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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새로운 길, 미리 계획이 있었을지도...

<2019 송년특집 ②> 북한 내부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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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5  02: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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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019년은 연말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지난해 순항하는 듯한 북미관계가 올해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결렬로 갸우뚱거리더니 그 여파로 한반도 정세가 일 년 내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한마디로 북미관계가 막히자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모두 경색된 해였습니다. 

북한이 ‘연말 시한’으로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천명한 상황에서 이 며칠 안 남은 연말까지 한반도의 진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불허인 가운데, 통일뉴스는 <2019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한 내부 ③북미관계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올 연말이면 1953년 이래로 남북의 삶을 옥죄이던 정전체제가 종언을 고하고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항구적인 평화체제로의 이행 문제가 당면의 구체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지난해 초부터 한반도 정세에 극적 반전이 일어나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역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올해 초만해도 2019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소기의 결론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한해의 끝자락에서 목도하게되는 현실은 '성탄절에 하늘에서 떨어질 선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일 것이다', '그렇진 않을 것이다'라는 험악하기 그지 없는 실정이다.

나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의 입장전환을 촉구하면서 직접 언급하고 여러 차례 확인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새로운 관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북한이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천명한 '새로운 길'이 드디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새로운 길', 준비하고 있던 계획 중 하나

상호 전략적 이해를 충족하기 위해 사상 초유의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북한과 미국은 어떻게 하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길'이란 무엇이며, 북미협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길일까? 앞으로 북미협상은 계속 이어지고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작별 악수를 하는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북미협상이 꼬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2월 27~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없이 노딜(no deal)로 끝난데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영변핵시설을 포기하는 대신 2016년 이후 채택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5개 가운데 일부인 민생·민수 분야 제재해제를 요구하는 안을 제시했고, 이에 미국은 합의서 채택의 조건으로 추가적인  비핵화 즉 '하나 더'를 추가해 협상이 결렬된 것. 

포괄적 비핵화 합의,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제시하는 미국의 주장과 단계적 비핵화, 단계적·등가적 교환을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이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된 셈이다. 

하노이 노딜에 대한 북한의 충격은 회담에 배석했던 당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 발언에서 그대로 전해져 온다.

"지난 시기 있어보지 못한, 영변 핵 단지를 통째로 폐기할 데 대한 제안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민수용 제재 결의, 부분적인 제재 결의까지 해제하기 어렵다는 미국측 반응을 보며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 조미 거래에 대해 의욕 잃지 않으시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이런 기회 다시 미국 측에 차려지겠는지 여기 대해선 장담 힘들다.”

급격히 냉랭해진 북미관계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어갈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하노이 결렬 후 北의 최대관심은 '안전보장'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어갈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올해 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보겠다고 밝혔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 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재확인하고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북)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연말 기한', '미국의 새로운 셈법', '자력부흥', '대북적대시정책 중단', '남측 당사자론' 등 주요 개념을 두루 밝혔다.

특히 “장기간의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해 제재해제를 기다리기 보다 자력으로 제재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미국이 세계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수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새로운 길’을 언급한 대목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북미협상은 이후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을 거쳐 10월 5일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으로 이어졌으나 하노이 결렬 이후 북의 달라진 입장, 탄핵과 대선 레이스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으로 인해 협상은 다시 난항에 빠져들었다.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북한은 하노이에서 제시한 제재해제 조건이 아니라 지금까지 북이 선제적으로 취한 △핵·미사일 시험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군유해 송환 등에 대한 미국의 신뢰조치를 요구했다. 

미국은 영변핵시설 폐쇄와 우라늄농축 종료에 대한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개소 외에 석탄과 섬유류 수출 36개월 유예 등의 조치를 제시했으나 북은 △한미군사연습 중단 △전쟁장비 반입중지 △싱가포르 회담 이후 취해진 15개 제재 해제 등 안전보장 조치를 요구했다.

한마디로 대북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라는 것. 또 비핵화 수준에 맞게 단계적으로 이행 가능한 상응조치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실무협상 결렬 직후 북한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제거될 때"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미국을 향해 말한 '새로운 셈법'이 '안전보장'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북미정상이 합의한 실무협상이 또 다시 결렬되자 북한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셈법'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자력갱생과 군사력 강화를 재차 강조했다.

4월 시정연설에서 이미 장기전 태세를 천명한 김 위원장은 그 뒤 20차례 이상 군사분야 공개 활동을 강화하고 10여 차례 이상 발사체 시험을 실시하는가 하면, 실무협상 이후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비롯해 김계관 외무성 고문, 김영철·리수용 당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박정천 군 총참모장 등 인사들이 19차례 이상 대미 메시지를 발표하는 등 지리한 답보상태에서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과 공격형 무기 도입 반대 등 '안전보장' 요구를 집요하게 제기했다.

美 '새로운 셈법' 없는 한, 北 '새로운 길'은 불가피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월 28일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초대형방사포시험사격을 참관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이에 따라 북한은 12월 하순 소집될 제7기 제5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길'에 대한 결정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핵보유국 지위를 재확인하고 북미 비핵화협상을 잠정 중단하며, '자위적 국방력 강화 차원의 전술·전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중국·러시아 등 국제연대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자력으로 경제건설에 집중하여 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완수하는 것 등이 '새로운 길'의 골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4월 제7기 제3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ICBM 시험발사 중지를 결정했을 뿐이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의 핵물질 생산과 동창리 발사장 엔진시험 등을 통해 핵무력의 질량적 증대를 과시할 수 있으나 당장 ICBM 발사 등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는 결정은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사항이다. 

미국과 적대적이지 않은 새로운 관계를 목표로 하는 북으로서는 적절한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최소한 현상유지는 되어야 하는 범위안에 '새로운 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말 제5차 전원회의에서 핵·ICBM 시험발사 중지 결정을 되돌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내년 신년사에서 이에 입각해 '새로운 길'을 천명할 경우 ICBM 발사 카드도 테이블 위에 올려질 수 있다.

다만, 6차까지 진행한 핵실험은 기존 데이터를 근거로한 시뮬레이션 만으로도 기술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어쩌면 북의 '새로운 길'은 연초 신년사에서부터 계획이 다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다만 남측 당국에 대해 북미협상의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니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4.27, 9.19합의 이행에 나설 것을 줄곧 요구했던 북으로서는 북미에 앞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나설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점은 아쉬울 뿐이다.

내년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 성공 선포할 것

   
▲ 지난 4월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모습. 12월 하순 제5차 전원회의 소집을 예고했지만 아직 일정은 공지되지 않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렇다면 북한 내부 사정은 어떨까?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 수정 보충을 통해 국무위원장의 권능을 확대·강화하여 김 위원장을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영도자로 부각한 북한은 내년 당 창건 75돌을 맞이한다.

최근 북한은 국기, 국장 등 국가 상징을 강조하고 있고, 국화, 국조, 국수는 물론 국견, 국주에 이르기까지 국가 상징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 민족 제일주의'에 이어 '우리 국가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국제사회에서의 '보통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국정 지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인 내년에 가시적 경제성과를 내놓는 것이다. 

북한은 내년에 자력갱생 기조 아래 과학기술 중심의 경제발전 전략을 추구하면서, 제재와 무관하게 추진할 수 있는 관광사업 확대와 대규모 건설을 통한 경제부흥 효과를 과시하고 이같은 가시적 성과를 기초로 질적 지표와는 상관없이 어쨌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목표 달성을 대내·외에 선포할 것이다. 최근들어 북한에서 자력갱생을 넘어 자력부흥과 자력번영의 구호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 경제는 제재 장기화에 대응하는 과정에 축적된 내부의 인적 및 물적 자원과 금융, 과학기술역량에 기반한 자력갱생 체제 구축, 공장·기업소와 농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개혁 조치를 비롯해 제재 극복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며, 제재로 인한 외화수입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시장물가와 환율 등 거시경제의 안정세는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이다.

앞으로 삼지연지구,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양덕온천문화휴양지 등이 모두 열리게 되면, 북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또 제재 영향에서 벗어나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해 생산·소비·투자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일련의 조치를 취할 뿐만 아니라 경제활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의 자율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조치를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 지난 12월 2일 2단계 공사를 마치고 완공한 삼지연군 삼지연읍지구 전경. [통일뉴스 자료사진]

여기에 북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지역 정세의 안정을 희구하는 중국·러시아와 교역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 내년에도 북한은 제재외 품목을 중심으로 중·러와 교역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특히 올해 30만명에 이르는 중국 관광객이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원료와 연료, 생필품 등의 원활한 공급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교역은 당분간 북한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최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북한 해외근로자 송환 규정 폐지 등 안보리 대북제재 일부 완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도 북에는 우호적인 환경으로 꼽힌다.

   
▲ 2019년 북한 주요 일지[편집-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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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연말 시한’, 마지막 해법은?

<통일시론> 다가온 ‘연말 시한’, 마지막 해법은?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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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4  01: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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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언명한 ‘연말 시한’이 다가왔다. 지금 북한과 미국 간 갈등의 첨단에는 ‘새로운’ 것들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길’, ‘새로운 계산법’ 그리고 ‘새로운 방법’이 그것이다.

지난해 북미는 싱가포르 성명 1항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에 합의했다. 한창 비핵화니 그것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니 하며 북한문제 전문가들과 여론들이 나발을 불었지만, ‘완전한 비핵화’로 간단히 정리됐다. 그것도 성명의 세 번째에 놓인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새로운 관계’ 수립이었다. 당시 성명은 대체적으로 북한 측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는데, 그렇다면 북한은 미국과 다른 무엇도 아닌 관계 정상화, 그것도 기존의 관계를 타파하고 ‘새로운 관계’를 얼마나 맺고 싶었나 하는 열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부터 곧바로 양국관계는 부침이 심해졌다. 그러자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제재와 압박을 가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미 그 당시 미국 측의 분위기를 알아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실상 북미관계의 분수령이 될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다분히 미국이 의도적으로 결렬시킨 것으로 봐야한다. 북한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리비아 모델’을 요구했으며 또한 같은 시간에 열린 코언 청문회를 덮기 위한 판깨기 요소도 짙었다. 북한은 모처럼 ‘최고 존엄’이 열차를 타고 하노이로 가는 세기적 광경을 보여주었지만 결과는 ‘결렬’이었다. 북한 측의 당혹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일었을 터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침묵을 지키던 북한은 4월 시정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연말을 시한부로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물론 미국 측은 ‘연말 시한’에 대해 북한 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시한이지 자기네가 인정한 것도 아니고 또 자기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항변한다. 올해 12월이 지나도 내년에도 계속 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측은 다르다. 북한의 4월 시정연설은 일종의 출사표인 것이다. 한쪽이 접는데 다른 쪽이 조른들 성사될 리 만무하다.

며칠 안 남았다. 방법이 없을까? 이미 나온 바 있다. 비록 결렬됐지만 지난 10월 초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해임하며 꺼낸 ‘새로운 방법’이 그것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법’ 언명은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창의적인 방안’으로 개명돼 나타난 듯했으나 북한 측의 ‘새로운 계산법’에 부응하기에는 기대치 이하였던 것 같다. 스톡홀름 실무협상 역시 결렬됐으니까.

‘연말 시한’을 정한 북한은 자신의 일정표대로 착착 진행하고 있다. 북한매체 보도 기준으로 22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3차 확대회의가 진행됐으며, 곧 이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이 제시될 것은 요지부동이다. 북한의 ‘새로운 길’ 제시를 막아야 한다. 북한의 ‘새로운 길’ 제시는 북미관계의 파탄과 함께 남북관계 경색과 한반도 정세의 질곡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해법은 없는가?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법’을 더 다듬고 구체화해야 한다. ‘새로운 방법’에는 당연히 북한이 요구하는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들어가야 한다. 시간적으로 촉박하고 또 미국 내 탄핵 정국으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협소해 당장 ‘새로운 방법’을 내올 수 없다면, 믿을만한 보증수표를 통해 내년 초 북미 정상회담을 약속해 일단 북한의 ‘새로운 길’ 제시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북미관계 최상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새로운 계산법’ 요구에 미국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합의를 봄으로써 북한이 ‘새로운 길’로 가지 않고, 결국 북미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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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삭제' SPC 보도자료는 오늘도 언론서 펄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12/25 10:39
  • 수정일
    2019/12/25 10:3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언련 "SPC, 언론사를 기사 매매 중개사로 전락시켜"…언론의 후진적 상업화 가속화김혜인 기자 | 승인 2019.12.24 14:39
 

[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경향신문에서 협찬금을 대가로 기사를 삭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협찬금 제안으로 기사 삭제를 이끌어낸 곳은 SPC로 이번만이 아니었다. 

지난 22일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는 지난 13일 게재 예정이었던 기사가 ㄱ 기업으로부터 ‘협찬금 지급’ 약속을 받고 사장과 편집국장의 동의하에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지회는 ‘독자여러분들에게 사과한다’는 온라인판 기사에서 “ㄱ 기업은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협찬금 지급을 약속했고 사장은 기사를 쓴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고 해당 기자는 사표를 냈다”고 전했다.

이어 “19일 기자총회를 열고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은 이번 일에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다”며 “내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이 사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 사과 이후 ㄱ기업은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베스킨라빈스의 모그룹인 SPC라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삭제된 기사도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해당 기사는 중국 법원의 ‘파리바게뜨’ 상표 등록 무효 판결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13일 경향신문 ‘지역 배달판’을 입수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1면 <중 “파리바게트 상표 등록 무효”…한국 기업들 ‘2차 한한령’공포>와 22면 <프랑스도 인정했는데…‘몽니’ 앞에 속앓이> 기사다.

중국 베이징 지적재산권법원이 지난달 파리바게뜨의 상표 등록이 무효라는 판결을 내놓았고 1심 판결대로면 중국 내에 300여 개의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인 파리바게뜨가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SPC그룹이 경향신문에 해당 기사를 삭제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금액은 5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 사태수습 중인 경향신문, 오늘 사원주주회 열려

지난 19일 기자총회가 열린 이후 경향신문 내부는 사태 수습 중에 있다. 박효재 경향신문 기자협회지부장은 “지회 차원에서의 결의내용으로 경향신문 23일자 지면에 사과문이 실리는 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해당 기자가 사표를 낸 이유가 기사 삭제 항의 차원으로 볼 수 있는지, 삭제된 기사를 내보낼지 등은 내부 논의를 거친 이후 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부 진상조사위원회 구성도 사측에 제안만 한 상태로 추후 협의를 통해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대광 전국언론노동조합 경향신문 지부장은 “지난 20일 노조는 집행부회의를 열고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편집권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한 사건으로 사장의 사의 표명은 당연한 결정 ▲진상조사위원회 사측 참여 ▲사측, 노동조합, 우리사주회가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이다. 

23일 경향신문 사장은 “퇴진하겠다는 뜻을 철회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며 편집권과 인사권은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규에 따라 본래 4명인 이사가 내부 사정으로 사장 포함 3명으로 사장이 당장 대표 이사직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태다. 24일 사원주주회가 열려 사장 선임과 관련한 안건이 다뤄질 예정이다. 사장의 입장을 바탕으로 차기 사장 선임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 돈으로 통제하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 

SPC의 기사 거래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는 22일 ‘고발뉴스TV’에서 “언론에 광고·협찬을 주고 자기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내리는 게 일상적인 업무”라며 “이를 통해 언론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대기업, 특히 삼성과 SPC 같은 그룹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2013년 5월, SPC가 고발뉴스에도 기사 매수 시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고발뉴스는 SPC가 <파리크라상 ‘가맹점 인테리어 강요’ 돈벌이 과징금>, <파리크라상, 세무조사 직전 매출기록 삭제 논란> 등의 기사를 내리는 조건으로 광고를 주겠다고 제안했던 사실을 보도를 통해 폭로한 바 있다.

지난 1월 뉴스타파는 조선일보와 SPC그룹의 기사 거래 의혹을 보도했다. 조선일보 기자 3명이 박수환 뉴스컴 대표로부터 금품 및 선물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박 대표가 SPC그룹과 조선일보 기자 사이에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다. 뉴스타파는 SPC그룹이 2015년 조선일보 기자 부녀의 항공권을 대신 구매해줬고 금품을 받은 기자가 파리바게뜨 홍보 기사 게재에 개입되어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3일 논평을 내고 “경향신문 기자들의 폭로로 확인할 수 있는 사태의 면면은 ‘기사 거래 관행’이 우리 언론계에 뿌리 깊게 구조화되어 있으며, 악습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에 스며들었음을 암시한다”고 강조했다.

민언련은 “언론사가 기사 매매 중개사로 전락한 현 상황에 기업들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이 언론을 자신들의 홍보 기구 쯤으로 취급하거나 돈으로 통제하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것”이라며 “이는 최근 미디어 환경의 급변으로 생존이 어려워진 언론사들의 경제 사정과 맞물려 우리 언론의 후진적 상업화를 가속화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SPC는 기사 삭제 파문이 불거진 이후 ‘SPC 그룹 계열사, 일자리 창출 정부포상 수상’, ‘SPC 한정판 크리스마스 케이크 30만개 품절’ 등을 보도자료를 발표했으며 이를 받아 쓴 기사들은 50개가 넘었다.

