.tistory.com/9213

 

연평도 포격 당시 조선일보는 사진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사진 자체의 색깔을 바꾼 부분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조선일보의 제목입니다. '대한민국이 공격당했다'는 제목을 통해 마치 '전쟁'이 시작됐다는 식의 보도는 분명 조선일보가 무엇을 노리고 사진의 색깔을 바꿨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 김일성 사망 오보를 낸 조선일보. 출처:조선일보

 

조선일보는 김일성 사망 소식을 발표하면서 '조선일보 세계적 특종'이라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도한 기사는 오보였으며, 이는 두고두고 네티즌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국방] - '김정일 사망'을 예언한 미국과 조선일보 오보

이렇게 수차례 오보를 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에도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언론사였습니다.

"본보(本報. 우리 신문)에서 일장기 말소사건을 야기하여 당국이 꺼리는 일을 건드린 것은 실로「너무나 죄송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이제 당국으로부터 발행정지 해제라는 관대한 처분을 받아 이제부터 한층 더 근신하여「다시는 이와 같은 불상사를 야기치 않도록 주의할 것은 물론이거니와」지면을 새롭게 바꾸고「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공정한 사명을 다하여서「조선 통치라는 날갯짓에 도움을 주려 하오니」독자 여러분께서는 (이를) 확실히 아시고 … 애호해 주시기 바란다." (동아일보, 일장기 삭제 사건 후 나온 기사)

[시사] - '조선일보'의 오보로 인한 한국인의 치욕
 

 

▲조선일보가 SBS 오보를 비판한 기사. 출처: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오보는 텍스트 몇 줄로 얼버무리면서 다른 언론의 오보는 하이에나처럼 물고 뜯습니다. 마치 자신들은 아주 완벽하고 올바른 언론이라고 자랑이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언론의 왜곡과 조작,선동질에 관한 자료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에 대해 언론은 물론이고 국민이나 지식인조차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언론을 먼저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울어진 대선 경기장, 언론편'

참여정부시절 '기자실 통폐합'을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했던 언론인들에게 이명박 정권은 어떠하냐고 물어보면 탄압이 아닌 '언론 잔혹사'라고 말을 합니다. 언론을 탄압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예 언론사를 장악해 기자들의 펜대를 쥐고 온 나라의 방송과 신문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다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동아일보 11월28일자 기사.

 

조선일보,동아일보는 안철수, 문재인 후보 간의 틈 벌리기에 늘 힘을 쏟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지지자들을이간질 하면서 자꾸 정치 혐오증을 유발합니다.

그들을 보면, 팩트에 근거한 기사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후보를 위해 어떻게 하면 유리할 수 있는지를 늘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 최악의 대선보도로 선정된 MBC 뉴스데스크 화면

 

MBC는 최악의 대선보도 4관왕에 뽑힐 정도로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안철수,문재인,박근혜 후보가 동시에 대선 공약을 발표했지만, 박근혜 후보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영상을 제대로 편집해서 보여줍니다. 박근혜는 띄워 주고,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깎아내리는 교묘한 대선용 홍보 방송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KBS도 마찬가집니다. 항상 야권단일화의 불협화음을 내보낸 뒤, 박근혜 후보의 비판, 그리고 그녀의 대선공약을 친절하게 보여줍니다.

'꼼수 정치꾼이라고 맹공을’(11.16),
‘또 염치없이 국민을 앞세웠다며’(11.17),
‘혼탁한 정당과 권력 나눠먹기’(11.19),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이전투구만 남았다’(11.21),
‘반칙으로 경쟁자를 짓밟았다’(11.25)

MBC, KBS 방송을 보면 철저히 박근혜는 띄워주고,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축소,왜곡합니다. 교묘한 대선용 홍보 방송을 수신료까지 받아 먹는 공영방송이 하고 있는 꼴입니다.

 

뉴스보도뿐만이 아닙니다. 대선후보가 나오는 각종 토론회에서도 이들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마치 스타를 만들듯이 이들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는 아낌없는 방송기술을 선보이면서도 유독 야권 후보에게는 최소한의 방송 모습을 보여줍니다.

2007년 박근혜 후보는 기자실통폐합에 관해 "그런 식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방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기자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기자실 통폐합'을 반대했던 그녀가 지금 방송사 파업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방송사 노조들이 초청해도 가지 않고, 언론사 파업을 단순히 '안타깝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2007년 기자실 통폐합 반대를 위해 모인 전국신문사,방송,통신사 편집,보도국장 긴급회의 모습.출처:조선일보

 

참여정부 시절 기자실 통폐합을 반대하기 위해 48년 만에 전국 신문사,방송사,통신사의 편집,보도국장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언론탄압'을 멈추기 위해 모였고, '언론자유는 쟁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일선 기자들의 저항과 투쟁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고 말하면서 '기자실 통폐합'을 매우 위중하고 엄중한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KBS,MBC,YTN 등 대부분의 언론사가 파업을 진행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월급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올바른 언론이 되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2007년에 모였던 편집,보도국장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2007년 기자협회에서 기자 2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편집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압력은 편집간부 39%, 광고주 25.6% 순이었습니다. 이것은 왜 지금 언론이 올바른 언론이 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언론사를 장악한 간부들이 누구를 위해 서 있는지를 보면 지금의 언론이 왜 국민에게 외면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주 산골에 있으면서 어떻게 자료를 찾느냐는 말을 합니다. 인터넷으로 자료 대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자들이 쓰는 기사도 대부분 보도자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인터넷으로 정보공개만 잘 활용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들은 사라지고, 보도자료를 베끼고 짜깁기하거나 온라인 댓글이나 SNS를 가지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사를 선정적인 제목으로 보도하는 언론사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언론의 기능과 수준은 나라 미래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언론권력'으로 불리는 그들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한, 공정한 대선도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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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개입' 신영철 대법관, 대선 앞두고 수상하네

'촛불 개입' 신영철 대법관, 대선 앞두고 수상하네

[게릴라칼럼] 서울 교육감 선거 앞두고 대법선고로 교사 6명 해직

12.11.30 19:28l최종 업데이트 12.11.30 19:28l
김행수(hs1578)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29일 2008년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교원들로부터 선거자금을 지원받아 기소된 주경복 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전교조 소속 교사 21명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 재판 결과에 따라 6명의 교사가 교단에서 쫓겨나게 됐다.

국가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 등에 따르면 교사가 일반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퇴직해야 한다.

이로써 MB정부 들어서만 전교조 교사 44명이 해직되어 교단에서 쫓겨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전교조 설립을 이유로 군사독재정권에서 1500명이 해직된 이래 역대 정권 최대다.

MB정권들어 일제고사, 정당후원, 시국선언 사건에 이어 주경복 교육감 선거 사건까지 44명의 교사들이 해고를 당했다. 전교조 설립으로 1500명이 해고된 이래 역대 정권 최대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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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MB정권이 들어선 해부터 일제고사(학업성취도평가) 거부로 인해 13명, 진보정당에 월 5천~1만원 정도의 소액 후원을 이유로 현재 9명, 굴욕적 미국산 소고기 수입협상과 경쟁적 교육정책을 비판한 시국선언을 이유로 16명이 해직과 파면된 데 이어 공정택식 교육을 바꾸어보자며 선거에 뛰어들었던 주경복 교수를 지원한 혐의로 교사 6명이 다시 해직을 당하게 된 것이다.

