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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독립운동은 반제민족해방투쟁”

[신년 인터뷰③]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기자명 이계환/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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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5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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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독립운동 한 사람은 반제민족해방투쟁이어야 돼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통일뉴스]와의 신년 인터뷰 내내 ‘민족’을 강조하다가, 독립운동 대목에 들어가서는 특별히 ‘반제’를 붙이며 이같이 ‘독립운동은 반제민족해방투쟁(운동)’이어야 한다고 정의를 내렸다.

모든 나라의 독립운동이 처음에 한 건 반제국주의이기에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 혹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반제’가 제일 먼저 들어가는데 우리나라는 독립운동 평가에서 반제가 떨어져 나가버려 “그냥 독립운동, 항일독립운동이 됐다”는 것.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개념이 잘못돼 있기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 소장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여든의 황혼 길에서 제 인생 종합 성적표”인 자전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록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을 발간했다. 7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에다 12장에서 ‘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이라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내용을 담은 것. 그의 삶이 ‘민족과 반제국주의’에 닿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답게 인터뷰 내내 일관되게 ‘민족’을 강조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 시기, 문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오히려 앞섰다면서 “모든 학문이 아직까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문학은 민족문학을 주장했다”고 상기시켰다. 오죽하면 민족문학은 6.25 이후로 ‘빨갱이문학’이라고 금지 당했는데도 몇 년 만에 회생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고 질기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케이팝(K팝), 케이문화(K문화) 등 한류가 일어난 원인이 리얼리즘과 민족문학, 참여문학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리얼리즘과 민족문학, 참여문학에서 응용이 이뤄져서 영화, 그림, 드라마, 노래대로 다 발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 예로 케이팝의 가사를 보면 “리얼리즘 문학파들이 주장했던 사회비판적인 가사”라는 것이다.

2007년 ‘민족문학작가회의’가 20년간 사용해오던 단체 명칭에서 ‘민족’을 빼고 ‘한국작가회의’로 개칭한 것에 대해 그는 당시 개칭을 반대했는데 소수였다면서 아쉬워했다. 그는 우리 민족이 항상 외부에 당해왔기 때문에 민족을 내세워야 일체감이 든다고 밝혔다. 한국문학, 남북한문학, 겨레문학으로는 일체감이 안 들고 꼭 민족문학이라고 해야 일체감이 든다면서, 민족문학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최근 문학인에 대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소설가, 평론가라고 하면 사회와 역사, 정치 평론을 겸할 수 있을 정도로 안목은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문학인들은 사회를 파악할 능력이 없다는 것. 지식인 자격을 잃은 문학인이기에 ‘기술로서 문예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로서 ‘민족’을 강조해서 그런가, 그는 그 ‘민족’ 때문에 사회활동가, 실천가로 다시 태어난 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 반체제 지하조직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에 가입한 것. 한때 자신이 속했던 남민전 최고책임자인 이재문에 대해서 “대단히 신중하고 훌륭”했으며, “큰일을 낼 사람”이었고, 신뢰가 가는 “그 당시의 투사”였는데, 단 하나 남민전 조직 기록을 갖고 있다가 검거된 것을 지적하며 “그것만 없었으면 완벽한 투사였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현안에 대해서도 막힘이 없었다. 북미관계가 근본적으로 풀리고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단호히 “미국의 책임”이라고 못박았다. 미국이 북한과 회담하기 전에 핵 문제를 먼저 꺼내는 건 대화를 안 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 “우리가 아무리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갈 사람들이고 자기들이 볼 일 없으면 우리가 바지를 잡고 ‘가시리 가시리잇고’ 노래를 불러도 갈 사람들”이라고 아주 명쾌히 짚었다.

최대 현안인 대통령 선거와 관련 그는 각 후보들이 속한 세력과 정당의 과거를 먼저 봐야지 인물 하나면 봐서는 안 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아울러, 청년세대-엠지(MZ)세대에 대해서도 단호히 ‘젊다고 다 올바르거나 진보이지 않’으며 ‘진보 세력들도 너무나 꼴통화 되고 있다’면서 “진보도 타락하면 꼴통이 되고 보수도 개혁하면 진보가 된다”는 금언을 남겼다.

참고로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과 관련 은연중에 세 가지를 긍정 평가했다.

첫째는 민주화 운동 시기 지식인 중에서 비문학도라도 민주화 운동 하던 사람들은 다 문학에서 눈을 뜰 정도로 문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앞섰다면서, 그런 문학을 택한 게 “참 좋은 노선을 선택했다”고 자평했다. 둘째로 자신의 장래 및 직업과 관련해 정치가나 관료 되는 건 아예 선을 그어놓고 안 들어간 것에 대해 “능력 밖”이라면서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역시 긍정 평가를 했다. 마지막으로 체포와 죽음을 불사한 남민전 산하조직인 ‘민주투쟁국민위원회’ 성원이 된 것에 대해서도 “정말로 한번 해보고 싶었다”면서 결기를 드러냈다.

이처럼 그는 삶의 계기마다 택한 직업, 노선, 투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인간이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세 부분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의 삶의 총체가 지금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현재화된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는 현역으로 민족문제연구소에 속해 있으면서 그 노선에 맞게 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임헌영 소장과의 신년 인터뷰는 [통일뉴스] 이계환 기자와 이승현 기자가 배석한 가운데 1월 17일 민족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주

[통일뉴스]와 신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그는 ‘독립운동은 반제민족해방투쟁(운동)’이어야 한다고 정의를 내렸다. [사진-조천현]
[통일뉴스]와 신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그는 ‘독립운동은 반제민족해방투쟁(운동)’이어야 한다고 정의를 내렸다. [사진-조천현]

“징역살이하면서 건강 비법 터득했다”

□ 이계환 기자 : 오늘 [통일뉴스] 신년 인터뷰에 문학평론가이자 사회활동가이신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 임헌영 소장 : 안녕하십니까. 임헌영입니다.

□ 지난해 말에 선생님께서 자전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록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을 발간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책에 대해 ‘나는 문학으로 역사를 성찰하고 또 역사를 문학으로 조명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이 책을 봤는데 제 소감은 뭐냐 하면은 문자 그대로 ‘문학의 길을 통해 갔더니 역사의 광경이 나섰다’고 쉽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 예. 멋집니다.

□ 저자의 그 문학적 삶을 제가 쫓아갔더니 갑자기 정치, 사회, 국제, 정세 등이 어우러진 역사의 광장, 역사의 현실과 마주친 기분이었습니다. 전자가 문학평론가로서의 삶이라면 후자는 사회활동가로서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인터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하나는 선생님의 문학평론가로서의 부분,

그리고 다른 하나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사회활동가로서의 부분 이렇게 나눠볼까 합니다.

■ 예 좋습니다.

신간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신간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 먼저 문학평론가로서의 부분을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 연세가 80살이 넘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정정하십니다.

■ 비교적 내 연배에서는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고 운전도 하고 그래요.

□ 그렇습니까.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이 책을 보니까 700쪽이 넘어요. 그런데 이 정도 두께의 책이라면 이제 대답은 하셨지만 어쨌든 그 과정이 지나가는 과정이었는데, 건강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아무튼 건강하시니까 썼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평소에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 저는 징역살이하면서 건강 비법을 터득했습니다. 불교요가 입문을(인도요가가 아니라 불교요가에요), 그걸 쓴 분이 일본의 스님인데 그 스님이 굉장히 진보적인 사람이에요. 진보적인 사람이니까 역시 책을 잘 써요. 그래서 사진까지 다 넣어가지고 자세를 아주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야말로 동양의 선과 같은 걸 한 겁니다. 그 몸 체조를, 내가 연구를 해보니까 우리 국민체조, 순서가 시작도 숨 쉬고 마지막도 숨 쉬기이거든요. 그 요가 원리를 가만히 보니까 국민보건체조가 보통이 아니에요. 요가 체조 그대로입니다. 그 순서 그대로예요.

□ 그때도 뭔가 아는 사람이 만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 그런 것 같아요. 원래 이 국민보건체조라는 거는 미국에서 처음에 라디오 체조로 나왔답니다. 라디오에 나오는데 일본의 우체부 직원, 우리식으로 말하면 체신부 직원이라고 있잖아요. 그때 일본에서 체신부가 국민 보험을 취급했어요. 그 직원이 그걸 연구하러 미국에 갔다가 우연히 그 라디오 체조를 본 거예요. 그런데 미국은 뭐냐 하면 생명보험회사에서 그걸 보급하고 있었거든요.

그걸 일본에서 먼저 도입해가지고 우리나라로, 그때는 식민지 시대니까 우리나라로 와가지고 우리나라에서 자기들이 국민보건체조 이렇게 이름을 붙여가지고 한 것이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장에서 그걸 했잖아요. 그걸 더 깊고 더 철저히 하는 게 단전 요가 기본체조예요.

□ 그럼 아주 어렵지는 않겠네요.

■ 안 어렵죠. 국민보건체조 하고 요가 하고 거의 같은 순서예요. 사실 철학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시원은 인도인데 결국은 중국을 거쳐서 온 건데 서양에서는 어떻게 그걸 알고 또 딱 맞춰 보니까 (체조랑) 똑같아요. 그래서 단전 요가를 했는데, 참 좋아요.

□ 그 체조의 효과는 선생님께서 직접 하셔서 건강하시니까 증명은 되는 것 같습니다.

■ 그렇죠. 정말 좋아요.

□ 이 책이 대화록으로 되어 있거든요. 선생님께서 기록자였던 2005년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 이것도 대화록이었거든요. 또 2020년에 나온 김정남 전 문민정부 교문수석의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도 대화록이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쓰는 자서전보다 상대방과 대화를 통한 자전적 기록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 그쪽을 택하셨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리영희 선생 『대화』를 할 때 ‘아 나도 언젠가는 저 주인공이 돼 봐야 되겠다’는 생각. 리영희 선생을 제가 그리면서 나도 이제 주인공이 돼 봐야지 하는데 마침 또 이제 제가 쓸려고 보니까 너무 벅차요. 말로 하면 편하겠다 싶어, 그래서 해보니까 참 편하고. 또 이게 글로 쓰기보다는 더 쉬워요. 독자들에게 다가가기가.

2010년 12월 5일 타계한 리영희 선생을 기리는 ‘우리 시대의 스승 리영희, 리영희 선생 시민 추모의 밤’이 이튿날인 7일 서울 이화여대 교육문화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임헌영 소장은 “평화를 생각하는 남북해외 동포는 물론이고 제국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 모두가 리영희 선생의 뜻을 기리자”고 말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10년 12월 5일 타계한 리영희 선생을 기리는 ‘우리 시대의 스승 리영희, 리영희 선생 시민 추모의 밤’이 이튿날인 7일 서울 이화여대 교육문화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임헌영 소장은 “평화를 생각하는 남북해외 동포는 물론이고 제국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 모두가 리영희 선생의 뜻을 기리자”고 말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논리적으로 꽉 이어지지 않아도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 그래서 이제 『대화』를 하자고 그랬는데 마침 한길사에서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대담자인) 유성호 교수가 ‘좋다’고 의욕을 갖고 해주고 그래서 삼박자가 다 맞아진 거죠. 실제로 대담한 거는 한 서너 달이고 그 뒤에 정리하는데 2배 정도 해서 1년 걸렸어요.

□ 그래도 상당하네요. 선생님께서는 평론가로 등장하기 전부터 카프 문학에 대한 애정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석사논문에도 카프문학을 다루려고 그랬는데 빠진 것 같기도 하고, 또 해금되기 전부터 납북자, 월북자 작가에도 관심이 많았고 또 『문학과 이데올로기』라는 평론집도 쓰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젊었을 때부터 이념 문제에 관심이 꽤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 대구 ‘10월항쟁’부터 집안에 삼촌들 이런 분들이 계속 징역살이하고 나오고 그런데다가 6.25를 겪으면서 아버지와 삼촌은 희생되고 그 다음에 나머지 삼촌들 하고 우리 형님은 월북하고... 이렇게 되니까 그때 우리 집안은 참 울음바다였어요. 소년시절에 그런 걸 겪으니까 잊혀지지가 않아요.

이런 원인이 뭐냐. 그건 결국 이데올로기에요. 그래서 이대로 하다 보니까 정치적인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미국이 어떻게 했냐는 것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일찍부터 그냥 그게 본능이 돼버렸습니다.

문학을 하려고 보니까 그게 카프 문학이에요. 월북했으니까요. 일제 때 식민지에서 문학을 한 작가들, 내가 보기에는 훌륭한 문학자들이 다 가버렸어요. 그래서 자료를 다 모았죠. 지금도 우리 집에 가면 그때 우리나라에서 소개도 안 됐던 그런 걸 제가 손으로 다 찾아가지고 정리했던 파일이 다 있어요. 그만큼 저한텐 대학·대학원은 완전히 그런 거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 그런데 비슷한 처지라 하더라도 이문열 씨와 같은 작가의 경우는 부친이 월북했는데, 그 분은 또 선생님과는 다른 길로 가는 것 같은데요. 아무튼 사람마다 경험에서 느끼는 것이 다르지 않나하는 생각도 드네요.

■ 다른 길로 간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분들하고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연대감을 느껴요. 이문구라든가, 김성동이라든가, 정치적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이문열 씨 같은 경우는 그래도 만나면 뭔가 동질감을 느끼죠. 아마 이문열 씨도 저한테 그럴 거예요. 이념의 문제이기보다는 우선은 핏줄 문제고 그게 결국은 이 분단 사회에서 처한 입장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겠죠.

“한류가 일어난 것은 민족문학과 참여문학 덕분”

□ 평론가로서 문학적으로 참여문학, 리얼리즘을 옹호하셨습니다. 한국사회의 현실 및 진로와 관련해서 아마 그렇게 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회 변화 및 사회 진보와 관련해서 참여문학과 리얼리즘의 긍정적인 역할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참여문학과 리얼리즘 문학을 빼놓으면 민주화운동이 불완전해졌을 겁니다. 그러니까 문학이 그때는 오히려 제일 앞섰어요. 다른 모든 학문이 아직까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문학은 민족문학을 주장했죠. 일찍부터. 8.15직후부터 하다가 6.25 이후로 완전히 민족문학은 ‘빨갱이문학’이라고 금지 당했는데도 금방 몇 년 만에 살아났잖아요.

그게 이제 참여문학이 되고 리얼리즘이 되고 민족문학이 되고 민중문학, 노동자·농민문학이 됐지요. 그때 그 당시 지식인 중에서 비문학도라도 민주화운동 하던 사람들은 다 문학에서 눈을 떴습니다. 그만큼 문학이 앞섰죠. 그 점에서 난 참 좋은 노선을 선택했다고 봐요.

□ ‘문학의 시대’, ‘문학의 전성기’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였지 않나 싶네요. 문학을 통해 사람들이 각성됐지요.

■ 80년대까지는 문학이 아주 막강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습니까. 책에 보니까 구속되었다가 징역에서 일본 작가의 유미주의 소설에 푹 빠진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흥미 있게 봤는데, 참여문학과 리얼리즘 문학을 옹호하는 입장에 선 선생님께서 유미주의 소설 탐독을 하다니... 에피소드나 일탈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워낙 진지하게 말씀하셔요. 일탈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진지하게 삶의 일깨움을 받은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아직도 그렇습니까.

■ 저는 그 이전에는 사실 그런 작품을 좀 뭐라 그럴까, 많이 보려고 하지도 않고 멀리 하거나 아니면 보더라도 비판하려고 보는 거였어요. 그런데 겨울에 추운데 있으니까 말이죠. 읽을거리는 없는데 웬만한 책은 다 마음에 안 들어요. 위로가 안 돼요. 근데 그걸 보니까. 그 아름다움의 절대세계. 참 황홀한 경지였어요. 그래서 유미주의라는 게 거기에 빠진 사람들은 이래서 빠지는구나, 이해를 했죠.

그러나 제가 빠지진 않고, 다만 여기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거죠. 그 뒤에는 유미주의에 대해서 저도 전혀 무시하지 않고 한 유파로 그냥 인정해 주는 계기가 됐죠.

□ 더욱 넓어진 계기가 되었던 것이군요.

■ 제 문학관을 좀 넓혔지요. 오히려 이런 기법을 리얼리즘 문학도 도입해서 배워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하면 오히려 리얼리즘 독자들이 훨씬 넓어지고 공감대도 좋아지고...

2018년 8월 서울 용산구 청파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강당에서 열린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임헌영 소장. 왼쪽이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은 5층으로 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물 3층에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18년 8월 서울 용산구 청파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강당에서 열린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임헌영 소장. 왼쪽이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은 5층으로 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물 3층에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징역에서도 그런 일탈 같은 데서 긍정적인 요소를 배운 것이 깊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계십니다. 그 전신이 반민족문제연구소이고 그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문학론』을 쓴 임종국 선생의 유지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아직 우리 사회에서 친일 문제가 청산되지 않았고 또 친일문학도 잔재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친일파를 두고도 ‘공이 과보다 크다’고 하면서 넘기려고 하고 또 친일작가에 대해서도 ‘문학 작품과 삶은 별개의 영역이다’, 이렇게 치부하면서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친일문학을 한 김동인을 딴 ‘동인문학상’도 아직 건재합니다. 한국사회에 이런 현상이 많은데 어떻게 봐야 합니까?

■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세계문학사에서 자기 민족과 나라를 팔아먹은 그런 지식인이나 문학인이 막 이렇게 큰 소리 내는 것은 아주 희귀한 경우에요. 우리나라는 참 희귀해요. 그 얘기는 나중에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또 나오겠지만 어쨌거나 임종국 선생이 『친일문학론』을 내면서 상대적으로 출세도 못하고 고생을 하시다 돌아가셨죠. 그 정신을 이어받아서 만든 게 저희 연구소이죠. 임종국 선생은 파볼수록 더 위대해져요.

친일 문제로 다시 돌아와서 말하자면, 때를 놓치면 다 이렇게 힘이 드는 것 같아요. 8.15때 했으면 깨끗이 끝나는 건데 그걸 놓치니까, 처음에는 친일파들이 가만히 있다가 한국전쟁 후부터는 자기들이 도로 애국자로 행세하고 독립운동가를 완전히 빨갱이로 몰아버려서, 이 분들이 다 고생을 했지 않습니까. 독립운동가가 감시받고 탄압받았어요. 그런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친일파들은 이제 그냥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큰 소리 치면서 도리어 감시자가 되었으니 일제 때와 똑같아요.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조문기 선생은 “해방된 거는 우리 민족이 아니라 친일파”라고 하셨는데, 너무 명언이에요.

친일파가 그전에는 일본의 지시를 받고 했는데, 8.15 이후에는 스스로 권력을 잡아가지고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을 감시하고 집어넣고 탄압하고 이랬단 말이에요. 심지어는 죽이려고 하고... 그러니까 지금까지 와버린 거죠. 그동안 진행된 국민운동으로 인해 친일파 청산이라는 게 압도적인 다수의 국민적 찬성을 받고 있지만, 집권층은 안 그래요. 집권층은 오히려 궁지에 몰리니까 악을 쓰는 거예요.

‘식민지시대에 우리나라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때 잘살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까지 나오고 그 비호를 받으면서 지금의 야당세력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정치신조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엄정히 말하면 한국의 정치인이 아니죠. 그건 일본과 미국을 위한 정치인이지 우리 국민을 위한 정치인이 아닙니다.

2009년 11월 9일 백범 김구선생 묘역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공식 선언하는 (왼쪽부터)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자료사진-통일뉴스]
2009년 11월 9일 백범 김구선생 묘역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공식 선언하는 (왼쪽부터)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자료사진-통일뉴스]

동인문학상 보세요. [조선일보]가 하거든요. 이제 다른 중앙언론사에서 하는 친일파 문인들의 이름을 딴 문학상은 다 없어지고 이거 하나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걸 우리 연구소가 앞장서서 없애기 위해 작년에도 시위를 했어요. 저는 염려하는 것이 지금 젊은 세대들과 대학생들이 아주 오랫동안 식민의식에 젖은 교수들 밑에서 배우고 미 제국주의 문화에 너무 빠져 있다는 거예요.

제국주의는 그냥 문화만이 아니라 노래부터 생활습관 음식문화까지 다 바꿉니다. 젊은이들 입맛까지 다 바꾸고... 우리나라 방송에서 미국노래가 더 많이 나오잖아요. 술을 바꾸고 노래를 바꾸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일본이 쳐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술을 바꾼 거래요. 그 다음에 유행가를 바꿨어요. 그러니까 술과 노래가 중요한 겁니다.

젊은 세대들이 여간 정신을 안 차려서는 안 됩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문화혁명이 일어나야 돼요. 이거 안 일어나면 정치개혁이 항상 실패합니다. 광화문에서 성조기 들고 시위를 할 정도로 세계에서 미 제국주의 문화가 가장 깊이 뿌리내린 나라가 우리나라 같아요. 참 큰일이에요. 젊은 세대의 교육을 위해 한국사 시간을 더 늘리고 모든 고시에도 포함시키고 해야 합니다.

□ 일본 제국주의와 미 제국주의 문화가 지난 100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니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앞으로 우리의 과제가 되겠지요.

■ 이거 엄청 큰 문제입니다. 굉장히 어려워요. 경제개혁은 정치를 잘하면 한 세대 만에도 많이 바꿔집니다. 미국도 부자나라가 된 게 얼마 안 됩니다. 정치개혁이나 경제개혁은 그렇게 되지만 문화혁명은 안 그래요. 적어도 3대까지는 가야 문화혁명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인들이 식민지 시대와 6.25를 겪고 나서는 미 제국주의 문화에 완전히 세뇌 정도가 아니라 뼛속까지 스며들어있지 않습니까. 중간에 공부 좀 한 민주화 운동 세대들이 나오면서 이제 좀 고쳐지나 싶었는데, 그 뒷세대들이 또 노인들하고 똑같이 돼버리죠. 하도 제국주의 문화가 세게 나와 영향을 주니까 그렇게 된 거겠죠. 올바른 민주화 정착이 힘들고 남북통일도 지난한 과제라는 생각입니다.