24일 12시 15분경 네이버 뉴스면에 'SPC'를 검색한 결과 (사진=네이버)

김혜인 기자  key_mai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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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
 
 
 
강기석 | 2019-12-24 11:27: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뒤늦게 「뉴스공장」을 듣다 전후석 감독을 알게 됐다. 재미교포 2세 변호사로 쿠바를 여행했다가 우연한 계기로 쿠바에 살고 있는 한국인 후예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고 한다. 구한말 헐벗고 굶주린 수많은 조선인들이 먹을 것을 찾아 자의 반 타의 반 조국을 떠났다. 많은 이들이 하와이와 중남미 사탕수수 농장 등으로 갔다고 하던데 이 영화는 그중 쿠바로 간 이들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고향을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로 떠나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거주하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나라를 빼앗긴 채 남의 땅을 전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 쿠바의 한인 후예들을 ‘한인 디아스포라’라 칭할 만 한데 1930년대에 연해주에서 살다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추방된 한인 후예들(고려족)도 그 범주에 속할 것이다. 재일동포, 조선족도 마찬가지다. 전 감독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는 8백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디아스포라는 ‘유태인 디아스포라’이다. 2천 수백 년에 이르는 이 ‘유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누군가 짓궂게 ‘이스라엘 삼국지’라 부르기도 하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유태인들은 결국 ‘시오니즘’을 통해 1948년 그들의 나라 ‘이스라엘’을 재건국했다. 그 과정은 미국의 부와 권력, 할리우드를 장악한 유태인들에 의해 극도로 미화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소개됐었다.

반면 우리는 ‘한인 디아스포라’, 즉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국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정이 없고 관심이 없고 역사의식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한인 디아스포라’는, 전 감독에 따르면, 조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크다. 전 감독은 “(‘유태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이 이스라엘 건국이라고 한다면)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오니즘은 ‘통일 한반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가슴이 뭉클하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라를 빼앗긴 채 이국땅으로 떠난 이들과 그 후손들에게 분단된 한반도는 아직 완전히 회복된 조국이 아닐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한반도 남쪽에서 헤헤거리며 살고 있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트럼프의 농간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완전히 원 위치로 돌아 온 지금,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얼마나 흉악한 것일까, 가슴 졸이는 오늘, 남한 땅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국기를 흔들어대는 이들이 새삼 역겹다.

이들을 선동하는 야당 대표라는 사람이 못 견디게 역겹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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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접어든 문재인 정부... 국정원이 문제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해야 할 이유 ⑤] 국민은 제대로 된 정보기관을 원한다

19.12.24 20:12l최종 업데이트 19.12.24 20:21l

 

국정원의 수사권 이관(폐지)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며 중요한 권력기관 개혁방안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국정원법 개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정원법 처리가 지지부진한 사이 국정원이 또다시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프락치를 활용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만들기 위해 증거를 날조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권한을 남용한 사례를 중심으로 '국정원 수사권을 폐지해야 할 이유'에 대해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기자말]

 

청와대, 권력기관 개혁 방안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형연 법무비서관,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2018.1.14
▲ 청와대, 권력기관 개혁 방안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형연 법무비서관,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2018.1.1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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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구성된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이하 국정원 개혁위)는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민간 전문가 8명과 전직 국정원 직원 3명, 현직(국내파트 담당 차장, 기조실장) 2명 등 13명으로 구성되었고, 2017년 6월 19일부터 1차로 6개월간 활동한 뒤 일부 인원이 남아 2차로 100일간 더 활동하였다.

여러 가지 아쉬움과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위는 2017년 12월 수사권 이관과 국내 정보 수집 금지를 명시한 국정원 개혁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댓글사건(사이버 외곽팀 최초 적발), 화이트리스트, 블랙리스트 사건 등 적폐사건(15개+7개)에 대한 조사를 통해 원세훈 전 원장 등 전직 4명, 민간인 50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국정원 개혁위의 국정원 개혁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2년 이상 지났다. 그런데, 개혁법안은 감감무소식·오리무중의 상태에 빠졌고, 법안은 패스트트랙에도 합류하지 못한 채 뒷전에 밀려나고 말았다.

위기에 처한 개혁

 

국정원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떠들썩했던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숨가빴던 적폐청산 과정에서 정작 국정원의 힘은 뺐는데, 적폐의 공범이었던 검찰의 기만 살려준 꼴이 되고 말았다.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국정원 개혁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과 답답함을 떨칠 수가 없다. 촛불혁명으로 어렵게 만들어진 천재일우의 기회가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개혁위가 제시한 이른바 '국정원 개혁안'은 국정원 측의 동의를 전제한 것이었다. 당시 분위기 탓이겠지만, 국정원은 '수사권 이관'과 '국내정보 수집금지'에 대해 원칙적으로 수긍했다. 국정원이 진정한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국정원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물론, 필자가 접촉해본 많은 직원들은 적어도 '수사권'과 '국내파트'에 대한 미련이 없는 듯했다(속마음까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런데 어찌된 이유인지 공수처법과 패키지가 되어버린 국정원 개혁법은 정치적 힘겨루기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보수야당은 "간첩은 누가 잡냐"라는 해묵은 프레임을 들고 나왔고, 여당은 지방선거 등을 핑계로 머뭇거렸다. 국정원은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호재를 맞아 이미지 쇄신에 일부 성공했지만, 개혁에 대한 자체 의지는 차츰 퇴색해갔다.

잘못된 시작은 바로잡아야 한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던 김종필은 생전에 "애초 중정이 수사권을 갖게 된 것은 (소위) '혁명정부'를 지켜야 하는 특수상황에서 비롯된 예외적이고 한시적인 것이었음"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는 "민간정부가 정식 출범한 뒤엔 수사권을 법무부에 환원하려 했지만 수사권을 유지했다. 정보부 창설자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토로한 바 있다. 덧붙여 그는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하는 건 수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처럼 수사권은 '잘못된 시작'에 의한 것이었지만, 60년 가까이 국정원 권력의 원천으로 기능해왔다. 국정원은 수사권과 국내정보수집이라는 두 가지 축을 통해서 정보기관이 아닌 권력기관으로 국민 위에 군림해왔다. 말로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며',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소리없는 헌신"을 외쳤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해" 일하고, "정보는 국력이다"(이상 중정, 안기부, 국정원의 원훈)라고 소리 높였지만, 권력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은 국민들에게 두려움과 분노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제라도 국정원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자 한다면 먼저 수사권을 버려야 한다. 수사권을 버려야 국정원이 살 수 있다. 단언컨대, 수사권은 국정원이 경쟁력을 갖추는데 독이 되는 요소이다. 세계는 지금 무한정보경쟁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탈북자들의 신상을 털고, 프락치 공작에만 열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껏해야 미국이나 일본 눈치를 보면서 종속 변수 취급을 받게 될 뿐이다.

사이버 전쟁, 대 테러 전쟁 등 신 안보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보기관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그런데, 국정원은 여전히 믿기 어렵고, 여전히 위험한 존재다. 수사권을 가지고 있고, (지금은 자제하고 있지만 법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국내 정치에 개입할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권력기관의 속성이다.

국정원이 국민들의 바람과 명령, 즉 '경쟁력 있는 정보기관'에 한걸음이라도 다가서기 위해서는 국민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야 하며 그 시작은 수사권 이관이다.

안보는 신뢰로부터 비롯된다

대공수사권이 검찰이나 경찰로 이관되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은 '안보'를 앞세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보기관이 우뚝 서야 안보가 굳건해진다. 초기에는 다소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대공수사권이 이관되더라도 대북공작은 국정원의 임무이므로, 경계가 불분명한 사례도 생길 것이다. 대북공작을 하려면 첩보를 수집해 공작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첩보와 정보는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세계의 모든 선진 정보기관은 수사권 없이도 정보수집과 공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바탕은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다. 그리고 정보기관의 경쟁력이다. 정보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도 한몫하고 있다.

2019년 12월 지금은 모든 것이 막혀있다. 정권은 후반기로 접어드는데, 개혁작업은 마무리되지 못했고, 위임받지 않는 권력이 위임받은 권력을 위협하는 '권력투쟁의 장'이 심화되고 있다. 그래도 국회에 기대해본다. 먼저, 국정원법을 개정하라. 수사권을 이관하고, 국정원이 국내 정보수집에 더이상 미련을 갖지 않도록 하라. 그것이 국정원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의 명령을 이행하라.

덧붙이는 글 | 장유식 변호사.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전임소장이자 현 실행위원으로, 시민사회에서 국정원 개혁 운동을 하고 있으며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의 공보 간사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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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호떡집 미국

[아침햇살59] 불난 호떡집 미국
 
북한의 ‘새로운 길’ 앞에서 난리난 미국
 
문경환 
기사입력: 2019/12/24 [23: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1. 자가당착에 빠진 미국 민주당

 

(1) 미국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8명의 민주당 중진 상원의원이 지난 1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에 관한 서한을 보냈다. 언론들은 관련 기사 제목을 「미 민주 “화염과 분노 회귀 안 돼”...트럼프에 서한」(연합뉴스), 「미 민주, 트럼프에 “‘화염과 분노’ 복귀는 심각한 오산”」(동아일보) 등으로 뽑으며 마치 민주당이 트럼프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을 반대하는 서한을 보낸 것처럼 보도했다. 심지어 한겨레는 「주목되는 미 상원 중진들의 ‘대북 강경책 반대’ 서한」이란 제목의 사설까지 내보냈다. 하지만 정작 서한 내용을 보면 전혀 아니다. 

 

이들은 서한에서 “북한이 외교 및 비핵화 약속을 충족시키기 위한 중요한 조처들을 아직 하지 않은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약속을 위반하고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도 문제라며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영구적 금지를 보장하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 ▲지난 6개월 간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대응조처 없이 용인한 점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유린’에 책임을 묻는 노력을 저버린 점 등을 지적했다.

 

또 이들은 트럼프 정부가 해야 할 과제로 ▲북한의 핵무기·미사일 프로그램을 검증가능하게 동결하고 폐기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 ▲적절한 제재 지속 등 대북 압박 ▲단단한 억지 태세 ▲동맹 강화 ▲외교적 관여 강화 ▲완전한 비핵화와 지속가능한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을 제공할 남북간 대화 심화 ▲영변 핵 단지와 다른 핵 시설들을 검증가능하게 폐기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화염과 분노’ 위협이나 그 외 파멸적인 전쟁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북한에 대한 ‘핵 강압’ 시도를 재개하는 게 협상 테이블보다 나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심각한 오산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일단 서한의 내용을 보면 새로운 내용도 없고 트럼프 정부의 정책과 다른 점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서한이 트럼프 정부에 그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2) 자가당착에 빠진 서한 내용

 

미국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연말 시한을 이대로 넘기면 북한이 ‘새로운 길’로 갈 것인데 그것이 아무래도 군사적 행동일 가능성이 높으니 이를 막기 위해 서한을 작성했다. 그러면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걸 제시했어야 한다. 북한은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지금은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요구를 어떤 식으로 수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북한을 압박하고 위협하자는 주장은 그간 수십 년 동안 미국이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기에 무의미하다. 

 

그런데 서한을 보면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유린’에 책임을 묻고, 대북제재를 지속해 북한을 압박하고, 군사적 억지태세를 강화하고(이 말은 군비증강이나 군사훈련 강화를 의미한다),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라는 얘기밖에 없다. 그냥 전부터 하던 것, 지금 트럼프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을 다시 나열했을 뿐이다. 북한의 요구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어찌 보면 민주당 서한은 그냥 북한을 ‘새로운 길’로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한의 목적과 서한의 내용이 따로 논다. 자가당착이다. 

 

또 서한을 보면 영변 핵 단지와 다른 핵 시설들을 검증가능하게 폐기하라는 주문도 있다. 이는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의제로 다룬 내용이다. 당시 북한은 대북제재 가운데 민수분야를 해제하면 영변 핵 단지를 검증가능하게 폐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서한에서 대북제재를 유지하라고 주문했다. 제재유지와 영변 핵 단지 폐기라는 양립 불가능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것을 내줄 생각은 없고 남의 것을 뺏을 생각만 있는 극단적 이기주의다. 

 

서한이 주문한 단단한 억지 태세 유지와 동맹 강화는 결국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의 핵을 빼앗자는 논리다.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깡패의 논리, 패권주의 논리다. 

 

민주당은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었던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대북 핵위협을 하는 것보다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횡설수설이다. 

 

협상이란 양측의 조건이 맞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와야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고 조건을 분명히 제시했다. 민주당 생각처럼 아무 때나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협상이 아니다. 민주당은 대북압박을 지속하면서 협상을 하라는데 애초에 모순되는 요구다. 미국은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기 입장만 밀어붙이는 데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자기 처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아직 일방주의에 빠져 있다. 

 

이처럼 미국 민주당은 지금껏 북미 사이에 어떤 협상과 대결이 진행되었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서한을 썼다. 북한은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오면 협상을 하겠다, 대북적대정책 유지하면 ‘새로운 길’로 가겠다고 하는데 민주당은 엉뚱하게도 대북적대정책 유지하면서 협상을 하라, 아무 것도 주지 말고 비핵화만 얻어내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기주의의 끝판왕이며 일방주의, 패권주의로 똘똘 뭉친 나머지 현실 인식도 못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다. 

 

(3) 입장 바뀐 민주당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나자 민주당은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북미 공동성명에 대해 “매우 걱정스럽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도 성명에서 “비핵화 약속은 모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양보했다”고 지적했다. 브라이언 샤츠 상원의원은 트윗을 통해 “이건 미국의 리더십을 포기한 것”이라며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은 이번에 서한을 보낸 이유에 대해 “연말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한 당신의 노력이 교착되고 실패 직전에 가 있는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이제와서 싱가포르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1년 반 전에 자기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잊어버린 것 같다. 

 

반면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자 민주당은 안도와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회담의 핵심 이슈 중 하나는 영변 핵 시설 폐기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해 합의 없이 회담이 끝났다. 그러자 당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잘 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의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 것도 주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번 서한에서 영변 핵 시설 폐기를 다시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이쯤 되면 기억상실증을 의심할 만하다. 

 

(4) 기억상실인가 조현증인가

 

민주당이 서한에서 횡설수설하는 걸 보면 과거 자신이 무슨 주장을 했는지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서한 안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는 걸 보면 기억상실보다는 조현증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차라리 과거에 했던 자기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해라도 가지만 지금 상황은 그냥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이상이 아니다. 

 

민주당이 이런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공포 때문인 듯하다. 사람이 공포에 질리면 이성적 판단 능력이 마비된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지금 연말 시한이 다가올수록 북한의 ‘새로운 길’이 열릴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새로운 길’이 구체적으로 무언지는 미국도 모른다. 그래서 더 두렵다. 원래 공포는 예측 불가능 때문에 극대화되는 법이다.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민주당은 논리적이지 않은 해법을 내놓고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고 있다. 민주당뿐 아니라 미국 전체가 비슷한 상황이다.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심해질 것이다. 

 

2. 세계 앞에서 공개적으로 수모를 자처하는 미국

 

(1) 비건, 수모를 당하다

 

국무부 부장관으로 발탁되어 출세가도를 달리는 스티븐 비건이 한국에 와서 공개적 수모를 당했다. 

 

▲12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스티븐 비건.

 

지난 15일 한국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카운터파트에 직접 말하겠다”, “일을 할 때이고 완수하자. 우리는 여기에 있고 당신들은 우리를 어떻게 접촉할지 안다”라며 북한에 대화를 요청했다. 애초 비건 대표는 북한과 어떻게든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던 것인데 물밑 접촉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자 공개적으로 만남을 제안한 것이다. 

 

비건 대표가 구차해보일 수 있음을 각오하고 이처럼 대화를 요청한 이유는 북한의 ‘크리스마스 선물’ 발언 때문이다. 지난 3일 리태성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이 담화에서 “우리가 미국에 제시한 연말 시한부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비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이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매우 신성한 날”이라며 “이 기간이 평화로운 날들로 인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발 ‘크리스마스 선물’로 군사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는 간청이나 다름없다. 

 

물론 비건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을 여론조성용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은 대화를, 북한은 대결을 추구한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면피용 발언이라는 것이다. 대화 제안의 외피를 쓴 경고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대화 제안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후통첩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건 대표의 이후 행보를 보면 여론전이나 경고 성격으로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비건 대표의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자 예정에 없던 중국 방문까지 하면서 북한의 대답을 기다린 것이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크리스마스 전에 무조건 북한을 만나고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은 듯하다. 여론전이나 경고 성격이었다면 기자회견으로 끝내지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는 않는다. 

 

미 국무부는 비건 대표가 중국 정부 당국자들에게 “북한에 대한 국제적 공조를 유지할 필요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역전쟁 상대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꼴이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기다림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미국에 돌아간 비건 대표는 워싱턴 공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 외에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며 외교 실패를 인정했다. 세계 면전에서 공개적인 수모를 당한 것이다. 

 

며칠 동안 계속된 비건 대표의 애원에 북한은 일언반구 대꾸를 안 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비건 대표가 스토커로 느껴졌을 수 있겠다. 북미 협상의 조건인 ‘새로운 계산법’을 이미 분명히 밝혔고, 또 이번 물밑접촉에서도 안 만난다고 했을 텐데 공개석상에서 또 떠드니 여간 귀찮은 상대가 아닐 듯하다. 

