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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친환경으로 둔갑한 위험한 에너지

[글로벌 기획 -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 환경문제에 대한 집단적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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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무원 살해사건, 왜 막을 수 없었나

  • 기자명 노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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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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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중앙, ‘노란봉투법’을 거대야당 폭주로
윤석열 대통령의 태양광 이권 카르텔 발언, 사정정국 신호탄 우려
서울 신당역에서의 동료 역무원 살해, 스토킹처벌법 한계 드러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국회의원 56명이 15일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핵심 입법과제로 선정하고 정의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이 법안이 이번 국회에서의 첫 번째 야권연대 법안으로 처리될지 관심이다. 여러 신문이 관련 법안의 내용과 의미를 다룬 가운데 조선·중앙일보 등은 이를 ‘거대야당’의 독주 내지 폭주라 칭하며 비판했다.

‘노란봉투법’은 2013년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이 사측에 47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시민들이 봉투에 성금을 모아 전한 데서 유래됐다. 2015년 이후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파업 이후 47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내몰린 일이 다시금 ‘노란봉투법’ 발의를 불렀다. 7건의 관련 개정안 주요 내용은 노조의 단체교섭·쟁의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를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적인 손해’로 제한하는 것이다. 국민일보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노동계를 중심으로 노란봉투법 개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었고, 쌍용자동차 파업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재조명됐다”고 이번 법안 발의에 대한 맥락을 설명했다.

▲9월16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9월16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일부 신문은 이번 법안을 거대야당의 독주, 폭주라 규정하면서 비판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노란봉투법·감사완박법·시행령통제법…169석 거야 독주’라는 제목을 썼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에 ‘불법파업 부추기는 巨野의 폭주’ 제목의 기사를 배치한 가운데, ‘노란봉투법 통과땐, 노조가 공장 점거해도 책임 못물어’라는 제목으로 재계 입장을 다뤘다. 해당 기사는 “기업의 손배소 청구는 정부가 노조의 불법 사업장 점거나 조업 방해 행위에 대해 공권력 투입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유일한 대항 수단”이라며 “전문가들도 기업의 손배소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해외 투자 유치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폭주하는 노조에 날개” “노조의 협박, 파괴, 상해행위가 만연” “무법천지법” 등의 격한 표현도 나왔다.

반면 한겨레(합법파업 범위 넓히는 게 핵심인데…재계 ‘손배 금지법’ 호도)는 재계의 비판을 두고 “현행법 틀 안에서 쟁의권을 폭넓게 보장하자는 취지로 제안한 것을 ‘재산권 침해’라는 프레임으로 몰고간 것”이라 지적했다. 이 기사는 “노란봉투법은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합법적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 범위를 현행보다 넓히자는 요구가 뼈대”라며 “합법 파업의 범위도 현재 법원이 절차·수단·방법·내용 면에서 세세하게 규제하던 것을 쟁의행위 전반으로 넓히자고 요구한다. 경총이 말하는 ‘불법 쟁의행위까지 모조리 면책하자’는 요구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간 기업들이 ‘재산권 보호’보다 노조에 대한 해산·압박 의도로 손배소를 활용한 전례도 전했다.

수년간 스토킹 호소한 피해자 사망, 참사의 책임은

지하철 역무원이 수년간 스토킹해온 여성 동료를 살해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스토킹 피해자의 희생을 막지 못한 수사·사법기관의 안일한 대응이 지적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직장인 서울교통공사 측의 대응과 직원에 대한 안전관리가 부실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범죄는 살해로 이어지는 스토킹 범죄의 전형적 행태를 보였다. 가해자 전아무개씨는 2019년부터 피해자 상대로 수백차례 전화·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한겨레(3년간 집요한 스토킹…불법촬영·협박에도 구속은 없었다)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스토킹 범죄를 여전히 일반 범죄처럼 다루는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는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고, 형사소송법상 보복범죄 우려를 구속사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됐음에도 개선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9월16일자 한겨레 사진기사
▲9월16일자 한겨레 사진기사

스토킹처벌법이 가해자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피해자 보호가 미흡한 점도 지적된다. 한국일보(두 차례 고소에도 불구속 수사…피해자 사망 못 막은 스토킹법)는 “(가해자가) 분명한 성범죄 피의자였으나, 경찰은 추가 보호조치는커녕 영장조차 신청하지 않았다”며 “피의자가 자유로우면 재판까지 가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피해자가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를 짚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꿰뚫고 있는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한 보호조치도 시급하다. 이번 사건이 2016년 ‘강남역 사건’처럼 비화할 조짐도 감지된다고 내다봤다.

서울교통공사 대응이 피해자를 취약한 상황에 내몰았다는 비판도 있다. 피해자는 보호 장비 없이 여자 화장실에 혼자 순찰을 위해 들어갔다 살해됐고, 서울시하철 보안관은 돌발 상황 시 긴급 출동하지만 상주 인원이 아니다. 국민일보(나홀로 야간 순찰…무방비 피습 지하철 역무원 보호대책이 없다)는 “최근 2년간(2020년∼2021년) 연평균 210명의 역무원 등 공사 직원이 168건의 폭행·폭언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공사와 서울시는 지하철 역무원과 보안관에게 사법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10년째 답보 상태”라 전했다.

공사 안에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분위기 탓에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환경도 지적됐다. 경향신문(직원들, 가해자를 “착한 사람” 두둔…피해자 언니에겐 말할 곳도 없었다)은 유족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분위기를 전한 뒤, 공사가 경찰이 수사 개시를 통보하자 가해자를 직위해제했지만 가해자·피해자 분리 조치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 ‘태양광 카르텔’ 발언, 사정정국 신호탄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된 ‘태양광 사업’ 관련 비리를 “이권 카르텔 비리”로 규정했다. 대통령이 직접 사정정국을 본격화하기 위한 신호를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경향신문(‘사법처리’ 직접 언급한 윤 대통령, 사정정국 전면에)은 “윤 대통령이 엄단 의지를 밝히면서 정부의 후속 조사 범위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합동부패예방추진단은 각 부처에서 인력을 파견받거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조사 대상을 확대하기로 방향을 잡고 조사 범위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한겨레의 경우 사설(윤 대통령의 부적절한 ‘태양광 이권 카르텔’ 발언)에서 “대통령이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별 근거도 없이 ‘카르텔 비리’라고 단정한 것은 성급하고 지나친 비약”이라며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검경에 수사를 지시하는 듯한 태도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일을 기화로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폐기를 본격 추진할 가능성”이라면서 “일부의 비리를 빌미 삼아 국가의 미래가 걸린 에너지 정책 자체를 과거로 돌리는 역주행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월16일자 한겨레 사설
▲9월16일자 한겨레 사설

동아일보(尹 “태양광 이권 카르텔”…文정부 에너지사업 의혹 규명 나설 듯)는 “태양광 비리 의혹에 대한 전면 규명은 전(前) 정부를 겨냥한 수사로 확대될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운동권 이권 카르텔’ 연루 첩보는 이미 검경에 입수된 만큼 수사 확대는 예정된 수순으로 보인다”며 “감사원도 하반기 감사 대상인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를 점검하며 태양광 사업 비리 관련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이날 ‘태양광 한다고 잘려나간 나무, 문 정부 때만 265만 그루’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 동안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면서 26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잘려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 탄소 중립 정책을 추진하면서 태양광 발전 비중을 늘린 건데, 되레 대표적인 탄소 흡수원인 산림을 훼손한 셈”이라고 보도했다.

민주당 감사원법 개정안에 ‘통제법안’ 우려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 감사가 정치 보복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특별 감찰 시 국회 승인을 받고,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하면 처벌하는 내용의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두고 감사원 운용 문제의 책임이 있는 정치권이 되레 감사원에 대한 통제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 신문을 통해 제기됐다.

한국일보 사설(‘정치 감사’ 막겠다고 사전에 국회 승인받으라니)은 “여야가 바뀐 상황이라면 민주당 역시 이 법안을 비판할 것”이라며 “누구나 알고 있듯이 문제는 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지금도 감사원은 형식상 대통령 소속기관일 뿐 직무상 독립을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정권을 잡으면 전 정부의 정책을 흠집 내거나 인물을 내치기 위한 수단으로 감사를 이용해 왔다”는 것이다.

국민일보(상식 벗어난 민주당의 감사원 통제법안), 서울신문(국회가 감사원 통제하겠다는 야당의 위헌적 발상), 세계일보(특별감사 전에 국회 승인 받으라는 민주당의 입법 횡포), 조선일보(이번엔 감사원 무력화, 민주당은 민주당 위해 법을 만든다) 등도 사설을 통해 해당 법안을 비판했다.

 노지민 기자 jmno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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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 결전의 날”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2/09/1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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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은 15일 오후 1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에 국가보안법 2조, 7조 위헌 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김영란 기자

 
“이번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은 한국 사회가 과연 민주, 인권 국가로 갈 수 있는 것인지,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다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으로 돼서 양두구육의 사회로 갈 것인지 중요한 심판이라 할 것이다. (중략) 오늘은 그 결전의 날이다.”

 

조영선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은 15일 오후 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처럼 강조했다. 민변은 조 회장을 비롯해 심재환, 이정희, 이주희, 하주희 등의 변호사로 변호인단을 꾸려 국가보안법 위헌성을 강조하는 변론을 준비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후 2시부터 국가보안법 2조 1항, 7조 1·3·5항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개 변론을 개최한다. 공개 변론은 처음이다.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7차례에 걸쳐 국가보안법 위헌 여부를 다뤘으나 공개 변론을 연 적은 없었다. 사상 첫 공개 변론이라 많은 이들의 눈은 헌법재판소로 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아래 국민행동)은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을 앞두고 국가보안법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김영란 기자

 

김재하 국민행동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수원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위헌을 판정해 달라는 요구가 있은 지 5년 만에 열리는 공개 변론이다. 헌법재판소는 공개 변론을 더 빨리 열어서 국가보안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어야 한다”라면서 “헌법재판소는 공개 변론에 이어 머지않아 국가보안법 2조, 7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기대를 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소장인 황인근 목사는 “성숙한 대한민국 사회와 국민을 믿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라면서 “헌법재판소는 올바른 판단을 해서 한국 사회가 더 잘 발전할 수 있도록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란 기자

  

그림 「모내기」가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는 혐의로 국가보안법 유죄판결을 받았던 신학철 화가는 “국가보안법은 예술가의 느낌도 표현을 못 하게 한다. 국가보안법은 예술가의 입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건전한 사회로 가려면은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국제앰네스티는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하거나 완전히 폐지할 것,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정치사범을 조건 없이 즉각 석방할 것,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를 비롯한 유엔 기구들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내린 권고를 충실히 이행할 것 등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유엔인권이사회,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앰네스티 등은 여러 차례 국가보안법 폐지를 한국 정부에 요구해왔다.  

 

▲ 조영선 민변 회장(왼쪽), 신학철 화가(오른쪽). © 김영란 기자

 

국민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사상과 양심, 학문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사라졌다”라면서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우리 한국 사회가 혐오 배제와 차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민주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평화 통일로 성큼 다가설 수 있도록, 새 길을 열어” 줄 것을 촉구했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을 앞두고 각계는 국가보안법 위헌 결정을 호소하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지난 7일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 등 7대 종단 대표들이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공동회장 이름으로 작성한 의견서가, 8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의견서가 헌법재판소에 제출됐다.

 

그리고 인권운동 연대 단체인 ‘인권운동더하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천주교인권위원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의 단체들과 해외동포 단체들도 의견서를 제출했다. 또한 국제인권 단체들도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예정이다. 

 

▲ 민변 변호인단. © 김영란 기자

 

▲ 변호인단에게 박수를 보내는 참가자들.  © 김영란 기자


아래는 국민행동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헌법재판소 국가보안법 (2조, 7조) 위헌 결정 촉구 각계 기자회견문

-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에 앞서 -

 

오늘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2조와 제7조 제1항·제3항·제5항에 대한 위헌 심판사건의 공개 변론을 진행합니다. 오늘 공개 변론에서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을 폭넓게 논의하고, 이번에야말로 대표 독소조항인 7조, 2조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려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어떤 법입니까?

 

국가보안법의 뿌리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치안유지법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법은 적절치 못합니다.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은 독재에 항거하며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요구하는 이들의 활동을 탄압하고 독재 정권의 연장과 유지를 위해 위헌적으로 활용되어왔습니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 76년의 역사는 우리 사회에서 혐오와 배제의 ‘가지’였고, 차별의 ‘줄기’였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로막은 ‘뿌리’이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성장이 불가능한 ‘나무’입니다. 더 이상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악법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멈춰야 합니다.

 

특히 국가보안법 제7조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직접적인 표현 행위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으로 나아가기 전에 읽고 쓰고 생각한 내용조차 처벌하여 헌법상 인간 존엄,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을 근본에서부터 침해합니다. 명백‧현존 위험에 이르지 않는 표현과 결사도 금지하여 학문과 예술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표현물을 외부에 전파하기 이전단계인 ‘제작‧소지‧취득’마저 처벌함으로써 내심의 자유의 절대적 보장원칙에도 반하고, ‘찬양‧고무‧동조’ 등 개념이 모호하여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명확성 원칙에도 반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유엔인권이사회,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앰네스티 등 국내외 인권단체들도 여러 차례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표명해 왔습니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한국 정부에 모호한 법조항, 특히 제7조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국가보안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하거나 혹은 폐지하도록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들 기구는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유엔 자유권 규약 제19조 제3항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재차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벌써 다섯 차례나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 되었고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와 사회권위원회 위원도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유엔의 주축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위상을 가진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유엔인권이사회를 비롯한 각 위원회와 기구들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그 수준에 걸맞게 법률과 제도를 갖추어야 하는 막중한 의무와 책임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한 데 이어, 전원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에 공식 의견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지난 6월 방한했던 유엔진실정의특별보고관은 국가보안법 제7조의 폐지를 다시 한번 권고하였습니다.

 

사상과 양심, 학문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사라졌습니다. 헌법재판소에 간곡히 호소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우리 한국 사회가 혐오 배제와 차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민주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평화통일로 성큼 다가설 수 있도록, 새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 희망합니다.

