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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막으려면 빨리 평화협정 체결해야> ... 평화미국원정단 6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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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막으려면 빨리 평화협정 체결해야> ... 평화미국원정단 6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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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미국원정단은 미국원정을 시작한지 65일째인 17일 백악관 앞에서 평화적인 피켓시위를 전개했다.
     
    워싱턴DC의 현지날씨는 12℃로 급격하게 추워졌고 바람이 많이 불었으나 주말을 이용해 백악관을 찾은 관광객들은 추위에 상관없이 많았다. 주중 관광객이 제일 많은 토요일이라 원정단의 피켓시위에 많은 관광객들이 관심을 기울이며 지지격려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한 관광객은 원정단과 함께 사진찍을 것을 요구하며 <파키스탄과 코리아 모두가 평화적인 새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염원했다. 
     
    중국에서 온 젊은 부부는 원정단의 피켓을 오랫동안 보고나서 원정단을 향해 <싸드시스템은 코리아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동북아시아지역에도 긴장도를 더욱 높이게 될 것>이라며 개탄했다. 
     
    그들은 <코리아가 분단된 원인은 미국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코리아에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또 군수물자를 들여와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면 결국 동북아지역에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빨리 평화협정을 체결해야한다. 그래야 여러분들의 염원대로 코리아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룰 수 있을거다. 원정단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며 악수를 청하고 응원했다.
     
    또 중국에서 온 두 청년은 원정단의 피켓시위를 사진찍으며 <미군들이 남코리아에 탄저균을 배달하고 생화학실험한지 몰랐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대량살상무기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위해 체결한 <생물무기금지협약>국제법을 어긴 것이다. 심각하다.>며 <남코리아와 중국은 이웃이다. 북을 견제하기위한 탄저균밀반입과 미남합동군사연습 등 항상 전시상태에 놓여있는 남코리아국민들이 안타깝다. 미국은 불법적인 짓을 멈추고 북코리아와 평화적으로 대화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어 남코리아에서 온 한 중년여성은 원정단의 피켓을 본 뒤 백악관을 바라보며 <맞아, 맞아. 저런 나쁜놈들>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가던 길을 돌아와서 원정단의 피켓시위를 찍고 원정단에 미소로 인사했다.
     
    한편 박근혜<대통령>은 취임후 네번째 남미정상회담 등 3박6일간의 미국방문일정을 모두 마치고 지난 16일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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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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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들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10/19 06:26
  • 수정일
    2015/10/19 06:2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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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8  21: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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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레하나 울산운동본부는 17일 울산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2차 울산토요집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박인경 통신원]

서울 일본대사관 소녀의상 앞에서 14일 1,200차 수요시위가 열린데 이어  17일 오후 3시 울산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바위처럼”이 울려퍼졌다.

지난 3월 1일 소녀상을 건립한 이후 울산토요집회를 통해 다시한번 울산시민들의 자발적인 평화의 마당이 열린 것이다.

지난 9월 19일 1차 울산토요집회를 개최한 ‘우리겨레하나되기 울산운동본부’ 측은 청소년, 대학생, 청년들로 구성된 미래세대들의 제안으로 울산토요집회가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울산토요집회는 울산 평화의소녀상이 건립된 이후에도 바뀐 것이 없을 뿐더러, 계속되는 일본의 재무장과 안보법안 통과, 반성과 사과 없는 끊임없는 역사왜곡을 지켜보며 미래세대들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에 매달 셋째주 토요일 3시 소녀상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

   
▲ 울산토요집회 참가자들의 외침! “역사왜곡 중단하고 일본은 즉각 사죄 배상하라.” [사진 - 통일뉴스 박인경 통신원]
   
▲ 신정고등학교 역사동아리 학생들이 “바위처럼”에 맞춰 율동을 추고 있다.[사진 - 통일뉴스 박인경 통신원]

이날 열린 두 번째 울산토요집회에는 청소년, 대학생, 청년들을 포함한 미래세대들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울산시민들과 교사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2차 울산토요집회는 '우리겨레하나되기 울산운동본부 미래세대위원회'의 주관으로 진행되었으며 울산 신정고등학교 학생들의 바위처럼 율동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토요집회를 마친 후 울산대공원 인근에서 한 시간 가량 캠페인활동을 진행했다. 특히 신정고등학교 역사동아리 학생들은 일본군‘위안부’ 역사에 대한 O.X퀴즈, 할머니께 응원의 메시지 쓰기,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귀향>을 알리는 선전물 등을 준비해 직접 캠페인에 나서기도 하였다

신정고등학교 역사동아리 청소년들은 “할머니들이 한분 한분 돌아가시고 계신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변화되는 것이 없어 안타깝고,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어 이렇게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역사동아리 학생들은 앞으로도 매달 1차례 소녀상을 찾아 지킴이 활동과 울산토요집회 참가를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미래세대를 대표해 청소년, 대학생, 청년 1인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박인경 통신원]
   
▲ 울산토요집회 참가자들이 소녀상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박인경 통신원]

이날 토요집회에는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소녀상을 찾아 소녀상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기도 하였다.

친일미화, 독재미화, 역사왜곡 교과서라는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있는 국정교과서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만큼 울산시민들의 이러한 평화운동, 역사지키기 행동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토요집회 주최측은 매달 셋째주 토요일 3시 울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지속적인 울산토요집회를 진행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녀상 건립운동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민평화운동을 시작한 울산토요집회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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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그리라고 했는데 왜 북한도 그렸어?"

 

[공공미술프로젝트 난 왜 독일인과 빨래를 하게 됐나④] 당신들의 대한민국, 나의 대한민국

15.10.18 19:36l최종 업데이트 15.10.18 19:36l

 

 

공공미술 'Wasch Wasch FEST-빨래 프로젝트'는 베르나우(Benau) 문화부와 베를린예술대학 Art in Context 연구소의 주최로 필자가 독일에서 2015년 6월부터 9월까지 진행한 참여형 예술프로젝트다.

이번 공공미술 'Wasch Wasch FEST-빨래 프로젝트'는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올해로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과 통일 25주년을 맞이하는 독일 사이에 어떠한 역사적 간극이 존재하는지,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전쟁 이후 과연 독일과 한국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지 베르나우 지역주민들과 예술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 과정을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나누고자 몇 회에 걸쳐 게재하려 한다. - 기자 말 

"한국을 종이에 그려주세요."

이렇게 외국인이 부탁한다면 당신은 서슴지 않고 종이 위에 선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머릿속으로 호랑이 모양을 연상하면서. 그리고 당신의 성격이 꼼꼼한 타입이라면 한반도 밑에는 제주도를, 그리고 오른편에는 독도를 그리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마지막으로 한반도 가운데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휴전선을 하나 그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그림을 본 외국인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국을 그리라고 했는데 왜 북한도 그렸어?" 

만약, 당신이 이러한 질문을 받는 순간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실제로 내가 이 질문을 독일인 친구에게 받았을 때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다. 지도 하나를 그렸을 뿐인데 독일인 친구가 나에게 던진 질문은 수십 개가 넘었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전쟁은 몇 년도에 왜 벌어졌는지, 한국이 어떻게 분단이 되었는지,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누가 있었는지, 왜 한국과 북한은 하늘로든 땅으로든 바다로든 서로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는지 등등. 

한참 동안 한국현대사에 대해 설명한 후에 그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숨) 한국이 분단이 안 되었다면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도 갈 수 있었을 텐데... 항공으로나 육로 모든 교통수단이 38선 위로 막혀있으니 결국 한국은 섬나라구나." 

"응? (당황) 응…." 

어쩌면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외국에서의 단순한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지도 그리기'에 관련한 에피소드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특히나 현재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한 이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만약 정부가 만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반영하게 된다면 한국은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후 역사는 북한의 존재를 배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본다면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포함하여 그리는 한국 지도는 '틀린'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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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을 제외한 한국의 모습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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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심리적 나라는 어디인가요? 

헌데 왜 우리는 항상 지도를 그릴 때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를 그리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우리나라를 그리라고 했을 때 남한만 그리는 사람을 난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대한민국'을 그릴 때 북한을 포함한 호랑이 모양으로 그리는 현상을 프랑스 상황주의자인 기 드브로 식의 심리-지리학(psychogeography)의 일종으로 해석해 보자. 한국인들에게 '나라'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객관적으로 지리적, 영토적 영역을 표현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쩌면 우리가 한국을 그릴 때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를 그리는 것은 곧 무의식적으로 북한을 빼놓고는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우리나라'를 생각할 수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렇듯 한국의 역사가 갖고 있는 복잡 다양한 민족 모순은 간단한 '지도 그리기'에서도 가감 없이 나타난다. 

그러고 보면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의 지극히 단순한 '대한민국 지도그리기'에 대해 내가 오랜시간 동안 의문을 갖게 된 것은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독일에서 발견하게 되는 한국의 역사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독일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이미지 생산과 예술작품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던 나는 다소 충격적인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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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독시절에 그려진 한국전쟁에 관한 포스터
ⓒ Hans Dieter Ku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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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리고 엄마가 죽었어요'라는 독일어 문구가 상단에 쓰인 이 포스터는 한국전쟁 당시 그려진 것이다. 누가 봐도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있는 한 소녀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포스터 하단에는 다소 놀라운 문구가 쓰여져있다. 

'여성들과 아이들에 대한 미국의 테러공격에 대항하자!' 

동독에서 한국전쟁을 '미국에 의한 테러'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포스터를 제작했다는 것은 꽤 충격적이다. 더불어 이 포스터는 한국전쟁이야말로 냉전의 흐름 속에서 가장 잔인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포스터가 그려진 목적은 더욱 놀랍다. 바로 동독정부가 한국전쟁과 관련해 시민들에게 기부를 해줄 것을 요청하는 포스터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포스터의 맨 하단에는 기부를 할 수 있는 계좌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 현대사를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편 이미 앞선 글(관련 기사 : 온통 빨간색 군사기지, 한국이 불안하다)에 언급했듯이 독일에서 흔하게 듣는 "어디서 왔니"라는 단순한 질문도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가장 어려운, 혹은 슬픈 질문이 되어버렸다. 

나는 독일 사람들로부터 한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수십, 수백 개의 질문들을 항상 받아야만 했고, 그에 대한 대답을 매번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나라는 어디인지,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는 나의 '심리적 나라', 나의 '정신적 나라'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찾게 된다. 베르나우 공공미술프로젝트 총괄감독이자 렉처퍼포먼스의 감독을 맡은 베를린 예술대학의 크리스티나 교수는 사실 이번 행사가 진행되기 몇 개월 전부터 나에게 적극적으로 렉처퍼포먼스를 해줄 것을 제안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강의형 퍼포먼스로 불리는 렉처퍼포먼스는 학문적인 영역과 퍼포먼스적인 영역이 결합된 새로운 예술형식이다. 

그녀는 내가 진행하는 'Wasch Wasch FEST-빨래 프로젝트'(관련 기사 : 한국말로 뭐라 했지? 아, 빨갱이 내가 빨갱이야)에 대한 렉처퍼포먼스를 원했다.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의 프로젝트가 탈식민주의와 포스트 아이덴티티를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려면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과연 독일 사람들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지루한 역사를 듣고 싶어 하겠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교수님은 '적어도 나는 너의 이야기가 너무 듣고 싶어'라는 말로 내가 빠져나갈 핑계를 모두 사라지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Wo ist mein Land?(나의 나라는 어디인가?)' 

독일 사람들이 편견없이 보는 한국의 역사?

유난히 햇빛이 좋던 어느 날, 독일이 분단되었을 때 소비에트 군대의 점령지였던 베르나우 육군군사보급기지 1동, 맨 꼭대기 층에 설치된 렉처퍼포먼스 간이 무대에 조명이 켜졌고 나는 무대 위에 올라섰다. 

나의 렉처퍼포먼스는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눠지는데, 첫 번째 단락은 러일전쟁을 시작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나의 주관적 서술 없이 이미지로만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관객들 스스로 제시된 이미지에 따라 유추되는 한국의 역사를 추적해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락은 '현재'로서의 한국을 에세이로서 관객들에게 낭독을 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에세이를 읽는 동안 한국언론보도용 사진들이 관객들에게 보여지게 된다. 즉 에세이의 '픽션'과 한국언론보도용 사진들의 '논픽션'이 동시에 보여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렉처퍼포먼스 첫 번째 단락을 진행하는 중 나는 흥미로운 반응을 독일 관객들로부터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아래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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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의 경축사 동안 스탠드에 그려지는 대통령 초상화 카드섹션. 1973.10.1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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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진 속에 보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내가 질문을 던지자. 내 귀를 의심케하는 말들이 관객석으로부터 들려온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독재자 아닌가요?" 

