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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새 사장 후보자 3인에 양승동·이상요·이정옥

KBS이사회 서류심사 통해 13명 중 3배수 압축...24일 후보자 정책발표회 개최
송창한 기자 | 승인 2018.02.20 18:10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 차기 사장 후보자가 양승동 KBS PD, 이상요 세명대 교수, 이정옥 전 KBS 글로벌전략센터장 등 3명으로 압축됐다.

KBS 이사회는 20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13명의 사장 후보자 서류심사를 통해 정책발표회와 최종면접에 임할 후보자로 양승동 PD, 이상요 교수, 이정옥 전 센터장 등 3명을 선정했다. 이날 이사회는 사장 후보자 압축에 대한 이사회 논의가 공개될 경우 추후 시민자문단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KBS 전경 (KBS)

양승동 PD(57)는 1989년 KBS PD로(16기) 입사해 '추적60분', 'KBS스페셜', '역사스페셜', '명견만리', '세계는 지금'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양 PD는 한국PD연합회장과 KBS 직능단체들이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막기위해 결성한 'KBS 사원행동'의 공동대표를 지낸 바 있다. 

이상요 세명대 교수(62)는 1985년 KBS PD(11기)로 입사해 'KBS스페셜', '역사스페셜', '추적60분', 심야토론' 등을 연출했으며, '20세기한국사-해방'으로 방송위원회 최우수상, '차마고도'로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이정옥 전 KBS 글로벌전략센터장(61)은 1979년 T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해 이듬해 언론통폐합에 따라 KBS에 입사했다. 이 전 센터장은 KBS파리지국 특파원, 보도본부 해설위원,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서류심사를 통해 압축된 사장 후보자 3명은 오는 24일 KBS본관 2층 TS4 에서 정책발표회를 갖는다. KBS 홈페이지와 my K, 페이스북(KBS 공식계정)을 통해 생중계되는 정책발표회에는 150명 규모의 시민자문단이 참석해 후보자에게 직접 질의를 건넨다. 시민자문단은 정책발표회가 종료되면 집단 토론(분임 토의 형식)을 거쳐 각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이번 KBS 차기 사장 선출에 시민자문단 평가는 40% 반영된다.

시민자문단 구성은 18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거주권역 등 인구통계학적 기준을 고려해 균형있게 선발될 예정으로 현재 구성중에 있다. KBS 이사회는 150명 규모로 예정돼 있지만 불참 가능성을 고려해 160명을 초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BS는 지난 8일부터 19일까지 홈페이지에 '후보자에게 묻습니다' 게시판을 열어 일반 시민과 KBS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후보자 정책발표회에 반영할 질문을 받았다.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사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 ▲KBS 정상화 방안과 미래전략 등이 주를 이뤘다. 

KBS 구성원 의견 반영 방법에 대해 권태선 이사는 "KBS 4개 협회(기자·PD·경영·기술)에서 서면으로 자신들의 뜻을 전달해주면 시민자문단 제공 자료에 함께 넣겠다"고 밝혔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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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노조·정치권 “GM 경영 정상화 계획 먼저 제출하라” 한 목소리

김동연 부총리·백운규 산자부 장관 “선 계획 검토, 후 지원”…노조 ‘미래 발전 전망 6대 요구안’ 발표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18-02-20 22:30:43
수정 2018-02-20 22: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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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이낙연 국무총리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GM의 지원 요구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 노동조합이 "경영 정상화 계획과 투자 의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GM의 정부 지원 압박에 대해 '먼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놔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한국GM이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해 "GM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계획을 보고 판단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아직 GM이 요구하는 바가 공식적으로 온 것도 아니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단계는 아니"라며 "경영정상화 계획을 봐야 하고 그보다 앞서 실사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협상에는 성실하게 임하되 GM의 요구에 '무조건적인 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GM 지원 협상의 주무부처인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GM이 우선 불투명했던 경영에 대한 문제를 해소하고 장기적인 경영개선 방안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백 장관은 'GM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GM은 사업을 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집단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이너스가 된다고 하면 한국 시장을 떠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GM 노동조합의 주장도 정부의 이같은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노조는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GM측에 여섯가지 요구안을 발표했다. 요구안에는 구체적인 신차투입 확약, 미래형자동차 국내개발 및 생산 확약 등의 '장기적 경영 개선 방안'에 대한 요구 사항이 주를 이뤘다. 노조는 "자구 노력이 없다면 GM은 지속가능한 경영을 운운할 자격조차 없으며, 우리정부와 노조에 어떠한 협조도 요구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임한택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장과 김종훈 민중당 의원,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지엠자본 규탄 및 대정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한택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장과 김종훈 민중당 의원,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지엠자본 규탄 및 대정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여야 의원들 역시 GM의 경영 정상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여야 의원들은 이날 오전 배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과 카허 카젠 한국GM 사장 등 경영진을 만난 자리에서 "GM 경영진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GM 배리 앵글 사장은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은 채 "정상화 계획을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로부터의 협조와 지원을 바란다"고 수차례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부는 공장 폐쇄 결정이 난 군산지역을 '고용 위기 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긴급 절차를 밟아나가기로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현재 군산시의 경우 고용 위기 지역 지정 요건을 충족하지는 않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관련 규정을 고쳐서 '고용 위기 지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군산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데 따른 것으로 '고용 위기 지역'으로 지정되면 고용보험을 통한 고용안정 지원 등 종합취업지원대책을 수립·시행하게 된다. 또 자치단체 일자리 사업에 대한 특별지원도 가능하게 된다.

베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국GM대책 TF-한국GM 임원 간담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왼쪽은 카허 카젠 한국지엠 사장.
베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국GM대책 TF-한국GM 임원 간담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왼쪽은 카허 카젠 한국지엠 사장.ⓒ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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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되어 만나요”

북 응원단 취주악단, 평창에서 춤.노래 공연
평창=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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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0  19: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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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측 응원단 취주악단은 20일 오후 5시 10분경 강원도 평창 올림픽플라자에서 공연을 펼쳤다. 이번 다섯 번 째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노래가 선보였다. [사진-이진석 작가]

북측 응원단 취주악단이 춤과 노래를 선보이자, 시민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그리고 “통일되어 만나자”고 외쳤다.

북측 응원단 취주악단은 20일 오후 5시 10분경 강원도 평창 올림픽플라자에서 공연을 펼쳤다. 이번 공연은 다섯 번째.

약 80여 명의 취주악단은 빨간색 상의와 모자, 하얀색 바지를 입고 악기를 든 채 등장했다. 만국기가 휘날리는 광장에 들어서자 뜻밖의 공연을 보게 된 시민들은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취주악단은 항상 선보이는 시작곡 ‘반갑습니다’를 연주했다. 악단이 “반갑습니다”라고 손을 들고 말하자, 시민들도 너나없이 손을 흔들며 “반갑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노래여서, 모두 함께 불렀다. [영상보기①]

   
▲ 북측 취주악단의 연주 모습. [사진-이진석 작가]
   
▲ 북측 응원단이 취주악단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진-이진석 작가]
   
▲ 북측 응원단의 공연 모습. [사진-이진석 작가]

‘아리랑’, ‘옹헤야’, ‘쾌지나칭칭나네’, ‘뱃노래’ 등이 연주된 데 이어, 처음으로 응원단은 노래를 불렀다. ‘고향의 봄’ 3중창, ‘까치까치설날은’ 5중창으로 열창됐다. [영상보기②]

여기에 응원단은 춤을 선보였다. 흰색 체육복을 입은 응원단 8명이 북측 노래에 맞춰 역동적인 춤을 선보였다. 마지막 곡 ‘다시 만나요’가 연주될 때는, 응원단 2명이 떨어져 있다가 달려가 부둥켜안는 연출을 했다.

이들의 공연이 끝나자 5백여 명의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며 “예뻐요”, “멋져요”, “훌륭하다”를 연호하며 “통일되어 만나요”라고 외쳤다. 이에 북측 응원단은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하나다”를 외칠 때는 똑같이 “우리는 하나다”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영상보기③]

   
▲ 마지막 곡 '다시 만나요' 곡에 맞춘 응원단의 춤. [사진-이진석 작가]

공연을 본 서울에서 온 한 시민은 “너무 좋다. 정말 뜻밖의 공연이었다”며 “하나같이 어쩜 저렇게 연주를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노래를 잘 부르는지 감동을 받았다. 통일은 정말 멀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릉에 거주하는 한 시민도 “원래 우리를 남이 아니지 않느냐”며 “당장 하나가 될 수 없지만 이런 기회가 자주 만들어져서 우리는 정말 하나였음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지난 9일 북측 선수단 입촌식, 13일 강릉 오죽헌, 15일 강릉 아트센터 옆 ‘라이브 사이트’, 17일 평창 상지대관령고등학교 등에 이어 다섯 번째이다.

한편, 이날 공연도 경찰과 정부 관계자 등이 접근을 막아, 일부 시민들은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한 시민은 “우리가 무슨 폭탄이라도 들고 온 줄 아나 보다. 시민들을 위한 공연인데 왜 저렇게들 보이지도 않게 서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큰 북을 연주하는 취주악단원. [사진-이진석 작가]
   
▲ 취주악단이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며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이진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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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한국때리기 도 넘었다’…문 대통령 ‘통상마찰 불사’ 강경

‘미, 한국때리기 도 넘었다’…문 대통령 ‘통상마찰 불사’ 강경

등록 :2018-02-19 19:10수정 :2018-02-20 08:24

 

 

‘미, 철강 관세폭탄’ 동맹국중 한국 유일 
한·미동맹·대규모 무기수입 ‘모르쇠’ 
시추용 강관 등 3개 품목 미와 경합 
안보는 핑계…경쟁국 보복조처일뿐 
문 대통령 지시 다목적 포석 
‘트럼프발’ 수출전선 위기 절박감 
미 시장 탈피 수출다변화 계기로 
트럼프에 ‘최악선택 말라’ 압박성도
그래픽_장은영
그래픽_장은영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산 철강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폭탄에 대해 한-미 간 ‘통상 격돌’까지 불사할 수 있다는 태세로 급선회하는 양상이다.

 

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불합리한 보호무역조처에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이번 발언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산 수입제품에 대한 일련의 무역보복 조처가 도를 넘고 있으며, 이번에 상무부가 발표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 수입의 안보 영향’ 권고 조처가 그 정점을 찍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무역업계에서는 미 상무부가 권고안 제2안(12개국에 최소 53% 관세 부과)에서 일본·독일·대만 등 미국의 다른 동맹·우방국산 철강은 수입규제 대상 12개국에서 뺀 채 유독 한국만 포함시키며 ‘동맹국 한국을 때리는’ 상황에 문 대통령이 깊이 우려하며 반발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는다.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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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지난해 4월 철강 수입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 쪽에 △한국은 미국의 안보 동맹국이자 대규모 무기 수입국이고 △미국의 한국산 철강 수입이 최근 감소중이며 △우리 철강회사들이 대미 투자 및 현지 고용을 통해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미국 통상당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수입규제 31건(2017년 말 기준·반덤핑 22건, 반덤핑 및 상계관세 7건, 세이프가드 2건 등)을 무차별적으로 발동하고 있다.

 

사실 철강 수입이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의 핑계에 불과하다. 석유 시추에 쓰이는 유정용 강관의 경우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43.4%로 종전 1위였던 미국(32.9%)을 따돌리고 양국이 치열하게 각축중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수출시장 1위인 철강 관련 15개 제품 가운데 3개 품목에서 미국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미 상무부의 철강 232조 조사는 안보 혹은 동맹의 문제를 떠나 단순히 무역부문에서 경쟁 상대국에 대한 보복조처일 뿐인 셈이다.

 

문 대통령의 고강도 대응 지시는 이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탁기 세이프가드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해 취한 일련의 보호무역 조처를 두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세계무역기구 제소 등을 몇 차례 언급한 적은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통상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방향 선회 배경에는 1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는 수출 전선에 ‘트럼프발 수입규제’라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는 절박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산 철강·세탁기·태양광패널·화학제품·자동차 등 전방위에 걸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공세에 따라, 그동안 실물경제 성장세를 뒷받침해온 수출이 갑자기 둔화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하는 상황이다.

 

또 현 정부가 새 통상기조를 미국 시장 의존에서 벗어나 중국·러시아 같은 ‘신북방’ 및 동남아 등 ‘신남방’ 진출로 설정한 만큼 미국에 대해서도 양국간 통상관계 악화를 무릅써가며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의 적극적 추진을 통해 수출을 다변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우리 철강업체에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제2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선택하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압박 카드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제2안이 현실화되면 우리 철강의 대미 수출에 매우 큰 타격이 예상된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1조에 국가 안보사항은 수입규제를 인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긴 하지만, 특정 12개국에만 차별적으로 53% 관세 부과를 적용하게 되면 이 예외조항도 인정될 수 없다고 본다”며 “제2안으로 결정하면 세계무역기구 제소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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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도 ‘엄지 척’··· 평창 동계올림픽의 숨은 공로자들

[현장인터뷰] 

평창·강릉서 만난 ‘대한민국의 얼굴들’

옥기원, 양아라 기자
발행 2018-02-19 20:13:09
수정 2018-02-19 20: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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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원더풀 평창”을 연호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과 깨끗한 시설에 감동했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이런 평가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뛰어다닌 사람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원더풀 평창’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다. ‘민중의소리’ 기자들이 동계올림픽 현장에서 만난 숨은 공로자들을 소개한다.

‘국격’을 높이는 사람들:청소노동자

왼쪽부터 청소노동자 빈갑숙씨와 심현숙씨
왼쪽부터 청소노동자 빈갑숙씨와 심현숙씨ⓒ민중의소리

강릉역에 내려 화장실에 들렀다. 이용자 수까지 알려주는 최첨단 시설에 한 번 놀랐고, 광이 날 정도로 깨끗한 환경에 두 번 놀랐다. 화장실 구석에서 청소노동자 한 명이 바쁘게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빈갑숙(57)씨는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쓰레기통 넘치고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동계올림픽 개막후 강릉역과 평창역 등을 찾는 관광객 수는 하루 평균 약 1만6천여명. 모두가 한 번쯤 거쳐 가는 시설인 만큼,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화장실 안은 수많은 이용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빈씨는 “올림픽이 시작된 후 멀미가 날 정도로 바빠졌다”고 한숨을 몰아쉬었다. 하루 8시간 정도 일하는 동안 이용객들이 불편할까봐 맘 편히 쉬지도 못한다는 게 청소노동자들의 설명이다.

그는 “청소를 한다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행사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깨끗한 인상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중간에도 걸레질을 멈추지 않았다. ‘화장실 청결도는 국격을 나타낸다’는 말처럼 올림픽 현장을 청소하는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

관람객들 볼거리 위해 ‘자발적으로’:거리공연단

13일 강릉역에서 강릉농악 자치위원회 풍물단 소속 김명옥(오른쪽)를 만났다.
13일 강릉역에서 강릉농악 자치위원회 풍물단 소속 김명옥(오른쪽)를 만났다.ⓒ민중의소리

“에헤야~디야~” 강릉역 밖에서는 풍물공연이 한창이었다. 외국인은 물론 국내 관광객들도 흥겨운 가락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사진과 영상을 찍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씨 속에서도 30여명의 풍물단원들은 얇은 옷을 입고 공연을 이어갔다. 현장에서 만난 풍물단원 김명옥(60)씨는 “몸은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하다”고 말했다. 지역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고,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 보람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처럼 강릉 지역 200여명의 풍물단원들은 자발적으로 팀을 짜서 올림픽 기간 동안 강릉역 등에서 3~4번씩 공연을 진행한다. 모심기, 사물놀이, 탈춤, 인형극 등 공연 내용도 다양하다.

김명옥 씨는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수개월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준비했다”며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미소로 화답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 강릉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갈 수 있게 미소를 잃지 않고 즐겁게 공연하겠다”고 말했다.

올림픽 관람객들의 ‘발’:시내버스 기사

13일 안목 해변 인근 버스 종점에서 만난 김대복(48) 동해고속 버스기사
13일 안목 해변 인근 버스 종점에서 만난 김대복(48) 동해고속 버스기사ⓒ민중의소리

강릉 시내버스 기사들은 길을 묻는 시민들과 외국인들에게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내 곳곳을 누비는 버스기사들이 강릉역과 올림픽 경기장 등으로 시민들을 실어나르며 관람객들의 발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동계올림픽 기간동안 강릉 시내버스는 모두 무료로 운행되고 있다.

