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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만났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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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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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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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국보철폐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광화문, 지구당 깃발이 안 보인다. 할 수 없이 버스노조와 사회진보연대 중간의 빈자리에 앉았다.
사진연의 젊은 동지들이
‘선배님 요즘 일산에서 이주노동자 사업하신다면서요?’
-소문도 빠르군, 이상훈 동지가 소문냈나…, -

 

바로 전날 민노총 뒷풀이에서 모연맹 간부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길래, 진보넷 후원회원으로 있다고 소개했었다. 최경순동지는 내가 직함이 많지 않느냐고 하지만, 자본가라고 할 수도 없고, 민노당이 잘하고 있지도 않고, 평화바람 역시 아직 내세울만한 정도가 아닌데 소문만 나서 쪽팔리는 것같아 어디가든지 진보넷 후원회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자리에 p모 여성동지가 있었는데,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에 처음부터 결합하고 있는 친구다. 석사학위도 있고 원고료도 안주는 운동잡지에 국제운동에 대한 논문도 가끔 발표하는 30대 초반의 유부녀인 이 동지는 운동 때문에 애 낳는 것도 미루고 직장도 팽개치고, 밤이고 낮이고 뛰어 다닌다. 똑똑하고 치열한 젊은 동지들이 참 많다.

 

이어지는 사진연 동지들의 얘기, ‘요즘 이주노동자사업이 중요한 것같아요. 한모동지도 인천에서 이주인권센터를 만들었는데 굉장히 잘 된데요.
그래? 어떻게 잘되는데?
자원봉사자가 많이 결합해서 하고 있데요.
언제 한번 견학을 가봐야 겠다고 생각한다.

 

잠시 뒤 최경순동지가 오고, 최동지와 친한 서모 중앙위원이 옆에 앉는다.
기름끼 없는 얼굴과 넉넉해 보이지는 않는 옷차림(나와 비슷하다), 가끔 중앙위에서 깡다구있는 발언도 잘하는 50대 중반의 운동가. 궁궁해서 이것저것 묻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가 수송대에서 일한 것이 사회에 나와서 버스 일을 하게 됐단다. 그러다가 노조만들고. 짤리고, 또 취업해서 노조운동하고, 또 짤리고, 이러기를 7번인가 10번인가 하다가 블랙리스트로 취업도 안되어 버스노조 일도 좀 하다가 요즘에는 지구당사업에 전념한단다.

 

구로을 지구당에서 중앙위원을 하면서 당 사업도 열심히 하고 구로노동상담소에서 상근자로 일한단다.

상담소는 월에 한번 모이는 운영위원회와 매주 하는 상근자회의가 있고, 의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후원회가 월 150만원쯤 걷어준단다. 그래서 내가 상근자 한사람 월급은 되겠네요 했더니, 상근자가 네명인데 20만원씩 받고 임대료와 사업비로 쓰면 빠듯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지역신문에 상담광고를 많이 하는데 요즘 이주노동자 상담이 많이 늘었다는 것과, 근로감독관 새끼들 하는 짓이 꼭 악질회사 총무과장같는 수작만 해서 열받는 일이 많고 가끔 가끔 싸운다고 한다. 그럼 사모님이 잘 버시겠네요하고 물었더니, 근처 공장에서 100만원 정도 번다고 한다. 큰아들은 군대갔다와서 유통업체에 취직했고, 둘째는 군대갔다와서 복학했다고 한다. 큰아들하고 가끔 술을 먹는데 먹을 때마다 노조에 가입해서 활동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삶에 대해 부끄럽기도 하고 왜 우리 운동이 이런 운동가를 이 정도밖에 뒷바라지하지 못하는가, 이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었인가, 여러가지를 생각게 하는 대화였다.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다가 모연맹 도지부장인 이모 위원장을 만났다. 여전히 넉살좋고 친근한 말투로 ‘아이고 형님, 얼마만이요? 어디가서 술이나 한잔합시다’ 결국 문화제는 땡땡이 치고 근처 순대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다.
‘다음달에 연맹위원장 선거한다든디 유모위원장좀 밀어줘’
‘형님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라, 사정이 좀 복잡해서 저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디요’
‘아 그려? 내가 사정도 모르고 훈수했구만. 하여튼 조직을 올바른 관점에서 잘 이끌어나갈 사람 뽑으면 되제.’

 

그때 옆자리에서 노인 한분이 일어나더니 이모위원장을 보고 아는 척을 한다. 70이 다된 성남 중원지구당의 열성당원 왈 ‘노세극이 정말 싸가지 없더라고. 지 때문에 선거를 두번씩이나 하게 됐으면 사과부터 하고 유세를 해야지 기본이 안되었더라고. 그래서 내가 당대표와 사무총장한테 항의편지를 썻당께’

 

다음에 뵙기로 하고 술잔을 돌리는데, 이번에는 이모위원장을 따라온 40쯤 되어 보이는 동지가 한마디 한다. 그 이주노동자들 법대로 추방을 해야지요.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한국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을 수가 없어요. 건설현장의 2/3가 이주노동자예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한참 얘기했지만 수긍을 하지 않는 눈치다.

 

술집에서 나온 후 민애청(민주주의 애국 청년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30대초반의 후배를 만났다. 총회원이 70명인데 오늘 60명이 참석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회비는 십일조지만 대개 4-7만원씩 걷으면 월 150만원의 예산이 되는데 상근대표 50만원 주고 임대료와 분담금 그리고 사업비로 지출한다고 한다. 전번에 국보철서명을 1인당 1,000명씩 받기로 했는데 3,000명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와 다른 점이 뭐고 배울 점이 뭔가를 생각해 본다.

 

돌아오는 길에 연합의 상근자였던 박모동지가 논쟁을 제기한다. 문화제라면 이렇게 하면 안된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더 부드럽게 해야된다. 당면한 적은 한나라 수구꼴통들인데 열우당과 연대해서 한나라당을 고립시켜야한다. 신자유주의 앞잡이하고 무슨 연대냐고 했더니, 우리가 통일을 하고 사회주의사회를 이룩하려면 당면투쟁에서는 국보법철폐투쟁이 정말 중요하다. 열우당과 시민단체와 손잡고 투쟁을 열심히 하자고 한다. 대화는 계속되어도 평행선...

