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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북은 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나?

<기고> 김광수 정치학 박사
김광수  |  no-ultar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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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3  23: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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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연말연시를 맞아 분석 글 몇 편을 시리즈로 기재하고자 한다. 

첫째, 12월 연말에는 ① 북이 밝힌 ‘새로운 길’, ‘새롭다’는 그 의미를? ② 북미관계, 그 파국을 막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둘째, 2020년 1월 연시에는 북 신년사를 분석해내고자 한다.(※ 올해는 북이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은 관계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결정서’분석으로 대체한다.) ③북은 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나? ④ ‘사실상’ 2020년도 북 신년사는 ‘자력’이다.
 
양해를 구하고,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필독을 권한다. / 필자 주

 

북 신년사 하면 떠오르는 형상이 하나 있다. 북은 해마다 매년 1월 1이면 어김없이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를 발표한다. 당해 연도 주요 정책 방향과 주요 사업 계획을 전략적으로 밝히고 결의하는 장으로. 이후 신년사 관철을 위한 각 조직별 학습모임, 각 시도별 군중대회 등이 개최된다. 

북에 있어 신년사는 이렇듯 한 해를 출발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기준점이다. 그런 만큼 올해 경자년 새해에도 (북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발표될 것이라 여겼고, 특히 ‘새로운 길’과 관련하여서는 어떤 내용이 담겨질지가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측을 뛰어넘는, 아주 낯선 풍경이 발생했다. 해마다 1월 1일이면 발표되던 신년사가 발표되지 않은 것이다. 2020년은 참 낯선 풍경으로 북 대면 시작을 그렇게 한다. 

그래놓고 북 신년사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우선 발표형식은 ‘신년사’, ‘축하문’, ‘신년 축하연(경축야회) 연설’, ‘노동신문 사설’, ‘공동사설’ 등 여러 명칭과 형식으로 사용되어왔으나, 가장 많이 사용된 범용사례가 신년사였다.  

다음으로는 신년사가 발표되지 않은 해도 있었다. 정권수립 이후 1956년 ‘8월 종파사건’이 벌어진 이듬해인 1957년에는 생략되었고, 두 번째 생략은 1987년이었다. 1986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8기 1차 회의 시정연설이 신년사로 대체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딱 2번, 신년사는 발표되지 않았다. 그래서 신년사 미발표는 그 만큼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나서는 문제의식도 ‘그럼 왜 북은 그런 매우 이례적인 상황을 2020년도에 연출했을까?’이다. 

제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러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한다면, 그 원인은 분명 있을 것이다. 마땅히 찾아야 할 이유도 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이번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결정서’ 채택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북의 의도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이 글은 바로 그 의미-북이 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는지를 찾아나서는 시론 성격의 분석 글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왜였을까?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읽혀진다. 하나는 정세의 엄중함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 인민의 총의가 모아졌다는 것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함이다. 

먼저 첫 번째 요인이다. ‘정세의 엄중함’과 관련하여서는 북은 2020년 정세를 1957년도와 같이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설명하자면 2020년도도 1957년도와 똑같이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을 만큼 정세가 엄중하다는 것 같은데, 그럼 1956년도에 도대체 어떤 일이 발생했기에 1957년도에 신년사를 발표하지 못 하였을까?라는 문제의식으로 연결된다. 

아시다시피 1956년은 북 정권수립 이후 전대미문의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이라는 권력투쟁이 그것인데, 처음 핵심쟁점은 노선상의 투쟁이라기보다는 중공업-농업·경공업 동시발전노선을 둘러싼 경제발전전략에 대한 이견이 결국에는 당시 당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던 각 분파들의 권력투쟁으로 비화되어졌다. 

결과는 이 사건을 잘 수습한 김일성 주석이 이를 계기로 수령중심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는 당내 권력투쟁이 그렇게 결속되어졌다하여 결과도 수령중심의 유일사상체계가 곧바로 안착될 것이라는 확신을 해내지 못할 때였고, 그러니 김일성 주석도 그 여파로 신년사를 발표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해 연도 국정운영을 확실성 있게 추진해 나가지 못할 정도로 국내정세가 엄중했다는 말이다. 

그럼 2020년은? 

북은 2019년 12월 31일까지 새로운 계산법에 대한 ‘마지막 시간’을 미국에게 주었으나, 미국은 이에 대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북은 2020년 정세전망을 함에 있어 기간 핵보유를 통한 미국과의 전략적 대결에서 승리로 결속될 수 있는 일정한 성과가 2019년에는 내오고, 이를 바탕으로 2020년도는 미국과 협상과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다음 논의단계로 진행시켜 나가고자 했던 전략에 부득불 차질이 생겨 궤도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정세총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이렇듯 1957년과 2020년도는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은 것은 분명 같지만, 엄연한 차이도 존재한다.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차이, 즉 엄중함의 요인이 1957년은 대내적이었다면 2020년은 대외적이라는 사실. 

구체적으로는 1957년은 김일성 주석의 권력적 기반이 불확실성하여 생긴 대내적 요인이라고 한다면, 2020년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와의 대결이 장기전을 띌 수밖에 없는 전략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부득불 미국과 ‘싸우는 한 해’로 설정할 수밖에 없고, 그 대결이 단기간에 걸쳐 끝나는 ‘속전’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장기성’을 띌 수밖에 없다는 그런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타개책도 다음번에 쓰여 질 <④‘사실상’ 2020년도 북 신년사는 ‘자력’이다>에서 보다 상세히 상술되겠지만, 기존의 대화와 협상방식보다는 고강도의 핵전력 강화[*고강도의 핵전력 강화라 함은 북은 이미 2017년 11월 29일에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 즉 고체연료 ICBM, 다탄두 전략무기(다탄두 ICBM), 핵탄두 SLBM, 북이 이미 선포해놓고 있는 ‘태평양상에서의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선보이는 것]로 대미압박을 지속해 미국으로부터 반드시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전략이다. 

그래서 이번 제7차 당 전원회의는 누가 뭐래도 사실상 핵보유 길로 가겠다는 것이고, 그 길은 종국적으로는 승리의 길이기도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매우 험난한 길임을 북도 알고 있기에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 되는’그런 상황인식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호사가들은(분단 적폐세력들은) 이 형식적 일치성만 보고 2020년도에도 1957년과 똑같이 데자-뷰(Deja-vu)되고 있음만을 최대한 부각하려고 한다. 

왜? 그때와 같이 신년사를 발표하지 못할 정도까지 되었으니, 지금의 김정은 체제가 얼마나 위기에 봉착했겠냐며 그 불안정성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말이다. 

비례해 당연히 이번 신년사 미발표보다 더 중요한 제7차 당 전원회의를 통해 전달해내고자 한 북의 전략적 의도를 읽어낼 생각도, 읽어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또 다른 오독도 있다. 친여 성향의 대북전문가들과 청와대 등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인식범주이다.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방식이다. 제7차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결정서를 기간 조성되어진 정세와 맥락적으로 이해하려하기보다는 그 내용 중 보고 싶은 내용만 발췌하여 “우리의 억제력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립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는 데만 착목하여 미국과의 대화여지를 남겨두었다는 등 그런 정세분석법이 그것이고, 그 뒤에 오는 “우리의 장엄한 정면돌파전을 정치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담보할데 대하여”라는 의미는 의도적으로 뺄셈(인식)한다. 

다시 말하면 북이 생각하고 있는 이번 정세인식의 본질은 미국의 ‘대조선립장’에 따른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정세를 인식해 미국과의 대응수위를 조절해 나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이라는 방식으로 이행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미국이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새로운 계산법’으로 접근해오도록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치외교적, 군사적 수단을 쓰겠다는 것이 보다 본질적인데도 이를 보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제는 그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주체의 정세관을 오독하지 말아야만 생겨나는 비례로 북미 대결전의 본질도 이해하게 되고,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나가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역할론도 찾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두 번째 요인 문제이다. 북은 왜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고, ‘전체인민의 총의가 모아졌다’는 의미에서의 대외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느냐의 문제이다. 

다음과 같은 북의 고민에서 찾을 수 있는 듯하다. 

수령십(sulyeong-ship)의 원래 본질은 팔로우십(followership), 펠로우십(fellowship), 리더십의 입체적 결합이다. 

그런데도 마치 수령십을 개인독재로 인식해 탑-다운(top down) 방식으로 위로부터 내리먹이는 리더십으로 오해, 해서 이번 제7차 당 전원회의는 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충격요법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어떻게? 바텀-업(bottom up) 방식인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팔로우 성격이 부정당하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는 정세인식을 탑-다운 방식이 아니라 바텀-업 방식에 근거하고 있음을 대외에 과시해 이번 당 전원회의의 결정이 김정은 위원장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전체 당원과 인민의 한결같은 염원과 정세인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선포하고자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 신년사는 못한 것이라 아니라 의도적으로 생략된 것이다. 1957년과 같이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제7차 당 전원회의로 대체할 것을 미리 계산해 연말에 개최했고, 규모도 사상유례가 없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북)이 얻고자 했던, 또는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보다 분명하다.

수령-당-대중의 일체성에 근거한 정세인식임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해 ①채택된 결정서가 김정은 위원장 개인 생각이 아님을 강조하고, ②그 연장선상에서 수령-당-대중을 분리하여 접근하려는 적대세력들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고, ③결과적으로는 전당-전군-전민이 똘똘 뭉쳐 현재의 정세국면을 똑같이 인식하고, 미국과 장기전으로 싸우더라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비록 (승리로) 가는 길 험난하다하더라도 “우리의 전진을 저애(저해)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강조, 필자)으로 뚫고나가자”는 총적 구호 아래 전체인민 모두가 합심해 한 손에는 ‘자력갱생’, 또 다른 한손에는 ‘핵전력 강군화’로 2020년 정세를 맞받아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가장 그들다운 방식으로 그렇게 결의해내고자 했던 것이다. 

해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경자년 새해 북은 신년사를 발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안한 것이고, 발표하지 않음으로 인해 더 강력한 신년사를 발표한 것이다.

그럼으로 일각에서(분단적폐 세력 등) 분석해내고 있는 것처럼 김정은 수령체제가 불안정하여 신년사를 채택하지 못하였다는 결론은 매우 잘못된 거짓 분석이고, 의도된 분석에 다름 아니다. 또한 친여 인사들이 분석해내고자 했던 ‘대화의 여지’ 운운도 자신들의 평화경제, 한반도 평화와 번영정책 기조가 아직 유효함을 알려내려는 소망사고(wishful thinking)에 다름 아니다. 

둘 다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북 이해방식이다. 인식에 대한 대전환과 방법론을 180° 전환할 때만이 현 정부의 한반도 평화와 번영정책은 성공한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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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적폐세력을 청산하고, 직접정치의 씨를 뿌리는 해로 만들자

[신년사설] 국회적폐세력을 청산하고, 직접정치의 씨를 뿌리는 해로 만들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 승인 2020.01.03 05:30
  • 댓글 0
▲ 지난 9월 11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관계자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자유한국당 해체, 4대 매국노 선정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김무성 의원,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을 4대 매국노로 선정했다.[사진 : 뉴시스]

2020년 경자년은 21대 총선이 있는 역사적인 해이다.
21대 총선에서 국회적폐를 청산하고 진보개혁국회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의 절절한 염원이자 강력한 의지이다.

