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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전쟁, ‘종북’ 대 ‘친일’은 100전 100패

 
 
야권, 현재 프레임으로 당력 총동원은 여권에 말려든 수
 
임두만 | 2015-10-13 10:15: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5.18, 6.29… 민중혁명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숫자다. 이 민중운동 역사는 청년학생들의 저항에서 시작되었다. 이 청년학생들은 모두 국정교과서로 교육받은 세대다. 반면 ‘일베’는 청년보수들의 이념기지다. 이들은 검인정 교과서로 교육을 받은 세대다. 일베 유저의 입에서 빨갱이는 일상어이고 반보수세력은 모두가 종북좌파다.

다시 말해 국정교과서로 교육받은 세대는 청년의 때에 민주주의와 인권, 개혁과 역사를 말했으며, 검인정 교과서로 교육받은 세대인 현 10~20대는 다수가 보수화 되어서 인권은 사치이고 소수자 차별은 일상이며 민주주의와 개혁을 말하면 ‘빨갱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렇게 보면 인간에게 사상과 이념체계의 정립은 교과서와 그리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따라서 지금 야권이 교과서 투쟁을 역사바로세우기 투쟁이라고 하면서 모든 현안에 앞서 당력을 총 동원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본다. 사실상 지금 정치권의 교과서 전쟁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딴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죽은 왕의 의붓어머니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 지를 놓고 싸운 조선시대 예송논쟁을 지금 정치권의 교과서 논쟁과 결부시키면 과한가? 하지만 나는 국사 교과서의 변천사가 권력전쟁의 승자가 가진 전승품 변천사이므로 지금 야권이 아무리 극한 투쟁을 해도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란 어렵다는 점에서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패배 시 모든 것을 잃을 개연성도 있으므로 야권이 이 전쟁에 모든 당력을 걸고 올인할 현안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지 출처 : KBS뉴스  

초등 교과서를 제외한 중·고등 교과서가 완전 국정화가 된 것은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이후다. 유신을 단행한 박정희는 이듬해인 1973년에 중·고등 교과서를 국정체제로 바꾸기로 정한다. 이 결정으로 근대교육을 시작한 1895년 이후 발행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에서도 검인정 제도가 유지되던 교과서는 1974년 2월부터 완전 국정화가 되었다.

1974년, 당시 문교부는 중·고등학교의 11종 국사교과서를 통합해 하나의 단일 역사교과서를 내놨다. 이는 어떤 변명을 붙여도 유신미화의 목적 외엔 없다. 그러니 완전 국정화 이후 바로 교육계는 이 국정교과서 폐혜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심지어 현 여권의 이론가들도 20대 대학생들의 이념투쟁이 국정 교과서의 일방적 역사주입에 대한 반발이라고 했다.

즉 중·고등학교에서 국가가 일방적으로 주입한 역사적 사관이 대학에 들어가서 깨지면서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반발과 함께 정부와 국가의 정통성까지 부인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정교과서 제도를 검인정으로 바꿔 다양한 인식의 역사관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체제는 오래도록 바뀌지 않았다. 김영삼 정권 이후에야 논의가 시작되어 1997년 검인정이 용인되어서 김대중 정권 들어 국정과 검인정이 공존하다가 2007년 당시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전면 검인정체제로 전환되면서 교과서의 명칭도 ‘국사’에서 ‘한국사’로 바뀌었다.

이를 축약하면 역사 교과서는 ‘국 검정제도 수립기”(1945~ 1955), “초등=국정, 중등=검정 교과서 발행기”(1956~1973), “국정(1종) 교과서 발행기”(1974~1997), “국정 검정 교과서 병행 발행기”(1997~2007년), “전면 검인정 발행기”(2007년~현재)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그런데 뉴라이트 세력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온 뒤 곧바로 이 역사교과서 좌편향 문제를 거론하다가 박근혜 집권 이후 2013년 교학사를 통해 뉴라이트 사관의 교과서를 발행, 검정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들이 펴낸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사관과 독재미화라는 두 가지 핵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결국 검정 첫해 소수의 학교가 채택했지만 이도 해당학교 학부모들의 반발과 전국적 반대 여론에 밀려 채택이 취소되었다. 당시 교육부도 ‘친일·독재 미화’ 내용과 각종 오류가 발견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수차례 수정 명령을 내렸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몰리자 뉴라이트 학자들은 이미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의를 마친 다른 6개 교과서의 오류를 찾아 줄기찬 수정요구를 했다. 이에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들 교과서도 수정 지시하면서 교과서 논란은 확산된다. 검인정 교과서라도 정부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수정·보완하겠다는 것은 검인정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그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논란은 현재 검인정 취소와 완전 국정화로의 정책 변경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변화를 보는 국민들은 이것이 정치권의 사활을 걸어야 할 문제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특히 현 박근혜 정권의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누구라도 박정희의 복권 시도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앞서 썼듯이 이 정책은 박근혜 정권 이후 곧바로 바뀔 수도 있다. 결국 이 역사교과서 전쟁이 총선을 코앞에 둔 야권이 올인해야 할 전쟁은 아니란 것이다.

▲심각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지도부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교과서 국정화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방침으로 대항하고 있다. 이 ‘모든 수단’이란 예산안과 여타 법안 심의 중단과 함께 국회의 파행과 공전도 불사하면서 장외투쟁까지 나서는 것이다. 때문에 야권의 이 ‘모든 수단’이 현실화 되면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는 파행과 공전이란 이름으로 종결될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야권의 이 결정은 하수정치가 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즉 야권을 이렇게 끌어들여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여권의 작전에 또 넘어간 것일 수도 있다.

야당이 교과서로 올인하면서 예산도 법안도 보이콧을 하면 당장 보수 언론은 이념전쟁에 나라 살림을 내친 야권으로 몰고 갈 것이 확실하다. 김무성은 이미 이런 수순에 들어갔다.

김무성은 문재인이 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여야 2:2 토론을 하자고 제안하자 “정치적 공방을 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미 당내 모든 입들과 여론 주도층들에게 정치적 공방에 나서게 하면서 현안을 만들어 놓고도 자신은 살짝 빠지는 정치적 기술을 보인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현 여권은 모든 입을 총동원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김무성 대표

여기서 그들의 논리는 ‘종북’이다. 선거에서 전승의 전술인 논리… 종북 대 친일의 프레임싸움에서 여권의 종북 프레임은 현재까지 100전100승이었다.

앞서 예송전쟁을 말했지만 먹고사니즘에 피곤한 유권자들에게 정치권의 논리전쟁은 더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더 정치 기피자가 된다. 정치 기피자가 많아지면 동원선거가 가능한 충성파가 잘 결집된 세력의 승리는 당연하다. 노무현 이후 선거에서 ‘종북세력 척결’을 외치는 쪽은 동원 선거가 가능하여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다. 먹고사니즘에 피곤한 유권자들을 정치 기피자로 만드는데 성공한 작전, 유권자를 기권으로 이끄는 작전. 현 여권의 총선 필승을 위한 작전이다.

그래서 교육부는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야당이 죽기 살기로 반대하면 ‘민생’을 무기로 야당을 압박한다. 그리고는 ‘종북’을 무기로 활용 지지층을 결집시키면서 지도부는 경제를 말하는 이중성… 새누리당은 이 작전으로 가겠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보이고 있다.

야권은 이 수법에 매번 당한다. 이후는 안 봐도 안다. 죽기 살기로 반대한 교과서 국정화는 막지도 못하고 시행될 것이며, 총선의 결과는 참패다. 국회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한 야권은 이후 여권의 보수화 드라이브를 어떤 방식으로도 막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 정치는 일본 자민당 일당세상과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1당 세상이 될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지금 야권이 키를 돌려야 한다. 교과서 국정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총선 승리이며 대선승리, 앞서 교과서가 걸어 온 히스토리를 서술했듯 정권을 소유한 측의 입맛대로 교과서 편찬 정책은 바뀌었다. 한국사 교과서 전면 검인정 제도는 노무현 정권에서 이뤄졌으며 그에 앞서 1종 교과서를 국정과 검인정으로 이원화 시킨 정부도 김대중 정부다.

박근혜 정부가 교과서를 압맛대로 만들고 싶어도 그 임기 내엔 완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야권이 총선에서 실패하고 대선에서 실패하면 교과서는 다음 임기에서 현 여권의 입맛대로 수록될 것이다. 이를 막는 방법은 결국 선거 승리가 최우선이다.

그래서다. 지금 야권은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작전을 구사해야 한다. 즉 여권의 ‘종북’ 화두를 무력화 시키는 여론전이 그것이다. 그 여론전의 화두는 ‘후진국’이다. ‘종북 대 친일’이 아니라 ‘종북 대 후진국’이란 이념전이 그것이다.

현재 지구촌 국가들 중 국정교과서를 택한 나라들은 북한·베트남·몽골·태국 등 주로 극소수 동아시아 후진국들이다. 정부나 언론들이 늘 비교하기 좋아하는 OECD 회원국 중에 국정교과서를 가진 국가는 그리스·터키·아이슬란드, 하지만 그리스와 터키는 국정과 검인정교과서를 혼합해서 운영하고 있으므로 아이슬란드 한 나라만 국정이다.

반면 캐나다·일본·독일·러시아 등은 현재 우리 제도와 같은 검인정 체제, 즉 발행은 민간이 하고 국가는 심사 보완하는 제도이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자유발행제다. 그리고 미국은 아예 연방의 통일된 제도가 없다. 각 주별로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자체적으로 채택하여 사용한다. 이런 팩트는 여권의 종북 프레임에 가장 대항하기 쉬운 논리다. 저들로서는 대항할 논리도 없다. 종북 대 친일 전쟁이 아니라 선진국 대 후진국 프레임 전쟁…

정치는 스킬이 매우 중요한 게임이다. 정치가 여론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여론은 정치인이 만들기도 하지만 여론에 따라 정치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한쪽이 만든 프레임에 끌려 들어가서는 그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 이길 수 없으면 프레임을 바꾸는 스킬을 발휘해야 한다. 현재의 교과서 논쟁을 박정희 복권을 우선시 하는 역사 논쟁으로 몰면서 ‘후진국’ 프레임 안에 가두고, 밖으로는 선진국과 경쟁하는 경제, 민생을 걱정하는 경제를 말하며 접근하는 전략이라야 현 여권의 총선 전략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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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역사교과서 국정화 규탄 시위 대학생 전원 연행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10/13 11:47
  • 수정일
    2015/10/13 11: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새정치 정청래, 연행된 학생들 접견..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하다”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공식 발표, 각계 시민사회가 잇달아 기자회견을 여는 등 반발이 거센 가운데 정부 규탄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뉴스1> 등에 따르면, 서울 종로경찰서는 미신고 집회를 열고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집회 참가자 17명(남자 6명, 여자 11명)을 연행했다고 12일 밝혔다.

   
▲ 경찰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기습시위를 벌인 학생을 연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날 한국대학생연합, 한국청년연대, 평화나비 네트워크 등 청년학생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국정화 계획을 규탄하고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오후 3시부터 광화문 이순신 동상 점거 기습시위를 벌인데 이어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며 2시간 30분가량 경찰과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여학생 황모(여‧23)씨가 경찰의 강제 연행에 저항하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실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시위는 5시40분까지 2시간30분가량 이어졌고 참가자 17명 전원 경찰에 연행되면서 마무리됐다. 이들 17명은 성북경찰서(5명), 광진경찰서(6명), 관악경찰서(6명)로 분산 이송됐다.

한편, 여학생 6명이 연행된 서울 관악경찰서를 방문한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관악경찰서 상황보고>라는 제목의 트위터 글을 통해 “여학생만 6명 조사중”이라면서 “다친데는 없고 씩씩하다. 민변소속 변호사 접견을 한 상태. 가급적 빨리 풀어주라고 당부하고 나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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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동발굴·공동전시 ‘개성만월대 특별전’

망국의 한 달래던 ‘황성옛터’, 통일의 ‘만월대’로[친절한 통일씨] 남북 공동발굴·공동전시 ‘개성만월대 특별전’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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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2  19: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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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남북 공동조사 발굴 당시 만월대 고려 왕궁터 현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망국의 한을 달래던 노래에 등장했던 ‘황성옛터’를 남북이 공동으로 복원, ‘개성 만월대’ 발굴 유물에 대한 전시회가 처음으로 서울과 개성에서 동시 개최된다.