서울교육감 선거와 대선 앞두고 이루어진 대법 선고

신영철 대법관.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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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선고는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물론 이 사건이 2008년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만 본다면 다급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 힘든 면도 있다. 그러나, 2심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선고를 미뤘던 대법원이 대통령 선거와 서울교육감 선거를 불과 20일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선고일을 잡고 유죄를 확정해 버린 것에 대해서 선거 개입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의 주심판사가 촛불시위로 기소된 국민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 하급심재판에 개입한 의혹으로 퇴진 요구에 직면했던 신영철 대법관이라는 점에서 의심은 더 커지고 있다.

현재 이 사건과 연관된 위헌법률 헌법소원 또는 위헌법률 재청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다. 교원의 정당 가입과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정당법과 국가공무원법, 그리고 교원의 정치자금 후원과 후원회 가입을 금지한 정치자금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대해서는 위헌법률 헌법소원이 청구되어 있으며, 또한 교원노조의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교원노조법에 대해서는 법원이 직접 위헌법률 재청을 헌법재판소에 신청하여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주경복 사건은 위에서 제기된 관련 법률들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도 전에 또 다시 전격적으로 선고를 해버렸다. 이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도 전에 대법원이 먼저 선고를 해버렸다는 점에서 얼마 전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사후매수죄 판결과 비슷하다.

문제가 되는 결정은 또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6월 공포한 '서울특별시 교권보호와 교육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안(교권조례)'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 15일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해당 교권조례는 교원에게 노조·교원단체 활동권과 학생평가권 등을 보장해야 하고 교육감과 학교장은 교권침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권조례에 대해 진보교육단체들은 환영했으나 교과부와 보수 교육단체들은 조례에 반대했고, 교과부는 지난 7월 '교권조례를 만든 것은 부당하다'며 대법원에 무효확인 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법원이 교과부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더욱이 이 결정 역시 신영철 대법관이 주심으로 있는 대법원2부에서 결정됐다.

현재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서울교육청의 교사특별채용 직권 취소, 경기교육청의 교사 징계 직권 취소, 전북교육청의 자체 교원평가시행계획 직권 취소 등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것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어떤 결정도 하지 않은 대법원이 갑자기 이후에 제기된 사건에 대해 먼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전북의 교원평가 시행계획 직권취소는 2011년 6월, 경기도의 교사징계 직권 취소 건은 2011년 7월에 대법원에 소가 제기되었고,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2012년 1월, 교사특별임용 취소 건이 3월이라는 점에서 왜 대법원이 나중 사건에 대해 먼저 선고를 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판결을 미루고 있는 대법원이 왜 갑자기 교권조례 건만 효력정지 결정을 내리고, 주경복 사건만 선고 기일을 잡은 것인지 사법부가 서울교육감 선거와 대선에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대법 한명숙 재판은 미루고·헌재 민감한 사건 뭉개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의 행태는 사법부의 생명과도 같은 정치적 중립에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곽노현 전 교육감 사후매수죄 사건에서 현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해서 선고를 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통령선거와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20일 남겨 둔 시점에서 갑자기 주경복 교육감 선거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해버렸다.

반면에, 하급심에서 두 차례나 무죄 선고를 받은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수수 의혹 사건과 같이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 결정과 같은 변수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1년 가까이 선고를 미루고 있다. 이러고도 대법원이 정치적 중립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교원의 정치활동 관련 위헌 청구 사건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계속 선고를 미루고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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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있는 헌법기관은 또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이다. 헌법재판소는 곽노현 교육감의 사후매수죄에 대한 위헌 신청 사건에 대해서 선고 기한 180일을 훨씬 넘겨서 계속 판결을 미루고 있다. 또한 주경복 사건과 관련된 헌법 소원에 대해서도 기약없이 판결을 미루고 있다.

교사의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과 정당법, 정치자금법에 대한 위헌 소송은 제기된 지 1년 10개월이 지났고, 법원이 제기한 노동조합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 신청도 1년 8개월이 지났다. 선고 기한인 180일을 한참 넘겼다. 2005년 직권상정을 거쳐서 개정되고, 한나라당과 보수사학들의 집단적 반발로 2007년 재개정된 사립학교법에 대한 위헌신청 사건에 대해서는 5년 넘게 선고를 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을까?

정치적인 유불리를 따라 판결하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는 헌법 최고 수호기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을 국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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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관련 논문 쓴 박강성주 박사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이 변했다”
KAL858 관련 논문 쓴 박강성주 박사
 
 
2012년 11월 30일 (금) 16:44:52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 박강성주 박사가 29일 프란치스코작은형제회 성당에서 열린 KAL858기 사건 25주기 추모제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제 논문은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의 관점에서 4가지 방법들, 그러니까 안보, 젠더, 고통, 진실 이 4가지 항목들이 ‘김현희 KAL858기 사건’에서 서로 어떻게 얽혀져 있는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KAL858기 사건을 소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박강성주 박사가 2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성당에서 열린 KAL858기 25주기 추모제에서 자신의 박사논문 『여성주의 국제관계학, 소설쓰기 국제관계학, KAL858; 115번 죽어야할 처녀 테러리스트』의 내용을 요약 발표했다.

10년 전 통일부가 주최한 대학생통일논문 공모전에 응모한 자신의 논문이 우수상에 입선했지만 KAL858기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문제가 돼 수상이 취소되면서 그는 이 사건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돼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을 모두 이 사건을 주제로 썼다.

박강성주 박사는 추모제에서 자신의 박사 논문을 발표한 직후 인근 커피숍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못다한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박강성주 박사의 발표 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가급적 가감없이 전제한다.

 

<박강성주 박사 발표>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으로 본 안보, 젠더, 고통, 진실

   
▲ 박강성주 박사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의 내용을 요약 발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강성주라고 합니다.
(전략) 먼저 짧게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제 논문은 국제관계학,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의 관점에서 KAL858 사건을 소재로 다룬 논문입니다. 좀더 말씀드리면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의 관점에서 4가지 방법들, 그러니까 안보, 젠더, 고통, 진실 이 4가지 항목들이 김현희 KAL858기 사건에서 서로 어떻게 얽혀져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고요.

안보라고 했을 때는 크게 말씀드리면 남북 분단 관계에서 이 사건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 부분이고, 젠더 같은 경우에는 어려운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김현희씨가 여성이라는 것, 그 다음에 여성공작원으로서 미모에 관심을 많이 받았다는 점, 그 부분에 관한 것이고요. 고통이라는 것은 일단 당사자 분들, 그러니까 115분의 실종자분들, 그 다음에 그 실종자분들의 가족분들, 그 다음에 또 저는 김현희씨도 나름의 고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고통의 문제가 있고요. 진실과 관련해서는 저는 이 사건의 이른바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이 기존의 안기부 수사결과대로 북쪽의 테러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남쪽의 흔히 말하는 조작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북쪽의 테러도 아니고 남쪽의 조작도 아니고 다른 제3의 그 무엇이 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논문에서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냐 라고 밝혀냈다라기 보다는 이 사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진실들이 있다. 그래서 논란이 있다. 그런 과정들을 이야기 하고자 했습니다. 진실과 관련해서는.

짧게 말씀드리면 안보, 젠더, 고통, 진실, 이 문제들이 KAL858기 사건에 서로 어떻게 얽혀져 있는가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제 제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제목 안에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번역하면 제목은 ‘여성주의 국제관계학, 소설쓰기 국제관계학, KAL858’ 이것이 주제목이고요, 부제목은 ‘115번 죽어야 할 처녀 테러리스트’입니다.

하나씩 설명을 드리겠는데요, 일단은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은 기본적으로는 김현희씨가 여성이라는 점, 미모로 주목받았다는 점인데요, 여성주의라는 것은 이것뿐만 아니라 더 넓은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몸의 문제, 몸에 새겨져 있는 경험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 건다. 그 부분이 하나 있고요.

