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시민기자다, 취재 허가해달라" 북한에서 프레스를 받다

 

[독점 공개] 재미동포 아줌마와 함께하는 실시간 북한 사진 기행②

15.10.09 22:00l최종 업데이트 15.10.09 22:09l

 

 

안녕하세요. 10만인클럽의 후원으로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연재하고 있는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입니다. 저는 연재를 잠시 중단하고 지난 6월에 이어 약 2주간 북한을 여행할 계획입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출발해 중국 심양을 거쳐 8일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구입한 SIM 카드를 이용해 평양 등지에서 북녘 동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오마이뉴스>에 단독으로 보냅니다. 또한 북한 조선로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들의 모습도 함께 전하겠습니다. 

'재미동포 아줌마와 함께하는 실시간 북한 사진 기행'에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9일 낮 평양의 길거리. '미제가 덤벼든다면 지구상에서 영영 쓸어버리자'라는 문구 앞으로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지나가고 있다.ⓒ 신은미
9일 낮 평양 지하철 속 모습. ⓒ 신은미
9일 오후 평양역 근처 아파트 단지 내 휴식처에서 두 노인이 장기를 두고 있다.ⓒ 신은미
9일 낮에 촬영한 평양의 택시들. ⓒ 신은미
9일 낮, 평양 시내 택시기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신은미
9일 오후 2시께 평양 시내 모습. 고층 아파트 건물들이 보인다. ⓒ 신은미
9일 오후 2시 양강도호텔을 방문했다. ⓒ 신은미
북한 가스맥주(한국의 생맥주와 비슷하다)와 탈피(황태).ⓒ 신은미
9일 낮 1시께 조선노동당 창건 70년을 취재를 위해 북한에 방문한 외신기자들이 만경대 김일성 주석 생가를 취재하고 있는 모습.ⓒ 신은미
10일 있을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북한 당국에 "나도 시민기자이니 취재를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북한 당국은 요청을 받아들여 내게 프레스를 발급해줬다. 10일 열병식 때 정식 취재를 할 수 있게 됐다.ⓒ 신은미
9일 오후 8시 반께 고려호텔 로비 모습. 외국인 관광객 무리와 그들의 짐이 보인다. 호텔종업원이 짐을 카트에 싣고 운반하려고 한다. ⓒ 신은미
○ 편집ㅣ김지현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가을, 숲과 조우하다

 
[함께사는길] 숲·① 아름다운 숲길 소개
 

운 좋게도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은 시원하고 햇빛은 쨍한 날, 옛 숲을 만나러 서울에서 출발해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장릉'으로 향했다. 

느티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매표소를 지나 산책길로 들어섰다. 어디에 그렇게 많이 숨어 있는지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사방에 귀뚤귀뚤 울린다. 진짜 가을과 인사하는 기분이 든다. 가장 먼저 느티나무가 걸음을 붙잡는다. 할 이야기가 많은 나무다. 느티나무는 오래된 마을이라면 꼭 있는 나무다. 가지가 많고 넓게 뻗어 있으며 잎이 무성해서 그늘 밑에서 사람들이 모여 놀거나 쉬었기 때문에 '정자나무'라고 불린다. 

조선시대는 '소나무 문화'였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사람들은 소나무를 최고의 나무라고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 이전에는 '느티나무 문화'였다. 나무의 모습이 우아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목재로서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이전까지 나무로 만드는 무엇이든지 재료로 쓰였다. 신라시대 어느 왕의 무덤인 천마총은 느티나무를 관의 재료로 썼을 정도로 목재로서 느티나무의 역사는 깊다. 

느티나무는 마을에서 혼자 우뚝 서서 자랄 때는 가지가 넓게 뻗어서 마을 사람들의 쉼터를 만들지만 이 장릉 숲에 있는 느티나무는 그렇지 않다. 곁에 있는 나무들과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경쟁해야 하므로 가지가 위로 자라고 있다. 느티나무 줄기의 수피를 보면 회갈색이며 가로로 갈라진 갈색 선들이 있는데 나무의 숨구멍이다. 잎줄기를 보면 어긋나기로 달려 있다. 잎 모양은 긴 타원형이며 잎 가장자리가 톱니모양이지만 날카로워 보이지 않는다. 봄이 되면 꽃은 잎겨드랑이에 피는데 꽃잎이 없어 '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느티나무를 지나쳐 걷다 보면 '미선나무'가 눈에 띈다. 세계적으로 1속 1종밖에 없는 귀하신 나무라 발길을 멈추었다. 충북 진천군, 괴산군, 영동군, 전북 부안군 일부에만 미선나무 자생 군락지가 있다. 열매 모양이 '미선(尾扇)'이라는 하트 모양 부채와 닮아서 이름이 붙었다. 잎 모양은 타원형이며 잎 가장자리가 매끄럽고 잎끝이 뾰족하다. 열매는 9월에 열리지만, 아쉽게도 열매가 잎겨드랑이에서 돋기 시작한 모습만 확인할 수 있다. 
 

▲ 느티나무로 시작한 숲길 걷기. ⓒ박지연


참나무 가족 구별해볼까

키 작은 나무의 연보랏빛 열매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나무는 고기잡이에 쓰이는 작살을 닮은 '작살나무'이다. 가지가 뻗은 모습이 작살과 닮아서 작살나무이다. 모양만 닮았지 물에 뜨기 때문에 작살 역할을 못한다. 열매는 늦겨울까지 붙어 있으며 새들이 와서 먹는다. '좀작살나무'와 혼동하기 쉽다. '작살'은 잎겨드랑이에 열매가 달리는데 '좀작살'은 잎겨드랑이와 떨어진 위치에 열매가 달린다. 잎에도 차이가 있다. '좀작살나무' 잎 가장자리는 톱니가 위쪽부터 중간까지만 있다. '작살나무' 잎은 가장자리 전체에 톱니가 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작살나무'는 습기 많은 계곡에서 자생한다. '좀작살나무'는 정원이나 공원조경용으로 심는다. 

키가 큰 참나무가 보인다. 이 참나무의 이름이 무엇인지 참나무 가족을 구별할 시간이 왔다. 나뭇잎을 보아하니 잎 크기가 크고 잎 가장자리가 물결모양이라 신갈나무나 떡갈나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잎자루가 있기 때문에 이 참나무는 '갈참나무'이다. 가을이 되면 잎이 유난히 크게 보여 '가을 참나무'라는 뜻으로 갈참나무가 되었다. 갈참나무와 비교되는 '졸참나무'는 참나무 중에서 잎이 가장 작고 잎 가장자리는 갈고리 모양의 안으로 휘는 톱니 때문에 날카로워 보여 갈참나무와 구별된다. 

신갈나무와 떡갈나무는 잎 크기가 갈참나무와 졸참나무보다 크다. 잎자루가 없고 잎 가장자리가 물결모양이다. 떡갈나무는 유난히 잎이 크고 두껍다. 잎 뒷면을 만져보면 푹신푹신한 갈색 털이 있다. 신갈나무는 잎 뒷면에 털이 없고, 두께가 얇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잎은 신갈, 떡갈, 갈참, 졸참과 확실히 다르다. 잎이 좁은 긴 타원형이고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으며, 톱니 끝에 엽록소가 없어서 갈색을 띤다. 밤나무 잎은 톱니 끝에 엽록소가 있어 녹색을 띠고 있다.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와 구별되는 점이다. 상수리나무 잎 뒷면은 연한 녹색이다. 굴참나무는 잎 뒷면이 희끗희끗한 회색을 띤 백색이고 상수리나무와 마찬가지로 톱니 끝에 엽록소가 발달하지 않아 갈색이다. 코르크층이 두껍게 발달해서 나무껍질을 눌러보면 다른 나무보다 푹신푹신하다. 굴참나무 나무껍질은 와인병을 밀봉할 때 쓰는 코르크 마개의 원료로 쓰인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산책길을 조금 더 걷다 보니, 연꽃 연못(연지)이 보인다. 연못 가득히 연꽃이 있다. 줄기가 높게 뻗어 연잎이 햇빛을 바라보고 있다. 잎에 반사된 햇살이 눈부시다. 꽃은 다른 지역 연못에서 8월까지 보았는데 지금은 져서 잎만 남아 있다. 잎은 가장자리가 매끄럽고 둥글다. 연꽃은 흙탕물에 자라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조상들은 그런 연꽃을 고귀하게 여겨 사랑했다. 석가모니부터 시작해 불교와도 인연이 깊다. 

연지 둘레를 걷다 보니 보리수나무가 보인다. 연꽃 연못 주변에 보리수나무가 있어 불교와 관련되어 보이지만, 석가모니가 도를 깨우친 그 보리수나무와 상관이 없다. 단지 발음만 같을 뿐이다. 긴 타원형인 잎을 가까이서 보면 은색 점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 뒷면은 은색털이 촘촘하게 붙어 있어 은빛이 난다. 그 은색점이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열매에도 옮았나 보다. 보리수 열매는 기침, 천식에 효과가 있고 면역력을 높여준다고 한다. 옛날부터 어른들은 보리수 열매로 술을 담가 먹었다. 빨간 열매는 새들 눈에 잘 들어와 새들의 먹이가 되곤 한다. 숲에 있는 열매를 우리가 먹겠다고 따면 새들은 먹을거리가 없어진다.

보리수나무를 한참 보고 있다가 새 소리에 깜짝 놀랐다. 보이지 않는 멧비둘기가 지저귀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흐르고 직박구리 한 마리가 보리수나무 옆에서 말을 거는 것처럼 지저귀고 있다. 멧비둘기는 잿빛이 도는 보라색을 띠고 있고 우리가 흔히 보는 비둘기와 닮았다. 직박구리 몸은 잿빛, 갈색을 띠고 있다. 직박구리와 멧비둘기는 텃새이다. 이 둘이 우는 소리는 공원에 가더라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직박구리는 참새, 까치만큼 흔한 새이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새소리가 시끄럽다 하면 직박구리일 확률이 높다. 직박구리 뜻도 '시끄럽게 우는 새'란다.
 

▲ 작살나무 열매, 보리수나무 잎, 감찰나무 잎.(시계 방향). ⓒ박도연


적송은 없다 송목이 있을 뿐

왕릉을 향해 걸었다. 왕릉 올라가는 오르막길에 장릉산이 품고 있는 왕릉과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파란 하늘이 품고 있는 장릉산은 정말 한 편의 그림이다. 장릉 입구 옆에 소나무가 무리지어 서 있다. 장릉 입구부터 조선왕릉답게 소나무가 많이 보였다. 소나무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에도 등장하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 1위이다. 사실 소나무는 햇빛 없이 못사는 '극양수(極陽樹)'이고 공해에도 약해서 관리를 꾸준히 해주지 않으면 사라지기 쉽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조선시대 이전 나무문화는 '느티나무 문화'였다. 고려 때 몽골의 침입 이후로 국토가 황폐해지면서 산에 쓸 만한 나무가 소나무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왕조 들어서 소나무를 많이 쓰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님 관 재료도 소나무, 궁궐 지을 때도 소나무를 쓴 탓에 소나무만 좋은 나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소나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은 '적송(赤松)'이다. 나무껍질이 붉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적송'은 우리나라 역사에 없는 이름이다. 우리 조상들은 '송목(松木)'이라고 불렀다. '적송'이란 말은 일제시대 때 붙여졌다. 앞으로 '적송'이라는 말은 없어져야 한다. 앞에 있는 소나무는 이웃과 생존경쟁을 하느라 바빠 보인다. 자기보다 키 큰 나무들을 피해 기울인 채 뻗어 있다. 너무 기울여져서 기둥이 줄기를 받치고 있다. 

소나무 사진을 찍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까투리 두 마리가 풀밭을 한가롭게 걷고 있었다. 꽤 가까이 있었지만 인간을 극도로 경계하진 않는 것 같다. 멀리서 푸드덕 소리가 들린다. 장끼 한 마리가 풀숲에서 날아올랐다. 오랜만에 암꿩, 수꿩을 다 보아서 반가웠다. 꿩들을 뒤로하고 붉은빛을 띠는 나무를 보았다. 산사나무 열매가 붉게 익고 있다. 산사나무 열매가 새들의 맛있는 먹이가 되길 바란다. 

저수지로 향하는 우거진 숲길에 들어왔다. 이 숲길에는 침엽수에서 활엽수로 넘어가는 천이의 과정이 이뤄지는 중이라 참나무가 많다. 그중에서도 갈참나무가 많다.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다 보니 땀이 나고 지쳤다. 갈참나무 잎사귀와 바람이 비벼대는 소리가 듣기 좋다. 위를 올려다보니 우거진 참나무 가지들이 햇빛을 가려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그늘에 감사하며 저수지에 도착했다. 이끼가 가득 낀 바위가 곳곳에 보이는 걸 보니 습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있을 법하다. 바위 밑에 고마리가 분홍꽃을 뽐내고 있다. 작은 꽃들이 고만고만하게 피어 있어서 고마리가 되었다는 설이 있고, 수질 정화능력이 뛰어나 고마운 풀이라는 의미로 고마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숲길로 가을 마중 나가기

저수지를 따라 돌아가는 길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경쾌하게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면서 나무 기둥을 쪼고 있었다. 진한 회색과 흰색 가로줄 무늬가 인상적인 쇠딱따구리였다.

장릉 숲뿐만 아니라 10월이 되면 나무들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무, 풀꽃, 그리고 새들과 함께 숲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가을을 마중 나가보시길 권한다.
 

 

두 발로 만나는 아름다운 우리 숲길

오색빛깔 찬란한 색이나 웅장한 비경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 두 발로 걷다 보면 신비롭고 가슴 뛰는 만남이 있다. 숲길을 걷자. 지난해 '아름다운전국숲대회'에서 선정된 아름다운 숲길을 소개한다. 
 