대답을 한 독일 관객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인물을 영웅화하는 카드섹션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 속의 사람은 독재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히틀러의 영향으로 다수의 집단이 정치인을 영웅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독일 사람들 눈에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최근의 한국의 모습이 담긴 사진 다른 한 장을 보여주자 관객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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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한미동맹 강화 북괴 김정은 타도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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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속에 그려진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라고 묻자 

"할리우드 영화배우인가요?" 
"하하, 모르겠어요." 

라는 식의 대답들이 돌아온다.

'한미동맹 강화로 종북세력 척결대회'라고 사진의 상단에 쓰여진 문구를 독일어로 번역해서 설명해주자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보고 있던 관객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사진 속에 그려진 사람은 영화배우가 아니라 주한미국대사입니다." 

라고 설명을 하자 

"오, 아니요! 말도 안 돼요!" 

라는 식의 탄성들이 들려온다. 이 외에 한국 역사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제시된 여러 시각 이미지들에 대한 독일 관객들의 반응은 다소 따분해 할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꽤 뜨거웠다. 

차마 혼자보기 아까운 관객들의 표정들과 반응들이 많았지만, 한국 역사에 대한 어떠한 편견 없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사진들을 보고 나타낸 반응은 분명 한국 정권은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들이었다. 

시차 

그리고 곧이어 렉처퍼포먼스의 두 번째 단락이 시작되었다. 나는 준비한 에세이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장벽을 허무는 일은 눈에 보이는 장벽을 허무는데 드는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중략)...저쪽 편에서는 행동의 자유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이쪽 편에서는 혐오스러운 사회 체제를 가리키는 생생한 상징이 되었다...(중략)...남쪽 사람들에게 경계선은 날마다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지를 말해주는 거울이 되었다. (후략)…." 

"처음으로 난 뭔가 혼란스러운 것을... 이산가족 상봉 시에 일으키는 감정의 위조를 느꼈다. 인사말에서 작별 인사까지, 모든 행동이 내겐 놀랄 만큼 과장되어 보였으며, 발설하지 않은 희망이나 비난이 담겨있었고, 어쩌면 이런 상봉이 딱 한 번만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머지 경직되어 있었다...(중략)...그리고 미리 서둘러 '그럼 또 보자' 하며 작별인사를 던지는 건 조소하는 듯 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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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처퍼포먼스에서 에세이를 낭독하고 있는 모습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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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낭독되고 내용에 따라 38선의 사진이나 한국 이산가족 상봉 모습 등 언론보도사진들이 보여지자 관객들의 몰입도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높아졌다. 모두가 숨죽여 한국의 분단 상황이 어떠한지를 보고, 듣고 있었다. 

사실 이 에세이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렉처퍼포먼스에서 낭독한 것은 독일의 작가 '페터슈나이더'에 '장벽을 넘은 사람'이라는 에세이를 재구성한 것이었다. 나는 그저 이 에세이에 쓰여진 '독일'을 '코리아'라 읽고, '서독'을 '남한'으로 ,'동독'을 '북한'이라고, 그리고 '베를린 장벽'을 '38선'으로 바꿔 읽었을 뿐이었다. 

이어서 시간은 퍼포먼스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나는 마지막 구절을 읽어 내려갔다. 

"만일 내게 조국이란 게 있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다. 내가 시민으로 살고 있는 그 국가는 나의 조국이 아니다. 만일 국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내가, 나는 코리아 사람이요 하고 주저 없이 대답한다면, 난 분명히 어느 한 국가가 아니라, 어떤 국가적 정체성도 갖지 않은 한 민족에 대한 나의 소속감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이 마지막 구절이 아니었나 싶다. 외국에서 살면서 언젠가부터 나는 너무 나도 단순한 질문하나인 

"어디서 왔니?" 

라는 물음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한때는 이것이 그저 나 혼자만의 고민인가,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일까 싶었을 때, '페터 슈나이더'의 '장벽을 넘은 사람'에서 나는 나와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에세이 속 독일 청년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좋은 점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서, 국민들의 삶을 점점 힘들게 만드는 나의 나라가 '나쁜 나라'인 것 같아서 점점 우울해져 갔을 때,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이 에세이에서 찾게 된 것이다. 

렉처퍼포먼스가 끝난 후, 무대 위에서 내려오자 관객석에 있던 몇몇 어르신들이 달려와 갑자기 덥석 나의 손을 꼭 잡는다. 꽤 긴 시간 동안의 퍼포먼스였을 텐데 연신 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 무지했던 자신들을 원망하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눈에 그렁거렸다. 한 어르신들이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시며 말씀하신다. 

"독일에선 70년 전에 벌어졌던 아픔들이 한국에서는 '지금' 더욱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힘내라." 

그렇다. 독일과 한국 사이에는 분명 시차가 존재한다. 국가별 거리에 따른 한국과 독일 간의 8시간 차가 아니라 '역사적 시차'가 70년이나 존재한다. 더군다나 독일에서는 히틀러 시대에나 존재했다는 국정교과서가 한국에서는 다시 부활하는 상황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지금 다시 쓰이는 역사는 도대체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역사일까?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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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아름다운 밤을 지샌 대공연"


사진으로 보는 당 창건 70돌 '1만명 대공연'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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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8  03: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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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당 창건 70돌을 맞아 대동강에 특설무대가 설치, 1만명 대공연이 11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됐다. [사진출처-조선의오늘]

"평양의 아름다운 밤이 지새도록 경축이 춤물결, 노래바다를 펼친 대공연'

북한 웹 사이트 <조선의 오늘>이 17일 북한 당 창건 70돌을 맞아 지난 16일까지 열린 '1만명 대공연'을 소개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평양 대동강에 특설무대를 설치, 1만명 대공연을 지난 11일부터 펼쳤다.

사이트는 "노동당만세, 일심단결만세, 사회주의만세의 우렁찬 함성이 10월의 하늘가에 높이 울려퍼지는 속에 11일 평양에서는 조선로동당창건 70돌 경축 1만명대공연 '위대한 당, 찬란한 조선'이 성황리에 진행되었다"라고 전했다.

사이트에 따르면, 대동강에 설치된 특설무대는 주체사상탑을 배경으로 당기와 '70'이라는 글귀와 대형 전광판이 설치됐다.

그리고 "무대 양옆 전광판에 내 조국의 자랑인 선군12경이 펼쳐지고 춤추는 분수가 오색영롱한 불빛 속에 황홀경을 수놓은 대동강의 밤풍치는 더욱 아름다웠다"라고 사이트가 소개했다. 이번 공연에는 만수대예술단,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예술단 등을 비롯해 군대.사회 예술단체, 예술교육기관 창작가, 예술인, 교원, 학생 등 1만명이 참가했다.

'1만명 대공연'은 애국가를 시작으로 1.2부로 나뉘어 진행됐으며 '영광을 드리자 위대한 우리 당에', '동지애의 노래', '혁명의 주인은 우리 인민', '장군님따라 싸우는 길에', '소년단행진곡', '천리마대진군의 노래' 등이 선보였다.

그리고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 '수령님 은덕일세', '일편단심 붉은 마음 간직합니다' 등의 노래와 무용 '눈이 내린다' 등이 무대에 올랐다.

   
▲ 이번 공연에는 70~80년대에 활동한 가수들이 무대에 올랐다.[사진출처-조선의오늘]

특히, 북한 초기 가수들이 70~80년대 활동한 가수들과 보천보전자악단이 '핵복넘쳐라 나의 조국이여', '친근한 이름', '휘파람',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등을 선보였으며, "만수대정신을 창조하던 청춘시절의 열정으로 노래를 불렀다"라고 사이트가 소개했다.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 '영광을 드리자 위대한 우리 당에', '가리라 백두산으로' 등에 이어 불꽃놀이가 선보였다.

이번 공연에 대해 사이트는 "조선노동당의 영도따라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위업의 최후승리를 이룩해가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억센 의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 1만명 대공연 모습.[사진출처-조선의오늘]

 

 

 

 
▲ 이번 공연에는 한국전쟁 관련 내용도 무대에 올랐다.[사진출처-조선의오늘]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에 대한 공연도 선보였다.  [사진출처-조선의오늘]
   
▲1만명 대공연 모습. [사진출처-조선의오늘]
   
▲ 1만명 대공연 모습.[사진출처-조선의오늘]
   
▲1만명 대공연 모습. [사진출처-조선의오늘]
   
▲ 1만명 대공연에 축구관련 공연도 펼쳐졌다.[사진출처-조선의오늘]
   
▲1만명 대공연 모습. [사진출처-조선의오늘]
   
▲1만명 대공연 모습. [사진출처-조선의오늘]
   
▲ 공연은 불꽃놀이로 마무리됐다. [사진출처-조선의오늘]
   
▲1만명 대공연 무대 주변 모습. [사진출처-조선의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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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OUT!>, 백악관-블레어하우스 박근혜퇴진시위 ... 코리아연대 등 5개단체 <북미평화협정체결·미군철수>주장도

  • <PARK OUT!>, 백악관-블레어하우스 박근혜퇴진시위 ... 코리아연대 등 5개단체 <북미평화협정체결·미군철수>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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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12시(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백악관앞에서 <박근혜<대통령>방미, 사대굴욕외교 규탄 집회·시위>가 진행됐다. 

     

    이날 집회·시위는 미주민가협양심수후원회, 사람사는세상워싱턴, 함석헌사상연구회, 평화미국원정단(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도로시데이카톨릭워커(Catholic Worker) 등 5개단체가 공동주최했다. 1시간반동안 진행된 집회·시위에는 5개단체의 회원들과 미국내 반전평화진보단체 앤서(ANSWER)의 회원들과 다른 평화활동가 등 20여명이상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다같이 반전평화노래를 부르며 집회를 시작했다. 

     

    먼저 미주민가협양심수후원회 한 회원이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 구호를 외치며 주남미군이 즉각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발언했다. 그 발언후 참가자들은 백악관을 향해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다음으로 사정으로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앤서 브라이언 베커대표의 연설문을 그 회원인 마이크가 대독했다. 글은 <오늘 우리는 평화적 통일을 열망하는 남코리아, 북코리아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왔다.>면서 <2차세계대전 종전이후 70년이 지난 코리아반도에 그 대전의 참상은 이보다 더 파괴적일 수 없다.>며 <1945년에 임의로 38선이 그어지고 1950년부터 3년간 코리아전이 지속됐으며 오늘 수천만명의 코리아사람들이 항상 전쟁 직전에 놓여있다.>고 코리아의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시민단체들은 진보정당의 파괴 등 국가보안법에 의한 극심한 탄압을 감내해야 한다.>며 <우리는 남코리아가 미국정부가 지원하고 그 의도대로 이런 탄압과 억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남코리아는 수많은 주남미군이 주둔해 있으며 어떤 사람들도 그들의 영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는 형제, 자매 아울러 모두가 새로운 날을 바라며 말한다. 남코리아에 있는 양심수를 석방해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남코리아정부가 판타지버전으로 국정화교과서를 만들고 있다.>며 <이제는 남코리아의 학생들이 진정한 역사, 즉 진실을 배워야 할 때다.>고 비판했다.

     

    연설문은 <미정부는 북코리아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라! 경제봉쇄를 끝내고 국교를 정상화하라!>며 <그것이 통일로 가는 진정한 방향이고 과정이다.>면서 <6.15공동선언을 이행하고 미군은 남코리아에서 떠나라!>, <코리아의 평화통일은 승리한다!>고 힘찬 구호로 마무리됐다.

     

    카톨릭워커회원 마이클은 <통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감옥에 잡혀있다. 통일을 외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미군이 주둔하며 탄저균 등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을 굉장히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맹비난했다. 이어 그는 <코리아는 70년동안 분단돼 있으며 안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통일문제는 코리아민족 스스로가 알아서 결정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면서 <모든 양심수를 모두 석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화미국원정단의 코리아연대 이상준공동대표는 <박근혜가 13일부터 16일까지 미국 방문중이다. 도착한 후 코리아전참전기념비를 방문해 헌화하고 펜타곤을 방문해 미남동맹강화를 외쳐댔다. 또 166명의 경제인도 함께 미국을 방문했고 TPP(환태평양동반자협정) 체결을 발표했다. 더구나 16일 오늘은 오바마를 만나 <북핵문제>, <북문제>를 논의하며 공동성명을 발표한다고 한다.>면서 박<대통령>의 종미사대굴욕외교를 준열히 비난했다. 