 

다음날 아침 동창회 체육대회를 하는데 날 꼭 좀 보자고 해서 참석했었다. 40명 가까운 동창들은 내년이면 장군될 친구도 있고, 중앙부처의 국.과장도 있고, 대기업의 이사나 상무도 있고, 고참 지점장도 있고 의사, 변호사, 교수, 건설회사 사장 등 참으로 다양하다. 그들에게 공통적인 점이 있다면 다 먹고 살만하다는 것과 그래도 스스로를 상류층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친구가, 기여입학제를 허용해야만 사학이 산다고 열변을 토한다. 학점 안되면 졸업 안시키고, 기여금으로 장학금주고, 학교 발전시킬 수 있는데, 왜 국민정서 운운하느냐고 열변을 토하는 친구도 있고, 무역 얘기, 중국 투자 얘기, 몇십억 설비 낙찰 얘기 등 상당히 전문분야의 얘기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재미가 없기도 하다.

 

마침 통일부에서 개성공단기획팀장을 맡았던 친구가 있어서 열심히 묻는다.
월급은 50불, 사회보장료 15%  합계 57.5불(중국은 20%이므로 60불)인데, 북한 주민 월급이 보통 2불이라고 한다. 요즘 개성공단에 취업하는 것이 북에서는 최고 인기있는 직장이란다. 공단이 완공되면 대략 8-13만명 정도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고 한다. 버스와 철도도 제대로 다니지 않고 자재와 전력생산도 부족해서 공장들이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아 계획경제는 포기하고 각 기업체들이 알아서 먹고 살아라는 현실이라고 한다. 북의 현실과 통일문제는 항상 답답하기만 하다.

 

어쨌든 몇 년전 졸업 25주년 땐 모교장학금으로 8,000만원이나 걷어 준 이 동창회와 서모 중앙위원이 일하는 노동상담소는 별개의 세상이면서 같은 세상 속에 있다. 그 속에 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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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모두 관점을 바로잡고 초심으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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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모두 관점을 바로잡고 초심으로 돌아가 보자!

글쓴이 서른즈음에 글쓴날 2004-08-31 10:36:26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건이 만약 폭행을 당한 사람이 남자라고 해서 분노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이 문제는 남자가 여자를 때렸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폭행했다는 것, 그것도 진보정당운동을 한다는 인간이 단지 자기 정파나 종파가 아니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훨씬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다양성과 관용의 가치에 대한 아무런 자각을 갖지 않은 패거리들의 조폭문화의 발로라는 점에서 이것은 파시즘적인 폭력이 되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주장한 국가사회주의를 나치즘이라고 하지요. 즉 대중을 조국과 민족과 국가라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의 포로를 만들면서, 그 허구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노골적인 폭력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어떤 세력들이 계급과 민중의 입장에 서지 않고 허구의 대중과 민족과 국가와 조국을 들먹일 때-히틀러나 박정희나 장개석이나 등등- 그들은 폭력의 유혹에 굉장히 가까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운동에 있어서 다양한 견해의 차이를 토론과 이성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아니 극복할 생각이 없이 진리를 독점했다고 주장하는 순간, 그들은 설득보다는 강요와 폭력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배타적이고 몰이성적인 자기확신 때문에 견해가 다른 자에게, 혹은 자기 정파가 아닌 자에게, 유일한 진리를 따라오지 않는 자에게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자들, 그들에게는 다른 견해를 갖는 사람은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는 주장에서 보듯 미친 개로 보는 것입니다. 대중을 이성으로 설득할 자신을 잃고 설득할 의지도 잃은 뒤에 광신도처럼 너와 나를 가르고 폭력과 테러가 난무하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지 힘없는 여자와 힘있는 남자의 문제로 보지 마시고, 운동의 내부에서 견해의 차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토론이 아니라 폭력이 동원된 점에 보다 주의를 기우려야 할 것입니다.

또 한가지 내가 우려하는 점은 운동내의 패거리문화입니다. 올바른 운동에서 선배, 후배, 내 조직, 내 헤게모니나 따지는 패거리문화는 반동적인 문화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정파가 다르고 소신이 다르다고 하여도, 보편적인 이성과 가치에 비추어 남이 한 일도 옳은 것은 옳고, 내 편이 한 일이라도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입니다. 자신의 어떤 이해관계때문에 자신의 최소한의 출발점과 최소한의 양심을 부정하는 순간 그는 진실과 정직으로부터 멀어저서 운동가가 아니라 운동가의 탈을 쓴 사이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기가 지금 어떤 정치적인 입장과 견해를 갖었던지 간에 항상 자기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용기를 갖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딸딸이치기 위해서(미안합니다. 자기기만을 위해서) 이 험난한 세계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기만이 아니라(혹은 자기 정파나 자기 패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해방을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들간의 관계와 그리고 우리와 대중간의 관계를 해방시키는 것이, 그러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해방된 인격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해방된 인격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각인되어온 온갖 편견(당근 사회적인 소수와 여성에 대한 편견도 포함되지요)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하겠지요.

나는 이글이 편가르기에 익숙한 요즘의 현실에서, 단지 자기와 패거리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 엄청난 반동적인 폭력에 대해 침묵하고 심지어 두둔하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자기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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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만났던 어느 아나키스트 여성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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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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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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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WTO각료회의가 열렸던 캐러비안 해안에서 유명한 휴양도시, 멕시코 캔쿤. 특히 농업시장의 개방과 지적재산권협상, 그리고 의료와 교육시장의 개방이 주요 이슈였다. 대형 할인점이 들어오면 동네 구멍가게나 웬만한 수퍼마켓은 줄줄이 도산하지 않던가? 한줌의 강자를 위해 수많은 낙오자가 생기고 경쟁력과 합리화를 위해서 낙오자들은 숨을 죽여야 된다.

