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상 최초 '코로나 선거'... 이대로면 또 세계표준

3개 키워드로 본 '사회적 거리두기' 총선... '방역 성적표' 어느 정도 반영될까

20.04.14 19:27l최종 업데이트 20.04.14 21:02l

 

21대 국회의원 배지 공개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국회 사무처에서 21대 국회의원 배지를 공개했다.
▲ 21대 국회의원 배지 공개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국회 사무처에서 21대 국회의원 배지를 공개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코로나19가 터지기 전만 해도 정치권은 '정부심판' '야당심판' 등의 이슈를 제기하면서 각자에게 유리한 어젠더를 총선에 장착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역대 선거와는 달리 정치권이 인위적으로 제조한 이슈는 바이러스 앞에서 맥없이 꺾였다. 대신 후보자와 유권자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했다. 객관적 심판의 거리가 유지됐지만, 속도는 여러모로 빨랐다.

선거를 앞두고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을 3개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키워드 ① 사회적 거리두기] 또 다른 세계 표준... 자가격리 투표

 

사전투표가 진행된 지난 10일과 11일, 마스크를 쓴 채 1미터 간격으로 늘어선 투표 행렬이 많은 언론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투표소 앞에서 손소독제로 손을 깨끗하게 씻은 뒤 비닐장갑을 끼었다. 기표소 앞에서도 투표 안내인들은 가급적 말을 삼갔고, 몸짓과 눈짓으로 1미터 거리 유지를 부탁했다.

35개 정당이 기재된 비례대표 투표용지도 48.1cm. '거리'로 표현할 만큼 길었다. 많은 선택지로 인해 잘못 찍었다며 투표용지를 다시 달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유권자들은 가급적 사람들이 밀집한 기표소에 오래 머물지 않도록 집에서 나올 때부터 마음 속으로 결정한 듯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질서'를 요구했고, 시간도 절약했다.

자가격리 수준으로 치러진 사전투표에 이어 15일은 최종 투표일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 중인 유권자는 5만명에 달한다. 이 중 투표 의향을 밝힌 자가격리자들은 1시간 40분 동안 합법적으로 거리로 나올 수 있다. 단, 다음과 같은 지침을 지켜야 한다.

"지자체에서 자가격리자를 1:1 동행해 투표합니다. 이를 집행하기 어려운 지자체의 경우, 자가격리앱을 통해 이동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GIS(지리정보시스템) 상황판으로 관리합니다. 이동경로에서 벗어나면 이탈로 간주하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앱이 깔리지 않은 분은 출발할 때 '출발한다'는 의사를 이메일이나 전화 등으로 담당공무원에게 통보하고 집에서 나섭니다.

이때 추정 가능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에도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이탈로 간주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거꾸로 집에 돌아갈 때도 집에 도착할 추정 시간이 있는데 도착했다는 통보를 해야 합니다. 통보가 없으면 역시 이탈로 간주하고 신고를 합니다." (박종현 범정부대책지원본부 홍보관리팀장)


투표 의사를 밝힌 자가격리자는 발열·기침 등의 증상이 없으면 15일 오후 5시 20분부터 7시까지 외출할 수 있다. 4.15 총선 출구조사는 자가격리자들의 투표 시간을 감안해 투표마감 15분 후인 오후 6시 15분에 방송 3사를 통해 공표된다.

한편, 프랑스와 영국은 지방선거를 연기했고 폴란드는 대선을 우편투표로 진행한다. 미국의 15개 이상의 주에서는 대선 경선이 연기됐다. 이 때문에 세계가 한국 총선을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데 일정정도 성공해온 가장 큰 중요한 키워드는 '봉쇄'가 아니라 '적절한 거리두기'였다. 2020년 4월 15일 우리는 방역선거라는 또 다른 실험을 벌인다.

코로나19 검진키트에 이어 '사회적 거리두기 선거'의 세계 표준을 만들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게시한 투표인증샷 유의사항이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게시한 투표인증샷 유의사항이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련사진보기

 
[키워드 ② 조용하다] "제발 좀 쓸데없는 소리 말라"

4월 14일 0시 기준 국내 확진환자는 하루동안 27명이 늘었다. 최근 10여일 동안 이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31일 0시부터 4월 14일 0시까지 2주간 신고된 778명의 확진환자 중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는 3.6%인 28명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은 인원이 5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 100명당 1명꼴로 음성 판정을 받은 셈이다.

이젠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14일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최근 신규 확진자 숫자가 계속 줄어들며 증가폭이 완연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러한 감소세가 코로나19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략) 내일은 총선으로 인한 휴일이고 날씨가 완연한 봄날이 계속되고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이 더욱 약화되지 않을지 방역당국으로서 걱정이 되는 상황입니다."

방역당국이 계속 경고음을 날리는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환자도 모르는 사이 무증상, 경증에서도 전염되기에 조용하고 빠르게 전파된다. 이번 선거도 바이러스의 특성과 여러모로 닮았다.

우선 선거 때마다 여론을 들썩이게 했던 '뜨거운 한 방'이 없었다. 미래통합당은 한 때 '텔레그램 n번방' 관련한 폭로가 있을 것이라고 군불을 지폈지만, 불발됐다. 지난 11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황교안 대표를 만나 "당 지도부에 '제발 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 달라'고 지시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막판에 차명진 전 미래통합당 후보의 세월호 막말도 터졌다. 과거 선거 때 이런 사건이 터졌다면 선거막판까지 여야간 격렬한 공방이 오갔을 법한 이슈다. 하지만 더 큰 공방으로 확전되지는 않았다. '조국 대전'을 치르려 했던 미래통합당의 의지도 제대로 관철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거리에서 시끌벅적한 후보자 선전전을 볼 수 없었고, 바이러스의 침투 때문에 인증샷을 찍기도 부담스러운 선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개인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정치권의 작은 공방도 모바일을 통해 빠르게 전파될 개연성이 많은 선거다.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온라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혔고, 여론 전파 속도를 높였다.

[키워드 ③ 코로나19 성적표] 바이러스가 마술처럼 짜놓은 선거 프레임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부근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연설을 하는 가운데,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지원을 위해 참석하고 있다.
▲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부근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연설을 하는 가운데,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지원을 위해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번 총선은 '코로나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당초 미래통합당 등 야당은 '문재인 정권 심판' 프레임을 짜려 했지만, 방역당국과 국민들이 일군 코로나19 대응 성과를 정권이 가로채고 있다고 비판 프레임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가령 부산 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진갑 국회의원 후보는 "문재인 정권이 코로나 사태를 악용하고 있다"면서 "국민들과 의료진이 대처를 잘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자신들이) 대처를 잘하고 있다고 그 공을 가로채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후보들도 비슷한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3개월여 동안 방역당국이 움켜쥔 코로나19 방역 성적표에 대해서도 이견을 제시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은 총선 하루 전인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선거가 다가오자, 의심증상이 있어도 X-레이로 폐렴이 확인돼야 코로나 검사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며 "총선까지는 확진자 수를 줄이겠다는 건데 선거 끝나면 확진자 폭증할 거라고 전국에서 의사들의 편지가 쇄도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중앙일보>가 보도한 "총선 다가오자 마술처럼 급감…" 기사의 의혹을 다시 재점화하려는 발언이다. (관련기사 : 총선 앞둔 '중앙'의 3가지 의혹 제기... 방역당국 "강한 유감")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이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런 보도가 나간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강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면서 "검사대상 환자의 예시로 원인미상 폐렴 등을 언급한 것에 불과하며, 의사의 의심에 따라 진단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음을 누차 설명드린 바 있다"고 밝혔지만, 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또 다시 의혹을 제기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날 또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대거 국회에 들어온 소위 '탄돌이'들이 지금도 이 나라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며 "이번에 코로나를 틈타서 청와대 돌격대 '코돌이'들이 대거 당선되면, 국회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이 나라는 진짜 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코로나19 방역 성과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14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내다본다며 기고만장하고 있다"면서 "나라를 망쳤는데도 180석이면, 이 나라의 미래는 절망"이라고 호소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180석 논란'을 부추기며 문재인 정권의 과거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미래 권력에 대한 우려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다. 

미래통합당은 이처럼 총선에서 코로나19와의 거리 두기를 호소하고 있지만, 표의 향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여당은 사사건건 국정에 발목 잡은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조용하고 빠르게 총선 프레임을 마술처럼 짜놓았다. 야당은 이 프레임을 깨려고 하고 있고, 여당은 지키려 하고 있다. 누가 덕을 볼 수 있을지는 곧 알 수 있다. 그 결과와 상관없이 코로나19에도 추가 확진자를 억제하면서 사전투표에서 보여줬던 역대 최고 투표율을 이어간다면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성적표를 거머쥘 수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분노의 DNA, 정의의 DNA, 그리고 연대의 DNA

<4월혁명을 증언한다⑦> 김동선 사월혁명회 회원
김동선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4.14  16:40:59
페이스북 트위터
<기획연재 - 4월혁명을 증언한다>

올해는 4월혁명 60주년입니다.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헌법의 첫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4월혁명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특히 민족민주운동단체들도 매년 수유리 4·19묘역에서 합동참배식하는 일회성 행사로 알고 있습니다.

사월혁명회(연구소)는 창립선언에서 “4월혁명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독재와 싸워…독재의 쇠사슬로부터의 해방을 구가하였고, 또한 외세에 의해 분단된 조국의 통일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여 민족자주이념을 올바로 세우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고 천명하였습니다.

4월혁명은 1960년 4월에 완결된 것도 아니며 오늘의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고, 민족통일이 달성되는 그날 비로소 그 이념이 정립되는 현재 진행형의 혁명입니다.

사월혁명회는 올해 4월혁명 6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월15일 민족민주운동단체들과 함께 “4월혁명60주년행사준비위”를 구성하여 4월혁명의 의의와 과제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사월혁명회

 

김동선 / 사월혁명회 회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 김동선 사월혁명회 회원,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사진제공 - 사월혁명회]

1960년 3월 15일, 그날은 제4대 정부통령 선거일이었다. 나는 그 당시 대학(서울대 문리대 독문과) 재학 중이라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투표를 위해 그 전날 인천 소래에 있는 본가에 가 있었다.

투표일에 동네 반장이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을 나에게 소개하면서 셋이 같이 투표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왜 그래야 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투표장에 들어서니 셋이서 한 조가 되어 같이 투표하도록 투표 부스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세 사람 사이에는 칸막이가 없었다. 그래서 가운데 칸에서 투표하는 조장이 좌우의 투표자가 누구를 찍는가를 쉽게 감시할 수 있었다. 이것이 후에 알려진 그 악명 높은 3인조, 5인조 투표다.

나는 순간 격분하여 소리쳤다.
“이게 무슨 비밀선겁니까? 민주국가에서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가 보장되는데 이게 무슨 비밀선겁니까? 공개선거이지. 이러고도 하늘이 두렵지 않소!? 당신네들이 이렇게 불의한 일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까? 이 나라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 현장에는 선거관리위원, 동사무소 직원, 경찰 등 여러 사람들이 배석해 있었지만 그들은 나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나의 기세가 매우 거세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말이 백번 옳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들 중 제일 높은 사람이 내가 도대체 누구냐고 묻자 대학생이라고 말하자 그냥 돌려보내라고 이르고는 별 해코지는 하지 않았다.

그들이라고 어찌 자기들이 저지르는 일이 부당하고 불법이며 정의에 반한 짓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단지 하수인일 뿐이다. 죄는 더 높은 곳에 있다. 권력을 결코 놓지 않겠다는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이다.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젊은 지식인인 나는 절망했고 고뇌는 깊었다.

정부통령 선거라지만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는 선거운동 기간 미국에서 위 수술을 받다가 운명하였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 이승만은 자동 당선된 셈이다. 그런데 앞서 제3대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대통령 후보 신익희 씨가 운명하였다.

야당 대통령 후보 두 분이 연달아 돌아가시다니! 이 나라가 민주주의 할 운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늘이 우리를 돕지 않는구나! 국민들은 탄식하고 개탄하였다.

제4대 선거는 결국 부통령 후보 만송(晩松) 이기붕과 운석(雲石) 장면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선거를 얼마 앞두고 각 신문마다 이기붕을 찬양, 칭송하는 글이 매일 실렸다. 참으로 너무나 치졸하고 노골적인 자유당 정권의 행태였다.

그즈음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있었는데 그 시위에 참가했던 청년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그의 얼굴에는 최루탄이 박혀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 처참하고 끔찍했다. <동아일보>를 위시한 각 일간신문에 그 시신의 사진이 게재되었다. 국민들은 크게 분노하였다.

1960년 4월 19일 바로 그 전날에 고려대 학생들이 시내로 진출하여 반정부 시위를 하였는데 그때 땃벌떼 정치 깡패들이 학생들을 각목으로 무차별 폭행하여 많은 학생들이 다치고 부상당했다. 시민들은 분노하였다.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다음 날 대학에 가는 중인데 대광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내에서 단체로 시위하는 소리가 신설동까지 크게 들려왔다. 그들은 시내로 뛰쳐나오려 했지만 경찰들이 문을 막고 못나오게 방해했다.

동숭동 대학에 이르렀을 때 교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경찰들이 겹겹이 문을 막고 있었다. 교정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이미 와 있었는데 잠시 후 그들은 힘을 합쳐 문을 밀쳐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경찰은 곳곳에 저지선을 치고 막으려 했지만 노도와 같은 학생들의 기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화동 종로4가를 거쳐 광화문에 도달했을 때 거기엔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성난 시민들의 최후 진출 목표지점은 이승만이 있는 경무대(현 청와대)였다.

