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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친미사대 매국노 새누리당” 비난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대변인, “북인권법” 단죄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25 [08:1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북측은 새누리당과 국회의 북인권법 추진을 언급하며 친미 사대매국 간상배들의 집합체라고 비난해 나섰다.

 

국내 주요 언론들과 탈북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은 지난 24일 조선중앙방송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대변인이 담화를 통해 최근 남조선의 새누리당을 비롯한 모략꾼들이 대결적인 북인권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발악하고 있다.”고 발표한 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는 이것은 남조선의 정상배들이 당리당략과 권력유지를 위해 북남사이의 대결과 민족분열을 가증시키는 악법까지 모략적인 방법으로 조작하는 더러운 야합행위이라고 단죄했다.

 

대변인 담화는 새누리당은 애초에 인권에 대해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면서 이승만의자유당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의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은 남조선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인민들의 생존권을 파쇼 독재의 칼날로 무참히 난도질해온 희세의 반인권적악행으로 얼룩져있다.”고 주장했다.

 

담화는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이 감행한 살인강도강간약탈 등 치 떨리는 반인권적범죄에 대해 항변은 고사하고 도리어 미국상전을 등에 업고 돌아가는 추태를 부리고 온갖 부정부패와 성추행만을 일삼으며 세상의 못된 짓만을 골라하는 쓸개 빠진 친미사대매국노너절한 정치 간상배들의 집합체도 다름 아닌 새누리당이라고 비난했다.

 

담화는 새누리당은 독재 권력을 유지하고 근로대중의 혈세를 빨아내 탕진하는데만 정신 팔 것이 아니라 저들의 반인민적악정으로 인해 세계최악의 인권폐허지대로 전락된 제집안 꼴이나 바로잡는데 낯을 돌리는 것이 그나마 체면이라도 유지하는데 좋을 것이라고 훈계했다.

 

그러면서 민주와 통일을 표방하는 남조선의 야당이 파쇼독재의 본산인 반역정당에 동조하고 반 통일세력과 야합하면서 민심을 등질 것이 아니라 제정신을 가지고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며 이성적으로 행동할 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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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권연대, '10.4 남북공동토론회' 추진..정부 승인 촉구

민권연대, '10.4 남북공동토론회' 추진..정부 승인 촉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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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4  17: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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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권연대는 24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0.4선언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 - 민권연대]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는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를 추진하겠다며 24일 통일부에 승인을 촉구했다.

민권연대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통일부에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가 진행될 수 있게 븍측 민족화해협의회에 제안서 팩스를 전달해줄 것과 10월 초 실무회담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남북은 8.25합의를 이뤄내면서 새로운 남북관계 발전의 희망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면서 “민간교류 확대에 대한 통일부 장관의 발언들이 진심이라면 이제는 민간교류의 빗장을 풀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가 10.4 남북정상선언을 인정하고, 민간교류 활성화의 의지가 있다면 남북공동토론회를 승인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박근혜 정부는 진정성 있는 자세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권연대는 아울러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에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을 기념하고 8.25 남북공동보도문을 적극 이행하기 위한 과제를 도출하는 남북공동토론회를 제안한다”며 “남북공동토론회를 위한 실무접촉을 10월 초순에 진행할 것”을 요청했다.

민권연대는 “10.4 남북정상선언과 남북관계 진단”, “8.25 남북공동보도문의 의미와 이행 과제” 등의 주제로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 개최를 추진하되 10월 중순경 금강산에서 여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에 보내는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 사업제안]

지난 2007년 남과 북 두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공동 서명한 10.4 남북정상선언이 발표된 지 8년이 흘렀습니다. 10.4 선언은 정치, 화해, 평화, 경제협력, 사회문화, 인도적 분야 등 40여 개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의제를 포괄하는 통일 실천 강령이었습니다.
10.4 선언의 가치는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었던 시절 더욱 빛났습니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인 10.4 남북정상선언은 상호존중과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활짝 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의 실천 강령인 10.4 남북정상선언을 더욱 발전시켜야합니다.
8.25 남북공동보도문이 발표되고 남북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을 기념하고 8.25 남북공동보도문을 적극 이행하기 위한 과제를 도출하는 남북공동토론회를 제안합니다.
 
1.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에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 사업 승인을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2.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에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 사업과 관련된 부처와 연계를 요청 드립니다.
 
3. 남북공동토론회를 위한 실무접촉을 10월 초순에 진행할 것을 요청 드립니다.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8주년 남북공동토론회가 광복 70년 주년을 맞는 올 해, 남북관계 발전에 이바지 했으면 합니다.
 
2015년 9월 24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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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서 열린 수요집회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

"하루에 수도 없이 상대... 결국은 수혈까지 시켰지"

[베를린에서 보내는 그림편지] 독일서 열린 수요집회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

15.09.24 20:47l최종 업데이트 15.09.24 20:4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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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그녀 바라보니 그녀 얼굴의 주름이 그동안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듯했습니다. 이제는 인권운동가로서 우리가 마음 한켠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얼굴입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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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부터 남까지, 강제노역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한반도 소년들을 여기저기로 데려가고 소녀들 또한 세계 곳곳의 전쟁터로 데려가 '위안소'라는 이름의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일본이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이 '해방 70주년'을 맞은 해에 보란 듯이.

그리고 그즈음인 지난 22일(현지시각), 한 한국 인권운동가가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를 호소하고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 있는 한 강당에 섰다. 그는 15살 남짓한 나이에 집을 떠나 대만을 거쳐 중국 광둥으로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김복동 할머니다. 

강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로 독일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가 서로 뒤엉켜 들려오던 중 무대 위로 김복동 할머니가 올라서자, 모두가 숨죽였다. 

전범 국가인 독일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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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동 할머니가 독일 학술관련 전문가와 함께 일본의 위안부 역사 대해 증언하는 모습.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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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표자로 독일 함부르크재단 레기나 뮬호이저 박사(Dr. Regina Mühlhäuser, 문화·학술 연구 분야)가 나섰다. 

"저는 일본의 역사적 관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 정부의 침묵, 또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분들의 심적·육체적·경제적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놀랍게도 그의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독일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독일은 마치 나치 시대의 역사를 사죄하고 과거사에 대해 청산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했던 국가들에도 성 노예 및 성폭행, 강간을 당한 여성들이 많습니다. 현재까지도 이들에 대한 국가적 배상은 미흡합니다. 독일 정부는 일본의 민주주의와 정부를 신뢰한다고 했는데, 아베와 같이 국수주의적이고 일본의 힘을 강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하는 부분은 용납되어선 안 됩니다." 

레기나 뮬호이저 박사의 발언이 끝난 뒤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대 위로 올라선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 사는 삶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히 들려줬다.  

"하루에도 몇 명을... 수도 없이 상대해야 했어. 상처가 나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러다 하늘이 새카맣도록 비행기가 들어오더니 일본이 손들었다 했어... 철수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젊은 여자는 간호사로 훈련시키고 늙은 여자들은 주방으로 보냈지. 일본 군인이 수술을 해야 돼서 피가 모자라면 여자들 피검사를 해서 수혈을 시켰어..." 

김복동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동안 무대에 함께 올라와 있던 두 명의 독일 학자와 객석에 앉은 청중들은 번역 이어폰을 끼고 그의 끔찍했던 과거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독일 

이후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의 윤미향 상임대표와 일본 간토 가쿠인 대학의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 독일 EVZ 재단의 우타 겔란트 활동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각 나라별 연구와 대책마련활동에 대해 발제했다.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의 윤미향 상임대표는 이 자리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며 한국에서 오랫동안 진행해온 활동과 진행과정들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한편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Hayashi Hirofumi)는 "지금까지 일본 도처에 흩어진 위안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결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라며 "(일본 정부는) 위안소를 설치하면 점령국의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가 줄어들 거란 생각으로 추진했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성범죄를 더욱 유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안부 문제는 노예범죄이자 성차별이고 민족차별, 계급차별이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은 전쟁이 끝난 지 한참 후인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일본 정부의 과거사 청산과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보상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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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EVZ 재단의 우타 겔란트 활동가. 번역 이어폰을 낀 채 일본과 한국의 위안부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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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독일 쪽 패널인 독일 EVZ 재단의 우타 겔란트(Uta Gerlant) 활동가는 "독일의 나치 강제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독일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의 불매운동 및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급물살을 타며 진행되었다"라며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독일의 경우, 나치강제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은 2007년에 완료되었고 이후 그와 관련한 재단을 설립해 나치 과거사 청산 및 생존 피해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한 도의적 책임은 독일 의회가 도맡았고,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법적소송은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재계에서 50%, 정부에서 50%씩 지원하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및 지원활동이 이루어졌다. 

우타 겔란트 활동가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국가의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며 "독일 역시 여성 성노예 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주 인상 깊은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진행하는 위안부와 관련한 여러 투쟁과 사업들은 오히려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몇 십 년 동안 이뤄지고 있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투쟁과 활동이 단순히 위안부 할머니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성 노예 피해를 입은 세계 곳곳의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는 듯했다.

발표가 다 끝난 후, 객석에 앉은 청중들과 토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마침 이번 행사에 참석한 콩고 대사관 관계자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나비'의 활동으로 자기 나라의 성 노예 피해 여성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또 한 독일 여성은 한국의 분단 상황을 이야기하며 남과 북이 서로 연대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 질문을 했다. 윤미향 대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남북연대는 우리 단체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분단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고향은 남쪽인데, 중국 위안부에 있다가 이후 걸어서 북한에 도착, 북한에 정착한 분들도 계십니다. 저희는 정치적 이념을 넘어, 남북이 연대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지만, 2008년 남북 긴장 상태 돌입 후, 남북연대운동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고 북의 소식은 일본이나 중국의 언론을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도 계속된 수요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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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한 수요집회 모습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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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날인 23일 오후 2시, 베를린에 위치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독일인들을 비롯하여 일본인 그리고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참석했다. 

집회에 참석한 여러 일본인들 중 한 여성은 직접 만들어온 피켓을 펼쳐 보이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진상규명을 위해 NGO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라며 "일본 정부와 많은 국민들이 진정한 사과를 할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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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에 대한 아베의 사과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가한 일본인의 모습.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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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참석한 독일인 안드레아스 칼레(Andreas Kahle)는 "베를린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위안부 관련 책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며 "일본 정부가 하루 빨리 진정한 사과와 책임을 다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 한국, 일본을 대표하는 5명은 베를린주 일본대사관 관계자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일본정부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면담을 진행하였다. 면담을 하고 나온 코리아페어반트의 한정화 국장은 "(정작 만나야 할) 김복동 할머니와의 면담을 거부한 이유를 물으니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고 전했다. 

대표자들은 "일본 대사관 관계자가 전달 받은 서한을 정부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전 세계의 일본대사관에서 이러한 서한을 비롯한 원자력문제에 대한 항의문서를 처리하는 데에 업무 과중이 심하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집회의 막바지, 김복동 할머니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일본대사관을 향해 외쳤다. 