 

2022년 9월 15일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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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윤 정부 고위직 66% 종부세 내는데…‘셀프 인하’ 꿈틀

등록 :2022-09-15 07:00수정 :2022-09-15 09:21

차관급 이상 59명 가운데 39명이 고가주택 소유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으로 이미 반토막난 세부담
종부세법 개정안 통과되면 내년 세부담 46% 줄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9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청사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9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청사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고위공직자 3명 중 2명꼴로 고가 부동산을 소유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과세 대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 폐지를 골자로 한 세제개편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들의 평균 종부세 부담은 올해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들 전망이다.

 

14일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공직자 재산공개 자료를 전수조사한 결과, 윤석열 정부의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총 59명 가운데 39명(66.1%)이 주택분 종부세 과세 대상자(공시가격 합산액 기준으로 6억원을 초과하는 다주택자 또는 11억원 초과 1주택자)로 나타났다. 전 국민의 2%(지난해 기준)가 내는 종부세를 고위공직자는 3명 중 2명꼴로 내는 셈이다. 이들 종부세 과세 대상자 39명이 보유한 주택 공시가(올해 기준)를 모두 합하면 901억9천만원으로 1인당 23억1천만원가량이다. 시세로 치면 평균 30억원이 넘는다.

 

이들 39명의 올해 종부세 부담은 1인당 평균 512만원으로 나타났다. 앞서 정부가 올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에서 60%로 한시 인하하면서 이미 한번 대폭 줄어든 액수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보유세 과세표준을 산출할 때 공시가에 곱하는 일종의 할인율인데, 비율이 내려가면 세금 부담도 줄어든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올해 100%로 오를 계획이었지만, 정부는 지난 7월 시행령 개정을 통해 60%로 대폭 낮췄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이 조정되지 않았더라면 이들 고위공직자의 올해 종부세 부담은 1인당 1102만원에 이르렀을 텐데, 이미 세 부담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정부는 이에 더해 1주택자에 올해 한시적으로 3억원 특별공제를 적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경우 1주택자인 최상목 경제수석 등 4명은 아예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나머지 1주택자 22명의 세 부담도 평균 214만원까지 내려앉는다. 대표적으로 서울 서초동에 공시가 18억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한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올해 세부담이 105만원에서 52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 전망이다. 세제 정책을 총괄하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서울 도곡동에 공시가 25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특별공제를 적용 받으면 세부담이 312만원에서 208만원으로 감소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 폐지 등 종부세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이들의 내년 종부세 부담은 또 반 토막이 난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종부세율 인하 △다주택자 중과 폐지 △주택분 종부세 기본공제금액 9억원으로 확대 △1주택자 공제금액 12억원으로 확대 등을 담은 종부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개정안이 내년부터 시행된다면, 이들 고위공직자의 내년 종부세 부담은 1인당 평균 276만원까지 더 낮아진다. 올해 평균(512만원)과 견주면 46% 이상 줄어드는 것이다. 이는 주택 공시가를 올해 기준으로 유지하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은 내년에 80%로 환원한다고 가정한 결과다.

 

 종부세법 개정의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될 고위공직자는 가장 비싼 주택을 보유한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다. 이 차관은 부부 공동명의로 서울 서초구 반포동과 강남구 도곡동에 아파트를 각각 한 채씩(공시가 합산 58억원) 보유하고 있는데, 종부세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세 부담은 올해 6042만원(부부 합산)에서 내년 2730만원까지 줄어든다. 서울 서초동에 공시가 20억원이 넘는 고가주택 등을 보유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올해 1070만원에서 내년 362만원으로 약 708만원(-66.2%)의 감세 혜택을 받게 된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올해 1101만원에서 내년 234만원으로 약 867만원(-78.7%)의 감세 혜택을, 박진 외교부 장관은 올해 745만원에서 내년 128만원으로 약 617만원(-82.8%)의 감세 혜택을 받게 된다.

 

정부의 종부세법 개정안은 1주택자보다 다주택자에서 더 큰 감세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 39명 가운데 13명이 집을 2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였는데, 세법 개정에 따른 이들의 내년 세부담은 1인당 평균 383만원으로 올해 평균(1022만원)과 견주어 62% 이상 줄어든다. 1주택자 고위공직자 26명의 평균 세부담이 올해 259만원에서 내년 223만원으로 13.6% 줄어드는 것과 비교하면 ‘집 부자’가 훨씬 큰 혜택을 가져가는 셈이다.
 
고용진 의원은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 초기 ‘강부자(강남땅 부자)’ 내각을 뺨칠 정도로 강남 부자로만 꽉 채운 정부다. 이들이 무주택 서민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제대로 알겠느냐”며 “1주택자 14억원 특별공제(올해 한시 적용)와 다주택자 중과 폐지는 명백한 부자 감세”라고 말했다. 올해 종부세 고지서는 11월 말께 발송될 예정이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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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헌법재판소, 2조·7조 위헌 결정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초석 마련해야”

윤혜선 통신원 | 기사입력 2022/09/1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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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폐지 부산행동은 14일 오후 2시,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위헌 공개 변론(9월 15일)을 앞두고 '국가보안법 2조, 7조 위헌결정 촉구 부산지역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윤혜선 통신원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가보안법 위헌 결정 타당하다!”

 

국가보안법폐지 부산행동은 14일 오후 2시,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위헌 공개 변론(9월 15일)을 앞두고 ‘국가보안법 2조, 7조 위헌결정 촉구 부산지역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현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산지부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를 방해하고 파괴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왔다. 독재정권의 정권 유지 수단으로 오랜 기간 악용되었고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 왔다. 국가보안법은 애초 재정 당시부터 인권침해 사안이 많아 논란을 일으켰던 법”이라며 “국가보안법은 악법으로 작용하면서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내고 무고한 시민들을 법정 앞에 세우고 있다. 무죄 판결을 받을지라도 기간이 오래 걸리고 그 명예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이러한 법이 더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책임을 반드시 다 해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선자 부산경남주권연대 운영위원은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은 명백하다. 이 법은 특정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을 금지하고 국가가 허락한 사상이나 신념만을 허용하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수사기관의 자의에 따라 처벌 여부를 달리하여 평등권을 침해한다. 평화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남북관계에 관한 특정 의견을 형사 처벌함으로써 통일정책과 평화적 교류로 나아가려는 민간의 노력조차 가로막고 있다”라고 짚었다.

 

이어 “특히 국가보안법 7조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직접적인 표현 행위뿐만 아니라 읽고 쓰고 생각한 내용조차 처벌하여 헌법상 인간 존엄,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을 근본에서부터 침해하는 것이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남북교류가 활발해진 오늘날,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구성원 모두를 처벌하는 국가보안법 2조도 더는 실효성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조석제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수석 부본부장의 기자회견문 낭독으로 기자회견은 끝났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의 초석이 될 2조, 7조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반민주, 반인권, 반노동, 반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74년이 되었다.

 

지난 국가보안법 유지 74년의 역사는 비정상적인 인권유린의 역사였으며, 노동자 민중들의 정치사상적 자유가 박탈된 억압의 역사였으며, 반공과 색깔 이념으로 평화와 통일의 시계가 거꾸로 돌려진 시간이었다.

 

이번 9월 15일로 지정된 국가보안법에 대한 여덟 번째 헌법재판소 위헌 심판을 위한 공개 변론을 앞두고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지난해 2021년 10만 국민의 염원이 모아져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청원이 최단 시일 만에 성사되었으며, 지금 국회에는 국가보안법 7조 폐지와 전부 폐지안들이 이미 발의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는 더 이상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미래와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우리 국민의 마음이 표출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국내외 인권 단체들은 수십 년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의견을 피력해 오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놔두고 인권이니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가짜 주장이라고 우리는 이야기하고 싶다. 헌법 위에 군림하며 사람의 생각을 재단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억압해 온 국가보안법이야말로 위헌이다.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가야 할 국가보안법에 대해 완전 폐지는 아니더라도 헌법재판소는 대표적 독소조항인 2조와 7조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로써 국민 위에 군림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아 온 국가보안법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내려야 한다.

 

2022년 9월 14일

 

국가보안법폐지 부산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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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못 이겨 둘러댄 말, 사회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납북귀환어부 이야기] 해부호 선원 A씨22.09.15 07:05l최종 업데이트 22.09.15 07:05l변상철(knung072)

* 당사자의 요청으로 익명처리하였습니다. [기자말]

"혹시 뭔가 불편하시면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면담 약속을 잡기 위해 A씨와 처음 전화 통화 하던 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말투였다. 결국 그와 만나기로 하고 만남을 가졌던 날,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일만 생각하면 말이 곱게 안 나갑니다."

 

그는 결혼을 세 번 했다고 한다. 첫 번째, 두 번째 배우자들은 모두 납북사건을 알고 난 뒤 이혼을 요구했다. 매일 정보과에서 감시를 당하다보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납북귀환되어 조사를 받고 인생의 모든 기대와 꿈이 무너지고 나서 그는 변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난폭해지고 성질을 자주 내니 가정생활이 되겠소? 생계가 어려우니 누굴 책임지지도 못하지."

지금은 도시락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청바지에 하와이안 티셔츠를 입은 화려한 차림이었다. 납북귀환어부로 돌아와 처벌받은 뒤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기 어려웠고 결국 뒷골목 생활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가 납북된 때는 1971년 중학교 3학년 시절이라고 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홀로 벌이를 했다. 그랬던 어머니가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앓아누웠다. 그는 돈벌이라도 할 겸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탔다. 그 배가 해부호였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큰사진보기A씨와 찾은 속초의 옛 여인숙 골목. 과거 이곳에서 A씨를 비롯한 선원들이 고문을 받았다.
▲  A씨와 찾은 속초의 옛 여인숙 골목. 과거 이곳에서 A씨를 비롯한 선원들이 고문을 받았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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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아버지 직업 군인이었다. 속초로 오게 된 것도 부친의 근무지가 속초로 발령되면서부터였다. 부친은 속초에서 2년 근무한 뒤 제대하고, 탄광에서 일을 했지만 얼마 안 가 차량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때부터 가정생활이 어려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으로 병원으로 입원해 있고, 형편은 어렵고 하니까 학교는 가기도 싫더라고. 그리고 마침 학교에서도 배 타고 고기 잡으러 가는 건 장려를 했어요. 당시에는 다들 가정형편이 어렵다 보니 그렇게 돈을 벌어서라도 경제도 살리고 학비도 벌면 좋으니까 며칠씩 빠지더라도 배 탄다고 하면 다 이해해주는 분위기였어요.친구 소개로 해부호라는 배를 타게 된 거예요."

해부호가 납치된 것은 새벽이었다. A씨는 멀미로 정신없는 상황에서 선실 밖에서 들리는 멈추라는 소리와 총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나이 든 선원들을 통해 납치된 장소가 고성 앞바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북한 사람을 만나면 모두 죽는다고 배웠기에 A씨 등은 모두 벌벌 떨기만 했다고 한다.

북한 장전에서 조사받은 뒤 해주 쪽으로 넘어가 보니 속초 승운호 선원 등이 있었다고 한다. 억류 생활이 길어지자 남한으로의 귀환 요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귀환 요구가 있을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남한으로 돌려보내 주지 않겠다는 협박이었다.

귀환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포기하고 있던 중, 19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가 나면서 급진전되었다. 1972년 9월 7일 귀환 당시 기쁜 마음에 승해호를 탔지만 정작 멀미로 인해 어떻게 귀환되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승해호가 속초항 수협 쪽으로 정박해 하선했지만,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채 곧바로 버스로 태워서 시청 2층 회의실로 이동했다. 조사받았던 곳은 시청 앞 해동여인숙, 저승 같은 곳이었다.
 
"사실 시청에 와서 누가 나를 부른다 하는 그 순간부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여인숙에 들어가면 수사관들이 각목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꿇어앉힌 다음에 허벅지를 밟더라고요. 무릎이 빠지는 거 같아요. 그리고 눕혀놓고 물고문을 해요, 수건을 얼굴에 덮어놓고 팔다리를 잡고, 한 되짜리 주전자 물을 붓는 물고문을 해요. 그러다가 안 되니까 이렇게 돌리는 군인 전화기 같은 걸로 전기고문을 하더라고요. 전기고문은 의자에 묶여 있는 상태에서 당했어요. 나중에 고춧가루 물고문도 당했는데 그건 물고문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당했어요."

A씨가 특별히 고문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북한에 억류되어 있을 당시 치과 치료를 받은 기간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다. A씨보다 몇 해 전 납북되어 억류되어 있던 매형 등을 만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결국 A씨는 고문에 못 이겨 '5년 있다가 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기로 했다'는 거짓말을 둘러댔다.

허위자백 때문이었는지 고문이 잦아들었다. 경찰 조사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조사받은 것을 말하지 말라는 각서를 쓰게 했고, 결국 검찰과 법원에서도 그 각서로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집행유예로 나온 이후로 경찰이 계속 따라다녔다고 한다. 담당 형사가 가끔 집에 찾아와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고 A씨가 친한 친구들과 만나기라도 하면 친구들한테까지 찾아가서 조사하기도 했다. 직장생활도 불가능했다.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게 했던 것, 그것이 제일 괴로웠던 일이라고 한다. 여전히 그는 납북귀환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큰사진보기경찰 수사 종료 시점에 작성한 각서. A씨 등은 이 각서 작성으로 인해 고문 수사 등 진실에 대해 함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  경찰 수사 종료 시점에 작성한 각서. A씨 등은 이 각서 작성으로 인해 고문 수사 등 진실에 대해 함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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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도 엉망이 되었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이 뭐냐면 공황장애를 겪는 거예요. 고문이나 납북 이런 단어나, 그 당시 기억이 떠오르면 등에 식은땀이 나고 그래요. 지금 이 이야기 하는 중에도 북한 이야기 나오고 하면 식은땀이 나요. 나도 달변인데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좌불안석이 되는 거예요. 내가 가고 싶어서 북한을 갔어요? 태풍 때문에 잡혀가서 북한 아이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한 것뿐인데 나이 어린 학생들을 왜 고문하고 처벌하느냐고요.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혹은 장난삼아 간 사람들이에요, 방학 동안 그저 호기심에 배를 탄 건데 국가보안법, 반공법으로 만들어 놔서 인생 조져 버린 것 아니에요. 50년 넘었지만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박박 갈려요."