 

(2) 트럼프, 직접 나서다

 

비건이 성과를 못 내자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전화를 걸어 대북대응 공조를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시진핑 주석과 우리의 대규모 무역합의에 대해 아주 좋은 대화를 했다”, “북한 문제도 논의했다. 우리가 중국과 협력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무역전쟁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북한에 대한 논의도 했다는 걸로 봐서는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상당한 양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얼마전 1단계 무역합의를 이루었는데 이를 두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면서 양보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전쟁보다 북한과의 협상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해왔다. 예를 들어 2017년 4월 1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번복한 이유로 “중국이 북한이라는 더 큰 문제를 풀기 위해 협력하고 있는데 무역전쟁을 벌여야 하느냐”고 말했다. 북한 문제를 ‘더 큰 문제’라고 말하면서 무역전쟁을 북한 문제 해결의 수단 정도로 표현한 것이다. 

 

아무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장기인 막말을 쏟아낼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침묵을 지키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12월 초만 해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부적절한 비유’를 한다거나 북한이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을 거라며 압박을 하더니 북한 당국자들의 강한 경고에 위축된 모습이다. 

 

당시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담화에서 “경솔하고 잘망스러운 늙은이여서 또다시 ‘망령든 늙다리’로 부르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다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모욕을 주었다. ‘망령든 늙다리’는 2017년 북미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발언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표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픈 과거를 들쑤시기 위해 다시 이 말을 꺼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영철 위원장은 “트럼프가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면 자기는 놀랄 것이라고 했는데 물론 놀랄 것”이라며 “놀라라고 하는 일인데 놀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안타까울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예전 같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말들에 발끈하며 막말로 대답했을 텐데 이번엔 침묵을 지켰다. 괜히 막말로 시비를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수모를 당한 모양새다. 

 

3. 오가잡탕 형국인 미국

 

지금 미국 정가는 호떡집에 불난 것 같은 모습이다. 연말 시한을 앞두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정리되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건 대표는 한국에 와서 “미국은 비핵화 협상에 기한을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말 시한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럼 연말을 앞두고 한국에 와서 북한과 대화하자고 떼를 쓰고 안 되니 중국까지 찾아가 도움을 구한 건 무엇 때문인가. 누가 봐도 미국 정부는 지금 북한의 연말 시한을 신경 쓰고 있는데 비건 대표의 발언은 비웃음만 살 뿐이다. 

 

민주당이 ‘화염과 분노’를 하지 말고 협상을 하라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자 다음날 공화당은 켈리 크래프트 유엔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그 다음날엔 미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연말 시한이 끝나고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우리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준비가 돼 있다”, “오늘 밤에라도 싸울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대비태세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경고에 밀려 한미연합훈련을 끝내 취소한 미군의 입에서 나올 얘기는 아닐 듯하다. 

 

한편 이 와중에 미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키며 정치 공세를 펴고 있다. 탄핵 정국과 관련해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북한의 자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2월 20일자 미국의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이후에는 야당 뿐 아니라 여당의 비판도 견뎌낼 여력이 있기 때문에 평양 방문을 통한 비핵화 선언 등 훨씬 더 큰 자유를 누릴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에 몰리지 않도록 북한이 ‘도발’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북한 보고 트럼프 재선 선거운동을 해달라는 말이나 다름없는데 염치도 집어던진 듯하다. 

 

중구난방 어수선한 미국의 연말 상황을 보면 내년에도 미국이 한반도 상황을 정리하고 주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4. 왜 호떡집에 불이 났는가

 

미국 상황이 심각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 미국은 양아치 사기꾼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껏 약소국을 상대로 자기는 하나도 주지 않고 상대에게 모든 걸 받아내는 양아치 깡패 국가로 살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틈만 나면 자기가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를 막으면서 북한에 준 건 하나도 없다고 자랑한다. 미국에서는 이게 자랑이 된다. 합리적인 상거래, 정상적인 국제 협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미국에서는 자랑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다른 나라와 무역협상을 하고 나서 대통령이 ‘한국은 아무 것도 안 주고 오로지 받아내기만 했다’고 자랑하면 국민들은 뭔가 잘못 됐거나 거짓말일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시정잡배, 양아치, 조폭 세계에서나 통하는 자랑이 미국에서는 버젓이 통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도 당연히 양아치처럼 할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렇다고 미국이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반성하고 갱생의 길을 걷는 것도 아니다. 그냥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데 북한이 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수모를 당하고 자가당착에 조현증까지 보이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북한에 밀리고 있다. 

 

북한이 약하고 미국이 밀어붙이는 상황이면 지금 미국의 모습을 강온양면전술로 여길 수도 있다. 주먹경찰-담배경찰 전략처럼 한쪽에선 북한을 압박하고, 다른 쪽에선 북한을 회유하는 작전으로 봐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누가 봐도 미국이 세계 앞에서 체면을 구기고 수모를 당하는 형국이다. 미국이 힘에서 우위에 있다면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강온양면전술을 펼 이유가 없다. 이건 그냥 북한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승승장구하며 전진만 하던 부대가 한번 후퇴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밀린다. 질서도 없고 오가잡탕에 중구난방이 된다. 지금 미국의 모습이 그렇다. 

 

셋째, 미국이 공포에 빠진 듯하다. 

 

지난 1년 동안 미국은 ‘새로운 길’이 뭔지를 두고 온갖 상상을 해왔다.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협상 중단을 선언하는 것이라는 사람, 심지어는 무슨 관광사업을 하는 게 새로운 길이라는 사람까지 별의 별 주장이 다 나왔다. 

 

실체를 모르면 불안하고 불안이 커지면 상상은 망상이 된다. 이성은 마비되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급기야 탄핵당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도록 도와달라는 말까지 나왔다. 앞으로 무슨 말이 더 나올지 참으로 가관이다.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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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선거법 개정안 합의, 누가 수혜자인가

정의당: 처음과 달라진 선거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작됐다
 
임병도 | 2019-12-24 09:04: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여야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습니다. 작년 5당 협의와 패스트트랙, 4+1 협의체까지 올 한 해 국회를 뒤흔들었던 선거법 개정안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셈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린 협상 끝에 이루어진 합의안이지만, 결과물은 그리 신통치 않습니다. 가장 먼저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린다는 당초 취지와는 무색하게 지역구 253석+비례47석의 현행 의석수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다만, 30석에 대한 연동률이 적용되면서 연동형비례제는 살아남았습니다. 끝까지 논란이 됐던 석패율제는 도입하지 않기로 최종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4+1 협의체가 최종 합의했기에 그대로 본회의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롭게 바뀐 선거제도, 누가 수혜자이고 누가 손해를 봤는지 이해득실을 따져봤습니다.

민주당: 선거법 주고 공수처 받았다.

원래 논의됐던 지역구 250석이 기존 253석으로 최종 합의되자 기자들은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에게 ‘무슨 차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윤 사무총장은 ‘군소정당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한발 뒤로 물러섰습니다.

민주당은 4+1 협의체에서 가장 큰 힘이 있는 여당이지만 협상에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습니다. 선거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강한 의지 대신, 다른 야당이 내미는 선거안을 조율하거나 선을 지키려는 모습이었습니다.

거대 여당이 많이 양보하면 할수록 군소정당이 유리합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선거제 개혁에는 찬성하지만 현실적인 의석수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민주당이 4+1 협상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공수처법’ 등 검찰개혁 법안입니다.

공수처법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가진 최후의 보루입니다. 만약 공수처 설치를 포기한다면 촛불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됩니다.

자유한국당이라는 제1야당이 버티고 반대하는 한 공수처법은 민주당 자력으로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은 선거법은 양보하고 공수처법을 받아오는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바뀐 선거제를 대입하면 민주당은 20대 총선 123석보다 9석이 적은 114석 정도가 됩니다. 의석수는 적어졌지만, 정치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동맹군을 얻었습니다.

정의당: 처음과 달라진 선거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작됐다.

“그동안 정의당은 작은 힘이지만 불가능했던 선거제도 개혁을 사력을 다해 여기까지 밀고 왔습니다. 하지만 6석의 작은 의석이란 한계 속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의 초심과 취지로부터 너무 멀리 왔고 비례의석 한 석도 늘리지 못하는 미흡한 안을 국민들에게 내놓게 된 것에 대해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첫발이라도 떼는 것이 중요하다는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이번 선거제도 개혁안에 대해 아쉽고 부족한 부분은 국민들께서 채워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정의당 심상정 대표)

이번 4+1 선거제 합의안에 따른 정의당의 이해득실은 심상정 대표가 상무위원회에서 했던 모두 발언에 담겨 있었습니다.

정의당 지지자와 과감한 선거제도를 요구했던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이번에 합의된 선거법은 실망 그 자체입니다. 오죽하면 심 대표가 ‘미흡한 안을 국민에게 내놓아 송구스럽다’고 표현했겠습니까?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일단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첫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그렸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그림을 제대로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선거가 치러지면서 그 장점이 알려지면 충분히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정의당은 석패율제를 고집한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자기 밥그릇을 챙긴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정의당이 원하는 것이 결국 국회의원 배지냐는 비아냥도 들었습니다.

이번 합의로 정의당이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 전망입니다. 여기에 다음 선거에서 기존보다 더 많은 6석(20대 총선 지역2석+비례4)인 12석(협의안 지역2석+비례10석) 정도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과감한 개혁은 못 이루었지만, 출발선에 자리를 잡고 뛸 준비는 됐습니다.

바른미래당, 민평당+대인신당: 지역구를 유지하게 된 의원들

군소정당 입장에서 이번 선거제는 유리하면 유리하지 손해는 없는 결과입니다. 특히 지역구가 사라지거나 통폐합이 예상됐던 호남 지역 의원들은 살아남게 됐습니다.

4+1협의체는 선거구 획정 인구 기준을 ‘선거일 전 3년 평균’으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럴 경우 인구수가 적은 지역에서는 기준 인구수가 줄어들어 지역구 통폐합을 막을 수 있게 됩니다.

지역구가 축소될 경우 전남 여수갑, 전북 익산 갑을과 남원·임실·순창, 김제·부안 등은 통폐합이 불가피했습니다. 호남 지역에만 의석 3~4개가 줄어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역구 의석이 유지되면서 한숨을 놓게 됐습니다.

4+1 협의체에 참여한 정당들을 보면 누구 하나 엄청난 이득을 취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줄 것 내주고 받을 것은 착실하게 받아 큰 손해도 보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정치 협상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국회는 임시회의 회기가 끝나는 24일 자정까지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게 됩니다. 26일 오후 2시 본회의가 소집되면 선거법이 상정됩니다. 4+1 협의체 소속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면 무난히 통과될 전망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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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방부 “한미 특전사, 北 기지습격·요인생포 보도는 터무니없고 매우 위험”

군 관계자, “참수작전 등 확대 보도는 전혀 근거 없어”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9-12-24 10:08:04
수정 2019-12-24 10:09:31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미 국방부는 12월 16일 한미 특전사 대원들의 훈련 모습을 담은 12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미 국방부는 12월 16일 한미 특전사 대원들의 훈련 모습을 담은 12장의 사진을 공개했다.ⓒ미 국방부 공개 사진
 

미국 국방부는 최근 일부 한국 언론들이 한미 특전사가 북한군 기지를 습격해 요인을 생포하거나 ‘참수작전’을 실시했다는 보도에 관해 “터무니없고 매우 위험한 보도”라고 일축했다.

조선일보는 23일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주한 미 특수전사령부가 지난달 우리 군 특전대원들과 함께 북한군의 기지를 습격해 가상의 요인을 생포하는 내용의 훈련을 군산 기지에서 실시한 것으로 22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어 “북한군 수뇌부를 제거하는 일종의 ‘참수작전’ 훈련을 한 셈이다”고 설명했다. 이 보도 이후 대부분 한국 언론들은 “한미 특수부대원들이 지난달 가상의 북한군 기지를 습격해 납치된 요인을 구출하는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보도들은 그 근거로 미 국방부가 이달 16일 특전대원들의 훈련 사진 12장을 공개한 점과 특전대원들이 건물 내부를 습격하는 훈련이 담긴 동영상도 유튜브에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미 국방부 관계자는 24일(한국 시간) 이 보도에 관한 입장을 묻는 기자 질의에 “미 국방부가 이런 훈련을 실시했다거나, 디지털 플랫폼에 이런 종류의 영상이 있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preposterous)”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런 보도는 잘못됐을 뿐 아니라, 무책임하고 매우 위험하다(flat-out dangerous)”라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의 또 다른 관계자도 “해당 보도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미 국방부가 ‘영상정보 배포시스템(DVIDS)’에 공개한 12장의 사진은 아직 게재돼 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한미 특전사 대원들의 일상적인 합동 훈련 모습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 매체가 공개한 동영상도 북한군 기지 습격이나 ‘참수작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군 관계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인 구출 등 한미가 일상적으로 진행하는 훈련의 일환”이라며 “이를 참수작전 등으로 확대해 보도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북미관계가 교착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언론이 앞서서 대결을 조장하는 듯한 보도를 내놓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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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기성 문법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文정부, 남은 임기 이것만은 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의원
2019.12.24 09:54:59
 

 

 

 

문재인 정부가 올해를 끝으로 반환점을 돈다. 지난달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이미 절반의 임기가 지났을 수도, 이제 반환점일 수도 있다. 그 사이 촛불로 표방된 정부의 개혁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정권 지지층과 반대층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정부는 대내외 악재에 둘러싸여 갈 길을 잃은 기색이 역력했다. 부동산 폭등과 저조한 경제 성적이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었던 소득주도성장과 충돌해 민심 이반을 낳았다. 아울러 갈수록 활로를 잃어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대적인 재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고, 일각에서는 더 자유주의적 개혁만이 위기 돌파의 묘책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이 같은 갈등은 지난 10일 밤 겨우 국회를 통과한 512조2504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으로 일단 결론 지어졌다. 하지만 더 강력한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라는 이른바 '퍼주기 예산' 논란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국 사태는 집권 세력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다는 평가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조국 사태는 진보 진영과 민주당 지지 층, 젊은 세대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정의당으로 대표된 주류 진보 진영은 이 사태에서 갈 길을 잃었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페미니즘 정권을 표방한 취임 시기 대통령의 목표와 달리, 정부 임기 내내 커져간 남녀 갈등은 특히 올 한해 들어 여성 연예인의 연이은 자살, 일제 성노예 피해자 문제가 야기한 한일 갈등과 이에 대한 정부 대처를 비판하는 여성계의 목소리,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의 주류 인터넷 문화 등과 맞물려 폭발하는 양상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캠페인은 특히 올해 '타다 논쟁'으로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표방한 정부는 톨게이트 노조 등의 문제에서 어떤 리더십도 보이지 못했다. 그 사이 특히 친재벌 노선으로 전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정부를 향한 노동계의 배신감이 올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구적 위기가 된 환경문제, 곧 기후위기 문제는 올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한국에서도 대규모 길거리 시위를 열어 정부를 압박했고, 미세먼지 문제는 올해도 한국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정부는 기후위기 문제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해 이 문제를 우려하는 이들의 실망을 샀다.  

현 정부에 반환점 이후, 곧 남은 임기가 특히 중요한 까닭이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프레시안>은 특히 경제, 노동, 여성, 환경, 진보의 다섯 분야에 관해 각 분야 전문가와 인터뷰를 준비했다. 여태 문재인 정부의 해당 분야 정책을 어떻게 보았는지,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최근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서해문집 펴냄)를 내기도한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현재 진보진영이 문재인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이유를 두고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오면서 만들어진 민주연합세력이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진보진영이 나가가야 할 방향은 민주연합세력과의 결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 장석준 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진영. 문 정부 개혁 후퇴에도 무력한 모습 보이고 있다"

프레시안 : 많은 이가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라고 칭한다. 스스로도 이를 자임하고 있다. 그러한 문 정부도 집권 2년 반을 지났다. 전환점을 돈 셈이다. 여러 의견이 분분하나, 상당수가 현 정부에서 집권 초기 약속했던 내용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 여기에는 진보진영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개혁적 성향이 옅어질 때,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세력이 진보진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판과 견제에 취약한 진보진영이 있었던가 싶다. 10여 년 전, 민주당 세력이 집권했을 때 보여주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 궁금하다.

장석준 : 이 말부터 먼저 해야 겠다. 현재의 진보진영은 문재인 정부에 착시효과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이 9년 정도 야당으로 있으면서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정책이나 입장을 상당수 수용했다. 그것에 대한 착시효과를 아직 가지고 있다. 사실 과거 민주당 계열 정치세력이 집권하면, 집권 전 내세웠던 정책을 충실히 수행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문제는 진보진영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던 듯하다.  

이러한 생각을 더 부추긴 건, '촛불 항쟁'이다. 비일상적인 계기를 통해, 그리고 조기대선을 통해 정권이 들어섰기에, 촛불연합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권을 자임했기에 뭔가 진지하게 개혁에 임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선,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3대 선거까지는 촛불연합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그래서 진보진영 내부에서 문재인 정부에 몰비판적인 자세가 있었다. 그것이 진보진영이 문 정부의 개혁이 후퇴해도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유다.  