□ 그래도 좀 긍정적인 것은 30년 전보다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주체문화를 살리고, 또 젊은이들에 의해 세계적인 케이팝(K팝), 케이문화(K문화) 발전도 많이 되는 것 같아요.

■ 긍정적인 면으로 그런 한류가 일어난 원인이, 정부나 문화정책 입안자들이 그걸 알아야 되는데 사실은 그게 리얼리즘과 민족문학, 참여문학 덕분입니다. 거기에서 응용이 이뤄져서 영화, 그림, 드라마, 노래대로 다 발전이 된 거거든요.

사실 케이팝의 가사를 보면 완전히 우리가 주장하는 거예요. 리얼리즘 문학파들이 주장했던 사회비판적인 가사, 여기서 우리가 볼 때는 뭐냐 하면, 외국에는 그런 게 없어요. 맨 날 사랑타령만 하고... 그런데 케이팝을 들으니까 자기들이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거죠. 그걸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 현주소를. 그걸 알아야 학교에서 올바른 예술 교육을 시키게 되고, 올바른 예술교육을 받아야 만이 제국주의적 문화의식에서 탈피할 수 있는 것이죠.

“임화 같은 작가는 좀 복원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 남북 문학인들 사이에서도 2005년인가로 기억합니다, 북한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남북 작가대회가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에서 진행된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선생님도 참여하셨죠. 그때 갔을 때 느낀 북한의 문학과 문학인의 특징과 수준이라고 할까요. 어땠습니까? 북쪽 작가들은 그때 처음 뵌 거죠?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가 20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100년을 맞아 일제 침략사를 주제로 개최한 남북공동사진전에서 을사늑약 100년 남북해외공동성명을 낭독하고 있는 임헌영 6.15남측위 대일과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료사진-통일뉴스]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가 20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100년을 맞아 일제 침략사를 주제로 개최한 남북공동사진전에서 을사늑약 100년 남북해외공동성명을 낭독하고 있는 임헌영 6.15남측위 대일과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료사진-통일뉴스]

■ 북측 작가들은 처음 만난 거예요. 북은 그전에 갔다 와서 체험은 했지만 작가를 만난 거는 처음이었어요. 저는 북한문학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많이 봤기 때문에 아마 제일 많이 아는 편에 속했을 거예요. 사전 정보를 다 가지고 갔으니까요. 그랬는데 막상 대해보니까, 우선 문학이라는 게 우리 남한사회에서도 제일 앞서가고 다른 모든 분야보다는 좀 자유스러운 요소가 있는데, 북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내가 읽었던 어떤 소설에 어떤 작가라고 하면 다 아니까 너무나 좋아요. 그런데 이제 관이 개입하면 안 돼요. 그게 아쉬웠어요. 왜냐하면 북에 대해서 나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많이 보고 그렇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데 가면 좀 이렇게 풀어서 개인 대화를 해도 되는데, 그래도 이 분들은 공식 입장이 아니 아니면 자기의 견해를 말하지 않아요. (금강산) 삼일포 아시잖아요. 그쪽 회장하고 단 둘이 편하게 가면서 임화 이야기를 꺼냈어요. 당연히 그분도 나를 알고 나도 그 분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정말로 이게 우리가 통일을 지향하고 민족문학을 하려면 임화 같은 작가는 좀 복원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랬더니, 그렇게 호의적으로 같이 얘기를 하다가 딱 정색을 하면서 “임 선생님 내 그래 안 봤는데 큰일 나겠네”라고 하는 거예요.

‘미제 간첩으로 처형된 그 문인을...’ 하는 반론이었겠지만, 내 뜻은 그게 아니고 ‘세월이 흘렀으니까 이제 복원해도 되지 않냐’ 그런 뜻이었죠. “이광수는 복권하면서 왜 하지 않느냐. 나 같으면 이광수는 영원히 복권 안 시키고 임화 같으면 복권시키겠다”고 했더니 딱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북이 먼저 그런 걸 다 해버린다면 얼마나 멋집니까. 거꾸로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서 남쪽에서 볼 때도 ‘야 참 북이 대단하다’ 이래야 하거든요. 임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남로당 전체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중에서 문학인만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는 것은 인정하죠. 그렇게 이해는 하면서도 참 북이 남한의 문학 독자들까지도 감동시킬 수 있느냐 하는 아쉬움 같은 그런 건 좀 있었어요.

□ 북한 문학 작품을 볼 때 뛰어난 작품이랄까 기억에 남는 작가라든지, 평가할만한 작가를 소개하신다면?

■ 우리나라에 지금 나와 있는 남대현이라든가 몇몇 사람들이 있죠. 어쨌거나 제가 볼 때 북한 문학은 1980년대 들어서서 확 달라져요. 그 다음에 2000년대 들어서서 좀 더 당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다가 다시 또 상당히 현실생활 속으로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주장했던 리얼리즘과 같은 주장이 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문학이 방송에 못지않게 인민들 속으로 들어가는 문학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대개 ‘고전적 리얼리즘’에서 ‘비판적 리얼리즘’, 그 다음 단계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제가 보기에 북의 소설은 1960년대까지 한국전쟁을 다룬 거는 우리보다 앞섰어요. 여기 평론가나 독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반론할 수도 있지만 제가 볼 때는 확실합니다. 왜 그러냐하면 한국전쟁을 다루면서 갈등의 대상을 미국으로 잡아요. 나는 그걸 보고 참 대단히 깊이 생각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사실 우리끼리 막 싸우는 걸 뭐 그렇게 부각시킵니까?

나중에 우리 민족끼리 갈등할 때는 남한사람을 반드시 미국 앞잡이로 만들어서 그렇게 하죠. 미국 앞잡이가 아니면 뭐 하러 미워합니까? 같은 동포들끼리 그렇잖아요. 물론 예술적인 형상화 문제 같은 거는 좀 조금 떨어지는 것도 있고 문제가 없지 않지만, 민족과 역사를 사랑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그 점에서는 상당히 깊이 고민한다고 생각했어요.

“민족이 밥 먹여 주냐?”, “그럼 민족이 밥 먹여 주지”

□ 방금 말씀드린 2005년 남북 작가대회 때 북측에서는 조선작가동맹이 나왔고 남측에서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나와서 공동 주관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2007년인가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그동안 20년간 사용해오던 단체 명칭에서 ‘민족’을 빼고 ‘한국작가회의’로 개칭을 했습니다. 그때 그 이유가 ‘민족이라는 말이 좀 진부하다’라든지 또는 ‘서구에서는 민족을 보수로 인식한다’거나 ‘21세기인 지금 국제화 시대에 역행한다’ 이런 이유를 들었던 것 같아요. 민족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문학이 시대를 앞서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그런 역할인가 어떤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궁금했었거든요.

민족문학작가회의 시절의 임헌영 소장. 임 소장은 2005년 12월 7일 전용철 농민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고 전용철 농민 ‘타살’ 의혹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민족문학작가회의 시절의 임헌영 소장. 임 소장은 2005년 12월 7일 전용철 농민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고 전용철 농민 ‘타살’ 의혹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그때 저는 반대했어요. 근데 소수였어요. 아주 그냥 밀려가지고... 민족에 대한 비판에도 일리가 있어요. 그러나 너무 외국사람 눈으로 본 거예요. 제국주의 눈으로 보면 민족이라는 게 나치라든가 뭐 이런 침략주의적인...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입니다. 항상 당했기 때문에 민족을 내세워야 일체감이, 딱 그냥 민족 그렇죠. 민족문학하면 딱 모이는데 수가 있어요. 그럼 뭐라 그래요. 한국문학, 남북한문학, 겨레문학 이런 걸로 안 되는 거예요. 딱 그냥 민족문학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한국적인 특수성을 살리고 거기에 초점을 둬야 되느냐, 아니면 유럽적 입장에 서야 되느냐 하는 건데, 왜 우리가 유럽적 입장에 섭니까. 민족주체성을 살려야겠어요. 우리 연구소도 민족문제연구소이고, 저는 지금도 그냥 민족을 그대로 주장하는 쪽입니다.

이게 문학만이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민족이라고 말하면, ‘민족이 밥 먹여 주냐. 요새 누가 그런 말을 쓰냐’고 하는데, 아니 그럼 민족이 밥 먹여 주지, 누가 밥 먹여 줍니까. 일본이 먹여줘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민족을 안 하면 누가 밥 먹여 주나요?

심지어 지금 유럽 학자들은 뭐까지 하느냐 하면 ‘식민지 시대’ 그런 말 쓰지 말자고 합니다. 식민지 시대에 있다는 걸 자랑도 아니고 굳이 밝힐 필요가 뭐 있느냐는 것인데요, 침략국 입장에서 우리가 ‘일제 식민지시대’라고 하면 듣기 안 좋겠으니까 그들의 눈으로 우리의 학술적인 술어까지 바꾸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일부 역사학계나 학계에서 통하고 있어요. 마치 식민시대라는 술어를 피하는 것이 학술적으로 앞서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거죠. 그건 앞서갈 필요도 없는 것이고, 진리는 영원한 건데 말이죠.

□ 평론가로서 현대 한국 최대의 작가와 작품을 꼽는다면?

■ 한 사람 뽑기는 참 어렵구요.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범민족적인 그런 감각을 가진 게 그래도 박경리, 그 다음에 조정래, 황석영 같은 분들이 남북이 모두 다 좋아할 만한 작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에서는 이기영이나 최근 복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설야도 있고, 좋은 작가들이 많아요. 특히 카프 작가들의 소설이 참 좋아요. 그 작가들이 다 일찍 돌아가셔서 좀 아쉽긴 한데 어쨌거나 그 계열은 그래도 다 괜찮았어요.

□ 선생님은 출판사나 잡지사에 있으면서 좋은 책들을 많이 만드셨는데, 남북이 함께 하는 책에 대한 구상도 하셨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연세는 많으시지만 한반도 현실에 맞게 꾸려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남북 작가들의 문학 작품들을 보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워낙 디테일하게 또 의미 있게 책들을 잘 선정하시는 것 같아요.

■ 그런 편이에요. 제가 기자도 했고 잡지도 만들어 봤고 출판사 편집해 봤기 때문에... 비교적 그런 것 같아요. 디제이(DJ, 김대중 정부) 때인지 노무현 정부 때인지 모르겠는데, 문화예술진흥위원회에서 북한문학 전집을 우리가 내자하는데 허락을 다 받았어요.

편찬위원회를 만들어가지고 저도 그 편찬위원회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재정문제도 부담이 없는 상태였는데 목록작품까지 해 가지고 마지막에 책을 낼 단계에서 안 된다고 해서 못한 적이 있어요. 그때 씨디(CD)를 만들어서 나눠줬는데, 그것도 잘 나오지 않았어요. 어쨌거나 여기서도 시도를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한일 국교정상화와 일본의 저속한 대중문화를 개방할 때에는 반드시 북한문화도 개방하라는 게 제 주장이거든요. 쉽잖아요. 어떻게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나라의 문화는 다 받아들이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안 받아들이냐는 것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라는 건 뭐냐 하면 북한 문화 100% 개방하는 그거에요. 김일성 주석의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했다고 출판사 사장을 고발하는 이게 무슨 민주주의에요. 서독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통일이 된 거지. 서독만큼 하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많아가지고 말이죠.

지금은 남한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인 『태백산맥』을 드라마로, 영화로도 못 만들잖아요. 박경리 『토지』처럼 1년 내내 어느 방송에서 계속 드라마가 나오게 되면 엄청나게 많이 볼 거예요. 조정래 작가한테 물어보니까 몇 군데에서 계약은 해갔는데, 결국 못하는 거예요.

민주주의가 뭐냐 이거예요. 허울이지. 민주주의라는 게 반민족주의자들이 있으면 그 생각을 고쳐야지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영화도 못 만드는 게 무슨 민주주의냐 이거에요. 이게 내 불만이에요. 사실 이런 게 다 돼야 민주주의입니다.

□ 선생님께서는 이미 1978년에 평론집 『문학의 시대는 갔는가』라는 책을 내셨어요. 지금에 비하면 그래도 그때 1970년대나 80년대가 문학의 전성기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때는 젊은 세대가 시집을 갖고 다니고 전철에서 책도 읽고 말이죠. 그럴 정도로 문학에 대한 갈증, 열정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진짜 문학의 시대는 간 것 같아요. 책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나타나고 있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젊은 세대를 독서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1978년에 제가 쓴 거는 유신 말기이지 않습니까. 1979년에 박정희를 그야말로 부하가 총을 쏴서 죽인 건데, 암살도 아니고 그냥 딱 죽여 버린 거거든요. 신념으로. 그러니까 서거도 아니고... 난 항상 박정희의 ‘죽음’이라고 표현하는데... 역사적인 술어로. 그 바로 한 해 전이 1978년 아닙니까. 그때는 유신문화가 너무나 팽배하고 새마을문화가 성행하고 그랬어요. 정부에서 돈 다대주고 그랬거든요.

그런 거만 정부가 장려하고 진짜 문학은 탄압하고 그랬죠. 그런 아이러니를 ‘문학의 시대는 갔는가’라고 표현한 거죠. 지금은 산업화 사회가 돼가지고 멀쩡히 잘 살게 되니까 그 문학인들은 사회를 파악할 능력이 없어져 버렸어요. 적어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소설가, 평론가라고 하면 사회와 역사, 정치 평론을 겸할 수 있을 정도로 안목은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워낙 정치가 혼잡하게 되어 버리니까 문학인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봐도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자기 스스로 혼란에 빠져버려요. 지식인의 자격을 잃은 거죠. 그래서 이제 지식인으로서 문학인이기보다는 그야 말로 그냥 문학인이야, 문학인이라는 말보다는 문예, 예기로서 즉 기술로서 문예인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소설이 없잖아요. 대작가가 안 나와요. 교육이 잘못된 거죠. 식민지문화 때문에 훌륭한 문학가 교육을 안 시킨 거죠.

“이재문은 기록만 남기지 않았다면 완벽한 투사”

임헌영 소장과의 [통일뉴스] 신년 인터뷰는 1월 17일 민족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진-조천현]
임헌영 소장과의 [통일뉴스] 신년 인터뷰는 1월 17일 민족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진-조천현]

□ 아쉽긴 하지만 선생님의 문학평론가로서의 부분은 일단 이걸 마무리하고 이제 사회활동가로서 부분으로 넘어가고자 합니다.

이 책을 보니까 선생님께서 혁명가들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작가들 사이에서 그런 별명이 나오는데. 구중서는 구중서와 레닌의 합성어인 ‘구닌’, 백승철은 ‘백게바라’, 그리고 선생님은 ‘임스트로’. 아마 카스트로를 연상시키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카스트로라고 불릴 만한 그런 이유 같은 게 있었나요.

■ 뭐 그렇지는 않은데, 좋아했죠. 왜냐하면 바로 미국의 턱 밑에서 혁명을 일으킨다는 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걸 성공했잖아요. 아 그건 놀라운 세계사적인 사건입니다. 그 혁명이 일어난 게 1959년 아닙니까. 우리는 1960년대 4.19 뒤에 대학을 다니면서 제3세계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낫세르 같은 혁명도 있고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카스트로의 경우에는 그중 호지명과 쌍벽을 이루는... 우리 같은 사회에서는 선망의 지도자이죠. 그런 뜻에서 그랬던 거 같아요.

□ 이 책에서 선생님의 의식과 삶 이런 걸 보게 되는데, 문학적으로 한정한다면 문학평론가보다는 소설가나 시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또 어느 한편으로는 그걸 넘어서 사회활동가, 실천가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신의 직업이랄까 이것을 문학평론가로 일단 중심을 잡았거든요. 막 팽개치고 실천을 하러 나가는 그런 마음이 일지는 않으셨습니까?

■ 체질에 안 맞고 제 능력 밖입니다. 저는 이미 청소년 시절에 그렇게 정했어요. 나는 집안 신원조회로 인해서 정치가나 관료가 안 되니까 그런 건 아예 포기하고 그냥 자유롭게 글이나 쓰는 게 제일이다. 재밌고... 그러다 보니까 정치나 관료 되는 건 아예 선을 그어놓고 안 들어갔고. 들어갔으면 훨씬 더 위험해졌겠죠. 그건 저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커서 보니까 우리 시대에 훌륭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탁월한 정치 지망생들이. 그래서 저는 그 보좌역. 쉽게 말하면 훌륭한 정치가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많이 이야기해줘서 우리나라를 바로잡는 데 내가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다리』지에 들어갔잖아요. 그런 게 포부였습니다.

□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핵심인 김상현 의원을 『다리』지에서 만나 굉장한 역할을 한 거에요.

■ 그럼요 저 나름대로는 상당히 잘했다고 봅니다. 다만 김상현 의원이 나중에 디제이하고 좀 거리가 생기면서 개인으로 볼 땐 불행해졌죠. 불행한 말년이었는데 아쉬운 대로 할 수 없죠.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 선생님께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활동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당시 박정희 유신체제 시대이고 비합법 활동, 반체제 활동을 하다 잡히면 그냥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남민전 활동을 했거든요. 뭔가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신념이라고 할까요.

■ 제가 1974년에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징역을 살고 나오니까 대학 강사도 못해요. 교수는 당연히 못하는 거고 강사도 못하고 공직에 완전히 문이 닫혀버렸어요. 신원조회 때문에도 안 되지만 이게 추가되니까 더 안 돼요. 참 할 일이 없어요. 출판사 직원도 하고 번역도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데 민주화 운동이 앞이 캄캄해요. 지금 박정희가 죽고 나니까 ‘그때 죽을 줄 알았다’, ‘그때는 유신말기였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다 거짓말입니다. 내가 그냥 논쟁도 할 수 있어요, 누가 그 얘기하면. 그때는 아무도 못 나섰어요.

3.1일 명동구국선언이 있었고, 노동자들이 나왔지, 지식인들은 그냥 다 숙이고 있었죠. 그때 송건호 선생님한테 물어봤어요. “일제 때와 지금이 뭐가 다르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과 지금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이 누가 더 훌륭하냐”고 물었더니 “독립운동이 더 훌륭하다”고 그래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송건호 선생님 대답이 “일제 때는 일본이 영원히 갈 줄 알았다. 그런데도 생명 버리고 했다. 그게 위대한 사람이다”라는 거죠.

유신 독재는 박정희가 죽으면 끝난다. 아무리 건강해도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그건 죽을 거다. 죽으면 끝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그때 우리는 모이면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정말로 그랬어요. 그 당시 엘리트들도 ‘우리 힘으로 무너뜨릴 수 없다’. 워낙 감시가 심하니까. 그 당시 우리가 셋만 모여도 전부 요시찰 인물인데. 그래서 ‘이제는 민주화운동도 지하조직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 때 누가 ‘민주투쟁국민위원회’(남민전 산하 조직)를 지하로 한다고 하니까 그래서 한 거죠.

□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또 매우 흔쾌히 받아들인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정말로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 남조선해방전략당의 권재혁, 통일혁명당의 김종태, 남민전의 이재문 등 비밀 혁명조직의 최고책임자가 모두 잡혔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옥중에서 병사하셨는데요. 이재문 선생은 직접 만난 걸로 알고 있는데, 이재문 선생은 어떤 사람이고 또 권재혁, 김종태 등 최고책임자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서로 비교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 두 분(권재혁, 김종태)은 제가 만나본 적은 없지만 얘기는 다 들었죠. 이재문 선생이 우리나라의 혁명사를 꿰고 있었어요. 저와 같은 고향인 의성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친하죠. 나중에는 조직을 떠나서 궁금한 걸 묻기도 했어요. 어떤 사건은 어떻게 터졌고 어떤 사건은 잡혀가지고 취조 받을 때 누가 밀고를 했고 그런 것까지 자세히 다 알아요. 그랬는데 그런 건 저도 지금 기억도 다 못하겠고 그런 얘기까지 할 필요도 없지요.

남민전동지회 주관으로 2019년 10월 13일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내 이재문 선생 묘역에서 열린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박석률 남민전 민족민주통일열사 합동추모제’. 이 자리에는 임헌영 소장도 참석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남민전동지회 주관으로 2019년 10월 13일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내 이재문 선생 묘역에서 열린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박석률 남민전 민족민주통일열사 합동추모제’. 이 자리에는 임헌영 소장도 참석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다만 이재문 선생 개인에 대해서 말한다면 대단히 신중하고 훌륭했어요. 조심하고. 정말 그 당시의 투사였습니다. 그리고 큰일을 낼 사람이었어요. 그만큼 신뢰가 갔어요. 그랬는데 남민전 이야기가 나와서 말하자면, 딱 한 가지 잘못한 게 기록을 남긴 거예요. 그것만 없었으면 완벽한 투사였습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사건이 그렇게 커지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점조직이라는 걸 다 아시잖아요. 그건 상식적으로 우리가 안 해 봐도 반공교육 받으면서 그런 교육 다 받았으니까요. 저도 그거 다 몰랐거든요. 그러면 전혀 안 터져요. 번지지 않아요. 근데 철석같이 그런 얘기를 다 하고 지하비밀조직이라는 것도 다 했는데 터지고 나니까 (이재문 선생 기록이 압수당했던 거죠).

저는 먼저 알았어요. 그 기록이 있다는 걸. 임기묵 선생이라는 분이 그때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그 집에 이재문 선생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죠. 그때 맨날 기록한다고 해서 기록하고는 베개에 넣어가지고 배고 자요. 자기 혼자. “왜 기록하냐”고 하면 “이건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해요. 그 말은 맞죠. 그 보따리가 나오니까 저는 도망 다니다가 기자회견 보고 ‘아이고 틀렸구나’ 했어요. 경찰에서 볼 때는 (이재문을) 잡자마자 대단한 걸 잡은 거야.