중앙청(현 경복궁) 정문에서부터는 더욱 강력한 철망 저지선이 구축되어 있었지만 의로운 시민들이 하나하나 분쇄해 길을 텄다. 경무대 코앞인 효자동까지 데모대는 진출 집결했다. 경무대 정문 바로 앞에 경찰은 최후의 강력한 저지선을 구축했다.

   
▲ 경무대 앞으로 몰려든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했다. [자료사진 - 사월혁명회]

효자동에서 경무대로 꺾여 들어가는 길목에 시위대에게 최루액을 뿌려대던 소방차가 운전수가 도망간 채 멈춰 서있었다. “소방차 운전할 사람 없소?”라고 누군가 소리치자 한 사람이 “나요”하고 나서서 그 차를 몰기 시작했다. 나는 소방차 뒤쪽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매달려 경무대 바로 앞에 다다랐다.

그때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의 최루탄 발사 소리와는 다른 총탄의 발사 소리였다. 데모대는 깜짝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옆에서 총에 맞은 시민들이 팍팍 쓰러졌다. 나도 정신없이 달아나다 근처 민가에 숨었다. 주인의 고마운 배려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경찰들이 집집마다 뒤져 시위꾼들을 잡아갔는데 나도 발각되어 결국 잡히고야 말았다. 정권의 경찰들은 잡혀 온 우리들에게 “이 새끼들은 빨갱이보다도 더 나쁜 놈들이야”라고 욕하며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우리들은 트럭에 태워져 고개도 못든 채 깜깜한 칠흑 속에서 어디론가 실려 갔는데 알고 보니 서대문 형무소였다. 넓지 않은 감방에 수십 명이 갇혀있었다. 식사를 제공받는데 꽁보리밥에 반찬이라곤 고추장 하나뿐이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 나는 도저히 그것을 먹을 수 없었다. 무려 3일간 아홉 끼를 굶었다. 나중에는 앉아있을 힘이 없어서 그냥 누워만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실제 그랬다.

감방에 잡혀있는 동안 아버지는 내가 죽지 않았나 4·19 사상자들이 누워있는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시신을 가려놓은 천을 일일이 들춰보고 확인하셨다고 한다.

3일이 지나자 갇혀있던 우리는 의외로 빨리 풀려났다. 잡혀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들을 더 이상 가둬둘 감방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풀려나 집에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그야말로 죽은 자식 돌아온 듯이 기뻐하셨다.

   
▲ 대학 교수들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시위에 나섰다. [자료사진 - 사월혁명회]

계엄령이 선포되어 시위가 금지 되었다. 그런데 4월 26일 교수들의 시위가 있었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 그들의 용기있는 외침이 시위의 불을 다시 살려냈다.

며칠 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국민이 원한다면….” 이라는 조건을 구차하게 붙이고 말이다.

국민이 이겼다. 시민이 승리한 것이다. 12년의 독재가 종식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몇 달 후 편한 마음으로 군에 입대하였다. 그런데 다음 해 5월 16일 느닷없이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4·19 후 나라가 한동안 각 집단, 단체들의 많은 데모로 혼란에 빠졌었는데 여당인 민주당은 신, 구파로 나뉘어져 서로 권력투쟁에 몰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데모로 이룩한 민주정부이니 그 데모를 물리적으로 막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 혼란상태가 대부분 진정될 무렵 군사 쿠데타라니…. 부패한 이승만 독재시대에는 꼼짝 못 하더니….

이렇게 4월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는가? 너무나 허탈했다. 그 후 군부세력은 18년, 아니 무려 25년의 독재를 자행하였다.

4월혁명 60주년인 지금, 80여 년의 현대를 몸소 살아온 나에게 우리 시민, 우리 사회에 대한 나의 기본 감정은 한마디로 증오애(憎惡愛)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외형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루었지만 실제 정치는 정파적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이 되풀이 되고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지만 원칙과 정도를 벗어난 행태가 비일비재하다.

요즈음 여야를 막론하고 소위 꼼수정당, 위장정당인 비례정당을 만드는데 분주하다. 편법,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자기당 국회의원 수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여 제1당이 되겠다는 열망에 분주하다.

경제는 어떠한가?
양극화의 정도가 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하루에도 4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자살률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사회적으로는 지역감정, 지역주의가 판을 치고 보수 진보의 진영 논리가 나라를 가른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현실을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의 현대를 냉철히 돌아볼 때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1960년 4월혁명,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민주항쟁, 그리고 2017~18년의 촛불혁명. 우리 시민들은 정치사회적 불의, 부정이 극에 달했을 때 결코 좌시하거나 체념하고 굴종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연대하여 분연히 불의한 정권에 맞서 희생을 무릅쓰고 끝까지 투쟁하여 결국 승리를 쟁취했고 그래서 결국 정의를 실현하였다. 우리에게는 분노의 DNA, 정의감의 DNA, 그리고 연대의 DNA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다.

 

[관련기사]

김동선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백색테러 발생! 오세훈 후보 낙선운동하던 여대생을 남성이 폭행

하인철 통신원 | 기사입력 2020/04/14 [21:02]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소속 여대생이 오세훈 후보 또는 미래통합당 지지자로 보이는 남성에게 3차례나 폭행을 당했다.

 

지난 3월 말부터 대진연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는 오세훈 후보에게 국회의원직 자격이 없다며 한 표도 주지 말자는 낙선운동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오세훈 지지자와 선거운동본부의 많은 방해가 있었다. (관련기사 : http://www.jajusibo.com/50160)

 

14일 건대입구역 사거리에서 대진연 회원은 "120만 원 금품 제공,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는 오세훈 후보에게 한 표도 주지 맙시다", "오세훈 후보를 떨어뜨릴 당선 가능한 후보에게 투표합시다"라고 호소를 했다. 시민들과의 충돌이 우려된 광진경찰서 등에서도 일찍부터 와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낙선운동을 하던 도중 오세훈 후보 또는 미래통합당 지지자로 보이는 시민에게 폭행을 당했다. 근처에 있던 경찰들은 사건 현장을 보지 못해 현장에서 바로 검거를 하지 못했다.

 

  © 하인철 통신원

▲ 대진연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피해자의 상해 사진(좌)과 상해범의 사진(우)  © 하인철 통신원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경과는 다음과 같다.

 

"오세훈 후보 낙선운동을 하던 도중, 폭행범이 와서 저를 때리고 가운뎃손가락 욕을 했다. 이후 기록을 남기기 위해 촬영을 하며 도망가는 폭행범을 따라가던 도중 지하로 내려가는 폭행범을 따라가는 게 무서워 올라왔다. 그 후 폭행범이 다시 위로 올라와 저를 넘어뜨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물통을 빼앗아 이마를 여려 차례 때렸다. 그 후 다시 역사 안으로 도망가버렸다"라고 증언했다. (관련 영상 : https://youtu.be/wse_dbQGVcw)

 

피해자가 찍은 영상을 보면, 폭행범이 갑자기 다가와 몇 차례 때린 뒤 도망가며 "빨갱이 X"이라고 소리를 지른 뒤 도망가던 다시 올라온다. 이후 물통으로 여러 차례 가격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영상 : https://youtu.be/d9qq3wg_XGA)

 

이후 피해자는 경찰에게 진술했다. 경찰 측에서는 "왜 우리 가까이서 (낙선운동을) 하지 않았느냐"라며 오히려 폭행범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대진연 회원들의 공분을 샀다.

 

현재 피해자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안정을 취하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국이 옳았다... 마스크=콘돔" 유럽 지식인들의 '반란'

[임상훈의 코로나19 글로벌 리포트] 전면통제 프랑스에서 뒤늦게 번지는 마스크 논쟁

20.04.14 07:27l최종 업데이트 20.04.14 07:27l

 

 <더 디플로매트>(the Diplomat)에 실린 '코로나바이러스의 얼굴, 안면 마스크'(The Face of the Coronavirus: Face Masks).
▲  <더 디플로매트>(the Diplomat)에 실린 "코로나바이러스의 얼굴, 안면 마스크"(The Face of the Coronavirus: Face Masks).
ⓒ 더 디플로매트

관련사진보기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방역에 도움이 되는가?

요즈음 프랑스 사회에 돌고 있는 화두 중 하나다. 마스크 착용과 관련해 논쟁이 불거진 것이 최근만의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초기부터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그 양상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코로나19 피해가 거의 중국에 집중되던 1월 말, 아시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영어권 월간 시사매체 <더 디플로매트>(the Diplomat)에 아시아인들의 마스크 착용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얼굴, 안면 마스크'(The Face of the Coronavirus: Face Masks). 한국을 포함한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10명을 넘지 않던 때였다. 자연히 이 질병에 대한 모든 관심이 중국으로 집중되면서 중국인에 대한 기피와 거부감, 심지어 조롱이 이어졌다.

이 기사는 신문이나 시사매체에 코로나19 관련 기사가 나올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자료사진이 마스크를 착용한 아시아인이었다면서, '마스크 쓴 아시아인의 얼굴'이 코로나19 사태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이미지가 코로나19를 상징하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외국인 혐오, 인종 차별을 조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롱 & 차별] "마스크 쓰면 범죄자"

 

문화적으로 동아시아와 서유럽은 마스크에 대한 기존 관념이 다르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질병과 관련이 없어도 신분 노출을 꺼리거나 화장기 없는 얼굴을 가리고 싶어서, 또는 심지어 패션의 일부로 마스크를 사용한다. 반면 서유럽 국가에서는 이를 질병이 있거나 얼굴을 감추기 위한 의도로 인식한다. 그런데 얼굴을 감추기 위한 의도로 마스크를 착용하면 그것은 범죄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많은 서유럽인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 유럽인들은 중국에서, 그리고 얼마 후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소식과 함께 전 국민적 마스크 착용의 이미지를 접하고는 엄청난 공포를 갖게 됐다.

문제는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후다. 한국의 발 빠른 대처와 대대적 검사 전략으로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가 방역당국의 통제권 안으로 들어올 무렵, 이번에는 서유럽 국가들의 방역망이 뚫리기 시작했다. 물론 마스크 착용 여부가 모든 것을 갈라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는 코로나19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이 무기력해지면서 서유럽인들 사이에서는 마스크라도 착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번져갔다. 마스크에 대한 문화적 선입견도 질병에 대한 공포 앞에서는 희석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스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조금씩 변해갈 즈음 프랑스 정부는 느닷없이 마스크 판매 금지령을 내린다. 3월 초, 프랑스에서는 약국을 포함해 마스크 판매점 어느 곳에서도 마스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스크 착용은 의료진과 중증환자에게만 필요하고 일반인이나 경미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하다는 방역당국의 공식 입장이 발표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후 프랑스의 모든 신문, 매체, SNS에서는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에 대한 논박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일대에 시민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전일 대비 100명이 증가하여 9,314명이 되었다.
▲  19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일대에 시민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의심 & 불안감] "마스크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4월에 들어서면서 마스크 착용과 관련한 눈에 띄는 변화가 프랑스 사회에서 감지되기 시작한다. 그때까지 대세를 이어오던 마스크 착용 무용론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방역 성공사례가 알려지고 회자되면서 마스크 착용이 항바이러스에 도움이 됐을 거라는 인식이 퍼진 것도 한 몫 했다. 또한 프랑스 정부가 견지하는 마스크 무용론의 저의를 의심하는 전문가, 지식인들의 비판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3월 28일 프랑스의 온라인 일간지 <꽁트르뿌앵>(Contrepoint)에 기고문을 낸 그르노블 매니지먼트 스쿨 샤틀랭 교수는 "(한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심각할 당시) 한국 정부의 대국민 마스크 공급 정책은 실수였다는 인식이 프랑스에 많았는데, 이제는 프랑스 정부의 과실과 모순적인 대응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입맛에 맞을 때만 한국으로부터 영감을 얻으려는 프랑스'(La France s'inspire de la Corée... quand ça l'arrange). 샤틀랭 교수는 "한국인들은 적절한 양의 마스크를 신속하게 제공받는다"면서 한국 국민들이 평소 마스크 착용을 하는 습관이 있는 것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필요한 분량의 마스크를 확보해 놓았다는 의미도 된다"고 평가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3월 28일 프랑스의 온라인 일간지 <꽁트르뿌앵>(Contrepoint)에 실린 샤틀랭 교수의 '입맛에 맞을 때만 한국으로부터 영감을 얻으려는 프랑스'(La France s'inspire de la Coree... quand ca l'arrange)
▲  3월 28일 프랑스의 온라인 일간지 <꽁트르뿌앵>(Contrepoint)에 실린 샤틀랭 교수의 "입맛에 맞을 때만 한국으로부터 영감을 얻으려는 프랑스"(La France s"inspire de la Coree... quand ca l"arrange)
ⓒ 꽁트르뿌앵

관련사진보기

 
프랑스 정부는 아직까지 마스크 무용론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미 전문가, 지식인 그룹에서는 정부가 필요한 분량의 마스크를 확보해놓고 있어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샤틀랭 교수는 같은 기고문에서 프랑스 정부가 마스크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 이유는 프랑스가 마스크를 제작 생산해 국민들에게 공급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프랑스가 한국처럼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사용하게 했다면 현재와 같이 계엄령 수준의 전면적 통행금지와 모든 상업시설 폐쇄와 같은 극단적 조치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고집스런 프랑스 정부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국민들의 마스크 착용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일반 국민들의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10일 프랑스의 보도전문채널 LCI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76%가 마스크 착용과 관련해서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Coronavirus : 76% des Français estiment que le gouvernement leur a menti sur les masques de protection)
  
이동금지령 위반 단속하는 파리 경찰 프랑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에 이동금지령을 내린 가운데 마스크를 쓴 경찰관들이 17일(현지시간)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서 차량 운전자들의 이동 증명서를 확인하고 있다.
▲ 이동금지령 위반 단속하는 파리 경찰 프랑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에 이동금지령을 내린 가운데 마스크를 쓴 경찰관들이 17일(현지시간)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서 차량 운전자들의 이동 증명서를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AP

관련사진보기

 
현재 프랑스는 대대적인 전 국민 통행금지 조치 중이다. 모든 국민은 허가 없이 집밖으로 나갈 수 없다. 간단한 산책과 운동은 허락되지만 거주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시간 내에서만 허용된다. 그것도 혼자 하는 운동만 허용되고 조깅도 둘 이상 같이 할 수 없다. 식료품과 필수용품, 의약품을 사러 동네 가게나 약국에는 갈 수 있지만 역시 이동시간이 한 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어떠한 경우든 집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허가증을 소지해야 한다. 이 모든 조치는 도로를 감시하는 경찰 공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13일 저녁 8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인데, 4월 15일까지로 예정된 이 같은 조치들을 다시 2주간 연장할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 모든 조치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논쟁 격화] 비판대 오른 '마스크 무용론'

강력한 통행금지 조치도 언젠가는 해제가 될 것이다. 그것이 4월 말이 될지 5월 중순이 될지, 5월 말까지 이어질지 현재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문제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취해진 조치임에도, 이러한 극단적 조치로 인해 경제적 타격이 불 보듯 뻔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보장됐다고 판단할 때, 방역이 당국의 통제권 안으로 들어왔다고 판단될 때 전 국민 통행금지 조치를 해제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통행금지 해제 조치는 전염병이 완전히 사라진 후가 아니라 어느 정도 가라앉을 무렵에 이뤄질 것이라는 말이다.