안목해변 인근에 위치한 버스 종점에서 만난 기사들은 하나같이 식당으로 빠른 걸음을 옮겼다. 버스기사들은 “올림픽 기간 운행 시간이 길어져 휴식 시간이 15~2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화장실을 갔다가 식사를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라며 넋두리를 쏟아 냈다.

인터뷰에 응한 버스기사 김대복(48)씨는 10분 만에 밥을 ‘흡입’하고, 한 손에 든 커피를 단숨에 들이켠 후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자신을 동해고속 소속 버스기사라고 밝힌 김씨는 “평소보다 승객들이 많아졌고, 올림픽 기간이라 차도 막혀 운행시간이 더 많이 길어졌다”며 “운행 지연으로 인한 승객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기사들이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올림픽 성공을 위해서 중요한 게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고 생각한다”며 “방문객들이 안전하게 잘 즐기다 갈 수 있게 (버스 기사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버스를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도 인정한 대한민국의 ‘얼굴’:자원봉사자

14일 강릉 관동 아이스하키장 매표소 인근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신유진(21)씨
14일 강릉 관동 아이스하키장 매표소 인근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신유진(21)씨ⓒ민중의소리

평창 동계올림픽 현장 곳곳을 뛰어다니는 2만여명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올림픽 현장에서 선수들과 관중, 대회 관계자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장뿐만 아니라 주차장, 강릉역·터미널 등 곳곳에 배치돼 관람객들을 미소를 맞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얼마전 평창을 찾아 이들을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며 격려한 바 있다.

자원봉사자 신유진(21)씨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과 일본과의 경기가 있던 14일 현장매표소 앞에서 시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사과를 반복하고 있었다. 많은 관람객들이 경기장 인근으로 한꺼번에 몰려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던 상황에서 신씨가 올림픽 ‘민원 창구’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바쁘긴 하지만 괜찮다. 좋은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평창올림픽 현장에 함께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며 “많은 선수들이 더 좋은 경기를 하고, 올림픽도 무사히 잘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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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만들 남북 평화철도 잇기 시작한다"

(추가)(사)평화철도 준비위 발족...'남북철도 연결하자! 평화협상 시작하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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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9  23: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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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평화를 남북철도 연결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통해 실현하려는 (사)평화철도 준비위원회 발족식이 19일 오후 철도회관 대회의실에서 권영길 나살림 이사장, 최순영 전 국회의원,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대표, 양재덕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이사장, 노정선 YMCA 평화통일행동협의회 공동대표(왼쪽 세번째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등 공동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화로운 한반도에 대한 열망을 남북철도 연결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통해 실현하려는 시민참여 대중운동이 모색되고 있다.

권영길 나살림(사단법인 권영길과나아지는살림살이) 이사장,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대표, 양재덕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이사장, 노정선 YMCA 평화통일행동협의회 공동대표, 박창일 천주교 예수성심 전교 수도회 신부, 최순영 전 국회의원(전 YH지부장), 김주영 한국노총위원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등을 공동대표로 한 (사)평화철도 준비위원회 발족식이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 대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정성희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발족식 모임에서 공동대표로 선임된 권영길 나살림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평창올림픽 직전까지만 해도 한반도 전쟁위기감이 팽배했다. 지금 남북의 평화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 이 기대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평화만들기로 이어가야 한다. 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내고 평화철길을 만드는 일이 실체적 평화만들기이다"라면서 "평창 평화올림픽 한복판에서 한반도 평화를 만들 남북 평화철도 잇기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어 "평화가 밥이고 일자리이다.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절망적인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답도 남북경제공동체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평화철도 운동은 민간이 먼저 출발하지만 정부와 국회, 정치권이 이를 받아 안아서 국가사업으로 풀어나가야 하고 민관이 하나 되어야 할 운동이며, 오늘 이 자리는 한반도 평화만들기 대장정의 출발점"이라고 천명했다.

   
▲ 권영길 공동대표는 "평창 평화올림픽 한복판에서 한반도 평화를 만들 남북 평화철도 잇기 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대표는 "평창올림픽 평화의 정신을 평화철도로 실현해 나가자. 과거 동서독 교류협력에 철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 평화철도가 그러한 역할을 반드시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양재덕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이사장은 "평화철도가 반통일세력과 냉전체제를 녹이는 통일의 열차, 평화의 열차가 되도록 범국민운동을 벌여 빠른 시일내에 실현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자"고 각오를 밝혔다.

   
▲ 발족식 참가자들은 "(사)평화철도는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먼저 길을 낼 것이라고, 정부와 함께 할 일이라면 적극 협력할 것이며,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단연 촉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용일 집행위원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철도 연결운동'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사)평화철도의 활동에 대해 '남북철도 연결하자! 평화협상 시작하라!'는 중심 기조 아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정신에 입각한 사업 △자주평화운동과 남북교류협력운동 병행 △항구적 평화를 통한 민족공동 번영 지향 △평화·통일을 바라는 전 국민적 참여 보장 △남과 북이 함께 준비하고 추진하는 사업방향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반도 평화협상 개시(이후 평화협정체결) 촉구 운동 △남북평화철도 연결 국민참여운동 △전국 각 지역에서 열차타고 휴전선까지 평화기행 △지역-직장-부문 전국 순회간담회, 강연회, 사진전, 음악회 등 각종 행사 △남북철도연결을 위한 민간차원의 남북실무회담 등 남북교류협력 및 국제민간교류협력을 주요사업으로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준비위 발족 이후 '1인 1만원, 10인 1침목 휴전선 평화철길'을 까는 회원 참여운동부터 바로 시작한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3차례의 준비모임을 진행한 끝에 이날 발족식을 가진 (사)평화철도 준비위원회는 오는 3월 17일 오후 준비위 꼬리표를 떼고 공식 출범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날 발족식에서는 각계층 150여명이 참가했으며, 이들을 대표해 전국철도노조와 현대로템노조 관계자가 대국민 제안문을 낭독, "(사)평화철도 준비위원회가 한반도 평화협상-평화협정을 촉구하면서 '남북철도연결 운동'을 시작하겠다"면서 "(사)평화철도는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먼저 길을 낼 것이라고, 정부와 함께 할 일이라면 적극 협력할 것이며,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단연 촉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이날 2부 순서로 재미언론인 진천규 기자의 방북이야기 강연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발족식 이후에는 지난해 10월 초부터 2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재미언론인 진천규 기자의 열차방북 이야기 강연이 진행됐다.

(추가-20일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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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싹싹 빌어~"... 간호사 위한 '태움' 매뉴얼

더 나빠져야 살아남는 몹쓸 관습, 나는 이렇게 당했다

18.02.19 20:44l최종 업데이트 18.02.19 20:44l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구정 연휴.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가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뉴스를 봤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간호사들의 '태움' 때문이란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태움. 여전히 이렇구나. 나 또한 이런 이유로 밤잠을 설치고 출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하얘졌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1990년대 초에 간호사가 되고 나서 대형병원 병동, 응급실, 수술실에서 내가 겪었던 일들. 어쩌면 내가 겪은 일은 진짜 태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수도 있다.

잊을 수 없는 그녀
 
 이 병동에는 악명 높은 책임간호사가 있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떠다닐 정도였다
▲  이 병동에는 악명 높은 책임간호사가 있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떠다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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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처음 대형병원 산부인과 병동에서 일했다. 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 같은 산모들과 자궁암 같은 여성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 대부분이다. 이 병동에는 악명 높은 책임간호사가 있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떠다닐 정도였다. 
 
분만실에서 나온 산모의 혈압, 맥박, 호흡 등 바이탈을 체크하고 피 묻은 옷을 갈아입히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다. 하던 일을 멈추고 복도로 뛰어나가 보니 빨리 피검사 샘플을 검사실로 보내고 오란다. 

병동은 2층이고 검사실은 지하 2층. 엘리베이터는 기다려야 하니 계단을 두세 개씩 건너뛰며 검사실을 뛰어갔다 오니 화가 단단히 난 얼굴이다. 

"내가 환자 옷까지 갈아 입혀야 하냐?" 

소리를 지른다. 검사실 심부름 시킨 건 안중에도 없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조건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무조건 빌라는 매뉴얼대로.

모든 일은 아랫사람에게 다시키고 정작 본인은 병실을 돌며 흠잡을 거리를 찾아다닌다. 수간호사나 병원장의 비위를 맞추고 평간호사의 흠집을 찾는 게 그녀의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우위를 내세우는 일. 

그 때만 해도 실리콘 바늘보다 일반 쇠로 된 바늘이나 나비모양 바늘이 일반적일 때이다. 다른 일하는 도중 환자가 몸을 움직여 주사 놓은 부위가 붓는 경우 일단 링거를 잠가 놓는다. 그때그때 바로 다시 놔주면 좋겠지만 시간대 별로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보니 일단 잠가놓고 한꺼번에 한 바퀴 돌며 다시 주사를 놓는다.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사람도 그녀다. 바쁘게 일하는 나를 부르더니 몇 호실, 몇 호실 주사가 부어있단다. 

"네, 선생님 알고 있어요. 빨리 바이탈 측정 마저 끝내고 한꺼번에 다시 놓을게요." 

그녀는 나를 똑바로 보지도 않고 옆 눈으로 흘겨보며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한다. 자기가 신참일 때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대꾸를 따박따박 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일 잘하는 실력 있는 간호사'가 아니라 자기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간호사'인가 보다.

나만의 생존법
 
 나의 목소리를 없애고 선배들 일까지 해내기
▲  나의 목소리를 없애고 선배들 일까지 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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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근무가 걸리는 날이면 수간호사, 책임간호사, 나 이렇게 셋이 일을 한다. 위로 두 간호사는 인계가 끝나면 간식과 커피로 아침을 시작한다. 내게 권하지도 않지만 나는 인계가 끝나기가 바쁘게 뛰어 다니며 약을 돌리고, 주사를 놓고, 바이탈을 측정하고 할 일이 태산이다. 

점심시간이 되도 소화가 안 된다거나 배가 안 고프다거나 하는 핑계로 점심을 건너뛰었다. 원래 밥을 빨리 먹지 못하는 나는, 먹고 와서 늦게 왔다고 혼나는 게 두려워 병원에서 밥을 포기했다. 그랬더니 "재는 밥을 안 먹고도 일을 잘 해. 그래서 날씬한가?"하며 키득거린다. 둘이 느긋하게 밥을 먹고 걸어온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까봐 물을 가득 한잔 마신다.

아침 7시가 오전 근무 교대 시간이지만 나는 6시도 되기 전에 출근해서 밤샌 간호사들의 일을 돕고 오후 3시에 일이 끝나도 다음 근무 간호사들의 일을 한두 시간 돕다가 눈치 봐서 퇴근한다. 학교 선배들이 직장에서 예쁨 받고 잘 적응하려면 이래야 한다고 알려준 팁이다. 

그래서 이래야 하는 줄 알았다. 첫 1년 동안은 오프를 신청한 적이 없다. 남들 다 쉬고 싶은 날 쉬고, 남는 날이 내가 쉬는 날이다. 교육을 빙자한 태움을 극복하기 위한 내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나의 목소리를 없애고 선배들 일까지 해내기.

응급실로 옮겼다. 응급실은 전쟁터와 비슷하다. 피가 낭자하고 때로는 고성이 오가고 목숨이 촌각에 달려있으니 그 긴장감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다. 일의 강도로 보면 산부인과 병동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하지만 응급실 수간호사 선생님은 이전 수간호사와 전혀 다르다. 우선 가장 지저분한 일을 직접 한다. 환자의 토사물을 치우고 행려환자로 들어와 온몸에서 썩은 생선 냄새가 나는 환자의 몸을 뜨거운 물을 떠다 닦아준다. 내가 도울라치면 

"문쌤은 다른 환자들 돌보세요. 여긴 내가 알아서 할게." 

나의 간호사 생활 통틀어 가장 모범적이고 존경스러운 분이다. 

일을 가르쳐 줄 때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명해주고 내가 이해했는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내가 제대로 작동 법을 읽히지 못한 기계가 있으면 설명에 앞서 

"이 기계가 참 어려워, 나도 숙달되는데 오래 걸렸어. 그러니까 잘 모르겠으면 항상 물어봐도 괜찮아." 

다른 선배들이 일을 가르칠 때도 말이 좀 심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수간호사 선생님이 개입을 한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 없어. 너무 다그치면 잘 할 수 있는 것도 더 못하게 되니 천천히 가르쳐줘. 일을 늦게 배우는 사람이 나중에는 더 꼼꼼히 잘하는 사람도 많아." 

이전 병동에서는 내가 혼날 때마다 비웃던 수선생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런 자상함과 따뜻함이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모든 파트가 수간호사의 성품을 따라간다. 그 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중요한 이유다.

그때 더 극렬하게 저항했다면

졸업 후, 일하는 친구들과 만나면 10명 중 10명이 하는 말이 똑같다. '일이 힘든 건 참겠는데 사람이 힘든 건 못 참겠다'이다. 이건 간호사뿐 아니라 어떤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도 힘들고 태움은 지옥 같고, 그래서 일을 그만두는 간호사가 내 주변에도 천지다. 

그러니 또 인력난에 다시 일이 힘들어지고 또 태우고. 힘들게 대학가서 공부하고 면허증 땄지만 자부심을 갖고 일하기는커녕 이직을 희망하는 간호사가 전체 일하는 간호사의 70프로를 넘는다. 

임신한 친구에게 '도대체 생각이 있냐'고 다그쳐 일을 그만 두고, 왕따를 당해 아무도 말을 붙이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친절하단 이유로 사람들 홀리고 다닌다고 매도 당해 일을 그만두고, 성희롱에 일을 그만두고, 욕설에 못 이겨 그만두고, 맞아서 그만두고, 외모비하, 부모까지 욕보이는 사람들... 

더 나빠져야 살아남는 이 몹쓸 관습. 내가 당했기 때문에 돌려주고 말겠다는 일종의 복수의식. 대대로 내려오다 보니 죄의식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태움으로 생을 마감해버린 간호사가 처음이 아니다. 은폐하고 축소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왔을 뿐이다. 진실이 드러나고 공론화되고 그리하여 개선의 바람이 제발 좀 불었으면 한다.

그 길을 지나 온 간호사로서 그 때 더 극렬하게 저항하지 못하고 비굴한 선택을 한 내 행동이 이후의 후배들에게 힘든 길을 더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 게 아닌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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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미대화 움직임과 그 속내

미국의 북미대화 움직임과 그 속내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2/20 [04:5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9일 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H.R.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7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 컨퍼런스에서 연설에서 대북군사적옵션 배제 입장을 밝히면서 강력한 대북제재압박을 시사했다. 

 

 

♦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미국의 강경파와 대화파

 

18일 미국의소리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 대북강경파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외교적 해결을 강조해온 틸러슨 국무장관이 똑같은 목소리로 북에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17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제54차 안보회의에서 북의 핵무기개발로 인해 전세계 비확산체제가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며 김정은 정권이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로 세계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가용한 모든 도구를 사용해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는 단순히 현 제재를 이행하는 것뿐 아니라 (북과의) 외교관계 격하와 모든 무역, 군사, 상업 관계의 단절, 그리고 소위 초청 노동자로 불리는 북한 노동자를 추방시키도록 결의해야 한다고 지적" 지적했다. 사상 유례없이 가혹한 대북압박을 동맹국들에게 주문한 것이다.

 

미국의소리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이날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행한 연설에서 최대 압박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주 평창겨울올림픽에 참가하여 미국 대표팀을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북이 미국에 대한 위협을 멈추고,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영원히 끝낼 때까지 동맹들과 최대 압박을 가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 중동 순방에 나선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2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북 대화 가능성에 관해 언급하면서도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였다.  

 

같은 날 미국의소리의 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틸러슨 장관이 18일 방송된 CBS 방송 시사프로그램 ‘60분’과의 대담에서, 북을 대화에 나오도록 설득하기 위해 어떤 당근을 제시할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당근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커다란 채찍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북이 이점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그러면서도 북과의 대화와 관련해, 북이 신호를 보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현재 북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있다며, “우리가 첫 대화를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 매우 명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즉, 비공개채널을 통해 북과 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는데 공개적인 대화로 진입할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당근이 아니라 커다란 채찍 즉, 강력안 대북 제재와 압박을 더욱 강하게 구사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 점점 드러나는 미국의 대화 기류

 

미국의소리에 따르면 12일 이집트를 방문 중이던 틸러슨 장관이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진지하고 의미 있는 방법으로 미국과 관여할 준비가 됐다는 것을 결정해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은 대화 테이블에 무엇을 올려놓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로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지난 트럼프 집권 1년 내내 이런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북이 연발적, 다발적으로 수소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단행하여 국가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포하는 상황까지 왔음에도 또 똑같은 비핵화 전제 대화라니 오락가락 횡설수설이다. 도대체 미국 고위 관료들이 제정신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어쨌든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경파이건 대화파이건 모두 강력한 대북압박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기류변화도 느껴진다.

