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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나는 변화를 바라는 시민의 도구일 뿐”..검언개혁 4차 촛불행동 출연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 본 조직 출범 선포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11/0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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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변화를 바라는 많은 분의 도구 역할을 충실하게 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6일 진행된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 4차 촛불행동(4차 촛불행동)’에 출연해 이처럼 밝혔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6일 진행된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 4차 촛불행동’에 출연해 특별 대담을 나눴다. [사진출처-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 후보는 이날 4차 촛불행동 2부에서 김민웅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 운영위원장과 특별대담을 나눴다. 

 

이 후보는 ‘정치인으로서 중요한 덕목, 한반도 평화와 미래, 검찰·언론개혁’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먼저 이 후보는 정치인으로서 중요한 덕목으로 용기를 꼽았다. 그 이유는 효율성이 좋은 정책일수록 기득권의 저항이 크다면서 효율성 있는 정책을 선택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인의 추진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한반도 평화와 미래와 관련해서는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해 자주적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라면서 “남북관계에서 외부요인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계속해 “남북관계에서 문재인 정부가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신뢰 구축에 더 힘을 쏟고 북한과 교류·협력을 민간, 지방자치제 등으로 확대하겠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실용적으로 접근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금강산 관광은 제재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으면서 북한과 신뢰가 회복되면 꼭 진행해야 할 사업이라고 밝혔으나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는 제재 문제가 있어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민웅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 운영위원장과 특별대담을 나누는 이재명 후보. [사진제공-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  

 

이 후보는 “검찰 권력은 없는 죄도 있게 만들고, 있는 죄도 덮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을 정상화하는 게 중요한 과제”이고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의 정상적 판단을 위해 언론에 자유를 부여했는데 어느 순간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조작하는 특권으로 변질했다. 언론개혁도 매우 심각한 과제인 거 같다”라며 검찰·언론 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초심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이 후보는 “일하기 위해 대통령 되는 것”이라며 “사회 변화를 바라는 많은 분의 도구 역할을 충실하게 하겠다”라고 답하며 특별대담을 마무리했다. 

 

이날 4차 촛불행동에서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는 본 조직을 선포했다.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는 출범 선언문에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향하여 모든 민주개혁세력의 총집결을 이루어나갈 것 ▲정치검찰 해체, 조선일보를 비롯한 적폐언론 청산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나갈 것 ▲대선 승리와 민주개혁, 평화번영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해 쉼 없이 전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우희종 서울대 교수(왼쪽)와 박재동 화백(오른쪽)은 언론개혁의 중요성을 짚는 대담을 나눴다. [사진제공-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  

 

4차 촛불행동에는 1부에는 우희종 서울대 교수와 박재동 화백이 출연해 언론의 문제점을 짚는 대담을 나눴다. 

 

또한 서울 여의도 국힘당 중앙당사 앞과 창원의 조선일보사 앞 그리고 대구 매일신문사 앞에서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을 하는 시민들이 현장 생중계로 출연했다.

 

국힘당 중앙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시민은 “적폐정당, 친일매국정당, 고여서 썩은 물 국민의짐을 쓰레기통에 넣고 대선에서 승리하자”라고 외치기도 했다. 

 

▲ 서울 여의도 국힘당 중앙당사 앞에서 '국힘당 해체' 1인 시위를 하는 시민들. [사진출처-유튜브 화면 갈무리]  

 

▲ 노래패 '우리나라'의 공연 모습. [사진출처-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날 노래패 ‘우리나라’가 4차 촛불행동의 포문을 열었다. 

 

노래패 ‘우리나라’는 노래 ‘다시 광화문에서’, ‘헌법 제1조’, ‘격문’, ‘기레기쏭’, ‘적폐청산가’, ‘촛불아 나서라’ 등을 부르며, 모든 시민이 다시 검찰·언론개혁, 국힘당 해체 투쟁에 함께해 승리하자고 호소했다. 

 

한편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에는 59개의 시민단체와 29개의 유튜버가 참여하고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배은심 여사(이한열 열사 어머니), 명진 스님, 정지영 감독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민웅 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우희종 서울대 교수, 안진걸 민생연구소 소장, 박준의 촛불전진 준비위원장, 조헌정 목사 등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4차 촛불행동 영상 보기

 

 

아래는 출범 선언문 전문이다.

 

-------아래-------------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 출범 선언문

 

우리는 오늘 검언개혁 촛불행동 연대의 공식 출범을 선언합니다.

 

이로써 촛불시민들의 뜻과 힘이 다시 하나로 모였습니다.

 

“행동과 연대”가 우리의 굳센 단결의 원칙입니다.

 

한 손에는 촛불, 다른 한 손은 촛불 시민들의 손을 잡고 역사의 광장으로 힘차게 달려갈 것입니다.

 

이제 촛불혁명 제3막이 올랐습니다.

 

5년 전 광화문 광장에서, 2년 전 서초동에서 촛불을 들었던 우리 시민들은 행동연대로 다시 뜨겁게 뭉쳤습니다. 우리 사회의 원로세대는 물론, 청년세대까지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와 동참도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 크고, 더 뜨겁게 모이고 뭉쳐야 합니다.

 

우리는 적폐청산, 사회대개혁의 기치를 들고 촛불혁명 제 3막을 열어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개혁세력이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이번 대선은 민주개혁과 평화번영통일을 바라는 국민과 부패한 적폐기득권 세력과의 일대 전면전입니다.

 

정치검찰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적폐언론, 국힘당과 같은 부패한 정치세력과 토건세력에 사법부까지 망라된 적폐기득권 세력들은 촛불혁명의 성과를 폐기하고 민주개혁을 뒤집어엎기 위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계획은 권력을 사유화하여 국정을 농단한 정치검찰 윤석열을 앞세워 권력을 찬탈하고 검찰쿠데타를 완성하려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들 적폐기득권 세력의 재집권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피땀으로 일군 민주주의가 하룻밤 사이에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지켜낸 민주주의가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후퇴해야 하는가, 그것이 우리 촛불국민의 어깨에 달려있습니다.

 

민주개혁세력의 총집결과 공동행동이 유일한 승리의 길입니다.

 

그것이 적폐기득권세력의 지배와 집권전략을 분쇄할 수 있는 강력한 우리의 힘입니다.

 

이에 우리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우리는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향하여 모든 민주개혁세력의 총집결을 이루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정치검찰 해체, 조선일보를 비롯한 적폐언론 청산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다.

 

우리는 대선 승리와 민주개혁, 평화번영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해 쉼 없이 전진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 되면 역사는 전진합니다.

 

우리가 행동하면 역사는 우리의 것이 됩니다.

 

우리는 기필코 승리할 것입니다.

 

2021년 11월 6일

검언개혁 촛불행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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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은 절대 선이 아니다”..민족자주농성 5일 차

신은섭 통신원 | 기사입력 2021/11/0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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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자주농성 참가자가 5일 미 대사관 인근에서 1인 연설을 하고 있다.   © 신은섭 통신원

 

“한미동맹은 절대 선이 아니다. 미국 없이 남북이 협력해 우리민족끼리 잘 살 수 있다.” 

 

민족자주농성단이 5일 미 대사관 앞에서 개최한 소집회 참가자가 이처럼 외쳤다.

 

민족자주농성단은 이날 오후 1시 30분 소집회를 개최했다. 

 

소집회는 참가자 발언, 딱지치기, 즉석 3행시·4행시 짓기, 노래 ‘아아 바이든’ 창작자와의 즉석 대담 순서 등으로 채워졌다. 

 

▲ 농성 참가자 박성호 씨가 딱지를 들고 소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신은섭 통신원

 

유장희 씨는 “미국이 남북관계 발전을 방해하는 것을 더는 바라만 보고 있을 수가 없고, 우리 민족의 통일, 번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나왔다”라고 서두를 뗐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한미연합군사훈련 등 적대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한미일 삼각 동맹을 해체해야 한다. 한미일 삼각 동맹에서 우리가 얻는 이득은 하나도 없다. 식민지배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는 일본과 동맹 관계를 맺는 것부터가 오류다. 미국산 첨단무기 강매 반대한다”라고 발언했다. 

 

박성호 씨는 “미국이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첨단무기 시험 발사를 진행하고 우리나라에 첨단무기를 강매하는 등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의 앞뒤가 다른 모습을 꼬집는 상징 의식으로 딱지치기를 준비했다. 바이든은 계속 그렇게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이다가는 언젠가 정말 큰코다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기 바란다”라면서 딱지치기 상징 의식을 진행했다.

 

김성일 민족위 집행위원장은 이번 주 농성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아래와 같이 말했다. 

 

“어제 그리고 오늘 연이어 나왔는데 뒤에 농성하는 자칭 보수 세력이라는 분들이 있다. 방송 차를 끌고 다니며 시비도 걸고 화도 내고 그러는데 그게 인상적이다. 저분들이 격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까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오는 게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 노래 ‘아아 바이든’을 들으며 ‘바이든’으로 3행시, ‘첨단무기’로 4행시 짓기를 진행하였다. 현장과 온라인 참가자들이 다양하게 3행시와 4행시를 제시했다. 대표적인 것을 아래에 소개한다. 

 

보 같은 선택 하면 미국 다 큰일 난다

 제는 정신 차려

  거 없는 머리 그만 굴리고 평화를 택하라”

 

에 기회 줄 때 좀 잘하라고

 박에 박살 날 텐데 전쟁 왜 그렇게 하고 싶어해

 슨 근거 없는 자신감 이제 그만해

 력도 이제 달릴 텐데 좀 가”

 

이어 농성 참가자 안성현 씨는 “지금 한미 공군이 ‘전투준비태세 종합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F-35A 등이 참가하는 이번 훈련은 명백히 북한을 도발하는 적대 행위이다. 미국은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한반도 전쟁 위기를 조성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하며 대북 적대 정책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노래 ‘아아 바이든’ 창작자인 이혜진 씨와 즉석 대담이 진행됐다. 

 

이혜진 씨는 노래 ‘아아 바이든’을 만들 배경을 “지난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 반대 여론이 높았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싶어 노래를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솔직히 미국이 걱정된다. 미국이 벌인 전쟁을 돌이켜보면 하나도 이긴 전쟁이 없다. 최근 아프간에서도 패주했다. 바이든은 자기 나라 국민이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한반도에서 북한과 전쟁을 하면 미국 본토가 위험하다. 바이든은 국민 걱정 좀 하면 좋겠다”라면서 미국의 처지를 조소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 당장 중단하라”, “한미일 삼각 동맹 해체하라”, “미국산 첨단무기 강매 반대한다”의 구호를 외친 뒤 집회를 끝냈다.  

 

한편 오늘도 ‘자주·통일 달고나’의 인기는 계속되었는데 새로운 포장을 선보여 더욱더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여러 개 챙겨 가는 시민도 있었고 “기왕이면 자주·통일 달고나!”라며 챙겨 가는 시민도 있었다. 