     

    이어 그는 <박정권은 정상회담 뒤에서 미국경찰과 FBI를 동원해 황당하게도 원정단의 평화적인 시위를 압박하며 훼방했다.>며 전날 있었던 워싱턴경찰2명과 FBI요원2명과 있었던 일을 폭로성토했다. 그러면서 <국가정보원과 공안경찰은 작년 12월 22일 코리아연대사무실을 비롯 8곳을 압수수색한 후 4명을 구속하고 다른 4명을 수배했다.>, <박근혜가 어리석게도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공안탄압으로 모면하려 한다.>며 국내에서 벌어지는 파쇼적 공안탄압을 폭로규탄했다. 

     

    계속해서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미항공모함이 부산에 입항해 남코리아군과 군단급 북침군사연습을 벌인다.>며 <이것은 8.25합의를 깨뜨리며 전쟁을 부추기는 위험천만한 행위로 된다.>며 북침전쟁연습의 즉각 중단을 강력히 촉구했다.

     

    끝으로 <10월 16일 오늘은 부마항쟁발발 36주년이 되는 날>, <민심을 저버린 박정희가 열흘후 측근에게 피살됐다.>면서 <박근혜는 선친 박정희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며 노동자·서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북침전쟁연습, 사대굴욕외교 등을 지속한다면 박근혜도 민중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곧이어 이상준대표의 선창에 따라 참가자들은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 <북침전쟁연습 중단하라!>고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또 코리아사람끼리 통일을 하기 위해 <김정은제1위원장과의 통일대화에 즉각 나서라!>고 촉구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백악관앞에서 박<대통령>의 방미기간 숙소인 블레어하우스까지 <Peace treaty now!(북미평화협정을 즉각 체결하라!)>, <U.S. troops get out of Corea!(미군은 코리아에서 나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블레어하우스앞에서도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즉각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을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시위대열은 <탄저균 가지고 미군은 떠나라!>라는 코리아연대의 플랑카드를 맨앞에서 들고 행진했다. 

     

    한편 또다른 참가자 4명이 블레어하우스앞에서 역사국정교과서문제를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시위의 사회를 맡은 이상준공동대표는 집회직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최대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고 집회·시위에 참가했다. 집회참가자들은 이공동대표가 올 때까지 백악관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집회를 진행했다. 

     

    한때 남코리아수구단체회원들이 <박근혜방미환영>, <한미동맹강화>를 주장하며 오늘 집회·시위를 방해해 물의를 빚었다. 허나 집회·시위대는 현명하게도 충돌을 피하며 집회·시위를 차질없이 진행했다. 집회·시위현장 주변에서는 남코리아 정보기관요원과 대사관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 촬영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백악관주변에서 며칠째 미국평화원정단을 사찰하던 사람들이다.

     

    오늘 집회·시위 주최단체들과 참가자들은 <제2의 유신과 전쟁망령 부르는 박근혜의 국정교과서 추진 및 사대 방미외교를 규탄하며>라는 성명을 채택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제2의 유신과 전쟁망령 부르는 박근혜의 국정교과서 추진 및 사대 방미외교를 규탄하며>

     

    국정교과서 추진과 박근혜의 방미는 미국의 사주를 받은 매국노들이 우리 민족을 상대로 벌이는 군사, 이념 대결정책의 산물입니다.

     

    그 당면목적은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한사회내의 이념 대결을 격화시켜 8.25합의 이후 대세로 되어가는 민족우선, 자주와 평화의 흐름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국정교과서 추진은 이명박정권 이후 뉴라이트 출범 등 대중적 수구독재 지원세력들을 육성하여 친미보수 장기집권을 위한 음모에서 비롯된 것인데 최근 동북아 한반도에서의 정치,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려는 미국의 이른바 <재균형>, <한미일 동맹 강화> 정책과 맞물려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최근 미국은 8.25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한반도 영해에서의 대규모 항모작전 및 4대 전략무기들을 남한영토에 집중배치할 것을 공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박근혜를 불러내어 8.25합의와 중국 전승절 참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반도 긴장격화정책에 대한 지지와 충성을 확인하는 한편 친미 매국노들의 사실상 제 2의 유신 쿠데타 및 장기집권 의지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1945년 이 땅에 점령군으로써 첫 발을 내딛은 이래 친일청산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짓밟고 매국노들을 재등용하였으며 당시 자신들에게 불리했던 미소공동위의 합의를 난폭하게 유린한 데 이어 기어코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던 과거를 2015년 한반도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이른바 <아시아 회귀: Pivot to Asia>는 <한반도 1945-53>으로의 회귀이며 <재균형>이란 자신의 패권을 되찾으려는 열망의 반영입니다.

     

    그러나 칠순을 넘긴 <미 일극체제>의 열망은 부질없는 노욕에 불과하고 우리 민족의 역량은 날로 커가고 있습니다.

     

    박근혜가 미국을 향한 사대매국외교에 매달릴수록 정권퇴진의 시간표를 더욱 재촉하게 될 것임을 명심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제 2유신과 전쟁망령 부르는 국정교과서 중단하라!!!

    동족상잔 구걸하는 사대매국외교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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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반대 촛불 “역사의 나침반을 되돌리지 마라”

옥기원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10-18 00:33:04 이 기사는 현재 건 공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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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학생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17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학생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3신:오후 7시]
[현장] ‘국정교과서’ 반대 촛불 “역사의 나침반을 되돌리지 마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염원하는 촛불이 주말 도심을 환하게 밝혔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17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촛불을 들고 정부에 국정교과서 중단을 촉구했다.

범국민대회가 끝나고 열린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500여명(주최측 추산) 시민들이 함께 했다.

17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역사쿠데타 멈춰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17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역사쿠데타 멈춰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대학생 이혜지(이화여대 사학과) 씨는 대표 발언을 통해 “국정교과서 문제로 우리나라 역사 나침반은 역행하고 있다”면서 “이 상황에 분노한 대학생들이 캠퍼스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고, 이순신 동상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는 등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친일·독재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가 많은데 왜 정부는 이같은 친일·독재를 미화하는국정교과서를 추진하려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로 보고 올바른 미래로 나갈 수 있게 역행하는 역사의 나침반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상도중학교에 역사를 가르치는 이미숙 씨는 “정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교과서로 만들어서 획일적인 내용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하고 있다”면서 “교사를 못 하는 일이 있어서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어 “친일의 역사를 감추고 지우려는 것이 국정교과서의 본질”이라면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역사는 발전하듯이 우리는 이를 막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언과 공연 등으로 진행된 촛불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청계광장을 출발해 보신각, 서울시청 앞 전 국가위원회 건물까지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거리를 행진하며 “역사쿠데타 중단하라”, “박근혜 정권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편, 행진 도중 대학생 150여명이 행진 대열에서 이탈해 종로3가 인근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7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학생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17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학생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2신:오후 4시]
국정교과서에 뿔난 시민들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역사쿠데타 멈춰라”

주말 오후 서울 도심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466개 시민사회·역사단체들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17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범국민대회를 열고 박근혜 정권의 ‘국정교과서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이날 범국민대회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2천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현 정권이 추진하려는 국정교과서를 ‘친일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교과서’ 규정하고, 국민의 힘을 모아 국정교과서를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결의했다.

17일 서울 세종로 세종공원에서 열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국민대회에 참가한 중학생이 국정화를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17일 서울 세종로 세종공원에서 열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국민대회에 참가한 중학생이 국정화를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이날 대회에서 시민사회 각계 대표들의 국정교과서 규탄발언이 이어졌다.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은 “전국 곳곳에서 청소년, 대학생, 학부모, 시민들의 국정교과서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면서 “이 모두가 유신독재 친일의 장본인이었던 박정희 딸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쿠데타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정의와 진실의 외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정교과서는 교육과 헌법, 민주주의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친일 세력을 미화한 역사가 아닌 독립운동과 민주화를 위해 피땀흘리며 싸운 순국선열들의 역사, 자본가의 역사가 아닌 전태일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학자 이이화(78)씨는 “역사학자로서 지금까지 발행된 교과서를 전부 살펴봐도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의 내용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온갖 거짓으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시도야 말로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폭거”라고 비판했다. 이어 “현 정권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의도는 516쿠데타와 유신을 미화하려는 조치”라면서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은 우리 후손들에게 올바른 세상을 살게하기 위한 민주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는 “사람이라면 양쪽 눈으로 주변을 잘 살피고, 양쪽 귀로 주의깊게 듣고, 입으로 바른말을 해야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하나의 눈으로 보고 한쪽의 귀로 듣고, 하나의 입으로 거짓말만 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민 앞으로 나와야 한다. 국민과 대화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중학생 권혁주(15·청운중2)군은 자신을 “2017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국정교과서를 처음 배우게 될 세대”라고 소개하며 “정부는 당사자인 학생에게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구한 적이 없다. 청소년들이 힘을 합쳐서 국정교과서를 막아내기 위한 행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나비네트워크’ 소속 정수연 씨는 “대학생들도 대자보를 붙이고, 거리로 나오면서 국정교과서를 막기위해 움직이고 있다”면서 “대학생들도 시민들과 연대해 국민들의 역사관을 통제하려는 국정교과서 시도를 막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은 향후 서명운동, 촛불문화제, SNS 반대운동 등을 통해 국정교과서 저지를 위한 시민행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17일 서울 세종로 세종공원에서 열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이 국정화를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17일 서울 세종로 세종공원에서 열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이 국정화를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1신:오후 2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 청소년들은 거부합니다”


교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영정을 든 청소년들이 1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로 나왔다. 청소년들은 ‘친일·독재 미화 국정교과서 반대’, ‘정부는 역사를 건드릴 권한이 없다’ 등의 문구가 쓰인 영정(피켓)을 들고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규탄했다.

이날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거리행동’에는 서울, 경기, 대구 등에서 모인 70여명의 초·중·고등학생들이 함께 했다.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다.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청소년들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배울 수 없기에 이 자리에 모였다”면서 “교과서를 직접 배워야 하는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국정교과서를 막아내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거리행동에 참여한 서울 화곡고등학교 오병주(18)군은 “어른들은 공부나 하지 왜 집회에 참가하느냐고 혼을 내지만 우리의 행동이 학업과 직접 연관된 문제이기에 이 자리에 모였다”면서 “학생들의 거리행동이 시발점이 돼 다양한 역사관이 존중되는 교과서로 공부할 수 상황이 오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원 영신여고 윤수진(18)양은 “우리는 학교에서 주체사상을 배운 적이 없다”고 반문하며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시도가 친일·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음모”라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중인 이윤한별(13·수원창룡초)군은 “학생들은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가 있지만 정부는 하나만의 생각을 하라고 강요한다”면서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거리행동을 제안한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은 향후 거리행동과 1인시위, 온라인선전전 등을 통해 국정교과서를 막기위한 청소년 행동을 전개하겠다는 행동계획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은 자유발언을 마치고 인사동을 출발해 청계광장을 거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주장하며 행진하고 있다.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주장하며 행진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주치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에서 중학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정화반대청소년행동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주치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에서 중학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정의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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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성 대변인 담화 정전협정 전환 재차 촉구

북, “미 평화협정 외면은 무한대한 핵 강화”
 
외무성 대변인 담화 정전협정 전환 재차 촉구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0/18 [08:0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미국이 매일직면한 최대 위협은 조선이라며 비명을 지른 가운데 조선은 10일 로동당 창건 70돐을 맞아 최첨단 신형 무기를 공개했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조선은 미국에게 거듭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를 외면한다면 무한대한 핵억제력을 점점 강화해 나가는 것을 똑바로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 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17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조선외무성 대변인이 성명를 통해 이날 밤 정상회담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미국에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외무성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조미 사이에 신뢰를 조성해 당면한 전쟁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면 핵 군비 경쟁도 종식시킬 수 있고 평화를 공고히 해나갈 수 있다"며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성명에서 한반도 평화 보장 방법은 두가지 뿐이라며 "하나는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해 미국의 핵위협과 도발을 억제하는 냉전의 방법이며다른 하나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평화협정 체결에 응해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의 이 같은 주장은 한미정상회담과 한미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이 끝난 후 20시간 만에 나온 것으로 미국의 조선에 대한 적대시 저ᅟ정책이 포기 되지 않는 한 핵무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이달 초 제70차 유엔총회에서 리수용 외무상을 통해 공개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재차 제안했으며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둔 7일에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같은 내용을 촉구했다.

 

외무성은 이어 성명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미국이 먼저 용단을 내려야 할 문제이며조미 사이에 우선 원칙적 합의를 보아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외무성이 조미 간 원칙적 합의를 언급한 것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 문제그리고 역내 정세를 위해서는 조미 양자회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외무성은 또 "유엔도 평화협정 체결을 적극지지 고무해 나섬으로써 조선반도에서 한 성원국과 유엔군사령부가 교전관계에 있는 비정상적인 사태를 끝장내는 데 자기 몫을 해야 할 것"이라며 유엔의 책임있는 노력을 요구했다.

