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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버지가 고물상에 팔려고 여기저기서 주어온 신문지, 중고생 참고서 더미 속에서 발견한 것. 왠지 사회과학책 처럼 생겼길래 일단 챙겨 놨는데, 나름 소득이 있었다. 사실 난 고종석이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아예 모르고 있었는데,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완전 이 사람을 박노자, 진중권, 유시민과 동급의 '논객'으로 쳐 주더라. 사상적으로야 뭐 나랑 크게 겹치는 부분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다음 문장은 쫌 와 닿는다. 그간 내가 생각해 오던 '정치의 스포츠화'라는 명제와도 상통하는 듯. ㅋㅋㅋㅋ
그리고 기타 등등 여러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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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권력의 중요한 거처는 언론 매체 특히 텔레비전이라고 할수 있다. '매개학(Mediologie)'이라는 학문의 창시자인 레지스 드브레(Regis Debray)는 <유혹하는 국가>에서 기술 혀겸ㅇ이 권력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더듬는다. 드브레는 기술과 권력을 짝지으면서 역사를 세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언어권'의 시대 도는 구전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다. 그 다음은 인쇄술의 보급과 함께 시작된 '문자권'의 시대다. 마지막은 사진술의 등장과 함께 시작돼 텔레비전과 인공위성의 등장 이후 전성기를 맞고 있는 '비디오권'의 시대다.
언어권의 시대는 마술사-주권자의 시대, 선지자의 시대다. 곧 신권(神權)의 시대다. 근세 초기에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신권과 '말씀'의 자리는 이성이 물려 받았고, 설교의 공간은 공교육이 차지했다. 문자권의 시대는 인쇄술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 논쟁을 유행시키고 공교육을 보편화했다. 그런데 이제 세계는 이 문자권과 본질적으로 다른 비디오권으로 진입했다. 문자권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본질적으로 상징의 수준에서 이뤄졌다. 태양 문양을 간직한 루이 14세의 문장(紋章)은 권력의 존재를 표상했지만, 권력이 그 표상 안에 있지는 않았다. 반면, 사진의 등장 이후에, 특히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에, 사람들은 살과 뼈를 지닌 진짜 대통령을 현실 속에서 보게 되었다.
옛날에는 정치 담당자들이 소문이나 출판물들의 느린 리듬에 실린 상징들을 통해 국민과 의사를 주고 받았다. 그 상징들은 전통적 교통, 통신의 속도에 실려있었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다듬고 설명할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각적 이미지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즉각 시청자에게 도달해서 여론에 영향을 주고, 우리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그 여론의 동향을 항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오늘날의 대중은 펄펄 살아있는 이미지를원하고, 그 이미지들에 감동 받기를 원한다. 브라운관은 장르 사이의 구별을 지워버렸다. 대중은 스포츠든 문화든 버리어티든 정치든 리얼리티쇼든 가장 인상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향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댄다. 그래서 정치는 살아남기 위해 하나의 문화 상품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정책결정과 수행이라는 본업을 제쳐놓은 채, 시시각각 미디어에 볼거리를 공급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시청률 경쟁이 미디어의 논리라면, 미디어에 대한 경쟁이 정치의 논리가 돼버린 샘이다. 장기적인 방향 감각을 가지고 어떤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가치인가를 숙고하는 정치인은 사라지고, 정치 마케팅 논리의 노예가 돼 카메라 앞에 서는 데 골몰하는 정치적 유령들만 남았다. (92-3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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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체제 이래 민주화 운동 시기에 운동 단체들은 흔히 서울의 명동 성당이나 종로 5가의 기독교 회관에서 집회를 열거나 농성을 벌였다. 종교의 위엄이 배어 있는 곳이어서 공권력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공권력이 명동 성당이나 기독교 회관에 들어가길 망설인 것은 꼭 그 곳이 거룩한 곳이어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작용하고 있는 종교의 실질적 힘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제 6 공화국 이래 민주화가 진척되면서도 종교 시설은 노조나 운동 단체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1993년의 지하철 노조 파업 때 노조 지도자들은 기독교 회관에서 농성을 벌였고, 1995년의 한국 통신 노동쟁의 때 노조 지도자들은 명동 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바로 그 1995년의 한국통신 노동쟁의 때 경찰이 명동 성당과 조계사에 들어가 노조 지도자들을 연행하자,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여러 종교 지도자들은 공권력의 '성소' 침입을 강력히 비난했다. 신자들과 일반 시민들도 입을 모아 '성소'가 짓밟혔다는 점을 개탄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이런 비판은 근거가 약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판의 각도가 잘못된 것이다. 만약에 노조나 운동 단체의 집회나 농성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 집회나 농성이 어디서 열리든 공권력에 의한 강제 해산이나 연행은 부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집회가 부당한 것이라면, 그것이 종교 시설에서 열렸다고 하더라도 공권력의 투입은 정당한 것이다. 말하자면 법의 집행은 일반적이 되어야지, 예외를 남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리 가운데 하나인 세속주의다. 종교 단체의 관련 건물이라고 해서 치외법권을 누릴 수는 없다.
