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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새로운 길은 '핵보유국 재확인, 자력갱생·국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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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12/11 09:46
  • 수정일
    2019/12/1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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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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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 정세'보고서...'레드라인 넘지는 않을 것'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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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0  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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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표방할 새로운 길은 핵보유국 재확인, 자력갱생, 중국·러시아 등과의 국제연대 등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10일 통일부 출입기자들과 '한반도 정세전망'을 주제로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한은 내년 신년사를 통해 핵보유국임을 재확인하고 대내적으로는 자력갱생을 바탕으로 경제에 매진하는 새로운 전략노선, 대외적으로는 북미협상 틀을 탈피해 중국, 러시아와의 국제연대를 통한 돌파구를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됐다.

미국과 비핵화협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할 가능성이 높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비롯한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도 함께 나왔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0일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열린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통일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중국, 러시아 등과 국제연대를 강화하더라도 결국 미국과 담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북한으로서는 내년 11월 미국 대선 이후 미국과 제2라운드를 개시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의 '새로운 길'은 영원히 미국과의 관계를 끝내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조건부, 시한부일 것"이라고 하면서 "북한은 적절한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북미관계가 최소한 현상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금도 큰틀에서 비핵화 협상이 타결되는 빅딜, 양측 만족하고 모두 이행가능한 수준에서 합의하는 미들딜, 임시봉합하는 수준의 스몰딜 등 모든 가능성은 다 열려있지만 "어떤 합의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배드딜(bad deal)일 수밖에 없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딜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이 '노딜 통한 적절한 긴장과 현상유지'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또 대선을 앞둔 미국이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년도를 맞는 북한이나 모두 상대보다는 내부에 관심이 집중되는 2020년이니만큼  "북미협상의 개최 유무와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 여부만으로 남북관계가 동일한 방향으로 연동되어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오히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면 이는 한국에게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 선택을 강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북미관계 전망과 관계없이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김 교수는 "우리 정부가 북미 비핵화 협상 결과에 남북관계가 연동되도록 전략을 세운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새로운 길을 어떻게 볼까?

이상만 교수는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안된다면 결국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 경우 미국과의 갈등을 해소해가면서도 동북3성의 도전요소를 관리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북핵을 용인하되 관리하는 접근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웅현 고려대 연구교수는 과거 북한에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NPT(핵확산방지조약) 가입을 종용한 바 있는 러시아로서는 북핵에 대한 일종의 책임의식을 갖고 있고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에 동참하는 입장이지만 중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심이 쏠리고 있는 북한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북한이 올해 제재의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내부 자원과 과학기술역량에 기반한 자력갱생 체제를 구축하고 국산화 진전 등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제재를 극복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완비했으며, 자본조달 역량도 갖추었다"고 하면서 "김 위원장은 제재완화를 기대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제재를 극복하고 무력화시킨 지도자라는 자신감을 갖고 자력갱생의 기조를 유지할 것"이며, "북중, 북러 사이에는 제재 대상이 아닌 상품을 중심으로 교역이 확대되고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지금까지 북한 당국의 거시경제 관리능력 등을 고려하면 물가와 환율의 급상승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하면서 내년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 마지막 해를 맞아 북한은 그 질적 수준과 상관없이 전략 목표 완수를 선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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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예산안 합의 불발 땐 오후 2시 한국당 제외 ‘4+1안’ 처리

[속보]민주당, 예산안 합의 불발 땐 오후 2시 한국당 제외 ‘4+1안’ 처리

박용하·김윤나영 기자 yong14h@kyunghyang.com
입력 : 2019.12.10 10:29 수정 : 2019.12.10 10:31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10일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여야 3당 교섭단체 간 합의가 실패할 경우 이날 오후 2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의 예산 수정동의안을 제출할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오늘 중 처리를 위한 순조로운 길이 열리지 않으면 민주당은 ‘4+1’ 공조 테이블을 통해 예정대로 오후 2시에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동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을 빼고 예산안 처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우선 최종적으로 이날 오전까지 한국당·바른미래당과 협의를 한 뒤 합의안에 이르지 못할 경우 오후 2시 ‘4+1’가 합의한 수정동의안을 상정키로 했다. 


이후 민식이법과 하준이법 등 어린이 교통안전 법률안을 상정해 처리할 방침도 정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101029001&code=910402#csidxaa29c1eeb79de0eba9cab1eed8c59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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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기억력? 놀래기는 11달 전 기억한다

조홍섭 2019. 12. 09
조회수 186 추천수 0
 
야생 청줄청소놀래기 확인…연어·잉어도 ‘죽을 뻔한’ 장기 기억 간직
 
cl1.jpg» 포식자인 곰치의 입에 들어가 기생충과 죽은 피부 등을 떼어먹는 청줄청소놀래기. 거울 테스트 통과에 이어 장기 기억력이 있음이 확인됐다. 실크 배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붕어의 기억력은 3초’라는 속설이 있다. 미끼를 물었다 낚싯바늘에 혼이 난 붕어가 금세 또 미끼를 문다는 얘기다.
 
이런 속설이 근거 없다는 연구는 적지 않다. 최근 야생에서 청소놀래기가 11개월 전 일을 기억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제그니 트리키 스위스 뇌샤텔대 생태학자 등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보초에서 다른 연구 목적으로 외딴 산호초의 청줄청소놀래기를 채집했다. 다이버 한 명은 그물을 잡고 다른 한 명이 놀래기를 몰아 그물에 걸리게 하는 방식이었다.
 
청소놀래기는 포식자 물고기의 입이나 아가미 속을 자유자재로 들어가 기생충을 잡아먹는다. 다이버의 입에 들어오기도 할 만큼 다이버를 겁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듬해 연구자들이 다시 놀래기를 그물로 잡으려 하자 절반이 산호 틈에 숨어 나오지 않는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 그물을 치웠더니 다시 나타났다. 산호초의 다른 지점 4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포획을 시도했을 때 이런 도피 행동은 나오지 않았다.
 
cl2.jpg» 청소놀래기는 청소 터를 찾는 포식자를 일일이 기억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영역을 중시하는 청소놀래기의 습성에 비춰 이들이 11달 전 그물에 걸렸던 나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과학저널 ‘동물행동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장기 기억은 동물의 생존에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환경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유용한 정보를 저장했다 꺼내는 일은 생존과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인간 동물 가운데 이런 장기 기억 능력이 확인된 동물이 적지 않다. 그 기간이 작은 새인 명금류는 8달∼3년, 하이에나 1년, 원숭이 3년, 코끼리와 돌고래는 수십 년에 이른다.
 
물고기 가운데서도 학습과 기억 능력이 잇따라 확인된다. 무지개송어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먹이를 얻으려면 단추를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3달 뒤에도 기억했다. 이웃 웅덩이로 옮겨진 망둥이는 자기가 살던 웅덩이를 기억해 40일 뒤에 돌아갔다.
 
이번 청소놀래기처럼 죽을 뻔 한 나쁜 기억은 단 한 번이라도 오래 간다. 낚시에 걸린 연어와 잉어가 1년 뒤에도 바늘을 꺼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l3.jpg» 청소 서비스를 받는 물고기와 일종의 ‘사회 계약’을 맺는 청소놀래기는 자기 인식 테스트로 통과했다. 닉 홉굿,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청줄청소놀래기는 최근 ‘거울 테스트’를 통과해 자기 인식 능력이 있는 동물로 평가됐다(▶관련 기사‘거울 볼 줄 아는’ 청소 물고기, 침팬지만큼 똑똑한가).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 이외의 동물은 침팬지 등 유인원을 비롯해 코끼리, 돌고래, 까치 등 소수이다. 
 
청소놀래기는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정한 장소에서 하루 수십 마리의 ‘고객’ 물고기를 상대로 기생충을 잡아먹거나 죽은 피부를 청소한다. 놀래기는 대형 물고기와의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상정보를 기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Zegni Triki, Redouan Bshary, Long‐term memory retention in a wild fish species Labroides dimidiatus eleven months after an aversive event, Ethology, DOI: 10.1111/eth.1297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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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윤석열 충돌? 검사장급 여섯 자리가 뭐기에

정부의 강력한 검찰 통제 수단... 법무부 장관 인사권 행사에 촉각

19.12.10 08:03l최종 업데이트 19.12.10 08:03l

 

 

 법무부 장관 후보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준법지원센터에 마련된 준비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법무부 장관 후보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준법지원센터에 마련된 준비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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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하자, 비어있는 '검사장급 여섯 자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청와대·여권과 검찰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장관 자리에 오른 뒤 이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고리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검사장급 여섯 자리'가 뭐기에 이렇게 주목받는 것일까.

공석인 검사장급 여섯 자리는

법무부는 지난 7월 26일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전날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전에 많은 검사들이 사표를 냈는데, 법무부는 이날 인사를 단행하면서 조직 안정을 위해 일부 자리를 비워놓았다고 밝혔다.

그 자리는 대전·대구·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부산·수원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법무부 연수원 기획부장이다. 차관급 대우를 받은 이들 검사장급 여섯 자리는 아직까지 공석으로 있다.

 

이들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곳은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다. 검찰총장은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뿐이다.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이들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취임 첫날 검찰개혁 추진지원단 구성을 지시하고 지원단장에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을 내정하면서 인사권을 통해 검찰개혁 메시지를 밝힌 바 있다.

검찰에게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이란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의미는 2011년 문재인 대통령(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함께 쓴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장관의 인사권이 검찰에 어떤 의미인지 증언한다.
 
"장관은 인사를 통해 권력을 보여줄 때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제가 법무부에 가서 자리를 잡은 것은 인사를 통해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이 조직이 장악되는구나 하고 느꼈느냐면, 제가 2004년 5월에 인사를 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중략) 인사권을 행사하고 검찰총장보다 장관이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니 검찰이 완전히 충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마음대로 개혁할 수 있었지요." 

문 대통령과 김인회 교수는 책에서 "검찰의 인사는 검사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법무부 장관이 검찰 행정과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무기이기도 하다"면서 "자존심이 강한 공무원일수록 인사에 민감하다, 검사들은 특히 그렇다"라고 밝혔다.

지난 8월 서울고등검찰청 감찰부장을 끝으로 검찰에서 퇴직한 이영기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역시 지난달 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검찰총장에게 인사권이 없는데 검사들이 총장 말을 믿겠나, 장관이나 청와대 민정수석 말을 믿겠나"라고 말했다.

조국 장관은 인사권 행사 못해... 추 후보자는?

"현재 진행되는 수사가 많은데, 검찰 인사 단행 이야기도 나온다."

추미애 후보자가 9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자, 취재진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추 후보자는 "현재 청문회 준비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그 단계 이후에 적절한 시기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 맞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추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인사권을 활용할까. 전임 조국 전 장관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지난 9월 9일 취임하면서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를 강조했지만, 한달 여 뒤 퇴임할 때까지 검사장급 여섯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검찰이 자신의 가족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선 탓이 컸다.

과거 추 후보자는 인사권에 있어서 적극적인 편이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던 2017년 5월 당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인사추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고 해 당청 관계에 긴장감이 형성되기도 했다.

다만, 인사권이 정권을 향한 수사를 막는 데 사용될 경우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에 추 후보자는 인사권 행사 시기와 폭을 두고 깊은 고민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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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사, 국민들의 반미감정 자극하지 말라

한미동맹 약화 막고자 하는 고언(苦言)
2019.12.10 00:48:33
 

 

 

 

최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언행들이 한미관계에 도움이 안 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 8월 23일 우리 정부가 한일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종료를 결정하자 해리스 대사는 즉각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우리 외교부는 해리스 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해리스 대사는 연이은 안보 관련 행사에 불참하는 대신 미국 햄버거 프랜차이즈 개점식에 참석하면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국회의 '미래혁신포럼' 멤버 의원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해리스 대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좌파들에 둘러 싸여 있다는 게 사실이냐"라고 물었다는데, 이는 질문 형식으로 문 대통령을 에둘러 비난한 것이다.

한편 해리스 대사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야당 국회의원들이다. 한 야당 원내대표는 총선 전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서는 안 되고, 또 다른 야당의원은 북한과 종전선언을 하면 안 된다고 해리스 대사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종북좌파들이 미군 철수와 유엔군 사령부 해체를 주장할 것이라는 종북좌파론을 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망연자실하다.  

2018년 7월 9일 부임한 해리스 대사에게 '한국사랑'까지 기대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주재국에 대한 이해와 한미 양국의 우호와 이익 증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외교관, 대사의 역할이 아닌지 묻고 싶다.  

문 대통령이 지소미아 종료를 결심한 것은 일본의 터무니없는 대(對)한국 안보 불신론과 이를 핑계로 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그리고 이는 주권국가의 외교‧안보 최고정책 결정권자로서의 결정이었다.  

