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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Decision

  • 분류
    단상
  • 등록일
    2008/03/29 18:13
  • 수정일
    2008/03/29 18:13
  • 글쓴이
    서른즈음에
  • 응답 RSS
 
1.
어려운 형편 땜에 학원 한번 다니지 못해 영어는 정말 자신 없다던 조카딸(다섯째의 딸)이, 사립대학의 경찰학과와 국립대학의 식품학과에 합격했다. 어느 과를 선택해야 되는지…
 
조카는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고 더구나 50% 장학금도 준다니까 경찰학과를 가고 싶어 했다. 장학금을 받으면 입학금과 등록금도 식품학과보다는 싸고…
그렇다면 선택할 고민의 여지없이 경찰학과가 아닐까…
 
그런데 넷째가 참견한다.
근데 그 대학 경찰학과는 3년동안 경찰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1명밖에 없다고…
그보다는 식품학과를 나오면 위생교사로 취직할 수도 있고 취직도 잘되니깐 식품학과가 전망이 더 좋다고…
조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될게 아니냐고 하고, 조카의 아빠인 다섯째는 등록금이 적은 곳이 더 낫고 버스타고 다닐 수 있으니(자취방 얻어줄 형편이 못되니깐) 경찰학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다시 막내가 참견한다. 지금 당장은 100만원 정도 적게 들지만 2학기때부터는 장학금을 못받을 수 있다고… 그러면 도저히 계속 다닐 수도 없다고…
또 국립대에서는 장학금 제도가 많으니깐 열심히 하면 2학기때부터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지만, 사립대는 캐파가 적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장학금을 주다보면 웬만큼 공부해서는 장학금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더구나 국립대는 근처에서 과외든 써빙이든 알바라도 할 수 있지만 사립대는 너무 변두리라 알바도 힘들다고…
 
이쯤해서 결론이 났다.
위생학과를 가기로…
 
이 판단에 이르기까지, 경찰관이 되고 싶어하고, 장학금 때문에 등록금도 적게드는 그리고 통학도 할 수 있는 경찰학과가 아니라, 더 많은 정보의 수집으로 식품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약 그때, 이런 정보가 없었다면 아마 경찰학과를 선택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갖는다. 다행히 그 정보가 풍부하다면 모르되 대부분은 부분적인 정보 혹은 왜곡된 정보에 의존할 위험이 크다.
 
FTA를 찬성해야 할지 반대해야 할지에 대해 묻는다면 예스든 노든 모두 그 판단에 이르게 된 판단의 자료인 자기만의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그 판단자의 입장까지 가미된다.
 
이러한 입장과 선입견 그리고 부족하고 왜곡된 정보… 이 모든 것이 판단만이 아니라 정보까지 왜곡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사회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바람직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들은 과연 주관적 입장이나 열망, 편견이 아니라, 풍부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일까?
 
2.
60년대 말에 과격파들이 있었다. 붉은 여단이나 하이제커들처럼…
비행기를 납치하고, 총리를 인질로 잡아 살해하고…
지금은 대부분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칭 혁명가라는 사람들도 그들의 행동에 대해 어리석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평가한다. 마치 별 큰 고민도 아닌데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그들을 평가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자. 필경 그들이 어떤 행동(전술)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거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회변혁의 전망(전략)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행동을 유일한 선택으로 만드는 현실에 대한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심각하고 중대한 판단을 하면서 자기 판단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런 결론에 이르렀을 리가 없는 것이다.
 
바로 그때에 테러범의 친구가 있어서 그들을 말렸다면… 그들을 설득하여 테러계획을 포기하게 할 수가 있었을까?
 
지금 신당을 비난하는 통일근본주의자들이나 혹은 이 길만이 진보의 길이라고 획신하고 신당을 만들고 선거를 하고있는 평등파들이나, 혹은 그렇게는 절대로 변혁이 안된다면서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혁명가들이나 간에, 문제는 어떠한 대화와 토론도 상대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사기꾼들 빼고, 확신범들의 경우에 새로운 정보와 합리적인 판단자료를 아무리 주어도 굳어진 판단은 바뀌질 않는다.
 
이것은 계급적 입장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선입견일 수도 있다. 사회주의 이상을 수긍하면서도 사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사회주의란 불가능한 이상일 뿐이니깐 실현가능한 방도를 사민주의에서 찾는 것이다.
 
그런데 자칭 혁명가들은 사민주의를 운운하면 인간취급은 커녕 졸로 본다. 마치 레닌의 고전적인 전위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활동가 정당이나 대중정당 운운하면 졸로 보듯이…
 
이쯤되면 토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대중정당론을 선택하는 혹은 전위정당을 선택하든 혹은 대리주의로 가득찬 의회주의 정당을 선택하든지 간에, 그 선택은 객관(한국자본중의 현실)에 기초한 결론이라기보다는 선험적인 판단과 입장일지 모른다. 그런 까닭으로 붉은 여단을 졸로 보면 안되듯이 자기와 다른 입장이라고 해서 대화 자체를 불가능케 할 정도로 상대를 졸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도 자기 확신은 있을 망정 자기판단의 기준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되, 출발점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력이나 지능부족 혹은 양심부족으로 몰아버리는 태도는 경계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토론의 틀이다.
 
3.
내가 경계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만의 세계에 갖혀서 지가 젤로 잘난 줄 알고 남 얘기를 졸로 보는 태도, 남을 부정하는 태도이다. 이 또한 자신에 대한 자기 이론에 대한 우상숭배가 아닌가? 특히나 변화되는 현실을 분석하고 설명할 능력도 없으면서 낡은 레파토리와 고전을 들먹이면서 현실과 구체에서 추상으로가 아니라, 추상에서 추상으로 나가는 이상한 방법론에서 못 빠져 나오는 무능한 죄파들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에게 싫은 사실에 대해서는 눈 감아 버리고 설명할 가치도 없다면서 도망가는 비겁한 태도로 원전이나 씹어대는 고전주의자들은 사실 현실의 변혁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
 
좀더 넓은 마음으로 풍부한 현실에 기초해서 원만한 판단력을 갖지 않는 한 우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겐 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싸웠다, 싸우고 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길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고, 바로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기 변혁을 해야 한다. 난 싸우고 있다고 변명하면서 자기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젤루 싫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싸우야 한다.
 
공부 좀 하자! 입맛에 맞는 공부만이 아니라 반동들 얘기까지 일단 넓게 듣고, 자기 만족에 빠지지 말고 책임있는 공부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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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이명박-강만수-최중경 무능 3인방

이명박-강만수-최중경 무능 3인방
시장 모르는 '경제 대통령' 큰 걱정
[기고] 북한 지도자 닮으려는 이대통령에 보내는 진보적 대안
 
 
 

50개의 생활 필수품과 가격통제

“생활필수품 50개의 물량수급을 정부가 직접 관리해 서민물가를 안정시켜라.” 지난 17일 지식경제부의 업무보고에서 나온 대통령 말씀이다. 얼굴에 ‘나는 엘리트’라고 써 놓은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난리가 났다. 결론은? “물가안정에 더욱 힘쓰라는 지시”, “상징적인 의미의 숫자”란다. 요즘 대통령 보고는 선문답으로 하는 모양이다.

   
▲ 17일 구미 전자정보기술원에서 열린 지식경제부 업무보고 (사진=뉴시스)
 
서민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필수품이란 뭘까? 서민을 가계 5분위 통계에서 1, 2, 3분위라고 한다면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의 상승이 가장 큰 부담이고 특히 1분위의 경우에는 식료품비와 공공서비스요금이 문제다(이는 통계청의 “소득분위별 가계지출 현황”에서 바로 확인된다. 단, 교육비의 경우는 노인가구 등 자녀 없는 가구가 많은 1, 2분위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다).

즉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한 ‘물량수급의 직접 관리’는 가치재(주거,의료,교육)와 에너지 가격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공서비스요금(철도, 전기, 수도, 개스, 우편 등), 그리고 식료품에 해당된다. 아닌게 아니라 정부는 의료보험비, 학원비, 공공서비스 요금의 동결, 즉 가격통제를 제시했고 농산물 및 가공식품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쌀라면, 설렁탕의 사리, 한미 FTA하의 농업' 등을 제시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21세기형 문제에 70년대식 가격통제’라고 맹비판할만하다. 규제완화와 민영화, 세금 인하 등 전형적인 시장만능론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가격통제를 들먹이니 경제학자들이 고개를 외로 꼬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이런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시장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화의 성격에 따라 나눠서 정부 정책을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각각의 검토 속에서 시장만능을 내세우는 이 정부가 얼마나 시장에 대해서 무지한지, 그리고 진보의 대안은 무엇인지 제시할 것이다.

주거, 의료, 교육 등 가치재(merit goods)

서민의 주거비 부담은 주택소유자의 경우 대출 이자, 전세가구의 경우 전세 인상금(및 해당 이자), 사글세의 경우는 집세로 나타난다.(따라서 월세만 집계한 통계청의 수치는 과소평가돼 있다)

의료비는 의료보험비에 더해서, 보험이 보장해 주지 않는 약 40%의 본인부담금이 문제인데 중병에 걸릴 경우 서민 가계는 곧 파산을 맞을 수 밖에 없다. 교육비는 계층별 지출에 큰 차이가 나며 이 차이는 현재와 같은 학벌사회에서 아이들의 앞날을 결정해버린다.

이 의교주(醫敎住)는 과거의 의식주(衣食住)에 해당하는 필수재이며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사회적 권리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는 아니지만 최소한 기회의 평등이 요구되는, 사회적 정의의 대상으로서 공공성이 대단히 강한 재화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사적 공급과 공적 공급이 공존하는 재화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 찾는다면 ‘가치재’가 가장 근접한 개념이다.

문제는 ‘시장’에서 공교육과 사교육, 건강보험과 민간보험, 공공주택과 민간주택이 경쟁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인수위와 기재부 업무보고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는 민간공급의 제약을 없앤다는 것이다.

즉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고급 사교육 시장, 고급 의료보험 시장, 고급 민간주택의 공급이 늘어나는 반면, 돈과 사람이 고급시장으로 쏠리는 만큼 공공의 공급이 위축되고 심지어 소멸하리란 것은 이론으로보나 경험으로 볼 때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가격 상승과 양극화는 필연이다. 사교육비 부담이 급증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며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는 현실은 이미 이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서민들의 불만이 끓어오를 수 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 곧 가격통제이다. 한마디로 모순적인 정책이다. 정책의 큰 틀은 민영화/시장화를 촉진하면서 그 부작용은 가장 저급한 수단인 직접적 가격통제로 막겠다는 것이다. 강뚝을 무너뜨리고 그 물을 바가지로 퍼내겠다는 발상이다.

진보의 대안은 공적 공급의 강화이다. 종부세, 누진적 보험료 및 세금 투입, 사교육세 등 기존 자산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여 공공의 공급의 양과 질을 향상시키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양극화를 조장하는 정책기조 속에서 대중의 불만이 터질 때마다 자의적이고 일시적으로 가격통제를 한다는 것은 사회정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규제완화를 내세워 법과 제도는 무력화하고 자의적으로 공무원이 직접 통제하는 것만큼 저열한 정책은 없다. 교육과 부동산, 의료정책에서 이명박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시장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철도, 전기, 수도, 개스, 우편 등 네트워크서비스(network service)

네크워크 서비스의 요금을 우리는 흔히 공공요금이라고 부른다. 즉 이런 서비스는 공공이 공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온 것이다. 정부는 공공서비스에 대해서 지방자치단체 등에 가격동결을 지시할 것으로 보인다.

네트워크 서비스는 경제학 교과서도 독점화의 위험, 교차보조의 필요성 때문에 공공이 공급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는 물론 민영화이다. 이는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교차보조금 폐지’로 표현된 바 있다.

교차보조금은 시장에 의해 공급될 수 없는 지역이나 산업에 대한 보조금이다. 예컨대 민영화한 철도회사나 수도회사는 벽지의 서비스를 중단하는 게 이익이다. 농업에 대한 유류, 전기 보조금 역시 민영화한 에너지 기업이 택할 리 없다.

결국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가 초래할 결과는 독점으로 인한 전반적인 가격 인상, 유지보수 비용 및 인력 감축에 따른 서비스 질 저하(교통사고, 수질 악화 등), 벽지나 보호산업에 대한 서비스 중단 등이다.

   
▲ 네트워크 서비스의 변화는 서민경제에 곧바로 반영된다.
 
서민들의 아우성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해답은 또 다시 가격통제이다. 그러나 가격통제나 새로운 규제의 도입에 대해 민간 기업은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고, 정부는 결국 이들에 대해 보조금을 주게 될 것이다. 정부예산을 아끼기 위해 민영화한다지만, 민자 고속도로에 대한 정부 보조금에서 보듯이 결국 국민의 부담은 마찬가지이다.

영국 철도나 미국 아틀란타 시의 수도 민영화는 가격 상승, 서비스 질 저하로 실패했다. 이 역시 정책기조와 보완 정책이 맞바로 모순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진보의 대안은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되 노동시간 단축과 재교육 등에 의해 서비스의 양과 질을 제고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 등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국민은 안전하고도 쾌적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공기업의 이사회 등에 서비스 소비자와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합리적인 가격과 서비스 질을 결정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에너지와 식량 등 안보재(security goods)

최근 물가 상승의 대부분은 외부에서 비롯됐다. 현재의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곡물 가격 상승은 세계경제위기를 불러왔던 70년대초와 아주 유사하다. 세계경제가 산업이든 소비든 에너지 다소비 체제로 구성돼 왔고,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더불어 원자재에 대한 파생상품 시장이 가격 등락폭을 확대시키고 있으니 이 또한 정부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할 일은 많다. 이명박 정부의 해법은 코미디에 가깝다. 우선 곡가 상승에 대해서 대통령의 단기 해법은 밀가루 값이 뛰면 쌀로 라면을 만들고 설렁탕에 들어가는 사리를 원래의 밥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닌 예 같지만 이 사례는 대통령이 일반적인 재화 시장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혼분식을 장려하면서 도시락 검사를 하던 박정희 시대의 발상이다. 쌀로 라면을 만들어서 수익이 날 것이라면 라면회사들이 벌써 만들어서 팔았을 것이다. 설렁탕에 사리를 넣을지, 밥을 넣을지는 음식점 주인이 결정할 문제이고 결국 소비자들이 선택할 문제이다.

이야말로 정부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현장에서 전봇대 뽑고 음식의 재료까지 ‘현장 지도’로 뭔가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시장을 부정하는 일이다. 박정희를 추종하다 못해 이제 북한의 지도자까지 닮으려고 하는 것일까?

에너지와 식량에 관해서 국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이 둘은 말 그대로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 한다. 나보고 이름 지으라 한다면 안보재(security goods)라고 부르겠다. 비상시의 국가안보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 미래의 삶까지 걸려 있다는 의미에서 이들 재화는 우리 삶의 안전보장에 직결돼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밖에서 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단기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당장은 국외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이지만 결코 외부 의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처럼 가격이 오를 때마다 관세를 낮추고 수입을 늘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원유 도입처를 다변화하거나 해외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식량 비축에 가까스로 성공한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피크 오일 등 화석연료의 한계가 명확한 만큼 제조업이건 농업이건 생활이건 에너지 다소비의 삶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다소비와 그에 따른 엔트로피 증가는 우리 삶 최후의 근거인 자연까지 완전히 거덜낼 것이다.

우선 단기 정책으로는 가격통제가 아니라 가격 시스템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최소의 필수량은 지금보다 더 싸게 공급하지만 그 이상의 소비에는 기하급수적으로 가격을 높여야 한다. 이것은 소비량에 따른 교차보조를 의미한다. 우리 국민의 에너지 및 물 1인당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두 번의 석유위기를 겪었음에도 산업의 에너지 과소비 역시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필수 소비량 이상의 소비에 대해 부과한 요금으로 거둬 들인 수입은 재생에너지, 친환경 농업에 투입해야 한다. 예컨대 소비를 줄인 만큼 원자력 발전을 줄이고 늘어난 수입은 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입해야 한다. 소비를 줄이고 공급 방식을 생태적으로 바꾸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농림수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100조 원이나 투입한’ 농업에 대해 “보상이나 받고 지원이나 해주는 농림부 시절 발상으로는 농촌을 변화시킬 수 없다”며 “한미FTA를 받아들임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공무원들에게 농심을 가지라고 주문했는데 그 농심이란 “1차산업에 국한되지 말고 스스로 2차, 3차산업 마인드로 바꾸”는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도 매출 1,000억원 이상의 유통회사를 만들고(3차산업), 국가식품클러스터(2차)를 장차 140개나 만들 계획이다. 또한 농업진흥지역을 6만2,000ha를 해제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제출한단다. 결국 농심은 1차산업으로서의 농업을 포기하는 것이란 말이다. 세계적 곡물위기도 수입을 늘려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에너지를 최소로 사용하여 땅을 살리는 농업, 기존의 식품 규제를 강화해서 안전한 농업이 우리의 살 길이며 도농 직거래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비싸더라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박정희시대 이래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대농, 기계농, 화학농 육성은 확실히 폐기해야 한다.

경지면적만 10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미국이나 중국과 직접 경쟁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는 제조업에서 임금을 낮춰서 중국과 경쟁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농촌을 지키는 일은 나라경제 전체에도 매우 중요하다. 군단위의 풀뿌리 공동체는 일거리의 보고이다. 재생에너지 산업, 생태 농업, 공동체의 돌봄 노동은 무한한 인력을 필요로 한다. 공동체의 사회경제(social economy)를 GDP의 10%까지 늘리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와 국가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길이다.

한반도 전역의 아름다운 숲과 길을 이어서 걷고 쉬는 관광을 개발하는 것도 생태적인 동시에 경제적이다. 농촌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농업과 자연을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최상의 방법이다. 풀뿌리 공동체에 일자리도 있고 성장도 숨어 있으며 미래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주장대로 1차산업으로서의 농업을 포기한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미래도 없다. 에너지나 식량도 잘 수입해서 가공수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제대통령’의 인식은 정확히 6-70년대 제조업 수출전략의 응용이다. 전직 건설회사 회장이 안보재 개념을 이해하기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까?

왜 원화 가치만 폭락했을까?

이제 가장 경제학 교과서의 완전경쟁모델에 가깝다는 금융시장에 관해서 말할 때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금융시장을 이끄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무능 3인방이다.

이병박 특검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대통령은 30대 애송이에게 금융사기를 당해서 수 많은 사람을 파산시킨 사람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97년 외환위기의 책임자 중 하나이고 최중경 차관은 2004년 민간 투자자의 팔까지 비틀면서 역외 시장에 개입했다가 1조8천억원을 날린 사람이다.

최근 환율폭등, 즉 원화 가치 폭락의 원인 역시 외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요소는 경상수지 적자가 3개월 전부터 적자로 반전된 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정하다는 점, 조선산업 등이 환율하락을 우려해서 선물환을 매수했다 매도로 돌아선 점, 해외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의 선물환 매도,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회수와 이익송금 등을 이유로 든다.

조선산업과 자산운용사들의 선물 거래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 동시에 해당되는 요인들이다. 물론 이 선물거래도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 절상되는데 원화가치만 폭락한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경상수지의 적자 전환이 환율 움직임의 방향을 바꾼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외환시장이 패닉에 빠질만한 움직임이 나타났을까? 특별히 우리나라의 제도에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투기공격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바로 강만수-최중경 팀의 신념이 문제가 된 것이다.

“환율이 경상수지 동향과 괴리되게 하지 않겠다”고 호언한 경제수장, 그리고 오로지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달러당 1,200원 수준에서 거액을 투입하여 환율을 방어하려 했던 차관이 투기자들의 오버슈팅을 부른 것이다. 무능 3인방이 공유하고 있는 수출지상주의가 건재하는 한 한국은 언제나 투기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물론 작금의 금융위기는 세계적인 문제이다. 미국에서도 파생상품시장에 대한 규제를 새롭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도 경험한 바 없는 새로운 시장의 규제를 미리 만들 수는 없기에 본보기로 희생양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의 3인방이 금융허브를 내세워 개방과 규제완화를 미국 수준으로 하려 한다는 데 있다. 바로 그 희생양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위기에 빠져도 우리는 능히 헤쳐나갈 만한 능력을 이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어도 될까?

때늦은 위기타령 - 한반도 대운하, 수도권 규제 완화야말로 진정한 위기를 만든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만으로도 7%의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바로 그 대통령이 갑자기 “세계경제의 위기”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누가 그걸 몰랐는가? 우리는 작년 초부터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누누이 지적했다. 물론 그들은 완강하게 부정했다. 인수위 시절만 해도 그랬다. 다들 외부 사정을 들어 5% 성장도 힘들다고 했을 때 “이명박이 하면 다르다”고 했다. “일해 본 사람은 다르다”고 했다.

나는 7% 성장이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발표한 수도권 규제완화, 금산분리 완화, 농지규제 완화에 한반도 대운하를 더하면 7%를 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거품을 더 큰 거품으로 대체할 뿐이다.

2년여의 흥청망청이 끝났을 때 전 세계의 침체 속에서 그 거품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명박 정부가 대불공단 전봇대 뽑듯 이들 정책을 신속하게 집행한다면 97년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대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불행하게도 거의 100%이다.

마지막 질문. 한미 FTA가 이미 발효돼 있었다면 위의 모든 사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답. 아무리 위기를 맞는다 해도, 서민들의 아우성이 하늘을 찔러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결코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미국은 위기에 빠질 때 마다 다른 나라에 상식을 벗어난 보호주의적 조치를 강요한다.

80년대 중반 미일반도체협정(미국 반도체의 시장 점유율을 보장하라)과 플라자 협정(엔화를 절상하고 동시에 금리를 내려라)이 딱 들어맞는 예이다. 한미경제안보협정이라는 FTA를 맺었는데 미국이 우리에게 어떻게 할까? 이미 강요는 시작됐다.

예컨대 당장 미국이 어려우니 광우병이 우려되건 어쩌건 미국 쇠고기를 원하는대로 수입해야 하고 미국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을 보장해 줘야 한다. 또 과연 미국제도=선진화=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정부의 주장을 우리는 계속 믿어야 할까? 마이클 무어의 <식코>를 꼭 한번 보시기 바란다. 그것이 미국이다.