"독일 국민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다. 나이가 90이 넘는 노인인 내가 무슨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겠는가.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과 할 때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싸울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와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는 앞으로 독일 언론 <슈피겔>과의 인터뷰 및 독일 외무부 면담, 국회의원 면담을 진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이고 이제는 혼자서 걷기 힘든 김복동 할머니는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9월 한 달 동안 노르웨이 오슬로,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을 이동하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호소하고 연대를 구하고 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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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죽이고, 오바마는 살리고

[논평] 박근혜는 죽이고, 오바마는 살리고
 
오바마와 연설, 박근혜의 노동개혁
 
뉴스프로 | 2015-09-23 14:10: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논평] 박근혜는 죽이고, 오바마는 살리고.
-오바마와 연설, 박근혜의 노동개혁

이하로 대기자

[출처 : 백악관 홈페이지]

오바마 연설 바로가기 : http://1.usa.gov/1KbJLn2

오바마 연설 번역기사 바로가기 : https://thenewspro.org/?p=14132

미국의 노동절을 전후해 지구의 이편과 저편에서 ‘노동’, 또는 ‘노동자’라는 말이 화두로 떠올랐다. 한쪽에서는 노동자를 죽이려는 단어로, 또 다른 쪽에서는 감동을 함께한 노동자의 가치라는 단어로 쓰였다. 한국의 임금피크제로 대별되는 ‘노동 시장 구조 개혁’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노동절 연설 이야기다. 천고에 변치 않을 것 같은 동맹인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며 정말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천민자본주의가 극대화된 한국에서의 가속화되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죽이기. 오늘날 미국의 가치를 노동자들의 거룩한 희생에서 찾으며 노동조합 가입을 독려하는 미국 대통령의 연설. 오바마의 연설로만 보면 경제의 중심을 노동자에 두는 미국과 경제의 중심을 기업의 이익에 두는 한국, 두 동맹의 노동에 대한 차이는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크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헬조선’이란 말이 실감 나는 부분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일 행한 보스턴 노동협의회 노동절 기념 조찬 연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한국의 노동 현실과 비교되며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의 연설을 주목하고 있다. 요즘 한국의 가장 큰 화두는 김무성의 뽕사위가 아니라 바로 ‘노동 시장 구조 개혁’ 논란이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개혁’ 또는 ‘선진화’라는 말로 노동 시장 구조 개혁을 몰아붙이고 있는 형국이고 이에 대해 노동계는 ‘개악’, ‘재벌 배불리는 구조 조정’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여당의 개혁의 중심에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임금 피크제’가 있다 이 ‘임금 피크제’라는 것은 임금의 최고점, 즉 피크를 정해놓고 피크가 지나면 단계적으로 임금을 낮추어가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이렇게 해서 마련된 재원으로 내년부터 3년 만에 18만 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재벌들이 ‘임금 피크제’를 통해 절약된 돈을 가지고 청년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든다는 소가 웃을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재벌들이 돈이 없어 일자리 창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을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없다. 재벌들이 곳간에 쌓아놓고 있는 돈만 해도 7백조 원이 넘어가는 마당에 이제 ‘임금 피크제’를 통해 ‘열심히 일한 당신’의 임금을 줄여 그 돈으로 재원을 마련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풀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를 할 의지가 없어서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또다시 재벌들을 위해 ‘노동 시장 구조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짜내어 재벌들의 곳간을 채우겠다는 의지를 만방에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 세대의 임금을 줄여 아들 세대에게 주겠다는, 세대 간의 갈등을 촉발 시키는 기도 안 차는 논리를 들고나온 것이다.

현재 재벌들의 곳간에 가득 차 있는 사내유보금 역시 재벌 봐주기, 면세 혜택을 통해 쌓인 것으로 국민과 노동시장, 사업장으로 돌아와야 할 몫을 재벌들이 가로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임금피크제’라는 것이 한국의 재계가 발표한 통계나 자료 말고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효과가 있다는 사례가 없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인 ‘억지’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아들이 아버지더러 ‘내 일자리 내놓고 물러나라’는 시위라도 벌이기를 박근혜 정부는 바라는 것일까?

오바마의 연설로 돌아가 보자. 오바마는 미국이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외모를 하고 있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건 상관없이 무엇인가가 될 수 있는 나라, 심지어 자신처럼 최고의 공직, 즉 대통령도 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정의한 뒤 “우리는 일한 대가로 자존감과 안정감을 보장해주는 직장에 다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한다면 우리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수 있으며, 근면함과 타인을 존중하는 것의 가치, 나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곳 미국에서는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탔다는 것, 우리가 미합중국이라는 개념을 자녀에게 심어줄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의 연설을 들으며 계속 조국의 현실이 대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참담함은 더욱 깊어만 갔다.

오바마는 이것, 즉 노동운동이 미국을 세운 신념이자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강한 중산층을 만들어낸 신념이라며 “바로 이것이 수대에 걸쳐 노동 운동이 해온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더욱 극명하게 한국의 노동 현실과 비교하게 된다.

오바마는 위대한 미국이 바로 노동자들 덕분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 가정이 잘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위하고 조직했던 근면한 미국인들이 이룬 것, 자기 자신들을 위해 더 많은 급여를 요구했을 뿐 아니라 옆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직장의 보장을 더 많이 요구했던 근면한 노동자들이 이룬 것”이라고 강조한 뒤 “그들은 피켓을 들고 추운 날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핑커튼과 싸웠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때로는 노조를 만들다가 두드려 맞거나 해고를 당하고 협박을 받으면서 모두가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옹호했던 사람들이었다”고 미국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되짚었고 이들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오바마는 노조가 이루어 낸 것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분들, 여러분의 부모님들, 조부모님들, 증조 부모님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 40시간 노동시간을 얻어내 주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시간 외 근무 수당, 최저임금, 그리고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들을 얻어내 주신 분들입니다. 우리에게 건강보험과 사회보장연금, 노인의료보험 및 퇴직연금을 가져다준 것은 그분들의 투쟁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노조가 얻어낸 것들입니다.” 노조의 위대함을, 노조의 수고를, 노조의 가치를 대통령이 인정하고 칭송하고 이어받자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노조를 압박하고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며 비정규직이 넘쳐나며 그나마 10프로의 노동자만이 가입되어 있는 노조마저 파괴하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나서고 있는데 말이다.

오바마는 노동자들이 이루어낸 중산층의 가치란 ‘미국인의 98%에게 세금을 감면해주고 상위 2%에게 조금 더 세금을 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며 ‘학자금 대출을 개조하고 펠 그랜츠를 늘려서 모든 아이들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2년제 커뮤니티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야 하며 ” 1천6백만 미국인들이 건강보험 가입 혜택을 얻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고 청사진을 펼쳤다.

오바마는 이것이 “ 어느 누구도 단지 본인이나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무일푼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중산층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의 의미라고 정의했다. 오바마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임금과 적당한 근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싸워주며, 규칙을 지키는 이들을 보상해줄 때 그래야 모두가 더 잘 할 수 있다.”며 이렇게 할 때 미국이 더 앞서 나간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오바마는 여러 가지 미국이 당면한 개혁에 대해 이야기 했고 청중들은, 아니 미국민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미국민들의 이러한 반응은 미국의 유일한 사회주의 의원이라는 샌더스 의원의 돌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구의 이쪽에서는 노동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노조파괴와 노동 말살이 이루어지고 있고, 지구 저쪽에서는 노동자와 노조가 이 나라를 이루어냈고 그 가치를 이어가야 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재벌들의 곳간을 더 채우기 위해 여전히 세금을 감면해주고 노동자들의 해고를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최상위 부유층들에 대한 세금 과세는 당연하다고 대통령이 이야기 하고 있다. 오바마의 노동개혁은 노동의 가치를 계승 발전해나가는 것이고 박근혜의 노동개혁은 노동자를 죽이는 것이다.

난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에 살고 있지만 20세기 이후 모든 인류사적 범죄행위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렇게 약탈한 부를 통해 미국이 잘 먹고 잘살아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마바의 저런 자부심과 저런 연설이 솔직히 부럽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바마에게 직접 말할 수 있다면 한마디만 하고 싶다. 그런 정의가, 그런 가치가 왜? 꼭! 미국에게만 해당되어야 하는 것이냐고. 왜 미국의 것이어야만 하냐고.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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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서 발견된 1천만 마리 '개미제국', 개발로 사라지나

안양서 발견된 1천만 마리 '개미제국', 개발로 사라지나

김정수 2015. 09. 23
조회수 719 추천수 0
 

연말 이전 축산검역본부 정원서, 50년전 시작된 일본왕개미 초군체
 “생태계 전시와 보전 가치 높다”, ‘제국의 운명’ 안양시 선택에 달려

 

ant1.jpg» 안양시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 화단의 경계석 사이 개미굴 입구에 몰려 있는 일본왕개미들. 약간 커 보이는 개체들은 일개미 가운데서도 병정개미다. 사진=조용철 생태사진가

 

경기도 안양시 만안경찰서 사거리와 현충사거리 사이에 있는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은 아름드리 벚나무에서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으로 제법 알려진 곳이다. 일제 때인 1942년 이곳에 터를 잡은 조선총독부 가축위생연구소 지소에서 출발해 이름만 바뀌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이런 역사를 몰라도 누구나 아름드리 벚나무들 한가운데 우뚝 버티고 선 가슴높이 지름이 1m가 넘는 거대한 버드나무만 보면 이 정원의 짧지 않은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7000여㎡에 이르는 이 구내 정원과 그 아래 땅속이 정원의 역사만큼 오래된 일본왕개미의 거대한 제국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름과 달리 이 개미는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이름에 ‘일본’이 붙은 건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 명명돼서다.

 

인가 주변과 공원, 산지의 건조한 풀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왕개미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개미 120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몸길이가 최대 15㎜에 이른다.

 

ant2.jpg» 일본왕개미 초군체가 서식하는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을 본부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모습. 사진=조용철 생태사진가
 

지난봄 국립생태원에 전시할 열대개미 검역 문제로 축산검역본부를 찾았다가 잠시 쉬려고 정원에 들어선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의 눈에 심상치 않은 광경이 펼쳐졌다. 일본왕개미들이 정원의 산책로 주변에 수십마리씩 몰려다니고 있었다.

 

개미들은 산책로와 화단 사이에 둘러쳐진 경계석을 마치 고속도로처럼 이용하고 있는 듯했다. 개미의 생태를 소개한 <개미제국의 발견>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개미 전문가의 탐구심이 발동했다.
 

최 원장이 본부 구내를 천천히 돌며 살펴보니 본부 건물 앞 정원 전체를 일본왕개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개미들이 살아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군체들이 모여 있을 때 종종 발견되는 군체 간 전쟁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최 원장은 바로 간단한 실험에 들어갔다.


“멀리 떨어져 활동하고 있는 개미 무리 가운데서 몇마리씩 붙잡아 다른 무리들 사이에 떨어뜨려 봤어요. 서로 군체가 다르면 싸움이 벌어지는데, 아무렇지 않게 섞여들더군요. 어쩌면 정원에 있는 전체 개미가 한 군체, 즉 어마어마한 초군체(supercolony)를 형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nt4.jpg» 화단경계석을 고속도로처럼 이용하는 일본왕개미 무리. 사진=조용철 생태사진가

 

IMG_9049.JPG» 일본왕개미가 둥지를 파느라 퍼낸 흙더미. 사진=조용철 생태사진가
 

최 원장의 연락을 받은 국립생태원 생태진화연구부 연구팀의 정밀조사 결과는 최 원장의 예상대로였다. 연구팀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정원 안에 서식하는 일본왕개미들이 적어도 50년 전에 결혼비행을 마치고 정착한 한마리의 여왕개미로부터 출발한 한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원 땅속에 미로처럼 얽힌 개미굴에는 2만~3만마리 규모로 알려진 일본왕개미 일반 군체 크기의 수백배인 1000만마리 이상의 초군체가 거대한 왕국을 이루고 있으리라 추정됐다. 최 원장의 책 제목 그대로 ‘개미제국의 발견’이었다.
 

최 원장은 “일본·미국 등 외국에서 확인된 초군체 규모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한 규모”라며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국내에서 그 정도 규모의 일본왕개미 군체를 직접 확인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11일 오후 찾아간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에서 가장 많은 개미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정원 한가운데 있는 버드나무였다. 어른 둘이 팔을 둘러야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이 나무의 표면은 온통 오르내리는 개미들로 뒤덮여 있었다.

