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우크라이나전쟁 1년, 그리고 한국사회’ 토론회가 열렸다.[사진제공: 사단법인 안보통상학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동시에 세계는 지역을 불문하고 동시다발적인 고인플레이션 국면에 돌입했다. 물론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코로나 봉쇄로 인한 공급망 체계의 붕괴 역시 큰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2021년 물가 상승률보다 2022년 물가 상승률이 더 가파르다는 점에서 코로나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플레이션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 토론회 자료집의 표를 재구성함
3월 22일 “우크라이나 전쟁 1년, 그리고 한국 사회”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울산과학대의 백일 교수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다각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백일 교수에 따르면 주요 국가들의 경제성장률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저성장 추세로 전환했다. 코로나 발발기인 2020년 대비 2021년 주요 국가의 성장률은 반등세가 뚜렷했는데, 2022년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고인플레이션으로 인해 2021년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장률(2.1%)을 기록했다.
▲ 토론회 자료집의 표를 재구성함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22년 한국은 14년 만에 무역적자로 돌아섰으며 총 477억 달러 적자로 전년대비 –263%의 증감률을 보였다. 마지막 적자를 기록했던 2008년의 132억 달러 적자의 4배에 달한다.
적자 구조를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지금까지 한국의 주요 무역 적자국은 일본과 주요 자원 수입국인 호주, 말레이시아, 아랍 산유국이었다. 그러나 백일 교수에 따르면 2022년의 무역 적자는 이런 전통적인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장기 무역 흑자를 기록했던 중국권 수출(중국 –4.4%, 홍콩 –26%)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70% 전후의 무역의존도를 가진 한국의 경제는 중대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백일 교수는 진단한다. 토론회에서는 1년을 경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다양한 진단이 제시되었다.
한설 예비역 육군 준장은 초기에 제한된 대리전쟁으로 시작되었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사실상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러시아 경제를 약화하기 위해 시작된 대러 경제제재가 오히려 미국과 유럽 경제를 위협하는 ‘자해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은 경제제재보다 군사적 성과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 역시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진단한다.
한설 준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질 수 없는 전쟁”, “우크라이나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징이다. 첫째, ‘전장의 제한성과 주도권’ 문제이다. 군사작전은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만 진행된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지정한 장소와 방법으로 전쟁을 수행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강요한 장소와 방법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작전 지속 능력’ 문제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의 지원에 의존하면서 전쟁을 치른다. 미국과 유럽의 지원이 사라지만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그런데 2023년 들어서면서 미국과 유럽의 전쟁 지원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한설 장군의 분석이다.
셋째, ‘작전 수행 방식’의 문제이다. 전투력이 약한 우크라이나는 단기 결전을 수행해야 하나 러시아에 주도권을 빼앗겨 장기소모전 양상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단기 결전을 수행할 작전지휘 능력이 부족하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자는 러시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설 장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지 러시아의 승리라는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급격한 국제질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결집은 점차 약화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역시 약화하고 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비서구 국가들(소위 G7 국가들)의 결집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안보통상학회의 회장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 역시 미국 주도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의 전환은 현실이라며 국제질서의 거대한 지각변동이 시작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인식, 준비, 태세는 이 현실과 과도하게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진단이자 문제의식이다. “한국이 세계화를 선언한 지 3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계화되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이 임수강 금융평론가의 진보적인 금융 정책 대안을 찾는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를 매월 1회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한국의 경제·금융 기사와 칼럼은 절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가치에 기울어 있습니다. 대안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찾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는 기존과 다른 시각, 기존과 다른 깊이로 독자 여러분께 어려워만 보이는 금융의 오늘을 진단하고, 그 진보적인 대안을 짚어드릴 예정입니다. 임수강 박사는 금융기관에서 실무경험이 많은 전문가입니다. 국회,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일했고 <지속가능한 공정경제>, <달러제국과 한국경제> 등의 저서를 공저했습니다. 최근에는 아담 레보어의 <바젤탑>(더늠 펴냄)을 번역해 국내에 출간했습니다. 앞으로 '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에 큰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왜 지금 중앙은행 독립이 문제인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했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부터는 그렇지 않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중앙은행의 독립을 달성해야 할 바람직한 상태로 본다. 사실 한국은행 총재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로부터 독립한 중앙은행이 화폐가치의 안정을 이루는데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주장은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주장은 함부로 도전해서는 안 되는 공리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은행 독립성이 진보적인 가치를 갖는 것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이렇게 된 데는 우리나라에서 중앙은행 독립 주장이 나온 독특한 배경이 한 몫 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은행 독립 주장은 1987년 6.29 선언 직후 경제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던 국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는 정부가 은행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는 이른바 관치금융의 폐해가 쌓여 있던 때라 뭔가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일정 부분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국은행 독립은 관치금융의 폐해를 극복하는 개혁의 지렛대이며 나아가 경제 민주화의 한 요소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중앙은행 독립 개념은 매우 보수적인 지적 전통에 끈이 닿아 있다. 시카고학파-통화주의-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워싱턴 컨센서스'의 주요 항목 가운데에 중앙은행 독립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국제 금융자본의 이해에 깊게 엮인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제공할 때 중앙은행 독립을 요구한다는 데에서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앙은행 독립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위기에 대응하면서 중앙은행과 행정부는 긴밀하게 협력해야 했다. 특히 여러 나라 중앙은행들이 유통 화폐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사들이면서 두 정책주체의 협력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상황은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굳이 독립해야 할 이유가 따로 있는지를 묻게 했다. 그 물음의 연장선상에서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통합하는 것이 낫다는 논의가 나타나기도 했다.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가 만들어낸 분배 효과는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를 따져보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양적완화로 생겨난 돈은 상품과 서비스 지출로 향하기보다는 주로 자산시장으로 흘러갔다. 이는 자산가격 거품을 만들어냈다. 위기 이후에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은 이러한 주요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 정책과 관련이 깊다.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같은 자산가격이 오르면서 생긴 이득은 대부분 소수의 자산가 계층에게 돌아갔다. 그리하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도 얘기하듯이 중앙은행들이 편 양적완화 정책은 커다란 (특정 계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분배 효과를 만들어냈다.
중앙은행의 정책이 분배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중앙은행 독립성의 중요한 전제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벗어난 중립적인 전문가들이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나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정책 판단을 내린다는 가정이 중앙은행 독립성 논리의 바탕에 깔려 있다. 만약 어떤 정책이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에 유리하게 기능한다면 그것은 이미 전문가 영역이라기보다 정치의 영역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적인 정책이 부의 편중을 부르는 분배 효과를 낳는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이익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이다.
이러한 사정들이 중앙은행 독립성을 향한 의문이 생겨나는 배경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따져보아야 할 이유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 아담 레보어가 <바젤탑>에서 설명하듯이 2008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연준의 양적 완화 정책은 미국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자산가격도 끌어올렸다. 이창용 총재의 말대로 한국은행이 미국 연준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했던 탓에 연준 정책의 영향이 우리나라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우리나라의 집값이 크게 오른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었기 때문에 집값이 급등할 때조차 문재인 정부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산가격 안정을 비롯하여 정부와 중앙은행이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숱한 과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야 하는데, 여기에는 중앙은행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가 금융배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자 할 때도 역시 중앙은행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성이라는 허울이 정부와 중앙은행 사이의 협력을 가로막는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자산가 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불평등을 비롯한 여러 사회 문제의 해결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향한 시각을 교정하는 것이야말로 진보 금융을 찾아 나서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중앙은행 독립이 필요한 이유에 관한 설명들
그렇다면 중앙은행 독립성이란 무엇인가? 최근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은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을 언급한 바 있다. 올해 초 스웨덴 중앙은행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파월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통화정책 결정을 단기적인 정치적 고려로부터 차단한다는 이점을 가진다"며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율이 높을 때 물가안정을 회복하도록 인기가 없지만 필요한 조치(금리 인상을 통한 경제 둔화)를 정치적 고려 없이 취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책 기관에 대한 "독립성 부여는 단기적인 정치적인 고려로부터 보호가 명백히 필요한 사안들"로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서 보듯 파월은 중앙은행 독립을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정치적인 고려 없이 정책 결정을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독립을 얘기할 때는 누구에게서 독립한다는 것인지 그 대상이 있어야 한다. 파월은 그 대상을 선출된 권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대상은 외국 중앙은행 정책이나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될 수도 있다. 연준 부의장을 역임한 앨런 블라인더 교수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 중앙은행 독립이 정부 내 기능상의 독립인지 정부 자체에서 독립인지의 구분이 있지만, 이는 중앙은행이 정부에서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목적 외에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사실 중앙은행 독립성을 얘기할 때 대부분은 선출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중앙은행은 왜 정치와 정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인가? 중앙은행 독립 주장에는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의 속성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선거를 통해 평가받아야 하는 정치 권력은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눈앞의 선거 결과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정책을 선택하기 때문에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앙은행 독립론자들은 만약 정부가 금융정책을 맡는다면 선거를 의식하여 선심성 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그러면 확장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생길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정책을 정치에서 떼어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은 경제적 성과를 보장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좀 더 세련된 근거는 1980년대 초에 완성된 정책의 동태적 비일관성 개념이다. 쉽게 얘기해서 이 개념은 중앙은행 정책이 효력을 내는 데는 길고 변덕스러운 시간이 흘러야 하는데, 현재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최적이라고 판단한 정책이 나중에도 최적으로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다. 그러므로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빠질 수 있는 선출 권력을 대신하여 장기적인 시야를 가진 전문 기술관료에게 금융정책을 맡기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라고 중앙은행 독립론자들은 주장한다.
IMF처럼 중앙은행의 독립을 지지하는 그룹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강한 국가들에서 더 낮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나라들 사이의 비교연구를 통해 뒷받침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중앙은행 독립성의 정도가 강할수록 물가안정이 이뤄지고 경기 변동 폭도 작다는 많은 실증 연구들이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만만치 않았다. 경험 연구를 통해서는 중앙은행 독립이 실제로 낮은 물가를 보장하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앙은행 독립과 물가안정 사이의 관계를 밝혀보려는 사람들을 특히 괴롭힌 문제는 이른바 '일본 문제'다. 일본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강하지 않은 나라로 알려졌지만 물가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본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을 법과 제도상의 독립성과 실질적인 독립성으로 나누기도 했다. 일본은행은 법과 제도상의 독립성은 약하지만 실질적인 독립성은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요구에 따랐던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행의 실질적인 독립성도 결코 강하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오랜 세월 중앙은행을 연구해온 찰스 굿하트는 중앙은행 독립성과 인플레이션의 관계가 약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놀라운 사실은 중앙은행 독립성이 물가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넘쳐나지만 그것이 경제성장이나 실업률에는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앙은행 독립성은 물가뿐만 아니라 실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에 관해서도 연구가 이뤄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중앙은행 독립이라는 신화가 한국 사회에서 공고하다. 중앙은행은 외국 중앙은행으로부터, 금융 자본으로부터 최대한 독립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로부터도 그런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7일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은행 독립이 불평등을 키운다
중앙은행 독립의 효용성을 두고는 일찍부터 반론이 제기되었다. 가장 잦은 문제 제기는 국민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정책을 중앙은행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주체가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느냐는 점이었다. 정부 경제정책과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이 꼭 상충하는 것도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정부와 중앙은행은 분리보다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독립성이 강한 중앙은행이 반드시 금융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고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독립성이 강한 중앙은행은 자기의 위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력과 가능한 한 충돌을 피하면서 오로지 독립성만을 계속 유지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반론의 핵심 내용이다.
2008년 위기 이후에는 중앙은행 독립성이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2021년에 세계은행이 발간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불평등이 크게 증가한 데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은행 조사보고서가 제시하는 중앙은행 독립성의 불평등 확대 경로는 세 가지다.
첫째, 사회정책 경로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재정정책을 간접적으로 제한하여 정부의 재분배 능력을 떨어트렸다. 이는 사회복지 지출의 삭감으로 이어져서 저소득층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금융정책 경로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부로 하여금 금융시장 규제 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그 이유는 정부가 줄어든 복지를 모기지 확대와 같은 대출로 메우려 했고 이를 위해서 규제 완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규제 완화는 자산가치의 상승세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자산의 대부분은 부유층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 노동시장 경로이다. 정부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의 협상력을 떨어트리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중앙은행 독립성이 커질수록 화폐시장 긴축과 실업률 증가를 예상한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노동시장 규제 완화로 대응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리하여 중앙은행 독립은 비정규직 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의 증가 현상을 만들어냈고 결국 불평등을 키웠다.