또 다른 것은 고통의 문제, 이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서 이야기할 건가. 그러니까 여성주의라는 것은 이 부분들에 대해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그런 관점 중의 하나입니다.

그 다음에 소설쓰기라는 것은 제가 학술회의나 그런데서 논문 쓰는 과정에서 몇 번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이 사건은 미스터리 같다. 소설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부분과 그 다음에 국제관계학에서 더 구체적으로는 국제관계학에서 정보가 부족한 사건 또는 국가 기밀에 해당되는 부분이 많은 그런 사건을 학문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겁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정보가 부족한 이 사건을 상상력을 동원해서 풀어낼 수 있다라는 것이 제가 주장하고자 했던 내용이고요.

좀더 말씀드리면 제가 직접 사건을 소재로 해서 쓴 소설이 박사논문에 포함이 돼 있습니다. 거기서는 실종자 가족분과 김현희씨가 주인공으로 된 소설이고요. 여기에서 제가 실종자 가족분을 모델로 해서 인물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그레이스 한’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레이스는 영어로 그레이는 회색빛을 뜻합니다. 색깔. 그래서 뭔가 확실하지 않은, 흐릿한 부분들이 이 사건과 연결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회색이라는 색깔에서 이름을 하나 가져왔고요, 그리고 한이라는 것은 가족분들 마음 속에 쌓여 있는 그런 응어리들, 한 거기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그레이스 한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은 사실 제가 실종자 가족분의 이야기에서 그렇게 모델을 삼았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오늘 와계시지만 이을화 선생님의 따님, 여성 승무원으로 비행기에 타고 계셨던 그분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는데, 그레이스 한이라는 분은 그 여성 승무원의 쌍둥이 언니입니다. 그냥 언니가 아니라 쌍둥이 언니인데요, 이 부분이 중요한데, 삶과 죽음의 문제, 삶과 실종, 실종자분들과 가족분들을 연결해줄 수 있는 부분, 이것을 상징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해서 그냥 언니가 아니라 쌍둥이 언니라는 인물로서 표현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부분이 소설쓰기 국제관계학에 관한 부분입니다.

KAL 858은 말 그대로 이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부제목인 ‘115번 죽어야할 처녀 테러리스트’입니다. 먼저 처녀 테러리스트라는 것은 1990년에 신상옥 감독이 이 사건을 바탕으로, 더 정확히는 기존에 안기부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마유미’입니다. 그런데 영어의 부제목이 바로 이 ‘처녀 테러리스트’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제 부제목 중의 하나를 가져왔고요.

‘115번 죽어야할’, 이 부분은 논문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분들을 면접했는데 제가 면접했던 가족분 중의 한 분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가족분은 기존 수사결과가 맞다라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김현희씨가 폭파범이라고 믿고 계십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김현희씨가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바로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가족분은 김현희씨를 사형시켜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김현희씨가 일단은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에 김현희씨를 죽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만약에 김현희를 죽어야 한다면 한번이 아니라 115번을 죽여야 한다. 왜냐하면 비행기에 타고 계셨던 분들이 115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김현희씨 본인의 입장에서는 115번 죽어야 한다는 말이 가혹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실종자 가족분들의 마음은 응어리가 쌓여있다, 그런 뜻에서 115번 죽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논문의 그런 핵심내용은 다 말씀 드렸습니다. 조금만 더 말씀드리자면 고통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115분 실종자분들의 고통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심했던 결과가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서 제안했는데요, 한국어로 옮기면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존재’라는 용어입니다. 영어로는 ‘The unliving’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실종이 이 사건과 관련된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시신이 발견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부분들에 문제가 있는데, 시신을 보셨으면 포기를,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실종이기 때문에 다른 사건과는 많이 구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장준하 선생의 경우는 시신이 있었고, 두개골에 확인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종에서 오는 고통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이분들이 가족분들의 꿈에 나타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계속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과 관련해서 ‘살아 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존재’라는 개념으로 논문에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가족분들 면접을 나름대로 했는데요 홧병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 중에 돌아가신 분들도 계셨고요, 그러한 답답한 그런 마음 때문에 종교에 귀의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 다음에 머리가 아주 답답하고 뭔가 꽉 차여 있고, 아프고 그래서 병원에 다니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족분들의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고요.

또 하나는 진실과 관련해서 저는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기존 안기부 수사결과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철저하고 전면적인 필요하지 않느냐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비공개 공문을 살펴보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이 5개국에 정보공개 청구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비밀문서를 나름대로 받아왔는데요, 그 중에 시간이 없어서 딱 한부분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88년 1월 12일자 호주 비밀문서의 내용입니다. 당시 서울에 있던 호주 대사와 한국의 외교부 관리가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관리가 이렇게 말합니다. “김현희씨가 사형을 당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사회에 새롭게 정착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중요한 것은 1988년 1월 12일 이 날짜입니다. 수사결과는 1월 15일에 발표가 됐습니다. 그 다음에 김현희씨 재판은 훨씬 뒤에 진행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이 진행되기도 훨씬 전에, 그 다음에 수사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김현희의 사면 가능성이 이야기되고 있었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는데요. 그러니까 김현희씨에 대한 사면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할 그 시간에 실종자분들, 아니면 실종자 가족분들에 대한 생각을 한번이라도 더 했으면 어땠을까. 나아가서는 87년 12월 2일에 안기부에서 무지개공작이라는 문건을 작성합니다. 이 KAL858기 사건을 당시 대선에 어떻게 유리하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문서입니다. 저는 또 생각이 들었던 게 그 공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예산이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예산의 일부분이라도 수색하는데 좀더 썼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생활이 어려워진 실종자 가족분들을 위해서 그런 예산을 조금이라도 썼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들이 있는 것이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영국에 있다가 스웨덴으로 옮겨가게 됐는데요, 논문 심사를 마치고 영국에 남아 있는 짐을 스웨덴으로 부쳐야했습니다. 그런데 제 책들과 물건들이 도중에 분실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소포가 실종이 됐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소포회사에 많이 연락도 하고 했는데 결국 찾기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최근의 일인데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좀 춥고 으시시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딱 들었던 생각이 ‘어딘가에 있을 내 책들 물건들은 얼마나 춥고 외로울까’라는 생각이 아침에 눈을 뜨는데 들었습니다. 또 들었던 생각이 ‘아, 이게 혹시 실종자 가족분들의 그런 심정이 아닐까. 내 딸들, 내 아들들, 내 남편, 내 가족들은 지금 얼마나 춥고 외로울까 라는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 그날 아침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책들을 잃어버리면서 또 생각하게 된 게, 제가 이 사건으로 박사논문도 썼고 해서 저는 이제 다 끝난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서 잊어버려도 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입장인데, 그렇게 잊지 말라는 뜻에서 제 책들이 도중에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 논문을 통해서 이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이 무엇이다라고 감히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모르기 때문에.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사건이 결국에는 제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논문 면접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 국정원에서 왔느냐, 아니면 북쪽에서 왔느냐, 아니면 KAL858기 실종자 가족이냐, 친척이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학부생일 때 통일부에서 주최했던 통일논문공모전이라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응모를 했는데 운이 좋아서 우수상에 입선이 됐습니다. 그런데 시상식을 며칠 앞두고 전화가 왔는데 “논문 내용 중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으니까 다른 내용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삭제를 해라”.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하니까 그 상이 취소가 됐습니다. 그 문제가 됐던 부분이 바로 이 KAL858기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라고 했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겪으면서 제가 나름대로 신경쇠약 비슷한 증상도 겪고 나름의 어려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10년 전의 일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 신경쇠약을 겪고 그랬던 시간, 제가 마지막으로 논문을 다 쓰고 책들을 잃어버린 그런 사건. 그래서 어떤 면에서 이 KAL858기 사건이 저 자신의 문제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논문은 다 썼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이 사건, KAL85기 사건을 제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고 가겠다라는 말씀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이 변했다

   
▲ 박강성주 박사는 29일 추모제 직후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박사학위를 언제부터 썼고, 왜 외국으로 나가서 박사학위를 했나?