 

외무성은 끝으로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외면하거나 그에 조건부를 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끝내 다른 길을 고집한다면 우리의 무한대한 핵억제력이 점점 강화돼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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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의 눈물-상] 강제징용 현장, 다시 찾은 할머니들

"아베 사과 아직 못 받았는디..."
근로정신대 할머니의 마지막 일본행

 

15.10.18 09:46l최종 업데이트 15.10.18 10:20l

 

 

미쓰비시 중공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지난 9~11일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일본 나고야를 찾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오마이뉴스>가 한국 언론 중 유일하게 할머니들의 일본 일정을 동행취재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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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적혀 있어요 미쓰비시 중공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10일 오전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 인근의 '도난카이 지진 피해자 추도 기념비'를 찾았다. 양금덕 할머니가 추도비에 적힌 도난카이 지진 조선인 피해자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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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여지껏 살아남아 오늘 너희들 보러 나고야까지 왔다. 미안허다. 인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랑가 모르겄다."

지난 10일 오전, 일본 나고야 남쪽에 위치한 메이난후레아이(名南ふれあい) 병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양금덕(86) 할머니가 병원 주차장 한 켠에 놓인 비석 앞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놨다. 이동연(85) 할머니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비석에 적힌 이름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崔貞禮(최정례)'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이 이름이 내 친구여"라고 소리를 내질렀다. 이내 할머니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일제강점기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광복 70주년인 올해, 다시 피해 현장을 찾았다. 양금덕, 이동연, 김성주(85) 할머니와 김중곤(91, 피해자 오빠·남편) 할아버지는 10일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와 도난카이 지진 피해자 추도 기념비를 찾아 회한의 세월을 떠올렸다. 

15세 소녀는 이제 아흔을 앞둔 할머니가 됐다. 할머니의 세월은 혹독한 강제 노역, 배고픔과 향수, 뜻밖에 만난 대지진, 친구를 잃은 아픔, 해방 후 겪은 설움 등으로 촘촘히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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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란히 앉은 세 할머니 나고야로 떠나기 위해 9일 인천국제공항에 모인 양금덕, 이동연, 김성주 할머니(왼쪽부터)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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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만난 세 할머니 광주에 사는 양금덕, 이동연 할머니와 안양에 사는 김성주 할머니(왼쪽부터)가 9일 나고야로 떠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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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2시간 페인트칠... 이후로 냄새 못 맡아"

일제강점기인 1944년 5월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벌게 해 주겠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에 속아 나고야행 배에 오른 조선인 소녀들은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끌려 온 13~16세 소녀들은 총 290여 명(전남 138명, 충남 150여 명). 군악대의 성대한 팡파르와 함께 배에 오른 이들은 일본땅에 도착하는 순간 혹독한 노역과 마주하게 된다. 

소녀들은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6시까지 손이 쩍쩍 갈라지는 고통을 참으며 군용기를 국방색으로 물들였다.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고 계속된 페인트칠은 소녀들의 몸을 한없이 괴롭혔다. 페인트 자체도 강한 독성을 지녔지만, 점성을 낮추기 위해 쓰는 시너까지 더해져 피부 뿐만 아니라 눈과 호흡기에 문제가 생겼다. 양금덕 할머니는 "밥이 타도 전혀 모를" 정도로 지금도 냄새를 맡지 못한다. 소녀들의 무일푼 강제 노역은 광복(1945년 8월)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70년이 지난 지금 광주에 살고 있는 양금덕, 이동연 할머니와 9일 오전 8시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만났다. 두 할머니 그리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 할머니들의 나고야행은 일본에서 근로정신대 문제를 다뤄온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의 초대로 이뤄졌다. 양금덕 할머니는 "고마운 일본인들이 초대해줘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슬프기도 하다"면서 탄식을 내뱉었다.

"아직 아베(일본 총리) 놈이나 미쓰비시 놈들 사과도 못 받았는디... 글고 이 나이 먹다보니 이제 마지막이란 생각이 든께 영 슬프고 그래요. 아마 인자 또 갈 일이 없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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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고야로 출발 나고야로 가기 위해 9일 오전 8시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버스에 오른 양금덕 할머니가 생각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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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4시간 쯤 달리니, 공항에 도착했다. 이동연 할머니는 "나이가 80이 넘은께, 버스 오래타믄 다리가 아파 죽겄어"라며 휠체어로 몸을 옮겼다. 공항에는 안양에 사는 김성주 할머니가 미리 도착해 있었다. 떨어져 산 탓에 오랜만에 만난 세 할머니는 서로 껴안고 얼굴을 만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러던 이동연 할머니가 갑자기 "박해옥이는 어디있어?"라고 물었다. 광주에 사는 또 한 명의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박해옥(85) 할머니는 출발 전날 집에서 넘어져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광주에서 버스에 오를 때도 이동연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금세 잊어버렸는지 재차 박해옥 할머니를 찾았다. 함께하지 못한 박해옥 할머니는 서툰 맞춤법이지만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쓴 편지를 보내왔다.

"이번 기회에 너무나 만나고 싶어 꼭 갈(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너머(넘어)져서 못가게 되여(어) 미안합니다. 맛(만)나는 기회가 다음에 있게 되면 꼭 함(한) 번 보고싶품(싶습)니다. 못보고 하나님 나라에 가면 하늘나라에서 가서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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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꾹꾹 눌러쓴 할머니의 편지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박해옥 할머니가 나고야 미츠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측에 쓴 편지. 박 할머니는 당초 9~11일 강제징용 현장인 일본 나고야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출발 전날 갑자기 집에서 넘어져 움직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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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와줘서 고마워요 9일 나고야국제공항에 도착한 이동연 할머니가 '나고야 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 회원들과 공항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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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되풀이 안 하도록, 여기 진실을 새긴다"

일본 나고야에 도착한 다음날인 10일, 할머니들은 일찌감치 호텔을 나서 차에 올랐다.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를 찾기 위해서다. 이동하는 동안, 양금덕 할머니는 70년 전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나, 어찌나 배가 고픈지. (밥을) 주걱으로 딱 (한 번) 퍼 주면 서로 더 큰 놈 먹을라고 난리를 치제. 밥도 알랭이쌀이라고 힘아리 없는 쌀 있어. 고놈만 줬제. 한국에서 도둑질해 온 좋은 쌀은 일본놈들이 다 묵고, 우리는 안 좋은 즈그 나라 쌀 먹이고. 긍께 돌아서믄 금방 배고파블제.

그래서 일요일에 일 안 할 때, 김혜옥(2009년 사망)이랑 같이 몰래 빠져나와서 외(오이) 따묵고, 가지 따묵고…. 어느 날은 떨어진 홍시를 주워 먹고 있는디 그 집 일본 아줌마가 오라고 하더라고. '우리가 하도 배가 고파서 그럽니다'라고 하소연했더니 아줌마가 밥을 챙겨줌서 담부턴 남의 것 따먹지 말고 자기네 집으로 오라대. 그래서 한 세 번 갔지? 근데 내 생각에 금방 걸릴 것 같더라고. 걸리믄 얻어 터지고 난리제. 그래서 더는 안 가브렀어. 고마운 아줌마인디 이름도, 성도 못 물어보고 해방돼 브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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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 전 이곳은... 추도비가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광기제작소 터 인근에 이르자 양금덕 할머니가 강제징용에 시달리던 70년 전을 떠올리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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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창에 비친 전범기업의 흔적 양금덕 할머니가 여전히 남아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우주시스템제작소 공장을 차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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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30분 쯤 달리니 너른 공사장이 눈에 띄었다. 양금덕 할머니가 "여그여, 여가 기여! 여그가 전부 공장 지대였고, 여긴 도로였고, 어, 어 저짝이 들어가는 입구"라며 손가락으로 차창 밖을 가리켰다. 할머니는 70년 전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본래 니시보노세키(日淸紡績, 방적회사) 공장이었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는 2차 대전 당시 군용기를 만드는 공장으로 사용됐다. 전쟁 후, 공장 부지는 다시 니시보노세키에 반환됐는데, 이후 건물이 모두 철거되고 2012년 매각되면서 지금은 다른 건물과 골프연습장, 공사 현장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인근에는 지금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우주시스템제작소가 남아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제작소 터 옆의 메이난후레아이 병원 주차장엔 아주 의미있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여기에 진실을 새긴다"라는 일본어 글귀가 새겨진 이 비석은 '도난카이 지진 피해자 추도 기념비'이다. 일본인들이 직접 나서 조선인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위해 만든 이 비석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지금껏 소중히 보존되고 있다.

*[나고야의 눈물 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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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 되풀이 않도록, 여기 진실을 새긴다"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여기에 진실을 새긴다"라는 일본어 글귀가 새겨진 추도비를 김희용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고문이 카메라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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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흘러... 공사 중인 강제징용 현장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70년 전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 지금은 다른 건물과 골프연습장, 공사 현장 등으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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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에 잠긴 근로정신대 할머니 나고야로 떠나기 위해 9일 인천국제공항에 모인 이동연, 김성주 할머니(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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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 관련기사]
정부가 자초한 '1800원 모욕'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항소심도 승소
"미국 사람만 사람? 속 뒤집어져"
"중국 배우자, 전범기업 제품 안 사"
"미중에만 사과, 한국은 아베와 한편?
일본 국회의원도 고개 숙였는데...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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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교과서 공습 실패하자 ‘학살작전’ 돌입

7종 ‘학살’하고 1종만 남기기, 이게 국정화
 
 
 
육근성 | 2015-10-16 14:56: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61년 5월 16일 포병여단, 해병대, 공수특전단 등을 앞세워 청와대를 점령한 박정희. 쿠데타에 성공하자 ‘혁명공약’을 발표한다. 마지막에 이런 문구를 넣었다. 총과 탱크로 헌정질서를 유린한 자신의 만행에 대해 국민의 반응이 어떨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박정희 때 가르친 역사, ‘5.16과 유신은 올바르다’

하지만 박정희는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생각이 없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손에 넣은 지 2년 만에 스스로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는 1967년 재선에 성공한다. 하지만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1차 중임만 허용하는 헌법이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3선 개헌에 돌입한다. 걸림돌이 있었다. ‘정권의 후계자’로 부상한 김종필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결성한 ‘국민복지회’가 그것이었다. 박정희는 ‘정변동지’이자 오른팔이었던 김종필을 가차 없이 제거했다.

김종필을 숙청한 박정희는 3선 개헌에 착수한다. 폭압적인 분위기에서 개헌안이 통과됐지만, 선거(1971년)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가까스로 3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당선이 되자마자 숨겨왔던 비수를 꺼낸다. 1972년 10월 비상조치를 발표하고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삼엄한 비상조치 속에서 위헌적 방법으로 통과된 유신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꿔놓았다. 국민이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관제기구가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했다. 종신집권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절대군주’가 된 박정희는 자신의 ‘만행’를 덮고 미화하기 위한 윤색작업에 돌입한다.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그것 중 하나다. 5.16정변과 유신독재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이라고 가르쳤다. 그 시절 교실마다 박정희와 독재정권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라는 식의 세뇌교육이 매일 진행됐다.

“역사를 올바르게 배우고 익히는 일은 내일의 새 역사를 창조할 우리들의 가장 중대한 당면과업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고교 국사교과서 머리말)


틀린 게 옳고, 옳은 게 틀렸다

12.12반란으로 정권을 거머쥔 전두환도 ‘올바른 교육과 역사관’을 강조했다.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서도 역사를 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국사교과서를 발행했다. 전두환의 뒤를 이은 노태우 정권도 ‘올바른 역사’를 주장했다. 자신들의 만행과 치부를 ‘올바름’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아무도 풀지 못하게 꼭꼭 묶어놓고 싶었나 보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 (전두환 정권 국사교과서/1982년)

“민족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바르게 처리할 역사적 능력을…” (노태우정권 국사교과서/1990년)

이런다고 ‘틀림’이 ‘옳음’이 될 리 없다. 조악한 위장술이다. 오히려 ‘틀림’만 더 부각될 뿐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은 틀린 것을 올바른 것으로 둔갑시켜 학생들에게 주입했다. 틀린 게 옳고, 옳은 게 틀리다는 식의 근현대사 교육이 이뤄졌다.