세계은행 조사보고서는 중앙은행 독립이 직접 불평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단다. 그럼에도 중앙은행 독립이 정부 정책을 바꾸도록 밀어붙이는 역할을 함으로써 결국 불평등을 키운다고 이 보고서는 설명한다. 이 보고서는 121개국의 1980~2013년 데이터를 이용하여 포괄적인 경험 연구를 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불평등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불평등을 일으키는 세 가지 경로도 확인된다.
중앙은행 독립에 누가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갖는가를 따져봄으로써 중앙은행 독립성이 불평등의 확대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중앙은행 독립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지는 그룹은 금융부문이다. 금융부문은 정부가 통제하는 중앙은행보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중앙은행을 통할 때 더 유리한 거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따라서 금융부문은 중앙은행의 독립을 선호한다. 중앙은행가들은 독립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이다. 그 이유는 독립한 중앙은행을 통해서 자기의 위치를 가장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독립한 중앙은행이 실업률을 낮추는 데보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라고 점친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중앙은행의 독립을 선호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정치 영역에서 금융정책이 다뤄지기를 바라는데 그 이유는 거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비금융 기업들은 산업 분야, 재무 구조, 무역 의존도 등에 따라 중앙은행 독립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다. 예를 들어 차입이 많은 기업은 긴축 정책보다 완화 정책을 선호하고 따라서 중앙은행 독립에 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보통의 비금융 기업들은 대체로 경제의 안정성이 장기투자를 보장한다고 보아 중앙은행 독립을 선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비금융 기업들은 중앙은행 독립이 전반적인 금리 수준을 높이고 자금 사정을 어렵게 하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그런 면에서 비금융 기업들의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문제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의 영향력에서 독립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은 금융세력이 항상 꿈꾸어 왔던 목표였다. <바젤탑>의 저자 아담 레보어에 따르면 금융세력은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을 이뤄내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결제은행(BIS)의 설립을 추진했다. 중앙은행들의 모임인 국제결제은행이 설립된 것은 1930년이다. 그러므로 거의 100여 년 전부터 금융세력은 중앙은행의 독립을 조직적으로 추진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금융세력은 항상 중앙은행의 독립을 추진해 왔지만 그것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는 아니었다. 세계대전 중에는 중앙은행 독립이 있을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에도 1970년대 초까지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별로 강조되지 않았다. 케인스주의가 지배하던 당시에는 중앙은행의 여러 기능 가운데 재정 확장을 뒷받침하는 "정부의 은행"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었다. 이때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기여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국채 인수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새삼 강조되기 시작한 계기는 1970년대 초반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그에 이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발생이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산 가치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 금융자본은 자기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금융세력은 중앙은행이 정치와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또한 그들은 중앙은행이 그동안 정부의 재정 확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행해 왔던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부상한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은 1980년대에 이론적 체계화를 거친 다음 1990년대에는 세계 여러 나라들로 퍼져나갔다.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성이 강조되던 시기에 중앙은행들은 금융시장의 관리자 역할이 아니라 후견인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예를 들어 미국 연준의 경우 주식시장이 무너질 때는 항상 그 뒤를 돌봐주었고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들에는 대마불사의 원칙에 따라 거액의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그리고 2008년 위기 이후 자산가격이 무너질 때는 중앙은행이 스스로 나서서 시장 조성자 역할을 함으로써 자산가격의 회복을 도왔다.
중앙은행들은 정치적인 독립이라는 구호 뒤에서 금융시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점차 잃어갔다. 중앙은행 정책에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자본의 개입을 허용하자는 주장과 동의어가 되었다. 중앙은행들은 시장과 소통한다는 명분으로 시장의 기대와 요구를 만족시키는 역할을 더 잘 수행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지속된다면, 정운찬 교수가 얘기하는 바와 같이, 금융정책의 "사실상 사유화"가 이뤄질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연준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교수(정운찬 교수의 지도교수) 같은 경우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앙은행은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 그런데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누구인가? 재벌 대기업, 금융그룹, 부유층이 금융시장의 주요한 참가자들이다. 실제로 중앙은행이 이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세계 중앙은행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세계적인 인플레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는 미 연준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앙은행 정책의 중요성과 진보적인 정책의 방향
중앙은행은 금융정책의 수립이라는 임무를 떠안고 있다. 이것은 재정정책과 함께 거시경제정책을 떠받드는 두 축이다. 오늘날 중앙은행은 금융의 지휘자 역할을 수행한다. 중앙은행은 이자율이나 유통 화폐량을 조절해 화폐가치에 영향을 끼치고 이를 통해 경제 활동이나 자산가격의 전반적인 움직임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부동산, 유가증권 등 자산가격의 변동은 분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현대사회에서 중앙은행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이제 중앙은행 독립과 관련이 있는 몇 가지 진보적인 정책 과제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첫째,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을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행해야 할 중앙은행의 역할을 제대로 정할 수 있다. 중앙은행 독립 개념은 정부와 정치로부터의 독립, 외국 중앙은행(연준)으로부터의 독립, 금융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세 가지 차원을 갖는다. 여기에서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은 진보와 거리가 먼 개념이다. 우리가 중앙은행의 정치적인 독립이라는 신화에 갇히면, 문재인 정부가 그랬듯이, 중앙은행에 꼭 요구해야 할 임무를 제기조차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와 달리 중앙은행이 연준이나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하는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둘째, 특수 이익보다 일반 이익을 우선하는 중앙은행 거버넌스를 갖춰야 한다. 이것은 중앙은행이 연준이나 금융시장으로부터 독립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중앙은행은 그 속성상 노동자들의 이해보다는 금융업자나 재벌 기업의 이해에 기울기가 쉽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앙은행의 의사결정 기구가 대체로 특수 이익만을 반영하는 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책임성을 갖는 중앙은행이라면 일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행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을 바꿔야 한다. 현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금융업자나 기업들의 특수 이해만을 반영하는 비민주적인 구조로 이뤄졌다. 금통위를 일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바꾸기 위해서는 거기에 노동자, 소상공인, 농민 등의 대표를 포함시켜야 한다. 미국의 경우도 연준이사회의 감시를 받는 연준 지역은행이사회에는 농업, 상업, 서비스업, 노동자, 소비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셋째, 중앙은행이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중앙은행이 법이 규정한 범위를 넘어서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앙은행의 임무를 최소한으로 좁혀야 한다고 보는데, 사실 이러한 견해는 보수주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불평등, 금융배제, 기후위기와 같은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중앙은행의 임무를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와 중앙은행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행법은 금융통화위원회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그러한 권한을 사용하기는커녕 사문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더 많은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그러한 권한을 실제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법에 규정된 대정부 직접 여신이나 국채 직접 인수와 같은 조항을 활용하여 특별 기금을 만든다면 금융배제와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도움받은 자료>
송종운, "중앙은행 전성시대, 새로운 실험대에 올라선 한국은행", <참세상>, 2014.5.9.
아담 레보어 저, 임수강 역, <바젤탑>, 더늠, 2022.11.
앨런 블라인더 저, 정운찬 역, <소리 없는 혁명-중앙은행 현대화>, 2009.
조지프 스티글리츠 저, 박형준 역, <유로>, 2017.
한국은행 워싱턴 주재원, "현지정보" 2023.1.10.
Adam Tooze, "The Death of the Central Bank Myth", FT, 2020.5.13.
Michaël Aklin, Andreas Kern, Mario Negre, "Does Central Bank Independence Increase Inequality?", World Bank,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 9522, 2021.
Thomas F. Cargill, "The Myth of Central Bank Independence", MERCATUS Working Paper, 2016.
임수강 금융평론가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최병성 리포트] 불길 이동 통로이자 산사태 주범된 '임도'...산림청, 확충 위해 엉터리 보도자료
▲ 거센 산불로 산림이 불에 타고 있다. ⓒ 최병성
3월이 되자 건조한 봄바람에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소중한 산림을 태우고 있다. 지난 15일 산림청은 '산불재난 최소화를 위해 산불진화임도 확충 시급'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남성현 산림청장이 직접 임도 확충 전략을 발표했다. 산림청이 임도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는 뜻이다.
산림청은 '산불 진화에 임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도가 있으면 진화인력과 장비가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조기 진화할 수 있지만, 임도가 없으면 산불 진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산불 진화에 임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 2022년 화재가 발생한 울진, 임도가 있었지만 주변 산림이 모두 불에 탔다. ⓒ 최병성
산림청 주장은 사실일까? 지난해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은 피해 지역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처참했다. 산림청이 근거로 내세운 울진 산불에서 임도가 없어 산불이 대형화된 것인지 현장을 돌아보았다. 시커멓게 불탄 숲에 산림청이 산불 진화에 필요하다는 임도가 있었다. 그러나 주변이 모두 불에 탔다.
▲ 2022년 화재가 발생한 울진, 임도보다 더 넓은 2차선 도로가 있어 접근이 용이하지만 모두 불에 탔다. ⓒ 최병성
폭 3m의 임도보다 넓은 2차선 도로가 있어 산불 진화 장비와 인력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도로 곁 야트막한 산림마저 다 불에 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2022년 화재가 발생한 울진 주변, 4차선 동해고속도로가 있고 2차선 국도가 산 능선을 지나고 있다. 진압 장비와 인력이 산불 현장에 진입하기 용이하지만, 바다까지 가고서야 산불이 저절로 꺼졌다. ⓒ 최병성
4차선 고속도로와 2차선 국도가 산을 가로지르고 있다. 산도 야트막하고 임도보다 더 널찍한 도로들이 곳곳에 퍼져 있다. 화재 현장에 장비와 진화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그러나 산림청은 산불을 잡지 못했고, 산불은 4차선 고속도로와 2차선 국도를 넘어 바다까지 달려갔다. 더 이상 탈 것이 없는 바닷가에 도착해서야 저절로 꺼졌다.
▲ 한울 원전 마당까지 산불에 다 탔다. 그러나 이 사실이 감춰져 있고, 마치 산림청이 산불을 진화한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원전 앞에 2차선 도로가 있지만 산불이 원전으로 날아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 최병성
산림청은 산불을 잡기 위해 울진 한울 원자력발전소 정문 앞에 지휘본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산불이 한울 원전 마당 안까지 들어와 나무를 태우는 것을 막지 못했다. 울진 산불의 최초 발화지점에서 한울 원자력발전소 사이에는 수많은 임도는 물론 2차선 국도와 4차선 고속도로가 놓여 있다. 그러나 산불은 원전으로 날아들어 원전 울타리 안의 숲을 몽땅 태웠다.
한울 원전이 불타지 않은 것은 콘크리트 구조물이었기 때문이지 산림청이 불을 꺼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사실이 감춰진 채 산림청이 원전을 지켜냈다고 포장되어 있다. 사진을 보면 돔 형태의 원전 구조물 바로 앞 언덕의 나무들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산불이 원전 마당까지 들어올 때까지 산림청은 무엇을 한 것일까?
산불을 진화해줄 국가가 없었다
▲ 산불 진화에 무능한 산림청으로 인한 피해 현장. 주민들에겐 안전을 지켜줄 국가가 없었다. ⓒ 최병성
울진에 산불로 피해 입은 주민들이 많은 이유가 있다. 산림청이 원전을 지킨다며 주변 마을 민가들이 불에 타는 것을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산불 진압 장비가 신속하게 달려올 수 있는 2차선 도로가 있고, 마을 길이 있건만 주민들은 집이 불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산불로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공통으로 한 말이 있었다. 그들에게 산불을 진화해줄 국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산불 진화의 주체인 산림청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고, 숲도 지켜내지 못했으며, 원자력발전소도 지켜내지 못했다.
