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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Occupy 성균관대에 대한 학교당국과 총학생회장의 탄압

  • 분류
    교육
  • 등록일
    2012/04/20 12:21
  • 수정일
    2012/04/20 12:26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기고글의 입장은 본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월21일 오전 10시30분, 율전 성균관대 대학생사람연대 회원들은 △기만적인 등록금 2% 인하 반대, △기숙사 식권강매 60매 폐지, △학내 언론 탄압과 대자보 검열 반대를 요구하며 학생회관 앞에서 ‘Occupy성균관대’ 선포식을 가졌다. 그리고 뒤이어 학생회관과 삼성학술정보관 사이의 공간에 텐트를 치고 점령하려고 했으나 교직원과 총학생회의 저지로 텐트를 치지는 못했다. 결국 돗자리만 펴놓고 ‘Occupy성균관대’ 이름으로 노숙에 돌입하게 되었다. 첫날밤에 4명 가량 되는 학생들이 말 그대로 노숙하였지만 밤 사이의 빗방울과 경비업체의 채증으로 제대로 잠이 들지는 못하였다. 둘째 날이 되자 총학생회장이 핫팩과 음료수를 들고 농성을 그만할 것을 종용하며 찾아왔다.

총학생회장은 ‘Occupy성균관대’를 신고도 하지 않은 외부단체의 정치활동으로 규정지었다. 그리고 ‘등록금과 식권강매와 같은 학내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싶다면 학생회를 통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먼저라고 하면서 이렇게 다짜고짜 거리에 나앉는 것은 학생들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며 행동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행동’이라고 했다. 점령자들은 총학생회장에게 ‘대학이 홀로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는 고고한 탑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대학은 사회와 교류하면서 발전한다고 하면서 내부와 외부 활동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학우들의 반감 그 자체로 ‘Occupy성균관대’는 이 활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총학생회장과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틀째 밤은 비가 예고되어서 당장 방수 대책이 시급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텐트와 천막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사용할 시 당장 철거하겠다고 했다. 결국 비닐과 몇몇 구조물을 사용해서 비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취재를 온 기자와 몇몇 학생들의 손에 의해 비닐과 있는 구조물로 비를 충분히 막을 천막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틀째 밤은 비가 오는 가운데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까지 비는 계속 내렸고 학교는 비닐로 비를 막은 것을 보고 비닐을 철거하라고 했다. 점령자들은 비닐을 철거하라는 학교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학교는 교직원들과 용역을 동원해서 비가 오는 가운데 점령지를 야만적으로 철거했다. 그리고 ‘Occupy성균관대와 관계한 학생들의 신상을 모두 알고 있으며 정해진 시점까지 철거하지 않을 시 징계하겠고 관련 동아리들을 영구 제명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점령자들은 비를 맞으면서 점령지를 철거했다. 철거하면서 우리에게 허용된 자유는 복종할 자유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철거했지만 점령자들은 학교의 위협에 Occupy 자체를 접을 생각은 없었다. 주말에 준비를 거쳐서 3월27일에 다시 삼성학술정보관 앞을 점령했다. 관련자 징계를 걱정해서 이번에는 박유호 점령자 홀로 노숙을 강행했다. 식권 60매 강매에 반대하는 ‘과수원(과일 음료수 이름) 탑 쌓기’를 중점으로 Occupy운동을 진행했다. (성균관대 기숙사에서는 잉여식권 두 장에 과수원 음료 3개를 교환해주고 잉여식권 다섯 장을 라면과 떡볶이 한 그릇으로 교환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학교의 철거와 징계위협에 대해 상세히 알리는 대자보도 부착했다. 학교가 청소, 경비노동자를 시켜서 대자보를 계속 떼어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대자보를 매일 아침 계속 붙이며 사안을 알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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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정당한 노조활동 폭력으로 가로막는 현대자동차 규탄한다!

정당한 노조활동 폭력으로 가로막는 현대자동차 규탄한다!

 

 

4월4일 드디어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가 새로운 임원을 선출했다. 박현제 지회장과 강성용 수석부지회장, 천의봉 사무장은 현장과의 소통을 최우선 과제로 뽑고 공장에서 생활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9일 희망찬 첫 출투 후 지회 사무실로 출입하기 위해 본관 정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사측 경비대와 관리자들에 의해 출입이 막혔다.

 

현대자동차 사측은 고용노동부울산지청이 해고 조합원들의 노조 사무실 출입을 허용하라는 행정지도 공문에도 불구하고 지부 상집과 함께 출입하는 것조차 가로막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3일 폭행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박현제 지회장 등 조합원들이 공장 문을 들어가는 과정에서 물리적 저지가 있었고 이 때 넘어진 박 지회장을 경비들이 밟는 등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현재 노조는 노조활동 자유 쟁취를 위해 정문 앞에서 일주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측은 무엇이 두려워 행정지도도 무시하며 지회 지도부의 공장 내 출입을 막는가. 이유는 단 하나, 최병승 동지의 대법 승소 판결 이후 꿈틀대는 현장의 분위기를 통제하기 위해 이들을 조직할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들의 출입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최병승 동지의 대법 판결을 일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법적 위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공정의 외주화와 2년 미만자들에 대한 해고를 내부 반발 없이 진행시키기 위해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조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현대자동차지부는 노보를 통해 이러한 사태를 사측의 책임으로 규탄할 뿐 적극적으로 물리력을 동원해 사측의 행태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있다. 10일에 예정되었던 원하청연대회의도 비정규직지회 지도부의 출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연기하는 등 투쟁을 시작도 하기 전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선출되고 나서 처음으로 사측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정규직지부는 원하청공동투쟁을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하려고 한다면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비정규직지회 지도부의 공장 내 진입 투쟁에 적극 결합해야 한다.

 

 

정당한 노조활동 탄압 즉각 중단하라!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를 공장 내로 진입시키자!

 

 

2012년 4월 16일

사회주의노동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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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롱뷰의 승리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행동이 필요하다 - 기포드 하트먼

 

[편집자주]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Occupy 운동이 한 순환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으로부터 시작된 Occupy 운동은 미국과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1월2일에는 미국 오클랜드 도시 총파업으로 번져나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했다. 그러나 오클랜드 투쟁 이후 Occupy 운동은 차츰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사노신은 지난 1월 Occupy 운동이 미국 서해안의 항만노동자들에게 전파되고 있으며 워싱턴 주 롱뷰에서 벌어질 하역작업 중단 투쟁이 이 투쟁의 중요한 계기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란자 노트>의 유인물을 번역해서 게재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내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12월 이후 벌어진 항구 봉쇄 투쟁들이 몇몇 정치단체들이 장악한 Occupy 운동에 의한 대리주의적인 행동이었으며 <반란자 노트> 등의 주장은 과장된 평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12월12일 항구 봉쇄 투쟁은 실패했던 것으로 보이며 Occupy 운동이 조직노동자운동으로 전파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이글을 쓴 하트만은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 사이쯤 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활동가로 알려져 있다. 사노신은 이 기사의 정치적 내용에 동의하진 않지만 롱뷰 투쟁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관계들과 Occupy 운동그룹의 상황을 잘 알려주는 기사라고 판단하여 번역 게재한다. 사노신은 Occupy 운동의 전개양상이 이후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 투쟁에 직접 참가한 좌익 계열의 활동가들의 평가서들을 계속 번역할 계획이다. 이 글의 제목과 소제목 및 각주는 편집자가 임의로 붙인 것임을 밝힌다.

 

<반란자 노트>가 롱뷰 투쟁에 관련해서 낸 유인물을 읽고 이런 문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역사적 위기는 혁명적 지도력의 위기로 환원된다.”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 4인터내셔널의 임무, 레온 트로츠키 [1938])

 

이유는 간단하다. 오클랜드의 한 전위집단이 워싱턴 주 롱뷰 EGT 곡물 부두의 하역작업을 중지시키려는 투쟁 계획1)을 완벽하게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반란자 노트>가 지도적 역할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 뉴욕 시와 시애틀에 있는 그들의 인민전선 동맹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시애틀 소동의 본질

 

△ 1월6일 집회 도중 난동을 부리는 국제항만노조 간부들 (출처 : The Internationalist Newspaper)

시애틀에도 <국제주의자 토론 네트워크 (Internationalists Discussion Network)>2)에 참여하는 동지들이 몇 명 있다. 그래서 여러 동지들의 견해를 들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요즘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않고 있는 <국제주의자 토론 네트워크>의 한 동지가 포틀랜드에 살고 있다. 그는 지난주 롱뷰에 있었다. 이 동지는 시내의 모든 술집에 부두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다고 했다.
그는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부두노동자들을 지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슬프게도 그런 목소리들은 묻히고 있다. 우리가 듣는 소식이라고는 다른 곳의 레닌주의 동맹자들과 함께 반동적인 백인 노조관료들이나 파업회피주의적인 관료주의3)가 오클랜드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너무나 해악적이 되었기 때문에 시애틀의 제19지부 소속 평조합원들은 Occupy 시애틀 사람들에게 항구에서 떠나달라고 요청하기 이르렀다. 처음에는 나도 이것이 국제항만노조(ILWU)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발생한 노조 내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월6일4)에 벌어진 소동 당시 국제항만노조 회의장에 있었던 제19지부의 한 동지에게 생각을 물어보았다. 이 동지는 국제산업노동자동맹5)의 전통(Wobbly tradition)을 계승하며 종종 제 2의 간부진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현장조직(a caucus of rank-and-filer)에 속해 있었다.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노동계급의 자기행동을 옹호하고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투사임이 틀림없는 동지였다. 다음은 그날 일어난 혼란에 대한 그 동지의 생각이다.
<흑란단(黑蘭團)>6)(무정부의주의적 공산주의자로 자칭하는 무정부주의적 레닌주의자들), 혁명적 공산당(RCP)7)이 지배하고 있는 민중조직위원회(POC, People's Organizing Committee) 그룹, 그렉 루이스 선생(Sensei Greg Lewis) 주변의 핵심그룹(모택동주의 경향을 가진 레닌주의자들), 문 닫은 옛날 자율주의 공간(Autonomia space) 주위의 사람들(인셔렉셔니스트 아니키스트8), Pugetsoundanarchists.org를 보라) 같은 세력들이 Occupy 시애틀을 장악했다. 그들은 FRSP9)나 그 만큼은 아니더라도 ISO(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10) 등과 마찬가지로 Occupy 운동을 통째로 국제항만노조에게 갖다 바치려고 애쓰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이 모든 것을 오클랜드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이 1월6일의 ‘집회’에서 나타난 적대감의 원인이었다. 제19지부 소속 평조합원들은 지난 주 Occupy 운동과 모든 연계를 단절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이 결의는 Occupy 사람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려고 수도 없이 시도해 본 뒤에 나온 것이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

세계산업노동자동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은 1910년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미국 최초의 산업별 노동조합 연합체이다. 영문 약칭은 IWW이며 흔히 워블리스(Wobblies)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1905년 미국 시카고에서 D. 드 레온(Daniel De Leon)과 윌리엄 헤이우드(William Haywood) 등이 주도해 만들어졌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의 결성은 당시 주도적인 노동단체인 미국노동총연맹(AFL)의 보수성에 불만을 품은 데 따른 것이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는 전 노동자를 산업별로 조직화하고 자본주의 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서부의 일용 노동자, 가출 노동자 등 미숙련 노동자를 중심으로 격렬한 스트라이크와 사보타지를 지도하였다. 이 같은 투쟁 방식으로 점차 세를 넓혀 전성기인 1912년에는 조합원 수가 10만 명을 넘었다. 헬렌 켈러가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 단체를 더욱 널리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분열과 정부의 탄압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은 급속히 쇠퇴했다.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이 반전운동을 편 것은 특히 정부의 거센 탄압을 불러왔다. 윌리엄 헤이우드 등 많은 지도자가 처형을 당했고 한편으로 강경파가 공산당으로 이적하는 등 조직 분열이 가속화하면서 그 세력이 급격히 퇴조했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이 내세운 혁명적 조합주의(생디칼리즘)는 의회주의를 부정하고 노동조합을 혁명의 주체로 설정하는 것으로 스트라이크(동맹파업) 등의 직접행동으로 혁명을 달성하고 자본주의 타도가 성취된다고 주장했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이 미숙련 노동자나 흑인 노동자의 조직화를 시도하고 산업별 조합주의를 도입한 것 등은 미국 노동조합운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조합원들의 중복가입을 인정하고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작업장 민주주의의 모델인 워블리 샵(Wobbly Shop)을 제시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 때 조합원이 2천여 명까지 줄어들어 유명무실한 조직이 되었으나 최근 다시 활발한 활동과 함께 조합원 수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는 Occupy이 운동과 메이데이 총파업 선전 활동과 조직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2월12일 투쟁은 과연 승리인가

