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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대 <서울구치소 최강주소장·민낙기보안과장 즉시해임!> ... 전면투쟁 선포

  • 코리아연대 <서울구치소 최강주소장·민낙기보안과장 즉시해임!> ... 전면투쟁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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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구치소 최강주소장과 민낙기보안과장의 살인적인 인권유린행태에 사회 각계각층의 분노와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는 30일 오후2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살인적인권유린최강주서울구치소소장해임 및 박근혜폭압정권퇴진 촉구기자회견집회>을 열고 <최강주소장과 민낙기보안과장의 살인적인 인권유린행태에 격분하며 우리는 앞으로 더욱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명예회장은 <서울구치소에는 많은 수용자가 있는데 그중 양심에 따라 활동하다 구속된 양심수가 있다. 양심수에 대해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기본인권은 보장돼야 한다.>면서 <코리아연대 김혜영동지가 구속돼 있는데 어떤 혐의점이 있더라도 대법판결 이전에는 무죄를 인정해야 한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김혜영동지의 건강권이 정당하게 보장돼야 한다.>며 외부진료조치를 요구했다. 

     

    단결과혁신을위한진보노동자회 진영하사무국장은 집회신고낸 장소에 서울구치소가 대형화단을 설치한 사진을 들고 서울구치소측의 기자회견·집회인권유린행태를 맹렬히 비난했다.

     

    진사무국장은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법을 어기고 있다.>면서 <서울구치소 앞에서 합법적인 집회신고를 하고 노숙농성을 진행해왔다. 지난 9월24일 우리의 요구를 강력히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더니 난데없는 화분을 갖다두었다. 이것은 명백한 현행법위반>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서울구치소 앞에서 50일넘게 노숙농성하며 암수술을 두번이나 받은 김혜영회원의 외부치료를 요구하고 있지만 서울구치소측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거 다해줬는데 뭘바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병원치료 요구했음에도 문진 3차례허용으로 고작 자기들이 할 일 다했다고 하는데 사람이 아프면 치료를 해야지 아픈걸 확인했다면 그걸로 끝인가.>라고 분노하면서 <이들은 사람이 아니다. 이것이 교도행정의 일번지라고 하는 서울구치소의 모습이다. 이렇게 하니 출소한 뒤 한달만에 사람이 죽고, 출소한 뒤 식물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준열히 규탄하고, <재소인들의 인권을 지키는 그길에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종교인들도 서울구치소의 인권유린행태를 규탄하고 나섰다.

     

    평화행동목자단(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 이적목사(민통선평화교회담임목사)는 <박근혜<정권>의 인권실태가 전두환독재정권때로 돌아가고 있다.>면서 <박근혜는 겉으로는 통일이 <대박>이라고 하면서 겉으로는 통일운동가들을 구속시키고 아픈 사람을 마땅히 치료해야 함에도 치료하지 않고 할짓 다했다고 말한다. 박<정권>은 살인마정권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어하는 거 같다>고 힐난했다.

     

    계속해서 <구치소가 형이 확정되지도 않은 사람들을 죄인취급하고 있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어떤 재소자든 언론접촉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또 휴일에는 재소자들에게 운동을 시켜주지 않아 추석이 오히려 재소자들에게는 악몽과 같다. 구치소의 인권유린·낙후행정이 삼청교육대 끌려가던 그시대와 다르지 않다.>면서 <코리아연대 이상훈공동대표, 김혜영회원은 죄인이 아니다. 구치소안에 누구든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당장 시정하라.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목사들이 노숙투쟁까지 불사할 것>이라고 강력경고했다.

     

    평화행동목자단 백광모목사는 교도행정내용이 나오는 사도행전 16장을 언급하면서 <서울구치소전신이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다. 서대문형무소는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가뒀던 곳>이라면서 <서울구치소는 재소자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건강권과 인권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서울구치소 최강주소장은 권력자들에게 잘보여 2급으로 승진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회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끝으로 평화행동목자단 김봉은목사와 21세기서울여성회 이지혜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코리아연대는 <서울구치소 최강주소장과 민낙기보안과장의 악질적인 인권유린행태를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면서 <최강주소장과 민낙기보안과장의 즉시해임을 요구하고 외래치료보장과 접견시간연장을 비롯한 재소자인권의 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서울구치소 최강주소장과 민낙기보안과장의 살인적인 인권유린행태에 격분하며 우리는 앞으로 더욱 강력히 투쟁할 것이다!

     

    서울구치소는 알아야 한다. 코리아연대 김혜영회원의 공황장애를 50일이 넘도록 제대로 치료하지않은 것에 대하여 우리는 최대의 분노를 느끼며 이를 살인적인 인권유린행위로 가장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격으로 우리의 정당한 기자회견·집회를 불법채증하며 훼방할 뿐 아니라, 지금 보이는 화분들을 급조해 설치하거나 야간에 화장실이용을 금지하는 식으로 유치하게 탄압하는데 치솟는 격분을 참을 길이 없다. 우리는 지난 50여일간 서울구치소앞투쟁을 전개하면서 서울구치소의 인권유린행태가 얼마나 심각하며 고질적인가를 온몸으로 절감하였다. 우리는 한마디로 서울구치소 최강주소장과 민낙기보안과장의 악질적인 인권유린행태를 더이상 참을 수 없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서울구치소의 최강주소장과 민낙기보안과장의 즉시해임을 요구하고 외래치료보장과 접견시간연장을 비롯한 재소자인권의 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한다. 서울구치소측은 우리의 투쟁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도수가 계단식으로 높아진다는 것을 보며 통절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1. 서울구치소 최강주소장과 민낙기보안과장을 집회방해와 집회및기자회견불법채증건으로 고소하고 더불어 최소장과 민과장의 악질적인 인권유린행태를 전면적으로 수집하여 적극적으로 형사고발하고 국가인권위에 제소한다. 
    2. 규탄집회의 구호판을 2배로 키우고 구호수위를 높이며 매일 규탄연설을 한다. 
    3. 서울구치소 최강주소장와 민낙기보안과장을 규탄하는 웹진과 영상을 제작해 SNS에 배포한다. 
    4. 매주 주말야간촛불집회를 주중주간규탄집회로 전환한다. 
    5. 코리아연대가 지난 2년간 거의 매주 발간하며 집회때마다 배포한 촛불신문의 자매편인 <인권촛불>신문을 발간해 재소자가족들에게 배포한다. 
    6. 구속된 코리아연대회원들은 필요한 정보공개를 대대적으로 청구한다. 
    7. 살인적인 외래치료방해책동과 유치한 집회방해책동의 주동인 민낙기보안과장을 해임하고 최강주소장이 공개사과하기 전에는 일체 서울구치소측과의 면담을 거부한다. 
    8. 일체 이동접견을 거부하고 일반접견시간 30분으로의 연장과 수용인원축소·수용시설확충을 요구하며 구치소안팎에서 접견투쟁을 전개한다. 
    9. 서울구치소의 불법부당행위를 방조하는 의왕경찰서도 동시에 규탄하며 필요한 법적, 정치적, 행동적 조치를 취한다. 
    10. 만약 조만간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지않을 시에는 과천종합청사앞에서 서울구치소지휘책임이 있는 교정본부와 법무부를 규탄하는 1인시위를 전개하고 <인권촛불>을 배포하며 경우에 따라 철야1인시위투쟁을 전개한다.

     

    2015년 9월 30일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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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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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지나간 여름 DMZ의 현실과 풍경

2015 지나간 여름 DMZ의 현실과 풍경

이규정 2015. 09. 30
조회수 343 추천수 0
 

  지난 8월10일~11일 뜨거운 여름 화천, 철원의 민간인통제구역과 동두천 일대를 다녀왔다.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재단 사람, 참여연대, 한반도문제를 걱정하는 학자모임(ASCK) 주관으로 30여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이른바 ‘평화기행’ 이다. 분단기행이기도 하다. 첫째날은 화천, 둘째날은 철원동두천 일대를 둘러보는 코스다. 이틀에 불과하지만, 총 11곳을 둘러보는 짧고 알찬 코스였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머릿속에 막연히 존재하던 분단의 현실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는 점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첫째날은 8월4일 발생한 목함지뢰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보도된 날이다. 사건이 터진 곳과는 떨어져 있었지만 철원의 DMZ 통문도 언제든 위험천만해질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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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수력발전소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꺼먹다리’. 그 기초는 일제가, 철골은 소련이 그리고 상판은 한국이 놓았다

 

 문자 하나에 풍경이 변했다

 

 서울을 떠난 버스는 북서로 방향을 잡았다. 도심을 빠져나와 우거진 수풀 사이를 한참 지났다. 그러다 탁 트인 곳이 나왔다. 파로호다. 부술 파에 오랑캐 로, 오랑캐를 쳐부수는 호수라는 뜻이다. 한국전쟁 중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름을 붙힌 파로호는 화천 수력발전소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다. 그 과정에서 중국군 3만 명이 이곳에 수장됐다. 중국군을 수장시켰다고 ‘파로호’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의 반공주의를 유사 인종주의로 규정한다. 파로호라는 이름에 이른바 유사 인종주의가 덧씌워져 있다면 비약일까. 이제 방문할 멸공 OP에도 같은 혐의를 씌울 수 있다. 아무렇지 않게 호명하다보면 그 논리에 젖어드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핸드폰에 뉴스특보가 하나 떴다. “DMZ 폭발은 북한군 목함지뢰” 공교롭게도 그 직후에 우리가 간 곳은 DMZ 코 앞이었다. 멸공 OP(관측소)에 도착하니  DMZ 철책의 통문이 보였다. 
  멸공OP 안으로 들어갔다. 평면이 5각형이다. 북쪽으로 3면이 나있어 DMZ 전경이 훤하게 보인다. 3사단 정훈장교가 멸공OP, DMZ 등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연단에 서서 경례를 했다. “멸공!” 정훈장교가 재생한 영상자료에는 멸공OP 부대원들이 부르는 군가가 흘러나왔다. “때려잡자 공산당.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 한국전쟁 당시 구호 그대로다. 마치 전투는 엊그제 있었던 것 같고 휴전협정은 어제 체결한 것 같다. 
  군사분계선 너머 북한지역에는 우뚝 솟은 산이 보인다. 김일성 주석이 “한국군 장교 인식표를 군 트럭으로 갖다줘도 맞바꾸지 않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전략적 가치가 큰 오성산이다. 1,062m에 달하기 때문에 날이 좋은 날에는 수도권까지 관측 가능하다. 오성산은 북한과 중국에 있어, 한국군의 백마고지에 버금가는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제공권을 쥔 미군은 오성산 일대를 폭격했으나 중국군은 땅굴을 파고 오성산에서 끈질기게 버텼다. 
  인근의 화천댐과 수력발전소도 큰 전략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현재는 다른 길이 나있지만 한국전쟁 당시에는 ‘꺼먹다리’가 유일한 통로였다. 이 교량은 본의 아니게 3국이 합작해 세운 다리가 됐다. 기초는 1945년 초 일본이 화천댐과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며 지어졌다가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는 소련 기술자들이 기초 위에 철골 구조물을 얹었다. 휴전 후에는 화천군에서 검은 콜타르를 입힌 목재로 제작한 상판을 놓았다. 그래서 꺼먹다리다. 
  일제는 대륙침략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 댐과 수력발전소를 지었다. 해방 뒤에는 이 철원, 화천 일대가 번성할 수 있는 기초가 됐고 평화적으로 쓰였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화천댐 전력의 3/5는 서울로 보내고 5/1은 철원, 나머지 1/5는 금강산 전기철도를 운영하는 데 썼다”라고 말했다. 화천, 철원은 한반도의 중심이다. 철원역은 한때 대전역만큼이나 컸고 식민지 시절과 해방공간에서 금강산 관광전철은 큰 호황을 이뤘다. 
  철원은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만나는 곳이다. 철원에서 종착역인 내금강역까지 116.6km 철로가 놓여있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은 한탄강 위 철교다. 철교는 겸재 정선이 화폭으로 남긴 정자연을 배경으로 서있다. 전력 공급선이 달려있던 전주는 녹으로 뒤덮여 있다. 이곳에 전철이 다녔다는 증거다. 1942년 한해만 90여만 명의 승객을 수송할 만큼 호황이었던 관광철도였다. 식민지 백성들도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서만큼은 웃음꽃을 피웠을 것 같다. 
  2015년의 이 지역 풍경은 식민지 시절보다도 못한 것 같다. 철길은 끊겨있고 온통 녹슬어 있다. 사람들의 표정도 심란하며 눈에 보이는 건 군사시설뿐이다. 수색대가 머무는 생활관도 보였다. “저기가 DMZ 수색하는 장병들이 머무는 생활관이다” 평화기행 일행을 안내하던 앳된 얼굴의 병사의 설명이다. 8월4일 지뢰에 다리를 잃은 이하사, 김하사도 이런 시설에서 군장을 갖춘 뒤 DMZ 내로 들어갔을 것이다. 병사에게 “지뢰사건이 터졌는데 겁이 나지 않느냐”고 묻자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늘 다니던 길만 다녀서 괜찮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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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는 수백만 개의 지뢰를 품고 있다. 우리 국방부는 지뢰 제거에 489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민간인 지뢰 피해는 어떡하나

 

  저녁식사를 하고 첫째 날을 마무리하고 묵은 곳은 철원 대마리 두루미마을이다. 저녁식사 뒤에는 마을 내 민간인 지뢰피해자들과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배경설명이 필요할 듯 싶다. 대마리 마을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건설한 ‘대북선전마을’ 중 하나다. 두루미마을은 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제대군인 150명이 입주하여 1인당 6천여 평의 농지를 받았다. 문제는 이 지역에 한국전쟁 당시 매설되어 그 정확한 위치도 모르는 지뢰들이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총 23건의 지뢰사고가 발생해 8명이 죽고 1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대마리 마을 주민들은 입주 당시 지뢰 사고 및 기타 사고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에 동의하고 입주했다. 그래서 이들은 거의 보상을 받지 못해왔다. 김호기씨와 지뢰피해자인 김문빈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두 주민은 1968년, 30대 초반의 나이로 이 마을에 입주했다. 
김호기씨는 “처음 입주했을 때는 오후 5시만 넘으면 DMZ 내에서 남·북이 기관총 쏘고 선전방송하느라 시끄러웠고, 저수지도 없어 4년간 농사를 못했다”며 “그래도 우리는 단지 정부에서 땅을 준다는 말만 믿고 이곳에 살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 땅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지뢰가 터져 이 마을 사람 23명이 죽고 다쳤다. 특히 대전차지뢰로 사망한 주민은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김씨는 대전차지뢰에 죽은 주민의 시신이 “붉은 덩어리가 되서 이 나무 저 나무에 걸려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황무지가 옥토가 되자 토지 소유자들이 나타났다. 박정희 정부가 소유자들로부터 이 땅을 수용한 것도 아닌데 무작정 입주민들에게 준 것이었다. 김문빈씨는 “지역구 의원도 찾아가보고 법률가들도 찾아가봤다”며 “그런데 한국 법에는 지주를 보호하는 법만 있지 우리 같은 입주민들을 보호하는 법은 한 줄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원 소유자와 협상을 했으나 대다수 토지 소유권 문제는 미해결 상태다.
  한반도의 허리를 동서로 249km 가로지르는 DMZ는 무장이 금지된 지역이다. 하지만 DMZ는 남북을 통틀어 200만개에서 350만개의 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한 측이 DMZ 내에 매설한 지뢰는 100만 발 정도다. ㎡당 2.4개로 지뢰밀도로 세계 1위다. 지뢰매설 면적은 112.58㎢로 안양시 두 배, 여의도 300배 크기다. 한국 국방부는 지뢰제거에 걸리는 시간을 489년으로 추정했다. 휴전 후 북한 측 지뢰 피해자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남한 측은 1만 명에 가까운 군인·민간인이 죽거나 다쳣다. 
당장의 문제는 비가 쏟아질 때마다 지뢰의 위치가 바뀐다는 점이다. 특히 장마철에는 지뢰가 쓸려 내려가기도 한다. 군 당국은 매년 지뢰 제거 작전을 한다. 올해 합동참모본부는 4∼11월 민간인통제선 이남 지역, 후방 지역 방공기지 등 6만 m² 지역에서 지뢰제거 작전을 실시했다. 지난해에는 대전차지뢰 312개, 대인지뢰 121개를 수거했다. 성향이 서로 다른 전문가들도 최소한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자는 방침에는 동의한다.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소장은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뢰의 위험 때문에 DMZ 내에서 수색정찰작전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도발에 항의하되 더 이상 DMZ에 지뢰를 묻지 말자고 남북이 합의해야 한다. DMZ 매설 지뢰에 대한 남북 공동 대응을 북한에 제안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같은 기사에서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확성기 방송 등 대북 선전을 통한 심리전은 과거 냉전시대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전쟁이 부순 건물, 전쟁이 낳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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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노동당사는 한국전쟁 때 훼손되어 외벽만 남았다.  