▲ 산림청은 최초 발화지점에서 울진 한울원전을 향한 전진 산불을 잡지 못했고, 며칠 동안 천천히 타오르는 후진 산불마저 제대로 진화하지 못했다. ⓒ 최병성. 카카오맵
15일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지난해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에 산불이 났을 때 임도 덕분에 소나무를 지킬 수 있었다'며 임도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임도 덕분에 소광리 소나무를 지켰다는 면적은 울진 산불 피해 전체 면적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울진 산불 진행 과정을 살펴보자. 최초 발화지점에서 거센 전진 산불이 몇 시간 만에 울진 한울 원전으로 옮겨갔고 삼척 LNG 기지로 퍼져나갔다. 이후 불길이 약해진 후진 산불이 며칠 동안 타오르며 응봉산과 소광리 소나무 숲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그런데 산림청은 불길이 약해진 후진 산불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산림청이 소나무 숲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임도 덕이 아니다. 세력이 약해진 후진 산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원전을 향해 달려가던 불길이 강한 전진 산불이었다면 임도보다 더 넓은 고속도로가 있다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림청은 산림과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지 못한 무능을 사과하기보다, 임도 덕에 소광리 소나무를 지켜냈다는 말로 국립공원 임도 건설 예산을 확보하는 데 악용하고 있다.
▲ 능선을 따라 임도가 잘 놓여 있지만, 산림청의 주장과 달리 모두 불에 타도록 산불을 끄지 못했다. ⓒ 최병성
산림청이 지난해 울진 산불을 제대로 끄지 못한 것은 산불 면적이 넓었기 때문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2020년 6월 발생한 안동 산불 현장으로 가보자. 산 정상까지 콘크리트 포장으로 임도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바로 곁에 낙동강이 보인다. 산불을 끌 수 있는 물도 충분했다. 임도가 있으니 장비와 산불 진화 인력 투입이 용이했다. 그러나 모두 불에 탔다.
▲ 밀양 산불은 임도를 따라 이동했다. 임도가 산불이 이동하는 통로가 되었다. ⓒ 최병성
지난해 5월 산불이 발생한 밀양이다. 임도가 있지만 여기도 모두 불에 탔다. 밀양 산불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산불이 임도를 타고 더 큰 산불로 확산 이동된 것이다. 나무가 없어 바람이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임도가 산불 진화용이 아니라 오히려 불길의 이동 통로였던 것이다.
산림청이 임도 건설에 집착하는 이유
▲ 강원도 횡성 매더피골에 임도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이 사라졌다. ⓒ 산림청. 소방청
15일 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산불 진화와 산사태 예방을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임도는 산사태 예방이 아니라 산사태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지난 2022년 8월 10일, 강원도 횡성의 매더피골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이 사라졌다. 산꼭대기에서부터 엄청난 토사가 밀려 내려왔다. 산림청이 만든 임도때문이었다.
▲ 산림청이 울진의 금강송을 벌목하기 위해 만든 임도에서 산사태가 줄줄이 발생했다. 산사태 복구를 위한 혈세를 산속에 퍼붓고 있는데, 산림청 그 누구도 책임지지도 않고 처벌도 받지 않았다. ⓒ 최병성
울진의 또 다른 현장을 보자. 산사태가 줄줄이 발생했다. 소나무 숲으로 유명한 울진에 왜 이런 처참한 산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임도 때문이었다. 임도를 건설하면 안 되는 지형에 마구잡이로 임도를 건설했다. 빗물이 흐를 물길도 없었다.
산사태가 매년 여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깊은 산속에 산사태 복구를 위해 계속 혈세를 퍼부어야 하는 현실이다. 이곳에 산사태가 난 이유는 간단하다. 산림청이 울창한 소나무들을 벌목하기 위해 임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 2020년엔 최병암 산림청장이 탄소 흡수를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더니, 이번엔 남성현 산림청장이 산불 진화를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고 기자회견하고 있다. 임도를 위한 명분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 ⓒ 산림청
지난 15일 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지난해와 올해 대형산불을 보며 산불 진화에 임도가 반드시 필요함을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3년 전인 2020년 12월 23일, 당시 최병암 산림청장은 '임도 신설 확대와 체계적인 관리로 산림 탄소흡수 기능 및 산림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제목으로 임도 개설을 강조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탄소 흡수를 위해 임도를 주장하다가 먹히지 않으니 이제 산불을 내세워 임도 건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산림청은 청장들이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할만큼 임도 개설을 위한 여론 조성과 예산 확보에 목을 매고 있다.
▲ 임도를 건설한 후 벌목량이 증가하였다는 조사 보고서. ⓒ 한국임학회지
산림청은 왜 임도 건설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보여주는 보고서 두 편을 찾았다. 2015년 <한국임학회지>에 실린 '임도 시설에 따른 접근성 개선 및 산림작업비용 절감효과Ⅰ.Ⅱ'다. 임도 개설 전 숲가꾸기 등의 사업이 평균 28.5%에서 임도 건설 후 90.3%로 3.2배 증가했고, 벌목은 25.2%에서 88.3%로 3.5배 증가했다는 것이다.
결국 임도가 있어야 벌목해서 나무를 실어 나를 수 있고, 벌목을 많이 해야 벌목한 자리에 조림을 이유로 기획재정부에서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목과 숲가꾸기와 조림 등을 산림경영이란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국회와 국민을 속여 온 것이다.
카카오맵 항공사진에 진실이 담겨있다. 장소는 금강소나무로 유명한 울진군이다. 2012년 임도가 만들어졌다. 5년 뒤 2017년 임도를 따라 울진의 거대한 금강송들을 싹쓸이 벌목했다. 2019년에 또 임도를 따라 더 많은 면적의 금강송들이 잘려 나갔다.
▲ 임도가 있으니 손쉽게 싹쓸이 벌목을 했다. 산림청이 임도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산림경영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하는 싹쓸이 벌목을 위한 것이다. ⓒ 최병성
이게 바로 산림청이 임도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다. 산불 진화 명목은 임도 건설 예산을 따내기 위한 핑계일뿐이다.
국민 기만하는 산림청
▲ 산림청이 임도가 있는 합천과 임도가 없는 하동을 비교해 임도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보도자료엔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이 들어있다. ⓒ 산림청
15일 보도자료에서 산림청은 두 개의 산불 현장을 비교해 임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남 합천은 임도가 있어 진화대들이 밤샘 작업을 통해 다음날 조기 진화 할 수 있었으며, 경남 하동의 지리산 국립공원은 임도가 없어 밤새 산불이 타들어 가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언론이 산림청 보도자료를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베껴 쓰며 임도가 없는 하동의 국립공원이 산불을 제때 끄지 못해 산불 피해가 컸다고 보도했다.
▲ 산림청 홈페이지 산불 상황도와 현황을 비교표로 만들었다. 하동의 경우 임도가 없어 산불 피해가 컸다는 것은 심각한 거짓말이다. ⓒ 최병성. 산림청
산림청의 주장은 사실일까? 합천 산불과 하동 산불은 발생 시기가 3일 차이에 불과하고 두 지점의 거리가 가깝다. 산불 피해 현장을 비교해보자.
산림청 홈페이지 산불 발생 현황에 따르면, 합천 산불은 지난 8일 발생해 67시간 만에 진화되었으며 피해 면적이 163ha다. 그런데 임도가 없다는 하동은 11일 발생해 27시간 만에 진화되며 91ha를 태웠다. 임도가 있어 산불을 조기 진화했다는 합천이 더 오랜 시간 불에 탔고, 산불 피해 면적도 두 배 정도 더 넓다.
▲ 산불 피해 모습도 임도가 있는 합천이 임도가 없는 하동보다 심각하다. ⓒ 홍석환
산불 피해 강도를 비교해보자. 멀리서 보기에도 합천과 하동의 산불 상황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합천 산불은 나뭇가지 끝까지 타죽는 수관화였고, 하동 산불은 바닥으로만 스쳐 지나가는 지표화였다. 하동 산불 현장에 시커멓게 탄 수관화도 극히 일부 있지만, 대부분 지표화로 큰 피해 없이 산불이 꺼졌다. 같은 시기, 비슷한 지역에 발생한 산불인데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산불 현장에 답이 있다. 합천 산불 현장에선 산림청이 산림경영이라고 주장하는 숲가꾸기 흔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소나무만 남기고 키 작은 나무와 활엽수들이 모두 잘려 나갔다. 그러나 하동은 국립공원이고 임도가 없으니 산림청이 숲가꾸기를 할 수 없었다. 하층부에 잡목이 그대로 존재한다.
▲ 임도가 있어 산림청이 자랑하는 숲가꾸기로 인해 소나무만 남기고 활엽수를 모두 잘라버린 탓에 수관화로 모두 불타 죽었다. 그러나 하동은 임도가 없어 지표화로 산림 나무들이 살았다. ⓒ 홍석환
산림청이 숲가꾸기 한 곳과 잡목이 밀집된 지역의 산불 피해를 비교해보자. 소나무 외에 활엽수들을 잘라 숲가꾸기를 한 합천은 나무 꼭대기까지 불에 탔다. 이 나무들은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 그런데 하동 국립공원은 잡목이 가득하다. 산림청의 주장대로라면 불에 탈 연료가 많다. 그런데 불길이 지표화로 타다 꺼졌다.
산불의 확산 여부는 '연료'가 아니라 '바람'이다. 숲가꾸기 한다며 활엽수들을 베어낸 숲은 바람이 잘 통하여 불길이 나무 꼭대기까지 순식간에 타고 오른다. 그러나 숲가꾸기를 하지 않아 연료가 많은 숲은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불길이 힘을 잃고 힘없이 바닥을 기다가 저절로 꺼지는 것이다.
산림청은 그동안 대형 산불의 원인을 기후 위기 탓으로 돌려왔다. 하지만 기후 위기가 아니라 산림청이 산림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산림을 불에 잘 타는 숲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산림청이 숲가꾸기를 한 지역은 심각한 생태계 파괴뿐만 아니라, 숲이 더 건조해진다. 한번 불이 나면 쉽게 꺼지지 않는 대형 산불이 되는 것이다.
산불 며칠 만에 생태복원 토론회?
산림청은 23일 하동 산불이 발생한 인근에서 '산불 피해지 산림 생태복원 현장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12일 오후에 하동 산불이 진화되었다. 산불이 꺼진 지 불과 10여 일 만에 생태 복원 토론회란 불가능하다. 국립공원 산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불이 꺼지자마자 토론회를 개최하는 산림청에 의혹의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하동 산불은 사진으로 보듯 지표화로 끝났다. 대부분의 나무가 활엽수이기에 불길이 지났어도 다 살아난다. 사람이 손을 댈 필요가 없다. 복구한다며 사람이 손을 대는 순간, 더 큰 생태 파괴만 이뤄질 뿐이다.
산불 피해지 생태복원이란 산불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산림의 변화를 살펴 그에 맞는 복원을 계획해야 한다. 산림청 토론회 참석자 중에 과연 합천과 하동 산불 피해 현장 두 곳을 꼼꼼히 다 살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산림청이 '국립공원에 임도를 건설하겠다'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생태복원의 이름을 단 꼼수 토론회를 여는 게 아닐까.
아직 3월이라 전국 곳곳에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산림청이 산불 후 단 며칠 만에 복원 계획을 세워 산불 현장에서 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을까? 산림청의 한 관계자는 내게 '산림청이 산불 피해지마다 찾아다니며 이렇게 생태복원 토론회를 열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15일 보도자료에서 남성현 산림청장은 '해외 산림에 비해 임도가 적어 산림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국회와 기재부 등 관련 부처 협의를 통해 임도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 산림청은 해외엔 임도가 많다는 이유를 임도 건설의 타당성으로 내세우지만, 해외와 우리는 지형과 기후에 차이가 크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미 여름마다 발생하는 산사태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 김종원
그러나 계명대학교 김종원 교수의 '소나무재선충과 동해안 산불을 통해서 본 우리나라 소나무, 무엇이 문제인가'(2005)에 따르면, 유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완만한 구릉 형태 또는 대지 형상이며, 연간 강수량이 800~1000mm 이하이면서 연중 고르게 분포해, 급경사지에 집중호우 및 태풍을 동반하는 우리나라와는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며 국내 산림 임도의 부적절함을 강조했다.
산림청이 지형과 기후의 차이를 감추고 임도 길이만으로 국민을 속여 막대한 임도 건설 예산을 타내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여름마다 임도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국회와 기획재정부가 산림청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위례신도시·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을 수사하던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은 22일 이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이해충돌방지법 및 부패방지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5개 혐의로 기소했다. 2021년 9월 대선 국면에서 대장동 수사가 시작된 지 1년6개월 만이다.
