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남북분단 씨앗은 동아일보 기사였다

 

[프레임전쟁] 2화 찬탁은 없었다, 반탁운동은 반공운동의 뿌리·친일파는 반공프레임 덕분에 애국자로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7년 04월 21일 금요일
 

※ 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후원할 수 있습니다. [후원하기]

 

1945년 12월27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이란 기사는 거짓이었다. 12월16일 모스크바에서 소련·미국·영국 3국외상이 만나 조선 문제를 논의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를 전하는 해당 보도는 실제 미국이 제안한 신탁통치를 소련이 제안한 것처럼 왜곡했다.

“번즈 미 국무장관은 출발 당시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해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3국간에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하나, 미국의 태도는 카이로 선언에 의해 조선은 국민투표로써 그 정부의 형태를 결정할 것을 약속한 점에 있는데, 소련은 남북 양 지역을 일관한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해 38선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 동아일보 1945년 12월27일자 1면기사
▲ 동아일보 1945년 12월27일자 1면기사
 

 

 

동아일보의 신탁통치 왜곡보도는 한국 언론사(史)에서 좌우이념이 대립한 최초의 사건이다. 동아일보는 당시 친일파 지주들이 중심이 된 한국민주당(한민당)의 핵심 김성수가 창간해, 송진우가 사장으로 있었고 ‘한민당 기관지’로 불렸다.

한국인들은 신탁통치를 ‘제2의 식민지’로 생각해 격렬히 반대했다. 반탁열풍은 시위·동맹휴학 등 대중운동으로 확대됐다. “전 민족이 투쟁하자”(김구), “전국이 결의 표명”(이승만), “최후까지 투쟁하자”(송진우) 등 성명서가 쏟아졌고, 임시정부는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를 설치했다. 자연스럽게 반탁운동은 신탁통치를 제안했다고 알려진 소련에 적대적인 성격을 보였다.  

실제 모스크바 3상회의 내용은 동아일보 보도와 달랐다. 신탁통치안은 소련이 아닌 미국의 구상이었다. 미 대통령 루즈벨트는 1943년 테헤란회담에서 소련 수상 스탈린에게 “한국민은 40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2년 뒤 얄타회담에서 ‘한반도는 소련·미국·중국 등에 의해 20~30년 신탁통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루즈벨트 사망 이후 대통령이 된 트루만은 신탁통치에 소련 영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소련은 미국 제안에 대해 신탁통치 기간이 짧을수록 좋다는 입장이었다.

3상회의 결정의 핵심은 신탁통치가 아니라 조선의 독립민주정부 수립이다. 합의문 1항이 “조선을 독립국가로 재건하고 민주적 원칙에 바탕을 둔 발전”을 위한 “임시적인 조선민주정부 수립”이다. 이를 위해 2항에서 “남조선의 미군사령부와 북조선의 소련군사령부의 대표들로 공동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위원회는 조선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신탁통치 내용이 담긴 3항 “조선 독립의 달성을 위해 협력·원조할 수 있는 방책 작성”은 부수적이었다.  

반탁운동 확산, 친일파는 애국자·좌익은 매국노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건 ‘조선의 민주적 독립정부 건립’을 지지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3상회의 결정을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로 왜곡하면서 ‘3상회의 결정지지’가 ‘찬탁’으로 변질됐다. 

▲ 해방 이후 박헌영(왼쪽)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여운형은 조선인민당 당수를 맡았다. 이 사진은 반공서적에 '음모를 꾸미는 공산주의자'로 묘사되며 많이 실렸다.
▲ 해방 이후 박헌영(왼쪽)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여운형은 조선인민당 당수를 맡았다. 이 사진은 반공서적에 '음모를 꾸미는 공산주의자'로 묘사되며 많이 실렸다.
 

 

좌익세력은 사실을 파악하는데 우선했다. 국내에는 30일부터 3상회의 결과가 보도됐다. 여운형은 조선인민당 선전국장 김오성에게 “이번 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것은 논리상으로 따지면 임시정부를 세우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소”라며 “원색적인 감정은 눌러두고 냉철해야지, 임시정부 수립에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요”라고 말했다. 46년 1월3일 좌익 최대세력인 조선공산당은 ‘3상회의 결정지지’ 입장을 밝혔다.

김구와 이승만 등 우익은 ‘3상회의 결정’을 곧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로 봤기 때문에 좌익을 ‘찬탁세력’으로 몰았다. ‘찬탁’표현이 처음 나온 건 1월4일, 한민당은 ‘조선공산당이 반탁 대신 신탁통치를 수락했다’고 발표했다. 좌익이 찬탁을 주장하지 않은 사실은 1월7일 한민당·국민당·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이 모여 ‘자주독립과 민주정부 수립’에 동의한 ‘4당 코뮤니케’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1월7일 이승만이 “탁치(신탁통치)가 강요된다면 열국의 종속민족으로 우리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타인에게 맡겨놓은 격이 될 것”이라며 반탁입장을 밝히자, 8일 한민당은 ‘4당 코뮤니케’를 번복했다. 앞서 한민당 수석총무 송진우(동아일보 사장)가 3상협정안을 확인하고 이를 지지하자 45년 12월30일 새벽 한현우·유근배 등에게 암살당한 사건도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이 마비된 시기였다. 미군정의 하지 중장, 장택상, 조병옥 등은 송진우 암살 배후로 김구를 지목했다.

해방 직후 가장 중요한 이슈는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이었다. 당시 미군정이 실시한 조사에서 서울시민이 선호하는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14%, 사회주의 70%, 공산주의 10%로 나타났다. 주로 좌익이 진정성 있게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열세에 놓인 우익, 특히 친일파들은 동아일보 왜곡보도로 분위기를 뒤집었다. 친일청산과 토지개혁은 ‘반탁 프레임’으로 바뀌었다. ‘반탁=반소=반공=애국’과 ‘찬탁=친소=용공=매국’으로 구분됐다. 

왜곡보도의 배후세력은 

동아일보 왜곡보도 출처는 ‘워싱턴 25일발 합동’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조선에 대한 결정’이 공식 발표된 시각은 12월28일 정오, 한국시각 28일 오후 6시, 워싱턴 시각 28일 오전 4시였다. 주한미군사령부가 3상회의 결과를 워싱턴에서 통보받은 시각은 29일 오후였다. 동아일보는 공식발표 전에 이런 중대한 내용을 잘못 보도한 것이다.

미군정의 ‘신탁통치’라는 보고서에서 동아일보 기사 출처로 지목한 곳은 ‘합동통신사’, ‘성조기’, ‘태평양성조기’였다. 동아시아 미군들을 상대로 도쿄에서 매일 발행된 ‘태평양성조기’ 27일자 내용이 동아일보 왜곡보도와 내용이 똑같다. 필자는 UP통신의 랄프 헤인젠 기자였다. 헤인젠 기자는 30년대부터 유럽에서 활동했고, 동아시아와 별 인연이 없었다. 동료들 사이에선 ‘악명 높은 날조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정리하면 3상회의 공식 발표 이전에 신뢰가 떨어지는 필자가 쓴 도쿄의 ‘태평양성조기’에 실린 글이 하루 만에 ‘합동통신사’를 거쳐 서울의 동아일보에 실린 것이다.

합동통신은 일제강점기 ‘도메인통신’을 미군정이 1945년 11월에 접수해 합병 등을 거친 곳이다. 합동통신 주간 김동성은 이승만 정권 초대 공보처장을 맡을 정도로 이승만과 친했다. 이승만과 김동성의 힘만으로 도쿄와 서울에서 동시에 왜곡보도를 낼 순 없다. 일본과 한국의 여론을 동시에 장악할 수 있는 곳은 미군정(주한미군)과 맥아더의 도쿄 극동군사령부밖에 없었다. 미군정은 남한 내 언론을 검열하고 있었다.

당시 미군정은 반소·반공 여론이 필요했다. 일본 항복 이전부터 소련이 한반도 북쪽에 주둔했고, 미군은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38선을 그었다. 38선 이남 민심마저 좌익에 우호적이었고, 신탁통치 반대나 친일청산 요구가 거셌다. 미국 본토 정부에 비해 태평양 주둔 미군은 남한 여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은 신탁통치가 남한 정국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신탁통치 계획 수정을 미 국무부에 요청하기도 했지만 거절당했다. 

▲ 1945년 12월27일 동아일보의 왜곡보도 이후 반탁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 1945년 12월27일 동아일보의 왜곡보도 이후 반탁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미군정청 공보부는 12월29일자 ‘정계동향’에 “미국이 즉시 독립을 원한 반면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합동통신사(KPP)의 기사배포가 강력한 반소감정을 일으켰다”고 기록했다. 왜곡보도로 남한 내 우익과 미군정은 반소·반공을 고리로 여론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박헌영 기자회견 왜곡, 미군정의 좌익 죽이기 

뉴욕타임즈 통신원 리처드 존스톤이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헌영의 기자회견을 왜곡한 건 ‘반탁=반소·반공’ 프레임을 만든 또 하나의 사건이다.

1946년 1월5일 박헌영은 내·외신 기자들과 영어로 소련의 신탁통치와 소비에트 연방 가입가능성 등을 묻는 기자회견을 했다. 존스톤은 박헌영이 소련 신탁통치를 찬성했고, 소련 가입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고 기록했다. 뉴욕타임즈에 실리지 않은 이 내용은 열흘 뒤인 1월15일 샌프란시스코 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16일 동아일보·대동신문 등 우익 신문들이 인용하며 박헌영을 공격했다.  

17일 조선공산당은 존스톤의 왜곡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18일 존스톤은 회견 취소를 원한다면 뉴욕타임즈에 항의하라고 발언했다. 당시 뉴욕타임즈에 박헌영 인터뷰가 실리지 않은 사실을 국내에서 확인하긴 쉽지 않은 점을 악용해 거짓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날 미군정은 존스톤 기사에 왜곡이 없다고 발표했고, 조선공산당의 존스톤 추방요청을 거절했다. 박헌영 기자회견 직후 미군정의 하지 장군이 존스톤의 메모에 대해 흥미롭다고 주의를 환기한 사실은 ‘박헌영-존스톤 사건’ 배후가 미군정이라는 의심에 무게를 더한다. 

박헌영 같이 노회한 정치가가 기자들 앞에서 조선공산당을 소련의 꼭두각시로 만드는 발언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미군정의 여론공작 결과 박헌영의 정적들은 그의 목에 현상금 30만 엔을 걸었고, 박헌영은 좌익들 사이에서도 ‘구제불능의 친소주의자’로 낙인찍혔다.  

소련의 반격, 미군정 여론통제  

소련은 남한 내 상황을 파악하고 46년 1월22일 ‘타스통신’을 통해 ‘미군정이 남한 내 반소선전을 허용하고 3상회의 결정 반대를 자극한다’는 평양발 급보를 냈다. 미국 정부는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고, 맥아더 장군 대변인만 타스통신을 비난했다.

타스통신은 24일자로 미국이 신탁통치를 제안한 사실을 공개했다. 미군정이 남한 내 언론을 통제해 타스통신 보도가 전달되지 않자, 미소공동위원회 소련대표 스티코프는 26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타스통신 보도 전문을 발표했다. 그때도 미국 정부가 아무런 대응을 못한 것은 미군정이 반탁·반소 선전을 허용한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 정부 수립 경축식에 참석한 한미수뇌들. 왼쪽부터 미진주군사령관 하지, 태평양미육군 총사령관 맥아더,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 연합뉴스
▲ 정부 수립 경축식에 참석한 한미수뇌들. 왼쪽부터 미진주군사령관 하지, 태평양미육군 총사령관 맥아더,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 연합뉴스
 

 

미군정의 언론통제로 좌익의 목소리는 묻혔다. ‘해방일보’는 46년 4월29일 박헌영을 인용해 “조선에 대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의는 식민지 민족해방과 독립을 보장하는 유일하게 옳은 국제적 원칙”이라고 보도했고, ‘노력인민’은 47년 11월20일 “파쇼희랍화하려는 조국을 구하자”라는 글에서 3상회의를 “조선민족을 위해 참으로 유리한 진보적 결정”이라고 했다.  

좌익 언론을 보면 미군정이 ‘3상회의지지’를 어떻게 ‘찬탁’으로 몰아 한국인을 탄압했는지 알 수 있다.  

46년 1월27일 3상회의를 실현하기 위해 입국한 미소대표단 환영대회에 악기를 가지고 나간 구실로 전남 종연방직 공장장은 노조간부 손만기를 해고했다. 이곳 사장은 미군정의 관리였다.  

2월 경성 철도노동자들이 3상회의 실천을 위해 미소대표단 환영회에 참여하려했다. 이를 간부들이 강제로 막았는데 당시 철도국장이 미국인이었다. 노동자들이 서울운동장으로 향하자 정체불명의 테러단이 습격했고, 철도노조간부 김재완·방준표·박성순·임종한 등이 검거돼 전원 실형을 선고받았다.  

13일자 해방일보는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미소대표단을 환영하자는 시민대회에 참여하려는 우리들에게 무슨 까닭으로 철도국장(미국인)은 참가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고 테러범은 왜 석방하고 테러받은 우리들은 무슨 이유로 구금하는가”라며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길행 간부 등이 지난 1월12일 반탁데모 때 폭력으로 우리를 강요 참여케 했음에도 그들은 어찌하여 미군이 단호 처단치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미군정이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국민을 ‘찬탁’세력으로 몰아 폭력을 이용해 해산시킨 내용이다.  

반공으로 갈라진 좌우 

▲ 1945년12월과 46년1월 신탁통치, 3상회의 관련보도. 자료출처=김영희, 미군정기 신문의 보도경향
▲ 1945년12월과 46년1월 신탁통치, 3상회의 관련보도. 자료출처=김영희, 미군정기 신문의 보도경향
 

 

1945년 12월~46년 1월 두 달 간 3상회의·신탁통치 관련 보도 중 동아일보는 다른 자유주의 신문들에 비해 신탁반대 논평·시위 관련보도 비중이 높았다. 동아일보는 신탁반대 보도비율이 47.6%로 조선일보(31.9%)·자유신문(27.1%)·중앙신문(26.4%) 등에 비해 높았다. 반면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내용은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3상회의·신탁통치에 대한 정당관련 기사 역시 우익정당 반응은 64건을 보도했지만 좌익정당 반응은 11건밖에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46년 5월11일자 사설에서 소련을 “우리에게 탁치를 강요하는 나라”라고 비난하는 등 3상회의 결정내용을 파악한 이후에도 반공프레임을 강화했다.