21대 총선은 그야말로 온국민의 힘으로 친일반민족세력과의 100년 전쟁을 총결산하는 장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꼬박 한 세기 동안, 100년을 넘는 세월을 반민족적 친일적폐세력들이 막강한 권력을 누려왔다. 매국매판에 이어 두 번의 쿠데타와 민중학살, 셀 수 없는 부정선거,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저항세력 제거 등 온갖 악랄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유지해 온 추악한 권력이었다.
이제 그 권력을 주권자인 국민이 회수할 때가 되었다. 4.19혁명, 한일협정 반대투쟁, 5.18광주항쟁, 87년 6월항쟁, 미선이효순이 촛불, 2008년 광우병 촛불, 2016-17년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을 거친 투쟁의 역사위에서 마침내 국민이 토착왜구세력으로부터 권력을 회수하는 최종 문턱까지 왔다. 그것이 2020년 21대 총선이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은 이 나라가 친일파들이 세운 나라로 돌아갈 것인가, 독립투사들이 세운 나라로 새롭게 전진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21대 총선은 국회에 잔존하는 적폐세력 청산을 위한 마지막 기회이다.
우리사회 적폐는 아직도 사회곳곳에 만연하다. 검찰에도 있고, 언론에도 있고, 재벌에도, 관료와 교육계에도, 군대에도, 종교계와 학계에도 있다. 그 중 일차 본거지는 국회이다. 국회가 권력을 창출하는 기능을 하고 있고, 갖은 적폐세력들 역시 국회적폐와 연결되어 부활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활을 위해 적폐세력들이 연일 깽판정치를 펼치고 수구기독교세력들과 손잡고 장외투쟁을 전개하는가 하면, 검찰과는 이심전심으로 검찰개혁을 저지하려고 별별 짓을 다해왔다. 적폐세력들이 국회내에 거대정당으로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으니 일년 내내 동물국회와 식물국회를 왔다갔다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민생실종, 개혁실종사태가 일상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 반동흐름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길은 이들 적폐세력을 국회에서 제거하는 것 뿐이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국회내 적폐세력의 마지막 숨통을 끊지 못하면 결국 부활의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1대 총선은 친일분단적폐세력을 결정적으로 청산해나가는 전략선거 중의 전략선거이다.

토착왜구당 해체 투쟁없이 투표만으로 저절로 청산되지 않는다.
2004년 17대 총선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반대촛불을 타고 3위에 머물렀던 열린우리당이 일거에 152석 과반의석을 넘는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차떼기당이라는 오명과 노무현 탄핵주도당이라는 비난으로 궤멸직전에 이르렀던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어 기사회생하였다. 개혁진영이 탄핵주도, 차떼기당 한나라당 해체투쟁을 중단하고, 선거공학을 중심으로 선거운동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당견제론, 정동영 노인발언이라는 여론공작이 확대되면서 100석 이하를 점치던 한나라당은 결국 121석으로 부활하였다. 투표는 투표대로 하더라도 선거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토착왜구세력을 해체하는 전국민적 투쟁이 완강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래야 곳곳에서 준동하는 적폐세력들의 선거공작, 여론공작, 외세에 의한 배후공작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적페를 청산하는 선거를 진행할 수 있다.

21대 총선에서는 국민이 직접정치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촛불항쟁 이후 국민들은 한편으로는 적폐세력의 최종청산에 대한 의지와 염원이 더욱 강화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문재인정부와 여당에 대한 한계를 절감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민주주의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정치의 길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21대 총선에서는 노원주민대회처럼 광장의 직접정치를 지역과 현장에서 조직된 직접정치로 전환시켜 가는 사례들이 더욱더 많이 나와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 스스로가 직접정치하는 새로운 모델들을 통해 새정치의 싹을 만들어 가야 선거투쟁에 대한 적극적 참가와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 나아가 촛불혁명을 완수하는 미래정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자주와 평등이 넘치는 국가, 자주통일의 나라를 꿈꿀 수 있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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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에 맞선 황교안의 종로 출마, 독이 든 사과?

황교안, 지역구 출마 시사? 당에서 요구하는 어떤 것이든 하겠다
 
임병도 | 2020-01-02 10:26: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9년 12월에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2020년 1월이 되면서 정치권은 총선 체제로 전환이 됩니다. 가장 먼저 1월 16일까지 지역구에 출마하는 공직자들은 사퇴를 해야 합니다.

총리 후보자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임명된 상황이라 이낙연 총리의 사퇴도 16일 이전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사표를 내는 형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문재인 대통령이 놔주는 방식이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당으로 복귀하는 이낙연 총리의 총선 출마는 확실해 보입니다. 이 총리가 지역구+총선 선대위원장을 맡아 당 안팎에서 총선을 이끌면서 차기 대선 주자로 올라선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총선에 관심이 쏠리면서 이낙연 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의 ‘빅매치’가 성사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맞대결이 가능한지, 정리해봤습니다.

이낙연 ‘당 제안하면 황교안과 빅매치 가능’

이낙연 총리는 12월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황교안 대표와 빅매치를 치를 용의가 있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당에서 제안하면 기꺼이 수용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총리는 총선 역할론과 관련해 “편한 길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라며 지역구와 험지 출마 등 적극적 역할을 마다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만약 이낙연 총리가 총선에 나온다면 서울 종로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세균 의원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이 되면서 공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낙연, 황교안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등에서 각각 1,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종로에 출마해 대결을 펼친다면 차기 대선까지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민주당에서도 이낙연 총리가 종로구에 출마한다면 선거 흥행으로 제격입니다. 또한, 이 총리가 당선된다면 ‘정치 1번지’에서 승리했다는 성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이 총리 입장에서 보면 종로구가 ‘지역구 출마+선대위원장’이라는 당에서 요구하는 임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황교안, 지역구 출마 시사? 당에서 요구하는 어떤 것이든 하겠다

이낙연 총리가 황교안 대표와의 맞대결에 적극적인 반면에 황 대표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황교안 대표는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로 출마한다는 말이 무성했기 때문입니다.

황 대표가 비례로 당선되려면 비례대표 1순위를 받아야 하는데, 불출마 선언, 험지 출마설이 나도는 당내 분위기로 봐서는 어렵습니다.

개정된 공직선거법이 통과되면서 비례대표를 염두에 둔 위성정당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황 대표가 당선이 되려면 탈당해 비례자유한국당으로 출마해야 유리합니다. 그러나 당 대표 권력을 내려놓는 거라 이 방식도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일부에서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선거운동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국회의원 경력이 없어 국회 활동 등에 제약이 걸리게 됩니다. 결국 황 대표의 선택지는 극히 좁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교안 종로구 출마, 독이 든 사과?

황교안 대표가 지역에서 출마한다고 해도 종로구는 쉽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종로구 주민들이 태극기 집회 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피해를 보고 있어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황 대표가 전광훈 목사와 함께 여러 차례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던 전력이 투표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종로구는 정치 1번지답게 주민들의 정치적 선택이 투표 결과와 가장 근접하게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도 종로구 득표율을 보면 전체 후보자 득표율과 거의 유사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KBS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 야당 심판론’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8.8%로 ‘정부 실정 심판론’ 찬성 36.4%보다 높았습니다. (이번 조사는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남녀 2,000명을 유무선 전화 조사했으며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 – 2.2%P. 자세한 결과는중앙선관위 여론조사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 임기 중에 치러지는 총선이 정권 심판론과 이어지는 과거와 비교하면 너무나 다릅니다. 그만큼 보수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차갑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야당 대표가 종로구에 출마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더 낮아집니다. 만약 황교안 대표가 종로구에서 지지율이 나오지 않거나 최종 결과에서 패배한다면 자유한국당이나 황 대표나 난감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박지원 대안신당(가칭) 의원도 1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낙연 총리가 종로 출마를 선언하면 황교안 대표는 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019년은 국회보다 장외 집회에 더 많은 힘을 기울였던 황교안 대표, 2020년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결과를 낼지가 앞으로의 정치 인생에서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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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추미애 장관에 “공수처 등 바뀐 제도 안착에 많은 노력 필요”

추미애, 검찰에 일침 “인권 뒷전으로 하고 마구 찔러 결과 얻는다고 신뢰받는 거 아냐”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0-01-02 18:40:47
수정 2020-01-02 19: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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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본관에서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0.01.02.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본관에서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0.01.02.ⓒ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법무 개혁과 검찰 개혁을 매듭지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추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환담을 가진 자리에서 법무·검찰 개혁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언급하면서 "아주 중요한 시기에 아주 중요한 일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에 있어서는 법률 규정에 법무부 장관이 검찰 사무의 최종 감독자라고 돼 있기 때문에, 그 규정의 취지에 따라서 검찰 개혁 작업을 잘 이끌어 주기 바란다"며 "검찰 개혁의 시작은 수사관행이나 수사 방식, 조직문화까지 조금 혁신적으로 바꿔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아마도 입법이 끝난 후에도 그 바뀐 제도를 잘 안착시키고 제대로 운영되게끔 하려면 입법 과정에서 들였던 노력 못지않게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그런 면에서 어깨가 매우 무거울 것 같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 출신 5선 국회의원이고, 또 집권 여당의 당 대표도 역임했을 정도로 경륜과 중량감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잘 해내리라고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법무 개혁과 관련해서는 "민생과 인권 중심의 법무 행정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며 "우리 정부 출범 이후에 그 방향으로 노력해왔지만, 이제 조금 결실을 볼 수 있도록 마무리를 지어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법무부와 검찰이 준비해왔던 인권보호 규정이라든지, 보호 준칙이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개혁 방안들이 잘 안착될 수 있도록 챙겨달라"며 "검찰 개혁에 있어서는 검찰 스스로가 '개혁의 주체고 개혁에 앞장서야 된다'는 인식을 가져야만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검찰총장과도 호흡을 잘 맞춰 주기를 당부한다"며 "특히 젊은 검사들, 여성 검사들, 또 그동안 검찰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말을 들어왔던 형사·공판 분야 검사들, 이런 다양한 검찰 내부의 목소리들을 폭넓게 경청해 주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아주 어려운 과제이지만 어떻게 보면 역사적으로 다시 맞이하기 어려운 기회일 수도 있다"며 "제대로 성공해낸다면 아마도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큰 보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이에 추 장관은 "대통령께서 한 말씀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들이 바라는 바이고, 국민들이 명령을 하시는 것이라고 저는 믿는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추 장관은 검찰을 '명의'에 비유하면서 역할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추 장관은 "수술 칼을 환자에게 여러 번 찔러서 병의 원인을 도려내는 것이 명의가 아니라, 정확하게 진단하고 정확한 병의 부위를 제대로 도려내는 게 명의"라며 "어떤 수사권·기소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인권은 뒷전으로 한 채 마구 찔러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다고 검찰이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 중시하면서도 정확하게 범죄를 진단해내고, 응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검찰 본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수처 설치를 통해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근절하고, 집중된 검찰 권력을 분산시켜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기회를 국회가 만들어줬는데, 법령을 잘 뒷받침해서 국민의 바람이 한시바삐 우리 사회에 실현되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어떻게 보면 다시 없을 개혁의 기회가 무망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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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의 메시지, 남측도 ‘정면돌파’하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1/03 05:10
  • 수정일
    2020/01/03 05: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북측의 메시지, 남측도 ‘정면돌파’하라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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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2  15: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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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올해 신년사를 대체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과 보도에서 남측을 향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아 주목됩니다. 전원회의 결정서가 모두 1만8천자가량 된다고 하는데, ‘북남(남북)관계’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년의 신년사에는 ‘남북관계’가 ‘북한 내부’, ‘북미관계’와 함께 3축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였고, 이 ‘남북관계’ 난은 북측이 남측을 비판하거나 또는 무언가를 제안하는 통로였습니다. 말하자면 대남 메시지를 전하는 창구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지난해 신년사만 보더라도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올해는 아예 ‘북남관계’ 단어조차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신년사가 아니라 전원회의 결정서라 하더라도, 이 결정서에 ‘북한 내부’와 ‘북미관계’ 난이 들어있는 것만큼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북한이 결정서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남측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북측이 부러 ‘남북관계’를 빼면서까지 ‘남측’을 배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즉 남측을 배제한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남측을 배제한 이유는 지난해 북측이 남측을 향해 수없이 한 말을 상기해 보면 가늠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시정연설에서 남측이 북미 사이에서 중재자, 촉진자가 아닌 ‘당사자’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했으며, 북측 언론매체에서는 남측이 외세 의존 정책을 해온 탓에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해왔습니다.

