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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홍수피해지역 주민들의 감격의 눈물을 보며

북 홍수피해지역 주민들의 감격의 눈물을 보며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11/16 [22: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6년 11월 10일까지 기본적으로 함북도 북부지구 수해피해지역 살림집 건설이 끝났다. 시작한지 딱 2개월만이다.     ©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홍수피해지역 새 살림집 건설을 끝내고 기뻐하는 인민군 건설돌격대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수해피해지역 살림집     ©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수해피해지역 살림집     ©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수해피해지역 살림집, 굴뚝이 2개에 유리창도 6개나 되는 것을 보니 한 채에 2가구가 입주하는 것 같다. 그래도 큰 집이다. 생색내기식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누가 와서 봐도 부러워할만한 좋은 집을 지은 것이다. 앞에 텃밭도 일구고 주변에 나무도 심고 도로도 시멘트 포장을 하면 참 살기 좋은 농촌 마을이 될 것 같다.    ©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수해피해지역 살림집     ©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수해피해지역 살림집     ©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수해피해지역 살림집     © 자주시보

 

북한 함경북도 수해지역에 주택복구가 11일 완료되어 당 중앙위원회는 13일 수해복구에 나선 군대와 주민들에게 감사문을 보냈다.

 

14일 통일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4일 "해방후 기상관측이래 처음 보는 폭우로 혹심한 피해를 입었던 함북도 회령시, 무산군, 연사군, 온성군, 경원군, 경흥군의 백수십개 지구에 3,000여 동에 달하는 1만 1,900여 세대의 5층, 3층, 단층살림집들이 50여 일만에 새로 건설되여 사회주의선경거리, 선경마을들이 일떠섰다"고 보도했다.

지난 9월 10일 북한 당 중앙위가 '200일전투'의 목표를 수해복구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이후, 2달 만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함북도 북부지구 수해피해지역 새로 건설한 살림집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 채에 굴뚝이 2개에 유리창도 한쪽 벽면에만 6개나 되는 것을 보니 한 채에 2가구가 입주하는 것 같다. 그래도 꽤 큰 집이다. 그저 빨리 몇 만 채 지었다며 수치 자랑, 생색내기식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누가 와서 봐도 부러워할만한 좋은 집을 지은 것이다. 지금은 집만 있지만 빈 땅도 넉넉히 앞 뒤로 잡아 놓아 앞으로 텃밭도 일구고 유실수도 심고 마을 도로도 시멘트 포장을 하면 참 살기 좋은 농촌 마을이 될 것 같았다.

 

▲ 세련된 디자인에 복슬복슬한 털모자까지 달린 외투를 선물 받아 입어보고 좋아하는 함북도 홍수피해지역 주민들     © 자주시보

 

▲ 선물을 받아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함북도 북부지구 홍수피해 주민들     © 자주시보

 

▲ 홍수 피해주민들에게 보내준 손풍금     ©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홍수피해 주민들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내준 선물을 자세히 보니 큼지막한 과자세트도 들어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이들을 특별히 생각하는 면이 많은 것 같다. 가장 먼저 대대적으로 건설한 건물도 부모없는 아이들 육아원이었고 이번 홍수 피해지역 아이들을 송도원국제양영소로 초대해 마음에 그늘이 지지 않게 특별히 배려했다는 북의 보도만 봐도 그렇다. 설령 지지율을 의식한 정치적인 조치였다고 해도 어린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나 싶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며 바로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친환경 무상급식 등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자주시보

 

14일 유튜브에 올라온 조선중앙텔레비젼 20시 보도에서는 새집들이를 앞두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생활용품과 피해 학교들에 학용품 교구들까지 선물했다고 보도했다.

 

화면에 비친 함북도 피해 주민들은 당에서 보내준 선물보따리를 받아 안고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선물 내용을 보니 담요 등 이불과 복슬복슬한 털모자까지 달린 외투며 여러가지 옷과 옥백미 등 먹거리에다가 아이들의 과자까지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었다.

피해를 당한 학교도 새로 지었는데 그런 학교에는 손풍금 등 교구들과 책상, 걸상, 관물대 등 비품과 교구들도 새로 만들어 보내주었다.

16일 스푸트니크 보도에 따르면 새집들이는 15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주택은 완료되었지만 유실된 제방과 강 하천 정비, 농경지 정비 등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 함북도 북부지구 홍수피해 지역 살림집 건설에 떨쳐나선 북 건설돌격대     © 자주시보

 

▲ 함북도 북부지구 홍수피해지역 살림집 건설을 제 때 끝내기 위해 야간 돌격전을 벌이는 북 건설돌격대     © 자주시보

 

▲ 함북도 홍수피해 주민들에게 보내줄 의복을 생산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북의 여공들     ©자주시보

 

14일 통일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주택 복구가 완료되자 북한 당 중앙위원회는 13일 '함북도 북부피해복구전선에서 전화위복의 기적을 창조한 인민군장병들과 돌격대원들, 전국의 인민들에게' 감사문을 발표했다.

 

감사문은 "당의 전투적 호소따라 전인민적으로 전개된 2개월간의 치열한 격전 끝에 전대미문의 대재앙이 휩쓸었던 조국의 북변천리에 사회주의 새 거리, 새 마을들이 번듯하게 솟아올랐다"며 "주체조선의 새로운 영웅신화"라며 "역사에 일찌기 없었던 복구기적을 창조하는 나날에 우리 국가의 막강한 국력은 백배해지고 우리 혁명의 전진속도는 비상히 빨라졌으며 이것은 공화국의 위기설을 떠들던 적대세력들의 정수리를 내려치는 무서운 철추"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중앙이 가리킨 침로따라 노도쳐 내달리며 역사적인 200일전투를 빛나게 결속하고 당 제7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총진군에서 새로운 비약과 혁신을 창조해나가리라는 것"을 당부했다.

 

인터넷에 소개된 북의 관련 보도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온 바에 따르면  유례없는 대 홍수가 발생하자마자 조선노동당은 주공전선은 함북도 홍수피해지역이라며 200일전투의 주력 건설역량을 긴급하게 함북도 북부지구로 돌려 추위가 닥치기 전에 살림집 건설을 끝낼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였고 북의 모든 경제단위들도 북부지구 피해복구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 공급하는 전투에 전적으로 달라붙었다.

강철, 시멘트 공장에 만부하를 걸었고 여러 방직공장과 이불공장, 옷 공장 등에서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보내 줄 의복생산을 위해 모두가 떨쳐나섰다. 화면에 비친 한 여공의 다리미질을 하는 손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가구공장에서는 새로 지을 학교에 넣어 줄 책걸상 생산에 철야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고 만든는 족족 기차와 트럭에 실어 북부지구로 연속 보냈다.

원산항에서는 청진항으로 시멘트와 철강을 실어나르는 전투에 관계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모두 떨쳐 나섰다. 주민들은 노래도 부르고 북을 치며 격려라도 하였다.

 

▲ 원산 송도원국제야양소에서 버스를 타고 마식령 스키장에 놀러온 함북도 홍수피해지역 학생들 리프트를 타고 대화봉에 올라와 무연히 펼쳐진 산맥 연봉과 동해를 보며 그렇게 좋아했다.고기겹빵(햄버거) 등 간식에 고급식당 요리까지 풀코스 봉사를 받고 그렇게 좋아했다.     ©자주시보

 

▲ 눈이 없어 스키는 타지 못했지만 합북도 홍수피해지역 아이들은 마식령스키장 리프트를 타며 비행기를 탄 것 같다고 좋아했다.     © 자주시보

 

한편 떠내려가는 집과 학교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던 아이들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별지시로 송도원야영소에 불러 신나는 야영생활을 하게 하여 마음에 작은 그늘도 생기지 않게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썼다.

 

이렇게 마련된 새 집과 새 생활용품을 사용하는 피해지역 주민들의 마음은 한 없이 행복하고 든든할 것 같다. 이웃의 소중함, 나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기에 사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사람을 위해 더 좋은 일을 많이 할 생각을 절로 품지 않겠는가 싶다.

 

특히 이런 위기극복 방향을 제시하고 추진한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조선노동당에 대한 믿음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피해를 통해 오히려 북 주민들의 일심단결력은 더욱 강해진 것이다. 이를 두고 북은 전화위복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것을 몰라도 체제와 이념을 떠나 사람이 사람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에 되었다는 점은 우리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남측도 과거 이웃들이 재난을 당하면 수재의연금을 내고 지원활동도 갔었다.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하던 시절엔 사회에 따뜻했던 인정이 살아있었다. 지금보다 경제는 더 뒤떨어졌었지만 오히려 그때는 사람이 소중했고 더 행복했다.

 

남측도 이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도 사람들이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도 소중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발전해갔으면 좋겠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너무 극단적 개인주의가 퍼져가고 있다. 사람을 소중한 존재가 아닌 경쟁 상대로만 여기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개인별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이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 이를 적용하는 공기업에서는 밥도 각자 홀로 먹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언론에서는 관심끌기 위해 극단적인 일들을 다루는 경향이 있지만 이웃은 둘째 치고 부모가 갓난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들을 보면 뭔가 사회의 방향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 갈 방향과 방도를 제시할 안목과 인격을 갖추 정치지도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게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명박 정권 때부터 극단적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새누리당이 9년여 집권하며서 이 사회의 인간성이 정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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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비리 수사하라" 판 뒤엎으려는 대통령의 '꼼수'

 

엘시티 수사로 야당에 '물타기' 의혹... 출석 강제할 수 없는 '참고인 신분'도 장애물

16.11.16 21:08l최종 업데이트 16.11.16 21:3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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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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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3시 21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기자실에 어이없는 웃음이 번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엘시티 비리 사건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는 한 줄 속보 때문이었다. 

기자들은 지난주부터 박 대통령이 언제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 대한 검찰의 대면조사를 받느냐에 집중해왔다. 그런데 하루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 나서서 검찰이 제시한 16~17일 대면조사는 불가하다고 역설했고, 이날도 조사날짜가 나오지 않았다.

검찰의 조사요구에 불응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다른 비리 의혹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주문하고 나서니 실소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 별다른 국정운영 활동도 하지 않고 있는 박 대통령이 유독 이 엘시티 수사에 대해 철저 수사를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 의구심이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갑작스러운 '엘시티 철저 수사' 지시의 이유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엘시티 사건이 대통령과 연관된 비리인 것처럼 의혹을 제기한 것은 근거 없는 정치 공세"라고 설명했다. '검찰의 철저 수사로 의혹을 벗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엘시티 사건을 반격카드로 꺼내 들었다고 본다. 부산 해운대 101층 주상복합건물인 엘시티 공사 시행사의 실질 소유주가 57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에 로비를 벌인 혐의에 대한 부산지방검찰청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루된 정치인 중에는 야권 인사도 있다는 소문도 있다. 박 대통령이 비리 정치인 수사, 특히 야당에 대한 비리 공세로 최순실 게이트를 희석시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내다가 사퇴를 종용당했고,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피의자로 기소됐다가 2심까지 무죄를 받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점쳤다.

조 의원은 페이스북에 "(청와대가) 검찰 수사경과를 보고받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인물이 엮였다는 보고를 받고 물타기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썼다.

또 "내치에까지 관여하는 모양새에 격분한 시민들이 과격폭력시위에 나서면 이를 빌미로 보수세력의 재결집을 꾀하고 더 나아가 비상계엄을 발동하여 판을 엎는 꼼수일 수 있다"며 "그 어느 경우건 대통령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이 같은 움직임은 하루 전 변호인을 통해 '조사는 나중에 받겠다', '서면조사가 합당하지만 대면조사를 받아주겠다',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해달라'는 등 기존의 태도를 확 바꾼 데서 이어진 것이다.

"18일이 마지노선"이라지만 묘수 없어... 왜 '참고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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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최순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태와 관련해 검찰 및 특검 수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검찰 로고 옆으로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비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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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도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박 대통령 말만 믿고 조사날짜를 제시했지만, 변호사를 선임한 박 대통령 측이 '다른 사람 조사 다 끝내고 마지막에 받겠다'고 하자 뾰족한 수를 못 내고 있다. 

16일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는 "어제 변호인 발언으로 봐서는 내일(17일)도 쉬워 보일 것 같지 않다"면서 "저희가 그야말로 마지노선을 넘었다. 그 선까지 넘어 양보하면 금요일(18일)까지 가능하다고 입장을 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형사소송법은 참고인에 대한 구인제도가 없다. 불출석하는 참고인에 조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구속 기간 만료(20일) 전에 기소 예정인 최순실씨의 공소장에는 중요한 대목이 누락될 것으로 보인다. 최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 최씨의 범죄사실에 대한 박 대통령의 관여행위 등은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최씨 공소장에 기재되지 못할 상황이다. 

추후 공소장을 변경할 수도 있지만, 박 대통령의 조사 미루기로 최씨의 공소사실이 부실해지는 결과가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 바꾸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꼼수를 가능하게 한 건 애초에 검찰의 봐주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광철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형사소송법상 참고인은 수사기관의 출석요청에 응할 법적 의무가 없다. 따라서 참고인은 소환에 불응해도 되고, 출석을 자신의 편의에 맞춰 유예할 수도 있다"며 "참고인 박근혜와 그 변호인을 탓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원초적 잘못은 명백한 피의자에 대하여 참고인의 지위를 부여한 검찰에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피의자로 입건하였다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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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쓰레기 주운 '촛불' 노인, 은행 계좌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 죽을 때까지 서로 보살피자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2016.11.17 08:19:48

"누군가와 밥을 먹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강병학(가명.73) 어르신은 외출을 잘 하지 않는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말에 어르신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나가면 다 돈이잖아"라며 집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TV를 볼 때 밥 먹는 장면에 관심이 간다고 한다.

"외로운 노인네들이 주로 혼자 밥 먹어. 그걸 보면 동병상련을 느끼지."

어르신은 은평구에 있는 고시원에서 혼자 산다. 젊은 시절엔 건축 현장 소장으로 일하며 자기 이름으로 된 2층짜리 단독 주택에서 살았다. 

 

"말년에 고시원에서 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보질 않았는데 인생이 어쩌다 이리됐는지…."

 

한숨과 함께 탄식을 길게 뿜는 어르신.  

생활이 어려워진 건 55세에 퇴직하면서다. 아내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쓰러지고 거기에 아들까지 우울증을 얻으면서 병원비 부담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10여 년에 걸친 병치레 끝에 아내가 사망하고, 아들은 그 날로 집을 나가서 지금껏 소식이 없다. 그 사이 어르신은 아내와 아들 병시중으로 집을 팔고 고시원을 전전하게 되었다.

지금 어르신 수입은 40만 원이다. 기초연금 20만 원, 노인 일자리 급여 20만 원. 지출은 고시원 월세 20만 원, 약값 5만 원을 제하면 15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될 수 있으면 외출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다. 
 

▲ 병원비는 가계 파탄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연합뉴스


아내 병시중 들 때가 행복했다 

보건복지부가 낸 '2014 무연고자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2014년 무연고 사망자는 1008명으로 처음으로 1000명을 넘었다. 무연고 사망자는 2011년 682명, 2012년 719명, 2013년 878명 등 매년 증가 추세다. 고독사의 잠재적 위험군인 독거 노인 수는 2015년 137만8000명으로 전체 노인의 20.8%로 추정했다. 노인 5명 중 1명이 홀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독거 노인 수는 2025년에 지금보다 1.6배가 늘어 224만8000명이, 2035년에는 2.5배가 증가해 343만 명이 될 전망이다. 

"난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야. 세상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나를 찾는 사람도 없고."

강병학 어르신은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와 아들 병구완을 할 때가 행복했다고 한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누군가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 

공동체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누군가에 도움을 주고, 어려울 땐 도움을 받는 것이 공동체 형성의 기초이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가장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내가 김치를 담그는데 고춧가루가 부족했다. 부족한 고춧가루를 마트에 가서 돈 주고 산다. 이러한 거래에서는 나도 마트 점원도 다음 번에 상대방에게 무엇을 주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받으리라는 기대가 없다. 돈을 통한 교환은 그 자체로 완결된다. 이렇게 되어서는 공동체가 창조되지 않는다. 

다른 가정을 해보자, 고춧가루를 사러 밖으로 나간다. 나가다가 옆집 할머니를 만난다. "어디 가?"라는 할머니 말에 고춧가루 사러 마트에 간다고 대답한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고춧가루가 많다며 가져가라고 한다. 돈을 드리려고 해도 받질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물질적인 관점에서 볼 때 두 경우 모두 나는 고춧가루를 가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는 다른 어떤 것이 덩달아 생겨났다. 내가 옆집 할머니를 다시 만날 때 반갑게 인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집 안에 짐을 옮겨 달라고 하면 기꺼이 해 드릴 것이다. 고춧가루 하나가 호혜적인 선물이 됨으로써 공동체 형성의 기초가 된 것이다. 공동체란 서로 주고받는 선물 교환의 결과로서 오랫동안 형성되어 왔다. 반대로 공동체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형성의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금전적 교환이 호혜적인 선물 교환을 대체할 때 공동체가 붕괴한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 

노인들 간의 호혜적인 선물 교환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노년유니온은 노인 공동체 형성을 위해 새로운 개념의 자원 봉사 운동인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을 만들었다. 노년 세대가 교육과 봉사 활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 오가는 은행이다. 어떤 조합원이 몸이 아픈 다른 조합원을 위해 1시간 동안 장을 봐왔다면 그는 자신의 계좌에 1시간을 적립하게 된다. 자신이 적립한 시간만큼 다른 조합원으로부터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우쿨렐레를 배우고 싶은 움직임이 일었고, 우쿨렐레를 다룰 줄 아는 조합원이 다른 조합원들을 상대로 우쿨렐레 교육을 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계좌에 시간을 적립했다. 그런데 이 조합원은 남들의 돌봄이 더 필요한 조합원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계좌 이체'했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의 사명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보살핀다'이다. 여기서 서로를 보살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존의 자원 봉사는 봉사하는 사람은 봉사만 하고 받는 사람은 받기만 하는 일방통행식 자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쩔 땐 주는 사람은 우쭐하고 받는 사람은 움츠러드는 현상이 벌어진다. 또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원 봉사가 취업이나, 진학에 '나, 이렇게 봉사 많이 했어요'라는 스펙용 자격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봉사를 통해 누군가 우위를 점하고 움츠러든다면 공동체는 지속하기 어렵다. 서로가 평등해야 한다. 서로가 주고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거동하지 못하는 노인은 A로부터 도시락을 받고, B로부터는 목욕 봉사를 C로부터는 미용 봉사를 받는 복지 서비스 수혜자로 존재했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에서는 서비스를 받기만 했던 거동 불편 노인도 이웃을 위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령 움직이지는 못해도 전화로 독거 노인 안부를 확인할 수는 있다. 독거 노인에게 안부 전화를 해서 저축된 시간을 목욕 봉사를 받는데, 시간을 사용하면 된다. 갑과 을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 행동에는 가치가 있다. 그 노동을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게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의 역할이다.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의 네 가지 가치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은 하나의 복지 프로그램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추구하는 네 가지 가치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첫째는 사회적 자산이다. 

"이 사회의 진정한 재산은 사람이며, 모든 사람은 나누고 줄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나누고 줄 것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자신이 불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산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주 작은 힘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회원 전체를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는 것이다. 

둘째는 새로운 노동의 정의이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가치를 생산해주는 모든 활동은 노동이다."

현대 사회는 돈을 버는 것만을 일이라고 규정한다. 시장 경제는 비시장 경제의 토대 위에 있다. 비시장 경제가 없으면 시장 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 아이를 기르고,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안전하고 활력 있게 만들고, 약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며, 불의를 고쳐나가며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데 드는 노력이 포함되도록 노동을 새로이 정의해야 한다. 

셋째는 호혜성이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것은 나를 돕는 것이며, 도움을 받는 것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주기만 하고 다른 한쪽은 받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없다. 내가 봉사를 제공할 뿐만이 아니라 봉사를 받음으로써 모든 회원이 평등한 위치에 서게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봉사 하면 나는 봉사 시간만큼을 저축한다. 그리고 저축한 시간은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다른 회원에게 봉사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 봉사 제공자에게 '봉사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봉사 시간'을 기부하여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봉사를 주고받음으로써 서로 서로 돕고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끌어낼 수 있는 '서로 돕는 지역의 그물망'을 만들 수 있다. 

넷째는 사회적 자본이다. '나'와 '너'를 '우리'로 연결하여 서로 돕고 나누는 지역 공동체를 형성한다. 시장 경제에서는 서비스나 물품을 주고받을 때 돈을 사용한다. 그러나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랑과 정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주고받는 봉사 시간'을 통하여 새로운 공동체 경제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서비스를 주고받는 시간은 모여서 공동체의 자본이 된다. 이 사회적 자본은 '나'와 '너'를 '우리'로 연결하여 사랑과 정이 넘치는 건전한 지역 사회를 만들어간다. 
 

▲ 지난 12일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강벽학(가명) 어르신은 4시간을 참여하면서 쓰레기도 주웠다. 어르신은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 계좌에 4시간을 저축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상에 쓸모없는 노동, 사람은 없다 

강병학 어르신은 11월 12일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 '박근혜 대통령 하야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가했다. 4시간을 참여하면서 쓰레기도 주웠다. 어르신의 행동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숭고한 노동, 거리를 깨끗하게 한 노동으로 인정받아 노인 서로 돌봄 연대 은행의 계좌에 4시간을 저축했다. 

"이제야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아." 

자신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했는데, 세상을 위해, 이웃을 위해 아주 조그만 행동도 이렇게 귀하게 여겨지니 좋다고 하시며 농을 건넨다. 