■ 박강성주 박사 : 원래는 이 사건을 소재로 석사 논문을 다 쓰고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었다. 밖에 나가서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제가 석사학위 논문을 썼던 시기가 마침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한 시기였다. 조사관으로 지원을 해보라는 주위분들의 말씀에 고민을 하다가 대여섯 번을 계속 지원했지만 안됐다. 어차피 공부할 계획이었으니까 준비를 해서 2008년 여름부터 올해 여름까지 박사과정 공부하면서 이번 논문을 쓰게 된 거다. 올해 7월에 심사가 있었고, 학위가 나온 건 8월이다. 이번 여름에 학위까지 다 끝난 거다.

□ 어느 대학에, 어떤 인연으로 공부하게 됐나?

■ 영국의 랑카스터 대학 소속이었다. 이유는 딱 한 가지였는데, 제가 같이 공부하고 싶었던 선생이 영국에 계셔서 그 학교에 가게 된 거다. 박사과정을 지원할 때 선생과 미리 이야기한 다음에 했고, 지원도 딱 한 군데 했다. 크리스틴 씰베스터 선생인데, 여성주의 국제관계학 분야에서는 꽤 괜찮은 학자다.

□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국내가 아닌 국외에 머무를 계획이라고 들었다. 이유는?

■ 처음에 영국으로 가기 전부터 밖에서 자리잡을 생각을 하고 간 거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한국에 들어올 계획은 없었던 거다. 어떤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가 사실은 학부생 때 기회가 좋아서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밖에 나가서 경험도 하고 공부도 하고 하다보니까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혹시 밖에 나와서 공부할 기회가 다시 있으면 쭉 바깥에서 생활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약간 공부와 관련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타자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이른바 유럽에서 공부하는 제3세계 국가의 학생이라는 것 때문이다. 이런 타자성이 제가 공부할 수 있는, 이렇게 사유하는 자원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점을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느꼈다. 그래서 이런 타자성을 나한테 부족하고 불리한 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의 공부할 수 있는 자원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자원으로 전환시켜서 하나의 힘으로 이용을 하면 괜찮겠다 는 생각을 했다.

□ 논문 작성과정에서 실종자 가족 등을 면접조사 했는데, 어떻게 진행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소개해달라.

■ 일단은 63명을 면접했고 그 중의 절반 정도가 실종자 가족들이다. 그런데 처음 계획은 실종자 115명의 가족들 전부를 면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상의 제약이나 여러 가지 한계 때문에 일단은 30여명 면접했고, 나머지는 이 사건을 다뤘던 언론인들, 국정원발전위나 진실화해위에서 이 사건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 전직 공무원들, 이 사건을 어떤 형태로든지 짧게나마 다뤘던 역사학자들이 절반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이 사건에 대해서 기존수사 결과를 지지하시는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가족들 중에서도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들의 위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언론인은 언론인의 입장에서, 재조사에 참여했던 이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기존 수사결과를 지지하는 이들은 또 어떤 입장인지, 그에 반해서 의문점을 제기하는 이들은 어떤 입장인지. 다 그들의 위치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랐다. 실종자 가족들 중에서도 문제를 제기한 이들도 있고 기존 수사결과가 맞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제 논문 부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115번 죽어야 한다”고 한 이 가족은 김현희씨가 폭파범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유일한 증인이기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만약에 죽어야 한다면 실종자 가족의 수만큼 115번을 죽어야 한다. 그래서 가족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이렇게 여러 가지 갈래구나. 그런 느낌도 느끼게 됐다.

□ KAL858기 사건과 관련한 정보공개 청구를 꾸준히 해왔는데, 정보공개 청구를 소개해주고 그 내용을 평가해 본다면?

■ 일단은 한국,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5개국에 대해서 정보공개 청구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한국의 경우는 국정원이 거부했고, 미국 CIA(중앙정보국)와 국무부, 영국 외무성, 호주 외무부, 스웨덴 외무부 이런 기관에 대해서 정보공개 청구 작업을 했다.

이미 <통일뉴스>에 모두 기고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일단은 미국 중앙정보국 같은 경우에는 ‘이 사건이 북쪽이 한 것이 맞다라고 했을 때 너무 빨리 일어났다’라든가, 아니면 미국 국무부가 통일원의 남북회담 사무국장과의 대화를 통해서 또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말했던 ‘동기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게 특히 미국 쪽 같은 경우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한국 수사결과를 지지했다는 그런 큰 방향에서 이런 부분들을 부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비밀문서에 그런 부분들이 있다고 해서 바로 이 사건에 어떤 커다란 중대한 조작이 있었다고 바로 연결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이런 비밀문서에 남아있는 그런 기록들은 생각할 지점들이 있다고 보는 거다.

□ 논문이 마무리됐는데, 이후 출판 계획 등이 있는지?

■ 일단은 영국 쪽 출판사에 지금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서 이야기를 진행했었고, 영어권 쪽에 논문을 출판할 계획이다. 그 다음에 한국 쪽도 당연히 출판할 계획으로 있다. 그런데 한국 쪽 같은 경우는 일단 번역하는 문제가 있고 논문 자체가 학술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좀 쉬운 언어로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아무래도 한국어로 나오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 '진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박강성주 박사.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오늘 추모제에서 논문 내용에 대해 축약해 발표했는데, 추가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이 논문을 쓰면서 석사논문 썼을 때랑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2007년에 냈던 책에서의 진실과 관련된 입장이, 생각이 변하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이 뭐냐면 2007년 정도까지는 철저하고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입장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면 분명히 기존 수사에 문제점들이 많기 때문에 철저하고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계속 똑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이 변했다.

그 전에는 일단은 진실이라고 했을 때 ‘이 사건이 북쪽의 테러라는 쪽, 남쪽의 조작이라는 쪽,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3의 실체적 진실이라고 볼 수 있는 그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밝혀내기 위해서 철저하고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논문을 쓰면서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학술적인 용어로 ‘담론의 효과’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다르게 표현하면 진실은 어떤 진술이나 증거에 의해서 밝혀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것들을 둘러싼 여러 가지 말들, 그 다음에 해석들, 그 다음에 이것들을 포함한 정치가 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실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고정돼 있지 않다. 이게 여러 가지 과정이나 해석들, 정치에 의해서 끊임없이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이라는 게 실체로 딱 있어서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이 변했다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가 제 논문의 핵심 내용 중의 하나다.

그런데 또 하나는 위치의 문제라고 할 수가 있는데, 제 논문의 결론 부분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제가 만약 실종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이었다면, 진실이라는 문제가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면, 제가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제가 연구자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연구자의 위치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또 제 진실과 관련해서 논문의 결론 부분에, 전체적으로 논문을 돌아보면서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 언제 출국하고 이후 계획은?

■ 이번에 온 것은 추모제 때문에 잠깐 온 것이고 월요일 아침에 나간다. 언제 한국에 들어올지는 모르겠고, 저는 일단은 밖에서 자리잡을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계속 밖에서 아마 머물 것 같다.

