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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세계화에 대한 자유포럼의 입장을 비판한다!

::대자보 REVIEW::

 

세계화에 대한 자유포럼의 입장을 비판한다!

 

 

/우, 진보/보수 개념부터 정리하자고 하는 자유포럼의 주장에 대해 문제의식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자유포럼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고민의 중심은 ‘사회의 질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진정 좌/우, 진보/보수의 진영 역시 정립될 것이다. 하지만 자유포럼은 한 가지 놓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한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의 역사는 어떠했는가? 잉여생산물이 생긴 이래로 누군가는 더 많은 부를 위해 착취하고 누군가는 착취당하는 역사의 반복이 아니었는가? 역사에 있어 착취와 피착취가 존재하는 계급사회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극복되었는가? 착취와 피착취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고통 없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는가? 우리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 역시 이 지긋지긋한 계급사회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아가야 할 우리의 미래가 있기에 자본주의 체제는 계급사회의 종착역이라고 판단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뿐이기에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끊임없는 고용불안과 가혹한 노동강도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노동계급과 착취하는 자본가계급이 존재하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결코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지난 역사의 계급투쟁에서 직접 목도해 왔던 것이다.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아닌 다수의 노동계급이 계급 그 자체를 폐기시키며 모든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해방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유포럼에서 말하는 사회의 질적인 변화가 아닌가? 바로 이것이 사회의 질적인 변화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 질적인 변화라는 것인가?

 

 

유포럼에서는 ‘세계화’가 변화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세계화 그 자체는 우리 역시 사회 발전에 있어 중요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세계화는 노동해방 사회로 감에 있어 보다 높은 물질적 토대로 훌륭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화 자체를 현 자본주의 체제라는 계급사회에서 어느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가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론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이는 ‘진보’를 가장한 채 자본의 이해에 굴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계화는 분명 사회발전에 있어 바람직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노동계급의 이해에 따라 이루어질 때만 그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유포럼에서도 이와 같은 고민 속에서 세계화를 얘기한다면 우리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의 세련된 언어 수사학에 불과하다면, 노동계급의 이해에서 벗어나 ‘진보’를 말하고 있다면 우리는 단호히 비판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비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에 의해서 체제를 어떻게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실천으로 투쟁으로 논쟁해 나갈 것이다.


유포럼에서 잘 지적하고 있듯이 현재 남한에서의 좌/우, 진보/보수라는 개념은 너무나 모호하며 엉켜있다. 노동해방 사회로 가는 길의 명확한 대안인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말로는 과격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고 있다. 우리는 보다 명확하게 노동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옹호하며 이를 학내에서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선동하고자 한다. 자유포럼에서 말하고 있듯, 미래지향적인 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고민하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심도 깊은 논의를 해 나갔으면 한다. 앞으로 더욱 많은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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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결코 '예쁘지'않은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정리해고반대투쟁

 

::여성주의 칼럼::

결코‘예쁘지' 않은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 


여승무원?


 ‘여승무원’이라는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그림이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젊고 날씬하고 예쁜데다가 상냥한’ 여자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한 달에 300시간을 일하면서 밤새우기를 밥 먹듯 하는 비정규직 여승무원 노동자들이 근무 2년 만에 집단적으로 해고를 당했을 때, 이런 부당하지만 보편적인 의식은 투쟁해야할 대상이었다.  

 


해고통지, 투쟁의 시작.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여승무원 근무 2년째. 2003년 투쟁에서 여승무원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철도청과의 약속이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철도청에서는 이 약속을 내팽기고 ‘3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 함부로 해고하지 못한다.’라는 법조항을 피해가기 위해서 3년이 되기 전에 31명을 집단해고 한 것이다. 이에 노동조합원도 아니었던 여승무원들이 철도노조와 함께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결국 힘찬 투쟁을 통해 전원 고용승계를 쟁취하였다. 비록 정규직화를 쟁취한 것은 아니지만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절반의 승리를 쟁취한 이 투쟁이 비정규직여성노동자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해고에 숨어있는 성차별적 의식