 

 둘째 날은 철원과 동두천 일대를 둘러봤다. 북한에서 지은 건물은 철원 노동당사, 남한에서 지은 건물은 기지촌여성낙검자수용소다. 전쟁 전의 건물, 전쟁 후의 건물이기도 하다. 남북을 각각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건물도 아니고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는 성격의 건물들은 아니다. 다만 전쟁을 고리로 엮어질 뿐이다. 철원노동당사는 전쟁이 파괴한 건물이고 수용소는 전쟁이 낳은 건물이다. 
철원노동당사는 한국에 있는 유일한 북한 건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2층 일부를 제외한 건물 내부는 모두 파괴된 채 외별 골조만 남아 있다. 정문 계단은 바스러져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탱크가 밟고 지나간 흔적이다. 기둥과 벽면에도 총탄과 포탄 자국이 선명하다. 포탄 자국에 벗겨진 외벽의 내부는 벽돌이다. 사실 건물 전체가 벽돌로 쌓은 것이지만 대리석을 덧대거나 회칠을 해 벽돌구조임을 감췄다. 
 <민통선 기행>을 쓴 이시우 작가는 문헌과 증언을 바탕으로 이 건물 3층이 ‘민주전선실’ 즉, 대중 강연, 모임 등을 위한 강당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2층 간부실을 지나야했으며 3층에서의 대중활동으로 2층 간부실은 층간소음에 시달렸을 것이라고도 봤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작가는 이 건물에 ‘쓰러진 이상’이 담겨있다고 평가한다. 
 이 설명은 화천군에서 세운 설명판과는 간극이 있다. 설명판에 따르면 공산당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수탈과 애국인사를 체포하였고 고문과 학살 등 소름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했다”고 씌여져 있다.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 알려는 노력은 불경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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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여성낙감자수용소는 전쟁 후 주한미군을 붙잡아두기 위해 세워졌다
 

기지촌여성낙검자수용소는 층수만 한 층 낮고 면적은 비슷하다. 이 시설은 소요산 입구 근처에 있다. 수용소 가는 길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등산객들과 섞였다. 수용소 앞에서는 호박엿을 파는 노점이 있었다. 이 수용소는 1960~70년대 정부가 성병이 의심되는 기지촌 여성들을 수용하던 시설이다. 이 건물은 국가기념물이 아니라 철원노동당사에서 봤던 표지판은 없었다. 건물은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고 고물상들이 내부에 잡동사니를 들여놔 어수선했다. 
 이 수용소가 설립된 배경을 짚어보자. 1969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이른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주한미군 감축을 추진했다. 동시에 미군은 박정희 정부에 기지촌정화를 요구했다. 흑인을 차별하지 말고, 성병을 관리하라는 요구였다. 이에 청와대는 미군의 요구를 적극 받아들여 ‘기지촌정화위원회’를 발족시켰다. 흑인 차별을 금지시키고 성병 감염이 의심되는 기지촌여성들을 이 수용소에 데려와 가두고 치료하게끔 한 것이다. 
 기지촌 여성을 불심검문으로 체포하는 과정을 ‘토벌’이라고 했다. 1층은 진료실 검진실이 2층에는 20명씩 수용할 수 있는 입원실 7개가 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치료방식은 폭력적이었다. 이른바 ‘페니실린 쇼크’로 수많은 기지촌 여성이 숨졌다. 미군은 미국에서 사용하는 페니실린의 양보다 4~5배 더 증가시켜 투약했다. 한국 정부는 1972년 3억8천 만원 보건위생비 중 2억2천만 원이 성병치료에 쓸 정도로 기지촌정화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건 미군감축을 막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기지촌에서 벌어들이는 외화가 엄청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업기반이 미미했던 1964년, 한국 국내총생산의 25%는 기지촌 여성들로부터 나왔다. 때문에 정부는 이들을 ‘산업역군’으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1960~70년대 동두천 인구가 6~7만 명일 때 기지촌 여성의 수는 6~7천 명이었다”라며 “그 당시에는 서울도 이만한 유흥가가 업었다. 기지촌 때문에 동두천 내에는 화장품 가게, 미용실, 목욕탕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라고 말했다. 
수용소 2층에서 창밖을 바라다봤다. 노동당사에는 쓰러진 이상 혹은 치우친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이 건물에는 그저 지워버리고 싶은 끔찍한 기억 밖에 없는 듯 했다. 
  이후 들른 곳은 상패동 기지촌여성 공동묘지다. 1,000개의 묘가 있는데 그 중 400여개가 무연고 묘다. 동두천 기지촌이 형성되던 1960년부터 1970년까지 사망한 기지촌 여성들이 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시절 미군 범죄는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고 상당수의 여성들이 미군에 학대당하고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화기행 참가자들은 여성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준비해간 막걸리를 묘에 뿌렸다.

 전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DMZ는 지뢰로 가득하고 온갖 공격적인 구호가 난무한다. 민통선 안에는 민간인 지뢰 피해자가, 미군기지 근처에는 기지촌 여성들이 있다. 전쟁시기와 휴전 후에도 가장 많이 죽고 다치는 사람은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서 나온다. 아직 전쟁의 기억이 생생한 1960년대, 위험한 곳인 줄 알고도 민통선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 가운데 지뢰 피해자가 나왔다. 기지촌 여성들의 운명도 비참했다. 평화기행은 이 땅에 있었던 전쟁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체험함으로써 평화를 몸으로 깨닫는 과정이었다.

 

글 사진/ 이규정 디펜스21+ 기자 okeygu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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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아들이 인도한 경찰, 아버지를 죽이다니…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 전라남도 구례 ②
정찬대 <커버리지> 기자 2015.10.01 09:38:48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정찬대 <커버리지> 기자가 발로 뛰며 취재한 내용입니다. 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아픈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는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치러진 숱한 학살, 그 참화(慘禍)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수많은 원혼의 넋이 글로나마 위로받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호남(제주 포함), 영남, 충청, 서울·경기, 강원 순으로 연재할 계획이며, 권역별로 총 7~8개 지역을 다룰 예정입니다. 

아버지를 죽음에 몰았다는 자책과 분노

현재 구례유족회장을 맡고 있는 박찬근(80·구례군 간전면) 씨는 군경에 의한 양민 학살로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박 씨의 나이 겨우 13세. 구례 중앙초교 6학년이던 그는 작고 힘없는 그저 그런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을 보호했다는 이유로 박찬근 씨의 아버지는 총살당했다. 2007년에 이어 2015년에 다시 만난 박 씨의 얼굴은 무척이나 수척해진 모습이었고, 그의 눈망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커버리지(정찬대)


경찰이 그의 집을 찾아온 것은 1948년 11월 18일 목요일 오전 11시경. 박 씨는 집 근처 골목에서 친구들과 제기차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카빈총을 멘 군 헌병과 구례서 형사였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박덕서 집이 어디냐?" 동네 아저씨와 같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경찰이 물어왔다. 순간 정적이 흐른 듯 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박 씨는 "우리 아버지인데요"라며 이들을 안내했다. 긴장된 순간만큼 집으로 가는 골목은 좁다랗고 길었다. 


아버지 얘기를 하는 내내 그는 자신을 자책하고 책망하듯 허탈해했다. 그리고 잠시 긴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경찰이 야수로 돌변한 것은 사립문에 들었을 때였다. "김창렬이 짐 어딨어!"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마당에 울렸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내 짐작 가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박 씨의 집은 지리산 자락의 대구산 아래였기에 반란군들의 왕래가 잦았다. 때문에 할머니와 어머니는 다른 곳에 피해 있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박 씨만이 집에 남아 생활했다.


경찰이 들이닥치기 며칠 전 아버지 친구 분 중 한 명이 밤이면 집에 와 잠을 청하고 새벽녘이면 다시 산으로 들어가곤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친구가 빨치산이란 걸 알면서도 죽마고우였던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미 모든 정황을 알고 있던 군경은 집안 곳곳을 뒤졌다. 이내 보따리 세 개를 확인한 그들은 곧바로 아버지를 연행했다. 마치 수의(壽衣)를 걸치듯 하얀 두루마기를 챙겨 입은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그들을 따라 나섰고, 그길로 마지막이 됐다. 박 씨의 아버지는 구례경찰서에서 사살된 72명 가운데 한 명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너무 원망스럽고, 나이가 들수록 애석하고 죄스러워…."


상기된 박 씨의 얼굴에는 스스로에 대한 책망과 자책, 그리고 그날의 죄스러움이 가득했다.
 

총살 집행 후 석 달간 봉성산은 출입이 금지됐다. 그가 아버지 유해를 찾아 봉성산에 오른 것도 이듬해 3월이다. 할아버지와 마을 장정 두 명과 함께였지만 아버지를 찾을 순 없었다. 곳곳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고, 뒤엉킨 시신은 부패돼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썩은 추깃물에서 풍기는 악취를 견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빈손으로 내려왔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화병으로 인한 이질로 돌아가셨다.


1948년 11월의 구례는 13살 어린아이가 감당키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아무 내색 없었지만, 간혹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아버지를 죽인 자들에 대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어머니의 시선 끝에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데려온 자신의 모습도 함께 있는 것 같아 더더욱 괴로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남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어머니도 경찰서에 세 번이나 불려갔지만, 다행히 무혐의로 풀려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은 아버지의 삶을 덧칠하고 있는 붉은 빛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어머니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만석꾼까지는 아니었지만, 천석꾼 정도는 됐던 집안의 가세도 날로 기울었다. 전답(田畓) 한 마지기를 팔아 일 년을 생활하고, 이듬해 또 한 마지기를 팔아가면서 연명하는 식이었다. 

 

"사는 게 아니었지." 

 

31살에 홀로된 어머니의 삶에 대해 박 씨는 그렇게 표현했다.
 

2007년 박 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어머니는 90세의 나이로 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외로움이 누구보다 더할 터지만 그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취재진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그날의 기억을 듣고자 했지만, 박 씨는 한사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엇 때문인지 당시 얘기만 나오면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역정을 낸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는 6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어둠과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유에서였을 게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구례 지역 여순 사건'과 관련해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건 관련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할 것과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및 위령사업 지원조치를 마련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사진은 박찬근 씨가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받은 진실규명 결정 통지서. ⓒ커버리지(정찬대)


2015년 1월 박 씨를 다시 찾은 취재진은 어머니의 안부부터 물었다. 박 씨는 착잡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5년 전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박 씨의 얼굴도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건강은 좀 어떠세요'라고 물으니 최근 위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그의 눈망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참으로 한 많은 인생이었다. 박 씨도, 그의 어머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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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번호제 도입 합의, 김무성과 문재인 중 누가 이익인가?

 
김무성과 문재인의 ‘추석합의’에 담긴 정치
 
안심번호제 도입 합의, 김무성과 문재인 중 누가 이익인가?
 
임두만 | 2015-09-30 09:30:5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이른바 ‘추석합의’라는 합의정치의 결과물을 내놨다. 이 합의의 골자는 국민안심번호제 도입을 전제로 한 완전국민경선제를 공직선거법 조항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김무성 문재인 대표가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kbs 뉴스9 캡쳐

이 외 예비후보 등록기간을 선거일 전 6개월로 연장하고, 예비경선 홍보물을 전 세대로 확대한다든지 시민 여성 청년 장애인 등을 위한 가산점 부과에 대해 법에 근거로 두고, 또 불복에 대한 규제를 법으로 규정한다든지 하는 합의는 사실상 사족에 불과하다.

더구나 현재 정치인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인 선거구 획정안과 연계된 의원정수 문제, 이에 따른 비례대표 수 축소 또는 확대,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에 대해서는 추후 더 논의한다 정도로 미봉했으므로 이번 합의는 '정당의 후보자 공천을 모바일 부대에게 일임한다'가 핵심이다.

그런데 이 합의를 두고 혁신안을 반대하는 새정치연합 비주류 측에서 반발한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에서 강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반면 새정치연합 비주류는 ‘좀 더 두고 보겠다’ 모드다. 당연한 순리다. 새정연 비주류는 나쁘지 않지만 새누리당 친박 입장에서 보면 김무성의 소리 없는 쿠데타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는 지난 며칠의 정치권 상황을 되짚으면 답이 나온다.

상황 하나 : 전광삼 청와대 춘추관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했다. 대구 북구갑이 희망지역이다. 그 지역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권은희 의원 지역구다. 권은희는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인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은 초선이다. 그러나 유승민과 가깝다고 표적이 되었다.

또 현재 전씨 외 청와대의 박근혜 핵심 부하들인 안종범 경제수석, 신동철 정무비서관,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등이 총선 출마 대상으로 꼽힌다. 그리고 민경욱 대변인을 제외한 대부분이 대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청와대가 공천권을 행사했을 때 가능한 그림이다. 특히 이 그림은 대구의 반박그룹 제거를 위한 것이다.

상황 둘 :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내친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 배신자였다. 그리고 그 언급이 나오면서 당내 친박 홍위병들의 전방위 사격을 통한 유승민 죽이기에 돌입했다. 유승민은 견디지 못하고 낙마했다. 낙마 후 유승민은 재기불능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유승민의 인기는 여론조사마다 박근혜의 대구 아성에서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예비 경쟁자들의 추종을 불허했다. 유승민 외 현역들도 국민경선이라면 청와대 낙점인사들을 모두 이길 수 있다.

상황 셋 : 유엔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방미기간 중 무려 7차례나 만났다. 뉴욕 방문기간 내내 박근혜 대통령 곁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이번 순방 기간에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환단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kbs뉴스 9 화면 캡쳐

뉴욕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 첫 일정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관저의 만찬이다. 이후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유엔개발정상회의, 기후변화 주요국 정상 오찬, 유엔총회, 유엔평화활동 정상회의 등 7차례나 자리를 함께했다.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한 셈이다. 기간 중 두 사람의 발언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자랑하는 새마을 운동에 대해 뜬금없이 박 대통령이 언급하자 반 총장이 기다렸다는 듯 화답했다.

더구나 이 와중에 SBS는 추석특집 여론조사라며 반기문 1위의 대선주자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반기문 총장은 자신을 여론조사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 후 한동안 국내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가 반기문을 낙점한 것으로 보이자 SBS가 충성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간 것이다. 김무성이 그냥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김무성에게 이 세 가지 상황은 이대로 박근혜와 청와대의 강공 드라이브에 속수무책 밀릴 경우 내년 공천권은 청와대가 장악하고, 자신은 계속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또 대놓고 반발하기도 명분이 없다. 총선 승리는 기정사실인데 그 승리의 열매를 가져간 이는 박근혜 대통령, 그 힘으로 반기문을 낙점 영입한 뒤, 자기가 공천하여 당선시킨 직계 의원들을 줄 세워서 후보경선을 통해 김무성을 잡게 하겠다는 계산. 김무성은 박근혜의 이 계산을 읽었다.

그렇다면 김무성이 대놓고 반발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박근혜에게 공천권을 법을 통해 빼앗아 오는 것이다. 특히 여야합의로 개정된 공직선거법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약점도 있다.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는 현 의석 분포상 소수인 친박이 반대해도 국회에서 재의에 붙여 통과시킬 수 있으므로 그리 되면 김무성의 완승이 된다.

결국 김무성은 자신이 그동안 줄곧 주장했던 완전국민경선제에서 한발 후퇴, 문재인의 안에 합의해주므로 국회 재의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김무성이 문재인을 살려준 것이 아니라 문재인이 김무성에게 큰 선물을 준 셈이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왜 이 안에 그렇게 목줄을 메고 있을까? 거기도 무수한 함수가 숨어 있다. 일단 국민안심번호제라는 모바일 경선이 채택되면 당 안의 모든 반란을 잠재울 수 있다. 이 방식은 현역이 무조건 유리한 제도이므로 비주류라도 현역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특별히 혁신안의 20% 물갈이 대상으로 찍히지만 않으면 공천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때문에 이 안이 법으로 확정되면 20%에 찍히지 않으려고 비주류도 충성경쟁을 해야 한다. 만약 20%로 찍혀 물갈이 대상이 된 뒤 탈당해도 그때는 신당에서도 받아주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다음이므로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당선이 어렵다는 것은 지금까지 선거로 다 확인된 바다.