 

이름하여 개방의 논리. 신자유주의 세계화. 농업시장의 개방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밥이라도 먹고 살았던 농민들이 토지를 잃고 도시빈민이 되어간다. 그래도 안되면 이주노동자가 되고. .. 일제하 조선의 농민들의 삶이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멕시코, 브라질, 인도, 필리핀 등 수많은 제3세계의 농민들이 오늘도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쫒겨나고 있다. 공정한 경쟁과 합리화를 위해서.

 

의료와 교육시장이 개방되면 경쟁을 통해서 질좋은 서비스가 제공되고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주는 대신에, 없는 놈은 치료비가 비싸 병원에도 갈 수 없고, 없는 집 자식은 공정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 결국 소수의 귀족같은 삶은 위해 절대다수를 낙오시키는 것, 그것이 개방과 경쟁의 논리다.

 

이런 까닭에 작년 9월의 캔쿤은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제3세계 민중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된 전세계적인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장이었다.

 

이경해 열사가 자결하기 전날이었던가 당일이었던가 정확하지는 않다. 경찰의 바리케이트는 꼼짝도 않고 도무지 투쟁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 때에 뒤에서 전갈이 왔다. 전면을 맡고 있는 한국친구들(전농이 대오의 전면에 있었다.)은 뒤로 빠져라. 자기들이 나서겠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십명의 블랙 전사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바리케이트를 공격한다.

 

30도를 훨씬 넘는 찜통 더위 속에 블랙 전사들! 검은 바지, 검은 옷, 모자, 마스크, 쇠파이프 등, 어느 것 하나 검지 않은 게 없다. 노동자대회 때의 사수대의 모습과 비슷하다. 내게는 더할 수 없이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전사들로 보였다. 아나키스트들을 만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에서 온 활동가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듯 하였다. 싸움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가 앞장서서 부딛혀줬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앞장서서 싸우는 사람들을 고마워하지 않는다.

 

여하간 그 친구들이 되게 맘에 들었는데, 당일 투쟁이 정돈된 다음, 우연히 그들 중 하나의 그룹과 만나게 되었다. 5명으로 된 그룹의 리더는 30대 초반의 그렛나룻이고 다른 친구들은 20대 후반의 청년들, 그런데 그중에 키도 조그마한 20살도 안되보이는여성동지가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호기심이 갈 수 밖에..

 

통성명을 하고 서로에 대해 묻는다. 보안때문에 5명이하의 소그룹으로 움직이고 소그룹끼리는 아주 느슨하게 연대를 한단다. 그런데 이 여성동지 어깨의 문신이 희한하다. 주역에 나오는 풍택중부라는 쾌를 새겼다. 자연히 얘기는 주역부터 시작해서 동양고전과 불교까지 걸친다. 얘기가 한참 재밌게 되가는데 조직원들이 움직이니까 아쉬어 하며 헤어졌다.

 

다음날 농성장에 앉자 있는데 이 여성동지가 토론을 하자며 찾아왔다. 나이가 스물하나라는 것, 다른 조직원들은 다 대학교육을 받았는데 자기는 미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가출하여 떠돌다가 아나키스트 그룹에 들어갔다는 것, 가출한지 5년째라는 것..

 

아나키즘은 맑시즘과 함께 세계좌파운동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다. 맑시즘이 국가는 혁명후 서서히 소멸해간다고 얘기할 때, 그들은 아예 국가권력자체를 부정한다.

한국의 좌파운동은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적인 전통이 강해서 아나키즘은 언급할 가치도 없을 만큼 이상한 운동으로 규정되어 왔고 나 또한 그런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지라, 그 아가씨가 마치 정상적인 불교도 아닌 남묘호랑개교 혹은 조용기나 박태선의 사교에 빠져있는, 한마디로 구제해야하는 안타까운 존재로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해서든 토론을 통해서 그 삿된 의식과 이론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고, 또 무었보다도 자본주의와 소시민 의식에 절어있는 나로서는, 학벌도 없이 밑바닥을 박박기는 그 여성동지의 삶이 영 안타까운 것이었다. 꽃다운 나이에 쇠파이프가 아니라 우리회사 여직원처럼 하이힐도 신고 제또래 얘들처럼 멋도 부리면서 밝게 사는 것과는 정 반대의 코스다.

 

그래서 투쟁지도부에서 만든 반 WTO 투쟁에 관한 리플렛을 보여 주면서 이런 걸 읽어 봣느냐고 물었더니 다 읽어 봤단다. 맑스고전을 읽어 봤느냐고 했더니 한 술 더 떠서 맑시즘을 비판하고 아나키즘을 찬미한 촘스키 등의 글을 읽어 봣느냐고 되묻는다.

 

자신들은 토지없는 농민들과 자율공동체를 건설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고 그들을 위해 살고 항상 학습을 한다고 한다.

돈 많은게 부럽지 않느냐고 했더니 자신들은 돈도 없지만 또 필요도 없단다. 왜냐? 돈이 있으면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 나눠 줄거니까...

 

바리케이트를 뚫고 WTO협상이 무산되었다는 승전보가 날라온 그날 밤, 힘든 싸움끝에 이겼다고 생각하자 모두들 배가 고픔을 느끼고 있는데, 누군가가 봉고차에 가득 음식을 실고와서 2000명이 넘는 대오에게 배식을 한다. 얻어 먹을려고 가까이 가보니 이 여성동지를 포함한 몇몇 아나키스트 그룹들이 배식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자기들이 노동을 해서 모은 돈으로 장만을 했단다.

 

현지사정에 어두웠던 한국팀은 호텔에서 지냈고, 외국에서 온 활동가들은 임대로가 싼 다운타운의 방을 얻어서 생활했는데, 이 친구들은 빈민굴에서 바닥에 거적대기만 깔고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좌우간 악착같이 부를 챙기고 축적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이었다. 소유하지 않고 갖지 않는다는 것,  맨 밑바닥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조금이라도 생기면 나눈다는 것.이것이 부처가 얘기한 혹은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의 무소유의 삶이 아닌가.