미군정의 여론조작결과 해방 후 첫 3·1절 기념식이 분열됐다. 좌우익은 서울운동장과 남산에서 각각 3상결정기념식과 반탁기념식을 열었다. 3000여명의 3상결정지지자 중 일부는 반탁을 외친 50여명에게 기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좌우대립이 남북분단으로 이어졌다. 이승만은 세달 뒤인 6월3일 정읍에서 “우리는 무기휴회된 공위(미소 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이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바라는 중대발언으로 패전·전범국인 일본 대신 한반도가 남북으로 찢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승만은 1919년 미국에게 위임통치를 요청해 임시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한 인물이다. 그가 해방 이후에 신탁통치를 반대한 이유는 미군정의 뜻대로 소련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김구를 중심으로 한 우익들은 ‘3상회의 결정’의 사실관계도 무시한 채 반탁을 외치며 이승만과 친일파에게 이용당했다.  

45년 8월15일 일본 항복이후 4개월이 지나서야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3상회의가 열렸다. 해방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가운데 동아일보 왜곡보도로 좌우익 갈등이 극심해졌다. 3상회의 결정을 위해서는 미국과 소련이 적극적으로 만나 조선의 민주독립정부 수립을 준비해야 했다.

반탁운동은 46년 3월 1차, 47년 5월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무산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결국 같은해 9월17일 한국의 독립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됐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48년 5월10일 38선 이남에서 총선거가 실시됐다.

▲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절차를 토의하는 양국대표들 왼쪽은 미국대표 하지 중장 오른쪽은 소련대표 스티코프 중장
▲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절차를 토의하는 양국대표들 왼쪽은 미국대표 하지 중장 오른쪽은 소련대표 스티코프 중장
 

 

같은해 12월 이승만 정부는 사실상 좌익 숙청이 목적인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분단정부 수립이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해방 이후로 반탁운동과 반공운동에 우리 전 민족이 목숨을 내놓고 싸워서 태산 같은 방해를 다 물리치고 오늘까지 성공하여 온 것”이라고 선언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무산과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숙청·국민보도연맹 학살 등은 동아일보 왜곡보도 이후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보를 조작하고, 그 정보를 믿은 대중의 행동결과만 역사적 사실로 남는 이 무서운 상황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다. 

※ 참고문헌 

김삼웅, 곡필로 본 해방 50년 
로버트 스칼라피노·이정식,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박태균, 반탁은 있었지만 찬탁은 없었다 
윤해동, 반탁운동은 분단·단정노선이다 
김영희, 미군정기 신문의 보도 경향-모스크바 3상회의 한국의정서 보도를 중심으로
정용욱, 역비논단-1945년 말 1946년 초 신탁통치 파동과 미군정-미군정의 여론공작을 중심으로 

 

 

 

 

<프레임전쟁> 연재목차 

 

1화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2화 해방 이후 찬탁 대 반탁 갈등 

 

뉴스의 시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의제(어젠다·agenda)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여과를 거친 의제는 복잡한 이슈를 찬반 양자택일 구조로 형성하고 여론이 기술적이고 감정적인 문제에만 몰두하게 했다. 또한 언론은 인간의 자유를 파괴할 힘조차 미화시켜 역사적 국면마다 흉기로 둔갑하곤 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미디어오늘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체제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史에서 언론·국가·자본권력이 첨예하게 갈등하거나 야합했던 주요한 사회적 모멘텀(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꾸는 장면)을 제공했던 사건들을 프레임(개념 틀) 전쟁이란 관점에서 14회에 걸쳐 연속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언론의 바람직한 모습을 성찰하고 되짚어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겠다. <편집자주>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도올 김용옥, 대선후보를 말하다

도올 김용옥, 대선후보를 말하다“文-투명하고 믿음직, 安-학습능력 뛰어나지만 불투명”…홍‧유‧심은?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정의당 심상정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사진제공=뉴시스>

도올 김용옥 교수가 5개 정당 대선후보들에 대한 촌평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김용옥 교수는 20일 아침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사회자의 요청에 화답, 먼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해 “투명하고 깨끗한 사람, 그렇기 때문에 든든하고 딛을 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아무리 그 사람이 부족한데가 있다고 할지언정 그 부족한 것이 보인다고 숨겨져 있지 않다”며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투명하고 그런 의미에서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여러 가지로 ‘꼴보수’의 대명사라고는 하지만 밉지가 않다”며 ‘이번 대선에서 자기할 말을 정확하게 하면서도 자기주장을 관철해내는, 또 헝그리 정신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잘 완주하면서 보수세력들을 결집해 위대한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가하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는 “학습능력은 상당히 있는 것 같다”면서도 “불투명해 잘 안 보인다. 비전이 무엇이고, 구현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인생의 가치관 등이 명료하게 파악이 안 된다”고 촌평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경우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꼴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지만 경제 문제나 정치적인 행보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을 존중할 줄 알고 대선토론에서도 봤든 명쾌하고 안정된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보수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 대해서는 “우리사회에 심상정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해야 한다”며 “‘심상정은 빨갛다’ 이런 식으로 바라보지 말로 우리사회의 귀한 자산”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심상정에게 노동부 장관을 맡겨 노동문제를 다루게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김미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촛불대선, 양심수석방 국가보안법 철폐가 주요 과제

[목요집회] 촛불대선, 양심수석방 국가보안법 철폐가 주요 과제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7/04/20 [17: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4월 20일, 1119회 목요집회가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4월 20일 오후 2시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서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 촉구 1119회 목요집회’가 진행되었다.

 

첫 번째로 조순덕 민가협회장이 발언을 하였다.

 

조순덕 회장은 “현재 양심수가 47명이 수감되어 있다. 징역살이를 하면 계절이 여름과 겨울 2번 밖에 없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는데 건강이 걱정이다. 촛불혁명으로 지금 대통령 선거운동이 진행 중인데, 이번 대통령은 당선이 되면 양심수를 전원 석방할 수 있는 사람으로 뽑아야 한다. 국민들이 힘을 모아 양심수석방, 국가보안법 철폐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자.” 호소하였다. 

 

또한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 째 수감중인 이병진 교수의 만기출소가 9월인데, 더 빨리 만날 수 있도록 하자고 발언했다.

 

▲ 1119회 목요집회에서 연설하는 민가협 조순덕 회장     © 자주시보

 

이어 본 기자가 자주시보 이용섭 기자가 구속되어 있는 것에 대해 연설을 했다.

“이용섭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애써온 기자이다. 기자로써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국민들의 알 권리도 침해하는 것이다. 특히 분단된 나라에서 북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이를 무조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면 우리 사회의 진보와 자주통일을 가로막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 후보들은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것을 약속하여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세 번째로 강경대 열사의 아버님인 강민조 선생이 연설을 했다. 

“국민들이 위대하다. 위대한 국민들이 우리 역사를 최소한 20년 앞당겼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끝난 것이 아니다.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철폐와 부정부패도 청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국민들이 다시 나서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 1119회 목요집회에서 연설하는 강민조 선생(강경대열사 아버님)     © 자주시보

 

1119회 목요집회 마지막 발언자는 채은샘 환수복지당 전북도당 대변인이 연설했다.

채은샘 대변인은 “지난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환수복지당 당원들이 사드배치 반대, 세월호와 관련된 포스터를 부차했다. 그런데 종로서와 선관위가 나서서 선거법위반이라며 포스터 부착을 방해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것,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것이 왜 선거법 위반인가? 선관위와 종로서는 더 나아가 포스터 부착에 항의하는 당원들을 폭언을 쓰며 연행해 갔다. 

과연 경찰이 민중을 위한 경찰인가? 최근 미 대사관 주변에서 진행하는 1인시위도 탄압하고, 소녀상을 지키는 활동을 하는 당원들에게도 탄압을 한다. 경찰도 개혁대상이다.”며 발언을 했다.

 

1119회 목요집회 참가자들은 힘찬 함성을 지르며 마쳤다.

 

▲ 1119회 목요집회에서 연설하는 채은샘 환수복지당 전북도당 대변인     © 자주시보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름도 얼굴도 낯선' 군소후보 5인, 면면 살펴보니...

'7, 12, 13, 14, 15번', 그들은 왜 3억 내고 대선 나왔을까?

'이름도 얼굴도 낯선' 군소후보 5인, 면면 살펴보니...17.04.20 21:00l최종 업데이트 17.04.20 21:50l글: 박동우(pdwpdh)편집: 박정훈(twentyrock)

 오는 5월9일 열리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군소후보들의 선거 포스터. 기호13번 김정선(한반도미래연합) 후보의 경우, 20일 현재 공식 포스터가 공개되지 않은 관계로 당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책자형 선거공보'로 갈음했다.
▲  오는 5월9일 열리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군소후보들의 선거 포스터. 기호13번 김정선(한반도미래연합) 후보의 경우, 20일 현재 공식 포스터가 공개되지 않은 관계로 당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책자형 선거공보'로 갈음했다.
ⓒ 오영국, 이경희, 김정선, 윤홍식, 김민찬

관련사진보기


"지금 언론에서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만 대선 후보인 것처럼 띄워주고 있잖습니까? 저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습니다."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

때 이른 대통령 선거에 무려 15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텔레비전 토론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5명의 주요 후보들만 있지 않다. 당선 가능성은 낮지만 자신의 비전을 알리기 위해 나선 인사들도 있다. 

일반인들에겐 낯설다. 아마 다음 5인은 성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게다. 오영국(59·경제애국당), 이경희(43·한국국민당), 김정선(58·한반도미래연합), 윤홍식(43·홍익당), 김민찬(59·무소속) 후보다.

[기호 12번] 국회 앞 '민족통일대통령리빙텔' 지은 이경희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는 2002년 만 28세의 나이로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낸 바 있는 청년정치인이다. 1993년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 네 차례나 총학생회에 출마했다. 기존 질서의 붕괴를 외치는 강성 민족해방(NL)계열의 운동권에 신물이 났다. '비운동권'을 표방하며 도전장을 던졌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전패(全敗)'였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무렵부터 공인중개사 사무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바닥에서 분투하며 착착 밑천을 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족통일부동산'이라는 이름의 부동산 임대업소를 차렸다.

장사 수완이 좋은 덕에 자금이 불어났다.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2002년), 이문동 한국외대 인근(2004년)에 오피스텔을 지었다. 거기에 '민족통일대통령리빙텔'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공동대표로 있는 소속 정당의 당사는 여의도 리빙텔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다. 

"다른 정당은 건물 4~5층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당은 1층에 있어요. 접근성이 좋습니다. 공간도 넓어요."

이경희 후보는 유독 '민족통일'을 강조한다. 포스터에서도 '통일이 답이다!'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는 대통령이 돼 통일을 이루겠다는 꿈을 열일곱 살 때부터 품었다. 헌법 4조에서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 수립"의 의무를 규정해놓은 만큼 이를 준엄한 명령이자 국민적 의무로 본 것이다.

"중학교 윤리 교과서에 '통일' 대목이 나오잖아요. 수업을 듣다가 분단에 따른 국가의 이권 손해, 민족의 기회비용을 알게 됐고요. 그래서 통일을 반드시 이뤄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대학을 나온 뒤, 한국외대에서 '통일헌법' 전공으로 석박사를 마무리했거든요. 우리가 통일이 됐을 때,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 헌법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미리 준비하자는 것이죠."

그가 내놓은 담론의 다른 날개는 '40대 기수론'이다. 이 후보는 "40대인 대통령이 있으면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며 "정치에 때 묻지 않은 젊은 인재들, 조직이나 연줄이 없어 정치를 못하는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2020년 총선을 통해 많이 등용되면, 국회의 판갈이를 할 수 있다"고 정치세력의 전면 교체를 주장했다. ▲ 청년청 설치 ▲ 청년복지카드 도입 ▲ 군복무 기간 16개월로 단축 등이 주된 공약이다.

특히 이 후보는 야당도 박근혜 정부 실정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조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전혀 구현하지 못한 야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 해서 국정과제를 잘 수행할 것이라 보지 않는다"며 "문재인이나 안철수 후보나 박근혜 탄핵에 따른 반사이익을 본 것에 불과하고, 어쩔 수 없이 국민들의 마음이 야당으로 흐른 것 뿐"이라며 기성정치권의 '적폐 청산' 의지를 평가절하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군소후보 주요 공약
▲  제19대 대통령 선거 군소후보 주요 공약
ⓒ 박동우

관련사진보기


[기호 14번] 철학자 출신 윤홍식 "태극기 집회 어르신도 '양심'에 끌렸다"

철학자가 대선에 출마한 경우도 있다. 홍익당 윤홍식 후보는 '홍익인간' 이념을 새로운 사회의 아젠다로 주창한다.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남에게 베풀자는 정신을 사회 제반 분야를 넘어 정치의 현장에도 적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고교 시절 소설 <단(丹)>에 푹 빠졌다. 명상, 단전호흡의 붐을 일으킨 소설이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봉우(鳳宇) 권태훈옹(1900~1994)이 살던 집을 찾아갔다. 대종교의 으뜸가는 어른인 '총전교'였던 권태훈옹에게서 홍익인간 이념을 배웠다.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동안 감정평가사 시험 공부에 전념했다. 고시 문제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철학 사상엔 눈길이 갔다. 딴짓에 빠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서양의 모든 철학 서적을 섭렵했다고 한다.

2004년 인문학 교육공간 '홍익학당'을 설립한 뒤 기독교의 '황금률', 유교의 '인', 불교의 '자비' 사상에 깃든 고갱이는 '양심'이라는 점을 누누이 역설했다. 이듬해 출판사 '봉황동래'를 설립해 지금까지 16권의 책을 남겼다. 유튜브에 게시한 강의 동영상만도 2천여 건에 육박한다.