□ 경제적인 문제나 직업문제는?

■ 크리스틴 씰베스터 선생이 초청교수로 가게 된 스웨덴 대학에 객원연구원으로 일단은 있는데, 지금 스웨덴 소재 대학들에 자리를 몇 군데 지원해놓은 상태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추모제 발표에서 고비도 있었다고 얘기했는데, 유학생활이 힘들거나 어렵지 않나?

■ 일단 공부를 제가 원해서 시작한 것이고, 또 제가 원해서 간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아까 말한 고비 그 기간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좋았다. 제가 겪었던 고비, 고통의 문제가 다 연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의 고통, 실종자들의 고통, 아니면 김현희씨도 나름대로 고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통과 제 고통도 다른 차원이지만 서로 공명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여성주의 국제학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소재로 쓴 논문인데, 여성주의는 어떤 몸에 새겨져 있는 경험,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관점 중의 하나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고통이 서로 어떻게 공명하고 있는가, 그런 쪽과도 연결이 돼서 논문에 쭉 제 이야기를 녹여내고자 했던 것 같다.

□ 이름도 박강성주라고 오래전부터 썼던 것으로 안다. 여성주의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나?

■ 계기라기 보다는 여성주의자인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제가 나름대로 책을 읽거나 아니면 여성주의 관련된 기사나 글들을 읽으면서 접하게 된 것이다.

□ 남기고 싶은 말은?

■ 저는 박사논문을 이 사건을 토대로 썼지만 단순히 하나의 특정 사건을 소재로 쓴 논문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2002년 여름 통일논문 사건으로부터 정확히 10년 걸려서 박사논문을 썼다. 저는 이 논문이 하나의 특정한 사건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10년의 삶을 나름대로 아로새긴 그런 작업이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 가장 중요한 청춘의 시기 10년을 KAL858 사건과 함께 한 것 같다. 이후 생각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 사실 KAL858 사건 같은 경우는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이 중요시하는 ‘제 몸에 새겨져 있는 경험’을 논문으로 쓴 것이었는데, 앞으로 연구를 계속해 나갈 텐데 제 몸 바깥에 있는 제가 경험하지 않은 다른 사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그런데서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류 사회과학에서 중요시하는 것이 연구자와 연구대상을 분리시키는, 그러니까 연구자를 객관화된 위치에서 어떤 특정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 주류 사회과학의 접근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박사논문 공부하면서 공부했던 방향은 기존의 연구자와 연구대상이 객관적으로 분리되는 방향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 방향에 맞는 다른 연구소재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름대로 고민도 더 필요할 것 같고, 아무튼 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 계속 한국 현대사와 관계된 주제를 연구할 생각은 없나?

■ 일단은 남북관계, 북남관계에 관련된 사건들에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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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858기사건은 모두가 거짓 !

 

 

 

KAL 858기사건은 모두가 거짓 !
 
가족회 추모사 통해 진실 규명 달성 염원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2/11/30 [00:1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그리운 남편, 딸과 아들,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느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5년째 누가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어디로 데려갔는지 모릅니다. 국가권력은 이들의 아픔을 치유할 대신 진실의 행방을 쫒는 가족들과 양심세력을 협박하고 진실을 감추려 애씁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가족들과 국민들은 알고 싶습니다. 쌓여 가는 국화꽃 송이가 늘어 갈 수록 국민들의 분노도 쌓여가며 역사의 칼은 더욱 날을 세웁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1987년 11월 29일 115명이 한날 한시 같은 장소에서 실종되었다.
바그다드를 출발해 한국을 향하던 대한항공 보잉 858기는 승무원을 포함한 115명의 탑승자가 타고 있었고 미얀마 상공을 지나 던 중 폭파됐다고 정부는 밝혔다.


전두환 정권과 안기부는 당시 이 KAL858기 폭파사건의 배후로 북을 지목했으며, 공작원 김현희(마유미)와 김승일(신이치)을 주범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은 즉각 조선의 소행이 아님을 내외 통신을 통해 밝혔다. 당시 안기부가 김현희의 어릴 때 모습이라고 제시한 사진은 김현희가 아니라 정희선이라며 실제 인물을 등장 시켜 동영상을 통해 확인하기도 했다.


무엇이 진실인가?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아직도 알고 싶어하며 진실을 향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29일 중구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1층 성당에서는 엄숙하고 비장하며, 한이 서릿발 같이 서린 분위기에서 바닷물 보다 시퍼렇게 멍든 가슴들이 모여 KAL858기 실종자 2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 사회를 맡은 (사)안중근평화연구회, 안중근기념사업회 윤원일(경제학 박사 단체 사무총장)은 뜻밖의 사실을 토로했다. “얼마전 북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북 관계자와 우연히 KAL858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저는 북에서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는 증거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북의 관계자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 만해도 우리가 증언하고 밝힌 것만으로도 진실은 밝혀졌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려는 남측 정부와 사건을 진실이라고 믿어 버린 남쪽 사람들은 어떤 진실도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관계자의 말을 듣고 나는 더 할 이야기가 없었다. 이 사건은 김현희의 진술만 있고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며 이 사건이 조작 되었음을 시사했다.


최근 <KAL858 전두환, 김현희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출간한 서성국 신부는 자신이 이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게 된 동기와 우여곡절, 그리고 성과, 미진한 부분들에 대한 진실 소명을 위한 각오를 밝혔다.


▲ 신성국 신부가 원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신 신부의 진실찾기는 그래서 국가권력도, 종교권력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행동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거짓을 진짜라고 우겼던 사람들의 거짓이 드러날 때입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신성국 신부는 2003년 KAL858기 사건을 주재로한 소설 ‘배후’를 읽으면서 진실을 밝혀낼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사건 진실을 결심하고 얼마 안 있어 손님(국정원 요원)이 찾아와 사건 규명에서 손을 땔 것을 강요했지만 거절하자 그들(국정원 요원들)은 주교에게 찾아가 사실을 알리고 신성국 신부가 자제 해 줄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주교의 우파들이 찾아와 “주교님의 명령이니 KAL858기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신성국 신부는 “나는 진실을 규명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으니 주교님의 명령을 거절 한다”며 강단 있는 자세를 보인 것이었는지 미국으로 발령을 받고 꿈에도 없던 미국행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미국에 가서도 사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노력은 계속되었다, 캔사스주에서 워싱톤까지 3박4일을 자동차를 이용해 달려가 CIA 문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얼마나 깊이 숨겨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다시 캐나다로 발령 받은 신 신부는 국내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신부를 찾았지만 선뜻 응해 주는 신부가 없었으나 예수회 소속 김정대 신부가 응해주었다며 이 사건이 국가권력에 의해 은밀히 그리고 철저히 감추어지고 있으며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지를 암시했다.


신 신부는 “안기부(현 국정원)가 내가 KAL858기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했을 때 손을 떼라고 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밝힌 수사기록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반증 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신성국 신부는 KAL858기 사건의 중요성을 몇가지로 요약했다. 이 사건은 남북분단이 가져 온 비극이며, 분단은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 시킨다는 것.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전두환의 삶을 보면 사건의 답이 보인다는 것이다. 또, 유가족들의 땀과 정성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남편과 자녀, 부모대한 간절한 사랑은 반드시 진실을 규명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른 하나는 책을 집필하면서 국정원 수사기록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거짓이 진실의 역사를 이길 수 없다는 것 역시 이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 주리라생각하고 있었다.