내가 1월10일에 올린 글에서 지적한 대로 IBU(국제항만노조 해양분과(maritime division)) 조합원 사만다 레벤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예정된 항구에서의 행동(12월12일)을 위한 조직화가 어떻게 해서 실패했는지에 대해서 내가 실망한 점은 봉쇄가 대중총회에 안건으로 제안되기 전에 국제항만노조 내부에서 동맹자들 사이에 수행된 활동이나 조직화 작업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연대행동을 조직하는 활동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다녔지만 그럼에도 노조에게서 집회에 오라는 말이나 다른 연락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또 국제항만노조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연대하고 있는 다른 좌파와 급진파들이 항구 봉쇄 제안이 처음 기획될 때 아무 얘기를 듣지 못하거나 계획을 준비하는 회의에도 참가제안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일반 부두노동자들 사이에서 아무런 집단적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이들 전위주의자들은 그냥 도로에서 쇼를 벌인 다음 북서태평양 연안 전체에서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말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다른 보고들에 따르면 오클랜드 사람들이 “스타”처럼 우쭐대며 “오클랜드 항구 봉쇄” 투쟁의 무용담을 떠벌였다 한다. 골드너가 쓴 유인물에 나오는 “오클랜드와 포틀랜드 그리고 시애틀에서 국제항만노조 평조합원들이 점령운동의 피켓라인을 지키고 12월12일의 서부해안 항구 봉쇄투쟁을 위한 행동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다”11)는 문구는 거짓말이다.
대다수 국제항만노조의 일반 조합원들은 아예 나오지 않았고, 12월12일 오클랜드의 2터미널(<한진>과 )에 있던 사람들도 노사중재자(arbitrators)12)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중재관들은 결국 “건강과 안전상의 이유”로 하루일당의 반을 지급하고 조합원들을 오전 중에 집으로 돌려보냈다. 조합원들은 노사중재자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몸으로 보여주는” 행위는 전혀 없었다. 전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항구 경영진은 오후와 오전 3시에 있는 다음 날 조간근무 교대를 취소했다. 즉, 노동자들은 일하러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이는 무급이었다. 항구는 사실상 폐쇄되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거라면 기꺼이 인정하겠다. 하지만 나는 노사중재자들이 터미널 두 개를 폐쇄한 포틀랜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애틀은 달랐다. 항구로 가는 길목이 막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시위자들이 터미널 하나를 막았고 다시 “지역시민으로 이루어진 시위자들(community pickets)”이 교대 근무하러 나온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경영진은 임금지급을 거부함으로써 부두노동자들을 징계했다. 우리는 이미 전에도 이런 일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 중 어떤 것도 해당 항구에서 일하는 부두·해양·운송노동자들이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모두 외부에서 시작된 행동이었다.
우리는 이미 이 행위의 성격에 대해 토론했고 나는 그것을 진정한 파업을 위한 시동행위로 생각하는 일부 젊은 공산주의 투사들(communization militants)의 생각에 동의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적어도 오클랜드에서는) 트럭운전사들(troqueros)이 대부분 항구에 나오지 않음으로써 수동적으로 파업행위를 했다.

 

△ 지난해 12월12일 시위대에 의해 봉쇄된 오클랜드 항구

 

항만노동자 투쟁의 성격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지적하는 게 필요하리라. 이 투쟁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생존권 악화(austerity)에 맞선 투쟁이었고 실제로는 1934년 해양분과가 파업으로 쟁취한 성과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해안전체에서 벌어진 이 파업투쟁은 항만노동자들에서 시작되어 즉시 해안에서 일하는 선원들로 파급되었고 8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두 사람이 살해된 7월5일의 “피의 목요일”에 전미트럭운전자노조 노동자들(teamster)은 1901년 자기들이 해안지역에서 파업투쟁을 했을 당시 부두노동자들이 연대투쟁을 해준 것에 대한 보답에 나서 다른 부문 노동자들 중 처음으로 4일간 총파업에 동참했다. 이는 1886년, 1893년, 1916년 부두에서 일하는 모든 분야의 노동자들을 거의 총파업에 가까운 수준으로 단결시켰던 연대파업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었다.
1934년의 총파업으로 쟁취해서 연방중재관(federal moderator)이 승인한 요구들은 ⑴ 클로즈드숍 ⑵ 해안 전 지역의 일괄 계약 ⑶ 노조에 의한 고용알선이었다. 이 요구조건들은 1934년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 샌 페드로(LA), 포틀랜드, 시애들 등 서해안의 모든 주요 항구에 적용되었다. 부두노동자들은 1937년 동해안에 주로 기반 한 부패한 국제항만노동자협회(ILA, International Longshoremen's Association)를 버리고 국제항만노조를 건설하여 결국 서해안의 크고 작은 (현재 모두 29개에 이르는) 모든 항구를 조직하는데 성공했다.
경영진 측이 빨갱이라는 색깔 공세를 펼치며 협약을 파기하고 성과물들을 되돌리려고 하기 시작했을 때 부두노동자들은 신속하게 파업투쟁에 나서 자신들의 현장권력을 방어했다. 1934년과, 다시 한 번 큰 승리를 거두어 이전에 쟁취한 성과들을 확고하게 굳힌 1948년 사이에 부두노동자들은 도합 1399번이나 합법 또는 불법으로 조업을 중단했다. 이는 성과물을 얻기 위해서 뿐 아니라 그것을 지키기 위해 파업을 수행하는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의 전통이었다.
필라델피아를 거점으로 했던 세계산업노동자동맹 산하 해양운송노동자산별노조 제 8지부의 활동은 확실히 국제항만노조의 현재를 연상시킨다. 제 8지부는 1913년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이 부둣가에서 수행한 설탕파업(sugar strike)을 통해 생겨났으며 부두노동자들도 파업에 동참한 이후 9년 동안 잇따라 파업투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은 놀랄 만큼 다인종적인 노조로서 항구들을 지배했다. 제 8지부는 1934년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의 국제항만노조처럼 클로즈드숍이었고 노조가 고용을 알선했으며 파업투쟁으로 성과물을 방어했다. 노조의 운영도 독특하여 책임 있는 자리를 흑인과 백인이 번갈아 맡는 등 모든 회의나 모임에 흑백이 공평하게 섞여 있었다. 매년 피의 목요일을 기념하여 일을 하지 않는 국제항만노조의 전통처럼 제 8지부도 1913년 노조를 출범할 수 있게 한 그들의 첫 번째 승리를 기리기 위해 매년 5월16일 작업을 중단했다. 그들의 지배의 종말은 좌파의 볼셰비키화에 더해 세계산업노동자동맹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1922년 직장폐쇄에서 그들의 패배와 동시에 일어났다.

 

계급투쟁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부족

EGT 투쟁은 국제항만노조에 동일한 일을 하려는 경영진의 시도이다. 국제항만노조는 이 노조가 적게 잡아도 지난 40년 동안 파업이라는 무기를 버리고 교섭을 통해 성과물을 보호하고 합법적으로 협약을 방어하는데 목을 매어왔기 때문에 훨씬 더 약화된 상태에 있다. 투쟁 없이는 1934년 이래 국제항만노조가 지켜온 세 가지 성과물을 방어할 수 없을 것이다. 클로즈드숍과 노조의 고용알선은 다른 분야에서는 태프트-하틀리법13)에 의해 불법화되었지만 건축업에서 노조의 고용알선(그것은 대개 아주 눈물겹게 유지되고 있다)과 마찬가지로 국제항만노조에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노동과정에 대한 국제항만노조의 지속적인 통제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지역시민들의 시위”와 노사중재자들이 일반 부두노동자들 스스로의 행동을 대리할 수 없다. 그것을 가지고도 계급에 기반 한 전략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컬럼비아강수로안내인협회, 예인선 노동자들, 열차 기관사·승무원 조합, 롱뷰 근교의 트럭운전사들, 곡물의 산지인 워싱턴·몬태나·남북 다코타·미네소타 주의 농장노동자들과 곡물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접근하려는 노력은 전혀 이루어지 않았다. 곡물공급 연쇄를 이루고 있는 일본·한국·중국 등 아시아의 부두·선박 노동자들과 곡물을 가공·제분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려는 시도도 (일본의 작은 노조 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을 빼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클랜드·시애틀·뉴욕에 있는 레닌주의자들 중 어느 누구도 진부하고 패배주의적인 행동주의 이상의 뭔가를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 듣자하니 ANSWER 뒤에 숨어 있는 스탈린주의자들의 그룹14)이 이 운동에 개입하여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어디서 그런 소릴 들었냐고? 좋다. 뉴욕 시에 있는 또 다른 전위주의자들의 무리인데, 여기 그들의 광고가 있다. http://www.bailoutpeople.org/jan2012longview.shtml
국제항만노조가 자신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은 노동계급의 일부가 이전에 획득한 성과를 지키려는 투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투쟁을 다른 부분의 노동자들로 확대하려기 위한 계급적인 호소들은 전혀 없다. 참혹한 대우를 받는 트럭운전사들이 독립사업자로 잘못 분류되고 있으며 부두에서 일하는 국제항만노조 조합원의 반에 반밖에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클랜드 지도부의 핵심은 스파르타쿠스 동맹(Spartacist League)15)에서 분리돼 나오거나16) 국제주의자신문(The Internationalist newspaper)17) 주위에 있는 그룹들로 판명된다. 이들에게 이 투쟁은 엄청나게 중대한 투쟁일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건 자신들이 활동하는 노조에서 평조합원들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카메라 앞과 전위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알랑거리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자아도취에 빠진 몇몇 레닌주의자들의 허풍에 더 가깝다. 만일 ANSWER가 시애틀,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만안지역에서 온 코치들을 지원한다면 그들의 일종의 카메라에 찍힐 준비가 된 과시적인 정치의 일부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 것을 예상해야 하리라.

 

 

 

노동자들의 자기행동이 필요하다

슬프게도 롱뷰에서 노동자 계급의 자기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는 단지 1999년 시애틀에서 벌어진 WTO반대 운동의 축소판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당시 시애틀 거리에서 거둔 놀라운 성공에 대해 알렉산더 코번(Alexander Cockburn)18)이 지적한 대로 사람들은 단지 한 세대에 한 순간 불현듯 체제를 이해할 뿐이다. 그 한 순간이 나타났고 롱뷰 노동자들은 오로지 계급투쟁의 물결을 불러일으킴에서 의해서 승리할 수 있을 뿐이다. 이 투쟁은 국제항만노조와 정면으로 맞부딪쳐 계급적 연대를 이 노조 ― 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 의 외부에서 얻어야만 할 것이다. 범계급적 대리주의(Cross-class subsitutionism)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런 레닌주의적 환상을 흉내 내며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고 당신들이 전혀 모르는 대륙 반대편의 한 정파에 간섭하고 있는 골드너에 대해 부끄럽다고 말해야 하겠다. 당신들의 ― 그리고 <반란자노트>의 개입은 무용한 것보다 더 나쁘다. 그것은 자유주의자, 레닌주의자, 네오마르쿠제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인민전선 운동의 파산을 폭로한다. 그것은 그들의 전위주의적 지도력과 당신들이 새롭게 모집한 신참들의 정체성정치(identity politics)19)(그들이 “특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오클랜드와 달리 그들이 어떻게 기꺼이 “점령하라”라는 구호를 “탈식민지화하라”는 구호로 바꿔치기하고 있는지를 보라.)를 은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영감을 얻고 싶다면 더 나은 예들이 있다. 바로 지금 파나마 운하에서 파업이 벌어지고 있으며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도 항만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고 있다.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총파업 역시 조만간 정리될 수도 있지만 다시 불붙을 수도 있다.20) 특히 나이지리아 총파업 파업참여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Occupy 나이지리아”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투쟁에서 계급적 이슈들은 롱뷰에 있는 항만노동자들과 동일하다. 우리는 그 투쟁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행성을 가로질러 일반화될 수 있을지 상상해야만 한다.

 

 