윤홍식 후보가 정치판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직후였다. 집회의 불꽃이 점화된 지난해 11월, 곧장 창당발기인 서명 작업에 돌입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하나같이 '새로운 혁명의 시대'라 했지만, 알맹이가 없더라. 민주주의를 향한 주권자의 보편적 의지는 양심이다. 촛불혁명은 '양심혁명'이 돼야 한다."

다섯 개 시·도에서 1천 명씩 5천 명의 창당발기인을 모아야 했다. 학당 회원들이 나섰다. 전국 각지로 흩어져 거리를 돌아다녔다. 서울 시내에선 을지로, 명동, 종묘 일대를 공략했다. 어르신들은 기꺼이 서명에 동참했다. 진보, 보수 성향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어르신도 서명했다. 그들은 '홍익'이나 '양심'이라는 단어를 듣자 호의를 표시했다.

그는 "진보도 문제가 되고 보수도 문제가 될 때는 양심을 어겼을 때 문제가 되기에 그런 것"이라며 "이제는 '양심적 진보', '양심적 보수'가 나와서 서로의 문제가 지닌 본질을 찾고 '이렇게 살자'는 큰 틀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이념의 틀을 깰 것을 촉구했다.

홍익당은 ▲ 독립운동가, 순직자, 의인 등 후손에 최대한 지원 ▲ 원스톱 민원 해결 '양심콜센터' 설치 ▲ '양심코리아' 국가브랜드 확립 등을 약속으로 내놨다. 특히 전국 유·초·중·고에 '양심노트'를 보급하겠다는 파격 공약을 제시했다.

'양심노트'는 윤 후보의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내가 한 행동이 양심에 따른 것인지, 욕심에 따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끔 체크 리스트를 짰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실험해본 결과,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 옆자리에서 함께하는 학생이 관찰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성교육의 본질은 그 사람의 양심을 자극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인성교육은 '노예도덕'을 가르치고 있어요. 주입식으로 특정 이념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거니까, 양심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죠."

윤 후보의 공약은 단출하다. 거창한 공약보다는 리더십의 바탕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약 차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공약보다는, 그 공약을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해요. 리더십 없는 리더가 작은 조직이라도 끌고 갈 수 있을까요? 리더는 그 조직의 그릇이고 문화입니다. 그 리더가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국민의 만족을 위해 실제로 어떤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검증해야죠."

[기호 15번] 김민찬 "DMZ에 세계문화예술도시 건설"

'백화점식 공약'보다 몇 개의 핵심 공약으로 승부하는 건 무소속 김민찬 후보도 매한가지다. 중앙선관위 선거정보포털 홈페이지에 공약계획서를 올리지 않은 유일한 후보다. ▲ 비무장지대(DMZ)에 '세계문화예술도시' 건설 ▲ 국가진단위원회 설치 등을 개인 홈페이지에 공약으로 내건 게 전부다.

이번에 출마한 김민찬 후보는 원광디지털대 자연건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템플턴대 상담심리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삶의 전환점은 우연찮은 계기에서 비롯됐다.

경남 삼천포로 회사 워크숍을 갔을 때다. 도공들을 만났다. 가마의 짜임새가 허술했다. 어렵게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힘들게 살면서 전통 예술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처음엔 몇 명을 후원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회사를 그만뒀다. 2004년 비영리단체 '대한신문화예술교류회'를 꾸렸다. 사단법인 '대한민국명인회'의 전신으로, 문화예술인을 '장인'으로 떠받드는 단체였다.

"이분들이 연세도 있으신데, 전통이 이어지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 조직을 해서 전국에 숨은 장인들을 찾아다녔죠. 첫 해에 7명 찾았어요. 10년이 지나니까 330명 정도까지 늘었네요."

공예·국악 등 각 분야의 장인을 가려냈다. '대한민국명인'으로 추대했다. 매년 이들과 함께 '대한민국명인전'을 열어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힘썼다. 문화예술계에서 활약하는 장인들을 발굴하는 일은 해외로 뻗어 나갔다. '세계명인회'를 조직하는 한편, 2012년 국내외에서 발굴한 장인들을 한데 모아 관리하는 단체를 만들었다. '월드마스터위원회'라고 이름 지었다.

70여 개 국가의 주한대사관에 자국 문화예술인 중 장인으로 꼽힐 만한 이들을 추천해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그 결과 280여 명의 해외 문화예술계 장인을 발굴했다. 해외 장인들을 국내로 초청해 2010년과 2012년 '월드마스터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특히 2014년부터 매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주한외국대사관의 날'을 개최했다. 세계 각국의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장이 됐다. 김 후보가 '민간외교의 성과'로 자랑하는 대목이다.

김 후보는 몇 안 되는 공약 가운데 비무장지대에 '세계문화예술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일성을 부르짖었다. 문화예술 분야를 둘러싼 지대한 관심이 투영된 산물이다. 각국의 문화예술촌을 들여와 한 도시 안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장을 여는 한편, 남과 북의 공생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정책을 사과나무에 비유했다. "오염된 땅에다 사과나무를 심으면 튼실한 과일이 나오겠나. 오염된 땅을 다 갈아엎어서 깨끗하게 만든 다음에 사과나무를 심어야 제대로 된 과일이 자란다"며 정책을 만드는 시스템의 '진단'에 주목했다.

적폐 청산의 해법으로 내놓은 '국가진단위원회 설치' 공약은 부처 및 공공기관 내부에서 이뤄지는 상시 감사 체계를 강화하자는 구상이다. "구조적인 잘못을 다 찾아내야 헛되이 쓰는 예산을 파악해서 복지 부문으로 돌릴 수 있죠. 국장급을 중심으로 각 부서에서 근무한 이들을 대상으로 자체 진단 과정을 통해 조직을 정화할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호 7번] "800만 지지자 있다"는 오영국, 자기 사업 홍보에 치중하는 듯

경제애국당 오영국 후보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공약을 선보였다. 오영국 후보는 ▲ 세계 1위 경제대국 건설 ▲ 2~3년내 1300만 개 일자리 창출 ▲ 강력범죄 제외한 모든 징역형 사면 ▲ 신용불량자 700만 명 이상 전원 신용 회복 ▲ 세계전자은행 설립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19대 대통령 후보'라 검색하면 포털 사이트 검색창 맨 위에 내 이름이 뜬다"며 아리송한 말을 늘어놓았다. 또한 오 후보는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800만 명 넘는 엄청난 지지세력이 전국에 깔려 있다"며 "미국 맥(General MacArthur)재단의 재정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이고, 나는 거기서 부회장을 맡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기업 300개사가 합쳐진 단체가 '국제금융기구'인데, 여기서 공약의 재원을 조달하겠다" 등 믿기 어려운 주장을 잔뜩 폈다.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그의 직업은 '하하그룹 회장'이다. 하하그룹은 의료용 대장 세정기를 판매하는 업체다. 샤워기 호스에 끼우면 강한 수압의 물을 내뿜는데 이를 통해 변비를 해소하고 숙변을 제거할 수 있단다. 오 후보는 "우리 회사는 세계 최초로 수명 연장하는 제품을 개발한 회사"라며 "18년 동안 연구·개발해서 지난해 10월 14일에서야 마무리를 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유독 자사를 떠올리게끔 하는 공약이 많이 눈에 띈다. 하하그룹의 먹거리 원천은 대리점 사업이다. 그는 유통청을 설치하고, 방문판매 관련법을 폐지하겠다 약속했다.

특히 '1300만개 일자리 창출' 가운데 33%에 달하는 430만 개 일자리를 하하그룹에서 만들겠다 공언했다. 오 후보는 "대리점이나 지점 등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추산한 것"이라며 "일자리의 수가 더 많이 나오지만, 과장했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일단 최소치로 잡았다"고 해명했다.

[기호 13번] 박근혜 명예회복·상고사 재정립 외치는 후보도 있어

한반도미래연합 김정선 후보는 줄곧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외쳤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뒤에도 이러한 주장은 계속됐다. 지난 3월 12일에도 SNS에 글을 올려 "박근혜 대통령은 99일 이내에 명예회복하여 세계 여성 인권의 세계 지도자로 우뚝 솟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 김영란법 폐지 ▲ 기초의원 폐지 및 광역단체장 정당추천제 폐지▲ 사이버특수군 병력 10만 양병 ▲ 세계재활은행(WRB) 설립 ▲ 상고인류역사 재정립 등이 그의 주요 공약이다. 기자는 김 후보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 19대 대통령선거 '알고뽑자' 바로가기 >

☞ 19대 대선톡 '그것이 묻고 싶다' 바로가기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소성리 롯데cc에 주한미군 ‘페이로더’ 2대 반입

부상·연행자 발생..“사드배치 불법추진, 장비 반입도 명백한 불법”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4.20  17:02:47
페이스북 트위터
   
▲ 20일 오전 주한미군이 운전하는 페이로더 2대가 한국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성주 소성리 롯데cc로 진입해 들어갔다. [사진제공-평통사]

사드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군 초천면 소성리 롯데cc에서 20일 오전 경찰의 호위아래 주한미군의 공사 장비 반입을 강행하면서 주민과 원불교 관계자들이 부상을 당하고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11~12일에도 한미당국은 주민들과 평화지킴이가 막고 있는 진입도로를 회피해 관련 장비를 치누크 수송헬기 10여대를 이용해 상공으로 실어 나른 바 있다.

소성리 일대를 평화지역으로 선포하고 사드배치와 관련된 어떠한 장비나 차량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주민들과 원불교 측은 “사드배치가 법적 근거도 없이 불법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위한 공사 장비 반입도 명백한 불법”이라며, 육탄 저지에 나섰다.

특히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사 장비를 반입하는 것은 법 위반이며, 언론을 통해 사드 부지 공여를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공사 장비를 반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경찰의 불법에 항의하던 원불교 비대위 관계자가 부상을 당해 쓰러지기도 했다. [사진제공-평통사]
   
▲ 경찰은 진밭교 원불교 평화교당 앞 도로를 차량으로 완전히 막고 차단했다. [사진제공-평통사]

소성리 종합상황실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부지 평탄화 및 기지 건설을 위한 공사용 중장비인 페이로더 2대가 진밭교 앞 원불교 평화교당을 거쳐 롯데cc를 향해 진입했다. 페이로더 운전석에는 주한미군이 앉아 있었다.

이에 앞서 경찰은 이날 오전 6시25분께 제보를 받고 진밭교 방향으로 이동하는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의 접근을 차량으로 차단하고 수백 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평화교당을 에워쌓았다.

경찰의 호위 아래 페이로더가 롯데cc로 들어간 이후에도 2차 장비 반입을 위한 경찰의 무분별한 장비반입 호위작전은 계속됐다.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이 오전 10시 마을회관앞에서 원불교 교무들과 천주교, 기독교 성직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 진행한 ‘미군장비 불법 반입과 경찰의 불법적 공권력행사 규탄 및 추가 장비 반입저지를 위한 생명 평화 기도회’에도 해산 종용과 연행위협을 거듭했다.

11시 50분께 소성리 마을회관을 경찰 차량으로 봉쇄하고 주민들을 움직일 수 없도록 고착시킨 후 2차 공사장비와 물자 반입 시도가 있었다. 또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 원불교 강현욱 교무를 포함해 2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원불교 비대위 집행위원장인 김선명 교무가 부상당했으며, 윤명은 상황실장이 부상을 당해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2차 반입을 시도했던 트럭에는 이동형 화장실을 비롯해 폐기물 처리를 위한 장비가 실려있었다고 한다.

   
▲ 소성리 주민들과 원불교 교무들이 진밭교 앞 도로에서 연좌 평화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평통사]

소성리 주민들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장비 재반입을 시도하고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행태에 크게 격앙되어 “경찰이 불법적으로 우리의 길을 막는다면 우리도 불법적인 사드 장비 차량의 반입을 막겠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온몸을 던져 사드 배치를 막겠다”며 연좌농성 등 평화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드저지 평화회의는 이날 ”한미당국이 사드 배치를 위한 불법적인 공사 장비의 반입을 강행하는 것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사드 배치를 되돌릴 수 없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한미 당국은 지난 3월 2일부터 시작한 사드부지 공여 관련 SOFA 절차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시설구역 및 환경분과위원회의 세부협의가 최근 완료됨에 따라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합의 건의문 형태로 지난 19일 부지공여 승인을 SOFA 합동위원외에 요청하고 이를 한미 합동위원장이 이날 승인하는 절차가 완료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사드 장비 등 배치를 서두를 것으로 보이는 한미 당국과 이를 막기 위해 나서는 소성리 주민, 원불교, 평화지킴이의 충돌이 우려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재인 청문회장으로 만든 KBS 대선 TV토론

 

[아침신문 솎아보기] 토론 시간 절반 문재인 후보에 질문 집중, 사실상 1:4 토론… 또 ‘색깔론’ 꺼내든 보수 후보들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2017년 04월 20일 목요일
 

‘샌드위치’된 문재인

‘1대 4 토론’, ‘사실상 문재인 청문회’라는 평가도 나왔다. 20일 KBS가 주최한 19대 대통령 선거 5당 후보들의 TV토론에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선거가 가까워 오면서 후보 간 질문의 수위도 과열됐다. 해묵은 대북송금 특검 논쟁으로 상당 시간을 허비하는가 하면 ‘북한이 주적이냐’는 색깔론도 나왔다. 

중앙일보가 상대의 질문을 받아 토론한 시간을 후보별로 측정한 결과 90분의 시간 중 각 후보가 상대에게 지명을 받아 토론에 참여한 시간은 문재인-안철수-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 순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45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30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9분,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5분이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상대방의 지명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시간뿐 아니라 질문을 받은 수도 양상은 비슷했다. 문 후보는 18개, 안 후보는 14개, 홍 후보는 9개, 유 후보는 3개, 심 후보는 0개의 질문을 받았다. 