공천 탈락자가 당선된 전례는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 야당으로는 박지원 등 손꼽을 정도로 적다. 즉 국민들은 특정 후보자의 공천탈락이 정치보복이었음을 인정했을 때나 구제해주지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가 어떤 변명을 해도 찍어주지 않았다. 따라서 이 안은 문재인에게는 야당의 모든 분란을 잠재우면서 당을 장악하고 보스노릇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안이다.

결국 이 같은 두 사람의 정치적 계산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김무성-문재인의 추석합의’라는 정치행위다. 하지만 겉으로는 이처럼 문재인이 좋은 것 같은 합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문재인은 또 한번 김무성 도우미를 한 셈이 된다. 이 합의가 법으로 시행된다면 총선은 새누리당 압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민심은 전국 어디에서고 새정치민주연합 현역들은 모조리 낙선시켜야 한다는 비토민심이 팽배하다. 특히 호남권 현역들도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현 새정연 현역들이 다시 출마했을 때 당선을 자신할 수 있는 지역은 어디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당 안팍에서 80석 운운하는 말이 정설처럼 돈다. 여기에 현재 당 밖에서 꿈틀대는 신당이 출범하고 웬만한 힘만 비축한 채 선거에 뛰어들면 새정연은 50석도 어려울 수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개헌선 확보도 가능하다. 개헌선은 200석이지만 안정적 개헌선은 210석 쯤이다. 90석 정도를 새정연, 신당, 진보정당 등에게 내주더라도 개헌선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현재의 새정연은 신당과의 경쟁, 새누리당과의 경쟁을 감안했을 때 이길 수 있는 후보가 정말 절실하게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길 수 있는 후보라도 친노 정파가 아니거나 친노 정파에 충성맹세를 하지 않으면 배제의 대상이므로 결국 모바일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당권만 확실하게 잡으면 되는 것이지 총선의 승리는 뒷전인 것이 ‘모바일 공천’이란 말이다.

김무성은 이 약점을 이용했다. 박근혜의 공천권을 무력화 시키고, 자신의 주장대로 공천룰이 확정되어 총선의 압승을 한다면 그 다음은 바로 자신의 세상이 된다는 계산, 박근혜는 레임덕, 자신은 청와대 밖 대통령…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후보경선은 그냥 통과의례이며 본선 상대가 문재인이라면 경남중 1년 선후배 대결이므로 완승이라는 계산도 나온다.

앞서 거론했지만 그래서 이 합의는 지금 야당보다 여당 내 친박계에서 더 강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명목은 “왜 문재인을 구제해주느냐?”이지만 실상은 “당신이 뭔데 대통령의 공천권을 박탈하려 하느냐?”이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을 대권 후보로 밀 생각이 없다”는 것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새누리당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이 정도의 계산도 없이 김무성이 양보한 것으로 착각, 자신이 이긴 협상이라고 희희낙락이니 그가 아마추어임을 자인하고 있음이다. 또 이런 문재인을 추종하는 정치인도 세력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 야당의 교체 없이는 어떤 희망도 없다.

특히 문재인을 지지하는 그룹은 지난 대선에 대해 전자개표기 조작이 의심된다며 전자개표를 믿을 수 없으므로 수개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 선관위를 고발했다. 재판에 의한 재검표 요구다. 그런데 이들은 또 당내 선거는 모바일 투표를 또 선호한다. 아직까지 모바일 투표에 대한 어떠한 검증도 없이 다 용인되었다. 재검표는 더더욱 용인되지 않았다. 단지 여론조사 경선의 조작에 대해 법원판결로 불법임이 드러난 사례가 상당수 나타난 정도다.

특히 모바일은 조작이 있을 수 없다고 누구도 공인한 적 없다. 따라서 만약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를 모바일로 하자고 한다면 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도 궁금하다. 그만큼 저들의 주장이 이율배반이란 얘기다. 결국 당내 경선을 모바일로 하자고 하는 것은 모바일 부대를 동원하는데 가장 능한 자신들이 당내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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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 핵항모, F-22랩터 방한 저지 파탄”

 
 
“통일 훼방꾼 미국 정세 안정 파괴자” 비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29 [20: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조선은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와 렙터 22 전투기의 방한을 앞두고 전쟁 위기를 고조 시키려는 것이라며 저지 파탄시키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노컷뉴스는 29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를 인용 미 핵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의 부산 입항과 미국 F-22랩터 전투기 등의 파견 등에 대해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미국이 한쪽으로는 북남관계발전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각종 침략전쟁장비들과 병력을 대대적으로 조선반도(한반도)와 그 주변수역에 집중시키려는 미국의 속내는 불보듯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는 "한마디로 북남합의이행과 관계개선의 흐름을 차단하고 조선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하게 방해를 놓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북과 남은 오는 10월하순 금강산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진행하고 당국회담도 예견돼 있다"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되면 북남사이에 대화와 협력의 새로운 진전이 이룩될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남합의가 있자마자 그 이행에 온갖 훼방을 놀아왔으며, 이제는 항공모함까지 들이밀어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당국은 북남관계개선분위기를 파탄내려는 미국의 흉심을 똑바로 꿰뚫어보고 어리석은 외세의존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남측에 자주성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통일의 훼방꾼이며, 정세안정의 파괴자인 미국의 책동에 각성을 높이고 그를 단호히 저지파탄 시키기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서야 할 것"이라며 강조했다.

 

남측군 당국은 "다음달 18일~23일부산 앞바다에서 개최되는 광복 70주년-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관함식에 ‘로널드 레이건’호가 참가한다"고 밝혔다.

 

이번 관함식에는 부산작전기지와 오륙도~송정 해역에서 열리며 35개국 해군 등 5만 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 다음달 10일~25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에 미국의 F-22 전투기 2대와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등이 참가할 예정으로 남북관계에 지장을 초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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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은 갑자기 왜 새마을운동 ‘홍보대사’가 됐나

반기문은 갑자기 왜 새마을운동 ‘홍보대사’가 됐나
[김종철 칼럼] 유엔사무총장의 닭살 돋는 ‘박비어천가’… 반기문은 박기문이 될 것인가
 
입력 : 2015-09-30  04:32:43   노출 : 2015.09.30  09:26:22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 cckim999@naver.com    
 

추석 연휴에 대통령 박근혜와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미국 뉴욕에서 ‘찰떡 궁합’을 과시했다. 박근혜는 3박6일의 뉴욕 체류기간에 반기문을 7번이나 만났다. 두 사람은 비공식으로도 몇 차례나 만났다.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와 똑같은 국적을 가진 유엔사무총장이 빠듯한 일정에서 시간을 여투어 그를 자주 만나는 것이야 목적이 정당하다면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유엔총회에 참석해서 기조연설을 하는 것이 박근혜의 가장 큰 공식 업무였는데 반기문과의 잦은 만남이 더 ‘중대한 일’처럼 보였다.

박근혜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반기문과 20분 동안 ‘독대’를 한 뒤 유엔의 주요 인사들과 만찬을 가졌다. 가뜩이나 집권세력 안에서 차기 대선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어지러운 마당에 박근혜가 세계의 안보와 평화에 집중해야 하는 유엔사무총장을 하루에 두서너 번이나 만나 무슨 대화를 했는지에 대해 국민들은 당연히 깊은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박근혜는 9월 26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한국 정부와 유엔개발계획(UNDP),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주최한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개회사를 통해 “대통령이시던 선친께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떠한 성공 요인들이 어떻게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서 국민과 나라를 바꿔놓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기문은 그 행사에서 “새마을운동이 처음 시작될 때 나는 공무원으로서 그 운동을 실행으로 옮기는 노력을 했다”며 “내가 살던 나라가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가난했던 마을과 주민의식의 급진적인 변화를 목격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정권이 1971년에 시작한 새마을운동에 대한 박근혜의 평가는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른 미사여구와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는다. 새마을운동의 본질과 결과에 대해서는 오유석이 2003년에 발표한 ‘농촌근대화전략과 새마을운동’이라는 논문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3대 정신 중 하나로 ‘협동’을 내세웠지만 사실 그것은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칠 뿐 실제로는 주민들의 자유권 행사가 거부되고 창조적인 진취성을 기대할 수 없는,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강요된 협동이었다. 집단적인 노력동원에 기초한 생산과 소득증대를 추동하기는 하였으나, 이 과정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부락공동체의 배타적인 정신풍토 내지 집단심리를 이용하고 마을 간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농민들 간, 마을 간의 횡적 유대관계와 상호 대등한 관계에 기초한 협동은 끊어졌다. 그 자리를 국가와 농민(또는 국민)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대신하게 되었고, 횡적 관계를 잃은 수직관계는 모든 농민을 ‘국가와 조국 근대화를 향해 나란히’ 정렬하도록 집체화(集體化)했다. 그리고 이러한 집체화 과정에서 반드시 생기게 마련인 중간 매개의 통제집단으로 새마을지도자와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것을 구성하여 새롭게 재편된 수직관계의 체계화를 이어주고 지탱해주는 말단 ‘끄나풀’로 이용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군대식 ‘집체형’ 동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박근혜의 주장대로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들’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서 국민과 나라를 바꿔 놓았다면, 박정희는 왜 그 운동을 시작한지 한 해만에 ‘10월 유신’이라는 헌정 쿠데타를 일으켜 온 나라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어야 했을까? 그리고 왜 농촌의 젊은이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려야 하는 대도시로 몰려들어 마침내 농촌에서 중장년과 노인들이 농사를 도맡다시피 하게 되었을까?

반기문은 앞의 유엔 행사에서 “새마을운동 성공의 핵심 요소는 교육이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동참해 사회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그 핵심에 교육이 있다”며 한국 정부가 새마을운동의 개발도상국 전수를 통해 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데 대해 박근혜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도대체 새마을운동이 현재 한국에서 어떤 교육적 성과를 거두고 있기에 그것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겠다는 것인가? 한국사회의 교육 자체가 ‘승자 독식’ ‘기득권 강화’의 도구가 되어 있는 세계 최악의 상황인데 유독 ‘새마을운동 교육’만은 생산적이고 진취적이라는 뜻인가?

박근혜는 유엔 행사에서 “지금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현재진행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한 뒤 “새마을운동이 각국의 특수성과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글로벌 농촌개발전략과 국가발전 전략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의 박정희 식 ‘한국적 파시즘’을 독재국가들에 수출하겠다는 것이라면 몰라도 참으로 어이없는 ‘포부’이다.

반기문은 유엔사무총장 자격으로 ‘새마을운동 국제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새마을운동이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면서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향해 ‘박비어천가’를 불렀다. 노무현 정권이 음양으로 도와 어렵사리 유엔사무총장이 된 그의 변신에 대해 외교관 사회에서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한다. 그 사회에서 나도는 반기문의 여러 별명 가운데는 ‘반반(反潘)’이라는 것이 있다. “반기문 따라 하다가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하니, 아예 따라 할 생각을 말라”는 뜻이다(<경향신문> 인터넷판 9월 27일자).

반기문은 대통령후보가 될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2016년에 유엔사무총장 임기를 마치는 그는 결심만 한다면 2017년의 대선 출마 준비를 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그가 이른바 ‘친박’의 도움으로 대선에 나서건 야당과 손을 잡건, 그것은 그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반기문이 만약 대선에 출마한다면, 현재 박근혜의 ‘새마을운동 홍보대사’ 역할에 충실한 그가 그때는 어떤 정책과 이념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할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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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도 죽어선 안돼" 거리로 나온 일본 엄마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9/30 09:01
  • 수정일
    2015/09/30 09:0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특별기고] 안보관련 법제에 반대하는 엄마들의 모임@사이타마(埼玉)

15.09.30 08:46l최종 업데이트 15.09.30 08:46l

 

 

이웃나라 일본에서 특별한 원고가 들어왔다. '안보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엄마들의 모임@사이타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토 마유카의 글이다. 그는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드는 안보 관련 법안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쳐오면서 느낀 점을 글로 써서 한국에 전해왔다. 1975년생인 그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을 두고 있고, 츠케모노(일본식 채소절임) 만들기가 취미인 평범한 엄마다. 현재는 사이타마현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지역주민들과 교류하고 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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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1일, 사이타마청사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사진. 가운데가 필자.
ⓒ 엄마들의 모임@사이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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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하기 전 모두 함께 원을 만드는 엄마들의 모임.
ⓒ 엄마들의 모임@사이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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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나는 얼마나 여러 번 국회의사당 앞에 갔을까? 때로는 남편, 아이와 함께, 때로는 마음이 맞는 아이 친구 엄마와 함께. 처음에는 배낭에 뜨거운 햇빛을 가릴 만한 것과 음료를 챙기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드리는 북이나 펜 라이트, 가지각색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챙겼다. 이제는 "어떤 아이도 (전쟁에서) 죽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MOTHERS AGAINST WAR"라는 글귀가 적힌 핑크색 현수막까지 배낭에 넣는다.

'엄마들의 모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전쟁은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시작됐지만, 전쟁은 단지 살인을 정당화시켰을 뿐이며, 결국 전쟁 지역의 생명과 자연, 환경, 문화를 파괴하는 것으로 끝났다. 일본도 예전 전쟁으로 인해 자국의 토지가 파괴됐고, 핵폭탄까지 투하됐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웃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전쟁 참화에 따른 역사 인식의 도랑은 아직 메워지지 않았다. 해결은커녕 아베 수상의 재등장 이후 "그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드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에 강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어쩌면 전쟁에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그 일상생활을 해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그렇다. 나는 엄마로서 '전쟁', 그 자체를 반대한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다. 안보 관련 법제에 반대하는 엄마들의 모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쟁으로 평화를 구축할 수 없다"라는 사실에 우리 엄마들이 눈을 떴고, 행동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우리 엄마들은 "MOTHERS AGAINST WAR"이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을 걸고, 올 여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들었다(이런 우리 엄마들의 모습에 "잘 일어섰다"라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뇌수가 꽃밭인 바보스러운 엄마들"이라고 비난하는 인터넷우익 같은 세력들도 있다).

안보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강행 처리됐던, 지난 9월 14일부터 19일까지 엄마들의 모임 회원들은 SNS를 통해 24시간 체제로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각 라디오나 텔레비전, 인터넷 국회 중계에 매달려 심의의 행방을 서로 보고하고 공유했다. 야당 대표의 반대 연설을 들으며, 심한 야유를 던지는 여당 의원의 말에 깊이 실망했으며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런 정당이 전후 70년 동안 일본을 이끌어 왔고, 그것을 우리 국민들이 용서해 왔던 것을 가슴 속 깊이 후회했다. 누가 읽어 봐도, 누가 뭐라고 해도, 안보 관련 법안은 헌법 위반이다. 왜 그것이 "위헌이 아니다"라고 우기는지, 우리 엄마들은 정말 분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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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7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엄마들의 모임 멤버들이 모여 참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Yoshito Yama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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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아이의 유치원 친구 엄마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국회 앞으로 향했다. 오후 4시 30분이 지났을 때였을까? 후쿠시마에서 사이타마 현으로 자주 피난(방사능 피폭을 우려해 경계 지역이 아닌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으로 다른 현으로 피난한 것을 말함)을 와 있는 '엄마들의 모임@사이타마(埼玉)' 한 회원에게 전화가 왔다.

"마유카상, TV 생중계를 보고 있는데, 지금 참의원에서 안보 법안이 가결된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어. 와~ 하면서 엄청난 의원들이 위원장의 자리로 몰려들고, 위원장은 그 사이에 끼여서, 아마 가결된 것 같아. 대체 뭐지? 결정된 거 같아요." (17일 참의원 특위에서 격렬한 몸싸움 끝에 안보 법안을 통과시켰다)

어리둥절해 있는 그 엄마에게, 나는 간신히 말했다. 

"예상했었잖아. 예상됐던 일이야. 전후 70년 동안의 자민당 정치가 몇 년 동안의 항의로 바뀔 리가 없지. 예상된 일이잖아." 