교학사교과서 공습작전 완전 실패로 끝나자

박근혜 정권도 똑 같다. 국정화가 필요한 이유를 ‘올바른 역사교육과 역사관 확립’이라고 말한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국정화 전환을 발표하면서 ‘올바른’이라는 단어를 거듭 반복해 사용했다. 현재 교과서는 다 옳지 못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교과서가 옳다는 주장이다. 집필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올바르다’라고 평가한다.

평가가 먼저 나오다니 경악할 일이다. ‘실체’가 이미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면 코흘리개도 뭔지 감 잡을 수 있을 거다. 2013년 출간됐지만 일선학교에서 완전히 외면당한 교학사 교과서가 ‘실체의 원형’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뉴라이트 진영이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집필해 출간한 것이 교학사교과서다.

책이 나오자 여당과 보수단체들은 ‘교학사교과서 판촉사원’처럼 행동했다. 각 교육청과 각급 학교에 압력을 가하며 채택을 독려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채택률 0.1%로 검인정 8종 중 단연 꼴찌. 이렇게 ‘뉴라이트 교과서 공습작전’은 대참패로 끝나고 만다.

7종 ‘학살’하고 1종만 남기기… 이것이 국정화

공을 들였는데도 채택률이 0%대에 불과하니 얼마나 화가 나고 쪽팔렸을까? 드디어 만지작거리던 카드를 꺼낸다. 한방에 확 뒤집어 단박에 꼴찌를 1등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결국 맘에 드는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학살’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게 바로 국정화인 것이다.

‘프레임 작업’에도 돌입했다. 검인정 8종 중 교학사교과서를 뺀 나머지 7종을 겨냥해서다. 7종 모두에 ‘빨간 칠’을 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검인정 8종 중 7종이 모두 좌편향 교과서”라고 주장한다. 조선일보 등 정권 보위언론은 “진보교과서가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며 “좌파 독식은 좌파 카트텔 때문”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편다. 제 입맛에 맞는 1종만 남기고 나머지는 깡그리 제거하겠다는 얘기다.

경쟁자를 모두 제거하면 늘 1등이 된다. 이런 식의 ‘유아독존’ 체제를 만들어 종신군주를 꿈꿨던 박정희와 아버지의 수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그의 딸. 부전여전이라더니 쿠데타의 DNA까지 물려받았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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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국정교과서 공방'에 초등학생들 웃음

 

[국회 대정부질문] 도종환 "모든 교과서, 북한 비판적 기술" vs. 황교안 "수정전 교과"

15.10.16 17:34l최종 업데이트 15.10.16 21:2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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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절대 안돼" 16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선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불러세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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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장에서 '국정 교과서'를 놓고 고성으로 말싸움하던 국회의원들이, 참관 중이던 초등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됐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개입에도 여·야 의원들의 설전이 이어지자 학생들은 놀란 눈으로 이를 지켜봤다.  

16일 교육·사회·문화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도종환 의원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이전에 '기존 교과서에 6·25가 남북한 모두의 책임인 것처럼 기술 돼 있다'고 하셨는데 어느 교과서 몇 페이지냐"고 물었다. 

8종 역사 교과서를 품에 한 아름들고 나온 도 의원은 "과거 미래엔 교과서를 예로 드셨는데, 제가 찾아보니 여기엔 분명히 북한 책임이라고 쓰여 있더라"며 교과서를 펴 보였다. 그에 따르면 미래엔 교과서 316쪽에는 '북한의 남침에 유엔군이 파병되다'라는 소제목과 함께, '북한군 전투 명령' 등 전쟁이 북한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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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총리 불러세운 도종환 의원 16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선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불러세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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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당황한 듯한 황 총리는 "제가 지금 자료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며 "교육부의 수정 지시를 받고 나서 그 부분이 달라진 것이다", "현재 고교 1·2학년은 이렇게 배우는지 모르지만 고 3학생은 여전히 문제가 되는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도 의원은 그러나 "국사를 배우는 건 고등학교 2학년"이라며 "게다가 지금은 2015년이다, 2013년에 이미 교과서가 이렇게 개정됐는데 왜 옛날 교과서를 가지고 얘기하는가"라 말했다. 그는 이어 "천재교육 등 다른 8종 교과서에도 모두 '북한이 기습 남침했다'고 나와 있다"며 "그게 아니라면, 어느 교과서 몇 페이지인지 말해보라"고 덧붙였다. 

황 총리는 "수정 전 교과서에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 "과거 (문제된) 본문은 그대로 있다"고 답했다. 도 의원의 계속된 추궁에 황 총리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석에서는 "교과서 출판사를 대라"는 지적이 나왔고, 이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말 끊지 말고 (말을) 들으라"고 대응했다. 팔짱을 끼고 앉아 있던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도 의원은) 설명을 들어요, 설명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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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들도 16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선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불러세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경기 화현초등학교 학생들이 일어나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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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들도 16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선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불러세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자, 국회 참관을 온 군산 영광여고 학생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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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갑윤 부의장이 "판단은 국민이 한다, 조용히들 해달라"고 개입했지만 여야 의원들 간 고성은 끊이지 않았다. 야당 의원석에서는 "조원진 의원에게 주의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 "공정하게 사회를 보라"며 정 부의장에게 항의했다. 자리에서 야당 의원들의 항의를 듣고 있던 조 의원은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마침 이날 본회의장에는 경기 화현초등학교 등 초등학생 130여 명이 참관석에서 방청 중이었다. 큰 소리로 싸우는 의원들을 몇몇 학생은 놀란 눈으로 지켜봤고, 노란색 단체복을 입은 한 여학생은 친구와 함께 국회의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기도 했다. 

황 총리는 이날 "지금이 어떤 시대냐"며 "의원님이 걱정하시는 그런 부분이 없도록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도 의원은 그러나 "국가 권력이 집필 저작권을 가진 것이 국정 교과서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부끄러운 역사든 자랑스러운 역사든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중지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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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방 지켜보는 고등학생 16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선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불러세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자, 국회 참관을 온 군산 영광여고 학생들이 이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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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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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올해 김위원장에 친서 보낸 까닭은?

 
 
 
러시아, 조선과 협력체계 확대 의지 표명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0/16 [16: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영토대국, 자원대국, 군사대국, 과학대국인 러시아가 조선에 협력 강화를 하자고 매달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국정부는 좀더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부분까지 국제 정세를 분석해 남북 관계 강화를 통한 민족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정섭 기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올해 김정은 조선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조-러협조 관계를

 

강화하자는 친서를 전달 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통신 스프티닉크는 지난 15일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장관의 말을 인용 이같이 밝히

 

면서 러시아가 조선과 협력 강화를 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갈루치 장관은 "올해 조선과 러시아 간 친선 관계를 공고히 하는 주요한 여러 행사가 진행

 

됐다"며 "적극적인 대표단 간 교류와 만남, 다양한 행사들은 양국 협력 발전에 일시적인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 가능성을 설정하는 데 주요하

 

게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조-러 간 친선의 해 지정은 김정은 동지가 최룡해 동지를 특사 자격으로 모스크바

 

에 보냈을 때 결정하게 됐다"며 "당시 최룡해 동지를 맡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조선

 

지도자에게 러시아와 북한 간 관계를 강화하자는 내용이 담긴 개인 서한을 전달했었다."고

 

상기했다.

 

 

 

또한 "양국 간 관계 발전에 있어 디딤돌이 된 것은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배학

 

원유공업상 및 여러 조선 대표단의 러시아 방문과 리룡남 대외경제상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서 열린 국제경제 포럼에 참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리수용 조선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이 모스크바와 쿠알라룸푸르에서

 

회동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친선의 기간에 뱌체슬라프 레베데프 러시아연방 대법원장이 이끈 러시아 상원

 

의원 대표단 방문을 비롯해 이반 아브라모프 러시아 자유민주당 의원이 이끈 러시아 하원

 

의원 대표단, 예브게니 부쉬민 러시아 연방평의회 부의장이 이끈 평의회 대표단, 알렉산드

 

르 라핀 극동군관구 부사령관이 이끈 국방부 대표단, 안드레이 클리모프 통합러시아당 총

 

이사회 상무위원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다"고 열거했다.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장관은 계속해서 "실질적인 분야에서 지속적인 조선과 러시아의

 

관계 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 설정은 지난해4월 평양에서 열린 7차 경제교역 및

 

과학 기술 협력 국가간 정부 위원회에서 정해졌다"며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장관과 리룡남

 

대외경제상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고 회고했다.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장관은 이어 조러 친선의 해를 기념하는 문화 교류 행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올해 8월 조선공훈국가합창단은 모스크바와 하바롭스크에서 순회공연을 했으

 

며 평양에서 러시아 MVD 앙상블 공연과 함께 성황리에 마쳤다.

 

 

 

알렉산드르 갈루치 장관은 " 러시아는 적극적이고 전통적인 조선과의 우호관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란다"며 "모든 분야에서 있어 상호 이익을 가져다주는 협력

 

체계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해 조-러 협력 관계가 강화 발전 할 것으로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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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박근혜 위해 쓴소리 계속할 것"

 
긴 침묵 끝 '기지개' …"공천 룰, 5:5에서 국민 참여 비율 더 늘려야"
최하얀 기자(=대구) 2015.10.16 23:31:09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16일 현행 당헌·당규에 따른 공직자 후보 선출 방식인 당원 50%, 일반 국민 50% 참여 비율보다 국민 참여 비율이 늘이는 것이 좋다는 뜻을 밝혔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대구 중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을 만나 현재 새누리당 내 최대 현안인 내년 총선 공천 룰 논쟁과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50대 50비율을 유지하자는 당내 친박계에 맞서 국민 참여 비율을 높임으로써 당초 당론인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도)에 준하도록 공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김무성 대표 쪽에 힘을 실어준 발언으로 해석된다. 
 
유 전 원내대표는 또 김무성 대표가 앞서 제시한 '안심번호 여론조사' 제도가 기존의 ARS 여론조사 방식보다 더 좋은 조사 방식이라는 생각도 밝혔다. 
 
그는 "기존 방식으로 조사를 하면 60대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20대라고 한 후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김 대표 측의 설명을 들어보니, 안심번호 여론조사에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하지도 않더라"라며 내년 총선에서 안심번호를 이용한 여론조사를 상향식 공천의 하나로 제시했던 김 대표에게 힘을 실었다.  
 
다만 친박계 등 당내 일각에서 존속을 주장하는 '전략 공천'이나 청와대 또는 박근혜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대구·경북 지역 총선 출마를 통한 현역 의원 물갈이를 뜻하는 'TK 물갈이'설에 대해선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도 말을 아꼈다. 
 
유 전 원내대표와 기자들과의 식사 간담회는 이날 저녁 8시께 진행된 계산성당에서의 '대구의 미래를 위한 열린 특강'을 앞두고 인근 식당에서 진행됐다. 
 
대구 지역 기자들은 물론, 서울 지역 기자들도 강연을 앞두고 대거 대구를 방문해 유 전 원내대표의 입을 주목하는 등 높은 취재 열기도 이목을 끌 법한 지점이다. 
 
앞서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 7일 대구에서 한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는 "저와 뜻을 같이했다는 이유로 (가까운 의원들이) 부당한 압력을 받는다면 가만 있지 않겠다"며 강력한 경고를 한 바 있다. (☞ 관련 기사 : 유승민"청와대와 대표간 공천싸움 안 좋은 현상")
 
이에 따라 유 전 원내대표가 지난 7월 자진 사퇴 후 지속했던 긴 침묵을 깨고, 정치 현안에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한 기지개를 켰다는 평이 나왔다. 
 
때마침 대구 수성갑에서 내년 총선을 준비 중인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전 의원이 26일 발간되는 저서 '공존의 공화국'에서 "김문수보다 유승민이 대구를 대표하는 대선 후보감"이라고 해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주목도를 올리기도 했다. 
 
이날 계산성당에서 '대구의 미래를 위한 열린 특강' 릴레이 시리즈의 하나로 진행된 그의 강연 '대구, 개혁의 중심이 되자'에도 500명가량이 참석하는 등 성황리에 진행됐다. 앞선 특강에 비해 특히 참가자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강연이 끝나고는 '서울 양재동·개포동에서 강연을 듣기 위해 왔다'며 유 전 원내대표에게 인사를 건네는 지지자들도 보였다. 
 