 

적어도 강경파까지도 군사적옵션은 이제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다. 

나아가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한국 방문 기간 트럼프 대통령도 대화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는 등 강경파들도 관여 즉, 대화를 통한 해결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북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대화가 진행될 것이고 그렇게 유도하기 위해 강력한 대북제재와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비핵화를 전제로 대화를 원한다면 영영 대화는 불가능하다. 특히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 북은 다시 강력한 핵무장력을 과시하며 대미 군사적 압박에 나설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 전쟁위기는 더욱 고조될 것이고 북미관계는 심각해진다. 

미국도 이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뻔한 비핵화 전제 대화타령을 강경파까지 나서서 이구동성으로 늘어놓는 그 의도가 궁금하다.

 

정작 북은 굳이 미국과 대화할 뜻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미국이 안달복달하는 형국이다. 

특히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탄력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움직임니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대북 정책에 대한 기류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언론들이 최근 부쩍 북미대화를 주제로 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 문재인 정부의 선택

 

물론 그렇다고 북미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이다. 초강력 제재 운운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대화를 시작하더라도 미국이 과연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협상을 진행할지도 의문이다. 

 

해방 전후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원래 북까지 장악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만주와 시베리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것이었다. 

북이 핵무장력을 강력하게 구축한 지금에 와서 당장 이런 미국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북을 선제타격했다가는 미국 본토까지 쑥대밭이 될 수가 있으며 북이 한반도는 물론 일본, 미 본토까지도 점령작전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2.8열병식을 잘 분석해보면 북은 거기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8004)

 

그래서 미국 스스로 압도적 선제타격은 언감생심이고 며칠 전엔 백악관 대변인과 미국 의회 책임자들의 입을 통해 제한적 선제타격 소위, 코피전략마저도 거의 공개적으로 폐기선언하고 모든 미 행정부 고위 간부들의 입을 총동원하여 횡설수설 대화타령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켜 남측에 대한 영향력만이라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그것을 지렛대로 북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밖에 없다.

바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시험삼아 추진했던 전략을 이제 본격화하려할 가능성이 높다.

 

▲ 최근 미국의소리방송 대담에서 로버트 아이혼 연구원이 남측 젊은세대들의 통일에 대한 감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영구분단 가능성에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것이다.     © 설명: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그래서 미국은 남북대화는 추진시키되 남측정부를 틀어쥐고 속도조절을 하려할 것이다. 통일은 절대 허용하지 않으며서 북의 핵무장력 강화는 막고 한반도 전쟁도 유발하지 않으며 영구분단을 꾀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작업과 북의 핵무장력을 무력화하는 군사기술 개발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소리 17일 '워싱턴 톡' 프로에 나온 로버트 아이혼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한국 젊은이들이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에 반대했다며 그들의 통일에 대한 감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반도 영구분단 가능성에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인터넷에 북 인공기 소각하는 행위들은 모두 극 수구 친미활동을 일삼아온 아이디를 가진 이들이 의도적으로 벌인 것이었음이 밝혀졌는데 로버트 아이혼은 그렇게 흥분한 것이다. 그만큼 영구분단 가능성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이 이런 미국의 의도를 모를 리가 없다. 따라서 미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기어이 가로막으려고 한다면 북은 특단의 조치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북은 평화를 구걸하기보다는 성전을 치르더라도 통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오죽 그런 열망이 강렬했으며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겠는가. 분단된 상태에서는 항구적 평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북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이런 미국의 입장에 문재인 대통령이 충실히 따른다면 통일보다는 평화를 강조할 것이며 통일을 가로막는 법제 제도적 장벽을 제거하기보다는 가스관연결 등 경제협력에만 주목할 것이다.

 

많은 부문이 예속되어 있는 한국 정부가 미국정부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미국도 저물어가는 제국이다. 무소불위의 과거 미국이 아니다. 또한 세계 다극화의 진전으로 미국 중심의 수출경제에서 중국, 인도 등으로 다변화를 많이 이루어 내었다. 지혜를 발휘하면 이제는 얼마든지 운신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가 민족의 편에 설 것인지 미국의 수족에 머물 것인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정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존엄높고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길은 이제 조국을 통일하는 것뿐이다. 한반도 통일을 이루면 청년실업문제도 미세먼지문제도 다 해결된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일단 논외로 하고 서해안 지대의 석탄화력발전을 천연가스발전으로 바꾸고 경유차를 천연가스차로만 바꾸어도 적지 않게 해결되는데 그 천연가스를 남북을 관통하는 가스관으로 가져오면 아주 저렴하게 가져올 수가 있다. 미세먼지만이 아니라 에너지 경쟁력 강화로 기업과 가계에도 큰 도움이 된다. 

남북경협이 중소기업을 살리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은 개성공단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행도 결국 통일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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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조미예비회담, 어떻게 성사될까?

[개벽예감287]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예비회담, 어떻게 성사될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2/19 [11: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남북관계가 아니라 조미관계에서 결정된다

2. 트럼프의 이상한 침묵, 문재인-펜스 회담

3.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착오와 헛된 꿈

4. 백악관의 대조선정책은 어떻게 바뀌었나?

5. 불변의 전략 추진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1. 남북관계가 아니라 조미관계에서 결정된다

 

불꽃이 타올랐다. 이 강산을 화해의 열기로 녹이며 평화의 빛을 안겨주는 불꽃, 북측 고위급 대표단의 역사적인 방문이 지펴올린 소중한 불꽃이다. 이 불꽃은 민족의 통일열풍을 활화산처럼 불러일으키며 남북정상회담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다. 아직은 이렇게 문학적 수사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지만, 장엄한 통일시대의 개막은 꿈결 같은 상상이 아니라 70년 통일국가건설운동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우리 민족은 가슴 벅찬 격변기를 맞이한 것이다. 

 

바로 그 격변기에 두 가지 역사적인 대사변이 일정에 올라있다. 70년 동안 고통과 치욕을 강요해온 분단체제 한 복판에 붕괴의 파열구를 뚫어놓을 역사적인 대사변은 남북정상회담과 조미담판이다. (회담 또는 협상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적대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회담 또는 협상이므로 담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남북정상회담과 조미담판이 열릴 것이라는 정세전망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하려는 것이 이 글을 집필한 목적이다. 

 

서술의 출발점은, 우리 민족에게 감동과 흥분을 안겨주고, 전 세계적으로 놀라움과 찬탄을 불러일으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특사파견이다. 2018년 2월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명을 받고 분단선을 넘어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하였다.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 특사의 대화내용을 읽어보면, 친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받들어 이른 시일 안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의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명을 받고 분단선을 넘어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특사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김여정 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했는데, 친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받들어 이른 시일 안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전달과 북측 고위급 대표단의 남측 방문은 민족의 통일열풍을 활화산처럼 불러일으키며 남북정상회담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해지자, 남측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와 관련하여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을 방해하고 반대해온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가로막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리기 힘든 것이다.   

그런 우려 속에서 주목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의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가 또는 불발되는가 하는 문제는 남북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조미관계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백악관이 반대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비극적 현실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얽혀있는 한미동맹의 은폐된 모습이다. 그러므로 백악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반대할 것인가 아니면 묵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의 반대에 가로막혀 평양을 방문하지 못하게 될 것이 확실한데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를 평양에 초청하였을까? 그런 것은 아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악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반대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를 평양에 초청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악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반대하지 못하는 여건을 만들어놓고 그를 평양에 초청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특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초청을 받고,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고 화답하였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여건을 만들어놓고 초청장을 보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고 응답하였다.  

 

그렇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어떤 여건을 만들어놓은 것일까?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 안으로 끌어넣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여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한 것이 바로 그 여건이다.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한 것이 어째서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성사시킬 여건으로 되는 것일까?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배하였으므로, 이제 남은 것은 조미담판밖에 없는데, 백악관이 조선과 담판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반대할 수 없고, 묵인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 백악관이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하는데도, 조선이 백악관과 담판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백악관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묵인하는 조건에서만 조미담판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다면, 남북정상회담이나 조미담판은 거론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여 조미핵대결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과 조미담판이 성사될 전망이 열린 것이다.  

 

 

2. 트럼프의 이상한 침묵, 문재인-펜스 회담

 

백악관이 조선과 담판하려는 의사를 가졌는가 또는 갖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가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된다. 조선과 담판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틀어쥐고 있으므로, 그가 그 중대사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의 현직 고위관리들 또는 전직 고위관리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전문가들이 언론매체에서 조미관계에 관한 이러저러한 발언을 늘어놓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최종결정권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관심의 초점을 집중시켜야 백악관이 조선과 담판하려는 의사를 가졌는지 또는 갖지 않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백악관 측근들이 제발 좀 그만두라고 말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위터를 끊임없이 계속하면서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늘어놓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침묵하였다.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으로 전 세계가 깜짝 놀라며 술렁이었는데, 트위터 수다쟁이로 소문난 트럼프 대통령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당시에 전개된 정황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침묵할 수 없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에 관한 내부논의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그 논의의 끝자락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린 것도 분명하다.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섣부른 소리를 꺼내놓지 못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여정 특사를 남측에 파견한 것과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내린 중요한 결정은 무엇이었을까? 그 결정이 무엇인지를 외부에 알려준 사람은 놀랍게도 마익 펜스(Michael R. Pence) 부통령이다. 

얼마 전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펜스 부통령의 행동거지를 보면, 그는 미국 선수단을 이끌고 남측에 들어가서 남북관계개선을 방해하고 북측을 심히 자극하는 망언과 망동을 저지르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런 망언과 망동에 시선을 빼앗기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과 관련하여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렸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8년 2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펜스 미국 부통령을 접견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그 회담에서 펜스 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관계개선을 추진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미국 선수단을 이끌고 남측에 들어가서 남북관계개선을 방해하고 북측을 심히 자극하는 망언과 망동을 저지르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펜스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하면서는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중대한 결정을 용케 알아낸 재주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미국의 외교정책 및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글을 <워싱턴포스트>에 자주 발표하는 유명언론인 조쉬 로긴(Josh Rogin)이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2018년 2월 11일부에 실린 자신의 글 ‘미국은 북조선과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에서 펜스 부통령에게서 들은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특별기 안에서 펜스 부통령과 조쉬 로긴이 단독대담을 진행했는데, 그 자리에서 펜스 부통령은 2018년 2월 8일 자신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할 때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관계개선을 계속 추진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견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조쉬 로긴은 관여(engagement)라는 미국식 용어를 썼지만, 그것은 남북관계개선이라는 우리식 용어와 같은 뜻이다. 

 

남북관계개선을 가로막는 망언과 망동을 저지르며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었던 펜스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회담에서는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펜스 부통령이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펜스 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관계개선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그의 개인견해를 밝힌 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김여정 특사의 남측 방문을 논의한 끝에 내린 결정을 전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조쉬 로긴은 위에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기사에서 펜스 부통령이 방한체류 중에 트럼프 대통령과 “매일 협의하였다”고 썼는데, 이것은 남북관계개선을 추진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펜스 부통령의 회담발언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책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한 발언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런 사실을 살펴보면, 백악관은 남북정상회담을 묵인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백악관이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보다, 청와대가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마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추진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3.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착오와 헛된 꿈

 

2018년 2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취재기자실을 들렀을 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어느 외신기자의 질문을 받고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답변하였다. 이 즉석답변은 그가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이번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친서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이른 시일 안에 개최하자고 제의하였는데, 그 제의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다. 

 

2018년 2월 15일 남측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측 국민들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남북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문재인 대통령은 이상하게도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왜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에 대해 그처럼 적극성을 보이지 않은 것일까? 이 의문에 답을 얻으려면,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17일 평창동계올림픽 취재기자실에 들렀을 때, 취재진에게 “지금 이뤄지고 있는 남북대화가 미국과 북한 간의 비핵화 대화로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이 발언에서 남북관계 개선문제와 조미회담 개최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조미회담이 성사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조미회담이 성사될 조짐이 보이지 않으므로, 남북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싶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인 것이다. 그런 생각에 따르면, 남북관계를 결정적으로 개선시킬 남북정상회담은 조미회담이 성사된 이후에 개최될 수 있으며, 만일 조미회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도 개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그가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하기 전에 백악관의 눈치부터 살펴야 하는 민망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8년 2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기자단쎈터를 방문하였을 때 외신기자와 담화하는 장면이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인가를 물은 외신기자의 질문을 받고,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답변하였다. 이 답변은 그가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금은 조미회담이 성사될 조짐이 보이지 않으므로, 남북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백악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싶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인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과거경험이 있다. 2000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조미고위급회담 추진문제를 협의하는 조미예비회담이 진행되었고, 3월 9일 싱가포르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문제를 협의하는 남북특사회담이 진행되었다. 조미예비회담과 남북특사회담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된 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었다. 이 경험은 조미관계개선과 남북관계개선이 동시에 추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과거경험에 비춰보면, 조미회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도 할 수 없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은 그 양자가 동시에 추진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착오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판단착오를 버리고, 백악관의 눈치를 너무 살피지 말고, 이른 시일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의지가 너무 박약하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통일의지가 너무 박약하다는 표현보다 그에게 통일의지가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 일절 꺼내지 않는 것만 봐도, 그에게 통일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하는 문제는 통일문제가 아니라 평화문제다. 그의 소원은 조선과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시작하여 한반도에 평화가 실현되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 2월 17일 평창동계올림픽 취재기자실에 들렀을 때, 취재진에게 “지금 이뤄지고 있는 남북대화가 미국과 북한 간의 비핵화 대화로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개선되어도,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어도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는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될 것으로 믿는다. 그가 소원하는 한반도의 평화는 평화적인 분단체제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하면, 평화적인 분단체제는 언제가도 이루어지지 않을 헛된 꿈이다. 왜냐하면,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건설되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분단체제 아래서는 평화체제가 절대로 구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정전상태가 지속되고, 평화가 실현되지 않는 근본원인은 분단체제가 유지되는데 있다. 한반도가 분단되었기 때문에 평화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므로, 한반도 평화체제는 오직 자주통일국가가 건설될 때만 구축될 수 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교체되면, 평화적인 분단체제가 세워지는 게 아니라 자주적인 통일국가가 건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적인 분단체제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조선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나 평화로운 분단체제를 소원하는 헛된 꿈을 버리고, 민족의 통일염원을 받들어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는 지상과업에 관심과 노력을 돌려야 할 것이다. 

 

 

4. 백악관의 대조선정책은 어떻게 바뀌었나?

 

우리 민족 전체가 기대하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조미예비회담이 열려야 하는데, 조미예비회담이 열릴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사실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조선정책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2018년 2월 11일부에 실린 조쉬 로긴의 기사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특별기 안에서 조쉬 로긴이 펜스 부통령에게 조선이 제재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고 한다. 조선이 제재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조미회담이 열린다는 뜻이므로, 그 질문은 백악관이 조선과 회담하기 위해 조선에게 무슨 조건을 요구하는가를 물은 것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질문을 받은 펜스 부통령의 답변이 참으로 ‘걸작’이었다. 그는 “나는 모른다. 그것이 회담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답변하였다. 