 

나무 위로 올라가는 개미들의 최종 목적지는 잎사귀였다. 이들이 한두마리씩 매달려 있는 잎사귀들에는 모두 검은색의 작은 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ant3.jpg» 농림축산검역본부 구내 정원의 버드나무 잎에서 공생하는 일본왕개미와 털진딧물. 조용철 생태사진가
 

노푸름 국립생태원 생태진화연구부 전문위원은 “검은색 벌레는 털진딧물 종류”라며 “개미들이 딱정벌레와 같은 진딧물의 천적으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주고, 진딧물은 개미에게 단물을 제공해주며 서로 공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내 정원 안 산책로와 가장자리 곳곳에는 개미들이 굴을 파느라 밀어내 놓은 흙더미들이 쌓여 있었고, 최 원장이 보았던 대로 경계석을 따라 길이 1㎝ 안팎의 개미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가끔 보이는 1㎝ 이상의 큰 개미들은 일개미 가운데서도 병정개미들이었다.
 

국립생태원에서 개미탐험전을 진행하고 있는 최 원장은 “농림축산검역본부 정원은 서식하는 개미 군체의 규모가 거대할 뿐 아니라 개미들이 마치 화단 경계석을 고속도로로 이용하는 것처럼 경계석을 따라 움직이고 있어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교육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며 “이곳의 개미 군체들을 잘 보존한다면 전체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나라는 물론 국외에서도 보기 힘든 생태 교육·전시의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심 한복판에 수십년간 존속해왔으리라 추정되는 이곳 개미제국의 운명은 안양시에 달렸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올해 말 경북 김천으로 이전하며 안양시가 개미 군체 서식지를 포함한 본부 터 5만6000여㎡의 새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축산검역본부가 떠난 것을 계기로 이곳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이라도 벌어진다면 개미제국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안양시청 도시정비팀 백수임 주무관은 “시가 2018년 5월까지 매입대금 1293억원의 분납을 완료해 이 땅의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활용하는 방안으로 공공기관과 상가가 한데 들어가는 관상복합타워, 아이티(IT)·벤처단지, 유보지와 공원 등 다양한 제안을 놓고 검토가 진행중”이라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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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련희씨, "생이별 비극은 분단모순 때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9/24 06:54
  • 수정일
    2015/09/24 06: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국과 가족에 미안, 통일에 모든 것 바칠 것"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23 [19: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탈북자라는 이름표를 낙인처럼 달고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여인이 있다. 조국과 아버지, 어머니, 딸, 남편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자동으로 흐르는 여인, 고향 품으로 돌려 보내 줄 것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고, 조국 품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수면제를 먹고, 동맥을 자르며 죽음으로 송환을 요구한 평양 시민 김련희 씨다.

 

지난 22일 북측은 처음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기관지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유인랍치 된 김련희를 돌려보내라’고 남측당국에 요구했다.

 

그런데 남측 당국은 아직은 돌려보낼 법적 근거가 없다며 거부했다. 김련희 씨는 인권과 자유를 말하는 한국 당국이 “왜 천륜을 끊느냐”고 항변했다.

 

그녀는 한국정부가 인권과 자유를 말한다면 자신은 물론 송환을 원하는 탈북자들을 전원 송환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겪는 일은 분단모순 때문이라며 통일의 절박함을 피력했다.

 

그녀는 처음 자신을 소개할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출신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남도 북도 모두 조국이라고 이야기하고, 평양시민이자, 대구시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 세상의 가장 비극적인 분단모순을 끝내고 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을 위해 온 겨레가 나서야 한다고 호소한다. 탈북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김련희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남으로 왔다며 북으로 송환을 요구해 온 김련희씨는 자신과 같은 비극을 끝장 내기 위해서는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요즘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의논하기 위해 여러 인권단체들과의 모임에 참여하고 영국의 BBC, 미국의 CNN 인터뷰로 서울에 올라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송환대책을 위해 보내다 보니 어제 회사에서 그만두라는 해고 통지가 왔네요.

 

- 어제는 북측에서 유인납치 된 김 선생을 돌려 보내달라고 촉구했고 남측에서는 법적인 문제를 들며 보낼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심경이 복잡할 텐데 지금 마음이 어떻습니까. 
  
▲ 어제 북측 조국에서 남측 조국에 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촉구하였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너무나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예요. 이렇듯 병든 자식을 더욱 껴않는 부모와 같은 나의 조국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 고통스럽고 지옥 같은 4년 세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어요?
독감방의 철창 속에서 저의 온몸을 쇄사슬로 꽁꽁 묶어놓고 구둣발로 내리밟아도 매일같이 벽에 우리 공화국기를 그려 붙여 놓고 단 한순간도 잊어본 적 없는  너무나 소중한 나의 조국이예요.
 남측에서 열백번을 다시 묶어놓는다 해도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저의 결심은 한치도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 남측 정부 당국은 김 선생이 자유의사로 조선의 국적을 포기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고 서약했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 김련희씨는 중국 친척 언니를 방문했다가 지병인 간경화를 치료하기 위한 치료비 때문에 남한까지 왔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남측에 도착한 순간부터 저는 속아서 잘못 온 것이니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고 강경하게 요구했죠. 하지만 국정원은 대한민국국민으로 살겠다는 서약서를 쓰지 않으면 국정원에서 나갈 수 없으며 여기서 죽어도 그 누구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내가 여기서 그 누구도 모르게 죽으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운 생각에 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서약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 무엇 때문에 중국에 갔으며 남한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 2011년6월에 중국에 살고 있는 사촌언니의 집에 여행을 가게 되죠. 그곳에서 저는 원래 앓고 있던 간경화가 심해져 치료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조국하고는 치료 체계가 너무 달랐어요. 조국에서는 돈 한 푼들이지 않고도 치료를 할 수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병원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사촌언니에게 치료비를 대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 내 자신이 치료비를 벌어 병치료를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달만 한국에 가서 일하면 많은 돈을 벌어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브로커의 속임수에 넘어가 최악의 실수로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 김 선생은 강제로 남한에 왔다는데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강제로 협박하거나 납치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지는데 남한에 오기까지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 탈북브로커의 안내를 받아 심양에서 정주라는 곳에 가게 되죠, 그 곳에서 어느 한 건물에 다른 분들과 함께 갇혀있게 되요 그때 옆에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두달만에 중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 내가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저는 도망가려고 브로커에게 빼앗겼던 여권을 돌려달라고 항의하지만 여권이 벌써 자기 윗사람에게 가있다면서 돌려주지 않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남한행을 하게 됩니다

 

- 남한에 와서 바로 북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했다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겠다는 서약서를 쓴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또 다시 북으로 송환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 입국 첫 순간부터 돌려보내줄 것을 강경하게 요구하지만 전혀 받아들여주지 않고 서약서를 쓰지 않으면 절대로 여기서 나갈 수 없으며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그 누구도 모른다고 협박을 해요.

 

그때 탈북자들을 통해 사회에 나가면 6개월만 지나면 여권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당시 생각으로 사회에 나가면 여권을 받아서 가족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국정원의 압력을 받아 서약서를 쓰게 됐어요.

 

▲ 브로커에 속아 남한으로 왔다가 끊임없이 송환을 요구해 오고 있는 평양시민 김련희 씨가 가족들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며 이산가족상봉 신청서를 작성해 대한적십자자사에 제출했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북으로 다시가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요

 

▲ 국정원에서 조국으로 돌려 보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1달 동안 단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식 투쟁이라는 말도 모른 채 밥을 먹지 않으면 나의 요구가 받아 들여 들여지리라 믿은 것이지요. 단식 당시에 국정원 직원들은 나에게 밥을 먹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후 사회에 나오게 되었고 6개월 후 여권을 신청했으나 1년 동안 승인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국정원에 문의하니 “북으로 도망갈 수 있어 여권을 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답변을 듣고 합법적으로는 조국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밀항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밀항을 위해서는 2천만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포기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위조여권 싸이트를 알게 되어 위조 여권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 약속했던 250만원이 아니라 500만원을 달라는 요구를 받고 중단하게 되었어요. 이 모든 노력들이 경찰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과 공문서 위조 혐의로 조사를 받고 기소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조국에 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고 조국을 떠나서는 제 자신을 생각할 수 없다는 양심에 따라 많은양의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 했으나 경찰에 의해 발견되어 보름동안 병원 치료를 받고 생명을 부지 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을 퇴원한 다음날 또 다시 손맥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으나 또 다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절대로 죽어서는 안되고 살아서 조국으로 돌아가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조국과 가족에 대한 최소한 도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간첩이 되면 강제 추방 되어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탈북자 17명의 신상을 수집하여 휴대폰에 입력한 후 경찰에 북측에 전달하려고 하니 빨리 와서 나를 잡아가라고 신고를 하게 되었죠. 그러나 경찰은 이상하게도 열흘이 되도록 잡으로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열흘 후 다시 경찰에 전화를 하여 만나자고 요청을 했습니다. 전화 통화 후 대구 모 식당에서 경찰 두명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저의 휴대폰을 보여 주며 내가 간첩 맞지 않느냐 이것이 증거다라고 말했지요. 이후 20여일이 지나 경찰이 가택 압수수색을 진행 한 후 간첩죄로 체포해 감옥에 넣었습니다.
      

▲ 김련희씨는 가족의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이라며 남한 당국이  자신을  조국과 가족에게 돌려모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간첩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되었는데 어떻게 결과가 나왔나요.

 

▲ 검찰의 기소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부는 간첩이라는 것이 너무도 어이가 없었던지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3년을 선고해 올해 4월 석방되었지요. 말그대로 집행유예 간첩이네요.
간첩이 이렇게 쉬운건지 너무 웃겨서 제가 수사관에게 물었답니다.“이 나라에서는 내가 살인자요 한다면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들어가느냐고요. 살인자가 되려면 살인 동기나 과정, 증거물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요.”

 

- 북에 있는 가족과는 연락을 한 적이 있으시거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 중국에 있는 사촌언니 집으로 부모님과 남편, 딸이 보낸 편지로 소식과 사진 등을받아 가족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조국에 있는 가족들은 4년동안 돌아오지 않는 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며 애타게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부모님과 남편 딸을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생이별의 아픔만큼 큰 것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울음)

 

- 남쪽이나 서방 언론에서는 북의 인권이 참혹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탈북자들의 가족이나 탈북자 자신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온갖 고문을 한다던데 만약 송환이 이루어진다면 처벌이 두렵지는 않습니까.

 

▲ 저는 북에서 40여년간을 살면서 고문이나 수용소등은 알지도 못했고 들어 보지도  못 했어요. 다만 교양적 차원에서 노동 교화소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언론에 나와서 소위 탈북자의 이름을 쓰고 북의 인권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은 조국에서 그 누구보다도 배려를 많이 받으며 살다가 엄중한 죄를 짓고 죄 값을 치르기 싫어 배은망덕하게도 자기를 키워주고 공부시켜 내세워준 어머니조국을 배신하고 도망쳐 나온 반역자들이예요. 그런 범죄자들의 말도 안 되는 사기극을 이용하는 정부당국을 보면서 진실로 통일을 원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제가 조국에 돌아가면 조국이 관대하게 용서해준다 해도 저는 제 스스로 죄 값을 치를 것입니다.