프레시안 : 톨게이트 수납원 점거농성을 보면, 10년 전 이랜드 사태가 생각난다. 당시 대규모 정리해고를 진행한 이랜드는 사기업이었고, 그렇게 정리해고를 해도 법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현재 톨게이트 수납원 사태는 한국도로공사, 즉 공기업이 문제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 게다가 대법원에서는 이들이 정규직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수납원 점거농성 관련해서 진보진영에서 이 문제를 풀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이랜드 때,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총력을 기울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장석준 : 아까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씩 그런 착시효과, 내지는 안이한 생각들이 바뀌고 있다. 최저임금과 탄력근로제 등 노동현안이 후퇴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연대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국 사태 이후에도 진보진영 내에는 여전히 현 정부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정리하자면, 지금은 진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던 서로 다른 세력들이 확연하게 다름을 드러내고 있는 시기라고 본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장석준 : 촛불연합이 분리된 것이다. 한 축으로는 여전히 촛불연합, 즉 민주대연합 시각에 있는 세력, 그리고 또 다른 한 축에는 민주대연합과 결별해야 한다는 세력, 이 두 세력이 진보진영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하나하나 이야기해보자. 민주대연합 세력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와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장석준 : 그들의 주장이 완전히 시효를 상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20년 총선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활개치고 다니지 않는가. 그렇기에 민주대연합의 필요성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해봐야 한다. 이미 신자유주의 파고를 한 차례 겪은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질서 자체를 의문시해야 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진보진영은 이러한 국면에서 새로운 의제나 근본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사회 변혁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보다는 여전히 민주대연합 구도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맞지 않는 목소리를 낼 경우, 차단한다. '우선은 이것이 급하다'는 이유다. 그렇다보니 근본 의제를 이야기하는 세력과는 격돌할 수밖에 없다. 이 두 세력은 정리되긴 어렵다고 본다. 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보진영에 묶여 있었지만, 같은 '진보'가 아니었던 셈이다. 간판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명박근혜' 정권의 지난 9년 간, 한국 사회의 후퇴를 막기 위해 뭉쳐 있던, 즉, 공공의 적을 막거나 제어하기 위해 모여졌던 힘이 이제는 분산할 때가 됐다는 건가.

장석준 : 지난 정권들은 한국 사회를 10년 이상 후퇴시켰다. 이들 정권에 맞서다 보니,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맞서는 의제 자체도 세계사 시간과 비교해 상당히 후퇴된, 뒤쳐진 그런 것들이었다.  

프레시안 : 4대강 사업, 부자감세 등이 대표적일 듯하다.

장석준 : 신자유주의 위기를 겪은 세계는 2010년부터 신자유주의 이후 질서를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2010년 당시 한국은 신자유주의 전성기 시대에 시계가 멈춘 세력들이 정권을 잡았다. 당시 의제는 이를 몰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6년~2007년에는 사회 의제에 관한 담론이 상당히 활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석준 : 당시의 한국 사회 진보 담론은 지금보다 오히려 더 앞선 측면이 있었다. 특히 2008년 광우병 촛불 때는 여러 다양한 담론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촛불 실패 이후, 모든 담론과 의제들이 민주대연합론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명박근혜'를 몰아내는 게 최우선이라는 담론으로 정리됐다. 그래서 이른바 저항세력이나 민주세력, 그리고 진보세력조차도 세계사 시간에 뒤처지게 됐고, 그런 현실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장석준 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대연합, 반 자유한국당만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프레시안 :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그래도 그간 민주정부가 만들어놓은 민주적 절차 등을 후퇴시키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순진하게 느낄 정도로 후퇴됐다. 이 공포심이 매우 크다. 진보진영이 쪼개져 있으면 다시 그때처럼 제2의, 제3의 '이명박근혜'가 나타나 다시금 사회를 후퇴시킬 거라는 두려움이 있는 듯하다.  

장석준 : 다시금 단순히 반 자유한국당이라는 안티 정체성 속에 다 합친다고 연합 질서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지금 시대에 맞게 기민하게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만 다양한 세력들의 연합이 유지가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연합을 유지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되레 연합을 파괴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연합을 파괴하는 사람들을 586세대라고 할 수 있나.

장석준 : 세대론 보다는 중산층론이 더 맞는 듯하다. 중산층은 이미 현재의 안 좋은 경제 상황에서도 경제적 이해를 일정 충족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경제적인 이슈는 급선무가 아니다.  

프레시안 : 경제적으로 충족되면, 정치를 돌아보게 되는 듯하다.

장석준 : 그렇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이슈가 중요하다. 특히 자유한국당을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말이 안 되는 행동과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청산하려면 다시 촛불 광장 같은 만남의 공간을 열고, 다수의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연합전선을 펼치는 데에는 비정규직도 필요하고, 젊은 세대도 필요하다. 쇠락해가는 지방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대연합을 형성하려면 반 자유한국당만을 부르짖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이며,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비정규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이를 억압하고, 중요하지 않다며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런 행보를 보여 온 게, 즉 촛불광장에 형성됐던 연합을 계속 깎아온 게,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세력들이다. 세대로는 586세대이고, 계층으로는 중산층이다.

프레시안 :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화두는 상당히 많다. 특권층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이를 담론으로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다. 검찰 개혁이 우선이기에 나머지는 후순위로 밀리는 식이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선거에서 '부유세'를 담론으로 던졌다. 논쟁을 만들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지금은 그런 식의, 즉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없는 듯하다.  

장석준 : 구조적 문제가 있다. 민주당이야 정체성과 지향이 그렇기에 바뀌길 기대하기 어렵다. 남은 건 진보진영인데, 여기도 쉽지는 않다. 진보진영의 대표격인 원내정당 정의당이나 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을 이야기해보자. 현재 이곳에는 아까 언급한 '민주대연합 세력'과 이를 '거부하는 세력'으로 공존한다. 이는 한국 사회 구조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장석준 : 단순히 말해, 민주노총 내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고, 대기업과 영세기업에 속한 노동자들이 있다. 정의당 내에도 민주노총의 조직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진보정당을 교차 지지하는 층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정규직, 대기업, 민주당지지)의 정서는 우리 사회의 범 중산층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 내에 있지만, 서비스연맹 소속 청소노동자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노동자간 정서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장석준 : 정의당이 '조국 찬성'이냐 '반대'이냐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건, 이러한 객관적인 토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문제는 이러한 토대는 진보진영의 구조적 문제이기에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과의 연대 내지 협조가 체질화된 듯싶다" 

프레시안 : 현재처럼 분열된 세력이 공존하는 방식, 그리고 범 중산층 정서로 귀결되는 정체성은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장석준 : 진보진영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겠다는 자기 입장을 분명히 정하지 않으면, 지금의 기성 진보세력들이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당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이 진보정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앞으로 명확한 노선 계획이다. 어느 세력을 어떤 식으로 세력화하고 연합을 구축해 개혁의 힘으로 가져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내년 총선 때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없고 개방형 경선제와 같은 이벤트성 이야기만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지금의 정의당에서는 원내교섭 정당 의석수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 듯하다.  

장석준 : 이해는 된다. 어쨌든 진보정당 운동 역사에서 선거법 개정이라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패스트트랙 처리까지 민주당과의 원내 연대를 이어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난 9년 동안 단단하게 쌓아온 민주당과의 연대 내지는 협조가 체질화된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프레시안 : 야성의 DNA가 아니라 원내 교섭의 DNA로 변화된 듯하다.

장석준 : 그러한 체질을 개선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무엇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장석준 : 책임 있고 진지한 정치세력이라면 현 정권의 우클릭 내지는 재벌친화적인 행보를 정확히 잡아내고 대응해야 한다. 이제는 민주당과 연합이 아니라 경쟁으로 가야하며 필요하면 사안별 제휴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세력 대 정치세력으로 견제하고 대립하는 국면으로 넘어가야 한다.  

프레시안 : 진보진영에서는 그런 사안별 제휴 등을 총선 이후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런 변화가 총선 이후에 가능할까 싶다. 아까 언급했던 지난 9년 간 만들어진 DNA가 이후에도 유지되는 게 아닌가 싶다.  

장석준 : 총선이라는 게 하나의 과정이다. 총선 전에, '우리가 어떤 정치 행위를 하겠다'는 것을 밝히고 그에 따라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는다. 만약 총선에서 유의미한 의석수를 얻는다면 총선 전에 밝힌 '어떤 정치 행위'를 하도록 위임을 받는 식이다. 그렇기에 지금 총선 이후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결정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총선 이후, 뭔가를 결정해서 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내가 볼 때는 선거법만 정리되고 나면, 분명한 정치적 입장을 선택해야 한다. 만약 그 시기에 정의당이 시대상황과 맞지 않는 입장을 택한다면, 총선에서 민심은 정의당을 버릴 수도 있다. 새로운 진보 세력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2008년 광우병 촛불, 김진숙 희망버스 등을 지켜본 느낌으로는, 진보진영이라는 시스템이 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날것이면서도 필요한 담론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어느 곳에서도 담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는 듯하다. 이걸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내로 들어와서 '어떤 정치 행위'를 하겠다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듯하다.  

장석준 : 촛불 등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사람들이 계속 집행라인을 잡고,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 인물의 문제가 아니다. 선거법 개정이 그나마 정의당이 역사에 봉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새로운 세력 진출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게 선거제도, 정당제도다. 거기서 선거법 개정은 파열구를 만드는 것이다. 정의당 자신이 미래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해도, 미래의 주체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여는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쉽지 않은 듯하다.  

장석준 : 이런 걸 계속 막으면 혁명이 일어나든가, 사회가 망하든가 할 것이다. 임계점에 온 듯하다.  

프레시안 : 일례로 20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는 게 모두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에서도 '중요하지만 난 모르겠다'는 식으로 있는 듯하다.

장석준 : 말로만 젊은 세력들이 진출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쇼윈도 마네킹'처럼 진출시키다 보니 그런 것이다. 실제로 젊은 세력들이 진출하게 하려면 기존 결정권자들이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물러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 않나. 자기네들이 물러나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오도록 해야지, 자기네들은 그대로 있으면서 보여주기 식으로 픽업해서는 안 된다.
 

▲ 장석준 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정당, 기성 문법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프레시안 : 세대교체론 이야기 나올 때 나오는 이야기가 리더십, 경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기존 인물들은 젊은층이 주도권을 쥐면 조직이 망가진다고 이야기한다.

장석준 : 모든 문제를 지난 세대의 퇴장으로 환원해서 이야기하면 매우 편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건 뻔하다.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어떤 종합 대책을 가져가든, 구 세대 지도층이 적절하게 퇴장해야 한다는 내용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퇴장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건 분명히 지적하고 따끔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프레시안 : 40대 기수론 이야기도 나온다.  

장석준 : 세대가 지체되니 40대 기수론이 나오는데, 정확히 이야기하면 20대 30대로까지 내려가야 한다. 기후 위기 등은 세대적으로 더 내려갈수록 해결 능력과 의지가 강하다.

프레시안 : 당사자성이 중요한 듯하다.  

장석준 : 당을 이끄는 사람 가운데 집을 소유한 사람, 남성, 수도권 거주자, 대졸자, 나이든 사람 등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프레시안 : 그렇기에 부동산 문제나 기후 문제 등은 후순위가 되는 듯하다. '니 의견이 맞는데, 시급한 거는 검찰 개혁이다' 이런 논리가 되는 듯하다.

장석준 : 이는 지금 한국 정치 지형을 이끌어가는 세력들의 심각한 문제다.

프레시안 : 그래서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듯하다.

장석준 : 어느 한 곳에서라도 조직 내 목소리 중심이 새로운 쪽으로 이행되어가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신선한 바람이 불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뀌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안 보인다.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심상정 의원이 당 대표를 하면서 의원도 같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심 의원 지역구인 고양시는 잘 닦여진 곳이다. 그곳에 심 대표 대신 젊고 참신한 새 후보를 출마시킨 뒤, 당선하도록 하는 사례를 만들면 어떨까. 그러면 매우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라는 게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 않나. 지금 진보진영의 리더십은 그런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서 실패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도 아름다운 스토리가 나왔으면 한다.

프레시안 : 원내에 진출한 진보정당 정치인들을 보면, 기존 정치인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장석준 : 어느 특정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보진영이 원내진출 15년이 넘으면서, 각자 정치에 닳고 닳았다. 정치를 잘 안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중 정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대중을 만족시킬 정치를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동안 익숙해온 원내 정치, 이것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여의도 정치다. 그것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본인은 대중 정치라 생각하지만, 언론만 바라보는 정치, 타당 의원과의 협상만을 바라보는 정치에 갇혀 있는 게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때다.  

프레시안 :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얻었다고 해도, 이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장석준 : 이건 단호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원내진출 할 때의 포부는 새로운 정치 문법을 만들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원내 진출 15년이 지나면서 굉장히 세련되고 진화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새로운 문법을 만들기 보다는 기성 문법에 포로가 되어버렸다. 철저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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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찰' 기무사 간부들의 변명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12/24 11:34
  • 수정일
    2019/12/24 11: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통령 보좌 사명감, 지시 따랐을 뿐"... 24일 소강원 선고로 첫 법적 판단

19.12.24 08:10l최종 업데이트 19.12.24 08:10l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앞에서 '기무사 고발 및 세월호참사 전담 특별수사단 설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강제수사를 통해 기무사와 국정원이 세월호 도입, 운영과 운항, 급변침과 침몰, 구조방기, 진상조사 방해 등 세월호참사 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힐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기무사의혹 특별수사단은 지난 2일 수사경과 보고를 통해 기무사가 특별 TF를 조직해 유가족들의 성향, 사진, 학력,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사찰한 사실을 공개했다.
▲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지난해 8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앞에서 "기무사 고발 및 세월호참사 전담 특별수사단 설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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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의 정당한 첩보 수집이었다."
"대통령 국정운영 보좌 기관이란 사명감도 있었다."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고 명령을 이행한 것에 불과했다."


세월호 유족 등 민간인을 사찰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국군기무사령부(현 안보지원사령부, 아래 기무사) 간부들이 법정에서 내놓은 주장이다. 이 사안과 관련된 첫 법적 판단이 오늘(24일) 내려진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이익원)은 24일 오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아래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소강원 육군 소장(당시 기무사 610기무부대장, 대령)의 선고공판을 진행한다.

소 소장 외 김대열·지영관 전 기무사 참모장도 기무사의 세월호 관련 사찰 주요 피고인이다. 전역한 두 사람은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김미리)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재판은 현재 서증조사(문서증거조사)가 한창이다. 두 사람은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 내에 설치된 세월호 TF팀의 주요 책임자로 활동했다. 김 전 참모장은 TF팀장, 지 전 참모장(당시 융합정보실장)은 TF 정책지원팀장을 맡았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한 국방부 특별수사단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이들이 세월호 유족의 동정, 요구사항, 성향 등을 사찰하도록 지시했거나 관여했다고 판단했다(관련기사 : 헌법 흔든 기무사... 세월호 유족 사찰하고 '좌파세' 분석도). 재판에서 공개된 관련 문건에는 '여론 관리'란 명분으로 정치 개입의 소지가 있는 내용도 담겨 있었는데, 이는 모두 청와대에 보고됐다(관련기사 : "노란 리본은 노무현 상징색" 공개된 기무사 세월호 문건).

[주장①] "정당한 첩보행위"

 

하지만 주요 피고인인 기무사 간부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세월호 관련 사찰이 기무사 첩보활동 범위에 속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시를 이행한 것뿐인 자신들은 책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대열·지영관 측은 지난 11월 11일 진행된 재판에서 "세월호 참사 때 군이 나가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이 상황에 대한 여론을 수집하는 건 정당한 첩보수집 범위에 해당한다"라며 "여론동향을 분석해 의견을 내는 것 자체는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재난관리시스템 개편, 정부부처 개편 등 정책정보도 (청와대 보고 내용에) 담겨 있는데 '군인이 왜 그런 것에 관여하냐'고 하면 부적절하다고 할 순 있겠지만 위법은 아니란 생각"이라며 "군 통수권자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대통령 보좌 기관이란 사명감도 있었다. 정책정보를 보고한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위법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소강원 측도 지난 10일 재판에서 "국가재난사태에 따른 정보수집이라 생각했지 민간인 사찰, 정치적 목적의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세월호 사고는 사상 초유의 재난이므로 기무사 역시 예전보다 더 많은 구체적 정보를 수집할 필요성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장②] "지시에 따랐을 뿐"

이들은 공통적으로 윗선을 거론하기도 했다. 김대열·지영관 측은 지난 11월 11일 재판에서 "기무사 참모장은 각 처·실장의 고위업무의 지휘감독권을 갖지 않는다"라며 "TF팀에 편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기무사 조직상 형식적으로 이름만 올린 것이다. 실제 운영은 원래 지휘체계에 따라 기무사령관이 담당했다"라고 주장했다.