조선과 회담하기 위해 백악관이 조선에게 요구할 조건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펜스 부통령의 답변은 무슨 뜻인가? 백악관이 조선에게 요구할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조선과 회담해야 한다는 그의 답변은 또 무슨 뜻인가?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2018년 2월 8일 오산미공군기지에 특별기편으로 도착한 마익 펜스 미국 부통령과 그 부인이 임성남 외무차관의 영접을 받으며 주한미공군 의장대를 사열하는 장면이다. 펜스 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미국 선수단을 이끌고 남측에 들어가서 남북관계개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북측을 심히 자극하는 망언과 망동을 계속 자행하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남측 체류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특별기 안에서 미국 언론인과 마주 앉아 단독대담을 진행하면서 백악관이 조선에게 조건 없는 예비회담을 제의할 것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것은 그의 개인견해가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책변화를 말해주는 발언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단적으로 말하면, 펜스 부통령의 답변은 조선에게 이른바 조건 없는 예비회담(preliminary talks without precondition)을 제의하려는 백악관의 속내를 반영한 것이다. 백악관이 조선에게 조건 없는 예비회담을 제의한다는 말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대조선정책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조쉬 로긴은 위에 인용한 <워싱턴포스트> 기사의 첫 문장에서 “지난 주간 남한에서 미국과 북조선 사이에 서로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막 뒤에서는 워싱턴과 평양이 조건 없이 직접 대화를 시작할 새로운 외교의 개막을 향한 실제적인 진전(real progress)이 이루어졌다”고 썼던 것이다. 또한 미국의 <블룸벅 뉴스>도 위에 인용한 조쉬 로긴의 <워싱턴포스트> 기사에 대해 보도하면서, 백악관이 조선과 회담하려는 “정책변동(policy shift)”을 보여주었다고 논평하였던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악관은 한심한 헛발질만 계속하고 있었다. 조선이 비핵화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해야 조선과 회담할 수 있다느니, 비핵화를 논의하는 회담이 아니라면 조선과 회담할 필요가 없다느니, 조선을 비핵화하기 위한 ‘최대압박공세’가 효과를 보고 있다느니, 조선이 먼저 머리를 숙이고 대화를 제의해오면 응해주겠다느니 뭐니 떠들어대면서 줄곧 헛발질만 하다가, 조미핵대결에서 패하고 나서 정신을 좀 차렸는지, 이제야 조건 없는 예비회담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배하였으므로, 백악관이 대조선정책을 그렇게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018년 2월 13일 헤더 노어트(Heather A. Nauert)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국무부 출입기자들에게 “우리가 (조선과) 논의하고 싶은 의제를 정하기 위해, 그 의제는 비핵화가 될 것인데, 우리는 무엇을 논의할 것인지에 관한 예비대화(preliminary chat)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도 역시 조건 없는 예비회담에 대해 언급한 것이 분명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예비회담이란 본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진행되는 법이다. 백악관이 그처럼 본회담과 예비회담을 구분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하려는 속내를 은근히 드러낸 것은 자칫 결렬되기 쉬운 조미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의사표명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발언에서 노어트 대변인은 앞으로 조미예비회담이 성사되는 경우 조선의 비핵화 문제가 회담의제로 정해질 것처럼 말했지만, 그것은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중얼대는 횡설수설이다. 조선은 비핵화 문제를 의제로 삼으려는 회담은 무조건 거부하겠다고 이미 여러 차례 언명하였으며, 백악관도 조미회담에서 자기들이 비핵화라는 말을 입에서 꺼내는 순간 회담이 즉각 결렬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펜스 부통령과 노어트 대변인은 조미예비회담에 대해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각각 언급하였으나, 백악관이 조미예비회담을 언제쯤 조선에게 공식적으로 제의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조미예비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백악관이 시간을 질질 끌만한 처지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백악관이 조미핵대결에서 패하여 최악의 곤경에 빠졌으니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릿저널> 2018년 2월 8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란을 압박하고 있다고 떠들어대면서도, 막 뒤에서는 이란에게 세 차례나 협상을 제의하였는데, 이란은 미국의 협상제의를 모조리 거부하였다고 한다. 핵무기를 갖지 못한 이란에게도 그런 수모를 당하며 협상을 애걸해야 하는 미국이 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에게 협상을 애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런 사실은, 최악의 곤경에 빠졌으면서도 제국의 체면과 위신을 유지해보려고 거드름을 피우며 최대압박공세니 뭐니 하는 허장성세에 매달리는 백악관의 정치연극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들을 살펴보면, 백악관이 조선에게 예비회담을 제의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백악관이 조선에게 예비회담을 제의하더라도, 조선이 그 제의를 받아줄지 아니면 이전처럼 또 다시 외면해버릴지 예견하기는 힘들다. 조미예비회담 개최문제는 백악관이 성의 있는 태도로 예비회담을 제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진정성 문제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5. 불변의 전략 추진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과 미국이 예비회담을 거쳐 본회담(담판)으로 나아가는 씨나리오는 이미 18년 전에 실현된 바 있다. 2000년 3월 8일부터 15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조미차관급회담이 진행되었고, 7월 28일에는 타이 방콕에서 조미외무장관회담이 진행되었다. 백남순 당시 조선 외무상과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그 회담에 참석하였다. 조미외무장관회담의 결정에 따라 2000년 9월 27일부터 10월 2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조미차관급회담이 진행되었으며, 2000년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명을 받은 조명록 특사가 백악관을 방문하였다. 

 

당시 조선과 미국은 예비회담에서 무엇을 합의하였던가? 2000년 10월 12일 평양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표된 조미공동코뮈니께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 새로운 관계구축을 위한 또 하나의 노력으로 미사일문제와 관련한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모든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대하여 미국측에 통보하였다”는 문장이 들어있다. 

2000년 당시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으므로, 조선은 “모든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는 미사일발사 유예조치를 백악관에 통보하였고, 그런 유예조치에 상응하여 백악관은 대조선관계개선을 추진하기로 공약하였다. 

조선이 미사일발사 유예조치를 발표하고, 그에 상응하여 백악관이 대조선관계개선을 공약하였던 2000년 10월 12일에서 11일이 지난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접견을 받았는데, 바로 여기까지가 조미예비회담 진행과정이었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00년 10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 있는 백화원 국빈관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베푼 만찬에서 축배를 드는 장면이다. 미국 뉴욕에서 조미차관급회담이 진행되었던 2000년 3월 8일부터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10월 25일까지 약 7개월 동안 조선과 미국은 예비회담을 진행하였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올해 조미예비회담이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 기간은 2000년 진행기간보다 짧아질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조미본회담(조미담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12월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하여 역사적인 조미정상회담을 진행하려는 것이었으나, 워싱턴의 반대파가 그의 평양방문을 가로막는 바람에 조미정상회담은 불발되었다. 만일 빌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하여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었더라면, 조선은 미사일발사를 유예하는 게 아니라 중지하고, 그에 상응하여 백악관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기로 합의하였을 것이다. 

 

위에 서술한 2000년 조미회담경험을 살펴보면, 오늘 조미예비회담과 조미본회담이 열리는 경우, 어떤 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지 예견할 수 있다.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였고, 백악관은 대조선제재조치를 최대로 확대해놓은 조건에서 조미예비회담이 성사되면, 조선은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와 핵시험을 유예한다는 것을 백악관에 통보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상응하여 백악관은 대조선제재조치를 전면적으로 해제하고 대조선관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미예비회담 합의에 기초하여 조미본회담이 성사되면, 조선은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와 핵시험을 중지하는 포괄적 핵동결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에 상응하여 백악관은 주한미국군 완전철수를 공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바로 조미담판 씨나리오다. 

 

18년 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에 미국과 담판하려고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남전략 및 대미전략을 계승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른 시일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미국과 담판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대를 이어 계승된,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불변의 전략이다. 올해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표한 신년사에 그 불변의 전략이 반영되어 있다. <사진 6> 

 

▲ <사진 6> 2018년 2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측 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온 북측 고위급 대표단 성원들로부터 보고를 듣고, 남북관계개선 추진방향을 제시하였으며,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18년 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에 미국과 담판하려고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남전략 및 대미전략을 계승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미국과 담판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대를 이어 계승된 불변의 전략이다. 올해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표한 신년사에 그 불변의 전략이 반영되어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018년 2월 13일 댄 코우츠(Daniel R. Coats) 미국 국가정보국장과 마익 팜페오 미국 중앙정보국장은 연방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조선이 핵무력을 보유한 목적이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해리 해리스(Harry B. Harris Jr.) 미국 태평양사령관도 2018년 2월 14일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를 확보하려는 목적(국가핵무력을 완성한 목적이라고 해야 옳다)은 체제를 수호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전에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을 이제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그들이 청문회에서 공히 인정한 것처럼, 조선은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국가목표를 추구하고 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목적도 한반도의 통일이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미국과 담판하여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려는 목적도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대를 이어 계승된,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불변의 목적이다.

 

누구나 예감할 수 있는 것처럼,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예비회담이 성사되면, 정세변화는 급진전될 것이다. 남북해외 각계각층, 각당각파가 민족통일대축전에 총결집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고 조국통일의지를 고조시킬 것이며, 남과 북이 당국과 민간을 가릴 것 없이 각 부문에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70년 동안 지속되어오는 우리 민족의 통일국가건설운동은 주한미국군을 철수시키고 통일시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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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와 달성군이 낙동강서 벌이는 황당한 탐방로 공사

100억 예산 투입해 천혜의 자연자원 망쳐... "하천 순찰·산책로" 주장

18.02.19 10:23l최종 업데이트 18.02.19 10:23l

 

천혜의 자연자원이 망가지고 국민혈세가 탕진되는 공사의 대표적인 예가 4대강사업이었다. 4대강사업으로 국토의 혈맥과도 같은 4대강이 인공의 수로로 전락하고 수많은 생명이 사라져갔으며 천문학적인 국민혈세마저 날아가버렸다.

4대강사업은 국민적 공분을 산 대표적인 환경파괴 사업으로 지금 감사원의 집중 감사를 받고 있으며, 4대강을 재자연화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의해서 그 첫 조치로서 4대강 수문개방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형국에 또다시 낙동강에서 4대강사업식 하천공사가 대구 달성군과 국토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인공시설물에 대한 국토부의 옹색한 해명

바로 국토부(대구지방국토관리청)과 대구 달성군이 낙동강변 천혜의 자연자원인 화원유원지 화원동산 하식애 앞으로 '국가하천 유지관리용 낙동강변 다목적도로건설사업'이란 명목으로 탐방로 조성사업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달성군이 화원동산 하식애 앞 낙동강 안쪽으로 강철 파일을 박아 탐방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  대구 달성군이 화원동산 하식애 앞 낙동강 안쪽으로 강철 파일을 박아 탐방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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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을 통해 대구에서 원시적 자연식생이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하식애의 생태와 경관을 망치고 있다. 더구나 생태적으로 뿐 아니라 경관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업에 100억원이라는 거액의 국민혈세(대구지방국토청 30억원, 대구 달성군 70억원을 투입하는 매칭 사업)까지 투입되고 있다.  

특히 국가하천 관리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국토부가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수십억원의 예산까지 투입했다. 국토부가 이 사업을 허용하면서 내세운 목적은 '순찰'. 그러나 이 설명은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이 사업의 진짜 목적이 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국토부 산하 대구지방국토청 담당자는 "하천 순찰용"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화원동산 전경. 강변으로 강철파일을 박은 흔적들이 보인다. 그 라인으로 탐방로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식애의 생태계와 경관을 망치는 공사가 아닐 수 없다.
▲  화원동산 전경. 강변으로 강철파일을 박은 흔적들이 보인다. 그 라인으로 탐방로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식애의 생태계와 경관을 망치는 공사가 아닐 수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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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은 화원동산의 하식애 부분 즉 절벽 구간으로 길이 없는 곳이다. 낙동강과 하식애가 맞닿아 있는 부분이자 물길이 들이치는 수충부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이런 곳에 없는 길을 만들어내면서 '유지관리'라는 명분까지 붙여 고작 이유를 단 것이 순찰용이란 해명이다. 원래 길이 없어 사람도 다니지 못하던 곳에 순찰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홍수방어라는 하천관리 기본도 어긴 국토부

더구나 이곳은 수충부로서 홍수 등의 큰물이 지면 거센 물길이 부딪혀 어떠한 구조물도 견디지 못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 탐방로 공사를 허용하고 예산까지 투입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홍수방어라는 기본적인 하천관리 매뉴얼과도 배치되는 일이다.

 지도만 보더라도 탐방로 공사 현장이 얼마나 엉터리 공사인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사업을 허가하고 예산까지 보탠 국토부는 어느 나라 국토부인가? 4대강사업으로 국토파괴부란 비아냥을 듣고 있는 국토부가 국토하천 관리에서 손을 떼야 하는 이유다.
▲  지도만 보더라도 탐방로 공사 현장이 얼마나 엉터리 공사인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사업을 허가하고 예산까지 보탠 국토부는 어느 나라 국토부인가? 4대강사업으로 국토파괴부란 비아냥을 듣고 있는 국토부가 국토하천 관리에서 손을 떼야 하는 이유다.
ⓒ 다음지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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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인제대 토목공학과 박재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크게 우려했다.

 

"정말 위험하다. 이런 시설물은 홍수 나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곳에 어떻게 탐방로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 또한 탐방로의 미래에 낙제점을 주었다.

"강물의 흐름상 그 탐방로 안전하지 못하다. 집중호우시 낙동강의 불어난 강물이 탐방로를 치고, 휩쓸려온 덤불들이 저 탐방로 교각에 엉키면서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다"
 

 지난 2002년 8월 말 태풍 루사가 침공한 화원동산의 모습. 탐방로가 예정된 구간이 강한 강물에 휩쓸리고 있다.
▲  지난 2002년 8월 말 태풍 루사가 침공한 화원동산의 모습. 탐방로가 예정된 구간이 강한 강물에 휩쓸리고 있다.
ⓒ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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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가 도대체 국가하천을 관리할 역량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국가하천을 관리할 것이면 국토부는 국가하천 관리에서 손을 떼는 것이 옳다. 가뜩이나 국토부는 4대강사업을 강행한 주무부서로서 국민들로부터 '국토파괴부'란 비아냥까지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4대강사업 후 똑같은 행보를 보인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천혜의 자연자원을 망치고 있는 대구 달성군

이 문제투성이 사업에 있어 대구 달성군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화원동산 하식애는 천혜의 자연자원으로 대구 달성군이 '개발'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식물사회학자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하원동산 하식애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화원동산 하식애는 대구에서 원시적 자연식생이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곳으로, 대구광역권에서 가장 자연성이 높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희귀 야생식물자원 보존 창고로 모감주나무, 쉬나무, 팽나무, 참느릅나무, 참산부추 등 인공으로 식재하지 않는 잠재자연식생 자원의 보고다. 특히 모감주나무군락이 유명한데 산림청은 모감주나무를 취약종으로 분류 지정보호 대상 115호로 보호하고 있다."
 

 화원동산의 모감주나무군락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다.
▲  화원동산의 모감주나무군락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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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원동산의 모감주나무에 앉아 쉬고 있는 개똥지빠귀의 모습. 화원동산과 그 인근에는 텃새와 철새를 비롯한 다양한 새들이 찾아온다.
▲  화원동산의 모감주나무에 앉아 쉬고 있는 개똥지빠귀의 모습. 화원동산과 그 인근에는 텃새와 철새를 비롯한 다양한 새들이 찾아온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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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곳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서 야생동물의 중요한 은신처이기도 하다. 김종원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하식애의 생태적 기능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곳은 달성습지를 오가는 야생동물의 피난처나 휴식처로 기능을 하는 중요한 거점이다. 조류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서식처이다. 특히 지형적 특성상 이동철새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거점이 아닐 수 없다."

공사를 즉시 중단하고, 책임자 처벌해야

뿐만 아니다. 이곳은 경관적으로도 중요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이곳은 예로부터 '배성10경'의 하나로 꼽히면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던 곳이다. 오죽하면 신라 경덕왕이 이곳의 풍광에 빠져 이 일대를 '화원'이라는 칭했을까. 석양이 질 무렵 이곳의 경관은 낙동강의 그 어떤 곳의 낙조보다 아름답다.     
 

 철새 파일이 박힌 낙동강변에 천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와 물닭 같은 다양한 철새들이 놀고 있다. 이곳에 탐방로가 놓이고 사람이 드나들면 이들은 더이상 이곳을 찾을 수가 없다.
▲  철새 파일이 박힌 낙동강변에 천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와 물닭 같은 다양한 철새들이 놀고 있다. 이곳에 탐방로가 놓이고 사람이 드나들면 이들은 더이상 이곳을 찾을 수가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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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방로 조성 현장 위로 철새들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이처럼 달성습지에는 다양한 철새들과 텃새들이 살고 있다.
▲  탐방로 조성 현장 위로 철새들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이처럼 달성습지에는 다양한 철새들과 텃새들이 살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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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생태적 경관적으로 중요하고 아름다운 곳에 강물 위로 쇠말뚝까지 박아서 흉측한 인공의 구조물을 만든다는 것은 이곳의 생태와 경관을 깡그리 망치는 행위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이 사업을 전해들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게다가 "이런 기막힌 사업에 국민혈세 100억원까지 투입해서 공사를 벌인다는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우려와 주장은 국토부와 달성군이 지금 즉시 이 사업을 중단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천연 자연자원을 보호할 것인가, 4대강사업식 하천공사를 강행해 비난을 자초할 것인가? 국토부와 대구 달성군의 행보가 주목되는 까닭이다.