23일자 주요 신문들은 모두 이 대표 기소 관련 기사를 1면에 게재했다. 주로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2014년 민간업자들에게 유리한 구조의 대장동 개발사업을 승인해 성남도시공사에 4895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가 제목에 올랐다. 한겨레는 이 대표가 개발 이익 중 428억 원을 받기로 했다는 약정설 의혹이 공소장에 없었다는 점을 짚었다.
경향신문: 검찰, 이재명 기소 ‘최종 책임자’ 규정
국민일보: ‘대장동’ 피고인 된 이재명
동아일보: 檢, 이재명 4895억 배임 등 5개 혐의 기소…李 “답정기소”
서울신문: 중대범죄 혐의 법정行 초유의 제1야당 대표
세계일보: “4895억 배임·133억 뇌물” 검찰, 이재명 불구속기소
조선일보: 매주 재판받는 野대표 이재명
중앙일보: 4895억 배임, 133억 뇌물…이재명 5개 혐의 기소
한겨레: ‘대장동’ 이재명 기소…428억 의혹은 빠졌다
한국일보: 검찰, 이재명 ‘대장동 사업 4895억 배임’ 기소
▲3월23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신문별 사설에선 검찰 수사의 한계나 과제를 지적하는 내용들도 눈에 띈다. 동아일보 사설(1년 반 만에 이재명 기소…이젠 법정에서 진실 가릴 때)은 “검찰 역시 대규모 수사 인력을 투입해 이 대표 관련 사건들에 300차례가 넘는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에게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던 만큼 유죄를 입증할 책임이 크다. 이를 위해선 이번 공소장에서 빠진 이른바 ‘428억 원 약정설’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이 부분이 확인돼야 범행 동기가 설명이 되고 ‘그분’의 실체도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 사설(‘400억 약정’ 빠지고, ‘정치수사’ 논란 남긴 이재명 기소)은 “그동안 검찰이 막대한 수사 인력을 투입해 역대 가장 박빙의 대선을 치렀던 야당 대표를 겨냥한 것을 두고 정치적 시비가 끊이질 않았는데, ‘400억원 약정’이 빠지면서 이번 수사 결과로 정치적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이 물증도 없이 유동규 전 본부장 등 관련자 진술에만 의존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이른바 ‘50억 클럽’ 수사 성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향신문 사설(이재명 기소, 대장동 실체·정치탄압 여부 법정서 가려야)은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씨 녹취록에는 50억원씩 줘야 하는 대상으로 곽상도 전 의원과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박영수 전 특별검사,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의 실명이 거론됐다”며 “검찰은 이 대표 기소와 별개로 50억 클럽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면 당직을 정지하도록 당헌을 둔 민주당이,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인 경우 예외로 한다’는 조항을 들어 이 대표의 대표직을 유지하게 한 결정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한국일보 사설(기소되고도 당대표 이재명…법정서 시비 가려야)은 “사법부 판단을 앞두고도 대표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니 당을 방패로 쓴다는 비판을 어떻게 해명할 건가”라고 물었다.
▲3월22일 검찰의 이재명 대표 기소 관련한 경향신문 23일자 기사
▲3월22일 검찰의 이재명 대표 기소 관련한 한국일보 23일자 기사
일부 신문은 이번 기소 외의 혐의들을 언급하면서 이 대표 사퇴를 압박했다. 중앙일보 사설(기소된 이재명…이제 자신의 거취 진지하게 고민해야)은 “이 대표는 이미 선거법 위반으로 2주에 한 번꼴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기소로 더 자주 법정에 서야 한다.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의혹, 백현동 특혜 의혹 등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다른 사건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사설(1년 6개월 만에 대장동 핵심 피의자 기소, 신속 재판으로 혼란 줄여야)은 “추가 수사 과정에서 대북 송금 의혹 등과 관련해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다시 제출될 수도 있다”며 “민주당은 대표 개인 비리에 끌려다니면서 무리한 맞불 놓기용 정치 공세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종편 모기업 신문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 비판
이른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으로 불리는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가운데, 일부 신문은 이 법안을 부정적으로 다루는 사설을 냈다. 이 법안은 그간 여야 정당이 비공식적으로 좌우해온 공영방송 이사진 추천권을 언론 현업인 단체 등 다양한 주체에게 분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선 국민의힘 의원들이 투표를 거부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및 무소속 의원 찬성으로 방송법 개정안의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된 바 있다.
이틀전 본회의로 넘겨진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선 주로 종합편성채널 관련 신문들의 사설이 눈에 띈다. JTBC 모기업인 중앙일보 사설(공영방송 독립성과 공정성 해칠 방송법 강행 처리)은 법안 처리 절차를 두고 “이사회 추천을 국회(5명), 직능단체(6명), 학회(6명) 등이 하도록 했는데, PD연합회 등 직능단체와 방송·미디어 학회 중엔 친민주당 성향을 보여 온 곳이 많다”며 “민주당이 공영방송 개혁을 진심으로 원했다면 2016년 당론으로 채택한 방송법 개정을 추진했어야 한다. 여야가 7 대 6으로 이사를 추천하고 사장은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선임토록 했는데, 야당이 반대하는 인물은 사장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독립성 보장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3월23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방송법 개정안) 관련한 조선일보, 중앙일보, 서울신문 사설 제목
TV조선 모기업인 조선일보 사설(한 정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고 법을 만든다니)은 방송법 개정안을 두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잃든 방송만은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방송법 개악을 막는 일 못지않게 지난 정권의 방송 장악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방송통신위원회를 바꾸는 일도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를 조작한 혐의로 주무 국장·과장·심사위원장이 얼마 전 구속됐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정부 조직이 설립 취지를 스스로 허물었다. 방통위의 근본적 개선도 더 미룰 수 없다”고도 했다.
이 밖에는 서울신문도 <방송법까지 법사위 패싱…巨野 입법독주, 끝이 없다> 제목의 사설에서 “거대 야당이 억지로 임시국회를 열어서는 법사위를 ‘패싱’하고 본회의로 직행한 법안이 벌써 아홉 개다”라며 “뒷감당을 어쩌려고 이런 입법폭주를 하는지 걱정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22일 평양시청년공원 야외극장에서 청년학생들의 반미항전 집회가 진행됐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이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순항미사일 수발을 발사했다는 전날 합동참모본부(합참)의 발표에 대해 23일 침묵하고 있어 주목된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비롯한 관영 매체들은 23일 전날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전날 평양시내에서 열린 청년 학생들의 반미항전 집회 소식을 전했다.
통상 미사일 발사 당일 합참이 탐지사실을 국내 언론에 공지하고 이에 대해 북측이 다음 날 관영매체를 통해 발사 배경이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사후 발표를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이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합참은 전날 "우리 군은 오늘(3.22) 10시 15분경부터 함경남도 함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순항미사일 수 발을 포착하였다"고 발표했다.
이날 통신은 23일 마무리되는 전반기 프리덤실드 한미연합연습에 대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기정사실화한 침략전쟁연습'이라고 규정하고는 "전국의 열혈청년들이 인민군대입대, 복대를 탄원하고 전민항전의 기세가 더더욱 격앙되는 속에 무분별한 반공화국 압살책동에 미쳐 날뛰는 미제와 괴뢰역적들을 단호히 징벌하기 위한 청년학생들의 집회가 22일 평양시청년공원야외극장에서 진행되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평양시내 거리에서 '전시가요대열합창행진'을 진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청년동맹) 간부들이 참가한 집회에서 청년 학생들은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대답할 것이라는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엄숙한 천명이 무서운 철추가 되여 도발자들을 어떻게 징벌하는가를 세계앞에 보여줄 때가 왔다"고 하면서 "조국통일대전의 앞장에서 내달릴 맹세를 다짐하였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이날 집회를 마친 후 평양시내 거리에서 '전시가요대열합창행진'을 진행했다.
앞서 북한은 전국 각지에서 군 입대와 복대를 위한 청년들의 탄원모임이 연일 진행돼 '조국보위성전'에 나서려는 청년들이 19일 현재 140만여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청년 학생들의 집회 소식과 함께 지난달 25일 착공식을 한 평양시 서포지구 건설현장에서 전국청년기동해설대의 집중경제선동과 방송선전경연이 21일부터 진행되고 있다고 알렸다.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효과적, 공세적으로 행사'하겠다고 한 지난 12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결정에 따라 군대를 농촌진흥과 지방건설 등 주요 전역에 파견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경제건설 사업에도 사회적 자원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달 전 착공식을 한 평양시 서포지구 건설현장에서는 전국청년기동해설대의 집중경제선동과 방송선전경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진보당 당원 등 참가자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제1588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3.22 ⓒ민중의소리
한일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열린 수요시위에서는 분노의 발언이 쏟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면제해준 데 이어 일본 언론을 통해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독도 문제까지 논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치욕스럽다"는 성토가 빗발친 것이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22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린 수요시위에서 평소와 달리 날 선 어조로 주간 보고를 시작했다. 이 이사장은 "참으로 절체절명의 시기"라며 "처참한 역사 인식과 민족관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 국민과 나라를 반성 없는 가해자에게 또다시 내어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윤 대통령은 일본 정부도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들고 그들이 세심하게 짜놓은 퇴행적 식민지 서사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한반도 합법 지배, 식민지 근대화론, 구 조선 반도 노동자론을 모두 수용했다"며 "그것도 모자라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독도 문제 해결,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등 새로운 숙제만 잔뜩 짊어지고 왔다"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과거사 문제에 반성과 사과를 표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를 '걸림돌'로 표현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언 등을 차례로 거론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주변인들이 어디에 서서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지, 누구와 동일시하며 누구의 이익에 충실한지 다시 한번 명백해졌다"며 "무지, 오만, 대담성, 세상을 속이는 수순이 가히 일본 우익을 넘어선다"고 꼬집었다.
이 이사장은 "당신들이 걸림돌로 치부하는 그 국민이 간절히 원한다"며 "그저 일본 권력자들의 반응을 세심히 살피며 마음을 얻었다 자부하고, 일본인의 박수와 환호성에 희희낙락 우쭐할 수준이라면 이제 그만 그토록 숭배하는 그 '아름다운 나라'로 가시라"라고 일갈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2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제1588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반대하며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3.22 ⓒ민중의소리
이날 수요시위에서는 이용수 할머니도 참석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윤 대통령을 규탄했다.
이 할머니는 "윤 대통령은 대선 전 꼭 역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이 되지 않더라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길래 너무 기뻐서 펑펑 울기도 했다"며 "윤 대통령이 했던 이 이야기는 거짓말이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 정부가 2015 한일 '위안부' 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잔여 기금을 사용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이 할머니는 "이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건 절대로 안 된다"라며 "오히려 10억엔에 이자까지 보태서 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수요시위를 주관한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는 "피해자를 외면하는 일본보다 더 기막힌 건 피해자를 지워버리려는 한국 정부"라며 "왜 정부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윤 상임대표는 "일제 강점기에 주권을 빼앗기고 국민을 지키지 못했던 나라가 국민의 명예 회복 싸움마저 가로막고 있다. 참으로 염치없는 정부"라며 "진보당은 윤석열 정부에 맞서 굴욕적인 한일 정상회담을 폐기시킬 것이다. 다시는 전쟁범죄, 인권유린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한민국 외교를 바로잡고 끝까지 전범국 일본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수요시위 참가자와 진보당은 성명서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고삐 풀린 친일 행보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일 정상회담은 윤석열 정부 친일외교 참사의 막장을 보여준다"며 "한일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어떻게 협의했는지 윤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낱낱이 밝혀야 한다. 독도 문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위안부' 합의 이행 등 일본의 고압적인 요구에 대해 정부는 어떤 입장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나라 경제를 살리라 했더니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 윤석열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은 친일매국 영업을 당장 중단하라"며 "정부는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내고 책임 있는 배상이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셜 코리아] 발등에 불 떨어진 기업들, 탄소 국경세 대책 요청... 기후전략·기후세력화 절실
23.03.22 04:59ㅣ최종 업데이트 23.03.22 04:59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 1일 경북 포항시 남구 제철동에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 한 직원이 용광로에서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23.1.1 ⓒ 연합뉴스
작년 12월 20일 블룸버그는 기후가 무역의 핵심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산업계 싱크탱크인 기후리더십위원회(CLC)의 그레그 베르텔센 회장은 기후를 무역의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글로벌 시장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무역기구(WTO)도 2022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상품의 국제적인 이동에 기후 정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기후와 온실가스에 무심했던 20세기 무역 교리가 바뀐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 변화를 거부하는 우리나라다.