‘양강’ 구도의 대선 판세를 반영하듯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나머지 세 후보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특히 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는 안보 이슈로 문재인 후보를 몰아붙였다. 중앙일보는 “이 때문에 문 후보는 주어진 18분의 시간 중 상대를 지목해 선공에 쓴 시간이 8분이 채 안 됐다”며 “안 후보는 첫 주제에선 사실상 선공을 거의 못하다가 두 번째 주제에선 공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먼저 질문을 던져 공세를 취한 것은 모두 6분이 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20170420_중앙일보_003면_081226.jpg
 

국민일보도 “사실상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안보관을 겨냥한 나머지 주자들의 협공이 펼쳐졌다”면서 “문 후보는 ‘안보 우클릭’ 시도로 보수 후보인 홍준표 후보, 유승민 후보와 진보 후보인 심상정 후보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문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놓고도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홍 후보는 문 후보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던 일을 문제 삼자 문 후보는 “(17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7조에 있는 찬양·고무 조항을 폐지하는 쪽으로 여야 간 의견이 모아졌는데 당시 못했던 걸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심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보법을 박물관에 보낼 구시대 유물이라고 했는데 왜 폐지하지 않겠다고 하느냐”고 따졌고, 문 후보는 “정치는 타협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해묵은 색깔론 또 등장 

원고도 없이 120분간 서서 ‘난상토론’이 이뤄진 이날 토론회에 대해 한국일보는 “외교안보와 경제ㆍ복지를 주제로 다뤘지만 한낱 말싸움 수준에 그쳤다”고 혹평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위협이 고조되는 엄중한 한반도 정세와는 아랑곳없이 색깔론을 들먹였고, 해묵은 대북송금 특검과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문제를 끄집어내며 시간만 낭비하는 말꼬리 잡기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

 

20170420_한국일보_a01면_081207.jpg
 

한국일보는 “외교안보 분야 토론에서는 홍준표, 유승민 두 보수진영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과거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지원한 대북송금 특검을 물고 늘어지면서 토론은 시작부터 변질됐다”면서 “이외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군 복무기간 단축이 테이블에 올랐지만 기존에 후보들이 밝힌 입장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홍준표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유승민 후보는 ‘주적’ 문제를 언급하며 토론회를 ‘사상 검증’ 분위기로 몰아갔다고 꼬집었다. 유승민 후보는 문 후보에게 “북한이 주적인가”라고 물었다. 문 후보는 “‘주적’ 같은 표현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며 “국방부는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유 후보는 “왜 주적에게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냐”고 계속 따졌다.

정치·외교·안보 분야 토론이 보수진영 후보들의 주도로 대북송금 특검과 햇볕정책에 대한 공방으로 쏠리자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정리에 나섰다. 심 후보는 “대선후보들이 언제 적 대북송금 특검만 갖고 얘기할 건가”라고 일침을 놓았고 그제서야 공방을 벌이던 4명의 후보들은 다른 주제로 토론을 이어갔다.  

심 후보는 “대북 송금이 도대체 몇 년 지난 이야기냐. 선거 때마다 대북송금을 아직도 우려먹느냐”면서 “앞으로 대통령 되면 무엇을 할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후보도 홍 후보를 향해 “나라를 그렇게 망쳐놓고 언제까지 색깔론으로 선거를 치르겠느냐”고 말했다.  

 

20170420_조선일보_a04면_081309.jpg
 

토론 뒤 후보들도 ‘스탠딩 토론’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문 후보는 “스탠딩 토론이라면 자유롭게 움직인다거나 왔다갔다해야 의미가 있는데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문답을 하니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토론에서 자신에게 질문이 집중된 것에 대해선 “한 후보에게 질문이 집중되면 충분히 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답변 시간도 공평하게 부여해주는 룰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유 후보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안보가 얼마나 불안한 후보인지를 꼭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시간 안에 충분히 얘기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심 후보는 “5명이 스탠딩 토론 하기엔 숫자가 많은 것 같다. 앉아서 하나 서서 하나 큰 차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 후보도 “체력장 테스트도 아니고 두 시간 동안 세워 놓으니 무릎이 아프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반면, 안 후보는 “(스탠딩 토론이) 처음 시도하는 형식인데 괜찮은 것 같다. 다음부터는 후보들이 더 자신감 있게 실력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이재용도 “박근혜, JTBC 언짢아했다” 

박근혜씨가 대통령 재임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 JTBC를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는 증언이 법정에서도 나왔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공개했다. 조서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 당시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JTBC가 왜 그렇게 정부를 비판하냐’며 외삼촌인 홍 전 회장에 대한 불만을 10분가량 내게 말한 적이 있다”며 “면담을 마치고 홍 전 회장에게 ‘대통령이 언짢아하신다’고 전했다”고 진술했다.

앞서 홍 전 회장도 최근 자신이 홈페이지 동영상을 통해 “손석희 사장 교체 등 JTBC에 관한 외압을 5∼6차례 받았는데 그 가운데 2번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며 “외압을 받아서 (손석희) 앵커를 교체한다는 건 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다”고 폭로해 파장을 일으켰다. 

 

20170420_세계일보_012면_081136.jpg
 

경향신문은 20일자 사설을 통해 “대통령이 방송사 사주를 향해 한 번도 아니고 두 차례나 특정 앵커의 교체를 요구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관련 기업의 오너를 통해 우회 협박하는 것도 모자라 광고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니 스스로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였음을 부정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민영방송에까지 이렇게 개입했다면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다. 세계일보 사장 교체도 청와대 작품일 가능성이 농후해졌다”면서 “두 정부의 언론 개입 전모를 밝혀내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일로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문제가 더 이상 지체될 수 없는 과제임이 새삼 확인됐다. 언론개혁을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재인 후보는 최근 홍 전 회장과도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홍 전 회장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 후보가 지난 12일 집으로 찾아와 점심을 함께한 자리에서 ‘외교·통일과 관련된 내각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은 “하지만 내가 장관으로 내각에 참여할 군번은 아니지 않느냐”며 “만약 평양특사나 미국특사 제안이 온다면 그런 것은 도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 후보 측은 홍 전 회장과 만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내각 참여 제안에 대해선 부인했다. 민주당 선대위 박광온 공보단장은 19일 “내각 참여와 같은 구체적인 자리에 대한 얘기는 이뤄지지 않았다”면서도 “외교·안보 분야에서 홍 전 회장이 인적 네트워크나 식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새 정부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에 얘기가 상당히 일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칼빈슨호 ‘거짓말’로 한반도 농락 

북한에 대한 핵실험 등을 억지하겠다던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항로 변경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공습과 맞물려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을 부추기며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칼빈슨는 그동안 정반대 방향인 인도양 쪽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연합훈련을 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18일(현지시각) 일제히 미 해군이 공개한 훈련 사진을 근거로 칼빈슨호가 지난 주말인 15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자바 섬 사이의 순다해협을 지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20170420_한겨레신문_001면_081042.jpg
 

지난 8일 싱가포르를 출발한 칼빈슨호는 애초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반대 경로인 남쪽으로 움직였다. 한반도의 긴급 상황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연합훈련을 급박하게 취소한 것처럼 공개됐으나 이는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앞서 미 태평양 사령부 대변인은 지난 8일 칼빈슨호의 항로 변경이 “이 지역 최고의 위협”과 연관돼 있다며 북한이 “무모하고 무책임하고 불안정한 미사일 시험 계획과 핵무기 능력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북한 ‘태양절’(15일)을 앞두고,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미군의 ‘무력시위’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라며 “뒤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외교안보 고위관계자들까지 나서 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무력시위가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으로까지 비화되는 등 열흘가량 한반도는 ‘칼빈슨발 위기’로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당국자는 ‘칼빈슨호가 오스트레일리아와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동맹 차원에서 공유한다”고 인지 사실을 밝혔다. 한겨레는 “국방부가 한반도에서 위기감이 증폭되고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알면서도 이를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결국 미국은 시점을 생략한 채 항공모함이 이동하고 있다고 밝혀, 열흘 가까이 한반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셈”이라며 “국방부와 백악관 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거나 의도적으로 상황을 부풀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공모함 전개를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그리 높게 판단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트럼프, 북과 핵전쟁 항상 걱정

트럼프, 북과 핵전쟁 항상 걱정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4/20 [02:0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오죽 급했으면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35조 규모의 대중무역적자도 봐주겠다며 제발 북핵 좀 막아달라고 통사정했을까. 허나 시진핑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중국도 북에게는 별 힘이 없다는 답이었음을 트럼프가 최근  TMJ4-TV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결국 미국이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주시보

 

19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북한과의 핵전쟁 가능성을 늘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얼마나 평화를 원하는지가 북미 긴장 완화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위스콘신 주 지역 방송인 TMJ4-TV와의 인터뷰에서 전임 정부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자신이 "그(김정은)가 핵을 보유한 상태에 놓여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은 평화를 원하고, 김정은 역시 평화를 원하기를 바란다며, 그것이 "마지막 결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을 북으로 넘기는 듯한 느낌이 묻어나는 발언이기는 한데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 충돌이 아닌 북과 평화적 관계를 원한다고 밝힌 점은 큰 변화이다. 
특히 ‘마지막 결의’라는 말을 통해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북미문제 해결을 시사하고 있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특히 핵전쟁 가능성을 미국인들이 얼마나 걱정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걱정해야 한다"고 대답하여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국인들이 단 한 시도 마음 편히 살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였다.

 

이어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훌륭한 회담을 했고, 그 회담은 내게 많은 것을 말해줬다. 그들(중국)은 북한에 대해 엄청나지는 않더라도 좋은 힘을 갖고 있다"며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언론에 중국이 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는 달리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였다. 이는 결국 미국이 나서서 풀 수밖에 없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며 "매우 매우 까다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까다롭다는 말은 이미 북미 사이에 심각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협상이 없다면 까다로운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바마정부도 말로는 전략적 인내 운운했지만 막후에서는 북과 치열한 협상을 진행해왔다. 리퍼트 주한미 대사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비밀이 해제되어 나중에 확인하면 오바마정부가 북과 협상을 하느라고 준비한 서류가 산떠미처럼 쌓여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눈물을 흘렸었다.

 

그 오바마 정부가 트럼프 정부에게 정권을 넘기면서 가장 긴급한 문제가 북핵문제라고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정부 국가안보 관료들로부터 받은 첫 기밀정보 브리핑도 북핵문제였다.

 

그리고 정권을 넘겨받은지 두 달 동안 가장 신경을 쓴 분야가 북미관계문제 즉 한반도 문제였다. 그 해결을 위해 틸러슨 장관, 펜스 부통령 등 수많은 핵심 고위 관리들을 한반도에 파견하였고 중국의 시진핑, 아베총리와의 정상회담의 주된 내용도 한반도 문제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재 북미 사이에는 치열한 막후 협상, 나라의 운명을 건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대담을 통해 급한 쪽은 미국임이 명백해졌다. 그는 어떻게든지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 외교전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면 심각한 힘의 대결국면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부디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수형자 박근혜는 자신이 폭압한 '운동권' 덕을 보고 있다

 
[6월항쟁 30주년 특집 인터뷰 ①] 이석태 전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2017.04.20 09:37:57
 
 
 
 
 
 
 
6월민주항쟁 30년, 오늘날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과 ‘6월민주포럼’은 세대와 시대를 넘어 6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인터뷰 기사를 매주 1회 연재한다. 인터뷰는 6월항쟁을 경험한 이들이 오늘날 청년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시대를 초월한 공통의 의미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복을 입고 재판에 출석할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정에 사복을 입고 선다면, 그건 굳이 이야기하자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동료 변호사들의 덕이고 이들이 한 일의 혜택을 박 전 대통령이 보게 됐다는 짓궂은 말에 이석태 변호사(전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는 웃으며 답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 한 지 시간이 꽤 지나기는 했지만, 민변 동료 변호사들이 재소자 인권 문제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것과 연관이 있어요. 서준식 선생이 1991년 발생한 강기훈 사건과 연관되어 다른 혐의로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그때 미결수도 헌법상 무죄 추정이 적용되므로 사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거죠.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그 이후로 법무부에서 교정 규정을 바꾸어 지금처럼 재소자가 원하는 경우 사복 차림으로 공판정에 출석하게 된 거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변은,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옹호를 위하여 애쓰는 변호사들이 모인 법률가 단체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민변이 30년 전 6월 민주항쟁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문호를 활짝 연 6월항쟁, 그 이듬해인 1988년 5월 창립된 민변은 사법 제도 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 왔다. 민변의 창립 멤버인 이석태 변호사는 사무국장, 회장직을 역임했다. 
 

▲ 이석태 전 위원장. ⓒ프레시안(서어리)

이석태 "6월항쟁은 내 삶의 큰 변화" 
 
때문에 이 변호사에게 6월항쟁은 "삶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온 사건"이다. 6월항쟁 직후 자연스럽게 민주주의 발전을 요구하는 사회적 흐름에 합류해 왔고, 민변과의 인연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2년간의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1985년 변호사가 되었다. 연수원 시절부터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연수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연수원 생활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에 가 있었어요. 선배 변호사들을 돕고 하다 보니 연수원 수료 후 그 사무실 변호사가 됐죠." 
 
이 변호사가 처음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던 로펌은 당시 국내외 큰 기업이 고객인 곳이었다. 대학생 시절 "학생 운동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신문> 기자였기 때문에 그 언저리에서 놀았"던 이 변호사에게는 어쩌면 맞지 않는 옷이었는지 모른다. 
 
"소송을 하면 대개 대리하는 당사자가 당시의 대기업일 수밖에 없는데, 제가 보기에는 법리적으로 노동자들의 주장이 옳은 경우가 많았어요. 제 생각이 사무실의 방향이랑 좀 어긋나 있던 거죠." 
 
이런 일 등으로 생각이 많던 때 6월항쟁이 터졌다. "당시 변호사들도 국민운동 본부 등에 직접 참여해 호헌 철폐 등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저는 보통의 변호사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했어요." 6.10 항쟁 당일에도 거리에 있었던 것 같다고 이 변호사는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 
 
"제가 일하던 법률 사무소가 당시 남산 초입에 있는 도쿄호텔이라고 부르는 높은 건물 내에 있었어요. 그 건물 8층에 법률 사무소가 있었고, 그 사무소 내에 남대문 시장이 보이는 쪽으로 제 방이 있었죠. 거기서 보면 서울시청까지 보여요. 그 부근에서 매일 시위를 하니까 자연히 구경삼아 들락날락거리게 되고, 그러다가 광장으로 나가게 됐죠. 연세대에서 이한열 군 사망 사건이 터졌을 때(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최루탄에 피격돼, 7월 9일 사망)도 시위 대열에 합류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넥타이를 거의 안 매고 살지만, 그때는 늘 넥타이에 정장하고 있을 때니까 다른 사람이 보면 넥타이 부대라고…. 아무튼 자주 나갔어요."
 