물론 공권력의 집회 해산이 합법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구정한 법 자체가 악법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은 그 법의 개폐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지, 종교단체 관련 건물을 치외 법권 지역으로 남겨 두는 일이 아니다. 요컨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스러움을 이유로 법의 적용을 면제받는 공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통신 노동쟁의 당시 공권력이 정작 비판 받았어야 할 점은 초기의 준법 투쟁 당시부터 검찰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가가 자신들이 각자 쓴 복음서에서 전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예수는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 아니면 그래서는 안되느냐를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세금으로 내는 돈에 새겨진 초상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다. 그 초상이 황제의 것이라고 바리새인들이 대답하자 예수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바치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치라"고 말했다. 물론 신약의 복음서들이 묘사하고 있는 이 장면은 미묘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그 질문을 한 것은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다. 예수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이민족의 유태인 지배를 당연시한다고 비판할 참이었고, 예수가 그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하면 바리새인들은 로마 사람들에게 예수를 위험한 선동가로 고발할 참이었다. 이런 악의적 질문에 예수는 멋들어지게 반격을 한 것이고, 그래서 예수의 이 대답이 담고 있는 참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가 갈린다. 그러나 예수의 이 발언이 일차적으로 뜻하는 것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기독교의 창시자가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세속주의를 지지한 것이다.
명동 성당에 공권력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런 세속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이 곳이 민주화의 성소로 추앙받던 특별한 시기에 그런 예외가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법의 일반성을 부정하는 데까지 나가서는 안 된다. (109-111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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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이 이 책(<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쓴지 30년 쯤 지난 뒤,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1994)에서 노동자가 이상한 방식으로 노동의 고역과 착취에서 해방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18세기에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결정적으로 거든 것이 기계였듯이, 미래 세계애서 그 착취를 사라지게 할 것도 기계다. 그러나 노동자가 착취에서 해방된 세상, 리프킨이 그리는 그 '노동해방'의 세상은 고래의 혁명가나 반역자들이 꿈꾸어 왔던 평등한 세상이 아니다.