▲ 강원 고성군 화진포호수 금강소나무숲(上左), 강원 양구군 원당리 소나무숲길(上右), 경기 수원시 수일여자중학교 용버들길(下). ⓒ함께사는길


■ 강원 고성군 화진포호수 금강소나무숲
위치 :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 596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진 화진포는 둘레 16킬로미터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다. 100년 이상 된 울창한 금강소나무숲과 호수, 그리고 고운 모래밭과 푸른 바닷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 강원 양구군 원당리 소나무숲길

 

위치 :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길52번길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주민들이 평화를 위해 조성한 숲길로 60여 년이 흐른 지금 직경 50센티미터 이상의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소나무와 살구나무 등이 어우러져 평화와 희망을 상징하는 길이 되었다.

■ 경기 수원시 수일여자중학교 용버들길
위치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일로145

광교산과 마을이 맞닿은 지점에 있는 수일여자중학교는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다. 특히 가을에는 '저녁노을이 지는 용버들길'이 볼만하다. 
 

▲ 경남 거창군 웅양 동호 전통마을숲(上), 경북 봉화군 청옥산 생태경영림 숲길(下左), 대전 서구 도솔생태숲(下右 ). ⓒ함께사는길


■ 경남 거창군 웅양 동호 전통마을숲 
위치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 1069번지 일원

동호마을 어귀에 조성된 마을숲으로 소나무가 주를 이루며 상수리나무가 중간에 함께 심어져 있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내는 큰 느티나무도 만날 수 있다. 

■ 경북 봉화군 청옥산 생태경영림 숲길 
위치 :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37

강원도 태백시와 경상북도 봉화군에 걸쳐있는 청옥산은 낮지 않은 산이지만 계곡을 끼고 도는 숲길이 부드러워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생태경영림 숲길은 거의 자연생태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 

■ 대전 서구 도솔생태숲
위치: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 산7 일원

대전의 허파로 불리는 도솔생태숲은 대전 도심 한복판에 있으며, 습지보전지역인 갑천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자연형 근린공원이다. 도솔생태숲은 각종 개발 압력을 끊임없이 받아왔지만 숲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숲길을 유지하고 있다. 
 

▲ 전남 함평군 해보 상곡 모평마을숲(上左), 전남 해남군 북일초등학교 소나무림(上右), 전북 고창군 삼태마을숲(下). ⓒ함께사는길


■ 전남 함평군 해보 상곡 모평마을숲
위치 :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635
  
마을 주변의 해보천(海保川)을 따라 늘어선 모평마을숲은 500여 년 전에 서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되었다. 현재는 느티나무와 팽나무, 왕버들 40여 그루가 남아 마을숲을 이루고 있으며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보호받고 있다. 

■ 전남 해남군 북일초등학교 소나무림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109

북일초등학교 학교숲은 학교 설립시기에 조성된 소나무숲으로 100년 이상 된 고목들이 즐비하다. 숲은 학생들에게 쉼터이자 생명을 공부할 수 있는 학습공간이다. 또한 지역주민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휴식처이자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로 사랑받고 있다.

■ 전북 고창군 삼태마을숲
위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123 외

삼태마을숲은 삼태마을이 시작되는 상류지점에서부터 마을이 끝나는 지점까지의 하천제방을 따라 왕버들을 비롯해 다양한 수종의 거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또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마을숲, 공동체를 살리는 마을숲을 만날 수 있다.
 

▲ 충남 서천군 솔바람 곰솔숲(上), 제주 서귀포시 동남초등학교 학교숲(下). ⓒ함께사는길


■ 충남 서천군 솔바람 곰솔숲
위치: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 산58-48 외

곰솔숲은 해안 사구를 보호하기 위해 인공 조림한 숲으로 아름드리 곰솔(해송) 13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1980년 군장국가공단 조성계획에 따라 사라질 뻔했지만 지자체와 주민들은 국가공단 대신 갯벌과 곰솔숲을 선택해 지금의 모습을 지켜가고 있다. 

■ 제주 서귀포시 동남초등학교 학교숲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오조로 55

동남초등학교 학교숲은 성산 일출봉을 품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아름다운 곳으로 성산읍에 위치해 있다. 울창한 숲은 학교를 둘러싸고 있으며 학교와 마을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며 마을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세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길에 정진하겠습니다. (☞가입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방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 34] 요가 강사 스물일곱 살 이경미

"딱 한 달만 하려고 했는데, 인생까지 바꿨네요"

 

15.10.09 15:48l최종 업데이트 15.10.09 15:48l

 

 

기사 관련 사진
▲  요가 강사 이경미씨.
ⓒ 매거진군산 진정석

관련사진보기


"대학만 졸업하면, 200만 원은 쉽게 벌 줄 알았어요. 취직해서 엄마한테 뭐든지 다 해줄 거라고 했는데, 그게 진짜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2012년 2월, 지방에 있는 한 사립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한 경미씨는 군산 집으로 왔다.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입시학원에서 수업을 잘 하면, 학생들이 늘고, 그러면 인기 강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도 했다. 경미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어학원에 취직했다.   

어릴 때 경미씨 꿈은 한의사.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이 좋다고 해서 일찌감치 정해놓은 꿈이었다. 무엇이든지 지면 속상한 아이였다. 마흔에 외동딸을 낳아 애지중지 키우는 부모님이 실망할까봐 무엇이든지 잘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였다. 학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도,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손꼽을 만큼 공부를 잘 했다. 

"우리 학교에서 전교 1등 해도 한의대 가기 힘들대."

군산여고 1학년 때,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을 들었다. 한의사라는 꿈을 쉽게 버릴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이과와 문과로 나뉘는 2학년 때, 그녀는 당연히 이과를 택했다. 한 학기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능력이 못 미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선생님한테 문과로 바꿔서 영어교육학과 가겠다고 했어요. 안 된대요. 그래서 싫어하는 수학Ⅱ랑 물리를 계속 공부했어요. 내신이 중요하니까요. 저희 학교에는 이과에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몰려 있었어요. 등급제라서 4%만 1등급이에요. 하나만 틀려도 4등급이에요. 제가 가고 싶은 대학은 교차지원(이과에서 문과로 지원)도 안 되고. (한숨) 그래도 열심히 했죠."

어학원 영어 강사하다 만난 요가... "한 달만 하려고 했는데"

그녀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임용고시 봐서 영어교사 되는 게 목표였다. 성적장학금도 받아야 하니까 학과 공부도 신경 썼다. 복수전공으로 '외식산업조리학과'를 하고도 싶었지만 공부에 방해될까봐 포기했다. 선배들이랑 영작 스터디 모임도 했다. 어학연수 갔다 온 선배들이 경미씨가 쓴 에세이를 보고 "현지에서는 (이렇게) 안 써, 뉘앙스가 달라" 할 때마다 마음이 상했다.   

"아빠, 서러워서 못 살겠어요. 저도 어학연수 가야겠어요. 보내주세요."

경미씨가 말했다. 어머니와 둘이 자영업을 하는 아버지는 등록금을 대줬다. 그러나 1년에 3천만 원쯤 드는 어학연수는 안 되겠다며 미안해했다. 경미씨는 좌절했지만 마음을 추슬러서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 힘들게 교사 돼서는 그만두는 선배도 보았다. 시험과 문법에 치중하는 학교 영어교육에 회의감이 들었다. 

대학 4학년, 동기들은 임용고시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경미씨는 그 대열에서 슬그머니 멀어졌다. 교사 되고 싶다는 마음은 희박해졌다. '학점은 마무리 잘 하자'고 생각해서 학과 공부는 하던 대로 했다. 졸업한 친구 몇이 짐을 꾸려 서울 청량리 고시원으로 갈 때, 경미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학원에 취직해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선생님이니까 공부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사탕 하나 더 사주고, 쉬는 시간 더 많이 주는 선생님을 좋아해요. 저는 학부모님들이랑 상담 전화하는 것보다는 숙제 꼼꼼이 검사해주는 선생님이었어요. 숙제도 공부니까요. 어머니들 입장에서는 전화 자주 하는 강사가 더 좋을 수 있죠. 그런 일로 치이니까 보람을 잘 못 느꼈어요." 
 

기사 관련 사진
▲  대학을 졸업하고 어학원에서 1년간 영어를 가르친 경미씨는 몸을 활력있게 만들고 싶어서 요가원에 갔다. 한 달만 배우고나서 집에서 혼자 하려고 했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관련사진보기


영어 강사 만 1년, 경미씨는 한 번뿐인 인생을 소모적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일단, 비리비리한 몸부터 활력있게 만들어보자고 나섰다. 그래서 요가원에 갔다. 한 달에 10만 원, 큰돈이었다. 마음속으로는 30일만 배운 뒤에 집에서 혼자 해야겠다고 계산을 했다. 스물다섯 살 봄, 밤바람이 몹시 차던 어느 밤이었다.     

경미씨가 간 곳은 필라테스와 피트니스를 겸하는 '날씬한 요가원'. 재미있었다. 일 끝나고 요가하러 갈 때 막 설렜다. '매가리' 없던 몸은 탄탄해졌다. 몇 달 지나자 허벅지 앞뒤로 근육이 올라왔다. 하루라도 쉬면 근육이 사라질 것 같았다. 일이 많아서 피곤한 날도, 꼭 요가를 하러 갔다. 온 힘을 다해서 동작을 했다.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진짜 좋아. 요가는 너를 살게 해줄 거야. 우리 같이 예뻐지자."   

그녀는 친구들한테 말했다. 요가는 불안한 마음을 가시게 만들어줬다. 무슨 일이든 완벽을 추구하던 경미씨는 열정만큼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요가하면서 성격이 화사해졌다. 몸매 라인도 예뻐졌다. 척추도 반듯하게 세워지면서 조금 틀어져 있던 골반도 제자리를 찾았다. 한쪽만 먼저 닳던 구두 굽도 두 쪽이 공평하게 닳았다.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기사 관련 사진
▲  몸이 뻣뻣한 편인 경미씨는 3년 만에 일자뻗기를 하게 됐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관련사진보기


성실한 태도는 눈에 띈다. 요가원의 박선희 원장은 경미씨에게 지도자반을 배우라고 권했다. 주저하지 않고, 따로 그 과정을 공부했다. 그녀에게 가장 고난도의 자세는 일자 뻗기. 지도하는 원장이 경미씨의 두 다리를 짝 벌어지게 미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일자 뻗기는 속 시원하게 안 됐지만 요가 지도자 자격증은 땄다.  

"2013년 10월부터 1년 반 동안 투잡을 했어요. 어학원 끝나고, 요가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했죠. 고민했어요. 열정이 넘치다 보니까, 저는 어학원에서 숙제 많이 내주고 잔소리하는 선생님인 거예요.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영어 잘 하기를 바라면서도 숙제 많은 건 싫어하셨어요. 영어를 많이 접하지 않고서는 잘 할 수 없어요. 여기는 외국이 아니니까요."

2015년 6월, 경미씨는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영어 강사에서 요가원 전임강사가 되었다. 건강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중년의 회원들은 "왜 요가를 해도 그대로야? 살이 안 빠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몸집이 좋은 어머니를 둔 경미씨는 "자녀들이 먹고 남은 음식만 안 먹어도 살 덜 쪄요"라면서 웃는다. 
 

기사 관련 사진
▲  돈 벌어서 아직은 배우는 데에 돈을 더 많이 쓰는 경미씨. 요가 강사 하면서 플라잉 요가도 배웠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관련사진보기


키 169cm에 길쭉한 팔다리. 경미씨는 '비주얼 요가 강사'로 딱 좋다. "건강한 게 먼저야"라면서 10년간 태권도를 시킨 어머니의 선견지명 덕분에 쑥쑥 자랐다. 경미씨는 요가하면서 시선도 달라졌다. 비싼 돈 들여서 대학 졸업한 게 무용지물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교육학을 배운 덕분에 사람들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요가를 가르칠 수 있다.    

"저는 몸이 진짜 뻣뻣한데 요가할 수 있나요?"

처음에 요가하러 오는 사람들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뻣뻣한 몸. 경미씨는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뻣뻣해요, 저는 너무 너무 뻣뻣한 사람이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동작을 완벽하게 안 해도 된다고, 발 끝 잡을 때에 발목 잡으라고 한다. 일자 뻗기 동작을 하면서 "저는 3년 만에 됐어요"라고 웃는다. 사람 몸은 천천히 변한다고 말해준다. 

경미씨도 처음에는 욕심이 있었다. 다른 요가 강사들처럼 멋진 자세를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자세를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고 싶었다. '나는 왜 안 될까?' 불만스러웠다. 그녀의 몸은 아주 더딘 속도로 유연해졌다. 그래서 뻣뻣한 몸을 가진 회원들을 더 잘 이해한다. 동작 하나를 제대로 하기까지 긴 시간 몸이 아프고, 마음속으로 '그만둘까 말까' 번뇌한다는 것을.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를 앓는 사람들도 요가를 하러 온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많이 해서 생기는 거북목, 여학생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척추측만증, X자 다리나 O자 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요가원에 오는 젊은 친구들도 있다. 경미씨는 그이들에게 변화를 주고 싶다. 에너지도 주고 싶다. 그래서 배움이 있는 곳이면 찾아다닌다. 
 

기사 관련 사진
▲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 경미씨는 요가를 하면서 성격이 화사해졌다. 느긋해졌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관련사진보기


"부산에서 활동하는 물리치료과 이영진 교수님이 소도구 메디컬 트레이닝 강의를 전주에 와서 하셨어요. 배웠죠. 발전하고 싶으니까 여기저기 워크숍에 가요. 원인을 찾는 공부가 필요해서 근육학이나 해부학 등도 찾아보고요. 플라잉 요가 자격증도 땄어요. 지금은 돈 벌어서 배우는 데 쓰는 단계예요. 필라테스도 배우려고요. 동양의 요가와 서양의 스트레칭을 합친 운동인데 재활이 필요한 사람들도 따라할 수 있어요. 속 근육을 잡아줘요."

요가에서 주로 마지막 동작으로 하는 사바사나. 피로를 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경미씨는 사바사나를 처음할 때 무척 좋았다.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그때 들었던 음악도 감동이었다. 그래서 경미씨는 카페나 음식점에서 나오는 음악도 허투루 듣지 않는다. 좋은 곡은 메모했다가 경미씨가 지도하는 사바사나 때 켜 준다.   

