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잊었던 몇가지

#1.

3월이 되고, 이래저래 사람들의 소식이 전해져온다.

간만에 오는 연락에 여차저차해서 다시 싸이에 접속한 지 몇일간.

잊었던 사람들과 잊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소식이 원하지않게 들려오기도 한다.

어쩌다 생각나는 것을 억지로 잊으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더 생각난다는 것쯤은 이미 예전에 알게 되었기에,

생각나면 생각나는데로 놔두면서 잊어가는 중이었는데.

 

한 동안 접어뒀던 사람의 모습이 계속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불편하다, 불편하다, 불편하다,,,

 

 

 

 

#2.

연쇄법

 

언제나 뜨거운 열기를 혼자 품기에는 너무 더워서

손 가득 움켜쥐던 뜨거움을

네 차가운 손 움켜잡아 따뜻함으로 맞바꾸던

그런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겨우 새 차가워진 내 손이

더 이상 열기를 나눠줄 수 없기에

혼자 움켜진 채 펼 줄 모르면서도

한 없이 서리는 냉기에 더욱 굳게 손을 닫았다.

 

손을 펴면 널 잡고 싶고,

널 잡으려면 봐야하고,

널 보려면 내가 다가서야 하고,

내가 다가서려면 마음을 열어야 하고ㅡ

마음을 열면, 보고 싶어지고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나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까.

 

난 다시 아무것이라고 하기 위해서 생각을 잠그고,

마음을 닫고, 한발자국 물러서고

눈도 감고, 다시 손을 꼭 쥐고 펼 줄 모르고.

 

그래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두 손 꼭 쥔채 서 있기만 하는 참 바보같은 이야기.

 

 

 

#3.

옛날 생각 하나 -

 독한년이란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철 없는 것이란 소리를 듣고 난 다음 단계 정도였던 것 같다. 매년 명절때마다 친척들이 모이면, 사람 하나 잘난 놈이나 나쁜 놈으로 둔갑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렇게 화제거리에 잘 오르는 인간 중 하나가 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으로 곱게 곱게 자라던 내가 갑자기 공부는 때려치고 매일 데모질만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 무렵, 우리 어머니는 눈물도 많아졌고, 아픈 곳도 많아졌다. 그리고 친척들의 잦은 잔소리도 공공연한 정당성을 띠게 되었다.

  그 잔소리 중 가장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건,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청주에서 올라온 고모할머니가 진득히 내 손을 붙잡고 울면서 했던 말. 철 좀 들으라는 내용의 말이었는데, 아직까지 잊지 못한 말은 언제까지 네 어머니 피를 빨아먹으면서 살꺼냐는 말이었다. 그건 부정할 수 도 없을 만큼 정확한 말이었기 때문에, 당시 난 정말 아무말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나서 철이 없는 단계를 넘어서는 말이 독한년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잠깐 집을 비운사이 어머니가 병원에 신세를 지시는 바람에, 말많은 집안에서는 또 한번 내 이야기가 돌았다. 데모에 정신나간 년, 지 엄마가 죽어도 눈 깜짝 안할 독한 년이라나... 뭐...덕분에 평생 먹을만한 나쁜년 시리즈의 욕을 바가지로 잡수셨으니, 나도 장수는 못해도 제 명에는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 이런 종류의 말은 꽤 여러번 들어서 이젠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편이다. 내가 어렸을 적 일을 기억할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기도 하니까. 한번은 아버지를 따라 회사수련회에 놀러갔다가,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장을 보러 간 사이에, 내가 발을 다치게 된 적이 있었다.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을 정도로, 줄줄줄 흐르는 피를 어찌할 바를 몰라서, 옆에 있던 언니들이 더 당황해했다. 그런데 그 때 기억에 온다간다 말 없이 나를 언니들 틈에 놓고는 사라져버린 아버지가 꽤 미웠던 모양이다. 당시 아버지 친구분들이 아버지께 전하던 말이, 제 애비가 어디갔냐고 한 마디 묻고는 울지도 않고 발을 움켜쥐고 앉아서는 줄줄 흐르는 피를 계속 쳐다만 보고 있는게 어찌나 섬뜩했는지 몰랐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한 바가지는 안되더라도 꽤 많은 피를 흘렸는데, 내 발과 손에 모인 피가 응고될 때까지 아버지가 오지 않아 꽤 한참을 발을 움켜쥐고 앉아있었던 건 같다. 그 때부터 아버지 친구분들께는 내가 독한년이라고 불렸다니 나름의 역사가 있긴 한 말인 듯 하다.

   몇일 전에 감기도 잘 걸리고 몸도 많이 안 좋아서 비틀거리면서도 바득바득 공부하겠다고 나가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나보고 또 독한 년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들은 말이라 웃고는 도로 들어와서 그냥 자리를 펴고 누워 며칠을 앓았다. 독한 년이면 몸도 독해져야 하는데, 이 큰 허우대에 허약이란 말은 붙이기가 심히 민망스러운데 말이다. 봄이 되면 또 목이 아프고, 5월 쯤 되면 한동안 목소리가 안 나오겠지? 하아... 내 몸에 주문을 외워야겠다. 독해져라, 독해져라, 짠!

 

 

#4.

간만에 만난 친구. 그래서 간만에 웃기도 하고 정말 기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너라도 좀 재미있게 살아야, 나도 사는 낙이 좀 생길 것 같다.

맨날 뭘해야 좋겠냐고, 뭘 해야 할지 앞길이 안 보인다고 투정부리던 녀석이

하나 둘 씩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계획을 세우고, 그걸 이뤄내고,

그리고 아직은 억지 웃음이지만, 그래도 내 앞에서 웃어간다.

 

아...제발 내 주변에 좋은 일들만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모습보면서 나도 덩달아 웃고 좀 살 수 있게...

근데, 정말 네 말대로 내가 즐겁지 않아서 죄다 그런 사람들만 보이는 걸까?

 

너도 결혼 안하고, 나도 할 생각 없고. 그럼 나중에 같이 살아도 되겠다.

에이...그러다 너에게 좋은 사람 생기면 우선은 꼼꼼하게 내가 따져주고,

됐다 싶으면 평생 행복해서 웃다가 죽기를 빌어주마. ㅋㅋ

그 전까지는 내가 언제든 네 편이 되어줄께.

힘내. 지금 하고 있는 네 생각들. 부모님이 반대하실거야 당연하지만

난 네가 정말 대견스럽기까지 하니까 언젠간 부모님도 알아주실꺼야.

 

아! 그리고 아웃백도 데려가줄께..ㅠ.ㅠ

 

 

어느 순간 비슷해져버린 우리.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가슴 속 뭉친 실타래 하나를

너한테 풀어놓았더랬지.

생각해보니, 그건 내 옛날 남자친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거다.

너 빼고는 아무한테도.

넌...이모님께 다 말했을 걸 알고 있지만..

 

아...이모님 생일이었는데, 이 녀석

이모 선물 잘 샀나 모르겠군. 헉...이모님 생일을 내가 씹어버렸군.

어서 문자를 날려야겠다. 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