국내 산업계는 일관되게 온실가스 규제를 반대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3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 공청회에서 대한상공회의소는 "온실가스를 규제 위주로 접근하면 투자 위축과 수출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2021년 8월 문재인 정부가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기준 40%로 정하고, 산업 부문에서 14.5% 감축한다고 발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에 대해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목표이고, 기업의 해외 이전을 부추길 것"이라고 반대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주요 제조업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기존 산업 부문의 14.5% 감축은 할 수 없고, 5%만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최근에 알려졌다. 산자부의 입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원조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인터뷰에서 "산업계와의 논의 절차가 없었기에 NDC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산업계와 정부는 온실가스 규제를 현실을 무시한 공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산업계가 기후 정책에 대해 반발할 수는 있다. 문제는 정부와 정치다. 작년 12월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세(CBAM)에 합의했을 때 유럽 철강 산업계가 반발했다. "수입 철강에 탄소국경세가 붙으면 유럽 철 가격이 상승해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유럽연합 의회는 "철강산업계가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탈탄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거나 탄소국경세 법조문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기후 목표를 낮추고, 유럽연합은 강화한다.우리나라 정부의 태도가 개별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까? 글로벌 시장에서 온몸으로 탄소국경세를 맞아야 하는 개별 기업들 사정은 어떨까?
작년 11월 '국회 1.5℃ 포럼'에 참여한 포스코 탄소중립 담당 임원은 "우리나라 철강기업들이 유럽연합에 2021년에 43억 달러(약 5조 6천억 원)어치를 수출했는데, 탄소국경세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유럽연합 철강회사들은 지난 30년 동안 탈탄소를 준비한 반면 포스코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저탄소 철을 만들려면 수소 환원 공법을 도입해야 하는데 그 비용만 68조 원이 든다고 한다. 그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 "탄소중립이 경쟁력에 긍정적"
▲ 지난해 12월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세(CBAM)에 합의했다. 사진은 로베르타 메솔라 유럽의회 의장이 13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열린 개회식에 참석하고 있는 장면. 유럽의회 회기는 이날부터 16일까지다. 2023.03.14 ⓒ 이준호
이런 사정은 포스코만이 아니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탄소국경세 대상 기업들은 정부 대책을 요청하고 있다. 이 기업들에 탄소국경세는 살고 죽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7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온실가스목표관리제 대상기업 400곳을 조사했는데 그중 68.8%가 탄소중립 추진이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작년 동일 조사 때는 34.8%였는데 단 1년 만에 탄소중립이 대세가 되었다. 정부와 경제단체의 무심함과 달리 상품을 팔아야 살 수 있는 개별기업들에 기후정책은 절박한 현실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어떤 해결 방안을 내놓고 있을까? 2월 16일 산자부는 '철강산업 발전 원탁회의'에서 2030년까지 저탄소 철강, 수소 환원 제철 등에 24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실은 68조 원이 필요한데 정부 대답은 2400억 원이다. 정말 미미하다. 이는 철강산업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한다.
탄소국경세 대상인 알루미늄,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고탄소 제조업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2022년 지구촌 GDP의 1.2%인 1조 1천억 달러(약 1430조 원)가 청정에너지 기술에 투자되었다 한다. 우리나라 2023년 에너지 전환 예산은 1조 2천억 원으로 GDP의 0.05%다. 지구촌 투자의 1천분의 1도 안 된다. 기후정책이 보이지 않는 나라다.
이처럼 기후정책의 부재가 계속되면 2030년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수출 붕괴와 해외 탈출로 일그러진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를 바꿀 신뢰할 만한 경로는 지금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과 수출에 의존해 온 대한민국은 위험하다. 우리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날 길은 있을까? 그 길은 기후 전략과 기후 세력화로 출발할 수 있다.
전략은 대담한 목표, 정의로운 원칙, 다양한 방법에 근거해야 한다. 우선 탈탄소는 대담해야 한다. 문제가 크다면 해결책도 커야 기업과 시민들이 믿는다. 우리나라도 매년 GDP의 1.2%를 투입해야 지구촌 평균에 겨우 도달한다. 아울러 탈탄소 산업 전환과 극단적인 기후 위기로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 노동자, 지역 주민들을 지원해야 한다. 이것은 기후 정의다. 기후 해법은 태양광과 같은 에너지 전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효율화, 토양 회복을 통한 온실가스 흡수, 녹색 도시, 기후 교육 등 100가지도 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아울러 전략을 실행할 기후세력화는 필수다. 정치의 기후세력화도 필요하나 시민들이 직접 만드는 녹색공동체도 필수다. 아파트, 마을, 직장이 문제해결을 위해 녹색공동체를 만드는 데 정부와 정치는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기후 전략과 기후 세력화가 없는 우리나라는 현재 전략적 위기다. 탈탄소 무역교리를 무시하고 고립된 갈라파고스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회복할지 선택할 때다. 당연히 대담하고 정의로운 기후 정책으로 살길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 오기출 / 푸른아시아 상임이사(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오기출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겸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7년부터 기후위기 현장에서 기후난민들의 자립을 지원해온 기후운동가입니다.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ICE)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유엔사막화방지협약 CSO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관심 영역은 ▲무역에 온실가스가 포함되면서 구성되는 세계질서 변화 ▲기후위기와 인권, 식량, 전쟁, 테러의 상호 관계 ▲기후위기로 땅, 공동체가 붕괴된 마을 공동체의 자립과 생태복원입니다. 주요 저서로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52시간 예외’ 소기업서 인용 추정
“건강권 위한 기준과 거리 멀어”
“유연근로제 도입 문턱 낮출수도”
유례없는 노동연장 비판 목소리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왜 ‘60시간’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근로시간 개편 관련 주 최대 노동시간으로 ‘60시간’을 공식화하자 이에 따른 의미와 영향에 대한 여러 추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60시간이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각종 기준이나 노동시간 단축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설명되지 않은 숫자이며, 기존 정부 개편안의 ‘주 69시간제’ 논란을 해소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윤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저는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 최대 69시간(주 6일 기준)이 가능한 근로시간 개편 방안의 ‘캡’(상한)을 60시간으로 하도록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60시간이라는 숫자가 나온 배경은 모호하다. 추정 가운데 하나는 현재 주 52시간제 적용을 유예받는 30인 미만 중소기업의 최대 노동시간을 참고했다는 시각이다. 30인 미만 사업장은 현재 계도기간이라는 점을 들어 최대 52시간제에 예외적으로 8시간 추가연장근로가 허용된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발표한 주 최대 ‘69시간’과 관련해 퇴근과 출근 사이 11시간 연속휴식을 넣을 경우 가능한 최대 노동시간으로, ‘연속휴식 없는 주 64시간’은 노동부의 뇌·심혈관계 과로사 관련 고시를 고려한 것으로 설명한 바 있다.
60시간이라는 새로운 연장근로 상한이 제시되면서, 연장 근로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방안의 틀은 흔들릴 처지에 놓였다. 다른 유연근무제도에 비해 사용자 입장에서 쓰기에 유리한 연장근로 몰아쓰기의 이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앞선 개편방안은 연장근로의 상한(최대 69시간)을 근무 일정을 미리 짜야 하는 등 도입 요건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탄력근로제(최대 64시간) 등 다른 유연근로제 상한보다 더 완화했다. 김성희 교수(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는 “60시간 제한이 노동자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이점이라면 그나마 연장근로를 활용해 다른 유연근무제도보다 더 쉽게 장시간 노동에 놓이지 않게 된 것”이라며 “다만 정부가 개편방안을 재검토하며 이번에는 다른 유연 근로제를 한층 쉽게 도입하도록 만들 우려는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 ‘60시간’ 역시 여전히 대통령이 말한 ‘건강권 보호’와 거리가 먼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박성우 노무사(직장갑질119)는 “갑작스러운 노동 시간의 증가 등의 기준이 포함된 현재 과로사 기준을 놓고 봐도 ‘60시간’을 건강 보호를 위한 조처라고 말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장시간 근로가 만연한 국가에서 법정 노동시간(4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더 유연하게 만드는 제도 변화는 유례가 없다”며 “정부가 여전히 국민들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식 장관에게 질의하는 전해철 환노위 위원장 ⓒ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중계화면 갈무리
이달 초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제 와서 해당 개편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봐야 한다고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말했다.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발족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논의하고 여당과 조율이 끝나 대통령실에도 보고한 뒤 발표한 정책인데, 아직도 윤 대통령의 의중을 모르겠다는 취지여서, 의아함을 자아냈다. 이에, 환노위 회의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정부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시간에 정부 정책이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서 수립되고 있는 것인지 묻는 데 시간을 쏟아야만 했다.
‘정부안 추진할 수 있는 건가?’
“대통령 말 파악해 봐야”
‘국무회의에서 보고 안 했나?’
“보고 했다”
‘그런데 왜?...이게 정상인가?’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장관은, 전해철 환노위 위원장이 “오늘 대통령이 주60시간 상한을 두어야 한다고 했는데, 발표된 정부 안을 확정할 수 있는 것이냐?”라고 묻자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정확히 제가 내용을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라고 답했다. 재차 전 위원장은 “대통령이 주60시간 상한을 지키라고 했는데, 고용노동부가 주60시간 이상으로 정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 장관은 “한번 확인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이달 6일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개편안이 주69시간 노동까지 법적으로 허용하는 안이어서 “과로사 조장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개편안 발표로 대통령 지지율까지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오자, 대통령실은 이달 16일 “윤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대통령이 정부가 발표한 안에 유감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5일 뒤인 21일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개인 생각에서 말한 것이지 논의의 가이드라인을 준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번복했다. 입장 번복이 있은 지 하루 뒤인 21일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는 생각은 변함없다”며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2주 동안 고용노동부,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핑퐁게임 하듯 최소 네 번 이상 입장을 번복했던 것이다. 이 같은 혼선 때문인지, 이 장관은 발표한 안의 기본 취지를 그대로 살려 추진해도 되는지 아니면 멈춰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은 이 같은 혼란을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이정식 장관에게 질의하는 윤건영 의원 ⓒ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중계화면 갈무리
특히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 6일 발표한 개편안을 용산 대통령실에 보고한 적 있느냐?”,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권고한 내용을 보고한 적 있느냐?” 등의 질문을 이 장관에게 했다. 이 장관이 답변을 주저하자, 윤 의원은 재차 “정확히 말하라, 다 알고 묻는 것”이라며 “다 보고하지 않았나? 비서관 통해서 대통령실 사회수석에게 보고하지 않았나?”라고 강조했다.
그런 뒤에야, 이 장관은 마지못해 “그렇다”고 답했다.
윤 의원은 “국무회의에서 보고하고, 대통령실 통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그런데도 엇박자 나고 좌충우돌 생기는 게 정상적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관이 더 잘 알겠지만,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완전히 실종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정책이 이렇게 가면 어떻게 되겠나? 이게 무슨 정부냐?”라고 비판했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도 “미래시장연구회, 당정협의, 국무회의 논의, 그거 다 거쳐서 3월 6일 개편안이라고 해서 비상경제장관 회의 후 장관 브리핑으로 발표한 내용 아닌가?”라며 “대통령이 합의했고, 대통령실의 사회수석이 합의했고, 여당과 수많은 논의를 거쳐 합의한 사안을 이렇게 한순간에 바꿔버리면 장관 그만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짚었다.
같은 당 우원식 의원도 “무슨 정책이 대통령 말 다르고 장관 말 다르고 대통령실 말 다른가? 이런 정책이 어디 있나? 국민 삶 두고 장난하나?”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 여론과 관련해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라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야 한다”며 “전임 정부는 수렁에 빠진 한-일 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고도 말했다. 22일 주요 아침신문들은 모두 윤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했지만 평가는 달랐다.
▲ 경향신문 3면 사진 갈무리.
한겨레는 1면 기사 <윤 대통령, 굴욕외교 비판을 ‘정치공세’ 치부>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역사·현실 인식을 거듭 드러내면서 역풍을 키우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지는 3면 기사 <대국민 여론전 직접 나선 윤 대통령, 남탓·갈라치기 논리만>에서는 “‘굴욕 회담’이라는 거센 비판을 의식해 여론전에 직접 나선 것이었지만, 일본에 거듭 양보를 언급하고 ‘국내 갈라치기 논리’를 펴며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인식을 노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윤 대통령의 특유의 갈라치기를 외교 사안에도 시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한겨레 1면 기사 갈무리.