□ 오죽했으면 그때 들리는 말에는 이재문 선생이 검거될 때 “내 보따리 내 보따리” 했다는 얘기가 돌았거든요. 그 정도로 갖고 있었던 건데 털렸으니까 진짜 억장이 무너졌겠죠.

■ 제가 며칠 뒤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가니까 이재문 선생이 말한 노트를 줘요. “기억도 안 난다” 이러니까 노트 주면서 “이거 보고 다 베끼라”고, “회상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노트를 보니 몇 월, 며칠 어디에서 누구를 만난 이야기가 다 나오죠. 제 가명이 한민성이거든. 민성(民聲). ‘백성의 소리’. 글을 쓰니까 백성의 소리, 민족의 소리를 대변하라는 뜻이었죠. 본명은 안 나오는데, 이미 들어가니까 그 사람들이 가명과 본명을 다 알고 있어. 참 그게 아쉬웠어요.

□ 흔히들 혁명운동에서 보위투쟁이라고 그러죠.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데 좀 잘못된 경우인 것 같습니다. 사실 남민전 사건 이후에 그 공소장이 공안사건기록으로 해서 외부에 돌았어요. 사람들이 많이 봤거든요. 거기서 눈여겨 볼 게 많이 있는데요. 특히 보위와 관련된 지침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걸 많은 그 운동가들이 활용한 기억이 나는데, 그걸 누가 썼습니까?

■ 제가 거기까지는 자세히 모르는데, 그거는 다 위에 중앙위원회에서 한 거죠. 이재문, 안재구, 김병권, 신향식 네 분이죠. 그분들이 다 했다고 봅니다.

2020년 7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통일애국지사 고 안재구 선생 민주사회장’에서 고인의 남민전 동지였던 임헌영 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20년 7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통일애국지사 고 안재구 선생 민주사회장’에서 고인의 남민전 동지였던 임헌영 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12년 10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에서 열린 ‘남민전 신향식 선생 제30주기 추모제’에서 신향식 선생의 남민전 동지였던 임헌영 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12년 10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에서 열린 ‘남민전 신향식 선생 제30주기 추모제’에서 신향식 선생의 남민전 동지였던 임헌영 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진짜 독립운동은 반제민족해방투쟁”

□ 선생님 책을 보면 각 장마다 다 의미가 있지만 특히 12장에서 ‘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을 다룬 부분이 독특하고 인상적입니다. 선생님은 이 책에서 “독립운동이란 뭐냐.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이렇게 쉽게 말씀하셨어요.

지금 한반도는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일본 제국주의 또 미국 제국주의 이런 흐름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 현실로 와서 제국주의 최고 우두머리인 미 제국주의의 특징이랄까, 행태 이런 것들을 한번 설명해줬으면 합니다.

■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이런 게 학자들마다 다 일리가 있고 연구도 많이 하고 참 고맙고 저도 참고를 많이 하는데, 독립운동이라는 개념 설정이 안 돼 있어요. 이건 아마 제가 처음 제기하는 것 같은데, 여러분들이 보고 앞으로 참고삼았으면 좋겠어요.

원래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민족해방운동입니다. ‘내셔널 리버레이션 스트러글’(National Liberation Struggle). 그리고 모든 나라의 독립운동은 처음에 한 건 반제국주의 그렇죠.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 혹은 운동이에요. 반제민족해방운동이거든요.

‘반제’가 제일 먼저 들어가요. 그런데 우리나라 독립운동 평가에서 반제는 떨어져 나가버렸어요. 그냥 독립운동, 항일독립운동이 된 거죠. 반제라는 술어 대신에 항일을 갖다 넣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훈처에서 그 심사 기준이 ‘사회주의자는 안 돼’라고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독립운동의 개념도 모르고 하는 정의에요.

그건 친일파 대통령 박정희가 만든 독립운동의 개념이지. 그 개념을 학자들이 물론 반대해요, 비판도 하고. 민주화 이후에 ‘사회주의도 독립운동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민주화 됐다고 많이 바뀌어졌어요. 사회주의자도 들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주를 달기를 북에 고위 관리를 지낸 사람은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아무리 북의 고위 관리라도 이거는 반제민족해방운동이거든. 그건 평가해 줘야죠. 그게 제 주장이에요. 어쨌거나 독립운동 개념 고쳐라. 보훈도 그렇게 해라. 이 개념으로 다시 평가해라. 그리고 반제국주의를 못하고 일본 학생하고 뭐 싸움했다고 하는 그런 거는 독립운동 중에서도 가장 말단입니다.

진짜 독립운동 한 사람은 반제민족해방투쟁이어야 돼요. 그것도 무장투쟁이 일등이죠. 그 다음에 일반 투쟁이 2등이고 그 다음에 문화운동이 3등.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같은 게 그 다음. 이렇게 순서가 되어야 하는데. 그냥 제일 중요한 걸 떼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복원이 잘못됐다고 보는 거죠. 내 의견을 얼마나 들어줘서 누가 고쳐줄지 모르지만 결국은 우리가 제대로 된 민족, 제대로 된 민중이라면 이런 가치관을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독립된 나라에서 민중이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따라서 살 것 아닙니까. 우리가 반제라고 하면 일본 제국주의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제국주의로부터도 간섭을 안 받는다는 것이 그게 독립운동가 아닙니까? ‘일본만 물리치면 우리는 미국 식민지가 돼도 좋아’라고 하면서 독립운동 한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아니에요? 그걸 알아야 되는데 독립운동 정신은 간 곳이 없고 분단 체제 하에서 나눠먹기식으로 훈장을 주는 병폐를 얘기한 거죠.

□ 선생님의 ‘독립운동은 반제국주의 운동’이라는 논리가 통용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많이 여론화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기준이 그래야 해요. 이제 제국주의 얘기를 했는데, 서양사나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나는 참 별로 만족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있고 하는 것만 나열하는 것은 골치만 아파요. 근대 세계사는 제국주의 역사를 딱 보면 너무나 쉬워요. 아주 간단해요.

정리한다면 이런 거예요. 힘이 센 나라는 다 제국주의가 돼요. 근대 이전부터 포르투갈, 스페인. 이 나라들이 배를 제일 먼저 만들어 가지고 중남미까지 갔지 않습니까. 포르투갈, 스페인이 막 설치다가 이제 프랑스가 식민지를 많이 했죠. 그 다음이 영국이야. 영국이 압도적이죠.

세계 지도를 보면 유럽 강대국들이 자기 지역에서 가까운 나라부터 먼저 식민지를 만들어요. 중동, 동남아로 쭉 오거든. 그러니까 다 식민지가 되잖아요. 식민지 안 된 나라가 중국, 한국, 태국, 일본뿐이에요. 그 외에는 전부 식민지로 다 떨어졌어요. 사실 중국에 막혀서 우리도 서양 식민지가 안 되고 일본 식민지가 되어버렸죠. 중국이 워낙 크니까 거기서 더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틈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먹은 거거든요. 이렇게 가르치면 너무나 간단해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먹을 때도 그냥 안 먹었습니다. 자기 선배 제국주의들의 허가를 다 받았어요. 허가 받는 마지막 결제자가 바로 미국이었어요.

태극기 부대들이 광화문에서 성조기 들고 아무리 해봤자 미국은 단 한 번도 정부 차원에서 우리나라 독립에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주 잘못된 인식이에요. 미국은 정부차원에서는 일본이 조선을 먹으려 할 때 소위 말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건 너무 유명하잖아요. 쉽게 말하면 필리핀은 미국이 먹고, 조선은 일본이 먹으라는 거 아니에요? 표현은 미사여구를 썼지만 그냥 서로 나눠 먹게 했단 말이에요. 만약에 미국이 그 허가를 안 했으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못 쳐들어옵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이 러일전쟁이거든요. 러시아가 우리나라 탐을 냈잖아요.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했단 말이에요. 제일 처음에는 청일전쟁 그 다음에 영국하고 영일동맹 그 다음에 가쓰라-태프트 밀약. 그리고 마지막에 러일전쟁을 합니다.

러일전쟁을 할 때 오래 가면 러시아가 이기는 거예요. 일본이 그때 도저히 전쟁을 진행할 수 없는 거야. 러일전쟁 할 때 전 유럽이 다 일본 편을 들어줍니다. 심지어는 발틱함대가 아프리카를 건널 때 수에즈운하를 안 열어줬잖아요.

그래서 희망봉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이미 맥이 빠진 거야. 음식은 다 썩어 빠지고 빵에서는 구더기가 새어나오고 말이죠. 그래도 러시아가 전쟁을 더 끌었으면, 그때 이미 일본은 전 국민이 패퇴해가지고 먹을 것도 없고 거의 항복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매를 누가 섰느냐. 그게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입니다. 이 대통령이 나와서는 러시아를 꼬드겨서 미국 포츠머스에서 회담을 중재하죠. 그 중요한 내용이 뭐냐 하면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손 떼고 한반도 감독권을 일본으로 넘긴다는 거예요.

임헌영 소장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개념이 잘못돼 있기에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임헌영 소장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개념이 잘못돼 있기에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러일전쟁의 유전조약은 루즈벨트가 거기서 중재해서 맺은 거예요. 러일전쟁을 종식시켰다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아요.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루즈벨트가 받은 상금은 우리한테 줘야 된다. 우리나라 팔아먹고 받은 평화상이 무슨 평화입니까. 우리는 식민지가 되는 길인데.

그리고 바로 일본은 제1차 합방을 맺어버렸잖아요. 그 다음 5년 뒤에 가쓰라-태프트 조약의 주인공이었던 태프트가 대통령이 되거든. 그러니까 일본은 1910년에 우리나라를 마음 놓고 합방해버린 거죠. 이미 조약을 맺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역사책에 하나도 안 나오죠. 마치 선교사들이 와서 막 독립운동을 도와주었다고 써 놓는데 선교사들은 개인적인 차원이고, 미국 정부는 이미 우리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거죠.

우리가 미국에 무슨 은혜를 입었는지 얘기해 봐요. 현대사에서 없어요. 8.15때 들어와서는 분단시켜 가지고 점용하고 있고... 제가 말하는 세계사나 한국사, 이런 걸 가르치면 학생들이 금방 역사의식을 가질 텐데 엉뚱하게 뭐 복잡하게 가르쳐요. 3.1운동만 위대한 것처럼. 독립도 못했는데.

□ 제국주의에 대해서 관심이 굉장히 많은 것 같고 또 연구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욕심을 낸다면 그쪽으로 글을 쓰신다든지 하면 좋지 않을까요.

■ 그럴 능력은 없고 다만 저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공부한 거예요.

“북미관계가 풀리지 않는 근본 이유는 미국 때문”

□ 선생님은 국제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잠깐 중국 얘기를 해보면 중국이 사회주의를 계속 유지하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그러는데, 중국 사회주의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저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봐요. 왜냐하면 만약 마오 혁명이 없었다면 중국은 갈기갈기 찢겼을 겁니다. 그 많은 소수민족이 각각 다른 나라를 만들어서 나라마다 아마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식민지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통일했잖아요. 한 나라, 한 민족을 만들었어요. 일단은 그런데서 긍정적이고 다음으로는 어떤 외세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그야말로 중국 인민의 힘으로 성공한 혁명이었단 말이죠. 그리고 그 상대인 부패한 장개석 정권을 대만으로 가도록 만든 게 마오 혁명이기 때문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 뒤에 많은 부작용 같은 게 있긴 있었죠.

그러나 그런 부작용은 부르주아 정권에서도 다 있었어요. 그렇잖아요. 옛날에 다 굶어 죽고 하던 걸 다 잊어버리고 그냥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굶어 죽은 것만 가지고 따지면 안돼요. 옛날에 왕들이 정치할 때는 백성들이 얼마나 죽었는지 기록도 안 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어쨌거나 중국이 제3세계의 그야말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왔잖아요. 미국과 괄목상대할 만한 위치에 간 것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 중국 사회주의를 두고 지식인들 사이에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 것 같아서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 제가 꼭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을 보는 관점은 미 제국주의 문화에 세뇌된 관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가 싫어하는 지수가 상당히 퍼센트가 올라가거든요. 특히 좀 젊은 세대가 많이. 그건 말이 안 돼요. 그거는 우리나라 매스컴들이 미국이 한 그대로 따라 하는 거거든요. 이건 정말 큰 문제다. 어떻게 우리가 지금 우리나라 경제에 가장 도움을 주는 나라를 그렇게 야유조로, 무슨 멸시의 대상으로 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봅니다.

□ 국제 문제에 이어서 이번에 한반도 문제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북미관계가 한국전쟁 이후에 70년이 넘었거든요.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과정들은 다 아실 테니까요. 근데 이게 진짜 안 되는 건지. 역사상 이런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전쟁을 겪었어도 평화조약을 맺고 어떻게든 나가는데 북은 안 되고 있습니다. 또 거기에 한국이라는 남쪽도 있어 가지고 간혹 북쪽과 민족화해적인 정권이 들어섰을 때도 있는데 어쨌든 북미관계가 근본적으로 안 풀리고 있거든요. 왜 그럽니까?

■ 미국의 책임이 있죠. 저는 전적으로 미국의 책임이라고 보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미국을 잘 몰라요. 저도 미국을 잘 모릅니다. 나라도 크고 세계의 온갖 머리 좋은 사람들이 다 모여가지고 어떻게든지 세계를 지배할 전략을 꾸미니까, 그런 것은 나 같은 머리로는 감히 간파할 수가 없어요.

저도 미국이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다만 내가 본 책이나 기록으로 볼 때는 우리가 미국을 참 모르고 있다, 아직도 그 전체를. 제국주의가 얼마나 심오하고 침략의 기교가 발달했는지 모르고 있다. 더 연구해야 한다. 본심을 알고 미국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한가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전쟁 때 미군이 고문단을 놔두고 철수했다가 다시 왔잖습니까. 그때 중국어 기록을 보니까 마오 주석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요. ‘미국은 앞으로 영원히 한반도에서 안 물러갈 거다’라는 거죠. 난 그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마오는 미 제국주의의 본성을 너무 잘 알아요. 그러니까 미국은 그냥 영원히 안 물러간다고 보고 한반도는 아예 통일이 안 되는 걸 전제해서 인민지원군을 보냈다고 해요.

제가 본 미국은 그런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갈 사람들이고 자기들이 볼 일 없으면 우리가 바지를 잡고 ‘가시리 가시리잇고’ 노래를 불러도 갈 사람들이다.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기지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갈 수 없는 처지다. 그런 전제 없이 망상을 하면 안 된다고 봐요.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은 2020년 9월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평화선언 서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인 임헌영 소장. [자료사진-통일뉴스]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들은 2020년 9월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평화선언 서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공동대표인 임헌영 소장. [자료사진-통일뉴스]

□ 시간이 갈수록 더 공고화될 우려가 있지 않습니까?

■ 미국이 그러면 영원히 있느냐. 방법은 하나 있어요. 남북한 우리 민족이, 적어도 남한 우리 국민들이 80% 이상만 다 반미하고, 그렇게 하려면 우선 정치지도자 대통령부터 80% 이상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보죠.

대통령이 80% 이상 지지를 받으면 바람이 세죠.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회담 같은데서 그렇게 성공한 것도 그때 대통령 지지가 올라서 그렇다고 보거든요. 실패한 것도 지지가 내려가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봐요.

외교는 내치의 연장선이란 말이에요. 우리 국민 전체가 반대하면 미국도 따라와요. 우리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그 나라 국민 전체가 반대하면 따라 오게 되어 있어요. 외세가 개입하고 싶어도 어렵죠.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될 날이 언제 올까. 참 요원해요. 남한이 좀 그러더라도 북과 남이 딱 손잡는 그런 망상을 해요. 북한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제가 망상을 한다면 ‘미국이 아무리 싸움을 붙여도 남북이 그냥 우린 전쟁 안하겠다’고 선언해버리면 평화협정은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할 이유가 뭐 있어요. 우리가 전쟁 안하겠다는데.

그런데 남한의 영향력도 부족하고 북도 남한과 그렇게 하기보다는 반드시 미국의 보장을 받고 싶어 하잖아요. 미국의 보장을 받는다는 거는 어떤 면에서는 미국이 굉장한 반대급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인데. 미국이 회담하기 전에 핵 문제 뭐 어째라 하는 건 그건 안 한다는 뜻입니다. 만날 필요도 없어요. 그러니까 북이 안 만나는 거예요.

아니 세상에 무슨 회담이든지 만나서 토의하는 것이지, 만나기 전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그런 회담이 어딨어요. 그런 건 외교관례상 아주 후레자식이나 하는 소립니다. 그게 무슨 외교입니까. 그래서 저는 미국이 저렇게 나오는 한 회담은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대선 “정당들의 과거가 어땠느냐는 걸 봐야지, 인물 하나만 보면 안 돼”

□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입니다. 그걸 4~5년간 해오면서 최근에 특히 종전선언 문제를 유엔에서도 얘기하고 또 미국과 문안 절충을 진행해서 많이 됐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도움이 될까요.

■ 중요성은 다 제고됐죠. 그리고 그동안에 문재인 대통령이 북과 맺었던 판문점에서 만났던 성과라든가, 평양 방문에서 선언했던 거라든가 그건 엄청난 성과입니다. 그 이전 대통령이 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큰 성과라고 인정해 줘야 됩니다.

그때는 저도 정말 뭐가 좀 될까 하는 희망을 가졌어요. 근데 결국 최종 결정은 다 미국이 한단 말이에요. 그럼 뭐 숨길 필요도 없어요. 미국 때문에 힘들다. 그럼 우리가 말해버려야 돼요. 그래야지. 뭐 ‘왜 이렇게 못하느냐’고 말하면 안 됩니다. 미국 때문에 못하는 거거든요. 지금 대통령은 충분히 의지가 있단 말이죠.

미국이 말 안 들으면 북이라도 문재인 정권을 인정해가지고 멋지게 이렇게 비밀 통로를 하든지 해야 되는데, 대통령도 참 안 됐어요. 북은 북대로 안 되지. 미국은 미국대로 허락 안 해주지. 글로벌 종전선언 한다고 하지만 미국 허가 맡고 와서도 안 되잖아요.

제가 볼 때는 허가 맡고 왔는데 (미국이) 뒤에서 틀어가지고 북쪽과 거래하는 은행에 대해서는 통제하고 군사 훈련은 하자고 하고. 쉽게 말하면 한국정부가 하도 조르니까 ‘그래 해봐’ 했는데, 간 뒤에는 ‘웃기네’ 하며 훼방 놓는 거예요.

웃기는 게 우리는 그렇게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다 하면서 일본도 참가시킬 기회가 있을 정도인데, 북은 외국인 하나도 없이 자기들만 무슨 무기 실험한다고 하는데 온 세계가 북만 욕을 하거든요. 거꾸로 생각해 봐요. 우리가 북한처럼 처해 있어서 거기에 소련군이 있고 우리는 미군도 없다. 그러면 우린들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국가 자위 차원에서 해야죠. 그거 안 하면 그건 바보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북이 저렇게 하는데 대해서 너무 언론이 호들갑떤다고 봅니다.

□ 한두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올해 3월 9일에 대통령 선거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 선거전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비호감 선거라는 말도 나오고 말이죠. 네거티브나 폭로전이 난무하고 있는데 정작 정책선거, 특히 남북관계라든지 친일 문제 이런 것들이 안 나오고 있습니다.

■ 나와야 되는 게 아니라 나는 국민들이 좀 빨리 각성을 해서 아파트 몇 채 짓는다, 돈을 얼마 준다, 그런 것보다는 우선 그 세력을 봐야 된다고 말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재명이 소속돼 있는 당과 윤석열이 속해 있는 그 당, 그리고 안철수의 정당을 봐가지고 그 정당들의 과거가 어땠느냐는 걸 봐야 된다고 말이죠. 그걸 안 보고 인물 하나만 보면 안 돼요.

임헌영 소장은 대선과 관련  “정당들의 과거가 어땠느냐는 걸 봐야지, 인물 하나만 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진-조천현]
임헌영 소장은 대선과 관련  “정당들의 과거가 어땠느냐는 걸 봐야지, 인물 하나만 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진-조천현]

왜냐하면 윤석열이 속해 있는 정당은 이승만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까지 다 대통령 임기도 못 채우고 쫓겨났거나 투옥되어 있거나 100% 다 그래요. 그 정당 출신으로 대통령 지냈던 청와대 주인들이 다 유고잖아요. 그런데 윤석열은 그 사람들을 숭배하고 받들고 있죠. 실제로 윤석열이 나중에 만약에 대통령이 된다면 각료로서 국무회의에 들어갈 사람들이 이승만,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를 존경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럼 한번 생각해 봐요. 국민들이 그런 사람들을 또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제쳐놓고 정권교체를 말하는데, 정권교체 했다가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더 나빠지면’이라는 가정이 아니라 나는 100% 더 나빠진다고 보거든요. 민주주의도 후퇴하고 뻔하게 독재 할 수밖에 없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보복을 할 거고 민주주의, 사회복지 이런 거 외면할 거고. 아파트 문제는 잘못한 것이니까 사과해야하지만 그것 하나 때문에 이런 엄청난 큰 불행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진보도 타락하면 꼴통이 되고 보수도 개혁하면 진보가 된다”

□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몇 년 전과 달리 최근에 청년세대-엠지(MZ)세대라고 그러죠. 이 세대가 정치의 주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거든요. 또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 이런 말도 있듯이 어차피 젊은 세대가 이제 우리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엠지세대에게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해 주고 싶은 말들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 젊다고 다 올바르지는 않거든요. 젊은 사람이 더 나쁜 사람도 많아요. 그거는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항상 그랬어요. 영감 세대라고 다 보수적인 것도 아니에요. 더 진보적이고, 더 전위적인 걸 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저는 전부 다 그렇게 너무 강조하지 말고 노장청 이게 비례가 돼야지, 젊은 사람들만의 나라도 아닙니다. 젊은 사람만 사는 나라입니까. 우리 같은 노인도 살아야죠. 그렇기 때문에 노장청 비례가 돼야 되고 다만 정책이 올바르냐, 그렇지 않느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 진보 세력도 젊었을 때 진보였다고 영원히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죠. 진보도 타락하면 꼴통이 되는 겁니다. 책에도 그렇게 썼죠. ‘진보도 타락하면 꼴통이 되고 보수도 개혁하면 진보가 된다.’ 그렇게 바뀌는 건데 지금은 아쉽게도 우리나라 진보 세력들이 너무나 꼴통화되고 있어요. 오히려 민주화의 장애가 되는 세력이 되고 있다는 걸 충고하고 싶어요.