 

▲ 김련희씨는 남쪽 조국에 와서 분단 모순을 절감하게 되었다며 조국통일을 위해 남은 생을 다바치겠다고 다짐하며 활짝 웃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마지막으로 가족과 북측 당국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조국과 가족에게 죄송합니다.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순간의 실수로 조국과 가족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조국과 가족은 나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부모에게는 불효한 자식, 딸과 남편에게는 걱정을 끼치는 어머니, 아내가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돌아가 못 다한 자식노릇 부모 노릇, 아내 노릇, 조국의 딸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특히 나는 이번에 남쪽 조국에 와서 분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통일의 중요성도 더욱 실감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나는 죽는 날까지 남에 있건 북에 있건 조국통일에 모든 것을 깡그리 바칠 결심을 했어요. 한 핏줄인 우리민족, 한 맥을 잇고 있는 조국강토가 하나로 되어야 하는 것은 온겨레의 염원입니다. 왜 우리가 생이별을 하고 살아야 합니까. 남북해외동포 모두에게 절절히 호소합니다. 통일에 나서자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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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개천절 행사에 북측 대표단 초청


개천절준비위 기자회견, 평양행사는 무산..서울 공동행사 '기대'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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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3  11: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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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23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 개천절 행사에 북측 대표단을 초청한다고 밝혔다.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단기 4348년 개천절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해온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개천절준비위)는 23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개천절행사에 ‘북측 대표단을 정중히 초청’한다고 밝혔다.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께 드리는 글’을 발표, “우리는 귀측의 상황을 감안하여, 10월 3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4348년 개천절민족공동행사에 북측 대표단을 정중히 초청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8명의 대표단이 방북해 평양 단군릉에서 개천절민족공동행사를 봉행한 바 있는 개천절준비위는 올해도 평양 공동행사를 추진했지만 북측이 부정적 입장을 전해오자 서울 행사에 북측 대표단을 초청한 것.

도천수 개천절준비위 준비위원장은 경과보고에 나서 ‘개천절 공동행사 사실상 무산’ 보도에 대해 “잘못된 보도”라며 “올해도 평양 단군릉 행사를 북에 제안했지만, 북이 당 창건 행사가 매우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에 평양에서 공동행사 하는 것은 어렵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북측 단군민족통일협의회(회장 류미영) 측은 지난 12일 평양시가 오는 10월 10일 당창건 70주년 ‘축전’ 준비로 붐비는 등 여러 사정으로 평양에서 개천절 공동행사가 진행되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앞줄 왼쪽 두 번째)이 '국민께 드리는 글'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도천수 준비위원장은 “평양 행사는 가능하지 않더라도 북의 대표단이 서울의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공동행사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해둔 상황”이라며 “아직까지 실무회담이 진척이 안됐지만 일부 잘못된 전달에 의해서 행사가 무산된 것으로 보도됐는데, 아직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개천절준비위는 지난 12일 북측 팩스를 받고 13일 ‘서울 공동행사’를 북측에 수정 제안했지만 북측은 아직까지 입장을 통보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윤승길 사무총장은 “개천절을 통해 민족이 하나 되어서 우리 민족의 위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막아낼 수 있는 단합된 힘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하고 “금년에도 가능성이 조금 있다고 본다.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원 회장은 “2014년 남북 정세의 어려움을 뚫고 단군릉에서 남북이 함께 하늘에 천제를 올리며 개천절민족공동행사를 공동개최해 왔다”며 “우리는 이번 개천절이 종교와 이념, 계층과 지역을 넘어 민족 분단의 고통을 끝내고,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숭고한 개천절민족공동행사가 되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우리는 개천절행사를 성대하게 봉행하여 남북 민간교류의 중대한 변화와 발전의 계기를 만들고자 하며, 아울러 원시조 단군성왕의 후손으로 체제와 이념을 넘어 민족 통일의 대로를 열어야 한다”면서 북측 대표단을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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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에 가로막힌 민주노총, 10~11월 총력투쟁 예고

광화문광장에 선 민주노총
최루액 맞고 차벽에 막히고

[현장] 차벽에 가로막힌 민주노총, 10~11월 총력투쟁 예고

15.09.23 16:53l최종 업데이트 15.09.23 23:37l

 

 

경찰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경찰의 강제해산에 항의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비롯한 참가자들을 향해 최루액을 뿌리고 있다.ⓒ 유성호
경찰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경찰의 강제해산에 항의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유성호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최루액을 난사하며 해산작전에 나서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한 노동자의 멱살을 잡으며 강제연행하고 있다.ⓒ 권우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던 도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최종신 : 23일 오후 6시 40분] 
차벽에 가로막힌 민주노총, 10~11월 총력투쟁 예고
 

민주노총은 광화문광장에 진출했지만, 경찰이 마구잡이로 쏜 최루액과 차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금호아시아나 빌딩 앞 경찰 차벽에 막혀 흩어진 뒤, 다시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뿌렸다. 

노동자들은 오후 5시 40분께 광화문광장과 세종문화회관 사이 세종대로를 점거한 뒤 "쉬운 해고 반대한다", "박근혜를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권은 늘 경찰의 장벽 뒤에 숨어 있다.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통치를 빙자해 노동자, 서민의 생존을 폭격하는 정권을 끝내자"라고 외쳤다. 

그는 "오늘 투쟁에 이어 10월 전국 곳곳에서 타오르는 저항의 불꽃을 지피겠다"면서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모아 반격의 포문을 열겠다"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해산하는 과정에서도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은 도로에 있던 일부 노동자들을 인도로 밀치자, 노동자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경찰은 마구잡이로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쏘면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권영국 변호사와 노동자 최소 4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한편, 민주노총은 10~11월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10월 12~17일에는 '노동개악 가이드라인 분쇄 총파업 총력투쟁'을 벌이고, 11월에는 총파업에 나서고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열린 총파업 대회에 참석해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열린 총파업 대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수배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연설을 하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앞에서 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네거리를 향해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신문로 구세군회관앞에 바리케이트와 물대포를 배치해 저지하고 있다.ⓒ 권우성
[1신 : 23일 오후 4시 53분]
민주노총, 총파업 후 행진 시도 "청와대로 간다"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광화문네거리를 향해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저지되자 다른 길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권우성
23일 오후 3시 '노동 개악 반대'를 걸고 총파업 집회를 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세종로 사거리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4시 20분께 행진을 시작한 노동자들은 그러나 500m도 못 가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빌딩 앞 경찰 차벽에 막혔다. 한동안 경찰과 대치하던 이들은 대열을 돌려 이동해 늦은 오후 광화문 광장에 집결, 청와대로 가는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날 총파업 집회에는 산하 전국서비스노동조합연맹·전국금속노동조합 등 전국 16개 지역본부 조합원 1만여 명이 참여했다(경찰 추산 4500여 명).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혁 박살 내자", "노동자 다 죽이는 노동개혁 끝내자" 등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민주노총 사무실 앞 새문안로 8차선 도로 중 일부를 점거한 채 집회를 진행했다. 점거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경찰 측도 이날 오전부터 서울시청 앞부터 민주노총 사무실까지 광화문 일대 도로에 경찰 버스 수십 대와 경찰 인력을 배치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노동 개악 찬성할 수 없다"

이날 현장에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4월 총파업과 5월 노동절 집회 등을 주도한 혐의로 6월 말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당시 민주노총 측은 "추후 조사를 받겠다고 했음에도 체포 영장을 재청구한 것은 명백한 노동탄압"이라고 반박했으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은 현재 민주노총 안에서 석 달 가까이 지내고 있다.
  
마이크를 잡은 한 위원장은 "노동 개악으로 인해 쉬운 해고 등 야만의 시간이, 우리 자녀들이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분노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앞서도 비정규직 악법을 막아내지 못한 탓에, 또 정리해고로 인해 수많은 동료를 잃었는데 더 많은 목숨을 내놓으라는 이번 노동 개악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어 "우리 아들·딸들을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며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민주노총도 역사적 사명을 다 하겠다, 오늘 청와대로 간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한 위원장은 이를 위해 10월 24일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이어 11월 14일 '전국노동자대회 및 민중 총궐기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연대 발언에 나선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양혜영씨는 "박근혜 정부는 노동 개혁으로 아들·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노사정위 결과를 보니 아들·딸은 평생 비정규직만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끼리 제 살 깎아 먹으라는 것으로, 상생 고용이 아닌 '살생 고용'이다, 청년들은 여기에 찬성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측은 "이번 총파업은 지난 9월 13일 노사정위원회가 노동개악 방안을 야합하고, 16일 새누리당이 비정규직 기간 연장과 파견 비정규직 확대 등 입법안을 발표한 데 따른 즉각적 경고"라며 "정부와 여당이 노사정위원회 야합을 근거로 '노동개혁'으로 가장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어 투쟁이 불가피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비슷한 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는 노사정위 합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다가 4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최루액을 난사하며 해산작전에 나서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고 있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경찰이 취재중이던 한겨레신문 기자를 강제연행하고 있다. 주위에 있던 기자들이 항의를 하자 경찰은 한참 뒤 풀어줬다.ⓒ 권우성
'쉬운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저지를 위해 총파업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세종문화회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가운데, 취재기자를 강제연행하는 경찰에 항의하던 노동자가 사지가 들려 강제연행되고 있다.ⓒ 권우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던 도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던 도중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자, 경찰이 이들을 에워싸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정부가 앞서 발표한 노동개혁안은 노사정위 야합의 결과물"이라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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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등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발족


23일 노동개악 반대 총파업, 상경투쟁...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 개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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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2  17: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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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비롯한 58개 부문별 단체들이 22일 ‘민중총궐기투쟁본부’를 발족시키고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민주노총]

민주노총을 비롯해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빈민연대 등 58개 부문별 단체들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중총궐기투쟁본부’(투쟁본부)를 발족시켰다.

이들은 일자리·노동, 농업, 민생빈곤, 청년학생, 민주주의, 인권, 자주평화, 세월호, 생태환경, 사회공공성, 재벌책임 강화 등 11대 분야에 걸쳐 ‘세상을 바꾸는 11대 요구’를 제시하고 오는 11월 14일 서울에서 민중총궐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투쟁본부는 비정규직문제해결을 위한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와 함께 정부의 노동개악에 저항하는 현장 국민투표를 다음달 19일부터 말일까지 주 1회 이상 진행하기로 했다.

또 다음 달 초순 이후에는 시·군·구와 단위 노조 및 제 단체들이 나서 시·군·구 및 부문별 민중총궐기운동을 선언하고 현재 710조에 이르는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을 민중총궐기위원회 차원에서 적극 벌여나가기로 했다.

이후 강원, 대전, 경남, 부산, 울산, 충북, 서울, 전남, 충남, 대구·경북, 경기, 전북, 제주 등 광역지역에서 지역 민중대회를 개최하고 이 여세를 몰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를 개최하는 일정이다.

투쟁본부는 각 분야에서 절박한 당사자들의 호소문을 담아 ‘청와대로 가자’는 대중운동을 벌여달라고 제안했으며, 지역과 거점에서 진행되는 노동악법 국민투표와 밥쌀 수입 반대 온라인 서명에도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10월 중순경부터는 총궐기위원회 대표단이 나서 전국을 행진하며 11월 14일 총궐기대회 참여를 직접 호소하겠다고 밝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1천만 시대, 재벌은 배가 터지고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300만이 넘고 있다. 이런 국가적 재난 앞에서 정부는 모든 위기를 여전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며 "이 정권을 단죄하지 않고 민중은 살아갈 수 없다. 민주노총은 모든 것을 걸고 이 투쟁의 선두에서 진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조덕휘 전국빈민연합 의장, 김현후 빈민해방실천연대 위원장은 총궐기 투쟁에 함께해 정권심판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투쟁본부 발족선언문에서 지난해 29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의 비극이 올해 메르스 사태로 재현돼 36명의 생명이 또다시 스러졌다며, 민중의 안전과 생존에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는 정권의 본질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또 “정부는 남북대결정책 고수와 흡수통일 노골화로 이 땅에 전쟁의 긴장을 높이고 있으며, 사드 배치를 추진, 이 땅을 미국의 대중 군사대결의 전초기지로 만드는 위험천만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임금피크제,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고용불안정화로 당면한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고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반발했다.