‘남북 공동발굴 개성 만월대 특별전 및 개성 학술토론회’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위원장, 최광식)가 정부의 광복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며, 북측 민족화해협의회가 함께 한다.

서울에서는 오는 13일 저녁 개막식을 시작으로 14일부터 11월 6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전시회가 개최된다.

이 전시회에서는 고려 첨성대 조형물을 배경으로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의 의의가 설명되고 3D 홀로그램 등의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발굴유물을 볼 수 있다.

특히 만월대 터 모형, CG영상, 기록물 등을 통해 발굴조사 현장에 대한 이해를 돕고, 가상현실 헬멧 디스플레이(HMD, Head Mounted Display) 기술을 통해 만월대 현장에 다녀온 듯한 실감을 얻을 수 있다.

또 일제시대에 출토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개성 만월대 유물들도 전시된다.

북측 개성지역에서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개성 고려박물관(고려 성균관) 별도 전시장에서 전시회가 개최되며, 전시회 개막일인 10월 15일에는 남·북의 전문가가 참가한 가운데 학술토론회도 개최된다.

개성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도자기, 접시, 막새, 잡상 등 100여 점의 만월대 출토유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만월대 터 모형, 3D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한국 소재 개성 만월대 유물 등을 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 사업은 남측 남북역사학자교류협회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가 주체가 되어 고려왕궁 만월대 터 약 25만㎡ 중 서부 건축군 3만3,000㎡를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하는 사업으로, 지난 2007년 첫 삽을 떴다.

이후 남북간 교류·협력사업이 소원했던 2010년까지 네 차례 공동 발굴·조사 사업이 실시됐으며, 2011년에는 수해를 입은 건물지, 석축의 복구작업을 공동으로 벌였고 지난해 7월 사업을 재개해 올해 6개월에 걸쳐 복원사업을 진행했다.

지난해까지 총 1만 1천700여㎡를 발굴, 사업 진척률 35.5%에 달하고 있으며, 고려시대 원통형 청자와 명문 기와 등 유물 총 1만여 점을 수습하고 정전과 경령전 등 건물터 20개동의 배치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시회에 앞서 만월대의 이모저모를 미리 살펴본다.

   
▲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 현황도.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만월대는?

   
▲ 개성시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만월대는 고려왕조 개국부터 멸망에 이르는 470여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됐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만월대(滿月臺)는 개성시 서북쪽에 있는 송악산의 남쪽 기슭인 송악동 부근에 위치한 고려 궁성과 황성, 즉 왕궁터이다.

원래는 왕이 정사를 보던 곳인 희경전을 중심으로 한 여러 궁궐이 있던 대지를 말하는데, 총면적 125만여㎡에 궁성 면적은 약 39만㎡에 달한다.

궁성에는 궁궐들이 있었고 황성에는 고려의 중앙 관청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황성 안에는 구정이라고 불리던 넓은 마당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격구를 비롯한 체육경기도 하고 군사들의 열병식도 열렸다.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따르면, 만월대는 처음에 보름달을 바라보는 누대라는 의미에서 망월대로 불렸는데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망월대를 만월대로 부르게 되였으며 점차 고려 왕궁터 전체를 통칭하는 대명사이자 지명으로 자리잡게 됐다.

고려 왕궁터를 만월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가 아니라 조선왕조 때부터라고 한다.

고려 왕조(918~1392)는 건국 이듬해인 919년 1월 현재의 철원에서 송악산 남쪽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전신인 태봉국이 건설한 ‘발어참성’을 그대로 왕궁으로 이용하면서 만월대를 처음 건설했다.

건국 이후 940년까지는 수도를 서경(평양)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초기에는 만월대의 규모를 크게 늘리지 않았다가 고려 제4대 왕인 광종 12년, 961년 수영궁궐도감을 설치해 본격적으로 궁궐공사를 벌였다.

919년 처음 건설된 이후 고려 말기인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전부 불탈 때까지 만월대는 470여 년 동안 고려왕조의 왕궁으로 이용되다 이후 지금까지 터만 남아있다.

지난 2013년 6월 개성시 역사유적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당시 북측 매체들이 소개한 바에 따르면, 현재 개성시 인구는 약 30만 명인데 고려시기 수도로 번성할 때는 70만 명이나 살았다고 한다.

고려시기 예성강 하구 무역항인 벽란도에서 개경(현재 개성)까지 점포가 빼곡히 늘어서 있어서 비를 맞지 않고 올 수 있을 만큼 개성은 대단히 발전한 대규모 상업도시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25만㎡에 달하는 거대한 왕궁터 마당 앞에는 웅장한 4개의 돌계단과 일부 성벽만 남아있지만 배수체계가 얼마나 정연했는지 지금도 장마 때면 그 물길을 따라 물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 확인된 만월대의 구조와 주요 건축물

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만월대는 축대를 높이 쌓고 그 위의 경사면에 건물들을 계단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여러 개의 건물들이 하나의 건축군으로 묶여지고 건물의 지붕이 층층으로 나타나게 되어 웅장하게 돋보이도록 되어 있다.

만월대 중심 건축군의 맨앞에는 길이가 60m를 넘고 높이가 7.8m 되는 웅장한 축대가 있으며, 이 축대에는 중심 건축군으로 오르는 33단의 커다란 돌계단 4개가 있다.

이 위에 회경전, 장화전, 원덕전을 중심축으로 하여 여러 건물들이 규모 있게 배치되어 있다.

기본정전인 회경전 터는 동서 약 60m, 남북 약 100m의 네모난 회랑으로 둘러막혀 있는데 앞면이 9칸, 옆면은 4칸이다.

만월대 중심축대 동쪽에는 동궁터, 서쪽에는 건덕전터, 침전터 등 수많은 건물터들이 있다.

고려때 천문기상을 관측하던 유적인 개성첨성대도 이곳 황성 서쪽구역에 자리 잡고 있다.

북측은 고려 왕궁의 규모와 배치, 건물들의 평면구조와 짜임새가 고구려와 매우 비슷하다며, 만월대 유적은 고려의 고구려 계승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13년 6월 23일 만월대를 비롯한 개성시 12개 역사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후 <노동신문>은 만월대 왕궁 궁궐을 크게 중심 건축군과 서부 건축군, 동부 건축군으로 나뉜다고 소개한 바 있다.

신문에 따르면, 중심 건축군은 3개의 큰 궁궐 건물과 기타 부속건물들로 구성돼 있는데, 중심 건축군의 궁궐에서는 국가적인 행사들과 조회, 사신맞이가 진행됐으며 전쟁과 같은 중요 국사들도 논의됐다.

중심 건축군 터는 남북의 공동 발굴에 의해 이미 전모가 거의 드러났다.

   
▲ 왕궁의 궁궐들은 크게 중심, 서부, 동부 건축군으로 나뉘는데, 중심 건축군터는 거의 발굴이 끝났다고 한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당시 유행하던 풍수이론에 따라 명당자리로 선택된 만월대.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중심 건축군의 맨앞에 길이가 60m를 넘고 높이가 7.8m나 되는 웅장한 축대가 있다. 33단으로 된 4개의 계단을 오르면 기본 정전인 회경전이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기본 정전인 회경전 앞 축대의 측면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중심 건축군 터의 서쪽 낮은 지대에는 20여채의 궁전건물들이 있었던 서부 건축군 터가 있다.

여기에는 회경전 다음가는 지위에 있던 정전인 건덕전이 있었다. 고려왕들은 중요한 행사나 의식, 중대한 국사토의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보통 건덕전에서 정사를 보았다.

이곳에는 그밖에도 선정전(편전-왕이 일상적으로 사무를 보는 궁전의 한 부분), 중광전(편전), 연영전(편전), 장령전(편전), 자수전(편전), 만령전(침전-왕의 침실이 있는 궁전의 한 부분)과 같은 많은 궁전들과 사당, 절들도 있었다.

서부 건축군의 대부분은 아직도 땅속에 묻혀있는데 그 일부는 발굴에 의해 드러났다.

중심 건축군 터의 동쪽 낮은 지대에는 동부 건축군 터가 있다. 여기에는 세자궁인 수춘궁이 있었고 수춘궁에는 대문들인 춘덕문과 원인문, 육덕문 그리고 수춘전, 건명전을 비롯한 여러 궁전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발굴자료와 문헌기록들에 따르면, 왕궁 건물들은 전통적인 민족건축 양식인 목조건물로 왕궁으로서의 지위에 어울리게 웅장 화려하게 건설됐다.

궁전지붕은 모두 푸른 유약을 발라서 구운 청기와를 씌웠고 건물들은 금, 은, 동을 비롯한 금속재료로 장식을 했으며 갖가지 색깔의 옻칠을 하여 사치스럽게 꾸몄다.

고려왕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재건 확장됐으며, 유적주변에는 천연기념물로 유명한 만월대 느티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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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행사의 의미

김정은이 선보인 애민정치와 G2외교<초점> 북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행사의 의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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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1  23: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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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 및 군중시위가 진행됐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은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 및 군중시위, 청년들의 횃불시위가 성대하게 진행됐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열병식 및 군중시위에서 육성연설을 통해 90여회나 ‘인민’을 언급하는 등 애민정치를 강조했으며,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과 나란히 주석단에 올라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

또한 외부의 우려와 달리 당창건 기념일을 전후해 인공위성 발사나 핵실험 등을 하지 않았고, 김 1비서 연설에서도 ‘핵무력’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이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수 있”다고 미국과 분명한 대립각을 세웠다.

김정은 연설 핵심 키워드는 ‘인민’

   
▲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당창건 70주년 축하연설을 하고 있다. [캡쳐사진 - 조선중앙TV]

통일부는 김 1비서의 연설에 대해 “노동당의 인민제일주의에 방점을 두고 ‘인민사랑’ 강조에 대부분을 할애”했다며 “연설 서두부터 ‘인민에 대한 깊은 감사’로 시작해서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 다짐’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고 요약했다.

실제로 김 1비서는 “사랑하는 전체 인민들에게 당창건 일흔돐을 맞으며 조선로동당을 대표하여 깊이 허리숙여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삼가 드립니다”라고 인사했고, “조선로동당은 인민대중과 혼연일체를 이룬 불패의 당”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인민대중제일주의이며 우리 당의 존재방식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것”이라면서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정치’라고 정식화했다.

김 1비서는 조선노동당 70년사 총화를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라며 “우리 당은 앞으로도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의 3대전략을 제일가는 무기로 틀어쥐고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매진할것이며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수할것”이라고 인민중시를 당의 3대전략의 하나로 천명했다.

앞서, 김 1비서는 당창건 70주년에 즈음해 지난 4일 ‘위대한 김일성, 김정일동지 당의 위업은 필승불패이다’를 발표,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를 제기한 바 있다.

또한 “전당적으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를 반대하는 투쟁을 강도높이 벌려 주체의 혁명적당, 어머니당의 본태를 고수하고 인민대중의 요구와 리익을 철저히 옹호보장하여야 한다”고 제시했지만 이번 육성연설에서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통일부는 “김정은은 축하연설에서 ‘인민사랑’을 반복하여 언급함으로써 애민지도자 이미지 구축 계기로 적극 활용”했다고 평가하고 “당창건 행사 노력동원 등으로 인한 민심이반 우려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시진핑 총서기 친서 전달, 북중 ‘당대당 우의’ 복원

   
▲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9일 평양 백화원에서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을 접견했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김정은 제1비서의 연설이 ‘인민’으로 일관했다면, 이번 당창건 70주년 기념행사는 중국공산단 대표단을 이끌고 온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의 행보를 통한 북중관계 개선이 하이라이트였다 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취임을 앞둔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실시 등으로 어그러진 북중관계는 최근까지 제대로 복원되지 못한 상태로 지속됐고, 중국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 상무위원 방문은 김정은 시대 중국 최고위급 인사의 방문이다.