경미씨는 요가원에서 회원 상담, 서류작업, 요가 수업 등을 한다. 전보다 근무 시간은 긴데 재미있다. 영어를 가르칠 때는 짝사랑하는 것처럼 조바심 난 적이 많았다. 요가 강사 하면서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비로소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중년의 회원들은 경미씨가 열정적으로 일하는 자세와 마음을 알아봐 준다고. 

"요가도 소통이에요. 잘 되면, 그 사람이 가진 밝은 에너지의 최대치가 나와요. 저도 딱 한 달만 하려고 했는데 인생이 바뀌었잖아요." 
 

기사 관련 사진
▲  요가 강사 이경미씨.
ⓒ 매거진군산 진정석

관련사진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헬조선'에서 중도확장전략으론 총선 필패!

 
[주간 프레시안 뷰] '고슴도치' 야당이 모르는 것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2015.10.09 07:23:31
 
 

야당에만 온갖 주문이 몰리는 이유

"너는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몰라(you don’t know how people live)."

미국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에서 주인공 너키(스티브 부세미)가 동생에게 하는 말입니다. 마틴 스코세지가 시리즈 초반을 연출한 이 드라마는 1920년대 미국 금주령 시대에 누가 어떻게 한 도시를 장악해 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입니다. 정치와 조폭의 결탁에는 어떤 주저함도 없습니다. 비열한 시대,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너키의 대사는 한국의 리버럴 진영이 패배를 반복하며 고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야당은 '시대의 결(grain of history)'에 올라타고 있지 못합니다. 1987년 민주화체제가 만들어 낸 민주주의 정치질서 이후 리버럴 진영은 퇴행적 징후를 보이면서 박근혜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반동적 보수주의에 이렇다 할 만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저성장 시대의 소득양극화에 따른 대중의 절망을 교묘하게 이용해 반민주, 반평화적 역주행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당을 배제함은 물론이고 여당마저 편가르기하며 분열주의적 정치공학으로 민주주의 자체를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이를 극복할 대안세력이라는 인식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리버럴 진영이 "새로운 시대에 부응할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데 실패했고 이는 문화적 훈계주의, 과거주의적 경향을 보이며 오히려 태도로서의 보수 이미지를 강화"(국회 대토론회, 안병진-유승찬 발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야당은 세상을 보다 인간다운 곳으로 바꾸고자 하는 강한 열정도 보이지 않고, 유연혁신과 영구혁신으로 대표되는 실사구시 정신도 결여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문화 속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야당의 문화는 이사야 벌린이 톨스토이 작품을 분석하며 내놓은 여우와 고슴도치 유형 가운데 고슴도치에 가깝습니다. "고슴도치 유형은 융합적 사고의 결여, 프래그머티즘 거부, 이분법적 단순함, 절대적 진리론의 오만, 경험이나 관찰보다는 거대 이론을 중시하는 경향"(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을 갖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왜 야당에게만 가혹한 메스를 들이대냐고 항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맞서야 할 주체가 바로 야당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강력할수록 더욱 강력하게 저들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 바로 야당의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퇴행적, 이념적 보수주의는 재론의 여지 없이 아주 나쁜 것입니다. 한국의 보수는 1%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99%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 보수가 선거에서 거짓말을 일삼는 이유는 소수를 옹호하면서 다수를 위하는 것처럼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하거나 근거없는 논리로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가령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극우인사의 발언부터, 국가기관이 6번이나 검증하고 확인한 박원순 시장 아들 박주신 씨의 병역의혹을 다시 제기하는 것, 나아가 재벌 대기업을 위한 노동개혁을 하면서 이것이 마치 청년 일자리를 위한 것처럼 위장하는 수법 등이 모두 보수정치의 숙명과 연관돼 있습니다. 

진보는 이 모든 거짓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구조를 밝히고 세상을 사회적 약자와 다수 국민의 이익이 보장되는 곳으로 바꾸어야 할 숙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의 저항은 정말로 완강하고 이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목숨을 건 열정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야당에게 주문이 많아지는 이유입니다.

혁신위 일단락, 이제는 이기는 것이 진짜 혁신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 활동이 사실상 일단락됐습니다. 김상곤 혁신위는 공천제도 혁신 등 많은 혁신안을 발표했습니다. 주로 제도 개선에 관한 것들입니다. 당장 총선 공천 문제가 걸려 있으니 저항도 거셌습니다. 혁신위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야당의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안철수 의원 등이 문제제기한 "국민이 공감하지 않았으면 실패"라고 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위 활동으로 인해 국민들이 야당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혁신위 활동이 전혀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판입니다. 공고한 기득권체제 안에서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는 혁신위원들이 아마추어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아픈 지적을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혁신위 성과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이 일정하게 회복된 것입니다. 물론 아직 매우 불완전한 상태이지만 문재인 대표가 혁신 안을 지렛대로 재신임 정국을 돌파하는 과정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실을 냉정하게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김부겸 전 의원은 "문재인만으로도 선거를 이길 수 없고, 문재인 없이도 선거를 이길 수 없다"며 그 현실을 요약했습니다. 혁신안 재가를 위한 중앙위원회에서 "대표가 앉아 있는데 어떻게 기명으로 투표할 수 있느냐"는 항변은 그 자체로 비주류의 허약함을 드러냈습니다. 언론에서는 자유롭게 비판하면서 보는 데서는 투표할 수 없다는 논리는 참 궁색합니다. 어쨌든 비주류는 당권을 대체할 만한 응집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는 상대적으로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물론 수두룩한 난관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정당 지지율의 격차는 변화를 바라는 많은 국민들을 낙담시키고 있습니다. 여야의 기득권 전쟁으로 선거구획정조차 법이 정한 시기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여야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마저 청와대의 반발과 여당 내 갈등으로 물건너가는 느낌입니다. 특히 새누리당 친박과 비박의 '공천 전쟁'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첨예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실제로 물러섰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결정 장애로 보일 정도로 허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총선 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박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20대 총선에 등판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선거의 여왕다운 행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이 해야 할 일은 상황변화와 상관없이 이기는 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고슴도치처럼 경직되게 움직여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지형입니다. 혁신의 잔치는 끝났습니다. 승리의 전투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라도 더 이기기 위한 유연하면서도 치밀하고 냉정하면서도 열정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제 이기는 것이 진짜 혁신이 됐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제안들

먼저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해야 합니다. 최근 통합행동 일각에서 통합전대론이 나오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실성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싸웠지만 이번 총선은 문 대표를 중심으로 덧셈의 정치를 해야 그나마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안철수, 김한길 전 대표나 정세균 전 대표 등 모든 세력이 힘을 합해야 합니다. 한 표라도 더 모을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둘째, 혁신위가 제안한 선출직평가위원회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평가위원회는 현역의원 20% 물갈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12년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대위는 25%를 결정하고 밀어붙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박 위원장의 리더십과 문 대표의 리더십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에 박 위원장은 유력한 대권후보였고 강한 장악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갈등을 제압할 수 있었죠. 하지만 야당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대통령 선거도 멀리 있고 문 대표의 계파 장악력도 크지 않습니다. 평가위원회의 '칼질'에 따른 분열과 갈등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힘이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세인 클레스터가 만화로 재해석한 마키아벨리 <군주론>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선도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질서 하에서 잘 지냈던 사람들은 모두 개혁가의 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반대파는 공격할 기회만 있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출직평가위원회 활동이 불가피하다면 인재영입위원회를 병행해서 진행할 것을 제안합니다. 평가위원회가 뺄셈의 정치라면 영입위원회는 덧셈의 정치를 뜻합니다. 뺄셈과 덧셈을 통해 분열의 위기를 지혜롭게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평가위원회의 활동도 혁신의 관점보다는 승리의 관점에서 냉정한 잣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평선에 머무는 듯했던 전선은 순식간에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의 말대로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기"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입니다.

셋째, 20~30대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가치를 말해야 합니다. 성장론의 숲에 숨은 중도확장전략은 총선에서 필패 전략입니다. 지금 한국의 청년들은 미래를 붕괴와 동의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성장 시대의 좌절과 절망 속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자살률 압도적 1위, OECD 국가 중 기업소득 점유율 1위, 상위 10% 소득점유율 2위, 노인빈곤률 1위 등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잠재적 분노를 키우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의 샌더스 돌풍이나 영국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는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야당은 무슨 일을 할 것입니까. 야당과 후보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왜 출마했는지), 지역구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핵심공약), 소속정당을 위해 어떻게 헌신할 것인지(집권의지)에 대답해야 합니다. 

총선에서 중도확장 전략이 위험한 것은 수학도 아닌 산수에 가깝습니다. 정당 지지자들조차 투표장에 다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지금 여야 정당지지율을 합하면 65%가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총선 투표율은 50% 중반대에 머무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성공한 중도확장 전략은 대선에 임박해서 설득력을 갖습니다. 총선은 누구를 위한 정당이고 누구를 위한 후보인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게임입니다. 60대가 야당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은 선택사항이지만 20~30대가 투표장에 나와 야당을 지지하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필수적입니다. 진보는 그들 없이 결코 선거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지도체제를 다듬고 문 대표는 통이 큰 포용적 리더십을 보여야 승리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 문 대표는 생각이나 계파가 다른 야당 정치인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행위의 중단을 지지자들에게 요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난무하는 욕설은 야권을 분열시킬 뿐 아니라 정치 혐오를 유발합니다. 나아가 욕설이 가득한 타임라인엔 분열을 바라는 세력의 습한 곰팡이도 함께 자라납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의 가치와 의미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국민은 야당이 누구의 편인지 간절하게 반복해서 묻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세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길에 정진하겠습니다. (☞가입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대북방송 원하는 청와대, 접경지역으로 옮겨봐”

 
 
접경지역 주민, “대북 확성기 생명 위협 해체하라”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0/09 [05: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접경지역 주민들이 대북확성기 방송시설 해체가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북과 접경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생명안전을 위해 국방부의 대북방송을 위한 확성기 해체를 주장하고 나섰다.

 

경기도 포천과 김포의정부 지역 접경지역 주민들은 8일 오후 2시 청운동 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대통령은 접경지역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대북전단살포 금지법 제정과 대북 확성기방송시설 해체를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김포시 접경 지역에서 목회를 담당하고 있는 이적 목사는 김포 접경지역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대북확성기 방송으로 인해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 했을 뿐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불안한 날들을 보내 왔다.”면서 그러나 2004년 남과 북이 비방 중상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대북방송 중단에 합의해 꿀잠을 잘 수 있었다또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민통선 평화교회 이적 목사는 정부가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를 원한다면 청와대를 접경지역으로 옮긴 후 실시하라고 꼬집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이적 목사는 그러나 2010년 연평도 사건 이 후 다시 대북방송이 재개 되어 또 다시 주민들은 생명의 위협과 함께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며 “ 후방 지역 사람들 일부는 대북방송을 재개하라고 하고 대북전단을 날리라고 하지만 이는 접경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정부가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을 날려야 한다는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청와대를 접경지역으로 옮긴 후 실시하라.”고 꼬집었다.

 

이 목사는 또 강화도 교동 대북확성기를 주민들이 철거하라고 하자 김포로 옮겨 설치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남북간 전쟁과 긴장을 조성하고남남갈등을 일으키는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에 정부가 앞장서는 이유는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지적했다.

 

의정부에서 20여년 이상 살아 온 윤한탁 선생은 의정부는 미군이 가장 많이 주둔 했던 곳으로 온갖 미군 범죄로 편안한 날이 없었다.”면서 대북확성기 방송이 재개되고 대북전단 살포가 계속되면 의정부 시민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의정부에서 20년을 넘게 살아 온 윤한탁 선생은 접경지역 주민들은 물론 민족의 안녕과 평화와 통일은 남북이 합의한 6.15, 10.4 7.4공동성명과 최근 이루어진 남북고위급 합의 이행에 있다며 정부가 합의이행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윤한탁 선생은 남과 북이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6.15선언과 10.4정상 선언남북공동 성명을 이행하고 최근 전쟁 정세 속에서 평화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8.25 남북고위급 합의보도를 지켜가는 것이라며 대북확성기 방송 시설을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접경주역 주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접경지역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대북전단살포 금지법 제정과 대북 확성기방송시설 해체를 결단하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통해 계속되는 대북전단 살포와 11년 만에 재개된 대북확성기 방송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업에 피해를 주며생명과 안전마저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지난 8월 남측의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와 이에 대한 북측의 군사적 타격 경고로 발생한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접경지역 주민은 생업을 접고 대피소에 가야했다당시 접경지역 주민대피 명령 대상자수는 26,129명으로 그 경제적 정신적 피해는 어마어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기지방경찰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8.25 남북공동보도문 발표 이후 대북전단이 6차례나 살포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히고 박근혜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핑계로 접경지역주민의 삶을 위협하는 대북 전단 살포를 단 한 번도 제지하지 않은 것이다북에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경우에 통일부 장관의 허가를 받게 하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대북전단 살포가 접경지역주민들을 언제든지 다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심각한 지경이리고 우려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접경지역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대북전단살포 금지법 제정과 대북 확성기방송시설 해체를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늘은 한글 창제 569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0/09 12:42
  • 수정일
    2015/10/09 12: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아름다운 한글, 누더기로 만들고 싶은가?
 
오늘은 한글 창제 569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김용택 | 2015-10-09 10:22:5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은 한글 창제 569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요즈음 도심을 걷다 보면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우리나라인지 외국인지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간판을 쳐다보면 그렇습니다. 왜래어도 아닌 외국어 원어를 버젓이 간판으로 붙여 놓은 집이 많기 때문입니다. 간판뿐만 아닙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 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 세계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전문용어까지 뒤섞여 알아보지 못할 글들로 뒤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공중파는 오염으로 듣는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우리말 우리글로 표현을 못하는 미완성 문자이기 때문일까요? 혹 영어를 섞어 쓰면 더 고급스럽고 귀태나게 보이는 열등 콤플랙스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사랑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라말을 가꾸고 다듬어야 할 정부가 영어가 국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학교교육을 통해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마을을 만들고 해외유학을 부추기고 교육과정에 아예 영어시간을 강조하고 수학능력고사에 배점까지 높여 놓았습니다. 국제학교라는 학교를 만들어 아예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과목을 영어로 공부하는 학교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인식까지 심어주고 있습니다.
 