"계좌 하나 더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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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비망록’이 폭로한 청와대 공작정치

‘김영한 비망록’이 폭로한 청와대 공작정치

등록 :2016-11-16 12:02수정 :2016-11-16 12:05
 

 

[뉴스AS] 무릎을 치며 보는 ‘정윤회 파문’ 그때 그 사건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관련 보도가 쏟아지면서 특종이 특종을 묻어버리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티브이>(TV조선)이 입수해 지난 10일부터 공개 중인 <김영한 비망록>은, 청와대가 권력을 남용해 2014년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억누르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물증’입니다. 2년 전 ‘한 눈에 보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를 선보였던 <한겨레>는 ‘김영한 비망록’ 국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그 때 그 사건을 다뤘던 보도들과 최근 주요 보도의 갈피를 AS해 드립니다. ‘최순실’이라는 퍼즐조각이 맞춰진 지금, 과거 보도들이 쏙쏙 이해되는 ‘쾌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정윤회씨가 2015년 1월19일 낮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일본 산케이신문의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의혹 보도와 관련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정윤회씨가 2015년 1월19일 낮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일본 산케이신문의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의혹 보도와 관련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기춘이야말로 태어나지 않아야 될 사람이 태어났다.” 지난 11일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비대위 회의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 즉 ‘귀태’라는 표현은 2013년 7월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라고 비난하면서 정치권에 등장했습니다. (▶관련기사보기 : 귀태 발언에 멈춘 국회) 주로 박정희 전 대통령 혹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할 때 쓰였던 말인데, 모욕적이라며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를 멈추기도 했죠. 이런 강도높은 비난을 박 의원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퍼부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청와대 공작정치 폭로한 ‘김영한 비망록’

 

“김기춘이라는 작자는 사법부까지도 이용해 정적을 제거하려 했던 공작 정치의 부두목” “박근혜 정부의 사법부, 변협, 검찰, 정치인 죽이기” “이번 (김영한 비망록) 사건은 박근혜 청와대 헌정유린 정치 공작사건”…. 박지원 의원이 이렇게 맹공을 퍼부은 이유는 바로 10일 저녁 TV조선 보도로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때문입니다.

 

☞김영한 비망록 관련보도보기 :

 

▶김기춘 “5·16, 유신헌법은 불가피”

 

▶김기춘 “예술계 좌파 책동 투쟁적 대응해야”

 

▶‘박지원을 잡아라’…靑, 시민단체 입맛대로 이용

 

▶靑, 법조계도 길들이려 했나

 

▶정윤회 수사 축소, 청와대-검찰 협의 정황 나왔다

 

김영한 전 수석은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했습니다. 수석직을 내려놓은지 반 년 여 뒤인 2015년 8월21일, 간암이 원인이 돼 갑작스레 사망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받은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원래 있던 간염이 간암으로 발병했다”고 주변에서 수군거렸습니다. 청와대를 나온 뒤 그는 거의 매일 밤 괴로워하며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유승민 “김영한 사표 던진 날 밤 함께 통음”

 

▶유승민 “내 친구 김영한 사망, 항명 표현에 속상해했다”

 

 

■ 김영한은 누구? “공안검사 출신이 항명 스캔들”

 

뭐가 그렇게 괴로웠을까요? 김 전 수석은 사상 초유의 ‘청와대 항명 파동’ 주인공이었습니다. 김 전 수석의 상사가 바로 박근혜 정부에서 ‘왕실장’이라고 불린 김기춘 비서실장(2013년 8월~ 2015년 2월)입니다. 청와대 비서실 산하 9개 수석실 중에서도 민정수석실은 막중한 자리로 꼽힙니다. (▶관련기사 보기 : 하루새 뒤집어진 민정비서관…실세들 파워게임? ) 주요 국정을 조정하고, 민심 동향을 파악하며, 인사에서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일, 검찰 관련 업무나 사정 업무를 총괄하기 때문입니다. 특별감찰관실이 생기기 전엔 민감한 대통령 친인척 비리 문제도 민정수석실이 챙겼습니다. 그래서 이전 정권에서도 민정수석은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이 맡았습니다.

 

그런데 김 전 수석은 2015년 1월9일, 여야가 합의하고 직속상관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지시한 국회 운영위원회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이 출석해 “출석하도록 지시했는데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수석은 운영위에 출석할 바에는 차라리 사표를 내겠다고 버텼습니다.

 

▶청와대 사상 초유 ‘항명 사퇴’

 

국회 운영위에서 김 전 수석이 질문받을 주제가 바로 2014년 말 ‘비선 실세(정윤회)의 국정 개입 의혹’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비선 실세의 존재를 부정하고,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프레임을 짜 문건을 유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위기를 넘긴 바 있습니다. 이 흐름을 주도한 것이 바로 민정수석실 산하의 민정비서관실이었습니다.

 

 

■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수습하던 김영한이 왜?

 

지금 다시 살펴보는 ‘정윤회 게이트’는 새삼 다르게 읽힙니다. 파문은 2014년 11월28일치 <세계일보>가 ‘정윤회씨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질 등을 꾀하는 등 국정에 개입하는 실세’라는 내용을 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입수했다고 보도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자세한 정윤회 파문을 보려면 : 한 눈에 보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 1탄

 

최순실씨의 존재가 확실히 드러난 지금, 과거 보도됐던 정윤회 파문과 그 대응을 돌아보면 비선 라인 내부의 치열한 갈등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정윤회씨의 애매모호하고 모순되는 대응이 특히 그렇습니다.

 

정씨는 문건 파문 이후 인터뷰에서 “나는 사실상 ‘잘린 것’이다” “대통령으로 모시고 싶던 꿈이 지금은 멀어졌다”고 했습니다. 정씨는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이 작성(2014년 1월6일)된 지 두 달이 지난 때이자, <시사저널>이 ‘정윤회가 박지만 미행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보도(2014년 3월22일)한 직후인 2014년 3월27일 최순실씨(2014년 2월 최서원으로 개명)와의 이혼 조정에 들어갑니다. (▶관련 보도 보기 : 정윤회 “언론으로부터 아내 지키려 이혼”) 그해 5월 이혼이 확정됐고 7월 언론에 이혼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7년간 야인으로 살며 “아내가 강남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한다”고 했는데, 이미 이혼한 전 아내의 재산을 거론하며 생계수단이라고 한 것은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입니다. 또 인터뷰에는 7년간 무직 상태로, 문고리 3인방이 “연락이 없어 섭섭하다”고 했지만 이재만 비서관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정황이 곧바로 드러났습니다.

 

정씨와 친분이 깊고 세월호 사고가 났던 2014년 4월16일 함께 있었던 역술인 이씨는 2014년 10월3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정씨는 조용한 성격으로 명석하고 치밀하다. 십수년간 박 대통령에 대한 충정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보좌하던 시절엔 박 대통령이 실수한 적이 없었다. 그를 비선 의혹을 받게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대통령 비서실장을 시키면 지금보다 훨씬 잘 할 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혼 뒤인 2014년 8월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의 ‘사라진 7시간’ 사건에 연루되고, 2014년 11월 말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를 겪으면서 언론 등을 통해 “나는 야인”이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충정은 변치 않았다”고 호소했던 정씨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중앙시평] “나는 떳떳하니 모든 걸 조사하라”

 

 

■ “최순실이 진짜 실세” 하지만 그땐 증거가 없었다

 

당시에도 최순실씨가 진짜 실세라고 지목하는 국내 언론 보도들이 나왔으나, 최씨가 공적인 직책을 맡은 적이 없고 이렇다 할 물증도 없어 수그러들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이 비선실세가 없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나선 까닭도 있습니다.

 

 

최근 불거진 ‘비선 논란’의 핵심인 정윤회(59)씨와 함께 정씨의 전처 최순실(58·최서원으로 개명)씨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인 1990년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 ‘박근혜 이사장의 측근’으로 정윤회씨보다 먼저 등장한다. (…) 이를 종합하면,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과 연결된 것도 최순실씨의 남편이라는 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2014년 12월4일치, “정윤회 전처 최순실, 10·26 이후 박 대통령 ‘말벗’”)

 

 

 

 

정윤회 관계보다 더 주목해봐야 하는 것이 박 대통령과 부인 최씨의 관계라는 것이다. 딸 승마와 관련, 박 대통령이 직접 문화체육관광부 실무자를 문책한 것에 전 부인이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정씨는 “내가 관여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최씨가 관련되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대통령의 패션에 최씨가 관여되어 있다”는 ‘풍문’이 관련 업계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것은 확인된다. 한 인사의 전언.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최순실을 아는 주변에서 ‘어떻게 자신이 입고 다녔던 것과 똑같이 옷을 만들어 주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단적으로 ‘저도의 추억’ 사진 때 입고 나온 옷과 목 칼라까지 똑같은 옷을 (최순실이) 전에 입고 다녔다는 것이다. 정윤회씨와 그런 남녀 사이라면 왜 그 전 부인과 박 대통령이 옷을 똑같이 입느냐, ‘박 대통령이 (최씨의) 아바타냐’라는 말이 나왔다.”

 

(경향신문, 2014년 12월6일, 정윤회·최순실 실세설…아니 땐 굴뚝의 연기?)

 

 

▶박 대통령 “정윤회·박지만 갈등설 말 안 돼…실세는 靑진돗개”

 

▶정윤회 문건 십상시 모임, 최순실이 실제 주최?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월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극장에서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하나로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기에 앞서 주연배우 황정민(맨 오른쪽)씨가 휴대전화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무렵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의혹 보도와 관련해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검찰에 소환(2015년 1월19일)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월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극장에서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하나로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기에 앞서 주연배우 황정민(맨 오른쪽)씨가 휴대전화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무렵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의혹 보도와 관련해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검찰에 소환(2015년 1월19일)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청와대,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유출 혐의 지목 경찰은 자살

 

정윤회 파문이 보도된 지 사흘 뒤인 12월1일, 박 대통령은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합니다. 이후 프레임은 비선실세가 정말 있는지, 그게 누구인지가 아니라 청와대의 문서가 바깥으로 새어나간 것에 대한 문제로 바뀝니다.

 

▶박 대통령 “문건은 루머, 유출은 국기문란”…수사지침 논란

 

▶박 대통령 문건 유출 두 잣대, 1급기밀 남북대화록은 “알권리” ‘찌라시’라는 문건은 “국기문란”

 

검찰은 청와대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는지 조사했는데, 당시 문제의 보고서를 작성한 박관천 경정을 비롯, 공직기강비서관실에 있던 한일 경위와 최경락 경위가 유출 혐의를 받고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최 경위는 보고서를 언론에 넘겼다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왔습니다만, 한일 경위가 ‘최 경위에게 보고서를 줬다’고 ‘자백’하면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최종 유출자로 지목된 최 경위는 2014년 12월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유서에서 “한일에게. 나는 너를 이해한다. 민정비서관실에서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썼습니다. 한 경위는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11월11일치)에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연락이 와 ‘문건을 최경락 경위에게 넘겼다고 진술하면 불기소도 가능하다’며 협조를 종용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당시 민정비서관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입니다. (▶“정윤회 문건 수사 때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실서 회유했다”)

 

비선 실세의 진위 여부보다 문건 유출로 프레임을 돌리고, 문건 유출자를 찾아내 책임을 묻는 것이 당시 청와대의 탈출 ‘플랜’ 이었고 그 플랜을 기획한 것은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민정비서관이 검찰 수사 보고를 받아가며 수사에 개입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김영한 민정수석은 바로 이 의문을 해명하기 위해 2015년 1월9일 국회에 출석해야 했던 것입니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 <한겨레> 자료사진
■ ‘정윤회 문건’ 보고서 관련자는 모두 청와대서 쫓겨났다

 

김영한 전 수석은 불출석 사유로 ‘정윤회 문건 유출’은 자신이 민정수석으로 임명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어서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문제의 보고서는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2014년 1월6일 작성됐고, 그가 민정수석으로 부임한 뒤엔 실무자들이 모두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1월 보고를 받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그대로 덮었고, 2월 보고서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을 경찰로 원대 복귀시켰습니다. 4월엔 책임자인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을 경질했고, 7월에는 민정수석실에 파견됐던 비위 감찰 담당 경찰들도 모두 경찰로 복귀시켰습니다. 청와대는 “(6월) 김영한 민정수석이 부임하면서 조직 쇄신 차원의 인사”라고 설명했지만, 한일 경위는 당시 정황을 회고하며 “승마협회 비리를 조사하고 있었다”고 최순실의 개입을 의심한 바 있습니다. 문건 유출 자체만 놓고 보면 모두 김 전 수석의 부임 전에 끝난 일인 것은 맞습니다.

 

▶김기춘 ‘정윤회 보고서’ 직접 받아봤다

 

▶靑 민정수석실 파견 경정 5명, 올 2월·7월 무더기 교체

 

 

■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대신 김영한 민정수석 내줬나

 

하지만 김 전 수석의 “잘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내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항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 외에 다른 말도 나오고 있다. 우선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불화설이다. 주요 업무에서 그가 배제됐다는 얘기가 여권 주변에선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방식에 대해 김 실장과 이견(異見)이 있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또 김 수석은 ‘정치적 거래에 이용당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정호성 제1부속·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 등 이른바 ‘핵심 비서관’을 출석시키지 않는 대신, 김 수석 출석에 합의한 것에 기분이 상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1월10일)

 

 

비선 실세와의 연결고리로 지목된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을 국회에 내보냈다가는 ‘비선 실세’ 추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문건 유출이 중대한 문제라면서 검찰에 수사를 촉구하는 청와대가, 문건 유출 책임자인 민정수석실의 관계자 한명 내보내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비서관들 대신 ‘희생양’으로 김 전 수석이 떠올랐고, 김 전 수석이 거부했다는 해석입니다.

 

▶관심은 문건 진위... ‘소환 피하기 힘든 문고리 권력 3인방'

 

▶김영한 “항명이 아니라 원칙 지키려 사퇴한 것”

 

 

■ 김기춘에 치이고, 우병우에 밀리고

 

민정수석 일까지 도맡아 하며 막대한 권한을 휘두르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김 전 수석의 일처리에 불만을 가졌고, 검찰 장악에 적극적인 우병우 민정비서관을 더 마음에 들어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검찰 수뇌부와의 소통 문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에 대한 협조 요청 사항이 많았는데, 김기춘 실장이 보기에 김 수석이 성에 차지 않게 일을 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도 “김영한 수석이 검찰총장과 가끔씩 통화를 하나 부담을 주는 언행은 되도록 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김기춘 실장이 검찰 수뇌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업무를 지시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 김 수석이 보고서를 들고 대통령 집무실을 찾아가도 문고리 3인방으로부터 “보고서만 거기에 놓고 가세요”라는 말을 듣고는 해 좌절감을 많이 느낀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게 한 지인의 전언이다. 그러다보니 김영한 수석으로서는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해야 하는 국회에 출석하는 게 참기 어려웠을 수 있다. 특히 자살을 한 최 경위 문제에 대해서는 김 수석이 일체 아는 게 없는데 청와대와 문고리 3인방을 방어해야 한다는 게 자존심상 허락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한겨레, 2015년 1월11일, ‘항명 파동’ 김영한 수석이 사표 던진 진짜 이유는… )

 

 

아시다시피,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은 김영한 수석이 물러난 뒤 40대에 최연소 민정수석의 자리에 오르며 박근혜식 ‘파격 인사’의 당사자가 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우씨가 민정수석직에 오른 뒤 최순실씨의 전횡은 더욱 거침없어집니다.

 

2015년 9월24일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신발을 벗고 의자에 다리를 올린 채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5년 9월24일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신발을 벗고 의자에 다리를 올린 채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우병우-김기춘 라인”

 

▶이명재 특보에 우병우 전진배치… 검찰을 사실상 ‘호위대’로

 

▶청와대는 뭐가 두려워 우병우 내치지 못하나

 

 

■ 검찰 압박 꺼린 김영한…청와대 지시 꼼꼼히 기록해

 

전임인 홍경식 민정수석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동향인데다 검찰 때부터 알고 지낸 것과 달리, 김영한 전 수석은 김 전 비서실장과 별 다른 인연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천거했을까요?

 

최근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김 전 수석 발탁 전 ‘민정수석실 추천인 및 조직도’ 문건(2014년 4월15일~5월12일 사이 작성 추정)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 문건에선 곽상욱 감사위원이 추천돼 있었는데, 실제로 민정수석에 임명된 것은 김 전 수석이었습니다. 최씨가 이 과정에서 어떤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을지는 미지수이나, 민정수석 인사까지 챙겨봤다는 정황은 드러납니다.

 

▶최순실, 민정수석 추천문건·국가안보 기밀 문서도 받아봐

 

▶최순실은 어떻게 대통령을 ‘기획’했나

 

김영한 전 수석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경북고·연세대를 나온 티케이(TK)출신으로,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하고 공안 검사로 활약했습니다. 초년 검사 시절 폭력배 검거에 두각을 보여, 검찰 수뇌부에서 특수부와 공안부 중 선택권을 주자 공안부를 골랐다고 합니다. 2003년 서울지검 공안1부에 재직하며 ‘희망돼지 저금통’ 모금운동을 벌인 배우 문성근씨를 기소하기도 했습니다.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보면 굽히지 않는 성격으로, “소신이 강하다”는 평과 “독불장군”이라는 평이 엇갈립니다. 유승민 의원은 “대쪽같다”고 표현했습니다.

 

▶鄭총리, 김영한 항명사태에 “고집 바람직하지 못해”

 

▶‘공안통’ MB·박근혜 정부서 ‘화려한 부활’

 

▶공안통에 완장 채우고 특수통 칼은 뺏다

 

 

■ ‘비망록’서 드러난 청와대의 검찰 수사 개입

 

청와대 수석으로 지낸 210일간 김 전 수석은 월별 일정과 날짜별로 해야할 일, 수석비서관 회의 내용을 노트에 적었습니다. 정윤회 파문 당시의 청와대 대응과, 검찰 수사에 개입한 정황도 그 노트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2014년 11월28일 <세계일보>의 정윤회 게이트 보도가 나온 날 김 전 수석은 ‘식당 CCTV 분석’이라고 썼습니다. 보도에 나온 음식점의 CCTV를 청와대가 먼저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1월29일, 청와대는 ‘검찰 수사 착수’를 논의했습니다. 실제로 이틀 뒤 박 대통령의 ‘국기 문란’ 발언과 함께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착수 다음날엔 ‘휴대폰, 이메일, 통신 내역 범위기간’ ‘압수수색’ ‘청와대 3비서관 소환 등 협의’라고 적었습니다. ‘수사의 템포, 범위, 순서가 모든 것→ 수사결과’라고도 썼습니다. 이후 검찰은 정윤회 문건의 유출 과정을 수사하는 데 주력합니다. 보고서 작성자들을 대상으로 유출을 의심하며 압수수색을 했고, 정작 정윤회씨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는 ‘세계일보 공격 방안’도 논의했습니다. 압수수색과 ‘세무조사’도 논의됐는데, 실제로 세계일보 대신 세계일보를 소유한 통일교 재단 관련 회사가 특별세무조사를 받았습니다.

 

▶정윤회 수사 축소, 청와대-검찰 협의 정황 나왔다

 

▶“본때를 보여야”…‘청와대는 언론을 어떻게 길들였나?’

 

 

■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본때 보여라” 지시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6월2일(파리 현지시각) ‘K브랜드’ 홍보 행사에서 샤이니 민호(오른쪽)와 함께 붕어빵을 시식하고 있다. 이 행사는 CJ그룹이 한류 확산과 산업화 지원을 위해 매년 미국·일본 등지에서 개최하는 컨벤션 및 콘서트로,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파리에서 개최됐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6월2일(파리 현지시각) ‘K브랜드’ 홍보 행사에서 샤이니 민호(오른쪽)와 함께 붕어빵을 시식하고 있다. 이 행사는 CJ그룹이 한류 확산과 산업화 지원을 위해 매년 미국·일본 등지에서 개최하는 컨벤션 및 콘서트로,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파리에서 개최됐다. 연합뉴스
비망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직접 “시사저널 일요신문-끝까지 밝혀내야. 본때를 보여야. 열성과 근성으로 발본 색원”하라는 지시를 합니다.

 

<시사저널>은 2014년 3월, ‘박지만 미행 사건’을 내사하던 청와대 직원이 돌연 인사 조처됐으며 배후가 정윤회씨로 보인다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냈습니다.(▶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이 기사에는 최순실씨의 존재를 암시하는 듯한 대목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ㄴ씨를 인사 조치하라”고 지시했던 ‘대통령 측근’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 여권 인사는 그가 누구인지 실명을 밝히진 않았다. 다만 “ㄴ씨를 청와대에서 내보내라고 지시한 ‘대통령의 측근’은 정윤회씨와도 오래 전부터 가까운 사이다”라고만 언급했다. 이 인사는 “ㄴ씨가 박 회장 미행 사건에 대해 내사를 벌이자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ㄴ씨를 인사 조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사를 통해 자칫 정씨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대통령 측근’이 내사를 중단시켰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2014년3월22일)

 

 

<시사저널>은 4월에는 ‘정윤회가 승마협회 좌지우지한다’ 는 기사를 보도했고 6월에는 ‘정윤회씨 딸,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특혜 논란’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2014년 4월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4명은 <시사저널>을 상대로 8000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5월에는 <일요신문>을 상대로 4000만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반면 호의적 언론에게는 당근을 썼습니다. “VIP 관련 보도-각종 금전적 지원도 포상적 개념으로. 제재는 민정이”라는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어버이연합 “청와대가 보수집회 지시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판 언론에 ‘불이익’ 지시

 

▶시사저널 기자들 “박근혜 대통령 퇴진해야”

 

 

■ 공작정치 진두지휘한 김기춘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정윤회 파문 전후로 법조계와 문화계, 야당 정치인 등을 압박하며 전방위적인 정권 보위에 나섰습니다. 15일 현재까지 공개된 그와 관련한 김영한 비망록 내용은 크게 세 갈래입니다.