  철도청에 소속된 같은 승무원인데도 남자는 정규직이고 여자는 비정규직이다. 성차별적 의식에 근거하여 노동자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여기서 드러난 성차별적 의식이란 이런 것이다. 여자는 젊어서는 직장을 갖고 일하다가도 결혼을 하면 애 낳고 기르고 해야 되는데 어떻게 직장을 다니느냐는 것이다. 출산휴가 등이 충분하기는커녕 법적으로 보장된 것도 지켜지지 않고, 휴가를 요구하면 오히려 해고당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하면 사회적인 강제에 의해 직장생활에 종을 치게 된다. 게다가 여‘승무원’이라는 직업이기에 계속해서 ‘젊고 날씬하고 예쁜’ 여성으로 교체해야 마땅하다는 생각 또한 이번 문제에서 드러난 성차별적 의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위협은 남성노동자에 비해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손에 손잡고,

 철도노조의 남성노동자들이라고 해서 이러한 성차별적 의식에서 벗어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심지어 철도노조의 간부도 ‘예쁘지, 몸매 되지, 해고될 이유가 하나 없습니다.’라는 발언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문제제기와 의견교환을 통해서 남성노동자들이 위와 같은 성차별적 의식을 떨쳐버리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함께하는 투쟁 속에서 남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집에서 애나 봐야 할 여자’가 아닌 자본주의에 맞서 함께 투쟁하는 ‘동지’로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해고당한 여성노동자들이 정규직화 투쟁의 중심에 서야하고 남성노동자들은 이에 더욱 강하게 연대해야 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해고자들만의 문제, 해고자들을 동정하며 연대해야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투쟁은 철도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비정규직문제를 내건 중요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계속되는 철도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와 이에 맞서는 철도노조 투쟁의 패배로 인해, 앞으로 인력충원에 필요한 5000여명의 인력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철도노조가 앞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함께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승무원 정규직화 투쟁을 통해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알려나가고, 앞으로 있을 철도노조의 비정규직 투쟁을 만들어갈 불씨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본가의 벽을 넘어서!


  24시간 맞교대로 1년에 수십 명씩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는 철도현장. 근무 2년 만에 단체협상에서 약속한 것 마저 폐기하고 일방적으로 해고통지를 날리는 철도현장…… 사람 잡는 철도현장을 바꿔보고자 전개한 철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10억 손배가압류’ 판결을 내린 오늘, 우리는 자본가와의 투쟁 앞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남성노동자-여성노동자가 동등한 주체로서 단결해야함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한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 아침 10시 반에 집회 및 선전전을 진행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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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004년 마지막 열린토론회 이야기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난 7일 저녁 7시 서관316B에서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가?” 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번 토론회는 04년 한해를 총결산하는 의미로 마련된 것으로, 대통령탄핵과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 등 올해 큰 화제였던 ‘민주주의’를 주제로 삼았다.


