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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5.18 북한 개입설' 퍼뜨렸던 외무부... 대외비 문서 첫 확인

중남미 15개 국가 대사관 공식 기록... 해당국 정부·언론·재계 광범위하게 접촉, 신군부에 보고

21.05.10 07:09l최종 업데이트 21.05.10 07:09l
이란 제목의 당시 외무부(외교부 전신) 문건. 외무부가 전 중남미 지역 대사관에 '최근 아국사태의 반응'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대외비 문건."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오마이뉴스>가 외교부 외교사료관을 통해 입수한 "1980.5.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중남미 반응 1980" 이란 제목의 당시 외무부(외교부 전신) 문건. 외무부가 전 중남미 지역 대사관에 "최근 아국사태의 반응"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대외비 문건이다.
ⓒ 외교부 외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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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직후 외무부(현 외교부)가 신군부의 권력 찬탈을 옹호하며 '5.18 북한 개입설'을 세계 각지에 전파한 정황이 담긴 대외비 문서가 처음 확인됐다. 특히 이 문건들은 외무부는 물론 전두환이 수장으로 있던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외교부 외교사료관을 통해 <1980.5.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중남미 반응 1980>이란 제목의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엔 1980년 5~6월 당시 외무부가 중남미 15개 국가의 한국대사관에게 5.17비상계엄 및 5.18 진압과 관련된 각국 동향을 파악하도록 지시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각 대사관은 ▲ 각계 반응(정부·의회·언론·경제계) ▲ 교민 및 반한단체 동태 ▲ 북한의 책동상황 ▲ 대사관의 조치사항 ▲ 효율적 홍보 등 대책에 관한 의견 등을 정리해 외무부에 보고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다수 국가에서 5.18과 북한을 연계시키는 보도가 여럿 나왔으며, 이를 몇몇 대사관이 자신들의 "언론접촉 강화" 때문이라고 보고했다는 점이다. 이는 외무부와 해외 각지의 대사관이 '5.18 북한 개입설'이란 허위사실을 전파 혹은 묵인하며 신군부의 정권 찬탈에 힘을 보탠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란 제목의 당시 외무부(외교부 전신) 문건. 주아르헨티나 대사관은 '5.18 북한 배후설'이 아르헨티나 언론에 보도됐고, 이 기사가 자신들의 "언론계 접촉강화" 때문에 나왔다고 내세웠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주아르헨티나 대사관은 "5.18 북한 배후설"이 아르헨티나 언론에 보도됐고, 이 기사가 자신들의 "언론계 접촉강화" 때문에 나왔다고 내세웠다.
ⓒ 외교부 외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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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아르헨티나 대사관이 외무부장관에 보고한 문건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5월 28일자 유력지 LA NACION은 국제정치상 한반도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광주사태를 북괴가 악용할 여지를 경계하는 사설을 게재하였음. 동일자 유력지 LA PRENSA 광주사태가 북괴의 간첩책동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한국의 안정이 긴요하다는 내용의 해설기사를 게재함. (중략) 언론계 접촉강화로 전기(앞서 기술한) 사설 및 해설기사 게재.

 
이 문건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언론은 민주주의를 요구한 5.18을 안보 위협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LA NACION), 5.18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허위사실까지 기사화했다(LA PRENSA). 뿐만 아니라 주아르헨티나 대사관은 이러한 기사가 생산된 이유를 자신들의 "언론계 접촉강화" 때문이라며 허위사실 유포를 마치 공적인양 내세우고 있다. 다른 국가의 보고 문건에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의 1980년 5월 28일자 1면에 실린 5.18민주화운동 사진. "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아르헨티나 유력 언론 "LA NACION"의 1980년 5월 28일자 1면에 실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진.
ⓒ LA NACION (구글 뉴스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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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멕시코 대사관 : 수개 일간지 및 방송이 당관이 배포한 자료에 따라 광주사태가 북괴의 배후 조정(조종의 오기로 추정 - 기자 주)에 의한 것이며 계엄 하에서도 한국 정부는 외국인의 경제 활동 및 국민의 일상생활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음을 보도함. (중략) 유력 일간지 EL HERALDO와 기자회견, 멕시코 국영TV 및 XEDF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국 사정 설명 및 주요 신문사 등 언론기관에 보도자료 배포.
주칠레 대사관 : 사태에 북괴의 배후 조종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기사 게재(5월 26일 MERCURIO). (중략) 주요 언론기관 등에 관계 자료 송부.
주콜롬비아 대사관 : 사설에서 광신적인 김일성 독재정권의 남침기도 경고(5월 25일 EL TIEMPO). 아국 정부의 조치가 북괴의 남침과 관련 불가피한 것이라고 보도(5월 21일 EL ESPERTADOR). (중략) 언론계 홍보로 좋은 반응을 얻음.
주파나마 대사관 : 최근 LA ESTRELLA DE PANAMA가 사설을 통해 최근 사태가 북괴의 대남 도발을 위한 호기로 이용될 가능성을 경계함. (중략) 유력지 언론인들을 오찬에 초대해 최근 사태 홍보. (중략) 친한(親韓) 언론인을 통한 북괴 비난 기사 게재. 

 

이란 제목의 당시 외무부(외교부 전신) 문건. 주멕시코 대사관은 "수개 일간지 및 방송이 대사관이 배포한 자료에 따라 광주사태가 북괴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함"이라고 보고했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주멕시코 대사관은 "여러 일간지 및 방송이 대사관이 배포한 자료에 따라 광주사태가 북괴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함"이라고 보고했다.
ⓒ 외교부 외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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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고위층 만나 '신속' 홍보

이러한 '홍보' 활동의 대상은 언론에 그치지 않았다. 아래는 각 대사관이 해당 국가의 고위층 인사를 만나 신군부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문건 내용 중 일부다.
 

주아르헨티나 대사관 : (아르헨티나) 정부의 공식 입장표명은 없으나 외무성 경제차관, 의전장 국방대학원 부원장 등은 광주사태 등에 북괴 책동 유무와 중공 및 소련의 동태에 큰 관심을 표명함. (중략) 정부 고위층 및 실무자를 적극 접촉해 사태를 설명·홍보. 경제인, 교포 각계 인사를 접촉해 사태를 설명·홍보.
주파나마 대사관 : (파나마 정부당국은) 최근 (한국의)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면서 안보 및 질서유지를 위한 정부의 일련의 조치를 부득이한 일로서 이해함(북괴 도발 가능성 유의). (중략) 외무성 고위층에 최근 사태를 설명하고 주재국의 이해를 도모함. 외무성 아주국장과 접촉해 직접 설명 홍보. 주재국 상공회의소에 최근 사태를 설명.
주페루 대사관 : (페루 정부당국의 경우) 공개적인 논평은 없었으나 외무성 담당과장은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으로 국내 치안 유지가 어려운 상황 하에서는 이러한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동아시아 평화 유지를 위해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안정이 긴요하다고 말하였음. (중략) 비상 사태에 관한 (최규하) 대통령 각하의 특별 담화문을 주재국 정부기관 및 언론기관에 배포. 정부기관 및 언론기관과 접촉해 우리나라 사태를 올바르게 인식시키기 위한 홍보 활동을 전개했음.
주수리남 대사관 : (수리남 정부당국은) 우리나라가 북괴의 공산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조속히 국내 안정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음. (중략) 주재국 외국 인사를 통하여 국내 정세를 신속·정확하게 홍보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도록 함. 

 

이란 제목의 당시 외무부(외교부 전신) 문건. 주파나마 대사관이 외무부에 보고한 문건 중 일부. "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오마이뉴스>가 외교부 외교사료관을 통해 입수한 "1980.5.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중남미 반응 1980"이란 제목의 당시 외무부(외교부 전신) 문건. 주파나마 대사관이 외무부에 보고한 문건 중 일부.
ⓒ 외교부 외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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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나라의 정부나 언론의 경우 신군부의 의도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는데 이에 대한 내용과 대사관의 조치사항도 문건에 실려 있다.
 

주베네수엘라 대사관 : (베네수엘라 정부당국은) 타국 국내문제 간섭의 인상을 주는 발언은 삼가는 입장. 베네수엘라의 기본 대외 정책이 인권을 기초로 한 자유민주주의이므로 한국 사태도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민주화가 바람직하다고 함. (중략) 반한(反韓)단체의 말을 인용해 한국에 대한 미국 간섭 기자 게재(5월 26일 NACIONAL). (중략) 외무성에 각종 정부 발표문 등을 전달·설명. 반한 기사에 대비해 언론인과의 오찬, 면담, 정세설명 및 자료 전달로 우리나라 입장을 톱기사 및 사설로 게재하게 함(DAILY JOURNAL).
주에콰도르 대사관 : 연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사설·논평·해설 없이 사진과 함께 보도. (중략) 서울발 외신기사가 아국에 유리하게 발신되도록 지도, 조정함이 필요.

 
각 대사관의 문건을 수합한 외무부는 '종합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여기에는 ▲ 유력인사 방한초청 및 경제기술 협력사업을 계획대로 적극 추진하고 우호협력 관계 증진 도모 ▲ 우리나라 실정을 소개하는 홍보자료를 제작하고 현지어로 배포 ▲ 왜곡 보도에 대한 해명 등 적극적인 대응책 수립 ▲ 유력 언론인 등 친한(親韓)인사를 활용해 유리한 기사 게재 등 다각적 홍보활동 전개 ▲ 예술 사절단 파견 및 스포츠 교류 등을 통한 이해증진 도모 등이 담겼다.

보안사에도 보고된 문건들... "행정부가 이미 전두환을 실권자로 인정"
 

 1979년 11월 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발표하는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  1979년 11월 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발표하는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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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두환은 국군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박정희 사망 관련)을 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재규 구속으로 공석이 된 중앙정보부장 자리(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각 대사관이 보고한 문건들은 외무부는 물론 전두환이 수장으로 있던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까지 보고됐다. 각 문건 하단에는 수신처로 보이는 표가 들어가 있는데 외무부 장관실, 차관실 등과 함께 보안사도 표시돼 있다. 

5.18 연구자인 최용주 전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당시 행정부는 5.18이 북한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광주시민의 저항에 대한 신군부의 폭력적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외무부와 각 대사관들이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행정부가 이미 전두환을 정치적 실권자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제목의 당시 외무부(외교부 전신) 문건. 외무부가 전 중남미 지역 대사관에 '최근 아국사태의 반응'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각 대사관이 보낸 문건의 수신처로 보이는 표에 '보안사'도 포함돼 있다. "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각 대사관이 보낸 문건의 수신처로 보이는 표에 "보안사"도 포함돼 있다.
ⓒ 외교부 외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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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외무부의 움직임은 중남미에 국한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원장 박지원)은 지난해 11월 5.18 관련 기록물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장 송선태)에 전달했다. 국정원은 당시 정부가 신군부의 정당성과 '5.18 북한 개입설'을 홍보한 내용이 기록물에 담겨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이 기록물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 출신의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동남갑)은 "당시 외무부와 각국 대사관이 나서 신군부 권력 장악의 정당성을 홍보했을 뿐만 아니라 '5.18 북한 개입설'과 같은 허위 사실을 전파 내지 방조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라며 "이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5.18에 대한 허위, 왜곡, 색깔론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위는 중남미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를 상대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정원이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넘긴 자료를 비롯해 5.18 왜곡의 근거가 되는 기록물에 대한 조사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5.18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지금도 일부 극우세력이 내놓는 대표적 5.18 왜곡 사례다. 5.18 당시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주장 등이 핵심인데, 당시 상황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은 물론 국내외 각종 공식 자료에 의해 모두 허위사실임이 드러났다. (관련기사 : 지만원을 곤란하게 할, 전두환 국방부 문건 http://omn.kr/1hg67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일부 의원은 지만원 등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이들을 불러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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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상태와 준전시상태가 교차되어온 역사

[개벽예감 443] 정전상태와 준전시상태가 교차되어온 역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1/05/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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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었던 급박한 상황들

2.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

3.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

4. 1965년과 1975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5. 조선인민군에 ‘폭풍 5호’가 발령되었던 1979년

 

 

1.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었던 급박한 상황들

 

2015년 9월 1일 애쉬튼 카터(Ashton B. Carter)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세계 각국에 배치된 미국군 병사들과 화상담화를 진행했다. 화상담화에 참가한 해외 미국군 병사들 가운데는 판문점에서 군사복무를 하는 육군 일병 조너던 쏘머스(Jonathan Somers)도 있었다. 화상담화 중에 애쉬튼 카터는 쏘머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반도는 언제든지 쉽게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다. (중략) 우리는 언제든지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미국 국방장관이 판문점에서 군사복무를 하는 미국 육군 일병에게 그런 말을 꺼내놓은 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 화상담화가 진행되기 열흘 전인 2015년 8월 20일 군사분계선에서 일촉즉발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되었다. 2015년 8월 말에 전개되었던 급박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군 합참본부는 2015년 8월 20일 오후 3시 52분경 조선인민군 비무장지대 민경초소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총탄 1발이 한국군 비무장지대 감시초소로 날아왔다고 하면서 한국군 포병부대에 사격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한국군 포병부대는 조선인민군 민경초소 4개소 주변을 향해 155mm 자주포 36발을 집중사격했다. 주변을 향해 쏘았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북은 자기 지역으로 자주포를 사격한 한국군의 도발행동에 격분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앞으로 48시간 안에 대북확성기방송을 중단하고 방송기재들을 전부 철거하지 않으면 “즉시 강력한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최후통첩”을 한국군 군방부에 보냈다.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비상확대회의를 긴급히 소집하여 대남공격작전계획을 검토, 비준했다. 2015년 8월 21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을 각 전투부대들에 하달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한국군도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를 취했다. 

 

초긴장상태에 빠진 미국도 부산하게 움직였다. 2015년 8월 24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군 고위사령관들과 전쟁기획자들은 북의 공격징후에 대처하기 위한 전쟁계획을 며칠 동안 검토했다고 한다. 2015년 8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국군 합참본부는 전쟁계획을 검토하기 위한 공동작전기획단을 가동하였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2015년 8월 20일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된 이튿날 북에서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었다는 사실이다. 준전시상태는 전쟁이 임박한 상태를 뜻한다.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면, 조선인민군 지휘관들은 비상소집되고, 전투원들은 임의의 시각에 전투를 개시할 수 있도록 완전무장을 하고 갱도진지로 들어가 공격준비를 완료하게 된다. 또한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로 전환되면,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는 완전무장을 하고 결전태세에 돌입하고, 전체 인민들은 공습대피훈련과 등화관제훈련에 참가하고, 모든 차량은 징발된다.  