그는 자신의 환경이 다른 사람보다도 더 나빴다고 했다. 그는 그보다 먼저 납북되었던 이모부와 형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고문을 더 받고 더 지독한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직장을 제대로 못 다니는 거지. 맨날 경찰들이 찾아다니고 정보부에서 조사를 하고 하다 보니 사람 성격이 모나지게 되고 누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게 됐어."

한 번은 거진에 사는 동생 집에 놀러 갔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인해 강릉보안대까지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내가 납북된 걸 모르는 놈이 신고를 했겠어? 나를 아주 잘 아는 놈이 신고를 한거지. 세상 믿을 놈 하나 없어"

그의 사회생활은 그 자체로 엉망이 되었고 대인관계, 결혼생활도 엉망이 되었다.
그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나서 두 번째 배우자를 만났는데, 그의 동서가 중령 계급의 군인이었다. 문제는 중령인 동서가 더 이상 진급이 되지 않았고, 그 진급 누락의 책임이 A씨에게 돌려졌다. 결국 그는 두 번째 결혼도 실패했다.
 
"난 모든 걸 숨기고 살았어. 내가 결혼을 세 번이나 하면서도 새끼를 한 명도 안 놓았어. 그 이유가 뭔지 아나? 연좌제 때문에... 이북에 갔다가 넘어온 나는 그렇다 쳐도 내 새끼들은 무슨 죄가 있어. 그런 고통을 물려줄 바에는 새끼를 안 놓고 말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고통스러운 나라. A씨에게는 대한민국이 그런 곳이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불행을 안고 태어날 아기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그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국가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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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와 중앙일보의 180도 다른 노란봉투법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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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2/09/15 08:57
  • 수정일
    2022/09/15 08:57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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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정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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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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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미국발 고물가 쇼크로 한국 주식시장 흔들
구글, 메타에 1000억 과징금 “개인정보 침해 국내 첫 제재”
노란봉투법 노동계 입장 1면 다룬 한겨레와 재계 입장 다룬 신문들

 

미국발 고물가로 인해 한국 주식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고’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1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8월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대비 8.3%로 시장 전망치(8.0%)를 훨씬 웃돌았기 때문에 한국 주식 시장까지 영향을 미쳤다. 환율이 139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미국에서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5일 주요 종합 일간지들은 1면에 해당 소식을 싣고 대부분의 신문에서 사설로도 이 이슈를 다뤘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이번 쇼크로 위기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한국 경제 정책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는 주문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개인정보를 수집해 온라인 맞춤형 광고에 활용하는 등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구글과 메타에 각 692억원, 3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개인정보보호 법규 위반 사안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과징금이며 개인정보 침해와 관련, 빅테크 기업에 대한 국내 첫 제재라는 의미가 있다.

노동조합의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기 위한 ‘노란봉투법’ 입법에 대해 한겨레가 1면으로 다뤘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재계에서 해당 입법에 반대한다는 기사를 전달했다.

▲15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다음은 9월15일 주요 종합 일간지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구글·메타 ‘과징금’ 역대 최대 1000억”
국민일보 “美 울트라 스텝 전망에 환율 치솟고 증시 요동”
동아일보 “美물가, 금융시장 강타 환율 1390원도 넘었다”
서울신문 “미국발 울트라쇼크 ‘검은 수요일’”
세계일보 “美물가 쇼크에 금융시장 또 ‘휘청’”
조선일보 “울트라스텝 공포에 펄쩍 뛴 환율”
중앙일보 “또 미국발 물가쇼크, 원화값 1400원 눈앞”
한겨레 “‘노란봉투법’ 국회 답장만 남았다”
한국일보 “툭하면 법정으로…‘정치 실종’된 여의도”

미국발 고물가 쇼크로 한국 주식시장 흔들, 위기 지속 전망

미국의 고물가에 한국 금융시장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14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38.12포인트(1.56%) 떨어진 2411.42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달러당 1395.5원까지 치솟았고 17.3원 급등한 1390.9원에 마감했다. 1390원대 환율은 2009년 3월30일(1391.5원) 이후 13년5개월여 만이다.

이유는 전날 밤 발표된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3%로 나오면서, 예상치였던 8% 안팎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도 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15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가 연 2.5%인 기준금리 상단을 연말 4.5%까지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오는 20~21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이 확실시되고 있다. 1%포인트 올리는 ‘울트라스텝’ 가능성도 나온다.

▲15일 동아일보 1면.
▲15일 동아일보 1면.

이는 한국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다. 고금리는 대출자 이자 부담을 키우고, 고물가는 실질소득 감소를 초래해 경기를 침체시킨다. 고환율은 수입 가격을 올려 물가 불안과 외국인 자금 유출을 심화시킨다.

신문들은 사설에서 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경기침체는 아직 오지 않았고, 내년 상반기에 극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장기간 위기를 버텨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가장 큰 충격에 직면할 서민·취약계층 가계와 한계기업에 대한 보호책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15일 조선일보 1면.
▲15일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최근 미국 수입물가와 기대인플레가 잇따라 하락하면서 조만간 위기가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이런 기대와 달리 고물가 상황이 쉽게 진정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게 이번 물가 쇼크”라고 짚으며 “인플레 우려가 커지는 등 여건이 바뀐 만큼 한은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통화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신문들은 각자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며 여러 해결책들을 제시하려 했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윤석열정부가 그동안 발표한 자영업자 위주의 가계부채 대책과 부동산 대책 등도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며 “아직 구조조정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한계기업이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위기 시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는 잠재적 부실들을 가려내는 선제 방안도 절실하다. 정쟁에 매몰된 정치권도 하루빨리 미몽에서 깨어나 고물가 극복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15일 국민일보 사설.
▲15일 국민일보 사설.

서울신문 사설은 “무엇보다 한미 금리 격차가 너무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며 “옛 스와프 동지인 8개국을 규합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도 집중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세계일보 사설도 “다중채무자,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고금리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내놔야 한다. 위기상황일수록 재정·통화당국 간 정책 엇박자는 금물”이라며 “한·미 간 금리차가 1%까지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빈틈없는 정책공조로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 경제체질 개선과 구조개혁으로 원화가치를 끌어올리는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 짚었다.

▲15일 세계일보 사설.
▲15일 세계일보 사설.
▲15일 중앙일보 사설.
▲15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수출을 늘려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을 늘리고, 달러 수요가 특정 시기에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연기금 등 공적 기관이 해외 투자를 할 때 외환시장에 영향을 덜 미치도록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로 인한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은 몇 달 전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서도 원화 약세의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외환 수급에 동맥경화나 쏠림현상은 없는지 정교하게 모니터링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구글, 메타에 1000억 과징금 “개인정보 침해 국내 첫 제재” 의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14일 이용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해 온라인 맞춤형 광고에 활용하는 등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구글과 메타에 각 692억원, 3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개인정보보호 법규 위반 사안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과징금이다.

또한 위원회는 개인정보를 수집하려면 이용자가 쉽고 명확하게 인지해 자유로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이용자에게 알리고 동의를 받으라는 시정명령도 내렸다.

▲15일 서울신문 경제2면.
▲15일 서울신문 경제2면.

개인정보보호위는 지난해 2월부터 조사한 결과, 구글은 서비스 가입 시 이용자의 타 사이트 방문 이력 등 행태 정보를 수집·이용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리지 않고 기본값을 ‘동의’로 설정하는 방법을 썼다고 밝혔다. 메타는 개인정보 수집에 관한 내용을 이용자가 알아보기 쉽지 않은 데이터 정책 전문에만 게재하고, 구체적인 법정 고지사항을 동의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한겨레 사설.
▲15일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이번 처분은 온라인 맞춤형 광고 플랫폼의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국내 첫 제재다. 과징금 규모도 역대 최대로,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당국이 단호한 척결 의지를 밝혔다는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특히 메타는 지난 7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에게 ‘갱신한 개인정보 처리방침에 동의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며 사실상 동의를 강제하다가 거센 반발에 부닥쳐 중단하기도 했다”며 “개인정보보호위는 이 사안에 대해서도 진상 조사를 거쳐 적절한 처분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15일 경향신문 사설.
▲15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이 이슈를 1면 머릿기사로 다루고 사설에서도 다뤘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를 두고 “눈속임·꼼수를 동원해 개인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려 한 것”이라며 “이용자 몰래 개인정보를 모아 온라인 광고 돈벌이에 활용하는 빅테크의 행태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유럽의 구글 서비스는 이용자가 개인정보 보호 설정을 직접 선택하도록 단계별로 구분해 동의를 받고 있다. 구글은 한국에서도 이용자가 정보수집 절차에 대해 쉽고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조치하는 한편, 동의 여부를 선택 가능하도록 해야 마땅하다”며 “두 회사는 개인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전했다.

▲15일 중앙일보 사설.
▲15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도 관련해 사설을 썼는데 “사실 두 포털이 한국 시장에서 온라인 맞춤형 광고로 거두는 천문학적 매출에 비하면 이번 과징금 규모는 미미하다”며 “그런데도 두 업체는 개인정보보호위의 처분을 받고도 사과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시해 자칫 소송전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이어 “포털 기업이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이용자 개인의 자기 선택권과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겠다는 투명한 자세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며 “이번에 제재를 받은 두 기업은 개인의 자유를 규정한 한국 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한국 이용자를 차별하는 정책을 신속히 수정하지 않는다면 더 큰 제재를 받을 수 있고,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노란봉투법 노동계 입장 1면 다룬 한겨레

다른 주요 종합 일간지의 1면은 미국 고물가에 따른 주식시장 쇼크 이슈였는데, 한겨레는 이날 1면 기사를 노란봉투법에 관련된 기사로 배치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은 노동조합의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기 위한 법으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와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파업사태로 손배 가압류 문제에 대한 조치로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을 정기국회 중점과제 22개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

▲15일 한겨레 1면.
▲15일 한겨레 1면.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보수진영과 재계는 ‘기업 죽이는 노조 떼법’이라며 총력 반대에 나섰다”며 “재계의 반발에 막혀 번번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던 노란봉투법이 이번엔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에게 47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액이 청구된 ‘쌍용자동차 파업사태’ 이후 기업의 손배소를 통한 노동권 침해가 공론화되면서 탄력받은 노란봉투법은 지난 19대·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환노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겨레는 1면에 이어 4면 기사에서도 이 이슈를 다루고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을 들어 ‘사용자 재산권 침해’라고 비판한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조합원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내지 못하도록 하거나, 손배소에 상한액을 두고 있다는 점”이라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이날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전달했다”고 전했다.

▲15일 중앙일보 12면.
▲15일 중앙일보 12면.
▲15일 조선일보 B2면.
▲15일 조선일보 B2면.

반면 중앙일보는 손경식 경총 회장이 노란봉투법에 반대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전한 이슈를 1면에 전달하고 12면에서도 노란봉투법에 반대하는 재계의 입장을 위주로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경제B2면에서 경제계가 해당 입법에 반대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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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개 노동·시민사회·진보정당, ‘손배 폭탄’ 막을 노조법 개정 운동 착수

“수십·수백억원의 손배는 절망 그 자체, 노조법 2·3조 개정해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의 호소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2022.09.14 ⓒ민중의소리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이트진로 사태를 계기로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문제가 대두되자, 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범사회적인 법 개정 운동이 14일 시작됐다. 손배소 제한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노란봉투법'에서 나아가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에 대해 원청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게 하는 내용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 시민사회단체 93곳과 진보정당 4곳(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은 이날 국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운동본부)'의 출범을 선언하며, 올해 안에 노조법 2조와 3조를 모두 개정하기 위한 활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인 파업에 쉽게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고, 파업 이후에도 수십·수백억원에 달하는 손배소로 노동자를 탄압하게 만드는 근거가 노조법 2조와 3조에 있다고 본 것이다.  

'노동자 탄압용' 무분별한 손배소 막으려면?
운동본부 "노조법 2, 3조 모두 개정해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2022.09.14 ⓒ민중의소리

운동본부는 현재의 노사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노조법의 한계가 노동자들을 쉽게 불법 파업으로 내몰고, 막대한 금액의 손배소까지 감당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회적 관심을 모았던 대우조선해양과 하이트진로를 상대로 한 파업 투쟁이 대표적인 예다.

노조법 2조는 사용자와 노동자 등을 정의하는 조항인데, 현행법은 사용자와 노동자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면서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이를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실제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원청을 상대로 한 파업 등 쟁의행위는 쉽게 불법으로 몰렸다. 최근 복잡해진 노사 관계를 반영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례도 여러 번 나왔지만, 여전히 원청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회피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노조법은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해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 바로 노조법 3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노조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라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즉, 노조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노동자와 사용자는 손해배상 청구 제한 조항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동자를 상대로 4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내세운 논리 역시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들의 "단체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노동위원회 김세희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쯤 되면 노조법에 의한 적법한 쟁의행의를 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며 "불법에는 대가가 따라야 하고, 사용자가 강력한 손배 책임을 물어야 불법 파업이 근절된다는 말은 틀렸다. 강력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아 불법 파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의 실질을 꿰뚫지 못하는 현행의 법체계가 불법 파업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섭은 나 몰라라 하면서 파업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손배소 청구한 원청
운동본부, 연내 노조법 개정 위해 국회 국민동의청원 등 예고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손해배상 당사자 노동자들과 참석자들이 노조법 개정을 촉구하며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2022.09.14 ⓒ민중의소리


운동본부가 요구하는 법 개정 방향은 실질적인 노사 관계를 반영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노조법 2조 가운데 노동자에 대한 정의를 현재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에서 간접고용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자'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의 정의도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로만 규정하지 말고,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이나 수행 업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도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조법 3조는 개별 노동자에 대해 손배소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노조에 대한 손배소 청구 금액 역시 조합원 수나 조합비, 노조 재정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청구하는 내용이 분명하게 담길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노조의 위법 행위로 인해 직접적으로 발생한 손해에만 책임을 물으며, 그 외의 합법적인 쟁의행위로 발생한 영업손실 등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손배소로 고통받는 당사자들도 직접 참석해 노조법 2, 3조 개정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투쟁을 이끌었던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거통고지회) 지회장은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470억원의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들에게 죽으라고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노조법 2, 3조를 개정해 노동자가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수동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2지회장은 "파업 돌입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해고와 손배소 청구가 진행되었고, 화물노동자로서는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수십억원의 손배는 절망 그 자체였다"며 "하이트진로는 운송사와 화물노동자 간의 문제기 때문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회피하면서도, 화물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에는 직접 나섰다. 손실에 대한 보전이 아니라 화물노동자의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손배·가압류를 이용하고 남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노조법 2, 3조 연내 개정을 목표로 여론을 모으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물론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활용해 손배소 문제점을 알려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실태 조사와 증언대회, 관련 토론회, 국제 심포지엄 등도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운동본부는 "이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하기가 어렵다. 어렵사리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작은 위법을 문제 삼아 파업 전체를 불법으로 내몰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도 허다하다"며 "운동본부는 시민과 노동자들의 힘으로 반드시 노조법 2, 3조를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회에서도 노조법 개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는 같은 날 국회를 찾아 노란봉투법 전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노란봉투법이 재산권을 침해하며 불법행위에는 그에 따른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해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아직은 논의 초기 단계"라면서도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다음 주 노동계의 의견도 청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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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손발 묶고 경기 침체 대응하겠다는 윤 정부

재정준칙 법제화 강행...전문가들 "써야할 곳에 못 쓰는 상황 생길지도"

 
추경호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정부가 재정준칙안을 발표하면서, 재정준칙 법제화를 본격 추진한다. 공개된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은 문재인 정부에서 제안한 기준보다 더 단순해지고 강경해졌다.