▲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16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대구, 개혁의 중심이 되자'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유승민 "박근혜 성공하라고 쓴소리 한 것…남은 임기 계속하겠다"
[강연] '대구, 개혁의 중심이 되자'…"공천 받을 거라 100% 확신" 농담도 
 
유 전 원내대표가 이날 한 강연의 주제는 '대구가 정치·경제 개혁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평소 자신의 정치 소신인 '개혁적 보수'에 대한 상을 거듭 밝히며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저는 대통령이 성공하시라고 (쓴소리를) 드렸고 남은 절반의 임기 동안에도 그렇게 하겠다"고도 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강연 시작과 함께 "제가 요즘 시련을 조금 겪고 있는데, 오늘 (연단 뒤에 강연 시각자료를 띄울) 스크린을 설치하면서도 15분가량 시련을 겪었다"고 해 청중의 웃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제한된 강연 시간을 일부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하며,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 이후 친박계의 요구로 자진 사퇴를 해야 했던 처지를 우스갯소리처럼 풀어낸 것이다.  
 
이날 강연의 큰 얼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치에 관해 한 말들과 유 전 원내대표의 '개혁적 보수'라는 정치 철학이 잘 연결지어진 형태였다. 
 
유 전 원내대표는 "나는 사회의 현실, 국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가들을 우리에게 더 많이 허락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하게 기도한다"고 한 교황의 말을 소개하며 "우리 대구·경북이 따뜻한 공동체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중심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TK는 폐쇄적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대구는 과거 영남 사림의 개혁정신이 깃들고 의병의 근거지가 된 곳이며, 국채보상운동과 2·28 학생민주운동이 일어난 곳"이라면서 "대구는 원래 개혁적인 곳"이라고 강조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평소 그의 정치 철학인 "안보는 정통 보수, 민생은 진취적 중도 개혁, 정치·사회는 통합  노선으로 새누리당이 가면 계속 집권할 것이라고 본다"고 해 청중으로부터 또 한 번 박수를 끌어냈다.  
 
그는 이어 "대구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프라이드가 굉장히 강하다. 저도 그렇다"면서 "이제 그 분의 따님이 대구·경북에서 배출한 대통령이 되셨다. 우리 대구·경북은 그 다음도 준비해 나가야 하는데, 그 기본 정신과 방향이 오늘 제가 말씀드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이날 강연 중간중간 자신의 2011년 전당대회 출마 선언문과 그가 정치 '멘토'로 삼았다고 알려진 보수주의의 원조 에드먼트의 말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강연 말미에는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저는 정치를 해왔습니다"라는 지난 7월 8일 사퇴 회견문의 일부를 다시 읽어 내려갔다.
 
그는 "가난하면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분들에 대해 새누리당이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면서 "그 분들을 위해 우리 새누리당이 뭘 했나. 그런 분들을 위해 양극화 해소와 복지 정책을 이야기하면 그게 왜 좌파인가. 나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준비된 강연이 끝나자 청중 석에서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정치 현안에 대한 유 전 원내대표의 의견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내년에 공천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는 "저는 상향식 경선을 하면 거기에 참여할 것"이라면서 "저는 100% 공천을 받는다고 확신한다. 혹시 공천이 안 되면 그때 가서 조용히 말씀드리겠다"며 웃었다. 
 
그는 소원해진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제법 긴 답변을 내놓았다. 
 
유 전 원내대표는 2004년 박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당시부터 시작된 긴 인연을 소개한 후 "저는 야당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 교체가 정의라고 한때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정치권 들어와서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겪어보니 이기는 것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게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가 박 대통령께 쓴소리를 많이 했다보니 세어보니 몇 번 안 했더라고요"하고 웃더니 "(박 대통령이) 그 자리 올라가시기까지 얼마나 어렵게 올라가셨나. 저는 총리 부총리 장관 바라는 거 아무것도 없다. 제가 오늘 말씀드린 방향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가주셨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고, 그런 차원에서 몇 번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다만 제가 말할 때 좀 덜 굽힌다거나 매너가 좀 부족하거나 말이 거칠 수 있는데, 저는 대통령이 정말 성공하시라고 말씀드렸고, 절반 정도 남은 임기에도 그렇게 하겠다"며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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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9종 연어 중 최고 맛은 새빨간 홍연어

 
황선도 2015.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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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박사의 연어 이야기 ② 세계의 연어들

태평양 7종 서식, 우리나라엔 연어와 시마연어 회유

최대어인 왕연어는 길이 150㎝ 무게 61㎏까지 자라

 

5_Bowman Tim, U.S. Fish and Wildlife Service.jpg» 낚아올린 약 40킬로그램짜리 왕연어. 연어 무리 가운데 가장 큰 종류이다. 사진=팀 보우만,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연어는 분류학상으로 연어목, 연어과, 연어속에 속하는 냉수성 어류로 태평양에는 홍연어(Sockeye salmon), 은연어(Coho salmon), 왕연어(Chinook salmon), 연어(Chum salmon), 시마연어(Cherry salmon), 곱사연어(Pink salmon)과 강철머리송어(Steelhead trout) 등 7종의 연어 종류가 분포하며, 대서양에는 2종이 서식한다. 
 
연어류와 송어류는 등짝 표피와 꼬리지느러미에 검은색 점인 흑색소포가 어떻게 있느냐가 종마다 다른 특징을 갖고 있으며, 잇몸 색깔과 이가 있는냐로 종을 구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 모든 종이 자연상태에서 서식하지는 않으며, 연어와 시마연어 등의 2종만을 볼 수 있어 아직은 낯설다.
 
집합명사와 연어와 헷갈리는 종명 ‘연어’는 ‘참연어’로 부르자

1_Knepp Timothy.jpg» 우리나라에 주로 회유하는 연어. 사진=케프 티모시,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우리나라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연어(학명 Oncorhynchus keta)는 동해를 비롯하여 일본 연안, 북해도, 쿠릴 열도, 캄챠카 반도, 알라스카, 캐나다 서부 연안까지 북태평양 차가운 바다에 널리 분포하는데, 특히 아시아 쪽에 많이 서식한다. 
 
서양에서는 첨새먼(Chum salmon), 도그새먼(Dog salmon)이라 부르는데, 영어로 ‘첨(chum)’은 ‘친구’ 또는 ‘사이좋게 지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개 만큼 인간과 친숙한 동물이 또 어디 있나. 
 
일어로는 사케(サケ)라 부른다. 일본 술인 사케와 동음이어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인간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는 술이라는 개인적인 생각까지 더하여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어라고 하는 종은 연어류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친근하다는 의미의 대표 종이 아닐까 싶다. 
 
이쯤 되면, 연어라는 하나의 종이 연어의 집합명사와 헷갈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연어라는 종에 접두어 하나를 붙일 것을 제안한다. 첨연어와 비슷한 어감의 참연어. 우리나라 물고기 이름에 보편성과 대표성을 헌사할 때 ‘참(眞)’을 붙인다. 
   
겉보기에 꼬리자루가 좁고, 뒷지느러미 가장자리가 하얗다는 특징이 있다. 가을(9~11월)에 하천으로 강오름하여 산란하고, 약 60일이 지난 다음해 이른 봄에 알이 부화하여 어린 치어기까지 하천에 자라다가 5㎝ 정도가 되는 3~4월에 바다로 이동하여 살다가 3~4년만에 어미가 되어 회귀한다. 
 
최대 100㎝, 16㎏ 크기로 자라 연어과 어류 중에 왕연어 다음으로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연어의 평균 체장과 체중은 63.4㎝ 2.4㎏으로 일본과 북미의 연어보다 작고 가벼운데, 이는 우리나라 연어가 분포의 가장자리에 속해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2_시마_산.jpg» 시마연어(위)와 산천어. 사진=북태평양소하성어류위원회(North Pacific Anadromous Fish Commission, NPAFC) 
 
시마연어(학명 Oncorhynchus masou)는 아시아에만 분포하며 캄차카 반도 주변해역에 많다. 실제 러시아 시마 지방에서 잡힌다고 하여 시마연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시마연어는 봄(4~5월)에 하천으로 올라와 가을에 산란하고 이듬해 봄에 부화하여 1년 정도의 치어기를 하천에서 자라다가 일부는 하천에 머물고, 일부는 바다로 이동을 한다. 바다로 이동한 강해형 연어를 시마연어(영어로 체리새먼(Cherry salmon), 일어로 사쿠라마수(サクラマス)라고 부른다)라고 하며, 2~3년만에 어미가 되어 산란을 위해 강으로 회귀한다. 
 
동해안 지방에서는 봄철에 바다에서 잡은 시마연어를 송어, 바다송어, 참송어라고도 부른다.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민물에서 사는 육봉형을 산천어(영어로 마수새먼(Masou salmon), 일어로 야마메(ヤマメ)라 부른다)라고 하며 주로 수컷이며, 우리나라 동해안, 일본 서북부, 동북아시아 하천에 서식한다.
 
맛 좋다는 홍연어

3-Oncorhynchus_nerka_flipped.jpg» 홍연어. 그림=위키미디어 코먼스

 
홍연어(학명 Oncorhynchus nerka)는  바다로 가는 강해형과 하천에서만 사는 육봉형의 두 종류가 있다. 바다로 회유하는 강해형 홍연어는 북태평양 연안, 북해도, 동해안 북부에 서식하나 우리나라에는 서식하지 않는다. 
 
이가 거의 없으며, 눈은 두드러졌다. 산란하러 하천으로 올라오면 혼인색으로 몸에 붉은색을 강하게 띠며, 여름에서 가을까지 심지어는 지역에 따라 12월까지 산란한다. 이러한 생태 특징을 이름에도 붙였다. 
 
영어로 속아이새먼(Sockeye salmon) 또는 레드새먼(Red salmon)으로 부르는 이유는 눈의 생김새와 혼인색이 유난히 붉은 것을 반영한 것 같다. 일어로는 베니사케(ベニザケ)라 부른다. 
 
모천에 도달하면 머리와 등짝은 녹색이 되고, 옆면은 붉은색으로 변하는 혼인색을 띤다. 산란할 때가 되면 암컷은 짝짓기 할 수컷을 제외하고 다른 수컷이나 암컷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며 자갈을 파서 둥지를 만들어 들어가 앉으면 곧바로 수컷이 따라 들어와 부르르 떨며 방란과 방정을 한다. 
 
암컷은 둥지를 자갈로 덮고 자리를 옮겨 또 다른 둥지에 산란을 반복하는데 3~5일 동안 3~5개의 산란장을 만든다. 첫해 여름에 바다로 내려가지만 어떤 계군은 특이하게 하천과 호수에서 1~3년간 자라다가 바다로 내려가 3~4년간 성장하여 산란회귀하기도 한다. 육봉형인 코카니(Kokanee, 일어로는 히메마스(ヒメマス)라 한다)는 주로 호수에서 보내는데, 2~7년 산다. 연어 중 맛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맛이야 개인취향이다. 

 

과학자도 놀란 어린이 그림책의 설명

4_Joannatirn _Coho_salmon_pair.jpg» 산란터에 도착한 은연어 한 쌍. 사진=Joannatirn, 위키미디어 코먼스

  
은연어(학명 Oncorhynchus kisutch)는 캄차카 반도, 캐나다와 미국의 서부 연안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는 서식하지 않는다. 잇몸은 희고 혀는 검은 색을 띤다. 꼬리가 사각 절형이다. 몸 빛깔이 은빛이라 실버새먼(Silver salmon)이라 부르는 것은 알겠는데, 더 일반적으로 부르는 코호새먼(Coho salmon)의 유래는 알지 못한다. 일어로는 긴자케(ギンザケ)라고 한다.
   
딸아이가 캐나다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닐 때 도서관 선생님한테 받아온 동화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캐나다 작가가 쓴 연어 이야기책이었는데, 그려진 그림의 색깔은 중간색을 썼는데도 사실적이었다. 
 
더 놀라온 것은 동화책 스토리가 과학적 정보에 근거했다는 것이다. 물고기 박사인 내가 읽으면서 공부할 정도였다. 그 내용을 간추려 은연어의 생활사를 서술해 본다. 
 
11월 늦은 가을에 산란과 수정이 이루어지면 11∼12일만에 어미는 죽는다. 12∼1월에 부화가 되어 앨리번이라 부르는 유어가 되어 배아래 붙어 있는 난황을 흡수하며 자란다. 3∼4월이 되면 난황을 다 흡수하고 프라이라 부르는 치어가 되어 먹이 사냥을 시작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옆구리에 파마크라 부르는 세로줄무늬가 생겨 포식자로부터 위장을 한다. 
 
하천에서 1년이 지난 4∼5월이 되면 스몰트라고 부르는 미성숙어가 되어 바다로 내려가는데, 이때 파마크는 옅어지고 비늘이 은색으로 덮여 바다에 적응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내 나름의 해석을 하러 끼어들어가 보면, 물결이 어른거리는 하천의 여울에서는 위장술로 유용했던 세로줄무늬가 수심이 깊은 바다로 가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니 개체발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신비롭기까지 하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가서, 어린 은연어는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다다르면 긴 여행을 하기 위해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이 먹어 이전보다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 6월이 되면 바다로 들어가는데, 이때 몸 색깔은 더 진해져서 등은 어두운 검은색으로 옆구리와 배는 은색으로 변한다. 
 