밥쌀용 쌀 수입이 그대로 지속돼 농민의 생존권이 마지막 벼랑에 섰으며, 재개발·도시정화라는 이름으로 도시빈민에 대한 탄압도 쉼 없이 지속되고 있고 청년들은 이 나라를 ‘헬조선’, ‘망한민국’이라 부르며, 이 땅을 떠나겠다고 절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투쟁본부는 11월 14일 대회를 노동자·농민·빈민·청년학생·장애인대회 등 각계 각층의 부문대회를 개최한 뒤 본대회로 집결하는 방식으로 진행, 10만 명을 목표로 하는 민중 총궐기를 통해 “박근혜 정부와 재벌들이 추구하는 반민중 정책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노사정 야합 규탄! 노동개악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갖고 오는 23일 총파업-상경투쟁을 결정했다. [사진제공-민주노총]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청계선 한빛광장에서 ‘노사정 야합 규탄! 노동개악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개최, 가맹 산하조직 조합원 7천여 명과 함께 쉬운해고와 강제임금삭감,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등에 반대하는 9.23 총파업, 상경투쟁을 결의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세상을 바꾸는 11대 요구’>

 

○ 일자리노동

-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노동개악 중단

-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모든 서민의 사회안전망 강화

 

○ 농업

- 밥쌀 수입 저지 / TPP 반대

-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

 

○ 민생빈곤

- 노점단속중단, 순환식 개발 시행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 청년학생

- 재벌 곳간 열어 청년-좋은 일자리 창출 요구

- 대학구조조정 반대

 

○ 민주주의

- 공안탄압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국정원 해체, 양심수 석방

- 역사왜곡 중단,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 폐기

 

○ 인권

- 차별금지법 제정, 여성․이주민․장애인․성소수자 차별 및 혐오 중단

- 국가인권위 독립성 확보, 정부 및 지자체 반인권행보 중단

 

○ 자주평화

- 대북적대정책폐기, 남북관계개선! 5.24조치해제, 민간교류보장!

- 한반도사드배치반대, 한미일삼각군사동맹중단! 일본의 군국주의 무장화 반대!

 

○ 세월호

- 세월호 온전한 인양,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 안전사회건설

 

○ 생태환경

-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 계획 폐기

- 신규원전 건설 저지 / 노후원전 폐기

 

○ 사회공공성

- 의료 철도 가스 물 민영화 중단

- 제주 영리병원 추진 중단, 공공의료 확충

 

○ 재벌책임 강화

-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로 최저임금 1만원 실현

-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전환-하청노동자 직접교섭 참여 등 재벌 사용자 책임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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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포르셰’ 참다랑어, 양식장 그물과 충돌 사고

 
황선도 2015. 09. 22
조회수 176 추천수 0
 


참치로 알려진 다랑어, '맛의 백화점' 인기 독차지

속도광이자 멸종위기종 참다랑어는 완전양식 길 열려

 

03543345_R_0.jpg»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앞바다에서 시험 양식중인 참다랑어. 사진=제주수산연구소 
 
‘참치’란 이름은 동해 지역 사투리
    
뭐라 해도 가장 값비싼 횟감으로는 ‘다랑어’를 꼽을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참치’라고 알려졌고, 영어로는 ‘튜나(tuna)’라고 부른다. 
 
참치라고 불리는 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넙치, 꽁치, 멸치, 쥐치, 가물치, 한치 등과 같이 생선에 접미어로 붙이는 ‘치’ 자에 으뜸을 나타내는 ‘참(眞)’ 자를 붙여 진짜 생선이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공식 이름인 다랑어 대신 참치가 더 일반적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해방 후 해무청 어획담당관이 참치라는 명칭이 동해 지역의 사투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고서에 기록한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은 원양회사에서 상표에 쓰면서 오히려 주류가 되었다.
   
다랑어는 고등어, 망치고등어, 삼치 등과 함께 농어목 고등어과에 속하는 외양성 고도 회유종으로 수만 킬로미터를 유영할 정도이다. 다랑어는 잠잘 때도 뇌 기능만 수면을 취할 뿐 10여 년이란 일생을 통해서 단 1초도 쉬지 않고 헤엄친다.
 
유영속도가 평균 시속 60킬로미터, 순간 최대 시속 160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참 고단한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출 1위의 ‘돈 되는 생선’ 

참다랑어.jpg» 평생을 쉬지 않고 헤엄치는 태평양 참다랑어. 사진=open cage

   
다랑어가 사는 곳은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 아열대 및 온대해역의 5대양에 널리 분포한다. 초여름에는 고위도로 올라오고 늦가을에 다시 저위도로 계절회유를 한다. 
 
일반적으로 열대성 다랑어에는 참다랑어, 눈다랑어, 황다랑어, 가다랑어가 있고, 날개다랑어는 온대성 다랑어로 분류된다. 다랑어류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참다랑어로 몸길이가 3미터를 넘고 무게는 600킬로그램이나 나가며, 새치류는 몸길이가 6미터 정도가 되고 무게는 9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것이 있다.
 
다랑어는 우리나라 연근해에 많지는 않으나, 동해와 동중국해 먼바다에 회유하여 들어온다. 다랑어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원양어선인 지남호가 1957년 인도양에서 처음 조업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주요 어획종이 되었다. 
 
한국원양어업 통계를 보면, 원양에서 2014년에 가다랑어 22만 9588톤, 황다랑어 6만 3970톤, 눈다랑어 2만 2868톤, 날개다랑어 1310톤, 남방참다랑어 783톤을 어획했고,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참다랑어 1311톤을 잡았다. 
 
어획한 다랑어는 대부분 횟감과 통조림용으로 수출하며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 1위 품목이다. 이들 다랑어와 새치는 열대성 표층어 중에서 가장 큰 고도 회유종으로서 성장이 빠르고 맛이 좋기 때문에 원양수산자원으로서 매우 귀중히 여긴다. 한마디로 돈이 된다.

tu1.jpg» 최초 상업 원양어선, 지남호. 사진=<수산자원조사 50년> 

감칠맛 뱃살 다른 부위보다 2~3배 값 
 
생선 중 ‘맛의 백화점’으로 불리는 참치는 1980년대만 해도 식도락가나 엘리트 층의 고급 횟감으로만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흔한 생선이 되었다. 이게 다 원양어업과 식품가공업이 발전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국내의 참치 관련 식품회사들이 계속하여 통조림 등 다양한 상품들을 널리 유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랑어는 용도에 따라 횟감용과 통조림용으로 나뉜다. 횟감용 다랑어는 살코기 속에 기름기가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좋다. 크기에 상관없이 참다랑어와 눈다랑어가 참치회로 가장 좋다. 
 
통조림에 좋은 다랑어는 크기가 적당해야 한다. 지나치게 큰 것과 어린것은 좋지 않다. 가다랑어와 날개다랑어가 통조림으로 이용된다. 
 
이처럼 참치가 여전히 횟감 중 최고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역시 참치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맛 덕분이다. 참치의 참맛은 바로 잡아 올렸을 때의 색깔 그대로가 유지된 것이 최고로 손꼽힌다. 냉동기술의 발달로 현재는 어디서나 싱싱한 참치를 만끽할 수 있다. 
 

03088312_R_0.jpg» 참다랑어 옆구리살로 만든 초밥. 사진=박미향 기자

 

이러한 참치도 부위에 따라 맛과 가격이 현저히 다르다. 가장 맛이 좋고 비싼 부위는 뱃살이며 다른 부위보다 2~3배 비싸다. 
 
그 이유는 뱃살에는 토로라 불리는 지방이 등살에 비하여 수십 배 더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고소하다. 다랑어 고유의 감칠맛은 이노신산이라는 성분이 많기 때문인데 이는 핵산조미료의 구성성분이 된다. 
 
참치의 살이 붉은 이유는 근육에 혈액이 가득하기 때문인데, 빠른 유영을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산소를 근육에 보내야 하므로 근육에 모세혈관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고기 살에 혈액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잘못 보관하면 금방 부패해 버린다. 참다랑어의 붉은 살코기는 지방이 35%나 된다. 
 
일본사람들은 전통식품으로서 가다랑어를 이용하여 조미용 국물을 얻기 위한 건조가공품을 만드는데 이것을 ‘가쓰오부시’라고 한다. 다랑어를 알맞게 다듬어 건조, 발효를 반복하여 몽둥이 모양의 단단한 제품을 만들어, 이를 얇게 썰어서 국물을 우려내는데 이용한다. 가쓰오부시에는 핵산 조미료 성분인 이노신산, 히스티딘염이 많이 들어있다.
 
03901585_R_0.jpg» 다양한 부위의 참치 회.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돼지고기보다 단백질 많아
 
다랑어는 일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양인들에게도 생선의 대들보 격이라고 생각해서 ‘바다의 귀족’, 또는 닭고기와 맛이 비슷하다고 해서 ‘바다의 닭고기’라 불릴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다랑어는 단백질 비중이 27.4%나 되어 생선 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육류인 돼지고기, 쇠고기나 닭고기보다도 훨씬 높다. 
 
반면 지방은 6.6%로 육류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 고단백 저열량 식품이다. 다랑어는 비타민 B군, 토코페롤, 칼슘, 철분, 마그네슘 등이 많아 어린이의 균형있는 성장을 도우며, 탄수화물이 거의 없고 지방이 적어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환자의 영양식으로도 추천된다. 
 
고등어, 정어리, 다랑어, 연어 등 소위 등푸른 생선에 많다는 EPA와 DHA가 풍부해 동맥경화, 고혈압, 뇌혈전 및 심근경색 등의 성인병 예방에 상당히 효과적이며 머리를 좋게 하는 건뇌식품의 보고처럼 각광받는 생선이라고 평가하고 있어 참치 예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음식도 지나치면 안 된다. 참치는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수은 등 난분해성 유해물질이 농축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임산부나 가임여성, 유아 등은 메틸수은 함량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냉동 참치를 주 1회 이상 먹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tu2.jpg» 여러 종류의 다랑어를 설명하고 있는 포스터. 그림=국립수산과학원 
 
참다랑어를 ‘바다의 로또’라고 부른다. 2013년에 일본 도쿄의 수산시장에서 222킬로그램짜리 참다랑어 한 마리가 18억 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18억 짜리’를 잡았다면 로또라 할 만하겠다. 
 
이 참다랑어로 만든 초밥 2점 한 접시를 원가로 따지면 60만원에 해당한다고 하니 감히 입에 넣을 수 있기나 하겠는가. 아무리 참치 좋아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일본인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라면 참치 사랑이 아니라 참치 전쟁 수준이다. 

04165511_R_0.JPG» 2012년 도쿄의 한 참치회 식당 주인이 약 8억원에 낙찰받은 참다랑어를 해체하고 있다. 이듬해 이 기록은 껴졌다. 사진=AP 뉴시스

 
하지만 이는 아주 이례적인 경우이고, 보통 무게에 따라 수십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경매가는 다양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니 많이 잡을 것이고, 그래서 다랑어 자원은 급감하고 있다. 
 
더욱이 국제적으로 다랑어 조업 규제와 보ㅈ존조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러하니 과열 경쟁으로 경매가가 치솟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제는 다랑어도 길러서 잡아먹는 것이 대안이다.
    