 

▲ 민족자주농성 참가자가 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신은섭 통신원

 

▲ 오늘도 시민들에게 인기를 끈 ‘자주·통일 달고나’.   © 신은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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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불거진 가짜 ‘유엔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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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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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0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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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이 지난달 29일 유엔군 사령부와 판문점을 방문했다. [사진 :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
▲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이 지난달 29일 유엔군 사령부와 판문점을 방문했다. [사진 : 주한미국대사관 홈페이지]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이 유엔군 사령부를 방문한 데 이어 김성 유엔주재 북한(조선) 대사의 유엔사 해체 주장까지 전해지면서 가짜 ‘유엔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김성 대사는 유엔총회 제4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에 있는 유엔사는 미국에 의해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행정과 예산 모든 면에서 유엔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며 “유엔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미국의 고집은 남한에 대한 점령을 정당화·영구화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사악한 정치·군사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다”며 유엔사의 즉각적인 해체를 촉구했다.

그는 “불법으로 창설된 유엔사는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사령부와 다를 게 없고 유엔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유엔은 유엔사에 대한 지휘권도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1950년 한국전쟁 직후인 6월 27일과 7월 7일 긴급 소집한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창설된 유엔사는 탄생에서부터 위법성 논란에 휘말렸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유엔군 창설은 유엔총회 결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당시 유엔안보리에서 단지 유엔기 사용만을 승인했을 뿐인데 미국이 유엔군을 참칭해 무단으로 창설해 버렸다.

유엔사 창설이 불법이라는 김성 대사의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주장이다.

유엔군 사령부가 유엔의 기구가 아니라, 미군이 지휘하는 불법 기구라는 근거는 또 있다.

미국이 정전체제에서조차 유엔사를 유지하자, 1975년 30차 유엔총회에서 주한 유엔사 해체를 결의했다.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46년이 지난 오늘까지 미국은 유엔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미국은 유엔사를 해체할 대신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해 유엔사가 가지고 있던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이양하는 한편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해 대북 군사 압박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유엔 회원국이자 미국과의 전쟁 당사국인 북한(조선)으로 선, 유엔 기구도 아닌 유엔사가 유엔을 참칭해 미군의 지휘 아래 버젓이 총부리를 겨누는 현실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가짜 ‘유엔사’ 논란과 관련해 사실 미국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미국은 가능하면 유엔사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언급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은 한반도 주변 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유엔사를 유지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관철하는 전초기지로 이용하고 싶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 상황이 난처해질 수 있다.

종전선언이 아무리 형식적 선언이라지만 종전을 선언하는 마당에 불법적으로 창설된 유엔사에 대한 언급은 피할 수 없고, 유엔사 문제를 언급하는 순간 유엔사 해체 주장이 대세를 이룰 게 뻔하다.

미국이 이번에도 가짜 ‘유엔사’에 쏟아질 해체 압력을 피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유엔사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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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심 앞세워 본선 오른 윤석열, ‘후보 리스크’ 극복이 최대 과제

민심에서 밀리고, 당심 결집해 승리…윤석열 앞에 놓인 과제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에 최종 선출된 후 당 점퍼를 입고 인사하고 있다. 2021.11.05.ⓒ뉴시스 / 국회사진기자단

 막판까지 대접전을 펼쳤던 국민의힘 경선은 윤석열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났다. 민심은 경쟁 상대였던 홍준표 후보의 손을 들어줬지만, 압도적인 당심이 윤 후보에게 쏠리면서 나온 결과다. 이로써 정계입문 4개월 만에 윤 후보는 제1야당의 대선 후보 자리에 오르게 됐다.

윤 후보는 책임당원 선거인단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각각 50%씩 반영한 경선에서 합산 득표율 47.85%를 기록해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여론조사에서는 홍준표 후보에게 10%p 이상 밀렸지만, 책임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20%p 가량 앞섰다. 결국 국민의힘 당원들이 승부를 가른 셈이다.

'반문 상징성' 앞세워 본선 지지 호소
"이재명과의 경쟁, 상식과 비상식 대결"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에 선출된 윤석열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전당대회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2021.11.05.ⓒ뉴시스/국회사진기자단

윤 후보는 이날 수락 연설에서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바라는 민심은 정치신인인 저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며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경선 내내 '정권 탄압 후보' 이미지를 앞세웠던 윤 후보는 이날도 '반문재인 상징성'을 부각하며 본선에서의 지지를 호소했다.

윤 후보는 "저의 경선 승리를 이 정권은 매우 두려워하고 뼈아파할 것"이라며 "조국의 위선, 추미애의 오만을 무너뜨린 공정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아픔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정권은 집요할 정도로 저를 주저앉히고자 했다. 저 하나만 무너뜨리면 정권이 자동 연장된다고 생각하고 2년 전부터 탈탈 털었다"며 "어떤 정치공작도 국민의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윤석열은 이제 한 개인이 아니라 공정과 정의의 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되었기 때문"이라며 "국민께서 저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내년 3월 9일을 여러분이 알고 있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돌아오는 날로 만들겠다"며 법치와 공정, 상식이 돌아오는 날로 만들겠다고 제시했다.

이를 위해 ▲공정과 정의 회복 ▲국민 통합 ▲경제 성장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강화 ▲중산층 복원 ▲문화 강국 ▲안보체계 구축 등을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본선 경쟁을 두고서는 "상식의 윤석열과 비상식의 이재명과의 싸움", "합리주의자와 포퓰리스트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편 가르기와 포퓰리즘으로 대표되는 사람을 후보로 내세워 원칙 없는 승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이 무도함을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 앞에 놓인 과제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에 최종 선출된 후 당 지도부, 경선주자들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현 원내대표, 홍준표 경선 후보, 윤 대선 후보, 유승민, 원희룡 경선 후보, 이준석 대표. 2021.11.05.ⓒ뉴시스 / 국회사진기자단

윤 후보의 최대 과제는 후보 본인의 리스크다. 그동안 윤 후보는 잦은 실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경선 초반 공고한 듯 보였던 '윤석열 대세론'이 무너지기 시작한 이유도 후보의 연이은 말실수 때문이었다. 특히 '전두환 망언'에 이은 '개 사과' 논란은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선에서도 이와 같은 발언 논란이 반복된다면 윤 후보에게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 후보도 이를 의식한 듯 '경선 과정에서 가슴 아팠던 일'을 묻는 말에 "'저런 소리를 하냐'는 비판에 봉착했을 때"를 꼽으며, 자신의 발언 논란을 언급했다.

그는 "정치는 자기 마음과 그것이 표현돼서 국민께 받아들이는 것에 굉장한 차이가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걸 배우는 과정이 어려운 과정이었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또 다른 리스크는 본인과 가족이 연루된 '사법 리스크'다. 현재 윤 후보 본인이 연루된 고발사주 의혹과 부인 김건희 씨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고발사주 의혹의 경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어 본선에서 악재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부인과 관련된 의혹도 마찬가지다. 본선에서는 김건희 씨도 공개 활동에 나설 예정이라, 부인 의혹에 대한 수사 상황 역시 본선 판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윤 후보는 "워낙 말이 안 되는 얘기라 대응할 필요 자체를 못 느낀다"고 일축했다. 그는 "지금까지 가족에 대한 것(수사)을 1년 6개월 했는데 이런 정치공작이나 불법적인 선거 개입을 계속하게 되면 거기에 따르는,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고 역공을 취했다.

경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후보들과의 화합도 윤 후보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원희룡·유승민·홍준표 후보는 경선 결과 발표 직후 곧바로 승복 선언을 했지만, 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원팀에 결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6.35%p 차이로 석패한 홍 후보의 경우 이번 경선 결과를 "민심과 거꾸로 간 당심"이라고 평가하며, "홍준표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윤 후보는 서둘러 세 후보를 만나는 일정을 잡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속한 시일 내에 홍 후보님, 유승민 후보님, 원희룡 후보님을 빨리 만나 뵙고, 말씀을 들어보고 어떤 역할을 하실 생각이 있는지, 어떤 역할을 제가 부탁드려야 할지, 만나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윤 후보는 본선 첫 일정에 대해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시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계신 분들을 먼저 찾아뵙는 게 도리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6일 오전 가락시장을 찾아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을 만날 예정이다.

광주 방문은 오는 10일로 예고했다. 윤 후보는 "당일 갔다 오지 않고, 1박 2일 정도로 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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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이재명, 윤석열에 "후보된 것 축하, 선의의 경쟁 하자"

대구 방문 현장에서 소식 전해들어... "고향이라 지지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21.11.05 16:56l최종 업데이트 21.11.05 18:25l

 

▲ 이재명, 윤석열 후보 확정에 "오늘은 뭐... 축하드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확정 소식에 "오늘은 뭐... 후보되신 거 축하드린다"라며 "정쟁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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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후보로 되신 것 축하드린다"며 "정쟁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고 축하했다.

이 후보는 5일 오후 대구광역시 경북대 인문지능관에서 진행된 대학생과의 대화가 끝난 뒤 "어떻게 하면 우리 국민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우리 국가를 더 희망적으로 만들지 (윤석열 후보와) 선의의 경쟁, 잘하기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후보는 보수 텃밭이자 고향인 TK(대구경북) 표심에 대해 "어릴 때 살았던 고향이라서 지지하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구경북은 매우 합리적이고 정치의식 수준이 높기 때문에 대구경북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누가 더 실력이 있을지, 더 성과를 낼지에 관심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나름 어려운 환경에서도 작은 권한으로 큰 성과를 내왔고 그 점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왔다"며 "대구경북 역시 정치적 편향이 아니라 삶을 개선하고 실적이 될 게 누구인지 판단하면 저에 대한 지지도 상당 정도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초과 세수를 재난지원금으로 쓰자는 주장에 대해 야당이 국가재정법이나 선거법 위반이라며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는 지적에 "정책 현황에 대해서는 여야 간에 또는 정치인들 사이에, 국민들 사이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을 통해서 결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세상 일이 제가 특별한 권한을 가진 사람도 아닌데 다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다만 초과 세수는 우리 국민들의 고통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고통 받는 국민들을 위해서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이점을 여야 정치권뿐만 아니라 정부에도 설명을 드리고 납득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큰사진보기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5일 오후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대학생과의 대화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후보의 대선 후보 선출을 축하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5일 오후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대학생과의 대화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후보의 대선 후보 선출을 축하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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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

기자명    현장언론 민플러스 승인 2021.11.04 20:41 댓글 0

 
 

데스크 칼럼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중국 공군 [사진 : 연합뉴스 동영상 갈무리 / 중국인민군 홈페이지 영상]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중국 공군 [사진 : 연합뉴스 동영상 갈무리 / 중국인민군 홈페이지 영상]

최근 중국과 대만, 양안관계 위기가 고조되며 전운이 감돌고 있다. 
중국은 국경절 연휴 동안 젠-16 전투기 34대를 비롯, 수호이(SU)-30 전투기 2대, 윈-8 대잠초계기 2대, 쿵징-500 조기경보기 2대, 훙-6 폭격기 12대 등을 동원하여 대만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였다. 1일 군용기 38대에 이어 2일과 3일에도 각각 39대와 16대의 군용기를 보내 대만 차이잉원 정부를 압박했다.