역주---------

1) http://sanosin.jinbo.net/Publish/magazine.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684 참조, 이 투쟁계획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2) 2001년에 만들어진 미국 내 국제주의·혁명적 경향의 활동가들의 토론 네트워크이다. 현재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까지 포함하는 200여 명이 넘는 토론그룹으로 발전했고 이 네트워크의 기준(체제 변혁을 지향하고, 국제주의자여야 하며, 소련·중국·쿠바 등 가짜 공산주의에 명확히 반대하는 것 등)에 동의하고 신원이 확인되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3) 원문은 “the alternative strike solidarity bureaucracy”로 여기서 “파업 대체 (alternative strike)” 전략이란 단체교섭 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파업이 아니라 여론이나 언론에 호소해서 성과를 내려는 경향을 가리킨다.
4) 1월6일 국제항만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점령운동 집회에서 국제항만노조 소속의 퇴직한 조합원 잭 헤이먼이 Occupy 운동에 의한 항구 봉쇄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는 도중 몇몇 국제항만노조 조합원들이 고성을 지르고 단상으로 뛰어가는 등 발언을 방해하는 행동을 한 사건을 가리킨다. <국제주의자신문>에 따르면 헤이먼이 시애틀, 롱뷰, 포틀랜드, 오클랜드의 항만노동자들이 12월12일 Occupy 운동이 만든 봉쇄라인을 존중했다고 말하는 순간, 국제항만노조의 몇몇 간부들(기사에서는 관료주의적 폭력배bureaucratic thugs로 표현)이 소리를 지르며 단상을 향해 위협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5) 국제산업노동자동맹(IWW)에 대해서는 박스기사 참조
6) <흑란단 (Black Orchid Collective)>은 시애틀 등지를 중심으로 비교적 근래에 결성된 그룹으로 자본주의와 백인중심주의·가부장제·이성애중심주의·제국주의·장애인 차별·국가 등에 맞서, 직접 민주주의와 이윤이 아니라 인간적인 욕구를 위해 노동자들이 창조적으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투쟁하며, 맑스주의를 통해 페미니즘·반식민주의·무정부주의·생태주의·반인종주의·동성애 해방의 가장 훌륭한 요소들을 결합시키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http://blackorchidcollective.wordpress.com 참조)
7) 혁명적 공산당(Revolutionary Communist Party)은 미국에서 1975년 설립된 모택동주의 조직이다.
8) 폭동의 역할을 강조하는 무정부주의 운동의 한 계열이다. (insurrectionist anarchists)
9) 미국의 트로츠키주의 정당 사회주의노동자당(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과 경향이 다름)의 시애틀지부를 중심으로 1966년 여성주의와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며 그 당에서 분리해 설립된 자유사회주의당(Freedom Socialist Party)을 가리키는 듯하다.
10) 70년대 중반 국제사회주의자(International socialists) 계열의 북미 지역 활동가들이 분파로 조직한 그룹으로 2001년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주의경향(IST)에서 축출되었다. 정치는 IS와 대동소이하다.
11) <반란자 노트>의 유인물에서 잭 헤이먼의 발언을 인용한 부분이다.
12) 미국 노사관계에서는 노사협의가 잘 안 될 때 미국중재협회(American Arbitration Association)와 같은 제 3의 기관에서 파견된 중재자가 개입하여 결정하게 되어 있다. 13) 1947년에 제정된 미국의 노사관계법, 법의 제안자의 이름을 따서 태프트-하틀리법이라고 통칭되고 있다. 1930년대 이후 활성화된 노동운동을 탄압하기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제한하는 규정을 담았다. 주요 내용은 ①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규정 ② 클로즈드 숍 금지(유니온 숍만 인정) ③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쟁의에 대한 긴급조정제도의 도입 ④ 각 주에 대한 노동입법권의 부여 ⑤ 연방공무원과 정부기업 종업원의 파업 금지 ⑥ 노동조합 간부가 공산당원이 아니라는 선서서의 제출의 의무화 등이다.
14) ANSWER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 중의 하나로 트로츠키주의 계열의 그룹인 노동자세계당(Workers World Party)이 꼽히고 있다. 1958년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 분리된 이 조직은 다른 사회주의조직들과 달리 60, 70년대 흑인운동과 동성애 운동을 적극 지지하는 진보성을 보였으나, 50년대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 분리할 때부터 소련의 헝가리 침공, 밀로셰비치, 사담 후세인, 김정일, 중국의 천안문 진압을 지지하는 등 스탈린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어왔다. 최근에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민중을 구제하자는 “Bail out the People movement”를 전개하고 있다. 15) 미국의 젊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중심으로 1960년대 만들어진 그룹으로 70년대 이후 다양하게 분열되었다.
16) <국제볼셰비키경향(IBT)>(http://www.bolshevik.org/)을 가리킴
17) 미국 스파르타쿠스 동맹에서 파생한 트로츠키주의 계열의 <국제주의자 그룹(Internationalist Group)>이라는 조직이 발행하는 신문이다. 이 조직은 제 4인터내셔널의 부활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http://www.internationalist.org/longshoreworkersshutusports1112.html)
18) 미국의 정치평론가(1941∼)
19) 개인의 주요한 관심과 협력 관계는 인종·민족·종교·성에 기초하여 만들어진다는 관점을 말한다. 필자는 이를 계급정치에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20) 나이지리아 노동계는 정부의 유가인상 조치에 항의하여 1월9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http://www.washingtonpost.com/world/americas/workers-go-on-strike-at-panama-canal-expansion-project-for-back-pay-safety/2012/01/17/gIQAj2uA6P_story.html

번역│이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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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노동운동]희망을 잃어버린 노동운동, 희망운동이 대세

‘선거’에 매몰된 노동자 ‘정치’

총선과 대선을 앞둔 2012년의 ‘의회정치’ 바람은 노동운동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운동세력뿐 아니라 야당까지 탄압하면서 부르주아 정당들까지 포괄하는 야권연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면서 반MB전선이 모든 운동과 정치의 흐름을 끌고 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미명 아래 전현직 노조관료들은 선거에 올인하고 있고 총연맹과 산별연맹은 선거조직으로 변신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탄생했을 때 확정되었던 민주노총의 ‘진보정당 배타적 지지방침’에 대한 논의는 대의원대회에서 또다시 흐지부지되었다. ‘3자 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가 조합원 311명의 서명을 받아 이 안건과 관련한 임시대대 소집을 요구했으나 집행부는 형식적 오류가 있다며 반려하는 등 정파갈등과 ‘진보정당’ 사이의 마찰을 격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지침에 따라 투표를 하지는 않는 듯하다. 때문에 정치방침에 대한 논란은 정계진출을 바라거나 의회정치에 환상을 가진 활동가 혹은 정치활동에 대한 민주노총 조직의 인적·재정적 활용을 둘러싼 노조관료 간의 싸움으로 머물러 있다.
이런 양상은 조직이 합법화된 이후 정부 및 자본과의 파트너십을 형성하는데 매진해온 민주노총의 우경화된 모습을 잘 보여준다. 관료들은 단위사업장 투쟁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과 협상을 하거나 각종 정당, 정부기관들과 만든 연석회의를 통해 자본을 압박하는 방식을 취한지 오래다. 투쟁사업장 지원이나 미조직노동자 조직화가 조직노동운동의 과제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운동의 주체를 강화·확대하기는커녕 상층부와 현장 및 투쟁사업장 사이의 괴리와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8월에 총파업 계획을 잡고 있지만 총선과 대선 사이에서 바람을 잡는 행사 이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자본의 공격과 조직노동운동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추진하기 시작한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노동유연화라는 일관된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탄력근로시간제가 확산되면 서비스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파트타임와 같은 단기계약직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대공장에서는 수년 동안 미뤄져왔던 주간연속2교대 시행방안이 이에 부응하는 교섭거리가 될 것이다. 올해 임단협을 앞둔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하여 노동강도 강화와 일정정도의 임금축소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타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후퇴조차도 사측의 강경함으로 인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년간의 무쟁의로 안정화된 파트너십을 깨면서까지 투쟁이 촉발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지난해 타임오프제와 함께 시행된 복수노조는 전투적 노동운동을 유지해왔던 금속제조업의 중소·지역노조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교섭창구단일화를 핑계로 벌어지는 교섭해태 속에 사측의 지원을 받고 등장한 어용노조가 기존 노조 및 조합원들에게 혼란을 주면서 산발적인 투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정책 기사 참조)
노동시간 단축과 복수노조는 소수의 대공장 정규직과 다수 노동자들 사이의 이해의 차이를 더욱 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생존권 악화와 노동탄압에 고통 받겠지만 금속과 공공의 대규모 사업장은 올해 역시 별다른 투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2월23일 열린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대공장 운동에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듯하다. 이는 2010년 말 현자울산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점거파업 이후 주춤했던 대공장 비정규직노조운동이 다시 꿈틀거리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미 파견법이 이전보다 개악되었고 자본 역시 공장에 불법파견 요소를 많이 없앤 상태이므로 판결이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법적 해석다툼 속에 적용되는 노동자와 아닌 노동자를 가르는 것, 그리고 이전의 경험처럼 금속노조·현대차지부와 현대차 자본 사이의 교섭틀에서 사안을 축소시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쟁의지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동희오토와 같은 불법파견의 요소가 없는 비정규직과 단기계약직, 2·3차 하청노동자에 대한 배제는 여전하다.
그러므로 법률에 대한 의존성 문제와 비정규직노동자 내부의 이해와 갈등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가 이 투쟁이 의미 있는 투쟁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정규직노조의 통제 하에 소수의 정규직화를 성과로 남기는 것에 그칠 것인가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조직노동운동 체계를 벗어난 투쟁,
희망운동이 대세

조직노동운동이 방치한 대다수 노동자들의 투쟁은 점차 ‘희망운동’이라는 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희망버스로 시작된 소위 ‘희망운동’은 투쟁사업장들이 모여 진행했던 품앗이연대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투쟁 이후 다시 등장한 민주주의 운동과 SNS의 빠르고 광범위한 정보력이 결합하며 그 외연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크레인 투쟁이 일단락된 뒤 희망발걸음으로 확대되어 투쟁 1500일을 넘긴 재능이 희망색연필로,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 사안을 가지고 수도권을 걸은 희망뚜벅이로, 아직도 진행 중인 한진 정리해고는 희망의 소금꽃 열매로, 쌍용차 공장 앞에서 희망텐트로 이어졌다. 희망운동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방식을 통해 노조로 묶이지 않은 다양한 시민들과 만나며 투쟁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획득하고자 애쓰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자본의 힘이 법을 넘어서면서 노조를 건설하거나 단협을 유지할만한 힘이 약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장기화되기 일쑤이고, 사법부와 공권력에 의해 쟁의행위 및 재산·신체 구속이 극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현장 밖으로 밀려난 상황이고 상급단체나 총연맹의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가 없는 상황에서 단사만의 투쟁으로 역부족인 상황에 있다. 이로 인해 투쟁방식이 ‘회사 때려부수기’에서 희망버스 운동처럼 사회적인 정당성과 지지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 듯하다.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투쟁을 선택하는 노동자에게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운동은 대개 총연맹을 위시한 조직노동운동체계에 기대지 않고 자체적인 사업운용과 전술을 구사하고 있으며, 다양한 정치·연대단체들과 연계하고 대사회·대시민 이슈화와 캠페인을 통한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조만간 서울 도심을 거점으로 하는 점령운동인 희망광장으로 확산될 예정이다. 희망광장은 총선시기와 맞물려 노동 사안을 이슈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움직임은 민주노총 조직의 해체를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공식단위에 할 일들이 연대단위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전통적인 노동자 투쟁의 심각한 고립과 무기력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이미 주체들의 역량이 소진된 투쟁을 김진숙이라는 상징적 아이콘과 희망버스가 외부에서 강제한 측면이 컸다.

 

보다 열린 운동으로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과거와 같이 폄하할 수는 없다. 90년대 중반에는 노동운동의 영역과 시민사회 운동의 영역이 뚜렷히 분리되어 있었으며,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그것은 더욱 심화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십 수 년 가까운 사회적 변화로 말미암아 고용과 생존의 불안정성에 끊임없이 고통 받고 있는 무정형의 노동자층이 증가했으나 조직노동운동으로부터 배제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대규모 사업장 기반의 보수적인 중심부와 이들로부터 지지와 엄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중소사업장의 투쟁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주변부가 분리되었다.
희망운동은 조직노동자만을 주체로 보고 그들이 일하는 제조업 현장만을 운동의 중심지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아직 노동자로서 정체화되지 않은 많은 시민과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열려 있음으로써 이들의 접합지점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민주주의적 대중운동의 연대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협소한 조합주의 운동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아직 민주주의적 대중운동의 일각을 이루고 있는 계급적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계급적인 시각에 눈을 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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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총론]2012 권력재편기, 정치태풍에 휩쓸리지 않고 대중투쟁의 싹을 지켜야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2/03/14 13:53
  • 수정일
    2012/03/14 13:54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2011년은 대중투쟁의 해였다. 2009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불러온 세계 공황의 여파로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투쟁이 벌어졌다. 특히 작년에는 아랍 민주화 투쟁과 Occupy 투쟁이 일어나면서 몇 년 동안 산발적으로 지속되어온 반정부 투쟁이 정점으로 치닫는 듯했다.

권력재편 국면

하지만 올해는 국제적으로 대중투쟁이 작년처럼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세계경제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미국경제는 최근 일시적인 호조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경제의 회복은 미국의 소비력에 의존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게도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동 불안으로 인한 유가폭등의 위협이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인 낮으며 미국과 이란 양국의 집권세력 모두 선거를 앞두고 위기의 조성하여 재집권에 유리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은 유라시아 양쪽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한다는 ‘두개의 전쟁’ 노선을 폐기하고 동북아시아의 군사력을 강화하여 중국 견제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구상은 제주도 해군기지나 MD체제 구축 등에서 나타나듯 훨씬 전부터 추진되어 왔으며 장기적으로 이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이라는 돌발변수에 더해 주변 국가들의 권력재편기를 맞은 올해 한반도 주변 정세가 단기적으로 급박해질 가능성은 낮다.
2012년은 미국·한국 뿐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동시적인 권력재편기를 맞고 있다. 때문에 각국에서 선거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대중운동이 이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작년 말 이후 미국의 Occupy 운동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봄이 되고 메이데이가 가까워오면서 Occupy 운동 속에서 성장한 운동 단체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이 운동이 다시 작년과 같은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대중의 불만은 높지만 반MB전선으로 귀결