 

북의 준전시상태는 2015년 8월 21일에 처음 선포된 것이 아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오늘까지 북에서 정전상태가 준전시상태가 전환되었던 급박한 상황을 시대별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968년 1월 

북은 조선 영해를 침범한 미국 첩보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직후, 미국의 북침전쟁위협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이 유혈충돌한 판문점사건이 일어난 직후, 북은 미국의 북침전쟁위협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1983년 3월

북은 평양점령을 상정한 새로운 공중-지상전 전략에 따라 미국이 감행한 북침전쟁연습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1993년 3월 

북은 새로운 선제핵타격계획에 따라 미국이 감행한 북침전쟁연습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2015년 8월 

군사분계선에서 한국군의 포격으로 촉발된 무력충돌위험에 대처하여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준전시상태보다 더 엄중한 상황은 전시상태다.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전시선포를 하는 것은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다르다. 선전포고를 하고 개전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통용되었던 낡은 전쟁방식이다. 현대전쟁에서는 선제타격을 하는 쪽이 승리하게 되어 있으므로, 어떤 나라도 의회에서 선전포고를 의결하고 나서 개전하지 않는다. 당연히 북도 전쟁을 결심하는 경우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개전할 것인데, 적의 전략거점들에 대한 선제타격을 개시하는 것과 동시에 전시를 선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은 북측 외부에 전시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북측 내부에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에서는 북이 전시를 선포했다는 사실을 즉각 알 수 없다.  

 

 

2.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

 

북은 어떤 상황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어떤 상황에서 전시를 선포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2013년 8월 22일 <동아일보>가 입수해 보도한 북의 ‘전시사업세칙’ 요약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의 ‘전시사업세칙’은 2004년 4월에 제정되었고, 2012년 9월에 개정되었다. 북은 ‘전시사업세칙’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과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을 각각 규정했다.  

 

우선 북은 어떤 상황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지 살펴보자.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적대세력이 최고존엄을 모독하였을 때 

 

2) 적대세력이 전선과 해상에서 군사도발을 감행했을 때 

 

3) 적대세력이 북의 최고리익을 침해하는 도발을 감행했을 때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적대세력이 북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것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여 대처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다.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북의 시각에서 보면, 수령을 모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악독한 적대행위로 된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면, 탈북자단체가 미국의 지령에 따라 북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대북전단을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보내는 것은 북의 격분을 유발하는 적대행위가 아닐 수 없다. 2021년 4월 25일부터 29일까지 기간에 경기도 북측 지역과 강원도 북측 지역에서 반북전단 50만장을 대형 풍선 10개에 매달아 북으로 날려보낸 탈북자 박상학의 행동은 북의 격분을 유발한 적대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남측의 실정법을 공공연히 위반하면서 반북전단살포를 감행하여 남북무력충돌을 불러일으키려고 광분하는 악질범들을 엄벌에 처하고, 그들의 대북적대행위를 근절해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두 번째로 엄중한 상황은 미국군사령관이 지휘하는 한미련합군이 ‘평양점령’과 ‘참수작전’을 상정한 도발적인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군은 2021년 3월 8일부터 19일까지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북의 거듭되는 경고와 반대를 무시하고 북침전쟁연습을 또 다시 감행했다. 그것은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대북적대행위였다. 그러므로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여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한미련합군의 대북적대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위와 같은 맥락을 살펴보면, 올해 들어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대북적대행위가 벌써 두 차례나 감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고 해서, 무력충돌위험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요즈음 한반도 정세는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상황에 버금갈 만큼 무력충돌위험이 조성되었다.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이후 무력충돌위험이 단계적으로 고조되는 과정에 전시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미처 알지 못한 시각에 전시를 선포할 수 있다. 현재 한반도에 조성된 심각한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3.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것은 개전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전은 무력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군사행동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북이 통일방도의 하나로 제시한 무력통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국가분렬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두 가지 방도는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분단국가는 이 두 가지 통일방도를 추구한다. 이를테면, 조선과 중국은 평화통일과 무력통일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분단국가들이다. 예맨과 기쁘로스도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분단국가들이다. 

 

평화통일은 통일협상에 의해 실현되고, 무력통일은 통일전쟁에 의해 실현된다. 분단국가에서 통일세력과 분렬세력이 통일협상을 성사시키는 경우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지만, 분렬세력이 통일협상을 끝내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사의 경험을 보면, 분렬세력이 분단고착화책동을 자진하여 포기하고 통일협상에 호응한 사례는 없으므로, 평화통일은 비현실적인 방도이고 무력통일은 현실적인 방도라고 말할 수 있다.  

 

분렬세력이 통일협상을 거부하고 분단고착화책동에 광분하면, 통일세력이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을 성사시키는 수밖에 없다. 통일협상을 거부하고 분단고착화책동에 광분하는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을 성사시키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조국통일의 길이다. 평화통일을 반대하면서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무력통일은 통일협상에 의거한 평화통일을 실현할 통일국가건설의 방도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통일협상에 의거한 평화통일과 분렬세력을 제압하는 무력통일이 상호모순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1953년 정전 이후, 북은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에 의거하여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통일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의 시각으로 보면, 무력통일과 평화통일은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하나의 연속적인 진전과정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의 시각으로 보면, 전시를 선포하는 것은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협상을 성사시켜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북은 어떤 상황에서 전시를 선포하게 되는지 살펴보자. ‘전시사업세칙’에 따르면, 북이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미국과 남측의 침략전쟁의도가 확정되거나, 북에 무력침공을 감행했을 때 

 

2) 남측의 애국력량이 북에 지원을 요구했을 때 

 

3) 국내외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을 때 

 

4) 미국과 남측이 국부지역에서 일으킨 군사도발행위가 확대되었을 때 

 

위에 열거한, 전시를 선포하는 상황들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국내외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을 때 북이 무력통일을 실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전시사업세칙’에 서술된 바에 따르면, 국내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다는 말은 남측에서 그런 국면이 조성된다는 뜻이고, 국외에서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다는 말은 국제정세에서 그런 국면이 조성된다는 뜻이다. 양자를 구분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4. 1965년과 1975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북이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다고 판단한 적이 있었던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미국의 우드로우 윌슨 국제학술쎈터(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가 발굴하여 2012년 5월 16일에 공개한 역사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역사자료는 평양 주재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대사 브리(Brie)가 동베를린에 있는 사회주의통일당(SED) 외교담당 비서 겸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제1외무상 헤겐(hegen)에게 1967년 12월 8일에 보낸 비밀전문이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조선의 지도부가 생각하는 세 가지 민족문제해결방안”은 “남조선 인민들이 대규모 혁명봉기를 일으키는 것”과 “박정희를 반대하는 군부세력이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것”과 “미국이 남조선정권을 지원해주지 못할 만큼 국제정세가 악화되는 것”인데, 첫 번째 해결방안과 두 번째 해결방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북은 세 번째 해결방안에 노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비밀전문에 서술된 세 번째 해결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비밀전문이 작성되었던 1967년은 북이 세 번째 해결방안을 실현할 수 있는 국제정세가 조성되었던 시기였다. 당시 국제정세를 보면, 미국은 남측 정권을 지원해주지 못할 만큼 깊은 수렁 속에 빠져있었다. 그것은 윁남전쟁이라는 깊은 수렁이었다. (베트남이라는 말은 미국식 국명인 비엣남을 제멋대로 발음한 것이므로, 현지에서 사용되는 윁남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 

 

상황을 오판하고 윁남전쟁에 무력개입을 감행하였던 미국이 패전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1965년 어느 날 김일성 주석은 평양 주재 중국대사 하오더칭(郝德靑)을 접견하였다. 중국 인민대학 교수 청샤오허(成曉河)가 2013년 10월 23일 서울에서 진행된 국제학술회의에서 인용한 중국 외교부 기밀해제문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하오더칭 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남조선 인민의 계급투쟁이 고조되었고, 갈등이 증대되었으므로 우리는 조만간 (통일)전쟁을 할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전쟁을 하지 않고서 이 문제(통일문제를 뜻함-옮긴이)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생각해두었고 준비했으므로 그대로만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가 (통일)전쟁을 하면, 중국이 파병해주기 바란다.”

 

한국외교협회가 발행한 전문지 <외교> 2008년 7월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1965년 어느 날 김일성 주석은 6.25전쟁 시기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으로 참전했으며, 1965년 당시에는 중국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었던 양융(楊勇)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더 늙기 전에 (미국과) 한 번 더 겨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짐(통일전쟁을 뜻함-옮긴이)을 후대에 물려주면, 그들이 우리보다 반드시 더 잘 싸운다는 법도 없다. 전쟁경험이 있는 우리가 이 무거운 짐을 져야하겠는데, 당신들이 우리와 함께 (미국을 상대로) 싸워보는 것이 어떤가?”

 

1961년 7월 11일 조선과 중국이 체결한 ‘조중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에 따르면, 체약 일방이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1965년 당시 중국은 조선의 무력통일의사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사정은 다음과 같다. 

 

1) 1965년 당시 중국은 소련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른바 중소분쟁이다. 중국은 미제국주의보다 ‘소련제국주의’를 더 위험한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는 윁남민주공화국에 소련과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다. 1966년 9월 조선은 윁남민주공화국과 파병협정을 맺고,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 고사포부대, 공병부대를 윁남전선에 파병했으나, 중국은 윁남민주공화국이 소련과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을 비난하면서 웰남전선에 파병했던 중국인민해방군을 철수했다. 그런 태도를 가진 중국은 조선의 무력통일의사를 지지할 수 없었다.      

 

2) 중국은 자기들이 조선의 무력통일을 지원하는 경우 미국의 핵공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65년 당시 미국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각종 전술핵탄 950발을 주한미국군기지에 배치해놓고 있었다. 특히 전라북도 군산공군기지에 주둔한 미국 공군 제8전술비행단은 일본 오끼나와 가데나공군기지에 주둔한 제18전술비행단, 필리핀 클락공군기지에 주둔한 제3전술비행단과 함께 조선과 중국을 상대로 핵폭탄투하를 연습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자국의 첫 핵시험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은 실전에서 사용하기 힘든 원시적인 핵폭탄이었고, 미국 본토까지 핵탄두를 운반할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1965년 당시 중국이 미국의 핵공격을 막아낼 핵억제력을 갖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핵억제력을 갖지 못한 중국이 미국의 핵공격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의 무력통일의사를 지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알제리독립전쟁(1962년)과 제3차 중동전쟁(1967년)으로 국제정세가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던 1960년대가 지나고 마침내 윁남전쟁이 종식단계에 접어들었다. 윁남전쟁에서 패한 미국은 1973년에 윁남전선에서 미국군을 전부 철수했다. 1975년 4월 30일 당시 남윁남 주재 미국 대사 그레이엄 마틴(Graham Martin)은 새벽에 헬기를 타고 비상탈출했고, 당시 남윁남 대통령 두옹반민(Duong Van Minh)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통일세력은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여 윁남전쟁을 승리로 결속했다. 그보다 앞서 1973년 10월 조선인민군의 지원을 받은 에짚트군은 제4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스라엘군을 점령지에서 내쫓고 시나이반도를 되찾았다.   

 

이처럼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김일성 주석은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였다. 김일성 주석의 중국방문은 윁남전쟁이 통일세력의 승리로 결속되기 직전인 1975년 4월 19일부터 4월 26일까지 이루어졌다. 1975년 5월 6일 베이징 주재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대사가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1975년 4월 19일 김일성 주석은 중국이 마련한 국가환영연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연설하였다고 한다.

 

(전략)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은 세계 반제민족해방투쟁에서 중요한 고리로 됩니다. (중략) 만일 남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경우, 우리는 같은 민족성원으로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지 않을 것이며, 남조선 인민들을 힘있게 지원할 것입니다. 만일 적들이 무모하게 (침략)전쟁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통일)전쟁으로 결정적인 대답을 줄 것이며 침략자들을 완전히 소멸할 것입니다. 전쟁에서 우리가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요, 우리가 얻을 것은 조국통일입니다.” (하략) 

 

평양 주재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 대사관이 1975년 5월 12일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 따르면, 당시 베이징에서 진행된 조중정상회담에서는 “윁남과 캄보쟈에서 전개되는 (전쟁종식)상황과 그것이 남조선의 정세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김일성 주석은 조중정상회담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에게 윁남전쟁의 승리로 국제정세가 조선의 무력통일을 실현하기에 유리하게 전변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조선의 무력통일의사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요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당시 마오쩌둥 주석은 그런 중대한 문제를 검토할 수 없을 만큼 노쇠했다. 그래서 마오쩌둥 주석은 조중정상회담에 배석한 덩샤오핑(鄧小平) 부주석과 그 문제를 논의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72년 2월 21일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이 사상 처음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하여 해빙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중미관계를 중시한 덩샤오핑 부주석은 조선의 평화통일은 지지하면서도 조선의 무력통일에 대한 지지는 유보했다.     

 

 

5. 조선인민군에 ‘폭풍 5호’가 발령되었던 1979년

 

웰남전쟁의 승리로 조선의 무력통일에 유리한 국제정세가 조성된 때로부터 4년이 지난 1979년 10월 한반도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났다. 한반도는 북이 무력통일에 유리한 정세라고 판단할 만큼 돌변적인 정세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1979년 10월 26일 국가분렬을 고착화하려고 획책하던 독재자 박정희가 자기 심복의 손에 암살당했고,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하는 극우군부세력이 위헌적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고, 1980년 5월 18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광주민중항쟁이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진압명령을 받은 한국군 계엄부대의 유혈탄압으로 좌절되었다. 북의 시각에서 보면, 그러한 돌변적인 정세변화는 무력통일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정세를 조성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월간조선> 2021년 1월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당시 북은 무력통일의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하고 다음과 같은 긴급행동을 취했다고 한다.