중국공산당 서기처 서기를 겸하고 있는 류윈산은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과 장예쑤이(張業遂) 외교부 당 서기(상무부부장) 등을 대동하고 9일 밤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1비서를 접견하고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비서의 친서를 전달했다.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인 ‘당 대 당’ 우의를 복원한 셈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친서를 통해 “양측 지난 세대 지도자들이 만들고 길러온 중조(북) 전통우의는 쌍방 공동의 귀중한 재부로서, 우리는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면서 “중국 당과 정부는 중조관계를 고도로 중시하고, 전략적 높이와 장기적 각도에서 중조관계 발전을 대하며, 양국관계를 지키고 다지고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총서기가 친서에서 김정은 1비서의 중국 방문을 제안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류윈산 상무위원도 “우리는 조선과 한 길에서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력강화’ 정신에 따라 양측 고위층 교류를 강화하고 각 계층 및 영역 교류를 증진하며, 양자 경제무역 실무협력을 촉진하여 중조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길 바란다”고 말해 북중 우의관계를 상징하는 ‘전통계승 미래지향 선린우호 협력강화’ 16자 정신을 재확인했다.

김정은 1비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가 남긴 최대의 외교 유산은 중조우의”라며 “조선은 중국과 함께 긴밀한 고위층 교류를 유지하고 각 영역의 교류와 실무협력을 강화하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북측에서는 김기남, 김양건 당 비서 등이 배석했다.

류윈산 상무위원은 카운터파트 격인 최룡해 당 비서와 회담하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도 면담했으며, 10일 오후 열병식 및 군중시위 때 김정은 1비서 바로 옆자리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 등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

“미국과 어떤 전쟁도 가능”

   
▲ 당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첨단무기들이 선보였지만 2012년 4월 열병식보다 규모가 축소됐다. [캡쳐사진 - 노동신문]

이번 당창건 7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인공위성 발사와 같은 특별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고, 열병식에서도 위협적 무기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병력은 2012년 김일성 생일 100돌 열병식보다 대규모이면서 장비 규모면에서는 적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김 1비서는 류윈산 상무위원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조선은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에 노력하고 있어 평화롭고 안정적인 외부환경이 필요하다”며 “조선은 계속 남북관계 개선과 반도 정세의 안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관련국들의 공동노력을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1비서는 열병식 연설에서도 ‘핵무력’에 대해 직접적 언급을 삼갔다. ‘혁명적 무장력’이나 ‘경제 국방 병진노선’ 등은 거론했지만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은 것.

다만, 개량형 KN-08에 대해 대내용 방송인 중방에서는 “다종화되고 소형화된 핵탄두를 탑재한 위력한 전략로케트들”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 1비서는 연설 중 군대중시 분야에서 “우리 당은 오늘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이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수 있으며 조국의 푸른 하늘과 인민의 안녕을 억척같이 사수할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다는것을 당당히 선언할수 있다”고 미국과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또한 “세계제패야망에 환장한 미제는 참혹한 전쟁을 강요”했고, “전대미문의 제재와 봉쇄로 앞길을 가로막았다”고 비난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대체로 대외관계가 조용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며 “북중관계 개선을 토대로 중국을 통해 북미관계 개선으로 나아가려는 구상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중국과 전통적인 ‘당 대 당 우의’를 회복해 관계개선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의 전략적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G2(Group of 2, 미국과 중국) 시대에 부응하는 ‘김정은식 G2 외교’의 시작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대표단도 기자단도 없었다

   
▲ 재미동포 신은미씨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당창건 70주년 행사를 취재해 현지에서 사진을 송고했다. [사진출처 - 신은미 페이스북]

이에 비해 김 1비서는 남북관계에 대해 “우리 당은 일심단결과 선군의 위력으로 외세의 온갖 방해책동을 단호히 물리치면서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날을 앞당겨오기 위하여 적극적이며 꾸준한 노력을 기울일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재천명했다.

지난 8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를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을 통해 극적으로 타결한 ‘8.25합의’가 마련된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한숨을 돌린 측면도 있지만, 남측 보수정부와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수준이 낮아진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창건 기념행사로 ‘올 스톱’되다시피 한 남북 당국과 민간의 접촉과 교류도 서서히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실제로 민간에서는 12일부터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회의가 금강산에서 열리고 13일부터 개성 만월대 발굴 유물 남북 공동전시가 시작된다. 남북 불교도들은 15일 금강산 신계사 복원 8주년 합동법회를 신계에서 개최하고, 10월말 남북노동자통일축구, 11월 7대종단 수장 방북 등으로 이어진다.

남북 당국간 회담은 아직 가시화된 것이 없지만 8.25합의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이 22~26일 금강산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돌발변수가 없는 한 남북 당국간 접촉도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원선 2단계 DMZ(비무장지대) 구간 복구공사를 위한 남북 군당국 간 협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의 당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20여개국 대표단과 10여개국 20여개 언론사가 초청된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파악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정부의 대표단이나 기자는 단 한명도 방북하지 못했다.

이례적으로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쓴 재미동포 신은미 씨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행사 취재에 나서 현장사진들을 현지에서 송고해 남북 언론교류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김정은 식 애민정치와 G2외교가 본격화될 경우 자칫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을 통해서만 한반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수세적 위치에 처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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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전쟁범죄는 악질적인 범법행위> ... 평화미국원정 57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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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의 전쟁범죄는 악질적인 범법행위> ... 평화미국원정 57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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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미국원정단은 미국원정을 시작한지 57일째되는 9일 백악관과 웰스파고(Wells Fargo(민영))은행 앞에서 연대시위를 전개했다.
     
    이날 정오 카톨릭워커(Catholic Worker)회원을 비롯한 반전평화활동가들은 17년동안 매주 금요일 백악관앞 연대시위를 진행해왔던 것처럼 이전과 마찬가지로 백악관앞 연대시위를 이어갔으며 원정단도 동참했다.
     
    카톨릭워커의 한 회원은 <지난3일 미군이 아프가니스탄북부 쿤두즈의 국경없는의사회병원을 폭격해 최소 19명이 숨졌다.>며 미국의 잔인함에 대해 강력 규탄했다. 그는 <미군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전쟁범죄는 악질적인 범법행위다. 전쟁범죄가 지속되는 한 평화는 절대 찾아올 수 없다.>며 <미군의 전쟁범죄를 알리기 위해 피켓을 새로 만들어왔다.>면서 관광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반전평화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보건의료단체인 귀메딕(Guimedic)회원들은 원정단의 피켓에 큰 관심을 보이고 탄저균문제에 대한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으며 반전평화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여 각자의 나라에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오랫동안 시위대와 함께 토론을 벌였으며 수차례 사진을 찍었다. 
     
    귀메딕의 한 회원은 <원정단의 투쟁과 우리의 목표는 큰 범위에서 다르지 않다. 원정단의 투쟁소식과 미국에 의해 밀반입된 탄저균 등 코리아상황을 곳곳에 전하고 공유하겠다.>며 <멕시코도 7년전부터 100곳이상의 미군기지에 미군이 주둔해있다. 전쟁을 부추기고 코리아의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미군은 당장 남코리아에서 나가야한다.>며 힘찬 응원을 보냈다.
     
    귀메딕는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케냐 등 전세계 300여명의 젊은 의료계 청년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의료, 빈곤, 인권, 환경 등 각 나라의 처한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자는 취지로 2011년에 만든 국제단체다.
     
    뉴욕에서 관광온 한 부부는 <코리아분단이 70년간 이어져오다니 정말 안타깝다.>며 <미국은 중국과 남코리아, 일본 등 복잡한 외교정치로 이곳저곳에 손을 대며 거짓뉴스를 만들고 세계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면서 원정투쟁에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은행이 투자설립한 민영교도소 문제 심각
     
    이어서 원정단은 매주 금요일오후 웰스파고은행앞에서 민영교도소운영반대와 이를 후원하는 주요은행들을 규탄하는 활동가들의 피켓시위에 함께 했다.
     
    한 활동가는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범죄와 재소자를 양산하고 수용시설이 부족해 형벌이 끝나기도전에 재소자들을 출감시킨다. 이는 범죄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며 <또 1980년대부터 민영교도소가 설립돼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등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민자, 마약소지자, 흑인 등이 각종범죄를 저질러 2만3000여명이 민영교도소에 수감돼있다.>며 <그들은 시민들이 저축한 돈으로 운영되는 4대은행이 자금을 투자해 설립한 민영교도소에 갇혀있다.>고 폭로했다.
     
    또 다른 활동가는 <3년전에 존 케리 하원의원 사무실에서 반전평화시위를 전개한 덕분에 민영교도소에 갇힌 적이 있다.>며 <민영교도소는 시민들이 은행에 저축하면 이 돈으로 교도소를 운영하는 시스템으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고 분노했다.
     
    한 여성활동가는 <미국에서 16세이상의 흑인중 30%이상이 범죄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인종차별에 따른 범죄가 심각하다.>며 근복적 해결책 없이 반복되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개탄스러워했다.
     
    한편 미국의 민영교도소중 북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RCI(the Rivers Correctional Institution)는 가장 큰 교도소로 알려졌으며 이를 운영하는 곳은 GEO그룹과 CCA(the Corrections Corporations of America)이다. 그곳을 후원하는 주요3대은행이 웰스파고, 뱅크오브아메리카, 선트러스트뱅크스(SunTrust Banks)다.
     
    남코리아의 민영교도소는 소망교회에서 투자설립한 아가페법인의 소망교도소가 경기도 여주에 위치해 있으며 황교안국무총리가 아가페법인의 이사로 등재돼 있어 총리인준청문회에서 소망교도소 설립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궁에 크게 문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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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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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통한 박근혜 정권 연장의 꿈 막아야”···청년·대학생들 촛불·농성

 

청년·대학생단체, 역사 국정교과서 반대 농성···12일 정부 발표 예고에 긴장 고조

최지현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10-12 00:17:39 이 기사는 현재 건 공유됐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 교육부가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둔 11일 저녁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대학생겨레하나, 청년독립군, 평화나비네트워크, 한국청년연대, 청년하다 등 청년대학생단체 회원들이 친일 미화, 독재미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 농성 집회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 교육부가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둔 11일 저녁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대학생겨레하나, 청년독립군, 평화나비네트워크, 한국청년연대, 청년하다 등 청년대학생단체 회원들이 친일 미화, 독재미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 농성 집회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청년·대학생들이 직접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이 장기 집권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려고 한다며,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막기 위해 촛불집회·농성 등 긴급 행동에 돌입했다.

대학생겨레하나·청년독립군·청년정치로·평화나비네트워크·한국청년연대·한국대학생연합·정치공동체 청년하다 등 청년·대학생 단체들은 11일 저녁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친일미화, 독재미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집회를 열었다.