공중파를 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합니다. 영언지 프랑스 말인지 아예 국적없는 말들이 공중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말, 우리글은 서민(?)들이나 쓰는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을까요? 가장 불쌍한 인간은 열등의식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학벌이나 외모나 경제력으로 자신을 평가해 평생동안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 사는 사람 말입니다.
 
노래를 못한다고 열등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과학지식이 부족하다고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데 유독 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열등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까? 학교를 졸업 후 평생 외국에 나갈 일도 외국사람을 만날 일도 없는 사람도 있는데 모든 국민이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해야 일등국민일까요? 영어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아끼고 사랑하자는 말입니다. 
 
아래 글은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다듬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한다는 논란이 있을 때 썼던 글입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 이렇습니다. 우리 글을 사용해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서 느닷없이 그것도 초등학생들에게 한자를 한자병기라니… 국어순화운동을 펼쳐도 모자랄 시점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게 교육부입니다. 한글날 아침에 세종임금님께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생선’, ‘문상’, ‘버카충’, ‘제곧내’, ‘행쇼’, ‘먹방’. ‘화떡녀’, ‘여병추’, ‘광탈’, ‘sc’, ‘박카스’, ‘골부인’, ‘납세미’…

<길가다 본 현수막, 이 말 뜻을 알 사람은 얼마나 될까?>

청소년들이 즐겨 이용하는 은어(隱語)다. 만약 연세가 드신 분들에게 이런 시험문제를 낸다면 몇 점이나 받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0점을 받거나 겨우 한두 개를 맞출까 말까 정도가 아닐까? 이 은어의 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생선’(생일 선물), ‘문상’(문화상품권),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 ‘행쇼’(행복하십시오), ‘먹방’(먹는 방송). ‘화떡녀’(화장을 떡칠한 여자), ‘여병추’(여기 병신 추가요), ‘광탈’(빠르게 탈락하다), ‘sc’(센 척), ‘박카스’(잔심부름꾼), ‘골부인’(게임에 맛을 들인 여성), ‘납세미’(포커게임에서 자주 잃는 사람)…
 
이 정도가 아니다. 이들의 은어 세계를 들여다보면 이게 우리나라인지 낯선 이국땅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자기 나라의 말글이 없어 남의 나라 문자를 빌어 쓰는 나라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복 받은 민족인가? 우리조상의 지혜와 문화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이런 귀한 말글을 소중한 줄 알고 아름답게 다듬고 가꿀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생각하면 화가 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떠돌고 있는 언어를 보면 더 심각하다. 심멋(심장이 멎을 정도 기분 좋다.) 개취(개인적 취향) 평친(평생 친구) 점약(점심 약속) 노잼(No+재미=재미없다), 노답(No+답=답이 없을 정도 답답함), 존잘(엄청 잘 생겼다), 웃프다(웃을지 슬퍼할지 모르는 상황), 화떡녀(화장 떡칠한 여자), 개드립(엉뚱한 발언을 할 때), 깜놀(깜짝 놀라다)…
 
해석을 붙였으니 말이지 그대로 적어놓으면 일본어인지 중국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어디 SNS언어 뿐만 아니다. 가께우동(가락국수), 곤색(진남색. 감청색), 기스(흠, 상처), 노가다(노동자. 막노동꾼), 가처분(임시처분), 각서(다짐글, 약정서), 견습(수습), 견적(어림셈, 추산), 계주(이어달리기), 고수부지(둔치, 강턱), 고참(선임자), 공장도가격(공장값), 출산(해산), 할증료(웃돈), 회람(돌려보기), 입구(들머리), 입장(처지, 태도, 조건), 잔고( 나머지, 잔액)…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는 언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언어가 우리말인줄 알고 있지 않을까? 일제강점기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 일제잔재청산은 친일부역자 청산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노동, 종교… 등등 어느 구석에 남아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왜색 언어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 언어 속에는 이러한 언어가 당당하게 우리 문화 속에 남아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슈트와는 달리 헐렁한 핏의 팬츠와 롱 재킷 스타일의 블레이저를 매치하는 식의 모던하면서….”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이런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 말글을 가꾸고 다듬어야 할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언론이 공중파를 통해 내뱉는 언어들이다. 어린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듣고 있는 방송언어가 이 지경이라니… 전원을 켜면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이런 국적불명의 언어들이 여과 없이 흘러나온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는 오염된 우리나라 방송언어의 민낯이다.

<이미지 출처 : 동아일보>

이 정도가 아니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국어문화운동본부의 조사결과를 보면 ‘공주병’ ‘된장녀’ 같은 은어, ‘싹쓸이’ ‘면피’ 같은 화투놀이 용어, ‘환치기’ ‘꺾기’ 등의 경제계 속어, ‘러브호텔’ ‘티켓다방’ ‘워킹’과 ‘콘셉트’ 같은 패션용어, ‘인터페이스’처럼 외래어 일색인 통신 전문용어… 들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하면 ‘재테크’ ‘시테크’같이 한자와 영어가 뒤섞인 조어, ‘케미 폭발’ ‘베이글녀’ ‘남심 초토화’ ‘빵 터짐’ ‘코피 퐝’ ‘올킬’과 같은 국적불명의 언어들이 전파를 타고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사례를 언급하면 끝이 없다. 이렇게 만신창이 된 한글을 교육부가 이번에는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방침으로 시끄럽다. 교육부가 초등학생들의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하겠다는 이유는 ‘한자교육은 초등학교부터 하는 게 바람직하고(68.5%),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이 필요하며(학부모 89%, 교사 77%),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에 긍정적(교사 77.5%, 학부모 83%)’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이유로 내놓았다. 언제부터 교육부가 교육정책을 도입하는데 여론이나 교사, 학부모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했는지 모르지만, 한자병기 도입 이유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우리문화에 대한 철학도 애착도 없는 정책을 도입해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어떤 생각을 가진 국민으로 키우겠다는 것인가? 역사를 배워도 사관도 없이 사건 중심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사회를 가르치면서 민주의식, 공동체 의식도 체화하지 못하면서 한자를 교과서에 넣어 우리언어문화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가? 수학을 배워도 생활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왜 배우는지 모르고 무조건 시험 점수만 좋으면 우수한 국민이라도 되는 양 가르치는 교육부가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하겠다는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말과 글이 언어생활에 불편을 느낀다든지 문제가 있다면 모를까 우리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데 이런 글을 사랑하고 가꿀 생각은 하지 못하고 국적불명에 왜색언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떠도는 은어와 비속어까지 섞어 방송언어를 오염시키다니… 이제 교육부는 언어오염도 모자라 초등학생들의 교과서에 한자까지 병기하겠다니 조상님들께 부끄럽지도 않은가? 
 
나라 사랑한다고 온 나라에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나라 사랑한다면서 태극기 몇 개 더 달고, 한글날 기념식이나 한다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겠는가? 아름다운 한글, 소중한 우리문화유산을 만신창으로 만들면서 어떻게 아이들이 국어를 아끼고 다듬겠는가? 교육부가 제대로 된 어문교육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날이 갈수록 오염되고 있는 국어순화운동부터 펼쳐야 한다. 초등학생 교과서 한자병기정책은 중단해야 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21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글을 지킨 죄로 죽었는데...영어가 국어가 되다니

 
[아이엠피터] “대한민국의 국어는 영어가 아닌 한글입니다”
  •  
  • 2

국민리포터   아이엠피터  |  balnews21@gmail.com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한글을 통해 우리 민족의 생각과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해 ‘큰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일제는 이들을 해산하기 위해 감시했고,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서둘러 큰사전을 인쇄했습니다.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체포하기 위해 함흥 영생 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조선어를 사용하며 태극기를 그렸다는 이유로 체포한 후 고문을 통해 조선어학회 정태진을 배후로 검거했습니다. 이중화·장지영·최현배·이극로·한징·이윤재·이희승·정인승·김윤경·권승욱·이석린 등 핵심인물 33명이 검거되어 고문을 당했고, 이들은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로 기소됐습니다.

‘말과 글 그리고 문화는 민족을 상징하듯 가장 중요한 우리의 자산입니다. 일본인이 일본말을 쓰듯이 우리 민족이 우리말과 한글을 사용하고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우리의 권리입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우리에게 죄를 덮어씌워도 한글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 한국인의 혼은 영원할 것입니다.’라며 당당하게 일제에 맞섰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고문으로 옥중에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광복이 되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지자체들의 구호와 사업, 공문서에는 영어 표현이 빠지지 않습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는 영어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문서를 별도로 만들지만, 한국은 아예 문서 자체에 영어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공공기관들은 앞다퉈 영어 이름을 사용합니다.

영어를 일상적으로 개인이 사용하는 행위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공공기관은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말을 쓰는 한국인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국어는 영어가 아닌 한글입니다.’
(☞국민리포터 ‘아이엠피터’ 블로그 바로가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 '통일' 타령으로 남북합의 팽개치나?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한 로켓, 언제든 쏠 수 있는 카드
이재호 기자 2015.10.08 06:33:30
 
 
오는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 회담에서 미국을 설득해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8.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상봉 외에 남북 간 별다른 교류나 대화는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 이후 박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중국과 평화통일을 위해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북한 입장에서 이를 흡수통일로 받아들이고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근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이른바 '통일 외교'는 유엔총회에서도 이어졌다. 통일을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협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경제적인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떠올리는 발언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의 발언이 당국회담을 열기 힘들게 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면서, "만약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또 나온다면 8.25 합의로 약속한 당국 회담은 정말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오는 10월 10일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중국은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도 사실상 연기 또는 취소되는 분위기다. 

정 전 장관은 현 상황에 대해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 앉아 6자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 된 것"이라며 "한-미 양국 정상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거나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긴밀히 협조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뜬금없어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의 로켓 발사는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튀어 나올 수 있는 '이벤트'임에는 분명하다. 정 전 장관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쏠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한-미 정상회담에서 강경한 대북발언이 나오고 이후 후속 조치로 한-미-일 3각 동맹이 강화된다면 여기에 대한 견제구를 던지는 차원에서 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인터뷰는 지난 6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평화협력원 황재옥 부원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오는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이 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남북관계 진전이 필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끌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진전이 필수적이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8.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상봉 외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8.25 합의 이후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최소 한 달 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9월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 접촉을 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는 '접촉'이지,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드는 '회담'은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신호를 보냈는데 북한이 응답이 없는 것인지, 아예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설사 우리 쪽에서 제안을 했더라도 북한이 받기가 어려운 상황을 우리가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우선 대북 전단 살포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남북대화 재개와 관련해 북한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자세로 전단 살포는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라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이러면 대화가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때문입니다. 지난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과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이 북한을 상당히 자극했을 것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흡수통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박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차 9월 말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습니다. 북핵과 인권문제, 도발과 같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한반도 통일이고, 이를 위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 메시지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 이미 흡수통일 논의를 했는데, 오는 10월에 미국하고도 할 생각인가 보다'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또 나온다면 8.25 합의로 약속한 당국 회담은 정말 물 건너갈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정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박 대통령과 '조속한 시일 내에' 통일에 대해 논의하자고 말했을까요? 

황재옥 :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조선 반도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라고만 표현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조속한 시일 내에 평화통일을 논의하자고 했는데 중국이 면전에서 거부하지 않으니까 중국과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외교부에 올라온 공식 문구는 박 대통령의 발언과 다른 의미입니다. 

지금 북한과 중국 관계는 상당히 경직돼있습니다. 내년 정상회담을 점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 상황을 봐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조속히 평화통일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입장은 예전부터 동일합니다. 자주적이고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건데요. '자주적'이라는 말은 미국을 등에 업고 통일하지 말라는 겁니다. '평화적'이라는 말은 무력을 쓰지 말고 남북이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무력을 쓰지 말라는 것은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통일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전제로 깔려 있는 겁니다. 그만큼 통일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뜻으로, 박 대통령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맥락입니다.

8.25 합의 이후 박 대통령이 이른바 '통일 외교'에 꽂혀있는 것 같습니다.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 외교인데요. 계속 이런 식이면 북한은 당국 회담을 받지 않을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통일 문제는 많이 거론하지 않았는데 이런 반응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황재옥 : 박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과감하게 핵을 포기하고 개방과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북한이 경제를 개발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8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70차 유엔총회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당시 남북관계는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 이어 집권한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꺼내 들며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된 대북 정책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 북한도 나름의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유엔 총회에서 박 대통령이 '비핵·개방·3000'과 유사한 발언을 했으니, 북한 입장에서는 저런 정권과 만나서 뭐하냐는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비핵화를 먼저 달성해야만 국제사회와 손잡고 북한과 경제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정책입니다. 그전에는 남북 경협 확대도 없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이런 입장을 밝혔으니, 북한에서는 우리한테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세현 : 한편으로는 북한은 남한 정부가 개혁개방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민감합니다. 과거 장관급 회담에 대해서도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이 많았습니다. 북한은 개혁개방은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 남한이 유도·권고·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심지어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할 때도 이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10월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회담이 있었는데, 수행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면서 노 대통령은 "보따리 싸고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일정이 하루가 남은 상황이라 판을 깰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앞으로 개혁개방이라는 말도 쓰면 안 되는 거냐며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아마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쪽에서 개혁개방을 너무 강조한다, 기분 나쁘다 이런 불만을 제기한 것 같았습니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런 말도 못 쓰면서 어떻게 대북 정책을 할 수 있겠냐며, 살짝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고도의 협상 전술일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판이 깨질 수도 있으니 김정일 위원장이 좀 살살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김 위원장의 귀에 들어갈 수 있게 상황을 만든 것이죠. 실제로 그날 오후 회담은 상당히 잘됐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남한 당국자들이 개혁개방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발언을 박 대통령이, 그것도 유엔 총회에가서 이야기했으니 북한은 엄청 기분 나쁠 겁니다. 