물론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미국이 우리 정부에 사실상의 '압력'도 행사했겠지만, 문 대통령과 외교‧안보 참모들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기보다 국익과 국권을 지키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이런 결정과 조치가 해리스 대사 눈에는 문 대통령이 종북좌파들에 둘러싸여 일어난 일이라고 보여진 것이란 말인가?  

툭하면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념 프레임으로 몰아세우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보수야당과 언론이 있다. 그런데 '종북'이라는 말은 도대체가 어불성설이다. 남한사람이 북한을 추종한다는 말인데, 도대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한국이 왜 최빈국 반열에 있는 북한을 추종한다는 말인가?  

GDP 총액 1조 5500억 달러, 1인당 소득이 3만 1000달러나 되는 대한민국이 GDP 총액 450억 달러, 1인당 소득 1800 달러 정도밖에 안 되는 가난한 북한에게 35배나 큰 대한민국 살림을 갖다 바친단 말인가? 실제로 그런 공작이 진행되거나 하면 이를 용인할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결사 항전에 나설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벌어지는 남북 간 격차로 북한이 남한을 두려워해서 남북 간 교류협력에 소극적이지 않을까, 이것이 더 문제다. '종북좌파'론은 이념 프레임으로, 진영논리로 사용하기에는 구시대적 유물이 되었다.  

북한을 나쁘게 말하지 않으면 '친북'이라고 몰아붙이는 양단 논리는 지극히 단세포적이다. '반북'이 아니면 '친북'이고, '친북이니까 종북이다'라는 것도 유치한 3단 논법이다.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이 이렇게 선전‧선동하니 주한 미국 대사가 '종북좌파'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불문곡직하고 해리스 대사의 편을 들 사람들, 즉 '종미 우파'가 더 많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미국의 말이라면 뭐든지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남북관계도 미국의 동의나 승인 없이 추진하면 금방이라도 큰일 날 것처럼 외치는 정치인 언론인들이 수적으로 훨씬 많다.

물론 수적으로 많다고 꼭 정의고 진실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지금 4.27 판문점 정상회담, 9.19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금강산 관광 재개 2)개성공단 조업 재개 3)남북 철도·도로연결 및 현대화 사업의 첫발도 못 떼고 있다.

한편 4.27 판문점 합의, 9.19 평양 합의를 철석같이 믿고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조건과 대가없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재개하겠다"고 호언했건만 하나도 성사된 게 없다. 그러다 보니 북한의 대남 불신의 골은 깊어졌고, 북한은 남쪽과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유엔 대북 제재를 빙자한 미국의 '불허'와 종미우파들의 반대에 부딪혀 남북관계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겨우 일본을 상대로 국익과 국격을 위해 결정한 일을 놓고 해리스 대사는 '종북좌파' 타령을 했다.  

우리 국민들의 민심을 건드려 반미정서가 들불처럼 번지고 촛불시위가 일어나면 그 때는 종북좌파들의 저항 때문에 한국대사 더 이상 못 해먹겠다고 할 것인가? 우리 국민을 자극해서 반미감정을 키우고 한미 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한 친미-非(비)종북좌파의 고언(苦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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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필리버스터 철회 돌연 보류… 닭 쫓던 민주당, 뭐하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12/10 09:32
  • 수정일
    2019/12/10 09: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당은 언제까지 끌려 다닐 것인가?
 
임병도 | 2019-12-10 08:51: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자유한국당 예산안 심사 참여
-필리버스터 신청 철회 (자유한국당 의총 거쳐)
-패스트트랙 안건(선거법, 공수처법) 정기국회 상정하지 않기로
-내일 국회 본회의 개최 (12월 10일 10시)

자유한국당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심재철 의원이 3당 원내대표 회동 직후 밝혔던 내용입니다. 이때만 해도 그동안 국민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국회가 풀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4시간 만에 자유한국당은 필리버스터 철회를 돌연 보류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예산안을 합의 처리한다’는 문구가 없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만족할만한 예산안이 되지 않을 경우 끝까지 발목을 잡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입니다.

필리버스터 철회는 ‘의원총회를 거친다’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재철 원내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그저 절차에 불과하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심 원내대표의 말을 들은 대부분의 기자들은 ‘자유한국당 필리버스터 철회’라고 기사를 썼습니다.

3당 원내대표 합의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보여주기 식 사진 찍기에 불과했냐는 의문이 듭니다.

필리버스터 철회 보류, 누구의 손이 작동했나?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 선출이 있기 전 입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인사하는 후보들.

비박 심재철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는 친박 김재원 의원이었습니다. 계파를 초월한 결합이라는 말이 나왔고, 실제로 결선투표에서 52표를 받아 당선됐습니다. 이 과정만 보면 황교안 대표 체재에 반란을 일으킨 모습 같습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습니다.

김재원 의원은 황교안 대표의 핵심 참모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정치 경력과 국회 경험이 부족한 황교안 대표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며 협상과 정책 등의 방향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임 원내대표로 처음 주관하는 의원총회에서 3당 원내대표 합의 사안을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심재철 원내대표의 당 장악력이 떨어짐을 보여줍니다. 핵심 친박으로 황교안 체제에서 힘이 있는 김재원 의원이 왜 손을 놓고 있었지라는 의문도 드는 대목입니다.

필리버스터 철회 돌연 보류가 황교안 대표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해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자유한국당이 정국을 끌고 갈 무기는 필리버스터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필리버스터로 막아도 다음 임시국회에서 곧바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지연 작전 내지는 존재를 증명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큰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필리버스터를 무기로 협상테이블을 떠나거나 앉는 등 그들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에 끌려 다닙니다.

민주당은 언제까지 끌려 다닐 것인가?

▲3당 원내대표 회동이 이루어지는 동안 정의당은 추운 날씨에 국회 밖에서 선거법, 공수처법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출이 있기 전날 이미 4+1 협의체 합의를 통해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통과시킬 여건을 마련해놨습니다. 그러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출과 3당 원내대표 합의가 있어 본회의까지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원점이 됐습니다. 도의적으로 기다려주다 뒤통수를 맞은 셈입니다.

민주당이 매번 자유한국당에게 배신(?)과 실망을 하면서 패스트트랙을 강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거법만큼은 여야 합의 처리가 우선이라는 여론에 겁을 먹었습니다. 일방처리를 했을 때 쏟아질 역풍과 비난이 부담스럽습니다.

정치는 협상입니다. 그런데 협상이라는 줄을 잘 타야지, 중심을 제대로 못 잡으면 떨어집니다.

지금 민주당은 굳이 선거법 합의 등을 의식해서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예전에도 표결로 선거법을 통과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계속 규칙을 어기는 선수를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지 민주당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들만의 리그 때문에 민주당도 힘들겠지만, 지켜보는 국민들은 속이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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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값’이 된 불공정…청년들 “분노해봤자 바뀌는 것 없다”

등록 :2019-12-09 04:59수정 :2019-12-0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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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 ③‘조국 사태’로 절감한 한국 사회는

월세 30만원 못낼까 ‘학원 알바’
그곳엔 인서울 ‘수천만원 컨설팅’
‘그들만의 리그’ 내겐 기회 안 와

386세대에 대해 64명 “잘 모른다”
386보다는 50대 포괄적 지목
기성세대들이 청년 탓하기보다
가진 힘으로 세상 바꾸길 바라

 

 

 

지역과 성비, 학력과 학벌 등을 고려해 분류한 만 19~23살 청년 100명을 만나 심층 설문과 인터뷰를 한 기획 시리즈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 3회는 한국 사회의 현재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언론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불공정 담론’이 마침내 폭발했다고 여겼지만, 청년들은 그 전부터 이미 온몸으로 불공정한 세상을 체감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세상에 대한 반응은 자신이 처한 ‘지위’에 따라 분노 혹은 냉소로 분화했다.

 

 

 

 

 

 

 

 

지난여름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조국 서울대 교수 자녀의 입시 특혜 의혹이 불거진 뒤 많은 언론은 청년들의 실망과 분노를 다뤘다. 그렇게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반응은 천둥과 돌풍을 몰고 오는 거대한 적란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조명됐다. 하지만 <한겨레>가 전국을 오가며 만난 100명의 청년들은 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100명의 청년들은 쪼개진 대나무 살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있었다.

 

뿌리는 같았다. 19~23살 청년 100명 중 79명은 ‘조국 사태’를 보고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박탈감이 분노로 이어졌느냐는 물음 앞에서 청년들은 분화했다. ‘조국 사태’에서 불공정을 읽은 청년들의 절반쯤 되는 40명만 분노를 말했다. 설문 결과를 보면, 분노한다는 응답이 더 많은 유일한 집단은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전체 16명 중 9명이 ‘조국 사태’에 ‘분노했다’고 말했다. 비서울권 4년제 국립대 학생들의 경우 10명 중 절반인 5명이 분노한다고 했다. 비서울권 4년제 사립대 학생의 경우 29명 중 12명, 전문대 학생은 28명 중 11명이 분노한다고 답해 앞선 두 유형의 청년들보다 분노 정도가 낮아졌다. 그리고 고졸 취업이나 창업, 또는 무직인 17명 가운데 분노한다고 답한 청년은 겨우 3명이었다.

 

_________
‘시간당 30만원’ 입시 컨설팅 세계가 안긴 냉소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스무살 윤민정(가명)은 분노하지 않은 청년 중 하나다. “연세대 다니는 남자친구는 너무 화를 내는데 저는 화가 안 났어요. 그냥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입시 비리가 있었다고 해도 제가 받은 불이익은 없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저한테는 그런 기회 자체가 오지 않았을 거니까…. ‘스카이’ 학생들만 되게 분노하는 것 같아요.”

 

스물한살 대학생 진혜지(가명)도 윤민정과 마찬가지로 분노하지 않았다. 진혜지는 직접 ‘그들만의 리그’를 생생하게 목격한 뒤 현실에 대한 냉소가 찾아왔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그는 넉달 전부터 사교육 시장의 상징인 대치동의 입시 컨설팅 학원에서 일주일에 네번 ‘알바’를 한다. 진혜지는 그곳에서 자주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고 했다. 그가 일하는 학원은 수강생에게 자기소개서 첨삭, 면접 연습, 대학 진학 상담을 해준다. <한겨레>가 확인한 이 학원의 ‘상담 매뉴얼’을 보면, 면접 컨설팅 비용은 시간당 30만원이다. 12시간과 24시간 상품만 선택할 수 있고, 의대나 ‘스카이’ 대학 등 면접 컨설팅은 24시간 진행자만 받는다. 에누리는 있다. 12시간짜리는 300만원, 24시간짜리는 600만원이 ‘할인가’다. 시급으로 1만원을 받는 진혜지가 600시간 가까이 일해야 벌 수 있는 큰돈이지만 학원은 늘 문전성시다. 이 학원에는 의대를 희망하는 학생을 위한 1년짜리 프로젝트도 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를 신청하면 자기소개서에 쓸 스펙을 만들어준다. 수강생에게 의학 상식을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을 열고 영상을 찍어오라고 한 뒤 편집 등을 도와준다. 유튜브 채널 링크를 학원 누리집에 올려 홍보하고 구독자를 학원 돈으로 산 뒤 ‘알바’들이 댓글을 다는 작업까지 해준다.

 

진혜지는 이 일을 하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그냥 서울권 대학에 가기 위해 학부모들이 몇천만원을 아무렇지 않게 쓰더라고요. 저는 월세 30만원도 구하기 어려워서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데…. 대한민국에서 대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상담 전화를 해오는 부모들이 ‘왜 그렇게 비싸냐’고 화내면서 전화를 끊기도 해요. 그분 자녀가 대학에 잘 가면 다행이지만, 떨어지면 ‘내가 600만원을 안 써서 우리 애가 대학을 못 갔다’고 생각할까 봐 마음이 좀 그래요. 진짜 ‘헬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국의 딸과 아들 같은 이들이 넘쳐나는구나 싶었어요.”

 

진혜지는 한국 사회에서 ‘불공정’은 이미 디폴트(고정)값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조국 교수를 둘러싼 의혹이 특별히 더 불공정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조국 교수 정도의 죄는 죄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정치인이 많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제가 화가 나는 건 돈과 권력만 있으면 이런 불공정을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현실이에요.”

 

‘그들만의 리그’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혜지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조국 사태’ 이후 정부가 내놓은 정시 확대 정책 역시 역효과만 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시제도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바뀌면 이런 학원은 더 잘 살아남아요. 교육정책이 카멜레온처럼 샥샥 변하고 불안정할수록 학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다니는 학원에서는 정시 컨설팅도 해요. 정시가 확대되면 그런 수요가 더 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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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없는 곳에선 분노도 폭발하지 않는다

 

분노는 기대에서 불씨를 품었다가 그것이 꺼지려 하면 화산처럼 폭발한다. 기대가 아예 없는 곳에선 분노가 폭발할 불씨조차 없다.