1911년 10월 10일. 중국은 혁명기념일(중국)로, 대만은 건국기념일(국경절)로 각각 기념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연설에서 대만 독립세력을 겨냥해 “조국을 배반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면 반드시 인민으로부터 버림 받고 역사의 심판에 처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곤, “대만 독립세력은 조국통일의 최대 장애물이자 중화민족 부흥의 심각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대만인들이 (중국의) 압력에 굴할 것이라는 건 환상”이라고 응수했다. 거의 전쟁 일보 직전 양상이다. 
이 문제를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1947년 2.28항쟁 [사진 : 위키백과]
1947년 2.28항쟁 [사진 : 위키백과]

1. 대만의 역사

대만역사를 아는 것은 양안문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지식이 된다.
1600년대까지 대만은 말레이시아 중심의 폴리네시아 원주민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타이완섬 서북부 일각에 미다그 왕국을 건설했다. 그런데 1544년 대만을 발견한 포르투칼인은 ’아름다운 섬‘이라는 의미로 ‘포르모사(Formosa)’라 불렀다. 1624년 네덜란드가 타이난 지역에 상륙하여 대만 남부를 식민지화하고, 뒤이어 1626년 스페인이 대만 북부를 식민지화하였으나 네덜란드가 독점하게 되었다.
명나라 말기 정성공은 대만에 정씨왕국을 건설하고 명나라 부흥운동을 펼쳤다. 이후 청나라가 대만을 정복하여 향후 212년간 지배하에 두었다. 이 시기부터 대만은 중국본토의 일부로 되었다. 그런데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이후, 조선보다도 먼저 대만은 50년간 일제 식민지배하에 들어갔다.
1945년 해방된 대만은 장개석 국민당이 이끄는 중화민국에 반환되었다.

대만의 주민구성은 주로 본성인과 외성인으로 나뉜다. 본성인은 명·청대 이후 대만으로 이주한 본토인과 이들과 동화된 대만 원주민을 의미하며 대략 인구구성의 80%를 점한다. 외성인은 1945년 이후 중국에서 대만으로 건너간 주민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만 반환 직후 1947년 2.28 사건이 발생한다. 2.28사건이란 외성인과 본성인 간의 갈등이 심화되던 상황에서 외성인 경찰이 노점상 담배판매상을 총기로 구타하는 것에 분노한 대만 주민의 항쟁을 말한다. 이때 대만을 지배하던 외성인들에 의해 대만주민들 3만여 명이 학살당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장개석이 대만으로 패주하여 대만을 통치하면서 완전히 묻히게 되었다.

총통 직선제 이후 대만 총통[사진 : 위키백과]
총통 직선제 이후 대만 총통[사진 : 위키백과]

이후 대만은 장개석 국민당 독재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1975년 장개석이 사망하자 아들 장경국이 1988년까지 집권하게 되는데, 1987년 계엄령을 해제하고 정치개혁을 추진함으로써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창당하게 된다. 1988년 권력을 이어받은 국민당 리덩후이는 첫 타이완 출생 총통으로서 1996년 첫 총통 선거에서 당선된다. 그러나 2000년 민주진보당 출신 천수이벤이 당선되어 대만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가 실현된다. 4년제 임기인 대만 선거제도에서 민진당 천수이벤이 연임 8년, 2008년부터 국민당 출신 마잉주 총통이 8년을 번갈아 집권하다가 2016년부터 현 차이잉원 민진당 집권기를 걷게된다.

역설적인 것은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은 양안관계에서 친중적 입장,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고, 민진당은 대만 독립을 추진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국민당 집권기에는 양안관계가 발전하고, 민진당 집권기에는 양안관계에서 갈등이 고조되게 되는데, 현재 차이잉원 집권기에 양안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종합적으로 대만은 오랫동안 하나의 독립국가라는 인식이 취약했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 명말 정성공, 청나라, 일본제국주의, 본토국민당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르러 민진당 세력이 등장하면서 하나의 독립국가 지향이 형성되고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독립지향과 연결된 미국의 간섭문제이다. 민진당의 독립지향을 미국이 지원하면서 양안관계 위기가 본격화되고, 중미갈등에 더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대만문제, 양안문제가 중미대결의 핵심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점을 잘 보아야 한다. 주권국가의 자주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엇이 진보적이며, 무엇이 퇴행적인가 하는 점을 미국의 간섭문제와 연동하여 보지 않으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판단에 빠질 우려가 있다. 내부문제는 내부 스스로가 풀어야 한다  

2. 중미관계속에서 대만 문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 “대만관계법”을 둘러싼 미국의 태도를 정확히 직시하는 것이다.

하나의 중국원칙 부정

무엇보다 중미수교에 중미간 합의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이 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49년 중국혁명이 성공하고, 중국본토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된 이후 1960년대까지 중미관계는 갈등관계였다. 대표적 사례는 1958년 금문도 포격전이다. 금문도는 중국본토와 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중국은 대만 금문도에 47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었으나 미국의 지원을 받은 대만은 이를 방어하였다. 당시 미국은 에식스급 항공모함이 포함된 제7함대와 당시 최신예 전투기인 F-104A 스타파이터를 파견하여 대만을 지원하였다.

그런데 중국이 1959년 둥펑(DF) 시리즈 미사일을 개발하게 되고, 1964년 10월 16일 원자폭탄, 1967년 6월 17일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하여 양탄일성을 달성함으로써 미국의 대중국정책이 전환하게 된다.

중미수교과정에서 중미간 합의의 핵심은 ‘하나의 중국’ 원칙이었다. 1971년 키신저의 북경 방문 이후 1971년 10월, 유엔은 2758호 결의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인민의 대표로 인정하였다. 1972년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모택동 중국 주석과 발표한 상하이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 양안의 모든 중국인은 하나의 중국에 속해 있으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미국이 인정”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로써 1979년 중미는 공식 수교하고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였으며, 타이베이 주재 미국 대사관 을 폐쇄하게 되었다.

이러한 하나의 중국원칙은 대만과 중국, 양자 모두 확인해 온 바다. 
중화민국 정부(대만)는 대만 해협 양안관계 설명서에서 “하나의 중국을 확고히 주장하며, ‘두 개의 중국’과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에 반대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또한 헌법 서문에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성한 영토의 일부분이다. 조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성하는 것은 대만 동포를 포함한 전제 중국 인민의 신성한 책무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92년 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중국원칙에 공식 합의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트럼프 집권 이후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왜 하나의 중국을 지켜주어야 하나?”라며, 40년 전 수교약속 어기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미국 고위관리들의 대만여행 금지를 규정한 대만 여행법을 개정하고, 2019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는 “민주주의 동맹 대상 국가에 대만,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이라고 함으로써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문구를 삽입했다. 당연히 중국은 ‘무력통일’을 언급하며 엄포를 놓았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불변하다”는 원칙을 재확인하였지만, 지난 10월 22일 바이든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대만은 반드시 미국이 방어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양안문제를 중국 내부문제라고 하지 않고 명백한 개입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렇게 중미갈등에서 대만문제가 핵으로 떠오르게 된 배경의 하나는 미국이 중미수교의 합의사항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기 시작하는데 있다.

미국의 이중행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벌이는 교활한 이중적인 행태이다. 
이 대목에서는 대만관계법을 둘러 싼 미국의 행태를 잘 살펴봐야 한다.

 중미수교 직후인 1979년 4월 10일 미국은 대만에 대한 별도 조치로 대만관계법을 제정한다. 대만관계법은 ‘대만 안보를 미국이 책임진다’고 규정한 미국 국내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제국주의가 벌이는 전형적인 이중행태이다. 한 손으로는 중국과 수교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대만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대만관계법이 미국 국내법이라는 사실이다. 원래 미국은 국제조약으로 불안한 사항은 미국 국내법으로 규정하고, 국제조약보다 우선 적용하거나 조약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하는 것을 능사로 한다. 대표적인 것이 무역관련 슈퍼 301조 같은 것이다. 슈퍼 301조는 국제무역기구(WTO) 조약이나 양자협정과 관계없이 미국 산업이 위험에 처할 때는 미국이 언제라도 무역보복을 할 수 있는 조항이다. 이같은 미국 국내법은 제국주의 법률이라 할 만하다. 
대만관계법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시 미국의 자동개입조항으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관계에서 양면전략과 전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82년 미국은 중국과 8.17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그 내용인즉, ‘미국은 대만에 판매할 무기를 중미수교 이후 몇 년간 제공된 수준을 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점차 감소시켜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8.17성명 발표 직전 대만관련 ‘6개 보장’이라는 별도의 성명을 발표한다. 그 내용은 “1) 미국은 타이완에 대한 무기수출에 있어 중국과 사전협상을 진행하지 않는다. 2) 양안 중재자 역할 하지 않는다. 3) 무기수출기한을 정하지 않는다. 4) 대만 관계법을 수정하지 않는다. 5) 대만 주권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변경하지 않는다. 6) 대만에게 중국협상 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과는 대만에 무기를 팔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 대만하고는 계속 무기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한 격이다.
이러니 중미대결 속에서 대만문제가 갈등의 핵으로 부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3. 미국이 대만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미국은 절대로 대만을 포기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로 지정학적으로 대만은 미국의 불침항모이기 때문이다.
맥아더는 이미 “대만은 절대로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 동안 미국은 대만관계법에 의거해 대만에 무기장사를 해 오며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2010년 이래 대만에 230억 달러(약 26조 3400억원)의 무기를 판매했고, 2020년에는 최신형 F16 블록 55대와 보잉사가 제작한 26억 달러의 하픈 대함 미사일을 판매하였다. 2021년 8월에도 7억 5천만 달러(9천 500억원) 미사일을 팔아먹었다.
결국 대만은 반도체를 열심히 팔아서 미국 무기를 잔뜩 사오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다가 이미 오래전부터 비공식적으로 미군이 주둔해 왔고, 이제는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 공개적으로 미군주둔 사실을 까밝히는 상황이다. 또한 대만주재 미국사무소를 대표부로 전격 승격하였다. 
중미간 서로를 겨냥한 군사훈련, 미 항모전단의 출몰, 방공식별 구역 비행 등의 일련의 군사행동은 중국과 대만 사이의 대만해협, 그리고 동중국해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미야코 해협, 남중국해에서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바시해협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중국의 둥펑 미사일 시리즈는 주로 미 항모전단을 겨냥한 것이며, 이 둥평 미사일을 탐지 식별하는 시스템이 한국 성주에 배치된 사드이다.

이제 중미갈등이 전략적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조건에서 미국은 대만을 불침항모로 중무장시키고, 직접 진주하려는 속셈을 숨기지 않는다. 미국으로서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중국과의 일전에서 대만은 미국의 승리를 담보하는 필수불가결한 병참기지로 인식하고 있다.

둘째로 지경학적으로 대만은 미국의 첨단반도체 공급기지이다.
지식경제시대에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현재 세계 반도체 생산의 80%는 대만, 한국, 일본 등 아시아가 담당하고 밌고 미국은 12%밖에 안된다. 기술력으로 보아도 대만, 한국은 5나노급 파운드리 생산체계를 구축해 가는 반면 미국은 10나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반도체 공장 하나를 신설하는데는 2년 반 정도가 걸린다. 