북측은 지난해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관련해 중재 역할을 자임한 남측에 그 책임이 상당 부분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또한 9.19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을 믿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대한 조건 없는 재개 의사를 밝혔지만, 남측이 미국을 의식해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한 것을 보고 당사자 역할론에 대한 기대를 접었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현 상황과 관련 “세기를 이어온 조미(북미)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어 명백한 대결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현 정세를 ‘자력갱생 대 대북 제재’로 규정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진작 남측이 동족으로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파탄내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도와줬어야 하는데 전혀 안했기에, 그렇다면 북측이 독자의 힘으로 즉 자력갱생으로 풀겠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남측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지요.

시쳇말로 정치인은 나쁜 소식으로 언론에 나오는 것이 안 나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며, 인터넷 상에서는 무플보다 악플이 더 낫다고도 합니다. 무관심보다 어떻든 말밥에 오르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같은 경우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북측의 신년사에 남측이 비판받더라도 나와야 하는데 아예 안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북측이 신년사에서 남측을 배제한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북측은 이번 전원회의의 기본정신이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을 벌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 ‘자력갱생 대 대북 제재’의 국면에서 외세의 대북 제재를 무소의 뿔처럼 자력갱생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북측은 신년사에서 남측을 배제함으로써 역으로 남측에도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싶지 않았을까요? 남측이 ‘종속과 자주’라는 한미관계의 구도에서 북미 대화를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또 외세에도 의존하지 말고 혼자의 힘으로 그 구도를 깨기 위해 ‘정면돌파’를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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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연 "합동참모대학 박상선 교수에게 공개토론 제안"

대진연 "합동참모대학 박상선 교수에게 공개토론 제안"
 
 
 
하인철 통신원
기사입력: 2020/01/02 [17: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국방부 앞에서 박상선 교수 공개토론 제안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하인철 통신원

 

2일 오전 11시 국방부 앞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회원들이 합동참모대학 소속 박상선 교수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박상선 교수는 지난 여름 계간지 '한국군사'에 북한 붕괴 전략이 담긴 논문 '한국의 정보전 - 선택 가능성에 대한 전략적 이슈'를 실었다. 이 논문은 북한 지도부에 대한 모략과 사회주의 체제를 혼란시키는 '대북분란전'을 일으켜 북한 정부와 주민, 군대를 분리하고 내분을 유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진연은 박상선 교수에게 이 내용에 대해 갑론을박을 해보자며, 공개토론을 제안한 것이다.

 

첫 번째는 이인선 회원의 발언이었다.

 

이인선 회원은 "2019년 6월 합동참모대학 박상선 교수는 지난 여름 계간 '한국군사'에 북한 붕괴 전략이 담긴 논문 '한국의 정보전-선택 가능성에 대한 전략적 이슈'를 실었다. 이 논문엔 사실무근의 내용과 분단 이데올로기가 많이 들어 있었다. 논문에서 언급된 정보전 준비에 대한 이유 중 하나인 '북한의 사이버 위협'은 이명박, 박근혜 집권 시절의 불확실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라며 박상선 교수 논문의 정보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했다. 이어 "박상선 교수의 이런 주장이 곧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면 북한과의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으면서 북한이 공격한 것 같거나 할 것 같으니 작년까지 합의한 남북공동선언들을 모조리 위배하고 전쟁으로 가자는 책동이나 다름없다.박상선 교수는 부디 단단히 생각을 고쳐 먹으시고, 그의 생각이 정부 기관의 공식 입장은 아니길 바란다" 라고 논문의 내용을 비판했다.

 

두 번째는 김국겸 회원의 발언이었다.

 

김국겸 회원은 "전쟁위협에서 벗어나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려는 이 시대에 상대 정권을 적으로 상정하고 이에 대한 붕괴 전략을 제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에 지나지지 않다. 저자가 논문에서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고립 효과가 발휘되지 않았다'고 서술하는 등 박상선 교수가 제시한 전략의 효과마저도 대단히 의심스럽다."라고 지적했다.

 

계속해 "우리는 박상선 교수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 북한붕괴 전략의 실효성은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의 새 시대에 부합하는 전략인지 엄중하게 따져보자"라고 공개토론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회원이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 하인철 통신원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회원이 제안문을 낭독하고 있다.     © 하인철 통신원

 

세 번째는 강부희 회원의 발언이었다.

 

강부희 회원은 "박상선 교수는 논문에서 4.27 남북 공동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말들을 써놓았다. 반통일 반평화 남북공동선언을 위배하는 사람이 군인을 가르치는 교수로 있을 자격이 없다. 국민,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뜻을 저버리는 논문을 작성한 박상선은 교수로서 자격이 없다. 남북의 약속을 저버리고 국민의 뜻을 위반하며 전쟁을 원하는 박상선은 즉각 사퇴하라" 라고 발언했다.

 

마지막으로 제안문을 낭독하면서 기자회견을 마쳤다.

 

아래는 제안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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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북한 붕괴 전략 논문을 쓴 합동참모대학 박상선 교수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

 

박상선 교수는 지난 여름 계간 ‘한국군사’에 북한 붕괴 전략이 담긴 논문 ‘한국의 정보전 - 선택 가능성에 대한 전략적 이슈’를 실었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이 논문이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 개인의 입장인 지에 대한 것이다. 

 

만약 정부의 입장과 같다면 이는 4.27 판문점 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을 공식 부정하는 것이며 그 것이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 지는 정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만약 개인의 입장이며 정부 입장과 배치된다면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이라는 국방부 산하 재단에서 이 논문을 실어줄 이유가 없다. 

 

박 교수는 연구원에서 사퇴하거나 국방부가 재단을 퇴출해야 한다. 

 

다음으로 박 교수의 주장, 즉 북한 지도부에 대한 모략 선전과 사회주의 체제를 혼란시키는 공세를 펴서 북한 정부와 군대, 주민을 분리시키고 내분을 유도,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자는 ‘대북 분란전’이 과연 북한에 통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지 묻고 싶다. 

 

지난 70년 동안 군과 정보 기관이 주도해 정부가 꾸준히 해왔지만 모조리 실패한 전략 아닌가?

 

차라리 북한을 인정하고 공존, 공영을 위해 남북 정상의 합의들을 이행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 정착과 번영을 위한 빠른 길이다.

 

이에 합동참모대학 박상선 교수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 

 

일시, 장소, 방법은 협의가 가능할 것이다. 

 

2019년 1월 2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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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인분 급식전쟁과 설거지 사이 조리원들은 10분만에 밥을 삼켰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1/02 09:36
  • 수정일
    2020/01/02 09: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20-01-02 04:59수정 :2020-01-02 08:35

 

[2020 노동자의 밥상] ②학교 급식조리원의 식판 밥상

900명의 점심을 차려낸 5명…“오전은 전쟁, 오후는 죽음이야”
식어버린 짬밥을 후루룩 마시고…다시 설거지 무덤 앞으로
학교 급식조리원이 기름이 끓고 있는 솥 앞에서 감자를 튀기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학교 급식조리원이 기름이 끓고 있는 솥 앞에서 감자를 튀기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장갑 두 장을 벗자 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이 드러났다. 세 시간여 아침 일을 하는 동안 손과 발, 몸이 모두 물에 불어터진 기분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손목은 시큰거린다. 식판에 놓인 밥을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에도 900인분의 설거지와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어두지 않으면 그 압도적인 양과 압축적인 시간을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습기로 가득 찬 5평(16㎡)짜리 탈의실 겸 휴게실에서, ‘언니들’을 따라 고봉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쿰쿰한 짬밥 냄새가 소독약 냄새와 뒤섞여 혼미했다.

 

급식조리원들은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자매처럼 호흡을 맞추지 않고선 ‘여자들의 노가다’라고 하는 거친 급식 노동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라고, 기자는 생각했다. 보건소에서 발급해준 보건증을 들고 지난 12월13일 급식조리원 대체 인력으로 서울 ㄱ초등학교 조리실을 찾았을 때, 대부분 40~50대인 언니들은 26살 ‘막내’를 맞으며 경악했다. “학교 조리실은 다른 일 하다 하다 가장 마지막에 오는 곳이야.” 진경(46·이하 모두 가명) 언니가 유독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_________
언니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언니들 5명의 하루는 오로지 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침 8시30분 조리실에 출근해 초등학생 900명의 점심 밥상을 차리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 그러면 가족의 저녁 밥상을 차려야 한다. 그사이에 자신의 끼니는 그저 ‘삼킨다’. 언니들은 급식 일에 견주면 집밥은 ‘소꿉장난’이라고 했다. 조리실은 그야말로 속도 전쟁터다. 7시간30분 동안 5~6명이 900인분의 급식을 마련하고 내일을 위한 설거지·청소까지 마감하려면, 밥을 거르고 일만 해도 빠듯하다. “오전은 전쟁이고 오후는 죽음이야.” 진경 언니의 표현이다.

 

장비를 갖춰 작업복을 차려입고 이날 아침 9시께 조리실에 들어섰을 때 쌓여 있는 무, 숙주, 배추, 소고기 등 식재료를 보고 입이 벌어졌다. 시장에서도 그렇게 식재료가 쌓여 있는 광경은 본 기억이, 기자는 없었다. 무엇보다 언니들의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채소 껍질을 벗기는 ‘필러’로 무 껍질을 깎아내는데, 서툴다 보니 하나 깎는 데 5분이나 걸렸다. 눈앞에서 20초 만에 무 하나를 다 깎은 진경 언니는, 혀를 차며 무는 그만두고 그것보다 쉬운 느타리버섯 찢는 일을 하라고 했다. 육개장에 들어갈 느타리버섯 하나를 세로로 가늘게 찢어 삼등분하는 일인데, 그마저 900인분을 찢으려니 30분이나 걸렸다. 은색 스테인리스 대야에 산처럼 쌓인 버섯은 아무리 찢어내도 줄지 않았다. “속도를 더 내야지.” 버섯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즈음 진경 언니가 다가와 다그쳤다. 귤 900여개를 씻고 개수대 청소를 할 때도 언니는 다가와서 타박했다. “일을 반도 못 했네.”

 

어지간한 주방장들과도 견줄 수 있는 숙련된 조리원 언니들이지만, 쌓여 있는 일을 앞에 두고 마음이 급해지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메뉴인 연어스테이크와 멸치아몬드볶음, 육개장을 담당할 조리원을 나눴지만, 배식 마감이 닥쳐오자 ‘네 일 내 일’을 가릴 수 없었다. 언니들은 무를 깎다가 일손이 달리면 자리를 옮겨 배추를 썬 뒤, 곧바로 멸치와 아몬드를 볶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해치울 뿐이었다.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급식에 나온 밥과 육개장, 연어스테이크와 멸치아몬드볶음, 김치, 귤이 담겨 있다. 김민제 기자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급식에 나온 밥과 육개장, 연어스테이크와 멸치아몬드볶음, 김치, 귤이 담겨 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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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안에 밥을 후루룩 마신다

 

밥 먹는 일도 언니들에겐 속도전이다. 언니들의 끼니 때는 따로 정해진 시간이랄 게 없다. 낮 12시30분께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식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언니들이 하나둘 식사를 시작한다. 길게는 30여분의 식사 겸 휴식 시간이 있다지만, 그 시간을 다 쓰는 언니는 없다. 그날 해야 할 일을 앞장서서 하는 ‘당번’ 언니가 10~15분 만에 밥을 먹고 일어서면, 다른 언니들도 자기들만 쉬기 미안하다며 조리실로 나와 쭈뼛쭈뼛 일을 시작한다. 학생들의 급식 반찬이 모자라면 배식 담당자가 호출하기에, 밥 먹는 도중에도 마음 편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다. 목장갑 위에 고무장갑, 고무앞치마와 위생모, 토시와 고무장화를 벗었다가 밥을 먹고 다시 착용한 뒤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오전 내내 뜨거운 불 앞에서 일하느라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언니들은 그래도, 잠시나마 무거운 장비를 벗을 수 있게 되자 속이 시원한 듯했다.