"역사왜곡 교과서의 국정화, 박근혜 정권의 정권연장 꿈"
청년과 대학생들, 한 목소리로 성토

이 자리에 참여한 ‘청년독립군’ 성희연(이화여대·25) 대표는 “이번 국정교과서 문제는 2013년 (뉴라이트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 문제에서 이어진 것을 잘 아실 것”이라며 “그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하나도 없으니, 정부가 이번에는 이를 국정교과서로 추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검정을 통해 만들어진) 교학사 교과서와 달리,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하겠다고 하면 국회 동의 절차 같은 것이 없어도 되는 것이라 우리가 힘을 모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면서 “청년단체들과 역사단체들 모두 힘을 모아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꼭 막아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청년정치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철우(32)씨는 “역사왜곡 교과서의 국정화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의 정권연장의 꿈 아닌가”라며 “정권 입맛에 맞는 역사를 배운 청소년들이 나중에 유권자가 되면 자신들의 표로 확보될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인 꿈을 갖고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20·30대도 나선 것”이라고 참가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과학기술대 ‘대학생겨레하나’에서 활동 중인 김혜빈(14학번) 회장은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울 때 선생님이 ‘역사는 주관적이다, 승자의 시선에서 배울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우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과 미국 뒤에서 분단된 조국을 만든 이승만 중에 누구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지, 5.18광주민주화운동과 5.16군사쿠데타 중 어느 편에 서서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평화나비네트워크’ 김샘(숙명여대·24) 대표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이념 논쟁을 할 게 아니라 나쁜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역사로 기억되고 공감대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것은 한국 정부가 제대로 교육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권 입맛에 맞는 잘못된 역사만 가르치려는 것은 역사의 퇴행이고 독재로의 회귀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청년연대’ 윤희숙 대표는 “얼마 전 20·30대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88%가 '있다'고 했다더라. 그 첫 번째 이유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었다”며 “청년들이 진짜 부끄러워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과거 친일에 부역하고 독재정치에 빌 붙어 호위호식한 사람들이 벌을 받지 않고 금수저 물고 태어나 아직도 떵떵거리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년들은 (대한민국이) 그냥 부끄러운 게 아니라 죄를 짓고도 부끄러울 줄 모르는 청와대, 국회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나라를 바꾸는 것의 시작이다. 청년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 교육부가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둔 11일 저녁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대학생겨레하나, 청년독립군, 평화나비네트워크, 한국청년연대, 청년하다 등 청년대학생단체 회원들이 친일 미화, 독재미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 농성 집회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 교육부가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둔 11일 저녁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대학생겨레하나, 청년독립군, 평화나비네트워크, 한국청년연대, 청년하다 등 청년대학생단체 회원들이 친일 미화, 독재미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 농성 집회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아빠는 군사쿠데타 딸은 역사쿠데타"
현직 고등학교 교사도 나와 일침...참가자들 밤샘 농성

청년·대학생들이 참여한 만큼 집회에서 잇따라 터져 나오는 구호도 톡톡 튀었다. 이들은 “아빠는 군사쿠데타 딸은 역사쿠데타, 국정교과서 중단하라” “지금은 유신시대가 아니다, 국정교과서 반대한다” “친일교과서 싫어요 독재교과서 싫어요” 등의 구호를 힘껏 외쳤다.

이날 촛불집회에선 ‘국정교과서’ 다섯 글자로 오행시를 짓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국’가를 망치는 ‘정’말로 악랄한 ‘교’육부의 횡포에 맞서 ‘과’거를 지키고자 끝까지 싸울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오행시로 주목을 받은 이는 다름 아닌 현직 교사였다.

이날 촛불집회에 참여한 한양공고의 한 역사 교사는 “저는 교사로서 교과서 자체를 국가가 독점하고 교사의 교재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이렇게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설사 교과서가 수업의 중심이 아니고, 교사들이 합당한 수업을 이끌어나간다고 해도, 결국 학생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역사 교과서일 것”이라며 “정권에 따라 교과서가 그때마다 달라진다면 과연 우리에게 역사가 있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가진 힘으로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현직 교사의 발언에 참가자들은 “선생님 멋지다”고 응원했다.

촛불집회가 끝난 뒤엔 같은 장소에서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실장이 역사 관련 거리강연회를 연다. 참가자들은 이후 청와대 앞 밤샘 1인 시위와 노숙농성을 이어간다.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공식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12일 오전 7시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알리는 선전전을 벌이고, 오전 9시에는 ‘국정화 저지 결의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한편, 교육부는 12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전환을 골자로 한 ‘중등 교과용 도서의 국검정인정 구분안’ 행정예고를 하기로 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이날 오후 2시 직접 브리핑을 갖고 국정화로 결정된 배경과 추진계획을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화가 확정되면 2017년 중.고등학교 신입생부터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통합교과서’ 형태로 배우게 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 교육부가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둔 11일 저녁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대학생겨레하나, 청년독립군, 평화나비네트워크, 한국청년연대, 청년하다 등 청년대학생단체 회원들이 친일 미화, 독재미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 농성 집회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 교육부가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둔 11일 저녁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대학생겨레하나, 청년독립군, 평화나비네트워크, 한국청년연대, 청년하다 등 청년대학생단체 회원들이 친일 미화, 독재미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 농성 집회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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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전국대학생위원회 “史교과서 국정화? 제2의 독립운동 펼칠 것”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0/12 05:04
  • 수정일
    2015/10/12 05:0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대위, 史교과서 국정화 저지 전국 각 지역 대학생들과 연대 방안 검토 중

   
▲ 새정치민주연합 전국대학생위원회 한채훈 대변인 <사진제공=전대위>

새정치민주연합 전국대학생위원회(이하 전대위)가 “정부와 여당이 한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면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역사왜곡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전대위 한채훈 대변인은 10일 논평을 내고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진실은 오직 하나”라면서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을 만들지 말라”며 이 같이 말했다.

한 대변인은 “최근 입학한 대학생들은 검정제로 발행된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서 역사공부를 해왔다”면서 “특히 검정제를 통해 다양화 된 교과서들이 이전보다 독립운동사를 비롯한 여러 중요 사건들에 대해 훨씬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음을 학생들은 몸소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한국사에 대한 다양화 된 서술을 원천봉쇄하고, 정부권력의 입맛대로 저술할 염려가 다분한 국정화 된 교과서의 발행을 강행하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교육부가 한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면 대학생들은 역사를 지켜온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의 뜻을 받들어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역사왜곡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히며 “그것이 대학생 스스로가 역사에 죄를 짓지 않는 길이라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한 대변인은 아울러 “지금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 곳곳의 대학생들을 비롯한 중․고등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학생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교육부 본연의 업무이자 책임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 대변인은 “기어이 한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면 김국민 새정치민주연합 전국대학생위원장과 국정화 저지에 대한 뜻을 함께하는 전국 각 지역의 대학생들과 연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공동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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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지도에서 독도 사라진 이유

 
[인터뷰]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식민사학 극복은 일제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
 
입력 : 2015-10-09  02:32:52   노출 : 2015.10.11  09:28:03
장슬기 기자 | wit@mediatoday.co.kr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든 동북아역사지도 중 고대사 부분이 논란이다. 지난 4월17일 국회 제32차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동북아특위)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비판의 초점은 한 군현(한사군)을 한반도 안에 표시한 것과 독도가 표시되지 않은 것 등이다.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에 근거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이날 동북아특위에서 동북아역사재단 편찬위원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는 “한사군 한반도설은 동북공정을 따른 것이 아니라 여러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이고, 독도 표기 누락은 실수”라고 답했다. 임 교수는 동북아역사지도는 오는 2018년까지 완성될 계획이므로 여러 지적을 검토해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동북아역사재단이 보낸 이런 내용의 지도가 실렸다는 점도 지적됐다. 같은 지적은 지난 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나왔다. 이에 동북아역사재단 김호섭 이사장은 “이 일은 2012년 12월에 완료가 된 사항”이라며 “이런 지적에 대해 수용하고 있고, 앞으로 수정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국정감사 다음날인 지난 6일 동북아역사재단은 입장을 바꿔 뒤늦게 해명자료를 냈다. 해명의 핵심은 중국의 이해관계에 동조하는 게 아니라 중국의 왜곡된 주장을 논박하는 검토의견이고 미국에 보낸 문건은 한국 학계의 공인된 이해를 토대로 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중앙일보는 지난 7일 <동북아역사재단의 궤변>를 통해 “기관장조차 ‘학계에 통일된 견해가 없다’고 했는데 기관은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 등 일련의 언론기사를 둘러싼 논쟁은 뜨거웠다. 사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견해들에 격한 표현과 인신공격이 오갔다. 동북아역사지도 논란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7일 오후 연세대 사학과 하일식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국내 한국사 분야의 대표적 학회인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었다.

   
▲ 연세대 하일식 사학과 교수. 사진=장슬기 기자
 

하 교수는 “영광스런 고대사를 신앙처럼 여기는 분들과는 토론이 어렵다”며 “학계에서 이미 정리된 것을 대중 정서를 업고 황당하게 공격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하 교수에 따르면 낙랑군을 북경 근처라 주장하는 것은 재야사학자로부터 일찍이 나왔다. 그러나 학계의 일치된 의견은 평양설이다. 평양에 낙랑군의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이런 주장을 하면 저항적 의미를 가졌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근대적 민족관념에 입각하여 고대의 낙랑군을 부정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사실을 외면하면서까지 억지 주장을 펴면 학문의 영역을 벗어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김호섭 이사장은 “상고사의 논쟁은 건전하다”고 했지만 실제 누리꾼들의 고대사 논쟁은 인신공격이 대부분이다. 고대사 교수들이 논쟁에 적극 뛰어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 교수는 "2013년 8·15 경축사에 환단고기가 인용돼 이를 비판하는 칼럼을 미디어오늘에 실었다"며 "칼럼 게재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꽤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말했다. 

환단고기란 민족이 시작된 시점을 말하는 ‘환단’에 대해 쓴 오래된 이야기책이다. 환단고기는 책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고 ‘세계만방(世界萬方)’ ‘남녀평권(男女平權)’ 등의 근대적 표현이 들어 있어 학계에서 위서로 결론난 책이다.

하 교수도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의 자문역할을 했다. 주로 집중한 것은 삼국과 통일신라 시기이다.

- 누리꾼들 사이에서 동북아역사지도의 독도 유무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어떻게 봐야 하나?

“동북아재단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려는 쪽에서 꼬투리를 잡는 것 같다. 지도에 점과 선, 면으로 뭔가를 표시하는 기준은 자료에 나오는 인간 활동이다. 인간 활동이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도에 표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했다고 해서 곧 독도까지 우리 땅이 되었다는 것은 약간의 비약이다. 다만 지금도 울릉도에서 몇 년에 한 번은 맑은 날에 독도가 보이니까, 울릉도 주민이 파도를 이겨낼 수 있을 때 독도까지 가서 어로작업을 했을 개연성은 있겠다. 물론 이 당시에 일본 열도의 주민이 독도까지 어로 활동 무대로 삼았을 가능성은 훨씬 더 희박하다.”

- 그럼 동북아특위에서 임기환 교수는 독도 표기를 실수라고 한 것은 현재의 독도 영유권을 의식해서라도 표기를 했어야 하는데 이를 빠뜨렸다는 뜻인가?

“그런 듯하다. 당시 주민들의 활동기록에 독도가 없어서 깊이 고려하지 못했을 수 있다. 특히 독도는 아주 작은 바위섬 아닌가. 울릉도는 고려시대에도 기록이 이어지지만, 독도는 조선초기에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에서 비로소 확인되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혼란스런 내용으로. 그리고 그 이후에 조금씩 기록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19세기까지는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이 혼란스럽게 나온다. 명칭의 혼란은 일본 쪽 기록도 마찬가지이다. 독도 표기 문제는 국회와 언론 지적 이후 동북아역사지도에 표시된 것으로 안다.” (실제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최근 수정된 지도에는 독도가 표기됐다.)

- 동북아역사지도가 한사군 한반도설을 따랐다는 의견이 있다. (한나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킨 기원전 108년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을 설치하고 이듬해 현도군을 설치했는데 임둔과 진번은 20년 만에 폐지됐다.)

“임둔, 진번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의 정설이 없다. 다만 일찍이 그 위치를 성기게 추정한 경우가 이병도이다. 일본 학자는 한반도 남부로 추정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 학계에서는 분명한 자료가 없으니까 자세히 다룬 논문이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지도팀에서 자의적으로 새로 판단하기보다 기존 논문에 근거를 두는 쪽을 선택해서 이병도가 언급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다만 나 개인은 임둔, 진번의 위치 판단을 보류하는 입장이다.” (이병도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재직했던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현도군은 고구려에 쫒겨 여러 번 옮기지만, 처음 어디에 설치되었냐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낙랑군이 평양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일제 강점기에 ‘낙랑붐’이 일면서 위조 봉니(封泥, 죽간·목간 등 문서를 봉인할 때 쓰는 점토 덩어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정인보는 이를 지적하고 또 문서를 받은 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맞다고 했지만, 중국에서도 보낸 곳에서 발견되는 사례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평양 부근에는 벽돌무덤 등 중국계 유적과 유물이 다수 발견됐고, 1990년대까지 북한에서 발굴한 것들도 더러 있다. 이들 유적은 고조선 이래 토착세력이 남긴 유적, 유물과 공존하고 있다.

