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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할 일을 마감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기장에 있는 장안사를 다녀왔다.
2~3번 다녀왔었지만 장안사의 특징이 떠오르지 않았던지라, 간절곳 가던 길을 돌려 장안사로 갔다.
우선, 장안사는 규모가 참 작은 반면,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는지라, 절의 느낌보다는 우스개 소리로 말하자면 해변시장 같았다. 대웅전에서 절 하는 사람들도 복비(맞나?)내고, 절 하고 바로바로 나왔다. 그리고 대웅전 옆에 산신각이 있는 경우는 처음 본 것 같았다. 어쩌면, 장안사 뒤로 사람들이 등산을 많이 다니는지라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는지도. 물론 주말이란 점도.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부처님 앞에 자리잡은 돈 내는 통 이름을,
'복밭'이라고 써 두었던 것이다.
복밭이라...
돈을 내면 복을 받는다는 의미도 아닌 것 같고, 돈을 내어 밭을 일군다?
특이한 이름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다른 하나는, 이전에 시리아 갔을 때, 모스크(우리 나라로 치자면 절)에서 이슬람 경전을 조용히 읽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그들의 신(누군지는 모르겠으나)에 대해 극진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지만, 다수 사람들은 모스크에서 조용히 경전을 읽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절에서 경전을 펴 놓고 공부하는 사람은 많이 본 것 같진 않다. 그들에게 이슬람은 종교이자 삶인 반면, 우리에게 불교는 종교이긴 하나 삶은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복밭과 더불어....
'곽교육감 사태'를 둘러싼 김어준에 대한 진중권씨의 비판/비난이 있었다.
비판의 핵심은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김어준들은 판단을 유보하자(더 나아가, 우리 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난할 게 아니라, 이 상황을 함께 견뎌보자)고 하는데, 보수(라 부르고 '꼴통'으로 이해하자)쪽에서 이런 사건 발생해도 '무죄추정원칙' 운운하며 비판하지 않을 것이냐 라는 거다.
진씨 입장은 '니 편 내 편 가리지 말고 부적절한 행위가 있다면, 공정하게 까자'는 거다. 원론적으로 생각하면, 진씨 입장에 손들어 줄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씨 입장과 다르다.
'곽감사태'에 대한 김총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곽감사태'에 대해 진씨는 '교육감이란 공적 위치에서 이유야 어쨌든 간에 다른 후보자에게 2억원을 주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사퇴할 만한 이유가 된다'는 주장을 한다. 이 주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진씨의 프레임은 '후보자 매수'라는 검찰의 관점이다. (후보자 매수라는 검찰의 주장에 진씨가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일관되게 유무죄를 떠나 2억원의 금품이 오갔다는 대목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선의라 하더라도. 나는 진씨 의견과 다르다.)
반면, 김총수는 '곽감사태'를 MB 정권 차원에서 기획된, '정략적 산물'로 본다. 나꼼수 19회에서 거듭 말하듯이 '곽감사태'는 곽노현 개인의 유무죄를 떠나, 서울 시장 보선, 더 나아가 개혁(진보)의 힘빼기 차원으로 규정한다. 때문에 김총수는 곽노현의 사퇴를 반대한다. 그의 사퇴는 정략적 의도에 따른 것이고, 이를 따라가는 것은 그들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씨는 김총수의 이런 태도가 지난날 황우석 사건에서 보여주었던 태도(논리)와 유사하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김총수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자세히 모르기에 일단 넘어간다.
어쨌든 '곽감사태'에 대한 두 사람의 상이한 규정을 고려할 때, 진씨의 반문, 혹은 비판은 맥락을 벗어난다. 가령, 보수측 인물이 동일행동 할 경우 똑같이 처신하겠느냐' 라는 반문, 혹은 (상당한 무리수이자 정봉주씨에 대한 인격 모독에 가까운) BBK 사건은 무죄로 결정되었는데 왜 아직까지도 문제삼느냐 라는 비판(이라 말하고 비난으로 이해하면 된다) 등은 (김총수가 규정하고 있는 사태 성격에 비추어 보면) 헛발질에 가깝다.