□ 뒷말씀이 아주 여운으로 남네요. 오랜 시간 고맙습니다. 이것으로 임헌영 선생님과의 통일뉴스 신년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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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긴장 격화의 주범은 미국이다!"

신은섭 통신원 | 기사입력 2022/01/2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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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안성현 대학생.  © 신은섭 통신원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이하 민족위)는 23일 오전 11시 용산미군기지 앞에서 '한반도 긴장 격화 주범 미국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첫 번째 발언에서 안성현 참가자는 "2018년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거침없이 분단선을 넘었을 때, 우리 겨레 모두가 평화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희망찬 내일을 꿈꾸었다"라면서 "그런데 미국은 남북 합의 이행을 워킹그룹으로 막아버리고 평화가 아닌 전쟁을 불러오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했다."라고 미국의 행태를 짚었다. 이어 "우리 국민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 미국은 지금 당장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언에서 김성일 민족위 집행위원장은 "미국은 이번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시험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뭐만 하면 도발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미가 벌이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도발이라고 얘기하는 언론은 없다. 이런 적대시 정책, 이중 기준을 없애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평화, 북미 간의 협의와 대화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김은진 운영대표.  © 신은섭 통신원

 

이어 김은진 민족위 운영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였다.

 

민족위는 기자회견문에서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정세 긴장이 격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은 긴장 격화의 책임이 마치 북한에 있는 것처럼 진실을 호도하고 있지만,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라고 짚었다.  

 

이어 "북미 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대북 적대 정책을 펼친 책임이 그 첫 번째이다. 미국은 입으로는 계속 적대시 의사가 없다고 대화를 하자면서도, 제재와 선제공격 군사훈련 같은 적대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두 번의 정상 만남을 가졌지만 애초부터 관계를 개선할 의사도 약속을 지킬 생각도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민족위는 "남북 관계 발전을 가로막고 남북 대결을 부추긴 책임이 그 두 번째이다. 미국은 줄곧 남북 관계 발전을 차단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였다. 또 대북 적대적 성격의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강요하고, 미국산 첨단무기를 강매하는 등 한국을 대북 적대 정책 실현에 동원함으로써 동족 대결로 내몰아 정세 격화를 부추겨 왔다"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문 낭독을 마지막으로 모든 기자회견의 순서가 끝났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기자회견문] 한반도 긴장 격화의 주범 미국을 강력히 규탄한다!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정세의 긴장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긴장 격화의 책임이 마치 북한에 있는 것처럼 진실을 호도하고 있지만,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

 

북미 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대북 적대 정책을 펼친 책임이 그 첫 번째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는 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 만남에서 북미 정상은 종전을 선언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약속하였음에도 미국은 종전선언이라는 첫걸음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선제적으로 폐기하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기 약속을 지킨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싱가포르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대화를 질질 끌더니 이듬해 2월 하노이에서는 회담을 결렬시키기에 이르렀다. 실무협의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5건의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해제를 맞바꾸자’라고 합의했는데, 막상 정상이 만났을 때 미국이 난데없이 ‘영변+알파’를 들고나와 회담이 결렬되었다. 미국이 왜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해 회담을 결렬시켰는지 당시 많은 사람이 의문스러워했다. 북한은 '미국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었다'고까지 표현했다. 

 

이후 미국은 입으로는 계속 적대시 의사가 없다고 대화를 하자면서도, 제재와 선제공격 군사훈련 같은 적대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두 번이나 정상회담을 했지만 미국은 애초부터 관계를 개선할 의사도 약속을 지킬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약속한 '새로운 북미 관계의 수립'은, 말로는 친한 듯하나 속으로는 해칠 생각이 있음을 이르는 사자성어인 '구밀복검'의 전형이었다.

 

중국이 대북 추가 제재를 논의한 유엔안보리를 전후하여 "한반도 정세가 오늘에 이르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라며 미국 책임론을 에둘러 표현한 것, "미국은 제재 만능론을 포기하고 실질적 조치를 내놓음으로써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를 해결하고 대북 안보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은 미국의 이런 태도에 연원을 두고 있다.

 

남북 관계 발전을 가로막고 남북 대결을 부추긴 책임이 그 두 번째이다.

 

2018년 남과 북이 합의한 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선언은 자주와 평화·통일을 바라는 온 민족에게 커다란 선물이었다. 이후 남북 관계가 급격히 발전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은 한미워킹그룹을 만들고 승인 정책으로 남북 합의 이행을 방해했다. 2018년 12월 26일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개성 판문역에서 열렸는데, 실제 착공식 없이 25분 만에 행사가 끝났다. 착공 없는 착공식이라니 그야말로 웃지 못할 희비극이었다. 결국 그 뒤로 남북 관계 발전은 멈췄다. 당시 남북 관계가 계속 발전했다면 지금쯤은 경의선 타고 평양, 신의주를 오가며 러시아, 유럽까지 뻗어 나가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미국은 우리 민족의 소중한 꿈을 짓밟았고, 이는 한반도 긴장 격화로 이어졌다.

 

끊어졌던 남북 통신선이 작년 여름 복구되면서 우리 국민이 품었던 '남북 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한 가닥 희망은,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면서 파탄 났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하라’는 각계의 빗발치는 목소리도 미국의 안중에는 없었다. 미국은 다시 한번 남북 관계 발전에 차단봉을 내리고 평화·통일의 꿈을 짓밟았다. 

 

이처럼 미국은 줄곧 남북 관계 발전을 차단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였다. 또 대북 적대적 성격의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강요하고, 미국산 첨단무기를 강매하는 등 한국을 대북 적대 정책 실현에 동원함으로써 동족 대결로 내몰아 정세 격화를 부추겨 왔다. 

 

이렇듯 한반도 긴장 격화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음에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사격 훈련을 도발이라며 규탄하고 제재에 나섰다. 그리고 다른 동맹국들도 대북 제재에 동참하라고 압박하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인다.

 

게다가 1월 중순에는 동중국해·남중국해 등 동아시아 바다에서 핵 추진 항공모함 3척과 강습상륙함 2척이 작전 항해를 펼치는 대북 압박 무력시위를 하였고, 3월에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겠다고 하고 있어 정세는 더욱 격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임에도 미국은 계속 뻔뻔하게 대화 타령을 하고 있어, 한반도 정세 안정과 평화를 바라는 우리 국민의 더욱 큰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 격화 주범 미국을 강력히 규탄한다!

미국은 긴장 격화 불러오는 대북 적대 정책 철회하라!

전쟁 위기 고조시키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영구 중단하라!

 

1월 23일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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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유권자로 보이지 않나요?" 20대 여성들의 반문

[이대녀 4인이 본 대선] "이대남 공약은 있는데, 왜 우릴 위한 공약은 없는가" 소외감

22.01.24 06:00l최종 업데이트 22.01.24 06:00l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16일 오전 서울 동작구 스페이스살림에서 열린 '나라 바꾸는 여성' 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성평등 대한민국 플래카드를 펼치고 있다.
▲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16일 오전 서울 동작구 스페이스살림에서 열린 "나라 바꾸는 여성" 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성평등 대한민국 플래카드를 펼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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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들이 20대 남성을 겨냥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쏟아내는 걸 보면, 20대 여성을 유권자로 보지 않는 거 같다." (20대 여성, 이연미(가명)씨)

<오마이뉴스>가 전화 인터뷰한 20대 여성 4인이 이번 대선에서 느끼는 감정은 '소외감'이었다. 정치권과 언론이 이른바 이대남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왔다. (관련기사 :  이대남의 속마음 "TV토론 보고 정할 것"...이준석 평가는 극과극 http://omn.kr/1wwk7 )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2020년 4월 15일) 당시 20대 유권자 수는 약 679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15.5%를 차지했다. 같은해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대 여성(20~29세)은 313만 명, 20대 남성(20~29세)는 348만 명 가량 된다. 남성이 35만 명 정도 더 많다. YTN의뢰로 리얼미터가 1월 3·4일 전국 18살 이상 39살 이하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0대 여성의 투표 의향은 73.1%, 20대 남성은 68.6%였다. 한때 문재인 정부·민주당의 대표 지지층으로 꼽혀온 20대 여성의 표심이 이번 대선에서 어떻게 반영될지 아직은 미지수다. 다만 이들이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에서 민주당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를 비슷하게 지지했다는 건 참고할 만하다. 당시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에서 20대 여성의 44%가 민주당 박영선 후보에게, 40.9%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했다. 


최근 경향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3046명를 대상으로 1월 3주(16∼21일)차 주간 집계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20대여성(만18세~29세) 126명 중 28.2%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28.6%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지했다. 거의 같은 수치다.

대선 후보들의 행보에 대해 인터뷰에 응한 20대 전후반의 여성 4인은 지역(서울·경기·충청·광주)과 직업(대학생·직장인·자영업자)을 막론하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젠더 갈등의 중심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본인은 40대에 가까운 남성정치인이면서 20대 남성의 마음을 대변하는 척 젠더 갈라치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20대 여성들은 입을 모아 "집, 회사, 학교 주변에서 불법촬영, 스토킹, 데이트 폭력 등의 위협을 느낀다"면서 대선 후보들에게 '여성의 안전'과 관련한 정책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왜 20대 남성을 위한 공약은 있는데, 20대 여성을 위한 공약은 없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윤석열, 안희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 
 
 
20대 여성 4인
- 최미진(가명) : 24세, 서울에서 자취 중, 내년 2월 졸업예정, 첫 대선 투표 앞두고 고민. 윤석열 후보는 안된다고 생각.
- 김영우 : 25세, 충남에 있는 대학 4학년, 지난 대선에 이어 심상정 후보 지지.
- 박선예(가명) : 26세, 경기도 인근에서 2년째 자영업, 현재 투표 후보 정하지 못함.
- 이연미(가명) : 29세, 광주광역시에 사는 3년차 직장인, 기혼,  안철수 후보 쪽에 기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최미진씨는 "반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가감없이 밝힌 유력한 대선 주자들을 보면서, 첫 대선인데 투표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라면서도 "적어도 윤 후보를 뽑을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김영우씨 역시 "이·윤 후보는 20대 여성에게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도저히 뽑을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조금 더 고민하겠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심상정 후보를 뽑게 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유일한 기혼자인 이연미씨는 "최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마음이 기울었다"면서 "윤 후보는 자기가 말하는 정책을 이해는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꼭두각시 같다. 이 후보는 본인을 비롯해 가족과 관련한 도덕적 문제들이 마음에 걸린다"라고 전했다. 경기도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선예씨는 "지난 대선에서는 큰 고민없이 문재인 후보를 뽑았는데,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 고민중"이라면서도 "아무래도 성남시장·경기도지사를 거친 이 후보가 정책 실행 능력이 있을 거 같아 마음이 간다"라고 설명했다.

후보들의 가족과 관련한 이슈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건 20대 남성들의 반응과 비슷했다. 지난 16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의 이른바 '김건희 통화 7시간' 보도에 대해 이연미씨는 "법적 판단까지 끝난 성범죄자인 안희정을 옹호한 김건희의 발언은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꼭 보도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안이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유권자로서 궁금한 건 후보 가족들의 발언과 의견이 아니라 후보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우씨 역시 "이번 (MBC) 보도를 포함해 언론들이 후보 검증보다 후보들의 가족·사생활에 집중하는 느낌"이라며 "의식적으로 후보 가족과 관련된 뉴스는 보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미진씨는 "김건희 발언보다 내가 궁금한 건 윤석열 후보가 여전히 안희정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냐는 것이다. 검찰총장까지 한 후보의 생각이 이렇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짚었다. 

20대 여성들은 대선 후보들의 공약 중에 "눈에 띄는 공약이 없다"라고 평가했다. 이대남의 마음을 잡기 위한 '안티 페미니즘' 정책만 있을 뿐, 정작 20대 여성의 삶과 연관된 공약은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젠더갈등'을 주도하고 있는 이준석 대표를 향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박선예씨는 "처음 이준석이 청년 정치인으로 등장했을 때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갈등을 유발해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실망스럽다"라고 말했다.

김영우씨는 "사실 이준석은 영재코스를 밟아 보통 이대남이 괴리감을 느낄만한 인물 아니냐"면서 "직업 정치인으로 생계고민 하지 않고 생활한 걸 보면 취업 고민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이십대와는 다른 인생이다. 그런데도 이대남을 대변한다는 게 우습다"라고 날을 세웠다.

이들은 특히 윤 후보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안 후보 역시 '무고죄 강화'를 언급하고 스토킹 처벌법 '반의사불벌죄'를 삭제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반감을 나타냈다. 최미진씨는 "여성들은 매일 폭력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데, 후보들은 우리들의 불안함을 하나도 모르는 것 같다"면서 "젊은 여성을 위한 공약이 아니라 젊은 여성들에게 피해를 주는 공약을 내거는 것에 대해 기가 찬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상의 폭력에 두려움 느끼는 20대 여성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출연한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 방송 화면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출연한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 방송 화면
ⓒ 닷페이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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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한 20대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일상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대학생을 비롯해 자영업·직장인까지 나이와 직업이 다른 이들이지만 집 안팎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김영우씨는 "지난해 다른 학과 연구조교가 복도·여성화장실에서 불법촬영 하다 걸려 경찰이 출동했다. 남학생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여학생을 성희롱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은 사건"이라면서 "집도 안전한 공간은 아니다. 얼마 전 자취하는 친구의 집 창문에 누군가 돌멩이를 던지고 립스틱으로 이모티콘을 남겨 경찰에 신고한 일이 있었다. 혼자 살면서 한 두 번은 경찰서를 가게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공포에 대해 설명했다.

최미진씨 역시 "새벽에 문을 따고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어 놀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몇번이나 문을 잠갔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라면서 "빌라의 공동현관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구조라 항상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박선예씨 역시 "여성 폭력과 관련한 뉴스를 보다보면, 모르는 남성에 대한 불신·막연한 공포가 생긴다"라고 토로했다.

이는 20대 여성이 생각하는 시급한 해결과제로 연결되기도 했다. 혼자 자취하는 대학생인 이들(최미진·김영우)은 '주거 안전성'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씨는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 신분으로 주거 환경이 안전하고 깨끗한 곳에 집을 구하기 쉽지 않다"면서 "내집 마련을 말하는 게 아니다. 대학생을 비롯한 사회 초년생들이 최소한 안전한 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씨 역시 "우리에게 좋은 집이란 곧 안전한 집을 뜻한다"라고 설명했다.

20대 중반을 넘어선 이들은 '청년 기본소득', '자영업자 대책'에 관심을 보였다. 직장인인 이연미씨는 "지지후보를 떠나 청년 기본소득은 우리 세대에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박선예씨는 "나름 청년 사업가로 야심차게 일을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2년을 넘게 고생하고 있다. 주위에 빚을 떠안고 폐업하는 자영업자들도 많다"면서 "이들을 위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양자 토론 뿐 아니라 모든 후보 참여하는 토론 보고 싶어" 

대선 후보들에 대한 불만과는 별개로 20대 여성들은 "투표는 꼭 할 생각"이라며 투표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이어 대선 후보 TV토론회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명·윤석열 양자 토론 뿐 아니라 안철수·소수 정당 후보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방식의 토론을 보고싶다"면서 "SNS 등을 통해 20대 여성들이 직접 후보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연미씨는 "윤석열에게 안티 페미니즘 전략이 20대 여성의 정치 불신을 키우고 있는 걸 알고있는지", 최미진씨는 이재명 후보에게 "여성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게 중요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왜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대선이 50여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20대 여성들을 위한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영우씨는 "투표를 포기하고 싶다거나 무력감을 호소하는 20대 여성들의 목소리에 이제라도 각 후보가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 여론조사기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성평등 외면하는 퇴행적 대선정국 규탄 회견'이 11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등 38개 여성시민단체 주최로 열렸다. 참석자들이 '거꾸로 흐르는 대선시계'를 바로 돌리겠다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성평등 외면하는 퇴행적 대선정국 규탄 회견"이 11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등 38개 여성시민단체 주최로 열렸다. 참석자들이 "거꾸로 흐르는 대선시계"를 바로 돌리겠다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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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주변에 미신과 점술이 난무하는 이유를 추정해보자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윤석열 주변에 미신과 점술이 난무하는 이유를 추정해보자

  •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 <span style="font-size: 0px; letter-spacing: -0.8px;"> </span>
  • 발행 2022-01-24 08:30:49
  •  
  •  50년 넘게 살면서 점 비슷한 걸 본 경험이 내 인생에서 딱 한 번 있었다. 1989년 대학 시험에 낙방한 이후 재수 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그 해의 운세가 너무나 궁금해(올해는 합격할 수 있을까?) 학원 근처에 있는 점집을 찾았다.

    불안한 마음에 금년 운을 물었더니 그 점쟁이 하는 말, “아주 좋아. 올해에는 득남(得男)할 운세야”라는 거다. 이 돌팔이가 지금 뭐라는 거냐? 당시 나는 19세 미성년자였고 연애를 해본 적조차 없던 모태 솔로였다! 이 헛소리를 들은 이후 나는 결단코 점이나 그와 유사한 것을 보지 않았다.

    일국의 유력 대통령 후보 주위에서 점성술과 미신이 난무한다. 후보는 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리고, 후보 반려자는 “내가 무당보다 점을 더 잘 본다”고 자랑질이다. 천공스님, 건진법사, 무정스님 등 부처님의 가르침과 1도 상관없어 보이는 무당 부류들이 후보 주위에 끊임없이 얼씬거린다.

    이 모든 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인가? 웃기지 마라. 2002년 통계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가이메달(Guy Medal) 수상자 데이비드 핸드(David Hand)는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핸드가 제시한 여러 법칙 중 ‘아주 큰 수의 법칙’이란 게 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그건 사실 그 일이 아주 많이 반복됐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는 뜻이다.

    무슨 말일까? 천공스님, 건진법사, 무정스님이 들통이 난 이 사태가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진실은, 이 셋 이외에도 훨~씬 많은 무당들이 윤 후보의 주위에 얼쩡거렸을 확률이 더 높다. 무당들이 워낙 많이 얼쩡거렸기 때문에 그들 중 고작(!)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게 통계학적으로 올바른 해석이다.
     

    통제력이 없는 사람의 특징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추정을 해봐야 한다. 2008년 <사이언스>에 ‘자기 통제력이 약한 사람이 미신을 더 잘 믿는다(Lacking control increases illusory pattern perception)’라는 논문이 실렸다.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제니퍼 윗슨(Jennifer R. Whitson) 교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애덤 갈린스키(Adam Daniel Galinsky) 교수의 공동 연구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대기업 마케팅 부서의 직원이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아이디어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 발로 왼쪽 발을 세 번 밟고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 당신이 너무 급하게 회의에 들어가는 바람에 이 습관을 실시하지 못했죠. 그리고 그날 회의에서 당신이 낸 아이디어는 채택되지 않았어요. 당신이 평소와 달리 발을 세 번 밟지 못하고 들어간 것과, 당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은 사건 사이에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을까요?”

    발을 세 번 밟지 못한 것과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은 사건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은 이유는 그냥 그 아이디어가 개떡 같아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하기 전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 중 절반의 자기 통제력을 고갈시켰다. 예를 들자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다보면 절대 풀리지 않는 문제를 계속 풀게 하는 식이다. 이 과정을 거친 이들(문제 풀이에 계속 실패한 이들)은 ‘세상은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라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라는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된다.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통제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앞의 그 질문에 어떻게 답을 했을까? 통제력을 가진 사람들은 발을 밟지 못한 것과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은 일의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답을 했다.

    반면 통제력을 잃은 사람들은 이 둘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고 믿었다. 특히 이들은 ‘발을 구르지 않으면 더 나쁜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라며 더 많이 불안해했고, 발을 구르는 것뿐 아니라 특정 양말을 신는 등의 행동에도 어떤 음모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착각했다.
     

    무당은 이럴 때 그들을 유혹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연구팀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를 깔끔하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 존재다. 이게 바로 자신과 주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갖는다는 말의 의미다.

    예를 들어 실력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이 하버드 대학교 교수 임용 과정에 원서를 냈다고 치자. 이런 사람이 이런 꿈을 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자기의 꿈에 대한 깔끔한 설명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런 게 있을 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 누군가가 와서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이 하버드 교수가 되는 건 신의 뜻이야. 내가 어제 꿈에서 신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고!”

    바로 여기서 통제력이 약한 사람들이 “그래, 바로 이거야!”라며 무릎을 친다. 갈린스키 교수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헛것을 더 잘 믿는다”라고 설파한 이유다.

    이 연구를 윤 후보 부부에게 적용해 보자. 왜 윤 후보 주위에 무당이 끝없이 출몰하며, 특히 그의 반려자는 왜 그렇게 점에 집착할까? 나의 추정은, 이 둘 모두 자신들의 성공에 대해 절대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윤 후보가 사법고시에 패스한 이유는 깔끔하게 설명이 가능하다.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이런 성공에는 미신이 끼어들 이유가 없다.
     