기업을 대리하는 로펌이라면 눈치를 주지는 않았을까. "굳이 누구에게 말하지 않고 나가는 거죠. 당시 그 로펌은 엄금까지는 아니지만, 변호사가 근무 시간에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걸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려웠죠. 그래도 변호사는 좀 자유로우니까요." 6월항쟁의 한 복판에 섰던 이 변호사는 그해 가을, 로펌에서 나왔다.  
 
"변호사 생활의 상당 부분을 민변 업무와 연관 지어 보냈다"
 
같은 해 겨울, 이 변호사는 민변 전신인 청년변호사회(청변)에 우연히 관여하게 됐다. 대학 동기들이 청변과 이 변호사의 연결고리였다. 
 
그 무렵 태동한 시민사회 단체들이 대개 비슷했겠지만, 6월항쟁의 끝에 조직된 청변 또한 학생 운동권의 영향을 다소 받았던 것으로 이 변호사는 기억했다. 
 
"변호사로서 억울한 사람을 돕는다는 보편적인 측면 외에 변호사일 자체를 사회 운동으로 생각했던 경향이 있었습니다. 변호사 부문운동이라고나 할까요. 사회 발전 과정에서 변호사가 기여할 바를 정하고, 그런 일을 다른 부문과 연관 지으면서 해 나가는 거죠. 처음에는 스터디 그룹 유사하게 10여 명의 변호사가 소규모로 같이 공부하면서 여러 방면의 논의를 했어요."
 
제대로 된 조직을 구성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자, 당시 주요 시국 사건을 변호하는 선배 변호사들이 만든 단체인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와 합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청변이 해소되고 민변이 됐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이 없는 젊은 변호사들이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또 그 열정을 바탕으로 조직에 활력이 생기게 된 거지요." 
 
그렇게 민변이 탄생했다. 민변이라는 이름은 조영래 변호사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베어스타운에서 창립모임을 가졌는데, 이름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때 50여 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무슨 협회라든가 하는 식으로 의론이 분분했죠. 대체로 좀 딱딱하고 경직된 이름이 많았는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하니까 뜻이 분명하고 부르기 쉽지 않습니까. 나중에 그 이름을 줄여서 민변으로 하게 된 거지요." 
 
지금 민변은 회원 수가 1000명이 넘지만, 출범 초기에는 51명에 불과했다. "그 중에 젊은 변호사들이 절반쯤 되려나. 당시에 제가 젊은 변호사 축에서는 나이가 좀 많은 편이어서 간사 역할을 했는데, 민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서 일이 많았어요. 그 후 차츰 민변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일을 분담하게 되었지만, 제 사무실 동료들 또한 민변 회원이어서 이래저래 민변 업무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게 됐지요. 그러다보니 민변 회장도 했고, 그 전에는 사무국장도 했어요." 그는 “변호사 생활의 상당 부분을 민변 업무와 연관 지어 보냈다고 하면 되겠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운동권들의 혜택을 보고 있다" 
 
6월항쟁의 결과 탄생한 민변은 법률 전문성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된 영역을 꾸준히 넓혀왔다. 민변 변호사가 헌법 소원을 제기했던 미결수의 수의 착용 문제뿐만 아니라, 감옥에서의 인권 문제 역시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을 다수 할 때라 법정이나 감옥에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재판 과정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개선을 요구하게 된 거지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점차 여러 조건들이 나아지게 되었는데, 그 혜택을 우리가 변론한 사람들 외에 다른 피의자나 재소자들이 보게 된 거죠. 예를 들면 변호인 접견권의 보장, 텔레비전 시청이라든가 집필의 편이 등 모두 어느 날 거저 생긴 게 아니고, 일정한 투쟁을 통해 획득해 낸 거예요."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배제시키고자 했던 이들, 이른바 '운동권'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끝끝내 지켜낸 헌법적 가치가 오히려 이들을 단죄하려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권에 까지 이르러 이를 지켜내는 상황(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문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서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역설에서 6월항쟁 이후 지난 30년 동안 진척된 민주주의를 새삼 목격하게 된다. 
 
"불과 20년 전에는 피고인들이 재판정 가운데 서서 수갑이나 오랏줄에 묶여 재판을 받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변호사와 피고인들의 노력으로 피고인들의 손이나 팔에서 수갑과 오랏줄을 풀게 하고, 자리에 앉히고, 그리고 변호사 옆에 앉게 된 거죠. 말하자면 이게 다 역사가 있는 겁니다. 6월항쟁의 성과가 모든 면에 미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잘못된 구태를 지적하여 고치고, 형사소송법이 바뀌고 해서 지금처럼 어느 면에서는 미국 영화에서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이 됐습니다."
 
이 변호사는 "예전에는 수사 기관에서 피의자가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가 참여를 하지 못했어요. 접견 시에도 교도관 등이 옆에서 듣는데 하기도 했죠"라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 변호사의 말에 박 전 대통령이 변호사와 함께 검찰 조사를 받고, 7시간 동안 조서를 검토했다는 뉴스가 곧바로 떠올랐다. 
 
"이런 잘못된 제도나 관행이 고쳐진지 불과 10년이 되지 않았어요. 조사가 끝난 후에야 변호사를 따로 만났고, 조사 때는 변호사가 입회를 할 수 없었어요. 조서의 도장도 본인이 혼자 내용을 보고 찍었습니다. 지금은 조사 자리에서 변호사가 다 보고 확인하지요."
 
이 변호사가 언급한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은 지난 2007년 6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법률에 명시됐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이 권리가 법률에 보장된 지 만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역시도 6월항쟁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이 법률의 개정을 이끌어낸 대법원 판결(2003년, 송두율 교수 사건)을 담당한 김형태 변호사도 청변을 거쳐, 민변의 회원이다. 두 변호사는 함께 법무법인 덕수를 이끌고 있다.
 

▲ 이석태 전 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강기훈 사건, 더 나은 변호사가 실무를 담당했더라면…"
 
이 변호사는 매향리 미공군 사격장 소음 피해 소송, 동성동본 금혼 폐지와 호주제 폐지 헌법소원, 일본군 '위안부' 헌법 소원 사건 등 각종 사회적 관심이 큰 재판에도 참여했다. 6월항쟁이 "사법부의 독립에도 좋은 영향을 줬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결과라고 이 변호사는 설명했다.  
 
1987년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시민사회운동과의 결합 또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성과를 이야기하면서 이 변호사는 계속 "좋은 동료들과 해서 얻어낸 결과"라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저희가 6월항쟁 이후에 민변을 만들었어요. 또 중요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소송들은 변호사 혼자 할 수 없어요.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협력해야 하는데 그게 컸죠. 일례를 들면, 호주제 폐지문제는 초기에 변호사들이 기획했지만, 여성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계속 진행 해 나가면서 점점 더 많은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을 얻어서 된 거예요. 이들 시민사회 단체는 대개 6월항쟁의 산물이었죠." 
 
하지만 6월항쟁은 군사 독재 세력인 노태우 씨에게 대통령 자리를 또다시 내어 주며 미완의 혁명으로 종료됐다. 그 한계는 여기저기에 상흔으로 남았다. 이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30년의 변호사 활동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묻자, 그는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1991년)을 꼽았다. 6월항쟁 이후에도 교체해내지 못한 군사 독재 정권의 연장, 노태우 정권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강기훈 씨가 누명을 벗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4년. 지난 2015년 열린 재심 공판에서 대법원은 강기훈 씨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이 변호사는 20여 년 동안 변호인단의 일부로 강 씨의 변호를 맡았다.  
 
"글쎄… 결국 본인은 늦게나마 무죄를 받아서 다행이긴 한데요, 비록 노태우 정권 하라고 해도, 제가 조금 더 경험이 있고 주도면밀했더라면 초기 재판 당시 무죄를 받지 않았을까, 강기훈씨의 억울함을 좀 더 일찍 덜어드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제 역할이 당시 변론을 이끈 작고한 김창국 변호사님과 박연철 변호사님을 도와 실무적인 일을 하는데 있었지만요." 
 
이 변호사와 강기훈 씨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도, 이 사건을 조작해 낸 이들은 승승장구했다.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씨와 검사 안종택 씨는 모두 검사장을 지냈고,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기춘 씨는 국회의원과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당연히 누구도 처벌 받지 않았다. 국가와 당시 주임검사 신상규 씨, 강 씨의 필적을 감정한 김형영 씨 등을 대상으로 한 민사 소송만이 진행 중이다. 이 변호사는 "국가 책임, 김형영 씨 본인의 책임은 물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검사들 책임은 어떨지…"라고 말했다. 형사상 책임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거짓을 만들어 내고, 책임지지 않는 김기춘과 같은 권력들은 그렇게 적폐로 쌓였다. 그리고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던 2014년, 세월호에 과적된 적폐는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박근혜 정부에 의해 강제 종료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위원장을 맡았던 이 변호사는 이 대형 비극을 어떻게 봤을까. 이 변호사는 일본에서 중고 배를 수입해온 때부터 해운 관련 규제 완화 그리고 구조 과정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들을 단계별로 지적했다. 그리고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실 문제를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사 당일 오전에 뭘 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오후에는 머리를 하고, 세월호가 이미 다 가라앉은 뒤인 오후 5시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갔습니다. 총체적으로 재난을 예방하고 참사 발생 시 구조해야 할 국가 재난 관련 기구가 부실한 겁니다.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 거고요."  
 
세월호 참사를 말하는 이 변호사의 목소리가 잠시 흔들렸다.
  
다행히도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는 모습이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였다. "변호사로서 종종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들과 협력해서 일을 해온 저는 대규모 집회 때는 사실 좀 걱정이 있어요. 저러다가 혹 폭행이나 폭력 사태가 발생하여 대의에 손상이 되지 않을까. 이번에도 보니 촛불집회 초기 시민들이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서로 자제하고, 오히려 차벽에 꽃이나 재미난 내용이 들어 있는 스티커를 붙여 평화적인 집회를 유도하더니, 나중에는 스티커 등을 떼 말끔하게 하는 등, 저 스스로 이번 촛불 집회는 참여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고 공부가 됐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맨 앞에서 집회를 이끌었지요. 때문에 저는 이번 촛불 집회로 박근혜 정부 4년을 지나면서 어려움에 처했던 우리 사회의 민주적 시민 의식이 커다란 진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 변호사는 "만약 6월항쟁 같은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현재 진행형인 6월항쟁의 의미를 설명했다. "더 이상 독재로 회귀하거나 국민들의 민주적 바람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는 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죠. 촛불은 보다 발전된 형태에요."
 
6월항쟁의 미래가 촛불집회로 나타났다면, 2017년 촛불집회는 어떤 모습으로 평가해야 할까. 촛불을 들고 나선 시민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난해한 질문에 이 변호사는 웃었다. 
 
"우선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을 겪으면서 기초가 손상된 사회 정의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그것이 무엇이든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을 민주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해나가야 하겠지요. 그리고 공화국 헌법 1조, 국민 자신이 주권자라는 것을 늘 자각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정부가 잘못할 때에는 자기 스스로 먼저, 그리고 동료들과 연대해서 나서고 외쳐야 할 준비를 위해서 말이지요."
 
이 변호사의 답변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과 무척 흡사해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연대를 강조한 이 변호사와 잘 어울리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의 사무실 입구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故 신영복 선생님께서 써 주신 문구 '함께 하는 삶'이 적혀 있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선관위, <더 플랜> 의혹 제기에 “공개검증 용의있다”

 

선관위 “개표부정 아닐시 무거운 사회적 책임져야”…네티즌 “적반하장, 국민 협박하는 선관위”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영화 ‘더 플랜(감독 최진성, 제작 김어준)’의 18대 대통령선거 개표부정 의혹 제기에 대해 “제작팀의 요구가 있다면 조작 여부 검증에 필요한 범위에서 제3의 기관을 통해 공개 검증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의 투표지를 검증하면 모든 의혹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이 같은 입장을 전했다.

관련기사 파일 : 브리핑(170419) 제18대 대통령선거 개표부정 의혹 영화(더 플랜)에 대한 입장(최종).hwp

공개 검증 시기는 19대 대선 종료 후이고, 방법은 지난해 한국정치학회 주관의 1987년 대선 구로을 부재자투표함 검증 사례를 준용한다는 것.

선관위는 “1987년 대통령선거 당시 구로구을 부재자투표함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지난해 한국정치학회 주관으로 검증을 실시한 결과 선관위의 관리 분야에서만큼은 어떠한 조작행위도 없었음이 명백히 밝혀졌다”며 “이러한 검증절차는 제18대 대선 개표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준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영화 <더 플랜> 스틸컷

선관위는 “영화 ‘더 플랜’은 (개표)부정의 실체를 과학적 통계로 증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대통령선거 진행 중에 이런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선거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론을 분열시켜 공명선거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공개검증 결과) 개표결과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선관위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이라며 “반대로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의혹을 제기한 분들 또한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부 네티즌들은 “깊은 유감 표명 이전에 왜 불신이 생겼는지 깊은 반성부터 하라고! 신뢰 못 주겠으면 수개표 하라고!”, “선관위는 국민을 믿게 만들면 된다”, “이제서야 투표지 검증? 당연히 해야지”, “유감이고 나발이고.. 오해 살 짓을 말아야지”, “부정개표나 조작이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거라고? 지난 5년을 어떻게 책임질건데?”, “더 플랜의 핵심은 수개표 하라는 거고, 전자개표는 수개표 완료 후 보조수단을 쓰라는 거죠”, “적반하장, 국민 협박하는 선관위”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관련기사]

 
김미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완의 4월혁명 촛불혁명으로 부활, 완수해야"

4월혁명 57주년,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참배식(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4.19  16:19:46
페이스북 트위터
   
▲ 4월혁명 57주년을 맞아 19일 낮 12시 서울 수유리 4.19민주묘역에서 사월혁명회,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가 주최한 '4월혁명 57주년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 참배식'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광장의 촛불은 더 강력하게 힘을 모아 민주평화정부를 세우고 국가를 개혁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월혁명회와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한 민족민주운동단체들은 4월혁명 57주년을 맞아 19일 낮 12시 수유리 4.19민주묘역에서 ‘4월혁명 57주년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참배식’을 갖고 자주·민주·통일의 4월혁명 정신은 민주평화정부 수립과 국가 대개혁으로 모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4월혁명 57주년 선언’에서 “이번 촛불혁명은 박정희의 쿠데타로 짓밟힌 4월혁명이 촛불로 부활한 것”이라며, “민심을 거스르는 정권은 이 땅에 존재할 수 없다는 진실을 확인하였다”고 말했다.