한국 역시 올해 4월 총선과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대두되고 있고 이를 반영하여 ‘정치’를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MB정권과 집권여당에 대한 정치폭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나는 꼼수다’ 열풍이 일기도 했다.
정권 교체의 열망이 높으면서도 동시에 현재의 야권 세력에 대한 기대도 그리 크지 않다. 참신한 인물 혹은 세력에 대한 갈증은 지난해 안철수 바람과 같은 해프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기존 정당들에 대한 불만이 높으나 이것이 아직까지 체제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까지 상승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대중의식의 현재적 한계인 동시에 이를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끌어나갈 주체의 부재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따라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대중의 정서는 야권연대를 압박하고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올해 대선에서 집권세력이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집권 말기 경제 성적이 썩 좋지 않은 것도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그동안 이명박 정권은 상대적으로 건실한 재정에 기대어 경기부양으로 세계적인 공황의 여파를 피해 왔으나 그것도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본격적인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인 지금도 물가불안 등 경제적 불안이 계속되고 있으며 심화된 양극화로 인해 사회구성원 다수의 생활조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다음 정권으로 그대로 넘어갈 것이다. 때문에 차기 정권이 대중의 불만을 체제 내로 흡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FTA라든가 복지문제 등에서 구여권과 민주당의 차이는 별로 없으며 민주당의 보수성과 무능력함에 대한 불만은 이미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촛불투쟁 등을 거치며 왼쪽으로 돌아선 대중의 정서가 노무현 말기처럼 급작스럽게 우선회할 가능성도 그리 높아 보이진 않는다.
집권세력이 바뀌고 그 무능력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면 대중의 의식은 보다 급진화 될 가능성이 높으며 새 정권에 대한 대중의 이반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민주주의적 대중운동의 부상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개인들이 연대하고 그것이 집단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작년 한 해 세계적으로 뚜렷이 나타났다.
이는 기존의 제도 언론과 제도 정치가 대중의 욕구와 이해를 표현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점자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9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반(反)세계화, 반전과 같은 민주주의적 요구들이 주요한 요구로 떠오른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운동들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공안정국이 조성되고 2003년부터 경기호황이 지속되면서 가라앉았다가 최근 경제공황의 여파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90년대 이후의 운동이 60·70년대보다 비조직적 성격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최근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대중운동의 흐름은 SNS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발전을 타고 더더욱 개인들의 연대라는 성격이 강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엄혹한 탄압과 사회적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국내 반정부 조직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중동이나 시민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기존의 조직운동이 노쇠화하고 제도권에 포섭되어 변혁운동으로 성격을 잃은 서구국가들에서 공히 SNS를 매개로 대중운동이 조직되는 양상이 뚜렷하게 등장했다.
세계적인 상황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SNS와 연동된 민주주의적 투쟁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이 발전한 한국의 특성상 이런 움직임은 오히려 서구보다 먼저 촛불투쟁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트위터 바람을 타고 홍대 시설관리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와 희망버스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 운동들이 어느 정도 반체제적인 성격으로 나아가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경향과 달리 한국의 경우 아직 투표격려 운동이나 기존 정당에 대한 압박으로 나타나는데 머무르고 있다. 이는 한국의 경우 경제공황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 불안이 그만큼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홍대 시설관리노동자 투쟁, 한진중공업, 현대차 성희롱 사건 등에서 나타나듯이 이러한 운동이 과거와 달리 노동운동 사안에 연대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이 운동은 아직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혜적인 성격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경제 침체의 후과가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 도래하고 이로 인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경제적 불안과 민주주의의 후퇴는 대중운동을 더욱 급진화 시킬 가능성이 높다.

 

 

조직노동운동의 해체는 더욱 명확해져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운동의 몰락은 명확해졌다. 전반적인 우경화 속에서 국민파의 장기집권이 이어지고 있으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무능력함은 놀라울 정도다.
금속노조는 희망버스 운동에 밀려 한진중공업 투쟁에서 구경꾼 노릇을 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은 당연하지만 쌍용차 희망텐트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그런 운동을 만들어낼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실제로 조직노동운동의 중심인 공공·금속의 대공장들이 투쟁전선에서 이탈한지 오래됐으며 사회적으로 중간이상의 생활조건을 누리고 있는 이들의 위치 상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대규모 공공사업장과 금속사업장 일부는 이미 어용노조가 고착화되고 있으며 민주노총 소속 금속대공장들은 올해도 무파업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조직노동운동의 언저리에 있는 소규모 투쟁사업장들은 여전히 노동운동 속에 고립되어 장기 투쟁에 지쳐가고 있다.
조직노동운동의 전반적인 해체와 더불어 전투적 조합주의 운동도 몰락도 뚜렷하다. 한때 노동운동의 일각을 장악했던 전투적 조합주의는 이제 현실운동이 아니라 현장 외곽으로 밀려난 활동가들의 이데올로기적 경향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럼에도 전투적 조합주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희망텐트촌’ 투쟁을 계기로 몇몇 전투적 노동·정치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꾸린 ‘쌍용차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은 처음에 Occupy 운동을 모델로 내세웠지만 실제 진행과정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노동자참가단의 활동은 쌍용차 투쟁을 주요 전선으로 제기하며 총파업을 주장하고 주요 대공장을 순회하는 등 여전히 조직노동운동의 언저리를 맴도는 활동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참가단이 주최한 집담회에 대공장 정규직의 참여는 미미했다.
물론 이런 활동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세력의 전투적 조합주의적 경향은 오히려 대중운동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노동자참가단이 주도한 집담회의 분위기나 금속대공장 중심의 순회사업 은 참가할 수 있는 대상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사회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다양한 운동의 흐름과 접속하지 못한 채 고립될 위험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장기투쟁 사업 중심으로 진행된 희망 뚜벅이 사업이 규모에서는 오십보백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일반인들도 참여하는 열려진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후퇴

반MB전선의 강화, 통합진보당의 등장으로 조직노동운동에 근거한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크게 뒷걸음질 치는 형국이 되었다. 통합진보당은 이제 노동자정당이라기 보다는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연합한 민주노총 관료들의 운동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진보신당은 정치적 불명확성에도 불구하고 촛불투쟁 이후 민주적 대중운동의 급진적 분파들에게 하나의 거점이 되고 있다. 출세욕에 눈먼 심상정, 노회찬의 이탈에도 독자적인 정당으로 남은 것은 어느 정도 평가할 만한 일이다. 이들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진보신당 당원의 이탈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수년 간 대중의식의 발전이 일정하게 반영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진보신당이 의회정당으로 존재하는 한 당장 총선에서 3% 득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중의 관심은 야권연대에 쏠려있는 현실에서 진보신당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투표에서는 야권연대 후보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진보신당이 3% 이상을 득표하여 당을 유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마나 만 여 명 규모의 당원을 유지하며 향후 대중투쟁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한 진보신당과는 달리 이보다 규모가 작은 정치단체들은 정치바람과 노동자운동의 붕괴 속에서 생존의 기로에 서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운동이 실패한 작년 하반기부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몇몇 소규모 단체들에서 총선이나 선거에 대한 대응이 제기되었다가 모두 내홍을 겪은 듯하다. 늘 하던 대로 대중투쟁으로 부르주아 선거를 돌파하자는 구호가 이제는 공문구라는 것이 뚜렷해진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가 있고 그것을 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과 조급함이 뭔가 다른 돌파구를 찾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표면적으로 이런 움직임들은 현장에서의 전투적 조합주의에 머물렀던 과거에 비해 한 걸음 전진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지난 몇 년 동안 이 단체들이 추진하던 통합운동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기반하고 있는 운동의 쇠락으로부터 나타나는 퇴행적 양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현실적 가능성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이런 논의들은 통합운동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들이 선거 정책으로 내놓고 있는 내용들이 아직도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요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이다.
조직노동운동이 포괄하는 영역에서 대중운동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거나 대중운동이 등장할 가능성의 희박한 현실에서 전투적 조합주의와 단절하지 못한 채 여기에 집착하는 태도는 현실적인 대중운동으로부터 고립된 폐쇄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으로 퇴락하거나 “전투적”이라는 포장지마저 떨어진 조합주의 운동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공산이 크다.

 

 

 

미래를 바라보며 대중운동과 접속해야

2009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는 대중투쟁은 더 큰 규모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전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난 몇 십 년 간 세계, 특히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조직노동운동이 제도적으로 포섭되어 혁명성을 잃어온 반면 불안정 노동자층은 꾸준히 늘고 그들의 불만 역시 증대하고 있다. 한국 역시 90년대 중반이후 제조업의 고용은 줄어들고 있으며 흔히 비정규직이라고 불리는 불안정 노동자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대공장 정규직이 아니라 조직되지 않고 노동자라는 정체성도 갖지 못한 채 무정형의 운동으로 자유주의 세력에 이끌리고 있는 이들이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본격적으로 실망하게 되는 때가 오면 민주적 대중운동에 눈뜬 이들은 다양한 요구를 걸고 직접 대중운동에 나설 수 있다. 이 속에서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층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요구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이들이 전면에 나설 때 이 운동은 보다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획득하고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사회경제적 재편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실천적으로 누가 대변하게 될 것인가가 미래의 운동을 좌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 요구 몇 개 내걸고 정치운동을 한다고 포장하는 방식으로는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대중의 불만을 조직할 수 없을 것이다. 정규직의 이해를 내세워서는 이미 정규직과 이해가 충돌하는 이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
이러한 투쟁의 전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비록 당분간은 부르주아 정치일정이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리겠지만 이들이 새로운 주체로 자각할 역사적 발걸음은 벌써 시작된 상황이다. 사회주의 운동은 지금부터라도 낡은 전투적 조합주의와 단절하고 이러한 새로운 주체들과 만나는 운동으로, 이들에게 다른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기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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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마초다!

-성적 엄숙주의와 성적 자유주의 틀에 갇힌 비키니 시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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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시작

 

2012년 1월 20일,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라는 문구가 포털사이트를 도배했다. 한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1인 시위한 사진이 ‘나와라 정봉주 국민운동본부’ 홈페이지에 올라간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일회성의 사건에 머물지 않았다. 이는 2012년 1월 초에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서 있었던 발언까지 소급해 들어갔다. 1월 초, 주진우 기자의 트위터에는 정봉주 접견민원서신에 “면회 희망 여배우 명단 작성하라! 욕정 해결 방안 발표하라! 국정운영 5대 계획 선포하라”고 쓴 내용이 올라왔다. 그 이후, 비키니 사진이 올라오기 전에 녹음되고 21일에 방송된 <나꼼수>에서 김용민 시사평론가는 그 유명한 “정 전(前)의원께서는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끄럽게도 성욕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라며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시위 사진이 올라온 이후(27일)에는 “가슴응원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하라!”는 주진우 기자가 쓴 접견서신의 문구가 트위터에 올라왔다.

이러한 <나꼼수> 패널들의 일련의 행보에 대해 공지영 작가의 사과 요구 트윗이 있었고 이에 진중권이 가세하면서 논쟁이 점화되었다.

 

 

다양한 주체, 논쟁에 뛰어들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페미니스트들과 몇몇 칼럼니스트들의 논란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들이 제출되었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역시 뜨거웠다. 이 사안에 대해 다양한 주체들의 다양한 주장이 충돌했다.

여러 주장들이 오가는 와중에도 가장 큰 쟁점은 ‘<나꼼수>가 비키니 시위와 관련하여 한 발언에 대해서 사과해야 하는가’였다.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나꼼수>의 발언이 성희롱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이 문제를 제기한 공지영은 불쾌감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고 진중권 역시 나꼼수 측의 사과를 권하는 트윗을 올렸다는 점에서 잘 드러났다. 이후 여러 칼럼니스트들과 일부 여성주의자들은 ‘이번 사건은 명백한 성희롱이며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젠더(성)와 섹슈얼리티에 대해선 성찰을 게을리 했다는 증거’라며 사과입장을 뒷받침했다.

이에 대해 <나꼼수>의 김어준은 “성희롱은 권력관계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 여성과 나꼼수 멤버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응수했고, 이에 대해 몇몇 칼럼니스트들은 <나꼼수>의 반응은 본능적인 반응일 뿐이라며 성희롱으로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성적 엄숙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봉주 팬카페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이하 ‘미권스’) 남성회원들은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한나라당 알바, 조중동 알바로 몰아가면서 구태의연한 진영논리를 다시 꺼내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여기까지는 기존의 성적 자유주의자들과의 논쟁과 크게 다를 점이 없었다. 이번 논란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것은 (물론 조중동의 <나꼼수> 물 먹이기의 힘도 무시할 수 없지만)인터넷에 삼국카페의 <나꼼수> 지지철회 성명서와 비키니 시위 당사자 중 한 명인 ‘불법미인’의 입장이 발표되면서부터였다. 이들의 논쟁을 통해 여성들 내부의 입장차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논란 초기에 ‘똥을 품은 배’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이번 사건을 통해 진보라는 정치의 장에서 여성들은 동등한 정치의 주체가 아닌 ‘치어리더’와 같이 여겨진다며 문제제기했다. 이에 대해 여성 회원이 많은 다음 삼국카페(‘쌍화차코코아’, ‘소울드레서’, ‘화장~발’이라는 이름의 다음 카페 3개가 연합한 곳으로 대표적인 여초 카페로 분류된다.)역시 여성을 동등한 동지로 여기지 않고 여성인권에 대해 무감각한 나꼼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이에 대해 비키니 시위에 참여한 ‘불법미인’은 <나꼼수>가 사과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주체적인 행위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나꼼수>가 사과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또한 미권스의 일부 여성들 역시 페미니스트들이 오히려 여성을 성적인 약자로만 고착화시키고 있으며 비키니 시위를 한 여성들을 소위 ‘골 빈 여성’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페미니즘 성적 엄숙주의로 곡해되다 - 기존 성희롱 담론은 어떻게 수용 되었나

 

이번 사건에서는 한편으로는 ‘성희롱’ 규정에 반대하는 각양각색의 레퍼토리가 반복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한 성별 대립으로 환원되지 않고 여성 내부의 입장차이가 격렬하게 논쟁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반성폭력 운동은 여성과 남성의 일반적인 권력관계 하에서 여성 일반이 느끼는 불쾌감을 주요 근거로 해 왔으며 대중적인 개념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러한 틀로는 일반화되지 않는 여성 내부의 목소리를 가시화시켰으며 지금까지의 반성폭력 운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고민지점을 던져 준다.