한편, 대구 달성군은 이 사업의 목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주민 편의를 위한 산책로 및 자전거도로 조성 그리고 친수공간을 활용한 인간과 환경, 문화의 조화 및 녹색성장"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4대강사업은 우리 국토에 참으로 몹쓸 짓을 한 대표적인 사업입니다. 천문학적인 국민혈세까지 탕진을 했지요.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4대강사업식 하천공사가 끊임없이 복제된다는 것입니다. 국토부와 대구 달성군이 함께 벌이는 낙동강변 탐방로 공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국민혈세만 탕진하면서 천혜의 자연자원을 망치고 말 이 사업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합니다. 이 기사는 <평화뉴스>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낙동강#탐방로 공사#대구 달성군#화원동산#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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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 파견이후 북한의 다음 행보는?

<연재> 정창현의 ‘색다른 북한이야기’ (13)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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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9  06: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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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대표단의 일원에서 특사로 지위 변경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특사 자격으로 10일 청와대를 방문,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지속적인 노력과 북측의 호응으로 남북 화해와 협력,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 북한의 ‘김여정 특사’ 카드는 파격적이었고, 단번에 정세를 변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과거와 달리 공식 특사 파견을 통해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 주목된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북측 고위대표단으로 온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2월 10일 청와대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특사’로 지위가 변경됐다. 2005년 남북공동행사의 당국대표단으로 간 당시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면서 ‘정부의 특사’로 지위가 변경돼 회담한 것과 유사한 형태다.

김여정 특사는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와 함께 구두로 문재인 대통령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며 “편한 시간에 북한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나가자”고 사실상 정상회담 수락의사를 밝히고,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에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북측이 북미대화에 좀 더 유연한 태도를 보여 달라는 주문이다.

이번 고위급 만남을 통해 남과 북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 전반에 대해 폭넓은 논의를 진행했고, 한반도 평화와 화해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을 활성화하자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무엇보다도 남과 북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개막식 참석, 면담, 오찬, 만찬, 공동응원, 공연 관람 등을 통해 소통과 신뢰를 쌓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무엇보다도 북한을 움직이는 노동당의 조직과 선전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특사로 내려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박성철 제1부수상, 허담 대남담당 비서,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 등 과거 남북관계에서 북측의 ‘밀사’, ‘특사’로 내려왔던 간부들과는 비중이 전혀 다르다. 단순히 김여정 제1부부장이 북한 최고지도자의 친동생이라는 특별한 관계 때문이 아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2016년 5월 노동당 7차대회에서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당 중앙위원에 선출됐고, 지난해 열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승진하면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겸직해 노동당의 핵심부서인 조직과 선전분야를 총괄하는 지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남쪽을 방문함으로써 남북관계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과거 1970년대 후계자로 임명된 김정일 비서가 당, 군, 남북관계 순으로 후계체계 마련에 나섰던 것을 연상케 한다.

김일성시대 때 김일성 주석의 동생 김영주가 노동당 조직부장에 기용되고, 김정일시대 때 매제인 장성택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기용된 경우 외에는 당의 조직과 선전분야에 인척이 등용된 사례가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도 국제부와 경공업부에서 활동했을 뿐이다. 그만큼 김정은 위원장이 김여정 제1부부장의 능력을 신뢰한다는 증거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남북관계까지 영역을 넓힌 것은 상당히 의외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은 이상 책임이 따른다. 그만큼 북한이 향후 안정적인 남북대화나 교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내부 강경입장의 목소리가 쉽게 나올 수 없게 됐다.

김정은 위원장 후속 조치 지시

   
▲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2일 고위급대표단을 만나 방남 결과를 보고받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무적 대책을 지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으로서는 김여정 특사 파견이 갑작스럽게 결정됐기 때문에 특사 파견 배경과 성과를 총화(결산)하는 내부회의를 열고, 향후 대화 방향과 교류안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귀환한 고위대표단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금후 북남관계 개선 발전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해당 부문에서 이를 위한 실무적 대책들을 세울 데 대한 강령적인 지시”를 했다고 한다.

‘해당 부문’이 어느 부서인지, 실무적 대책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향후 남북 당국회담, 민간교류, 남북공동행사에 대비해 당 통일전선부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해당 부문에 외무성이 포함돼 있는지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고위급대표단이 내려왔을 때 “여러 계기에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한 남북관계의 본격적인 회복은 어렵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평양 초청을 받고 ‘여건 조성’을 언급했다.

따라서 북한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간 조기 대화가 필요하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할 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고, 이를 맡고 있는 외무성이 어떤 실무 대책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북한은 우선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남북적십자회담, 남북군사당국회담 등 당국간 회담을 준비하면서 남쪽에서 거론되는 대북특사가 가져올 제안에 대비하는 한편,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민간교류와 남북공동행사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직접 거론하고 서울시가 관심을 보여 온 경평축구를 비롯해 6.15와 8.15를 계기로 남북공동행사를 여는 문제가 가시화 될 것이다. 10.4선언에서 합의됐지만 성사되지 못한 남북 의원 교류차원에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측 의원대표단이 서울에 오는 것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미국과의 ‘조기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과 미국에서 거론되는 ‘탐색적 대화’가 북한에도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표면적으로 ‘미국과의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라고 했지만 미국과의 ‘탐색적 대화’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북한과의 접촉을 피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미국은 연일 북한을 상대로 대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후 돌아가는 길에 “만약 대화의 기회가 있다면 그들(북한)에게 미국의 확고한 (비핵화) 정책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변화된 입장을 보였고,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북한과) 예비대화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탐색적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

특히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 예고 동영상에서 ”(북한이) 내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의 초청이 있을 경우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 시민 3명의 석방을 전제로 방북할 의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북제재 완화 속에서 대화’를 원하는 북한, ‘최대한의 압박 속에서 대화’를 시도하는 미국 사이에서 어떻게 접점이 마련될 지가 관건이다. 물론 북미간의 ‘탐색적 대화’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남과 북 모두의 노력과 북측의 전향적 태도, 미국의 정책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몇 달간 ‘탐색적 대화’의 조건을 두고 북한과 미국 사이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직접 정상외교에 나설까?

   
▲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방한 기간 동안 축하객에 어울리지 않는 행보로 빈축을 샀지만 돌아가는 기내에서 전향적 발언을 내놓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이 미국과의 ‘탐색적 대화’의 조건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기보다 ‘김여정 특사’ 파견과 같은 파격적인 카드를 내놓아 미국의 압박에 정면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도 크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가 아닌 외교공세다. 과거의 사례를 볼 때 이번의 외교공세는 외무성 차원의 소극적 대응이 아닌 파격적인 정상외교로 나타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이 성동격서(聲東擊西)식으로 러시아와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다.

회의적인 시각이 많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이미 2014년 하반기에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외교’에 관한 구상을 세운 바 있다. 2014년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용해 비서, 김양건 비서 등 ‘3인방’을 파견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 실패한 후 김양건 비서가 사망하고, 내부 ‘강경파’의 목소리 커지면서 이 구상은 유보됐다.

그러나 지금은 정세가 또 변했다. ‘김여정 특사’ 파견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여정 특사’가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었다면 이제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를 돌파하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나설 차례가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과의 관계, 북한의 인식을 볼 때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외교에 나선다면 첫 번째는 북러 정상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가장 좋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도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후로 북미대화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틸러슨 미 국무장관을 평양에 초청하는 카드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것이 성사되면 바로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중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북한은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역시 북한이 언제, 어느 계기를 통해 비핵화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2016년 7월 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비핵화의 5가지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성명에서 북한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며, 김 위원장의 영도를 따르는 노동당, 군대, 인민의 의지”라고 강조하면서 미국과 한국 정부에 비핵화를 위해 5개항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북한의 요구사항은 남한 내 미국의 핵무기 모두 공개, 남한 내 모든 핵무기 및 기지 철폐와 검증, 미국의 핵 타격수단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는다는 보장,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이나 핵 불사용 확약, 핵 사용권을 가진 미군 철수 선포 등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와 미국은 북한의 이 제안을 흘려보냈지만 지금은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북한 담당관을 지낸 미국의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연구원은 북한 당국의 공식 성명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2013년 국방위원회 성명 이후 처음이라며 한국에 배치한 미국 핵무기의 투명한 공개, 미군의 핵타격수단을 다시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약속, 핵사용권을 쥔 미군의 철수 선포 등 북한의 요구들은 경험에 비춰보면 필요조건이 아니라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공개적인 제안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북한은 당시 성명 마지막 부분에 “이러한 안전담보가 실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 역시 그에 부합되는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며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이 성명에 대해 주한미군의 철수만 부각해 “존재하지도 않는 핵 위협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거나 주한미군 철수 등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 훼손을 시도하는 등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이라며 즉각 거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북한이 ‘핵 무력의 완성’을 선포한 시점에서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며, 김 위원장의 영도를 따르는 노동당, 군대, 인민의 의지”라는 선언 자체가 새로운 국면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북한이 ‘조선반도의 비핵화’ 협상 의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우려하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5개항 조건’이라고 것도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사안들이다. 정세가 변화되기는 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외교’에 나선다면 ‘정부 성명’에서 밝힌 ‘비핵화’를 다시 언급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비핵화 다자대화의 선순환 구조 형성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의 긴밀한 의견 조율을 통해 틸러슨 국무장관의 방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북한의 전향적 입장을 이끌어내는 한편 다양한 민간교류를 통해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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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랑 헬멧에 새겨진 ‘노란리본’ 비난한 MBC 김세의 기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2/19 10:56
  • 수정일
    2018/02/19 10: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치적 표현이라고 비난하지만, 실제로 김 기자 본인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셈
 
임병도 | 2018-02-19 08:59: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MBC 김세의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아랑 선수의 헬멧에 새겨진 노란리본이 올림픽 헌장을 위반하며,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함이 아니냐는 글을 올렸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MBC 김세의 기자가 쇼트트랙 김아랑 선수의 헬멧에 부착된 ‘노란 리본’을 비난했습니다. 지난 18일 김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아랑 선수에게 묻고 싶다’라며 ‘세월호 침몰에 대한 추모인가, 박근혜 정부의 책임도 함께 묻기 위함인가’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극우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를 옹호하는 김세의 기자는 2007년에도 프로야구 이대호 선수의 글러브에 부착된 ‘노란리본’을 가리켜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며 ‘스포츠 현장에서 정치적 표현은 바람직한가’라는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MBC 김세의 기자가 운동선수들의 ‘노란 리본’을 문제 삼는 모습은 박근혜씨를 옹호하는 극우 친박단체의 주장과 매우 흡사합니다. 정치적 표현이라고 비난하지만, 실제로 김 기자 본인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셈입니다.

김세의 기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림픽 헌장 50조에 따르면 그 어떤 정치적, 종교적 선전도 금지가 있네요’라며 ‘판단은 여러분들께서 해달라’는 글도 올렸습니다.

김 기자가 판단해달라고 했으니, 올림픽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올림픽 시상식에서 벌어졌던 검은 장갑 퍼포먼스’

 

▲1968년 멕시코올림픽 육상 200m 시상식에서 미국의 토미 스미스 ,존 카를로스 선수와 호주의 피터 노먼 선수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육상 남자 200m에서 미국의 토미 스미스 선수는 금메달을 존 카를로스 선수는 동메달을 땄습니다. 시상식에서 미국의 국가가 연주되자 갑자기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번쩍 들었습니다.

두 선수의 행동은 흑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경례 방식이자 미국의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흑인과 백인이 같은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거나 같은 버스를 타지 못할 정도로 인종 차별이 심했습니다.

시상식에서 스미스가 착용한 검은 장갑은 ‘우리는 흑인이다’라는 표현이었고, 검은색 양말은 ‘흑인의 가난’을 상징했습니다. 스미스가 손에 든 상자에 담긴 올리브 나무 묘목은 ‘평화’를 의미했습니다.

은메달리스트였던 호주의 피터 노먼 선수도 미국 선수들의 인종 차별 항의에 동참하기 위해 “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 배지를 가슴에 달았습니다.

원래 검은 장갑은 스미스와 카를로스 모두 착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카를로스가 장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고 피터 노먼 선수가 ‘나눠서 끼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검은 장갑’은 세 선수의 마음과 아이디어가 합쳐진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명과 차별을 당했지만, 영원히 기억되는 선수들’

올림픽 시상식에서 검은 장갑을 끼고 인종 차별에 항의했던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다음날 올림픽 숙소에서 쫓겨났습니다. 두 선수는 미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의 비난과 토마토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이유로 미국육상연맹에서 제명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피터 노먼이 사망한 10월 9일을 피터 노먼의 날로 기리자는 포스터 ⓒ구글이미지

 

호주의 피터 노먼 선수도 인종차별 항의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육상계에서 배척을 받았습니다. 특히 피터 노먼은 호주 신기록 보유자임에도 올림픽 출전에서 제외되는 차별과 수모를 당했습니다.

2006년 피터 노먼이 사망하자,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장례식에 참석해 관을 들었습니다. 2012년 호주 의회는 뒤늦게 공식적인 사과를 했습니다.

미국육상연맹은 피터 노먼이 죽은 10월 9일을 ‘피터 노먼 데이, 인권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피터 노먼은 지금도 ‘위대한 은메달리스트’,’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2등’으로 불리며 기억되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애’

 

▲좌측부터 에딘버리 브런디지 IOC 위원장, 1936년 베를린올림픽 제시 오언스, 손기정 선수 ⓒ구글이미지

 

올림픽과 정치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등장했던 세 명의 인물을 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가장 먼저 에딘버리 브런디지 IOC 위원장입니다. 브런디지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검은 장갑 퍼포먼스를 벌인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를 추방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브런디지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아돌프 히틀러 앞에서 ‘나치식 경례’를 했던 친나치 인사였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100m, 200m, 400m계주, 멀리뛰기 종목에서 우승하여 4관왕을 달성한 선수는 제시 오언스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레이스’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인물은 우리도 잘 아는 손기정 선수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에서 사인할 때는 꼭 한국이름을 썼으며, 옆에 한반도 지도를 그렸습니다.

MBC 김세의 기자가 올림픽 헌장 50조를 운운하며 김아랑 선수의 노란리본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 히틀러에 협력해 놓고 “올림픽이 정치적으로 오염돼선 안 된다”고 했던 에딘버리 브런디지가 떠오릅니다.

올림픽의 본질은 ‘인류애’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을 비난하는 그들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스포츠를 통하여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며 인류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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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전쟁국가의 탄생

[전쟁국가 미국] NSC-68과 한국전쟁 <상>
2018.02.18 13:38:05
 

 

 

 

2차 대전 후 미국의 세계 패권이 완성된 결정적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한 전면적 재무장에 의해서였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국방비를 일거에 4배 가까이 증액했고 군사 물자 생산도 7배로 늘렸다. 서독과 일본 등 과거 적국의 재무장을 단행했다. 

미국이 대대적 재무장에 나선 것은, 그것만이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지를 세계에 관철시키려면 압도적 군사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한 청사진이 1950년 4월 작성된 국가안보회의 문서 68(NSC-68)이다. 

그러나 전시도 아닌 평시에 국방 예산의 3~4배 증액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마치 기적과도 같이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이것이 가능해졌다. 북한의 남침을 소련 주도에 의한 세계 공산화의 시발점으로 간주한 미국 지도층은 국민들에게 전면적 재무장을 설득했고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  

미국은 재무장을 통해 압도적 군사력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유럽과 일본 등 자본주의 선진국을 미국의 경제권에 통합했으며, 소련과 중국 등 공산권을 봉쇄했고,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제3세계의 혁명운동을 진압했다.  

이후 미국은 영구 전쟁 국가로 변모했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외국과 군사동맹을 맺었고 서유럽과 동아시아 등 세계 수백여 곳에 미군 기지를 운용했다. 또한 한국전쟁을 비롯하여 베트남전쟁, 아프간전쟁, 걸프전쟁 등을 수행했으며 아직도 중동지역에서 18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 경제는 핵무기를 비롯해 폭격기와 미사일 등 전쟁물자 생산이 계속되지 않으면 지탱될 수 없는 전쟁경제로 전환됐다. 이러한 미국의 전쟁 국가적 면모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 2010년 림팩 훈련에 참가한 미군 함정들. ⓒnavy.mil


2차 대전 발발 직후부터 전후 목표 구상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절대무기인 원자탄을 독점했고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의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확보했다. 미국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에야 2차 대전에 참전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직후인 1939년 9월부터 전후 목표를 구상하고 있었다. 정부가 아닌 재계 주도에 의해서였다.

2차 대전 발발 열하루만인 9월 12일, 미 재계의 두뇌집단(Brain Trust)으로 불리는 외교협회(CFR)가 국무부에 대해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이 추구해야 할 목표들에 관한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공동연구는 12월 6일 록펠러재단이 첫해 연구비 4만 5000달러 지원을 약속하면서 1940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전쟁과 평화 연구(The War and Peace Studies)'가 그것이다. 