 

첫째, 사법부 길들이기입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상고법원 등을 미끼로 법원을 길들이려 했고, 법조삼륜(법원, 검찰, 변협) 중 하나로 꼽히는 변협에도 영향력을 끼치려 했습니다.

 

 

“법원이 지나치게 강대하다” “견제 수단이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

 

(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라면서) “판사의 성향에 트집잡히지 않도록 치밀하게 준비하라”

 

“국가적 행사 때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있다는 멘트가 필요하다”

 

“변협회장 선거에 애국단체의 관여가 요구”

 

 

재일동포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는 당시 공안검사였던 김기춘이 등장한다. 최승호 감독은 1970년대 간첩조작 사건의 재일동포 피해자를 취재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갔다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연히 마주쳤다. 엣나인 필름 제공
재일동포유학생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는 당시 공안검사였던 김기춘이 등장한다. 최승호 감독은 1970년대 간첩조작 사건의 재일동포 피해자를 취재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갔다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연히 마주쳤다. 엣나인 필름 제공
■ 문창극 인선 뒤 ‘비선’ 의혹 불거지자…

 

둘째, ‘만만회’(박지만-이재만-정윤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비선 실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던 박지원 의원에 대한 탄압을 기획했습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인적 쇄신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6월 국무총리 후보자로 문창극씨를 ‘깜짝 발탁’합니다. 이후 벌어진 참극은 아시는 대로입니다. 여당 중진들이 서로 문씨를 천거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이 인사 참사를 계기로 여야는 일제히 비선 실세의 존재를 거론하게 됩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이 공식채널이 아닌 소규모 비선라인을 통해 상당히 많은 얘기를 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고, 박지원 의원은 “문 후보자에 대한 추천을 청와대 비선라인인 만만회에서 했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청와대의 심기를 거슬렀습니다.

 

메모 내용으로 미뤄보아 청와대는 사법부를 통한 압박을 꾀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박 의원은 저축은행과 관련해 알선수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뒤집혔고, 다시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박지원 항소심 공소유지 대책 수립” “박사모 등 시민단체 통해 고발” (2014.7.5)

 

“만만회 고발” (2014.7.17)

 

 

박근혜 대통령은 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로 “만만회가 인사를 움직인다”는 의혹이 제기된 2014년 6월 이후 적극적으로 당과의 접촉을 늘렸다. 6월25일 새누리당 지도부를 7개월 만에 청와대로 불러 공개회동을 했고, 7월14일에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방문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은 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로 “만만회가 인사를 움직인다”는 의혹이 제기된 2014년 6월 이후 적극적으로 당과의 접촉을 늘렸다. 6월25일 새누리당 지도부를 7개월 만에 청와대로 불러 공개회동을 했고, 7월14일에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방문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만만회’ 문제제기가 이뤄진 뒤인 7월7일, 김기춘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누군가 악의적으로 만들어 낸 말이고 실체는 없다” “만만회는 인사에 전혀 관여한 일이 없다” “인사가 잘되고 못되고 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인사위원장인 저에게 있다”고 비선의 존재를 적극 부인했습니다.

 

 

■ 2014년 여름… 생각보다 빨리 비선 문제 터졌다

 

한겨레 카드뉴스 <박근혜 어록> 중.
한겨레 카드뉴스 <박근혜 어록> 중.
‘만만회’ 거명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는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비선 문제가 불거졌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만만회는 상상의 산물”이라고 박지원 의원의 거론을 일축했는데, 거론되는 박지만·이재만·정윤회씨가 각자 견제하는 사이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만만회가 하나의 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선의 존재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김 실장이 “만만회는 인사에 개입한 적 없다”고 비호하고 나서면서 문고리 3인방과 그의 ‘암묵적 협력관계’를 주목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 권력의 핵심이라 불리고 있는 ‘기춘대원군’ 김기춘 실장과 비선라인의 관계에도 주목하고 있다. 아무리 비선 측 힘이 크다 해도 무언가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공식라인인 김 실장을 통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선라인과 김 실장 간에 상부상조하는 암묵적 협력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추측이 힘을 얻고도 있다.

 

월요신문, 2014년 7월2일, <존재 불확실 ‘만만회’, 언급만으로 정치권 들썩>

 

 

김기춘 실장은 비서실장 부임 당시 부속실(3인방)에게 쏠리던 인사권을 훌륭하게 견제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문고리 3인방을 지휘한 것이 최순실씨임이 드러나고 있는 요즈음, 비선 실세 최씨와 김 전 실장 간의 줄다리기 내지는 어떤 ‘교감’이 이뤄졌을 정황은 앞으로도 주목해야 할 지점으로 보입니다.

 

 

■ ‘박지만 견제’엔 뜻 모았나

 

만만회 의혹이 불거진 2014년 여름 이후, 박 대통령은 부쩍 가족과의 거리를 두는 한편 박지만씨 쪽 사람들을 인사에서 쳐냅니다. 추석 연휴에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씨의 묘역을 찾았지만 박지만 회장 등 가족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취임식 때만 해도 박근령씨는 초청하지 않았지만 박지만 회장 내외는 초청했는데 말입니다.

 

 

“박 대통령은 가족의 정치 개입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가족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여권 인사들의 설명이다.” (한국일보, 9월10일치 3면)

 

 

10월8일치 <조선일보>에는 ‘박지만과 가까운 사람들 잇따라 옷벗는 까닭은’ 이라는 기사가 실립니다. 11월28일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파문 보도 당시 박지만 회장 쪽이 비선 실세의 상대편으로 지목된 것은 박 회장의 사람들이 인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정황 때문이었습니다.

 

12월 정윤회 문건 파동 때문에 박지만·정윤회·이재만이 모두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을 때도, 대통령의 동생인 박 회장과 ‘비선 실세’라는 정씨, 그리고 일개 청와대 비서관 가운데 이재만 비서관이 가장 “예우를 받았다”는 보도도 지금 다시 보면 새롭게 느껴집니다.

 

▶ 관련기사 보기 : 문건들 최초 입수한 세계일보, 박지만 문건은 왜 보도 안했나

 

▶ 최순실 덕분에 22개월 전의 '정윤회 파문 총정리'는 지금 술술 읽힌다 (복습)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회장이 2014년 12월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정윤회 문건 유출’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회장이 2014년 12월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정윤회 문건 유출’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 ‘허수아비 박 대통령’ 그림에 문화계 탄압 주도

 

다시 김기춘 전 실장의 공작 정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10월10일 <한겨레>가 보도한 바 있는 예술계 ‘블랙리스트’도 그의 기획이 끼쳤다는 추측을 할 만한 기록도 김영한 비망록에 있었습니다. 김 전 수석에 따르면 2014년 8월 청와대는 홍성담 제재 조처를 논의했는데, 박 대통령을 김 전 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풍자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화가 홍성담씨는 2014년 5월 광주비엔날레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그림 ‘세월오월’을 출품했다가 전시를 거부당했다.
화가 홍성담씨는 2014년 5월 광주비엔날레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그림 ‘세월오월’을 출품했다가 전시를 거부당했다.

 

“홍성담 배제 노력, 제재조치 강구” (2014.8.8)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할 것” (2014.10.2)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14년 여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김종 전 문체부 차관 등이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주축이라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김 전 실장이 “제재 조치”를 먼저 언급했다는 것은 청와대 전반에 미친 그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합니다.

 

▶“김종 전 차관이 홍성담 전시말라 전화”

 

▶“조윤선 수석 당시 정무수석실, 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

 

▶“블랙리스트 청와대 공식문서 아닌 메일 팩스로…기록 감추기”

 

<한겨레> 그래픽 자료.
<한겨레> 그래픽 자료.

 

■ 최순실 비선 실세 논란, 다음은 김기춘-우병우?

 

최순실씨가 구치소에 수감된 뒤, 김기춘 전 실장이 다시 ‘7인회’를 포함해 박 대통령의 자문 그룹으로 떠올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순실대통령 가고 7인회 김기춘이 정국 주도”) 박 대통령의 ‘버티기’ 구상도 김 전 실장의 작품이라는 겁니다. <조선일보>가 김영한 비망록을 필두로 가장 먼저 10일 보도에서 김 전 실장을 ‘저격’하고 나선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씨를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뒷쪽에 우병우 민정수석. 청와대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뒷쪽에 우병우 민정수석. 청와대사진공동취재단.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최씨의 존재를 비호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우병우 전 수석이 다음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것인가입니다. 최씨가 우병우 변호사를 민정비서관으로 추천한 당사자이며, 우 전 수석의 장모가 최씨와 절친하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단순한 방조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측면입니다. 김영한 비망록이 불러올 파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앞으로 계속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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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최선희 미국국장, 트럼프 되자마자 제네바에서 북미접촉

북 최선희 미국국장, 트럼프 되자마자 제네바에서 북미접촉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11/15 [21: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트럼프 당선 1주일만에 북미접촉이 예정된 제네바로 가기 위해 베이징 공항에 나타난 최선희 미국국장 

 

북 대미 외교라인의 핵심 당국자인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이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 직후 미국 민간 인사들과 접촉하기 위해 베이징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1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일본 교도통신은 15일 최 국장이 중국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모습이 포착됐다며 그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 전문가들과 만나기 위해 베이징을 경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최 국장이) 유럽 지역에서 미국 측 민간 전문가들과 '트랙 2'(민간) 차원의 접촉이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확인했다.

 

트럼프 당선 1주일만에 책임자급의 북미 접촉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는 최선희에 대해 처음으로 미국국장이라고 호칭했다. 정부는 한성렬 전임 미국국장이 리용호 현 외무상의 후임으로 외무성 부상 자리에 올라가면서 최선희가 국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고 있었으나, 북한의 공식 발표가 없어 그간 확인은 하지 않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미국국장이란 호칭을 사용한 것이다.

 

실제 최선희 국장은 북에서 공식 발표만 하지 않았을 뿐 한성렬 전 미국국장이 외무성 부상으로 올라간 후에 실질적으로 미국국장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접촉의) 미측 인사들도 이전부터 유사한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로서 새로울 것이 없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사안이 아니다"며 의미를 깎아내렸는데 북미접촉의 책임자 최선희 미국국장이 나설 정도면 미국도 공신력 있는 책임자가 나왔을 것이 자명하다.

 

이번 제네바 접촉에 대해 '탐색전'이다. '탐색전을 넘어서는 예비회담 성격이 될 수도 있다'는 등 여러 분석과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트럼프 당선 1주일만에 이런 책임자급의 북미접촉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볼 첩촉이 아님은 분명하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최 국장은 베이징 공항에서 취재진이 트럼프 행정부에 어떤 접근방식을 취할 것이냐고 묻자 "그들(트럼프 행정부)이 어떤 종류의 정책을 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원래 최 국장은 이런 길거리 기자 질문에 잘 답을 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례적으로 이런 답을 내놓았다.

 

트럼프 정부가 어떤 정책으로 나오건 북은 다 준비되어 있다는 의지를 작심하고 던진 것이다. 제네바 접촉에서도 시간끌기나 하려 한다면 미국과의 대화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미국을 향해 실질적 진전을 가져올 대화를 촉구한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는 2016년 소름끼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미국을 몰아붙여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미압박과 최근 연이은 군부대 시찰 등을 보며 예전처럼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대미정책을 두고 볼 것 같지 않다며 트럼프 집권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전망보다도 더 빠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상 이상이다.

 

미국은 대통령의 결심보다 미국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세력들의 결심이 더 결정적이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계획까지 북과 논의하고 왔지만 결국 그 핵심세력들과의 협의 과정에 평양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된 적이 있다고 조미평화센터 김명철 소장이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제네바 접촉도 그런 핵심세력의 지휘가 없다면 도저히 추진될 수 없는 일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사실상 외교에서 손을 떼버렸다. 클래퍼 미 정보국장의 북 핵무기 인정과 대화 필요성 제기 관련 발언에 대해서 백악관은 오마바 정부는 북핵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대화 여부 등은 차기 정부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언급한 것만 봐도 이미 오바마 정부는 외교에서 손을 놓은 것이다.

따라서 지금 추진되는 북미접촉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결국 미국의 그런 핵심세력의 영향력 안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6년 1월 6일 수소탄시험에 9월 9일 수소탄 핵탄두 시험까지 한 해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핵무기인 수소탄 시험을 두 번이나 단행하고 극강 최종병기라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그것도 가장 발전된 형태의 고체연료로켓을 이용한 탄도미사일 시험에 200km 사거리의 목표물을 1미터 오차 범위 안에 명중시키는 대구경 방사포에 S-400급 대공미사일 번개6호까지 시험발사를 단행한 것도 정권 마지막 해에 들어선 오바마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핵심세력들에게 북의 의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무슨 순항미사일도 아니고 정확도가 떨어지기에 여러발을 연속발사하여 일정지역을 초토화하는 무기인 대구경 방사포탄이 200KM를 날아가 유리창까지 골가가며 명중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현재까지 북밖에 없다. 그런 무기들을 지난 한 해 거의 한 달에도 몇 차례씩 연이어 과시하였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들은 이런 무기들의 위력을 애써 폄하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군사무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사실 밤 잠을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왜 오바마집권 말기에 이런 엄청난 공세를 퍼부었겠는가.

 

미국의 행정부 위의 핵심세력들에게 미국 대선에서 전쟁을 추구하는 세력을 앞세울 것인지 대화로 문제를 푸는 대통령을 앞세울 것인지 결정하라는 압박이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행정부가 과연 어떤 정책을 들고 나올 것인지를 알아보자는 차원에서 제네바 접촉에 나선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 흐름 속에서 본다면 제네바 접촉에서 미국의 본심이 대화가 아니라 전쟁에 있다거나 또 다시 전략적 인내의 연장에 있음을 확인한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그에 맞게 준비한 대응을 바로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미국이 전쟁 쪽에 가 있다면 상황은 매우 심각해질 것이다.

 

현재 흐름을 놓고 보면 대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패배만 봐도 그렇다.

문제는 속도다. 오바마 정부처럼 북에 철저한 봉쇄와 압박을 가하면서 시간끌기로 나올 경우 북이 과연 지난 경우처럼 마냥 당하고만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올 1월 북이 공개한 수소탄은 세계 최강 수소폭탄 차르붐바보다 4000배나 더 강력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고 북은 주장하고 있다. 그것을 소형화시켜서 시험했기 때문에 지진파가 작았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북이 2009년 핵시험 때부터서는 미국은 물론 한일중러 모든 주변국들이 첨단 장비를 총동원하여 핵물질을 포집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전혀 핵물질을 검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수소탄도 초기 폭발은 핵분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핵물질이 검출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지하핵시험이라고 해도 핵물질은 퍼져나오게 마련이다.

원자의 핵이 축구공이라면 전자는 축구장 경계선을 돌고 있을 정도로 떨어져있다. 그런 사이사이로 핵물질들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성자탄은 중성자가 콘크리트건, 철판이건 뭐건(납 등 일부 물질은 예외) 그 물질은 전혀 손상을 가하지 않은 채 다 뚫고 들어가 그 안의 생명체를 모두 살상하는 것이다.

실제 2009년 이전 북의 핵시험 때에는 미국이 동해 상공에서 제논 등의 핵물질을 포집한 바 있다.

 

그렇다면 2009년 북의 핵시험은 미국에서 그렇게 수십년 연구했지만 실패했던 순핵융합탄을 성공시킨 시험일 가능성이 높으며 지금 진행하고 있는 모든 북의 수소탄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순행융합탄 시험일 수 있는 것이다.

 

순핵융합탄은 핵분열을 이용하지 않고 순수 수소융합반응을 유도한 수소탄으로 무엇보다 방사능 오염물질이 거의 나오지 않고 핵융합율도 획기적으로 높여 작은 무게의 수소탄으로도 더 엄청난 파괴력을 낼 수 있는 상상의 무기로 알려져 있다. 아직 어떤 나라도 만들지 못했으며 미국도 수십년 연구했지만 거의 진척이 없어 한 참 전에 공식적으로 포기했다고 알려져 있는 무기이다.

 

그러니 러시아나 미국의 수소탄보다 4000배나 위력이 더 강하다고 북의 과학자가 직접 언론에다 발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북미대결전을 끝낼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는 북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에도 그것을 이어 더 구체화한 시간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과의 관계문제를 언제까지 풀겠다는 시간표가 있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반드시 그 시간 안에 미국과의 관계를 매듭지으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 북의 강력한 물리적 조치가 연이어 단행될 우려가 높고 한반도 전쟁위기가 심각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지금도 그런 상황이다.

북이 공개하는 무기가 세계 최강이고 미군도 대북압박 훈련을 했다고 하면 연신 사상최대병력과 무력동원 수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지금 미군이 동원하는 무력이면 언제든 바로 전쟁을 수행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평도 포격전을 직접 지휘한 경력이 있다. 공격명령도 그가 직접 내린 것이다. 이미 그때 군권을 김정일국방위원장으로부터 넘겨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북이 남측 영토로 인정한 곳에 공개적, 공식적으로 첫 대규모 공격 명령을 내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기에 그 결심의 단호성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미국의 작은 도발도 결코 좌시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우려가 높다.

 

이런 상황이기에 남측에 지혜롭고 신중한 군통수권자 즉, 대통령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리 대통령은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고 말고를 결정할 아무 권한이 없다.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미군이 사전 통고 없이 북을 공격할 수도 있다. 93-94년 전쟁 위기 때도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위험한 상황인지 잘 알지 못했다. 미국에 사는 가족들이 빨리 피난가라고 성화를 먹여서야 라면사재기를 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그렇게 미국 대통령에게 전쟁은 안 된다고 통 사정은 했지만 들은 척도 안했다고 한다. 그 통사정했다는 이야기도 당시엔 국민들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몇 년 지나서야 나온 이야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신처럼 2년 안에 북이 망한다는 망상을 품고 있던 최순실 악령에 사로잡혀 북을 붕괴시키겠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 최근 들어 그 북 붕괴발언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 완전히 몰락하고 있는데 이런 대통령에게 다시 한반도의 안보를 맡긴다는 것은 굶주려 광기에 사로잡힌 늑대를 닭장에 집어넣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하루빨리 한반도의 전쟁을 막고 평화적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하루가 급하다. 남과 북이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입각하여 손을 잡고 통일을 이루면 북미관계가 어떻게 되건 말건 영영 이땅에서는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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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태민 아지트에 금은보화 가득”

[단독] “박근혜-최태민 아지트에 금은보화 가득”최재석 “4평 크기 금고 안에 CD와 골드바 가득.. 현재 안가에 보관중”이상호 대표기자  |  balnews21@gmail.com
 

“최태민씨의 서울 역삼동 자택에 비밀 아지트가 있었으며 박근혜씨가 빈번하게 방문하던 이 장소에는 금은보화로 가득찬 창고가 딸려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최태민씨의 아들이자 최순실씨의 배다른 오빠인 최재석씨는 15일 고발뉴스와의 2차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최태민-임순이 부부가 생활하던 안방에서 보면 화장실 쪽에 별도의 내실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있었으며 박근혜씨가 방문할 때 마다 그곳에 들어가 부친과 둘이서 머물렀다”고 말했다.

최씨는 “비밀 아지트는 8평 규모의 공간으로 벽 한면에는 4평 규모의 거대한 금고의 철문이 있었다”며 “금고는 수백억대 양도성 예금증서(CD)와 골드바 같은 귀금속, 서울과 부산 일대에 산재해 있던 천억원대 땅문서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 “최태민씨의 역삼동 자택은 200평 규모로 부인 임순이씨와 최순실 등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박근혜씨의 아지트로 쓰인 내실과 금고는 가족이라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최재석씨는 말했다.

“CD는 조흥은행에서 발행한 것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회상하던 그는 “자택 지하에는 100평 규모의 지하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당시 한 점에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던 운보의 작품 등 명화가 400여점 보관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재석씨는 “당시 역삼동 집에 보관돼 있던 CD와 귀금속 등이 누구의 것이냐”는 고발뉴스의 질문에 “부친께서는 이것이 내 것이 아니며 큰 일을 위해 쓰여질 것이라고 말했다”며 박근혜 캠프의 ‘정치자금’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번 고발뉴스에 “최순실 일가의 보유 재산은 대부분 최태민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이라고 밝혔던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순득, 순천은 부동산 위주로 물려받아 각각 천억원대 빌딩을 가지고 있는 반면 순실은 금고 안에 있던 CD와 골드바 같은 동산을 주로 상속받았다”고 새롭게 주장했다.

   
▲ 최재석씨는 과연 검찰이 최순실에 대해 수사를 제대로 할 것인지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고발뉴스의 기사를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며 하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최재석씨는 부친 최태민씨 사망 이후 “재산의 상당부분이 현금화 돼 해외로 빠져나갔으며 나머지 동산은 구리쪽에 있는 최씨 일가의 안가에 묻혀있는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최씨 자매는 재산을 독차지 하기 위해 나머지 가족들에게 부친 최태민씨의 사망 소식 조차 알리지 않았으며 최재석씨가 뒤늦게 역삼동 집으로 달려가자 강남일대 조직폭력배 수십명을 불러 내쫓았으며 주변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최씨 일가의 일원으로 이번 국정농간 사태에 대해 도의적으로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께 죄송한 마음이라며 최순실 자매의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는 것이 옳은 일인 만큼 검찰이 나서지 못한다면, 정당한 상속권자로서 저들의 재산을 낱낱이 찾아내 제자리로 돌려드릴 생각”이라고도 밝혔다.

   
▲ 인터뷰 말미에 최재석씨는 “최씨 일가의 한 사람으로 최근 사태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 기업과 국민들로부터 뜯어낸 돈인 만큼 최씨 자매의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야 옳다”고 말했다.

최재석씨와의 이번 인터뷰는 한시간 넘게 진행됐으며 동영상은 고발뉴스닷컴과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업로드될 예정이다. 

