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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집회에 다녀와서

7월31일(토) 광화문 집회에 다녀와서

번호:15 글쓴이: 서른즈음에
조회:19 날짜:2004/08/03 02:23

뭔가 이상한 집회였습니다. 그동안 파병반대투쟁을 이끌어 왔던 다함께의 깃발이 보이지 않았고, 사회진보연대등 좌파들의 깃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상렬 선생은 친미반북이 아니라 친북통일을 주장했고, 오종렬의장은 자랑스러운 한총련 대오와 범민련등을 중심으로하여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자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 국면에서 우리가 주장해야할 점은, 단지 부르죠아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점을 열받아 하는 것도 아니요, 똘마니 정부이기 때문에 강요하는 놈이 나쁘다는 시각이 아니라, 이 전쟁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이라는 점, 이래크의 노동자와 민중의 처지는 이 땅의 민중과 이해관계가 같다는 점, 따라서 우리는 굳건히 연대하여 군사적 패권적 제국주의 세력과 단호하게 투쟁해야 된다는 점의 관점이 제대로 관철되어 있지 않은 그런 집회로 느꼈습니다.

파병을 반대하고 제국주의를 반대해도, 그 출발점들이 다르기 때문에 슬로건이 다르고, 슬로건에 공감 못하는 세력들은 깃발을 내리고 철수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동안 집행부는 시민운동 세력에게 끊임없는 추파를 던졌지만 그들은 연사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제대로 함께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참여할 수 있게 촛불을 들어야 하고, 퇴진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규탄만 얘기하자고 하면서, 실제 진행은 진출투쟁의 형식에 걸맞지 않게 촛불이나 들면서 열린음악회와 같은 수작이나 하면서, 결국 대중의 투쟁의지를 관리하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6/13 WEF 반대 투쟁 때, 오즉하면 WEF와 쇼부친 민주노총 각성하라는 피켓이 나왔겠습니까?
나는 반드시 이길려는 의지도 없이 재미있게만 하려고 하는 요즘 사람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나는 압니다. 그 까닭이 어디서 비롯되는 지를...

한잔 먹은 김에 두서없이 지껄여 봤습니다. 왜냐? 요새 너무 우울해서 마시고 싶거든요..
이 늙은이의 심정이 이해가 가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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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들은 운동에 짐이 되고 있다.

이제 당신들은 운동에 짐이 되고 있다.

등록일 : 2004년 07월 06일 15:59:12




투쟁의 시절은 끝났는가?
7/3 광화문 집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하지 마세요 부시규탄’이라는 노사모의 피켓을 보면서 황당하다는 생각을 한다. 노무현이가 마치 깡패형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힘없는 초등학생이란 말인가? 국내외 독점자본의 앞잡이로서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서 노동자와 농민과 도시빈민의 투쟁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는 노무현이 동정하고 보호할 대상이라는 노빠들까지 시비할 것은 없다.

그런데 A4 절반크기의 칼라유인물이 돈다. 반미반전의 주슬로건 아래 남북공동선언실천행동인가 하는 단체의 유인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인물속에 노무현의 이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미국놈 나쁜 놈이라는 소리와 파병을 강요하는 미국이 나쁘다는 소리만 적혀 있다. 그러고 보니 주최측이 준비한 엄청난 크기의 만장에도 오직 미국반대라는 구호만 적혀 있다.

6/30 집회때는 민노당이 두가지 피켓을 돌렸다. 파병을 강행하는 노무현을 규탄한다와 파병을 강요하는 미국을 규탄한다는 내용이다.
파병반대는 간단하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확립이 자기 소명인 반민중적인 노무현이 앞장서고 친미반동 국회의원들이 결정한 것이다. 여기서 노무현이 나는 파병을 안하고 싶은데 미국의 압력 때문에 혹은 미국에 밉보일까바 국익을 위해서 파병을 했다고 변명한다면 우리는 ‘응 그래 미국놈이 나쁘지’라고 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니가 더 나쁜 놈이라고 해야할 것인가?
아마도 모든 것을 민족모순의 관점에서만 사물을 바라보려는 사람들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반미도 중요하고 민족모순도 중요하다. 그러나 효순이미선이 때 미국놈 물러가라고 하는 것과 경기도 도지사 선거에서 오로지 미군기지 없는 경기도만 주야장창 얘기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국면에 따라서 민족모순이 전면에 나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오로지 모든 것을 민족모순으로 환원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험론(주관주의)때문에 현실인식을 그르치고 그 때문에 대중을 잘못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단에서는 자국국민 김선일을 보호못한 노무현을 규탄하면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학살당하고 있는 이라크민중에 대한 연대의 애기는 하지도 않는다.
비는 오는데 추모제와 문화제만 계속한다. 일부 대오가 저지망을 뚫고 나가자고 해도 주최측(파병반대 국민행동)은 그걸 못 막아서 안달이다.

이 전쟁의 본질은 명백하다. 한마디로 제국주의 침략전쟁이고 죄없는 이라크 민중에 대한 학살전쟁이다. 전쟁의 국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속성은 만국의 노동자는 하나이고 자본과는 영원히 적대할 수 밖에 없는 계급적인 모순을 은폐하는 힘이 있다. 1,2차 세계대전때 독일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성을 몰각하고 자국의 자본가와 함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경도되어 다른 나라의 노동자와 인민들에게 총을 들지 않았던가?

우리는 단지 부르주아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것만 규탄해서는 않된다. 이라크 민중과 이라크의 저항세력에게 굳건한 연대의식을 갖으면서 제국주의 침략전쟁반대와 파병반대, 노무현퇴진, 이라크 민중과의 연대를 외쳐야 한다.

얼마전 6.15기념행사가 인천에서 있었다. 남북한의 정부와 민간단체가 참여하여하여 문화행사를 성대히 하면서 우리민족은 하나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저 사람들은 통일을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통일의 적이 누구인지 햇갈린다. 분단을 강요하는 제국주의 세력과 내외의 독점자본의 이해를 위해 신자유주의(구체적으로는 정리해고등 노동의 유연화, 과잉자본의 수탈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금융시장등의 개방화 등등)를 강요하면서 노동자 농민 빈민의 생존권을 압살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는 남한의 권력집단이 통일의 적인가 동지인가? 통일의 적들과 따뜻한 시간을 함께하는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일까? 이것이 통큰 단결이고 민족공조인가?

한때는 건강했던 민족주의가 감상적인 민족주의로 변하면서 투쟁할 의지는 없는 채 이벤트나 벌리는게 광화문 집회와 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두 행사를 추동하는 사람들이 동일하다는 것은 우연일까? 통일이나 반전이나 전선을 명확히 하고 싸우는 데서 발전이 있는 것이지 감상적인 민족주의에 호소하면서 이벤트나 하는 데에 있지 않다. 싸울려면 확실히 싸우든지 아니면 연예프로덕션으로 간판을 바꾸든지 해야한다.

금년도의 투쟁은 파병반대와 비정규 철폐가 중요한 점은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민노총 집행부의 노사정 복귀음모를 분쇄하는 것이다.