여성주의 이론이 하나의 운동으로,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반성폭력 운동을 통해서였다. 이러한 반성폭력 운동의 핵심적 성과는 성별권력관계의 가시화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성별권력관계의 가시화는 권력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주로 여성)의 목소리를 들리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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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쟁에서 <나꼼수>의 행동에 대해 공지영 작가가 자신의 불쾌함을 드러낼 수 있었던 점, 나꼼수의 행동이 ‘성희롱’으로서 잘못된 것이라는 제기가 이전보다 대중적인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점. 이는 모두 반성폭력 운동을 통해 성별권력관계가 가시화되고 그에 따른 성폭력 의미의 확장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나꼼수>가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도 힘을 얻었다. 심지어 진중권 역시 <나꼼수>가 사과해야 한다는 트윗을 남겼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비키니 시위’를 둘러싼 논란은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에서 제기했던 권력관계가 현재 사회에서는 매우 앙상하게 이해되고 있다는 것 역시 보여주었다. 이번 사건에서 쟁점은 ‘성희롱했으니 사과해라’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도덕적인 행위로서 성희롱, 그리고 사과하면 사건이 마무리되는 도식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심지어 진중권은 <나꼼수>에게 “여성들은 사과 한마디에 다시 <나꼼수>를 사랑해줄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나꼼수>가 한 층 더 멋있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기회로 만드세요”라는 트윗을 남겼다. 하지만 단순히 김어준이 사과를 하고 <나꼼수>를 사랑한다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이번 논란에서는 사과 여부만 이슈가 되고 <나꼼수>의 발언이 나오게 된 근본적이 배경인 가부장적인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면화되지 못했다. 이러한 분석이 부재한 상황에서 ‘여성은 권력관계에서 약자다’라는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만 남았다. 이는 김어준의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서 민감할 권리가 있다.”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치 여성주의에서 제기해 온 것이 여성이 약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함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

여성이 성적 약자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불만은 <나꼼수>를 지지하는 여성들의 언급에서 드러난다. 여성주의가 오히려 여성을 피해자화 하고 행위의 주체로서의 여성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을 성적인 행위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여성주의가 오히려 성적 엄숙주의에 빠져있다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여성운동의 성과인 기존의 성별권력관계에 대한 가시화는 약자의 문제제기, ‘성희롱’으로 규정하기, 그에 따른 사과 등으로 협소하게 이해되었고 오히려 성적인 표현을 억제하는 성적 보수주의로 곡해되었다.

 

 

성적 자유주의자가 원하는 자유, 이성애 남성의 자유일 뿐

 

여성들 내부에서 ‘성희롱’ 규정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김어준은 이를 등에 업고 자신의 자유주의적 입장을 강화하고 있다. <나꼼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번 비키니 시위에 대한 문제제기 전반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문제제기하는 여성주의자들이 성적 엄숙주의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성에 대해서 쉬쉬하는 것이 성을 오히려 더 억압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며 개개인이 자신의 성적인 매력과 성적 욕구를 긍정할 것을 이야기한다. 성적 욕구의 긍정, 좋은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서 세밀하게 보아야 할 것은 성적 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성’이라는 것, 그리고 ‘성’적인 표현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들은 모든 ‘성’을 하나의 담론으로만 치환시킬 뿐 그 내부의 차이에 대해서는 보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어떤 성욕이 어떻게 드러나는지의 문제다. 성적 자유주의자들은 성적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성적 욕망이 자연스럽다면 왜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성적 욕망이 있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성적 욕망들이 있는가? 예를 들어 성소수자의 욕망은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통용되지 못한다. 등장하더라고 지나친 희화화의 코드로 존재할 뿐이다.

결국 그들이 드러내고 싶고 드러낼 수 있는 성적인 욕망은 이성애자 남성의 욕망에 한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이성을 보고 반응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를 그들은 할 수 있다. 그것이 이성애자 중년 남성이 가지는 권력이다. 그들은 자신의 발언이 그들의 지위를 재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스스로는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성적 표현을 가로막는 것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들이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하는 성적 욕망은 매우 다층적으로 위계질서화 되어 있다. 여성과 남성, 동성애와 이성애, 트랜스 젠더, 장애인과 비장애인, 아동(혹은 노인)과 성인 등 다양한 주체의 성적 욕망은 다양성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성욕은 정상으로 여겨지며 그에서 벗어나는 욕망에는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이번 비키니 시위로 촉발된 일련의 사건에서는 ‘수영복 분과위원회를 만든다’, ‘정봉주를 면회할 여배우 리스트를 작성하라’, ‘성욕감퇴가 되었다’, ‘여성의 가슴을 보고 대박, 코피 조심’ 등 <나꼼수> 진행자들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이들의 ‘성적 욕구’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그 ‘자연스러운 욕망’의 표현은 여성을 같은 동지가 아닌 성적인 위로를 해주는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을 반영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미권스 게시판 남성회원들은 문제제기하는 여성들에 대해 ‘몸보시해도 모자랄 판에’ 문제제기한다며 불만을 표했다. 이들의 인식 속에 여성은 열심히 싸우는(?) 남성을 위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존재 이상이 아닌 것이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기에 <나꼼수>의 비키니 시위를 둘러싼 반응은 표현의 자유의 문제로 단순화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단순하게 ‘표현의 자유’로 묶고 있는 말들 내부에 어떠한 권력관계가 녹아들어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번 비키니 시위는 남성과 여성 간의 권력관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몸을 둘러싼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지점을 던져 주었다. 인터넷에서 <나꼼수>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가슴 작은 오크녀 열폭(열등감 폭발)’으로 치부하는 댓글들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의 반응을 통해 이번 비키니 시위가 (김어준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생물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번 비키니 시위는 김어준 씨가 말한 대로 현재 사회에서 소위 정상적(혹은 이상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몸을 드러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 지점은 같은 노출을 시위의 수단으로 사용한 비키니 시위와 슬럿워크 사이의 중요한 차별지점이 된다. 작년 벌어진 슬럿워크는 다양한 몸을 드러내면서 기존의 ‘정상성’에 대한 전복을 꾀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정상적인 몸을 이용한 시위가 아니라 기존의 ‘정상성’을 넘어서려는 시도였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섹슈얼리티 내 위계질서에 대한 논쟁과 고민이 필요하다

 

비키니 시위를 둘러싼 논쟁구도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고민지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논쟁은 한 편으로는 성별권력관계가 ‘불쾌감’의 문제와 ‘사과’의 문제로 협소화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다른 한 편으로는 ‘사과’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성적자유주의를 대안인 것처럼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남성과 여성 간의, 그리고 여성 간에 존재하는 위계질서를 은폐하고 재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도 보여준다.

이번논란은 도덕성과 사과의 문제로 협소화되어 있는 성폭력의 의미를 넘어 우리 사회 내 성적 위계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불쾌감에 대한 언급에서 머무른다면 협소화된 성폭력 의미규정을 넘어서기 어렵다. 불쾌감을 느꼈다면 어느 지점에서 느꼈는지,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사회에 섹슈얼리티 내 위계질서의 어떠한 측면을 반영한 것인지 논쟁되고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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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정치] 정당과 SNS의 운명은?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2/03/07 10:23
  • 수정일
    2012/03/07 10:2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향한 각 정당의 행보가 가속화되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정책과 공약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으며, 총선과 대선에서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 위한 계파 간 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올 한 해 내내 각종 정책과 공약의 현실 가능성에 대한 검증여부, 정치적 재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세력들의 비리사건들이 정치 뉴스로 등장하며 대중들의 귀를 따갑게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이슈보다 ‘정당정치의 위기’와 ‘SNS의 위력’이 계속 중심적인 화두로 오르내릴 것이다. SNS의 위력은 지난 2011년 홍대 시설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시작되어 한진중공업 투쟁에서의 희망버스를 거치며 절정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고통, 제도권 내 기존 정치 세력들의 무능력에 대한 불만이 SNS를 매개로 하여 사회 전반으로 깊숙이 퍼지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SNS를 매개로 증폭되고 있는 대중들의 불만을 흡수하기 위해 정당정치의 쇄신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쇄신은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개혁과 더불어 정책적인 측면에서의 전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구책들은 이미 곳곳에서 여러 가지 한계지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당 구조의 개혁, 그리고 당의 강화


‘선관위 디도스 공격’으로 정신 못 차리고 있던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을 혼수상태에 빠트린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은 당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당 구조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구 한나라당 쇄신파는 중앙당 체제를 전국위원회로 바꾸고,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폐지하여 국회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당내 기득권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기존의 중앙당 체제와 당 대표, 최고위원이 당의 중심 권력층이 되어 당 전체를 부정부패로 몰고 간 주원인이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당 내 권력을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만드는 쓸데없는 제도들을 없애버리고, 전국위원회 체제로 개편하여 중앙 집중화된 권력을 분산시킨 뒤 원내대표만 남겨둔다면 정당의 본래 기능인 국회 내 입법 활동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된 논리이다.

지난 1월15일, 지도부 경선 모바일 투표로 흥행돌풍을 일으킨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역시 당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두고 한창 논의를 진행 중이다.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서 투표에 참여한 당원들의 수는 12만 명이었던 것에 비해 당원이 아닌데 투표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의 수는 60만여 명에 달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기존의 오프라인 방식의 입당절차 없이 온라인을 통한 입당만으로도 당원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구조개혁 방안이나 민주당의 온라인 당원 논의가 시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현재 양당의 기반이 당원에게 있지 않으며, 당과 당원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당의 기반이 당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은 당원이 당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당과 당원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면 당의 대표를 뽑는 데 있어서 ‘돈’이 끼어들 여지와 틈이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 역시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기존 양당의 당원들은 이러한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구 한나라당 쇄신파는 중앙당 체제를 전국위원회체제로 개편하는 방향의 미국식 정당구조가 지금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미국식 정당구조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정당들 또한 당원들의 힘이 아니라 로비단체들의 후원금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이 지금 이 시점에서 터져 나오게 된 근본적 원인은 부르주아 제도권 내 정당의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곪을 대로 곪아있었기 때문이다. 당원의 이해가 당에 투명하게 관철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않고 단순히 몇몇 제도만 부분적으로 손질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SNS?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당을 강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안으로써 SNS 이용자들을 당 활동에 끌어들이기 위한 몇 가지 시도들을 취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4.11 총선을 위한 공천 심사기준에 ‘SNS 역량지수’를 포함시켜 SNS를 적극 활용하는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겠다는 방침을 마련했다.

민주당은 기존의 비례대표 후보군에 25~35세 사이의 청년 비례대표를 추가하여 당선안정권에 해당하는 순번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청년 비례대표에 지원한 후보들을 일정 기간 동안 합숙시킨 뒤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 K'의 방식으로 오디션을 진행하고 현장투표, 모바일 투표, 인터넷 투표 등의 방법으로 4명의 최종 후보자를 뽑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양당의 이러한 SNS 활용방안은 애초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트위터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던 4.11 총선 후보 지원자들이 갑자기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며칠 사이에 수십, 수백 개의 멘션들을 쏟아 내거나 심지어 팔로어 수와 팔로잉 수, 트윗 수, 리트윗 수, 리스트된 수, 멘션량이 많은 트위터 계정을 거래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속출하고 있다.

민주당의 ‘슈퍼스타K' 방식의 청년비례대표 선출 과정 역시 순조롭지 않았다.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지도부 경선과는 대조적으로 1차 마감기한을 이틀 앞둔 지난 1월11일, 고작 15명의 지원자만 등록을 하여 민주당은 마감기한을 28일까지로 연장했다. 하지만 마감기한 연장에도 불구하고 1천여 명 정도가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처음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원자 수는 400여명에 그쳤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청년 비례대표의 나이 제한을 40세까지로 상향 조정해야한다는 의견이 분분했고, 지난 2월9일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116명의 명단이 발표된 이후에는 심사기준을 공개하라는 탈락자들의 요구가 거세게 빗발쳤다.

이처럼 SNS 활용을 둘러싸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 여러 가지 웃기지도 않은 해프닝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자신의 당리당략만을 위해 기계적으로 SNS 여론을 수용하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SNS를 이용하고 있는 대중들이 정치적인 표현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활동방식과 기존의 제도권 내 정당정치의 활동방식이 동일하다고 말할 순 없다.

SNS 이용자들의 정치활동을 기존 정당정치 영역에서 온전히 포괄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보다 더 정치적으로 집결하여 제도정치 영역에 등장하게 된다면,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에 통합되는 방식이 아니라 (남한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해 9월, 독일의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8.9%의 득표율로 기존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시의회 진입에 성공한 ‘독일 해적당(Piratenpartei Deutschland)’처럼 기존 정당의 형태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그룹으로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좀 더 크다고 하겠다.
 