그렇게 답변하는 것이 그때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스스로에게 허용되지 않는 기분과 분노에 떨고 있었다.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 나라의 최고 법규인 헌법의 전쟁 포기 정신이, 아베 정권의 '제멋대로 해석'에 따라 무시되고, 중대한 헌법 위반이 중대한 것이 아닌 것 마냥 용인되어 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숨을 걸고 낳은 소중한 아이들의 미래가, 전쟁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어디에 '전쟁을 막을 억지력'이 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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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7일 엄마들의 모임 국회요청행동. 필자가 사이타마 엄마들의 모임 활동의 하나로 Volcano신문 발간을 보고하고 있다.
ⓒ @Yoshihiko Ham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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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에서 안보 법안이 가결된 순간은, 입헌주의를 전제로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였던 나라의 수반이 "헌법 위반이다! 전쟁은 싫다!"라고 외치는 우리를 향해 "시끄러워!"라며 뺨을 세게 때린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9월 19일, 국회에서 안전보장 관련법이 최종 통과됐다. 아베 수상은 "국민의 목숨과 평화스러운 생활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법제이며,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일본을 계승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 기반이 정비되었다, 앞으로도 적극적인 평화 외교를 추진하고, 만일에 대비해 만전을 기하고 싶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기자단을 통해 발표했다(석간 <요미우리> 9월 19일자).

이 안전보장 관련법 어디에 '전쟁을 막는 억지력'이 쓰여져 있다는 것일까. 몇 번이고 법안 내용을 읽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법안 내용에는 미국을 비롯한 UN이 세계 각지에서 일으키는 전쟁·분쟁 지역에 일본의 자위대가 (후방)지원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었다. 

일본과 영토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이웃 나라들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미일 안전보장 조약을 토대로 출동하는 미군을 자위대가 지원할 수 있고, 미군 지원 임무에 지장이 있을 경우 자위대가 타국 군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유사 사태에 대비해 자위대를 싸울 수 있는 군대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어디에 '전쟁을 막는 억지력'이 있다는 것인지.

일본은 전후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칭해왔다. 그렇지만 내실은 전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자민당을 필두로 하는 여당과 전후 일본의 백본(backbone)이 되어 온 미군의 지배가 일체화된 정치 안에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모양을 겨우 '체험'해 온 것 뿐이다. 우리는 국회 앞에 항의하러 다니는 날을 거듭하면서 이런 사실을 느꼈다. 우리는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하나도 구현하지 못했다. 이런 역사가 현재 안전보장 관련 법안의 성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 통한 전국적인 낙선운동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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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카페에서 미팅하고 있는 엄마들의 모임.
ⓒ 엄마들의 모임@사이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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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절망이라고는 생각되지만, 안보 법제 통과 후, 우리들의 증폭된 분노는 지금도 우리를 '여기'에 서 있게 한다. '안보 법제에 반대하는 엄마들의 모임@사이타마(埼玉)'은 안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 된 이후 대책 회의를 거듭하고, 다시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내년 참의원 선거를 겨냥해 안보 관련법에 찬성한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에 동참할 예정이다. 전국적인 낙선운동은 이미 페이스북을 통해 시작되었다. 우리들도 해당 지역 의원의 프로필을 작성하고 있다. 명단 작성이 완성되면 될 수 있는 한 많은 지역 주민에게 이를 알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지하철역 앞에서 릴레이 스피치를 계획하고 있다. 사이타마 지역 주민들의 귀가 시간에 맞추어 정기적으로 연설하려고 한다. 부모 처지에서, 같은 지역 주민 처지에서 이웃들에게 호소하려 한다. 우리 엄마들의 목소리는 작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출발점으로 우리의 목소리가 사회에, 정치에 메아리로 울리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교류가 없었던 엄마들이 나에게 연락을 해오고 있다. 나에게 뿐만이 아니다. 엄마들 모임의 다른 회원에게도 많은 엄마들에게 연락이 오고 있다. 연결고리가 없었던 엄마들과 함께 손을 잡고, 일본 정치를 바꾸고 싶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이 아닐까 생각된다. 작지만 강한 힘, 엄마들의 파워를 지금부터 보여주겠다.

국회 앞에서 계속 항의 시위를 해 온 대학생 단체 '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가 외치는 "전쟁 반대! 국민을 얕보지 마라! 헌법을 지켜라!", "민주주의가 무엇이냐! 이게 민주주의다!"라는 구호 합창처럼, 이제부터 일본 민주주의는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한국의 엄마들 그리고 시민들과도 함께 하고 싶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관련 사이트]

安保法制に反対するママの会@埼玉 FBページ
안보법제에 반대하는 엄마들의 모임 @ 사이타마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others.against.war.saitama

安保関連法に反対するママの会(本部?!のような存在)
안보관련법에 반대하는 엄마들의 모임 (전국 엄마들의 모임 본부와 같은 존재)
http://mothers-no-war.colorballoons.net/
FBページ
https://www.facebook.com/mothers.no.war

大学生の安保反対団体  대학생 안보반대단체 시르즈
SEALDs(シールズ)
http://www.sealds.com/
FBページ
https://www.facebook.com/saspl21?fref=ts
사이타마 엄마들의 모임과 협력 주최로 데모를 한, 지역 고등학생의 안보반대단체
Vip(Voices Into the Peace)

埼玉のママの会と協催でデモをした、地元高校生の安保反対団体
Vip(Voices Into the Peace)
FBページ
https://www.facebook.com/VIP%E5%9F%BC%E7%8E%89-933514100003979/timeline/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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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돈키호테, 오랜 친구 김낙중 형

[남재희 기고] 통일 돈키호테, 오랜 친구 김낙중 형
[고난 속 꿋꿋이 산 사람들·⑨] 임진강 건너가 평양에…사형 구형만 5번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2015.09.30 06:03:39
 
 

서울대 문리대 정치과 중심의 동아리 신진회(新進會), 서울대 법대의 동아리 신조회(新潮會), 그리고 고려대 경제과 중심의 동아리 협진회(協進會)의 졸업생들이 4.19 후에 다시 모였다. 이름을 신조회로 단일화하고 정례적인 모임을 갖는 한편 '신조’라는 얇은 간행물도 프린트로 몇 번인가 냈다. 모이는 장소는 을지로 삼각동에 있던, 주석균 씨가 운영하는 농업문제연구소. 저녁에 그 연구소의 사무실을 빌려서 쓰는 것인데, 가끔 가다가 거기의 연구원인 박현채 씨가 퇴근하는 것을 만나기도 하였다. 박현채 씨는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따르던 진보적 경제학자로 나중에 김대중 씨가 낸 대중경제론의 밑글을 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신진회는 5,6학년에 걸친 규모가 매우 큰 조직이다. 아마 50~60명의 회원이 있었을 것이다. 대표적 인물은 김지주(金志柱)군. 영국의 페비언 사회주의자인 해럴드 라스키, G.D.H 콜 등을 인용하며 정열적으로 정치이론을 폈다. 그는 신문사를 지망했으나 실패하고 럭키 그룹에 입사하여 중요 회사의 사장을 지냈으나 요절하였다. 신진회 멤버들은 말하자면 그런 페비언 사회주의에 경도되었는데 졸업 후 대거 언론계로 진출하고 나머지는 학계로 갔다. 

신조회는 김동익(金東益) 군이 선두인데 그때 영국의 페비언 협회에 가입하려고 열성을 보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2개 학년에 그쳐 회원 수는 많지 않았다. 중도에 최상징(崔相徵) 군이 서울법대는 노동법 등 사회법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하여 '사회법학회’로 방향을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사회법학회는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10여년 동안 유지되었다. 거기서 황돈, 심재택, 조영래, 장기표 씨 등 쟁쟁한 투사급 인물들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협진회는 그 대표 격이었던 김두환(金斗煥) 군 표현을 빌리면 "무언가 공동의 이상을 추구해 보려고 모색하는 모임"이었지, 페비언 사회주의 운운하고 이념을 내세운 동아리는 아니었다. 

4.19 후 신조회로 단일화되어 동인지 '신조’를 낼 때 협진회 출신 김낙중 군이 그 편집을 맡았다. 편집을 책임지다 보니 자연스레 권두 칼럼 집필도 맡게 된 것 같다. 5.16 후 이 신조회 패들도 조사를 받았다 .수사 당국이 전부터 주목해왔던 것 같다. 형사 처벌을 받는 등 크게 문제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조사를 받았는데 그들은 '신조' 잡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권두 칼럼이 과격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때는 좀 과격한 게 아닌가 하고 느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하니 그는 무어가 과격하냐고 도리어 화를 내며 반격을 한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니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쓸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 기관에서 읽은 것과 시일이 지난 생각한 것 사이에는 역시 격차가 있는 것 같다. 

4.19 후 신조회 모임을 할 때도 김낙중 형이 평양에 갔다 와서 처벌 받았다는 이야기를 막연하게나마 들었었다. 그러나 일단 법적으로 끝난 문제이고 하여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나는 동인지 '신조'에 중립화론을 썼었다. 그 당시 미국의 맨스필드 상원의원이 한반도의 오스트리아식 중립화를 거론하기도 하였으며, 마침 내가 정기구독하기 시작하던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한반도의 핀란드화(핀란디제이션)?'’란 한 페이지 칼럼을 내기도 하였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종합하여 글을 써본 것이다. 

5.16 후 나를 조사한 수사관은 다행히 인격적으로 아주 훌륭했던 것 같다. 한 번은 그의 상사가 조사실에 들여 "무슨 일이냐" 한다. 그러니까 수사관은 "중립화입니다" 한다. 상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휙 나가 버린다. 그때 내 느낌은 그랬다. 4.19 공간에 남북 협상론과 중립화 통일론이 있었는데 수사 당국은 남북협상론은 엄히 추궁하고 중립화론에 대해서는 얼마간 부드러웠던 것 같다. 남북협상론은 다이나미즘이 있으나 중립화론은 그런 역학이 없는 수동적 형태의 논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김낙중 형이 대학생 때 평양에 다녀왔었다는 것은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었다. 그러다가 자세히 알게 된 것은 그가 형무소에 있을 때 (하도 여러 번이니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다.) 그의 부인이 나를 찾아와서 요로에 그의 감형·석방을 운동해 달라고 부탁해와서이다. 국민학교 선생인 부인은 <굽이치는 임진강>이란 원고 뭉치를 내놓는다. 부부가 교대로 합작으로 쓴 그 원고는 김 형의 통일운동에 관한 것으로 임진강을 건너간 평양행이 그 중심 이야기다. 

박진목 씨라고 역시 통일운동가로 유명한 인사가 중앙정보부와도 잘 통하는 처지여서 그 분에게 그 원고를 주며 부탁을 했다. 그가 그 원고를 읽어보고 그것을 중정에 주며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결국 원고만 되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복사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 용케 복사본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책으로 되어 나왔다. 

그가 평양에 갔다는 이야기는 이미 <프레시안> 인터뷰로 자세히 소개된 일이 있어 여기서는 대충의 줄거리만 소개하겠다. (☞관련 기사 : 간첩 김낙중, 사형선고만 다섯 번…후회하지 않는다

 

 

▲ 통일운동가 김낙중. ⓒ프레시안 자료사진

 

 

서울대 사회학과에 다니며 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통일 독립 청년공동체 수립안'이라는 것을 마련해 남한 정부 당국에도 호소하였으나 무시당하자 그것을 갖고 북에 가서 평양 당국에 호소해 보려 하였다.

'통일 독립 청년공동체 수립안'은 좌··우익의 사상으로 교육·세뇌(?)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을 남북에서 모아 그들을 잘 육성하여 평화 통일의 기본 세력으로 삼자는, 그리고 그들을 확장하여 통일을 이룩하자는 구상인 듯하다. 마치 못자리 판에서 사상에 오염되지 않은 묘판을 길러 그것을 이앙(移秧: 옮겨 심기)하자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좀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순진무구한 생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아마 돈키호테적이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는 줄 안다. 

아무튼 그는 그 생각을 대단히 골똘하게 외골수로만 한 모양이다. 하기는 그는 피난 부산에서 '탐루(探淚)'라는 큰 글씨를 쓴 등(燈)을 들고 한복 차림으로 시내를 돌아다녔다고 지난날의 일을 말하기도 하였다. 눈물 없는 세상에 '눈물을 찾는다(探淚)'는 취지인데 옛 희랍 디오게네스가 등불을 밝히고 다녔다는 고사(故事)에서 생각해낸 듯도 하다. 경찰은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 스스로가 한 고백이다. 

그런 편집(偏執)하는 성격이기에 아마 '통일 독립 청년공동체 수립안'이 가장 올바른 통일 방안이라고 확신하고 평양행을 감행했을 것이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어려운 발상이다. 

그는 고향이 파주 임진강가이기에 그곳을 잘 안다. 임진강 하류에서 에어 매트리스를 타고 손으로 저어서 북으로 갔다. 요행히 지뢰는 밟지 않고 민가에 갔는데 거기서 당국에 신고되어 평양으로 압송된다. 방학세 내무상까지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심처라는 감옥에 보내졌는데 그의 말로는 옆방에 박헌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글쎄, 그렇다 치고 들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그때 대남 평화 공세를 하고 있을 때라 평화 통일안을 들고 온 남한의 대학생을 처벌하기가 곤란했던 모양이다. 병을 앓고 있던 그를 압록강 하구 황금평에 있는 상이군인 병원으로 보내 요양케 한 후 1년 만에 남으로 내려보냈다. 휴전선에서 철길 따라 내려오다 미군에게 먼저 잡혀 조사를 받았다. 그 후 한국의 치안국에 넘겨졌다. 1956년 가을쯤이란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심 1년 징역형, 2심 집행유예, 4.19가 난 직후 대법원에서 면소 판결로 이어진다. 그 때 그가 학생이기 때문에 사법당국이 관대했다는 느낌이다.

그는 그 후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고려대 경제학과로 옮기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5.16 후 고려대에서 학생 데모가 일어나자 정권은 "김낙중이 북에서 간첩 교육을 1년간 받고 돌아와 학생들을 선동했다"고 아주 편리하게 이용한다. '간첩 김낙중'의 체포 발표다.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뒤에 3년 6개월 징역형 언도로 낙착되었다. '악운의 톱니바퀴'에 걸려든 것이다. 그 '악운의 톱니바퀴'에 걸려들면 시국사건이 있을 때 자주 자주 편리하게 이용되는 것이다. 

김 형이 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발표된 것 가운데 가장 요란했던 것은 그가 민중당의 이우재 씨와 함께 공동 대표로 있을 때 간첩으로부터 2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사건이다. 본래 정당 운동을 하지 않았던 그였는데 민중당 측에서 통일 간판으로 삼으려고 영입한 것 같다. 그 후 유명해진 이재오 사무총장이 교섭해 왔다는 그의 설명이다. 

그런 그에게 '북'에서 200만 달러를 자금으로 제공하고 그는 그 중 일부를 남대문 암시장에서 환전하여 당직자 몇몇에게 나눠 준 모양. 대부분의 달러는 장독대 속에 숨겨두고. 당시 그 일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런데 그는 예상보다 가벼운 형벌로 끝났다. 

뒷날 그를 만난 김에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200만 달러는 거금인데 북이 그 많은 돈을 전달할 까닭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혹시라도 조작된 것은 아닌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진짜로 북에서 보낸 것 같다고 말한다. 우선 북에서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자기가 북에서 말한 내용을 그대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진상은 모를 일이다. 나는 그에게 어느 기관에서 혹시라도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위치로 보아 200만 달러는 너무나도 큰 돈이다. 그리고 그 뒤의 처벌도 그렁저렁이었던 것 같다. 만약에 '어느 기관'에서 공작을 했다면 돈도 별로 손실 없이 '대어'를 낚은 셈이 아닌가. 

그 후 민중당 대표였던 이우재 전 국회의원을 만난 김에 그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도 그 후의 처벌이 그리 엄하지 않았던 점이 의문이 간다고 약간 회의적 생각을 비쳤다. 

돈키호테적(?) 통일운동가 김낙중 선생은 아마도 200만 달러를 전달받고 여하간 북에서도 자기를 그만큼 대단히 비중 있게 평가해 준다고 크게 만족했을 것이다. 북이 그의 존재 가치를 높이 평가해 준다고 자존심이 충족되었기에 그는 의도적으로라도 그 일이 '진짜'인 것으로 믿고 싶었을 줄로 안다. 아마 그는 평생에 걸쳐 가장 흐뭇했을 것이다. 그런 심리의 자기 충족적 작용이 있지나 않았을까.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프레시안 자료사진

 
살아가는 동안 김 형과 나와의 얽힘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는 노동 문제를 연구하여 그 방면의 유명한 전문학자 김윤환 교수와 공저로 <한국노동운동사>를 펴냈다. 그 책 말고 약간 대중용인 이론서를 저술했을 때 그는 흥사단 회의실에서 출판 기념회를 열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였다. 나도 참석하여 축사를 맡았다. 여하간 그는 저술 활동에 끈질겼다. 