 

☞ <사실은> 1~5회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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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현장 '확 달라진' 경찰? 정말 그럴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11/16 11:23
  • 수정일
    2016/11/16 11:2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取중眞담] 100만 촛불에 '작전상 후퇴'... 진짜 '시민 편'은 아니었다

16.11.16 09:27l최종 업데이트 16.11.16 09:27l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이 기사 한눈에

  • 진짜 '시민의 편'이 됐다면 경찰 스스로 그은 '여기까지'의 금을 지키려 애쓰는 대신,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공권력이 먼저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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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청와대 행진이 저지되자, 경찰 차벽을 두드리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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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제3차 범국민행동 촛불 문화제 참가 시민을 대하는 '경찰 의식'이 달라졌다는 후일담과 보도가 쏟아졌다. 불과 1년 전, 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때는 캡사이신 난사와 살인적 물대포 조준도 주저 않던 경찰이 올해는 시민 안전을 우선 순위로 놓고 평화 집회를 도왔다는 맥락이다.

정말 그럴까. 지난해와 올해 두 현장을 종료 시점까지 지켜본 기자 눈에는 경찰의 '순한 대응'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경찰 개인이 현 시국 문제에 공감해 참가 시민을 도운 사례들은 눈에 띄었어도, 경찰 시스템 자체의 변화는 그렇게 와 닿지 않아서다. 

집회 참가자에게 감사하는 경찰, 지난해와 달라졌다? 
 
물론 가시적 변화는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해와 올해 총궐기 시점 때마다 낸 보도자료만 비교해 봐도 경찰의 달라진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지난해 경찰은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총궐기 주최 측에 경고성 보도자료를 전달했다. 보도자료에 '검거', '엄단' 등의 단어를 강조하면서 총궐기 자체를 '불법 유발' 행사로 단정했다. 

그해 11월 10일자 '집회와 서울시내 대학 논술 고사가 겹쳐 극심한 교통혼잡이 예상된다'라는 보도자료가 대표적이다. '논술 시험은 대부분 오전에 이뤄지고, 집회는 대개 오후에 진행되므로 큰 지장이 없다'는 주최쪽 반론에도 총궐기를 바라보는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다. 

12일에는 경고 색깔이 더 짙어졌다. 당시 경찰청의 '가용경력·장비 총동원, 불법행위 발생시 엄정대응 방침'이라는 보도자료는 "불법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폭력 행위자를 현장에서 검거하는 한편, 핵심 주동자 및 극렬 행위자에 대해서는 사후에라도 추적, 반드시 사법 조치할 계획"이라고 사전 경고했다. 

올해는 어땠을까. 서울지방경찰청이 홈페이지에 내건 제3차 범국민행동(2016 민중총궐기) 관련 보도자료는 한 건도 없었다. 다만 지난 4일, 지난달 29일 열린 1차 범국민행동에 관한 경찰의 '감사'를 전한 보도자료가 전부였다. 경찰은 이 보도자료에서 "시민께서 경찰 안내에 따라주시고 이성적으로 협조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감사했다. 당시 회자된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의 "나라 걱정하는 여러분 마음 잘 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실 것을 당부"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경찰의 집회 공간에 대한 인식도 1년 만에 확 넓어졌다. 지난해 차벽으로 꽁꽁 닫혀있던 광화문 북측 광장. 당시 경찰은 "(광화문 광장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이용하도록 돼 있어 집회 시위의 목적으로는 합법적 장소 사용이 불가하다"고 못 박으며 광장을 봉쇄했다. 

1년 뒤 경찰은 광화문 광장을 대놓고 막지 않았다. 밤늦도록 광장에서는 큰 대치 없이 집회를 이어갈 수 있었다. 시민의 통행을 돕는 등 따뜻한 경찰의 모습도 전해져 '공권력의 변신'이 회자됐다. 현 시국을 고려한 방어적 대응이라는 평도 따라왔다. 

양홍석 참여연대 변호사는 1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면서 "(이런 시국에 경찰도) 답답했을 것이고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 시민 길들이려는 시도는 변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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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들의 분노, "박근혜는 퇴진하라!" 12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노동자, 농민,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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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경찰이 온전히 변했다고 보긴 어렵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일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살수차를 올해도 버젓이 도로 위에 대기시켰다. 경찰이 재단한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언제든 강경 진압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이날 백남기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한 대회에 참가해 "오늘 경찰이 전국의 물대포를 서울로 불러들였다는데, 과연 제정신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관련 기사 : 백도라지씨 "전국 물대포 서울 집결? 경찰 제정신이냐").

광화문 북측 광장이 열리고 청와대 남쪽 율곡로와 사직로 집회가 가능하게 된 것도, 법원이 조건 통보 집행 정지 가처분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청와대 턱밑 촛불 허용, 법원 변했나?). 

애당초 경찰은 이 구간을 '교통 통행 장애'를 들어 일부 제한하려고 했다. 지난해 총궐기 때도 경찰은 "광화문 광장 이북 지역에서의 대규모 집회 시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금지 기조를 유지하고 차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뿐 아니라, 경찰은 지난 13일 새벽 4시께 경복궁역 입구 인도 위까지 방패를 밀어붙이며 남은 집회 참석자를 대상으로 진압을 시작했다. "고지한 집회 시간이 지났으니, 강제 해산을 시작하겠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온 뒤 시작된 진압이었다. 

앞뒤로 다가오는 경찰력 사이, 도로 위 시민들은 촛불을 하나씩 쥐고 앉아 누군가의 통기타 연주를 듣거나 쉰 목소리로 "박근혜는 퇴진하라"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청와대 방향으로 일부 시위대가 차벽을 두드리거나 구호를 외치고 있기는 했지만, 눈에 띌 만한 과격 상황은 없었다. 

당시 대치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해 앰뷸런스가 오고갔다. 경찰과 마찰을 빚은 23명의 시민이 현장에서 연행되기도 했다. 지난해 26명이 연행된 것과 비교하면 연행자 수도 큰 차이가 없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용혜인(26)씨는 "판례에 따르면 신고 되지 않은 집회라도 평화 집회는 해산 명령을 강제할 수 없다고 돼 있다"면서 "시간이 늦었고, 최대한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작과 끝이 같지 않은 경찰의 집회 대응 방식은 '성숙해진 경찰 의식'이라는 평가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집회 관리 지침은 그대로... 달라진 건 없다"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칭을 가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상황이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 "물대포를 쓰지 않은 게 경찰이 '안 쓰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런 (지침 수정) 작업은 하나도 안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박 의원은 "집회 관리 지침부터 바꿔야 한다, 그런 것이 (시민을 위한다는) 진심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상황에 따른 일시적 변화일 뿐, 집회 참가 시민을 위한 경찰의 진정한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한선범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언론국장도 14일 "경찰이 여전히 집회 시민을 길들이려고 시도하는 것은 변함없다"면서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게 아니라, 길들이고 (그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고, 그 본질은 (작년과)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국장은 "다만, 사고가 나면 안 되니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살짝 바뀌었는데도 아주 많이 바뀐 것 같은 그런 상황이 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하루 이틀 보는 사이 아니잖아~ 여기 다 친구잖아."
"이제 집에 갑시다~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어요."   

13일 새벽 경찰이 강제 해산을 진행하던 도중, 마이크를 든 한 지휘관이 저항하는 시민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다그침 대신 이웃집 아저씨처럼 부드러운 목소리의 회유였다. 다시 목소리를 날카롭게 벼린 지휘관은 의경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멀리서 "권력의 개가 되니 좋냐"고 외쳤다. 일사불란한 진압이 시작됐고, 인도 위에 있던 시민들은 차도로, 차도에 있던 시민들은 집회 장소 밖으로 밀려났다. 용씨의 말대로 "지켜보는 시민도, 언론도 딱히 없는" 가운데였다. 

진짜 '시민의 편'이 됐다면 경찰 스스로 그은 '여기까지'의 금을 지키려 애쓰는 대신,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공권력이 먼저 실현해야 한다. 좁게는 살인 도구가 될 수 있는 '살수차 지침'을 폐기하는 것부터, 넓게는 최소한의 제한 안에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까지. 일시적인 선량과 달콤한 회유 대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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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호 ‘수리부엉이 제국’ 개발 ‘발톱’에 무너질라

시화호 ‘수리부엉이 제국’ 개발 ‘발톱’에 무너질라

조홍섭 2016. 11. 16
조회수 42 추천수 0
 

10여년 사람 발길 안 닿은 초지 생태계

물과 뭍 통틀어 최고 포식자로

 

몸길이 70㎝에 날개 펴면 150㎝ 

스텔스 비행술 등 사냥 달인

 

포유류 주 먹잇감 삼는다는 통념 깨고

풍부한 조류가 먹잇감 절반

침식 절벽은 둥지 틀기 안성맞춤

 

20쌍 둥지 틀고 번식률 세계 상위권

전국에서 수리부엉이 밀도 가장 높아

 

수자원공사 2006년 장기종합계획 짜

2030년까지 대규모 주거단지 조성 

 

주거지역과 서식지 사이 수로 만들어 

차단 공간과 먹이터 등 대안 마련해야 

 

b11.jpg» 날개를 펴면 1.5m에 이르는 대형 맹금류인 수리부엉이는 최사우이 포식자로서 생태계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신동만 피디

 

7일 오전 찾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의 시화호 남쪽 간척지는 황금색 띠로 뒤덮인 광활한 벌판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소금기가 빠진 펄과 바위에 붙은 탈색된 따개비가 갯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1994년 시화방조제로 바다가 막힌 뒤 극심한 수질오염으로 1998년 해수유통 결정이 났다. 이후 10여년 동안 갯벌은 사람의 간섭이 없는 초지 생태계로 변신했다.

 

b2.jpg» 초지로 변한 시화호 간척지가 띠로 덮여 있다. 초지 가장자리의 언덕은 과거 해안이던 곳으로 수리부엉이의 주요한 번식지이지만 새도시 개발이 예정돼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푸드덕’, 발밑에서 장끼 한 마리가 튀어나와 긴 꼬리를 반짝이며 날아갔다. 꿩과 고라니가 수시로 눈앞에 나타나 놀라게 했다. 자연이 살아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b1.jpg» 시화호 간척지는 해수호, 담수호, 초원, 언덕 등으로 이뤄져 있다.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트는 언덕. 조홍섭 기자

 

이곳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물에선 수달, 땅에는 삵, 그리고 물과 뭍을 모두 합치면 수리부엉이다. 시화호 간척지는 전국에서 수리부엉이의 밀도가 가장 높은 ‘수리부엉이 제국’이다.

 

초원 가장자리 언덕은 과거 해안이던 곳이다. 파도에 침식된 절벽이 곳곳에 드러나 있어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틀기에 알맞다. 암벽에 다가서자 희끗희끗한 자국이 여기저기 보인다. 동행한 신동만 박사(조류생태학· <한국방송> 프로듀서)가 “수리부엉이가 얼마 전까지 머문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b9.jpg» 수리부엉이가 갓 토해놓은 펠릿. 통째로 삼킨 동물의 털과 뼈로 이뤄져 있다. 신동만 피디

 

b14.jpg» 토해 놓은 지 오래 된 펠릿. 이를 분석하면 수리부엉이가 어떤 먹이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조홍섭 기자

 

주변을 살펴보니 드러난 정강이뼈에 발가락이 달린 새의 유해와 쥐나 새를 통째로 삼킨 뒤 찌꺼기만 뱉어낸 펠릿이 곳곳에 놓여 있다. 수리부엉이가 잡아온 사냥감을 뜯어먹거나 뼈와 털을 토해 낸 흔적이다.

 

암벽 주변엔 사냥감 잔해 수북

 

b15.jpg» 지난해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틀었던 장소. 절벽 위 8부쯤 움푹 패인 곳이다. 조홍섭 기자

 

절벽 8부 높이의 움푹 팬 곳이 과거 둥지터라고 신 박사가 가리켰다. 그때 갑자기 커다란 새가 머리 위로 날아올라 나무 사이로 빠르게 사라졌다. 침입자를 지켜보던 수리부엉이였다. 

 

앉아 있는 수리부엉이는 머리가 크고 둔한 느낌을 주지만 날아가는 모습은 날개가 아주 길어 늘씬하고 날쌘 모습이었다. 신 박사는 “수리부엉이는 몸길이 70㎝에 날개를 펴면 150㎝에 이르는 대형 조류”라며 “움켜쥐기만 해도 먹이 동물을 곧바로 죽이는 강력한 발톱과 소리를 내지 않는 스텔스 비행술, 예리한 청각과 시각을 겸비한 최고의 포식자”라고 말했다.

 

b8.jpg» 수리부엉이는 야간에 주로 활동하지만 시각도 뛰어나 낮에도 잘 본다. 신동만 피디

 

안산시에서 ‘시화호 지킴이’로 일하는 최종인씨는 “시화호 간척지의 수리부엉이는 오리와 갈매기는 물론이고 족제비까지 사냥한다”며 “새끼가 깨어나면 다른 곳에서는 쥐 한 마리 잡아놓고 또 나가야 하지만 여기선 오리를 1~2마리 잡아놓고 여유롭게 먹인다”고 말했다.

 

b13.jpg» 시화호의 어느 '유복한' 수리부엉이 둥지. 큼직한 꿩과 오리를 미리 잡아둔 것이 보인다. 신동만 피디

 

시화호 간척지의 풍부한 먹이와 서식 여건은 높은 번식 성공률로 나타난다. 이곳에만 약 20쌍이 둥지를 틀고 있으며 불어난 어린 수리부엉이가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시화호 ‘습지 부엉이’의 성공 사례는 국제적으로도 알려졌다. 

 

b14.jpg» 시화호 수리부엉이의 먹이 특성을 소개한 논문이 표지 논문으로 실린 <맹금류 연구 저널> 9월호.

 

신 박사와 유정칠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습지가 중심인 시화호와 농지와 숲이 많은 파주·김포·강화 지역에 둥지를 튼 수리부엉이 44쌍의 먹이와 번식률을 조사한 결과 번식에 성공한 쌍은 평균 2마리의 새끼를 키워내 세계 상위권의 번식 성공률을 보였다. 

 

국제 학술지 <맹금류 연구 저널> 최근호에 실린 이 논문을 보면, 번식에 성공한 수리부엉이가 길러내는 새끼 수는 스페인에서 2.3마리로 가장 높고 독일 2.1마리, 오스트리아 2마리, 프랑스 1.8~1.9마리, 스웨덴 1.6마리 등으로 스페인을 빼면 시화호의 번식률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b10.jpg» 시화호에서는 알에서 깬 수리부엉이 새끼가 도태되지 않고 모두 자라는 비율이 높다. 먹이가 부족한 곳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신동만 피디

 

연구자들은 “스페인 등 유럽에서는 덩치가 크고 개체수가 많은 토끼를 주 먹이로 해 수리부엉이가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였지만 시화호에서는 습지의 새들이 크고 풍부한 먹잇감이 돼 번식 성공률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며 “이 연구는 수리부엉이가 주로 포유류를 먹이로 삼는다는 통념을 깬 사례를 제시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표2.jpg» 자료=신동만 외(2016)

 

시화호 수리부엉이가 사냥하는 동물 가운데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꿩 등 조류는 먹이 양의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번식기에 그 비중은 84%로 뛰었다. 

 

b6.jpg» 둥지에 있는 수리부엉이 새끼의 발육 상태를 측정하는 신동만 연구자. 신동만 피디 제공.

 

신 박사는 “오리 한 마리면 쥐 5마리 무게인데, 크고 영양가 높은 먹이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시화호가 습지형 서식지로서 가치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며 “과거 멧토끼가 많았을 땐 우리나라에서도 수리부엉이의 주 먹이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당시의 먹이 조사 기록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b4.jpg» 파주-김포-강화의 수리부엉이 둥지. 쥐는 가장 빈도가 높은 먹이이다. 신동만 피디

 

시화호 습지의 가치는 파주 등 습지 아닌 곳과의 비교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화호는 파주 등에 견줘 번식 성공률이 1.7배나 높았다. 파주 등에선 보통 알에서 깬 2~3마리의 새끼 가운데 발육이 느린 개체들이 3마리에 1마리꼴로 도태되는데, 시화호에선 대부분 자라서 둥지를 떠난다. 습지가 아닌 곳에서도 멧비둘기, 꿩 등 조류는 양적으로 주요한 먹이였지만 사냥 빈도는 쥐가 가장 높았다.

 

그 지역 생태계 건강하다는 증거

 

최상위 포식자인 수리부엉이가 잘 산다는 건 그 지역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유정칠 교수는 “맹금류는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어 오염물질이 축적돼 알의 부화가 안 되기도 하고 둥지를 틀 절벽과 먹이터가 주변에 있어야 하는 등 서식조건이 까다로워 세계적으로 대부분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b5.jpg» 날개를 부풀려 경계 표시를 하는 어린 수리부엉이. 최상위 포식자가 산다는 것은 그곳 생태계의 보전가치가 높다는 걸 뜻한다. 신동만 피디

 

그러나 시화호의 ‘수리부엉이 제국’은 붕괴가 예정돼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06년 수립된 시화지구 장기종합계획에 따라 시화호 남쪽 간척지에 2030년까지 송산 그린시티를 조성할 계획이다. 수리부엉이 서식지에는 대규모 주거 지역이 들어선다.

 

생태도시를 만든다며 국내 최대 규모의 수리부엉이 서식지를 없애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최종인씨는 “이미 개발로 수리부엉이의 서식지가 망가지고 있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만 했지 실질적인 보호 조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주거지역과 서식지 사이에 수로를 조성해 차단 공간과 먹이터 구실을 하도록 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인터뷰: 논문 쓰고 다큐 찍는 신동만 KBS PD

"알면 알수록 궁금, 생태적 비밀에 꽂혀"

 

b3.jpg» 신동만 <한국방송> 피디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연구자로서 시화호 수리부엉이 서식지 보호가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조홍섭 기자

 

“갯벌 매립과 수질오염으로 악명 높았던 시화호 간척지의 생태계가 살아나면서 최상위 포식자인 수리부엉이의 보고가 된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그런데 생태도시를 만든다며 서식지가 다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신동만 <한국방송> 프로듀서는 “공룡 화석지가 있는 고정리 일대를 빼면 신천리에서 독지리를 거쳐 대부도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수리부엉이 서식지는 모두 개발될 예정”이라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생태 보고를 지키려면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틀 언덕과 먹이터를 보전하는 생태적 개발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방송(KBS)의 대표적인 환경 프로그램이던 <환경 스페셜>에서 자연생태 전문 피디로 활동하면서 뿔논병아리, 신두리 사구 등 많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그가 수리부엉이에 ‘꽂힌’ 계기는 2008년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를 연출하면서였다. 

 

신 피디는 “수리부엉이는 우리나라 야생 생태계의 최정점에 있는 중요한 생태적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아, 저라도 미력이나마 그 생태적 비밀들을 밝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리부엉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궁금한 것이 생겼고, 이런 호기심이 그를 연구자의 길로 이끌었다. “연구는 쉽지 않았어요.” 전문 직업인이 박사과정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히 힘들다. 

 

b7.jpg» 줄을 타고 절벽을 내려가 수리부엉이 둥지를 조사하는 모습. 신동만 피디 제공.

 

여기에 연구 대상 자체가 고난도다. “둥지의 새끼와 먹이 잔해 등을 조사하려면 줄에 매달려 절벽을 내려가야 하는데, 어미가 사냥 나갈 때 조사하려니 초저녁에 조사하는 수밖에 없더군요.”

 

그가 시화호와 파주·김포·강화 일대의 수리부엉이 둥지 수십곳을 찾아다니며 조사한 논문은 맹금류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인 <맹금류 연구 저널>에 2013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실렸다. 토끼 등 대형 포유류를 주로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진 수리부엉이가 토끼가 사라진 습지에서 새를 먹이로 대체한다는 연구 결과가 평가를 받았다. 

 

“좋은 자연 다큐멘터리가 나오려면 기초과학 연구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불모지에 가깝다”고 그는 말한다. 현업 자연 다큐멘터리 피디가 경희대 생물학과에서 조류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된 것은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일 것이다. 

 

그는 현재 내년 10월을 목표로 시화호 생태계의 주인공인 수리부엉이와 수달을 주인공으로 하는 두 편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ong-Man Shin Jeong-Chil Yoo, Reproductive Success of Eurasian Eagle-Owls in Wetland and

Non-wetland Habitats of West-central Korea, Journal of Raptor Research, 50(3):241-253, DOI: http://dx.doi.org/10.3356/JRR-15-29.1

URL: http://www.bioone.org/doi/full/10.3356/JRR-1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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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하야’ 100만 촛불에 찬물을 끼얹은 ‘추미애’

‘심판 대상이 박근혜에서 야당으로 바뀌었다’
 
임병도 | 2016-11-15 08:59: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을 제안했다가 14시간 만에 철회했습니다.

14일 아침 추미애 대표는 당 회의에서 “제1당 대표로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만남이 필요하다고 보고 청와대에 긴급 회담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청와대가 제안을 받고 15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이 예정됐습니다.

추미애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이 예정되자, 당내는 물론이고 야당에서도 반발이 제기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후 4시 긴급 의총을, 오후 7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회담 여부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했습니다. 결국 오후 8시 추미애 대표는 회담 철회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민의 관심을 100만 촛불에서 추미애로 바꾸다’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은 14시간 동안 벌어진 해프닝(?)치고는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12일 열린 100만 촛불 집회의 열기를 한 방에 날렸다는 점입니다.

추미애검색어변화

 

▲구글트렌드를 통한 ‘민중총궐기’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관심도 변화

 

‘구글 트렌드’를 통해 관심도를 분석해봤습니다. 11월 11일부터 ‘민중총궐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집니다. 11월 12일 오후 4시경 ‘민중총궐기’의 관심은 정점을 찍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11월 12일 집회를 주목했다는 의미입니다.

