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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 너에게

스무 살에 서로 알게 된 우리는 이제 스물다섯이었다.


이십대의 정점, 스물다섯의 정점에 선 우리는, 우리의 삶은

피곤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생각만큼 흥미진진하거나 열정적이지 않았다.

뭐든 닥치면 잘할 것 같았지만, 사실 닥쳐보니 깨지고 치이느라 잘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깨달은 건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이었고,

바뀐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포기할 줄 아는 자세였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타협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입은 너무 쓰고 텁텁했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환하게 웃어주고 싶었는데, 미안했다.


나도 지쳐있었다. 피곤했다.

열정을 끌어모으기엔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착이 부족했다.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책을 낸다면, 그땐 열정이 솟아날까?

어쨌든 쉬고 싶었다. 너를 만나 어깨에 기대고, 한없이 온기를 느끼며 쉬고 싶었다.

너도 피곤했고, 나도 피곤했고,

우리는 젖은 날개를 바닥에 펼쳐놓고 입으로는 괴로움을 토해냈다.


배를 채우고,

길로 나왔다.


길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고, 우리는 일찍 들어가 쉬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졌으면서도

그렇게 우리가 함께 걷는 그 길이 향기롭다고 느꼈다.

어디선가 향기처럼 트럼펫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컴컴한 고궁에서 올려다보이는 산도

그 고궁을 몇백 년을 지키고 살아왔을 나무도

노오란 나트륨등도

우리와 함께 트럼펫 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골목 어두운 구석에 앉아 트럼펫을 부는 아저씨에 대한 호기심과

그 분이 만들어내는 따뜻하고 정감어린 소리가

우리를 벤치에 앉게 만들었다.


우리는 드디어 쉼을 얻었다.

치이고 차이고 쓰러지고 눈물나던

연약한 우리는.



이제 우리는 다시 흩어져, 각자 생활을 시작하겠고

점점 그 밤의 향기와 온기는 멀어지겠지만,

나는 너와 함께한 그 길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200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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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요즘 힘들다. 그러던 차에 내가 일 년 전에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고 했다. 끝이 없는 우리 사춘기 덕분에 녀석은 이 글을 다시 본 이 날도 눈물이 날 뻔했다고 했다. 나도 찾아서 다시 읽어보고,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나란히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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