북한, 장거리 로켓 언제 쏘나 

프레시안 : 8.25 합의 이후 한반도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10월 10일 전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곳곳에서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10일 전에 발사하는 것은 어려워졌는데요. 중국이 공산당 서열 5위의 고위 인사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을 북한에 보내겠다고 결정한 것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황재옥 :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의 정세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경을 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를 두고 미국과 힘겨루기를 벌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의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중국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9월 25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막기 위해 강한 경고를 날렸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뒤로는 북한을 달랬을 겁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북핵 불용'이라는 표현을 빼고 '한반도 비핵화'만 넣었습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 때와는 다소 다른 입장입니다. 중국은 자기들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면서 북한에 "너희들 체면 봐준 거니까 핵 이나 미사일 실험 하지 마"라고 이야기했을 겁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는 절대로 북한의 비핵화와 동의어가 아닙니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주변에서 주한미군 함정에 싣고 다니는 핵무기도 한반도 내로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미-중이 합의한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프레시안 : 중국이 류윈산 상무위원 파견을 통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사실상 지연 내지 무산시킨 셈인데요. 8.25 합의 이후 대화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중국이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정세현 : 그렇긴 하지만 중국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한국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중국이 북한의 도발이나 위협을 자제시켜주는 건설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중국은 아시아 질서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책잡힐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의도가 더 큽니다. 그동안 미국이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구실로 북한 문제가 계속 활용됐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에는 남사군도 문제도 있습니다. 중국이 암초 위에 비행장을 만들고 있는데, 여기에 레이더 기지까지 설치하면 인도양으로 가는 길목에서 미국 비행기나 선박의 움직임을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남사군도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이 자기들을 압박할 수 있는 구실을 줄여가기 위한 차원에서 북한의 행동을 자제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럼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포기한 건가요? 

정세현 :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급하게 하지 않은 데는 중국의 체면을 생각하는 측면도 있었을 겁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과 오바마가 만나 북한에 군사적 도발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보름 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로켓을 쏜다는 것은 중국의 입장을 너무 곤란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북한이 중국에 "한-미 정상회담에 이 정도 이야기가 나왔는데도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강경한 대북 발언이 나오면 분명히 쏠 겁니다. 또 이후 후속조치로 한-미-일 3각 동맹이 강화된다면 북한이 여기에 대한 견제구를 던지는 차원에서 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미국을 6자회담 테이블로 끌고 나올 때 

프레시안 :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까요? 

정세현 : 북핵 문제의 전기를 마련해보자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수정해 달라고 유도해야 합니다. 북한의 선행동에서 미국의 선행동으로, 중국 역할론에서 한국 역할론으로 북핵의 해결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물론 남북 당국회담이 당국회담 성사되고 다음번 만날 날짜까지 잡은 상태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면 북핵 문제 해결에 시동을 걸어보자는 이야기를 미국에 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없다고 해서 미국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 우리가 남북 당국회담을 복원에서 동북아 상황을 안정적으로 끌고가는 일익을 담당할테니, 미국도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달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특히 북한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을 흘려듣지 말라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이야기 못 해서 그렇지, 그 안에 미국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리수용 외무상은 당시 연설에서 평화협정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이건 비핵화의 다른 표현입니다.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즉, 북한이 평화협정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신들도 비핵화의 용의가 있고 협상이 준비됐다는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대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받아주지 않을 경우 북한 입장에서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살짝 운을 띄우는 식으로 말한 겁니다. 협상이 준비됐다는 이면의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 앉아서 6자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은 환경이 됐습니다. 류윈산 상무위원 방북으로 북한의 로켓 발사가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에 한-미 양국 정상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거나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긴밀히 협조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뜬금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6자회담에 대해 미국이 진전된 자세로 나오라고 설득하고 유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미국 측에서 생각하는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주요한 논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황재옥 : 우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사드에 공을 들인 게 많습니다. 원래 이번 정상회담이 지난 6월 계획돼있었는데 당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문에 미뤄진 것 아닙니까?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보다 분명하고 노골적으로 사드 배치 문제를 꺼내 들 것입니다. 

 

▲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회담을 하면 서로 받아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쪽에서 줘야 할 것도 있구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회담이고 협상인데 미국은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 한반도 내 사드 배치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의해주는 것만큼 큰 이득이 없습니다. 이것은 불편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는 문제와도 관련돼 있습니다. 

미국은 11월 초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예정돼있는데 그 때 한-일 정상회담도 열어서 한-일 관계를 잘 풀어달라, 미-일 동맹은 튼튼한데 한-일 관계가 나쁘니까 한-미 동맹이 힘을 못 쓰고 있지 않느냐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미-일 3각 편대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당장 발표는 하지 않더라도 일단 사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마무리를 짓자는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어느 정도 합의만 해두고 다음 정권에서 사드 배치 절차를 하나씩 밟아가는 계획을 세우는 겁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말려 들어가면 향후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미국의 요청도, 미국과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었다는 이른바 '3NO' 전략을 구사하면서 시간을 끌었는데요. 이번에는 한-미 동맹 강화는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끝내고, 사드 배치는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측면을 강조해서 정확하게 마무리를 짓고 오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전격 체결됐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까요?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TPP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정세현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애매모호하게 가는 것이 좋습니다. TPP가 경제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것인데 우리가 여기에 들어가버리면 사드 배치 못지않게 중국에 타격이 됩니다. 사드는 안보·군사적 측면, TPP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건데, 여기에 우리가 참여하면 우리 국익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서둘러 가입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전경련은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으로부터 받게 될 경제적 보복 때문에 배치 반대 입장을 보였습니다. TPP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지난 6월 중국의 증시가 곤두박질치면서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 이후 지난 7~8년 동안 중국이 세계 경제를 끌고 왔지만 이제는 미국이 다시 부흥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인데요. 이렇게 되면 중국으로부터 받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경제계의 요구가 더 커지지 않을까요? 

정세현 : 물론 중국 경제가 가라앉고 상대적으로 미국이 이득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이런 현상이 일시적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이 6%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성장 동력이 별로 없습니다. 무기 산업 말고 어떤 동력이 있습니까? 

TPP에 들어가서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만 보고 쫓아가다가 중국을 섭섭하게 해서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 혜택보다 먼저 올 수도 있습니다. 큰 틀의 전략을 세워놓고 상황에 맞춰 전술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중국의 입장도 지원했다가 미국 입장도 거들어주는 식으로 가야지, 지금 당장 급하게 TPP 가입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히 당당했고 시진핑 주석은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양국의 경제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데요. 

정세현 : 저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무승부라고 봅니다. 아무것도 합의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문제 관련해서 2017년 기후변화협약에 중국도 참여하겠다고 하는데, 사실 이건 미국도 참여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갔을 뿐입니다. 

오히려 이 부분보다는 남사군도 문제를 거론했을 때 중국이 강하게 반발한 대목이 주목됩니다. 중국이 작심하고 남사군도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양국이 전혀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미-중이 대립하는 모습을 여전히 보여준 것인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우리의 고민이 더 커진 상황입니다. 
프레시안 조합원, 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세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좋은 언론'을 만드는 길에 정진하겠습니다. (☞가입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항일빨치산 중심의 당 영도체계확립자들


<특집②>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5.10.07  22:23:19
페이스북 트위터

<조선노동당 창건 70돌 특집>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건국보다 창당이 2년이나 앞선 셈이다. 당 우위의 국가인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조선노동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 할 수 있다.

<통일뉴스>는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이 당이 걸어온 길을 규약과, 인물,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
1.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2.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3. 정책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4.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

북한 조선노동당이 10일 창건 70년을 맞는다. 북한의 당 70년 역사 동안 수많은 인물이 등장했고 사라지기도 했다. 조선노동당의 인물을 살펴보는 것은 조선노동당의 정책방향을 이해하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북한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빨치산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만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김정일 등장과 함께 이들을 중심으로 당 핵심일꾼들이 이끌어왔고, 김정은 시대 들어 40~50대 전문일꾼들이 당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시대를 아우르는 북한 조선노동당의 핵심인물들은 누구인가. 당의 핵심세력인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당 비서들의 면면을 중심으로 당 70년을 살펴보자.

김일성 시대(1945~1994), 항일빨치산 세대 포진

김일성 시대 당.국가건설 초기에는 다양한 공산주의 세력이 연합을 이뤘다. 하지만 김일성 유일영도체계를 확립해 나가면서 당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빨치산 세력이 권력을 장악해나갔다.

김일성이 당 창건의 초석을 다지는데 함께한 이들은 김혁, 차광수, 최창걸, 김리갑, 계영춘, 강병선, 김원우 등이다. 하지만 이들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함께 맞이하지 못했다.

이들을 두고 김일성은 "혁명은 동지들을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한 명 한 명의 동지들은 모두가 억만금을 주고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사람들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해방 후 김일성 시대 조선노동당은 1946년 8월 제1차 당 대회를 거쳐 연안파, 갑산파 등으로 일컫는 파벌 경쟁을 거쳐 1970년 제5차 당 대회에 이르기까지 항일빨치산은 조선노동당을 강화하는 핵심세력으로 활동했다.

46년 제1차 당 대회 당시는 당과 국가건설이 최우선의 목표라는 점에서 다양한 공산주의 세력이 함께했다. 이를 반영하듯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에 김두봉, 김일성, 주녕하, 최창익, 허가이 등 5명이 이름을 올렸다. 당시 당 중앙위원 파별간 비율은 항일빨치산 20%, 연안파 35%, 소련파 25% 등으로 정치위원도 비슷한 구도였다.

48년 제2차 당 대회도 기존 정치위원에서 김책, 박일우가 새로 들어왔는데 이 또한, 사회주의 당.국가체제를 세우기 위한 파벌연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56년 제3차 당 대회부터 양상이 달라진다. 당 정치국 정치위원에 김일성이 김두봉보다 앞서고, 박정애, 박금철, 김일, 림해, 정일룡, 김광협, 남일 등이 새로 선출되면서 항일빨치산 세력의 포진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61년 제4차 당 대회에서 소련파, 연안파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갑산파가 제2의 세력이 됐다.

1953년 8월 제6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로당파 박헌영, 리승엽, 소련파 허가이, 연안파 무정 등이 숙청되고, 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연안파 최창익, 윤공흠, 소련파 박창옥, 국내파 오기섭이 숙청됐다.

이는 당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의 분포와도 유사하다. 48년 제2차 당 대회 당시 조직위원은 김일성, 허가이, 김열, 박창옥, 박영성이었던 데 반해 1966년 제2차 당 대표자회에서 설치된 비서국에서는 김일성이 총비서로, 최용건, 김일, 박금철, 리효순, 김광협, 석산, 허봉학, 김영주, 박용국, 김도만 등이 당 비서로 항일빨치산과 갑산파가 절 반씩 차지했다.

   
▲ 김일성 시대 조선노동당 확립을 함께 한 항일 빨치산 1세대들. 김일, 최용건, 최현, 김책(왼쪽부터).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하지만 1967년 5월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박금철, 리효순 등 갑산파와 1969년 1월 군당 제4기 4차 전원회의에서 김창봉, 허봉학, 김광협 등 일부 항일빨치산에 대한 숙청이 이뤄졌다. 이는 김일성의 단일지배체계에서 유일지배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이질적 요소를 제거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일성의 당'으로 자리매김한 1970년 조선노동당은 제5차 당 대회를 거쳐 1980년 제6차 당 대회에 이르는 동안 당의 핵심은 항일빨치산 1세대였다. 그러나 김정일 후계구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항일빨치산 2세대와 김정일과 함께 일한 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일꾼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80년 제6차 당 대회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에는 김일성, 김일, 오진우, 김정일, 리종옥 등이 이름을 올렸고, 김정일, 김중린, 김영남, 김환, 연형묵, 윤기복, 홍시학, 황장엽, 박수동 등이 당 비서가 됐다.

또한, 제6차 당 대회부터 신설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의 경우, 80년 당시에는 오진우, 김정일, 최현, 오백룡, 전문섭, 오극렬, 백학림, 김철만, 김강환, 태병렬, 리을설, 주도일, 리두익, 조명록, 김일철, 최상욱, 리봉원, 오룡방 등이 선출됐다.

즉, 김정일 후계구도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항일 빨치산 1세대를 우대하고 김정일로 대표되는 2세대와 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에서 활동한 김정일 측근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일성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김일성 시대는 다양한 인물들이 뜨고 진 시기이고 항일빨치산 동료들도 많아 집어낼 수없지만 사망할 때까지 김일성의 측근으로 자리한 김일과 최용건, 최현 등을 꼽을 수있다.

김일은 본명이 박덕산으로 '오직 김일성밖에 모른다'는 뜻으로 김일성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는 1936년 곰의골밀영에서 김일성과 처음 만났으며, 해방후 1946년부터 민족보위성 부상, 내무성 정치국장을, 1959년 내각 제1부수상, 1972년 정무원 총리, 1976년 제1부주석, 1953년부터 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역임하다 1984년 3월 사망,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최용건은 1941년 항일연합군지휘간부회의에서 김일성을 만난 뒤 1948년 민족보위상, 1972년부터 부주석, 1966년부터 당 비서로 일했으며 1976년 9월 사망,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최현은 1907년 독립군 가정에서 태어나 무장투쟁에 참가했으며, 한국전쟁시기 제2군단장을 지냈다. 그리고 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 당 비서 겸 민족보위상, 인민무력부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쳤으며 1982년 사망했다. 최룡해 당 비서의 부친이다.

김책은 1927년부터 항일혁명에 참가해 1932년 유격대에 입대, 초대 내각 부수상 겸 산업상, 전선사령관 등을 지냈지만 1951년 한국전쟁 중 사망했다.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이 그의 아들이다.

 

   
▲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화된1980년 10월 열린 제6차 당 대회. 오진우(맨 오른쪽)의 모습이 담겨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일 시대(1994~2011), 후계구도 확립자들

김정일 시대 조선노동당의 핵심을 이룬 인물들은 항일빨치산 2세대와 김정일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쳐 선군정치를 핵심으로 내세운 김정일 시대는 당 대표자회가 30년만에 열렸을 뿐, 공식적인 당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당 인사변동 보다는 오히려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누가 더 많이 동행했는가를 두고 분석하는 경향이 많다.