물론 적잖은 사람들은 '니 편 내 편 가리지 말고 공정하게 까야 한다'는 진씨 논리에 동의를 표하며 옳다고 말한다. 이 말은, 맞다. 그러나 '곽감사태'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 말이 기계적(논리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김총수의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그러나 진씨는 김총수를 비롯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곽노현=우리편=무죄추정의 원칙 적용'이란 정서적 지지에 매몰되어 있다고, 이것이 불공정하다고 문제제기한다.
김총수의 문제의식에는 관심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김총수가 '곽감사태'와 관련하여 많은 말을 했지만, 이것저것 다 걷어내고 핵심만 꼽을라치면 '정권의 정략적 기획'이란 것이다. 진씨가 이 대목을 모르진 않을 듯 한데... 그렇다면 진씨가 김총수를 깔려면 이 대목의 타당성 여부를 파고 들어가야 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한편으론 (내가 동의하고 있는) 김총수의 문제의식의 위험성은 없을까? 만약 2억원의 대가성이 입증되어(현재로선 그럴리도 없어 보이지만) 재판을 통해 만약에라도 유죄로 결정난다면 사퇴하지 말라고 주장한 나/우리는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나? 개인 비리를 정략적 산물로, 정권의 피해자로서 오판해버린 것이지 않는가?
쓰고 나니, 더 모르겠다.
어쨌든, 진씨의 때론 진중하지 못함이 설화를 낳는 듯하다. BBK 때문에 실형을 선고받은 정봉주씨에 대한 언급도 그렇거니와 김총수에 대한 문제제기도 매우 거칠다.
문제제기 방법의 문제성을 언급할라치면, 문제제기를 한 당사자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내용은 안 보고, 내용을 제기하는 형식(태도)만 본다는 불만이다.
그런데, 나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화(나는 혼자만 보는 일기장을 제외한 모든 말을 대화라 본다. 그러니 트윗도)하는 태도는, 대화의 내용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적어도 절반은 차지하고 많게는 99%라고 본다. 나의 태도에서 이미 상대방의 감정은 호/불호/무덤덤으로 나뉘기에.
그런 점에서 진중권씨는.... 참.... 거시기하다. (진씨에 대한 나의 이런 거시기한 감정에 대해 거시기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기장 정관 신도시 지역에 특수학교가 2013년 신설 될 예정이다.
현재 정관 신도시 부근에는 신도시라는 말처럼 적지 않은 숫자의 아파트 주민들이 입주해 있고, 앞으로도 입주할 예정이다.
그런데, 특수학교가 신도시 지역(정확하게 말하자면 신도시에서 가장 외곽 부근에 위치해 있는)에 들어온다고 하자, '깨끗한 기장 정관 지킴이'라는 단체에서 관공서 및 입주민과 입주예정민들의 주소를 어디에서 알아내었는지 몰라도, 우편물을 보내어 특수학교 설립 반대 서명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특수학교라는 혐오시설이 들어올 시 발생할 수 있는 집값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깨끗한 기장 정관 지킴이'라는 단체가 누구 대표인지 주소지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군청 및 면사무소 등에 전화를 해봤으나, 자신들은 모른다고 답하였다. 이 단체가 어떤 대표성을 띠고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봐도 관공서에서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현재, 일부 입주민 및 입주예정민들 일부가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 특수학교 입주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이들은 '깨끗한 기장 정관 지킴이'라는 단체로부터 찌라시를 받고, 민원을 넣고 있는 것일테다.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 자신들의 주소인 개인정보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는 채로, 특수학교=혐오시설=집값하락 이라는 단순한, 얼토당토 하지 않은 논리에 넘어간 채로, 민원을 넣은 것이다.
'깨끗한 기정, 정관 지킴이'라는 단체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대표자도 모르나, 이들은 이 자체로 야비하고 또한 비겁하다. 특수학교가 혐오시설이기에 지역사회로부터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야비한다면, 이 야비함을 감추기 위해 자신들이 누구인지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겁하다. 또한 이들의 야비함과 비겁함을 알아채지 못하는, 그래서 이들의 야비한 선동에 넘어가는 이들은 무지하다.
이들의 야비함과 그들의 무지함이 만나는 결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거로 귀결된다. 충분한 정당성을 인정받으면서.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슬픈 일이지만.
일요일 밤 10시 반.
새롭게 시작하는 주를 앞두고 이것저것 챙기던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 누구일까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 팀장님입니까? **초등학교에 다니는 **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이가 2학년이고 자폐성장애아동인데....'