 

1) 박정희 암살사건이 일어난 이튿날 조선인민군 전군에 ‘폭풍 5호’가 발령되었다. (북에서 ‘폭풍’은 비상소집명령이다.)  

 

2) 당시 동유럽 사회주의나라들을 순방하고 있었던 오극렬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 방문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했고,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가 긴급히 소집되었다.

 

3) 최전선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대련합부대들은 전투동원태세를 갖추었다. 이를테면, 곡산군과 세포군에서는 땅크, 장갑차, 자행포, 방사포 등 무장장비 1,000여 대를 동원한 실전훈련이 진행되었다. 

 

4)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이 총격전을 벌였다.

 

5) 조선인민군 정찰병들이 경기도 한강하구와 경상남도 포항만으로 각각 침투했다.  

 

6) 조선인민군 수송부대는 대규모 전쟁물자를 전방지역으로 수송했다.

 

<월간조선> 2021년 1월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1980년 당시 김일성 주석은 소련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레오니트 브레즈네브(Leonid Brezhnev)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는데, 정상회담 중에 김일성 주석은 브레즈네브 서기장에게 “남반부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에 의해 금년 내에 반드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반부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은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을 뜻한다. 김일성 주석은 1980년 5월 7일 조시프 브로즈 찌또(Josip Broz Tito)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베오그라드를 방문하였을 때 장례식에 참석하러 그곳에 온 브레즈네브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였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을 비공개로 방문하여 브레즈네브 서기장을 또 다시 만난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당시 김일성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브레즈네브 서기장에게 무력통일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북은 무력통일을 실현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무력통일을 실현할 주객관적 조건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로부터 어느덧 40년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시대는 바뀌었고, 세대는 교체되었으나, 분렬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북의 통일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북의 통일의지는 무력통일과 평화통일을 순차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군사적 준비를 완료하는 길로 북을 이끌어갔다. 그리하여 북은 연방제통일방안과 무력통일작전계획을 각각 완성했다. 

 

2000년 10월 6일 안경호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의 발언을 들어보면, 북이 완성한 연방제통일방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이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설방안을 제시한 20주년에 즈음하여 진행된 평양시 보고대회에서 안경호 서기국장은 “우리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 개 정부가 정치권, 군사권,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민족공동의 리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평화통일방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른 한편, 북이 무력통일작전계획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2015년에 한국군 합참본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대외비 문건을 보도한 <신동아> 2020년 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2012년에 새로운 작전계획과 지휘체계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은 연방제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개선에 힘쓰는 한편, 무력통일작전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군사훈련에도 주력했다. 북은 15일 작전계획을 수정보완하여 7일 작전계획을 수립했고, 7일 작전계획을 수정보완하여 3일 작전계획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은 무력통일에 개입하려는 미국의 침략적 군사행동을 핵억제력으로 저지하고, 고속기동전과 전략갱도전을 벌여 인명손실과 전쟁피해를 최소화하는 3일 작전계획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군 합참본부가 2015년 청와대에 보고한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완성한 ‘전격적 개념의 기습공격계획’은 “방사포 등 화력으로 단시간 내 서울과 전략지대를 타격하고, 기동전으로 3~5일 내 부산을 점령한 후, 핵-미사일로 위협해 미국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군의 방어력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허술하다. <신동아> 2014년 1월호에 실린 전면전 씨나리오에 따르면, 한국군에게는 조선인민군의 비대칭전력인 탄도미사일을 막을 미사일방어체계가 없고, 조선인민군의 대규모 포병화력에 맞설 포병전력과 비축탄약이 없고, 조선인민군의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갈 첨단공군전력이 없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핵심전력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고, 전략거점들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평화통일준비와 무력통일준비를 완료한 북은 오늘 중국과 미국이 대만문제를 놓고 무력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 급박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동중국해, 대만해협, 남중국해에서 고조되는 중미전쟁위기는 한반도에서 무력통일의 결정적 시기를 앞당기는 외적 요인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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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노태우 일가의 5.18 반성 쇼, 가증스럽다

이완배 기자 
발행2021-05-10 07:17:07 수정2021-05-10 07:17:07
 

2021년 4월과 5월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가슴의 한을 되새기는 시기다. 30년 전 4월 26일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 군이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이후 노태우 군사 독재에 항거하며 박승희(4월 29일), 김영균(5월 1일), 천세용(5월 3일) 열사가 잇따라 분신해 목숨을 잃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박창수 열사는 5월 6일 수감 중이던 안양 구치소에서 의문의 상처를 입고 세상을 떠났다. 이어 윤용하(5월 9일), 이정순(5월 18일), 김철수(5월 18일), 정상순(5월 22일) 열사도 스스로 목숨을 던지며 싸웠다. 5월 25일 4차 범국민대회 때에는 김귀정 열사가 백골단의 폭력 진압에 목숨을 잃었다.

이 숭고한 생명들이 목숨을 던지면서 마지막까지 외쳤던 구호는 모두 “노태우 군사독재 타도”였다.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가증스러운 슬로건을 앞세워 수많은 민주화 투사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던 노태우 일당과의 싸움은 그렇게 처절했다.

그런데 이 가슴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열사들을 추모해야 할 시기에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볼 기사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노태우 장남 노재헌이 광주를 방문해 ‘사과 쇼’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눈 깜빡거리는 게 사죄냐?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노재헌이 병석에 누운 노태우를 대신해 광주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방명록을 통해 사죄의 뜻을 표했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노태우가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른 지 어언 41년이다. 그 41년 동안 노태우는 어디서 뭘 하고 자빠졌다가 지금 와서 본인도 아니고 아들을 내세워 사과 운운하나?

관련 보도를 읽다가 4월 12일자 중앙일보 기사 ‘고비 넘긴 노태우…아들이 “광주 갈까요?” 물으면 눈 깜빡’이라는 기사를 읽고 완전히 뚜껑이 열렸다. 뭔 소리인가 싶어 살펴봤더니 노재헌이 2019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광주를 찾아 사죄의 뜻을 밝혔는데 이게 다 노태우의 뜻이었다는 거다.

그 증거랍시고 하는 말이, 노재헌이 병석의 노태우에게 “(광주에) 가지 말까요?”라고 물으면 노태우가 가만히 있었고, “갔다 올까요?”라고 물으면 눈을 깜빡거렸단다. 이것들이 진짜 이걸 말이라고 하나? 눈 깜빡거린 게 사죄냐? 눈 좀 여러 번 깜빡거렸다가는 노태우가 아예 석고대죄를 했다고 소문내겠다?

12·12군사반란 및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 노태우가 1996년 8월 26일 1심 선고공판에서 나란히 서 있다.ⓒ자료사진

“당사자가 병석에 누워 말을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라는 반론은 집어치워라. 노태우 올해 나이가 여든아홉이다. 광주 민주화항쟁 이후 41년 동안 건강했던 기간이 최소 30년 이상인데 그 동안은 왜 눈도 안 깜빡거리다가 지금 와서 눈 깜빡거린 것으로 퉁을 치려고 하느냐는 말이다.

백만 보를 양보해 눈 깜빡거림이 사죄의 의사라고 치자. 그러면 41년 전 독재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숭고한 광주 영령들에게는 뭐라고 고할 건가? “노태우가 드디어 눈을 깜빡거렸으니 이제 그만 용서해줍시다” 이러자는 건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노태우가 감옥에서 풀려난 것은 죗값을 다 치렀기 때문이 아니라 사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태우는 반란 중요임무 종사, 상관 살해, 내란모의 참여 등 무려 7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악질 범죄자다. 형량도 1심에서는 무기징역, 대법원에서는 징역 17년을 받았다.

이 악질 범죄자가 뭘 회고할 게 있었는지 2011년 『노태우 회고록』이란 것을 발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 책에서 5·18 항쟁에 대해 “광주 시민들이 유언비어에 현혹된 것이 사태의 원인이었다”고 적었다. 이게 고작 10년 전의 일이다. 심지어 5년 뒤인 2016년에는 그의 딸 노소영이 대구에서 총선에 출마한 김문수를 지지하며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민주화, 더 이상 뒤에서 팔짱끼고 남의 나라 보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헛소리까지 지껄였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불과 10년 전 이런 멍멍이 소리를 지껄이던 자와, 5년 전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민주화” 운운하던 그 가족들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광주 영령들에게 사죄의 뜻을 표했다는 것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 나는 절대 못 믿지만 나보다 훨씬 더 아량이 있는 사람이 그 말을 믿으려 한다고 쳐도, 최소한 회고록에 적은 저 대목은 고치고 눈을 깜빡거리던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노태우와 그 가족들은 아직도 회고록을 수정하기는커녕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사실이 두렵다.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Tali Sharot) 칼리지런던 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망각이라는 기법을 사용해왔다. 특히 인류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빨리 잊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발목을 잡으면 새로운 모험과 도전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사냥에 나섰는데 동료가 죽는 아픈 경험을 했을 때, 인류가 그 기억을 간직한다면 절대 다음에 사냥에 나서지 못한다. 인류의 뇌가 나쁜 기억부터 빨리 삭제하도록 진화된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자꾸 잊는다. 41년 전 광주에서 목숨을 바친 그 숭고한 영령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뇌는 자꾸 잊으려 한다. 30년 전 노태우가 죽인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열사를 잊는다. 나는 이 망각이 진심으로 두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41년 전 광주를, 30년 전 그 뜨거웠던 거리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일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잘 잊으려 하는 반면, 마무리되지 않은 일은 또 잘 잊지 못하는 상반된 경향을 갖고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의 이름을 딴 자이가르닉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라 불리는 이론이다.

시험 하루 전날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 시험을 보는 순간까지는 암기한 것이 기억이 잘 난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는 순간, 암기한 것은 귀신같이 머리에서 사라진다. 시험 직전까지 뇌는 자기의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믿고 그 기억을 굳게 붙잡지만 시험이 끝나면 일이 마무리됐다고 간주하고 기억을 지운다. 그래야 다른 기억을 채울 공간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41년 전 광주의 일은 마무리됐나? 전두환은 아직도 자신이 발포 책임자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노태우와 전두환은 다르지 않냐?”는 주장은 웃기는 소리다. 1996년 12월 2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노태우는 전두환의 참월(僭越, ‘분수에 넘친다’는 뜻)하는 뜻을 시종 추수(追隨)하여 영화를 나누고 그 업(業)을 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마디로 노태우가 전두환의 따까리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노태우와 전두환이 뭐가 다른가? 두목과 따까리여서 다른가? 작작 웃겨라. 전두환이 저 멍멍이 소리를 아직도 지껄이고 다니는데 노태우는 눈만 깜빡거리면서 “나는 따까리여서 전두환과 달라요” 이러면 이걸 믿는 게 정상인가? 이 말을 믿으라고 하려면 노태우는 최소한 전두환의 멍멍이 소리에 저항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41년 전 광주의 일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일을 쉽게 잊을 수 없다. 나는 1991년 수많은 열사들과 동시대를 살면서 그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부끄럽게 살아남은 자로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격이 주어진다면 분명히 말한다. 죽어도 나는 노태우 너의 눈 깜빡거림 따위를 사죄의 뜻으로 보지 못하겠다. 그게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던진 수백 명의 민주화 열사들에 대한 예의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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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협 정보위원장, “대북전단 살포, 북 대응 움직임 포착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5/09 10:20
  • 수정일
    2021/05/09 10:2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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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범죄로 엄단해야“...‘범정부 차원 선제 조치’ 촉구

  • 기자명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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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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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국회 정보위원장인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엄단을 촉구하며 범정부 차원의 선제 조치를 촉구하는 입장문을 7일 발표했다.

김경협 의원은 “지난 4월 말, 자유북한운동연합이라는 탈북자 단체는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50만장을 살포했다”며 “명백한 현행법 위반 행위이자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과 국가안보상의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기본합의서」 및 「판문점선언」, 「9.19남북군사합의」 위반이자, 북한의 무력도발 빌미를 제공하고 남북간의 긴장을 고조시켜 접경 지역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범죄행위이라는 것. 국회는 지난 연말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의결해 올해 3월부터 시행 중이다.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이 최근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입장문을 7일 발표했다. [사진출처 - 김경협 의원 페이스북]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이 최근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입장문을 7일 발표했다. [사진출처 - 김경협 의원 페이스북]

김경협 의원은 특히 “5월 2일, 북한은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강력히 비난하고 상응 행동을 예고하였다. 우리 정보당국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의 대응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한다”고 전해 주목된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가정보원(원장 박지원)으로부터 대북정보 브리핑을 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북한의 대응 움직임 포착’ 정보는 막연한 추측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대남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2일 담화를 통해 “우리도 이제는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면서 “우리가 어떤 결심과 행동을 하든 그로 인한 후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더러운 쓰레기들에 대한 통제를 바로하지 않은 남조선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북한은 실제로 대북전단 살포 맞대응으로 2014년 고사총 사격을 가한 바 있고, 지난해 6월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기도 했다.

김경협 의원은 “지금 북한은 자신들의 경제적 숨구멍인 대중무역마저 셀프봉쇄할 정도로 코로나19 유입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대북 전단을 바이러스 유입 통로로 간주할 경우 대응은 한층 더 과격해질 수 있다”며 “경찰은 철저한 수사와 법 집행으로 대북전단 살포자를 안보범죄로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은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일체의 도발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우리 군과 정보당국은 철저한 경계태세로 북한의 대응행동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안보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통일부, 국방부, 경찰과 정보당국 등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이고 철저한 선제 조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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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글 바로쓰기] 23. 부동산 관련 용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외국말

편집국 | 기사입력 2021/05/0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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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 사람의 얼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우리 민족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의 정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국어를 남용하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우리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외국말을 우리말로 바꿔서 사용해야겠습니다.

 

  © 편집국

 

한국인의 가장 큰 관심과 걱정거리 중 하나는 집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제대로 된 주거공간을 얻기 위해, 일부는 투기의 목적으로 부동산 관련 소식들을 많이 접한다. 이곳저곳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이들도 많다. 

 

부동산 관련 뉴스를 보거나 실제 집을 구하러 다녀보면 수많은 외국어를 접하게 된다. 이런 외국어 중 우리말로 순화해 쓸 수 있는 표현들이 많다. 

