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10개의 코리안 드림”
이번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로 희생된 10명의 이주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들은 한국에 와서 일하면 잘살 수 있게 될 거라는 ‘코리안드림’을 품고 이 땅에 발을 내딛었다. 마치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이나 ‘중동 붐’을 쫓았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꿈을 채 이루기도 전에 이들은 ‘불법체류자’라는 딱지가 붙어 하루하루를 숨죽여 지내야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다 갚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에는 한국정부가 허가해준 체류기간이 너무 짧았다. 일거리가 줄어들어 사장님이 소개해준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하다가 허가된 업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일하던 것도 잠시 뿐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단속반에게 백주대낮 길거리에서 아니면 잠자던 숙소에서 끌려나와 마치 흑인노예들처럼 수갑을 차고 줄줄이 차에 실려 ‘보호소’라는 곳으로 보내졌다.
‘보호소’는 말이 ‘보호’였지 사실상 ‘수용소’였다. 두꺼운 철창으로 막힌 좁은 공간은 24시간 CCTV로 감시되었고, 유일하게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건 한 달에 한두 번 30분씩 주어지는 운동시간 뿐이었다. 일하던 곳에서 받지 못한 체불임금 등 고충을 이야기하였지만 어떻게 처리되는지 감감무소식이었다. 심지어 체불임금이 입금되었는데도 알려주지 않아 출국하지 않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사고가 난 날, 매캐한 연기에 모두들 일어나서 철창문을 붙들고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쳤지만 연기가 나고 9분이 지나서야 경비용역 직원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도 문을 열지는 않고 소화기만 몇 번 뿌리더니 그냥 가버렸다. 그리고는 이후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연기가 점점 심해져서 모두들 화장실로 대피하였다. 화장실 물을 틀어 수건을 적셔 입을 막았지만 점점 숨이 막혀왔다.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만약 직원들이 문만 열어주었다면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화재가 난 3층 보호실에는 직원들이 아예 없었다. 직원들은 규정을 어기고 자기위치에 있지 않았고 경비용역직원만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열쇠를 들고 3층으로 올라갔고 그때조차 첫 번째 방만 문을 열고 2층 보호실에 다시 가둔 후에 다른 방을 열기 위해 3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연기가 가득차서 보호실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사고가 난 여수외국인보호소는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2005년에 문을 열자마자 이미 화재사고가 한 번 발생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 이후에 이렇다할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다. 화재경보기는 고장난 상태였고,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보호실 바닥은 가연성 소재로 만들어진 우레탄장판이 깔려있었고, 환기시설도 형편없었다. 또한 보호실과 보호실 사이의 벽이 설계도와 달리 시멘트벽이 아니라 쇠창살과 목재책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화재가 더욱 빨리 확산되었다.
하지만 사고를 조사한 경찰은 이런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화재의 원인이 방화일 가능성이 있다는 쪽으로 관심을 몰아갔다. 언론들도 여기에 동조해 각종 추측성 기사들이 난무했다. 결국 경찰은 화재원인을 보호외국인 중 한명의 방화로 최종결론을 내렸으나 확실한 증거를 내세우지는 못하고 여러 정황증거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반면 역시 2005년에 보호소 화재가 발생하여 11명이 사망한 네덜란드에서는 1년여 간의 철저한 진상조사 끝에 2명의 장관과 1명의 시장이 사퇴하였다. 이 사고에서도 방화여부가 논란이 되었으나 최종 조사결과는 ‘불은 언제나 날 수 있지만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것은 다른 원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다른 원인들이란 미숙한 초기대응, 화재발생에 취약한 건물구조 등이었다.
여수참사 역시 네덜란드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방화용의자가 살아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느냐 아니면 사망해서 그럴 수 없었냐가 달랐다.
여수참사가 발생한 지 2달째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건은 보호외국인 중 한명이 방화한 사건이고 하급공무원 몇 명만이 처벌되었을 뿐이다. 전국 보호소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되었지만 2005년에도 이미 국가인권위에서 실태조사를 한 바 있다. 하지만, 보호소의 문제는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단지 행정서류 미비자에 불과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형사범처럼 아니 오히려 그 보다 못하게 대우하는 현재의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합법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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