이수호집행부가 들어섰을 때 연합파의 셋팅이라는 둥 말이 많았다. 나는 연합파가 뭔지도 모른다. 누구든지 어느 정파든지 열심히 투쟁하고 대중에게 평가받아 집행부를 장악할 수도 있는 문제니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수호 위원장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그려지고 투쟁하는 대중은 한없이 미약하게 묘사된 금년도 메이데이 포스터를 보면서 수령론에 입각한 위대한 영도자를 앞세우는 입장에 서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수호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경총을 쫒아가서 자본을 부정하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노동운동의 지도자로서 차마 못할 소리를 하더니 노사정에 복귀하지 못해 안달을 하면서 무슨 노사정대표자회의까지 만들었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에 대하여 한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정부와 자본과 노동자가 무슨 대화를 하려고? 떡고물 조금 얻어먹고 정리해고를 합의해준 1기 노사정의 과오도 모자라 명분만 주면 노무현 정권에 노동운동을 송두리째 갖다 바칠 태세다. 이름하여 사회적합의주의. 이땅 노동자의 생존의 문제가 무슨 대화와 흥정의 대상이 된다고 자본의 지배전략인 사회적 합의에 힘차게 나서고 있는지?

이제는 전선을 분명히 하자. 싸울 생각도 없으면서 대중의 투쟁의지를 억누르면서 이벤트나 하는 사람들, 감상적 민족주의로 대중을 오도하면서 계급과 민중의 적들까지 포함한 통큰 단결과 민족공조를 주장하는 사람들, 운동의 대의는 생각지 않으면서 선배 후배 자기 파벌만 생각하는 사람들, 민중과 투쟁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조직의 헤게모니에만 관심있는 사람들, 이제 당신들은 운동에 짐이 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을 연합파니 반연합파로 가르고 싶지 않다. 또 내가 엔엘에 속하는지 피디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노동자계급의 대의에 서서 이땅에 민중들과 투쟁을 하려는 사람인지 이벤트나 하려는 사람인지는 분명히 가려야 겠다.


[print]

계양산 : 통일운동의 시작은 범민족대회나 불법(?)적인 방북처럼 늘 통일을 반대하는 정부와의 투쟁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통일운동의 성과와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대중적인 통일운동을 벌일 기회가 온 것입니다.
우리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보십시오. 70, 80년대만 하더라도 모두가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갈 내용이 아닙니까? 우리는 투쟁으로 지금의 시대를 만들었고, 과거에는 불법유인물로만 가능하던 정치선동을 당을 통해 공개적으로, 합법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통일운동도 그렇습니다.
지난 시기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이제는 통일을 반대한다면 정신 나간 놈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통일하면 치를 떨던 모든 세력이 이제는 각자의 이익과 요구를 가지고 통일운동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민족대회는 615남북공동선언 4돌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속내야 어떻든 통일을 하겠다는 단체들이 모두 모여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필히 정부나 관변단체들이 끼일 수밖에 없는 판이니 부정하고 참석하지 말아야 겠습니까?
아니면 이 모든 과정이 치열했던 투쟁의 성과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단 한 명의 대중이라도 더 올바른 통일운동에 대한 입장을 갖고 통일운동에 나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주도권을 갖고 우리민족대회를 치러야 하겠습니까?

인천에서 우리민족대회를 준비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국정원으로 대표되는 정부와 싸움을 벌였습니다. 단 한명의 시민이라도 행사에 더 참가시키기 위해, 사전에 진행되는 구별 행사를 반전평화와 파병철회, 자주적인 통일운동을 시민들과 함께 논의하는 자리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경찰과, 때로는 민화협이나 국정원과 인상 붉혀가며 행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투쟁과 바뀐 지형속에서 대중적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하는 것과 분명한 구별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인천에서 우리민족대회를 준비했던 대우자동차를 포함한 금속노조 동지들, 파업중이었던 보건의료노조등 민주노총 각 지역본부들이 신자유주의의 적들을 몰라서 우리민족대회에 참여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실꺼라 판단합니다. 2004/07/06

계양산 : 하나 더, 동지의 글중 상당 부분 공감할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동지들이 운동에 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같이 운동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짐.. 운운하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제가 보기에는 당신은 당신만의 운동을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2004/07/06

트래커 : 계양산님 님은 현 파병철회투쟁이 제대로 성과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중들의 분노를 현 지도부가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 더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게끔 더 부드럽고 잔잔한 감동이 있는 일요음악회를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현 투쟁이 잔잔하게 지지부진해져가는 양상을 돌파할수 있는 촉매제를 생각해내고 선도할수 있는 투쟁이 필요하지 않은가요? 지도부든 우리든....
그리고 글쓴이를 개인적으로 비꼬는 자세는 버리시지요.
새내기 당원 2004/07/06

박석삼 : 계양산님의 진지한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독일식의 흡수통일의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박근혜도 통일을 얘기하고 김대중, 노무현도 통일을 얘기합니다. 또 이땅의 민중에게는 민중들만의 통일의 이상이 있습니다. 동지들의 통일에 대한 헌신과 정열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적인 민족주의로 흘러서 참다운 통일운동을 그르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김대중이 6.15선언에 참여한 것은 축적위기에 몰린 남한 독점자본의 돌파구로서 즉 북의 낮은 임금등을 이용하고자 하는 남한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측면이 큰 점은 숨길 수 없습니다. 또한 통일의 전제조건인 국가보안법의 철폐나 미군의 철수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6.15선언의 긍정적인 점만 얘기하였지 그 부정적인 점이나 한계를 말하는데에는 소흘히 하였습니다. 통일의 적을 분명히 하고 6.15선언의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고, 감상적 민족주의나 감상적인 통일운동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우리는 더욱 경각심을 갖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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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삭발 단식할 때인가?

지금이 삭발 단식할 때인가?



글번호 : 23928
등록일 : 2004년 07월 21일 22:00:47




LG정유의 경찰진압과 지하철투쟁에 대한 직권중재에 항의하여 오늘 이수호위원장은 삭발과 단식에 돌입하였다.
파업이 시작되고 전운이 감도는 이 시점, 특히 반동적인 진압이 예견되는 이 시점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을 엄호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의 수장은 전 조직의 결의를 모아내고, 독려하고, 당면투쟁을 지도하여 투쟁을 승릴 이끌 책무가 있음에도, 호소문이나 발표하면서 스스로 손발을 묶는 단식이나 한다는 것은 결국 투쟁의 방기 아니 투항주의에 다름 아니다.
언제부터 노동자의 투쟁이 삭발이나 단식이 되어 버렸는가? 노동대중의 굳건한 단결에 기초한 강고한 연대와 파업이 노동자의 무기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대중투쟁에 기반하지 않은 삭발과 단식같은 소시민적인 발상에 절망을 느낀다.
이수호 위원장이 나중에 면피할려는 목적이 아니라, 진정으로 투쟁의 승리를 위한다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강고한 단결과 연대의 전선을 꾸리고 독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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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 다녀와서-좌익소아병을 경계하며