전문가들은 재정준칙이 재정의 유동성을 낮추게 되고, 경제적 위기 상황 등 재정을 상황에 맞게 운영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13일 발표한 재정준칙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GDP(국내총생산)와 비교해 3% 이내로 관리한다는 것이 큰 틀이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재정수지 등 재정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방만한 재정활동을 경계하고 재정건전성을 추구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관리기준을 충족하도록하는 구조상, 정부의 재정활동이 경직되는 효과도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고금리 등 대외 위기는 물론 내부적으로 고령화, 탄소중립 산업 전환 등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재정의 경직은 역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인 정세은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고령화, 산업 전환 상황에 적극 대응해야 하는, 그래서 국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가재정이 실업안전망 등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거꾸로 재정관리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하겠다는 건 주객전도"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것을 고려하면 취약계층에 대한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극빈층이 가장 힘든 상황이 되는데 여기에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곤란하다"면서 "실업 수당, 생계 수당 등에 물가 상승 고려하는 등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재정준칙에 비해 단순하고 더욱 강경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2020년 발표한 재정준칙 관리기준은 '(국가채무 비율/60%)×(통합재정수지 비율/-3%)≤1.0'이다. 풀이하면 국가채무비율을 GDP 60% 이내, 재정수지 비율은 -3% 이내로 관리하되, 두 지표와의 관계를 고려해 융통성을 두고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관리재정수지 적자 GDP 비율 -3%로 단순화했다. 관리기준의 지표 또한 통합재정수지보다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로 뒀다. 통합재정수지는 재정 총수입에 총지출을 뺀 것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기금, 사학연금기금, 산재보험기금, 고용보험기금을 제외한 것이다. 이들 사회보장성기금이 흑자를 내는 상황인 것을 고려하면 통합재정수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다.
 
재정준칙 기존안과 개정안 비교 ⓒ기획재정부


여기에 정부는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어가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 대비 2%까지 상향하도록 했다.

단순하게 보면 빚(국채)이 늘어났으니 나라살림을 긴축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채가 늘어나는 상황은 경제 위기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재정을 더욱 긴축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채를 줄이기 위한 긴축재정은 오히려 국채를 늘리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나원준 교수는 "재정 지출을 긴축하면 GDP 성장 속도도 느려진다. 그러면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자동으로 사회지출이 늘어나게 되고 채무는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상황이 2010년 유럽 여러나라에서 입증됐고, 당시 EU(유럽연합) 대부분의 나라가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이 감세 기조와 함께 진행된다는 것이 큰 문제다. 재정 수입도 줄이면서 재정준칙까지 도입하면 지출 경직이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세은 교수는 결국 재정준칙의 효과가 복지지출 감소로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지출 축소의 부담이 복지 분야로 전가돼서 결국에는 성장과 분배 양쪽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 이상 복지재정 확대는 요원해질 것이란 것"이라며 "산업 구조전환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낙오되는 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인 것을 고려하면 긴축재정의 부담은 취약계층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정수지에 기반한 재정준칙으로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데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표만 맞추는 재정준칙은 재정건전화보다는 예산기술자들이 숫자를 가지고 장난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라면서 "재정건정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기준이 있지만 재정준칙대로면 GDP대비 적자수지 3%만 맞추면 재정이 건전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과 지출 숫자만 관리하면 되는 지표로는 얼마든지 재정 관료의 회계 기술로 맞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의 올해 2차 추경을 보면 융자사업 이차보전전환, 지출시기조절 등으로 지출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항목들이 있다. 

이에 재정준칙을 발생주의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발생주의는 현금의 수입·지출과 상관없이 비용이 발생되었을 때 인식되는 개념이다. 현금의 수입·지출의 수지를 따져 관리하는 정부의 재정준칙은 현금주의 개념이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다른 나라의 준칙을 보면 발생주의적 개념이다. 이번 재정준칙안 같은 현금주의적 개념은 숫자만 조작하기 쉽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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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기자 "위안부 만행, 일본군이 짓밟고 간 모든 을 추적했다"곳

[유럽人터뷰] ① 특이한 저널리스트 그리셀다

기사입력 2022.09.13. 11:31:04 최종수정 2022.09.13. 12:41:30

 

스물일곱의 나이였던 1998년 짐 가방 하나 백팩 하나 달랑 메고, 이스라엘로 떠났던 청년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이스라엘의 지역 공동체 키부츠 예히암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온 여학생과 이야기가 잘 통해서 단짝 친구가 되었다가 금세 애정 관계로 발전해서 아예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평생의 연인과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자신 삶의 절반 가까이를 유럽에서 살아왔고, 네덜란드 국적 취득을 위해 한국 국적은 포기했지만, 자신은 영원히 한국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사람으로서 유럽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대화를 프레시안에 기고합니다. 그 첫 번째로 특이한 저널리스트 그리셀다와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필자)

20세기 식민의 역사를 추적하는 네덜란드 여성 저널리스트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리셀다 몰러만스(Griselda Molemans, 58세) 180 센티미터가 훨씬 넘는 큰 키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 색에, 동서양 모두의 얼굴 생김새를 가진 그리셀다 몰러만스는 수리남계 아버지와 인도네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녀와의 이야기를 엮어 보았습니다. 

장광열 : 벌써 3년 전이던 2019년 말 네덜란드 저널리스트가 일본 종군 '위안부'에 대한 책을 써서 곧 나온다는 말을 듣고, 책이 나오자마자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서 사서 앞부분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코로나 팬데믹에 휩쓸려 그 책을 책장에 넣어 놓고 잊고 있다가 얼마 전 다시 책을 꺼내 보고 그 책의 저자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먼저 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그리셀다 :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 '위안부' 관련 책을 내려고 했던 건 2004년에 네덜란드 할머니들도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였어요. 하지만 당시 하던 일 때문에 미뤄 두고 있다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위한 자료 수집에 들어갔어요. 처음에 제가 주목한 것은 2차 대전 당시 아주 많은 인도네시아에 살던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도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는 점이었어요. 

그런데 조사를 할수록 이 문제는 전체를 다 다뤄야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킨 다음부터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그리고 그 후 패전국 일본의 해외 파병군에 대한 승전국의 재판 기록들과 전쟁 당시 일본의 위안소 운영 실태에 대한 보고서가 만들어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러나 그 보고서는 몇 조각으로 분할 되어 비밀문서보관함에 들어 있었고, 어떤 보고서는 2026년까지 공개할 수 없게 묶어 놓은 걸 알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1945년에 15세였다면 2026년에는 96세가 되니까 '위안부' 출신 여성은 대부분 죽었을 거라는 판단을 한 것 같아요. 

책이 많이 두껍습니다. 제 책을 넘겨 보면 아주 예쁜 한국 처녀의 사진이 있어요. 그분이 2019년 1월에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예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분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일제에 의해 강제 매춘에 동원된 할머니가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셨지요. 정말 용기 있는 여성 인권운동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오래 전 일어난 일이고, 그동안 철저히 감춰진 역사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멀게만 느껴질 것 같아서, '위안부'할머니들의 젊은 시절 사진이나, 전쟁과 위안부 실태에 대한 문서 자료들을 많이 책에 담았어요.

 
▲ 20세기 식민의 역사를 추적하는 네덜란드 여성 저널리스트 그리셀다 몰러만스(Griselda Molemans, 58세) 180 센티미터가 훨씬 넘는 큰 키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 색에, 동서양 모두의 얼굴 생김새를 가진 그리셀다 몰러만스는 수리남계 아버지와 인도네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 그리셀다 몰러만스
 
 
▲그리셀다는 이미 오래 전 일어난 일이고, 그동안 철저히 감춰진 역사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멀게만 느껴질 것 같아서 '위안부'할머니들의 젊은 시절 사진이나, 전쟁과 위안부 실태에 대한 문서 자료들을 많이 책에 담았다. ⓒ 그리셀다 몰러만스

장광열 : 제가 책을 읽어보니 일본이 침략한 곳의 지명이 목차에 쭉 나열되어 있어서 정말 일본의 종군 '위안부'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보는 위안부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그리셀다 : 저는 아시아 침략전쟁과 이른바 종군 '위안부' 동원은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지역에 35개국 출신에, 50만 명에 이르는 일본 제국의 종군 '위안부'가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이 일은 민간이 한 것이고 일본정부는 간여 안 했다든가 위안부들은 자발적인 매춘부라는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입니다. 

장광열 : 책 제목은 레이븐스 랑 오르로흐 (Levenslang Oorlog) 영어로는 라이프타임 워 (Life-time War) 입니다. 읽어보니 이 책은 학술서적 같지 않고, 딱딱한 역사 교과서도 아니고, 351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탐사보도입니다. 책의 첫 이야기가 인상적이였어요. 

그리셀다 : 제 책은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2013년 11월 23일 보도된 믿을 수 없는 기사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십 년 동안 죽은 채 자기 집에 누워 있던 인도네시아계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십 년 동안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에서 홀로 사는 할머니가 십 년 동안 죽어 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까?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할머니의 가족들은 있을까? 이웃들은 왜 그걸 몰랐을까? 물세나 전기세, 가스요금 등 각종 공과금은 납부가 되었나? 노인 기초연금은 어떻게 받았을까? 이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은 베피(Beppie), 본명은 엘리자베스 도로시 더 브라운(Elisabeth Dorothy de Bruin), 1929년생이고, 200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74세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이 소식이 보도된 다음 날, 할머니의 외동 딸 보니(2013년 당시 68세) 가 나타납니다. 이 딸은 왜 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자기 어머니와 연락을 끊고 살았을까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나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버린 딸 보니, 어떻게 어머니와 십 년 넘게 연락을 아예 안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보니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럼 베피 할머니는 딸에게 마음을 닫고 살았을까? 그 이유는 이 딸의 출생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베피 할머니는 인도네시아 태생이었고,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이 이곳을 점령하던 1944년, 이제 갓 사춘기를 보내던 열다섯 살에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하여 아이를 가졌고, 1945년에 이 아이를 낳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할머니가 된 딸 보니의 얼굴은 한눈에 일본 아버지와 인도네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임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8월 17일 인도네시아가 자주 독립국임을 선포했는데, 인도네시아와 유럽계 혼혈인 베피의 부모님은 1948년경 네덜란드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베피는 다른 가족들보다 늦게 갓난아기 보니와 함께 네덜란드로 들어와 살았고,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아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베피와 보니는 여느 집안의 엄마와 딸의 다정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베피는 보니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아버지가 일본군이었을 거라는 걸 알았지요.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서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베피는 일본 '위안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50만의 '위안부'들처럼 열다섯의 꿈 많은 소녀는 원치 않은 아이의 엄마로 평생을 살아야 했고, 죽은 지 십 년 동안 주위의 누구도 연락을 하지 않는 외로운 노년을 보낸 것입니다.

우리는 베피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같은 시대에 일본군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 나라들에 살았던 수많은 이름 모를 여성들의 삶과 다름없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7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아픔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살아남은 가해자 중에는 단지 소수만 처벌 당했을 뿐 각자 자기의 터전으로 돌아가 한 가족의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처벌 받지 않은 이유는 처벌을 해야 할 무려 35개국에 달하는 피해자의 국가들이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방조자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아시아 나라들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수 많은 서구 열강들이 일본의 부녀자 강간과 '위안부'동원, 그리고 성적 학대, 폭력, 살인의 역사를 조사한 후에 비밀문서함으로 집어넣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평양 전쟁의 승자였던 미국은 패전국 일본을 자신의 충성스런 속국으로 만들었고, 동북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던 소련을 막는 방파제로 이용하기로 하고, 일본 군국주의자들 일부를 처벌하는 선에서 덮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패망을 민족의 해방으로 이해하고 있던 아시아의 민중들은 원래 지배자인 서구 열강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현실에 마주쳐야 했습니다. 

▲ 그리셀다의 책 제목은 레이븐스 랑 오르로흐 (Levenslang Oorlog) 영어로는 라이프타임 워 (Life-time War)이다. 그리셀다가 추적한 '위안부' 탐사보도가 실려있다. ⓒ 그리셀다 몰러만스

장광열 : 전쟁이 끝난 지 거의 50년이 지나서야 위안부 실태가 밝혀졌습니다. 