‘민중총궐기’에 대한 관심은 11월 14일 오전 8시부터 상승하는 ‘추미애’라는 검색어에 밀리기 시작합니다. 11월 14일 오후 1시 급상승을 거쳐, 저녁 8시 무렵은 11월 12일 ‘민중총궐기’ 때보다 높아집니다.

구글트렌드를 활용한 관심도 측정뿐만 아니라 네이버 트렌드도 11월 초에 추미애 대표보다 ‘민중총궐기’가 더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11월 12일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100만이 넘게 모인 시민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모이겠다는 국민들의 의지를 꺾어 버렸습니다.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 해프닝’ 때문입니다.


‘심판 대상이 박근혜에서 야당으로 바뀌었다’

11월15일신문1면본문-min

 

▲11월 15일 조선,중앙,동아,경향,한겨레,한국일보 1면 ⓒ신문 캡처

 

‘아침,저녁 마음 바뀐 제1야당’ (조선일보)
‘제1야당의 무책임’ (중앙일보)
‘양자회담 철회, 혼란 키운 제1야당 대표 (동아일보)

오늘 아침 조중동 신문들의 1면 기사 제목입니다. 다른 신문들과 비교하면 조중동은 추미애 대표는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까지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이런 태도는 두 가지 현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첫째는 심판 대상을 박근혜 대통령에서 추미애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게 합니다. 두 번째는 제1야당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려 정국 주도권을 뺏게 만듭니다.

100만 촛불 집회로 ‘박근혜 하야’ 정국이 이제는 정치권의 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만나면 정치권을 비난하고 제1야당의 무책임을 논합니다. 다시 촛불집회로 사람들이 모여도 이 부분이 쟁점이 될 것입니다. 심판 대상이 바뀐 셈입니다.


‘박근혜 구속 수사와 ‘하야’가 멀어지다’

이정렬판사트위터

 

▲11월 14일 이정렬 전 판사가 트위터에 올린 글 ⓒ트위터 캡처

 

이정렬 전 판사는 트위터에 청와대 증거 인멸 지시에 대해 “증거 인멸은 구속 사유”라며 “대통령 불소추특권은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거지, 구속이 불가는한 것은 아닐터”라는 글을 올립니다.

11월 14일 JTBC 뉴스룸은 청와대가 ‘최순실 태블릿’이 공개되기 전부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와 언론 대응을 포함하는 ‘시나리오’를 준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려고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탄핵’과 현직 대통령 조사가 어렵기 때문에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구속 수사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이런 국민의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지금의 검찰로는 박근혜 대통령을 제대로 수사하기 어렵습니다. 처벌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민들의 불복종 운동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관심과 비판보다 ‘박근혜 하야’에 무게를 더 둬야 합니다. 추미애 대표는 가만히 놔둬도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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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해결을 위해서 트럼프는 전쟁, 평화협정 중 양자 택일해야한다.

"북핵"해결을 위해서 트럼프는 전쟁, 평화협정 중 양자 택일해야한다.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6/11/15 [09: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7년 1월 20일 출범하게 되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쟁 혹은 <평화협정체결>을 통한 길이냐 양 갈래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양심적인 국제전략분석가나 정치분석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양 갈래 길에서도 <평화협정체결>을 통한 문제해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 이용섭 기자

 

러시아 방송 스푸트닉에 "임자 제대로 만난 북한 핵"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계인 듯한 《레오 배》라는 전문가의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45대 미 대통령 당선자(참고로, 당선인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인"은 사람을 나타내는 일반명사로서 특정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자"는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에 당선된 특정한 사람을 뜻 하는 "당선자"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대화를 하거나 전쟁을 하는 길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의 글은 공감할 수 없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국제전략문제 전문가인 레오 배는 전제부터가 그간 서방세계나 조선 외부의 그릇된 편견과 독선에 빠져있다. "미국은 최강자, 조선은 약자"라는 그릇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 가정과 전제로 전개한 글이다. 전제와 가정이 부정적이니 당연히 전개하는 부분의 내용 또한 그다지 공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솔직히 가치가 없는 글이기는 하지만 그의 분석 가운데 결론부분인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제45대 미 대통령선거 당선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양자 택일 즉 전쟁에 의한 길이냐 아니면 대화를 통한 평화로운 해결의 길을 선택하느냐라는 방향제시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기에 그의 글을 비판적으로 분석해보기로 한다.

 

그럼 아래에서 그의 글을 한 문단 한 문단 분석해보기로 한다. 
참고로 인용된 문장은 스푸트닉이 보도한 <레오 배>의 분석글이며 아래 문장은 필자가 그의 글을 비판하는 분석글이다.


"북한이 북한 핵개발 문제를 끝장낼 임자를 만난듯하다. 바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다. 그런데 그 끝장이라는 것이 과연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일지 아니면 반대로 북한의 체제 존속여부가 위협받는 상황이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이다!"

 

<레오 배>의 윗 글을 보면 솔직히 그가 전문가인지 아니면 그저 인터넷에서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감이 잘 안잡힌다. 먼저 그의 글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선택을 하던 북은 약자로서 "패자(敗者)"가 된다. "체제보장"이라는 가정은 결국 강자인 미국에게 약자인 조선이 "체제보장"을 받는 것이다. "체제보장"이라는 말은 결론적으로 약자인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할 수 있도록 강자인 미국에게 보장을 받는 것이다.

 

만약 그의 말대로 조선이 미국에게 나라를 보존할 수 있도록 보장을 받게된다면 이 역시 조선은 미국에게 철저하게 패배를 하는 "패자"가 되며, 결국 조선은 미국에게 속국이 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강자인 미국에 의해 "체제보장"을 받는다는 것은 언제라도 조선은 또 다시 미국에게 "국가보존"과 "체제보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 대선 당선자가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로서 북의 "체제보장"을 해준다는 것은 미국의 "승리" 조선의 "패배"를 말 하는 것이다. 미국은 영원한 "승자"가 되는 것이요, 조선은 영원한 "패자"가 되는 것으로서 조선은 미국의 새로운 "속국"으로 전락을 하는 것이다.

 

"체제보장"이라는 가정을 하는 <레오 배>의 분석은 현 조-미관계 속에서 양 자가 가지고 있는 힘의 역학관계를 놓고 볼때 어불성설이다.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이라는 전제 조차도 조-미 양자의 힘의 역량관계를 두고보았을 때 전혀 가치가 없는 전제이다. 미국이  "체제보장"을 해줄 정도로 조선이 약자라면 굳이 평화협정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복잡하고 골치 아픈 길을 선택하겠는가. 무력을 동원한 전쟁을 통해서 점령해버리면 간단한 길일 것이다. "미국이 사람의 목숨을 중시해서 전쟁을 선택하지 않는다."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전제는 아예 염두에도 두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함에 있어 "전쟁"이냐 "평화협정체결"이냐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조선이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체제보장"이라는 타당성이나 논리성을 전혀 같지 못한  전제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왜 트럼프가 북한핵 문제를 극한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라 전망하는 데는,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들의 현재 파괴력, 오바마 행정부가 시행해온 ‘전략적’ 인내의 결과, 그리고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지을 의지 자체가 없는 남한의 리더십을 고려해 볼 때 앞으로 트럼프 당선인이 택할 해결방식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선택할 수 있는 "북핵"문제 해결방법은 결국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이 실패를 하였기 때문에 극단적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현재 남쪽의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그 방향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리더슆(ReaderShip)이 없다는 말은 남북간의 문제해결을 이끌어갈 지도력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국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에 의한 "북핵"문제 해결이 실패를 했고, 남쪽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도, 의지도, 지도력도 없기에 2017년 1월 20일 미 대통령에 새로 취임하게 될 도널드 트럼프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평화협정체결"을 통해 문제를 해결 할 것인지 "전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 할 것인지 양자 택일을 해야만 하는데 결국 두 길 모두 극단적 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시작된 2009년 1월은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한지 3년째 접어드는 해였다. 하지만 북한이 1차로 실험한 원자탄의 위력은 1킬로 톤 TNT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 미국의 입장에서는 김정일의 불장난 정도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한은 2005년 6월에 시작된 6자회담에만 기대를 걸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오바마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미국의 ‘전략적' 인내의 실패와 과거 이라크의 핵위협을 이스라엘처럼 스스로 해결해내지 못하는 남한의 ‘대책없는' 인내가 계속되는 동안 북한이 올 해 9월 9일에 5차로 실험한 원자탄의 파괴력은 이미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Little Boy)의 15킬로 톤 TNT 파괴력과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맨(Fat Man)의 21킬로 톤 TNT급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미 전략적으로 심각해져야 할 때가 훨씬 지난 시점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레오 배>의 위 분석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동안 미국이나 서방세계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국가들 모두 공통적으로 인공지진파의 강도를 기준으로하여 조선이 시험한 핵무기의 파괴력을 평가하였다. 그들은 핵시험을 했을 때 일어나는 지진의 파괴력이 약하면 핵무기가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다, 또는 핵무기의 파괴력이 약하기에 핵무기로서 가질 수 있는 위력을 무시해도 된다는 등 조선의 핵과학기술에 대해 폄하를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를 달리 분석하면 핵시험을 했는데 지진파에 나타난 파괴력이 약했다면 조선이 항상 주장하는 것처럼 핵무기의 "소형화" 더 나아가서는 "극소형화"를 이룬 최첨단화 된 "핵 시험"이라는 분석은 왜 안하는 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그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 역시 그러한 가정속에 머물러 있다보니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다고 본다. 핵 시험을 할 때마다 조선은 분명하면서도 친절하게 그 핵시험이 얼마나 위력적이며 최첨단화 된 핵무기인지에 대해 외부세계에 설명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조선의 설명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올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하면서 수소탄이라고 북한이 거짓 선전전을 펼칠 때도 그 규모는 국가별로 측정치가 다르지만 7킬로 톤 TNT급이라, 적어도 수소탄도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판단하고 핵보유국들이 보유한 증폭핵분열탄 수준에도 도달 못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북한이 그 동안 3~4년을 주기로 핵실험을 해온 것을 감안할 때, 지난 9월 9일의 5차 핵실험은 마치 미국의 전략적 인내의 실패를 선언하기라도 하듯 미국과 남한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남기고 있다. 더구나, 5차로 실험한 원자탄의 파괴력 규모와 더불어 간간이 성공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이나 고체연료를 기반으로 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들을 고려하면 미국은 이제 전략적 ‘인내'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을 해야 되는 시기에 이미 접어들었고, 이 때 마침 김정은만큼 예측 불가한 트럼프가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것이다."

 

올 1월 6일 조선에서 실시한 시험은 "수소탄 시험" 이었다고 분명하게 밝혔으며 그 과학적인 의미까지 상세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을 하였다. 조선은 그동안 해온 바대로 무기의 시험을 하거나 위성을 발사를 한 후 그에 대한 무기로서의 위력과 과학적 의미 등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외부세계에서는 "제 논에 물 대기"식으로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을 하면서 조선의 핵과학기술이나 위성과학기술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깎아내리기 급급하였다. 위 인용문의 분석 내용 역시 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런 인식과 분석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당연히 100% 실패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럼 지난 1월 6일 조선에서 시험한 수소탄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밝힌 내용을 보도록 한다. 아래 인용하는 내용은 1월 6일 시험했던 수소탄 개발에 참여했던 조선의 핵과학자가 직접 밝힌 내용이다.

 

"그 동안 세계에서 파괴력이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수소탄은 구 소련의 "짜르붐바"이다. 수소탄 "짜르붐바"를 실험할 당시 실험장으로부터 100km 이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3도 화상을 입었으며, 1000km 이내에 있는 모든 건물들의 창문이 모두 다 깨져나갔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시험한 수소탄의 위력은 구 소련의 수소탄  "짜르붐바" 보다 4,000배나 그 위력이 강하다. 만약 이번에 시험한 것만 가지고 미국 뉴욕에 터트린다면 뉴욕과 그 인근에는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초토화 될 것이다."

 

북 핵과학자가 밝힌대로라면 지난 1월 6일 시험한 것은 결국 "극소형화된 최첨단의 수소탄시험"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해당 수소탄 시험에 참가하였던 조선의 핵과학자가 위와 같이 정확하면서도 분명하게 그 위력을 밝혔음에도 편견에 찌든 <레오 배>는 올 1월 6일 북에서 시험한 것이 수소탄 시험이 아니었다고 이미 지나간 역사적 사실마저도 제 멋대로 부정적으로 단정짓고 있다. 미국인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 서 있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위와 같은 분석을 할 정도이면 정작 당사자인 미국의 전문가들은 어떻게 분석하고 해석을 할 지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명약관화 할 것이다. 그런 인식과 분석을 하니 "북핵"문제에 대해 "전략적 인내"니 "북 핵시설 폭격"이니 "북핵무기 제거"니 하는 망상에 가까운 설로서 세계인을 우롱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날에 미국이 가지게 된 "북핵공포"는 자업자득이다.

 

인용된 <레오 배>의 분석은 과학적 사고가 결여된 분석글이다. 올 1월 6일에 조선이 실시한 "핵시험"이 "수소탄"이 아니라고 단정을 지었으면서 갑자기 9월 9일에 실시한 "핵탄두 폭발시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 미국 오바마 정부의 북핵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완전하게 실패를 하였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 분석 내용에서 그동안 조선의 핵과학기술에 대해서 형편없는 수준인 듯 폄하를 하였다면 당연히 8개월여가 흐른 시점에서는 강위력한 것이라기 보다는 약간 발전된 형태의 핵무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이전의 분석이 대단히 잘 못되었기 때문에 빚어지는 모순이다.

 

인용문에서 "9월 9일~~~" 라는 문장은 타당한 분석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 9월 9일 조선이 시험한 "핵탄두 폭발시험"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서방세계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국가들은 맹목적으로 조선의 핵과학기술을 폄하하기만 하였다. 하지만 9월 9일 조선이 선보인 "핵탄두 폭발시험" 이후에는 누구도 그에 이의(異意)를 달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그건 결국 그동안 의도적이던 아니면 실제 조선의 발전된 핵과학기술을 몰랐건 미국의 대 "북핵정책"은 비단 오바마정부만이 아니라 이전 모든 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내년 1월 20일 출범하게 될 도널드 트럼프가 질 수밖에 없으며,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벼랑끝으로 몰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지금 미국이 처해있는 "북핵"의 문제는 미국 스스로가 만든 위기이다. 미국이 꼰 매듭은 미국 스스로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트럼프가 선택할 북한핵 문제의 해결방법은 두 가지다. 미국이 주도한 유엔이 공식적으로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고 현재의 북한체제를 보장해 주는 것과 아니면 한반도에 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북핵시설을 파괴하거나 아예 김정은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트럼프는 예측이 불가하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이 두 카드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미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평화협정을 먼저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햄버거 대화를 이미 공언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어떠한 형태로의 보장도 없이 핵을 포기할 집단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햄버거 대화가 잘 진행되면 북한과 미국이 만족할만한 조건에서 협상이 마무리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김정은도 예측 불가한 인물이라 하지만 실제로 그가 그 동안 내린 모든 결정은 북한체제의 영원한 존속을 원하는 것이라는 사실만 알면 그가 지금까지 선택해 온 결정들은 쉽게 이해된다. 또한 이에 대한 교육은 아버지 김정일에게서 철저히 받은 인물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가 들고 갈 햄버거 속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현재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주겠다는 ‘고기'가 들어있어야 한다."

 

사실 위 인용문이 <레오 배가>가 쓴 분석글의 결론부분이다. 위 결론부분은 그동안 본지에서 끈임없이 강조해 온 바이다. 결국 이전 오바마 정부까지 미국의 정책을 담당해왔던 대통령이나 전략분석가들, 그리고 미 정부에 조언을 해주는 과학자그룹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요즈음 미국의 정치계나 과학자그룹들을 보면 마치나 자신들에게는 그 어떤 책임도 없었던 것처럼 발뺌하기 바쁘다. 지금과 같이 미국이 조선에게 궁지에 몰리게 된 이유는 자만과 오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혹은 백인들이 주도하는 서방세계만이 온 누리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로서 그 외에는 열등민족 내지는 국가라는 오만성 즉 "오리엔탈리즘(서방우월주의, 동양 열등주의)"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대단히 오산을 했고 착각 속에 살아왔다. 역사를 연구하는 필자가 보기에는 서방 백인들만큼 열등한 민족은 없다. 반면 동양 특히 "배달겨레(조선민족)"를 따라올 만큼 뛰어난 두뇌와 기능 그리고 종합적 판단력을 갖춘 민족은 지구상에 없다.

 

인용된 <레오 배>도 트럼프가 선택할 "북핵"문제의 해결방법은 두 길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있다. 내년 1월 20일 출범하게 될 트럼프 정부에서는 "평화협정체결"을 통한 길이냐, 아니면 "전쟁"을 벌여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냐 양 갈래 길밖에 더 이상 없다.

 

최근 들어서 세계정치문제 전문가나 군사전략문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할 것이라거나 그 길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본 지에서도 대화를 통한 조-미간에 얽혀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끈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차기 미 정부를 담당하게 될 도널드 트럼프 진영에게 주어져 있는 길은 양 갈래 길이 아니라 유일한 통로인 대화를 통한 "평화협정체결"을 하여 조-미문제를 해결하는 외통 길밖에 없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이전의 정부처럼 오판을 하거나 오만에 빠져 강력한 재제 혹은 군사적 방법을 선택하는 순간 온 누리는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이며 그 동안 미국이라는 나라가 등장한 이래 약 240여년 동안 미 본토에 총알 한 방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이제는 미본토에 수소탄이나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99.999%이다. 차기에 들어설 트럼프 정부는 이런 오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대화를 통한 조-미문제 해결 그리고 온 누리에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가져오는 유일한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 아래 글은 별로 분석할 가치가 없기에 전문만 올려준다-----

 

만일 김정은이 트럼프가 가져온 햄버거를 맛있게 먹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트럼프의 다음 카드는 트럼프의 개인 성향이 이미 얘기해 주고 있다. 핵시설 파괴 또는 김정은 제거가 될 것이다.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 수밖에 없는 위험한 카드다. 이 카드를 내미는 순간 김정은이나 트럼프 모두 위험한 도박사들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강대국의 대통령으로서 북한 바로 옆에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시작한 중국과 전통적인 맞수 러시아가 있음을 감안할 때 크게는 3차 세계대전을 걱정해야 하는 부담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제 2의 한국전쟁을 유발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솔직히 이것은 남한의 입장에서 트럼프가 그런 고민을 최우선적으로 해주길 바라는 것이고, 실제로 트럼프 입장에서는 한반도 주둔한 미군들과 그 가족들의 안전과 미국 민주당이 주도할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 하는 정치적 부담감이 휠씬 더 클 것이다. 전통적으로 모든 전쟁에서 미국의 최대의 적은 국내 여론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또한 이 엄청난 도박에서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은 당연 자신도 이라크의 후세인 전대통령이나 리비아의 카다피와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는 부담을 견뎌야 한다. 트럼프에게 최악의 경우는 대통령 재선 못되고 부동산으로 번 돈으로 남은 여생을 즐기는 것이겠지만, 김정은의 경우는 전쟁을 국지전으로만 성공적으로 끝낸다 하더라도 향후 가중될 체제불안으로 급기야 밤잠 한번 편하게 이루지 못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트럼프는 어차피 대통령에 당선 안되더라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자세로 대통령 선거에도 임했는데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같은 자세를 취할 확률이 높은 반면,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 도박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트럼프가 가져온 햄버거가 맛이 좀 상한 것 같아도 억지로 웃으면서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관전 포인트는 맛없는 햄버거에 케첩 대신 김정은이 어떤 소스를 뿌리고 먹을지 지켜볼 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트럼프의 인상이 어떻게 변할지 보는 것도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일 것이다. 아무튼 그 정도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이제서야 임자 제대로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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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란의 금기어 ‘죽 쒀서 개 준다’


민란의 현장에서 다시 꺼낸 <민,란> (02)

11월 12일, 100만 명에 이르는 주권자 인파가 직접 청와대를 향해 시선을 직시했다. 대통령은 성난 ‘민란’의 함성을 듣고도 ‘나 몰라’로 일관하면 여파는 해일이 돼 다시금 전국을 ‘민주’의 깃발로 뒤덮을 것이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에 모인 국민의 날카로운 주인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현장에서 어깨를 스치며 지나치고 무언의 눈빛으로 공감한 국민의 마음은 모두 하나였다.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당도 민중총궐기의 대의명분을 그냥 마냥 눈 돌리기 어려웠나 보다. 지역구까지 적은 깃발에는 왠지 기회주의자의 냄새가 나고 곧 엄중한 결단의 시기에 이르면 그 펄럭임은 파도의 포말로 부서져 버리고 말 듯 처량해 보였다. 과연 ‘이명박근혜’ 정부의 대역죄를 칼날처럼 잘라낼 시기에 이르면 어떤 처세로 타협할 지 의심이 들었다. 민란의 역사에도 지도자의 기회주의 때문에 ‘죽 쒀 개 준’ 경우가 많다. <시경(詩經)>도 ‘타산지석(他山之石)’해야 옥을 고른다(공옥攻玉)고 조언했다.

“당(唐)은 황소(黄巢)로 인해 망(亡)하고 그 화(祸)는 계림(桂林)에 있다.” 고 <신당서(新唐书)>는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 말기 최대 농민전쟁인 황소 민란이 일어나기 전 계림에서 봉기한 방훈(庞勋) 민란이 있었다. 당나라를 침몰시킨 진정한 화근이자 최초의 항거였다. 당나라 말기 혼란, 피 끓는 전쟁의 서막이다.