김현희는 TV조선에 나와서 대책위 사람들을 종북 좌파로 몰아친다. 나의 아버지는 장교출신으로 박정희 세력이었다. 나같은 사람이 종북이면 박근혜 후보는 종북 수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때론 힘들기도 했고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차옥정 회장을 비롯한 유가족들을 보면서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다.”며 “이제 희망을 갖는 이유는 12월 19일 평화통일을 실현할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하면 KAL858기 사건은 반드시 규명되리라는 것”이라며 정권교체가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 할 것이라는 신념에 넘쳐있었다.


KAL858기 사건을 논문으로 제출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박강성주 박사는 “논문을 쓰는 동안 너무 어렵고 힘들어 자살할 결심까지 했으나 유가족들의 고통을 되 세기며 어려움을 넘겼다”고 고백했다.


▲ 박강성주 박사는 KAL 858기 사건을 논문으로 제출하여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논문은 죽음을 각오한 논문이었고 숨을 끊는 것이 더 수월했을 논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진실을 알리는 사색과 고통을 우리 모두 나누어 짊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유족들은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집니다.’라는 추도사를 통해 “2012년 11월 29일 오늘은 KAL858기 사건 발생 25년이나 된다”고 회상했다.


유가족회는 “우리 가족회는 지난 25년 오직 진상규명 활동에 매진해 오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3가지를 폭로했다.첫째,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안기부 수사 발표는 모두 거짓이었다. 당시 사건 기록과 김현희 진술문을 확인하고 조사한 결과 잔 하나의 진실도 없었다.


둘째, 김현희가 북한 출신이라는 증거는 전무하다. 안기부와 검찰은 김현희가 북 출신이라는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김현희는 자신의 공민증과 노동당증 번호 조차 모르고 있으며 그의 가족 사핳과 북 경력 사항도 모두 허위다.


셋째, 김현희는 지난 11월26일 TV조선에 출현하여 이 사건은 북의 행위가 아님을 고백하고 있다(그러나 이 부분은 다른 언론사 관계자에 의하면 잘못 전해진 것이라함). “훗날 세월이지나면 이 사건은 북이 한 짓이 아님이 밝혀질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다. 우리는 이 발언이 김현희의 양심선언으로 받아들이며 진상규명을 위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요구하는 바라고 주장했다.


▲ 사건 당시 50대였을 유족 이제는 고희가 넘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에 주름살이 깊어 지는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국가는 이제 그들의 깊은 주름살과 상처를 치유해 주어야만 합니다. © 이자주민보 정섭 기자


이들은 “금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KAL858기 사기극을 벌인 전두환 계승세력들이 반드시 패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정치세력이 집권하기를 바라며, 진상규명의 목적이 달성되기를 바란다.”고 염원했다.


당시 광주 시민을 살육하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은 6월 항쟁에 무릎을 꿇고 6.29선언을 통해 직선제를 받아들였지만 도저히 정상적인 직선제 투표를 통해서는 정권 연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유리한 어떤 작품이 필요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작전은 성공했고 그들의 명맥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소리 없이 흐르는 역사의 진리를 그들은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역사가 백일하에 죄과를 들어내기 전에 죄 지은 자들은 죄 없이 사라진 실종자들과 그 가족 앞에 민족과 양심 앞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다.


그날이 참된 용서의 날이 될 것이며 역사에 죄를 씻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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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재단 이사장- 5선 의원 출신이 ‘서민’이라니…

 

그런 ‘서민’, 나도 한번 해보고 싶소!
 
[기고] 퍼스트 레이디-재단 이사장- 5선 의원 출신이 ‘서민’이라니…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30 03:25:52 | 최종:2012-11-30 04:19: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의 강기석 언론특보단장(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박근혜 후보의 ‘서민대통령론’을 비판하는 글을 보내와 소개합니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이 글에 대한 ‘반론’, 혹은 이와 유사한 내용(주제, 분량 등)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해 비판글을 보내올 경우 게재할 용의가 있음을 밝혀둡니다...편집자)

 

오렌지공(公) 윌리엄3세
네덜란드의 총독 오렌지공(公) 윌리엄3세가 1688년 명예혁명을 성공시켜 영국에 입헌군주제를 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왕위계승 서열 1순위였던 메리의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틀림없는 스튜어트 왕가의 일원이었기에 역설적으로 스튜어트 왕가의 전제정치와 타락상을 뒤집어엎으려는 혁명의 수장 자리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왕조국가에서는 이처럼 혁명의 ‘수괴’마저도 왕족의 핏줄을 필요로 했다.

 

조선시대 중종이나 인조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성공한 반란군의 수괴였기 때문이며, 그들이 반란군 수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또 ‘강화도령’ 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도 그가 그때 살아 남아있던 거의 유일한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운이 좋았다. 다른 수많은 이씨 성을 가진 왕족들은 정변이 실패하거나 정변이 일어날 조짐이 있을 때마다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왕조국가 시대의 풍경이다. 그리고 그 때 정치는 사대부, 즉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귀족만이 정치를 할 수 있었던 왕조시대

그러나 민주국가에서는 다르다. 왕족만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귀족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 왕조국가 시대에는 정치를 하는 데 핏줄이라는 ‘선천적 자격’이 절대적이었지만 민주주의 시대에는 더 많은 유권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리더로써의 ‘후천적 품성과 자질’이 필요할 뿐이다.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품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평생 서민의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발끈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에는 서민 출신만이 정치를 할 수 있고, 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로 오해한데서 비롯된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쓸모없는) 전깃불이 들어와 있으면 불을 끄고, 물이 줄줄 새고 있으면 수도꼭지를 잠글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에 투철하기 때문에 서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강변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장에서 한 말이다.

가급적 형광등 하나 덜 켜고 수도꼭지를 꽉꽉 잠그고 사는 것이 서민생활이라는 건 맞다. 그렇다고 돈 많은 재벌이라고 밤새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수도꼭지를 활짝 열어 놓고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쓸모없는 불이 들어와 있으면 끄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줄줄 새면 잠그는 것은 누구나 하는 보편적 행동이다. 낭비하지 않고 근검절약하는 것은 오히려 귀족들,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대표적 덕목일 수도 있다. 서민들만의 특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1960년대 후반, 청와대 시절 박정희 대통령 일가족.오른쪽 두번째가 박근혜

 

박 후보는 또 자신이 “청와대에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그렇게(자신을 서민의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청와대에 살면서도 굉장히 철저한 어머니의 교육철학 덕분에 입는 옷이나 먹는 것, 모든 것에 대해 ‘중류’처럼 살려고 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또 “스스로 저소득층, 사회약자 등 어려운 분들을 항상 많이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사실들을) 저에게, 우리들에게 들려줬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의 가정교육을 받아 고달픈 서민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그가 ‘서민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서민’임을 가장하고 싶은 강박증

그가 청와대에서 살던 당시 그의 가족들은 칭호부터 달랐다. 부친 박정희 대통령은 각하, 모친 육영수 여사는 영부인님, 그와 여동생(근영)은 영애님, 남동생(지만)은 영식님으로 불렸다. 이들에겐 전속 비서가 딸려 있었고 경호원이 늘 따라 붙었다. 청와대에서 사는 게 답답했다는 점에서 서민과 같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 이유는 분명 다르다. 비서와 경호원이 따라 붙는 삶이 서민의 삶일 수는 없다. (사족으로, 그 때 ‘박근혜 영애님’을 충심으로 보좌했던 비서가 지금 정수장학재단 최필립 이사장이다)

한 재벌이 자신의 호화로운 사생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며 투덜거렸다고 한다. “내가 금쌀로 밥을 지어 먹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래?” 맞다. 하지만 그는 서민과 똑같은 수준에서 살기 위해 금쌀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그냥 밥을 먹을 뿐이다. 그 재벌이 외국에서 임원회의를 할 때는 풍광 좋은 곳에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린다고 한다.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골프장에서 아침마다 승마를 즐기고 수백 대의 외제차를 개인컬렉션으로 소장하고 있다고도 한다. 비록 서민과 똑같은 쌀밥을 먹긴 하지만 그는 역시 재벌인 것이다.