 

독일 해적당(Piratenpartei Deutschland)은 2006년 9월10일 베를린에서 설립된 독일의 정당이다. 독일 해적당은 스웨덴 해적당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정보화 사회 정당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당 명칭에 포함된 “해적”은 음반과 영화산업단체가 저작권법 위반을 “해적판”이라 칭한 것을 비꼬기 위해 사용됐다. 그렇지만 해적당은 불법복제의 확대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용도의 복제 권리의 보장을 확대하고, 개인 상용자간 파일공유의 비범죄화만을 추구한다.
이들은 지난 9월18일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8.9%의 득표율로 15명의 시의원을 배출했다. 그리고 이미 전국적으로 1만4000명의 당원이 있으며 당원의 평균나이는 29세라고 한다. 이들의 지지층은 35세 미만의 인터넷 사용자가 대부분이다.
독일 해적당은 주로 인터넷 상에서의 민주주의 확대를 주장하며 출발했고, 기존의 다른 정당들이 가지고 있는 형태의 강령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복지정책의 강화 등을 외치며 정치․경제적인 현안에 대해서도 발언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제도 정당들의 무능력

SNS를 이용하여 정치적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대중들의 힘은 남한의 거대 양당을 압박하여 이들의 변화를 견인해내고는 있으나 정치적 의식과 지향이 모호하고 불분명하여 아직까지 하나의 조직, 하나의 목소리로 모이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이 SNS를 통해 각자 자기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표출하고 있는 이유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와 청년실업률의 고공행진으로 인한 고통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이 거대화되고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국민국가 내에서 사회구성원 다수의 합의나 여론이 정치 제도 내에서 반영될 길은 갈수록 불가능해지고 있다. 기존의 정당정치 구조로는 대중들의 불만과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고 때로는 논의조차 봉쇄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부르주아 정당들의 운영이 일반 대중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당원과도 괴리되고 있다는 현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SNS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선거나 투표와 같은 자본주의 정치구조의 고유한 형태를 넘어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사회구성원들의 불만을 집단화시키고 때로는 실물적인 투쟁으로 압박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누적되고 있는 대중들의 불만과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복지정책을 더욱 확대하여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현재의 사회문제들에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새누리당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정책을 통해 각 개인이 처한 상황과 사정에 따라 필요로 하는 시기에 적절히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민주통합당은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하며 모든 국민이 복지정책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겉보기에 양당이 이야기하고 있는 복지 정책의 틀이 매우 달라 보일 수 있다. 새누리당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와는 다르게 일부 가난한 개인에게 국가에서 시혜를 베풀어주는 정도의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든 새누리당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든 구체적으로 이들이 내어놓는 현실적 정책을 잘 들여다보면 사실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양당의 복지정책이 비슷비슷한 이유는 실제로 양당의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새누리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나 민주당의 유종일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이 사실 당적만 다를 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등과 함께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지속적으로 동일하게 주장해 온 일군의 학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복지정책의 확대나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큰 틀에서 ‘케인스주의 국가’에 대한 지향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 국가는 이미 70년대 중반부터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2008년 이후 벌어지고 있는 경제적 혼란들은 재정적자와 통화정책을 주요 무기로 정부가 경제를 관리하는 케인스주의 모델이 사실상 파산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지금은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의 늪으로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는 시기이다. 고령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세계 경제는 당분간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 지출이 필요한 정책들을 펼치는 것은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기존 정당들이 양극화의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 복지국가가 경제적으로, 사회구조적으로 실현가능한 것인지 그 가능성을 차치한다하더라도 또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바로 ‘증세’의 문제이다. 증세 없는 복지국가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경우, 그 누구도 증세의 문제, 복지정책의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말을 꺼내려하지 않고 있다. 실질임금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을 몇 년째 밑돌고 있는 상황 속에서 증세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온다면 대중들의 반발이 빗발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출구 없는 비상구 속에서 대다수의 대중들은 반MB와 야권연대에 기대어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들의 욕구와 의사소통수단의 진화가 맞물려 정치활동의 형태 또한 보다 더 다양화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정당들은 이 같은 대중들의 정치적 욕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기존정당들과 SNS로 대표되는 대중들의 정치활동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계속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경제적 위기가 짧은 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고 장기침체로 이어질 경우,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책은 점점 더 같은 방향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들이 SNS로 기존 정당들을 압박하는 일이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제도권 정치 영역 속에서 해결책을 찾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지금 이 시점에서 양당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이든, 12월 대선에서 집권당이 민주당으로 바뀐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경제적 위기를 현재의 정치적 제도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인 것이다.

SNS는 전 세계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의 정치적 활동과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있다. SNS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파괴력은 남한에서뿐만 아니라 아랍 민주화 투쟁, 미국의 Occupy 운동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지금의 경제적 위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넓게 퍼져있는 SNS 이용자들의 정치적 의식과 불만이 보다 예각화되고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김재영 (hedwi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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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노동] 복수노조 시행, 준비된 자본과 비호하는 고용노동부에 속수무책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2/03/07 09:36
  • 수정일
    2012/03/07 09:42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실질적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조, 소수노조들 존폐 기로에 설 것이 예상돼

2011년7월1일부로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자들의 단결권이 제한 없이 보장되고 「1사 1교섭 원칙」이 확립됨으로써’ 노사관계가 원칙을 지키며 균형과 조화 속에 안정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그 의의를 설명한다. 이러한 의의를 다하기 위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도입하였다고 한다. 단결권을 무한히 보장한다는 엉성한 법률대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꼼꼼하게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제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과 구체 사례를 통해 복수노조의 실질적 후과를 살펴보자.
 

9일 고용노동부의 ‘복수노조 설립현황’에 따르면 복수노조 시행 이후 1월말까지 676개 노조가 신설되었다. 2010년까지만 해도 매년 150~200개 정도씩 줄어드는 추세였던 것과 비교해볼 때 복수노조 시행의 효과는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생노조 대부분이 기존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조합원의 일부가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는 분할형 복수노조이며 대부분의 경우 그 규모가 작다. 따라서 신생노조의 설립이 전체 조합원 수나 노조 조직률 증가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조합원 규모
(전사원대비)

총계

10% 미만

10~30%미만

30~50% 미만

50% 이상

기타
(초기업노조)

노조수

676

267
(39.5%)

147
(21.7%)

90
(13.3%)

132
(19.5%)

40
(5.9%)


676개 신설노조 가운데 절반이 넘는 복수노조가 양대노총 사업장에서 설립되었는데 한국노총 사업장이 189개,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 165개로 나타났다. 수치로 보면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에서 복수노조 설립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버스․택시 등의 운수업종을 제외하면 민주노총 사업장에서의 복수노조 설립이 더 많다. 이렇게 설립된 복수노조의 상급단체 가입 현황을 보면 민주노총에 가입한 노조는 3.8%(26개)이고 한국노총에 가입한 노조는 10.7%(72개), 국민노총 1개일 뿐 대부분의 노조는 상급단체를 선택하지 않았다.


또한 민주노총 소속일수록 신설된 노조가 조합원의 과반수를 차지한 제1노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노총에서 분화된 노조의 경우 52.1%(86개)가 과반수 노조 지위를 획득한 반면 한국노총 분화 노조의 경우 23.3%(44개)가 과반수 노조였다. 결국 복수노조 시행은 노사협조적인 또는 사측에 존속된 노조를 확산시키는 기제로 되고 있다. 2011년 9월 현재 한국노총 사업장에서 신설된 복수노조 중 28.4%가 사측이 직접 개입하여 설립하였다는 자료가 있을 정도로 복수노조는 사측의 노조 탄압과 구조조정의 수단이 되고 있다.


자본의 탄압 기제가 된 노동법개정
2010년 7월 타임오프제, 2011년 7월 복수노조·교섭창구단일화

 

금속노조 사업장의 경우 2011년 10월30일 현재 12개의 복수노조가 설립되었다. 이 중 8개 사업장은 지속적으로 노사간 갈등을 겪어왔던 투쟁사업장, 혹은 이로부터 탈퇴자나 해고자가 적지 않게 발생했던 사업장들이다. 그 외 4개 사업장의 경우도 사측의 직간접적인 주도 내지 비호아래 신규노조가 설립되었다. 결과적으로 복수노조 설립 이후 실질적인 파업권을 행사해왔던 투쟁적인 노조들이 존립하는 곳에서 복수노조는 설립되었다. 복수노조가 사측의 구조조정 실행 및 노조 탄압의 기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업장이 바로 금속노조 구미 KEC지회와 충남지부 유성기업지회이다.


KEC지회 유성기업 둘 다 자본의 치밀한 계획 하에 노동법개정을 적극 활용하여 노조탄압과 구조조정을 이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업장 모두 노동법개정 이전인 2009년, 2010년경부터 사측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하였다. KEC는 2011년 국정감사에서 노조탄압 및 복수노조 관련 회사측의 시나리오와 이 과정에 노동부를 비롯한 관계 기관의 개입 등이 드러난 바 있으며, 유성기업의 경우 직접적인 노조파괴문건과 관리자 수첩에 적힌 내용을 통해 사측이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어용노조를 만들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를 계획적으로 했음이 드러났다.

 

△ KEC구미공장 공권력 투입반대 대구경북권 노동자 결의대회

 

두 사업장 모두 사측은 의도적인 교섭 해태 행위를 통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사측은 즉각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KEC와 유성은 과정에서의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양쪽 모두 복귀자들이 발생하자 사측은 관리자들을 통해 서약서 작성, 노조 탈퇴 등을 강요하여 복수노조를 건설하였다. 이후 사측은 노골적으로 기존 노조를 차별하면서 기존 노조에 잔류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시켰다.

KEC는 KEC지회 조합원 75명을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시켰으며 유성기업은 유성기업지회 전․현직 간부를 포함하여 25명을 징계해고 시키고 나머지 81명에 대해선 출근정지 등의 징계를 내렸다.

사측은 이미 법 시행 이전부터 치밀한 준비를 통해 노조 탄압의 계획을 세워놓았고 법 개정에 맞춰 이를 착착 진행시켰다. 자본은 이를 통해 파업권을 행사할 수 있는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복수노조 설립을 통한 교섭창구단일화에 대한 주도권을 쥐면서 노조 간 갈등 구조를 통해 구조조정 등을 통한 비용절감을 손쉽게 밀어붙이고 있다. 여기엔 사측에 유리한 판결을 통해 기존 지회의 교섭권을 박탈시킨 지노위의 협조도 한몫했다. 결국 노동법개정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교섭권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사측에 부여함으로써 교섭권과 행동권을 제약시키고 노동자들 간의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기제로 활용되고 있다. 반면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의도를 간과하며 투쟁하는 사업장에 대한 지원과 공동투쟁을 방기하면서 투쟁의 대오를 잃어가고 있다.
 

복수노조 시행, 노사협조적 경향 강화시켜


노동조합 내에는 다양한 경향들이 정파의 형태로 상호간 경쟁관계로 존재한다. 자본은 그 중 노사협조적인 경향을 지닌 정파들이 노조 집행부를 잡는 것을 지원 사격해오면서 안정적 노사관계를 꾀했다. 하지만 복수노조 시행 이후 자본은 노사협조적 경향을 지닌 부분을 포섭해 복수노조를 설립하고 관리자들을 통한 인사권 등을 통해 다수를 점하는 것을 통해 기존 노조를 소수노조로 만들어 교섭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경남지부 센트랄 지회와 발전산업노동조합(소산별)에서 유사 사례를 볼 수 있다. 센트랄 지회는 2011년 한국노총으로 전환할 시 일정금액을 투자하겠다는 부회장의 약속을 바탕으로 일부 조합원들이 상급단체변경 총회를 열었지만 부결되었다. 그 후 민주노총 탈퇴총회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기존 지회에서 제명된 후 기업별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사측의 비호 아래 조합원의 과반수이상을 확보함으로써 다수 노조가 되었다. 발전산업노동조합의 경우 2009년부터 사측의 단협 해지 시도가 있었고 2010년 사측이 단협 해지 통보를 하면서 산별노조를 공격해왔다. 다른 한편으론 복수노조 시행 이전 발전 5개사에 모두 기업별 노조를 건설하고 인사권을 활용해 조합원들을 기존노조에서 탈퇴시켜 이미 2개 노조(동서발전, 화동화력발전)가 조합원의 다수를 확보하고 있다. 화동화력발전의 경우 심지어 기존 지부장이 스스로 사퇴한 이후 기업별노조 조직을 주도했다.


두 사업장 모두 복수노조 시행 이전 기존 노조가 산별노조로 존재하였기에 복수노조 논란을 피해 기업별 노조로 어용노조를 세우면서 복수노조 시행 이전에 노조에 대한 공격에 들어갔다. 법 시행 후 교섭창구단일화 등의 제도를 활용하여 기존 노조의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어용노조들은 기존 노조들의 단체 행동권의 위력을 삭감시키는데 활용되고 있다.


대규모 사업장보단 중소영세사업장에서의 후과 노려
복수노조, 중소영세사업장의 비용 절감 기제로 활용

 

△ 2010년 노동법개악 국면에서 금속산별은 노조전임자 활동 및 산별교섭권 보장 등의 자기 요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복수노조 사례들에서 보듯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금속이든 공공이든 이미 그들의 성향 자체가 노사 협조적이기에 굳이 분란을 일으킬 복수노조가 신설되지 않는다. 당장은 복수노조 설립 시 발생할 경제적 이윤보다는 교섭비용이 높다는 판단을 내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속이나 공공처럼 교섭 체계가 안정된 경우엔 처음 교섭안의 차이가 있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서로 한발씩 물러나며 산하 단위의 투쟁이 존재할지라도 눈감으며 교섭을 길게 끌지 않는다. 이런 사업장들, 특히 완성차대공장의 경우 교섭창구단일화가 오히려 복수노조 난립으로 인한 교섭체계의 혼란을 막고 노조관료들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기제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다.