또 “촛불혁명으로 열린 새 시대의 주역은 우리 국민들 자신”이라며, 미완의 4.19가 현재 진행형인 촛불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4월혁명과 6월민주항쟁 때 투쟁의 주도세력들이 2선으로 후퇴하고 개혁을 정치권에 맡긴 결과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뼈아픈 과거를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며, “적폐청산과 국가 대개혁을 위해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 왼쪽부터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정종성 한국청년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종성 한국청년연대 상임대표는 연대사에서 “57년 전 국민의 힘으로 이승만을 하야시켰지만 미국과 박정희의 쿠데타로 이를 빼앗긴 4.19의 뼈아픈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 촛불혁명 완수를 위해 끝까지 촛불을 들어야 한다”며, “청년의 삶, 국민의 삶이 바뀌어야 촛불혁명은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완의 4월혁명을 완수하는 것은 촛불혁명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57주년 4.19를 맞아 선배들 앞에 청년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수구독재세력인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재벌중의 재벌인 이재용과 공안 대통령이라 불리던 김기춘을 감옥에 보내고 난 뒤 온전한 적폐청산을 위한 범국민적 행동이 준비되고 있는 이때 미국 트럼프 정부는 핵항공모함과 전투기를 몰고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 진보정치 실현을 위해 떨쳐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분단 적폐이며, 평화와 통일에 역행하는 수구세력과 미국의 침략적인 행태를 응징하지 않고서는 사회대개혁과 진보정치 실현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국민과 함께 다시 촛불을 들고 사회대개혁과 진보정치를 위해 나서야 한다”며, 오는 29일 광화문과 전국 곳곳에서 국민 대항쟁의 시작을 선언하는 촛불이 다시 타오를 것“이라고 예고했다.

   
▲ 사월 학생혁명 기념탑.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합동참배식에는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과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을 비롯해 1백여명이 참가했다.

앞서 오전 10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정부 기념식이 열렸다.

   
▲ 참가자들이 분향 후 참배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민주당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가운데)이 참배식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4월혁명 57주년 선언(전문)
촛불혁명 완수하여 국민주권시대 이룩하자


역사적인 촛불시민혁명이 주권자인 국민의 승리로 끝났다.

국정농단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박근혜가 끝내 구속되었다.

이번 촛불혁명은 박정희의 쿠데타로 짓밟힌 4월혁명이 촛불로 부활한 것으로 민심을 거스르는 정권은 이 땅에 존재할 수 없다는 진실을 확인하였다.


광장과 거리에서 울려 퍼진 국민들의 함성은 단순히 무능하고 후안무치한 대통령 하나 바꾸자는 것이 아니었다.

친일파 청산에 실패하고 독재정권을 거치며 수십 년간 켜켜이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 촛불시민들의 요구였다.


이제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한 진정한 국민주권시대가 시작됐다.

박근혜 체제 청산은 구체제 청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적폐 청산과 국가 대개혁이라는 험난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박근혜를 가능케 했던 기득권 구조 해체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또 다른 박근혜가 출현한 우려가 크다.


촛불민심 받들어 민주평화정부 수립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다.

민주평화정부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사드배치 철회, 한일 위안부합의 폐기, 국정교과서 철회 등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대개혁에 나서야 한다.

특히 사드배치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이다.

한반도 평화와 국민 주권 짓밟는 사드배치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이명박근혜정권이 폐쇄시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길도 다시 열어 전쟁을 방지하고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넘쳐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적폐청산과 국가 대개혁을 위해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4월혁명과 6월민주항쟁 때 투쟁의 주도세력들이 2선으로 후퇴하고 개혁을 정치권에 맡긴 결과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뼈아픈 과거를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

광장의 촛불은 더 강력하게 힘을 모아 민주평화정부를 세우고 국가를 개혁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열린 새 시대의 주역은 우리 국민들 자신이다.

특권과 반칙 불평등과 양극화가 판치는 비정상을 청산하고 정의와 상식이 지배하는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해 모두 함께 나서야 할 때다.

촛불정신으로 자주 민주 통일의 국민주권시대를 힘차게 열어나가자.


우리는 4월혁명의 역사적 소명으로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전쟁 우려되는 미국의 대북 선제 공격 반대한다!

1. 국민주권과 평화를 짓밟는 사드 배치 철회하라!

1. 박근혜 국정농단 부역자를 철저하게 청산하라!

1.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1.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한일정보보호협정 폐기하라!

1. 국정교과서 성과퇴출제 권력의 언론장악 폐기하라!

1.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양심수를 당장 석방하라!


4월혁명 만세! 자주 민주 통일 만세!

2017년 4월 19일

4.19묘소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참배식 참가자 일동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판사 성향·동향 뒷조사 문건 있었다

[사법개혁 저지 파동]판사 성향·동향 뒷조사 문건 있었다

이범준·이혜리 기자 seirots@kyunghyang.com

 

ㆍ진상조사위, 행정처 고위법관이 학술행사 연기·축소 ‘압력’ 확인
ㆍ“판사 블랙리스트 없다” 셀프 결론…대법원장 책임 여부 안 밝혀

대법원이 판사들의 사법개혁 관련 학술대회를 저지하기 위해 법관들의 동향과 성향을 ‘뒷조사’한 대책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 조사 결과 확인됐다. 그러나 조사위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원 고위 관계자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 진상조사위는 18일 이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 보고서를 보면 지난달 25일 법원 내 판사들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원의 인사제도와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 집중 등을 다루는 학술대회를 열려 하자 행정처 소속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이모 판사 등 연구회 관계자들에게 학술대회를 연기·축소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이 상임위원은 이 같은 내용을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주재하는 실장회의와 고영한 행정처장이 주재하는 주례회의에 보고했다. 조사위는 논의된 대책 중 일부가 실행된 이상 행정처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지난 2월 대법원이 법원 내부통신망에 연구회에 복수가입을 금지하는 공지를 올린 것에 대해서도 인권법연구회 또는 학술대회 견제를 목적으로 한 “사법행정권의 남용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조사위는 이 상임위원이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를 한 파일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말라”고 말했다는 이모 판사의 진술을 확보했다. 조사위가 이 파일이 저장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컴퓨터와 e메일 서버를 조사하려고 했으나 행정처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사위는 대신 이 상임위원으로부터 자신이 언급한 파일이라며 학술대회 연기·축소를 위한 대책문건 2건을 제출받았다.

이 문건들에는 학술대회 관련 추진 경과와 추진하는 대표, 간사, 주요 참여자는 물론 ‘현재 잠시 참여도가 낮아진 참여자’ 등의 이름과 소속이 담겨 있다. 대법원이 학술대회를 추진하는 판사들의 동향과 성향을 뒷조사한 결과로 판단된다. 조사위는 이 문건 외에 전체 판사들 동향을 조사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조사위는 임 전 차장이나 고 처장 등이 학술대회 연기·축소를 직접 지시했는지, 양 대법원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았다. 법원 안팎에서는 조사위가 행정처의 조직적 개입 의혹을 확인했음에도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사태를 무마하는 데 치우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단독]세월호委 메모 "의전에 실수는 용서가 없다"

 
[세월호 특조위를 말하다] 조사3과 황광석 전 조사관 인터뷰
2017.04.19 08:14:53
 
 

 

 

 

그토록 기다린 세월호가 1089일 만에 뭍으로 돌아왔다. 하얀빛을 자랑하던 세월호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다 깊숙한 곳에서 뒤틀린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예상보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들은 오열하고 또 오열했다. 얼마나 흘려야 눈물이 멈출 수 있을까.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자연스럽게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필요성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이 무엇인지, 해경은 왜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했는지, 왜 이러한 참사는 반복되는지... 세월호 참사에는 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달려있다. 그러한 의문을 풀어줄 것이라 기대했던 세월호 특조위다. 하지만 2017년 6월 30일자로 조사활동은 강제종료 됐다.  
 
여러 변수가 존재하지만 현재 출범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끝나면 다시금 세월호 특조위 2기가 구성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러 의원들이 세월호 특조위법안을 발의해둔 상황이다.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2기 특조위의 향배도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세월호 특조위가 재구성된다고 소기의 성과를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기 특조위가 의도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접수된 231건 사건 중 단 4건에 대해서만 보고서가 나왔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내재해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노골적인 방해와 특조위 무력화 시도다.  
 
그렇다 해도 그 이유만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나의 사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노골적으로 보여지는 상수(常數), 그리고 그 이면의 다양한 변수(變數)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는 게 일반적이다. <프레시안>에서는 1기 특조위가 왜 실패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그에 따라 2기 특조위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월호 특조위에서 활동한 조사관 당사자들 인터뷰를 통해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개선책은 어떤 게 있는지를 살펴본다. 세월호 특조위 내 진상조사국 조사1과, 2과, 3과에서 각각 조사관 1명과 안전사회과 조사관 1명을 만났다.  
 
아래는 세월호 특조위 진상조사국 조사3과에서 일한 황광석 전 조사관과의 인터뷰 내용. 황 전 조사관은 특조위가 강제종료 된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세월호 국민조사위원회 사무실 근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해경, 특조위의 조사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프레시안 : 진상조사국 조사3과에서 일했다. 조사3과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황광석 : 세월호 특조위는 직권으로 어떤 사안을 조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청 받은 사건을 조사하는 식이었다. 그 사건이 200건이 넘었다. 이 사건들이 각각 사건이지만 결국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사건이다. 각각 조사관들이 저마다 맡은 사건이 다를 수 있지만 결국 하나의 사건, 즉 세월호 참사라는 큰 틀에서 조사가 진행됐다. 
 
이에 조사관들이 다 같이 봐야 하는 기록들이 있었다. 기록 선원 재판기록이라든지, 감사원 감사자료, 국정조사 기록, 행정부의 수사기록 등. 이에 그것을 조직하고 목록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조사관들이 필요할 경우, 컴퓨터에 앉아서 기록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런 일도 했다. 또한, 청문회, 위원회 회의 등의 기록도 정리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조사를 해야 하는 세월호 특조위 특성상 기록 정리보다는 조사활동 지원에 포커스를 더 맞췄다.  
 
프레시안 : 정부 기록을 모으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특조위에 비협조적이지 않았나.  
 
황광석 : 그렇다. 일례로 특조위 활동 종료 즈음인 2016년 5월, 우연히 해양경찰의 TRS(해경공용통신) 존재를 알게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TRS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다. 이것이 해경 본청에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특조위가 증거수집을 위해 실지조사 형태로 해경 본청을 방문했다.  
 
프레시안 : 기억난다. 당시 특조위가 방문했으나 해경에서 이를 주지 않아서 며칠 동안 대치 상태가 이어졌던 거로 기억한다. TRS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황광석 : 당시 우리가 요구한 TRS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과 해군 사이 교신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조위는 전체 녹음파일 제출을 요구했지만 해경 측에서는 선별해 제공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프레시안 : 해경에서는 왜 그랬나.  
 
황광석 : 안보와 관련된 내용이라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선별한 파일은 위·변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하드를 통째로 가져와서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세월호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2급 비밀취급을 인가받은 기관으로 공익적 목적으로 비밀사항에 해당하는 자료를 요구할 수 있지 않나. 
 
황광석 : 맞다. 안보는 핑계였다. 해경은 당시 세월호 특조위를 이미 활동이 끝난 조직으로 판단했다. 그러니 버티기면 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프레시안 : 그래도 대치 끝에 특조위는 TRS를 입수하지 않았나. 
 
황광석 : 받으려 했던 자료에서 일부를 뽑아 줬다. 하지만 거기에도 이제껏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여러 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 조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특조위 활동이 종료되는 시점이었다.  
 
프레시안 :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렇게 해경 등이 숨기고 있는 자료와 정보가 얼마나 더 있을까.  
 
황광석 : 분명 더 있으리라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민감한 개인정보 있다며 자료 공유를 못하도록 했다" 
 
프레시안 : 다른 조사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각 조사관들이 수집한 기록들이 공유가 안 됐다고 들었다.  
 
황광석 : 특조위에 있으면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점은 이곳에 온 사람 중 자격 미달자가 있다는 점이다. 스펙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 이해, 그리고 사명감, 문제의식 등이 없는 분이 많았다.  
 
프레시안 :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황광석 : 조사관들이 우리 과에 어떤 조사기록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상급자가 이를 주지 못하도록 했다.  
 
프레시안 : 그게 무슨 소리인가. 
 
황광석 : 상급자의 논리는 간단했다. 특조위는 공공기관이면서 조사기관으로서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거기에는 개인 정보 중에도 민감정보, 즉 범죄기록, 의료기록 등도 포함돼 있다. 그것까지 우리는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민감 정보라면서 이것이 다 공유되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공유를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말만 들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조사관이 그런 정보를 보지 않고 무슨 조사를 할 수 있나. 그리고 조사관은 그런 정보도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나.  
 
황광석 : 답답했다. 활동기간이 1년 반 밖에 안 되는 특조위에서 무엇을 그렇게 따지나 싶었다. 미친듯이 달려들어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듯한데... 나는 이것저것 따지기 보다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원은 채워지지 않았고, 청문회는 계속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조사는 지속해서 이어나가야 했다. 하지만 여건이 안 됐다. 정부의 방해는 계속 이어졌다. 그 속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다급함이 있었다.  
 
프레시안 : 위에서는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황광석 : 아마도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걱정됐던 듯하다. 자기 이력에 흠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다면 특조위에 와서는 안 됐다. 경험을 쌓고 싶었다면 다른 곳에 가야 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궁금한 것은 자료 공유 등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 아닌가. 그런 것을 위에서 알았다면 조정을 해야 하지 않나. 
 