내용인 즉, 토요일 학교에 다녀온 **가 오자마자 구토를 하고 '응급실... 응급실... 아파... 아파..'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상해서 몸을 살펴보니 머리에 피멍이 들어 약간 부어올라 있었고, 손가락 끝이 피멍 든 것처럼 부어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특수교사는 토요일 아버지와의 면담에서 전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요즈음에 **의 과잉 행동이 너무 심해서 특수학교에 보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저도 **로부터 등짝을 많이 맞았다.' 뭐 이런 식의 교사의 치기 어린 투정(?)을 들었고, **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죄송하다고 좀 더 엄하게 키우겠노라고 말하고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특수교사에게 **를 혹시 때렸냐고 물었으나 교사는 자신은 절대 때리지 않았고, 단지 토요일 당일 아이의 과잉 행동이 너무 심해서 제지하는 과정에서 서로 엉켰는데 그 때 손가락이나 머리를 부딪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내게 아이 사진을 보내왔는데, 적어도 내 경험내에서 아이의 머리 상처는 어디인가에 부딪혀서 생길 수 있는 그런 상처는 절대 아니었고, 오히려 무엇인가로 머리를 때려서 낸 상처임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토요일부터 일요일 밤까지 주말 내내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교사를 하는 친구들에게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물으니 전부 '그냥 니가 넘어가라. 시끄럽게 해 봤자 좋을게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넘어가려고도 했으나, 너무 분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내게 전화를 했노라고 말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가를 말해준 다음,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해결방법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시끄럽게 하고 싶진 않고, 교사의 체벌 사실 인정과 사과, 그리고 재발방지 대책'을 이야기하였다.
나로서는 교사의 태도가 어이 없거니와 뻔뻔해서 교육청 민원을 비롯한 인권위 진정 등 좀 더 공론화시켜 문제를 제기했으면 바람이었으나, 부모님은 시끄럽게 하고 싶진 않다는 의사를 강력히 피력하였기에, 그냥 이 정도 수준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월요일 오전, 학교에 전화를 해서 오후에 교장과 교감과의 약속을 잡고 학교를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고, 특수교사를 불러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그런데 특수교사는 오자마자 희한한 소리를 했다.
"** 아버지. 과정이 어쨌든 간에 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을 힘들게 한 점, 사과드립니다." 라고 말을 시작하면서 아이의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그런 아이를 자신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서 교육하고 있는지, 아이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도 고민하고 있다는 둥, 이런 소리를 주절주절 해대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이유야 어쨌든 간에, 과정이 어떻든지 간에...'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의 물리적 행위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이 사태는 선생님이 때렸나 안 때렸나가 가장 중요하다. 아버지가 분노했던 것도 당일 아이를 때렸음에도 그것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단지 아이 상태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아이하고 그렇게 물리적 충돌이 있었는데도 그것에 대해서도 전혀 말도 없다가 아버지가 전화를 하니 그제서야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한 교사의 태도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니 말해달라. 때렸나 안 때렸나'
특수교사는 잠시 있다가 떠는 듯한 목소리로
'저는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사실 나는 이 순간 교사가 때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물론 사진 보고 이미 때렸다고 생각했지만. 보통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때리지 않은 교사는 자신의 정당성을 바로 즉각적으로 제기한다. 적어도 이 교사처럼 긴장하고 떨면서 침묵한 후, 답하진 않는다.)
나는 아버님께,
'아버님, 교사가 인정을 안 합니다. 이 부분은 사실을 확인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안은 더 이상 없습니다. 아버님이 원하신 부분이 교사의 인정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인데, 사실부터 다른 만큼 이 사실을 밝혀줄 수 있는 기관에 신고해서 답을 듣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가 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만큼 이 자리에서 교사에게 더 이상 문제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니, 자리에서 일어섭시다'
교사는 별 말 없이 가만 있었고, 교장은 사태를 봉합/수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들..
'**아버님. 억울하고 마음 아픈 것 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게 더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제가 교사한테 잘 이야기 해놓을테니깐, 어디에 조사를 의뢰하고 이런 것은 서로 더 상처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게 맡기시고 이번에는 마음 푸십시오'
학교에서 나간 후, 아버님은 '그냥 학교를 전학가고 싶다. 애 엄마도 저 교사한테 지난 2년 간 시달린 것 생각하면 그냥 전학가자고 한다. 나도 시끄럽게 하고 싶진 않다'고 말하면서 헤어졌다.