시장도 모르는 시장만능론자들의 정부. 법과 제도로 이뤄진 규제를 없애고 언제라도 자의적으로 시장에 명령을 내리는 정부. 누가 이 정부에 브레이크를 걸 것인가? 똑같이 한나라당 출신 시장만능론자인 이회창, 손학규의 당이, 한미 FTA와 규제완화를 앞서서 주장한 선진한국당이나 통합민주당이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지금 국회는 정말 진보적 경제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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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비민주적 다함께, 트로츠키 더럽힌다

비민주적 다함께, 트로츠키 더럽힌다”
베트남 인민 냉소하고 무자헤딘, 바웬사 지지한 SWP의 역사
 
 
 

이 글에서 나오는 것처럼 ‘다함께’가 개량주의, 우경화로 몰아부치는, 뚜렷하게 사회주의나 혁명을 외치지 않는 많은 이들 중에는 웬만한 다함께 소속 회원들과 비교가 안 될만큼 관록 있는 활동가들이 많다.

다함께(와 그 전신 IS)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들보다 더 투철하게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싸워 왔던 그들이, 다함께가 주문처럼 읊어 대는 그 사회주의와 혁명 이론을 몰라서 안 읊어 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함께 외에는 없다.

90여 년 전 사회주의 실험이 시도되기도 전이라면 혹 뚜렷하게 사회주의나 혁명을 외치지 않는 이들이 진짜 개량주의, 우경화로 매도되어 마땅할지도 모르겠지만,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후에도 아무런 치열한 분석과 반성 없이 원전과 이론만 붙잡고 교조주의적, 원리주의적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민중과 역사에 대한 가장 큰 ‘죄악’이다.

   
▲ 파병연장 반대 시위 중인 ‘다함께’ 회원들 (사진=다함께 홈페이지)
 

이러한 측면에서 그나마 완전 자유롭지만은 않은 여타 교조적 좌파 소그룹들과는 달리, 다함께는 이러한 ‘죄악’으로부터 아주 마음 편하게 벗어날 수 있는 틀을 창조하여 면죄부를 스스로 부여하고 있기에 먼지 속에 있는 책 어구들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가며 쓸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다. 어차피 그 대화 상대는 대중이 아니라 활동가이기 때문에.

즉, 옛 현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착취와 억압이 만연한 ‘국가자본주의’였다면서 그들은 수많은 좌파들을 고민하게 하는 고통에서 아주 쉽게 벗어나 ‘지금까지 사회주의는 없었다’는 방어막을 가지고 마음껏 원론을 들이대며 끊임없이 개량주의적 분자들을 창조해내며 스스로 구태의연한 운동권적 도덕률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영국으로 유학 간 신학도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교 1학년 때 어떤 정파가 주도하는 동아리, 학회, 비합 서클에 가입했는가에 따라서 똑똑하지 못 하고 고민 없이,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경우 자연스럽게 NL이 되고, PD가 되며, ND가 되곤 했다.

신이 이끌었다고 하지만, 주변이 온통 빨간 십자가인 나라에서는 기독교인이 되고, 주위에 이슬람 외 종교를 접할 수도 없는 나라에서는 무슬림이 되듯, 자주적이고 비판적 사고가 모자란 경우 좀처럼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평생을 그 관념의 우리 안에 갇혀 살게 된다.

영국으로 유학 간 신학도 한 명이 지극히 개인적, 환경적 요인으로 선택한 한 이론과 그 이론을 따르는 외국의 한 정파가 트로츠키주의의 모든 것인 양 받아들여지고 그와의 연결이 국제주의를 실천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황당하지만, 그 정파 ‘숭상’을 자랑스럽게 외치는 ‘광신도’들을 만들어내, 그들이 만들어내는 교과서 암기문을 당당하게 올린 것을 보는 것은 매우 황당한 일이다.

   
▲ 현재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중앙위원이며 요크대 교수인 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 1950~ )
 

캘리니코스 책을 안 읽었다는 말에 놀랐다는 전지윤과 다함께 회원들이 난 더 놀랍다. 캘리니코스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교과서 암기 테스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할 뿐이다.

알고 비판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우리가 주체사상파를 비판한다고 주체사상을 다 섭렵하는 시간 낭비를 할 필요도 없고,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다고 이명박의 자서전을 읽을 필요는 없다.

전지윤이 절대적 기준이라도 되는 양, 전국적 정치신문의 예까지 들며 낡은 이론을 그렇게 당당하게 되풀이할 수 있는지 솔직히 놀라웠다.

그런데, 전국적 신문이 그렇게 중요하면, 반론을 전국적 신문에 쓸 것이지 왜 인터넷 신문에 올리는지 모르겠다.

나도 <레디앙>이 아니라 그들 사이트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을 마음껏 하고 싶은데, 그들 사이트에는 게시판조차 없으니 도대체 내부에서조차 ‘민주적’으로 토론은커녕 기초적인 견해조차 수집되고 있는지 궁금하고 또 궁금할 따름이다.

다함께 안에 ‘민주적인 토론’이 있나?

민주집중제의 사전적 정의가 궁금해서 써 달라고 한 것인가? 난 솔직히 다함께 자신이 그 글을 쓰면서 부끄럽지 않았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행동이야 통일된 것 이상으로 다 똑같지만, 다함께 어느 토론회에서든 진정으로 민주적인 토론이 있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미 런던에서 만들어진 그 틀 내에서의 토론이 무슨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인가? 전지윤의 글조차 전체가 철저하게 그 틀 안에 있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묻고 싶다. 민주적으로 자유롭게 토론과 논쟁의 결과가 파업 철회라고 해도 민주집중제라고 할 수 있을지. ‘민주적 토론과 찬반 투표를 통해 파업을 철회한다’고 하면, 그건 평조합원의 의사가 아니라거나 개량주의 노조 집행부에 맞서서 파업을 선동하며 결정 실행의 통일성을 저해하는 것을 당연시 여길 것 아닌가?

그리고 테러 조직들을 잘 모르나본데, 그들의 전략 전술이 틀렸을 뿐이지, 다함께보다는 훨씬 민주적으로 토론한다. 행동의 통일이야 더 철저하니 말할 나위도 없고.

이 모든 모순은 그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상에서 비롯된다. ‘노동계급의 급진 좌파적, 혁명적 일부가 독자적으로 조직되어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 … 혁명적 조직은 (노동 계급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얼마나 잘 배워 올바른 투쟁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계급의 지지를 받으며 혁명적 대중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다 …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른다’ 등등.

전지윤을 비롯한 다함께가 앞 글에서처럼 누구나 예전에는 한 번쯤 써 보고, 읽어봤을 아주 원칙적인 말들을 논쟁에서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근거라도 되는 양 쉽게 할 수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즉, 이 세상에 러시아 혁명 직후 수년 간 이외에는 사회주의 체제란 존재한 적이 없고, 모든 자칭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국가들은 모조리 모종의 자본주의 체제였으니, 그냥 원론적 수사를 나열하며 혁명의 전위인 양 사회주의를 선전 선동해도 반박을 받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개량주의자’들도 이 정도의 말은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다. 개량주의가 아니라 혁명주의, 우경화가 아니라 좌경화를 외쳐야 이 판에서 비판받지 않는다는 것을 몰라서 주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함부로 출세주의, 개량주의를 뒤집어 씌우지 말라! 이제 이런 사변적 원칙과 원론을 되풀이하며 외쳐댄다고 운동권적 도덕률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착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전지윤이 비판하는 이들이 훨씬 더 진솔하고 책임성 있는 활동가이다.

적어도 자신의 이론을 현실을 떠나 반복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론과 현실의 괴리, 현실에서의 한계 속에서도 노동 대중에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는 책임성을 가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북한 국가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더 이상 진보가 될 수 없다는 논리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사회주의는 수립된 적이 없다며 현실 사회주의 비판을 회피하고 순수 이론으로 숨는 주장 또한 비판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좌파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다함께는 트로츠키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다함께는 트로츠키의 가장 큰 가르침이자, 트로츠키 사상의 핵심 거의 모두를 거부하면서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라고 하여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트로츠키의 이름조차 더럽히고 있다.

그 중 구사회주의 체제를 모종의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트로츠키 사상에 가장 배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국가자본주의론’의 허구성과 폐해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 문제는 단순히 체제 자체를 규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체제를 자본주의로 규정함으로써, 그리고 소련을 미국 등과 같은 질의 자본주의 최고 단계의 제국주의로 규정함으로써 전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분석하고 대처하며 행동하는 데 있어서 어마어마한 오류를 낳은 중요한 문제라는 것만 강조해 둔다.

전 세계의 트로츠키주의 조직들 중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하면서 트로츠키주의 조직이라고 하는 조직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외에는 몇 없다.

어이가 없는 것은 다함께의 모 조직인 영국 SWP는 소련 국가자본주의 / 소련 제국주의를 서구 자본주의 /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보다 훨씬 혐오하여, 영국 등 서구에서는 공동전선은커녕 무원칙한 대중추수주의와 말 그대로의 개량주의의 일관된 길을 걸은 반면, 소련 ‘국가 자본주의’의 붕괴와 양 제국주의가 충동할 때에는 철저하게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를 지지하거나 투쟁을 방기하는 반마르크스주의적, 반사회주의적 원칙을 견지해 왔다는 것이다.

전지윤과 다함께가 무비판적으로 ‘숭상’하는 토니 클리프와 그 분파는 한국 전쟁 당시,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가 스탈린주의적 국가사회주의 북한과 전쟁을 벌일 당시 한국전쟁을 제국주의 대리 전쟁으로 규정하며, ‘제국주의 전쟁 반대, 북한 방어(정치적 방어가 아니라!)’를 거부하고, 제 4인터내셔널 영국 지부를 포기하며 SWP를 만든다.

‘기생’의 역사

그러나, 탄압 국면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 계급운동보다 오른쪽에서 헤매다 고립된 그의 분파는 입당 전술에 의거, 의견그룹의 형태로 그들의 언어로 ‘스탈린주의 동전의 다른 한 면인 사민주의 개량주의 정당’인 ‘숙주’ 노동당에 ‘기생’하기 시작한다.

   
▲ 국제사회주의자 그룹과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창설자인 토니 클리프(Toni Cliff, 1917~2000)
 

그러나, 그의 분파는 노동당에 ‘기생’해서 노동당을 ‘혁명정당’으로 건강(?)하게 만들지도 못 했으며, 그로부터 뛰쳐나와서도 그 특유의 정치적 모호성으로 대중이 급격히 급진화했던 베트남전을 전후한 시기 이후로는 별다른 급진적 대중을 획득하지도 못 하고, 한국에서처럼 반전 국면에서 약간의 좌파 교수들과 청년 학생 외 노동자 계급 대중에게는 별다른 영향도 못 미치고 있다.

한국전쟁시 북한 방어를 거부한 클리프 일파는 1차 베트남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온갖 당 이론가들을 동원 ‘제국주의 대리 전쟁’이라며 제국주의 침략 전쟁 반대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전 세계를 휩쓴 반전 물결로 ‘계급이 당보다 더 왼쪽에 있게 되자’, 2차 베트남 전쟁시에는 객관적 상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와 (스탈린주의 소련이 후원하는) 베트남 인민’ 사이의 전쟁 구도라며, ‘베트남 인민 전선에게 승리를! 미 제국주의에게 패배를’이라는 완전히 변화된 구호를 외친다. 물론 어떤 설명도 반성도 없었다.

그러나 SWP는 이렇게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인민들이 설사 잘못된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 입각했다 하더라도 반제 / 반자본주의 투쟁에 나서고,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고통받고 있을 때 온갖 이유를 붙여 투쟁을 방기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시에는 미국이 직접 자금과 무기를 대고 직접 훈련시킨 무자헤딘을 지지하면서 ‘소련에게 죽음을! 무자헤딘에게 승리를!’의 구호를 별다른 고민 없이 외친다.

또한, 이들은 소위 ‘소련 국가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라면 제국주의가 직접 지원해도, 저항 주체가 봉건적이고 반여성적이며 종교 근본주의적이어도, 반유대주의와 파시즘에 가까운 단체라 해도,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노골적으로 주장해도 무조건 지지의 대상이었다. 물론 이러 저러한 ‘립서비스’는 항상 잊지 않고 덧붙였지만.

소련의 붕괴는 그들에게는 위대하고도 위대한 ‘제 2의 러시아 혁명’이었다. 국가사회주의의 붕괴는 다른 이유에서 필연이었지만, 그들에게 이 붕괴는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이기에 전혀 다른 이유에서 극찬해야 할 것이었다.

반소 시위대의 다수가 조직화된 노동자 계급이 아니었고, 더더군다나 사회주의를 외치는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 혁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평소에 ‘민중’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며 비판하던 SWP는 ‘노동 대중’이라는 희한한 명칭까지 붙여가며 반소 시위를 혁명으로 칭송하였다.

물론, 이제 노동자 자신들이 쟁취한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 자신들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은 시작될 것이라는 립 서비스는 잊지 않았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때를 대비해서 ‘노동 대중은 사회주의라는 이름 하에 자본주의에서 살아 왔기에 사회주의를 잘못 알고 있으며, 혁명정당이 부재하였기 때문에’ 운운의 변명을 붙여놓기는 했지만.

극우 파시즘도 찬양한 SWP

중국 천안문 사태에 대한 과장과 왜곡 역시 러시아의 경우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당시 중국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시위 지도부, 시위 참가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 대중의 요구는 안타깝지만 ‘더 왼쪽으로의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시장 요소 도입’, 심지어는 아예 ‘미국식 자유’와 ‘자본주의’였다.

하지만 SWP에게는 이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고, 국가에 대한 저항,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주장을 하든 노동자 계급이 얼마만큼 조직적으로 저항했는지만이 중요했다.

SWP는 예전부터 일관되게 소련과 동유럽의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라면 거의 모든 종류의 운동에 대해 찬양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스탈린 시기 우크라이나 지역의 극우 파시즘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민족주의 반란도 스탈린주의에 반대했다는 것만으로 지지하였다.

자본주의 체제로의 복귀 혁명을 공개적으로 내건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도 그 어느 반체제 운동보다도 ‘조직화된 노동자 반체제 운동’이라는 형식에 들떠 무비판적 지지의 대상이었다.

반면, 피로써 쟁취했던 수많은 반제국주의적, 반자본주의적 혁명들은 소련 국가자본주의의 확산이라며 극단적으로 폄하된다. 특히 노동자 계급 형성이 미진하여 그에 따라 노동자 계급 운동이 발전하지 못했거나 아예 노동자 계급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의 혁명은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 과정’의 여부에 의해서만 판단되어 철저히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규정하여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SWP에 따르자면, 동유럽 국가들은 모두 ‘소련 제국주의의 탱크로 만들어진 국가자본주의’이며, 중국 혁명은 ‘농민과 지식인들의 농민 혁명’에 불과하며, 쿠바 혁명은 ‘마르크스도 모르는 극소수 게릴라들의 운 좋은 반란 성공’에 불과하다.

당연히 더 의심스러운, ‘노동자 계급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집트, 리비아, 볼리비아 등지에서의 실험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지지의 대상이지만, 지식인과 농민 혹은 빈민 등의 주도로 혁명세력이 권력을 획득하고 난 뒤에는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 과정이 없거나 자본주의 소련이 뒤에서 후원하기 때문에’ 다 국가 자본주의이며 타도의 대상이다.

더군다나 세계 혁명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다 국가자본주의 국가가 되어 버리니 혁명의 운명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베트남 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지지하다가도 세계 혁명이 없으므로 베트남 국가자본주의 타도가 되는 것과 같은 논리는 전 역사, 전 세계에 적용되어 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다함께가 미국의 약한 고리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베네수엘라를 찬양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가소롭다. 그들의 희망과는 달리, 차베스는 사회주의를 겉으로는 외치지만,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 하며, 시장 철폐, 노동자 계급 혁명, 일당 국가 체제 등 원론적 사회주의를 확고하게 거부하고 있다.

세계혁명 아니면 다 국가자본주의

결국 분명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아 다함께는 부르주아 국가 기구를 그대로 방치했네, 노동자 계급을 혁명의 중심으로 삼지 않았네 하며 전형적인 사회주의를 거부한 베네수엘라의 중남미형 사회민주주의적 실험에 태클을 걸고, 국가자본주의 운운할 것임이 틀림없다.

구 소련과, 중국, 북한의 실질적 붕괴는 민주집중제의 결과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투표를 통해 결정할’ 사안이 아닌 어마어마한 단위의 경제 영역조차 직접 생산자들의 토론과 통계와 계획만으로 완벽하게 ‘시장 체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착각한 사회주의적 실험의 실패이지 결단코 자본주의의 축적의 위기에 의한 붕괴 따위가 아니다.

이후 논의가 지속된다면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일단 구 사회주의 국가체제는 어느 면에서도 자본주의 체제와 아무런 유사점이 없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현재 국가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에 대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본질적, 근본적 변화에 대한 연구만 해도 수 천 개는 넘을 것이다. 학자들은 물론, 현실 사회주의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온 몸으로 체험해 온 구 사회주의 사회의 주민들은 ‘한 자본주의로부터 또 다른 자본주의로의 옆으로의 게걸음에 불과하다’고 하는 다함께와 같은 이들의 주장에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모두가 코웃음을 치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는 각종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이 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현실과 이론이 하나도 맞는 것이 없기에 국가자본주의론에 입각한 조직은 발을 붙이지 못 하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분명 우리들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사회였다. 그러나 불평등과 번영, 자유가 없었다고, 현실 사회주의 사회를 모종의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진보의 발전을 가로 막는 행위이다.

부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연구를 할 것을 부탁하는 바이다. 구 국가 사회주의 체제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결과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었으며, 그 오류를 깨닫지 못 하고, 비민주적, 무비판적, 비독립적으로 런던 발(發) 교과서를 암기하는 것, 그 암기를 되풀이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지양해야 할 진보의 모습이다.

안쓰럽고 창피한 ‘다함께’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자본주의로 왜곡한 것을 두고, ‘옛 동구권 몰락에 절망하지 않아도 되게끔 클리프가 만들어 주었다’는 전지윤의 말은 자랑스럽게 할 말이 아니라 정반대로 창피하게 생각해야 할 말이다.

민족주의나 북한 국가자본주의 계급지배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이들에게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없는 애정을 보내면서도, 자신들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이들에게 개량주의적 사회민주주의도 모자라, 의원이 되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처럼 출세주의자, 의회주의자 딱지까지 붙여 가며 핏대를 세우는 것은 보기에 매우 안쓰러울 정도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조순,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을 지지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한 채, SWP의 우경화 중의 우경화적인 노선을 그대로 따라해온 채, 뒷날에 민주노동당에 들어와 민주노동당을 숙주 삼아 ‘기생’해왔으면서, 함부로 다른 이들에게 개량이네 우경화네를 남발하며 마치 민주노동당의 주인인 양, 민주노동당을 사랑하는 양 행동하는 것은 정말이지 매우 파렴치한 짓이다.

강남 지역위원회로 불법적으로 주소지를 대규모로 옮겨 접수한 그 부분은 은근슬쩍 넘겨 버렸던데, 당내 대표적인 종파적 행위인 이 정당하지 못한 행위에 대해 지적한 것을 말투만으로 비판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진정으로 날을 세워야 할 대상, 부분과 옹호하고 방어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혼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잘 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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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단상

  • 분류
    건설론
  • 등록일
    2008/01/23 20:50
  • 수정일
    2008/01/23 20:50
  • 글쓴이
    서른즈음에
  • 응답 RSS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단상
1. 정세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노동계급을 비롯한 민중들의 처지는 더 이상 몰릴 수 없는 궁지에 처해 있고, 반동적 억압과 반동적 이데올로기의 공세가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반자본의 세계를 지향하는 제대로된 진보정당을 만들어내야한다는 당위는 긴말을 필로 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민노당에서는 종북파와의 갈등을 둘러싸고 쇄신파와 신당파-분당파가 등장했다고 한다. 전선이 아닌 정당이 정치적 사상의 실천체라면, 정치적 사상과 지향과 출발점이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당 속에서 동거한다는 자체가 맞지 않은 얘기다. 바로 그 점에서 심상정 비대위는 어떤 해결책을 강구하더라도, 그것이 민족주의자들과의 결별을 배제한 해결책이라는 점에서 모순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끝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반 민족파와 민족파의 순수하지 못한 타협적 동거로 그 동안의 희극을 지겹게 반복할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인식하에 분당 내지는 신당을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이들 신당파는 기왕에 민노당 밖에 있는 사회당이라든지 생태 환경운동 등 시민단체와 함께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한다.(이들을 신당파라고 하자)
이들과 반자본의 진정한 대안을 추구하는 세력과의 차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들을 반자본파라 하자)
 
2. 노선에 대하여
신당파는 민족주의자와 결별하고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민노당의 강령 즉 민노당 창당정신으로 돌아가 2008년 총선 등에 적극 참여하여 기왕에 민노당이 쌓아온 여러 성과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민족주의자를 배제한 새로운-혹은 순수한- 버전의 민노당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민노당 구성원의 경향을 분석해 보면 종북파 주체파 민족파 NL파 등으로 불리고 있는 통일근본주의 세력이 있고, 이들의 패권주의적 경향이 너무 강하여 오늘날 민노당을 민족파와 반민족파의 대결구도가 된 것인데, 통일근본파의 내부도 다양하겠지만 문제는 반민족파의 경향도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주관적으로 뭐라고 표현하든 사민주의적 경향이 대다수라는 점이고, 그외에 자신의 뿌리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소수의 세력이 있다는 점이다. 어쨋건 신당파는 반민족 세력 즉 사민주의 세력까지 포함하는 제도정당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민노당이 강령에서 아무리 사회주의의 이상을 추구한다고 하여도 사회주의 정당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신당파의 선도그룹의 순수성이 아무리 크다고 하여도 그리고 아무리 사회주의를 강령에 못밖는다고 하여도, 제도정당을 지향하면서 외연을 넓힐수록 사민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를 적당히 봉합한 제3의 적녹당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노당의 창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세력-새로운 반자본 정당을 추구하는 세력과의 차별점이 있다. 이것은 단지 사상의 차이만이 아니라 정치노선과 조직노선 투쟁노선 등 모든 점에서 엄청난 차이를 안고 있는 것이고, 그 차별성이 대중에게 인식될 때, 반자본세력도 현실적인 정치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쨋건 반자본당은 모든 종류의 착취와 억압과 소외와 차별을 극복하는 사회주의 정당임을 명백히 밝히고 출발하지 않는 한 존재가치가 무의미할 것이다.
 