805년에 서주(徐州)를 포함해 4개 주를 지배했던 번진 무녕군(武宁军)이 설치됐다. 819년 고구려 유민 집단이자 산동지방 절도사로 재직하던 이사도(李師道)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해 유명해졌다. 신라인 장보고(張寳高)가 무녕군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종군하기도 했다. 중원과 강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는 번진으로 절도사의 횡포에 맞서 장병들의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862년 7월 서주에 근무하는 장병들이 신임 절도사의 횡포를 견디지 못해 돌연 절도사를 축출해 버리는 사건을 일으켰다. 아무리 ‘당나라 군대’라 해도 하극상치고는 돌발적이었다. 왕식(王式)이 신임절도사로 근무지에 도착하자마자 하극상을 벌린 장병 수천 명을 학살하고 무녕군을 해체해버리는 강수를 뒀다. 목숨을 건진 장병들은 모두 도망쳐 산으로 들어갔으며 비적으로 평생 살 운명이었다.

당시 운남 지방에는 백족 등이 중심이 된 남조(南詔) 정권이 세력을 키워 북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서주의 하극상 사건 2년 후 864년, 조정에서는 서주와 사주 일대의 ‘비적화한’ 장병을 끌어들여 남조 방위를 담당하도록 하는 일석이조의 조처를 취했다. 그래서 약 800여명이 계주(桂州, 광서 계림桂林)로 내려가 주둔하게 됐다. 이국 땅에서 용병의 시간을 견디면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는 비적과 조정의 거래였다. 거래는 약속에 기반하는 것인데, 애초에 약속한 주둔기간 3년이 지났건만 조정은 귀향 명령 대신에 복무 기간을 6년으로 연장해버렸다. 불신이 팽배해지자 불만의 고름이 터져 나왔으며 게다가 관찰사의 가혹한 훈련과 만행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비등점을 넘고 있었다. 또다시 기약 없는 수병(戍兵) 복무를 감당하라는 것은 잔혹한 고통이었다.

868년 7월 전직 무녕군 장교 허길(许佶)은 마침 관찰사가 전근간 틈을 노려 계주도장(桂州都將)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식량창고를 약탈한 후 군량과 사료를 관리하는 양료관(粮料官) 방훈을 지도자로 추대해 서주로의 귀향을 도모했다. 방훈 군대는 병기 창고를 열어 무장한 후 계림을 출발해 호남, 호북, 안휘, 절강을 거쳐 서주로 귀향하는 과정에서 당시 지방 번진의 횡포에 고통 받던 농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병력도 점점 늘어나 8천여 명에 이르렀다. 조정에서는 애초에 약속을 어긴 것 때문에 적극적으로 토벌하지 못하고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일부 장병의 단순 반란이 서서히 농민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민란의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방훈은 ‘조정이 우리를 모두 주살하려 하니 어차피 싸우다 죽는 것이 백 번 낫다’고 외치며 서주의 본거지 팽성(彭城)을 공격했다. 계림으로 보냈고 복무 연장을 주도한 서주관찰사 최언증(崔彦曾)을 체포해 원한을 갚았으며 부하장수들은 물론이고 일족까지 몰살시켰다. 서주를 장악하고 장강 일대를 차단하자 수도 장안까지 위협했다. 이때 농민들의 참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만 명의 대규모 군대가 됐다. 조정이나 민란 지도자 모두 서로 감당하기가 어려운 규모로 급증했다.

조정에서는 방훈에게 서신을 보내 협상을 하는 한편 20만 명의 토벌군을 모집해 절도사 강승훈(康承训)에게 지휘하게 했다. 선봉장 대가사(戴可师)가 3만 명을 이끌고 진격해오자 방훈은 공성(空城) 작전을 펼쳐 방심하도록 유도한 후 기습공격을 감행해 토벌군과의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그러나 방훈은 토벌군을 과소평가하고 스스로 천하무적이라고 자만하고 향후 공격방향이나 전략을 수립하지 않고 방심했다. 게다가 음주와 오락에 점점 빠졌는데 마음 속으로는 반란군 두목으로 최후를 맞기 보다는 조정이 자신을 절도사로 인정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교만에 빠져 사치로 나태하면, 얻었으나 다시 잃게 되며 이겼으나 다시 패하는 것인데, 하물며 얻은 것도 이긴 것도 아니니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군사 주중(周重)은 직언하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방훈은 듣지 않았다. 지도자가 기회주의적 속성을 들어내니 덩달아 계림에서 생사를 함께 했던 수병들도 거만하고 난폭해졌다. 무고하게 재물을 약탈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민란 주동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방훈도 엄격한 규율로 처벌하지 않자 서서히 군율이 떨어지고 무법천지로 변해갔다. 농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명분과 규모를 키웠으나 군인의 최고 로망인 절도사에 편재되려는 유혹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심지어 ‘절도사를 얻을 지 말 지’ 고민하는 방훈을 비판하는 동요까지 아이들이 부르고 유행할 정도였다. 절도사를 간청하는 서신을 보내고 기다리고 다시 전투를 하다가도 또 기다리는 애처로운 내용이 <자치통감>에 기록돼 있다. 방훈의 지략과 풍모는 한 나라를 세울만한 됨됨이는 아니었던 듯하다. 웃음거리가 된 지도자를 비웃는 노래는 곧 고난을 살아가는 민중의 애환이자 바람이었건만 자신에 대한 비난은 한쪽 귀로 흘려버리려는 속성은 왜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일까?

조정은 서신을 지속적으로 보내 절도사의 녹봉을 줄 것처럼 심리전을 펼쳐 안심시키면서 대대적인 토벌을 준비한 후 공격해왔다. 민란 지도자로서의 신임이 우스꽝스럽게 변해가는 민란 군대를 이탈해 투항하는 장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전투가 제대로 수행될 리가 없다. 숙주와 서주에서 연이어 패배했으며 팽성이 함락 당한 후에 계림 출신 핵심 장병의 일가친척 수천 명이 공개 처형되자 급속도로 사기가 꺾였다. 방훈은 869년 9월에 이르러 2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도주했지만 서북에서 출전한 돌궐계 용병 사타족(沙陀族) 기병에게 철저하게 유린 당했다. 게다가 패잔병을 이끌고 강을 건너려 할 때 이미 투항한 옛 동지가 토벌군 선봉대로 나타나 앞길을 막자 더 이상 퇴로가 없었다.

한때 장안까지 위협할 정도로 거침 없었지만 목표의식이 불투명하고 한계에 다다르면 허망하게 쉽사리 무너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군인이 주도하고 농민을 비롯 사회 각계의 백성들이 호응해 1년 이상 전국을 휩쓸던 기세는 이후 황소의 난을 촉발했으며 당나라 멸망의 도화선(导火线)이 됐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에 동참해 거리를 누비며 문재인은? 안철수는? 박원순은? 안희정은? 이재명은? 생각하며 물음표를 계속 던졌다. 그들의 이 ‘민란’처럼 솟는 민중의 투쟁과 희망을 담는 그릇인가에 대한 끝없는 회의였다. 더불어 당나라의 방훈을 비롯해 민란의 리더가 실패의 촉매제가 된 수많은 역사를 되새겼다. 이상하게도 민란의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실패의 상징이 된 민란지도자와 현 야권 대선후보가 오버랩되는 것은 왜 일까? 민란 반역의 지도자와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 자는 있는가?

참다운 민란의 승리,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는데 앞장서는 진정한 지도자는 지금 TV 앞에 어슬렁거리는 대선후보가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 속에서 나올 일이다. 11.12 민중총궐기는 그 시작이다.

민란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은 졸고인 <민,란>(2015, 썰물과 밀물)에서 인용하고 일부 내용을 고쳐서 기재한 것임을 밝힌다. ‘중국민중의 항쟁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민,란>은 중국 방방곡곡을 취재하면서 느낀 소회와 얻은 자료를 기초로 집필된 이야기 책이다. 민란의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눈 여겨 볼 수 있는 잣대로서 읽히기를 바란다. [필자 주]

최종명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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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사실상 직무정지, 이제야 국정 제대로 돌아간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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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11/15 09:50
  • 수정일
    2016/11/15 09: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게릴라칼럼] 무자격 대통령의 하야가 곧 '국정 정상화'다

16.11.14 20:34l최종 업데이트 16.11.14 20:34l

 

이 기사 한눈에

 

  • 박 대통령이 '내치'를 포기한 순간부터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대통령과 여당, 보수언론은 더 이상 '국정공백' 을 걱정하지 마시라.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뒤,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직무 정지상태'에 들어갔다. 지난 두 주 동안의 대통령 일정을 보아도 알 수 있다.

10월 마지막 날인 31일에 대통령은 아무 일정을 잡지 않았고, 11월 1일에는 달랑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한 게 전부였다. 신임장 제정식이란 한국에서 일하게 된 외국 대사들을 맞는 의전 행사다. 다시 2일과 3일 이틀을 아무 일정 없이 보냈고, 금요일 4일에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2차 대국민 사과를 했다.  

지난주 첫날인 7일에는 (논란이 된) 종교계 원로와 만났고, 8일에는 국회 방문, 9일에 다시 종교계 원로 간담회와 미 대선 관련 상임위 보고를 받았다. 11월 둘째 주 5일 가운데 3일을 최순실 스캔들 해명과 여론 달래기로 보낸 것이다. 10일에는 도널드 트럼프와 10여 분 통화한 뒤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 행사에 참석했으며, 다시 11일에는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았다.  

 

요약하면, 지난 보름 동안 주말을 뺀 10일 중 4일을 아무 공식 일정 없이 지냈고, 다시 4일을 대국민 사과와 해명 등에 소비한 셈이다. 11월 절반이 지나는 동안 2~3일 정도를 주한 대사와 외국 대통령 의전 행사를 치른 것이 전부다. '내치'는 손을 놓은 채 '외치'를 의무방어 형태로 처리하는 식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통령이 일을 안 한다고 불평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박 대통령이 위기에 몰려 '내치'를 포기한 순간부터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과 여당, 보수언론은 더는 '국정공백'을 걱정하지 마시라.

언론, 법원, 검찰까지... 모두 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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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 돌아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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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돌아보라. 이제 비로소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고, 교육자가 교육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법원이 법원의 역할을 하고 있고, 경찰도 경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심지어 검찰마저 변하는 시늉을 보인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과 국민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 아닌가. 보라,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권력에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신기하게도 보수신문과 종편방송마저 자신들이 끔찍이 모시고 보살피던 바로 그 실세의 치부를 파헤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들이 대체 언제부터 시위를 대문짝 만하게 보도하며 '촛불 민의'나 '국민의 명령' 같은 표제를 달았던가.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그들은 결국 속내를 드러냈지만, 이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기로 하자).

한국교총은 어떤가. 이들은 국정교과서에 찬성해 온 대표적인 보수 교원단체다. 그동안 '국론통합 기대'라며 국정교과서를 공식적으로 지지해 온 이들이 최근에 입장을 바꿨다. "국정 교과서에서 친일, 독재미화, 건국절 제정 등 교육현장 여론과 배치되는 내용이 담길 경우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교육현장 여론'을 말하는 게 우습긴 하다. 역사교사들 92%가 일관되게 국정 역사 교과서에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태도 변화만 해도 반가운 것이, 보수 교육자들의 태도가 약간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법원은 시위대가 청와대 부근까지 행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들은 경찰의 금지 통고에 대해 "집회를 조건 없이 허용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여기에 청와대 근처까지 행진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로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이번 집회의 특수한 목적"을 언급했다. 당연한 결정에 왜 이리 마음이 뿌듯한가. 

경찰은 과거의 폭력성을 적잖이 누그러뜨린 모습이었다. 진작부터 그래야 했다. '폭력 시위'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 집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경찰이 몰랐을 리 없으나, '정권 심기 수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니, 검찰까지 검찰 모양새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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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 고발한 참여연대 "몸통 박근혜 대통령 수사하라" 참여연대 하태훈 공동대표를 비롯한 회원들이 지난 11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청와대 관계자 등, 재벌대기업 총수 7인을 고발하고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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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다 보니, 검찰까지 검찰의 역할을 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대통령의 소환조사 가능성을 말하더니, '통일은 대박이다'가 최순실 작품이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고 SBS가 보도했다. 사실 최순실 작품이 아닌 것을 밝히는 게 더 빠르다는 생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르 재단'과 '케이스포츠 재단' 설립과 운영에서 대통령이 해 온 역할을 밝히는 것이다. 이미 <한겨레> 등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총수들을 만나 구체적인 액수까지 밝히며 돈을 요구했다는 증언까지 나온 상태다.  

검찰은 청와대의 비선실세에 의혹이 드러낼 때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 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수사는 검찰이 추악한 정권 비리의 공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할 마지막 기회다. 

참으로 오랜만에 '감시견'과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해낸 보수언론은 다만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야권을 향해서는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면서 '내치 총리-외치 대통령'과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강천석 <조선일보> 논설고문은 지난 12일자 칼럼에서 개헌에 반대하고 '하야'를 요구하는 야권을 향해 "정권이 거저 통째로 굴러온 호기"로 삼는다고 비난하며 "대통령이 외교·국방 영역을 맡고 국회가 선택한 국무총리가 내정 전반을 책임지는 역할 분담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동아일보>도 대통령 하야 대신 탄핵 절차를 밟으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13일자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퇴진하면 현행 헌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후임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며 "우리 정치권이 그런 혼란을 감당할 능력이 있느냐"고 묻는다. 덧붙여 "무엇보다 정치권이 민심에 편승해, 아니 앞장서 하야를 외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지적한다. 

보수언론의 이런 태도는 아마도 아직 보수정치판을 새로 짜지도 않은 상태에서 상황이 급박히 전개되자, 권력 창출 과정이 자신들 통제권 밖으로 벗어날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에게 시간을 벌어주면서 자신들도 '킹 메이킹' 작업을 위한 시간을 벌려는 것이다.

보수언론의 훈수가 아니어도, 지금까지 대통령 태도를 보면 자신이 2선으로 물러나고 총리에게 내치를 맡기겠다고 발표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청와대는 지난 주말 100만 촛불이 모인 뒤 "대통령으로서 책임 다하고 국정 정상화를 위해 고심" 중이라는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책임총리제'는 여론 무마를 위한 상징적 제스처일 뿐이고,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밀실정치를 계속하도록 내버려두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조선>과 <동아>는 '사회 혼란'으로 위협하지만,
나라가 무자격자 대통령에게 휘둘리는 것 만큼 더 큰 혼란은 없다. 우리 사회는 그런 혼란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행해 온 '외치'는 재앙 그 자체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무책임한 '널뛰기'를 하다가 덥석 사드를 받아들였고, 미국에  등 떠밀려 굴욕적인 위안부 협상까지 떠안았다. 여기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가서명까지 함으로써 일본의 재무장 계획에 힘을 보태는 한편, 자위대의 한국 주둔을 위한 법적 장치까지 마련해 주었다.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에서 제 나라 군대의 전시작전권을 '무기한' 미국에 넘긴 게 누구인가. 바로 박 대통령이다. 이제 그 작전권은 아무런 검증도 되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손에 자동으로 넘어갔다. 보수언론은 이런 무책임한 지도자에게 외교와 안보를 계속 맡기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내치의 정상화'가 대통령이 손을 뗀 데서 시작 되었듯, '외치의 정상화' 역시 그가 손을 떼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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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하라! 지난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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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 우리가 경험한 '비정상화의 정상화'는 시민이 주인이 될 때 어떤 신나는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은 체제의 변화를 가져왔지만, 시민들은 체제 변화에 걸맞은 사회적 변화를 누리지 못했다. 그동안 유예되었던 민주사회의 모습을 이제 비로소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냥 찾아온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세월호 유가족의 끊임없는 외침과 요구가 있었고, 백남기 선생의 희생이 있었으며, 이들과 연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행동이 있었고, 용기있는 소수 언론인이 있었다. 

이제 겨우 썩은 고목의 밑동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보수언론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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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또 국민여론 짓밟겠다는 건가”

평화시민단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가서명 강행 중단 촉구(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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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4  14: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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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평화시민단체들은 14일 오전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가사명 강행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4일 일본 도쿄에서 진행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3차 실무협의에서 가서명이 추진되는 가운데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평화시민단체들은 이날 오전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가서명 강행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평화 단체들은 지난 주말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인 100만 명의 국민에 의해 박근혜 정권은 이미 정치적 탄핵을 당한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매국적인 협정체결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는데 대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며 강행 중단을 거듭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10월 27일 체결 입장을 밝힌 지 불과 보름여 만인 오늘 가서명까지 강행하려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한·미·일 3각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의 강력한 제도적 장치,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한반도 재진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들에 따르면, 한일 양국이 2년전 체결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에도 불구하고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은 미국을 경유하는 간접적 정보 교환 방식을 실시간 교환방식으로 전환하고 정보교환의 범위도 종전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관한 정보’에서 ‘방위 관련 모든 정보’로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협정이 체결되면 먼저 한국의 AMD-cell(탄도탄작전통제소)과 일본의 JADGE(자동화된 항공미사일방어통제소)간에 직접적이고 자동적인 연동이 가능하게 되고 양국간 개별적인 무기체계(이지스체계)의 연동도 가능하게 된다.

이를 통해 한국이 초기에 탐지한 중국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체계를 마련한 미국과 일본은 이를 조기경보로 활용해 요격의 기회와 가능성을 높이려는 것인데, 이는 곧 한·미·일 공동 미사일방어체계(MD) 구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사드 한국 배치와 함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은 미·일MD의 하위 파트너로 확고히 편입되고 한미일 삼각 동맹에 속박되어 중국을 적대하게 되는데, 이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 무한 군비경쟁 등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안보법제 재·개정을 통해 한반도 진주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가능케 한 일본이 이번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통해 정보교환의 범위를 ‘방위 관련 모든 정보’로 확장함으로써 한국의 공항, 항만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서해·남해의 중국군함 등의 활동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하게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는 일본의 한반도 재침탈 길을 트는 것이자 한국이 미일의 대중국 전선에 가담하는 일이 되며, 한일군사동맹의 문턱을 넘는 일이자 한미일 삼각동맹을 여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일 양국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는 이유는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발한 SM-3BlockⅡA나 F-35 등을 한국에 제공할 때 이에 관한 군사·기술적 정보의 유출에 대한 법적 방지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미국에 이어 일본에까지 군사적으로 종속되는 길을 여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오미정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은 “정치적 탄핵 와중에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시도하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며, 탄핵 위기에 처해 있는 박근혜 정권이 협정 가서명을 추진하는데 대해 강력 규탄했다.

최은아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장도 “협정의 최종 승인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으나 박근혜대통령은 국가의 주요정책을 결정할 자격을 상실했으므로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주말 100만 촛불 ‘범국민행동’을 이끈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도 이날 보도자료를 발표, “국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협정을, 외교 안보에서도 식물상태인 박근혜 정권이 그것도 밀실협상으로 강행처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박근혜 정권은 당장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아무도 대표하고 있지 않은 식물 정권이 일방적으로 감행한 협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효화될 것이며, 따라서 지금 체결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우리는 미국, 일본과 국제사회에 분명히 천명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지난 1일 도쿄, 9일 서울에서 두 차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위한 과장급 실무회의를 진행하고, 14일 도쿄에서 3차 협의 일정을 진행해 가서명한다는 방침이다.

국방부는 협정문안을 완성해 법제처에 심사의뢰를 한 상황이며, 야 3당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논의 중단을 촉구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강행할 경우 한민구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자회견문(전문)>
매국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가서명 강행 즉각 중단하라!

한일 당국이 국민의 강력한 반대 여론을 짓밟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한 가서명을 14일 강행한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은 외교안보 문제를 포함한 국정 전반에 걸쳐 민주공화국의 정체성 자체를 무너뜨림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이미 정치적 탄핵을 당했다.

100만의 국민이 서울의 심장부에 모여 정권 퇴진을 외친 사상 초유의 상황이 이를 웅변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근혜 정권이 미국과 일본의 강요에 따라 한미일 MD와 일본의 한반도 재침탈의 길을 여는 협정 체결을 마치 군사작전을 감행하듯이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이에 우리는 100만 촛불을 비롯한 온 국민의 이름으로 매국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가서명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한일 당국이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이 체결된 지 2년 만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는 이유는 한일이 미국을 경유하여 간접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도록 되어 있는 방식을 실시간 교환 방식으로 전환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관한 정보’로 제한되어 있는 정보 교환의 범위를 ‘방위 관련 모든 정보’로 확장하며, 법적 구속력이 없는 기관 간 약정을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국가 간 조약으로 바꿔 한일관계를 동맹으로 발전시키면서 정보의 유출도 제도적으로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한일이 실시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려는 것은 핵심적으로 한미일 공동 MD작전을 수행하는 데서 발생하는 정보 공유의 제약을 뛰어넘겠다는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의 AMD-cell(탄도탄작전통제소)과 일본의 JADGE(자동화된 항공미사일방어통제소)간의 직접적이고 자동적인 연동이 가능하게 된다. 또 한일 사이에 개별적인 무기체계(이지스체계)의 연동도 가능하게 된다.

이를 통해 중국이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초기 정보를 가장 빠르고 정확히 탐지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는 한국과 실시간 공유체계를 마련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이 이를 조기경보로 활용하여 요격의 기회와 가능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이는 한미일 공동MD 구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한미일 삼각 MD가 구축되면 이지스함 등 한국의 MD자산들은 미국과 일본 방어를 위해 동원되게 된다. 한미일이 미사일 조기경보훈련을 계속하는 것도 이와 연관된 것이다.

사드 한국 배치와 함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은 미일MD의 하위 파트너로 확고히 편입되고 한미일 삼각 동맹에 속박되어 중국을 적대하게 된다. 이것은 미국과 일본을 지키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에게는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 무한 군비경쟁에 휩쓸려 미일의 총알받이가 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요원해 질 것이다.