아들의 결혼식에도 초청을 받아 마포에 있는 공단 예식장에 간 일이 있다. 그 아들은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하고 지금 서울의 유명 대학에 교수로 있다. 

독립운동의 노선배들이 모임인 민족통일촉진회가 있다. 나도 한 때는 그 모임에 여러 번 나가고 거기서 나오는 간행물에 인물론을 연재하기도 하였었는데, 김 형도 그 후 그 모임에 관계하기 시작하여 정책 연구 책임을 맡아 열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 통일운동가인 그로서는 정열을 쏟을 만한 모임이다. 거기서 그는 또 한 사람의 통일운동가 박진목 씨와 깊이 사귄다. 

서울 근교의 신흥주택가 일산은 주민들의 수준도 높고 공동체 활동도 활발한 곳 같다. 그 지역 종교인들이 주축이 된 지역 사회 모임에 초청을 받아 강사로 갔더니 김낙중 형이 나와 있다. 파주에서 가까운 일산으로 이사했단다. 그리고 공동체 모임에도 열성인 것 같았다. 역시 그의 사회 참여 열의는 끊임이 없다. 

근래에 그를 만나자고 하니 서울 시내는 공기가 나빠서 기관지에 해롭다고 그가 사는 일산으로 오라고 까다롭게 군다. 처음으로 따져보니 그는 1931년생으로 나보다 두 살 연상이기는 하다. 이제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커피도 조심하는 듯 내 커피를 조금 따라 맛보기만 한다. 금이 간 듯한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여전하다. 그리고 요즘의 그의 생각을 정리한 듯한 <우리 민족 통일의 길-8.15 70주년을 맞으며>라는 얇은 논문을 건네준다. 이야기가 끝나자 도서관에 간다고 한다. 요즘도 아직 독서에 열심인 모양이다. 

강천((剛泉)이란 별로 운치 없는 아호를 고집하여 내세우는 것을 보면 김 형도 나처럼 별로 한학 공부를 깊이 하지 않은 것 같다. 아호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우선 운치도 없다. 

나에게 준 작은 논문은 말하자면 김 형의 통일 방안에 관한 기본 구상인 셈이다. 그 줄기는 ① 남북간 교류 협력 ②국가 연합 ③ 단일 국가의 순서로 많은 사람들이 말하여 온 그런 순서다. 그런데 김낙중류의 고집이라 할까 편견도 나온다. 북한의 독재 체제를 공산 체제의 본질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은 하지 않고, 남북 분단과 미국의 압박에 연유한 듯이 분석하고 있는 맥락이 그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분석에서 부족한 부분을 유독 강조하는 논법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글을 인용해 보자. 

"북조선에서는 우리와 같은 고려 민족의 구성원들이 살고 있지만, 사적 재산의 소유로 인한 분열은 아니지만, 당권의 유무 즉 어느 정도의 당권을 갖고 있느냐에 의하여 분열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당 독재 국가가 유지된 이유는 미국에 의한 남북 분단 이후, 미국이 군사 경제적으로 계속 북조선의 목을 조이는 상태를 지속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강대한 외세가 목을 조이는 상태에서 살아남자면 독재 체제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연유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분석하고 말면 사태의 원인 분석에서 주종을 혼동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남북 국가 내부 대통합의 길'에서는 이런 기발하다 할까 엉뚱하다 할까 한 제의를 하고 있다. 

"남측 사회에서는 소유 재산상의 분열이기 때문에 재벌의 재산과 재산이 한 푼 없는 무산자가 어떻게 하면 '삶의 운명공동체' 즉 하나의 '겨레'를 이루고 동고동락하며 더불어 살게 될까? 그 방법을 찾아야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첫째, 우선 돈 많은 부자들이 자진해서 가난한 이웃에게 장학금도 주고, 먹고 살 식량이나 거주할 방도를 마련해주는 따뜻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민족의 내부 분열로 인한 갈등을 완화하는 길입니다. 서구라파 국가들에서 하고 있는 방법이지요. 그러나 나는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도가 아닌 일시적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산을 많이 가진 부자와 재산이 없는 빈자들이 '삶의 운명공동체'를 만들자면, '공동 상속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공동 상속 제도'란 돈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는 일정액 이상의 소유 재산, 예를 들면 100억 원 또는 1000억 원 이상의 재산은 공동 상속해서 국가의 '공동 상속 기금'에 귀속 적립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공동 상속 기금'에 귀속된 재산을 매년 18세 또는 20세가 되는 청년들에게 일정액을 자본 분배해서 모든 젊은이가 공평하게 인생을 출발할 수 있는 밑천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겨레'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공동 상속 기금에서 자본 분배를 받는 젊은이는 그것을 은행에 저축해둘 수도 있고, 증권이나 주식을 살 수도 있고, 상급학교 진학 자금으로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더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젊은이들이 같은 인생 출발선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결론 삼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의 세상이 '아수라장'을 면하려면, 맘몬(황금 귀신)의 유혹을 물리치고, 얼을 건전하게 하도록 모두 함께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인류 문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즉 과학 기술의 발달을 뒷받침으로 굴러 온 인류 문명이 욕망의 액셀러레이터를 낮추고 절욕(節慾)의 브레이크를 잡아 서로 사랑하도록 힘써야 되겠습니다."

고려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그곳 노동문제연구소에서 현실을 분석해온 경력도 있다. 그리고 평생을 평화 통일을 위해 헌신하여 어떻든 결과적으로 사형 구형만 5번을 당한 수난의 인물이다. 친구지만 경건한 구도자의 모습까지도 보이기도 한다. 그런 김 형의 다듬고 다듬은 결론 삼아서의 의견에 섣불리 즉흥적인 논평을 하기가 저어되기도 한다. 

김 형은 북한에 관해 말함에 있어서 미국의 압박을 중요시 하는 것 같은데, 물론 그 점도 중요하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간과하고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핵무기가 없었는데 일방적으로 한 독립 국가를 무찌른 게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아닌가. 석유 이권을 확보하고 이스라엘을 돕는 숨은 의도 말고는 달리 설명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런 미국이다. 그러나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공산 체제 자체가 실패했다는 북의 내재적인 요인 분석이 추가되어야 할 줄 안다. 

'공동 상속 제도', 참 기발하다. 마음에 다가온다. 많은 고통 받는 서민들에게 공감을 받을 것이다. 지금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이 휘몰아치는 이른바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빈부 격차는 심화 일로에 있으며, 언론에 계속 보도되는 대로 청년 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의 심각성은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러나 순리로 풀어야지, 우악스럽게 해결하려 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와의 조화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과 충돌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규모와 가족 단위의 중요성 등 말이다. 더구나 지금은 국제화가 되어 자본이나 자본가가 도피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본의 규제에는 일국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협조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부유세도 글로벌(global) 해야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김 형의 의분과도 같은 분노에는 느낌을 같이 하나, 잠깐 그 방도에는 심사숙고가 필요할 것 같다. 

외국 학자 가운데는 '사회적 상속'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상속세가 있으나 대개의 경우 생전에 이리저리 편법을 사용하여 자녀들에게 재산을 넘겨주고 실제로 내는 세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상속 세제만 철저하게 집행해도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시대와 상황이 맞지 않아 그렇지, 기사도를 위해 진실되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키호틱(quixote)한 주장과 행동으로 주변에 웃음을 주기는 했으나 경멸을 당하지는 않았다. 

김낙중 형을 돈키호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김 형은 나름대로 성실하고 진실되게 살아왔다고 본다. 라만차의 돈키호테처럼 시대와 상황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겠지만 말이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좋은 산초 판사 역할을 해주었더라면 싶은데 그렇게는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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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비판적 보수주의자'로 불리며 이념을 떠나 보수와 진보 양쪽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원로 지식인이다. 프레시안에 연재한 기고를 바탕으로 <언론·정치 풍속사>를 냈고 이후 대담, 연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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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줴치다’는 무슨 뜻일까?


[친절한 통일씨] <노동신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꿀팁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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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8  17: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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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리 사회가 최상위 수준의 인권국가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정부가 나서서 
상대에 대한 적대적 내용을 담은 삐라 살포도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로 인정, 법률적 근거 없이는 이를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걸 보면 그렇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의 주장이 담겨있는 신문, 잡지, 영상물, 논문 등 1차 자료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돌아보면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외부를 향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데서 보장되어야 하는 ‘자유’를 누리기도 전에 먼저 보고 듣는 것조차 오랫동안 금기된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료에 대한 접근 그 자체를 처벌하지는 않으나 연구 목적이나 보도의 필요에 따라 정보에 접근하는 학자들이나 기자들에게 조차 쉽게 보장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 순간 자기검열을 하도록 하는 것이 실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북측 '조선말대사전'사이트는 실제 온라인 검색이 되지는 않는다. [캡쳐-조선말대사전 사이트]

현재 전 세계적으로 법률적 효력이 인정되는 국제인권규약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는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를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구두, 서면 또는 인쇄, 예술의 형태 또는 스스로 선택하는 기타의 방법을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국경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하지만,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반국가단체 및 이적단체의 일체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취득한 자는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국가보안법 제1조 2항을 통해 법 해석·적용에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제한을 두고 있지만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과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민주사회가 추구하는 자유권과 국가보안법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러 곤란이 남아 있지만 일부 언론과 학문적 연구를 통해 북측 보도와 논문 등 원문에 제한적이나마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를 제대로 열람하고 진의를 파악하는 데에는 몇 가지 넘어서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 아쉬운 대로 국립국어원이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에서 '북한어'를 검색해 뜻을 파악할 수 있다. [캡쳐-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사이트]

분단 이후 남북에서 ‘뜻이 달라진 낱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발전 과정을 겪어 온 표현상의 차이가 제대로 된 독해를 가로막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남과 북의 언어적 차이를 단계적으로 극복하고 통일지향적인 단일 어문규범을 세우자는 목표로 현재 편찬사업을 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남북공동편찬사업회’는 이를 위해 ‘공통으로 쓰는 말은 우선 올리고, 차이 나는 것은 남과 북이 성실히 합의하여 단일화한 33만여 개의 올림말을 싣고 ‘뜻이 달라진 낱말’의 뜻을 풀이에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1. 그러나 《지뢰폭발》에 대하여 《북도발》이라고 괴뢰군부가 떠들고 괴뢰합동참모본부가 줴쳐대고 청와대가 악청을 돋구고 나중에는 유엔까지 합세하여 우리를 걸고드는 조건에서 그대로 침묵하고있을수가 없게 되었다.

2. 원래 제 주견도 없고 소갈머리없이 놀아대여 버벌치로 락인된 자이니 달리 될수 없는 것이다.

3. 아군지뢰를 갖다놓고 《북도발》을 떠드는 것은 미물같은 짐승도 낯을 붉힐 일이다.

지난달 14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이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폭발이 북의 소행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며 낸 담화의 몇 문장이다.

1. 그저 평이한 문장이지만 밑줄로 그은 ‘줴쳐대고’라는 말의 뜻이 사전적으로 ‘‘이러쿵저러쿵 씨부렁거리거나 또는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마구 하는 것’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걸 정확히 알면 문맥이 제대로 잡힌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미국이나 일본, 남측 당국을 비난할 때 사용하는 낱말은 수도 없이 발견된다. 대체로 빈도수가 높은 낱말은 아래와 같다.

어둑시근하다-통제밖에 있어 '질서가 없거나 뒤떨어진 상태에 있다'를 홀하게 이르는 말.

오새없다-사물의 속내를 분간하는 능력이나 분수가 없다. (말이나 행동이) 주책없고 분수없다.

우심(尤甚)하다-더욱 심하다.

조마롭다-매우 조마조마하거나 조마조마한데가 있다.

허실상몽하다(虛實相蒙-)-허한지 실한지 똑똑하지 못하다.

홀하다(忽-)-정중하지 않고 가볍다.

희떱다-(말이나 행동이) 거드럭거리며 거만한데가 있다.

덴겁-(뜻밖의 일을 당할 때) 어쩔 바를 몰라 하거나 몹시 겁에 질려 허둥지둥하는 것.

시룽시룽-실없이 지껄이며 멋없이 싱겁게 놀거나 정신나간 것처럼 행동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갈개다-마구 사납게 또는 난잡하게 행동하다. 남을 해롭게 하며 소란스럽게 난동을 부리다.

갈마들다-(착잡한 사상감정이) 엇갈려 일어나다.

게바라다니다-'함부로 이리저리 다니는 것'을 홀하게 이르는 말.

고아대다-(큰소리로) 요란스레 마구 떠들다.

줴버리다-함부로 내버리고 돌아보지 아니하다.

2. 버벌치는 벙어리의 황해북도 방언. 가끔 거친 표현으로 상대를 몰아세우는 북측에서는 이밖에도 “미시리-어딘지 모자라고 실없이 지껄이며 시룽시룽하는 사람”나 “벌치-머저리, 바보의 자강도 방언”도 자주 사용한다.

상대를 낮추어 조롱하거나 비웃을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게사니청-게사니(거위) 목청”, “망탕짓-(되는대로 마구 하는 동작이나 행동)을 헐하게 이르는 말”, “비린청-비위에 거슬리게 쨍쨍하고 어색하게 가는 목청”, “쏠라닥-쥐 같은 것이 좀스럽게 싸다니며 물건을 쏠거나 건드려 내는 소리나 그 모양을 나타내는 말”, “엇드레질-(1) 서로 반대방향으로 감고 푸는 드레질. (2) '엇나가게 비뚜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 =엇뚜질” 등이 있다.

“오가잡탕-여러 가지가 지저분하게 마구 뒤섞여 있는 것 또는 그런 상태. ▷ 온갖 너절하고 갖가지 뒤섞여진 잡된 것들. 오구잡탕 (烏口雜湯), 오사리잡것.”이나 “오그랑수-겉과 속이 다른 말이나 행동으로 부정적인 일을 꾸미거나 남을 속여 넘기려는 수법”는 다소 점잖게 부정적인 상태를 표현한다.

내부의 작업 풍토에 대해 지적할 때는 “멋따기-실속은 없으면서 멋을 내는데 신경을 쓰는 것” 등의 표현이 나타나기도 한다.

3. ‘짐승도 낯을 붉힐 일’이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된다.

또 다른 한 용례를 보자.

조국해방 70돐기념 민족통일대회 조선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련환모임이 14일 평양에서 있었다.<조선중앙통신> 2015.8.15.

“련환모임-둘이상의 집단이나 조직의 성원들이 모여서 함께 경축하고 즐기는 모임”

우리는 이들이 커서 그 이름처럼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빛내이는 용감하고 끌끌한 역군이 되리라는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노동신문> 2015.9.15. 창광유치원 참관기사

“끌끌하다-(사람이) 몸이 튼튼하고 생김새가 미끈하며 활력에 넘쳐있다”

북 사회 내부의 미담을 소개할 때에 주로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며, 호기롭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표현이 종종 발견된다.

드팀없다-조금도 드티거나 어긋나거나 틀리는 일이 없다.

일매지다-한결같이 다 같거나 고르고 가지런하다.

헌헌하다-끼끗하고 의기가 당당하다. 거침없이 시원하다.

호호탕탕하다(浩浩蕩蕩-)-(바다 같은 것이) 끝없이 아주 넓다. 기세있고 힘차다.

후덥다-훗훗하게 덥다. 절절하고 뜨겁다. 후하고 따뜻하다.

흥그럽다-(마음이) 여유가 생기고 흥겹다.

흥성이다-사람들이 활기있게 떠들며 흥겨운 분위기를 이루다.

거연히(居然-)-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아아히-아아하다(峨峨-). 차림이 엄숙하고 위엄이 있다.

옹근-제대로 다 있는. 조금도 축나지 않은.

용약(勇躍)-(부사로 쓰여) 용감하고 결단성 있게.

우정-속마음이나 본래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또는 우정. 짐짓.

인차-(말하는 때를 기준으로 하여)얼마 되지 않아서 곧.=이내, (강조) 이내이내

나지다-잃었던 것이나 보이지 아니하던 것이 나타나다. (어떤 수나 묘리가) 생기다.

내오다-(기관, 조직체, 부서 같은 것을) 새로 조직하거나 꾸려놓다.

눅잦히다-긴장되는 분위기를 좀 누그러뜨려 가라앉게 하다. 성격, 성질, 말 등이 부드러워지고 순해지게 하다.

드놀다-‘사람의 의지, 견해, 생각, 마음, 각오 등이 굳건히 자리 잡히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울어지거나 흔들리다’를 비겨 이르는 말.

모를 박다-(무엇을) 특별히 강조하다.