김정일 시대 현지지도 동행자 횟수로 보면 현철해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677회로 가장 많고, 이어 김기남 당 비서(616회), 장성택 당 중앙위원회 위원(510회), 리명수 당 정치국 위원(486회), 박재경 당 중앙위원회 위원(456회) 순이다.

하지만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정일과 함께 오진우가 1995년 사망할 때까지 항일빨치산 1세대로 당의 중심을 잡았다. 오진우는 1968년 당 비서에 이어 제6차 당 대회 이후 줄곧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북한에서 몇 안되는 원수칭호를 받았다.

김정일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80년 제6차 당 대회부터 줄곧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2010년 사망 전까지 김정일의 후계구도를 지켜왔다.

그러나 공식적 서열과 상관 없이 김정일 여동생인 김경희와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이 지근거리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대남분야에서는 김용순 비서가 최측근으로 활약했지만 일찍 사망했다.

   
▲ 김정일 시대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비서들. [자료정리 - 통일뉴스]

김정일 시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열린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는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 당을 정비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오진우 사후 인선되지 않던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영남, 최영림, 조명록, 리영호가 선출됐다. 그리고 당 비서로 기존 김기남, 최태복 외에 최룡해, 문경덕, 박도춘, 김영일, 김양건, 김평해, 태종수, 홍석형 등이 이름을 올렸다.

또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신설되면서 김정은이 처음 등장해 리영호와 함께 선출됐고, 위원으로 김영춘, 김정각, 김명국, 김경옥, 김원홍, 정명도, 리병철, 최부일, 김영철, 윤정린, 주규창, 우동측, 최룡해, 장성택이 올랐다.

즉, 제3차 당대표자회 이전까지 오진우, 조명록으로 대표되는 항일 빨치산 1세대들을 중심에 놓고 빨치산 2세대와 김정일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포진됐다면, 그 이후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 발판을 놓은 셈이다.

   
▲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당 고위간부들, 당대표자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시대(2011~현재), 노.장.청 배합을 통한 신진세력의 등장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 이후 후계구도의 발판을 마련한 김정은 시대의 당 인물들은 노.장.청 배합으로 풀이된다. 즉, 이제는 노년기에 접어든 항일빨치산 2세대 원로그룹을 존중하고 실질적으로 당을 이끄는 전문가 집단인 장.청 인사들을 신진세력으로 포진시킨 것이다.

2012년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정은, 김영남, 최영림, 최룡해, 리영호가, 당 비서로 김경희, 박도춘, 김기남, 최태복, 김양건, 김영일, 태종수, 김평해, 문경덕, 곽범기 등이 선출됐다. 사망한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로 남고 김정은은 제1비서에 올랐다.

하지만 2013년 12월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로 장성택이 숙청되고 관련자들이 축출되면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영도체계에 확고한 인물들이 당을 구성한다.

   
▲ 김정은 시대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비서. [자료정리 - 통일뉴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구차와 함께 걷던 장성택, 김기남, 최태복, 리영호, 김영춘, 김정각, 우동측 중 현재 김기남, 최태복, 김정각을 제외하고 모두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되고 오수용이 당 비서에 오르는 등 끊임없이 김정은 체제 공고화가 진행되고 있다.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의 인물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현재 당 정치국은 상무위원 김정은, 김영남, 황병서, 위원 최룡해, 박봉주, 김기남, 최태복, 박도춘, 양형섭, 강석주, 리용무, 김원홍, 김양건, 곽범기, 오수용, 후보위원 오극렬, 김평해, 최부일, 로두철, 조연준, 리영길, 태종수이다. 당 비서는 박도춘, 김기남, 최태복, 최룡해, 김양건, 김평해, 곽범기, 강석주, 오수용 등이다.

김정일 시대는 선군정치와 이른바 측근정치가 주효해 현지지도 수행횟수와 당비서의 역할이 중요했다면,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당 공식회의 체제가 작동해 당 정치국과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역할과 비중이 더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박봉주, 곽범기, 로두철 등 경제 전문가들이 중용되고, 황병서, 최룡해 등 비 군부 출신이 군 총정치국장을 맡은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김정일 시대가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함께 '고난의 행군기'를 거치면서 '선군정치'를 앞세운데 비해 김정은 시대는 당과 내각을 정상화 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리영호 총정치국장의 숙청과 잦은 인민무력부장 교체 등 군인사는 선군정치 시기를 거치면서 과도하게 집중된 군부의 힘을 덜어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고, 비 군부 출신 총정치국장의 임명은 군에 대한 당적 지도의 관철 의지로 읽힌다.

황병서, 최룡해를 양두체제로 삼아 권력 편중 현상을 막은 점과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이 일선에 나선 점도 특색으로 꼽을 수 있다. 대남비서인 김양건이 김정은 측근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고영주식 메카시즘, 국민 절반이 공산주의자?

 
 
야당 전투력의 현주소, 고영주 처리 결과 보면 안다.
 
임두만 | 2015-10-08 08:29: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발언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나라 전체가 목하 해방 후 좌우갈등 시기와 같아지는 것 같다. 이는 친일파가 친일파로 단죄 될 위험을 느끼자 미군정에 협조하는 방법으로 생존, 자신들을 단죄하려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좌우 갈등을 일으키고 살아남아 기득권이 된 것과 유사하다.

▲공산주의자 발언 파문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팩트티비 화면 캡쳐)

박정희 전두환 정권 부역자들은 1987년 민중항쟁 후 군부독재 정권이 단죄되면서 설 자리가 없었다. 특히 김영삼 정권 당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사법적 단죄를 받은데다 이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설 정도로 국민적 감정은 좌우대립이란 이념전쟁에서 해방되어 갔다. 사회의 이 같은 변혁은 그러나 친일파 후예임을 감추기 위해 보수우파로 위장한 이들에겐 불편한 변혁이었다. 이념 전쟁이라야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10년 동안 새로운 이념무장을 시도했다. 이른바 뉴라이트 운동이다. 이 뉴라이트 운동은 기존 독재정권 부역자들이 뒤로 빠지고 새로운 얼굴들로 바꿔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는 친일파들의 논리나 이념을 다시 세팅한 것이었다.

이후 이렇게 세팅된 조직을 키운 이들이 이명박을 앞세워 정권을 잡는다. 그리고 앞서 기득권을 누렸던 친일파이면서 우파 탈을 쓴 이들이 다시 나서면서 노골적 이념전쟁 판으로 만들어 간다. 일베현상도 이 현상이며 이들의 숙주가 바로 고영주 같은 지식인 그룹이다.

다시는 권력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이들은 정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무기가 이념전쟁임을 공유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은 이들에게 좋은 숙주다. 북한 김정은 정권도 마찬가지로 남쪽의 반북정서 확산이 정권유지에 가장 좋다. 전쟁위협을 통한 국민일체화 현상은 통치그룹이 피통치자들을 제압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기라서다.

박근혜 정권 들어 이들은 더 기승을 부린다. 고영주 관련 기사의 포털 댓글들이 이를 증명한다. 백색 테러에 동원해도 될 만한 포털의 뉴스 댓글러들, 이들은 홍위병 그룹이다. 친노 홍위병 그룹은 숫자로 뭉친 세력 싸움에서 이들과 게임이 안 된다. 이미 일베 등에서 양성된 이들 홍위병들은 친노 홍위병들을 포털에서 제압한지 오래다. 따라서 변희재 정미홍 강용석 등 일베 여론 주도층은 이 현상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고영주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 포털의 영웅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7일 오전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해임촉구결의안을 낸다는 목표로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또 의총 후 고영주가 해임 때까지 당 차원의 규탄대회 등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새정연으로서는 이 싸움이 물러날 수 없는 한판이기 때문이다.

▲7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긴급 의원총회에서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고영주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새정치민주연합 홈페이지

고영주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는 발언에서 물러나기는커녕, 한발 더 나아가 “노무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말했다. 문재인을 당 대표로 하고, 노무현을 절대존엄으로 추앙하는 야당이 이를 용납한다는 것은 곧 자신들 전부가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들을 추종하는 세력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이는 또 현 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은 전체 유권자 48.9%의 득표로 46.8%를 득표한 이회창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 5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다. 고영주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국민 48.6%는 공산주의자를 대통령으로 지지한 셈이 된다. 이에 그 5년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노무현’이 임명한 검찰총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군기무사령관, 군정보사령관 등이 이 나라 모든 정보를 독점했던 ‘공산주의자’들의 세상이었다는 것도 된다. 문재인도 지난 선거에서 48%를 득표했다. 그러나 상대였던 박근혜가 51.6%를 득표했기에 낙선했다. 노무현 득표율 48.9%와 문재인 득표율 48%의 차이는 0.9%다.

결국 고영주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 유권자 48%는 ‘공산주의자’를 지지하는 유권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변형된 공산주의자 노무현’을 지지한 수는 48.9%, ‘그냥 공산주의자 문재인’을 지지한 수는 48%이므로 0.9%가 공산주의자에서 전향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가? 우리 국민 절반에서 2%만 빼고 모두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를 추앙하는가? 이런 말을 국회에서 당당하게 하는 공공기관장을 용인하는 야당? 그렇다면 그런 야당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 야당후보 지지 48%를 공산주의자라는데 우린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발언만이 아니라 그동안 고영주의 행보를 보면 그는 매카시즘의 신봉자다. 이런 사람이 공영방송사 사장의 임명권이 있는 공익기관 대표라면 그 기관은 공익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

MBC는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이란 사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공동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 국민은 노무현 문재인을 찍은 48%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들도 MBC를 통해 유익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과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하는 고영주가 MBC를 감독하는 기관의 수장으로 있다면 이 방송이 이 48%까지의 유익을 위해 복무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기관의 수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48%가 배제된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박근혜는 당연히 고영주를 징치해야 한다. 이게 답이다. 결국 이런 답을 얻을 수 있는 전투력을 새정치민주연합이 갖고 있느냐의 싸움, 이 싸움의 끝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느냐가 된다. 그런데 고영주가 당당하게 국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는 버틸 자신이 있어서다. 야당이 어떤 압력을 행사해도 박근혜가 자신을 지킬 것이라는 자신감, 이 자신감이 당당하게 노무현도 문재인도 공산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야당의 전투력이 이 싸움의 결과에 달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005년, 당시 여당 열린우리당은 ‘4대개혁입법’(국가보안법·과거사법·언론개혁법·사립학교법) 개폐에 정권을 걸었다. 당연히(?)한나라당은 이를 ‘4대악법’으로 부르며 저항했다. 열린우리당은 결국 국가보안법 등에는 손도 못 대고 사학법 하나만을 처리했다. 개정된 사학법의 골자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 대학평의원회 설치 의무화, 법인이사회 회의록 공개, 법인 임원의 인적사항 공개 등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사학 재단들의 반대를 등에 업고 이도 받지 않았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 9일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즉각 반발한 박근혜는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앞서 국가보안법 등의 극력저항에 밀린 열린우리당이 원내과반 여당의 체면이라도 챙길 수 있는 힘을 보여준 것이 사학법 강행통과였는데 박근혜는 이것까지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2005년 서울 명동에서 열린 한나라당 장외투쟁 현장의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2005년 12월 13일, 명동에서 시작된 한나라당 장외투쟁은 이듬해 1월까지 전국을 순회하면서 이어졌고 국회는 53일 동안 파행했다. 12월 1월의 한겨울 한파에도 거리의 한나라당은 강경했다. 모든 국회의 회무는 중단되었다. ‘민생입법’같은 말도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과반 여당의 항복만이 이들을 장내로 불러 올 수 있었다. 후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이렇게 썼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망연자실했다. 사학법이 어떤 법인가? 우리 아이들의 앞날과 우리 교육의 미래가 걸려 있는 법 아닌가? 그 자리에서 나는 비장한 결의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 땅의 부모들과 함께 사학법 반대투쟁에 나서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중략) 사학법은 우리 아이들에 관한 문제로서 아이들의 생각이 달라지면 나라의 근본이 달라진다. 이런 중대한 사안을 여당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는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었다”

장외투쟁이 길어지면서 민생을 챙기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적이 나오자 박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나라의 정체성을 뒤흔들어놓는 법은 절대 통과돼서는 안 되며, 법의 뿌리가 허물어지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의지로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당시 장외투쟁 연설 내용의 핵심은 이렇다.

“년간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온 국민에게 추위를 안겼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는 추운 겨울이었다. 편 가르기·부정부패·무능으로 추운 겨울이었다. 이 정권은 봄의 새싹을 틔울 희망마저 없다. 다수 횡포로, 폭력으로 밀어붙여서 열린우리당이 날치기한 것은 우리 교육이고 아이들의 미래, 그리고 헌법정신이다.”- 12월 13일

“이 정권이 경제를 살렸나, 국민을 편안하게 했나, 외교를 잘했나, 다 망치고 이제는 교육마저 망치려 하고 있다. 현 정권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파괴정권'이다. 한없는 걱정으로 비통한 심정이다.” - 12월 16일

박근혜와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은 이듬해인 2006년 1월 30일 여야 원내대표가 북한산 산행을 하며 가진 회담과 함께 끝났다. 당시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북한산에서 산상 회담을 열고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재개정 요구를 수용하고 한나라당은 국회 등원을 약속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국회 등원을 거부한 지 53일만이었다.

앞서 거론했지만, 당시 박근혜는 이회창을 지지한 46.8%의 유권자들이 국가보안법 존재를 원한다는 이유로 노무현 정권의 국보법 폐지 또는 개정을 극력 반대하므로 국가보안법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4대개혁입법 중 마지노선으로 지키려 했던 사학법마저 후퇴하게 만들었다. 같은 맥락이라면 문재인은 자신을 지지한 48%의 유권자가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를 지지한 유권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고영주 몰아내기가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 자신 문제가 아니라 48%의 국민 문제다.