아마, 이 사건은 결국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귀결될 듯하다. 내일 전화를 해서 적어도 교육청 민원은 넣어보자고 설득할 생각이나, 두 분은 마음 여리기도 하고 이런 일을 공적으로 다루는 일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기에 아마도 그리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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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 교사는 때리지 않았을까? 때렸다고 생각하는 나의 확신이 틀릴 가능성은? 그러나 정황을 생각하면 때렸다는 의심을 정말 지우기 어렵다.
2년 동안 한 번도 부모면담을 하지 않았던 그 특수교사. 이번 토요일 처음으로 아버지와 면담을 요청했다고 하고, 그 자리에서 했던 이야기는 당일에 있었던 사건은 일언반구도 없이 단지 '아이가 과잉 행동이 심해지고 이를 다스리는 일이 교사로서 너무 힘들다. 이러면 특수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였을 뿐. 토요일 오후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그제서야 '오늘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이 상처가 났느냐.'라고 반문하는 태도....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자신의 물리적 행위를 감추기 위한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적어도 교사라면, 아니 교사라는 것을 떠나서 나이 45살 전후의 아줌마(성인)하고 초등학교 2학년짜리하고 서로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면 당연히 아이가 혹시 다치지 않았나 보는 것은 일반적 상식 아닌가? 그런데 그 50살짜리 아줌마는 아이 아빠 만나서 '내가 이 아이한테 맞았어요'라고 징징거리는게... 도대체 납득 가능한가? 그런 인간이 특수교사라고.....
설령, 정말이지 설령 때리지 않았다 해도, 해당 특수교사의 행위는 정말이지 뻔뻔한 것이었다.
너무 뻔뻔해서 소름이 잠시 끼치기도 했다.
저런 인간이 부장직을 달고, 이제 교감직을 달고, 또 교장직을 할 생각을 하면, 무섭고 혐오스럽다.
나두 저리 뻔뻔하게 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는 커녕 과오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뭐,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 라는 식의 태도.
나의 어떤 행위로 인해 남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어쩌면 이것을 인식하고 이를 경계하는 것부터가 염치있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시작점이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검도를 배운지가 3개월째 접어든다.
처음 시작할 때, 표류하고 있는 내 삶의 꼬라서니를 보면서 중심잡을 무엇인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무엇을 할까 궁리하던 차, 검도를 선택했다.
처음 1개월은 지루함이 꽤나 컸는데,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대결을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 나를 본다.
순간적으로 튀어나가야 하고, 막아야 하고, 쳐야 하고.
온 몸의 세포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꽤나 기분 좋은 긴장이다.
그러나 아직 내 몸은 둔하기 그지 없다.
오늘, 관장님과 짧게나마 공격 연습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뻣뻣한지, 긴장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나치게 긴장하면 경직되고, 그렇다고 여유를 가지자니 너무 이완되었고.
긴장과 여유, 그 중간 어디를 찾지 못해 나는 허둥지둥 대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오늘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내가 허둥지둥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는 점 정도이다.
아직까진 하루하루 검도를 배우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여전히 갑작스럽게 가기 싫은 마음이 생겨나기 한다. 습관으로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심리적 상태이다.
9월부터는 새벽에 수영까지 나가게 되니, 어쩌면 퍼져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두 개 모두 80% 이상의 참석율을 목표로 9월을 열어보도록 해야겠다.
장애인부모연대에서, 적어도 내가 보기에 꽤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활동가 한 명이 부모연대 조직을 떠나 자신이 가고픈, 활동하고 싶은 터전으로 옮긴다고 했다.
그 이는 부모연대 활동가 내에서 비교적 신망이 두터웠다. 나 역시 그와 (거리가 멀기에) 직접적으로 함께 일하진 않았지만, 회의 공간이나 집회, 혹은 교육 등을 통해 살펴본 그의 행실을 보면서 매력있다고 생각하였다.