촛불집회에 다녀와서-좌익소아병을 경계하며


등록일 : 2004년 03월 16일 15:29:00




지난 토요일 광화문 집회를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무엇이 저 7만이나 되는 대중을 거리로 나오게 했는가? 모두 노사모이고 노무현의 지지자들인가? 왜 연사들은 (심지어 민노총의 부위원장까지) 하나같이 탄핵무효만 주장하고 투쟁을 맹세하고 있는가?
최근에 나온 민노총이나 민노당, 사회진보연대의 선언문들은 작금의 탄핵정국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즉 탄핵정국이란 민생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꼴보수와 개혁을 팔아먹는 보수들이 국민과 헌정을 볼모로 헤게모니 싸움을 하다가 벌어진 사태이고, 이 더러운 싸움의 최대의 피해자는 이땅의 민중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싸움을 친노와 반노의 싸움으로 보고 혹은 보수들 내부의 싸움으로 보고, 저희들끼리 싸우도록 내버려 두자는 입장이 있다.
한마디로 이 정국의 최대의 수혜자가 열린 우리당이고, 파병반대와 비정규직 철폐, 분신정국등의 투쟁을 통해서 노무현정권의 반민중적인 탄압과 열나게 싸워온 우리 진보세력들이 갑짜기 노무현구제운동에 나서야 될 이유도 없고, 죽쒀서 개를 주고 말지 노사모 들러리 설 필요가 없다는 태도이다.
또 한편에는 헌정파괴세력과 수호세력간의 싸움으로 보는 입장이 있고, 그들 대부분은 87년 항쟁을 떠올리며 탄핵반대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탄핵무효 헌정수호의 슬로건을 외치면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이 추잡한 싸움의 공범이라는 점을 폭로하려고 않는다.

과연 이 두 입장 밖에 없는 것인가?
나는 이 싸움을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슬로건은 합법을 가장한 구테타를 일으킨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해체만이 아니라, 정국의 헤게모니와 선거판의 유불리만을 따지면서 국민을 볼모로 하여 꼴보수와 버금가는 잘못을 저지른 노무현과 열우당의 잘못을 폭로하고 그들의 사죄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탄핵은 무효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자진해산하라. 노무현과 열우당은 사죄하라. 이 세가지 슬로건을 선전하고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탄핵정국으로 전선이 분명하게 형성되어 있고, 대중들이 거기에 있는데, 대중의 이익을 위해서, 대중과 함께 하고 대중을 올바르게 이끌 책무가 있는 진보세력들은 이 투쟁을 방기할 것이 아니고, 또한 저 거대한 대중들을 노사모에게 맡기고 그들의 선전장이 되게할 것이 아니라, 참여와 선전으로 진보대 보수의 싸움판으로 견인해야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집회에서 단지 탄핵무효만 외칠것이 아니라, 이미 민노총이나 민노당의 선언문에서 올바르게 이 정국의 분쟁을 분석한 만큼 그에 걸맞는 선전과 선동을 해야만 한다.

장석준 동지의 글에 대하여-
장동지는 탄핵무효투쟁이 부루조아민주주의 혁명의 과제이며, 우리는 우리의 과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장동지는 현재의 탄핵정국의 당면성과 긴박성을 외면한 채 '우리에게 그것은 노동 현장과 비정규직의 문제를 전면에 내거는 것이고, 부르주아 계급의 농업 포기 정책에 저항하는 것이며, 이라크 파병 철회를 부르짖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의 권리를 위한 조세 정책과 무상복지의 확대를 주장하는 것이고, 국회의원 소환제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파열을 외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한 달간의 투쟁의 대지침이 되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장동지와 생각을 같이하는 동지들에게 두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부르조아 혁명의 과제는 한때 부르조아지에 의해 주도된 적도 있었지만 그들이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성격을 잃고 매판화 반동화 되어갈 때, 노동계급을 비롯한 민중이 그들의 과제를 수행했다는 역사적 사실과(인민민주주의 혁명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던가?), 형식적 민주주의는 보다 높은 단계의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민중의 소중한 권리이고, 그것은 부르조아보다는 오히려 민중에게 절실한 것이라는 점과, 둘째로 전선이 저기에 있고 대중이 저기에 있는데, 전선과 대중을 도외시한 채 원칙론적인 투쟁을 계속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자. 광화문에 저 많은 대중들이 있는데 거기에 민노당의 깃발이 물결치고 모든 연사들이 수구꼴통의 범죄만이 아니라 노무현과 열우당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자리로 만드는 것과, 그렇지 않고 감상적인 저 대중들을 노사모에게 맡기고 열우당에 환상을 갖게하는 것과의 차이를...
이 과제는 어렵지만 반드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극복해야할 문제이지, 기만적인 부르조아적과제라고 해서 결코 도외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임승철동지의 글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입장을 같이 하면서도 7가지 모두를 지금 동시에 주장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한번더 검토를 해보았으면 하고 다만 국민소환제는 동시에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민노당이나 진보세력만이 따로 집회를 갖는 것에 대해서도, 그보다는 차라리 촛불집회의 집행부를 장악하고 견인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주장을 요약한다면- 전선과 대중과 투쟁을 방기하지 말고 적극 참여하자는 점과, 참여하되 매몰되지 않고 진보의 입장을 명확하게 선전하고 선동하자는 것이다.
동지들의 건설적인 반론을 기대한다.



장석준 : 이번 정국이 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진짜 '의회 쿠데타'라면 진보민중진영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정세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죠. 그 점에서 현재의 당의 공식적 입장에 동의하는 것이죠. 즉, 이번 사태의 직접 책임은 한민자에게 있을지라도 그 근본 책임은 노무현, 열린우리당에 있다는 것이고, 자작극의 성격이 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탄핵 기각을 분명히 한 바에는 우리의 길을 굳건히 가는 것만이 올바른 입장이라는 것이고, 정윤광 위원장님 같은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04/03/16

박경후 : 저도 동지가 보는 것처럼, 이번 사태가 저질보수들이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다가 빚어진 일이고, 노무현의 지능적인 도발에 의도된 바가
크다는 점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 정국이 우리가 주도한 것이 아니고 주어진 전선일 뿐만 아니라 회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같습니다.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중의 관심과는 동떨어진 투쟁을 계속한다면, 그 결과는 그야말로 노무현과 열우당이 바라는 바대로 되어갈 것입니다.
탄핵소추가 가결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신물나는 저질보수정치를 규탄하고 진보정당만이 대안이라고 대중들에게 선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태의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전선을 노사모에게 맡기거나 독식시킬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보수정당(열우당을 포함하여)의 본질을 폭로하고, 그들의 더러운 책동을 폭로하고 분쇄하는 투쟁을 벌여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민중연대가 주되게 참여하고 있는 촛불집회가 지금처럼 진보의 입장을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본인의 주장이 이상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전선에서 회피할 수 없는 것이고 올바른 선전과 투쟁의 방침을 내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당과 민노총 등이 밝힌 성명서의 기본적인 입장 즉 노사모처럼 한나라와 민주당의 폭거만이 아닌 열우당과 노무현의 보수적인 실체를 대중에게 폭로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3.16)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만약에 이 집회가 진보의 입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민중연대를 비롯한 진보세력들은 따로 판을 짜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진보세력들이 민주적인 헌정의 수호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력하고 진지한 투쟁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즉 우리는 이 정국에서 두가지 임무 즉 첫째 진보세력이야 말로 민주적 헌정의 진정한 수호자라는 점과, 둘째 노무현과 열우당의 반민중적인 보수적 본질을 대중에게 폭로하고 각인시키는 이 두가지 임무를 여하히 수행할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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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동부연합 민노당사업 방침

  • 분류
    자료실
  • 등록일
    2005/03/13 14:44
  • 수정일
    2005/03/13 14:44
  • 글쓴이
    서른즈음에
  • 응답 RSS
민주노동당사업 전략