 

“부모를 잘 만나서 특혜를 누린 건 불공정한 일이긴 하지만 워낙 그런 일이 많잖아요. 제가 아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제가 뭘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으니까요. ‘너네들끼리 놀아라’ 이런 생각? 화가 나는 건 아니고, 저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경기 고양시 일산의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하는 스물세살 신지영(가명)이 ‘조국 사태’에 분노하지 않은 이유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신지영은 한때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입시 비용을 마련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이 필요해 일하게 되면서 입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1년6개월의 악순환을 겪은 뒤 그는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신지영은 명절에 집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좋은 대학에 간 자녀를 둔 친척들이 “너는 왜 취업했니?”라고 물을 때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몸이 움츠러들었다. 취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격증 불필요. 초보 환영’ 공고를 낸 한 디자인회사에 지원했더니, 회사는 “전문대 이상 졸업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을 삭제하다 보니 남는 일은 서비스직이나 사무보조밖에 없었다. “집에선 기술을 배우라거나 일이라도 빨리 해서 살림에 보태라고 하죠. 실제로 일을 하면 왜 월급이 그것밖에 안 되냐고 하고. 취업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어요.”

 

신지영은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정노동으로 채워지는 판매직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집세와 생활비 160만원이 발목을 잡았다. 월급 180만원에서 남는 돈은 20만원뿐인데, 이 돈으로는 다른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 “돈 있는 사람들만 돈을 벌고 없는 사람은 계속 없는 것 같아요. 저처럼 어떤 일을 준비하다가 잘 안됐을 때 사회가 보장을 해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당장이면 돌아올 월세에 헐떡일 수밖에 없는 신지영에겐 이 세상을 둘러싼 그 수많은 불공정에 분노할 여유가 없다.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스물세살 한인경(가명)도 신지영과 비슷한 생각이다. “분노했냐 안 했냐로 따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분노를 이미 뛰어넘어 해탈 단계예요. 체념하는 상태죠. ‘조국 사태’에 화가 나지 않았고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어요.”

 

<한겨레>가 만난 청년들에게 불공정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의 책임이 어느 세대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100명 중 31명은 50대, 21명은 60대를 꼽았다. 청년들이 주로 50대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는 그 세대에 대한 박탈감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스무살 강진석(가명)은 50대가 가장 싫다. “경제성장기에 제일 호황을 많이 누린 세대라고 생각해요. 공무원도 지금은 어려운데 그때는 쉽게 됐잖아요. 심지어 그때 사둔 땅도 다 값이 올랐어. 그렇게 누릴 것은 다 누린 사람들이 ‘꼰대’처럼 하니까 싫은 거죠. 받은 것은 많고 힘도 있는데 청년정책 같은 걸 위해 힘을 쏟는 사람은 없고, 돈을 풀지도 않고.”

 

대구에서 대학에 다니는 스물한살 김예지(가명)도 같은 생각이다. “50대는 전형적인 기득권 세대잖아요. 편하게 취직해서 그렇게 많은 부를 축적했는데, 지금 세대에 대해서 열정이 부족하다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사회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의 한 전문대를 다니는 스무살 정수진(가명)도 “50대는 너무 꽉 막혀 있어요. 이야기가 안 통해서 깊은 이야기를 안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고위 관료로 있으니까 더 답답해지는 느낌이에요. 학교 교수들도 마찬가지죠. 구구절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해요. 문제는 자기들도 자신의 문제가 뭔지 모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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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386세대’를 모른다

 

하지만 청년들은 ‘조국 사태’ 때 언론이 여러 청년들의 목소리를 인용해 사태의 책임자들로 지목했던 ‘386세대’에 대해서는 되레 잘 몰랐다. ‘386세대’가 주로 지금의 50대를 일컫는 말인데도 말이다. <한겨레>가 만난 100명 중 64명(전혀 모른다 40명, 잘 모른다 24명)은 ‘386세대를 모른다’고 했다. 나머지 36명 중에서도 15명은 ‘들어본 적이 있다’ 수준이었다. 안다고 대답한 사람은 21명(어느 정도 안다 12명, 정확히 안다 9명)뿐이었다. ‘386세대를 안다’고 대답한 서울지역 대학생 스물한살 이영우가 “제도정치나 정당, 각종 시민단체, 기업을 주도하고 있는 게 지금의 586세대인데,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맞지만 그들만의 카르텔을 공고하게 하면서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말하고, 전북대에 다니는 스물두살 이종현이 “민주화운동이 위대한 일인 것은 알겠는데 그런 경험을 긍정적으로 활용한다기보다 20대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한겨레>가 만난 대부분의 청년은 ‘조국 사태’ 이후 여러 언론이 호출한 386세대 집단의 ‘정치적 위선’보다 호황을 독점했던 50대라는 좀 더 포괄적인 범위의 세대를 지목한 뒤 이들이 불황을 버티는 20대를 현실감 없이 타이르는 것에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울러 우리는 ‘조국 사태’ 때 언론이 내세운 청년 담론이 기성세대의 눈높이에서 조립됐고, 지금의 20대 청년들이 주류 언론의 담론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년들은 힘있는 기성세대들이 20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힘으로 먼저 세상을 바꾸길 희망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새로 들어선 정부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그 기대는 흐릿해지고 있다. 이종현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지만, 지금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밝혔다. “10대 후반부터 민주당을 지지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뽑았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그냥 대통령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만루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거죠. 대통령과 여당도 힘들겠지만, 너무 바뀌지 않는 게 많으니까 실망스러워지고 있어요. 내년 총선에는 어디를 뽑아야 하는지 확신을 못 하겠어요.”

 

실망을 기대로 바꿀 주문을 이번 정부는 이미 가지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여기에 더해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까지 ‘결과의 평등’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되길 청년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강재구 김윤주 김혜윤 서혜미 기자 j9@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0074.html?_fr=mt1#csidx55a33b05cb3f79b834c1a522608a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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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 무마 전문집단’ 검찰이 청와대 감찰 조준하는 아이러니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19-12-09 07:50:09
수정 2019-12-09 07:50:09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의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을 향해 연일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검찰 내부의 무수한 ‘감찰 무마’ 사례들을 애써 묵인한 채 청와대 감찰 관련 의혹엔 강제수사까지 동원해 범죄로 이끌어내려는 행태가 모순적이라는 지적이다.

없음
ⓒ뉴시스

‘사표 수리’된 성폭력 검사, 1심에서 실형 
법조 명문가 출신이라 ‘봐주기 감찰’ 있었나
 

검찰은 감찰 무마 의혹으로 전·현직 검찰 간부들이 고발당한 사건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성폭력 사건’ 은폐 의혹이 대표적이다. 진 모 검사는 2015년 4월 회식 자리에서 후배 검사를 성추행했다. 대검 감찰본부의 감찰이 있었으나, 별도의 징계 처분 없이 진 검사의 사표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당시 쉬쉬하는 분위기에 사직 이유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사건 직후 대기업 법무팀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진 검사 사건은 ‘미투’ 국면에서 재조명됐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출범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당시 서울동부지검장)은 진 검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진 검사는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사건 은폐 의혹이 불거졌다. 감찰을 통해 성범죄를 인지했음에도, 법조 명문가 출신인 진 검사를 봐줬다는 주장이다. 진 검사의 아버지는 전직 공안부장이고, 매형은 현직 대검 검사장이다. 자신도 서울중앙지검과 법무부 요직을 거치며 검찰 내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이에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이 사건 은폐 의혹에 연루된 간부들을 수사·감찰해달라고 대검에 요청했다. 그러나 대검은 이를 무시했고, 임 부장검사는 지난해 5월 김진태 전 검찰총장, 김수남 당시 대검 차장, 오 모 전 서울남부지검장, 이 모 전 감찰본부장 등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후 1년여가 지나도 수사 진척이 없자 임 부장검사는 지난 2월 언론을 통해 해당 간부들의 실명을 공개하고, 이들을 징계하기는커녕 요직에 발탁했다며 문무일 검찰총장을 비판했다. 

검찰마크
검찰마크ⓒ뉴시스

‘고소장 위조’ 검사 늦장 기소하면서도 반성 없어 
“그 검사, 아버지 KB 윤종규 회장 덕 봤다더라” 
 

‘고소장 위조 사건’ 은폐 의혹도 있다. 부산지검 소속 윤 모 검사는 2015년 12월 고소인의 고소장을 다른 사건 고소장으로 바꿔치기해 무혐의로 종결했다. 고소인의 이의제기로 사건이 알려지자 윤 검사는 다음 해 3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언론 보도로 윤 전 검사에 대한 고발까지 이어지자 검찰은 지난해 1월에서야 그를 공문서위조 및 위조공문서 행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최소 징역형인 공문서위조 혐의를 받는 윤 검사에 대한 징계 없이 사표 수리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심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임은정 부장검사는 지난 4월 김수남 전 검찰총장, 김주현 전 대검차장, 황철규 당시 부산고검장, 조기룡 당시 청주지검 차장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윤 검사의 집안이 사건 은폐 배경으로 지목됐다. 임 부장검사는 “윤 검사는 아버지인 KB 윤종규 회장의 덕을 봤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 고발인으로 경찰에 출석한 그는 “고소장 사건 이전에도 (윤 전 검사에 대한) 문제가 있어서 감찰하려고 하다가, 윤 회장이 부산지검에 다녀간 뒤로 분위기가 덮였다고 들었다”라며 “아버지인 윤 회장의 존재를 부산지검에서 모르지 않았고, 자주 다녀간다는 소문도 들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윤 검사를 기소하면서도, 내부 감찰 무마 의혹에는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검찰은 경징계 수준으로 보고 윤 검사 사표를 수리했다는 판단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으론 경찰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 검찰은 임 부장검사의 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신청한 부산지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재차 기각했다. 

고 김홍영 검사 사건 축소 의심 
변호사협회가 가해 검사 고발
 

‘고 김홍영 검사 사건’ 역시 윗선에서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김홍영 전 검사는 서울남부지검 형사부에 근무하던 2016년 5월 업무 스트레스와 직무 압박감을 토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서른셋의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건 발생 후 해당 지검의 자체 진상조사 과정에서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김진모 서울남부지검장이 가해자로 지목된 김대현 부장검사의 언행에 대해 진술서를 쓴 검사들을 개인적으로 불러 타이르는 등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에 착수해 해임 청구를 권고하면서도 “형법상 형사처벌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라며 별도의 고발 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에 김 전 부장검사는 최근 변호사로 개업했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는 그를 폭행 등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양지웅 기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검찰 논리라면, 검찰의 감찰이 수사 대상”
 

이뿐만 아니라 안태근 전 검사장 성추행 사건, 스폰서 검사 사건 등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감찰 역사는 유구하다. 그런데도 혐의점이 뚜렷하지 않은 청와대 건에만 열을 내는 검찰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견해가 나온다.  

검찰개혁에 힘써온 한 변호사는 “검찰의 논리라면, 검찰의 감찰이 수사 대상”이라며 검찰이 청와대와의 힘겨루기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해 무리한 압수수색을 펼쳤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이 주도하는 검찰개혁 작업을 저지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당장 ‘선별 수사’라는 비판부터 제기됐다. 임 부장검사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 고발 사건은 전직 검찰총장들과 현직 검사장 등이 관여된 사건이라 중요성에 있어 결코 유 전 부시장 사건에 밀리지 않는다”라며 “무엇보다도 2018년 5월에 고발한 사건이라 방치된 지 무려 1년 7개월째”라고 꼬집었다.  

이어 “일각에서 제기하는 공정성 시비는 중앙지검이 자초한 것이고, 여론 다수의 지지를 받는 공수처 도입은 검찰이 자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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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대단히 중대한 시험" 발표..트럼프에 '최후의 경고장'?

트럼프 "북한이 적대적 행동하면 놀랄 것"...재선가도에 재뿌릴까 초조감
2019.12.08 13:50:05
 

 

 

 

'한반도 불바다' 경고가 무성했던 2년 전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이 재고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11시부터 30분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청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북한과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는 청와대의 발표를 일축하듯, 북한은 이날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8일 밝혔다.

서해발사장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관련된 곳이다. 지난 5일 북한이 폐쇄를 약속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 재개 준비로 추정되는 활동이 포착됐다는 외신보도 이틀 뒤에 북한이 확인해 준 것이다. 