 

거리 곳곳에 들어서 있는 ‘모델하우스’는 ‘견본 주택’이란 말로 바꾸어 부를 수 있다. 공사장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마스터플랜’이라는 용어는 ‘종합계획’으로 대체해 사용하면 된다. 

 

부동산 전단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랜드마크’와 ‘핫 플레이스’ 등의 용어도 ‘상징물’, ‘명소’ 정도로 바꿔 사용할 수 있다.  

 

최근 부동산 뉴스에서 많이 등장하는 ‘갭 투자’는 ‘시세차익 투자’로 ‘다운 계약서’는 ‘가격축소 계약’으로 대체하면 된다. 

 

셰어 하우스’는 ‘공유 주택’으로 ‘리모델링’은 ‘새 단장’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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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고졸, 1000만원'... 국민의힘은 그만 좀 비트세요

[주장] 핵심은 세계여행에 있지 않습니다... '20대의 더 다양한 꿈'에 있습니다

21.05.08 17:59l최종 업데이트 21.05.08 21:03l


나는 올해 갓 스무살이 된, 고졸 학력을 가진 사회 초년생이다. 
대학을 안 가고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번다. 내가 학창시절에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대해 불만이 없다는 것과 내 선택으로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밝힌다.

나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멀리하다가 고2 말부터 고3때 까지 정시 준비를 하며 바짝 공부를 했었다. 해서 나온 점수는 평균등급 4.5등급으로 좋은 대학은 못가지만 지방에 있는 대학은 갈 수 있었다.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배운 세상은 대학을 안 가면 '바보 취급' 받는 세상이었기에 내가 대학을 안 갔을 때의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러나 고민하고 또 고민해 봐도 지금의 나로서는 오히려 대학을 가지 않고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는 것이 더 보람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과감히 대학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4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경기도-경기도교육청-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졸 취업지원 기반마련을 위한 업무협약'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4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경기도-경기도교육청-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졸 취업지원 기반마련을 위한 업무협약"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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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최근에 논란이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말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의 20대들이 대학을 가야만 국가적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고졸자들도 100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는다면 자기계발에 그 돈을 사용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세계여행'은 예로 든 것일 뿐이었다).

그 말에 대해 고민해 봤다. 단지 1000만 원이라는 돈이 솔깃해서 본 것이 아니다. 학창시절에 나름대로의 공부를 했음에도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보 취급'을 받거나, 대학생들과는 달리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고졸자의 입장으로서 이재명 지사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꼭 가야 한다'는 세상의 시선에 대해

우선 우리에게 스며든 '대학을 꼭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봤다. 많은 고등학생들이 대학을 위해 공부를 죽어라 하는데, 실제로 그 대학의 전공을 살려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생은 20년만 사는 것이 아닌데, 평생을 살아가게 될 텐데.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정하니깐, 선생님이 정하라고 하니깐, 세상이 정해야 한다고 하니깐, 일찍이 꿈을 정하고 직업을 정하고 자기의 인생을 정하는 것은 너무 억압된 삶이 아닌가. 결국 대학을 가야 해서 자기가 진정으로 하려던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인식이 만들어낸 '피해자'가 아닐까. 

그러므로 이재명 지사가 말한 것처럼 고졸자에게 1000만 원을 국가에서 지원해준다면 20대들이 더 많은 꿈들을 꾸고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재명 지사의 발언을 다룬 기사를 보다 보면 비판이 수두룩하다. 첫 번째로 이재명 지사가 대선을 앞두고 무리한 공약을 내세웠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 허경영과 다름없는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말들은 주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한 말이었다. 참 생각이 많아지는 대목이다. 

포퓰리즘이라고? 허경영이라고?
 
 지난 2월 18일 서울 시내 한 대학교에서 졸업생들이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기업 인턴 및 채용정보가 부착되는 게시판이 비어 있다.
▲  지난 2월 18일 서울 시내 한 대학교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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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공약이 아니었다. 그냥 '그러면 어떨까?'라는 예시를 들면서 세상이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을 강요하는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이재명 지사는 그 말을 통해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고 본다.

'왜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꼭 대학을 가야만 하고, 왜 꿈을 정해놓고 살아야 하는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질문이다. 그런데 언론과 국민의힘은 '1000만 원'과 '세계여행'에만 콕 집어 공격을 퍼붓고 있다. 왜일까? 그들이야 말로 대선을 심각하게 신경써서 그런 것 아닐까.

국민의힘은 '이대남 이대남' 하면서 20대의 남자들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쓴다. 국민의힘은 이번 보궐선거 결과를 보고 크나큰 착각을 하는 것 같다. 4.7 재보선 20대의 선거결과는 국민의힘이 좋아서가 아니라, 개혁을 하지 않는 민주당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깊숙히 박혀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역시 이재명 지사가 20대를 얘기하니 바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불안한 것이다. 

또, 허경영과 다름없는 포퓰리즘이라고 몰아간다. 세상을 돈으로만 보는 걸까? '돈으로 표를 얻으려는 것'이라며 비난하는데, 이재명 지사가 말한 근본적인 이야기는 '1000만 원 줄게 대학 가지마'가 아니다. 실행 한다고 쳐도 당연히 여러 절차를 거치고 프로그램을 짜서 지급하게 될 것이고, 근본적인 뜻은 고등학생들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주고 20대들이 더 다양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제안이다. 이재명 지사도 자신의 발언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자 자신이 했던 발언의 원문을 공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핵심은 형식과 외관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대학진학 유무와 관계 없이 공평하게 지원받아야 하고, 지원방식은 획일적이지 않고 개인적 특성을 고려해 다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5월 6일 이재명 지사 페이스북

조금만 생각해보면 근본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도 국민의힘은 버젓이 '돈으로 표를 사려고 든다'는 말을 입에 올린다. 스스로 청년을 위한다는 위정자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의힘이 내놓는 말이야 말로 포퓰리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재명 지사가 이번에 한 말이 올바른 문제 제기를 했고, 그것이 좋은 영향력을 끼쳤으면 한다. 이번 과정을 통해 이재명 지사가 한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언론과 특정 정치의 비난을 위한 비난을 깨닫는 시간이 됐다. 

그러므로 나는 이재명 지사의 발언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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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당 재집권하면 참극 벌어져, 5월 18일을 국힘당 단죄의 날로”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5/0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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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을 ‘학살자 후예, 적폐 본당 국힘당 해체하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국민주권연대가 격문 ‘5월 18일을 국힘당 심판의 날로 만들자’를 발표한 데 이어 6일과 7일에 걸쳐 국민주권연대 지역본부가 격문·성명·호소문을 통해 국힘당 심판을 호소했다.  

 

먼저 경기주권연대는 7일 호소문 ‘5·18학살 전두환의 후예, 박근혜 잔당 국힘당을 심판하자!’에서 국힘당이 보궐선거 이후 승리에 도취되어 정권창출에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으며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보수적폐 세력에 정권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경기주권연대는 국힘당을 ‘5·18모독 세력, 반통일 적폐 세력’이라 규정지으며, 이들이 정권을 장악하면 국민이 안타까운 희생을 치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주권연대는 “5·18 정신으로 철저한 적폐청산 반보수 투쟁에 모두 떨쳐나서자”라고 호소했다. 

 

광주전남주권연대는 6일 격문 ‘다시 오월이다! 학살부역 세력의 완전한 처단으로 일떠서자!’를 발표했다. 

 

광주전남주권연대는 5·18민중항쟁이 41주년이 되었지만 학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이어 광주전남주권연대는 5·18진상규명과 학살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한 5·18민중항쟁은 끝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광주전남주권연대는 진정한 열사정신 계승은 “학살부역 세력, 국힘당을 척결하고 사회대개혁과 자주통일로 전진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광주전남주권연대는 “지난 오월은 광주영령들의 피였지만, 지금의 오월은 학살부역 세력들의 피가 흘러야 할 것”이라며 “학살부역 세력의 완전한 처단으로 일떠서자”라고 호소했다. 

 

대구경북주권연대도 6일 격문 ‘5월 18일을 국힘당과 사대매국적폐 세력, 심판의 날로 만들어내자’를 발표했다.  

 

대구경북주권연대는 대선이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대매국, 수구적폐 세력을 그대로 놔둔다면 그들의 세상이 다시 돌아올지 모르며, 적폐 세력의 부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참극을 빚어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구경북주권연대는 이를 막기 위해 국힘당을 촛불로 완전히 제압하고 분단에 기생하는 반통일, 호전적폐 세력을 뿌리 뽑자고 호소했다. 

 

대구경북주권연대는 특히 국힘당이 재집권하면 ‘독재회귀·분단고착·전쟁위기의 시작’이라며 5월 18일을 국힘당을 단죄하고 심판하는 날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부산경남주권연대도 6일 격문 ‘5월 18일, 끝나지 않은 항쟁을 적폐정당 국힘당 척결로 이어가자’를 발표했다.

 

부산경남주권연대는 격문에서 국힘당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80년 광주처럼 국민을 계엄령으로 억압하려는 세력이라며 “쿠데타로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을 떠받드는 국힘당 파쇼독재 본색은 어딜 가지 않는다”라고 짚었다. 

 

부산경남주권연대는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 국민이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해, 국힘당이 재기 못하도록 만들자고 주장했다.

 

부산경남주권연대는 “5월 18일, 적폐집단 국힘당을 완전히 척결하자”라고 호소했다. 

 

서울주권연대 동북지회는 6일 호소문 ‘보수적폐 세력의 재집권을 막아내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켜내자’를 발표했다.

 

동북지회는 호소문에서 보수적폐 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동북지회는 보수적폐 세력의 재집권은 민주주의와 평화의 파괴를 가져온다며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지회는 “5·18 민중항쟁 41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반보수 투쟁을 벌여내자”라고 호소했다.

 

서울주권연대 서남지회도 6일 성명 ‘5·18 학살의 주범, 살인마 전두환의 후예, 국힘당을 심판하자’를 발표했다.

 

서남지회는 “‘적폐’의 첫 자리에는 친외세, 반민족, 온갖 성 추문과 비리를 일삼아 온 적폐 중의 적폐, 국힘당이 있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남지회는 박근혜 탄핵촛불의 심판을 받아 사그라들던 국힘당이 4.7 보궐선거를 지나며 다시 살아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절대 그냥 둬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서남지회는 온 국민이 똘똘뭉쳐 국힘당이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도 명함을 내밀지 못하도록 확실히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남지회는 “박근혜 탄핵 촛불이여, 다시 일어나 적폐 국힘당 청산하자!”, “오월의 영령들이 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라고 호소했다.

 

또한 진보예술인들의 모임인 ‘민들레’도 6일 호소문 ‘5.18을 국힘당 해체의 날로 삼고, 반보수 투쟁에 전력을 다하자!’를 발표했다.

 

민들레는 호소문에서 국힘당에 대해 “국정농단 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높이든 박근혜 탄핵 촛불국민을 계엄령으로 짓밟을 계획을 꾸민 자들”, “민심을 받들기보다는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학살하는 데 익숙한 독재정권의 후예들”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민들레는 국힘당이 한반도 평화번영에는 관심이 없다고 짚었다.

 

민들레는 적폐 세력의 정치적 구심인 국힘당을 심판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국민의 행복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들레는 적폐청산을 바라는 예술인들은 작품과 예술적 활동으로 국힘당 해체와 적폐청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들레는 “5.18을 계기로 국힘당을 심판하자”, “보수적폐 세력들을 심판하는 길에 온 힘을 다하자”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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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향 꺼지지 않게”...故이선호 친구들의 간절한 바람

친구들이 기억하는 개구쟁이 선호...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남 일 아니란 걸 알았다”

이승훈 기자 
발행2021-05-07 21:55:39 수정2021-05-07 21:55:39
고 이선호 씨의 빈소ⓒ민중의소리
 

“이 향이 꺼지지 않아야…”

7일, 故 이선호(23) 씨의 빈소에서 만난 선호 씨 친구들은 필사적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향이 꺼질까 봐 뛰어가서 향을 피웠고, 새벽 3~4시에 잠들어서 향을 피우지 못할까 봐 다들 알람을 맞췄다고 했다.

일터에서 벌어진 선호 씨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선호 씨 아버지는 경찰 참고인 조사와 언론 인터뷰 때문에 정신없었다. 어머니는 아픈 선호 씨 누나의 병간호로 빈소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호 씨 친구 4~5명은 밤새 빈소를 지키며 이 같은 노력을 지난달 22~23일부터 2주 넘게 이어오고 있었다.

선호 씨 친구 배민형(23) 씨는 “평소에는 이런 거 믿지도 않았지만, 인터넷에다 쳐보니 향이 (이승과 고인을 연결하는) 매개체라고 하더라. 혹시라도 그 말이 진짜라면…”이라며 향이 꺼지지 않도록 항상 보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 채종우(23) 씨도 “선호랑 같이 있음을 알려주는 장치라고 생각이 든다”라며 “선호가 정말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 선호가 보고 있었으면 해서, 향만큼은 꺼지지 않게 계속 피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호 씨의 친구들은 스물셋의 나이에, 빈소에서 피우는 향의 의미를 깊이 알아버렸다.

 

“우리 나이가 죽음을 생각하는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민형 씨 말처럼, 선호 씨 친구들은 항상 뉴스로만 접하던 산재사망사고가 “그냥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고. 그래서 “뉴스로 접하긴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안전이 중시되지 않는 일터에서의 비극적인 사고가 그저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니게 됐다고 했다.

선호 씨의 친구들은 또 이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길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갈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고 이선호 씨는 바닥 홈 부분에 남아 있는 나무 잔해를 제거하다가 FRC 날개가 넘어지면서 사고를 당했다.ⓒ대책위 관계자 제공

친구의 죽음으로 세상이 바뀐 청년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었다”
“같은 일 반복되면 안 된다”

항만 하청 일용직 노동자 故 이선호 씨는 지난달 22일 평택항 신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FRC(FR컨테이너, Flat Rack Container) 해체 작업 중 300kg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선호 씨는 아버지가 직원으로 일하는 우린인력이란 하청업체를 통해 지난해 초부터 이곳에서 동식물 검역 관련 일을 했다. 선호 씨가 사고를 당한 이날은 처음으로 FR컨테이너 작업에 투입된 날이었다. 원청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방의 관리자가 바뀌고 검역별로 분리 투입되던 인력이 통폐합되면서 동식물 검역만 하던 선호 씨가 FR컨테이너 작업도 하게 됐다.