사설에서는 “(윤 대통령은) 일본 요구를 다 들어주고서도 어떤 가시적 상응조처도 얻어내지 못한 외교 무능에 대해선 일말의 성찰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이 우리 사법부 판결에 합리적 대응 대신 수출규제 카드를 들고나온 건 혐한 여론에 편승하려는 국내 정치적 이유가 있었음을 도외시한 것이다. 관계 악화를 모두 우리 탓으로 돌리니, 윤 대통령의 자학적 인식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간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 사설 갈무리.
경향신문은 3면 기사 <‘선 조치 후 일 호응’만 반복…“국민 믿는다” 23분 일방소통>에서 “내용 면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부안 반대에 구체적 설명을 하기보다 비판 여론을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으로 바라보는 한계를 드러냈다”며 “형식 면에서는 공론화와 여론 수렴 과정을 생략한 ‘사후 소통’이라는 문제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사설에서도 “가해자 일본에 면죄부를 주면서도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해 ‘굴욕외교’ 비판을 야기한 것은 윤 대통령 자신”이라며 “정당한 분노를 ‘배타적 민족주의’로 치부하다니 독선적 인식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 경향신문 사설 갈무리.
반면, 조선일보는 1면 기사 <박정희·김대중처럼…尹 “한일, 미래로 가야”>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징용 배상 해법과 12년 만의 한일 정상회담이 정파적 이익이 아닌 국익을 위한 결단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 조선일보 3면 갈무리.
4면에는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85) 전 주한 일본대사 인터뷰를 실었다. 오구라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와 닮았다”며 “한국 대통령이 (동북아 안전보장을 위해) 대단히 전략적인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기사는 이를 두고 “나카소네는 당시 소련과 냉전 중이던 미국에서 한·미·일 연대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한국을 찾아 한일 양국 간 협력이 작동하는 상황을 만들었는데, 윤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구라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의 방일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좋았다”, “한국이 먼저 불신의 덩어리를 녹이는 해빙 메시지를 냈다”며 “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은 일본 정치의 ‘한국화’라는 악순환을 끊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4면 기사 갈무리.
이승헌 동아일보 부국장은 ‘오늘과 내일’ 칼럼에서 한일 문제 해결은 윤 대통령의 ‘새로운 승부처’라고 했다. 이 부국장은 “윤 대통령은 물러설 기색이 없다. 주변에는 ‘지지율이 한 자리로 떨어져도 한일 문제는 해결하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라며 “사람들이 윤 대통령에게 궁금해하는 포인트가 하나 있다.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한일 관계를 풀려는 속내가 무엇이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직 외교관에게 “단임제 특성상 역대 대통령은 돌고 돌아 외교안보 이슈에서 자기만의 승부를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연인지 필연인지 윤 대통령은 새로운 승부처를 맞이하고 있다. 그가 2023년 봄 미국과 일본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윤석열 정권 상반기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했다.
▲ 동아일보 칼럼 갈무리.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이번 국무회의 발언을 계기로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대국민 소통에 나서 주길 기대한다”며 “모두가 알다시피 한·일 관계는 지난 문재인 정부하에서 위안부 합의의 사실상 파기 등 역대 최악으로 전락했었다. (야당이) 자신들의 책임에는 일언반구 성찰도 없이 도를 넘은 정치 공세만 편다면 윤 대통령 말대로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 중앙일보 사설 갈무리.
혼선 거듭하는 노동시간 개편에 경향 “정부안 완전 폐기가 답”
윤 대통령은 21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두고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는 생각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주 69시간’ 정부안에 청년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노동시간 개편방안에 대한 혼란스러운 메시지와 오락가락 행보로 혼선을 보이고 있다.
▲ 동아일보 6면 사진 갈무리.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정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며 오락가락하는 사이 개편안은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로부터 반감을 사며 누더기가 될 처지에 놓였다”며 “기업엔 인력 운용의 숨통을 틔워 주고, 노동자에겐 근로시간 선택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개혁의 취지는 잊혀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과 부처의 정책 조율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정책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정부 스스로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오히려 개혁의 불씨를 꺼뜨리는 모양새”라고 했다.
▲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한겨레는 왜 ‘60시간’인가에 주목했다. 4면 기사 <60시간은 어디서 나온 숫자냐?…전문가들 “노동단축 역행”비판>은 “전문가들은 60시간이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각종 기준이나 노동시간 단축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설명되지 않은 숫자이며, 기존 정부 개편안의 ‘주 69시간제’ 논란을 해소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아울러 “60시간이라는 새로운 연장근로 상한이 제시되면서, 연장근로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방안의 틀은 흔들릴 처지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 한겨레 4면 기사 갈무리.
사설에서는 노동조건이 후퇴할 수 있는 중요 정책 논의에서 노동계가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정부 개편안대로 연장노동시간 한도의 관리 단위를 바꾸려고 해도, 노동자 개인 동의는 물론이고 노동조합 대표자 등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이해 당사자인 노사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성사시키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앞서 개편안 설계도 학계 위주로만 꾸려진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손을 거쳤다”고 했다.
경향신문 또한 사설에서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간 개편을 물건값 흥정하듯 하는 경솔함에 분노가 치민다”며 “노동과 노동시간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광범위한 의견 수렴도 없이 섣불리 개편안을 내놨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윤 대통령 스스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 아닌가. 노동시간은 ‘생명과 삶, 시간에 대한 권리’의 문제”라고 했다. “혼선을 수습하는 길은 노동시간 연장이라는 퇴행적 생각을 깨끗이 접고, 정부안을 완전 폐기하는 것뿐”이라고도 했다.
▲ 경향신문 사설 갈무리.
중앙일보는 6면 기사 <주 69시간 기절근무? 11시간 의무휴식 등 건강 3중 보호>에서 직접 주 최대 52시간→69시간으로 근로시간이 늘어나는지 따져봤다며 정부의 입장을 전했다. 기사는 “‘69시간 프레임’이 씌워진 것은 정부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언론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69시간까지 가능하다’는 말을 하면서”라며 “(정부 입장은) 일감 등 회사 사정 또는 근로자의 개인 사정에 따라 어떤 주에 더 일하고, 어떤 주에 덜 일할지 탄력적 선택으로 운용할 뿐 주평균 52시간의 틀은 유지된다는 설명”이라고 했다.
아울러 “실제 사업장에서 악용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관건은 쉴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라면서 “정부 개편안에는 변경된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때 과반수 노조와 협상하도록 해놨다. 이렇게 되면 MZ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포괄임금제부터 확실하게 정리해야 근로시간 체계 개편 방안을 설득할 수 있다”고 했다.
▲ 중앙일보 6면 기사 갈무리.
정부 ‘탄소중립 계획’에 조선일보 “문 정부 때문에 새 정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탄녹위)가 오는 2030년 달성해야 하는 전체 온실가스 감축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를 유지하되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 14.5%에서 11.4%로 낮춘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아 감축 책임이 큰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치를 축소한 것은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이번 정부안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는 강력한 실행 의지를 보이지 못한 채 산업계 요구를 사실상 수용하는 데 그쳤다. 향후 원전 발전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을 밝혔을 뿐, 구체적인 추가 감축 방안도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 경향신문 사설 갈무리.
한겨레는 1면 기사 <‘14.5%→11.4%’ 산업부문만 거꾸로 가는 탄소 감축>에서 “산업계의 현실적 부담은 덜어줬으나, 신기술이나 국외 사업을 통한 감축 등 불확실성이 큰 분야에 더 의존하게 됐다”며 “윤 정부 임기 동안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양은 미미하게 설정해, 차기 정부에 기후위기 대응 부담을 떠넘겼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평가했다.
▲ 한겨레 2면 기사 갈무리.
반면,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가 현 정부에 부담을 던져 놓았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文 터무니없는 온실가스 감축 약속, 궁지 몰린 한국>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산업 부문 목표 감축) 대신 신재생 발전과 해외 감축 부문에서 문 정부 때 계획보다 각각 400만t씩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더 쌓아야 한다. 이것은 문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온실가스 40% 감축’이란 총량 목표는 뒤로 후퇴시킬 수 없다는 국제 규칙 때문”이라며 “문 정부가 이전 감축 목표 26.3%에서 느닷없이 40%로 끌어올린 것부터가 합리적 근거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아울러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은 국제사회에 멋지게 보이고 다음 우리 정부와 기업, 국민에겐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던져 놓았다. 그러고는 퇴임 열흘 전엔 바다를 메꿔 공항을 만든다는, 누가 봐도 선거용인 초(超)고탄소 정책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며 “문 정부가 돌이킬 수 없는 대못을 박아버려 새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독도, 위안부’ 문제는 논의된 바 없다고 했지만, 2시간 30분가량 이어진 식사와 술자리에서 기시다 총리의 독도 언급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윤석열 정부의 굴욕·굴종 외교 논란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 1%가 돼도 할 건 하겠다”라던 그 기세대로 정면돌파를 결심한 모양이다.
귀국 후 첫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적 반일 정서를 ‘적대적 민족주의’에 비유하면서 “반일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이어 “한일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한국이 선제적으로 제거해 나간다면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며 한일 합의의 충실한 이행 의지를 밝혔다.
일본에 굴종한 굴욕적인 친일 외교라는 비판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
윤 대통령이 말한 “우리가 스스로 어떤 걸림돌을 제거했는지, 그리고 일본은 무엇을 호응해 왔는지”를 따져보고, 이것이 왜 굴욕·굴종 외교로 비판 받는지 살펴보자.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이해해달라” 요청, 윤 대통령 대답은?
NHK, 산케이신문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초당파 의원 모임인 일한의원연맹 측은 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한국이)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윤 대통령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중요시하겠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은 IAEA의 검증 절차를 거쳐 상반기 내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IAEA 검증 절차를 통과하기 위해 IAEA 예산 8.32%를 분담하며 175개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며 로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IAEA는 결과를 숫자로 공개만 할 뿐이고 이것을 해석하는 것은 각 나라의 몫으로 남는 조건에서 단지 ‘IAEA의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대답은 방류 4년 만에 제주 해안에 오염수가 도달하는 한국의 특수한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이날 대답을 일본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가장 가까운 해안의 한국이 마치 용인한 것처럼 떠든다는 데 있다.
대통령실은 일본언론에 공식적인 정정 보도 요청을 미루고 있다.
한국은 WTO제소 취하하는데,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복원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풀고,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하지만 3개 품목의 수출 규제 해제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완전히 회복하는 게 아니어서, 우리 정부의 WTO 제소 취하가 이르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일본은 한국 대법원이 2018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피고 기업이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리자, 2019년 7월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섰다. 같은 해 8월에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한국은 그해 9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에 대해 WTO에 제소했다.
말하자면 윤석열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피해국이 나서 일본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대신 배상하는 불법적인 굴욕 해법을 일본에 선사하는 것도 모자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를 복원하지도 않았는데 미리 WTO 제소를 취하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처럼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다리겠다는 것” 인데,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후 국산화에 매진해온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그냥 말라 죽으란 소리 아닌가.
친일 굴욕외교, 윤석열 퇴진 1번 사유로 급부상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정의구현사제단)이 지난 20일 저녁 신부, 수녀, 시민 등 1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검찰독재 타도와 매판 매국 독재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열었다.