낙랑군이 어디냐를 놓고 감정적 논란이 이는 분위기가 연구자에게 거북하다. 고구려가 요서까지 진출하는데 그렇다고 중국 사람들이 껄끄러워해야 하나, 진흥왕이 황초령·마운령(함경도 일대)까지 진출하는데 함경도 사람들이 기분 나빠해야 하나? 물론 이해는 간다. 나라를 잃은 적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일제를 극복하려면 식민사학이 짠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일제는 한사군을 놓고 조선은 일찍부터 외부의 식민지였다, 타율적이다, 따라서 근대화도 일본의 힘을 빌어야 한다는 식의 식민사관을 퍼뜨렸다. 제국주의 침략을 고대의 정복 전쟁과 동일시하며 현실의 필요에 따라 고대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 전쟁과 정복은 흔한 일이었고, 오늘날 같은 민족의식도 없던 시대였다. 낙랑군 평양설을 식민사학이라 비난하는 쪽이야말로, 과거 일제가 유포한 프레임에 온전히 갇혀 있는 경우이다. 

낙랑군을 북경 근방으로 옮겨 주장해도 이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사실을 외면한 주장은 곤란하다. 식민사학 극복은 이 프레임을 넘어서는 일에서 출발한다. 우리 학계는 이미 이 단계를 넘어서서 고대사를 고대사 자체로 연구해 왔다. 동북공정에 대응할 학문적 명분도 여기 있었다.”

- 지난 5일 동북아역사재단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은 CRS보고서 55쪽 기원전 196년 고조선 지도에 “지명만 있을 뿐 위치에 대한 사료도 없는 진번과 임둔을 각각 황해도와 함경남도 남쪽 연안에 위치시켰다”며 “이보다 약 160년 뒤에 나오는 고구려(기원전 37년)를 나타내고 진번, 임둔과 같은 글씨체와 색으로 나타내 중국 속국처럼 표기했는데 보고서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어 오해를 부르기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임둔, 진번은 한 군현의 이름이기 이전에 위만조선 때 고조선의 세력권에 편입된 고조선 영토였다. 그 이전에는 독립세력이었다. 그러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에 군이 되는 것이다. 이를 오해한 것인가? 나는 CRS보고서를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언론에 나온 지도를 보면 고조선 영역 속의 일부로 표시되어 있어 역사적 맥락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또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에 성립했다고 했지만, 학계는 그보다 이전, 어쩌면 고조선 말기에 이미 윤곽을 드러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아마 이를 반영한 것 같은데 왜 잘못처럼 지적받는지 모르겠다.”

   
▲ 동북아역사지도. 자료=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실
 

반만년 역사가 수많은 침략으로 기록돼서일까, 식민지 경험의 피해의식 때문일까? 하 교수는 “광대한 영토, 영광스런 고대에 대한 환상이 있다”며 “민족국가나 영토가 지금과 같지 않은데 지금의 잣대로 고대사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조선의 대표 유물인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등을 통해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추정할 수는 있지만 경계선으로 그릴만큼 뚜렷한 영토를 지배했다는 설명이 현대의 관점이라는 뜻이다. 하 교수는 “고조선의 범위 안에 반(半) 독립적인 지역들도 많았다”며 “동북아역사지도에도 경계선을 그렸다. 선이나 면으로 표시하기 어려운 시대임을 모두가 알지만, 상황을 설명하는 방편으로 절충한 결과이다. 이 점은 자문회의에서도 거론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국회 동북아특위나 동북아역사재단 국감에 대한 재단의 태도에 대해 하 교수는 “고대사 연구하는 분들이 선비 스타일도 많고 자기 연구에만 파묻히는 분들이 많아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대응하지 못한 것같다”며 “연구자들이 비학문적 공격을 거북해하는 탓도 있다”고 말했다. 

고대사 논쟁이 뜨거운 이유 중 하나는 고대사를 현대 정치에 이용할 수 있어서다. 특히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하면,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중국이 북한에 연고권을 주장하게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 교수는 “그러면 낙랑군을 북경 근방으로 옮겨놓으면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중국이 망설이게 되나’라고 반문하고 싶다. 형식논리로 상상해 과도하게 만들어낸 걱정거리인 듯하다”고 했다. “만약 휴전선이 정치 군사적으로 유동적인 상황이 된다면 낙랑군이 문제이겠는가? 휴전협정에 서명한 나라는 북한, 중국, 유엔을 대표한 미국이다. 한국은 휴전협정 당사국에서 빠져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의 국제법상 발언권을 먼저 걱정하고 차후책을 구상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과거의 영광을 내세우며 ‘동일체 의식’을 강조하게 되면 사회 내부의 부조리와 모순, 갈등을 덮거나 억압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이런 식의 “동일체 의식 강조는 필연적으로 사회 내부의 소수자를 적으로 만들고, 희생을 강요하며 억압하거나 외부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 극단적 사례가 게르만 민족주의를 앞세운 나치즘, 신성한 천황제를 앞세운 일본 군국주의라는 것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7일 아침신문에는 당정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정짓고, 오는 13일 국무회의를 전후해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 교수는 지난 2013년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고 비판받았던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활동 뿐 아니라 최근 정부와 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하 교수는 “역사교육에 대한 문화적 권리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해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유엔 보고서의 내용이 와 닿는다”며 “이 보고서는 역사를 기념하려 들어서는 안 되고 단지 그 과정과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기념은 번역 표현인데 우리식으로 예를 들자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선양하는 역사 교육은 안 되며 객관적 사실들을 제시하고 자유로운 해석을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가 언급한 보고서는 지난 2013년 8월 제69회 유엔 총회에 제출된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에 관한 문화적 권리 분야의 특별조사관 보고서’인데, 그 핵심은 교과서의 종류를 하나로 하는 것은 퇴보적 조치이고, 특히 국가가 후원하는 교과서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어 위험하다는 내용이다. 

하 교수는 “세월호 침몰 이후 자주 나오는 말이 됐지만, 집권세력이 국정화를 단행한다면 학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우리도 이 땅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게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교육현장에서 정부 입맛에 맞춘 역사해석이 강요되는 것을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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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제1비서 <인민중시,군대중시,청년중시의 3대전략으로 조선혁명 완수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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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제1비서 <인민중시,군대중시,청년중시의 3대전략으로 조선혁명 완수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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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앙통신은 10일 <조선노동당창건 70돌경축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시위에서 하신 김정은동지의 연설>을 보도했다.

     

    김정은제1비서는 연설에서 <10월10일은 우리 조국과 인민에게 있어서 자기의 운명을 책임지고 이끌어주는 진정한 혁명의 전위대,전투적참모부의 탄생을 경축하는 의의깊은 혁명적명절>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제1비서는 <인민의 불같은 충정이 굽이치는 승리의 광장,경축의 광장에 서고보니 우리 인민을 떠난 오늘의 이 자리를 어떻게 생각이나 할수 있으랴 하는 인민에 대한 고마움에 지금 이 시각 경건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우리 인민들의 정겨운 눈빛들을 마주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장장 70년세월 그 어떤 광풍에도 끄떡없이 승리와 영광만을 아로새기며 혁명을 전진시켜올수 있은것은 우리 당을 운명의 전부로 믿고 따르며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위대한 인민이 있었기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제1비서는 <우리 당의 역사는 곧 인민이 걸어온 길이고,우리 당의 힘은 곧 인민의 힘이며 우리 당의 위대함은 곧 인민의 위대함이고 우리 당이 이룩한 승리는 위대한 우리 인민의 승리>라고 말했다.

     

    아래는 전문이다.

     

    조선로동당창건 70돐경축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시위에서 하신 김정은동지의 연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조선로동당창건 70돐경축 열병식 및 평양시군중시위에서 연설하시였다.
     
        연설전문은 다음과 같다.
     
        영용한 조선인민군 장병들과 조선인민내무군 장병들!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일흔돐경축 열병식에 참가한 열병부대 지휘관,전투원동무들!
     
        로농적위군과 붉은청년근위대 대원들!
     
        존경하는 평양시민 여러분!
     
        온 나라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
     
        해외동포들과 외국의 벗들!
     
        동지들!
     
        오늘 우리는 승리자의 크나큰 긍지와 환희에 넘쳐 조선로동당 당기가 창공높이 휘날리는 10월의 명절을 맞이하였습니다.
     
        10월 10일은 우리 조국과 인민에게 있어서 자기의 운명을 책임지고 이끌어주는 진정한 혁명의 전위대,전투적참모부의 탄생을 경축하는 의의깊은 혁명적명절입니다.
     
        오늘의 성대한 열병식과 군중시위는 우리 당이 장장 70년간 군대와 인민을 령도하여 억척같이 다져온 무진막강한 위력을 남김없이 보여줄것이며 조선로동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광명한 미래에로 용기백배,신심드높이 나아가는 천만군민의 혁명적기상을 만천하에 과시하게 될것입니다.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조선로동당의 성스러운 력사를 긍지높이 돌이켜보는 이 뜻깊은 자리에서 우리 당의 수백만 당원들과 전체 인민군장병들,인민들의 다함없는 경모와 충정의 마음을 담아 영광스러운 우리 당의 창건자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존엄높은 우리 당 조선로동당의 영원한 총비서이신 위대한 장군님께 가장 숭고한 경의와 영원무궁한 영광을 드립니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들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자기의 고귀한 모든것을 다 바친 항일혁명선렬들과 인민군렬사들,애국렬사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합니다.
     
        당에 무한히 충실한 우리 인민은 당창건 일흔돐을 혁명적대경사로 빛내이기 위하여 백두의 붉은 혁명정신으로 온갖 도전과 난관을 박차고 어머니당에 드리는 전례없는 로력적선물들을 마련하였습니다.
     
        인민의 불같은 충정이 굽이치는 승리의 광장,경축의 광장에 서고보니 우리 인민을 떠난 오늘의 이 자리를 어떻게 생각이나 할수 있으랴 하는 인민에 대한 고마움에 지금 이 시각 경건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우리 인민들의 정겨운 눈빛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 당이 장장 70년세월 그 어떤 광풍에도 끄떡없이 승리와 영광만을 아로새기며 혁명을 전진시켜올수 있은것은 우리 당을 운명의 전부로 믿고 따르며 당의 위업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위대한 인민이 있었기때문입니다.
     
        우리 당의 력사는 곧 인민이 걸어온 길이고,우리 당의 힘은 곧 인민의 힘이며 우리 당의 위대함은 곧 인민의 위대함이고 우리 당이 이룩한 승리는 위대한 우리 인민의 승리입니다.
     
        혁명의 준엄한 년대들마다 우리 당에 무한한 힘과 용기를 주었고 강인한 의지로 력사의 험한 풍파속을 뚫고오며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언제나 당과 운명을 함께 해준 사랑하는 전체 인민들에게 당창건 일흔돐을 맞으며 조선로동당을 대표하여 깊이 허리숙여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삼가 드립니다.
     
        나는 당의 호소따라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모든 전역에서 애국의 더운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치며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는 영웅적신화들을 련이어 창조하고 승리의 대축전장에 떳떳이 들어선 우리의 미더운 당원동지들과 영용한 인민군장병들,자랑스러운 청년전위들을 열렬히 축하하며 뜨거운 감사를 보냅니다.
     
        아울러 우리 인민의 경사의 날을 축하하여 여기에 참석한 여러 해외동포들과 외국의 벗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동지들!
     
        조선로동당의 력사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령도밑에 인민의 운명을 책임지고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온 자랑스러운 행로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우리 당을 인민을 위하여,인민대중과 한덩어리가 되여 투쟁하는 불패의 혁명적당,참다운 령도적정치조직으로 건설하시였습니다.
     
        우리 당은 자기의 붉은 기폭에 마치와 낫과 붓을 아로새긴 때로부터 인민과 한시도 떨어져본적이 없으며 언제나 인민을 하늘처럼 섬기며 혁명을 전진시켜왔습니다.
     
        력사에는 우리 혁명처럼 가장 간고하고 복잡한 조건에서 걸음걸음 혁명의 진퇴를 판가리하는 준엄한 시련과 역경을 헤쳐온 례는 없습니다.
     