일본은 안보법제 제개정을 통해 평시부터 중요영향사태시, 존립위기사태시, 무력공격사태시에 이르는 모든 경우에 한반도에 진주하거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방위 관련 모든 정보’에는 일본의 안보법제 실행을 위해 필요한 한반도에 대한 모든 군사정보가 포함될 수 있다. 여기에는 일본이 오래 전부터 요구해왔던 한국의 공항과 항만에 대한 정보도 포함될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 유사시 미국인이나 일본인을 구출하거나 소개하러 오는 일본의 항공기와 함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 마에다 사토시 방위정책국장이 “현재 한미일정보공유약정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이라는 극히 한정된 범위만 다루고 있다”며 “일본의 안보법제는 여러 가지 (우발)사태와 국면을 상정해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GSOMIA를 통해) 한일 양국 간 다양한 군사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이런 상황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방위 관련 모든 정보’에는 일본이 서해나 남해에서의 중국군함 또는 잠수함 활동에 관한 정보도 포함될 수 있다. 아사히신문은 “해상자위대는 ‘역사적인 배려’(자위대 관계자)로 중국과 한반도 사이에 있는 서해에 군함을 기본적으로 파견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지적하고 “서해의 한국해군의 협력이 있으면 중국 군함에 대한 감시능력이 크게 향상된다.”(아사히 2012. 11. 9)고 보도하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은 일본의 한반도 재침탈의 길을 트는 것이자 한국이 미일의 대중국 전선에 가담하는 일이다. 이것은 한일군사동맹의 문턱을 넘는 일이자 한미일 삼각동맹을 여는 길이다. 이는 나라의 자주독립과 통일의 미래를 미일에 팔아먹는 매국행위인 것이다.

한일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정보보호협정을 맺는 이유는 미일이 공동 개발한 SM-3BlockⅡA나 F-35 등을 한국에 제공할 때 이에 관한 군사기술적 정보의 유출에 대한 법적 방지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미국에 이어 일본에까지 군사적으로 종속되는 길을 여는 것이다.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북핵 미사일 대응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종심거리가 짧은 한반도 지형으로 인한 미사일 요격의 시간적 제약과 한국보다 멀리 떨어진 일본의 불리한 지리적 조건 등을 고려할 때 일본이 탐지한 정보는 우리에게 쓸모가 없다.

우리 군은 2012년 4월 13일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직후부터 실시간으로 탐지 추적하였지만 일본은 발사 뒤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발사 사실을 확인하였다. “(일본 이지스함이나 FPS-5 등의)레이더가 수평선 아래는 탐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바로 탐지 못하는 것은 사실”(2016. 9. 29)이라는 다케이 도모히사 일본 해상자위대 막료장의 증언은 일본이 확보하는 정보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방부는 “우리나라는 러시아를 포함해 19개국과, 일본은 미국 등 6개국과 정보보호협정 체결로 동맹으로 발전한 나라가 없다”(국방부의 대국회 보고내용)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일정보보호협정과 한국이 여타 나라와 맺은 정보보호협정은 그 목적과 주고받는 정보의 성격, 정보보호수준에서 크게 다르다.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단순히 한일의 군사교류에 머무는 협정이 아니라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한일간 공동대처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북 적대적 성격의 협정이며 최첨단 무기 및 군사기술의 대한국 이전까지를 상정하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군사동맹 단계로의 발전을 목표로 설정한 협정이다.

이런 점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이다. 뿐만 아니라 이 협정은 한국군의 대일 군사적 종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이다.

또한 일본이 제공하는 정보 보호를 위해 군사기밀보호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제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이다. 따라서 정부 주장과는 달리 이 협정은 헌법 제 60조 1항에 따라 반드시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한미일 MD와 삼각 군사동맹을 구축하고 일본의 한반도 재침탈의 길을 열어 미일에의 종속을 초래하여 평화와 안보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며 균형있는 대외관계와 자주적 통일의 길을 가로막는 백해무익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가서명을 강행하는 박근혜 정권을 온 국민의 이름으로 강력히 규탄한다.

우리는 이미 정치적으로 탄핵되어 자격도 권한도 없는 박근혜 정권에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과 관련된 일체의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대통령직을 즉각 사임할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

2016. 11. 14.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기독교평신도시국대책위원회, 노동당, 노동인권회관, 다른세상을향한연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불교평화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 사월혁명회, 사회진보연대, 새로운사회를향한연대, 새로하나,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예수살기,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사), 전국빈민연합,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전국학생행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통일광장, 통일의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재향군인회, 평화통일시민행동,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진보연대, 한국청년연대, 한일군사협정반대국민행동,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AWC한국위원회

 

<박근혜퇴진 비상국민행동 보도자료(전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강행 중단하라!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탄핵된 박근혜 정권이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강행하고 있다.

이미 2012년 밀실협정을 추진하다가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쳐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협정을, 박근혜정권이 이미 식물상태가 된 10월 27일부터 논의를 재개한 후 실무협의를 거쳐 11월 14일에 실무협의를 갖고 가서명을 하겠다고 한다.

이미 국민적 반발로 폐기된 이 협정을 이 시점에서 누가 밀실협상으로 주도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

사드배치를 강행처리함으로써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시 시도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와 한반도의 평화를 더욱 위협한다. 또한 반성 없이 군국주의화를 강행하는 일본과의 군사정보협정은 일본의 한반도 재침탈의 길을 터주는 것이다. ‘한일군사정보협정’에 대해 한민구 국방장관은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전제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해 10월 국회에서 ‘일본이 우리와 협의해서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자위대의) 입국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협정을, 외교 안보에서도 식물상태인 박근혜 정권이, 그것도 밀실협상으로 강행 처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정권은 당장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중단해야 한다.

국민들을 설득할 자격도 논리도 없는 이들이 한일안보보호협정을 체결하려고 서두르는 것은 협정의 주도권을 다른 국가에 일방적으로 내주는 것에 불과하다.

아무도 대표하고 있지 않은 식물 정권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협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효화될 것이며, 따라서 지금 체결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우리는 미국, 일본과 국제사회에 분명히 천명한다.

2016년 11월 14일
박근혜퇴진 비상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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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박근혜와 '타협'할 생각인가?

 
[서리풀 논평] 11월 12일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2016.11.14 07:48:29
 
3주째 같은 일을 두고 '정치' 논평을 써야 하는 상황이 괴롭다. 정치를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런 중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본래 책임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대표적인 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는 하나, 미국이 그냥 남의 나라인가. 그토록 '혈맹'을 강조해 온 한국의 모든 것이 그냥 떨어져 있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도 영향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 수출과 사드, 그리고 의료 보험에 이르기까지, 공부하고 살펴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예산도 중요한 때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서 보듯이, 예산은 시시콜콜 생활이고 이해관계다. 요구하고 주장해야, 그리고 민주적이어야 그나마 눈곱만큼이라도 공공성이 생긴다. 그 중요한 것에도 눈길을 줄 여유를 찾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중단된 것이 대통령 퇴진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어느 것 한 가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없으니, 대통령이 물러나는 도리밖에 없다. 어정쩡한 중간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생'이 살기 위해서는 이 길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물러나야 하는 이유. 나랏일을 챙기고 길을 잡기에는 모든 정치적 권위를 잃은 상태다. 국방과 외교는 계속 담당한다? 내부와 외부가 모두 믿지 않으니, 불가능하다. 2선 후퇴, 책임 총리와 거국 중립 내각? 여당과 야당이 100% 국민의 위임을 받아야 작동할 수 있으나, 이들 또한 정치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니 불안과 불신이 지속할 것이다. 그보다는 한 걸음 더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요구는 명확하나 방법과 경로가 흐릿하다. 100만 집회가 끝났으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연구소도 지난 토요일 거리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다른 것은 언론이 보도했으니 그만두고,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너른 틈을 인식해야 했다. 시민의 요구는 명확하고 강력하지만, 대의 민주주의 체제는 이를 전혀 대표하지 못하는 상태. 그리고 계속될 교착 상태. 

우리는 현재 상황을 이렇게 판단한다. 많은 이에게 익숙할, 권력의 크기와 균형이라는 관점이다. 

첫째, 지금까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보인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 생각하면, 권력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닌가? 물러나란다고 순순히 말을 들을 것이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권력을 놓으면 곧 정치적, 사회적 '죽음'이라고 생각할 텐데, 그들의 반응과 행동은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모두 아는 대로, 권력의 포기는 반성, 성찰, 결단할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 힘으로 압박하지 않으면 끝까지, 온갖 핑계를 동원해서 버틸 것이 뻔하다.

둘째, 민주당은 '안전 운행' 모드다. 대선에서 이길 확률이 높다고 보고 6개월쯤 더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승부수를 던지기보다는 패착만 피하자는 것처럼 보인다. 막다른 길이 아니면, 탄핵 소추와 같은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약간만 모양을 더 갖추면 민주당은 동의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명목으로라도 2선 후퇴를 선언하고 국회를 중심으로 (모양만?) '거국' 내각을 구성하는 안에 합의하는 경우다. 이번 주에라도 일은 이렇게 '풀릴' 수 있다. 

이런 타협은 2중, 3중으로 문제다.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물론, 대의제 민주주의가 목표로 하는 대표성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내각에 어떤 사람이 장관을 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선언이니 합의니 하는 것으로는 헌법과 법률의 근거가 약하니 현실 변화에도 견디기 어렵다. 박근혜 정권이 (조금이라도) 지지를 회복하는 대로 얼마든지 '반동'에 나설 수 있다면, 중립이니 거국이니 하는 것은 불완전한 균형에 지나지 않는다. 반동을 지원할 기존 권력은 충분히 강하다. 

셋째, 시민 사회는 자력으로 변화를 끌어내기에 역부족이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체제 바깥에서 체제를 압박, 침투해야 하는 것이 본질적 한계다. 축적된 힘이 충분치 않고 단독으로는 정치적 실천이 제한된다는 점도 문제다. 구조에서 비롯된 이런 상황을 금방 역전할 수는 없다. 


이런 때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의 동력을 유지하면서도 제도 권력을 압박하고 변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확대와 공고화를 잣대로, 시민 각자가 직접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결과다.

첫째, 다시 탄핵(소추)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떠나, 탄핵은 민주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파괴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공식' 절차이다.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체화하며 제도화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임무다. 이 자체가 가치라 해야 한다. 

탄핵은 또한 정치 공간이다. 이제 막 100만이 모였으니 다음에는 훨씬 더 큰 규모가 아니면 '임팩트'를 보장할 수 없다. 탄핵 소추는 시민의 열기가 유지되고 커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다. "시민이 실천하는 '거리 민주주의'는 국가 권력 내부의 정치적 공간(탄핵 소추)과 결합해야 살아나고 자라날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너지 또는 시민 권력의 부분적 제도화"가 필요하다. (☞관련 기사 : '탄핵'을 조직해야 한다) 

둘째, 탄핵 소추를 위해, 유권자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대선 출마 예상자들에게 직접 압력을 가해야 한다. 미국식 정치 운동이라 해도 좋다. 전화, 이메일, 블로그, SNS, 홈 페이지 게시판, 직접 방문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당신과 당신이 소속된 정당이 탄핵에 나서라고 직접 요구해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음에 (자기) 선거에서 지는 것이다. 시민이 곧 유권자라는 평범한 사실에서 출발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겠다는 경고가 가장 큰 '가용' 권력이다. 보장 받은 대선 주자가 있을 수 없다. 시민이 가진 권력이 '대권' 주자나 정당이 가진 알량한 권력을 이겨야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셋째, 시민 권력의 힘을 다시 결집하고 더 크게 드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 총파업'을 조직할 것을 (지난주에 이어) 다시 제안한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어지럽게 한 결과 국민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도 그 책임을 지지 않으니, 국민이 표시할 수 있는 적극적 항의는 국민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잠시 중단하는 것이다.

국민 '파업'의 권리는 직장, 학교, 가게를 가리지 않고, 생산과 소비를 망라하며, 공공과 민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정을 마비시켰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희생해서 스스로 비우고 멈춘다. 시민이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은 생산하고 소비하는 물적 토대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비움으로써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역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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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출현, 누구에게 공포스러운 악재인가?

<개벽예감 227>트럼프의 출현, 누구에게 공포스러운 악재인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장 
기사입력: 2016/11/14 [08:30]  최종편집: ⓒ 자주시보
 
 

독자 여러분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무슨 일인지 지난 주 부터 사진 전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내용이 워낙 중요하기에 한호석 소장의 글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하여 먼저 글부터 올려드립니다. 사진을 받는 즉시 완성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장의 글은 11월 8일 치루어진 미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의 대 내외정책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당연히 조선반도문제도 다루었습니다.

 

<차례>
1. 세계주의 버리고 고립주의 택한 정치적 이단아
2. 다시 살펴보아야 할 중립법과 닉슨교의
3. 대침체, 아메리카제국의 세계화를 저지하다 
4.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할 중대조치들
5. 트럼프의 출현은 한국에게 공포스러운 악재
6. 트럼프는 조미관계변화를 불러올 것인가? 
7. 로드먼의 평양방문, 트럼프의 지지발언

                                                  

▲ <사진 1> 이 사진은 이번 미국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부동산재벌총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라!"는 선거구호 앞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장면이다. 2016년 11월 8일 그는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트럼프는 4년 전 공화당 대선후보 밋 롬니가 오바마에게 패하였을 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라!"는 구호의 저작권을 특허청에 신청하였다. 그는 경제위기에 빠진 미국을 구원해줄 강한 대통령의 출현을 바라는 기저여론을 간파하였고, 그에 걸맞은 선거전략을 펼쳐 승리할 수 있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세계주의 버리고 고립주의 택한 정치적 이단아

 

미국의 유력한 여론조사기관인 퓨연구쎈터(Pew Research Center)가 2013년에 발표한 여론조사결과가 있다. 그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이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국내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질의문항에 찬성한 응답자는 80%였고, 반대한 응답자는 16%였다고 한다. 미국의 여론이 이처럼 국제문제보다 국내문제에 압도적인 관심을 드러낸 것은 그 여론조사기관이 1964년부터 여론조사를 실시한 이후 50년 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특이현상이었다. 


바로 그런 특이현상을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한 재벌총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다. <워싱턴포스트> 2016년 5월 5일 보도에 따르면, 2012년 11월 6일에 실시된 미국 대선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Mitt Romney)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에게 패하였는데, 그 선거일로부터 엿새가 지난 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라(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의 저작권을 미국 특허청에 신청했다고 한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공화당 지도부는 청년층, 중남미이민계층, 여성계층의 표심을 끌어당기지 못해 대선에서 패했다고 분석하고 그 계층들의 표심에 호소하는 새로운 대선전략을 거론하였으나, 트럼프는 금융위기와 세계화정책으로 주저앉은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구호로 유권자의 표심을 사로잡겠다는 독자적인 대선전략을 구상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가 막말이나 내뱉는 괴짜선동가가 아니라 기저여론을 포착하는 예민한 감각을 지녔음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휘몰아친 주택시장붕괴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원해줄 강한 대통령의 출현을 바라는 기저여론이 2010년부터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트럼프의 대선승리는 놀라운 이변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로 평가된다.


미국이 국제문제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국내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대중의 여론을 정치학 개념으로 다듬어놓은 것이 고립주의(isolationism)라는 정치이념이다. 고립주의와 쌍벽을 이루며 그 대척점에 놓인 또 다른 정치이념은, 정반대로 미국이 국내문제보다 국제문제에 관심을 더 집중해야 한다는 세계주의(globalism)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정치이념변천사는 고립주의 대 세계주의가 대립하면서 시대상황에 따라 교차되어온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정치이념변천사를 통해 이번 미국 대선국면을 바라보면, 힐러리 클린턴(Hillary D. R. Clinton)은 이제껏 미국의 지배적인 정치이념으로 자기 위치를 굳힌 세계주의의 대변자로 대선무대에 등장하였고,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에서 세계주의를 대체하기 위한 정치이념으로 대두된 고립주의의 대변자로 대선무대에 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계주의 대 고립주의의 이념대결에서 고립주의가 승리한 이번 대선은 미국 사회의 기저에서 대체이념으로 대두된 고립주의가 수명이 다한 세계주의를 눌렀다는 의미를 지닌다.


얼마 전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었을 때, 공화당 상층부가 자기 당의 대선후보인 그를 배척, 외면하였던 까닭은 그가 공화당이 추구해오는 세계주의에서 이탈하여 고립주의를 택하였기 때문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된 미국의 양당체제의 이념적 심층부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화당의 정치이념을 세계주의로, 민주당의 정치이념을 고립주의로 각각 속단하기 쉽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제껏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세계주의를 맹신해왔고,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세계주의에 더 강하게 집착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에서 초당적인 정치이념으로 공인되어온 세계주의를 버리고 고립주의를 택하였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승리는 정치적 이단아의 돌출이변으로 되었음이 드러난다. 


세계주의라는 이념은 미국 정치권에만 들어박혀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여론을 움직이는 언론계와 학계에도 세계주의가 들어박혀 있다. 고립주의를 택한 트럼프가 대선후보로 등장하였을 때, 미국의 언론계와 학계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그를 비하, 배척하면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 응원하였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만일 트럼프가 공식석상에서 막말을 내뱉는 선동적 기질을 자제하면서 좀 더 세련되게 처신하였더라면, 이번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을 것이다. 세계주의에서 고립주의에로 전환하여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끌어내주기를 바라는 기저여론을 타고 상승세를 이어간 도널드 트럼프는 거친 말버릇이 감점요인으로 되는 바람에 힐러리 클린턴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지 못했다.

 

 

2. 다시 살펴보아야 할 중립법과 닉슨교의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왜 미국의 기저여론이 세계주의에 등을 돌리고 고립주의로 기울어졌을까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명하려면 미국의 정치이념이 변천되어온 역사를 훑어보아야 하는데, 정치이념변천사는 전쟁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전쟁이라는 국가행위는 국가의 지배적 정치이념을 그 밑바닥까지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국은 전쟁으로 건국되었고 전쟁 속에서 장성되어온, 가장 완전한 의미의 전쟁국가이다. 북미원주민을 말살하는 살육전쟁을 벌이면서, 대영제국의 식민지지배를 배격하는 독립전쟁도 벌이는 이중전쟁의 와중에 아메리카합중국이 세워졌다. 건국과정부터 그러했으니, 건국 이후 미국의 발걸음은 언제나 무력침공과 침략전쟁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수많은 크고 적은 전쟁으로 얼룩진 미국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전쟁이 없었던 부전기(不戰期)가 있었다. 전쟁이 없다고 해서 평화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므로, 평화기가 아니라 부전기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미국은 1935년부터 1940년까지 6년 동안 전쟁을 하지 않았다. 미국 역사에 제1차 부전기로 기록된 그 기간에 무력침공과 침략전쟁으로 향하려던 미국의 발목을 붙잡은 요인은 미국 연방의회가 1935년부터 1939년까지 해마다 채택한 중립법(Neutrality Act)이다.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그 법에 발목이 잡힌 미국은 6년 동안 부전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1930년대 중반에 출현한 중립법은 고립주의의 법적 표출이었다. 1930년대 후반기 미국 정치를 지배하였던 고립주의는 1941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자취를 감췄다.

                                                        

▲ <사진 2> 미국이 전대미문의 대공황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던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연방의회는 중립법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법이다. 이 법에 발목이 잡힌 미국은 6년 동안 전쟁을 하지 않았다. 1930년대 중반 미국의 경제파탄 속에서 제정된 중립법은 고립주의의 법적 표출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주장한 '미국우선주의'는 이미 1930년대 후반 미국에서 사용된 바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세계의 지배자’로 등장하여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고, 약소국들에 대한 군사개입, 무력침공, 침략전쟁을 자행하였다. 아래의 연표는 미국이 1946년부터 2016년까지 군사개입, 무력침공, 침략전쟁을 끊임없이 계속해오는, 호전광이 지배하는 전쟁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필리핀 침공 (1946년) 
그리스 침공 (1947년) 
6.25전쟁 (1950-1953년) 
과떼말라 침공 (1954년) 
베트남전쟁 (1955-1975년) 
도미니까공화국 침공 (1965-1966년) 
그레나다 침공 (1983년) 
빠나마 침공 (1988-1990년) 
걸프전쟁 (1990-1991년) 
이라크내전 군사개입 (1992-1996년) 
아이티 침공 (1994-1995년)
보스니아, 헤르쩨고비나 공습 (1995년)
아프가니스탄, 수단 공습 (1998년)
아프가니스탄전쟁 (2001년 이후 현재진행형) 
예맨내전 군사개입 (2002년 이후 현재진행형)
이라크내전 군사개입 (2003년 이후 현재진행형)
파키스탄내전 군사개입 (2004년 이후 현재진행형)
쏘말리아 침공 (2007년)
리비아 침공 (2011년)
시리아내전 군사개입 (2011년 이후 현재진행형)

 

그런데 위에 열거한 연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이 끝난 이듬해 1976년부터 그레나다를 침공하기 전인 1982년까지 7년 동안 전쟁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1935년부터 1940년까지 6년 동안 제1차 부전기를 거쳤고, 1976년부터 1982년까지 7년 동안 제2차 부전기를 거친 것이다. 그런 두 차례의 부전기가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세계자본주의체제는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고 부르는 재앙을 겪었다. 1929년 10월 29일 미국의 주식시장이 무너지는 급변사태로 촉발된 그 재앙은 미국의 실업률을 25%까지 끌어올린 살인적인 실업대란을 몰고 왔다. 1930년대 전반기에 미국을 휩쓴 경제붕괴와 실업대란은 미국의 자본주의체제가 조락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이 그처럼 조락상태에 빠졌으니 다른 나라에 대한 군사개입, 무력침공, 침략전쟁은 생각할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 미국 역사에 제1차 부전기가 기록된 원인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1976년부터 1982년까지 7년 동안 제2차 부전기를 거쳐야 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세계자본주의체제는 1969년부터 이른바 스택플레이션(stagflation)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을 겪었다. 스택플레이션이란 실업대란과 물가폭등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경제붕괴를 뜻한다.