뭇다-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짝, 패거리, 조직체 등을 만들다.

요정(了定)내다-결판을 내어 마무리하다.

일떠서다-힘차게 일어서다.

짜고들다-(어떤 일을 해내기 위하여) 단단히 잡도리를 하거나 미리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고 달라붙다.

쪼아박다-(뾰족한 끝으로) 쪼아서 박히게 하다. (어떤 글이나 내용을) 뚜렷하게 적어 넣다.

슴배다-조금씩 스며들어 안으로 배다.

차례지다-(일정한 차례나 기준에 따라) 몫으로 배당되다.

농업, 축산업, 산림, 수해복구 관련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들은 아래와 같다.

농장의 일군들은 생산자 대중의 심장에 불을 지피는 화선식 정치사업을 참신하게 벌리면서 과일농사작전과 지휘를 패기있게 해나갔다. 농장에서는 과수밭의 지력을 높이며 과일나무 비배관리를 과학기술적으로 짜고드는 사업에 힘을 넣었다. 일군들과 농업 근로자들은 자체로 많은 량의 질 좋은 유기질거름과흙보산비료, 물거름을 생산하여 과수밭의 지력을 높이였으며 과일나무비배관리를 깐지게 해나갔다.<노동신문> 2015.9.25. 북청군 룡전과수농장에서

“화선(火線)-사격임무를 받은 사수가 차지하고 사격을 진행하는 점들을 연결한 선. 전투가 진행되고있는 계선”

“비배관리-[농학] '씨를 뿌린 다음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까지의 관리작업'을 통틀어 이르는 말”

“짜고들다-(어떤 일을 해내기 위하여) 단단히 잡도리를 하거나 미리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고 달라붙다”

“흙보산비료-[농학] 비료의 하나. 흙에 주는 '보약'과 같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사적지 가까이에서 흐르던 개울물이 삽시에 강물처럼 불어나 사적지구역안의 여러 채 건물들이 위험에 처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래마대를 등에 지고 사품치는 물결속에 뛰여들었다.<노동신문> 2015.9.19. 라선시 홍수 피해 복구 현장 보도  
“사품치다-물살이 계속 부딪치며 세차게 흐르다. =구품치다”

감탕-(주로 개가 같은데서) 물에 풀어져 아주 곤죽같이 된 흙. 니토 (泥土), 진흙

강반(江畔)-강가의 좀 판판한 땅.

견딜성-[농학] 농작물이 병해충, 습기 등에 잘 견디어내는 성질. 내수성, 내습성, 내후성 등.

그루-나무나 곡식 같은 것의 줄기의 밑둥. 한 해 동안에 같은 땅에서 농사짓는 번수

기대 (機臺)-어떤 물품을 생산하는 공정에서 하나의 단위로 쓰이는 설비. '공작기계'나 '방직기계' 등을 이르는 말.

날바다-아무것도 거칠 것 없는 무연한 바다.

누름세기-[금속] 재료가 누름을 받을 때 파괴되지 않고 그것을 견디는 정도.

다박솔-다보록하게 가지가 퍼진 잔솔.

된바람-몹시 세게 부는 바람.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나 '강한 사회적 선풍'을 이르는 말.

뙈기밭-매우 작은 밭뙈기

버럭-광산이나 탄광에서 광석이나 석탄을 캘 때 나오는 쓸모없는 잡돌이나 잡것.

벌방지대-벌지대. 들이 넓고 논밭이 많은 고장을 산간지대나 중간지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부대기밭-산속의 나무나 풀을 베고 그 자리에 불을 놓아 일군 밭 =부대

부침땅-농작물을 심어 가꾸는 땅.

사등뼈-척추

소편 (小片)-작은 조각

신들메-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동여매는 일 또는 그 끈.

싸창-'모젤권총'을 달리 이르는 말.

언제(堰提)-[수리] 강을 가로막기 위하여 쌓은 뚝.

연유(燃油)-연료로 쓰는 기름.

졸짱-땅속 깊이 관을 박아 땅속의 물을 끌어 올리는 설비.

좌지(座地. 坐地)-기관총이나 포 등을 쏠수 있게 마련한 자리. '높은 지위'를 이르는 말

줴기밥-속에 반찬감을 넣거나 또는 그냥 만들어 손에 들고 먹을수 있게 줴기(데친 나물이나 또는 반죽한 가루, 밥 같은 것을 조그마하고 둥글둥글하게 주물러서 뭉쳐놓은 덩이)를 지은 밥덩이. 겉을 김으로 싸거나 콩가루나 깻가루에 굴려내기도 한다.

초물(草物)-'돗자리, 비, 광주리, 고리 같은 것을 만드는 왕골, 짚, 버들가지, 싸리 같은 것'을 두루 이르는 말.

한소편처리-집적 처리

북측 보도에서는 사전없이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표현들도 적지 않게 나온다.

사이트는 지난달 29일 통일부 대변인이 북의 응원단 불참 주장은 '구두로 전달했기 때문에 공식입장으로 보지 않았다'고 한 데 대해 "과연 회담탁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당국의 입장발표가 아니라 사말사(些末事)적인 잡담이란 말인데 실로 앙천대소할 일"이라고 힐난했다.<우리민족끼리> 2014.9.3.

“사말사(些末事)-자질구레하며 중요하지 않는 일”

김무성 역도가 이번에 친미사대매국행각으로 상전의 인정은 받았을 수 있지만 대신 민심은 깨깨 잃어버렸다.<노동신문> 2015.8.12. 논평

“깨깨-더 할 수 없거나 여지없이. 몹시 심하게”

몇해 후 금천군으로 또 다시 이사한 리련순 동무에게 소학반학급이 맡겨졌다. 한개 학교사업을 책임지고 일하던 그가 평교원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리련순 동무는 무등 기뻐했다.<노동신문> 2015.9.1. 처녀교장선생의 수기를 소개하는 기사 
“무등(無等)-그 이상 더 없을 정도로”

바자-싸리, 짚, 수수대, 널, 참대 같은 것으로 엮거나 나란히 세워서 집둘레나 일정한 곳의 경계를 막는 물건 또는 그렇게 둘러친 것.

울바자-울타리로 쓰는 바자 또는 바자로 만든 울타리.

썩살-'굳은살'을 달리 이르는 말.

아부재기-(1) 아픔이나 어려움을 과장하고 엄살을 부리는 태도나 말. (2) '아우성(1)'을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

‘뜻이 달라진 낱말’에 대한 이해를 위한 당장의 해결책은 ‘사전’이다. 남측에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 올바른 국어해석의 규범적 역할을 한다면 북에서는 ‘조선말큰사전’이 그 역할을 담당하지만 독자들이 자유롭게 접근하기는 어렵다.

많이 쓰이는 남북 용어의 차이를 찾아 볼 수 있는 곳은 국립국어원, 통일부의 사이트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전문용어는 사전의 도움없이는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건축용어는 최근 국토개발부에서 발행했으며, 이에 앞서 금속, 물리, 화학, 의학 등 여러 전문분야의 용어는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에서 잘 정리한 자료가 있다.

<<남북 용어 사전 사이트>>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에서 분야별로 제공하는 남북기술용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북한어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북한용어사전

►통일교육원 남북한 언어비교 사전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남녘말 북녘말

►북한건설용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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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 “무지개호 황홀하다”

 
배수량 3천 500t급 유람선 대동강 둥둥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29 [07: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김정은 제1위원장이 새로 건조 된 최고의 시설을 갖춘 유람선 무지개호에 올라 황홀하다고 감탄과 찬사를 쏟아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근 건조돼 평양 대동강에 새로 띄워진 유람선 '무지개호'를 돌아봤다.


연합뉴스는 지난 28일 조선중앙통신의 "김정은 동지가 새로 건조한 종합봉사선 무지개호를 돌아봤다"며 "김정은 동지는 여러차례 설계를 지도해주고 건조에 나서는 모든 문제를 몸소 풀어줬을 뿐 아니라 배의 이름도 지어줬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이번 시찰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기남·김양건·오수용 당 비서, 조용원 당 부부장, 홍영칠 기계공업부(군수공업 담당) 부부장, 김정은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이 수행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무지개호는 한번에 1천230여명의 손님을 태우고 전통음식 등 요리들을 즐기며 대동강을 유람할 수 있게 건조된 배로 이 배의 연면적은 1만1천390여㎡, 길이는 120m, 너비는 25m, 배수량은 3천500t이다. 

 

4층으로 된 배에는 민족요리식당, 커피봉사실, 청량음료실, 동석식사실, 연회장, 벨트 뷔페식당, 야외갑판식당, 회전전망식당, 상점 등이 들어서 있다.

 

무지개호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식당을 비롯한 여러 봉사시설과 문화후생시설을 갖춘 종합 봉사선(유람선)을 잘 무어(만들어) 옥류교와 대동교 사이에 띄워놓으면 인민들에게 또 하나의 문화휴식 장소를 마련해주게 된다."고 당부해 만들어졌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번 현지지도에서 완성된 배가 불을 밝힌 것을 대동강변에서 바라보며 "칠색 영롱한 무지개 같다", "대동강이 더욱 밝아졌다", "사회주의 조국의 수도 평양은 낮에 보아도, 밤에 보아도 정말 황홀하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김위원장은 내부를 돌아보면서도 "모든 요소요소가 흠잡을 데 없고 조형화, 예술화가 높은 경지에서 실현됐다"며 "인민들의 최상의 문명을 최고의 수준에서 누리게 하려는 당의 의도가 완벽히 실현된 현대적인 봉사 시설이 또 하나 생겼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김 제1위원장은 그는 또 "특색 있는 원형승강기를 배치한 것도 좋고 계단도 원형으로 시공했는데 잘했다고, 특히 4층에 꾸려놓은 회전전망식당이 희한하다"고 하면서 여기서 부감하는(바라보는) 평양의 모습이 볼만하다"고 거듭 만족을 표명했다.

 

김 제1위원장은 유람선 건조에 기여한 남포조선소와 인민군 제4131군부대, 근로자들에게 감사를 전했으며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다음달 10일 전에 유람선 영업을 시작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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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놀라운 독일 농촌의 '비밀'

 

[행복사회 유럽 24] '사람 사는 농촌'이 목표, 인구까지 헌법에 규정

15.09.28 18:26l최종 업데이트 15.09.28 18:26l

 

 

선진국 독일 농민들도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지 못한다. 농가당 연평균 농업소득이 2천만 원 밖에 안 된다. 그중 50% 이상은 세금으로 나간다. 한국 농민의 수준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한국 농민들과 독일 농민들의 생활은 차원이 다르다. 

독일 농민들은 농촌을,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기본생계를 국가에서,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있다. 어찌보면 기본소득제나 마찬가지인 직불금 정책으로 농업 소득만큼 부족한 생활비를 보전해준다. 농민들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그런 국가와 정부를 믿고 농촌을 잘 지키고 산다. 

무엇보다 독일에는 농부들 스스로 욕심을 조절하고 규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이 마련돼 있다. 1954년에 만들어져 60년 넘게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녹색계획(Green Plan)이다. 도시보다 농촌이,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독일의 농업정책은 바로 이 4가지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철칙과 같다.

첫째,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하면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는 무너지고 이농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산물을 과대포장해 비싸게 파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셋째, 국제 농업과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국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은 물론,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 

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한줄 한줄이 다 금과옥조같다. 그래서 농민들은 농사를 크게 짓거나 돈을 많이 벌려고 무리를 하지 않는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 지금 2% 밖에 안 남은 독일 농민들은 독일 국민의 60%가 사는 농촌을 사람이 살 만한 생활공간으로 보전하고 보호하는 일에 오직 집중하면 된다. 자기의 자리만 그대로 잘 지키고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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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스바일러 마을 한복판에서 1581년부터 샘 솟고 있는 마을의 공공재 샘물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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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정의 목표는 '사람 사는 농촌'

이렇게 독일의 농정이 궁극의 목표로 삼는 지상과제는 그저 '사람 사는 농촌'이다. '돈 버는, 또는 돈 되는 농산업'이 아니다. 농민도 사람 꼴을 하고,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생활농촌을 지향한다. 그 소박하지만 소중한 '농(農)'의 철학과 가치를 공평하고 공정하게 실천하는 데 독일 농정당국은 매진하고 있다.

물론 첨단기술농업이니 농식품가공이니 수출농업이니 '돈도 되는' 농업전략과 정책이 없는 게 아니다. 그건 자본력과 조직력이 뛰어난 일부 기업농이 할 일이다. 대다수 중소농이 함부로 덤벼들 영역이 아니다.

평균적인 농민들은 이기적으로, 경쟁적으로, 독과점적으로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게', '생활에 필요한 돈 이상은 못 벌게', 유기농업이나 지역농업에 충실하게 법이나 조합의 정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공동체, 농업 협업경영체(Gemeinscaft) 동지들 사이의 약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엄중하게 단속하고 규제하고 있다.

독일 농촌에는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농촌에 최소한 유지되어야 하는 인구밀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굳이 떠날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정부의 공무원들은 애를 쓰고 있다. 농민들이 살고 있는 농촌의 전통과 경관을 지키려고 들판의, 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베지 않는다. 농업소득 보다 많은 소득보전 직불금도 다 그런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정책의 성과물이다. 

그런 독일 농정의 현장에서 나는 계속 감동하고 감탄했다. 농민의 삶을 돌보고 지키려 애 쓰는 이 국가의 도덕성이, 이 정부의 책임감이, 이 국민들이 품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와 양식'이 놀라웠다. 결국 신뢰, 협동, 연대 같은 철두철미한 사회적 자본의 힘이 부럽고 샘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의심과 의혹이 크게 들었다. 지난날 독일 등 유럽의 선진 농정을 배우고 돌아와 오늘날 대한민국 농정당국의 요직을 꿰차고 있는 수많은 학자, 공무원, 전문가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 대체 무엇을 했나.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도대체 독일 같은 농정 선진국의 농업, 농촌 현장에서 그들은 뭘 보고 느끼고 돌아온 건가. 

설마 독일에 가서 농업을 자본에게 헌납하는 농업의 기업화개론과 공업화총론만 공부한 것인가. 삶의 터전인 농촌 마을을 한낱 유원지 같은 구경거리로 만드는 관광지화 경영론, 공원화 개발론만 실습하고 온 건가. 그게 아니라면 대체 우리 농업이, 우리 농촌이, 우리 농민의 삶이 도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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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년이 넘은 중세의 골목길과 농가주택이 잘 보존된 라인스바일러 마을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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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하나로 일군 농촌생활공동체, 라인스바일러(Leinsweiler)

지난해 5월, 조국의 농정과 농정책임자들에 대한 평소의 의심과 불신을 가득 품고 라인스바일러(Leinsweiler) 마을에 들어섰다. 독일 중서부 라인란트 팔츠(Rheinland Pfalz) 주를 대표하는 명품 수제 포도와인의 명산지다. 1935년에 개통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주가도(Weinstraße)'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수백년이 넘은 중세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풍광이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그 평화로운 농촌마을 어귀에 서서 나는 부러움과 안타까움, 희망과 절망, 그리고 한국 농정 책임자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교차하는 복잡미묘한 정신상태에 빠졌다. 

와인으로 유명한 라인스바일러 마을은 전체 180가구 가운데 와인농가는 16가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와인농가가 소득을 독점하지 않는다. 와인농가끼리만 잘 먹고 잘 살지 앉는다. 와이너리를 소유하지 않은 나머지 가구도 와인시음장, 전통식당, 농가민박시설 등을 운영해 독일 평균농가 소득 이상의 농외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포도 하나로 모두 함께 먹고 사는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중 30여 가구에서 운영하는 농가민박은 우리 농촌휴양체험마을의 그렇고 그런, 틀에 박힌 농박 수준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개인적으로는 독일 도시에서 묵었던 그 어느 호텔들보다 더 쾌적하고 편안했다. 그곳에서 먹고 자는 동안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유년에 시골 외가에서 느꼈던 그런 만족감과 행복감까지 들 정도였다. 