 

비좁은 휴게실에 밥상을 펼치고 여섯 명이 무릎과 무릎을 포개어 앉았다. 위생모를 벗자 땀에 짓눌린 언니들의 머리칼은 떡진 채 아무렇게나 눌려 있었다. 밥상에 올라온 음식은 학생과 교사가 남긴 밥과 국, 잔반이다. 식은 국과 떡진 밥, 기름이 뭉친 연어스테이크, 눅눅해진 멸치아몬드볶음. 오전 내내 짬밥 냄새에 질린데다 식어빠진 음식을 보니 영 입맛이 돌지 않는다. 허나 허기는 식욕에 비례하지 않았다. 격하게 몸 쓰는 일을 한 뒤라서인지 밥은 꿀떡꿀떡 넘어갔다. 날마다 격하게 몸을 쓰는 데 익숙해진 언니들은 제맛을 잃은 찬거리들을 해치우는 저마다의 ‘노하우’가 있었다. 진경 언니는 밥에 멸치볶음을 크게 떠넣더니 비비기 시작했다. 경미 언니는 육개장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듯 들이켰다. 그렇게 언니들은 고봉밥을 10여분 만에 해치웠다.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김민제 기자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김민제 기자

 

끼니를 때우느라 바쁜 와중에도 언니들은 사는 얘기를 몇 마디씩 주고받았다. 대개 궁박한 처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달엔 일주일이 비네.” 진경 언니의 푸념에 밥을 밀어넣던 모두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급식조리원들은 방학이면 돈을 벌 수 없다. “일주일을 어디서 메꾸지?”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일주일만 나와서 일해달라’는 곳이 있을 리 없다.

 

한 언니가 소은 언니를 쳐다보며 “소은 언니, 나도 줄 좀 서자”라고 말했다. 소은 언니는 방학이면 웨딩홀 조리실에서 일한다. 소은 언니는 미안한 듯 웃으며 “웨딩홀 조리 일도 경력직을 선호해”라고 답했다. 그러자 수다스러운 진경 언니는 화제를 바꿔 조선소에서 ‘노가다’를 시작한 형부 이야기를 꺼낸다. 다른 언니들이 말을 받아 “조선소는 한물갔다”며 혀를 찼다. “아들이 정비직에 취직했는데 엄마 마음으론 사무직이 못돼 속상하다”는 언니도 있었다. 언니들 사는 얘기는 들을수록 갑갑해, 방금 삼킨 밥이 목구멍 어딘가에 걸린 것만 같았다.

 

쌓여 있는 반찬통과 조리 도구 등을 설거지하는 급식조리원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쌓여 있는 반찬통과 조리 도구 등을 설거지하는 급식조리원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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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할 수 없는 ‘요통주의’ ‘끼임주의’ ‘화상주의’

 

오후 조리실은 설거지 무덤이다. 낮 12시45분께, 배식을 마친 것도 아닌데 조리실은 식판과 수저 등 설거짓거리로 가득했다.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눌어붙은 반찬 찌꺼기를 짧은 시간 안에 떼어내기 위한 초벌 설거지가 필수다. 뜨거운 물에 식기를 불린 뒤 수세미로 문질러 물에 헹궜다. 세제 냄새와 잔반 냄새가 엉켜 조리실이 매캐했다.

 

출입문 옆에 붙은 온습도계는 온도 10도, 습도 32%를 가리켰지만, 체감 습도는 80%를 넘는 듯했다. 조리실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방수가 되지 않는 휴대전화는 수증기 탓에 고장 날 수 있다고 언니들이 경고했다. 금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올라와 흘러내리면서 온몸이 찐득해졌다. 몸에는 수시로 기름과 물이 튀었다. 허리도, 손목도 떨어져나갈 듯했다. “설거지에 파묻혀 죽겠네.” 끝없이 식판을 받아내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기력이 바닥나자 수시로 산업재해, 안전사고의 위협을 느꼈다. 조리실 벽 곳곳에는 ‘요통주의’ ‘미끄럼주의’ ‘화상주의’ ‘끼임주의’ ‘산업재해 예방’ 안내판이 붙어 있다. 문제는 그걸 피할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요통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리원은 대개 일어서서 종일 허리를 숙인 채 일한다. 식판을 들어 올리고 몸을 숙여 재료를 다듬으면 오후엔 필연적으로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이 밀려온다. ‘끼임’ 사고도 피할 수 없다. 식판과 식판 사이에, 식기와 개수대 사이에 여러 차례 손가락이 끼였다.

 

‘미끄럼’ 역시 주의할 수 없다. 설거지를 할 때 조리실 바닥은 물과 세제로 범벅된다. 곳곳엔 식기와 조리 도구가 널려 있다. 뒷정리할 때는 바닥에 양동이로 물을 끼얹으며 음식물 찌꺼기를 씻어낸다. 무거운 고무장화가 끼얹은 물에 치이면서 휘청인 적이 여러 번이다. 언니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히고 얼굴에 물을 튀기며 “미안” “죄송해요”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

 

청소할 때는 ‘약품’으로 바닥을 닦고 물을 뿌리는데, 진경 언니가 “절대 얼굴에 묻으면 안 되는 독한 약”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급하게 일하다 보니 얼굴과 목, 눈과 옷 속으로 약품이 튀지 않을 수가 없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그렇게 약품이 묻어도 곧 무감해졌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화상이었다. 조리실 곳곳에선 대형 솥에 기름과 물이 펄펄 끓는다. 뜨거운 설거지물은 고무장갑 안을 파고들어 목장갑까지 적셨다. 김이 나는 솥 안쪽으로 몸을 숙여 불린 식기를 건져낼 때는 끓는 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실제로 2014년 3월,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조리원으로 일한 김아무개(56)씨가 설거지하려고 대야에 받아놓은 뜨거운 물 위로 넘어져 두 달 뒤 세상을 등진 일도 있다.

 

학교 급식조리실에 설거짓거리로 쌓인 숟가락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학교 급식조리실에 설거짓거리로 쌓인 숟가락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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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조리실은 병 안고 떠나는 곳”

 

“여기 와서 일하면 병들어. 급식조리실은 병 안고 떠나는 곳이야.” 일을 시작하기 전 진경 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말렸다. 다른 언니는 더 단호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나는 반대야. 젊은 사람이 일할 곳이 아니야. 너네 엄마가 알면 화낸다. 오늘만 해보고 다신 오지 마.” 다그치던 언니들이 귤을 까서 내게 먹였다.

 

언니들은 몸담고 있으면서 유독 나를 말리는 이유를, 언니들과 밥상을 마주한 뒤에야, 일을 마친 뒤에야 알게 됐다. ‘나는 힘들어도 괜찮지만 너는 그러지 마.’ 그것은 아마 언니들이 가족에게, 학생들에게 차려주는 밥상에 담은 그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식어빠진 찬밥을 삼키고도 가족의 밥은 온돌 아랫목에 묻어두던 엄마의 그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922874.html?_fr=mt1#csidxd8a2fcd98841c63ab3813d5c3b2ac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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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여러분 고마워요, 새해 첫날 소녀상 찾아줘서

1420차 수요시위 열려... 2020년에 생존 할머니는 이제 스무 분 "건강하세요"

20.01.01 18:28l최종 업데이트 20.01.01 18:47l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수요시위 참석자가 평화의 소녀상 발에 신겨진 양말을 어루만지고 있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수요시위 참석자가 평화의 소녀상 발에 신겨진 양말을 어루만지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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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목도리를 하고 털양말을 신은 '평화의 소녀상' 앞에 두터운 겉옷을 입은 두 학생이 나란히 앉았다. 자신들의 2020년 새해 첫날을 '수요시위'로 채우기 위해서였다. 올해 고3이 되는 김지원(19, 여)양과 한 살 어린 한서연(18, 여)양은 "2020년 첫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생각도 해보고 기억도 해보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할머니들께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도 수요시위에 올 때마다 힘을 얻고 용기를 얻습니다. 새해도 힘차게 시작하기 위해 오늘 이곳에 왔어요."

"수요일에 하다 보니 학기 중엔 (수요시위에) 나오기가 힘들어요. 방학 중에도 학원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요. 휴일인 새해 첫날이 마침 수요일이어서 오늘은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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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제1420차 정기 수요시위'가 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약 1시간 동안 열렸다. 새해 첫날 한파 속에서도 200여 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주최 측 추산)했고, 특히 앞서 두 학생처럼 휴일을 맞아 수요시위를 찾은 중·고교생들이 많았다. 인천 연수고 학생들은 자신들이 모은 기부금을 수요시위를 주최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에 전달했다.

곳곳에서 외국인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일본인 두 사람이 한글과 일본어로 "할머니의 슬픔은 우리의 슬픔이다. 일본사람은 사실에 의한 역사를 배워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일본인들이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일본인들이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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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정대협 30주년... '김복동의 희망' 이뤄지길"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마이크를 잡고 2020년의 의미를 힘주어 말했다. 그는 "2020년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의기억연대 전신) 30주년의 해이고 다음 주면 수요시위를 시작한 지 만 28년이 된다"라며 "2020년 첫날, 김복동 할머니가 말한 희망이 이뤄질 거란 생각을 해본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죄, 배상, 역사교육,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러한 목소리를 폄훼·방해하는 '문희상안(기억·화해·미래재단법안,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나와 있는 상황이다"라며 "지난 시절 청산되지 않는 역사에서 발생한 문제를 그대로 안은 채 2020년을 맞이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 이사장은 "오늘 아침 93세 길원옥 할머니께서 '잘못한 걸 뉘우쳐야 사람이지'라고 말씀하셨다"라며 "새해 소망으론 남북통일을 이야기하시기도 했다. 이 땅에 평화가 와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그 위협을 우리가 물리쳐서 다시는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소망이 우리가 꿈꿔야 할 새 소망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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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요시위에선 2010년 1월 2일 세상을 떠난 고 김순악 할머니를 기억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7세 때 일할 사람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공장에 갔다가 만주로 끌려가 피해를 입었다. 1945년 해방 후, 밤낮없이 걷는 등 고난 끝에 서울로 돌아온 김 할머니는 미제 장사, 식모살이, 냉면 장사, 농사일 등을 하며 살다가 2000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참여했다.

이날 수요시위에 참석한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1월 1일은 무언가 다짐하기 좋은 날이잖나"라며 "이제 (생존 할머니들이) 스무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의 과거를 잊지 말고 할머님들의 정신을 잊지 말자'라는 다짐으로 한해를 시작하고 싶어 오늘 수요시위에 참석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2020년은 정대협 30주년의 해이다. 그동안 이 문제를 개인의 불운 혹은 숨겨야 할 수치스러운 역사가 아닌 과거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 전쟁범죄, 여성인권 침해범죄라고 전 세계에 알린 성취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한편으론 30년 동안 피해자들이 길거리에 나와 문제를 환기하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했음에도 가해자가 책임지려 하지 않는 모습은 너무도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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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요시위를 주관한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와 참가자들은 성명을 통해 "지난 2019년 다섯 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 피해 생존자 수는 단 스무 분이다"라며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이행 없이 문제는 결코 정의롭게 해결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끝까지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부터 주한 일본대사관 앞(2011년 12월, 정대협이 이곳에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서 매주 수요일 정오에 열리고 있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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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협력사 사장들에 “진단서 떼놔라”…치밀했던 기획폐업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의 전말](2)삼성, 협력사 사장들에 “진단서 떼놔라”…치밀했던 기획폐업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입력 : 2020.01.02 06:00

1심 판결문으로 본 ‘부당노동행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2014년 3월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일부 협력센터의 잇따른 폐업이 노조 탄압용 ‘위장폐업’이라며 항의했다.  김기남 기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2014년 3월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일부 협력센터의 잇따른 폐업이 노조 탄압용 ‘위장폐업’이라며 항의했다. 김기남 기자

 

“ ‘그룹 노사 전략’은 상정하던 실제 상황(삼성노조 결성 시도)이 발생하자 그 세부 실행 계획이 담긴 ‘에버랜드 대책’으로 구현돼 그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실행됐다.”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손동환)는 ‘그룹 노사 전략’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의 관계를 판결문에 이렇게 정의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노조 설립에 대비해 세운 전략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이하 삼성전자서비스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이하 에버랜드 사건)에서 실행됐다. 삼성의 노조 파괴 범행은 기획폐업, 어용노조 설립, 사찰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일 경향신문은 두 사건 1심 재판부가 인용한 문건을 중심으로 부당노동행위를 분석했다. 