매력의 내용인즉, 아무리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셔도 다음 날 아침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했고, 또한 약속 시간보다 미리 나와서 기본적인 점검 정도는 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자신이 기대한 바가 좌절되는 상황 앞에서 남을 탓하기보다는 그 상황 자체를 묵묵히 견뎌내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의 기획에 대한 성찰, 혹은 비판적 검토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화를 내거나 짜증 내지 않는 것도 운동판에서는 큰 미덕이자 장점이다)
어쨌든, 그런 그이기에 그가 그만둔다는 소리를 같은 공간 내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때, 약간의 놀람과 부모연대 조직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운동판이 대체로 그렇듯이, 그 이 한명 빠진다고 해서 조직이 휘청거린다거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의 미덕이 우리 조직이 운동판에서 뿌리내리는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전국부모연대 워크숍에서 그를 만났고, 몇몇의 지역 및 중앙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그의 거취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노라고 말했고, 그의 말에 대해 어느 누구도 별 다른 이견을 달지 않은 채, 약간의 아쉬움만을 드러낸 채, 전반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우리 조직이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떠난다는 그의 말 앞에서 그를 붙잡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는지도.
그런데, 중앙의 사무처장이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아니, 모두들 서운해 하면서 떠나는 활동가를 붙잡을 생각을 왜 하지 않는거예요? 좀 더 함께 하자고 말할 수도 있지 않나요? 모두들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참...."
처장을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 그래. 왜 잡는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지. 떠나는 것을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앞서 말했듯이 '조직이 싫다기보다는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니깐 그렇지 않겠나' 뭐 이런 식의 말이었는데, 내 머릿 속은 내내 앞의 생각들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이 생각의 내용이 무엇인지 대강이나마 파악하였다.
어쩌면 나는, (혹은 그 자리의 대다수 활동가들은) 부모연대라는 장애인운동단체에 대한 책임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 다시 말해, 부모연대의 방향이나 정체성 등을 고민하기보다는 단지 현재 활동한다는 사실에만 매몰되어 있기에 그 활동가가 부모연대를 떠나는 것이 부모연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나 역시 언제 부모연대를 떠날지 모르기에 그 활동가를 잡으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활동가의 떠남 앞에서 나를 포함한 대다수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태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서글프거나 혹은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조직에 대해 그 만큼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고,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이유로, 조직을 쉽게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이기에
물론, 하나의 조직에서 일을 한다고 평생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활동가라면, 조직에 대한 책임감은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태도가 자신을 좀 더 건강하고 긴장된 상태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일을 그만둔다는 활동가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함께 하는 사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행자에 대한 기대는 결국 그 길을 행하고 있는 조직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의식하는가에 따라 가늠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환기한다.
'떠나는 사람 안 붙잡고 오는 사람 안 막는다' 라는 세간의 통념이, 요즘에는 쿨한 태도로 선호된다지만,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한다.
부산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장애인부모 단체와 장애인당사자 단체가 연대하여 부산시 앞에서 '2012년 부산시 장애인복지예산확보를 위한 천막농성'을 결의하여, 10일 동안 진행하였고, 오늘 농성을 접기로 하였다.
농성을 접은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단체가 더 이상 농성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할 만큼 했고, 더 이상 한다고 해서 우리들이 제기한 요구를 부산시에서 전부 수용하지도 않지 않겠느냐? 오히려 이런 식으로 더 끌고 가면 부산시와의 관계가 악화되어서 부산시에서 지원해주기로 한 것 마저도 오히려 후퇴하지 않겠느냐'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농성을 접는 것은, 사실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우선, 사회복지과의 협상과는 별개로 대중교통과와의 협상은 전혀 확인된 바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판을 물리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판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우리 스스로 꼬리를 내린 것과 마찬가지였고, 나 역시 이에 대해서는 상당한 책임이 있다.
다음으로, 농성을 접는 과정에서 부모회의 입장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했다는 점, 절차적으로 미진했다는 점이다. 부모회는 '단지 더 이상 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위의 근거와 관련한 논의가 깊이 이루어지진 못했다. 이 상황에서 장애인당사자 단체는 부모회의 입장을 '이해'해주었고, 그들의 통 큰 배려와 양해 덕에 갈등이나 충돌 없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이후, 부산시의 장애인복지예산이 얼마나 반영되는가에 따라, 농성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적어도 그 지점에서 합의가 되었기에 이번 농성장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이후 어떻게 활동하는가에 따라 부모회의 비겁을 감추는 기만으로 드러날지, 아니면 상황에 대한 정직한 응대였는지가 갈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2년 부산시장애인복지예산 확보 투쟁은, 이제 시작했을 따름이다.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지적장애자녀의 어머니가 있다.