당면정세는 지난해 미국의 한반도 전쟁위협을 저지하고 한반도 평화실현과 통일의 공고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는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면의 전환은 미국과 보수수구세력과의 치열한 대결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중략)

1. 당직선거투쟁과 당의 현실

민주노동당은 총선투쟁을 통한 제3당화, 10석의 국회의원배출 5만당원화 그리고 지속되는 17%이상의 당 지지도등 2000년 창당이래 당발전의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당 창당이후 당의 개량화, 개별출세요소를 차단하고 당의 이념적 정치적 노선을 바로 세우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2004년 당직선거는 새로이 변화되는 정세에서 기간 당사업의 약점을 극복하는 일대 혁신의 중심고리가 지도력을 바로 세우는 것임을 확신하고 대거 최고위원회에 진출을 실현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의 공평무사한 당직선거투쟁을 통해 동지간 신뢰의 기초를 닦았으며, 노연, 최최고등과의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책위의장선거는 우리의 실력을 냉엄히 바라보는 계기를 던져 주었다. 이유야 어떻든 지역판도에서 2000이상을 넘지 못했고 전국적 판도에서 과반을 넘지 못한 것이 현실이며 이는 지역차원에서 기층당활동의 취약성, 전국적 판도에서의 연대연합활동의 일면성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당은 중앙위원회에 자민통대오의 다수진출을 실현하였고, 이 힘을 바탕으로 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체계의 안정화, 당 운영시스템의 정비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러나 변화된 주, 객관 정세변화에 따른 당의 전략적 침로에 대한 최고위원회의 일치가 낮은 수준에 있고, 당사업에 대한 선후차, 중심고리설정 등이 뚜렷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국회의원단에 대한 사업은 의정지원단의 정책지원과 몇가지 법안제출등으로 한정되고 있고, 최고위원회의 지도, 원내대표의 중심적 역할 취약등으로 각개약진하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최근 경기도지부장 선거에 나타난 대립현상은 본질에 있어서 당의 제3당으로서의 성장에 따른 자리경쟁과 이에 따른 무원칙한 이합집산이 보다 노골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향후 당운동에서는 운동원칙을 지키며 구동존이하는 연대연합의 정형을 창출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함을 제기하고 있다.

2. 당사업의 목표-핵심사업에 과녘을 맞추자!

1) 현 시기 집권을 준비하기 위한 당의 활동은 '당간부역량을 축성'하는데 모든 힘이 모아져야 한다.
제반의 투쟁사업과 기층 당활동, 당원확대, 부문위원회, 사업부서 등의 모든 사업은 이 한점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당사업은 사람과의 사업이다" 이것이 우리 사상의 좌표이며 원칙이다.
이것이 우리 운동의 원칙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뿐만이 아니라 진보적 대중정당화의 발전도상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확대되는 당원에 비해 당간부역량의 부족, 미개척지역의 산재, 개별출세, 우연부나들의 준동과 이에 편승한 종파요소의 발호는 제압하고 당의 골간대오를 구축하는 것이 절대절명으로 과제로 되기 때문이다. 이는 숫자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올바른 사상, 노선, 실천적 대중사업 전개력을 가진 실력있는 간부일꾼을 양성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당 간부역량을 발굴하고 축적하는 것은 조직적 운동이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개별의 친분관계도 도움이 되지만, 해당 사업일꾼들이 자신의 사업영역에서 조직적 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핵심을 발굴, 전취하고 보다 높은 조직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노동, 청년, 학생, 여성위원회, 문예위원회등 부문위원회는 당간부화사업의 전초기지이다.
노동위원회는 현장분회 조직사업, 여성위원회는 여성간부학교르 통한 핵심사업, 문예위원회는 당차원의 문예운동을 정착, 개척해 나가야 한다.
노동 부문사업에서의 집중점은 공무원, 철도에 대한 진공적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대협, 조직3, 노동위, 자통, 민노총 정치국 등의 입체전으로 제반 계기와 고리를 활용하여 핵심사업과 현장분회건설로 밀고 들어가야 한다.

한국노총은 향후 당 외연확대의 적극적 대상이다. 특히 한국노총 집행부와의 우호적 관계, 박00과 금융연맹을 중심으로 한 적극적 관계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과제별 위원회로서 지방자치위원회는 2006년 선거준비를 통한 간부육성발굴의 훌륭한 보루이다. 기존의 지방의원을 지원하는 사업과 더불어 새로이 지방선거를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단위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전국적 핵심사업의 포문을 열어야 한다.
자통위원회는 기간 사업총화에 기초하여 핵심적 자통위원과의 사업을 강화하고 서울지역에 대한 개척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인터넷실은 인터넷위원회 등 당내외 사이버영역의 평정하고, 당원의 건전한 의사소통확보와 인터넷 의식화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대변인실은 광역시도지부 언론학교사업과 기자사업의 목표를 정하고 과감히 돌파해야 한다.

기관지위원회는 향후 9월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자체의 당원 의식화 기제로서 자유주의적 편집관을 혁파하고 실질적인 당기관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차원으로 보면 경기, 중부지역(대전, 충남북지역)을 중심으로 전북지역과 강원지역에 대한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특히, 경기지역은 지역내 핵심사업주체들이 있는 만큼, 핵심간부를 찾아내어 이를 지역과 연결하여 주거나 공동사업으로 전개하는 등 입체적 접근을 해야 한다.
중부권은 지역내 이미 존재하는 당 사업역량과 결합하여 중앙차원의 지원대책, 개척작전 등을 구체화하여 사업을 밀고 들어가야 한다.

핵심사업의 성패는 우선 뚜렷한 목적의식성에 달려 있다.
기간 자신의 준비정도나 마땅한 대상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핵심사업에는 일반적으로 동의하나 절대절명의 과제로 생각지 않고 시간을 허비했던 경험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핵심사업은 또한 집체적 운동에 달려있다. 사업단위별 대상선정과 전취하기 위한 노정을 설정하고 구체 방안을 집체적 토의와 총화에 기초하지 않고 개별적 감량으로 접근하여서는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 그간의 교훈이다.

2) 다음으로 일상지도력을 강화와 당의 노선정립을 위해서는 최고위원회의 정치조직적 지휘기능을 강호해야 한다.
현재 나서는 과제는 최고위원회의 개별화 현상이다. 최근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치가 마련되었으나 내용적으로 중요한 것은 최고위원회의 정치지도적 기능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최근 이라크 파병관련 농성과 단식투쟁을 최고위원회 결의와 노력으로 끌어가는 것은 좋은 사례이다. 지난 시기 당사업에서 대표단의 성명서사업, 언론용 이벤트를 극복하고 당원을 투쟁에 불러일으키고, 이를 최고위원회가 앞장서서 뚫어 주 는 것은 잘 한 일이다.
정치지도적 기능을 높인다는 것은 여러 부서사업을 실무적으로 검토해 주는 수준이 아니라, 당명 정세요구에 기초한 투쟁과 정치방침에 대한 주도력, 조직사업에서의 주요 역점사업등을 짚고 이를 지체적 운동화, 현실화 시켜 나가는 것에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최고위원회 사업책임자(단위)선정과 기획조정회의에서 주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3) 다음으로 전국적 연대연합사업의 과제이다.