프랑스 사회에서 마스크 무용론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 국민 격리가 해제되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국민들에 대한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온 국민이 갑자기 거리로 나오게 되면 적어도 마스크는 착용을 해야 하지 않을까?
 
 뮐루즈 야전병원에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뮐루즈 야전병원에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EPA

관련사진보기

 
프랑스 정부의 계속되는 침묵 속에서 지식인의 마스크 무용론에 대한 비판은 이어진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에서 사회인류학을 연구하는 프레더릭 케크 박사는 라디오 방송 <유럽1>과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혁명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논쟁에 뛰어드는 지식인 그룹은 의료분야 전문가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국경도 넘어섰다. 감염학 전문가인 스위스 제네바대학교 샤바농 교수는 4월 12일 프랑스의 한 매체와 나눈 인터뷰에서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위한 콘돔과도 같다"고 지적했다. 역시 33년 경력의 의사 뤼도빅 지메네즈도 벨기에의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의 마스크는 에이즈의 콘돔과 같다"고 지적한다.

이쯤 되면 프랑스 정부도 답을 내놓아야 되지 않을까? 훌륭한 의료체계와 수준을 갖추고도 신종 바이러스 방역에 실패한 초기의 실수를 만회하려면 말이다. "부먹과 찍먹 사이에 고민하느니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먹으라"는 한 개그맨의 명언이 있다. 격리 해제 후 마스크를 쓰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논쟁할 시간에 무엇이 훌륭한 선택인지 판단해야 할 때다.

프랑스에는 헌법에까지 명시된 '사전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라는 것이 있다. 과학적으로 확실치 않더라도 그것이 야기할 수 있는 가상의 피해가 거대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제한토록 한다는 원칙이다. 뒤집어 생각해도 같은 논리다. 과학적으로 확실치 않더라도 그것이 막을 수 있는 효과가 거대하고 효과적이라면, 그리고 그 반대의 위험이 없다면, 그렇다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어 3번째 개학연기로 인해 학교를 가지 않은 어린이들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공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공원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진보정당에 계급투표” 호소

  • 기자명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0.04.13 23:55
  •  
  •  댓글 0
  •  
  •  

“노동자를 국회로… 노동자 민중 직접정치 실현 기회”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 : 뉴시스]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 : 뉴시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2천5백만 노동자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호소문에서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려면 보수정당, 엘리트 정치인을 믿지 말고 우리 노동자들을 국회에 보내야 한다”면서 “2500만 노동자들은 진보정당을 선택하는 계급투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와 보수정치인들이 2500만 노동자 표를 얻고자 온갖 지원을 입에 담고 있”지만, 총선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힘없는 노동자에게 집중”될 것이며, “전쟁용 미국산 무기를 살 돈은 있어도 노동자 민중을 위해 쓸 돈은 없다고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음은 김명환 위원장 호소문 전문이다.

민주노총 100만 조합원동지 여러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정규노동자들은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정규직 역시 임금이 깎이고, 무급휴직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유통, 관광, 콜센터, 교육, 병원 등 전체 서비스업이 코로나 19로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이 충격은 총선 이후 전체 산업으로 파급될 것입니다. 특히 하청기업, 영세기업,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그 심각성이 IMF사태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당장 국가가 나서 일자리를 지키고 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생색내기용이 아닌 실질적인 최소생계비를 지급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는 동안 세금으로 지원받은 기업이 해고를 못하도록 특별조치를 해야 합니다.

국가와 정치인은 노동자 민중,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정부와 보수정치인들이 2500만 노동자 표를 얻고자 온갖 지원을 입에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총선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힘 없는 노동자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전쟁용 미국산 무기를 살 돈은 있어도 노동자민중을 위해 쓸 돈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부를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 재벌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데, 정부와 보수정당이 그런 법을 만들 리가 없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2,500만 노동자 여러분!

코로나19로 인해 벼랑 끝에 몰려 있는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려면 보수정당, 엘리트 정치인을 믿지 말고 우리 노동자들을 국회에 보내야 합니다. 100만 조합원뿐만 아니라 2500만 노동자들은 진보정당을 선택하는 계급투표를 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이번 4.15총선에서 노동존중 국회, 적폐청산 국회, 반전평화 국회를 만들기 위해 노동당, 민중당, 정의당을 지지하고, 108명의 후보를 추천하였습니다.

총선 시기에 터진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위기를 노동자 민중을 위한 직접정치를 실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 근로기준법을 적용시키는 전태일법을 우리의 손으로 만듭시다!

정당민주주의를 철저히 짓밟은 1회용품 비례 전문 꼭두각시 정당을 심판하고 수구보수와 친미냉전 세력을 청산합시다!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고 굴욕적인 한미동맹을 줏대 있는 한미관계로 전환합시다!

4월 15일, 100만 민주노총 조합원과 2500만 노동자의 단결된 힘으로 진보정당이 승리할 때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2020년 4월 13일
민주노총 위원장 김명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후쿠시마 농수산물 방사능검사 결과 분석해 보니…

[[함께 사는 길함께 사는 길] "위험한 후쿠시마, 오염에 오염을 더해서는 안 된다"

후쿠시마 식품 안전하지 않아

일본 정부는 2020 도쿄올림픽을 후쿠시마 부흥에 방향을 맞추면서 안전과는 거리가 먼 계획을 무리하게 추진해왔다. 방사능 오염이 여전히 심각한 후쿠시마 현지에서 성화 봉송을 출발하고, 야구 경기 등을 개최하며, 후쿠시마와 그 주변 식품을 선수촌에 공급하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이는 일시적으로 후쿠시마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게 할지는 모르겠으나, 오염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산 농수산물의 방사능오염 실태를 봐도 아직 후쿠시마 사고가 회복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환경운동연합과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일본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2019년 농수산물 방사능검사 결과를 분석했다. 일본 정부가 2019년 총 37만6696건의 농수산식품을 검사한 결과 6496건에서 방사성물질 세슘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종류별로 살펴보면, 농산물은 17.4퍼센트, 수산물은 7.4퍼센트에서 세슘이 검출됐다. 가공식품은 5퍼센트, 야생육은 44.3퍼센트에서 세슘이 검출됐다. 2018년 실시한 검사 결과와 비교해도 세슘 검출 비율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세슘이 높게 검출된 품목을 살펴보면 농산물에서는 버섯에서 기준치(100Bq/kg)의 6배를 초과하는 670Bq/kg이 검출됐다. 두릅에서는 630Bq/kg까지 검출됐다. 
 
야생육에서는 방사능 축적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멧돼지에서 세슘은 기준치의 100배인 1만 Bq/kg까지 나타났다. 

다양한 품목의 가공식품에서 방사성물질인 세슘이 검출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부지만 과자나 우동, 햄버거, 카레 등에서까지 세슘이 검출되었다. 기준치 미만의 미량 검출 원재료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방사능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공식품의 경우 손쉽게 구입해서 소비가 가능하지만 원산지 파악이 어렵다는 점에서 주의가 더 필요하다.  
 
특히 우리가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 후쿠시마와 인근 8개현의 방사능오염이 더 심각했다. 후쿠시마를 포함한 주변 8개현의 수산물에서는 세슘이 7.9퍼센트에서 검출됐다. 다른 지역의 검출률 0.4퍼센트보다 20배나 높은 수치다. 농산물의 경우도 후쿠시마와 인근 8개현에서는 세슘 검출률이 19.3퍼센트로 다른 지역의 8.5퍼센트보다 2.2배 높았다.  
 
이러한 결과들은 일본의 환경이 방사능오염으로부터 별로 나아지지 않았고 일본 내에서도 후쿠시마와 주변 지역 식품이 방사능 오염에 대한 주의가 더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런 결과를 일본 정부가 모를 리 없지만 도쿄올림픽에 오염지역의 식품을 공급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후쿠시마 산 식자재를 공급한다면 필연적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이 공급될 위험이 존재한다.  
 
 

ⓒ함께사는길

 

오염에 오염을 더해서는 안 돼  
 
일본은 최근 후쿠시마 핵발전소 내에 쌓여있는 오염수 문제도 해양 방류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일본 경제산업성 오염수처리대책위 산하 전문가 소위원회는 지난 2월 10일 약 120만 톤에 달하는 방사성오염수 처리방안으로 해양 방류를 권고하는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한국 정부를 비롯해, 시민사회가 계속 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대했지만 무시되었다. 
 
일본은 이들 오염수가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 '다핵종제거설비'를 거쳤다고 하지만 상당수의 오염물질이 제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지난 1월 도쿄전력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보관 중인 오염수 72퍼센트는 방사능 기준치를 초과했으며, 이 중 21퍼센트는 기준치 10배를 넘고, 6퍼센트는 기준치 100배를 넘는 세슘, 스트론튬, 코발트60 등 방사성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삼중수소의 경우 제거조차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희석해 기준치 이하로 방류하면 안전하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오염물질을 물을 많이 타서 버리면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방사성물질은 물에 희석한다고 사라지지 않으며 방사성물질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떻게 방류하던 바다를 동일하게 오염시킬 수밖에 없다.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후쿠시마 현 어민들도 오염수의 바다 방출을 반대하고 있다. 최근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후쿠시마 주민들의 여론조사에서도 57퍼센트가 방사성오염수 해양 방류를 반대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방사성오염수를 저장할 탱크를 증설하거나, 고형화시키는 방법 등 여러 대안들도 제시되고 있지만 오로지 해양방출이라는 방법만 논의되고 고집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계속 해양 방류를 고집하는 까닭은 가장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든다는 것 외에는 없다.  
 
바다에 일반 쓰레기도 버리는 것을 금지하는 시대에 방사성물질을 대놓고 버리겠다는 것은 사실상 국제적인 범죄행위다. 
 
 

▲ 서울환경운동연합과 서울환경운동연합 여성위원회는 지난 3월 10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출 계획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위험을 은폐하고 안전을 외면하는 정치 퇴출해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지만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번 퍼져나간 방사성물질로 여전히 후쿠시마 곳곳은 오염됐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사고가 난 핵발전소 내부에 급한 불은 껐다지만, 여전히 녹아내린 사용후핵연료를 제거하지 못했다.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 높은 방사선량으로 인해 원자로 내부 파악부터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습하지 못한 사용후핵연료를 냉각하기 위해 지금도 냉각수를 주입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방사성오염수도 현재 120만 톤을 넘어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냉각수와 함께 지하수도 계속 유입되고 있다. 녹아내린 핵연료를 제거하지 못하는 한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이 기간이 앞으로 최소 수십 년 이상 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금 오염수 방출이 결정되면 앞으로 수십 년 넘게 발생할 수 있는 오염수 역시 바다에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정신 못 차리는 일본 정부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방사능오염 은폐와 오염수 해양 방류에는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 내지 않는 보수야당은 총선에서 탈원전 정책 폐기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들은 가짜뉴스까지 동원해 수명이 만료돼 폐쇄된 월성1호기까지 재가동하고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며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핵폐기장도 없이 포화상태로 둘 곳도 없는 고준위핵폐기물 문제 해결에는 관심조차 없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핵발전을 고집하고, 방사능 오염과 피해가 미미하다고 말하는 아베 정부와 이들이 과연 뭐가 다른가.  
 
아베 정부를 바꾸지 않는 한 일본 스스로 안전을 고려한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역시 안전을 외면한 정치를 퇴출시키지 않으면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후쿠시마 사고를 보며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는 바로 안전이다. 4월 15일, 무엇보다 우리가 선택할 기준은 바로 안전을 제대로 실현할 정치다.
 