그리셀다 : 1991년 8월 14일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많은 할머니들이 평생 감추고 살아 왔던 아픈 과거를 폭로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이 가공할 만한 전쟁범죄 진실의 파편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학순 할머니의 폭로가 있은 지 3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 거대한 전쟁 범죄의 전말을 다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일부 극우인사들이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들이 자발적인 매춘부였고, 일본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독일의 나치 추종자들이 다시 등장해서 당시 유태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의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할 이웃나라라고 선언했다고요? 용서와 화해는 죄를 지은 자가 본인의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면서, 진정 어린 사과를 할 때만 가능합니다. 

저는 아베 전 총리가 죽었을 때 이곳 유럽의 언론 보도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던 군국주의자입니다. 다시 욱일기를 달고 중국과 대항하는 강대국으로 살리는 게 그의 정치철학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조의를 표하면서 온통 비판적인 목소리를 아예 보도가 안 되더군요. 

▲1991년 8월 14일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 증언했다. 그리고 그 후 많은 할머니들이 평생 감추고 살아 왔던 아픈 과거를 폭로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이 가공할 만한 전쟁범죄 진실의 파편을 볼 수 있었다. ⓒWomen and War

장광열 : 당신은 책 표지 뒷면에 '위안부'라는 용어에 대해서 슬픈 완곡어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셀다 :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용어입니다. 마치 전쟁으로 정신적 고통을 당하던 일본군 병사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안락한 위안소에서, 자발적으로 일본군의 위로를 해주던 여성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일본군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곧이어 중국 상해로 쳐들어갔습니다. 일본의 본격적인 아시아 대륙 침략이 시작된 것이죠. 1932년 1월 28일 밤에서 29일까지 상해로 침입한 후에 무려 일본군의 강간 신고 건수가 223건이었습니다. 

1937년 7월에는 중일전쟁이 터졌고, 일본군은 가는 곳마다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살해하였고, 가족 전체를 몰살시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딸을 강간하면서 부모와 형제들이 그걸 지켜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 나서 자살한 아버지도 있었고, 목을 맨 소녀들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은 일본군의 미친 성욕을 채워주고, 병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군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 점령지 곳곳에 위안소를 만들고, 일본의 매춘 여성만으로 그 요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일본과 조선, 간도 등에 있던 조선 여성들과 중국 여성들을 이 강제 매춘에 동원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많은 조선 여성들이 공장이나 좋은 직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서 상해까지 끌려왔다고 합니다. 위안소는 그 이름처럼 평온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소녀들이 처음 들어가면 신체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검사는 군의관에 의해 행해졌고, 그중 몇몇은 군의관이나 장교들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고 위안소 방에 갇혀서 매일 매일 적게는 7~8명 많게는 50명의 병사를 상대해야 했다고 합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동남아 각지의 군대가 주둔하는 곳마다 모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위안소를 만들고 현지 여성들과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 여성들을 동원해서 채워 넣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지만, 제 책이 한국어로 번역 되어서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장광열 : 일본군이 위안소를 체계적으로 운영했다고 하셨죠. 군대와 위안소는 밀접한 관계라는 의미겠죠?

그리셀다 : 일본 군국주의는 일본군의 부녀자 강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 아니라, 일본군 병력의 전투 병력의 성병 감염을 막기 위해서 위안소에서 안전한 섹스를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1918년~22년 간도 지역에서 일본군이 한국의 독립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을 때 병력의 1/3이 매독이나 임질에 걸려서 전투병력에서 빠지게 되었고, 그중 많은 수가 죽었습니다. 

이런 사태가 재발하는 걸 막기 위해서 위안소에서는 병사들이 의무적으로 콘돔을 사용하도록 했고, '위안부' 여성들은 성행위 후에 소독제로 중요 부위를 닦도록 했고요. 매주 군의관에게 신체검사를 받아서 성병에 걸린 여성에게는 강력한 항생제 주사를 놔 주고 회복한 후에 다시 위안소로 배치되도록 관리했습니다. 

저는 당시 일본군에게 '위안부'는 없어서는 안 될 가축으로 취급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농장에서 키우는 젖소는 매일 매일 젖을 짜내고, 젖이 나오지 않으면 도살 당하지요. '위안부'들은 매일 매일 일본군 사병과 장교들, 군 사무관, 군대와 연관된 일본 사업가, 일본 회사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성 노예들이었던 겁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을 당한 제 어머니, 큰 고모, 이모 나이의 50만 명이 넘는 그분들을 생각하면 슬픔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지옥 같은 위안소에서 탈출하다가 잡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자발적인 매춘을 한다는 게 말이 될까요?” 

▲ 호주 전쟁기념관에 보관된 위안소의 이용 ⓒ 그리셀다 몰러만스

장광열 : 일본 정부는 민간업자들이 위안소를 운영했고, 자신들은 그 시설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리셀다 : 저는 책을 내기 위해서 일본군대가 짓밟고 간 모든 곳을 다 추적했습니다. 일본 본토와 한국과 대만 같은 곳에서는 청년 남자들은 학도병이나 황국의 군인으로, 여성들은 근로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차출해 갔습니다. 일본 천황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영광을 누리라고 선동했지요. 침략한 곳의 여성들도 쪽수를 채우기 위해서 끌고 갔습니다.

장광열 : 2차 대전 이후에 식민지 인도네시아를 되찾은 네덜란드에서 일본군을 처벌이 진행되었나요?

그리셀다 : 네, 제가 자료를 모으는 중에 2차 대전이 끝난 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의 중심 도시 폰티아낙 지역에서 네덜란드 군 보안사가 일본의 '위안소' 운영에 대해서 조사해서 만든 보고서를 확보해서 그 내용을 책에 담았고, 얼마 전 8월 14일에 후속 보도를 냈습니다. 네덜란드의 군 정보국의 보고서 제목은 '보르네오 서부지역에서 일본 해군의 점령 기간 중에 있던 강제 매춘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1943년 상반기에 일본 해군의 헌병대, 또는 특별경찰부대가 일본군 부대나 일본계 회사에서 일하던 인도네시아 여성들을 '위안부'로 만들어 버렸고, 모자라는 인력은 길거리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해서 위안소에 배치해서 강제로 매춘을 시켰다는 일본군 포로의 진술이 나옵니다. 이 보고서가 작성자는 네덜란드 군 정보국의 J. N. 하이브룩(Heijbroek) 대위였습니다. 일본군 포위가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자백한 중요한 보고서였는데, 이 보고서는 내부에서만 공유되었습니다. 

비밀문서로 일반인의 열람이 불가능했던 것이었는데, 영국의 군 문서 보관소에 있던 이 보고서 전체를 입수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군국주의 국가였습니다. 일본 황제는 신처럼 모셔졌고, 모든 일본과 한국 대만의 모든 황국 신민들은 황제의 백성으로 충성을 다하자고 부추겼죠.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서구 열강들이 차지하고 있던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정복하기 위해서 일본은 강력한 황군을 만들고 그 병력을 잘 유지하고,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습니다. '위안부'는 "Of the Japanese Military, By the Japanese Military, For the Japanese Military," 즉 일본군의, 일본군에 의한, 일본군을 위한 성 노예였습니다. 

'위안부' 충원을 위해서 민간 인신매매 브로커도 이용하고, 군대가 직접 위안소를 운영하거나, 이와 동시에 민간인 포주들에게 위안소를 운영하게 했지만, 위에서 말한 보고서에서도 나오듯이 모든 민간 위안소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다음 날 아침에는 전 일본 경제인 연합회(보국회)의 보르네오 지역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로 다 모이도록 했고, 자기 직원들에게 이 자금의 관리를 맡기고 관리 감독을 한 진술이 들어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소'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말은 괴변입니다. 

장광열 : 일본 정부는 이미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 있었던 강제 노역이나 '위안부' 동원에 대해서 충분히 사과했고, 앞으로는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라고, 한국 등 피해자들의 국가 정부에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미국 정부도 한일 정부의 원만한 합의를 촉구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셀다 : 제가 지난 8월 14일 공개한 탐사 보고서(관련 기사 ☞ 일본 전쟁자금 추적한 네덜란드 기자…'위안부'의 몫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저는 일본 군국주의는 전쟁 자금을 충원하는 역할을 두 개의 은행, 타이완은행과 요쿄하마 정금은행에 맡겼고, 이 두 은행이 일본군대의 해군과 육군의 현지 금고 역할을 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이 은행은 일본군에 자금을 공급하였고, 일본군은 그 자금으로 군수물자를 사들이고, 군인들에게 월급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억눌렸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위안소에 요금을 내고 성행위를 했습니다. 

위안소는 매일 아침 전날의 수입금과 장부 내역을 관리 업체에 내면, 그중 1/3을 위안소 운영업자에게 주었고, 나머지 2/3는 '위안부' 여성 몫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 의하면 2/3이 자기 몫으로 책정되었다는 걸 듣지도 못했고, 일부 '위안부'들이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면 운영업자는 '너희들은 돈 주고 사 온 여자들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 금액을 내게 갚아야 하고, 내가 제공하는 방에서의 숙박비, 식비, 청소비 , 옷과 화장품, 비누값을 제하면 너희들에게 돌아갈 돈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익금의 2/3를 '위안부' 몫으로 쓰도록 했다는 건 눈속임에 불과하고, 실제로 이 금액은 위에 언급한 두 은행의 계좌 하나에 모두 저장되었고, 일본군 수뇌부는 이 돈을 다시 전쟁물자와 군인들의 급여에 썼습니다. 이 구조를 보면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운영으로 자국 군 병사와 장교,군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전매사업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성들을 성노예로 부리면서 67%의 전매사업을 한 것입니다. 

장광열 : 정말 위안부의 실태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인간으로서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의 나치의 만행에 결코 뒤지지 않아요. 작가님이 책을 쓰고 난 후 요즘의 근황은 어떠신가요?

그리셀다 : 이 책은 제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로 책을 썼고, 이 책이 영어와 한국어 일본어 등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네덜란드 밖에서는 폴란드어 번역 출판을 위해서 출판업자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요즘 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식민지 역사에 대한 탐사 활동과 저술 활동, 강연과 인터뷰 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 책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나 유튜브 채널을 위한 짧은 동영상 제작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거대한 전쟁 범죄행위가 심판받지 않고, 가해자들이 활개 치고, 이 범죄의 주역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자랑스럽게 방문하고, 이런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서 피해자 국가들이 입을 닫고 침묵하고 있는 것, 그 결과 피해자들과 역사의 진실을 아는 소수의 시민들만 정의의 실현과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고 있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우리는 2차 대전 기간 중에 독일 나치가 저지는 악행에 대해서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대한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를 학살과 부녀자 강간, 폭력행위, 강제 매춘, 731부대의 끔찍한 생체실험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그저 한일 두 이웃 나라 사이의 분쟁인 것처럼 프레임이 짜여 있는 듯합니다.

한국 여성들이 가장 많이 '위안부'로 동원된 건 맞지만, 일본군의 만행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은 어디서나 부녀자 강간을 일삼았고, 여성을 성 노예로 삼아서 소모품처럼 쓰고, 쓸모없으면 버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요즘을 신냉전 시대라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다시 돌아온 점령자 러시아 군인에게 성적인 학대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언론의 증언입니다. 과연 우리가 일본 군국주의의 '위안부' 동원에 대해서 국제 사회가 엄벌에 처했다면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에도 민족이나 인종, 종교,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적국의 여성을 성 노리개로 삼는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민들이 러시아에 제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위안부' 문제는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라 계속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현상입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몫입니다. 저는 강대국들의 눈으로 보는 역사가 아니라 핍박받고, 수십, 수백 년 동안 억압당한 약소국 사람들의 눈으로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적 이익 때문에 불의에 눈 감는 국가 정부에 맞서서 힘없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고, 영상으로 만들어 대중들이 역사를 바로 보게 하는 것, 이것이 저의 사명이라는 마음으로 계속 탐사 저널리스트로 살고 싶습니다.

장광열 :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그리셀다 : 저는 '위안부'에 대한 주변의 잘못된 인식 속에서도 용감하게 진실을 밝힌 김학순 할머니와 '위안부' 사안을 넘어서 세상의 모든 여성들의 인권을 증진하는 운동에 헌신했던 김복동 할머니, 그리고 자기 일처럼 할머니들을 도왔던 이름 없는 많은 한국 시민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어요. 저는 그분들이 있었기에 그 역사를 알 수 있었고, 그분들의 열정에 힘입어 지금도 저널리스트로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책이 한국어로 출간되고 자라나는 세대들이 감춰진 역사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셀다 몰러만스는 어떤 사람인가? 

1964년 생이고, 1979년부터엔터테인먼트, 예술, 스포츠 및 역사를 전문으로 하는 프리랜서 기자로 일해 왔습니다. 그녀의 인터뷰와 기사는 미국, 브라질,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및 홍콩의 국제 언론에 게재되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Vrije Universiteit 자유대학교에서 미술사 및 고전 고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네덜란드 프로그램 NOS Studio Sport와 다양한 스포츠, 예술 및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의 진행자, 해설자 및 기자로서 TV 과제와 작문 기술을 결합했습니다. 

그리셀다는 광적인 농구, 테니스, 스쿼시 선수이자 수영 선수, 예술 애호가이며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및 포르투갈어에 능통합니다. 그녀는 네덜란드령도(현재의 인도네시아)에서 식민군으로 복무한 아프리카 군인 후손들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인도-아프리카 재단과 부르키나파소의 지역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나바 얌바가 재단의 이사입니다. 