■ “가능한 경우 입원하라” 

삼성은 강성노조가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로 분류된 해운대·아산·동래외근 협력사를 폐업시켜 노조 조직·운영에 지배·개입한 혐의(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를 받는다. 삼성 측은 “협력업체 폐업은 사장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이뤄졌다”는 주장을 폈다. 다음은 지난달 17일 선고된 삼성전자서비스 사건 1심 판결문에 인용된 ‘폐업 실행 시나리오’ 문건 일부다.
 

2·2(월) 폐업사유 입증자료 준비 : 전년 대비 매출 감소, 영업이익 감소, 고객항의 급증 등
 
건강악화 증빙자료 준비(1차) : 스트레스성 질환 진단서 확보(가능한 경우 입원)
 
2·17(월) 건강악화 증빙자료 추가 검토 : 스트레스 관련 추가검진 실시 및 진료기록 확보
 
2·26(수) 협력사 사장은 2월 말 경영상 사유로 폐업함을 공표함: 지치고 미련이 없다. 다 버리고 폐업하겠다. 

2·28(금) 폐업절차 진행


 

삼성은 폐업 목표일까지 정해놓고 날짜·시간대별로 ‘폐업 시나리오’를 촘촘히 짰다. 협력사 사장들은 재판에서 ‘건강 악화’라는 폐업 사유를 내세웠지만, 삼성은 협력사 사장들에게 “스트레스성 질환 진단서를 확보(가능한 경우 입원)”하라고 지시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은 폐업 당일 시간대별로 실행계획을 세웠다. 해운대 협력사 사례를 보면, 2014년 2월27일 오전 9시 폐업에 대한 직원 설명회를 실시하고, 오전 10시 삼성이 준비해놓은 폐업 공고문, 고객 안내문, 직원 대상 사장 소회문을 게시하고, 오전 11시 구청·세무서에 폐업 신고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문건에 기재된 내용 그대로 실행됐다”며 “삼성전자서비스 측에서 유도하고 기획한 폐업으로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 페이퍼 노조 

삼성은 에버랜드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자 어용노조(에버랜드 노조)를 만들어 노조 활동을 방해한 혐의(노동조합법 위반)를 받는다. 삼성 측은 어용노조 설립에 지배·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어용노조 설립에 도움을 준 행위는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지난달 13일 선고된 에버랜드 사건 1심 판결문에 인용된 문건을 보면, 삼성 스스로도 에버랜드 노조를 ‘PU(Paper Union·페이퍼 유니온)’라고 기재했다. 미전실에서 작성한 문건을 보면, “어용노조 시비를 피하기 위해 에버랜드 노조를 한국노총에 가입시키겠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의 전말](2)삼성, 협력사 사장들에 “진단서 떼놔라”…치밀했던 기획폐업

■ “전향적 판결” 

기획폐업과 어용노조 설립은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다. 노동조합법 81조는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운영하는 것을 사용자가 지배·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위반한 사용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원청업체일 뿐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협력업체 사장들만 범죄 행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삼성전자서비스 사건 1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는 소속 수리기사들에게 근로자 파견 관계에 해당할 정도로 실질적·구체적인 지배력을 행사했으므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를 폐업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2010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 사건’ 상고를 기각하면서 “근로자의 노동조건 등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면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판례를 헌법·노동조합법 입법 목적에 비춰보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원청을 부당노동행위 범행 주체인 사용자로 인정하고 형사처벌한 첫 하급심 판결이다. 지난해 8월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현대차 임직원이 부품사인 유성기업 임직원과 공모해 유성기업 노조 파괴에 관여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했는데, 이 사건의 경우 현대차 임직원은 ‘공범’으로 인정돼 처벌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노동부도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수사 시에는 원청의 관여 여부를 확인하도록 수사매뉴얼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이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은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와 판단의 필요성을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어용노조의 임모 1기 위원장, 김모 2기 위원장도 자신들은 노동자일 뿐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지만 에버랜드 사건 1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분관계로 인해 성립될 범죄에 가공한 행위는 신분관계가 없는 자에게도 ‘전3조(공동정범, 교사범, 종범)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형법 33조를 근거로 들었다. 어용노조 위원장들은 범행 주체가 ‘사용자’ 신분이어야만 범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조항을 들어 사용자가 아니어도 부당노동행위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어용노조 위원장들까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 것이다. 박 변호사는 “어용노조 간부들도 부당노동행위 공범으로 책임을 지웠다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에버랜드에서는 현재까지도 이 어용노조가 교섭대표노조라며 금속노조 삼성지회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법원 판결에도 기존의 노조파괴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꼼꼼하게, 단디 챙겨라” 

“전체적으로 꼼꼼하게, 단디 챙겨라.” 강경훈 당시 삼성그룹 미전실 노사파트 총괄 임원(부사장)이 에버랜드 상황실로부터 노조원을 사찰한 내용을 보고받으면서 했던 말이다. 삼성 미전실은 각 계열사로부터 소위 ‘문제인력’의 개인정보를 매일같이 무단 수집(개인정보보호법 위반)했다. 삼성에버랜드 상황실은 노조를 설립하려는 노동자들을 차량을 이용해 감시하는 일명 ‘패트롤’ 방식으로 이들의 사생활을 ‘일일동향문건’에 정리했다. 문건을 보면, “절대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2인1조로 운영한다”는 원칙에 따라 조장희 부지회장, 박원우 지회장 등 문제인력을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은 ‘문제인력’의 가족까지 사찰해 부당 징계에 활용했다. 삼성은 ‘문제인력’으로 분류된 ㄱ씨 배우자의 금융정보, 건강 같은 ‘민감정보’까지 수집했다. ‘일일동향문건’에는 “2011년 11월16일 사내 기금 담당에게 대출신청서 제출” “2012년 3월8일 오전 10시40분 아주대병원에서 물혹 제거 수술을 받고 휴식”이라고 적혀 있다. 재판부는 “ㄱ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정을 파악한 후 ㄱ씨를 무급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주효한 압박 수단이라고 판단해 징계수위를 ‘정직’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언론 인터뷰도 사찰했다. 2012년 7월16일자 ‘일일동향문건’에는 “조장희·박원우·백승진이 7월13일 11:30~12:30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실시”했다고 적혀 있다. 에버랜드 사건 1심 재판부는 “사용자 측은 처음부터 조장희 등을 문제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그들을 감시하고 미행해 동향을 파악하는 등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징계사유를 적극적으로 탐색했다”고 지적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1020600035&code=940100#csidx645d584344cfd6497d4ed2ab49e81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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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시민권법 개정안, 인도주의 포장한 인종주의

[아시아생각] 미얀마 로힝야 족 시민권 박탈 과정과 유사
2020.01.01 10:00:17
 

 

 

 

지난 12월 25일, 인도 중남부 텔랑가나 주의 주도 하이더라바드에서는 흰색 상의와 황토색 바지(간혹 검정바지)를 차려 입은 남성 약 8000명이 한 손엔 긴 막대기를 높이 세워 들고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시내를 행진했다. 힌두극단주의 조직인 ‘라슈트리아 스와이암세박 상’(Rashtriya Swayamsevak Sangh, 이하 RSS) 대원들이다(하얀 상의와 황토색 하의는 RSS 유니폼 색).

 

하루 전날 인도 언론 <인디안 익스프레스>는 텔랑가나 주 RSS 지부의 한 간부가 ‘오는 2024년까지 이 주의 1만개 마을로 대원 확장을 꾀하고 2025년 맞이하겠다’는 말을 인용 보도했다. 2025년은 RSS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RSS는 힌두 우월주의와 힌두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삼고, 두 이념이 만나 현실에서 작동하는 힌두 커뮤널리즘(Hindu Communalism)은 소수커뮤니티, 특히 무슬림들을 향해 휘두르는 폭력의 원천으로 활용해왔다.  


RSS를 중추조직으로 하는 힌두 극단주의 세력의 정치조직이 바로 인도국민당(이하 BJP)이다. RSS출신이자 현 인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는 BJP 정치로 지난 4~5월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5년마다 약 한 달간 13억 인구가 거르지 않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질의 문제로 가면 달라진다. 모디 정부 1기(2014~20019) 동안 무슬림을 향한 소자경단들의 거리 ‘린치’가 횡행하면서 인도는 집권세력의 은혜를 입은 다수커뮤니티가 소수를 향해 근육 자랑을 하는 파시스트 사회로 치달아왔다. 

 

 

▲인도 집권세력의 토대인 힌두극단주의 조직 RSS 신입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

 

 

지난 5월 출범한 모디 정부 2기는 그 경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8월 5일 엄연히 ‘국제적 분쟁 영토’인 잠무와 카슈미르 주의 자치권을 대통령령 발동으로 하루아침에 박탈하는가 하면, 같은 달 동북부 아쌈 주에서는 시민등록절차(National Register of Citizens 이하 NRC)를 시행하여 하루아침에 190만 명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NRC에 따르면 1971년 3월 24일 이전 본인 혹은 조상의 거주를 증명해 보여야 시민권을 유지할 수 있다. 엠네스티는 이름의 오기나, 나이 혼돈과 같은 행정적 실수로 증명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모디 정부는 아쌈 주가 미얀마 북부와 서부, 그리고 방글라데시와 부탄 등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댄 변방지역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불법 이민자" 색출을 내걸고 NRC를 도입한 것이다. 이어 지난 12월초 양원 의회를 통과한 시민권법 개정안(Citizenship Amendment Act, 이하 CAA)을 통해 무슬림 배제를 노골적으로 내세웠다.  


CAA에 따르면, 인도 주변 3개국 즉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2015년 이전에 도착한 힌두, 기독교도, 파르시(조로아스터교), 자인교, 시크교도들에게는 인도 시민권 신청자격이 부여된다. 인도는 CAA에서 무슬림만 콕 집어 배제함으로써 두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  
 

첫째, 인도주의를 가장한 안티 무슬림 인종주의 메시지다. 인도는 CAA를 통해 무슬림 인구가 다수인 주변국에서 무슬림 이외 커뮤니티가 박해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들 국가들이 무슬림 다수의 권력을 휘두르는데 반해 인도는 소수자를 보듬는 것처럼 교묘히 대비시키기도 했다.  

 

인도주의 원칙하에 이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처럼 말 포장을 하고 있지만 포장일 뿐이다. CAA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주변국 소수자들에게 인도사회로 진입하는 인도주의의 열쇠가 되지 못한다. 이는 개정안이 특정한 몇 가지 사실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CAA, ‘종교적 박해를 피해온 이들 구제’ 운운했으나...  


우선 개정안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적용 대상을 무슬림 주류 3개국으로 제한함으로써 인도에 오랜 세월 거주해온 스리랑카 타밀 난민들을 자동 배제시켰다. ‘인도주의’ 동기였다면 당연히 포함시켜야 했을 커뮤니티를 배제한 건 CAA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말해준다.  

 

타밀족들은 1983년 스리랑카 내전이래 긴 세월간 인도 남부 타밀나두로 피난을 왔고 타밀나두와 남부를 중심으로 대략 15만 명이 미등록 상태로 체류 중이다. 로힝야 난민들은 또 어떤가? 인도에는 로힝야 난민 약 4만 명이 체류 중이다. 필자는 지난 4월 인도 수도 델리와 하리아나 주 등지의 로힝야 캠프를 취재하며 짧게는 2~3년, 길게는 25년 이상 인도로 피난 온 ‘보호받지 못하는' 난민 로힝야들을 여럿 만났다. 미얀마는 CAA가 특정한 3개국이 아닌데다, 무슬림 배제 조건까지 있는 탓에 그들이 직면한 박해수준이 제노사이드에 이르러도 보호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CAA가 특정한 3개국에는 박해 받는 무슬림이 없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파키스탄에서 이단으로 간주돼온 ‘아흐메디아(Ahmediyya)’ 무슬림들은 차별과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는 난민 그룹 중 하나다. 1974년 이슬람 공화국 파키스탄이 개정한 헌법에 따르면 아흐메디아는 ‘무슬림이 아니’다. 그야말로 존재를 부정당한 이들이다. 아흐메디야 난민 다수는 태국 등 주변국으로 피난와서 도심 난민(Urban Refugee, 캠프와 같은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도심 속에서 익명성을 유지하며 조용히 체류하는 난민들을 일컬음. 상시적 단속과 구금의 위협에 시달린다)의 다수를 구성해왔다.  