사실 멋진 언사로 반자본의 입장을 천명하고 그것을 강령으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동의한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든지 혹은 자본의 지배를 끝장내자는 언사만 아니라면, 좋은게 좋은거니까 신당파와 반자본파가 하나의 이행기 강령을 못만들 것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구성원의 경향이 사민주의에 지배되는 한, 강령의 문귀와는 관계없이 사민주의적인 대안과 실천을 낳을 것이고, 바로 이 점에서 사상투쟁이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어쨋거나 신당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구성원의 일부가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면 정당이라는게 동일한 사상의 통일적 실천체임이 분명한 이상 언젠가는 분당이나 신당을 또 낳을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반자본당은 사민주의적인 개량이나 분배문제에나 매달리는 당이 아니라, 자본의 철폐를 선전하고 선동하는 당이어야 함은 분명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 검열로부터 자신을 해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3. 진보적 당 활동에 대하여
두번째로 우리는 민노당의 경험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 토론회때, 신당파의 어느 동지는 정당이 정당인 이유, 선거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사정, 지역운동 혹은 지역정치와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에 대해 얘기한 바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 자본주의의 틀속에서 존속해야만 하는 정당운동의 특수성이 들어있고, 아쉽게도 반자본파가 이 문제에 대한 경험과 고민이 부족한 것은 부인될 수 없는 문제다. 어쩌면 당을 건설할 실력이라는 게 바로 이 고민에 대한 사회주의자다운 해답의 제시능력에 달려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대중투쟁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간에 선거에 참여하기로 한 이상 선거등록을 한 이상 모든 당원이 동원되어 부족한 자금을 걷고 득표를 위해 올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거법도 이상하고 선거지역이 생산현장이나 대중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결국 주간에는 시장이나 가게에 가서 짧은 멘트로 인사하는 것과, 밤이 되면 사람들이 많은 먹자골목에 가서 명함돌리며 인사하는 것과, 버스 정류장에서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 출근길에 전철역에서 피켓들고 소리지르는 것, 나아가 사람이 많은 로데오 거리 같은 곳에 가서 율동과 노래로 시선을 끌고 열명 스무명도 안되는 청중에게 연설하는 것
 
한마디로 진보주의자로서 참담한 짓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 대중은 없고 유권자가 있다. 참여하여 함께 운동과 투쟁을 하는 대중이 아니라 표를 찍어 줄 유권자가 있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대리정치 속에서 주체적 대중이 대상적인 타자 혹은 객체화하는 자본주의에 특징적이고 악랄한 소외가 고착화되어 있다. 심지어 부르주아지와 똑같이 지역공약까지 얘기한다면 나아가 출마를 알려야되는데 적당한 자원봉사자가 없어서 유급선거원까지 동원할 때는 자기가 속한 당의 당명이 무엇이든 간에 부르주아적인 선거운동을 하고있는 것이 된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부르주아처럼 대중을 유권자로 보고 부르주아적인 선거방법으로 선거에 참여할 때, 최소한 진보와는 거리가 먼 실천이 되버리는 것이다. 민노당은 다수의 구성원이 반자본의 입장이 아니니까 당연 이 문제에 대한 고민도 없었을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 부르주아 사회 속에서 반자본당의 선거운동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또 민노당에는 직장분회와 지역분회가 있는데, 직장분회를 제외하고는 주간에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드물다. 특히 신도시의 경우엔 지구당원이 밤에나 지역으로 퇴근하므로 모든 모임과 실천이 밤에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주말에 이루어지든지… 나아가 월1회 만원의 당비만 내고 선거때만 지지하는 즉 비활동적인 당원이 90%가 넘고, 그나마도 야간이나 주말에 당 사업과 결합하는 당원은 많아야 10%정도다. 생산현장의 노조와 달리 지역과 지구로 묶은 회비당원의 존재는 무엇인가? 하나의 지구당 혹은 지역위원회가 존재하기 위해선 월100만원 정도의 상근자 급여와 집세와 통신비등을 감안하면 200명의 당원이 필요한 셈이다. 200명의 회비당원과 20명의 횔동적 당원, 그리고 상근자 1명. 열악한 환경에서 진보정당의 신념을 안고 사업과 투쟁을 하고 있는 그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라, 당생활과 당활동이 소외의 극복과 실천활동이 되어야 한다면, 당원의 규정부터 시작하여 이상적인 당활동의 모범에 대한 고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흔한 얘기로 부르주아적인 지역운동이나 상근자 운동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당활동이 해방의 실천운동이어야 한다면, 우리 자신의 소외를 극복하고 해방을 확인하는 운동이어야 한다면, 민노당의 타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민노당의 타락은 단지 통일근본주의자의 패권주의의 전횡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4. 결어
이상으로 말한 바와 같이 새로운 반자본당은, 신당파처럼 통일근본주의와 같은 우파와의 결별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착취와 억압과 소외와 차별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의 기치를 분명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의 조직과 일상적 당활동 자체가 유권자가 아닌 대중과 함께 운동하고 투쟁하는,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인 소외를 극복하는 사회주의적인 원칙 위에서 고민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지 이 원칙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이 원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반자본의 진정한 진보정당을 꾸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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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species being

요즘 초기 저작을 읽고 있는데, 그중에 1844년 초고를 읽으면서 그 천재성에 탄복하는 중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에 대하여 후기 저작의 모든 개념들을 명료하게 설하고 있다.

1818년 생이니 그때 나이 27세인데 그 천재성에 대해 감탄을 아니할 수 없다.

 

 

자신의 노동과 노동의 산물이 자기와 대립하여 자기(노동자)를 대립시키는 사회. 존재하는 모든 것이 타자화하여 대립하고 있는 사회. 여기에 species being으로서 man은 없고, 죽은 노동에 짓눌린 혹은 탐욕에 가득찬 indivisual 이 있다. 공동체 속의 종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종적 본질을 잃어버린 파편들이 그것이 당연한 양 즉 소외된 존재로서 소외인줄도 모르고 동물적 생존경쟁을 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영문이라 개념이 정확치는 않지만 암튼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의 본질에 대하여 이보다 명료할 수 없다.

착취와 억압은 넓은 의미에서 소외(alieanation 혹은 estrangement)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 소외를 극복해야 한다는 이 외침.

심장이 뜨거운 천재의 글을 읽는 이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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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제목] : 인터내셔널가 (Red Army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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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타 -인권에 대한 영향(국제인권연합조사단 보고서)

 

 

FIDH(International Federation of Human Rights-국제인권연합)

국제조사단 보고서

 

 

 

 

멕시코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인권에 대한 영향

인권에 대한 파괴

 

소개

1. 멕시코 경제와 사회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2. 멕시코의 노동권

3. 멕시코의 마킬라도라 시스템:씨유다드 주아레즈 사례

4. 결론 : 나프타의 오늘

5. 권고안

6. 부록:조사단이 만난 사람들의 명단(생략)

7. 연보(생략)


목차

소개

. 멕시코 경제와 사회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1. 나프타와 멕시코의 발전

2. 자유무역의 승자와 패자

3.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나프타의 몇 가지 영향

a. 음식과 충분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에 나프타가 끼친 영향

b. 여성의 권리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c. 아동들의 권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d. 노동과 작업상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 멕시코의 노동권

1. 국제 노동권 법률에 대한 멕시코의 의무

a. 일반적 노동권

b. 노동조합권

2. 미주내 기구들의 조약에 대한 멕시코의 의무

a. 일반적 노동권

b. 노동조합권

3. 노동권에 대한 헌법적 법률적 보호

a. 멕시코 헌법

b. 연방 노동입법

4. 멕시코의 노동권보호를 위한 기구들

a. 인권보장을 위한 국가와 주 위원회

b. 중재와 조정심의회

c. 법정

5. 노동권 문제의 핵심에 있는 멕시코 노조들

a. 공식노조

b. 노조통제의 새로운 경향:백색노조

c. 독립노조

d. 독립노조 활동에 대한 장해

e. 노조와 소송

 

. 멕시코의 마킬라도라 시스템:씨유다드 주아레스 사례연구

1. 씨유다드 마킬라도라 모델의 선구자들

2. 마킬라에서의 노동조건

3. 씨유다드 주아레스에서의 노조를 조직할 권리

 

. 결론 : 나프타의 오늘

 

. 권고안

 

. 부록:조사단이 만난 사람들의 명단(생략)

 

. 연보(생략)

 

 

 

 

 

 

 

 


소개

멕시코 경제는 1980년대 초반부터 극적으로 변모되어 왔다. 멕시코가 GATT에 가입한 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통하여 세계은행과 IMF는 더많은 자유화를 권유하였다. 무역자유화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의 비준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멕시코의 정치경제는 그 내용과 전망에 있어서 완전히 변하였다. 나프타가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나프타가 확실히 멕시코의 고용구조를 변화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어왔고, 사람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끼쳐왔다는 것이다.

 

나프타의 전문은 협정의 당사자들은 그들의 각각의 영토내에서  새로운 고용기회를 만들고 생활 수준을 개선하기로 결의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법률적 구조들은 무역자유화의 심대한 영향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멕시코는 나프타에 대한 의무를 갖지만, 또한 수많은 국제인권기구의 구성원이기도 하고,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실현할 책임이 있다. 나아가 수많은 법률적인 주장은 무역법보다는 인권법의 우월성을 지지한다. 나프타의 조항을 수행하는 동안 멕시코는 이처럼 자신의 정책이 인권에 해가 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멕시코는 1981년부터 참여국가가 다른 권리들 가운데 특히 노동할 권리(제6조),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고 우호적인 작업조건을 향유할 권리(제7조)를 인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노조에 가입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협약(ICESCR)의 구성원이다.

 

멕시코는 또한 ILO정부기구에 의하여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8개 협약 중 6개를 포함한 수많은 ILO협약을 비준해 왔다.:

-결사의 자유와 조직할 권리의 보호에 관한 제87호 협약

-강제노동에 대한 제29호 협약

-강제노동의 제거에 관한 제 105호 협약

-(고용과 직업에 관한) 차별에 관한 제111호 협약

-동일보수에 관한 제100호 협약

-아동노동의 최악의 형태에 관한 제182호 협약

 

미주지역의 통합과 미주자유무역지대를 향한 길이란 맥락에서, 멕시코의 노동권에 나프타가 끼친 영향은 자유무역협정이 인권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10년이상이 지나면 나프타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해질 것이다.

 

멕시코에서 나프타가 끼친 영향에 접근하기 위해서 FIDH는 멕시코에 조사단을 파견했다. FIDH가 파견한 세 사람은 (케이시 자이슬-미국 뉴욕대의 법률학자, 나탈리야 파레데스-경제학자, 콜롬비아 보고타 정치학 교수 그리고 도발 브루넬-퀘벡대 미주 연구소 소장) 2005년 8월 22일부터 31일까지 멕시코를 방문하여 인권에 대해 나프타가 끼친 영향에 관해 관련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했다.

 

FIDH조사단은 멕시코의 노동조건의 측면에서 나프타의 산물을 조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조사단은 멕시코 북부지방 특히 마킬라도라 산업과 비공식 경제의 고용과 인권의 수준에 특히 주목했다. 그리고 여성과 아동에 대해 조약이 미친 영향에 특히 주의를 기우렸다.

 

조사단은 멕시코 시티와 푸에블라 그리고 씨유다드 주아레즈 지역을 방문했다. FIDH 파견단은 노조는 물론 노동자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NGO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씨유다드 주아레즈의 마킬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연방과 주의 당국자들을 만났다(부록에 있는 조사단이 만나 사람들의 명단 참조).

 

FIDH는 조사기간 중 조사단을 기꺼이 만나 도와준 모둔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이 보고서는 멕시코의 인권 특히 노동권에 끼친 나프타의 영향에 대한 각분야 전문가의 검토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멕시코의 경제와 사회에 대해 나프타가 끼친 직접적인 영향과 간접적인 영향을 검토할 것이다. 그 다음에 국제법과 국내의 헌법과 법률의 맥락에서 인권에 관한 멕시코의 국제적 의무와, 그리고 인권보호란 맥락에서 폭스 행정부가 제출한 연방법 개정안을 분석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씨유다드 주아레스의 산업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하여 마킬라도라 산업을 평가할 것이다.

 


. 멕시코 경제와 사회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1.      나프타와 멕시코의 개발

지난 10년동안 나프타는 북미대륙의 복합적이고 비대칭적인 통합에 적응하는데 참으로 유연하다는 것과 어떤 심각한 퇴보도 저지할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이것은 미주자유무역지대 FTAA를 둘러싼 회담들의 몸부림이나, 2005년 봄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이 부결된 이래 EU 통합과정에 대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체와 비교할 때 참으로 커다란 성과이다.

나프타는 북미에 대한 경제적 통합 수준에 대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미국의 상대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의 교역지향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하킴과 리탄은 강조해왔다,

미국과 멕시코간의 무역이 매년 2,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것은 10년전의 네배에 해당한다. 멕시코는 수출의 90%, 수입의 70%를 미국과 하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의 제2의 교역상대국이 되었고, 쌍방의 교역이 현재와 같은 비율로 성장한다면 곧 제1위의 상대국인 캐나다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다.라고

 

역내무역은 1990년과 2003년 사이에 거의 3배나 증가했다. 미국에 대한 멕시코의 수출은 1990년 총수출의 70.45%를 차지했는데, 2003년에는 88.91%로 증가했다.

이러한 진보는 미구과의 쌍방교역을 GDP의 비중과 함께 살펴보면 훨씬 더 인상적이다. 멕시코의 경우 미국에 대한 수출은 1990년에는 GDP의 7%를 차지했는데, 2003년에는 23.9%가 되었고, 반면 미국의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수출은 1990년의 1.9%에서 2003년 2.5%가 되었다. 본래적인 역내교역은 실제로 미국은 43%에서 39%로, 캐나다는 39%에서 37%로 떨어진 반면, 멕시코는 18%에서 24%로 중가했다.

만약 역내교역의 경제적인 특화가 상대적인 의미에서 세계시장에 대하여 실제로 보다 큰 접근을 제공한다면(1995년의 전체교역의 3%에서 2003년은 6%), 역외수입품의 이러한 증가는 멕시코 회사가 아니라 멕시코에 있는 미국회사에 적용된 전략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북미 경제통합의 본질은 EU나 다른 지역에서의 경제적 통합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다른 지역에서는 경제통합이 무엇보다도 기업체들이나 부문들간의 교역을 통해서 작동하는데 반해, 북미에서의 내부 기업체간의 교역은 외국계 대기업(MOFAs)들의 행동들처럼 대륙통합의 두가지 지배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멕시코 경제는 오늘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의 경제에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어떤 분석자들은 정반대의 의견인데 반해, 한마디로 똑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멕시코 경제가 전체적으로 미국의 기업들과 과거보다 훨씬 더 확장적인 미국의 전략에 종속적이기 때문에, 대륙통합은 멕시코 기업들에게는 도약대로서 작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동시에 아주 흥미롭고, 통합이론에 관한한 독특한 역설을 밝혀주는 것이기도 하다. 역설은 다음과 같다. 멕시코 경제가 미국경제에 더욱 더 가까워진다면, 경제학적인 예견과 달리 전반적인 사회경제적인 조건이라는 점에서 보다 더 가까이 가는 대신에, 고용과 임금에 대한 경제적 통합의 실패가 멕시코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왜 그렇게 심각할 수 있는냐는 것이다. 이것이 나프타의 효과인가 아니면 세계은행이 주장하는 것처럼 나프타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인가? 아니면 나프타가 효과를 바라기 전이나 후에 멕시코 경제의 조정과 통제에 책임있는 국내의 기구들과, 구조적인 원인들에 기여해야 할 이러한 결과들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인가?

 

명백하게 나프타는 최소한 세가지 이유에서 캐나다나 미국에서 보다 멕시코에서 훨씬 더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첫째는 멕시코가 덜 개발된 상대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멕시코 정부가 하부구조에 대한 투자라는 측면이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권리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자신들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고, 셋째는 유럽모델과는 반대로 대륙통합이라는 북미모델은 경제와 사회와 기구들을 제1세계 경제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수단을 제공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 멕시코에서 매우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의 하나이다. 협정은 부정적인 영향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측과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칭송되어야 한다는 측으로 정면 대립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자유무역 경제 그 자체만이 아니라, 1910년 혁명이래로 정치적인 변화와 실천이 수년동안 이러한 가치들의 충족과는 거리가 멀었을지라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부의 공공분배가 공적가치체계에 뿌리박고 있는 사회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자유화에 대한 철학의 문제도 있다.

 

또한 이러한 양극화는 쌍방을 공격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정치적이고 분석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한쪽은 나프타가 유일한 해답이라고 주장하고, 발전을 지속하는데에 유일한 장애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Lederman, Maloney, Serven 등은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나프타의 교훈이란 책의 서문에서, 이 협정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프타는 1991년 정식협상이 시작되자마자 즉각적으로 세계적인 악명을 얻었다. 왜냐하면 그 출발이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무역협정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개발된 국가와 개발도상국가들 사이에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교역으로 이끄는 돌파구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장 그럴듯한 예상은 무역자유화가 멕시코가 북쪽에 있는 이웃 나라들을 따라잡게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중략)

나프타에 대한 높은 기대는 신고전학파의 성장과 교역이론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중략) 헥셔 올린 교역모델은 상품과 무역의 가격이 집중되면 실제 임금을 포함한 요소가격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다른 한편에선 코스타리카의 사회학자 Podofo Ulloa Bonilla는 이렇게 주장한다.

 

나프타는 시작된지 9년동안 8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 수치는 근로연령에 도달한 사람들에게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일자리 중 46.6%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덮을 수 없다. 멕시코는 매년 140만개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경제의 공식부문은 나프타가 시작된 후 단지 3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냈을 뿐이고, 민중들이 비공식부문에서 생계를 찾게 만들었다. 게다가 새로운 일자리 중 55.3%는 사회보장, 성탄절 보나스 그리고 연간 10일간의 휴가 등 세가지로 되어있는 법률적인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다. 2002년말 근로자의 단지 36%만이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았다. 나프타의 체결전과 비교하여 81,000개의 일자리가 줄었다.(-9.4%) 첨단수출부문에는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투입재가 이제는 수입되기 때문에 이전에 멕시코의 공급자가 잃어버린 일자리보다도 적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제조업 부문에서는 단지 500,000개, 연평균 62,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프타 기간동안 제조업 공장의 생산성은 노동시간당 53%가 증가하였다. 이러한 생산적인 노동은, 임금과 서비스, 그리고 사회보장체계에 대한 기여와 같은 간접비용의 감소 때문에, 36%나 덜 지급되고 있다. 어떤 종류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가는 미국의 경제순환에 높게 의존하고 있다. 2000년 11월부터 2002년 3월까지 17개월동안 미국은 커더란 어려움을 겪었고, 결과적으로 멕시코는 마킬라도라에서 287,000개의 일자리를 잃었고, 단지 40,000개의 일자리만 회복되었을 뿐이다.

 

분명히 나프타는 그것이 책임질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이 평가받아서도 안되고 그 범위밖에 있는 단점 때문에 비난받아서도 안된다. 그러나 나프타를 과대평가나 과소평가하지 않기 위해서는 협정 그 자체에 대한 관계나 연관의 성격에 따른 세가지 종류의 효과에 대한 방법론적인 구분을 만드는 것이 최선인 듯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접적, 간접적 혹은 구조적인 효과들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간접효과가 개입요소에 의한 것이라면 직접효과는 협정의 조항으로부터 직적접으로 기인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두 종류의 효과는 협정의 어떤 조항 혹은 조항들에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또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이러한 접근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보다 더 큰 실상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나프타는 다른 법률, 규범, 규제 혹은 협정 혹은 그것의 결여에 대하여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효과를 갖는 합법적인 법률이라는 점은 차치하고, 정책과 경제계획 그리고 정치철학의 중요한 일부이기도 하기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그리고 방법론적으로 그 의도와 의미와 전반적인 목표가 한 나라의 경제적인 제도에 침투해 있는 다른 규범이나 제도에 침투하는 자유무역협정과, 예를 들어 결사의 자유와 조직할 권리의 보장에 관한 ILO 제 87호 협정(1948)처럼 멕시코에 제한적인 영향밖에 미치지 못하는 국제적인 협정사이에는 명백한 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협정 그 자체의 조항에 직접적이나 간접적으로 돌릴 수 없는 이와 같은 영향이나 효과들은 구조적인 효과로 구분될 것이다.

 

2.      자유무역의 승자와 패자

칼로스 살리나스 정권시절에는 나프타 협상은 경제적인 성장과 그에 따른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추진되어 왔다.

 

여하간 협정이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초국적자본과 거대 국내기업이었고, 그것들은 점차로 소규모와 중규모의 기업에 영향을 끼쳤다. 사회적인 의제는 협정밖으로 밀려났고, 유사한 협약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거나 인민들의 사회적인 권리나 환경상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었다.

 

분명히 자유무역협정의 주요 수혜자는 거대 초국적 자본이었다. 그 증거는 멕시코의 가장 큰 회사들이 GDP의 15%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최대의 초국적 회사들의 멕시코 자회사들의 판매는 937억 700만 달러로 증가했고, 이것은 GDP의 15%에 해당한다(중략). 3개회사의 전체 매출은 멕시코의 연간 석유수출액보다 6.5배나 크다.

 

저임금이 투자자들에게 주된 경쟁력있는 이득이었고, 그에 따른 노조에 대한 통제는 실제 소득의 계속적인 감소와 외국계 기업과 국내 기업에 대항하는 단결권을 보호하는 보장의 제거와 높은 사회적 비용을 가져왔다.

 

노동법률가인 Arturo Alcalde에 따르면:

정부는 나프타에 돌릴만한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사회보장을 제외하고는 경제성장은 달성되지 않았다.

미국과 캐나다와 맺은 자유무역이 대다수에게 이롭지 않았다는 것은 수백만 멕시코인들의 빈곤화가 증명한다.

멕시코 농촌의 위기 때문에, 남녀를 포함한 수천명의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기위해 도시로 이동하는 동안, 멕시코 국가는 미국의 식량에 문호를 개방했다. 그 미국이란 나라는 농사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작물보호조치나 다른 조치로 멕시코의 농작물에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나라이다. 이러한 현실이 무역협정하에서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수천명의 멕시코인들을 이농으로 몬 것이다.

 

나프타와 나란히 노동과 환경에 관한 주제도 포함할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도, 예를 들어 변동시간 임금제의 증가처럼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사회보장의 적용을 받지만, 그 보장의 질은 매우 열악하다. 마킬라도라에서 노동한다는 것은 피를 말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똑 같은 일을 수시간동안이나 해야 되기 때문에, 근로자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 중에서도, 특히 눈과 허리 그리고 정신적인 질병을 가져온다.

 

분석가인 Rosa Alvino Garavito는, Sedesol의 자료에 따르면, 530만명이 현재 빈곤속에서 살고 있고, 그 중 250만명이 극빈층이고, 그들의 수입으로는 음식물을 포함한 기본적인 수요도 감당할 수 없다.