그녀는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인쇄, 오디오, 인터넷 및 TV 콘텐츠를 위한 시사,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및 자동차를 전문으로 하는 크로스미디어 언론사 QNA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서 

Dochters van de Archipel (아치 섬의 딸들) 

Met vlag en rimpel : Erfgenamen van Indie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의 피땀으로 빚어진 인생 역정 이야기)

In het voetspoor van de panter (가나 출신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용병들의 발자취) 

From New York to LA (뉴욕부터 LA까지) 

Zwarte huid, Oranje hart(검은 피부, 오렌지색 심장) 

Opgevangen in andijvielucht(채소 안다이피 냄새가 밴 피난민 수용소) 

De vergeten krijgers (잊혀진 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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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꼴 날 수도... 그럼에도 지구 구할 놀라운 방법

 
지구온난화가 심화하면서 북극곰의 위태로운 생존, 사라지는 북극의 얼음 등을 단골 소재로 북극이 기후위기의 지표로 자주 언급된다. 북극의 얼음이 사라지는 시점을 두고도 이런저런 혼란스러운 소식이 전해진다. 도대체 북극 얼음이 언제 다 녹는다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해 북극 얼음의 변화가 인간과 동물 그리고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되돌릴 수는 없는지 등 지구 극지방의 얼음과 지구온난화 사이의 상관관계 등을 6회에 걸쳐 시리즈로 준비했다.[기자말]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법으로 지구 밖에 거울을 설치해서 태양광을 반사하면 어떨까. 만화책에나 나올 법한 이런 생각이 하버드 대학교 프랭크 코이치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진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연구진이 구상한 SCoPEx(Stratospheric Controlled Perturbation Experiment) 프로젝트는 성층권에 탄산칼슘이나 황산염을 분사해 태양 복사 에너지를 반사하는 '우주 거울' 층을 만드는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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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oPEx 모델 상상도
ⓒ www.keutsc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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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후원하는 이 프로젝트는[2] 풍선 형태의 열기구를 지상 약 20km 대기 중으로 들어올려 100g에서 2kg 사이의 에어로졸을 방출하여 가로세로가 약 1km x 100m인 기단을 생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만들어진 기단은 태양광의 복사 에너지를 반사하는 '우주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3].

2019년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과거 200만 년 중 최대였고 지구 표면 온도 상승세는 최근 2000년 중 가장 가팔랐다[4]. 지구 차원의 이런 온난화 문제를 광대한 범위에서 획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데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 대표적이다. 기후공학(Climate engineering)이라고도 하는 지구공학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구 자연 시스템에 인류가 의도적이고 대규모로 개입하는 것을 일컫는다[5]. 지구공학은 크게 태양복사관리(SRM, Solar Radiation Management)와 온실가스제거(GGR, Greenhouse Gas Removal의 두 범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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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실 효과
ⓒ www.nrd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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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복사관리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디어는 코이치 교수 팀의 SCoPEx와 같은 성층권 에어로졸 분사이다. 연구팀은 지난해 6월 스웨덴우주국이 운영하는 스웨덴 북쪽 이스레인지 우주센터에서 에어로졸을 실은 기구를 날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스웨덴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 등의 반대로 시험 비행이 취소된 상태다. 생태학자들은 섣부른 지구온난화 해법이 영화 <설국열차>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지구냉각을 야기할 우려와 함께 지구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하늘에 특정 물질을 분사해 지구를 식힌다는 이른바 '피나투보 효과'는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면서 대기로 분사된 황산염 에어로졸이 온도를 끌어내린 것에 착안했다. 피나투보 화산의 분화로 생긴 성층권의 에어로졸이 15개월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을 0.6°C 하강하게 만들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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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나부토 화산의 분출
ⓒ pubs.usgs.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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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투보 효과'를 적용한 대표적인 프로젝트 SCoPEx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잠정 보류된 상태이지만 지구온난화 추세가 심각한 만큼 언제든지 재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온실가스를 고통스럽게 줄이는 대신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를 줄인다는 거대 프로젝트여서 논란과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다.

빙하를 보호할 거대한 장벽
올해 파키스탄에 '스테로이드 몬순'으로 명명된 폭우가 내리면서 국토의 4분 1~ 3분1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스테로이드 몬순'을 만들어낸 지구온난화는 해수면 상승까지 일으켜 파키스탄과 같은 저지대 국가를 협공하게 된다. 21세기 중반에 지구 표면 평균기온이 2°C 상승하면 해수면이 평균 20cm 정도 상승하고 2100년까지는 1m가량 높아질 것이다[7].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 빙하는 이번 세기 해수면 상승에 다른 어떤 요인보다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분석된다[8]. 특히 '종말의 빙하'란 별명이 있는 남극의 스웨이츠 빙하는 미래 해수면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되며 현재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9]. 극지방 바다에서는 소금 농도가 더 진한 따뜻한 해수가 깊은 곳에 흐르고 더 차갑고 담수에 가까운 물은 위쪽에 있다. 이 따뜻한 물이 빙하의 밑부분을 공략해 빙하가 불안정해진다[10].

과학자들은 스웨이츠 빙하를 따뜻한 바닷물로부터 보호하는 거대한 수중 장벽 건설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바위와 모래로 된 장벽은 온난한 해수가 빙하를 침식하는 것을 막아 빙하의 지반을 보호하게 된다. 용융 속도 또한 떨어진다.
 
큰사진보기해저 인공 장벽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안정된 빙하에서는 해저에 있는 자연 장벽이 따뜻한 물로부터 빙상을 차단한다. 2. 역방향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따뜻한 물이 빙붕을 깎아내려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다. 3. 따뜻한 물을 차단하기 위한 인공 장벽을 건설하면 얼음이 녹는 속도가 줄어들어 빙붕이 두꺼워지고 바다까지 길게 이어질 시간을 벌어준다. 4. 만약 빙붕이 길게 이어져 인공 장벽 위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워진다면 빙하는 다시 질량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  해저 인공 장벽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안정된 빙하에서는 해저에 있는 자연 장벽이 따뜻한 물로부터 빙상을 차단한다. 2. 역방향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따뜻한 물이 빙붕을 깎아내려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다. 3. 따뜻한 물을 차단하기 위한 인공 장벽을 건설하면 얼음이 녹는 속도가 줄어들어 빙붕이 두꺼워지고 바다까지 길게 이어질 시간을 벌어준다. 4. 만약 빙붕이 길게 이어져 인공 장벽 위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워진다면 빙하는 다시 질량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 European Geosciences Un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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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밑에 건설될 장벽은 얼음의 엄청난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하며 정확한 위치에 배치되어야 한다. 벽의 크기는 빙하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스웨이츠 빙하와 같이 큰 빙하는 가로세로 50km x 300m가량의 장벽이 필요하다. 비교적 작은 규모인 그린란드 서부의 야콥스하운 빙하엔 가로세로 약 5km x 100m의 벽으로 충분하다[11]. 장벽의 재료는 그린란드의 대륙붕에서 확보할 계획이다[12].

스웨이츠 빙하의 인공 장벽의 효과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수중 장벽은 따뜻한 물이 빙붕에 도달하는 것을 약 70% 정도 차단했다[13]. 이에 따라 스웨이츠 빙하는 400세기 더 유지되며 서남극 빙상의 붕괴를 약 30%의 확률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14].

인공 장벽 건설 계획은 이처럼 지연이지 예방은 아니다. 잠깐의 시간을 벌어줄 뿐 다른 지구공학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노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따뜻해진 바다를 막아도 결국 따뜻한 대기가 빙하를 녹일 것이기 때문이다. 해양 생태계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가 검증되지도 않았다[15].

앞으로 기후변화의 10년은 메탄에 달렸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메탄의 효과가 과소평가됐다는 게 중론이다.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 대기 중에 남아있기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즉각적으로 줄여도 21세기 후반까지는 기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메탄이 분해되는 데는 10년 정도가 걸린다. 당장 메탄 배출량을 줄이면 단기적으로 온실가스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16].

메탄은 자체로 강력한 온실가스인 동시에 지상 오존 형성에 주된 원인이다. 메탄의 지구온난화지수(GWP)는 21로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 대비 21배 온난화 효과가 있다. 오존 대기 오염은 호흡기 질환을 유발해 연간 100만 명의 조기 사망과 관련한다[17]. 또한 향후 20년간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80배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기후 및 청정대기연합(CCAC)'은 최근 농업 관련 메탄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전 세계 메탄 배출량의 절반 이상이 주로 화석연료, 폐기물, 농업 등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한다. 인간 활동에서 비롯한 메탄 배출량에서 농업이 약 40%를 차지한다. 거름과 장내 발효로 인한 가축 배출량이 약 32%이며 쌀 재배는 8%이다[18].

UNEP 식량 시스템 및 농업 고문 제임스 로맥스는 농업 재배와 가축 생산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재고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고 육식을 줄이며 대체 단백질원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업 부문의 메탄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건강하고 생산적인 목축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동물에게 더 영양가 있는 사료를 제공해서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효과적으로 생산해야 한다[19].

무엇보다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2022년 5월 네이처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향후 30년 내에 세계 소고기 소비량의 20%만 대체육으로 전환해도 삼림 벌채와 관련한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소고기 농장은 세계적으로 삼림 벌채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며 소가 메탄의 주요 배출원이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2050년까지 인구, 소득 및 수요의 증가를 고려한 수학적 모델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지금처럼 소고기 소비의 세계적인 증가가 이어진다면 세계적인 연간 삼림 벌채 비율이 두 배로 증가한다. 2050년까지 전 세계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의 20%를 균류 단백질로 만든 대체육으로 전환하면 시나리오에 비해 메탄 배출량을 11%까지 줄이고 연간 삼림 벌채와 이산화탄소 배출도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다. 1인당 소비되는 소고기의 80%를 대체육으로 바꾸면 메탄은 50% 가까이, 이산화탄소는 85% 가까이 줄어든다[20].

대체육뿐 아니라 대체 사료를 이용하는 것이 메탄 배출량을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5개월 동안 소의 사료에 소량의 해초를 넣었을 때 소가 대기 중으로 내뿜는 메탄가스가 82%까지 줄었다[21].

북극곰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 이산화탄소

국제북극곰협회(Polar Bears International)는 북극곰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의 증가를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22].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CCUS) 기술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전 세계 CCUS 시설은 매년 이산화탄소 40mt(Metric Ton) 이상을 포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23].

직접공기포집(DAC)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바로 잡아채는 기술이다.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파이프라인, 선박 등에 의해 압축 및 운송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수소와 결합되어 식품 가공이나 합성 연료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깊은 누층에 주입하여 사실상 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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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Algae의 조류 농장 사진
ⓒ 사이트 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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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농장(algae farm)은 DAC의 유망한 사례로 꼽힌다. 대표적인 조류에는 미세 조류인 식물 플랑크톤과 대형 조류인 해초가 있다[25]. 글로벌 조류 이노베이션(Global Algae Innovation)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쉔던에 약 20만 평의 조류 농장을 지을 예정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광합성을 하는 조류의 특성을 이용해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조류에 고정시킨다[26]. 조류 농장에서 수확된 조류는 기름과 단백질로 분리되어 고분자 제품, 연료, 음식, 사료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고분자 제품은 이산화탄소를 수백 년 격리할 수 있다[27]. 이산화탄소 직접 포집 외에 조류는 이처럼 사료와 바이오 연료로 전환돼 추가로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석유 및 가스의 매장층에 저장하는 석유회수증진(EOR) 기술은 화석연료 생산과 관련되어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지만 이미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28].

오늘날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배럴당 300~600kg의 이산화탄소가 석유회수증진 과정에서 주입된다. 1배럴의 석유가 연소할 때 약 400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석유 생산, 가공 및 운송 과정에서 평균 약 100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것을 고려하면, 석유 생산 과정 전반에서 이론상 넷 제로 또는 탄소 역배출을 달성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29].

이산화탄소를 다양한 제품 안에 넣어 격리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주입하거나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든 건축자재는 이산화탄소를 영구적으로 격리시킴으로써 제거한다. 콘크리트 제조 과정에 이산화탄소가 이용되면 시멘트 함량을 약 5% 줄일 수 있어 경제적인 이점이 있고 더 강화한 콘크리트를 얻을 수 있다[30].

지구공학이나 CCUS가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기대를 걸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우리 인류 문제의 근본 원인이 탐욕인 것을 떠올리면 문명 구조의 근본적 개조 없이는 어떤 찬란한 기술도 미봉책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직관적 판단이 앞선다.   

글: 안치용 ESG코리아 철학대표, 정민주·안신우·소진영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관련기사]
[지구온난화와 북극①] 2050년 전에 '얼음 없는 북극' 현실화... 점점 빨라진다http://omn.kr/208pe
[지구온난화와 북극②] 기상학자들 "무섭다"... 머잖아 지도에서 사라질 나라들http://omn.kr/20a8k
[지구온난화와 북극③] 펭귄 떼죽음... '종말의 빙하' 붕괴 속도에 과학자들 탄식http://omn.kr/20c70
[지구온난화와 북극④] 불쌍한 북극곰들... 이렇게 죽어간다 http://omn.kr/20etz
[지구온난화와 북극⑤] 언 땅이 녹는다... 건물 무너지는 러시아 도시들
http://omn.kr/20gv9

덧붙이는 글 | 출처

[1] https://www.keutschgroup.com/scopex

[2] https://www.forbes.com/sites/arielcohen/2021/01/11/bill-gates-backed-climate-solution-gains-traction-but-concerns-linger/?sh=632966f3793b

[3] https://www.forbes.com/sites/arielcohen/2021/01/11/bill-gates-backed-climate-solution-gains-traction-but-concerns-linger/?sh=632966f3793b
 

[4] IPCC 6차 보고서 A.2.2, http://www.climate.go.kr/home/cc_data/2021/IPCC_Report.pdf

[5] http://www.geoengineering.ox.ac.uk/www.geoengineering.ox.ac.uk/

[6] https://earthobservatory.nasa.gov/images/1510/global-effects-of-mount-pinatubo

[7] John C. Moore외 3명. (2018.03.14). “Geoengineer polar glaciers to slow sea-level rise”. Nature.

[8] John C. Moore외 3명. (2018.03.14). “Geoengineer polar glaciers to slow sea-level rise”. Nature.

[9] Charles Corbett. (2019.12.06). “Glacial Geoengineering and Law of Antarctica”. Legal Planet.

[10] David Cox. (2018. 03.29.) “Two audacious plans for saving the world’s ice sheets”. Mach.

[11] David Cox. (2018. 03.29.) “Two audacious plans for saving the world’s ice sheets”. Mach.

[12] John C. Moore외 3명. (2018.03.14). “Geoengineer polar glaciers to slow sea-level rise”. Nature.

[13] Fiona Harvey. (2018.09.20.). “Build walls on seafloor to stop glaciers melting, scientists say”. The Guardian.

[14] David Cox. (2018. 03.29.) “Two audacious plans for saving the world’s ice sheets”. Mach.

[15] John C. Moore외 3명. (2018.03.14). “Geoengineer polar glaciers to slow sea-level rise”. Nature.
Charles Corbett. (2019.12.06). “Glacial Geoengineering and Law of Antarctica”. Legal Planet.