기간 3자모임의 평가점은 그 사상노선, 조직적 일체감이 아직 높지 못하고 사안별 공동행동, 연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은 기간 3자모임의 총화에 기초에 자민통대오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일차적으로 당활동에서 주요 결정단위인 중앙위원회에 대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며 실천투쟁관련한 당의 일치된 행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경기, 인천, 울산, 부산, 전남, 광주, 충청, 서울권역등과 노동, 농민, 청년, 학생등 부문영역이 참여하는 범위로 하여 추진해 나가야 한다.

3. 하반기 투쟁과제

...(생략)....

4. 당 사업체계 구성 및 운영

전체회의 : 중앙당 진출자 전원회의- 격월단위로 하며 9월 중순, 11월중순, 연말 3차례 진행한다.

일상책임단위 : 김최고, 문예위원장, (전)연수원장, 대협실장, 조직국장등 5인으로 구성되는 일상 당사업 책임단위회의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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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과 연대 준비위원회 결성선언문

  • 분류
    자료실
  • 등록일
    2005/03/13 14:43
  • 수정일
    2005/03/13 14:43
  • 글쓴이
    서른즈음에
  • 응답 RSS
준비위원회 결성선언문


가. 우리는 왜 일어났는가?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후, 그 동안 외형적으로는 급성장했지만 최고위원 선거를 비롯한 여러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내부적으로는 비상식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이에 우리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당을 혁신시키기 위해 일어났다.

우리들은 지금과 같은 폐쇄적이고 배제적이며 상층부 위주의 당 내 정파들은 새롭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층부 상호간의 철저한 담합으로 치루어졌던 최고위원 선거는 다수의 당원들을 소외, 배제시키며 특정 정파의 전횡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여 있는 물과 같은 구조 속에서는 어떤 변화도,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물이 썩어가는 것만 지켜볼 뿐이며 물이 썩으면 결국 당원들은 모두 떠날 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내 정파들은 고여 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 투쟁에만 몰두하면서 점점 당을 분열시키고 있다. 정파가 당 발전에 이바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당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반 당원들에게 좌파정당에 대한 청사진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획일화되고 경직적인 과거의 사상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 다양한 성향과 생각을 가진 일반 당원들과 공감대를 전혀 형성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을 운동권정당에서 대중정당으로 거듭 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계가 분명히 극복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민주노동당이 거대정파들에 의해서 보수화, 운동권화 되는 것을 막고 일반 당원들부터 활동가와 당직자까지 공개, 공평, 참여의 원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정파를 건설함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각 정파들이 공정하고 생산적인 경쟁을 통해서 당 발전을 견인할 수 있도록 당 전체를 혁신하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다.


나. 왜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자율과 연대인가?



민주노동당은 이념정당이며 정책정당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당 내 정파들은 이념과 정책보다는 인맥과 학연 위주의 모임으로 민주노동당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민주노동당 내의 제 정파들을 이념과 정책으로 헤쳐 모이게 하기 위해서 당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물론 여전히 당 내에서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많다. 그러나 이미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파산선고가 역사적으로 내려졌고 남한 내에서 혁명의 기운도 사라졌기 때문에 우리들은 사회주의의 전망을 현실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유용한 전략적 도구라고 판단하고 선택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한 궁극적 이유는 민중의 생활과 삶을 보다 더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거대담론보다는 정책위주의 사회개혁을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언제 올지도 모를 거대담론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중의 현실 생활에서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써 사회민주주의를 택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책에 결박된 사회주의 이론보다는 현실에서 보다 더 자유롭게 살아 숨쉬며 민중들에게 사회주의의 향기를 보다 더 많이 맡게 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금 당을 양분하고 있는, 사회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은 민생을 개선하고 향상시키기 보다는 본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급급하므로 비판받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민주노동당을 민생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좌파정책정당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당 내에서 정책위주의 활동을 추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위주의 활동은 중앙당의 일부 정책담당자들뿐만 아니라 6만 당원들도 함께 할 때 보다 더 민중적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당원들이 자신의 지식과 삶 속에서 배여 나오는 정책들을 당 내에서 자유롭게 논의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정책 활동을 이끌어 낼 것이다.

우리들은 과거의 거대담론에서 간과되고 있는 다양한 진보적 가치 또한 당에서 의제화 될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이다. 그래서 고립적, 분산적으로 제기 되는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연대라는 형태로 당내에 환기시키며 여러 진보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게 함은 물론 외곽의 진보세력들 또한 당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 정파가 당을 주도할 수 있도록 사회민주주의 세력을 규합하는 초석역할도 담당할 것이며 활동가들과 당직자들뿐만 아니라 사무직 종사자,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들 또한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참여시켜서 민주노동당을 일부 엘리트 활동가들의 사적 소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공공재가 되게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들이 오늘, 당 역사상 처음 내딛는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자율과 연대는 당원 여러분들의 것이며, 당원 여러분들이 함께 만들어 갈 우리 모두의 가능성임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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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민족을 들먹이는 사람들에게

제목 아래 김치문님이 올린 조 국 / 신동엽 님의 시를 읽고

글쓴이 서른즈음에 글쓴날 2004-08-31 14:57:47


나는 글을 올린 사람이 왜 지금 이런 글을 올렸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를 일고 느끼는 바 있어서 몇자 적어 본다.

이 나라 사람이라면 올림픽 경기때 한국팀이 이기면 누구나 좋아한다. 특히 일본팀을 이기면 그야말로 속이 후련하다. 만약 북한팀이 다른나라와 경기를 하면 북한팀을 응원하고 북한 팀이 이기기를 바란다. 이것이 글을 올린 사람이나 나나 혹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다.
그러면 이것이 조국이고 민족이란 말인가? 이것이 다인가?

1972년 유신이전에는 사실 북한이 더 잘살았다. 단지 잘살고 공업이 더 발전한 정도가 아니라, 일제잔재를 뿌리뽑고, 친일파를 처단하고, 지주의 땅을 몰수하여 소작농을 해방하고, 어디 그뿐이랴? 한쪽은 관동군 대위출신이 친일파 친미파들과 손을 잡고 민중을 억압하는 체제이고, 다른 한쪽은 규모는 어찌됬든 보천보전투를 비롯해서 일본제국주의와 험난한 빨찌산투쟁을 전개하면서 식민지 조선민중에게 희망을 주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이 정도는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얘기다. 어디 그뿐이랴?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보육, 여성차별 등 온갖 차별로부터의 해방! 그때까지는 북이 단지 남한보다 잘사는 반쪽이 아니라 분명 도덕적으로 우월한 체제였던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났던 수많은 비전향 좌익수들을 보면서(그분들은 지금 대부분 북으로 돌아가셨다), 그분들이 버티고 있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 가를 아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바로 너희 남한보다 자신들이 세운 체제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그러한 자부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절에 통일을 이야기하고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역사의 진보적인 방향에 합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고, 북이 제 나라 인민도 못 먹여 살려서 탈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비록 그것이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체제의 봉쇄와 억압에 기인한다고 하여도, 과거의 도덕성과 정통성만을 가지고 북을 두둔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한 극단에서는 반미반제와 통일이 민족의 제일가는 과제라고 주장할 때, 또 한 극단에서는 북을 세습독재를 위하여 우상숭배를 강요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압살하는 변질된 왕조 사회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대신에 관료주의적 권위주의적인 억압이 있을 뿐, 심지어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하나 없는 사회가 무슨 사회주의냐고 비난한다. 어버이 수령을 얘기하고 친북을 주장하려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무시하고 침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설득력있게 북의 체제의 도덕적인 우월성을 설명해야할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과제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단지 조국과 민족을 감상적으로만 들먹거려서는 안된다.
제국주의의 최후의 가장 악랄한 단계인 신자유주의세계화에서 절대 다수의 노동자와 민중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고 고통당하고 있을 때,
한마디로 자본의 극악한 억압에 신음하고 있을 때, 노동자와 민중의 편에서 반자본의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즉 반자본의 입장이 관철되는 민중적인 통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있지도 않은 민족자본과의 통일전선을 운운하면서, 심지어 남한자본의 축적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남한 자본이 북의 값싼 노동력과 토지를 수탈하기 위해(개성공단의 임금이 50-60불 즉 월 7-8만원으로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북을 세계자본주의체제로 편입시키기 위해, 경제협력이란 미명으로 포장된,
그리하여 주한미군철수는커녕 국가보안법폐지도 들어있지 않은 6.15 공동선언이, 남북의 민중에게 무슨 거대한 의미가 있다고 남한 자본은 물론 제국주의 자본까지 박수치고 있는 그런 야합에 무슨 6.15 정신을 계승해야 된다고 난리를 피우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좌파에서는 6.15선언을 남북의 지배계급이 자기 민중을 배반한 야합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겠다.