어느 날, 어린이집을 다녀온 아이의 허벅지에는 손톱으로 꼬집은 듯한 상처가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이 상처를 누가 내었는지 물었고, 아이는 언어치료사라고 말했다.
엄마는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감정이 틀어진 상황이었기에 교사와 원장과의 대화가 원활치 않았다. 교사는 '그런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아이가 힘들어한다니 죄송하고, 앞으로 더 잘해보겠다'고 하긴 했으나, 엄마는 마뜩치 않았다.
어머니는 어찌저찌 알아보다가 내게 연락을 했다.
처음 통화할 때, 원장과 교사가 충분히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한다면 받아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원장과 만남을 가진 후, 다시 연락을 주겠노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의 통화 이후, 원장은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장애인인권단체에까지 고발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하는 식으로 말했고, 이 말이 단초가 되어 두 사람의 대화는 더욱 거칠어졌다. 결국 원장은 어머니에게 "맘대로 하시라, 이런 식으로 우리를 모함하면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는 말까지 튀어 나왔다. 두 사람의 감정적 대립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른 원장들이 이 사건을 이렇게 키우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사과를 권유했고, 원장은 말싸움을 벌인 당일 저녁에 가서 엄마를 만나고자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밤, 어머니는 내게 '탄원서'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자녀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가에 대한 글을 써서 내게 보내왔다.
다음날, 어머니와 통화해서 원장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싶은 것인지 물으니 '내 아이가 2년 동안 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니, 2년 동안 국가로부터 받았던(13세 이하, 장애학생의 방과후교육은 국비지원이다)돈을 전부 내게 달라'고 하였다.
솔직히, 황망했다.
어머니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아이의 상처 앞에서 분노하는 것도 공감하나, 그 정도의 상처는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두고 보았을 때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위로금 차원에서 무려 500백만원(2년간 국가로부터 아동이 보육비로 지원받은 금액이다)을 요구하다니 나로선 황망할 수밖에.
어머니에게 '원장은 어머니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민사소송을 할 것이냐'고 물으니 '소송은 하지 않고, 내게 보낸 이 탄원서를 보건복지부, 부산시청, 언론 등에 뿌려서 그들의 잘못을 여기저기 알릴 것이다'고 하였다. 일단 어머니 입장을 전달받았으니 내가 원장을 만나 어머니의 의사를 전달하고, 내일 오전에 원장과 함께 만나자고 정리하였다.
그리고, 원장을 만났다. 원장은 어머니에 대한 갖은 심정적 토로를 내게 해대었고, '더러워서 돈 주고 만다'는 식으로 나왔다. 원장은 설령 어머니가 요구하는 5백만원을 전부 주더라도 이 사건을 그냥 마무리 하고 싶어했다. 나는 원장에게 이렇게 하면 적절치 못한 선례가 될 수 있으며, 오히려 원칙대로 대응하는 것이 좀 더 나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장은 '정말 상대하기 힘든 어머니이고, 저 어머니가 이 탄원서를 여기저기 뿌리면 결국 우리만 고스란히 피해본다. 나는 그 상황이 더 힘들다'고 말하면서 내일 만남에서 매듭짓기를 바랬다.
알겠노라고 답한 이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일단 내일 약속 장소에서 보기로 정리했다. 그에 더해서 원장의 부탁에 따라, '원장 측에서 일정 정도의 위로금을 생각하고 있는가보다' 정도로 말을 덧붙혔다.
다음 날, 원장과 어머니, 어머니 친구분 그리고 나까정 커피숍에서 만났다. 어머니는 원장의 무례한 태도를 문제제기했고 원장은 사과와 함께 어느 정도의 위로금을 드려야할지 물었다.
어머니 왈,
"어제 팀장님 통해서 말한 대로 주세요... 양심적으로 알아서 챙겨주세요... 그 양심에 대해선 제가 판단할께요~~"
원장은 황망해했다. 아이 때린 것도 아니고 체벌도 아니고, 아닌 말로 손톱 자국 3개 있었고, 이미 그것에 대해서는 어머니 자신도 용서했다고 하는데... 단지 자기 감정을 이기지 못해 적절치 못한 말 몇 마디 했는데, 그 댓가가 500백만원이라니... 원장은 전부 다 줄 순 없고, 금액을 깎고 싶어 하는 눈치가 역력하였다.