    그가 뭘 했다고 대통령 후보인가?


    반면 그가 지금 유력 대통령 후보가 된 이유를 생각해보라. 이건 깔끔은커녕 지저분하게도 설명이 안 된다. 도대체 그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유력 대통령 후보인가? 자기가 생각해도 황당하지 않겠나? 이때 무당이나 점쟁이가 끼어들어 “점을 쳐보니 당신이야말로 왕이 될 상입니다” 뭐 이런 말을 한다. 여기서 꼴딱 넘어가는 거다.

    그의 반려자 김건희 씨도 마찬가지다. 그가 자랑하는 수많은 화려한 이력들, 그가 그 이력에 걸맞은 실력을 갖고 있나? 그에 걸맞은 노력은 했고?

    박사 학위 소유자라는데 논문 내용이 ‘관상으로 궁합을 알아보기’란다. 장난하냐? 그의 논문에는 ‘회원 유지’가 영어로 ‘member Yuji’로 적혀 있단다. 학사밖에 안 되는 나도 글을 그따위로는 안 쓴다.
     
    MBC 뉴스데스크 ⓒ영상 캡쳐

    이 정도 되면 본인도 본인의 성공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거다. 이때 무당이 속삭인다. “당신은 국모(國母)가 될 운명입니다. 내가 점을 쳐보니 점괘가 그래요”라고 말이다.

    행동경제학에는 통제력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라는 용어가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헛된 심리를 뜻한다.

    내가 보기에 이 부부는 지금 능력에 비해 너무 과도하게 출세했다. 그런데 이 기쁜 일이 자기들에게 일어난 이유를 설명을 못한다. 주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미신의 유혹은 피할 수 없다.

    신(神)의 시대가 저물고 이성의 시대가 열린지 무려 200여 년이다. 그런데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내가 점을 더 잘 치네, 쟤가 점을 더 잘 치네, 이런 걸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 나는 이 상황이 실로 슬프다. 나라의 운명이 어찌 되려고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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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윤석열 후보, 주변 무속인들 모두 정리해야”

기자명

  •  박서연 기자 
  •  
  •  입력 2022.01.24 07:49
  •  
  •  댓글 1
 
 

[아침신문 솎아보기] 문 대통령이 보낸 독도 그려진 선물 안 받은 주한 일본대사관
김서중 교수 경향신문 칼럼에서 “언론, 서울신문 ‘편집권 침해’ 보도 나서자”

지난 22일 MBC ‘뉴스데스크’가 “‘너는 검사 팔자다’.. 고비마다 점술가 조언?” 기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자 측의 ‘무속 의존 논란’을 보도했다. 지난주 MBC ‘스트레이트’에서 윤석열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와 서울의소리 기자의 통화 녹취록을 보도했는데, 통화 내용 중 ‘무속’ 관련 발언을 추가 보도했다.

MBC 보도를 보면 윤석열 후보와 ‘무정’이라는 점술가가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MBC는 기사에서 “김건희씨는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에서 무정은 남편 윤석열 후보의 20대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이라고 말했다. 고시도, 검사라는 직업 선택도 무정의 말을 따랐고, 그랬더니 정말 그대로 됐다고 말했다. 결혼도 심도사의 조언을 따랐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2일자 MBC ‘뉴스데스크’ “‘너는 검사 팔자다’.. 고비마다 점술가 조언?” 기사.
▲지난 22일자 MBC ‘뉴스데스크’ “‘너는 검사 팔자다’.. 고비마다 점술가 조언?” 기사.
▲24일자 아침신문들 1면.
▲24일자 아침신문들 1면.

보도에는 김건희씨가 이명수 기자에게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굿을 했다는 발언도 있었다. 이에 홍 의원과 유 전 의원은 반발했다. 24일자 경향신문은 4면 기사에서 “홍 의원은 이날(23일) 정치 플랫폼 ‘청년의꿈’에 김씨를 향해 ‘거짓말도 저렇게 자연스럼게 하면 어떻게 될지 참 무섭다’며 ‘내 평생 굿한 적 없고 나는 무속을 믿지 않는다’고 적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그간 침묵했던 유 전 의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김씨가 말한 부분은 모두 허위 날조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저는 굿을 한 적이 없다. 고발사주를 공작한 적이 없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지만 사실관계를 분명히 알린다’고 밝혔다”고 썼다.

▲24일자 경향신문 4면.
▲24일자 경향신문 4면.

국민일보은 사설에서 “기자의 유도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지만 김씨는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도) 굿을 했다’는 식으로 말해 당사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사적 대화의 일부분이고 과장된 발언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무속인 논란을 정치 쟁점화하려는 측면이 강하고, MBC의 보도 의도도 미심쩍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일보는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윤 후보 부부 주변의 무속인 논란은 벌써 네 번째다. 지난주에는 ‘건진 법사’라는 인물이 선대위 네트워크본부에서 활동하며 후보 일정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민의 힘은 ‘오해’라며 네트워크본부를 해체해버리는 강수를 뒀다. 국민의힘 후보 경선 TV 토론에서 윤 후보는 왼쪽 손바닥에 ‘왕(王)’자를 적고 나왔다. 누가 이 글자를 적었는지 아직도 루머들이 떠돈다. ‘천공스승’이라는 사람이 윤 후보의 멘토라는 주장도 있었다”고 짚었다.

▲24일자 국민일보 사설.
▲24일자 국민일보 사설.

윤석열 후보가 주변 무속인들을 모두 정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민일보는 “윤 후보와 국민의힘은 무속인 논란은 오해이며 민주당과 일부 언론의 악의적인 공격이라고 반박해왔다”며 “의혹의 빌미를 준 것은 윤 후보 부부다. 무속인들이 윤 후보 부부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자세한 속사정을 알기는 어렵다.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윤 후보는 주변 무속인들을 모두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법원은 김씨 녹음파일 속 무속 관련 발언의 공개를 허용하며 공적인 검증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23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 부부의 무속인과의 관계에 대해 응답자의 60.7%가 부정적으로 봤다. 법원도 시민도 정치 속으로 들어온 무속이 국정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라고 했다.

▲24일자 경향신문 사설.
▲24일자 경향신문 사설.

윤 후보자가 제기된 의혹과 진상에 대해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그러나 윤 후보 캠프는 ‘후보·부인·선거본부 모두 무속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윤 후보 부부가 직접 무속인들과 교류하고 주술적 행동을 한 정황이 이어지는 데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 없이 덮기만 하려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윤 후보는 국민적으로 제기된 의혹과 진상에 대해 진솔히 밝힐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보낸 독도 그려진 선물 안 받은 주한 일본대사관

지난 18일 청와대는 주한 외교 사절과 코로나19 의료진, 사회적 배려 계층 등 1만5000여명에게 각 지역 특산물을 설 선물로 보냈다. 설 선물을 보낸 대상자에는 주한 일본대사관도 있었는데 그는 선물 상자에 독도 일출 모습이 그려졌다며 청와대에 항의해 문재인 대통령의 설 선물을 받지 않기로 했다. 이 소식은 일본 언론이 보도해 알려졌다.

▲24일자 한국일보 6면.
▲24일자 한국일보 6면.
▲24일자 한국일보 사설.
▲24일자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일본이 옹졸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일본대사관은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억지 주장까지 하며 청와대에 항의했다고 하니 도를 넘은 일본의 트집 잡기가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면서 “임기 100여일을 남겨 둔 청와대가 마지막 설 선물에 굳이 반일 감정을 담아 전달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된 선물상자 그림에서 독도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일장기를 연상시켜 한국인이 보기에 거북한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사정이 이런 데도 선물 문제를 공론화시켜 한일 갈등을 부추긴 일본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라고 지적한 뒤 “선물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일본 대사가 공연히 선물 상자의 그림을 문제 삼아 이를 돌려보낸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옹졸한 행태다. 설 선물마저 외교가 아니라 정치영역에 놓고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면 한일 관계는 감정적으로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며 일본을 비판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부적절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5면 기사에서 “하지만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청와대가 독도 그림이 그려진 대통령의 선물을 주한 일본대사관에 보낸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 사절과 국내 인사들에게 모두 전달한 선물이라 일본만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일본대사관 측이 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청와대가 모를리 없다는 점에서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24일자 경향신문 5면.
▲24일자 경향신문 5면.

경향신문은 이어 “일본 내에서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정부에 청와대가 반격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일본 반발을 예상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이번 일이 일본에 득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독도에 대한 분쟁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독도가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들고나온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 이후 일본 측이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빌미 삼아 공동 기자회견을 보이콧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며 “청와대의 설 선물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도와준 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서중 교수 경향신문 칼럼에서 “언론, 서울신문 ‘편집권 침해’ 보도 나서자”

최근 서울신문이 2019년 호반건설이 포스코가 소유한 서울신문 지분을 인수하려던 당시 썼던 검증 기획기사 50여건을 무더기로 삭제했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호반건설을 대주주로 맞이했다. 서울신문 편집국장은 “편집권 침해 문제가 아닌 상생을 위한 판단의 문제”라고 말했으나, 대주주에 불리한 기사를 모두 삭제하기로 결정하면서 대주주의 입맛 따라 움직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증 기사 삭제 후 서울신문 기자들은 연일 기수별 성명서를 내놓고 있다.

▲24일자 경향신문 칼럼.
▲24일자 경향신문 칼럼.

이런 상황에서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24일자 경향신문 ‘미디어세상’ 코너에서 “그런데 더 심각한 현실은 사주가 없는 일부 신문이나 방송, 미디어 전문지를 제외하고는 이를 다루는 언론이 없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김서중 교수는 “최근 정용진 부회장의 SNS 발언으로 신세계 주가가 급격히 하락하는 위기를 맞았다. 소위 오너리스크다. 언론의 본질을 침해하는 서울신문 대주주의 행태는 역시 서울신문의 위기 곧 오너리스크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신세계만큼 파장이 없는 듯하다. 이유는? 언론의 보도 유무”라고 주장했다.

사주의 역린을 건드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김 교수는 “혹시 대부분 언론이 서울신문 문제를 보도하지 않는 것은 자사 사주의 역린을 건드린다고 생각해 자발적으로 편집권 ‘침해’를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한 다른 언론들에서도 사주들의 비리가 은폐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언론에 미치는 자본, 사주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이로 인해 신뢰도는 낮아지고 있다. 역시 이로 인해 떠난 수용자는 쉽사리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주의 위기는 언론계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의 중요한 요인임을 언론인들은 다시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아프더라도 고름을 짜내고 새살이 돋게 해야 한다”며 “우선 서울신문 ‘편집권 침해’ 보도에 나서자”고 당부했다.

[관련 기사 ; 서울신문, “상생을 위한 판단” 호반 대해부 보도 일괄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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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586 용퇴론' 물꼬…"30년간 우린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했다"

김종민 "임명직 안하겠다는 걸로 부족…대통령 권력부터 바꿔야"

이명선 기자  |  기사입력 2022.01.24. 07:32:53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586 용퇴론'의 물꼬가 트였다. 물꼬를 튼 인사는 83학번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고, 현재 재선 의원으로 당내 '86세대'로 분류되는 김종민 의원이다. 

김 의원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고 "변화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586 용퇴론이 나온다. 집권해도 임명직 맡지 말자는 결의다"라며 "그러나 임명직 안하는 것만으로 되나. 이 정치 바꾸지 못할 거 같으면 그만두고 후배들에게 물려주든지, 정치 계속 하려면 이 정치를 확 바꿔야 하는것 아닌가"라고 '586 용퇴론'에 힘을 실었다.

김 의원은 "386 정치가 민주화 운동의 열망을 안고 정치에 뛰어든지 30년이다. 그동안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청와대 일도 했다. 그러나 그 30년 동안 대기업 중소기업 임금격차가 80%에서 50%대로 더 악화됐다. 출산율은 세계최저다. 총체적 민생 위기다. 민주주의 제대로 하면 민생이 좋아지는게 근대시민혁명 이후 200년 역사의 예외없는 법칙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문제다? 맞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서 민주주의하겠다고 정치권에 들어온 386 정치는 책임이 없나. 우리는 민주주의 제대로 했나. 반대편과 싸워 이기기는 했지만, 반대편을 설득하고 승복시키지는 못했다. 생각이 달라도 힘을 모아내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못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김 의원은 '정권 교체 민심'의 절반이 '문재인 정부 심판'이며, 나머지 절반은 중도층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권 교체 민심을 가진 중도층은) 여-야, 보수-진보 다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치 전체를 불신한다. 다 똑같지만 힘있는 여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중도층 민심은 경제민생이 나아지기를 원한다. 경제 민생을 바꾸려면 정치를 바꿔야 한다. 그 정치를 바꾸기 위해 정권을 바꾸려는 것이다. 정권교체 민심의 뿌리는, 정치교체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고 말했다.김 의원은 "민주당이 먼저 결단해야 한다. '그냥 이대로 열심히만 하면 이긴다'는 건 안이한 판단"이라며 "민주당은 여론조사 수치에서 5% 이상 앞서야 실제투표에서 이길 수 있다. 지금의 물줄기를 돌려야 한다. 정권교체 민심 55% 가운데 10% 이상을 설득해야 한다. 변화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질 정책을 차곡차곡 쌓아서 역량을 보여주자고 한다.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중도층 10%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민주당은 이 민심에 대답해야 한다. 경제 앞으로, 정치 제대로"라며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를 해야 한다"며 "정치 양극화와 소모적인 대결정치, 청산해야 한다. 양극화를 해결하고, 국민 역량을 결집하는 통합의 정치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김 의원은 "대통령 권력부터 바꿔야 한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내려오는 비서실 정부 그만하고, 국무위원 정부로 가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은 비서가 아니라 국민과 헌법에 책임지는 국무위원의 직접 보좌를 받아야 한다. 국가 예산을 사실상 기재부가 결정하는 비정상도 바꿔야 한다. 예산은 법률이다. 국민 대표인 국회가 결정해야 한다"고 방안을 제안했다. 

김 의원은 "근본적으로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권력을 바꿔야 한다. 국민의 대표는 국민을 닮아야 한다. 국민은 다양한데 국회가 엘리트 5060 동종교배여서는 신뢰받지 못한다. 2030과 여성 등 다양한 국민들이 실제 인구만큼 국회에 들어와야 한다"며 "노무현이 20년 전 선거법개정으로 승자독식 대결정치를 바꾸자고 절규했지만, 386 정치인 100명이 넘는 국회에서 노무현의 정치개혁은 멈춰서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선 기자 방송국과 길거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지금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기자' 명함 들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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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7630명 확진, 이틀째 7천명대…‘오미크론 대응체계’ 기준 초과

등록 :2022-01-23 10:07수정 :2022-01-23 10:13

광주·전남·평택·안성은 26일 체계전환
위중증환자 431명, 사망자 11명 발생
22일 오전 서울 용산역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22일 오전 서울 용산역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7630명으로 이틀 연속 오미크론 대응 체계 전환 기준인 7000명을 넘었다.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23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7630명(국내 7343명, 국외유입 287명)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15일 이후 39일 만에 최다 규모이자, 전날 7008명에 이어 이틀째 7000명대다.정부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검출률이 50%를 넘어 우세종이 되는 기준점으로 하루 확진자 7000명을 제시하고, 이를 초과하면 기존 ‘3T’(검사·추적·치료) 전략을 고위험군 중심 오미크론 대응 방역·의료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오미크론 검출률이 80%에 달하는 광주·전남과 주한미군 집단감염 영향으로 우세종화된 평택·안성 등 4개 지역은 26일부터 고위험군 중심 유전자증폭(PCR) 검사 실시, 일반 국민 자가검사키트·호흡기전담클리닉 신속항원검사 등 대응체계를 전환한다.재원 중인 위중증 환자는 나흘째 400명대다.최근 1주간 579→543→532→488→431→433→431명으로 감소 추세다. 사망자는 11명으로, 지난해 11월15일 12명 이후 68일 만에 첫 10명대다. 누적 사망자는 6540명으로 확진자 대비 치명률은 0.89%다. 중증환자 전담 병상 가동률은 전날 20.4%에서 19.9%로 내려와 현재 1769병상의 여력이 있다.전체 인구 대비 예방접종률은 1차 86.8%, 2차 85.4%, 3차 49.2%다. 3차 접종률은 고위험군인 60살 이상 고령층이 84.7%, 18살 이상 성인 기준으론 56.9%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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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무당 내가 봐준다"는 김건희, 기자의 관상을 보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01/23 10:35
  • 수정일
    2022/01/23 10:3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건희의 7시간51분] 그의 발언에서 새어 나오는 무속의 기운 ①

22.01.23 09:17l최종 업데이트 22.01.23 09:17l
<오마이뉴스>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와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의 7시간51분 전화통화 녹취록을 확보했다. <오마이뉴스>는 이 내용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판단하고, 이에 대한 검증을 몇차례에 걸쳐 보도한다.[편집자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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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0일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와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의 다섯 번째 통화가 이루어진 날이다. 이 통화부터 대화 내용에 무속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세간에 내가 무당 많이 만난다고 이렇게 돼 있잖아요, 전혀 아니고, 저는 무당을 원래 싫어해요"라던 김씨는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김건희씨 "웬만한 무당이 저 못 봐요. 제가 더 잘 봐요."
이명수 기자 "누님 사주를 못 본다고? 나하고 똑같네."
 "제가 더 잘 봐요. 제가 웬만한 무당 제가 봐줘요. 그래서 제가 뭐 그래서 소문이 잘못 났나 본데, 소문이 좀 잘못 난 게 있는데, 제가 무당을 가서 점 보는 이런 게 아니라, 제가 무당을 더 잘 봐요. (중략) 내가 (이명수 기자) 얼굴 보면 내가 정확히 얘기할 수 있어. 재미로."


이 기자는 바로 반응했다.

 "내일 사진 한 장 찍어서 보내줄 테니까. 나 좀 봐주세요, 누님."
 "사진 보내고, 안경 다 빼고, 사진 딱 그..."
 "안경도 빼야 해? 안경 빼면 나 못생겼는데."
 "아니 내가 대충 봐줄게. 그다음에 손금 있죠? 양손 손금 찍어 보내요. 내가 그럼 대충 얘기해줄게."

(중략)

 "신기라고 있잖아요. 우리 뭐 내림 받는다고 그렇게 하다가,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렇지. 아유 그게 좀 있죠. 그래도 좀 있어서 내가 사람들 막, 근데 나는 전혀 내가 신을 받거나 이런 건 전혀 아닌데, 내가 웬만한 사람보다 잘 맞힐 거야." 통화가 끝난 후 이 기사는 자신의 얼굴과 손금 사진을 찍어 보냈다.


하루가 지난 다음 날(7월 21일), 두 사람의 여섯 번째 통화에서 김건희씨는 이 기자의 '내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손금에 환멸선이 딱 떴어요" 원격 관상과 손금 풀이

 "내가 봤을 때는 우리 명수씨가 여자 복이 없어요."
 "하하... 딩동댕."
 "그래서 되게 외로운 삶이거든? 생각보다, 사실 얼굴 보고 놀랐는데, 되게 웃긴 사람이야. 왜 웃기냐고 하면 되게 외로운 사람인데,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명수씨가 지금 어떤 약간의 환멸을 느끼고 있어. 내가 말하면 맞을 거야. 자기 속을 아주 깊이 들어보라고. 어딘가 자기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이직을 할 생각도 진짜 많아. 이직. 이건 아무도 모르는 건데, 난 내면을 이야기하는 거야."


'이 기자의 운명'에 대한 김씨의 발언은 한참 이어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차라리 군인이나 경찰 하라는 게, 그런 촉도 있으면서 기자가 자기한테는 작아, 이 사람한테는. 자기가 이걸 하면서 절대 만족스럽지가 않아, 절대로. 그래서 기자를 나는 운명상 오래 못한다고 생각하면 돼. 기자에 목숨 걸지 말아요."

"(이 기자는) 진보진영과 본질적으로 안 맞는다 보시면 돼요. 이거는 내 말이 맞아요. 아주 오랫동안은 동지가 안 돼요. 잠깐은 갈 수 있지만. 본인은 원래 국정원이나 첩보 있죠? 정보 빼내는 차라리 큰 게 맞아요."

"근데 봐봐요. 손금을 보면 <서울의소리>는 오래 못 있어요. 이직할 운이 보여요. 그건 맞을 거예요? 운명적으로 그렇게 돼 있어요."


김씨의 발언은 점점 더 구체적이었다.

"차라리 보수 쪽이 맞아요. 군인, 국정원, 경찰. 이쪽에서도 옛날 같았으면 박정희 시절에 태어났으면, 본인은 대검 공안부, 공안수사부, 이런 데서 빨갱이 잡을 사람이야."

"그럼 내가 더 솔직히 말할까요? 본인이 돈 때문에 고통받고 있어요. 약간 맞을 거예요. 돈에 대한 애로사항이 있는데, 지금의 거기 자리에서는 본인이 돈이 안 나와요. 월급을 당연히 받겠지. 월급이 뭐 정확히 나오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 근데 본인이 만족이 끝은 없겠지만, 명수씨가 돈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중략) 의리가 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의리로 여기까지 온 거지, 사실은 불만은 많았어요. 돈 때문에도. 내가 봤을 땐 그래. 지금은 그게 좀 불만을 넘어선 상태에요. 뭣 때문인진 모르지만, 손금에 환멸 선이 딱 떴어요."

"나는 거기(서울의소리) 이미 내년에 옮기던, 지금 옮기던 이미 옮겼다고 봐요. 거기는 마음을 많이 두지 마요. 빨리 다른 데 알아봐요. 오래 못 있을 건데, 거기서 일을 이어가는 게 의미가 없어. 내 말 두고 봐. 내가 말 맞아."