지금 문재인은 2005년 12월 16일 박근혜가 했던 연설 그대로를 받아 되치기를 해야 한다. “이 정권이 경제를 살렸나, 국민을 편안하게 했나, 외교를 잘했나, 다 망치고 이제는 교육마저 망치려 하고 있다. 현 정권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파괴정권’이다.”를 그대로 가져다 “이 정권이 경제를 살렸나, 국민을 편안하게 했나, 외교를 잘했나, 다 망치고 이제는 국민 절반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단하려 하고 있다. 현 정권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파괴정권’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문재인이 앞장서서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하고 노무현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고영주를 용납하려는 이 정권의 기도를 깨뜨려야 한다. 그래서 고영주는 물론 이념적 편가르기로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암수가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권교체도 총선승리도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이마저도 유야무야라면 정말 이 야당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40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진중권 “朴, 나라 개판 만들고 혼자 살겠다고 퇴임 후 목숨 관리”

진중권 “朴, 나라 개판 만들고 혼자 살겠다고 퇴임 후 목숨 관리”새정치연합, 긴급 의총 열고 고영주 이사장 해임 촉구 결의
 

 
▲ <사진제공 = 뉴시스>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가 자신의 SNS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원색 비난했다.

진 교수는 7일 “박근혜는 1년차 국정원 대선개입, 2년차 세월호에 십상시, 3년차 메르스 사태… 경제는 바닥, 민생은 파탄”이라며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는 저 혼자 살겠다고 퇴임 후 목숨 관리에 들어간 듯”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는 등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진 교수는 “정신병원, 아니면 반인권적 범죄자로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며 “고영주야말로 박근혜 정권의 수준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의 흑역사로 남을 듯”이라며 “이 중요한 10년을 저들이 하는 닭짓을 보며 고스란히 날려 보내야 하다니…”라고 탄식했다.

   
 

한편, 고 이사장의 ‘공산주의자’ 발언에 새정치연합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고 이사장의 해임을 촉구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번에 한 발언이 실수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가겠다고 수차례 경고했다”며 “그러나 어제 미방위 국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민중민주주의자로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명백히 이야기하며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사상을 알고 찍었으면 이적행위 동조자”라며 “문재인 후보를 찍은 48% 넘는 국민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동조자로 몰은 것으로 이는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사태”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결의문을 내고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혼돈으로 몰고갔던 백색 테러가 고영주 이사장의 입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며 “본인과 다른 생각을 말살시키고야 말겠다는 고영주 이사장의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인식은 다양한 가치관의 존중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적 기본 질서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고 이사장의 즉각 해임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 등을 결의했다.

 

[관련기사]

나혜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기 집 때려 부숴도 기뻐하는 사람들

 

[쿠오바디스, 전세난민②] 별이 지고 아파트도 무너진다네

15.10.07 08:14l최종 업데이트 15.10.07 08:14l

 

 

[이전 기사] 서울 '전세 1억' 아파트, 거기 제가 살았습니다 

고덕주공 입주자, 특히 3단지보다 2단지 주민에게 재건축에 따른 이주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우리 가족도 언제 이사 가야 하나 늘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날로 치솟는 서울 전셋값이 너무 야속했다. 고덕주공 보증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내심 재건축이 천천히 진행되길 바랐다.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2014년 하반기 들어서는 그다음 해 봄쯤 재건축 이주 명령이 떨어진다는 말이 공공연히 들렸다. 우리 가족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는 이따금 네이버 부동산 화면을 띄워 근처 다른 지역 매물을 알아보았다. 경기도 하남, 송파구 석촌동을 살폈다. 아파트는 어림없었고 빌라(다세대주택)나 단독 다가구 주택 위주로 찾았다.

전세 물건이 많지 않았고 고덕주공보다 비쌌다. 석촌동 전세 빌라를 직접 보고 온 적도 있다. 고덕주공보다 덜 낡았고 직장이 있던 강남역과 가깝다는 건 나은 점이었다. 하지만 더 좁았고 햇볕도 잘 들지 않았으며 주택가라 주차가 곤란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고덕주공 전세 보증금은 비교적 싼 편이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 돈으로 왜 저런 집밖에 구할 수 없는 걸까'하는 무력한 의문만 들었다. 

지난 1월, 추위를 뚫고 퇴근한 어느 날이었다. 몸에 두른 모직 코트와 목도리가 무거웠다. 한 달 전부터 판교로 출근했다. 회사가 강남역에서 사옥을 옮겼다.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6시 10분쯤 지하철을 타고 천호에서 내려서 6시 35분에 출근버스를 타는 나날이었다.

저녁이 되면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퇴근길에 올랐다. 몸도 피곤했고 마음도 지쳐갔다.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힘없이 열고 들어갔다. 1층 각 세대 우편함마다 꽂힌 종이봉투가 눈에 띄었다.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이 보낸 이주 안내문이었다. 빠르면 3월부터, 늦어도 9월 말까지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올 것이 왔구나. 어차피 회사 사옥도 옮겼기에 출퇴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이사 가고 싶은 참이었다. 맞벌이가 아니어서 배우자의 직장 위치를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았고 어렸기 때문에 전학 문제도 걸리지 않았다. 아내와 의논하여 최대한 빨리, 3월이 오면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이사 올 사람 없는 아파트, 하루에만 화물차 10대가 떠났다
 
기사 관련 사진
▲ 경축 재건축 이주안내 현수막
ⓒ 이두리

관련사진보기


다시 네이버 부동산 화면을 띄웠다. 회사가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를 출발지로 두고 지도를 살폈다. 성남 구도심, 분당, 용인 쪽을 검색했다. 우연히 분당 동쪽 수내동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였지만 주택가가 있어서 분당 다른 지역보다는 보증금이 낮을 것 같았다.

수내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했다. 중개인이 권하는 매물을 보았는데 역시 그곳에서도 '그 돈으로 왜 저런 집 밖에?'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개인은 수내동이 분당에서도 학군이 좋고 학원이 몰려서 전셋값이 비싼 곳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그것도 모르고 주택가랍시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었다. 

중개인은 우리 가족 상황을 듣고 경기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일대를 추천했다. 광주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광주? 그게 어디지? 게다가 읍, 리라니. 물론 호남의 광주(광역시) 말고 경기도에도 광주가 있다는 건 알았다. 나나 아내나 지방 출신이고 경기도 권역에는 연고가 없었다. 수도권 지도를 볼 때면 동유럽 지도를 보는 기분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수도권 위성도시들 이름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디 있는지 식별할 수 없었다. 중개인이 사무소 벽에 걸린 지도를 짚으며 설명했다. 광주 신현리는 분당 바로 동쪽에 붙은 곳이라고. 서울이나 분당보다 싸고 새로 지은 빌라가 많이 들어섰다고. 

광주에서 둘러 본 집들은 서울이나 분당과 비교하면 조건이 확실히 좋았다. 우리 가족은 고덕주공 보증금과 똑같은 값의 빌라(단독 다가구주택)를 전세로 구했다.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우리가 그 세대의 첫 입주자가 될 터였다. 

30년 넘은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생각하자 적잖이 설레기도 했다. 임대차계약을 마친 날, 아내와 나는 광주라는 곳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삶의 방향이 무작위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지난 3월 첫 번째 금요일에 우리 가족은 고덕주공을 떠났다. 그 날 우리 집 말고도 열 곳 넘는 집으로 화물차량이 들어섰다. 가까이서 내가 본 것이 그만큼이었다. 같은 날 이사 간 집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으로 이사 들어올 사람이 없었다.

서로 맞추어야 할 게 없어서 편했다. 재건축조합에서 알려준 대로 미리 한전, 도시가스 회사, 수도사업소에 연락했다. 전기·가스·수도를 차단하는 절차를 밟았다. 계약할 때 본 집주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50대 초중반 남자인데 점잖고 친절했다. 함께 재건축조합 사무실이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퇴거절차를 마쳤다. 헤어지기 직전, 그냥 떠나기도 어색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이곳에 아파트 새로 지으면 이사 와서 사시는 건가요?"

집주인 또한 가볍고 짧게 대답했다. 조금 쑥스럽다는 듯 미소도 지었던 것 같다. 

"예, 그래야지요."
 
기사 관련 사진
▲ 이삿짐 트럭 맨 앞 차가 우리 집 이사 트럭. 그 뒤로 보이는 트럭들은 각각 다른 세대의 이삿짐 차량이다.
ⓒ 이두리

관련사진보기


정든 가게 다시 찾았는데... 이미 떠나고 아무도 없었다

떠난 지 여섯 달 만에 다시 찾은 고덕주공 2단지 아파트. 입주자는 드문드문 남았지만 상가는 모두 다 빠졌다. 이곳으로 오면서 혹시 아직 남은 가게가 있다면 몇 가지 물어보려 했다. 입주민은 얼마나 남아있는지, 장사는 되는지, 이제 어디로 떠날 건지.

하지만 모두 가까이 또는 멀리 가게를 옮긴다는 말을 남기고 이미 가버렸다. 물건 오천 원어치 사면 쿠폰 스티커를 한 장씩 주던 슈퍼 아주머니도, 텔레비전 채널을 KBS1에 고정해두던 약사 할아버지도, 떠나면서 화분 가져가도 된다고 써붙인 꽃집 아주머니도 지금은 여기에 없다.
 
기사 관련 사진
▲ 텅 빈 상가 문 닫고 떠났습니다.
ⓒ 이두리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이전, 폐점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고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두리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이전안내 '점포를 급히 이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 이두리

관련사진보기


건물에도 수명이 있다. 오래된 건물은 위험하거나 미관을 해칠 수 있으며 살기 불편할 수 있다. 부분 개보수가 어려워 전체를 무너뜨려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철거가 더욱 나은 주택공급을 위한 후생의 시발점일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있었고, 지금 진행 중이며, 가까운 미래에 있을 한국 사회의 재건축·재개발은 안타깝고 지나친 면이 많다. 자기가 나고 자란 집을 때려 부수는데도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 부동산 차익과 개발이익을 두고 벌이는 아귀다툼, 해임 재선임 고소 고발 손해배상 운운 현수막이 걸리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고 오히려 낯익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와 같은 독립잡지 발간 소식은 반갑고도 소중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편집장 이인규씨는 고덕주공보다 세 살 위인 둔촌주공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둔촌주공 재건축이 묻어 버릴 풍경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사진을 싣고 글을 엮어 독립잡지를 만들었다. 

그 뒤 추억을 지키고 싶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져 잡지 2, 3호를 냈다. 이씨는 새로 들어설 아파트에 반영할 가치를 재건축참여 건축교수와 함께 고민하거나 아파트 주민들과 소통하는 공동체 자리를 마련하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관련기사 : 재건축아파트 속 사람이야기 기록하는 아파트키드).

광주 신현리로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문득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여행스케치 1집에 실린 <별이 진다네>였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중략)
나의 꿈은 사라져가고 슬픔 만이 깊어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 만이 짙어가는데

곧 아파트가 헐린다. 내 삶의 흔적과 추억 한 부분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평생 보던 나무를 베어 없앤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일부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아.' 아메리칸 인디언이 한 말이라고 한다(김영하 작가의 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중 138쪽 참조).

고덕주공은 그저 오래된 부동산일 뿐일까. 같은 자리에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더라도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부끄럽지만 고덕주공에 살면서 사귄 이웃이 없다. 증인 삼을 사람도 없다. 나와 아내의 주민등록초본, 아들의 출생등록지가 이곳에서 보낸 우리 가족의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다. 

직장, 학교, 부담스런 보증금 등 여러 사정 때문에 고덕주공 2단지를 멀리 떠나기 어려운 전·월세살이 입주민이 많았을 것이다. 3단지 2580세대도 머지않아 이주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 많던 입주민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기사 관련 사진
▲ 고덕주공 3단지 표지판 내 고향은 어느 쪽인가.
ⓒ 이두리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안녕, 고덕주공아파트 놀이터와 벚나무, 다시 볼 수 없을 풍경. 2014년 4월 어느 봄날에.
ⓒ 이두리

관련사진보기

 

○ 편집ㅣ김준수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교대로 망보고 먹이 먹는 물고기의 호혜행동

교대로 망보고 먹이 먹는 물고기의 호혜행동

조홍섭 2015. 10. 07
조회수 70 추천수 0
 

산호초 물고기 먹이 사냥에 같은 종 또는 다른 종과 협동 잇따라 밝혀져

청소물고기는 '명성'까지 신경 써, 복잡한 인지능력 이전에 협동 발달 가능성

 

fish2_Jordan Casey2.jpg

흔히 물고기는 둔하고 사회성 없는 찬피동물로 그려진다. 그런 선입견이 차츰 깨지고 있다. 지적이고 사회성 있는 물고기가 발견되고 있다.
 

상대방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나중에 보상을 받는 호혜적 행동은 사람 등 포유류와 조류 일부에서만 나타난다. 그만큼 복잡한 인지능력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혜택을 베풀었는데, 받기만 하고 도망친다면 곤란하다. 그래서 호혜적 행동을 하려면 상대방을 인식하고, 지난 행동을 기억하며, 나중에 보답을 예상하고 의식적으로 먼저 투자하는 능력이 전제가 된다.
 

그런데 어떤 물고기는 이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이먼 브랜들 박사 등 오스트레일리아 제임스쿡대학 연구자들은 대보초(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서식하는 물고기인 독가시치에서 직접적인 호혜행동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9월25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fish1_Jordan Casey.jpg» 협동사냥을 하는 다른 종류의 독가시치. 같은 성끼리 늘 붙어다니며 사냥하는 독특한 행동이 연구의 계기가 됐다. 사진=조던 케이시
 

연구자들은 잠수를 통해 여우독가시치 등 산호물고기 4종의 행동을 조사했다. 이들 물고기는 같은 성의 짝과 함께 다니며 먹이활동을 하는데, 한 마리가 먹이를 먹는 동안 다른 짝은 그 위에서 헤엄치며 머리를 들고 주변을 경계하는 행동을 한다.