<노동의 종말>은그 책 한 장(章)의 제목대로 '노동자 계급을 위한 진혼곡'이다. 리프킨이 그 책에서 우울하게 전망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 없는 세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동화를 핵심으로 진행된 제3차 산업혁명에 따라, 로봇화된 컴퓨터 시스템이 궁극적으로는 지금의 노동자들을 대치하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지능 기계는 이미 제조업 분야의 블루 칼라 노동자들에게서 많은 일자리를 빼앗았고, 그것은 점차 서비스 분야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실상 새로운 컴퓨터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작업장의 리엔지니어링으로부터 가장 커다란 타격을 입은 계층은 중간 관리자들이다. 전통적인 조직 위계에서 위아래의 작업 흐름을 조정해왔던 중간관리자들의 역할을 컴퓨터가 무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능 기계는 의료나 법률 상담 같은 전문 분야나 심지어 예술창작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노동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생산성은 점점 높아진다. 그것은 인사 관리를 짜증스러워하면서도 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경영자에게는 꿈같은 세상이다. 노동자가 줄어든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동자 계급은 그들의 역사가 목격해본 적이없는 기괴한 방식의 세대 교체를 겪고 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자리를 물려받을 그 신세대 노동자는 플러그가 끼워진 종족, 리프킨이 '실리콘 칼라'라고 부르는 기계 노동자다. 이 실리콘칼라 노동자는 하루 스물네시간계속 노동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고, 배고픔이나 피곤을 느끼지도 않는다. 불평도 하지 않고 노동조합도 만들지 않는다. 이런 세대 교체에 따라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로서의 인간의 역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데모크라시(인민의 지배)를 대치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 테크노크라시(기술의 지배)는 리프킨이 보기에 기술 유토피아가 아니라 기술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최초의 목화따는 기계가 미국 남부의 흑인들을 농장 겨제의 착취로부터 '해방'시켰을 때,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북부 도시의 산업 프롤레타리아로 변신해 제조업 분야로 흡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 1차 산업에서 서비스 부문까지 생산 활동의 전 영역을 감당하고 있는 실리콘 칼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21세기의 노동력은 어디로도 흡수되지 않는다. 이 노동자들이 재교육을 통해서 다가올 세계의 엘리트 직업 집단인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분자생물학자, 경영컨설턴트 등으로 거듭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리프킨이 '새로운 세계인'이라고 부르는 이 미래의 엘리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시간은 넘쳐나고 일은 없다. 이제 노동자들은 더이상 착취당하지 않는다. 그들으 쓸모없는 존재로서 무시당할 뿐이다. 중산층이 와해되고 실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테러를 비롯한 폭력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그에 따라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위험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외국인 혐오증이 파시즘의 토양을 만들 수도 있다.
이 우울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리프킨이 제시하는 방도는 두 가지다. 첫째는 기술진보의 열매를 공정히 나누기 위해 생산성의 향상을 노동시간의 단축과 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시장부문에서 축출된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나 공도체 서비스를 포함한 제3부문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정부가 노력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흔히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는 이 제3부문은 비영리적 공동체 활동을 뜻한다. 공공 부문도 시장 부문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제3부문이라고 불리는 이 영역은 일본에서는 흔히 공익법인이나 사회복ㅈ법인이라고 불리는 자선단체나 사회복지 조직들의 활동으로 이뤄지고, 요새 유행어로는 NGO활동의 일부를 포함한다. 리프킨은 이 제3부문이의 활성화가 노동의 종말 이후의 세계를 파국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세금 공제의 형태로 그림자 임금을 제공하고, 공동체 서비스(비영리 조직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복지 지출의 대안으로서 사회적 임금을 제공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제3부문은 리프킨이 보기에 '포스트-시장시대'의 실업자들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과 연대의 식을 함양함으로써 공동체의붕괴를 막을 수 있다. 그러니까 제3부문은 사회를 결속시키는 박애의 산실이 될 수 있다. (150-154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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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예감했고 슘페터가 '혁신'이라는 개념을 통해 명료하게 이론화했듯, 모든 생산체계는 결국 과학기술의 진보에 기댄다. 그리고 그 과학기술의 진보가 이뤄지는 것은 늘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에 의해서다.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은 말을 바꾸면 실패를 통한 배움이다. 그런데 살로몽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온 산업사회에서 그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 실패를 통한 배움은 '파국을 통한 배움'의 형태를 띠게 됐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제어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그래서다.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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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문화의 주체로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에 사회주의 정권들이 들어선 뒤부터다. 진보의 열정으로 무장한 이 새로운 정권 담당자들은 문화에서 선전/선동의 힘,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할 수 있는 거푸집의 역할을 발견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함께 문화는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적극적인 '정책'의 대상이 되었고, 당과 정부에 설치된 문화 부서들은 흔히 선전/공보 부서를 겸하고 있었다. (...)