약간의 어색함과 침묵이 계속 오가는 사이, 이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불편했던 나는 오지랖 넓게도 혹은 매우 부적절하게도 이런 제안을 했다.
'그러면 반 정도 해서 조율하면 어떻겠느냐? 2년 동안 어머니 마음에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게 했다고 하나, 그래도 일한 것에 대해 최소한의 인정은 필요하지 않겠냐...'(그런데 웃긴 일은 해당 어머니가 이 사건 전까지는 이 어린이집이 좋다거 널리 홍보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오늘 자리에서도 몇 번이나 이야기했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면서 하는 말.
'내가 이 일 때문에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큰데... 5백만원 그것이 싫어서 반으로 깎는다고 하니,, 뭐 그렇게 하시든지 알아서 하라고...'
내가 할 말도 없고 궁색해졌다. 바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어머니의 반응 앞에 원장도 더 이상 끌지 않고, 바로 5백만원 입금할 테니 계좌번호 달라고 했다. 그리고 원장도 이 사건을 종결짓고 싶은지 합의서 같은 것을 미리 써 왔다. 그 자리에서 바로 돈 이체하고, 금액 쓰고 합의서에 싸인하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어머니는 먼저 자리에 일어나서 갔고, 나는 잠시 원장과 함께 있었다. 머리가 팽하니, 어지러웠다.원장이 함께 밥 먹으로 가자는 것을 사양하고 커피숍에서 내려와서 다른 곳으로 갔다.
함께 왔던 다른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니, 당사자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팀장님, 고마워요..."
그녀는 뭐가 고맙다는 걸까? 그 자리에 함께 하여 돈을 받아줘서, 약자인 자신의 편이 되어줘서, 아니면 장애자녀의 인권을 지켜줘서... 어쨌든, 그녀는 생각조차 못하겠지만, 그녀의 고맙다는 말 앞에 내 기분은 참담했다.
'위로금' 줄 수도 있다. 어머니 말따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그 사실에 대해 물질적 보상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위로금이란 것은 거칠게 말해서 '이것 줄테니 먹고 떨어져라'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실제 그러했다.
내 참담함의 정체란, 날선 감정들의 마찰 앞에서 어떤 원칙을 세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에 대한 못마땅함이 아닐까 싶다. 날선 감정들의 틈을 내는 것이, 그래서 감정끼리 충돌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말은 생각나는데, 오히려 내가 이 얄궃은 상황 앞에서 심리적으로 경직되었고 오지랖까지 보였으니...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창원으로 갔다.
"이주민과 함께 하는 다문화축제" 라는 2010 Migrants'Arirang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지난날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부산에서도 한번도 못 보고 해서 이번엔 가봐야겠다 싶어서 챙겨서 떠났다. 경남이주민센터라는 곳이 실질적인 사무국이자 집행위원회 역할을 하는듯했는데, 여기 대표가 이철승 목사님이라는 분이었다. 작년에는 행사를 개최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올해는 김두관 지사가 당선됨으로서 제법 성대하게 치뤄수 있지 않았는가 싶다. (짐작이다)
"이주민과 이웃되어 어깨동무"를 해보자는 취지인데, 핵심은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는 만큼 다문화, 한국인으로서 나(원주민/선주민)와 다른 문화를 이해해보자는 것이, 핵심 주제일 듯 싶었다.
그런데, 몇 가지 의아스러운 대목이 있기도 했다. 마이그런트 아리랑. 말 그대로 하자면 이주민의 아리랑이란 의미이다. 행사 주최 사회자의 말을 빌자면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이 겪는 어려움(차별)과 우리 사회의 아리랑 정서인 한은 비슷하다, 그러니 이러한 정서를 공감하자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틀린 말은 아닐 듯한데, 곰곰히 새겨보면 약간 어색하다.