박 후보는 어머니의 훌륭한 가정교육마저도 74년 어머니가 괴한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끝났다. 그의 나이 23세 때였다. 아버지가 새장가를 들지 않고 대신 ‘궁정동 안가’ 출입을 선호한 탓에 그는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게 됐다. ‘인혁당사건’을 조작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할 때도 그는 퍼스트 레이디였으며, 유신 시절 내내 그는 퍼스트 레이디였다. 게다가 정체가 모호한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여성봉사단’ 같은 전국 규모의 조직을 만들어 ‘국민정신개조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사리판단 능력이 분명한 20대 때 이미 유신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퍼스트 레이디 시절 청와대를 방문한 낙도 노인들을 만나고 있다.

20대 중반부터 유신정권의 핵심역할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가 부하의 손에 암살당하고 그가 청와대에서 나온 이후의 생활을 또 어떠했는가. 전두환을 수괴로 한 신군부는 그에게 저택을 마련해 주었다. 전두환은 청와대 금고를 털어 나온 박정희의 비자금 중 당시 돈 6억원을 그에게 주었다는 말도 있다. 그 이래 그는 아버지가 권력의 힘으로 강탈한 장물로 만든, 수 조원에 이르는 4대 재단(육영재단, 정수장학재단, 영남대재단, 한국문화재단)의 이사장직을 번갈아, 때로는 동시에 맡으면서 수억 원의 연봉을 받아 챙겼다. 서민의 벌이로는 너무 많다.

박 후보는 정계에 투신한 이래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지역에 가서 모든 분들 다 만나고 그 분들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다 같이 호흡하면서,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서민의 삶’을 살았노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당선만 되면 유권자들은 싹 잊어버리고 거들먹거리기 바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그가 그토록 유권자들과 같이 호흡하며 애로사항을 해결하려고 애썼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국회의원의 삶이지 ‘서민의 삶’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분은 ‘서민’이 되고 싶어 안달인 듯싶다. 그런데 현재의 재산과 직위를 다 버리고 ‘진짜 서민’이 되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 서민을 가장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생각을 잘못 한 것이다. 민주국가라고 해서 꼭 서민이어야 정치인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데 더 유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민주주의로 시작한 미국에서도 1789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1828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까지 40년 동안은 오직 동부 귀족가문 출신들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20세기 들어서도 루스벨트 가문, 케네디 가문, 부시 가문 등 소위 미국의 명문가문이 미국 정계에서 일정한 프리미엄을 갖는다.

미국 뿐 아니라 영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정치의 가문세습이 아주 흔한 일이 됐다. 뭔가 교양이 더 있고, 배운 것도 많은 것 같고, 능력도 있을 것 같은 귀족 혹은 부자의 이미지는 정치를 하는 데 도움이 되면 됐지 결코 단점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민주국가에서 귀족은 정치를 못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말춤’

그러므로 박 후보가 서민의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하는 지적은 대통령 될 자격에 대해 의심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될 경우, 서민이 대부분인 국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서민들을 위해 정책을 세울 품성과 자질이 있는가를 따져 보자는 것일 뿐이다. 그런 의도에 대해 독재 권력자의 딸-퍼스트 레이디-4대 재단 이사장-5선 국회의원-여당 대표를 지낸 인물이 “나도 서민이다”라고 반발하는 모습은 왠지 생뚱맞다는 생각이다.

 

필자 강기석 단장
정치귀족가문 출신임을 장점으로 내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정작 가장 서민적인 정책을 폈다. 박 후보의 경우는 14년간 국회의원을 하면서 대표발의한 법안 15개 중 서민에 관한 법률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단 한 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할 때 여성 직원이 결혼하면 퇴직시켰다는 주장이 나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런 비교에 대한 답변만으로 족하다. 그럼에도 사사건건 시치미 딱 떼고 사실과 다른 억지주장을 펴니 그의 화법이 유체이탈화법 혹은 동문서답화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박 후보는 젊은이들과 싸이의 ‘말춤’을 출 뿐 아니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자체가 ‘춤’을 추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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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근령·지만, 그들만의 '흑역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11/30 07:30
  • 수정일
    2012/11/30 07: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근혜·근령·지만, 그들만의 '흑역사'

[추적] 근령 씨 남편 신동욱, 박근혜 비방해 징역형…왜?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1-30 오전 7:57:23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비방한 제부 신동욱 씨가 결국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살인 교사 의혹'까지 등장한 박 후보 주변 친인척들의 행태가 결국 박 후보 동생 남편의 실형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29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신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신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 근령 씨의 남편이자 박 후보의 제부다.

신 씨의 '전력'은 화려하다. 자신의 처남인 박지만 씨, 박 씨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정용희 씨, 그리고 박근혜 후보의 5촌 조카 박용철 씨 등이 자신을 중국으로 유인해 살해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무고혐의로 기소를 당했다. 또 박 후보의 미니홈피 등에 박 후보 비방글을 40여 차례 올려 역시 재판에 넘겨졌고,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에 박 후보가 개입됐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언론사에 보낸 혐의로 추가 기소를 당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납치 살해 청부 의혹 등이 박 후보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허위로 판단했다. 다만 지만 씨가 연루된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과 관련해 재판부는 "신 씨의 처남인 '박지만 씨가 육영재단 폭력강탈 사건을 사주하고 자금을 지원했다'는 내용은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박지만 씨와 박근혜 후보 ⓒ뉴시스

자신의 남동생을 폭력 배후로 지목 했던 근령 씨

육영재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과 관련해 지난 2007년 11월 박근령 씨는 입장문을 발표한다.

근령 씨는 이를 통해 "2007년 11월25일 오후 6시경 박지만의 지시에 의해 청담동 커피숍에서 EG 정용희 실장의 주도로 오우제, 박상목, 조락기, 박용규, 박용철(5인은 현재 출입정지가처분 받음), 정용희, 이기삼(임시이사를 위해 2월달에 경찰청 협조) 등 11인 등이 육영재단을 폭력강탈하기 위해 거사비로 1인당 500만 원씩을 모금하자고 결의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당시 정용희 실장 왈 '거사비를 박지만 회장님이 주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으니 사건 후 지불할 것을 약속'하며 모금을 주도하였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근령 씨는 "2007년 11월 28일 오후 1시 한센인복지협 임두성 회장(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지휘로 한센인과 조직폭력배 100여명을 동원해 1시간 만에 집무중이던 박근령 이사장을 강제로 끌어내고, 근무 중이던 간부 25여명을 폭력으로 쫒아낸 사실이 있습니다"라고도 주장했다.

임두성 회장은 후에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친박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가, 과거 폭력 전과를 신고 누락한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고, 건설업체로부터 수십억 원을 받은 혐의로 체포 구속됐다.

최태민, 육영재단 간여로 '첫 분쟁' 일어나

육영재단 사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박근혜, 근령, 지만 씨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세 자녀간 복잡한 반목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육영재단은 육영수 여사가 69년 4월 14일 설립했다. 당시 설립에 참여한 인사 명단에는 정주영 전 현대 회장,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이름도 보인다.