앞서 미국 CNN방송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엔진시험' 재개를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면서 상업용 위성업체 플래닛랩스가 5일 촬영한 동창리 발사장의 위성사진에서 '엔진시험대에 전에 없던 화물 컨테이너가 보이는 등 새로운 활동'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위성발사대와 ICBM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쓰이는 엔진의 시험을 재개하려는 준비작업일 가능성이 있으며, 엔진시험이 미사일이나 위성 발사시험과 같은 수준의 도발행위는 아니지만 활동을 재개하는 것 자체가 중대한 변화로 미사일 시험발사의 전 단계일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 북한이 영구 폐쇄를 약속했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8일 발표하면서,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허물어뜨릴 변화가 일어날 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AP=연합


'ICBM 도발'로 미국에 '원치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 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기지 폐쇄에 동의했다"면서 이를 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자평했다. 석달 뒤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를 영구 폐기한다는 내용을 담은 '평양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을 목전에 두고 미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 강도를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언급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의 수준에 따라 지난 2년 간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완화와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허물어지는 중대한 젼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2019년 12월 7일 오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되었다"면서 "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시험의 성공적 결과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하였다.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은 시험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당 중앙위원회 보고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고됐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험이 인공위성의 발사체나 ICBM용 고체연료 엔진의 연소 시험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신형 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원이 시험 사실을 발표했고 북한의 '전략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 시험이 북한이 그동안 유예해온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음을 암시해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시험 당일 낸 성명에서 미국이 '국내 정치적 어젠다'를 위해 '시간벌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며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말했다. 김 대사가 언급한 '국내 정치적 어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재선 행보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3일 리태성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이 담화에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며 미국의 선제적 결단을 촉구한 이후 북미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 외무성 담화에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2년만에 '로켓맨'이라고 부르고, '필요시 군사력 사용'을 언급하고, 다시 이튿날인 4일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담화를 통해 북한은 "만약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그 어떤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 역시 임의의 수준에서 신속한 상응행동을 가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고 반격했다.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성 북한 대사의 성명을 의식한 듯 즉각 반응을 보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내가 다가올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안다"며 두 차례나 "나는 그가 선거에 개입하길 원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 질문에도 없는 대선 문제를 갑자기 꺼낸 것은, 김성 대사의 성명이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를 미국 대선의 성과로 삼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경고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ICBM 발사나 핵실험 중단을 외교정책의 성과로 내세워 왔다. 따라서 트럼프는 북한이 '레드라인'으로 여겨지는 ICBM이나 핵 실험을 재개할 경우 대선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북한이 이런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경고를 거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나는 놀랄 것"이라면서 "나와 김정은과의 관계는 매우 좋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약간의 적대감이 있다"며 "그것에 대해선 어떤 의심도 없다"고까지 말해 북한의 도발이나 긴장 고조 행위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승선 기자 editor2@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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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 3번째, 박원순이 쏘아올린 '대연정'

[取중眞담] 50년간 4차례, 독일 정치가 한국과 다른 점

19.12.09 08:19l최종 업데이트 19.12.09 08:19l

 

 박원순 서울시장이 11월 2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미세먼지 시즌제'를 발표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11월 2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미세먼지 시즌제"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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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3일 오후 7시 국회에서 열린 토크쇼에서 내년 총선 이후 연정 수립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시장은 이틀 뒤 라디오 방송에서도 이 얘기를 또 했다.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뚱맞은 얘기'였던 것은 틀림없다. 서울시장은 정치인이기보다는 행정가로 받아들여지고, 그런 사람이 여야가 날카롭게 대치하는 분위기에서 연정 얘기를 계속 꺼냈으니 말이다.

미리 밝히자면, 기자는 박 시장이 연정이라는 화두를 언젠가는 던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시점이 이렇게 빠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박 시장은 그냥 행정업무를 챙기려고 서울시장이 된 사람이 아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망이 그를 시민운동으로, 더 나아가 정치에 발을 담그게 했다. 그런 사람의 눈에 앞으로 가지도, 뒤로 빠지지도 못하고 '꽉 막힌' 국회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게 보였겠는가?

 

최근 박 시장은 독일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합(아래 기민당)이 사회민주당(사민당)과 2013년 총선 뒤 체결한 합의문을 입수했다. 양측이 4년 임기 동안 할 일을 나열한 합의문은 경제와 복지, 교육, 노동, 에너지, 사회통합, EU, 그리고 연방정부의 운영방식까지 240페이지(한국어 번역본 기준)에 걸쳐 세세한 부분을 짚어냈다.

"2022년까지 독일의 마지막 원전을 정지할 것"이라는 탈원전 담론부터 2015년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시급 8.5 유로)과 근로자파견법 확대 등등 다양한 이슈들이 정리되어 있다. 계약서 만들어놓고도 '문구 해석'으로 날 새우는 식의 싸움은 안 하려는 독일식 합리주의가 묻어나온다.

"의회 내에 설치되는 각종 위원회에서 연정의 참여노선과 의결 사항에 반하는 의사 표명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의 연정을 시행하려고 하면 당장 '연정독재'라는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어쨌든 이 정도로 깊이 있는 합의를 한 독일식 연정이 박 시장은 꽤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그가 이 문건을 읽은 사실을 언급하며 '총선 후 연정' 얘기를 꺼낸 이유다.

박 시장이 감명받은 독일의 대연정

2013년 합의문은 "약 50년 전 이루어진 첫 번째 대연정이 당시에 직면한 경제적 도전에 대한 대책으로 경제안정법과 성장법을 통과시켰다"고 기록했다. 양쪽 모두 이득을 본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만족스러운 '대연정 협상'을 이뤄냈다는 평가인 셈이다.

독일 대연정의 역사는 1966년 11월 28일 서독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민당 쿠르트 키징거 총리가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와 칼 실러를 부총리 겸 외무장관과 경제장관에 각각 기용하는 등 내각의 알짜배기 요직들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기민당은 전통적으로 중도노선의 자민당을 연정 파트너로 삼아왔는데, 자민당이 예산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연정을 탈퇴하자 정국 안정을 위해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신문들은 '서독 대연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4.19 이후 의원내각제로 정체를 바꿨다가 1년 만에 실패하고 대통령제로 회귀한 상황에서 대연정은 '너무 먼 얘기'로 들린 듯하다.

독일(서독) 정치는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편 가르기'와 이념 갈등은 이곳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1875년 4월 22일 창당된 사민당은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활용하여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마르크스주의 강령으로 무장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증오했던 히틀러가 집권하자 사민당 당원들 상당수가 유대인과 함께 척결 대상으로 지목돼 모진 박해를 받았다.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 반(反)히틀러 노선의 콘래드 아데나워가 우파의 새로운 기수로 기민당을 이끌었지만, 좌파정당 사민당과의 보혁 대결 구도는 그대로 이어졌다.

전후 두 번째 총선(1953년)에서 아데나워의 기민당은 표면상 마르크스주의를 철회하지 않은 사민당을 겨냥해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고 공격했다. 선거 때마다 색깔론 공격을 견디다 못한 사민당은 아데나워 집권 10년 만에 '생산수단의 사회화' 같은 마르크스주의 강령을 벗어던졌다.
  
 1953년 서독 연방의회 선거 포스터. 콘래드 아데나워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은 표면상 마르크스주의를 철회하지 않은 사민당을 겨냥해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 그러니 기민당에 투표하라”고 선전했다.
▲  1953년 서독 연방의회 선거 포스터. 콘래드 아데나워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은 표면상 마르크스주의를 철회하지 않은 사민당을 겨냥해 “모든 마르크스주의자의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 그러니 기민당에 투표하라”고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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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당은 미국의 지원(마셜 플랜)과 세계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장기집권했지만, 히틀러 집권 시절 나치의 편에서 좌파를 탄압하거나 수수방관한 우파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1953년 연방의원에 당선된 509명 중 129명이 나치당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었다.

'1966년 대연정'의 두 주인공을 디트릭 올로 교수는 <독일현대사>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젊고 야심 찬 직업 외교관이던 키징거는 1933년 나치당에 가담했다. 제3제국 시기 외무부의 선전 부서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명목상 당원 자격을 유지했다. 반대로 빌리 브란트는 10대에 나치 독일에서 도망쳤고, 2차대전 시기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망명하는 동안 나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 강점기 해외를 떠돈 좌파 독립운동가와 전직 친일 관료의 '야합'이었지만 이들은 서로의 과거나 노선을 묻어두는 길을 택했다.

개성이 강한 두 지도자의 연합은 오래 가지 못했다. 3년 뒤 총선(1969년)에서 빌리 브란트의 사민당이 중도파 자민당과의 연합해 의회 과반수를 얻게 되자 키징거의 기민당은 다시 야당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대연정의 경험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1966년 11월 28일 서독연방의회 1당(기민당)과 2당(사민당)이 대연정에 합의했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기민당 쿠르트 키징거 총리, 다섯번째가 사민당 출신 외무장관 빌리 브란트
▲  1966년 11월 28일 서독연방의회 1당(기민당)과 2당(사민당)이 대연정에 합의했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기민당 쿠르트 키징거 총리, 다섯번째가 사민당 출신 외무장관 빌리 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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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불의 조화... 한국에선 왜

1982년 새 총리에 오른 기민당 헬무트 콜 총리는 TV에 나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념이 다른 정파가 권력을 잡으면 전 정권의 성과를 일체 부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악순환'을 벗어나는 선택을 한 셈이다.

앙겔라 메르켈이 기민당을 이끈 최근 14년 동안에는 원내 1당과 2당이 연합하는 '대연정'이 세 차례(10년)나 성사됐다. '조정의 달인' 메르켈의 개인기 덕이겠지만, 대연정은 큰 잡음 없이 순항했다(대연정 유지에 비판적인 사민당 새 지도부가 최근 등장하며 메르켈은 이들과 재협상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독일인들은 대연정을 '물과 불의 조화'라고 지칭한다. 여야의 긴장 관계 속에서 권력의 감시와 균형을 이루는 의회민주주의의 본질을 거스른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험을 복기해 보면, 거대 양당의 연합 정치가 불필요한 감정 소모전을 상쇄시키고 분단 독일이 통일로 가는 분기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정(1998년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DJP)은 있었지만 '대연정'은 실현된 적이 없다. 그러나 두 차례의 중요한 시도가 있었다.

2005년 7월 28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선거제도 개편을 고리로 한 대연정을 제안한 것은 유명하다. 당시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 '깜짝 제안'이었다. 그해 8월 29일 경남 통영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유시민·윤호중·이목희·정청래·조경태 의원은 대연정을 지지했지만, 강기정·김영춘·문학진·송영길·우원식·이은영·임종인 의원 등은 반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정관련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피력하고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2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정관련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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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해 보겠다"며 구애했지만, 키를 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청와대 회담 자리에서도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잇따른 재보선의 승승장구로 정권 탈환을 확신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꼼수' 정도로 치부했다.

박근혜 대표와의 회담 다음날 UN 총회 참석 및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한 노 대통령은 전용기에서 내리면서 "당분간 대연정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말문을 닫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연정을 공론화할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않았다. 대연정을 제안한 노 대통령에겐 "야당 기 살려주고 지지층만 분열시켰다"는 멍에가 씌어졌다.

두 번째 시도는 대중들의 기억에 그다지 선명하진 않지만, 2013년 1월 21일 문희상 민주당 비대위원장 입에서 나왔다. 민주당은 2012년 대선에서 졌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당선자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에서 진보진영에서도 관심을 가질 공약들을 많이 내놓았으니 박 후보 공약과 민주당 공약 중 합의를 도출할 '대선공약실천위원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양측이 대선공약 실천에 대한 포괄적 합의에 이른다면, 박근혜 정부로서는 국회를 무력화 시킬 정도의 거대 의석(127석)을 가진 제1야당의 도움을 받아 순항할 기회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머뭇거리는 사이 2012년 대선 직전에 터진 '국정원 댓글' 사건은 취임 첫 해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며 정국을 흔들어놓았다. 2013년 4월 21일 문 위원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중 좌천된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언급하며 "양심선언을 한 '광주의 딸'을 당력을 총동원해 지키겠다"고 정권과의 투쟁을 선언했다. 두 달 가까이 회자됐던 '대선공약실천위원회'도 없던 얘기가 됐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이른바 '경제활성화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했지만, 민주당의 벽을 넘지 못하자 2016년 총선에서 '판 갈이'를 시도했다. 박 대통령의 구상은 실패했고, 최순실 게이트까지 터지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우린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촛불 집회의 열기에 힘입어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현재 힘을 못 쓰기는 마찬가지다. 법을 임의로 통과시킬 수 있는 허들이 150석에서 180석으로 올라간 상황에서 선거법을 고쳐서라도 내년 총선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겠다는 심산이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한국 정치다.

물론 내각책임제에 기반을 둔 '독일식 대연정'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면 풀어나가야 할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의 난맥상을 근본적으로 풀어보겠다는 논의가 진행된다면 발화자가 누구든 나는 일단 환영한다.