 

감옥보다 열악하다는 방콕 이민성 구금소에 영구적으로 갇힌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필자의 오랜 친구 S처럼 난민보호가 되지 않는 태국 환경을 견디다 못해 본국으로 돌아간 뒤 고립된 시골에서 가족을 피해 숨어사는 이도 있다. 아흐메디야 외에도 주변국의 시아 커뮤니티 역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도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운운하고 싶다면 최소한 아흐메디아를 비롯하여 박해 받는 무슬림 현실을 고려했어야 한다. 따라서 CAA의 무슬림 배제 메시지는 선명하다. 그건 인도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증오를 토대로 밀어붙인 인종주의 법안이다.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증오가 기반  
 

CAA의 두 번째 메시지는 2억에 달하는 인도 무슬림들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CAA는 아쌈 주에서 지난 8월 우선 시행한 NRC와 맞물려 이해할 필요가 있다. BJP 대표 출신으로 모디 정부 2기의 첫 내무부장관에 오른 아밋 샤(Amit Shah)는 무슬림 배제를 노골화 한 ’안티 무슬림' 정책의 브레인이다. 그와 모디 총리가 이른바 ‘모디-샤’ 팀워크로 한 인간의 존재와 기본권을 위협하면서까지 안티 무슬림, 힌두 민족주의 어젠다를 전례 없는 수위로 밀어붙이는 전술적 도구가 바로 NRC, CAA다. 인도 세속주의 헌법 정신에 정면 위배되는 정책들을 총리와 내무부 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게 오늘 인도의 현실이다. 


세속주의 위배로 직격탄을 맞는 건 우선 인도의 2억 무슬림들이다. 인도 전역으로 확산중인 CAA-NRC 반대 시위와 그에 대한 공권력의 무력진압 그리고 시위와 상관없이 무슬림을 타깃으로 휘둘러지는 공권력의 폭력은 이를 잘 반영한다. 우선 사상자 현황을 보자. 이 법이 양원 의회를 통과한 이래 12월 28일 오전 기준 총 27명이 사망했다. 이중 19명이 우타프라데쉬주(이하 UP)에서 발생했고 이중 최소 17명이 무슬림이다. 나머지 사망자는 아쌈 주와 카르나타카 주에서 각각 5명, 2명이 사망했다. 사망자가 발생한 세 개의 주는 모두 BJP 출신 주 장관들이 통치하는 지역이다. 경찰력 지휘체계의 총괄 부서이자 전 BJP 대표가 장관으로 있는 내무부, BJP가 통치하는 주정부, 그리고 해당 주의 공권력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와 같이 편향적인 피해자 통계로 이어지는지 짐작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북부 우타프라데쉬주, 무슬림 가옥 침탈 “공권력이 폭도였다" 


힌두 사제 요기 아디뜨나야뜨(Yogi Aditnayath)가 주 장관으로 있는 우타프라데쉬 상황은 특히 심각해 보인다. 최근 진상조사팀을 꾸려 우타프라데쉬 현황을 조사한 ‘전인도진보여성연합’(All India Progressive Women’s Association, AIPWA) 사무총장인 카비타 크리슈난(Kavita Krishnan)은 조사 현장을 영상으로 공유하며 “주 경찰과 신속대응부대(Rapid Action Force, RAF/폭동진압 전문병력) 그리고 지방경찰보안대(Provincial Armed Constabulary) 그들이 바로 폭도들(rioters)이었다” 고 전했다.  

 

그가 “폭도들"이라고 묘사한 공권력은 우타프라데쉬주의 무자파르나가르(Muzaffarnagar)지역 무슬림 가옥에 무단 침입하여 집안을 쑥대밭으로 뒤집어 놨다. 또, 12월 27일에는 마찬가지로 우타프라데쉬 서부지역 미랏(Meerut)에서는 이 지역 경찰서장 아킬레슈 나야완 싱 (Akhilesh Narayan Singh)이 무슬림 거주 구역에서 시위와 무관해 보이는 주민들을 향해 “파키스탄으로 꺼지라”고 폭언을 내뱉는 장면이 소설미디어상 바이럴 영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미랏 지역은 최근 언론보도에 또 다른 이유로 등장한 바 있다. 바로 RSS가 운영하는 중등과정(한국의 중고교)의 첫 사관학교를 내년 4월 개교할 계획인데 그 학교가 세워질 예정 부지가 바로 미랏 지역이라는 보도였다. 이 글 서두에 언급한 RSS 행진이 심상치 않은 것도, 또 RSS가 운영할 중등사관학교가 곧 개교할 거라는 사실도 암울한 전조다.


로힝야 시민권 박탈한 미얀마 사례에서 교훈 찾아야 


한편, 인도의 시민권법을 둘러싼 논란과 국가 폭력 양상은 옆 나라 미얀마 사례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두 사례에선 기시감이 교차하는 대목이 적잖다. 미얀마 로힝야들이 40여년에 걸쳐 제노사이드 프로세스에 노출되는 동안 이들의 기본권을 박탈한 대표적 제도 하나가 바로 시민권 이슈다. 1982년 이전까지만 해도 시민권자였던 로힝야들은 그러나 그 해 시민권법이 개정되면서부터 국민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권을 서서히 상실해갔다. 로힝야들이 시민권을 전면 상실하는 과정은 총 10년에 걸쳐 진행됐다. 이제 시민권법 개정 초기에 도입한 인도사회가 더 늦기 전에 미얀마 사례를 학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로힝야들이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10년의 과정을 축약해 보자. 


우선, 1982년 시민권법이 개정됐다. 당시 군부 최고권력기구인 <버마사회주의 프로그램당>(BSPP)은 1824년 이전 조상의 거주 증명을 해야 온전한 시민권자로 규정하는 극단적 제노포비아 시민권법을 만들어놨다. 1824년을 기준으로 한 건 영국이 오늘날의 미얀마 영토를 식민화하기 시작한 해를 기준으로 한 셈인데 그 시절을 증명할 문서를 보관한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실상 이 법이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자명하다. 인도 CAA가 무슬림을 겨냥했듯 미얀마의 1982시민권법은 (방글라데시 및 인도 동북부와 국경이 인접한) 미얀마 서부 변방지대의 무슬림 커뮤니티 즉, 로힝야와 그리고 일부 버마 무슬림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상대대로 오늘날 라까잉 주(혹은 아라칸 주)에 거주해온 로힝야들을 향해 군부가 70년대부터 씌운 프레임은 방글라데시에서 불법으로 이주해온 “벵갈리” 프레임이다. 


둘째, 1982 시민권법이 1988년 이후에서야 적용되기 시작한 시점도 주목해봐야 한다. 이른바 '랑군의 봄'으로 알려진 전국적 규모의 시민항쟁은 종교와 종족을 초월하여 전방위적으로 군부독재를 압박했다. 시민권법이 적용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 항쟁의 후속타다. 88항쟁 후 들어선 신군부 <국가평화개발평의회>(SPDC)는 시민항쟁에 대한 처방전으로 종족과 종교로 시민들을 가르는 분열 통치 카드를 내밀었다.  

 

SPDC 통치하 80년대 후반부터 시민권증 교체 작업이 시작되면서 시민들은 기존 시민권인 ‘국민등록카드(NRC, 일명 ‘녹색카드’ - 종족과 종교가 기록되지 않음)를 의무적으로 반납한 뒤 새 시민권증인 ‘국민감시카드’(NSC, 일명 '핑크카드‘ - 종족과 종교가 기록돼 있음)를 발급받았다. 그러나 로힝야들은 새 카드를 발급받지 못해 ‘미등록 시민'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마지막 완성 조치가 1991년 감행됐다. 그 해 군부는 135개 ‘공식 인종'을 발표하면서 ‘로힝야’를 배제했다. 이로써 로힝야는 서류상 존재가 사라진 세계 최대 무국적자 커뮤니티가 됐다. 


물론 인도는 미얀마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동일하지는 않다. 오랜 세월 커뮤널리즘의 갈등과 폭력이 뿌리 깊었던 만큼 인도 시민사회는 이에 대한 경고를 빠르게 인지하고 있다. 극단주의와, 커뮤널리즘에 맞서온 저항 전통도 강한 사회다. 대학가가 선도적으로 나선 이번 CAA 반대 시위 역시 교수, 예술가, 언론인, 다양한 직군의 시민들이 전방위적으로 참여하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12월 22일에는 뭄바이에 있는 아시아 최대 슬럼가 다라비(Dharavi)에서도 2만5000~3만 명으로 추산되는 시민들이 거리를 빈틈없이 메우고 평화적으로 행진을 벌였을 정도다.  

 

인도 일간지 <더 힌두> 12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슬럼가의 주민들은 CAA 반대는 물론 카슈미르 자치권 조항인 370조의 폐기 등 BJP정부가 벌이는 일련의 반헌법적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힌두극우정치 세력들이 파시즘을 불러들이는 작금의 시국에서 인도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저항하는 전통과, 저항하는 오늘일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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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조건부 핵무기보유국’ 지위 천명


<해설> 북 노동당 전원회의, ‘정면돌파전’ 결정서 채택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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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1  17: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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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주재로 지난 연말 28~31일 나흘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개최돼 결정서를 채택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지난 연말 이례적으로 나흘 간이나 진행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결의하고 경제적 자력갱생과 군사적 전략무기개발을 양대 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당규약 개정이나 전략노선 수정, ‘새로운 길’을 명명하지 않았고, 북미협상 종결을 선언하지도 않았다. 남북관계는 언급조차 나오지 않았다. 북미협상의 판을 깨지는 않되 자력갱생의 길을 가며 ‘조건부 핵무기보유국’의 길을 걷겠다는 천명인 셈이다.

우리 정부는 1일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중단을 선언하지 않은 것을 평가”했다. 아울러 “북한이 “곧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주목하고, 북한이 이를 행동으로 옮길 경우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 북한의 선택 ‘정면 돌파’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보고에서 “조미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세기를 이어온 조미(북미)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여 명백한 대결그림을 그리고있다”고 전제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연말시한을 제시했던 북미협상이 미국의 ‘시간벌이’로 해를 넘기게 된데 따른 결론인 셈이다. 나아가 “핵문제가 아니고라도 미국은 우리에게 또 다른 그 무엇을 표적으로 정하고 접어들것이고 미국의 군사정치적위협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대미 불신론을 펴기도 했다.

결론은 “적대세력들의 제재압박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활기를 열기 위한 정면돌파전을 강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출한 투쟁구호가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으로의 복귀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전략노선 수정 없이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을 선언한 것이다.

정창현 북한경제연구소 소장은 “북한이 경제건설 총력노선에서 과거 병진노선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며 “전원회의 결정서의 순서도 경제 분야부터 제시돼 있다”고 짚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은 “북한이 굉장히 신중한 입장을 취한 것 같다”며 “‘레드 라인’을 철회하는 급격한 방향전환 보다는 기존의 입장을 좀더 강화하는 선에서 대미 경고를 하면서도 대화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조건부 핵무기보유국’ 지위 천명

   
▲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전원회의에는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들이 참가했고, 관계자들이 방청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적대세력들의 제재속에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힘을 보다 강화할 것”을 제기했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지만 아무래도 관심은 군사분야로 쏠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먼저 자신들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유예 등 중대조치를 취했지만 미국은 합동군사연습과 단독제재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하고 “지켜주는 (상)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이상 일방적으로 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무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계속 강화해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드팀없는 국방건설목표”이라면서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것”이라고 확언했다.