하지만 작업 투입 전 안전 교육은 없었고, 중장비를 다루는 위험 작업 현장에 반드시 필요한 안전 관리자 및 신호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작업 순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핀 제거 상황에서는 절대 FR컨테이너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 되지만, 선호 씨는 컨테이너 날개가 접히는 안쪽에서 나무 합판 조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편 날개 쪽에 있던 지게차 기사가 선호 씨의 상황을 보지 못했는지 컨테이너 날개를 접는 작업을 진행했다. 반대편 날개가 접히면서 발생한 진동으로 안전핀이 제거된 선호 씨 쪽 날개도 함께 접혔다. 300kg의 묵중한 컨테이너 날개가 선호 씨를 덮쳤다.

‘故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와 유족은 현장에 있던 동료의 진술을 근거로 원청 직원의 지시가 있었기에 선호 씨가 컨테이너 안쪽에서 합판 잔해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봤다. 반면, 원청 측은 지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시가 있었거나 없었거나,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선호 씨 친구들은 이 같은 비보(悲報)를 믿지 않았다. 서로 짓궂게 장난도 치던 사이라, 종우 씨도 민형 씨도 “병문안 오라고 장난치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비보는 사실이었다.

민형 씨는 “이런 (일터에서의 산재사망사고 관련) 뉴스 많이 나오지 않나.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실 평소에 관심 없었다. 우리 나이가 죽음을 상상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고 여긴 듯하다”라며 “저도 공장 등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안전에 관한) 이런 사소한 규칙들을 저도 무시하면서 살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니까 지켜야 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선호 씨 친구 김벼리(23) 씨와 서현진(23) 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벼리 씨는 “산재사고 뉴스를 많이 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제 친구에게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며 “산재사고라고 하면 화가 나고 언제까지 이래야하나 하는 막연한 분노가 일었다면, (막상 친구가 당하니) 그 (사고) 장면과 친구의 얼굴이 계속 생각나서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현진 씨도 “사실 제 일이 아니라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라며 “그런데 친구가 이렇게 되니, 무섭다”라고 했다.

종우 씨도 “마냥 남 얘기인 줄 알았다”라며 “친한 친구가 당하니까 이게 남 일이 아니구나, 누군가의 친구·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구나 싶었다. 당황도 많이 했고, 믿기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종우 씨는 “그러다가 마음이 좀 진정되니까. 다른 선호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피해자가 제발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런 마음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현진 씨도 “같은 일이 또 반복되면 너무 슬플 것 같다”라며 다시 친구가 겪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민형 씨, 종우 씨, 벼리 씨, 현진 씨에게 선호 씨는 항상 웃음을 주는 친구였다.

종우 씨는 “선호가 사진을 보면 험상궂게 생기긴 했는데, 내면이 정말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아서 닮고 싶었던 친구”라며 “항상 주변 친구들을 웃게 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선호 씨를 생각하면 “학교 운동장에서 같이 막춤을 추며 웃고 떠들던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반장이었던 선호 씨와 같은 반에서 반장을 맡았던 현진 씨도 “개구쟁이 같아서 애들에게 항상 웃음을 줬다. 반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던 모습이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민형 씨에게 선호 씨는 아픈 누나를 생각하며 술자리에서 눈물 흘리던, 불안한 미래를 함께 고민하면서도 “우린 아직 젊다”며 위로하던, 짬뽕을 좋아하던 ‘분위기 메이커’ 친구였다.

그런 친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친구들은 15일 넘게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민형 씨는 말했다. “만약 제가 죽었어도, 선호가 똑같이 해주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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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지재권 면제되면... 인도 살리고, 한국은 백신 허브 가능성

[진단] 미 정부 전향적 발표에 논의 급진전... 진정 백신수급 부족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려면

21.05.07 19:50l최종 업데이트 21.05.07 19:50l

  

 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접종 중인 화이자 백신
▲  서울 성동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접종 중인 화이자 백신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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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지재권) 면제 지지 입장을 밝힘에 따라, 백신 수급 불안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 5일 "행정부는 지재권 보호를 강하게 믿고 있지만, 이 전염병을 종식시키기 위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보호 포기를 지지하고 있다"라고 밝힌데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직접 백악관에서 지재권 면제 지지 의사를 밝혔다. 테드로스 아다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발표에 대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기념비적인 순간, 미국의 지혜와 도덕적 리더십이 반영됐다"면서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에 백신에 관해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관련 지재권에 관한 협정(TRIPS Agreement, 트립스 협정)' 조항의 유예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EU 역시 7~8일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지재권 면제 제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화이자의 백신 개발 협력사인 '바이오테크'사가 있는 독일에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식재산의 보호는 혁신의 원천"이라며 백신 특허 포기에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지재권 면제는 세계무역기구 164개 회원국이 만장일치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독일의 반대는 큰 방해물이다. 게다가 화이자 등의 제약사들도 반대하고 있는만큼 지재권 면제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과 지식재산권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 지지" 밝히는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경제 부양을 위한 '미국 구조계획' 이행 상황에 대한 연설 후 취재진과 문답을 나누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신과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yes)"고 말했다. 2021.5.5
▲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 지지" 밝히는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경제 부양을 위한 "미국 구조계획" 이행 상황에 대한 연설 후 취재진과 문답을 나누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신과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yes)"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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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재권 면제는 불안한 백신 수급 상황을 개선해줄 수 있는 묘안으로 꼽혀왔다. 지난달 우리 국회에서도 정의당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트립스 협정 일부 조항 적용의 일시 유예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결의안에 참여한 의원들은 "현재 고소득 10개국이 백신 공급량의 2/3를 확보하고 있어 국가 간 백신 불평등이 가속되고 있다"라며 "백신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백신을 생산할 역량이 있고 제조설비를 갖춘 제약사들 간의 협업을 통해, 필요한 양만큼 생산과 공급망을 늘려 전 세계에 보편적이고 공평한 백신 보급을 조속히 달성해야 하는데 여기에 지재권 규범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태인 경제학 박사는 "의학분야는 개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특허가 굉장히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분야 중 하나"라면서 "하지만 전염병 시기 백신은 특허가 있으면 안 되거나, 빠른 시일 내에 풀어서 공공영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팬데믹은 어느 한 국가만 좋아진다고 되는 건 아니고, 계속 번지면 변이가 일어나면서 기존 백신이 소용이 없어진다"라며 "결국 백신에 관한 자료나 설비 등에 관한 모든 걸 공개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현재 코로나19로 위기를 겪는 인도 같은 국가들은 제조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특허만 풀리면 대량 생산이 충분히 가능하다"라며 "다만 특허는 독점권을 주고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후 보상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태도 변화에 담긴 의미
 
 러시아에서 한 간호사가 임시 코로나19 예방 접종 장소에서 주사기에 Gam-COVID-Vac(스푸트니크 V) 백신을 주입하고 있다.
▲  러시아에서 한 간호사가 임시 코로나19 예방 접종 장소에서 주사기에 Gam-COVID-Vac(스푸트니크 V) 백신을 주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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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재권 면제 논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새로운 국면에 들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동안 백신을 수출하지 않고 자국 내에 쌓아두면서 '백신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들어온 미국의 태도 변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는 "두 가지다. 일단 인도 남아공 브라질 등 변이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가 비슷한 수준의 팬데믹 대응을 해야한다는 주장을 미국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현재 제3세계에 중국, 러시아 백신이 보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종의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 위원장은 현재 바이든 정부의 '지재권 면제' 주장이 상당히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아직까지는 불완전한 계획 수준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는 "특허를 풀면 mRNA 백신을 제조할 수 있는 설비에 대한 특허도 전부 풀어야 한다. 백신을 증산할 수 있는 다양한 연결고리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한국도 지재권 면제안을 강력하게 국제사회에 주장해야 한다. 한국은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자국의 백신 수급만 아니라, 백신 불평등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백신 특허가 면제될 경우, '최소 잔여형 주사기' 등에 대해서도 특허가 면제되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역시 미 정부의 '지재권 면제' 지지가 현재 백신 수급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해줄 것으로 평가했다. 또한 미국 정부가 화이자 모더나 등에 천문학적인 연구비 지원을 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요구할 경우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허권 풀기만 하면 다 해결?... 복제약도 시간이 걸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생산 시설을 시찰하며 이상균 공장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생산 시설을 시찰하며 이상균 공장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유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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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지식재산권 주장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개발하라'는 방식으로는 현재 상황을 돌파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mRNA 백신 등은 현실적으로 기술력 이전 등이 없을 경우 복제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린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대해 이재갑 교수는 "현실적으로 복제품이라도 임상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지재권이 면제되더라도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들의 제약사를 통해 기술력을 전달하는, 위탁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제약사가 특정 대륙마다 허브 국가를 지정해서 그 국가가 한 대륙을 책임지는 구조로 가면, 제약회사 입장에서도 위험성이 덜하면서 동시에 유행이 심각한 국가에 백신 공급을 늘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재권이 면제될 경우 한국은 백신 허브 국가로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지 않겠나"라며 "우리나라 내에서의 안정적인 공급은 물론, 생산·공정 기반을 갖춰서 앞으로 국산 mRNA 백신 생산에도 대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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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정부여당 '운동권 민주주의', 전혀 도움 안 돼"

"마크롱 모델? 한국과 프랑스는 다르다"

최 교수는 7일 '한국 민주주의 진단과 전망'을 주제로 제주연구원에서 가진 특별 강연에서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촛불 시위에서 비롯됐다"면서 "촛불 시위를 통해 그동안의 진보와 보수 세력의 균형이 붕괴된 것이 위기의 중심"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촛불 시위의 기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돼서 건강한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았을 텐데, 현실적으로는 포퓰리스트 민주주의로 퇴행하고 위기라고 말할 정도로 민주주의에 도전을 경험하게 됐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촛불 시위 자체에 비판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이해한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 교수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성립된 '87년 체제'를 "민주화 세력에 의해서만 된 것이 아니라 보수적 엘리트들이 민주화에 동의를 해서 이뤄진 암묵적 협약"이라며 이를 "협약에 의한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의 시각에서, 촛불 시위는 이 '협약에 의한 민주주의'가 붕괴된 계기였다. 그는 "민주당 정부는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슬로건과 개혁 목표를 내걸고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정의했다"면서 "대표적으로 적폐청산, 즉 과거에 대한 청산 운동을 표방했다"고 했다. 

그는 "촛불 시위를 혁명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과도하게 폭넓고 과거를 부정하는 문제를 포괄하게 됐다"면서 "특히 보수 세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해 청산하는 것"이라고 적폐청산의 실제를 되짚었다.


 

이로 인해 "보수 세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와 보수가 민주주의를 수용해 이뤄진 협약의 의미가 해체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보수, 진보 간 정치적 갈등의 강도가 높아지고, 사회적으로도 폭넓은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촛불 시위 이후 정치현상의 특징"이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또한 최 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욕구가 강해지면서 "'깨어있는 시민'이나 '촛불 시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 선도적으로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발상이 강조되는 결과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시민들이 깨어있는 시민이 돼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역할을 떠맡도록 만드는 것은 온 사회를 정치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이는 매우 위험한 민주주의 이해 방식"이라고 했다. "정치적 갈등은 국회라는 제도화된 공론장에 제한돼야 함에도, 온 사회로 확장되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이를 "운동권적 민주주의관"으로 규정하며 "온 사회를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특정 견해를 갖는 사람들끼리 동료의식과 동질성을 갖는 것은, 정서적 급진주의 요소와 결부돼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어 '최소주의적 민주주의'를 거듭 강조하며 87년 이후 민주주의의 요체는 "선거를 통해 정부여당이 패배할 수 있는 체제"라고 했다. 그는 "안정적으로 다수를 점하는 정치세력이 장기 집권을 하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면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순조롭게 제도화되는 것이 좋은 민주주의"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정당이 만년 집권하고, 만년 승자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며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려면, 정치 세력 간에 일정한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권력구조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로 들며,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 통치를 할 수 있는 기구(청와대)를 유지하기 때문에 '은둔형 대통령'도 가능해진 것"이라며 "촛불 시위 이후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또 "촛불 시위 이후 민주당 정부 하에서 시민사회가 정부의 주변기구가 됐다"며 "관료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부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시민사회 사람들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강연 후 질의응답을 통해 최 교수는 "(대선이) 촛불 시위 이후 헝클어진 정치를 뛰어 넘는 변화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면서 대선을 앞둔 현실 정치에 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우선 그는 "변화된 한국 경제의 조건, 정치의 조건을 대표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원칙과 이념, 비전을 제시하고 세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미래 비전으로 경쟁하는 선거"를 당부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쇄신이 화두가 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변화 가능성에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그는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이 개혁을 해서 좀 더 좋은 민주당으로 거듭나는 선택을 스스로 하기에는 어렵다"며 "민주당 체제나 진용, 행동 양식이나 구조를 볼 때 (개혁 가능성에)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탄핵을 겪은 정당으로서 완전한 개혁에 대응을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거취를 놓고 대두된 제3지대론에 대해 "제3지대가 한국 정치를 바꿀만한 당의 형태로 될 수 있을지, 새로운 정당을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능한지 평가할 자료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그는 "한국 대통령 중심제는 양당제를 선호하는 정당 체제"라며 제3지대의 성공 가능성을 반신반의 했다.

 

기존 정당에서 뛰쳐나와 신당을 창당해 집권에 성공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집권 모델에 대해서도 "프랑스와 한국은 다르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 정치세력 간의 경쟁이어서 한 단계 높은 균열을 대표할 만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50718490663998#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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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두번째 집 다녀올게’ 세상으로 나온 최중증 발달장애인

등록 :2021-05-07 05:00수정 :2021-05-07 10:48
 
광주, 전국 첫 발달장애 돌봄센터
시설 아닌 지역사회 주택에서 돌봄
옷 갈아입기, 밥 먹기 등 일상 배워

“행동치료사 찾아오면 ‘엄마 빨리 들어가’
손짓하며 발걸음 떼…상상 못 했던 일”
연중무휴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장애인 새 복지모델, 전국 퍼지길”
 
지난달 30일 오후 광주시 남구 방림동 최중증 발달장애인 지원 주택에서 최동민(가명·왼쪽)씨가 주거코치 최윤구씨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서 거실을 찍었다. 정대하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광주시 남구 방림동 최중증 발달장애인 지원 주택에서 최동민(가명·왼쪽)씨가 주거코치 최윤구씨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서 거실을 찍었다. 정대하 기자

“자, 동민씨, (돌아왔으니) 옷 갈아입어야지요.”