소강원 측도 지난 10일 재판에서 "당시 TF에선 610부대를 현장부대로 생각했고 통제대상으로 삼았다. 피고인은 지시를 수용했을 뿐"이라며 "사령부 지시에 따라 610부대원과 함께 활동한 피고인에게 고의가 있다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주장을 펼치다 보니 소강원 측은 김대열·지영관에겐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소강원 측은 같은 재판에서 "기존 대법원과 하급심 판결을 보면 직권남용 유죄는 의사결정 참여자에게 내려졌다"라며 "현재 김대열 등 의사결정 참여자들의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피고인의 경우 TF팀 구성원도 아니고 예하부대장으로서 수족처럼 명령을 이행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각종 사찰 보고받고 지휘한 공동정범"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관련 자료를 즉각 체출 할 것을 지시한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 기무사 정문 앞 모습.
▲  과천 기무사 정문 앞 (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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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은 지난 11월 11일 김대열·지영관 재판에서 "헌법상 국군은 정치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한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필하더라도 그 의무를 위반해선 안 된다"라며 "세월호 유족 동향을 파악하는 행위는 기무사 직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위법 근거로 사찰동기, 목적, 의도를 봐야 하는데 그런 의도와 목적을 대외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김대열·지영관 부하의) 이메일을 보면 '참모장 지시사항', '정보융합실장 지시사항'이란 내용이 있다"라며 "(두 사람은) TF팀 핵심 간부 지위에서 각종 사찰을 보고받고 지휘한 공동정범의 입장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소강원 재판에서 군검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기무사가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 등 정권 보위를 위해 어려움에 처한 세월호 유족을 상대로 무분별하게 첩보를 수집, 여론 압박의 수단으로 사용했다"라며 "피고인은 예하 부대장으로서 상급자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지만 군인은 상관에게 충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 국민, 헌법정신에 충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해야 할 군인이자 경력과 지위를 가진 예하 부대장이었다. 위법 지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해야 했다"라며 "그럼에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음은 물론 적극 협력하기 위해 직권을 남용, 휘하 부대원에게 유족 사찰이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으므로 책임이 가볍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군검찰은 소강원에게 징역 3년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유족 강지은(단원고 고 지상준군 어머니)씨는 같은 재판에서 "지금도 광화문에 가면 '종북좌파들이 자식들 이용한다'고 공격받는다. 선체 인양, 시신수습 하지 말라고 기무사에서 초기에 계획했던 내용이 다 실행됐다"며 "재판부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직권을 남용해 국민을 핍박하고 학대한 행위가 얼마나 큰 죄인지 꼭 선례를 남겨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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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사자’ 문제로 막히다

<2019 송년특집 ①> 남북관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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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3  1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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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019년은 연말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지난해 순항하는 듯한 북미관계가 올해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결렬로 갸우뚱거리더니 그 여파로 한반도 정세가 일 년 내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한마디로 북미관계가 막히자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모두 경색된 해였습니다. 

북한이 ‘연말 시한’으로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천명한 상황에서 이 며칠 안 남은 연말까지 한반도의 진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불허인 가운데, 통일뉴스는 <2019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한 내부 ③북미관계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70여 년 분단사를 돌이켜 보면 남북관계는 끝없이 나쁘지도 마냥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2018년은 달랐다. 남북 정상은 세 차례 만났고, 군비통제를 실천하며 한반도 평화의 오솔길을 여는 역사적인 해였다. 그러나 2019년은 제대로 된 일이든, 허튼 것이든 어느 하나 이루지 않은 무관의 역사로 남았다. 한반도의 ‘당사자’ 문제로 남북은 막혔다.

지난해 12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019년에도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앞으로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서로의 마음도 열릴 것”이라고 화답했다. ‘판문점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남북 간 다짐은 2019년의 산뜻한 출발을 예고하는 듯했다.

2019년 시계 ‘제로’..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남북

하지만 2019년 남북관계는 2018년에 비해 한 단계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보다는 ‘과연’이라는 물음부터 시작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대목은 문재인 정부의 숙제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숙제는 미국으로부터 어떻게 허락을 받느냐에 달렸다. 그러나 첫 번째 과제였던 인플루엔자 치료의약품인 타미플루 대북지원이 무산됐다. 한미워킹그룹이 약을 실은 차량의 방북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측의 남측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측은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했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풀 것이라는 기대를 높였다.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는 사명으로 한반도 평화경제를 주도하겠다는 ‘신한반도체제’를 열겠다며, 논란을 딛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결과는 결렬이었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해 온 남북 철도.도로 현대화사업은 무기한 연기됐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이유였다지만, 3.1운동 100주년 남북공동행사는 무산됐다.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도 불허됐다. 북측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3일 동안 철수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장 회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4월 판문점선언 1주년 행사, 9월 평양공동선언 1주년 행사에 북측은 빠졌다. 11월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 초청장을 김 위원장은 거절했다. 국제기구를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북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남북 예선전에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2018년과 달리 2019년 남북관계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지난해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에 따른 일부 후속조치를 마무리하는 수준이었다. 한강하구 공동이용수역 해도를 완성하고 남북 철도.도로 협력 관련 자료를 주고받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유도, 여자농구, 여자 필드하키 등에서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것 뿐이었다. 

   
▲ 2019년 남북은 함께 한 사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사진은 2월 금강산에서 열린 6.15민족공동위원회 주최 새해맞이 행사. [자료사진-통일뉴스]

민간교류도 마찬가지였다. 6.15민족공동위원회는 2월 금강산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열었지만, 그뿐이었다. 각계가 만나 2019년 다양한 교류사업을 하자고 다짐했지만, 5월 북측은 “남북관계의 소강국면에 대한 진단과 과제를 논의하자는 취지에서 민간단체의 협의를 추진했으나, 남측의 언론보도 등에서 근본적인 문제들은 제외된 채, 부차적인 의제들만 거론되는 등 협의의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며 모든 민간 실무협의를 중단했다.

그나마 6월 이희호 여사와 10월 문재인 대통령 모친 별세에 북측이 조의문을 보내온 것이 남북교류의 한 줄을 차지했을 뿐이다.

‘당사자’ 문제로 어긋난 남북

이유는 하나였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역할론에 대한 남북의 차이였다. 대북제재 상황에서 미국의 승인없이 남북관계를 풀 수 없던 남측에 북측은 시쳇말로 ‘내 편이 돼라’는 당사자론을 요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비판과 함께 요구했다.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이 있기 전부터 북측은 각종 매체를 통해 남측에 ‘당사자’ 역할을 주문했다. <우리민족끼리> 등은 한미워킹그룹을 두고, “남조선 당국이 동족이고 북남선언에 합의한 상대인 우리에 대한 미국의 제재압박책동에 추종하면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미국에 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할 말은 하는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8.15경축사를 통해 평화경제를 강조했지만, 북측은 이를 폄훼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러나 남측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역할로 내놓을 해법이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구조로 운전자론을 내세워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를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는 북미대화의 성과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한미동맹 속에서 북측 편만 들어줄 수는 없었다.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났지만, 남측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닫힌 북미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자리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북한이 강조한 '연말 시한'에 다가가도 북미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사자’ 길잃은 남북, 결국 금강산에서 터지다

이는 결국 금강산 문제로 터졌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건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밝혔지만, 남측이 대북제재 속에서 ‘당사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판단에, 김 위원장은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훌륭히 꾸려진 금강산에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는 말에 무게를 둔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협의를 통해 금강산 문제를 풀자는 뒷북을 쳤을 뿐. 통일부는 ‘창의적 해법’을 내놓겠다지만, 무엇이 ‘창의적 해법’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기존의 (금강산) 관광 방식은 안보리 제재 때문에 계속 그대로 되풀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관광의 대가를 북한에게 지급하는 것은 제재에 위반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오히려 솔직했다.

하지만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당사자’ 역할을 못 하는 남측과 협력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10월 금강산을 현지지도한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지난해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이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확인했지만, 남측이 ‘당사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북측의 불만은 다시 군사적 긴장 상황에 직면했다.

북측은 하노이 결렬 이후 5월 4일부터 11월 28일까지 14차례 단거리 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 등을 13차례 발사했다. 급기야 11월 북측은 김 위원장의 지시로 서해 창린도에서 포사격을 실시했다. 수차례 미사일 발사에도 ‘9.19 군사분야 합의’ 위반이 아니라던 정부는 서해 포사격은 합의 위반이라며 항의했다. 남측도 12월 서해 연평도에서 실탄사격훈련을 실시했으며, 북측은 “군사적 도발소동”이라고 반발했다.

북측이 설정한 ‘연말 시한’ 동안 북미대화가 풀리지 않은 현재, 북측은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시험을 두 차례 단행했다. 북한과 미국의 힘겨루기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당사자’가 되지 못한 문재인 정부는 ‘평화경제’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다. 남측이 ‘당사자’가 아님을 확인한 북측은 금강산 문제에서 보여주듯 ‘자력부흥, 자력번영의 장엄한 새 시대’를 열겠다며 자신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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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는 왜 이리도 고요할까

[개벽예감 375] 폭풍전야는 왜 이리도 고요할까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12/23 [09: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똑같은 실패 반복하는 백악관의 불행

2. 세계는 두 가지 중대한 사실을 목격하였다

3.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1. 똑같은 실패 반복하는 백악관의 불행

 

조미협상이 재개되느냐 마느냐 하는 초미의 문제를 놓고 긴장감이 끊임없이 감돌았던 2019년이 어느덧 저물고 있다. 연말시한을 불과 1주일도 남겨놓지 않은 지금, 협상재개전망은 사라졌다. 2020년에는 어느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시작되었던 조미협상국면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위태로운 결렬상태에 빠지더니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조미정상회동이 극적으로 성사된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았고, 10월 5일 스톡홀름 조미실무회담에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결국 막을 내렸다. 항구적이고 공고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8천만 민족의 요구와 기대는 조미협상국면의 종식과 더불어 열기를 잃어버렸다. 세인의 상상을 초월한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면 혹시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조미협상국면이 회복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협상국면이 막을 내린 어둠 속으로 폭풍이 몰아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폭풍전야의 분위기는 미국에서 이렇게 조성되었다. 2019년 12월 18일 미국 대외관계협의회(CFR)가 미국인 전문가 500여 명의 견해를 종합하여 발표한 보고서에는 2020년에 우려되는 국제위기상황 30건이 열거되었는데, “2020년에 조미협상이 중단된 상태에서 북조선이 장거리미사일시험발사를 계속하여 위기가 고조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하면서, 매우 높은 충격강도를 가진 조미대결위기는 내년에 미국이 감당해야 할 최우선 과제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또한 미국의 보도전문 텔레비전방송 <CNN>이 미국인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2019년 12월 15일에 실은 분석기사에 따르면, 조선이 2020년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거나, 핵시험을 진행할 ‘위험한 상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개선의 길로 나아갈 것처럼 보였던 조선과 미국의 관계가 이처럼 악화되면서 대결의 폭풍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원인은 조미협상을 파국으로 끌어간 백악관의 전략적 오판, 바로 그것이다. 단언컨대, 그것 이외에 다른 원인은 없다. 여기서 말하는 백악관의 전략적 오판이라는 것은 조선이 미국의 지속적인 ‘최대 압박’에 굴복하여 핵무기를 스스로 폐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오판, 그리고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요구를 거부해도 조선은 협상에서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오판이다. 

 

그런 치명적인 오판에 빠져 조미협상국면을 파탄으로 끌어간 백악관의 몰골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치명적인 오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백악관이 자초한 불행이다. 백악관의 전략적 오판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면서 미국에게 불행을 안겨준 역사, 그 시간을 계산해보면 2015년 1월부터 시작된 불행한 과거를 되짚어본다. 

 

<조선중앙통신> 2015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미국이 올해에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훈련을 림시중지하는 것으로써 조선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할 것을 제기하고 이 경우 우리도 미국이 우려하는 핵시험을 림시중지하는 화답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2015년 1월 9일 미국에 전달했다고 한다. 조선 외무성이 ‘뉴욕통로’(유엔주재조선대표부)를 통해 미국 국무부에 전한 이 메시지는 조선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는 일념을 안고 제시한 첫 제안이었다. 미국이 조선을 위협하는 침략전쟁연습을 임시중지하면, 그에 상응하여 조선도 미국을 위협하는 핵시험을 임시중지하겠다는 조선 외무성의 메시지는 누가 봐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오바마 집권기의 국무부는 그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을 거들떠보지 않은 채 모략과 비난으로 응답하였다. 프랑스 통신사 <AFP> 2015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보도 당일 외국출장 중에 진행한 즉석기자회견에서 “한국과 미국의 일상적인 군사훈련을 핵시험 가능성과 부적절하게 결부시키는 북조선의 제안은 은연 중의 위협”이라고 모략, 비난하였다고 한다. 핵전략자산을 동원하는 침략전쟁연습을 일상적인 군사훈련이라고 뻔뻔스럽게 둘러대는 거짓말도 들을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심한 망발은 조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싫으면 그냥 거부한다는 의사만 밝히면 되는데도, 은연 중의 위협이니 뭐니 떠들어대며 모략, 비난한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조선 외무성이 제시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에 대해 모략과 비난으로 응답했지만,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는 조선의 강렬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조선은 물러서지 않고, 또 다른 제안을 미국에게 제시하였다. <아시아 타임스> 2015년 2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월 18일부터 이틀 동안 싱가폴에서 진행된 조미비공식대화에서 리용호 당시 조선 외무성 부상은 그 대화에 참가한 미국의 전직 관리들에게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그에 상응하여 조선은 핵시험을 중단하는 것과 더불어 핵탄두 소형화도 중단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미사일에 탑재하는 소형화된 핵탄두를 생산하는 조선에서 핵탄두 소형화를 중단한다는 말은 핵무기 생산을 중단한다는 뜻이므로, 그 제안은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만일 그때 미국이 조선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여 조미협상이 시작되었더라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쯤 한반도는 전쟁위험이 사라진 평화시대를 맞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과 대화와 협상은 일절 하지 않겠다는 적의와 오만을 품고, 핵전략자산을 동원한 도발광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조선 외무성은 2015년 5월 30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였다. 조선 외무성은 담화에서 “올해 초 우리가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할 데 대한 립장을 밝히고 그 실현을 위해 합동군사연습림시중지 대 핵시험림시중지 제안을 내놓았을 때 그와 관련한 대화조차 거부해나선 것이 바로 미국이며, 군사연습강행으로 대답해나선 것도 다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쌍기둥인 <전략적 인내>와 도발적인 합동군사연습을 계속 고집함으로써 끝끝내 조선반도 비핵화를 하늘로 날려보내고 말았다”고 지적, 비판하였다.  

 

2015년 당시 미국이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조선과의 대화와 협상을 무조건 거부하면서 핵전략자산을 동원하는 도발광기를 드러낸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2015년 1월 22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외부인사와의 대담 중에 조선에 대해 언급하면서 “요즈음 세상에서 그처럼 잔혹한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힘들다. 북조선은 잔혹하고 폭압적이며, 그래서 인민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한다”고 중상비방하면서 “북조선 정권은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악담을 늘어놓았다. 2009년 10월 9일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오바마가 그처럼 적의를 품고 조선을 향해 중상비방과 협박공갈을 토해내며 도발적인 무력침공연습을 계속 감행하였으니, 협상은커녕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오바마 집권 8년 동안 도발광기만 지속되고, 협상이라는 말조차 들리지 않았던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서방측 상업위성이 촬영한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있는 30MW 경수로의 외관이다. 조선의 핵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괴벽을 지닌 미국의 전문가들은 녕변경수로가 이제야 겨우 시험가동을 시작했다고 추정하였지만, 시험가동을 거쳐 2019년에 정상가동을 시작하였다. 녕변경수로를 정상가동하면 많은 전기를 생산할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무기급 핵물질도 생산한다. 핵탄두에 들어가는 무기급 플루토늄과 열핵탄두에 들어가는 트리튬을 생산하는 것이다. 2017년 내내 조선은 광란하는 핵제국과 정면대결하면서 자기의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핵무력 완성의 길로 나아갔고, 그 길에서 자력으로 경수로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미국의 도발광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도발광기는 협상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게 만든 것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핵무력 완성의 길로 조선을 떠밀어주었다. 2015년 9월 15일 조선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우라니움농축공장을 비롯한 녕변의 모든 핵시설들과 5MW 흑연감속로의 용도가 조절변경되였으며 재정비되여 정상가동을 시작하였다”고 하면서 “각종 핵무기들의 질량적 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핵억제력의 신뢰성을 백방으로 담보하기 위한 연구와 생산에서 련일 혁신을 창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19년 9월 유엔총회 제74차 본회의에 제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5MW 흑연감속로가 2018년 8월 중순까지 가동된 징후를 포착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온라인 매체 <38노스>가 2019년 6월 5일에 실은 상업위성영상자료 분석기사에 따르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30MW 경수로가 지속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위에 열거된 사실들을 살펴보면, 2015년 9월 15일부터 정상가동을 시작한 녕변핵시설들이 지난 5년 동안 가동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2015년 8월 28일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회의에서 2020년에 이르면 조선은 인디아와 파키스탄을 능가하는 핵보유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는데, 그 예견은 현실로 되었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조선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핵전략자산을 동원하여 도발광기를 드러낸 험악한 상황에서 조선에게는 한반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핵억제력을 급속히 강화하는 것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선이 2015년 9월 15일부터 녕변핵시설들을 정상가동하여 무기급 핵물질을 대폭 증산한 것은 바로 그런 불가피한 선택의 일환이었다. 