다만 통일을 얘기하고 민족을 얘기하면서, 통일로 이루려는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되는지, 통일의 적이 누구인지, 누구를 위한 통일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민족과 조국이란 미명하에 이땅의 민중들의 투쟁에 대해서 침묵하고 물타기하는 행동은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란 결국 없는 놈이 전장터에 나가서 죽는 것이고, 전쟁이란 제일 먼저 힘없는 여성과 아동을 희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진보세력은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 지배계급을 위해서 민중이 희생된다는 까닭에. 그런데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침략하고 대동아 전쟁을 일으켰을 때에도 조국과 민족이었고,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때에도 조국과 유태인에 대립하는 게르만 민족이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조국과 민족이란 개념은 그 국가내의 계급투쟁을 호도하기 위해 물타기 위해 동원되어온 것이다.

조국과 민족을 강조할 때, 억압받는 민중의 삶과 투쟁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개탄스럽게도 이땅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반미와 통일운동에만 열심일 뿐, 민중의 고통과 투쟁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과 남북공조를 강조하다보니 남한 지배계급에 대하여 단호한 적대적인 투쟁적인 자세가 아니라 매양 타협적인 자세가 되는 것은, 지난 탄핵국면 때에도, 민노당이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실천자인 놈현까지 포함하여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열우당까지 한편으로 하고 민중을 다른 한편으로 주장할 때, 민중연대의 집행부들은 내부결의도 없이 한나라당을 한편으로 하고 열우당을 포함한 민중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묘한 민족민주통일전선을 실천했던 것이고-시민단체와 전국연합, 한총련 등 모두 이런 입장에 있었다.-,

최근에도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단지 부르주아 정부가 제 국민믈 보호하지 못한 데에 대한 불만(이것은 사과하라는 구호로 표현되었다.)과, 파병과 철회의 핵심 결정권자인 놈현과 열우당을 주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의 친미파가 문제라는 둥 놈현은 개혁세력이니 퇴진을 주장해서는 대중이 떨어진다는 둥, 힘없고 착한 놈현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강요하는 깡패형님 미국(미제도 아닌 미국)놈을 주되게 규탄해야 된다는 둥으로 이상한 전술을 주장했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민중에 기반하지 않은 감상적이고 애매한 조국과 민족 그리고 통일을 강조하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로 보는 것이다.

또한 대체로 이런 입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정돈된 형태로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즉 대중을 설득시키려거나 비판을 받을 자세가 안돼 있기 때문에 서로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금 정리하자면, 감상적인 언사로 조국과 민족과 통일을 얘기하면서, 애매하게 물타기하지 말고 누구를 위한 누구의 힘으로 통일을 할 것이며, 어떤 사회를 이루려는 것인지, 그리고 그 사회는 남과 북의 사회체제와 어떤 점이 다른 것인지(여기에는 현존의 북 체제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글이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고 적대할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서로 솔직한 대화와 토론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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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주의 체제의 파산

좀머씨에 대한 답글-사민주의 체제의 파산

글쓴이 김두한 글쓴날 2004-07-11 00:28:36 조회 42




먼저 사회민주주의와 사회민주당이 다르다는 좀머씨의 견해에 대해

사회민주주의는 개량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가짜 사회주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사회민주당은 그런 사상, 즉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강령과 정책으로 삼는
당조직입니다. 사회민주주의와 사회민주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데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좀머씨 사상과 조직이 별개일수 있나요?

그런데도 사민주의와 사민당을 분리하려고 하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좀머씨도
부인할 수 없듯이 영국노동당이나 독일사민당이 노골적으로 사회복지를
후퇴시키고 있으며,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자본가를 위한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앞에서 현재의 사민당들에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컨대 좀머씨는 예전의 사민주의체제(?)는 좋은 것이지만, 사민당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사민당이 버린 예전의
사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현재의 사민당처럼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꼭 이렇게 사민주의를 사상과 조직이라는 관점에서만 파악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민주의와 사민당이 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사상과
조직이라고 할 때,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런 정책이
사용되었던 현실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노동계급 포섭적인 정책과 그
체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전후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정책은 독일
기민당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민주의가
사민당의 주요한 정책이라는 점 그리고 사민당의 변절과 기회주의적 사민주의
사상 그리고 그 체제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중간계급적 타협주의적 사민주의당이 이런 역할을 맡는 것이 오히려 적당하기조차
합니다. 따라서 사민주의와 사민주의당 사민주의 정책에 대한 자의적인 좀머씨
구분은 문제가 있습니다.

어쨌든 좀머씨는 사민주의를 사민주의당의 사상과 다른 것, 즉 사민주의를
사회체제로만 간주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체제입니다.”라고 말이죠. 사민주의를 이상적인 체제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민주의는 경제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 입니까? 사회주의입니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닙니까? 사민주의가 좋았던 시절이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선전되고 있는
사실만 보아도 그것은 자본주의 입니다. 따라서 좀머씨는 특정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잉여노동의 착취가
존재하더라도 먹고 살만하고 여유와 안락이 있으나까 좋다는 것이 좀머씨의
주장입니다. 자본가의 착취를 인정하고 노동자들의 피지배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자본주의의 전후 호황기의 사민주의처럼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고
유지되는 사민주의에 안주하는 것이 실패한 사회주의보다 낫다는 것이 좀머씨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사민주의도 자본주의의 체제인 연유로 필연적인 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그 잘나가던 사민주의가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그리고 그 사민주의 체제(?)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대체될 정도로
쫑난 것이 현실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민주의체제도 이제 이상적인 체제가 아니라
붕괴된 과거의 체제이며,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체제이며, 노동자들의 저항이
거세지니까, 이를 무마하기 위한 체제 혹은 포섭적인 방책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포섭 기간동안 노동자들의 저항이 무력해지자, 공격하고 들어오는
것이죠. 실패한 과거사회주의에 미련이 없는 좀머씨, 사민주의에도 미련을
버리십시오.