 

지난달 30일 오후 5시45분. 조용하기만 했던 광주시 남구 방림동 한 단독주택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광주시 서구장애인복지관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에서 돌아온 최중증 발달장애인인 최동민(가명·23)씨는 거실에 들어서며 “어”라고 대답했다. 20평(66㎡) 남짓한 이층집은 동민씨 등 발달장애인 2명이 사는 쉼터이자 ‘집’이다. 동민씨는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주거코치’ 최윤구(51)씨의 돌봄을 받으며 씻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튿날 돌봄센터에 가는 생활을 한다. 언어장애도 있는 동민씨가 손짓을 섞어 “어, 어” 하자, 최씨가 “아, 동민씨, 배고프다고~” 하며 주고받는 대화가 거실 밖으로 흘러나왔다.

 

 
광주시 남구 방림동 최중증 발달장애인 지원 주택. 정대하 기자
광주시 남구 방림동 최중증 발달장애인 지원 주택.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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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장애인과 지적장애인을 통틀어 이르는 발달장애인은 2020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등록현황을 기준으로 전국 24만791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도전적 행동’을 보이는 성인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3%가량이다. 동민씨도 이 가운데 한명으로 강박행동, 과잉행동, 얼굴 때리기, 상처 파기, 가구 무너뜨리기 등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심할 때는 공공기관의 장애인 복지서비스조차 받기 힘들다. 동민씨가 두달 전까지 머물던 ‘원가정’(원래 살던 집)도 창문이 모두 강화유리로 돼 있다. 유리창을 깨지 못하도록, 깨지더라도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동민씨의 도전적 성향은 코로나19 확산 뒤 주간보호센터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심해졌다고 한다. 엄마의 머리를 끌고 몸을 밀쳐 다치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올해 쉰일곱살인 엄마는 “더 아프지만 말라”며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엄마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스스로 추스르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아, 이 세상에 너를 두고 어떻게 해야 하나….” 여느 발달장애인 부모처럼 동민씨 엄마도 ‘아들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소망이 됐다. 삶은 이들 모자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은 듯했다.

 

지난달 30일 행동치료사 류성훈(맨 오른쪽)씨와 발달장애인 최동민(맨 왼쪽)씨가 주간활동을 마치고 광주시 서구장애인복지관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 앞에 도착했다. 정대하 기자
지난달 30일 행동치료사 류성훈(맨 오른쪽)씨와 발달장애인 최동민(맨 왼쪽)씨가 주간활동을 마치고 광주시 서구장애인복지관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 앞에 도착했다. 정대하 기자
 

발달장애인 가정에 닥치는 절망감은 동민씨 가족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6월3일 오전 10시께 광주시 광산구 임곡동의 한 도로에 주차된 승용차에서는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코로나19로 주간보호센터가 문을 닫자 집에서 발달장애인 아들을 돌봐야 했던 엄마는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아들은 몸무게가 많이 줄었고, 죄책감을 느낀 엄마는 아들을 석달 만에 퇴원시켰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아들을 돌봐줄 다른 복지시설을 찾을 수는 없었다. 주변에 “성인이 된 아들을 집에서 돌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던 엄마는 결국 아들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는 발달장애인 최동민씨가 행동치료사 류성훈씨한테 일대일 돌봄을 받으며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류성훈씨 제공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는 발달장애인 최동민씨가 행동치료사 류성훈씨한테 일대일 돌봄을 받으며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류성훈씨 제공
 

공동체에 충격을 던진 그 사건 뒤 실험이 시작됐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 고통과 책임을 본인과 가족에게만 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시는 발달장애인 부모 단체, 장애인 활동가, 복지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담팀(TF)을 꾸렸다.

전담팀에는 지난해 8월 광주시 발달장애인 전문관으로 임명된 김창우(52)씨가 참여해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그물망을 촘촘히 엮었다. 2017년 영국 요크대에서 발달장애인 관련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은 김 전문관은 “발달장애인들이 활동하는 데 일대일 지원을 해달라”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절절한 요구를 담아내려면 주거코치가 24시간 함께 한 공간에서 이들을 돌보고 소통하는 24시간 돌봄 체계를 짜야 한다고 판단하고 여기에 몰두했다. 영국, 유럽이 2009년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한 뒤 국가가 이들의 돌봄 책임을 지는 모델을 본보기로 삼았다.

결국 전담팀은 지난해 9월 시 예산 32억원을 들여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하는 내용을 담은 ‘광주광역시 최중증발달장애인 지원 계획’을 내놨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들이 4월2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들이 4월2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는 단독주택 2채를 마련해 18살 이상 최중증 발달장애인 4명을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주거코치가 돌보는 체계를 만들었다. 2014년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음에도 여전히 돌봄을 각 가정과 부모의 몫으로 넘겨온 한국 사회의 게으름에 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지난 3월16일 동민씨 등 2명이 먼저 생활을 시작했고, 이달엔 1명이 추가로 합류한다. 주거코치 3명은 교대로 근무한다.

지원주택에서 동민씨는 혼자 옷을 갈아입고, 밥을 떠먹고, 칫솔질하는 등 ‘일상’을 배운다. 주거코치는 입소자들을 ‘○○씨’라고 부르고, 미세한 갈등은 손짓으로 소통하며 해결한다. 주거코치인 최윤구씨는 소통의 한 장면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번은 동민씨가 무슨 이유로 화가 났는지 저를 꼬집고 방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똑, 똑 하고 노크를 해서 저도 따라 했지요. ‘화났느냐?’, ‘괜찮다’는 대화였지요.”

임은주 광주시 서구장애인복지관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장은 “도전적 행동은 발달장애인이 ‘내 말을 들어줘. 내 생각을 좀 받아줘’라고 외치는 소리다. 그들의 행동엔 긍정적 지원을 하는 게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동민씨는 30일 오전엔 도심 여행을 했다. 평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는 행동치료사 4명과 함께 광주시 서구장애인복지관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에서 생활하는데, 이날은 류성훈(30) 행동치료사와 함께 37번 시내버스에 올랐다.

지하철 교통카드도 처음 샀다. 류씨는 “(동민씨가 차 타기를 좋아하지만) 시내버스에 오르기까지 3시간 정도 걸리기도 했다. 재촉할 수도 있지만 동민씨가 스스로 선택할 때까지 기다린다”며 “발달장애인은 선택이 다소 까다로울 뿐이다.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광주 서구장애인복지관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 류성훈 행동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을 타고 있는 발달장애인 최동민씨. 류성훈씨 제공
광주 서구장애인복지관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 류성훈 행동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을 타고 있는 발달장애인 최동민씨. 류성훈씨 제공
 

주말이면 동민씨는 부모와 함께 살던 ‘원가정’으로 돌아간다. 요즘은 오랜만에 엄마를 볼 때마다 꼭 껴안는다. 엄마는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동민씨의 변화가 반갑다.

“아이를 보내놓고 잠도 못 잤어요. 아이가 머무르는 집 주변 골목길을 혼자 걷기도 하고요. 가족들은 아이한테 벌벌 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아들이 그곳에서 규칙을 배우며 달라지고 있어요.”

월요일 아침이면 집으로 찾아오는 행동치료사 선생님을 보면 동민씨는 표정이 달라진다고 한다. 신이 나서 ‘엄마 빨리 들어가’라는 손짓과 함께 가볍게 발걸음을 뗀다. 엄마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요. 요즘은 정말 행복하네요. 한편으론 저만 이런 혜택을 봐 미안하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3월24일 오전 광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실에서 열린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김유선 장애인부모연대 대표로부터 감사편지를 받고 있다. 광주시 제공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3월24일 오전 광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실에서 열린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김유선 장애인부모연대 대표로부터 감사편지를 받고 있다. 광주시 제공
 

광주시는 주중 집에서 지내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주말·휴일 돌봄서비스도 도입했다. 주간활동서비스 제공 기관 등 7곳에서 40명까지 돌봐준다. 평일에 발달장애인 자녀들을 돌보느라 지친 부모들에게 주말에라도 휴가를 주자는 취지다.

최종건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광주지부 사무처장은 “발달장애인들을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 주택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새로운 장애인 복지 모델이다. 주말·휴일 돌봄 지원 서비스도 전국 첫 사업이어서 반갑다”고 밝혔다. 김창우 전문관은 “광주시의 발달장애인 정책을 보고 광주로 이사 온 가정까지 생겼다. 광주가 첫걸음을 뗀 발달장애인 정책 모델이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994231.html?_fr=mt1#csidx18d922e9f044adc9b9363fd15e0a0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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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강 ‘의문’ 사건 경쟁 보도 속 산업재해 사망 1면 배치한 한겨레

평택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고 이선호씨 사연 1면에 다룬 한겨레…한강 사건 ‘신중 해야’ 전문가 의견 담은 한국일보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된 지 닷새만에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22)씨의 장례가 끝났지만 사인에 대한 의문을 두고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손씨와 함께 있던 친구 A씨에 대한 의심이 전해지면서 관련된 보도도 나온다. 다만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한국일보는 프로파일러와 법의학자들을 인터뷰해 ‘전문가들이 본 한강 사건’이라는 기사로 이런 지적들을 내보냈다.

한겨레의 경우, 1면에 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 내에서 작업하다 개방형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23세 청년 고 이선호씨의 사연과 그의 아버지인 이재훈씨 사진을 탑기사로 배치했다. 한강서 숨진 손씨 보도에 대해 손씨 아버지를 중심으로 보도가 나가고 있는데, 또 다른, 특히 산업재해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를 조명한 것이다. 고 이선호씨의 경우 보름 가까이 장례를 못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가 6일 기자회견을 했기 때문에 이 사건을 다룬 언론이 한겨레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1면에 이 사건을 배치한 것은 주요 종합 일간지 중에 한겨레가 유일했다. 한겨레는 이 사건을 1면에 이어 6면, 사설로도 다뤘다. 주요 종합일간지 가운데 이 사건을 다룬 신문과 면은 경향신문 10면, 서울신문 10면, 동아일보 14면이었다.

▲7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7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7일 한겨레 1면.
▲7일 한겨레 1면.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고 이선호씨는 제대 이후 틈틈이 아버지 이재훈씨가 다니는 인력사무소에서 함께 일을 다니면서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관련 작업, 내용물 검수 등 일을 했다.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일하던 도중, 개방형 컨테이너의 양쪽 날개를 접어야 해서 안전핀을 제거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선호씨가 컨테이너 양쪽 구멍에 들어간 나뭇조각을 줍는 일을 하게됐다. 그때 맞은편에 있던 지게차 기사가 선호씨를 보지 못한 채 컨테이너 한쪽 날개를 접어 반대쪽 날개가 선호씨를 덥쳤고 참변을 당했다. 선호씨가 평소 하던 업무가 아니었고 안전 교육도 없는 상태였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또 김용균 닮은 비정규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다루고 “이선호씨의 죽음을 외면한 채 ‘청년의 미래’를 말할 수 없다”며 “이번 사고의 진상과 책임 규명은 물론이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보완을 비롯한 산업안전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7일 한겨레 사설.
▲7일 한겨레 사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은 10면에 기자회견 내용을 위주로 이 사건을 다뤘다. 동아일보는 사회 14면에 3문단 길이의 기사로 해당 사건을 다뤘다.

한강 실종 사망 사건에 전문가들 “증거 나오기 이전 신중해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된 지 닷새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고 손정민씨에 대한 보도도 계속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실종 당일 행적을 대부분 파악했다고 밝혔고 친구 A씨의 아이폰을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의 수사상황을 한국일보 2면, 세계일보 8면, 경향신문 10면, 동아일보 12면, 국민일보 15면에서 다뤘다.

특히 한국일보 2면은 손씨의 죽음에 대해 같이 있던 친구 A씨에 대한 의심과 궁금증이 커져가는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었다.

2면 “‘친구 행동 여러 가지 의문점’, ‘증거 나올 때까지 예단 금물’” 기사에서 한국일보는 “손씨가 실종될 당시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 A씨가 이번 비극에 모종의 역할을 했을 거라는 유족의 의심이 계속되면서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라며 전문가들 중 일부 역시 손씨 아버지가 제기한 의혹이 터무니없지 안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7일 한국일보 2면.
▲7일 한국일보 2면.

한국일보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친구 A씨가 △한강 둔치에서 잠든 손씨의 상황을 손씨 부모가 아닌 자기 부모에게 알렸다는 점 △자신의 가족과 함께 사라진 손씨를 찾아 나선 점 △수색한 지 한참 뒤에야 손씨 부모에게 알린 점 등을 의문점으로 꼽았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인용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유족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항상 이유를 찾으려 하고, 그렇기에 다양한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아직 확신을 가질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만큼, (전문가 입장에서는) 신중을 기해야 할 때라고 본다”고 전했다. 손씨의 법의학적 사인은 이달 중순쯤 부검 결과가 나올 때로 예상된다.

미국,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지지

주요 종합 일간지들이 백신과 관련한 기사를 대부분 1면으로 다뤘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지재권) 면제를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이 1면으로 다뤄졌다.

경향신문은 1면 관련 기사에서 “백신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19 백신 특허를 한시적으로 유예해 백신 생산기술 공유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며 “현실화되면 국내 제약사도 주요 백신 개발사의 기술을 활용해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다만 지재권이 면제돼도 백신이 시급한 저개발국가일수록 복제약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7일 국민일보 1면.
▲7일 국민일보 1면.