이들의 먹이는 산호초 틈 깊숙한 곳에 있는 조류와 해면 등인데, 머리를 들이밀어야 하기 때문에 포식자의 눈에 띄면 매우 취약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동료가 망을 봐주면 마음 놓고 먹이를 먹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외톨이 개체에 견줘 짝을 이룬 독가시치가 경계와 먹이 먹기에서 훨씬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계와 식사 당번은 수시로 바뀐다. 또 경계를 서던 물고기가 위험을 느끼면 지느러미를 쳐서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다른 산호물고기에게서도 발견되는 일종의 의사소통 방식이다. 또 경계 물고기가 자리를 뜨면 먹이를 먹던 물고기도 어김없이 뒤를 따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동물의 호혜적 행동이 진화하려면 복잡한 인지적 사회적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이제껏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로 그런 능력이 호혜적 행동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Richard Ling _Epinephelus_tukula_is_cleaned_by_two_Labroides_dimidiatus.jpg» 그루퍼의 기생충을 잡아먹는 청소물고기. 그러나 기생충보다 물고기의 피부보호 점막을 쪼아먹기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Richard Ling,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연구 이전에도 물고기의 사회적 행동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 왔다. 산호지대에서 큰 물고기와 청소물고기 사이의 관계는 대표적인 예이다.

 

청소가 이뤄지는 산호초의 특정 장소에 큰 물고기가 와 입과 아가미를 벌리고 있으면 청소물고기가 안팎을 드나들며 기생충을 잡아먹도록 해 기생충 제거와 먹이 획득의 공생이 이뤄진다. 그러나 실제 조사한 결과 이들의 관계는 훨씬 복잡했다.

 

청소물고기는 그루퍼 등 큰 물고기의 기생충보다 영양가가 풍부한 피부 보호 점막을 선호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점막을 뜯어먹는데 그때마다 손님은 깜짝 놀라 몸을 뒤튼다.

 

큰 물고기는 이처럼 서비스가 나쁜 청소 장소는 기피하게 된다. 청소물고기도 다른 경쟁자가 많거나, 다른 고객 또는 배우자가 지켜보고 있을 때는 딴 짓을 줄여 명성이 손상되는 것을 피했다.

 

곰치.jpg» 두 포식자인 곰치와 그루퍼도 다투지 않고 오히려 협동해 사냥하는 행동을 한다. 사진=리두안 브샤리 유튜브 동양상 촬영

 

산호초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곰치와 그루퍼의 협동도 유명한 사례다. 이집트 홍해 등의 산호초에서 관찰한 두 포식자는 서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효과적으로 잡기 위해 힘을 합쳤다.

 

■ 곰치와 그루퍼의 협동 사냥 유튜브 동영상

 

 


그루퍼는 산호 틈에 숨어있는 곰치에 다가가 머리를 흔들며 마치 "사냥하러 가자"고 제안하는 행동을 한다. 곰치가 따라나서면 그루퍼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산호 틈을 곰치가 뒤져 먹이가 튀어나오면 기다리던 그루퍼가 낚아챈다.

 

먹이가 숨어있는 바위틈에 그루퍼가 거꾸로 선 자세로 "여기 먹이가 숨어있다"고 하듯이 곰치에게 도움을 청하는 행동도 관찰됐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imon J. Brandl & David R. Bellwood, Coordinated vigilance provides evidence for direct reciprocity in coral reef fishes, Scientific Reports, 5:14556, DOI: 10.1038/srep1455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특집①>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선봉적 부대'에서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특집①>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5.10.06  21:25:31
페이스북 트위터

<조선노동당 창건 70돌 특집>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건국보다 창당이 2년이나 앞선 셈이다. 당 우위의 국가인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조선노동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 할 수 있다.

<통일뉴스>는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이 당이 걸어온 길을 규약과, 인물,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
1.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2.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3. 정책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4.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

북한 조선노동당이 10일 창건 70년을 맞는다. 조선노동당과 국가를 알기 쉬운 것은 당 규약을 살펴보는 일이다.

초기 조선노동당의 강령은 표면적으로 민주주의적 완전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하고 진보적 민주주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목표를 표방했다. 그리고 해방이후 독립국가의 경제건설을 위해 경제개혁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이러한 당 규약은 70년 역사를 거쳐 북한 내부변화와 국제정세에 맞춰 바뀌어왔다. 그리고 주체사상의 확립과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확고히하는 방향으로 구축되어 왔다. 당 규약의 변천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의 변화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 1961년 제4차 당 대회에 참석한 김일성 주석. 당시 북한은 당 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 단일지도체계를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당 강령, 선봉적 부대→혁명조직→김일성의 당→김일성.김정일의 당

당 강령 및 전문, 총칙에는 당의 위상과 지도사상, 당면목적, 투쟁내용 등이 서술되어 있다. 당 규약은 1946, 1948년 제4장 41조, 1956년 제10장 62조, 1961년 제9장 70조, 1970, 1980년 제10장 60조으로 구성, 최종적으로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발표된 제10장 60조로 돼 있다.

46년 제1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규약에서 조선노동당은 '조선근로대중의 이익의 대표자이며 옹호자'라는 내용으로 당의 위상을 서술하고 13개의 과업을 제시했다. 그리고 제4장 41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48년 제2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규약 내용과도 유사하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조선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 것, △토지개혁을 실시할 것, △광산, 철도 등을 국유화할 것, △민족군대조직과 의무적 군사징병제를 실시할 것,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투쟁하는 인방과 평화를 애호하는 각 국가 각 민족들과 튼튼한 친선을 도모할 것 등이 담겼다.

구체적인 당의 지도사상은 없지만, '조선 근로대중의 민주주의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부강한 민주주의적 자주독립국가 건설과 근로대중의 정치경제 및 문화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목적으로 해방 후 당과 국가의 전망을 제시했다.

56년 제3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당 강령은 '우리나라 노동계급과 전체 근로대중의 선봉적 조직적 부대', '조선민족과 조선인민의 이익 대표', '일본 및 식민주의자에 반대하여 투쟁한 조선 인민의 혁명적 전통의 계승자'로 위상이 구체화됐다.

또한, '맑스-레닌주의 학설'에 근거해 △전국적 범위에서 반제반봉건적 민주혁명 완수, △공산주의 사회건설, △인민 민주주의 제도 공고화 등의 목적이 담겼다.

'맑스-레닌주의'가 들어간 이유는 제3차 당 대회 당시 있었던 소련.연안.빨치산파의 파벌갈등을 반영한다. 즉, 소련 흐루시쵸프 서기장의 스탈린 비판연설을 감안, 당이 맑스-레닌주의의 국제적인 원칙에 근거해 공산당으로서 정당성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하지만 61년 제4차 당 대회 들어 소련.연안파의 숙청으로 김일성 단일지도체계가 성립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의 직접적인 계승자'라는 위상과 △맑스-레닌주의의 일반적 원리, △조선혁명실천활동에 창조적으로 적용, △수정주의, 교조주의의 반대, △'맑스-레닌주의 순결성 고수' 등의 지도사상이 반영된다.

이는 김일성 외 파벌의 주장인 수정주의, 교조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1960년대 중.소분쟁을 배경으로 국제공산주의운동 진영의 맑스-레닌주의 논쟁에 '순결성'으로 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토대로 조선노동당은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보장, △사회주의 제도 공고화라는 목적을 제시했다. 즉, 네 번째 당 규약 개정은 조선노동당이 '김일성의 당'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됐다.

   
▲ 1980년 제6차 당 대회 준비를 점검하는 김일성과 김정일. 제6차 당 대회를 통해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이며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김일성 유일영도체계를 명문화했다.[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1970년대 들어 조선노동당은 당 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의 당'임을 확고히 한다. 70년 11월에 열린 제5차 당 대회에서 당은 '근로대중의 선봉적 조직'에서 '노동대중의 최고형태의 혁명조직'으로 위상을 높였다.

그리고 '맑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주체사상'이 지도사상으로 등장했다. 또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 수행이 새로운 당의 목적으로 제시됐다.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서는 '김일성 동지께서 창건한 주체형의 혁명적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당'의 위상에 맞게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하는 지도사상을 토대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강조한다.

즉,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이며,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김일성 유일영도체계가 명문화된 것이다.

김정일 시대 들어 30년만인 2010년 9월에 열린 제3차 당 대표자회에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으로서의 위상이 당 규약에 명문화됐다. 여기에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지도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노동계급과 인민근로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로 규정됐다.

그리고 '사회의 영도적 정치조직이며 혁명의 참모부', '근로인민대중의 대중적 당'으로 △사회주의 강성대국,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이 당면과제로 제시됐다.

여기서 특징은 54년동안 견지해 온 '맑스-레닌주의'가 빠졌다는 점이다.  대신 선군정치 노선과 당 건설에서 계승성을 보장하고 영도의 유일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당시 제3차 당 대표자회가 김정은으로 후계구도를 구축하기 위한 당 정비 차원의 행사였기 때문이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당'에서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변모했다. 2012년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김일성.김정일의 당'의 위상으로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며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목표로 내세웠다.

또한, '김정은 동지의 영도 밑에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위업,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한다'는 문구가 포함되면서 조선노동당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영도체계를 중심으로 한 당이 됐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4일 발표한 당 창건 70돌 기념 노작에서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옳게 계승하지 못하면 당이 변질되고 결국에는 혁명의 좌절을 가져오게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기었다"면서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당의 핵심사상임을 강조했다.

당원, 공민→혁명투사→김일성.김정일주의 주체형의 혁명투사

조선노동당 규약에는 당원의 자격이 명시되어 있다. 북한에서 당원은 조선공민이라는 초기 정의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의식을 지닌 자각적인 혁명투사, 당과 수령,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위한 주체형 공산주의 혁명투사로 의미가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무장한 주체.사회주의 위업을 달성하는 주체형의 혁명가로 당원을 규정한다.

제1,2차 당 대회에서는 20세 이상으로 1년 이상의 당 연한을 갖고 서로 아는 사이인 당원 2명이 보증을 서면 입당자격이 주어졌다.

이렇게 입당한 당원은 △자주독립국가건설, △법령.당 규약 준수, △당 상급기관 복종, △당 회의 의무참가, △입당금 당비 및 의연금 납부, △대중교양, △기술생산능력, △모범의 의무를 지녔다.

그러나 제3차 당 대회가 열리면서 당원 자격은 18세 이상으로 연령이 낮춰졌다. 이는 조선노동당을 확립하면서 당원의 확보가 관건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 △1년 이상 당 활동을 한 2명의 추천, △조선민주청년동맹원의 입당보증은 1명 등으로 조선노동당 입당 조건을 다소 까다롭게 했는데, 이는 당시 종파주의를 배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한, △독립 및 인민민주주의제도 공고화, △사상.조직 통일, △맑스-레닌주의 이론 연구, △비판 수용, △의무보고, △비밀엄수 등 당 규약을 토대로 의무조항을 늘려 김일성의 당에 복종하는 당원 양성을 꾀했다.

   
▲ 2013년 11월 6일 해군 구잠함 233호 지휘관과 해병들에게 당원증이 수여됐다. 사진 속 붉은 색 소책자가 당원증으로 파악된다.[사진출처-우리민족끼리]

제4차 당 대회에서부터는 입당 추천인 자격이 2년 이상 당 활동을 한 자로 좁혀진다. 그리고 후보당원 조항을 추가해 추천을 받더라도 1년의 후보당원 활동을 해야한다. 후보당원이 됐다고 무조건 정식 당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의무이행 정도에 따라 자격이 주어진다.

당원의 의무도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건설, △당의 혁명전통 체득, △종파.지방.가족주의 반대, △공산주의적 도덕품성 항목을 추가해 김일성 단일지도체계 확립에 한 발 더 다가서게 했다.

김정일 시대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서는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 △주체사상.선군사상.혁명전통으로 무장, △수령의 유일적 영도 밑에 하나로 움직임, △혁명적 사업기풍과 생활기풍, 당비 매달 납부 등으로 10개 의무조항을 뒀다.

또한 "상급이 주는 어떤 과업이라도 그것이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에 어긋날때에는 그 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권리조항을 추가했다.

그리고 명예당원 항목을 신설해, 나이가 많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당원을 명예당원으로 하고 명예당원증을 수여하기로 했다.

2012년에 개정된 당 규약은 현재 서문만 공개되어 있어 구체적인 당원의 입장조건과 의무조항을 확인할 수 없으나, 대체로 2010년 당원 항목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노동당이 김일성.김정일의 당으로 규정됐다는 점에서 당원의 의무도 '김일성-김정일주의' 무장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나선 큰물피해 한달만에 ‘와다닥’

 
 
1천8백가구 건설 새집들이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0/07 [07:5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북은 큰물 피해를 입은 나선시에 1천800여 가구 규모의 주택을 새로 짓고 입주를 시작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6일 조선중앙방송을 인용 "한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나선시 선봉지구 백학동지역에 1천300여세대의 단층살림집들이 즐비하게 일떠서 옹근 하나의 주택구역이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방송은 이어 "청계동, 유현동, 관곡동지구 등 여러 곳에 500여세대의 소층 단층살림집들이 주변 풍치와 어울리게 새로 건설돼 새마을들이 생겨났다"며"인민군 군인들은 단 2일동안에 1천300여세대의 살림집 기초공사를 끝내고 열흘만에는 전반적 살림집들의 벽체축조를 완성하는 성과를 이룩했다"고 소개했다.

 

▲     © 이정섭 기자

중앙방송은 또 "주택 보수에 동원된 인민군 군인들은 열흘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선봉지구 2천700여 세대의 살림집 보수를 와닥닥 해제꼈다"고 강조했다.
나선시에서는 태풍 '고니'의 영향으로 지난 8월 22∼23일 폭우가 내려 40여 명이 사망하고 가옥 1천여 채 이상이 파손됐으며 1만1천 명 이상의 수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학실한 피해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나선시 홍수 피해 복구사업을 중요 의제로 상정하고 인민군이 나서 나선시 홍수 피해 복구 작업을 당 창건일 이전에 끝내라는 당부와 함께 사회주의 선경으로 건설할 것을 강조한 후 직접 수해복구 지역을 현지지도했다.

 

한편 김정은 제1위원장은 나선시 홍수 피해 주민들에게 집들이 선물도 전달했다. 선물 전달식은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김평해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용진 내각 부총리, 강표영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5일 나선시 곳곳에서 열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