특히 내가 묵었던 퇴페라이(Toepferei) 농박은 그림도 그리고 도자기도 굽는 예술가가 아틀리에를 겸한 곳이었다. 가족 단위의 장기 휴양객이 주 고객이라고 한다. 우리처럼 소주에 삽겹살이나 실컷 구워먹으려고 작정하고 오는 일회적 유흥 관광객은 없다.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이 휴양과 치유를 목적으로 농촌을 찾아오는 체류형 고객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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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 공예가가 운영하는 문화예술형 농박 퇴페라이(Toepferei)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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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스바일러 마을은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로 농민들이 직접 만든 수제 포도주로 유명하다. 10ha가 넘는 포도밭을 경작하는 피터 스튜빙어(Peter Stu¨binger)씨 같이 '포도주 마이스터'들이 대를 이어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와이너리마다 독특한 풍미의 와인을 경쟁하듯 만들고 있다. 중세 이래로 농가마다 대대로 이어온 고유 제조법 대로 만들어 맛과 향이 다 다르다.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10여 농가의 와인은 서로 다른 상표로 출하된다. 하지만 품질은 다르지 않다. 주민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조합에서 와인의 품질을 철저히 공동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품질과 상품성이 좋은 라인스바일러산 와인은 이제 독일 전역으로 판매되는 것은 물론 외국에 수출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만일 한국에서 사려면 몇 배는 더 지불해야할 것이라는 스튜빙어씨의 엄포에 연수단원들은 와인 몇 병씩을 다투듯 배낭에 챙겨넣기에 바빴다.

이처럼 와인테마 농촌관광으로 활성화된 라인스바일러 마을 안에는 관광청의 공무원이 아예 상주하고 있다. 포도주 가도(Weinstraße)를 따라 이어진 14곳의 포도주 마을연합체의 가운데 라인스바일러 마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공무원 다니엘라 되닉(Daniela Doenig)씨는 '상생'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14개 마을의 농촌관광 농가들이 일정 금액을 내면 관광책자에도 실어주고 홍보를 관광청에서 대신 해줍니다. 해마다 연합체의 14개 마을이 돌아가면서 와인축제도 하고 있고요. 3년에 한 번 씩은 농가민박마다 평가를 해서 인증서도 부여하고요. 농가민박 대문마다 인증패가 붙어있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요즘 들어 포도주 농가 경영주들이 노령화되면서 농사는 못 짓고 민박만 하는 경우도 많아요."

마을 한복판 네거리, 마을의 가장 중요한 공공재 마을샘물에는 1581이라는 숫자가 새겨져있다. 1581년부터 샘물이 계속 솟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라인란트팔츠 지방에서 유일하게 중세 시대 건물과 거리가 남아있는 설촌 역사 800년의 마을답다. 이토록 오래된 마을의 농촌관광사업 주제는 자연스레 중세 독일의 전통과 문화를 살리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전통 와인과 전통 음식이 풍기는 중세와 현대의 역사적 조화를 체험하러 찾아오는 관광객은 연간 10만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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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스바일러 마을에 상주하는 관광청 홍보담당자 다이엘라 되뇍씨와 황석중박사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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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조금씩 농부인 '농부의 나라'  

"독일에 유기농(Bio)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죠.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유기농업이 더욱 빠르게 확산됐어요. 독일 국민들은 가격이 비싸지만 직접 농가를 찾아가 유기농산물을 구입해 먹었어요. 그러면서 자연과 환경을 생각했죠. 또 독일 등 유럽의 공무원들은 '농업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기본 이념이 투철해요.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농민들이 얼마나 잘 친환경적으로 생산해 내는지 늘 감시하는 역할도 맡고 있어요. 매년 5%씩 무작위로 토양검정을 실시해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농민이 있다면 형사처벌을 하고 그동안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돈은 모두 환수할 정도로 엄격합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초지사료과장을 지냈던 연수지도교수 황석중박사는 독일은 먹을거리로 장난을 칠 수 없는 사회라고 강조한다. 독일 농정의 성공이 생산자인 농민 뿐 아니라 소비자인 독일 국민의 의식과 실천에 크게 힘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인 도시민과 상생하는 협동과 연대의 전략이 없이는 농민 혼자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에는 라인스바일러 마을이 놓인 포도주가도처럼 80여 개가 넘는 관광가도가 있어요. 관광가도가 스치는 작은 농촌마을 안에도 수백 년이 넘은 중세의 건축물과 거리가 보존되어 있어요. 대부분의 농촌마을이 '동화 속 풍경 같다'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푸른 숲과 초지, 자연과 전통을 지키려는 생태적 마을가꾸기의 결과입니다. 심지어 지붕의 각도, 벽의 색깔 등 모든 것을 나라에서 법으로 정해 놨어요. 독일의 오랜 전통, 아름다운 문화경관을 볼 수 있도록 농가주택 외부는 마음대로 고칠 수도 없어요."

한 번 더 되풀이 한다. 아니 열 번, 백 번도 더 되뇌이고 싶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굶고 깊게 문신처럼 새기려고 한다. 60년 전 독일이 정해놓고 변함없이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4가지 농업정책(그린플랜)을.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만큼만, 모두가 조금씩 농부인 '농부의 나라' 독일이 하는 것 만큼만 우리도 하자. 

하나,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삶의 질을 누리게 하자. 둘, 농민들은 농산물과 농식품을 적정한 값에 국민들에게 팔고, 국민들은 농민이 수고한 만큼 보상을 하고 구입해주자. 그렇게 농민들은 국민들의 생명을 위하고, 국민들은 농민들의 생활을 보살피자. 

셋, 먹을거리를 무기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말자. 아니면 다른 나라도 우리의 숨통을 조이려 들 것이다. 넷, 착한 농업, 정의로운 농업으로 조상에게 물려받고 후손에게 빌려쓰고 있는 우리 자연과 문화와 경관을 지켜내자, 더도 덜도 말고, ICT융복합농업이나 스마트농업을 하기 전에 우선 이 정도만이라도 먼저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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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스바일러 마을 180농가, 400여 주민을 먹여살리는 포도밭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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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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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리 인상 미스터리, 또 양치기 소년 되나?

 
[박영철-전희경의 국제 경제 읽기] 美 12월 금리 인상
 
 
9월 24일 미국 연준(Fed) 재닛 옐런 의장은 매사추세츠 주립 대학교에서 행한 강연에서 "올해 안에 기준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42쪽이나 되는 긴 원고의 요약본을 읽어나가던 옐런 의장은 탈수 현상으로 잠시 강연을 중단해야 했다.

지난 9월 17일 세계 경제 침체와 금융 시장의 불안에 대한 우려로 금리 동결을 선언한 지 겨우 1주일 만이다. 도대체 이 1주일이란 짧은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 미국 언론에 의하면,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결정할 때 참조한다는 경제 자료 중 어느 지표도 이 짧은 기간에 큰 변화를 보인 게 없다는 소식이다.

최근 미 언론과 금융계는 연준의 금리 정책에 심한 신경 과민증에 걸린 것 같다. 특히 지난주 금리 동결 결정 이후, 미 언론의 일부는 연준의 통화 정책이 과도한 '비둘기' 성향이라서 금리 인상의 호기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연 그런가?

1) 연준은 왜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는가? 지난 9년간 시행해온 최저금리 정책을 계속하면 왜 안 되는가?

2) 연준은 금리 인상을 할 때 어떤 경제 변수를 가장 중요시 하는가? 그 경제적 이론의 바탕은 무엇인가?

3) 9월 24일 옐런 의장은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지난 주 금리 동결의 결정적 요인이든 중국을 위시한 신흥국의 경제 침체와 금융 시장의 요동에 대한 전망이 갑자기 크게 개선된 것인가?

4) 금리 인상 찬성파 일부는 최근 위험 수위에 다가오는 정크 채권을 청소하는 극약 처방으로 금리 인상을 주문하고 있다. 과연 불량 회사채 문제가 심각한가?

위와 같은 복잡한 현안을 중심으로, 갈지자걸음의 연준 금리 정책을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교수와 이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인터뷰는 9월 24일부터 9월 27일까지 이루어졌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서,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경제 분석가(Country Economist and Project Analyst)로 15년(1974~1988년)간 근무했다. 그 이후 원광대학교 교수(경제학부 국제경제학)를 역임했고, 2010년 은퇴 후 미국에 거주하며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희경 :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을 주제로 교수님과 한 인터뷰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관련 기사 : 금리 동결, 시진핑의 방미 선물인가?"美 연준 9월 금리 인상, 겁낼 것 없다")

그런데 미 연준의 통화 정책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혼란스러워진 느낌입니다. 물론 교수님 잘못이란 뜻이 아닙니다. (웃음) 독자들을 위해 연준의 기준 금리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쉽게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저도 최근 연준의 금리 정책 결정에 헛갈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느 경제 정책이든 '상충 효과(Trade-Off)'가 있으므로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합의에 의한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연준의 금리 인상 여부도 '상충 효과'가 있는 두 경제 변수인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검토하여 결정됩니다.

전희경 : 미 연준은 근 1년 이상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는데 그 경제적 논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지난 9년여의 최저금리 정책을 그냥 밀고 나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박영철 : 훌륭한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꼭 같은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미 연준이 현재 최저금리 정책에 대한 일종의 회의와 공포증에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첫째, 지난 9년 동안 시행해온 최저금리 정책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인플레이션과 고용, 실물 자본 투자와 소득 불평등 주요 경제 변수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 올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고 전례가 전연 없습니다.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최저금리 정책을 어떻게 그리고 어떤 속도로 끝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지난 9년과는 달리, 최근 국제 경제 상황은 소위 '외부 변수', 즉 중국의 성장 둔화, 신흥국의 환율 위기, 일본과 유럽 국가의 과도한 통화 팽창 등이 미 경제 회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동시에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외부 변수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 충격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넷째, 연금 재단과 같은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경우를 빼고는 미국 금융계와 공화당은 지속적인 최저금리 정책을 지지합니다. 미 연준의 기본자세와 반대인 셈입니다.

전희경 : 국내외 경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연준이 금리 정책에 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미 연준은 '데이터에 의존(Data Dependent)'하여 금리 인상을 결정하며 '인플레이션과 고용 시장'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채택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 의회는 연준의 임무를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Maximum Employment) 확보"라고 규정합니다. 따라서 미 연준의 통화 정책(금리 정책)의 목적은 이 두 변수(인플레이션과 고용 시장)의 통합 최고치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사항은 이 두 변수가 서로 '상충 효과' 관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희경 : 지난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필립스 곡선' 얘기 같은데요?


박영철 : 맞습니다. 위 '필립스 곡선'에서 보듯이, 실업률이 올라가면(즉 고용이 내려가면) 인플레이션이 내려가고, 실업률이 내려가면(즉 고용이 올라가면) 인플레이션이 올라간다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을 '상충 효과'라고 부릅니다.

연준의 임무는 이 두 경제 변수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입니다. 실업률이 너무 내려가 완전 고용 상태가 되면 자연히 임금 상승 압박이 옵니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잘못하면 폭등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위험을 사전에 막기 위해 연준은 금리를 올려서 잠정 인플레이션을 잡아놓으려 합니다.

옐런 의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금리 인상의 두 가지 조건은 '양호한 고용 시장, 임금 상승 압박이 시작할 수 있는 그 시점과 인플레이션이 연 2%에 접근하는, 바로 그 시점'입니다.

전희경 :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런데도 연준의 금리 정책이 '방향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영철 : 연준은 '필립스 곡선'의 의미를 강화한 시카고 대학교 밀턴 프리드먼 교수의 '금리와 통화 이론', 즉 인플레이션과 실업률(특히 자연 실업률) 간의 상충 효과를 믿는다고 알려졌습니다. 다만 13명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참여자 간에 이 두 경제 지표와 다른 경제 변수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희경 : 그러면 연준이 금리 동결을 결정한 9월 17일과 옐런 의장이 매사추세츠 주립 대학교 연설에서 올해 안에 금리 인상이 가능하다고 발표한 9월 24일, 실제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상태가 크게 변했나요?

박영철 :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이 두 날의 인플레이션 수치와 고용 시장 사정은 똑같았습니다. 수치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옐런 의장의 발언에는 의미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9월 17일 옐런 의장은 "미 국내 경제 상황은 금리 인상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 침체와 금융 불안에 대한 우려로 금리를 동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10월이나 12월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부언했습니다. 그런데 9월 24일에는 "올해 안에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 못을 박아놓고 있습니다.

전희경 : 그렇다면 현재의 암울한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의 상황이 두 달 후 12월까지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데도 옐런 의장은 금리 인상을 한다는 말인가요?

박영철 : 그렇습니다. 강연 마무리에 옐런 의장은 분명히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미국 경제 성장이 건실하고, 고용 시장 개선이 기대 이상이고, 달러 강세가 지속하는 등 여러 지표가 2~3년 안에 인플레이션 2% 목표치 달성을 예고한다."

이 옐런 의장의 선언에 <월스트리트저널>의 저스틴 라하트 경제 담당 기자는 "세계가 연준과 장난하는 방법(How the World is Messing with the Fed)"이란 글에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지난주의 금리 동결 때와는 달리 외부 경제 상황은 연준의 12월 금리 상승 결정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다."

전희경 : 그렇다면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 침체와 환율 절상 등에 관한 우려를 접어도 되는가요? 너무 안이한 생각이라는 감이 듭니다. 교수님 의견은 어떠신지요?

박영철 : 동의합니다. 중국의 경제 둔화는 생각보다 더 심각하고 브라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러시아 등 원자재 수출국의 외환 보유고는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환율 절상과 재정 적자는 위험 수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제2의 글로벌 경제 침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입니다.

 

▲ 주요국의 해외 의존도(% of GDP). ⓒ세계은행


전희경 : 그렇다면 12월의 금리 인상의 경제적 논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 연준의 '숨은 카드'라도 가지고 있는가요?

박영철 : 맞는 말씀입니다. 12월 금리 인상은 경제적 논리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만약 2016년 6월쯤에 금리 인상을 한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겠지만, 올해 12월 금리 인상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온갖 추측이 난무합니다. 그 중 하나가 불량 회사채가 폭발 직전이라는 루머입니다. 금리 인상으로 불량 회사채를 청소한다는 얘기입니다.

전희경 : 최종 결론을 말씀해 주십시오.

박영철 : 이번 12월 금리 인상을 공부하면서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미국 경제의 해외 의존도, 즉 수출과 수입/GDP의 비중이 30%를 넘었다는 사실은 예전과는 달리 '외부 변수'가 미 연준의 금리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신흥국, 그 중에서도 중국 변수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 성장은 중국의 성장 엔진이 꺼지면 동시에 멈출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 미국이 중국 주석 시진핑에게 최대 국빈 예우를 배푼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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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받아도 막무가내, 종편은 방통위가 두렵지 않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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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5/09/29 13:42
  • 수정일
    2015/09/29 13:4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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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편파 방송 징계 반영 방송평가는 40% 뿐, 주관적 평가에 비계량 항목 많아 형식적 통과의례에 불과
 
입력 : 2015-09-23  15:46:08   노출 : 2015.09.29  10:27:33
차현아·강성원 기자 | chacha@mediatoday.co.kr   
 

종합편성채널의 선정성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재조치를 계속하고 있지만 막말과 편파 방송은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다. 종편이 심의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 벌점이 아무리 쌓여도 재승인에 탈락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종편 재승인 심사 기준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종편 막말·편파방송에도…재승인 탈락 불가능

지난해 5월 방통위는 종편3사 TV조선, JTBC, 채널A에 대해 3년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다. 대신 6개월에 한번씩 △방송의 공적 책임 및 공정성 확보 방안 △콘텐츠 투자 △재방송 비율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 △조화로운 편성 등 사업계획 이행실적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도 종편의 ‘막장’은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방통위가 발표한 종편의 2014년 이행실적에 따르면 종편의 오보·막말·편파방송은 2배 이상 증가했다. TV조선의 경우 2013년 대비 2014년의 오보와 막말, 편파방송이 3배나 급증했다. 채널A의 관련 심의조치 건수역시 2013년 20건에서 2014년 41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MBN은 올 하반기부터 이행실적을 점검 받는다.

사업계획 이행실적도 ‘낙제점’이다. 지난 7월 JTBC와 TV조선, 채널A 등은 콘텐츠 투자와 재방비율 등의 재승인 조건을 지키지 않아 시정명령을 받았다. 사업계획은 자체적으로 설정한 목표액에 근거하므로 애초에 낮은 목표액을 잡아도 문제를 삼을 수 없다.

   
▲ 종편 채널 방송사별 제재 의결 현황(2011~2014년)

막말 수위가 높은 일부 종편에 대한 심의조치가 급증하더라도 방송사업자 재승인 탈락은 피할 수 있다. 법적으로는 재승인 탈락도 가능하다. 그러나 탈락한 방송 사업자에 대한 사후 조치가 규정에 존재하지 않아 사실상 탈락은 염두에 두지 않은 제도인 셈이다. 재허가 거부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아도 탈락보다는 재허가를 내리는 대신 사업 실적 이행 경과를 보는 조건부 재승인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한 허점도 존재한다.