 

▲ 탈핵시민행동은 지난 3월 11일 후쿠시마 9주기를 맞이하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기억하라 후쿠시마"를 외치며 안전과 핵발전소는 양립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환경운동연합

▶ [함께 사는 길] 연재 더보기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4131541465850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에도 무사히(?) 치른 북 최고인민회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4/14 09:08
  • 수정일
    2020/04/14 09:0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4.14  02:46:27
페이스북 트위터

북측에서 남측의 정기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가 12일 무사히(?) 치러진 듯싶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 회의가 12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되었다고 13일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 이번 북측 최고인민회의가 제때에 개최될지, 또 개최된다면 어떤 모습을 띌지 궁금해 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사태 때문입니다. 팬데믹 현상이 된 코로나19로부터 북측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처음에는 최고인민회의가 제 날짜에 열리지 않아 연기됐나 하는 혼란도 있었습니다. 북측이 지난달 2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제14기 제3차 회의가 4월 10일 평양에서 개최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10일 예고했던 최고인민회의를 미룬 채 11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렸고 여기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 회의에 제출할 간부문제에 대하여’가 다뤄졌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최고인민회의는 12일 무사히 열렸습니다.

하지만 북측에서도 코로나19가 현안이자 관심사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11일 개최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주요 의제로 노동당·국무위원회·내각 공동결정서 ‘세계적인 대유행 전염병에 대처하여 우리 인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을 더욱 철저히 세울 데 대하여’가 채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재자원화법·원격교육법·제대군관생활조건보장법 채택 문제, 내각의 2019년 사업정형과 2020년 과업, 2019년 국가예산집행의 결산과 2020년 국가예산 그리고 조직문제 등이 논의되었습니다. 이들 모두 주요 사안들이겠지만 올해엔 특별히 코로나19에 관심이 기는 것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85만 명(13일 오후 8시 기준)을 넘어선 가운데 주목되는 점은 북측에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느냐 입니다. 이미 1월말에 북측은 남측에 요청해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 운영을 잠정 중단했으며, 또한 중국과의 국경도 폐쇄했습니다. 북측과 위와 아래로 맞닿아 있는 선이 사실상 봉쇄된 것입니다.

이후 북측은 수차례에 걸쳐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자체 검사를 통해 단 한 명도 확진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국제사회는 북측의 이런 주장에 대해 끊임없이 의구심을 제기해 왔습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감염자가 없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다, 체제 동요를 막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코로나가 없다고 하는 입장을 반복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질병을 통제할 역량을 갖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지어 확진자가 없는 게 더 걱정이다 등등이 나왔습니다.

일부 남측 언론에서 한때 김 위원장이 열흘 넘게 평양을 비운 채 함경도와 강원도 동해안 일대 포병부대 훈련을 지도하자 코로나19 감염을 피하기 위한 행적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이 이번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한 것을 두고 코로나19 후폭풍?이라고 과장된 예측까지 해댔습니다.

그러다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사진을 보니 다소 놀라기도 했습니다. 수백 명의 대의원들이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또 거리두기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북측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한편으로 코로나19를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자 다른 한편으로 감염자 한 명 없는 청정국이라는 발신이겠지요.

북측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 제기한 내각 사업보고에 의하면 보건부문에서 “전국적 규모에서 신형 코로나비루스(코로나바이루스) 감염증을 막기 위한 의학적 감시와 격리사업을 강도 높게 진행하여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단 한명의 감염자도 발생되지 않게 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북측이 코로나19 감염자 없다는 것을 내외적으로 공식 천명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북측이 불투명하고 폐쇄적인 나라이므로 정보를 얻기 어렵다, 또한 북측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북측의 공식 입장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후에 북측에서 감염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북측에도 감염자가 발생했구나’ 하고 인정하면 될 것입니다. 북측은 지금 위로는 중국과 국경 폐쇄를, 아래로는 남측과 사실상 접경 폐쇄를 했기에 설사 감염자가 발생하더라도 일단 외부로 전파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강북구 “정당 투표는 민중당, 후보는 미래통합당 낙선시킬 수 있는 후보에게"

[총선 현장] 강북구 “정당 투표는 민중당, 후보는 미래통합당 낙선시킬 수 있는 후보에게"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4/14 [00:13]
  •  
  •  
  •  
  •  
  •  
  •  
 

▲ 김은진 서울 강북구갑 민중당 후보가 총선을 이틀 앞두고 "“정양석 떨어뜨릴 당선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십시오. 정당투표는 8번 민중당에 몰아주십시오”라는 현수막을 게재했다. [사진출처-김은진선본 페이스북] 

 

4.15 총선을 하루 앞두고 서울 강북구갑에 이색 현수막이 등장했다.

 

“정양석 떨어뜨릴 당선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십시오. 정당투표는 8번 민중당에 몰아주십시오”

 

시민들은 현수막을 보면서 선거운동원들에게 “왜 본인을 찍으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현수막의 주인공은 김은진 서울 강북구갑 민중당후보이다.

 

김은진 선거운동본부(이하 김은진 선본)은 이런 현수막을 게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은진 선본은 “이번 선거는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미래통합당을 심판하는 선거이다.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권의 공범인 미래통합당. 미래한국당을 완전히 몰아내는 선거이다”라며 “4.15 총선의 가장 큰 목표가 미래통합당을 정계에서 퇴출시키는 것이고, 이것이 곧 국민의 명령이다”라고 밝혔다.

 

김은진 선본은 정당 투표는 8번 민중당에 몰아달라며 “민중당은 기득권 정치, 정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민중당은 한반도 전쟁을 반대하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민중당과 함께 어깨 걸고 대한민국 정치를 바로 잡아 달라. 민중당과 함께 손잡고 국민이 주인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아래는 김은진 선본의 글이다. 

 

-----------아래-------------------------------------

 

정양석 떨어뜨릴 당선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십시오.

정당투표는 8번 민중당에 몰아주십시오.

 

1700만 위대한 촛불은 범죄자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웠습니다. 촛불에 놀라 자신들이 상전으로 모시던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내고 숨었던 자들이 또 절을 하며 표를 구걸하고 있습니다.

 

강북구민 여러분! 이번 선거는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미래통합당을 심판하는 선거입니다.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권의 공범인 미래통합당. 미래한국당을 완전히 몰아내는 선거입니다.

 

지난 2주간의 선거운동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7번 김은진'을 뽑아 달라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 이번 4.15 총선의 가장 큰 목표가 미래통합당을 정계에서 퇴출시키는 것이고 이것이 곧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강북구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후보는 '미래통합당 정양석 후보'를 떨어뜨릴 수 있는 '당선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십시오.

 

이번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미래통합당 정양석 후보를 반드시 떨어뜨려 주십시오.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두 번 다시 선거판에 얼굴을 들이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정당투표는 8번 민중당을 찍어주십시오.

 

저희는 창당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 진보정당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화와 통일과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렸던 민주인사들, 통일 인사들의 염원을 이어가고 있는 정당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강제해산시킨 통합진보당 이후 진보정치를 이어가기 위해 다시 일어섰습니다.

 

민중당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회사원, 어머니, 아버지, 형과 누나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평범한 국민들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그래서 민중당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민중당은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민중당은 기득권 정치, 정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중당은 한반도 전쟁을 반대하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민중당과 함께 어깨 걸고 대한민국 정치를 바로 잡아주십시오. 민중당과 함께 손잡고 국민이 주인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갑시다.

 

정당번호 8번 민중당에 정당투표를 몰아주십시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모질게 대해서 미안해" 자가격리 2주, 아빠는 울었다

[조카의 자가격리 이야기] 두 달 만에 입국, 철저하게 거리 둔 가족들... "정부에 대한 신뢰 생겨"

20.04.13 07:11l최종 업데이트 20.04.13 10:35l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코로나19의 유세가 아직도 봄꽃들의 향기 속에 머물고 있다. 아침마다 '삐' 소리로 시작되는 코로나19 뉴스엔 '신규 확진자 수 감소와 완치자 수 증가' '해외유입 확진자수 증가와 정부의 해외유입 차단집중' 등을 주제로 롤러코스터처럼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댄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은 끝이 없다.
 
인천공항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인천국제공항 입국 검역소를 방문한 뒤 코로나19 개방형 선별진료소(오픈 워크 스루·Open Walk Thru)로 이동하고 있다. 2020.4.7
▲ 인천공항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인천국제공항 입국 검역소를 방문한 뒤 코로나19 개방형 선별진료소(오픈 워크 스루·Open Walk Thru)로 이동하고 있다. 2020.4.7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해외 유입인을 차단하라'는 여론의 우세 속에 대통령이 공항을 방문하여 많은 이들의 노고에 격려를 보냈다. 코로나19 관련 자가격리자에 대한 전자팔찌 부착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는 뉴스까지 나왔다. 전자팔찌 하면 떠오르는 것은 '범죄'인인데, 코로나19가 급기야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범죄인으로까지 몰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한 국가와 국민의 존망이 걸린 세기의 전염병이 되어버린 코로나19인 것이다.

"저, 잘 다녀왔어요. 그런데 직접 인사는 못 드려요. 제가 자가격리를 해야 되거든요."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조카(24)는 남미 에콰도르 UN에 파견근무 중인 누나를 만나고 중남미의 여러 나라를 여행한 뒤 두 달여 만에 입국했다. 조카가 출국하던 1월 초는 중국을 제외한 해외 유입 감염 사례가 거의 전무하던 시기였다.

조카가 중남미 여행 중 코로나19를 직접 피부로 느낀 사건도 있었다. 코로나 초기 발생 지역이 중국 우한 지역이라 동양인이란 이유로 코앞에서 '코로나'라고 놀리는 행동을 하루에도 여러 번 겪었다는 것. 에콰도르 어떤 한인은 돌에 맞기도 했다고 조카는 말했다.

귀국 전부터 한국의 코로나19 사태의 추이 변동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었던 조카는 공항에서부터 자가격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입국하기 몇 주 전부터 항공편이 변경, 취소되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미국 경유 입국 심사에서 무사히 통과하여 귀국했다. 한국 입국 당시에도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썼다는 것 외에는 전과 다름없었다고 전했다. 공항 직원들의 친절 역시 변함이 없었다고 했다.
  
두 달만에 입국한 아들, 광주에서 데리러 간 엄마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각 지자체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방역복을 입은 채 외국에서 입국한 승객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비 안전한 귀가를 위한 교통편을 안내하고 있다. 1일부터 모든 해외입국자들은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하며, 위반시 정부는 무관용원칙으로 처벌할 것이라 밝혔다.
▲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각 지자체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방역복을 입은 채 외국에서 입국한 승객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비 안전한 귀가를 위한 교통편을 안내하고 있다. 1일부터 모든 해외입국자들은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하며, 위반시 정부는 무관용원칙으로 처벌할 것이라 밝혔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귀국은 3월 18일, 두 달 넘게 아들과의 재회를 기다린 엄마는 다 큰 아들을 광주에서 인천까지 직접 마중을 나갔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아들과 함께 부모 역시 함께 격리를 자청했다.
 
아이들 어렸을 때만 사용하는 줄 알았던 체온계와 뿌리는 소독약, 손 소독제를 준비하였다. 세면대 및 화장실은 상시소독, 식기류 상시 열 소독 및 마스크 상시 착용은 기본이었다.

식사 역시 각자의 방에서 매끼 손 장갑을 사용하며 주고 받았다. 조카는 군대의 배식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유난히 가족 간의 신체적 접촉을 좋아하던 아들인데도, 여행과 격리 기간까지 도합 3개월 이상을 손도 만지지 못했다. 마스크 위로 껌벅거리는 두 눈동자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아들의 그리움과 서글픔만 가득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격리해지 날, 아빠는 아들을 감금시키고 모질게 했다고, 바퀴벌레 소독약 뿌리듯이 그렇게 대했다고, 아들에게 용서의 눈물을 흘려 집안이 출렁거렸다 했다. 울다가 웃다가, 드디어 부모와 아들이 3개월 만에 재회의 포옹을 만끽했다.

"불공정한 사회에 불만이었는데... 정부에 신뢰 생겨"
 
 8일 오전 서울 강남구보건소에서 '코로나19' 선별진료소가 운영중이다. 해외입국자들을 위한 별도의 출입구가 마련되었으며, 귀가를 돕기 위해 구급차가 대기중이다.
▲  8일 오전 서울 강남구보건소에서 "코로나19" 선별진료소가 운영중이다. 해외입국자들을 위한 별도의 출입구가 마련되었으며, 귀가를 돕기 위해 구급차가 대기중이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격리기간 중에 어떤 느낌이었고 사회나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고 조카에서 물었다.

"최고의 친구 노트북을 통해,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대한민국의 정책과 국민성을 보면서 평소와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청년세대로서 취업이나 학력의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어느새 건강한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됐어요. 매일 뉴스를 보면서 느꼈던 건,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이탈리아 등의 유럽, 불투명한 태도로 감추기에 바쁜 일본과 비교되게 우리 정부는 상당히 투명하고 빠르게 코로나19 소식을 공개하는 거였어요. 최근에는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전자 팔찌를 착용해야 한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직접 체험한 대상자로서 이 안건에 매우 긍정적이에요.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믿음이 생겨서죠."

자가격리 기간, 부모님에게 할 말은 없느냐고도 물었다.