현대자동차만 해도 2009년부터 무파업 신화를 이어오고 있으며, 기아자동차도 2010부터 2년 째 무파업사업장이 되고 있다. 완성차대공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금속노조의 경우 거리로 밀려난 산하 사업장이 전국적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단협 유효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안을 먼저 내놓으며 교섭비용 절감을 통한 산별협약 유지의 우회로로 가고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업장의 경우 복수노조로 인한 탄압을 피해갈 수 있는 반면 사측의 조합원 장악력이 강하고 영세한 수많은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회사의 존폐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직결되는 상황에서 사측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보다 상대적으로 중소영세사업장의 비율이 높은 한국노총에서의 복수노조 설립 상황을 보았을 때 복수노조가 노조의 무력화, 무노조로의 전환을 향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노총 노조들의 경우 사측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심지어 사측의 이해에 따라 버스나 택시의 경우 파업까지 할 정도로 사측에 가까운 노조들이었다. 그런 노조들이 존재하는 곳까지 사측에 의해 신설노조가 세워지고 기존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거나 상여금50% 삭감 등의 하락된 단협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비용 절감을 위해 입안의 혀처럼 구는 한국노총일지라도 노조를 무력화하고 궁극적으로 무노조 경영으로 전화하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자본의 노조 탄압 기재로 활용되는 복수노조
첫 임단협 체결에서 소수노조 존폐 갈려

 

대규모 사업장에선 복수노조의 후과가 존재하지 않고 실질적인 파업권을 행사해온 노조들이나 중소영세사업장의 노조들에서 노조 탄압과 무력화,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복수노조 및 창구단일화가 쓰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산별노조들은 투쟁의 과정에서 공장 밖으로 밀려나온 노조나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노조들에 대한 대응과 투쟁의 확산 및 사회화에 힘쓰기 보다는 일단 4월 총선까지는 4대 노동의제를 이슈화하며 총선에 집중하는 흐름이다.

민주노총 표현에 의하면 총선을 승리하고 7․8․9월에 가서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산별현장과 10대 법안통과를 이루고 10월부터는 대선승리를 위한 정치투쟁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정당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시키려다보니 자연스레 산하 노조의 현실적인 투쟁 지원 등은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다. 중소영세사업장의 투쟁, 장기투쟁사업장들의 문제이기에 겉으로만 투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산하 노조들은 기다릴 수만은 없다. 이들에게는 아예 7·8·9월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단협 유효기간 만료 3개월부터 교섭을 요구하고 교섭창구 단일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교섭을 시작하려면 요구한 날로부터 31일이 걸린다. 복수노조가 있다면 과정은 더 복잡하고 2개월 이상 걸릴 것이다. 그런데 신설된 복수노조로부터 과반수 노조의 자리를 빼앗겼거나 현재 소수노조라면, 특히 10%미만의 조합원을 조직하고 있다면 이들에겐 임단투가 없다.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노조는 불법파업을 하며 공장 밖으로 밀려날지 다른 복수노조와 회사가 합의한 단협을 받아들이고 사실상 무기력한 노조로 남을지에 대한 선택권만 주어질 수도 있다. 무기력한 노조가 된다면 종국엔 조합원들을 빼앗기고 문패를 내려야 될 수도 있다.
 

4·5·6월 자본의 노조 파괴 기제로 활용되고 있는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에 대한 사회적 의제화에 나서고 투쟁하는 노조를 방어해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투쟁하는 단위와 시민단체들에서 희망 발걸음에 이어 희망 광장을 기획하고 있는 가운데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등 여러 가지 요구들의 쟁점화가 시도되고 있다. 이 속에서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와 이에 의한 노조 파괴 역시 하나의 사회 쟁점으로 이야기되고 대중적 운동으로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엄호될 필요가 있다.
 

김지현 (jihyu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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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한반도] 김정일 사망 이후 시험대에 오른 북한

  • 분류
    국제
  • 등록일
    2012/02/20 14:36
  • 수정일
    2012/02/20 14:39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2012년 한반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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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치질서에서는 그동안 2012년을 주목해왔다. 사상 유례가 없는 동시적 권력교체기를 맞는 까닭이다. 올해는 일본을 제외하고 6자회담 당사국 모두 대선과 지도부 개편 등 주요한 정치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당초 대북정책의 전환 또는 새로운 모색은 2013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점쳐졌다.

그런데 2011년 12월17일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은 북한의 존재를 다시금 환기시키며, 대북정책의 재검토를 당면과제로 만들어놓았다. 특히 남한 대선에서 ‘김정일 이후’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설정 여부는 핵심쟁점으로 떠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6자회담 당사국 가운데 권력전환이 예상치도 못한 북한에서 제일 먼저 이뤄짐에 따라 올해 북한변수가 미칠 영향력은 그만큼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등장

지난해 12월19일 북한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일제히 특별방송을 통해 김정일의 사망소식을 전했다. 북한발(發) 초대형 변수의 등장으로 순간 대북리스크는 전면에 떠올랐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재빠르게 ‘김정은 시대’를 선포하며 김정은 체제의 제도화와 정당화에 나섰다. 권력공백의 이상 징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2월28일 영결식을 끝으로 ‘김정일 시대’가 공식 마감되자 김정은은 12월30일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고, 이후 김정은의 우상화와 현지시찰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경애하는 어버이’, ‘살아있는 태양’ 등 호칭만 보더라도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반열에 올라서 있다.

이러한 빠른 권력이양은 김정은 체제의 리더십이 확고해서라기보다는 북한의 수령제로 집약되는 권력체계의 작동 때문으로 판단된다. 소위 혁명의 대(代)를 이어 수령의 자리에 오르는 권력세습은 지난 1960~70년대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 또는 유일지도체계의 확립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등장했다. 김정일 자신이 1974년 후계자로 발돋움하며 이러한 영도의 계승체계를 완결 지었으며, 그 결과 이른바 ‘백두의 혈통’을 이어받은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또한 가능하게 됐던 것이다.

더구나 김정일은 지난 2008년 건강악화 이후 후계체제 확립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를 정당화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에 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은 우선 김정은 주변에 소장파 군부실세부터 배치한 다음, 2009년 4월 헌법개정을 통해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함께 지도지침으로 올려놓았고, 같은 해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는 핵보유를 전제로 한 선군정치의 제도화를 꾀한 것으로 향후 김정은 체제에 대해 핵보유국이라는 대외위상 속에서 군부의 지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였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처럼 이러한 사전 정지작업을 벌인 끝에야 김정일은 2010년 9월 무려 44년 만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하며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 등장의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수령제와 같은 국가권력의 이데올로기나 생전에 김정일이 기획했던 후계구축 작업보다는 북한 권력집단 내부의 사활을 건 공통된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김정일의 동생인 김경희가 “아버지(김일성) 때부터 이어져온 조선을 다른 성씨에게 줄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북한의 세습체제는 이미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김일성 가계 이외의 인물이 김정은을 제치고 ‘유일적 영도자’의 자리에 오를 명분도 힘도 없는 게 사실이다. 자칫하다간 권력투쟁의 과열로 체제 자체의 균열이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북한의 지배층이 예전처럼 김정은에게 당장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선택을 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이런 까닭에 김정은 체제는 당분간 김정일 추모분위기와 ‘강성대국 원년’ 행사의 절정인 오는 4월15일 태양절(김일성 출생 100주년)을 경과하며 사실상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으로 체제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북한을 둘러싼 주변국 모두 북한체제의 안정을 바라는 대외여건에서 김정은 체제가 단기간에 급격한 위기에 처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을 마주한 미국과 중국의 동상이몽
 



김정일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미국과 중국은 한 목소리로 북한의 안정적인 권력교체를 희망했다. 먼저 중국은 김정은 체제를 가장 빨리 인정하며 후진타오를 비롯한 최고위 지도부 전원이 북경주재 북한대사관을 방문해 조문하는 파격을 보였다. 이에 질세라 미국 역시 김정은 체제를 “새로운 리더십”이라 표현하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대북 감시태세(워치콘)와 방어태세(데프콘)를 평시상태로 유지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미중 양국이 쌍끌이가 되어 김정은 체제를 신속하게 받아들인 것은 북한의 새로운 체제 등장과 이에 따른 동북아 안보질서의 변화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2012년에는 양국 모두 권력교체기를 맞아 한반도의 안정적인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함에 있어 한반도의 질서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서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의 경우 김정일 사망이라는 돌발변수를 오히려 동북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모든 외교채널을 총동원해 한미일을 상대로 상주노릇을 자처하며 현존하는 대북 영향력을 대내외로 과시했다. 또한 북한의 권력교체로 동북아의 안보가치가 급부상한 시점에서 남한을 압박해 그동안 중국이 소원하던 한중FTA ‘협상개시’를 얻어내기도 했다. 친미국가인 남한을 FTA로 견인해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전략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다. 더 나아가 중국은 한중일FTA까지 성사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 동북아 질서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태도다. 물론 미국은 현재 막대한 재정적자 탓에 오랜 군사전략인 ‘두개의 전쟁 동시수행’까지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은 지난해 ‘아시아 복귀’를 선언하며 아시아태평양 중시전략만큼은 강하게 고수하고 있다. 이는 곧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미국의 대중견제는 오바마 정권 들어서도 강경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일단 미국은 김정일 사망이라는 변수를 맞아 북한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추며 남한, 일본 등 동북아 친미국가와의 공조를 재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안보경쟁을 놓고 북한은 대외여건이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판단이다.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될수록 북한 입장에서는 되레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실리를 더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 국면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또한 북한은 미국과 중국이 외견상 대립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통제불능 상태로 치닫지는 않길 바라며, 북핵문제를 포함해 한반도의 상황관리를 위해선 북한과의 대화 테이블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분간 북한체제의 안정화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김정은 체제지만 대외관계에서 특히 미국과 직접대화 및 협상의 가능성은 김정일 사망 이전처럼 이어가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긴밀한 관계의 지속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지만 그럴수록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 또한 경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어느 일방에 치우지지 않는 이른바 시계추 외교를 해왔다. 문제는 경색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남북관계다.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그동안 잠잠했던 북한변수는 올해 12월 남한 대선에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 딜레마

김정일 사망 직후 이명박 정권 또한 북한의 권력교체에 따른 불확실성의 확대를 가장 우려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선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한다는 비판이 많지만 사실 이명박의 대북노선은 전통적인 우익세력의 대북봉쇄론과는 거리가 있었다. 정권출범 이전부터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의 ‘비핵개방 3000’은 북한에 핵포기의 대가로 경제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점에서 보수우파보다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과 유사한 측면이 더 많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천안함 사태 이후 이명박의 대북 실용주의 노선은 그 입지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남한 내 보수진영의 대북 강경몰이는 물론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이를 대중견제 차원에서 동북아의 군사적 패권을 강화하는 계기로 적극 활용했다. 친미주의를 노골화한 이명박 정권에 대북 강경노선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명박은 집권 후반기 레임덕에 봉착하면서 정권의 새로운 돌파구로 대북정책의 유연화를 꾸준히 시도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발목을 잡은 건 바로 북한의 천안함 사과문제였다. 게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재개된 북미대화로 이른바 통미봉남이 현실화된 가운데 꽉 막힌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기존의 대북 강경주의에서 선회할 수 있고, 또한 천안함 사태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명분이 필요했다. 그런데 갑자기 김정일 사망이라는 뜻밖의 대형변수가 발생하자, 이명박은 이를 곧바로 정책전환의 기회로 삼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명박 정권은 과거 김영삼 정권과 달리 사실상 조의를 표하는 정부 담화문을 발표한데 이어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사과문제를 철회할 수 있다는 입장을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명박이 직접 나서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러한 대북유화 메시지는 이면접촉을 통해서도 북한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 베이징과 개성에서 남북은 잇달아 비공개 실무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명박 정권에 대한 기대를 이미 버린 것 같다. 정권교체로 물러날 이명박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이명박이 추진한 남북간 이면접촉이 무위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월2일 북한이 느닷없이 밝힌 ‘공개질문장’은 이러한 강경기조를 재확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요구조건으로 명시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구체적 이행은 이명박 정권보다는 사실상 차기정권을 염두에 두며 일종의 남북관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대화의 불발책임을 이명박 정권으로 돌리며 경색된 남북관계가 북미대화의 재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명분 쌓기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이명박은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다. 아무리 이명박이 레임덕에 시달린다고 해도 지금에 와서 그것도 과거 자유주의 집권세력이 합의해 놓은 것을 전면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대북 강경노선을 정권의 의지로 계속 내걸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안보위기의 조장을 통한 북풍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는 ‘역북풍’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는 3월 대규모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앞두고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것도 다분히 총선용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정권 말기 이명박의 대북노선은 대외변수, 즉 향후 미국이 취할 대북정책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는 경기침체의 장기화 속에서 공화당을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강한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이러한 강경기조는 중국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동북아에서 미국의 대중 압박노선은 한반도 질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때 북한의 대응방식 역시 한반도 정세에서 주요한 축으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암중모색과 2012년 한반도 질서

현재 북한의 정치권력은 ‘김정일 없는 김정일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외형상 북한의 통치체제는 김정일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의 유산으로 ‘핵보유국과 위성발사’를 내세움으로써 선군정치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안정적인 권력이양과 체제결속을 대내외로 과시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에선 과거에 비해 유훈통치 기간이 짧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적어도 올해까지는 이러한 양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의 안착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의 장기적인 경제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성대국 행사를 치러야 하는 올해에도 북한경제의 위기국면이 근본적으로 완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북한의 권력집단은 경제난과 궁핍에 시달린 북한의 노동자주민들에게 2012년을 강성대국 원년의 해로 강조하며 인내와 노력을 강조해 왔다. 경제회생을 위한 중장기적인 자구책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는 건 외부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며, 당장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더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북한은 그동안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해 왔다. 이미 시장자본주의화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은 북한이 체제를 존속시키며 미국 주도의 세계자본주의 질서에 이른바 시민권을 얻고 편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현재 과도한 중국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물론 굳이 남한이 아니더라도 외교의 다변화로 경제적 투자유치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제로 미국이 요구한 것은 바로 북한의 비핵화였으며, 특히 오바마 정권은 예상과 달리 비핵화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고수함으로써 대북 강경노선을 주도했다.