당시 육영재단 설립 목적은 "청소년에 대한 반공 정신의 앙양, 과학지식의 보급, 문화 예술과 체위 향상 등에 필요한 제반 시설을 제공하여 건전한 민족 사상을 함양 고취하고 체력의 보양과 정서의 순화를 통한 청소년의 복지 증진에 이바지한다"였다. 육영재단의 상징과도 같은 어린이회관 개관식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참석해 서울 시내 당시 국민학교 어린이 대표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육영재단 이사장 직은 박근혜 후보가 맡게 된다. 박 후보는 83년 1월 제 3대 이사장으로 정식 취임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여러 잡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박 후보가 이사장을 맡은지 4년 후인 87년 9월 3일자 신문들은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직원 150여 명이 2일 저녁 6시 30분 부터 회관 앞마당에서 '어용간부 퇴진', '족벌 인사 체제 종식'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박 후보의 측근인 최태민 목사였다.

<여성중앙> 87년 10월호는 당시 육영재단 분쟁을 상세히 전한다. 박근혜 후보는 취임 후 1년에 한 두번 어린이회관 방문을 하다 84년쯤부터 회관 일에 적극 관여했다고 한다. <여성중앙>은 "한 가지 이상한 것은 회관의 모든 일을 박 이사장이 결재를 했다는 것이다. 어린이회관의 운영결재권은 상임이사인 관장의 고유권한"이라며 "문제는 이사장 결재에 잎서 최태민 씨가 먼저 결재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최 회장'으로 불리던 최태민 씨가 어린이회관 문제에 간섭하고, 최 회장의 다섯 째 부인의 6녀이면서 당시 '한국아동교육문제연구소'와 C종합학원, C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던 최순실 씨가 어린이회관이 펴내는 잡지 <어깨동무> 등에 간여하고 있고, 이들이 손을 떼야 한다는 게 회관 직원들이 농성장에서 내 놓은 주장이었다. 최순실 씨의 남편이 박 후보의 '입법보좌관'을 지냈고, 2007년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 측으로부터 "비선 실세"로 지목됐던 정윤회 씨다.

"이들이 농성에 즈음해 내건 이슈는 지나친 인사 이동에 따른 부당해고와 회관신규건설사업의 지나친 상업성 추구, 새로운 예절교육을 위해 지은 근화원 건설에 따른 잡음, 직제 개편과 신규 채용의 비리 등이다. 이들 내용들이 모두 최 회장이 관련됐다는 것이 농성의 핵심"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당시 최순실 씨는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씨가 자문 요청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

▲ 박근혜, 근령, 지만 씨의 어릴 적 사진 ⓒ연합뉴스

"박근혜를 최태민으로부터 구출해주세요" 탄원서 보낸 두 동생

불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근령 씨와 지만 씨가 직접 나섰다. 근령 씨와 지만 씨는 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사기꾼에게 포위당해 있는 박근혜를 전 국가 원수 가족 보호 차원 아래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탄원서를 올렸다. 최태민 씨가 박 후보 주변에 맴돌며 육영재단을 주무르는 등 전횡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육영재단 사태가 3년만에 전면 부상한 계기가 된 일이었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인사이더월드>라는 제호의 월간지는 "최태민과 박근혜의 이상스러운 관계를 조사해 온 수사관의 증언에 따르면 박근영(박근령)과 박지만은 증언을 통해 '우리 형제들도 언니나 누나를 마음대로 만날 수 없다. 근혜 언니가 살고 있는 집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으며 우리들이 만나려고 하면 며칠씩 미리 연락을 해야 하며 전화통화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무렵 근령, 지만 씨는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을 육영수 기념 사업회 주최로 하려던 데 대해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결국 박근혜 후보는 90년 11월 3일 육영재단 이사장직과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회장직을 사퇴하고, 근령 씨를 후임으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먼센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근령 씨는 이사장 취임식 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태민 씨의 혐의 사실을 믿으며, 언니는 속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을 했다.

당시 박지만 씨도 인터뷰를 통해 "원래는 최태민 씨와 큰 누나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시작한 것"이라고 '탄원서'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최태민 씨는 당시 <우먼센스>와 처음으로 인터뷰를 한다. 최 씨는 "여러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은데 원래 내게는 개인 사무실도 없었고 (박정희 육영수 기념사업회, 육영재단 등과 관련해) 아무런 결재 권한도 없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에 몸 담고 있었다. 기념사업회 조직이 새마음봉사단의 조직을 복원시킨 것이어서 최 회장이 고문을 맡았다는 것이다. 최 씨는 이 인터뷰를 통해 "최면술은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등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당시 이 매체는 박근혜 후보 인터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최(태민) 고문은 이미 몇 개월 전에 완전히 손을 뗀 분입니다. 이미 물러나 있던 분에게 나가라고 하는 얘기는 무슨 의미죠? 이게 뭡니까?(이 대목에서 근혜 씨의 목소리는 약간 높아졌다. 또 몸이 불편한 듯 몸을 자주 뒤로 젖히며 오른 손으로 왼쪽 옆구리를 만졌다) 최 고문이 기념사업회와 육영재단을 좌지우지한다고 주장한다는데 제가 나이가 몇입니까?"
▲ 19일 경북 영주시 희수사추모관법당에서 거행된 故 육영수 영부인 85주기 탄신제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남편인 신동욱 박사가 합장하고 있다.ⓒ뉴시스

박지만, 근령 씨 버리고 박근혜 후보 측에 서다

이 때만 해도 근령 씨와 지만 씨는 같은 편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역전된다. 2001년 서울 성동교육청은 육영재단 감사를 통해 당시 부실 운영 등을 문제삼고 박근령 이사장 승인 취소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박 씨는 육영재단 운영에 계속 간여해 왔다. 근령 씨가 백석대 교수를 지내고 있던 14살 연하의 신동욱 씨와 지난 2007년 2월 약혼을 하면서 박지만 씨는 근령 씨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육영재단 분쟁과 관련해 박지만 씨 주변 인물들이 적극 개입하기 시작한 것 역시 이 무렵이다.

2007년 약혼 이후 7월 지만 씨의 '그림자'로 불리기도 하는 정용희 씨와 박근혜 후보의 5촌 조카 박용철 씨는 중국 칭따오에 간다. 신 씨는 당시 "지만 씨의 비서실장 정용희 씨가 박용철 씨에게 나를 중국에서 죽이라고 지시했다"는 폭로를 한다. 근령 씨와 자신의 결혼을 막으려고 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주 칭따오 한국 영사관은 "신동욱이 단란주점과 호텔에서 환각제를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공안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외교통상부에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신 씨 일행은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신 후 성매매를 하려다가 공안의 조사를 받았다. 석방된 신 씨는 그날 밤 호텔밤에서 속옷만 입은 채 창문에서 뛰어내려 허벅지 골절상을 입었다.

이후 이 사건은 재판에 넘겨졌고, 재판부는 신 씨가 주장한 '살인 교사'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신동욱 씨는 육영재단 경영에 간섭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사장에서 물러난 근령 씨가 육영재단 사무처장을 자임하며 '출근 투쟁'을 시작하자 박지만 씨 주변 인물들이 강제로 근령씨를 끌어내는 '육영재단 폭력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후 박 후보와 지만 씨의 관계는 돈독해졌지만, 근령 씨와 관계는 멀어졌다. 어제의 적과 동지가 서로 바뀐 것이다.

이후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지난해 9월에는 박용철 씨가 사촌에 의해 피살되는 충격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박 씨를 살해한 사촌은 이후 나무에 목을 매 숨졌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박무희 씨의 손자들이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세 남매의 역사는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점철돼 있다.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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