 

Rosa Alvino Garavito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3.6.18. 빈센트 폭스는 가구당 수입과 지출이라는 2002년 보고서에 따라서 34만명은 더 이상 식량결핍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나아가 외국으로 나간 가족들이 보내준 돈이 2000년의 40억 달러에서 금년에는 100억 달러로 심대하게 증대한 것처럼 정책들이 효과를 낳고 있는 반면에, 경제정책들은 부를 집중시켜 좋은 성과를 낳아온 임금체계를 가진 빈민들의 공장처럼 계속 기능하고 있다.(중략)

사실은 상위 20%의 가구가 전체수입의 50%를 차지하는 것이다. 1984년부터 2000년까지 부의 집중이 감소되기는커녕 더 나빠졌다. 소득이 낮은 20%의 가구는 심지어 전체 수입의 20번째에도 들지 못한다.

 

민주혁명당 국회의원인 빅토르 수아레즈와 전국노동자소유공장연합의 고문에 따르면, 나프타의 목적은 경제에서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심화시키는 것이다. 바로 그점에서 민중의 이익보다는 강자의 이익을 편드는 사법체계가 강화된 것이다. 전제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뒤따르는 불안정성이 투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게 아니고, 보장의 최소한의 수준을 제공하고 개인에 속하는 재화를 존중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결국 각 개인에 대한 존중이다.

 

자유무역협정은 개발에 대한 전망을 제공하지 않는다. 협정의 목적은 인민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체들이 자기 몫을 증가시킬 수 있는 합병자들을 위한 모델일 뿐이다.

 

조약에 서명하는 목적은 그것을 의회가 동의한 헌법적인 법률로 바꾸므로서 경제정책을 되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1986년 UN이 채택한 다음과 같은 개발에 대한 권리선언에 반하는 것이다.

 

개발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과정을 포괄하는 것이고, 그것은 개발에 대한 그들의 적극적이고 자유롭고, 의미있는 참가와 그로부터 얻어지는 이득의 공정한 분배에 기초한 전체 민중과 모든 개인의 복지의 끊임없는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멕시코가 갖은 비교우위를 감안할 때, 남아있는 유일한 선택은 저임금과 불완전한 노동조건을 제공하여 마킬라도라 모델을 강화하는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한술 더 떠서 미국과 경쟁이 안되는 농업과 제조산업은 발전시킬 수 없으니까 자연자원 (물, 동물과 식물자원의 유전적 다양성, 좋은 경관과 관광적 가치를 갖는 지역) 속에 있는 멕시코의 부를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 분야들과 석유자원을 고갈시킬지도 모르긴 하지만, 미국을 위한 안전하고 믿을 수 있고 값싼 에너지 시장을 활용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은 경제적 사회적 모든 구조에 영향을 끼친다. 산업발전은 본질적으로 농촌지역의 자유무역의 부정적인 결과와 연계되어 있다.

 

중국과의 경쟁압력 때문에, 마킬라도라 시스템은 불안정한 노동조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젊은 노동자들의 새로운 물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농촌지역으로부터 왔고, 대부분은 불안정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하는 농민이고 원주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값싼 농작물의 수입 때문에 그들의 원 거주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프타 서명 후 10년 동안 농촌지역에 살던 대략 200만명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시스템은 보다 더 큰 불안정도 감수하려고 하는 값싼 노동과 노동자들을 요구한다.

 

통상협상의 부대표는 긍정적인 전망에서 본 것이기는 하지만, 흰 옥수수 재배자의 98%는 자급적인 농부들이고, 이들은 외부의 다른 부분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의 소득은 불충분하고 보다 높은 수입을 위해서 마킬라도라에서 일하길 원한다. 그들은 기회를 갖은 세대이다.

 

전에도 마킬라도라는 있었다. 하지만 유망하고 강력한 제조산업도 함께 있었다. 1982년부터 현재까지 수입의 80-90%는 소비재와 중간재였다. 국내 제조업 생산능력은 해체되어 왔고, 지난 4년동안에 4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멕시코 경제는 완전히 종속적인 소비경제가 되었다.

 

높은 소비와 더 나은 질이라는 약속은 사회계층에 대한 분석을 정당화한다. 누가 세계적인 소비에 대한 접근권을 가졌는가? 구매는 인구의 작은 부분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연속의 반대편에는 빈곤 속에 사는 민중이 있다. 추진되고 있는 가치는 소비와 관계된 것이고 그러한 가치는 사회적인 지위에 더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돈의 부족에 직면한 민중들은 수입을 위하여 비정상적인 경제에 의존한다. 오늘날 일자리의 60%는 비공식부문에 있다.

 

 

3.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권리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들

 

a.       생활수준과 음식물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멕시코는 미국의 농업식품산업의 쓰레기통이 되었다. ICESCR 제11조에 따르면, 서약에 따른 국가 정당들은 충분한 식량을 포함하여 충분한 생활수준을 위한 권리의 실현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ESCR 위원회의 일반 주석 제12조는 충분한 식량을 위해서는 적대적인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약이 요구하는 것과 반대로 개방된 국경과 세관의 부패와 함께, 건강에 대한 조사가 없다. 멕시코에 들어오는 음식은 미국시장에서의 소비가 거절당했거나 인구의 최하층을 겨냥한 가격대의 것이다. 이러한 예 중의 하나가 암을 유발하는 곰팡이를 만드는 aspertosina와 함께 팔리는 옥수수이다. Aspertosina가 함유된 옥수수는 미국에서는 동물 소비용으로 팔릴 것이고,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오직 공업용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 이와 똑 같은 제품이 값싸게 팔리는 멕시코로 수출되고 대중들은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런 종류의 값싼 음식을 소비한다. Quelbuleterol이 함유된 고기, 항생제가 과도하게 들어있는 닭고기, 우유 대체물 혹은 식물성 유장으로 만들어진 성장호르몬이 들어있는 우유도 똑같다. 거기에서 우리는 쓰레기, 찌꺼기, 유해한 화학성분들을 먹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온건한 말로 영양과 건강에 대한 진지한 고려를 하면서, 사람들이 먹는 것에 따른 씨뮬레이션은, 제1세계와 제3세계에 만연한 질병과 함께, 영양결핍으로 고통받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비만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수입자유화와 재조직과정의 실패

캐나다가 나프타를 체결할 때는, 협정에서 달걀과 유제품을 제외했는데, 멕시코는 이 모든 것을 포함했다. 15년간의 조세감경계획이 합의되었고, 그 기간동안 수입쿼터는 이 수준 이상에는 고율관세를 물리기로 하고 유지되는 것으로 하였다. 그 기간동안 생산의 재조직과정이 완료될 것이고, 경쟁할 능력이 없는 250만의 생산자들은 화훼나 채소와 같은 다른 분야로 특화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두해 동안 자유주의가 생겨났고, 재조직에 대한 어떠한 투자도 없었으며, 거대한 수입에 대한 세금부과도 없었다. 여하간 농촌은 더 이상 얻을게 없다는 운동에 의해 촉발된 압력의 결과인 농촌을 위한 전국협정이 2003년에 서명되고, 쿼터를 넘는 흰 옥수수의 수입은 금지되거나 국내생산가격이 오를수 있게 한 세금의 징수가 이루어졌다.

 

게다가 옥수수의 자유수입은 옥수수떡 소비자를 위한 가격은 떨어뜨리지 않았다. 1983년에는 1 킬로당 80센트였던 것이 지금은 6 멕시칸 페소로 떨어졌다, 왜냐하면 수입업자와 생산자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증가시켜 왔기 때문이다. 수입 옥수수의 가격이 증가할 때, 옥수수 떡값도 올라간다. 그러나 수입가격이 떨어져도 옥수수 떡의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고정가격은 높은 수준이다. 우리는 지금 중간업자에겐 많은 이득을 주면서 소비자들에게는 불충분한 교역체계를 갖게 된 것이다.

 

경제문제에 책임있는 공무원들에게서 들은 나프타의 영향

상무부 부장관과의 인터뷰는 중심적인 경제문제에 직접적으로 책임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비젼을 보여줬다. 인권 특히 노동자와 전체 민중의 복지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과 관련한 임무에 직면하여, 나프타가 대부분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점과, 경쟁이 대다수 멕시코 소비자들을 위한 상품의 가격과 질을 통한 접근의 진보를 허용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장과 고용 그리고 복지라는 측면에서는 그 효과가 긍정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명백하다.

 

자유무역과 멕시코 경제의 국제적인 통합은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어떤 다른 대안도 수출자유지역에서의 성취와 외국인 투자의 성장에 해로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된다. 다른 부서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도 만약 자유무역 모델과 자유무역이 선택됨으로서 요구된 조건과는 다른 선택을 할 경우의 일자리의 감소와 투자의 감소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 놓았다.

농업위기와 소규모나 중규모 기업들의 실패라는 명백한 문제들을 고려할 때, 그들은 이러한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것들이 자유무역정책 특히 특별한 상업협정의 결과라는 건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그것들이 현재와 같은 국제적인 경쟁조건에 적응할 능력이 없는 저개발된 부문의 결과라고 믿는다.

 

공무원들과 인터뷰하면서 눈에 띄는 것은 시민사회의 참여가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명백히 구분된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기술적인 면을 구별하는 방식이다. 한편으론 일반적인 측면과 사회적 환경적인 이유에 대한 사회적 조직들의 참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론 경제적 투자와 무역협정과 조약의 서명, 그리고 경제적인 조건을 규정하는 주제에 배정된 노조와 회사조직들의 참가가 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이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만이 말하자면 다른 사회 부문이 아니라 대기업들만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를 들면, 만약에 우리가 옆방 회의(side room meeting : 협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체들의 회의)를 듣지 않는다면, 협상은 없는 것이고, 그들은 그 멤버들에게 동의되는 부문내의 위치에서만 협정문을 만들고, 이것이 나프타 채택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옆방 회의의 실험 동안, 노조는 노동, 인권 기타 일반적으로 협상의 맥락에 영향을 미치는 그리고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사회적 기구라는 주제에 그것이 매우 기술적이라는 이유에서 기본적으로 참여했다. 자문 위원회는 노조, 환경운동가들, 법률가들, 그리고 학자와 언론이 있었다. 노조와 관련된 주제는 매우 기술적이었지만 사회적 기구와 관련된 주제는 훨씬 더 세계적이었다.


b.     여성의 권리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보다 일반적인 분석에서는 나프타 그 자체는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많은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고, 오히려 1980년대에 시작된 멕시코 경제의 개방을 법제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에 대한 세계화의 영향은 나프타의 영향력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경제의 상승과 하강과 같은 변화를 볼 때 보다 더 명료해진다.

 

불안정하고 녹초를 만드는 노동조건들

여성은 남성들이 받는 것보다 나쁘지 않는 고용조건을 향유해야 한다는 ICESCR 제7조에 인정된 권리와는 반대로, 매우 낮은 임금과 야간의 장시간 노동과 같은 사람을 지치게 하는 노동조건들에도 불구하고 마킬라도라에서 일자리를 구해야만 하는 여성들에게, 통상협정은 특히 차별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다른 경우엔, 농촌으로부터 이주해 온 여성 혹은 자기 남편이 일자리를 못 구하는 여성들은 자기 고용이나 불안정한 조건과 극단적인 낮은 임금으로 비정규적인 일자리를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들은 18 내지 20시간 이상을 일하는 날도 있고, 그런 날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자신들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들의 가족의 건강과 복지에도 당연하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마킬라도라의 여성들

아마도 멕시코 경제의 세계화에서 가장 유명한 영향은 마킬라 산업속에 있을 것이다. 가장 초국적인 기업들은 그들 공장의 하층 노동자로서 여성을 고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 결과 지난 수년전까지 공장에서의 노동력의 구성은 80%이상이 여성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도 훨씬 신중하고 복종적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남성들보다도 보다 낮은 임금과 잔업, 그리고 보다 긴 노동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보다 더 많은 남성과 보다 많은 어린이들을 근로자로서 고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현재 공장의 여성들의 비율은 대략 60-70%가 되었다. 여성들이 공장에서 근로자의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그들은 계속 하층에 머물렀고, 감독자나 다른 관리자의 역할을 맡는 경우는 드문 경우이다.

 

임산부에 대한 차별

ICESER의 10조(2항)은 여성은 출산 전후의 상당한 기간 동안 특별한 보호가 주어져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여하간 그러한 규정과는 반대로 저임금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공장에서 아직도 성차별에 직면하고 있다. 공장의 임산부에 대한 광포한 성차별에 대해 싸우겠다는 지방정부나 주 그리고 연방정부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성차별은 계속되고 있다고 노동자들은 말하고 있다. 많은 공장에서 여성들은 아직도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임신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야만 하고, 만약 임신이 되었을 때는 해고된다.

 

전통적인 사회적 역할의 변화

여성들의 공장으로의 이러한 이주의 심각한 효과의 하나는 전통적인 사회적 역할의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터뷰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세계화로부터 야기되고 나프타로 법제화된 가장 중요한 변화의 하나로서 특징지워졌다.

 

많은 가족들은 가족을 부양할 충분한 수입을 얻기 위해 부부가 일한다. 이것은 가정에서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의 파괴이고 사회를 이루는 어떤 요소들 사이에 갈등을 야기해 왔다. 일터에서 여성들의 증가의 결과가 사회에서 여성을 위한 목소리가 증가시켰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많은 현재의 사회구조들이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 나이가 여성들은 보통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있고, 그것은 사회속에서 그들의 역할을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사회적 동력을 준비하고 있다.

 

c.     어린이들의 인권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세계화의 영향과 그것의 나프타를 통한 법제화는 어린이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야기해 왔다.

 

공장에서의 유년 노동

이러한 지역에서의 일차적 효과는 16세라는 최소노동연령 아래의 어린이들이 노동자로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버는 낮은 임금이 가족을 부양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그들의 가족을 돕기 위하여 종업원으로 들어간다. 공장에서 일하는 어떤 어린이들은 학교에 다니지만, 대부분은 작업량을 맞출 수가 없다. 호황기에 어린이들은 위조된 서류나 혹은 그런 서류없이도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공자의 쇠퇴 때문에 보다 적은 어린이들만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일자리에 대해 더 많은 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농업 산업의 파괴의 결과

농촌산업의 파괴는 어린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지역의 어린이들은 더 큰 빈곤 속에서 살고있다.

게다가 그들의 가족들은 흔히 산업수준이 높은 도시로 이주하고, 이러한 도시에서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비싸지만, 전기나 수도물과 다른 기본적인 필수시설이 없다. 대부분 도시나 마을의 외곽에 수많은 공장들과 함께 있는 이러한 공동체들의 존재는 나프타의 이행 이후 증가되었다.

 

멕시코 정부의 대응

ICESER(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서약 1981)의 국가부문은 모든 어린이와 청년들을 위한 보호와 지원을 위해 그리고 그들을 경제적 사회적 착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해왔다. (10조 3항)

이러한 임무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연방이나 주 혹은 지역 정부가 공장에서의 아동 노동과 싸우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다.

사실 공식경제에서의 아동노동은 경기침체 때문에 하락하고 있는 반면에, 이러한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현재 비공식 경제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최저소득계층에 속하는 어린이들의 상황이 나프타의 이행으로 어떤 식으로든 득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는 통계적이든 일화로든 간에 단 하건도 없다.

 

d.     일할 권리와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나프타의 영향

 

ICESER의 6항과 7항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와 적정한 임금과 적정한 삶 그리고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 조건을 포함한 공정하고 호의적인 근로조건을 향유할 권리를 갖는다. 멕시코느 이러한 권리를 지킬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여하간 이러한 의무에도 불구하고, 나프타는 멕시코의 고용과 근로조건에 수많은 악영향을 가져왔다.

 

통합과 이주

노동시장 통합에 대한 분석에서 Raymond Rovertson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프타 이후 멕시코에서 무역과 해외 직접투자는 상당히 증가했지만, 이 논문은 놀랍게도  노동시장의 통합이 증가되었다는 증거를 거의 찾지 못했다.(중략) 멕시코의 국경지역은 멕시코 내륙보다도 미국에 더 통합되어 있었지만, 나프타 이후 이러한 패턴의 변화는 거의 없다. 게다가 국경지역이든 내륙지역이든 더 통합된 것같지도 않다. (중략) 티쥬어나와 씨유다드 주아레즈 지역으로의 전반적인 집중률이 증가되었다는 증거는 있지만, 이러한 효과는 건설과 같이 비교역적인 사업과 더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결과는 북미에서 어떠한 요소가 노동시장을 통합시키는지에 대한 논쟁에 기여할 것이다. 무역, 자본이동 그리고 이주는 모두 다 노동시장을 통합시킬 수 있다고 이론은 말한다. 나프타는 교역과 자본이동을 자유화했지만 이주에 대한 규제는 풀지 않았다. 통합이 교역에서 특별하게 증가되었다는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해외직접투자가 강화된 산업들이 이주 가설에 대한 형식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위에 요약된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은 나프타와 멕시코의 노동시장에 대하여, 무엇이 교역의 개혁에 따른 수요변동의 기능인지와 무엇이 이주 물결의 결과인지를 떼어내기란 아주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Hakim과 Litan은 미국과 멕시코의 통합의 성격과 범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주의 흐름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세나라 사이의 경제적 통합은 이미 교역과 투자를 넘어 상당히 진행되었다. 멕시코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보다 높은 급여를 위해서 미국으로 이주하고 있다. 멕시코 출신 2,100만명 이상이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이들 중 약 900만명이 멕시코에서 태어났고, 400만명이 미국에서 불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다. 멕시코인과 멕시코-미국인들은 현재 매년 약 80억 달러를 그들의 공동체에 보내고 있다.

 

미국으로의 이주는 역사적인 문제이다. 최근에는 특히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가 가속화하고 있다. 전에는 몇 개 주에서만 일어나는 아주 지역적인 문제였는데, 지금은 전국에 걸쳐 보편화되었다. 남아있는 것은 북쪽지방에 도착하는 것이다.

 

환경

나프타가 정부에 의해 지난 수년동안 수행된 정치경제적 조치와 함께 교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지라도, 교역의 성장은 고용을 촉발하지 않았다.

사회의 많은 부문이 협정이 높은 투자와 생산수준을 유지시킬 것이고 고용의 성장을 유지할 수 있고 그리고 이처럼 국제경쟁의 구조 속에서 장기간의 경제발전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협정의 서명을 지지했었다.

10년이 지난 후 멕시코에 대한 해외직접투자(FDI)가 엄청나게 증가해서 멕시코가 개도국중에서 4번째로 그리고 남미에서 첫번째로 투자를 많이 받기 때문에, 이러한 가정은 부분적으로는 옳다. 여하간 대규모 수출부문인 제조업 부문에서 1993년에 비교하여 2001년에는 4.2%나 일자리가 줄었다.

 

근로조건의 악화

무역협정은 노동자의 권리와 근로조건을 훨씬 더 악화시켰다. 만들어진 일자리는 저질이었고, 그것들의 대부분은 법률에 의해 규정된 여러 혜택 중 사회보장과 휴일이 없는 것이었다.

노동의 세계적인 맥락은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한다.

‘… 멕시코에는 전 노동인구의 16%인 6,481,166명이 최저임금을 벌고 있고, 24.4%인 9,875,748명이 최저임금의 두배를 벌고 있다. 최저임금의 한배나 두배를 버는 사람들이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바로 그 위에 다른 지표들이 노동조건의 악화를 폭로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노동인구의 21.3%가 높은 착취의 정도를 나타내는 노동력의 사용인 주당 48시간 이상 일하고 있고, 5.4%는 불안정 노동에 해당하는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고 있다. 법정시간 이상의 노동과 사회보장의 혜택이 없는 많은 노동자들(62.7%)은 이 나라 노동력의 비정규성의 높은 정도를 나타내는 특징이다. 고용기간이 있는 노동자의 17.8%, 없는 노동자의 20.6%가 소규모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멕시코 통계연구소에 따르면, 비정규부문에 일하는 경제활동인구는 56% 이상이다. 이것은 경제가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 능력이 없다는 것이고, 이것은 일자리 감소의 확대로 이어진다.(1982년부터 2003년까지 약 1,800만명) (중략)

일자리의 불안정성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급여 노동자의 44.5%가 노동계약이 없고, 25.6%가 농업이외의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불안정성은 비헌법적인 노동시간과 급여로 측정되는 높은 착취수준과 관련이 있다.

 

생산적인 일자리는 멕시코로 오는 대신에 국경 바로 건너에 있는 마킬라도라 지역으로 이동했다. RISEL 보고서에서 보는 것처럼, 임금과 사회보장과 노동자의 권리가 심각하게 억압되어 있는 이 수출 단지는 다른 멕시코 경제와는 고립되어 있다. 그것들은 나프타를 멕시코 국민들에게 받아들이게 했던 전제인, 멕시코 산업이나 국내 시장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멕시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보상이 악화되었다는 것은 결코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안정적인 정규직의 비중이 감소하는 동안 새로이 노동시장에 들어온 거대한 다수는 멕시코 비정규 부문의 불안정한 낮은 급여의 세계에서 살아야만 한다.

 

자유무역협정은 전반적인 논리 위에서만 평가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결과는 불평등했고, 급여와 노동조건의 개선작업의 예상은 빗나갔다. 심지어 수출회사의 급여조차도, 노동조건이 더 불확실하게 되고 있고, 일반적으로 구조적인 수준에서 노동자를 위한 조건이 나빠지고 있는 미국에서보다도 더 싸게 팔아야 된다는 논리에 직면했다.

최근 마킬라에서의 급여의 침체는 멕시코 노동자계급의 실질 구매력이 악화되었다는 증거이고, 이것은 기왕의 인터뷰와 앞으로의 인터뷰에 따르면, 날마다 주로 노동유연성과 값싼 인력을 포함하여 초국적자본이 남아 있을 수 있는 보다 나은 조건을 요구함에 따라, 전국노동자의 평균수입이 개선되기는커녕 실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멕시코에서의 노동권

 

1.      국제 노동권 법률하에서의  멕시코의 책무

 

a.      일반적 노동권

1981년 멕시코는 ICESCR을 비준하였고, 특히 근로자와 그의 가족들의 정상적인 삶을 보장하는 공정한 생활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ICESCR 제7조는 멕시코가 존중해야 할 작업장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제11조는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그와 그의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동일임금이 될 수 없고, 명백히 지역적으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정부는 어린이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공식 경제든 비공식 경제든 일해야 할 필요가 없도록 보장해야만 한다.

 

7조는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조건을 보장하고 있다. 정부는 사적기업이 안전장구와 적정한 훈련을 포함하여 근로자에 대한 기본적 안전수준에 합치하는 근로조건을 제공할 것을 보장해야만 한다.