그러나 좀머씨는 여전히 현재의 서구의 신자유주의 국가(과거의
사민주의국가)들이 현실의 사회주의국가들 보다 낫지 않느냐고 주장하면서 여전히
우리에게는 최소한 추구해야할 미래이며, 기존의 신자유주의 국가들에서도 다시금
추구해야할 현실의 유일하게 이상적인? 체제라는 것이 좀머씨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말씀입니다. 사민주의를 추구해서는 사민주의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나마 사민주의적인 계급타협적인, 정확히는 노동자들을
포섭하려는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불과합니다.
정말 좀머씨가 한국에서 그나마 사민주의가 즉 친노동계급적 정책이 사용되기를
바란다면, 사민주의를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할 것을 선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계급들의 혁명적 실천투쟁을 조직해야
합니다. 바로 그럴 경우에 만 좀머씨가 바라는 자본가계급의 양보로 인한
일시적인 사민주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즉 반자본주의 투쟁을 할 경우에만.
반자본주의의 체제위협이 있는 동안에만 사민주의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좀머씨가 사민주의를 위한다면, 반자본주의 투쟁을 하십시오. 즉 사회주의 투쟁을
하셔야 한단말씀입니다. 전후 사민주의는 바로 공산주의와 공산주의 혁명운동의
두려움 속에서 자본이 사민주의라는 이름으로 양보한 것이니까요.

아니면 1차 2차 세계 대전처럼 수백만의 노동계급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야만,
자본가들은 사민주의라는 포섭정책을 사용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이런
사민주의가 가능한 것은 파괴에 뒤따르는 혹은 경기침체에 뒤따르는 회복기에
가능할 것인데, 이것은 다시금 자본주의의 경제위기시점에 사민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것입니다. 좀머씨 사민주의는 피지배계급인 노동계급의 고통과 저항
그리고 이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포섭정책의 결과 일뿐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더욱이 이것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위기로 붕괴할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민주의라는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선동은 결국 당신이
원하는 사민주의조차도 얻어내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좀머씨는 그래도 신자유주의로 변질된 사민주의가, 머릿속의
사회주의보다는 혹은 현실사회주의보다는 낫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유럽 그리고 선진자본주의에서 누리는 삶의 수준은 사민주의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혁명적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투쟁 그리고 자본의
파괴적인 영향과 빈부격차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의 산물일 뿐입니다. 한국
노동자들이 유럽의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복지를 쟁취하려고 한다면, 타협을
부르짖는 사민주의를 버리고 투쟁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사민주의라는
자본주의에 일절위협이 되지 않는 노선을 선동하는 것은 한국 노동자들을 현재의
삶의 수준에 잡아두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역사속의 실패한 사회주의를 계급적 운동세력이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만큼 명백한 것은 실패한 사민주의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만드는 사민주의가 계급적 운동세력이
지향할 목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영원한 실패가 결코 아닙니다. 자본주의의 극복은 단지 실패했던
20세기 사회주의만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다시말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주의 실패는 성공하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길입니다. 21세기의
생산력으로 이제 현실적 사회주의를 이루어낼 수 있고 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겠다는 사민주의는 잘못이며 영원한 실패입니다.
사민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은 체제라는 점에서 미래가 없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사민주의체제는 사민주의적 방식으로는 얻어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이를 얻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타협주의적 노선은 현재의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노동계급을 무방비상태로
자본에 공격당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민주의를 선동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잘못입니다.

좀머씨, 과거 사회주의의 실패에 두려워하지 말고, 엄연한 사민주의의 파탄난
현실을 외면하지 맙시다. 사민주의라는 현재에 탐닉함으로써, 현실의 자본가
지배체제를 유지하려는 장난은 하지맙시다. 현재의 탐닉을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원을 파는 파우스트가 되지 맙시다. 반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필연적 이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이상은 관념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헤겔의 변증법의 구절대로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그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과학적 사회주의의 더욱
철저한 이론화와 계급적 혁명적 실천투쟁과 그 계급적 조직일 필요할 것입니다.
좀머씨의 현실사회에 대한 계급적 투쟁을 바라며...






1. 좀머씨 : 07-11 - 좋은 글이긴 합니다만...이런 지난 시대의 강팍한 논리로 할 수 있는건'혁명'말고는 없을 것 같군요.제 생각을 정리해서 따로 올리죠.긴 여행에서 막 돌아왔습니다. (x)
2. 서른즈음 : 07-11 - 좀머씨에게 확실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오늘날 한국의 좌파중에는 구소련과 같은 스탈린주의적 모델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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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주의에 대한 소고(2)

제목 좀머씨에 대한 답글-사민주의에 대한 소고(2)

글쓴이 서른즈음에 글쓴날 2004-07-10 11:43:29 조회 105




사민당과 사민주의가 다르다는 말은 현실의 사민당은 부정적일지 몰라도
사민주의는 긍적적일 수 있다는 취지의 말씀인 것 같습니다. 사민주의는 교본이
없기 때문에 역사와 현실속의 하나의 경향 특히 사회주의와의 분별을 위해 쓰는
개념일 것입니다.

우선 저는 자본에 반대해도 부정하지 않고 분배의 확충을 주장하는 것을
사민주의라 하고,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모순 때문에 자본의 철폐를 추구하면서
자본을 부정하는 입장 즉 분배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생산이냐는 점에서(요새
말로 이윤이 아닌 인간을 위한 생산, 혹은 교육과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등등)
생산관계까지 변혁을 주장하는 입장을 사회주의라고 정의합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가난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작은 비용으로 완벽하게
실현되었고, 서구에서는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높은
부담속에서 불철저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즉 세금에 의한 무상의료는 의료산업의
높은 이윤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인 큰 부담을 줍니다. 만약 의료산업을
국유화한다면 높은 이윤을 보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쿠바처럼 가난한 나라가 세계적으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역사와 현실의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그 해결책은 항상 분배론의 관점에서 자본의 입장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과 운명을 같이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정한 분배를 아무리 주장해도 분배를 아무리 키워도 이 체제의 병폐 즉
공황과 실업 그리고 삶과 노동의 박탈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사민주의 복지국가가인 EU의 생산이 인구증가 없이 두배나
증가했는데도 실업과 빈곤, 삶의 질 등 노동자의 처지는 악화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처지에서는 유럽의 복지모델만이라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좋고
현실적이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개선을
얻은 것은 사민당이나 사민주의 정책때문이 아닙니다. 개량적 대안을 주장하는
것은 개량을 성취하기도 어렵게하고, 설령 얻었다고 하더라도 허구화될 운명에
있다는 것은 운동의 역사가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사민주의가 좌파에 속한다는 거나,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사민주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체제라는 님의 주장은 제 평생에 처음
듣는 소리라 답변하기 어렵네요.