다랑어의 또 다른 별명 하나는 ‘바다의 포르셰’이다. 다랑어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헤엄친다. 서거나 후진하는 일도 없고 오로지 전진만 한다. 
 
그러니까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물고기이다.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질주 본능은 다랑어 양식의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이다.

 

05384259_R_0.jpg» 전남 여수 거문도 참다랑어 양식장에서 그물망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
 
60일쯤 키운 어린 다랑어는 꼬리지느러미가 발달하면서 헤엄칠 때 가속도가 붙게 되는데 그물에 충돌해 상당수가 죽어버린다. 또 알에서 부화한 뒤 개체마다 성장 속도가 차이가 나 큰놈이 작은놈을 잡아먹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다랑어 양식을 위한 수정란이 없었다. 수정란을 생산할 어미 암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다랑어 양식은 일본 수산청에서 1970년부터 3년에 걸쳐 프로젝트로 시도하여, 2002년에 일본 긴키대학에서 세계 최초로 완전양식에 성공하였다. 그후 긴키대학과 도요타통상은 참다랑어의 완전양식 생산량을 현재의 연간 80톤(약 2000마리)에서 2020년에는 약 3배인 240톤(약 6000마리)으로 증가시킬 방침이라고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다.

 

04862520_R_0.jpg» 참치의 완전양식이 이뤄지기 전 양식용 참치를 포획해 대형 그물에 가둔 채 운반하고 있다. 양식을 위한 포획도 참다랑어를 심각한 멸종위기로 빠뜨리게 한 원인의 하나다. 사진=그린피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2006년 참다랑어 양식기술 개발에 관한 로드맵을 만들고, 그 후 외해 가두리양식 가능성을 조사하기 시작하여 2010년에 지중해 몰타에서 수정란을 들여와 연구에 돌입한 지 1년 만에 인공종자 생산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2만 마리의 인공종자를 월동시켜 중간육성기술까지 확보하였고, 2015년 8월9일과 11일에는 두차례에 걸쳐 국내 최초로 국산 참다랑어 어미로부터 자연산란을 유도해 수정란 채집에 성공했다. 참다랑어 양식기술이 수정란 생산, 종자생산, 중간육성, 완전양식 등 4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3단계까지 성공한 셈이다.
    
우리 바다에서도 다랑어가 심심찮게 잡힌다. 위판할 정도의 상품성 있는 다랑어도 있지만 상당수는 3∼5킬로그램짜리 어린놈들이다. 

05278749_R_0.jpg» 우리나라 근해에서도 어린 다랑어가 심심찮게 잡힌다. 지난 3월 부산 어시장에는 1만8000상자, 약 250t의 다랑어가 위판됐다. 사진=연합뉴스

 
어린 참다랑어는 상품성이 없기 때문에 잡어로 분류돼 양식장 사료용으로 팔렸다. 2011년 전남 여수 앞바다 정치망에 새끼 참다랑어 110마리가 잡혔다. 정치망은 작업을 잘만 하면 고기를 산 채로 잡을 수 있어 이 참다랑어 새끼들을 여수 거문도 가두리에서 사육하여 65킬로그램까지 키웠다. 
 
기특하게 이 4∼5세가 된 참다랑어들이 양식장에서 수정을 하여 30만 개의 수정란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한국산 참다랑어의 시조가 탄생한 것이다. 새끼 참다랑어를 어미로 키워서 수정란을 대량 확보함으로써 참다랑어 완전양식의 길이 열렸다. 
 
■ 다양한 다랑어의 세계

Danilo Cedrone.jpg» 그물에 걸린 대서양 참다랑어. 3m 넘게 자란다. 사진=Danilo Cedrone, 위키미디어 코먼스


■ 3m까지 자라는 ‘참치의 왕’ 참다랑어
    
참다랑어는 다랑어 중에서도 진짜라는 뜻에서 붙어진 이름이다. 그래서 일식집에서는 흔히 일본말로 ‘혼마구로’라고 부른다. 그런데  ‘구로마구로’라고도 불리는데, 등이 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를 직역해서 흑다랑어라고 쓰지만 이름은 함부로 붙이는 게 아니다. 서양에서는 블루핀튜나(Bluefin tuna)라고 부른다. 글자 그대로 지느러미가 청색을 띄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등 색깔이 짙은 청색을 보이는 것을 표현했을 것이다.

모든 다랑어류가 다 그렇듯이 몸은 방추형이며 머리 부분은 원추형이라 헤엄칠 때 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형이다. 몸의 등쪽은 짙은 청색을 띄며 몸의 중앙과 배쪽은 은백색 바탕에 여러 개의 폭이 좁은 가느다란 흰색 가로띠와 그 안에 둥근 점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참다랑어는 열대 원양에 살며 표층을 빠른 속도로 유영하는 몸집이 아주 큰 어류로 전 세계에 3종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미국, 멕시코 해역에 분포하는 태평양참다랑어(Pacific bluefin tuna, Thunnus orientalis), 지중해를 포함한 대서양에 분포하는 대서양참다랑어(Atlantic bluefin tuna, Thunnus thynnus), 적도 이남의 남반구에 분포하는 남방참다랑어(Southern bluefin tuna, Thunnus maccoyii)가 그것이다. 
 
이들 참다랑어는 외견상 거의 비슷하나 엄연히 다른 종이다. 태평양참다랑어는 북반구 온대해역에 널리 분포하며, 북서태평양에서는 마셜군도 및 필리핀에서 일본 북해도에 이르는 연안역에 서식한다. 
 
참다랑어는 대양성 어류이나 계절적으로 연안 가까이 오는 수도 있다. 북동 태평양에서는 6~9월에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회유하며, 서부태평양에서는 일본 해안을 따라 여름에는 북쪽으로 그리고 겨울에는 남쪽으로 회유한다. 
 
우리나라 주변에서는 초여름에 동해로 들어와서 오호츠크해까지 회유하며, 동해를 빠져나갈 때는 일본 북부의 쓰가루 해협을 통과한다. 산란기는 대만 근해에서는 4~6월, 우리나라 동해에서는 8월이다. 성장하면서 태평양을 횡단하여 동부 태평양으로 회유하며 다시 산란장으로 되돌아온다. 
 
10세 이상의 200센티미터 정도 크기가 되면 대서양참다랑어는 멕시코만과 지중해에서 산란하는데, 표층에 한번 산란에 1000만 개 이상의 알을 1~2일 간격으로 낳는다. 2일이 지나면 알에서 2.8밀리미터 크기의 새끼가 부화하여 30일 정도의 치어기를 지낸다. 
 
참다랑어는 주로 멸치, 꽁치, 오징어 등을 먹으며, 범고래에게는 먹이가 되는데 대형어일수록 포식자는 줄어든다. 참다랑어는 다랑어류 중에서 가장 커서 최대 몸길이는 300센티미터 이상인 경우도 있으며 대개 200센티미터까지 이르며, 체중은 450킬로그램까지의 기록이 있다. 대서양에서는 458센티미터 크기, 684킬로그램 체중까지 자라며, 15살까지 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는 대형선망과 정치망 등에 잡힌다. 참다랑어는 다랑어류 중에서 가장 고가이므로 우리나라가 어획한 것은 대부분 일본 등지로 수출되고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양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다랑어는 어획시기와 장소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지며, 다양한 요리법이 있지만 참다랑어는 주로 횟감으로 애용된다. 참다랑어를 회로 먹을 때 생강과 함께 먹으면 생강의 살균 작용이 날 회로 인한 소화문제를 예방해줄 수 있어 궁합이 좋다. 참다랑어는 육질이 붉은색을 띠고 눌러봤을 때 단단하고 탄력 있는 것이 최고급이다.   
 
 
■ 상어와 함께 회유하는 눈다랑어 

Thobe_u0_눈다랑어.gif» 눈다랑어. 그림=Thobe_u0, 위키미디어 코먼스

 
눈다랑어(Thunnus obesus, 영명: 빅아이투나, Bigeye tuna, 일명: 메바치めばち, 眼撥)는 체형이 높고, 굵으며, 눈이 특히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슴지느러미는 적당하게 길어 제2등지느러미 끝자락까지 다다라 자칫 날개다랑어인 줄 착각할 수가 있다. 

눈다랑어는 전 세계의 열대, 아열대, 온대 해역에 걸쳐 수온 10도 이상 해역에 널리 분포하며, 특히 태평양은 북반구에 많이 분포한다. 열대 해역에서 산란하고 먹이를 먹고 성장하기 위하여 계절에 따라 고위도 해역으로 남북 방향 회유를 한다. 
 
체장 100센티미터가 되면 산란하기 시작하며, 1회 산란 수는 300만~1000만 개로 알려져 있다. 최대 250센티미터, 210킬로그램, 11세까지 성장한다. 
 
어릴 때는 표층 가까이에 살다가 성장할수록 점차 깊은 곳으로 이동한다. 눈다랑어는 다랑어류 중에서는 가장 깊은 수심에서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수심에 도달할 수 있는 기다란 원 줄에 가지 줄을 달고 그 끝에 낚시와 미끼를 달아 조업하는 주낙(연승)으로 어획한다. 눈다랑어는 유목에 붙어다니거나 상어와 같이 회유하는 경우가 많아 낚시에 걸린 눈다랑어는 때때로 상어의 먹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눈다랑어의 살색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초밥과 횟감으로 많이 이용되며, 일본의 관동지방과 동북지방에서는 봄철이 끝날 무렵 참다랑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눈다랑어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 복숭아 살색 황다랑어

황다랑어.jpg» 노란 등지느러미가 두드러지는 황다랑어. 사진=open cage 
 
황다랑어(Thunnus albacares, 영명: 엘로우핀튜나, Yellowfin tuna, 일명: 키하다, キハダマグロ,黃蘗)는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 토막지느러미 등 대부분의 지느러미가 밝은 황색을 띠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몸은 방추형이며, 머리와 눈은 상대적으로 작고 꼬리부분이 길다. 제2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가 낫 모양으로 매우 큰 것이 특징으로 체장의 20% 이상이나 된다. 
 
전 세계 대양의 열대 및 아열대 해역에 분포하며, 다랑어류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온을 좋아하여 남·북위 25도 사이에 주어장이 형성된다. 황다랑어는 특히 산소가 풍부한 상부 수심에 한정되어 서식하는데, 이것은 빠른 유영을 위해 많은 산소가 필요한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황다랑어의 살색은 봉숭아 색이고, 초밥 및 횟감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특히, 여름철과 가을철에 맛이 좋으며, 통조림이나 어육의 원료로도 이용된다.

 

■ 참치통조림 주인공 가다랑어
 

Momotarou2012 _1280px-Skipjack_tuna_Stuffed_specimens.jpg» 가다랑어 표본. 사진=Momotarou2012,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다랑어(Katsuwonus pelamis, 영명: 스킵잭투나, Skipjack tuna, 일명: 가쯔오, かつお, 松魚, 堅魚)는등쪽이 어두운 청자색, 배는 은백색으로 체측 아랫부분에 4~6개의 뚜렷한 흑청색의 세로띠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다랑어는 전 세계 열대 대양에서 떼를 지어 서식하며, 분포 수층은 낮 동안에는 표층에서 260m까지의 깊은 수심에 서식하며 밤에는 거의 표층에 머문다. 먹이는 어류가 대부분이며 갑각류, 연체동물 등도 먹는다. 때로 다른 다랑어류 및 새치류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표층에서 어군을 형성할 때, 가다랑어는 물새, 유목, 상어, 고래 혹은 다른 종류의 다랑어와 함께 떼를 이루는데, 이때 점프나 거품 형성 등의 특이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여 가다랑어 어군을 찾기도 하는데,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헬리콥터를 갖춘 원양선망어선은 주로 가다랑어를 어획하는 것이다.
    