약 30분간 이어지던 김씨의 운명론은 이후 점점 초점이 바뀌었다. '우리를 도와달라'였다.

"몰래 우리 자문해라. 몰래 자문."

"한번 와서 몇 명한테 캠프 구성할 때 와서 강의 좀 해주면 안 돼? 캠프 정리 좀 해주면 안 돼?"

"와서 명수씨가 좀 해주라. 조직표도 짜주고, 현장 나가선 어떻게 하고, 에티튜드(태도)가 어떻고, 맘 같아선 총사령관 시키고 싶구만, 내 맘 같아서는 진짜."


이후로도 통화는 한참을 이어졌다. "통화는 다 비밀, 약속 지켜요"라는 김씨의 말로 끝난 이날의 통화 시간은 1시간39분50초였다. 6개월간 50여 차례 총 7시간51분 두 사람의 통화 중 이날 통화가 가장 길었다.

김씨 발언에 어른거리는 무속의 그림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밝힌 후 당사를 나서고 있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경력 부풀리기" 의혹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밝힌 후 당사를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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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씨가 정말 관상과 손금을 보는 능력이 있는지, "웬만한 무당보다" 더 잘 맞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단순 "재미"였을 수도 있고, 상대 진영에 있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포섭하기 위한 속임수였을 수도 있고, 낯선 인물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그만의 대화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7시간51분 통화 녹취록을 검토하다 보면 무속의 영향으로 의심되는 발언을 김씨는 여러 차례 한다.

"관상 보면 몰라? 관상이 벌써 사람들이 맑지가 않잖아." (9월 8일 통화. 어머니 최은순씨와 긴 시간 분쟁중인 사람들을 비난하며)

"우린 무속인 안 만나. 내가 더 세기 때문에. 솔직히 내가 더 잘 알지 무슨 무속인을 만나." (10월 2일 통화. 손바닥 王자 논란을 해명하며)

"배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은, 명이 길지가 않아요. 조심해야 돼." (10월 15일 통화. 어머니 최은순씨와 긴 시간 분쟁중인 A씨를 비난하며)

"(B씨가) 무당. 거기한테 점 물어봐. 무당이야. (중략) 그거 몰랐어?" (12월 9일 통화. 오랜 기간 분쟁중인 B씨를 비난하며)

"그렇게 하는 거는 남의 자식한테 하는 거는 업을 짓는 거야. 업이 되게 무서운 거거든? (중략) 하나님한테 벌 받아. 하나님이건 누구나 이 세상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니까. 그걸 무섭게 생각해야 해." (12월 9일 통화. A씨를 비난하며)


"홍준표도 굿 했어요?" - "그럼" - "유승민도?" - "그럼"
 
지난해 10월 31일 저녁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자 제10차 합동토론회 모습. 왼쪽부터 원희룡, 윤석열, 유승민, 홍준표 당시 대선 경선 후보의 모습니다.
▲  지난해 10월 31일 저녁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자 제10차 합동토론회 모습. 왼쪽부터 원희룡, 윤석열, 유승민, 홍준표 당시 대선 경선 후보의 모습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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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건희씨는 자신의 무속 연루설을 강하게 부인한다. 10월 13일 통화에서 김씨는 자신을 둘러싼 무속 의혹을 부인하며 오히려 당시 당내 경쟁자였던 홍준표와 유승민 의원을 끌어들였다.

김 : "나는 오히려 다른 후보들은 굿 같은 거 많이 하는 거 다 알거든요. 우린 단 한 번도 굿을 안했어요."
이 : "다 다른 후보들 굿 했어요? 누가?"
김 : "많이 했지. 내가 다 알지."

이 : "그럼 알려줘 누나."
김 : "내가 열 받으면 다 터트리려고 하는데, 아유 됐어요."
이 : "알려주라. 누나, 이건 디게 재밌겠다. 좀 알려주라."
김 : "이 바닥에선 누가 굿하고 나한테 다 보고 다 들어와. 누가 점 보러 가고 이런 거. 나한테 점집을 간 적이 없거든. 나는 다 설이지. 증거 가져오라고 그래. 난 없어 실제."

이 : "홍준표도 굿 했어요? 그러면?"
김 : "그럼."
이 : "유승민도?"
김 : "그럼."


이렇게 자신의 무속 의혹을 부인하며, 오히려 경쟁 상대의 무속 연루설을 주장하던 김건희씨는 바로 이렇게 말했다.

김 : "난 내가 점을 보지 누구한테 점을 안 봐. 동생 몰라? 나 좀 잘 맞추는 거 같지 않아? 내가 누구한테 점을 봐. 난 점쟁이를 봐도 내가 점쟁이 점을 쳐준다니까, 내가 모른 척 하고 있다가? (중략) 난 그렇게 신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난 그런 게 통찰력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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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선진국? 건설 현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붕괴 참사 열흘 ③] 광주 거푸집 목수 오상훈 씨 인터뷰

 

 

 

지난 11일, 오후 3시 46분께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201동 건물 23~34층, 총 12개층 구간 외벽이 무너졌다. 총 39층 규모 건물의 상층부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현재까지는 콘크리트가 미처 마르기 전에 거푸집을 빼고 다음 공정을 진행하다가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참사로 5명의 현장 노동자가 실종됐고, 한 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참사는 아직 진행 중인 셈이다. <프레시안>에서는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붕괴 참사 열흘 ① : "가해자는 간데없고 피해자끼리 모여 서로 미안해하는 상황이 됐다"]

[붕괴참사열흘 ② : 현산? "2년 6개월 동안 봐왔어요, 신뢰할 수가 없죠"] 

광주 '화정 아이파크' 건설 붕괴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39층에서는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을 진행했다. 일명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다. 거푸집, 즉 가설 구조물에 콘크리트를 붓고 39층 바닥을 만드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38층 천장이 타설 작업을 하던 콘크리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렇게 시작된 붕괴는 23층까지 진행된 뒤 겨우 멈췄다. 노동자 6명도 그 붕괴에 휩쓸려 1명이 사망했다. 아직 5명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38층 이하 층에서 작업했던 콘크리트 양생(굳히는 과정)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한 점이 꼽힌다. 보통 일반적인 붕괴 사고에서는 뜯겨진 콘크리트면에 철근이 달려 있기 마련이다. 양생이 된 콘크리트가 철근을 단단히 부여잡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광주 붕괴 사고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콘크리트에는 그런 철근이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 콘크리트의 양생이 미처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윗층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광주 붕괴 사고 현장에서 만난 오성훈 씨(가명)는 광주에서 오래 살아 지역 사정에도 밝다. 수 년간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했다. 콘크리트 타설과 양생을 위한 거푸집을 만드는데 쓰이는 기성 폼을 받아다 설계된 벽에 맞게 나무로 보완하는 일도 그의 주 업무 중 하나였다. 건설노조에 가입해서, 현재도 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 씨를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에서 만났다. 

▲ 건물 외벽이 무너지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프레시안(한예섭)

"원래 눈이나 비가 오면 콘크리트 타설하면 안 된다" 

프레시안 :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붕괴 참사를 두고 콘크리트 타설과 양생 과정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이 두 작업은 어떤 작업인가? 

오성훈 : 현대산업개발 같은 건설 원청사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하청사를 선정해 공사를 한다. 그 하청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데가 골조업체다. 건물을 만들려면 뼈대가 있어야 한다. 골조 공정이 콘크리트로 그 뼈대를 만드는 공정이다. 

아파트를 지을 때 제일 먼저 기초 타설을 해 바닥을 만든다. 그 다음에 골조 공정을 진행한다. 철근을 세우고 거푸집(콘크리트를 일정한 형태로 만들기 위한 가설 구조물)을 쌓는다. 거푸집을 쌓으면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붓는다. 이걸 '타설'이라고 한다. 콘크리트를 붇고 나면 굳혀야 한다. 그 다음에 거푸집을 해체한다. 이 굳히는 작업을 '양생'이라고 한다.

건물 짓는 게 크게 보면, 철근 세우고 거푸집 세우고 타설하고 양생해서 거푸집 해체한 뒤 내장, 인테리어 하고 또 다음 층 작업하는 거다. 

프레시안 : 특히 콘크리트 양생 기간이 짧았다는 말이 많다. 

오성훈 : 콘크리트가 굳고 나면 거푸집을 해체해야 한다. 굳지도 않았는데 거푸집을 해체하면 당연히 무너진다. 전문가들이 사고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겠지만 노동자들이 보기에는 단순하다. 콘크리트가 안 굳혀졌는데 거푸집을 뜯으면 당연히 무너진다. 

프레시안 : 건설노조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공사현장이 다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오성훈 : 건설업계에 1군 업체, 2군 업체가 있다. 현대산업개발같은 대기업이 1군업체다. 1군 업체는 (불충분한 양생 등 부실공사가) 좀 덜하다고는 하지만, 중저가 브랜드 아파트 현장 중에는 오후 3시에 거푸집을 설치해놓고 다음날 점심 전에 뜯는데도 있었다. 

프레시안 : 규정대로 하면, 양생은 어느 정도 해야 하나. 

오성훈 : 21일 규정도 있고 규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름에는 4, 5일. 겨울에는 17일은 있어야 된다.

프레시안 : 그런데도 화정 아이파크 2단지 붕괴 참사 같은 일은 거의 없다. 

오성훈 : 아파트를 지으면 그 안에 보통 벽이 있어서 건물 하중을 일부 지탱한다. 그 벽도 거푸집을 만들어서 타설한다. 이번 화정 아이파크 2단지 공사 현장에는 벽이 없다. 안에 벽돌 같은 걸 쌓아서 공간을 나눈다. 수요자 입장에서 나중에 구조 변경이 쉽다는 장점이 있으니 그렇게 한다. 그 다음에 천장을 지탱하는 보도 없다. 이게 무량판 구조다. 이러면 콘크리트를 굳히는 양생 과정이 엄청 중요하다. 

또 현대산업개발에서 사고가 일어난 곳 콘크리트를 타설하던 날 최고기온이 영상으로 안 올라갔다. 눈도 왔다. 원래 눈이나 비가 오면 타설하면 안 된다. 

"불법하도급·불법고용, 저임금·저숙련 고용으로 이어져 안전 위협" 

프레시안 : 사고 배후의 구조적 요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성훈 : 아파트 골조 공정 전문건설업체가 중요한 작업을 하는 거푸집 목수, 철근공, 타설공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그래야 숙련된 인력을 안정적으로 고용해 공사를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관행상 전문건설업체가 아니라 그 밑에서 하도급받은 펌프카(압력을 이용해 시멘트나 콘크리트를 고층에 올릴 수 있게 하는 차량) 업체가 타설 노동자를 고용한다. 이것 자체가 불법하도급(도급받은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수급인이 도급 업무 전부를 제3자에게 이행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러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오성훈 : 전문건설업체에서는 누가 현장에서 일하는지 확인도 못한다. 당연히 숙련도도 확인이 안 된다. 원칙적으로는 원청사가 인력 확인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안 한다. 이번에 화정 아이파크 2단지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타설을 했다. 펌프카 업체가 저임금 주고 인건비로 받은 돈 떼먹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러면 숙련도도 떨어지고 책임성도 떨어진다. 

사실 이러면 외국인 노동자도 피해자다. 이 사람들 불법고용돼있다. 인건비 떼먹은 업체는 돈을 벌겠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회보험 등) 어떤 혜택도 못 받는다. 그분들도 숙련도가 떨어지거나 해서 실수하는 게 있지만, 건물 무너지라고 작업하지는 않았을 거다. 또, 자기들이 판단해서 거푸집을 뗐겠나. 당연히 위에서 거푸집 떼라고 하니 뗐을 거다.

이런 문제도 있다. 화정 아이파크 2단지 공사현장에서 사고가 나기 한 20분 전쯤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벽이 무너지는 걸 발견했다. 동영상도 남았다. 그러면 관리자에게 바로 전화해서 다른 노동자들 대피시켜야 했다. 그런데 주로 쓰는 언어가 달라 말이 안 통한다. 전화도 쉽지 않다. 

프레시안 : 당일 사고 현장에 안전관리자가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오성훈 : 안전관리자들이 일반적으로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프레시안 :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 임금은 한국인 숙련공 대비 얼마쯤 되나. 

오성훈 : 파악이 안 된다. 작년에 타설 노동자 평균 임금이 19만 원 정도였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은 개별 노동자에게 주는 게 아니라 오야지(총팀장)한테 준다. 이 사람이 노동자를 50~60명씩 데리고 있다. 한 명, 한 명이 얼마 받는지 알 수가 없다. 조사 자체가 안 된다.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근본 원인은 최저가 낙찰제" 

프레시안 : 전문건설업체가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형태로 사람을 쓰는 이유는 뭔가? 

오성훈 : 최저가 낙찰제다. 이걸 이명박 대통령이 만들었는데 원청사가 최저가를 낸 업체에 일감을 줄 수 있게 했다. 하청사가 건설 계약 따내도 원청사가 적정공사비 안 준다. 그러면 숙련공 안 쓰고 불법고용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공사예상금액의 120%가 적정공사비로 책정된다. 한국은 60%대로 계약이 이뤄진다. 이 정도로 공사비를 후려쳐서 응찰할 베짱이 어디서 나오겠나. 불법고용하고 임금 후려쳐서 하겠다는 거다. 건설산업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다. 

그럼 그렇게 남겨먹은 돈이 결국 다 어디로 가겠나. 원청사가 떼돈을 번다. 지금처럼 원청사가 전문건설업체 쥐어짜고 그 밑에 하청사 쥐어짜고 노동자 쥐어짜고 하면 안전사고가 안 날 수 없다. 

프레시안 : 결국 위험 부담은 맨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가 진다. 

오성훈 : 건설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일한다. 건설 원청사들은 최저가 낙찰제 바꿔서 사고 줄이려고 생각 안 한다.

이번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27일부터 중대재해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발효된다. 작년에 건설 노동자 458명이 산재로 죽었다. 건설 현장에서는 무조건 하루에 한 명 죽는다. 그러니까 포스코, 현대건설 삼성물산 이런 데들이 27일부터 열흘 동안 건설 공사를 안 한다고 했다. 중대재해법 첫 대상이 되기 싫다는 거다. 그러면 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은 일하는 날짜가 줄어든다. 이거 좀 심하지 않나. 

▲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붕괴 참사로부터 열흘째가 된 지난 20일,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가 광주시청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강화와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건설안전특별법의 핵심은 발주, 설계, 시공, 감리 등 모든 공사 주체에게 안전 책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프레시안(최용락)

"최저가 낙찰제 안 바꾸면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계속 된다" 

프레시안 : 지금 같은 상황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성훈 : 일단 현장에서 법이 지켜져야 한다. 전문건설업체가 타설 노동자 직접고용 안 하고 하도급 주면 불법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현장에서 직접고용 안 한다. 불법고용하지 말고 합법적으로 하라는 거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지키라고 외쳤는데, 건설현장에서는 아직도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불법하도급하지 말고 근로기준법에 나온 데로 주휴수당 주고 8시간 이상 일하면 수당 더 주고. 타설 노동자가 새벽 6시 출근해 저녁 7시까지 일해도 추가근무수당 주는 데 거의 없다. 

프레시안 : 또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오성훈 : 근본적으로는 최저가 낙찰제를 바꿔야 하다. 

전문건설업체도 열악한 데가 많다. 원청사에서 공사대금 제때 지불받는 곳 거의 없다. 대금을 어음으로 주거나 아파트 몇 채주는 곳도 있다. 지금 시대에 현물을 주는 거다. 도산하는 전문건설업체도 많다. 여기(전문건설업체)만 쥐고 흔들 수는 없다. 

최저가 낙찰제 없애서 적정공사비 주고 공사하게 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문제 계속 생긴다.

"한국이 선진국? 건설 현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프레시안 : 노조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오성훈 : 이런 거 하자고 작년에 광주·전남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타설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투쟁했다. 불법하도급, 불법고용하지 말고 법 지키라는 게 핵심 요구였다. 그랬더니 경찰이 전경까지 투입해서 업무방해라고 잡아갔다. 업무방해를 하는 건 그렇게라도 해야 말을 들으니까. 

부산·울산·경남에서는 타설노동자들이 노조를 오래 했다. 타설 노동자가 조합원 1000명 가까이 된다. 최근에 이들이 총파업 투쟁을 했는데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문제 갖고 투쟁하지 않는다. 10여 년 넘게 싸워서 지역 건설업계의 룰을 바꾼 거다. 

프레시안 : 현대산업개발이 광주에서만 반년 사이 두 번의 건설 현장 참사를 일으켰는데 지역별로도 건설업계 상황이 다르다는 말이다. 

오성훈 : 지역 편차가 있다. 광주에서는 여전히 최저가 낙찰제가 일반적이다. 전문건설업체도 영세한 업체가 많다. 부울경은 전문건설업체들이 규모가 좀 있다. 

학동 철거현장 붕괴 참사 때 주택조합에서 현대산업개발에 평당가 28만 원을 줬다. 그게 하도급, 하도급으로 계속 내려가서 마지막에 7만 원이 됐다. 그러면 마지막 업체는 어떻게 하겠나. 사장이 직접 굴삭기를 끌고 와서 일했다.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능가했네 어쩌네 하면서 한국이 선진국 됐다고 하는데 건설 현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호주 아파트가 120년 간다고 하는데 한국 아파트 몇 년 가나. 한국 건설 노동자 기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우리가 시멘트 못 만드나. 한국은 고강도 시멘트를 수출하는 나라다. 철강 강국이고 설계 능력도 있다.

그런데 왜 이번 같은 일이 생기나. 콘크리트는 양생을 오래 할수록 튼튼해지는데 그걸 안 하니까. 산업 구조 자체가 그렇게 돼 있으니까. 물론 조사하면 자재 문제나 더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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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 "2년 6개월 동안 봐왔어요, 신뢰할 수가 없죠"

[붕괴참사열흘②] '아이파크 2단지'에 무너진 화정동 상인들의 삶

 

 

 

지난 11일, 오후 3시 46분께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201동 건물 23~34층, 총 12개층 구간 외벽이 무너졌다. 총 39층 규모 건물의 상층부인 38층에서 콘트리트 타설 작업 중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현재까지는 콘크리트가 미처 마르기 전에 거푸집을 빼고 다음 공정을 진행하다가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참사로 5명의 현장 노동자가 실종됐고, 한 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참사는 아직 진행 중인 셈이다. <프레시안>에서는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붕괴 참사 열흘 ① : "가해자는 간데없고 피해자끼리 모여 서로 미안해하는 상황이 됐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층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소음이 들려왔다.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 누군가의 고함과 비명 소리까지. 동시에 상가 전체의 조명이 꺼지며 김남필 씨(68)가 있던 지하상가가 어둠에 휩싸였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낀 남필 씨와 상가 안 사람들은 곧장 탈출에 나섰다. 지상과 연결된 출입구에선 어디선가 부서져 나온 돌덩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곳이 하나뿐인 탈출구였다. 

'여길 나가야 살겠다', '우리 건물이 무너지나 보다'. 진동과 굉음 속에서 먼지와 파편을 뒤집어 써가며 남필 씨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다시 펑하고 상가 앞 전신주가 폭발했다. 상가 주위론 수많은 잔해와 찌부러진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 무너진 것은 남필 씨가 머무르던 7층 건물 금호하이빌이 아닌 바로 옆의 39층 건물, 화정 아이파크 201동 아파트였다. 

"그냥 공포였죠, 공포." 

금호하이빌 도매상인들이 모여 만든 '하이빌도매상가 피해대책위원회' 천막 안에서 만난 남필 씨는 사건 현장을 '공포'라는 두 단어로 묘사했다. "소음은 어마어마하고, 사방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현장은 아수라장"이었으며 "전쟁터"였다. 뭐가 뭔지 모를 공포스런 현장을 떠나 생존을 확신하고 나서야 남필 씨와 상인들은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공사 중이던 아파트의 일부 벽면이 붕괴됐고, 그 '전쟁터'에서 무려 6명의 노동자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건물 외벽이 무너지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프레시안(한예섭)

현산? "2년 6개월 동안 봐왔어요, 신뢰할 수가 없죠" 

남필 씨는 붕괴 현장 반경 79m 내 통제구역에 포함돼 있는 금호하이빌 문구완구종합도매상가 지하 1층에서 10년 이상 꽃 도매상을 운영해왔다. 남필 씨를 포함해 도매상가 내 대부분의 상인들은 상가가 세워질 무렵부터 오랜 기간 가게를 지켜온 지역의 터줏대감들이다. 각각 오랫동안 유지해온 거래처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남부럽지 않은 실적을 쌓아왔고, 가족끼리 일손을 도우며 일종의 가업 형태로 생계를 지켜왔다. 

평화로운 일상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붕괴사고 한참 전부터였다, 2019년 5월 HDC현대산업개발이 화정아이파크 2단지 아파트를 착공하면서 그와 주변 동료들의 일상엔 균열이 생겼다. 상가 주변에 콘크리트 분진이 날렸고, 쇠로 된 핀이나 30cm에 육박하는 돌덩이가 상가 근처로 떨어졌다. 수도에서 소금물이 나왔고 소음과 진동은 일상이었다. 최근 '붕괴사고의 전조증상'이었다며 재조명받고 있는 공사현장 관련 민원들은 착공 이후 오랜 시간 쌓여온 인근 상인들의 '일상의 균열' 그 자체였다. 사고 이후 광주 서구는 아이파크 공사 현장과 관련하여 386건의 민원을 접수했다고 발표했지만 "전화로 따지면 1500번 넘게 민원을 넣었다"는 게 상가대책위원회의 입장이다.