우선, 차별과 박해받은 마음을 공감한다? 명확하지가 앖다. 누구와? 한국 사람과 함께 공감한다는 것인지, 실제 그런 취지라 해도 이것이 가능한지 회의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은 차별과 박해의 피해자이고, 한국 사람은 가해자기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차별과 박해받고 있는 이주민들을 위로한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 혹은 한국 사람들이 위로해준다. 전자는 가능하다. 자기 나라 아닌, 딴 나라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들고 자기 나라 사람 보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인 지지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기에는 행사 취지나 내용이 너무 맞지 않다.
그럼, 한국 사람들이 위로해준다? 그럴 순 있겠지만, 적어도 행사 내용을 보아서는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설마 인기 가수가 와서 노래 몇 곡 부르는 것이, '위로'라고 할 순 없겠지. 그런 점에서 이 역시도 행사 내용과 견줘볼 때, 합당치 않다.
그렇다면 이 행사의 주제는 무엇일까? 어깨동무라는 말이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가? 연대를 이야기 하기도 하나 이 역시 행사 내용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행사 내용을 보자.
우선, 프린지 페스티발이라고 하여 약 7-8개 국가의 나라별 전통 음악 발표가 있다. 러시아, 베트남, 페루, 네팔, 케냐 등 각 나라의 구성원 (학생, 어른 등)이 나와서 자기 나라의 전통 음악을 연주한다. 관객은 한국인들과 이 곳을 찾은 일부 외국인들. 일종의 작은 방식의 장기자랑이다. (좀 더 큰 방식은 오늘 폐막실에 이루어질 전국 이주민 가요대회 본선이다) 이것은 행사나 축제를 가면 어디에서나 여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니, 넘어가자.
다음은, 국가별 소개 부스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의 국가를 소개한다는 것인데 국기의 기원 및 간략한 국가 개요를 설명해두었으며, 각 국가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부스별로 전시해두었다. 그리고 체험식으로 하여 해당 국가의 전통 놀이 등을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또 다른 체험부르소 국가별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 있다.)
그리고, 국가별 전통음식 부스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대만,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베트남 등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국가들의 전통 음식을 소개해주고 먹는 곳이다.
여기까지 두고 보면, 대체로 문화박람회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국가별 전통 음식/문화 등.
그리고 정보박람회라는 명목으로 이주노동자협의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출입국 관리사무소 등 이주민과 연관된 국가기관 및 사회단체의 부스도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출입국 관리사무소가 어쩌면 제일 해야할 일이 많을 것 같았는데, 가장 한산했고 또한 준비도 없어보였다.
마지막으로 이주민의 삶의 흔적들을 담은 사진 전시 부스가 있었고, 공정 무역을 기치로 내건 판매 부스도 있었다.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전통 악기 및 옷 등의 판매 부스도 있었다.
다문화 공생 사회를 기치를 내걸었다는 점에서 참여형 프로그램은 유익해보였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것들로 인해 한국인들이 이주민의 삶, 그리고 국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장애인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 현실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방점으로 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행사에서 준비된 내용들은 이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단지 '소개'해주는 모습에 그쳤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120만명의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다. 그럼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곧 다문화 이해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행사에서는 이주민들의 정체, 즉, 어디에서 얼마나 어떤 국가에서 왔는가를 대략적으로나마 보여주는 게 없었다. (이 수치에 선진국에서 온 이주민들은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부스는 한 곳도 없었다)
설치한 부스들은 그저 재미에 그치는 것이었고,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현실 사회의 이주민에 대한 이해의 수단이 미비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한국인으로부터 두들겨 맞고 차별받는 것을 보여주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그 자리를 찾은 한국인들이 이주민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그런 내용이 좀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서 느꼈던 무엇인가 미진함은, 이 대목의 부재에서 기인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풍성하게 준비하고 차린 듯 하지만, 뭔가 핵심적인 게 빠졌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과연 그 자리에 온 한국인들은 베트남인이, 방글라데시인이, 파키스탄인이 우리 사회에서 어디에서 얼마나 살고 있는지, 또한 죽어가는지 알수 있었을까?
많이 많이 아쉽다.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기보다는 흐릿하다는 인상이 짙다.
다음의 쓸데없는 연애뉴스란이나 보게 되고, 이미 끝난 준플레이오프 결과를 보기나 하고, 서로 쌈박질하는 게시판에나 계속 들어가고 했던 오늘.
초점없는 내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하루의 모습이다.
현재 시간 11시 20분, 남은 40분이라도 집중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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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젠장 열받네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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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런데,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네요. 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