 

씨유다드 주아레즈의 노동자들이 만든 성명서에 따르면, 마킬라에서는 고용주가 이러한 안전의 최소한의 수준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b.     노동조합의 권리

ICESCR 제8조는 국가에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권리를 보장하고, 그리고 그러한 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막을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자유로운 결성의 권리는 문화와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CPR)에 체계화되어 있고, 노동조합 결성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러한 권리에 대한 광범위하고 명확한 보장을 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여하간 ICESER은 국가가 노동조합을 방해하는 것을 포함한 많은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두 협약의 밀접한 동반성은 잠재적으로 그것이 만들어진 정치적 맥락에 기여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결사와 노조의 결성은 자유시장과 민주적 사회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ICESER에 체화된 노동할 권리와 다른 기본적인 경제적 권리 또한 중요하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사성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경제, 사회 , 문화적 권리를 절대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

 

ICESER에 참여하는 국가는 조직할 권리를 보장하고 그 권리를 방해하는 것을 막아낼 의무가 있다. 멕시코가 ICESER에 가입할 때, 제8조는 헌법과 그와 연관된 입법 절차에 따라 수행될 것이라는 해설적인 성명서를 작성하였다. 이 성명서는 여하간 멕시코가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제약하지 않는다. 조직권은 다른 노동권의 기초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집단적으로 협상하고 관심사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고, 일반적으로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ICPPR과 ICESER은 예외조항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은 일반적으로 좁게 해석되어 왔고, 그 추정은 일반적으로 국가는 이러한 권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국가부문은 적정한 입법과 사법적인 구제를 보장하고 이러한 권리의 진보적인 실현을 보장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책임이 있다. 국가는 권리보장을 수행하기 위한 최대한 이용가능한 자원을 이용할 것으로 요구된다. 국제법하에서 정부는 또한 일반적으로 국가에 의한 것이든,  사적부문에 의한 것이든 간에 어떠한 방해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규제를 제공할 의무를 갖는 것으로 간주된다.

 

멕시코 역시 ILO 제87호 협정과 노동에 관한 기본적 원칙에 관한 선언(노동자의 권리선언), 초국적 기업과 사회정책에 관한 원칙들의 삼자선언(삼자선언)에 가입했다.

여하간 국내의 입법은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충분한 보호를 보장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 협정에 채택된 원칙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단결의 자유와 집회를 조직할 권리에 관한 협정 제87호는, 국가부문에 자유롭게 조직할 권리와 함께 개인과 조직 그리고 공적 권위에 의한 방해를 막아낼 의무를 지웠다.

 

게다가 결사의 자유에 대하여 ILO위원회는

 

87, 98호 협정의 규정과 원칙을 낳은 노동조합권의 행사를 보장하는 수준은 보충될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인 다른 보장이 노동관계나 노조활동, 혹은 부문간 협상과 같은 그 나라의 전통과 어떤 주어진 나라의 어떤 국가의 헌법과 법률이 되도록 추가되어야 한다.

 

위원회는 개인에 의한 폭력이 인권보호를 보장할 책임이 있는 국가에 전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조합을 만들 권리의 파괴를 막고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할 의무를 더욱 더 강화하고 있다.

 

노동권에 대한 기본원칙의 선언과 초국적 기업과 사회정책에 관한 원칙에 대한 삼자선언은 ILO의 관리이사회에 의해 채택되었고, ILO 협정과 기본원칙에 충실하려는 국가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선언은 ILO 소속국가들이 ILO의 핵심원칙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더욱 강화하고 있고, 국가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체계를 제공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체계가 기업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을지라도 삼자선언은 노동조합활동가에 대한 차별을 금지할 의무와 자유로운 결사의 권리와 외국기업의 유치를 위해 조직할 권리에 대해 국가가 제한을 두는 것을 금한다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국가들이나 노동조합 그리고 기업들간의 분쟁의 해결이 먼저 국가차원에서 결정되어야 하고 만약 이것이 실패할 경우 각 부문들은 초국적 기업에 대한 ILO의 삼자 소위원회에 항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삼자선언은 ILO 소속 국가들이 협정 제87호를 포함한 ILO의 핵심원칙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멕시코의 ILO에 대한 가입 특히 협정 제87호에 대한 비준은 멕시코 국가가 조직할 권리에 대한 폭력을 금하고 규제하며 가해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ICESCR과 ILO 조약 하에서, 멕시코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할 국내입법을 할 것과 그것들이 자유롭게 행사될 수 있는 분위기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는 또한 노동조합 활동가들에 대한 폭력의 가해자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이 수반된다. 나아가 정부는 이러한 권리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고 제3부문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      미주 상호체제 조약하에서의 멕시코의 의무

 

a. 일반적 노동권

 

인권에 대한 미주상호체제보장은 광범위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산 살바도르 의정서 제7항은 노동에 관한 권리가 즉각적이고 공평하고 만족스러운 조건하에 존재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ICESCR처럼 의정서는 국가가 노동자들이 그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생활임금과 일터가 안전하고 위생적이도록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

 

현재의 노동조건은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고, 멕시코 정부는 이러한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지키지 못했다. 이러한 권리들이 미주내 인권법정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멕시코가 이러한 권리를 보장할 국내적 입법활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나프타는 그 자체로 어떤 인권을 강화하고 보장할 구조를 제공한다. 노동협력에 대한 북미 협정(NAALC)은 노동법의 각 부문에 의한 순응과 효과적인 강화를 추진한다. 멕시코는 1993년에 NAALC를 비준했고 멕시코의 노동법이 노동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강화될 것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멕시코는 높은 노동수준 특히 NAALC의 11가지 노동원칙을 계속 증진해야한다. 노동측면의 협정은 그들의 권리가 파괴되고 있는 노동자들이 행정부나 사법적 그리고 의사 사법적 혹은 노동 법정에 대하여 적정한 접근이 주어져야 할 것을 보장하고 있다. 그것은 각 부문이 공평하고 공정한 진행과 독립적이고 편파적이지 않은 법정과 같은 과정적 보장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캐나다와 미국 행정부는 멕시코의 노동법 침해에 대한 여론을 청취할 자격이 있다.

 

b. 노동조합의 권리

 

인권에 관한 미국 협정은 특히 노동조합과 관련한 결사의 권리를 보장했다. 이 협정은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의 충족을 언급한 특별한 조항인 제26조를 가지고 있다. 제26조는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 관한 일반적 해석에 관한 위원회처럼, 이러한 권리의 진보적인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협정은 여하간 사적 개인으로부터 이러한 권리의 침해를 막는 국가부문의 어떠한 특별한 의무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것은 다른 법체계로 설명할 수 있는 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대한 미국협정에 대한 추가 의정서(산 살바도르 의정서)가 인권에 대한 미국협정에 체화되어 있는 정통적인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뛰어넘는 노동조합의 권리에 대한 보장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전망에 대한 의구심을 분석할 필요는 없다. 의정서에 있는 권리의 대부분이 협정의 조항에서 직접적으로 강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권리에 대한 침해에 관한 항의는 미주상호체제 속에 들어올 수 있다. 의정서에 규정된 권리의 범위는 조합에 가입하고 파업하고, 하나의 노조에 대해 가입을 요청당하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노조가 자유롭게 기능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넓다. 의정서는 또한 충분한 국내의 입법과 이러한 권리의 보호를 보장할 만큼 충분한 수단을 강구할 국가의 충분한 의무를 제출하고 있다.

 

어떤 국가가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권리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을 금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들로부터 사적인 행위자를 금지해야만 한다. Baena Ricardo에서 미주상호인권법정은 노동조합의 권리에 관하여 결사의 자유는 노동자의 합법적인 이익을 방어하기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인권이라는 법 아래에 있다.

그에 대한 자문단 의견의 제18조는 미주상호인권법정은 국가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을 존중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으며, 국가는 사적 고용주에게 이러한 권리의 파괴를 허용할 수 없다. 계속해서 이러한 권리가 기본적인 존엄을 보장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위한 사법적 행정적인 보장책을 갖출 의무가 있다고 특별히 강조하고있다.

Baena Ricardo이나 자문 의견도 이러한 권리에 대한 사적부문의 침해를 특별하게 다루고 있지 않지만, 국가는 비국가 행위자에 의한 인권침해를 막고 조사하고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벨라즈퀘즈 로드리게스 원칙은 노동조합의 권리에 적용될 수 있다. 그것들이 산 살바도르 의정서 하에서 몇 안되는 시행가능한 권리의 하나라는 사실은 노동조합권의 중심성과 국가는 제3부문의 침해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확실한 원칙의 확장을 보강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주상호체제하에서는 유엔조약과 마찬가지로, 멕시코도 노동조합권의 침해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멕시코 노조 활동가들의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한 조사는 멕시코 정부가 사적 행위자들로부터의 폭력을 막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노조활동가들에 대한 이들 그룹의 폭력을 고무하고 어떤 경우에는 지시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노동권에 대한 헌법적 법률적인 보호

멕시코의 법률과 헌법은 일반적으로 인권에 대한 그리고 특히 노동권에 대한 강력한 보호를 담고있다. 심지어 노동권 찬양논자들도 현재의 법률이 시행되기만 하면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될 것이라고 인정한다. 여하간 실제로는 이러한 보호가 효과가 없고, 정부든 사법체계든 혹은 사적 기업들이건 간에 법률의 문자나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      멕시코 헌법

 

1917년 멕시코헌법은 당시로서는 가장 진보적인 것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노동자에 대한 확장된 보호를 담고 있으며,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근로자를 보호할 법률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선택된 작업이 불법만 아니라면 직업과 공장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123조는 모든 사람이 위엄있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할 권리를 선언한다. 특히 의회가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고, 미성년자의 고용을 제한하고, 임산부를 보호하며, 지역과 직업에 따른 최소임금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 123조는 작업상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조건들과 노조와 직업조합을 만들 권리와 파업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b. 연방노동법률

 

멕시코에는 연방 노동법(FLL)과 관료 법률이라고 알려진 공공노동자법 두가지가 있다.

 

연방노동법(FLL)이 나프타가 사적부문 근로자들에게 거의 전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이 보고서와 가장 관련이 있다. 연방노동법은 최장 노동시간, 임산부, 최저임금 설정, 아동노동의 제한 등에 관련하여 최소한의 기본적인 보호를 담고있다.

 

마킬라는 연방노동법에 의해 규제된다. 그들은 최소임금을 주지만, 실제로 이것은 어떤 한 가족에게 필요한 최소한이 아니다. 급여는 하루에 46.85 멕시코 페소인데, 미국은 시간당 임금이 60페소이다.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살아남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한다.

 

회사들은 법률적인 규정을 지키고 있다. 문제는 급여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하루 60 페소로는 가장 기본적인 것도 지불할 수 없다. 교통비만 하더라도 26페소가 든다. 정부는 이주를 부추길 임금인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빈센트 폭스는 정권을 잡은 이래, 노동법상의 보호를 약화시킬려고 시도해왔다. 2000년에 공식적인 조합이 노동자를 통제하는 메커니즘을 비난하는 결사의 자유와 노동자 민주주의에 대한 20가지 공약을 서명했다. 노동계 지도자들은 이러한 약속이 존중되지 않았고, 행정부 자체가 이것들은 선거용 공약이고 대통령은 그들에게 존중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동시에 그는 계속해서 멕시코 노동자의 권리를 뺏으려는 법률을 제안해온 사람을 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러한 제안들은 보다 값싼 노동자를 위한 압력에 맞서 진전된 노동보호를 추진해온 전국노동조합(UNT)의 반대에 부딛쳐 왔다.

 

나프타는 증가된 노동 유연화를 위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부속협정에 노동자 권리에 대한 보장을 담고 있다. 여하간 나프타가 멕시코에 끼친 영향 중 하나는 노동 유연성을 증가시키고 일반적으로 멕시코가 사기업들에 더욱 더 애원하게 만드는 연방과 주정부에 의한 제안들이다. 노동권을 제한하는 이러한 제안들에 대하여 나프타만이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노동권의 보호를 감소시키는 압력을 모든 수준의 정부에 대하여 증가시켰던 것이다.

 

폭스 정부가 제안한 노동법 개정은 잠시 동결되어 있지만 여전히 법안 계류중이다. 이러한 개혁은 노동부 장관의 이름을 따서 아바스칼Abascal 프로젝트라고 알려져 있다. 정부는 이 제안을 공식 노조인 CTM과 여러 산업의 대표자인 CROC와 함께 진척시켜왔다.

 

제안된 법률의 주된 목적은 기업들에게 유연성을 증가시켜주고, 사회보장이 없는 임시직 시간제 노동자의 고용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용주가 피고용자를 임시계약으로 고용하지 않으려 하고 대부분의 피고용자에게 사회보장을 제공하도록 하는 현재의 노동정책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이다.

 

 

게다가 제안된 개혁안은 파업권에 대한 심각한 제약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심판소에서 파업을 허락받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증명서가 필요하다. 비슷한 규제가 이미 존재해 왔고, 그 결과로 최근 수십년간 파업이 거의 없었다.

 

나아가 작업장에 대한 노조독점이라는 현존하는 규제를 유지하려 할 뿐만 아니라, 노조를 변화시키려는 데에 관료적인 요구사항을 증가시키려 한다. 노동당국은 어떤 시기에 한 노조에 대한 요구사항만을 고려할 수가 있고, 그러므로 노조와 결탁하거나 그들 자신들만의 노조를 만든 회사들은 독립적인 노조가 작업장에 들어가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가 있었다.

 

끝으로, 기업들은 노동계약 중개인들을 통한 고용도 허용될 것이다. 중개인이든 회사든 계약 중개인을 통해 고용된 피고용자들에게 사회보장이나 다른 프로그램을 위해 지불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많은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미 심각하게 많은 멕시코 노동자들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이러한 것이 현재는 불법이지만 씨유다드 주아레즈의 노동활동가는 자기가 있는 도시와 다른 국경에 가까운 산업도시에서는 이미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제안은 국내와 국제적인 수준에서 인권운동가들과 독립적인 노조의 공식적인 반대에 부딛쳤다. 나아가 20개가 넘는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의 노조들은 2005. 2.17. 노동협약에 관한 북미협정(NAALC)하에 있는 미국 행정청에 제소하였다. 제소장은 아바스칼 프로젝트가 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심각하게 약화시켜 그 결과로 NAALC하의 멕시코의 의무를 파괴한다는 이유였다. 2006.2.21. 미국통상협정추진처(OTAI)는 아바스칼 법은 아직 표결되지 않아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제소를 기각했다. 이 부처의 절차적 규칙에 따르면 이러한 경우 제소를 검토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이 기각은 이 입법안을 검토하는 것이 인권에 대한 미래의 파괴를 막을 수 있음에도 이 부처가 그것을 꺼려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만약 아바스칼 프로젝트가 입법부에서 통과된다면, 그것은 멕시코에서 노동권 보호의 쇠퇴를 나타내는 것이 될 것이다. 현존하는 불법적인 행위의 대부분이 합밥화될 것이고, 노동권 옹호자들과 근로자 자신들이 권리를 보호할 중대한 합법적 도구를 빼앗길 것이다.

 

4.      멕시코의 노동권 보호 기관들

 

a.      인권보호를위한 전국 위원회와 주 위원회

 

헌법은 인권침해에 관한 불만을 청취하는 독립적인 기관으로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두고 있다. 여하간 헌법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특히 노동권과 관련된 불만을 청취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각주의 헌법 또한 주 인권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이것들 모두 노동권에 관한 불만 청취를 금하고 있다.

 

이러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몇몇 주위원회는 건강권에 관한 불만을 허용함으로서 간접적으로 노동권에 영향을 주는 경우를 청취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연방위원회는 두가지 이유로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법체계를 확장하는 것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있다. 첫째는 국가만이 인권을 침해할 수 있고 노동권에 관한 침해는 사적기업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위원회에 있는 많은 법률가들의 태도이고, 둘째는 위원회가 이러한 불만을 듣는데 적합한 다른 기관이 있다고 믿으면서, 다른 기구의 효율성이나 공정함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헌법이 비정부적인 실체에 대한 노동권 침해사례의 청취를 금하기 때문에, 그리고 정부에 의한 수많은 침해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례들과 관련한 혁신을 할 동력이 부족했다.

 

b.     중재와  화해 심판소

노동권 관련 소송에 대한 첫번째 심판관할을 갖는 유일한 기관은, 중재와 화해 심판소이다. 연방심판소가 있고, 지역적 제소를 담당하는 주심판소가 있다.

 

제소는 노동자와 회사와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위원회에 제기된다. 이러한 구성은 이론적으로 편파적이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상 거의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 독립노조와 노동권 옹호자들과 법률가들 사이에 거의 보편적인 합의가 있었다. 노동자가 노조가 CTM이나 FROC-CROC 혹은 신디카토 블랑코-백색 노조로 조직된 작업장에서  온 노동자의 경우는 노동자의 공식적인 대표자는 노동자보다는 기업주의 편을 드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게다가 지역정부는 기업들이 그 지역에 머물게 하기위해서 기업들을 보호하는데 강력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에 부정적인 결정일 수 있는 경우 지역정부가 심판소에서 불편부당할 것이라는 점에는 심각한 의문이 든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심판소는 거의 공정하지가 않다.

 

추가로 심판소에서 노동자를 대변할 공익변호사가 부족하다. 그 때문에 노동자들은 사적 변호사에게 찾아간다. 이런 변호사들은 가끔 판결의 30%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조정을 서두르기도 한다. 노동자는 조정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심판의 계속을 요구할 수 있지만, 변호사들이 조정거부권을 자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이러한 권리가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자주 있다. 공식통계는 심판소 결정의 90%가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라고 하지만,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돈을 받은 경우는 노동자의 승리로 계산하고 있다.

 

심판소는 FLL하에서 파업에 대한 요청을 승인해야만 하는 기구이다. 심판소의 대표자들의 편파성의 효과의 하나로 파업신청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승인없는 파업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끝으로 어떤 종류의 노동권 침해사례도 심판소에 접수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부당해고이다. 이것은 주로 노동자들이 제소를 한 것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하고 그들이 아직 어떤 회사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는 제소를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을 위한 효과적이고 합법적인 위원회가 없는 점과 심판소의 법률적 구성원의 편파성은, 다수의 노동자들이 심판소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체제를 만들어 왔다.

 

c.     법정

심판소의 결정은 법원에 항소할 수 있지만, 아주 소수의 당사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법원이 노동권에 대한 논란을 조금이라도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고, 그러한 결정의 대부분은 노동법률가들의 협력적이고 유기적인 전략의 결과이다. 법원의 결정은 다음 장에서 특별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5.      노동권 문제의 중심에 있는 멕시코의 노동조합들

 

멕시코 노동조합 구조의 효율성의 완전한 결여가 노동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핵심이다. 독자적인 독립노조운동이 있는 반면에, 공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노조들 백색 노조들이라고 알려진-이 대부분의 조직된 작업장을 통제한다. 현행 법률은 어떤 작업장에서건 하나의 노조에 독점권을 허용하고, 현재의 노조에서 다른 노조로 전환하는 것은 행정적인 입장에서도 힘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변화의 지지자들에 대한 심각한 물리적 위험이 수반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조직할 수 있는 권리는 1931년 제1차 연방 노동법에서 인정되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공적부문에서 활동이 허용된 유일한 노조인 FSTSE에 가입해야만 했다.

 

현행 연방 노동법은 명백하게 사적부문에서 단체협상을 허용하고 있지만, 만약 작업장에 하나 이상의 노조가 있다면, 고용주는 다수가 가입한 노조와 협상해야 한다. 이것은 고용주가 자신이 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그릇된 유인을 주는 규정의 하나이고, 새로운 노조를 조직하고 만들 노동자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파업은 법률상 허용될 수 있지만, 화해와 중재심판소에 의해 연기되거나 불법으로 선언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게다가 파업은 법률적으로 극히 제한된 특별한 목적을 갖추어야만 할 것이다.

노조 대표자들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억압은 최소한 이 보고서가 조사한 산업부문에서는 일반적이었다. 단체협상합의가 존재하는 곳은 대부분 그 작업장에 어떤 노동자도 존재하기 전에 만들어졌다. 노조와 회사는 상호 이익이 되는 합의를 하고, 노동자들은 그들이 고용되기 전에 미리 결정된 계약에 동의하도록 강제된다.

 

어떤 노동자는 주아레즈의 그가 일했던 세군데 마킬라에서의 고용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면접을 위해서 회사측 사람과 함께 어떤 방으로 들여보내졌고, 그가 고용된 후 노조 대표자를 만나기 위해서 또 다른 방으로 보내졌는데, 그들은 그가 1년에 2.5페소나 5페소를 지불할 것을 동의할 것을 서명하라는 서류를 주었다. 그에게는 노조대표들로부터 그 서류나 계약을 읽어볼 기회도 없었다.

 

중재와 화해 평의회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변호사들은 이러한 관행은 일상적이고 단체협상계약의 사본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연방 위원회의 관료는 어떤 노동자도 계약서의 중앙 보관소에 요청하여 계약서 사본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푸에블라와 씨유다드 주아레스 지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노동권 활동가들에게 논박당했다.

 

a.      공식노조들

가장 지배적인 공식노조는 CTM이다. CTM은 공식적으로 멕시코를 60년간이나 지배해 온 PRI에 연계되어 있다. 나프타에 영향을 받는 회사들 특히 국경에 있는 마킬라에 있는 회사들은, 대략 16-20%가 조직되어 있다. 실제 조합원수는 분명하지 않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마킬라는 유일 노조로서 CTM을 가지고 있다.

 

특히 조합의 활동가들이 정치인들이나, 노동권의 희생을 통해 새로운 기업투자를 유치하려는 의제에 영향을 받을 때에는 CTM이 정당과 연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FROC-CROC는 작업장 특히 마킬라에 있는 작업장을 지배하는 또 다른 지배적인 공식노조이다. CTM보다는 약간 세력이 약하지만, 공장이나 다른 작업장에서 중대한 현실이고, CTM처럼 어떤 의미있는 방법으로도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실패했다.

 

하나의 전형적인 예로 어떤 노동자가 마킬라에서 CTM의 간부로 당선되었던 적이 있다. 그는 공식적인 노조정책에 반대하기 시작했고, 노조가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노조관료에게 문제를 제기한 뒤에 그는 공장으로부터 해고되었다. 그는 감독자들에게 자신을 해고할 수 있지만, 자신은 그의 동료 노동자들로부터 선출되었기 때문에 노조의 간부로서는 해고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직장에 복귀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그 도시의 다른 마킬라에서도 일할 수 없게 되었다. 부당해고와 다른 노동권의 침해 그리고 자신의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CTM의 실패는 노동법률가들이나 독립적인 노조 그리고 노동자 자신들에 의해 끊임없이 보고되었었다.