가다랑어는 우리가 즐겨먹는 통조림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여름철에 가장 맛있어 회 또는 다져서 먹기도 하나, 해수에 삶아서 말린 후 대패로 얇게 썰어 다시 용으로 쓰인다.

 

■ 가슴지느러미가 멋진 날개다랑어

Rvalette -_1280px-Cuvier-47-Germon-Thon.jpg» 날개다랑어 암수의 그림. 사진=Rvalette, 위키미디어 코먼스

    
날개다랑어(Thunnus alalunga, 영명: 알바코어, Albacore, 일명: 빈나가, びんなが)는 가슴지느러미가 아주 발달하여 날개처럼 길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는데, 가슴지느러미가 제2등지느러미를 지나 가랑이 체장의 30%를 차지할 정도이다. 날개다랑어는 90센티미터이면 성숙을 하고 보통은 100센티미터 정도인데, 큰 것은 140센티미터, 40킬로그램으로 9년생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표층 수온 15∼19도 범위를 보이는 대양에 주로 서식하며, 더 큰 놈은 10도 이하의 더 깊은 수심에서도 발견된다. 다른 종류의 다랑어와 떼를 지어 다니기도 하는데, 이는 떠다니는 유목이나 해조류 덤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연안성 다랑어가 있으며, 우리나라 연해에는 몸뚱아리 아래 부분에 알 모양의 흰색 반점이 밀집해 있어 쉽게 구분되는 백다랑어(Thunnus tonggol, 영명: longtail tuna, 일명: 코시나가 )와 가슴지느러미 아래에 작고 검은 반점이 여러 개 있어 구별되는 점다랑어(Euthynnus affinis, 영명 : Kawakawa, Mackerel tuna, black skipjack, 일명 : 수마)가 출현한다. 그리고 유사종으로 몽치다래(Auxis rochei, 영명: Bullet mackerel, 일명: 마루소다)와 줄삼치(Sarda orientalis, 영명: Striped bonito, tunny albacore, 일명: 하가쯔오) 등이 있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 관련 기사헤밍웨이의 그 바다와 고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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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류생태학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자원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뱀장어, 강하구 보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수산자원 회복 등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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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교향악단, 미국에서 통일 선율

우륵교향악단, 미국에서 통일 선율
 
제110회 정기연주회 및 통일 음악회 개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9/23 [06: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우륵교향악단 리준무 선생은 자비를 들여 조국통일과 민족의 하나됨을 위해 우륵교향악단을 설립 남과북. 해외를 오가며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재미동포가 남북 해외를 아우르며 통일을 추구해 오고 있는 우륵교향악단(단장. 지휘 리준무)이 미국 하늘에 자주통일의 선율을 울리게 된다.


우륵 교향악단은 오는 26일(현지시각) 저녁 8시에 뉴욕시내 Kaufman Music Center(129 W 67th St NYC)에서 110회 정기연주회겸  통일음악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주최측은 이번 음악회와 관련하여 "조국의 평화적통일과 우리의 자랑스런 2세들을 격려하고 찬란한 우리문화를 이 땅(미국)에 심는다는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되는 이 음악회는 문화행사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긍지를 높여주는 값진 행사로도 그 빛을 내게 될 것"이라고 공연 목적을 설명했다.

 

한편 악단장 리준무 선생은 전북 출신으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뉴욕에 정착 서울대 출신 음악인들과 교향악단을 만들어 활동해 오다 조국통일과 민족의 하나됨을 위해 우륵교향악단을 설립 남과북 해외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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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이 전율한 팔순 노인의 '사부곡'

 

[인터뷰]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로 시화공모전 최우수상 받은 이경례 할머니

15.09.22 20:57l최종 업데이트 15.09.22 20:57l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지난 5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한민국 문해의 달'을 선포했다. 전국 성인 문해교육 시화공모전(주제: <문해, 꿈을 실현하다>) 수상자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전국 문해 학습자 5658명이 출품한 작품 중 심사위원회 심사와 일반 국민의 온라인 투표를 거쳐 최우수상(교육부장관상) 9편이 선정됐다. 

군산에서는 이경례(85) 할머니가 다른 여덟 명과 함께 영예의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할머니는 정성스럽게 작성한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에서 일찍 세상을 뜬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어깨너머로 배워 겨우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았던 이 할머니는 2014년부터 문해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군산시 늘푸른학교(문해교육 학습장) 2년생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읽기, 쓰기가 어려운 사람의 비율이 6.4%(26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북 군산에도 2007년 기준으로 문자를 모르는 60대 이상 어른이 2000명을 웃돌았다. 당시 군산시는 교육 지도사 양성과정을 거친 35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비문해 ZERO 평생학습도시 조성사업'을 시행했다. 그동안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까막눈'의 서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할머니들, 처음엔 자녀들에게 한글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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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 활찍 웃는 이경례 할머니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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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이경례 할머니가 다니는 군산시 늘푸른학교 학습장(금강파크맨션 경로당)을 찾았다. 2~3평 크기 경로당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7, 8명이 선생님 말씀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뭔가 노트에 열심히 적는 할머니도 보인다. 배움의 열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박수로 반기면서도 쑥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떻게 하면 할머니들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문동신 군산시장의 어머니 사례가 떠올랐다.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도 그려졌다.

"이경례 할머니 수상 축하 꽃다발을 보내준 문 시장 어머니도 한글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으로 평생을 사셨다고 합니다. 문 시장은 그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아 처음 시장 취임 후 대상자를 조사해서 2008년부터 문해교육을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문 시장은 지금도 학습자들이 보내준 편지 700여 통을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제 어머니도 이름은커녕 1·2·3·4도 모르는 까막눈이었죠. 군산 째보선창에서 제법 크게 쌀장수를 했는데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 자씩 가르쳐 드렸더니 아들 키운 보람이 있다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아라비아 숫자 3을 기억 못 하는 어머니에게 선창가 갈매기를 생각하면 쉽게 떠오를 거라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사례를 전하자 할머니들은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는지 굳었던 표정이 이내 풀어진다. "나도 이름 쓰는 법을 손녀에게 처음 배웠다"는 소리도 들린다. 대답 대신 해맑은 웃음을 머금기도 하고,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이경례 할머니는 "처음에는 무척 부담스러웠는데 함께 사는 막내아들에게 영어책, 국어책, 천자문, 학용품 등을 선물 받고 큰 용기를 얻었다"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대순(77) 할머니는 "평생의 한이 공부를 못한 것이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에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나도 따지고 보면 첫 번째 선생님은 딸이었다"면서 고향 동무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문해교육 초기부터 '문해교육사'로 활동해왔다는 김기은(47) 담임은 "선대순 할머니는 지난 7월 제11회 성인 문해학습자(초등과정) 편지쓰기 대회에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장려상을 받았다"라고 귀띔한다. 그는 "초등과정을 마치고 요즘엔 한자를 교육하는데 할머니들이 무척 흥미로워하면서 진지한 자세로 수업에 임하신다"라며 학습장 분위기를 전했다. 

남편에게 '여보', '당신' 소리 못해보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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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를 낭송하는 이경례 할머니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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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 문해교육 시화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은 이경례 할머니의 편지
ⓒ 이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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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경례 할머니가 최우수상을 받은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전문이다. 이 할머니는 중간에 울먹이기도 했으나 감정을 추스르면서 또박또박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서방님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던 새색시 시절/ 세상을 떠난 당신께/ 편지 한 장 고이 적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세상살이 어찌 살아왔는지/ 적어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다가 여든다섯이 되었습니다.//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늦깎이 공부를 하니 어깨너머로 배운 글이 많이 서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갈한 편지 한 장 써 보내겠습니다."

한 여인이 시로 쓴 사부곡(思夫曲)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진 세상을 까막눈으로 살다가 팔순을 훌쩍 넘겨서야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가 꾹꾹 눌러쓴 글이어서 그런지 오랜 세월의 부침이 녹아 있다. 

"지금은 나이도 먹고 되바라져서 그렇지 옛날에는 남편에게 '여보', '당신' 소리 한번 못해보고 살았어. 그때는 왜 그렇게 수줍어했는지 몰라. 지금 살아 있어도 그럴랑가 모르지(웃음). 그동안 살아온 얘기들을 글로 다 쓰면 가슴이 미어질까 봐 썼다가 찢고, 또 썼다가 찢고 몇 번을 그랬어. 편지를 쓰던 날 밤 옛날 생각이 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사랑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니까."

김기은 담임은 "도종환 시인도 심사평에서 '중견 시인들도 할머니처럼 깊이 있고 실감 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라고 극찬했다"라며 "저도 할머니가 처음 읽을 때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다. 특히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전율이 느껴졌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공부는 요술 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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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 미성동 금강파크맨션에 있는 ‘군산시 늘푸른학교 학습장’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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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례 할머니는 1931년 군산시 개정동에서 태어났다. 여자가 신교육을 받으면 안 된다는 가풍 때문에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당시 이 할머니 집안 어른들은 '여자는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살아야 제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 아침을 먹으면 친구들은 책 보자기를 들고 학교에 갔으나 이 할머니는 농사를 거들고 산나물을 캐면서 성장했다. 의지가 됐던 어머니마저 열아홉에 돌아가셨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집안 어른들 권유로 얼굴도 모르는 네 살 위 총각과 연을 맺었다. 신방을 꾸미고 네댓 달 지났을까, 이번에는 남편 징집영장이 날아들었다. 결혼 6개월도 안 되어 생이별한 것. 전쟁터로 나간 남편은 1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 죽은 줄만 알았는데 2년여 만에 기적처럼 돌아왔다. 새로운 신혼살림이 시작됐다. 그러나 남편은 마흔을 넘기면서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떠났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4남매를 키우면서 시어머니까지 모시려면 미군비행장 전투기 청소부, 그릇장수, 채소행상 등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했다. 하지만 살림은 항상 쪼들렸다. 그래도 자식들은 고등학교에 보냈다. 부족한 생활비를 쥐어짜 막내는 대학에도 보냈다. 모진 세월을 참고 견디며 남은 앙금은 응어리로 가슴에 남았다.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었지만 아는 글자라곤 어깨너머로 익힌 이름 석 자뿐이었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은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도 삶의 고통도 슬픈 잔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이 할머니가 공짜로 글을 가르쳐준다는 말을 듣고 동사무소로 달려간 게 2014년 봄이었다. 곧장 늘푸른학교에 등록하고 한글을 한자씩 깨우쳐 오늘의 영광을 안았다. 글쓰기 연습을 계속하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는 이 할머니. 그는 그동안의 느낌과 최우수상 수상 소감을 한마디로 전했다.

"글을 배워서 옛날에 죽은 남편과 교통(소통- 기자말)도 하고, 영어 A·B·C도 알고, 큰 상도 받았으니 얼마나 좋소, 공부가 요술 방망이여!"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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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형 정경유착’ 그 내막을 들여다보니

 
 
 
박정희, 신격호, 기시 노부스케 그리고 만주인맥
 
육근성 | 2015-09-22 14:07: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경남 울주군 출신 청년 신격호. 그는 비누, 포마드, 껌을 만들어 번 돈으로 1948년 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껌 사업이 대박이 나자, 1959년 롯데상사를 설립해 초콜릿 사업에도 뛰어든다.


박정희가 도와준 호텔사업으로 국내 기반 마련

한일 국교정상화로 국내 진출의 기회를 잡은 신격호는 롯제제과를 설립하고 사업영역을 확장해 갔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대기업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1970년 11월 박정희는 신격호를 청와대로 불러 호텔을 건설해 보라고 주문했다. 박정희의 한마디에 국무총리와 서울시장이 달라붙어 ‘신격호의 호텔사업’을 도왔다.