황광석 : 위에서는 알면서도 바로잡지 않았다. 밑에 있었던 사람 입장에서는 다 아쉽다. 
 

▲ 별정직 조사관 책상에 붙은 메모. ⓒ황광석

"조사보다 의전이 더 중요하다고 교육하는 파견 공무원"
 
프레시안 : 파견 공무원은 어땠나.  
 
황광석 : 사실 대부분 파견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 안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들 공무원 특유의 행위를 별정직 부하 직원들에게도 주입한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런 예가 있었나.  
 
황광석 : 한 번은 다른 과에 갔다가 별정직 직원 컴퓨터 모니터에 붙은 메모를 우연히 보게 됐다. '업무에 실수는 용서가 되지만, 의전에 있어 실수는 절대 용서가 없다'라는 제목의 쪽지였다. 과장 모시고 점심 장소 등을 알아보는 방법, 그리고 회식 약속 체크하는 방법 등을 적은 쪽지였다. 그것을 보고 무척 화가 났다.  
 
프레시안 : 할 말이 없다. 파견 공무원이 부하 조사관 군기 잡는 식인 듯하다. 그리고 특조위 업무보다 상사와의 밥자리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황광석 : 처음에는 기록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특조위 조사가 잘되도록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만 생각하며 미친 듯이 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안 되겠다 생각했다. 위원회 안에서 이 문제를 두고 조사관들과 대화를 했더니 대부분 조사관들이 다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후 위를 찾아가 문제제기도 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기사를 끝까지 읽으셨다면…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많은 이용자들 상당수가 뉴스를 생산한 매체 브랜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뉴스 유통 방식의 탓도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뉴스를 남발하는 매체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은 독립·대안언론의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저널리즘에 부합하는 기사에 한해 제안 드립니다. 이 기사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주신다면, 프레시안의 언론 노동자, 콘텐츠에 기여하는 각계 전문가의 노고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쓰겠습니다. 프레시안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언론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드, 차기 대통령 운운은 기만.. 모든 절차 즉각 중단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4/19 11:16
  • 수정일
    2017/04/19 11: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성주·김천·원불교 등, “부지 공여는 국유재산특례제한법 위반”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7.04.18  19:12:52
페이스북 트위터
   
▲ 성주, 김천, 원불교와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등 관련 단체들이 18일 오후 광화문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드부지 공여를 포함한 모든 사드배치 절차 중단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드(THAD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 일정 조정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성주·김천·원불교와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등 관련 단체들은 18일 오후 광화문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사드배치 절차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최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방한에 동행한 백악관 외교정책 보좌관이 주한미군의 사드배치와 관련해 해결에 시간이 필요한 몇 가지 문제는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한 언급이 파문을 일으키자 외교부·국방부가 서둘러 사드배치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나선데 대한 입장 표명인 셈이다.

이들은 “한미 당국의 행태는 마치 다음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할 것처럼 기만적 언사를 흘리면서 여전히 ‘사드 알박기’로 사드 배치를 되돌릴 수 없게 하려는 것으로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20일 정도 남은 대선을 앞두고 우선 부지 공여 등을 마무리한 후 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최종 일정은 대선 후 차기 정부와 조율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다음 대통령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고 엄청난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연합뉴스>는 17일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사드 레이더 등 후속 장비는 한·미간 사드배치 부지 공여에 합의 서명한 이후 적정한 때에 반입될 것"이라며 "이번 주 부지 공여에 서명하더라도 대선 이전에 장비 반입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사드 한국배치를 연기하기로 했다는 추정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드배치는 순수하게 북핵과 미사일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한·미 당국의 주장은 거짓이었다는 반증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이 같은 추정은 “미국이 짜놓은 ‘꽃놀이 패’에 중국이 영합하여 남과 북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하며,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나라와 국민을 주권을 가진 존재로 존중할 의사가 있다면 국민에 의해 파면되고 구속된 정권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저지른 사드배치 결정을 미국 스스로 거둠으로써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온전히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이날 기자회견은 거칠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로 인해 비옷을 입은 채 진행됐다. '아무 것도 하지 마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병규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공동대표는 “미국은 결국 차기 정부를 굴복시켜서 사드배치를 하겠다는 계산을 하는 모양인데 그 계산은 틀렸다는 것을 경고한다”며, “부지 공여 서류에는 도장을 찍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드는 대선이 끝나더라도 소성리 진밭교를 지나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외교안보 적폐의 수장’으로 칭하며, “차기 정권에서 반드시 감옥에 보내지게 될 것이니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위안부 합의에 이어 사드 부지 공여의 죄를 추가할 것인지 여부를 심사숙고하라”고 경고했다.

원불교비대위 기획위원장인 강해윤 교무는 “사드부지 무상공여는 국유재산특례제한법을 위반한 위법”이며, “특히 그 자체가 법적 근거도 없고 국민동의도 없어 원천 무효인 사드배치인데 무슨 부지 공여를 말하느냐”고 일갈했다.

또 “위안부 졸속합의에 이어 미국에서도 차기 정부에 넘기자고 하는 사드배치를 이토록 강행하려는 윤병세 장관과 황교안 내각은 나라를 팔아먹지 못해 환장한 것 아니냐”며, “국민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니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80일째 촛불을 밝히고 있는 성주에서 올라 온 노성화 성주투쟁위 공동위원장은 “사드가 미국과 일본을 위한 것이라는 건 만천하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외교부도 국방부와 같이 미쳐가고 있다”며, “국민의 이름으로 경고한다. 지금 여기서 멈춰라”고 말했다.

유선철 김천시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탄핵당한 정권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지금 사드 관련해 강행하고 있는 모든 공사를 중단하고 다음 정권과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넘기라”고 촉구했다.

   
▲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유승희 의원실은 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사드 부지 무상 공여는 국유재산특례제한법을 위반한 위법이 된다고 주장했다. [사진-유승희 의원실]

한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민주당 유승희 국회의원실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사드 부지 무상 공여는 국유재산특례제한법을 위반한 위법이된다고 주장했다.

2010년 10월 정부가 발의하고 2011년 3월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해 공포된 ‘국유재산특례제한법’은 국가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국유재산을 개별 부처가 개벌법을 통해 국유재산 특례를 만드는 것을 방지하는 법으로 국유제산특례를 정한 별표에는 무상으로 부지를 공여하는 한미 주둔군 협정 ‘SOFA’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미군에 제공하는 시설 구역은 미국에 부담을 과하지 않기로 한 SOFA는 국유재산 특례에 해당하며, 2011년 국유재산특례제한법을 제정한 이후 2017년에 진행되는 사드부지를 법 개정없이 신규로 무상 공여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것.

민변 미군위는 국방부가 위법소지가 있는 사드부지의 무상제공을 당장 중단하고, 차기 정부에 결정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악어와 악어새’들에게

‘악어와 악어새’들에게
 
 
 
김갑수 | 2017-04-19 08:52: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악어가 물에서 땅 위로 나와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악어새가 악어 입안의 고기 찌꺼기를 먹어 청소한다. 이는 악어에게 이로운 일이기 때문에 악어는 악어새를 입 안에서 놀게 놔둔다. 요컨대 악어는 악어새에게 먹이를 제공해 주고 악어새는 악어의 이빨을 갈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악어는 이 이빨로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 아마도 이를 가리켜 공생관계라고 하는 모양이다.

내가 어제 정의당 대선후보 심상정을 비난하는 글 ‘심상정은 누구인가’를 페북에 올렸더니 다른 글에 비해 반향이 컸다. 대부분이 내 글에 동의하는 반응이었지만 일부 반론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반론의 양상이 꽤나 공격적이었다. 이것은 애초 내 글이 공격적이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니 내가 자초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은 정치인답고 연예인은 연예인다워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그런데 60 다 된 여성 정치인이, 그것도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정치인이 자기 외모가 20대 여배우를 닮았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니는데 과연 그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심상정 닮은 그 연예인들, 참 대단한 여배우들 것’이라고 비틀어서 말했다. 이게 왜 여성비하란 말인가? ‘심상정 비하’라면 모를까? 그렇다. 나는 내 글에서 심상정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있는 그대로 말해 주면 그걸 비열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상한 풍조가 있다.

다음으로 심상정은 좋아하는 남학생과 사귀고 싶어 운동권에 들어가 운동권에 남게 되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심상정은 자기가 설령 그랬을지라도 진보 지도자를 자처한다면 왜 운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의 말을 추가했어야 옳다.

연애는 연애다워야 하고 운동은 운동다워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내 지론이다. 그 따위 말은 ‘운동’하다 그만 둔 여자가 친구와 사담을 나눌 때나 하는 말이지, 지도자가 공공연한 언론 인터뷰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보았다.

이걸 보고 각성된 여인이라면 같은 여성으로서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라고 나는 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내 개인적 느낌일 따름이다. 나에게는 4명의 여성 가족이 있는데 그들로부터 얻은 판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책장사를 하고 여행장사를 한다고 비난하는 분이 있다. 이에 대해서 나는 반박할 수가 없다.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생활인으로서 책장사, 여행장사를 한다는 말은 사실과 조금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혀 비난 받을 것은 못되지만)

내가 돈벌이를 포기한 지는 10년쯤 된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당시 나는 놀면서 일해도 최소 정규직의 3~4배 수입은 올릴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글을 쓰고 싶어서 전업작가로 전환했다.

또한 나는 지금 경제적인 생활인도 아니다. 나는 10년 전부터 집에다 생활비를 들이지 않았다. 아니 들이기는커녕 가져다 쓸 때가 더 많다. 의식주 생활은 20대부터 대학교수 직을 유지하고 있는 내 동반자가 책임지고 있는데, 내 동반자는 내가 돈벌이 하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주적으로 성장한 내 아이 셋은 늘 아비의 건강과 활동비를 걱정해서 어떻게든 나에게 돈을 주려고 한다.

책 판매와 여행에서의 강사료 등은 모두 팟캐스트 운영비를 비롯한 공식 활동비로만 사용한다. ‘민심이 갑이다’는 5년째 지속하고 있는 팟캐스트인데 출연자에게 100% 출연료를 지불해왔다. 방송 후에는 저녁식사 대접이라도 해서 보낸다. 한 번은 정동영 씨가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가 방송 출연료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해서 의아하게 여긴 적이 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국외여행을 10차례 이상 주도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참가자 모집에 애를 먹은 적이 없다. 5월 초 중국 ‘제조태’ 답사는 두 달 전에 마감했고, 8월 중앙아시아 ‘탄탄탄’ 답사는 빈자리가 5석밖에 남아 있지 않다. 여기에 추가하여 9월 중순 고구려, 압록강, 선양, 백두산을 노정으로 하는 ‘고압선-100’ 답사를 기획 중이다.

우리의 여행 모집 능력은 일개 언론사 이상이다. 모두가 관광 또는 상업성이 배제되고 견문, 학습성이 강화된 여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 작년 시베리아 여행에서는 소음이 큰 기차 탑승 등의 사정이 돌발하여 강의를 거의 못했는데 이로 인한 부작용이 바로 온다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민중연합당 선대위 자문위원으로 위촉 받아서 수락했다. 이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겠다.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혹시 당 간부 직이나, 단체의 장 또는 국회의원 후보직 등의 제안이었더라면 100% 즉각 거절했을 것이다. 나는 평생 살아왔던 대로 비정규직이 적합한 그릇이다.

처음의 논의로 되돌아 가보자. 나는 정의당 대선후보 심상정을 격렬히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실대로 말하면 ‘비난’이라고 한다. 내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밝히겠다. 이틀 전 나는 우연한 계기로 ‘노동자연대’의 한 모라는 사람이 쓴 글을 읽었다.

그 글에서 한 모는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민중연합당’이 후보를 낸 것은 잘못이며 지금이라도 민중연합당은 심상정에게 단일 지지를 표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이 ‘진보통합’인 양 말하고 있었다.

어불성설, 언어도단이 아닌가? 주객전도, 양심불량도 유만부동이지,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2008년 민노당 분당사태부터 나는 그들이 어떤 짓거리를 해왔는지 소상히 알고 있다. 특히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그들이 저지른 행위는 날강도가 울고 갈 정도라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기껏 해야 그들은 이상한 진보단체 간부 수십 명, 이상한 노동단체 간부 수백 명 그리고 정의당 당직자 수십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진보연하며 ‘진보통합’을 주워섬기면서 악어새들을 비호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를 발전시키고 싶으면 마음을 바르게 하고 실력을 키워서 4000만 유권자를 향해 확장하면 된다. 심상정의 ‘날선 이빨’과 그들의 고기 끼꺼기, 나는 심상정과 그들의 관계를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로 규정한다.

심상정은 누구인가

“제가 배우 수애 씨 못지않게 출중한 미모였어요. 7㎝ 하이힐만 신고 다녔어요…”

나는 수애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심상정은 누구인지 조금 안다. 심상정이 수애를 닮았다면 수애는 참 대단한 배우인 것 같다. 심상정과 비슷한 용모로 유명 배우가 되었다면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 테니 말이다.


이랬던 심상정이 최근 ‘썰전’인가 어딘가에 출연하여 자기는 김고은을 닮았다고 말을 바꿨다. 김고은 역시 처음 들어 보지만 그 또한 대단한 배우일 것임이 틀림없다. 추가하여 하나 더, 심상정은 자기 신장이 겉보기보다 –7cm 이상임을 알려 주었다.

‘원래 절대 운동권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심상정은 ‘연애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따라간 남자는 전부 학회 소속이고 운동권’이어서 ‘그 친구와 사귀고 싶어 발을 들였다가 연애는 못하고 운동권 학생이 됐다’고 한다. 아마 이 말을 듣고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여성이 있다면 그 역시 정상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 여론 지지율이 2~4% 정도 나오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생각에 한국인의 80% 이상은 이정희와 심상정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또한 한국인의 90% 이상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과 정의당과 민중연합당을 정확히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마당에 뉴스매체들이 심상정은 진보정당 대선후보라고 해 주니까 막연히 진보 선망하는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는 척하는 것일 따름이다.