제문은 ‘자본주의 시대에 진짜 민주주의는 존재하는가?’와 ‘민주주의 투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렇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 발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과거에 비하면 정치적 활동을 마음껏 벌일 수 있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계급 사회 내에서 민주주의란 필연적으로 지배계급, 부르주아지의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소수인 자본가들이 다수인 노동자들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들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발제문에서는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리 코뮌 등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선 노동자권력이 필수적이라는 것과 그것을 통해 진정한 인민의 해방과 평등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을 결코 방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두 번째 발제에서 지적하고 있었다. 이 글은 탄핵국면이 의미하는 현재의 남한의 상황을 간단히 짚고 나서, 이 과정에서 있었던 민주주의 투쟁에 대한 노동 계급의 원칙적 입장을 말하였다. 19세기 중반 프로이센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는 노동계급이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독자적인 당파성을 갖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원칙을 배제한 채 현재 민주적 권리들을 쟁취하고자 하는 투쟁 흐름(비정규직 권리 보장 입법 쟁취)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투쟁 회피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입장을 통해서 운동의 퇴조기 속에서 당면한 계급투쟁을 지지/엄호할 수 있도록 연대투쟁을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단한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위의 발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오고 갔다. 심도 깊게 논의되었던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당면한 혁명의 과제가 부르주아 혁명인지, 프롤레타리아 혁명인지에 대해서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자, 발제자는 현재의 상황이 사회주의로 향해 가는 물적 토대, 생산관계, 사회관계라고 대답을 했으며, 이는 반드시 노동자계급 정치권력 쟁취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에, 탄핵 국면에 몇몇 단체에서 제기하였던 ‘국민소환, 국민발의제’ 에 관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국민소환, 국민 발의제를 주장하였던 배경을 살펴보며,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립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계급’ 문제에서부터 논의가 진행되었다. 질문자가 ‘계급투쟁은 계급 실존에 우선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발제자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계급이 실존 한다’고 대응하였다.  노동자 계급이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계급의식을 성장시키는 것은 맞으나, 이것만으로는 계급투쟁이 계급 실존에 우선한다고 말하는 것은 관념적인 얘기라는 것. 지금의 체제는 자신의 노동력 밖에 가지지 못한 노동자 계급과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그들을 고용하는 자본가 계급으로 분명히 나누어져 있다는 것. 잉여가치가 만들어지면서 불평등하게 계급이 분화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 즉, 계급이 체제의 물적 토대를 반영하며, 그 실존에 입각해서 계급투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또한, 지금이 자본주의는 금융세계화를 통해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성질이 다르므로 위와 같이 다르게 봐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서, 발제자는 자본주의 자체가 갖고 있는 모순은 결국 동일하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지적하며 대답하였다.


은 논쟁이 오가면서, 격렬하게 의견 대립을 보이기도 했으나,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이러한 유의미한 토론을 풍부하게 벌여나갈 것을 다짐하며 04년 마지막 열린토론회를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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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여러분께 송년인사드립니다.

 

새해에도 노동해방의 희망을 열어가고자 하는 레드타임즈.

여러분께 송년인사드립니다.

 

즘 날씨가 정말 춥네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04년도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저희 노동해방학생연대에서 격주간 발간한 Red Times도 벌써 6호를 맞았습니다. 2주에 한 번씩 진행하고 있는 열린 토론회 이야기와 투쟁 소식들, 여성주의 칼럼으로 신문을 냈었습니다. 많은 학우분들에게는 21세기에 노동해방을 외치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하는 저희의 이야기들이 생뚱맞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변함 없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을 위해 이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들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해에도 많은 노동자들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고대에서 파업을 진행하였던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에서부터 건설 노동자들의 투쟁, 택시 노동자들의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린 우리당 점거투쟁....그리고 민주노총 총파업. 사실 1년 동안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어느 싸움 하나 제대로 이기지 못했습니다. 귀족 노동자니 집단 이기주의니 이야기하면서도 왜 노동자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언론과, 물리적으로 탄압하고 짓밟는 공권력 앞에서 좌절했습니다. 협조와 타협이라는 이름하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질곡 되는 것을 보고 분노를 삼켰습니다. 그리고 자본의 거대한 힘을 실감하고 물러서야만 했습니다. 비록 싸움은 패배로 끝이 났지만, 우리에게 많은 의미와 교훈들을 남겼습니다. 얼마 전 1년간의 농성투쟁을 정리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보았듯이, 당장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더 긴 싸움을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긴 싸움에 지치기도 했지만 그만큼 노동허가제 쟁취가 너무나도 정당한 요구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와 같이 자본에 맞선 노동자들의 싸움들은 계속되고 있고, 내년에도...그리고 자본가들의 착취가 끝나는 그 날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런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열심히 결합하고, 열린 토론회와 Red Times를 통해 학우 여러분들께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것입니다.  


난 한 학기동안 열린 토론회와 Red Times에서는 때로는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기도 했고 때문에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들이 정치적 올바름과 실천 방향에 있어 충분히 유의미했다고 생각합니다. Red Times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학우 여러분의 관심과 지지, 또 건강한 비판들 모두모두 환영할 것입니다. 한 학기 동안 부족했던 점들을 방학 동안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해서, 다음 학기에는 정말로 새로운(!) 내용과 발전된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시라! 그럼 다음 Red Times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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