조성렬 자문위원은 ‘전략무기’라는 표현에 대해 “핵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고 절제된 표현을 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전략무기는 지난 12월 동창리 엔진실험장에서 실시한 엔진 시험과 연관된 무기일 가능성이 높다. 고체엔진 ICBM, 다탄두 ICBM, 전략미사일 탑재 신형잠수함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관측하고 “새로운 전략무기의 등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명시적으로는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 2018년 4월 20일 3차전원회의 에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한 모라토리엄 선언 중 ICBM 시험발사는 파기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비핵화는 영원히 없을것이라는 것, 미국의 대조선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개발을 중단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나갈 것”을 단호히 선언했다.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와 지난해 6.12싱가포르 북미정상공동성명에 따라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등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역시 불가능하다는 선언이다. 즉 북한은 그때까지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달리 표현하면 ‘조건부(가역적) 핵무기보유국’ 선언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핵 억제력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립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고 언급해 수위를 조절하고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국문에는 ‘상향조정’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영문에는 ‘적절히 조정’(properly coordinate)으로 표기”됐다며, 대미 메시지로 판단했다.

허리띠 졸라매고 자력부강‧자력번영 성공할까?

   
▲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들이 주석단에 자리잡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7시간에 걸쳐 ‘역사적인 보고’를 통해 각 분야에 걸친 평가와 방향제시를 했지만 “정면돌파전에서 기본전선은 경제전선”임을 분명히 했고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을 현시기 경제부문앞에 나서는 당면과업”으로 제시했다.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전략적관리”를 위해 “내각책임제‧내각중심제를 강화”할 것과 “국가상업체계‧사회주의상업을 시급히 복원”할 것,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타격방향” 등이 주요한 내용이다. 또한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현상”을 쓸어버리고 “전사회적으로 도덕기강을 강하게”세우는 문제도 제기됐다.

특히 김 위원장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는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신념”이라고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초반인 2012년 태양절(4.15) 100주년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하겠다고 언명한 바 있다.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뜻이다.

조성렬 자문위원은 “재작년부터 지난해 하노이까지 ‘탑 다운’ 방식으로 끌어온 상황이 어려움에 봉착한 것을 전원회의 형식을 통해서 결의를 다지는 형태”라며 “일방적 신년사가 아니라 전원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의 지지를 토대로 인민들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민간 전문가는 “국제적 대북제재에 중국까지 동참하고 있어 북한 내부 사정이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안다”며 “결국 자력갱생이 북한경제에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에 따라 시간은 누구편이었는지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렬 자문위원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이 불명확한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도 놓여 있어 당분간 교착상태가 예상된다”며 “미국 대선 이전까지는 ‘현상동결 합의’(stand still agreement)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동엽 교수는 “2020년 북한이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제시한 경제발전 등 내부적인 고민을 해소하고 조선로동당창건 75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해 2021년 어느 봄날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한다면 미국 대선이 끝나고 2021년 전반기 새 정부의 진용이 갖추어진 이후 북미협상의 2라운드 시작이 가능할 수도 있다”며 “문제는 영변과 동창리가 살아 있는 북한의 핵 몸값은 지금과 다를 것이란 점”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북한은 ‘본의 아니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력부강의 길을 걸어야 하고, 이와 병행해 ‘조건부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는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병진노선으로 복귀라는 평가가 나올법한 상황이다.

다만, 이전에 비해 미국의 무성의한 ‘노딜(no deal)’ 협상태도로 인해 핵무기보유국 지위 강화의 명분을 얻었고, 그간 더욱 강화된 국가핵무력을 구축을 통해 ‘몸값’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2018년 ‘53년 정전체제’가 흔들릴 정도로 남북, 북미관계가 진전되다가 2019년 ‘하노이 노딜’이후 정체에 빠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2020년 북한의 ‘정면돌파전’으로 인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중앙과 지방의 핵심 간부들을 평양에 모아놓고 무려 4일간 북한의 안보 및 생존전략에 대해 설명했다”며 “만약 한국의 외교․안보․대북 라인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면 너무 늦기 전에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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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2020년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김용택 | 2019-12-31 09:41: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제 몇 시간 후면 다사다난했던 2019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2020년 새해를 맞습니다. 2020년 새해는 지난 한 해, 지치고 힘들었던 모든 일 다 떨쳐버리시고, 언제나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지만 마지막 날에 서면 무언가 아쉽고 부족함 느끼고 하는 게 인생사 같습니다.

당신은 새해에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입니까? 돈…? 명예…? 사랑…? 가족의 건강…? 자녀의 취업…? 새해가 되면 사람마다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바라는 소망은 다 똑같지 않을 것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을 금뺏지를 달고 싶어 할 것이고, 병상에 누운 이들은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직장을 얻지 못한 사람은 취업을, 가난한 사람들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 나는 게 소원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플라톤의 수제자, 알렉산더의 스승,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의 아들, 니코마코스의 아버지… 이렇게 운을 떼면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지요?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모든 선 가운데 최고선(좋음)’은 하나같이 ‘행복’이라고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 행복이란 사람에 따라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요. 어떤 이는 건강을, 어떤 이는 출세를, 어떤 이는 가정의 화목을, 어떤 이는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 이 행복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것, 좋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모두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려내기보다 좋은 것들 사이에서 질서를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권력은 좋은 것입니다. 능력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도 좋은 것입니다. 자식이 잘나고 출세하는 것도 좋은 것이요, 외모가 빼어난 것도 좋은 것이요,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완전한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런 외적인 조건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스승 플라톤은 행복이란 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천상의 세계를 갈구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에서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그 행복이 어떤 행복인가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질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주관적인 쾌락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의 지속적 병행을 통한 자기실현을 행복이라고 보았습니다. 선한 행동을 직접 함으로써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 도덕 강의만 듣는다고 해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행복을 어디서 찾고 있을까요?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삶, 감각의 노예가 되어 사는 이기적인 삶, 그런 삶을 위해 더 많이 벌어 더 많은 재산을 모아 즐기며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은 모든 국민이 추구하는 질적 행복까지 보장할까요? 최근 한진가(家)의 ‘남매의 난’을 보면서 행복은 돈이 많기 때문에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일, 쓰고 싶은 돈을 원 없이 쓴다고 행복할까요? 물론 순간적으로는 만족감을 누릴 수는 있어도 그들이 누린 순간적인 만족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후회 없이 만족하는 행복일 수는 없습니다.

‘You Only Live Once’의 약자 ‘욜로(YOLO)’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 한 번 뿐이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가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다 보면 행복할까요? 내가 없는 나를 사는 사람들… 자본에, 이데올로기에, 강고에, 유행에… 쫓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 격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자본이 만들어 놓은 올무에 걸려 나이 들어 불치의 병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잘 불행한 사람은 보장되지 않는 먼 훗날의 행복을 위해 모든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들입니다. 내일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오늘의 나를 잃어버린채 사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2020년은 오늘 이 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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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년 뒤 땅 속에선 어떤 동물 화석이 나올까

조홍섭 2019. 12. 31
조회수 733 추천수 1
 
야생동물 거의 없고, 가축과 애완동물 그리고 인류가 화석 주인공
 
The Blue Marble photograph of Earth, taken by the Apollo 17 mission-3.jpg» 먼 훗날 인류세를 탐구하는 지질학자는 지구에서 무엇을 그 증거로 삼을까. 아폴로 17호 승무원이 촬영한 지구 '블루 마블'. 미 항공우주국(나사) 제공.
 
먼 미래의 고생물학자 또는 다른 지적 생물이 지구의 현재에 해당하는 지층을 발굴 조사하면 이전 시대와 뚜렷이 구별되는 양상을 발견할 것이다. 대형 포유동물 화석이 유난히 많은 이 지층엔 다른 야생동물은 거의 없고 떼죽음의 흔적이 많을 것이다. 화석의 주인공은 소, 돼지, 닭, 개, 고양이 그리고 사람이다.
 
로이 플로트니크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 등은 대형 포유동물이 어떻게 화석이 되는지에 관한 기존 연구를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인류세’에 실린 리뷰 논문에서 “미래 척추동물 고생물학자는 광범하고 이전 시대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생물 층서학적 단위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이 시대의 포유류 화석은 ‘인류세’의 명백한 표지”라고 주장했다.
 
인류세란 인류가 자연 시스템을 지배하게 된 새로운 지질시대를 가리키며, 지질학계의 공감을 바탕으로 언제부터 어떤 지표를 인류세의 시작으로 삼을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의 지구는 전례 없이 많은 양의 대형 포유류(50㎏ 이상)의 화석을 남길 것이다. 무엇보다 인류는 1800년께 10억 명에 다다른 이래 가파르게 증가해 2018년 77억 명에 이르렀고, 앞으로 30년 안에 100억을 돌파할 전망이다.
 
20세기 중반부터 공장식 축산이 확산하면서 가축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지구 육지의 4분의 1이 가축 사육에 쓰인다. 그곳에 육우 15억 마리, 젖소 2억7000만 마리, 돼지 9억7000만 마리가 산다. 
 
a1.jpg»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고 있는 돼지 사체. 가축은 현재 지구에 사는 야생동물의 수를 압도한다. 그만큼 화석으로 남을 가능성도 크다. 카렌 코이, 미주리 웨스턴 대 제공.
 
여기에 애완동물도 급증했다. 세계에는 9억 마리의 개가 있고 미국에만 9400만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연구자들은 미국 미시간 주에는 사람과 가축이 전체 동물 무게의 96%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플로트니크 교수는 “(이런 개체수로 볼 때) 야생 포유류가 화석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작다”며 “대신 미래의 포유류 기록은 대부분 소, 돼지, 양, 염소, 개, 고양이 그리고 사람일 것”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동물이 땅에 묻혀 화석이 되는 과정도 다르다. 자연 상태에선 동굴에서 사체가 보존되는 것이 아니면 주로 사체가 물살에 쓸려 퇴적층에 묻힐 수 있는 강변, 호숫가, 습지 등에서 화석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죽은 가축과 사람의 사체는 대규모 매립지나 묘지에 묻히는데, 그곳은 대개 물가에서 떨어진 사람 주거지 근처이다.
 
a2.jpg» 구제역 사태 때 살처분되는 돼지. 질병이나 자연재해로 떼죽음하는 포유류의 사체도 이 시대 생물상의 특징이 될 것이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자연 상태에서는 동물의 이나 뼈 한두 개가 청소동물을 피해 화석으로 남는다. 그러나 “농장에선 동물이 질병으로 종종 떼죽음해 사체가 통째로 물가에서 먼 구덩이나 매립지에 묻힌다”고 플로트니크 교수는 말했다. 미래의 고생물학자는 묘지에서 수많은 가지런하고 완전한 상태로 놓인 인골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에겐 매립지와 묘지가 화석 발굴의 보고가 된다.
 
연구자들은 또 사람과 동물의 재앙적 떼죽음 사태가 빈발한 흔적이 화석으로 남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 가뭄, 폭풍이 증가하고 사람들의 분쟁과 대규모 감염병이 잦아진 결과이다. 
 
이 때문에 “후세의 고생물학자들은 현재의 지층에서 인류 역사에서 처음 나타나는 독특한 화석기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lotnick RE, Koy KA, The Anthropocene Fossil Record of Terrestrial Mammals, Anthropocene (2019), doi: https://doi.org/10.1016/j.ancene.2019.10023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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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년 전부터 일출 명소, 그래서 이름도 영일이지요

[지금 거기에 가면 시즌2] 해맞이 추천 여행지 ② 포항 호미곶과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

19.12.31 19:42l최종 업데이트 19.12.31 19:45l

 

'지금 거기에 가면 시즌2'는 사계절에 따라 나들이 가기 좋은 국내 명소의 여행 정보와 노하우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호미곶 상생의 손 일출  바다 위에 솟아 나온 상생의 손 위로 보는 일출은 명품이다.
▲ 호미곶 상생의 손 일출 바다 위에 솟아 나온 상생의 손 위로 보는 일출은 명품이다. ⓒ 홍윤호

[이전 기사] 새해 해맞이, 1일 말고 둘째 주에 가야 하는 이유
    
신라 아달라왕(154~184년) 때 동해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연오랑이 바다에 나가 미역을 따고 있었는데, 홀연히 바위 하나가 나타나 그를 싣고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갔다. 기이하게 여긴 일본 사람들이 "이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다" 하고는 그를 왕으로 삼았다.
 