 

공식부문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에 덧붙여 공식 노조들이나 정부에 충성스러운 노조들이 비공식부문의 많은 것을 통제한다. 지역시장의 노점상들은 상층부가 거의 변하지 않는 그리고 그들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노조에 세금을 받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지역정부가 수리나 전기를 제공하기 위하여 연방자금을 걷는 시가 운영하는 시장의 일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매점은 3년 동안 전기를 쓸 수 없었고, 공유지와 수리되지 않았던 매점에 심각한 손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점상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독자적인 노조로서 활동하기 위해 동료집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b.     조합통제의 새로운 경향:백색 노조들

멕시코에 지사를 둔 많은 회사들은 CTM이나 FROC-CROC와 제휴하기보다는 자신들만의 노조를 만드는 길을 택하고 있다. 회사들은 새로운 노조를 만들 공식적인 문서작업을 정리해 놓고는 노동자를 고용하기 전에 그 노조와 단체협약을 만들려고 협상한다. 그리고 그 노조는 공식적인 기록외에서는 사라져버린다, 어떠한 간부도 선출된 적이 없고, 때로는 노동자들이 노조의 존재 자체를 알지도 못한다.

 

이러한 타입의 노조들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가 계약협상 후에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보통 신디카토스 블랑코스(백색 노조) 혹은 신디카토스 골로드리나스(꿀꺽한 노조들)라고 알려져 있다. 노조는 법률상 필요하지는 않지만 많은 회사들은 세가지 이유 때문에 백색노조를 만드는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첫째 그것은 회사가 노조와 그 결과인 계약에 대한 모든 통제를 할 수 있게 하고, 둘째, 국제적인 회사에 특히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조합이 있는 작업장을 허용했다는 것과 그리하여 국제적인 인권기준에 합치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그것은 작업장에 먼저 들어가는 것보다도 노조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에 다른 노조 특히 독립노조가 작업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노조통제는 그 용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고 특정 노조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리더쉽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러한 현실은 그 규정의 정신을 침해하고 그 합법성에 의문이 들게함에도 불구하고 회사들이 국제적인 인권규범에 합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문제성이 있다.

 

c.     독립노조들

 

독립노조들은 멕시코에서 공공 피고용자들과 공공시설 노동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산업부문에서 가장 지배적인 독립노조는 FAT이다. FAT는 전국적으로 대략 40,000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고, 조합원을 증가시키고 작업장에서 공식노조에 대한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공식부문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동원하려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독립노조의 대표성을 증가시키려는 목적으로 공식부문과 비공식 부문을 조직하는데 기여할 독립적인 노동자 강습 및 연구센터(CETLAC)를 씨유다드 주아레즈 지역에 만들려고 한다. CETLAC는 구두닦이 노동자(boleros)와 시장 노점상들을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공식적 비공식적 그룹으로 조직하고 있다. 센터는 공식노조와 지방정부 그리고 회사가 공식부문에서 독립노조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성공적으로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공식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덧붙여서 독립노조의 성장을 위해 국외의 노조 특히 AFL-CIO 그리고 국제 트럭운전수 형제들(IBT)의 노력은 하나의 통일체로서 미국에 의한 노조침투 규탄이라는 제목이 붙은 씨유다드 주아레즈의 엘 디아리오에서 일어난 8.26.이야기가 보여주듯이, 지역정부와 연방정부 그리고 기업 공동체의 적대에 부딛쳐 왔다. 현재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독립노조들은 미국에 있는 노조와 긴밀하게 작업하고 있고, 정부와 기업들의 긴밀한 연대 노력은 독립노조운동의 성장을 방해할 것이다.

 

d. 독립노조 활동의 장벽들

노조를 바꾸는 과정상의 법률적 규제들은 독립노조의 활동에 심각한 장애이다. 그 과정이 행정적으로 지겨운 일일 뿐만 아니라, 최소한 20명의 노동자가 새로운 노조를 위한 투표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명단은 보호되지 않고 그들은 보복에 노출된다. 노동자들은 만약 자신들의 이름이 새로운 선거를 요구하는 명단에 올라간다면 해고가 될 심각한 위험이 있다. 게다가 회사는 현 상태의 지속을 위해 선거 직전에 새로운 노조를 반대할 노동자들을 자주 고용하곤 한다. 이러한 노동자들은 결코 노조를 위해서 일하지도 않고 선거 후에는 공식적인 고용관계를 끊는다.

 

현 노조와 새로운 노조 사이의 선거가 허용되더라도, 공식노조와 회사는 가끔 결탁하여 선거가 실질적으로 치러지지 못하게 하거나 노동자들을 협박한다. 선거전날과 선거 당일에는 골페아도레스 golpeadores라고 알려진 무장한 사람들이 출현한다. 이 사람들은 선거전에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만약 선거가 계속 진행되면 회사의 이익에 적대적인 노동자들을 공격할 것이다. 최근에도 이런 류의 사건에서 유명한 노동 변호사인 아르투로 알칼데가 골페아도레스에게 습격당하여 부상을 입었다. 골페아도레스와 회사 그리고 그들을 고용한 노조는 그들의 존재가 광범위하게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실질적인 처벌도 받지않고 활동한다.

 

합법적이거나 혹은 탈법적인 방법을 통한 선거조작에 덧붙여, 국제적인 투자자들은 현존하는 규제가 더 강화되지 않고 더 이상 친 노동자적인 법률이 통과되지 않도록 지방정부, 주정부, 혹은 중앙정부의 모든 수준에서 엄청난 압력을 행사한다. 독립노조들은 지방정부의 관리들이 새로운 노조를 등록하지 않거나 등록을 지연시킬 핑계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정부들은 1994년 이전에는 독립노조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노조를 규제하라는 정부에 대한 압력은 나프타가 발효된 이후 증가되어 왔다.

 

나프타의 다른 효과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는, 협정 전에도 존재했지만 그것이 심각하게 강화된 것은 그것이 발효된 이후의 일이다.

 

d.     노조와 소송

 

노동권 활동가들은 국내외적으로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나프타의 구조내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노동자 지원센터(CAT)와 같은 지역의 노동권 그룹과 미국에서 온 학생 활동가들과 미국과 멕시코에서 온 노동조합이 연대하여 멕시코의 프에블라에 있는 극동(한국계 공장)의 노동조건을 고소한 사건이다. 고소장은 공장소유자들이 독립노조(SITEMAG)의 설립을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그 요지는 이것은 나프타의 제1원칙과 제2원칙을 파괴한 것이고 나프타와 그 부속협정문에 있는 노동권 기준을 다른 작업장에서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제소장은 캐나다와 미국의 노동심판소에 제출되었고, 2005.5 미국측 배심원이 권고안을 만들었다. 미국심판소는 이번 경우는 물론 일반적으로 멕시코 전역에서 자유로운 결사의 권리의 극심하고 광범위한 침해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심판소는 청원자들이 국내의 모든 절차를 다 밟지 않았지만 노조를 변경하는 절차에 심각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심판소의 일차적 발견의 하나는 심판배심원들의 공평성의 부족과 심판소들의 방해였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권고안은 멕시코에 아무런 강제적인 효과도 갖질 못하고 이러한 것을 지키려는 어떠한 정부의 조치도 없었다.

 


. 멕시코의 마킬라도라 시스템:씨유다드 주아레즈의 사례연구

 

마킬라도라 생산체계는 맨 처음에는 1965.5.20. 멕시코 북부에 있는 수출하청산업(IME)을 돕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러한 국경산업화 계획(PIF)의 주된 목적은 초청 노동자들의 상호회의(전시에 미국내의 노동자 공급이 감소했을 때 국경을 넘었던 노동자들을 2차대전후에 다시 파견하기 위하여 만들어짐)가 지연되는 악영향에 대응하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그러므로 기본적으로는 미국에서 일할 멕시코인들을 끌어들이고 멕시코내에서 그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마킬라도라 시스템은 특별한 법체제하에 있는 자유교역 생산지역이다. 이 체제에 따르면 회사는 생산품이 수출되거나 재수출되는 조건에 따라 특별한 재정적인 대우를 받는다. 어떤 마킬라도 국내시장을 위해 생산하지 않는다. 그것은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특별한 이유 때문에 만들어졌던 예외적이고 임시적인 체제였다. 현재 이 체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즉 이 체제는 마킬라도라를 미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생각하고 멕시코 내부로부터 온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퇴보가 왜 생겼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년동안 이 체제에 일어난 진화를 보아야만 한다. 처음에는 아주 온건한 기준으로 보아도, 1996년까지 815,290명을 고용하는 3,047개의 마킬라가 생겨났다. 이 체제는 2001년까지 참으로 성공적이었고 마킬라는 1992년 전체 수출의 42%에서 51%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이 임시적인 체제가 멕시코 정치경제의 특징이 된 이유중의 하나이고, 1930년대부터 멕시코에서 수행되어왔던 수입대체에 기반한 낡은 정치경제를 축출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킬라도라 체제는 나프타의 선구였고 그 다음에 나프타가 시행되자 나프타는 이 체제를 잠궈버렸다.

 

마킬라 체제는 멕시코의 지방과 미개발된 지역에서 값싼 노동력을 끌어들이고, 잠시후에는 본질적으로 마킬라도라에 만연한 조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미국의 노동시장으로 자신의 인력을 추방하는 회전문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이러한 유형의 산업의 휘발성을 생각할 때, 여성에게 남는 것은 고용의 불안정 즉 회사의 형편에 따라 채용되었다가 해고되는 것이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는 또 다른 모습은 조합에 가입할 자유와 같은 노동권, 수당과 사회보장의 배제와 마킬라가 이 지역에 만들어질 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임신 테스트와 같은 계약조건의 차별과 관련된 것들이다.

빈곤의 지속적인 증가는 수많은 여성들을 멕시코에서 EAP의 40%를 차지하는 일반적으로 집에서 하청작업을 하거나 행상을 하는 비정규 노동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여성은 저임금이나 비정규 노동의 통계에서 남성보다 수치가 훨씬 높다.

 

1.      씨유다드 주아레스의 마킬라도르 모델의 선구들

다음 얘기는 공공부문 노동자와 전에 마킬라 노동자였던 두 사람과 인터뷰를 한 것이다.

 

60년대에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주아레스의 마킬라에는 몇 개의 상이한 단계가 있었다. 첫번째 마킬라가 만들어졌을 때, 그것은 이 도시의 노동에 대한 수요에 대한 대응책으로 얘기되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멕시코 농민이 자신의 농토에서 일할 수 있는 특별한 허가와 함께 국경을 쉽게 넘을 수 있도록 하는 미국이 참여한 브라세로 계획이 끝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국경도시로 돌아오기 시작했을 때, 정부는 사적부문이 주도하는 국경계획인 프로나프를 만들었다. 이 계획의 틀안에서 레스토랑과 술집이 있는 특급호텔지역을 만들고 서비스부문에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관광부문을 촉진할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충분했고, 산업이 자리잡을 수 있는 하부구조와 값싼 노동력 그리고 참으로 중요한 CTM과 CROC에 의한 노동조합 통제를 통한 노동자들의 통제를 제공하는 계획을 통하여 해외투자를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보장은 다음 진술에서 명백해진다.

1994년부터 2003년까지 파업은 단지 3건밖에 없고, 1995년에 1건, 1996년에는 두건 더 많았다. 이것은 말하자면 완전히 백색노동조합주의로 조성된 안정적인 노동환경인 것이다.

마킬라로부터 이익을 얻는 지역 계약자들은 아주 강력한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그룹이다. 이 그룹들은 외국인이 미국에서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를 만들 수 있는 하부구조를 임대해 주었다. 이들이 시의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도시계획을 세웠다.

 

초국적 기업들은 조약이 발효된 후에 왔다. 그것들은 전에 존재했던 소규모 거래를 없앨 높은 수준의 소비용역과 상품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켰다. 그들은 미국에서 생산된 것과는 다르게 상품의 질에 대한 보장을 하지 않았다.

 

통상장관은 주로 미국과 캐니다에서 와서 여기에 만들어지는 외국회사들에 대하여 매우 유연하다. 다른 나라들로부터 오는 상품은 값이 더 쌀지라도 불법이다.

 

첫번째 마킬라가 만들어지고 있을 때, 전자산업이 도착했다. 이것은 도시로의 광범위한 이주가 있었던 80년대까지는 남자들은 거의 흡수하지 않고 여성 노동자들을 흡수했다. 이것이 마킬라도라 성장의 두번째 단계이다.

 

인근에 있는 주에서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실업은 증가하였고, 더 많은 산업지대를 건설하는 것을 포함하여 이 계획은 더욱 강력히 추진하기로 결정되었다. 산업지대란 건물들(공장)이 회사의 필요에 맞게 지어져서 회사가 도착하고 나서 할 일이란 기계를 갖어 오는 것과 계약직 뿐이었다.

남성노동자가 증가하였고, 마킬라도라 산업단지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쉬워졌다. 취업에 필요한 것은 13세의 어린이가 법률상 최소노동연령인 16세로 쉽게 위조될 수 있는 출생증명서 한 장 뿐이었다.

 

1980년대부터, 마킬라가 생산과 계약(노동자 고용), 출근, 정확성 등을 위한 증명서를 제공했기 때문에, 보다 큰 혜택과 조건적인 보너스가 시행되었다. 이것들은 당시에 노동에 대한 높은 요구 때문에 끊임없이 사퇴하는 노동자들의 높은 이직을 피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트럭들이 베라쿠르즈, 치아파스와 구아자카로 사람들을 고용하기 위해 보내졌고,전국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프타의 시행 이후 또 다른 마킬라도라 붐이 일었다. 국경은 개방되어 자본의 이동에 대한 보다 큰 기회를 주었다. 회사를 위한 더 많은 세금 면제와 같은 경제적인 혜택이 증가했다. 조약이 서명되기 전 세금 면제는 처음 2년동안이었는데 그 후 더욱 연장되었다. 이러한 성장기에 노동에 대한 수요의 증가는 이 도시의 연간 5만명의 인구증가로도 부족하였다. 1994년과 1995년에 10만명 이상이 도착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미국의 경기후퇴로 끝났다. 대략 산업의 80%가 미국자본을 사용해서 만들어졌다. 미국에서의 상품판매가 하락함에 따라 (특히 2000년 10월과 11월이지만 2003년까지 지속되었다) 회사는 대량해고, 대부분 여성들에 의해 수행되었던 교대조 특히 야간조와 특별조의 폐지 등 인력에 대한 비용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서 2003년에 마킬라도라에서 일어난 해고는 여성들에게만 영향을 미쳤고, 이런 종류의 산업에서 13,671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여성에 대한 강력한 억압이 있었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포기했고, 거절된 가족문제 때문에 떠날 것을 요구한 여성들의 사례도 있는데, 그들은 사직을 재촉받았고, 추가적인 지급은 없었다.

 

회사와의 계약은 더욱 선택적인 것으로 실질적으로 변하였다. 회사는 이제 출신지 증명서와 학력서류(어떤 것은 중등 교육), 18세 이상 30세 미만의 사진과 전자기술자격의 공식 확인서를 요구하여, 계약직에 대한 더 많은 수요에도 불구하고 마킬라에서의 노동환경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경제위기 후 사람들은 비공식 교역에 남아 있었다. 거대하고 불안전한 오두막, 범죄, 불안전 등과 같은 많은 문제들이 여기서 생겼다.

 

마킬라의 조성 효과는 도시가 가속도적으로 성장한 이래, 가족의 파괴, 하부구조 문제, 통제되지 않은 도시성장, 공적 사회적 서비스의 부족과 불안전이었다. 계속해서 마킬라는 다른 쪽인 미국으로 가서 일할 소망을 남기면서 공공기물 파괴의 증가와 함께 사람들을 실업상태나 뿌리뽑힌 상태로 남겨 놓았다.

 

현재 씨유다드 주아레즈는 도로조명을 위한 5,000만 페소의 세금을 걷는 것을 중단했다. 왜냐하면 10개의 마킬라가 대법원에서 지불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소송에서 이겼기 때문이고 100개 이상의 마킬라가 똑 같은 이유로 싸우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마킬라의 노동조건

 

집합공장의 노동조건

집합공장에서의 다음의 특징과 노동조건은 씨유다드 주아레스에 있는 전 현직 노동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확인된 것이다.

 

이러한 회사들은 연방법이 인정하는 모든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연방법을 따른다.

 

작업상의 건강과 관련이 있는 노동안전과 관련하여 인터뷰한 사람들의 증언은 기본적인 작업안전과 위생적인 측면의 위반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화학생산물을 다룰만한 적당한 도구없이 예를 들어 소디움 동이나 에틸 알코올을 사용할 때, 안면마스크가 없었고, 이러한 생산물의 흡입은 건강에 영향을 주고, 에어컨의 필터가 없는 곳에서는 숨이 막히고 장갑도 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 어떤 날은 오븐을 광택제로 닦아야 할 필요도 있고, 어떤 부분은 안전 장갑이나 안경도 없이 청소해야 하고, 이런 일들은 마구잡이로 맡겨진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해져야만 되는데 장비가 없으면 중단제제가 내려지거나 해고된다. 또 땡땡이 때문에 나오는 연기를 뽑아내는 기구는 없다. 연기를 뽑는 것이 있다면, 집합공장에 노동자의 안전은 없고 노동자는 이러한 조건에 따라야 되기 때문에 몇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정상이 아니다. 회사안에 안전과 위생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은 노동자의 필요를 위한 것이 아니다.

 

치후아후아 주에 있는 멕시코 사회안전 연구소의 2004년 6월 지상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매일 50건의 작업상 사고가 보고되었고, 합계 90,471건 씨유다드 주아레즈에서 일어난 사고의 40.7% 운송산업에서 36,028건, 그 뒤에 통상(16,500), 회사용역(10,788) 건설(8,788)

 

 

노동일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8시간이지만 정부와 고용주와의 협정은 9.5시간으로 만들었고 토요일은 작업이 없다. 노동일은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이고 보통 2-3교대, 어떤 경우에는 5교대가 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집합공장에서는 노동자가 하루종일 똑 같은 위치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화장실에 가려면 감독자의 허락을 맡아야 하고 최대 10분이다. 생산기준은 아주 다양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기준이 정해지지만 실제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면 그들은 적게 생산할 수 없다. 만약 적게 생산한다면 그들은 그 이유를 보고해야 하고, 이런 것을 보고해야 할 회합이 있다면 이러한 통제는 주 단위로 이루어지며, 회합은 생산에 관한 것뿐이고 노조 조직에 관한 회합은 허용되지 않는다.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면 감독은 생산은 다음날 따라잡을 수 있으며 생산기준은 수행된다. 보통은 실제로 요구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된다. 노동자는 공개적으로 연설할 수 없고 단지 옆사람하고만 얘기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무시한다면 당신은 질서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서면 경고를 받게 되고 만약 반복된다면 이러한 행위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떠나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전화통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제공되는 유일한 훈련은 생산, 기술, 포장, 검사에 관한 것과 생산이 적당히 수행되지 않을 때의 부담등에 관한 것뿐이다. 작업안전 혹은 위험에 관한 교육은 없으며, 노동자가 따라야 할 안전조치에 관한 알림을 통한 것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 사람들은 착취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 그것을 알지라도 요구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회사는 그들에게 문은 열려 있다고 말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 또 다른 대안은 노조를 조직하는 것이지만 만약 사장이 안다면 감독이나 조장이 그렇게 하지 말도록 경고한다.

 

아래는 집합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작업상 매우 상이한 조건들을 증언한 것이다.

 

거기에는 항상 생산에 대한 끊임없는 압력이 있고 심각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성희롱의 문제가 있으며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재는 심리적인 억압부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의를 받고 기록이 되며 기록이 쌓이면 하루 혹은 일주일만에 당신의 일을 떠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많은 회사에서 노동자는 어떠한 기관에서도 인정되지 않는 작업병에 노출되어 있다. 작업상 일어난 사고를 포함하여 그 질병이 작업에 의한 것이라고 증명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사적인 장소로 옮겨지고 멕시코의 사회안전연구소에 보고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에 관한 안전 예산은 증가되지 않는다.: 조사가 시작되는 것은 사고가 일어났을 때뿐이고, 노동자의 안전상태를 전반적으로 조사할 항구적인 국가계획은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돈으로 해결되고 완전히 썩었다.

아주 오염된 회사의 예가 있다. 이 회사는 불화수소산 생산물을 만드는데, 공장 밖에 산더미 같은 생산 폐기물(경석고)이 있고 주정부와 시정부가 이를 알고 있음에도, 청정회사로 인정받았다.

특별한 방문이나 조사는 조사일 전에 알려지고, 이러한 경우 생산은 중단되고 모든 것이 청소되며 페인트 칠이나 그 이상의 조치가 행해진다. 보통 확인 라벨도 붙어있지 않은 유독성 솔벤트로 작업이 끝났다면, 모든 것은 사용할 수 있는 화학약품의 이름을 붙여서 정돈된다.

어떤 회사들은 어떤 기준을 이행하도록 강제되었지만, 인증된 품질관리는 작업도구와 작업재료의 확인, 생산과정의 청결 등등 노동자의 안전조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생산과정에 관련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아무리 작은 상자라도 그 기능과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다. 상황은 많이 변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무엇이 사용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조금은 알려져 있다. ISO 9,000이 알려지기 전에, 1990년대에 시작된 인증과정에 참여한 회사는 거의 없다.

 

꿀꺽한 회사

꿀꺽한 회사에는 다양한 경우가 있는데, 가장 최근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의 하나는 인터플랙스 엠파크이다. 이것은 큰 회사의 일부로 노동자들은 보상없이 임금의 50%를 받고 쉬라는 제의를 받는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정한 날에 모여서 임금을 모으라는 얘길 듣고 도착했을 때는 기계가 뜯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이 돌아왔을 때는 회사는 없어지고 모든 것이 비어있으며 사장은 출국한 것을 알게 된다. 국가는 아무런 말도 없다.

또 다른 경우는 회사가 곧 떠날 것이라는 의심이 들 때, 요구조건이 조정평의회로 제출되고 이것은 신중한 억류를 하기위해 진행된다. 회사가 떠나려고 할 때, 노동자들은 기계와 함께 남게되고 그것을 팔아 임금에 충당한다. 이것이 아로마 촛불과 장식품들을 생산하던 E.M.I. 인터내셔날의 경우이다. 노동자들이 기계와 함께 남겨졌을 때 가동이 계속된 적은 없다.

 

하도급 고용 중개인

TLCAN의 서명 후에 희한한 현상중의 하나는 대형 하도급 고용중개인(인력회사)의 등장이었다. 그것은 노동자를 모집하여 고용한 뒤 집합공장으로 보내고, 그에 따라 직접고용 관계를 회피하고 따라서 직원을 해고하고 싶을 때, 그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러한 회사는 사람을 30일 동안 그리고 매 30일동안 고용한다. 작업이 가능하면 계약은 갱신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노동관계는 그때 거기서 끝난다.