이날 미사에서 전주교구 김진화 신부는 강론을 통해 “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그러나 단호하게 ‘헌법을 유린하고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았으니 그만 내려오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기왕 대통령에 선출됐으니 그가 정말 잘하기를 기도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소리쳐야 한다. 우리는 백성을 배신하고 일본에 머리를 조아리는 토착왜구를 임금으로 모실 수 없다. 정신 차리라고 외치자. 하느님은 우리 편이다”라고 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청사에 길이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고, 이태원 참사로 퇴진 목소리가 드높아졌을 때도 먼저 우리 생활방식을 뜯어고치자며 기대를 접지 않았으나, 오늘 대통령의 용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제단은 이어 “새 길이 두려워 뒤로 돌아가려 함은 만민공통의 관성이다. 더는 그럴 수 없다. 그렇게 해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서다. 하던 대로 할 수 없이 된 세상, 살던 대로 살아서는 망할 수밖에 없으니 근본부터 바꾸고 새로 출발하자던 3.1정신으로 오늘의 재난에 맞서자”고 호소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미사를 연 것은 윤석열 정부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제공 : 뉴시스 근로시간 개편안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정부의 입장이 연일 바뀌어 혼선을 더하고 있다. 노동자와 젊은층의 거센 반발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주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근로시간 상한을 정할 것을 지시했다고 발표했으나 다시 이를 뒤집는 입장이 나왔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2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60시간 상한캡’ 대통령 지시로 논의가 59시간으로 갈 거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뜻은 장시간 근로에 대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여론조사 등 여러 면에서 의견을 들어보라는 것”이라며 “근로시간 개편안 입법예고 기간인데 앞으로 규제 심사나 국회 논의 등 절차에서 근로자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입법예고된 정부안에서 적절한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으로 여기고 보완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주 최대 69시간제 여론 악화에 노동부 탓
이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른바 ‘MZ노조’를 만났으나 이들 역시 근로시간 연장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최대 주69시간까지 가능한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재차 달라진 의미의 대통령실 입장이 나온 것이다.
대통령이 ‘주60시간 이상 무리’라고 인식한다는 사회수석 발표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그렇게(장시간)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겠냐는 개인적 생각에서 말한 것이지 논의에 가이드라인을 준 것은 아니다”라며 “극단적으로 말해 의견수렴해서 캡(상한)이 적절치 않으면 고집할 이유는 없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하신 말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이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별도로 “윤 대통령이 근로시간 유연화 관련해 임금, 휴가 등 보상체계 불안 없도록 확실한 담보책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 2022년 5월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3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의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모두 발언 중 일부.
안녕하세요. 대통령님이 반도체에 관심은 많은데 아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기사를 통해 반도체에 대한 기본적인 것만 알려드린 게 작년의 일인데, 그 사이 과외를 좀 받은 것 같네요. 시스템반도체라는 걸 다 언급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발표한 내용을 보니 시스템반도체, 팹리스, 파운드리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대충 뭉뚱거려 시스템반도체라고 한 것 같아서 오늘 추가 과외를 하려고 합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테니 긴장말고 편안하게 따라오세요.
메모리반도체 vs. 시스템반도체
우선 반도체의 기본적인 분류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예전부터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로 나눠 왔습니다(이하 메모리와 비메모리). 메모리는 데이터 저장에 특화된 반도체로, 저장 방식에 따라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도 날아가는 휘발성(DRAM 등) 및 데이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비휘발성(NAND Flash 등)으로 또 구분이 됩니다.
메모리는 일반적으로 대량으로 생산해 놓은 후 판매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수요에 따라 가격변동이 큽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재고가 부족해 비싸게 팔았는데, 재고가 일 년치 가까이 쌓여 있는 지금은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업체들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진 상황입니다. 재고가 더 쌓이는 걸 막기 위해 일부 업체는 감산을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메모리는 한 회사가 설계와 생산을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종류는 그리 많지 않은데 대량생산이 필수적이거든요. 이렇게 설계와 생산을 함께 하는 회사를 종합반도체(IDM)회사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세계 시장의 57%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마이크론, 일본의 키옥시아까지 더하면 메모리의 90% 이상을 한미일의 특정 반도체 회사가 공급하고 있습니다.
▲ 반도체 소자의 종류와 구분 ⓒ KISTEP브리프. 시스템반도체
비메모리는 메모리를 뺀 나머지입니다. 반도체 시장의 30% 정도는 메모리, 나머지 70%는 비메모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메모리 시장이 훨씬 더 큽니다.
비메모리는 크게 시스템반도체와 광・개별소자로 또 나눌 수도 있습니다. 연산이나 제어 등 정보처리 기능을 가지는 반도체를 시스템반도체라고 하는데 컴퓨터의 CPU, 휴대폰의 AP, 전기자동차에 들어 가는 온갖 반도체들이 모두 시스템반도체입니다. 카메라에 쓰이는 이미지 센서는 광・개별소자로 분류됩니다. 요즘은 이 둘을 묶어 그냥 시스템반도체라 부르기도 합니다. 비메모리반도체가 곧 시스템반도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겁니다.
시스템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일반적입니다. 그냥 쉽게 다품종이라고 말했지만 고객사가 요구하는 성능, 전력, 보안, 안전성 등의 기준에 따라 셀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한 제품을 필요한 만큼 생산하는 게 시스템반도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걸 한 회사가 다 설계하고 생산할 수 없어서 설계는 팹리스 회사가 하고 생산은 파운드리 회사가 하는 식으로 분업화되어 있습니다. 시스템반도체는 시장이 크고 제품도 다양한데다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는 주문형 생산 방식이라 가격 변동이 그렇게 크지 않고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시장도 안정적인 편입니다.
파운드리의 경우 대만의 TSMC가 50% 정도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삼성전자인데 16% 정도 됩니다. 미국의 GF와 대만의 UMC를 더하면 세 나라의 네 회사가 전체 파운드리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메모리반도체도 그렇고 시스템반도체도 그렇고 한국, 미국, 일본, 대만 이 네 나라의 반도체 회사들이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핵심인 것입니다. 한국의 반도체, 자랑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시스템반도체의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쪽은 상황이 다릅니다. 팹리스 상위 열 개 회사를 보면 미국의 퀄컴과 엔비디아, 대만의 미디어텍, 중국의 하이실리콘 등 미국, 대만, 중국의 업체들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은 상위 50위로 확대를 해 봐야 겨우 LX세미콘(실리콘웍스) 하나가 포함되어 있을 뿐입니다.
앞에서 메모리반도체는 IDM이라 부르는 종합반도체 회사가, 시스템반도체는 팹리스와 파운드리가 분업해서 생산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고, 파운드리 역시 일정 수준의 위치에 올라와 있지만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인 팹리스만 도무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겁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투자 발표는 재탕에 삼탕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가 대충 이해가 되나요? 대통령님은 이번에 세계 최대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뜯어보면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이자 우리나라가 가장 취약한 부분인 팹리스에 대한 지원책은 별로 보이지 않고 민간기업들이 이미 계획해 놓은 투자계획만 취합해 놓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필요한 국가산단 만들겠다는 거 말고 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반도체 팹 공사가 진행 중인 삼성전자 평택 단지의 모습 ⓒ 삼성전자 유튜브
산업통상부 담당자에게 확인해 보니 향후 5년간 투자한다는 340조원은 현재 건설 중인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팹처럼 기업들이 기존에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이던 시설 투자 및 R&D 투자들을 단순 취합해서 더한 금액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건 시스템반도체뿐만 아니라 반도체 전체 투자금액을 다 더한 겁니다.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만든다는 300조원은 언론에 보도된 대로 2042년까지 (그 때 어떤 정부가 들어서 있을 지, 삼성의 회장은 바뀌지나 않았을지 모를 긴 시간이네요) 삼성전자가 짓겠다는 반도체 팹 다섯 개의 비용입니다. 10나노 이상의 최첨단 공정의 경우 팹 하나의 건설 비용을 대략 30조원 정도로 예상하는데 향후 20년에 걸친 장기 계획이다 보니 여유있게 300조원이라 발표한 겁니다. 이거 정부가 지어 주는 게 아니라 삼성전자가 투자할 금액을 정부가 발표한 것뿐입니다.
삼성전자가 300조원 투자해서 반도체 팹 다섯 개를 짓겠다는 발표를 왜 대통령님이 하는 지 전 이해가 잘 안 되네요. 그리고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내용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2019년 5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해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며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습니다. 2년 후인 2021년 5월에는 기존 133조원에 38조원을 추가해 2030년까지 총 171조원을 투자하겠다고도 발표했습니다. 이번에는 300조니까 2년에 한 번씩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면서 금액도 더해지고 기간도 늘어나고 있는 모양새네요.
삼성전자가 이렇게 시스템 반도체에 투자를 하는데, 아니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는 계속 하는데 아직까지는 특별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시스템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19년 1분기 19.1%에서 2022년 3분기 15.5%로 오히려 줄어들어 56.1%의 TSMC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주력제품이던 모바일AP의 경우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19년 12.0%에서 2022년 6%로 절반이 줄었습니다.
▲ 휴대폰에 쓰이는 모바일AP의 업체별 시장점유율. 대만의 미디어텍과 중국의 UNISOC가 점유율을 두배 가까이 늘이는 동안 삼성의 점유율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 STATISTA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호들갑과 상관없이 앞으로 20년간 300조원을 들여 만들겠다는 삼성의 반도체 팹 다섯 개가 한국을 세계 시스템반도체 1위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건조하게 말하자면 그냥 파운드리 생산 능력이 딱 그만큼 올라갈 뿐입니다. 파운드리는 팹리스업체들이 주문을 하지 않으면 생산할 게 없습니다. 한국에는 그 공장 다섯 개를 가동시킬만큼의 반도체를 주문할 팹리스업체는 없습니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같은 팹리스 회사들이 반도체 생산을 해 줄 파운드리 파트너로 삼성전자 대신 TSMC를 선택하고 있는 건 삼성전자에 주문을 감당할 팹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TSMC가 삼성에 비해 공정의 안정성에서 앞서고, 자사 제품이 없어 고객과 경쟁하지 않으니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없기 때문에 다들 TSMC를 찾는 겁니다. 한국에 팹리스 업체가 많아지고 그 회사들이 삼성전자와 동등한 파트너 자격으로 거래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한국의 시스템반도체가 세계 1위 자리를 넘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시스템반도체 지원한다면서 삼성전자만 지원?
한국의 시스템반도체를 메모리반도체처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파운드리 보다는 팹리스 쪽이라는 게 이해가 되나요?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세계 최대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관련 보도자료에 포함된 팹리스 관련 내용만 따로 찾아봤습니다.
▲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 조성" 관련 보도자료 중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 항목 ⓒ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국내외 팹리스·소부장 선도기업 최대 150개 유치 및 우수인재 확보" 라든가, "디자인하우스-IP-파운드리 협력 강화", "2035년까지 유망분야(전력, AI 등) 지원으로 매출 1兆 스타팹리스 10개社 육성" 등의 항목은 딱히 뭘 하겠다는 게 보이지 않는 일종의 립서비스 같은 내용으로 읽힙니다. 전력, 차량, AI 등 3대 유망 반도체 R&D에 총 3.2조원 지원한다는 건 어떤 식으로 지원한다는 것도 없고, 팹리스 쪽으로 얼마나 가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니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팹리스를 콕 집어 지원하는 항목은 "대기업-팹리스간 구매조건부 수요연계 프로젝트 지원(50~80억원/건)" 하나뿐입니다. 300조를 투자해서 세계 최대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웅대한 발표 옆에 이걸 놓으니 초라해 보이는 건 느낌 탓일까요? 2019년 기준 국내 팹리스 기업의 총 매출은 약 15억 달러 규모로 추정됩니다. 정부의 이 지원책이 팹리스 업계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닐까요?
구체적인 대책이 안 보이니까 이번 정부의 발표에 언론만 신이 났을 뿐 팹리스 업체 관계자들은 코웃음을 치고 실망의 한숨만 내쉬는 겁니다. 한 팹리스 회사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출판사와 인쇄기만 마련해 놓으면 작가들이 좋은 작품 쓰느냐며 팹리스에 대한 지원 없이 파운드리 팹만 마냥 짓겠다는 이번 정부의 발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대통령님, 그거 아십니까? 대통령님이 뜬금없이 삼성의 300조원 규모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을 대신 발표하던 날, 삼성은 300조원 팹에 대해서는 최대한 언급을 삼가는 대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60.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수도권에 공장부지를 이렇게 쉽게 확보하게 된 것에 대한 특혜 시비를 염려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를 준비하는 지금까지도 삼성의 자잘한 소식들이 모두 올라오는 삼성 뉴스룸에는 60.1조원만 있고, 300조원 반도체 투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 삼성 뉴스룸에는 300조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팹 투자 소식은 없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60.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 삼성전자 뉴스룸
수도권 집중현상과 지방소멸 문제에는 눈 감은 채 수도권에 대규모 국가산단을 조성하고 대기업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발표를 하는 중에도 "지방 균형 발전의 기조를 지방이 스스로 비교우위 분야를 선택하면 중앙정부는 이를 확실하게 지원하겠다"고 말하는 대통령님에 비해서 삼성전자는 최소한의 염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삼성 뉴스룸까지 압수수색 하지는 말구요.