"여행 동안 한식, 그 중에서 뜨끈한 국밥에 깍두기 진짜 말아먹고 싶었거든요. 타향에서의 대학 생활, 군대 생활로 제대로 된 집밥이 그리웠어요. 격리 2주간은 저에게 가족 간의 행복과 기쁨,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어요. 또 다양한 매체를 통해 건강한 사회 모습과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자가격리 2주. 숫자로 보면 결코 길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격리 대상자가 느끼는 그 시간은 단 2초라도 힘들었음이 분명하다. '남의 중병이 나의 코뿔보다 못하다'는 옛말을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모두가 공감이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자긍심과 협동심이 필요하다"라는 조카의 말이 떠오른다. 이제 곧 정상이다. 그러나 그 어떤 정상도 한 번에 올라갈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19를 통해 참으로 많을 것을 배웠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안코라 임파로(Ancoro Imparo!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이탈리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선택 4·15]최대 70곳 박빙…수도권·PK ‘승부처’

박홍두·김형규 기자 phd@kyunghyang.com


입력 : 2020.04.13 06:00 수정 : 2020.04.13 08:41

 

지역구 253곳 중 28%에 달해…‘양극화 선거’ 속 경합지 관건
여 “134곳” 야 “130곳” 자신감…사전투표율 26.69% 역대 최고

21대 국회의원선거를 사흘 앞둔 지난 12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설치된 관내사전투표함 보관장소 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의원선거를 사흘 앞둔 지난 12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설치된 관내사전투표함 보관장소 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4월15일 웃으려면 70곳을 잡아라.” 

4·15 총선을 사흘 앞둔 12일 더불어민주당은 단독 과반, 미래통합당은 과반 견제, 소수정당은 원내교섭단체를 말한다. 정국 주도권을 위해선 과반 의석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박빙 승부가 펼쳐지는 접전지의 승리가 이 모두를 충족시키는 필수 조건이라는 데 여야 이견이 없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격차가 5%포인트 이내 지역은 접전지, 5%포인트 이내 격차가 지속적으로 줄어들면 초접전지”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석에 근거해 현재 여야가 자체 추정한 접전지는 최대 70곳 정도로 알려졌다. 전체 지역구(253곳)의 28% 정도가 박빙 승부처인 셈이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총선 전 마지막 주말인 12일 최대 접전지인 수도권에서 집중 유세를 펼쳤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접전지 70곳의 세부 판세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여권이 우세한 분위기라곤 하지만 이번 총선 여론조사에서 여권 지지층이 과다 표집된 결과가 발표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 때문이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박빙 지역구가 점점 늘고 있다”며 “현재 여론조사 결과에서 10%포인트 정도 빼는 게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전체 지역구 253곳 중 민주당은 64곳 ‘경합우세’, 70곳 ‘우세’, 나머지 119곳 ‘경합열세’ 및 ‘열세’로 분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당도 접전지 규모를 비슷하게 보고 있다. 외부적으론 여당의 ‘과반 견제’를 호소하고 있지만 내부에선 야권 지지층의 숨은 표를 기대하는 눈치다. 성동규 여의도연구원장은 “막판으로 갈수록 보수층 결집과 (정부·여당) 견제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선전할 경우 당초 예상치(115~120석)를 웃도는 지역구 125~130석 확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선 뒤지고 있지만 충청권 등의 상승세가 이 같은 분위기를 형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여야의 내부 기류를 종합하면 결국 관건은 접전지다. 두 당이 분류한 접전지는 주로 수도권과 부산·경남(PK) 지역에 몰려 있다. 서울에선 광진을(민주당 고민정·통합당 오세훈 후보)과 동작을(민주당 이수진·통합당 나경원 후보) 등이 꼽힌다. 수도권에선 경기 고양정(민주당 이용우·통합당 김현아 후보), 인천 연수을(민주당 정일영·통합당 민경욱·정의당 이정미 후보) 등이 대표적이다. PK에선 부산 남을(민주당 박재호·통합당 이언주 후보), 경남 양산을(민주당 김두관·통합당 나동연 후보) 등이 꼽힌다. 대구·경북(TK)에선 대구 수성갑(민주당 김부겸·통합당 주호영 후보), 수성을(통합당 이인선·무소속 홍준표 후보)이 혼전 중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0~11일 사전투표 결과 26.69%의 투표율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기존 최고 투표율인 2017년 대통령 선거(26.06%)보다 높다.

선거 전 마지막 주말인 이날 민주당은 수도권에 집중했다. 이낙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며 “코로나19 위기를 빨리 극복하기 위해 (여당에) 안정적인 의석이 필요하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통합당은 후보자 명의로 “정권의 폭주를 견제할 힘을 달라”는 대국민호소문을 내고 ‘72시간 투혼 유세’에 돌입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130600015&code=910110#csidxc36a3778d44692db5086e7df37e743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의 민낯, 사망자 70%가 흑인...집단 매장되는 무연고 시신

[코로나19, 미국의 민낯①] 코로나19, '인종별 건강 불평등'을 드러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최고인민회의 개최..."단 한명의 감염자도 발생 안해"

리수용.리용호 국무위원 소환, 김형준.리선권 국무위원 보선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20.04.13  08:09:01
페이스북 트위터
   
▲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가 예정일보다 이틀 연기된 12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렸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가 예정일보다 이틀 연기된 12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려 올해 과업과 국가예산을 의결하고 국무위원회 위원들을 소환, 보선하는 등 고위직 인사를 단행했다. 보도된 사진들에 나온 대의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하루 앞선 11일,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가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개최돼 코로나19에 관한 결정서와 간부인선안 등을 의결해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위한 절차가 진행됐다.

<노동신문>은 13일 <조선중앙통신> 13일자 보도를 전재하는 형식을 취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가 4월 12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되였다”고 보도했다.

회의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참석했으며, 주석단에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 등단했고, 김재룡 내각 총리도 주석단에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헌법 개정을 거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직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회의에서 중요한 시정연설을 한 바 있지만 올해는 불참한 것.

신문은 북한의 공식적 권력서열을 엿볼 수 있는 주석단 명단을 밝혔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 주석단>

   
▲ [캡쳐사진 - 노동신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최룡해동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동지가 주석단에 등단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이며 내각총리인 김재룡동지가 주석단에 나왔다.

리일환동지, 최휘동지, 리병철동지, 김덕훈동지, 김영철동지, 최부일동지, 리만건동지, 김수길동지, 박정천동지, 태형철동지, 오수용동지, 정경택동지, 김형준동지, 허철만동지, 리호림동지, 김정관동지, 임철웅동지, 리룡남동지, 김일철동지, 박정남동지, 리히용동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성원들이 주석단에 자리잡았다.

박태성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개회사를 했고, 6개의 의안이 결정됐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 의안>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재자원화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격교육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대군관생활조건보장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주체108(2019)년 사업정형과 주체109(2020)년 과업에 대하여

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체108(2019)년 국가예산집행의 결산과 주체109(2020)년 국가예산에 대하여

6. 조직문제

태형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1,2,3 의정(의안)에 대해 보고했고, “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재자원화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격교육법을 채택함에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대군관생활조건보장법을 채택함에 대하여》가 전원찬성으로 채택되였다”고 전했다.

4,5,6 의정은 보고자가 명시되지 않았고, 신문은 별도의 기사로 상세히 다뤘다. 김재룡 내각총리가 보고자로 나섰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내용 중 내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신문은 “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결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사업보고와 주체108(2019)년 국가예산집행의 결산을 승인함에 대하여》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체109(2020)년 국가예산에 대하여》가 채택되였다”고 전했다.

“아직까지 단 한명의 감염자도 발생되지 않게 하였다”

   
▲ [캡쳐사진 - 노동신문]

신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주체108(2019)년 사업정형과 주체109(2020)년 과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에 제기한 내각사업보고” 제목의 별도 기사를 통해 지난해 “년간공업총생산액계획을 108%로 수행”했다고 보고했다.

특히 “다수확열풍, 과학농사열풍을 일으켜 불리한 기상기후조건에서도 알곡생산에서 최고수확년도수준을 돌파하였다”고 결산해 주목된다. 최고수확년도는 90년대 후반의 고난의행군 이전에 최고 수확고를 기록한 해를 뜻하는 용어로 보인다.

코로나19 방역사업과 관련해 “전국적규모에서 의학적감시와 격리사업을 강도높게 진행하여 우리 나라에서 아직까지 단 한명의 감염자도 발생되지 않게 하였으며 당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보건단위들을 현대적으로 꾸려 보건부문의 물질기술적토대를 더욱 튼튼히 하였다”고 보고해 주목된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 책임자가 공식 보고했고, 600명이 넘는 대의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대규모 회의를 개최해 이를 시위한 것.

보고자는 “내각사업에서는 심중한 결함들이 나타났다”며 “나타난 결함들은 당에서 나라의 경제를 통채로 맡겨주고 국가경제발전의 전략과 방도를 뚜렷이 제시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권한과 수단을 다 부여해주었지만 경제지도일군들이 주인구실을 바로하지 못하면 당이 제시한 경제건설목표들을 성과적으로 점령할수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있다”고 자아비판에 나서 주목된다.

보고자는 “내각은 당중앙위원회, 국무위원회, 내각 공동결정서에 제시된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들의 건강과 생명안전보장에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경제사업을 작전하고 자력자강의 정신으로 정면돌파전을 과감히 벌리며 나라의 경제토대를 재정비하고 가능한 생산잠재력을 총발동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충분히 보장하는것을 중심과업으로 틀어쥐고나갈것”이라고 밝혔다.

공동결정서는 전날 당 정치국회의에서 코로나19 대응책을 논의한 결과 채택됐고, “비루스감염위험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불가능하며 따라서 이같은 환경은 우리의 투쟁과 전진에도 일정한 장애를 조성하는 조건으로 될수 있다”며 “정치국회의에서는 조성된 대내외환경으로부터 출발하여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일부 정책적과업들을 조정변경할데 대한 대책적문제들을 연구토의하였다”고 보도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목표치들이 하향조정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보고자는 “내각은 경제사령부로서의 위치와 임무에 맞게 당의 경제정책관철을 위한 통일적인 작전과 지휘를 확고히 보장하고 치밀한 경제조직사업과 완강한 실천으로 당창건 75돐을 맞는 올해를 우리 조국력사에 특기할 승리의 해로 빛내이는데서 책임과 본분을 다해나갈것”이라고 다짐했다.

국가예산수입, 지난해 105.3% 성장, 올해 104.2% 성장 예견

   
▲ [캡쳐사진 - 노동신문]

신문은 또다른 별도의 기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체108(2019)년 국가예산집행의 결산과 주체109(2020)년 국가예산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에 제기한 국가예산보고”를 통해 “지난해 국가예산수입은 101.5%로 집행되였으며 전해에 비하여 105.3%로 장성하였다”고 보도했다.

보고자는 “지난해 국가예산집행에서는 결함도 있었다”며 “경제지도일군들이 맡겨진 혁명임무를 당과 인민앞에 전적으로 책임지는 립장에서 작전과 지휘를 혁명적으로 해나가지 못한다면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전략적관리를 실현할수 없고 경제전반이 활력있게 전진할수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있다”고 짚었다.

보고자는 올해 국가예산수입은 지난해에 비하여 104.2% 성장할 것으로 예견하고, “국가예산수입에서 중앙예산수입은 74.3%로서 중앙경제에 의한 수입이 압도적비중을 차지하며 도, 시, 군들에서 자체의 수입으로 지출을 보장하고 많은 자금을 중앙예산에 들여놓게 된다”고 밝혔다.

올해 국가예산지출은 지난해에 비해 106%로 늘어나며, 인민경제건설비 47.8%, 인민적시책비, 국방비 15.9%로 구성된다고 밝히고 “우리는 조선로동당의 전략적구상을 높이 받들고 올해 국가예산을 성과적으로 집행함으로써 사회주의강국건설의 포부와 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전인민적투쟁을 재정적으로 안받침해나갈것”이라고 다짐했다.

올해 인민적시책비 예산지출 비율은 밝히지 않았지만 전년도 결산보고에서는 인민경제건설비 47.7%, 인민적시책비 36.3%, 국방비 15.8%로 보고했다.

리병철, 김형준, 김정관, 리선권, 김정호 국무위원 보선

   
▲ [캡쳐사진 - 노동신문]

마지막 의안인 ‘조직문제’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제의에 의해 최부일, 노광철 대의원을 국무위원회 위원에서 소환됐고, 리수용, 태종수, 리용호를 국무위원회 위원에서 소환했다.

대신 리병철, 김형준, 김정관, 리선권, 김정호 대의원을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보선했다. 소환된 리용호 후임으로 외무상에 임명된 리선권 신임 국무위원은 전날 당 정치국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형준은 러시아대사 출신으로 리수용 국무위원을 대체한 것으로 관측되며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도 겸직하며, 김정관은 소환된 노광철에 이어 인민무력상을, 김정호는 소환된 최부일에 이어 인민보안상을 각각 맡고 있다. 

이 외에도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에 의하여 양승호 대의원을 내각부총리로, 김철수 대의원을 자원개발상으로, 김정남을 기계공업상으로, 리성학을 경공업상으로 임명하는 등 내각 인사도 단행했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 인사>

   
▲ 최고인민회의에서 보선된 신임 국무위원. 왼쪽부터 리병철, 김형준, 김정관, 리선권, 김정호. [캡쳐사진 - 노동신문]
   
▲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 임명된 내각 성원들. 왼쪽부터 양승호 내각부총리, 김철수 자원개발상, 김정남 기계공업상, 리성학 경공업상. [캡쳐사진 - 노동신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동지의 위임에 따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최룡해대의원의 제의에 의하여 최부일대의원, 노광철대의원을 국무위원회 위원에서 소환하였다.

또한 리수용동지, 태종수동지, 리용호동지를 국무위원회 위원에서 소환하였다.

리병철대의원, 김형준대의원, 김정관대의원, 리선권대의원, 김정호대의원을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보선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고길선대의원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으로, 김영환대의원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보선하였다.

내각 성원들을 새로 임명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위임에 의하여 양승호대의원을 내각부총리로, 김철수대의원을 자원개발상으로, 김정남동지를 기계공업상으로, 리성학동지를 경공업상으로 임명하였다.

최고인민회의 부문위원회 위원장들을 소환, 보선하였다.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정호대의원, 예산위원회 위원장으로 김덕훈대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으로 김형준대의원을 보선하였다.