연오랑을 기다리던 세오녀는 남편을 찾아 바다로 나갔다가 남편의 신발이 있는 바위를 발견하고 그곳에 올라갔다. 그러자 그 바위가 역시 같은 방법으로 바다를 건너갔다. 이렇게 부부는 다시 만났고, 세오녀는 왕비가 됐다.
 
같은 시간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 깜깜한 날이 계속됐다. 왕이 일관(日官, 무당)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려와 있었는데, 지금 일본에 갔습니다. 그래서 이런 변고가 생겼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연오랑과 세오녀가 돌아오도록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다. 하지만 연오랑은 바다를 건너온 것이 하늘의 이치이니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 대신 왕비 세오녀가 짠 비단을 줄 테니 가져가 제사를 지내면 될 것이라 말했다.
 
사신이 이 비단을 가져와 연오랑의 말대로 제사를 지내니 비로소 해와 달이 빛을 찾았다. 그 후 이 비단을 왕의 창고에 보관하고 국보로 삼았다(<삼국유사> 기이 제1, 연오랑세오녀 조 참고).
 
연오랑세오녀상 포항시는 신라 아달라왕 때 일본에 건너간 연오랑세오녀상을 호미곶광장에 조성해 놓았다.
▲ 연오랑세오녀상 포항시는 신라 아달라왕 때 일본에 건너간 연오랑세오녀상을 호미곶광장에 조성해 놓았다. ⓒ 홍윤호
 
아직도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에 전해질뿐 아니라 고려의 역사서 <삼국유사>에도 남아 있는 이 전설은 포항시 호미곶 광장에 연오랑세오녀 상으로 구현돼 있다.

약 2000년 전,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바다를 건너간 곳,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제사를 지낸 곳. 그 고장은 오늘날에도 해맞이의 명소이자 해마다 1월 1일에 축제를 여는 장소로 남아 있다. 제사가 축제로 바뀌었을 뿐, 그 역사와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설을 두고 신라사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흥미로운 해석을 하기도 한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주민 세력 집단을 상징하며, 이 이주민 세력은 일본에 건너가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신라와 교류했다는 추론이다. 전설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것인데, 꽤 그럴듯하다.

지금은 바다 위에 그어진 국경선이 두 나라를 철저히 구분하지만, 오히려 그 당시에는 수많은 집단의 자유롭고 복잡한 이동이 다양한 신화와 전설의 형태로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해맞이 명소
 
전설에 나오듯 해와 달의 정기가 살아 있는 고장, 그래서 동네 이름도 해맞이, 영일(迎日)이다. <삼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 조에 이미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곳은 문헌상 가장 오래된 해맞이 명소인 셈이다.
 
이 영일만의 끝은 동쪽으로 튀어나온 육지의 끝이기도 하다. 전남 해남의 땅끝과는 다른, 또 다른 땅끝이다. 우리나라 지도 모양이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할 때 그 꼬리에 해당한다 해서 호랑이 꼬리, 호미(虎尾)곶이라 이름 붙인 고장, 이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는 해마다 12월 31일부터 다음 해 1월 1일까지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가 한반도를 토끼 모양이라 하고, 이곳을 토끼의 꼬리라고 비하해 부르기도 한 곳이다. 이른바 상징 조작인데, 일제는 한반도를 초식 동물이자 순종적 이미지의 동물인 토끼를 닮았다 하여 우리나라의 강한 정기를 약화시키고 일본의 식민 지배에 순응하게 만들려 했다. 우리는 반대로 한반도를 육식 동물이자 기가 센 동물인 호랑이에 비유해 한국인의 정기를 살리고자 했다. 한쪽은 깎아내리고자, 한쪽은 이에 대항하고 극복하고자 서로 반대되는 성격의 상징 동물을 내세운 셈이다.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지도 조형물 호미곶광장에 조성된 한반도 지도 모양의 조형물이다. 호랑이가 앞발을 쳐들고 포효하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도 좋다.
▲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지도 조형물 호미곶광장에 조성된 한반도 지도 모양의 조형물이다. 호랑이가 앞발을 쳐들고 포효하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도 좋다. ⓒ 홍윤호
   
이곳 명칭인 호미곶(虎尾串)은 호랑이 꼬리를 의미한다. 한반도를 호랑이가 앞발을 든 모양이라고 보고 호랑이 꼬리가 튀어나온 지점이라 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호미곶 광장에 설치된 한반도 조형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호미곶으로 가는 운치 있는 드라이브 코스는 포항시 동해면에서 925번 지방도로를 따라 호미곶 반도를 완전히 한 바퀴 돌면서 구룡포읍을 거쳐 다시 동해면으로 들어간다. 맑고 푸른 바다와 때때로 해안에 툭 튀어나온 기암괴석, 간간이 나타나는 아담한 포구, 하얀 모래와 검은 몽돌이 깔린 부드러운 해수욕장이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이 드라이브 코스를 낳은 도로가 동쪽으로 가고 또 가다가 더 이상 동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갈 길을 남쪽으로 돌리게 되는 지점에 대보리가 있고, 호미곶이 있다. 이 호미곶이 있는 대보면은 2010년 호미곶면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제 호미곶은 호미곶면에 있는 명소가 됐다.
 
멋진 해맞이를 할 수 있는 광장 앞바다에는 명물 '상생의 손'이 바다 밖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다. 맑은 겨울날 아침, 이 상생의 손 바로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게 된다면 벅찬 감동을 느끼리라. 그래서 1월 1일 아침에는 해 뜨기 훨씬 전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펼쳐진다. 손가락 위로 뜨는 해를 보기 위해서. 이 경쟁은 예상외로 치열하다.

그러니 1월 1일을 피해 좀 여유롭게 해맞이를 하자. 차를 가지고 갈 경우, 1월 1일만 아니라면 맑은 날에는 상생의 손이 보이는 길가에 차를 갖다 대고 해 뜰 때까지 차 안에서 대기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상생의 손 위의 일출은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해맞이 풍경으로, 일대 바위들과 잘 어울려 인공적이되 인공의 느낌이 덜한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호미곶 등대 1903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역사적인 등대이다.
▲ 호미곶 등대 1903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역사적인 등대이다. ⓒ 홍윤호
 
해맞이광장 옆으로는 호미곶등대와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온통 새하얀 색으로 칠해져 푸른 바다와 색채의 조화를 이루는 등대는 1903년 12월에 건립돼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동해안에서는 첫 번째)로 붉을 밝힌 역사적인 등대이다. 어떤 이들은 일제가 의도적으로 호랑이 꼬리에 불을 붙여 혼비백산하게 했으니 이 등대를 없애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국립등대박물관 호미곶에 조성된 등대박물관은 내부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시설들이 있어 좋다.
▲ 국립등대박물관 호미곶에 조성된 등대박물관은 내부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시설들이 있어 좋다. ⓒ 홍윤호
  
등대 옆의 국립등대박물관은 유물관과 체험관, 등대역사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등대의 역사와 등대 관련 장비, 사진과 문헌 자료들을 비교적 깔끔하게 전시하고 있으며, 체험관에는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있다. 등대 탁본, 도장 찍기 체험, 보트 운전 체험 등 찬찬히 돌아보면 쏠쏠한 재밋거리를 찾아볼 수 있다(운영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는 무료, 홈페이지는 www.lighthouse-museum.or.kr).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의 아픈 과거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항에는 1923년 구룡포항을 조성한 이후 들어와 살았던 일본인들의 거리가 남아 있다. 이 거리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 촬영지로 이용되면서 핫플레이스가 됐다.
▲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항에는 1923년 구룡포항을 조성한 이후 들어와 살았던 일본인들의 거리가 남아 있다. 이 거리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 촬영지로 이용되면서 핫플레이스가 됐다.ⓒ 홍윤호
  
호미곶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구룡포와 감포를 거쳐 울산까지 이어진다. 구룡포항 바다 앞에 자리한 근대문화역사거리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한 일본가옥 거리가 남아 있다. 2019년 하반기의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로 꽤 알려지면서 요즘 '핫플레이스'가 된 곳이다.
 
구룡포항은 1923년 일제가 동해안의 어업 전진 기지로 만든 항구이다. 그러다보니 항구 바로 앞에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조성됐다. 해방 후 7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일본식 가옥 몇 채만 남아 있던 거리를 포항시가 재정비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이곳에 살던 하시모토 겐이치의 집을 근대 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몇몇 일본식 가옥들을 정돈하여 규모는 작지만 아담한 근대 역사 거리로 재탄생했다.
 
바로 이 거리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유명세를 타고 널리 알려졌다. 구룡포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구룡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룡포 공원 일대, 동백이집과 동백이의 가게 '까멜리아'로 활용된 문화마실, 게장골목으로 활용된 일본인 가옥 거리 등 드라마 여행길로 새로운 명소가 됐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살았던 거리를 포항시에서 재정비, 복원했다.
▲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집단적으로 살았던 거리를 포항시에서 재정비, 복원했다. ⓒ 홍윤호
  
하지만 이곳이 일본인 거리였던 만큼 생채기도 남아 있다.

구룡포 공원으로 오르는 입구의 계단과 돌기둥들은 1944년 일본인들이 세운 것들인데, 돌기둥에는 구룡포항을 조성하는 데 기여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해방 후 구룡포 주민들은 이 기둥에 시멘트를 발라 기록을 덮고 돌기둥을 거꾸로 돌려세웠다. 구룡포항에 살던 한국인들의 반일 의식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다 1960년 주민들이 이 기둥의 앞뒤를 돌려세운 다음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봉안한 충혼각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 후원자들의 명단을 새겼다.

돌기둥 자체는 죄가 없건만, 거꾸로 세워지고 앞뒤로 돌려지는 사건을 겪었다. 이 돌기둥의 운명이 역사의 상처를 되새기게 해주는 셈. 현재 공원 오르는 길 계단 양옆에 서서 기구한 운명을 증언하고 있다.
 
구룡포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해안 길은 길고 긴 동해안을 따라 줄곧 구불구불 이어지는데, 동해안에서도 대표적으로 오염이 적고 한적한 코스이다. 조용한 바닷길을 원한다면 이 코스를 따라 겨울 동해안을 맘껏 즐기기를 권한다. 이 길에는 요즘 잘 알려진 경주 주상절리 파도소리길도 있어 들렀다 갈 만하다.
 
[여행 정보]

- 호미곶광장 뒤로 500대 이상을 수용하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 주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상생의 손 앞까지 제법 걸어가야 한다. 평일의 경우 상생의 손 바로 앞 해안 길가에 차를 세울 수 있어 평일에 갈 수 있다면 좀 더 편하게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 호미곶 입구에 몇몇 숙박업소들이 있으나, 가능하면 포항 시내나 구룡포 쪽에서 묵고, 아침 일찍 호미곶으로 오는 것이 좋다.
 
- 구룡포 일대는 겨울 과메기의 본고장이다. 오가는 길에 과메기를 먹어볼 만하다. 호미곶 일대의 대게 요리와 전복죽, 포항 시내 죽도 시장의 물회도 좋다.
 
[가는 길]

- 자가용으로 호미곶에 갈 경우 포항에서 국립등대박물관 주소를 치고 가자(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해맞이로 150번길 20).
 
- 대중교통으로는 포항 시내 시외버스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200번, 210번 버스를 이용, 구룡포에 간 다음, 구룡포에서 호미곶행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종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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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자주·평화·번영의 서광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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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사입력: 2020/01/01 [00: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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