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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요일 밤

네가 우리집에 온다고 해서 너를 만나기 세 시간 전부터 마음은 벌써 회사에서 집까지 왔다갔다 왕복 3회. 평소의 나답지 않게 20분 간격으로 시계를 확인하가 네가 온다는 9시보다 조금 일찍 정거장으로 향하네. 너는 버스에서 짠- 하고 내리는 대신 전화로 짠- 하고 강남에서 이제 출발해,라고 말하네. 우웅- 50분을 기다려야 했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고 버스 정거장 앞에 있는 문 닫은 약국 앞에 쭈그려 앉네. 앉아서 책을 읽다가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다가, 목과 팔에 달라붙는 모기를 쳐내며 다시 책을 읽네. 예쁘게 차려 입은 너는 어엿한 느낌으로 버스에서 내리네. 너의 이름을 부르는데 좀처럼 웃어지지 않았네. 너에게 좀 더 환하게 다가가고 싶었는데, 끈적한 팔에 달라붙던 모기에 대한 짜증이 너에게로 옮아갔네. 미안해, 미안해. 좀 더 환하게 웃어주고 싶었는데. 내가 있는 곳과는 많이 다른 세상에 사는 너의 이야기를 듣네. 참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다 마주앉은 우리. 막걸리가 담긴 뽀얀 그릇을 부딪치고 파전을 찢어주네.

네가 나에게 늘어놓듯, 나도 하염없이 내 진심을 말하고 싶었네. 그게 내 진심인지 확신할 수 없어 그냥 너의 얘기를 듣고만 있네. 고개를 주억거리고 털털한 척 큰소리로 맞장구도 쳐보고 타박도 하네. 그래도 목구멍 안쪽이 막힌 것만 같아 막걸리를 들이켜보네. 마시고 마시고 편의점에 들러 집으로 향하는 길, 비척거리는 네 개의 다리가 골목길을 지나네. 이불 위에 누워 이야기하다가 먼저 잠든 너를 보고 나도 돌아눕네. 그날만은 뱉어버리고 싶었던 알량한 진심을 입에 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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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디로 _이적

 

+) 몇 주 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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