시민운동 시절에는 '아이디어 뱅크'였던 박 시장이 3선 시장을 거치면서 "기대에 못 미친다"는 얘기가 들리는 요즘이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제로페이 등에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마이뉴스>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월례 조사에서 하위권을 맴도는 상황은 안타까움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기왕 얘기를 꺼냈으니 박 시장이 정치 분야에서도 전인미답의 성과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일현대사:1871년 독일제국 수립부터 현대까지>(미지북스), <2013 독일대연정 합의문>(국회도서관),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 : 앙겔라 메르켈 공인 전기>(한솔수북)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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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사변이 다가오고 있다

[개벽예감 373] 중대사변이 다가오고 있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12/09 [09:0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불라쵸브가 전해준 중요한 정보

2. 핵능력 70~80%를 불능화하려는 파격적인 제안

3. 특이한 움직임들이 보인다

4. 백두산에서의 결심, 그리고 제5차 전원회의 소집

 

 

1. 불라쵸브가 전해준 중요한 정보

 

“미국이 지금처럼 문제를 헤집고 딴 길에서 헤매이면서 우리가 제시한 시한부 내에 자기 립장을 재정립해가지고 나오지 않는 경우 미국은 참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갈 길을 알고 있지만, 미국에 시한부를 정해준 만큼 선택을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우리가 올해 말까지 시한부를 준 의미를 깊이 새기고 향후 경로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2019년 4월 30일 최선희 조선 외무성 제1부상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답변에서 최선희 제1부상은 미국이 자기 입장을 재정립하여 협상에 나와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미국의 입장을 재정립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밝히지 않았다. 조선이 미국에게 무엇을 요구하였는지를 미국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조선이 조미협상 중에 미국에게 무엇을 요구하였으며, 미국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쩔쩔매는 조선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정확히 보도하는 언론매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조미협상의 운명을 판가름하게 될 그 심중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선희 제1부상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에게 위와 같이 답변한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5월 13일 로씨야인 전문가 한 사람이 평양에 나타났다. 그는 아시아태평양안보협력회의 로씨야위원회 연구위원 게오르기 불라쵸브다. 아시아태평양안보협력회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20여 개 나라의 전문가들과 외교관들이 참가한 민간국제기구다. 불라쵸브는 5월 17일까지 평양에 머물면서 조선 외무성 인사들을 만났는데, 2019년 5월 23일 <연합뉴스>와 진행한 대담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불라쵸브가 <연합뉴스> 대담 중에 말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중에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조치에 상응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협정체결요구에 응할 것으로 기대했었고, 그와 더불어 선의의 표시로 대조선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할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조선 경제제재의 부분적 해제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조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해보면 그 무슨 제재해제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라고 하면서, “적대세력들의 제재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합니다”고 언명하였다. 이런 언명은 앞으로 조미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대조선 경제재재의 부분적 해제를 더 이상 미국에게 요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위의 사진은 로씨야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최선희 조선외무성 제1부상이 2019년 11월 21일 로씨야 국방부 청사에서 알렉싼드르 포민 로씨야 국방차관(현역 대장)과 회담하는 장면이다. 최선희 제1부상은 그 전날 쎄르게이 라브로브 로씨야 외무장관을 비롯한 로씨야 외무성 인사들과 연쇄회담을 진행한 바 있는데, 로씨야 국방차관을 만나 "전략적 대화"를 진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정황은 조선과 로씨야의 전략적 대화가 외교부문에서 군사부문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상황을 오판하여 연말시한을 넘기면 2020년에 조미핵대결이 재발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조선이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로씨야와 전략적 대화를 진행한 것은 2020년에 재발될 수 있는 조미핵대결을 준비하기 위한 선제행동으로 보인다.     

 

불라쵸브가 <연합뉴스> 대담 중에 말한 바에 따르면, 조선 외무성 인사들은 미국에게 경제제재를 해제하라고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라쵸브의 말에 따르면, 미국이 선전하는 것과 달리, 대조선 경제제재는 조선에게 심각한 위기가 아니며, 조선은 경제제재를 자력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위에 서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조미협상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것은, 미국이 대조선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조선의 평화협정체결요구에 응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따라서 최선희 제1부상이 2019년 4월 30일 답변에서 미국이 입장을 재정립하여 협상에 나와야 한다고 말한 것은,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므로 그에 상응하여 미국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뜻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선희 제1부상이 2019년 4월 30일 답변에서 위와 같은 의사를 밝힌 까닭은, 이미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 다시 말해서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요구를 받아들이면, 그에 상응하여 조선은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제안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말시한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은, 녕변핵시설폐기가 얼마나 커다란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인지를 알지 못한 채, 상황을 오판하였기 때문이다. 녕변핵시설폐기에 상응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그 협정에 의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자기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미국의 국가안보가 큰 손해를 볼 것으로 오판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저지른 그런 전략적 오판이 지금 조미협상을 파국으로 끌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적 오판에 빠져 파국을 자초하고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해결책, 다시 말해서 녕변핵시설폐기와 그에 상응한 평화협정체결이라는 해결책이 가져올 긍정적인 결과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핵능력 70~80%를 불능화하려는 파격적인 제안

 

평안북도에 녕변군에 있는 핵시설단지에는 크고 작은 각종 핵시설들이 390개동이나 있다. 조선의 시각으로 보면, 녕변핵시설 390개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 밑에 조선의 핵과학자들과 핵기술자들이 지난 40여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건설해놓은 귀중한 국가자산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핵시설 7개동을 손꼽으면,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 건설이 중단된 50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 30메가와트급 경수로, 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시설, 우라늄농축시설, 핵연료가공공장, 고준위방사성폐기물저장시설이다.  

 

2019년 3월 29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5메가와트급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은 2017년 1월에 재가동되었다가 2018년에 가동이 중단되었고, 우라늄농축시설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녕변핵시설폐기는 조선이 가장 아끼는 국가자산 390개동을 전부,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최선희 제1부상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2019년 3월 1일 현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녕변핵단지 전체, 모든 플루토늄시설과 우라늄시설을 포함한 핵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영구적으로,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하는 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이 바라는 조선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26일 내외통신사들과 진행한 서면대담에서 녕변핵시설이 완전히 폐기되면, 조선의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라고 명백히 지적한 바 있다. 

 

지난 시기 녕변핵시설단지를 네 차례나 방문하였던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 씩프릿 헥커는 2019년 3월 18일 <동아일보>와 진행한 서면대담에서 녕변핵시설이 조선의 전체 핵능력에서 70~8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제안”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헥커의 말마따나,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면, 조선의 핵무기생산능력 70~80%가 불능화되는 것이므로,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이야말로 조선이 미국에게 제안하는 최대값의 비핵화조치가 아닐 수 없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사진은 지난 시기 조선의 핵기술자들이 평안북도 녕변군 핵시설단지에 있는 흑연감속로 통제실에서 일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확인 또 확인"이라고 쓴 붉은 색 글씨가 보인다. 2019년 8월 21일 국제원자력기구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흑연감속로가 2018년 8월 중순까지 가동된 징후가 위성사진에 나타났고, 2018년 4월 말과 5월 초 사이에 재처리공장이 가동된 징후가 위성사진에 나타났으며, 우라늄농축시설이 가동된 징후도 위성사진에 나타났다고 한다. 미국의 언론매체 <38노스> 2019년 12월 6일 분석기사에 따르면, 30메가와트급 경수로가 2019년 12월 초 두번째 시험가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위에 열거된 사실들은 녕변핵시설단지에서 핵물질생산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므로,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의 가동을 멈춰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파격적인 조치에 상응하여 미국이 실행해야 할 평화협정체결은 과연 어떤 실효성을 가지는 것일까? 평화협정에는 반드시 철군문제가 명시되기 마련이므로, 조선이 미국에게 제기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요구는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라는 요구와 같은 것이다. 

 

철군문제를 명시한 세계 각국의 평화협정 또는 평화조약을 열거하면, 1973년 1월 27일에 체결된 빠리평화협정, 1979년 3월 26일에 체결된 에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 1988년 4월 14일에 체결된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 1991년 10월 23일에 체결된 캄보쟈 평화협정, 1994년 10월 26일에 체결된 요르단-이스라엘 평화조약, 1995년 12월 14일에 체결된 보스나 평화협정 등이다. 

 

그런데 실효성을 비교하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조선의 핵무기생산능력 70~80%를 불능화하는 것이지만, 평화협정에 의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것은 미국의 대조선 핵공격능력을 70~80% 불능화하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수해도, 조선을 공격할 수 있는 미국의 핵전략자산들은 주일미국군기지들과 괌의 미국군기지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더라도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공격능력은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며,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주한미국군철수를 명분으로 주일미국군기지들과 괌의 미국군기지에 핵전략자산을 더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은 자국의 핵무기생산능력 70~80%를 포기하는 데, 미국은 조선에 대한 핵공격능력을 포기하지 않고 되레 더 증강할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므로, 조선이 주한미국군철수를 조건으로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미국에게 크게 양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녕변핵시설폐기와 주한미국군철수가 등가적 상응조치로 될 수 없다는 불만을 제기해야 할 쪽은 미국이 아니라 조선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트럼프 행정부의 각료들과 백악관 안보보좌관들은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대가로 미국이 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면 미국의 국가안보이익이 침해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트럼프 대통령을 속였고,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요미우리신붕> 2019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면, 종전선언을 채택하겠다고 제안하였다고 한다. 협정은 협정으로 대체되어야 하므로, 정전협정은 오직 평화협정으로만 대체될 수 있는 것인데, 정전협정을 종전선언으로 대체하겠다는 말 자체가 헛소리이고, 게다가 조선의 핵무기생산능력 70~80%를 불능화하는 대가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지킬 의무가 없는 종전선언문이나 한 장 써주겠다는 것이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한 헛소리가 또 어디 있으랴!

 

<요미우리신붕> 2019년 4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중에 종전선언을 채택하겠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얼굴을 붉히면서 “일방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오판과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는데, 게오르기 불라쵸브가 <연합뉴스> 대담 중에 말한 바에 따르면, 조선은 어떤 협상에도 나서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조선은 미국과의 협상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조미협상을 준비하는 연락통로마저 폐쇄해버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 조미협상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국민일보> 2019년 11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2019년 9월 중순 뉴욕연락통로를 폐쇄하였다고 한다. 뉴욕연락통로는 유엔주재조선대표부와 미국 국무부를 연결하는 기존 연락통로를 뜻한다. 지난 시기 조선 외무성과 미국 국무부는 뉴욕연락통로를 통해 의사소통을 해왔는데, 조선은 지난 9월 중순 그 연락통로마저 폐쇄해버린 것이다. 

 

게오르기 불라쵸브가 <연합뉴스> 대담 중에 말한 바에 따르면, 그가 평양에서 만난 조선 외무성 인사들은 조선이 2019년 말까지 미국의 태도변화를 기다리다가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길”을 택하겠다고 밝혔는데, 새로운 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자신에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조선은 핵시험이나 미사일 발사보다 더 심각한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입장을 재정립하여 협상에 나오지 않으면 올해 연말에 미국은 참으로 원치 않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최선희 제1부상의 엄중한 경고가 나온 때로부터 일곱 달이 지난 오늘도 미국이 입장을 재정립하였음을 보여주는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이 상황오판으로 연말시한을 넘길 경우에 대처하려는 조선의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은 최근 언론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특이한 움직임들이 보인다

 

<중앙일보> 2019년 1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연말을 기해 중대사변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한국과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지난 11월부터 조선의 움직임을 주시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연말시한을 앞두고 조선이 중대사변을 준비하는 것은, 상황을 오판한 미국이 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협상재개시한을 넘기는 경우 조선은 이미 예고한대로 “새로운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조선이 대미정책에서 전략적 방향전환을 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조선의 움직임은 다음과 같다. 

 

(1) 일본 <아사히신붕> 2019년 12월 2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탄도미사일을 실은 발사대차(TEL)가 들어설 콘크리트 토대를 올해 여름부터 전국 각지에 수십 군데 설치해왔다고 한다.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때 로켓엔진분사구에서 엄청난 화염폭풍이 분사되면서 발사대차 뒤쪽의 땅바닥이 파이고, 자칫 잘못하면 발사대차가 기울어져 2탄을 발사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예정된 발사점에 콘크리트 토대를 미리 만들어놓는 것이다.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조선은 탄체길이가 20m가 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탑재한 대형 발사대차가 들어설, 넓이가 수 십㎡나 되는 콘크리트 토대를 올해 여름부터 각지에 설치해놓았다고 한다.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한 콘크리트 토대가 조선 각지에 설치되었다는 정보는, 일본 정보수집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것이다. 2019년 현재 일본은 정보수집위성 7기를 운영하고 있는데, 낮에만 촬영할 수 있는 광학위성이 3기이고, 밤에도 촬영할 수 있는 적외선위성이 4기다. 일본 텔레비전방송 <NHK> 2018년 2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정보수집위성 7기를 운용하는 일본은 지구상의 모든 지점을 하루에 한 차례 이상 촬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일본의 정보수집위성보다 성능이 더 좋은 첩보위성을 80기나 운용하는 미국은 일본의 위성감시망보다 훨씬 더 촘촘한 위성감시망을 운용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콘크리트 토대를 각지에 설치해놓은 것은 탄도미사일 발사점들을 미국의 위성감시망과 일본의 위성감시망에 일부러 알려주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조선은 탄도미사일 발사징후가 적국에 노출되지 않도록 발사대차를 비행장 활주로 또는 포장도로에 세워놓고 기습적으로 발사하곤 하였다. 이처럼 탄도미사일 발사는 적국의 탐지망에 포착되지 않도록 은밀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조선이 콘크리트 토대를 설치하여 미국과 일본에게 발사점을 미리 노출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이 콘크리트 토대를 각지에 설치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미국이 상황을 오판하고 연말시한을 넘겨 2020년에 조미핵대결이 재발되면, 미국과 일본의 위성감시망들은 조선에 집중될 것이고, 특히 조선이 각지에 설치해놓은 콘크리트 토대들을 24시간 감시할 것이다. 