박정희 정부는 반도호텔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고, 신격호는 이 호텔을 42억 원에 사들였다. 이어 반도호텔 옆 국립중앙도서관, 동국제강, 아서원 부지 등 7천여 평에 달하는 ‘금싸라기 땅’을 손에 넣었다. 다양한 특혜가 주어졌다. 취득세, 재산세 등 세금도 면제 받았다. 외자도입특례법 덕분이었다.

박정희가 신격호를 배려한 이유가 뭘까? 혹자는 롯데의 자본을 국내에 유입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박정희와 신격호 두 사람의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본 우익의 거물과 만주 관동군 인맥이 이들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매개체였다.


박정희, 신격호, 기시 노부스케 그리고 만주인맥

박정희와 신격호,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공통분모’는 아베의 외조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총리였다. 그는 일본 우익의 거물이자 만주인맥의 좌장이었다. 만주국 산업부차관을 지냈던 기시의 눈에 박정희는 어떻게 비쳤을까? ‘만주인맥’으로 분류되는 새까만 후배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박정희가 어떻게 비쳐졌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1962년, 오노 반보쿠 자민당 부총재가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 방문길에 오른다.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아들(박정희를 가리킴)의 화려한 무대를 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아들 같은 후배’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오노 반보쿠는 기시 노부스케의 측근이었다.

신격호는 기시 노부스케와 어떻게 가까워졌을까? 신격호의 일본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결혼 전 다케모리 하쓰코)의 외심촌이 외무대신을 지낸 시게미쓰 마모루라는 설이 파다하다. 사실이라면 일본인 부인과 처 외삼촌이 교량 역할을 했다고 단정할 수 있다. 왜냐면 기시 노부스케가 외무대신으로 임명됐을 때, 전임 대신이 바로 시게미쓰 마모루였기 때문이다. 당시 신격호의 나이는 30대 중반. 그들로부터 사업적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신격호의 일본식 이름도 처 외삼촌과 같은 ‘시게미쓰’다. 우연의 일치일까?

“만주국은 나의 작품”이라고 말했던 기시 노부스케. 그가 만주국 관리였을 때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여기에서 착안됐다는 주장도 있다. 5.16쿠데타 직후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박정희가 만난 인물들은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기시의 인맥’에 속한 이들이었다. 박정희-신격호 관계는 일본기업이었던 롯데가 국내에 진출해 대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전두환이 준 잠실 개발권으로 재벌 반열에

전두환 정권도 일제의 만주인맥과 가까웠다. 통로 역할을 한 이는 관동군 참모 출신 세지마 류조였다. 박정희의 자문역할을 했던 세지마는 정권이 바뀌자 전두환-노태우와 손을 잡아 신군부의 핵심들과 친분을 쌓았다. 한국 내 이권개입뿐 아니라, 국내정치에 대해 조언까지 했다. 올림픽과 엑스포 유치, 3당 합당도 그의 아이디어였다는 설이 있다. 세지마 역시 ‘기시 노부스케 인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롯데는 전두환 정권과 친하게 지냈다. 정치자금과 찬조금도 사세에 비해 많이 냈다. 신군부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대비해 잠실 개발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 롯데가 뛰어들었다. 토지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한양을 제친 것이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여러 재벌·대기업이 (사업 참여를) 희망했겠지만 결국 개발권을 따낸 것은 롯데그룹이었다… 모든 관련기관이 발 벗고 지원하고, 모든 문서가 초고속으로 처리됐다.”

이렇게 해서 들어 선 게 롯데월드다. 한 달 만에 영향평가, 측량, 지하수 조사 등을 마쳤고, 시청·구청·소방서·관세청·건설부·재무부 등 관계기관이 총출동해 지원했다. ‘롯데 신격호’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배려는 이토록 지극했다.


DJ-노무현 “제2롯데월드 안 돼”

그런데 잘 나가던 신격호가 악재를 만난다. 어느덧 고희를 넘긴 신격호는 자신의 숙원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 롯데월드 옆 8만7182.80㎡ 부지에 112층짜리 제2롯데월드를 짓는 것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이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군 시설인 성남공항과 가까워 비행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는 최종적으로 ‘불허’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MB가 뒤집기를 시도했다.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에 “제2롯데월드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제2롯데월드 신축에 반대한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하고, 사업 허가를 내주기 위해 성남공항 활주로를 3도 틀었다. 민간기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군 공항 활주로에 손을 대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는 2009년 초에 나왔다. 신격호의 숙원사업이 해결된 것이다. 왜 MB는 공군참모총장까지 경질하면서 롯데의 손을 들어 줬을까? 당시 롯데호텔 사장이었던 장경작이라는 인물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MB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롯데호텔 31층 로열스위트를 접견실 겸 집무실로 활용했다. 이 방은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캉드쉬 IMF총재,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와 사우디 왕세자 등이 묵었던 방이다. MB는 당선 된 뒤에도 이방을 즐겨 애용했다. 여기에서 조각 작업과 정부개편안 마무리, 2008년 총선 공천작업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격호는 한국에 들어올 때면 이 호텔 37층에 묵었다.


MB 절친동기 발탁, 제2롯데월드 허가권 손에 넣어

그런데 이 호텔의 사장인 장경작은 MB와 고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다. 여기에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 단행된 롯데그룹 인사를 투영해보면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신격호는 호텔사업부와 면세사업부, 월드사업부를 총괄하는 총괄사장에 장경작을 임명했다. 없었던 ‘총괄사장’ 자리까지 만들어 발탁한 이유가 뭘까? 쉽게 짐작이 간다.

MB의 대통령 취임과 장영작의 총괄사장 취임은 거의 동시에 이뤄진다. 그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MB의 입에서 추상같은 지시가 떨어졌다. ‘제2롯데월드 신축 불허방침 재검토하라’고 못청을 높였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MB 정권 내내 롯데그룹는 승승장구했다. 10대기업 매출평균 증가율(13%)보다 훨씬 높은 88.3%의 성장을 보이며 42조(2008년)이던 매출이 81조(2012년)으로 껑충 뛰었다. MB정권과 롯데의 밀월관계는 서울뿐 아니라 부산 등 지방에서도 많은 특혜논란을 빚고 있다. 이 부분은 다음 글(9월24일 발행 예정)을 통해 자세히 기술하도록 하겠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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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반대 목소리 교수 사회에 확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9/22 08:06
  • 수정일
    2015/09/22 08:0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법학 연구자들도 ‘史 교과서’ 국정화 시도 철회 촉구국정화 반대 목소리 교수 사회에 확산…연세대 교수 132명도 반대 성명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법학연구자 106명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에 반대하는 법학 연구자 선언문’을 발표하고 “박근혜 정부는 위헌적인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즉각 철회하라”고 강력 요청했다.

21일 법학계 교수와 연구자 등 법학연구자들은 서울 종로구 흥사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에는 106명의 연구자들이 동참 서명으로 국정화 반대 뜻을 표명했다.

연구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지난 1992년 중학교 국어교과서의 국정교과서 제도를 합헌으로 결정할 당시의 판시사항을 근거로 들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헌법이 보장한 교육권과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교과서 국정제는 기본권을 침해한다. 학생의 관점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에 대한 침해이고, 교사의 관점에서는 교육전문가로서 자유로이 교재를 선택하여 교육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며 “또한 국정제는 국가가 지정한 교과서만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므로 실질적으로 국정제 교과서는 ‘검열의 결과물’로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 <사진제공 = 뉴시스>

또한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교육과 교과서제도는 국가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며 “이후 독재 정권은 교육의 국가주의적 성격을 강화하여 교과서를 편향적으로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정사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가의 ‘무오류 신화’에 빠져있다”며 “사실과 관점은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왜곡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역사적 관점을 하나로 통일하려 하는 것은 명백히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는 현직 역사 교사들을 비롯해 대학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주 고려대·성균관대 등에 이어 연세대학교 교수 132명도 이날 “민주적 가치 함양과 창의적 교육을 거스르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대 교수들은 성명서에서 “국정 교과서는 권력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유신체제가 강요한 국정 교과서의 내용은 이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좁은 틀 속에서 해석한 하나의 생각이 강요된 교실에서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갇힌 사고로 이루어지는 일방적 교육은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제약한다”며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우리들이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하여 뜻을 모아 반대 목소리를 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에도 정부와 집권세력이 국정화를 단행한다면 이후 우리 사회가 짊어질 부담과 폐해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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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균 추방 이태원로 가요제

"우리 집에 왜 왔니?"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탄저균 추방 이태원로 가요제
 
이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5/09/20 [21:0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사 진]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장 전경. 용산 전쟁 기념관 앞.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9월 19일 탄저균 실험실이 있는 용산 미군기지 일대와 용산 전쟁 기념관 앞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제목의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가 전국의 청년 학생들 주최로 열렸다.

 

“우리 집에 왜 왔니?”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는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오후 2시 30분에 개막식을 하고 <탄저균 오염 기왓장 격파>, <탄저균 그리고 미군 범죄에 대한 즉석 문답>, <탄저균 오염 두더지 잡기>, <평화의 떡 나누기> 등등 갖가지 부대행사가 진행되었으며 많은 시민과 참가자들의 열띤 호응과 참여가 있었다.

 

▲<<9.19 탄저균 추방의 날 > 풍물패의 공연과 함께 많은 시민이 참가하였다.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부대행사 중에는 주한미군 기지에서 발견된 각종 오염물(다이옥신, 포름알데히드, 발암물질, 기름 등)을 전시하였으며 그 오염물로 떡메를 쳐서 인절미를 만들고 주한미군의 제사상에 올려 제사 지내는 공연이 있었다.

 

▲ <<9.19 탄저균 추방의 날>> 주한미군 기지의 오염물질로 떡메를 치는 행사장, 이 떡으로 주한미군 제사를 지내는 장면.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참가자들은 부대행사를 마치고 준비해온 의상과 여러 가지 도구를 착용하고 용산 미군기지를 지나 녹사평역까지 거리행진을 하였으며 거리를 지나는 주한미군에게 탄저균 추방을 알렸다.

 

▲ <<9.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를 마치고 용산 주한미군 기지로 거리행진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 용산 전쟁 기념관 앞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된 <<9.19 탄저균 추방의 날! 이태원로 가요제>>는 전국에서 참가한 출연진과 용산 시민 가족들, 좌석을 가득 메운 관람자들로 시종 뜨거운 열기와 재치 넘치는 공연이 이어졌다.

“우리 집에 왜 왔니?” <<9.19 탄저균 추방의 날>> 참가자들은 초대손님 노래패 “우리나라”의 공연에 큰 호응으로 답하고 주한미군의 탄저균을 추방한다는 각오와 함께 대동놀이를 하고 행사를 마쳤다.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 <이태원로 가요제> 해학이 넘치는 민속공연 양씨의 마지막 장면. 용산 전쟁 기념관 앞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 <이태원로 가요제>  자갈치 부산아지매의 짠짜라 공연 장면.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이태원로 가요제> 용산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경연하고 있다.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탄저균 잡아내는 여성의 모습이 대단하다..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평화의 쪽지를 적고 있는 초등학생의 모습.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탄저균 두더지 잡는 모습. 용산 전쟁 기념관 앞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행사를 마치고 용산 주한미군 기지로 거리행진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 용산 전쟁 기념관 앞 2015. 9. 19.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 ▲ <<9. 19 탄저균 추방의 날 > 행사를 마치고 용산 주한미군 기지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용산 주한미군 기지 앞 2015. 9. 19.     ©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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