        신생조선은 너무도 청소하였으나 세계제패야망에 환장한 미제는 참혹한 전쟁을 강요하였고 빈터우에서 허리띠를 조이면서 힘들게 복구하면 또 새로운 침략의 위험을 몰아왔으며 인민경제를 발전시키자고 하면 전대미문의 제재와 봉쇄로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은 그 어떤 곤경속에서도 항상 배심든든히 돌진하였으며 이 땅우에 거창한 전변의 새 력사를 펼치고 위대한 승리만을 안아왔습니다.
     
        력사의 돌풍속에서 우리 당이 믿은것은 오직 위대한 인민뿐이였으며 우리 인민은 조선로동당의 둘도 없는 지지자,조언자,방조자였습니다.
     
        지난날 세계혁명운동사의 교훈은 집권당이라고 하여,당의 력사가 오래다고 하여 저절로 령도적권위와 전투력이 높아지고 혁명을 잘 이끄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오늘 우리 당이 지닌 높은 권위와 쌓아올린 거대한 업적은 혁명 그자체를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정식화하시고 당건설과 당활동에 철저히 구현하여오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탁월한 혁명사상과 비범한 령도에 의하여 마련된것입니다.
     
        인민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오직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한 여기에 우리 당이 력사의 모진 광풍에도 흔들림없이 혁명의 방향타를 억세게 틀어쥐고 자주,선군,사회주의위업을 줄기차게 이끌어온 근본비결이 있습니다.
     
        조선로동당은 인민대중과 혼연일체를 이룬 불패의 당입니다.
     
        혁명령도의 전기간 우리 당은 나아갈 침로를 정할 때마다,준엄한 난국에 부닥칠 때마다 인민을 먼저 찾고 인민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였으며 인민의 진정에서 무궁무진한 힘을 얻군 하였습니다.
     
        전지전능한 인민대중의 창조력은 우리 당이 세기적인 락후와 빈궁이 지배하던 이 땅우에 자주,자립,자위의 강대한 사회주의성새를 일떠세우고 제국주의의 악랄한 봉쇄속에서 강국건설의 새시대를 열어놓을수 있게 한 기적의 원천이였습니다.
     
        우리 당에 있어서 인민들의 정치적생명과 물질문화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보아주는것은 한시도 소홀히 할수 없는 제일중대사로,본분으로 되여왔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판가리되는 최악의 시련속에서도 천신만고를 다하여 인민의 행복을 위한 귀중한 씨앗들과 사회주의재부들을 마련하고 인민적시책들을 변함없이 실시해온것은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우리 당만이 베풀수 있는 인민사랑의 정치입니다.
     
        우리 당이 언제나 인민대중을 생명의 뿌리로,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으로 여기고 인민의 리익을 최우선,절대시해온것으로 하여 우리 인민들은 당을 진정 운명의 등대로,어머니로 믿고 따르게 되였으며 이 땅우에는 일심단결의 대화원이 자랑스럽게 펼쳐지게 되였습니다.
     
        동지들!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로동당의 위력은 무진막강한 혁명무력을 가지고있는데 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총이 없는 백성은 망국노의 설음을 면치 못하며 혁명의 총대우에 인간의 존엄도 행복도 있다는 진리를 뼈에 사무치게 새긴 인민입니다.
     
        우리 당은 언제나 인민의 안녕과 생명재산을 믿음직하게 지켜낼수 있는 불패의 군력을 마련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어왔습니다.
     
        우리 당의 독창적인 자위로선과 선군정치에 의하여 인민군대는 그 어떤 침략세력도 단매에 때려부실수 있는 최정예혁명강군으로 자라나게 되였으며 전인민적,전국가적방위체계가 부단히 강화되여 지금 우리 국가는 금성철벽의 요새로,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전변되였습니다.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은 언제나 조국보위,혁명보위,인민보위의 위력한 보검이였으며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창조해나가는 힘있는 선봉대,돌격대였습니다.
     
        경제국방병진로선을 제시하고 조국수호와 사회주의건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과정에 우리 당은 모든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자체의 힘으로 전반적국력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동시에 인민생활도 향상시켜나가는 귀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침략과 전쟁으로 제 몸집을 비육시켜 온 횡포한 미제와 직접 맞서 수치스러운 패배만을 안기고 제국주의의 강도적인 제재와 봉쇄도 강행돌파해나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굴의 기상과 단합된 힘은 원쑤들을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고있습니다.
     
        우리 당은 오늘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이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수 있으며 조국의 푸른 하늘과 인민의 안녕을 억척같이 사수할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다는것을 당당히 선언할수 있습니다.
     
        동지들!
     
        조선로동당의 남다른 긍지는 혁명의 전도와 민족의 장래를 떠메고나갈 청년대군이 준비되여있는것입니다.
     
        우리 당은 창당 첫시기부터 혁명의 장기성을 내다보고 청년중시를 전략적로선으로 내세웠으며 청년들을 주체혁명위업수행의 맹장들로 키워왔습니다.
     
        전당이 일상적으로 청년교양에 힘을 넣고 청년동맹에 큼직큼직한 일감들을 대담하게 맡겨주면서 당의 청년전위로 내세워준 믿음과 사랑속에 우리 청년들은 혁명의 년대들마다 조국보위초소와 어렵고 힘든 부문에 진출하여 청춘의 슬기와 용맹을 남김없이 떨치였습니다.
     
        우리 혁명이 오늘까지 침체와 답보를 모르고 약동하는 생기와 활력에 넘쳐 줄기차게 전진하고있는것은 당을 따라 언제나 곧바로 나아가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강철의 청년대오가 있기때문입니다.
     
        이번에 우리 청년들이 애국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 당창건 일흔돐에 드리는 선물로 마련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를 비롯하여 나라의 방방곡곡에 일떠세운 자랑찬 청춘대기념비들은 조선로동당의 후비대가 어떻게 준비되고 조선혁명의 대가 어떻게 이어지고있는가를 힘있게 보여주고있습니다.
     
        우리 당이 청년들을 위해서라면 백만자루,천만자루 품도 아끼지 않았기에 오늘 우리 나라는 청년운동의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였으며 청년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세상에 둘도 없는 청년대강국으로 위용떨치고있습니다.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온 우리 당의 력사적로정은 당에 충실한 인민이 있고 강위력한 혁명군대와 청년대군이 있으면 그 무엇도 두려울것이 없고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뚜렷이 확증해주고있습니다.
     
        인민중시,군대중시,청년중시에 혁명적당의 생명이 있고 힘이 있으며 양양한 전도가 있다는것,바로 이것이 우리 당 70년사의 고귀한 총화입니다.
     
        우리 당은 앞으로도 인민중시,군대중시,청년중시의 3대전략을 제일가는 무기로 틀어쥐고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매진할것이며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수할것입니다.
     
        동지들!
     
        조선로동당은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입니다.
     
        조선로동당의 더없는 영광과 불패성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신데 있으며 전체 조선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는데 있습니다.
     
        우리 당이 조선을 이끌고 광명한 미래에로 힘차게 나아가자면 명실공히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당의 혁명적성격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백방으로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인민대중제일주의이며 우리 당의 존재방식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것입니다.
     
        우리 당은 력사상 처음으로 인민중시,인민존중,인민사랑의 정치를 펼치시고 한평생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성스러운 력사를 수놓아갈것입니다.
     
        우리 당은 당건설과 당활동을 오직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해나갈것이며 당사업전반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철저히 구현하여 전당이 인민에게 멸사복무하는것으로써 당의 전투력을 백배해나갈것입니다.
     
        조선로동당의 진모습은 당이 꾸려놓은 조국의 모습에 있고 언제나 행복에 겨워있는 인민의 모습에 있습니다.
     
        나라의 근본인 인민보다 더 귀중한 존재는 없으며 인민의 리익보다 더 신성한것은 없습니다.
     
        우리 당은 당을 진심으로 따르는 인민의 마음을 혁명의 제일재부로 소중히 간직할것이며 용감하고 슬기롭고 아름다운 우리 인민을 위하여 만짐을 지고 가시밭도 헤치며 미래의 휘황한 모든것을 당겨올것입니다.
     
        우리 당은 앞으로도 무한한 활력과 왕성한 열정으로 인민을 위해 정을 다하는 헌신의 당,변함없는 어머니당으로 자기의 무겁고도 성스러운 사명을 다해나갈것이며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와도 인민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자기의 본분에 무한히 충실할것입니다.
     
        조선혁명은 하늘이 주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편단심 당을 따르고 옹위하는 영웅적김일성-김정일로동계급을 비롯한 우리 인민의 위대한 힘에 떠받들려 전진합니다.
     
        당은 인민을 하늘처럼 존대하고 스승으로 여기며 인민은 당을 어머니와 같이 무한히 신뢰하고 따르는 우리의 일심단결이야말로 조선의 참모습이며 선군혁명의 천하지대본입니다.
     
        우리 일군들은 당의 인민존중,인민사랑의 뜻과 정을 심장에 가득 채우고 인민앞에 무한히 겸손하여야 하며 생눈길,진창길을 앞장에서 헤치면서 인민이 바라는 일을 한가지라도 더 찾아하여 로동당만세소리,일심단결만세소리,사회주의만세소리가 온 나라에 울려퍼지게 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 당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근로자들이 자기의 일터와 초소,마을을 당중앙위원회 뜨락과 같이 여기고 항상 당과 심장의 말을 나누며 당의 사상관철전,당정책옹위전에서 백옥같은 애국충정을 다해나가리라는것을 굳게 믿습니다.
     
        동지들!
     
        우리 당은 일심단결과 선군의 위력으로 외세의 온갖 방해책동을 단호히 물리치면서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날을 앞당겨오기 위하여 적극적이며 꾸준한 노력을 기울일것입니다.
     
        동지들!
     
        근로하는 인민이 영원하듯이 인민을 위하여,인민과 함께 투쟁하는데 영원한 정의와 승리가 있습니다.
     
        우리 당은 이민위천의 한생으로 인민을 키우시고 조선을 빛내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거룩한 사상과 업적을 귀감으로 삼고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하여 투쟁할것이며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실현해나갈것입니다.
     
        력사의 그 어떤 도전도,원쑤들의 그 어떤 발악도 당과 일심일체를 이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것이며 당의 혁명사상과 백두의 칼바람을 전진의 원동력으로 하고 존엄높은 우리의 붉은 당기를 돛으로 삼아 휘황한 미래를 향하여 폭풍쳐 내달리는 조선인민의 투쟁속도를 지연시키지 못할것입니다.
     
        세계는 조선로동당이 위대한 우리 인민의 힘과 슬기를 총폭발시켜 강성번영하는 천하제일강국,백두산대국을 어떻게 일떠세우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것입니다.
     
        성스러운 우리 혁명의 이름과도 같고 70년의 승리의 력사와도 같은 인민을 하늘처럼 받드는 위대한 조선로동당이 우리 혁명을 이끄는 기관차가 되고 력사의 전철기를 쥐고있기에 영원히 주체혁명위업의 대로는 승리와 영광의 길로 펼쳐지게 될것입니다.
     
        전체 당원동지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모두 위대한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해나아갑시다!
     
        불패의 당,조선로동당의 두리에 일심단결된 위대한 조선인민 만세!
     
     
    조선중앙통신 2015.10.10

     

    이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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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나비 네트워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하라!” 광화문 시위

허수영 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10-10 17:48:32 이 기사는 현재 건 공유됐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하는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앞에서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학생들이 친일 독재 정당화 역사 강요하지 말라 STOP 국정교과서 스탑모션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하는 가운데 10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앞에서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학생들이 친일 독재 정당화 역사 강요하지 말라 STOP 국정교과서 스탑모션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정부가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대학생·청년 단체들의 반대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단체인 ‘평화나비 네트워크’는 10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화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국정화 시도는 ‘뉴라이트 역사교과서’가 많은 국민의 반대로 일선 고교에서 채택되지 않아 취한 정부의 무리수"라며 "획일적 역사교육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정화는 정권이 역사 해석과 교육에 개입함으로써 헌법이 규정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중립성과 언론·출판·학문의 자유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평화나비 네크워크는 이어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도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한편 한국청년연대, 흥사단전국청년위원회 등도 이 단체와 함께 11∼12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 등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집회·강연회·농성 등을 할 계획이다.