 

그러나 탄도미사일을 실은 조선인민군 전략군 발사대차들은 콘크리트 토대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임의의 발사점으로 이동하여 기습적으로 미사일발사훈련을 진행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예견하면, 조선이 각지에 설치해놓은 콘크리트 토대들은 미국과 일본의 위성감시망을 붙잡아두는 유인점 이외에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위성감시망이 그 유인점들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임의의 발사점에 나타난 조선의 발사대차들은 기습적으로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릴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과 일본은 조선의 발사대차들이 어느 순간에 콘크리트 토대에 나타날지 알 수 없으므로, 긴장을 풀 수 없게 되었다. 조선이 각지에 콘크리트 토대를 설치한 것은 미국과 일본을 지속적인 긴장 속에 몰아넣을 뿐 아니라, 조선의 탄도미사일이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발사되는 것을 탐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묘책인 것이다.  

 

(2)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의 무지와 오판으로 결렬된 직후인 2019년 3월 7일 그는 백악관에서 체코공화국 총리와 회담하기 직전 기자회견 중에 서해위성발사장 복구공사와 관련하여 실망했는가고 물은 취재기자에게 “실망스럽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은 당시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 복구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연합뉴스> 2019년 3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보도 당일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은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여 하노이 조미정상회담 직전인 2019년 2월 중순에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복구공사가 시작되었는데, 2019년 3월 말 현재 복구공사 대부분이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그 복구공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위와 같은 보고발언에 따르면, 조선은 2019년 3월 말 서해위성발사장 복구공사를 완료해놓은 것이다. 

 

<동아일보> 2019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오끼나와에 있는 가데나공군기지에서 이륙한 미국 공군 정찰기 RC-135S 한 대가 서해 상공에서 5시간 동안 정찰비행을 하고 기지로 돌아갔는데, 이것은 2019년 3월 말 조선이 복구공사를 완료한 서해위성발사장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수행한 정찰비행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서해위성발사장 복구공사는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와 위성운반로켓수직발사대를 원상복구하여 임의의 시각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동아일보> 2019년 3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방측 상업위성이 서해위성발사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조섭 버뮤데즈 연구원은 “수직엔진시험대와 발사대”가 복구되었다고 하면서, 이런 복구공사는 조선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비상계획의 첫 단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2016년 4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밑에 조선국방과학원이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신형 대출력 로켓엔진분사시험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 나오는 신형 대출력 로켓엔진은 고체연료로켓엔진이 아니라 액체연료로켓엔진이다. 당시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이 분사시험이 대성공이라고 하면서 "주체조선의 핵공격능력을 비상히 강화하는 데서 이룩한 또 하나의 사변"이라고 대서특필하였었다. 그로부터 3년 6개월이 지난 2019년 12월 7일 조선국방과학원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진행하였다. 이 중대한 시험은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신형 대출력 고체연료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이었다. 이번에 신형 고체연료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에서 성공하였으므로, 앞으로 그 신형 로켓엔진을 장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중대사변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9년 4월 이후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특이한 동향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2019년 12월 초에 이르러 특이한 동향이 나타났다. <CNN> 2019년 12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로켓엔진시험을 준비하는 듯이 보이는 정황이 위성사진에 나타났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로켓엔진시험을 준비하는 듯이 보이는 정황은, 대형 철제함을 실은 수송차량 한 대가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 옆에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2019년 12월 7일 조선국방과학원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진행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날 조선국방과학원 대변인은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선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시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시험이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는 두 종류의 시험이 진행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하기도 하고, 정지위성운반로켓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2019년 12월 7일에 있었던 시험은 조선국방과학원이 진행하였으므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정지위성운반로켓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은 조선국방과학원이 아니라 조선국가우주개발국이 진행한다.   

 

조선국방과학원이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선국방과학원은 2016년 4월 7일과 2017년 3월 17일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대출력 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각각 진행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두 차례의 시험은 고체로켓엔진이 아니라 액체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이었다. 조선국방과학원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고체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진행한 것은 2016년 3월 23일 한 차례밖에 없는데, 그 시험장소는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가 아니라 어딘지 알 수 없는 평지에 설치된 수평분사대였다.  

 

위에 열거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조선국방과학원은 2019년 12월 7일 서해위성발사장 로켓엔진수직분사시험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신형 대출력 고체연료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을 진행한 것이 확실하다. 이번에 신형 고체연료로켓엔진을 분사하는 시험에서 성공하였으므로, 앞으로 그 신형 로켓엔진을 장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중대사변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3) 2019년 8월 21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유엔총회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2018년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가 2018년 8월 중순까지 가동된 징후가 위성사진에 나타났고, 2018년 4월 말과 5월 초 사이에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재처리공장이 가동된 징후가 위성사진에 나타났으며,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우라늄농축시설이 가동된 징후도 위성사진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 우라늄농축시설에는 약 4,000기에 이르는 원심분리기가 설치되어 있다.  

 

2019년 11월 14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들이 발표한 분석기사에 따르면, 서방측 상업위성이 촬영한 녕변핵시설단지 위성사진을 분석하였더니, 차체길이가 약 10m인 궤도차(railcar) 1대, 차체길이가 약 13m이고 대형 철제함 4개를 실은 궤도차 1대, 차체길이가 약 13m이고 대형 철제함 4개를 실은 궤도차 2대, 차체길이가 약 12m인 궤도차 2대가 각각 녕변핵시설단지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 궤도차들은 방사성물질을 운반하는데 쓰이는 특수차량이므로, 궤도차들의 출현은 녕변핵시설이 가동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언론매체 <38노스> 2019년 12월 6일 분석기사에 따르면, 조선은 녕변핵시설단지에 있는 경수로를 시험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기출력이 30메가와트급인 그 경수로는 조선이 독자적으로 설계하여 건설한 것이다. 위의 분석기사에 따르면, 그 경수로는 2019년 3월 22일과 6월 30일 사이에 처음으로 시험가동을 시작하였고, 2019년 12월 초에 두 번째 시험가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주목되는 것은, 수소폭탄을 만드는 무기급 플루토늄 또는 트리튬을 그 경수로에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 열거된 사실들은 녕변핵시설단지에서 핵물질생산활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평화협정체결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므로,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의 가동을 멈춰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4. 백두산에서의 결심, 그리고 제5차 전원회의 소집

 

2019년 12월 3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오는 12월 하순에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할 데 대한 결정서를 발표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전략로선 또는 대내외정책을 결정하려고 할 때 전원회의를 소집한다. 이를테면, 2018년 4월 20일에 소집된 제3차 전원회의에서는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유예하는 방침을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연말에 전원회의를 소집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소집되는 전원회의에서는 미국이 상황을 오판하여 연말시한을 넘기는 사태에 대처할 새로운 정책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2월 하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회의가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하면, 그 동안 조선이 예고해온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견된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회의가 연말에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한다고 발표한 날, 리태성 조선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은 담화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최대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중대조치들을 깨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결심에 따라 중대사변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미국이 올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를 지켜보겠다고 하였으므로, 조선이 “새로운 길”을 결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12월 26일부터 12월 31일 사이에 소집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본 소식이 전해졌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수행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눈 덮인 백두산 고산지대에 올라 지난 항일전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이 일제와 전투를 벌였던 혁명전적지들, 숙영지들, 밀영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보았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사진 4> 

 

▲ <사진 4>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12월 3일 수행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눈덮인 백두산지구 항일혁명전적지를 돌아보고,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항일혁명전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이 일제와 전투를 벌였던 혁명전적지들, 숙영지들, 밀영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보면서 새로운 혁명열과 투쟁열을 느끼고 새로운 의지를 다졌으며 혁명적 공격정신으로 난국을 타개하고 새로운 길을 가려는 결심을 가졌다고 한다. 오는 12월 하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서 결심한 "새로운 길"은 그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중대사번이 다가오고 있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49일 전인 2019년 10월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 오른 소식을 전하면서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보도하였었는데, 이번에는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보도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사진을 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9일 전에 백두산 정상에 오를 때 탔던 바로 그 백마를 이번에 다시 타고 백두산 혁명전적지를 돌아보았음을 알 수 있는데,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이번에는 백마가 아니라 군마라는 말을 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에 백두산지구를 시찰한 것은 지난번에 백두산 정상에 오른 것과 달리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군종사령관들. 군단장들을 비롯한 고위급 군사지휘관들을 대동하고 항일전쟁전적지들을 돌아보는 군사적 의의가 큰 활동이었으므로, 군마라는 말을 쓴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항일혁명전적지에서 남긴 의미심장한 말들 가운데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백두산은 언제 와 보아도, 걸으면 걸을수록 몸과 마음에 새로운 혁명열, 투쟁열이 흘러들고 새로운 의지를 다지게 되는 곳이다.”

 

“우리가 어떤 각오를 안고 우리 혁명의 전취물을 지켜야 하겠는가,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를 이어서라도 끝까지 이 한 길만을 가야 하겠는가 하는 결심이 더욱 굳어진다.” 

 

위에 인용된 두 문장은,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항일혁명전적지에서 새로운 혁명열과 투쟁열을 느끼고 새로운 의지를 다졌으며, 혁명의 길을 끝까지 가리라고 더욱 굳게 결심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제국주의자들과 계급적 원쑤들의 책동이 날로 더욱 우심해지고 있는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언제나 백두의 공격사상으로 살며 투쟁하여야 한다.”

 

“불굴의 공격사상으로 혁명의 난국을 타개하고 개척로를 열어제끼자는 것은 우리 당의 일관한 결심이고 의지이다.”

 

위에 인용된 두 문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지구 항일혁명전적지에서 혁명적 공격정신으로 난국을 타개하고 새로운 길을 가려고 결심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는 12월 하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제5차 전원회의를 소집하면, 그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서 결심한 “새로운 길”이 공식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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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보신각 앞서 마네킹이 된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12/08 11:16
  • 수정일
    2019/12/08 11: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안전한 일터’ 위한 퍼포먼스 열어

“학교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 밀려드는 업무 폭탄! 위험한 약품 취급!”

7일 보신각 앞.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30여 명이 스스로 마네킹이 됐다. “다치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일하기 위해 ‘마네킹 챌린지’를 연 것.

‘마네킹 칠린지’는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사람이 마네킹처럼 부동자세(스톱 모션)를 유지하는 퍼포먼스를 뜻한다.

이날은, 지난해 12월10일, 故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지 1년을 앞두고 추모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마네킹 챌린지 참가자들은 “‘김용균 법’이 만들어지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서 “아이들과 생활하고 교육하는 학교 현장 또한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학교 급식실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는 곳이 됐지만 높은 배치기준(급식노동자 1인당 평균 150명에 달하는 급식인원 수)으로 인해 엄청난 노동강도에 노출”돼 있고, “아이들의 안전한 실험을 준비한 과학실에선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위험한 일터에 놓여 있는 급식실 노동자, 유해물질에 노출된 과학실 노동자, 갑질과 차별에 노출된 교무실 노동자 등의 모습을 마네킹 챌린지로 담았다.

“학교에서 비정규직을 배운 청년! 사회에 나와 비정규직이 된 청년! 비정규직이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청년, 김용균을 추모합니다.” 故 김용균 노동자를 향한 추모 인사를 한 참가자들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일하다 다치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마네킹 챌린지 스톱모션을 시작했다.