 

하기는 불교도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 제법무아 (諸法無我) 내가 없으니 나와 상대되는 모든 것이 없다. 그러니 약견제상 若見諸相 비상 非相 즉견여래 卽見如來라, 존재하는 모든 외양적인 것(appearance)에 걸리지 않으면 진리를 본다는 것은, 모든 외적인 존재와 권위를 부정할 때 진리를 본다는 것으로, 돈이나 권력이나 편안함이나 일체의 애증을 넘어선 그 세계가 자기를 버리고 갖지 않은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일 수 밖에.. 그러나 그것을 승려나 신부가 아닌 속인이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들의 주장이나 사상이 나와 다른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찌됐건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속물적 삶을 버리고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투쟁이 끝날 무렵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서로의 삶을 존경하는...

 

보도진을 가장하고 회의장을 잠입하여 기습시위를 벌였던 미국친구들의 초청을 받아 축하파티에 참가하였다. 파티가 열린 다운타운의 광장에는 300명 가까운 각국의 활동가들이 락과 디스코로 모처럼 기분을  내는 자리였다. 그들과 헤어져 혼자 돌아오던 길에 왠 빌라같은 집인데 철문을 걸어 잠그고 50 여명의 청춘남녀들이 디스코 파티를 하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경찰의 습격을 경계하며 따로 파티를 하는 팀은 아나키스트들이었다.

 

가장 열심히 그리고 헌신적으로 싸우던 그들과 다른 활동가들의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던 것이다. 사색당파부터 시작하여 우리들은 대의로 뭉치기 보다는 선배, 후배, 자기 조직을 따지면서 파벌을 만들고 종파질하는데 익숙하다. 우리가 만약 진정으로 인류의 이상을 위해 싸우고 헌신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공동의 적앞에서 서로 다르다고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뭉쳐야 한다.

 

헤어질 때 그 여성동지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분노하고 있어요! (We are angry at capitalism!)

 

당신은 이 불합리한 사회의 모순에 분노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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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에게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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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1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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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3/1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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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에게서 온 편지

번호:21 글쓴이: 서른즈음에
조회:24 날짜:2004/08/11 11:02

진보와 국제주의 혹은 국제연대는 동전의 양면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우리 운동에서는 이를 소흘히 하는 경향이 있다. 마침 점심 때 미국의 활동가로 부터 온 e-mail을 받았다. 그 나라 할동가들의 고민과 우리의 고민을 비교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아서 여기에 올린다.



이 동지는 75년생이고 주로 과테말라에서 노동운동과 주민운동에 종사하다가 작년에 시카고로 와서 반전행동과 반 FTA운동의 조직과, 도시빈민(주로 남미에서 온 사람이 많다)의 조직과 교육을 하였다. 특히 과테말라는 노조에 얼씬거리면 며칠 후 시체로 발견될 정도로 반동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이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얺으면 안될 만큼 각오가 필요하다.

이하 영어 공부도 할 겸 축조 번역한다.



Hello, Suksam -

How are you?

할룽 선배님 어떻게 지내셔요?

I am wondering if you have received the video I ordered for you on the
Miami protests.




마이아미 항의 집회에 관한 비디오를 보냈는데 받아 봤는지..

(작년 10월 미국 마이아미에서는 FTAA 즉 미주대륙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회의가 있었고, 2000명 가까운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였는데, 부시정권이 자국시민에게 조차 야만적인 진압을 한 사건으로, 올 6월 멕시코 과달라하라 유럽과 중남미 경제장관 회의의 항의집회를 진압한 사건과 함께 국제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한 반동적인 억압으로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I am leaving tomorrow morning to go to Venezuela to be an election observer for the Chavez referendum. I am very excited to learn more about the Bolivarian Revolution and the model of change that Chavez and his comrades have instituted there, and of course, to meet with those involved in the struggle.




난 낼아침에 차베스 국민소환투표를 참관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로 떠나요. 나는 차베스와 그의 동지들이 만들어 낸 볼리바리즘 혁명과 변혁의 모델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당근 그 투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마음이 설레요.




I have a difficult decision to make on whether i wish to stay in Chicago and work with low-income communities here or move to San Salvador and work on building international alliances and writing about the struggle of those in Central America against the CAFTA. The path is not clear, but I must decide within days.. we shall see..




나는 내가 계속 시카고에서 저소득 공동체와 함께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San Salvador에 가서 국제연대를 조직하고 중남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그들의 투쟁에 대해 글을 쓸 것인지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해요.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는 불분명하지만 며칠내로 결론을 내야만 해요.. 우리는 (언제 혹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 텐데..





I hope that you are well and I hope to hear from you soon. I will be in Venezuela for 10 days, but checking email periodically.



선배님이 잘 지내고 소식 빨리 받았으면 좋을텐데. 베네수엘라에는 10 여일 있겠지만 멜은 정기적으로 체킹할께요...

Best wishes,
J

잘 지내요.

J(보안을 위해 나머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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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단상 2004/11/26

단상
가령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1. 진행중인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하여 그 과정과 현실을 잘 분석함으로써 유의미한 지식과 경험과 교훈을 끌어내는 일, 그리고 전세계 변혁운동에 있어서 이 혁명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투쟁을 엄호하는 일.
2. 미국에서 계급운동이 전멸한 가운데 진보적인 미약한 시민운동이나 활동가 운동만으로, 반전행진에 50만 100만을 동원하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그러한 동원과 투쟁이 가능한지,
또 미국 대선국면에서 depeat Bush란 슬로건이 적절했는지, 이들 운동과 네트웍이 되어 있다면 공동의 분석과 토론을 통해서 올바른 슬로건이나 타격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겠는지,
3. 그리고 무었보다도 미국내에서 진보적인 운동을 성장시키서 제국주의 정책의 발목을 잡는 것이 여타 나라의 운동과 혁명에 결정적인 엄호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것을 tackling stratage 라 함), 이들 운동을 성장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4. 최근 김수행 교수가 제기한 반FTA운동에 대한 비판 등, 반세계화투쟁에 대한 올바른 전략전술과 대안의 탐구와 제시
5. EU내에서의 노동운동이나 변혁운동이 어떠한 목표와 전략과 전술을 가져야 되는지,
6. 국제소농운동체인 비아캄페시나, WSF, 아탁, 혹은 최근에 활발화된 전세계적인 반전네트워크 등등을 평가해 보고, 올바른 비판을 제시하는 일과 새로운 전세계적인 활동가운동체와 대중운동체가 필요한지 판단해 본다든지 혹은 새로운 운동의 전형을 창출해 보는 일 등등,