이러한 노동 중개인들은 집합공장의 이런 종류의 계약을 위한 노동자 수요의 증가와 관련있는 가속도가 붙은 팽창과정의 일부이다. 이 경우 연방법과 국제 인권법에 의하여 수립된 합법적 급부와 마찬가지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기본원칙은 지켜지지 않는다.

아바스칼 법이라고 알려진 진행중인 개혁계획은 이러한 노동중개인을 합법화하고 그들에게 보다 큰 영역과 수단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증언과 관련있는 사례:

 

톰슨 집합공장은 지난 수년간 그들에게 필요한 직원, 똑 같은 일을 하고도 똑 같은 수당과 임금은 주지 않는 새로운 직원을 을 공급해줄 중개인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로부터 직접 고용된 사람들은 출근과 근무 및 이동을 위한 쿠폰을 받지만, 중개인에게 채용된 직원은 낮은 임금을 받고 쿠폰이나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 이런 중개인은 10년전부터 나타났지만, 그들의 성장은 국내외의 투자와 함께 이루어진 2000년부터 지금까지이다. 자유무역의 주된 약속은 더 많고 더 좋은 일자리였다. 더 많은 회사는 세워졌지만 현재보다 두배나 많은 노동력을 만들어내었던 국내산업에서는 회사가 줄어들었다.

 

디셀 음반의 멕시코 회사는 노조는 없지만 기계의 규모 때문에 일어나는 높은 위험과 사고와 같은 열악한 노동조건은 가지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모여서 집단적인 노조를 요구할 때, 그들은 노조등록을 도와주겠다는 CTM의 수중으로 떨어진다. CTM은 조정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해 노조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물어보고 그 명단은 회사에 넘어가고 모두 해고된다. 이것이 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는지의 이유이고 때문에 노조간부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도와주도록 되어있지만 그들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 집합공장에서 재출발하려는 것은 노조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겪어야 할 위험이다.

 

쿠폰, 임금 그리고 기금

집단적 계약이 아니라 노조없이 개인적인 계약을 하는 집합공장에서 제공하는 최소한은 다음과 같다.

 

시간준수를 위한 쿠폰: 정시출근을 위해서 일주일에 30-35페소

출근을 위한 쿠폰: 결근을 하지 않도록, 약 40페소. 출근을 위한 쿠폰은 자동적으로 캔틴에 지급된다. 지불되는 것은 소비된 것과의 차액이다. 회사는 직접적으로 이 금액을 이전하지만 노동자에게 설명은 해주지 않는다. 실제로는 이 쿠폰은 축소되어 노동자는 나중에야 자기가 적게 벌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캔틴 보조금: 아침식사와 캔틴이 주는 음식, 노동자들은 이러한 보조에 1주일에 평균 45페소를 지불한다.

식료를 위한 쿠폰:식료를 위한 90페소의 주간 쿠폰. 노동자가 공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냐에 따라 110페소까지 올라감. 이런 쿠폰들은 슈퍼마켓에서 기본적인 소비재료를 사기 위한 것으로 공제될 수 없다.

만근에 대한 쿠폰:1달에 60페소

 

저축은 강제적이고 이것은 회사 기금에 맡겨진다. 이것은 매년 공제되고 노동자가 1%, 회사도 1%를 제공한다.

 

공공요금 지급을 위한 급부는 회사수입의 10%로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다. 집합공장의 대략 50%가 근무중인 피고용자들에게 수당을 줌으로서 이 규정을 지키고 있지만, 이때의 노동자는 조세연도의 60일 이상을 근무한 사람이고 퇴사한 사람은 인정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하루임금으로 평균 64.48 멕시코 페소를 번다. 이것은 에누리를 감안하면 1주일에 328페소이다. 이 돈으로는 기본적인 식품도 살 수 없다. 4인 가족은 교육, 건강, 주택, 의류 등을 빼고도, 1주일에 약 500페소가 들어간다.

 

다른 급부는 주택기금인데, 이것이 축적된 저축은 나중에 직접적인 급여공제에 대해 신용대출을 요구할 수가 있다. 여하간 낮은 임금과, 공제 그리고 숙박비용 때문에, 노동자들은 이처럼 낮은 소득이라도 받으려 한다. 2004년에는 숙박기금에 대한 높은 부담 때문에 위기가 있었다.

 

2004년 6월 엘 디아리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어떤 경우 집합공장의 어떤 노동자의 임금은 대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임금이 5페소밖에 안되었다... 거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임금의 20% 이상을 부담하고 있다위기가 오자 어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어떤 사람은 수입의 대폭적인 하락을 겪었다. 노동자들은 지금 적게 벌지라도(어떤 경우에는 전에 번 것보다 25% 이상을) 인포나비트는 똑 같은 수준으로 부담을 유지하고 있다.

 

2.       씨유다드 주아레즈에서의 노조를 만들 권리

 

멕시코 노동체계에서 주된 문제는 노동자와 소유자 관계이다. 다른 나라와는 아주 다른 특이한 모델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대변의 방법은 국가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통제의 형식이지만 동시에 노동자에게 이익의 형식이기도 하다. 그것은 1917년 헌법의 결과인데, 그것은 최소임금, 노동안정성, 나중에는 사회보장과 편의시설에 대한 권리까지 보장하고 있다. 이 모델은 국가와 노동자의 합작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국가가 후퇴하고 회사가 그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통제와 허세의 모델로 바뀌었다. 그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실패한 모델이고 가장 심하게 표현하면 노조주의에 대한 국가통제이다.

 

유명한 고용변호사인 아르투로 알칼데에 따르면 단체계약의 90% 이상이 거짓이다. 보통은 사장이 노조를 선택한다. 예로 새로운 항공사가 직원도 뽑기도 전에 노조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노조를 소유한 변호사와 회사 변호사간의 일종의 공동소유인 것 같은 허세의 과정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사장이 노조를 선택하면 어떤 다른 노조도 자기 회사에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든다.

 

이런 상황이 허위 계약과 노조기록의 통제로 이끄는 것이다. 그것은 노조의 자원은 고려하지 않고 노조 활동의 범위와 사법의 영역을 제한한다. 그것은 어떠한 비밀 투표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단체협약을 불가능하게 한다. 조정위원회나 심판소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감소시키도록 되어 있지만 사업주의 편을 든다. 이론적으로는 성격상 삼분되어 있지만 이것은 또 다른 허세이다. 왜냐하면 판사와 원고는 모든 집단적 분쟁에 출석하는데 정부에 의하여 호선된 회사의 대표, 정부의 대표 그리고 노조 지도자들도 모두 심판소에 출석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조정위원회는 새로운 노조의 등록을 방해한다. 많은 곳에서 당신은 누가 당신의 노조의 간부인지 위원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투명성에 대한 권리가 없다. 단체협상과 소송 모델과 관련한 기록은 몰수되기 때문에 노동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킬라도라 부문은 이런 종류의 관행이 영향을 미치는 많은 작업부문 중의 하나이다. 2003년의 인권에 관한 유엔 최고위원회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 연방과 지방 당국은 해외 투자를 유지하고 유치하기 위해 노동자와 사장의 관계가 사업주의 이득이 되도록 노력한다. 이것은 노동자 인권의 수많은 파괴와 노동법에 대한 완전히 제멋데로의 뇌물로 오염된 파괴로 이끈다. 전통에 의하여 그리고 현 행정부의 단 한가지 변화도 없이 자유로운 노조에 대한 인권은 구조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조직의 간부의 선출은 자유로운 비밀투표에 대한 고려없이 행해지고, 파업에 대한 권리는 영속적으로 침해된다. 노동당국은 노조를 등록시키는 것으로 엄격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자 조직의 모든 수준에서 자기 차례가 오면 노동법을 적용할 책임이 있고 가끔 불만있는 노동자를 처벌하는 당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늙은 노동자 간부에 대한 복종이 있다.

 

독립적인 멕시코 노조의 조직인 순수노동자전선, FAT의 대표인 베아트리츠 유잔에게는 노조가입권에 대한 심각한 규제는 노동권을 성취하기 위한 어려움의 맨 밑바닥에 있다:

 

치후아후아 주에는 무노조주의의 정책이 있다.: 정부와 사업가의 정책은 노조에는 허용되지 않고 노동자와 회사간의 직접적인 관계로 만든다. 마킬라에는 노조는 없지만 조직된 활동은 있다. 이것이 끝나버리면 주모자는 해고되고 노동자들은 CTM 노조에 가입하는 원서를 작성하도록 강제될 것이다. 이 정책은 3개의 국제항과 값싼 인력, 무노조 그리고 19개의 산업단지가 빛나고 있는 치후아후아 경제보고서의 이윤부문에서 확인될 수 있다.

 

씨유다드 주아레즈에는 평균 300-320개의 마킬라가 있고, 그중 17%에 노조가 있다. 대부분은 CTM이나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연합( CROC) 소속이다. 두 노조는 마킬라에서 등록된 노조의 장소를 다투고 있다. 노동자는 어떤 노조가 자기를 대표하는가를 결정할 권리가 없고 자동적으로 사장이 결정한 연합의 구성원이 된다.  각 마킬라는 평균 1,000명, 때로는 3,000명, 때로는 500명인 곳도 있다.

 

타마우리파스에서는 거의 100%의 마킬라가 공식적으로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바자 칼리포니아에서는 조직률이 12%이다.

국가는 상이한 정책들을 가지고 있지만 해외투자에 대한 비교우위로서 노조통제를 제공하는 것은 똑같다.

 

대략 현 경제활동인구의 40%는 조직되어 있고, 이중 90%는 대부분 보호의 노조라고 불리는 공식노조에 속해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은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주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행이 노동자의 슬픔을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월급을 올리는데만 기여한다면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많은 회사에서 단체협상 협약이 노조에 속하도록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협상되지는 않는다.

 

보호의 노조는 계속 공개되지 않고 조합비를 공제하지 않는 것에 의해 노조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혹은 공제는 하지만 간부들을 숨기거나 단체협약을 숨기는 것과 같은 관행을 통해서 사장을 보호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독립노조를 만들기로 결정하면 노조가 사실상 이미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런 이유로 큰 투쟁중의 하나는 노조 정보에 대한 투명성 특히 등록에 대한 투명성을 위한 투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보호의 노조는 단체계약의 소유자이고 이 계약을 새로운 독립노조에 주지않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노조를 통제한다. 기끔 공식노조나 보호의 노조들은 회사가 만들어지거나 작동도 되기 전에, 노동자가 계약도 하기 전에 회사와 단체 계약을 맺는다.

 

독립노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막기위해 보호의 노조가 사용하는 관행 중에는: 특히 golpear이라고 부르는 마피아의 고용. 예를 들어 투표 개표일이 이미 정해졌다면 그 하루전날 골페아도레스가 보내진다. 투표는 서기, 회사의 지배인과 노조의 대표의 도움으로 개표되고 노동자는 공개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투개표는 회사의 시설내에서 행해진다.

 

나프타 이후 이러한 역사적 관행은 심화되었다. 정부는 해와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회사가 노조를 갖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예를 들어 노동권에 대한 침해 중에서도 하도급, 임시계약, 시험계약, 노동시간 미달 계약, 임신검사를 하는 계약 등이 생겼다.

 

기관들과 심판소와  평의회등은 연방과 지방의 행정세력으로 통합되었다. 그것들은 자율성을 누리지 못하며 그들의 활동은 높은 수준의 부패로만 나타낸다. 노조를 자유롭게 구성하고 가입할 가능성과 노조 생활의 민주화는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늙은 협조주의적 간부에 대한 지원 때문에 아직도 제한되어 있다 노동권 침해의 악순환은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 협약 제8조에 규정된 권리-노조를 만들고 가입할 자유, 자유투표와 비밀투표의 행사, 파업에 대한 권리 등-의 보류를 통하여, 멕시코 국가가 부여한 제한에 갇혀있다. 심지어 정치적 민주화의 중대한 발전이 이루어진 오늘날에도, 거대한 노동자들의 집합소와 노조는 통제하에 놓여있다 분담금은 노동자에 대한 임금으로부터 계속 공제되고 있을지라도 노조의 조직율은 감소해왔다. 노조간부들은 이러한 분담금을 계속 완전히 마음데로 다루고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다.

 

비공식부문에서 노동자들은 보호의 노조와 비슷한 간부들과 모이기 시작하고 있다. 대부분은 위대한 조합주의에 따르는 PRI의 사회적 손인 CNOP에 속해 있다. 이 부문의 노동자들은 그들이 점거한 지역으로부터 쫒겨난다. 통제와 억압의 체제는 노동자가 정부가 통제하는 노동자 집합소에 연계되어 있을 때에만, 노동허가서를 교부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인터뷰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은 사적자본의 이해에 따른 정부에 의한 노동조합주의의 선거현상에 대한 것이었다. 씨유다드 주아레즈의 시당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조합의 지시는 매일 노조 수준에서의 협력적 모델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는 조건과 관행을 보여준다.

 

몇몇 마킬라는 전국적 수준의 조직인 CTM과 70년 동안 모든 노조를 선출해온 정부의 서비스에 등록된 노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DF.에서 온 전화교환원 노조과 같은 독립노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사의 자유는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발전되도록 허용되어 있지 않다. 그것들은 정부와 제휴해야만 한다. 공식노조와 독립노조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있다.

 

새로운 노조들은 CTM과 정부에 복속하게 되어 있고, 이러한 노조들을 통해 고용주를 보호한다. 새로운 노조를 만들려고 할 때는 선거를 해야 하고 새로운 노조는 항상 지게 되어있다.

 

지금까지 마킬라에서 노조를 조직하려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베라 쿠루즈와 구아자카, 치아파스로부터 온 많은 주민들이 있지만 그들은 어떠한 정치적 이해관계나 노동권에 대한 이해관계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착취당하고 있고 그들의 처지는 비참하다. 자신들의 고향보다 산업지역에서의 조건이 더 좋기 때문에 상황은 심각하다. 콜로니아스에서 그들은 아무런 편의시설도 없는 판자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여기에서 직업을 두탕 뛰는게 낫다. 공식노조는 고용주와 동맹하기를 원하는 노조간부들을 뒷받침한 경험이 있다. 어떤 사람이 일자리를 갖기를 원한다면 요구되는 조건중의 하나는 노조에 결탁하는 것이다. 정부는 조정평의회에 정부대표 한사람, 고용주와 노조를 대표하는 한사람을 각각 지명한다. 보통 그들은 조정합의에 도달하고 중재는 없다. 중재는 작용하지만 그것은 고용주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노동자는 막연한 중재를 기다리기보다는 협상하기를 원한다. 노조는 조정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노동자를 설득한다. 노동자의 방어를 위한 변호사는 노동자의 감독과 방어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그는 정부에 의해 지명된다.

 

당신이 계약에 서명했을 때, 당신은 마지막 페이지에 서명한 것이고 그들은 결코 계약을 읽어 볼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으며 계약서의 사본도 주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원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어떤 마킬라가 노동자 집합소에 복속되면, 당신은 노조에 대한 지원서에 서명할 필요가 있고, 그것은 오직 고용주의 몫을 부담하는데 쓰일 뿐이다. 고용주는 매달 노동자에게 6페소를 지급하고, 각각의 노동자를 위한 최소 임금의 연간 몫을 지불한다. 고용주는 노동자가 요구조건을 올릴 경우에 회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노조에 지불한다.

 

조정평의회는 대통령의 기능을 수행하는 정부대표와 고용주 대표 그리고 노조대표로 구성된다. 디아리오 오피샬에서 매 6년마다 노동자는 출석을 위해 소환되며 평의회에서 그들을 대표하도록 선임된다. 이러한 대표들은 대통령을 돕는다. 연방법률은 그들에게 특별한 기능을 부여하고 그중의 하나는 재판의 끝에 세명의 대표자가 서명한 중재를 발표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그 당시에 예를 들어 정부대표가 고용주의 편을 드는 것과 같은 어떤 종류의 비정상적인 것이 있다면, 노동자 대표는 즉시 서면으로 선언해야 하고, 중재의 결과에 대한 그의 반대를 부인하거나 진술하면서 투표를 해야 한다. 멕시코의 노동조합주의가 그처럼 강력하게 고용주와 정당과 정부의 이해관계에 맺어져 있지 않았다면 이러한 과정은 외관상 민주적이지만, 아무런 불편함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드러난 바와 같이 그들이 대변하도록 되어있는 노동자들의 열망과는 반대로 고용주의 이익에 전적으로 봉사하는 조직이다.

 

자유무역 협정 후에 노동자 부문의 세력은 약화되었고, 그것은 국가적인 의제에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멕시코와 미국에서의 노조주의는 퇴행적인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러한 예의 하나가 독립노조에 대한 불신 캠페인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미국에서 온 노조와 접촉을 해왔기 때문이다.

전국노동조합과 멕시코 민족전선은 CTM과 PRI의 독점을 깰려고 노력했다. 이 두 노조조직은 인준이 수년동안 지연되고 있는 아바스칼 법, 모든 기초상품에 대한 부가세법의 일반화, 노동자의 식량으로부터의 수입에 대한 세금의 신설 등과 같이 권리의 보장이란 면에서 수많은 퇴행적인 개혁을 억제해 왔다. 그 이유는 공공지출을 더 낮추는 것이지만, 고용주는 건드릴 수 없기 때문에 전체의 세금체계는 노동자에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친 정부적인 조합주의는 부식되고 있고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독립노조주의는, 비록 그 흡입 능력이 커지고 공식노조도 참가해야만 하는 투쟁에 앞장서 왔을지라도,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백색노조는 증가해 왔다. 정부는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공식노조보다는 백색노조를 더욱 지지한다.


. 결론: 나프타의 현실

 오늘날 나프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그의 영역 안에서 특히 농업부문에서의 협상은 멕시코 사회에서 점증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3년에 합의된 일정에 따라 진행중이다. 게다가 10년이 넘은 지금 깊은 통합을 향하여 움직이도록 합의를 갱신하도록 하려는 멕시코로부터의 솟아오르는 압력이 있다. 이러한 표현은 깊은 통합이 상호인정과 그에 따른 규제와 규정의 조화를 향한 무역장벽의 제거를 뛰어 넘는 경제적 통합을 가리키는 고전적 표현의 북미적 맥락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오히려 현재의 단계에서는 깊은 통합은 조화와는 관계가 없고 그들 각자의 규정을 공동의 규율이나 원칙으로 채용하는 정당들간의 협정으로 이해되고 오히려 쌍방의 일부인 미국 미국의 규정과 기준에 일방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미국식 규칙 제정자들로부터 나온 요구조건의 일방적인 수행은, 9.11이후 2002년 무역법과 2002년 가을의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의 정신과 내용이 모두 아주 잘 드러내 보이는 것처럼, 보다 더 큰 긴급상황에 직면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압력은 북미에서 아주 강력하다. 이러한 지적은 두가지 질문을 낳는다.: 첫번째는 한편에선 그것들이 미국에 의하여 그리고 미국을 위하여 설명되고 수행되었던 것처럼 경제통합이라는 말과, 다른 한편에선 멕시코에서 수행된 똑 같은 말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내부적으로 보면, 대륙통합은 발전의 규모와 수준이 다른 경제에 대립하는 비대칭적인 과정일 뿐만 아니라 대륙통합은 그 힘을 증가시켜야만 하고 한쪽의 복지를 다른 쪽의 희생으로 전진시켜야만 한다. 동시에 외부적으로 보면 경제통합은 세계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촉진해야 하고 멕시코의 국제적인 조정능력을 억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효과는 미래에 마킬라 시스템과 국내적인 정치경제와 멕시코에서의 노동권의 수행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권고안

 

연방정부에 대하여

 

노조와 관련하여

노조 모델의 심대한 개혁은 부패를 제거하고 그 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하는 자주적인 노조주의를 만들기 위하여 필요하다.

 

FIDH는 멕시코 정부에게 ESCR의 궁극적인 조사에 따라 ICESCR 제8조에 대한 보류의 철회를 요청한다.

 

또한 노조의 규제에 대해 책임있는 상이한 사례들을 조사하고  필요가 있고, 각이한 회사의 이해로부터 이러한 체계의 독립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법을 행사하는데 책임이 있는 심판의 불편부당성을 검사할 필요가 있다.

 

독립노조와 사회적 조직들이 만든 권고안은, 특히 2000년 6월 폭스 대통령이 동의한 결사의 자유에 대한 20가지 임무에 대한 지시 속에 고려되어야만 한다.

 

FIDH는 멕시코 당국이 마킬라 시스템과 비공식 부문의 상황과 특히 멕시코적인 특수성으로부터 모든 결론을 내릴 것을 요청한다. 그것들은 노동조건의 악화와 결과적으로는 인권의 침해로 이끄는 약하거나 존재하지 않은 노조에 의하여 특징지워진다. 멕시코 당국은 멕시코의 노동조합의 구조가 다음 사항을 보장하는 것에 의하여 노동자의 권리의 보호에 효과적이도록 보장해야만 한다.

 

-노조는 노동자들에게 독립적이고 대표성이 있고 투명하고 책임이 있어야 한다. 노조는 정당이나 공식적인 정부기구에 결탁되어서는 안된다.

-연방정부는 독립노조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적 보호를 제공해야만 한다. 특히 정부는 작업장에서의 노조 독점을 위해 만들어진 법률을 제거해야만 하고, 법률과 법률의 강화를 통해서 노동자들이 어떤 노조와 노조들이 자신들을 대변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촉진시켜야만 한다.

-정부는 백색노조를 막기 위해 법률적인 노조요건을 보다 더 잘 규정해야만 한다. 그 법률은 노조는 계속 존재해야 하고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대변하도록 요구해야만 한다.

-정부는 현재의 불만과 강제적인 구조를 개선해야만 한다. 노동자들은 불만을 표출할 충분한 구조가 부족하다. 정부는 생존능력이 있는 노조를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구조와 정치적인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

 

아바스칼 계획을 포함한 노동법률의 개혁과 관련하여

연방정부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보호받고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현행 노동법을 개혁해야만 한다.

 

특히 정부는 기본적인 생활임금을 보장하기 위하여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정부는 노동중개인을 통하여 고용하는 관행을 합법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중개인을 통한 고용은 고용주가 법률이 정한 수당을 주지 않고도 피고용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한 현재의 중개인의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노동법이 현재 제한되어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파업을 할 노동자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바스칼 계획은 그것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멕시코 노동자의 의견에 따르면 인권 특히 노동권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인이 참여하는 공동분석이 이루어질 것을 권고한다.