                                                     

▲ <사진 3> 이 사진은 1969년부터 미국을 강타한 스택플레이션으로 실업대란과 물가폭등이 한꺼번에 몰아쳤을 때, 1972년 미국의 빈곤층 어린이들이 시위행진을 준비하는 장면이다. "닉슨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는 구호가 적혀 있다. 당시 미국을 강타한 스택플레에션으로 미국은 1976년부터 1982년까지 7년 동안 전쟁을 하지 않았고, 닉슨 대통령은 닉슨교의를 발표하였다. 닉슨교의는 1930년대 후반 미국에 팽배하였던 고립주의의 정치적 부활을 의미한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969년에 미국의 상품생산량이 전 세계 상품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에서 27%로 추락하였다. 1971년에 미국의 실업률은 6.1%로 상승하더니, 1975년에는 9%까지 치솟았다.

무너지는 경제를 구해보려고 다급해진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이 달러화를 마구 찍어내자 1971년의 통화공급량은 10%로 급증하였고, 그에 따라 물가상승률은 5.84%로 치솟았다. 
더욱이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지출한 막대한 전쟁비용이 국가재정부담을 가중시켰고, 1973년 10월에는 이른바 석유위기(Oil Crisis)라는 사상 초유의 급변사태가 스택플레이션으로 허덕이던 세계자본주의체제를 덮쳤다.  
미국은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무후무한 비상대책들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1971년 8월 15일 금본위제를 폐지하였고, 임금과 물가를 90일 동안 동결시키는 조치를 취하였고, 1973년 3월에는 고정환율제를 폐지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제1차 부전기의 고립주의가 중립법을 낳았고, 제2차 부전기의 고립주의가 닉슨교의(Nixon Doctrine)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닉슨교의란 무엇인가?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은 1969년 7월 25일 필리핀 방문길에 중간기착한 괌(Guam)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닉슨교의에 대해 처음 언급했는데, 이것은 그가 1969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 뒤 6개월 만에 파격적인 내용의 대외정책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닉슨교의를 요약하면, 미국이 동맹국을 위한 전쟁을 할 것이 아니라 동맹국 스스로 전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1969년 11월 3일 그는 닉슨교의를 좀 더 명확히 설명한 문서를 발표하였는데, 그 문서는 이런 마지막 문장으로 끝난다. “이전 행정부들에서 우리는 베트남전쟁을 미국화하였다. 현 행정부에서 우리는 평화추구를 베트남화하고 있다.”


닉슨교의의 출현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 관리해오던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종전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조락했기 때문에, 새로운 관리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준다. 당시 미국이 모색한 새로운 관리방법은, 적국들과의 종전 또는 정치협상, 그리고 전진배치한 해외무력의 감축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국(북베트남)과 평화회담을 시작하였고, 핵강국으로 등장한 적국(소련)과 핵군축회담을 진행하면서 유럽에서 긴장완화를 추구하였고, 신흥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적국(중국)과 국교수립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였고, 전진배치한 해외무력(주한미국군)을 감축한 것이다. 닉슨 행정부는 당시 주한미국군 61,000명 중에서 제7사단 20,000명을 1971년 3월까지 전격적으로 감축한 바 있다.

                                               

▲ <사진 4> 이 사진은 1973년 닉슨 대통령이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회담하는 장면이다. 닉슨교의에 따라,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끝내기 위해 북베트남과 평화회담을 시작하였고, 핵강국으로 등장한 소련과 핵군축회담을 진행하면서 유럽에서 긴장완화를 모색하였고, 신흥 핵보유국으로 등장한 중국과 국교수립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였으며, 주한미국군을 감축하였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대침체, 아메리카제국의 세계화를 저지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 날로부터 꼭 27년 전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유럽을 동서로 갈라놓은, 155km에 이르는 그 장벽이 무너진 것은, 냉전체제의 붕괴를 의미하였다. 냉전체제의 붕괴로 사회주의진영의 견제와 억제를 받지 않게 된 미국은 약소국들이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무조건 굴복, 순응하라고 강요하였다. 약소국들을 굴복, 순응시켜 제국주의세계체제를 확장, 완성하려는 아메리카제국의 정치이념이 바로 세계화(globalization)였다. 세계주의는 정치적 세계화, 경제적 세계화, 문화적 세계화의 세 방향에서 서로 동조, 융합하면서 세계를 휩쓸었다. 


세계화의 첨병노릇을 해오는 국제통화기금(IMF)은 2000년 4월 12일에 펴낸 자료 ‘세계화: 위협인가 기회인가?’에서 그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해놓았는데, 그것은 국경을 넘어선 무역과 금융자산의 자유이동, 자본과 투자의 자유확대, 이민의 자유화, 지식과 정보의 자유파급을 뜻한다.


아메리카제국의 산업자본은 저임금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자국의 생산수단을 저개발국으로 이전하여 세계화된 착취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자국 산업자본의 해외이전으로 국내산업시설이 공동화되고, 저임금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이민의 자유화’라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의 노동력을 미국에 끌어들여 국내착취체제를 더욱 보강하였다.


흔히 월가(Wall Street)의 지배자로 불리는 아메리카제국의 금융자본은 동맹국들과 저개발국들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이윤을 수탈하기 위해 세계화된 금융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국경을 넘어선 상품과 자본의 자유이동을 국제법으로 보장해주는 아메리카제국의 자유무역협정이 세계적 범위로 확장되었다. 아메리카제국의 자유무역체제는 지금 오바마 행정부가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으로 추진하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아메리카제국의 세계화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아메리카제국의 정치권은 이른바 미국식 민주주의(American democracy)를 동맹국들과 약소국들에 자유롭게 이식시키는 정치적 세계화를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아메리카제국의 정보기관들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이식을 거부하는 약소국들에게 내정간섭을 자행하였고, 아메리카제국의 군부세력은 미국의 해외자본과 해상무역로를 지키기 위한 해외무력 증강책동에 광분하였다.


아메리카제국의 언론계와 학계는 세계화를 반대하는 약소국들을 ‘자유세계의 적’으로 악마화하면서, 그 적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설교하였고, 미국식 민주주의의 자유이식을 거부하는 약소국들에 대한 내정간섭과 군사개입, 무력침공과 침략전쟁을 정당화, 합리화하였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이후 마치 고삐 풀린 미친 소처럼 날뛰기 시작한 아메리카제국의 난동은 약소국들에게 공포와 악몽, 수탈과 살육이었다.


그런데 아메리카제국이 세계화 난동을 자행하던 중에 뜻하지 않은 급변사태가 또 일어났다. 아메리카제국과 세계자본주의체제는 이른바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부르는 경제붕괴위험에 빠진 것이다. 이 심각한 위험은 미국의 주택시장붕괴로 시작되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미국의 주택시장이 붕괴되었는데, 주택융자금을 갚지 못한 미국인들은 채권자인 은행에게 주택을 빼앗겼고, 영세사업체들은 무더기로 도산하였으며, 가계부채가 폭증하였다. 2008년 미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90%로 급증하였으며, 2009년 미국의 실업률은 10%로 치솟았다.

                                                      

▲ <사진 5> 2007년부터 미국의 주택시장붕괴로 시작된 대침체는 미국의 근로대중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었다. 위의 사진은 2008년에 집을 잃고 한지에 나앉은 수많은 노숙자들이 천막을 치는 바람에 네바다주 리노시 중심가에 생겨난 천막촌의 모습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나 1970년대 스택플레이션이 10년 안에 끝났던 것과 달리, 오늘 대침체는 장기화되면서 미국을 조락의 벼랑으로 떠밀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 까닭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2009년 2월 연방의회에 제출한 정보보고서에서 최근에 발생한 경제위기가 미국 안보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으로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메리카제국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출현한 대침체는 그것이 발생한 때로부터 9년이 지났으나, 오늘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나 1970년대 스택플레이션이 10년 안에 끝났던 것과 달리, 오늘 대침체는 장기화되면서 아메리카제국을 조락의 벼랑으로 떠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퓨연구쎈터의 2013년도 여론조사에 나타난 것처럼, 고립주의가 미국 사회의 기저여론으로 자리 잡고, 고립주의의 대변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2007년부터 장기화되고 있는 대침체가 가져온 사회정치현상들이다.

 

 

4.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할 중대조치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제32대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던 프랭클린 로저벨트(Franklin D. Roosevelt)이 대공황으로 조락하던 미국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립주의노선을 택했던 것처럼,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제37대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던 리처드 닉슨이 스택플레이션으로 조락하던 미국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립주의노선을 택했던 것처럼, 2017년부터 5년 동안 제45대 대통령으로 재직하게 될 도널드 트럼프도 대침체로 조락하는 미국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립주의노선을 추구할 것이다. 트럼프는 세계주의의 대변자들인 조지 부쉬(George H. W. Bush), 빌 클린턴(Bill Clinton), 조지 부쉬(George W. Bush),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지난 27년 동안 추진해오던 기존 정책을 버리고 고립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 <사진 6> 이 사진은 2016년 11월 10일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자의 신분으로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첫 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 앞에서 악수하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의 표정은 굳어져 있는데, 그것만 봐도 두 사람이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두 사람의 껄끄러운 첫 만남은 고립주의의 대변자인 트럼프가 오바마의 세계주의를 버리고, 고립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정책을 준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첫째, 트럼프 행정부는 사회경제부문에서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조치를 단행할 것으로 예견된다.

 

1) 자유무역협정을 미국에 유리하도록 개정하거나 폐지한다. 
2) 미국 금융자산의 해외유출을 제한한다.
3) 미국 달러화 가치를 보호한다. 
4) 해외에 이전한 산업시설이 미국으로 복귀하도록 유도한다. 
5) 미국으로의 이민을 제한하고, 미국 내 불법이주를 금지한다. 
6) 사회간접자본을 재개발한다.  
7) 기존 에너지산업을 더욱 확장한다. 
8)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하고, 상속세를 폐지한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정치부문과 군사부문에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조치들을 단행할 것으로 예견된다.

 

1) 해외배치 미국군 주둔비용을 동맹국에게 전담시킨다.
2) 미사일방어체계를 동맹국에 배치하지 않는다. 
3) 동맹국 군대와의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한다. 
4) 다른 나라에 대한 군사개입과 무력침공을 자제한다. 
5) 동맹국에 배치한 미국군을 감축한다.
6) 적국과의 정치협상을 시작한다.
7) 북대서양조약기구 확장정책을 폐기한다.  
8) 미국의 군사력을 증강한다.

 

 

5. 트럼프의 출현은 한국에게 공포스러운 악재

 

위에 열거한 중대조치들을 살펴보면, 트럼프의 출현은 한국에게 공포스러운 악재로 된다. 많은 분석가들이 그런 불길한 예상을 거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 정부가 갈등을 빚게 될 첫 충돌지점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이다. 대선기간 중에 트럼프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미국에게 불리하게 체결된 잘못된 협정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일찌감치 지지하면서 그의 최측근으로 등장한 공화당 소속 4선 상원의원 제프 쎄션즈(Jeff Sessions)는 트럼프 행정부의 장관 물망에 오른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2015년 5월 6일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공식서한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심각한 문제점을 따졌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2014년에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한 상품은 전년에 비해 22.5%가 늘어난 126억 달러나 되었는데, 미국이 한국으로 수출한 상품은 전년에 비해 1.8%밖에 늘어나지 않은 8억 달러에 그쳤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규모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80.4%가 늘어난 118억 달러나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는 2001년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과의 자유무역으로 미국에서 일자리 210만개가 사라졌다고 개탄하였다. 그런 주장에 따르면,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미국에게 유리하게 개정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폐기되는 게 당연해 보인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그처럼 강하게 비난한 제프 쎄션즈 상원의원은 2016년 11월 11일 트럼프의 정권인수단에 합류하였는데, 이것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존폐위기를 맞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출현이 한국에게 공포스러운 악재로 된다는 말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존폐위기로 내몰 악재만 예상된다는 뜻이 아니다. 트럼프의 출현은 한반도 군사정세를 예상하기 힘든 질곡으로 끌어갈 것이다. 


<조선일보> 2016년 5월 6일 보도에 따르면, 2015년 주한미국군 주둔경비 분담에서 한국이 떠안은 금액은 전체 비용의 약 절반인 9,320억 원이었는데,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전액부담을 요구하는 경우 한국은 약 2조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 <사진 7> 이 사진은 2014년 1월 초 서울에서 진행된 주한미국군 주둔비 분담금 규모를 결정하기 위한 10차 고위급 회담의 한 장면이다. 트럼프는 선거유세 중에 주한미국군 주둔비를 전액 한국에게 부담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것은 주한미국군 주둔비 부담문제를 놓고 한미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그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군 전시군사작전권을 반환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협박하면서 한국을 굴복시키려 할 것이다. 트럼프의 출현은 박근혜 퇴진 이후 새로 등장할 차기 정부에게 악몽이 아닐 수 없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런데 2015년에 한국이 지급한 분담금 9,320억 원은 현금으로 지급한 금액이고,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은 간접비용부담이 또한 엄청나다. <동아일보> 2016년 5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이 공짜로 사용하는 군사기지토지임대료, 주한미국군을 위한 세금면제금액, 공공요금감면금액, 도로-항만-공항사용료면제금액 등을 합한 간접부담비용까지 더하면 한국이 해마다 지출하는 실질금액은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게 주한미국군 주둔경비 전액을 부담하라고 요구하면, 한국은 약 3조 원을 미국에게 해마다 ‘상납’하게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붕괴위험과 재정파산위기에 내몰려 비틀거리는 한국에게는 그처럼 막대한 금액을 ‘상납’할 재정능력이 없다.


해마다 거듭되는 군사비자동삭감에 따라 군사비가 부족한 미국에서 트럼프가 주한미국군 주둔비용 전액부담을 거론하기 전부터 한국이 더 많이 분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이미 조성된 바 있으므로, 트럼프 행정부는 그 문제를 놓고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주한미국군 주둔경비 부담문제를 놓고 한미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비 부족분을 채울 궁여지책을 모색할 것인데,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한국에 배치하려던 결정을 취소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이 보인다. 


더욱이 주한미국군 주둔비용 부담문제를 놓고 한미관계에서 빚어진 심각한 갈등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하고,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겠다고 협박하면서 한국을 굴복시키려 할 것이다. 이것은 박근혜 퇴진 이후 새로 등장할 차기 정부에게 악몽이 아닐 수 없다.

 

 

6. 트럼프는 조미관계변화를 불러올 것인가?  

 

트럼프의 출현은 조미관계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견된다. 그렇게 예견하는 까닭은, 1970년대에 고립주의를 택한 닉슨 행정부가 소련과의 긴장완화(détente)와 평화공존, 그리고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기 위한 대화를 추진하였던 것처럼, 오늘 고립주의를 부활시킨 트럼프 행정부도 적국들과의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미국의 주적은 소련과 중국이었지만, 지금 미국의 주적은 조선과 러시아이므로, 트럼프 행정부는 조미관계와 러미관계에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할 것으로 예견된다.


트럼프는 대선기간 중에 자신이 당선되면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2016년 10월 17일 트럼프는 라디오방송과 대담하는 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선에서 승리하면 집무를 시작하기 전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러시아측과 만날 수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러시아에 대해 그렇게 거칠게 말해서는 안 된다. 현 상황은 솔직히 말해서 정말 재앙적이며,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상황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냉전 이후 러시아와의 상황은 단연코 가장 나쁘다.”

                                              

▲ <사진 8>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유세 중에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 집무를 시작하기 전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을 완화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 확장과 대러시아 경제제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푸틴은 그런 말을 해준 트럼프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2017년 1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가장 먼저 푸틴부터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면 트럼프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만나려고 하는 것인가? 트럼프의 발언을 주의 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2016년 5월 18일 <로이터통신>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뜻함-옮긴이)와 대화하겠다. 그와 대화하는 데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대담자가 트럼프에게 북조선의 지도자와 정말 대화하려는가 하고 다시 묻자, 트럼프는 “정말이야(Absolutely)”라고 못을 박았다. 


트럼프는 2016년 6월 3일 캘리포니아주 레딩에서 선거유세를 하면서 조선과 대화하겠다고 말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들은 북조선과의 협상이 꺼려지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내겐 문제로 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쓸데없이 신경을 쓰는가? 그들은 자기들이 절대로, 절대로 (조선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대화가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나. 효과를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진실을 알려고 한다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2016년 6월 15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진행한 선거유세 중에 이렇게 말했다.


“누가 그렇게 신경을 쓰는가? 나는 누구와도 대화할 것이다. 누가 아는가? 도대체 누가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뜻함-옮긴이)가 핵무기를 갖기를 바라는가? 기회는 있다. 나는 우리에게 유리하게 협상할 것이다. 분명히 기회는 있다. 그런데 힐러리는 ‘내가 독재자와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그만 좀 해라. 힐러리는 비전문가 수준이다. 그녀는 이제껏 그러했고, 그래서 알지도 못한다. (조선과) 대화하는 것이 도대체 왜 잘못되었다는 건가? 모두 다 알다시피, 대화를 시작하자는 말이다. 대화를 시작하는 거다. 나는 그것(조선과의 대화를 뜻함-옮긴이)이 실제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대화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위에 인용한 트럼프의 발언들을 들어보면, 조미대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실패로 끝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폐기하고, 조미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가 차관급 조미회담이 아니라 조미정상회담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2016년 6월 15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진행한 선거유세 중에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뜻함-옮긴이)가 여기에(미국을 뜻함-옮긴이) 온다면, 나는 그를 맞이하겠다. 하지만 나는 그를 위해 국빈만찬을 차리지는 않겠다. 우리를 이용해먹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커다란 국빈만찬을 차리는 일은 하지 않으련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만찬을 차릴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국빈만찬을 나누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회의탁자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과 협상하게 될 것이다.”


거친 표현이 들어간 즉흥연설이기는 하지만, 트럼프가 차관급 회담이 아니라 정상회담을 생각한 것은 기존 외교행태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발상이다. 거대한 재벌기업을 경영해오는 과정에서 최고경영자들 사이의 직접담판을 경험해본 그로서는 정상회담이야말로 난국을 타결할 가장 현실적인 방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7. 로드먼의 평양방문, 트럼프의 지지발언

 

미국의 전국농구협회(NBA)에서 뛰어난 농구선수로 활약하여 유명인사가 된 데니스 로드먼(Dennis Rodman)은 이번 대선에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몇 안 되는 유명인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2016년 7월 23일 자기의 트위터(Twitter) 계정에 이런 글을 올려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몇 해 동안 훌륭한 친구(great friend)였다. 우리에게는 다른 정치인이 필요 없다. 우리는 트럼프와 같은 기업가가 필요하다! 2016년의 트럼프”

                                                   

▲ <사진 9> 이 기념사진은 2009년 3월 미국의 인기 있는 텔레비전방영프로그램이었던 '명사 견습생'에서 진행자와 참가자로 만나 친분관계를 맺은 도널드 트럼프와 데니스 로드먼이 뉴욕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에서 다정하게 찍은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 로드먼은 미국 농구선수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첫 미국인으로 조미관계사에 기록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트럼프는 위의 메시지를 읽고 자기의 트위터 계정에 즉각 답신을 올렸다. “고마워 데니스 로드먼. 지금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때라네! 자네가 잘 지내기 바라오.”


트럼프와 로드먼은 미국 <NBC> 텔레비전방송의 인기 있는 방영프로그램이었던 ‘명사 견습생(Celebrity Apprentice)’에 함께 출연한 것을 계기로 친분관계를 맺었다. 2009년 3월 트럼프와 로드먼은 그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와 참가자로 만났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3년 2월 26일 데니스 로드먼은 미국 농구선수들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여 조선 국가대표 농구선수들과 친선경기를 진행하여 조선과 미국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로써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접견을 받은 첫 미국인으로 조미관계사에 기록되었다. 로드먼은 2013년 9월 3일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하였는데, 그 때도 이전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파격적인 접견을 받았다. 


2013년에 데니스 로드먼이 평양을 방문한 뒤,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에 출연한 트럼프는 발언 중에 그의 방북을 은근히 지지하는 말을 남겼다. “데니스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여러모로 똑똑한 사람이다. 그는 세상물정에 매우 밝다. 지금 세계를 바라보면, 우리 주위에서 야단법석이 일어나고 있다. 데니스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잘하였을 것이다.”

                                                   

▲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사진 10> 위쪽 사진은 2014년 1월 8일 조선을 세번째로 방문한 로드먼이 평양시민이 가득 찬 실내경기장에서 미국 농구선수들의 시범경지를 진행한 직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관람군중들 앞에서 '해피 버스데이 투 유'라는 제목의 축하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그 날은 조선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탄생일로 알려진 날이다. 아래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로드먼과 그 일행에게 환영연회를 베푼 장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손뼉을 치면서 기뻐하는 로드먼의 모습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평양에서 감동의 시간을 보낸 로드먼은 미국에 돌아와 미국 언론매체들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기에게 "평생의 벗"이라고 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로드먼은 2014년 1월 초 세 번째로 평양을 방문하였는데, 조선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탄생일로 알려진 1월 8일 평양시민이 가득 찬 실내경기장에서 미국 농구선수들의 시범경기가 진행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현장에 나가 시범경기를 참관하였는데, 로드먼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관람군중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라는 제목의 축하노래를 불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자 조선에 대한 악의적인 선동에 매달려온 미국의 수구세력은 로드먼의 방북을 맹렬히 비난하였고, 반대여론을 불러일으켜 그의 방북길을 가로막았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대선주자로 나서게 된 트럼프는 보수층 표심을 의식한 나머지 자신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자는 로드먼의 방북제의를 거절하면서 자신은 평양에 가지 않겠노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트럼프는 2013년에 로드먼의 방북을 지지한 바 있다. 이번 선거유세 중에 드러난 트럼프의 조미정상회담 구상은 3년 전 로드먼의 방북에 대한 지지의사의 연장선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조미정상회담은 트럼프의 구상만으로는 성사되기 힘들고, 조선의 긍정적인 반응이 있어야 성사될 수 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철군문제와 핵문제를 담판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조선에 제의한다면, 즉각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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