이런 조건에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굴기를 차단하고,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재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치열한 미중간의 시간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때문에 이 기간동안 대만 TSMC(타이완 반도체)가 미국에 첨단반도체를 차질없이 공급해 주어야 한다. 대만이 공급을 중단하면 미국의 첨단산업 자체가 올스톱하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원자재의 공급부족사태, 특히 자동차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얼마나 치명적으로 미국 산업에 영향을 주는 지는 남김없이 증명되었다. 이런 점에서 반도체 문제는 중국의 아픈 곳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때문에 미국은 대만을 포기할 수 없다. 포기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대만을 시급하게 장악해야 하는 것이다.
전망적으로 중미간 반도체 전쟁은 무승부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과도기에 중미간 상호 승부수를 두게 된다면 결국 대만 반도체를 둘러싼 대결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아마도 TSMC의 생산능력을 파괴하는 치고 빠지는 국지전 전술을 택할 수도 있겠다.


양제츠와 제이크 셜리반[사진 : 뉴시스]
4. 최근 중미 관계

최근 대만을 사이에 두고 중미간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중미간 대화채널이 열리고 있다. 지난 9월 10일 시진핑 바이든 사이의 전화통화가 바이든 집권 이후 처음으로 진행되었고, 27일에는 캐나다에 연금되어있던 화웨이 부회장 멍완저우가 석방되어 중국에 돌아왔다. 10월 7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제이크 셜리반 미 국가안보좌관은 12월 중미 화상 정삼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같은 화해분위기는 지금부터 내년초까지 당분간 중미가 전술적으로 대결과 협상을 병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바이든 지지율이 9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하여 급경사로 추락하고 있다. 또한 11월 2일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에게 패배하였다. 버지니아주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수도(리치먼드)가 있었을 정도로 민주당의 텃밭이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는 12월까지 정부 부채한도를 높여야 하는 입장에서 내부에 집중하려면 대외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현재 미국무역적자가 심화되는 조건에서 트럼프 시절 중미간 합의한 농산물 등 미국상품에 대한 2,400억 달러의 구매 약속을 이행하라고 중국에 요청해야 하여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상황이기도 하다. 여러 면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일시적으로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중국 역시 올해 11월에 열릴 예정인 중국공산당 제19기 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9기 6중전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해야 한다. 때문에 내부결속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다. 뿐만 아니라 내년 2월 북경 동계올림픽 역시 성공리에 치루어야 할 입장이다. 이런 면에서 중국 역시 미국과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점들이 작동하면서 최근 중미간에는 갈등이 지속 심화되는 가운데 일시적인 대화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전략적 대결은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할 것이다.

5. 세계의 화약고는 이제 동아시아

얼마 전 까지 세계의 화약고는 중동지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동아시아로 세계의 화약고가 바뀌었다.

왜 그런가?
바로 미국 때문이다.
미국이 모든 화력을 중미대결, 북미대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역대 최고의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최고강도의 군사행동이 전개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극초음속 무기의 전시장으로 되고 있고, 북과 남은 각종 미사일과 SLBM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일본 역시 방위비에서 ‘1%룰“을 깨며 역대 최고로 증액하고 있고, 멀리 영국과 프랑스 함대까지 동아시아에 진출하여 미국과 군사훈련을 함께 벌이고 있다.

작금의 이 같은 사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만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우리 역시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중미대결의 한복판으로 말려들어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신냉전의 도래를 막고, 현대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남북이 하나되어 강력한 통일국가의 힘으로 평화의 억지력을 형성하는 길밖에 없다. 동아시아를 현대판 화약고로 밀어 넣는 원흉은 미 제국이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약화시켜 내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에서의 위험천만한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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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를 출산가족부로’ 전근대적 신문 광고 장본인은?

  • 기자명 장슬기 기자
  •  입력 2021.11.05 10:52
  •  댓글 1
    
 
 

최성규 인천 순복음교회 원로목사, 박근혜 정부 국민대통합위원장 정치참여 논란
과거엔 ‘노무현은 북한 대변인’ 비난광고도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설립자이기도, 학교 측 “개인 돈으로 광고, 학교와 무관”   

대학 설립자이자 목사가 일간지에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내용의 지면광고를 내 논란이다. 해당 광고주는 과거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북한 대변인’ 아니냐고 비난하거나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멈춰달라는 등 논란이 될만한 광고를 해온 인사이자 탄핵 직전 박근혜 정부에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참여했던 인사다. 

지난 4일 경향신문 오피니언면에는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이자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설립자·총장 명의로 “저출산 문제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여성가족부를 출산가족부로 개편하자”는 내용의 광고가 실렸다. “출산을 원하면 가정에게 특혜를 주자”며 자녀를 출산하면 임대아파트를 일정 기간 무상으로 임대해주자는 내용과 함께 “출산은 여성만의 특권, 출산은 국력, 출산을 하면 여자가 어머니가 된다” 등의 주장을 담았다. 

▲ 4일자 경향신문 오피니언면 광고
▲ 4일자 경향신문 오피니언면 광고

 

여성가족부의 다양한 역할을 무시한 것도 문제지만 여성의 역할을 출산으로 좁히는 발상은 여성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부적절한 주장이다. 게다가 여성에게 출산을 압박하는 것 역시 저출생의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행위다. 또한 임신한 여성이나 애 낳는 가정에게 일정 지원금을 주는 식의 방식으로 저출생(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주장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사립대학교 광고비 집행내역’을 보면 성산효대학원대학교는 2019년 5월과 7월 각 330만원씩 국민일보에 학교홍보 신문광고를 집행했다. 2019년 4월부터 11월까지 당시 최성규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총장 명의로 국민일보에 집행된 광고는 총 6건이다. 

두건은 해당 대학 홍보 광고였고, 나머지는 “예수님의 꿈, 우리의꿈”, “효가 살면 나라가 산다”, “효를 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등의 메시지를 담거나 “태아도 생명이다, 생명은 인권보다 법보다 우선이다”라며 낙태 반대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해당 광고에는 “국회는 출산을 장려하고, 낙태를 방지하는 법안을 제정하라” 등 여성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고 출산의 도구로 보는 시각을 담았다. 

▲ 지난 2019년 최성규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총장 명의로 국민일보에 실은 6건의 광고
▲ 지난 2019년 최성규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총장 명의로 국민일보에 실은 6건의 광고

 

대학 총장(명예총장) 명의로 이러한 부적절한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학교 측은 어떠한 입장일까.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관계자는 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부적절한 광고라는 지적에 대해) 충분히 지적할 수 있고 (최 총장이 해온 광고에 대해) 꾸준하게 비판이 있었는데 학교를 대표해서 한 건 아니고 개인적 차원에서 하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해당 관계자는 “원래 효운동을 해온 은퇴한 목사님인데 그 맥락에서 출산운동, 출산장려금 운동을 하고 저출산 문제도 고민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학교 홍보 명목으로만 광고를 집행하고 나머지 광고들은 (최 총장이) 개인 비용으로 부담한다”고 답했다. 학교입장처럼 보인다는 질문에 대해 “학교와 전혀 관계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설립자이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최성규 명예총장은 탄핵 직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임명됐던 인사다. 2016년 11월30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당회장 목사를 이 자리에 임명하자 종교인의 정치참여를 비판하는 목소리부터 불교계 등 다른 종교계에서도 거세게 반발했다. 게다가 당시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 관련해 비판을 받던 시기였다. 

▲ 2013년 6월27일 동아일보 오피니언면 광고
▲ 2013년 6월27일 동아일보 오피니언면 광고

 

또한 그가 과거 부적절한 내용의 광고를 했던 사실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2014년 7월30일자 동아일보에 “돌은 던지면 맞겠습니다”란 광고를 통해 세월호 관련 “모든 단식 농성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멈추라”라고 했고, 같은해 9월15일 국민일보에 “이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나라를 위해 결단해주어야 합니다”란 광고에서 “이제 그만 노란 리본을 내리고, 희망의 네 잎 클로버를 달자”고 주장했다. 

2013년 6월27일 동아일보에는 “생명과 피로 지킨 NLL을 괴물이라니”라는 제목의 광고에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 대변인이었나?”라며 비난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8월7일자 국민일보에는 “5·16은 역사의 필연이자 변화의 기회였다”며 군사쿠데타를 옹호하는 광고를 기재해 박근혜 당시 후보를 지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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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금' 위한 미국의 중동 전쟁, 그리고 사담 후세인의 두 얼굴

[전쟁국가 미국] 1차 이라크전쟁(1990.8-1991.2) (중)

1979년부터 2003년까지 이라크를 통치했던 사담 후세인(1937-2006년)은 오늘날 이웃나라인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불법 점령한 침략자, 제 나라 국민을 독가스로 살해한 잔인한 독재자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미국 등 서방측에 의해 과장 유포된 것일 뿐, 그의 실제 행적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통치 방식이 강압적이긴 했으나, 그는 자국의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이라크를 아랍 최초의 복지국가로 만들어낸 민족주의자였다. 또한 이란의 혁명 위협으로부터 아랍을 지켜낸 데 이어(이란이라크전쟁), 아랍 국가들의 경제.군사 협력을 통해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아랍의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을 실현하려 했던 아랍주의자였다.

 

그러나 후세인의 이러한 시도는 미국의 중동 전략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게도 중동의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권은 핵심 국익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라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소련과 손을 잡은 것을 미국은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미국의 숙적 소련의 영향력이 중동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란의 이슬람혁명이라는 돌발 사태에 대한 임시 대응으로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하기는 했으나, 전쟁에서 승리한 이라크의 지역 패권 장악만은 반드시 저지하려 했다. 이란이라크전쟁 승리 2년 만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일어난 사태 전개였다.


 

미국은 1차 이라크전쟁을 통해 국제 평화의 수호자라는 명분을 확보한 것과 함께 이라크의 지역 패권 장악을 저지했고 중동지역에 군사적 교두보(미군의 사우디 주둔)를 마련하면서 중동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의 아랍 전문가인 스티븐 펠레티에의 2001년 저서 <이라크와 국제 석유 시스템 : 미국은 왜 걸프전쟁을 벌였나>를 중심으로 1차 이라크전쟁 당시 석유 통제권을 둘러싼 이라크의 시도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알아본다. 펠레티에는 버클리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언론인 생활을 거쳐 1980-88년 중앙정보국(CIA) 선임 정치분석관으로 이란이라크전쟁을 관찰해 책을 냈으며, 이후 미 육군 국방대학(War College) 선임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2004년에는 <미국의 석유전쟁들>이란 책을 펴냈다.


 

석유산업 국유화, 모사데크의 실패와 후세인의 성공


 

펠레티에의 핵심 요지는 1928년 이후 미영 석유기업들의 국제카르텔이 장악했던 석유통제권이 1973년 1차 석유파동에 의해 사우디 등 산유국들에(OPEC) 일단 넘어갔고, 이후 통제권을 둘러싼 투쟁이 1차 이라크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중동의 주요 산유국은 사우디, 이란, 이라크 등 세 나라이다. 이중 사우디는 1945년 2월 루스벨트-사우드 국왕의 석유-안보 교환 협정 이래 줄곧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이란은 1951년 모사데크의 국유화 시도가 국제카르텔의 석유 판로 봉쇄와 미 CIA의 비밀공작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반면 1961년 12월 시작된 이라크의 국유화는 10여년의 우여곡절 끝에 1972년 성공한다. 