이렇게 전지국적인 운동의 현실을 분석하고,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고,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국제민중연대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임

변혁운동의 국제연대가 단지 PT국제주의라는 당위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일국적인 투쟁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라도, 일국적 부문적 관점으로 파악되지 않고 올바르게 대응할 수 없는 운동과 투쟁의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과제를 떠 맡는 것이 국제민중연대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임
20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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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중연대 운동론

국제민중연대 운동론

국제민중연대운동이란, 반신자유주의 세계화투쟁에 있어서, 일국적 부문적인 접근으로 해결될 수 없는, 달리 말하여 초국적자본과 총자본의 전세계적인 공세에 맞서, 즉 공동의 적에 대하여 전세계적인 변혁운동의 차원에서 사고하고, 정세를 분석하고, 전략을 제시하고, 전지구적 저항운동을 건설해 나아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분석(EU, FTAA, WTO, Iraq War, FTA등등), 기존의 운동에 대한 평가(Attac, Focus, WSF, 반전운동 등), 저항의 논리와 전략의 개발(한일FTA, 농업개방, 금융, 공공부문등의 개방에 대한 저항논리, 대안의 제시), 역량의 배치와 운동의 건설(연구팀, 네트웍건설팀, 교육 및 조직팀, 활동가 양성)을 해야한다.

 

활동방식-연간, 분기별, 월별 회의를 통해, 과제를 선정하고, 집행 및 결과보고와 평가를 공유하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은 일상사업팀과 과제팀에 소속되어 활동한다.
전세계활동가와 국내의 활동가들이, 반신자유주의세계화 투쟁을 함에 있어서, 정보의 공유, 일상적인 네트워크의 유지와 토론, 실천 및 보고의 구조를 갖는다.
국제민중연대센터는 Focus, Attac, Kopa의 기능을 합친 구조를 갖는다.

 

즉 노동자 민중의 국제주의에 기초하여 좌파적 변혁전망을 가지고, 전세계변혁운동에 대해 목적의식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는 운동체이다.

일개인의 헌신적인 시민운동이 아니라, 각 나라의 여러 부문운동 속에 있으면서, 그 부문운동들이 올바른 방향성을 견지하고 전세계적인 연대투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즉 일국적 민중운동을 견인하는 활동가들의 운동체이다.

 

즉 여러나라의 운동들이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게 하고, 그러한 실천을 유의미하게 묶어내고, 혹은 건설하여, 투쟁을 통해서 전 지구적인 변혁운동을 건설해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운동의 연구나 소개가 아니라 실천적으로 유의미한 네트워킹을 건설하고 유지 관리하며, 운동의 전략과 전망을 제시하고, 가능한 실천들을 조직하고, 이러한 실천들이 운동으로 수렴되고 공유되며, 평가와 비판을 통해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200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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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중연대운동 제안서2004/11/26

우리에게 강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무엇인가? 비정규직과 실업, 금융, 농업, 지재권, 교육, 의료 등 각 분야의 개방, 공공성의 후퇴와 사기업화,  과연 이런 모습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그 본질을 충분히 알 수 있고 올바르게 싸워나갈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는 역사상 그리고 그 본질상 단 한번도 일국적인 체제이었던 적이 없다.  그 출발부터 세계시장과 세계경제를 확대재생산하면서 그 속에서만 존재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마디로 1970년대 이후 계속된 장기불황 속에서 축적위기에 몰린 초국적 자본이 그 생명을 연장하고자 발악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최후의 가장 악랄한 세계경제 지배체제이다.

그 주된 충동은 이윤율 경향적 저하의 법칙에 따른 제국주의 금융자본이 그 투기적인 활동공간을 강요하기 위해 각국의 금융개방과 자본이동의 자유화로 나타나고, 그들의 압도적인 메이져 농업자본의 농업개방 요구로 나타나고, 그들의 앞선 노우하우와 자본을 바탕으로 지재권, 교육, 의료, 등 모든 분야의 개방으로 나타난다.

 

즉 세계화란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자신들이 앞서고 있는 분야의 개방을 강요하여 새로운 투자처와 시장을 확보하는 운동이다.

 

한때 서구에서 존재하였던 복지국가라는 체제는, 역사상 존재하였던 사회주의체제와의 체제경쟁이라는 외적 조건과, 그들 나라의 독점자본이 제3세계를 착취하여 자국의 노동계급에게 떡고물이라도 나눠줄 수 있었던 내적 능력과 강력한 노동계급이 있었던 시절에 가능했던 체제였다.

 

그러나 확대되는 혹은 발전하는 생산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과 시장의 확대를 요구한다는 점과, 양질의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국경을 넘어가는 자본들, 그리고, 자본내의 끊임없는 경쟁 등은, 끊임없이 공급의 초과와 시장(소비력)의 부족을 불러오고, 결국 만성적인 불황의 시대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과거의 불황이 보다 확실하게 생산력의 파괴와 새로운 생산력 그리고 산업예비군을 만들어 냈던 것에 비하면, 그 과정은 정부의 개입 등으로 불균등하고 불철저하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장기적인 만성적인 불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 독점자본은 이러한 축적위기에서 단지 새로운 시장과 투자처 뿐만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복지를 빼앗고, 실업과 불완전노동 등으로 노동을 분활지배하고 착취하는 일상적인 공세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이다.