퓌마롤리는 프랑스를 '문화 국가'로 만든 가장 큰 책임을 드골 정권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와 미테랑 정권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에게 돌린다. 앙드레 말로가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는, 프랑스 국가는 정치적, 사회적 사업을 지도하는데에 만족하고 예술 창작자들과 예술 애호가들을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말로 이후로, 특히 자크 랑 이후로, 국가는 진정한 '문화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틀어쥐고 그것을 자기 선전이나 대중의 여가 조직의 도구로 사용해 왔다. 그 결과 문화는 일종의 국교(國敎)가 되었다. [문화 국가]의 부제가 '한 근대적 종교에 대한 에세이'인 것은 시사적이다. (...)
저자에 따르면 문화 국가의 기원이 되는 이데올로기들은 1870년대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가톨릭 교회에 맞서 수행한 문화 투쟁, 20세기 들어 좌파 지식인들을 매료한 마르크스주의 예술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시 정부하에서 민족의 문화적 중흥을 외쳤던 '청년 프랑스'운동, 문화를 프랑스 민족의 '세포조직'으로 만들어버린 말로의 메시아적 꿈 같은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일종의 '문화당' 안에서 화해하고 혼합돼, 권력을 틀어쥐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앙드레 말로는 1959년에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문화를 배급하고 전세계에 프랑스 문화를 선양하는 국무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 경건한 바람의 면사포 안에는 불길한 현실이 숨겨져 있었다. 프랑스의 예술과 문학은 무엇이 '문화적'이고 무엇이 '비-문화적'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받은 한 줌의 문화 관료들에게 차압되었다. 이 경향은 자크 랑이 문화부를 맡았던 시절에 더 심회되었다. 퓌마롤리에 따르면, 이 시절의 프랑스는 파리의 문화적 성직자(곧 자크 랑)가 자신의 초현대적인 광기로 전체주의 국가에나 얼루릴 법한 전시 문화 행정을 전국토에서 수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퓌마롤리는 여기서 랑 시절의 프랑스에서 건축된 수많은 대형 건조물들과 끊임없이 조직된 떠들썩한 문화 축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
'문화 권력'은 무대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 프랑스라는 '스펙터클 공화국'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서임(敍任) 장소로 삼는다. 당연히, 텔레비전은 신성함의 아우라를 부여받았다. 이 상설쇼의 가장 큰 패배자는 책과 대학이다. 책들은 이 '문화의 슈퍼마켓' 안에 진열된 수많은 무화 상품들 가운데 가장 눈에 안 띄는 곳에 처박혀 있다. 예전엔 진정한 앎에 접근하는 통로였던 대학은 이제 '문화 관광'을 위한 공간들로 대치되고 있다. 이 공간 안에서 국가는 '모두를 위한 문화'의 신도들로 변한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면, 할인판매와 자기 자랑에 열중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문화 국가'의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이라고 퓌마롤리는 말한다. 즉 문화 국가는 '집단적 여가활동의 정치 경제학'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의 문화는 여가활동이나 취미생활로 변했고, 프랑스의 문화 공간은 일종의 라스베가스로 변했다.
(213-216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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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창세기에 따르면 신(神)은 빛을 만든 지 닷새째 되는 날과 엿새째 되는 날에 사람을 포함한 온 갖 생명체들을 창조했다. 오늘날 성성의 이 부분을 곧이곧대로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그들은 찰스 단위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난 세기 중반까지는 인간이 생명의 창조에 간섭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학자들도 거의 없었다.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든 자연의 질서라고 부르든, 생명은 특히 인간의 생명은, 어떤 무제약적 존재의 소관이었다. 그것은 사람이 넘볼 수도 없고 넘보아서도 안 되는 거룩한 영역이었다. 인간이 그 성역 안으로 불경스러운 첫걸음을 내딛은 것은 1953년이다. 이 해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생명복제의 신비를 간직한 세포 내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냈다. (...)
인체게놈 사업은 우선 의학의 중요한 기능을 치료에서 예측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생물학적 운명을 높은 확률로 미리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체게놈 사업은 인류의 지성사를 관통한 선청성 대 후천성(nature versus nurture)논쟁에서 전자의 손을 들어주며 생물학적 결정론, 곧 유전자 결정론을 널리 유포시킬 것이다.
(299-300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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