2012년이 시작되자마자 이란의 핵개발을 가지고 외교안보 분야에서 강경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오바마 정권이 올해 북핵만을 예외로 인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구나 한반도 질서에서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 관련되어 있으며, 미국이 동북아에서 대중 포위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정치군사적 명분으로 사실 북한 문제만큼 좋은 것도 없다. 따라서 오바마 정권이 대선을 의식하며 중국견제 카드를 노골화할수록 대북정책도 그만큼 강경기조로 기울 수 있다. 북미대화의 재개 또한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 역시 향후 강경한 자세를 보일 수 있다. 핵무장을 체제유지와 대외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북한이 김정일 추모분위기를 마감하고 나면 3차 핵실험 강행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대내외적으로 강성대국 이미지를 홍보하며 북미대화의 속도를 높여 이를 통한 경제지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의 긴장지수를 높일 수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위상을 완전한 핵보유국의 지위로 더욱 강조하며 기존 비핵화 의제의 북미대화를 사실상 핵군축협상의 공간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북미간 변수의 등장은 남한에 그대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경우 어느 정치세력이든 이명박 정권 이후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중 보수진영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이다. 선거의 계절을 맞아 대북정책 유연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내부의 전통적인 보수층의 반발과 미국의 강경한 안보질서에 결국에는 대북 강경노선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자유주의 세력들은 보수진영과의 차별화 속에서 ‘역북풍’의 여론에 적극 편승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대선에 올인하며 ‘한미FTA 폐기’처럼 대북정책 역시 미국과의 이견 조율과정은 모두 집권 이후의 과제로 미룰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히 한반도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북한이 모종의 돌발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남한 정세에 큰 변화를 불러오거나 단기적으로 한반도 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양대 강대국의 힘겨루기 양상이 강화될수록 장기적으로 한반도 주변정세가 계속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 : 김성렬 tjdfuf@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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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가슴 속의 임금을 지워라

  • 분류
    문화
  • 등록일
    2012/02/20 14:28
  • 수정일
    2012/02/20 14:46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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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에 <한성별곡-正>과 <뿌리 깊은 나무>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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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월3일에 발간된 사노신 뉴스레터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편집자]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이하 ‘뿌나’)가 지난 12월22일 막을 내렸다.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는 최근의 정치현실과 겹쳐지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 묘하게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2007년 KBS에서 방영된 8부작 드라마 <한성별곡-正>(이하 ‘한성별곡)이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놓은 상황에서 방영된 두 드라마는 비단 궁중을 중심으로 한 역사추리물의 외양을 취하고 있다는 점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유사점을 보였다. 하지만 <한성별곡>이 보기 드문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저주받은 걸작이 된 반면 <뿌나>는 20%가 넘는 시청률을 보이며 명품드라마라는 호평과 함께 대중적인 성공도 함께 거머쥐었다.
 

비슷하나 다른 두 드라마


<추노>로 유명해진 곽정환이 연출한 <한성별곡>은 드라마 상에서 그냥 ‘임금’으로 나올 뿐이지만 여러 가지 설정으로 볼 때 정조임이 분명한 조선의 임금을 등장시키고 있다. <뿌나>와 마찬가지로 <한성별곡>에는 기득권층에 맞서 개혁을 추진하는 임금과 그런 임금을 신뢰하지 않는 백성, 임금의 개혁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기득권층인 보수신료들, 그리고 정체불명의 기괴한 음모조직과 연쇄살인 사건이 나온다.

이런 면들에서 <한성별곡>과 <뿌나>는 상당히 많이 닮아있다. 다만 차이라면 <한성별곡>의 임금은 실패하고 좌절하는 반면 <뿌나>의 세종은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어내는 데 성공한다는 점이다.

<한성별곡>의 임금은 자신을 믿지 않는 개혁세력과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한 보수 세력 사이에서 좌절한다. 믿었던 신하들이 알고 보니 배신자들이거나 자신의 이해만 추구하던 자들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그는 결국 “나의 신념은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은 안타까운 희생을 키워 가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라고 부르짖으며 쓰러진다. 임금이 죽자 보수 세력이 집권하고 그가 추진하던 개혁은 몽땅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한성별곡>의 주된 정서는 안타까움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일체의 희망을 느끼기 힘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데 임금의 선의를 알아주지 않는 우매한 백성들에 대한 작가의 분노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한성별곡>은 소수의 시청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동시간대에 방영된 <커피프린스>에 밀려 시청률은 6%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드라마가 인기를 얻기에는 노무현 정권 말기의 대중은 너무나 정치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고, 결국 이런 정치에 대한 불신은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는 MB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오히려 MB정권이 들어선 뒤에 현실 정치상황을 빗댄 사극드라마들이나 정치드라마들이 다수 제작되고 그 대부분은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뿌나>를 쓴 김영현-박상연 콤비의 전작 <선덕여왕>은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곽정환이 연출한 <추노> 역시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이는『닥치고 정치』나 『정치가 우선한다』 같은 서적들이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정치의 대중화를 모토로 내건 <나는 꼼수다>가 큰 인기를 누리는 최근의 정치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뿌나>의 인기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성별곡>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었다면 <뿌나>는 MB정권에 대한 실망감에 더해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보여주면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임금에 대한 환상


그런데 문제는 최근 부쩍 늘어난 정치적 관심과 여기에 편승한 책과 드라마들이 대개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지도자에 대한 환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성별곡>의 임금이 노무현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면 <뿌나>의 세종 이도는 현재 국민들이 품고 있는 지도자 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도처럼 능력 있는 엘리트이면서도 뭔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줄 것 같은 이미지의 지도자를 바라는 기대는 사실 그대로 안철수 붐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MB정권에 대한 실망 때문에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외면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런 환상과 기대는 사실 민주주의 자체와 모순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되돌아 볼 때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은 누구 하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는 보수든 지유주의든 어떤 정부도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구성원 사이의 이해 갈등을 봉합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소위 민주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한 90년대 중반부터 불어 닥친 세계화 바람은 이를 더욱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지도자의 능력이나 인격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실질적인 문제는 항상 해결되지 않고 늘 비리나 부패와 같은 주변적인 문제로 정쟁이 일어났고 이는 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귀결되곤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히려 민주화 이후 유능하고 강한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정조에 대한 우상화 담론이었다.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이 불을 붙이고 이덕일의 대중적 역사서들이 퍼트린 정조 우상화는 정조가 죽지 않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었으면 조선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고 이후 나타난 혼란과 식민지 시대를 겪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기초한다. 이런 담론들은 또한 정조는 일찍 죽은 게 아니라 서인-노론이라는 기득권 세력에 살해당했다는 별 근거 없는 음모설을 유포시키기도 했다. 이런 정조 우상화는 사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기댄 매우 퇴행적인 담론에 불과했다.

비록 박정희 대신 노무현을 정조에 빗대고 있긴 하지만 <한성별곡> 역시 근본적으로 이런 정조 담론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의 정조 우상화는 민주주의에 역행할 뿐 아니라 실제 역사적 사실에도 맞지 않는다. 최근 발견된 정조의 어찰은 정조가 표면적인 모습과는 달리 노론의 수장과 은밀히 야합하며 국정을 운영한 능수능란한 음모정치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적 연구는 세도정치 시대가 아니라 이미 영·정조 시대의 조선사회가 동시대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사회경제적으로 뒤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성별곡>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절절한 아쉬움의 표현이었고, 그러한 정서는 MB 정권 등장 이후 향수로 변했다. 그 속에서 MB정권이 추진한 많은 정책들이 이미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빨리 망각되고 있다. 이렇게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끝없는 반복은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고유한 것이면서 체제 자체가 문제되지 않도록 하는 방어막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대부들의 민주주의


<뿌나>가 선의지를 가진 왕과 탐욕스러운 사대부 관료들의 대립을 묘사하는 데 그쳤다면 <한성별곡>처럼 이상적인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향수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는 정조 우상화 작업에서 보듯 퇴행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뿌나> 역시 임금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상 이런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촛불투쟁과 희망버스 등 다양한 대중운동 이후에 등장한 <뿌나>에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세종의 가장 강력한 적대세력으로 등장하는 정기준과 밀본(密本)은 사리사욕만을 추구했던 <한성별곡>의 음모조직과 다른 이념집단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세습되는 전제군주의 자의적인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대부 관료들의 집단적 논의를 통해서 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정조 담론처럼 개혁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군주의 전제를 옹호하는 입장에 비해 삼권분립 같은 근대적인 민주주의 정치사상에 오히려 훨씬 가까워 보인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물론 서양에서 나온 개념이고, 언제나 정치(政治)라는 개념이 군주에 의한 다스림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지녔던 동양에서는 찾기 어려운 개념이다. 서양에서 민주정치의 전통은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 그중에서도 특히 아테네에서 기원했다고 여겨진다. 데모크라틱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데모스(demos)의 지배(cratic)라는 뜻이다. 데모스란 아테네에서 노예를 제외하고 재산을 기준으로 나눈 신분에서 최하층, 생산수단을 거의 가지지 못한 최극빈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따라서 어원적으로 (비록 그 시대적 한계로 말미암아 노예, 여성, 외국인은 참여하지 못하였지만)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정치의 본질은 가장 극빈층까지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하는 직접적인 민주주의를 의미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최초로 체계적인 정치론을 펼친 플라톤은 이런 민주주의가 혼란과 무질서만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하며 지적, 육체적으로 우수한 자들이 다스리는 질서정연하고 엘리트주의적인 국가를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 사이의 자질의 차이는 타고 나는 것이며 따라서 자질이 떨어지는 자들은 생산을 하고 힘이 센 자들은 군인이 되어 외적을 방어하며 그 위에 똑똑한 자들이 통치를 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했다.

흥미롭게도 조선은 많은 면에서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국가와 상당히 가까웠다. 플라톤 철학과 성리학은 유사점이 많은데 이 둘은 모두 현상 이면에 본질적인 진리의 세계가 있고 이 진리를 아는 것은 지성적 훈련과 수양을 통해 단련된 지식인 지배계급뿐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정기준이 자부하는 대로 조선의 사대부들은 본래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 엄격한 시험을 통해서 지배계급이 되었다. 실제로 정기준의 정치관은 플라톤과 비슷한 면이 꽤 많다.

정기준의 논리는 어떻게 보면 군주 1인의 독재에 대해서 훈련된 사대부들에 의한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주장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플라톤이나 정기준의 논리를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극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원래 역사적으로 매우 한정적인 민주주의, 남성 부르주아들로 제한된 민주주의였다.

보통선거제의 확대와 함께 노동자와 여성들도 투표권을 얻게 되었지만 이러한 엘리트주의로 말미암아 근대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는 투표행위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권력을 열어두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적·경제적 엘리트들이 결탁한 과두지배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가슴 속의 임금들을 지워내야


결국 이런 과두정치는 국민을 위한 통치를 약속하지만 결국 그 자체가 지배계급, 이익집단이 되어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할 위험성을 항시적으로 갖고 있다. 극중에서 이도의 지적대로 사대부들의 통치 역시 결국 사대부들이 이익집단화하면서 고려의 문벌귀족이나 마찬가지의 세습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 양반은 고려의 문벌귀족들과 별 다름이 없었다.

정기준은 임금 한 사람의 전제정치의 위험성에 대해 신료들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부르주아 정치원리와 유사한 것을 제기하지만 이런 원리들은 오히려 체제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버팀목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대해 이도는 개혁적 임금의 왕권 강화라는 손쉬운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글과 지식이라는 무기를 백성에게 직접 쥐여 주는 보다 근본적인 방식을 제기한다. 이런 이도의 논리는 제도화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며 정기준이 당황스러워하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기준이 끝까지 한글 창제를 막으려 드는 것은 이것이 사회 질서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 역시 1인 독재정치에 대해 제도적으로 보장된 엘리트들의 제한된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이를 뛰어넘는 대중들의 정치에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백정으로 살아가되 뼛속까지 지식인이자 엘리트인 정기준에게 모든 사람들이 글을 알고 자신을 표현하는 세상, 그래서 그 결과 스스로 자신들을 통치하고자 나서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정기준의 우려를 전근대 시대 지배계급의 한계로만 보기에는 그런 논리가 우리 자신들 속에도 깊이 내면화되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보다 똑똑한 사람, 보다 능력 있는 엘리트들이 사회의 운영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고는 현대를 사는 우리 역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1%에 맞서는 99%라는 슬로건은 정치엘리트와 자본가들이 결탁한 기득권층의 과두정치가 더 이상 형식적 민주주의로 포장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사고의 족쇄들은 또 다시 새로운 임금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흘러가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지도자에 대한 환상은 결국 언제나 다시 더 큰 실망으로 귀결되고 말았으며, 어떨 때는 지난 정권의 말기 때처럼 정치 자체에 대한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소설가 이청준은 박정희 시대에 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에서 마음속에 동상을 품은 지도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의하면 나병 환자들이 사는 소록도에 부임하는 소장들마다 환자들에게 천국을 만들어주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그 약속은 자신의 동상을 남기겠다는 소망일뿐이었고 환자들의 천국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상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지도자는 가슴 속에 임금을 품고 있는 백성들과 잘 어울리는 짝이다. 가슴 속에 품은 임금을 지우지 않으면 동상을 품은 지도자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가슴 속의 “임금”을 지워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정인 wjddls@jinbo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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