즉 우리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고 말할 때에는, 이처럼 축적위기에 몰린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새로운 시장과 투자처를 확장하기 위해 제3세계뿐만 아니라 자신들 상호간의 장벽까지 허무는 개방의 강요과정이고 (이는 EU, FTAA등의 블럭화와 WTO와 IMF를 통한 여러 협정과 FTA  BIT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착취의 무한한 자유를 위한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의 일상적인 체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나라마다 그 처지에 따라 예를 들어 한국같으면 금융, 지재권, 농업, 교육, 의료 등의 개방과 공기업의 사기업화와 주식시장의 개방, 그리고, 온갖 실업과 비정규, 불완전 노동으로 나타나는 반면, 남미와 동남아에서는 농산물 개방으로 인한 농지로 부터의 농민의 축출과 수출농업으로의 재편과 씨앗과 사료, 비료의 초국적자본에 대한 의존과 농지의 침탈등으로 나타나고,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공격과 공기업의 사기업화 즉 공공성의 축소 그리고 소농의 몰락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독점자본(그들의 주식의 60%는 제국주의 투기자본이 장악하고 있다)은 수출을 위해서 시장(특히 농업)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위축된 투자를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국제경쟁력을 위해서 노동의 유연화를 강요한다.

 

작금의 불황은 수출자본이 호황이어도 고용흡수력이 지극히 낮은 점과 수입유발계수가 높은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이 너무나 유연화되어 실업과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내수소비가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불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억제된 소비와 내수부진은 초과착취된 자본이 투기적일 수밖에 없게 만들고 400조원에 이르는 만성적인 투기자본을 안고 있는 투기공화국이 되었다.

 

이러한 때, 자본의 논리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가령 농업개방만 하더라도 식량주권의 사수, 개방반대만으론 부족하다. WTO는 전세계적인 공격을 하고 있고, 각 나라에 강요되는 힘은 다를지라도 자본주의가 세계경제이고 세계체제인 한 전지구적인 저항의 조직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칸쿤에서 위대한 연대투쟁을 벌렸고 그에 힘입은 G20개국의 반대로 농업협상을 일시적으로나마 저지시킬 수 있었다.

 

이제 일국적인 노력만으론 이 세계체제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과, 농업과 공공영역, 그리고 금융 등이 전세계적으로 개방이 강요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각국의 주권에 관한 사항이라는 즉 공산품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 대한 각국 정부의 자기결정의 권리를 주장하고 관철해야 되며, 이를 위해 전세계적인 캠페인과 운동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운동은 제3세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내에서도 주도면밀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단지 양심적인 호소가 아니라 그들 나라 내부의 독점자본의 지배체제를 끝장내는 운동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 나라 역시 민중의 처지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복지의 축소, 노동의 유연화, 투기적 금융자본의 이상비대로 인한 실업과 비정상적인 사치와 향락적인 서비스산업의 발달은, 이들 나라 중산층을 몰락시키고 민중의 삶을 위협하고 실업을 강요한다. 선진국에서 민중적인 운동이 성장하고 진보적인 정권이 수립되는 것은 후진국의 투쟁의 승리와 엄호에 중요한 요건을 이룬다. 결국 운동은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서로 연대하여 총자본에 대한 전선을 구축할 것을 강요한다.

 

그동안 우리 운동은 일국적이었고 즉자적이었다. 이제 전지구적인 연대와 투쟁을 건설해야 하며, 전세계 인민들에게 확고한 대안의 세계체제와 그 건설방도를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 우리운동의 과제이다.

 

이런 까닭으로 우선 관점이 확고한 동지들이 가칭 국제민중연대센터의 설립을 위한 초동주체로 참여하여, 그 방향과 목적과 사업을 분명히 한 뒤, 준비모임을 거쳐 발족하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각국에 나타나는 양상을 분석하여
각국 운동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려내는 일이며,
보편적인 대항의 논리와 투쟁론의 제시하고
그리고 전지구적인 연대와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연구분석팀과, 정보공유사업팀, 연대사업팀, 투쟁지원팀을 꾸릴 것이다.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 민중운동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일국적인 운동가가 아니라 전지구적 제국주의 세계체제를 끝장내는 것을 자기의 과제로 삼는, 전세계 변혁운동에 복무하는 인류해방전사가 되어야 한다.

만국의 노동자와 민중이여! 단결하라!
200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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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파업을 조직하자!!![펌]

[민노당 당게에서 2005/02/25 15:32]

지금 이 시점에서 비정규 개악법안을 파탄시키는 것 만큼 절박한 과제는 없다. 이미 820만명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그들의 대부분이 월평균 100만원 남짓한 임금으로, 심지어는 월68만원의 임금으로 살아가는 지하철 청소부 아줌마들이 있는 현실에서, 대다수의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내모는 비정규개악법안을 저지하고 파탄시키는 것, 이보다 더 중요하고 절박한 과제가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막아내야 할 이 절박한 투쟁에 진정으로 끝까지 싸워서 이길려는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다.

작년 11월에도 총파업을 조직하고 선언하고서도 놈들의 논의연기에 따라 6시간 시한부 파업으로 종료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역시 놈들의 기습상정 시도에 대해 경과만으로 보면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기민한 점거와 방해로 4월로 심의가 연기되고 투쟁일정은 취소되었다.
나는 놈들의 이러한 시도가 진심으로 날치기를 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투쟁의지를 떠보려고 양동작전을 한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찌됐건 그간의 경과로 볼 때, 우리의 투쟁은 목적의식적으로 계획적으로 조직된 투쟁이 아니라 놈들의 도발에 수동적인 저항 그것도 강고한 의지없이 임기응변식의 대응이었던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의 자본이 마음껏 부려먹고 착취하고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이 법안에 절대절명의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것과, 신자유주의로 무장하고 자본과 생사를 같이하는 딴나라당과 열린당이 자본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끝까지 이 개악법안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라는 점과, 그에 맞서 그를 저지하는 투쟁은 웬만해서는 깨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건 전 노동계급의 강고한 총파업 투쟁외에는 막을 방도가 없는 싸움이라는 점이다.