어린 은연어는 16∼18개월 동안 바다에서 살다가 이듬해 여름이 되면 어미가 되어 6개월을 거쳐 모천으로 회귀한다. 민물로 들어간 어미는 먹는 것을 중단하고 자기 몸에 저장한 지방을 소비하며 산란을 준비한다.
 
피부는 두꺼워지고 껍질은 가죽처럼 되며 주둥이는 구부러지고, 암컷은 알이 성숙해지면서 몸이 부풀어 오른다. 모천에 도달하면 수컷은 혼인색을 띤다. 
 
은연어의 일생을 이보다 잘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어린이 동화책을 통해서도 과학적 지식을 제대로 전하는 사회가 부럽다.
   
우리나라 연안에는 자연적으로는 서식하지 않으나, 최근 이식승인을 받아 양식 가능한 종으로 시험양식을 하고 있다. 그만큼 맛이 좋다는 것으로 서양에서는 홍연어 다음으로 선호한다.

 

5-1_U.S. Fish and Wildlife Service_1280px-Chinook_salmon_fish.jpg» 혼인색을 띤 왕연어. 사진=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왕연어(학명 Oncorhynchus tshawytscha)는 북태평양 북쪽 연안과 캄차카 반도에 주로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는 서식하지 않는다. 잇몸이 검고, 꼬리에는 반점 많다. 
 
최대 체장 150㎝, 체중 61㎏으로 연어중에서 가장 큰 대형종으로 포란수도 1만3000개 정도로 가장 많으며 9살까지 산다. 치어기 1년 동안을 하천에서 보내고 바다로 내려가 살다가 5~7년만에 회귀하는데, 그 거리가 4000㎞를 넘는다. 
 
치눅새먼(Chinook salmon)이란 이름은 북미 원주민인 치누크족과 관련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 듯하고, 킹새먼(King salmon)은 ‘왕’ 커서, 그리고 스프링새먼(Spring salmon)은 봄에 출몰해서 붙여졌을 것 같다. 이렇게 사연이 많을수록 이름도 다양하다. 일어로는 마수노수케(マスノスオ)라 부른다.

 

6_Jack Roberts, U.S. Fish and Wildlife Service_1280px-PinkSalmon1.jpg» 번식기를 맞아 등이 심하게 굽은 곱사연어. 사진=Jack Roberts,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곱사연어(학명 Oncorhynchus gorbuscha)는 표피 비늘은 작고, 꼬리지느러미에 큰 타원형 반점이 많이 있어 구분하기 쉽다. 북태평양 전역에 분포하는데, 우리나라 동해안에는 봄철에 회유하기도 한다. 
 
가을 산란기가 되면 강으로 올라오는데, 이때 수컷의 등이 혹처럼 부풀어 오르고 머리와 이빨이 커지는 이차성징이 나타난다. 곱사연어는 서양에서 옆구리에 분홍빛이 띈다하여 핑크새먼(Pink salmon) 또는 곱추처럼 등에 혹이 있다하여 험프백새먼(Humpback salmon)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일본에서는 카라푸토마수(カラフトマス), 우리나라 동해안 일부에서는 ‘개송어’라고도 부른다. 
 
치어기는 하천에서 자라다가 바다로 이동하여 성장하다가 16~18개월 후에 다시 산란하러  모천회귀한다. 연어과 어류 중에서 성장이 가장 빠르나 크기가 작아 주로 통조림용으로 쓰인다.
 
지느러미 끝 둥글게 닳아 있는 무지개송어는 양식산

7무지개송어.jpg» 국내에서도 널리 양식되고 있는 무지개송어.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양양연어사업소 
 
무지개송어(학명 Oncorhynchus mykiss)는 연어류와 송어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물고기로 일생동안 옆구리에 붉은 띠를 갖고 있으며, 등이 초록색을 띠고 배쪽은 황색에 가까워 마치 무지개 색깔을 띤 것 같아 이름이 붙여졌다. 
 
영명과 일명 또한 무지개송어란 뜻의 ‘레인보우트라우트(rainbow trout)’와 ‘니지마스(ニジマス)’이다. 1965년 최초로 수정란을 갖고 들어온 정석조씨의 이름을 붙여<한국어도보(1977)>에는 ‘석조송어’로 기재하고 있으나, 학계와 업계에서는 이미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무지개송어를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송어를 뜻하는 ‘트라우트(trout)’ 는 고대 그리스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물고기를 지칭하는 ‘트로크테스(troktes)’란 말에서 유래하였으며, 연어를 뜻하는 ‘세먼(salmon)’과 구별하여 사용되어 왔다. 
 
그동안 무지개송어의 학명은 새모 가아드네리(Salmo gairdnerii)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으나, 1988년 미국수산학회 어명위원회에서 대서양에 서식하는 연어류와 송어류를 새먼(Salmon)속, 태평양에 서식하는 연어류와 송어류를 온코린추스(Oncorhynchus)속으로 분류하면서 태평양에 서식하고 있는 무지개송어와 캄챠카송어는 무지개송어 한 종으로 취급되고 온코린추스 마이키스(Oncorhynchus mykiss)란 학명으로 통일되었다. 
 
오코린추스는 그리스어로 갈고리모양(Onkos)+코(rhynchos)를 뜻하며, 성숙한 수컷 연어류의 휘어진 위턱(갈고리턱) 모양을 묘사한 것이다. 북미의 자연산 무지개송어는 한 종으로 분류되지만 바다로 내려가는 강해형과 일생을 담수에서 보내는 육봉형이 있는데, 전자는 강철머리송어(스틸헤드송어, steelhead trout), 후자는 무지개송어(레인보우송어, rainbow trout)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양식되고 있는 송어는 육봉형인 무지개송어이다. 무지개송어는 북미 서부지역, 알래스카, 우리나라, 일본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양식종으로 이식되었다. 다른 연어과 어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따뜻한 물에 살지만 그래도 여름 수온이 25℃ 이상이 되는 곳에는 살지 않는다. 수컷은 2년, 암컷은 3년이면 성숙하며 북반구에서는 11월∼5월, 남반구에선 8월∼11월에 한번에 700∼4,000개의 알을 낳는다.
   
무지개송어 등지느러미 줄기는 10~14개, 뒷지느러미 줄기는 13~15개인데, 좁은 콘크리트 수조 속에서 양식한 무지개송어의 지느러미는 끝이 둥글게 닳아 있어 자연산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무지개송어는 연어, 산천어, 열목어, 은어, 빙어 등 연어형 어류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기름지느러미를 갖고 있어 한 조상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 이 기름지느러미는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 사이에 위치하는 단순한 육질돌기이며 줄기살(ray)은 없다. 
 
무지개송어도 어린 시기에 연어속 어류(곱사연어 제외)의 특징인 8~12개의 세로줄무늬를 몸 측면에 갖고 있으나, 성장함에 따라 점차 희미해져 만 1년이 되면 완전히 없어진다. 무지개송어의 꼬리지느러미 상하에 검고 또렷한 흑색 반점이 산재하고 있다. 무지개송어 수컷은 다른 연어속 어류와 마찬가지로 성숙하게 되면 턱이 길어지고 위턱이 갈고리모양으로 구부러지며 강한 이빨을 갖게 된다.  
 
강철머리송어는 꼬리자루가 두꺼운 편이며, 꼬리와 머리 위에 작은 반점 산재해 있다.

 

8-Steelhead_trout_digging_redd_March_2013_Stevens_Creek.jpg» 산란 행동 중인 강철머리송어.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대서양에는 대서양연어속 연어가 2종 있다. 대서양연어(학명 Salmo salar, 아틀란틱새먼 Atlantic salmon)는 주로 스칸디나비아와 그린란드에 분포하며, 육봉형은 뉴펀들랜드, 라브라도해, 퀘벡과 같은 캐나다 동부의 호수에 서식한다. 산란은 10월∼11월인데, 산란 후 일부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거나 하천에 머물다 봄에 바다로 돌아가는 다회산란종이라는 산란특성이 있다.

 

9_대서양연어.jpg» 대서양연어. 사진=NPAFC
 
또 다른 대서양연어속에는 브라운송어(학명 Salmo trutta, 브라운트라우트 Brown trout 또는  씨트라우트 Sea trout)가 있다.

10-800px-Salmo_trutta.jpg» 브라운송어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다음 기사로 이어짐>

 

■ 관련 기사: 황선도 박사의 연어 이야기 ① 알래스카서 돌아온 방랑자 수천킬로 고향 하천 돌아와, 먹지도 않고 사랑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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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인 ‘박근혜’ 피고소인 ‘주진우’

 
[인터뷰] 3년 만에 재개된 이상한 명예훼손 수사… "총선 앞두고 손발 묶으려는 것"
 
입력 : 2015-10-16  14:20:39   노출 : 2015.10.16  15:55:35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3년 만에 재개된 ‘이상한 명예훼손 수사’의 피고인이 됐다. 고소인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의 운전기사 김아무개씨는 2012년 5월7일 업로드 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 출연해 2010년 11월 G20 정상회의 무렵 박태규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수차례 만났다고 주장했다. 주진우 기자는 “그 당시는 박태규씨가 부산저축은행 구명을 위해 광범위한 로비를 하고 있었을 때”라고 언급했다. 

박근혜 의원은 김씨와 주 기자 등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다. 박 의원이 기자를 고소한 첫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지난 10월1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김관정)는 주 기자가 이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3년 만이었다. 15일 만난 주진우 기자는 3년만의 검찰 소환을 두고 “총선을 앞두고 기자의 손발을 묶고 싶은 것”이라며 “무죄까지 가는 길이 험난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주진우 시사인 기자. ⓒ주진우
 

운전기사 김씨의 주장은 구체적이었다. 그는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털 호텔 앞에서 박태규가 차에 타 ‘지금 박근혜 대표를 만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검찰은 박태규와 박근혜 의원의 동선을 분석하고 박 의원 비서실장의 신용카드 영수증 등을 조사한 결과 김 씨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기소했다. 김씨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선거법상 명예훼손으로 기소됐으나 절도죄가 추가돼 양형이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주 기자는 “2012년에 많은 언론에서 박태규와 박근혜가 만났다는 보도를 했는데 유독 나꼼수에 소송을 걸었다. 선거철에는 고소고발이 많았고, 처벌 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해 잊어버렸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말한 시점에 두 사람이 안 만났으니 허위사실로 유죄를 받았고, 그래서 허위사실을 보도한 주진우 기자도 유죄라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2012년에 2010년 일을 증언한 박태규 운전기사는 날짜에 있어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다. 기자 입장에선 취재원과 인터뷰를 하며 취재원의 주장을 100% 검증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언론보도의 경우 사실로 믿을만한 충분한 정황이 있으면 설령 허위보도로 판명 나더라도 공익목적의 보도일 경우 위법성 조각사유가 인정된다. 그러나 고소인이 현직 대통령이어서 재판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주 기자는 “박근혜 지지자였던 운전기사가 두 사람이 언제 어디서 봤다고 구체적으로 말했고 나는 그걸 믿었다. 나는 만났다고 말한 증인이라도 데려왔지만, 검찰은 박근혜‧박태규가 안 만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증명했나. 과연 검찰이 박근혜 후보의 대포폰과 박태규의 대포폰을 수사했을까”라고 되물은 뒤 “이번 일에 대한 검찰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박태규와 박근혜는 분명히 만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일가와의 법정 악연은 계속되고 있다. 주 기자는 악연의 시작을 2012년 10월21일 정수장학회 관련 긴급 기자회견으로 꼽는다. 박근혜 후보는 주 기자의 질문에 “(김지태씨의 헌납에)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원 판결이 있다”고 말했다가 사실과 달라 “강압이 없다고 말한 것은 잘못 말한 것”이라고 정정하며 굴욕을 겪었다. 

주 기자가 이 사건으로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집행유예 같은 형을 선고받을 경우 총‧대선을 앞두고 권력비판 기사를 쓰는데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집행유예 기간 중 기소를 당해 범죄사실이 인정되면 양형이 가중되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주 기자는 “나는 모든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한 번만 삐끗하면 끝이다”라고 말한 뒤 “절대 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대다수 언론은 3년 만에 재개된 검찰수사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 방송사의 한 법조출입기자는 “기자들 사이에서 특별히 도는 이야기는 없다”고 전했다. 주진우 기자는 “검찰 기자들 중에서 3년 만에 수사가 시작 된 건 이례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기자가 없다. 법률가와 언론인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힐링캠프’ 통편집 논란, “제작진 이해한다”

   
▲ SBS '힐링캠프' 5일 방송 예고편.
 