 

이라크의 석유산업 국유화를 성공시킨 인물이 당시 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이다. 그는 소련 및 동구권과의 바터무역을 통해 자국산 석유의 판로를 개척해냈다. 특히 1973년 10월 석유파동이 발생하면서 이라크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석유카르텔의 보복을 피할 수 있었다. 국유화의 시점이 절묘했던 것이다. 국유화가 단행된 1972년 이라크의 석유 수출 수입이 574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은 서방측의 방해가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반증한다. 그러나 2년 뒤인 1974년 석유 수입은 57억 달러로 무려 1천만 배 증가한다. 

 

아랍 최초의 복지국가


 

이라크는 자원 국유화로 얻은 국부를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투입했다. 1인당 식량 소비 액수가 1958년 47.64달러에서 1975년 159달러로 4배 가까이 증가했고, 1970년대 말에는 1인당 국민소득 3천 달러 이상으로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지역 전체에서 최고의 소득수준을 달성한다(한국은 1977년 1천 달러 목표 달성). 특히 여성들도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과 공무원, 정계에도 진출하는 등 중동지역에서 여성의 지위가 가장 높았다. 말하자면 이라크는 아랍 최초의 복지국가였던 셈이다.


 

다만 이라크는 강력한 통제국가였다. 무역 상대였던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로부터 사회통제 수법을 전수받은 것이다. 1978년 전체 공무원 66.2만 명 중 15.1만 명이 경찰, 공안 등 사회통제 담당이었다. 후세인은 이처럼 강력한 사회통제를 근대화 작업에 활용했다. 예컨대 '글자를 배우든가, 아니면 감옥에 가든가'를 강요해 문맹률을 급속하게 낮춘 것이다. 후세인의 강압적 문자교육은 너무나 효과적이어서 유네스코가 현지 조사를 나올 정도였다.

 

반면 이란의 팔레비 국왕은 문맹률이 80%나 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군사동맹과 미제 첨단 무기의 대거 도입으로 군사강국이 되면 그것이 곧 근대화라고 믿었다가 결국 국민들의 저항으로 실각하고 말았다.

 

이라크 정부의 이러한 민중지향성은 1958년 군사혁명 이래의 전통이었다. 펠레티에에 따르면 1958년 이라크 혁명은 아랍 국가들 중 가장 근원적 혁명이었다. 즉 밑으로부터의 혁명이었다. 파이잘 국왕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수립한 압둘 카림 카심 장군은(1958. 7-1963. 2 집권) 광범위한 사회경제 개혁 조치를 시행했다. 주택과 상점 임대료를 10-20% 인하하고, 국민들의 주식인 빵에 대해 33%의 정부보조금을 지급하며, 8시간 노동제 및 노동조합 결성을 허용하고, 상병 및 실업보험을 시행하고 토지개혁을 추진했다.

 

1960년 9월 바그다드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립총회를 주관하고 1961년 12월 이라크 석유산업 국유화를 시작한 것도 그였다.


 

카심 장군은 1963년 2월 바트당(아랍사회주의부활당)에 의해 실각, 살해됐으나 그의 개혁정책은 지속된다. 바트당은 10개월 뒤 군부 출신에 정권을 빼앗겼다가 1968년 7월 재집권에 성공했는데, 두 차례 정권 장악 과정에서 미국 CIA의 도움을 받아 공산주의자들을 대거 숙청한다. 이처럼 바트당정권은 공산주의와는 앙숙이었으나 집권 후 실제 정책은 사회주의 성향이었다. 이에 대해 펠레티에는 근본적 사회혁명에 대한 이라크 국민들의 기대로 인해 개혁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 석유 국유화 등 자립경제에 대한 서방측의 적대적 태도 때문에 결국 바트당이 기댈 곳은 소련 등 동구권 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아랍의 수호자를 자임한 후세인


 

이란 이슬람혁명이 진행 중인 1979년 7월 대통령에 취임한 후세인은 1980년 9월 이란에 대한 공격을 단행한다. 개전에 앞서 후세인은 아랍의 방위는 아랍인이 맡는다는 취지의 선언(일종의 '아랍헌장')을 했다. 당시는 1950년대 나세르 집권 이래 아랍의 맹주로 군림했던 이집트가 미국의 중재 아래 아랍의 숙적 이스라엘과 단독 강화를(1979년 3월 캠프데이비드 협정) 한 대가로 아랍연맹에서 축출된 상태였다. 말하자면 나세르의 이집트를 이어 후세인의 이라크가 아랍의 맹주로 떠오르는 참이었다.


 

후세인이 아랍의 수호자를 자임한 데는 미국에 대한 실망감도 작용했다. 이란 혁명의 여파로 사우디, 쿠웨이트, 바레인의 시아파 인구가 반정부 봉기를 일으키고, 호메이니는 이슬람혁명을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에까지 수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도 미국은 아무런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련의 개입 위험성과 테헤란 대사관 인질들의 안위 때문에 군사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의 이란 공격은 아랍 입장에서는 일종의 방어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은 전쟁자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라크를 지원했다.

 

▲2003년 4월 9일 사담 후세인 동상이 이라크 바그다드 알 피르다우스 광장에서 끌어내려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법정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담 후세인. 그는 시아파 무슬림 학살에 대한 유죄가 확정돼 2006년 12월 30일 사형에 처해졌다. ⓒAP연합뉴스

이란·이라크전쟁 승리 이후 후세인의 구상


 

1988년 7월 이란의 패배 인정 후 후세인은 평화협상을 기다리면서 새로운 아랍의 질서를 모색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전, 미국 언론에 보도된 후세인의 구상은 다음과 같다.


 

우선 요르단, 이집트, 예멘 등과 함께 가칭 '아랍협력협의회(ACC)'를 구상했다. 역내 무역블록 형성과 관세 혜택 등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1989년 2월 17일 <뉴욕타임스>) 

 

두 번째는 사우디, 이집트 등과 함께 아랍의 독자적인 방위산업을 육성하려 했다. 자주 국방을 꾀한 것이다.(1989년 6월 <인터내셔널 디펜스 리뷰>의 이라크 장성과의 인터뷰) 

 

세 번째는 사우디, 쿠웨이트, 아랍에미레이트(UAE) 등과 함께 세계 석유 공급에 대한 통제권을 확고히 하겠다는 계획이다.(1989년 10월 23일 <워싱턴 포스트>)


 

이상은 당시 언론 보도일 뿐, 이제 와서 실제 실현 가능성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아랍의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을 지향하는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그것은 미국 등 서방측에는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 경제의 혈액인 석유의 공급을 소련의 우방국 이라크 주도로 통제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1970년대 이후 미국산 무기의 절반 가까이를 사우디 등 아랍 산유국들이 구매하는 상황에서 아랍의 자체 무기 생산은 미국 군산복합체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서방은 아랍이 서방의 요구에 순종적인 석유 공급처로 남을 것을 원하지, 자체 산업 기반을 확보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 

 

전후 복구 및 전쟁부채 상환이라는 장애물


 

문제는 후세인의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려면 우선 8년간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 경제의 복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전쟁 부채를 갚아야 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바로 뜻밖의 장애물이 등장한다. 쿠웨이트, 아랍에미레이트 등의 방해공작(?)이 그것이다.


 

이라크의 전쟁 부채는 800억 달러, 이중 370억 달러는 사우디, 쿠웨이트 등 아랍 산유국에 진 빚이었다. 전쟁 부채는 결국 석유 수출 수입으로 갚아야 하는데 당시 유가가 너무 낮았다. 이라크 입장에서는 배럴당 25달러는 돼야 했는데 당시 유가는 17달러였다. 당시 이라크는 유가가 1달러 떨어지면 석유 수입이 10억 달러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쿠웨이트, 아랍에미레이트 등이 생산량까지 속여가면서 할당량 이상의 증산으로 유가를 더욱 끌어내리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인구 소국인 이들 나라가 유가 인하를 감수하고 증산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는 군사강국인 이라크의 이익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행위였다.


 

특히 쿠웨이트는 이례적으로 전쟁 부채의 상환까지 요구했다. 이라크가 아랍을 대신해 전쟁에 나섰다는 점에서 사우디는 전쟁 부채를 공여로 처리하고 상환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쿠웨이트가 전쟁 부채의 상환을 요구하자 유럽은행들도 줄줄이 상환 연기를 불허하면서 이라크의 재정 사정은 날로 어려워졌다. 쿠웨이트는 전통적인 영국의 피후견국으로 대처 총리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주장하는 주전파였다.


 

결국 후세인은 1990년 7월 25일 주이라크 미국 대사 에이프릴 글래스피를 불러 미국의 협조를 호소했다. 후세인은 '전쟁미망인의 연금도 주지 못할 정도로' 이라크 재정이 쪼들리고 있다면서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쿠웨이트, 아랍에미레이트의 석유 증산을 막고 쿠웨이트 전쟁 부채 문제 등이 해결되지 못할 경우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글래스피 대사로부터 희망적 답변을 듣지 못한 후세인은 1주일 후인 8월 2일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 48시간 만에 점령을 완료했다.
 

 

후세인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글래스피 면담 당시 미국과 쿠웨이트 등 왕정 산유국들이 이라크를 상대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는데, 어쩌면 쿠웨이트를 볼모삼아 '부채의 덫'에서 탈출하기 위한 담판을 지으려 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후세인은 8월 12일부터 9월 30일까지 네 차례 발표한 성명에서 이러한 의향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후세인의 속셈은 결정적 오판이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1041218366727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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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있어도 무용지물 주민센터 수두룩…시각장애인 권리는 어디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11/05 10:59
  • 수정일
    2021/11/05 10: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르포] 점자 있어도 무용지물 주민센터 수두룩…시각장애인 권리는 어디에

 

최종수정 2021.11.05 08:55 기사입력 2021.11.05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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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안내판 있어도, 쓸 수 없는 상태로 방치
버튼 향균필름 부착 탓에 점자 느끼기 어렵기도
"장애인 편의 시설 지속적으로 개선, 관리해야"

시각장애인을 유도하는 선형 보도블록이 중간에 끊기고 심하게 훼손돼 있다. /사진=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시각장애인을 유도하는 선형 보도블록이 중간에 끊기고 심하게 훼손돼 있다. /사진=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이건 좀 아닌 것 같네요." , "시각장애인분들이 아주 불편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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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장애인들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점자. 행정복지센터 등 공공시설은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현행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점자 편의시설을 설치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공공시설에 점자가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있어도 무용지물인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점자의 날'을 맞아 4일 오전 방문한 서울시 동대문구 A행정복지센터는 대체로 점자 편의시설 잘 갖춰져 있었지만, 일부 시설은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었다.