'전쟁과 평화 연구'에는 주로 CFR 소속의 학자, 지식인, 언론인, 관료 등 100여 명이 참여했으며 1940년부터 45년까지 6년간 362차례 회의에서 682개 정책문서를 작성해 대통령과 국무장관 등 최고위 관리들에게 보고했다. 연구보고서는 대통령 2부를 비롯해 모두 25부만 작성됐을 정도로 고도의 비밀 속에 진행됐다. 록펠러재단은 6년간 3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연구'의 핵심 목표는 처음부터 미국 경제의 세계적 확장이었다.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겪은 미국의 경제 엘리트들은 미국의 과잉 농산물과 공산품, 그리고 과잉 자본이 진출할 해외 시장을 원했다. 수요 부족, 즉 시장의 결핍이 대공황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과잉 상품과 자본을 받아들일 해외 시장을 확보해야 미국의 자유와 안보, 번영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 등의 배타적 폐쇄적 경제권을 해체해야만 했다. 배타적 경제권으로 인한 세계 시장의 분열은 곧 2차 대전의 원인이기도 했다.

'연구'의 처방은 세계적 자유무역 체제의 수립이었다. 즉 미국의 상품과 자본이 세계 어디로든 진출할 수 있는 국제 체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1899년 미국의 중국 시장을 목표로 발표한 문호개방(Open Door) 정책을 전 세계로 확대한 것이다. 

미국의 경제 엘리트들은 모든 국가들이 공평하게 상품과 자본을 수출할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진다면 단연 미국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은 이미 1차 대전 이후부터 세계 최대 채권국이자 농산물 생산국이었으며 2차 대전 이후에는 세계 공산품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세계적 자유무역 체제의 수립이란 곧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복원을 의미했다.  

세계 패권 수립의 어려움  

그러나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도 세계를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로 재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각자도생을 모색했고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제3세계에서는 민족주의, 사회주의 혁명의 기운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특히 두 차례 세계 대전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선진국 간 갈등의 결과라는 점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려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일례로 해방 후 남한 지역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70%가 사회주의를 바람직한 사회 체제로 꼽았다. 또한 역대 헌법 중 제헌 헌법이 노동자 이익균점권을 규정하는 등 가장 진보적 성향을 띤 것도 전쟁 직후의 세계적 분위기를 말해준다. 

미국의 세계 자본주의 복원 프로젝트는 세 단계로 진행됐다. 첫 번째는 다자주의적 무역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다. 1944년 미국 주도로 수립된 국제통화기금(IMF)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995년 세계무역기구 WTO로 개칭)이 그것이다. 미국은 이들 국제기구를 통해 자유무역을 촉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피폐해진 다른 나라들은 자유무역을 할 여력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에는 미국 상품을 수입할 달러가 턱없이 부족했다. 국제제도만으로는 자유무역을 실현시킬 수가 없었다. 

마셜 플랜 

다음으로는 서유럽에 대한 대대적 경제원조였다. 유럽 재건 계획(ERP : European Recovery Program)이 그것이다. 1947년 6월 5일 조지 마셜 당시 국무장관이 하버드대 졸업 연설에서 제창했다는 이유로 마셜 플랜으로도 불린다. 1948년부터 51년까지 4년간 130억 달러를 서유럽 국가들에 원조해 자본주의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실상 실패했다. 우선 국내의 반대가 극심했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물론 국민들도 퍼주기라며 강력 반발했다. 당초 290억 달러로 책정됐던 원조 액수가 1949년 말 130억 달러로 반토막 난 것도 국내 반발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4년간의 경제 원조에도 불구하고 서유럽의 달러 갭(달러 부족)이 해소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1948년 미국의 수출은 134억 달러로 대부분 서유럽에 수출됐는데, (마셜 플랜이 끝난 이후인) 1952년 유럽의 달러 보유액은 고작 20억 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상품을 사들일 달러가 부족한 서유럽의 선택은 자명했다. 계획경제, 배급경제와 같은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을 시행하거나 소련 및 동구권과 물물교환 형태의 교역을 할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이는 곧 자본주의 경제, 미국 세력권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달러가 없는 서유럽은 친소련, 또는 적어도 중립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서는 결단코 막아야 할 사태이다. 미국은 자본주의 선진국인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을 세계 자본주의 복원의 핵심 파트너로 지목하고 이들을 미국의 세력권 안에 묶어두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핵심 동맹국 영국은 1949년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로 경제가 휘청거렸다. 또한 프랑스는 서독의 경제부흥에 한사코 반대했다. 숙적 독일의 재기를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1949년까지 서유럽의 통합 및 경제 부흥은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당초 미국은 마셜 플랜을 제창하면서 소련 및 동구권에 대해서도 경제 부흥을 위한 자금 지원을 제안했다. 미국의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1947년 7월 미국의 제안을 거부했고 동구권 위성국가들에게도 미국의 지원을 받지 말도록 지시했다. 미국의 자금 지원은 자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로써 미소 간 대결은 첨예해진다.  

소련의 핵실험과 중국 공산화  

세 번째 시도가 바로 대대적 재무장에 의한 세계 경제 재편이었다. NSC-68이 바로 그것이다. 

1949년까지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 부활이라는 미국의 프로젝트는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였다. 특히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미국의 세계 전략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소련과 중국, 유라시아의 두 공산 대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공산화의 유령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첫 핵실험을 비밀리에 단행했다. 며칠 후 미국은 이 사실을 탐지했고, 9월 23일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의 핵실험을 공식 확인했다. 이로부터 열흘이 채 되지 않은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이 텐안먼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특히 소련의 핵실험 성공은 미국에 큰 충격이었다. 미국의 핵 독점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핵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일방적으로 세계를 경영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핵을 내세워 소련의 이해관계와 의사를 무시한 채 일본을 단독 점령하고 독일의 분단을 밀어붙였으며 (에너지 자원의 보고인) 중동지역에 대한 소련의 진출을 저지했다. 그러나 이제 소련도 핵무기를 가진 만큼 더 이상 미국의 일방주의는 통할 수 없게 됐다.

중국의 공산화도 문제였다. 당초 미국은 중국을 영국, 소련과 함께 전후 세계 경영의 주요 파트너로 상정했다. 이른바 '세계의 네 경찰관(four policeman)'이다. 1943년 카이로 회담에 장졔스를 참석시킨 것도 루스벨트의 이러한 구상에 따른 것이었다. 그랬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소련 진영에 합류했으니 미국으로선 큰 타격이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공산화 이후 일본의 안보와 행로가 불투명해졌다는 점이었다. 미국의 정책 엘리트는 중국보다는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훨씬 더 높게 봤다. 일본의 산업 능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고도의 숙련 노동자와 산업 능력을 가진 일본이 소련에 넘어간다면 공산권의 세력은 엄청나게 강화될 터였다. 반면 미국에겐 뼈아픈 손실이 된다. 동아시아 전체가 공산화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사 일본이 미국 진영에 남는다 해도 공산 중국이 버티는 동아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일본 경제를 지탱해주었던 식민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전쟁 이전 일본 자본주의는 대만, 조선, 만주 등의 식민지를 통해 원자재와 노동력, 그리고 시장을 확보했다. 또한 중국과의 교역 규모도 만만치 않았다. 수입의 17%, 수출의 27%가 대중국 교역이었다. 

패전으로 식민지를 잃고 중국 공산화로 중국 시장을 빼앗긴 일본 자본주의의 활로는 오직 동남아뿐이었다. 만일 일본이 동남아지역과 경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연간 5억 달러에 이르는 무역적자를 메울 길이 없었다. 그 경우 일본이 살 길은 공산 중국과 교역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본을 미국 세력권 안에 묶어두기 위해서는 동남아를 일본의 배후지로 만들어줘야만 했다.

문제는 동남아에서도 혁명의 기운이 뜨거웠다는 점이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 영국 식민지 말라야와 네덜란드 식민지 인도네시아 등에서 민족 해방과 사회주의를 향한 혁명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베트남 북부에서는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이 독립을 선포했으며 1950년 초 중국과 소련은 이를 승인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라야에서는 중국계 시민들이 독립투쟁에 대거 참여했다. 중국 혁명의 영향이었다. 방치할 경우 중국 혁명의 여파가 동남아 전역으로 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공산 아시아의 외딴 섬이 될 것이고 생존을 위해서는 공산권과의 공존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NSC-68 

미국으로선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우선 1950년 1월 수소탄 개발에 착수했다. 과학계 자문위원들의 일치된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결정이었다. 핵 독점이 무너진 데 따른 자신감의 상실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였다.  

1945년 이후 미국이 자신의 세계 전략을 마음 놓고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핵 독점 덕택이었다. 핵 독점이 무너진 이제 보다 강력한 무기를 가져야만 했다. 그래야만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고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50년 1월 31일 트루먼 대통령은 국무부와 국방부에 소련 핵실험과 중국 공산화가 미국의 대외정책에 미칠 영향과 이에 대한 대응 방침을 연구할 것을 지시했다. 국무부 정책기획단장 폴 니츠를 의장으로 한 연구 그룹은 4월 7일 NSC-68을 작성해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다. 
 

▲ NSC-68 보고서 ⓒTruman Library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한 목표와 계획에 관한 국무 및 국방 장관 보고서'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소련이 세계 정복이라는 광신적 믿음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의 총체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소련은 이전의 패권 추구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새로운 광신적 믿음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전 세계에 대한 절대적 권위의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련과의 갈등은 불가피하게" 됐으며 "군사력의 총체적 우위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봉쇄 정책은 공허한 허풍이 될 뿐"이라고 밝혔다.

이제까지 소련과의 냉전이 정치외교적 대결이었다면 앞으로는 군사적 대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니츠는 핵전력의 압도적 우위를 강조했다. 

"우리가 핵전력의 압도적 우위를 달성하고 제공권을 장악했을 때, 오직 그때에만 미국의 정책 수행을 방해하기 위해 소련이 원자탄을 사용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다"

미국이 말하는 억지 정책의 핵심이 이것이다. '미국의 정책 수행을 방해하기 위해' 소련이 원자탄을 사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즉 소련이 미국 정복을 위해 핵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핵전력에 대한 니츠의 믿음은 거의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냉전의 고비마다 강경한 군사 대응을 주도했던 그는 1979년 소련과의 2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2)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폭력의 최고 단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면 낮은 단계의 모든 군사 대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한국전쟁, 베를린봉쇄, 그리고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미국은 전략핵무기의 우세 덕택에 전략적 우위를 누릴 수 있었다"  

니츠는 핵전력은 물론이고 재래식 전력의 대대적 증강을 촉구했다. 서유럽에 대한 미 지상군 파병도 요구했다. 미국의 재무장뿐만 아니라 동맹국에 대한 군사지원과 경제원조, 공산진영에 대한 비밀공작과 심리전 등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모든 수준의 군사력에서 소련에 대한 절대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NSC-68은 소련이 군사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소련은 세계 정복을 실현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미 자체 방위에 필요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련은 잘 무장돼 있고 "고도의 준비 태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즉각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이며 그 능력은 서유럽 침공, 노르만디 상륙과 같은 서방측의 반격을 저지하고 영국 공습, 그리고 중동 진출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고도 군사력이 남아돌아 "다른 지역에 대한 관심 돌리기 용 침공"을 할 수 있으며 이미 미국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소련은 1950년 당시 미국 핵 공격을 위한 장거리 폭격기를 갖고 있지 못했다. 소련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폭격기를 개발한 것은 50년대 중반이었고 1957년 이후에야 미국에 대한 전략적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1950년 중반 소련 보유 원자탄은 5개에 불과했다. 당시 미국은 299개를 갖고 있었다. 원자탄 탑재 폭격기는 264대나 됐으며 미국 본토는 물론 알래스카, 캐나다, 아조레스, 영국, 아이슬란드,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오키나와 등에 발진 기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츠가 소련의 군사적 의도와 능력을 극도로 과장한 것은 NSC-68의 처방, 즉 미국 및 동맹국의 대대적 재무장을 트루먼 대통령 등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니츠는 소련이 의도적으로 핵 공격을 가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의 핵 독점 상실에 따른 외교적 주도권 와해를 우려했다. 미국 당국자들을 당혹케 한 문제의 근원은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아니었다. 독일과 일본의 패배에 따른 힘의 공백을 소련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이었다. 세계 각지에서의 자급자족 경제와 계획 경제의 증가, 공산당의 성장, 그리고 제3세계에서의 혁명적 민족주의 운동의 발흥을 두려워했다. 

달러 갭, 유사회경제적 혼란에 따른 유럽 통합의 부진, 중국 내전에서 공산당의 승리, 베트남 호치민의 압도적 인기 등 제3세계의 탈식민화 열풍 등 미국의 세계 전략에 불리한 상황들이 쌓여가면서 소련이 이를 이용할 것을 우려했다. 핵능력을 확보한 소련이 보다 대담한 외교 공세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다 대담해진 소련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는 게 니츠의 판단이었다. 실제 전쟁 수행에 필요한 것보다 더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니츠의 목표였다. 군사적 우위야말로 소련으로부터 외교적 주도권을 빼앗아오고 냉전을 수행할 다양한 옵션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국무장관 애치슨도 니츠의 판단에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소련 주위를 봉쇄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선택의 자유는 소련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전쟁 수행에 필요한 것보다 더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방비의 대대적 증액이 필요했다. 니츠는 내심 국방 예산의 3!4배 증액을 예상했으나 재무장에 필요한 재원 규모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재정 적자를 극도로 꺼려했던 트루먼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0년 당시 미국의 국방 예산은 130억 달러, 니츠의 계산대로라면 400~500억 달러로 대폭 예산을 늘려야 했다.  

실제로 트루먼 대통령은 NSC-68이 제시한 재무장을 원칙적으로 승인하면서도 필요 재원을 산출해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5월 초, '다음해 국방 예산은 기존보다 적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니츠 등이 기대했던 국방 예산의 대대적 증액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NSC-68의 실행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한 니츠는 6월 7일 휴가를 떠났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군복 입은 케인즈', 미국을 만들다
[전쟁국가 미국] NSC-68과 한국전쟁 <하>

 

2018.02.19 09:54:43
 

 

 

 

딘 애치슨, 폴 니츠 등 미국의 전면적 재무장을 원하는 세력에게 북한의 남침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NSC-68이 주장한 소련 군사력에 의한 세계 공산화 음모가 현실화 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소련의 음모가 드러난 이상 미국은 대응에 나서야 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전면적 재무장이 그것이다.  

사실 북한의 남침은 미국 지도자들의 '자유 세계' 수호 의지를 시험하는 시금석이었다. 미국이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중립주의를 부추기게 될 터였다. 서유럽과 일본은 소련, 중국과의 화해를 추구할 것이다. 반면 전면적 재무장과 함께 북한을 격퇴한다면 서유럽과 일본을 미국의 세력권 안에 확실히 묶어둘 수 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트루먼 대통령은 측근에게 한반도는 "극동의 그리스다. 우리가 단호하게 대처한다면, 3년 전 그리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들에 맞서 싸운다면, 저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을 통해 그리스 좌파 세력의 민족해방 투쟁을 저지한 것을 말한다.  

트루먼은 "남한의 공산화를 방치한다면 소련은 아시아 각국을 차례차례 먹어치울 것...나아가 아시아의 적화를 방치한다면 중동지역이 무너질 것이며 그 다음은 유럽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고 말했다. 

트루먼과 애치슨에게 한반도는 중요했다. 남한의 공산화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중대한 위협이었다. 핵 개발과 중국 공산화로 고무된 소련이 그 힘을 팽창하려 하고 있으며 남한이 그 출발점이었다. 소련의 팽창은 주변부에서부터 막아야 했다. 남한이 무너지면 동남아가 무너지고, 주변부가 붕괴되면 서유럽, 일본 등 핵심 산업 지역도 미국 세력권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트루먼 등이 보기에 북한의 남침은 김일성 주도가 아니라 소련의 지령에 따른 것이었다. 스탈린이 미국의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게 해놓고 보다 중요한 지역, 예컨대 이란 등 중동지역 또는 서독이나 서유럽을 공격할 것으로 의심했다. 
 