민노총 지도부의 말처럼 총파업을 수행할 만큼 우리의 대오와 각오가 미약한지도 모르겠고, 현재의 지도부가 총파업을 지도할 만큼 혹은 대중이 그들을 신뢰하고 따를만큼 신뢰와 지도력을 갖추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요구는 심의의 보류나 연기도 아니요, 우리의 의사도 조금 반영할 기회를 얻자는 것도 아닌, 한마디로 저지나 타협이 아닌 개악시도의 완전한 파탄과 권리보장입법의 쟁취에 있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몇몇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몸싸움이나 몇천 몇만명의 단발성 집회만으로는 승리를 전혀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하다면, 이제라도 총력을 다하여 총파업을 준비하고 조직하고 대국민 선전전과 교육에 나서서 돌아오는 4월에 이땅의 자본과 노동의 대전쟁을 준비하는 것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매양 이러저러한 이유와 사정을 대면서 투쟁을 미루는 것은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이땅의 노동계급의 삶을 자본에게 갖다 바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이 싸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더 이상 끌려다녀서는 안된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방어적으로 끌려다녀서는 결국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할 수 밖에 없다. 천추의 한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총파업을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아낌없이 후회없이 싸울 수 있도록 해보자.

이제 구호는 하나다.
4월 총파업을 조직하라.
우리의 요구는 보류나 타협이나 저지가 아니라
개악시도의 완전한 파탄과 보장입법의 쟁취다.
임기응변식 수세적 방어가 아니라 목적의식적이고 계획적인 대 공격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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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민족, 우리는 하나?/새벽길 [펌]

조금 늦었지만, 지적할 것은 해야겠다.

지난 토요일인 8월 14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있었던 '파병강행 노무현 퇴진을 위한 제3차 만민공동회'에 참여한 이후 민지네 사람들과 탑골공원까지 행진한 이후 광화문에서 열린 '8.15 반전편화자주통일대회'에 참석했다.

원래 7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지연되어 8시에 희망새, 우리나라 등의 아리랑 노래와 함께 대회가 시작되었다. 약 10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을까? 서울시당 대의원대회가 있었던 날 광화문에서 개최되었던 촛불집회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인 듯하다. 대학생 통일선봉대는 내버려 두더라도 그 수많은 노동자 통일선봉대들은 도대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했을까? 물론 그 자리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병철회 투쟁에 나섰어도 파병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다음날 있었던 광화문 일대의 격렬한 반전시위를 보면서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집회의 시대착오성이다. 815 민족통일대회의 전야제 형식으로 이루어졌기에 한총련의 문예공연, 풍물패의 공연, 광주에서부터 올라왔다는 어린이 통일선봉대의 공연, 그리고 전북의 관촌중 학생들의 615공동선언 암송 등 즐거운 축제 분위기로 진행되었지만, 그 형식이나 내용은 21세기 서울 한복판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맹목적 한미동맹에 대한 비판과 국가보안법의 철폐, 범민련, 한총련 등의 이적규정 철회를 주장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집회 전반에 걸쳐서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면서 단지 민족공조와 6.15 공동선언의 이행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면서 넘어가지는 말라)


△광화문에서 열린 815민족통일대회 전야제 ⓒ민중의소리 한승호

집회의 연단에 선 연사들의 발언에서는 '민족공조와 자주통일'이 있었을 뿐 거기에 민중이 설 자리는 없었다.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통일이 민중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현재의 시점에서 615 공동선언의 이행요구가 왜 제기되어야 하는지는 빠져 있었다. 해방 59주년이 되는 이 때까지 문제가 되었던 모든 것은 미국의 탓일 뿐, 바로 지금 국익이라는 미명하에, 한미동맹이라는 명목하에 학살전쟁, 침략전쟁에 동참하고 나선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집회 사회자의 멘트와 대형 스크린으로 깔리는 자막 속에서는 계속해서 "조선 민족의 힘으로", "일어나라 조선아"가 깔렸다. 언제부터인가 남한의 한쪽에서는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이 외쳐질 때, 다른 한쪽에서는 '조선민족의 힘'을 강조한다. 뭔가 통하는 데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왜 이북에서 최근에 유행하는 '조선민족'을 얘기해야 하는가? 일정 정도의 합의가 있는 코리아도 아니고 말이다.

통일연대가 중심이 된 이번 8.15 대회 준비위가 그 동안 잠잠했던 범민련, 한총련 등의 이적규정 철회와 민족공동행사 합법 참가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조금은 의심스럽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통일연대는 이번 8.15 대회의 기조로 "외세공조 거부, 민족공조 실현이라는 기치 아래 2005년 조국통일 원년의 결의를 보다 더 대중적이고 구체적으로 선포하고, 결의를 모아내는 장"으로 만들 것을 천명했다. 그리고 지난 6.15 우리민족대회 당시 한상렬 상임대표가 대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문제를 제기한 뒤로 이를 힘있게 뒷받침할 대중 설득 작업과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벌인 바가 없다. 그랬으면서 이번에 북측에서 국가보안법, 특히 범민련, 한총련 등의 선별 배제 문제를 조문문제, 탈북자 문제 등과 함께 강력하게 제기하면서 당국간 대화에서도 강경 입장을 보이자 뒤늦게 8.15 대회를 앞두고 긴급히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북에서 하면 남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는가?

14일 집회에서 압권은 행사 맨 마지막의 무대였다.
들어본 적도 없는 "민족공조 제일일세"라는 노래를 흥겹게 부르면서, "조선민족이여 일어나라"라고 외치면서, 모두가 하나된 분위기, 거기에서 광기를 보았다면 과장일까? 거기에서는 파병철회 집회시에 "파병철회, 노무현 퇴진" 구호를 외치면 대중의 참여를 막게 된다면서 극구 만류하고 '함께하자 우리 이 길을', '광야에서' 등 소위 대중에게 익숙한 노래만을 불르자고 했던 사람들이 그래도 운동물을 먹은 사람들에게조차 생경한 노래와 구호로 자기들끼리만 하나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6.15 공동선언만 이행하면 이라크로 파견된 자이툰 부대도 철군하고, 비정규직도 철폐되며, 민중의 삶이 행복해지는가?