    센터 입구에 들어서 시각장애인이 건물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든 점자촉지도를 찾아봤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점자촉지도는 점자로 되어 있는 시각장애인용 지도로, '장애인·노인·임산부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시설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건물에 들어서기 전 목적지의 위치나 건물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배너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용 지도(왼쪽), 지도가 점자블록 위에 세워져 있는 모습./사진=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배너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용 지도(왼쪽), 지도가 점자블록 위에 세워져 있는 모습./사진=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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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보니 A행정복지센터의 점자촉지도는 센터에 들어서는 입구 바로 옆에 있었다. 그러나 지도는 앞쪽으로 세워진 여러 개의 배너에 가려져 있는 상태였다.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고서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지도는 점자블록 위에 떡하니 세워져 있었고, 음성안내 버튼은 눌러도 작동되지 않았다.

  •  

  •  엘리베이터도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있어 보였다. 엘리베이터 버튼 위에 코로나19 확산 방지 항균필름이 붙어 있어 손끝으로 점자를 느끼기 어려웠다. 계단 앞에 보도블록은 설치되어 있었지만, 계단 손잡이에 층수를 알려주는 점자 표지판은 없었다.

    또 다른 행정복지센터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자촉지도가 아예 구비되어있지 않거나, 장애인화장실임에도 입구나 벽면에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점자 표시가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행정복지센터의 점자 편의시설은 미흡한 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국어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0년 점자 표기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203개 행정복지센터에 의무 설치되어야 할 점자 편의시설은 총 6903개였다.

     

    러나 이 중 적절하게 설치된 것은 29%인 2003개에 그쳤다. 부적정하게 설치된 것은 2463개(35.7%)였으며, 설치되지 않은 경우도 2437개(35.3%)에 달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시민 편의를 위해 있는 센터에서조차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점자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장애인 화장실(왼쪽), 향균필름이 붙어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사진=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점자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장애인 화장실(왼쪽), 향균필름이 붙어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사진=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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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9년 기준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전국 시각장애인은 총 25만3055명이다. 이들 중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각장애인에게 행정복지센터 등 공공업무시설은 복지시설, 병원에 이어 세 번째로 이용 빈도가 높았고 26.8%가 매월 공공업무시설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시민 생활과 밀접한 공공시설에 장애인 편의 설비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A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점자촉지도가 원래는 전원이 연결되는 장소에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센터 입구에 출입명부와 체온 체크 장소를 만들다 보니 공간이 협소해져 부득이하게 위치를 옮기게 됐다"라며 "기계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 상태이며, 며칠 내로 설비를 마쳐 잘 보이는 공간에 놓을 수 있도록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는 정부 또는 공공기관에서 장애인 편의 시설을 지속적으로 개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은 "여전히 시각장애인이 혼자 힘으로 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연합회에서도 공공시설을 대상으로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조사를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며, 부실한 점이 발견되면 시정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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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들의 외침이 5.18 계승..민주유공자로 예우해야"

오월단체들, 국회앞서 연내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11.04 10:32
  •  
  •  수정 2021.11.0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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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단체와 광주 시민단체들이 3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민주유공자법'제정 촉구를 위한 상경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제공]
오월단체와 광주 시민단체들이 3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민주유공자법'제정 촉구를 위한 상경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제공]

5.18 관련단체와 광주 시민단체들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촉구'를 위한 상경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달 7일부터 국회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 장남수) 회원들과 함께 하려는 뜻이다.

유가족들은 앞서 지난 6월 21일부터 국회 2문(정문)과 3문(남문)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여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지난해 정부가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와 박종철 열사 아버님 고 박정기 선생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하는 예우를 했지만 정작 열사들의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아닌 '민주유공자'로 제 이름을 찾아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더이상 유가족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고 올해 안에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고령의 유가족들이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거리로 나선지 4개월이 지나 이제 또 추운 겨울을 천막에서 맞이하도록 해서는 안되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1987년 6월항쟁이후 법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지난 15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여러차례 발의되었지만 매번 입법화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법안 폐기 이유로는 예산이 부족하다거나 민주화운동 세대 본인들을 위한 셀프법안이라는 등의 핑계가 나왔다. 

참가자들은 "이 모든 것은 법안의 내용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민주유공자법을, 나아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과정을 깎아내리기 위한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이번 국회에서 우원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 또는 행방불명, 상이를 입은 사람으로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심의·결정된 당사자인 민주유공자와 그 유족 또는 가족에 대해 이 법에 따른 예우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5.18단체들과 광주시민단체들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별도의 법률로 국가유공자, 민주유공자 예우가 결정되어 있는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민족민주열사들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신의 올바른 계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4·19 혁명은 1960년에 그치지 않았고, 5·18 민중항쟁도 1980년에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사들의 외침은 4·19, 5·18의 정신을 계승하고 후세대들에 이어져 이 땅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 역시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만 각각 법률을 제정하여 국가유공자와 민주유공자로 예우하고, 그 외 유사한 정도의 민주화 기여도가 인정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해서는 예우를 하고 있지 않아 이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령의 몸을 이끌고 다시 거리로 나선 유가족들의 한 서린 눈물을 하루빨리 닦아 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연내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오월어머니집, 광주진보연대, 광주시민단체협의회가 함께 했다.

"민주유공자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한다"(전문)

한여름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 고령의 민족민주열사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지 4개월이 지나고 있다.  

이 나라는 ‘국가보훈의 주요 영역인 독립·호국·민주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애국의 세 기둥’이라고 하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열사들을 외면하여, 다시금 민주 제단에 피붙이를 바친 유가족들이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맞이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지난 15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수십년간 발의되어 왔지만 입법화되지 못한 채 매번 폐기되고 말았다. 예산이 부족하다며, 민주화운동 세대 본인들을 위한 셀프법안이라며 어처구니없는 말로 핑계만 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법안의 내용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민주유공자법을, 나아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과정을 깎아내리기 위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이번 국회에서 우원식 의원이 발의한 민주유공자법은 사망 상이자 829명에 대하여 국가차원에서 예우를 하자는 내용이다.  

4·19 혁명은 1960년에 그치지 않았고, 5·18 민중항쟁도 1980년에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사들의 외침은 4·19, 5·18의 정신을 계승하고 후세대들에 이어져 이 땅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렇기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마저 희생(당)한 민족민주열사들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이 땅에 오래도록 이어온 민주주의 정신의 올바른 계승인 것이다. 

지난 7월,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찾은 야당의 대선후보는 “5·18정신을 헌법정신으로 희생자의 넋을 보편적인 헌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많은 여․야 정치인들이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오월 열사들의 묘 앞에서 오월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5·18 진상규명과 오월 정신을 계승한 민족민주열사들은 외면하는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75.8%가 민주화운동을 국가와 사회를 위한 헌신, 보훈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국민의 대변자인 국회의원들은 더이상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지 말라. 


벌써 많은 유가족들이 돌아가셨다.  

정부는 작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故 이소선 선생,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故 박정기 선생 등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하였다. 너무 늦었다.  

어머니, 아버지들이 살아계셨을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아닌 <민주유공자>로 제 이름을 찾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령의 몸을 이끌고 다시 거리로 나선 유가족들의 한 서린 눈물을 하루빨리 닦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국회는 더이상 유가족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고 올해 안에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 

 

2021년  11월  3일  

 

5·18민주유공자유족회 /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 오월어머니집  / 광주진보연대 / 광주시민단체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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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의혹’ 김만배·남욱 구속…‘윗선’ 수사 탄력 붙나

등록 :2021-11-04 00:39수정 :2021-11-04 02:34

정민용은 영장 기각…“도망·증거인멸 염려 없어”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왼쪽)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가운데) 변호사,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이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왼쪽)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가운데) 변호사,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이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가 구속됐다.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김씨와 남 변호사의 구속으로 이들의 배임과 뇌물 혐의를 둘러싼 ‘윗선’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은 지난 1일 김씨와 남 변호사, 정 전 실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수사팀은 이들 세 사람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공모해 택지분양 및 아파트 분양 등으로 최소 651억원의 추가이익을 거뒀고, 그만큼 공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구속 기소한 유 전 본부장에 대해서도 김씨에게 적용한 액수와 동일한 배임 혐의를 적용해 1일 추가기소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2일에도 김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당시 법원은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서울중앙지법 서보민 영장전담부장판사는 4일 새벽 12시30분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등의 혐의를 받는 김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남 변호사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심리한 문성관 영장전담부장판사도 같은 이유로 남 변호사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다만 정민용 전 실장에 대해선 “도망이나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특혜·로비 의혹의 핵심에 있는 김씨와 남 변호사가 구속되면서 정관계·법조계 로비 의혹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과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 이른바 ‘50억원 클럽’에 등장한 유력 인사는 물론, 대장동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였던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등으로 검찰 칼끝은 향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검찰은 조만간 곽 의원을 불러 화천대유가 아들 곽아무개씨에게 퇴직금 명목 등으로 50억원을 전달한 경위와 이 돈의 대가성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7873.html?_fr=mt1#csidxdd1e4f2bb920c5eb8c2c1e437be5e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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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자주·통일 달고나’...민족자주농성 3일 차

신은섭 통신원 | 기사입력 2021/11/0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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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자주농성단 참가자들은 시민들에게 ‘자주·통일 달고나’를 만들어 주고 있다. 시민들은 달고나를 먹으며 선전물을 유심히 읽는다.   © 신은섭 통신원

 

▲ 광화문을 지나던 노신사가 농성단에 들러 자주의 중요성을 강조해주었다. 손에는 달고나가 들려있다.   © 신은섭 통신원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 준비위원회(이하 민족위 준)는 지난 1일부터 미 대사관 인근에서 미국에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한미일 3각 동맹 해체, 미국산 첨단무기 강매 반대’를 촉구하며 ‘민족자주농성’에 돌입했다.

 

농성 3일째인 3일 정오에 농성 참가자들이 미 대사관 인근에 모였다. 농성은 오후에만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먼저 1인 연설,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신은섭 참가자는 1인 연설에서 “한미는 11월 1일부터 ‘전투준비태세 종합훈련’이라는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이 훈련에는 주요 군사시설을 선제 타격할 수 있는 한국군의 전략무기로 평가받는 F-35A도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번 훈련의 대북 적대시 성격이 뚜렷이 드러난다”, “미국이 입으로는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본심은 대화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미국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즉각, 영구히 중단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 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농성단 참가자.   © 신은섭 통신원

 

▲ 농성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연설을 하며 시민들에게 미국의 본질을 알려내고 있다.   © 신은섭 통신원

 

‘자주·통일 달고나’는 시민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선전물을 구경하던 한 시민은 달고나를 손에 든 인증 사진을 남기기도 하였다.

 

선전물을 유심히 살펴보던 한 시민은 농성 참가자에게 다가와 “자주는 진보 운동에서 중요한 근본 문제다. 자주가 없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도 이야기할 수 없다. 자주를 위해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여러분을 응원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용산에서 온 김은희 참가자는 3일째 농성을 마무리하면서 “미국이 지금 군사훈련을 하고 있지만, 바이든이 고민이 많을 것이다. 입으로는 조건 없는 대화를 이야기하면서도 군사훈련을 하는 앞뒤가 다른 그 모습을 딱지치기라는 상징 의식으로 심판하고 싶었다”라고 딱지치기 소감을 남겼다. 