역사학과 학부생·대학원생·졸업생들은 12일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전면 철회하고 역사 교과서 집필에 서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일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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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당창건 70돌 열병식 개최


김정은 제1위원장 “미국과 어떤 전쟁도 가능”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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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0  18: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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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당창건 70돌 경축 열병식에서 약 25분간에 걸쳐 연설했다. [캡쳐사진 - 조선중앙TV]

북한은 10일 오후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했다.

북한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은 이날 오후 3시께(평양시간 2시30분)부터 열병식과 군중시위 행사를 실황 중계했다.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오후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과 군중시위가 성대히 거행되고 있으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광장 주석단에 나왔다고 전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검정색 양복 차림으로 등장해 앞서 광장에 입장해 있던 인민군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이어 단상으로 올라가 열병식을 벌이는 인민군 부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김 제1위원장의 바로 왼편에는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한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 오른편에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자리했다.

최룡해·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도 참석했으나 북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10일 오후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했다.[캡쳐사진 - 조선중앙TV]

김 제1위원장은 약 25분간에 걸친 열병식 육성연설에서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이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 수 있다”며 “조국의 푸른 하늘과 인민의 안녕을 억척같이 사수할 만단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선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침략과 전쟁으로 제 몸집을 비육시켜온 횡포한 미제와 직접 맞서 수치스러운 패배만을 안기고 제국주의의 강도적인 제재와 봉쇄도 강행 돌파해 나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굴의 기상과 단합된 힘은 원수들을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 국방 병진노선을 제시하고 조국수호와 사회주의 건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과정에 우리 당은 자체의 힘으로 전반적 국력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동시에 인민생활도 향상시켜 나가는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고 했다.

2013년 3월 31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경제-국방 병진노선'으로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띈다. '핵무력' 표현을 피함으로써, 중국이 희망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까닭이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어 2만여 명 규모의 인민군 병력이 대규모 퍼레이드를 벌였으며, 군중시위에는 주민 10만 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열병식은 지난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 급서로 시작된 김정은 체제 이후 다섯 번째이며, 당 관련 행사로는 처음이다.

그간 다소 소원했던 중국이 류윈산 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단장으로 한 사절단을 보낸 반면, 통합러시아당이 집권하고 있는 러시아가 군악대만 보낸 것도 국가가 아닌 당의 행사라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쿠바는 쿠바 공산당 및 정부 대표단, 베트남과 라오스는 각각 공산당과 인민혁명당 대표단이 당창건 70돌 사절단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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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열병식, 제가 눈앞에서 직접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10만인클럽의 후원으로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연재하고 있는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입니다. 저는 연재를 잠시 중단하고 지난 6월에 이어 약 2주간 북한을 여행할 계획입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출발해 중국 심양을 거쳐 8일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구입한 SIM 카드를 이용해 평양 등지에서 북녘 동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오마이뉴스>에 단독으로 보냅니다. 

10일에는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저는 북한 당국에 "나도 시민기자이니 열병식 취재를 허가해달라"라고 요청했고, 북한 당국은 이에 응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외신기자단에 합류, 10일 열병식 현장에서 직접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이후로도 '재미동포 아줌마와 함께하는 실시간 북한 사진 기행'에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10일 김일성 광장에서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 관중들이 입장하고 있다. ⓒ 신은미
10일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10일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인민군의 행진 모습. 깃발 모양의 구조말 안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얼굴이 담겨 있다.ⓒ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중 행진의 첫머리를 장식한 항일 유격대.ⓒ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중 행진의 첫머리를 장식한 항일 유격대.ⓒ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중 행진의 첫머리를 장식한 항일 유격대.ⓒ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중 행진의 첫머리를 장식한 항일 유격대.ⓒ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에서 공개된 KN-08 탄도미사일. KN-08은 지난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는 탄두 형태가 뾰족했으나 이번에는 둥근 형태로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국 군 당국은 분석했다.ⓒ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학생들이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북한 예술인들이 붉은 천 등을 이용해 조선노동당기를 형상하면서 행진하는 모습.ⓒ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우리민족끼리 조국통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구조물 아래서 열병식에 참석한 관중들이 꽃을 든 채 두 팔을 들어올리고 있다.ⓒ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 현장. '위대한 우리 당에 영광을'이라는 문구 아래 북한 인민들이 손에 꽃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이 종료된 뒤 외신기자들이 현장에서 철수하고 있는 모습. ⓒ 신은미
조선노동당 창건 70년 기념 열병식이 종료된 뒤 외신기자들이 현장에서 철수하고 있는 모습. ⓒ 신은미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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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이 당신을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강력한 감시체제에 적극적 통제시스템까지 장착
 
육근성 | 2015-10-09 14:34: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지 오웰은 그의 소설 ‘1984년’에서 ‘빅브라더’가 대중을 지배하는 국가인 ‘오세아니아’를 등장시켰다. 소설 속 전체주의 국가가 내세운 프로파간다이자 이념은 이것이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


‘빅브라더’보다 더 강력한 감시체제

청나라 황제 옹정제는 자신의 수하들을 신하들 사이에 풀어 감시하도록 했다. 황제가 심어놓은 스파이를 또 다른 스파이가 염탐하는 감시체제가 가동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중앙관리, 지방관리 할 것 없이 몸을 사리며 벌벌 떨었다. 덕분에 역모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황제가 당신을 보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생각해보자. 오웰의 ‘빅브라더’나, 옹정제 식의 ‘감시체제’는 설마 없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그들이 속고 있는 거다. 분명히 있다. 아니, 더 강력한 체제로 존재한다. 그 체제는 지금도 빠르고 교활하게 진화하고 있다.

국가권력과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손잡으면 어떻게 될까. 국민들 모두 권력의 감시권에 들게 된다. 예들 들어 국가권력이 통신사나 신용카드사와 협력체제를 구축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것만으로도 국민의 일상생활을 감시하는 게 가능해진다.

‘빅데이터 기업’과 국가권력의 결탁

국가권력이 다음카카오와 이런 식의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3500만 국민이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톡을 얼마든지 감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해 10월 정진우 전 노동당 대표의 ‘카톡 사찰’ 논란으로 ‘사이버망명’이 확산되자, 다음카카오는 “검찰의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더니 1년 만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검찰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와 “(다음카카오와 감청영장을) 제대로 집행하는 것으로 방법을 찾았다”고 밝히자, 다음카카오가 그제서야 “검찰의 통신제한조치에 응하기로 했다”며 뒷북 성명을 냈다. 영장을 찍어내는 권력기관과 방대한 통신정보를 가진 기업의 결탁, 이건 정말 파괴적인 감시체제다. 두 기관이 더 밀착할 경우 영장제도 자체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

인터넷 감청도 쉽다. ‘패킷감청’이라는 기법은 대단히 위력적이다. 인터넷 회선을 통째로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게 ‘패킷감청’이다. 감시자는 감청대상자의 모든 인터넷 활동을 앉아서 ‘감상’할 수 있다. 대상자의 인터넷 정보를 패킷 단위로 쪼개 송신하면, 수신 컴퓨터가 이를 받아 화면으로 재구성하는 수법이다.


적극적 통제시스템까지 장착

대상자의 컴퓨터 내에 있는 정보뿐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기기(인터넷전화, IPTV, 테블릿 등)에서 오가는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다. 집에서의 모든 일상과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는 셈이다.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때문에 2011년 어느 교사가 패킷감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 그런데 5년이 되도록 헌재가 묵묵부답이다. 헌재의 결정 유보로 최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가 됐다.

감시에 머물지 않는다. 적극적인 통제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권력이 팔을 걷어붙였다. 문체부는 신문법 시행령를 개정해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취재 및 편집 인력을 3명 이상에서 5명 이상으로 강화하고, 등록신청서에 취재-편집 담당자의 상시 고용을 증명할 수 있는 연금, 건보, 산재서류 등을 첨부하도록 했다.

인터넷신문의 ‘게이트키핑’ 기능강화와, 저널리즘 품질 제고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게 문체부의 해명이다. 또 인터넷신문의 과다 경쟁, 선정성, 유사언론행위 등을 지적하며, “여론의 왜곡을 발생시킬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2명을 증원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웃기는 얘기다.


‘온라인 장악’ 위해 총대 멘 이들

선정성 게시물과 어뷰징 기사를 쏟아내는 쪽은 소규모 인터넷신문이 아니라, 중대형 언론사들이다. 조중동의 ‘닷컴’ 사이트에는 낯 뜨거운 사진들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게다가 대형신문사들은 아예 어뷰징 전담인력을 고용해 1인당 하루 30~40개 기사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유사언론행위도 마찬가지. 문체부가 작성한 ‘2015유사언론행위 피해실태조사’를 보면 적발된 언론사 중 취재인력 5인 미만의 언론사는 한 곳도 없었다.

문제부가 틀렸다. 얼핏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시커먼 속내가 꿈틀대는 게 보인다. 인터넷신문의 태반은 진보성향이다.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들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꼼수가 ‘인터넷신문 등록강화’ 조치로 표출된 것이다. 시행령이 개정될 경우 기존 인터넷신문의 80%가 등록 취소라는 철퇴를 맞게 된다.

막가는 짓도 한다. 통신심의규정을 바꾸겠단다. 인터넷 게시글과 게시물에 대한 심의와 삭제, 접속 차단 등을 손쉽게 하기 위해서다.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신고만으로도 인터넷게시물에 대한 심의를 개시할 수 있는 길을 열기위해 안달이다. 이렇게 되면 게시물의 삭제, 접속 차단이 무차별 진행될 수 있다.


국가권력이 당신을 무서운 눈으로 보고 있다

비판여론이 일자 방심위가 이런 변명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성행위 동영상이 불법 게시되는 경우가 있어 민원이 제기되기도 한다”며 제3자 신고만으로 심의가 진행된다면 이런 피해가 줄어들 거라고 주장한다. 변명도 참 가지가지다. 수사권한이 없는 방심위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고, 삭제 권한까지 행사하겠단다. 이건 월권이다.

김무성 새누리당대표는 포털 공격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포털이 악마의 편집으로 왜곡·과장된 기사를 확대재생산하고 여당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있다”며 “젊은층에게 영향이 큰 포털이 정부여당에 부정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건 잘못된 것인 만큼 당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가 많으니 포털을 손보겠다는 겁박이다. 포털을 길들이겠다는 얘기다. 강아지로 보이나?

빅데이터를 보유한 기업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강력한 감시시스템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국가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물리적·강제적 힘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통제시스템까지 장착되고 있는 중이다. 국가권력이 당신을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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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 된 '김정은 당', "인민을 위하여!"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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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10/10 06:54
  • 수정일
    2015/10/10 06:5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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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④>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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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9  22: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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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창건 70돌 특집>

북한의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이 오는 10일 창건 70주년을 맞는다. 건국보다 창당이 2년이나 앞선 셈이다. 당 우위의 국가인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조선노동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 할 수 있다.

<통일뉴스>는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이 당이 걸어온 길을 규약과, 인물,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
1. 당 규약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2. 인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3. 정책으로 본 조선노동당 70년
4.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로 열린 ‘김정은 시대’는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이 회의를 통해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됐고, 당 조직을 정비했으며, 당규약도 개정해 조선노동당을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당’으로 규정했다.

김정은 1비서는 이듬해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해 김정은 시대의 전략적 노선을 확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정은 1비서는 7차례의 당 정치국 (확대)회의와 7 차례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개최하는 등 당 공식 회의를 주재했다.

앞선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 사회주의진영의 몰락과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선군정치가 전면에 등장해 노동당의 공식 회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때에 비하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김정은 시대의 조선노동당은 당규약에 명시된 대로 ‘사회의 령도적 정치조직이며 혁명의 참모부’로서의 역할을 회복해 가고 있는 셈이다.