▲ 한국전쟁 당시 38선 경계표시판 ⓒ프레시안 자료사진


트루먼은 전쟁 발발 직후 7함대를 대만해협에 파견했고 인도차이나와 필리핀에 대한 군사원조를 증액했다. 일본과의 평화협정을 서둘렀고 서독의 재무장을 결정했다. 서유럽에 미 4개 사단을 주둔시키고 미국의 동맹국들은 경제 재건보다 군사력 증강을 우선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소련의 또다른 공격에 대한 대비였다. 소련으로 하여금 서유럽에 대해 한반도에서와 같은 군사적 모험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북한의 남침은 김일성 주도였다. 스탈린의 승인은 치명적 오판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스탈린은 미국의 군사행동을 촉발하지 않기 위해 극력 몸을 사렸다.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공산당의 무력 봉기를 억제했고 그리스 좌파의 독립투쟁도 아예 외면했다. 그리스를 영국 세력권으로 인정한 처칠과의 밀약을 준수한 것이다. 

그랬던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고, 마지못한 승인이었다. 우선 스탈린은 중국 내전에서 국민당이 이길 것으로 보았고 이에 따라 공산당을 거의 지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공산당 승리 이후 스탈린은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어색한 사과를 해야 했다.  

다음으로 중국 내전에서 중국 공산당과 함께 싸웠던 조선인 병사 2만 5000명이 1949년 말에서 1950년 초에 걸쳐 북한에 들어왔다. 김일성은 노련한 전투원인 이들과 함께 남한을 공격할 경우 남한 인민들도 함께 봉기해 한 달 내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소련이 핵을 갖게 된 것도 스탈린의 자신감을 북돋았다. 마지막으로 1950년 1월 '남한이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애치슨 선언도 스탈린의 모험을 가능케 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 또는 미국 개입 전에 한반도 통일이 완수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애치슨 선언에 대한 오독에서 비롯된 오판이었다. 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이른바 애치슨라인은 소련과의 전면전에 대비한 방위선이었다. 소련과 전면전을 벌일 경우 남한(과 대만)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애치슨은 만일 한반도에 대한 국지적 도발이 감행된다면 유엔의 집단 안보를 발동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을 동원해 남한 방어에 나섰다. 미국의 개입에 스탈린은 크게 당황했다. 미국과의 전쟁에 연루된 데 대해 겁을 먹었다.

흐루쇼프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스탈린은 김일성을 지원하고 도움을 주었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는 겁을 집어먹었다. 미국을 무서워했다. 코를 석자나 늘어뜨렸다. 그는 미국에 대해 문자 그대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고 전한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사장될 위기에 처했던 NSC-68이 되살아났다. 급속한 재무장에 따른 재정 적자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한반도 위기를 계기로 서방진영 전체의 전면적 군사력 증강에 나서야 한다는 게 미국 지도자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7월 19일 트루먼은 의회 연설을 통해 군사비 100억 달러의 증액을 요청했다. 우방국 원조 40억 달러, 핵무기 개발 예산 2억 6000만 달러도 요구했다. 당시 미국 지도부는 전쟁이 1년 내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전쟁 이후 국방비 규모는 기존의 4배로 늘려야 하며 1954년까지 미국 및 동맹국의 재무장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계획은 9월 30일 NSC-68/2에 반영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이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38선 이북으로의 북진을 결정한 것이다. 당초 북한의 남침에 대한 유엔 결의는 '국경의 원상회복'이었다. 즉 북한군이 38선 이북으로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7월부터 미 국무부는 미국 주도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구상했고 결국 9월 11일 북진을 결정한다. 9월 15일 인천 상륙에 성공한 미국은 남한군을 앞세워 10월 1일 38선을 넘었다. 이는 미국의 대소련 전략이 봉쇄(containment)에서 반격(rollback)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북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 미국에 치명적 타격인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주도의 통일은 중국, 소련이 감내하기 어려운 손실이다. 특히 건국한 지 1년밖에 안 된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북한을 넘어 중국까지 침공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10월 15일 마오쩌둥은 대부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전을 결정했다. 중국은 10월 25일 남한군에 대한 첫 공세로 미국에 경고를 보냈으나 맥아더는 이를 무시하고 북진을 계속했다. 결국 11월 28일 후방에 은신해 있던 중국군이 대대적 공세를 펼치면서 유엔군을 38선 이남으로 내몰았다. 

전쟁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중국과의 직접 군사 대결로 확대된 것이다. 특히 당시까지 패배를 몰랐던 미군이, 삼류 농민군으로 깔봤던 중국군에 밀려 치욕적 후퇴를 해야 했다. 봉쇄에서 반격으로의 정책 전환이 파탄 난 것이다.

당황한 트루먼 대통령은 11월 30일 "우리가 가진 모든 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며 원자탄을 사용할 뜻을 밝혔다. 바로 다음 날인 12월 1일 미국을 급거 방문한 영국의 애틀리 총리는 이를 극력 만류했다.  

서유럽 국가들의 최우선 관심 사항은 자신들의 방위였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원자탄을 사용할 경우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할 것을 우려했다. 재래식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소련이 침공할 경우 서유럽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에게 한국전쟁은 미국 군사력의 낭비였고 유럽을 지켜야 했다. 영국은 또한 미국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사전 협의를 요구했다. 결국 핵 사용은 일단 유예됐다.  

트루먼 대통령은 12월 14일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국방예산의 대대적 증액을 요청했다. 미국 및 동맹국의 재무장 완성 시기를 기존의 1954년에서 1952년 7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미국의 모든 경제력을 군사물자 생산에 쏟아 붓고 미군 병력을 확충하는 한편 동맹국에 대한 군사원조도 대폭 증액하기로 했다.  

이러한 계획이 NSC-68/4로 작성됐고 이는 미국 재무장의 기본 계획이 됐다. 이날 열린 NSC 회의에서 애치슨 국무 장관은 전면적 재무장의 시급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부가 원하는 규모의 병력을 모두 확보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유럽 우방국들이 원하는 군사 원조를 모두 해준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병사들을 무장시킬 무기들을 모두 생산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총동원 체제를 갖춘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12월 15일 트루먼 대통령은 전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우리의 가정, 우리의 나라, 우리가 가치 있다고 믿는 모든 것들이 중대한 위협에 빠져 있다. 이 위험은 소련 지배자들에 의해 제기된 것"이라며 소련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5개월 전 북한만 비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는 이어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났지만 실제로는 "유럽과 세계 다른 지역들도 역시 중대한 위험에 직면했다"면서 이러한 "현존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병력을 기존 250만에서 350만으로 늘려야 하며, 무기 생산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유럽 동맹국들과 미국의 군대를 통합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트루먼(오른쪽) 대통령과 영국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왼쪽)가 1950년 12월 4일 백악관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 뒤쪽에 애치슨 국무장관과 마셜 국방장관이 서 있다. ⓒ미국국립문서보관소


1951년 1월 8일 연두교서를 통해서는 "남한 침략은 세계를 단계적으로 접수하려는 소련 공산 독재의 일환"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서유럽이 소련 침공에 무너지면 소련의 석탄 생산량은 2배, 철강 생산량은 3배로 늘어날 것이며 미국이 유럽을 외면하면 소련은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소련에 무너지면 핵심적 원자재의 산지들을 잃게 될 것인데 그중에는 원자탄의 원료인 우라늄도 포함돼 있다. 나아가 소련이 유럽과 아시아의 자유국가들을 집어삼키면 우리로서는 감당조차 할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를 압박해 올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소련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자신의 의지를 세계에 강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서는 제한전쟁을 수행하는 한편 세계 전략 추진을 위해 핵심 산업 지역인 서유럽과 일본을 재무장해야 한다는 게 트루먼 행정부의 전략이었다. 트루먼은 "우리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경제 원조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 그 원조는 이제 그들의 국방 건설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제 한국전쟁의 승리는 트루먼 행정부의 목표가 아니었다. 미국과 동맹국의 전면적 재무장이 목표였다. 한반도에서 처음 시도했던 반격 정책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봉쇄 정책으로 되돌아가는 한편 자유세계의 재무장에 의해 소련에 대한 압도적 힘의 우위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가 됐다. 힘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향후 외교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뜻밖의 암초가 나타났다. 현지 사령관 맥아더가 다른 의견을 낸 것이다. 1951년 1월 중순 맥아더는 중국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만주에 20~30개의 원폭을 투하하며 중국을 해상 봉쇄하고 중국 국민당 군대를 동원하자고 제안했다. 맥아더는 한국전쟁의 승리를 원했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으로의 확전도 불사할 태세였다. 

그러나 이는 트루먼 행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트루먼 행정부는 한국전쟁이라는 국지전의 승리보다는 향후 소련과의 세계적 대결에서 주도권을 보장할 힘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결국 4월 11일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를 해임한다. 전쟁 도중에 최고 사령관을 해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국전쟁의 승리냐, 자유진영의 재무장이냐 하는 문제는 전쟁 중 지휘관을 해임해야 할 정도로 미국 사회의 첨예한 논쟁점이었다. 

미국의 일반 대중들에게 트루먼 행정부의 처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전쟁이 교착 상태인데 현지 지휘관을 해임하다니. 게다가 한반도가 아닌 유럽에 미군 병력을 파견하는 등 미국과 서유럽 군사동맹(나토) 구축에 열을 올리다니. (트루먼 대통령은 50년 12월 20일 당시 콜럼비아대 총장이던 아이젠하워를 나토 최고사령관에 임명했고 아이젠하워는 다음 해 1월 5일 유럽으로 떠났다)  

공화당 의회는 분노했고 대중들은 실망했다. 공화당은 중국 공산당과의 전면전을 통해서라도 중국을 되찾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맥아더는 개선장군처럼 미국에 돌아왔고 의회에서는 맥아더 해임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트루먼은 진짜 이유를 밝힐 수 없었다. NSC-68이 극비 문서였기 때문이다(NSC-68이 기밀 해제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애치슨 국무, 마셜 국방 장관과 브래들리 합참 의장 등 고위 관리들은 청문회에서 '중국으로의 확전은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전면전을 치를 군사적 준비가 안 돼 있다. 따라서 조속히 전력을 증강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유럽의 군사력 증강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로 의회와 대중을 설득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세계 패권은 비로소 완성됐다. 그것은 대대적 군사비 투입에 의한 전면적 재무장에 의해 가능해졌다. 1950년 회계연도의 미 국방 예산은 130억 달러였다. 한국전쟁 기간인 1951~53년 회계연도의 국방 예산은 총 1556억 달러였다. 4배 늘어난 것이다.  

수소탄이 개발됐고 원자탄도 대폭 늘어났다. 미국의 원자탄은 1950년 299개에서 1955년 2422개로 늘어났다. 소련은 5개에서 200개로 늘었다. 1950년 6월에서 1953년 1월에 이르는 2년 반 동안 미국의 군수물자 생산은 7배로 늘어났다. 3개월 마다 80억 달러 상당의 군수물자가 생산됐다. 1950년 6월 21개 편대였던 전략폭격기는 1952년 6월 37개 편대로 증강됐다. 해외 100여 곳에 미군 폭격기의 발진기지가 건설됐고 최초의 제트 폭격기 B-47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동맹국에 대한 지원은 경제원조에서 군사원조로 바뀌었으며 액수는 2배로 늘었다. 경제원조에 대해서는 퍼주기라며 반발했던 의회와 국민들도 군사원조에는 찍소리 없이 수긍했다.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부적이 신통력을 발휘한 것이다.

애치슨은 1951년 1월 10일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소련이 없다 해도, 공산주의가 없다 해도 전쟁으로 망가진 자유세계의 일부를 유지, 강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업"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즉 미국의 군비 증강은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자유세계의 결속과 경제 부흥을 위한 편법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소련에 대한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를 달성했다. 나아가 소련의 핵 보유와 중국 공산화로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또한 서유럽과 일본을 미국 세력권에 묶어놓은 것과 함께 이들 국가의 경제를 부흥시켰다. 미국의 막대한 군사원조가 경제 재건의 마중물이었다.  

1949년부터 침체에 빠졌던 미국 경제도(1948년 하반기 192였던 제조업 생산지수는 1949년 4월 179로 하락했고 실업자 수도 22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전쟁 이후 군사 수요에 힘입어 되살아났다. 미국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총과 버터', 즉 군비 증강과 경제 부흥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미국은 군사국가, 전쟁경제로 변모했다. 사실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한 것은 뉴딜 정책 덕택이 아니었다. 2차 대전에 따른 막대한 전쟁 수요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2차 대전에 2950억 달러(현재 가치 약 3조 9000억 달러)의 전쟁 비용을 지출했으며 이중 17%인 501억 달러(현재 가치 6670억 달러)는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 등 동맹국에 대한 식량, 석유, 무기 대여에 사용됐다. 렌드리스(Lend-Lease, 무기대여법)가 그것이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전쟁 수요가 미국을 대공황의 늪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본의 경제 부흥에, 베트남전쟁이 한국의 경제 재건에 기여한 바를 상기해 보라. 세계의 전쟁 물자를 거의 혼자 만들어낸 미국이 2차 대전의 전쟁 수요로 얻은 혜택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해야 할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이 엄청난 군사 수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했을 때 미국 경제는 과연 순항할 수 있었을까. 1945년 1140만이었던 미군 병력이 1947년에는 160만으로, 1945년 890억 달러였던 국방 예산이 1947년에는 190억 달러로 대폭 축소됐다. 이는 새로운 일자리 1000만개를 창출해야 하는 반면 (군사) 수요는 700억 달러 줄었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경제는 침체할 수밖에 없게 된다. 

1950년 초 NSC-68을 구상했던 미국의 정책당국자들도 당연히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대규모 군사 수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군사적 케인스주의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대대적 재무장으로 세계의 주도권과 경제 부흥을 이끌었지만 이는 끊임없는 군비 증강과 전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위험한 길이었다.  

사실 1950년의 재무장은 2차 대전의 전시 상황을 재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1940년부터 1945년 8월까지 6년 가까이 미국의 전쟁 비용은 2950억 달러였다. 1951년에서 53년까지 3년간 국방 예산은 약 1556억 달러였다. 전쟁 기간과 거의 같은 규모의 군사비를 지출한 것이다. 이러한 군사비 지출은 이후에도 지속된다. 즉 1950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실제 전쟁을 하거나 아니며 전쟁 준비에 매진하는 영구 전쟁국가로 변모한 것이다.

 

inkyu@pressian.com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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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풍력, 떠다니는 발전소가 대안이다

육근형 2018. 02. 08
조회수 3390 추천수 1
 
구조물 물에 띄우고 케이블로 바닥 고정
경관 침해와 어업피해 막고 입지 제한 적어
 
Untrakdrover _1280px-Agucadoura_WindFloat_Prototype-1.jpg»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건설된 전면적인 부상형 해상풍력발전소. 포르투갈 아구카두라 해안 5km 지점에 설치됐으며 2MW 용량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2030년이 되면 우리가 쓰는 전기의 20%를 재생에너지가 공급하게 된다. 지난 연말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재생에너지 2030 이행계획’의 목표치이다.1) 계획에서 정부는 2016년 기준으로 7% 수준인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을 2030년까지 현재의 3배인 20%로 늘리겠다고 한다. 설비용량으로는 5배 가까운 수준이다. 현재의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을 달성하는 데 15년이나 걸린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그 3배나 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림> 재생에너지 발전량 확대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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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산업통상자원부, 2017,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안
 
그에 비하면 유럽 국가들의 최근 재생에너지 성장률은 놀라운 수준이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010년 16.7%에서 2016년에는 29.3%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영국은 같은 기간 6.8%에서 24.7%로 네 배 가까이 급증했다. 원전이 많은 프랑스와 일본에서는 비중이 크게 늘진 않았지만, 이미 전체 발전량의 17.3%와 15.9%(2016년 기준)를 차지한다. 적어도 7% 수준인 우리보다 배 이상 높다.
 
<그림> 주요 국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10년 vs.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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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산업통상자원부, 2017,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안
 
2030년 태양광과 풍력이 원전 약 30여 기를 대신 
 
정부는 늘어나는 재생에너지의 대부분을 태양광과 풍력에서 얻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재생에너지의 58%를 폐기물이 공급했다. 열병합발전소에서 폐기물을 태워 전력을 생산하고 난방용수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2030년에는 폐기물의 비중이 6%로 줄어들고, 태양광(57%)과 풍력(28%)이 85%를 차지하게 된다. 설비용량으로 보면 태양광이 36.5GW(기가 와트, 1기가와트는 10억W), 풍력이 17.7GW 수준이다. 최근 원전 한 기가 1.4GW의 용량임을 고려하면, 태양광과 풍력이 약 30여기의 원전을 대신한다고 볼 수 있다. 
 