 

용인에서 온 권말선 참가자는 “달고나 모양을 완성한 것처럼 한반도의 자주, 민주, 평화통일을 완성해서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 신은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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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사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 선고 받은 강도영 씨

56세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한 가정에 닥친 비극을 다룬 기사. 아버지는 코에 삽입된 호스를 통해 음식물을 섭취했다. 온몸이 거의 마비됐으니 아기처럼 기저귀를 찼다. 폐렴으로 호흡 곤란이 올 수 있어 누군가 곁을 지켜야 했다. 욕창 방지를 위해 두 시간마다 누운 자세도 바꿔줘야 했다.

 

22세 아들은 아버지 돌보기를 포기하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는 존속살인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금세 여러 매체가 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 포털사이트에는 댓글 수천 개가 달렸다. 누구는 "인간의 도리를 어긴 패륜"이라 비난했고, 어떤 이는 "누가 이 청년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고 연민했다. 비난과 연민, 분노와 안타까움은 서로 뒤엉켜 오랫동안 싸웠다. 기사를 읽고 궁금했다. '왜 죽였지?', '22세 아들은 어떻게 살았길래 저런 선택을 했지?' 

 

가난한 처지에서 기약없이 아버지 돌보는 게 막막했다는 내용은 기사에 담겼지만, 허전했다. 모든 매체의 기사는 대구지방법원 판결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청년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공공기관은 왜 돕지 않았는지, 가난의 정도는 어느 정도였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익명 처리된 판결문을 받고, 고양시 법원도서관에서 실명 판결문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굶어 죽은 집에 갔고, 치료 받았던 병원을 찾았다. 청년의 친척과 주변 사람을 만났다. 발로 찾은 사실의 조각과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구속된 청년의 이야기, 이제 풀어놓는다.


 119구급대원이 다급하게 전화한 때는 일요일 오후였다.

 

 

"아버님께서 목욕탕에서 쓰러졌습니다. 빨리 A병원으로 오십시오."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다. 의사는 뇌출혈로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며 동의서를 내밀었다.

 

"비싸지만 생명 살릴 가능성 높은 수술이 있구요. 비용은 덜 들지만 생명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술이 있습니다. 어느 걸로 하시겠습니까?"

 

아들 강도영(가명)은 수술을 선택했다. 일단 아버지(56세)를 살려야 하니,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 강 씨는 몰랐다. 자신은 이미 외통수에 걸렸다는 걸, 자기든 아버지든 둘 중 한 명은 죽어야만 끝나는 간병 전쟁이 시작됐다는 걸 말이다.

 

간병노동이 무엇이지, 가난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모든 걸 알기엔 강도영은 많이 어렸다. 아버지가 쓰러진 2020년 9월 13일, 그는 공익근무를 위해 대학을 휴학한 21살이었다.


수술 후 아버지 의식은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몸은 어제와 완전히 달랐다. 코에는 호스가 연결됐다. 음식을 씹고 삼키고 소화시키는 능력을 잃어 누군가 호스로 음식을 주입해야 했다. 아버지 성기에도 '소변줄'이라는 호스가 연결됐다. 기저귀도 찼다. 타인이 소변과 대변을 치워줘야만 했다. 스스로 약간이나마 움직일 수 있는 신체는 오른쪽 팔과 다리뿐이다.


"평생 누워 지내셔야 합니다. 욕창 생기지 않게 2시간마다 체위도 바꿔줘야 하구요. 회복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의사 말을 곱씹자 눈앞이 캄캄했다. 무릎도 저절로 꺾였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됐다"는 현실이, 120kg에 이르는 자기 몸무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직후, 아들 강도영은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집안 청소를 게을리 했다. ⓒ오지원

대구시 수성구 OO동에 있는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30만 원 집에 도착해선 한동안 불도 켜지 않았다. 캄캄한 집에 가만히 서 있으니, 이제 정말로 이 세상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엄마가 강도영에게 말했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밥 먹고 기다리고 있어."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엄마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얼굴 본 적도 없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 강도영을 맞아준 건 오늘처럼 불꺼진 거실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고 밤 12시께 들어왔다.

 

겁이 많은 강도영은 언제나 불을 켠 채 혼자 잤다. 그게 버릇이 돼 지금도 불을 끄면 불안해서 눈을 감기 어렵다. 아버지가 쓰러지고, 기저귀를 차고, 영원히 일어설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그날도 불을 켜고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눈앞이 어린시절의 거실처럼 캄캄했다.


아버지는 해고된 공장 노동자였다. 해고 기간엔 일주일에 이틀 정도 일당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다 다시 자동차 부품공장에 들어갔다. 월급은 약 200만 원, 어떻게든 둘이 살 순 있는데 1개월여 만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수술비, 병원비, 간병비는 어떻게 하지…'


눈앞처럼 가슴도 까맣게 탔다. 코로나19 탓에 병원 면회는 금지됐다. 바이러스가 아니어도 강도영이 간병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병원은 중증 환자의 간병을 교육받지 않은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돈을 벌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다. 사장님들은 강도영의 뚱뚱한 몸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돈을 버는 건,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첫 달은 아버지가 일한 1개월 월급으로 어떻게 버텼다.


 돈은 조금씩 바닥나고, 쌀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월세, 가스비, 전기료, 통신비, 인터넷 이용료 등 돈으로 처리해야 하는 모든 게 연체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A병원에서 2020년 9월 13일부터 올해 1월까지 입원 치료를 받았다. 병원비가 약 1500만 원 청구됐다. 강도영이 평생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돈이었다. 고모 두 분이 계셨지만 연락 끊긴 지 오래였다. 아버지와 14살 차이 나는 막내 삼촌에게 부탁했다.


삼촌이 돈을 마련했다. 형편이 넉넉해서 통장에서 인출한 돈이 아니었다.


 "도영아, 삼촌 이거 퇴직금 중간정산해서 받아온 돈이야. 네 숙모 모르게 진행한 일이다. 이거 들키면 삼촌 이혼당할 수도 있어."


미안하고, 괴롭고, 고마웠다. 삼촌도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진 뒤 삼촌은 경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저는 사실 형이 결혼한 줄도 몰랐고, 형수 얼굴 본 적도 없습니다. 조카 강도영은 아주 가끔 할아버지 제사 때 봤을 뿐입니다."


아버지를 비용이 그나마 덜 드는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요양급여도 받을 수 없었다. 한국의 요양급여는 65세 이상에게만 적용된다. 아버지는 이제 겨우 56세다. 결국 다달이 나오는 요양병원비와 간병비를 또 삼촌이 냈다.

 

아버지는 가을과 겨울과 봄을 병원에서 보냈다. 삼촌 통장은 바닥났다. 퇴직금을 중간정산 해 평소 왕래 없던 형의 병원비로 썼다는 사실을 숙모가 알게 됐다. 가정 불화가 시작됐다. 삼촌에겐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둘 있었다.

 

"도영아, 이젠 삼촌도 도와줄 수 없다. 아버지 퇴원시켜야겠다." 

꽃 피는 3월, 삼촌은 많이 괴로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도영은 할 말이 없었다. 멍하게 삼촌을 바라봤다. 삼촌 눈은 이미 붉어졌다.


 

▲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 후 누워 생활했던 집 안방의 모습. ⓒ오지원

강도영은 이미 월세 3개월을 밀렸고, 이용료를 못내 전화기와 집 인터넷도 끊겼다. 도시가스도 끊겨 난방도 요리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젠 집에로 아버지를 모셔와 콧줄로 음식을 주고, 대소변을 치우고, 2시간마다 체위를 바꿔주는 간병노동도 해야 한다. 

강도영은 용기를 내 집주인 할머니를 찾아갔다.


 "월세 30만 원 세 번 총 90만 원 밀렸는데, 10만 원만 더 빌려줄 수 있을까요? 보증금에서 100만원 제하는 걸로 하구요. 부탁드립니다."

집주인 할머니가 10만 원을 줬다. 그걸로 급하게 집 인터넷부터 살렸다. 그렇게 와이파이를 이용해 다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 한 편의점 면접에서 처음 보는 사장님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쓰러졌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집 월세도 내야 하고, 아버지 병원비도 벌어야 합니다. 저는 전화기도 끊겼습니다. 일 좀 시켜 주십시오."

 

사장님은 일을 시켜줬다. 시급 7000원.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오후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12시간 노동. 인터넷을 살리고 일을 시작했지만, 끊긴 식량과 배고픔은 해결되지 않았다.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나서 폐기해야 하는 편의점 도시락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래도 배가 고팠다. 따뜻한 밥이 먹고 싶었다. 전기는 아직 살아 있으니 전기밥솥으로 밥을 할 수 있었다. 힘들게 살린 카카오톡으로 3월 24일 새벽 4시 28분에 삼촌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삼촌 저 월급날이 15일인데요. 생활비가 없습니다. 10만 원만 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전화가 안 되는데요. 문자 남겨 주시면 제가 답 드리겠습니다."


잠을 자는지 삼촌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6시간 뒤인 오전 8시 28분에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부탁할 사람이 삼촌밖에 없어요. 쌀이라도 살 수 있게 2만 원이라도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월급 나오면 바로 갚을게요."

 

▲ 22세 강도영 씨는 아버지가 쓰러지고 간병을 책임지면서부터 무기력에 시달렸다. ⓒ오지원

얼마 뒤 삼촌은 쌀, 라면, 즉석카레, 즉석짜장, 간장 등을 사왔다. 강도영은 간장에 밥 비벼 먹으며 약 1개월을 살았다. 알바를 더 알아보려면 살을 빼야 했는데, 탄수화물과 즉석 식품만 먹으니 살이 더 쪘다. 4월 8일 새벽, 요양병원에서 긴급연락이 왔다.


 "아버님 호흡 곤란이 와서 지금 급하게 A병원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그날 강도영과 삼촌은 괴로운 합의를 했다. 아버지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안타깝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마음을 굳게 먹고 병원 담당 의사에게 말했다.


 "아버지 연병치료를 중단해 주십시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의사가 답했다.


"아버님 상태가 다시 좋아졌습니다. 연명치료 중단 요건에 해당하지 않구요. 계속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의사에게 강하게 말했다.


 "병원비가 없다구요! 아버지를 퇴원시키겠습니다. 집에 가게 해주십시오!"


의사는 "지금 나가면 아버지가 위험하다, 대소변 치우고 식사 제공하는 일을 훈련도 받지 않은 아들이 할 수 있겠느냐"며 반대했다. 아버지는 다시 요양병원보다 비싼 A병원에 입원했다. 병원비 걱정이 머리와 가슴을 지배했다. 강도영은 자기를 받아준 편의점 사장님을 찾아갔다.


 "아버지 병원비를 내야 합니다. 또 응급치료를 받아서요. 월급을 미리 땡겨 줄 수 있을까요?"

 

사장님은 본사 원칙 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온 세상이 벼랑끝처럼 느껴졌다. 병원에 다시 강하게 요청했다. 정말 돈이 없다고, 아버지 퇴원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나가겠다고. 어눌하게 말할 수 있게 된 아버지도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강도영 씨는 퇴원 이후의 일에 대해 병원 측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퇴원 허가를 받았다. 병원비는 또 삼촌이 냈다. 수술비, 입원비, 요양병원비, 간병비… 삼촌은 약 2000만 원을 병원비로 썼다.