국민일보는 미국이 백신 지재권 면제 지지에도 공급 확대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논조의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백신제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해서 제약회사의 기술이전 도움 없이는 의미없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 사건을 1면에 배치, “국제사회가 이 결정을 환영했지만 제약업계는 백신 개발에 따른 인센티브를 줄여 앞으로 감염병 대처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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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프로젝트' 삼성증권 출신, '이재용 증언'마다 쩔쩔

[이재용 공판기] "삼성일가 지분율 고려" 언급... 승계계획안 작성 핵심 증인, 심문 이어질 듯

21.05.06 22:37l최종 업데이트 21.05.07 10:21l
큰사진보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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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 : "증인이 이메일로 보고한 것들을 보면, 당시 김○○ 미래전략실 부장과 연락을 많이 했다. 김 부장 위의 상사는 누구인가?"  
- 증인 : "상사는 이왕익 당시 상무다."
- 검사 : "그 위는?"
- 증인 : "김종중 전략1팀장이었는데..."
- 검사 : "그 위는?"
- 증인 : "외부에서 본다면 (당시 미래전략실장이었던) 최지성 실장님..."


사다리를 타듯 질문하던 검사가 정리했다. "그 위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있고. (정리하자면) 이재용, 최지성, 김종중, 이왕익, 김○○. 이런 라인 아닌가". 이 부회장이 직접 승계 관련 합병 계획 보고를 직접 받았는지 여부에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증인은 이 질문에 "그렇게 기억한다"고 했다.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박사랑 권성수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핵심간부들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2차 공판. 이 부회장 승계 계획안인 일명 '프로젝트G'를 작성하는 데 참여한 삼성증권 IB본부 출신 실무자 한아무개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2004년부터 2018년 초까지 삼성증권에서 일한 '삼성맨'으로 현재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다. 

"2013년의 VC가 누구냐"

G프로젝트 문건부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 계획을 수립할 당시 미래전략실(미전실) 관계자와 주고받은 이메일 등 130여 건의 증거를 두고 심문이 진행됐다.

증거 제시는 '이재용 보고 사실'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변호인 측은 이 부회장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유도 신문 소지가 있다고 반발했다. 위 질문도 마찬가지다. 증인은 "보고하고 협의 하겠다 정도로 이해했지, 실제로 (이 부회장이) 어떻게 관련되어있는지는 알기 쉽지 않다"고 얼버무렸다. 검찰은 심문 중간 중간 이 부회장에 보고한 사실을 언급한 미전실 관계자의 메일 내용을 증거로 제시했다.
 

2013년 7월 24일<br />최 변호사님, VC 보고 후 일정이 첨부처럼 바뀌었습니다. 사회적 논란 소지는 배제하시고 법률적 측면에서 일정에 문제가 있는 지 검토 부탁합니다.

 
제시된 위 이메일 중에선 부회장을 뜻하는 'Vice Chairman'의 약칭 'VC'를 표기한 내용도 있었다. 미전실 준법경영실 소속 변호사에게 김○○ 미전실 부장이 보낸 메일로, 제일모직의 전신인 삼성 에버랜드 상장 일정이 이 부회장에게 보고된 이후 변경됐다는 내용이다.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상장 일정에 이 부회장도 관여했다는 증거가 된 내용이다. 

증인은 다시 얼버무렸다. 검찰의 "VC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아마도 추측한다면"의 단서를 달고 '부회장'일 것이라고 했다. 검사는 "2013년 7월에 VC가 누군지 추정할 수 있지 않느냐"고 다시 묻자 "개인을 기준으로 그걸 어떻게 칭했는지 기억하기 어렵다"고 피해갔다. "결국 이재용에게 보고된 후 최종 일정이 변경된 것 아니냐"는 질문엔 "보여주신 문건만으로는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2013년 3월 22일 오전 11시 38분<br />급해서 아래와 같이 우선 보고했음.

 
김○○ 미전실 부장이 증인에게 미전실장과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한 사실을 언급한 대목도 계속 제시됐다. 검찰 측은 "증인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미전실과 부회장에게 보고한다, 보고했다, 보고용이라 이렇게 했다는 부분이 있다"고 묻자 증인은 "이렇게 알려주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답했다. 검사 측이 다시 "미전실 간부가 거짓으로 기재했을 가능성도 있나"라고 묻자 "거짓으로 기재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G프로젝트는 "이건희 일가"를 위한 것
 

대주주 지분 강화. 삼성전자 물산 지배력 강화. 그룹 지분율 낮은 모직, 호텔, 기획 지분율 강화. (중략) 향후 후계 구도에 따른 지분 정리가 용이한 구조로 개편.
이건희 회장 사망으로 인한 삼성생명 지분 축소 시... (중략) 삼성물산은 대주주 지분이 1.4%에 불과하고 그룹 지분율이 13.8%에 불과해 지분확대가 필요.


검찰 측이 오전 심문에서 제시한 2012년 12월 증인이 작성한 프로젝트G 문건과  검토 결과보고서엔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계획안들이 줄줄이 열거돼 있었다. "제일모직은 사업 특성에 맞춰 분할 합병을 통해 사업을 조정하고 지배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검찰은 여기서 또 물었다.

- 검사 : "삼성물산 지분 확대를 위한 보고서를 보면, 대주주는 누구를 의미하나?"
- 증인 : "전반적으론 삼성그룹의 경영 대주주를 말한다."
- 검사 : "그게 누구인가."


증인은 이 질문에 "이건희 일가"라고 답했다. 증인은 "지분이 축소돼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부분을 해소하고, (변화하는) 규제에 맞춰나가면서도 경영권 위협이 없도록 만드는 것을 크게 전제하고 있다"고 문건의 작성 취지를 다시 설명했다. 다만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라고 첨언했다.

한편, 이날 공판은 해당 증인에 대한 검찰 측 심문으로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거의 하루 동안 시간이 할애됐다. 이마저도 시간이 부족해 다음 기일에 이어 주신문을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변호인들이 같은 증인을 대상으로 총 세 번의 기일에 걸쳐 반대신문을 예고한 터라, 검찰 측 재주신문까지 고려하면 해당 증인에 대한 심문은 6월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그만큼 한씨가 해당 재판의 핵심 증인이란 뜻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재판을 마무리하며 증인에게 "(삼성 관련자와 앞으로) 접촉하지 않는 게 맞고, 주위 사람,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관련 내용을)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주지시켰다. (관련 기사 : '삼성일가 승계 프로젝트' 작성자, 이재용 재판 첫 증인된 까닭 http://omn.kr/1sy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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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kg 철판에 치여 숨진 20대 일용직 노동자 친구들 “남의 일이 아니었다”

故이선호산재사고대책위, 재발방지 촉구...“외주화 막아야”

이승훈 기자 
발행2021-05-06 18:13:35 수정2021-05-06 18:19:49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기자회견ⓒ대책위 관계자 제공

“텔레비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사고들, 무심히 지나쳤었는데…” - 평택항서 일하다 숨진 하청 일용직 노동자 故 이선호(23) 씨의 친구 배민영 씨

최근 경기도 평택항 신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FRC(FR컨테이너-Flat Rack Container) 작업 중 발생한 산재사망사고로 숨진 20대 청년노동자에 대한 애도와 재발방치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故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6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 컨테이너 터미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 건설노동자 김태규, 청년 장애인 노동자 김재순 이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노동자들의 목숨과 안전은 늘 뒷전”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양산하는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막아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22일 이선호(23) 씨는 경기도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FRC(FR컨테이너, Flat Rack Container) 내부 합판 조각을 정리하다가 컨테이너 좌우 기둥이 갑자기 접히면서 숨졌다.

FR컨테이너는 개방형 컨테이너로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컨테이너다.

 

대책위와 안전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당시 선호 씨는 FR컨테이너 안쪽에서 합판 조각 등을 정리하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지게차 기사가 컨테이너 날개를 접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날개가 접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진동 때문인지 엉뚱하게 반대편 선호 씨가 있는 곳의 날개가 접히면서, 300kg의 날개가 선호 씨를 덮쳤다.

고 이선호 씨는 바닥 홈 부분에 남아 있는 나무 잔해를 제거하다가 FRC 날개가 넘어지면서 사고를 당했다.ⓒ대책위 관계자 제공

선호 씨는 하청 일용직 노동자였다.

평택항은 평택지방해양수산청(해수청)이 총괄 관리하는데, 사고가 난 신 컨테이너 부두는 해수청의 위탁을 받은 항만하역 전문업체 ㈜동방이 운영했다. 동방은 이 일을 다시 일용직 인력 회사인 우리인력이란 곳에 위탁했다. 전형적인 재하청 구조였다.

선호 씨가 지난 1년 동안 담당해 온 일은 동식물 검수·검역을 위한 하역 등의 업무였다. 그런데 지난 3월 1일 원청 관리자가 바뀌면서, 선호 씨는 동식물 검역 관련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일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 4월 22일은 선호 씨가 처음으로 FR컨테이너 날개 작업에 투입된 날이었다고 대책위는 전했다.

대책위 측은 “사전에 현장에서 어떠한 안전 교육도 없었고, 현장에 안전관리자·신호수도 없었으며, 안전모 등 안전장비도 지급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또 “FR컨테이너 날개는 진동에 의해서 넘어질 수 없다”라며 “만약 진동에 의해서 넘어진 것이라면, 불량이다.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는 현장 증언도 있었다”라고 짚었다.

이어 “원청 직원은 (선호 씨에게) 나무 합판 잔해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평소 FR컨테이너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나무 합판 조각은 (별도 지시가 없으면) 원래 정리하지 않는다. 원청 직원이 두 번이나 나무 합판 조각 잔해를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호 씨 산재사망사고 진상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재발방지대책,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故 이선호 씨의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회견에서, 故 이선호 씨의 친구 배민형 씨는 “그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라며 “제 친구의 이야기였고 우리들의 이야기였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천벌 받아 마땅한 놈들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데 대학교 다니며 스스로 용돈 좀 벌어보겠다며 땀 흘리며 일하던 선호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나”라며 “제 친구 선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故 이선호 씨의 친구 김벼리 씨 또한 5일 페이스북에 “(친구의 소식을 듣고) 일주일 동안 무언가를 할 엄두가 안 나 이제야 글을 쓴다”라며 “하루 평균 7명이 산재로 희생된다고 한다. 그게 제 주변 친구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라고 글을 남겼다. 김 씨는 “친구가 얼른 사고 책임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차가운 냉동고에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적었다.

한편 친구들에 따르면 선호 씨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할 때도 부모님 걱정, 누나 걱정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선호 씨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이곳에서 1년 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유족은 대책위와 함께 선호 씨의 입관절차만 진행한 채 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장례식장에 15일째 빈소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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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 농업 문제는 "졍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

[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식량 증산과 국가의 역할

북한 경제정책의 역사를 돌아보면 농업과 경공업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중공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뒷줄에 서 있었다. 중공업과 농업․경공업의 균형적 발전을 내걸었지만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의 지향은 중공업 우선으로 기울게 했다.

 

김정은 집권기의 '전환기' 경제에서는 이전에 비해 농업․경공업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지도자의 발언이 그 상징이었다.

 

농업과 경공업의 정책에는 묵은 숙제도 있고 새로운 과제도 있다. 이것을 들여다봐야 '먹는 문제'의 해결과 생필품 공급의 앞길을 알 수 있다. 전국 각지의 협동농장에서 '분조관리제 안에서의 포전담당책임제'에 관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경공업 공장들에서는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이 구호를 넘어 실행력을 갖기 시작했다. 농업‧경공업의 실태와 향방을 가늠하기 위한 첫 행정은 북한의 정책과제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북한의 '먹는 문제 해결과 인민생활 향상'에 대해 총 7회에 걸쳐 알아본다.


 

"식량 문제는 인민생활 향상의 진일보와 나라의 경제발전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임을 자각하고 올해 알곡 생산 계획을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


 

조선로동당의 기관지 <로동신문>의 3월 11일자 사설 '새로운 5개년계획의 첫해 알곡고지를 무조건 점령하자'의 한 구절이다. 사설에는 전반적인 농업정책이 담겼다. 전당‧전국가적인 과제로 농업부문에 대한 국가적 투자, 공업의 농업 지원, 전 사회적인 농촌 지원, 화학비료‧연유(석유)‧전력‧농기계부속품 등의 적시(適時) 보장 등이 제시됐다. 농업근로자들에게는 종자개량과 과학농사, 저(低)수확지에서의 증산, 간석지 개간, 기계화 등을 촉구했다.

 

'먹는 문제' 해결에 초집중


 

올해 5개년계획(2021~25년)에 돌입한 북한은 '먹는 문제'에 초집중하는 모습이다. 북한의 농업생산을 관찰하는데 있어서 결과 못지않게 과정(정책)이 중요하다. 과정이 좋으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기후조건을 비롯한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농업에서 그 생산량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올바른 정책에 따라 추수기까지 열심히 농사짓는 수밖에 없다. 북한 농정당국은 바로 그 문제 앞에 서 있다.


 

식량 자급자족을 향한 북한의 열망은 오래되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현 시기의 농업정책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먹는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 열쇠는 지난 1월의 제8차 당대회와 2월의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찾을 수 있다.


 

당대회와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정책들은 8년 남짓 정책 실험의 결과들이다.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5개년전략(2016~20년)', 2018년 4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 2019년 12월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정면돌파전' 등의 곳곳에 농업정책이 담겨 있었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3일 "지금이야말로 한해 농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며 농번기를 맞아 모기르기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은 시리원시 해서협동농장. 신문은 "벼모판비배관리를 과학기술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로동신문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


 

'전환기' 북한경제에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는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主打擊前方)"이라고 선언했다.