2007년 대선 때 일이다. 당내 경선에서 심상정을 누르고 민주노동당 후보가 된 권영길은 3.1%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이것은 이전 2002년 대선에서 얻은 3.89%보다 적은 수치였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 휘몰아친 보수 열풍과 진보를 표방한 문국현(5.8% 득표)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그것은 그리 심한 패배라고는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심상정 일파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당권파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요구대로 ‘심상정 비대위’가 결성되었다.
심상정 일파가 당권파에게 내건 요구는 세 가지였다. 첫째 북핵실험에 반대 표명할 것, 둘째 일심회 관련자를 제명할 것, 셋째 심상정 비대위에 차기 총선 지휘 권한(핵심은 비례대표 후보 선발권)을 줄 것 등이었다. 당연히 앞의 조건 두 가지는 종북몰이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한 성격의 것이었다.

당원투표에서 일심회 관련자 제명안이 부결되었다.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것은 민노당의 강령이었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제명하는 것은 당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이 된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일심회 제명안 부결은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당원투표 결과였다.
하지만 심상정 일파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결과를 부정하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당권파더러 비민주적인 집단이라고 비난하면서 당을 떠났다. 만약 이때 ‘심상정 비대위’에 차기 총선 지휘 권한, 다시 말해 비례대표후보 선발 권한을 다 주었다면 과연 그들이 당을 떠났겠는가?

아무튼 그들은 이렇게 희극적으로 당을 떠났고 그 결과도 여지없이 희극적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만든 진보신당은 단 한 석의 지역구 당선자도 못 냈을 뿐 아니라 정당 투표에서도 3% 미만을 기록, 개표 날 밤이 새도록 비례대표 의원마저 내지 못했다.

이런 몹쓸 짓은 2012년에도 반복, 재연되었다. 진보신당에 갔다가 시계불알처럼 통합진보당에 왕복 탈-입당한 심상정은 유시민과 결탁하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 직을 노렸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에는 이정희라는 유력후보 감이 있었다. 그들 뜻대로 될 리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이정희를 비롯한 당권파를 부정선거 집단으로 모해하면서 이석기, 김재연에 대한 종북몰이를 활용했다. 그들은 이정희의 백의종군을 강요하여 관철시켰다.

이 과정에서 1959년생 심상정은 1958년생 유시민과 더불어 ‘오빠가 지켜줄게’ 버전을 선보였다. 유시민은 심상정에게 식은 아메리카노를 덜어주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것은 ‘다이아 반지’가 결부된 ‘이수일-심순애’가 따로 없었던 희비극이었다.

심상정은 진보가 아니다. 진보의 가면을 썼을 따름이다. 심상정은 민주주의자도 아니다. 민주주의자로 분장했을 따름이다. 더욱이 심상정의 정의당은 진보를 망친 ‘셀프진보 자해정당’이다. 심상정은 운동을 팔아 국회의원이 되었고 노동을 팔아 대선후보가 된 가장 비자주적인 정치꾼이다.

이를 모르는 순진한 국민의 2~4%가 그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자주적인 진보 후보로는 통합진보당의 부활체 민중연합당의 김선동 외에 없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이상은 정치 성향을 떠나 나의 실존적 양심을 걸고서 한 말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43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대강과 닮은 미국 클라마스강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4/19 10:44
  • 수정일
    2017/04/19 10: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녹조와 물고기 떼죽음, 미국의 선택은 댐 철거
[4대강 독립군 미국에 가다] 4대강과 닮은 미국 클라마스강

17.04.19 04:55 | 글:정수근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지난 11일 워싱턴 주 포토엔젤리스(Port Angeles)의 엘와강을 떠난 '4대강 독립군' 일행은 클라마스 강(Klamath River)이 흐르는 오리건 주의 이레카(Yreka)로 향했다. 가는 길에 빽빽한 측백나무와 미국삼나무 숲을 만났다. 넓게 펼쳐진 푸른 초지 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양, 말이 보였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생소한 풍경들.  

우린 부산에서 백두산까지에 이르는 거리인 1200킬로미터를 달렸다. 녹초가 된 몸으로 차 안에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강행군 끝에 도착한 이레카는 산속의 도시였다. 그곳에 이르는 길은 산과 산 사이에 난 사잇길이었다. 사행천처럼 구불구불했다. 밤 12시 넘어서 이레카에 도착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났을 때 길옆으로 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클라마스 강이었다. 포트엔젤리스에서 이레카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클라마스 강은 양 협곡 사이를 시원스럽고도 힘차게 달렸다.      

댐이 앗아간 카룩족의 풍요
 
▲ 4대강 독립군이 미국의 원주민을 만났다. 댐 철거를 이끌어낸 카룩족(Karuk Rribe)이다. 리프 힐만(Leaf Hilman)에 의하면, 클라마스 강에서도 4대강과 마찬가지로 녹조와 물고기떼죽음이 일어났다. ⓒ 정대희
 
▲ 4대강 독립군이 낙동강에 번성한 녹조사진을 보여주자 리프 힐만 국장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 정대희

4대강 독립군은 철거를 앞둔 클라마스 강의 아이언 게이트 댐(Iron Gate Dam)으로 가기에 앞서 아메리카 원주민인 카룩족 사무실(Happy Camp)에 들렀다. 카룩부족 정부 천연자원부 리프 힐만(Leaef Hilman) 국장은 우리 일행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연어잡이에 사용해오던 통나무카약과 그물 사용법을 설명했다. 한때 어부였던 그는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그는 클라마스 강에 댐을 세우면서 시작된 부족의 수난사를 이야기했다.    

힐만씨는 "카룩족은 클라마스 강의 풍부한 어족 자원을 바탕으로 살아가던 부족이었다"면서 "1964년에 대형 댐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재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댐이 지어진 뒤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시누크 연어 떼는 봄에 대이동하고, 7종의 물고기 떼가 시기별로 대이동을 한다. 그런데 댐이 들어선 이후에 물고기 떼는 사라졌다. 강에 기대어 생활하던 5개 부족 간에 협약을 맺어 본류와 지류 간의 어장 관리를 해왔고, 물물교환을 통해 자급자족 경제를 이뤘는데 댐이 지어지면서 유역 공동체 활동이 모두 차단됐다." 

풍족한 어족 자원의 단절은 이 지역 경제와 문화의 단절로 이어졌다. 부족 공동체뿐만 아니라 부족 간 연대도 단절시켰다. 그는 말을 이었다.    

"3년 전에는 가을철에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1~2년생 연어들이 전염병에 걸려 70~80%가 멸종됐다. 되돌아올 연어가 없어졌다. 이 연어들은 댐 아래에서부터 바다까지 본류와 지류에서 수확하던 것들이다. 지금 잡히는 연어는 대략 100마리 정도뿐이다. 물론 댐 상류에는 연어가 없다."

하류에서 남아있던 연어가 멸종한 것도 댐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녹조 문제가 심각했다. 댐 소유주였던 퍼시픽코프 전력회사는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는 실증적인 자료를 갖고 있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그들의 무기를 이용해서 그들의 논리를 무찌르는 전략을 썼다. 각종 모니터링을 했고, 데이터를 들이댔다. 그래서 주정부나 카운티 정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정부 관련 기관들을 협의 테이블로 불러내 협의하고 있다. 녹조로 인한 떼죽음이었다는 것도 과학적인 조사를 거쳐 밝혀진 사실이었다. 물을 가두니 녹조가 엄청나게 번성했다. 그 녹조 물속에서 폴리킷이라는 기생충이 번성했고, 바다로 나가야 할 연어들이 집단으로 감염됐다. 우리가 기생충과 관련된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바로 그들의 과학을 써서 물고기 떼죽음의 원인을 규명하자 그들도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4개의 댐이 녹조를 만들었다
▲ 댐 철거 결정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수잔 프리키(29. Susan Fricke). 미국은 오는 2020년부터 아이언게이트(Iron Gante)와 그 상류로 죽 이어진 콥코1(Copco 1 dam), 콥코2(Copco 2 dam), 제이시 보일댐(JC Boyle Dam) 등 4개를 철거할 예정이다. ⓒ 정대희
 
▲ 4대강 독립군이 댐 철거예정지를 찾았다. 미국 오리건 주 클라마스 강에 있는 아이언 게이트(Iron Gate) 댐이다. 이곳에서 4대강 독립군은 카룩족 수질전문가 수잔 프리키를 만나 댐 철거 결정과정을 인터뷰했다. ⓒ 정대희

리프 힐만 국장과 헤어진 뒤 4대강 독립군은 비 내리는 아이언 게이트 댐으로 향했다. 부족 정부의 천연자원부 산하 수질문제국 수질전문가인 수잔 프리키(29, Susan Fricke) 씨가 높이 53m의 댐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총연장 597㎞의 클라마스 강은 오리건 주 남서부의 목장지대를 거쳐 태평양 부근 캘리포니아 북부 원시림 지대인 레드우드의 드넓은 지역을 흐른다. 강은 다양한 부족집단들에게 수천 년 동안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서부에 위치한 강 가운데 세 번째로 큰 연어 공급지였다. 서부 개척시대 이후에는 수십만 에이커의 농업용 토지에 관개수를 공급해왔다. 

이 강에 여섯 개의 댐을 세웠다. 아이언 게이트 댐은 제일 하류에 위치해 있고, 상류에 5개의 댐이 더 있다. 2020년부터 철거가 결정된 댐은 아이언게이트와 그 상류로 죽 이어진 콥코1(Copco 1 dam), 콥코2(Copco 2 dam), 제이시 보일댐(JC Boyle Dam) 등 4개다. 

상류 쪽의 다른 댐들과는 달리 아이언 게이트 댐은 발전용이 아니다. 하류로 강물을 흘려보내려고 만든 댐인데,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수문을 열어 방류하고 있었다. 상류의 댐들이 방류할 때마다 하류의 수위가 불안정해져서 원성이 높았기 때문에 하천 유지용수를 내려보낼 목적으로 지어진 댐이다. 매년 이곳에서 녹조가 번성했다. 

"물이 갇히고 여름에 수온이 올라가면서 녹조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심할 때는 독성 남류조로 인한 마이크로시스틴이란 독성물질의 농도가 최고 10,000ppb까지 나타났다." 

WHO에서 권장하는 마이크로시스틴의 수질 기준은 1ppb다. 수잔의 설명에 따르면 무려 만 배나 되는 농도의 독성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이 독성물질은 간에 축적이 되는 맹독성 물질로 물고기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가축, 심지어 사람이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물질이다.  

녹조는 어류나 농작물에도 농축된다... 인간은?



금강과 낙동강에서도 측정되는 마이크로시스틴은 유전적으로 아주 강해서 고온에서도 잘 죽지 않고, 아주 멀리 이동해서도 생존한다. 어류나 농작물에까지 축적된다. 즉 독성 남조류에 오염된 물을 먹는 물고기나 그 물로 농사를 지은 작물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독성물질이 강 하구의 민물조개에서 더 많이 검출됐다. 농작물 축적에 대해서는 논문으로 읽었는데 이 근방에서는 아직 그런 사례가 보고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구의 조개에서 나온 것은 맞다. 앞으로 거기에 대해서 연구할 것이다." 

수잔은 "녹조는 절대로 피부와 직접 접촉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는 장갑을 끼고 측정하는데, 직접 강물과 접촉하는 어민들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야생동물이나 소 같은 것이 녹조 물을 마시고 죽은 것이 확인된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슴이나 개가 앓다가 죽어간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문제가 뭔지 알려고 수의사를 보내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상당히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계속해서 조사를 해나갈 생각이다." 

- 녹조가 이렇게 번성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지금 이 저수지는 크고 깊고 따뜻한 욕조나 마찬가지다. 바로 댐이 강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강이 막힌 상태라서 수온이 올라갔다. 상류의 축산농가 등에서 발생되는 비점오염원들이 있기 때문에 녹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964년에 댐이 만들어진 뒤부터 계속 녹조가 발생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고 있다."

차기 대통령, 4대강 16개 보와 영주댐부터 철거해야
 
▲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불교환경연대,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회원들이 지난해 8월 27일 오후 경북 영주 영주댐 일대 녹조가 창궐한 낙동강에서 영주댐 철거를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리프 힐만씨와 수잔 프리키의 설명을 종합하면 결국 물고기와 녹조 문제 때문에 클라마스 강에서 네 개나 되는 댐을 한꺼번에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물고기 떼죽음과 녹조의 창궐. 클라마스 강을 막은 4개의 댐이 끼친 해악은 4대강 16개 댐, 영주댐과 너무 닮았다. 4대강의 16개 보와 영주댐을 그대로 놔둔다면, 기준치의 1만 배를 초과하는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될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게다가 클라마스 강은 식수원도 아니고 농업용수로도 사용하지 않지만 낙동강은 1300만 영남인의 식수원이기에 더 심각하다.

클라마스 강에서 동시에 4개의 댐을 철거하는 건 멸종위기종인 연어를 보호하고 원주민의 삶을 회생시키기 위해서이다. 또 녹조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클라마스 강의 생태계를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하루 이틀 동안 내린 결정이 아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부족정부들과 지역 주민들이 수년에 걸쳐서 논의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  

4대강의 보와 영주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낙동강의 경우, 클라마스 강처럼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고, 죽은 강준치의 뱃속에 클라마스 강에서 검출된 폴리킷과 흡사한 기생충이 발견됐다. 두 강에는 녹조가 창궐했다. 미국의 연어들처럼 한반도 고유종이자 멸종위기종인 흰수마자의 서식처인 내성천이 죽어가고 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더 이상 검증할 게 없다. 차기 대선 후보들은 클라마스 강의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적폐 청산1호인 4대강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강의 장벽은 없애고, 강의 자유를 되찾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강이 살고 인간이 산다. 

4대강은 한반도의 핏줄기이다. 국토의 핏줄이 지금 16개 보와 영주댐으로 막혀 있다. 국토의 기운이 다시금 힘차게 소생할 수 있도록 막힌 것을 뚫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숙제이다.


 
 4대강 독립군을 성원해 주십시오
오마이뉴스는 '4대강 독립군'들과 함께 4대강 청문회가 열릴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후원해 주십시오. 매월 1만원의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어 주시면 됩니다. 010-3270-3828(10만인클럽 핸드폰)으로 전화 주세요. 또 이번 현장 취재를 하는데 환경운동연합대구환경운동연합불교환경연대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4대강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해 온 단체들에게도 후원(회원 가입) 마음을 내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위의 단체 이름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