 

미국의 언론매체 <월스트릿저널> 2016년 2월 21일 보도와 <연합뉴스> 2016년 2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12월 조선 외무성은 ‘뉴욕통로’(유엔주재조선대표부)를 통해 미국 국무부에게 평화협정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의하였으나, 미국 국무부는 비핵화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우선이고 평화협정문제는 비핵화문제를 논의한 뒤에 논의해야 한다는 궤변으로 협상기회를 또 다시 날려버렸다고 한다. 

 

그처럼 협상기회를 계속 거부하는 미국을 더 이상 말로 상대할 수 없었던 조선은 미국에게 강타를 날렸다. 2016년 1월 6일 조선은 첫 수소탄기폭시험을 단행하여 미국에게 정면타격을 가했다. 2016년 1월 15일 조선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조선의 “첫 수소탄시험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을 수호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라고 하면서,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우리가 내놓은 미국의 합동군사연습중지 대 우리의 핵시험중지제안과 평화협정체결제안을 포함한 모든 제안들은 아직 유효하다”고 언명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수소탄기폭시험으로 정면타격을 당한 미국은 평화협정체결제안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더욱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미국은 조선이 제시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거들떠보지 않고 내던져버리는 행패를 부리면서, 조선이 핵무기를 일방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망발과 궤변을 늘어놓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제재압박을 비롯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여 조선을 짓눌러보려고 광란하였다. 그러나 핵제국의 광란 앞에서 물러설 조선이 아니다. 조선은 광란하는 핵제국과 정면대결하면서 자기의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핵무력 완성의 길로 나아갔다. 

 

 

2. 세계는 두 가지 중대한 사실을 목격하였다

 

2016년 6월 15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태평양연단프로그램 국장 칼 베이커는 2016년 6월 1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진행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자신이 근래 조선측과 네 차례 만났는데, 조선측은 미국이 조미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면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핵전쟁력량을 증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였다. 조선은 대미접촉통로를 끊어버리고 핵무력 완성을 다그쳤다. <조선중앙통신> 2016년 7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 정부는 2016년 7월 10일 유엔주재조선대표부를 통하여 미국 정부에게 “미국이 우리의 즉시적인 제재조치철회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상 이미 천명한대로 그에 대응한 실제적인 행동조치들을 단계별로 취해나가게 되며 첫 단계로 조미 사이에 유일하게 존재하여온 공식접촉통로인 뉴욕조미접촉통로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것을 통지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3년 6개월이 흐르는 동안 세계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대한 사실을 목격하였다. 

 

(1) 조선은 핵무력의 질적 발전과 양적 증대를 다그쳐 마침내 핵무력을 완성하였고, 지역 핵보유국의 지위밖에 갖지 못한 인디아와 파키스탄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핵강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2019년 12월 말 현재 조선은 세계적인 핵강국이 갖추어야 할 모든 종류의 핵무기를 생산, 배치하였다. 소형화된 수소탄과 전략핵탄과 전술핵탄을 체계적으로 생산, 배치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들을 탑재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신형 단거리비탄도미사일, 신형 대구경방사포를 만들어냈으며, 신형 핵추진잠수함도 건조하였다. 지금 미국, 로씨야, 중국에는 있지만 조선에는 없는 전략핵자산은 항공모함과 장거리전략폭격기 두 종류뿐이다. 대양을 건너가 다른 나라를 점령할 때 사용하는 항공모함과 장거리전략폭격기는 조선에게 필요하지 않으므로, 조선은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종류의 핵타격수단을 고루 갖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7년 4월 15일 태양절 경축 열병행진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모습이다. 8축16축 발사대차에 실려 등장한 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공식명칭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체연료로켓을 장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조선은 핵무력의 질적 발전과 양적 증대를 다그쳐 마침내 핵무력을 완성하였고, 지역 핵보유국의 지위밖에 갖지 못한 인디아와 파키스탄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핵강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미국, 로씨야, 중국에는 있지만 조선에는 없는 전략핵자산은 항공모함과 장거리전략폭격기 두 종류뿐이다.     

 

이것은 이미 2015년 1월부터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미협상을 시작하려고 힘쓴 조선의 성의 있는 제안과 노력을 미국이 끝내 거부한 결과다. 이렇게 놓고 보면, 지난 5년 동안 미국은 어리석게도 제 손으로 제 무덤을 깊이 파내려간 꼴이다.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들어앉은 것으로 하여 천만년 안전을 담보한다던 미국 본토에 핵재앙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자기파멸의 무덤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조미협상으로 자기파멸의 무덤을 메워보려고 시도하였지만, 싱가폴에서 협상의 첫 걸음만 내디뎠을 뿐 더 이상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한 채 세월만 허송하더니 결국 연말시한에 이르렀다.   

 

(2) 2016년 7월 6일 조선은 미국에게 비핵화의 정의를 명백히 제시하였다. 그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대변인 성명에서 “명백히 하건대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다. 여기에는 남핵폐기와 남조선주변의 비핵화가 포함되여 있다”고 하면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는 “우리에 대한 핵위협공갈의 근원부터 완전히 제거하는 데서 시작되여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또한 성명에서 조선 정부는 비핵화를 실현하는 방도까지 제시하였다. 조선이 제시한 다섯 가지 비핵화실현방도는 다음과 같다.  

 

1) “남조선에 끌어들여놓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핵무기들부터 모두 공개하여야 한다.”

2)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그 기지들을 철페하고 세계 앞에 검증받아야 한다.”

3) “미국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수시로 전개하는 핵타격수단들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하여야 한다.”

4) “그 어떤 경우에도 핵으로, 핵이 동원되는 전쟁행위로 우리를 위협공갈하거나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여야 한다.”

5) “남조선에서 핵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 한다.”

 

또한 성명에서 조선 정부는 “이러한 안전담보가 실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 역시 그에 부합되는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며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그런데 일본 <요미우리신붕> 2019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29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정의를 합의하자고 하면서 자기들이 생각한 비핵화의 정의를 꺼내놓았다고 한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놓은 비핵화의 정의는 조선이 자기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반출하고, 조선의 핵시설 전반을 완전히 해체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핵강국의 지위에 올라선 조선의 핵무기와 핵물질을 가져가겠다는 것은 어린 아이의 지능도 갖지 못한 멍청이의 망상에 불과하다. 또한 조선 각지에 건설된, 3,000여 개소로 추산되는 핵시설들과 미사일시설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많은 시설을 완전히 해체하겠다는 것도 역시 어린 아이의 지능도 갖지 못한 멍청이의 망상이다. 

 

백악관이 그런 망상에 사로잡혔다면, 미국의 언론매체들이나 전문가들은 잠꼬대 같은 소리만 늘어놓았다. 미국의 언론매체들 가운데 그 어떤 곳도, 그리고 미국인 전문가들 가운데 그 누구도 2016년 7월 6일 조선 정부가 성명에서 언명한 비핵화개념정의와 그 실현방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조선을 향해 일방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만 중얼거렸다. 사태가 이처럼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조미협상이 파국에 빠진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해놓은 연말시한을 앞두고 불안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12월 15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을 서울에 급파하였다. 그는 방한 이틀째 되는 12월 16일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조선 외무성에게 판문점에서 만나 협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조선 외무성은 응답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다. 비건을 서울에 급파하여 판문점에서 실무협상을 재개해보려던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시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3.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2015년 1월 이후 조선은 미국에게 평화협정체결을 끊임없이 요구하였고, 2018년 6월에는 미국을 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협상(조미정상회담)으로 끌어냈다. 하지만 미국은 조선과 협상을 몇 차례 하면서도 평화협정체결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로써 조미협상국면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였다. 

 

조미협상국면에서 ‘평화’라는 두 글자를 어루만졌던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는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제는 실망과 우려가 앞선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2019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2020년 어느 날 조미관계에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조미핵대결이 엄청난 폭풍을 몰아왔던 2016년의 경험을 돌아보면 2020년에 몰아칠 조미핵대결의 폭풍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2016년의 경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2016년 3월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는 “우리 군대와 인민은 무모한 침략전쟁의 총포성을 도발자들의 참혹한 장송곡으로 만들어놓을 것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은 조선이 조국통일성전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1)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존엄 높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안전을 란폭하게 침해하다 못해 우리의 생존공간을 핵참화 속에 몰아넣으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핵전쟁도발광기에 전면대응하기 위한 총공세에 진입할 것이다. (중략) 우리 천만군민은 미제 완전소멸, 괴뢰역적 완전박멸의 구호 밑에 다지고 다져온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무진막강한 군사적 위력을 남김없이 과시하는 총공세에 떨쳐나설 것이다.”

 

(2)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적들이 우리의 존엄과 자주권, 생존권을 없애버리려고 피를 물고 덤벼드는 엄중한 상황에 대처하여 무자비한 섬멸적 타격을 가할 수 있게 선제공격적인 군사적 대응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중략) 우리의 군사적 대응조치도 보다 선제적이고 보다 공격적인 핵타격전으로 될 것이다.”

 

(3) “우리에게는 존엄 높은 최고수뇌부가 비준한 남조선 해방과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우리 식의 군사작전계획이 있다. 이에 따라 남조선작전지대 안의 주요타격대상들을 사정권 안에 둔 공격수단들이 실전배비되고 아시아태평양지역 미제침략군기지들과 미국 본토를 과녁으로 삼은 강력한 핵타격수단들이 항시적인 발사대기상태에 있다. 서슴없이 언명하건대 장장 반세기 이상 준비하여온 우리의 통일성전은 이 세계가 생겨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상상 밖의 주체적 전쟁방식으로 불이 번쩍 나게 이루어질 것이다. (중략) 이 결전은 우리 인민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피맺힌 원쑤들인 미제와 남조선괴뢰들과의 세기적 결산을 위한 애국전쟁이며 민족의 최대 숙원을 성취하기 위한 통일성전이다.”

 

그보다 앞서 2016년 2월 23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 운명의 눈부신 태양을 감히 가리워보려는 자들을 가차없이 징벌해버릴 것이다”라는 제목의 “중대성명”을 발표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중대성명에서 조국통일전쟁의 작전방침까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1)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혁명무력이 보유하고 있는 강위력한 모든 전략 및 전술타격수단들은 이른바 <참수작전>과 <족집게식 타격>에 투입되는 적들의 특수작전무력과 작전장비들이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경우 그를 사전에 철저히 제압하기 위한 선제적인 정의의 작전수행에 진입할 것이다.”

 

(2) “1차 타격대상은 동족대결의 모략소굴인 청와대와 반동통치기관들이다. (중략) 2차 타격대상은 아시아태평양지역 미제침략군의 대조선침략기지들과 미국 본토이다.” 

 

(3) “우리에게는 임의의 시각, 임의의 장소에서 미국 땅덩어리를 마음 먹은대로 두들겨팰 수 있는 세계가 가져본 적이 없는 강위력한 최첨단공격수단들이 다 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9월 2일 핵무기연구소를 시찰하면서 핵무기병기화실태에 관한 종합보고를 받는 장면이다. 사진에 나타난 회백색 물체는 조선이 만든 열핵탄두(수소탄)다. 이 열핵탄두는 화성-15를 비롯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전투부 안에 들어간다. 당시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열핵탄두는 "핵탄위력을 타격대상에 따라 수십kt급으로부터 수백kt급에 이르기까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수소탄"이며,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탄두이며, "100% 국산화되어 마음 먹은대로 꽝꽝 생산하는" 열핵탄두다. 조선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열핵탄두를 장착한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그런 조선을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 미국이 조선을 건드리면 조선은 미국 본토에 보복핵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조선을 감히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조선에서 말하는 핵억제력이다. 미국이 조선을 감히 공격하지 못하므로, 조선은 조국통일성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조선과의 협상을 끝내 거부함으로써 조선을 통일전쟁의 길로 떠밀었고,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남조선 해방과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우리 식의 군사작전계획”을 비준하였지만, 2016년에 그 군사작전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2016년 당시 조선은 핵무력 완성의 막바지에 올라서고 있었다. 2016년 당시 조선은 미국 본토 서부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실전배치하였지만,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아직 시험발사하지 못하였다.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한 때는 2017년 11월 29일이다. 또한 2016년 당시 조선은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소형화된 수소탄을 만드는 중이었다. 조선이 화성-15에 장착할 소형화된 수소탄을 터뜨린 기폭시험에 성공한 날은 2017년 9월 3일이다. 

 

2016년 당시 조선은 핵무력을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남조선 해방과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우리 식의 군사작전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한 2018년 이후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2020년에  조선에서 불어올 엄청난 ‘폭풍’을 미국이 우려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둘째, 2016년 11월 미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는 색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선거유세 중에 그는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였고, 주한미국군철수문제도 거론하였다. 조선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는 색다른 목소리를 내는 트럼프 대선후보를 주목하면서 정권교체를 기다렸고, 그러는 사이에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미국 텔레비전방송 <CBS> 2016년 12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직후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를 만나 90분 동안 대화하는 중에 “북조선이 제기한 심각한 위협”에 대해 “경고”하였지만, 트럼프는 “그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북조선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갖지 않은 듯하였다”는 것이다. 

 

2017년 1월 20일 조선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갖지 못한 채 백악관에 들어간 트럼프가 조선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미치광이위장술밖에 없었다. 실제로는 조선을 침공하지도 못하면서 마치 미치광이처럼 행동하여 조선을 침공할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유치한 심리전술이다. 2017년 당시 유엔주재미국대사였던 니끼 헤릴리는 2019년 11월에 출판된 자기의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에게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라”고 하면서 “군사적 선택권이 탁자 위에 있다고 전하라”고 지시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토해낸 ‘화염과 분노’라는 망언은 미치광이위장술에서 나온 것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위장술을 다듬은 또 다른 심리전술은 미국이 조선의 핵시설에 대한 예방타격계획을 작성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린 이른바 ‘코피타격설’이다. ‘코피타격설’은 미국이 정밀타격수단을 동원하여 조선의 핵시설 몇 군데를 폭격함으로써 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코피타격설’은 미국의 극우전쟁광 존 볼턴이 2017년 12월 16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에서 진행된 송년만찬에서 연설하면서 처음 언급하였고,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허벗 맥매스터가 영국 런던을 방문하고 있었던 2017년 12월 20일 영국 언론매체 <텔레그라프>가 추측기사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코피타격설’도 미치광이위장전술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는 심리전술이다.

 

미국은 속이 뻔히 보이는 유치한 심리전술로 조선의 핵무력 완성을 가로막으려고 하였으나, 조선이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어댄다’는 속담으로 대응하는 바람에 미치광이위장술과 ‘코피타격설’ 같은 미국의 심리전술은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지금 미국은 미치광이위장술과 ‘코피타격설’ 같은 유치한 심리전술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다.

 

2017년 1월 20일 조선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갖지 못한 채 백악관에 들어간 트럼프는 자기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조미정상회담과 주한미국군철수를 추진하는 경우 미국 안에서 몰아칠 역풍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대통령 직권으로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각료회의에서 주한미국군철수문제도 몇 차례 거론하였으나, 반대파들의 역풍을 맞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 심하지 않은 역풍에도 주저앉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제는 조선으로부터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차례다. 그런데 폭풍전야는 왜 이리도 고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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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판 강제징집’ 녹화공작 피해 1192명 첫 확인

[단독] ‘전두환판 강제징집’ 녹화공작 피해 1192명 첫 확인

 

 

등록 :2019-12-23 04:59수정 :2019-12-23 07:37

 

군 과거사위 작성 전체명단 입수

학생 강제 징집해 ‘프락치’로 활용
39년 만에 진실규명위 꾸려 “처벌” 촉구
유시민·심재철·김선수 등 포함돼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강제징집과 폭력을 당한 윤병기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추진위) 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의 책임자인 전씨의 처벌과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강제징집과 녹화공작 및 선도공작 등 피해자들은 이날 전씨 집 앞에서 신군부의 강제징집이 시작된 1980년 이후 피해자 모임을 처음 꾸린 뒤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강제징집과 폭력을 당한 윤병기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추진위) 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의 책임자인 전씨의 처벌과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강제징집과 녹화공작 및 선도공작 등 피해자들은 이날 전씨 집 앞에서 신군부의 강제징집이 시작된 1980년 이후 피해자 모임을 처음 꾸린 뒤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980년대 초 학생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고 이들을 ‘프락치’로 활용한 전두환 정권의 ‘녹화공작’ 피해자 전체 명단이 최초로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39년 만에 진실규명을 위한 모임을 꾸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한겨레>가 입수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녹화공작 및 강제징집 대상자 명단을 보면, 1천명이 훌쩍 넘는 피해자들이 교내 시위, 유인물 제작, 야학 운영, 동아리 활동 등의 이유로 강제로 휴학 등을 당해 군대에 끌려가거나 입대 뒤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명단에는 유시민(60) 노무현재단 이사장, 심재철(61)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함께 김선수(58) 대법관, 한상혁(58)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강택(57) 교통방송 사장 등이 포함됐다.