 거의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대중교통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했다. 사설 응급차를 불렀다. 비용이 8만 원 나왔다. 이 돈도 삼촌이 냈다. 삼촌은 아버지가 먹어야 하는 죽으로 된 식사캔, 기저귀 등을 사줬다. 복잡한 마음 때문에 자기 형의 얼굴은 보지도 않았다.

 

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 아버지와 강도영은 4월 23일부터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제 아버지의 삶은 오로지 강도영의 손에 달렸다. 죽 형태의 식사를 콧줄에 넣고, 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고, 2시간마다 자세를 바꾸고, 마비된 팔다리를 주무르고…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간병노동을 22살 강도영이 감당해야 했다.


가스가 끊기고 월세가 밀린 단독주택 2층 집에서 말이다. 둘의 휴대전화도 모두 끊긴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돈은 없는데, 돈을 요구하는 곳은 많고, 돈을 써야 하는 곳은 천지였다.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때로는 죽고 싶었다. 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고 마비된 몸 마사지하던 어느날, 아버지가 아들에게 작게 말했다.


 "도영아, 미안하다.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라. 필요한 거 있으면 아버지가 부를 테니까, 그 전에는 아버지 방에 들어오지 마."


▲ 뇌출혈로 쓰러져 누워 생활한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부를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지원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면 그 시간에 혼자 집에 있는 아버지가 걱정됐다. 일에 집중 못했고, 사장님 인내도 바닥났다. 5월 2일 알바를 그만 뒀다. 편의점을 떠나면서 사장님에게 다시 부탁했다.


"15일에 나오는 급여를 미리 받을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사장은 곤란하다고 했다. 강도영은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의 심정을 편지에 적어 <셜록>에 보냈다. 

"세상이 너무 막막했고 집에 쉽사리 들어가지 못한 채 집앞에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당장 기저귀와 소변줄 교체 등 나갈 돈은 많았는데 막막하고, 좌절감, 또 무능력한 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너무 컸습니다."

 

강도영은 아버지가 들어오지 말라고 한 그 방에 5월 3일 밤 들어가봤다.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강도영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에 담겨 있다.

 

"피고인(강도영)은 피해자(아버지) 방에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피해자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피고인에게 물이나 영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피고인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울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뒤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을 바라봤고, 강도영은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그 후 아버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강도영은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외부의 도움 없이 굶어 죽어가는 동안 그는 자기방에서 울며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모든 걸 포기했는지 집도 치우지 않았다.
 

강도영은 5월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새벽 꿈을 꾸었고, 그 내용을 편지에 적었다. 

 

"아버지가 멀쩡하게 걸으시며 청소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놀라서 아버지께 '괜찮아?'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괜찮다. 빨리 씻어. 청소 끝나면 아빠랑 시내 가서 영화도 보고 돈가스도 먹고 아들 좋아하는 책도 사자'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8시 강도영은 아버지 방문을 열었다. 대변 냄새와 함께 무언가 부패한 냄새가 났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방바닥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코밑에 손을 댔다.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119에 연락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 아버지와 아들 강도영이 살던 집 모습. 강 씨 부자는 이 집 2층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을 내고 살았다. ⓒ오지원

강도영은 도망가지도 않고 집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강도영은 <셜록>에 보낸 편지에 평생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걸 적었다.


 "그저 남들처럼 아버지, 어머니, 저 이렇게 셋이서 저녁 때 마주보고 밥을 먹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겐 그저 하루의 한 순간이지만 저와 같은 사람에겐 제일 간절하고 꼭 얻고 싶은 순간입니다."

 

꿈을 이루고 싶었던 집, 꿈이 실현되지 않은 집, 아버지가 조용히 죽은, 혼자 울면서 시간을 보낸 집… 그 집을 강도영은 끝까지 지켰다. 119 대원은 경찰과 함께 왔다. 강도영은 집에서 체포됐고 경찰과 함께 집을 떠났다.

 

지난 8월 13일 대구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이상오)는 존속살해 혐의로 강도영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강도영은 유기치사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2심 선고는 11월 10일 내려진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1031421261454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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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힘 싣는 여당, 국회 입법 논의 탄력 받나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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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1/11/04 03:28
  • 수정일
    2021/11/04 03:2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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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발의자 권인숙·박주민·이상민·장혜영 공동 기자회견, 여야 대선주자에게 ‘입장 표명’ 요구

정의당 장혜영(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상민, 권인숙 의원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1.11.03.ⓒ뉴시스/공동취재사진

21대 국회에서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한 4명의 국회의원이 3일 한자리에 모여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법안을 논의하자”고 호소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국민의 찬성 여론이 높은 만큼, 더 이상 국회가 외면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개최되는 정기국회 회기는 오는 12월 9일까지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차별금지법을 검토해볼 때가 된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불어민주당도 제정 논의에 전향적인 입장을 내비친 상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정치권의 기류가 여느 때보다 긍정적인 만큼 국회의 차별금지법 논의도 탄력받을지 주목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여야 대선 주자에게 입장 촉구

정의당 장혜영, 더불어민주당 이상민·권인숙·박주민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에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에 관한 논의에 착수하자고 제안했다. 네 의원이 각각 발의한 차별금지법·평등법은 명칭은 다르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하는 내용의 골자를 같이 한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연 배경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이뤄야 한다”며 “더 이상 법안 논의를 미룰 수 없단 절박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민주당에서 처음 ‘평등법’을 발의한 이상민 의원은 “헌법 규범에 맞게끔, 우리가 바라는 그 이치에 맞게끔 세상을 좀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라며 “일부 특정 그룹에 속하는 분들은 이 법에 대해서 ‘사회풍속을 저해한다’ 등 말하는데, 그 말 자체가 차별적이고 매우 삐뚤어진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이 법의 주무 국회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합의가 안 돼 (논의) 안건으로도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청회도 잘 안 되고 있다. 정말 부끄러워할 일 아닌가”라며 “법사위에서 빨리해 달라. 해줄 뜻이 없으면 국회의원 전원이 모이는 ‘전원위원회’에다가 회부해 전체 의원들의 토론에 부치자”고 제시했다.

전원위는 주요 의안에 대해 본회의 상정 전이나 본회의 상정 후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할 때 소집되는 회의체다.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한 가운데 법안을 심사한다. 이 의원은 “사회적 공론화를 해서 이 법이 뭘 막는지, 이 법 때문에 무슨 피해를 주는지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이 여실하게 드러나도록 토론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아가 이 의원은 여야 대선 주자들에게 차별금지법·평등법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밝혀 달라”고 말했다. 그는 “못할 거 없다 회피하지 마시라”라며 “후보들이 정면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줘서 국민의 심판을 받길 바란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차별금지법 공약화를 제안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의원은 “아직 이 후보와 얘기는 안 해봤다”면서도 “기회가 되면 그렇게 (공약화 제안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 박주민 의원은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성립돼 법사위에 회부된 사실을 상기하며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내 상황은 거의 변함이 없는 거 같다”고 답답해했다. 박 의원은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국민의힘과 다른 정당들에 법사위에서 평등법 제정 관련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고 말했다.

권인숙 의원도 “(발의된) 4건의 법안이 체계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개별법으로 구제하기 어려웠던 차별의 사각지대를 포괄하고 실질적인 평등을 구현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반론을 제기하지만, 사회적 합의는 진작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월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5%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에 권 의원은 “국민 10명 중 9명이 찬성한 것”이라며 “개신교 안에서도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보다 높다. 이 법에 어떤 합의가 필요하단 건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첫 발의자 장혜영 “칼자루 쥔 건 민주당”

지난해 6월 21대 국회에서 첫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장혜영 의원은 “부당한 차별로부터 시민을 지켜낼 책무는 여야 대소를 막론한 모든 정당의 책무”라면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민주당”이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스스로 원하는 거의 모든 법안을 야당의 찬반 여부에 관계없이 처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단 것을 여러 번 보여줬다”며 “국민의힘이 만일 (차별금지법에 대해) 또다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상식적인 법안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면 그 억지를 단호히 돌파해낼 책임은 다름 아닌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가진 민주당에 있다. 국민의힘의 핑계를 대면서 이 책임을 더 이상 미루는 건 용납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당론으로 굳히는 것엔 소극적인 입장이다. 다만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정기국회 안에 논의를 공론화하는 작업을 할 생각”이라며 “여야 정책위가 주도해서 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4일 예정된 민주당 정책 의원총회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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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보다는 남북연합을 목표로.."

민주평통 토론회서 '통일부 명칭 남북관계부로 바꾸는게 바람직' 주장도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11.03 10:40
  •  
  •  댓글 0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보다는 남북연합 형성을 당면목표로 설정해야 하며 통일부 명칭도 남북관계부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6월 민주평통 창립 40주년 기념 포럼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통일뉴스 자료사진]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보다는 남북연합 형성을 당면목표로 설정해야 하며 통일부 명칭도 남북관계부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 6월 민주평통 창립 40주년 기념 포럼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통일뉴스 자료사진]

'통일부' 명칭을 '남북관계부'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쟁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2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이석현, 사무처장 배기찬)가 주최한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 기조연설(남북한 UN동시가입의 의미와 통일관련 발상의 전환 필요성)에서 "당장 실현 불가능한 '통일'(Unification)보다는 '남북연합'(Korean Union, KU) 형성을 당면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1991년 9월 18일 유엔동시가입으로 남북은 '두개의 코리아'(Two Korea)를 기정사실화했으며, 이때부터 국제법적으로는 이미 별개의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통일이 곧 될 것 같은 전제하에 남북관계를 논하거나 통일교육을 하는 것은 사실상 모순이라는 것.

또 그해 12월 13일 체결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총리 연형묵'가 서명하였는데, 분단 43년만에 정식 국호와 서명자의 공식 국가직책이 명기된 정부간 공식 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남북은 국제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사실상 통일보다는 상호체제인정, 평화공존을 지향하게 되었다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6.15남북공동선언 제2항에 명시된 '남측의 남북연합제'는 학술적으로 '국가연합'(Confederation)이며,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한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도 연방(Federation)보다는 국가연합(Confederation)에 가까운 남북관계 지향을 드러낸 개념이라고 풀이했다.

"2000년 6월 시점에서도 북한은 당장 실현불가능한 통일보다는 국가연합 형태의 남북관계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아래 올해 1월 8차당대회를 통해 당 규약 중 '당의 당면목적' 규정이 대폭 개정되었다고 짚었다.

남한 적화 또는 공산화 통일로 인식되었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표현을 삭제하고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으로 수정한 것 등은 결코 돌발적인 변화가 아니라 "남북간 국력격차가 시간에 비례하여 커져가는 상황에서는 당분간 통일은 접어두고 남북이 별개의 국가로 각자도생할 수 밖에 없다는 북한의 중장기적 전망과 전략방침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결국 이런 배경을 이해한다면 "북한의 대남 경계심이 커진 상황에서 경제공동체-사회·문화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면서 통일(정치공동체)의 기반을 닦아 나가려 해온 기존 남한의 통일정책은 이제 전면 재검토와 수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따라서 "차기 정부는 이러한 전후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실용적이고 실천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전략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정 전 장관은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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