1. 좀머씨 : 07-10 - 무상의료,무상교육이 작은 비용으로 완벽하게 실현된 사회주의 사회는 어디입니까.제가 과문한 탓인지 처음 듣는 소리라서....혹시...쿠바가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한다는 것도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구요. (x)
2. 좀머씨 : 07-10 -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현된 '무상의료'라면 그냥 이 나라에서 돈 내고 거래하는 의료서비스가 백배 낮죠. (x)
3. 좀머씨 : 07-10 -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를 기정 사실화 하시는데 그 악명 높은 '사회주의'말씀 이신가요. (x)
4. 서른즈음 : 07-10 - 쿠바의 의료수준과 서비스는 객관적 사실이구요, 무상의료, 교육, 탁아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유일하게 자랑하던 것입니다. 몰락한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가 많은 과오와 부정적인 점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나, (x)
5. 좀머씨 : 07-10 - 북한이나 앙골라에서 행해지는 무상의료,배탈나도 배꼽에 바를 약도 없답니다. (x)
6. 서른즈음 : 07-10 - 사회주의 모델이 그것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새로운 모델은 아직 논쟁중이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x)
7. 서른즈음 : 07-10 - 역사속의 사회주의와 이상속의 사회주의는 다르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x)
8. 좀머씨 : 07-10 - 아...머리속에 있는'사회주의'요. 제 머리 속에는 저만 알고 있는 완벽한 사회가 있습니다.같이 공유 할 기회가 있기를....이제는 길 떠날 시간입니다.다음 기회에... (x)
9. 좀머씨 : 07-10 - 서유럽의 사민주의 국가보다 더 나은 사회가 어느 나라인지 저도 알고 싶군요. 무릉도원이나 샹그리라,엘도라도는 빼구요.. (x)
10. 황악 : 07-10 - 의료수준을 단지 첨단의료를 얼마나 잘하나를 가지고 판단한다면 쿠바의 의료수준은 미국보다 못합니다. 하지만 영아사망률등 건강지수를 가지고 판단한다면 미국보다 낫습니다. 미국의 의료제도는 돈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데 반해서 쿠바같은 (x)
11. 황악 : 07-10 - 경우는 그렇지 않죠. 미국은 병을 키워서 많은 비용을 투자해서 치료하는 반면, 쿠바의 의료제도는 그렇지 않죠. 쉽게 고칠 수 있는 질환을 미리 고친다고 하면 좋겠지요. 그리고 무상의료가 단순히 공짜의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x)
12. 황악 : 07-10 - 의료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비용 중 일부분이고, 건강이나 질병이 개인의 책임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이 강하게 존재합니다. 너무 자본주의화된, 상품화된 의료에 익숙해 져있고 질병이 개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에 메몰되어 있기에 ' (x)
13. 황악 : 07-10 - '좀머씨'님 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같습니다. 끝없이 의료비는 상승하지만 건강 상태는 좋아지지 않는 의료를 택하고 싶지는 않을 텐데... 미국은 의료비의 지속적인 상승에 골머리 아파하고 있네요.. 그렇다고 국민의 건강상태가 좋아지는 (x)
14. 황악 : 07-10 - 것도 아니고... (x)
15. 서른즈음 : 07-10 - 참고로 얼마전까지 영국도 의료가 국영이었다가 최근 개방을 한 것같은데, 황악님이 의료외의 다른 점도 좀 얘기해 주세요. 서구의 사민당과 좌파당의 강령을 비교하는 것도 의미있을 텐데... (x)
16. 좀머씨 : 07-11 - 황악님,의도적인 왜곡은 삼가 하세요.저는 미국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왜 갑자기 미국이 튀어 나온 거죠.괴이한 논법입니다.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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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주의에 대한 소고

제목 사민주의에 대한 소고

글쓴이 서른즈음에 글쓴날 2004-07-10 02:35:10 조회 119




민노당의 강령은 국가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의 이상을
추구한다고 되어 있다는 점. (즉 공식적으론 사회주의이나 정책은 사민주의적임)
1920년부터 지금까지의 사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가 아닌 중간계급의
정당이었고, 신자유주의의 공세하에 스웨덴등 모든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에
굴복했다가 모조리 선거에서 몰락하고 있다는 점. 서구의 복지제도는 구소련 등
사회주의와의 체제경쟁을 배경으로,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노동계급의 요구를
수용할 능력이 있었다는 점과, 노동자계급의 투쟁역량의 성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자본을 부정하지 않고 동반자를 추구했지만, 70년대 불황등
제국주의 축적위기로 실업이 늘어나고 재정부담이 늘어나자 노동자를 위한
분배보다 자본가를 위한 성장을 필연적으로 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즉
호황기에는 떡고물이 커지나 불황기에는 자본의 요구에 굴복하여 빼았길 수 밖에
없다는 점과 자본주의에 주기적 불황이 필연이라는 점과 90년대 이후
세계자본주의가 항상적인 축적위기에 처하게 된 현실에서 신자유주의
(시장-자본활동의 자유, 노동-고용의 유연화, 복지의 축소, 상품시장과
금융시장의 개방, 공공재의 사유화)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그러한
사정에서 독일과 프랑스 영국등의 사민주의 세력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관철과
미국의 거대자본에 대항하는 유럽독점자본의 블록을 만든 것이 EU라는 점, 그런
정책으로 2000년 이후 사민주의당들이 대부분 선거에서 패배하고(왜냐하면
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복지를 축소시킬 수 밖에 업었기 때문에)
좌파들이 약진하고 있다는 점.
등 역사와 현실의 사민주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과,
민노당이(유럽의 사민당도 마찬가지 이지만) 의회의 다수진출을 위해서
노동자계급보다는 중간계급적인 입장의 정책을 수용할려는 유혹이 크다는 점과,
신자유주의에 전면 노출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이 위에서 말한 사민주의를 실현할
물적토대가 전혀 없다는 점. 현실의 민노당은 좌파와 중간파(사민주의)
우파(민족민주)의 동거상태라는 점 등등을 고려해볼 때, 각각의 정파를 분명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사민주의가 우리의 선택이어야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사료됩니다.
덧붙여 사민주의는 항상 자본에 대한 타협과 굴종속에서 개량을 추구하다가
축적위기시에 자본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군요.





1. 서른즈음 : 07-10 - 평따모에 오시면 더 재밌는 토론도 있는데, 일요일은 안된다 하시고 비오는 바다 언제갈까요? (x)
2. 비 : 07-10 - 저 역시나.. 사민주의가 우리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퍼온 것은 아닙니다. (x)
3. 비 : 07-10 - 다만, 일면 파행적으로 전개된 몇 달 간의 선거 과정을 지켜보면서, 당내 정파의 문제를 건강하게 정립해나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되어, 그런 시도 중 하나를 참고하자는 뜻에서 올린 것입니다. (x)
4. 비 : 07-10 - 비오는 바다는... 지금이라도 당장 달리고 싶으나... 아... 안타까운 현실이여....비 (x)
5. 서른즈음 : 07-10 - 7월말쯤 음모를 꾸며보시지요 (x)
6. 좀머씨 : 07-10 - 할 말은 많지만...몇가지만 말씀 드리죠.우선 .사민당'과.사민주의.는 다른 것이죠.사민당이 곧 사민주의는 아니라는 겁니다.공화주의와는 아무 관계없는 나라가 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 처럼요.그리고 사민주의는 (x)
7. 좀머씨 : 07-10 - 좌파 입니다.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사민주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체제입니다.사민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 되기를 기대합니다. (x)
8. 좀머씨 : 07-10 - 덧붙여...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돈 한푼 안 내고 질 좋은 교육을 받고,돈 한푼 안 내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누리고...등등. 현실적으로 사민주의 국가에서만 가능합니다. (x)
9. 섬진강 : 07-10 - 서른즈음님의 의견에 한표 행사하겠습니다!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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