주진우 기자는 통편집 논란이 불거졌던 SBS ‘힐링캠프’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일 ‘힐링캠프’는 이승환 with 프렌즈 편으로 진행자 김제동과 가수 이승환‧영화감독 류승완‧만화가 강풀, 주진우 기자가 출연했다. 그런데 본방송에서 주 기자는 거의 화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단 한 번 마이크 잡은 장면이 나왔지만 정면이 아닌 옆얼굴이었다. 방송 이후 실시간검색어에 ‘주진우’가 오르며 통편집 논란이 불거지자 SBS제작진은 “주 기자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며 “녹화 당일에도 주 기자는 이승환 씨의 공연장 대관에 대해서만 자세히 말했다”고 해명했다. 

주 기자는 그날 녹화현장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편집된 내용이 궁금했다. 주 기자는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형을 응원 간 것이었다. 정치적 발언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 기자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FTA를 추진하고 있다. 아마 타결이 될 것 같은데 최근 일어나는 한중 연예계의 빈번한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고 전했다. 채림씨와 중국배우 가오쯔치씨의 결혼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는데, ‘박근혜’란 단어가 나오자 순간 녹화장이 술렁였다는 후문이다.

이날 녹화에서 만화가 강풀은 “우리 다섯 명이서 친하게 지내는데 요새 만화도 너무 잘되고 영화(‘베테랑’)도 잘 되고 공연도 잘 되고 제동이도 잘하고 있다. 다섯 명 중에 제일 잘 된 사람은 진우 형이다. 감옥에 안 갔다”고 말했는데 이 멘트도 편집된 것으로 전해졌다. 주 기자는 “승환 형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편집 논란에 대해서는 “제작진을 이해한다. 방청석에 있게 해준 것도 나를 배려해준 것이다. ‘힐링캠프’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주 기자는 2011년 6월 MBC다큐타임 ‘간첩’편에서 류승완 감독과 함께 ‘간첩 찾기 프로젝트’를 벌이는 코믹 캐릭터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주로 뉴스에서 피고소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주 기자는 “지금은 권력자들이 보기 싫은 사람들은 방송에 나오면 안 되는 그런 시대”라고 말했다. 한편 주 기자는 군사정부 시절 비자금과 이명박정부 시절 비자금을 수년간 취재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몇 개의 문을 더 열었다. 진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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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살린 것은 친일파 출신 만주군 인맥이었다’

월간조선 조갑제 ‘김창룡이 박정희 살려주지 않았다면?’
 
‘박정희를 살린 것은 친일파 출신 만주군 인맥이었다’
 
임병도 | 2015-10-16 08:47: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TV조선이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동영상을 왜곡하여 보도했습니다. TV조선은 10월 13일 ‘더 일찍 죽었어야… 엇나간 역사수업’이라는 제목으로 한홍구 교수가 2014년 강연한 ‘세월호를 통해 본 한국현대사’ 동영상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왜곡 편집, 보도했습니다.
 
앵커는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나기 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했어야 한다는 성공회대 교수의 동영상을 보고 감상문을 써내라고 한 겁니다.’라면서 마치 한홍구 교수가 박정희를 살해했어야 한다는 식으로 보도합니다. 다른 언론들도 사실관계는 확인하지 않고 앞다퉈 왜곡보도를 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을 일찍 죽였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한홍구 교수의 동영상”(<동아닷컴> 10월 14일 자 보도)
“ ‘박정희, 만주서 죽였어야…’ 막장 수업 논란”(<채널A> 10월 14일 자 보도)
“강남 고교 교사 ‘박정희’ 과격 동영상 논란”(<중앙일보> 10월 14일 자 보도)

과연 이들의 보도가 사실일까요? 진실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박정희 살해? 김구는 죽이고 박정희는 살려준 김창룡’

 
한홍구 교수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김창룡이었습니다. 박정희가 주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한홍구 교수가 했던 발언 원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동영상(29분 50초 부분)에서 한홍구 교수는 1948년 여수 14연대 반란 사건 이후 군내에서 벌어진 좌익 수사에서 남로당 프락치로 검거된 박정희가 어떻게 살았는지, 누가 살려줬는지 말합니다.
 
“저 놈(김창룡)이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거든요. 그런데 그때 죽여도 될 사람을 하나 살려줬어요. 남로당이 한국군부에 침투시킨 최고위 프락치였으니까 그때 기준으로 치면 뭐 죽여도 여러 번 죽였어야 할 자인데 그자를 만주에서 같이 놀던 놈이라고. 그놈이 잡히니까 ‘김창룡을 만나게 해달라.’ ‘김형 나 좀 살려주쇼.’그랬더니 이제 살려줬어요.

아 그때 딱 죽여 버렸으면 우리 역사가 조금은 바뀝니다. 대통령이 두 자리는 확실하게 바뀌어요. 박정희니까. 박정희 그때 죽여 버렸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죠. 우리 언니(박근혜)는 태어나기도 전이에요. 태어나 보지도 못하는 거였는데 살려 줬습니다. 오늘의 박근혜를 있게 한, 오늘의 박근혜가 있기까지는 뭐 이런 분들의 다 은덕이 있는 거죠.”
 
한홍구 교수의 이 발언은 김창룡이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의 배후세력이었다는 것을 말하기 전이었습니다. 즉 김창룡이 당시 죽이기보다 살리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박정희는 살려줬지만, 백범 김구 선생은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죽이기보다 살리기가 어려워

―金昌龍대위는 金安一 과장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했습니까?

『그는 1연대 정보주임이었는데 저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고 독립적인 수사를 거쳐서 하였습니다. 행정적인 처리는 저를 거쳐서 하였습니다. 朴正熙 등 육군 사관학교 내 세포에 대한 수사를 金昌龍이 한 것은 1연대가 그 학교와 가까운 태릉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꼭 살려야 할 사람은 살리기가 곤란했고, 꼭 잡아야 할 사람은 잡아놓기가 힘들었습니다. 수사에 협조하여 이제는 풀어주어도 공산주의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살리자고 건의하면, 위에서는 여순반란 사건 때문에 내 부하가 얼마나 희생되었는데 살려준단 말이냐고 하면서 난색을 표했고, 친한 부하를 구속시키려면,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변호를 해주고… (월간조선 1989년 12월호, 조갑제)

1989년 12월 조갑제씨가 쓴 월간조선에서도 ‘죽이기보다 살리기가 어려워’라는 소제목이 나옵니다. 박정희가 죽었어야가 아니라, 원래 박정희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습니다.


‘영남유격사력관 박정희? 특무과장 김창룡이 박정희 살리자고 했다’

한홍구 교수는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는 진짜 남로당 프락치였을까요? 조갑제씨와 이동욱 월간조선 기자가 쓴 ‘박정희 전기’에 이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아니, 남의 교수부장을 빨갱이라고 잡아가면 어떻게 하오?’ ‘아닙니다. 그놈은 빨갱이가 틀림없습니다.’ ‘증거가 있소?’ ‘예, 있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김창룡이 차트를 펼쳐 보였다. 웬만한 사람의 키를 넘을 만큼 큰 차트에는 남로당 수뇌부를 정점으로 하여 밑으로 피라미드 모양으로 퍼져 나간 남로당 군사조직표가 그려져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조직원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박원석 대위의 이름은 박정희 소령 밑에 올라 있었다.

‘아니, 박원석이가 무엇을 했길래?’ ‘드러난 것은 없지만 박정희의 세포입니다.’

김정렬은 박정희가 일본육사 57기 유학생대에 다닐 때 박원석이 58기로서 그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었는데 같은 세포라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김정렬은 몇 달 전의 일이 생각났다. 항공사관 학교 창설을 주도할 간부 7명이 육군사관학교에서 15일간 교육을 받는데 담당 중대장이 박정희 소령이었다. 박 소령은 일제시대의 군경력이 훨씬 선배인 김정렬과 박범집을 매일 저녁에 숙소에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김정렬은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것을 알고 유심히 그를 관찰했다. 명망대로의 인물됨이었다. 그런데 그가 좌익이라니.

김정렬이 ‘박원석은 물론이고 박정희 소령도 내가 보기엔 빨갱이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했더니김창룡은 ‘아닙니다. 그는 확실합니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조갑제 출판부부국장·이동욱월간조선기자)

박정희가 공산주의를 잘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로당 사람들과 접촉했고, 숙군 수사를 통해 체포된 사람들과 연관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사람 대부분도 무죄라고 밝혀야 할 것입니다.

당시 박정희를 수사했던 김안일 소령은 박정희의 구명을 김창룡 대위가 직접 건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안일 소령은 나중에 백선엽 당시 육군본부정보국장에게 박정희의 구명을 건의했다고 밝혔고, 백선엽은 김안일 소령의 주선으로 박정희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朴正熙가 나를 통해서 白국장을 만났다는데 그런 기억은 없고 朴소령 수사담당자인 金昌龍(김창룡)대위가 나를 찾아와 수사에 협조해준 朴대위를 살려주자고 해서 내가 직접 朴소령을 만난 뒤 金대위와 둘이서 白국장에게 구명을 건의한 기억은 납니다』 (박정희 수사 책임자 김안일 특무과장)

숙군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된 군인 중 구명된 유일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는 朴正熙소령이었다. 방첩대(CIC)의 수사반은 남로당 군사책인 李在福이 육군사관학교에 조직을 침투시켜 일부 중대장을 통해 생도들까지 좌익활동에 가담시킨 사실을 포착했다. 사관학교의좌익조직수사에서 용의자의한 사람으로 체포된 사람은 육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고 당시 육본작전교육국의 과장이던 박정희소령이었다.

숙군의 일단계 작업이 완결된 즈음인 49년 초 어느 날 방첩대의 金安一소령이 나에게 『박정희소령이 국장님을 뵙고 꼭 할 말이 있다고 간청하고 있으니 면담을 해주십시오』라고 전했다. 김소령은 아울러 박정희 소령이 조사과정에서 군내 침투 좌익조직을 수사하는데 적극 협조했다는 점을 들어 꼭 만나 봐줄 것을 요청했다. (전쟁과 나, 백선엽)

 

결국, 박정희는 1949년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습니다. 이후 2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가 집행정지를 받고 풀려나 강제 예편됐다가 정보국 문관으로 근무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나자 소령으로 현역에 복귀합니다. 박정희처럼 남로당 프락치로 연루된 사람이 현역으로 다시 복귀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박정희를 살린 것은 친일파 출신 만주군 인맥이었다’

박정희가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군내 좌익 숙군 수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은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만주군에서 활동했던 만주군 인맥 때문이었습니다.

박정희의 구명을 건의했던 김창룡은 관동군 헌병 보조원으로 출발 관동군 헌병 오장(하사)으로 공산주의자를 잡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라면 이를 갈았던 그가 유독 박정희는 살려줬습니다. 박정희의 구명을 도와준 백선엽 또한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 만주군 중위였습니다.

박정희 수사 책임자였던 김안일 당시 특무과장은 백선엽과 김창룡이 박정희의 구명을 위해 연대보증을 섰다고 밝혔습니다. 박정희, 백선엽, 김창룡은 모두 만주에서 일본군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이었습니다.

만주군 출신이었지만 숙군 수사로 처형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달리 박정희는 남로당 조직 명단을 털어놓았고, 전향했기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백하고 만주군 인맥의 도움으로 박정희는 살아남은 것입니다.

1989년 12월 월간조선에서 조갑제씨는 박정희 수사 책임자였던 김안일 당시 특무과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김창룡이 암살되지 않았다면 박정희의 쿠데타와 4.19혁명도 불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조갑제씨는 그런 이야기보다 ‘김창룡이 박정희 소령을 살려주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가 더욱 흥미있는 가상을 부를 것 같다’고 했습니다.
 
김창룡이 박정희를 살려주지 않았다면 당연히 박정희는 죽었고, 5.16쿠데타는 발생하지 않았고, 육영수 여사와 결혼하지 못했으니 박근혜 대통령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홍구 교수의 발언이 이 말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친일파 헌병 출신 김창룡은 김구 선생 암살을 주도하면서 민족지도자는 살해하면서, 정작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독재자는 살려줬습니다. 조갑제씨의 말처럼 김창룡이 박정희를 살려주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역사에서 만약은 없겠지만, 국사 역사교과서 논란의 과정에서 나왔던 한홍구 교수 사건을 따져본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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