박태성 의장이 폐회사를 했고, 신문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탁월한 정면돌파사상과 전략, 실천강령을 국가활동에 철저히 구현하여 우리의 주체적힘, 내적동력을 백방으로 강화함으로써 조선로동당창건 75돐을 조국청사에 특기할 대정치축전으로 빛내이고 우리 혁명의 진군속도를 더욱 높여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추가, 08:52)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접동새 울음 속에 들려오는 피묻은 혼의 하소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4/13 11:55
  • 수정일
    2020/04/13 11: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개벽예감 390] 접동새 울음 속에 들려오는 피묻은 혼의 하소연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04/13 [09:12]
  •  
  •  
  •  
  •  
  •  
  •  
 

<차례>

1. 김포공항에 착륙한 비밀공작항공기

2. 피어 드 실바가 선정한 장면과 백선엽

3. 전면에 나선 카터 맥루더와 월터 매카너기

4. 접동새 울음 속에 들려오는 피묻은 혼의 하소연

 

 

1. 김포공항에 착륙한 비밀공작항공기

 

1960년 5월 29일 오전 7시 30분, 김포공항 활주로에 DC-4 4발엔진 프로펠러 항공기 한 대가 조용히 착륙했다. 항공기 기체에 새겨진 씨빌 에어 트랜스포트(Civil Air Transport)라는 항공사 이름이 선명했다. 

 

김포공항에서 취재한 <경향신문> 기자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상하게도 그 비행기에는 기장 1명과 부기장 2명 이외에 다른 승무원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44인승 항공기에 왜 승무원이 한 사람도 없었을까? 이 의문은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뒤에 풀렸다. 그날 김포공항에 착륙한 DC-4 항공기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이었다. 겉모습을 보면 그 항공기를 운용하는 항공사는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민용항공사였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항공사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해외비밀공작을 위해 민용항공사로 위장시킨 특수항공거점이었다. 1950년 8월 23일 씨빌 에어 트랜스포트를 매입한 미국 중앙정보국은 그 항공사를 비밀공작항공사로 만들었다.    

 

그런데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DC-4 항공기가 왜 1960년 5월 29일 김포공항에 착륙했을까? 이 의문은 항공기에 오른 탑승객이 누구였는지, 그 항공기의 종착지가 어디였는지를 알면 자연히 풀린다. 항공기에 오른 탑승객은 이승만과 프랜체스카 도나 부부밖에 없었고, 항공기의 종착지는 미국 하와이였다.  

 

당시 언론매체들은 하와이한인협회장 최백렬이 이승만에게 도미초청장과 전세항공기를 보냈다고 보도했지만, 그런 보도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날조, 유포한 허위사실을 그대로 실은 오보였다. 이승만 자신도 자기와 처를 태우고 하와이로 날아간 그 항공기가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특수항공기인줄 몰랐다. 더욱이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휴양한 뒤에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이라는 당시 과도정부수반 허정의 말만 믿고 하와이로 떠났지만, 그의 하와이행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추진해온 이승만제거공작의 결정판이었다.  

 

위와 같은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면, 이승만이 자발적으로 하와이 망명을 선택했다는 기존 인식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당시 미국의 이승만제거공작이 진행되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이승만이 하와이로 떠난 소식을 망명이라고 보도한 오보가 정설처럼 굳어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승만의 하와이행은 해외망명이 아니었고, 미국이 그를 하와이로 유인, 납치한 비밀공작을 해외망명으로 위장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자신이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에 의해 하와이로 유인, 납치되는 줄도 몰랐고, 자신이 하와이한인협회장의 도움을 받아 하와이로 잠시 휴양을 떠나는 것으로 착각했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1960년 5월 29일 오전 이승만이 부축을 받으며 항공기 탑승대에 오르는 장면이다. 당시 84세인 그는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오를 정도로 노쇠한늙은이였다. 이승만은 자기 처 프랜체스카 도나와 함께 DC-4 항공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떠나 하와이로 갔다. 그러나 이승만은 자기와 처를 태우고 하와이로 날아간 그항공기가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특수항공기인줄 몰랐다. 더욱이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휴양한 뒤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이라는 당시 과도정부수반허정의 말만 믿고 하와이로 떠났지만, 그의 하와이행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추진해온 이승만제거공작의 결정판이었다. 이승만의 하와이행은 해외망명이 아니었고, 미국이 그를 하와이로 유인, 납치한 비밀공작을 해외망명으로위장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자신이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에 의해 하와이로 유인, 납치되는 줄도 몰랐고, 자신이 하와이한인협회장의 도움을 받아 하와이로 잠시휴양을 떠나는 것으로 착각했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이승만제거공작을 외면하고, 1960년 4월에 일어난 역사적 사변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1960년 4월에 일어난 역사적 사변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다고 알고 있지만, 그런 인식내용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하는 것은 미국이 그 역사적 사변에 교묘히 편승하여 이승만제거공작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이승만제거공작을 분석, 고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인데,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승만 정권의 성격에 관한 문제다. 흔히 이승만 독재정권이라고 하지만, 독재라는 일반적 개념으로는 그 정권의 성격을 정확히 인식할 수 없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에 일어난 제주민중항쟁과 여수순천민중항쟁을 대량학살로 짓밟은 미군정의 배후조종에 의해 수립된 친미정권이며, 1950년 국민보도련맹학살사건과 6.25전쟁민간인학살사건을 자행한 파쇼정권이다. 2010년 12월 23일 당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언론대담에서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대량학살사건을 10년 동안 조사한 자신의 소감을 말하면서 그 정권이 민간인 약 10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승만은 민간인 100만 명을 학살한 대참사의 책임을 지고 극형을 받았어야 했다. 그처럼 반민족적이며, 극악무도한 정권은 독재정권이 아니라 친미파쇼정권으로 규정해야 마땅하다. 

 

둘째, 1960년 4월에 일어난 역사적 사변의 성격에 관한 문제다. 사람들은 그 역사적 사변을 4.19혁명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사회과학적 분석으로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을 재조명하면, 그 사변은 혁명이 아니라 민중항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보인다.   

 

혁명과 민중항쟁은 구분되어야 한다. 민중항쟁은 혁명과정 중에 발생하는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사변들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폭력이라는 개념을 폭행사건이나 폭력범죄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인식하지만, 원래 폭력이라는 것은 물리력의 폭발을 뜻하는 가치중립적 개념이므로, 폭력이라는 말을 폭행사건이나 폭력범죄에 결부시키는 것은 그릇된 언어폐습이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은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의 폭정 아래서 12년 동안 억눌린 민중이 정의의 폭력투쟁으로 그 정권을 무너뜨린 위대한 사변이었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을 혁명이 아니라 민중항쟁으로 인식해야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혁명은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사회체제를 변혁하는 급진적인 변화이다. 그런데 4월 민중항쟁은 자유당 정권을 민주당 정권으로 바꾼 형식적인 정권교체를 실현하였을 뿐이다.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실현하지 못했으므로, 사회체제를 변혁시킬 수 없었다. 4월 민중항쟁으로 등장한 민주당 정권은 민주개혁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나, 당내파쟁에만 골몰하면서 민중이 제기한 민주개혁의 요구를 외면하다가 11개월 만에 5.16군사정변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민주당 정권이 해놓은 일은 진보정치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1961년 7월 3일 반공법을 제정한 것밖에 없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이 체제변혁은커녕 실질적인 정권교체도 실현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정권교체에 그쳤다는 사실은 그 사변이 혁명이 아니라 민중항쟁의 전형이었음을 보여준다.   

 

(2) 혁명은 혁명사상에 의해 일어난다. 정권교체와 체제변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사회력사발전의 역사적 전망을 제시하는 혁명사상이 없으면, 자연발생적인 민중항쟁은 일어날 수 있어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은 정권교체와 체제변혁의 실현경로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사회력사발전의 역사적 전망을 제시하는 혁명사상이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민중항쟁의 전형이었다. 

 

(3) 혁명은 조직화된 혁명세력에 의해 일어난다. 만일 조직화된 혁명세력이 없으면, 자연발생적인 민중항쟁은 일어날 수 있어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1960년 4월의 역사적 사변은 조직화된 혁명세력이 존재하지 않은 가운데,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급진적이고 폭발적인 민중항쟁의 전형이었다.  

 

 

2. 피어 드 실바가 선정한 장면과 백선엽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59년, 다시 말해서 미국 중앙정보국이 이승만제거공작에 착수하기 전, 백악관이 나서서 이승만사퇴권유공작을 추진했다. <뉴시스> 2015년 4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 드와잇 아이젠하워는 1959년 여름 연방하원의원 월터 저드를 밀사로 서울에 파견하여 이승만을 만나게 했다고 한다.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서기관 윌리엄 왓츠의 회고담에 따르면, 경무대(청와대의 당시 명칭)를 방문한 월터 저드는 이승만에게 후임자를 정하고 사퇴할 것을 권고한 서한을 전하면서 구두로 자진사퇴를 권유했으나, 이승만은 사퇴권유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승만사퇴권유공작이 성과를 가져오지 못하자, 아이젠하워는 미국 중앙정보국에게 이승만을 제거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렸다. 대통령의 비밀지령에 따라 미국 중앙정보국은 이승만제거공작에 착수했다.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당시는 한국지부가 아니라 서울지부로 불렸음)가 현지공작거점으로 되었다. 1959년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 부국장이었던 리처드 헬름즈는 유럽에서 대소련비밀공작을 수행해온 비밀공작전문가 피어 드 실바를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급파했다. 여기서 급파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1958년에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임명된 웨일즈 넬슨이 1959년에 피어 드 실바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지부장으로 부임한 피어 드 실바는 이승만제거공작을 두 방향으로 밀고 나갔다. 

 

(1) 피어 드 실바는 이승만을 제거한 뒤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울 적임자를 선정했다. 1960년 4월 당시 한국군 연합참모본부 총장(합동참모본부 의장의 당시 명칭)이었던 백선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1959년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부임한 피어 드 실바는 당시 부통령이었던 장면을 “자주 만나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과 한국 부통령의 깊은 관계는 돈독한 친분관계라는 뜻이 아니라,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한 뒤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울 적임자로 장면을 선정했다는 뜻이다. 1959년 8월 1일 미국 중앙정보국이 작성한 1급 비밀문서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노쇠하여 대통령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 이승만을 사퇴시킬 헌법조항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지난날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한 경력이 있는 자유당 강경파가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장면 부통령의 대통령직 계승을 가로막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것은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고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정치음모를 이미 1959년 8월 이전에 꾸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나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이 붕괴위기에 빠졌을 때, 피어 드 실바는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드는 비밀공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60년 4월 25일 피어 드 실바는 이승만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압박을 가했다. 그런데 전화통화에서 이승만은 장면을 비롯한 천주교세력이 “폭동을 배후에서 선동했다”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에서 실권 없는 부통령으로 맴돌던 장면은 4월 민중항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던 1960년 4월 23일 갑자기 사퇴성명을 발표했고, 국회는 그의 사표를 4월 25일에 수리했다. 장면이 부통령직에서 전격사퇴한 것은 그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피어 드 실바의 비밀공작에 따른 행동이었다. 만일 장면이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의 부통령으로 남아 있다가 그 정권이 4월 민중항쟁으로 무너지면, 친미파쇼정권의 고위관리들이 모조리 사법처리를 받아야 했던 것처럼, 부통령 장면도 당연히 법정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우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래서 피어 드 실바는 4월 민중항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장면을 사퇴시킨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1960년 4월 23일 당시 부통령 장면이 사퇴성명을 발표한 직후, 취재진과 담화하는 장면이다. 장면이 부통령직에서 전격사퇴한 것은 그를 차기대통령으로 만들려는 피어 드 실바의 비밀공작에 따른 행동이었다. 피어 드 실바는1959년에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부임하여 이승만제거공작을 벌이고 있었다. 이승만은 주한미국대사 매카너기와 피어 드 실바에게 장면을 '폭동을 배후에서 교사, 선동한 불순분자'로 몰아가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런 상황에서 만일 장면이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의 부통령으로 남아있으면, 그는 법정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우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래서 피어 드 실바는 4월 민중항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장면을 사퇴시킨것이다.  

 

1960년 6월 19일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국빈방문했는데, 그가 방한하기 직전 국무부는 주한미국대사에게 보낸 비밀전문에서 장면을 아이젠하워 옆에 앉히라는 지령을 내렸다.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은 차질 없이 수행되었고, 마침내 1960년 8월 18일 장면은 내각책임제 국무총리에 피선되어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2)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으로 부임한 피어 드 실바는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정변을 일으키려는 비밀공작을 벌였다. 백선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1960년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피어 드 실바는 당시 한국군 최고지휘관이었던 백선엽을 “자주” 만났는데, 4월 민중항쟁 며칠 전에는 백선엽에게 “(이승만을 제거하는 군사정변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런 놀라운 권유를 받은 백선엽은 자신이 군사정변에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중에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이 한국군 최고지휘관에게 군사정변을 권유한 것은, 군사정변으로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비밀공작이 추진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미국 중앙정보국은 미국에게 순종하지 않는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거나 정부수반을 암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를테면, 미국 중앙정보국은 1953년 8월 19일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이란의 모싸덱정권을 전복시켰다. 1954년 6월 27일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과떼말라의 아르벤즈정권을 전복시켰다. 1960년 9월 5일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민주꽁고의 루문바정권을 전복시켰다. 1961년 5월 30일 국가수반을 암살하여 도미니까의 뜨루히요정권을 전복시켰다. (1961년 5월 16일 한국에서 일어난 군사정변의 배후조종자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아니라 주한미국군 정보기관이었다) 1963년 8월 23일 정부수반을 암살하여 남부윁남의 고딘디엠정권을 전복시켰다. 1964년 4월 1일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브라질의 굴라정권을 전복시켰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기간에 미국은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는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군사정변을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정부수반을 암살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1990년대 이후에는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는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무력침공을 감행하거나 경제제재를 가중시키거나 핵전쟁도발위협을 가하는 만행을 세계 각지에서 저지르고 있다. 그처럼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미국이야말로 제국주의국가의 전형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전면에 나선 카터 맥루더와 월터 매카너기 

 

피어 드 실바는 백선엽을 앞세운 군사정변을 배후조종하여 이승만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우유부단한 백선엽이 머뭇거리던 중에 4월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이승만을 제거할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미국은 4월 민중항쟁에 깊숙이 개입했다. 미국이 민중항쟁에 편승하여 추진한 이승만제거공작의 내막은 다음과 같다.  