쌓이고 쌓인 균열이 참사를 낳는다. 그리고 현장 공사가 낳은 여러 균열들을 직접 경험해온 게 바로 남필 씨를 비롯한 도매상가 상인들이다. 그들이 이번 붕괴사고를 두고 "설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라면서도 "따져보면 예견된 인재(人災)"라 말하는 건 그래서다. 붕괴사고 전까지 약 2년 반의 시간 동안 상인들이 제기해온 민원으로 현산 측이 진 '책임'은 민원 14건에 관해 납부한 2260만 원 상당의 과태료뿐이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사퇴하는 등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현산에 상인들이 입 모아 "더 이상 현산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2년 6개월 동안 이의를 제기해 왔는데 변한 게 없었어요.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남필 씨 또한 고개를 저었다. 

▲문구완구종합도매상가 금호하이빌의 모습. 현재는 통행이 정지된 상태다. ⓒ프레시안(한예섭)

"피해자끼리만 서로 미안해하는 상황" 

"가해자는 말이 없고, 피해자끼리만 죄송하다고 말하는 상황입니다" 

사고 이후 9일째인 현시점 상인들의 상황에 대해 묻자 남필 씨는 "실종자 가족 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22일 현재까지 붕괴 현장에 매몰됐다고 알려진 6명의 실종자들 중 오직 1명만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나머지 5명에 대해선 여전히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상인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언급하는 일조차도 "죄송스러운 일"이라 말한다. 수색에 방해가 되거나 가족들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당장 막막한 생계에도 "(실종자들이)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남필 씨는 "가족 분들이 천막을 찾아와서, 오히려 우리에게 죄송하다고" 했다며 실종자 가족들도 상인들과 같은 마음임을 강조했다. 

그는 "가족 분들께 너무나 가슴 아픈 얘기"라며 거듭 말하고 나서야 상인들의 막막한 현실에 대해 언급했다. 붕괴의 충격을 고스란히 경험한 상인들에게 "공포"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현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잠을 못 잔다거나, 당시 경험이 계속 생각나고, 꿈을 꾼다거나 하는 일이 많다. 남필 씨 또한 돌가루를 맞아가며 생긴 부상으로 진통제를 먹고 매일을 버티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생계에 대한 막막함이다. 안전상의 이유로 통제구역으로 묶인 금호하이빌 도매상가 내 점포 점주들은 현재 어떤 경제활동도 할 수가 없다. "당장 이번 달에도 관리비나 임대료를 내야 하는데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꽃 도매업을 해온 남필 씨는 특히 "지금은 대목 시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졸업식과 입학식,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5월 어버이날까지 장사 자체를 못하면 이 때 벌어서 1년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상인들이 대목을 위해 잔뜩 준비한 상품들은 현재 상가 안에 '쓰레기'가 되어 방치되고 있다. 남필 씨의 가게에도 1억 원 상당의 상품들이 재고로 쌓여있다. 여기저기서 비용을 끌어와 만든 상품들은 그대로 빚이 된다. 오래 유지해온 거래처와의 관계도 불안에 빠진다. 그들은 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느냐고 묻는다.  

"피해자들은 서로 미안해하고 한숨만 쉬는데, 가해자는 어디 있습니까?" 

▲현장 인근에 걸린 현수막. ⓒ프레시안(한예섭)

"몇 년을 더 버텨야 할까요? 끝이 없는 전쟁 같습니다" 

"저희가 더 버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죠" 

사고 10일째, 사고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과 이를 막지 못한 시와 구에 대해 들었던 불신이 돌고 돌아 스스로를 찌른다.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게 남필 씨의 설명이다. "올 해 안에 이 상황이 끝날까요? 몇 개월도 못 버틸 것 같은데 앞으로 몇 년을 더 버텨야 할까요?" 

그는 앞으로의 여정이 더 두렵다고 말한다. 현장이 수습된다고 해도 저 건물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함께 했던 직원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손님들은 이곳을 다시 찾아올까, 앞날에 수많은 물음표들이 붙는 것만 같다. 한숨과 함께 말을 끝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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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민의힘 비상인데, 김건희는 "아유 우리가 대통령 돼"

[김건희의 7시간51분] 노재승 사퇴로 난리인데도 "다 됐어 이제"... 그의 권력욕 또는 오만

22.01.22 10:36l최종 업데이트 22.01.22 10:51l
<오마이뉴스>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와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의 7시간51분 전화통화 녹취록을 확보했다. <오마이뉴스>는 이 내용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판단하고, 이에 대한 검증을 몇차례에 걸쳐 보도한다.[편집자말]
큰사진보기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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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제 뭐 대통령 선거가 1년이 남았어? 뭐 얼마가 남았어? (대통령) 다 됐는데 이제."

지난 12월 9일 오후 8시 40분께, 김건희(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씨가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의 통화 중 한 말이다. 당시 윤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지율 접전 양상을 보이던 중이었음에도 김씨는 승리를 과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즈음 윤 후보는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앉힌 노재승씨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국민의힘 역시 지지율 하락과 노씨의 거취를 놓고 전전긍긍하던 중이었다. 당일 발표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윤 후보(34%)는 이 후보에(36%) 2%p 차로 뒤졌다. 이는 일주일 전 1%p 차로 앞서다가 역전을 당한 수치였다. 물론 모두 오차범위 내이지만 상징적인 상황이었다. 특히 해당 통화가 있었던 날 오후 5시 40분 노씨가 결국 사퇴했고 국민의힘은 "비판을 달게 받겠다"(권성동 사무총장)고 밝히는 등 뒷수습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이 대화에서 김씨는 어머니 최은순씨와 긴 시간 소송을 벌여온 정대택씨를 언급하며 "경찰이 알아서 구속시킬 텐데"라고 말하며, 윤 후보를 대통령으로 상정하는 듯 "저 사람(정씨)이 어떻게 우리를 탄핵시켜"라고 덧붙였다.

김건희씨 : (정대택 등이) 그렇게 해봤자 우리 지지율이 올라가지 그것 때문에 꺾일 거였으면 벌써 꺾였었고 벌써 후보는 어떻게 되고 벌써 경선은 어떻게 통과되고. (중략) 명수씨가 알지만 지금 우리가 죽었냐고.
이명수 기자 : 아니죠.

김 : 아니잖아. 가면 갈수록 더 안정적이잖아. 지금 이제 뭐 대통령 선거가 1년이 남았어? 뭐 얼마가 남았어? 다 됐는데 이제.
이 : 그렇죠.

김 : 답답하지. 저 사람(정대택)도 답답하겠지. 그래서 대통령 되면 정대택씨가 더 괴롭힌다? (중략) 경찰들이 알아서 구속시킬 텐데, 저 사람이 지은 죄가 한두 개야 지금? 저 사람, 앞으로 답답한 일밖에 없지. 저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탄핵시켜.


"새로운 시대 열리니까 이득 있는 일을 해"
 
노재승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12월 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 사퇴의 뜻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기위해 자리하고 있다.
▲  노재승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12월 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 사퇴의 뜻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기위해 자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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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이 같은 말은 같은 통화에서 반복된다. 위 대화 직전에 김씨는 이 기자에게 "아유 우리가 돼"라고 말했다.

이 : 누나 내가 오늘 국회 기자들 몇 명 만났거든. 분위기는 총장님이 된다고 얘기 많이 하더라고.
김 : 아유 우리가 돼. 명수씨는 그냥 조용히 있고 내가 그랬잖아. 선거법 그걸로 우리가 맞고소 하거든 유튜버들? 그니까 조심하라니까.


김씨는 일주일 전(12월 2일) 통화에선 "새로운 시대"를 말하기도 했다.

김 : 정대택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고발해서 뭘 어떡할 거야. 그 골 때리는 이야기 코미디야 코미디. 내가 그걸 어떻게 막아. 그 사람이 약간 정신병자라니까요 진짜?
이 : 예예 알겠습니다.

김 : 말도 안 되잖아.
이 : 누나 나 방금 일어나가지고.

김 : 그래그래, 얼른 기운 차려요.
이 : 누나 다음 주에 한 번 봐요.

김 : 아유, 그리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니까, 이제 좀 하여튼 이득 있는 일을 해 동생. 동생 젊잖아 지금.
 

"홍준표 상대 안 돼... 나머지 것 다 합쳐도 안 돼"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오른쪽)와 윤석열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1월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단상에 오르고 있다.
▲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오른쪽)와 윤석열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1월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단상에 오르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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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김씨는 "홍준표는 아예 상대가 안 됐어"라고 말하거나, 다른 후보들을 "나머지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경선 결과 발표 하루 전인 11월 4일에는 이 같이 말했다.

김 : 동생 봐봐. 홍준표는 우리랑 아예 상대가 안 됐어. 근데 역선택 때문에 갑자기 훅 올라온 거 아냐.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애들이 (홍준표를) 뽑아가지고. 그 진보 쪽이. 원래 비교도 안 되지. 우리 빼놓곤 나머지 것(홍준표·유승민·원희룡 등) 다 합쳐도 안 됐어. (중략) 윤석열 (지지율) 잘 나오면 다 찌라시 같지?
이 : 아냐. 그렇게 생각 안 했고. 나는 총장님(윤석열) 따라다니는 기자들과 계속 소통하고 있었어요. 얘기 들었고 어제까지도 (소통) 했는데 다 그렇게 (윤 후보가 경선에서 이긴다고) 얘긴 하더라고. (후략)

김 : (중략) 오늘 거(전화투표 및 여론조사)를 홍준표가 다 받아도 우리를 이기기가. 이미 끝났어요. 그거는. 홍준표가 오늘 거 표를 다 받아도 끝났어요.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지.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었던 김씨는 이 기자를 향해 "진짜 (윤 후보가 대통령) 되면 동생 내가 안 잊는다"라고 회유하거나, "한 번 잘못 가면 그냥..."이라며 뼈있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 13일]

김 : 동생이 원하는 사람은 누구인데? 솔직히 말해봐. 이재명이야? 이낙연이야?
 : 총장님(윤석열).

김 : 에이.
이 : 누님, 총장님 되면,

김 : 진짜 되면 동생 내가 안 잊는다.
이 : 안 잊어요?

김 : 응. 진짜 의리를 지키면.

[2021년 11월 15일]

이 : 누나 청와대 들어가면 나 연락 안 될 거 아냐.
김 : 뭐 동생이 내편 들면 동생을 내가 모른 척 할 수 없지.

(중략)


김 : (이 기자가) 초심(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님은 초심님대로 또 (소통)하고, 우리 쪽은 우리 쪽대로 하면서, 나랑 인연이 있으니까 그냥, 어떻게 알다 보니까 아는 누나였더라 하면 되지.
 : 그래 누나.

(중략)

 : 한 번 잘못 가면 그냥. 초심님이야 나이가 많지만 자긴 어떻게 할 거야.


[2021년 12월 2일]

이 : 엊그제인가 열린공감TV 또 누나 거 하더라?
김 : 아 냅둬요. 다 고소하니까. 그리고 걔네들도 이제 죄값을 치러야지. (중략) 걔네 이제 슬슬 어떻게 죽어가나 봐봐. 절대 가만 안 두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입장문 발표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입장문 발표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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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 :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로 진행.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전국지표조사 홈페이지 및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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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전국승려대회 대대적 보도…경향 “코로나 확산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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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슬기 기자 
  •  
  •  입력 2022.01.22 11:00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 민주당 수차례 사과 강조하며 “스님들의 진중한 자세 촉구”
홍준표 “윤핵관, 공천추천 구태로 몰아”…국민의힘 선대본도 ‘홍준표 카드’ 시큰둥

대한불교 조계종 등 불교계가 지난 21일 서울 조계사 경내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명과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전국승려대회를 열었다. 이날 모임에는 전국 사찰에서 온 승려 3500여명(주최 측 추산 5000명)이 참석했는데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청래 의원이 사찰의 문화재관람료를 ‘통행세’로 칭하며 사찰을 ‘봉이 김선달’이라고 한 것이 갈등의 시초였다. 보수성향 언론이 대정부 집회의 취지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가운데 경향신문은 코로나 확산 국면에서 대규모 결집을 비판했다. 

제1야당은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선거대책본부에 참여하지 않는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홍 의원이 지난 19일 만찬 회동을 한 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홍 의원이 전략공천을 제안한 사실이 공개됐고, 홍 의원은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가 자신을 구태로 몰았다고 비판했다.

▲ 22일 아침신문 1면 모음
▲ 22일 아침신문 1면 모음

 

 

조계사 찾은 여당 진입 못해, 대규모 집회 비판 목소리도 

22일 조선일보는 “24년만에 대규모 승려대회 ‘文정부 불교 왜곡 중단하라’”는 제목의 사진기사를 1면에 실었다. 사진설명에서 “전국에서 온 승려 5000명(주최 측 추산)은 문재인 정부에 ‘헌법의 정교 분리 원칙을 지키고 불교에 대한 왜곡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며 “이같은 대규모 승려대회는 1998년 조계종 분규 사태 이후 24년 만”이라고 했다.

사회면 “스님 5000명 조계사 집결 ‘文정부 종교편향’ 규탄”이란 기사에서 불교 27개 종단이 모여 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초점을 맞췄다. 조선일보는 “불교계가 집단행동에 나선 데는 현 정권의 친천주교 성향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있다는 해석도 있다”며 “실제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는 지난해 11월 ‘종교 편향 불교 왜곡 대응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취임 직후 청와대 축복식’ ‘교황 만날 때 알현이란 표현 사용’ ‘해외 순방 마지막은 성당 방문’을 사례로 들었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의 ‘통행세’ 발언에 대한 불교계 입장도 담았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 덕문 스님은 “국가는 사찰 소유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를 소유자인 사찰에 떠넘겼고, 수많은 사찰림(林)을 국공립공원으로 강제 편입해 기본적 수행과 신행, 생활이 곤란할 정도의 규제를 겹겹이 가하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정치면에서 승려대회 소식과 여당의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강조했다. “‘文정부 종교편향’ 3500명 승려대회…與, 성난 불심에 사과 불발”에서 집회 전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원행 스님을 찾아 대통령의 유감의 뜻을 전했고, 최근 발목 수술로 휠체어를 탄 채 조계사를 찾은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사과문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스님과 신도들 반발로 조계사 진입도 못한 사실을 보도했다. 정청래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교계에 사과했다. 

동아일보는 정 의원에 대한 탈당 요구도 함께 전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동아일보에 “당헌당규상 정 의원을 제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정 의원이 스스로 당을 나가는 것 외엔 사태 수습이 쉽지 않다”고 했다. 

▲ 22일 중앙일보 2면
▲ 22일 중앙일보 2면

 

중앙일보 역시 2면 “‘정부 종교편향 심각’ 승려 3500명 집회, 정청래 제명 촉구”에서 불교계의 정부 비판여론과 정 의원 제명 요구를 강조했다. 또한 “문화재관람료 논쟁 55년째, 정부는 뒷짐만”이란 기사에선 정부가 국립공원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사유지인 사찰 개념을 희석했고, 정부와 사찰간 갈등에서 ‘사찰이 길을 막고 돈을 빼앗는다’는 비난을 받게 했다는 불교계 입장을 자세히 설명했다. 

중앙일보는 시민단체의 대안도 함께 전했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사무국장은 단기적으로 매표소를 산 입구가 아닌 절 입구로 옮기는 방안을 제안했다. 사찰을 볼 의사가 없는 등산객들이 왜 자신이 관람료를 내야 하느냐고 불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국립공원 내 사찰 땅과 일반 사유지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22일 경향신문 사설
▲ 22일 경향신문 사설

 

반면 경향신문은 다른 논조를 보였다. 4면 기사 “‘불교계에 심려 끼쳐 참회와 사과 드린다’…또 고개 숙인 민주당”에서 송 대표와 정 의원이 사과의 뜻을 표한 것에 주목했다. 

불교계 집회에 대해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코로나19 확산 속에 대규모 승려대회 연 조계종”에서 “하지만 불교계가 반발하자 정 의원과 민주당은 수차례 사과했고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후원회장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등은 최근 조계사를 찾아 108배를 올렸다”며 “정치적 셈법도 작용했겠지만, 성의를 보인 것은 사실인데 조계종은 잇단 사과를 외면한 채 정 의원의 출당 등을 요구해왔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오미크론 유행 등 위중한 상황에서 대규모 승려대회를 강행했어야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정의평화불교연대의 스님 대상 온라인 조사를 보면, 참여자의 64%(지난 20일 현재)이 승려대회 개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이 임박한 만큼 대규모 승려대회는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조계종은 정부·여당의 성의 있는 조치가 없을 경우 일반 신도까지 참여하는 ‘범불교도대회’를 열 것이라고 한다”며 “조계종 스님들의 보다 진중한 자세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홍준표, 윤핵관 향해 “모함정치 하지 말라”

한국일보는 정치면에서 왼쪽에는 “‘佛心(불심) 곤혹’ 與”란 기사를 배치했고, 오른쪽에는 “‘洪心(홍심) 당혹’ 野”란 기사를 배치해 여야의 상황을 비교했다. 홍 의원이 지난 21일 윤석열 후보 선대본 합류에 선을 그었다는 소식에 대해 “내홍 시즌2 우려”라고 소제목을 정했다. 

▲ 22일 한국일보 정치면
▲ 22일 한국일보 정치면

 

이 신문은 “홍 의원의 전략 공천 요구를 ‘구태’라고 비난했던 선대본부도 적극 붙잡지 않았다”며 “다만 홍 의원이 합류 불발 원인으로 윤핵관을 지명한 것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라고 보도했다. “‘원팀’ 구성이라는 당초 윤 후보와 홍 의원 간 만남의 목적도 무색해졌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홍 의원은 자신의 SNS에 논란이 된 ‘전략공천’ 관련해 능력을 갖춘 인사를 추천했을 뿐인데 윤핵관이 이를 ‘공천 거래’로 치부해 매도했다고 반박했다. 

홍 의원은 합의 파기의 근본 원인이 공천 제안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이 윤 후보에게 ‘처가 비리 엄단’을 요구했는데 윤 후보의 처가 등 주변에서 이를 문제 삼았을 것이란 판단이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홍 의원 합류에 대해 선대본부 관계자는 “홍 의원 합류가 주요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2030 남성 중심으로 윤 후보 지지율이 오르면서 홍 의원의 필요성이 줄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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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경쟁 멈추고 종전‧평화협정으로’

종교‧시민사회, 대선후보들에 ‘평화통일 요구안’ 발표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2.01.21 17:32
  •  
  •  수정 2022.01.21 18:16
  •  
  •  댓글 1
 
종교와 시민사회의 대표자 145명은 21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20대 대선에 즈음한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를 개최하고 ‘20대 대선 후보들에게 촉구하는 평화통일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제공 -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
종교와 시민사회의 대표자 145명은 21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20대 대선에 즈음한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를 개최하고 ‘20대 대선 후보들에게 촉구하는 평화통일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제공 -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

종교와 시민사회의 대표자 145명은 21일 ‘20대 대선 후보들에게 촉구하는 평화통일 요구안’(이하 요구안)을 발표, 군비증강이 아닌 평화군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등 145명은 21일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20대 대선에 즈음한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를 개최하고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종성 6.15남측위 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와 윤은주 민화협 회원사업위원장이 낭독한 요구안에서 “한반도에 70여년간 이어져 온 분단과 전쟁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 권리 실현과 균형 있는 사회발전을 가로막아 온 근원적 문제”라며 “분단과 전쟁의 극복, 평화적 통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라고 전제했다.

이들은 ‘대선에 임하는 후보들과 정치 세력들’을 향해 “공존과 존중, 언행일치는 관계개선의 기본”이라며 “말로는 관계개선을 말하면서 군사훈련과 무기 증강에 몰두한다면, 이는 오히려 신뢰를 훼손한다는 것을 우리는 최근 삼년간의 교착상태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고 짚었다.

종교·시민사회 대표자들이 발언에 나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종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이범창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허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통일위원장, 김은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통일위원장. [사진제공 -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
종교·시민사회 대표자들이 발언에 나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종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이범창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허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통일위원장, 김은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통일위원장. [사진제공 -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
종교·시민사회 대표자들이 발언에 나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희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 김영주 평화통일시민회의 상임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전체사진),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김명환 평화철도 공동대표. [사진제공 -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
종교·시민사회 대표자들이 발언에 나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희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 김영주 평화통일시민회의 상임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전체사진),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김명환 평화철도 공동대표. [사진제공 -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

이들은 △남북공동선언과 합의는 반드시 계승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종전과 평화협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평화와 주권에 기초한 균형 있는 외교가 필요합니다. 불평등한 대외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평화통일로 가는 모든 과정에서 민의 주도적 참여와 역할이 보장되어야 하며 성평등한 방향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민간통일운동에 대한 지원과 협력을 강화하여 시민들의 목소리가 최대한 활발해지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며 “남북교류에서의 민간의 참여와 역할을 보장하고 민족공동행사 등 각계 교류에 대한 지원과 협력도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북에 대한 정보 접근과 평화통일 제반 활동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는 남북교류협력법, 국가보안법 등 제반 법제도 역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는 요구안을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한 뒤 입장을 취합해 2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사진제공 -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는 요구안을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한 뒤 입장을 취합해 2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사진제공 -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

이들은 오늘 발표한 요구안을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며, 각 후보의 입장과 공약을 들은 후 이를 종합하여 2월 말~3월 초 즈음 보다 확대된 2차 평화통일회의를 열어 후보들의 정책 및 공약에 대한 입장을 재차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에서는 이창복 의장, 이종걸 대표 외에도 이범창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김희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 김영주 평화통일시민회의 상임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김은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통일위원장, 허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통일위원장,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명환 평화철도 공동대표, 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등이 발언에 나섰다.