 

김 대법관은 서울대 고전연구회 회장을 맡았고 1981년 5월 불법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두달 뒤 강제징집을 당했다. 유 이사장은 1980년 5월 교내시위 참여, ‘농촌법학회’ 활동 등의 이유로 같은 해 9월 군대에 끌려갔다. 심 원내대표도 ‘농촌법학회’ 활동과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1981년 2월 강제 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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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라 짓밟고 자술서·프락치 강요…“죽지 못해 산 지옥”

 

“손톱 밑을 바늘로 찔렀던 고문 트라우마로 아직도 손톱을 짧게 못 깎아요. 초인종을 누르면 경찰인 것 같고, 아직도 누군가가 절 감시하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요.”

 

황병윤(58)씨는 1983년 경찰에 붙잡혀 강제로 군대에 끌려간 이후 3년의 기억이 아직도 꿈에 나올 정도로 생생하다. 1983년 7월 말께 대구대 4학년이었던 황씨는 동아리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경찰에 체포됐고, 대구남부경찰서에서 한달간 조사받았다. 황씨는 이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곧 육군 50사단에 강제징집됐다.

 

황씨는 군에서 3년간 꼬박 고문과 폭력, 따돌림에 시달렸다. 출생부터 강제징집 전까지 만난 사람들과 친구, 가족들의 이야기를 모두 담은 ‘자서전’을 쓰도록 지시받았고, 쓰지 않으면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15일간 돌연 휴가증을 끊어주며 학내에 간첩과 북한 찬양자를 조사해 전하는 ‘프락치’ 노릇을 강요받았다. “데모하거나 사회 서적을 읽었다는 내용의 편지만 받아도 불려가 귀싸대기를 맞았고 부대 안에서 빨갱이 취급을 받으며 집단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어요. 군대 안에 있는 3년 내내 제 일거수일투족은 기록돼 위로 보고됐고 추궁당했습니다.”

 

김현동(57)씨도 1983년 3월30일 밤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집에 서울동대문경찰서 형사가 찾아와 잠깐 조사할 일이 있다고 해 따라나섰다가 유치장에 갇혔다. 4월1일 밤 11시 김씨는 경찰서 지하실의 작은 방에 끌려갔다. 붉은 조명이 비추는 방에서 누군가 007가방을 열더니 징집 영장을 꺼내 사인하라고 했다. “싫다”며 저항하자, 형사인지 군인인지 모를 6~7명이 김씨의 몸을 짓누르고 포박했다. 그는 4월2일 경기도 의정부시 101보충대에 실려 갔고, 삭발당한 뒤 군인이 됐다.

 

김씨가 강제징집된 것은 성균관대에서 ‘휴머니스트’라는 사회과학 동아리를 하면서 교내 집회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5월 김씨는 보안부대에 끌려갔고, 황씨와 똑같이 2주일 동안 100쪽이 넘는 ‘자서전’을 대여섯번씩 새로 썼다. 보안부대는 대학 시절 일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고 캐물었다. 부대는 김씨 역시 황씨처럼 휴가를 보내준 뒤 학교 동료들의 동향을 파악해 서울 퇴계로 ‘진양상가’에 있는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에 가서 보고하라고 했다. “프락치 짓은 죽어도 못하겠으니까 친구들한테 저를 피해 다니라고 하고 바깥으로 빙빙 돌았어요. 보고 거리가 없으니 진양상가에 가면 ‘너 그러면 군 생활 재미없을 줄 알라’고 협박당한 뒤 다시 학교 주위를 빙빙 도는 일이 반복됐죠.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었으니 경찰에 잡혀간 경력이 있어서 군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 동아리 사람 이름 정도는 말할 수밖에 없었죠. 지옥에 있는 심정이었어요.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9월부터 1984년 11월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했고, 1982년 9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이들을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공작을 진행했다. 2006년 7월 국방부 과거사위 발표를 보면, 강제징집자는 1152명, 녹화공작 대상자는 강제징집자 921명 등 모두 1192명이었다.

 

군대에서 동료를 배신하라고 요구하는 프락치 공작은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졌다. 1984년 종교·시민단체와 국회 등에서 녹화공작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은 뒤 강제징집은 중단됐지만, 군은 ‘선도공작’으로 이름을 바꿔 노태우 정권 때까지 수백명의 군인들에게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 2천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군에서 고통을 당했다.

 

강제징집·녹화공작 당시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6명이다. 선도공작 등까지 포함하면 모두 9명이 프락치 강요 등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의심된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강제징집·녹화공작 과정에서 군에서 숨진 6명 가운데 4명의 죽음이 국가폭력과 관련있다고 인정했다.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이후 강제징집과 녹화·선도공작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맡았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2006년 녹화공작의 전반적인 규모 등을 조사해 발표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군이나 국가가 공식 사과하는 일은 없었고, 구체적인 피해자 명단도 확인해주지 않았으며, 피해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쉽게 나서지 못했다. 죽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던 시대에 강제징집은 큰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되레 ‘군에 끌려가 프락치로 활용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렇게 억눌러온 고통이 지금은 울분이 되어 터지고 있다. 전남대 학생이었던 노영필(58)씨는 1983년 군에 끌려가 군인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조사가 끝날 때쯤 목욕을 시켜준다는데,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니까 온몸이 엉망이더라고요. 그래도 참았죠. 동료들의 이름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노씨는 이제 40년 전의 고통이 세상에 투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희생된 사람이 많았잖아요. 오히려 군대에 끌려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녹화공작 자체가 국가권력의 명백한 폭력인데 가만히 두고 넘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강제징집 피해자 조종주씨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남긴 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강제징집 피해자 조종주씨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남긴 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종주(56)씨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사회과학 책에 대한 소감을 적은 편지가 경찰에 압수돼 대학교 2학년 때 대구북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조씨는 개학날 다시 경찰서에 끌려갔고 그길로 지프에 실려 대구 50사단에 간 뒤 군인이 됐다. 신병교육 때 강제징집된 동료들과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차이고 맞은 조씨는 2개월 만에 탈영했다. 하지만 몰래 만난 엄마가 “깔딱숨”밖에 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군으로 돌아갔다. 최근 그는 그 기억을 글로 써 다른 피해자과 공유했다. ‘전두환과 끝까지 싸운다’는 내용이다.

 

“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에요. 실제 친한 친구가 죽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전두환은 골프를 치고 쿠데타 날 잔치를 하더라고요. 40년이 지났지만 싸울 겁니다.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강제징집 문제 해결입니다.”

 

강제징집 피해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자택 앞에서 국군보안사령부가 부여했던 관리번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강제징집 피해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자택 앞에서 국군보안사령부가 부여했던 관리번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녹화공작 피해자들 “전두환 처벌받아야” 집앞서 회견

 

 

피해자 213명으로 구성된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추진위)는 21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전두환씨의 사죄 등을 요구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강제징집이 시작된 1980년 이후 강제징집과 녹화공작·선도공작 등 피해자들이 진실규명을 위한 모임을 꾸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추진위는 이날 오전에는 서울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강제징집 등 진실규명과 주요 책임자 처벌”을 호소했다.

 

이들은 특히 전씨의 처벌을 강조했다. 윤병기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전씨가 29만원밖에 없다면서 골프를 치고, 치매라면서 술을 마시는 걸 보면서 피해자들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녹화공작 최종 지시자인 전두환이 어떤 식으로든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병윤 공동위원장도 “피해자들이 전두환의 최근 행보를 보고 국가폭력을 공개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이날 정부와 국회,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보안사령부)에 △녹화·선도공작 관련 자료 공개 △공식 사과 및 재발 방지책 마련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전두환씨를 비롯한 책임자 사죄 등을 요구했다.

 

 

 

 

 

 

 

정환봉 권지담 기자 bong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1769.html?_fr=mt1#csidx0e119675b5e9b9d8f78c2d3ada5e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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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지선 스님 “여전히 분단의식에 사로잡힌 이들 안타까워… 민주화 멀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 “이석기 전 의원, 정치적 차원에서 석방해야”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9-12-22 17:35:54
수정 2019-12-22 19: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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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 5층 조사실 복도에 섰다. 예전 이곳은 민주인사들을 조사하고 고문하던 곳으로 지선 스님도 1987년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 5층 조사실 복도에 섰다. 예전 이곳은 민주인사들을 조사하고 고문하던 곳으로 지선 스님도 1987년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김철수 기자
 

서늘한 기운이 온몸에 느껴진다. 좁은 복도 양쪽으로 작은 문들이 즐비하다. 발걸음 소리가 천정과 벽면을 타고 흐르며 묘한 긴장감이 퍼진다. 남영동 대공분실. 지난 1987년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민주인사가 고문을 당한 곳이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물은 피의자가 이동하는 계단을 나선형 철제 계단으로 만들어 방향감각을 잃게 했다. 조사실 사이의 문들이 서로 마주 보지 않게 해 조사받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고문받은 이의 비명과 조사관의 호통 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진다. 사무실마다 욕조가 갖춰져 있는 등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하고, 조사받는 이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다. 이곳은 지난해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위탁관리하며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수많은 민주인사가 이곳에서 조사와 고문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엔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도 있다. 1980년 ‘5.18광주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지선스님은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를 맡았고, 1987년 6월 10일 서울 정동 성공회성당의 종탑에 직접 올라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후보 지명 무효 선언문을 낭독함으로써 항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 일로 지선 스님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고, 내란음모죄가 적용돼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난 19일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을 만났다.

지선스님은 인터뷰 내내 ‘낡은 분단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가 바뀌고 있고, 이미 역사적 평가도 끝났는데 극우세력이 광주항쟁 등 민주화 역사를 뒤집으려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이석기 전 의원 석방에 대해 지선 스님은 “나도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면서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석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선 스님은 아울러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지 40년이 되던 지난 12월 12일 기념 오찬을 갖는 등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지선 스님은 인터뷰를 마친 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있었던 전두환과의 악연을 소개했다. 지선 스님은 1988년 12월 전 전 대통령이 부인과 함께 백담사에 칩거할 당시에 스님과 승가대 학생들로 ‘민족자주통일불교협의회 체포결사대’를 꾸려 전세버스를 타고 전두환 이순자 구속 투쟁을 위해 백담사로 떠난 바 있다. 당시 공권력은 경찰과 백골단 등을 총동원해 이들을 잔혹한 폭력으로 제지했고, 여러 날을 투쟁하며 당시 대장을 맡아 체포결사대를 이끌던 지선 스님도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머리와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런 스님들의 항의에도 전두환은 부인과 함께 백담사에서 13개월을 지냈다. 더구나 백담사는 이후 30년 넘게 전 전 대통령이 은거했던 화엄실에 ‘제12대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달아 보존했다. 은거 당시 전 씨 부부가 쓴 의류와 목욕용품, 거울, 이불. 화장대, 촛대, 세숫대야 등도 함께 전시했다. 백담사는 전 전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부담스러웠던 듯 최근 인제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보전해오던 전 전 대통령의 물건을 백담사에서 치워버렸다고 한다. 지선 스님은 이런 백담사의 과거 행보를 비판하면서 일갈했다. 

다음은 지선스님과 일문일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김철수 기자

질문 민주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취임한 지 2년이 넘었다. 이제 임기를 6개월여 앞두고 있다.

답변 처음에 들어올 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같다.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임기가 6개월 남았으니깐 저보다 훌륭한, 경륜이 있는 분이 오셔서 이사장을 맡아주셨으면 하는 비림이다. 민주인권기념관을 짓는 것도 너무 늦어졌다. 훌륭한 분이 오셔서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질문 지난 9월엔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아직도 부마항쟁과 관련해 명예회복과 진상규명 등 가야 할 길이 멀다. 

답변 외형적으론 민주화가 보편화 되고, 이제는 질적인 민주시민사회로 가고 있다. 그런 만큼 길은 멀어도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 여야가 합의해서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한다면 잘될 것이라고 본다. 해당 지역의 의원들도 그런 당부를 하셔서, 지역의 의원들이 힘을 보태 달라고 이야기를 드렸다. 

“이런 행태는 우리 민주화와 
통일 인권에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동시에 세계 인류에게도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다.  
이 시간에도 광화문 광장과 국회를 점거해 
반공 궐기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뭐라 말할지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다.”
 

질문 최근 극우적 주장을 하는 이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등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엔 자유한국당에서조차 이런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었다. 

답변 참 말문이 막힌다. 어처구니없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생각했다. 이제는 1970~80년대의 분단 이데올로기, 반공 멸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마음이 커져야 한다. 세계가 발전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낡은 이데올로기를 붙들고 정치를 하려는 것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특히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의원조차 의식이 변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난다. 이건 국력 낭비다, 역사가 진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고, 국민의 정신을 퇴행시키는 것이다. 분단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역사적으로 평가가 끝났다. 제주 4.3, 부마항쟁, 광주 5.18, 6월항쟁 등 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문제를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선전 선동하고, 과거처럼 멸공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공격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우리 민주화와 통일 인권에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동시에 세계 인류에게도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다. 이 시간에도 광화문 광장과 국회를 점거해 반공 궐기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뭐라 말할지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다. 

“전두환 개인도 한심스럽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치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처럼 느껴진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러면 되겠나.  
그런 분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는 것도 문제다.”
 

질문 이런 배경엔 여전히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재판조차 거부하고 있는 전두환 씨의 행동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2,12 군사반란 40년이던 지난 12일엔 호화 식사 자리까지 가져서 비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답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정이 많아서 그렇다. 진정으로 민주화를 시키려는 열망도 있지만, 인정도 많다. 그들이 저지른 죄에 버금가는 처벌을 내렸다면 저리지 못했을 것이다. 전두환 씨가 저렇게 행동하고 발언하는 걸 활용하는 세력이 있고, 저 사람들 뒤에도 믿는 힘이 있기에 저런 일을 저지른다. 분단국가이기에 생기는 일이지만, 전두환 개인도 한심스럽고,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치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처럼 느껴진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그러면 되겠나. 그런 분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는 것도 문제다. 12.12를 같이 일으켰고, 대통령도 같이 지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아들을 보내서 망월동 묘역을 두 번이나 참배하는 등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전두환 씨는 어떻게 된 것인지, 적반하장으로 성을 내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김철수 기자

질문 ‘민주’와 ‘인권’은 뗄 수 없는 가치다.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이곳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아직 ‘인권’이 무시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일도 많다. 

답변 인문학을 바탕을 사회과학이 형성된 교육을 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민주화가 총체적이라면, 인권은 그 가운데 구체적인 실천 행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권과 민주화는 하나이자 둘이고, 둘이자 하나이다. 인권이 완전히 보장된 사회라면 민주화와 인권이 다르다는 생각은 안 할 것이다.  

질문 ‘인권’과 관련해서도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답변 분단국가에서 교육이 잘못된 부분이 많다.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과 관련한 평등성이 교육에서 다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제 경제적으로 많이 부유해졌고, 성장이 되었고, 사상적으로도 자유로워진 세상에서 아직도 인권과 관련해서 난민 등 이런 것이 논란이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봤을 때 뒤늦은 감이 있다.

“역사가 더디 가더라도  
진보적으로 가고 있고,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촛불항쟁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 움직임이다.”
 

질문 촛불항쟁을 통해 민주화운동이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살아 숨 쉬는 힘임을 확인했다. 

답변 촛불항쟁에 대해 외국에서도 좋게 평가한다. 저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촛불항쟁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세계 모순이 집약된 한반도에서 민주화를 꿈꾸고 실천 노력했던 항쟁에서 터득한 것이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난 결과다. 과거와 현재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의 거울이 현재이고, 현재가 또 미래의 갈 길을 비춰준다. 과거, 현재, 미래 이 삼세는 늘 함께 살아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역사가 더디 가더라도 진보적으로 가고 있고,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촛불항쟁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 움직임이다. 

질문 한국사회에선 종북몰이가 여전하다. 수구세력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무조건 종북으로 몰고 있다. 이사장님께서도 과거 이런 공격을 당하셨는데 

답변 우리밖에 없는 분단국가의 슬픈 현상이다. 이념은 인간을 해방하는 면이 있지만,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면도 있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기울면 불행해진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는 것은 안 된다. 우리에겐 그런 이데올로기에 빠지고, 집착해서 불행했던 과거가 있다. 인권과 생명을 유린한 비극이 많았다. 그전엔 빨갱이라고 했고,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이제 새로운 말이 나와 종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수구는 보수가 아니다. ‘수구꼴통’이 있을 뿐 진정한 보수는 없다. 열려 있지 않은 보수는 수구일 수밖에 없다.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이들이 수구다. 그분들은 역사를 후퇴시킨다.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세력을 매도한다. 이건 망국적인 사고방식이다. 그걸 버려야 하는데, 빨리 버리면 버릴수록 좋은데 수구는 그걸 못 버리고 있다. 

“나도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석방해야 한다.”
 

질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석기 전 의원 등 양심수 석방과 관련해선 종교계 등의 사면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저하는 상황이다.