 

(1) <연합뉴스> 2010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대사관은 1960년 4월 11일 이후 지방도시들에서 각계층 군중이 학생시위투쟁에 합류하기 시작하였다는 중대한 정보를 미국 국무부에 보고했고, 4월 15일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불안한 정치상황에 직접 개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 결정에 따라, 미국 국무부는 3.15부정선거 책임자들을 사퇴시키고, 선거법과 지방자치법을 개정하고, 국가보안법 독소조항을 폐지하고, 참의원 선거를 실시하라고 요구한 각서를 이승만에게 빨리 전달하라고 주한미국대사관에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위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의 그런 긴급지시를 받은 주한미국대사 월터 매카너기는 1960년 4월 25일 오전 9시 10분 국방장관 김정렬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이승만을 빨리 만나 그가 선거를 다시 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2)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 카터 맥루더는 1960년 4월 19일 오후 5시를 기해 황급히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대도시들에 계엄령을 선포하도록 조치했다. 형식적으로는 한국군 육군참모총장 송효찬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는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송효찬을 앞에 내세워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 맥루더는 육군참모총장 송요찬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한국군 육군 제15사단을 그날 밤 8시 서울 중량교 부근에 출동시켰다. 밤 10시 계엄군은 전차부대를 앞세우고 동대문과 종로를 거쳐 중앙청 청사 주변과 세종로에 포진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주한미국군사령관 맥루더가 계엄군에게 출동명령을 내리면서 실탄은 지급하지 말고 공포탄과 최루탄만 지급하도록 조치했고, 어떤 경우에도 실탄을 발포하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4월 민중항쟁을 유혈적으로 진압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그런 명령을 받은 계엄군은 경무대로 향하는 마지막 저지선만 지켰을 뿐,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에서는 대규모 시위투쟁이 제지를 받지 않고 계속되었다.  

 

1960년 4월 26일 서울 세종로에 구름처럼 몰려든 시위군중은 그곳에 배치된 계엄군 전차 3대를 에워쌌다.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은 마치 장난감 전차에 올라타는 것처럼 전차에 올라타고 즐거워했고, 계엄군은 시위대원들이 올라탄 전차들을 몰고 시위군중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세종로를 빙빙 돌아다니는 진기한 광경을 펼쳐보였다. 또한 계엄군은 시위를 진압하지 않고, 시위군중이 경무대 방향으로 진격하려고 할 때만 공포탄과 최루탄을 쏘며 저지했다. 미국의 흉계는 민중항쟁에 편승하여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것이었으므로, 민중항쟁을 유혈적으로 진압하지 않았고, 이승만이 사퇴할 때까지 현상유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3) 4월 민중항쟁이 폭발적으로 격화되어 경무대진격투쟁이 계속되자 공포를 느낀 이승만은 한국군 최고지휘관 백선엽을 급히 경무대로 호출했다. 그러나 피어 드 실바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백선엽은 이승만의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이승만이 4월 민중항쟁 중에 급히 자기를 찾았지만, 자신은 모른 척 외면했었다고 썼다. 백선엽이 이승만의 호출을 외면한 것은 피어 드 실바가 이승만과 한국 군부를 갈라놓는 이간공작에 성공하였음을 의미한다. 피어 드 실바가 이승만과 한국 군부를 갈라놓은 것은 4월 민중항쟁의 운명을 결정지은 중대사건이었다. 만일 피어 드 실바가 이승만과 한국 군부를 갈라놓지 않았더라면, 이승만은 자기에게 충성하는 한국군 지휘관들에게 유혈진압을 명령했을 것이다. 만일 이승만에게 충성하는 한국군 일부 부대가 그의 명령에 따라 유혈진압에 나섰더라면, 4월 민중항쟁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처럼 참혹한 대량학살로 막을 내렸을 것이며, 이승만 친미파쇼정권은 붕괴위험을 넘기고 얼마동안 연명하였을 것이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1960년 4월 26일 이승만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기만적인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직후, 황급히 경무대로 들어간 주한미국대사 매카너기가 이승만과담화하는 장면이다. 맥카너기는 4월 민중항쟁이 서울에서 일어났던 1960년 4월 19일 밤, 그리고 4월 21일 오전에 각각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만났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장면이 "폭동을 교사, 선동했다"고 떠들어대면서 미국의 요구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자유당 총재직에서는 사퇴했으나 대통령직에서는 사퇴할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 추태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미국 국무부는 1960년 4월 26일 경무대에서 진행된 제3차 이승만-매카너기 담화를 통해 이승만에게 사퇴압박을 가했다.  

 

(4) 1960년 4월 26일 계엄군이 공포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며 저지하고 있었지만, 시위군중의 경무대진격투쟁은 파상적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이승만은 오전 10시 라디오방송을 통해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즉시 무조건 사퇴하겠다는 게 아니라, 조건부로 사퇴하겠다고 했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 사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조건부 사퇴라는 기만적인 담화발표로 4월 민중항쟁의 투쟁열기를 식혀놓고, 집권을 연장해보려는 술책이었다. 

 

이승만의 기만적인 대국민 담화가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고, 계엄군 전차들이 시위대원들을 태우고 세종로를 돌아다니는 진기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을 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세종로에 나타났다. 주한미국대사 매카너기가 탄 승용차였다. 시위군중은 매카너기가 탄 승용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 차를 향해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이런 현상은 이승만제거공작에 4월 민중항쟁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미국의 흉계를 시위군중이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음흉한 정체를 알지 못하고, 미국에게 맹목적인 호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저들의 흉계에 넘어가는 지름길인데, 한국 민중은 60년 전이 지난 오늘에도 친미사상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엄군은 매카너기가 탄 승용차가 시위군중 속에서 빠져나오도록 공포탄을 쏘며 길을 열어주었고, 그 승용차는 경무대로 직행했다. 맥카나기는 4월 민중항쟁이 서울에서 일어났던 1960년 4월 19일 밤,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만났고, 4월 21일 오전에도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다시 만났었다. 그 두 차례의 담화에서 이승만은 장면이 “폭동을 교사, 선동”했다고 떠들어대면서 미국의 요구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부통령 장면이 전격사퇴했고, 국무위원 전원이 사퇴했는데도, 이승만은 자유당 총재직에서는 사퇴했으나 대통령직에서 사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승만은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런 추태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미국 국무부는 1960년 4월 26일 경무대에서 진행된 제3차 이승만-매카너기 회담을 통해 이승만에게 사퇴압박을 가했다.  

 

경무대에서 이승만에게 사퇴압박을 가하고 대사관으로 돌아간 매카너기는 주한미국대사관 명의로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매카너기는 긴급성명에서 “지금은 미봉책을 취할 시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이승만에게 “국민의 불만에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켰다. 미국의 사퇴압박에 더 이상 맞설 수 없게 된 이승만은 1960년 4월 27일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했고, 당일 경무대를 떠나 자신의 사저인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4. 접동새 울음 속에 들려오는 피묻은 혼의 하소연

 

의문이 생긴다. 1948년에 이승만을 대통령에 앉혔던 미국은 왜 마음이 바뀌어 그를 혐오한 것일까? 이승만이 집권기간 중에 미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몇 차례 고집을 부리는 통에 미국이 골치를 앓기도 했지만, 그런 불화는 이승만을 제거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로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왜 이승만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일까?  

 

1959년 8월 1일에 작성되었고, 2002년 10월 21일에 기밀해제된 미국 중앙정보국 1급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정보국 서울지부는 이승만의 동향에 관한 정보를 “매일같이” 수집하여 본부에 보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이승만은 1959년 5월 하순부터 집무능력이 떨어지고, 기초적인 개념조차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노쇠해졌다고 한다. 당시 이승만은 84세였는데, 의학용어로 설명하면, 그가 치매전조단계인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이승만이 경도인지장애에 걸렸다는 사실은 1959년 8월 15일 주한미국대사 월터 다울링이 이승만을 면담하고 나서 작성한 비밀전문에서도 드러났다. 다울링은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심신이 너무 노쇠한 이승만은 결재서류도 거의 읽지 않고, 장관들도 만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승만의 처 프란체스카와 30대 초반인 대통령 비서 박찬일이 상의하여 정책을 결정하면, 당시 부통령 이기붕은 박찬일로부터 주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사실상 통치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승만이 경도인지장애에 걸려 통치력을 상실한 것은 미국이 이승만을 사퇴시키려고 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심층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 심층적인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1960년 3월 25일 평양주재 소련대사 쁘자노브가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쁘자노브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조선외무성 부상 김태희는 평양주재 사회주의나라 대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조선외무성 부상은 통보에서 주한미국군이 1959년 2월 26일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서 마타도어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MGM-1 마타도어 미사일은 미국이 1952년부터 실전배치한 것인데, 사거리가 1,000km이고, 폭발위력이 50킬로톤급인 W5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지대지순항미사일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를 초토화하고 14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핵폭발위력이 21킬로톤이었는데, 미국이 오산미공군기지에 배치한 지대지순항미사일의 핵폭발위력은 50킬로톤이었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사진은 1950년 리비아의 윌러스공군기지에 미국군이 배치한 MGM-1마타도어 지대지순항미사일의 모습이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딸리아가점령했던 리비아 북부지역을 리비아가 1953년에 독립하기 전까지 점령하고 있었다.미국은 1957년 말부터 1958년 초까지 마타도어 지대지순항미사일 대대, 어네스트존 로켓 대대, 280mm 핵포병 대대를 주한미국군기지들에 배치하였다. 이 무기들에는 각종 전술핵탄두들이 장착되었다. 그로써 한국은 미국의 북침핵전쟁기지로 전변되었다. 한국을 미국의 북침핵전쟁기지로 전변시킨 미국은 북침핵전쟁을 도발하기위해 한국군을 재편하고, 핵전쟁훈련을 감행하면서 광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쇠한이승만은 경도인지장애에 걸려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승만은 북침핵전쟁도발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노쇠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미국은 자기들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할 유능한 친미인사를 한국 대통령으로내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고 장면을 대통령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쁘자노브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1960년 3월 25일 조선외무성 부상이 평양주재 사회주의나라 대사들에게 통보한 내용은 미국이 한국에서 북침핵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충격적인 정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외무성 부상은 통보에서 “1957년 7월과 8월 남조선주둔 미군 제7사단이 핵무기로 무장한 제5사단으로 개편되었고, 일본에서 남조선으로 이동배치된 제1기계화사단도 1957년 말 핵무기로 무장한 사단으로 개편되었으며, 1957년 말부터 1958년 초까지 어네스트 존 로켓 대대, 마타도어 지대지순항미사일 대대, 280mm 핵포병 대대가 남조선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가 언급한 MGR-1 어네스트 존 로켓은 미국이 1953년부터 실전배치한 것인데, 사거리는 25km이고, W31 전술핵탄두가 장착된다.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핵탄두를 장착한 이 로켓에는 타격대상에 따라 선택적으로 2킬로톤급 전술핵탄두, 10킬로톤급 전술핵탄두, 30킬로톤급 전술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언급한 M65 280mm 견인핵대포는 미국이 1955년부터 실전배치한 것인데, 사거리는 30km이고, 15킬로톤급 W9 전술핵포탄을 사격할 수 있다. 

 

미국의 북침핵전쟁 도발징후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조선외무성 부상의 통보에 따르면, 미국은 “1953년에 16개 사단이었던 남조선군을 1959년에는 31개 사단으로 증가시켰고, 화력도 증강시켰으며, 1959년에 북침전쟁연습은 64회나 진행되었으며, 남조선에서 탄약공장들과 총기수리공장들이 확장되었고, 초음속 전투기들이 배치될 공군기지들이 새로 건설되고 있고, 군항들이 재건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남조선군 1개 사단을 핵무장 사단으로 개편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남조선군 장교들은 1960년부터 1963년까지 4개년 계획에 따라 핵전쟁훈련을 받고 있으며, 1960년 5월에는 남조선군 25만명이 참가한 핵전쟁훈련이 진행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통보내용을 보면, 미국은 1965년에 북침핵전쟁을 도발할 계획을 세우고 핵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6.25전쟁이 정전된 때로부터 불과 6년밖에 지나지 않은 1959년 당시 조선은 미국의 전술핵공격을 막아낼 방어력을 갖지 못했다. 6.25전쟁 중에 핵폭탄을 탑재한 B-29 폭격기 편대를 조선 영공에 침입시켜 히로시마의 핵참화를 재연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했던 미국이 1959년에는 각종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순항미사일, 로켓, 핵포탄으로 히로시마의 핵참화를 재연해보려는 북침핵전쟁도발에 미쳐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쇠한 이승만은 경도인지장애에 걸려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승만은 북침핵전쟁도발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노쇠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1960년 당시 북침핵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었던 미국은 자기들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할 유능한 친미인사를 한국 대통령으로 내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고 장면을 대통령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민중은 4월의 거리와 광장에서 수많은 피를 흘렸건만, 이승만을 장면으로 교체하려는 미국의 음흉한 정치음모가 실행되는 비극이 일어났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체는 여전히 은폐되었다. 그리고 어언 60년 세월이 흘렀다. 

