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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2호>성매매 여성 Vs"위안부°할머니"

2004년 10월에 발간된 레드타임즈 3호에 실린글입니다.
(°표시는 각주가 있음을 말 합니다.)

  얼마 전 과거사 청산을 주제로 했던 tv 100분 토론이 한동안 꽤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당시 패널로 참가했던 이모 교수의 발언이 문제였다. 그는 시종일관, 진정한 역사 청산은 국가 주도가 아닌 전 사회적인 자기 성찰과 고백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찬반구도로 논의 틀이 잡혀 있던 상황에서 그것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우익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 되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나온 "정신대 문제" 관련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군 위안부󰡑 강제동원과 이용에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다수 참여했고, 이에 대한 자기성찰적 고백이 필요하다는 것이 발언의 요지였다. 이것은 일견 민족간의 문제로만 치부되는 문제를,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내면화시키고 있는 이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시켜 봐야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발전될 수 있는 시각이다. 물론 내가 여기서 그 교수의 편을 들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과거사 청산에 대해 입장을 전개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그 발언 이후에 벌어진 논쟁 내용과 뒤이은 네티즌들의 비난에 대해서다. 그는 단지 머릿속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나약한 관념론자, 엘리트주의 지식인에 불과할 뿐이지만 발언 내용을 왜곡하진 말아야겠지..    

  그 발언 이후 논의 내용은 󰡐그렇다면, 일본이 잘못이 없다는 것이냐󰡑,󰡐위안부를 상업적 공창과 동일하게 본다는 것이냐󰡑로 흘러갔다. 네티즌들도 흥분했다. 󰡐창녀가 되어버린 위안부 할머니들, 토론회를 보면서 맘이 너무 아팠다.' , ‘우리나라도 베트남전에 한 짓이 있긴 하지만... 자기 아들이 남의 딸 성폭행 했으니 우리 딸을 성폭행한 놈도 용서해야 한다는 거냐󰡑 , 󰡐어떻게 자발적으로 몸 파는 여자랑 정신대를 비유하는가󰡑 등이 주된 비난의 내용이었다. 일단 그 발언의 정당성 여부를 차치하고서, 이러한 반응과 비난 여론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진절머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대 할머니󰡑를 바라보는 시각과 성매매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 일견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시각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둘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종군 위안부󰡑로 인한 대다수의 분노는 이것이다. 󰡐일제 시대에 우리(남성화된 민족 혹은 국가)의 힘이 약해서 우리 여자를 남에게 빼앗겼다. 우리는 그들의 순결을 지켜주지 못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럽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대다수의 분노는 이것이다. 󰡐순결을 돈 때문에 스스로 내팽개친 더러운 년(이들이 비난받는 건 한편으로 일부종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시각은 모두 여성의 몸을 남성의 전유물쯤으로 사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상반된 태도를 보이며 이리도 경기를 일으키는 것인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정신대는 강제동원된 것이지만 성매매는 자발적인 것이라는 인식에 있다. 그리하여 정신대 할머니는 민족의 아픔이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구원받지 못할 족속이 된다. 인신매매가 아니라 제 발로 걸어갔으면 당연히 자발적인 것인가? 우리는 성매매 여성을 비난하기 전에 왜 그들이 수많은(!) 직업을 놔두고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가를 물어야 한다. 나는 성매매 역시 사회구조적인 강제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그나마도 남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에서,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조만간 짤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일을 해야한다. 열악한 사회적 노동조건 속에서 못 배우고 능력 없는 여성은 어떻게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혹여 어린 나이에 가출이라도 한다면? 또는 가정폭력을 못 이겨 탈출이라도 한다면? 직업소개소의 소개는 80% 이상 성매매 업소와 연결된다. 어딜 가나 성매매의 위협(혹은 유혹)은 도사리고 있다. 하다못해 주유소에서 일을 하더라도. 물론 수요가 있으니 성매매 시장이 번창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수요는 왜 생기는가.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절대 성욕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NO!!!!!!(이건 남성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수요는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다. 남성들의 성 구매는 부끄러운 것이 아닐 수 있게 사회는 교육한다.

성매매 여성들과 󰡐위안부 할머니󰡑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동일한 폭력성의 뿌리. 제대로 냉정하게 보자. 󰡐위안부 할머니󰡑를 보며 아픈 가슴, 성매매 여성들을 보면서도 함께 아파야 한다. 그리고 아픈 것에 그치지 말고 이 모순을 타파해 나가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주>
° 최근까지 󰡐종군 위안부󰡑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왔고 아직까지도 대다수 사람들이 위안부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전시에 군을 따라다니며 그들을 위로(?)하고 사기를 높이는 데 이용된 여성들이라는 뜻으로, 동원의 강제성을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말이다. 공식적으로 󰡐일본군 성노예󰡑라는 용어를 쓰는 게 맞다. 인용을 위해 부득이하게 이 용어를 쓸 때는 󰡐 󰡑 로 표시하도록 하겠다.    
    
°°일상에 만연해있는 성폭력 문제를 대할 때와 󰡐정신대 문제󰡑를 대할 때 분노의 정도가 다른 분이라면 99%, 이러한 감정일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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