당 규약과 유일사상 10대원칙 개정

   
▲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된 김정은 최고사령관. 김정은 시대의 본격 개막을 알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을 제4차 당대표자회(2012.4.11)에서 개정된 당규약 서문을 통해 살펴보면,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는 김일성-김정일주의당, 주체형의 혁명적당이다”라고 정식화하고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를 영원히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합된 로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핵심부대, 전위부대”라고 규정해 김정은 1비서를 당의 최고지도자로 명기했다.

또한 기존대로 “조선로동당은 주체사상교양을 강화하며...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원칙을 견지한다”면서 “근로인민대중의 모든 정치조직들가운데서 가장 높은 형태의 정치조직이며 정치,군사,경제,문화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통일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사회의 령도적 정치조직이며 혁명의 참모부이다”고 당 우위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당규약 개정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 인민들의 일상 활동의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는 1974년 제정된 유일사상 10대원칙이 39년 만에 개정된 점이다. 2013년 6월 개정된 ‘노동당 유일사상 체계 확립을 위한 10대원칙’은 김일성에 더해 김정일을 영원한 수령으로 규정했고, 2012년 4월 개정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을 명기했듯이 개정 10대원칙 서문에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군사력과 자립경제를 가진 위력을 떨치게 됐다”고 ‘핵무력’을 포함시켰다.

또한 제6조 4항 “개별적 간부들의 직권에 눌리워 맹종맹동(맹목적으로 복종해 행동하는 것) 하거나 비원칙적으로 행동하는 현상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거나 5항에 단결을 파괴하는 현상으로 ‘동상이몽’과 ‘양봉음위’(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을 적시한 점, 제7조에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세도(勢道)’를 가장 앞세우는 등 장성택 처형 사건의 여파를 반영했다. 동상이몽과 양봉음위는 장성택 판결문에 등장하는 단어다.

김정은 1비서는 2013년 8월 25일 선군절 담화에서 “당조직들은 당의 유일적령도체계를 세우는것을 당사업의 주선으로 확고히 틀어쥐고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령도자의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며 모든 사업을 당의 사상과 의도에 맞게 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군부 권한 축소와 당 행정부 해체

   
▲ 2015년 3월 9일 기준으로 통일부가 작성한 조선노동당 권력기구도. [자료출처 - 북한정보포털]

당 규약과 유일사상 10대원칙 개정이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의 제도적 기틀을 다진 것이라면, 당 우위 원칙을 현실화하는 과정은 부득이하게 권력 재분배를 수반하게 된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 선군정치와 측근정치의 결과 비대해진 군부와 당 행정부의 힘을 덜어내는 과정이 필수 사항이었던 셈이다.

먼저 선군정치 과정에서 과도하게 힘이 집중된 군부에 대한 정지작업이 진행됐다. 2012년 7월 15일 당 정치국회의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인 리영호 군 총참모장이 전격 해임됐다. 앞서, 한때 군부실세로 등장했던 당 정치국 위원 김정각도 인민무력부장에서 해임된 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으로 밀려났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 1비서는 세대교체와 잦은 군인사를 통해 군부의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오극렬, 현철해 등 원로급들이 일선에서 퇴장했고, 인민무력부장이 수시로 바뀌는가 하면, 군 최고위급 인사들의 계급장이 하루아침에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최룡해와 황병서 등 비군부 출신 당 고위 인사들이 군 핵심요직인 총참모장에 임명된 것도 군에 대한 당적 통제 의지로 읽힌다.

지난 5월 국정원이 국회에 총살설을 보고해 물의를 빚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퇴진에 이르기까지 최근 북한의 군부 물갈이는 상당한 속도와 폭으로 진행됐고, 그 방향은 대체로 세대교체와 충성심 강화, 권력분산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힘이 집중된 장성택과 당 행정부를 제거함으로써 당이 정상화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2013년 12월 8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 문제를 토의했고,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국가전복음모행위로 사형을 선고하고 즉시 처형했다.

조선노동당은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를 양대 축으로 하여 각 전문부서들이 맡은 영역을 책임지고 일하는 체계지만 장성택은 조직지도부에서 행정부를 떼어내 힘을 집중시켰다. 장성택 판결문은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 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며 어떻게 하나 잘 보이기 위해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데까지 이르렀다”고 적시했고, 당 행정부는 해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 공식 회의체계 정상 가동

   
▲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 공식 회의 일람. 7차례의 당 정치국 (확대)회의와 7차례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개최됐다. [자료제공 - 통일부]

김정은 시대의 당 활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식 회의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등장부터 당의 공식적 회의 과정를 거쳤다. 1980년 제6차 당대회를 마지막으로 공식 당대회나 당대표자회가 열리지 않던 상황에서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돼 후계자임을 내외에 과시했다.

김정은 1비서는 집권 직후인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제1비서로 추대됐고, 당조직을 정비했다. 특히 최룡해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돼 실세로 급부상해 주목받았다.

이어 2013년 3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정치국과 전문부서의 인선을 마무리했고, 박봉주 당 부장이 정치국 위원에 이름을 올린 점이 가장 두드러졌다.

3년여에 불과한 김정은 시대에 정치국 회의 4회와 정치국 확대회의 3회 등 모두 7차례의 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린 점은 당 정상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들 회의에서 리영호 직무 해임, 장성택 숙청 등 ‘조직문제’를 비롯해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신설’과 ‘당창건.해방 70주년을 혁명적 대경사로 맞이하기 위한 대책적 내용’ 등 중요 사안들이 공식 의결됐다.

뿐만아니라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역시 7차례나 열려 군사적 긴장상태 등 현안들을 처리했다. 특히 지난 8월 20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열린 당중앙군사위 비상확대회의에서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48시간 내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하면서 전선지대 준전시상태 돌입 명령을 하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당의 최고 정치, 군사 분야 회의체인 정치국 (확대)회의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국가적 주요 사안을 의결하는 단위로 자리잡아 가고 있고, 이 점이 김정은 시대 조선노동당의 정상적 지위와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도.관료주의.부정부패와 경제강국.병진노선

   
▲ 남북간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지난 8월 20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 모습.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전선지대 준전시상태 명령이 하달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1비서는 당 창건 70돌에 즈음해 지난 4일 ‘위대한 김일성, 김정일동지 당의 위업은 필승불패이다’라는 담화를 발표,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를 제기했다.

김 1비서의 담화에는 조선노동당이 처한 현실적 과제들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조선로동당의 70년력사는 김일성, 김정일동지 당의 위업의 정당성과 필승불패성을 과시한 자랑찬 승리의 력사”라고 규정하고 “자주, 선군, 사회주의는 우리 인민의 지향과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조선혁명의 좌표이고 기본주로”라고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전당적으로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를 반대하는 투쟁을 강도높이” 벌이자거나 “사회주의화원에 자본주의독초의 사소한 싹도 절대로 돋아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는 대목 등은 현재 조선노동당이 직면한 고민들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인민정권의 사업체계와 방법을 개선하고 사회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경제조직자적기능을 강화하여 강성국가건설을 힘있게 추동하여야 한다”는 점과 “당의 자위적군사로선과 병진로선을 철저히 관철하여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는 점 등 국가의 전략적 구상을 실현하는 문제일 것이다.

나아가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실현”하는 문제나 “자주적인 대외정책을 관철하여 세계자주화위업실현에 이바지”하는 문제 등의 장기적 과제들도 놓여있다. 당 창건 70주년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방북하는 류윈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당 선전부장이자 서기처 서기를 맡고 있는 당쪽 인사로 중국과의 관계개선의 실마리도 전통적인 ‘당 대 당 외교’로 풀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은 시대 4년차에 창건 70주년을 맞은 조선노동당이 ‘김일성, 김정일 당’에서 ‘김정은 당’으로 세대교체를 이루고 경제강국 건설과 병진노선 실현 등 주어진 역사적 과제들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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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통일열사. 사형수 신향식 선생 추도

 
 
반제 자주와 반파쇼 민주화 위해 헌신한 불꽃 삶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0/09 [20:1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자주통일을 위해 불꽃 같은 삶을 살다 사형이라는 극형으로 생을 마감한 신향식 선생을 기리는 추도 모임에 참여한 단체 인사들이 자주 통일을 외치고 있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아직은 할 일도 많고, 가야할 길도 멀리 남았지만 사대에 쪄들은 독재의 망나니짓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시대의 표상이 있다.

 

연탄배달과 가정교사를 하며 한국의 최고학부인 서울대에 25세 늦깎이로 입학해 사회정의를 위해 학생시절을 바치고, 얼음장사와, 월부책장사를 하며 조국의 자주화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신향식 선생이 바로 그이다.

 

▲ 신향식 선생은 영정으로 남아 남은 자들을 맞이했다.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선생의 피를 수혈 받아 자주통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전남 고흥이 고향이었던 선생은 고학으로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노동청 공무원과 출판사 편집자 등을 지낸 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어 3년 6개월을 감옥에서 지낸 뒤 출소했다.

 

신향식 선생의 감방 출소는 더 큰 유신의 감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 선생의 정의의 양심은 민족자주화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투쟁했다.

 

신선생은 1976년 서울대 동문인 이재문 선생 등과 함께 ‘반유신민주화, 민족해방을 목표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약칭 남민전)를 결성하여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1979년 10월 검거될 때 까지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와 유신독재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에 전력을 다했다.

 

신향식 선생의 민족자주화와 반파쇼 민주화에 대한 불꽃같은 삶은 전두환 군부독재에 의해 1982년 10월 8일 사형이라는 극형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 범민련 성원들과 장기수 선생들이 신향식 선생의 유지를 받들 것을 결의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하지만 선생의 넋은 자주. 민주. 통일을 바라는 겨레의 가슴에 살아 오늘도 투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자주통일인사들은 신향식 선생의 불꽃 같은 삶을 기리기 위해 9일 선생이 묻힌 경기도 광주 공원 묘원에서 추도식을 가졌다.

 

추도식은 류경완선생이 신향식 선생의 걸어오신 길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약력 소개에 이어 감남주 선생이 육성으로 남긴 시 전사2가 녹음을 통해 울렸다.

 

전사2

 

  해방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많은 사람이 실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수천 명이 죽어갔다
  수만 명이 죽어갔다
  수십만 명이 다시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도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나라 곳곳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감옥에서
  압제와 착취가 있는 곳, 바로 그곳이다.

  어떤 사람은 투쟁의 초기 단계에서 죽어갔다
  경험의 부족과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떤 사람은 승리의 막바지 단계에서 죽어갔다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지하의 고문실에서
  쥐도 모르게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
  감옥의 문턱에서
  잡을 손도 없이 부를 이름도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보아다오 동지여!
  피의 땀과 눈물의 양보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했으니
  보아다오 이 나무를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투쟁의 나무를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 낸 것은
  가신 님들이 흘리고 간 피가 아니었던가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투쟁의 길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 죽음이 결코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조국의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자유의 나무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쑥스럽게 부끄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 서울대 동기동문이었던 조영건 명예교수가 신향식 선생의 뜻을 받들어 우리민족끼리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통일의 길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남민전 활동을 함께 했던 신우영 선생은 추도사를 통해 “자주통일을 염원하다 사형을 당한 신향식 선생이 더욱 그립다”면서 “신향식 선생은 언제나 조용한 어투로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회고했다.

 

서울대 동문인 조영건 명예교수는 “신향식 선생은 만학도로 서울대에 입학하여 엄혹한 시대를 뚫고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헌신했다”면서 “6.15시대에 우리는 신향식 선생의 넋을 이어 받아 우리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분단장벽을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향식 선생의 장남인 신원호 씨는 아버지 같이 살 수는 없지만 자주 통일을 위한 길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유족인 장남 신원호 선생은 “아버님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자주.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겠다.”고 유족을 대표해 약속했다.

 

50여명이 참여한 이날 추도식은 ‘우리의 소원은통일’ 노래로 막을 내렸다.

 

약력

1934년 전남 고흥 출생

1958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입학

1964년 노동청 산재보상과 근무

1966년 동아출판사 편집부 입사

1968년 통일 혁명당 사건으로 투옥, 3년 6개월형 선고받음

1972년 비전향 만기출소

1976년 남민전 결성, 중앙위원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

1980년 대법원 사형 확정 판결

1982년 10월 8일 사형 집행

           경기도 광주공원묘지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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