 

노동법의 강화에 관련하여

연방정부는 적절한 사법기관이 노동법을 적용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많은 장애들 즉 사법 접근비용, 중재와 화해 심판소의 사법적 구성원의 불평부당함의 결여, 그리고 효과적인 심의회의 부족등과 같은 점이 강조되어야만 한다.

 

조정과 중재 평의회는 충분히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노동권의 보호와 강화를 위한 효과적이고 독립적인 기구를 발전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멕시코의 마킬라도라 모델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음에도 어떤 종류의 국가적 사회적 감시도 없는 폐쇄된 시스템이다. 그것이 갖는 정치 사회 문화적 모든 영역에 대한 강력한 영향때문에 국가적인 수준에서 특히 씨유다드 주아레즈와 같은 지역적인 수준에서 노동자의 노동권의 침해를 막아내고 처벌하는 데 필요한 메커니즘이 만들어지도록 권고한다.

 

인권을 보호랄 책임이 있는 연방인권위원회는 헌법상 노동권을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노동현장에서 침해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보호해야만 한다. 노동현장에서 침해되고 있는 인권이 자동적으로 노동권은 아니고, 노동현장에서의 이러한 권리의 보호의 결여가 국가적인 인권기구나 지역적인 인권기구에 의한 보호에 심각한 갭이 된다.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과 다른 국제적 기구나 미주내 기구에 열거되어 있는 권리들은 이러한 기구들에 의해 반드시 보호되어야만 하고, 노동이라는 맥락에서 침해된 것이라고 단순히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정부의 장관들은 인권규정이 그들의 업무에서 고려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고용에 관한 연방 통계보고서에는 비공식부문이 정부정책의 효과에 적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감안되어야만 하며 노동현장의 인권의 참다운 조건을 고려해야만 한다.

 

국내의 기업과 초국적 기업에 대하여

 

노조에 관하여

고용주는 독립노조가 노동현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고용주는 백색노조의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

 

작업장에 관하여

 

고용주는 감시단이 접근하여 근로자와 이야기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작업장을 보장해야 한다.현재의 관행은 독립적 기구에 의한 효과적 감시를 방해하고 있고, 노동자의 권리의 충분한 보호를 방해하고 있다.

 

나프타와 NAALC 기관에 대하여

 

나프타와 NAALC 기관은 멕시코에서의 노동조건에 관련된 그들의 협력을 증가시켜야만 한다. 그들은 현존하는 노조의 구조에 대하여 특별한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심각하게 무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에 대하여

 

멕시코에 있는 전통적인 인권기구의 대부분은 경제적 사회적 권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고, 그 결과로 노동권에 대하여 노력을 하는 기구들은 인권에 관한 대화의 주된 흐름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시민사회가 보다 더 넓게 횡적으로 협력할 때에만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국내의 발전과 복지에 관한 자유화와 나프타의 영향에 관한 멕시코 사회의 깊은 무지 때문에 채택된 발전모델과 인권의 충분한 보장에 관하여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를 분석하고 국제적인 인권조약의 우월성을 보장하는 대안을 찾아보기 위한 광범위한 공동의 토론을 특별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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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 소고

  • 분류
    단상
  • 등록일
    2006/03/17 02:04
  • 수정일
    2006/03/17 02:04
  • 글쓴이
    서른즈음에
  • 응답 RSS

오늘은 개똥철학이나 함 해보자.

철학이란게 학교에서 하도 딱딱하게 가르쳐서 그렇지 사실 그리 어마어마한게 아니다.

세상과 인생에 대하여 바라보는 것 다른 말로 인생관 세계관이 철학이 아니겠는가...

 

소크라테스, 이황.

두사람의 공통점은 뭘까...

겉보기와는 달리 두사람 모두 악처로 인한 시련이 있었다.

난 소크라테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이황이 이상향의 회복을 주장한 점에서 공자만큼이나 세계를 보는 눈이 나와는 다르기도 하다. 하여간...

 

소크라테스의 명성이 높은 만큼이나 그의 아내(이름은 잊었다.)는 철인에게 바가지를 긁은 무식한 악처가 되었지만, 어쩌면 이상만 주절데는 사람(남편)과 각박한 현실을 부딛치는 사람(아내)간의 갈등이 그렇게 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가장이 집안은 돌보지 않고 헛소리만 하고 있을때, 생계를 책임진 아내는 남편이 철학자건 지랄이건간에 바가지를 긁었을 것인데, 그걸 꼭 악처라고 비난해야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이황은 젊은 첫 아내를 사별하고, 약간 정신박약자인 두번째 아내와 결혼하였다. 그런줄 알면서...  나는 그 심정을 안다. 이게 잘난놈들의 자존심이란걸... 내가 마음이 넓고 고상한 까닭으로 세상의 어떤 여자와도 함께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심... 거기에 사랑은 없었다. 끌림도 없었고... 내가 이 여자를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이 여자를 챙기지 않을 것이라는 연민과 의리! 그리고 인정이 무슨 커다란 기대나 달콤함에 대한 꿈도 없이 결혼이란 속박을 짊어진 것이다.(어떻게 이걸 알아냈느냐고? 그런건 묻지마슈.)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포용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부간의 생활이란게 꼭 그리 간단치만 않는 것이어서... 때론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어쩌면 그 생활의 기쁨은 없는 것이어서 아니 때로는 괴롬 뿐이어서 인생과 사회와 세계에 더욱 천착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위대한 철학자 옆에는 악처가 필수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현실을 책임지면서 철학을 을펐으니까 소크라테스보다는 한수 위인듯하다. 그런데 이황의 얘기를 최인호의 유림에서 보면서 최인호야 그 뒤 두향과의 사랑에 주목하고 있지만, 나는 이황의 재혼생활에 깊은 공감이 간다. 왜냐고? 그건 비밀.

 

하여간 이황은 두번째 아내가 죽고난 뒤 46세의 나이에 18세의 기생인 두향과 6개월 남짓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이황은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기 위해 두번다시 이 여인을 찾지 않는다. 죽을때까지 못 잊었으면서도... 두향 역시 죽는날까지 사모하고 수절하다가 죽고...

 

이황이 주리론자인 점에서는 나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이지만,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일화 특히 율곡은 잠자리에서 고요하였고 이황은 방구들이 들석거렸다는 일화부터 시작하여, 정신박학자임을 알면서 결혼을 결심한거나 여러가지를 보면, 엄격한 성리학자이면서도 호방함과 삶에 대한 깊이와 학문에 대한 치열함에 있어서 나와 성격이나 품성이 지극히 비슷한 사람인 듯하다.

 

안현인가 안회가 임금-주문공이 와서 당신의 마누라는 늙고 볼품 없으니 자기 딸을 데리고 살라는 얘기에 '여자가 젊었을 때 저를 택한 것은 늙어 볼품없어졌을 때 의지하기 위함인데 제가 어찌 조장지처를 버리겠습니까?'라고 대답 하였다고 한다.

 

옛날에 어떤 이는 애인과 다리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애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강물은 홍수가 나서 물이 불어 넘치는데도 애인이 늦더라도 올거라는 약속만을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는 고사도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옛사람들은 고지식했을까? 아님 단순했을까? 차가 조금만 막혀도 짜증을 내고 어디 빨리 가는 방법이 없을까 안달을 하는 요즘 사람들과는 정신자세가 조금 다른 듯하다.

 

하나 더 붙인다면, 요즘엔 고지식한 사람을 용납하질 않는 사회인 듯하다. 각박한 세상속에서 각박해지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아니면 고지식하게 게기는게 진실한 삶인가... 나는 당신에게 답을 줄 수가 없다. 그건 당신의 선택!

 

선택이란 버리는 것과 동의어다!

Selecting onething is just like giving up another one.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리는 것이라는 것만 알아도 삶의 지혜를 절반은 아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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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비내리는 환상의 계곡에 안겨

  • 분류
    단상
  • 등록일
    2006/03/16 17:44
  • 수정일
    2006/03/16 17:44
  • 글쓴이
    서른즈음에
  • 응답 RSS

산행기-비내리는 환상의 계곡에 안겨
작성자 : 서른즈음에  2004-07-11 22:59:30, 조회 : 220

 

나를 포함, 이재요, 김한상(사회보험노조 전위원장)동지 등 3사람이 인류의 평화를 위해 북한산을 찾았다. 10명이 넘게 참가하겠다고 했었지만 이렇게 전사가 많은 까닭은 가겠다던 동지들이 광화문집회 때문에 피곤한데다 축구나 유세 등 일정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정확히 분석하였다.

명바기 때문에 배차간격이 넓어저 11시 반에 구파발을 출발하였다.
물이 불어난 계곡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였지만 단호하게 유혹을 뿌리치고 대서문에 도착한 것은 1시가 조금 넘어서 였다. 비기운을 품은 차가운 바람의 상쾌함! 아마 그대들은 모를 것이다.

내려오면서 운해로 둘러싸인 원효봉을 잠시 바라보다가 올라올 때 우리를 유혹하던 산아래 계곡에 도착한 것은 2시반. 차가운 냇물에 발을 담그니 무릉도원이 따로없다. 북한산을 수없이 올랐다는 김동지 왈 이건 등산이 아니라 산림욕이네요 하면서 예리한 지적을 한다. (맞지. 이제야 감잠았나?) 그래도 유기수 위원장의 집요한 유혹을 뿌리치고 축구를 하지않고 산에 온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자백한다.

비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면서 등산객은 사라지고 그 여인의 숨결 같은 연한 산안개의 품에 안기는 이 항홀함! 주동(주모보다 젊은 총각)이 가랑비에 젖는다며 계곡옆의 식당처마에 마련된 자리로 가라고 해지만 우리는 부득불 계곡물을 옆에 두고 조금씩 더해가는 비를 맞으며 인류의 평화에 하나가 되어갔다.

해물파전과 조껍데기 동동주, 그리고 영계가 아닌 성숙한 백숙, 그리고 노동운동의 경험담과 요즘 노운의 현황을 안주로 삼으며 공동행동의 사기극을 씹으며…

아 아! 제법 불어난 차가운 계곡물, 젖는 줄도 모르게 술잔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그리고 차가우면서도 결코 냉정하지 않은 여인의 숨결 같은 보일락 말락한 산안개… 거의 죽엄이고 환상의 극치다.

동동주를 두세개 비우고 내려와 요구르트 밖에 먹지 않은 내가 김동지의 차를 몰고 가라뫼에 온 것은 7시가 약간 넘었다. 김동지는 소주라면 입에도 못데는 나에게 동네에 왔는데 어떻게 그냥갈 수 있냐며 민물장어집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인간의 자주성을 이렇게 침해할 수 있냐며 저항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내말이 안 믿어지면 김동지나 이 동지에게 확인해 보라)

소주를 서너개 비우는 동안 김동지는 인류의 평화가 아닌 소주사랑모임을 계속 조직한다. TV스타 최경순 동지와 김종호 동지까지, 10시가 가까워지고 요번엔 죽창가와 무슨 혁명가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요상한 맥주홀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맥주라고는 입에도 못데고 음치인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들을 배신하고 택시를 탔다. 자연과 어울렸던 환상의 계곡을 떠올리며 구호를 외쳐본다.

구호!!! 음주문화 쇄신하여 몸매관리 이룩하자!!!(3회반복)


  (2004-07-11 00:00:00)

부러버라... 밤 10시 경 지구당 사무실을 나서다가 세꼬시에 술 한 잔 하고 싶어 선동을 하였으나 아무도 동의해주지 않아 눈물을 삼키며 돌아왔는데... 흑흑흑

 
 
최경순
  (2004-07-12 00:00:00)

음주문화 쇄신하여 몸매관리 이룩하자!!!(3회반복)// 선배님 글 보니 희생한 저의 보람이 있네요. 저희가 요상한 데 간 것이 아니고 맥주집인데, 밖에 탁자가 있어 마음 놓고 노래 할 수 있는 곳에 왔을 뿐입니다.

 
 
최경순
  (2004-07-12 00:00:00)

사랑스런 이재복 후배가 노래를 헌납하고 가고, 김완상 위원장, 김종호 동지, 저 3명이 남아 외로운 술집을 지키다가 내일을 위해 일보 후퇴하며 집으로 해산했습니다.

 
 
이재정
  (2004-07-12 00:00:00)

상당히 에로틱하네요.

 
 
서른즈음
  (2004-07-12 00:00:00)

요런건 에로틱이 아니라 로만틱. 요번 18일 저는 산행 못감. 울마누라가 공황에 안데려다주면 가는 길에 알카에다 만나서 지구당 폭파시키겠다고 했음. 저는 놈현같이 드런놈 아님. 지구당을 구하기 위해서 안가기로 했음.

 
 
철인
  (2004-07-12 00:00:00)

이재요=이재복,김한상=김완상 뭡니까? 정확히 하시죠 선배님 주무시는것 같아 연락 못했습니다 우린 새벽 2시까지 한잔했죠 울엄마에서... 선배님 생각나서 목에 걸리데요 주인장이 명예당원 된답니다 아싸 내일 비오면 한잔합시다 ㅋㅋㅋ

 
 
서른즈음
  (2004-07-12 00:00:00)

이재복동지! 산행기 올리세요. 배신한 동지들이 안따라온걸 당을 치고 후회하도록...

 
 
서른즈음
  (2004-07-12 00:00:00)

철인동지! 전 원래 술을 잘 못하고 술 끊었는디요. 그라고 음주문화 좀 쇄신합시다. 파병반대와 같은 중차대한 시국엔 술잡수지 말고 요굴트(본토발음)만 잡수세요

 
 
철인
  (2004-07-12 00:00:00)

당을 치고? 산에 안갔다고 당을 치다니? 엥..땅이죠 비동지! 간만에 큰 맘먹고 성당엘 갔는데 대화 오래못해 아쉽네요 집사람이 청자켓 하나 샀는데 넘 좋아 하네요 애들도 초하나 사고 기뻐하고요... 행복했어요 또 봅시다

 
 
서른즈음
  (2004-07-12 00:00:00)

그라고 비동지를 울린 동지를 탄핵합시다. 투쟁!!!

 
 
철인
  (2004-07-12 00:00:00)

제가 뭘 울렸나요? 우리 당에는 서로 무조건 인정하는 풍토가 있데요 그건 잘못입니다 비에 대한 서른즈음의 마음 전 마음이 넓어 서운한 사람은 언젠가 만나 푸는 스타일이죠 불교신자가 성당 갔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옷도 사고

 
 
서른즈음
  (2004-07-12 00:00:00)

동지말고.. 저 위에 세꼬시에 소주 안사준 동지 말이요. 사정없이 폭로투쟁을 조직합시다.

 
 
철인
  (2004-07-12 00:00:00)

아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네요 선배님! 내일 쉬시나요 아직도 안주무시게? 전 이젠 잡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오야스미 나사이 쪽발이 새끼들...

 
 
정경화
  (2004-07-12 00:00:00)

신고! 저도 탄핵대상 중 한명임다. 비도 오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잔 하자는 비동지의 선동에 혹 했지만 현실적으로 솔아,진아가 잠에 취해 칭얼거리는 바람에~.비언니, 담에!박선배님땜에 게시판이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이네요. ㅋㅋㅋ

 
 
철인
  (2004-07-12 00:00:00)

이번에도 공범(?)이 3명을 넘기지 못한 이유가 전날 집회나 행사가 항상 잡혀서라고 생각하심은 이제 무리인것 같은데요... 전술을 바꿔보심이 어떠신지요? 필요성은 느끼면서 동참은 부담스레 느끼는 동지들이 많은것 같은데...

 
 
철인
  (2004-07-12 00:00:00)

긴급 제안컨데 당찬 여성동지를 한명 끌어드리심이... 워낙 선배님의 카리스마가 강하다보니 조심스럽고 부담가는게 사실 현실이거든요 취지는 이제 알만큼 아니까 로비(?)는 참신한 여성동지 하나 키워서 맡기시죠? 그럼 100% 성공

 
 
김수연
  (2004-07-12 00:00:00)

엘레강스한 문체에서 '명바기'라는 단어를 발견하는 순간 얼마나 웃기던지 ㅋㅋ

 
 
이재복
  (2004-07-12 00:00:00)

저녁쯤에 천천히 간단히 산행기 올리겠습니다. 어젠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토요일,일요일 인터넷을 못했더니 볼게 너무많네요

 
 
  (2004-07-12 00:00:00)

일단 산행기 댓글 1번이 나인 것을 확인했으니 술 못얻어먹을 일은 없겠으니 다행이고... 휴...

 
 
  (2004-07-12 00:00:00)

대형 조직사건 감이라 입을 다물려고 했는데 서른지음 오라바니께서 물으시니 진술하겠사옵니다. 저의 선동을 짓밟은 이들은.... 두구두구두구두구,...

 
 
  (2004-07-12 00:00:00)

이홍*위원장, 김대*전사무국장, 이문*인테리어드자이너당원 그리고 자수한 정경화부위원장입니다. 흑흑흑... 절통한 마음이 오늘 또 비로 내리고 있지만, 시국이 하 수상하니 노염을 거두소서. 서른즈음 오라바니.

 
 
서른즈음
  (2004-07-12 00:00:00)

비님 우지마오. 이 오래비도 억장이 무너진다오. 이홍* , 김대* 등 내 이자들을 기필코 벌하리다. 자수한 자는 빼놓고.

 
 
서른즈음
  (2004-07-12 00:00:00)

근디 울마누라 내가 여기서 신파극하고 있는 줄 알면 날 잡아 먹을려고 할텐데...

 
 
안재광
  (2004-07-12 00:00:00)

ㅋㅋ 아주 뒤집어 집니다~~ ^.~;; 삐질 삐질 땀흘리며 눈찡그리면 잘봤습니다~ 비님의 미모에 대한 찬사는 들었고 사진도 봣는데 그렇게 감수성도 예민하신 분이시라니 저의 얄팍한 예민성에 통탄할 나름입니다요~~ 박선배님의 요굴트를

 
 
안재광
  (2004-07-12 00:00:00)

어제 저희가 조금 분음하엿습니다~ 사과합니다~ 허락도 맡지 않고 그맛난것을 ㅋ 비오는날의 산행이라, 그다지 힘들지 않으시구 좀 축축하게 다녀오셧겠네여 ㅋ 제가 워낙에 산을 싫어하는지라~ ㅎ 담에 기회가 된다면 요굴트 시음엔 흔쾌히

 
 
서른즈음
  (2004-07-12 00:00:00)

철인동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시오. 다 나보다 연상들만 모이는 평따모에 참여할 참신한 여성동지가 어디있겠소? 차라리 김수연동지나 나같은 미동(이쁜 놈이란 뜻)을 키우는게 낫지..

 
 
안재광
  (2004-07-12 00:00:00)

동참하겠습니다~ 언제든 불러주세여~ ㅎ 근디 자다가 벌떡 깨서는 몬갑니다~ ^^..

 
 
  (2004-07-12 00:00:00)

저 8월부터 백수되거든요. 평따모에 한 번 꼭 가겠습니다. 진짜루요.

 
 
  (2004-07-12 00:00:00)

그러고보니 서른즈음님께서는 지구당 게시판 베스트셀러 작가시네요. 서른님의 글은 모두 뜨거운 글이 되고 마니.. 대단하오이다...

 
 
서른즈음
  (2004-07-12 00:00:00)

너무 짜증나는 글들만 있어서, 지친 동지들에게 위안을 주려고 그러는 것이지요. 꼭 술로만 위안을 찾으려는 요즘 일부 동지들! 반성하세요. 철인님 술모임 결사반대를 외치며.. 힘차게 구호! 음주문화 쇄신하여 몸매관리 이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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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vez: for an Anti-imperialist Front

For an Anti-imperialist Front: let's realize the proposal of the Venezuelan
President!
Report on the WSF in Caracas and the anti-imperialist gathering
International Bolivarian Camp

Those who searched for clear answers within the usual multitude if the
Social Forums - this time "polycentric" with Caracas as the point of Latin
American reference - had to wait for the closing speech of Hugo Chavez,
president of the Bolivarian Republic of Venezuela:

"Also you will respect our autonomy to express what we think: I think that
we have to push the Forum to form a big global movement as an
anti-imperialist alternative comprising the entire world which got the
capability of connexion, of growth, of struggle. I also believe that we have
already taken some steps in this direction. We run the risk of a
folklorization of the Forum. A Forum which discusses and debates without
conclusions, for example, for me seems at least strange . if it is decided
that it should be this way, ok, but we are not here to loose time. I what to
insist on this, we are not here to loose time. It is all about saving the
life of the planet, saving the life of the human race by changing the course
of history. For this reason we once again raised the banner of socialism."

Chavez did nothing more than express the discomfort of many revolutionary
forces and popular anti-imperialist movements with the politico-cultural
festivals dominated by NGO professionals and individual political tourists
of middle class background. These characteristics impede a serious exchange
about the real challenges of the resistance against the Yankee empire as
well as an effective coordination of action. In Caracas this contradiction
between a mass of "no global" tourists who are characterised more by their
cloths and styles then by political commitment on one hand and a political
reality which calls from countless posters put up by the Bolivarian
government for the construction of people's power and the socialism of the
21st century on the other hand was more accentuated than during previous
events. The anti-globalisation movement did not succeed in changing the
course of history but history surpassed the movement. The anti-globalists
met in Caracas faced with huge political questions without the capacity to
reach a conclusive answer. What to say confronted with the new left-wing
governments in Latin America, what position to take in front of the
difficulties of the American empire in Iraq and the ferocious resistance of
that people, what to do with anti-imperialist Bolivarianism and the proposal
of socialism of the 21st century? The leading groups of the movement are
conscious about the necessity to take a political decision. But they also
know that this implies that nobody can hide any more behind the abstract
slogan of "another world is possible". It will be revealed that they fear
the real resistance of the peoples much more than they feel sympathy with
those who rise against the empire.

International Bolivarian Camp

From 23rd to 30th of January anti-imperialist militants from different
counties gathered in the combative popular quarter of Caracas by the name 23
de Enero (January 23). Some 500 people permanently established themselves on
the campus of the school Gabriela Mistral while the debates and cultural
activities were attended by more than 1300 people. The initiative was
promoted by the Venezuelan organisations Collective Alexis Vive of the
quarter January 23, the National Peasant Front Ezequiel Zamora, the Popular
Coordination of Caracas, the Feminist Collective Pachamama as well as the
movement Peru People and the Anti-imperialist Camp.

Full report:
www.antiimperialista.org/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4165&Item
id=144

Further information on the International Bolivarian Camp:
www.antiimperialista.org/index.php?option=com_content&task=blogsection&id=19
&Itemid=144


www.antiimperialist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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