[16] UNEP. (2021.08.20.) “Methane emissions are driving climate change. Here’s how to reduce them”

[17] https://www.ccacoalition.org/en/slcps/tropospheric-ozone “2022년 8월 25일 확인”

[18] CCAC, UNEP. (2021). [Global Methane Assessment (full report)] 9쪽.

[19] UNEP. (2021.08.20.) “Methane emissions are driving climate change. Here’s how to reduce them”

[20] Giorgia Guglielmi. (2022.05.04). “Eating one-fifth less beef could halve deforestation”. Nature.

[21] Oliver Milman. (2021.03.18.) “Feeding cows seaweed could cut their methane emissions by 82%, scientists say”. The Guardian.

[22] Mrinalini Erkenswick Wasta. (2014.10.08). “The only solution for polar bears: ‘stop the rise in CO2 and other greenhouse gases”. Mongbay.

[23] https://www.iea.org/reports/about-ccus “2022년 8월 25일 확인”

[24] https://www.iea.org/reports/direct-air-capture “2022년 8월 25일 확인”

[25] Kris Walker. (2013.11.06.) “What are Algae Farms?”. AZO Cleantech.

[26] https://www.globalgae.com/climate “2022년 8월 26일 확인”

[27] https://www.globalgae.com/copy-of-join-us

[28]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2021.). [CCUS 심층 투자 분석 보고서]. 39p.

[29] Christophe McGlade. (2019.04.11.). “Can CO2-EOR really provide carbon-negative oil?”. IEA.

[30] Zoe Corbyn. (2021.12.05.). “From pollutant to product: the companies making stuff from CO2”.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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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북, 핵사용 기도하면 한·미의 압도적 대응 직면”

‘핵무력법 채택’ 이유는 “한반도 정세 책임 한미에 전가 의도” 주장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2.09.13 11:38
  •  
  •  수정 2022.09.13 12:31
  •  
  •  댓글 0
 
문홍식 국방부 대변인 직무대리가 13일 오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갈무리-e브리핑]
문홍식 국방부 대변인 직무대리가 13일 오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갈무리-e브리핑]

국방부가 13일 “만일 북한이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한미동맹의 압도적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북한 정권은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선제공격을 명시한 북한의 핵무력법 채택’ 관련 질문을 받은 문홍식 대변인 직무대리는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 △한국형 3축 체계의 확충과 전략사령부 창설 등 “북핵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북한이 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강 대 강’ 대치가 오래 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지난 7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제안한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사안을 논의할 남북 당국간 회담’에 대해 북한은 13일까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오는 16일(현지시각)에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외교·국방차관들이 참석하는 ‘제3차 확장억제 전략협의체 회의’가 열린다.  

이달 말에는 미국 7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이 부산항에 입항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문홍식 직무대리는 “미군 전력의 한반도 전개는 한미 간의 긴밀한 협의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전개 시점에 대해서는 현재 답변 드릴만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력법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 문홍식 직무대리는 “자신들이 핵 보유국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한편, 현 한반도 정세의 책임을 한미에 전가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미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 △한국형 3축 타격체계 구축 등을 거론하면서 “적들의 책동으로 긴장 격화된 정세는 오히려 우리에게 군사력을 더 빨리 비약시킬 수 있는 훌륭한 조건과 환경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자위력 강화의 정당성과 그 우선적 강화의 불가피한 명분을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홍식 직무대리는 “북한이 발표한 법제화의 주요 내용들은 한미 양국이 긴밀한 공조를 통해 이미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던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며, 북한이 취한 이번 조치는 한미동맹의 억제 및 대응 능력을 더욱 강화시키게 되고,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초래하며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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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에미상 6관왕에도 웃을 수 없는 창작자들

  • 기자명 윤수현 기자 
  •  
  •  입력 2022.09.14 07:40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OTT 막대한 수익 얻지만 창작자 보상은 미진
동아일보 “창작자 보상받을 수 있도록 저작권 제도 정비해야”
국무조정실 태양광 사업 문제 적발…“신재생, 그래도 가야 할 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방송계 아카데미’로 불리는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6관왕을 차지했다. 비영어권 드라마가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콘텐츠 창작자들은 오징어 게임의 이례적인 성공에도 웃을 수 없는 처지다. OTT가 콘텐츠 IP(지식재산권)와 판권을 독점하고 있어 수익 불균형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침신문들은 14일 1면 머리기사에 오징어 게임 수상 소식을 전하고, 사설에서 창작자 권리 강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를 당부했다.

▲14일자 아침신문들 1면.
▲14일자 아침신문들 1면.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1조 원에 가까운 수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작사가 얻는 이익은 한계가 있다. 세계일보는 2면 ‘‘넷플’ 공개되자 신기록 행진…거대 OTT 수익독식 해결과제’ 기사에서 “국내 자본이 투자를 꺼렸던 오징어 게임에 약 3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넷플릭스가 1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까지 누렸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OTT 수익 분배는 새로운 이슈가 됐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오겜’ 6관왕, 74년 에미상 역사 바꿔 썼다’에서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글로벌 플랫폼이 아니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좁은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는 이야기꾼들이 제2, 제3의 오징어 게임으로 문화 영토를 넓혀 나가길 기대한다.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저작권 제도를 정비하고 불법 콘텐츠 유통을 근절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사설 ‘에미상 역사 새로 쓴 ‘오징어 게임’ 수상 쾌거’에서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1조 원 가까운 수익을 냈지만 지식재산권(IP)이 없는 한국의 제작사는 수십억 원밖에 벌지 못했다. 국내 콘텐츠를 보호하고 세계 진출을 지원할 수 있는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라고 했다.

▲14일자 중앙일보 사설.
▲14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도 사설 ‘에미상 6관왕으로 K콘텐트 지평 넓힌 ‘오징어 게임’’에서 “K콘텐트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방안 마련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며 “특히 합리적인 창작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창작자가 흥행 수익을 나눠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오징어 게임처럼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해도 소정의 개런티에 만족해야 했다”며 “최근 황동혁 감독을 비롯해 강제규·윤제균 등 유명 감독들이 저작권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법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무조정실 태양광 사업 점검에 한국일보 “그래도 가야할 길

국무조정실이 13일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점검해 2616억 원 규모의 부당 대출·보조금 부당 집행을 적발한 것과 관련해 비판과 우려가 공존한다. 조선일보는 1면 ‘12개 시·군·구만 조사했는데…태양광 예산 2600억 줄줄 새’ 기사에서 “정부가 조사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한 만큼 ‘태양광 비리’로 인한 예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사설 ‘‘보는 사람이 임자’였던 지난 5년의 태양광 정부 지원금’에서 “문제는 지난 정부가 체계적인 전략 없이 탈원전의 대안이라며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인 것”이라며 “감시가 부족하고 점검은 형식적이니 아무나 돈을 받아다 쓰면 되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고 지적했다.

▲14일자 조선일보, 한국일보 사설.
▲14일자 조선일보,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사설 ‘졸속 확인된 文정부 신재생, 그래도 가야 할 길’에서 “졸속 신재생 사업은 철저히 단속하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꾸준히 높여가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정부는 부당 지급된 보조금과 대출에 대해 철저히 환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우선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 속출로 발생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 자국의 앞선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무기로 무역장벽을 높이려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세’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일보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전력 산하 발전자회사들이 추진하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무더기로 축소 철회하는 움직임은 가까운 장래에 경제발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겨레는 2면 ‘“문 정부때 태양광 등 신재생사업 과정 2616억 규모 대출·보조금 부당 집행”’ 기사에서 재생에너지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정우식 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는 노력은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재생에너지 산업과 시장을 위축시키면 아르이(RE)100 대응, 수출 경쟁력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 예타 요건 강화…“SOC와 복지 불공정 논란 생길 것

정부는 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제적·정책적 타당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예산 낭비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복지사업 예타는 엄격해진다. 정부는 복지사업 시작 전 ‘시범사업 평가’를 실시하고,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복지사업의 평가 결과를 검증해 예타 착수 여부를 결정한다. 사회간접자본(SOC) 예타 기준은 사업비 500억 원에서 1천억 원으로 상향된다.

▲14일자 한겨레 8면.
▲14일자 한겨레 8면.

한겨레는 8면 ‘예타 문턱, SOC엔 낮추고 복지엔 높인다’ 기사에서 “조사 기준을 현실화하면서도 운용은 엄격히 해 세금 낭비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나, 자칫 자의적으로 운용될 경우 에스오시와 복지사업 간 불공정 논란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비수도권 지역신문들은 예타 요건 강화를 반대했다. 지역균형발전 사업 예타 면제 요건은 강화될 전망이다. 국제신문은 3면 ‘지역균형발전사업, 예타면제 더 어려워진다’ 기사에서 “비수도권 지자체가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추진하려는 사업 중 시급히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는 까다로운 기준 적용으로 예타 면제를 받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고 했다.

▲14일자 강원일보 1면.
▲14일자 강원일보 1면.

강원일보는 1면 ‘예타 면제요건 강화에 강원 SOC 급제동’ 기사에서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현실화할 경우 앞으로 예타를 앞두고 있는 강원도 내 주요 SOC 사업들은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예타 조사 자체가 투자비용 대비 효과를 분석하는 제도로, 산악지대 등 지형적인 제약이 많은 강원도에서는 사업비가 많이 들어가 경제성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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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원 벌어 절반 넘게 갚는데도…‘빚의 족쇄’ 찬 청년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9/13 11:36
  • 수정일
    2022/09/13 11: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22-09-13 05:00수정 :2022-09-13 11:01

[저당잡힌 미래, 청년의 빚] 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기자가 직접 대부업체에 취업
대출 연체 상환 추심업무 맡아
독촉전화 건 채무자 절반 20·30
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청년 부채’는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를 비롯한 ‘도덕적 해이’부터 자산도 직업도 불안정한 ‘세대의 비극’까지 청년 부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사실도 있다. 빚이 임계에 달한 2030의 비율이 11.3%로 전 세대 평균(6.3%)의 두배에 가깝다는 통계, 그리고 오늘의 불안은 내일 역시 위태롭게 한다는 경험칙이다.
시각이 갈리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사안을 제대로 살필 필요가 있다. 청년 부채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겨레> 기자가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에서 3주일 동안 일했다. 또 저마다 다른 이유로 빚을 진 채 살아가는 16명의 청년을 심층 인터뷰했다. 청년 부채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20~30대에 진 빚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아온 중장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겨레>는 청년 부채 문제를 해부한 ‘저당 잡힌 미래, 청년의 빚’을 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② 연체의 늪에 빠진 이유
③ 청년빚의 두 얼굴
④ 대출이 제일 쉬웠어요

 

 “일부러 전화 안 받은 게 아니에요. 휴대폰 요금을 못 내니 정지가 되어서요…. 월급날 돈 받으면 정지 풀어서 바로 연락드릴게요.”

 

유난히 작은 목소리로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는 34살 ㄱ씨는 대부업체의 오랜 고객이다. 지금 이 순간 그를 주눅 들게 하고 있는 빚은 고작 100만원. 그것도 8년 전인 2014년에 빌린 돈이다. 당시 ㄱ씨의 나이는 26살이었다. 8년 동안 낸 이자는 225만원으로, 이미 원금의 두배를 넘겼다. 하지만 8년 동안 갚은 원금은 3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성실한 채무자였던 그의 연체가 잦아진 것은 2018년 상반기 이후부터였다. 그의 직장 기록에 드문드문 공백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과 같다. 일자리가 위태로웠던 와중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구직난을 겪어온 것으로 보인다. “같이 사는 친구 번호를 알려드릴게요. 전화가 안 되면 그쪽으로 걸어주세요.” 어렵게 구했을 직장에서 추심 전화를 받은 그의 황급한 부탁이 이어졌다. 1만6천원 남짓의 한달 이자를 제때 구하지 못한 ㄱ씨는 휴대전화 착신 정지를 뚫고 직장으로 걸려온 추심 전화에 그렇게 고개를 숙였다.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는 가진 재산이나 신용이 없을 때, 또는 대출이 너무 많아 다른 곳에서는 돈을 빌리기 어려울 때 마지막으로 찾는 제도권 금융기관이다. 그다음은 사채나 일수나 불법 사금융만 남는다. 그렇기에 대부업체에서 빚을 시작하는 이는 드물다. ㄱ씨의 다른 채무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소액의 이자마저 갚지 못한 것은 다른 곳에서 빌린 돈 때문으로 짐작된다. 대부업체를 찾은 대부분의 채무자가 그랬다.
 
지난 7월 기자는 3주 동안 서울의 한 대부업체에서 상담사로 일했다. 맡은 일은 약정일(이자 및 원금 납입일) 직전이나 약정일, 연체가 시작된 날에 매일 300명 정도에게 전화를 걸어 이자나 원금을 갚으라고 말하는 추심 업무였다. 그중 절반인 150여명은 20~30대 청년이었다. 명단은 날마다 바뀌지만 청년 비율은 변함없었다. 전화를 받는 경우는 10% 남짓이었고 청년들은 그 비율이 더 적었다. 그렇게 수화기 너머로 20~30대 빚진 청년 100여명을 만났다. 저마다 빌린 액수와 기간, 연체 횟수는 달랐지만 힘없고 위축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만은 같았다.
 
대출광고 전단지. 한겨레 자료사진
대출광고 전단지. 한겨레 자료사진
 500만원 때문에 채무 불이행자 되는 청년들

 

또 다른 공통점은 ㄱ씨처럼 소액의 빚에 오랫동안 시달리는 것이었다. 애초 신용이나 담보가 튼튼하지 않으니 많은 돈을 빌릴 수도 없었다. 간신히 대출 승인이 나더라도 최대 20%의 대부업체 이자를 내는 데 허덕이느라 원금을 갚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출 만기가 다가왔다는 안내 전화를 할 때 원금을 갚겠다고 답변한 청년 고객은 단 한명도 없었다. “만기 연장하고 이번 달에도 이자만 내도 되죠?”라고 모두 되물었다. 빚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 듯했다. 만기 연장은 수월했다. 직장과 자택 주소에 변동이 없는지 확인한 뒤 온라인 계약서만 받으면 된다. 연락을 받지 않을 경우엔 자동으로 연장되기도 한다. 그렇게 쉽게 채무자의 신분 역시 만기 없이 연장됐다.