답변 나도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9년형을 받고, 7년이나 갇혀 있었다. 이제 2년이 남았다. 7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다. 오늘날처럼 스피드한 시대에 비춰보면 긴 시간이다. 이 전 의원도 그곳에 계시면서 많은 사색을 했다고 본다. 당신의 잘한 점 못한 점이 다 정리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쯤 나오면 훨씬 더 성숙한, 숙성한 사상들이 정리됐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정치에도 그런 생각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석방해야 한다. 

질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시면서, 완전한 통일 없이는 민주화가 없다고 강조하셨다. 분단 현실이 여전히 우리의 삶과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답변 민주, 민중, 통일 이 세 가지가 우리 민족의 화두다. 더 나가서 세계적인 인류의 화두도 된다. 그리고, 진보적 입장의 사람들에겐 자주, 민주, 인권, 평화통일이 영원한 화두다. 통일이 없으면 완전한 민주화도 없다. 통일이 됐다는 말은 완전히 민주화가 됐다는 말이고, 완전한 민주화가 됐다는 말은 통일이 됐다는 말이다. 분단 현실에서 모든 건 반쪽이다. 민주화도 반쪽, 철학도 반쪽, 사상도 반쪽, 종교도 반쪽, 문화도, 예술도 다 반쪽이다. 예전 활동할 때 민족 모순이 먼저냐. 민중 모순이 먼저냐, 무엇이 주요 모순이고, 부차 모순인지를 두고 논쟁했다. 하지만 이 모순이 존재하는 한은 그것은 겹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가 별로 진보하지 못했다. 두 모순이 해결돼야 민주주의도 희망이 있다. 분단 현실을 놓아두고, 해묵은 분단 이데올로기에 고착된 이들이 있는 한 민주주의도 안된다. 

박종철 열사가 조사를 받았던 509호 조사실엔 당시 모습이 보존돼 있다. 509호 조사실에 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
박종철 열사가 조사를 받았던 509호 조사실엔 당시 모습이 보존돼 있다. 509호 조사실에 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김철수 기자

아울러 남북 모두, 분단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통엔 강대국의 책임도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이런 4대 강국들이 통일을 진실로 원하고 바란다면, 우리는 훨씬 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겉으론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한국의 분단 모순 해결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투거나 
게임을 할 때 파이팅(Fighting)이라고 하는데, 
화이통(和以通)했으면 한다.  
화합해서 대화해야 통한다.  
모든 것 갖추고 있는 큰 나라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작은 나라는 참고 견디기 어려운데 
쉽게 대화문이 열리겠나.”
 

질문 북미 대화와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화해의 분위기를 이어가던 남북 관계가 최근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 어떤 지혜가 필요하다고 보시나? 

답변 우리 같은 이들의 상식으로 볼 때는 상호불신 관계가 문제다. 북미간에 불신이 크고, 서로 불안해서 진척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깐 큰 나라는 큰 나라답게 아량을 보이고, 작은 나라는 작은 나라답게 협조해서 잘 풀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걸 보니 안타깝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강대국 열강들은 다 핵무장을 하면서,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 핵개발을 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가를 냉혹하게 지배하려고만 해서는 되겠는가. 자기는 선진 민주국가이고, 생명 존중, 인간 평등을 구가한다는 나라들이 왜 작은 나라에서 핵무기 만들었다고 트집 잡아서 없애지 않으면 가만 안 둔다는 으름장을 놓나. 그러니 작은 나라도 해볼 테면 해봐라, 죽기살기로 나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보일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는 예전 같은 전쟁 방식으론 안 된다. 그렇게 해선 세계 평화, 인류의 복지 국가 행복한 나라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니깐, 큰 나라에서 선물을 크게 주어서, 먼저 작은 나라의 불안감과 불신감을 씻어줘야 한다.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먼저 실천하면 제제 푼다고만 하니까, 작은 나라는 상대가 몇 배나 부강한 나란데, 한방이면 사라지는데 쉽게 포기할 수 있겠나. 지혜는 나눠주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투거나 게임을 할 때 파이팅(Fighting)이라고 하는데, 화이통(和以通)했으면 한다. 화합해서 대화해야 통한다. 모든 것 갖추고 있는 큰 나라에서 양보하지 않으면 작은 나라는 참고 견디기 어려운데 쉽게 대화문이 열리겠나. 불신을 없애고, 불안감 없애야 한다. 

아울러 우리 국민도 이제는 폐기된, 구태의연한 안보의식, 그런 특정 이데올로기의 노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 시민이 의식을 바꿔야 한다. 아직도 그런 망국적 개념과 인식에 머문 단체들은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걸 바꾸라고 강조하는 것은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민주 복지국가로 가려면 바꿔야 한다. 특히 이제 종교인들이 나서야 한다. 

“무한하게 부정하고,  
긍정해가면서, 더 세련되고,  
민주화의 선순환을 거쳐서  
행복한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뒤돌아보면 되는 것 적었고, 안되는 건 많아서 
제 고향말로 “민주화 어디 만큼 왔냐?”라고 
묻는다면 “당당 멀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질문 내년은 4.19혁명 60주년, 전태일 열사 50주기, 광주항쟁 40주기를 맞이한다.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큰 분기점이 된 내년을 맞이하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답변 해수가 많이 지났다. 그런 아픔을 해소 시킬 엄청난 세월이다. 빨리 변화시켰으면 좋은데, 이 속절없이 시간만 쌓이는 민족적 사건 앞에서 부끄럽다. 변하지 않고 늘 푸르다는 허공도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시사철 수많은 생명 살게 하고, 역사를 많이 바꿔가도록 한다. 허공도 이렇게 늦게, 더디 가진 않는다. 민주화운동의 분기점을 낳은 사건들이 전부 반세기가 다 지나고 있는데, 본질적 면에서 변하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런 60, 50, 40주기마다 참 안타깝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고, 인생을 살날이 많지 않은데, 세계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는 과거의 분열의식을 가지고, 지금도 정치인은 거기 포로가 되고, 수구세력이 지지 추종한다. 이러니 이제 우리보다 못한 나라가 우리를 언제 앞지를지 모른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19일 서울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 건립되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19ⓒ김철수 기자

중요한 사건들의 분기점을 맞으며 새롭게 단 짧은 시간일지라도 새롭게 의미를 새기면서 맞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돌아보며 내 인식은 진보적인가, 퇴행적인가 반성해보는 시민이 되었으면 한다. 반성과 참회의 의식을 갖지 않는 시민이라면 나라의 장래가 없다. 어떤 집단과 개인도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고, 자기 발전의 구상을 창조해내야 하는데 여전히 분단 이데올로기, 후진적 역사의식에 머무는 이들을 보니 안타깝다.  

질문 임기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계획은? 

답변 역사에 풀지 못한 여러 사건, 풀리지 않은 사건들을 겸허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다. 민주화가 이제는 어떤 이들에겐 먼 과거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렇게 싫어하는 단어가 됐다. 살기에 바쁜 청소년들에게 민주화운동 관련 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하면 달갑게 생각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민주시민 교육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인문학이 바탕이 된 사회과학을 철저히 가르쳐 선진 민주국가로 가야 한다.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시기를 낡은 이데올로기, 편가르기, 낡은 정치에 갇혀 놓치고 있다. 경제는 조금 잘살게 됐지만, 정신적인 면은 후진적 면을 면치 못했다. 얼마 임기가 안 남았는데, 민주인권기념관을 빨리 지을 수 있도록 힘쓸 계획이다. 설계를 마쳐서 내년엔 짓기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서울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도 세워져야 한다. 지자체가 땅과 돈을 내고, 부족한 부분은 정부가 지원해서 꼭 세워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시민교육도 다양하게 펼칠 수 있게 됐다. 민주시민교육센터, 민주화인권기념관 두 중점 사업에 힘을 쏟을 것이다. 

이사장을 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세계 인류와 공존 공생하려면 민주주의가 폭넓게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여러 선진국도 지금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역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화만 되면 큰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추구할 이상이다. 무한하게 부정하고, 긍정해가면서, 더 세련되고, 민주화의 선순환을 거쳐서 행복한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그렇게 완성돼도 그것이 끝이 아닌 만큼 모든 시민이 무한히 부정하고, 긍정하면서 가꿔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일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 뒤돌아보면 되는 것 적었고, 안되는 건 많아서 제 고향말로 “민주화 어디 만큼 왔냐?”라고 묻는다면 “당당 멀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저 자신도 많이 반성했다. 제게 있어 비민주적이던 부분을 반성하고, 비민주적인 습관을 없애고, 민주시민이 되는 경험을 했다. 모든 것이 우리 성숙한 대한민국 시민 덕분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대동 세상, 제일 깊고 높고 성숙한 인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종교보다 거룩한 것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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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주통일' 외치다 사형당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이 언론탄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박정희 정신" 외치는 황 대표님, 58년 전 이 죽음 아십니까

'민족자주통일' 외치다 사형당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이 언론탄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19.12.22 20:02l최종 업데이트 19.12.22 20:21l

 

 조용수 사장 왼쪽
▲  조용수 사장 왼쪽
ⓒ 진실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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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58년 전인 1961년 12월 21일, 그날은 당시 가장 진보적인 신문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1930-1961)가 박정희(1917-1979)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비극적인 날이다. 박정희는 왜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지 7개월 만에 한 언론사 사장의 목숨을 앗아간 것일까?

1961년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한 직후부터 그해 연말까지 불과 반년 동안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왔다. 평소 '레드콤플렉스'가 강했던 박정희는 이 시기 진보인사들을 정당성 없는 자신의 군사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다. 미국이 과거 남로당원이었던 박정희의 전력을 의심하면서 나타난 박정희의 오버 액션이었던 것이다.

부정선거 원흉보다 진보인사 가혹하게 처벌한 박정희
 

역설적이게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60년 3.15 부정선거 원흉인 자유당 간부들이나 부정축재자보다 오히려 진보인사들을 훨씬 더 가혹하게 처벌했다. 박정희는 남북평화통일운동,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유족회 활동 등을 '특수반국가행위'로 규정했다.

그래서 1961년 5.16 직후 박정희 정권 아래서 "3.15부정선거 원흉들은 사형 등 중형을 선고 받았더라도 최인규 내무장관이 사형당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다 2~3년 내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혁신계와 청년·학생들은 다수가 장기 복역했고,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와 사회당 간부로 남북협상을 주장했던 최백근이 처형되었다."(서중석, <한국현대사 60년>)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빨갱이 경력을 세탁시켜주는 용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당해야만 했다. 그 어이없는 게임의 최대 희생자 중 한 사람이 바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였다." (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조용수 사장
▲  조용수 사장
ⓒ 진실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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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는 1960년 4.19 직후 혁신정당인 '사회대중당' 후보로 민의원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그 다음해인 1961년 2월 13일 조용수는 진보신문인 민족일보를 창간해, 당시 혁신계 인물들이 주장하던 남북협상, 중립화통일, 민족자주통일 등 진보적 논지를 중점 보도한다.

 

그런데 3개월 후인 1961년 5월 18일, 5.16쿠데타 집권 후 불과 이틀 만에, 박정희 정권은 조용수를 연행 후 구금한다. 그리고 조용수가 이른바 간첩혐의자 이영근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민족일보를 창간해 "국민을 선동하고 북한을 고무, 동조하였다"는 혐의로 박정희 정권은 조용수를 수사하고 민족일보는 곧 폐간 조치된다.

그러나 이영근이 간첩이 아니라는 것과 조용수가 이영근에게 어떤 자금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곧 밝혀진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박정희 정권이 이미 짜놓은 재판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욱이 1990년 5월 14일 이영근이 사망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민족지 통일일보를 창간, 대 조총련투쟁과 재일교포의 법적지위향상에 기여했다'는 공적으로 이영근에게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한다.

그럼에도 1961년 7월 12일 박정희가 설치한 이른바 혁명검찰부는 1961년 7월 23일 조용수 등 민족일보 관련자들을 혁명재판소에 기소한다. 그리고 혁명재판소 심판부(1심)는 1961년 8월 28일 조용수에게 소급입법으로 제정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을 적용해 "사회단체의 주요간부로서 민족일보 사설 등을 게재하여 북한의 활동을 고무·동조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한다(당시 1심 재판부에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배석했다). 그러자 당시 국제언론인협회, 세계신문인협회 등 언론인들은 조용수 구명운동을 전개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조용수 구명운동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이어서 1961년 10월 31일 박정희 정권의 상소심판부(2심)는 "사회단체 간부를 적용한 것은 잘못이나 정당의 주요간부"였으므로 위 특별법 위반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조용수에 대한 사형선고를 확정한다.

언론사 사장을 사형시킨 박정희

형이 집행되기 전 국제펜클럽과 국제신문인협회 등의 항의전문이 발표되고 심지어 일본에서도 조용수 사장에 대한 구명운동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다수 국내언론은 침묵한 가운데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1961년 12월 20일 조용수에 대한 사형문서에 결재한다. 그리고 결국 3심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그 다음날인 1961년 12월 21일, 추운 겨울날 조용수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집행당한다. 이때가 그의 나이 고작 31세. 사형 당하기 전 조용수는 이런 유언을 남긴다.
 
"민족을 위해 할 일을 못하고 가는 것이 억울하고, 신문을 만들기 위해 동지에게 꾼 돈을 갚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민족일보 창간호
▲  민족일보 창간호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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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말없이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조용수 사장의 사후 45년 만인 지난 2006년 1월 10일 그의 동생 조용준은 필자가 몸담았던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 조용수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 줄 것을 신청했다.

1961년 5월 18일 당시 조용수 등에게 소급 적용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이 1961년 6월 22일 제정되기 이전인 상황에서 체포·구금되었다. 또한 당시 형사소송법상 구속기간이 수사기관 10일, 검찰 10일이며, 검찰은 10일을 초과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법원 허가를 받아 연장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용수 등은 1961년 5월 18일 체포·구금된 때로부터 66일간 구금되었다가 1961년 7월 23일 기소되었다. 결국 불법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권은 재판 과정에서도 역시 불법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저지른 것이다.

1961년 당시 육군중령으로 박정희가 만든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사위원장을 지낸 이석제는 회고록에서, 1961년 5․16 직후 자신이 육군본부 상황실에서 상황을 점검하던 중 미국이 박정희와 김종필의 배경을 뒷조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이석재는 '미국의 사상공세를 일거에 역전시키기 위해서 비상한 조치가 필요' 하다고 판단해 '혁명군이 강력한 반공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만큼 미국 측에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보여줘야만 혁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보도연맹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반공에 대한 의지를 미국에게 보여주고자 결심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전국 각지의 군경, 헌병대에 비상을 걸어 보도연맹 관련자들을 체포할 것을 명령'했으며, '나중에는 보도연맹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소위 혁신정당 관련자, 좌파이데올로기에 물든 지식인, 사회단체지도자, 노조지도자 등 4000여 명에 이르는 사회 불만세력과 좌익 활동 경력자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해 체포, 수감'했다고 적고 있다.

조용수 사건은 먼저 민족일보 관련자들을 체포해 구금한 후 그들에게 적용될 소급입법을 만들어 기소와 재판절차를 거쳐 처벌하는 과정을 밟았다. 조용수에 대해서는 사장의 지위에서 게재한 민족일보 사설 등을 '정당의 주요간부 지위에서 게재한 것이며 그 내용이 북한을 고무·동조했다'고 왜곡해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의 확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감형 없이 조용수에게 사형을 집행했던 것이다.

10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2006년 11월 28일 진실위는 조용수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에 대해 이렇게 발표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게 북한을 고무·동조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한 (박정희 정권) 혁명재판부의 판단이 잘못됐고...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조용수 사장의) 가족 3명을 간첩혐의로 불법감금하고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

...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은 당시 대외적으로 5.16 주도세력이 철저한 반공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주고, 대내적으로는 쿠데타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할 필요성이 있었던 상황에서 불법으로 제정된 소급입법에 의해 당시 혁신계의 주장을 강하게 대변하고 있던 대표적인 신문 민족일보의 사장 조용수를 희생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민족일보 논지만으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에게 극형인 사형을 선고하여 다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생명권을 박탈한 것은 문명국가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비인도적, 반민주적 인권유린에 해당한다."


진실위의 진실규명으로부터 2년이 흐른 2008년 1월 16일 열린 재심에서 지난 1961년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박정희에 의해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결국 사후 4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 죽인 후 반세기 후에 죄가 없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서 박정희의 죄는 결코 용서될 수 없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서 헌화를 위해 국화를 받고 있다.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서 헌화를 위해 국화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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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신을 배워야한다"는 황교안

그럼에도 지난 10월 26일 박정희 4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렇게 박정희를 평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독보적인 성취와 성공의 기적을 일구어낸 분이다. (우리는) 박정희 정신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야당 대표 황교안씨가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만약 황교안씨가 그토록 존경하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그가 야당 대표로 살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어두운 국정원 지하실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이미 사형선고를 받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황교안씨가 최근 "민주주의가 종언을 고했다", "좌파가 언론을 장악했다" 또는 "문재인 정부는 역대 가장 비(非)민주적인 정권"이라는 등의 발언을 하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

또, 한국당은 지난 20일 "좌편향으로 심각히 기울어진 미디어 환경을 바로 세우고자 한다"며 "불공정 보도에 대한 삼진아웃제를 도입해 불이익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행보가 아닐 수 없다.
 
태그:#조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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