산에서 길을 잃은 풍력, 바다로, 바다로
 
04783732_P_0.JPG» 백두대간 한가운데인 강원도 평창군 횡계리 대관령삼양목장의 풍력발전기. 육상풍력발전은 산림생태계 파괴 문제를 안고 있다. 대관령/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 정책을 재검토하고 더욱 안전하고 환경에도 해가 덜한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등 의미 있는 사회적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양광이나 풍력 역시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고, 시설 입지 자체를 지역민이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특히 풍력발전은 저주파 소음이나 경관 훼손이 문제가 되었다. 풍력터빈이 바람이 풍부한 산 능선을 따라 건설되면서 백두대간과 같은 핵심 생태축이 훼손된다는 것도 큰 문제다. 풍력발전에 대한 지역의 민원이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응해 온 환경운동연합에서는 이를 두고 “산으로 간 풍력발전이 길을 잃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2) 
 
지난 연말에 발표된 ‘재생에너지 2030 계획’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대부분의 풍력발전을 해상에서 이룩할 전망이다. 해상풍력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약 14GW(2016년 기준)에 달하는데, 불과 5년 전인 2011년에 4GW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거침없는 성장세이다.3) 유럽이 전 세계 해상풍력 발전설비용량의 88%인 12.6GW를 차지한다. 영국이 5.1GW, 독일이 4.1GW, 덴마크 1.3GW, 네덜란드 1.1GW로 4개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처음 발전을 시작한 탐라 해상풍력 30MW(3MW, 10기)가 있고, 미국은 블록 섬(Block island)의 30MW급 (6MW, 5기) 풍력단지가 유일하다. 
 
<그림> 전 세계 해상풍력발전 시설용량 누적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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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GWEC, 2017, Global Wind 2016 Report, p.61.
 
해상풍력발전, 대형터빈 개발, 대단지 확대, 해안에서 먼바다로 이동
 
DanishWindTurbines.jpg»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의 해상풍력발전 단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우리가 해상풍력으로 눈을 돌리기에 앞서 해상풍력 중심지인 유럽에서는 어떤 일이 논의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 내 해상풍력을 보면 크게 세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개별 풍력발전기(터빈)의 용량이 커지고 있다. 풍력터빈은 2000년대 이후에 들어서야 2MW 용량의 터빈이 사용됐다. 2016년에는 평균 4.8MW 수준까지 커졌고, 8MW 용량의 터빈에서 전기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2024년에는 그 용량이 두 배까지 늘어난다는 전망4)도 있다. 
 
<그림> 풍력 터빈기 평균 용량(위)와 크기(아래)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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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위) WindEurope(2017), p.27, (아래) http://www.telegraph.co.uk/business/2017/05/16/worlds-largest-wind-turbines-may-double-size-2024/ (검색일: 2017.1.25.)
 
둘째, 풍력단지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6년에는 단지 평균 크기가 46.3MW였으나, 2016년에 건설된 해상풍력단지는 379.5MW까지 늘었다. 혼시 원 계획(Hornsea One Project)처럼 개별단지의 총 용량이 1.2GW에 달하는 것도 등장한다. 현재 계획된 것까지 포함하면 풍력단지의 규모는 평균 1GW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풍력터빈이 갈수록 더 깊고, 먼바다에 설치되고 있다. 2000년대만 해도 풍력터빈은 수심 20m 이내, 해안에서 20㎞ 이내에 설치되었다. 2010년 이후 수심 20m, 해안에서 20㎞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되기 시작했는데, 2015년 이후에는 수심도 깊어졌지만 해안에서 약 40㎞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되었다.5)
 
<그림> 해상풍력터빈의 설치 수심과 해안에서의 거리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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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 Ventus supplied by Adwen in the North Sea-1.jpg» 북해에 설치된 대규모 풍력단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해상풍력에 대한 여론의 지지, 그러나 경관 침해에 대한 우려 갈수록 커져
 
최근 해상풍력 단지가 더 깊고, 더 먼 바다로 이동하는 것은 왜 그럴까? 연안에서 더 가깝고 얕은 수심에 설치하면 건설비용이 줄어드는 데도 말이다. 유럽에서는 경관 침해가 풍력단지의 입지 선정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유럽 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해상풍력단지인 뉘스테드(Nysted)와 혼스레브(Horns Rev.) 풍력단지에서 풍력터빈이 경관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지역민의 태도를 비교한 연구를 보면6), 기본적으로 해상풍력발전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이 응답자의 80%에 달한다. 그런데 이와 함께 해상풍력단지의 경관 침해 문제를 줄이기 위해 외해로 풍력단지를 옮겨야 한다는 의견도 응답자의 50% 이상이다. 풍력단지를 외해로 이동하는 데에 대한 지불의사액을 물어본 결과, 우리 돈으로 12만원에서 22만원까지 지불의사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7) 해상풍력은 필요하지만 해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라는 요구다. 
 
풍력발전에 기술력을 갖춘 미국의 경우 의외로 해상풍력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유럽처럼 국가가 풍력에 보조금을 제공하지도 않을뿐더러, 해운이나 어업과의 이해관계 충돌도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서도 경관 침해에 대한 우려가 크다. 2011년 뉴욕주 18㎞ 떨어진 앞바다에 지정한 풍력에너지구역에서의 사업도 여의치가 않게 되면서, 작년에는 다시 30㎞ 이상 떨어진 먼바다에 풍력단지를 설치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8) 9)
 
해상풍력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유럽이나 기술력이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보면 풍력발전단지는 어업이나 경관 침해와 같은 이해관계자와의 협의 문제로 난항을 겪거나 적어도 그 대안으로 점점 더 먼 바다로 이동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해안에서 불과 1㎞ 내외에 설치되는 국내 해상풍력단지
 
05853479_P_0.JPG» 탐라 해상풍력 단지의 모습. 해안에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허호준 기자
 
반면 국내에서 설치된 해상풍력발전은 해외 사례에 비춰볼 때 초기 단계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유일한 해상풍력인 탐라 해상풍력단지는 해안에서 불과 1㎞ 이내에 위치하고, 가까운 곳은 해안에서 500m 거리에 있다. 이 정도면 경관 침해는 사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수준이다. 3MW 용량의 터빈이 날개 높이까지 합하면 약 100m 정도이니 해안에서 보는 풍력기의 거리와 높이의 비는 약 5:1 정도다. 이는 55인치 티브이(122㎝ × 68㎝)를 3.4m 떨어져 보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더욱이 풍력단지의 폭이 1㎞가 넘으니 가로세로 비율은 티브이보다 넓다.
 
탐라 해상풍력발전 단지의 인근 주민들이 경관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는지는 궁금한 사항이다. 처음에는 바다 위 풍력단지가 관광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고, 실제 환경영향평가서에도 풍력기가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최근 인근의 다른 곳에 해상풍력단지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경관에 대한 우려는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다. 탐라 풍력단지에서 직선거리로 20㎞ 남쪽에 계획된 대정 해상풍력단지는 경관 침해의 우려와 지역주민의 반발 등으로 도의회 심의가 두 차례나 보류되었다. 심의 보류의 사유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후에도 지구 지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부유식 해상풍력발전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라
 
Lars Christopher_1280px-Hywind-1.jpg» 하이윈드 해상 풍력발전단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제주도의 탐라나 대정 풍력단지 모두 해안에서 2㎞만 벗어나도 수심이 40m 이상 급격히 깊어진다. 화산섬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수심이 낮은 서남해안이라 하더라도 풍력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암반까지 파이프를 박아 넣어야 한다. 수면에서 높이 100m 이상 되는 큰 구조물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기반 시설 작업에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는 기둥 설치 방식보다 저렴한 부유식 풍력발전기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해저 수십 미터에 기둥을 박는 대규모 공사가 아니라 해저에 고정 케이블만 걸어 두는 부유식 풍력발전은 이미 작년 스코틀랜드 해상에 설치되었다.10)
 
부유식 풍력발전기는 수심이 깊은 곳에도 설치할 수 있다. 아직은 해저에 고정하는 케이블이 필요하지만 기술 개발에 따라 완전 부유식 역시 개발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처럼 연안해역에서 어업이 활발하고, 바다로 몇 킬로미터만 나가면 수심이 수십 미터 이상 깊어지는 조건에서는 기둥을 박고 어선의 출입을 통제하는 풍력발전 방식이 쉽지 않다. 특히 경관 침해 문제 역시 유럽이나 미국처럼 갈수록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좀 더 먼 바다에서 풍부한 바람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부유식 풍력발전기의 도입이 입지 확보의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 
 
744px-Floating_loose_mooring_catenary_plain.svg.png» 부유식 해상 풍력발전기 개념도. 발전기 몸체는 물에 떠있고 해저 케이블로 고정돼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해상풍력발전 확대를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협의 절차 확보 필수
 
정부의 계획처럼 해상에서 풍력발전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문제와 의사결정과정에서 드러난 문제 모두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풍력터빈의 대부분을 외국 회사에서 수입하고 있고, 대안이 될 수 있는 부유식 해상풍력에 대한 기술도 일천하다. 외국 기술로 덩치만 키워봤자 경제성은 물론 해외 진출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해상풍력에서 기술 개발의 필요성과 방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바다를 이용하는 여러 이해관계자와의 협의 과정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정부의 2030 계획에서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서남해안이나 제주의 풍력단지 개발 과정에서 지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했는지 의심스러운 정황이 나오고 있다. 다양한 대안을 실질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을 정하면 정말 그대로 실현될 수 있는 합리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이해관계자들이 제시하는 문제 역시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보고, 영향 여부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미국만 해도 뉴욕주의 해상풍력계획을 수립하기에 앞서 20건의 분야별 연구를 진행했다.11)
 
정부의 재생에너지 2030 계획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기초를 다지는 일이다. 과감하고 도발적인 목표 이상으로 꾸준하고 치밀한 이행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하던 정부와는 다르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육근형/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

1) 산업통상자원부,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안, 2017.12.20

2) “풍력발전은 왜 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하나” http://kfem.or.kr/?p=150771 (검색일: 2018.1.15.)

3) GWEC, 2017, Global Wind 2016 Report, p.61.

4) http://www.telegraph.co.uk/business/2017/05/16/worlds-largest-wind-turbines-may-double-size-2024/

5) http://windmonitor.iwes.fraunhofer.de/windmonitor_en/4_Offshore/2_technik/2_Kuestenentfernung_und_Wassertiefe/

6) Landenburg J., 2009, Visual impact assessment of offshore wind farms and prior experience, Applied Energy 86, p.380-387. 

7) Danish Energy Authority, 2006, Offshore Wind Farms and the Environment–Danish Experience from Horns Rev and Nysted, p. 39.

8) https://www.workboat.com/news/offshore/feds-outline-new-york-offshore-wind-energy-zone/

9) https://www.nyserda.ny.gov/All-Programs/Programs/Offshore-Wind/New-York-Offshore-Wind-Master-Plan/Area-for-Consideration

10) 노르웨이 회사인 스타토일(Statoil)사가 주도하는 ‘하이윈드(Hywind)’ 프로젝트 

11) https://www.nyserda.ny.gov/All-Programs/Programs/Offshore-Wind/New-York-Offshore-Wind-Master-Plan/Studies-and-Surve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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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에도 공사장 찾아가 나 좀 써달라는 아버지

50년 막노동은 왜 '경력'이 될 수 없을까

18.02.18 11:41l최종 업데이트 18.02.18 11:4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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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평생 막일을 하며 살았다.

그것은 직업도 아니었고, 경력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돈도 되지 못했다. 그저 노동이었다.
회사에서는 10년 20년 시간이 지나면 호봉이 오르고 경력이 쌓이고 직급이 오르지만, 50년을 넘게 공사장에서 일한 아버지는 오를 직급도 호봉도 없었다. 50년 전도 지금도 그저 일당을 받고 막일을 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아버지는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떴고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쓰러져 잠들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8시에 잠이 들었다. 일요일, 공휴일에 쉬는 것이 아니라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려 공사를 할 수 없는 날에 '어쩔 수 없이' 쉬었다. 아버지에게 휴일은 하늘만이 점쳐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그래도 공사장에 나가 오늘은 공사가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집으로 왔다. 그러니까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새벽 4시에 공사장을 향했다.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탕을 치고 집에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오는 날과 똑같이 지쳐있었다. 자신이 하루 노동을 하지 못해 벌 수 없었던 일당 8만 원의 무게는,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지칠 무게와 맞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했고 온몸을 써서 일 했으며 당연히 일찍 지쳤다. 노동, 밥, 잠으로 이어지는 그 단순했던 반복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됐다. 그 순환 속에서 자식 세 명이 자라났고 아내인 한 여자가 늙었다. 반복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아버지는 이제 노동 할 곳이 없다   
 그런데 이 사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노동조차 주지 않는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  그런데 이 사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노동조차 주지 않는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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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노동조차 주지 않는다. 내 아버지는 환갑을 지나 이제 일흔이다. 이제 남은 건 더 이상 자신을 부르지 않는 공사장과 몸에 밴 부지런한 습관들. 

아버지는 이제 노동을 할 곳이 없다. 하루 종일 할 일이 없다. 평생을 노동만 하며 살아온 아버지에게는 노동 이외의 것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 습관들은 일이 없는 지금도 새벽 4시에 눈을 뜨게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야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한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조차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루 종일 집안 대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며, 동네를 돌아다닌다. 아버지의 몸은 가만히 있으면 쉬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평생 노동을 습관처럼 한 탓이다. 

밥은 아주 빨리 씹지도 않고 단시간에 삼켜야 하며 몸은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무거운 것들을 등에 지어야 하며, 팔과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그곳이 공사판이 아닌 집안일지라도. 움직이지 않는 찰나의 순간들을 견디기 어렵다. 

공사장에서 이고 지었던 벽돌과 장비 대신 집안의 장롱과 냉장고를 등에 지고 옮겨내 쌓여있는 먼지들을 치운다. 넓지도 않은 18평 집안을 활보하며 그렇게 청소를 하고 가구들을 옮긴다. 

평생 공사판으로 출근했던 아버지는 이제 불러주는 곳이 없어 집을 공사판으로 만들어 노동을 한다. 참으로 지독한 습관적인 노동들. 그 50년의 노동이 만들어 낸 참혹한 습관들을 일흔인 아버지의 몸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끊임없이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그런데도 하루가 길다. 갈 곳이 없고, 할 노동이 없다.

며칠 전 아버지는 술에 취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하도 답답해서 집 앞에 단독주택 짓는데 가서 말했다. 나 좀 써달라고. 대뜸 몇 살이냐 물어보더라. 일흔이요 하니까 안 쓴다고 일흔은 안 쓴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하드라. 에라이! 하고 집에 왔다. 내가 그랬다."

'나 좀 써달라고' 그 한마디가 맴돌아
 
 아버지는 50년 경력자인데 막일의 50년 경력은 일흔이라는 나이만 남겼다(자료사진).
▲  아버지는 50년 경력자인데 막일의 50년 경력은 일흔이라는 나이만 남겼다(자료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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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 좀 써달라고' 그 한마디가 자꾸만 맴돌아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50년 경력자인데 막일의 50년 경력은 일흔이라는 나이만 남겼다.

나는 아버지의 나이가 일흔이라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다. 평생을 노동했고 노동밖에 할 수 없는 아버지가 더 이상 그 노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비통할 뿐이다. 

못난 딸은 늙은 아버지가 더 이상은 그 노동을 하지 않고 쉬었으면 싶다가도, 이런 순간들을 마주 할 때면 무슨 노동이라도 하길 바라는 구차한 마음이 든다. 그 노동의 목적과 결과물인 딸은 이제 아버지에게 멋진 옷도 사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술도 사드릴 수 있지만 노동을 하게 해 드릴 순 없는 노릇이다.

앙상한 아비의 팔과 다리가,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이, 냄새 나는 몸뚱이와 거친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귀가 그저 다 슬플 뿐이다. 마치 그것들이 아버지의 평생 노동의 결과인 것 같아서.

평생 반복했던 아버지의 노동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닐 진데, 그래서 일흔이 된 지금 그 누가, 무엇이, 나의 아버지의 평생 노동을 보상해 줄까?

아버지의 노동으로 나는 맛있는 걸 먹었고, 예쁜 옷을 입었고, 공부를 했고, 여행도 갔고, 술도 마셨고, 부끄럽게도 아버지의 그 노동을 원망하기도 했다. 참 못난 딸이다.

아버지는 세 명의 자식이 갓난 아이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한 여자가 숙녀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노동을 했는데 그래서 아버지는, 그래서 나의 아버지는 무얼 보상 받았을까. 

아버지에게 노동은 평생을 지독히도 따라다녔던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아빠가 많이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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