이번 정부의 발표를 보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나 팹리스를 위한 구체적인 지원책 대신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핑계로 토건개발업자들의 오랜 숙원인 개발제한구역을 풀고,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무너뜨리고, 재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액공제를 확대하겠다는 게 주목적인 것 같습니다. 300조원으로 세계 최대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걸로 바람을 잡고, 실상은 수도권에 대규모 국가산단을 개발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너무 표나게 그러니까 새롭기는 한데 나라 망가지는 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지 모르겠습니다.
진정 한국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길 원한다면 온나라를 공사판으로 만들 국가산단 조성은 뒤로 미루고,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방안을 다시 처음부터 검토해 주기를 바랍니다. 한가지 더, 이런 국가적 과제를 검토할 때는 검사 출신들은 좀 뒤로 물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실제로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실무자들과 함께 하기를 권합니다. 공부 안 하고 급하게 발표한 게 너무 티나서 하는 말입니다. 다음에 또 뵙죠.
타워크레인으로 인양 중이던 2톤짜리 대형 거푸집이 바람에 날려 타워크레인 조종석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한 인천 계양구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20일 오후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고 관련 발언을 규탄하고 있다. 인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가 지난 16일 인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벌어진 타워크레인 사고 관련 원청의 작업지시가 보편적인 안전 기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설명하자 현장 노동자 등이 개별 현장의 다양한 위험성과 중대재해 예방의 원칙을 놓친 주장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타워크레인이 옮기던 갱폼(대형 거푸집)이 조종석을 덮친 이 사고는, 국토교통부가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안전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하는 등의 행위를 ‘태업’으로 규정하는 가운데 벌어져 논란이 일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19일 인천의 한 건설 현장에서 16일 벌어진 타워크레인 사고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이번 사고는 기계의 결함이나 무리한 작업지시로 인한 사고는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부 집단이 진실을 왜곡하고, 건설 현장을 정상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이라며 사고와 이후 논란을 일축했다.
원 장관이 언급한 사고는 지난 16일 오전 10시께 인천 계양구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으로 인양 중이던 2톤짜리 갱폼이 바람에 날려 타워크레인 조종석 앞유리를 덮치며 벌어졌다.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자칫 갱폼이 조종석을 밀고 들어와 조종사가 깔리거나 타워 자체가 넘어져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조종사 조아무개(41)씨는 사고 당일 <한겨레>에 “(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원청이) 태업이라고 할까 봐 말도 못하고 올라갔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고 당시 △사고 발생 장소에서 가까운 관측소에서 측정한 1분 평균 풍속이 초속 3.2m(작업중지 기준 초속 15m)에 그친 점 △작업 전 조종사의 안전조치 요구를 무시하고 작업을 지시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무리한 작업지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설명은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씨와 현장을 살펴본 건설노조 쪽의 설명이다. 현장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위험 요소와 이에 대한 노동자의 의견이 가로 막혀 벌어진 사고라는 것이다. 가령 노조는 당시 현장에 기상청 발표 평균 풍속과 무관하게 순간적인 ‘돌풍’이 불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원청 소속인 안전관리자도 조종사 조씨와 통화에서 돌풍을 인정했다고 한다. 더구나 사고가 난 건설 현장은 정부도 인정하듯 작업 반경이 좁아 인양물이 크레인 조종석과 부딪히기 쉬운 조건이었다.
이영훈 건설노조 인천·경기 타워크레인지부 조직차장은 20일 “정부가 태업을 판단한다며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어겼다고 판단될 경우 생계가 달린 면허 정지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걱정해 현장 노동자가 위험을 얘기하는 데 주저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12일 내놓은 ‘타워크레인 조종사 성실의무 위반 판단 기준’은 원도급사(원청)의 허락 없이 조종석을 이탈하거나 요청한 작업을 거부하는 경우 태업으로 보고 조종사 면허 정지의 근거로 삼는다. 조씨가 사고 당일 조종석에 오르기 전 ‘위험’을 경고할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정부가 “(원청이)안전조치 요구를 무시하고 작업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본 이유다. 조씨는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게 ‘갱폼 비닐을 찢어놔 달라’는 요청 정도만 했으나 해당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사고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조씨는 “(진실 왜곡이라는 정부 이야기는)내가 의도를 가지고 사고를 냈다는 얘기 같다. 죽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울먹였다.
이번 사고에서 정부가 단순 사실관계를 따지기에 앞서 사고가 벌어지기까지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맥락을 살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장은 “현장마다 위험 요소가 다양한 상황에서 위험을 체감할 수 있는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중대재해 예방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안전 보건 관리의 방향이었다”며 “태업을 구실로 안전 관리에 있어 노동자 의견을 배제하는 듯한 국토부의 태도는 현장의 안전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일 김진표 국회의장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선거제 개혁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국회의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 예산은 동결하는 것을 전제로 (의원 정수를) 30~50명 늘리는 안들이 나오고 있다. 80~90% 이상 의원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같은 달 22일 김 의장은 국회의원의 정수를 현행 300명에서 350명으로 늘리는데, 50명 모두 비례대표 의석으로 돌리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 제출했다.
지난 17일 정개특위 소위는 국회 전원위원회에 올릴 3가지 선거제도 개편안을 의결했는데, 이 중 2개 안에 의원 정수를 현재 300명에서 350명으로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여야 모두 의원 정수 확대에 동의했으나, 반대 여론을 의식했는지 지난 2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0일 최고위원회에서 “의원 수가 늘어나는 안은 상정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의원 정수를 늘리는 꼼수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1일자 아침신문들 1면.
▲21일자 동아일보 8면.
입장을 바꾼 국민의힘에 대해 한겨레는 6면 기사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20일 선거제도 개편안을 논의할 국회 전원위원회를 일주일 앞두고 돌연 의원 정수 확대는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 태도 변화 탓에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변수가 등장한 모양새”라고 했다.
한겨레는 이어 “국민의힘이 소위 의결 사흘 만에 뒤늦게 태도를 바꾼 것은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정개특위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한다는 비율은 57.7%로 동의한다는 응답(29.1%)보다 두배 이상 높았다. 비례의원수를 늘리는 안에 대한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21일자 한겨레 6면.
동아일보도 8면 기사에서 “주 원내대표는 의원 정수 의원 정족수 확대 조항이 유지되면 27일로 예정된 전원위를 보이콧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의원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판단에서다”고 보도했다.
이어 민주당은 여전히 의원 정수를 일부라도 늘리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반면 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하려면 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태도다. 앞서 민주당 김영배 이탄희 의원 등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함께 의원 정수를 늘리는 개정안들을 내놓은 바 있다. 민주당 정개특위 관계자는 ‘50석이 어렵다면 단 10석이라도 늘려야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의원 정수를 늘리면 정치 폐해 대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또 민주당은 여당이 전원위를 일주일 앞두고 의원 정수 확대 반대 뜻을 밝힌 것은 ‘정치 공세’로 보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대일 굴욕 외교라고 하는 불리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여당이)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제기한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21일자 동아일보 8면.
▲21일자 조선일보 사설.
국회의 의원 정수 확대 논의에 “염치가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의원 수 스스로 줄인 독일 의회, 우리 국회선 절대 못 볼 일> 제목의 사설에서 “독일 연방의회는 현재 736석인 의석 수를 630석으로 줄이는 선거법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집권 연립 3당이 주도한 이번 선거법 개정은 나라 규모에 비해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라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 70%가 반대하는 데도 연금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할 정년을 늘리고 연금 수령 시점도 늦추는 내용이다. 연간 100억 유로(약 13조 원)씩 연금 재정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라며 해외 사회를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한국에선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며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은 ‘비례대표 의원 수를 현재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특위가 내놓은 3개 안 중 2개도 의석을 350석으로 50석 늘리는 내용이다. 정치 개혁을 하겠다더니 자기 밥그릇부터 늘리려 한다. 정치 싸움과 입법 폭주, 비리 의원 방탄과 의원 특권 지키기에 몰두하면서 이런 말이 나오나”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등 야권은 독일을 본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의원 수를 100명 가까이 늘리자고도 했다. 여야가 앞다퉈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면서 선거제도는 누더기 야바위판이 됐다. 그걸 바로잡자고 선거법을 개정하는데 또 의원 수를 늘리고 연동형 비례대표도 검토하자고 한다. 염치가 없다”고 비판한 뒤 “여야는 마치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세비나 예산을 올릴 때는 의기투합한다. 이런 의원들이 스스로 보좌진을 줄이고 특권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은 절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60세 이상 취업자 증가했지만... 70대 경비원 극단 선택
19일 통계청 고용동향 조사 자료와 한국고용정보원 ‘2022 고용동향 특징’ 보고서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취업자 2808만9000명 중 585만8000명(20.9%)이 60세 이상이었다. 취업자 중 60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20%를 넘어선 건 196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로 처음이다. 이는 30대(18.9%)와 10·20대(14.2%)보다 많은 수치였다.
노령 취업 인구가 점점 반면 그냥 쉬고 있는 구직 포기 청년은 50만 명에 육박했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에서 “구직 활동, 진학 준비 등을 하지 않고 지내는 청년(15~29세)들이 지난달 50만 명에 육박하면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이들은 고용 통계 조사에서 ‘쉬었음’으로 집계되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무직으로 지내고 있지만,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통계상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21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이어 “2월 청년 취업자는 385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12만5000명이나 줄었다. 2021년 2월(14만2000명 감소) 이후 최대 감소 폭”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3면 기사에서 “현재 노인 일자리 대부분은 단기 단순노무직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취업인구 중 55세 이상 고령층 임시 일용직, 비임금 근로자 비중은 각각 27.8%와 37.1%로, 54세 이하 17.4%, 17.1%와 비교해 높았다. 정부 지원 노인 일자리 사업도 월 30시간 일하고 27만 원을 받는 공공형 일자리가 약 70%로 주류를 이룬다. 노인을 고용하려는 기업도 많지 않다. 고용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 상시 근로자 1인 이상 기업 중 정년퇴직자를 재고용하는 비율은 31.3%(2022년 6월 기준)였다”고 보도했다.
▲21일자 동아일보 3면.
이런 가운데 강남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70대 박아무개씨가 지난 14일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도 발생했다. 박씨는 숨지기 전 관리소장의 갑질을 폭로하는 호소문을 남기고 숨졌다.
한겨레는 9면 기사에서 “경비원은 수직적 위계 구조 제일 아래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파견자 신분이다. 이런 구조는 경비원을 갑질에 취약하게 만든다. 대치동 아파트의 경우 관리소장이 파견자 신분인 경비원에게 인사권을 부당하게 행사한 사례다. 한겨레가 확보한 이 아파트 관리소장과 경비대장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관리소장은 ‘내가 저번 12월부터 경비반장 교체하라고 했지, 근데 왜 아직도 교체하지 않았어’라며 경비대장에게 반말로 지시했다. 경비대장이 소장에게 ‘소장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했지만, 소장은 되레 ‘그게 왜 위반이냐’고 맞받았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후 녹취록에서 ‘교체하라’고 거론된 경비반장 서아무개씨는 소장의 지시대로 지난 1월20일 반장에서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 처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직했다. 숨진 박씨도 지난 1월부터 관리소장이 교체를 지시했던 대상이었다. 박씨는 지난 3월8일 반장에서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됐고 6일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한겨레는 “부당한 지시를 거절하기 힘들게 만드는 또 다른 구조는 ‘3개월 초단기 쪼개기 계약’이다. 최근 아파트 관리소들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관리비 절감 차원에서 1~2년 계약보다는 3개월 쪼개기 계약을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21일자 한겨레 9면.
▲21일자 경향신문 10면.
경향신문도 10면 기사에서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방지하겠다며 전국 100여개 지방자치단체가 아파트 노동자 인권 조례를 만들었으나 절반가량은 구체적인 사업이 뒤따르지 않은 선언적인 수준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20일 남우근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이 노원노동복지센터 연구용역을 수행해 작성한 <노원 아파트 노동자·주민 상생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9월 기준 245개 광역·기초지자체 중 아파트 노동자 지원 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100여곳으로 추정된다”며 “2020년 5월 서울 강북구 아파트에서 경비원이던 최희석씨가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각 지자체에서 관련 조례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남 연구위원의 분석 결과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의 절반 정도만 아파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