▲ 식판을 들어올리고, 1인당 150인분의 밥을 짓고.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급식실 노동자
▲ 위험물질 약품 처리하는 과학실 노동자
▲ 관리자의 직장 갑질, 업무 폭탄에 힘들어하는 교무실 노동자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잠시 서 있다가 팻말을 내려놓고 스톱모션을 진행한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옆엔 “나는 매일 150인분의 밥을 짓습니다”, “나는 매일 위험약품을 만집니다”, “나는 매일 업무폭탄에 시달립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 청년 노동자들이 또다시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학교부터 안전한 노동환경 만들자”, “비정규직의 설움을 물려주지 않는 학교를 만들자”고 외치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과 故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는 종각역 사거리에서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열고 “죽지 않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 이행”을 요구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1년 전 그날처럼 노동자 김용균이 점검하던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고, 석탄가루 뒤덮인 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더 이상 죽음의 외주화를 방치하지 말라’, ‘산재사망 살인기업을 처벌하라’는 노동자, 시민의 준엄한 요구는 문재인 정부에 의해 철저히 기만당하고 있다”고 규탄하곤 “김용균과 우리 모두가 꾸었던 꿈, 비정규직 철폐, 직접고용 쟁취, 위험의 외주화 금지,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해, 하루에 6명, 매년 2400명이 일하다 죽어나가는 죽음의 행진을 끝내기 위해 노동자 시민이 함께 촛불의 바다를 만들자”고 외쳤다.

선현희 기자  shh4129@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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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운동 지도자'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별세

[부고] 7일 밤 건강악화로 운명, 10일 광화문광장 영결식

19.12.08 09:47l최종 업데이트 19.12.08 09:47l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8·15 자주통일대회의 의의에 대해 강조했다.
▲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2019년12월7일 향년 81세로 운명했다.
ⓒ 진보연대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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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이 7일 별세했다.

한국진보연대는 이날 "2019년 12월 7일 오후 10시 57분, 전선과 교사운동에 일생을 바친 오종렬 의장님께서 건강악화로 인해 열사의 곁으로 떠나셨다"라고 밝혔다. 

고인의 장례는 8일 오전 9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진 빈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진행된다.  이후 1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을 진행하고 오후 4시부터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빈소를 옮겨 조문을 받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8시로 예정돼 있다.

 

고인은 지난 1938년 11월 28일 전남 광산군(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와 광주사범대 과학교육과, 전남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교원에 임용돼 교단에 섰다. 진도고성중학교, 전남고등학교, 광주동명여자중학교, 전남대학교 사대부속고등학교, 전남여고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그는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조의 전신) 출범에 참여해 대의원 대회 의장을 지냈고, 1989년 전교조 초대 광주지부장을 역임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전교조 탄압 과정에서 구속돼 1989년 7월 옥중에서 파면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고인은 이후 1991년 지방선거에서 제1대 광주시의회 의원(무소속)으로 당선됐고, 같은해 11월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 공동 의장으로 선출됐다.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고인은 199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돼 2년 8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19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대의원대회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1999년에는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내세운 '군자산 정치 방침'을 발표했다.

그는 2001년 통일연대 상임대표와 전국민중연대의 상임공동대표를 지내면서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범대위 대표를 맡았고 2003년에는 한·칠레FTA저지 범대위 공동위원장, 2005년 APEC반대 국민행동 공동대표, 2006년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특히 한미FTA 저지 활동으로 인해 2007년 7월 세 번째 구속을 당했다. 그해 9월 출소 후 그는 통일운동과 민중운동 진영을 통합한 전선운동조직인 한국진보연대를 출범시키고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그의 활동은 계속됐다. 2008년 5월 '미국산소고기 수입반대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촛불집회의 배후로 지목당해 그해 8월 구속됐다. 그의 일생에 네 번째 '옥살이'였다. 2009년 2월 출소한 구는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을 맡으며 민중운동 일선에서 물러서 2015년 전남 담양군에 5.18민족통일학교를 설립하고 후진양성을 위해 힘을 쏟았다.

고인은 생전 5.18민족통일학교 설립을 앞둔 시점에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공유하고자 한다"라며 "일본 식민사관에 따른 치욕스럽고 자기 부정적인 역사관을 걷어내고 배타적이지 않은 호혜평등 민족주의를 복원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5·18 학교 세우려고 자식 주머니까지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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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노동자 '이모님', 헌법재판소 간다

[단독]노동자의 노동자 '이모님', 헌법재판소 간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19.12.08 09:03 수정 : 2019.12.08 09:08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 회원들이 2013년 6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보호협약 비준’과 ‘가사노동자 인정 않는 근로기준법 예외 규정 개정’ 등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 회원들이 2013년 6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보호협약 비준’과 ‘가사노동자 인정 않는 근로기준법 예외 규정 개정’ 등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채선자씨(가명·64)는 매일 오전 5시에 눈을 뜬다. 집안 살림을 대강 정리하고 집을 나서는 시각은 오전 6시 10분. 지하철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가정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오전 7시 1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꼬박 12시간을 근무한다. 그가 월~금요일 꼬박 일해 매달 받는 급여는 200만원이다. 

이곳에서 일한 지 4개월 됐다. 이전에는 한 곳에서 10년을 근무했다. 조선족인 채씨는 2007년 말 한국으로 건너와 직업소개소를 통해 한 가정집을 소개받았다. 2007년 12월 말부터 그곳에서 일한 채씨가 처음 받은 급여는 120만원, 가끔 ‘뜻밖의 보너스’도 있었다. “바깥 사장님이 미국을 자주 왔다갔다 하셨는데 몇 개월에 한 번씩 집에 오실 때마다 ‘고생이 많다’며 50만원씩 주고는 했어요.” 일한 지 6년째 되던 해 받은 월급이 160만원이었다. 그런데 고용주의 결혼한 딸의 집에서 일하던 한국인 가사도우미가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딸이 후임을 구하지 못하자 고용주는 채씨에게 “딸의 집에서 일해달라”고 했다. 채씨는 2014년 5월부터 고용주 딸의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입주 도우미로 꼬박 4년 일해 

채씨는 입주 도우미로 이곳에서 4년을 꼬박 일했다. 월급은 220만원. 외출은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후 7시까지 주어졌다. 급여가 160만원에서 60만원 더 올랐지만 관리해야 할 일 역시 늘었다. “아파트가 80평대라 혼자 청소하려면 고생했지요.” 

채씨의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해 오후 10시에 마무리됐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부부 내외와 오전 7시 10분이면 초등학교 통학버스를 타야 하는 첫째 아이 식사를 먼저 챙겨 보냈다. 이어 둘째를 씻기고 먹여 오전 9시 30분까지 어린이집에 보냈다. 오후 6~7시쯤 퇴근하는 엄마의 저녁까지 챙기고 나면 채씨가 식사를 했다. 설거지 및 청소를 마치면 채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잤다. “애들이 나랑 자려고 하니까 우리 셋이 모여 잤지요. ‘자기 전에 책 읽어줄 테니 책을 방에 가져다 놔라’ 하면 네 권씩 들고 오는데 읽어주다 보면 하나씩 꾸벅꾸벅 졸아요. 그러면 나도 같이 잠들었지요”라고 말했다.

채씨는 그러나 지난해 3월 이곳을 나왔다. 퇴직 의사를 먼저 밝힌 것은 채씨였다. 아파트 이웃이 고용주에게 “채씨가 아이에게 너무 강하게 말한다, 주차장에서 전화하느라 아이 손을 놓았다” 등의 말을 전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채씨는 해명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왔다. 얼마 뒤 채씨의 통장에는 채씨가 일한 ‘근무일수×7만7000원(일당)’의 급여가 들어왔다.

채씨는 결국 지난해 6월 고용주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소송을 냈다. 소송 결과는 당연히 채씨의 패소였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이 보호하는 근로자가 아니다. 1심 재판부는 기각사유 한 줄 없이 패소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퇴직급여법 제3조 단서는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및 가구 내 고용활동에는 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고, 원고는 ‘가구 내 고용’에 해당하므로 퇴직급여법이 적용됨을 전제로 한 소송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9월 패소판결을 내렸다. 

또 채씨가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명시했다.

“퇴직급여법상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퇴직급여제도의 설명의무를 어느 범위의 사업 또는 사업장까지 인정할지는 그 당시 사회·경제·문화적 여건을 고려하여 입법기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으므로 위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 

즉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및 퇴직급여법이 처음 제정된 지 6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회·경제·문화적 여건’상 헌법이 정한 기본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용주 상대 퇴직금 청구소송 패소 

가사노동자는 일을 하고, 이에 따른 급여를 받더라도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이 예외로 정한,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대명제는 1953년 이 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부터 확고하게 우리 삶에 자리 잡았다. 가사노동자가 노동자가 아니면 가사일 역시 노동이 아니다. 가정주부를 흔히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편견 가득한 문장 역시 법이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 ‘맞는 말’이 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가사노동자는 노동관계법이 정한 그 어떤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퇴직금·최저임금·산재보험 적용에서도 모두 제외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다. 행여 일을 하다 다쳐도 고용주는 이를 부담할 법적 책임이 없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도 ‘가사노동’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고용주를 고발할 수도 없다. 채씨와 같이 퇴직금 소송을 내본들 패소다. 법이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채씨에게 퇴직금을 줄 의무도, 법적 책임도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이다. 18대 국회에서 처음 제정법안으로 발의됐다. 그러나 18·19대 국회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재발의됐지만 역시나 임기만료 폐기를 앞두고 있다. 입법자들은 가사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고, 이들을 여타 노동자들과 같이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위한 법안 통과에는 소극적이다. 

농촌 10대 여성들의 무작정 상경과 식모 취직 실태를 다룬 경향신문 1965년 2월 6일자 보도.

농촌 10대 여성들의 무작정 상경과 식모 취직 실태를 다룬 경향신문 1965년 2월 6일자 보도.

이유는 복잡하다. 가사노동자의 업무 형태, 고용방식 등이 각기 달라 이를 하나로 포괄하는 법 제정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18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소위 제1차 회의록 등을 살펴봐도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은 직업소개소나 O2O(Online to Offline)를 통해 가정에 파견되는 가사노동자 외에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알선업체 및 공공기관을 통해 파견된 것이 아닌, 개인이 자체적으로 계약을 맺어 근로하는 노동자)’까지 보호해주는 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종국에는 비공식적으로 근무하는 가사노동자들도 사업체 안으로 들여와 보호하고, 이용자는 불만사항 등을 사업체에 알려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법이 공표돼도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는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들을 포섭하고 보호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마냥 ‘가사노동자 보호’만을 주장하기도 어렵다. 가사노동자의 권리보호 이면에는 기혼 직장여성의 노동권 보장이라는 문제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상용노동자 5인 이상 사업체의 여성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44만9000원이다. 또 여성 임금근로자 10명 중 4명 이상은 일자리 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이다. 임금 역시 남성임금의 69%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 12월 5일 기준 강남지역 가사도우미 월 급여(출퇴근)는 200만~300만원 후반대까지 다양하다. 13년차 가사노동자 권모씨(65)는 “한국인 베이비시터는 주 5일 10시간 기준으로 220만원 이상은 받으려 한다”면서 “요즘 한국인은 입주 도우미로 잘 안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대부분 조선족들이 입주 도우미를 한다. 주 6일 근무 토~일 반일 휴무를 주면 적어도 250만~300만원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시세만으로도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이 고스란히 가사노동자 급여로 들어가야 하는 셈이다. 
 

‘노동자’로 보호 못 받는 가사노동자 

무역 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송모씨(38·여)는 월급의 3분의 2를 아이 돌보미 선생님 급여로 쓴다. 송씨의 월평균 급여는 300만원대 초반이다. 돌보미의 월 급여는 210만원이다. 여기에 명절마다 20만원씩 상여금을 주고, 생일 때도 10만원을 챙겨준다. 송씨는 “집에 와서 저녁을 차릴 여유가 없다 보니 사 먹는 비율이 높은데 식비까지 합하면 내 월급을 전부 시터비용과 식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의 월급의 상당액을 가사노동자 급여로 지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송씨가 지급하는 가사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2019년 최저임금 8350원보다 낮다. 송씨는 “만약 시터 이모님 월급을 최저임금에 맞춰서 드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송씨의 사례처럼 여성의 노동에 기대 여성이 노동할 수 있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가사노동자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 및 법 개선은 기존 직장여성의 경력단절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지난 11월 26일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중 경력단절여성 현황’에 따르면 직장을 그만두는 사유 중 육아(64만9000명·38.2%)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결혼(52만2000명·30.7%), 임신·출산(38만4000명·22.6%), 가족돌봄(7만5000명·4.4%), 자녀교육(6만9000명·4.1%) 순으로 나타났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고 응답한 경력단절 여성의 비중은 2017년 58만6000명(32%), 2018년 61만9000명(33.5%)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가사노동자 보호와 직장여성 노동권 

부모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와 가사를 대신 맡아줄 가사노동자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다. 간병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 및 법을 통한 보호는 필요하지만 이들의 처우 개선이 또 다른 여성 경력단절자를 만들 수 있는 한계선 안에서 두 ‘여성’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가사노동자도 법이 정한 노동자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그러나 그들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노력과 동시에 기존 직장여성들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보호장치 마련을 위한 노력도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채선자씨는 지난 9월 26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2019헌바454). 헌법재판소는 이제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제3조 단서 중 “가구 내 고용활동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가사노동자들이 여전히 1953년에 머물러 ‘식모’로 살아야 할지, 법이 보장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렸다.
 