 

4월 민중항쟁 기념탑에 새겨진 글귀처럼, 지난 60년 동안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피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려오고 있다. 미국의 제국주의지배를 그대로 두고서는 8천만 민족이 미국의 핵전쟁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가 해마다 4월이 오면 피묻은 혼의 하소연으로 들리고 있다. 미국의 제국주의지배를 그대로 두고서는 5천만 민중이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가 해마다 4월이 오면 피묻은 혼의 하소연으로 들리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당 180석? 문재인 독재 시작될 것"

친문 패권주의, 유사 전체주의, 신형 공안국가"…위기론 쏟아낸 통합당

21대 총선을 사흘 앞둔 12일, 미래통합당은 "이번 선거는 한 마디로 친문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폭주를 계속하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야당에게 이를 견제하기 위한 힘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거"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4.15 총선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정권 심판론'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단, 정부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견제론'을 부각시키며 '읍소' 전략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이날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4.15 총선 대국민 호소 집중 유세를 열고 "현 정권이 이번 선거를 통해 국회마저 장악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이 나라는 친문 패권세력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는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박형준, 신세돈 공동선대위원장, 나경원 서울 동작을, 오세훈 서울 광진을 후보, 유승민 의원 등이 참석했다. 

 

 

박형준 위원장은 "안 그래도 청와대가 독주하는 '청와대 정부'인데 의회 권력까지 독점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유사 전체주의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울산 부정선거처럼 청와대가 선거 부정을 자행했고 조국 사태로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무너졌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승리하게 된다면 윤석열 총장을 쫓아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이용해 자신으로 향하는 권력형 비리 수사를 막고 신형 공안국가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보수의 분열을 극복하고 중도까지 아우르는 통합을 했지만, 혁신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과거의 체질과 행태에서 못 벗어나 국민을 걱정시키는 일도 근절하지 못했다. 이 점에 대한 책임 통감하고 있다"고 자세를 낮추기도 했다. 그는 "혁신하고 또 혁신하겠다. 총선 직후부터 더 크고 더 근원적인 혁신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황교안 대표도 "과거에 우리 잘못한 게 많이 있었다. 아직까지 국민들의 마음을 다 풀어드리지 못했다"는 반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황 대표는 "얼마 전부터는 이제 정말 낮은 자세로 국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오히려 제가 제 몸을 낮추고 자세를 낮출수록 과거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어 "지금 이 문재인 정권의 오만이 정말 극에 달했다. 이번 총선에서 '180석을 얻겠다'고 하고 있다"며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전혀 아니다. 이러한 무도한 정권, 우리가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10일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비례대표까지 합치면 범진보 진영 180석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 대목을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이 정권이 만약에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한 마디로 나라 망한다"며 "미래통합당 똘똘 뭉쳐서 하나 되었지만, 아직까지 이 무도한 정권을 자신 있게 무너뜨리기에 아직 부족하다.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해주셔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유승민 의원도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면 '이니(문재인 대통령)' 하고 싶은대로 하는 문재인 독재가 시작된다"며 "민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면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정말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동안 저희들 국민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 진심을 담아 반성과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하지만 선거는 심판이고 선택이다. 국민들은 코로나 때문에 지난 3년 간의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절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로나 시대'에 읽는 무삭제판 '안네의 일기'

2차대전의 광풍 속 은신처에서 2년을 보내야 했던 안네가 남긴 기록들

20.04.12 11:09l최종 업데이트 20.04.12 11:09l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코로나19 자가격리를 위반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무단이탈 등으로 자가격리 지침을 어겨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 중인 사람이 70명을 넘었다는 뉴스를 보고 놀랐다.

하루아침에 방 한 칸에 갇혀 외출은 고사하고 가족과도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갑갑해서, 꽃구경을 하고 싶어서 등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자가 격리를 위반하고 거리를 활개하고 다니는 이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뉴스에서 들을 때면 참 이해하기 힘들다. 급기야 전자팔찌, 손목밴드를 부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코로나 시국'에 문득 '안네'가 떠올랐다. 
         
2차 대전의 광풍 속 은밀한 은신처에서 2년을 보내야 했던 '안네'.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창 밖을 내다보는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은신처의 생활. 14살의 소녀가 키가 한 뼘이나 자라 16살의 숙녀로 성장해 간 2년의 세월 동안, 은신처에 갇혀 지내야 했던 안네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며 견뎠을까?

좁은 은신처에서 2년 동안 매일같이 해온 일
 
 안네 프랑크
▲  안네 프랑크
ⓒ wikimedia commons

관련사진보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살던 14살의 평범한 소녀 안네. 이제 막 중학생이 돼 친구들과 어울려 거리를 활보하던 명랑한 소녀 안네에게 은신처의 생활은 정말 갑자기, 난데없이 어느 날 시작됐다. '인종 청소'를 명분으로 한 나치의 광풍이 전 유럽을 휩쓸던 1942년 7월 6일, 급작스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곳, 아버지의 잼 공장 3층 창고와 4층 다락방이 아버지가 미리 마련해 둔 가족들의 은신처였다. 안네는 이곳에서 나치에 의해 발각되는 1944년 8월 4일까지 2년 동안 숨어 지내게 된다.
      
아버지 회사의 공장장이었던 판 펜스의 가족 3명과 안네의 가족 4명, 그리고 치과의사 알베르트 뒤셀까지 합류해 8명이 함께 지내게 된 은신처. 좁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24시간 함께 지내야 하는 은둔 생활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창문을 여는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생활. 너무 답답하면 창문 틈에 코를 가까이 대고 바람을 마셨다는 안네. 그것도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시간들이 얼마나 암담했을까? 은신처에 숨은 지 4개월여 뒤인 1942년 11월 28일 일기에 그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수수께끼 놀이를 하기도 하고, 어두운 곳에서 체조를 하기도 하고, 영어와 불어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즉석에서 독서토론회를 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유쾌하고 긍정적인 소녀라고 밝힌 안네는 은신처에서도 불평하기보다 모든 상황을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자유의 시간을 기다리며 언니와 함께 매일 불어 불규칙 동사 5개씩을 매일 외우고 영어, 라틴어를 공부하기도 한다. 책 읽기에도 몰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일, 안네는 일기를 쓴다. 
 
이곳에서는 날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납니다. 하지만 나는 게으르고 지쳐 있기 때문에 도저히 모든 이야길 다 쓸 수는 없습니다.  
     
 책 본문에 실린 안네 가족이 살던 은신처 구조도.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의 창고 3, 4층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3가족, 8명이 2년을 살았다.
▲  책 본문에 실린 안네 가족이 살던 은신처 구조도.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의 창고 3, 4층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3가족, 8명이 2년을 살았다.
ⓒ 문학사상사

관련사진보기

 
이 구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숨겨진 다락방에서 한 소녀가 아니라 세계적인 대작가가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좁은 공간, 똑같은 일상, 똑같은 사람들, 그런데 안네는 매일 도저히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적고 있다.

안네는 늘 눈을 반짝반짝 뜨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말을 듣는 데 귀 기울였다. 판단 아주머니와 엄마는 왜 다투는지, 치과의사 엘베르트 뒤셀은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의 특성과 생각, 말 어느 것 하나도 흘려듣지 않고 관찰한다.

글의 힘은 남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내가 '발견'하는 데 있다. 나의 발견에 사람들이 공감할 때 나의 글은 힘을 가진다. 일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글감을 발견해내는 능력, 작가에게 필요한 이 능력이 은신처에서 갇혀 사는 안네에게는 이미 갖춰져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발견해내고야 말겠어요"
 
 문학사상사 <안네의 일기>. 총 466페이지로 기존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책보다 200페이지가 더 길다.
▲  문학사상사 <안네의 일기>. 총 466페이지로 기존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책보다 200페이지가 더 길다.
ⓒ 문학사상사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써 내려간 <안네의 일기>는 전 세계 베스트셀러 10위에 오르며 2700만 부가 팔렸다. 베스트셀러답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 시절을 거치며 <안네의 일기>를 읽었을 테지만, 무삭제판 <안네의 일기>를 읽은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문학사상사에서 펴낸 <안네의 일기>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무삭제판은 기존 <안네의 일기>에 비해 200여 쪽이 더 많다. 그러니 기존 <안네의 일기>는 거의 반쪽짜리 일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안네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무삭제판 < 안네의 일기>를 읽어야 한다. 
     
반쪽짜리 <안네의 일기>가 초판으로 나온 이유는 2차 대전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빠가 안네의 일기 원본에서 문제가 될 만한 내용들을 삭제하고 출판을 했기 때문이다. 안네가 적나라하게 적어놓은 동거인들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여성으로 성숙해 가는 안네가 느끼는 페터와의 떨리는 사랑에 관한 부분들을 다 삭제하고 펴낸 탓이다. 

<안네의 일기> 초판이 나온 50년 뒤 발간된 무삭제판 <안네의 일기>는 아무리 봐도 10대 소녀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깊이를 담고 있는 책이다. 때문에 한때 <안네의 일기>는 안네가 직접 쓴 게 아니라는 진위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네덜란드 국립 자료 연구소에서 모든 조사를 거쳐 안네가 직접 쓴 일기임을 증명해 내기도 했다.
 
나는 글 쓰는 걸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엄마와 판단 아주머니, 그 외에 많은 여성들처럼 매일 집안일만 하다가 어느 사이엔가 잊힌 존재로서 한평생을 보내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꼭 무언가를 얻고 싶습니다. 남편과 아이들 말고도 이 한 몸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을 무언가를 말이에요.

1940년대의 시대 상황 속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가졌던 안네는 훗날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은신처에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들 가족이 2년간의 은둔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 공장의 직원인 클레이먼과 베프, 퀴흘레르가 옥죄어 오는 감시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생활을 은밀하게 뒤에서 도왔기 때문이다. 몰래 배급표를 사서 물자를 공급해 주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안네에게 넣어주기도 한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안네는 작가의 꿈을 키운다. 전쟁이 끝나면 네덜란드 국민들의 전쟁 수기를 모집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안네는 더 열심히 일기를 쓴다. <은신처>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쓸 계획도 세워둔다. 
 
내가 결국에는 이 일기장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키티는 언제나 참아주고 나의 주장을 끝까지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견뎌 보겠다고 말이에요. 눈물을 삼키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나의 길을 발견해 내고야 말겠어요.

'코로나 시대'에 안네의 일기를 읽는다는 것
 
 안네의 일기장
▲  안네의 일기장
ⓒ wikimedia commons

관련사진보기

 
'종이는 사람보다 잘 참는다'라고 믿었던 안네는 좁은 공간에서 부딪히는 어려움과 고통, 전쟁에 대한 공포,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이해할 수 없는 박해 등 안네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일기장 '키티'에게 털어놓는다. 안네의 마음이 거울처럼 오롯이 비쳐 드러나 있는 <안네의 일기>. 그런 와중에도 안네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주는 선한 이웃들을 통해 다수 인간의 선함을 믿고 결국은 해방될 날이 다가올 것임을 간절히 기대한다.   
 
네덜란드 전체에서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보수를 받고 안 받고는 별개로 당국에 쫓기고 있는 기독교도뿐만 아니라 유대인들까지도 숨겨 주고 있었는가를 나중에 알게 되면 누구라도 틀림없이 놀랄 겁니다 . - 1943년 5월 2일 

마치 친구에게 고백하듯 경쾌한 어투로 일기장 친구 '키티'에게 진심을 털어놓았던 안네, 안네는 항상 일기장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그럼, 다음에 또. 안네로부터

2년 동안 꾸준히 이어진 그 약속은 1944년 8월 1일의 마지막 일기 이후 더 이상 지켜지지 못한다. 사흘 뒤인 8월 4일, 독일의 비밀경찰 습격을 받고 은신처에 있던 8명은 모두 잡혀간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오직 아버지만 살아남았을 뿐 엄마와 언니, 안네는 모두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 만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만약 살아 있었다면, 우리는 훌륭한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수많은 대표작을 쓴 뛰어난 작가를 가지게 됐을지도 모르는데... 인간의 계산과는 다른 신의 뜻이 있는지, 안네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어쩌면 안네는 죽어서나마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뚜렷한 목표 없이 그냥 타성에 젖어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내 주위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필요한 존재이고 싶습니다. 나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저널리스트나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겨우 16년을 살다 지구별을 떠났지만 그의 일기는 전 세계를 여행 중이다. 수십 개 나라의 언어로 번역됐고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으니,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안네의 꿈은 이뤄진 것은 아닌지...

읽을 때마다 감동을 안겨주는 책이긴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인에게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의 미션이 주어진 코로나 시국에 읽는 <안네의 일기>는 갇혀 있는 안네의 고통을 새삼 온 몸으로 느끼게 한다. 2주가 아니라 2년을 잘 버티고 인내한 안네. 안네에게 2주의 자가격리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몸은 비록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되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강건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안네를 보면서, 어떠한 혹독한 조건도 감히 인간의 정신까지는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다. 그들에게 바로 그곳, 세상과 격리된 조용한 공간에서 <안네의 일기>를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반드시 무삭제판 <안네의 일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자의 개인 블로그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adad

안네의 일기 - 완전판

안네 프랑크 (지은이), 홍경호 (옮긴이), 문학사상사(199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