 

2020년 1월 17~19일 평양에서 열린 '2019년 농업부문 총화회의'는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에서 보다 큰 전진을 가져오기 위한 새로운 결의회의"였다(조선중앙통신, 1월 20일 자).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불리한 기상기후가 계속된 조건에서도 올해 농사에서 최고 수확년도를 돌파하는 전례 없는 대풍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최고 수확년도를 돌파하는 전례 없는 대풍'이라 한 것으로 보아 2019년의 식량생산량은 약 550만 톤(정곡 기준)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연재의 앞부분에서 남한의 농촌진흥청이 북한의 2020년 식량생산량을 440만 톤으로 추정했다고 언급했다. 농촌진흥청의 북한 식량생산량의 2019년 추정치는 464만 톤이었다. 이 추정치는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북한이 '최고 수확년도를 돌파하는 전례 없는 대풍'이라고 했는데 생산량을 464만 톤이라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북한은 '대풍(大豐)'이라고 하면서도 알곡생산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이래 올해의 제8차 당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까지의 북한 농업정책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이를 보면 농업정책의 중점이 조금씩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시기별로 유의미한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주제별 분류가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점은 아래의 경공업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 농업 정책의 흐름>


 

1.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① 농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 증대 

②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과학기술적 영농 

③ 알곡생산목표의 무조건 수행


 

2.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의 5개년전략


 

* 5개년 전략 수행기간= 식량문제, 먹는 문제 해결 및 식량공급의 정상화 

①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과학농사열풍 전개 

② 우량품종의 육종 증대, 지방별‧품종별 수요에 맞는 종자생산 

③ 지대별 특성과 자연기후조건에 맞는 작물과 품종 배치, 농작물 비배관리에서 과학기술적 요구 준수, 선진영농방법의 적극 도입 

④ 유기농법 장려, 고리형 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할 데 대한 당의 방침 관철 

⑤ 집짐승종자와 먹이문제 해결, 사양관리의 과학화, 수의방역 대책의 확립 

⑥ 풀먹는 집짐승기르기의 군중적 운동 전개, 협동농장들의 공동축산과 농촌세대들의 개인축산 발전, 축산 열풍 전개 

⑦ 과수업의 집약화‧과학화 수준 제고, 과일생산 증대, 전국 도처에 건설한 남새온실과 버섯공장에서의 생산 정상화 

⑧ 농촌경리의 종합적 기계화의 본격적 실행(빠른 기간에 농산작업의 기계화 비중 60~70% 수준)

⑨ 농기계공장 설비와 생산공정의 현대적 개건, 능률 높은 농기계와 부속품의 대대적 생산

⑩ 협동농장에서 농기계 가동률 제고, 영농공정의 기계화 실행


 

3.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의 시정연설


 

① 종자와 비료, 물문제와 경지면적 보장에 특별한 주목 

② 과학적 농사방법 도입 

③ 농산작업의 기계화 비중 제고 

④ 닭공장‧돼지공장을 비롯한 축산기지들의 현대적 신설‧개건 

⑤ 집짐승사양관리의 과학화 

⑥ 풀먹는 집짐승기르기의 군중적 추진


 

4. 2019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 농업전선=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 

① 과학농법의 장악과 다수확열풍 전개 

② 농업부문의 과학기술역량과 농업과학연구기관들의 조성 

③ 농업 과학기술인재 육성사업 주력 

④ 농촌경리의 수리화 완성 및 흉풍(凶豊)을 모르는 농업생산토대 마련 

⑤ 농산작업의 기계화 비중 제고 

⑥ 농업토지의 통일적 관리 

⑦ 축산업과 과수업 등의 새로운 전환


 

5.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 5개년계획 및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4차 회의의 내각사업보고

 

* 농업부문 5개년계획의 중심목표= 알곡고지의 무조건 점령, 식량의 자급자족 실현, 농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물질기술적 토대 구축 

① 종자혁명, 과학농사, 저수확지에서의 증산, 새땅찾기와 간석지개간에 주력 

② 농산과 축산‧과수 발전 

③ 농촌경리의 수리화‧기계화 

④ 어떤 불리한 기상기후조건에서도 농업생산을 안전하게 장성시키기 위한 과학기술적 대책과 물질기술적 토대 구비 

⑤ 농업근로자들의 생산적 열의 제고 

⑥ 농촌에 대한 국가적 지원 강화


 

6. 2021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


 

* 알곡 생산계획과 수매계획의 철저한 집행, 알곡증산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 공고화 

① 농업성을 비롯한 농업지도기관들에서의 예견성 있는 농사작전 (재해성 기후에 대처한 과학적이며 현실적인 방책 수립) 

② 정보당 수확고 제고 및 다수확품종 육종 및 다수확품종의 재배면적 확대 

③ 지력(地力)의 결정적 향상 

④ 품종별 특성과 영농공정별에 따른 과학적인 재배방법 확립 

⑤ 영농기 전 저(低)수확지를 옥토로 만드는 구체적인 계획 수립 및 전개 

⑥ 트랙터와 농기계 생산단위들의 물질기술적 토대 구비사업의 계획적 추진 

⑦ 관개체계와 시설물 복원, 관수면적의 확장 

⑧ 간석지 건설과 새땅찾기, 토지정리의 전개 

⑨ 축산물과 남새‧과일‧공예작물 생산 증대 

⑩ 올해 농사의 성패가 달려있는 영농물자의 국가적 보장 

⑪ 농업부문에서의 허풍 일소 

⑫ 농촌 리(里)당사업에서의 결정적 개선


 

김정은 시대 북한의 농업정책 과제들을 주제별로 분류하면 7가지로 나눠지고 이를 세분하면 17개가 된다. 농업정책의 방향성을 세부적으로 보기 위해 17개 소주제를 설명한다.


 

농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 증대 : [1] 농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1-①), 농촌에 대한 국가적 지원(5-⑥), 올해 농사의 성패가 달려있는 영농물자의 국가적 보장(6-⑩)


 

첫째,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 정부의 과제들이다. 

농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지원에서 중요한 것은 협동농장들에 공급할 화학비료이다. 화학비료는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평남 안주시), 흥남비료연합기업소(함남 함흥시), 순천인비료공장(평남 순천시), 쌍룡인비료공장(함북 김책시), 순천석회질소비료공장(평남 순천시), 안주흙보산비료공장(평남 문덕군) 등에서 생산한다.

 

비료를 생산하는 화학공장들은 모두 국영기업체이고 내각 화학공업성 산하에 있다. 농업생산을 총괄하는 내각 농업성은 비료 때문에 화학공업성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농약은 2.8비날론연합기업소(함남 함흥시), 명간화학공장(함북 명간군)에서 생산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0년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인비료 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한 원료보장 대책 수립 △통합생산체계에 의한 생산 공정의 안정적 운영 △환경보호사업 중시 등 공장의 과업을 제시한 바 있다(<조선중앙통신>, 2020년 5월 2일. 이하 <연합뉴스>, <통일뉴스> 등에서 인용한 것이 표기되지 않은 경우 통일부의 <월간 북한동향>을 인용한 것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연유(석유)와 전력이다. 석유는 봉화화학공장(평북 피현군)과 승리화학연합기업소(함북 라선시)에서 공급된다. 봉화화학은 중국 다칭(大慶)유전에서 단둥(丹東)을 거쳐 북한 연결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되는 원유를 정제한다.


 

승리화학은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원유를 정제한다. 북한은 국내의 정제유 외에 상당량의 정제유를 수입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농업용 정제유 공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전력은 북한 전역의 수력‧화력발전소에서 송배전망을 타고 협동농장들에게 공급된다.
 

 

영농물자의 국가적 보장에서 중요한 것은 농기계 및 부속품공장의 가동이다. 농기계는 금성뜨락또르공장(남포시 강서구역), 원산충성호뜨락또르공장, 순천뜨락또르공장, 강계뜨락또르공장, 청진연결농기계공장, 신천연결농기계공장, 해주연결농기계공장, 해주농기계공장, 평양농기계공장, 신안주농기계공장, 정주농기계공장 등에서 생산된다.

 

대표적인 농기계부속품공장은 원산뜨락또르부속품공장, 사리원뜨락또르부속품공장, 정주뜨락또르부속품공장 등이다. 각 시‧군에 농기구를 생산하고 수리하는 중소형 농기계작업소들과 농기구공장들이 있다. 매년 모내기철에는 북한 언론에서 농기계의 완전 가동, 예비부속품의 충분한 확보와 이동수리활동 전개 등을 강조한다(<로동신문>, 2020년 5월 11일자 사설).


 

영농물자의 국가적 보장이라고 해서 협동농장에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농장들이 영농물자를 구입해야 한다. 화학비료, 연유‧전력, 농기계‧농기계부속품 등은 농업생산의 기본물자들이다. 국가의 투자와 지원이 늘어나는데 비례하여 농업생산은 증대할 것이다. 협동농장들은 모내기와 온실재배에 필요한 박막(비닐) 등 여러 영농물자를 자체 조달한다.
 

 

농촌경리의 수리화: 관계체계와 시설물 복원 : [2] 농촌경리의 수리화 완성 및 흉풍(凶豊)을 모르는 농업생산 토대 마련(4-④), 관개체계와 시설물 복원, 관수면적의 확장(6-⑦)


 

농촌경리의 수리화와 관개체계도 농정당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북한은 전기‧석유 등 에너지를 사용해 물을 끌어들이는 유역(流域)변경식‧순환(巡還)식 관개에 오랫동안 의존해왔다. 20m 이상 높이로 물을 끌어 올려야 해서 관개시설의 에너지 요구량이 많았다. 북한의 전력 부족과 홍수피해의 시설물 훼손 등으로 인해 관개시설의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유역변경식‧순환식 관개에서 자연흐름식 물길(水路) 관개로의 전환이 필요해졌다. 물길공사는 농업용수의 공급, 전력수요의 절감, 홍수 예방, 공업용수 확보 등에 필요했다.

 

 

북한의 대표적인 물길공사는 개천-태성호 물길공사였다. 1999년 11월에 시작된 이 물길공사는 2002년 10월에 완공됐다. 이 물길은 평안남도 개천시, 순천시, 숙천군, 평원군, 대동군, 증산군 등을 거쳐 남포시 강서구역의 태성호에 이른다. 개천-태성호 물길은 대동강 갑문에서 160㎞의 지상수로 및 90개의 물길굴로 이뤄져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황해남도 물길공사 1~2단계, 함경남도 금야군 관개수로 등이 완료됐다. 황해남도 물길공사 1~2단계는 황해남도 청단군‧봉천군‧강령군‧옹진군과 새로 개간되는 룡매도간석지 등 서해 곡창지대에 관개용수를 담당한다. 재령강‧예성강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북한은 현재 청천강-평남관개 물길공사, 황해북도 황주긴등 물길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자연흐름식 관개망은 농업용수의 해결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지하수 시설은 2020년 3월 기준으로 북한 전역에서 3만 1700여 개가 건설됐거나 보수됐다.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서는 1만 3400여 개의 지하수 시설이 건설됐거나 보수됐다고 한다(<로동신문>, 2020년 3월 29일).

 

농사채비에서 물 확보는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이를테면 △양수기 수리 정비와 고압전동기 개조 △물길과 저수지‧저류지(貯留池, 배수로를 따라 모여드는 물을 관개에 다시 쓰기 위하여 뽑아서 주위에 모아 두는 곳) 건설 △졸짱(땅속 깊이 관을 박아 땅속의 물을 끌어올리는 시설) 박기와 굴포(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보조 수원시설)‧우물파기 등을 해야 한다. 이 업무들을 계획에 맞춰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태풍과 홍수로 파손된 관개 구조물들의 복구에도 힘써야 한다. 유실된 농지의 복구도 농사채비 기간에 마무리해야 한다(<로동신문>, 2020년 11월 23일).

 

토지정리, 간석지 건설과 새땅찾기 : [3] 농업토지의 통일적 관리(4-⑥), 간석지 건설과 새땅찾기, 토지정리의 전개(6-⑧)

 

이미 완료된 대규모 토지정리사업은 국가 차원에서 군 병력의 대거 투입으로 진행됐다. 토지정리사업은 소(小)구획 경지를 대(大)구획으로 정리해 기계화영농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평야지대는 1500평, 중간지대는 800~1000평, 산간지대는 300~500평으로 논밭을 규격화했다.
 

 

토지정리사업은 1998년에 강원도에서 시작되어 1999년에 평안북도, 2000~2002년에 황해남도, 2002~2004년에 평안남도‧평양‧남포 등으로 지역을 옮겨가면 진행되었다. 2004년까지 정리된 토지는 약 27만 6000정보였다고 한다. 2004년 이후 황해북도, 개성,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 등 전역으로 확대되어 김정일 집권기간에 거의 마무리됐다.

 

토지정리사업 이후 간석지 건설과 새땅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전자는 국가 차원에서, 후자는 지역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새땅찾기는 하천 복구정리, 도로와 물길 곧게 펴기, 비경지 개간, 공공건물 이전 등으로 농경지를 새로 찾아내는 것이다.


 

김성민 내각 농업성 국장에 따르면, 2020년 4월 기준으로 새땅찾기 운동에서 9개월 동안 3만 7000여 정보의 농경지를 새로 확보했다. 2014년의 경작지가 총 191만 정보였음을 감안하면 새땅찾기 농경지는 적은 양이 아니다. 함경북도와 황해남도에서 각각 4000여 정보, 황해북도에서 3900여 정보, 평안북도에서 3500여 정보의 새땅을 찾아냈다고 한다. 새로 찾아낸 농경지에서 2020년부터 벼와 강냉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조선중앙통신>, 2020년 4월 21일).

 

북한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자연개조 5대 방침'을 실천해왔다. 그 주요 내용에 밭관개 완성, 경지정리, 토양개량, 다락밭 건설, 치산치수, 간석지 개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심각한 피해로 '실패가 입증된' 다락밭 건설 외에는 오늘도 유지되고 있다. 농경지 부족을 해소하려는 북한 인민들의 70여 년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 과정에 있다.


 

[4] 농업성을 비롯한 농업지도기관들에서의 예견성 있는 농사작전(6-①)


 

내각 농업성, 도농촌경리위원회,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등이 매년 농사작전을 전개함에 있어서 예측성이 중요하다. 특히 재해성(災害性) 기후에 대한 사전 대처가 중요하다. 북한은 태풍과 홍수 등 자연재해의 피해가 유달리 크다.

 

이에 대해서 치산치수(治山治水)의 실패를 지적하는 분석이 많다. 북한 당국(당과 내각)은 자연재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강하천 정리와 관개수로 정비를 잘할 것과 재해성 기후예측과 사전대비를 잘할 것을 강조해왔다.

 

기상예보 통보체계의 수립과 배수시설의 과학기술적 관리에 대해서는 《농업법》에서도 규정을 두고 있다(제58조). 당장은 기후예측에 필요한 위성자료를 구입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기상위성을 쏘아 올려야 한다는 것이 북한 정부의 생각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5031123413474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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