 

20대 대선 후보들에게 촉구하는 평화통일 요구안(전문)

한반도에 70여년간 이어져 온 분단과 전쟁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 권리 실현과 균형 있는 사회발전을 가로막아 온 근원적 문제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6위권의 국방력을 자랑하면서도 최악의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성평등지수와 노조가입률, 출생률 등과 같이 사회적 문제점이 심각한 것은 분단과 전쟁 체제 속에서 사회적 자산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고, 사회적 권리가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단과 전쟁의 극복, 평화적 통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입니다.

2018년 평화의 봄을 이룬 합의들이 결실로 채 이어지지 못한 가운데,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대화가 중단된 지난 3년 동안 우리 정부가 군비증강에 몰두하고 미국이 제재에 집중하는 사이, 북 역시 미사일 발사 등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 중단했던 조치들의 재고를 거론하는 등 우려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적대와 대결이 긴장과 불안을 고조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반도에 평화와 남북협력의 새로운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우리 종교 시민사회 대표들은 대선에 임하는 후보들과 정치 세력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공존과 존중, 언행일치는 관계개선의 기본입니다.
이승만 정부 이래 남북관계의 진전과 교착을 반복하던 가운데, 상대방을 붕괴시키겠다거나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식의 정책이 펼쳐진 적도 있습니다만, 이런 식의 정책은 갈등과 대결을 심화시켰을 뿐, 남북관계의 발전을 결코 이끌어 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이뤄진 남북관계의 발전은 오로지 상대방을 존중하고 적대하지 않는 가운데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 성과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말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는 관계개선을 말하면서 군사훈련과 무기 증강에 몰두한다면, 이는 오히려 신뢰를 훼손한다는 것을 우리는 최근 삼년간의 교착상태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존과 존중, 언행일치는 관계개선의 기본입니다.

남북공동선언과 합의는 반드시 계승되고 실현되어야 합니다.
남북합의들은 남과 북이 분단과 전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논의한 끝에 합의한 원칙과 구체적인 과제입니다. 이는 남북관계의 개선, 분단과 전쟁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근거이며, 가장 현실적인 경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 정부가 합의한 남북공동선언과 합의들은 차기 정부에서도 흔들림 없이 계승되어야 합니다.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전면적인 남북협력에 나서야 합니다.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협력사업은 물론이고, 다방면의 사회문화교류협력도 전면화해야 합니다. 분단의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있는 이산가족의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설치 및 운영도 필요합니다. 남북의 왕래, 협력을 위해 비무장지대의 관할권을 유엔사가 아닌 남과 북이 직접 행사하는 것은 합의 이행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중단된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및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2018년 평화의 봄은 군사훈련의 중단을 선제적으로 제안했던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분위기가 훼손되는 데에는 훈련의 재개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최근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국방비와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과 남측이 먼저 군사적 신뢰구축에 나섬으로써 평화의 봄을 다시 이끌어 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종전과 평화협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북미관계의 역사는 적극적인 신뢰구축 조치들이야말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감소시켜왔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군사적 압박과 제재는 더 큰 군사적 긴장을 불러올 뿐입니다. 적대의 중단과 평화를 위한 노력만이 비핵화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적대관계를 끝내고 새로운 관계로 전환하기 위해,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즉각 재개해야 합니다. 대화가 중단된 지난 3년. 우리 정부가 최대 규모의 국방비 증액과 최첨단 무기 도입에 몰두하고 미국이 제재를 강조하는 동안 북 역시 미사일 발사 등 국방력 강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힘에 의한 평화’는 결코 ‘평화’가 아닙니다.
힘에 의한 평화, 무기도입, 군비증강 정책을 멈추고 평화군축에 나서야 합니다. 종전을 말하면서 무기증강과 선제타격을 추진하는 모순된 행동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평화와 주권에 기초한 균형 있는 외교가 필요합니다. 불평등한 대외 관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트럼프 – 바이든 행정부로 이어지며 대중국 압박정책이 강화되고 있으며, 이에 동맹과 관련국을 동원하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도 중국과도 협력해야 할 지정학적, 경제적, 정치군사적 이해관계가 뚜렷합니다. 주변국과의 호혜평등한 관계를 해치거나, 우리의 주권과 평화를 침해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결코 건강한 동맹이라 할 수 없습니다.
평화와 주권에 기초한 균형 있는 외교가 필요합니다. 
한미동맹의 활동 범위를 대중국 압박으로 확장하고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헌법개헌 움직임에도 명확한 경고를 보내야 하며, 과거사 및 군사대국화 관련 우려가 제대로 해결될 까지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멈춰야 마땅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현 전작권 환수방식을 중단하고 전작권을 즉각 환수해야 하며,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도 보건·환경·사법주권을 온전히 행사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합니다. 주민 합의,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미군 무기 배치, 훈련장과 기지 확장을 멈춰야 합니다.

촛불항쟁은 나라와 사회의 주인인 시민들의 저항과 참여가 만들어 낸 위대한 성과이며,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주인 선언입니다. 그러나 촛불항쟁 이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북관계와 외교, 국방 분야에 대한 시민의 정보 접근,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참여는 여전히 차단되고 있으며, 폐쇄적인 정책 결정, 운영 과정에서 숱한 문제점도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장에서의 평화통일교육도 충분치 않습니다.
외교·국방·안보 분야에 대한 정보 공개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 및 주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평화통일에 관한 교육과 사회적 대화의 확대, 민간통일운동에 대한 지원과 협력을 강화하여 시민들의 목소리가 최대한 활발해지도록 뒷받침해야 합니다. 남북교류에서의 민간의 참여와 역할을 보장하고 민족공동행사 등 각계 교류에 대한 지원과 협력도 중요할 것입니다.
평화통일 정책 수립 과정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하고, 평화통일 활동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해야 합니다.
북에 대한 정보 접근과 평화통일 제반 활동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는 남북교류협력법, 국가보안법 등 제반 법제도 역시 정비해야 합니다.

2022년 1월 21일
20대 대선에 즈음한 종교·시민사회 평화통일회의 참가자 일동

(총 145명 연명, 가나다순)
강민조(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대표) 강정미(평화어머니회 공동대표) 강혜란(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고은광순(평화어머니회 상임대표) 고진형(6.15남측위원회 전남본부 상임대표) 권낙기(통일광장 대표) 권영길(평화철도 이사장) 권오헌(사)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김경민(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기철(한국노총서울지역본부 의장) 김희헌(기독교장로회 평화통일위원장, 목사) 김남규(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김덕수(통일농수산 상임대표) 김동명(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동선(민족통일체육연구원 원장) 김동연(사)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 한국회장) 김동윤(평화통일센터하나 대표) 김동한(6.15남측위원회 학술본부 공동대표) 김명신(전두환심판국민행동 대표) 김명환(평화철도 공동대표) 김민문정(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삼열(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김서중(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 김승무(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김식(한국청년연대 상임대표) 김영주(평화통일시민회의 상임대표) 김영하(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김용우(6.15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상임대표) 김용철(OP국제평화재단 이사장) 김윤자(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김이경(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상임이사) 김인규(부경주권연대 공동대표) 김인환(동학천도교보국안민실천연대 공동대표) 김일회(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대표) 김정수(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김종기(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김준기(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의장) 김진억(민주노총서울본부 본부장) 김창현(한국시민연대 대표) 김하종(미래를위한예비교사모임오늘 대표) 김한성(6.15남측위원회 학술본부 상임대표) 김혜순(사)양심수후원회 회장) 김호철(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김희선(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남주성(6.15남측위원회 경북본부 상임대표) 노수희(범민련서울연합 명예의장) 명호(사)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문규현(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대표) 문제열(부산민중연대 공동대표) 민점기(6.15남측위원회 전남본부 공동대표) 박길수(동학천도교보국안민실천연대 공동대표) 박덕신(기독교대한감리회 수유교회, 원로목사) 박두규(전남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박만규(흥사단 이사장) 박민우(아산시민연대 대표) 박석준(6.15남측위원회 대구본부 상임대표) 박세인(경천애인 대표) 박영철(KYC 한국청년연합 대표) 박재만(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박중기(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명예의장) 박진용(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 박창일(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박한창(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박해전(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 상임대표) 박현선(이화여대 교수) 박흥식(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배득현(수원청년회 회장) 백선기(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손규호(부산밥퍼나눔공동체 본부장) 손미희(우리학교와아이들을지키는시민모임 공동대표) 손병휘(서울민예총 이사장, 민화협 문예위원장) 송성영(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신철영(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심재환(통일의길 대표) 안건수(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양경수(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양미애(우리다함께시민연대 공동대표) 양옥희(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양이현경(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오민애(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일위원장) 원영희(한국YWCA연합회 회장) 원희복(사)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장) 유현석(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윤금순(5.18민족통일학교 이사장) 윤소년(민족통일국민운동본부 총재) 윤영전(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윤은주(사)뉴코리아 대표) 윤정숙(녹색연합 상임대표) 윤진영(수원일하는여성회 대표) 이경진(달팽이마을 대표) 이경희(환경정의 이사장) 이길재(사)통일농수산 고문) 이범창(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공동회장) 이부영(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이상진(예장뉴스 대표) 이성재(인천자주평화연대 상임대표, 노동희망발전소 이사장) 이아란(전국청소년진보연대 소명 대표) 이명아(원불교 한민족한삶운동본부 본부장) 이성우(범민련부산연합 의장) 이요상(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이장희(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대표, 불평등한한미SOFA개정국민연대 상임대표) 이재선(천도교청년회 회장) 이정이(6.15남측위원회 부산본부 상임대표) 이종걸(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이종철(6.15남측위 경기본부 상임대표) 이창복(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청산(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 이태형(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의장) 이호윤(서울지역민주동문회협의회 대표) 이흥만(부산환경운동연합 고문) 임문철(6.15남측위원회 제주본부 상임대표) 임순혜(미디어기독연대 대표) 임태환(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 장선화(부산여성회 상임대표) 장유진(진보대학생넷 대표) 전경수(금강산기업협회 회장) 전남병(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사무총장) 전덕용(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전승수(사)생태지평연구소 소장) 전태삼(13일의지킴이 공동대표) 전희영(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정기섭(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정병주(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 정선경(민화협 베를린지회 상임의장) 정용일(사)녹색교통운동 이사장)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종성(6.15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상임대표) 정종훈(6.15남측위원회 수원본부 상임대표) 정태효(우리학교와아이들을지키는시민모임 공동대표) 조성우(겨레하나 이사장) 조순덕(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장) 조원호(서울통일의길 대표) 조헌정(예수살기 공동대표) 지은주(부산겨레하나 공동대표) 진영종(참여연대 공동대표) 최동성(대한도덕회 회장) 최소영(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장, 6.15여성본부 상임대표) 최영숙(한민족유럽연대(독일) 부의장) 최영찬 (빈민해방실천연대(민주노련,전철연) 공동대표) 최용기(한철학과통일헌법연구소 소장) 최재숙(부천시민연합 공동대표) 한미경(전국여성연대 공동대표) 한충목(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현관송(사)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홍강철(통일중매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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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여야 합의 ‘정대택 국감 증인’ 불발, 김건희 “우리가 취소시켰다”

등록 :2022-01-21 04:59수정 :2022-01-21 09:20

 
 
추가 입수 통화내용 보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해 9월 여야 합의로 국정감사 증인에 채택되었던 정대택씨의 국감 증인 철회를 두고 “우리는 이미 취소시켰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윤석열 후보와 인연을 맺어줬다고 말한 ‘무정스님’과 가까운 황아무개(30대)씨가 김씨를 돕는 정황도 드러났다. 정대택씨는 윤 후보 처가 쪽 문제를 줄곧 제기해온 인물이다. 김씨가 실제 국정감사 증인 채택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했다면 어떤 경로인지 등을 두고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후보자 배우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에 대한 당 차원 대응’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김건희, 작년 9월 먼저 전화해 논의
비선 황 비서 “간사가 막판 뒤집을 수”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 직접 거명

 

20일 <한겨레>가 추가 입수한 김건희씨의 이른바 ‘7시간 통화’ 내용을 보면, 김씨는 비서를 통해 지난해 9월25일 인터넷 매체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정대택씨의 국감 증인 채택 건에 대해 문의했다. 앞서 9월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3차)에서 정대택씨 증인 채택은 가결됐고, 10월5일 경찰청 국감에 정씨의 출석이 예정된 상태였다.


9월25일 저녁 7시께 김씨는 이 기자에게 전화해 인사만 나눈 뒤 “비서”라고 부르는 황아무개씨를 바꿔줬다. ‘황 비서’는 “정대택 이 양반 출석한다고 해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대비하면 좋겠냐”고 이씨에게 물었다. 정대택씨는 윤석열 후보의 장모이자 김씨의 모친인 최아무개씨와 18년째 법적 다툼을 진행하며, 김씨 관련 의혹, 최씨의 범법 의혹 등을 줄곧 제기해온 인물이다. 김씨는 ‘7시간 통화’에서 정씨를 수차례 “나쁜 사람”이라고 하거나 욕을 한다.국감 당시는 윤 후보의 장모 최씨가 요양병원 부정수급 사건으로 법정구속됐을 때다. 경찰청 국감에서 정씨 출석을 요구했던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래 무혐의 불기소 처분되었던 것인데 다시 재판이 진행돼서 (최씨가) 법정구속되는 것을 보고 이전 사건들이 어떤 곡절이 있을 수 있다 판단하고 증인 신청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윤 후보로선 ‘처가 리스크’에 대한 불리한 발언이 예상되고, 정씨 또한 출석을 기대하는 상황이었다.9월 통화에서 증인 채택 경위를 묻는 ‘황 비서’에게 이 기자는 “여야 합의로 채택된 것”이라 증인 출석 번복은 어려울 것이란 취지로 답변했다. 이에 황 비서는 국회 행안위 국민의힘 간사인 박완수 의원을 거론하며 “간사가 막판에 뒤집어질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김씨는 일주일 뒤인 10월2일 이 기자에게 “정대택 증인(채택)이 거부됐다”고 단정해 말했다. 국회 행안위 회의록을 보면, 정씨를 증인·참고인 명단에 포함시켜 합의 가결한 3차 회의(9월16일) 이후, 4차 회의(10월1일)까지 국민의힘 의원들 누구도 정씨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었다. 다음날인 10월3일 통화에서 “증인 철회가 되지 않았다”고 확인해주는 이 기자에게 김씨는 “취소 안 됐다고? 잠깐 끊어보세요. 제가 알아볼게요”라며 다급한 듯 통화를 끝내기도 했다.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박완수, 김도읍 의원이 ‘판교 대장동 게이트 특검 수용하라!’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박완수, 김도읍 의원이 ‘판교 대장동 게이트 특검 수용하라!’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0월5일, 실제 국회 행안위에서 정대택씨 증인 출석은 전격 철회됐다. 국민의힘으로서도 경선 중이긴 하나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윤 후보에게 불리한 증인 채택을 반길 리 없어 보이나, 그간 두차례 행안위 회의에선 여야 간 이견이 없었다. 그러다 국감 당일 결국 전격적으로 증인 출석이 뒤집어진 셈이다. 당시 정씨는 피감기관인 경찰청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한겨레> 취재 결과, 행안위 소속 여당 위원들은 국감을 앞두고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이 정씨의 증인 채택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 간사인 박재호 의원은 “이미 (정씨를 증인으로) 채택했고 (국민의힘에서도) 동의를 했는데, 뒤늦게 국민의힘에서 강력하게 반대해 회의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며 “공개적으로는 아니지만 (박완수 간사가) 개별적으로 (위원들을) 계속 접촉해 ‘행정 착오’를 이유로 철회를 요청했다”고 말했다.박완수 의원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통해서도 증인 철회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행안위 위원장이었던 서영교 의원은 “뒤늦게 박완수 야당 간사가 ‘정대택이 포함됐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며 간절하게 (증인 철회를) 요청해왔다”며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통해서도 요청을 해왔다”고 말했다. 처음 정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던 이해식 민주당 의원도 “박완수 간사가 김기현 원내대표에게 적극적으로 (증인 철회를) 요청했고 양당 원내대표들끼리 얘기가 있었다는 건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원내대표 간 협의에서도 정씨 증인 철회가 원만히 합의되지 않자, 10월5일 국회 행안위의 경찰청 국정감사는 파행 직전까지 갔다. 

 

야당 의원들은 ‘대장동 특검 요구 마스크’를 쓰고 입장하며 정씨의 증인 채택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정회 끝에 서영교 위원장과 여야 간사 합의로 정씨 증인 철회와 ‘대장동 특검 요구 마스크’ 교체를 서로 맞바꿨다. 이날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정대택씨는 윤석열 장모와 10년간 여러 송사가 있었기에 지금 수사 중인 사건과는 별개로 질의하고 응답할 것들이 많이 있다”며 “행안위에서 정상적인 의결 절차를 거쳐서 의결을 했었고 (여야가) 합의를 했던 내용인데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증인이) 철회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은 “증인은 현재 검찰에 출석해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오늘 국감에서 여야 간사 간에 합의한 대로 정대택 증인을 제외해줄 것을 요청한다”(회의록)고 말했다.

 

김, 일주일 뒤 “증인 채택 거부” 알아
국민의힘 ‘황씨 비서 아닌 지인’ 주장

 

사태가 마무리된 국감 당일 저녁에도 김씨는 이 기자와 통화를 나눴다. 이 기자가 “오전에 이 건(증인 철회) 가지고 여야가 한시간 동안 싸웠다”고 하자 김씨는 “내가 벌써 얘기했잖아. 동생(이 기자)한테 정해졌다고. 뉴스는 그렇게 나왔는데, 이미 그거(증인 철회)는 조치가 되어 있던 것으로 우리는 여기서는 이미 취소시켰었던 상태였다. 이걸 통과시켜주면은 국민의힘이 너무 힘이 없어 보이지 않냐 그래서 취소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취소시켰는데, 휴일(10월2~3일)이 있어 통보가 안 되었다”는 말도 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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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증인 채택은 여야 간의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첨예한 문제다. 대기업 총수의 증인 출석이 종종 뉴스가 되듯, 이해관계자들의 ‘정치력’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증인 채택을 빼주는 조건으로 ‘거래’가 이뤄져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케이티(KT) 이석채 전 회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씨처럼 출석 당일 증인 채택이 번복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김건희씨 쪽에서 국정감사 증인 건으로 긴밀하게 이 기자와 의견을 나눈 이는 ‘황 비서’였다. 황씨가 국회나 국민의힘 쪽을 상대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앞서 국민의힘은 ‘황 비서’의 존재를 묻는 <한겨레>에 “김건희씨는 수행비서가 없다”고 18일 답한 바 있다. 김씨가 “비서”라고 부른 황씨는, 김씨가 윤석열 후보와의 부부연을 맺어준 사람이라고 말했던 ‘무정스님’을 사내이사로 재직시켰던 ㄷ전기건업 사장의 아들이다.국민의힘은 20일 <한겨레>에 “황씨는 수행원이 아니고, 지인일 뿐이고, (누가 통화했든) 지인이 몇차례 대신 통화했다고 해서 수행원이라 할 수도 없다”며 “(김건희씨 쪽에서) 이명수씨로부터 정대택 증인 채택된 사실을 듣고, 정대택이 평소 불륜설, 유흥접대부설 등을 퍼뜨린 사람이라는 점을 선거캠프에 알린 사실밖에 없다. 후보자 배우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에 대하여 당 차원에서 증인 채택 문제를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고 문제될 것이 없다”고 알려왔다.

 

김완 장필수 김미나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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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붕괴사고 낸 현산, 최장 1년8개월 영업정지 받을수도

서울시, 지난해 6월 학동 철거 사고로 8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 통지

 
 
 
 


 광주 학동 철거 사고와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등 연달아 사고를 낸 현대산업개발이 최장 1년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20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12일, 지난해 6월 발생한 광주 학동4 재개발 구역 철거 현장 사고와 관련해서 현대산업개발에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에 대한 행정처분 계획과 청문 일정을 통지하고 이에 대한 의견 제출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현대산업개발 측에 8개월의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사전통지했다. 현재 부실시공 관련 조사는 국토부에 있으나, 해당 업체 관련 행정처분 권한은 등록 관청인 지자체에 위임돼 있다. 사고는 광주에서 발생했으나, 현대산업개발이 등록한 관청은 서울이기에 서울시에서 행정처분을 통지한 것이다.

 

청문일은 다음 달 17일로 잡혔다. 서울시는 현대산업개발의 의견 등을 검토하고, 청문 절차를 마친 뒤 법리 검토 등을 거쳐 최종 처분 수위를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HDC 현대산업개발이 붕괴 사고가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의 최상층인 39층의 바닥 면 슬래브(콘크리트 판상)를 당국 승인 없이 두 배 이상 두껍게 설계 변경한 정황이 20일 드러났다. 승인 계획보다 두껍게 바꾼 설계 구조가 과도한 하중을 야기해 붕괴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붕괴 현장 최상층을 살펴보는 119구조대의 모습. ⓒ연합뉴스

 

광주 동구청은 지난해 9월,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에 철거 공사 원청사인 현대산업개발과 하도급 업체인 한솔기업을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으로 행정 처분해 달라고 각각 요청한 바 있다. 서울시는  이를 약 4개월 동안 끌어오다가 지난 11일 화정아이파크 외벽붕괴 사고가 발생한 하루 뒤에야 행정처분을 통지한 것이다. 


 

문제는 행정처분이 8개월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사고는 학동 참사와 달리 현대산업개발의 시공 및 관리 부실 책임이 보다 명확한 사고여서 학동보다 더한 행정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학동 참사로 사전통지된 대로 8개월 영업정지가 결정되고,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로 1년의 영업정지를 받게 될 경우 현대산업개발은 1년8개월 동안 신규 사업 수주가 중단된다.


 

건설산업안기본법에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부실하게 시공함으로써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발생시켜 건설공사 참여자가 5명 이상 사망한 경우' 최장 1년의 영업정지를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1201755364708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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