[단독]노동자의 노동자 '이모님', 헌법재판소 간다
노동권·사회보장권·건강권·인격권이 뭐예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5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노동권과 사회보장권, 건강권, 인격권을 모두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근무시간 탓에 장시간 근무를 하고, 4대 보험 가입 역시 되지 않았다. 가사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 이상 증상을 경험했고, 간병인의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았다. 인격권 침해사례도 많았다.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란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노동권 8년째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한동숙씨(61)는 지금까지 근로계약서를 한 번도 작성하지 않았다. 산후도우미로 처음 일을 시작해 아이가 5살 되던 해에 첫 집에서 일을 그만뒀다. 앞으로 등·하원 도우미만 있으면 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아서다. 한씨는 월 180만원의 급여로 생계를 꾸려갔기 때문에 등·하원 도우미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한씨는 오전 7시 30분부터 아이 부모 중 한 명이 퇴근할 때까지 근무했다. 하루 12시간 근무한 날도, 부부가 모두 야근을 해 15시간 이상 근무한 날도 있었다. 별도의 추가수당은 없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집 역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친한 언니가 넘겨준 가정집 일을 하면서 친한 언니가 받던 급여 180만원을 동일하게 받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가사노동자 가운데 육아도우미는 전체 응답자(139명)의 절반 이상인 54.7%(76명)가 주당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도 29.5%(41명)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노인 간병인들은 전체 응답자(23명)의 65.2%(15명)가 40시간 이상, 26.1%(6명)가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1회 방문당 2~3시간 근무를 미리 약속하는 경우가 많은 가사도우미는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이 67.3%(138명), 15시간 이하 24.4%(50명)로 전체 응답자(205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회보장권 이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4대 보험 가입에서 배제돼 있다. 이들은 의무 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집은 사업주 등록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고용주가 보험 가입을 해주려 해도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박귀자씨(58)는 “애 아빠가 사업하시는 분은 회사 명의로 4대 보험 가입을 해주는 집도 있다”면서 “그런데 세금 떼어 가는 것도 싫고, 애 봐주러 가면서 무슨 보험이냐 싶어 보험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강권 많은 가사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쳐도 고용주로부터 치료비 등을 요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전체 가사노동자 응답자의 55~77%가 근골격계 이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지만 치료비는 사실상 각자의 몫이다. 권모씨(63)는 “애를 업다 보면 손목 인대가 자주 나간다. 그러면 파스라도 붙이고 일을 해야 하는데 파스값을 달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척이 간병인 일을 하는데 어깨와 허리, 무릎까지 다 아파도 일을 쉴 수가 없으니 토요일마다 한의원에 가서 자주 침을 맞는다더라”고 했다. 

●인격권 신체적 고통보다 가사노동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이 인격침해다. 박귀자씨는 “아이 엄마가 음식을 해놓으면 내가 퇴근 전까지 먹이는 일만 하기로 처음 약속을 했는데 점점 ‘그 정도도 못 해주시냐’는 식으로 변해갔다”며 “아이 돌보는 일만 하기로 계약해도 결국 살림살이까지 해주길 요구하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동숙씨는 “독감이 유행할 때 아픈 애 보면서 끼니를 거르다 보니 속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났는데 애 엄마가 말을 하다 말고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적으로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4.6%(가사)~60.2%(육아)가 ‘업무 이상의 지나친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14.8%(육아)~31.8%(가사)가 과도하게 감시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인의 경우 특히 인간적인 무시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31.2%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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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면 25살 청년 김용균, 일하다 죽지 않길"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
2019.12.07 22:10:33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너 사고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꽃보다 더 이쁜 내 새끼. 꿈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내 아들. 애달픈 내 아들 용균아." (하략. 기사 아래 김미숙 이사장 편지 전문 게재)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아들의 1주기를 맞는 심정을 담은 편지를 읽었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있었다. 그들이 거리에 앉은 것은 일하다 사람이 죽는 한국사회의 현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도 3명의 노동자가 직장에서 영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을 것이다.

7일 종각역 사거리에서 고김용균1주기추모위원회가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열었다. 하루 전인 6일은 김용균 씨의 생일이었다. 사흘 뒤인 10일은 김용균 씨의 기일이다. 

 

 

▲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는 용균이 엄마 김미숙 씨. ⓒ프레시안(최형락)

 


"용균아 미안하다. 너에게 한 약속 꼭 지킬게" 

이날 김용균 씨에게 편지를 쓴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발전소 노동자 장근만 씨도 동료였던 김용균 씨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용균아. 어제가 너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었네. 작년 12월 6일 생각나지? 그날 우리는 너의 생일을 기념하며 호프집에서 웃고 떠들었지. 그날 같이 술을 마시고 많이 친해졌던 것 같아. 컨베이어벨트가 너를 삼키지 않았다면 우리는 작년처럼 또 호프잔을 들었겠지. 그런데 너는 저 하늘나라에서, 아니 광화문광장에서 많은 시민이 생일 축하해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거고, 나는 현장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있구나. 1년 전 그날이 정말 그립다.

2월 9일. 62일만에 용균이 너를 묻넌 날. 우리는 네가 들었던 피켓처럼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용균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정말 미안하다." 

이어지는 편지에는 장 씨의 지난 1년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고김용균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을 보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일, 김용균특조위가 "김용균은 시키는 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죽었고, 죽음의 근원은 위험의 외주화"라며 22개 권고안을 내놓은 일, 권고안 발표 이후에 꿈쩍도 하지 않는 정부를 보며 기대가 무너진 일, 김용균 씨가 죽은 후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온몸이 떨리고 괴로웠던 일 등이었다. 김용균 씨의 죽음을 애달파한 사람들의 1년 그대로였다.


장 씨는 아직 지키지 못한 용균이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용균아. 정말 미안하다.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네가 하늘나라로 떠나지 못하고 차가운 광화문광장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런데 너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너의 죽음을 묻어버리고 무시하고 있구나. 그래. 질 수 없다. 우리는 다시 용균이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려고 한다. 여기 계신 시민들과 함께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지 잘 봐줘. 우리를 응원해줘,

용균아, 너에게 한 약속이 또 있었지. 용균이 너의 어미니가 외롭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 말이야. 그 약속 꼭 지킬게. 늦었지만 스물다섯번째 생일 축하한다."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 

이날 추모대회에는 2000여 명이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든 이유를 밝히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애령 예수회 수녀는 "고 김용균 님의 수의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수의를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박상은 사회적참사 연구자는 "위험은 줄일 수 있고 사람은 살릴 수 있습니다. 비용과 효율을 이유로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를 바꾸고자 함께 촛불을 듭니다"라고 적었다. 

추모대회 말미에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건설과 조선소 하청 노동자 등으로 이루어진 비정규직100인대표단이 연단에 올랐다. 이들은 "한국사회 40대 기업의 산재사망 사고 95%가 비정규이지만, 그 죽음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재벌은 한명도 처벌되지 않았다"며 "이 무도한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윤만을 위한 자본가의 끝없는 탐욕 때문이고, 사람을 죽여도 벌금 500만 원이면 땡처리되는 세상 때문이고, 파견, 용역, 도급, 특수고용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이 면죄부를 받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100인대표단은 "탐욕의 자본이 만든 사회를 끝장내기 위해, 내 부모, 내 자식, 내 친구가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게 하기 위해, 김용균의 이름으로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 것"이라며 "기업살인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이 참혹한 죽음을 멈추고, 노조법 2조 개정과 직접고용 쟁취로 생명이 우선되고 차별 없는 평등한 길을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추모대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분향소로 행진해 묵상했다. 이어 "더 이상 죽지 않게. 기업살인법 제정하라",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향했다. 대열의 맨 앞에는 고 문중원 마사회 기수 유족, 고 김동준 특성화고 실습생 유족, 고 이한빛 PD 유족 등 일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김미숙 이사장 곁에 서있었다. 

 

 

▲ 일하다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비정규직100인대표단. ⓒ프레시안(최형락)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마치고 행진 중인 사람들. ⓒ프레시안(최형락)

 

 

 

▲ 행진 대열 앞에서 선전 방송을 하고 있는 김수억 현대기아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 ⓒ프레시안(최형락)

 

 

 

▲ 피켓을 들고 앉아있는 추모대회 참가자. ⓒ프레시안(최형락)

 


아래는 김미숙 이사장이 아들 용균이에게 쓴 편지 전문.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너 사고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꽃보다 더 이쁜 내 새끼. 꿈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내 아들. 애달픈 내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 없이 사는 세상 꿈에도 생각 못해봤고,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을지 아직도 마음은 갈팡질팡이구나.

엄마이기에 강할 수 있고, 또 그러기에 한없이 무너짐을 느끼며. 내 가슴속에선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지게 만든 이 나라가 한 없이 원망스럽고 너를 지켜내지 못한 내 스스로가 아직도 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게 그 자체가 비참하구나.

아무리 좋은 먹거리와 환경을 접하더라도 내 분신을 잃어버렸기에 허망한 삶이 되어버렸고. 이 세상은 더 이상 나에게 큰 의미도 없고. 즐거움과 행복은 이미 남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끼며 살고 있단다. 

단 한번만이라도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이 되면 별을 보며 너를 찾았고, 매일 꿈속에서 만나길 기도하며 잠을 청했단다. 서너 번의 꿈속 너의 모습은 늘 유치원 이전의 모습이었고, 위태로운 환경에서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그런 꿈을 꾸었단다.

지난번에 아빠 꿈에 너의 모습은 온화한 얼굴로 "다른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다고 얘기를 들었을 땐 평소의 너의 성품을 생각하면, 엄마 아빠가 아들 걱정할까봐 걱정말라며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꿈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어.

너는 이곳에서 부족한 부모 만나서 힘들게 살았지만 너가 있는 그곳에서는 좋은 부모 만나서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엄마는 바란단다. 

너가 그렇게 떠나간 뒤 엄마는 그동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단다. TV 속에 보여지는 세상과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이런 현장은 구조적으로 안전이 방치되어 너처럼 억울하게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그동안 수만 명에 달한다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랍고 분노스러웠던지. 지금도 매일 산재 사고를 접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단다.

너를 닮은 또 다른 용균이들은 사회에 나와도 좋은 일자리는 한계가 있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으로 내몰려,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서 일할 게 뻔하고,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해서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불이익을 당해도 말도 못하는 억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너의 삶과 비슷한 용균이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단다. 

내 소중한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를 잃고 너무 큰 충격이라 살아내는 것조차 겁이 났었어.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좋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분들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살고 있단다. 

너와 함께 일했던 발전소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건설업, 조선소, 철도, 마사회, 우정사업소. 우리 나라 구석구석 어느 한 군데도 안전한 곳이 없는, 그래서 더 처절한 삶을 다들 살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꺼져가는 생명의 시급함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단다. 

엄마는 얼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뭉쳐서 연대로 우리들이 바라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를 기원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단다. 그리고 이분들을 마음을 담아 동지라고 부르고 있단다. 동지라는 말이 이렇게 많은 마음이 담긴 좋은 말인지 이제는 느끼며, 이 말의 귀함에 누가 될까 조심스레 부르려 하고 있단다. 

아들아. 지난해에 너의 죽음의 부당함을 바꾸고자 많은 동지들과 사회 여러 단체들과, 유가족들과, 일반 시민들이 뭉쳐서 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정부와 맞서 싸웠었어. 물론 너도 알겠지만. 그래서 원만한 합의안도 이끌어냈고, 많이 부족해서 너에게 부끄러운 법이긴 하지만 산안법도 통과시켰고, 특조위 진상조사를 통해 사측이 너에게 누명을 씌웠던 것을 완전히 벗기게 되었단다. 

그렇지만 업무수칙을 다 지키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책임이 없다 하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어서 권한이 없다 해서 책임 공백이 생겼고. 그 속에서 일하는 아들은 목숨 지킬 권한조차 없었던 이 비정규직들의 억울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참담한 심정이었단다. 그래서 억울함을 참지 못해 또 울고 말았어. 너는 그곳에서 다 보고 있겠지. 

아직 엄마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단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유가족 앞에서 약속했던 것도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합의 이행, 약속 지키려고 해야 하고, 특조위 권고안도 현장에 이행되는지 지켜봐야 하고, 너를 죽게 만든 책임자들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단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단다. 

엄마는 이제 우리와 같이 처지에 놓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을 위해 걸어갈 것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밝은 빛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곳에서 너도 엄마 잘 하라고 응원하고 지켜봐줘.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아들 용균아.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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