현행 재허가 의결 방식에 따르면 심사 결과 총 1000점 만점에 650점 이상을 받은 방송 사업자에 대해서는 재허가를 의결한다. 650점 미만인 방송사업자는 조건부 재허가 조치를 내리거나 재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관행적으로 모든 사업자를 조건부 재허가로 의결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재허가 심사로 방송사 사업 취소가 이뤄진 사례가 없고 사업취소까지 이어질 경우 방통위가 줄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재허가 심사 결과 방송사업자가 탈락됐을 때를 대비해 어떤 후속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은 사실상 없다. 재허가 심사가 방송사업자 취소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제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사기준도 위원 구성도 종편 편향

재허가 심사항목 역시 종편에게 유리한 평가방식이라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방통위가 심사기준을 일부 수정했음에도 여전히 ‘기울어진 평가’가 가능한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종편과 보도전문채널 재승인 심사 결과 TV조선과 JTBC, 채널A, 연합뉴스TV 등은 각각 684.73, 727.01, 684.66, 719.76점을 받았다. 모두 재허가 승인 가능 점수를 넘었다.

실제로 세부 심사항목 중에는 계량적 평가대신 비계량 평가항목이 많다. 비계량 항목의 경우 세부 심사항목 별 최고점수와 최저점수를 준 심사위원의 심사 점수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사항목 별로 수, 우, 미, 양, 가 등으로 등급을 부여한 후 각 등급 별로 평점을 환산하는 방식이다. 5단계 별 등급 환산에 자의적인 판단의 여지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 A. 방송평가B.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및 지역·사회·문화적 필요성 C.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 D. 경영·재정·기술적 능력E.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 계획의 이행 및 방송법령 등 준수 여부 기타 사업수행에 필요한 사항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을 경우에만 전체 배점의 10% 이하에서 반영). 출처=방송통신위원회

올해 5월 방통위는 내년 이후 실시될 지상파방송 재허가와 종편·보도전문방송채널사용사업 재승인 심사기준이 포함된 사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전공표된 방송사업자 재허가·승인 심사기준에서도 기존 심사기준처럼 비계량 항목이 다수를 차지한다. 여전히 주관적 판단의 개입이 가능한 구성인 셈이다.

방통위가 발표한 내년 이후 ‘종합편성방송채널사용사업 재승인 심사기준’은 심사사항은 크게 △방송평가 △방송의 공정책임·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및 지역·사회·문화적 필요성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 △경영·재정·기술적 능력 △방송발전을 위한 지원 계획의 이행 및 방송법령 등 준수 여부 △기타 사업수행에 필요한 사항 등 총 6개다. 각각의 항목 아래에는 중분류 항목이 포함돼있다. 전체 14개 소항목 중 비계량 평가는 10개에 달한다.

   
▲ 재승인 심사 점수 총 1000점 중 방송평가 400점 제외한 나머지 600점 중 비계량 항목의 비중. 관계 법령 위반 정도나 시정명령 건수 및 이행여부 등에 의해 추가 감점 가능. 출처=방송통신위원회

기준뿐 아니라 재승인 심사위원 구성도 자의적이다. 방송사업 재승인 심사 규정 중 사실상 심사위원의 비계량적 평가가 많아 특히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재승인 심사위원 구성에서도 여야의 비율이 크게 기울어져있다. 지난해 여당 추천 12명, 야당 추천 3명이 심사위원을 구성했다. 이렇게 심각하게 기울어진 구성을 갖게 된 데에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재허가 승인에서 종편이 탈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심지어 지난해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 선정 과정 중 결격 인사가 포함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TV조선과 채널A에서 각각 공정보도특별위원회 위원이나 외부 전문가 교육을 했던 이들이 포함된 것이다. 재승인 심사위원 결격사유에는 ‘신청법인(종편) 또는 지분 5% 이상 구성 주주에서 자문을 한 자’가 포함돼 있다.

또한 방송평가 중 ‘방송심의 제규정 준수’ 항목도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종편이 막말과 편향성 짙은 방송으로 논란이 됐음에도 방송심의 제규정 준수 항목에서 제재 조치에 따라 최고 5점밖에 감점이 되지 않는다.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정정·수정 또는 중지가 4점, 방송편성책임자·해당 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4점 등이다. 이외에 경고 2점, 주의 1점,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는 5점을 받는다.

방송평가는 총 700점 만점이며 400점으로 환산돼 재승인 심사에서 1000점 만점 중 40%가 반영된다.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재 조치를 받은 감점 결과가 결국 환산 점수로는 재승인 탈락에 이르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이유다.

같은 항목 이중심사 ‘중복규제’ 논란도

재승인 심사 제도의 문제는 종편뿐만아니라 같은 심사 기준을 적용받는 지상파 방송사 재승인 심사에서도 불거질 우려가 있다. 심사 기준이 엄밀하게 짜여지지 못해 항목 간 중복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승인 심사 항목 중 하나인 방송평가와 재승인 심사 항목은 일부 중복된다. 재허가 심사에서 방송평가 점수의 반영 비율은 40%에 육박한다. 방송평가에서 이미 이뤄진 평가 중 상당부분이 재허가 심사에서 다시 점수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방통위의 ‘2014년 방송평가 세부기준 전문’에 의하면 △내용영역 △편성영역 △운영영역 등의 큰 분류 하에서 소분류 항목으로 총 41개를 평가한다.

방송평가 세부 기준 중의 편성영역 분야 평가기준과 재허가 승인 심사기준 중 편성 제작의 적절성 평가 항목도 중복우려가 있다. 방송평가 세부 기준 중 편성 영역의 △주시청시간대 균형적 편성 증가 △지역방송사 자체제작 비율 평가 △지역성 구현 프로그램 편성현황 종합 평가 △제작 프로그램 편성 평가 △어린이 및 장애인 시청지원 프로그램 편성 평가 등의 내용은 방송사 재허가 승인 심사기준 중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 분야와 겹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미 방송평가로 점수를 매긴 후 같은 항목으로 다시 재승인 심사에서 점수를 매기는 셈”이라며 “공정성과 편성 등 방송 내용 평가는 방송평가에서만, 방송사 전반의 운영 상태 점검 등 더 넓게 평가해야할 부분은 재승인 심사에서만 반영해야 한다. 두 평가를 분리하거나 내용 중복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센티브’ 도입과 타당성 있는 평가 개선 필요

재승인 심사제도가 방송사의 개선을 이끌기 위해서는 심사제도의 평가결과가 방송사업 취소라는 ‘패널티’에만 그쳐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평가 결과 좋은 점수를 받은 방송사에게는 재승인 기간을 최대 7년까지 보장해주고, 나쁜 평가를 받은 방송사는 최소 2년만 보장하거나 아예 조건부 재승인을 주는 것이다. 조건부 재승인을 받은 방송사의 경우 조건을 제대로 이행했는지에 대한 꼼꼼한 확인이 뒷따라야 한다.

또한 보고서 작성이라는 요식행위에 매몰되지 않도록 향후 계획과 같은 형식보다는 방송 본연의 목적과 내용에 집중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겉만 번지르르한’ 계획을 내놓는 방송사보다 실제로 노력의 흔적이 많은 방송사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경환 교수는 “종편의 경우 지상파보다 사업 계획서 작성에서 우수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상황에서 사업 계획에 더 높은 평가가 이뤄지면 종편이 훨씬 유리하다”며 “계획보다 실제 실적이 높은 방송사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평가가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라며 “타당성을 잃은 평가에서조차 각종 특혜로 평가기준을 간신히 유지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부소장은 “평가제도의 개선과 적절한 제재조치의 부과가 이뤄져야 하며 우선적으로 (종편에 대한)과도한 특혜가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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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여기 아직 세월호가 있어요"

 
필라델피아 한인, 교황 방문 축제에서 세월호 알려
이하로 <뉴스프로> 기자 2015.09.28 10:17:02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라면 이제 '세월호'가 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가 있는 곳이라면 이제 세월호가 있다. 한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지구촌 어디에서든 이제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고 외치고 있다. 세월호의 진실을 감추는 박근혜 대통령이 나타나면 세월호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더 높아진다.

세월호로 자식 같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한인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한국에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든 있다. 이들은 바로 세월호이기도 하고 세월호로 아이들을 잃은 엄마요, 아빠이기도 하다.

이들이 이번에는 교황의 미국 필라델피아 방문에 피켓을 들고 나섰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지구촌의 가장 뜨거운 뉴스가 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방문 메인이벤트인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천주교 세계 가정의 날' 행사에 방문하자 '필라델피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추석 전날인 26일(현지 시각) 100만 군중이 운집한 필라델피아 다운타운으로 나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2015년) 한국 방문 시 세월호의 아픔에 동참하며 지극한 관심을 나타냈었다. 교황은 한국 방문 중 가슴에 노랑 리본 배지를 착용하며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었다. 올해 4월 바티칸에서 만난 한국 주교단에게 물은 첫 질문도 '세월호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였다.

그 교황의 필라델피아 방문을 맞아 교황에게, 그리고 교황을 사랑하며 모여든 군중에게 한국에 아직 자식들이 왜 죽었는지 모르는 세월호 가족이 있고, 아직 인양되지 않은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필라델피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교황을 보기 위해 몰려든 100만 군중 속에 '필라델피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회원들은 교황의 행렬이 지나가는 동선을 따라 미국 독립기념광장 인근 마켓 스트리트 지하철역과 시청에서 배너와 노란 세월호 우산, 세월의 영문자인 'SEWOL' 알파벳이 하나씩 적힌 피켓을 들고 세월호를 알렸다.
 

ⓒ뉴스프로(이하로)


이들은 무려 7시간을 앉지도 못하고 거리에서 피케팅을 했고, 마침내 저녁 7시 30분경 퍼레이드의 교황 행렬이 시청 앞 피켓을 지나갈 때 그 앞에서 피케팅을 하는데 성공했다.

피켓팅에 참여한 한 회원은 "주변에 다른 피켓이 없어서 SEWOL을 읽었던 것 같다"며 "교황이 저희들을 봤다면 다시 한 번 세월호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사고 직후 말한 것처럼 윤리적으로 거듭나는 한국 사회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은 "오늘 '세계 가정의 날' 행사 주제가 가족이었으므로 교황께서 304명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참담한 생활을 인지했으리라 스스로 믿어 본다"라며 앞으로도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세월호 알리기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피케팅에서는 멀리 시카고에서 온 세월호에 관심 있는 한인들이 피케팅하는 필라델피아 한인을 응원하면서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뜨거운 노력을 서로 확인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모 씨는 피케팅 참석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작년 8월 대전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와 광화문 시복미사에서 교황은 직접 세월호 가족을 챙겼다. 그리고 올해 4월 바티칸에서 만난 한국 주교단에게 물은 첫 질문도 '세월호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였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약자의 편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고, 진심으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아파해 주고, 힘이 되어 주었다. 또 잊지 않고 챙겨주었다. 이 감사의 마음을 교황에게 전하고 싶어서 나왔다. 또 교황이 한국인을 만나면 '세월호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라고 다시 물을 것인데, '아직 바다 속에 묻혀 있다'고 답해야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연설에서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며 "서로를 사랑하는 가정을 보는 것, 가족이 자녀를 잘 키워 믿음, 선함, 아름다움의 사회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며 가정을 '희망 공장'으로 표현하는 등 가정과 가족의 중요성을 역설해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가족과 한인의 슬픔을 되돌아보게 했다.

미주 지역 한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방문 등의 일정 때마다 피케팅 등의 시위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의 진실 규명을 끝까지 요구할 계획이다. 또 각 나라와 지역의 중요 행사나 이벤트마다 세월호를 알리는 피케팅을 계속 벌여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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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구, 중앙집권적 원칙과 지방 독자성 보장"


조선경제개발협회, 제11차 평양전람회 투자설명회 개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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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7  1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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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웹 사이트 <내나라>는 경제무역관련법과 나선경제무역지대에 대한 설명을 공개하고 있다. [캡쳐-내나라]

북한이 발표한 경제개발구의 특징은 중앙집권적 원칙과 지방 독자성을 보장하는 사회주의 경제관리원칙이라고 조선경제개발협회가 밝혔다.

북한 무소속 대변인 주간 <통일신보>는 26일 김천일 조선경제개발협회 서기장이 지난 21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린 제11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람회 참가자 대상 경제개발구 투자설명회 내용을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현재 북한이 발표한 지방급 경제개발구는 △청진경제개발구, △혜산경제개발구, △만포경제개발구, △압록강경제개발구, △위원경제개발구, △흥남공업개발구, △청남공업개발구, △현동공업개발구, △숙천농업개발구, △북청농업개발구, △어랑농업개발구, △청수관광개발구, △온성섬관광개발구, △신평관광개발구, △송림수출가공구, △와우도수출가공구 등이다.

그리고 나선경제무역지대,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개성공업지구, 신의주국제경제지대, 강령국제특색시범구, 온정첨단기술개발구, 무봉국제관광특구 등 중앙급 경제개발구가 있다.

이들 개발구의 특징은 지난 특수경제지대개발구 경험을 토대로 공업, 농업, 관광, 수출가공, 첨단기술개발, 복합형 개발 등으로 성격을 규정해 생산의 집중화, 다양화, 전문화를 실현하고 지역들 간의 분업을 통한 효율적 개발운영이라고 김천일 서기장이 설명했다.

또한 그는 경제개발구를 중앙급과 도급으로 구분한 것과 관련해 "경제관리에 대한 중앙집권적 원칙과 매 지방의 독자성을 보장할 데 대한 사회주의 경제관리원칙의 요구에 맞게 각 도들에서 자기 지방의 개발구들을 직접 관리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경제개발구 개발원칙을 해당 지역의 자연지리적 조건에 맞게 경제적 실리를 보장하면서 종합적인 계획 밑에 작은 규모로 시작하여 성과를 거두는데 따라 점차 확대해나가도록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국가적으로 경제개발구사업을 통일적으로 조직, 지도관리하는 정부급 기관으로 대외경제성 경제개발지도국이 있으며 각 도 인민위원회에 경제지대개발국이 조직됐다.

이와 함께, 경제지대개발전문가 양성을 위해 김일성종합대학, 인민경제대학, 원산경제대학 등에 경제지대개발 전문학과가 설치됐다.

김천일 서기장은 "각 도 경제개발구들에서 개발총계획을 세계적인 선진경영방법과 관리수준에 맞게 작성한 데 기초하여 개발구의 하부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나라의 경제발전과 동북아시아 지역발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에게 여러가지 장려 및 특혜조치를 제공한다"

김천일 서기장은 경제개발구 투자와 관련해 다양한 특혜조치를 국가차원에서 마련했다면서 북한 사회주의헌법을 근거로 들었다.

사회주의헌법 제2장 37조에는 '국가는 우리나라 기관, 기업소, 단체와 다른 나라의 법인 또는 개인들과의 기업합영과 합작, 특수경제지대에서의 여러가지 기업창설 운영을 장려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경제개발구법'(2013)이 제정됐으며, 경제개발구 개발규정 및 환경보호규정, 기업창설운영규정, 부동산규정, 세금규정 등이 마련됐다.

김 서기장은 "국가는 하부구조건설부문과 첨단과학기술부문,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은 상품을 생산하는 부문의 투자를 장려한다"며 "외국투가자들은 개발구에 단독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기업과 지사, 사무소 등을 설립하고 경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토지 50년 임대 및 재분양, △국제중재기관을 통한 분쟁해결, △하부구조건설 및 공공시설, 장려부문 투자기업에 대한 토지이용 우선권, 기업소득세 및 토지사용료 면제 또는 감면 등 특혜조치를 내놨다.

그는 "경제개발구에서 기업소득세율은 14%로서 지대 밖의 25%보다 훨씬 낮으며 화폐유통과 결제는 정해진 화폐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면서 "재투자하는 경우에는 기업소득세액의 전부를 반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관광업, 호텔업 등의 경영권을 우선적으로 부여해주고 해당기업의 재산과 하부구조시설, 공공시설운영에 대한 세금을 전부 면제해준다"고 덧붙였다.

김 서기장은 "개발구건설에서 작게 시작하고 점차 확대하며 먼저 설계하고 후에 건설하며 선 하부구조, 후 상부구조의 건설원칙을 구현하여 우리의 개발구들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경제지대로 꾸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 웹 사이트 <내나라>를 참고할 것을 추천했다. <내나라>에는 경제무역관련법과 나선경제무역지대에 대한 설명이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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