△815대회 교보문고 앞 전야제 ⓒ민중의소리 한승호

"- 하나 우리는 하나 태양민족 우리는 하나
하나 민족도 하나 하나 피줄도 하나
하나 이 땅도 하나 둘이 되면 못살 하나
긴긴 세월 눈물로 아픈 상처 씻으며
통일의 환희가 파도쳐 설레이네
하나 우리는 하나 태양민족 우리는 하나
- 태양민족 우리는 하나

하나 언어도 하나 하나 문화도 하나
하나 역사도 하나 둘이 되면 못살 하나
백두에서 한라까지 분단장벽 허물며
통일의 열풍이 강산에 차넘치네
하나 우리는 하나 태양민족 우리는 하나

하나 소원은 하나 하나 애국은 하나
하나 뭉치면 하나 둘 합치면 더 큰 하나
찬란한 태양이 삼천리를 비치여
통일의 아침이 누리에 밝아 오네
하나 우리는 하나 태양민족 우리는 하나"

집회의 마지막에 울려퍼졌던 이 노래는 '우리는 하나'라는 북한 노래이다.
지난 6월 15일 인천에서 열린 '우리민족대회'에서 북측이 불렀던 노래인데, 윤도현 밴드와 조총련의 금강산가극단이 함께 공연한 '오 통일 코리아 2004'에서도 불리워졌던 이 노래는 원래 맨마지막에 나오는 가사가 '태양 조선 우리는 하나'였다가 위와 같은 노래가사로 바뀌었다. 물론 대학가에서는 통일행진곡으로 애창된다고 한다, 일부 학생들에 의해. ㅡ.ㅡ;;

언제부터 우리가 태양민족이 되었는가? 북한에서 태양이 김일성 주석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남한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 태양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노래를 부르자고 선택한 주최측은 남북한이 한민족임을 강조하려고 불렀다고 할지 모르지만, 도대체 더 좋은 노래도 많은데, 왜 이런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부분적인 것이니까 딴지 걸지 말자고? 민주노동당에서 공식적으로 결의하여 전국의 당원이 총집결하여 참여하기로 한 집회에서 이상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가만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깃발이 집회 대열 여기저기에서 나부끼고 있었고, 상당한 수의 당원들이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집회 내용과 형식에서 당은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집회 처음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소개한 것이 전부랄까.

다음부터 그런 식으로 집회에 참여하려면 당원을 동원하지 말라. 815이니까 뭔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오는 자족적이고 민족주의 편향적인 집회는 조직하지도 말고, 치루지도 말자.
'태양민족'하려면 그대들이나 해라, 나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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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7월31일(토) 광화문 집회에 다녀와서

추가:7월31일(토) 광화문 집회에 다녀와서

번호:16 글쓴이: 서른즈음에
조회:12 날짜:2004/08/03 13:33

또 하나 이상했던 점은, 그 동안의 집회에서는, 집행부는 시민들의 정서에 맞게 운동권의 노래를 부르지 말자고 했었고, 반대편은 오지도 않는 시민 운운하지 말고 노무현퇴진등 슬로건을 분명히 하고 촛불도 들지말고 몸싸움이라도 해서 저항의지를 보여주자고 했었는데,

요번에는 제목은 촛불대회였는데 과격한 언사는 물론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미제를 쓸어 버리자는 반미반전가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번주 집회와는 달리 즉 몸싸움으로 경찰의 장벽을 뚤어버리려는 진지한 시도없이 곧바로 삼삼오오 단식장인 열린광장으로 이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집행부가 참여대중의 투쟁의지의 표출을 막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김선일씨 죽음이후 분명했고, 일관되게 경찰과의 충돌을 막는데 급급한 것은 변함이 없다는 점과 그 이유를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혹은 시민단체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 였다고 해왔음에도, 요번 집회에서 달라진 점은 시민단체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과격한 주장과 노래로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항과 투쟁의지 없이 그리고 전선을 제대로 꾸릴 능력이 없는 집행부의 일관된 비투쟁적 무원칙적인 사업(투쟁이 아니라)만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이유의 근저에는 그릇된 인식틀이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번에 제가 어느 글에서도 모든 것을 민족모순으로만 환원하려는 시도는 그릇된 인식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마는, 김선일씨의 죽음과 파병강행에 대하여 파병을 강요하는 미국을 규탄하다는 슬로건은 분명 오류가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침략전쟁의 원흉인 미제를 규탄한다가 더욱 적절할 것입니다. 그리고 요번에 나온 한미동맹 철폐하자는 슬로건은 파병을 강요하는 미국규탄보다는 훨씬 나은 슬로건으로 보여집니다.



또한 이 문제는 최근에 논란이 되고있는 전선론(민족민주전선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즉 시민단체나 민족부르조아지를 전선의 일익으로 본다든지 혹은 그들이 동참할 수 잇는 틀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탄핵반대투쟁이후 실천속에서 허구화 희화화 된 측면과 깊은 연관이 있기때문에 우리의 출발점과 그들의 계급적 본질을 보다 분명히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하간 앞으로 상당한 기간동안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채 진용을 넓게만 짤려고 하면서 바로 그 때문에 투쟁성은 떨어지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운동의 전망이 매우 어둡다는 것입니다.



어찌됐건 통일운동이나 반제 반미투쟁도 보다 올바른 관점에서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또한 자기가 의지하는 인식틀이 이땅의 민중들이 주되게 고통받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제공하지 못하여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제대로 벌려 나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식틀은 사물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실천속에서 끊임없이 검증받을 자세 없이 관성에 빠져서 낡은 구호만을 외친다는 것은 슬픈일입니다.

요새 느낀 점을 생각나는 데로 적어봤습니다마는, 저는 저의 관점과 주장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서로 열려진 마음을 가지고 진지하게 토론을 시작해 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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