 

자산이 없고 직업이 불안정한 청년에겐 몇백만원의 대출도 풀기 어려운 족쇄였다. 50만원 이상을 3개월 넘게 연체하는 등 대출 상환을 제때 하지 못하면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되는데, 20대 금융채무 불이행자 중 41.8%는 500만원 이하의 대출금 때문에 각종 금융 거래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30대는 그 비율이 29.4%이지만, 500만원 이하 대출로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되는 비율은 청년층이 전 세대(평균 25.5%)에서 가장 높다.(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 한국신용정보원) 그만큼 적은 대출금의 적은 이자도 갚지 못하는 청년 채무자가 많다는 의미다.

 

연체 독촉했던 청년 90%는 다중채무자

 

적은 돈을 10년 가까이 갚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중채무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30대 초반의 ㄴ씨는 10년 전인 2012년에 500만원을 빌린 뒤 원금은 한푼도 갚지 못한 채 이자만 1천만원 넘게 냈다. 다른 곳에서 받은 대출까지 포함하면 대출 원금은 2억원이 넘는다. 연체가 잦았던 그는 그날도 연체 안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3주간 통화한 청년들의 90% 이상은 ㄴ씨와 같은 다중채무자였다.

 

다중채무의 악순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30대 초반이던 2016년 4건의 채무가 있었던 ㄷ씨는 6년이 지난 지금 대출이 28건으로 늘었다. 빚이 늘어나도 청년들은 계속 추가 대출을 시도한다. 20대 초반에 2500만원의 대출을 안은 채 대부업체 문을 두드렸던 ㄹ씨는 3년 만에 5500만원의 빚을 떠안았다. ㄹ씨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대부업체는 그의 추가 대출 신청을 11차례나 거절했다. 대출 신청이 한번 거절되면 두 달 뒤에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ㄹ씨는 2년을 넘게 추가 대출의 문을 두드려온 것이다.

 

약정일 안내 전화를 걸었던 20~30대 청년 30명을 무작위로 뽑아 살펴보니 이들은 평균적으로 150만~200만원 정도의 월소득을 거뒀고 그 돈의 52%를 빚을 갚는 데 썼다. 또 10건 가까운 채무에 얽혀 있었다. 빚을 갚는 데 쓰고 남은 돈으로는 생계마저 꾸려가기 힘든 상황이다. 많게는 월급의 80% 혹은 100%를 이자 상환에 써야 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이들은 이미 몇천만원, 심하게는 1억원대의 빚을 갖고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으로 대부업체를 찾았다. “이 정도면 돌려 막기도 쉽지 않고, 빚에서 탈출하기는 불가능한 수준이지. 좋은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같이 채권을 살펴보던 한 직원이 말했다.

 

청년층 다중채무 문제의 심각성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2017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4년여 동안 대부업을 포함한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한 다중채무액 증가율은 전 연령에선 22.1%이지만 청년층(39살 이하)에서는 그 수치가 32.9%로 치솟았다.(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 금융감독원) 그사이 늘어난 청년층의 다중채무액만 39조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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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추심이 필요했던 이유

 

대부업체 직원은 독해져야 한다. 한명의 다중채무자에게서 이자를 받아내기 위해 여러 금융기관과 대부업체가 달려들어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일한 대부업체는 약정일이 되기 이틀 전부터 안내 전화를 돌렸다. 업무 시작 첫날, 아직 연체도 안 했는데 독촉하는 것이 미안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더니 팀장이 바로 호출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얕보이면 안 돼요. 여러곳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은, 먼저 갚을 채권자를 태도에 따라 가릴 수도 있어요.” 꾸지람을 듣고 난 뒤 같은 팀 직원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가 팀장 편을 들었다. “기싸움을 잘하는 직원이 성과가 좋긴 하더라. 채무자들 입장에서 ‘이런 전화 받느니 갚고 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현재 대부업법은 과거보다 추심에 대해 훨씬 엄격해졌다. 고객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해 사생활이나 업무의 평온을 해칠 경우 처벌을 받는다. 고함이나 폭언은 내규에서 엄격하게 제한된다. 이 때문에 합법과 기싸움의 경계를 오가며 빚을 독촉하는 게 대부업체 상담원의 기술이다. 채무자들에게 돈이 생긴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날 채권자가 되기 위한 방법은 ‘부지런한 독촉’뿐이다.

 

실적이 저조해 단체로 질책을 받은 옆팀은 하루 종일 언성을 높였다. “이번달은 그래서 언제 주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때까지는 기다리기 곤란할 것 같은데요.” “매번 이렇게 늦으시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저희도 바쁜데 고객님은 매번 핑계만 대시고. 이유도 제대로 대답 안 하시잖아요.” 냉랭한 어조가 뿜어내는 긴장감은 채무자가 아닌 직원들까지 숨을 죽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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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독촉 전화에 대한 대응도 세대별로 갈렸다. 중장년층에선 ‘배 째라’ 식으로 나오는 이른바 ‘상담 유의’ 고객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청년층은 전화를 받지 않거나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집세가 없어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어요.” “월급만으로 이자를 갚기 어려워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티브이(TV) 수신료 2500원이 이중인출되어 이자를 갚을 통장 잔액이 남아 있지 않아요.” 말을 잇는 침묵에는 미안함과 민망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빚의 굴레에서 빠져나가는 길이 막연하기에 청년들은 그저 죄송할 뿐이다. 지루한 줄다리기 같은 통화음 끝에 전화를 받은 청년들이 무턱대고 말했다. “너무 죄송해요. 꼭 넣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월급이 아직 안 들어왔는데 어쩌죠. 내일까지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간곡히 부탁할 때는 말문이 막혔다.

 

약정일 이전에 안내 전화를 할 때는 “아직 돈 내는 날도 아닌데 전화를 하냐”고 투덜댔던 한 청년은 연체가 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통화에서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얼굴도 모르는 상담원에게 간절하게 죄송해야 할 정도로 그들 수중에는 몇만원이 없었다. 그 몇만원을 약정일을 이틀 넘도록 납입하지 못하면 이들의 추심은 다른 팀으로 넘겨진다.

 

맥없는 목소리들을 상대하다 덩달아 울적해져 전화를 끊을 때면 교육 기간에 상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마 화내고 욕하는 고객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반응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상담원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처지와 인생에 화가 나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추심 전화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고함이 아니었다. 얕은 한숨 소리였다. 끈질기게 전화를 시도하는 상담원 때문인지 혹은 이번에도 제때 입금을 하지 못한 자신을 향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방향도 없이 들릴 것이란 기대마저 없는 한숨. 채무의 덫에서 헤어날 수 없는 청년들은 화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지쳐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취재했나?

<한겨레> 기자는 법률 검토를 받아 대부업체에 취업해 1주일 교육을 거쳐 2주일간 추심 업무를 맡았다. 대부업체 취업을 취재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청년 부채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대출 시장에서 청년 채무자의 처지를 살펴보는 것이 당사자 취재와는 다른 구조적 측면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대부업체에서 받은 임금은 청년 부채 해결을 돕는 단체에 전액 후원한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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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X녹색전환연구소] 기후위기 시대, 불평등에 잠긴 집

9.24 기후정의행동 특집② 쏟아지는 폭우 속 증발하는 시민들의 주거권

 

특별기고를 하며

녹색전환연구소는 9.24 기후정의행동을 맞아 정부와 지역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 분석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살펴보았다. 기후위기 대응이 실종된 한국사회에서 시민이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9.24 기후정의행동에 함께 해야하는 절박한 이유를 제안한다.

➀ 대한민국은 공항 활주로에 침몰할 위기
 기후위기 시대, 불평등에 잠긴 집
➂ 김상협 위원장이 두 번 실패하면 안 되는 이유
➃ 누가 만드는 정의로운 전환인가?

 

 지난 8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졌다. 더 꺼질 것도 없는 낮은 땅에서부터 사회적 안전망은 무너져 내렸다. 며칠간의 폭우로 인해 무려 13명이 사망했고, 6명의 실종자, 154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정부에서 현재(22.9.10.)까지 파악한 규모만 이정도이다. 도시엔 큰 인명피해를 냈고, 지역 농가들은 막대한 재산손실을 입었다. 명절을 한 달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더욱 처참했다.


이번 기록적 폭우는 서울에서 지하와 반지하 같은 적정하지 않은 주거공간에 사는 사람에게 집중적인 피해를 입혔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주거문제와 더불어 장애, 빈곤과 같은 다층적인 문제를 함께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기후위기, 결론적으로 불평등 문제다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던 신림동에선, 반지하 집에 빗물이 들이닥치자 경찰에 신고했지만 구조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설상가상 주택 앞에 있던 싱크홀에서 물이 솟구쳐, 유일한 탈출구였던 반쪽짜리 창문으론 발달장애인 40대 여성 A씨와, 그의 여동생, 여동생의 딸은 나갈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이들은 발달장애 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 이기도 했다. 분명히 주거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 주거급여로 마련한 집에서 국가의 구조를 기다리다 사망했다.
 
폭우가 쏟아지면서 지난 서울 신림동 한 주택 반지하에 살고 있던 발달장애인 40대 여성 A씨와 그의 여동생 B씨, B씨의 1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현장 신림동 반지하 주택 모습. 2022.08.09 ⓒ민중의소리

한때, 반지하와 옥탑방은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사실상 이제 반지하나 옥탑방 같은 주거문제는 더 이상 ‘청년’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0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연령대별 지하 거주비율은 29세 이하가 2.1%로 가장 높다고 나타났지만 60대가 1.8%, 50대가 1.9%로 중장년층 역시 지하 또는 반지하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았다. 즉 이제 더 이상 반지하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은 아닌 셈이다. 2012년 건축법 개정을 통해 상습침수 구역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시 건축제한을 하는 규정도 생겼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와 중에 코로나 이후 노숙인은 더욱 늘어가고 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매해 100~340명의 노숙인이 줄어들었다고 밝혀왔지만, 2020년 코로나 이후 반등하는 추세다. 증가한 노숙인의 절반은 ‘거리노숙인’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서울시의 주거권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로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잦아지는 재난

게다가 연이어 태풍 ‘힌남노’ 소식이 더해지며 한반도는 더 바짝 긴장했다. 이미 일본을 휩쓴 태풍 힌남노의 위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전국민이 밤잠을 설쳤다. 지난 폭우 피해에 대한 보상과 회복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모든 이들이 태풍의 진로를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포항에선 지하주차장에 갇혀 실종·사망하는 사고가 났고, 건물 한 동 전체가 빗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일이 일어났다.

이렇듯 살인적인 폭우와 슈퍼 태풍이 한국을 할퀴는 빈도는 점점 잦아지고 있다. 재난의 크기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큰 재난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재난을 예방, 또는 적응하기 위한 정부와 지역정부의 대응은 선명하지 않아 답답하다. 

여전히 공백인 주거정책과 길을 잃은 공공임대주택

녹색전환연구소가 발행한 <17개 광역자치단체 인수위원회 보고서 분석>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착잡하다(보고서 분석 링크). 모든 지역에서 여전히 ‘토건’공약은 공항과 신도시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그린리모델링’ 관련 정책들이 존재하는 지역들도 있으나 그 규모가 매우 작아 전체적인 주거품질을 향상시키고 주거안정을 확립하는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부산의 경우 기온 상승, 태풍, 해수면 상승 등 기후 리스크가 가장 높은 지역이고, 초고층 빌딩으로 만들어진 부산의 마린시티의 거센 빌딩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해양도시’ 건설을 ‘기후변화’ 대응의 목표로 삼는 역설적인 일도 나타나고 있다. 부산시장이라면 국제사회에 인정받는 ‘지속가능한 해양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 전에, 이미 잦은 재난으로 생명권의 위협을 받는 부산시민들의 삶을 한 번 더 살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주거시민단체로 이루어진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은 8월 22일 서울시의회 앞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하고 동등하고, 평등한 주거권을 위해 기자회견을 벌였다. 이들은 ‘주거취약계층의 재난 위험 근본적 해결을 위한 10대 정책과제 요구’를 발표하며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주거품질 연계하는 방향의 주거비 지원 확대 ▲주거안전 기준 강화 ▲주거급여 대상 기준중위소득의 60%로 확대 등을 정부와 국회에 제시했다. 주거권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재난불평등추모행동’ 요구의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는 8월 30일 2023년 예산안을 발표하며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을 전년도 예산에서 5조 7천억을 삭감한 15조 1천억 원으로 내놓았다. 이는 30%를 잘라낸 어마어마한 칼질이다. 국토교통부는 주거취약계층의 이사비와 보증금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하며 ‘주거복지’의 빈틈을 완화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주거권 보장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대책인 공공임대주택 예산 수 조 원을 깎으며 이사비 몇 푼 쥐어주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9월 1일 국회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또다시 완화시켰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9억에서 11억으로 완화하고 상속주택과 지방주택은 주택 수 계산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여야가 합의했다. 시민사회는 이 같은 조치가 ‘다주택자를 양산하고, 수도권 투기 수요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풍선효과’를 만들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여전히 정부와 국회는 십 수 명의 국민이 기후재난, 빗물 속에서 목숨을 잃어도 여전히 집부자들의 민원만 처리하는 정치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2022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단체들은 ‘불평등에 잠기는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주거권 대행진을 연다. ⓒ필자 제공


불평등에 잠긴 주거권을 구출하자

그렇기에 세입자 시민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부자감세를 반대하고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는 조직된 힘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층’수로 구별되는 권리가 아니라 모두에게 동등한 주거권을 요구해야 한다. 이에 기후재난으로 악화되는 주거권의 미래를 구출하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함께 걸어야 하지 않을까.

2022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단체들은 ‘불평등에 잠기는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주거권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조금 먼저 있는 924 기후정의행진의 물결을 이어받아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더 큰 파도로 이어지길 바래본다.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세입자들의 걸음을 모아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주거취약계층, 인권취약계층이 기후위기취약계층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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